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의형제편 배돌석이 2

3학년2반 | 2022.01.07 07:22:18 댓글: 0 조회: 369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0486
  2
  우리 고향 김해서는 사월 파일부터 오월 단오까지 석전질이 큰 구경거리라 내
가 조그마서부터 석전질 구경에 재미를 들여서 장래 유명한 석전군이 되어 보려
고 일찍이 돌팔매를 치기 시딱했네. 밥 먹을  줄도 모르고 팔매만 치러 다니니까 
팔매질이 잠간 늘어서 불과 일이 년 안에 동무 아이들 중에서 팔매질로 대장 노
릇을 하게 되고, 사오  년 지나 여남은 살 된 뒤에는  팔힘이 모자라서 어른만큼 
멀리 치지  못할 뿐이지 맞히는 데  들어서는 어른에게도 질 것이  없었네, 열세 
살인가 열네 살에  내가 한번 읍내 사정에 가서  편사 쏘는 것을 보고 돌팔매를 
활쏘듯 해보려고 내  자작으로 방법을 만들어가지고 삼  년 동안 팔매를 공부했
네. 그 뒤로는  돌주머니만 차고 나서면 도둑놈도 무섭지 않고  호랑이도 무섭지 
않고 눈앞에 무서운 것이 없었네.  지금은 오히려 이십 년 전만 못한 셈이지. 그
렇지만 연골에 배운 재주라 아무리 오래 팔매를 안 치다가도 이삼 
일 동안 손이 뻑뻑한 것만 풀리면 도로 제  자욱이 들어서네. 내가 몸에 가진 재
주란 것이  팔매질 외에는 아무것도 없네.  억지로 말하려면 말 잘  타는 것이나 
재주라고 할까, 그러나 남보다  나을 것이 있어야지. 우리 아버지가 김해 남역서 
역졸을 다닌 까닭에 내가  말을 탈 줄도 알고 거둘 줄도  아네. 그렇지만 아버지
의 거
먹초립 계적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일세, 우리 아버지가  생존했을 때
까지는 내가 석전판에나 뛰어다니고  석전 없을 때는 팔매질이나 공부하고 빤빤
히 놀고 먹었네. 일하기 싫은 것보다도  의붓어머니에게 미움 바치느라고 집에서 
놀면서도 여간해서 빗자루도 손에 잡지 않았네. 나를  난 어머니는 돌 전에 돌아
가고 의붓어머니 존에서 눈치밥으로  자랐는데 어렸을 때는 하루도리로 매를 맞
아서 몸에 생채기가 가실 날이 없었네. 하도  몹시 맞으니까 나중에는 어린 맘에
도 맞아죽기밖에 더 하겠느냐 악이 나데. 악이 늘어가니까 매는 점점 더 맞았지. 
내가 천생이 사람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악하고 독해지기는 의붓어머니 덕인 
줄 아네. 내가 석전군으로  아설 때부터 매는 안 맞게 되었지만  맘은 하루도 편
할 날이 없었네. 더구나  스물한 살 장가 든 뒤로는 집에만  들어가면 생으로 골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서 별로 집에 붙어  있지 아니했네. 스물일곱 살  되던 해 
이월에 아버지가 급한 병으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보니 의붓어머니와 안해를 먹
여살릴 것이  내 담책이 아니겠나. 그런데  나큰 그동안 홧김에 배운  술이 골에 
박여서 하루 세끼 밥은 굻어도  하루 한번 술은 안 먹고 못 배길 지경이 되었네
그려. 농사도 할줄모르고  장사도 할줄 모르는 위인이 술에 정신이  빠졌으니 두 
식구는 고만두고  단 한 식구라도  먹여살릴 주제가 되나.  의붓어머니와 안해가 
방아품을 팔아서 먹고  살았네. 안해 명색이 사람은 못생긴 것니  그중에 염량이 
있어서 아버지 돌아간 뒤부터 차차로 의붓어머니에게 불쾌스럽게 굴더니 나중에
는 마구 해내기를  식은 떡 떼어먹듯 하네그려. 의붓어머니는 어머니  아니며 시
어머니는 어머니 아닌가.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데. 버릇을 좀 가르치려고 해보
았지만 안되겠어서 삼 년 겨우 나고 쫓아버렸네. 그  뒤 이삼 년 동안 모다 살림
을 하던 끝에  의붓어머니가 마흔여덟 살 먹은  중늙은이로 어떤 놈한테 미쳐서 
후살이를 갔네. 김해  사람들은 내가 의붓어머니를 구박해서  후살이를 보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나를 모함하는 말이고  의붓어머니가 내 주정은  많이 받았네. 
우리 아버지 돌아간  뒤부터 의붓어머니와 모자간에 정이  있이 지냈고 또 내가 
의붓어머니 방아품으로 먹고 사는 터인데 왜  후살이 가라고 구박했겠나. 그렇게 
말하는 것이 미친 놈들이지. 내가  그런 말 하는 놈들하고 싸움도 여러 번 했네. 
의붓어머니가 후살이 간 뒤에는  내가 살림을 걷어치우고 남의 집으로 떠돌아다
니다가 을묘년에 투석대에 뽑혀서 전라도를 가게 되었는데 전라도 갈 때는 고향
에 다시  돌나을 맘을 먹지 않았었네.  진중에 가서 처음으로 명색  없는 군졸로 
설움도 많이 받았지만  나중에 동향 사람 중군의  천거로 방어사 앞에서 재주를 
드러낸 뒤 
투석대의 대정이 되고 이봉학이와  겨룸하여 각진에 이름을 드날린 뒤 방어사의 
애호를 받게 되었는데  그때는 난리만 끝나고 보면  곧 만리전정이 눈앞에 터질 
것 같았네. 방더사가 재주를 알아주고 중군이  매사에 두둔하니까 진중에서 배대
정 배대정 하고  떠받드는 사람도 많았지만 시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네. 그중
에 방어사의 일가 위장  한 사람이 나를 보면 공연히 눈을  곱게 뜨지 아니하데. 
아무리 위장이라도 그까짓 자식을  내가 알 바가 있나. 저는 저고  나는 나로 지
냈네. 난리가 끝나고 삼군이 보궤를 받던 날 그  자식이 일부러 우리 술 먹는 데 
와서 나를 보고 "인제는 김해루 도루 가서 석전군 노릇을 다시 할  텐가? “ "내
가 김해부사나 해가면 자네를 만나보겠네.  " 하는 소리마다 사람의 배리가 꿰져
서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있어야지. 술김 골김에 내가 그  자식을 칼로 찔러넘
겼네. 그 자식을 죽이고 대살을 당할 작정하고 함부로 일렀네. 옆에 있던 사람들
이 붙잡고 매달리지  않았더면 그 자식이 죽고 말았을 것일세.  위장을 중상시킨 
죄목으로 내가 효수를 당하게 되었었네. 중군이 힘을  안 써주었더면 이 목이 그
때 떨어졌을 것일세. 효수하는 법을 자네 아는가. 처음에 북소리가 꽝 하고 나면 
죄인을 잡아내서 윗도리의 옷을 벗기고  얼굴에 회칠을 하고 화살로 두 귀를 꿰
어가지고 군중에 회술레를 시키고 그  타음에 북소리가 또 팡 하고 나면 죄인의 
상투를 풀어서 줄로 표미기에 매어달고  도수가 칼을 들고 겨누고 그 다음에 북
소리가 마지막 꽝 하고  나면 죄인의 목이 땅에 떨어지네. 내가  하마터면 이 꼴
을 당할 뻔했네. 그래도  가짜로 효수하는데 화살을 두 귀에 꿰지  하고 망건 뒤
에 찔러주데. 이봉학이는 효수당하게  되었을 때 참으로 귀까지 꿰었었네. 그 사
람은 남방어사 부하에 있었는데 남방어사가 북문 싸움에 참혹히 봉패한 뒤에 영
암서 퇴진하려고  퇴진령을 놓으니까 이봉학이가 방어사  앞에 들어가서 적군을 
버리고 퇴진하는 것이  부당한 일인데 더구나 지금  패진한 끝에 퇴찬귀면 남의 
치소를 받을 터이니 퇴진령을 거두라고 말마디나  좋이 했더라네. 남방어사가 고
집이 무서운 위인이라 자기가 한번  정한 일이면 백이 백소리를 하고 천이 천소
리를 해도 귀 한번 기울이지 않는 터인데 이봉학이의 말을 듣고 놓은 영을 거둘 
리가 있나. 말한  이봉학이가 어림없는 사람이지. 당장에 "방자스러운 놈  같으씨 
네가 죽고 싶으냐!  " 호령을 서리같이 하고 곧 중군에게  분부하여 대정 이봉학
이는 군령을 거스르고 군심을 동요시키는 죄가 용서할 수 없으니 즉각으로 효수
하라고 했더라네.  그런데 그날이 마침  나라제사 파젯날이라 중군이  그 사연을 
말하여 이튿날 행형하기로 되었는데 소문이 퍼져서 가수성장으로 있던 전주쿠윤 
이윤경아란 양반
 이 소문을 듣고 그날  밤에 친히 남방어사를 가보고 이봉학이의 목숨을 살려주
라고 간청하다시피 말하다가  코를 떼이었다데. 이튿날 식전  아침에 이봉학이를 
구경 효수시키려고  거조를 차리어서 회술레까지 끝나고  상투를 매어달 즈음에 
어떤 장사  하나가 이봉학이를 뺏어가지고 가뭇없이  어디로 내대서 남방어사가 
펄펄 뛰고  영암성중을 집뒤짐을 했지만  어디 있어야 잡지.  남방어사가 퇴진해 
간 뒤에 들으니까 이봉학이를 뺏어간 장사는 임꺽정이고 이봉학이와 임꺽정이를 
감추어 준 양반은 이윤경 이부윤이라데. 이야기가 가로새었네. 내 이야기를 해야
지. 내가 그때 진짜  효수는 겨우 면했으나 전정은 다 망치고  생각하비 기가 막
히데. 남들은 고향 간다고  좋아들 하는데 나 혼자 갈 데를  못 정해서 근심하는 
중에 고향에서 같이 온 투석군 한 사람이  같이 가자고 지성으로 권하데그려. 그 
사람의 권.을 받지 않으니, 어디 다른 데 갈  데가 있어야지. 그래 할 수 없이 다
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었네.
   나는 고향이라고 발을 들여놓아야  집도 절도 없는 사람이니 다른데 갈데 있
나. 같이 오자던  사람의 집에 가서 몸을 부치고 있었네.  처음 몇 달 동안은 그 
사람의 부모형제들이 내색없이 대접을 잘하더니 열흘 고운 꽃이 없다고 날이 갈
수록 차차로  처음과 달라지데. 내색이  달라지고 대접이 달라지는  것을 모르는 
체하고 
참고 지내려니까 그 사람의 부모 되는 바깥 늙은이 안늙은이가 나들으라고 빗대
놓고 욕설까지  하는데 작은아들이 나무 아니  해온다고 "개새끼는 도둑  지키구 
달기새끼는 홰를 친다. 사람의 새끼가  왜 놀구 처먹는단 말이냐! 싹수없는 자식
이 못된 것은 잘 보구 배우는구나. " 수족 성한 거지가 얻어먹으러 왔다고 "사죽
이 멀정하게 성한 녀석이  어디 가 무슨 일을 못해서 얻어  먹는단 말이냐. 우리 
집베서 공밥 잘  먹인다는 소문이 났더냐? " 이런  소리를 하루도 몇 번씩 듣게 
되니 아무리 비위를 잘  파는 사람이라도 그 집에 더 있을  수가 있든가. 그래서 
내가 어느 농가에 가서 머슴을 들었었네. 그러나 전에  모 한 포기 꽃아본 일 없
는 사람이 갑자기 머슴살이를 하자니  고생은 고생대로 되고 일은 일대로 안 되
데. 일 년을  지낸 것도 주인의 집 인심 덕이라고  말할 수 있네. 머슴살이 일년 
한 뒤에 한 반년 동안  이집저집으로 돌아다니며 진대를 붙었는데 남들이 술 먹
는 데를 가서 술을 뺏어  먹는 것은 오히려도 예사지만 밥 먹는 데 가서 밥까지 
뺏어먹었네. 내가 본래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아주 개차반 노릇을  할 작정이니
까 남이 대수롭지 않게 피침한 소리를 하더라도  가만히 듣고 있나. 당장에 싸움
을 걸지.  싸움이 조금만 커지면 칼로  내 가슴을 긋거나 내  살점을 어여내거나 
해서 구경하는 사람이 눈을 가리도록 무지스러운 짓을 하는 까닭에 나한테 싸움
하러 덤비는 놈이 별로 없었네. 그러니까 내가 가는  데 쫓을 놈도 없고 내가 달
라는 걸 안 줄 놈도 없을 것 아닌가. 내 뒤에는 손가락질이 떠날 애가 없었겠지. 
망나니니 개고기니 하는  조명을 내 귀로도 많이 들었네. 철없는  조그만 아이놈
들이 나를 보고 "돌이돌이  배돌이 일에는 베돌이 술에는 감돌이 싸움에는  차돌
이. " 하고 놀리기까지 했네. 사람의 꼴이 어떻게 되었겠나. 아주 망했지.  이렇게 
망한 놈 노릇할 때 어느 날 읍내 사는 김도사댁이란 양반의 집에 불려가게 되었
네. 채가 작죄한 일이 있더라도 양반이 무서을  것 없는데 작죄한 일이 없으니까 
안 갈 까닭이 있나. 가서 잘하면 술잔이라도 얻어먹고 오려니 하고 갔었네. 급기
야 가보니 서방님이라는 자는  집에 없고 아씨라는 이가 중문간으로 불러들여서 
안방문을 열고 내다보며  말을 묻데. "자네가 성명이 배돌석인가? "  "녜, 그렇소
이다. " "자네가 지금 나이  몇 살인가? " "서른다섯 살이올시다. " "처자가 없다
니 참말인가? “    "녜, 없습니다. " "그러면 자네 내 집에  와서 비부쟁이 노릇
을 하지 않을라나? " 내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는 곧 이것이 웬 떡이냐 하고 생
각했지만 대답이 얼른 안  나와서 주저주저하고 있자니까 아씨란 이가 "여기  섰
는 이 애를 좀 들여다보구 대답하게. "  하고 마루 위에 섰는 계집종을 가리키는
데 그 계집이 이목구비가 분명하게  생겼데. "이 애가 지금 나이가 스물다섯인데 
첫서방이 죽은 뒤 삼 년이 지났네, 내가  마땅한 사람을 하나 얻어주려고 물색하
는 중에 누가 자네  말을 하데. 다른 사람 시켜서 자네  의향을 물어보아도 좋을
테지만 물어보랄 사람도  만만치 않고 나도 자네를  한번 보고 친히 물어보려고 
덮어놓고 불렀네. 그래 자네 맘이 있나  없나? " "이런 황감한 처분이 어디 다시 
있겠습니까. " "내  집에 와서 비부를 들겠단  말이지? " ”네. “  "그러면 내일 
아침에 정화수상이라도 놓고 초례를 지내고 곧 댁 행랑에 와서 있도록 하게. " "
녜, 그렇게 하겠습니다.  " "술 한잔 내보내 줄  게니 먹고 갔다 내일 식전  다시 
오게. " "녜, 황송합니다. "
  나는 김도사집 비부쟁이 또룻 하게  되는 것이 투석대 대정 첩지를 받을 때만
큼이나 맘에 좋았네. 내가 비부 노룻 하게 된 것이 작년 늦은 봄일세. 우리게 늦
은봄에는 노인도 흩것을  입는데 그때 나는 짠지국같이  된 겹옷을 입고 있었고 
갓은 파립이고 망건은 파망이니 아무리 남의 집 비부쟁이라도 장가 명색을 들러 
가며 그 꼴을 하고야  갈 수 있던가. 만만한체 한군데 가서  흩것 한벌을 우격다
짐으로 렛고 또 다른 데 한 군데 가서  성한 관망을 억지로 빌렸네. 흩것을 입고 
관망을 쓰고 이튿날 식전에  김도사집에를 가는데 일찍이 오란다고 너무 일찍이 
가서 사랑 대문도 아직  열어놓기 전이데. 대문 밖에 초가 행랑  두 채가 있는데 
한 채는 비었고 한  채는 사랑이 들었데. 사람 든 행랑  앞을 왔따갔다 하자니까 
그 집 사내가 내다보고 "당신이 배대정 아니오? 이리 들어오시우. " 하고 부르기
에 대문 열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려고 그 행랑으로 들어갔었네. "대단 일찍 오셨
구려. " 하고 그 사내가 인사하는 말이  너무 일찍 온 것을 웃는 것 같아서 나는 
"어제 아씨께서 일찍 오라셨는데. " 하고 우물쭈물  대답했네. "이쁜 안해를 얻게 
되어서 맘에 좋겠구려. " "흘아비가 기집이 생기니 좋지 않을 까닭 있소. " "기집
이라두 이만저만한 기집이오. 이 읍내 일판에 둘두  없는 일색인데 댁에 와서 비
부 들려구 몸살하는  사람이 얼만지 모르우. 당신이 움안에  떡 받았소. " "글쎄, 
내가 꿈을 잘 꾼 모양인가 보오. " "그러나 비부 노룻 하자면 일이 많소. " "일이 
무엇무엇이오? “ "날마다 하는  일이 앞뒤 마당 쓸구 나귀 거두구 푸성귀 가꾸
구 심부름 다니구 이 댁 안팔 심부름이 여간 많지 않소. " 이 자식이 제가 할 소
임까지 내게다가 쓸어 맡길 생각이  있어서 미리 이런 말을 하나 보다 짐작하고 
나는 ”양반님네 하라는 대루 하면  고만 아니겠소. " 하고 대답하였더니 "암 그
렇지요. 그렇지만 양반이  시키는 일을 고지식하게 다 하자면 오뉴월  긴긴 해에
두 낮잠 한잠  자지 못하우. 이 댁  도사 나리 생전에는 일이 지금버덤  몇 배가 
더 드세서 견디다 못해서 도망한 사람까지 있었소. " 돌아간 김도사가 사람이 어
떻게 까다롭든지 인근 읍에까지 소문이 나도록 유명해서 서울 사람이 경망한 사
람을 애박이라고 하듯이 우리 김해 사람은  까다로운 사람을 김도사라고 말했네. 
"돌아간 이 댁 도사  나리같이 유명짜한 분 밑에서 하인 노릇 하기 어려웠을  게
요. " "지금 서방님은 아버지와 팔팔결  달라서 사람이 좋은 편입니다. " "서방님
이 어제는 댁에 안 기십디다그려.  " "함안 조참판댁에 가셨는데 내일 모레나 오
실 게요. " "서방님두 안  기신데 아씨 맘대루 비부를 들이시오? " "아씨가 시집
을 때 데리고 온 몸종이니까  아씨 맘대루 비부를 들이시지요. " "아무리 아씨가 
친정에서 데리구 온 종이라두  서방님이 오셔서 딴 말씀이 없겠소? "  "딴말씀하
면 소용 있소. 그 사람은 벌써 당신의 안해가  된 것을 도루 뺏겠소 어떻게 하겠
소. " "나를 나가거라 마라  할는지 누가 아우? " "댁 아씨란 이가 사내 돌 쥐어
지르게 똑똑한 양반이오. 서방님이 꿈쩍 못하우. " "그렇기나 하면 다행이오. "  "
아씨가 서방님 안 기신 틈을  타서 쌈 잘하기로 소문난 배대정을 비부루 골라들
이실 제 어련히 생각하셨겠소. " "서방님이 안 기신 틈을 타서 나를 비부루 골라
들이시다니 무슨 까닭이 있소? "  "까닭은 나두 모르우. " “비부쟁이에 무슨 까
닭이 붙은 것 같구려. " "까닭이 있거나 없거나 당신이 이쁜 안해만 데리구 살게 
되면 고만 아니오. " 이때 사랑대문 열리는  소리가 나서 그 하인이 계집과 같이 
안으로 들어가는데  나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갔었네. 안중문에  들어가서 문안을 
하니 아씨란 이가 내다보며 "신랑이  너무 일찍 왔군. " 하고 웃고 "서방님이 안 
기신 때니 사랑마루에 올라가 앉았게. " 하고 말하여 나는 사랑으로 나와서 덧문 
닫힌 큰사랑 앞마루에 올라앉았네.  얼마 뒤에 탈망에 관을 쓴 양반  한 분이 큰
사랑 건너편에 있는 작은사랑에서  나와서 나를 흘금흘금 바라보더니 가까이 와
서 "무어 하러 온 사람인데  주인양반 안 기신 사랑 마루에 와서 앉았어 ? "  반
말로 말을 묻데. 어떤 양반인지는 모르나 나는  얼른 일어나서 "이 댁에 비부 들
러 온 사람이올시다. "
하고 공손히 대답했네. "언제 서방님이 말씀이  기셨든가? " "아니올시다. 아씨께
서 오라셨습니다. " "옳지, 아씨께서 오라셨어? 그러려니. " 그 양반이 고개를 젖
혀들고 코웃음을  치는 모양이 말웃음  흡사하데. 사내 하인이  세숫물을 가지고 
와서 마루 끝에 놓으니 그  양반이 곧 관을 벗고 앉아서 손을 물에 잠그고 국수 
같은 때를 밀면서 하인에게 "애기더러 나와서 식전 글 좀 읽으라게. " 하고 말하
데. 알고 보니 그 양반은  선생 양반이고 작은사랑은 글방 사랑이데. 팔구 세 된 
주인 애기가 안에서 나오고 고만고만한  동네 아이 네댓이 책들을 끼고 온 뒤에 
하늘 천 따지 소리와 맹꽁징꽁 소리에 글방  사랑이 한동안 떠들썩하데. 식전 글
이 끝난 뒤에도 한참 있다가 아침이 되고 아침이 지난 뒤에도 얼마 있나가 초례
를 지내게 되었는데  말이 초례지 명색뿐일세그려. 정작 초례 지내는  동안은 잠
깐이었네, 사랑마당에 멍석  깔고 멍석가에 병풍 치고 병풍 앞에  정화수상 놓고 
남녀가 다 입은 옷 입은 대로 정화수상 앞에 마주 서서 절 한번씩 하고 나니 초
례가 끝이 났네. 계집은 참말 얼굴이 얌전하데.
  대문 밖에 비어 있는 행랑이 우리 새 내외의 거처할 곳이라 그 행랑에서 첫날
밤을 지내는데 내가  계집 옆에 가까이 앉아서 이  말 저 말 물어보아야 계집은 
얼굴을 숙이고 대답 한마디 아니하데. "이 사람 부끄럼이 숫색시버덤 더 많은 모
양일세그려. " 웃어도  대답이 없고 "자네가 벙어린가. 내  말이 말 같지 않은가. 
어째 대답이 없나? " 나무라도 대답이 없기에 내가 그 숙인 얼굴를 치켜들고 보
니 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데. 첫날밤에 눈물  흘리는 까닭을 대라고 내가 종
주목을 대지 않았겠나. 계집이 부대끼다  못해서 나중에 한다는 말이 "남의 속은 
알아 무얼 할라오? " 하고 톡  쏘데. "남의 속이라니 백년해로할 내외가 어째 남
인가. " "백년해로는 다 무어야. 이놈 내주면 이놈하고  살고 저놈 내주면 저놈하
고 사근 신세에 백년해로 쥐똥 같은 소리  마오. " 계집이 봉한 입이 떨어지더니 
말이 제법 싸게 나오데. "이 사람 그게  무슨 소린가? “ "남의 집 종된 게 분하
단말이야. " "종 된 게 분해서 지금 눈물이 났나? ” "그럼 통곡을 해도 속이 시
원치 않은데. "  "차차 봐가며 속량해 나가세그려. " "나는 속량도 싫고 아무것도 
싫소. " "남의 종 된 게 분하다면 속량하는 게 어째 싫어? " "나는 죽고 싶은 맘
뿐이오. " "그런 맘을  내버리구 우리 잘살아 보세. " 하고 내가 뺨을  대고 비비
려고 했더니 계집은 오만상을  찡그리며 떠다밀고 그외에도 계집이 하도 쌀쌀히 
굴어서 치마 앞에 찬바람이  도는 것 같데. 주먹다짐까진는 안 했지만  몇 번 계
집의 입에서 아야 소리가 나왔네. 남의 계집을  억지로 보듯이 하고 하룻밤을 지
내는 중에 내가 계집의 첫눈에 들지 못한  줄을 속으로 짐작했네. 이튿날 식전에 
문안하러 안에 들어갔더니 아씨가 나를 불러들여서 앞에 세우고 계집 대접을 잘
해라, 계집 버릇을 잘  가르쳐라 중언부언 말을 이르는데 또라지게 해라를 하데. 
나는 새삼스럽게 '인제 비부쟁이가 되었구나. ‘ 생각하며 내 몸을 돌아보았네.
  내가 비부 든  지 사흘 되던 날 낮에  주인 서방님이란 분이 함안서 돌아왔었
네. 나중에  나귀 뒤에 따라갔던  상노아이놈에게 말을 들으니  일백이십리 길을 
갈 때도 이틀에  가고 올 때도 이틀에  왔다고 하데. 그때 나는 마침  안 뒷간의 
거름을 채마머리에  있는 두엄더미로 퍼내는 중이었는데  서방님 오셨단 소리를 
듣고 분주히 우물에 가서 손발을 씻고 내 방에 가서 의관을 차리고 서방님을 보
이러 들어갔었네, 사랑에 들어가니  서방님이 안에 들어간 뒤요, 또 안에 들어가
니 서방님이 사당방에 들어간 뒤라 나는  안중문간에서 얼마 동안 서성거리었네. 
서방님이 사당방에서 나와서  큰옷을 벗고 안대청 북창  앞에 앉아서 점심 반찬 
만드는 아씨를 바라 보며  웃고 이야기하는 중에 내가 안마당으로 걸어들어갔었
네, 서방님이 그때까지 내 말을 듣지 못하였던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저게 
누구야? " 하고 소리를 지르데, 내가 댓돌 아래 들어가 서서 내 입으로 "비부 배
돌석이 현신드리오. " 하고  하정배를 했네, 서방님이 “비부? " 하고  한마디 뇌
고서는 성낸 눈으로 아씨를 바라보는데 아씨는 "엊그제 새로 들인 비부쟁이오. " 
하고 천연스럽게 말하데. 서방님은  얼굴이 희고 곱고 아씨보다 훨씬 젊데. 실상 
나이는 서방님이  내 동갑 서른다섯이고,  아씨가 다섯 살  맏이라는데 보기에는 
적어도 십년은 틀리는 것 같데. 나는 서방님과  아씨를 벌갈아 보고 섰는데 서방
님은 아랫입술을  악물고서 아씨를 노려보고 아씨는  반찬을 만들면서 서방님씌 
눈치를 살펴보데. "여보, 집안에 새사람을 들이는데 내 말두 들어보지  않구 맘대
루 한단 말이오? " "내가 무얼  맘대로 했단 말씀이토. 비부는 나더러 골라 들이
라고 허락해 주지 않았소. " "누가 허락을 했어? " "정신이 그렇게 없으시오? 날
짜를 대리까? " "내가  그런 말을 했다기루서니 무엇이 그리 급해서 나 없는  동
안에 사람을 들인단  말이오. " "언제부터 별르는  일인데 급히 했다고 걱정이시
오. " "억지부터 별르는 일을 왜 내가 집에  있을 때는 못했소? " "왜 못해요. 무
서워서 못해요? 내가 무슨 굽죌 일이 있습디까. " "내가 잠깐 집에 없는 것을 다
행으루 여길 제는 영영 집에  없었으면 더 좋겠지. " "아무리 처자에게라도 억탁
으론 말씀하지 마시오.  " "무엇이 억탁이야? 그래 내가  집에 없는 걸 다행으루 
여기지 않았어! 않았거든 않았다구  말해! " ”누가 다행으로 여기도록 맨들랍디
까. " 아씨가  서방님에게서 외면하면서 나를 보고 "너는 고만  나가거라. " 하고 
말하여 나는 밖으로 나오다가  내외간 말다툼하는 말이 궁금해서 안중문간 안에
서 발을 멈추었네.  "비부를 들이더라두 사람이나 골라 들여야지. "   "그래서 내
가 당신께 골나  들이시랬지요. 나같이 안방구석에 들어앉았는  사람더러 고르라
고 해노시고 지금 와서 무슨 말씀이오? “ "아무리 들어앉았더래두 배가가 양순
치 못하단 말은 들었겠지?  ” "석전질을 잘하고 대정이란 벼슬을 했단 말은 들
었소. 비부쟁이로 과하지 않소? " "망나니니 개고기니 별명이  있는 자야. 과하긴 
무에 과해! " "사람은  부리기에 달렸습끼다. 아무리 고약한 사람이라도 내가  실
수 없고 저를  잘 대접하면 휘어 부립니다. " "그자가  좋지 못한 사람인 줄까지 
알구서 일부러 얻어들였단  말이야? " "좋지 못한  사람인 줄 알고서야 왜  내가 
손때 먹여 기르다시피  한 기집을 내주겠소. 당치  않은 말씀 마시오. "  "거짓말 
고만두어! " 서방님의  말소리가 그치며 곧 사랑으로  나오는 신발 소리가 나서, 
나는 얼른 먼저 밖으로 나와버렸었네.
  그 뒤 얼마 동안은 서방님이 나보고 말도 변변히 아니하더니 차차로 심부름을 
시키기 시작하여 달포  지난 뒤부터 사랑 잔심부름  외에 서방님 심부름을 내가 
도맡아 하다시피 되었네.  심부름을 잘 했다고 칭찬은 별로 듣지  못하고 잘못했
다고 꾸지람은 날마다 받았네. 내가 성미를  죽이고 부처님이지만 생사람으로 갑
자기 부처님  되기가 어디 쉬운가. 당치  않은 꾸지람을 받을 때는  잠자코 있지 
않고 좀 들어섰었네. "양반의 집에 있으려면 버룻부터  배워야 한다. " "재하자는 
유구무언이라니 양반에게 말대답 못하는 법이다. " 이런 말은 개떡 같지만 "네가 
한번 양반 무서운  줄을 알아야겠다. " “조금 잘못하면 귀양갈  테니 그리 알아
라. " 속에  뼈 있는 말도 한번 아니고 여러  번 들었었네. 김도사 때 부터 있는 
하인은.동자치의 서방인데 동자치 서방이 내 덕에 신역이 편해졌었네. 이 자식이 
편하거든 가만히나 있지 않고 맘에  꾄듯싶 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나를 
가르치니 내가  그걸 잘 받겠나. 내가  눈만 곱게 안 떠도  움찔하는 위인이니까 
싸움까지는 한  일이 없지만 사이는 좋지  못했었네. 어느 날 식전에  내가 넓은 
안팎 마당을 다 쓸고 허리가 꼿꼿해서 방에 나와 잠깐 누워 있는데 동자치 서방
이 와서 ”서방님이 화초 옮겨 심으신다구 들어오라시어. " 하고  부르데. 사람이 
화가 나서 견딜  수 있든가. "이 자식아,  너는 손묵쟁이가 부러졌니? 화초두  못 
심그게. " "왜  내게다 골을 내어. 서방님이  부르신다는데. " “서방님만 내세면 
제일이냐, 이 자식아. " "그저  말하지, 왜 이자식 저자식 해. " "이자식 이.  " 하
고 내가 방에서 뛰어나가며 곧 이를 악물고 대어드니 동자치 서방이 "아서 아서. 
" 하고 손을 내저으며 뒷걸음질을  치데. 내가 홧김에 한번 귀때기를 우려주었더
니 대번에 을상을 하고 "배대정 왜 이러우. 내가 무얼 잘못했소? " 하고 두 손을 
얼굴 앞에 내들고 흔드는데 그 꼴이 우스워서  나는 더 손댈 생각이 없어졌었네. 
"서방님께 가서 곧 들어간다구  말씀해. " "그리하우. 그리하우. " 동자치  서방이 
간 뒤에 다시  방에 들어와서 허리를 펴고  사랑으로 들어가니 서방님은 사랑방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사랑방에 앉았고 동자지 서방과 동네 하인 두엇은 사랑마
당에 웅긋쭝긋 서서있데.  서방님이 나를 보더니 곧 동자치 서방과  동네 하인들
에게 "저놈 끌어다 댓돌  아래 꿇려라. " 하고 호령하데. 내가 상투 잡혀  끌려가
서 맨땅에 꿇어않은  뒤에 서방님이 내려다보며 "이놈! 부르러  내보낸 사람에게 
어째 손찌검했느냐?" "또 양반이  부르면 즉시 들어올 것이지 실컷 자빠져  있다
가 들어온단 말이냐!"  호령이 서리 같으나 나는 발명할 생각이  없어서 입을 꽉 
다물고 있었네. "너 같은  놈은 매를 좀 맞아야 한다. " 하고 하인들더러  멍석을 
말아들여라, 매를 꺾어오너라 야단을  치데. 내가 어렸을 때부터 맷집 좋기로 남
에게 둘째  안갈 사람이지만 멍석말이  매맞기는 이때가 평생  처음일세. 안에서 
계집들이 내다보고 글방에서 아이들이  내다보고 창피하기라니 이루 다 말할 수
가 없었지.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 항복한뒤에 "이번은  용서하나 이 다음에 또
다시 그런 일이 있으면 별반거조를 낼 테니  그리 알구 있거라. " 으름장을 받고 
나왔네. 나의 계집 명색은 그 동안 없는 정도  날 만큼 같이 살았건만 내가 매맞
고 방에 나와 누운 뒤에 안에 있고나와 보지도 않고 저녁 뒤에 나와서도 가엾단 
말 한마디 없고 도리어 뾰로통하고 있데. 당장에  곧 박살을 내고 싶었지만 나는 
꿀꺽 참고 고만두었었네. 
  내외간에 탐탁하지는 못하나마 그럭저럭  살아가는 중에 반 년이 지나서 구시
월 깊은  가을이 되었었네. 김도사집  추수가 볏백 좋이되는  까닭에 도조바리가 
날마다 들어오는데 말질은 내가  혼자하고 말목은 동자치 서방과 둘이 반분했었
네. 나  혼자 차지해야 좋을 것을  남에게 나눠줄 까닭이 없지만  전에도 그렇게 
했다기에 경위를 묻지 않고 그대로 했었네.  도조를 흡사까지 영악하게 받아들이
었더니 밀린 도조 채출은 고사하고  묵은 빚 추심까지 나를 시켜서 나는 아귀다
툼과 주먹다짐을 하루도  몇 번씩 할 때가 많았었네. 첫가을부너  안의 가을일이 
바쁘다고 계집이 밤중까지  안에서 안 나오는 때가  종종 잇더니 가을일이 끝난 
뒤에는 도리어 심하여서 초저녁에 나와  있다가도 나 잠든 틈에 다시 안에 들어
가서 닭까지 울리고  나오는 때가 더러 있었네. 이런 때는  계집의 입에서 "언제 
깨셨소? 늦었으니 어서 자고 내일 일찍 일어납시다. " "일에 부대껴서 사람이 곤
해 죽겠소. " 이런 말이  나오는데 말소리에 정이 똑똑 떨었네. 어느 날 낮에  내
가 빚 추심하러 나가  돌아다니다가 술잔을 얻어먹고 들어와서 저녁밥을 먹는지 
마는지 하고 쑤러지며 곧 잠이  들었다가 밤중쯤 잠이 깨어서 옆을 더듬어 보니 
계집이 없데그려. 다른 때 같으면 쓴입맛이나 다시고  다시 잘 것인데 그날 밤은 
계집이 옆에 없는  까닭으로 잠이 잘 오지 아니하여  몸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며 갖은 몹쓸  생각을 다하는 중에 방문이  부스스 열리더니 계집이 살그머니 
자리에 와서 눕는데 부시럭 소리도  별로 없이 누울 제는 옷 입은 채 눕는 모양
이데. "또 안에 들어갔었나?" “잠이 깨셨소?” “어디 가  있었나? 안인가, 사랑
인가?” “사랑에를 내가  왜 가 있단 말이오. " “고만두게.  나두 다 짐작하네. 
언제든지 내 눈에 들키는  날은 좋지 못할 게니 그리 알게.  " “무슨 소린지 난 
모르겠소. " “나는 바지저구리만  다니는 줄 아나. 내가 이 집에 오든 첫날부터 
눈치를 다 알았네. " “글쎄 무어요?” “꼭 말을 들어야 속이 시원하겠나?” “
공연히 사람을 의심하지 마오.  " “의심? 의심은 벌써 지나갔네. "  “같이 살기
가 싫거든 그저 싫다고  하오. " “자네가 나를 싫다니까 걱정이야. " “누가  싫
다구 말합디까?” “말루  하면 숫제 낫게. "  “전에는 참았지. 참는 것도 한이 
있더. " “나를 잡아먹고 싶거든 잡아먹우.  맘대로 하오. " “왜 내가 사람 먹는 
사람인가. " 계집이 홀짝홀짝 울기 시작하여 나는 달래서 데리고 자고 이튿날 아
침에 안에 들어가서 아씨를 보고 “요새 안에 일이 바쁩니까?” 하고 물으니 아
씨가 “왜?” 하고  나의 묻는 것을 괴상히 여기데. “소인의  기집을 늘 밤일을 
시키시니까 말씀이에요. "  “언제 밤일을 시켰단 말이야?”  “우선 어젯밤에두 
소인의 기집이 밤중이  지나서 나왔습니다. " 아씨는  눈썹이 쌍크래지고 한동안 
말을 못하다가 “잘 알았다. 이후에는 내가 밤에  일을 시키려면 너를 불러서 들
여보내라고 이를 테니 네 기집이 네 말 안 듣고 들어오는 때는 다리를 분질러놓
아도 좋다. 기집 닦달하는데 그만 일을 못하게 하랴. "
  계집이 듣는데 이런 말을 하데. 나는 “녜, 알아 하겠습니다. " 하고 계집을 한
번 흘겨보고  나왔네. 그날 낮에  아싸가 계집을 방망이로  사다듬이해놓고 그날 
밤부터 아기를 아버지 사랑에 내보내 재우는데 서방님은 꿀꺽 소리도 못한 모양
이데.
  계집이 그 뒤로는  초저녁에 나오고 밤에 다시 들어가는 일이  없었네. 겨울밤
에 혹시 사랑에  손님이 와서 안에서 밤참을 해낼  때는 아씨 말씀이 있은 뒤에 
내가 들여보내고 손님이 가기전에  아씨가 내보내는 까닭에 계집은 그전 행실을 
하지 못했었네.  한겨울을 말없이 지내고 해가  바뀌어서 정초 놀 때에  어느 날 
동자치 서방이 저녁 마을을 같이  가자고 와서 끄는데 나는 까닭도 없이 모피할 
생각이 나서 선뜻 일어나지 아니하다가  술 먹을 데가 있단 말을 듣고 어슬렁어
슬렁 따라 갔었네. 한  집에 가서 보니 동네 사람 네댓이  모여앉아서 쇠머리 도
르리를 하는데 정작  술이 없데그려. 우리가 덧붙이기로 한축 들어서  우리 몫으
로 막걸리 동이를 얻어다가 쇠머리  안주로 먹고 난 뒤에 투전을 하자는 공론이 
나서 노름이 시작되었는데 나는 노름을 즐기지 않는 까닭에 꾼에 들지 아니했었
네. 노름판 옆에서 건밤을 새울 맛이 없어서  나는 먼저 일어서려고 했더니 동자
치 서방이 두어 판 더 뽑아보고 같이  가자고 붙들어서 주저앉아 구경했었네. 두
어 판이라고 말하던 것이 열판이 넘어도 동자치  서방이 투전장을 놓지 않데. 나
는 먼저 간다고 붙드는 것을 뿌리치고 나왔었네.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삽작 앞
에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나섰기에 발을 멈추고 자세히 살펴본즉 검은 것이 사
랑 편으로 움직이더니 대문 열리는  소리가 나는 듯하며 곧 눈에 보이지 아니하
데. 내가 얼른 달음박질로 쫓아와 보니 사랑  대문은 닫아 걸리고 사방은 괴괴한
데 대문 안에 아무  기척이 없데. 내가 진작 얼른 쫓아오지  못한 것으 후회하고 
또 조금 일찍이  돌아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내 방으로  들어왔었네. 등잔불
이 없어 방안이 캄캄한데 화로에 불씨좌 없어서 할 수 없이 손으로 더듬더듬 더
듬었었네.
  “인제 왔소? 나는 깜짝  놀랐소. " “불을 왜 껐나?” “지금 끄지 않았소.  " 
“누가 껐단 말이야?” “나는 끄지 않았는데  잠든 동안에 절로 꺼졌구려. " “
기름은 부어놨나?” “ 기름 부어 놓았소. 아마 심지가 빠진 게요. "  “불씨까지 
죽였네그려. " “불씨는  숯이 없어서 못 묻었소.  " 나는 계집의 대답하는  말을 
들어보려고 “지금 오면서 보니까 방ㅇ에서 시꺼먼 것이 하나 나가니 그게 무언
가?” 하고 물었더니 계집은 “시꺼먼 것이 무어란 말이오?” 하고 생청으로 잡
아떼데. “그것이 우리방에서  나가서 사랑대문 안으로 들어가데. " “헛것을  본 
게구려. " “인도깨비를 본 모양일세. " “인도깨비가 무슨  도깨비요?” “관 쓴 
도깨비요?” “관 쓴 도깨비야.  " “그래 그것이 우리 방에서 나가더란  말이오. 
아이구 무서워라” 하고 계집이 내게  착 달라붙데. 내가 속으로 ‘요년!’ 하면
서 한번  허허 웃고 계집과 같이  누웠네. 서방님이란 자가 그동안  아씨 단속에 
꿈쩍을 못하다가  인제 나 없는 틈을  타서 행랑 출입을 시작한  모양이라. 내가 
한번 제독을 단단히 주려고 속으로 별렀었네.
  그 뒤 사오  일 지나서 보름 대목장날 장  구경을 나갔다가 옛날 남역서 살때 
이웃하여 살던 사람을 만나서 술잔을 나누고 헤어질제 그 사람이 한번 놀러오라
고 말하기에 재가  그리하마고 대답했었네. 대답할 때 그 사람에게  놀러가고 싶
은 생각 외에 딴 생각이 있었네. 그날 밤에  계집더러 내일은 창원 가서 아는 사
람 좀 찾고 하룻밤 묵어서  모레 오겠다고 말하고 이튿날 식전에 사랑에 들어가
서 서방님에게 하루 말미를 말하여  첫말에 허락을 얻고 또 안에 들어가서 아씨
께 말하고 아침 먹은 뒤에 창원 간다고 떠나서 남역으로 놀러나갔었네.
  남역에 나가서 술  먹고 종일 놀다가 저녁밥까지  먹고 읍내로 돌아와서 달빛 
아래 성을 끼고 돌아다니다가 찬바람에 언 몸을 녹이려고 성 밑에 있는 아는 술
집을 찾아들어 갔었네. 이때쯤은 전과달라서 다음날  곡식으로 갖다 갚는다고 하
면 술을 외상으로 얻어  먹을 수 있었네. 집에를 아무쪼록 늦게  가려고 맘을 먹
은 까닭에 술집 뜯뜻한 방에  밑질기게 앉아 있다가 한밤중이나 된 때에 비로소 
일어섰네. 달빛은 밝고  인적은 고요하나 아는 사람을 혹시 만날는지  몰라서 될 
수 있는 대로  고샅길을 걸어왔네. 집에 가까이 오며부터 발을  가만가만 떼어좋
고 앞을 두루  살펴보았네. 행랑채에는 통히 불빛이 없는데 사랑  대문은 빠끔히 
열리어 있데. 내가  열린 대문을 보고 속으로 ‘옳다. 내  꽤에 빠져ㅅ다.’ 생각
하고 바로 우리 방을 들이치려다가 의봉으로라도 연장 하나를 ㅏㅈ아 가지기 겸 
사랑 동정을 한번 보고 나오려고  대문 아ㅠ에 와서 대문짝을 몸으로 밀어 조금 
더 열고 들어서서  보니 작은사랑은 캄캄하고 큰사랑은 불이 있데.  마루끝과 댓
돌 위에 서방님 신발이 없는  것을 보고도 나는 잠깐 주저하다가 들키면 도적놈 
누명 쓸  작정하고 큰사랑 윗목의  지텨놓은 덧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었네. 
아랫목에 있는 서방님이란 자의 자리는 비어 있고 벼룻집 앞에 아들아이만 누워 
자데. 벼룻집이 내 눈에  뜨일 때 무슨 생각 하나가 번개같이  나서 나는 벼룻집
에 있는 필묵을 집어서 몸에 지니고 사랑에서  나왔네. 사랑광에 가서 도끼를 찾
아 들고 또 무슨 줄이나  바가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동자치 서방에게 튼튼한 
쇠바가 있는 것을 생각하고 동자치  행랑방으로 나와서 바를 찾아 가진 뒤에 우
리 방으로 왔었네. 우리 방이란 것이  부엌 한 간, 방 한 간인데 방에는 뒤에 조
그만 들창이 있고  앞에 외쪽 되창이 있을  뿐이라 앞되창으로 들이치면 방안에 
있는 사람은 독 안에  든 쥐와 다름이 없었네. 내가 가만히  봉당 앞에 들어와서 
귀를 기울이고 방안에서 수상한 숨소리가 나는 것을 엿듣다가 왼손에 들었던 바
사래를 되창 앞에 탁 내던지며 바른손에 도끼를 꼬나잡고 봉당 위로 뛰어올라와
서 되창문을 왈칵 열어젖혔네.  “이년, 어떤 놈을 데려다가 끼구 자빠졌느냐?” 
“연놈의 모가지를 한  도끼루 다 찍어놓을 테다!” 마당에 가득한  달빛이 열어
놓은 창문으로 우려들어서 방안에  불이 없어도 희미하게 보이는데 머리까지 뒤
어쓴 이불 속에 두  몸이다 한 줌만큼 뭉친 것을 짐작하고 볼 수  있데. 내가 바
를 집어서 팔에 걸치며 곧 방안에 들어섰네.  이불을 벗기고 사내부터 잡아 일으
키니 사내는 사지만  벌벌 떨고 깩 소리도  못하데. “이놈, 네가 웬놈인데 남의 
기집을 가루차느냐?” 도낏날로  바를 쓸 만큼 끊은 뒤에  도끼를 발 밑에 놓고 
밧동강으로 사내를 뒷결박지우는데 계집이 그 동안에 일어나서 살그머니 도끼를 
집으려고 하데. 내가 이것을 보고 발길로 계집을  차버린 뒤에 다시 도끼를 집어
서 바를 또  한 동강 내가지고 계집마저 끌어다기 뒷결박을  지웨ㅆ네. 계집종이 
사내 양반보다 맹랑해서 떨면서도 가만히 있지 않고 결박지우는 손을 입으로 물
어떼려고 애를쓰데.  둘을 뒷결박지우고도 바가  많이 남아서 남은  바로 남녀의 
두 몸을 한테 친친  감아놓았제. 사내 양반이 그 동안 정신을  차린 모양이라 떨
리는 목소리나마 똑똑하게 “돌석이, 내야. " 하고 말하데. 나는 번연히 알면서도 
누구인지 모르는 체하고 “내라니,  누구냐?” 하고 나직이 꾸짖었네. “나를 몰
라? 나야. "  “아니 서방님이 아니오? 서방님 이게  무슨 짓이오?” “잘못되었
네. " “가만 있소. 불 좀 켜놓구 끌러주리다. " “불 켤  것 없이 끌러주게. 자네
가 무슨 청을 하든지 내가 다 들어줄 테니 얼른 끌러주게. " “불 켜놓구 이야기
합시다. " 내가 열어젖힌 채 있는 되창문을  닫은 뒤에 화로에 가서 불씨를 파냈
네.
  등잔불을 켜놓고 보니 남녀가 다  감주 먹은 괴상을 하고 고개를 들지 못하는
데 계집은 그래도 빤빤스러워 보이나 서방님이란 자는 쥐구멍을 못 찾아 걱정인 
모양이데. 내가 퍼더버리고 앉아서 서방님을 보고 “긴말  할 거 없이 내가 청하
는 일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겠소?  왜 대답을 안 하우?” 서방님이란 자가 고
개를 끄덕이는것을  보고 “그렇게 한단 말이오?”  하고 다그쳐 물으니 그자의 
고개가 또다시  끄덕끄덕하데. “그러면 첫째 계집을  속량해 주구, 둘째 계집이 
일평생 먹구 살만큼 천량을  노놔주우. 그렇게 하겠소, 못하겠소? 고개만 끄덕이
지 말구 말루 대답하우. " 그자 입에서 겨우 “그렇게 하겠어. "  한마디 말이 떨
어진 뒤에 나는 곧  “그러면 이 자리에서 수표를 써내우. "  하고 내 몸에 지닌 
필묵을 내놓고  그자의 바른손 하나만 빼놓아  주었네. 내게 있던 백지  한 장을 
꺼내서 그자 앞에 펴놓고 사기  그릇에 먹을 갈아서 붓에 묻히어 주었더니 그자
가 붓을 들고 대를보고 또 촉을 보고 하다기 내 얼굴을 바라보는 눈치가 사랑벼
룻집에서 가져온 것인 줄을 아는 모양이데.  “자, 수표를 쓰우. " “사랑에 들어
갔다 왔지?” “딴소리말구 어서 쓸 것이나 쓰우. " 그자가 한동안망설이다가 쓰
기 시작하여 두서너 줄 죽  내려쓰고 붓을 놓으려고 하기에 내가 ‘다 썼소? 다 
썼거든 수장을  지르든지 수결을 두든지  하우.“ 하고 말하야  그자가 수결까지 
두었었네. ”사연을  한번 새겨 읽어보오.“ ’배돌석이  처 금순이는 몸값 없이 
속량하여 주고 논밭 이십 두락을 허급할사 연월일 김도사댁. " “이십 두락두 좋
소. " “인제 고만 끌러주게. "  “그러우.‘ 나는 곧 동인 것을 끌러주려고 하다
가 수표가 미심스러운  생각이 나서 ”잠깐만 더 참구 기시우.’  하고 빼주었던 
바른손까지 다시 동여놓고 그자에게  받은 수표를 글 아는 사람에게 가서보이고 
오려고 행랑에서  나오는데 아무리 동여놓기는단단히 했지만  사람의 일을 혹시 
몰라서 부엌 뒤에 있던 나무토막을 들어다가 방문에 버티어 놓고 ‘이만하면 방
안에서 몸뚱이루 ㄸ다밀어도 열지 못할 게다.’ 생각하고 나왔었네. 사랑 선생은 
설 쇠러 집에 가서 아직 오지 않았고 누가 좋을까 속으로 이 사람 저 사람 고르
다가 진서 잘 보는  동네 일좌를 찾아갔었네. 일좌가 자는 것을  급한 일이 있다
고 깨워가지고 “이것 좀 보아주. " 하고  어둔 밤에 홍두깨로 수표를 펴서 눈앞
에 들이미니 “이게 무언가?” 일좌가 눈을 비비면서 한동안 들여다보고 “자네 
큰일났네. " 하고  혼동하데. “무슨 큰일이 났소?”  “자네 무슨 짓을 했나?” 
“당신더러 말씀이지 내 기집이란 것이 안에서 밤중까지 안 나오기에 부르러 들
어가 본즉 그년이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사랑에서 서방님께 수청을 듭디다. 내가 
서방님보구 몇 마디 좋지 않게 말씀했더니 서방님이 무안김에 계집을 속량해 준
다구 수표를 써줍디다. 속량해 준다는 말이 여기  쓰여 있지 않소?” “속량? 속
량이 다 무언가! 자네가 사랑에 들어와 도둑질했다구 귀양보낸다구 쓰이어 있네. 
" “무어요?  도둑질했다구! 기막힌 소리 다  듣겠소. 내가 까막눈이라구 속였구
려. " “여보게, 이까짓거 진작 찢어버리게. "  “서방님께 도루 갖다 드릴테요. " 
“내가 보아주었다구 말 말게.  " “염려 마우. 공연한 일루 단잠을 깨워서 미안
하우. " 나는  일좌에게 인사하고 한달음에 행량으로 돌아왔었네. 마당에  들어오
며 보니 남녀가 봉당 앞에  나와서 동그라졌는데 몸은 동인채 있고 방문이 열어
젖힌 것같이 열리어  있는데 나무토막은 트ㅇ기어졌데. 동그라진  남녀를 방으로 
끌어들이고 열려 있는 방문을 다시  닫은 뒤에 내가 남녀를 다 잡아먹을 것같이 
노려보았네. 나의  무식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거짓 수표를  써준 서방님이란 
자는 곧 잡아먹어도 시원치 못하데. 내가 멍석말이  매를 맞을 때 호령들은 말이 
쉿속에 박혀 있어서  나는 처음에 대뜸 “이놈, 네가  네 죄를 아느냐!” 호령기 
있게 말하고 그 다음에  “내가 네 사랑에 가서 붓, 먹  가져온 것이 도둑직이란 
말이냐! 논밭 이십  두락? 요놈, 낯간지러운 놈 같으니. "  수죄하야 말하는데 서
방님이란 자는 눈을 감고 안  듣는 체하고 계집은 운명하는 사람같이 턱을 까부
르데. “너 같은 놈은 좀  죽어봐라. " 이 말이 내 입에서 떨어지자 계집이  먼저 
“사람 죽인다. " 하고 소리를 질러서 내가  얼른 걸레를 집어서 계집의 입을 틀
어 막는데 그자가 마저 “살인이야!” 하고 고성을 치기에  방구석에 있던 헌 보
선짝으로 그자의 아가리까지 틀어막았네. 이때 내가  참말로 남녀를 다 죽여버리
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그까짓  것들을 죽이고 내 목숨을 내놓기가 싫어서 잔
상히 곤욕만 보이고  말려고 맘을 먹었네. “소위를 생각하면 죽여두  싸지만 내
가 손에 피를 묻히기가 싫어서 죽이지는 않는다. " 
  죽이지 않고 어떻게 곤욕을 모일까  생각하는 중에 문득 자자해 줄 생각이 났
었네. 자자를  할라니 바늘도 없고  송곳도 없어서 주저하다가  그자가 옷고름에 
장도 찬 것을  보고 그 장도를 옷고름에  달린 채 잡아떼었네. 칼날을 끝만 뾰조
록이 남기고 옷고름으로 감아서 손에 쥐고 먼저 계집더러 “네년의 눈이 사내를 
홀리게 생겼으니 눈에다 치장을 더 내주마. "말하고 곧 대들어서 한 손으로 머리
채를 잡아서 고개를  벌떡 젖힌 뒤에 한 손만  가지고 일변 칼 끝으로 눈자위를 
돌려 쑤시며 붓으로 먹을 칠해 넣었네. 계집의  두 준에 왕방울을 쑤시어 만들고 
나서 그 다음에  그자에게 “네놈은 계집을 좋아하니  이마에 하나 붙여줄 것이 
있다. " 말하고 한손으로 상투를 잡고 한손으로 이마 위에 계집의 밑구녕 모양을 
쑤시어 만들었네. “모양이 어떠냐? 너희들끼리 서루  봐라. 자, 나는 어디루든지 
갈 테니 너희들 연놈이 맘놓구 같이 살아라. " 그 뒤에 나는 동여놓은 남녀를 그
대로 두고 밖으로  나왔네. 달은 아주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닭은  홰를 자치는데 
새벽바람이 차기가 살을 에이데. 나는 어디로 갈  작정을 못한 까닭에 한동안 찬
바람을 무릅쓰고 밖에서 서성거리다가  이왕 도적놈 소리를 들은 바에는 길양식
이나 훔쳐가지고 떠나려고 생각하고  사랑 뒤로 들어가서 안뒷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었네. 개가 짖고 내닫다가 난  줄 알고는 짖지 않고 꼬리를 치데. 내가 안
광에 들어가서 자루를 찾아가지고 독에 있는 쌀을 자루에 퍼넣는데 안방 지겟문 
여는 소리가 나서 나는  깜짝 놀라 독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네. “광문이 어째 
열렸을까? 그년들이 어젯밤에 광문도 안 닫히고 나간 게로군. "
  아씨란 계집이 광 앞으로 오다가  말고 종종걸음을 쳐서 부엌 뒤로 가는 것이 
새벽 뒤보는 버릇이 있다더니 뒷간 가기가 급하던  모양이데. 나는 태평 맘을 놓
고 쌀을 한 자루 넣어서 어깨에 엇메고 안중문을 열고 나오다가 그 계집을 보고 
간다 말 한마디 하고 갈 생각이 나서  다기 돌쳐서서 안뒷간 앞으로 들어갔었네. 
그 계집이 신발 소리를 듣고 먼저 “그게 누구냐?” 하고 묻는데 내가 쌀자루를 
부엌 뒤에 놓고 나가서 “돌석입니다. " 하고 대답했더니 그 계집은 무서운 생각
이 났던지 엉 소리를  지르고 말이 없다가 얼마만에댜 “웬일이야?” 하고 말하
데. “잠깐 말씀할 일이  있습니다. " “무슨 일인지 이따 와선 말 못해?”  “급
한 일입니다. " “무슨 급한 일이야?” 그 계집이 곧 부시럭부시럭하면서 “저리 
좀 비켜라. "  말하기에 뒷간에서 나오려는 줄 알고 나는  곧 옆으로 비켜섰으나 
나오지는 않고 다시  또 말을 묻데. “급한 일이 무슨  일이냐?” “서방님이 행
랑에 나와 기십니다. "  “그래 나더러 행랑으로 나가잔 말이냐?” “아니오.  둘
이 붙어앉았는 꼴을 보시면 눈에서 불이 나실  겝니다. " “그렇기에 누가 그 꼴
을보고 싶다느냐. 네가  지금 급하게 내게화서 고자질하는 뜻이  무어냐?” “제
가 삼씨오쟁이를 짊어지구  하소연할 데가 아씨밖에 더 있습니까?” “사내녀석
이 기집하나를 거느리지 못하고  밤낮 딴짓을 하게 한단 말이냐?” “아씨는 제
가 못난 줄루 아십니다그려. " “그렇지  무어야?” “그럼 잘난 아씨는 왜 서방
님을 밤낮 딴짓하게 하시오?” “내게다 오금을  박는 게냐. " “오금 좀 백혀두 
좋지요. 실상 내가 이놈의 더러운  꼴을 보는 것이 아씨 덕 아니오. " “잘  알았
다. 고만 나가거라.  "“그러지 않아두 하직하구 가겠습니다.  " “하직하구 가다
니?” “비부쟁이 노릇 고만 할랍니다. " “서방님이 너 온 것을 아셨느냐?” “
아시다뿐인가요?” “그런데 그저 행랑에  계시단 말이 될 말이냐?” “내가 행
랑에 붙들어 두었습니다. " “붙들어 두었어, 어떻게?” “궁금하거든 나가  보시
오. 내가 광에 있는  쌀둑에서 길양식을 좀 퍼가지고 가니 간  뒤에 도둑놈 소리
나 마십시오. " “지금 곧 갈테냐? 잠깐만 기다려라. "  그 계집이 그제야 뒷간에
서 나와서 “나하고  같이 행랑에 나가서 시비를  가리고 가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라. 자 나가자. " 하고 앞서 가려고 나서다가 “나는 시비를 다 가렸으니까 행
랑에 다시 갈 것 없습니다. " 내 말을 듣고는 내 앞으로 대어들며 떨리는 말소리
로 “네가 사람  죽였구나. " 하고 말하데.  “내가 서방님을 죽인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염려 마십시오. " “행랑까지 나하고 같이 가자. " “내가 행랑에를 못 
갈 것두 없지만 아씨  혼자 가보시는 게  좋습니다. 내가  서방님을 죽이구 도망
하는 것 같으면  안중문 밖을 나가기 전에 급살을 맞아  죽겠습니다. " “그래도 
나는 너하고 같이 갈 테다. " “나하고 같이 가다니 내게 맘이 있어 하는 말씀이
오?” “무엇이 어째?” “내가 지금 어디루 갈지 모르는 사람이 같이 갈 수 없
소. " 하고  계집의 손을 잡아당겨서 입을  한번 맞추었더니 “애구머니. "  하고 
땅바닥에 펄쩍 주저앉데. “인제 나는 가우. " 하고 말한 뒤 곧 쌀자루를 집어들
고 나왔었네.  나는 그날 새벽 김해  고향을 하직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이삼 삭 
동안 백사지에서 죽을 고생 다했었네. 호구할 도리가  없는 판에 마침 아는 양반
이 금교찰방으로 오게 되어서 나는 자원하고 하인 일체로 따라왔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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