임꺽정 의형제편 배돌석이 1

3학년2반 | 2022.01.07 07:16:29 댓글: 0 조회: 745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0484
  제 5장 배돌석이
1
봉산읍에서 황주읍까지 칠십 리에 거의 오십 리는 산골길인데 중란에 동선령
이 있고 새남이 있으니 동선령은 봉산읍에서 삼십 리요, 새남은 황주읍에서 삼
십 리다. 새남 남쪽에서 서남쪽으로 벌려 있는 한철산과 발양산은 봉산 땅이요,
북쪽으로 더 들어가는 무인지경 산골은 황주땅이요, 동쪽에 있는 삼봉산과 서쪽
에 있는 정방산은 모두 두 골의 접경이다. 새남 근방에 호랑이 나다닌다는 소문
이 있던 중에 황주읍내 사람 하나가 봉산읍내 볼일 보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새남 아래서 대낮에 호환을 당하였다. 그 사람의 집에는 늙은 어머니와 젊은 안
해가 있어서 이틀 사흘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다가 마침내 호환에 간 것을 알고
두 고부가 다같이 죽으려고 날뛰는 끝에 그 어머니는 상성이 다 되었다. 그 늙
은 여편네가 황주 관가에 들어가서 목사에게 자식 원수를 갚아달라고 애걸복걸
하였다. "늙은 것의 정경은 기긍하나 범에게 죽은 것을 어떻게 원수 갚는단 말이
냐. " "죽은 자식이 아비 없는 유복자올시다. 불쌍한 자식 원수나 갚아줘야겠습
니다. " "글쎄 유복자 아니라 유복자보다 더한 것이라도 갚을 수 없는 원수야 어
떻게 갚느냐. 사주 팔자로만 생각하고 고만두어라. " 목사의 타이르는 말을 늙은
여편네는 들은 체 아니하고 "제발덕분에 자식의 원수를 갚아줍소사. " 하고 머리
를 땅에 끌어박듯이 숙이면서 두 손을 치어들고 빌었다. 목사가 한동안 미간을
찌푸리고 앉았다가 "이거 보아라, 징징거리지 말고 말 들어라! " 하고 소리지
르니 늙은 여편네는 머리를 들고 목사를 치어다보았다. "네 자식이 새남서 호환
을 당했다지? " "녜, 새남 아래 두이봉 가는 샛길에 찢어진 갓이 떨어져 있더 랍
니다. " "그리고 보면 네 자식을 물어간 범이 봉산 범이 아니겠느냐? " "그건 모
르겠습니다. " "봉산땅에서 물어갔으니 봉산 범이겠지. " “녜. ” "범은 사람과
달라서 봉산서 황주로 잡아 넘길 수가 없다. 그러니 네가 봉산 관가에 가서 발
괄을 해보아라. "
황주목사는 약게 두통거리를 봉산군수에게로 밀어버렸다. 그 늙은 여편네가
황주 관가에서 나오는 길로 곧 봉산으로 달려오는데 늙은 여편네의 걸음이라 달
음질하다시피 하는 것이 하룻밤은 산길에서 드새고 다음날 다 저녁때에사 봉산
읍에를 대어왔다. 그날은 어느 큼직한 집에 들어가서 얻어먹고 밤을 지내고 이
튿날 식전에 관가를 찾아와서 곧 삼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문에 섰던 관노
들이 못 들어오게 밀막았다. "제발 좀 들어갑시다. 봉산 안전께 아들의 원수를
갚아달라러 왔소. " "무슨 원수란 말이오? " "봉산 호랭이가 내 아들을 물어갔
소. " 하고 늙은 여편네가 징징 울면서 부적부적 삼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관
노들이 가로막고 실랑이하여 늙은 여편네는 악을 쓰기 시작하였다. 관노들이 동
헌에 들릴까 겁이 나서 멀리 끌어내려고 하니 늙은 여편네는 곧 맨땅에 드러누
워서 몸부림을 치며 악을악을 썼다. 악쓰는 소리가 동헌에까지 들리머서 원이
통인을 불러 알아 보라고 분부하여 통인이 동헌마루에 나꺼서 급장이를 부르고
급장이가 동헌 댓돌에 서서 사령을 불렀다. 긴 대답소리가 끝나며 관노 하나가
샐샐 기어들어왔다가 얼마 뒤에 도로 나갔다. "안전이 잡아들이라시우. 어서 일
어나우. " 관노가 잡아 일으킬 사이도 없이 늙은 여편네는 툭툭 털고 일어
나서 관노에게 붙들려 들어왔다. 원이 동헌 방문을 열어젖히고 댓돌 밑에 꿇벼
앉힌 늙은 여편네를 내려다보며 "기집사람이 식전에 관문 앞에 와서 악을 쓰다
니 그런 무엄한 일이 어디 있을꼬! " 하고 호령을 하는데 늙은 여편네는 조금도
겁없이 울며불며 사정을 하소연하였다. 봉산군수가 늙은 여편네의 모호한 말을
듣다가 "네 자식이 새남서 호환에 갔단 말이냐? “ 하고 물으니 늙은 여편네는
”봉산 호랭이가 자식을 물어갔습니다. 그 호랭이를 잡아서 원수를 갚아주십시
오. " 봉산 호랑이란 말에 힘을 주어 대답하였다. "그 호랑이가 꼭 봉산 호랑인
줄은 어떻게 아느냐? " "저의 골 사또께서 일러주셨습니다. " "너의 골 사또는
용하시기도 하다. 그러면 너의 골 사또께 다시 가서 봉산 호랑이가 황주 호랑이
와 어떻게 다른가 여쭈어보고 필적으로 억어 줍시사고 해서 가지고 오너라. " "
늙은 것이 언제 다시 갔다옵니까. 사령을 하나 보내주십시오. " "그건 못하겠다.
" "원수를 안 갚아주시렵니까? " "황주 봉산에 호랑이가 한둘이 아닐 테니 호랑
이부터 분간해야 원수를 갚아주지 않겠느냐? " "봉산에 있는 호랭이들을 모조리
잡아죽여 주십시오. " "잔말 말고 어서 가서 호랑이 분간하는 법을 알아오너라.
“ 늙은 여편네는 봉산군수의 말을 원수 갚아주기 싫어서 미루는
말로 듣고 불쌍한 백성의 원통한 사정을 돌아보아 주지 않는다고 발악을 시작하
였다. 군수가 끌어내라 몰아내라 호령은 하지 않고 "관청에서 발악하면 죄 당하
는 줄 모르느냐? " 하고 얼러대었다. "죄 당하면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이 자
리에서 죽어노 좋습니다. 의지하고 살던 자식을 앞세우고 살고 싶지도 않고 살
수도 없습니다. 그 자식을 유복자로 낳아가지고 아비 없이 기르느라고 죽을 고
생 다했습니다. " 늙은 여편네의 발악이 변하여 넋두리하듯 지껄이는 말에 유복
자란 말이 군수 귀에 들어가자 군수는 새삼스럽게 상을 찡그리며 "네 죽은 자식
이 유복자란 말이냐? " 하고 대쳐 묻고 "녜, 유복자올시다. 자식이라곤 딸자식도
없고 그것 하나뿐이 올시다. " 늙은 여편네의 대답하는 말을 듣고서는 갑자기 "
네 자식 물어간 호랑이를 꼭 잡아서 원수를 갚아줄 것이니 그리 알고 나가거라.
" 하고 말을 일렀다. 늙은 여편네가 치사하는 뜻으로 열 번, 스무 번 머리를 숙
이고 나서 일어서려고 하다가 다시 펄썩 주저앉아서 한 번 다리를 부둥켜 쥐니
군수가 뜰 아래 섰는 사령들을 내려다보며 "다리에 쥐가 나는 게다. 너희들이 좀
주물러 주어라. " 하고 분부하였다. 늙은 여편네가 한동안 다리를 주물리고 나서
사령을 붙들고 일어설 때 군수가 "인제 나으냐? " 하고 물었다. "녜, 낫습니다. "
"오늘 황주로 돌아갈 터이냐? " "안전께서 원수놈의 호랭이를 잡아주실 내까지
여기 있을 생각입니다. " "여기 친척이나 아는 사람이 있느냐? “ "친척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 "그러면 네 자식은 뉘 집에를 왔었더냐? " "남의 심부
름을 왔었으니까 뉘 집에를 왔었든지 모릅니다. " "지금, 너는 어디 가서 묵을
작정이냐? " "얻어먹고 돌아다니겠습니다. " "그렇게 고생하느니 황주로 가거라.
호랑이를 잡으면 네게로 보내 주마. " "나가보아서 가든지 있든지 작정하겠습니
다. ” "좌우간 오늘은 여기서 묵겠구나. " “녜, 묵겠습니다. " "묵을 데가 없다
니 될 수 있느냐. 거기 잠깐 있거라. " 하고 곧 옆에 섰는 통인을 돌아보며 이방
을 부르라고 분부하였다. 긴 대답소리가 난 뒤에 한동안 있다가 이방 백가가 기
어들어왔다. 군수가 이방을 보고 늙은 여편네의 정경을 대강 말바고 나서 편히
묵을 만한 곳을 지시하여 주라고 분부하여 이방은 ”녜. “ 대답하고 늙은 여편
네를 데리고 나갔다.
동선령과 새남은 평안도 삼십이관 관원 행차가 다니는 길이요, 연경 삼천리
사신 왕래가 지나는 길이라 이 길에서 호환 난 것이 봉산군의 작은 일이 아니
다. 봉산군수는 호환 난 것을 알며 곧 읍촌의 사냥꾼들을 관가로 불러을여서 호
랑이를 잡도록 하라고 분부 하였었다. 관령을 받은 사냥꾼들이 동선령과 새남
사이를 뻔찔 돌아다닐 뿐 아니라 십리 동안에 목목이 덫을 해놓고 군데군데 함
정을 파놓았으나 육칠 일 동안에 개호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었다. 봉산군수
가 늙은 여편네에게 원수 갚아 줄 것을 허락하던 이튿날 식전 조사 끝에 이방에
게 말을 물었다. "그 어제 늙은 것을 어디서 재웠느냐? " "소인의 집에서 재웠습
니다. " "황주로 도루 간다더냐? “ "호랭이가 잡힐 때까지 안 가구 있겠다구 떼
를 쓰다시피 하옵디다. " "대체 호랑이 잡으란 것은 어떻게 된 셈이냐? ” "지금
잡으려구 애들을 쓴답니다. " "벌써 며칠이냐. 애들을 썼으면 이때까지 못 잡을
리 있느냐! 그대로 내버려 두어선 못쓰겠다. " "각별히 신칙을 하오리다. " "아니
다. 사냥꾼놈들만 맡겨둘 것 없다. " 군수는 곧 수교를 불러서 "건장한 장교를
열만 뽑아서 사냥꾼들을 데리고 호랑이를 잡게 하되 오늘부터 열흘 안으로 잡게
해라. 만일 열흘 한이 넘으면 사냥꾼과 장교는 고사하고 너부터 중책을 당할 것
이니 그리 알아라. " 하고 영을 내리고 또 군기고 감관을 불러서 "호랑이 사냥
가는 장교들에게 각각 군기를 내어주어라! " 하고 영을 내렸다. 관속들이 물러나
을 때 이방이 넌지시 수교를 보고 "내 사위는 뽑지 말게. " 하고 부탁하니 수교
는 “백두산 일등 사냥꾼을 빼놓구서 누구를 뽑습니까? " 하고 고개를 외쳤다. "
내 사위가 사냥꾼인지 아닌지 나두 모르는 걸 자네가 어떻게 아나? ” "자기 입
으로 이야기를 하니까 알지요. 나뿐 아니라 지금 장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걸요. " "젊은 아이들의 흰소리를 어떻게 다 곧이듣나. " "그래두 아무 까닭없이
뽑지 않으면 장교들 사이에 뒷공론이 날 것입니다. " "그러면 병탈을 시키까? “
"그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 "자네에게 단단히 부탁하네. " "녜, 알았습니다. 그런
데 안전께서 황주서 온 여편네에게 자식의 원수를 갚아주신다구 허락하셨다지
요. " "그리하셨다네. 그 여편네를 지금 내 집에서 묵이네. " "말씀 들었습니다.
그 여편네가 미친 사람이라지요. " "외아들을 죽이구 상성이 되었나 부데, 좀 시
룽시룽하데. " "안전께서 처음에는 황주루 도루 보내시려구 하시다가 죽은 자식
이 유복자란 말을 들으시구 선뜻 허락을 하셨답디다. " "당신이 유복자라 달리
생각하신 모양이지. " "안전이 유복자신가요? " "그렇다네. " 이방과 수교가 수작
을 마친 뒤에 이방은 집으로 나가고 수교는 장청으로 들어갔다.
아침때가 지난 뒤에 수교가 장청에 앉아서 호랭이 사냥갈 장교들을 뽑는데 물
론은 백이방의 사위 황천왕동이가 첫손가락에 꼽히나 이방의 부탁을 받은 깐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부터 뽑고 나중에 와서 이면 수습으로 황천왕동이 하고 이름
은 부르면서도 병탈하기를 기다리었더니 천왕동이가 녜 하고 대답한 뒤에 다른
말이 없었다. 수교가 이방의 부탁을 무이기 어려워서 "자네가 무슨 병이 있다지?
" 하고 물으니 천왕동이는 "아니오. " 하고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무슨 병이 있
다구 자네 장인이 말씀하시데그려. " "꾀병하구 호랭이 사냥 나가지 말라구 말씀
합디다. " 천왕동이 말에 동무 장교들은 웃느라고 허리들을 잡고 수교도 억지로
웃음을 참느라고 입을 빼물었다.
천왕동이가 사냥 나갈 장교 열 사람 수에 뽑힌 뒤에 나갈 동무들과 같이 한동
안은 장청에서 수교의 지휘를 받고 또다시 한동안은 군기고에 가서 군기들들 고
르고 한낮이 기운 뒤에 처가로 돌아 왔다. 이방이 안마루에 누워서 딸에게 다리
를 주물리다가 사위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일어 앉았다. "배두 안 고프냐? " "왜
안 고파요. 점심 잡수셨지요? " “안 먹었다. " "어째 이때까지 점심을 안 잡수
셨세요? ” “너 기다리구 있었다. " "그럼 얼른 잡수시지요. " 천왕동이가 분분
히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왔다. ”호랭이 사냥은 어떻게 하기루 했느냐. 그예
병탈을 아니하구 왔느냐? “ "성한 사람이 병이 있다면 누가 곧이듣나요? 사람
이 찌만 떨어지지요. " "저런 사람 좀 봐. " "호랭이가 없으면 모를까 있기만 있
으면 열흘 안에 잡지요. " "호랭이를 못 잡으면 볼기 맞구 호랭이를 잘못 잡으면
위태하구 그런 데를 무어하러 부득부득 간단 말이냐. " 황주서 온 늙은 여편네가
부져에서 점심 한술을 얻어먹고 그대로 앉아서 동자하는 여편네에게 신세 이야
기를 늘어놓던 중에 마루에서 옹서간 수작하는 말을 귓결에 듣고 벌떡 일어나
쫓아나와서 이방에게 손가락질하며 "이놈아, 네가 나하구 무슨 원수냐? 내 자식
원수 갚아주러 간다는 양반을 왜 못 가게 말리느냐. " 하고 악을 썼다. 이방의
안해는 점심상을 보다 말고 소리질러 야단치고 천왕동이는 맨발로 쫓아내려가서
늙은 여편네의 뺨을 쳤다. "뉘게다 함부루 욕설이야! 미친 체하면 가만둘 줄 알
구. " "당신에게 욕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 같은 고마운 양반에게야 욕할 리가
있습니까? " "아갈머리를 짜개놓을까 부다. " 천왕동이가 또 늙은 여편네에게 손
을 대려고 할 때 "이애 성치 못한 늙은 것을 가랠 것이 없다. 고만두구 올라오너
라. " 하고 이방이 천왕동이를 불러올렸다. "가만히 국으루 있어야 자식 원수를
갚아줄 테야. " 천왕동이 말에 늙은 여편네는 ”녜, 녜, 당신 말씀대로 가만히 있
겠습니다. " 하고 대답한 뒤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갓을 동자하는 여편
네가 부엌문 앞에 나섰다가 "부엌엔 왜 또 들어올라고 그러우. 방으로 가우. "
하고 가로막아서 늙은 여편네는 자는 처소인 뜰아랫방으로 내려갔다. 옥련이가
남편 천왕동이에게 눈을 흘기면서 "공연히 호랭이 사냥 간다고 떠들다가 아버지
만 욕보시게 하니 그런 일이 어디 있담. " 하고 종알거리니 천왕동이가 옥련이를
돌아보며 "글쎄 나 까닭에 욕을 보셔서 이런 미안할 데가 없어. " 하고 사과하듯
말하였다. "자네가 욕하라고 시켰나. 자네 까닭이라고 안담할 거 무어 있나, 탓하
려면 일수 그른 탓이니 하지. " 이방의 안해가 말한 뒤에 이방은 허허 웃으면서
"그래 일수가 그르다. 이애 어서 점심이나 먹자. 이리루 다가앉아라. " 하고 말하
여 천왕동이가 앞으로 들어앉아서 장인과 같이 겸상하여 점심을 먹었다. "군기고
에 가서 무얼 골랐느냐? " "군기고에 들어가 보니까 창이 모두 녹이 났습니다.
그중에서 쓸 만한 것 한 자루 골라놨지요. " "호랭이를 만나거든 아예 혼자 나서
지 말아. 아무쪼록 조심해. 매사에 조심하면 낭패가 없는 법이야. " "녜, 조심할
테니 염려 마세요. " 천왕동이가 점심을 다 먹고 다시 장청으로 들어갈 때 장인
장모가 다 조심하라고 신신부탁을 하는데 안해만은 말 한마디 없이 건넌방으로
들어가더니 방문에 붙어서서 밖으로 나가려는 천왕동이를 손짓하여 불렀다. 천
왕동이가 방문 앞에 와서 "왜? " 하고 물으니 옥련이는 말끄러미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조심 해요. " 하고 당부하였다, 천왕동이가 웃으면
서 “호랭이에게 물려가지 않을 테니 염려 말아. " 대답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안
해의 은근한 당부가 마음에 좋아서 장청에를 다 오도록 혼자서 싱글벙글하였다.
장교 열 사람이 떼를 지어 새남으로 몰려나갔다. 열 사람 중에 활이 여덟이요,
창은 둘뿐인데 긴 창을 어깨에 메고 맨 앞에 선 사람이 곧 천왕동이였다. 장교
들이 동선령서부터 새남까지 가는 동안에는 사냥꾼들에게 칠팔일간 지난 이야기
를 들으며 덫과 함정들을 돌아보고 새남 가서는 사냥꾼들을 한데 모아놓고 앞으
로 할 일을 공론하였다. "이 앞으루두 역시 호랭이가 제발루 와서 덫에 치이거나
함정에 빠지기를 기다리다가는 열흘 안에 호랭이 잡기 틀렸네. " 천왕동이가 첫
입을 떼자 "그럼 호랭이를 잡으러 돌아다니잔 말인가? " "호랭이뜰 잡으려면 서
흥 자비령을 가는 게 제일일세. " "자비령에는 호랭이가 개싸대듯 한다니까 가기
만 가면 하루 한 마리씩 열흘에 열 마리두 잡을 수 있을 게지. " "호랭이 잡는
데는 남의 골을 막 들어가두 일이 없나. " 장교중에 이사람이 이 말하고저 사람
이 저 말한다음에 "우리들 사이에두 호랭이를 잡으러 각처루 나가 돌아다니잔
말이 없지 않았지만 공론이 불일해서 두이봉만 한번 돌아보구 고만 두었소. " "
호랭이가 다시 큰길에를 못 나오게 하는 것이 상책이니까 우리가 여기를 떠날
수가 없지요. " "삼봉산이나 정방산 같은 데 가서 호랭이를 튀겨내드래두 황주
땅으루 내빼면 헛일 아니오. " "황주루 방위사통이나 보내놓구 정방산을 한번 뒤
져 봤으면 좋겠습디다. " "다른 골 장교들이 병기를 들구 월경하는 것이 여간 일
인 줄 아나. 관가의 관자루두 될동말동한데 방위사통 가지구 되겠나. " 사냥꾼들
이 중구난방으로 지껄였다. 천왕동이가 여러 사람을 돌아보며 "요전 호랭이 물려
간 사람의 의관이 두이봉 가는 샛길에 떨어져 있더라니 호랭이가 두이봉서 오지
않았으면 발양산시나 정방산서 왔을 것 아니겠나. 그러나 우리가 두이봉을 한번
다시 샅샅이 뒤져본 뒤에 발양산두 가보구 정방산두 가보세. 오늘은 늦었으니
이대루 헤지구 내일은 두이봉 가구 모레는 발양산 가구 글페는 정방산 가구 정
방산 갈 때는 황주루 관자를 얻어 부치든지 사통을 해보내든지 좋을 대루 하세.
"
하고 말하니 여러 사람들은 차른 말이 없었다.
이튿날 아침때 장교들이 사냥꾼들을 데리고 두이봉에 와서 한낮이 지나기까지
앞뒤로 올려뒤지고 내려뒤졌으나 토끼만 여러 마리 튀겨내고 호랑이는 그림자도
보지 못하였다. 두이봉 아래에서 싸가지고 온 점심밥들을 먹은 뒤에 천왕동이가
사냥꾼 두어 사람과 같이 샘물을 찾아갔다가 샘가에 있는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이것이 호랭이 아니라구! " 하고 소리를 지르니 사냥꾼들이 와서 들여다보며 "
그렇소. 큰 짐생의 발자국이오. " "여기는 온 것이구 저기는 간 것이구려. " 하고
지껄였다. "내가 먼저 발자국을 밟아갈 테니 어서 가서 여럿들을 데리구 뒤쫓아
오게. " 하고 천왕동이가 짐승의 발자국을 자세히 살펴보며 가는 중에 여러 사람
이 모두들 따라왔다. 각시바위 근처에 와서는 발자국이 수선하게 많아지더니 바
위 아래에 굴 하나가 나섰다. 다른 사람들은 굴 앞에 오기를 주저하는데 천왕동
이가 혼자 와서 굴 속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보고 "호랭이굴이다! " 하고 소리쳤
다, 굴이 아가리는 사람 하나 간신히 기어들 만하고 속은 캄캄하여 밖에서 잘
보이지 아니하였다. 천왕동이가 창을 들 이밀어 보니 창끝이 굴 뒷벽에 가서 닿
았다. 창으로 이 구석 저 구석 쑤시는 중에 큰 괴만큼한 호랑이 새끼를 한 마리
찔러내고 머리털이 붙어 있는 사람의 대가리까지 하나 꿰어냈다. 이 동안에 다
른 사람들이 굴 근처에서 찢어진 옷조각들과 부서진 뼈마디들을 찾아냈다. 천왕
동이가 다른 장교들과 의논하조 사람의 대가리와 뼈마디와 옷조각을 호랑이 새
끼와 같이 먼저 관가로 들여보내고 어디 나간 어미 호랑이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여러 사람들은 모두 굴에서 멀리 가서 숨어 있고 천왕동이는 사냥꾼에게서 환도
한 자루를 얻어가지고 굴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굴 아가리는 좁아서 사람이고 짐승이고 기어들어을 수밖에 없으나 굴 안은 제
법 높고 넓어서 고개 들고 앉기가 거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리 뻗고 누을 만
큼 넉넉하였다. 천왕동이가 굴 안에 들어와서 눈이 어두운 데 익은 뒤에 희미한
빛에 굴 안을 돌아보니 바위너겁으로 된 굴이 좌우벽에 들쭉날쭉한 곳이 많은데
한구석에 조그만 선반같이 나온 곳이 있고 그 위에 호랑이 새끼 한 마리가 엎드
려 있었다. 천왕동이가 만만히 생각하고 손으로 붙들려고 하였더니 조그만 것이
앙하고 이빨을 내보이며 앞발로 손등을 할퀴어서 살점이 떨어졌다. 천왕동이가
그 새끼를 환도로 쳐죽인 다음에 손등의 피나는 것을 다른 손으로 눌러막았다.
천왕동이는 안해의 당부와 장인 장모의 부탁을 받고 와서 이때까지 조심 안한
것이 마음에 미안하여졌다. 호랑이굴에 들어온 것부터 너무 경솔한 짓이거니 생
각하고 도로 나가려고 하다가 굴에 들어앉아서 호랑이를 기다린다고 여러 사람
들에게 장담한 것이 마음에 거리끼어서 나가기를 주저하는 중에 별안간 굴 앞에
서 찬바람이 불어 들어오며 수상한 기척이 있어서 천왕동이는 굴 안침 한편 벽
에 몸을 붙이고 앉아서 굴 아가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호랑이가 화등잔 같은 눈
으로 굴 속을 들여다보고 또 코를 거스르고 굴에서 나는 냄새를 맡았다. 호랑이
가 한동안 식식거리며 굴 앞을 왔다갔다 하다가 슬 그머니 어디로 가버렸다. 천
왕동이는 곧 굴 밖을 나가보고 싶었으나 조심하리라 생각하고 조금조금 기다려
보는 중에 호랑이가 다시 굴 앞에 나타났다. 호랑이가 이번에는 뒤로 돌아서서
창대 같은 꽁지를 굴 안에 들이밀어서 휘둘렀다. 천왕동이는 곧 꽁지를 잡아당
기고 싶었으나 또 조심하리라 생각하고 가만히 두고 보는 중에 호랑이가 꽁지를
빼가지고 나가서 다시 한동안 굴 앞에 오락 가락하며 식식거리다가 굴 아가리에
꽁무니를 대고 뒤로 뭉그적뭉그적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천왕동이는 호랑이가
다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었다간 도리어 탈이려니 생각하고 호랑이의 똥구멍을
환도로 내질렀다. 호랑이가 엉겁결에 앞으로 쑥 빠져나가며 천등 같은 소리를
질렀다. 호랑이 어흥 소리에 각시바위가 들먹하는 것 같았다. 호랑이의 달아난
기척을 안 뒤에 천왕동이는 굴에서 기어 나와서 여러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그
놈이 칼에 한번 찔리구 아주 멀리 내뺄 리 없지. " "새끼 둔 골두 두남을 두는
짐생이니까 새끼들이 궁금해서 멀리 갔다가두 이리 또 올 것일세. " "우리가 결
진을 해가지구 뒤를 쫓아가 보세. " 장교들과 사냥꾼들이 호랑이 뒤를 밟아오는
데 두이봉 중턱 잔솔 포기 아래 반몸 지어 누운 것을 보고 아우성들을 치겨 쫓
아올라가니 호랑이는 정방산 편으로 달아나면서 연해 뒤를 돌아보았다. 장교 한
사람이 천왕동이를 보고 "자네 걸음이면 저까지 것을 넉넉히 쫓아갈걸. " 하고
앞서 쫓아가라고 부추기듯 말하니 천왕동이는 조심할 생각이 많은 판이라 "오래
굴 속에 쪼그리고 앉았더니 오금이 붙었는지 당초에 걸음이 안 걸리네. " 핑계하
고 슬츰슬금 여러 사람의 뒤로 돌았다. 호랑이가 정방산 옆을 지나서 마늘메로
달아났다. 마늘메는 황주땅이다. 장교들과 사냥꾼들이 돌아서 내려오는 길에 각
시바위 굴에 와서 죽은 새끼 한 마리를 찾아가지고 장교 열 사람은 바로 읍으로
들어왔다. 이튿날 식전 조사 끝에 봉산군수가 황주서 온 늙은 여편네를 불러들
여서 거적에 싼 태골과 뼈마디를 내어주며 "네 자식의 것인 것이 십의 팔구 의
심없는 모양이니 가지고 가서 잘 장사를 지내주어라. " 하고 이르고 또 호랑이
새끼 잡은 것 두 마리를 내어주며 "어미 호랑이는 황주로 내빼서 잡지 못하고
새끼들만 잡아왔다. 가지고 나가서 네 맘대로 처치해라. " 하고 이른 뒤에 이방
을 앞으로 불러서 늙은 여편네를 후하게 노수 주어 보내라고 분부하였다. 그 늙
은 여편네가 호랑이 새끼들은 배를 가르고 간을 내어 씹고 해골과 뼈마디는 노
수로 받은 무명 자투리에 싸서 가지고 황주로 돌아갔다. 새끼 잃은 호랑이가 봉
산, 황주 두 골로 넘나들며 소동을 일으켰다. 두이봉 근처 동네에서는 호랑이 쫓
을 징 ,꽹과리를 안 가지고는 낮에 들일들을 나가지 폿하고 마늘메 아랫마을에
서는 호망을 치고서도 호랑이 소리에 밤에 잠들을 자지 못하였다. 봉산서는 장
교와 사냥꾼들이 가끔 두이봉 근처에를 돌아다니지만 황주서는 장교는 고만두고
사냥꾼 하나가 마늘메까지를 나온 일이 없었다. 호랑이가 황주를 넘보았던지 마
늘메에서 시루메까지 들어와서 여러 마을로 횡행하였다. 이 마을에서 도야지를
물어갔다, 저 마을에서 송아지를 물어죽였다, 송구스러운 소문이 자자할 때에 경
천역말 늙은 역졸 하나가 오릿골 사는 딸을 보고 온다고
하루 말미하고 가서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도록 오지 아니하여 찰방이 오릿골로
사람을 보내보았다. 경천은 금교 속역열 중의 하나인데 이때 마침 역에 말썽스
러운 사건이 있어서 금교 찰방이 경천에 와서 있는 중이었다. 오릿골서 하루도
묵지 않고 떠난 줄을 안 뒤에 찰방의 사람이 오릿골 사람들을 데리고 나서서 두
루 널리 찾아오는 중에 논골 근처 후미진 산모롱이에서 호랑이 에게 물려죽은
참혹한 송장을 찾았는데 송장 옆에는 역졸이 쓰는 거먹초립이 떨어져 있었다.
경천역 역졸이 호환에 죽은 뒤에 찰방이 목사를 들어가 보고 호랑이를 속히
잡아 없애도록 하라고 권고하니 목사는 찰방외 권고가 아니꼬워서 "내가 자네의
지휘를 받을 사람인가? “ 하고 꿰진 대답을 하였다. "내 수하의 역졸이 호환에
죽었으니까 말씀하는 것 아니오. " "자네 수하의 역졸이 호환에 죽었으니 자네가
역졸을 풀어너 호랑이를 잡아 없애게그려. " "요전에는 호환난 곳이 새남이라고
봉산에게로 떠다밀었다더니 이번에는 호환당한 자가 역졸이라고 내게로 떠다미
는 모양이오. 떠다미는 수단이 매우 영롱하시오! " "떠다미는 수단이라니, 그것이
뉘게 하는 말버릇인가. " "나를 역승으로 대접하시오. " "찰방은 장하니까 그런
말버릇두 좋단 말인까! " "찰방 같은 미관말직을 웅주거목이 세실 리 없지마는
서리 출신과 같은 대접은 받을 수 없소. " 각역의 역승은 서리의 적사구근으로
시키던 것을 김안로 이판 때에 찰방이라고 고치고, 남행당하로 제수하게 되었는
데 이때 벌써 삼십여 년이 지났건만 목부사들은 전에 역승에게 하던 기습이 남
아 있어서 찰방 대접이 흘할 때가 많았다. 찰방이 증이 나서 곧 수어인사하고
일어나니 목사도 애써 붙들지 아니하였다. 찰방이 역으로 돌아을 때 호랑이를
잡아 없애도록 힘써 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자기가 힘쓰는데 목사가 가만히 보
고 있으면 황주 일경은 고사하고 인근읍 백성들까지라도 목사를 비방할 것이고
또 죽은 역졸의 계집자식은 말말고 다른 역졸들까지라도 자기를 고마워하리라고
생각하였다. 역에 돌아오며 곧 역졸 중의 일 아는 자들을 불러들여서 호랑이 잡
을 것을 의논하여 보니 역졸의 결찌에 사냥질하는 사람이 두서넛 있다 하나 큰
사냥들은 잘하는 것 같지 않아서 앞잡이로 내세을 만한 일등 사냥꾼을 달리 구
하려고 하였다. ”호랑이 잘 잡는 사냥꾼을 너희가 아는 사람이 없느냐? “ "별
루 없소이다. " ”너 좀 생각해 보아라. " “지금 언뜻 생각나는 사람이 없소이
다. " "너두 그러냐? ” “녜. ” 찰방이 역졸들을 면면이 돌아보다가 "옳지, 이
자가 어떨꼬? 호랑이도 잘 잡을까. " 혼자 말하고 나서 "돌석이를 좀 불러라. "
하고 분부하더니 한동안 뒤에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가슴이 딱 바라진 사람지 하
인청에서 나와 찰방이 앉은 대청 앞 댓돌 위에 올라섰다.
찰방이 불러들인 사람은 경상도 김해 사람이니 사람이 당차고 다부지기도 하
려니와 돌팔매치는 재주가 귀신 같았다. 석전군 배돌석이라 하면 고향 김해 외
에도 아는 사람이 많았으니 을묘년에 방어사 김경석 휘하의 투석대 대정으로 이
름을 칵진에 드날린 사람이 곧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이 어찌하여 일자반급의 출
신을 못하고 말았던가. 난리가 끝나서 각군이 호궤를 받던 날 돌석이가 술이 취
한 끝에 방어사의 친척 되는 위장에게 칼부림하고 군법에 걸렸는데 방어사가 죽
이려고 하는 것을 동향 사람 중군이 힘을 써서 목숨은 보전하였으나 군사들피
다 타는 상급 무명조차 타지 못하고 맨손으로 고향에 돌아가서 이삼 년 지내는
동안에 술망나니란 별명만 듣고 서울로 올라와서 한 반 년 떠도는 동안에 굶어
서 들피가 나다가 아는 양반이 금교 찰방으로 오는데 하인도 아니고 하인같이
따라왔었다. 말하자면 전정은 칼부림 싸움 한번으로 요감하고 신세는 한입 구처
가 극난사여 구구히 얻어먹으러 금교 찰죽을 따라온 것이다. 돌석이가 찰방의
하인 노릇을 한 뒤로 하루 삼시 밥은 얻어먹으나 밥보다도 더 좋아하는 술을 마
음대로 먹지 못하여 술먹을 벌이를 할 양으로 역졸이나마 박아달라고 찰방에게
청하고 있는 중이라 찰방이 "네가 호랑이를 잡을 수 있겠느냐? " 하고 묻는 말
에 들었다 보았다 하고 "오인이 호랭이를 잡아바치면 호환에 간 놈 대신 역졸
거행을 시켜 주시렵니까? “ 하고 호랑이 잡는 값부터 작정하려고 하였다. "호랑
이만 잡아오너라. " "역졸은 틀림이 없습니까? " "그거쯤은 어려을 것이 없다. "
"어려울 거 없는 줄은 잘 압니다만 분명한 말씀 한마디가 있어야 호랭이 잡을
기운이 나지 않습니까! " "그래라. 호랑이를 잡아오면 역졸을 박아주마. " "호랭
이가 황주, 봉산으루 넘나든다는데 봉산땅으루 내빼는 때는 어떻게 합니까? 그
대루 쫓아가두 좋습니까? " "내가 봉산군수에게 사찰로 편지해서 봉산으로 못
가도록 막아 달라고 해보마. " "봉산 편에서 막기만 잘 막아주면 호랭이를 꼭 잡
아오겠습니다. " "호랑이를 잡으러 갔다가 못 잡아가지고 오면 너도 망신이고 나
도 망신이다. " ”염려없습니다. " "익숙한 사냥꾼을 서너 사람 얻어줄 것이니
데리구 가거라. " "다른 사냥꾼은 없어두 좋습니다만 얻어주시면 데리구 갑지요.
" 이튿날 돌석이가 사냥꾼 세 사람을 데리고 호랑이 사냥을 떠나는데 찰방이 돌
석이를 보고 "대개 며칠이나 걸리겠느냐? " 하고 물으니 돌석이가 한참 생각하
다가 "날짜는 정할 수 없습니다. 지금 소인의 겉가량으루 열흘 잡습니다. " 하고
대답하였다. "오냐, 열흘도 좋다, 그 동안 내가 궁금하면 사람이라도 보내볼 터이
니 너희들이 가서 숙소를 한 곳에 정한 뒤에 곧 한번 기별해라. " "죽은 놈의 자
식이 오릿골 저의 매가루 같이 가자구 합니다. " "그자의 자식두 사냥 간다느냐?
" "녜, 호랭이 잡는 데까지 따라다니겠답니다. " "그러면 사람을 보낼 때 오릿골
로 보낼 테니 그리들 알고 가거라. " 돌석이와 사냥꾼들이 죽은 역졸의 아들아이
를 앞세우고 오릿골로 왔다. 죽은 역졸의 사위는 그 처남아이의 손위라 나이 근
삼십한 장정인데 당가한 살림에 살림 형편이 과히 구차치 않아서 돌석이 일행을
술밥으로 진창 대접하였다. 돌석이가 칙사 같은 대접을 받으면서 하는 일은 잔
돌 굵은 돌을 주워다 놓고 하루 몇 차례씩 팔매만 치고 정작 호랑이 사냥을 나
서지 아니하여 역졸의 아들아이가 재촉하고 같이 온 사냥꾼들까지 재촉하나 돌
석이는 하루 이틀 미뤄나가기만 하는데 그 동안에 닷새가 그냥 지나갔다. 역졸
의 딸 내외는 주인 된 체면으로 차마 와서 재촉은 하지 못하나 속으로는 나른
사람보다 더 답답하여 내외간에 뒷공론이 많았다. "사냥온 사람들이 산에는 갈
생각두 안하니 그게 웬일이오? " "글쎄 낸들 알 수 있나. " "그 사람들이 온 제
가 벌써 며칠이요, 오늘이 닷새째 아니오? " "배대정이란 사람이 안 가려구 한다
구 같이 온 사람들두 두덜거리데. " "배대정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대정쟁이 노
릇하든 사람 아니겠소. 애정쟁이 출신이 큰사냥을 어떻게 하오. 토끼 새끼도 잘
잡을는지 모르겠소. " "그 사람이 돌팔매질을 잘 친다네. " "팔매질로 큰 짐생을
잡았단 말 들어보았소? " "듣지는 못했지만 혹시 모르지. " "내 생각엔 찰방 나
리가 속은 것 같소. " "찰방이 데리구 온 사람이라는데 어련히 잘 알구 보냈겠
나. " "동생 말을 들으니까 찰방 나리가 처음에 불러 물어조고 보냈답디다. " "그
래두 아주 허무할 듯하면 보냈겠나. " "그러나저러나 우리 집에서 여러 사람을
무작정하고 두고 먹일 수 없지 않소? " "며칠만 더 두구 보세. " "며칠 후에는
어떻게 할 테요? " "가라구 쫓아버리지. " "가만히 두고 보지 말고 사냥 나가라
고 말을 좀 하구려. " "내일 안 나가면 말을 좀 하겠네. "
주인이 말하려고 벼르는 날 이른 식전에 배대정이 "오늘부터 산에를 좀 나가보
까. " 하고 사냥갈 준비를 차리었다. 잔돌은 차고 다니는 바랑만한 주머니에 넣
고 굵은 돌은 주인집에 있는 외멍구럭에 담아서 역졸의 아들에게 맡기면서 "너
는 이것을 메구 내 뒤를 따라오너라. " 하고 말을 일렀다. "돌덩이는 산에 가면
쌔버렸는데 왜 무거운 것을 메구 가자시우? “ "닷새 동안 손에 익힌 돌들이다.
잔말 말구 가지구 가자. " "호랭이를 창으루 잡지 않구 돌멩이루 잡으실라우? "
"창으루 잡든지 돌덩이루 잡든지 잡기만 하면 고만 아니냐. " "돌덩이에 호랭이
가 잡히나요? " "얼뜬 호랭이는 잡힐는지 누가 아느냐? 가서 보구 말을 해라. "
돌석이가 창 하나를 들고 앞에서 가고 아이가 돌멍구럭을 메고 그 뒤를 따라가
고 사냥꾼들이 각기 창을 메고 중간에 늘어서 가고 주인과 동네 사람 넷이 여러
사람의 점심밥을 걸머지고 뒤에서 몰려갔다. 마늘메서 시루메로 들어가며 호랑
이의 발자국은 많으나 정작 호랑이는 구경도 못하고 도로 내려오다가 먹골 근처
에서 점심들을 먹는데 먹골 나무꾼 하나가 와서 방금 소학골 산속에서 호랑이를
보았다고 말하여 총총히 점심들을 먹어치운 뒤에 그 나무꾼까지 데리고 소학골
로 들어왔다. 나무꾼이 보았다는 자리에 호랑이가 있지 아니하여 근방을 뒤지는
중에 시냇가에 있는 조그만 장등 위에 큰 송아지만한 것이 누워 있는 것을 일행
중에 한 사람이 먼저 보고 손가락질하여 가리켰다.
서쪽에는 정방산성이 가로막혔으나 산성을 끼고 남으로 도망할 수가 있고 동
쪽에는 새남으로 내뺄 길이 있다. 돌석이가 사냥꾼 세 사람은 새남 편으로 보내
서 호랑이 내뺄 목을 지키게 하고 오릿골 동네 사람들과 먹골 나무꾼은 몽등이
들을 들고 정방산 편으로 가서 호랑이 못 가게 아우성을 치라고 일렀다. 여러
사람들이 나뉘어 간 뒤에 한동안 착실히 있다가 돌석이가 역졸의 아들을 데리고
호랑이의 대가리 있는 편으로 가서 장등을 타고 호랑이 누운 곳으로 내려가는데
창은 아이를 들리고 돌멍구럭은 자기가 어깨에 메었다. 풀을 헤치고 한 걸음 두
걸음씩 가까이 들어가는 중에 호랑이가 낮잠을 자다가 깨었던지 부스스 일어나
서 앞뒤 다리를 펼 수 있는 대로 펴서 허리를 잘록하게 하고 주홍 같은 아가리
를 벌 릴 대로 벌리었다. 돌석이가 이것을 보자 얼른 돌덩이 하나를 손에 들고
쫓아들어가며 팔매를 치니 그 돌덩이가 호랑이 아가리에 들어가 박혔다 호랑이
가 돌을 뱉으려고 대가리를 흔들면서 칵칵 거릴 때 돌덩이가 연주전같이 연거푸
대가리 위에 떨어졌다. 호랑이는 아가리에 돌덩이를 문 채 새남 편으로 달아났
다.
돌석이가 아이와 같이 호랑이 뒤를 쫓아을 때 앞에 사냥꾼 세 사람이 있는 것
을 믿었더니 호랑이는 멀리 내빼서 눈에 보이지 않고 목 지키러 온 세 사람은
새남 가는 길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어디루 갔소? " 돌석이가 장등에서
내려다보고 소리쳐 물으니 세 사람이 다같이 쫓아올라오며 그중의 앞선 한 사람
이 "호랭이가 이리루 왔소? " 하도 도리어 물었다. "이리루 오다니, 호랭이 오는
것두 못 봤단 말이오? " "우리는 못 봤는걸. " "목은 알뜰하게 잘 지켰다. 예끼
순 밥 빌어다 죽 쑤어먹을 자식들 같으니. " 돌석이가 골이 나서 욕질을 하니 그
중에 한 사람은 반죽이 좋아 "밥으루 죽을 쑤면 느루 먹구 좋지그려. " 하고 이
죽거리고 한 사람은 성깔이 있어서 "호랭이는 자기가 놓치구서 왜 우리보구 욕
질이야! 우리가 만만하니까 잿골에 말 박긴가. " 하고 중얼거리고 남은 한 사람
은 성미가 부드러워서 "우리가 사냥질이 서툴러서 목을 잘 본다는 게 알량하게
보았소. 용서하구 그놈이 멀리 내빼기 전에 쫓아가나 봅시다. " 하고 돌석이의
눈치를 보았다. "호랭이는 벌써 봉산 갔겠소. " "새남까지나 가보구 옵시다. " “
제기! ” 하고 돌석이가 먼저 새남 편으로 걸음을 떼어놓으니 사냥꾼 세 사람이
서로 돌아보면서 아이와 같이 돌석이의 뒤를 따라왔다. 새남을 거의 다 와서 난
데없는 아우성 소리가 들리더니 호랑이가 이편으로 뛰어오다 말고 가로새어 내
빼려고 하였다. 돌석이는 이것을 보고 일변 돌주머니를 벌리며 일변 호랑이를
앞질러 가서 돌팔매 한 개로 호랑이의 한편 눈을 맞혔다. 호랑이가 앞발로 저의
눈퉁이를 허비는 동안에 다시 돌팔매 한 개로 호랑이의 다른 편 눈을 마저 맞혔
다. 돌덩이가 아가리아 들어박히듯이 돌이 눈 속에 들어 박히지는 아니하였으나
호랑이는 눈이 아파서 뜨기가 어렵든지 두 눈을 다 감고 아가리만 딱딱 벌리며
어흥 소리를 질렀다. 아가리에 틀어박혔던 돌덩이는 어느 틈에 빠져 없어졌다.
돌석이가 멍구럭에서 큰 돌멩이 한 개를 꺼내서 들고 있다가 호랑이가 아가리를
벌릴 때에 노리고 던졌다. 그 돌덩이가 또 아가리에 들어가 박히니 호랑이는 어
흥 소리도 못 지르고 다시 칵칵거리고 간간이 으르렁거렸다. 돌덩이가 눈퉁이에
떨어지고 대따리에 떨어져서 호랑이가 배기다 못하여 천방지축으로 뛰어 내빼는
데 돌덩이들이 엉덩이와 볼기짝에까지 떨어졌다. 돌석이가 멍구럭의 돌덩이를
한 개 남기지 않고 다 던진 뒤에 아이를 돌아보며 창을 달라고 하니 "호랭이가
인제는 잘 내빼지도 못하게 되었으니 내가 쫓아가서 창으루 찔러 잡아보리다. "
아이가 창을 가지고 호팡이를 쫓아가는데 사냥꾼들도 따라갔다. 눈은 뜨지 못하
고 아가리는 다물지 못하는 병신 호랑이를 아이와 사냥꾼 셋이 새남 뒤에 와서
찔러 잡았다. 봉산서 나온 장교와 사냥꾼 한 떼가 호랑이 잡은 데 와서 보고 경
천서들 왔느냐고 묻고 호랑이 잡은 이야기를 물어서 아이가 돌석이 뒤에 따라다
니며 눈으로 본 것을 자초지종 다 이야기하니 여러 사람의 눈이 돌석이게로 모
여들었다. 봉산 사냥꾼 한 사람이 "댁이 어디 사람이오? " 하고 물어서 돌석이가
"경상도 김해 사람이오. " 하고 대답하자 젊은 장교 한 사람이 돌석이 앞으로 가
까이 오며 "전에 전라도 난리 치러 간 일이 있소? “ 하고 물었다. "을묘년에 영
광까지 갔었소. " "성명이 배돌석이 아니오? " 돌석이가 젊은 장교를 유심히 보
면서 "진중에서 나를 보셨소? " 하고 물으니 젊은 장교는 "아니오. " 하고 고개
를 외치며 상글상글 웃었다. 돌석이가 젊은 장교의 성명을 물어보니 황천왕동이
라는데 성명이 생소하여 돌석이는 고개를
흔들며 "나는 모르겠는데. " 하고 다시 입속으로 그 성명을 뇌어보았다. "대체
나를 어디서 만나봤소? " "지금 여기서 만나봤소. " "처음 만나지요? " "이 다음
만나면 구면이지만 오늘은 초면이오. " "그럼 그렇지, 전에 본 사람을 몰라보두
룩 내 눈이 무딜 리가 있나. 그런데 나를 처음 보면서 내 성명을 어떻게 먼저
아시우? " "팔매질 선성을 들었던 까닭에 어림치구 물어봤소. " "내 선성은 뉘게
들으셨소? " "임꺽정이란 이를 만나본 일이 있지 않소? " "임꺽정이 임꺽정이,
그가 수염 많은 검객 아니오? " "검객이 무어요? " "검객이 무어라니, 칼 쓰는
사람 말이지요. " "칼두 잘 쓰지만 힘이 천하 장사요. " "내가 영암 진중에 있을
때 한번 잠깐 만나보구 이야기는 별루 못해 봤소. 그래 그 사람에게 내 말을 들
으셨소? " "그가 우리 누님의 남편인데 전장에 갔다 와서 댁 이야기를 많이 합
디다. " "그럼 이봉학이란 사람두 친하겠구려? " "녜, 날 알지요. " "이봉학이가
지금 어디 있소? " "지금 제주 가서 벼슬살이한답디다. " "제주 가서 무슨 벼슬
살이를 할까 제주목사는 아닐 테구. " "현감이랍디다. " "현감이오? 그러면 대정
이나 정의로구먼. " "녜, 정의현감이랍디다. " "남은 내 동갑에 원 나간다더니,
그 사람은 잘되었군. 영암 있을 때는 그 사람이나 내나 다 같은 대정이었었소. "
"서울 양반 하나가 뒤를 보아주는갑디다. " "그렇겠지요. " 두 사람의 수작이 지
리하여 다른 사람들은 둘씩 셋씩 풀밭에 가서 주저앉았다. 천왕동이가 이것을
보고 “오늘은 고만 작별합시다. 수이 한번 봉산으루 놀러오시우. 장청버덤 백이
방 집으루 찾아오시는 것이 좋소. 백이방 집이 내 처가요. ” 하고 말하여 "녜,
꼭 놀러가리다. " 돌석이가 천왕동이와 작별하고 사냥꾼들과 같이 죽은 호랑이를
떠메고 오다가 정방산 편으로 간 사람들을 불러온 뒤에 오릿골 사람들 시켜 떠
메게 하고 오릿골로 내려왔다. 큰 오릿골 작은 오릿골은 말할 것 없고 나무꾼이
소문을 퍼쳐서 먹골서까지 호랑이  구경들을 쏟아져 왔는데 오는 사람마다 호랑
이를 보고는 반드시 호랑이 잡은 돌석이까지 보고  갔다. 이날 마침 찰방이 좋은 
술을 보내주어 돌석이가 사냥꾼들과 같이 밤들도록 술을 먹고 이튿날 늦은 아침
때 오릿골서 떠나서 경천으로 돌아오는데 오릿골 사람 십여 명이 돌석이를 전후
로 옹위하고 왔다. 찰방이 호랑이를 받아 놓고  황주목사를 무안 줄 마음이 급하
여 그날  저녁때 바로 호랑이 잡아온  사연을 전갈하는데 "호랑이를  잡아오라고 
사냥꾼 너덧 사람을  보냈더니 보낸 지 이레 만에 오늘  잡아왔습니다고. 호랑이
가 벌써 썩기 시작해서 그대로 더 두면 가죽을 못쓰게 되겠기에 한번 구경도 못 
시켜 드리고 곧 거피를 시켰습니다고.  " 전갈 하인에게 말을 일러보냈더니 목사
가 그 하인에게      "호랑이는 구경 못 시켜 주시나마 호랑이 잡은 사냥꾼들을 
곧 한번 보내줍시사고.  " 답전갈하여 찰방이 이튿날  돌석이와 다른 사냥꾼들을 
읍으로 들여보냈더니 황주목사가 호랑이  잡은 이야기를 자세히 물어본 뒤에 목
사의 체면을 지키느라고 돌석이에게 무명 한 필,  다른 사냥꾼들에게 무명 반 필
씩 상급을 주었다.  돌석이가 다른 사냥꾼들과 같이 상급을 받아가지로  황주 관
가에서 나오는 길에  낯모르는 늙은 여편네 하나가  돌석이의 소매를 잡고 저의 
집으로 가자고 매달렸다.  "알지두 못하는 사람을 붙들구  집으루 가자니 웬일이
오? "    "당신네가 호랭이를 잡으셨다지요? " "호랭이  잡은 이야기를 들을라구 
집으루 가잔 말이오? " "호랭이 잡은 양반은 우리 은인이신데  우리 집을 그대로 
지나가셔서야 됩니까. 잠깐만 가십시다. " 길가에 보고 섰던  사람 하나가 "그 할
머니가 외아들을 호환에 보내구 실성한  이요. " 하고 말하니 늙은 여편네는 "미
친 놈들의 눈깔엔 성한 사람도 미쳐 보이는가  부다. " 하고 성을 내고 “저깟놈
들의 말 곧이듣지 말고  어서 같이 가십시다. " 하고 돌석이를 끌었다. 돌석이가 
늙은 여편네를 따라가  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아서 "어떻게 할라우? "  하고 
다른 사냥꾼들을 돌아보니 "생각대루 하우. "  "우리더러 물어 볼 거 있소. " "아
따, 가봅시다. " 하고  대답들 하여 돌석이는 사냥꾼들과 같이 늙은 여편네의 뒤
를 따라왔다. 늙은 여편네가 집에 와서  삽작 안에 들어서며 "이애 방에 있니? " 
하고 소리치고 손들을 안방에 들여앉힌 뒤에 또 "이애 어디 있니? ” 하고 소리
치더니 한참 만에 소복한 젊은 여편네가 집  뒤껼에서 나왔다. 늙은 여편네가 대
뜸 "너는 왜  밤낮 뒤껼에 가서 사니?  " 나무라고 다음에 "내가  호랭이 잡으신 
은인들을 뫼시고 왔다. 들어와서 보여라. " 방으로 불러들였다. 늙은 여편네가 돌
석이와 다른 사냥꾼들을  돌아보며 "저애가 내 며느립니다.  " 하고 면면이 절을 
시키었다. 그 며느리가 나이는 이십오륙 세쯤 되
어 보이고 얼굴은  해반주그레하였다. "점심을 얼른 지어라. " 늙은  여편네가 며
느리를 내보낸 뒤에 "술들  잡수시겠지요? " 하고 물어서 사냥꾼 한  사람이 "없
어 못 먹습니다. " 하고 대답한즉 "손님들만 두고 나는 갈 수 없고 어떻게  하나! 
" 하고 한걱정하다가  말대답한 사냥꾼더러 “술을 좋아하시는 말씀이니  미안사
지만 술 좀 받아가지고  오실라오? 좁쌀을 떠드릴께. " 하고 청하였다.  손님들만 
두고 갈 수  없다고 손님을 심부름 보내려고 하는  것이 성한 사람의 일이 아니
다. 그 사냥꾼이 웃으면서  "내가 술집을 모르니 어떻게 하우. " 하고 말한  다음
에 돌석이가 "우리들만 있을 것은 걱정 말구 주인이 가서 받아오시우. " 하고 말
하니 여편네는 "그럼 내가 얼른 갔다오지요. " 하고  일어서 나갔다. 돌석이가 젊
은 과부를 불러들이고 싶으나  차마 그대로 들어오라고는 말하기 어려워서 부엌 
편을 내다보며 "물 한 그룻 주시우. " 하고 말을 붙이었더니 젊은 과부는 대답이 
없이 물사발을  들고 와서 방안에  들여놓았다. 젊은 과부가  고개는 다소곳하게 
가지나 곁눈질을  자주 하는 것이 정이  찰 움직일 여편네 같았다.  젊은 과부가 
몸을 돌리기가 무섭게  사냥꾼들은 서로 옆구리를 찌르며 픽픽 웃었다.  뒤에 점
심상을 들여오고 내갈  때도 젊은 과부는 쉴새없이  곁눈질을 하는데 그 곁눈이 
많이 가는 곳은  끼꼿하게 생긴 사냥꾼 한 사람이었다. 돌석이가  이것을 짐작하
고 슬그머니 불쾌한  생각까지 없지 않았다. 돌석이가 살방을 따라서  금교로 다
시 가지 않고 경천에 떨어져서  역졸을 다니게 된 뒤 호환에 간 사람의 집 젊은 
과부에게 마음이 있어서  일부러 그 집을 찾아다니었다. 젊은 과부도  돌석이 오
는 것을 싫어하지  아니하여 두세 번 와서 서로  무람없이 말하게 되고 네댓 번 
와서 서로 실없은 말을  주고받게 되고 열 번 안와서 둘이  관계가 생기었다. 시
어미 되는늙은 여편네가 이것을  알고도 야료할 생각을 아니하고 도리어 조용히 
돌석이를 보고 "죽은 아들 대신 나까지  보아주실 테요, 어쩔 테요? " 하고 종주
먹 대듯이 말을 하여 돌석이는 선선히  "내가 곧 아들 노릇을 하리다. " 하고 허
락하였다. 실성한  어머니가 생긴 것은 좋을  것이 없으나 젊은 안해  생긴 것이 
좋았다. 돌석이의 안해 얻고 구실 얻은 것이  구기본하면 호랑이의 덕을 본 셈이
었다.
  돌석이가 젊은 과부를 안해로  얻은 뒤에 과부의 집을 경천역말로 이사시키고 
살림을 시작하였다, 어느  날 아침 뒤에 돌석이가 역 마굿간에서  말을 솔질하는
데 안해가 쫓아와서 타관 손님이 왔다고 연통하여 솔질을 건정건정 다하고 분분
히 집에 와보니 황천왕동이가 수양모와 이야기하고 앉았었다. "이게 누구요? " "
놀러오마 하구 그렇게 안 오는 법두 있소? " "놀러갈 맘이 없는  게 아니지만 그 
동안은 좀 바빠서 못 갔소. " "그 동안 구실 다니구 장가들구 또 살림 차리구 바
빴겠소. 지금 이 할머니께  대강 이야기 들었소. " "내 집 찾느라구 애쓰지나  않
았소? "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는 중에  마침 이 할머니를 만나서 바루  이리 
왔소. " 돌석이가 밖에 있는 안해를 내다보며 "손님을  점심 대접이나 좀 해야지. 
" 말하는  것을 듣고 천왕동이가 웃으면서  "신접살림에 무슨 손님 대접할  것이 
변변할라구. 일이 없거든 나하구 같이  봉산으루 갑시다. " 하고 말하였다. "가더
래두 점심을 먹구 갑시다, 점심두 안 먹구 길을 갈  수 있소? “  돌석이가 천왕
동이를 붙들어서 점심을  함께 먹은 뒤에 역에  이틀 말미를 말하고 천왕동이와 
같이 봉산으로 놀러왔다.  천왕동이 혼자만 같으면 해가 높이 있어  왔을 것이지
만 돌석이가 있어서 해진 뒤예도  내처 길을 걸어서 초경이 지난 뒤에 천왕동이
의 처가에를 들어왔다. 이방은 사랑을 내주고  이방의 안해는 음식을 장만시키었
다. 천왕동이 안해는  남편리 역졸을 손으로 청하여 왔다고 잔소리하는  것을 이
방의 안해가 "온 손이 돌팔매로 호랑이 잡은 사람이란다. 예사  역졸이 아닐게다. 
황서방이 취할 곳 없는 사람을 사귈 리가 있느냐? " 하고 딸을 타일러서 잔소리
를 못 하게 하였다. 저녁으로 밥상은 속히  나왔고 밤참으로 술상은 늦게 나왔는
데 밥상에는 고기 반찬이 여러  가지 놓였었고 술상에는 준한 맑은 술이 양푼으
로 놓였었다.
  천왕동이와 돌석이는 밥상을  받고서도 이야기, 술상을 대하고서도 이야기, 이
야기가 별로 그치지  아니하였다. 밥상을 받을 때까지도 서로 하오하던  말이 어
느 틈에  하게로 변하여서 술상을 대할  때는 십년 숙친한 이나  다름이 없었다. 
돌석이가 술이 거나하게 취하였을 때 "이 세상에 돌팔매로 사위 취재 보이는  데
는 없나? 나두  장가나 좀 잘 들어보게. 여보게,  취재 보던 이야기 더 좀자세히 
하게, 재미 있네. " 하고 웃으니 천왕동이는 "안해 있는  사람이 왜 또 장가는 들
구 싶다나? “  하고 웃었다. "가지기가 숫색시만 한가. "  "숫색시두 하룻밤뿐이
야. " "하룻밤이 좋은  밤이거든. " "여보게, 실없은 말 고만두구 자네 난리  치러 
갔던 이야기나 좀  자세히 듣세. " "자네 자형에게 들었을  테지. " "자형이 무엔
가? ” "누님의 남편이 자형 아닌가. " "매부 말인가? “ "매부는 손아랫누이 남
편이지. " "까다로운  문자말을 누가 아나. " "그래 자네  누님 남편이 지금 무엇 
하나? " "무엇 할 것 있나. 집에서 놀지. "  "아까운 인재가 썩네. " "역졸이나 장
교를 다니면 썩지 않는 셈일까.  " "되지 못한 구실아치는 집게서 노는 팔자만두 
못하지. " "자네는  잘했으면 이봉학이만큼 출신했을 것 아닌가.  " "나는 고생을 
팔자에 타구난 사람이야. 전장에 나가기 전에두  고생으루 살았지만 전장에 갔다 
와서는 갖은 고생을 다  했네, 지금두 고생이지 무엔가. " "난리 치구  와서 줄곧 
고향에 있었나? ”  "고향에 있었네. " "경상도  끝에서 어떻게 황해도 구석까지 
불려왔나? " "거지바람이  불어서. " "거지바람이 무슨 바람인가?  " "얻어먹으러 
왔단 말이야. "  그 다음에 돌석이는 아이 적부터 겪은  가지가지 고생을 이야기 
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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