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서림이 1

3학년2반 | 2022.01.08 07:24:29 댓글: 0 조회: 466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0804
  제7장 서림
  1
  을사년에 십이 세 된 어린  왕이 등극한 후 윤원형이 왕대비의 동기로 권세를 
잡기 시작하여 한 해 두 해 지나는 동안 발호가 차차로 심하여져서 주고 빼앗는 
것은 차치하고 살리고 죽이는 것까지  거의 임의로 하게 되니 조정이 왕의 조정
이 아니요,  곧 윤원형의 조정이라  왕이 연세가 이십이  가까우며부터 내심으로 
윤원형이를 몹시 꺼리었다.  그러나 대비가 엄하기 짝이 없어서 왕이  조금만 뜻
을 거슬려도 곧 화를 내며 “네가 오늘날 임금 노릇을 하는 것이 뉘 덕이냐? 내 
오라버니와 내 덕이 아니냐!“ 왕을 너라고 하고 야단칠  뿐 아니라 심하면 두들
기까지 하여서 효성 있는 왕이 대비께 승순하기를 힘쓰므로 윤원형의 권세를 빼
앗을 가망이 없없다. 왕은 윤원형의 권세를 갈라나  보려고 생각하고 갈라 줄 만
한 사람을 왕비  심시 곁쪽에 물색하여 보았으나, 왕비의 조부  심연원 심정승이 
사람이 점잖고 조심성이 많아서  조각 권세나마 잡지 못하도록 자제들을 누르고 
부원군 심강이 그 부친의 뜻을  잘 받아서 조정 정사를 조금도 알은체하지 아니
하던 때 마침  부원군의 처남이요, 왕비의 외숙인 이량이 등과하니  왕은 이량을 
등용하여 윤원형과 권세를  갈라잡게 하려고 유의하였다. 이량이  상총받는 것을 
보고 이량에게 붙좇는 사람이 많아져서 조신중의 이감, 권신, 고맹영, 김백균, 이
령의 무리는 이량의 심복이란 지목을 받았다.  윤원형과 원혐이 있어서 이량에게 
붙이는 축에는 윤원형의 친조카 윤백원 같은 사람이 있고 윤원형과 이량의 사이
에서 두길보기하는  축에는 을사년 위훈에  참예한 김명윤 같은  사람이 있었다. 
윤백원은 원로의 아들이니 그 아비를 죽인 사람이 실상은 삼촌이라고 원형을 아
비 죽인 원수로  여기는 사람이고, 김명윤은 소시에 다소간 이름이  있어서 기묘
년 현량과에  참예하였던 위인이 나중에 개두환면하고  나서서 벼슬을 다니다가 
을사년에 경기감사로 애매한 계림군과 봉성군을 모함하고 사림에까지 해독을 입
힌 사람인데, 나이 젊은 이량을 아비같이 섬겨서  ‘늙은 아들이 젊은 아비’ 란 
말까지 있었다. 평안도관찰사가  궐이 난 때 이랑이 극력 주선하여  김명윤을 평
안도관찰사를 시키고 위에 바칠 진기한 물품을 많이 구하여 보내 달라고 비밀히 
부탁하였다. 이때 이랑이 상총을 굳히려고 가지각색  진기한 물건을 널리 구해서 
위에 바치는 중이었다. 김명윤이 평안도로 떠나기  전에 윤원형에게 하직하러 왔
더니 윤원형이 마침  사랑에서 문객을 데리고 바둑을 두는데, 김명윤이  방에 들
어와서 절하는 것을  보고도 간신히 고개만 한번  끄덕하고 장지 밖에 끓어앉은 
김명윤은 보지 않고  바둑판을 들여다보면서 ”대감, 어느 날  떠나겠소?“ 하고 
물어서 ”일간 곧  떠나겟습니다.“ 하고 김명윤이 대답하였다. ”공거의 슬하를 
떠나기가 섭섭지 않소?“ ”공거의 슬하라니  대감께서도 실없은 말씀 하십니까.
“ ”공거가 대감의 젊은 아비라고 세상에서  말들 한답니다그려.“ 하고 윤원형
이 껄껄 웃으며  비로소 바둑판을 밀쳐 내놓았다. 김명윤이 문객  보기 부끄러워
서 잠깐 얼굴을 붉히었다가 곧 비위 좋게  ”실없는 말씀슴 맙시오. 하고 싱글싱
글 웃었다. “니는 실없은  말로 한 말이 아니오.” “실없은 말씀이 아니시라는 
건 더욱 심하신  말씀이올시다. ”“참정 공거보고 호부한 일이  있소?” “그럴 
리가 잇습니까.” “내게 호부  좀 하오.” “이번 말씀도 실없은 말씀이 아니오
리가.” “실없은 말을 했소. 실상 나는 공거보고 호부하는 사람에게 호조받기도 
원치 암ㅎ소.” “소인 같은 낫살 먹먹은 것을  너 놀리시면 대감의 덕이 손상되
십니다.” 윤원형이 김명윤의 말은 듣지 않고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한 뒤 “어
째 졸리다.” 하고 혼자 말하였다. “곤하시면 좀 눕시지요.” “글쎄, 낮잠 한숨 
자볼까.” “소인은 곧 하직 여쭙겠습니다.”  하고 김명윤이 일어나서 절하였다. 
“평안히 가우.”  “안녕히 기십시오.” 김명윤이 윤원형의  집 사랑 대문 밖에 
나섰을 때 윤원형과 바둑두던 문객이  쫓아나왔다. “나를 부르시나?” “아니올
시다. 시생이 대감께 청할 말씀이 잇습니다.” “무슨 말인가?” “오늘 밤에 대
감께서 댁에  기가시겠습니까? ”내게  오려나?“ ”댁에 기시면  가보입지요.“ 
”가만 있게. 오늘 밤에는 내가 집에 없을는지 모르니 내일 아침에 오게.“ ”그
럼 내일 아침에  곡 가겟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윤원형의 집  문객이 김명윤을 
찾아왔다. 윤원형의 집 문객 중에도 윤원형에게  가가이 도는 문객이라 김명윤은 
지체 않고 곧  맞아들이고 인사 수작이 끝난 뒤에  먼저 ”내게 무슨 청할 말이 
있나?“ 하고 물었다. ”사람  하나 구처해 줍시사구 청하러 왔습니다.“ ”어떤 
사람인가?“ ”광주  사람에 서림이란 자가  잇습니다. 그자가 말하자면  시생과 
세의도 있고 친분도 있는 터인데 위인은 똑똑하고 영리해서
 백집사하가감입니다.“ ”광주  사람을 평안감사에게 청하다니  우습지 않은가?
“ ”시생의  말씀을 더 들어주십시오.  서림이란 자가 광주  아전으로 경기감영 
영리를 다니었는데 지금 함경감사가 경기감사로 있을 때 그자를 무엇에 밉게 보
았는지 포흠 있는 것을 탈잡아  온 뒤에 구실을 떼고 잡아 가두기까지 했었습니
다. 그자가 놓여나온  뒤에 시생에게 와서 먹고 살게 해내라고  매어달리니 인정
에 차마 떼칠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 작년에 평양 서윤이 새로  부임할 때 천거
해서 평양으로 보냈습니다.  아직까지 서윤의 심부름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평양 
가셔서 불러보시구 구실  하나 붙여 주셨으면 시생에겐  대단 생광스럽겟습니다.
“ 문객의 말이 다 끝난 뒤에 김명윤이 ”그자의 성명을 쪽지에 적어서 나를 주
게. 아무쪼록 잊지 않도록 함세.“ 하고 문객의 청을 허락하였다. 
  김명윤이 평양에 도임한 뒤 어느  날 우연히 성명 적은 쪽지를 보고 윤원형의 
문객의 부탁을 생각하고 사람을 불러보았다. 서림이는  문필이 있고 언변도 좋고 
남의 뜻을 짐작도 잘하고 비위를 맞추기도  잘하였다. 김명윤이 서림이를 신통하
게 보아서 수지국 섭사를 시켜 가가이 부리는 데 한번 조용한 틈에 불러서 물어
보았다. “내가 경기감영 영리로  포흠을 많이 진 일이 있었다지?” “녜,황송하
옵니다. 소인이 적지 않은 포흠을 진 일이 있었소이다. 소인의 늙은 아비가 중병
으로 죽게 되었솝는데 의원 말이  산삼 반 근 가량 먹여야 살릴 수가 있다고 하
옵기에 소인이 우매하온 소견에 아비 대신 죽어두 좋거니 생각하옵구 막중 상납
에서 범포를 내서  병든 아비에게 산삼을 먹였소이다. 아비가 산삼  효험으로 병
은 좀 나았사오니 소인이 잡혀 갇힐 때 놀라서 소인 옥에 있는 동안에 죽었소이
다. 소인이 아전으루 포흠 지옵구 자식으루 불효하온  것이 실상은 생각 한번 잘
못 먹은 탓이외다. 하여간 소인은 천지간에 용납키 어려운 죄인이올시다.” 서림
의 아비가 자식이 옥에 갇힌  동안에 죽은 것은 정말이나 서림이가 아비를 산삼 
먹이느라고 포흠  졌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김명윤이 이  거짓말을 알 
까닭이 없어서 서림의  거짓말을 정말로 듣고 “포흠을  진 것은 죄로되 포흠진 
이면에는 효심이 있으니 내가 그때 경기감사로  있었든들 네 죄를 용서하였겠다.
” 하고 말하니 “황송하오이다.” 하고 서림이 눈물까지 흘리었다. “네 처자는 
지금 어디  있느냐?” “소인의 처는 자식  남매 데리구 처가에  가 있소이다.” 
“처가는 어디냐?” “경기  양지 올시다.” “처자를 이리 데려올  생각이 업느
냐?” “사또께옵서 내년에  내직으루 승탁되옵시거든 소인두 사또를 뫼시구 가
서 일평생  댁 낭하에서 살기가  소원이올시다.”“서울 갈 때  가더라두 여기서 
살림 못할  것 무어 있느냐.” “데려오구  데려가구 하기가 번가하와 한  일 년 
더 객지에서 지내려구  생각하옵네다.” “시종이 여일하게 성심으로  일만 잘해
라. 그러면 내년에 서울로  데리고 가마.” “사또 분부면 부탕도화라도 질겨 하
겠소이다.” 이후로 김명윤은 서림을 더욱이 신임하여  진상할 물건 구하는 일을 
맡기었더니 서림이 영롱한 수단으로 각 골 토산과 중국 물품을 구하여들이되 감
사의 체면을  다치지 않게 하였다.  김명윤은 서림이를 사자  어금니같이 여기게 
되어서 반 년  동안에 서림이를 섭사에서 급사로, 급사에서 장사로  올려서 수지
국일을 주관하게 하니  이런 발탁은 전에 없는 일이었다. 서림이  감사에게 긴한 
것을 보고 이 사람  저 사람이 서림이의 환심을 사려고 하여서  “서장사, 나 좀 
보시우.” 하고 보자는  사람도 많고 “서장사, 놀러나갑시다.” 하고  끄는 사람
도 많았다. 서림이 본래 계집을 좋아하건만 감사의  눈 밖에 날까 조심하여 기생
집에 잘 가지 않던 사람이 남에게 끌려서 한번 두번 놀러다니는 중에 조심이 풀
려서 밤은  고사하고 낮에도 틈이  있으면 기생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서림이는 
풍류를 짐작하고 시조를 얌전히  부르고 또 우스갯소리를 잘하여 감사에게 일간
인 것을 자세하지 않더라도 기생들에게 떠받들릴  만하였다. 여러 기생들이 서림
이를 친하려고 애쓰는 중에  감사의 수청기생 옥부용이가지 저의 거문고 조예를 
알아주는 맛에  서림이에게 정을 주었다.  감사의 신임을 받은  서림이가 감사의 
총애를 받는 옥부용과 서로 배가  맞아서 감사의 속을 뽑아내되 감사는 둘을 다 
의심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불 땐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는  법이라 서림이와 
옥부용의 사이를 눈치챈 사람이 하나씩 둘씩 생겨서 감영 하인들이 쑥떡쑥떡 말
하게 된 끝에  예방비장의 귀에 말이 들어갔다.  예방비장은  서림이를 곱지않게 
보는 사람이라 곧 감사에게  고하려다가 다시 생각하고 서림이를 불러다가 말을 
물었다. “자네가  옥부용의 집에 자주  놀러간다니 정말인가?" "더러  갔습니다. 
그러나 자주 간  일은 없습니다." "더러는 어째 갔나?”.“옥부용이 거문고를  들
으러 오라구 불러서 갔습니다." "선화당 수청을 자네가 데리구 놀아두 아무 탈이 
없을까?" "사또께 가까이 뫼시는 아이라 데리구 실없는 말 한마디  한 일이 없습
니다." "상관까지 했단 소문이 자자한데 무슨 딴소리야!" "천만의  말씀이올시다." 
"정말인가?" "정말이다뿐입니까.” 아무리 물어야 서림이가 잡아뗄 줄 알고 예방
비장은 묻기를 멈추고 한동안  서림이를 노려보다가 “자네말이 정말 같지 않으
나 내가 한번 속는 셈  잡구 아직 덮어   둘 텔세. 그 대신  오늘부터 다시는 옥
부용의 집에 가지 말게.  한번이라두 갔단 말이 내 귀에 들리면  곧 사또게 여쭤
서 별반거조를 낼 테니 그리  알게.”  하고 말을 이르니 “황송합니다. 나리 분
부대루 이담엔 다시 안 가겠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서림이가 예방비장의 말을 들은 뒤에 한번 남몰래 옥부용과 만나서 사정을 이
야기하고 옥부용의 집에 발을 끊고  상종 않는 표를 남에게 보이려고 일부러 친
한 기생 도화의  집에 가서 숙식하고 있었다. 옥부용은 간간이  서림이를 생각하
여 한번 병 핑계하고 집에 나와서 서림이를 만나자고 밤에 계집아이를 보냈더니 
서림이 계집아이더러는 먼저 가라고 돌려보내고 나붕에도 오지 아니하여 옥부용
이는 “도화에게 반해서 벌써 나를 잊었구나.”하고  서림이를 원망하고 “안 만
나두 고만이다. 어디보자.”  하고 서림이를 벼르기까지 하였다. 어느  때 창성서 
초피.수달피를 많이 구해  와서 좋은 것은 진상품으로 따로두고 그  나머지는 선
사품으로 집어둘 때 서림이 감사 몰래 선사품에서 수달피 한두 장을 훔쳐내다가 
도화를 주어서 도화가  그 수달피로 덧저고리 안을 받쳐 입었다.  옥부용이가 이
것을 알고 감사에게  고자질하여 감사가 그 당장에  도화를 불러다가 수달피 안 
받친 덧저고리를 바치라고 야단을 치게 되었는데,  서림이는 이때 마침 수지국에 
가 있어서 도화의 수달피 덧저고리로 야단난 것을  빨리 알자 못하였다.  서림이
가 수지국에 있다가 감사에게 불려서 선화당으로 들어오며 보니 도화가 층계 아
래 쪼그리고 앉았는 모양이 잡혀온 것이 분명하였다.   ‘도화가 무슨 일로 잡혔
을까. 내게 무슨 언걸을  입혔을까.“ 서림이가 의심을 벅으며 층계 아래에 와서 
도화에게 가까이 서려고 하니 나장이 중간을  가로막았다. 감사가 서림이 대령하
였단 말을 듣고   곧 앞창을 밀치고 내다보며  ”서림아, 네죄를 아느냐!“ 하고 
호령을 내리기 시작하여  서림이는 어리둥절하였다. ”막중 진상할  물건을 훔쳐
다가 기생년을 주다니 죽일 놈이다.“  감사의  호령을 듣고 서림이가 비로소 수
달피 탈인 줄 짐작하고 발명할  말을 생각하며 ”소인이 언감생심 그런 짓을 할 
리가 있소이까.“ 하고 천연스럽게  말하였다. 감사가 통인을 시켜 수달피 안 받
친 덧저고리를 내보이며 ”이놈,그것 좀 보아라! 그것이 네가 훔쳐다 준 것 아니
냐? 그런 짓을  할 리가 있소이까? 빤빤한  놈 같으니. 너 같은 놈은  그대로 둘 
수 없다. 곤장 좀 맞아 보아라!“  추상같이 호령하고 곧 곤장 칠 거조를 차리게 
하였다.
  “소인이 수달피 두 장을 손쓴 일은 있사오나 훔친 것은 아니올시다” “네가 
훔치지 않았으면 수달피가 어디서 났단 말이냐?” “요전에 창성서 피물 가지고 
온 하인이 수달피 두 장을 따루 가지구 와서 소인을 주옵는데 소인이 싫다구 받
지 않았솝드니 부사가 보내신 걸  도루 가지구 가면 탈을 당한다구 하인이 지성
으루 받으라구 하옵구 마침내 두구 갔소이다.  소인이 그 수달피를 토수안이라두 
넣기가 맘에 께름하온 까닭에 내버리는 셈으루  도화란 년을 주었소이다”, “창
성부사에게 뇌물받은 것이고  진상물품에서 훔쳐낸 것이 아니란 말이냐?"  "창성
서 온 피물 중에 초피가  이십오 장이옵구 수달피가 십삼장이온데 초피 이십 장
과 수달피 십  장은 진상품으루 골라두옵구 그 나머지 초피,  수달피는 선사품으
로 묶어두옵는 것을 사또께서  감하옵신 바이오니 여기 내다가 조수하게 하옵시
면 소인의 애매하온 것을 곧 통촉하실 줄 생각하옵네다”
  창성서 온 수달피가 십오 장인 것을 서림이 두 장을 줄이고 십삼 장이라고 말
하였다. 그때 감사가  물목을 보고 서림이를 내주어서 물건을 조수하게  받게 하
였는데 서림이가 물건을 받고도 물목을  자기 손에 두었다가 두 장을 가무린 뒤
에 슬그머니 없애버린 까닭에 서림의 거짓말을 잡아낼 거리가 없었다.
  “뇌물받은 것도 정치할 만한 죄지만 이 다음 창성에다가 알아보아서 네 말이 
맞지 않으면 함꼐 치죄할 테니 그리 알고 있거라”하고 감사가 서림이는 곤장을 
치지 않고  내보내고 도화는 덧저고리를  도로 주어서 내보냈다.  서림이가 말을 
잘 꾸며서 당장  곤장은 면하였으나 뒷날 걱정이  아주 없지 않은데다가 감사가 
서림을 믿는 마음이 줄어서 진상할 물건 수습하는 일을 서림에게 일임하여 두지 
않고 예방비장을 시켜  총찰하게 하였다. 예방비장이 일은 잘 알지  못하며 공연
히 까다롭게 굴어서 서림이가 성가시기  짝이 없는 중에 서방님 낯 보아가며 아
기씨 대접을 달리 하는 사람들이  서림이가 감사의 신임을 못 받는 줄 짐작하고 
대접들이 현저히 전과  달라져서 서림이는 앙앙한 마음을 먹게 되었다.  이 뒤로 
서림이는 진상할 물건을 구하여 들일 때마다 자신의 실사귀를 잊지 않아서 슬금
슬금 뒤로 돌리는  것이 있건만, 일 모르는 예방비장은 서림이에게  속아서 감사
가 총찰시킨 보람이 없었다.
  김명윤이 평안감사로 오며부터 구하여  들인 모든 물건을 섣달에 세찬들 보낼 
때 진상하도록 하려고 미리 봉물을 짐 꾸미며  물목을 발기 적게 하였다. 토산물
품은 관하 사십이관에서 거두어 바친 산삼, 사향, 안식향과 초피, 수달피, 청서피
와 백옥, 오옥, 담청옥,  수포석, 마노 등속이요, 중국물품은 주단으로 홍공단,  백
공단과 운문단, 운문사와 궁초, 공릉 등속이  있고, 문방제구로 단계 벼루와 호주 
붓과 휘주 먹도  있거니와 옥필통과 금향로도 있으며, 유명한 사람의  서화도 있
고 옥잔과 옥저와 옥장도와 자마노지환은 오히려  신기할 것도 없고, 옥다리미와 
비취 대접과 자가 넘는 산호 가지와 돌에 섞인 덩이 주사가 모두 진귀하고 굵기
가 콩알만한 둥근  진주와 밤에 광채 나는 흰구슬은 희한한  보물이었다. 서림이 
물목 발기를 적느라고 예방비장청에  종일 있다가 사처로 돌아오니 도화는 저녁
상을 보아놓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오늘 좀 늦었네. 밥 먹었나?” “나리 오시
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어째 이렇게 늦으셨습니까?” “진상할  물건 발
기 내느라고 종일 해를 보냈네.” “물건이 얼마나  많으면 발기 내는 데 하루가 
걸립니까?” “한편으루 물건을  조수해 가며 발기를 내니까 당연  더디지.” “
진지 곧 잡수시렵니까?” “배가 고팠네. 어서 갖다 주게.” 서림이 저녁 밥상을 
받은 뒤에 도화가 상머리에 앉아서 말을 물었다.  “진상 갈 물건에 희한한 것이 
많답지요.” “많구말구.” “그중  제일 보배가 무엇입니까?” “야광주가 제일 
되겠지.” “야광주란 것이  무엇입니까?” “야광주란 것이 밤에 광채  나는 구
슬일세.” “어둔 데서도  광채가 납니까?” “촛불이나 등불 밑에  광채가 찬란
하게 난단 말이야.”  “구경이나 한번 했으면 좋겠네.  그 구슬이 몇 개나 됩니
까?” “단 한 개지. 그런 보배가 어디 그렇게 많은가.” “그 다음 좋은 보배는 
무엇입니까?” “글쎄,  준주가 그  다음일까.” “준주는 저도  구경했습니다.” 
“준주두 준주 나름이지. 그런 굵은 준주는 자네는 구경 못했을 걸세. 사또두 처
음 보셨다네.” “얼마나 굵읍니까?”  “콩알 굵기만 할 걸세.” “나는 녹두알
만한 것을  구경했습니다. 그것을 밀가루와 같이  싸서 두면 새끼를 친답지요.” 
“그러면 자네가 구경했다는  것은 준주가 아니구 무궁줄세.”  “준주와 무궁주
와 다릅니까?” “다르구말구. 무궁주에는  준주 같은 광채가 나지 않네.” “그
럼 나는 준주도 구경 못했습니다그려. 진상 갈  준주도 단한갭니까?” “굵은 준
주는 한 개구 그버덤  잔 것은 여러 갠가 부데.” “준주가  잔 것이 여럿이거든 
한 개 갖다가 구경 좀 시켜주십시오.” “이  사람 누구를 죽이려구 그런 소리를 
하나. 진상 갈  준주를 훔쳐내 보게. 나는 말할 것  없구 자네두 요전 수달피 몇 
곱절 혼이날 걸세.” “남만 안 보이면  고만이지요. 여보세요 나리.” “진상 갈 
봉물은 벌써 선화당 벽장  다락에 들어가 있네.” “핑계 마세요.” “핑계가 아
닐세. 오늘 죄다 상자에 담을  것 상자에 담구 궤짝에 넣을 것 궤짝에 넣었네.” 
“고만두세요. 나리두.” “저런 사람 보게. 공연히 골을 내네.” “누가 골을 내
오.” “여보게 가만  있게. 선물로 보내는 데두 잔 준주가  있으니까 어디 보세.
” “어디 보자지 말고 꼭  한 개 갖다 주세요. 믿고 있겠습니다.” 하고 도화는 
싱긋 웃고 서림이의 대궁상을 돌려놓고 밥을  먹었다. 서림이 도화에게 졸리어서 
진주 한 개 가무릴 마음을  먹고 있는 중에 서울 갈 선물을 메지메지 나눠서 싸
놓으라고 감사의 분부가 내리어서 예방비장이 택호와 물종을 적어 들고 갈라 싸
는 것을 지휘하는데 진주 열 개는 이승지댁과 윤영부사댁에 보내도록 다섯 개씩 
두 몫에 나눠서  싸놓았다. 예방비장은 선화당에 불려가고 물건 싸던  통인 둘에 
하나는 밖에 나갔을 때, 서림이 남은 통인  하나를 심부름시켜 내보내고 방에 사
람이 없는 틈에 싸놓은 진주  한 목을 뜯어서 다섯 개를 네 개로 줄이고 감쪽같
이 다시 싸놓았다. 서림이  어찌 알았으리, 심부름시킨 통인이 방문 밖에서 엿본 
것을. 저녁때 서림이가 태평으로 훔친 진주를 가지고  나간 뒤에 통인이 엿본 것
을 예방비장에게 고하고, 예방비장이 통인의 말을 감사에게 고하여, 감사가 서림
이를 당장 잡아들이라고 호령호령하였다. 감영 안이  떠들썩할 때 형방비장이 감
사 앞에 나가서 “전일 수달피와  이번 준주를 합해 생각하오면 서림이 뒤루 돌
린 물건이 한두 가지만이 아니올 듯하오니 서림이의 숙식하는 도화의 집을 집뒤
짐해 보구 서림이를 잡아 족치는 것이 좋을  듯하외다.” 하고 품하여 감사가 그
리하라고 허락하였다. 형방비장이 감사의 명을 받고  집뒤짐하러 데리고 나갈 나
장이들을 불러모으는데 감영 관노로  있는 도화의 외사촌 오라비가 사단을 짐작
하고 도화에게 뒷길로 통기하여 주어서 도화가 선
통을 받고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서림이에게 물으니 서림이가 선뜻 “장물만 들
쳐나지 않으면 자네는  빠질 수 있을 테니 내가  갖다준 물건을 죄다 찾아 내놓
게.” 하고 말하였다. 도화가  진동한동 세간에서 옥, 산삼, 피물 등속을 찾아 내
놓을 때 상목 몇 필이  있는 것을 서림이가 보았다. “그 상목두 치우세.” “이
건 아니에요.”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기면 발명하기가 성가시니 내놓게.” 모
든 물건을 뚤뚤 뭉쳐  큰 보자기로 싸는데 진주도 그 속에  넣었다. “마루 밑에 
집어너까요?” “집안에는  두는 것이 불긴해.” “그럼  뉘게 맡겨요.” “자네 
맡길 데 없나?” “없어요.” “내가  어디 갖다 맡겨 봄세.” 서림이 보자기 싼 
것을 들고 일어서며 “내가 들어오기 전에 만일 자네가 잡혀가게 되거든 내게서 
물건 받은 것이 없다구만  잡아떼게. 그러면 무사할걸세.” 말하고 곧 밖으로 나
갔다. 얼마 동안 뒤에 형방비장이 나장이 팔구  명을 데리고 대들어서 도화와 도
화의 집 사람을 한옆에 몰아놓고 뒨장질을 시작하여 온 집안을 샅샅이 뒤졌으나 
장물 잡아낼 것이  별로 없었다. 형방비장이 도화를 앞으로 불러내서  말을 물었
다. “서장사 어디 갔느냐?”  “잠깐 어디 갔다 온다고 나가셨습니다.” “저녁 
안 먹구 나갔느냐?”  “저녁 잡숫고 나가셨습니다.” “준주는 너  주구 나갔겠
지.” “웬 준줍니까?”  “잡아떼지 마라.” “정말 구경도  못했습니다.” “가
만 있거아. 이따 보자.” 하고 형방비장은 한동안 서림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나중에 도화만 잡아 앞세우고 감영으로  들어갔다. 서림이는 그날 저녁으
로 종적을 감추어서 김명윤이 삼사  일 동안 두고 서림이를 잡아 대령하라고 야
단치다가 말고 도화만 매를 쳐서 내보냈었다. 
  서림이가 그날 저녁에 바로 평양서 도망하여 소울로 올라오는ㄷ 평양 떠난 뒤 
나흘 되던 날 금교역말  와서 잤다. 이튿날 눈이 부슬부슬 오는  중에 금교서 떠
나서 탑거리를 지나  탑고개를 넘어올 때 고갯길에  수건으로 머리 동인 수상한 
사람이 둘이 나타나서 서림이의  걸머진 보따리가 큼직한 것을 보고 “보따리에 
든 것이 무엇이오?”  하고 묻는 것을 “흔옷가집니다.” 하고  대답하였더니 “
어디 보자.” 하고 둘이 함께 대들어서 서림이의  양편 팔을 붙들고 보따리를 벗
기었다.
  서림이는 도적들을 막을 힘이 없는 까닭에  하릴없이 보따리를 벗어놓았다. 물
건을 빼앗기는 것도 아깝거니와 헌옷가지라고 거짓 말한 것이 뒤가 나서 속으로 
조급하였다. 속으로 조급할수록  겉으로는 더욱 태연한 체하고  도적들이 앉히는 
대로 쪼그리고 앉아서 보따리 푸는 걸 보고 있었다. “피물 아닌가.” 한 도적이 
겉에 싸인 수달피를 잡이 헤치니 “옥돌 보게.”  다른 도적이 속에 잇던 옥노리
개를 집어들었다.  도적들이 서림이를 돌아보며 “이것이  흔옷이냐?” “고따위 
입에 발린 가짓말을 우리가 곧이들을 줄 알았느냐!” “너  같은 멀쩡한 놈은 성
하게 보내지 않을 테다.”  “다리 마등갱이를 퉁겨줄 테다.” 하고 둘이 받고채
기로 역설하는데 서림이는 대꾸  한마디 않고 직수굿하고 있다가 도적들이 보따
리 속을 다 뒤져보고 거듬거듬 다시 쌀 때 “볼 것 다 보았거든 인제 도루 이리
내우.” 하고  씩씩하게 말하였다. “저놈 보게.”  하고 한 도적이  벌떡 일어나 
쫓아와서 서림이의 언 뺨을  보기좋게 한번 우렸다. “내 말 좀  듣구 나서 손질
하우.” “이놈아, 말이  무슨 말이냐?” “그게 내 물건이 아니오.”  “네 물건
이 아니니 도루 달란 말이냐? 시러베아들놈 다  보겠다.” “나는 변변치 못해서 
뺏기구 가더래두 물건  임자는 만만치 않아서 안 찾구 고만두지  않으리다.” “
만만치 않은  놈이구 만만한 놈이구 다  오래라. 우리 청석골 화서  물건 찾아갈 
놈은 세상에 아직  생겨나지두 않았다.” “물건 임자가 찾으로 올  때는 지금같
이 큰소리 못하리다.” “대체 물건 임자가 어떤  놈이냐?” “양주 장사 임꺽정
이가 물건 임자요.” 서림이 경기 감영에 있을  때 양주 백정의 아들 임꺽정이가 
장사로 소문이 나서 광주, 용인  근청의 좀도적들은 말할 것 없고 부평, 인천 등
지의 유명한 화적패들까지 꺽정이  이름만 듣고도 겁들을 낸다고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 들었던 까닭에 청석골 도적놈도 혹시 그럴까 하고 임꺽정이의 성명을 대
어보았더니, 아니나다를까 기고만장하던 도적이 입을 딱  벌리고 옆에 와서 수작
을 듣고 있던 다른 도적이  나서서 “양주 임장사의 물건을 댁은 어디서 가지고 
가우?” 하고 물었다.  서림이 우연히 생각난 꾀가 바로 맞는  것을 빙그레 웃으
면서 “양주 임장사가 나와 연사간이오. 내가 평안도루  볼일 보러 갈때 물건 사
다 달란 부탁을 받았소.” 하고 수월하게 거짓말하였다. “액은 어디 사우?” “
광주 사우.” “연사간이라니 임장사하고 어떻게  되우?” “임장사가 우리 사돈
의 사촌이오.” 서림에게 말  묻던 도적이 저의 동무를 돌아보며 “여보게, 사돈
의 사촌두 촌수를 따지나?” 하고  묻고 그 동무가 “촌수는 무슨 촌수야? 연사
간이지.” 하고 대답한 뒤  “어떻게 할라나?” “헛물켰지 별수 있나.” “동네
루 끌구 가세.” “두령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지.  임장사의 물건을 뺏을 수 있나.
” “그대루  보내더래두 가서 말씀이나 하구  보내세.” “아무리나 하세.” 두 
도적이 서로  지껄이고 서림이를 보따리  지워 앞세웠다. 서림이가  내빼고 싶은 
마음은 골독하나 섣불리  내빼려고 하는 것이 도리어  이롭지 못할 줄 생각하고 
도적들이 가자는 대로  쫓아서 탑고개 동네 어느 집  앞에 왔을 때 봉당에 섰는 
목자 불량한 군들이  “저런, 괴나리 하나야?” “보따리가  속이나 단단한가?” 
하고 물어서 서림이를 데리고 오는 도적  하나가 “속은 단단하구두 빈탕이라네.
” 대답하고 방  앞에 가서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며 피물이니 옥이니 임장사니 
여러 말을 하더니 “그놈을 이리 끌어오너라!” 하는  우렁찬 말소리가 방안에서 
울려나왔다.
  서림이가 방문 앞으로 끌려가서  방안을 들여다보니 나이 새파랗게 젊은 사람 
하나가 아랫목 자리에 앉아서 늙은 사람 서넛과 같이 술을 먹는데 그 젊은 사람
이 도적의 두못인 것은  묻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늙은  사람들은 삐끔삐금 밖
을 내다보아도 두목만은 사발술을  들이키며 내다보지 않더니 사발을 상에 놓고 
안주를 입에 넣고 한동안 있다가  고개를 밖으로 돌이키며 “네 말이 양주 임장
사의 사돈이란다니 그 아들은  아직 장가를 안 들었는데 어떻게 되는 사돈이냐?
” 하고 묻는 말이 곧 호령이었다. 그 두목이  꺽정이의 집안을 잘 하는 것 같아
서 서림이가 꺽정이를 팔기가 떨떠름하였으나 졸개 도적에게 한 말을 갑자기 달
리 꾸미기 어려워서  “임장사가 우리 사돈의 사촌이올시다.”  하고 대답하였더
니 젊은 두목은  어이없는 듯이 웃으면서 “옳지, 임꺽정이가 네  사돈의 사촌이
야? 그런데 임꺽정이는 사촌이  없는걸.” 하고 예사 언성으로 말하였다. “의심
쩍거든 임꺽정이에게 물어보시오.” 서림이가 말하는 것을  젊은 두목은 듣는 체 
만 체하고  졸개들을 바라보며 “얼른  끌구 가서 집어치워라.  그러구 보따리는 
들여오너라.” 하고 분부하니  졸개 도적들 중의 두 놈이 앞으로  나와서 양편에
서 서림이를 내끌었다. 서림이가  화색이 박두한 것을 깨닫고 “잠깐만 참아 주.
” 일변 졸개들에게 사정하며 “말씀 한마디마  더 들어줍시오.” 일변 두목에게 
애걸하였다. “무스 말이냐?”  “제가 물건을 여기 두구 양주  가서 임꺽정이를 
데리구 올 테니 제 말이 거짓말인가  참말인가 물어보십시오.” “양주를 갔다오
겠다?” 두목은 오겠다란  말에 특별히 힘을 주어서 뇌더니  “고만둬라.” 하고 
손을 내저었다. 서림이가  졸개 도적들에게 끌리어 나오다가  도망해볼 생각으로 
별안간 두 팔을 뿌리ㅣ니 한  도적은 손을 놓치고 한 도적은 매어달리며 “이리 
좀 오게.” 하고 소리질러서  봉당에 있던 도적 서너 놈이 쫓아나왔다. “이놈이 
뿌리치구 내뺄라구 하네.” 
  매어달린 도적이 말하는 것을 여러 도적들이 듣고 서림이를 중간에 넣고 주먹
질, 발길질로 초주검을 시켜놓았다. 여러 도적들이 다 죽어가는 서림이를 뒷결박
지워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죽이러 나갈 때 탑고개 동네 사는 사람 대여섯
이 나와서 구경들 하였다. 그 중의 젊은  사람 하나가 서림이의 얼굴을 바라보더
니 가까이 와서 이모저모 뜯어보다가  도적 하나를 보고 “이 사람이 어디 사람
인가?” 하고 물으니 그  도적이 “광주 사람이라우.” 하고 대답하였다. “광주 
사람이여?” 하고 그 사내가  눈감은 서림이에게 와서 “성명이 무어요? 성명이 
무어요?” “광주 서형방 아니시오?” 하고 물으며  서림이의 몸을 흔들었다. 그 
사내의 묻는  말을 서림이가 알아들었던지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거리었다. 그 
사내가 곧 도적들을 돌아보며 “여보게, 이 사람이 우리 집의 은인일세. 내가 가
서 말하구 나올테니 잠깐만 참아 주게.” 부탁하고  바로 두령 있는 집으로 뛰어
갔다.
  그 사내는 곽오주에게 원수를 갚으려고 길막봉이를  끌어오던 작은 손가니, 지
금 탑고개 동네에 나와서는 풍헌 노릇하고 청석골 적굴에 들어가서는 작은 두목 
노릇하는 사람이다. 작은 손가가 두령이 있는  집으로 한달음에 뛰어와서 방에도 
들어가지 않고 “길두령 나  좀 보시우.” 하고 소리질렸다. 이날 탑고개에 나와 
있던 두령은 길막봉이다. 작은 손가가 전 같으면  막봉이 하고 이름을 불렀을 터
이지만, 청속골 적굴 칭호대로 두령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이대 청석골에는 팔
로모산지배가 많이 모여들어서 도당이  사오십 명이나 되는데 졸개 위에 두목이 
있고 두목 위에  두령이 있어서 등분이 엄절하였다. 막봉이가 방문을  열치고 내
다보니 손가가  가쁜 숨을 돌리면서  “그 사람을 살려주어야겠소.”  하고 방문 
앞으로 들어섰다. “그 사람이 누구야?” “지금 죽이는 사람이오.” “왜?” “
그 사람이 우리 형님의 은인이오.” “그 사람이  누군데?” “광주에서 형방 다
니던 서림이란 사람이오.” “서림이?  서림이 성명은 나두 들은 법하군.” “우
리 형님이 광주 분원서 살인옥사에 걸렸을 때 빼놓아 준 사람이오.” “옳지, 그
때 성명을 들었었군. 지금 그자가 큰 죄는  없지만 하두 가짓말을 하니까 밉살스
러워서 죽이라구 했어.” “그 사람을 살려주면  집의 아주머니부터 좋아하실 거
요.” 서림이를 놓아주란 말이 막봉이 입에서 떨어지기 전에 막봉이의 누님이요, 
작은 손가의 형수인 여편네가 쫓아와서 먼저 시동생을 보고 “지금 끌려나간 사
람이 광주 서형방이오?” 하고  묻고 그 다음에 친동생을 보고 “셔형방은 우리 
집 은인이니 우리 인정 좀 보아주게.” 하고  청하니 막봉이는 두말 않고 “그러
우.” 하고 쾌히  허락하였다. 막봉이가 졸개들을 불러들여서 “아까 집어치우란 
사람을 그대로 놓아보내라.” 하고 이른 뒤에 작은  손가는 바로 형수와 함께 졸
개들 뒤를 따라나가고 막봉이는 다시 방문을 닫히고 늙은이들과 같이 술을 먹었
다. 늙은이 하나가  첨속으로 “거짓말쟁이가 덕택에 살아갑니다그려.” 하고 말
하니 막봉이는  싱그레 웃으며 “큰죄  없으니까 누님 생색을  내주었소.” 하고 
말하였다. “누님이 진 은혜를  갚아 드리는 것이 여간 잘하시는 일인가요.” “
그까진 일에 잘하구 못하구가 어디 있소.” “큰  손서방이 살인한 일이 있나요?
” “그 변변치 않은 위인이 살인할 주제나 되우?" "전에는  똑똑하던 사람이 곽
두령 쇠도리깨에 골통이 터진 뒤루 천치가  되었다먼요.” “전에두 사람이 순하
기만 하지 변변치는  못했소.” “그런데 어떻게 살인옥사 같은 데  간련이 되었
던가요?” “광주 분원서 사기 구울 때 사기막에서 싸움 끝에 살인이 났는데 싸
움 말린다구  덤볐다가 살인죄의  종범으루 붙들려갔더라우.” “싸움  말리다가 
그런 봉변한 사람이  탑거리두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은 애매하게 귀양까지 갔다 
왔지요.” “우리  매형이란 사람두 잘못하면  귀양가게 되는 것을  서가란 자가 
힘을 써서 무사히  놓여나왔다우.” “손서망 집에서 은인이라구 할 만하구먼요.
” 그  늙은이가 말을  그친 뒤에 여러 늙은이들이 끼리끼리 지껄이기 시작하여 
“거짓말쟁이가 보따리 물건을  찾지 못해서 아까웁겠네.” “무슨  경화에 물건
을 찾을 생각 하겠나. 목숨  부지한 것두 천만 뜻밖이지.” “자네 집에 가지 않
으려나?” “나는 좀더  있다가 가겠네.” 이런 말 저런 말들을  하는 중에 홀저
에 방문 밖에 신발소리들이나고 뒤미처 방문이 열리며 작은 손가가 서림이를 부
축하고 들어오는데,  여러 늙은이들은  고사하고 막봉이까지 보따리를  찾으로온 
줄로 의심하였다. 
  서림이가 막봉이를 향하고 공손히  절하는데 엎드리고 일어나는 것을 작은 손
가가 거들어주었다. 막봉이가 서림이의 절하는 것은 본  체 만 체하고 작은 손가
를 바라보면서 “그대루 보내지, 왜 데리구  왔어 보따리를 찾아 달라든가?” 하
고 물으니 작은 손가가  고개를 가로 흔들며 “아니오. 사례하러 오셨소. 아주머
니하구 나하구 집으루 가시자구 말하니까 두령께 와서 죽이지 않은 은혜를 사례
하구 가신다구해서 아주머니만  먼저 집으루 가시게 하구  나는 이리 뫼시구 왔
소.” 하고 대답하였다.
  “사례는 고만둬두 좋지.” 막봉이  말끝에 “죽게 된 건 내 잘못이구, 살려주
신 건 두령의 은덕입니다. 나를 낳아준 이두 부모요, 나를 살려준 이두 부모라니 
두령은 곧 나의 부모신데 내가  정신을 차리구서야 먼저 와서 보입지 않을 길이 
있습니까.” 
  서림이가 나직나직 말하는데  말소리는 약하나 말하는 것은  똑똑하였다. 막봉
이가 머리를 몇번 끄덕끄덕하도 “보아하니 몸이 괴로운 모양이니 어서 저 사람
을 따라가서 편히  쉬우.” 하고 말한 뒤  작은 손가가 “인제 고만 가십시다.” 
하고 서림이를 다시 부축하고 나갔다.
  서림이는 손가의 집에 와서 후대를 받으며 수일 조리하는 동안에 작은 손가에
게서 청석골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늙은 두령 하나와 젊은 두령  넷이 위에 있
고 그 아래 두목과 졸개가  사오십 명이 있어서 송도의 포도군사들이 근처에 와
서 어른대지 못하고 사방 십리  안에 있는 동네들은 모두 청석골에 매어 지내는
데 그 중에  탑고개와 양짓말과 구룡동 같은  동네는 젊은 두령들이 겨끔내기로 
나와서 돌아 들어가기도 하고 간혹 묵어가기도  한다고 하였다. 서림이가 청석골 
이야기를 꼬치꼬치 파물어  보는 중에 평양서 올  진상 물건을 적당에게 가르쳐 
줄 생각이 나서 작은 손가더러 “나를 적굴에 좀 데리구 갈 수 있소?” 하고 물
으니 작은 손가는 고개를  외치며 “구경 못 가십니다.” 하고 거절하였다. “구
경가자는 것이 아니오.” “그럼 입당하실  생각이 있습니까?” “두령들이 허락
한다면 입당해두 좋소.” “상주 같으신 분이 적당에  입당하실 리가 있나요? 실
없은 말씀이지.” “실없은 말이  아니오. 나두 오늘날 신세가 헐수할수 없이 되
었소.” 하고 서림이가  경기도서 포흠 지고 죽을 뻔한 일과  평안도서 작죄하고 
도망한 일을 대충대충 이야기하였다. “참말  입당하시렵니까?” “두번 다질 설 
없소.” “내가 먼저 두령들에게루 청을 들여보내 보지우.” “내가 폐백을 가지
구 가서 입당할 테니, 청할  때 미리 귀띔해 두시우.” “무슨 폐백인가요?” “
열 몫에 나누면  장자 열이 날 만한 큰 재물이  내 뒤에 있소.”“참말씀입니까?
” “거짓말 아니니 염려 마우.” “그 재물이  어디 있습니까?” “청석골 두령
들이 내 말만 들으면 그 재물이 어디 있든지 곧 청석골루 굴러들어올 게요.” 
  “실상 까놓구 말씀이지 내가 청석골 작은 두목의 한 사람인데 늙은 오두령부
너 다섯 두령이 다 나를 믿습니다. 내가 힘써 천거하면 입당은 어렵지 않습니다.
” 
  “말 듣기 전에 나두 다 짐작했소.” “청을  들려보내 본다구 말씀한 건 내가 
먼저 한번 갔다오려구한 것인데 뒤에  큰 재물을 가지구 오신 줄 알면 두령들두 
좋아할거니까 바루 나하구 같이 가십시다.” 
  “큰 재물을 잡아오자면 하루라두  일찍 준비하는 것이 좋으니까 가기가 늦지 
않거든 오늘이라두 같이 가십시다.” “지금이라두 가기는  늦을 것 없지만 산길
을 걷기가 아직 어렵지 않으시까요?” “염려 없소. 오늘 갑시다.” 
  겨울해가 한낮이 훨씬  기운 때 서림이 작은  손가를 앞세우고 탑고개 동네서 
나섰다. 
  산길을 잡아든 뒤로 큰고개, 작은고개를 패어  넘는데 기어오를 비탈이며 뛰어
건널 구렁에서 서림이는 현기가 나서  손가에게 손 붙들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
었다. 적굴은  아직 보이지 않고 해는  얼마 남지 아니하였을 때  서림이가 앞서 
가는 손가를 불러세우고 “앞으루 몇 리나 남았는지 어둡기 전에 들어가겠소?” 
하고 물으니 “인제  저 등갱이 하나만 넘으면 고만입니다.” 하고  손가는 건너
편에 있는 산장등을 가리켰다. 서림이 다리가  아파서손가보다 훨씬 뒤떨어져 장
등으로 올라오는데 장등 위에 난데없는 장정 두엇이 나타나서 먼저 올라간 손가
와 한참 무엇을 지껄이더니 장정들은 어디로 들어가고 손가만 혼자 서서 서림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리가 아프신 모양입니다그려.” “좀 쉬어갑시
다.” “그러십시오.” “지금 나왔던  망꾼들은 어디 갔소?” “망꾼인 줄을 어
떻게 아셨습니까?”  “눈치가 빠르지 못하기루서니 그것쯤이야  짐작 못하겠소.
” 손가가 눈 덮인 돌  하나를 찾아가서 손으로 눈을 쓸어버리며 “이리 오십시
오.” 하고 서림이를 불렀다. 서림이가 돌 위에와 앉아서 쉬는 동안에 장등 아래
에 저녁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장등 앞에 나와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골 
안에 집이 많이 들어 앉았는데, 조금조금 한  초가들은 말말고 크고 작은 외가만
도 여닐곱 채나 되었다. “탑고개보다 크구려.” 하고 서림ㅇ이가 손가를 돌아보
니 손가는 서림이 옆으로 나서면서 “배포가 크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집들
이 깨끗한 게 모두 새집  같구려.” “새집들입니다. 전에는 저 안침에  있는 묵
은기와집 한 채뿐이었는데  올 봄부터 여름 가을 내처 역사를  했습니다.” “목
수 미장이 같은 장색들은 난데서 불러다 쓰우?” “저 묵은 기와집 사랑채 세울 
때는 난데 장색을 불러다 썼지만  졸개들이 많이 모인 뒤루는 졸개 중에 목수가 
없나요, 미장이가 없나요, 대장쟁이  기와쟁이 갖은 장색이 다 있어서 가을에 도
회청 지을 때는 난데 장색 하나두 쓰지 않았습니다.”
  “한복판에 있는  그중 큰 기와집이  도회청이오?” “녜,  원채가 도회청이구 
좌우 옆채는 길두령하구 배두령하구 각각 한  채씩 씁니다.” “오두령이란 이는 
저 묵은집에 있소?” “녜, 그 집에 박두령하구 같이 있습니다.” “작은 기와집
들은 사람 거처하는 집이 아니오?” “녜, 곳간들입니다. 군기 두는 군기고두 있
구, 군량 주는 군량고두 있구.” “초가는 모두 졸개들의 집이구려.” “녜, 두목
과 졸개의 살림하는 초막들입니다.” “졸개들 중에  처자 데리구 살림하는 사람
이 많소?” “처자  있는 사람이 반이 못 될 겝니다.”  “길두령 배두령은 도회
청 여패에 있구, 오두령  박두령은 묵은 집에 있으면, 쇠도리깨 쓴다는 곽두령은 
어느 집에 있소?”  “곽두령의 처소는 뒷고개 넘어가서 외따루  있습니다.” “
파수 보러 나가 있소?” “아니오. 그 두령은 우는 어린애하구 비각이라, 말하자
면 어린애피접가 있는  셈입니다.” “어린애 울음소리를 들으면  미친다니까 피
접두 용혹무괴요.” “지금은 전에 대면 나은  셈이라는데 그래두 어린애 울음소
리를 들으면  잠두 못 자구 밥두  못 먹는답니다.” “그래 혼자  가서 끓어먹구 
있소?” “아니오. 수청 드는  아이놈두 있구 심부름하는 졸개들두 있지요. 그러
구 조석은 오두령댁에서 날라다 먹는답니다.”
  눈 위의 찬바람이 앞으로  안기어서 서림이가 “어, 칩다.” 하고 몸을 오므려
들이니 손가가 “치운 데 섰는니 아래루 내려갑시다.”
  말하고 곧  서림이와 같이 장등에서  내려왔다. 청석골 적굴의  대소사는 다섯 
두령이 같이 의논하여결처하되 늙은 오가가 연치, 이력, 언변으로 괴수격이 되어
서 의ㅣ논을 조종하고 결처를 좌우하는 일이  많았다. 서림이가 손가에게서 내막 
이야기를 듣고 먼저 오가를 가서  보자고 말하여 손가는 그 말을 좇아서 도회청
을 들르지 않고 지나가다가  도회청 길목에서 길막봉이가 박유복이와 같이 나오
는 것을  만났다. 손가가 유복이와  막봉이에게 인사하는 중에  서림이는 막봉이 
앞에 나가서 하정배하듯이 허리를 굽히고 “지금  보이러 오는 길입니다.” 하고 
공손히 인사하였다. 막봉이가  서림이의 말은 대답 않고 “이 사람이  요전 보따
리 임자요.” 하고  유복이를 돌아보자 유복이는 서림이를  본체만체하고 “생소
한 사람을 어째 데리구 왔나?” 하고 손가를 바라보았다. 
  손가가 서림이를 한옆에 갖다  세우고 와서 박유복이와 길막봉이를 보고 서림
이 뒤에 큰  재물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였다. “두령들이 자기  말만 들어주면 
한 달 안에  청석골루 가져온다구 장담합디다.” “그 장담이 허풍인지  누가 아
나? 그 말이 나는  어째 곧이들리지 않는데.” “한 달 동안 속는  셈 잡으면 되
지 않소.” 막봉이와  손가의 수작하는 말을 유복이는 듣고 있다가  손가더러 “
자네 말두 유리하니까 어디  의논해 보세.” 하고 말하였다. “지금 어디루 가시
는 길입니까?” “집으루  가는 길일세.” “길두령두 같이  가십니까?” “같이 
가네.” “나두 저 사람 데리구 따라가겠습니다.” 
  손가는 곧 서림이를 불러서  박유복이에게 인사를 시킨 뒤에 박유복이와 길막
봉이의 뒤를 따라  오가의 집으로 왔다. 손가가 서림이를 사랑  바깥마당에 세우
고 먼저 사랑에  들어가서 오가를 보고 다시  서림이의 일을 이야기하니 오가가 
박유복이와 길막봉이를 돌아보며 “우리  그자를 불러서 말을 한번 자세히 들어
보세.” 말하고 곧 손가더러 불러들이라고 일렀다. 서림이가 사랑에 들어와서 오
가에게 절인사하고 무릎을 꿇고 앉으니 오가가 편히 앉으라고 말하고 나서 바로 
“노형 뒤에 큰 재물이 있다니 그 재물이  지금 어디 있소?” 하고 물었다. “차
차 말씀하오리다.” “차차  말한다구 사람이 갑갑증이 나게 하지 말구  얼른 이
야기 좀 하우.”  “그 재물이 지금은 평안  감영에 있습니다. 그러나 섣달 보름 
안에 서울루  올라옵니다.” “그 재물이 평안  감영 상납이오?” “아니올시다. 
평안감사가 위에 진상하는  재물입니다.” “감사가 위에 바치는  재물이 상납이 
아니면 무어요?”  “상납 외에 따루  진상하는 재물입니다.” “따루  진상하는 
것이면 토지 소산 아니겠소. 소산에 무슨 귀중한  물건이 있기에 열 몫에 나눠두 
장자 열이 난다구 말했소.”
  “장자 열이 난다구 말한 것두 줄여 말한 폭입니다.”
  서림이가 평안 감영에서  진상 올 물건을 이야기하는데, 정신 좋게  물건 가지
를 자세히 말하니방안 사람들이 다 눈을 둥그렇게 뜨고 서림이의 이야기를 들었
다.
  저녁밥이 되었을 때 오가와  박유복이가 길막봉이를 붙들어서 셋 겸상으로 내
다 먹고 서림이는 손가와 겸상하여 윗간에서 먹이는데 겸상 반찬이 셋 겸상과별
로 층하가 없었다. 이날 밤에 오가가 밤참으로  술상을 차리게 하고 서림이의 이
야기를 들리려고 배돌석이와  곽오주까지 마저 청하여 왔다. 술 먹을  때 서림이
만은 다섯 두령과 한 상에서 먹게 되었는데 서림이가 술 먹기 전까지는 여러 두
령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재작하여 아는 것도 모르는 체하였으나,  술이 거나하
게 취한 뒤로부터 아는 것은  고사하고 모르는 것까지 아는 체하고 기탄없이 지
껄이었다. 서림이의 말이  천문지리 의약복서에 막히는 것이 없는 것을  보고 오
가는 좋아하고  박유복이는 공경하고  길막봉이와 배돌석이는 놀라워  하였으나, 
곽오주만은 좋아도 않고  공경도 않고 또 놀라워하지 않았다. 밤이  이윽하여 술
자리가 파한 뒤에 곽오주는 장등을 넘어가고 길막봉이와 배돌석이는 도회청으로 
내려가고 박유복이는  안으로 들어가고 오가만 남아서  서림이와 손가를 데리고 
자는데, 손가는 윗간에  자게 하고 서림이는 자기와 같이 아랫간에서  자게 하였
다.
  이튿날 아침 후에 다섯 두령이  도회청에 모여서 두 가지 일을 의논하게 되었
는데 한 가지는 평양서  오는 진상 봉물을 빼앗을 일이요, 또  한 가지는 서림이
를 도당에  가입시킬 일이었다. 진상  봉물은 빼앗기로 의논이  일치하여 결말을 
쉽사리 지었으나 서림이의 입당은 곽오주가 찬동하지 아니하여 낙착이 용이하게 
나지 않았다. 전날 길막봉이가 캅고개에서 들어왔을  때 서림이가 임꺽정이 팔던 
것을 이야기하여 곽오주는 듣고 괘씸하게 치부한 까닭에 서림이를입당시키지 못
한다고 고집을 세우게  된 것이었다. 오주가 사돈의  사촌을들추면서 고집세우는 
것을 오가가 보고
  “여게 곽두령, 내 말 좀  듣게. 서씨가 거짓말한 것은 나두 잘 했다구는 생각
하지 않네만, 사내자식이  길 나설 때 갓모  하나, 거짓말 하나는 가지구 나서야 
한다네. 일시 해버린 거짓말을 가지구 그렇게 미워할 거 없지 않은가.”
  하고 너털웃음을  내놓으니 오주는 잠시 눈을  끔벅끔벅하다가 “거짓말두 쓸 
거짓말이 있지만  서가의 거짓말은 못쓸  거짓말이오. 우리게 와서  형님을 파는 
놈이 ㅓㄴ하에 뻔뻔한 놈 아니오.” 하고 다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우리가 임장사와 친한  줄을 알았으면 그런 거짓말을 할 리가  있나.” “그
러면 꺽정이 형님을 왜  끌어댔단 말이오?” “천하 장사 임꺽정이 이름을 내세
우면 길두령이 질끔할 줄  알았던 게지.” “그러니까 더 고약하지 않소.” “글
쎄, 자네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자네 좀 생각해  보게. 지금 우리 중에 꾀를 
낼 줄 아는 모사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 거기는 서씨가 아주  안성맞춤일 것 같
으니 두말 말구 입당시키세.”
  “졸개루 입당시킬  테요?” “우리가 모든 일을  같이 의논할 사람인데 사람 
대접이 있지, 어떻게 졸개루야  입당시킬 수 있나.” “그럼 우리 도회청 모듬에 
넣을 작정이오? 그건  당초에 안될말이오. 들일라면 졸개루나 들이시우.”“본래 
군중에는 장수두 있구 모사두 있는데 장수들이 모사를 졸개 대접하는 법은 전고
에 없네. 여보게,  생각해 보게. 졸개 대접을 해서야  좋은 꾀를 낼 리가 있나.” 
“도둑질해 먹는데 장수는  무어구 모사는 무어요?” 막봉이와 돌석이가 오주의 
말을 나무랄 뿐 아니라 유복이까지 오주를  타일렀건만, 오주는 “형님두 간나위
에게 속으시우. 서가가 웃을 때 눈을 살살 감는 걸 보지 못했소.” 하고 전에 잘 
듣던 유복이의 말도 듣지 않고 내처 고집을  세웠다. 나중에 오가가 곽오주의 고
집을 좋연히 꺾기 어려울 줄 알고 자리에 나 앉아서 서림이의 입당은 진상 봉물
을 빼앗은 뒤에 다시 의논하자고 말하니 그  말에는 오주도 찬동하였다.  서림이
가 오가의 집에서  숙식하면서 평양 진상 봉물  뺏을 꾀를 오가와 박유복이에게 
말하여 미리미리  준비를 시키는데, 평양서  떠나오는 인마 수효와  노정 일자를 
먼저 알고 있으려고  졸개들 중에서 눈치빠를고 걸음  잘걷는 사람을 대여섯 명 
뽑아서 섣달 열흘께까지 하루  한 사람씩 평양길로 떠나보내되 어디서든지 평양 
진상 봉물이 오는  것을 보거든 그날 숙소참만 알고  곧 돌아서 밤 도와 오라고 
일러 보내게 하였다.  마지막 졸개를 떠나보내던 날 서림이가 오가를  보고 “인
제 중요한 일을 한 가지 작정할 것이  있습니다.” 하고 말하여 오가가 “중요한 
일이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봉물을 뺏으려면 뺏을 자리를  작정해야 하지 
않습니까.” 서림이는 미리 생각한 일이 있는  어취로 말하는데 “뺏을 자리라니 
무슨 말이오?” 오가는  괴이쩍게 여기는 눈치를 보이었다. “평양  쪽으루 가서 
지키든지 서울 쪽으루 가서 지키든지 자리를 골라놓아야 뺏을 계책이 생기지 않
습니까.” “탑고개  앞뒤를 지키구, 고개에서  뺏으면 되지  않소.” “탑고개루 
올는지 숫돌고개룰 갈는지  그것두 아직은 모르지만, 탑고개루  온다구 잡더래두 
탑고개는 자리가 신통치  못합니다.” “탑고개가 자리가 신통치  모하다니 별소
릴를 다 듣소.” “탑고개  자리 된 품이 움치구 뛸 데가  없어서 도망질칠 사람
두 도망질을 치지 못하구, 죽을 작정하구 대들기가 쉽습디다. 그래서 촌장꾼이나 
단출한 행인을 세워놓구 떨기는 십상 좋지만 큰행차난 다솔 일행을 막아놓구 떨
기는 좋지  않을 듯합니다. 이번 평양서  오는 일행이 짐꾼들만 올  리는 만무한 
일이구, 군관들이 영거하구 올 것인데 좁은  자리에서 군관들과 맞닥뜨려 접전이 
나면 이편 저편에서 사람이 많이 상할 것  아닙니까. 접전에 이기구 진상 봉물을 
떨어온 뒤에는 아무  탈이 없겠느냐 하면 그렇지두 못할 것  같습니다. 탑고개에
서 일이 났다 하면 그 지목이 대번 청석골루 돌아올 것이니 셋줄 좋은 김명윤이
가 들꼴같잉 서울다가 기별해서 관군을   몇백 명이나 몇천 명을 풀어서 청석골
을 치게 하면 큰탈날 것 아입니까. 사람을  상하지 않구 뒤탈을 당하지 않으려면 
탑고개 외에  다른 자리를 고르는 것이  좋을 줄루 압니다.” “말을  듣구 보니 
그럴 듯하우. 자리를 고른다면  어디가 좋겠소? 생각한 곳이 있거든 말씀하우.” 
“평양 쪽으루 가서 지킨다면  총수산소두 좋구, 동선령 새남 사이두 좋구요. 서
울 쪽으루  가서 지킨다면 임진나루 못미처두  좋구, 혜음령 턱밑두 좋습니다.” 
“너무 멀리 나간다면 되려 비편한  일이 많을 테니 송도와 평산 중간에서 자리
를 고르는 것이 어떻겠소?” “자리가 여기서 가까울수록 지목을 받기 쉬우니까 
그건 생각해 하십시오.” “오늘 여러 두령을 모아가지고 의논해 보리다.” 오가
가 다른 두령들과 자리를 의논해  본즉 박유복이 한 사람 외에는 모두 탐고개를 
주장하여 마침내 결정을 짓지 못하고 오가가 다시 서림이를 보고 탐고개 주장이 
많은 것을 말하니 서림이는 고개를 가로 흔들며 “아무리 주장하는 사람이 많더
래두 탑고개는 신통치 못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노형 말을 들은 뒤엔 내 맘
에두 신통치 못해서 자리를 작정 않구  고만두었소.” “여기서 가까운 평산이나 
금교에 그 일행이 와서 숙소하거든 그 숙소에서 뺏어오면 어떻겠습니까?” “숙
소에 가서  뺏기가 어디 쉽소.” “숙소에  가서 뺏기루 작정만 되면  좋은 꾀가 
날 겝니다.” “좋은 꾀가 있거든 말씀하우.” “낭패 없이 뺏어올 꾀는 제가 목
벨 다짐하구  맡을 테니, 다른 두령들이  딴소리나 못하두룩 해주십시오.” “글
쎄, 곽두령  같은 사람이 공연히  고집을 세울는지 모르지만  박두령하구 둘이서 
힘을 써보리다.” 오가와  박유복이는 서림의 말을 좇아서 평양 진상  봉물을 가
까운 숙소에 가서 꾀로 뺏어오자고 다른 두령들과 합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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