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의형제편 8

3학년2반 | 2022.01.09 07:29:00 댓글: 0 조회: 416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0995
  꺽정이가 양주서 큰 난리를 내다시피 하고 달아난 뒤에 양주군수의 급한 보장
이 경기감영과 포도청으로 올라갔다. 경기감영에서는 감사가 보장 사연을 드듸
어서 시급히 장계하고 포도청에서는 부장이 양주 내려가서 엄밀히 조사하였다.
평양 진상 봉물에 관계 있는 범인을 허술히 잡도리한 것은 군수의 과실이요, 파
옥, 살인, 방화 가지가지 중죄를 낭자히 저지른 것은 꺽정이의 죄상이라 양주군
수는 즉시 파직되고 임꺽정이는 경기감영과 포도청에서 다같이 체포하려고 서둘
렀다. 꺽정이가 영주서 파주길로 달아난 것은 분명하나 임진나루를 건너간 형적
이 없어서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는가 의심하여 포천, 연천, 적성, 마전, 삭녕, 토
산, 신계 등지를 모조리 수색하는데, 포도군관, 포도군사, 장교, 사령 들이 도처에
들싼을 놓아서 애매한 백성들만 부대낌을 받았다. 이때 청석골 적당의 두목 다
섯 명이 신계 땅에 나온 것을 현령 이흠례가 모짝 다 잡았는데 그놈들 초사에
꺽정이가 청석골 있는 것이 드러나서 황해감영과 서울 포도청은 말할 것 없고
개성유수도 이것을 알게 되었다. 개성유수가 경력과 도사를 불러서 꺽정이 체포
할 방책을 의논하니 경력은 한번 헛수고를 해본 사람이라 선뜻 대답을 못하고
도사가 “패두 이억근이를 불러서 물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하고 대답하
였다. 이억근이는 서울서 내려온 포도군사의 패두인데 도적 잘 잡기로 경향에
이름난 사람이었다. 유수가 곧 이억근이를 불러들여서 “양주 꺽정이란 놈이 지
금 청석골 적굴에 숨어 있다는데 어떻게 잡을 수 없겠느냐?”하고 물은즉 이억
근이는 “소인을 정병 백 명만 주시면 다짐 두옵구 체포하여 바치겠소이다.”하
고 장담하였다. 유수가 경력을 돌아보고 군사 뽑아줄 것을 상의한즉 경력이 이
억근이의 장담하는 것을 불쾌하게 들었던지 “우선 군사 이삼십 명만 주어서 청
석골 적당의 내정을 염탐하게 한 뒤에 차차 봐가며 군사를 백 명이구 이백 명이
구 더 주시는 것이 좋을 듯하외다.”하고 말하여 유수가 경력의 말을 옳게 듣고
다시 이억근이더러 “우선 이삼십 명 데리고 나가서 적정을 탐지해 봐라.”하고
분부하였다. 이억근이는 이십여 명 군사를 데리고 나와서 적굴 있는 방향을 탐
지한 뒤 도적들이 새벽 일어나기 전에 들이치려고 오경머리에 청석골 산속에를
들어왔다가 파수꾼에게 들켜서 화적들이 산 위에 몰려나와서 활들을 내려쏘는데
이억근이도 죽고 이십여 명 군사도 거지반 다 죽었다. 개성유수는 패두 이억근
이가 군사 수십 명 데리고 화적을 잡으러 갔다가 화적에게 죽었다고 간단하게
장계 한 장만 위에 올리고 일을 더 크게 벌리지 아니하였다. 각읍으로 퍼진 포
도군관, 포도군사 들은 임꺽정이를 체포하려고 수색하는 것이 헛수고인 줄을 미
리 짐작하여 수색을 건정으로 하고 꺽정이의 조력군을 사출하기 시작하였다. 포
도부장 한 사람이 군사 몇 명을 데리고 봉산 내려가서 장교 다녔다는 임꺽정이
의 처남의 근지를 탐문하여 전 이방 백가의 사위인 것을 알고 백가를 잡아서 사
위의 종적을 대라고 족칠 때에 백가는 그럴싸한 거짓말로 발을 빼었다. “소인
의 사위 명색 황가란 것이 본래는 그다지 상없지 않던 위인이온데 못된 자들과
교유가 생기며부터 주색을 밝혀서 소인의 내외가 다 못마땅하게 여기옵든 차에
그 교유하던 자 중에 경천 역졸 배가란 자가 살인하구 도망하는 것을 방조해 주
옵구 그 죄루 제주 귀양을 가올 때 소인은 아주 의절하다시피 말해 보냈었소이
다. 황가가 이 달에 귀양이 풀려서 소인의 집을 찾아왔솝기에 소인이 받지 아니
하려다가 인정에 박절하와 후일이나 경계하려구 말마디 꾸짖었솝드니 어리석은
것이 되려 고깝게 듣구 소인에게 불공설화를 하옵기에 나가라구 야단을 쳐서 오
던 이튿날 바루 나갔소이다. 갈 때 봉산땅에 다시 발두 들여놓지 않는다구 말하
구 가든 것이 불과 육칠 일 만에 도루 와서 기집을 내달라구 야료를 하옵는데
동네가 부끄러워서 소인은 악언상거를 못하옵구 딸자식을 불러서 부모와 같이
있을 테냐, 서방 명색을 따라갈 테냐 물어보은즉 무남독녀루 귀엽게 길러놓은
보람이 없이 서방이란 자를 따라갈 의향으루 대답하옵기에 소인이 괘씸한 맘에
전후 불계하구 딸자식이란 것더러 너 같은 자식 죽어 없는 셈 잡으면 고만이니
서방 따라가라구 해서 딸자식까지 내쫓았소이다.” 천왕동이가 그 동안 몰래 처
가에 와서 장인 장모에게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 안해를 청석골로 데려간
까닭에 백가의 말이 얼쑹덜쑹하여 서울서 처음 온 부장은 고사하고 봉산에 오래
있는 군수까지 거짓말로 듣지 아니하였다. 부장이 백가의 처치를 군수에게 맡기
고 돌아간 뒤에 백가의 결찌들이 군수에게 청질하여 백가는 아무 탈없이 놓여나
오게 되었다. 봉산 백가가 사위의 연루로 단련을 받는 동안에 임진별장 이봉
학이가 임꺽정이와 형제같이 친하여 꺽정이 아비 장사에 회장까지 간 것이 드러
나서 꺽정이가 청석골로 달아나는 데 이봉학이가 임진나루를 건너주었으려니 의
심들 하게 되었다. 이때 임진 진군 육십이 명 중에 봉학이에게 한두 번 매깨나
맞은 자가 밤배 낸 것을 포도군사들에게 말하여 주어서 봉학이가 꺽정이 일에
간련 있는 것이 의심없이 되었으나, 봉학이는 조정 명관이라 조정 처분이 내리
기 전에 포도군사들이 바로 잡지 못하였다. 봉학이의 소실 계향이가 이때 태중
만삭이라 봉학이는 계향이를 근심시키지 않으려고 꺽정이의 연루받게 되기 쉬운
것을 사색에도 나타내지 않았으나, 눈치빠른 계향이가 벌써 다 짐작하고 은근히
근심하여 조석도 잘 먹지 못하고 밤잠도 잘 자지 못하였다. 어느 날 밤중에 봉
학이가 잠을 잃고 누워서 몸을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다가 술먹고 싶은 생각이
나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서 안으로 난 일각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안방에 불이
켜 있는데 머리맡 되창문에 턱살 괴고 앉은 계향이의 그림자가 비치었다. 봉학
이가 신을 끌고 안으로 들어오니 되창문이 열리며 계향이가 머리를 내밀고 “나
리시오?”하고 물었다. “왜 이때까지 자지 않구 앉았나?” “누웠다가 허리가
아파서 잠깐 일어나 앉았세요.” “산점이 있나?” “아니오.” 이봉학이가 안방
에 들어설 때 윗간에서 자던 상직꾼이 일어나서 건넌방으로 건너가려고 이불 조
각을 끌어안았다. “거기서 그대루 자거라.” 봉학이가 상직꾼에게 말을 이르는
데 “가만 내버려 두세요.” 계향이가 이봉학이의 말을 가로막았다. 머리맡 되창
문을 닫고 단둘이 마주 앉은 뒤에 계향이가 먼저 “요새 잠을 잘 못 주무시지
요?”하고 물으니 이봉학이는 짐짓 괴상히 여기는 모양을 보이며 “왜 못 자?
잘 자지.”하고 대답하였다. “고만 두어요.” “무얼 고만두어?” “속에 근심
하시는 일이 있는 줄 다 알아요.” “근심하는 일이 있으면 자네에게 왜 말을
안 하겠나?” “그렇기에 말씀이지요.” “말 안 하는 것을 보면 근심하는 일이
없는 줄 알 것 아닌가.” “아니예요.” “아니하니? 그럼 없는 근심두 있다구
할까.” “요새 날마다 진군들이 포도군사에게 단련을 받는다는데 어째 근심이
없다세요.” “그건 근심이 된다면 되겠지만 그저 그렇지 무슨 큰 근심이야 될
것 있나.” “밤배를 낸 것이 발각되지 않겠어요?” 계향이는 입안 소리로 근심
스럽게 말하는데 “그걸 아는 진군들은 다 내 심복이니까 누설될 바두 없구 설
혹 누설이 되어서 말썽이 된대두 삭탈관직밖에 더 되겠나? 삭탈관직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두 해로울 것 없네. 어느 조용한 시굴에 가서 나는 밭매구 자
네는 길쌈하구 사세그려. 그러면 고만 태평이 아니겠나.” 이봉학이는 소리를 내
서 껄껄 웃었다. “그렇게쯤만 되어도 좋지요.” “그럼 그밖에 더 되겠나?” “
귀양이 되지나 않을까요?” “친한 친구 사폐 잠깐 봐준 것이 귀양갈 죄야 되
나.” “그래도 미리 주선을 좀 해두시지요.” “미리 주선이라니? 내가 이런
짓을 했소 하구 내 입으루 떠들구 다니란 말인가.” “이정승 대감께 미리 말씀
해 두시는 게 좋지 않겠세요.” “글쎄, 어디 생각해 보세. 그 이야기는 고만두
구 술이나 한잔 주게.” 계향이가 골방에 놓인 술항아리에서 술 한 대접을 따라
다가 화로의 불씨를 헤치고 거냉하여 주었다. 봉학이가 한 대접 술을 거의 다
마시다가 계향이를 보며 “자네 좀 남겨주까?” 하고 물으니 “그렇지 않아도
숨이 가쁜데 술먹고 배기나요.” 하고 계향이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봉학
이가 술대접을 놓은 뒤에 안주로 내놓은 포 한쪽에 반 쪽을 찢어 씹으면서 남은
반 쪽을 먹으라고 주니 계향이가 싫다고 받지 아니하여 “포두 먹으면 숨이 가
빠지나?” 하고 이봉학이가 웃음의 소리를 해서 이때껏 웃지 않던 계향이도 방
그레 웃었다. “나두 여기서 좀 자다 나갈까?” “나가서 편히 주무시지요.” “
내가 나가면 자네 혼자 오두마니 앉았을 테니 나하구 같이 자세.” “잘 테니
나가세요.” “상직꾼을 쫓았으니까 내가 대신 상직하지.” 이봉학이가 먼저 자
리에 누워서 계향이를 바라보며 “이리 와서 눕게.” 하고 옆자리를 가리켰다.
계향이가 자리에 누울 때 닭이 울었다. “요새 닭이 퍽 더디 울어요.” 계향이
말끝에 “그 수닭이 묵은 수닭이지?” 이봉학이가 동떨어진 말을 물으니 계향이
는 속으로 괴의쩍게 생각하며 “네.” 하고 대답하였다. “묵은 닭이라 변덕이
나서 우는 때가 들쑥날쑥하는가베.” “실없는 말씀 고만두세요.” “쓸데없는
근심 말구 잠을 잘 자게. 그러면 닭이 어련히 때맞춰 울겠나.” “참말로 요새같
이 밤이 지리해선 사람이 못살겠어요.” “오늘 밤두 지리한가?”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오늘 밤은 별난 밤인가요?” “여편네가 사내하구 같이 자며
밤이 지리하다면 그건 사내를 소박하는 표적일세.” “듣기 싫어요.” “할 말이
많은데 듣기 싫다니 그만두는 수 밖에. 그럼 잠이나 자야겠다.” “졸리시지 않
거든 내 이야기 좀 들으세요.” “내 말은 듣기 싫다는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들으라나. 나두 듣기 싫어.” 모로 누웠던 계향이가 반듯이 누우려고 몸을 움직
이다가 뱃속이 켕기어서 미간을 찌푸리니 이봉학이가 보고 “이야기를 안 들어
준다고 골이 났나?” 하고 물었다. “골이 무슨 골이예요.” “그럼 왜 눈살을
찌푸리나?” “뱃속이 켕겨요.” “어디서 어떻게 켕겨?” 하고 이봉학이가 배
를 만져보려고 하니 계향이는 봉학이의 손을 가볍게 막았다. “뱃속에 든 것이
아들일까 딸일까.” “그걸 미리 어떻게 알아요?” “애낳이 많이 한 여편네들
은 배를 만져보구 미리 안다데그려. 상직꾼 할미도 잘 알겠지.” “아무리 안대
도 구질구질해서 어떻게 배를 만져보라나요.” “정이 궁금하면 잠깐 구질구질
한 걸 못 참겠나.” “됫박 엎어놓은 것같이 배가 불쑥 솟으면 딸이고 허리까지
둥글게 배가 무르면 아들이랍디다. 그렇지만 그 말이 맞는지 누가 알아요?” “
내가 어디 좀 만져보세.” “고만두세요” “불쑥 솟지 않아나 어디 만져보세.”
하고 이봉학이가 배를 어루만지는데 계향이가 못이기는 체하고 가만히 있었다.
“불쑥 솟지 않았네. 아들인가베.” “아들이든지 딸이든지 얼른 낳기나 했으면
좋겠는데. 상직할미말 들어선 어째 남의 달을 잡을 것 같아요.” “글쎄, 속히
순산해야겠는데 남의 달을 잡아서는.” 하고 봉학이가 말끝을 내지 않고 우물우
물하니 “하루바삐 순산하기를 나리가 속으로 조이시는 줄 나도 알아요.” 하고
계향이가 시름없이 말하였다. “만삭이 되니까 자연 마음에 조이지 안 조일 리
있나. 참말 아까 들으라던 이야기는 무슨 이야긴가?” “초저녁때 포도군사 두
서넛이 담 밖으로 돌아다니는 걸 아랫것들이 보았다는데 그게 혹시 좋지 못한
소식이나 아니겠세요.” “그런 근심은 말라니까 그래.” “근심이 절로 되는 걸
어떻게 해요.” “우의정 대감 형제분이 내 뒤를 봐주실 테니까 별 염려없네.”
“미리 구사또께 상소도 해두시고 우의정 대감께 말씀도 여쭤 두시는 게 좋지
않아요.” “글쎄.” “내 소견에는 속히 서울 한번 갔다오시는 게 좋겠세요.”
“그래 한번 갔다오까.” “아무쪼록 속히 갔다오세요.” “내일 가지.” “내일
길 떠나실 테면 좀 주무시지요.” “자네두 고만 자게.” 이봉학이와 계향이가
서로 지껄이기를 그치고 각각 잠을 청하였다. 이튿날 이봉학이가 안장마에 마부
하나만 데리고 서울길을 떠나기로 작정하여 마부가 안장 지운 말을 대문 밖에
있는 노둣돌앞에 내세웠을 때 포도군사 셋이 아래로부터 올라왔다. 앞장선 군사
하나가 먼저 마부에게로 쫓아와서 “누구 어디 가시나?” 하고 물으니 마부가
하기 싫은 대답을 억지로 “나리께서 서울 행차하신다우.” 하고 대답하였다. “
나리라니 별장 나리 말이겠지?” “그럼, 여기 별장 나리밖에 또 누구 있소.”
그 군사가 동무들과 같이 한옆에 가서 수군수군 공론한 뒤 동무 하나는 아랫길
로 도로 내려보내고 남은 동무 하나와 둘이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봉학이가
관속들을 뒤에 딸리고 밖으로 나오다가 중문턱에서 포도군사들과 마주쳤다. 포
도군사들이 문안 쳇것하는 것을 봉학이는 흘겨보며 “너희들 어째 왔느냐?” 하
고 물으니 군사 하나가 “나리 서울 행차하신답지요?” 하고 되물어서 “내가
서울 가는 게 너희들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뇌까렸다. “소인들이 부
장 나리의 전갈을 맡아가지고 왔습니다.” “무슨 전갈이냐?” “양주 도둑놈
꺽정이를 밤배루 건너주신 일이 탄로되었으니 조정 처분 내리시기 전에는 출입
을 못하십니다구 여쭈라구 하십디다.” 이봉학이가 포도부장의 전갈이란 것을
받고 한참이나 말을 못하고 입술만 깨물고 있다가 ” “너의 부장께 가서 나는
서울 갑니다구 답전갈해라.” 하고 말 한마디 겨우 하였다. “소인들이 올 때 부
장 나리께서 따루 분부가 기셨습니다.” “무슨 분부냐?” “나리께서 고집세우
구 떠나시거든 떠나신 뒤에 안으서를 잡아가지구 오라구 분부하십디다.” “너
의 부장이 누구를 잡아오래! 이놈들아, 조정 처분이면 모르까 너의 부장 맘대루
누구를 잡아가! 내 첩은 고사하고 내 수하에 있는 하인 하나두 못 잡아간다. 이
놈들, 정갱이를 분질러놓기 전에 어서 가거라!” 봉학이는 펄펄 뛰며 호령하는데
“소인들은 형장 맞을 죄가 없습니다.” “소인들을 왜 호령하십니까?” 포도군
사들은 유들유들하게 말대답하였다. 이봉학이가 뒤에 섰는 관속들을 돌아보며
“저놈들을 몰아내라.” 하고 분부하여 관속들이 포도군사를 등 짚어 몰아낼 때
포도군사 하나가 머리를 돌이키고 “나리가 떠나시기만 하면
안으서는 잡아갈 줄 압시오.” 하고 큰소리를 질렀다. 이봉학이는 분이 속에 복
받쳐서 눈앞이 캄캄하여지며 선 자리에 쓰러질 것 같은 것을 중문 설주를 짚고
간신히 진정하였다. 봉학이가 관속들의 부축을 받고 도로 방으로 들어왔을 때
관속 하나가 앞에 와서 “안으서님께서 갑자기 복통이 나셔서 정신을 못 차리신
답니다.” 하고 고하여 의원을 부르러 보내고 안에 들어와 보니 계향이는 정신
없는 중에 “나리 서울 갔다오세요, 서울 갔다오세요” 하고 군소리하듯 중얼거
렸다. 계향이가 약을 연복으로 두서너 첩먹고 밤늦도록 신고한 뒤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만삭아이라, 아이는 충실하나 산모가 정신을 잃고 늘어져서 첫국밥도
먹지 못하였다.
임꺽정이의 종적을 탐지하러 임진에 내려온 포도부장이 봉학이의 죄상을 정확
히 안 뒤에 포도청에 보하고 일변 포도군사들을 시켜 동정을 살피게 하였었다.
포도부장이 데리고 온 군사들에게 번하번으로 별장의 집 근처를 돌라고 분부할
때 유년 포교질에 집이 난 군사가 “별장이 혹시 눈치채고 도망할 때는 어떨게
하오리까?” 하고 물어서 “조정 처분이 내리시기까지 손댈 수는 없으니 너희가
알아서 수단대루 도망하지만 못하게 해라.” 하고 부장은 말을 일렀었다. 수단대
로 하란 부장의 말을 들어 둔 까닭에 포도군사들이 봉학이를 서울 가지 못하게
막을 때 부장에게 통기하고 어주(위조) 전갈과 거짓 분부로 봉학이를 공동한 것
이었다. 봉학이가 그 공동을 받고 겁이 나서 서울 못 간것은 아니로되 포도군사
로 보면 성공이지 실패가 아니었다. 계향이가 산후에 이내 기진맥진하여 그날
밤은 자몽한 채 지내고 이튿날 새벽부터 비로소 정신기가 돌아서 아침때쯤은 갓
난애 얼굴을 들여다보며 웃음도 머금고 미역국 그릇을 받아서 국물도 마시게 되
었다. 봉학이는 안에서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에 나가 누워서 한숨 자는 체하고
다시 안에 들어와 보니 계향이가 갓난애를 옆에 끼고 누워 있었다. “어느 새
젖을 먹이나?” 하고 봉학이는 모자를 내려다보며 싱그레 웃고 섰는데 계향이가
치어다보며 “서울 안 가세요?” 하고 물어서 봉학이는 안 간다는 대답으로 고
개를 가로 흔들었다. “왜 안 가세요?” “차차 가지.” “차차 언제?” “언제
든지 가지.” “내가 잡혀갈까 보아 안 가세요?” “누가 미친 놈들의 말을 곧
이 듣구 안 가겠나.” “오늘이라도 가서 다녀오시지요.” “고만두게. 내가 알
아 할 테니.” 이봉학이가 곧 계향이 앞에 와 앉아서 “우의정 대감께 미리 여
쭙지 않더라두 뒤를 안 봐주실 리가 없으니 염려 말게.” 하고 소곤소곤 지껄
였다. 봉학이가 한동안 삼방에 있다가 밖으로 나온 뒤 얼마 아니 있다가 관속
하나가 마당에 들어와서 국궁하여 말을 아뢰었다. “평안도에서 올라오시는 김
판서 대감 행차가 오늘 점심때 나루를 건넙신다구 소문이 왔소이다.” “그럼
우리 큰배 두 척만 건너편에 가서 등대하구 있으라구 지휘해라.” “지금 점심
때가 거의 다 되었소이다. 나리께서두 곧 건너갑시지요.” “오냐, 큰배부터 건
너보내라구 일러라.” 큰배가 건너간 지 한동안 뒤에 봉학이가 관복을 갖추고
작은 배를 타고 나루를 건너오니 김판서 행차의 전배가 벌써 강가에서 바라보
이었다. 평안감사 김명윤이 경직으로 옮아 상경하는 길이라 요여와 사인교와 장
독교와 보교들로 배 두 척이 거의 다 차고 배 두어 척이 더 있어도 다 싣지 못
할 만한 부담마와 복마들이 뒤에 남게 되었다. 배가 한번 다시 갔다왔다 하는
동안 길이 더디어서 김명윤이 이봉학이를 사인교 앞에 불러세우고 거행 불민하
다고 중책하였다. 진군들과 백성들의 눈앞에서 봉학이가 곤욕을 당할 때 창피하
고 분한 것을 참고 “황송하외다.” “죄만하외다.” 하고 사과하였으나, 속에
처진 불쾌한 마음은 좀처럼 사라지지 아니하여 별장청에 돌아온 뒤 관속들을 물
리고 방문을 닫히고 드러 누었는데 말없이 윗간 방문을 여는 사람이 있어서 “
그게 누구냐?” 하고 소리를 꽥 질렀다. 의관이 분명한 깎은 선비 하나가 이봉
학이의 누워 있는 앞으로 나서는데 그 선비가 뜻밖에 황천왕동이라 봉학이는 말
문이 막히어서 자리에 일어 앉은 뒤 한참 만에야 비로소 “이게 웬일인가?” 하
고 말을 내밀었다. 황천황동이가 이봉학이의 놀라워하는 눈치를 보고 적이 웃으
면서 아랫목에 내려와 앉을 때 봉학이는 “밖에서 아무도 본 사람이 없나?” 하
고 물으며 곧 앞미닫이를 활짝 열어놓았다. “마침 밖에 아무도 없기에 그대루
막 들어왔소.” “대체 어째 왔나?” “서울 가는 길이오.” “서울은 어째 가
나?” “소문 좀 들으러 가우.” “이 사람아, 지금이 어떤 판인 줄 알고 나섰
나. 포교들이 길가에 널렸네. 사람들이 대담해두 분수가 있지 않은가. 공연히 서
울 갈 생각 말구 도루 가게.” “포교가 나를 어쩌겠소. 아까 이 나룻가에 와서
두 기찰을 당했지만 시임 황해감사 신희복의 삼종질 신생원에게 저희가 고개나
숙였지 별 수 있소.” “자네가 신생원 행세하나 만일 얼굴 아는 사람을 만나면
탈 아닌가?” “양주읍에 들어서기 전엔 내 얼굴을 알 놈 없소.” “지금 포도
군사들이 내 신변에 눈을 쏘구 있는 중일세. 내게 오래 앉았는 것이 불긴하니
곧 가게. ” “곧 가겠소. 그런데 내가 들은 말이 있어서 참말인지 아닌지 잠깐
물어보러 왔소.” “무슨 말인가?” “어제 서울 가려다가 포교들에게 붙잡혀서
못 간 일이 있소?” “그런 소리 날 만한 일이 있었네.” “밤배를 내준 일이
발각되었다는구려.” “그런 모양일세.” “그럼 탈 아니오. 내 생각엔 진작 우

같이 피신하는 것이 상책일 것 같은데 의향이 어떻소?” “그렇게까지 안 허드
래두 내 일은 펴일 수 있을 델세.” “그러면 작히 좋겠소. 그러나 아까 사인교
앞에서 욕 당하는 걸 보니까 벼슬이 좋은지 모르겠습디다.” “말 말게. 속 상하
네.” “그 기구 있는 일행이 어제 청석골을 지나왔소.” “왜 가만두었나?” “
의논이 서루 맞지 않아서 그대루 곱게 보내는 갑디다.” 관속 하나가 들어와서
서울서 사람이 왔다고 거래하여 봉학이가 그 관속을 내다보며 “웬 사람이 어째
왔다더냐?” 하고 물으니 “그건 물어두 잠깐 보입겠다구만 말씀하옵디다.” 하
고 관속이 대답하였다. “불러들여라.” 이학봉이가 분부하여 관속이 도로 나간
나간 뒤에 황천왕동이는 “나는 가겠소.” 하고 곧 일어서 나갔다. 이봉학이가
밖을 내다보고 있는 중에 서울서 왔다는 관속이 데리고 들어오는데 그 사람은
서울 있을 때 낯이 익은 이의정댁 하인이라, 봉학이가 반겨서 먼저 “자네 어째
왔나?” 묻고 뒤미처 또 “대감마님 문안 안녕합시구 댁네에 별고가 없으신가.
?” 뒤의 말을 먼저 대다하고 나서 “풍덕이 사는 소인의 삼촌이 죽어서 통부
받고 가는 길이온데 댁의 늙은 청지기가 이 편지를 갖다 드리라구 부탁해서 잠
깐 들렀습니다.”
먼저 말은 나중에 대답하고 조그만 편지봉을 뒷마루에 올려놓았다. 봉학이가
팔을 늘이어서 그 편지를 집어다가 뜯어보니 그 속에 든 편지란 것이 스스로 자
머리 수 진서글자 두 자 적힌 쪽지이었다.
이봉학이가 쪽지편지봉을 뜯어보니 전엔 부의 주란 부탁 펴지러니 생각 하였
다가 생각 밖의 두 글자에 얼굴빛까지 달라졌다. 툇마루 앞에 섰던 하인이 봉학
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슨 좋지 않은 기별이오니까.?” 하고 물으니 봉학이
는 진정으로 “아니아.” 하고 대답하였다. “저는 곧 물러갈랍니다.”“이왕 왔
으니 하루 묵어가지.”“오늘 장단 가서 자구 내일 일찍 풍덕을 대어 가겠습니
다.”“풍덕을 내일 가야 해?”“사촌이 아직 미거한 까닭에 가서 장사지낼 마
련을 해주어야 할테니까 한 시각이라두 일찍 가봐야지요.”“ 오, 참말로 누가
죽어서 푸덕을 간댔지?” “아비의 동생 친삼촌입니다.”“ 내가 부의를 좀 할
테니 잠깐만 기다리게.”하고 봉학이가 관속을 불러서 “ 안에 무명이 있을 테
니 한 필 달래서 저 사람 주어라.” 하고 분부하였다 그하인이 솔직하고 관속과
같이 밖으로 나간 뒤에 봉학이는 다시 두 자 편지를 집어들고 종이를 뚫어지도
록 들여다보며 “자수 자수.” 학 입속으로 옮기다가 홀저에 “옳지, 우의정 대
감께서 시키셨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끄더하였다. 늙은 정치가로는 죄가 있고
없는 것도 아직 알지 못하려니와 설혹 알더라도 죄를 자수하라고 자수 두자를
써보낼 의사가 나지 못할 것이라, 우의정 대감께서 시킨 것이 틀림없다고 봉학
이는 생각하였다. 봉학이가 금부에 가서 자수하기로 마음을 먹고 곧 이날 저녁
때라도 상경하고 싶었으나 한번 금부에 가서 갇히면 언제 나오게 될지 조만을
모르는 까닭에 뒷일을 처리하지 않고 불시에 일어서기가 어려웠다. 우선 계향이
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가면 갓난 핏덩이를 데리고 갈 바가 없어 고생할 것이라
시골 서울간에 몸 붙여 있을 곳을 정해주어야 할터인데 마땅히 생각나지 아니하
였다. 계향이의 말을 들어보려고 봉학이가 안에 들어와서 해산 구원하는 할미와
다른 계집하인을 밖으로 내보내고 서울서 온 기별이 곧 우의정 대감의 분부인
것을 자세히 이야기한 뒤에 “나는 금부에 가서 자수하면 우의정 대감께서 뒤를
봐주실 테니까 아무 걱정이 없지만 자네 일이 걱정일세. 내가 금부에 갇혀 있는
동안 자네가 갓난 것을 데리구 어디 가서 붙여 있으면 좋겠나?” 하고 의논하니
계향이는 미리 생각해둔 것처럼 조금도 서슴지 않고 “서울 가서 있을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서울 가서 어떻게 있어. 그래두 교하 외삼촌에게 가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나는 교하가 싫어요.”“그러니 서울 가서 지낼 수가 있어야
지.” “구사또댁에 가서 간청하면 몸담아 있을 방 한 칸이냐 얻어주시겠지요.”
“방만 있으면 사나.” “서투른 바느질품이라도 팔지요. 그런 건 걱정 마세요.
” “아무리나 하게. 그럼 나는 내일이라도 먼저 서울루 가겠네.” “나도 같이
가요.” “자네야 내일 어떻게 가나.” “어린것을 폭 싸서 안고 승교바탕 타고
가지요.” “죽다 살아난 산모가 삼두 안 나간 핏덩이를 어떻게 길을 간단 말인
가.” “나리가 내일 가서 자수하시면 나도 며칠 안에 여기서 쫓겨나게 될 테지
요. 며칠 있다가 근두박질해서 쫓겨나가느니 나리와 같이 가는 것이 좋지 않아
요.” “그럼 교하 외삼촌을 청해다가 자네를 맡기구 감세.” “싫어요. 나리 따
라갈 테요.” “내일 삼이나 나간 뒤에 다시 의논하세.” “다시 의논할 것도 없
이 내일 같이 떠납시다.” “그렇게 아주 떠나자면 여기서 뒤를 맡겨놓구 갈 일
구 더러 있으니까 어짜피 내일은 못 떠나겠네.” “내일 못 떠나면 모레 떠납시
다.” “같이 가서 임시 갑접이라두 시켜놓구 자수했으면 나는 아즈 한 시름을
잊겠네만 자네가 무사히 길을 갈 수 있을까.” “염려 마세요. 남들은 해산하고
곧 일어나서 국밥까지 끓여먹는데 가만히 타고 가는 것이 어때요.” 계향이가
고집을 세우는 바람에 이봉학이도 데리고 갈 의향이 많아졌다.
이튿날 이봉학이가 임진을 떠날 준비로 뒷일을 처리하는 중에 파주읍에서 우
병교가 나와서 시각 지체 말고 대령하란 군령을 전하니, 이는 곧 파주목사가 군
령을 놓은 것이었다. 이봉학이가 인궤 외에 중요한 문부까지 다 가지고 병교를
따라서 읍으로 들어갔다. 파주목사가 병마수군동첨절제사의 위의를 갖추고 이봉
학이를 불러들여서 양주 도적 꺽정이를 밤재로 건어주었다는 것이 어찌 된 일이
냐고 사문하는데, 경기감영과 병조의 관자들을 내보이며 일이 벌써 감영뿐 아니
라 조정에까지 드러났으니 일호 기만할 생각을 두지 말고 자복하라고 어르오,
또 전후 사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세세히 자복하면 죄가 경감되도록 보하여
주마고 달래었다. 이봉학이가 어르는 걸 겁내서 말할 사람도 아니요, 또 달래는
걸 믿고서 말할 사람도 아니나 자기의 지은 죄를 자수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라
꺽정이와 형제같의 친한 것부터 꺽정이를 밤배로 건네 준 것까지 전부 다 토설
하였다. 목사가 이봉학이의 초사를 다 받은 뒤에 관원으로 천만부당한 짓을 하
였다고 꾸짓고 임소에 가서 처분이 다시 내리기를 기다리라고 일렀다. 이봉학이
가 서울 올라와서 금부에 자수하겠노라 말하고 가지고 온 인궤롸 문부를 맡아달
라고 목사께 바치니 목사가 첨음에는 “어디루 도타할 생각이 있으서 갖다 맡기
는 것이 아닐까,” 말학 받지 않다가 “도타하려면 인궤나 문부나 다 내버리고
도차하옵지 맡아줍시사고 가져올 리가 있습니까.” 이봉학이의 사리 바른 말을
듣고 비로소 받아주었다. 봉학이가 파주읍에서 나오는 길에 나루에 뫄서 묵는
포도부장을 찾아보고 꺽정이를 밤배고 건네준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 뒤에 금부
에 자수하던 내일 상경하겠다고 말하니 부장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금부에 자
수하러 가는 사람이 안식구는 왜 데리구 가시우. 안식구두 자수시킬 죄가 있소?
” 하고 빈정거려 말하였다. “안식구를 여기 내버려 두면 뒤에 돌보아 줄 사란
미 없으니까 아주 서울 데리구 라서 방 한 칸이라두 얻어서 전접을 시키구 자수
할 생각이오.” “생각을 빈틈없이 잘 하셨소.” “내말을 거짓말루 들으시는 것
같으니 그건 사람 대접이 아니오.” “거짓말을 참말이라면 참말이 되구 참말을
거짓말이 되우. 그러구 우니는 사람을 볼 때 죄인으루 보는 버릇이 있어서 사람
대접을 잘할 줄 모으니 과히 책망 마시우.” “그럼 내가 철가도주나 하는 줄로
아시우?” “철가도주하실 리가 만만 없더라두 우리는 철가도주를 못하도록 방
비하지 않을 수 없지요.” “방비는 어떻게 하실 작정이오?” “내일 보면 아시
지요.” “내일 떠날 때 기별해 주리까?” “그러실 것 없소. 안식구까지 데리구
가실 작정은 언제 우리게 기별해 주셨소?” “미리 말씀 한마디 해둘 것은 요전
같이 떠날때 군사를 보내서 간다 못 간다 하진 마시우. 그러면 자연 좋지 못한
광경이 날 것이오.” “그런 일은 없을 테니 염려 마시우. 내가 군사 몇 놈 데리
구 서울까지 배행해다 드리리다.” “같이 가는 것은 나두 좋소.” “좋지 않다
고 하셔두 우리는 안 갈 리 없소.” “잘 알았소. 내일 만납시다.” 이봉학이가
포도부장에게 별장청으로 온 뒤에 곧 관속들을 매보내서 걸구를 서너 마리 사다
잡고 막걸리를 수십 동이 사다가 걸러서 육십여 명 진군을 풀어 먹이었다. 수족
같이 부리던 진군들을 작별 않고 떠마기가 섭섭하였던 것이다.
임진 내려온 포도부장이 이봉학이의 죄상을 탐지하여 포도청에 비밀히 보한
뒤 포도대장이 위에 아뢰어서 처음에는 처음에는 위에서 파주목사를 시켜 별장
의 죄지 유무를 사문하라고 처분을 내이었엇는데, 이량이 이것을 알고 편전에
입시하였을 때 “별장의 죄상이 기위 입문까지 되온 바엔 바로 금부에 압상하와
엄형으로 국문하옴이 마땅하올 줄 아뢰오.” 하고 위에 주달하여 마침내 임진별
장 이봉학을 구격나래하란 전교가 금부에 내리게 되었다.
금부에서 전교를 받자온 뒤 금부도사는 서울서 새벽떠나 임진으로 이봉학이는
아침때 임진서 떠나 서울로 올아오는데 이봉학이의 일행은 이봉학이 탄 부담마
와 계향이 탄 승교마당 외에 하인 하나와 짐꾼 하나뿐이라 실상 초솔하기 짝이
없건만, 포도부장이 포도군사 삼사 명을 데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이 오는
까닭에 속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기구 있는 행차보다 도리어 부시부시;하여 길
을 잡기전에 오고가는 사람들이 미리 미리 길을 비키었다. 이봉학이의 일행이
파주읍을 지나서 두마니를 채 목미쳐 왔을 때 서울서 내려오는 금부도사의 일행
과 노상에서 서로 만났다. 그 일행보다 몇 걸음 앞서던 포도부장이 도사의 말
앞에 가서 수어 인사수작을 마치고 “어딜 가십니까?” 하고 물으니도사가 말
위에서 “임진 가우.” 하고 대답하였다. “별장을 잡으러 가십니까?” “그렇
소.” “별장이 지금 서울 가는 길입니다. 저기 부담마 탄 사람이 별장이구 승교
마당 탄 사람이 그 소실입니다.” 도사가 부장의 말을 듣고 곧 나장을 돌아보며
“저것이 임진별장이란다. 어서 가서 잡아내려라.” 하고 분부하였다. 이봉학이
는 나장.나졸 들이 와서 내려라 마라 하기전에 황망히 말에서 뛰어내렸다. 도사
가 이봉학이를 잡아다 말 앞에 꿇리고 자기도 말 위에서 내려와서 전교를 일러
들린뒤에 곧 격식대로 의관을 벗기고 줄을 지웠다.
금부도사는 임진가서 임진 가서 하룻밤 숙소하려고 예정하였던 것인데 의외로
중로에서 이봉학이를 체포하게 되어서 예정을 변경하여 고양읍을 숙소참 대고
회정하였다. 도사가 봉학이를 보고 “고양읍에 가선 집교보를 변통해서 태워
주까?” 하고 묻는 말에 “서울까지 걸어가두 좋소이다.” 이봉학이는 대답하고
갖신 벗고 미투리 신고 나졸 군사들과 같이 걸었다. 이봉학이가 오랏줄 지우고
길을 걷는 것이 생외의 처음이라 마음의 창피한 것과 몸의 거북한 것이 이를 데
없으나 자기의 창피하고 거북한건 오히려도 여차이고, 계향이의 소리없이 우는
꼴이 차마 보기 어려웠다. 계향이가 처음에는 구상전 만난 종의 자식같이 정신
없이 떨기만 하다가 떠는 것이 진정되면서부터 두 눈에 눔물이 샘솟듯 하는 것
을 씻다 모하여 치맛자락으로 멀굴을 통히 가리었다. 그러지 않아도 부서부석한
계향이의 눈두덩이 얼마 동안 안 지나서 퉁퉁히 부어 올랐다. 이봉학이가 자주
뒤를 돌아보다가 계향이의 눈과 마주칠 때 울지 말라고 눈짓하면 계향이는 고개
를 끄덕이면서도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금치 못하였다.
두 일행이 한데 합한 뒤에 포도부장은 포도군사들을 데리고 앞을서고 나장.나
졸 들은 이봉학이를 데리고 또 금부도사는 말을타고 중간에 들고 계향이의 승교
마당과 봉학이의 데리고 온 하인짐꾼은 뒤에 따랐다. 해지기 전에 고양읍을 대
어오령고 금부도 사가 길을 재촉하여 두마니와 밖화산 길목과 인화산 길목을 얼
른 지나서 동거리를 향하여 오느 중에, 아이놈 하나도 데리지 아니한 선비 한
사람이 이편을 바라보고 오다가 홀저에 돌쳐서서 오던 길로 도로 가는데 번쩍번
쩍 걸어가는 걸음이 예사 달음박질로 따라 가기 어려울 만큼 빨랐다. 앞에 선
포도군사들이 “지금 가는 삼람 걸음 빨레.” “축지하는 사람인가베.” “양주
꺽정이의 처남 황가놈이 걸음이 유난히 재다든데 혹시 그 놈이 아닐까.” “그
런지두 모르지. 쫓아가 볼까?” “벌써 어디 갔는지 모르는걸, 쫓아가면 붙들겠
나.” 하고 지껄이는 말을 봉학이가 귓곁에 듣고 “천황동이가 서울을 다녀오다
가 포도군사들을 보구 어디루 피한게로군.” 하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분수니를
건너고 양짓말을 지나고 고골길목을 지나서 바라보고 올라오는데 길에 행인도
없고 산에 나무꾼도 없고 다만 길가 나무 위에 까막까치들만 지저귀었다. 금부
도사가 말 위에서 서산에 가까운 해를 치어다보며 “잘못하면 해 진 뒤에 들어
가기 쉽겠다. 얼른 고개를 넘어가자.” 나장들을 재촉하고 나장들이 “앞에서 좀
더 빨리들 가세.” 하고 포도군사들을 재촉하여 혜음령 밑에 다 왔을 때 고개
중턱에 사람 서넛이 뭉쳐 섰는 것을 보고 포도부장이 수상하게 여기어 뒤에 오
는 일행을 잠깐 정지시키고 포도군사들만 먼저 올려보냈다. 포도군사들이 사람
들 섰는 곳에 가까이 오자, 그중에 한 사람이 손에 굵은 몽둥이를 짚고 몇 걸름
앞으로 나서서 “이놈들아, 너희놈들이 포도청에서 낮잠이나 자빠져 자지 왜 여
기까지 나와 올아다니느냐!” 하고 바로 호령하듯이 말을 붙혔다. 포도군사들이
제잡담하고 꽁부니에서 방망이를 뽑아들고 “으악!” 소리를 지르며 쫓아들어가
니 그 사람은 조금도 황겁한 기색이 없이 짚었던 막재를 들어서 방망이를 막는
데 방망이 너덧개가 몽둥이 하나를 당치 못하였다. 포도군사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는 중에 포도 부장이 칼을 빼어들고 쫓아올라왔다. 포도부장이 군사들을
한옆으로 비키고 몽둥이 든 자를 향하여 “너희가 웬놈들이냐?” “우리가 어떤
사람인 걸 알구 싶으냐?”“우리는 고개 임자다.” 하는 대답이 나왔다. “고개
임자란 게 무어냐, 이놈아!” “고개를 넘어다니는 행인에게 고갯세를 받는 사람
이다. 너희두 고개를 넘어가려거든 세를 갖다 바쳐라.” “쥐새끼 같은 도둑놈이
무얼 믿고 큰 소리냐!” 하고 몽둥이를 든 자가 한편 주먹을 내 보이니 “잘 믿
었다. 칼 좀 받아봐라.” 하고 부장이 칼을 두르며 달려들었다.
몽둥이가 워낙 칼과 맞서기 어려운데 더욱이 칼은 법수 있고 몽둥이는 함부로
라 몽둥이가 칼앞에 절쩔매었다. 산더미로 정수리를 누르는 듯 칼이 위에서 내
려오고 풀 헤치고 뱀을 찾는 듯 칼이 아래로 나와서 몽둥이가 칼을 막느라고 위
아래로 을지 갈지 하다가 그자가 몽둥이를 내던지고 고개위로 도망할 때 뒤에
섰던 자들은 앞서 뛰어올라갔다.
“너희들은 구경하구 섰느냐! 빨리쫓아올라가자.” 부장이 군사들을 몰고 셋의
뒤를 쫓아서 고개 마루턱으로 올라오자, 먼저 올라간 셋이 서낭의 돌무더기를
헐어서 돌을 던지는데 그중의 하나는 물박 같은 큰 돌덩이를 핑핑 내던졌다. 부
장이 돌을 무릅쓰고 오라갈까 피하여 내려갈까 잠깐 주저하는 동안에 군사 하나
가 면상을 돌에 맞고 "아이쿠!“ 하고 소리를 질럿다. 부장이 소리지르는 군사를
돌아보다가 앞에 떨어지는 큰 돌덩이에 발등을 짓찧고 펄적 주저앉았다. 옆에
가까이 섰던 군사가 쫓아와서 얼른 부장을 붙들어 일으키며 아래로 내려가자고
말하니 부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떡이었다. 군사하나는 부장을 부축하고 앞서고
군사 둘은 상한 동무 군사를 양쪽에서 붙들고 뒤를 다라서 급한 걸음으로 몇 간
동안 내려왔을때 뒤에서왔을 때 뒤에서 "이놈들 게 섰거라! " 고성이 들리며 아
까 몽둥이 들었던 자가 두 손으로 돌덩이 하나를 치어들고 좇아오는데 그 돌덩
이는 크기가 조그만 집 주춧감이 될 만하였다. 군사들이 흘끔흘끔 뒤를 돌아보
며 아래로 뛰어가려고 하는데, 부장은 담기가 달라서 부축하는 군사까지 옆으로
치우고 돌아서서 칼을 바로 잡았다. 그자가 부장을 노리고돌덩이를 내던져서 부
장이 자칫하면 얻어맞을 것을 날쌔게 가로뛰어 피하였다. 그러나 지덕은 험한데
짓찧인 발에 힘이 없어서 한편으로 쓰러졌다. 부장이 몸을 일으키려고 할 즈음
에 그자가 뛰어오며 곧 발길로 칼 잡은 팔을 걷어차서 칼이 손에서 떨어졌다.부
장이 몸을 일으킬 사이 없이 그자가 연거푸 발길로 차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나중에 한번 몽굴러 차서 산골창으로 떼굴떼굴 굴러내려갔다. 여러 군사들이 부
장을 돌보지 못하고 고개 밑으로 도망하는데 그자가 부장의 칼을 주워들고 뒤에
서 쫓아왔다.
고개 위에 화적이 난 것 같다고 포도부장이 칼을 빼들고 쫓아올라간 뒤에 금부
도사는 생각하기를, 포도군사 서너 명이 갔고 포도부장까지 갔으니 화적 몇 명
쯤 쥐잡은 듯 하려니 태평 마음을 놓고 말에서 내려서 길가에 앉아 있었다. 한
동안이 착실히 지나도록 포도청 패가 돌아오지 아니하여 도사가 나장. 나졸을
돌아보며 “어째들 이렇게 아니올까. 너무 오래 지체가 된다.” 하고 말하니 나
장이 하나는 “글세올씨다. 너무 늦소이다.“ 하고 도사의 입을 따라서 대답하는
데 나장이 하나는
“아마 도둑놈들이 도망질치니까 뒤쫓아갔는가 보오이다.” 하고 대답한 뒤 제
가 가장 요량이나 잘한 듯이 곤댓짓까지 하였다. 도사가 화가 나서 “그래 우리
더러는 여기서 기다리라고 해놓고 무작정 어디까지 쫓아간단 말이냐!”그 나장
이를 포도부장인 듯이 책망하고 “더 있다간 여기서 해 지겠다. 고개 넘어서 벽
제까지 가기전엔 홰를 잡힐 데도 없다. 화적을 잡거나 수적을 잡거나 우리겐 아
랑곳없으니 우리만 먼저 가자.” 여러 사람들을 다 일으켜 세웠다.도사가 다시
말에 올라 앉을 때 고함치는 소리와 악스는 소리가 풍편에 가까이 들려서 고개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중에, 창과 몽치를 든 자 십여명이 뒤에서
풍우같이 몰려오며 곧 도사와 나장들에게 대들어서 창으로 찌르고 몽치로 조기
는데 이봉학이가 창든 자 하나를 바라보고 소스라치도록 놀래었다. 황천동이가
양반의 의관을 벗어버리고 다른 자들과 같이 머리를 질끈 수건으로 동이고 창을
들고 납뒤었다. “이 사람아 이게 웬 짓인가?“ "이 사람 이리좀 오게.” 이봉
학이가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지르니 황천왕동이가 창을 멈추고 돌아보며 “잠
깐만 기다리우. 이놈들을 다 처치하구 이야기합시다.” 하고 대답하였다. “어서
이리 와서 내 말 좀 듣게.” “무슨말이오?” 황천왕동이가 이봉학이 앞에 와서
섰다. “저자들을 자네가 데리고 왔나?” “그렇소.” “사람을 상하지 말라구
이르게.” “저까짓것들 살려 보낼 것 무어 있소. 아주 요정들 내게 가만둡시다.
” “자네가 나를 다시 안볼테면 모를까, 그렇지 않거든 내 말대루 이르게.” 황
천왕동이가 마지 못하여 채수염 난 자 하나를 가서 보고 말을 일러서 그자들은
창질과 몽치질들을 그치고 말에서 떨어진 도사와 땅 위에자빠지고 엎드러진 나
장.나졸을 발가벗기고 상투를 풀어서 맞잡아매 앉히는데 봉학이가 데리고 온 하
인까지 도사의 하인으로 알고 발가 벗기어서 한테 앉히었다. 이 동안에 황천왕
동이는 봉학이의 오랏줄을 풀려고 하니봉학이가 밀막으며 “줄을 가만두구 이야
기부터 하게.이게 대체 왠 짓인가?” 하고 말하였다. “오라 푸르구 앉아 이야기
합시다.” “그대루 앉아 이야기하세.” “아따 고지식하게 굴지 마우.” 황천왕
동이가 이봉학이의 말을 듣지 않고 오랏줄을 풀러주었다. 이때 고개 위에서 도
망하여 온 군사들이 고개 밑에 광경을 바라보고 섰는 중에 칼든 자가 뒤에서 쫓
아 내려오며 “오냐 이놈들 게 있구나!” 하고 소리를 질러서 군사들은 다급하
여 고개 밑으로 뛰어 내려왔다. 여럿이 와 하고 대들어서 군사들을 붙잡아 앉힐
때 군사뒤를 쫓아오던 사람이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황두령 게 있
소?” 하고 소리 치니 황천왕동이가 치어다보며 “길두령인가? 어서 내려오게.
” 하고 마주 소리를 쳤다.
황천왕동이가 길두령이라고 부른 사람은 길막봉이다. 막봉이가 고개 밑에 내
려와서 봉학이에게 인사하고 나서 한옆에 모아 앉힌 발가벗은 사람들을 가리키
며 “저것들을 왜 죽여버리지 않았소?”하고 황천왕동이더러 물으니 천왕동이는
이봉학이를 한번 흘낏 돌아보고 “죽이면 좋겠는데 죽이지 말라네그려.” 하고
길막봉이의 말을 대답하였다. “저것들을 놔준대두 우리들 가기 전에 놔주지 못
하우.” “그러니 어떻게 처치했으면 좋겠나?” “글쎄.” 하고 길막봉이가 고개
를 비틀고 생각하다가 채수염 난 자를 바라보며 “상갑이, 이리 좀 오게.” 하고
불렀다. 길막봉이가 상갑이란 자를 데리고 잡아 앉힌 사람 처치할 도리를 의논
하는 중에 이봉학이는 황천왕동이를 불러가지고 어찌된 사단인 것을 물었다. “
내가 정신이 얼떨떨해서 모르겠네. 속시원하게 이야기 좀 하게.” “저것들을 다
처치해 놓구 이야기 합시다.” “대체 이 일을 형님이 시켰겠지?” “그렇소.”
“형님은 지금 어디있나?” “여기 오지 않았소.” 이봉학이가 또 말을 물으려
할 즈음에 길막봉이가 황천왕동이를 오라고 불러서 황천왕동이는 길막봉이 옆으
로 가고 이봉학이는 계향이의 승교바탕 앞으로 왔다. 계향이가 포대기로 폭 싼
간난애를 꼭 끌어안고 들여다보고 있다가 이봉학이가 가까이 왔을 때 얼굴을 조
금 치어들고 나직한 목소리로 “화적들이 우리를 구해 주러 왔지요?” 하고 물
으니 이봉학이는 입맛 쓴 모양으로 “우리를 구해 주러 왔는지 죽을 고루 몰아
넣으러 왔는지 나는 모르겠네.”
하고 대답하였다. “서울 가면 일이 어떻게 될까요? 덧거치지 않을까요?” “어
찌 덧거치지 않겠나. 잘못하면 죽기 쉽지. 그 핏덩이가 아마 나의 한세상 난 표
적이 될까베.” “중로에 적변당한 것이 죄될 것도 없겠지만 죄가 된다고 하더
래도 포도부장이나 금부도사에게 죄가 될망정 나리께 죄될 까닭이 무어요?” “
적변이 나 땜에 난 적변이니까 화적들의 죄까지 내가 홈빡 뒤집어쓰게 될 것일
세.” “그러면 화적들 따라 적굴루 가실지언전 서울은 기실 생각 마시오.” “
죽은 정승이 산 강아지만 못하다니 도둑놈이 되더라두 살아놓구 보잔 말인가?”
하고 이봉학이는 서글픈 웃음을 웃었다. 채수염 난 자가 여러 졸개 도적들을 데
리고 잡아 앉힌 군사들을 마저 옷 벗기고 상투 풀어 맞잡아 매는 동안에 고개
위에서 새로 둘이 내려오는데 채수염이 치어다보며 “여게 판돌이, 자네 부자는
고개 위에서 이때까지 무엇했나. 어서 빨리 내려오게.” 하고 소리쳤다. 둘이 고
개 밑으로 내려온 뒤에 채수염이 그중의 나이 먹은 탑삭부리와 몇 마디 이야기
하고 곧 졸개 도적들을 시켜 잡아 앉힌 사람을 모조리 잡아 일으켜세웠다. 이봉
학이는 이것을 보고 죽이려는 줄로 알고 황천왕동이를 와서 붙들고 “그에 다
죽일 작정인가?” 하고 시비하니 황천왕동이는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그럼
왜 잡아 일으켜세우나?” “여기다 그대루 두구 가면 벌거벗구 십 리 이십 리를
가서 고발할른지 모르니까 숲속 나무에 동여매 놓구 가기로 했소.” 이때 이봉
학이의 하인이 큰소리로 나리 나리 하고 불렀다. “내 하인은 왜 동여매나?”
“저 나리 찾는 것이 하인이오? 곧 빼노라겠소.” 황천왕동이가 가서 말하여 이
봉학이의 하인은 빠지고 도사와 나장과 나졸과 포도군사들은 모두 숲속으로 끌
려갔다.
해 진 지가 오래라 어둔 빛이 짙어져서 네댓 간 밖에 사람이 어렴풋이 보이게
되었다. 숲으로 간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만 들리고 형용은 보이지 아니할 때 뒤
에 남은 황천왕동이는 이봉학이와 같이 길가 풀섶에 주저앉아서 전후 곡절을
이야기하였다.
황천왕동이가 이봉학이를 찾아보던 날 서울로 가지 않고 청석골로 돌아가서 봉
학이의 신변이 위태한데 봉학이의 고집이 앉아 당하려고 하여 불구에 서울로 잡
혀가게 될 것을 일장 이야기하였더니 임꺽정이가 이야기를 듣고 곧 박유복이더
러 “우리 둘이 임진을 나가 보자.” 하고 말하여 박유복이도 “그래 봅시다.”
하고 대답하는데 옆에 있던 서림이가 나서서 “두 분이 가시면 이별장을 꼭 끌
고 오시겠소?” 하고 묻고 잼처 “이별장이 만일 끌려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
테요?” 하고 물으니 임꺽정이가 “숫제 우리두 같이 잡혀가겠소.” 하고 대답
하였다. “아무리 정분들이 여타 자별하시더래두 같이 잡혀가신다는 건 안될 말
씀이오.” “봉학이가 내 엉걸루 죽게 되지 않구 제 죄루 죽게 되었더라두 우린
가만히 보구 있을 수가 없소.” “그러니 이별장을 구해낼 도리를 생각합시다.”
“무슨 좋은 도리가 있소?” “찬찬히 생각하명 더 좋은 도리두 있겠지만 지금
언뜻 생각나는 걸루 말씀하면 이별장이 서울루 잡혀갈 때 중로에서 뺏어오는 것
두 한 계책이 될 듯하우.” “그렇게 하자면 우리가 미리 중로에 가서 지켜야
하지 않소?” “언제 잡혀갈지 모르구 여러 사람이 미리 가서 지킬 수도 없으니
황두령이 한번 서울까지 가서 자세한 소식을 알아오시면 좋겠소.” “천왕동이
가 갔다오기 전에 잡혀 올라가면 낭패 아니오?” “황두령이 걸음에 내일 하루
면 갔다오실 텐데 오늘까지 별장 노릇 하구 앉았는 사람이 설마 하루 이틀 동안
에 잡혀가게 되겠소” 황천왕동이가 서림의 말을 듣고 고개를 외치며 “일이 속
으루 벌써 잔뜩 곪았으니까 언제 밖으루 터질른지 모르겠소.” 하고 말하여 서
울 길목을 미리 와서 지키려고 지킬 자리를 의논들하게 되어서 혜음령 말이 났
을 때 길막봉이가 앞으로 나앉으며 “ 혜음령을 가서 지키려면 혜음령패를 불러
쓰는 것이 제일 편한데 그 패의 괴수 바눌티 정상갑이와 호랭잇골 최판돌이가
나하구 면분이 있으니 내가 내일 황두령하구 먼저 떠나서 화두령은 서울을 다뇨
오구 나는 정상갑이나 최판돌이를 가서 보구 여러분 오시기 전에 그 패를 모아
놓으면 어떻겠소? 황두령이 서울 왕래하는 동안에 만일 이별장이 잡혀올라가게
되면 그건 내가 담당하리다.” 하고 말하니 서림이가 길막봉이의 말을 좋다고
찬동하고 또 임꺽정이와 박유복이에게 서울 소식을 듣고 떠나라고 역권하여 이
튿날 길막봉이와 황천왕동이만 먼저 떠나게 되었었다. 천왕동이가 막봉이를 따
라서 바눌티 정상갑이 집에 와서 하룻밤 자고 밤들도록 술 먹은 탓으로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서울 가서 금부도사가이날 새벽에 떠난 소식을 듣고 곧 회정하여
청석골로 가는 길레 이봉학이가 묶여오는 것을 보고, 길막봉이에게 알리려고 급
히 바눌티를 와서 보니 정상갑이는 고골 너머 놀미 근처에 퍼져 있는 졸개들을
모으러 가고 최판돌이 부자만 막봉이 옆에 와서 있던 중이라 길막봉이는 먼저
판돌이 부자를 데리고 고개 위로 나가게 하고 황천왕동이는 놀미까지가서 상갑
이 외 십여 명 한 패를 몰고 뒤에 오게 되었던 것이었다.
황천왕동이는 총기 있는 사람이라 말들 한 것까지다 다시 옮겨가며 이야기 하
느라고 숲속에 갔던 사람들이 돌아온 뒤에사 이야기가 비로소 끝이 났다. 천왕
동이가 이야기를 마친 뒤에 “인제 우리와 같이 청석골루 갑시다.오늘 밤에 임
진 서 또 밤배를 탔으면 좋겠는데탈 수가 있겠소?” 하고 물으니 이봉학이는 “
밤배?” 하고 긴 한숨을 쉬고 나서 “그거야 될 수 있겠지.”
하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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