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의형제편 9

3학년2반 | 2022.01.09 07:34:31 댓글: 0 조회: 369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0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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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이봉학이를 놓친 죄로  금부도사는 삭탈관직 되고 포도부장은 병신 되고 
낙사 되고 나장과  나졸과 포도군사는 모두 결곤을 당하고, 또  한편 이봉학이를 
구한 공로로 황천왕동이와 길막봉이는 칭찬울 듣고 정상갑이와 최판돌이는 상급
을 받았다. 이것은  더 자세히 이야기할 것이 없는 일이고  이봉학이가 청석골로 
들어온 뒤 그 소실 계향이가  산후에 실섭한 까닭으로 바로 병들어 눕게 되어서 
의약을 짐작하는 서림이가 약을 써보았으나  병이 말을 듣지 아니하여 할 수 없
이 난데 의원을  구하여 들이게 되었는데, 박유복이의 처가 동네  산상골서 멀지 
아니한 허풍골 사는 허생원이 의술이 도저하단 말이 있어서 유복이가 장인 최서
방에게 기별하여  허생원을 데려오게 하였다.  허생원이 와서 계향이  병에 약을 
쓰기 시작하여 불과 몇 첩에 대세를 돌리고 그 뒤의 두어 제로 뒤탈도 없게
고치어 놓았다.
  청석골 두령들이 허생원을 붙들어 두려고 공론하고 구변 좋은 오가가 쓸 만한 
집도 치워 주고  온갖 살림도 차려조고 또 먹을  것도 대어 줄 것이니 청석골로 
반이하라고 입이 닳도록 허생원을 달래보았으나, 허생원은  허풍골을 떠날 수 없
다고 고집을 세워서  도로 내보내게 되었을 때  꺽정이가 도회청에 나와 앉아서 
허생원을 불러다 놓고  “들어올 때는 산 사람으로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죽은 
사람으루 “나갈 테니 그리  아우”하고 얼러메어서 허생원은 임꺽정이 말 한마
디에 움찔하여 다시는 나가겠단 말을 입밖에도 내지 못하였다.
  청석골 안에 집이 째이는 판이라 허생원을 반이시키는데 집이 마땅한 것이 없
어서 우선 졸개의 초막 하나를 치워주었다.  허생원은 약국집은 고사하고 두령들
의 살림집이 부족하여 집을 몇 채 더 짓기로 작정되어서 곧 역사를 시작하여 도
회청 뒤 빈터에 새 집 다섯 채를 이룩하였다.  새 집 역사가 손떨어진 뒤에 여러 
두령들이 공론하고 집들을 나눠 드는데, 오가는  식구가 단출하여 큰집이 쓸데없
다고 있던 집을  식구 많은 임꺽정이에게 내주고 새  집 중의 제일 번듯한 채로 
내려앉고, 박유복이는 오가의 새  집과 격장한 집에 와서 딴살림을 시작하고, 봉
학이와 허생원과 서림이도 각각  새 집을 한 채씩 들었다. 서림이는  그 동안 양
지 처가에 사람을  보내서 처자를 데려왔던 것이다. 황천왕동이는 꺽정이  집 근
처에 있는 묵은 집을 한 채 들고 배돌석이와 길막봉이는 전과 같이 도회청 좌우 
옆채에 들어  있고, 곽오주 역시 전이나  다름없이 등 너머 외딴집에  따로 가서 
있었다. 오주는 여편네와 담쌓은 사람이라 여편네가  없다고 꼬물도 쓸쓸할 까닭
이 없지마는 돌석이와 막봉이는  홀아비 살림이 쓸쓸하여 밤저녁에 두 홀아비가 
실없은 말로 서로 위로하는 때가 많았다.
  어느 날 달 밝은 밤에 돌석이와 막봉이가 꺽정이 집 큰사랑에 가서 놀다가 밤 
늦게 돌아와서 막봉이는  바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여보게, 달 
아래서 좀 거닐다가 가세”하고 돌석이가 붙들었다.  “밤이 늦었는데 졸리지 않
소?" "졸리면 거닐자겠나" "기집  생각이 또 간절하신 모양이구려" "자네는 기집 
생각이 없나?"  "젊은 놈이 기집 생각  없으면 변이지" "그럼 왜  나를 빈정거리
나?" "당신은 너무 과하니까"  "여보게, 우리두 어떻게 기집 하나씩 변통해 가지
구 살림을 해보세그려" "어디 마땅한 기집이  있어야지" "나는 기집이 없는 사람
이니까 새로 구해야 할 테지만 자네는 안해가  있지 않은가. 서장사처럼 사람 보
내서 데려오게 그려" "데려올 만하면 벌써  데려왔지 남의 훈수를 기다리겠소" "
무남독녀라 잘 내놓지 않거든 장인 장모까지 다 데려오게그려"  "그만 기집이 어
디 없어서  불천지위까지 맡아온단 말이오" "자네가  가끔 안해 말하는 걸  보면 
옛정을 잊지 못해하며 딴소리 말게" "기집 낯짝은 별루  보잘것없어두 속살은 좋
게든" "그 따위 소리 하지 말게. 그러지 않아두 맘이 싱숭생숭해 죽겠네" "달 아
래서 밤을 새두 월궁선녀는 안 내려올 테니 고만 들어가  잡시다" "자네 먼저 들
어가 자게. 좋은  꿈을 꿀라거든 왼손은 가슴 위에 얹구  자게”하고 배돌석이가 
하하 웃었다. 길막봉이가  방으로 들어간 뒤에 돌석이는 한동안 마당에  서서 달
도 치어다보고 그림자도 내려다보고 하다가 홀저에 무슨 맘을 먹고 대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돌석이가 도회청 대문 밖에 나서며  곧 앞산 밑에 있는 조그만 초막으로 발길
을 향하였다. 그  초막에 들어 있는 졸개는  앞산 파수꾼 김억석이니, 본래 풍덕 
양반의 집 비부로서 자식들을  종노릇시키지 아니하려고 계집 자식을 데리고 양
반의 집에서 도망하여 처음에는 강음촌에 와서 숨어 살다가 종말에 청석골로 들
어 오게된 사람이다. 억석이가 청석골 들어온 뒤에  계집은 죽고 지금 남은 식구
는 딸과 아들 남매뿐인데 딸은 과년한 처녀요,  아들은 누이보다 나이 훨씬 치지
하여 아직 콧물 흘리는 아이였다. 배돌석이가 초막  방문 앞에 와서 “억석이 억
석이?”하고 불렀다. 억석이는 밤번 파수를 보는 중이라  산 위 파수막에 올라가
서 짝패 하나와 둘이 밤을 돌려 새우느라고 집에서 자지 아니하였다.
  사산파수제도가 그 동안 일신하게 작정되어서 사방 산 위에 파수막이 있고 파
수막 하나에 사람이 다섯씩 매어  있는데 다섯 사람 중의 넷은 그저 파수꾼이요 
하나는 파수꾼의 패두인데, 파수꾼 넷은 둘씩 짝패를  지어서 한 패가 낮번을 들
면 한 패는 밤번을 들되 낮번과 밤번을  선보름 후보름으로 서로 돌리고, 패두는 
번에 빠지는 대신에 낮이고 밤이고 하루 몇 차례씩 올라가서 파수꾼의 잘잘못을 
돌보고 그 위에는 사산 파수를 총찰하는 두령이 있어서 파수꾼의 군호를 날마다 
정하여 주고 또 파수꾼과 패두의 상벌을 맡아  보았다. 배돌석이가 이태 동안 내
리 사산을 총찰하여 오는 까닭에 파수꾼의 식구들을  거지반 다 알고, 또 파수꾼
의 번차례를 대개 다 짐작하였다. 억석이가 밤번인  것을 짐작 못하고 온 사람이
라도 자꾸 불러서 대답이 없는  것을 보면 짐작이 나서련만 배돌석이는 대답 없
는 것을 헤이지 않고 “억석이 억석이?”하고 부르다가 나중에는 방문까지 두들
겼다.
  얼마만에 방안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고 다시 한참만에 방문이 부스스 열리며 
억석이 딸인 처녀가  내다보며 “파수막에 밤번 들러  갔습니다”하고 말하였다. 
배돌석이가 갑자기 수줍어져서 공연히 입맛을 다시며 “아직도 밤번이든가?”하
고 혼잣말하니 “무슨  급한 일이면 잠깐 불러오리까?”하고 처녀가  물었다. “
파수 선 사람을 불러올 것은 없다" "그러면 새벽에 교대  주고 내려오거든 곧 가
서 보이라고 말하오리까" "급히  물어볼 말이 있는데 네 어른 대신에  네게 물어
봐두 좋으까" "무슨 말씀입니까?"  "방에는 누가 있느냐?" "동생아이 하나뿐입니
다" "동생아이는 자느냐?" "자는 모양이올시다" "방에 좀 들어가두 좋겠느냐?"  "
잠깐이라두 들어앉으실 데가 못됩니다" "그럼 이리 좀 나오너라”
  처녀가 방에서 나온 뒤에 배돌석이는  방문 앞 작은 봉당 끝에 걸터앉아서 옆
자리를 손바닥으로 쓸어놓으며  “여기 와 앉아라”하고 처녀를  돌아보았다. 처
녀가 와서 앉지 않고  “물어보실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하고 묻는 것을 배
돌석이가 노기 있는 음성으로  “와 앉으라거든 얼른 와 앉아라”하고 명령하듯
이 말하여 처녀는 마지못한 모양으로 배돌석이 옆에 와서 쪼그리고 앉았다.
  “네가 나이 몇살이야?”  처녀는 대답이 없었다. 배돌석이가 한번  씽긋 웃고 
처녀의 손목을 덥석  쥐니 처녀는 깜짝 놀라 뿌리치려고 하였다.  배돌석이가 손
목을 더 단단히 쥐면서 “네가  내게 수청들 맘이 있나 없나 이걸 내가 급히 알
구 싶다”하고 말하니 처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그건 내일 아비더러 물어
보십시오”하고 말하였다. 배돌석이가 싱글싱글  웃으며 “네 어른에겐 물어보나
마나 좋다구 할  테지만 네 생각에 어떠냐”하고  처녀의 말을 기다리는 것같이 
한동안 있다가 다시 “내게루 같이  가서 이야기 좀 하자”하고 곧 처녀를 일으
켜 세웠다. 억석이의 딸은  양반의 집에서 아이종 노릇할 때 벌써  약을 대로 다 
약은 것이  지금은 나이를 먹어서 속에  대감이 몇 개 들어앉았는  처녀라, 처음 
놀라던 때와 딴판으로  아주 아양스럽게 “나더러 도회청으로 가잔 말씀입니까? 
난 가기가 싫은데요”하고 몸을 흔들었다. “딴소리 말구 가자" "안 가면 어쩌실 
테요" "네까짓것  하나를 내가 못 끌구  갈 듯하냐" "끌려가면서  소리를 지르면 
사람들이 쫓아나오겠지요"  "소리지르라구 주둥이를 가만히 둘세  말이지" "죽기 
한사하고 날뛰면 좀 어려우실걸요"  "이애 순순히 가자꾸나. 죽기 한사하면 장할 
것이 무엇이냐" "가기  싫은 걸 순순히 가요" "내게루 가기  싫으면 너의 방으로 
들어가자. 저 윗방은 무어하는 방이냐" "아비가 집에서 잘 때 저 자는 방이에요" 
"너 자는 방이면 불필타구다.  그리루 들어가자" "먼저 들어가 방을 좀 치워야겠
으니 손을 놓아주세요”
  배돌석이가 줄곧 잡고 있던 처녀의 손목을  놓았다. 처녀가 윗방으로 들어가서 
아래윗간 사이문을 열고 두방으로  왔다갔다 하며 부스럭거린 끝에 윗방에 등잔
불을 당겨놓고 기직자리를 깔아놓는데  그 동안 배돌석이는 밖에서 “대강만 치
워라" "불은 킬 것 없다" "고만 들어가랴?”하고 재촉재촉하였다. “자, 들어오십
시오” 배돌석이가 윗방에 들어와서  기직자리에 앉으며 곧 섰는 처녀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앉을  테니 놓으세요"  "내 무릎에 와서  앉아라" "내가 어린앤가
요?" "내게 대면 어린애지 무어냐" "점잖으신  어른께서 왜 어린애를 잠도 못 자
게 하십니까?" "잠 못 자게 하는  게 분하냐?" "단잠을 깨면 누구든지 골나지요" 
"네 동생두  잠이 깨었느냐?" "그애는 잠귀가  질겨서 한번 잠이  들면 딩굴려도 
안 일어난답니다" "너두 잠귀는 밝지 못한 모양이더라. 내가 부르다 못해서 방문
까지 두들기니까 그제사  겨우 부시럭부시럭 일어나지 않았니" "방문 앞에서  소
리지르는 걸 모르도록  잠귀가 어둡지는 않습니다" "그럼 부르는 소리를  듣구서
두 가만히 누워 있었구나"  "몇 번 부르시다가 아비의 대답이 없으면  으레 밤번
인 줄 짐작하고  가시려니 생각했지요" "그러면 나중에는 무슨 선심으루  일어났
니" "총찰두령께서 아비에게  죄책을 내릴까 봐 겁이  나서 일어났지요" "단잠을 
깨운 대신 내가 품에 끼구  재워 주마" "자장자장해서 재워주시렵니까?" "얼굴이 
덜밉지 않더니 말대답두 역시 밉지 않게 하는구나”
  배돌석이가 처녀를 품에 끌어안으며  바로 자리에 눕히려고 하니 처녀는 사지
를 떠는 듯 마는 듯 떨었다. “나중에 뫼시구  잘 테니 정당한 말씀이나 좀 해주
세요" "정당한 말이구  실없은 말이구 다 두었다 하자" "그럼  저의 덮개와 벼개
나 가져오겠으니 잠깐만 혼자  누워 기십시오” 처녀가 배돌석이를 목침까지 베
어 주고 아랫간으로  내려갔다. 한동안 부스럭 소리만 나고 처녀는  좀처럼 올라
오지 아니하여 배돌석이가 어서 오라고 몇 번 재촉한 뒤에 처녀가 헌 이불 조각
을 끌어안고 올라오더니  배돌석이 발채에 그린 듯이 서서 앉지  아니하였다. 배
돌석이가 번듯이 누워서  처녀를 바라보며 두 팔을  벌리는 중에 처녀가 별안간 
배돌석이 배 위에 와서 걸터앉으며  왼손으로 헌 이불 쪼각을 제쳐 버리는데 바
른손에 든 칼날이 드러났다.
  배돌석이가 수족을 놀릴  사이도 없이 처녀는 세로  잡은 칼로 곧 배돌석이의 
젖가슴을 내려지를 것같이 겨누면서  “꿈쩍만 하면 찌를 테니 그리 아시우”하
고 야무지게 말하였다. 배돌석가 어이가 없어서  도리어 웃으면서 “찌르구 싶거
든 맘대루 찔러라”하고 두 손을 깍지 껴서 이마 위에 얹었다.
  “장난으로 생각하시오?" "장난이라면 좀  과하다. 대체 이게 웬 짓이냐?" "당
신의 말을 들어봐서 약차하면  당신 죽이고 나 죽을 작정이오" "네가  듣고 싶은 
말이 무슨 말이냐?" "당신이 나더러 수청을  들라니 나를 화냥년으로 여기셨소?" 
"내가 너더러 언제 화냥년이라구 하더냐" "두령만 사람이 아니오. 졸개도 사람이
고 졸개의 딸도 사람이오. 오장육부가 다 같은 사람이오" "누가 사람이 아니랄세 
말이지" "사람인 줄로 알면 어째 사람  대접을 안 하시오?" "무엇이 사람 대접이 
아니냐?" "아닌밤중에 남의 집  편발 처녀를 끌어내서 수청들라는 것이 사람  대
접이오?" "임자 없는 편발 처녀니까  말을 건네봤지, 임자 있는 남의 기집같으면 
생의나 했겠느냐" "내 몸을  버려놓은 뒤에 나를 어떻게 해주려고 생각했소?  그
걸 좀 분명이 말씀하오" "무얼 어떻게 해주어? 너만 싫다지  않으면 데리구 살려
구 했지" "명색없이  데리구 살려고 생각했소?" "같이 살면  가시버시지 어째 명
색이 없느냐?" "가시버시니  무엇이니 하지 말고 분명히  말씀하오. 나를 첩으로 
삼으려고 했소, 안해를 삼으려고 생각했소?"  "내가 어디 안해가 따루 있을세 첩
을 삼으려구 생각하지" "새로 오신 이두령은 안해가 없어도  기생첩만 데리고 삽
디다" "이두령이 전에는  안해가 있었으니까 첩으로 얻었지만 지금이야 그  첩이 
첩이냐 안해지"  "나를 안해 삼을 작정이면  우리 아버지보고 통혼을 할  것이지 
왜 나를 보고 수청을 들라고 했소?"  "그건 그렇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먼
저 관계를 맺고 나중 대사를 지내는 일두 세상에 흔치  않으냐" "지금도 나를 안
해로 데리고 사실 생각이 있소?"  "생각이 있다뿐이냐" "이렇게 칼부림을 당하고
도 그런 생각이 남아 있소?" "네가  도둑놈 두령의 안해 째목으루 쩍말없다" "정
말이오?" "그럼  정말이지. 네가 설마 네  칼이 무서워서 거짓말하랴" "정말이면 
옷고름을 맺읍시다" "나는  옷고름 맺는 법을 모르니  네가 가르쳐라" "이때까지 
맹세를 쳐보신 일이  없소?" "맹세야 더러 쳐봤지" "천지신명  앞에 맹세를 치고 
맹세 친 표로 내 옷고름에  매듭을 맺어 주시구려" "오냐 그래라. 천지신명 앞에 
맹세를 치자면 일어 앉아야지" "누워서라도 정성만 드리시오”돌석이가  누운 채
로 눈을 스르르 감고 “돌석이가 억석이의 딸을 안해로 데려다가 길래 살겠습니
다. 만일 이 말을 저버리면 천지신명께  벌역을 받겠습니다”하고 중얼거린 뒤에 
다시 눈을 뜨고 처녀의 옷고름에 매듭을 지었다.  처녀가 그제사 배 위에서 내려
앉으니 돌석이는 일어 앉아서 처녀의 빰을 찰싹 때리며 “네가 고약한 년이다”
하고 웃었다.
  “손이 아프시지 않으시오" "얄미운 소리 하지 마라" "나도 맹세를 치리까?" "
암, 너두  쳐야지” 돌석이가 옷고름을  앞으로 내어미니 처녀는  고개를 숙이고 
“저는 당신의 안해가  되겠습니다. 만일 못 되면 칼로 자결해  죽겠습니다” 먼
저 마디는 어물어물 말하고 나중 마디는 또박또박 말하고 나서 정성스럽게 옷고
름에 매듭을 맺었다.
  새벽이 가까워서 닭이 자칠 때  돌석이가 처녀를 보고 “나는 고만 갈 테다” 
말하고 일어나려고 하니 처녀가 붙들었다. “왜 붙드느냐?”,“ 아버지가 내려오
거든 아주 보고 아퀴를 짓고 가시오" "너의 아버지를  여기서 보기는 면괴스러우
니 이따 내가  조용히 청해다가 말하마" "이따 언제요?"  "아침때나 점심때나 틈
나는 대루 청해다가 말하지" "그럼 그러세요”
  돌석이가 자기 처소에 돌아와서 밤에 잠 못 잔 오력을 내느라고 개잠 한숨 늘
어지게 자고 여러 두령이 도회청에 모일 때  비로소 일어났다. “오늘 웬 늦잠이
오?" "무슨 잠을 눈이 붓두룩 잔단 말이오" "코가 다 삐뚤어졌네그려" "어젯밤에 
무슨 짓을 하느라고 잠을 못 잤소?” 이 사람 저 사람이 돌석이를 조롱할 때 길
막봉이가 웃으면서 “월궁선녀를 생각하고 달 아래서 건밤을 새운 모양이오”하
고 말하니  돌석이도 역시 웃으며 “내가  월궁에를 갔다왔네”하고 길막봉이의 
말을 대꾸하였다. “월궁에 가니 선녀가 많습디까?" "선녀 하나를 만났네" "거짓
말이 난당이구려" "자네가 거짓말을 시켰지 내가 거짓말을 했나”
  돌석이 말에 길막봉이만  웃을 뿐 아니라 여러 두령도 거지반  다같이 웃었다. 
아침때가 지나고  점심때가 지나고 저녁때가  다 되었을 때,  돌석이가 억석이를 
불러볼까 말까 주저하다가 기왕 늦었으니 내일 불러보리라 생각하고 길막봉이와 
둘이 도회청 마당에서 거닐며 한담하는 중에 억석이가 대문 밖에 와서 기웃기웃
하다가 길막봉이 눈에 먼저 뜨이었다.
  “그게 누구냐?" "앞산  파수꾼 김억석이올시다” 길막봉이가 다른 말을  묻기 
전에 배돌석이는 얼른 대문간으로 나왔다.  “무슨 할 말이 있어 왔느냐?" "두령
께서 소인을 불르러 보내신 일이 있습니까?"  "누가 그러더냐?" "소인이 잠깐 어
디를 나간  동안에 사람이 왔다갔다고  딸년이 말씁하옵디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식전에 일찍 오너라" "두령 분부내에 옷고름을 잊지  말라고 합셨다 하오니 
그게 무슨 분부를 잘못  전한 것이 아니오니까?" "긴말 할 것 없이 내일  오너라
” 돌석이 뒤에 따라나와 섰던 막봉이가 억석이  간 뒤에 “여보, 옷고름을 잊지 
말라는 게 무슨 소리요?”하고 물으니  돌석이는 우물쭈물하고 대답을 못하였다. 
“억석이란 자의 딸년이  몇 살이오?" "열팔구 세가 되었는가  부데" "자세히 물
어보지 못했소?" "내가 기집애 나이  물어보러 다니는 사람인가" "억석이의 딸을 
불러다가 좀 물어봐야겠군" "기집애 나이가  그렇게 알구 싶은가?" "우선 옷고름
이란 말부터 물어봐야겠소"  "내가 일러보낸 말을 그 기집애가 알  까닭이 있나" 
"일러보냈다면 그게 무슨 소리요?" "그게  사산에 군호 준 말일세" "요새는 사산 
군호를 파수꾼들의  집에 외치구 다니기루 했소?  대체 옷고름하고 군호하면 그 
대답이 무어요? 어서 대답하우. 공연히  나를 속이려구" "내가 무얼 속인다구 그
러나?" "그러지 말구 똑바루  다 토설하우" "이야깃거리가 있기는 하나 있네. 그
런데 차차  이야기함세" "차차라니 명  짧은 놈 턱 떨어지거든  말이오”,“아따, 
조급하게두 구네. 그럼 방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세”
  돌석이는 막봉이와 같이 방에 들어와 앉아서 지난밤 일을 전부 다 이야기하였
다. 석후에는 여러  두령이 꺽정이에게로 모이는 것이 전례라 막봉이가  저녁 먹
고 나와서 방에 있는 돌석이를 나오라고 부르니 돌석이는 억석이 딸에게 놀러갈 
마음이 긴하여 “오늘  저녁은 일찌거니 자겠네”하고 핑계하였다.  “참말 초저
녁부터 잘 테요? 만일  다른 데 가면 무어요?" "다른 데  가면 무어라니?" "맹세
하란 말이오. 옷고름까지 맺을  것은 없구" "예 이 사람" "오래 굶주리다가 과식
하면 탈나는 법이오" "실없는 소리 고만두구 내 말 좀 듣게" "무슨 말이오?" "아
까 이야기한 일관은 아직  자네만 알아두게. 여럿에게 알리진 말게. 여럿이 알구 
보면 나를 여간들 놀리겠나"  "내 귀에 박힌 이야기를 도루 파가기  전엔 입으루 
나오구 말 테니까 그런  부탁은 해두 소용없소" "내일 내가 이야기할  테니 오늘 
밤만 참아주게" "참구 말구  할 것 없소” 길막봉이가 여럿에게 이야기  안할 리 
없을 것을 안 뒤에 돌석이는 숫제 자기가 가서 이야기하고 먼저 일어서 올 생각
으로 “그럼 나하구 같이 가세”하고 방에서 나왔다.
  배돌석이와 길막봉이가 꺽정이 집에 왔을 때 오가와 곽오주만 아직 오지 않고 
그 나머지 두령들은  벌써 와서 방안에 늘어 앉았었다. 저녁인사들을  마치고 자
리에 앉은 뒤에 막봉이가 곧  좌중을 둘러보며 “배두령이 오늘 저녁에 좋은 이
야기를 한답니다”하고 말을 내니  배돌석이는 혀를 쩟쩟 차며 길막봉이를 흘겨
보았다. “좋은  이야기가 무슨 이야긴가?" "좋은  이야기 좀 들읍시다" "배두령 
어서 이야기하우” 여러 사람이  돌석이더러 이야기하라고 조를 때 마침 오가가 
오고 좌정되자, 또 곽오주가  마저 왔다. 오주가 돌석이를 보고 “뒷산 파수꾼의 
패두놈 못 쓰겠습디다. 곧 태거해 버리우”하고  말하니 배돌석이가 “그놈이 무
슨 작죄를 했나?”하고 물었다. “그놈이 내 앞에  있는 아이놈을 살살 꼬여내니 
그런 놈이 어디 있소" "고약한  놈일세. 내가 치죄해 줌세” 돌석이 말끝에 길막
봉이가 웃으며 “그 패두놈을  태거하고 억석이루 대를 냈으면 좋겠군”하고 말
하는 것을 오가가 듣고 “억석이라니? 앞산 파수꾼 김억석이 말인가? 그애 사람
이 신통하지”하고  말하였다. “억석이가 사람이 신통한가요?  아비가 신통하니
까 딸두 신통하겠구려"  "억석이의 딸이 신통한 건 어떻게  아나?" "배두령이 잘 
아니 물어보시우" "배두령은 어째서 잘 알까” 오가의 말  끝에 배돌석이가 “창
피한 이야기를 하나 할 것이 있습니다”하고 허두를 놓고 억석이의 딸과 관계된 
것을 대강 다 이야기하였다.
  오가가 먼저 “그  기집애년이 여간내기가 아닐세그려. 우리  마누라에게 바누
질을 배우러 오는데 보니까  사람이 영리는 하데만 배두령같은 영웅을 개떡같이 
주무를 줄은 몰랐네”하고 말한 뒤 이 사람이  한마디 돌석이를 조롱하고, 저 사
람이 한마디 억석이의 딸을  칭찬하는 중에 박유복이가 배돌석이를 바라보며 “
기집애가 사람이 똑똑하다니까 안해 삼는 것두 좋기는 좋으나 졸개의 딸을 안해 
삼구 보면 좀 거북한 일이 있을 것 같군”하고 말하니 돌석이가 “나 하나 거북
한 건 말할 것이 없지만  다른 두령들 얼굴이 깍일까 봐서 주저하는 중이오”하
고 대답하였다. 꺽정이가 배돌석이의 주저한단 말을  귀 거슬리게 듣고 “사내대
장부가 나이 어린 기집애에게 언약해 놓구 주저하는 게 다 무언가”하고 나무란 
뒤 “기집애를 어디 한번  불러보세”하고 곧 좌우에서 심부름하는 졸개더러 앞
산 파수꾼 김억석이의 딸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억석이의 딸을 부르러 간  뒤에 서림이가 앞으로 나앉아서 배돌석이를 바라보
며 “여보 배두령, 지금  임두령의 말씀이 옳은 말씀이오. 나이 어린 기집애에게 
한번 언약한 것을 저버리는  법이 어디 있소. 언약해 놓구 주저하는  건 되려 사
내루 견모요. 그러나 박두령의 말씀과 같이 거북한 일은 적지 않을 것이오. 우선 
억석이에게 대한 인사부터  거북할 것이, 존대하잔즉 명색없는  소졸이구 하대하
잔즉 뚜렷한 두령의 장인이구려.  생각해 보우. 거북하지 않겠소? 그래두 배두령
은 상감이 부원군에게 하우하듯이  하우루 대접할 수 있지만 우리들은 대접하기
가 썩 거북할 것 같소”하고 길게 늘어놓는데 돌석이는 어른에게 훈계듣는 아이
처럼 직수굿하고 듣고 있었다.
  억석이의 딸 이야기가 난 뒤로 좌중의 여러 사람이 모두 지껄여도 입 한번 뻥
긋 아니하고 앉았던 곽오주가 서림의  하는 말을 듣고 “우리가 거북할 거 무어 
있담. 아비는 졸개루  대접하구 딸은 제수루 대접하면 고만이지”하고 말하였다. 
오가가 웃으면서 “배도령의  안해를 제수루 대접한다니 배두령이 자네 아운가?
”하고 오주의 말을 책잡으니 오주가 코방귀를 뀌며 “그럼 나이 어린 기집애를 
형수 아주머니 대접하겠소?”하고 오가의 말을  뒤받았다. “나이 어린 기집애라
두 형 되는 사람이  데리구 살면 형수 대접해야지" "형수루 대접하구  싶거든 하
시우. 누가 말리우" "자네는 제수  대접하구 나는 형수 대접하면 을축 갑자루 셈
판이 잘되겠네”
  오가의 말에 다른 두령은 고사하고 돌석이까지  웃었다. 오가가 다시 오주더러 
“박서방댁 나이 자네버덤 몇 살이 아랜가?”하고 물으니 오주는 “난 모르우”
하고 무뚝뚝하게  대답하였다. “몇 살이 아래든지  아래지. 그런데 어째 자네가 
제수루 대접을  아니하나" "나이 어슥비슥한 것과  여남은 살 아래와 같단  말이
오? 억지소리 하지  마우" "옳지, 자네 말을 듣구  보니 그럴듯해” 오주는 다시 
말 않고 한동안  있다가 “나는 먼저 갈라우”하고  일어서려고 하는 것을 “좀 
있다가 같이  헤어지자”하고 박유복이가  붙들어서 다시 주저앉았다.  서림이가 
좌중을 향하고 “내가  아까 배두령께 말한 건 불과  허두 말이고 정작 할 말은 
못하구 말았습니다. 내 생각에는 억석이 딸을  오두령 내외분이 수양딸루 정하시
구 혼인을  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말하고 여럿의 
얼굴을 돌아보니 오가가 좋다고  말하고 박유복이가 좋다고 말하고 다른 두령은 
좋다 그르다 말들이 없었다.
  억석이의 딸을 부르러  간 졸개가 돌아와서 “기집애년을 불러왔소이다”하고 
고하여 여러 두령이 밖을 내다보니 추녀 끝에 달린 등롱 불빛에 덜밉지 않은 얼
굴이 드러났다. “그년 곧잘  생겼구나" "참말 똑똑하게 생겼으니까 고런 맹랑스
런 짓을 했구나”하고 몇 두령이 칭찬들 하는 중에 꺽정이가 뜰 아래에 섰는 억
석이의 딸을 내려다보며 “이년, 네 말 듣거라. 배두령께서 어째 네게 실없이 하
셨든지 실없이 하셨으면  순순히 받을 것이지 생심쿠 칼부림을 한단  말이야. 그
런 발칙한 년이 어디 있단 말이냐”하고 호령하였다.
  꺽정이의 호령질이 뜻밖의 일이라 배돌석이도 당황하였으니 억석이의 딸은 초
풍함직하건만 고개를 푹  숙이고서 눈 한번 거들떠보지  아니하였다. “옷고름에 
매듭지은 것을 네  손으루 풀어버려라" "못 풀어버리겠느냐?"  "어떻게 할 테냐? 
어서 말해라” 꺽정이의 큰소리가 연거푸 난 뒤에 억석이의 딸은 비로소 고래를 
들고 “배두령께서 맺어 주신 것이니 배두령께서 풀어 주셨면 좋겠습니다”하고 
대답하는데 말은 똑똑하게  하나 말소리는 떨려나왔다. 오가가  내다보며 “결자
해지라니 그년의 말이 옳소. 꾸중 고만하우”하고  말하여 꺽정이가 고개를 돌이
켜 배돌석이를 바라보며 “겁없는 건  좋지만 눈 적은 건 흉일세”하고 껄껄 웃
었다.
  꺽정이가 올라오라고 명하여 억석이의 딸이 방  옆 툇마루에 올라섰다. “이리 
오너라. 얼굴을 다시  좀 보자”하고 오가가 웃으며 말하니 억석이의  딸은 가리
마가 앞으로 보이도록  얼굴을 옷깃에 파묻었다. “얼굴  들고 내 말 좀 들어라. 
내가 너를 수양딸루 정하구 싶은데 네 맘에 어떠냐?" "맘에 싫으냐? 왜  말이 없
느냐?" "아비에게 물어보십시오"  "네 아비의 뜻두 물어볼 테지만  우선 네 생각
에 어떠냐?" "제야 무슨 생각이 있겠습니까"  "내게 수양딸루 올 생각이 없단 말
이냐?" "아니올시다"  "당세의 영웅호걸 한  분을 내가 사윗감으루  점찍어 놓구 
딸을 구하는 중이다. 네가 내 딸이 되면 그  영웅호걸은 네 차지가 될 테니 좋지 
않으냐”
  억석이의 딸이 수삽한 태를  지으며 외면하느라고 고개를 옆으로 돌이킨단 것
이 공교히 돌석이 앉은 편으로 돌이켰다가 “배두령이 사윗감인 줄을 저년이 어
찌 알구서 벌써 눈을 맞출까”  오가에게 조롱을 받고 아주 방을 등지고 돌아섰
다. 오가가 억석이의 딸을 바로 서라고 이른 뒤 “수양딸 노릇을 할 테냐, 안 할
테냐?”하고 말을  다지니 억석이의 딸은 천연스럽게  “아비가 다른 말이 없을 
줄은 짐작하옵지만 저야 아비의 말을 듣지 않고 대답을 여쭐 길이 있습니까”하
고 대답하였다. “네 말이 옳다. 곧 네 아비를 불러서 물어보자”하고 오가가 작
은 두목 하나늘 불러서 앞산 파수꾼의 교대를 잠깐 변통하고 김억석이를 내려오
도록 하라고 분부하였다.
  억석이가 와서 여러 두령께 문안을  드린 뒤에 오가가 억석이를 보고 “네 딸
을 내가 수양딸루 정하구  싶은데 네 맘에 어떠냐?”하고 물으니 억석이는 대번
에 “황감한  처분이올시다”하고 허리를  굽신거리었다. 오가가 그제는  억석이 
딸을 보고 “네 아비가 허락했으니 인제는 내 딸 노릇할 테지. 자, 내게 먼저 절 
한번 하구 다른 두령께 차례루  절 한번씩 해라”하고 일러서 억석이 딸이 오가
에게부터 절하기 시작하여 돌석이까지 빼놓지 않고  모조리 돌려 절하였다. 오가
가 좌중을 돌아보며 “나는 새루  얻은 딸을 데리구 가서 모녀 상면을 시켜야겠
네. 딸 얻은 턱으루 내일  낮에 내가 술 한잔 냄세”말하고 일어섰다. 오가가 억
석이 부녀를 데리고 간  뒤 돌석이는 먼저 일어서 갈 생각을  고만두고, 다른 두
령들과 같이 꺽정이게서 밤 늦도록 놀다가 나중에 막봉이와 함께 처소로 돌아왔
다.
  배돌석이와 길막봉이가 도회청 문안에  들어설 때 달빛이 마당 반쪽만 비치어
서 한마당 안에 환한 데도 있고 침침한 데도 있는데 환한 데가 있으므로 침침한 
데가 더욱이 침침하여  보이었다. 막봉이가 자기 처소에 가려고 침침한  데로 들
어가다가 다시 환한  데 나와서 돌석이더러 “여보, 가만히 생각하니  용심이 나
는구려”하고 말하였다. “무에 용심이  난단 말인가?" "같이 홀애비루 지내다가 
혼자 장가를 드니 어째 용심이 나지 않겠소" "기집애가  탐난다면 자네게 물려줌
세" "진국은 나 먹구  훗국은 너 먹으란 수작이오?" "잠깐 맛만  봤지 진국은 고
시라니 남아 있네" "진국이구 훗국이고  혼자 다 먹으우. 구차이 물려달란 말 않
소" "그럼  왜 용심난다구 말하나?"  "장가들어 가지구 새살림을  차리구 나가면 
나 혼자 도회청의  수복이 노릇을 할 테니  내 신세가 가엾지 않소" "내가  딴집 
살림을 하게 되거든 자네두 같이 가세" "남진 기집 농탕치는  판에 젊은 놈이 건
성화 나서 죽으라구"  "남진 기집이라니 말버릇두 고약하다"  "말버릇을 배운 것
이 그뿐이니 어떻게 하우" "여보게,  자네 안해를 곧 데려다가 우리 둘이 일시에 
살림을 차려보세" "좋은 말이오.  그렇지만 내 안해 데려오기를 기다리자면 한참 
쉬어야 할걸" "자네 안성 행보를 한번만 하면 될 것 아닌가. 나는 자네 주저하는 
속을 모르겠네" "속 모를 거 무어  있소. 안해란 것이 후살이를 안 가구 저의 집
에 있더래두 아비 어미가 내놓지 않을 것을 뻔히 아는데 데려올 맘을 먹을 까닭 
있소. 그  아비 어미가 사람이 황두령의  장인 장모 반만이라두 하면  내가 벌써 
데리러 갔겠소" "장인  장모가 외딸이라구 내놓기 싫어하거든 장인 장모까지  데
려오라니까. 그럼 말썽 없을 것  아닌가" "내외가 다 말썽쟁이라 내가 가서 끈다
구 따라나설 리가 없소"  "딸하구 같이 오지 않을라면 딸만 내노라구  염병을 부
리지" "염병을 부리다가 살인나게.  애초에 고만두는 게 상책이지" "그러면 달리 
기집 하나를 구해 보게" "차차 구하지" "늘어지기는 오뉴월 쇠불알일세" "그러다
가 욕하겠소" "자네는 졸리지 않은가. 나는 졸려" "졸리거든 고만 잡시다”
  막봉이와 돌석이는 서로 잘 자라고 인사하고  각기 흩어졌다. 막봉이가 자리에 
누운 뒤에도 오랫동안 둥글거리다가 잠이  든 까닭에 이튿날 식전 잠이 아직 몽
롱한 중에 누가 방안에 들어오는 것을 알고 시중드는 졸개로만 여기어서 “부르
지 않는데 왜 들어오느냐?”하고  나무라다가 “남은 조반 먹구 길을 왔는데 이
때까지 무슨 잠이오?”하는 대답에 놀라서 벌떡 일어 앉아 보니 탑고개 작은 손
가가 방안에 들어섰다.
  “식전에 웬일이야?" "셋째형님이 어젯밤에 왔소" "셋째형님이라니, 뉘 셋째형
님 말이야?" "잠이 아직 덜 깼구려. 삼봉이가 왔단 말이오" "무어 삼봉이 형님이 
왔어? 어디 있어?" "내게 있소" "왜 같이 오지 않구" "같이 들어오자니까 한사쿠 
싫답디다" "나더러 나오라든가?" "그럽디다”  막봉이가 일어나서 부지런히 소세
하고 조반 요기한 뒤에 배돌석이와 다른 두령들에게 셋째형 삼봉이를 데리고 오
마고 말하고 작은 손가가 와서 같이 탑고개로 나왔다.
  삼봉이는 진주 가서 살다가 진주서 상처하고 자식 남매를 발안이 부모에게 갖
다 맡긴 뒤에 다시 등짐장사로  떠돌아다니는 중에 천안 어느 양반의 집 계집종
을 보고 반하여 그  양반의 집에 비부를 들게 되었는데, 막봉이와  형제 서로 만
나는 것이 비부  든 뒤에 처음이라 막봉이는 형이  그저 등짐 지고 다니는 줄로 
알고 “형님, 그 동안 어디루 다녔기에 그렇게 오래 안 들렸소”하고 물었다. 삼
봉이가 미처 대답하지  전에 누이 큰손가의 안해가  옆에서 “양반의 집에 가서 
비부쟁이 노릇한다네”하고 말하니 막봉이는 다시 형더러 “참말이오?”하고 물
었다. 삼봉이가 천안 양반의 집에 비부 들게  된 것을 이야기하여 막봉이가 들은 
뒤에 “형님 생각 잘못했소.  어디 기집이 없어서 남의 집 종의  서방 노릇을 한
단 말이오”하고 책망하여 말한즉 삼봉이는 웃으면서 “너는 그렇게 말할 줄 알
았다”하고 대답하였다.  “사람의 비위를  가지구서 어떻게 턱찌끼를  얻어먹구 
사우?" "나두 처음에는 아니꼬운 꼴을 많이 보려니  생각했더니 생각과는 다르더
라" "형님  비위가 전버덤 좋아졌구려" "내  비위가 좋은 것버덤  주인양반의 집 
인품이 좋다" "남에게 매인 몸이 어떻게  나왔소?" "발안이 집에 다니러 온 길에 
너두 보구 누님두  볼라구 여기까지 왔다" "어머니 아버지  다 안녕하십디까?" "
어머니버덤두 아버지가 근력이  아주 말 아니더라" "그저 내  걱정들 하십디까?" 
"그럼, 어머니는 전과 같이 노상  질금거리구 아버지는 이따금 한숨을 쉬는데 근
력이 부쳐서 전처럼 가슴두 짓찧지 못하는 것이 더욱  가엾더라" "돌아가기들 전
에 내가 한번 가뵈일 작정이오" "아버지 어머니두 가보이려니와  네 안해를 한번 
가봐라. 내가 천안 가서 비부 들기 전에 안성 가사리를 갔다가 만나봤다”
“저의 큰집에 다니러 온  것을 만나봤소?” “그 어머니가 작년 겨울에 독감을 
앓다가 죽었어. 초상 치느라구 땅마지기가 있던 것은  없어지고 지금 부녀 두 식
구가 큰집을 의지하고  가사리 와서 사는데 큰집의  토심이 여간 아닌 모양이드
라. 그 어머니가 살았을 때 다른 사위 얻으려구  하는 것을 그 아버지가 딸 하나 
가지구 사위 두 셋씩 얻는  법이 없다구 목 얻게 했다는데 네 안해가 나를 보더
니 어떻게  누는지 내가 아주 곡경을  치렀다. 너를 한번 만나보면  죽어두 한이 
없겠다구 증언부언하기에 내가  힘써 보마구 말을 했다. 이번에 발안이  집에 와
서 들으니까 드 아버지가 그  동안 발안이를 두번이나 왔다 갔다는데 한번은 와
서 네 소식을 들었느냐고 묻구  가구 한번은 와서 네가 화적질한단 말이 있으니 
그런 말을 들었느냐구 묻구 가더란다.”
  “집에서 무어라구 대답해 보냈답니까?” “그런 말 못 들었다구 대답했을 건 
묻지 않아두 알 수  있지 않으냐?” “못난이 형님들이 종없이 지껄였는데 누가 
아우?” “형님들 말  마라. 형님들은 자기네 신상에 혹시 누가  끼칠까 겁을 내
서 집안 식구까지두 네 이야기를 입밖에 뻥끗  못하게 한단다.” “내가 가면 집
안에 들어서지두 못하게 하겠네.” “그렇기가 쉽지.” 막봉이가 한참 동안 있다
가 “형님  산으루 들어갑시다.” 하고  말하니 삼봉이는 고개를  외치며 “산에 
들어가면 여럿에게 붙들여서  지체될 테니까 못 들어가겠다.” 하고 대답하였다. 
“며칠 놀다 가면 어떻소?” “내일은  천안서 올 줄 알고 기다릴 테니까 곧 가
야겠다.” “그럼 오늘 떠나겠소?”  “암 떠나야지.” “내가 수이 한번 발안이
루 안성으루 다녀서 될 수 있으면 천안 까지 가리다.”“오너라. 너의 새 형수를 
한번 보면  내가 양반의 집  비부살이하는 것을 괴이쩍게  생각하지 않을게다.” 
삼봉이는 막봉이와 이야기할 말을  대강 마치고 누이의 해주는 점심을 재촉하여 
먹은 뒤에 총총히  도로 떠나갔다. 막봉이가 삼봉이에게 안해 소식을  들은 뒤에 
안해를 데려올 마음이 불현듯이 나서 먼저 돌석이에게 이야기하였더니 돌석이는 
자기와 한때 살림을  차리도록 하루바삐 데려오라고 독촉하듯이  권하였다. “도
중에 말하구 내일 곧 사람을 띄우게.”  “내가 가야지, 사람만 보내서 안되우.” 
“그럼 자네가 내일  떠나두룩 의논해 보세.” “혼인술두 먹지 않구  어딜 가란 
말이우?” “서장사가  택일한 대사 날짜가 아직두  대엿새나 남았는데 그 안에 
못 다녀오겠나?” “내가 가는 길에는 고향에 들려 가구 오는 길에는 천안을 다
녀 올  테니까 적어두 한 열흘  걸릴 게요.” “그럼 서장사더러  날짜를 물려서 
택일 한번 다시 하라지.”  “내가 아주 보구 가면 그만인데 정한  날짜를 왜 공
연히 물린단 말이오?” “자네 말두 옳긴 옳으나  내일 공론해서 작정하세.” 돌
석이가 막봉이더러는 더 권하지 않고 이튼날 도회청 모임에서 막봉이를 안해 데
리러 보내자고 좌중에  발론하고 그 끝에 자기의  혼인날을 막봉이 갔다온 뒤로 
물려달라고 오가에게 말하였다.  오가가 돌석이의 말을 듣고  “길두령이 안해를 
데리러 가기루 자네의 대삿날을  물릴 까닭이 무엇 있나?” 하고 물으니 “길두
령이 가면 대삿날 전에 오기 어렵다구 안 간다니까 숫제 대삿날을 좀 물리잔 말
이오.” 하고 돌석이가 대답하였다.  “길두령이 자네 대사 지내는 걸 아주 보구 
가면 좋지 않는가. 보구 간다구 낭패될 건 없겠지.” “낭패될 건 없지만 하루바
삐 안해를 데려다가 나하구 한꺼번에 살림을  차리면 좋겠소.” “오회청 양쪽에
서 서루 건너다보구  지내는 정분이 달네그려. 둘이 한꺼번에 살림  차리기가 소
원이면 그건 어렵지 않아.  대사 지낸 뒤에 얼마 동안 자네  색시를 내게 맡겨구
었다가 길두령이 안해  데려오는 날 같이 새살림을 찰리면 되지  않나.” “그럴 
생각은 미처 못했소.”  오가가 막봉이를 돌아보며 “두말 말구 있다가  내 새사
위 달아먹구 떠나게.” 하고 허허 웃으니 막봉이도  역시 웃으며 “나두 벌써 그
렇게 생각하구 육모방맹이까지 깎아놓구 기다리우.” 하고 실없은 말 하였다. 신
랑늘 단ㄷ는 말이 신방을 치자는 공론까지 자아내서 여러 두령들이 웃고 지껄이
는 중에 길막봉이와 황천황동이는 둘이 앞잡이 서서 첫날밤에 톡톡히 북새를 놓
겠다고 배돌석이보고 땅땅 별렀다. 우스개들이 끝난  뒤 서림이가 꺽정이를 보고 
“길두령이 내구ㅏㄴ 데리러 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우?” 하고 물으니 꺽정
이는 서림의 묻는  뜻을 몰라서 “데려오면 데려오는 게지, 무얼  어떻게 생각한
단 말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글월을 보내서 거기서  오게 하면 모르되 길두
령이 몸소 데리러  가는 건 불긴할 듯하우.” 서림이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자마
자 “불긴할 게  무어요?” 하고 길막봉이가 나서고 “불긴한  곡절을 말하우.” 
하고 배돌이석이가 뒤를  받쳤다. “불긴하다는 건 오히려 헐한후 말이구  내 소
견대로 말하자면 극히  위태하다구 말해야 옳소.” “글쎄, 불긴하거나 위태하거
나 곡절을 말하우.  곡절이 무어요?” 길막봉이가 다그치니 서림이는  좌중의 이 
사람 저 사람을 들러보며 막봉이  안해 데리러 가는데 위태한 곡절을 말해 들리
었다. 혜음령 사변이 난 뒤에 청석골 드나드는  길목의 기찰이 전에 없이 심하여
졌을 뿐 아니라 개성부와 강음현에서 청석골 화적 괴수들을 잡아 바치면 중상을 
준다고 방까지 붙이었는데, 그 방에 용모 파기가  오른 사람이 양주 백정 임꺽정
이와 전날 봉산장교 황천황동이와  전 임진별장 이봉학이 외에 양주읍에서 장교 
사령을 상한 박가와  혜음령에서 군관을 해친 길가이었다. 방에 오르지  않는 사
람도 나다니기가 위태하거니 하물며 방에 오른 사람이며, 근처에도 나다
니기가 위태하건; 하물며 원처이랴. 
  이러한 위태한 곡절을  서림이가 증언부언하는 것을 “잘 알았소. 고만두우.” 
하고 길막봉이가 가로막고  “그만한 위태한 곡절은 우리두 잘 아우.”  하고 배
돌석이가 뒤받으니 서림이는 막봉이와 돌석이를 돌아보며 개연한 어조로 “사람
이 원려가  없으면 눈앞에 근심이 생기는  법이오.” 하고 말하였다. 박유복이가 
꺽정이를 보고 “형님, 서장서 말이 옳소.” 하고 말하는 것을 보고 봉학이가 옆
에서 그렇다고 말하고 황천왕동이가  꺽정이를 보고 “복색이나 달리 차리구 나
서면 누가 안단 말이오?”  하고 말하는 것을 오주가 건너편에서 옳다고 말하여 
서림이의 염려하는 말이 옳으니 마니 하고 지껄일 때 오가가 출반좌하고 “길두
령이 지금 당장 떠나는 것 아니니 두구두구  의논하세.” 하고 뒤로 밀어서 여러 
두령이 그만큼 지껄이고 고만두었다. 오륙 일이  잠깐 지나서 돌석이의 대삿날이 
다다라왔다. 청석골은 법 없는 천지라 혼인을  나라 가례같이 지내라기도 하겠지
만, 가례 의괘는 알  사람이 없고 여러 두령이 문견 자라는  대로 재상가 혼안절
차를 차리었다. 이날 늦은 아침때 신부 있는  오가의 집에서 신랑 있는 도회청으
로 세 번 청좌가  온 뒤에 신랑 행차가 떠나가는데, 신랑  치장을 볼작시면 멀에
는 사모요, 몸에는 관디요,  허리에는 서띠요, 발에는 목화였다. 신랑이  백마 타
고 앞서고 위요 선  이봉학이가 관복 입고 사인 남여타고 뒤를  따랐다. 산 안을 
한 바퀴 휘돌아 오가의 문전에 와서 신랑이 기러기를 드리고 박유복이의 팔밀이
로 초례청에 들어섰다.  초례청 안침에 독좌상이 놓이고 독좌상 앞에  작은 상이 
놓이는데, 작은  상위에는 술병과 교배잔과  청실홍실 두 타래가  놓였을 뿐이나 
독좌상 위에는 놓인 것이  많았다. 달떡 두 그릇과 국수 두  그릇과 포도 접시와 
식혜 두 접시와 밤, 대추, 곶감, 삼색실과  각각 두 접시씩 여섯 접시가 늘어놓이
고, 이외에 와룡촛대 한 쌍이 놓이고 나좃대하님이  들고 나왔던 나좃대 두 개가 
쟁반에 걸쳐 놓이고, 꼭지에  다홍실을 맨 큰 바리 뚜껑 한  개가 놓여있었다 색
시가 어려서 먹던 꼭지숟갈이나 돌바리가  없는 까닭에 큰 바리 뚜껑을 대신 놓
은 것이니, 이것은   신랑 따라온 꼭지도작이 훔쳐다 신랑집에  두었다가 첫아들 
난 뒤에 돌려보낸다는 것이다. 여러 여편네들이  신부를 부축하여 내다가 신랑과 
마주 세웠다. 신부는 머리에 칠보 족두리를 쓰이고  몸에 원삼을 입히고 연지 찍
고 곤지 찍은 얼굴을 진주 부채로 가리어  주었다. 부채를 떼고 큰절을 시키어서 
신랑이 서서 받고 답배한 뒤에  신랑과 신부를 마주 앉히고 청실홍실 늘인 교배
잔을 전하는데,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백년 해로하고 아홉아들에 고명딸 
아기 낳으라는 덕담이 있었다. 초례한 뒤 방합례가  있고 방합례한 뒤 안팎에 잔
치가 벌어졌다. 사람마다 먹은 빛으로 하루해를  지우고 저녁밥들을 먹는지 만지 
한 뒤에 곧 신방을 차리었다. 노신랑이 낯익은  신부를 맞아서 홍촛불 앞에 얼굴
을 대할때 신부는 새삼스럽게  부끄럽든지 고개를 숙이고 그림같이 앉았고 신랑
은 신부를 바라보며  싱글벙글하였다. 신랑이 신부 몸에 손을 대지  않고 한식경
이나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나중에  “이 사람들이 낮에 술을 많이 먹드니 초저녁
부터 곯아떨어졌군.”  하고 혼잣말하였다. 그 뒤에  신랑이 신부의 옷을 벗기어 
자리에 갖다 눕히고 자기도 옷을 벗고 촛불을 끄고 신부와 같이 누웠을 때 홀저
히 밖에서  신발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니  “우리가 술에 곯아떨어졌어?” 하고 
웃는 길막봉이 말소리가 들리고 “아무리 첫날밤이기루 염치없이 초저녁부터 자
는 법이 어디 있담.” 하고 혀를 차는 황천왕동이 말소리가 들리었다. 신랑 신부
가 옷을 다시 입을 사이도 없이 거는 고리  없는 신방 문이 활짝 열리고, 등불빛
이 환하게 비치며 막봉이와  천왕동이가 앞서서 들어오고 여러 두령들이 뒤따라 
들어오는데 상제 몸인 꺽정이와  계집 싫어하는 곽오주와 장인 노릇하는 오가까
지 하나  빠지지 않고 다 왔다.  돌석이가 오가를 보고 “장인두  사위의 신방을 
치러 왔소?” 하고 소리치니  오가는 허허 웃으며 “나는 신방에서 너무들 야료
할까 봐 말리러 왔네.”  하고 한옆으로 비켜섰다. 막봉이가 고의 바람의 신랑을 
일으켜 세우고 천왕동이가 속곳 바람의 신부를 일으켜 세운 뒤에 준비하여 가지
고 온 긴 노랑수건으로 둘을 맞붙여서 동여놓았다.
  막봉이와 천왕동이가 조신한  사람들이 아니라 장난이 상없었다.  신랑 신부를 
맞붙여 동여놓고 막봉이가 천왕동이를 돌아보며 “둘 다 발가벗기는 게 좋겠지?
” 하고 말하니  천왕동이는 대번에 “고의는 자네가 벗기게. 속곳은  내가 벗김
세.” 하고 신부 속곳 끈에 손을 대었다. 노신랑 돌석이로도 발가벗기는 것은 난
당하여서 “그것만은 용서해  주게.” 하고 사정하니 막봉이가  웃으면서 “내가 
시키는 대루 다한다면 용서하지.” 하고 말하였다.  “할 만한 일이면 다 함세.” 
“그럼 우선 색시 입을  한번 맞치우.” 돌석이가 입맞추는 시늉을 내었다. “누
가 입맞추는 시늉을 내랬나? 쭉쭉 소리가 나두룩  쩍지게 맞쳐야지.” 그제야 돌
석이가 입맞추는  소리를 내었다. “자, 인제는  색시 빰을 핥으우.  싹싹 핥아야 
하우.” 돌석이가 뺨 핥는 시늉을 내고 나서 “실 없이 장가들구 봉변이다.” 하
고 두덜거리었다. “봉변이라니 용서 못할 말인걸.” “말 잘못했네. 용서하게.” 
“옷은 대체 무엇부터 벗겼소?” “발떠쿠가  있어 잘살라구 버신부터 벗겼네.” 
천왕동이가 신부의 발을  내려다보며 “고린발에 발떠쿠가 있나.  고린내가 몹시 
나네.” 하고 웃는  통에 신부가 주저앉으려고 하여 돌석이는 신부와  같이 간신
히 주저물러앉았다. 막봉이가  신부 뒤에 쭈그리고 앉아서 “아이 잘  기를까 젖 
좀 봐야지.”하고 신부의 젖을 만져보니 “자네가 무슨  젖을 알겠나? 내가 봐야
지.” 하고 천왕동이  도 신부의 젖가슴에 손을 넣었다. “이쁜  젖일세. 이 다음 
두구 보면 알지만  영락없이 대접젖 되겠네.”“대접젖이 어디 있나?  젖의 보학
을 좀 들려 주까? 묵모  같은 대접젖이 제일 이쁜 젖이구 그외의 가지각색 젖이 
다 있다네, 연적같이  넓적한 건 연적젖이요, 병같이  길쭉한건 병젖이요, 쇠뿔같
이 끝이 빠른  건 쇠뿔젖이요, 쇠불알같이 축  늘어진 건 쇠불알 젖이요, 그러구 
젖꼭지가 들어간 건 구융젖이라네.”  “젖의 보학이 참말 무던하군. 그런 건 다 
뉘게 배웠소?”  “뉘게 배운 건  알아 무엇하나?” “베개 위에서  배웠겠지.” 
“배게 위에서  배우기커녕 내가 가르쳐 주네.”  “그럼 함부루 지어낸 게지.” 
늙은 오가가  천왕동이를 바라보면서 “다른 젖은  몰라도 쇠불알젖만은 자네가 
지어낸 겔세. 나는 금시초문일세.” 하고 웃는데 돌석이가 오가를 돌아보며 “장
인 행세 하실라거든  이 장난꾼들을 꾸중이나 좀 하시우.” 하고  말하니 오가가 
선뜻 앞으로 나서서 일부러  틀을 지으며 “내 딸 내 사위  고만 들볶게.” 하고 
껄껄껄 웃었다. 오가가  말리지 않고 도리어 부추기고 꺽정이가 다른  두령과 같
이 웃고 서서 구경하니,  막봉이와 천왕동이의 짓궂은 장안이 그칠 줄을 몰랐다. 
돌석이는 웃고  당하지만 신부는 다부져도 종시  계집아이라 부끄럼을 못이겨서 
나중에 눈에서 눈물까지  흘러나왔다. 천왕동이가 신부의 눈물을  보고 “색시를 
훔친 사람은 용서할 여지가 없지만 죄없는 색시가 아처로우니 우리 고만 용서하
구 가세.” 하고 막봉이를 돌아보니 막봉이는 큰 선심이나 쓰는 듯이 “아따, 그
러지.” 하고 천왕동이의 손을  잡고 같이 일어섰다. 곽오주는 아이니 젖이니 하
는 소리가 듣기  싫어 밖에 나와 있다가 다들  나오는 것을 보고 “신방에 와서 
밤새 잔다더니 어느새 갈  테요?” 하고 말하니 능청맞은 오가가 웃으면서 “자
네가 슬슬  배도니까 재미들이 없어서 고만  간다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럼 
나온 바에 다시 들어갈  맛대가리 없네. 고만 바깥방으루 나가세.” “그럴 테면 
바깥방엔 나가 무엇하우?  각각 헤어집시다.” 서림이가 오가를 보고  “내일 아
침에 남침들 올  텐데 주육이나 많이 장많셨소?” 하고  묻는 것을 오주가 듣고 
“남침이란 게 무어요?” 하고 서림이더러  물었다. “남침이란 것이 자리보기란 
말이오.”“자리보기라면 다 알 것을 왜  남침이라우?” “남침이라구 말하는 사
람도 많은데 곽두령은 못 들었소?” “듣지 못했소.  대체  아는 말 두구 모르는 
말 하는 사람의 심사를  나는 알 수 없어.” “곽두령은 내  말이라면 곧 시비를 
차리니 무슨 살이  끼었는가 보우. 이 다음에  한번 살풀이를  합시다.” 오주가 
서림이의 말은 대답 않고 오가더러 “자리보기 오는 사람들 대접할 술고기를 오
늘 밤에 먼저 좀 먹읍시다.” 하고 말하니  오가가 혼감스럽게 “그거 좋은 말일
세.” 하고 허락한  뒤 “자, 다들 나갑시다.” 하고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바깥
방으로 나왔다. 바깥방은 이칸방이라 칠팔 인이  들어앉아 술먹기가 조금 비좁으
나, 아래윗간의 앞뒤 창호를 다 열어놓으면 바람이  잘 통하여 과히 덥지 아니한 
방이었다. 술상 둘을 내다가  아래윗간에 한 상씩 놓고 사람 여덟이  한 상에 넷
씩 안앉다. 아랫간에 앉은 사람은 오가와 꺽정이와 이봉학이와 서림이요, 윗간에 
앉은 사람은 박유복이와 황천왕동이와 곽오주와 길막봉이었
다. 아랫간에서도 엔간히 웃고 떠들지만, 그래도  윗간에 밀릴 때가 많았다. 윗간
에서 먼저 신방 이야기를 하다가 상소리들을 내놓아서 아랫간과 같이 웃은 뒤에 
윗간에서 또 먼저 막봉이의  안해 데려올 이야기를 시작하여 아래윗간에서 함께 
얼리어 떠들었다.  막봉이 당자는 안해를  데리러 속히 간다고  말하고 서림이는 
전날 말과 같이 아직  가지 못한다고 말하여 둘의 말이 맞서게  되었을 때, 오주
가 서림의 말을 간간히 뒤받고  천왕동이가 막봉이 말에 가담할 뿐이라 만일 종
공론하여 작정한다면 막봉이가 꼼짝없이  지게 된 판에 막봉이는 결기를 내면서 
“사내자식이 무슨 일을 하려구 한번 맘먹은 다음엔 백이 백소리하고 천이 천소
리해두 소용없소.”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때까지 말이 없던 꺽정이가 막봉이를 
바라보면 “여보게, 우리가 만일 공론하구 못 간다면 못 가는 게지, 그래 자네가 
갈 텐가? 아직 가만 있게.  차차 공론해서 가두룩 해줌세.” 하고 말하니 막봉이
가 다시는 검다 쓰다 말을 아니하였다. 그  뒤에는 다른 이야기가 끝없이 나와서 
밤이 이슥토록 여러 두령이 웃고 떠들다가 술들이 진취되어 가지고 각기 흩어져 
돌아갔다. 이튿날 식전에 여러 두령이 자리보기하러  오가의 집으로 모이는데 선
등으로 쫓아올 막봉이가 다른 두령들이  다 온 뒤까지 오지 아니하여 막봉이 처
소에 사람을 보내보니 막봉이도 없고 막봉이에게  시중드는 졸개도 없었다. 한동
안 지난 뒤에 그 졸개만 혼자 와서 “길두령께서 수원. 안성. 천안을 다녀오신다
구 떠나시는데 탑고개까지  뫼시구 나갔다 왔습니다. 떠날실 때 말씀이  열흘 안
에 돌아올 테니  여러 두령께 염려들 맙시사구 여쭈라구 하십디다.”  하고 말하
여 여러 두령들은 듣고 모두 어이없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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