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의형제편 이봉학이 1

3학년2반 | 2022.01.07 07:28:54 댓글: 0 조회: 330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0488
  제 6장 이봉학이
  1
  이윤경이 김주대로 전라도관찰사가 되어서  전주에 부임할 때 난리 뒤라고 모
든 일에 제폐하기를 힘썼으나 이  길이 부임하자 개선이라 자연 기구가 볼 만하
였다. 새 감사가 전주 입성하는 날 부중  백성들이 남녀노소 모두 뒤끓어 나와서 
십 리 밖까지 사람으로 성을 쌓았다. 오마작대의  마군이 선진으로 맨 앞에 오고 
그 뒤에 새감사가 전날 부윤으로  출전할 때 데리고 갔던 여러 광대들이 오색옷
들을 입고 춤을 추며 오는데  그 중간에 악수 한 패가 길군악을 울리고 그 뒤에 
오색 깃발이 바랍에 펄펄 날리는데 호남제군사명기가 높이 떠서 오고 사명기 뒤
에 군사 두  패가 전후에 갈라서고 그 중간에  감사가 융복을 갖추고 백마 위에 
두렷이 앉아 오느데 말탄 군관이 좌우로 옹위하였다.  이 군관은 감사 덕에 호사
하는 비장들이다. 감사가  오른편을 돌아보며 무슨 말을 이르니 비장  하나가 말 
위에서 몸을 굽신하고 말을 옆걸음 걸려 감사 가까이 들이세우며 말머리 하나쯤 
뒤떨어져 따라갔다. 감사가  좌우 산천을 가리키며 말하는데 그 비장은  연해 몸
을 굽신거리었다. 구경꾼 중에 이것을 보고  서로 돌아보며 속살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비장 해사하게 생겼네. " “흰 얼굴에 까만 수염이 이쁘장스러웨. " 
“예방비장인 것 같애. " “어째서?”  “사또의 가까운 일가거나 친척이길래 특
별히 친하게 하시지.  " “다른 비장들은 등채만 짚었는데 그  비장 어깨에 활을 
매었네그려. " “활만 매었나 전동까지 매었네. "
  그 비장이 감사의 일가도  아니요, 친척도 아니요, 또 예방비장도 아닌 봉학인 
줄은 구경꾼들이 알  까닭이 없었다. 감사가 지나간 뒤에는 신연  갔던 아전들과 
마중나온 기생들이 걸으며 타며 따라오고 그 뒤에는 중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후
진이 되어 맨 뒤에 좇아왔다. 선진에서 후진까지  거의 일 마장에 뻐치었는데 앞
뒤에 군사가 오느니만큼 기구가 예사 감사 도임할 때보다 더 으리으리하였다.
  이윤경이 감사로 도임한 뒤  각 비장들에게 소임을 배분하여 맡기는데 이봉학
이에게는 공방이 차례로  돌아왔다. 비장으론 공방을 맡겼으나  이윤경이 특별히 
봉학이를 사랑하는 까ㄷㄺ에 예방비장이 받아먹을 조석을 봉학이에게 내주게 하
였다. 각도  감사의 조석은 의례로 똑같은  상이 두 상인데 한  상은 예방비장의 
차지다. 워낙은 감사 먹을 음식에 독이 들까  조심하여 먼저 맛보게 하는 것이지
만 사실은  예방비장이 감사와 똑같은  조석을 먹는 셈이었다.  예방비장이 자기 
차지의 조석을 공방에게 앗기고  겉으로는 다른 기색이 없었으나 속으로는 봉학
이를 미워하는 마음이 없지  않고 예방비장외에 다른 비장들도 시기하는 기색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봉학이가 사람이 상략하고  행도이 민첩하여 다른 비장들의 
귀찮아하는 일을 일쑤 잘해주는 까닭에 간신히  규각이 나지않고 지내었다. 하루
는 예방비장이 감사 앞에  가서 “형방, 공방 두 비장이 방  하나를 같이 쓰옵는
데 근래 형방에 일이 많아 한방 쓰기  불편하다 하오니 어찌하오리까. " 하고 품
하니 감사가 “다른 방  하나를 치워주게 그려. " 하고 분부하였다. “치워줄 방
이 만만치  않소이다. 외딸리 떨어져  있는 폐방한 방을  수리해주면 어떠하오리
까?”감사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아무리나 그리 보게. "하고 허락하였다   
  페방되었던 방은 성화당과 비청장에서  초간하게 떨어져서 좀 호젓한 것이 흠
이나 방이 쓸모 있고 좌처가 아늑하고 뒤꼍에 좋은 대숲이 있어서 달 밝은 밤과 
눈 쌓인 아침의  경치가 좋았다. 이런 방이  어찌하여 오래 폐방이 되었던가. 이 
방이 좋지 못한 내력이 있다. 고형산 고판서  전라감사때 예방비장이 이 방에 거
처하였는데 그 비장의 수청 기생이  무당의 딸이라 굿을 좋아하여서 저의 집 이
웃에 큰 굿간이 있단 말을 듣고 잠깐 볼 일이 있다고 핑계하고 나섰다가 굿구경
에 반하여 밤을 새우고 들어온 것을 비장은 혹시 따로 보는 사내가 있는가 의심
하고 눈이 빠지게  나무랐더니, 기생이 무정지책을 받고 독살이 나서  비장이 선
화당에 올라간  틈에 이 방에서 목을  매어 죽었었다. 기생이 죽은  뒤에 비장이 
공연히 시룽시룽하여져서 감사에게 꾸중도  많이 들었으나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하여 아주 실성한 사람같이 되고 말았는데 어느 날 밤에 동무 비장 한 사람이 
병을 물으러 찾았갔더니 그  비장이 진정으로 사정하는 말이 “추월이년니 내게 
와서 밤낮 붙어 있으니  사람이 살 수 있나. 그 년이 지금 잠깐  나갔지만 곧 또 
올 것일세. 그 년을 어떻게 좀 쫓아주게. " 하고 눈물까지 머금었다. 추월이는 죽
은 기생의  이름이었다. 동무 비장이 그  말을 듣고 어이없어 할  사이에 “저기 
들어오네. "
  죽은 기생 추월이가 방구석에서  솟아나오더니 흰 이를 내보이며 해해 웃으면
서 차점차점 앞으로 나오는 것이 동무 비장의  눈에도 분명히 보이었다. 동무 비
장이란 사람이  마침 겁쟁이라 으악  소리를 지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겁쟁이 
비장이 하룻밤 떨고  앓고 이튿날 감사께 사연을 여쭈었다. 감사가  그제야 예방
비장의 병이 약으로 고칠 병이  못 되는 줄을 알고 우선 다른 비장 방에 데려다
가 여러 사람과 같이 자게 하였더니 같이 자는 사람들도 모르는 틈에 그 방으로 
뛰어가고 그 다음에 여러 사람들을  그 방에 가서 데리고 자게 ㅏ였더니 사람이 
방에 부쩌지 못하도록 날뛰었다. 감사의 단속이 있는  줄을 안 뒤로는 그 비장이 
밤낯으로 방문을 닫아걸고 들어앉아서 혼자 웃고  지껄였다. 감사가 그제는 여러 
비장들을 시켜 방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그 비장을 억지로 끌어내다 놓고 동으로 
뻗은 복사나무 가지로  사저없이 두들기게 하였다. 그러나 그 비장의  얼굴에 생
채기만 내었지 귀수는 떼어주지 못하였다. 고감사는  자기가 슬기 주머니라고 자
긍하도록 꾀가 많던 야반이라 이만 일을 처리할  꾀가 없을리 없었다. 감사가 한 
꾀를 생각하고 준비를 시키는데 말하면 귀신이 먼저  안다고 말 않고 시켜서, 감
사의 본부를  거행하는 사람들도 영문을 알지  못하였다. 어느 날 그  비장의 방 
근처에 굿판을 차리고 늙은 부당  젊은 무당을 모아들여서 밤에 큰 굿을 시키었
다. 굿이 시작된 뒤에 닫아걸린 그 비장의  방문이 자주 열리었다 닫히었다 하더
니 굿이 두세 거리 지난 뒤부터 방문이 아주  열리고 말았다. 그 비장이 넋 잃은 
사람같이 앉았는 것을 여러 비장들이 와서 보고 이 사람 한 마디 저 사람 한 마
디 말을 물었다. “방문을  어째 열어놓았나?” “그년이 굿구경 나갔어. "  “대
체 방문은 왜 닫나?” “내가 닫나 그년이  닫지. " “밖에 좀 나가 보지 않으려
나?” “그년이 저 없는 동안에 어디를  나가면 와서 죽인다고 그랬어. " “굿구
경 나간 지가 오랜가?” “내가 어디루 갈까봐 그러는지 처음에는 잠깐 잠깐 나
갔다 들어오더니 고대 나가서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네. " 이때 감사가 좌우에 부
축을 받고 마당으로 들어오니  여러 비장이 예방비장을 끌고 마당으로 뛰어나왔
다. 감사는 다른 말 없이 곧 예방비장을  포정문 밖으로 끌어내 가라고 분부하였
다. 포정문 밖에는 하루 여러 백 리 가는  노새와 뒤꼭지 두세 뼘씩 되는 하인들
이 마침 등대하고 있다가 예방비장을 노새 등에 올려앉히고 튼튼한 바로 떨어지
지 않을 만큼 동여맨 뒤에 곧 노새에  채찍질을 하였다. 고감사의 꾀가 들어맞아
서 예방비장은 무사히 서울로  올라갔으나 예방비장이 있던 방은 귀신의 울음소
리가 밤마다 나서 귀신방이란 별명이 생기고 그 뒤부터 폐방이 되어버렸던 것이
었다. 귀신방 내력이 생긴 때부터 벌써 사십여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감영 하인
들 입에 추월의  이름이 오르내리었다. 어스름 달밤에 흰 옷  자락이나 번뜻하면 
“아이구, 추월이가 나왔다. " 궂은비 오는 밤에 박쥐라도 찍찍하면 “이크, 추월
이 우는 소리가 났다. "
  무서움 타는 위인들이 방에서 꼼짝 못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소위 장력 있단 
위인들도 귀신방 근처에  감히 가지 못하였다. 이 까닭에 이때  전라감영 하인들
은 한턱 먹기 내기를 할  때 어둔 밤에 귀신방에 가서 기둥에 쪽지를 붙이고 오
거나 마당에  말뚝을 박고 오는 것이  내기 조건으로 어려운 것이었다.  어느 때 
사령 하나가 동무의  술을 빼앗아 먹을 욕심으로  말뚝을 박고 온다고 장담하고 
가서 옷자락을 말뚝에 껴서 박고 일어나다가 헉 하고 나가자빠진 것을 동무들이 
끄어온 일까지 있었다. 이 귀신방을 수리하기 시작한  뒤 봉학이 수하에 두고 부
리는 통ㅇ니 아이가 조용한 틈에 봉학이 앞에  와 서서 “공방나리, 지금 아무일
두 없으십니까?”하고 할  말이 있는 기색을 보이었다. “무슨 할  말이 있느냐?
” “녜. " “무슨 말이냐?” “지금 수리하는 방이 나리 가서 기실 방이라지요?
” “그렇단다. " “나리  그방으루 가시지 맙시오. " “왜?” “나리는  아직 모
르십니까? 그 방이 귀신방입니다. " “귀신방이라는 게 다 무어냐?” “그 방 내
력은 세상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 “우선  내가 모르는 걸. "  “나리는 
전주를 갓 오셨으니까 모르시지요. " “그럼 네 세상이란 말은 곧 전주란 뜻이구
나. " “추월이 귀신 이야기는 감영안에서만 알 뿐이 아닙니다.  부중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 “추월이 귀신이라는 게 그 방에 있는 귀신이냐?” “녜,  기
생 추월이 죽은 귀신입니다. " “어디 이야기 좀 해라. 들어보자. " 이십 살도 못
된 아니놈이 사십여  년 전 일을 저의 눈으로  본 것같이 이야기한 다음에 감영 
하인들이 어둔 밤에 내기하는 것까지 다  이야기하였다. 봉학이가 통인의 이야기
를 들은 뒤에 귀신방이라고 안 가려고는  생각하지 아니하나, 예방비장의 심청만
은 좋지  않게 생각하였다. 이때 마침  예방비장이 봉학이 있는 데로  오는 것을 
통인 아이가 보고 “저기  예방 나리 오십니다. " 하고 얼른 물러갔다. 봉학이가 
예방비장의 심사를 걸어보려고 마음을  먹고 있다가 예방비장이 와서 방에 들어
서자 “내가 할 말이 있더니  마침 잘 오셨소. " 하고 마주 일어섰다. “할  말이 
무슨 말인가?”“난 새루 수리하는 방으루 안 가겠소. " “갑자기 딴소리가 웬일
인가?” “딴소리 될 것두 없소. "  “아무 소리 없이 자기가 역사까지 시키더니 
홀저에 지금 와서 안 가겠단 말이 말이  되나. " “귀신방에를 누가 가기 좋다겠
소. " “지작없는 통인놈의 지껄이는  소리를 곧이듣구 가느니 안 가느니 창피하
지 않은가. " “기생귀신에게 붙들려서 굿이나  하게 되면 그 꼴은 어떻게 되우?
” “글쎄, 기생귀신이라는 게 다  무어야. " “기생귀신이 추월이 귀신이라오. " 
“자세히두 알았네. " “당신은 몰랐소?”  “그까짓 종작없는 말을 알구 모르구
가 어디 있나. " “당신이  그 방으루 가구 지금 당신이 쓰는 방을 나를  주구려. 
" “우리 처소라구 우리 맘대루 바꾸구 말구  할 수 있나. 사또 처분이 내리셨으
니까 자네가 그방으루 안  가지 못할겔세. " “고만두우. 내가 사또께 품해 보겠
소. " “아까  여기 섰던 통인놈을 오금을  끊어놔야겠네. " “그놈이 무슨  죄를 
지었소?” “그놈이 주둥이를 놀려서 말썽을  만들어놓지 않나. " “그놈이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 죄라구 치구라두  누가 당신더러 치죄해 달랍디까. " 예방비장
이 푸하고 나가다 말고 돌아서서 “그래 참말 사또께 품할 텐가?” 하고 물으니 
“글쎄, 좀더 생각해 보구요. " 하고 빙그레 웃었다. 
  감사 이윤경이 사람이 자상하여 허정을 잘 살피는 까닭에 여러 비장들이 봉학
이 시기하는 눈치를 알고 다른 비장들을 한번 조용히 타이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어느 날 경기전 장원이 퇴락한 곳이 있단 말을 듣고 봉학이는 봉심하러 내
보내고 다른 비장들을 선화당으로 불러 올렸다.  비장들이 선화당 마루에 늘어서
는 것을 감사가  방으로 들어오라고 일렀다. 감사가 아랫목에 앉아서  윗간에 들
어선 비장들을 바라보며 “조용하게 물어볼  말이 있어서 자네들을 불렀네. " 하
고 말하니 여러 비장은 말없이 몸들만  굽신굽신하였다. “이봉학이와 같이들 지
내보니 사라이  어떻든가?” 감사의 묻는 뜻을  몰라서 비장들이 서로 돌아보며 
대답을 못  하니 감사가 다시 “사람이  좀 방자스럽지 않든가?”  하고 물었다. 
비장 하나가 먼저 입을  열어서 “활재주가 출중하옵다구 사람까지 출중하란 법
은 없읍지요. " 하고  말하자, 그 뒤를 달아서 어떤 비장은 소견없이 “사또께서 
통촉합시는 바와 같이 이봉학이가 사람이  좀 방자스러운 편이외다. " 말하고 어
떤 비장은 능청스럽게  “이봉학이가 당돌하거나 방자하다구 하옵더라구 고금에 
드문 명궁이 아니오니까. 그만  흠절은 흠절이라구 할 것두 없을 것 같소이다. " 
말하고 비장 중에 가장 나이 많은 예방비장은 나중에 나서서 “이봉학이가 전버
덤 좀 아기똥해진 까닭에 그간에  혹 눈이 거치신 일을 보셨는지 모르오나 상략
해서 한두 번 준절히 이르시기만 하면 곧 고칠 것이외다. " 하고 말하였다. 다른 
비장들 말하는 동안 빙그레 웃는 것 같은 감사의 얼굴이 예방비장 말할 때 엄숙
하게 변하더니 “이 사람, 봉학이보다 자네에게 먼저 이를 말이 있네. "  위풍 있
는 말소리에 예방비장의 고개가 벌써 앞으로  숙였다. “봉학이 처소로 수리하는 
방이 사십여 년  페방한 방인 줄은 자네도 알겠지.  " “네. " “그 방을  봉학이 
주자고 한 것이 무슨 뜻인가?” “무슨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방이 쓸 만한 것
이 없어서. " “무엇이 어째!”  감사의 호령기 있는 말이 예방비장의 말끝을 무
질뜨리었다. 예방비장은 곧  “황송하오이다. " 하고 앞이마에 땀을 흘리고  다른 
비장들도 얼굴에 혈색이  없었졌다. “내가 자네 소견을 모를 줄  아나? 내 앞에
서 되지 못하게 발명할  생각 말게. " 감사가 말을 끊고  잠깐 동안 여러 비장을 
둘러보았다. “여보게, 자네들 생각해 보게. 예방은  내 집안 사람이니 말할 것두 
없고 자네들로 말하더라도 다  영암서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사생동고한 사람들 
아닌가. 내가 사정으로  부하들에게 후박을 둔다면 어찌해서  이봉학이를 자네들
보다 더 애호할 리가 있겠나. 자네들도 그만 요량은 있어야 하지 않나. 이봉학이 
같은 미천한 인물을 내가 특별히  장발해 주려는 것은 한갓 인재를 아끼는 맘뿐
이 아니고 이 다음 또  해적이 침범하는 때 나라일에 유조할까 생각하는 까닭이
니 자네들도 아모쪼록  내 뜻을 받아서 이봉학이를 애호해 주도록  하게. 자네들
이 나를 덜 알거나  덜 믿지 아니하면 이봉학이를 시기할 까닭이  없을 줄 아네. 
다들 내 말을  알아들었나?” “황송하오이다. " “사또 본부를 명심하오리다.  " 
여러 비장들이  굽신거리는 틈에 예방비장도 “소인들이  생각이 부족한 탓이외
다. "  하고 여러차례 굽신굽신하였다. 여러  비장이 감사의 명을 받고  물러갈때 
예방비장이 뒤에 떨어져 우물우물하다가 “봉학이의 방은 어떻게 하오리까?”하
고 다시 품하니 감사가“고만두고 나가게. "하고 다른 말을 더  하지 아니하였다.  
    
  봉학이가 경디전 장원 퇴락한  곳을 봉심한 뒤에 경기전에서 가까운 내사정에 
가서 한량들의 활쏘는 것을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활 하나를 빌어가지고 전후 
세 순을 쏘는데, 첫순은 자청하여 쏘고 둘째순은  활 임자의 청으로 쏘고 셋째순
은 여러 한량들에게 졸려서  쏘았다. 세 순이 다 같은 오중이라도  살을 꽂는 곳
은 다 각각 달랐다. 첫순네는 과녁 네 귀와 복판에 다섯 살을 벌려 꽂고, 둘째순
에는 무고위에 다섯 살을 일자로 꽂고, 셋째순에는  똥때까지 여섯 살을 과녁 복
판에 모아서 꽂았다.  봉학이로면 이쯤것은 자랑거리도 되지  못하건만 한량들은 
귀신 같은 재주라고  놀라서 혀들을 내둘렀다. 한량들이  봉학이를 술대접하려고 
술집으로 끄는 것을 봉학이가 오늘은 공사로 나온 길이아 술 먹고 있을 수 없다
고 사피하고 내사정에서 바로 감영으로 들어왔다.  봉학이의 봉심하고 온 사연을 
감사가 들은 뒤에 “봉심하고  바로 오는데 이리 늦었느냐?” 하고 물어서 “내
서ㅏ정에서 한량들이 활을 쏘기에 서너 순 쏘구 왔소이다. " 봉학이가 바로 말씀
하였더니 “봉심 나간 사람이  한만히 활을 쏘고 있었단 말이냐? 사람이 지각이 
그럴 수가 있느냐!” 꾸중이 내리었다.  봉학이가 비장 거행 두 달만에 처음으로 
감사께 꾸중을 들었다. 그날 저녁 폐문 후에  봉학이가 다른 비장들과 같이 선화
당에 올라와서 감사께 저녁 문안하고 함께 물러가려고 할 때 감사가 “봉학이는 
좀 있거라. " 하고 말씀하여 봉학이가 미진한  꾸중을 들을 줄로 알고 속으로 걱
정스러웠더니 다른 비장들이 다 물러간 뒤에 “이리 좀 가까이 들어서라. " 감사
의 말소리부터 우선  다정스럽게 들리었다. “네 처소로 수리하는 방이  내력 있
는 방인 것을 네 아느냐?” “대강  들어서 아옵니다. " “그방에 가서 거처하기
가 맘에 싫지 않으냐?” “싫을 것 없소이다. " “그렇겠지.  " 감사가 빙그레 웃
으며 고개를 끄떡끄떡하였다.  “하인들은 그 방에 참말 귀신이 있는  것같이 말
하옵디다. " “그건 종작없는 하인들뿐이 아니다. 내가 부윤으로 있을  때 김감사
께도 그런 말씀을 들었다. 훌륭한 방을 사십여  년간 폐방하고 못 쓰다니 전라감
영의 수치다. 내가 여기 있는 동안 그 방을  쓰기 시작하여야 할 터인데 지금 그 
방을 싫게 생각 않고 거처할 만큼 담기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내 생각에는 나 
빼놓으면 너밖에 없을 것 같아서 네 처소를 그 방으로 옮기게 한 것이다. " “황
송하오이다. " “그 방  수리가 거의 다 되었다지?” “네, 내일이면  문창호까지 
다 끝난답니다. 일하는  것들이 해만 설핏하면 일을 못하는 까닭에  날짜가 의외
루 많이 걸렸소이다. " “내일 바로 처소를 옮기겠느냐?” “네, 옮기겠소이다. " 
“그외에 네게 말을 일러둘 것이 있다. "  하고 감사가 말을 다시 고치어서 “내
가 너를 애호하여 준다고 믿고  방자스러우면 죄책을 더 중하게 당할 것이니 각
별 조심해라. 네가  근본이 미천한 것만큼 남들이 업수이 여기기  쉬우나 남이야 
업수이 여기든 말든 내 앞만 닦으면 고만이니 아모쪼록 뉘게든지 공손하게 더욱
이 다른 비장들과 의좋게 지내도록 해라. "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치듯이 말을 일
러주었다. 감사의 말이 귓속에 박히는 것보다도  뼛속에 박히어서 봉학이는 눈물
까지 머금었다. “고만 물러가거라. " 감사의 명을 받고 봉학이가  비장청으로 물
러나올 때 “나 빼놓으면 너 밖에 없다. " 감사의 말을 생각하고 곧 그 밤이라도 
처소를 옮기고 싶은 맘이 있었다.
  이튿날 봉학이가 방을 옮기려고 할  때 예방비장이 와서 보고 “방을 아직 옮
기지 말게. " 하고  말리었다. “왜 옮기지 말라시오?” “사또 처분이  내리기까
지 기다려보게. " “어젯밤에  사또 분부를 물었으니까 오늘 곧 옮길 테요. "  “
사또께서 오늘 옮기라시든가?” “옮기라십디다. " “알 수 없는  일일세. " “무
에 알 수  없단 말이오?” “나는 어제 사또께 꾸중을  들었네. " “무슨 꾸중을 
들었소?” “자네 처소 까닭에 꾸중을  들었어. " “사람을 은사주검시키려구 하
니 꾸중 들어 싸지요. " “은사주검을  시키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그 방에 
가면 죽는단 말을 내 귀루두 몇 번 들었소. " 예방비장은 봉학이의 말을 듣고 얼
굴이 붉어졌다. 예방비장이  봉학이를 미워하는 까닭에 귀신방으로  처소를 옮기
게 하려고 은근히  애를 썼지만 죽이려고까지 미워하는  것이 아니던 터에 “그 
방을 봉학이 주자고 한 것이 무슨 뜻인가?” 감사의 날카로운 말에 가슴이 찔리
어서 거심이 좋지 못한 것을 깨닫고 뉘우친 뒤라 “그 방이 맘에 뜨아하거든 옮
기지 말구 고만두게. 내가  사또께 다시 품해봄세. " 하고 정답게 말하는데 봉학
이는 예방비장의 눈치를  살펴보며 “아니 고만두시우. " 하고 손까지  내저었다. 
봉학이와 벗하는 형방비장이  마침 옆에서 듣다가 “내  생각엔 좋은 수가 하나 
있구먼. " 하고  말하니 봉학이가 “무슨 좋은 수?”  하고 형방비장을 돌아보았
다. “북문 밖에 용한  장님이 있다네. 그자를 불러다가 옥추경이나 한번 읽히구 
방을 옮겨들게. " “실없는 소리 고만두게.  " “이 사람 자네는 모르네. 귀신 쫓
는 데는 옥추경이 제일이라네. "  “옥추경이구 금추경이구 고만두어, 이 사람아. 
" “그러다가 기생귀신이  참말 나오면 어떻게 할 텐가?” “수청들이지  걱정인
가. " “자네가 나하구  한방 쓰느라구 기생 수청을 못 들여서 성화가 났네그려. 
" “자네는 기생을 쇠배 싫어하니까. " “까마귀가 오디를 싫다기가 쉽지 사내자
식이 누가 기생을  싫다겠나. 그렇지만 기생귀신까지 수청들이구  싶어하는 사람
은 자네 하나뿐일 걸세. " “실없는 조롱은 고만두구 참말 수청기생이나 하나 골
라주게. " “가만있게. 내가 기생  독차지한 뒤에 이야기하세. " “동관 대접으루 
수노에게 분부 한번 해주면 어떤가. " “그건  어렵지 않지만 죽은 기생 산 기생
이 서루 시새워서 쌈질을 하게  되면 자네가 틈에 끼여서 죽지두 못하구 살지두 
못할 테니 걱정 아닌가. "  형방비장의 웃음의 소리에 봉학이와 예방비장이 다같
이 웃었다. 봉학이가 방을 옮긴 뒤에 바로  선화당에 올라와서 감사께 처소 옮긴 
것을 아뢰니 감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이었다.  봉학이가 물러가란 명령을 기다
리고 섰을 때 감사가 통인의 방을 향하고  “이리 오너라. " 하고 사람을 부르니 
대답 소리가 나며 곧 통인 하나가 방에서  나왔다. 감사가 통인에게 “다락 구석
에 세워둔 환도를 이리 내오너라. " 분부하고 나서 봉학이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내가 환도 한 자루를 줄 테니 갖다가 머리맡에 걸어두어라. " “활을 머리맡에 
걸어놓았소이다. " “검기가  벽사를 한다기에 환도를 갖다 걸란 말이다.  " “황
감하오이다. " 통인이 감사의 분부를  좇아서 환도를 봉학이에게 갖다 주니 봉학
이는 두 손으로 받아들고 감사의 앉은 자리를 향하여 허리를 굽히었다.
  봉학이의 새 방은 아래윗간 사이를 장지로 막은 이칸 마루방인데 아랫간은 골
방이 뒤로 붙어 쌍창이 났을 뿐이나 윗간에는 앞쌍창 외에 뒤되창이 더 있고 아
랫간은 짚을 깐 위에 멍석을 깔고 멍석 깐 위에 기직자리를 깔아서 화롯불을 피
우고 낮에 앉고 이부자리  펴고 밤에 잘 만하나, 윗간은 마루청  위에 바로 기직
자리를 깔아서 밑에서 나는 찬바람을  막을 뿐이고 아랫간에는 등 뒤 벽장 위에 
횃대가 걸리고 머리맡 벽  위에 감사가 준 환도가 걸리고, 또  발채 골방문 옆에 
활과 전동이 걸리었으나 윗간에는 군데군데 대못이 박히었을 뿐이고 아랫간에는 
방구석에 탁자가 놓이고 탁자 앞에  재판이 놓이고 재판 위에 촛대와 화로와 요
강이 늘어 놓였으나  윗간에는 아무것도 놓인 것이 없었다. 아랫간은  자뭇 아늑
한 맛이 있고 윗간은 밤낮 썰렁한 뿐 아니라 같은 방에 장지사이 하나가 딴세상 
같이 달랐다. 봉학이가 처소를 옮기던 날 통인  아이가 낮에는 와서 서행을 하여
도 해 진 뒤에는 뫼시고  있을 수 없다고 사정하여 봉학이가 해 진 뒤에는 다른 
처소로 가라고 허락한 까닭에 봉학이는 귀신방에서  혼자 자게 되었다. 선화당에
서 퇴등령이  내린 지 벌써 오래다.  봉학이는 감사께 저녁 문안을  여쭙고 와서 
촛불을 밝혀 놓고 혼자 동그마니 앉아 있었다.  원아ㄷ로 귀양온 것 같은 생각은 
없지 않니하나 무서운 생각은 꼬물도 없었다.  귀신이나 도깨비를 이야기만 많이 
듣고 눈으로 한번도 본 일이 없어서 궁금한 마음에 기생귀신이 나오기를 은근히 
기다리었다. 이때나  저때나 하고 기다리는  중에 뒤꼍 대숲에서  우수수 소리가 
나며 무슨 발짝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인제 나오는가 보다. "봉학이가 혼자 말
하며 장지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이 지나도 아무 기척이 없고  장지 틈으
로 들어오는 찬바람이 촛불만 흔들었다. 불후리를  돌려서 바람을 가리려고 봉학
이가 앞으로 나앉을 즈음에 윗간에서 창문이  덜커덕하였다. 봉학이가 벌떡 일어
나서 장지를 밀어젖히고  내다보니 앞쌍창과 뒤되창이 다 닫힌 채  있었다. 문풍
지가 바람에 떠는 소리를 듣고  봉학이가 “바람인 게다. " 생각하면서도 귀신이 
방구석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를 생각하고 우두머니 방구석을 바라보고 섰다가 장
지를 도로 닫고 자리에 와서 앉았다. 그  뒤에는 대숲에 바람소리와 문풍지 떠는 
소리 외에 이따금 골방에서 쥐소리가 날 뿐이었다. “에이, 자야겠다. " 봉학이가 
혼자 말하고 골방에서  이부자리를 꺼내는데 쥐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이부자리
를 펴놓은 뒤에 쥐를 잡으려고  봉학이가 재판 뒤와 탁자 밑을 골고루 살펴보았
으나 쥐가 어디 가서 숨어 있는지 골방으로 도로 들어갔는지 다시 눈에 뜨지 아
니하였다. 봉학이가  화로의 숯불을 다독거려  묻은 뒤에 이불  속에 드러누워서 
촛불을 입으로 불어 껐다.  캄캄한 속에 한동안 눈을 뜨고 있다가  잠이 들기 시
작하여 어슴푸레 잠이  들었을 때 누가 이불 위를  더듬는 것 같아서 잠이 도로 
깨었다. 아래에서 살살  기어오는 것이 있는 듯하여 슬며시 손을  빼가지고 있다
가 가슴께로 올라올 때 이불  위를 덮쳐 누르니 찍소리 하며 손 사이로 빠져 나
가는 것이 쥐였다. 봉학이는 불을 켜고 잡으려다가  귀찮은 생각이 나서 그만 두
고 다시 잠을 청하였다. 잠이 들었을 때 쥐가  또 이불 위로 올라와서 손을 이불 
밖에 내놓고 기다리다가  꽉 움켜잡으니 이번에는 찍  소리 대신에 아야 소리가 
나고 손에 잡힌 것이 쥐가 아니요, 보드라운 계집의 손이었다. 봉학이가 깜짝 놀
라서 살펴보니 이쁜 기생 하나가 옆에 와서 앉았는데 얼굴이 전에 많이 본 것같
이 눈에 익었다. “네가 추월이냐?” “나리는  추월이만 아시오?” “나리는 추
월이만 아시오?” “그럼 네가 누구냐?” “내가 누군지 몰라서 물으시오?” “
나는 잘  모르겠다. 나 자는 방에  어째 들어왔느냐?” “나리가  혼자 주무시기 
고적하실 듯하기에 들어왔지요. " 봉학이가 기생을 데리고 잤다. 꿈이  깨어서 눈
을 떠보니  날이 벌써 환하게 다  밝았었다. 너무 늦지나 않았나  생각하고 벌떡 
일어나서 아래윗간 문을 다 열어놓았다. 
  봉학이가 일어나며부터 식전내  여러 사람에게 아친 인사를  탐탁하게 받았다. 
감영 하인들은 죽을  경우에 살아난 사람처럼 아는  눈치고 다른 비장들은 한번 
액회를 면한 것같이 치는 모양이고  감사까지 밤 사이 무양한 것을 기뻐하는 기
색이 현연하였다. 감사가 각  비장의 아침 문안을 받을 때 전  같으면 여러 비장
의 얼굴을  한 번 죽 돌아보며  고개나 끄떡이고 말 것인데,  이날 봉학이에게는 
특별히 “밤에 잘 잤느냐?”  하고 묻고 육방관속들의 조사가 끝난 뒤에 감사가 
비장들을 돌아보다가 다시 봉학이에게  “외딴 처소에 혼자 자기가 고적치 않느
냐?” 하고 물었다. 봉학이는 감사의 물어주는 것이  황감하여 그저 녜녜 댜답만 
하는데 예방비장이 옆에서 “고적하지 않을  리가 있습니까. " 하고 봉학이를 위
해서 말하였다. 각  비장들이 감사앞에서 물러나올 때  형방비장이 예방비장에게 
귓속말하고 봉학이를 바라보며 싱글싱글 웃었다. 봉학이가  낮에 방에 앉아서 방 
수리 맡아 시킨 아전을 불러다가  새로 수리한 방에 쥐구멍이 있으니 역사를 허
수히 시킨 탓이라고 꾸지람하는 중에  방자 하나가 와서 “어떤 한량이 와서 뵈
입자구 합니다. " 하고 말하여 봉학이는 꾸지람을 대강 하고 그치고 찾아온 한량
을 불러들이게 하였다.  그 한량은 전일 내사정에서 봉학이를 술대접  하려고 먼
저 설도하고 나중까지  간청하던 사람인데, 이 사람이 이 날  자기집에 혼인술이 
있다고 청하러 온  것이었다. 봉학이가 그 한량의 인정을 떼치기가  어려워서 감
사께 들어가서 외출 허락을 물은 뒤에 그 한량을 따라나갔다. 
  봉학이가 혼인집에 가서 여러 한량들과 같이 잔치술을 취하도록 먹고 다 저녁
때 감영으로 들어오는데 취중에 발길이 전에  있던 처소로 향하였다. 형방비장의 
처소에 가까이 왔을 때 기생 한 떼가 몰려나가는 것을 보고 “이년들 점구 맞으
러 들어왔느냐?”하고 길을 가로막으니  어떤 기생은 “네, 점고 맞고 나갑니다. 
" 하고 해해 웃고 어떤  기생은 “점고는 엊그저께 초하룻날 맞았습니다. " 하고 
입을 비쭉하였다. “나 없는 틈에 왔다 나가! 이년들,  자 나하구 같이 도루 들어
가자. " 봉학이가 두 팔을 벌리고 들어오니  기생들은 하나씩 둘씩 살짝 살짝 옆
으로 빠져나갔다. 봉학이가 간신히 기생 하나를  데리고 방안에 앉아서 이야기하
다가 봉학이를 보고  이야기를 뚝 그치었다. “옳지, 한 마리는  남아 있구나. 네
년은 가두 좋다. "  하고 봉학이가 붙들어 가지고 오던 기생을 놓아버렸다. “자
네 술취했네 그려. " 예방비장의 말에  “네, 술을 많이 먹었소. " 고개를 끄덕하
고 또 “혼자 다니며 잘 먹었다? 어디  보자. " 형방비장의 말에 “내가 한턱 내
까. " 껄껄 웃고 봉학이는 방에 들어와서 턱 드러누우며 “자네 무릎 좀 빌리게. 
" 하고 기생의 무릎을 끌어당겼다.
  봉학이가 잠깐 잠이 든 동안 기생이 무릎 대신 퇴침을 베어 주고 살며시 일어
나서 봉학이의 벗어버린 갓을 말코지에 집어 걸고  예방, 형방 두 비장에게 눈으
로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 기생은 이름이 계향이니 전날  전라감영의 행수
기생이던 계랑의 친 동생이다. 계랑은 젊으신  실록포쇄관의 간장을 녹여서 서울
까지 이름이 났던 명기였으나 계향은 자색과 가무가 형에 미치지 못하고 고임성
과 붙임새가 형만 같지 못하여 형의 뒤를 이을 만한 명성은 없을망정 그 대신에 
사람이 침착하고 단정하고 기생으로  기생티가 없어서 보는 사람의 눈을 따라서
는 일대 명기 형보다  가취할 장처가 도리어 많았다. 전 등내  김감사 적에 병방
비장이요, 중군이던  사람이 양기 좋은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던 왈짜이었는데, 
어느 때 여러 기생을 데리고  쾌심정에 천렵을 나가서 천어회로 술을 먹고 취한 
김에  호기를 내어소 남들 보는 데서 기생들을 모조리 행실내러 들다가 셋째 기
생에게 개행실이라는  욕을 먹고 흥이  깨어지도록 풍과를 일으킨  일이 있었다. 
그때 셋째 기생은 다른  사람이 아니요, 곧 계향이었다. 계향이가 술취한 중군에
세 맞고 채이고 머리를 줌으로 뽑히었건만 끝끝내 항거한 까닭에 그 뒤로 조 있
는 기생이란 칭찬도 듣고 다기진 계집이라는 지목도  받게 되었었다. 이 때 계향
의 나이 스물이 넘어서 지각은 더 날 나위 없이 다 나고 눈은 가당치 않게 높아
서 문벌좋고 지모  비상한 감사 이윤경 외에는  천하 명궁이란 이비장 봉학이를 
인물로 칠 뿐이고 다른 비장은 안중에도 두지 아니하였다.
  계향이가 나간 뒤에 봉학이가 잠은  곧 깨었으나 술이 아직 덜 깨어서 감사께
도 가 보입지  못하고 저녁밥도 변변히 먹지 못하였다. 봉학이가  그대로 형방비
방 처소에 눌러 있다가 저녁문안 때에  여러 비장 틈에 섞여서 선화당에를 올라
갔다. 감사는 봉학이의  술취했던 것을 알고 있는 터이라 봉학이를  보고 “오늘 
잘 놀고 왔는냐?” 하고 물은  뒤에 “술을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되 너무 과히 
먹고 실태가  있어서는 못쓰는 법이다. "  하고 말을 일렀다. 봉학이가  황송하여 
고개를 숙이고 섰다가  다은 비장들과 같이 물러나올  때 예방비장이 “내 방에 
좋은 술이 있으니 같이들 가서 한잔씩 먹구  헤어지세. " 하고 여러 사람을 끄는
데 봉학이만은 싫다고  사양하였다. “자네는 해정으로 먹어야 하네. "  “사또께
서 과도하게 먹지 말라구 분부하셨으니까 낮에처럼만 먹지 말게. " “자네 안 가
면 우리까지 못 얻어먹기 쉬우니까 자네가 한턱내는 셈으루 같이 가세. " 
  이 비장 저 비장이 받고채기로  지껄이는 것을 봉학이는 낮에 술에 곯아서 먹
을 수 없다고 고사하고 혼자 처소로 와서 불을 켜놓고 잠시 앉았다가 잘 채비를 
차리려고 할 때, 예방비장  이하 여러 비장이 술과 안주와 잔과  술 데울 그룻을 
통인과 방자들에게 한  가지 두 가지씩 들려가지고 떼를 지어  몰려왔다. “하나
를 빼놓고 먹을라니 맛이 있어야지. " “이렇게 가지구까지 왔는대두 안 먹을 텐
가. "“술을 어서 데워라.  " “상을 여기 갖다놓아라. " “이놈아,  너는 왜 어리
둥절하구 섰느냐. " “초롱불을 꺼라, 이애야. " 여러 사람이 떠드는 바람에 호젓
하고 휘휘하던 방이 갑자기 우끈하고 들썩하였다.  봉학이가 여러 비장에게 부대
끼다시피 하여 수십 배  좋이 먹고 술에 감겨서 “인제 나는  고만 못 먹겠소. " 
하고 자리에 쓰러지니 예방비장이 통인 방자들 시켜서 기명 등속을 모두 거두고 
방까지 대강 치운 뒤에 여러 비장과 함께 일어섰다. “우리 가네. " “잘 가게. " 
“일어날 거 없네. " 여러 사람들이 다  간뒤에 봉학이가 정신을 차려 이불을 끌
어덮고 불을 끌려고 할 때  장지문이 소리없이 열리며 하얀 계집의 얼굴이 눈앞
에 나터났다. 
봉학이가 게슴츠레한 눈을  비비고 장지 틈의 하얀  얼굴을 바라 보다가 “네가 
추월이냐?” 하고  소리질러 물으니 입을 가로  벌리고 웃는지 이를 앙상거리는 
하얀 이가 보일 뿐이요 대답은 없었다. “왜 대답을 않느냐?” “내가 추월이요. 
겁나지 않소?” “쥐 밑구녁 같은 소리 마라. " “내가 사십여 년 동안 사내다운 
사내를 못 만났더니 인제 잘 만났소. " “잘 만났으니 수청을 들 테냐?” “나리 
같은 사내에겐 수청들어도 좋지만 우선 이야기할 일이 있으니 좀 일어나 앉으시
오. " “이야기  할 일이 있다? 지금은 내가 곤해서  자야겠는데 내일 밤에 다시 
오너라. " “자고 싶거든 자구려. 누가 말리겠소. " 
  촛불이 바람에 후려서 밝았다 어두웠다  하는 중에 하얀 얼굴 뒤에 똑같은 하
얀 얼굴 하나가 나왔다 들어왔다  하는 것을 봉학이가 바라보고 “네 뒤에는 또 
누구냐?” 하고 물었다.  “내 뒤에요?” “네 뒤에 얼굴바닥이 하얀  년은 누구
냔 말이냐. 네 동무냐?” “아이구머니. " 계집 하나가 새된 소리를 지르고  아랫
간으로 뛰어들어오며 누위  있는 봉학이를 덮쳐누를 듯이  주저앉았다. 봉학이는 
계집이 처음 윗간에 나타날 때보다  도리어 더 놀라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앉
으며 계집을 떠다밀었다.  계집이 뒤로 밀려났다가 다시 앞으로 대어들며  두 손
으로 봉학이의 손을 잡는데  차기가 얼음장 같았다. “귀신의 손은 정말 차구나. 
" 봉학이가 손을  뿌리치려고 하니 “나리, 나는  귀신이 아니요. " 계집은  더욱 
단단히 달라붙었다. “귀신 아니구 무어냐?” “사람이오. 계향이오. " “계향이?
” 하고 봉학이가 계집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옳지 알았다. 어젯밤에 네 무
릎을 비고 잤지. "“어젯밤이 무어요, 아까 저녁때요. " “내가 술이 취했어두 정
신은 멀쩡하다. 네가 어젯밤에두  왔었지, 무슨 소리냐!” “안 왔어요. " “그래 
어젯밤에 나하구 같이 자지 않았어?” “아니오 아니오. " “아니라면  고만둬라. 
내가 우기기 싫다. 오늘 밤부터 같이 자자. "
  계집이 봉항이의 손을 놓고 대번에 뒤에 와서 누우며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까
지 덮었다. “치마나 벗구 누워라. " “장지나 좀 닫으시오.  " “이년 보게, 나를 
심부름시키지 않나. " 봉학이가 장지를 닫고 와서 계집의 옆에  누웠다. “윗간에 
무어 있습니까?” “있기는  무어 있어. 빈 방이지.  " “기집이 없어요?” “웬 
기집이 또 있어. 기집 사태 났더냐?” “아까 보셨다며. " “아까 본 게 너지  누
구야?” “나말고 또 보셨다고 했지요. " “그랬던가?” “나리를 속일라다 내가 
되려 속았구려. " “나를 속일라고 했다.  이년 보아, 네 이름이 무엇이 계향이랬
지. " “계향이, 이름이  좋지요. " “추월이버덤은 낫다. " “하필  왜 그 이름에
다 갖다 대요?” “추월이, 추월이두 부르기는 좋은 이름이다. " “그 이름  부르
지 마시오. " “추월이가  촉휘냐?” “촉휘는 무슨 촉휘야. 부르면 나올까  보아 
말이지. " “나오면 걱정이냐? 내가 양옆에 하나씩 끼구  자지. " “풍류남아시구
려. " “너는 절대가인이냐?” 하고 봉학이가  입을 계집의 볼에 대려고 하니 “
아이 술냄새. " 하고 계집이 벽을 향하여 돌아누웠다. “술냄새가  싫거든 윗간으
로 나거거라. " “윗간에는 나가기 싫은걸. " “내가 윗간으로 나가랴?” “그럼, 
나도 윗간으로 나갈 테야. " “아양 고만 부리구 이리 돌아누워라. "
  봉학이가 품안에 계향이를 끌어안고 하룻밤을 지냈다.
  예방비장이 형방비장과 한자리에  앉아서 여러 기생들을 불러들여 늘어세우고 
“지금 너희들 중에서 공방나리의 수청을 하나 정할 텐데 이것이 우리의 자의가 
아니구 사또의 분붑시니 자원할 사람이  있거든 앞으로 나서거라. " 말하고 한동
안 기다리다가 앞으로 나서는 기생이  없는 것을 보고 기생을 하나씩 앞으로 불
러내서 뜻을 물을 때에 다른 기생들은 다 입을 모으고 온 것같이 “귀신방엔 가
기 싫습니다. " “귀신방엔 능장을 맞아도 못 가겠습니다.  " “귀신방은 말만 들
어도 몸에 소름이 끼칩니다. "
  귀신방이 싫다고 왼고개들을 치는데 계향이 혼자  싫단 말을 아니하였다. 계향
이가 다른 기생들보다 귀신방을 덜 꺼리는 담기도 있거니와 다른 기생들보다 봉
학이의 인물을 더  믿는 소견이 있었던 까닭이다. 계향이가 귀신방에  와서 봉학
이에게 수청을  들게 된뒤 다른  기생들은 뒷공방이 많았다.  “계향이가 다기진 
기집이야. " “그년이  다기진 체하다가 혼이 나구 말  게다. " “그렇지. 그년의 
다기가 얼마나 가겠니. " “귀신방에서 탈없이 지내면 그게 변이지 무어야?” “
크탈 나지 두고 보아라. "
  기생들이 두고 보아야 봉학이와  계향이의 신상에 큰탈이 없는 것은 고사하고 
흔한 고뿔도 한번 앓는 일 없이 달포를  지내었다. 봉학이와 계향이가 그 동안에 
서로 정든 품이  둘이 붙어살면 아귀틈에서라도 웃고  살고 둘이 붙어가면 칼산 
위에라도 겁내지 않고 갈 만하게  되니 귀신방 같은 조용한 처소가 둘에게는 도
리어 해롭지 아니하였다. 계향이는 봉학이에게 사랑을  받을 뿐 아니라 감사께까
지 귀여움을 받아서  다른 기생들이 보기에 부럽도록 시색이 좋아졌다.  무슨 놀
이에든지 계향이가 빠지면 감사가  일부러 찾아서 부르고 무슨 상급이든지 계향
이 몫이 적으면 특별히  후히 주게 하였다. 봉학이는 다시 말할  것도 없고 계향
이까지 감사의 특별한  두호를 받게 되니 인정을  사려는 사람이 간혹 귀신방을 
꺼리지 않고 밤저녁에 찾아오게 되어서 봉학이와 계향이가 불길하게까지 생각할 
때도 이따금  없지 아니하였다. 어날 낮에  눈이오고 밤에 달이 떠서  경치 좋은 
밤에 감사가 앞  쌍창을 열어놓고 밖을 내다보다가  술을 가져오라 하여 두서너 
잔 혼자 마시고 술치던  수청기생을 돌아보고 웃으면서 “지금 공방비장 처소에 
갔다 올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니 그 기생이 달이 대낮같이 밝은 것을 믿고 
“녜”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주전자에 남은  술을 이비장에게 갖다주고 오
너라. "
  기생이 주전자의 술과 접시의  포쪽을 양손에 갈라 들고 공방지방청을 향하고 
오는데 멀찍이서 바라보니 계향이가 혼자 툇마루기둥에 기대어서 달을 치어다보
는 것 같았다. 이비장과  같이 나서지 않은 것을 괴상히 생각하며  그 기생이 앞
으로 나가며 “계향아. " 하고 불렀다. 계향이는 간 곳 없이 없어지고 기둥 위에 
달빛만 푸르렀다. 그  기생이 갑자기 정신이 아찔하여 눈 위에  주저앉으며 소리
를 질렀다.  방안에 설잠이 들었던  봉학이와 계향이가 앞마당에서  나는 외마디 
소리에 놀라 일어나서  옷들을 대강 주워 입고 방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봉학이
가 마당에 내려와서 눈 위에  주저앉은 기생을 끌어올릴 때 계향이가 마당에 내
려와서 거들었다. 봉학이와  계향이는 앞기둥에 달빛이 어린  것을 얼보았으리라
고 말하나.  그 기생은 추월의 귀신을  본 줄로 여기고 봉학이와  계향이의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아니하였다. 이런 일이 한번 있은  뒤로 밤저녁에 혹간 오던 사람
도 통히 발그림자를 끊어서 봉학이 처소는 밤이면 사랑하는 남녀가 실없은 개닥
질하기 만판 좋았다.
  계향이가 낮에는 시중 들고 밤에는  수청 드느라고 봉학이 옆을 떠날 새가 별
로 없어서 전에  가깝게 지내던 사내들과는 자연히 멀어졌다. 계향이으  집 대령 
한량이라고 조명이 나도록 계향이에게  축일 놀러오던 젊은 한량도 운수 좋아서 
닷새에 한번, 열흘에 한번 얼굴을 대하게  되었으니 이따금 찾아다니던 사내들은 
한 달 두 달에 먼 빛 한번 보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계향이와 전날 관계 있던 사내로서 얼굴이라도 가끔 보는 사람이 둘도 아니고 
오직 하나 있었어니  통방의 어른인 수통인이 곧 그 사람이었다.  수통인은 나이 
근 삼십한 사람인데 끌어올렸던 머리를 다시 땋아내리고 통인 거행하는 것은 선
자통인의 소임을 한번  맡아보려는 데 큰 욕심이 붙어 있었다.  선자통인이 진상
선자 만들 대밭을  잡으려고 승교바탕을 타고 각군으로  돌아다닐 때 “그 대밭 
좋다. "
  말 한마디에 대밭을 쑥밭으로 변할  수 있는 까닭에 꺼끄렁 볏섭하는 집 대밭
에 가서 좋다 소리만 내놓으면  대밭을 아끼는 주인이 볏섬으로 통인의 입을 막
았다. 선자통인을 한번  잘 지내면 땅마지기가 좋이 생기니 통인들이  누구나 다 
이 소임을 욕심내고 욕심내는 사람이 많으니 통인들이 제각기 다 청촉길을 뚫었
다. 수통인이 이듬해에는 십상팔구 틀림이 없으려니  믿으면서도 중간에 어떤 방
해꾼이 나설는지 몰라서 계향이를 조용한 틈에 만나기만 하면 뒤를 잘 보아달라
고 신신당부하였다.
  어느덧 해가  바뀌어서 정초가 되었다.  하루 석후에 예방비장이  각 비장들을 
자기 방에 모아가지고 윷판을 차렸다. 봉학이가  처음에 계향이를 데리고 왔었으
나 중간에 계향이가  두통이 난다고 앉아 있기를  괴로워하여 먼저 가서 자라고 
보내고 윷판을 마치고  밤참을 먹고 나중에 혼자 처소로 돌아오게  되었다. 처소
에 가까이 왔을 때 봉학이는  방문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을 바라
보고 부지중에 발을 멈추었다. 머리 얹은 것은  계향이가 분명하고 머리 땋은 것
은 총각인 듯한데 두 그림자가 붙었다 떨어졌다하는 것이 아무리 보아도 수상스
러웠다. 봉학이가 발짝  소리 없이 뜰 아래까지 들어가서 방안에  수작하는 말을 
한동아 엿들었다. “머리 아픈  사람 누워 있지도 못하게 무슨 장난이야. " “왜 
그렇게 톡톡 쏘나. 구정은 여신하구 신정은 여구하게 지내세그려. "  “식자가 쇠
눈깔일세. " “이비장은  무식쟁이지?” “유식쟁이 부럽지 않아. " “이번  사또 
과만 때까지 기다려보세. " “사또 과만  때를 기다리면 어떻게 할 테야?” “사
또가 갈리면 이비장두 갈 테니까 말일세. " “내 머리가 묵사발이 되기루 자네가 
무슨 걱정인가. " “말하기도  귀찮으니 고만 가요. " “내가 가면 혼자 있기  무
섭지 않겠나? 이리  오게. 한번 끌어안아나 보세. " “손을  치워!” “너무 그러
지 말게. " “조신하게나 앉았어. "
  봉학이가 가만히 몇 걸음 나거서 신발 소리를 내며 큰기침을 하니 방안에서는 
부산하였다. 수통인이 윗간 구석에 섰는 것을  봉학이가 앞으로 불러내서 호령기 
있는 말로 “너 어째 여기  와 있느냐?” 하고 물으니 통인이 얼른 “나리 보입
구 청할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 하고 둘러대었다. “언제 왔더냐?”  “온지 
얼마 안됩니다. " “무슨 급한 청이  있어서 밤중에 왔느냐?” “조용한 틈을 타
서 오느라고 온 것이  좀 늦었습니다. 급한 청은 아니올시다. " “네놈 데리구는 
더 말할 것이 없으니 고만 가거라. " “녜, 안녕히 주무십시오. " “이 다음에 네
가 또 나  없는 틈에 왔다가 내 눈에  들키는 날이면 다리뼈를 분질러놓을 테니 
그리 알아라. " “녜, 황송하오이다. "
  수통인이 황망히 나간 뒤에  봉학이는 고개 숙이고 앉았는 계향이를 돌아보며 
말없이 일어나더니 벽에 걸린 환도를 떼어내려서 날을 뽑아 앞에 놓았다.
  봉학이가 처음 장가들 때 주혼하는 외조모가 색시 당자의 인물보다도 색시 부
모의 양반을 취해서 혼인한 까닭에  봉학이의 안해는 얼굴이 면추도 못 되고 사
람이 둘하여서 당초에  봉학이 마음에 들지 아니하였었다.  외조모  생전에는 외
조모가 성사를 삼아서 내외간을 억지로 붙이어주고 외조모 작고한 뒤에는 딸 하
나가 거멀못이 되어서 내외간이 간신히 벌어지지  않았었는데, 지난해에 그 딸이 
죽어서 봉학이가 전장에 나오기 전 몇 달은  안해와 별로 접어도 않고 지냈었다. 
봉학이가 가끔 교하를  가고 싶어하는 것은 그곳에  있는 외조모 산소에 다녀올 
마음이지 안해를 보고  싶은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더구나 계향이와  같은 신통
이가 생긴 뒤로 소박데기 안해는 염두에도 둘  까닭이 없었다. 봉학이로 보면 계
향이와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생외의  처음 보는 재미라 계향이게 온 마음을 다 
기울여서 끝끝내 같이 살 것을 생각하는 중인데,  뜻밖에 창에 비친 그림자를 볼 
때 수청기생의 난잡한 짓을 곧  정실 안해의 부정한 행실과 같이 여겨서 등시포
착으로 남녀를 다 죽이고 싶도록 몸의 피가  끓었었다. 뜰 아래에서 남녀의 수작 
몇 마디를 엿들은  뒤에 끓던 피는 적이  가라앉았으나 계향이를 한번 조련질해 
둘 생각이 난  까닭에 엄포로 칼까지 뽑아놓고 앉아서 “계향아.  " 하고 부르니 
계향이는 대답 대신에 눈을 들어서 바라보았다. “네가  다른 데 가서 무슨 짓을 
하든지 그건 내 알 배  아니나 통인놈 따위를 내 방으루 끌어다가 내 자리를 더
럽히는 것은 내  얼굴에 똥칠하는 게 아닌냐?” “아니올시다.  " “아니면 무어
냐?” “제 말씀을 다 듣고 꾸중하세요. " “되지 못할 발명 듣기 싫다. 내가  통
인놈과 기집 다툼은 안할망정 네 죄는 그대루  용서할 수 없다. " “제가 죄지은 
일이 없습니다. " “듣기  싫다는데 발명이 무슨 발명이냐. 얼른 이리 와서 목을 
늘이구 칼을 받아라. "
  봉학이가 칼을 들고 계향이를  노려보았다. “나으리께서 죽으라시면 죽겠습니
다. 그러나 제가 죽는 것이  제 죄도 아니고 나으리 잘못도 아닙니다. 아마도 추
월이 귀신이 저를 동무로 데려가려고 작희하는 것이올시다. "
  계향이가 앞으로 나와  앉으며 소매로 눈을 가리었다. “네가 죽은  뒤에 추월
이와 부동이 되면  이 방은 영영 폐방이 될  모양이니 방이 아까워서 어디 너를 
죽이겠느냐. " 봉학이가 슬며시 칼을 집에 꽂아서 옆에 놓았다.  “너를 죽이지는 
않겠다. 그러나 이후는 내 앞에 두기 싫으니 네 집으루 나가거라. " “나으리 죽
여주세요. 제가 나리 옆을 떠나느니 나리 손에 죽겠습니다. 제가 나리 손에 죽는 
것이 진정 소원입니다. "  “죽이지 않는다니까 되려 안을 채우느냐! 이러구저러
구 더 말할 것 없다. 지금 곧 네 집으루 나가거라. " “저는 나으리가  이렇게 매
정하실 줄 몰랐습니다. " 계향이의 눈에는 눈물이 듣거니 맺거니  하였다. “네가 
내 손에서 죽는  것이 소원이냐?” “진정 소원입니다. "  계향이가 눈물에 젖은 
눈을 들고 보니 봉학이 입가에 웃음이 떠돌았다. “나으리!”하고 계향이가 품으
로 달려드니 봉학이는 말없이 팔을 벌려 끌어안았다.
  이와 같은 작은 풍파가 있은 뒤로 봉학이와 계향이 사이에 사랑이 날로 더 깊
어지며 사랑의 따뜻한 기운이 귀신방의 쓸쓸한 바람을 몰아내서 밤에 오는 사람
들까지 무서운 생각 없이 입을 벌리고 웃게 되고 방 이름도 차차 변하여서 줄곧 
귀신방이라고 부르던 하인들까지  공방비장청이나 또는 공방청이라고 부르게 되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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