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화적편 2

3학년2반 | 2022.01.10 07:17:39 댓글: 0 조회: 465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1224
  2  
광복산은  산이  높고 험하고 바위가 성같이 둘린  곳인데 주회 사오 리에 터는 
청석골보다 훨씬 넓으나 인가는 십여 호밖에 안 되어서 꺽정이의
 일행이 전접할 도리가 맹랑하였다. 황천왕동이 일행  네 사람이 먼저 왔을 때는 
십여 호에 사는 사람이 모두 와서  정답게 인사하고 이 집 저 집에서 오라고 청
하기까지 하더니 다섯  행차가 차례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거지반 문을 닫고 
들어앉아서 내다보지도 않고 더러 나와서도 슬슬  배돌며 동정만 살피었다. 본곳 
사람들이 일제히 나와 마중하지  않는 것을 꺽정이는 괘씸히 생각하여 졸개들을 
시켜서 각 집의 주인 되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한바탕 야단을 친 뒤에 우선 안식
구 들여앉힐 집 몇 채를 비어놓으라고 일렀더니 십여 호 사람이 모두 집을 내버
리고 도망하려고 단봇짐들을 쌌다. 꺽정이가 이것을  알고 두목과 졸개들에게 분
부하여 본곳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서 묶어놓게 한 뒤에 십여 호 집을 일행 상하
각 차지하고 들도록  분배하였다. 묶어놓은 사람들을 놓아버리자고  말하는 두령
도 있었고 두고 부리자고 말하는  두령도 있었으나 꺽정이가 그 말을 좇지 않고 
죽여 없애라고 하여 광복산에 살던 사람들은 뜻밖에  참혹한 화를 받았다.  꺽정
이의 일행이 마소는 치지 말고  사람만 육십여 명이라 오죽지 않은 두메집 십여 
호를 가지고는  구차하나마 용신할 수 없어석 급히 통나무로 귀틀집을 몇 채 세
우기로 작정들 하였는데 집보다도 더 급한 것이  양식이었다.  본곳 사람들의 과
동하려던 양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나 서속과 귀일 이외에는 두태가 얼마 있을 
뿐이요 입쌀은 전혀 없었다. 험한 밥을 먹기  싫어하는 사람은 누구누구 칠 것도 
없고 숫제 먹지  못하는 사람이 오가 내외와  이봉학이 내외와 황천동이 안해와 
길막봉이의 장인과  안해와 곽능통이 내외와 서림이와  의원 허생원까지 어른이 
십여 명이라 가지고 온 쌀을 그 사람들만 두고 먹어도 이삼 일 조석거리밖에 안 
되었다. 제백사하고 양식쌀부터  모아들이기로 공론한 뒤 꺽정이와  오가와 서림
이 외의 여섯 두령이 둘씩  작패하여 가지고 두목과 졸개들을 갈라서 데리고 이
천 인근읍 땅에 나가서  양식을 떨어오는데 이봉학이와 황천왕동이는 신계 가서 
재원을 떨고 박유복이와 곽오주는 평강 가서 옥동역을 떨고 또 배돌석이와 길막
봉이는 안변 가서 용지원을  떨었다. 세 군데서 떨어온 것이 쌀이  근 이십 석이
요, 다른 곡식이  칠팔 석이요, 소금이 사오  석인데 거지반 다 소에 실려가지고 
와서 소는 두고 잡아 고기를 먹게 되었다.  양식과 찬수가 생겨서 한시름들을 놓
게 되어 곧 졸개들을 시켜 재목을 내어서 사람 있을 의지간과 마소 세울 어릿간
을 만드는데 두목은  고사하고 두령까지 나서서 조역들  하여 광복산 들어온 지 
달포만에 안돈이 대강 되었다.  꺽정이가 걸음  잘 걷는 황천왕동이를 시켜서 서
울 남소문안 한첨지  집과 연신하게 되었는데 황천왕동이가   서울 삼백여 리를 
하루 가고 하루 오고 하는 까닭에 광복산 같은 두메 구석에서도 조정 소식을 빨
리들 듣고 지내었다. 황천왕동이가 한 번 서울  갔다왔을 때 꺽정이와 여러 두령
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듣고 온 조정 소식을  다 전하고 끝으로 “이번에 내가 
별소리를 다  듣고 왔소.” 하고 이야기하기  전에 웃기부터 하였다. “어젯밤에 
남소문 안 한첨지 아들하구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는 중에 그 사람이 나더
러 대장 형님이 분신술 잘하는 것을 아는냐구 묻는데 분신술이 무어냐구 묻기가 
창피해서 덮어놓구 나는 그런 말 못 들었다구 대답했더니 그 사람 말이 이천 두
메 구석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자네네 대장이 여기저기서 나온다니 이것이 분식
술을 잘 안 하구 될 일인가. 분신술 같은  희한한 재주를 가졌다는 건 자랑두 되
겠지만 점잖지 못하게 유부녀를  겁탈하구 잗달게 나무장수의 주머니 밑천을 떨
구 또 멀쩡하게 성한 사람이  애꾸눈이 병신이 되었다니 듣기 좀 창피하데 하구 
깔깔 웃습디다. 내가 그게 무슨 소리냐구  자세히 이야기하라구 졸라서 이야기를 
들으니까, 대장 형님의 이름을  떠대구 유부녀 겁탈한 것은 야주개서 난 일이구, 
나무장수 떨은  것은 버터고개서 난  일이구, 애꾸눈이는 영평  도덕여울 근방에 
사는 놈이랍디다. 한첨지의  부하 하나가 얼마 전에 무슨 볼일루  영평을 내려갔
다가 도덕여울서 애꾸눈이를 만났는데  그놈이 처음에 대번 나는 임아무개다 네 
보따리 게 벗어놔라 하구 한참  만에 다시 내가 임아무갠 줄 알구서두 우두머니 
섰으니 한번 칼맛을  볼라느냐 하구 칼을 빼들더랍니다. 한첨지 부하가  대장 형
님의 얼굴을 잘 아는 사람이라, 이놈아 네가  무슨 임아무개냐 하구 우박을 주려
다가 그놈의 하는 꼴을 볼라구 청석골 임두령은 지금 서울 남소문 안에 와서 계
신데 게가 임두령하구 동성동명이란 말이요 하구 물으니까 그놈이 그 말은 대답 
않구 네깐놈의 보따리에 무슨 대단한 물건이 들었겠느냐 고만 그대루 가거라 하
구 손을 내젓더랍니다. 한첨지 부하가 서울 와서 그놈의 흉내를 내가며 
이야기할 때 젊은 사람은 고사하구 늙은 한첨지까지 허리를 잡았답디다." 황천왕
동이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 여러 두령은 거지반 다 웃고 "세상 사람이  임아무개
란 성명만 듣구두  겁을 내니까 그 따위 놈이 생기는  게지." "우리가 어디 가다 
그런 놈을 만나는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임아무개라구 창피한 짓 하는 놈을 
가만둘 수 있소. 다시 못하두룩 버릇을 가르쳐 놔야지."  "우리 뒤를 수탐하는 포
도군사들이 그런 것들에게  속아서 이리저리 갈팡질팡하는지 모르지." "포도군사
같이 산 말의 눈을 뺄 놈들이  그 따위 성명 떠대는 걸 곧이듣나." "포도군사 아
니라두 임아무개라구 하구 창피한 짓  하는 것을 곧이듣는 놈은 미친놈이지." 떠
들썩하게들 지껄이는 중에 꺽정이만은 웃도 않고 말도 않고 눈살을 잔뜩 찌푸리
고 앉아 있었다.   그 이튿날 식전에 여러 두령이 꺽정이에게  아침 문안들 하러 
왔을 때 꺽정이가 여러  두령들을 돌아보며 "어젯밤에 생각해 보니 내가  아무래
두 서울을  한번 갔다 와야겠어. 내가  서울 가 앉아서 내이름을  가지구 창피한 
짓 하는 놈들을 자세히  알아본 뒤에 한두 놈 본보기를 내놀  작정이야. 이왕 가
는 길에 우리들에게 있는 금은보패를 가지구 가서 팔아왔으면 이런 두메 구석에
서두 군색치 않게 지낼 수 있을테니 연전에 평양 봉물 노느목한 것을 모두 도루 
거둬서 나를 주면 좋겠는데  여럿의 의향이 어떤가? 가지구 싶은 물건은 가지구 
팔아 쓰구 싶은  물건만 내놓르란 말이야. 이번에 내놓은 물건을  팔아서 공용에 
쓰거나 내가 쓰게 되면 그건 나중에 도루  다 물어주지." 하고 말하니 여러 두령
은 다 녜녜 대답들 하였다.  꺽정이느 자기의  이름을 떠대고 창피한 짓 하는 놈
을 몇 놈 본보기로 버릇  가르칠 생각도 났거니와 두메 구석에 들어앉아서 답답
하게 지내느니 번화한 곳에 가서  속시원하게 놀다 오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겸
두겸두 서울길을 떠나는데 피물 약재  서화 옥기명 금은붙이를 한 짐 좋게 만들
어서 졸개 하나를  짐꾼삼아 데리고 단둘이 보행으로 떠났다. 광복서  떠나는 날 
늦게 떠난 까닭에 이천읍에 와서  일력이 다 된 것을 보고 놋다리고개를 향하고 
나오다가 어느 촌가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꺽정이가 그  집 바깥주
인과 수작하는 중에 주인의  고향이 철원인 것을 알고 "철원서 언제  이사왔소?" 
하고 물으니 주인은 손가락을 꼽아보고 "올에 아홉 해가 됐나보우." 하고 대답하
였다. "그럼 철원  일은 모르겠구려." "무슨 일을 모른단  말이오?" "무슨 일이든
지." "고향에서 사는 형님네와 왕래가 잦은 까닭에  고향일이 쇠배 어둡진 않소." 
"임꺽정이란 사람이 철원 땅에 산다는데 철원 어디서  사는지 혹시 아우?" "임꺽
정이라니 도둑놈 아니오?"  "그렇다는갑디다." "집두 절두 없는 도둑놈이 붙백여 
사는 데가 어디 있게소." "도둑놈이라두 몸담아  있는 곳은 있을 것 아니오." "바
위 밑에  굴을 파구 굴 속에서  산답디다. 가까이 있으면 한번  찾아가서 힘겨룸 
좀 해볼 생각이 있소." "힘겨룸할라구  일부러 도둑놈을 찾아간단 말이오? 별 양
반 다보겠네." "철원  가서 물으면 임꺽정이 있는  굴을 알 수 있겠소?" "그놈이 
올 봄에 살인하구 관채에게  쫓겨서 타도루 도망했다는데 그때는 황해도루 갔단 
말이 있더니 요새 들으니까 이 골 경내에 와서 숨어 있단 말두 있습디다." "그럼 
지금 철원 땅에는 임꺽정이가  없소?" "임꺽정이가 없어진 덕에 올에는 철원  경
내가 조용했다우."  "똑똑히 아우." "내 말을  못 믿거든 철원 거서  물어보구려." 
꺽정이는 철원과 영평을 거쳐서 서울로 가려고 생각했었느데 그 집 주인의 말을 
듣고 철원은 이  다음 다시 알아보고 가기로 속마음에 작정하였다.  이튿날 꺽정
이가 촌가에서 일찍  떠나 짧은 해에 길을 나우  걸어서 연천읍 이십여 리 밖에 
와 자고  그 다음날 해가 한나절이  훨씬 기운 뒤에 영평  도덕여울을 대어왔다. 
꺽정이가 졸개더러 짐짝을 길가에 벗어놓고 쉬라고 이른 뒤에 이리 어슬렁 저리 
어슬렁하며 애꾸눈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승석때가 다 되도록 기다려도 나오지 
아니하여 꺽정이는 슬며시  홧증이 났다. 졸개가 여울가에 누워 자는  것을 꺽정
이가 와서 보고  "이눔아 무슨 잠이냐!" 하고 소리를  지르니 졸개는 건공잡이로 
벌떡 일어나며 곧 가서 짐짝을 짊어지려고 하였다. "짐은 왜 지느냐?" "가자시는 
줄 알았습니다." "누가  가재!" 꺽정이가 졸개를 꾸짖는 중에 등  뒤에서 "거기서 
떠드는 놈이 누구냐!"  불호령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과연 애꾸눈이  한 놈이 길 
옆 숲 앞에 칼을 짚고 나섰다. 꺽정이가 애꾼눈이 앞으로 오면서 "오,  너 나왔느
냐! 내가 너를 오래 기다렸다."  하고 말을 붙이니 애꾸눈이 당황한 모양으로 외
눈을 둥그렇게 뜨고 꺽정이를 바라보며 "넌 날 아는가 부다만 난 너 같은 놈  꿈
에도 본 생각이 없다." 하고 말한 뒤 곧 다시 "내 앞으루 오
지 말구 게쯤 섰거라.  네가 청맹과니 아니면 이것이 눈에 보이겠지." 하고 칼을 
앞으로 내들었다. 꺽정이가 곧 쫓아 들어가서  칼을 뺏어버리려다가 어떻게 하는 
꼴을 좀 두고 보려고 발을  멈추고 서니 애꾸눈이가 당황하여 할 때와 딴판으로 
바로 큰기침을 하면서  "내 손에 칼이 있으면 호랭이에 날개  돋친 셈이야. 팔도 
군사가 눈앞에 몰려와두 눈꼽재기만큼 겁낼 내가 아니다." 하고 흰소리를 내놓았
다. 흰소리를 듣고 꺽정이가 빙그레 웃으니  애꾸눈이는 다시 떨떠름하게 여기는 
눈치로 고래를 몇 번  가로 흔들고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면서 "네가 대체 날  왜 
기다렸느냐?" 하고 묻는데 묻는 말은  건정이었다. "네가 내 앞에서 내뺄 생각이
냐!" 꺽정이가 소리를 지르니 애꾸눈이는 얼른 뒷걸음치던 것을 그치고 "누가 뉘 
앞에서 내뺀단 말이야!  네가 아마 내뺄 생각이  나는게다." 하고 입을 실쭉하였
다. "내가 네게 물어볼 말이 있다." "물어볼 말이 있어? 무슨 말?" "네 성명이 무
어냐?" "선성을 미리 듣구 온 줄 알았더니 성함두 아직 모르느냐! 성씨는 임씨시
구 함자는  꺽자 정자이시다. 네  성명은 무엇이냐?” “내 성명이  무엇이냐구? 
내가 임꺽정이다” 애꾸눈이는 입을 딱  벌리고 말을 못 하다가 잠깐 동안 지난 
뒤에 헤헤 하고 억지웃음 웃으면서 “참말이오? 무얼 거짓말이지. 저것 봐, 웃는 
걸 보니까 거짓말이야”하고 어린아이 응석하듯이 말하였다.
  “미친눔이루구나” “대체 무슨 일루 날 보러 왔소?” “너를 버릇 가르치러 
왔다” “버릇을 어떻게 가르칠라우? 다 큰  놈을 종이라 때릴라우?” “이눔아, 
네 모가지를 돌려앉힐 테다”  “모가지를 돌려앉히면 앞을 못 보라구” “이눔
이 나를 씨까슬르지 않나”하고  꺽정이가 주먹 부르쥐는 것을 애꾸눈이가 보고 
“잠깐 가만히 서서 말 한마디만  들어 주우”하고 사정하듯이 말한 뒤 무슨 말
을 할 듯이 헛기침을 한두  번 하더니 “나는 가우”하고 휙 돌아서며 숲속으로 
도망질을 쳤다.  “이눔, 네가 어디루  도망할 테냐!”하고 꺽정이가  애꾸눈이의 
뒤를 쫓았다. 쫓기는 애꾸눈이와 쫓는 꺽정이가  잠깐 동안 숲속에서 숨바꼭질하
듯 하다가 꺽정이가 바싹 가까이 대어들며 “이눔아!”하고  고함을 지르니 애꾸
눈이는 얼른 칼을 내버리고 꺽정이  발 밑에 꿇어앉아서 가쁜 숨을 돌리면서 “
인제 버릇 배웠습니다. 용서합시오”하고 두 손으로 빌었다.
  꺽정이가 애꾸눈이를 내려다보며 “네가 내게 항거하고 대들었다면 혹시 용서
해 줄 생각이 났을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칼을  가지구두 쓰지 못하구 날 잡
아잡수하는 못생긴 눔은 용서해 줄 수 없다. 너  같은 못생긴 눔이 내 이름을 더
럽혔으니 그 죄가 백번 죽어 싸다”하고 호령하였다.
  “제가 원체 생각이 좀 부족한 놈인데 그런  말씀을 진작 해주시지요. 지금 칼
을 도루 집어가지고 와서 항거해 보겠습니다”하고 애꾸눈이가 새삼스럽게 일어
서려고 하는 것을  “별 우순 눔 다  보겠다”하고 꺽정이가 발끝으로 걷어차서 
뒤로 벌렁 자빠졌다.  애꾸눈이가 걷어차인 가슴을 부둥켜안고  “아이구 가슴이
야! 아이구 죽겠네!”하고 엄부럭을 떠는데  꺽정이가 머리맡에 와 서서 “너 같
은 눔은 손댈 것도 없이 발루 짓밟아 죽일 테다”하고 한편 발을 들먹거리니 애
꾸눈이가 얼른 두 손을 내밀어서 그 발목을  붙잡고 매달렸다. 꺽정이가 한 손으
로 옆에 섰는  나무를 붙들고 발을 앞으로 들고  뒤로 채고 또 좌우로 휘둘러서 
애꾸눈이는 몸뚱이가 끌려나가고 끌려들어오고  또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하
였으나 붙잡은 발목은 죽어라구 놓지 아니하였다.
  “발목 놓고 일어나거라.” “이만큼  항거하면 용서하실랍니까?” 애꾸눈이가 
꺽정이의 발목을 놓고 일어나며 곧 꿇어앉았다.  “그만하구 용서해 주시는 것두 
감지덕지하외다.” “내가 언제  너를 용서해 준다드냐?” “용서해 줄  테니 일
어나라구 하셨습니요.” “이놈 보지 거짓말이 난당이구나.” “거짓말이든 참말
이든 용서만 해줍시오.” “용서 못 하겠다.” “그럼 어떻게 해야 좋습니까? 다
시 발목을  잡구 매달리오리까?” 애꾸눈이의 말하는  것이 우스워서 한옆에 와 
섰던 졸개가  낄낄거리고 웃는 것을  애꾸눈이는 바라보고 “여보,  웃는 양반이 
뉘신지는 모르지만 웃지  말구 이리 와서 용서가 내리두룩 말씀  좀 해주구려.”
하고 사정하였다. 졸개가  더욱 낄낄거리다가 꺽정이에게 꾸지람을  받으니 애꾸
눈이는 이것을 보고 “죽을 고에 든 사람을 가엾이 생각 않구 웃기만 하더니 아
이구 잘코사니야”하고 말하여  이번에는 꺽정이까지 빙그레 웃었다.  웃음빛 떠
도는 꺽정이의 얼굴을 애꾸눈이는  치어다보며 “제발 덕분에 죽이지만 말아 줍
시오.”하고 애걸하였다. 꺽정이가  바른손을 주먹 쥐어 내밀면서 “그럼,  이 주
먹으루 세 개만 맞아라”하고 말하니 애꾸눈이는 생각해 보는 것처럼 고개를 기
울이디가 말고 “주먹을 한 개 맞구 제가 죽으면 두 개에 두 번 죽음하구 세 개
에 세 벌  죽음하지 않습니까. 그런 속임수는  쓰지 맙시오.”하고 두 손을 얼굴 
앞에 내들고 흔들었다.
  “주먹이 무서우면 매를  맞을라느냐?” “그대루 용서해 줍시오” “그건 안
되겠다” “그대루 용서해 주시면  아들 자식 노릇을 하라셔두 고분고분히 할테
구 종 하인  노릇을 하라셔도 소인 하구  할 텝니다”꺽정이가 애꾸눈이의 말을 
듣고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네가 일평생 나를 따라다닐 테냐?”하고 물으니 
“따라다니다뿐입니까. 이생의 일평생은  고만두구 후생까지라두 따라다니겠습니
다”하고 애꾸눈이는 열 번 스무 번 고개를  끄덕거리었다. “네가 성은 임가나?
” “본성은 노가올시다” “저런  눔 봐. 성도 임가 아닌 눔이  내 행세를 했단 
말이냐!” “지금이라두 성을  임가루 고치라시면 두말 않구  고치겠습니다” “
미친 눔 같으니, 이름은 무엇이냐?” “원이름은 밤이올시다” “노밤이야. 고만 
일어서거라” 노밤이는  녜 하고  일어나서 “새판으루 문안드리겠습니다”하고 
꺽정이에게 대하여 허리를 굽실하였다.
  꺽정이가 노밤이를 서울로 데리고  가서 남소문 안 한첨지 부자에게 구경시키
려고 생각하고 “너 이번에 나하구 같이 서울을 가자”하고 말하니 노밤이는 선
뜻 녜 대답하고 나서 “다른  데 가시는 길두 아니구 여기까지 전위해 오셨구먼
요. 요전에 서울놈  한 놈을 놔보내구 뒤가 께름하더니 고놈이  가서 고자질했지
요. 고놈이 천생 고자질이나 할 놈으루 생겼습디다. 그때 고놈을 잔뜩 묶어서 이 
아래 깊은 소에 집어 처넣으려다가 아버지  살려줍시오, 할아버지 살려줍시오 애
걸하는데 불쌍한 생각이 나서  풀어놔 보냈더니 고놈이 가서 고자질을 했습디다
그려. 서울놈들이란 새알  볶아먹을 놈들이에요. 제가 서울놈들에게 많이 속아봤
습니다”하고 수다스럽게 지껄이었다. 노밤이가 고놈 고놈  하는 서울 사람이 딴 
사람이면 모르되 남소문 안에서  왔던 사람이라면 소에 묶어 넣으려다가 불쌍해
서 놓아보냈다는 것이 백판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 꺽정이가 황천왕동이의 이야
기를 들은 간이 있어서 짐작이  없지 않건만 구태여 발기집이서 묻지 않고 다른 
말을 물었다.
  “네 집안 식구는 몇이냐?”  “제 집안 식구는 잠뿍 둘뿐인데 그나마 하나는 
그림잡니다” “저눔이 성한 눔인가. 그래 다른 식구가 없단 말이냐?” “녜. 스
발막대 내둘러두  걸릴 데 없이 저  한몸뚱이뿐이올시다” “너같이 수다스러운 
눔 처음 보겠다. 이  다음엔 너무 수다 떨면 입을 짜개놓을  테니 조심해라” “
둘이 있어 좋은 눈깔은 하나만  가지구 하나라야 쓰는 아가리는 둘씩 가지면 저
는 무엇이 되라구요”  “쓸데없는 아가리 고만 놀리구  네 집에 가서 행장이나 
수습해 가지구 나오너라” “지금 해가  다 져가니 제 집에 가서 하룻밤을 드새
시구 내일 어뜩 새벽 떠나시지요” “어쨌든지 네  집으루 가자. 네 집이 여기서 
멀지나 않으냐?” “바루 이 숲 뒨데 엎드러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깝습니다” 노
밤이가 꺽정이의 말을 대답한 뒤  졸개를 가르키며 “저 사람은 데리구 오신 짐
꾼이오니까?”하고 물어서 꺽정이가  고개를 끄덕이니 곧 졸개를 돌아보며 “여
게 어서 짐 지게”하고 저의 짐꾼을 부리듯이  말하였다. 졸개가 옆에 놓은 짐을 
그대로 두고 몇 걸음 꺽정이에게로 가까이 나와서 “저 애꾸의 집으루 가시렵니
까?”하고 묻는 것을 꺽정이는  대답할 사이도 없이 노밤이가 대번에 혀를 차고 
“이 자식아, 구렝이를 똑 구렝이라야 맛이냐. 너같이 뱀뱀이 없는 놈은 생전 남
의 짐이나 지구  다녔지 별조없다”하고 욕설하였다. 가는 말이 곱지  못하니 오
는 말도 고울 까닭이 없다.
  “저놈이 성한 눈깔 마저 멀구 싶은가?” “이놈아  악담마라. 내가 판수 되면 
네가 먹여살릴 테냐?”  “이놈아 네가 악담했지 내가 악담했어!” “나는  이날 
이때까지 악담이라구 한번두 해본 일이 없다” 졸개가 또 대꾸하려구 입을 벌릴 
즈음에 “기탄없이 떠들지 말구  짐이나 지구 나서라” 꺽정이가 꾸짖어서 졸개
가 입을 다물었다.  노밤이는 이것을 보고 저의 볼기짝을 두들기며  “아이구 고
소해라”하고 웃다가 꺽정이가 별안간 “무에  고소하냐!”하고 큰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목을 움칠하고 입을 딱 벌렸다. 졸개가  짐짝을 지는 동안에 노밤이는 내
던진 칼을 찾아가지고 와서 앞서서 저의 집으로 인도하였다.
  노밤이의 집이란 것이 후미진 곳에 외따로 묻은 움집이라 집 전체가 곧 방 한 
간인데 그 방에 거적을 매단 문이 있고 또 종이를 붙인 창구멍이 있건만 침침하
고 음산한 방안이  널찍하게 만든 초빈 속과 비슷하였다. 꺽정이가  거적문을 치
어들고 방안을 들여다보다가  “이런 속에서 사람이 어떠게 산단 말이냐?”하고 
옆에 섰는 노밤이를 돌아보았다.  “아늑한 맛이 있어서 좋습니다. 며칠 계셔 보
실랍니까?” “예끼 미친  눔, 하룻밤 자기두 답답하겠다” “이  방을 답답하다
시면 좁은 굴 속에선 잠시를 못 지내시겠네요. 저는  철원 있을 때 겨우 다리 뻗
구 누울 만한 굴 속에서  일년 이태 지냈습니다” “네가 철원서 살인하구 도망
한 눔이냐?” “살인이라니요? 말만 들어두 끔찍스럽습니다” “철원서두 내 이
름 가지구 도둑질 해먹었지?”  “행인을 혼내느라구 함자를 잠깐 잠깐 빌려 써
봤습니다.” “인제 알구 보니  네가 철원 있던 눔이야.” “무슨 소문을 들으신 
게 있습니까?” “살인하구 도망했단 소문을  들었다.” “살인했단 악명만 뒤집
어썼지 실상  살인한 일은 없습니다.”  “누가 너를 대살시킨다구  발명이냐?” 
“억울한 말씀을 하시니까 자연 발명이 나옵지요.”
  꺽정이가 빙그레 웃기만 하고 억울한 사정을 물어 주지 않는 까닭에 노밤이는 
제풀에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제가 어느 때 하루  종일 굶고 자는데 밤에 배가 
과서 잠이 잘 오지 않습디다. 그래서 무엇을  좀 얻어먹을까 하구 가까운 동네에 
단 내외 사는 집을 찾아갔습니다. 방안에 불은  키였는데 아무 기척이 없어서 문
구멍을 뚫구 들여다보니 서방놈은  아랫목에 앉았구 기집년은 웃목에 앉아서 마
주 바라보구 있는데  중간에 조그만 떡시루 하나가 놓였습디다. 마침  잘 왔구나 
생각하구 제가  문을 열구 들어서지  않았겠습니까. 내외 연놈이  다 쳐다보면서 
말 한마디 않습디다. 제가 되려 어이가 없어서  한참 우두머니 섰다가 우선 떡이
나 좀 먹구 이야기할 배짱으루 시루 앞에 와서 떡을 떼어먹는 데 한 켜를 다 먹
구 두 켜를 시작하자 웃목에  있는 기집년이 아이구 저것 봐 다 먹겠네 하구 소
리지르구 기집년의 입에서  말이 나오며 곧 아랫목에  있는 서방놈이 인제 떡은 
다 내 게다  하구 소리지르며 쫓아와서 떡시루를 끌어안습디다. 나중에  아니 그 
연놈이 다르며 쫓아와서  떡시루를 끌어안습디다. 나중에 아니 그 연놈이  다 흉
악한 떡보라 조그만 시루 하나  가지구 둘이 양이 차지 못하는 까닭에 내외간에 
누구든지 말을 먼저 하는 사람은 떡을 못  먹기루 내기를 했더랍니다. 제가 그때 
그건 알지 못하구 떡을 맛나게  먹는 중에 서방놈이 시루째 뺏으려구 하는 것이 
괘씸해서 왈칵 떠다박질렀더니 손에  살이 있든지 그놈이 시루를 안고 자빠지며 
바루 천장을 쳐다보겠지요. 이래서 제가 살인  악명을 뒤어쓰게 되었습니다” “
네 이야기란 것이 천생 미친 눔의 이야기다”꺽정이가 껄껄 웃는데 졸개도 한옆
에서 낄낄 웃었다. 노밤이는 저녁 하늘을 치어다보며 “해가 다 졌네. 저녁을 지
어서 잡숫게 해야지”하고 방안에 들어가  쌀 한 바가지를 들고 나와서 한데 걸
린 곱돌솥에 밥을 짓는데 꺽정이의  졸개와 오랜 사귄 친구같이 너나들이 해 가
며 같이 지었다.
  거적문 앞에서 저녁밥들을 먹어치우고 방안에 들어와서 등잔불을 켜놓고 앉았
을 때 꺽정이가 노밤이더러 고향을 물은 것이 노밤이의 신세 이야기를 자아내었
다.
  노밤이는 본래 해주 사람으로 황해감영에서 금도군사를 다니었는데 힘꼴이 든
든하고 위태한 일에 몸을 사리지 아니하여 군사로 들어간 지 불과 사오 년에 도
적 잘 잡기로 감영 안에서 이름이 났었다. 어느  때 도적 몇 놈이 약산 청량사란 
절을 떨어가서 그 도적놈들 종적을 수탐하는 중에 임판서댁이란 해주서 한골 나
가는 양반의 댁 행랑에 수상한 놈이 파묻혀 있는 것은 알았으나 양반의 댁 낭속
이라 막  들어가서 잡지 못하고 그  놈이 동네 테 밖으로  나오기만 기다리었다. 
어느 날 그놈이 친구 하나를  데리고 어디 나가다가 노밤이 손에 붙들리는데 그
놈이 항거할 뿐 아니라 그 친구놈도 편을 들어서 노밤이 혼자 둘을 대적한 끝에 
두 놈을 함께  오라를 지웠었다. 그 친구놈은 한옆에 제쳐두고  그놈만 잡아내서 
밥을 내려고 한즉  그놈이 독하고 모질어서 좀처럼  불지 아니하여 그 친구놈도 
간간이 족쳐 보았었다. 두 놈을 며칠 두고  단련하는 동안에 임판서 집에서 어떻
게 감사께 청질을 하였든지 감사가 두 놈을 다 그대로 들어내 놓게 하고 노밤이
는 양민 포착하였다고 눈을 빼게  하여 대통에 눈자위를 박고 뒤통수를 쳐서 눈
알을 뽑는 마당에 감사가 무슨  선심으로 사를 내렸으나 사가 늦어서 눈알 하나
는 뽑았다가 다시 박은 까닭에 애꾸눈이가 되고 말았다.
  노밤이가 병신되고 밥줄 떨어져서 집에 나와 있는지 불과 일 년 만에 늙은 어
미는 굶주린 끝에 병나서 죽고  젊은 계집은 어떤 총각놈을 붙어서 도망하여 계
집 찾아나선다고 고향을 등지고  떠나서 일 년 남짓이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운달산패에 입당하여 박연중이 수하에서  칠팔 년을 지내었는데 이 동안에 양주 
장사 임꺽정이의 이야기를  많이 얻어들었었다. 박연중이가 자녀까지  낳은 첩이 
있건만 젊은 첩을 여러 번  갈아들이었는데 한번 원첩이 새로 들어온 첩을 모함
하여 내쫓는 통에 노밤이가 새  첩에게 심부름 잘한 탓으로 원첩에게 먹혀 운달
산에 있지 못하게 되어서 운달산  나온 뒤 오륙 년 동안 재령, 서흥, 신계, 토산, 
철원 여러 고을 땅으로 굴러다니고 철원서 햇수로 삼 년을 지낸 것이 한 군데서 
가장 오래 있은 것이라고 하였다.
  노밤이의 신세 이야기가 대강 끝난 뒤에 꺽정이가 노밤이더러 “네 기집은 이
내 못 찾았느냐?”하고 물으니 노밤이가 고개를 외치며 “운달산 들어가기 전까
지는 찾을 생각이  바이 없지 않았지요만 지금은  눈앞에 있대두 찾지 않겠습니
다.”하고 대답하였다. “남에게  뺏겨두 아깝지 않은 기집이드냐?” “말뼉다귀
라두 제 것을 남에게 뺏기구 어찌 아깝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일이 석어서 아
까운 맘두 다  없어졌습니다.” “네 나이 지금 한 사십  되었지?” “마흔에 우
사 하나가  더 붙었습니다.” “사십  홀애비눔이 각처루 돌아다니며  남의 기집 
겁탈두 많이 했겠구나.”  “싫다는 기집을 우격다짐해서야 무슨  재미가 있습니
까. 저는 남의 기집 겁탈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눔, 거짓말 마라!” “제가 
어디서 기집 겁탈했단 소문을  들으셨습니까?” “그럼 십여 년 동안 기집을 모
르구 지냈단 말이냐?”  “저를 보구 꼬리치는 기집은 대개  다 받아주었지요.” 
“너 같은 놈을 보구 꼬리치는 기집이 다 있더란 말이냐?” “저는 사내가 아닙
니까. 왜 기집이 꼬릴 치지  않겠습니까. 대체루 사내 싫단 기집은 제 평생에 아
직 하나두 못  봤습니다.” “그럼 왜 다시 장가는 들지  못했느냐?” “맘에 드
는 기집을 고르는 중입니다. 이번 서울 가거든  좋은 기집이나 하나 골라서 장가
를 들여 주십시오.” “미친 년이나 하나 골라주랴?”  “세상에 성한 기집이 동
이 났습니까. 왜  하필 미친 년입니까?” “네가 미친 눔이니까  미친 년이 얼맞
지.” 꺽정이가 누우려고  벨 것을 찾으니 노밤이가 일어나서 퇴침과  이불을 갖
다주는데 서울 양반의 행구를 빼앗은 것이라 오시목 퇴침과 명주 이불이 토굴방
과는 어울리지 않도록 훌륭하였다.
  꺽정이는 처신으로 실없는 말을 안할 뿐외라 천성이 실없은 말을 잘하지 못하
는 까닭에 졸개가 근 일  년 동안 꺽정이 수하에 가까이 돌았건만 누구하고든지 
실없은 말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꺽정이가 노밤이 데리고 수작하는 말
을 졸개는 옆에서 듣고  속으로 괴이쩍게까지 여겨서 슬금슬금 꺽정이의 얼굴을 
바라보니 노밤이가 손끝으로 옆구리를  쿡 찌르며 “경치게시리 눈치 보는 자식
일세”하고 허허허 웃어서  “존전에서 방자스럽게 그게 무슨 웃음이냐?” 졸개
가 노밤이를  나무랐다. 누워 있는  꺽정이가 빙그레 웃으면서  “너희들 맘대루 
웃구 떠들어라.”하고  말하니 노밤이는 졸개보고  “자, 어디  꾸중하시나 봐라. 
이때까지 눈치만 보구두  꾸중하실지 안 하실지 모른단 말이냐?”하고 오금박듯 
말하였다. “꾸중만 안 들으면 장사냐? 사람이 도리를 차릴 줄 알아야지.” “나
두 대장을 뫼시구 지내본 사람이야. 도리 차리는 건 너깐놈한테 지지 않는다, 이 
자식아.” “이 자식 저 자식 아니하면 말을  못하나! 말버릇두 고약하다.” “네
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지 않은 바엔 쇠자식이든 사람의 자식이든 자
식은 자식이겠지.” “욕지거리가 난당일세. 망할 자식 같으니.”
  노밤이와 졸개가 한동안 우스개로  욕질을 하는데 졸개는 입심이 노밤이를 당
치 못하고 또 꺽정잉게 눌려서 대거리를 톡톡히 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아가리
를 더럽게 놀리면  주먹으루 우겨줄 테다.”하고 팔을 내미니 “새  종아리 같은 
팔뚝을 내들구 힘자랑하는 모양이냐?”하고 노밤이는  코웃음을 쳤다. “우리 팔
씨름 한번 해볼라느냐?”  “네깐 놈은 회목 잡아주지.” “흰소리  같으면 하늘
의 별두 따겠다.” “하늘의 별을 딸 놈은  있을는지 몰라두 팔씨름으루 날 이길 
놈은 아직 생겨나지두  않았다.” 노밤이의 시룽시룽하는 것이  밉지는 아니하나 
시룽시룽하는 까닭에 더욱 미덥지  아니하여 꺽정이는 노밤이가 저의 집으로 가
자고 청할 때  “저놈이 무슨 딴 맘을  먹구 가자지 않나. 그러나 저깐  놈이 딴 
맘을 먹는다면  나를 어찌하랴.”넘보아서 두말  않고 같이 왔었으나  같이 자는 
데는 조심이 바이 없지 못하여 다소 설치게  되었다. 이튿날 꺽정이가 새벽 잠이 
들어서 한숨 달게 자고 노밤이와 졸개가 아침밥을 지어놓은 뒤에 비로소 일어났
다.
  아침밥이 끝난 뒤에 노밤이가 행장을 수습하여 내버리고 가지 아까운 것이 한 
가지 두 가지 차차로 많아져서  부담상자 하나가 뚜껑이 잘 덮이지 않도록 쑤시
어 넣고도 옆에 붙이고 위에 얹을 것이  많이 남았다. 구중에 돗자리와 기직자리
는 함께 돌돌  말았으나 길이가 있어 거추장스럽고  입쌀과 서속쌀은 한 자루에 
올망졸망 넣었으나 무게가 묵직하여  이 두가지를 노밤이는 졸개에게 떠맡길 생
각으로 “자네 짐은 내 짐버덤 휠씬 가볍지?”하고  졸개에게 말을 붙였다. “왜 
그래? 가벼우니  짐을 바꾸어 줄까?”  “자네가 그런 선심이 있다면  제법이게. 
건너다보니 절터가 환한걸.”  “내가 난생 처음 선심을 좀 써볼랬드니  제법 소
리가 듣지 창피해서  고만두겠네.” “짐을 바꾸면 자네는 선심 있는  사람 되구 
나는 염의 없는 사람되니  내가 곱는 속 아닌가. 자네가 바꾸어  준대두 내가 바
꾸지 않네.  그런데...” “그런데 어떻단 말이야?”  “우리 둘이 대장을 뫼시구 
가는데 내가 무거운 짐을 지구 허덕거려서 길이 더디어지면 그게 황송하지 않은
가.” “그렇기에 누가 짐을  무겁게 만들라나? 다 내버리구 맨몸으루 가세그려.
” “짐에 더 넣어 좋을  것은 많이 있지만 짐에서 도루 빼놓을 것은 하나두 없
네.” “그러면 무거운  짐을 지구 가는 게지.”  “우리 둘이 무거운 짐 가벼운 
짐 돌려 지구 가면 어떻겠나?” “그건 내가  싫은걸.” “우리가 인제는 한집안 
식군데 그걸  싫단 말이냐. 사람의 자식이  인정머리가 그렇게 없어선 못쓴다.” 
“골을 내면 내가 얼른 그렇게 하자구 할걸.”  “싫다는 걸 누가 치사스럽게 조
르겠나. 고만두게.”  “고만두라면 겁나는데.” “자리 뭉치하구  쌀자루나 자네 
맡게.” “그건 왜 맡으래?” “자리는 대장 깔아 드릴 게구 쌀은 길양식이야.” 
“대장께서 분부나 하시면 모를까 자네가 맡으래선  못 맡겠네.” 노밤이가 꺽정
이를 바라보고 “분부  좀 해주십시오.”하고 청하는 것을  꺽정이가 “너희끼리 
의논해서 하려무나.”하고 들어주지  아니하니 노밤이는 다시 졸개를  보고 “의
논해서 하라시니 우리 의논하세. 내 짐은 무겁구  자네 짐은 가벼우니 자네가 더 
져야 사리가 옳지 않은가.”하고 바로 의논성 있게 말하였다.
  “나는 내 짐 외에 지푸래기  하나두 더 지구 갈 생각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
” “내가 자네더러  아저씨라구 할 테니 더 지구 가세.”  “아버지라구나 한다
면 생각해 보지.” “아버지라구 하면  꼭 지구 갈 텐가?” “그래 보지.” “그
럼 아버지라구  함세.” “아버지라구 불러봐라.”  노밤이가 졸개더러 호부까지 
하고 필경 자리 뭉치와 쌀자루를 떠맡겼다.
  꺽정이가 졸개와 노밤이를 데리고  영평 도덕여울서 떠나서 포천 솔모루 와서 
중화하고 일 마장 가량 길을  왔을 때 바른손편 갈림길에서 초립동이 하나가 무
엇에 쫓긴  것같이 엎드러지며 고꾸라지며  뛰어왔다. 노밤이가 맨  앞에 오다가 
먼저 보고 괴상히 여겨서 걸음을 멈추고 섰는 중에 초립동이가 허둥지둥 쫓아오
더니 가슴에 안기려는 것같이  앞으로 달려들며 밑도끝도없이 “어머니 좀 살려 
주세요.”하고 소리질렀다. 노밤이가 초립동이를 쓰러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면서 
“어머니가 어디 있어?”하고 물으니 초립동이는 숨이 턱에 닿아서 입을 벌리고 
헐떡거리다가 얼마 만에  우는 소리로 “석문령 고개서  도적을 만났세요.”하고 
대답하는데 울음 반 말 반이라 말이 똑똑치  못하였다. “어느 고개서 도적이 났
어?” “석문령 고개요.” “그래 그 고개서  어머니가 도적에게 잡혔단 말인가?
” “녜.” “도적이 어머니를 죽이려구 하든가?” “죽이려구  하는 건 못 봤세
요.” “그럼 어떻게 하든가?”  “붙들구 끄는 것만 보구 왔세요.” “어머니가 
나이 젊은 걸세그려.” “얼른 가서  어머니 좀 살려 주세요. 그 동안 벌써 어떻
게 됐는지 모르겠세요.”
  노밤이가 뒤에 와 섰는 꺽정이를 돌아보며 “어떻게  할까요. 가봐 주는 게 좋
겠지요?”하고 의향을 묻는데 꺽정이는 노밤이의 말을 대답 않고 초립동이 보고 
말을 물었다. “도적이 여러 눔이드냐?” “한 놈이에요.” “단 한눔이야? 너만
큼 큰 자식이 어미를 도적 한 눔에게 뺏긴단 말이냐!” “어른인걸요. 제가 어떻
게 당해요.” “못 당할 듯해서 어머는 내버리구  혼자 도망해 왔느냐?” “가라
구 발길루 차는 걸 어떻게 해요.” 초립동이가  발명같이 말하는 것이 꺽정이 비
위에 거슬려서 “너 같은 못생긴 자식은 어미를 뺏겨두  싸다.  얼른 네 집에 가
서 네 아비더러나 말해라.”하고 언성을 높여서  꾸짖으니 초립동이는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노밤이가 초립동이의 등을  뚜덕뚜덕 두들기며 “이 사람 울지 말게.  울면 어
머니 죽네. 어머니가  살아야 젖을 먹지.”하고 농조로 달래다가  “집이 어딘가, 
여기서 가까운가?”하고 물으니 초립동이가 양편 손으로 눈물을 이리 씻고 저리 
씻고 하면서  “비선거립니다.”하고 대답하였다. “비선거리서  어디 가는 길인
가?” “포춘읍내 외가에 가는 길입니다.” “그럼 얼른  포천읍내 가서 외가 사
람을 데리구 오게.”  “그 동안에 어머니는 죽으라구요?” “자네  어머니가 죽
지 않을 건 내가 담보할 테니 염려 말구 가게.” “싫어요. 나하구 같이 가서 어
머니를 살려 주세요.” 초립동이는 또 엉엉 울면서 노밤이에게 매어달렸다. 노밤
이가 꺽정이를 돌아보며  “이걸 어떻게 합니까. 불쌍하니 잠깐 가봐주시지요.”
하고 사날 좋게  권하듯 말하니 꺽정이는 얼굴에  미타한 기색을 보이면 고개를 
외쳤다. 노밤이가 꺽정이를  보고 “그까지 좀도둑놈 한 놈쯤 저의만  가두 넉넉
합니다. 잠깐 여기서  쉬십시오. 저의 둘이 얼른 갔다오겠습니다.”하고  말한 뒤 
곧 졸개를 보고 “우리 둘이 잠깐 가  봐주고 오세.”하고 말하니 졸개는 꺽정이
의 기색을 보고 “난 싫다. 갈라거든 네나 혼자 가거라.”하고 역시 고개를 외쳤
다.
  노밤이가 혼자 석문령을 갔다 오겠다고 나서는 것을 꺽정이가 못 가게 금하지 
아니하여 노밤이는 저의 짐을 길가에 벗어놓고 졸개 짐에 붙인 자리뭉치 속에서 
환도를 꺼내서 몸에 지니고 초립동이를 데리고  갈림길로 나갔다. 졸개가 노밤이
와 초립동이의 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꺽정이 앞에  와서 “석문령 고개가 예서 
멀진 않습니까?”하고  물으니 꺽정이는 전에 다녀본  가량이 있어서 “아마 삼 
마장쯤 될 게다.”하고 대답하였다.  “삼 마장이나 되면 갔다만 오재두 한참 될 
텐데 밤이놈이  제멋대루 지체하구 오면  길이 여간 늦지  않겠습니다.” “오늘 
당일 서울 대가기는  이왕 틀렸으니 길이 늦어두 낭패될거 없다.”  “여기서 기
다리시렵니까?” “길가에 앉았느니 어디 양지바른 잔디밭으루나 가자.”
  길 좌우편이 모두 논밭이라 앉아 쉴 만한 잔디밭이 없어서 꺽정이는 노밤이의 
짐을 들고 졸개는 저의 짐을  지고 갈림길로 들어서서 한참 늘어지게 오다가 산
기슭 양지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숭물스러운 밤이눔이 어떤 짓을  하나 슬
그머니 가보구 올까요?” 졸개가 말하는 것을 꺽정이가 허락하여 졸개는 노밤이
의 뒤를 쫓아서 석문령으로 오게 되었다.
  노밤이가 초립동이를 데리고 석문령  고개 위에 돌아서서 “도적난 데가 어딘
가?”하고 초립동이를 돌아보니  초립동이가 소나무 많이 들어선 곳을 가리키며 
“조기 조 솔밭  앞입니다.”하고 말하였다. 노밤이가 초립동이더러 멀찍이 따라
오라고 이르고 솔밭 가까이 내려오며 바라보니 솔밭 속에 너푼거리는 흰옷이 눈
에 뜨이었다. 도적이 여편네의 사지 잡아맨  것을 풀어주느라고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중에 노밤이가 환도를 빼들고 솔밭에 들어서며 “이  개 같은 못된 놈아!”
하고 큰소리를 지르니  도적이 얼른 허리를 펴고  서서 노밤이를 뻔히 바라보았
다. “인두겁을 쓴 놈이 백주대로에서 개 같은 짓을 한단 말이냐!” “네놈이 웬
놈인데 남의 일에 참견이냐?”  “하늘이 높은지 땅이 낮은지 모르구 이놈 죽일 
놈 같으니.” “이놈아,  남의 일 참견 말구  어서 너 갈 길이나  가거라.” “너 
같은 놈을 살려두면 우리네  이름까지 더러워진다. 얼른 나와서 칼 받아라.” “
네가 대체 어디서 온 놈이냐?”  “뉘 손에 죽는지나 알구 죽으려느냐? 나는 임
꺽정이다.” 적이 임꺽정이란 성명을 듣더니 대번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인제 내가 누군지  알았느냐?” “양주읍내서 사시든 장사십니까?” “그렇
다.” “장사신 줄 모르구  말씀을 불공스럽게 했습니다. 제가 다시는 이런 짓을 
안할 테니 이번 한번만 용서해 줍시오.” “내가  초립동이의 청을 받고 너를 죽
이러 왔다.”  “그저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봐하니  나이 새파랗게 
젊은 놈이라 불쌍해서  특별 용서할 테니 빨리 도망해라. 초립동이가  울구 매달
리면 난처하다.” 도적은  몇 번 허리를 굽실거리고 솔밭에서 뛰어나가며  곧 쏜
살같이 고개 밑으로  내려갔다. 여편네는 눈을 감고 이를 악물고  죽은 사람같이 
자빠져 있는데 초립동이가 달려들어서  어머니를 부르며 몸을 흔들어 보다가 “
아이구 어머니 죽었네.”하고  혼감스럽게 울음을 내놓았다. 여편네가 겁과 분과 
독을 못 이겨서  기함되었던 것이다. 노밤이는 이것을 짐작하고 “내가  침을 잘 
놓네. 침 한 대루 자네 어머니를 살려낼 수 있으니 울지 말게.”하고 초립동이를 
달래었다. “얼른 침을 놔주세요.” “가만 있게. 맥이나 좀 보구 침을 놓세.”
  도적이 여편네의 사지를  네 군데 나무에 벌려  매었다가 두 다리만 풀어놓고 
쫓겨간 까닭에 두 팔은 벌려  매인 채 있는 것을 초립동이가 돌아다니며 풀어놓
은 뒤에 “자, 맥을  봐주세요.”하고 청하니 노밤이는 여편네 바른손 편에 주저
앉아서 천연스럽게 맥을 짚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다가 “이 근처에 샘이 있나?”
하고 초립동이를 돌아보았다. “샘은 어디 있는지  몰라두 도랑은 가까이 있습니
다.” “얼핏 샘을 찾아가서 물을 좀 떠오게.” “무엇에다 떠와요?” “참말 떠
올 그릇이 없지. 길가에 혹시 깨진 바가지쪽을  내버린 것이 없나 눈살펴 찾아보
게.” “깨진 바가지쪽을 누가 이런 산중에 와서 버리겠세요?” “옳지. 된 수가 
있네. 자네 주머니를 찼지?” “네, 찾세요.”  “주머니 세간은 괴춤이나 바짓가
랑이에 넣구 그 주머니에 물을 담아가지구 오게." "주머니 안이 더러운걸요." "변
통성 없는 사람이로군.  주머니 안을 뒤집어가지구 한번 북적북적 빤  뒤에 물을 
담게그려. 빨리 갔다 빨리  오게." 노밤이가 초립동이를 물 뜨러 보낸 뒤에 한번 
싱긋 웃고 여편네 아랫도리에 잘  여미어지지 않은 옷 틈으로 살이 드러난 것을 
손으로 덮으면서 "보아 하니 늙두 젊두 않으신 터수에 이런 망신이 어디  있습니
까. 백주에 행길에서 이  망신을 시키다니 그놈이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막비 
일수 불길한  탓이니 이러니저러니 할 것  있습니까. 이걸 남이 알면  망신에 더 
망신이 되실 테라 나하구 자제하구 말을 내지 않아야 할 텐데 자제가 아직 지각
이 좀 부족할  듯하니 말 내지 말라구 단단히 일러두십시오.  이르시기가 거북하
시다면 내가 일러두겠습니다." 노밤이가  정신 잃은 여편네하고 이야기하듯이 시
벌시벌 지껄이는 중에  살을 덮어주던 손이 당치 않게 깊이  들어갔다. 노밤이는 
홀저에 그 손을 빼치고  "나는 점잖은 사람이지만 잠깐만 점잔을 떼놓구  이야기
할 일이 있소.  내가 지금 꽃 본 나비  같구 물 본 기러기 같아서 그저  갈 수가 
없소. 용서하우." 하고 흡사 귓속말하듯이  속살거렸다. 이때 졸개가 소나무 뒤에 
붙어서서 노밤이의 동정을  엿보고 있다가 굵직한 나무  작대기 하나를 어디 가 
집어가지고 와서 신발소리 없이 노밤이 뒤로 들어가서 볼기를 한번 되게 후려갈
기고 도망하였다. 노밤이가 일어나서 돌아다볼 때  졸개의 그림자는 벌써 어디로 
없어져서 보이지 아니하여  노밤이는 솔밭 밖에까지 나와서 두리번두리번하다가 
“그 도둑놈이 안  가구 어디 숨어 있었든가베.” 하고 중얼거리며  다시 여편네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졸개가 꺽정이에게  와서 보고 온  노밤이의 지저구니를 
자세자세 이야기하고 난  뒤 “그 따위 숭물스러운  놈을 수하에 거두어 두시면 
일후에 무슨 낭패를 보여 드릴지 알 수 없으니 여기서 쫓아버리는 게 좋을 듯싶
소이다.” 이런 말로 간언까지 하였다. “밤이눔이 숭물스럽긴 해도 밉상은 아니
다.” “미친 놈같이 시룽시룽하는 것이 밉지는  안하와두 위인이 하두 숭물스러
워서 말씀이올시다.”“그눔이 오거든  너는 아뭇소리 말구 가만히 있거라.” 졸
개가 내려온 뒤에 보리밥 한  솥 짓기나 착실히 지나서 노밤이가 혼자 털털거리
고 내려와서 꺽정이를 보고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황송합니다." 인삿말 한
마디 하고 곧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거짓말투성이로 늘어놓았다. "제가 초립동이
를 데리구 고개에 올라가서  초립동이 어머니가 도적에게 붙들린 자리를 찾아가 
본즉 그 옆이 바루 큰  솔밭인데 솔밭 속에 젊은 놈 한 놈이 여편네를 자빠뜨려 
놓았습디다. 그래서 당장 그놈의 모가지를 돌려앉히려다가  젊은 놈이 얼굴 얌전
한 여편네를 보구 불측한  맘을 먹기가 용혹무괴거니 널리 생각하구 온언순사루 
타일러서 보내려구 솔밭 밖으루  불러냈솝드니 그놈이 손에 환두를 들구 쫓아나
와서 제잡담하구 대어듭디다. 선손 거는 놈을 가만둘 수 있습니까. 제가 칼을 빼
가지고 마주 싸웠습니다.  그놈이 원력두 세차거니와 칼 쓰는 것두  제법 법수가 
있어서 한바탕  쩍지게 싸웠습니다. 제가  변변친 못하지만 아무렇게  하든지 그 
따위 놈 하나야  못 당하겠습니까. 나중에 그놈이 제 칼을  받느라구 쩔쩔내다가 
홀저에 뒤로 뛰어 물러나며 칼을 잠깐만 머물러 달라구 청하구 칼 쓰시는 걸 보
니 유명한 검객  같으신데 성함이 누구십니까, 혹시 양주 임장사  아니십니까 하
구 묻습디다. 그래 나는 양주 임장사 수하에  있는 노밤이란 사람이다 하구 대답
해 주었습지요. 그놈이 그 말 한마디 듣구선  대번에 칼을 내던지구 앞에와 엎드
려서 살려달라구 애걸복걸합디다. 그놈의 한 짓이  괘씸치않은 건 아니지만 죽일 
맛이야 있습니까. 호령하구  꾸짖구 나무라구 타이르구 경계해서 보냈습니다. 이 
동안에 초립동이는 그 어머니를 구호하느라구 솔밭 속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 어
머니가 기함이된 것을 죽은 줄루 알구서 울며불며 하기에 제가
 샘물을 떠다가 얼굴에 뿜구  가슴을 문지르구 다리를 주물러서 펴어나는 걸 보
구 곧 내려왔습니다. 남에게 적선하다가 길이 늦어졌습니다. 서울을 내일 들어가
긴 매일반이니까 길 늦은 건 상관없겠지요만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황송합
니다.“ 노밤이가 양양자득하여  지껄이는 것을 꺽정이는 가만  내버려두고 있다
가 나중에 ”이눔아 네가 사람 눔이냐!“ 하고 소리를 꽥 질렀다. 노밤이가 초풍
하듯이 놀라서 눈치를 살펴보면서 ”꾸중을 들을까 봐서 얼근 온다는 것이 이렇
게 늦었습니다. 초립동이가 같이 가자구 붙들구  매달리는 것까지 뿌리치구 왔습
니다.“ 하고 늦게  온 것을 발명하다가 옆에서 웃는 졸개를  흘겨보며 "남 꾸중 
듣는 것이 저  칭찬받은 것버덤 더 좋은가베."하고 중얼거렸다. 꺽정이가  노밤이
의 거짓말한 것을 발간적복하여 야단친 끝에 "너 같이 거짓말 잘하는 놈은  처음 
봤다. 거짓말하는 데 정이 떨어져서  너를 데리구 갈 맘이 없다. 여기서 너는 너
대루 가거라." 하고 말하니 노밤이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꺽정이의 얼굴을 
치어다보면서 "거짓말이 무슨 큰 죄라구 경가파산하구 뫼시구 나온 놈을  가라구 
쫓으십니까. 야숙합니다.  진정 야숙합니다." 하고 고개를  다시 청승맞게 비틀어 
꽂았다. "야숙해? 야숙하대두  할 수 없다." "대체 가긴 어디루  가란 말씀이오니
까?" "그건 나더러  물을 것 아니다. 너  가구 싶은 데루 가려무나."  "제가 가구 
싶은 데는 서울이올시다." "서울루 가드래두 나만 따라오지 마라." "서울 가선 어
떻게 되든지 서울까지는 따라가게 해줍시오." 꺽정이가 노밤이의 말은 대답 않고 
졸개를 돌아보며 "고만 가자“ 하고 말한 뒤에 먼저 일어나서 길로 내려갔다. 졸
개가 짐에서 쌀자루와 자리뭉치를  떼어놓으려고 하니 노밤이가 얼른 졸개의 손
을 붙잡고 "자네까지 왜 이러나?"  하고 말하였다. "네 것은 인제 네가 가져가야
지." "아버지라구 한 건 어떻게 하구." "아버지 소리 한번 듣구 여기까지 짐을 져
다 줬으면 무던하지."  "언제 여기까지 져다 주기루 했든가. 딴소리  말구 그대루 
지구가세." "대장께서 너를  가라구 쫓으셨는데 네 짐을  내가 왜 지구 간단말이
냐?" "내가 쫓겨가구  안 쫓겨가는 건 서울 가서  말하세. 서울서 아주 쫓겨가게 
되거든 그때 짐을 도루  주게그려." 꺽정이가 길에서 졸개를 바라보며 "무어하구 
있느냐! 어서 내려오너라." 하고 소리질러서 졸개가 일변 네 대답하며 일변 짐을 
그대로 지고 일어나는데 노밤이는 뒤에서 짐을 거들어 주는 체하며 붙들고 자리 
뭉치 속에 환도를 질렀다. "이눔아 왜 붙드느냐! 얼른 가지 않으면 꾸중 듣는다." 
"꾸중 듣는 데두  동무가 생기면 든든해 좋지." "이놈아 놔라.  놓지 않으면 소리
지를 테다." "나만 꾸중을 겹쳐 들으라구. 자,  가거라." 졸개는 꺽정이 뒤를 쫓아
가고 노밤이는  졸개 뒤를 따라갔다.  꺽정이가 다락원에 숙소참을  대려고 길을 
바삐 걸어서 졸개는 짐을 지고 쫓아오기가 가쁜 중에 축석령 고개를 올라오느라
고 전신에 땀을 흘리었다.  고개를 넘어선  뒤 꺽정이가 잠시  쉬는 것을 허락하
여 졸개는 긴 숨을 내쉬고  길 옆 너럭바위에 짐 내려놓고 주저않으면서 ”쌀자
루 땜에 짐이 무거워서 등골 빠지겠다.“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는데 노밤이는 
뒤에 와서 ”거짓말이래두 남의  아비 노릇 하기가 쉽지 않지?“ 하고 싱글싱글 
웃었다. ”이놈아 아들두 다 귀찮다. 짐이나  도루 가져가거라.“ 하고 졸개가 쌀
자루와 자리 뭉치를 떼어  내던지니 노밤이는 무어라고 두덜거리며 갖다가 저의 
짐에 얹었다. 축석령을 넘어서  이십 리쯤 왔을 때 해가 지고  장수원을 채 못와
서 벌써 캄캄하여  꺽정이는 다락원을 대지 못하고  장수원에 와서 숙소를 잡게 
되었다. 장수원은  다락원과 상거가 십 리  못 되는 곳이라 오고  가는 행인들이 
중화참이나 숙소참을 다락원으로 대는 까닭에  장수원에 손이 드는 건 일 년 가
야 한두 번이  있거나 말거나 하였다. 원집이라고 곧 원주인의  살림집이 되었는
데 손들 재우는 큰방은  풍창파벽이라 사람이 거처하지 않고 허섭쓰레기 세간을 
넣어두어서 밤이면 쥐들이  잔치하는 처소이었다. 원주인이 꺽정이의  일행이 자
러 들어온 것을 보고 상을  찌푸리며 ”어째 다락원을 참대지 못하구 이리 온단 
말이오?“ 하고 핀잔 주듯이 말하니 꺽정이가 눈을 곱게 뜨지 않고 ”여기 원집
이 아니오? 원집에  행인이 들면 주인이 시중이나 들어줄  게지 같지 않게 무슨 
잔소리요?“ 하고 꾸짖듯이 대답하였다. ”잔소리가 아니오. 여기는 손님들 주무
실 방두 없소.“ ”원집에 행인 잘 방이  없다니 웬 소리요?“ ”지금 여기는 원
이랄 것이 없소.“ ”원이랄 것이 없으면 이  집이 사가집이오? 설혹 사가집이라
두 좀 자구  가야겠소.“ ”방이 없어 걱정이오.  큰방 작은방 방 둘에서 큰방은 
폐방하구 작은방은 우리 식구가 쓰니 어디서들 주무신
단 말이오.“ ”폐방한  방에서라두 자겠소.“ ”명색이 방이지 마루광만두 못한
데 주무실 수가 있을라구.  그러면 자 이리 들어들 오시우." 원주인이 큰방 앞에 
와서 관솔로 화톳불을 놓고  방에 들어가서 세간을 한옆으로 치우는데 꺽정이가 
방을 들여다보니 방안에는 한 바람이  돌고 방바닥에는 쥐똥이 깔려 있었다. "딴 
방이 참말 없소?" "딴 방이 있으면 왜 안 내드리겠소." "주인 쓰는 방에 가서 좀 
붙여 잘 수  없겠소?" "우리 방을 손님께  내드리구 우리가 이웃집에 가서  붙여 
자두 좋겠지만 마침  자식새끼 남매가 돌림고뿔루 앓아누워서  어떻게 할 수 가 
없소." "방 쓸  비하구 방에 깔 자리나 좀 빌려주우."  "빌려 드릴 자리가 없는데
요." "자리가 없으면 멍석이라두 한 닢 빌려주구려." "저녁들은 어디서 잡숫구 오
셨소?" "저녁을 안 먹었는데 밥 좀 지어주겠소?"  "저녁을 안 먹었는데 밥 좀 지
어주겠소?" "밥짓는 수구는 덜어  드릴 테니 저녁거리를 내주시우." 주인의 말을 
꺽정이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노밤이는 얼른 짐에서 쌀자루를 내려서 주인을 내
주며 "우리는  서울 가는 사람이라 내일  아침까지 먹으면 길양식이  소용없으니 
저녁 아침 두 끼니만  해주구 남는 것은 주인이 차지하우. 그  대신으로 찬을 좀 
해주우." 주인이 비를 가져오고 또 멍석을 가져와서 졸개가 방을 쓸고 멍석을 까
는 동안에 노밤이는 부지런히 자리  뭉치를 끄르고 또 짐을 풀더니 자리를 사이
에 띄워서 두 군데 잡는데 한 자리에는 기직자리를 깔고 무명 이불을 내놓고 한 
자리에는 기직자리를 돗자리를 덧깔고 명주 이불에  퇴침까지 내놓았다. 방문 앞
에 서 있던 꺽정이가 돗자리  깐 데를 가리키며 “저건 내 자리냐?” 하고 물으
니 노밤이는 여공불급하게 녜 하고 대답하였다.  꺽정이와 졸개가 노밤이의 양식
으로 요기하고 노밤이의 침구로  어한하여 하룻밤을 지나고 이튿날 식전에 꺽정
이가 노밤이의 말을 들어보려고  “너는 서울가면 뉘게루 갈 테냐?” 하고 물으
니 노밤이는 서슴지도 않고 “남소문 안  한첨지께루 갈랍니다.” 하고 대답하였
다. “나를 따라오지  말랬는데 따라올 테냐?” “어제는 따라오지  말라구 하셨
지만 밤잔 원수 없답디다. 오늘은 그런 말씀 마십시오.” “네가 내 앞에서 다시 
거짓말을 안할 테냐?” “거짓말을 좋아 안 하시는 줄 미리 알았더면 어제두 거
짓말할리가 없었습니다.” “너  같은 실성한 눔이 아닌 담에 누가  거짓말을 좋
아한단 말이냐.  미친 눔 같으니.” 꺽정이는  마침내 노밤이를 용서하여 데리고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추천 (0) 선물 (0명)
IP: ♡.221.♡.199
23,397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단차
2023-11-30
1
149
단차
2023-11-30
0
135
단차
2023-11-30
1
156
단차
2023-11-30
0
222
단차
2023-11-29
1
194
단차
2023-11-28
1
244
단차
2023-11-28
0
202
뉘썬2뉘썬2
2023-11-28
1
248
뉘썬2뉘썬2
2023-11-28
1
190
단차
2023-11-25
0
204
단차
2023-11-25
1
265
단차
2023-11-24
1
230
단차
2023-11-24
3
686
단차
2023-11-23
2
288
단차
2023-11-23
2
220
단차
2023-11-23
1
191
단차
2023-11-23
2
228
뉘썬2뉘썬2
2023-11-23
0
157
뉘썬2뉘썬2
2023-11-23
0
204
뉘썬2뉘썬2
2023-11-23
1
217
단차
2023-11-22
1
233
단차
2023-11-22
1
112
단차
2023-11-22
1
202
단차
2023-11-22
1
133
단차
2023-11-22
0
135
단차
2023-11-21
1
125
단차
2023-11-20
1
197
단차
2023-11-20
1
182
단차
2023-11-20
2
220
단차
2023-11-20
1
172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