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밤

임꺽정 화적편 4

3학년2반 | 2022.01.10 07:26:18 댓글: 0 조회: 583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1226
  4
  남소문안패와 연락 있는 매파들이 꺽정이의 재물 많은 것과 계집 좋아하는 줄
을 알고 꺽정이 거처하는 처소에  하나둘 오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 되어서 여럿
이 드나들게 되었는데 서로들 시새워 가며 이쁜  과부가 있소, 음전한 처자가 있
소, 첩을 얻으시오,  첩장가를 드시오 천거도 하고 인권도 하였다.  여러 매파 중
에 순이 할머니라는  나이 한 육십 된 늙은이가  있는데 사람이 상없지 않은 것 
같아서 그 늙은이의 말은 꺽정이가 가장 많이  귀담아 들어주었다. 어느 날 낮에 
꺽정이가 마침 혼자 앉았을 때 순이  할머니가 와서 “오늘은 조용합니다그려.”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언제는 조용치 않든가?  ” “나는 올  때마다 사람이 
있습디다. ” “사람 없는 때  할 말이 있나? ” “꼭 사람 없는 데  할 말이 있
다는 게 아니라  그렇단 말씀이오. ” “그래  나를 첩 하나 안  얻어주려나? ” 
“좋은 자리를 모두 퇴짜만 놓으시며 안 얻어준다구 말씀하시우? "  "내 맘에 합
당해야 좋은  자리지. ” “저편에서  합당하다구 하는 자리는  선다님이 합당치 
않다구, 선다님이  합당하다구 할 만한  자리는 저편에서 합당치  않다니 그러니 
어렵지 않소. ” “대체 내가 합당하다구 할  만한 자리가 있긴 있나? ” “십만 
장안 억만 가구에 선다님  맘에 흡족할 자린들 작히 많겠소. ”  “왜 그런 자리
를 하나 못  튀겨내나? ” “글쎄, 그런  자리는 저편에서 도리머리를 흔들어요. 
우선 산니뭇골 좋은 색시가 하나  있지만 남의 첩으로는 죽어도 안 간다니 어떻
게 하우. ”  “첩으루 오지 않는다면 안해루  데려오지. ” “안해 있는 양반이 
또 안해로 데려와요? ” “시굴 있는 건 시굴 안해라구 서울 있는 건 서울 안해
라면 되지 않나. 예전 송도  서울 시절에는 그런 일이 많았다데. ” “고래적 이
야기가 지금 시절에  당한가요. 그래 저편에서 육례를 갖추자면 그대로  하실 테
요? ” “색시가 내 맘에 들기만 하면  저편에서 하자는 대루 하지. ” “산니뭇
골 색시가 선다님 맘에  드실 것은 내가 다짐하지요. ” “내  눈으루 보기 전에 
알 수 있나. 대체 어떤 집 딸인가?  ” “가난한 양반의 집 홀어머니의 외딸인데 
그 색시를 데려오시려면  홀어머니의 빚을 갚아 주셔야 해요. ”  “그건 어렵지 
않은 일일세. ” “빚을 갚자면 상목이 다섯 동이나 들겠답디다. ” “가난한 집 
과부에게 누가 빚은 많이 주었네. ” “그  홀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빚
이 기막히는 빚입디다.  그의 남편 박생원이란 양반이 노름을 좋아해서  여간 세
간을 노름으로 다 떨어마치고 간구하게 지냈는데 노름판 친구 중에 윤정승댁 차
지 노릇하는 사람  하나가 박생원 생존했을 때  가끔 쌀말 나무바리를 보내주고 
박생원 돌아갔을 때 초종을 치러주고 돌아간 뒤 삼 년 동안 모녀의 의식을 대어
주어서 그 차지를  모녀가 다 은인으로 여겼더랍니다. 그랬더니 올  구월에 박생
원의 삼년이 나자 그 차지가 사람을 중간에  넣고 딸을 첩으로 달라더라지요. 아
무리 은인이라도 딸을 첩으론 줄 수 없다고 거절했더니 그 뒤에 그 차지가 와서 
빚을 내라더랍니다. 빚이 무슨 빚이냐고 불어본즉 초종때 쓴 것이 얼마, 삼 년간 
대어준 것이 얼마 조목조목 적은  것을 보이는데 그중에 박생원 생존했을 때 보
내준 쌀말 나무바리 값까지 저저이 다 적혔더랍니다.  그게 모두 상목 다섯 동이
래요. 그  홀어머니는 빚에 부대끼다 못해서  딸을 내주고 싶은 맘도  없지 않은 
모양인데 그 딸이  죽어도 첩으로는 안 가겟다고 한대요. 그래서  그 홀어머니가 
나를 보고  빚 갚아주고 장가들  사람을 하나 구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빚은 
다섯 동 말구 오십 동이라두 갚아 주겠지만 그 샐시를 한 번 내 눈으루 보게 해
주게. ” “보시기가 좀  어려운데 내가 어떻게 해볼 테니 지금  나하고 같이 갑
시다. ” 꺽정이는 순이 할머니의 말을 듣고  의관을 차리고 순이 할머니를 따라
나서서 산림골로 색시를  보러 가게 되었다. 산림골 궁벽한 구석에  와서 향나무 
박힌 우물이 하나  있고 그 우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초가 외딴집이 하나 있었
다. 순이 할머니가 꺽정이와 같이 우물께 왔을  때 그 초가집 안에서 떠들썩하게 
지껄이는 사내 목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저기가 색시 집인데 지금 아마 빚쟁
이가 와서 떠드나 보우. 내가  가보고 오께 잠깐 여기 서서 기다리시우. ” 하고 
꺽정이더러 말한  뒤 혼자 그 집을  향하고 갔다. 꺽정이가 한동안  우물 옆에서 
오락가락하는 중에 떠들썩하던 소리는 그치었는데 순이 할머니가 나오지 아니하
여 갑갑증이 나서  초가 앞에 와서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사내  하나는 들마루에 
걸터앉았는데 두 팔을 뒤로 짚고 비스듬히 앉은 꼴이 장히 배때가 벗고 주인 과
부는 방안에 들어앉아서 얼굴도 내놓지 않고 사정을 하는데 목소리가 다 죽어가
는 사람과 같았다. 주인 과부가 죽어가는 소리를 하면 할수록 그 사내는 기가
 높아지며 “더 참아 줄  수 없어. ” “안된다니까 그래. ” 하고 반말지거리를 
턱턱 하였다.  못된 놈이 의지 없는  과부 능멸하는 것을 꺽정이가  눈앞에 보고 
괘씸한 생각에 곧 쫓아 들어가서 꼭두잡이하여 들어내고 싶은 것을 겨우 참고서 
순이 할머니를 불렀다. 방안에 들어앉았던 순이  할머니가 꺽정이의 부르는 소리
를 듣고 밖으로 나오더니 오래 기다리게 한 탓으로 책망이나 받을 줄 알고 “빚
쟁이가 가거든 색시 어머니에게 귀띔 좀 하구  나오려니, 쇠귀신 같은 작자가 맡
질기게 안  가구 앉아서 가진 기광을  다 부리는구려. 색시 아이는  방 한구성게 
엎드려서 소리도 못  내고 우는데 보기에 하도  불쌍해서 좋은 말로 달래느라고 
진작 나와서 말씀도 못했소. ” 하고 발명을 부산히 하였다. “그 빚쟁이놈이 윤
가의 집  차지라든가? ” “윤정승댁 차지가  보병옷을 입고 다니겠소.  꼴이 그 
차지가 보낸 사람 같습디다. ” “심부름 온  놈이 주제넘게 무얼 못하느니 안되
느니 하나. ” “차지의 몸받아 가지고 온 사람인갑디다. ” “대체 무얼 못한다
구 무얼 안된다구 그러든가?  ” “색시 어머니가 빚을 좀더 참아달라구 사정하
니까 못한다 안된다 합디다. ” “그래 상목  다섯 동을 당장에 내라든가? ” “
사흘 안에 상목을  내준다구 말해서 보내라게. ” “선다님께서  내주시려우? ” 
“내가 내주겠네. ”  “색시도 안 보시고 작정하실 테요? ”  “색시는 봐서 맘
에 들지 않으면 파의하더래두 상목은 주겠네. ”  “정말이오? ” “한번 준다면 
주는 게지 정말 거짓말이 왜 있을까. ”  “그럼 얼른 들어가서 색시 어머니더러 
말하겠소. ” 순이  할머니가 몇 걸음 안으로 들어가다가 다시  돌쳐나와서 “색
시를 내가 상면하도록 해드릴 테니 선을 똑똑히  보시우. ” 하고 말하니 꺽정이
가 “색시를 지금 그 사내놈 앉은 데쯤만 내세워두 예서 볼 수 있지만 들어가서 
상면하게 되면 더  좋지. ” 하고 대답하였다.  순이 할머니가 안으로 들어간 뒤 
얼마 아니 있다가 주인 과부와  같이 부엌 모퉁이에 나와 붙어서서 한동안 수군
거리는데 꺽정이는 밖에서 들여다보고  섰기가 창피하여 우물 둥천 향나무 옆에 
와 있었다. 곧 나와서 일변 우물 편으로  쫓아오며 일변 꺽정이더러 오라고 손짓
하였다. 꺽정이가 집  앞으로 들어오면서 “왜 그러나? ” 하고  물으니 순이 할
머니는 멀리 나가지 않고 서 있다가 꺽정이가 가까이 온 뒤에 “저 작자를 어떻
게 하면 좋단 말이오?  ” 하고 말하였다. “무얼 어떻게 한단  말인가? ” “빚 
조르러 온 사람이 간 뒤에 선다님께 색시를 보인다고 했는데 그 작자가 안 가고 
앉아서 말썽을 부리우. ” “빚을 사흘 안에  갚는다구 했으면 고만이겠지 또 무
슨 말썽이야. 수표를  써내라구 하던가? ” “수표를 써내라면 좋게요?  숫제 안 
간데요. 그 작자의  말본새 좀 들어 보실라우? ” 순이  할머니가 목소리를 우렁
우렁하게 변하여 가지고  “생쥐 입가슴할 것두 변변히  없는 집에 하루 이틀새 
상목 몇 동이 어디서 난담. 공연한 소리지. 사흘 안에 야반도주하라구 꾀를 내주
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지만 잘 안될걸. 그래 지금  내가 안 가구 있으면 나를 보
낸 이가 이리 올 테니 그가 오거든 말해  보라구. ” 사내의 말을 흉내내고 다시 
자기의 본목소리로 말하였다. “색시 어머니가 사정을  다해서 말하고 내가 경계
를 따져서 말해도 그 작자는 어느 바람이 부느냐는 듯이 들은 척도 안하고 앉았
으니 저걸 어떻게 하면 좋소? ” “그놈이  천하 고약한 눔일세. 나하구 같이 들
어가 보세.  ” 꺽정이가 순이 할머니를  앞세우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꺽정이가 
마당에 서서 그  사내를 바라보며 “ 네가 이 집에  빚 받으로 온 사람이냐? ” 
하고 불호령 쇰직하게 말을 붙이니 그 사내는 어이없는 모양으로 대답을 안하였
다. “다른 말 길게 할 것 없이 이 집 빚은 내일 와서 받아가거라. ” “게가 대
체 무어 다니는 사람이게 함부루 아무더러나 해라를 합나? ” “아무것두 안 다
니면 너 같은 눔더러  해라를 못하랴. ” “너 같은 놈은 무어야?  날 누구루 알
구 그래. 내가  윤정승댁 사람이야. 우리 댁  대감 말씀 한마디면 하늘에 방망이 
달구 도리질하는 놈이라두  금부 아니면 포도청이야. ” “네가 윤원형의  집 종
놈인 줄 알았다.  잔소리 말구 빨리 일어나거라.  ” “하늘이 높은지 땅 낮은지 
아직 모르는군. ” “가라구 말루  이를 제 얼른 가거라. ” “사람을 바루 땅땅 
어르네. ” “요눔! 네가  버릇을 좀 배워야겠다. ” 꺽정이가 한두  걸음에 지대 
위로 뛰어올라오며 곧 그 사내를 멱살잡아 치켜들었다.  그 사내가 똥개 없는 사
람이 아니건만  허깨비같이 번쩍 들려서  두 다리가 대롱대롱하였다.  “너 같은 
맨망스러운 눔은 태기를  쳐서 창아리를 터쳐놓을 테다. ” 꺽정이가  그 사내를 
한손으로 치켜든 채 밖으로 나오는데 순이 할머니가 뒤따라나오면서
 “그대루 놔보내시우. ” 하고 말하니 꺽정이가  본래 손찌검까지 할 생각은 없
는 터이라 “아따 그러지. ” 하고 멱살을 놓아주었다. 그 사내가 똥줄이 빠지게 
도망한 뒤에 꺽정이와 순이 할머니가 다시 안에 들어와서 꺽정이는 들마루에 올
라앉고 순이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예 안 들어오시려고  하시는 것을 
내가 억지로  뫼시고 들어왔소. ”  순이 할머니가 거짓말로  공치사하고 “우리 
알지도 못하는 양반이 순이  할머니께 우리 정경을 들으시고 가긍하게 여기셔서 
우리 빚을 갚아주신다고 말씀하신다는데  우리가 뵈입고 백배 치사래도 해야 하
지 않겠느냐! 그래서 순이  할머니께 뫼시고 들어오시라고 말씀했다. 누추하나마 
방으로 들어옵시사고 해서 모녀가 다같이 뵈어야겠지만 홀어미의 처신으로 남의 
말이 무서우니 네가 마루에  나가서 어미 대신 겸 뵈어라. ”  주인 과부가 딸에
게 이르더니 한참 만에 부스럭 소리가 나고 다시 한참 만에 방문이 열리고 그리
고 순이 할머니가 먼저 나서고 그 뒤에  색시가 나왔다. 음산하던 들마루가 홀저
에 환하여지는 것 같았다. 색시가 얼굴은 탐스럽고 살빛은 희었다. 의젓한 중 아
름답고 천연스러운데 태가 났다. 오랫동안 울고 난  끝이라 해당화 비에 젖어 무
게를 못이기는 듯  가련하여 보이었다. 꺽정이가 색시를 보는 데  정신이 팔려서 
색시의 절을 받을 때 맞아  주라고 순이 할머니의 눈짓하는 것도 모르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색시가 절  한번 하고 곧 도로 들어간 뒤에  순이 할며니가 꺽정이 
옆에 와서 귓속말로 “색시  좋지요? ” 하고 물으니 꺽정이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였다. “아주 아퀴를  지어서 말하고 갈까요? ” “나는 먼저  밖에 나와서 서
성거린 지 얼마만에 순이 할머니가  밖으로 나와다. ”말 다 됐소. “ ‘그래 대
례를 지내기루 말이  됐나? ” “상처하시고 추취하신다고 했지요.  ” “우취라
니까 좋다구 하던가? ”  “우취는 상관없지만 연치가 너무 틀려서 흠이라고 합
디다. ” “색시 나이 몇  살이랬지? ”“열아홉이오. ” “내 나이 곱절이 넘네
그려. ” “선다님 연세를 서른 넷으로 줄여 말했건만 많다고 합디다. ” “나이 
많다구 파의한다던가? ” “아니오. 내일이라도  곧 주단거래하고 속해 택일해서 
성례하자고까지 말이 됐소. ”  “그럼 다 됐네. 고만 가세. ” “내  말씀 좀 들
으시우. 나하고 색시 어머니하고 이야기하는 동안  색시는 방 한구석에 돌아앉았
드니 내가 간다고 일어설  때 얼른 바로 앉으면서 어머니, 저  할머니더러 좀 기
셔 줍시사고 하세요.  아까 쫓겨간 사람이 무슨 흉계를 꾸며가지고  다시 올른지 
누자 알아요 하고 말하겠지. 내가 색시말을 들어보려고  이 늙은이가 안 가고 있
은들 무슨 소용 있어. 하고 말하니까 색시는  내 얼굴만 쳐다보고 말대답을 안합
디다. 색시가 사람이 얼마나  슬금하우. ” “그런 염려두 바이없지 않지만 나더
러 들마루에 쭈그리구 앉아 있으란 말인가? ” “색시 어머니가 딸을 데리고 부
엌에 내려가 있을 테니 나더러 뫼시고 방에 들어가  있으랍디다. " "여보게, 색시
는 이왕 상면했으니까 다시 말할 것 없구 장모감만 마저 상면하면 한방에 못 앉
을 것 없지 않은가. 방에 같이 앉았는다구 해야 내가 가지 않구 있겠네. 자네 들
어가서 내 말루 말해  보게. ” 순이 할머니가 방안에 들릴  만큼 큰소리로 “내
가 오늘 이 집에  드나들다가 새 신발이 날 나겠네. ”  하고 떠들며 들어가더니 
한참 만에 들마루 앞에서  밖을 향하고 “선다님, 들어오시우. ” 하고 소리하였
다. 꺽정이가 방에  들어와서 색시 어머니와 맞절로 인사를 마친  뒤에 꺽정이는 
색시 어머니의 내주는 아랫목 자리에  와서 앉고 순이 할머니는 방문 앞으로 앉
은 색시  어머니와 마주 앉고 색시는  윗목 한구석에 벽을 향하고  앉아 있었다. 
꺽정이가 색시의 뒷모양을 싫도록  바라보다가 바로 앉히라는 뜻으로 순이 할머
니에게 눈짓하여 순이  할머니가 색시에게 가서 “바로  앉지 왜 잔뜩 돌아앉았
어? ” 하고 꺽정이와  대면되도록 돌려앉혔더니 색시가 다시 반쯤 돌아 앉아서 
꺽정이는 색시의 옆모양을  바라보게 되었다. 색시가 고개를  다소곳하고 아래만 
내려다보고 앉았는데  어찌하다가 곁눈이 꺽정이의 얼굴을  스치어갈 때가 있었
다. 방안 네 사람에 한 사람은 말이 없고  나머지 세 사람도 말수가 적어서 조용
하게들 앉았는 중에 홀저에 떠드는 소리가 박에서 나며 곧 여러 사람의 신발 소
리가 삽작 안으로  들어왔다. 꺽정이가 색시 어머니와 자리를 바꾸어  앉고서 방
문을 열고 내다보니  마당 한중간에 주속 의복을  입은 늙수그레한 사람이 가잔 
앞으로 나서고 그 뒤에 십여  명 사람이 둘러서는데 먼저 쫓아보낸 사람도 그중
에 끼여 있었다. 꺽정이가 곧 나가서 혼구멍들을  내놓으려다가 말을 좀 해볼 작
정으로 “이 집 빚은 내일 받으러 어랬는데 어째 오늘 왔소? ” 하고 물으니
 주속 의복을 입은 사람이 꺽정이를 흘겨보년서 “빚 갚는단 말을 준신할 수 없
어서 기집아이를 데려다  맡아 둘테니 상목을 가지구 와서 빚  갚구 찾아가라구. 
” 하고 말하는데  말본새는 고사하고 말하는 조격부터  거드름스러웠다. “기집
아이라니 이 집 색시  말이지. 내가 벌써 맡았는데 또 누가 맡아?  ” “네가 대
체 웬 놈인데  중뿔나게 나서서 말썽이냐! ”  저편에서 오는 말이 곱지  않으니 
이편에서 가는 말도 험하였다. “네가 운원형의 집 차지눔이라지. 봐한즉 낫살이
나 좋이 먹은 눔이 염체두  없이 남의 집 색시를 뺏어가려구 몇 해씩 근사를 모
았단 말이냐? 근사 모으느라구 애는 썼겠지만 헛애  썼다. 이 집 색시는 임자 있
는 사람이야. 그 임자가 내다. ” 그 사람이 어이가 없어 말이 선뜻 안 나오는지 
한참 있다가  “임자라니 임자란 게 다  무어냐? ” 하고  뇌었다. “속시원하게 
분명히 말해 주랴? 이 집 색시가 내  안햇감이다. ” “안햇감이야? 안햇감은 고
만드구 안해라두 내 빚 갚기 전엔 내가 데려갈  테다. ” “네 소위 빚이란 것이 
터무니없는 빚인 줄까지 내가 잘 안다. 그렇지만  이왕 물어준다고 말한 게니 내
일 받으러 오너라.  만일 오늘 말썽을 부리러 들면 내일  빚두 다 받았다. ” 그 
사람이 꺽정이에게 목자를  부라리며 “이놈, 되지 못한 놈이  거센 체 마라! ” 
불호령하고 곧 뒤에  섯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저놈부터 끌어내오게. 잘  안 끌
려나오거든 막 사그리 내려조기게. ” 말을 이르니  십여 명 사람이 제각기 꽁무
니에서 몽치들을 빼어들고  몰려 들어와서 오륙 명은  지대 위에 올라서고 사오 
명은 들마루로 올라왔다. 꺽정이가 눈결에 한손을  내밀어서 들마루를 들어 앞으
로 기울이며 곧 뒤집어엎었다. 들마루에 올라섰던  사람들은 대개 다 건공잡이로 
나가떨어지고 지대 위에 올라섰던 사람들은 거지반  들마루에 치여 자빠졌다. 그 
동안에 색시가 어머니 뒤로 오고  순이 할머니까지 한데 가 몰려서 셋이 옹기종
기 앉았는 것은 꺽정이가 보고  한번 빙그레 웃은 뒤에 “나 있는 동안은 저 따
위 놈들이 몇  백 명이 오더래두 겁날  것이 없지만 내가 간 뒤에  오면 탈인데, 
여기 단칸방에서 내가 자기는 어려우니 숫제 이 집을 버리고 모녀분 다 나 있는 
데루 같이 가면 어떻겠소? ” 하고 색시 어머니의 의향을 물은즉 색시 어머니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주저하다가 딸이 소곤거리는 말을 듣고 비로소 “좋두룩 해
주세요. ” 하고 가고 있는 것을 꺽정이에게 맡기었다. “그럼 지금 곧 일어섭시
다. ” “저  사람들 간 뒤에 찬찬히  가지요. ” “저눔들을 쫓아보내자면 치구 
달쿠 자연 성가실 테니 여기들 내버려 두구  갑시다. ” “세간 나부랭이는 어떻
게 할까요? ”  “그까짓것 내버리구 갑시다. 저눔의 빚 갚을  것만 가지구두 훌
륭한 세간을 얼마든지 장만할 수 있지 않소. ” “옷이나 갈아입어야지요. ” “
얼른 갈아입으시우. ” “미안하지만 잠깐만 밖에 나가 기세요. ” 주인 과부 모
녀가 옷 갈아입는 동안 꺽정이는 방문 밖에  나와 섰었다. 들마루는 비록 육중하
지 않더라도 사람이 사오 명이나 위에 올라섰는데 한손으로 한편 옆을 쳐들어서 
앞으로 뒤집어엎는 것이 여느 사람보다  동뜬 힘 가진 장사가 아니곤 생의도 못
할 일이라 윤원형의 집 차지는 힘센 주먹이 몸에 미칠까 겁이 나서 다른 사람을 
돌볼 생각도 못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가 얼마 만에  다시 안으로 들어와서 몇 
남은 성한 사람과 같이 나가떨어진 사람을 일으키고 치여 자빠진 사람을 빼놓는 
중에 그 장사가 방문 열고 나오는 것을 보고 고만 질겁하여 또다시 밖으로 뛰어
나가는데 팔 다친 사람은  고사하고 허리 삔 사람, 발 접질린  사람도 모두 천방
지축 뛰어나갔다. 차지가  우물께 와서 뒤를 돌아보며 겨우 발을  멈추어서 여러 
사람이 차지 옆에 모여 서는데 사 있기  어려운 사람은 주저앉기까지 하였다. “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은가?”  차지가 여러 사람을 돌아보며 의논하듯 말을 내니 
“얼른 가서  도차지께 말씀하구 사람을  오륙십 명 풀어  달라지요.” “그놈이 
댁 대감마님을 착호  성명하지 않습디까. 그런 죽일 놈이 어디  있어요? 아주 대
감마님꺼나 정경부인  마님께 말씀을  여쭤서 별반거조를 내시두룩  하시지요.” 
“아직두 둘이 저 안에 남아 있는데 우리가 가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요?” 
“우리가 여기 섰으면  소용 있습니까? 그놈이 쫓아나오기 전에  얼른 가십시다.
” “그놈이 만일 쫓아나올  맘이 있으면 벌써 쫓아나왔지 이때까지 꾸물거리구 
있겠습니까.” “제가 어젯밤에 꿈을 잘못 꾸었더니 꿈땜이 너무 지독한걸요. 옆
구리가 결려서 죽겠습니다.”  “저는 엉겁결에 어떻게 여기까지  뛰어왔지만 인
젠 꼼짝 못하겠습니다.” 여러 사람이 중구난방으로 지껄이었다. 차지가 여러 사
람을 보고 “고만들 지껄이구 내 말 좀 듣게. 내가 얼핏가서 사람들
을 데리구 올 테니 자네들은 여기 잇게. 저  안에 남아 있는 사람두 마저 끄내오
려니와 그놈의 동정을 잘 살펴보게. 그놈이 만일  어디루 가거든 뒤를 밟아서 가
는 데를 똑똑히 알아오두룩 하게.” 하고 말을  이르는 중에 “벌써 저기 나오는
데요.” 하고 누가  소리하여 차지와 여러 사람이 다같이 과부의  집으로 머리를 
돌리었다. 꺽정이와 순이  할머니가 과부 모녀를 치마 쓰이어 앞세우고  집 앞에  
나오는 것을  차지가 바라보고 “저놈이  기집아이 모녀를 데리구  나오지 않나. 
어디루 돌려 앉히려는 겔세. 여보게, 모두 향나무 뒤에 가서 아무소리 말구 앉아 
있다가 저것들  가는 뒤를 밟아보세. 하고  여러 사람의 앞을 서서  향나무 뒤로 
올라갔다. 
  꺽정이가 세 사람을 데리고 우물  옆을 지나서 가는 중에 몇 사람이 슬금슬금 
뒤따라오는 것을 알고 순이 할머니더러 색시 모녀를 데리고 먼저 남소문 안으로 
가라고 이르고 자기는  돌쳐서서 우물께로 걸어왔다.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급한 
걸음으로 향나무  뒤에가서 그곳에 앉았는 사람들을  분주히 붙들어 일으키는데 
꺽정이가 바라보고 “이 눔들, 어디루 내째려구 들면  한 눔 남기지 않구 모주리 
모가지를 빼놓을  테니 거기서 꿈쩍들  마라!” 하고 큰소리를 지르며  한달음에 
쫓아와서 우물 앞에 버티고 섰다. “내가 너눔들에게  손대지 않는 것이 큰 덕택
인 줄 모르구  내 뒤를 밟으면 어쩔테냐! 괘씸한  눔들 같으니. 너희눔들은 모두 
저 빈 집에 가서  방속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거라. 그래야 목숨들을  살려 줄 테
니.” 꺽정이가 호령질을 통통히 하는데 향나무 뒤에  있는 여러 사람은 꿀꺽 소
리도 못하였다. “이리들  내려오너라!” “얼른들 못 내려오겠느냐!”  꺽정이가 
여러사람을 불러내려서 도야지떼 몰듯  몰고 빈 집에와서 방안에 몰아넣고 돌마
루에 치일 때 중하게 다쳐서 운신 못하는 사람들 까지 마저 방안에 끌어넣은 뒤
에 여편네들의 걸음으로 남소문안에  갈 동안쯤 지키고 있으려고 돌마루를 들어
다가 방문앞에 놓고 걸터앉았다. ㅏㅇ안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더니 
얼마 뒤에 여러  사람의 앓는 소리가 이어 나고  중간에 가끔 벽의 흙 떨어지는 
소리가 섞이어 났다.  “이눔들이 벽을 뜯지 않나?” 꺽정이가  허허실실로 방문
을 열어보니 몇 사람이 방문  맞은편 들창을 뜯어 키우는데 소리나는 것을 감추
려고 여럿이 일부러 앓는 소리들을 하고 있었다. “들창을 왜 뜯느냐! 죽구들 싶
어 몸살이 났느냐?” 꺽정이가 방안으로 들어오니 여러 사람을 이러나저러나 죽
는 줄 알고 악들이  오랄서 운신 못하는 사람들 외에는 모두 몽치,  창, 칼, 방망
이짝 들을 손에 쥐고 꺽정이에게 달려들었다. 도망갈  대 없는 쥐가 고양이을 물
러 덤비는 셈이라 꺽정이의 주먹과  발길이 왔다갔다 하는 동안에 십여 명 사람
이 늘비하게 쓰러졌다. 차지가 여러 사람의 뒤로  돌다가 맨 나중 발길에 걷어차
이는데 공교히 윗목에  놓인 질화로 위에 가 쓰러져서 화로가  깨어졌다. 정신없
는 중에도 불을 피하여  엉금엉금 기어나오는 차지를 꺽정이가 쫓아가 발끝으로 
걷어질러서 그  자리에 엎드러지며 “오냐, 사람을  죽이구.” 하고 안간힘을 썼
다. 꺽정이가 눈을  부릅뜨고 차지를 내려다보다가 헌 치마와 때묻은  이불을 갖
다놓고 폭을  찢어서 차지부터 뒤결박을  지우기 시작하였다. 어느  사람이 하나 
먼저 “살인이야!” 하고  소리를 지르며 곧 여러 사람이 따라서  소리들을 지르
니 꺽정이가 뒤결박들만 지우지않고 이불솜을 뜯어서  입들까지 틀어 막았다. 이 
동안에 차지의 옷자락이 불에 타는라고 연기가 나는데 꺽정이가 불을 끄지 않고 
도리어 이불폭, 이불솜 남은 것을 불위에 던져서  얼마 안 있다가 불꽃이 일어났
다. 연기가 방안에  자욱할 때 꺽정이는 마루로 나오고 연기가  방안에서 쏟아져 
나올 때 꺽정이는 마당으로 내려오고  또 검은 연기속에 붉은 불길이 넘실 할때 
꺽정이는 밖으로 나왔다.  산림골 사람들이 과부 모녀 사는 외딴집에서  불이 난 
것을 알고 동이,  자배기 들을 들고 쫓아와서 우선 우물을  들여다보니 둥천에섰
던 그리 작지도 않은 향나무가 뿌리째 뽑혀서 거꾸로 우물 속에 처박혀 있었다.
  “이 향나무를  누가 뽑아서 처밖았을까.”  “이것을 뉘 장사루  뽑는단 말인
가?” “글쎄 이거 별일 아닌가.” “잔소리 말구 얼른 물들 퍼내게.” “박샌네 
과댁 모녀가  저 불속에 들었으면 벌써  화장했네.” “아까운 처녀가 죽었네.” 
“그 처녀가 살아두 우리갠 차례 오지 않네. 뼉다구가 우리와 달라.” “아따 이 
사람들, 어서 물들  좀 푸게.” “이놈의 나무를 뽑아내야 물을  푸지.” 여러 사
람이 우물속에 처밖힌 향나무를 뽑아내기  전에 불난 집은 다 타서 퍽석 주저앉
았다. 남은 불을 잡고  여럿이 불탄 자리에 들어서서 방 있던  데를 헤쳐보니 남
녀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바싹 탄 송장들이 나오는데 수효가  열이 넘었다. “
이 집에 웬 사람이  이렇게 많이 있었을까?” “못된 놈들이 처녀를 뺏어가려구 
작당해 가지구 왔다가  불에 타 죽은 겔세.” “불은 대체  어디서 났을까?” “
과부가 딸 뺏기지  않으려구 불을 놨는지 모르지.” “바지 저구리만  다니지 않
는 바에야 불 속에  가만히 앉아서 타 죽을 놈들이 어디  있단 말인가.” “과부 
모녀가 수단으루 손들을 술을 억병 먹여서  곯아떨어뜨렸는지 누가 아나.” “그
럼 과부  모녀는 도망했을까.” “도망했는지두  모르지만 내 생각엔  이 속에서 
같이 타죽은 것  같애.” “어째서?” “너두 죽구 나두 죽잔  심사루 불은 놨기 
쉬우니까.” “자네  말이 근리한 말일세.” “우물  동천의 향나무가 뽑한 것두 
심상한 일이 아니야.  과부 모녀가 죽을때 원통한 기운이 뻗쳐서  생나무 뿌리가 
뽑혔는가베.” “글쎄 그런  일두 있을까.” “기집이 함원하면 오뉴월에두 서리
가 온다네. 생나무 뿌리 뽑히는 일두 더러 있지 않겠나.” 이 사람들의 지껄이는 
말을 곧 참말같이 믿는 사람이  많았으나 그중에는 믿지 않는 사람도 없지 아니
하였다. 
  과부 모녀가 순이 할머니를  따라서 산림골을 지나갈때 길가에서 본 사람들이 
있어서 과부 모녀는 불 나기 전에 도망한  형적이 있다고 말이 떠돌았다. 남부에
서 산림골 작은 화재에 인명이  많이 상한 것을 한성부와 형조에 보하고 한성부
에서 윤정승댁 차지 한 사람과 낭속 열한 사람이 산림골로 빚 받으러 가서 돌아
오지 아니한 것을 탐지하여 남부에 알린뒤에 남부의 주부와 참봉은 날마다 형조
관리의 뒤를 따라 산림골에 나와서 화재뒤를  조사하였다. 타죽은 송장들이 타기
도 몹시 탔거니와 꺼낼 때  함부로 다뤄서 검사할 여지도 변변히 없으나 수효는 
열둘인 것이 분명하여 과부 모녀는  같이 타죽지 않은 줄로 짐작하고 뒤로 종적
을 찾는 중에  과부 모녀의 도망한 형적을 아는  사람이 있단 말을 듣고 출처를 
채근하여 사람을 하나씩 둘씩 연해 잡아갔다. 남의  말을 듣고 옮긴 사람들은 매
를 맞기도 하고 즉시즉시 놓여나왔으나  말을 낸 사람들은 여간 매를 맞을 뿐아
니라 죽도록 단련을 받았다.  그러나 그 사람들도 불 나기 전에  여편네 셋이 향
나무박이 우물께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을 뿐이라 셋중에 과부 모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셋의 둘이 과부 모녀라면 하나는 어디 사는 누구인지 얼굴들은 가리어
서 보지 못하고  가는 곳은 살피지 않아서  알지 못하므로 미심스러운 말이나마 
더 주워 댈 건적지가 없었다. 서슬이 푸른  윤원형의 집 사람이 자그만치 열둘이
나 한꺼번에 죽었는데   죽은 까닭을 자세하  알아바치지 못하여 형조의 판서와 
참판이 추고를 당하고 남부의 주부와 참봉이  벼슬들이 떨어졌다. 간세배가 과부 
모녀와 부동하여 음모로 살인하고  화재로 엄적한 것이 아닌가 윤원형의 의심이 
들어서 포도청을 시켜 널리 염탐하게 하였다. 이때 우변 포도대장은 이몽린이요, 
좌변 포도대장은 남치근인데 남치근은  을묘년 난리에 방어사로 전공이 있고 그 
뒤에 전하도의 병사로 위명이 잇어서 비록 신임 포장이나 연로 무능한 이몽린보
다 상하 신망이 두터운  까닭에 윤원형이 남치근을 청하여다가 간세배의 현적과 
과부 모녀의 종적을 염탐하여  보하고 부탁할 때 우포장과도 상의하라고 일러서 
남치근이 이몽린을 찾아왔었다. 이몽린은 일이 생기는  것을 머릿살 아프게 여기
거니와 윤정승이 자기 후배인  좌포장에게만 부탁한 것을 마음에 고깝게 여겨서 
남치근이 말하는 것을 흥흥  하고 듣기만 하다가 “영중추대감 분부시니까 영감
께서두 헐후히  아실 리 없겠지요.” (이때  윤원형의 벼슬이 영중추대감이었다) 
남치근이 말할 때 이몽린은  펄쩍 뛰다시피 하며 “헐후라니 될 말이오?” 하고 
대답한 뒤 “영중추대감  분부가 기시기 전에 나는 미리 염탐해  보았소. 영중추
댁 차지 하난가 반명의 집  딸을 뺏어다가 작첩하려구 그 어미 과부에게 백문선
이 헛문서루 빚을 지워놓고 빚을 못 내거든 딸을 내라구 위협해 오던 끝에 그날 
그딸을 강탈하려구 성군작당해  가지구 갔다가 화재에 타죽었다우.  화재가 어째
서 나게 되구 십여 명이 어째서 다 죽게 된것은 자세히 알 길이 없으나 과부 모
녀가 여라 사름을 방안에 들여앉히구  술을 마냥 먹여서 다들 취해 쓰러진 뒤에 
불놓구 도망했단 말이 근리한 추측일줄 아우.  간세배라면 차지나 간세배라구 할
까 가른 간세배라곤  없는 모양이구. 과부 모녀는 다른 기집사람하구  같이 도망
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있다구 형조에서 사람들을 잡아다 단련했지만 ㅜ경 아무 
꼬투리두 얻지 못하구  말았다우. 과부 모녀가 서울 안에 잠복해  있으면 어떻게
든지 종적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형조 북새에  벌써 어디루 고비원주한 모양이
오. 영감두 아무쭈룩  염탐시켜 보시우만 별수가 없으리다.” 하고  말하였다. 우
포장 이몽린의 막내아들이 자기 사랑에서 상가 성 가진 문객을 데리고 잡담하는 
중에 “자네  산림골 이양기 자세히  들었겠지. 그게 우리를  욕보이던 털보놈의 
짖이 아닐까. 그놈이  사람 십여 명을 쥐두새두 모르게 죽이구  나서 엄적하느라
구 집에 불을 놓구 뒤에  불 끄로 오는 사람들이 얼른 물을 긷지 못하게 하는라
구 향나무를 뽑아서 우물 속에 박구 가지  않았을까. 향나무가 절루 뽑힐 이치가 
만무하니 사람의 한 짖은 분명하나  그 나무를 사람의 힘으루는 뽑을 장사가 없
으리라구 말들 하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 청동화루 접어붙이던 톨보놈이 생각
나네.” 하고 말하니 그 사람이 무릎을 치면서 “참말 그런가 보우.” 하고 대답
한 뒤 “내가  대령 포교에게 귀뜀해 주리까?” 하고 물었다.  “대령 포교 한두 
놈에게 말해선 아무  소용없네. 그런 장사놈을 잡자면 대적을 잡는  일체루 좌우
포청이 다 풀려야 할 테니  적어두 아버님께 여쭈어서 착수하시두룩 해야 할 겔
세.” “그럼 영감께 말씀을 여쭈시우.” “말씀을 여쭤두 잘 들으실는지 모르겠
네.” “댁 영감에서 전에는 일에 쇳소리를 내셨는데 근년에는 무사태평만 제일
루 여기시니 아마 연로하신 탓인가 봅디다.”  “연만하신 터이니까 후기두 없으
시겠지.” “그러나 한번 잘 여쭤보시구려.” 상가의 권하는 말에 아들은 “틈을 
봐서 어디 한번 여쭤보자네.”  하고 대답하였다. 어느 날 밤에 이포장의 아들이 
느직이 그 아버지에게 저녁 문안을 와서 지싯지싯하고 물러가지 아니하니 그 아
버지가 무슨 할 말이 있는냐고 물었다. “향자  산림골에서 화재 났을 때 우물위
에 섰던 향나무가  우물 속에 들어가 박혀 있었답지요?” “그래,  그게 뉘 장난
인 것을 너는 짐작하느냐?” “사람의 힘으론 뽑을 장사 없다구 나무가 절루 뽑
힌 것같이 말들 한다오나  그럴 이치야 있습니까?” “힘꼴이나 쓰는 놈이 뽑았
을 게지. 집에 있는 상가의 힘으루는 뽑지  못할까?” “상가가 향나무와 향나무 
박혔던 자리를 보고 와서 제 힘으루는 해토머리 물씬물씬한 땅에서두 뽀기 어렵
겠드라구 말합디다. 그 향나무가  밑둥이 제법 굵더랍니다.” “상가 버덤 더 센 
사람두 세상에 있지 없겠느냐?”  “상가가 서울 온 뒤에 저버덤 왕청뜨게 힘센 
자를 하나 만나봤답는데  그자가 지금 서울 안에서  돌아다닌답니다.” “그자두 
기생방이나 다니는 왈짜겠지.  산림골 사람들이 불 끄러 갔을때 향나무  섰던 자
리 근방 눈위에 여러 사람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것을 보았다구 말들 하더라기에 
나는 벌써 힘꼴 쓰는 왈짜놈이 한턱 먹기내기  한 줄루 짐작했다.” “사람 죽이
구 불놓은 것을 향나무 뽑은 자의 한 짓으루 보시기 않습니까?” “향나무 뽑힌 
것이 화재 났을 때 비로소 여러 사람 눈을 뜨이었다구 한데 관련을 붙여서 이런 
소리 저런 소리 하지만 실상 향나무는 향나무대루 뽑히구 화재는 화재대루 나서 
그 사이에 아무 관련이  없을 게다.” “힘센 자 아니면 십여  명을 어떨게 몰사
죽엄시키겠습니까?” “향나무 뒤에  남은 발자국이 여러 사람의 발자국인 것은 
말말구네 말대루 힘센 자가 혼자 한 짓이라구  하자. 그자가 사람들을 죽이구 나
와서 무슨 의사루  향나무를 뽑아놓구 가겠느냐.” “불 끄러 오는  사람들이 물
을 얼른 길어내지 못하두룩  한 게 아니겠습니까?” “여러 사람이 우물에서 나
무 하나 들어내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리리라구 수탐하기 좋은 표적을 뒤에 남기
구 간단 말인냐. 그런 어리석은  놈이 어디 있겠느냐. 대체 사람이 무슨 일을 당
하든지 첫째 일의 갈피를 잘 잡아야 쓰는  법이다. 이포장의 아글은 그 아버지의 
말에 눌려서  다시 말을 더 하지  못하였다. 쩍정이는 불타는 집에서  나오던 때 
공연히 뒤가 궁금하여 우물동천에  올라와서 연기속에 불길이 솟는 것을 한동안 
바라보고 섰는 중에 멀리서  사람의 소리지르는 것이 풍편에 들리어서 ”아랫동
네 사람이 불난 것을 안게다.“ 생각하고 곧 몇  걸음 내려 디디는 중에 불 끄러 
오는 사람들이 우물물을  얼른 못쓰게 해놓고 갈  생각이 불현듯이 나서 걸음을 
멈추고 향나무를 와서 쥐고 흔들어  보다가 언 땅에 생나무가 쉽게 뽑히지 않는
줄 짐작하고 두 팡을 겉어붙이고 대들어서 두 선으로 나무 밑동을 쥐고 한 발로 
땅을 빼드딩기고 온 몸의 힘을  다하여 끙소리 두서너 번에 나무 뿌리가 끊기며 
뽑히며 솟아올라왔었다. 등그렇게  위가 퍼진 향나무를 거꾸로  우물속에 틀어박
는데 틀어 박을수  있는 대로 깊숙이 틀어박고 나서  속이 다 시원한 것같이 긴 
숨을 내쉬었었다.  꺽정이가 불 끄러  오는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산림골 
막바지로 올라갔다가 모르는  길을 이리저리 헤매거 날이  저물어 갈 때 남소문 
안 처소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순이  할머니가 혼자 방에 들어 앉았다가 나와 맞
으며 “어째 이렇게 늦으셨소?” 하고 물었다. 꺽정이는  색시 모녀가 방에 없는 
것을 괴이쩍게 여겨서 순이 할머니의  묻는 말을 대답하는 둥 만 둥하고 “어째 
자네 혼자 있나?” 하고  도리어 말을 물으니 순이 할머니는 웃으면서 “건너방
에 편히들 깁시니 우무  염려 맙시오.” 하고 조롱하듯 대답하였다. “누가 건너
방에 들여앉히라든가?” “젊으신 양반이 한바탕  수선을 떠셨지요.” 젊으신 양
반이한 한온이 말이니  한온이가 그 동안 와서  순이 할머니이게 대강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건너방에 있던 노밤이와 상노아이는 바깥 사랑방으로 내보내고 색시 
모녀를 한갓지게  들여앉힌것이었다. “젊은 주인이 와봤단  말인가?” “나하구 
같이 앉아서 선다님 오시기를 고대고대하다가 산리뭇골루 사람을 보내보러 가셨
소. 내가 자꾸  권했지요. 나는 쏘ㅅ 무슨  일이 난 줄 알았구려.”  “나간 제가 
오랜가?” “나가신  뒤에 내가 건너방에 가서  늘어지게 오래 앉았다가 색시가 
고달파하기에 편히 좀 누워 있으라구  이르구 다시 이 방에 와서 한참 되었으니
까 그  동안에 굼벵이가 굴러가두  넉넉히 산리뭇골을 갔다왔을  게요.” “자네 
좀 가서 내가 왔다구 말하구 오게.” 꺽정이가 순이 할머니를 한온이의 큰
집에 보내고 방으로  들어가는 길에 건너방에 와서  문을 열고 들여다보며 색시 
어머니와 말 몇마디 수작하고 섰을 때  “선생님 오셨습디다그려.” 하고 한온이
가 들어왔다. 꺽정이가 건넌방 문을 듣고 한온이와  같이 방에 들어와 앉은 뒤에 
“산리뭇골에 사람을 보내봤나?” 하고 물으니 한온이는 고개를 가로 흔들며 “
사름을 보내지 않구 제가 갔다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화재 난 데 가 보
았나?” “선생님 큰일을  내셨습니다. 세력이 충천하는 윤원형이 집  사람이 십
여 명씩 죽었으니  뒤가 조용할 것 같지 않습니다.” “일이  감짝같이 되었으니
까 뒷염려 없을 줄 아네.” “글쎄요, 일이 앞으루 어떻게 벌어질는지 아직은 모
르겠습니다.” “이번에  일을 저지른 건 내  본의두 아닐세.” “그놈들의 뒤를 
밟아서 쫓으러 가셨다더니 어떻게 집에다가 몰아놓구 태죽이셨습니까?” 꺽정이
가 여러 사람을 집에 몰아넣은  것부터 대강대강 이야기 하는 중에 방문이 열리
며 순이 할머니의  얼굴이 나타났다. 한온이가 순이 할머니응 보고  “내가 선생
님 뫼시구  조용히 의논할 일이 있으니  자네는 잠깐 건넌방에 가  있게.” 하고 
말하여 순이 할머니가 방문을  도로 닫고 건너방으로 건너간뒤에 꺽정이는 하던 
이야기를 마저 다하고 한온이는 산림골 사람들의 지껄이던 소리를 들은 대로 옮
기었다. “과부 모녀는 불에 타죽은 줄루 알구  향나무는 절루 뽑힌 걸루 친다면 
뒤는 만사태평일세.”  “포교놈들이 나번드기게  될것은 정한 일인데  그놈들이 
어리무던하게 그런 말을 믿겠습니까?” “순이 할미가 번설할 염려는 없겠나?” 
“선생님께서 상급이나 후하게 주시구 그 위에 제가 잘 단속을 시키면 염려없습
니다.” “상급 후하게 주지. 순이 할미만 말조심하면 탄로날 구석이 없을 줄 아
네.” “언 따에 백힌 생나무를 뽑을 장사가 어디 세상에 많습니까. 그것을 꼬트
리루 잡아가지구 수탐할는지  모르지요.” “그런 생각은 못하구  공연히 부질없
는 짓을 했네 그려.” “아니하신 이만 못하나 그건  지금 와서 어떻게 할 수 없
는 일이구 색시 모녀나 잘 숨겨두두룩  하시지요.” “여기 두기가 조심스럽거든 
광복으루 보내세.” “차차 봐가며 하십시다.” 한온이는 목소리가 본래 굵지 않
은 사람이라 말할 것 없고  꺽정이도 말소리가 건넌방에 들리지 않을 만큼 나직
나직하였다. 한온이는 꺽정이의  일이 조심되어서 한첨지와 부자간  의논한 뒤에 
순이 할머니와 집안 사람들을 일체로 말조심하라고 단속하고 이목을 늘어놓아서 
윤형원의 집 동정을 알아오게 하고 또 심복을 시켜서 좌우포도청 소식을 날라오
게 하였다. 우포청에서는 건정으로 염탐하나 좌포청에서  엄탐하는 줄을 알고 한
온이는 꺽정이와  의논하고 과부 모녀를 광복산으로  치송하려다가 길에서 잡힐 
염려가 불무허여 파의하고 꺽정이  있는 처소에서 다른곳으로 데려다가 깊이 은
신시켜 두었다. 어느 날 윤원형의 집에서  부정풀이굿을 시키려고 날짜 받아놓았
다는 말을 듣고 한온이가 윤원형의  집 단골 무녀를 뒤로 불러다가 말을 일러서 
무녀가 굿을 할  때 죽은 차지의 말로  모든 것이 저의 죄요, 과부  모녀의 탓이 
아니라고 의수하게 꾸며서 공수를 주게하였다. 윤원형의  집 정경부인 마님 난정
이가 그 무녀는 신통히 여기고  죽은 차지는 불쌍히 여기지 않는 까닭에 무녀의 
공수가 난정이의 입을  거쳐서 윤원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수일  후 상
참날 윤원형이 예궐을 늦게  하여 궐문안에서 퇴궐하는 남치근을 만났는데 남치
근이 앞에 와서 문후하도 난 끝에 과부 모녀 수색하는데 별반 방침이 있어여 할 
것을 말하니 윤원형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 말 없이 빈청으로 가다가 중간에서 
다시 남치근을 불러서 너무 요란하게 수색할  것은 없다고 말하였다. “요란하게 
수색하지 말랍시면 잡을  가망이 적사온데 어찌하오리까?” “잡히거든 잡구 안 
잡히거든 고만두게 그려.” “안 잡힌다구  고만두어두 좋소리까?” “내가 좋다
구 해서  잡을 걸 이때까지 안  잡았나.” “황송하오이다.” 남치근이 궐내에서 
윤원형에게 미안한 말을 듣고 그날 밤으로 곧 사제에 대령하여 윤원형의 눈치를 
살피는 중에 과부  모녀 잡기를 사제에 대령하여  윤원형에게 미안한 말을 듣고 
그날 밤으로 곧 사제에 대령하여 윤원형의 눈치를 살피는 중에 과부 모녀잡기를 
윤원형이 그다지 조이지 않는 줄  알고  슬그머니 비위가 틀려서 우포장 이몽린
과 같이 우물쭈물도  하지 않고 내놓았던 포교들을  곧 다 거두어들이게 하였는
데, 남소문  안에서는 남치근이 밤에 윤원형의  집에 왔다간 것을 알  뿐 아니라 
궐내에서 윤원형과 만나서 수작한 것까지 모르지  아니하였다.  좌포청의 엄탐이 
그친 뒤에 꺽정이와 한온이는 순이 할머니를 불러다가 색시 성례시킬 것을 공론
하여 성롓날까지 정해놓고 있는 중에 의외의 다른 일이 한 가지 생기
었다.  꺽정이  앞에서 심부름하는 상노아이가 꺽정이에게 상급받은 상목  한 필
을 오궁골 사는 저의 부모에게 갖다 주러 간 뒤 이틀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아니
하였다. 저의 집에 가서  병이 났으면 그 부모가 기별이라도 할  것인데 아무 기
별이 없었다. 한온이가 오궁골로 사람을 보냈더니 그  사람이 돌아올 때 그 아이
의 부모가 다  같이 따라와서 "그날 저녁밥을  먹여서 댁으루 보냈는데 댁에 안 
오구 어디를 갔을까요?" "그애가  저녁을 먹구 난 뒤 전에 없이 집에서 자구  싶
다구 하는 것을 댁에서 기다리신다구 저의 어른이 쫓아보내다시피 했답니다." 하
고 내외가 받고채기로 말하였다. 나이 열예닐곱 된  큰 아이놈이 방향 모르는 어
린아아 같이 길 잃어버릴 리도 없을 것이고 사내아놈을 계집아이처럼 누가 붙들
어갈 리도 없을 것이라 혹시 무슨 횡액에 걸려서 포도청 같은 데 잡혀가 갇히지 
않았나 한온이는 이리저리 생각하여 보다가 우선 그 부모를 안심시키려고  "내가 
사람들을 사방 내놔서  찾아봄세. 어디서든지 나오겠지." 하고 말하여 아이의  부
모를 돌려보내고 꺽정이에게 와서 아이의 일을 이야기하였다. "그놈이 어디루 도
망한 건  아니겠지?" "도망할 까닭이야 없겠지요."  "자네 짐작에는 어디를 갔을 
것 같은가?" 짐작이 잘 나서지 않습니다. 혹시 횡액으로 포청에 때어가지 않았나 
의심이 들 뿐입니다." "만일  포청에 때어갔으면 당치 않은 일까지 횡설수설하지 
않을까." "그놈이 위인은 똑똑하지만  경난이 없어서 포교들 손에 걸리면 횡성수
설할는지두 모르지요." "포청에 얼른 알아보게."  "저의 집에 닥치는 일이 있으면 
미리 통기해 줄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만  믿구 있을 일이 아닐세." "오늘 밤으
루 알아볼라구 생각합니다." "오늘 밤이니  무어니 할 것 없이 지금 당장 알아보
게." "선생님  산리뭇골 일이 염려되시는가 보니다그려."  "저런 사람 보게.  내가 
내 일  때문에 염려하는 줄 아나.  향일에 남치근악 포교들을 뻔질  내돌릴 때두 
자네 집에 누를 끼칠까 봐 염려는 했지만 내  몸을 염려한 일은 없네. 나는 언제
든지 한몸 떨구 일어서면 고만일세." "저두 잘 압니다." "잘 아는 사람이 그 따위 
소리를 한단 말인가?" "선생님께서  하두 재촉하시기에 실없이 한마디 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첫째 아이눔 일이 궁금하지 않은가. 속히 알아보게." "지금  나가
서 곧 알아보두룩 하겠습니다." 좌우포청  여러 간에 상노아이놈이 없는 것은 한
온이가 그날로 즉시 알아보았고  이튿날부터 여러 사람을 각처로 내놓아서 아아
놈의 종적을 찾는데 노밤이는 상노아이와 정든 까닭에 저대로 큰길에 나가서 아
무나 붙들고 키가 얼마쯤 되고  얼굴이 어떻게 생긴 아이놈을 못 보았느냐고 묻
다가 가끔 핀퉁이까지  맞으면서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돌아다니었다. 
사흘 동안 사방 찾아도 종적이 없어서 아이놈이 죽지 않았는가 의심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사흘  되던 날 저녁때 한온이가 꺽정이에게 와  앉아서 아이
놈의 일이 괴상한 것을 말하는 중에 홀제에 여러 살맘 신발 소리가 들려서 방문
을 열어보니 여편네 하나가 진둥한둥  앞서 들어오고 그 뒤에 사내 너댓이 따라
들어왔다.  여편네는 상노아이의 어미요, 사내들은 상노아이의 아비와 사랑에 있
는 부리는 사람인데 상노아이의  아비도 죽을 상이거니와 상노아이의 어미는 얹
은머리가 흐트러지고 입은 옷이 흘러져서 평일에 머리 곱게 엊고 옷매무새 얌전
히 하던 여편네와 딴사람 같았다.  한온이가 방에서 "웬일들인가?" 하고 묻는 것
을 대답 안할  뿐외라 그 서방이 뒤에서 "어디루 들어가나.  밖에서 말씀 여쭙구 
가세." 하고 이르는  것도 들은 척 안 하고 상노아이의  어미는 방안에 들어와서 
한온이 앞에 주저앉으며 목쉰  소리로 "우리 아들 찾아주시우." 하고 지다위하듯 
말하였다. "대체 웬일인가?" 하고 까닭을 물어도  "우리 아들 찾아주시우." 가 대
답이요. "찾아줄테니 염려  말게." 하고 위로조로 말하여도 "우리  아들 찾아주시
우." 가 대답이라  한온이는 어이가 없어 물끄러미  상노아이의 어미를 바라보는 
동안에 꺽정이가 밖에 섰는  그 서방을 내다보며 "아들의 종적을 알았나?"  하고 
물었다. "그놈이 보쌈에  잡혀간 것 같습니다." 꺽정이가 다시 자세한  말을 묻기 
전에 한온이가 "보쌈에 잡혀갔어?" 하고 소리를 지르며 밖을 향하고 돌아앉았다. 
"녜, 그런 듯한 의심이 듭니다." "의심 드는 걸 자세히  좀 이야기하게." "그날 저
녁 땅거미 지난 때 아이놈 하나가 야주게 큰리루 내려가는데 장정 몇 놈이 어디
서 뛰어나와서 제답잠하구 홑이불  같은 걸루 싸서 승교바탕에 담아가지구 모전 
뒷길루 갔답니다. 저의  동네 사는 의녀가 병가에 갔다오다가 이것을  보구 와서 
이야기하더라기에 저의 내외가 가서 자세 물어본즉 그 말하는 아이놈이 제 자식
놈과는 같지 않은 데두 많습디다. 우선 키부터 자
식놈버덤 훨씬  큰 양으루 말하구 의복이라든지  걸음걸이라든지 모다 자식놈과 
틀리게 말합니다. 그러나 날짜가 맞구 시각이 근사해서 의심이 듭니다."  하고 말
을 한번 끊었다가 다시 이어서 "그것의 어미는 오늘 식전에 의녀에게 가설  이야
기를 듣구 오는 길루 이때까지 께께 울다가 왔습니다. 꼴을 좀 보십시오. 영락없
이 상성한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는  중에 방안에 계집은 한숨을 터지게 쉬더니 
방바닥을 치면서 "아이구 이놈아 어딜  갔느냐? 살았느냐 죽었느냐, 네가 죽었거
든 날 마저 데려가거라." 하고  넋두리를 하는데 목이 가라앉아서 넋두리도 잘하
지 못하였다. 꺽정이가  한온이를 보고 "전에 내 자형 되는  사람이 보쌈에 죽을 
뻔한 일이 있었거니." 하고 말을 내어서 한온이가 "죽을 뻔했으면 죽지는 않았습
니다그려." 하고 뒤를 달았다.  "죽지 않구 살아왔었네." "그건 희한한 일입니다." 
"사람의 명이란 알 수 없는 것일세. 보쌈에  들어가서 죽지 않을 수두 있지." "옛
이야기루는 보쌈에 잡혀갔다가 아주 장가를 들어가지구 잘 산 사람두 있답디다." 
상노아이의 어미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또 먼저와 같이 "우리 아들  찾아
주시우." 하고 한온이에게로  바짝 대어들었다. 한온이는 선뜻 계집더러  "찾아줌
세." 하고 말한 뒤에 곧 고개를  밖으루 돌리고 "모전 뒤루 가는 건 누가 봤다든
가?" 하고 물으니 "그 의녀가  얼마 동안 뒤를 쫓아가 봤더랍니다." 하고 상노아
이의 아비가 대답하였다. "내가  잘 탐지해 볼 테니 자네 내외는 집에 가  있게." 
"제가 말씀을 여쭈러 오려는데  그것의 어미가 먼저 앞질러 뛰어왔습니다." 계집
과 같이 온 것을 발명한 뒤 계집더러 가자고 나오라고 하여도 계집은 잘 일어나
려고 하지 아니하였다.  한온이가 이것을 복 먼저 "너희들은 왜  죽 들어와 섰느
냐. 무슨 구경이  났느냐!" 하고 부리는 사람들을  꾸짖어서 내보내고 그 다음에 
상노아이의 어미를 살살  달래서 그 서방과 같이 돌려보내었다.   보쌈이란 대개 
기구 있는 집 안부인네가 자기의  딸이나 손녀의 과부 될 팔자를 미리 때워준다
고 남의 집 자손을 잡아다가 혼인하는 시늉을 내고 곧 귀신 모를 죽음을 시키는 
일이니 안팎 하인  몇 사람만 입을 봉하면 한  집안에서도 알지 못하는 수가 많
다. 이런 일이  뉘 집에서 난 거을  알자면 먼저 의심나는 집을 점찍어  놓고 그 
다음에 그  집 속내를 파보아야 할  것이다. 한온이가 꺽정이와 의논한  뒤 자기 
집에 다니는 매파 수모 무당 판수 상쟁이 사주쟁이 들을 하나씩 둘씩 꺽정이 처
소에 불러다 놓고 남북촌과 중바닥에  큰집 지니고 당혼감 규수 두고 그리고 내
주장인 집을 물어보다가 서울 안에서  유수한 양반의 집에 그런 집이 의외로 많
은 것을 알고 모전 근방을 지정하고 물어보는 중에 모교 북쪽 천변에 사는 원계
검 원판서집이 어느 매파의 입에서 들쳐났다. 그  매파는 원판서집 일을 잘 알아
서 한온이가 캐어묻는 말을 상세하게  대답하였다. "원판서의 딸이 나이 몇 살인
가?" "지금  갓스물이오." "시색 좋은 재상가에서  어째 딸을 과년하두룩 두었을
까?" "당자의 팔자가 험한 건 인력으로 하는 수 없는 모양입디다." "색시가 어디 
병신인가?" "병신이 다 무어요? 아주 이쁘게 잘생겼소." "
그런데 어째 나이 이십이  되두룩 여위지 못했을까?" "처음에 용인 이승지  영감
의 손자하고 혼인을 정했다가   신랑감이 툭 죽어버려서 까막과부가 되고 그 다
음에 다시 함춘동 황참의 영감의 아들하고 혼인을 정했는데 황참의 영감 상사가 
나서 지금 대삼년하는 중이라오."  "까막과부에 대삼년에 참말 팔자 험한 색시로
군." "그뿐만이면 오히려도 좋지만 아직 두 번이 더 남았다오." "무에 두 번이 더 
남았단 말인가?" "색시의 팔자가  어떻게 험한지 세 번 과부 된 뒤에라야 잘  살 
수 있으리라고 한다오. 개가를  큰 험절로 치는 양반의 댁 따님으로  세 번씩 과
부 될 수 있소.  그러니까 까막과부로 팔자 때움을 하는 모양인데  세 번 과부가 
팔자에 매였다면 아직두 두 번이 더 남지  않았소." "원판서 내외가 기막히겠네." 
"원판서 대감은 어떠신지 몰라도  그 댁 정부인 마님은 노상 시름 속에 묻혀  지
내시지요." "원판서집에서 근래 보쌈을 한  일이 있다더니 참말인가베." "당치 않
은 말씀 하지 마시오. 댁에 있는 상노놈이 보쌈에 죽었다고 말들 합디다. 그러나 
나는 믿지 않소.  전부터 사내 하나가 어디로 가서 종적이  없어지면 잡혀갔다고 
떠듭니다. 호랭이에게 물려간  것도 보쌈, 제 발로 도망간 것도  보쌈, 보쌈이 흔
하기도 하지요. 사람 모인 구경터에 아이 안 낳는 때 있습디까. 그나 마찬가지에
요. 고래적 같으면  모르지만 지금같이 밝은 세상에 섣불리 그런짓  하다가 집안
을 망하게요? 혹시 하고 싶은  사람이 있더래도 좀처럼 엄두를 내지 못할 줄 아
오." "자네 말두  근리하나 이번 원판서집에서 엄두를 낸 모양이데.  자네는 그래 
소문두 못 들었나?"  "그런 소문 못 들었소."  "소문이 참말인가 아닌가 자네 그 
집에 가서 눈치를  좀 보게." "눈치 보긴 어렵지 않지만  내 생각에는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소. 그 댁 마님이 따님  때문에 하도 성화를 하시니까 누가 그런 
말을 지어낸 게지." "그런지두 모르지." 한온이가 그  매파를 보낸 뒤에 꺽정이를 
보고 "원계검의 집이  의심쩍지요?" 하고 의견을 물으니 꺽정이는  "의심쩍은 게 
다 무언가? 영락없이 그눔의  집에서 한 짓일세." 하고 잘라 말하였다.  "인제 속
내를 파봐야 할 텐데  어떻게 파보면 좋을까요?" "그눔의 집 하인을 멧 놈  잡아
다가 족쳐보세." "글ㅆㅖ요, 그러자면 너무 왁자할걸요." "왁자할 것두 별루  없지
만 설혹 좀 왁자하기루 어떤가?" 한온이는 왁자하게 하지 않을 도리를 생각하느
라고 고개를  숙이고 말대답이 없었다.  한온이가 한참 만에  고개를 치어들고서 
“그 집 하인을  주식이나 재물루 꾀어서 말을 시켜보지요. 이것이  잡아다가 족
치는 것버덤 나을 것 같습니다.” 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 흔
들며 “내 생각엔 나을 것 같지 않은데.” 하고 시원치 않게 대답하였다. “왁자
하지 않을 테니  낫지 않습니까?” “여간 꾀임에  빠져서 그런 말이 나올까?” 
“말이 나오두룩 꾀일  만한 사람을 골라서 시키지요.” “정이 친한  사이면 그
런 말두 혹시 나올는지 모르지. 그렇지만 친한  친구를 꾀임에 빠뜨릴 눔이 어디 
있을까.” “주식과 뇌물이  들면 서름서름한 사이라두 친하게 만들거든요.” “
그러자면 시일이  많이 걸리겠네.” “술잔이나  나눌 만한 터수면  시일두 별루 
걸리지 않을 겝니다. 지금 제가 생각하기는  원계검이가 이량이와 가깝게 지내는 
처지라 하인들끼리두 자주 만날  터이니까 이량의 집에서 구종 노릇하는 사람을 
불러다가 시켜볼까 합니다.”  “아무리나 자네 생각대루 해보게.” “이래 봐서 
잘 안  되거든 잡아다가 족치지요.” “그래두  좋겠지.” 한온이가 이량의 집에 
들어가 있는 부하를 불러다가 상노아이가 모교 원판서집 보쌈에 죽은 형적이 있
는데 시체나 찾았으면 좋겠으니 그  집 하인 중에 그런 심부름할 듯한 사람에게 
주식과 뇌물을 먹여서 시체 버린  곳을 알아오라고 이르고 상목을 십여 필 주어 
보냈다. 불과 수일 후에  그 부하가 다시 와서 원판서집 하인  서너 사람을 붙들
고 삶는데 상목이 부족하다고 말하여 한온이는 그 부하의 남용하는 줄까지 짐작 
못하지 않으면서  상목을 아주 반  동으로 채워주었다. 꺽정이가  산림골 색시와 
초례를 지내고 또 남성 밑에  조그만 집 하나를 사서 새살림을 차리는데 한온이
가 모든 것을 주선하여 주느라고  날마다 분주하여 그 부하가 두번째 상목을 가
져간 뒤 칠팔 일이 지나도록  재촉 한번 아니하고 상노아이의 부모가 아들의 일
을 물으러 오면 번번이 “가만 있게. 조금만 더 참게.” 하고 말하여 돌려보냈었
다. 어느 날 다 저녁때 그 부하가 와서  원판서집 보쌈에 죽은 아이가 모랫말 우
사장 이러이러한데 묻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원판서집  하인의 입에서 이 말을 
파내느라고 이만저만하게  애쓰지 않았다고  이야기하였다. “어째 하필  모래에 
갖다 묻었을까. 거짓말이 아닐까?” “거짓말은 아닌 줄 압니다
. 얼음에 구멍을 뚫구 강에 집어넣으려구 갔었는데  동이 환하게 터서 얼음 위에 
낚시꾼이 여기저기  보이는 까닭에 강에까지 나가지  못하구 모래사장에 파묻구 
왔다구 말합디다.”  “말 들은 사람이 같이  가야 자리를 찾기 쉬울  테니 내일 
낮에 틈좀 내가지구 내게루 오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튿날 낮에 한온이
와 꺽정이가 이량의 집 구종과  노밤이와 그외의 몇 사람을 데리고 모랫말 우사
장에 나와서 시체를 찾는데 이러이러한  데라고 말 들은 것이 있건만 사장의 목
표가 분명치 못하여 한동안들 헤매는 중에 한 곳에 꽉꽉 밟은 발자국이 남아 있
어서 그곳을 시험삼아  파보았다. 한 자 깊이쯤 들어가서 괭이질하는  사람이 괭
이 끝에 맞치는 것이 있다고 말하더니 거미구에 옷이 내다보이고 뒤미처 시체가 
드러났다. 그 시체를  파내놓으니 한온이는 외면하고 꺽정이는  언짢아하고 노밤
이는 외눈에서  닭의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상노아이의  부모가 아들의 
시체 찾았다는 기별을 듣고 강변으로 쫓아오는데 그 아비는 한 걸음이라도 빨리 
오려고 지름길로 올줄까지 알았지만, 그 어미는  어디로 어떻게 오는지도 모르고 
먼줄만 알아서 먼  길로 끌고 온다고 붙들어 주는 서방을  핀잔하였다. 그어미가 
사장에 와서 시체를 보고는 곧 펄썩 주저앉아서  몸부림을 치며 울었다. 여러 사
람이 붙들고 말리는데  적이 정신을 차려서 죽은  자식 얼굴이나 보겠다고 시체 
옆에 가서 덮어놓은 것을 치어들고 들여다보더니 바로 고개를 딴데로 돌리고 슬
몃슬몃 뒤로 물러나왔다. 눈  뜨고 입 벌린 얼굴을 보고 고만  정이 떨어진 것이
었다. 그 뒤에는 별로 울지도  못하고 넋 잃은 사람같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시
체를 문안으로 들여오지  못하고 문밖에서 집을 잡고  치상하여 아주 매장은 안 
하고 우선 초빈하여 두는데 한온이와 꺽정이가 각각 우후하게 부의를 주어서 훌
륭한 수의로 염도 하고  좋은 판재로 관까지 썼다. 그 어미는  한번 정이 떨어진
뒤로 시체 근처에 가기를 싫어하여  염하는 것도 보지 않고 입관하는 것도 보지 
않고 초빈하는 데도  따라가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슬픈 것은 창자  굽이굽이 맺
히고 원통한 것은 뼈 마디마디에 박혀서 원수를 못 갚고는 못 살 것같이 날뛰었
다. 그 아비 역시 불쌍히 죽은 자식의 원수를  갚고 싶은 마음이 속에 가득한 중
에 더욱이 계집에게 부대껴서  정장질을 해보려고 작정하고 한온이에게 와서 조
력하여 달라고 청하였다.  “셋줄이 든든한 시임 형조판서를  걸어가지구 정장해
서 일이 될 것 같은가? 일두 안 되구 욕만  보기 쉬웨. 내가 조력해서 일이 될것
만 같으면 자네가  와서 청하기를 기다리구 있겠나. 벌써 정장질  하라구 가르쳐 
주기두 했지.”  사내는 한온이의 말을 옳게  듣고 가서 정장질 안  하려고 하는 
것을 “정장질 안 하면 칼 가지구 원수를 갚을  테요. 죽는 놈도 있는데 욕볼 것
이 겁난단 말이오? 겁나거든  고만두오, 내가 하리다.” 계집이 사살을 퍼부어서 
마침내 정장질을 하게  되었다. 사내가 소지를 들고 먼저 포청으로  갔더니 포청
에서는 형조로 가라고 받지 않고 형조에는 가야 받아 줄 리 없어서 나중에 대사
헌이 거리에 나왔을  때 노상에세 바치었다. 대사헌 이감이 이량의  패로 원계검
과 사이가 막역인 것을 모르고  무슨 좋은 처분이 내릴까 바라다가 흑의 자락에 
바람이 나는 사헌부 나장들에게 끌려가서 소지의 사연이 주작부언이라고 초사를 
올리기까지 매를 죽도록 얻어맞고  멀쩡한 사람이 병풍상성한 놈이란 소리를 듣
고 등밀려 쫓겨나왔다. 사내가 정장질하다가 볼기만  얻어맞은 뒤에 계집은 한온
이에게 쫓아와서 덮어놓고  자식의 원수를 갚아내라고 부득부득  졸랐다. 한온이
가 계집더러 “어떻게  하면 원수를 갚을 수 있겠나?  원수 갚을 도리를 자네가 
가르쳐 주게.” 하고  말하니 계집은 서슴지도 않고 “원가의 집안을  도륙내 주
세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건 내 힘으루 할 수 없네.”  “집안을 도륙낼 수 
없으면 그 기집년 하나만이라도 죽여 주세요.” “그것두 내 힘으루 할 수 없구.
” “원수를 갚아주실  맘이 없는 게지 어째 할  수 없어요?” “내가 원판서집 
안에 뛰어들어가서 색시를  죽이구 올 만한가. 자네는 나를 퍽  대담한 사람으루 
봤네그려.” “누가  친히 가줍시산 말입니까. 댁  문하에 드나드는 사람이 작히 
많습니까?” “그런 일  할 만한 사람부터 물색해 놓구  이야기하세.” 한온이가 
섣불리 뒤에 이야기하자고  말 한마디 한 탓으로 계집에게 성화를  받게 되었다. 
계집이 연일 오기도  하고 하루 걸러큼 오기도  하는데 한온이가 하루는 계집을 
조용히 불러가지고 “이 사람 저  사람 생각해 봐야 내 집 사람 중에는 그런 큰
일을 한만하 사함이 없구 우리  선생님 임선다님이 만일 하시러 들면 하실 수가 
있는데 내 말만 듣구서는 움직이실  것 같지 않으니 자네가 먼저 정성스럽게 졸
라보
게.” 하고 말하여  성화거리를 슬그머니 꺽정이에게로 떠밀었다. 꺽정이가 색시 
장가를 들어서 새로 살림까지 차렸건만 전과 같이 한첨지 집에서 유숙하고 식사
하였다. 꺽정이는 새집으로  아주 옮겨갈 의사도 없지 않았으나 거처  음식이 불
성모양일 것을 염려하여  한온이가 지성으로 붙들어 못 가게 한  것이었다. 그러
나 꺽정이가 매일 밤에 가서  자고 올 뿐 아니라 낮에 가서 앉았다 오는 까닭에 
처소에 있을 때보다 없을 때가 더 많았다.  한온이가 계집에게 성화를 받다 못하
여 색책으로 말하는 것을 계집은  짜장 좋은 도리를 일러주는 것으로 듣고 즉시 
꺽정이의 처소로 쫓아왔다.  꺽정이가 마침 처소에 없는 때라 계집이  빈 안방문
을 열어보고 방에 들어가 앉아 있을까 집에 갔다가 다시 올까 주저하는 중에 건
넌방에 혼자 들어 엎드렸던  노밤이가 소리없이 방문을 열고 내다보며 “아주머
니 왔소?”  하고 말을 붙여서 계집은  곧 건넌방 앞으로  다가섰다. “선다님이 
어디 출입하셨소?” “우리  선다님이 요새는 밤낮 번찔 가시는  데가 있다우.” 
“가시는 데가 어딘지 좀 여쭤올  수 없소?” “조금 있으면 오실 게니 여기 들
어와서 기다리시구려.” 계집이  싫단 말 않고 건넌방에 들어와서 문  앞으로 앉
으니 노밤이가 앞에  있는 화로의 불을 헤쳐놓으며 “이리 와서  불 쪼이시우.” 
하고 화로 가까이 오라고 권하였다. “나는 불 쪼일 생각이 없소.” “칩지 않으
시우?” “녜.”“오늘 같은 치운 날 치운 줄을 모르면 장사시우.” “자식 잃은 
뒤로 종일 밖에서  살아야 별로 치운 줄도 모르고  두세 끼 밥을 굶어야 배고픈 
줄도 모르우.” “지금은  속에 불덩이가 들어앉아서 모르지만 뒤에 해가  날 테
니 몸조심하시우.” “몸조심해서 오래 살고도 싶지 않소.” “살고 싶지 않다구 
산 목숨을 어떻게 억지루 끊소. 내가 일전  밤꿈에 그애를 만나봤는데 꿈이 하두 
영절스러우니 이야기  좀 들으실라우?” “내 자식을  꿈에 만나봤단 말이오?” 
“녜, 이리  와서 불 쪼이며 이야기를  들으시우.”계집이 화로 옆으로 다가앉았
다. “아주머니두 아실는지 모르지만 내가 거의 두  달 동안 그애하구 한이불 속
에서 뒹굴었소. 저두 내게  정이 들구 나두 제게 정이 들었는데  죽은 뒤루 꿈에
두 한번 보이지 않아서 사람이  죽구 보면 이렇게 매정스러운가 나는 혼자 한숨
지은 때가 많았소. 그랬더니 엊그제 밤 꿈에 그애가 왔겠지요. 꿈에두 생시의 먹
은 맘이 있어서 붙들구 매정스럽게 사살하니까 그애가 저승 일이 끝나거든 오려
구 그 동안 안 왔다구  말하구 오늘 염라대왕께서 저를 불러서 너는 인도환생을 
시킬 텐데 원통하게 죽은 것이  불쌍해서 특별히 생각하구 사흘 동안 세상에 나
가 돌아다닐 기한을 줄 것이니 사흘 안에 네가 태어나구 싶은 집을 맘대루 골라
서 가게 해라 분부하셨다.구  말합디다.” “어째 내게는 와서 그런 말을 아니했
을까요?” “그렇지 않아두  그애가 말합디다. 우리 어머니가 하두  나를 못잊어 
하는 모양이라 다시 아들루 태어나려구 집에를 갔다가 아버지의 끙끙 앓는 소리
가 듣기  싫어서 들어가지 않구  노서방보구 부탁하려구 바루  쫓아오는 길이오, 
하기에 무슨 부탁이냐구 묻지  않았겠소? 그애 말이 내가 사흘 안에 어떻게든지 
다른 사람 없는 때 우리  어머니를 이리 뫼시고 올 테니 내 이야기를 자세히 하
시우 하구 지재지삼  부탁합디다. 나는 꿈을 허사루만 여기구 믿지  않았더니 지
금 아주머니가 오신 걸 보니  가슴이 뜨끔하우. 꼭 그애가 뫼시구 온 것 같구려.
” 계집이 어리석은 탓으로 노밤이의  꿈 이야기에 속아서 죽은 자식의 환생 부
탁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노밤이에게 한번 몸을  허락하였다. 계집이 노밤이와 같
이 앉았기가 새삼스럽게 서먹서먹하고 마주 보기가 갑자기 면난스러워서 가려고 
일어섰다. “선다님 안 보구 가실라우?” 노밤이의 묻는  말을 변변히 대답도 않
고 건넌방에서 나와서  신발을 신는 중에 꺽정이가 들어왔다. “자네가  어째 왔
는가?” “선다님을 보이러 왔습니다.” “나를 보러 왔어?  무슨 할 말이 있나?
” “조용히 보입구 청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럼 방으루 들어가세.” 계집이 
꺽정이의 뒤를 따라 안방에 들어가서  앉은 뒤에 꺽정이가 먼저 “자네 남편 일
어났나?” 하고 물으니 계집은 “웬걸요. 아직 일어 앉지두 못합디다.” 하고 대
답하였다. “참말  몹시 맞은 겔세그려.” “맞기두  몹시 맞았지만 사람이 워낙 
약해서 그래요.” “의원은 보겠지?”  “동네 있는 의녀가 와 봐줍니다.” “의
녀가 아무래두 사내  의원만 못할 테니 고명한 사내의원 하나를  청해다 보이게.
” “그 의녀는  한동네서 살구 저의를 불쌍히  여겨서 공히 봐주다시피 하지만 
다른 의원이야 어디 그렇게  됩니까?” “치료에 드는 부비는 내가 젊은 주인하
구 의논해서 넉넉히 ㅂ내줌세.” “황송합니다.”“지금 곧 젊은 주인께 가서
 내가 오시란다구 말하게.”  “선다님께 청할 일이 한 가지  있는데 말씀하오리
까?” “치료 부비 말구 무슨  다른 청이 있나?” “치료 부비를 줍시사구 청하
러 온 게  아니올시다.” “그럼 내게 청할 일이 무언가?”  “죽은 자식의 원수
를 갚아주십시오.”  “원수를 갚아달라니 어떻게 갚아달란  말인가?” “원가놈
의 집을 통이 도륙내 주시거나그렇지  못하면 그 집 딸년 하나만이라도 죽여 주
십시오.” “내가 아직은 사람을  죽이라구 형조나 포청에 분부할 힘이 없네. 이 
다음에 혹시 그런 힘을 가지게 되거든 그때  와서 말하게.” 꺽정이가 껄껄 웃었
다. “선다님 같은 양반이 그까지 기집애년 하나를 못 죽이시겠습니까. 죽이실라
면 죽이실 수 있는 걸 제가 다 알고  와서 청하는 게올시다.” “죽일 수가 있구 
없구간에 그 청은 못  듣겠네.” 꺽정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원통하게 죽은 놈
이 불쌍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불쌍해두 그 청은 못 들어.” “제발 한번만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쓸데없이 잔소리 말게.”  꺽정이가 눈을 곱지 않게 
떴다. “선뜻 허락하시면 잔소리를 할리가 있습니까?” “고만 가게.” “허락하
시는 말씀을 들어야 가겠습니다.” “무엇이 어째!”  꺽정이가 언성을 높이었다. 
계집이 앉은 자리에 엎드려서  울음을 내놓기 시작하니 꺽정이가 일어나서 반짝 
들어 방문 밖에  내놓았다. 노밤이가 건넌방에서 나와서 계집을 울지  말라고 마
리는데 “임자나 내 자식의 원수를 갚아줄라우?” 하고 계집이 징징거리니 “갚
아 드릴 테니 염려  마우.” 하고 노밤이는 희떱게 허락하였다. 꺽정이가 방안에
서 “미친 눔, 쓸데없는 아가리  놀리지 마라!” 하고 소리질러서 노밤이가 움찔
하는 것을 계집이 보고 악이  나는 바람에 방문을 열어젖히며 “당신이 못 해주
거든 가만히나 있지 왜  남이 해준다는 것까지 헤살이오?” 하고 방자스럽게 말
한즉 꺽정이 입에서 벼락 같은 호령이 나오지  않고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꺽
정이가 말 한마디 않고 한참  동안 있다가 예사 말소리로 노밤이를 불러서 젊은 
주인을 청하여  오라고 일렀다. 계집이  방문 밖에 퍼더거리고  앉아서 넋두리를 
해가며 울며불며 하는 중에  한온이가 와서 나무라고 타일러서 울음을 그쳐놓고 
방으로 들어오는데 “아주  보내구 들어오게.” 하고 꺽정이가 말하였다. 한온이
가 딧 계집에게 가서 조용히  할말이 있다고 문밖으로 끌고 나가더니 쉽사리 보
내고 들어왔다. “그 기집에게  나는 오늘 봉변했네.” 꺽정이 말에 한온이가 대
번에 “제가 선생임께 미안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자네가 시켰나?” “그 
기집이 하두 성화를 바치기에 우리 선생님께나 가서 청해 보라구 실없이 한마디 
했습니다. 제가 곧 쫓아올 것인데 아버지께서 셈  맞춰 볼 것이 있다구 붙들어서 
못 왔습니다.” “그럼 자네가 날 봉변  준 셈일세.” “죄송합니다.” “그 기집
이 날 욕하구 가든가?” “욕이 무업니까. 내일  와서 석고대죄한다구 말하구 갔
습니다.” “그것두 자네가 시킨 게지. 자꾸 오면 성가신 걸 그렇게 시킨단 말인
가? 그 서방 치료시킬 부비나 내 셈속으로  보내 주구 다시 오지 말라게.” “오
지 말래두 제 발루 오는 걸 어떻게 합니까?” “자네두 내가 그 기집의 청 들어
주기를 바라는 모양인가?” “아니올시다. 상성한  기집의 청을 들어줍시사구 할 
리가 있습니까.” “그럼,  그 기집이 오더래두 자네가 맡아서  쫓아보내게.” 꺽
정이와 한온이의 수작하는  말을 노밤이가 밖에서 다 들었다. 이튿날  식전 꺽정
이가 새집에서 자고 오기도 전에  계집이 공석한 닢을 가지고 와서 마당에 깔고 
엎드리는데 노밤이가 보고  쫓아나왔다. “아주머니 찬 땅에 이게  무슨 짓이오?
” “선다님께서 청을  들어주시두룩 내가 종일이라두 여기  엎드렸을테요.” “
고만두구 일어나시우. 어제 선다님하구 젊은 양반하구  이야기 하는 걸 들으니까 
청을 들어주긴 썩  틀렸습니다.” “젊은 양반이 권해두 선다님은 일향  못 들어
주겠다구 말합디까?” “그럴 리가 있소?” “내 귀루 들었는데 그럴 리 있소가 
무어요.” “그럼 나를 속였군. 가서 한번  대판 씨름을 해야겠다.” 계집이 일어
나서 한온이의 큰집으로 쫓아가려고 하는 것을  노밤이가 붙들었다. “나만 공연
히 새중간에 찍혀 들어가지 아주머니에겐 조금두  잇속이 없을 테니 고만두우.” 
“내가 젊은 양반을 끌구 와서 같이 선다님을  조르겠소.” “떡 줄 사람은 생각
두 않는데 김찻국만 헛마시지 마시우.” “노서방 대체  어떻게 하면 좋소? 참말 
노서방두 할 수  있소?” “나두 불쪽이 둘이지 하나 아니오.  그만 일을 못하구
야 어떻게  갓철대를 이마에 붙이구  다니겠소.” “그럼 다  고만두고 노서방을 
믿고 있을 테니 속히 해주시겠소?”  “ 그런데 내가 원가의 집안 지현을 잘 몰
라서 좀 어렵소.” “지형이 무어요?” “문이 어디루 나구 방이
 어디루 붙구 더욱이 기집애 자는  처소가 어디 있는 걸 자세히 알아야 하지 않
소.” 이때  바깥방을 쓰는 사람들이  한첨지에게 아침 문안을  갔다가 돌아와서 
“오궁골 아주머니 식전에 웬일이오?”  “노서방 죽집에 안 갈라나?” “이 공
석이 웬게야?” 이 사람 한마디 저 사람 한마디 지껄이는 주에 노밤이는 계집을 
보고 “선다님이 지금 안 기시니 갔다가 다시  오시우.” 하고 말하며 외눈을 끔
적끔적하였다. 이른 아침때가 지난 뒤에 꺽정이가 새집에서 왔었다. 노밤이가 계
집의 석고대죄하러  왔던 것을 이야기하고 “선다님께서  어디 가셨다구 말해서 
쫓아보냈습니다. 어제 저녁  때 시골서 급한 기별이 와서 총총히  떠나셨는데 언
제 오실지 아직 모른다구 의수하게 꾸며 말했더니 곧이 들으면서 그래두 미심한
지 이따 낮에 다시  한번 와본다구 말하구 갑디다. 다시 올  테면 말을 말아야지 
말까지 하구 가니  선다님께서 낮에 출입만 하시면 고만 아닙니까.  계집이란 도
대체 오장육부에 구멍이 덜 뚫린 것들이에요.” 하고 수월수월 지껄였다. 노밤이
가 허무맹랑한  꿈이야기로 계집을 농락하기는 견물생심으로  흉측한 마음이 난 
것이요, 원수 갚아 준다고 계집에게 장담하기는  배냇병신인 실답지 못한 천성이 
시킨 것인데 실답지 못한 장담을미끼삼아 다시 흉측하게 농락할 생각이 나서 계
집은 다시 오라고 하여 놓고 꺽정이는 출입하도록 하려고 거짓말을 참말같이 지
껄인 것이었다. 이날  낮에 모든 일이 노밤이의 소원대로 되어서  꺽정이는 나가
고 다른  사람은 오지 않고 계집은  와서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  노밤이가 죽은 
상노아이를 남달리 생각하여 원수를 갚아 줄 마음까지 없지 않지만 제 역량으로 
재상가의 규중 처녀를 살해할 엄두가  나지 않는 까닭에 그 어미에게 말은 선선
히 하고도 뒤가 나서 원계검의 집 지현 알아볼 것을 핑계삼고 한 번 두 번 밀어
오는 중에 그 어미가 어디  가서 지형을 샅샅이 알아가지고 와서 자세히 일러주
고 오늘 밤으로 곧 가달라고  백번 천번 간청하여 노밤이는 하랄없이 그리 하마
고 대답하였다. 계집이 간 뒤에 노밤이는 혼자 갖은 궁리를 다하여 보았다. 갔다
가 성공을 못한 것처럼  속여볼까, 아주 뱃심을 부리고 내대어볼까, 숫제 어디로 
피신하여 볼까 이것저것 모두가  신통치 못하고 꺽정이를 움직여 보았으면 좋을 
것만 같은데 어떻게 하면 움직일 수 있을까  종일 생각하였다. 이날 석후에 꺽정
이가 새집에 가려고 나설 때  노밤이는 미리 의관을 정제하고 있다가 얼른 정하
에 내려가서 밑도끝도 없이 “저는 오늘 저녁에 선다님께 마지막 하직을 여쭙겠
습니다.” 하고  허리를 구부렸다. “마지막 하직이라니  무슨 소리냐?” “오늘 
밤에 제가 모교를 가기루 작정했는데  꾸중을 들을까 봐 말씀을 진작 여쭙지 못
했습니다.” “모교를 가다니?”  노밤이가 다른 사람 없는 것을  번히 알면서도 
사방을 휘  돌아보고 나서 “기집애를 죽이러  갑니다.” 하고 나직이 말하였다. 
“네가 원수를 갚아주마구 했느냐?” “네, 제가  요전자 기집의 우는 것을 달래
느라구 위로조루 말한마디  하구 꾸중까지 듣지 않았습니까. 그때 그  말 한마디
에 발목이 잡혀서 성가심을 받았는데 사내자식의 면목이 있어서 싫구 좋구 되구 
안되구 모두 다 불계하구 일을 담당하구 나서지  않을 수 없이 되었습니다.” “
그런데 마지막 하직이란 건  웬 소리냐? 기집애를 죽이구 다른데루 도망할 작정
이냐?” “도망하게  될 것만 같으면 마지막  하직을 여쭐 것이  없습니다. 이리 
와서 뵈입든지  광복 가서 뵈업든지  다시 뵈입지요. 그렇지만  기집애를 죽이구 
못 죽이구 간에 저는  십상팔구 잡힐 것 같은데 잡히면 죽는  목숨 아닙니까. 그
래서 아주 마지막  하직을 여쭙는 것이올시다. 그런데 제가 잡혔다는  소문이 들
리거든 선다님이시나 이집 주인  양반이시나 얼마 동안 자리를 옮겨 앉으시두룩 
하십시오. 제가 지금 맘을 먹기는 압슬, 포락을 당하더래두 함부루 말을 불지 않
을 작정입니다만 혹시  정신을 잃은 중에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른지 모릅니다. 
매사가 불여튼튼 아닙니까?” 노밤이의 말할 때 태도가 전과 같이 뒤숭숭스럽지 
않고 제법 침착하였다.  꺽정이가 물끄러미 노밤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네가 
알아볼 건 다 알아봤느냐? 우선 그 집 안팎길을 환하게 잘 알았느냐?” 하고 물
으니 노밤이는 선뜻  “알아볼 수 있는 데까지 소상히 알아봤습니다.”  하고 대
답한 뒤 다시 이어  말하였다. “그 집이 모교다리 북쪽 천변  첫골목 안 남향대
문집인데 대문안에 들어서면 잡잇간, 마굿간, 광들이 있구 사랑 중문은 서편으루 
꺾여 나구 안중문은  맞은편 층계 위에 드높게  매달려서 대문 밖에서 안중문이 
곧게 들여다보입니다. 안중문간을  지나 들어서면 육간 대청이  남향으루 놓이구 
안방은 동쪽이구 건너방은 서쪽이이구 건너방 모퉁이에 사랑에서 드나드는 일
각문이 있답니다. 안  뒤는 훨씬 넓어서 서편으루 사당방채가 있구  동편으루 별
당채가 있는데 별당채는  안방 뒤 광채와 비슷한 줄에 서향으루  놓였답니다. 별
당채만두 조그만 여염집만해서 안방이  이 간, 마루가 삼간, 건너방이 한 간인데 
별당 안방이 곧 그 처녀의 방이랍니다.  앞으루 대문, 바깥중문, 안중문을 지나서 
안 뒤에 있는  별당에까지 들어가는 건 애초에 엄두를  내지 못할 일이구 그 집 
동편에 있는 막다른  실골목을 한참 들어가면 높은 담  안에 큰 배나무 선 데가 
있는데 그 배나무가  별당 뒤에 백인 것이라니까  어떻게 그쪽 담을 넘어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별당에 상직꾼두 여럿이려니와 별당에서  소리를 치면 
안방에 들리구 안방에서 큰소리를  지르면 사랑 수청방에 들리구 수청방에서 설
렁을 치면 하인청  하인과 행랑방 낭속이 쏟아져나오게  될 텐데 만일에 밖으루 
실골목 어귀를 막구  안으로 쫓아들어오면 옴치구 뛸 데가 없을  겝니다.” 노밤
이의 길게 말하는 것이 저의 안 것을 자랑하는 것도 같고 또는 꺽정이의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도 같았다. 꺽저잉가 노밤이의  말을 끝까지 다 듣고 나더니 
“가긴 가더래두 내일 내 말을 듣구  가거라.” 하고 분부하였다. “기집이 내일, 
식전에 하회를 알러 올 텐데 오늘 밤에 간다구 해놓구 안 가구 있으면 창피하지 
않습니까?” “기집이 내일 오거든 오늘 밤에 내 분부가 있어서 못 가구 일간갈 
텐데 하회를 뻔찔 알러 다닐  것두 없으니 집에 가만히 앉아서 소문을 들으라구 
일러 보내려무나.” “어디 그렇게  해봅지요. 그렇지만 좀 창피를 볼 것 같습니
다. ” 꺽정이가  새집으로 가는 것을 노밤이는 문밖에까지 전송하고  들어올 때 
싱글싱글 웃으면서 “바루 들어맞았다. 인제는  됐어.” 하고 혼잣말로 지껄였다. 
이튿날 식정에 상노아이의  어미가 와서 노밤이는 전날  밤에 가지 못한 사정을 
말하는데 꺽정이의 분부는 쑥 빼고 환도날에 녹이나서 오늘 밤까지 갈아야 쓰겠
다고 거짓말하여  속이었다. 그러고 노밤이는  꺽정이 입에서 분명한  말을 듣게 
되기만 종일 바라고 있었다. 꺽정이가 이날 낮에  모교 원계검의 집에 가서 대문 
밖에서 들여다보면 동편 실골목  안에 들어가서 자세히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한온이 큰첩의 집 앞을  지나오다가 마침 한온이를 만나 끌려들어가서 국수장국
으로 점심 요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이런 수작이 있었다. “자네 선전
관의 표신 같은 것을 하나  얻어 줄 수 없겠냐?” “그건 무엇하실랍니까?” “
무엇에 좀 쓸  데가 있는데 쓸 데는 나중 알게.”  “언제 쓰실랍니까?” “오늘 
해전에 열어 주면 좋겠네.” “선전관의 표신과 꼭  같게 위조한 것이 큰집에 여
러 개 있습니다. 한 개 갖다 드리지요.” 꺽정이가 낮에 나간 것을 새집에 간 줄
로만 짐작하는 노밤이는 꺽정이 오기를 잔뜩 기다리고 있다가 꺽정이가 온 뒤에 
곧 앞에 나가서 “어젯밤에 오늘 들으라신 말씀은 무엇이오니까?” 하고 물으니 
꺽정이는 “아직 가만 있거라.” 한마디 꾸짖듯 말하고  다른 말을 더 하지 아니
하였다. 이날 밤에 꺽정이가 새집에 가지 않고 처소에서 잠을 잤다. 새집을 배치
한 뒤 이십여 일 동안에  두어 번 광복산에서 황천왕동이가 와서 같이 자느라고 
못가고 그 외에는 밤마다 가서 자던 사람이 초저녁에 잠깐 다녀만 오는 것이 무
슨 까닭이  있는 일인데 그 까닭이  별게 아닐 것이라 노밤이는  속으로 “옳지, 
이 양반이 여기서  자다가 밤에 기집애를 죽이러 갈 작정이구나.  그런데 나더러 
말 안 하는 게  웬일일까. 기집에 대가리를 끊어가지고 와서 엿다  받아라 할 생
각인가. 그렇지, 어둔 밤에 홍두깨 대신  사람의 대가리로 나를 놀라킬라는 게지.
” 혼자 다 안  것 같이 생각하였따. 노밤이가 자리에 누운  뒤에 얼굴에 찬바람 
끼치는 것이 실어서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어쓰고 잠이 들어서 코를 골며 곤히 
자는 중에 몸이 혁혁한데 잠이 깨어서 눙릉 떠본즉 꼈던 불이 다시 껴지고 무서
운 군관  하나가 눈앞에 서 있었다.  노밤이는 눈뜨고 꿈꾸는 줄로  여겨서 눈을 
도로 감고 배 아래에 내려가 있는 이불을 더듬어 끌어올리다가 “눈까지 떠보구 
도루 잘 테냐! 얼른 일어나가라!” 말소리가 꺽정이라 그제사 꿈질거리고 일어나 
쪼그리고 앉아서 눈을  비비었따. “빨리 옷 입어라!”  꺽정이의 말을 노밤이가 
“빨리 받아라!”로 빗듣고 “어디 있습니까?” 하고 꺽정이를 쳐다보았따. “무
에 어디 있단  말이냐?” “기집애 대가리 말입니다.” “저눔이  잠주정하지 않
나, 정신을 얼른 못 차리겠느냐!”   꺽정이가 발끝으로 앞정강이를 직신하여 노
밤이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는데  허리띠 안 맨 바지를 붙들지도 않아서 깝데
기가 홀딱 벗어졌다.  “저게 무슨 꼴이냐?” “녜 녜, 옷을  입겠습니다.” 노밤
이가 주저앉아서 바지를 치키고 버선을 신고 허리띠 대님까지
 매고 다시 일어선  뒤에 “지금 나하구 같이 가자.” 하고  꺽정이가 말하니 노
밤이는 얼떨떨하여 “어딜 가시렵니까?”  하고 물었다. “어딜 가다니, 네가 간
다는 데를 같이  가잔 말이다.” “선다님 혼자 가시지요.” “저눔  보게, 저 혼
자 보내기가 염려돼서 가자니까 되려 나더러 혼자 가란 말이냐?” “선다님께서 
가시면 고만이지 제야 가서  무어합니까?” “네가 갈 맘이 없으면 나두 고만두
겠다.” “아니, 가겠습니다. 가서 망이라두 봐드리겠습니다.” “갈 테거든 얼른 
군사 복색을 차리구 나서라.”
  군관이나 군사의 복색을 차리는 것은 야순 도는 군사에서 잡히지 않으려는 것
인 줄 꺽정이가 말 아니하여도 노밤이는 짐작을  잘 하였다. 선전관 복생을 차린 
꺽정이가 군사 복색을 차린 노밤이를  데리고 밤중의 인적 그친 큰길을 아무 거
침없이 지나서 모교 천변을 아래서 끼고 올라오다가 원계검의 집 동쪽 실골목을 
잡아 들어섰다. 실골목 안은 천변보다 훨씬 더  어두워서 어둠 속에 발들을 더듬
어 떼놓으며 차츰차츰 들어오는 중에  어느 집의 들창의 펼떡 열리며 오줌을 내
버리는데 꺽정이보다 뒤떨어진 노밤이가 마침 들창앞을 지나오다가 옷에다 흠뻑 
받았다. “이런  제기.” 노밤이가 무심결에 말소리를  내고 도리어 놀라서 뒤에 
나오던 욕설을 입속에서 삼켜버리고 앞서 간  꺽정이를 부지런히 쫓아왔다. 꺽정
이가 배나무 선  데를 먼저 와서 있다가 노밤이가  앞에 온 뒤에 비로서 “아까 
오줌을 받았더냐?” 하고 물었다. 거기는 양편이 모두  큰집 담이라 가만가만 이
야기하여서는 들릴 데가 없었다. “이거 좀  맡아 보십시오.” “지린내 난다. 저
리 비켜서라.” “저는 여기서  망보구 있을 테니 혼자 담 넘어 들어가십시오.” 
“망이 무슨 망이냐! 가지고 온 밧줄이나 이리 내라.” “밧줄 가지구 어떻게 넘
어가실랍니까?” “내가  먼저 뛰어넘어가서 밧줄 한  끝을 넘켜보낼 테니 네가 
붙잡아 넘어오너라.” “저는 몸이 비둔해서 그렇게 안됩니다. 선다님 담 넘어가
시는데 소용 안 되면 밧줄은  일부러 가지구 올 것두 없는 걸 공연히 가지구 왔
습니다. 그러구 대가리는 꼭 떼어가지구 나오십시오. 제가 갖다 보여주마구 기집
에게 허락했습니다.” 꺽정이가 한참 생각하다가 “그럼 너는 여기 있거라.” 노
밤이에게 말한 뒤에 발을 몽굴러가지고  길이 넘는 높은 담을 뛰어넘는데 담 안
에 가서 쿵 소리도 나지 아니하였다.   꺽정이는 노밤이가 섣불리 살인하다가 위
급한 일을 당할 경우에 옆에서 도와주려고 생각하고 같이 왔는데 노밤이가 취평
하려고 꾀를 피울 뿐 아니라  다시 생각하여 보니 노밤이를 담 안으로 끌어들어
고 담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 공연한 군일이라 노밤이는 제 소원대로 담 밖에 남
겨두고 혼자 담을 뛰어넘었었다. 꺽정이가 힘도  장사려니와 몸이 날래서 뛰엄질
을 잘하여 숭례문을 뛰어넘었다고 헛소문까지 난 사람이라 원계검의 집 후원 담
이 높지 않은 건 아니로되 여반장으로 뛰어넘었던  것이다. 꺽정이가 담 안에 들
어온 뒤 혹시 무슨  기척이 있나 잠시 서서 귀를 기울이었다.  자리는 후원의 동
떨어진 곳이요, 때는  한밤중이 훨씬 지난 뒤라 사방이 괴괴한데  여자의 이야기
책 보는 소리가 어디서 나는 듯하였다. 처음에는  원채 안방에서 나는 줄 생각하
였더니 나중에 알고  본즉 별당안방에서 나는데 소리가  가늘어 멀리서 오는 것 
같았다. 꺽정이가 발짝  소리를 별로 숨기지도 않고 별당 뜰  앞에까지 걸어왔을 
때 책 보던  소리는 벌써 그쳐지고 희미하던  불빛이 다시 밝아지더니 방안에서 
말소리들이 나는데 “할멈,  할멈!” 하고 몸달게 부르는  건 계집아이의 소리요 
“왜 그러시우?” 하고 성가신 듯이 대답하는 건  늙은 할미의 소리였다. “밖에
서 신발 소리가  났소.” “무슨 신발 소리가 났단 말이오?”  “내가 똑똑히 들
었는데 누가 뒤꼍에서 앞으로 나온 것 같아.”  “정월 고사를 안 지내더니 대감
이 떡 생각이 나서 돌아다니는게지.” “할멈,  일어나서 바깥 좀 내다보오.” “
작은아씨가 밤늦도록 잠을 안 자니까 이런 소리  저런 소리 귀에 들리지요. 어서 
불 끄고 잡시다.”  “불 없으면 더 무서우라구.”  “언제 또 큰 초까지 붙여났
소?” “건너방에서 자는 것들이나 좀 깨워 데리구  오.” “그까지 아년들 깨워 
오면 무어하우,  할멈이 여기 있으니 조금도  무서워 마시우.” “무서운 생각이 
자꾸 나니 어떡하우.”  계집아이의 말고 늙은 할미의 말이 섞바꾸어  나는 것을 
꺽정이가 서서 듣다가 말의 동안이 뜰 때 더  섰지 않고 마루 위로 올라왔다. “
각항저방심미기 두우녀허위실벽  규루위묘필자삼 정귀류성장익진.”  “진익장성
류귀정 삼자필묘위루규 벽실위허녀우두 기미심방저항각.” 
  방안에서 이십팔수 별 이름을 바로 외고 거꾸로 외고 하는 중에 꺽정이 는 걸
린 지겟문을 걸리지  않은 것같이 잡아당겨서 열고 방안에 들어섰다.  윗목의 상
직 할미는 자리 속에 누운  채 이불을 폭 뒤집어쓰고 아랫목의 계집아이는 자리 
위에 앉았다가 그대로 포  엎드리는데 계집아이의 몸도 떨리거니와 상직 할미의 
이불도 떨리었다. 꺽정이가 눈앞에 엎드린 큰  계집아이를 내려다볼 때 죽일마음
도 안 나고 살려두고 갈  마음도 안 나서 어찌할까 주저하는 중에 문득 산 사람
으로 잡아가지고 갈 생각이 났다. 꺽정이는 방안을  한번 돌아본 뒤 아랫목에 외
서 벽에 걸린 세수 수건으로  계집아이의 입을 친친 동이고 발채에 놓인 명주처
네로 계집아이의 몸을 도르르 싸서 한편 어깨에 둘러메고 나오려는데 늙은 할미
가 어느 틈에  앙금앙금 일어나서 떨리는 손으로 옷자락을 붙들었다.  늙은 할미
는 겁이 되우 나서 혀가 굳었던지 소리는  못 지르고 턱만 들까불렀다. 꺽정이가 
늙은 할미를 발길로 차서 쓰러뜨린  뒤에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두서너 번 짓
밟아 주고 방에서  나왔다. 후원에 와서 꺽정이는 다시 담을  뛰어넘으려다가 어
깨 위에 계집아이도 메었거니와 담 너머에 노밤이가 어디 있는지를 몰라서 뛰지 
못하고 먼저 담 밑에 붙은  뒷간 지붕으로 올라오고 거기서 다시 담위로 올라와
서 굽어 살펴보며  사뿐 뛰어내렸다. 배나무 선데쯤 앉았다 섰다  하던 노밤이가 
꺽정이의 뛰어내리는 소리를  듣고 서너 간 좋이 앞으로 쫓아나왔따.  “어깨 위
의 것이 뭣입니까?” “기집애다. 업어라.”  “송장 아닙니까?” “아니다.” 꺽
정이가 처네에 싼 계집아이를 노밤이에게 업혀 가지고 남소문안으로 돌아오는데 
구리개 한중간에 와서  순경 도는 군사들을 만났따. 꺽정이가 군사  두엇을 어떻
게 처치 못할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일이 있을  때 말썽 없이 모면하려고 일부러 
가짝 복색을 차리고 나왔던 길이라 군사들이 “그게 무어요?”하고 노밤이의 앞
을 막아설 때 꺽정이는 얼른 나서서 선전관의 표신을 군사들 눈앞에 들이밀면서 
“봉명한 사람의 길을 막지 말구  저리 비켜서라!” 하고 기세좋게 말하였다. “
저 군사 등에 동여맨 것이  무업니까?”계집아이 싼 것이 없은 등에 잘 붙어 있
지 아니하여 담 넘을 때 쓰려고 가지고 갔던 밧즐을 띠개비 대신 삼아 위아래로 
여러 번 돌려맨  까닭에 군사들 눈에 동여맨 것으로 보이었던  것이다. 꺽정이는 
표신 보이고 봉명하였다고 말하면 군사들어 두말 못할 줄 알았더니 의외로 붙잡
고 힐난하려는 눈치가 있는 것을 보고 달리 군사들을 처치할까 생각하다가 우선 
한번 호령을 하여  보았다. “표신 물어가지고 나온 것을 보면서  너의들이 붙잡
아 여러 말하느냐? 죽일 놈들 같으니, 냉큼들 비켜나지 못하겠느냐!”
  호령이 힘진 데 군사들이 심겁이 났던지 슬몃슬몃 뒤로 물러서서 꺽정이는 곧 
노밤이를 가자고 재촉하였다.  뒤를 밟힐 염려가 있어서 자주 돌아보며  오는 중
에 군사들이 과시 뒤따라오는 것을  알고 꺽정이는 노밤이를 한 걸음 앞서 보내
고 어둔 구석에  은신하고 서 있다가 앞에  지나가려는 군사들은 한손에 하나씩 
붙잡아서 이손으로 한, 저  손으로 하나 둘을 다 메어꽂은 뒤에  “이놈들 또 뒤
를 밟아봐라.” 으름장까지 놓고  노밤이를 쫓아왔다. 구 뒤는 남소문 안 처소에
까지 오도록 내처  무사하였다. 꺽정이가 방에 들어와서 먼저 춧불을  켜놓은 뒤
에 노밤이의 업고 섰는 계집아이를  밧줄 끄로고 처네에 싸인 체 받아내려서 눕
히었다. 처네를 헤치고 입 막은 수건을 풀고  보니 계집아이의 얼굴은 죽은 사람
과 같았다. 기색이 된  모양이다. 노밤이는 가깍이 와서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
제물에 죽었구먼요. 기집애는  아깝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기운이 막힌 게다. 
사향소합원이나 한  개 먹여보자.” “어떻게  먹이실랍니까? 제가 십어서  입에 
넣어주리까?” “이눔아, 당치 않은  소리 말고 자리끼나 조금 따라서 데워놔라.
” 노밤이가 자리끼 물을 그릇 뚜껑에 따라서 화롯불에 따끈하게 데우는 동안에 
꺽정이는 손그릇 속에 있는 사향소합원을 찾아놓았다.  꺽정이가 따뜻한 물에 소
합원을 개어서 입을 벌리고 흘려넣어주고 또 노밤이를 시켜 두 손바닥을 문질러 
주는 중에 계집아이가  긴 숨을 한번 내쉬었다. “이크,  돌렸습니다.” “손바닥
을 고만 문질러라.”  “이 기집애를 대체 어떻게 처치하실랍니까?  원수 갚으라
구 내주실  의향이십니까?” “내주든지 어떻게든지 차차  생각해서 처치할  테
다.” “미친 눔 같으니.” “저를 주시면  당장 갖다 요정을 내겠습니다.” “어
떻게 요정을 낼 테냐?” “대가리를 끊어놉지요.  그까짓 게 무어 어렵습니까?”
“미친 소리 작작하구 고만 가서 자빠져  자거라.” “아무래두 선다님께서 딴생
각이 기신 것 같습니다. 그러구 보면 저는  안으서님 한분 모셔다 드리느라고 죽
을 고생만 한  폭입니다.” “고만 지껄이구 가 자거라.” “녜,  저는 가서 혼자 
잘 자겠습니다.” 노밤이가 건넌방으로 건너간 뒤에  꺽정이는 계집아이 옆에 누
웠다. 계집아이의 처네가 얇은 것은 고사하고  노밤이 옷에서 지린내가 옮겨배어
서 그대로 둘 수 없는  까닭에 꺽정이가 처네를 빼어내서 워ㅅ목에 내던지고 계
집아이를 자기 요에  올려눕히고 자기 이불을 같이 덮었다. 계집아이가  그 동안
에 정신기가 나서  이불 밖으로 튀어나갈려고 애를  쓰는 것을 꺽정이는 웃으며 
품안에 끌어안았다.
  이튿날 식전에  꺽정이가 노밤이를 보내서  한온이를 청하여 왔다.  전 같으면 
오라고 일부러 청하지 안항도  한온이가 으레 꺽정이를 보러 왔겠지만 꺽정이가 
많이 새집에 가서 자게 된 뒤로 늦은 아침때 전에는 오지 아니하는 까닭에 일찍 
만나려면 보러  가거나 청하여 오는  수박에 없었다. 한온이와  노밤이가 마당에 
들어올때 거정이는 방에서 마주 나와서 노밤이가 바깥사랑으로 내보내고 한온이
를 데리고 건넌방으로  들어왔다. 꺽정이가 전날 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
온이는 먼저  “밤이에게 지금 대강 이야기를  듣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벌써 들었나? 그러면 이야기는 할 것 없구  뒷일처리나 좀 의논하세.” “원판
서가 딸을 잃구  찾지 않을까요? 찾으러 든다면 일이 크게  벌어질 것 같습니다.
” “찾는단 소문이 있거든 자네가 요전처럼 어디  갖다 잘 숨겨 주게.” “이번
에두 또 장가를 드시렵니까.” “나는 기집애를 밤이에게 내주어 볼까 생각하네.
” “어젯밤에 데리구 주무시기까지 하셨다지요. 양반의 집  딸이 이 사람 저 사
람에게 몸을  맡기겠습니까? 잘못하다가는 죽네 사네하기가  쉽습니다.” “밤이
란 눔이 날 따라 서울 올 때부터 기집  하나 얻어 달라구 조른 눔일세.” “다른 
기집 하난 얻어 주시지요.”  “그럼 그건 나중 다시 이야기할 셈  잡구 우선 저 
기집애를 어디다 두어야 좋게나?  밤이를 바깥사랑으로 내보내구 이 방에 둘까?
” “아직은 이 방에 두어두 좋겠습니다만 처음부터 아주 제 첩의 집 뒷방 같은 
으늑한 데 데려다  두면 어떻겠습니까?” “그게 좋겠네. 그런데  오궁골 기집이 
알면 원수 갚는다구 와서 야료하지 않을까?” “그건 제가 담당할 테니 염려 마
십시오. 밤이의 입만 막아노면  그 기집이 알 까닭두 없습니다.” “그눔의 입이 
사구일생인데 그걸 어떻게  틀어막나?” “그 기집에게 알리면 죄책을 당한다구 
어르구 또 좋은 기집이나 하나 얻어 준다구 달래두면 그 기집이 설혹 다른 데서 
알구 와서 묻더래도  그놈이 능청맞게 잘 속일 겝니다.” “자네  요랑대루 해보
게.” “어르는 건 선생님께서 어르셔야 됩니다.”
  꺽정이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할 즈음에 안방에서 괴상스러운  소리가 났다. 
꺽정이와 한온이가 안방에 건너와  보니 계집아이가 수건을 다락문 고리에 꿰어
서 목을 매고 킥킥하였다. 꺽정이는 한온이를  돌아보며 매었다가 죽지도 못하고 
죽을 의사가 있는 것만 들키어서  한온이의 첩의 집으로 옮겨간 뒤 늙은 여편네 
두엇이 밤낮 옆을 떠나지 아니하였다. 수일 동안은  계집아이와 물 한 모금 입에 
넣지 않고 줄곧  누워서 울기만 하다가 “사람의 팔자란 억지루  못하는 게요.” 
“꽃 같은 나이에 왜 죽는단 말이오?” “부모도  모르게 죽으면 원통치 않소.” 
“부모를 다시 만나볼라면 살아야 하우.”
  이런 말로 늙은 여편네들이  달래는데 계집아이 소견에 죽더라도 한번 부모를 
만나보고 죽을 생각이 들게 되어서 권하는 미음을 조금씩 받아먹게 되었다.
  원판서 집에서는 출가  전 딸이 상직 할미와  같이 자다가 하룻밤사이에 둘이 
급사하였다고 상직 할미의 시체는 그  자식들 내 주어서 초상을 치르게 하고 자
기네 딸은 내외가  손수 수시하여 당일로 입관하고 오일 만에  갈장하였다. 원판
서 집 소식을 한온이가  알아다가 꺽정이에게 이야기하고 “일이 의외루 무사하
게 잘됐습니다.  인제 선생님께서 처자를  드러내놓구 데리구 사셔두  아무 탈이 
없겠습니다. 원판서의 딸은 죽구 처자는 살았으니  누가 처자를 원판서의 딸이라
구 하겠습니까, 양반의  집에서 원체 남의 이목 수습을 잘하지만  이렇게까지 심
할 줄은 몰랐습니다. 하여튼지  일이 무사하게 돼서 좋습니다.” 하고 웃으니 꺽
정이도 허허허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 동안에 죽은 상노아이의 어미가 어찌 된 하회를 알려고 노밤이를 찾아왔었
는데 노밤이는 꺽정이의  분부와 한온이의 당부를 미리  받은 까닭에 바른 대로 
일러주지 않고 “기집애 대가리를  끊지 못했을 뿐이지 원수는 톡톡히 갚았으니 
그렇게 아시우. 내 말이 미심스럽거든 차차 소문을 들어보우. 자연 알 일이 있으
리다.” 하고 구렁이 담넘어가는 수작으로 말하여  보냈더니 모교 원팡서의 딸이 
밤에 자다가 급사하였다고 소무니 난뒤에 다시 와서 노밤이를 보고 원수를 갚아 
준 은혜를 죽어도 잊을 수 없다고 눈물 흘리며 치사하였다.
  한온이 첩의 집 뒷방에서 생병으로 앓아누웠던 계집아이가 일어앉아서 소세하
세 되었을 때 한온이가  꺽정이와 상의하고 날짜를 가리어서 계집아이의 머리를 
얹히었다. 첫날밤은 꺽정이가  색시 있는 뒷방에 와서 자고 그  다음날부터 노밤
이 쓰는 건넌방을  치우고 색시를 데려내다가 재웠따. 꺽정이가 새집에  가고 처
소가 비는 때 색시를 아직  혼자 두기 엄려되어서 한온이의 분별로 늙은 여편네
들이 함께 와서 있었다.
  색시는 한번 죽지  못한 탓으로 한되고 욕스럽고  분하고 창피한 마음이 속에 
가득하면서도 구경 임선달의 사람이  되고 말았는데 늙은 여편네들의 말을 대강 
추려 듣더라도 임선달은 인물이 영특하고  힘이 천하 장사고 칼을 잘 쓰고 말을 
잘 타고 기외에 여러 가지 비범한 것이 옛이야기책에 나오는 영웅호걸과 방불하
였다. 색시가 이야기책을 남유달리 좋아하고 이야기책을  보는데 책 속에 나오는 
영웅호걸을 사모하는 마음이 날 때가  많고 자기가 곧 그 영웅호걸의 배필이 된 
듯이 근심과 기븜을 책 속 사람과 같이 할  때도 종종 있었다. 이 까닭에 임선달
이 옛날 영웅호걸과  방불한 것을 은근히 불행중 다행으로 여기었다.  대체 자기 
일이 보쌈에서 그릇되기 시작한 것을  알고 팔자를 한탄하고 또 자기가 지금 살
아서도 죽은 사람인 것을  알고 부모에게 욕된 것을 깨달았다. 그  뒤로 오직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임선달이 출장입상하게 되는 날  부모를 만나보는 일이라 몇 
해 동안 매두몰신하고 살면서 임선달의 출세하기를 기다리려고 생각하여 임선달
과 서로 말까지 사귀게 된 뒤 한번 옷깃을 여미고 단정히 앉아서 자기의 소회를 
숨김없이 말하였다.
  꺽정이가 집 사가지고 살림 배치할 것을 한온이와 의논하는데 집은 동소문 안
으로 구하겠다고 말하였다.  동소문 안은 꺽정이가 아이 적에 뛰고  놀던 곳이라 
문턱에 있는 산언덕과 산골에서 나오는 시냇물은 말할 것 없고 심지어 일초일목
까지도 다른 데와 달리 눈에 익고 마음에 정다운 까닭에 전날 박씨를 치가할 때
도 동소문 안을 말하였으나 한온이가 우선 가까운 데 정하였다가 나중 보아가며 
옮기라고 권하여 남성  밑에 집을 정하게 되었었다. 이번에는 꺽정이가  친히 사
람을 데리고 동소문 안에 가서 집을 구하는데 아무쪼록 갖바치와 이봉학이의 외
가가 살던 근처에 구하려고 여기저기 물어보았으나 그 근처에는 알맞은 집 나는 
것이 없어서 차차 아래로 내려오며 물어보는 중에 마침 박유복이 어머니가 행랑
살이하던 심좌랑집 옆에 조그만 집 하나 파는 것이 있어서 그 집을 사기로 작정
하였다. 심좌랑집은 그  동안 주인이 몇번 바뀌었던지 심좌랑이 달던  것은 이웃
에서 아는 사람도 없고 그  집을 홍문집이라고들 부르는데 그 집 문간에는 주홍
칠이 아직 바래지 아니한 홍문 하나가 붙어 있었다.
  꺽정이의 먼저 얻은 박씨는 한미한 집에서 고생으로 자라난 색시라 진일 마른
일 여편네 일치고  못하는 일이 없는데다가 더구나  어머니가 있어서 남의 사람 
열 스물 둔 것보다 나은  까닭에 꺽정이가 바깥 심부름할 아이년 하나만 얻어주
었지만, 새로 얻은  원씨는 손끝으로 물이나 튀겼을 재상가의 딸이라  사람 없이
는 못살 위인인  까닭에 상직 할미 하나와  아이년 두엇을 얻어주려고 생각하고 
집부터 간수 적고 방 많은 것을 구하여 정하였다.  동소문 안에 새로 산 집이 꺽
정이가 거처하는 한온이의 집과 흡사하여 안에 안방,  건넌방이 있고 또 밖에 바
깥방이 있어서 건넌방에는 상직  할미와 아이년들을 두고 바깥방에는 행랑 사람
을 들일 수 있었다. 꺽정이가 한온이와 상의하여  상직 할미 하나와 아이년 둘과 
행랑 사람까지 다 얻어놓고 원씨를 동소문 안 새집에 가서 들게 하고 원씨가 새
집 든 뒤로 꺽정이는 낮에 흔히 와서 있고  밤에 자주 와서 잤다. 동소문 안에서 
자고 남소문 안으로 밥 먹으러 다니기가 불편하여 꺽정이는 한온이 부자에게 말
하고 조석을 동소문 안에서 먹기로  하였는데 한온이가 와서 저녁 한두 끼를 먹
어보고 원씨의  음식 솜씨를 일등이라고  칭찬하였다. 꺽정이가 하루  한두 번씩 
한온이에게를 가는 까닭에 자연 박씨도 가서 들여다보았지만 자러 가는 것은 이
삼 일 혹 사오 일에 한 번씩밖에 안  되었다. 꺽정이가 원씨를 얻고 박씨를 박대
하는 것이 아니라 박씨가 속에  냉이 생겨서 꺽정이의 자러 오는 것을 괴로워하
는 눈치가 간간 보이었었다.
  동소문 안 거지가  마음에 들고 원씨가 공궤가  비위에 맞아서 꺽정이는 밖에 
나가 돌아다니나 집에 들어앉아 있으나  눈살을 찌푸릴 일이 없는 중에 오직 한 
가지 불쾌한 것은 담 하나를  격한 홍문집에서 여편네가 하루도 몇 번씩 큰소리
를 지르는데 그  소리가 왕방울로 퉁노구를 가시는  것 같아서 꺽정이는 눈살이 
절로 찌푸려질 때가  없지 아니하였다. 어느 날 밤에 꺽정이가  원씨의 이야기책 
보는 소리를 듣고 누웠을 때  홍문집 여편네가 계집 하인을 부르다가 대답을 빨
리 안 한다고 연놈이 초저녁부터 끼고  자빠졌느냐고 소리소리 질렀다. 꺽정이가 
“저 여편네 또 악을 쓰는군. ” 하고 혀를  낄낄 차니 원씨는 이야기책 보던 것
을 그치고 “여편네가  퍽 사나운가 봐요. ”  하고 말하였다. “저 집에 사내는 
씨가 졌나. 어째 사내 소리는  영 들을 수가 없어. ” “저 여편네의 시아버지가 
있다는데요. ” “사이비  체것이 사람이 어떻게 못생겼기에 저런 때  소리 한번 
못 지르노. ”  “소리지르는 게 다 무어에요?  됩다 당합디다. 일전에 손자아이 
두던하다가 며느리에게 참혹하게 당하든걸요. 그날 남소문  안 가셔서 못 들으셨
지. ” “시아비를  야단치는 며느리가 어디 있담? ” “그래도  저 여편네가 정
문 받은 여편네랍디다.  ” “시아비 야단친다구 정문을 받았을까?  ” “불효부 
정문이 어디 있어요?  ” “그렇기에 말잊. ”  “저 여편네가 열녀래요. 정문에 
새긴 것을 유의해 보시지 않으셨세요?  ” “내가 낫 놓구 기역 자두 모르는 무
식꾼인데 보면 아나?  ” “글을 왜 못 읽으셨나요?  ” “글은 읽기 싫어서 안 
읽었어. ” “그럼  병서를 어떻게 보세요? ” “좋은  선생님한테서 귀동냥으루 
더러 들었지. ” “남의  말로 듣는 게 내 눈으로 보는 것만  합디까? 적어도 병
서는 보셔야 할  테니 지금이라도 공부를 시작해 보시지요. ”  “사십 늙은이더
러 하늘 천 따 지를 시작하란 말이야.  쓸데없는 소리 고만두구 이야기책이나 봐 
들리리구. ” 원씨가 다시 이야기책을 보기  시작할 때 이웃집에서는 계집하인이 
방망이찜질을 당하는지 아이구지이구 하는 소리가 났었다.
  이튿날 아침 뒤에  동자하는 행랑 사람이 부엌  앞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마루 
훔치는 상직 할미를  보고 담 너머집 계집하인의  신세 불쌍한 것을 이야기하였
다. “그 여편네 참 불쌍합디다. 어젯밤에 죽도록 얻어맞았다는데 그래두 식전에 
물 길러 나왔겠지요. 일어나서 꿈질거리지 않으면  사정없는 사매질에 더 죽어난
다는구먼요. 상전이 어떻게 망나닌지 하인 기집의 자는 것까지 총찰한답디다. 한
밤중이고 닭 울녘이고 나가 자라고 해서 나가 자야 아무 말이 없지 몰래 나가서 
서방하고 자다가 들키기만 하면 언제든지 어젯밤  같은 야단이 난답디다. 그러고 
사람이 살 수  있겠세요. 서방이 똑똑하면 양반을 제독을 주든지  기집을 속량을 
하든지 무슨 짓이든지 하겠지만 위인이 할 수  없는 반실이래요. 그 여편네가 이
야기하면서 눈물 흘리는 걸 보니 남의 일이라도  불쌍해 못 견디겠습디다. ” 동
자치의 이야기를 상직  할미가 듣고 나서 “그  여편네도 사람이 똑똑진 못한가
베. ” 하고 말하니 동자치는 고개를 가로 흔들며 “아니요, 시굴 생장이라도 사
람만 똑똑합디다. ” 하고 대답하였다. “똑똑한 사람이 왜 그런 집에 붙어 있단 
말인가? ” “그  여편네 말하는 눈치가 그 집 씨종인갑디다.  ” “씨종은 도망
질도 치지  못한다든가. ” “그렇지 않아도  내가 그런 말을 했더니  그 여편네 
말이 서울 온지 삼 년에 아직 친한 사람도 없고 더욱이 나다니지를 못해서 어디
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섣불리  도망질을 치다가 붙들리는 날이면 지질한 목숨이
나마 보전 못할 테니까 엄두가 안난다고 합디다.  ” “양반이라면 벌벌 떠는 시
굴뜨기 소릴세. 단비  부리는 무세한 양반의 집에서 단비가 도망하면  무슨 수로 
찾겠나? 한껏 해야 장례원에 가서 찾아달란 텐데 장례원에서 무세한 집 일을 대
단히 여기나. 찾아주려고 애쓸 리 없지. 도망할 생각이 있거든 염려 말고 도망하
라게. ” 동자치와  상직 할미의 지껄이는 말을 원씨가 방안에서  듣다가 “공연
히 쓸데없이  그런 말들 하지 마라.  잘못하다가 남의 집 종  꾀어냈단 누명이나 
쓸라고 그래? ” 하고 나무라서 둘이 다 말을 그치고 더 지껄이지 못하였다.
  며칠 뒤 일이다. 그날  희릉에 능행이 있어서 이 집 저  집에서 거동 구경들을 
나가는데 원씨집에서는 아이년들이 구경가고 싶어서 발동을 하다가 주인 아씨가 
안 나가는 까닭에 그대로  주저앉았고 담 너머 홍문집에서는 여편네가 식전부터 
들싼을 놓아서 시아버지 늙은이와  아들아이와 안팎 세 식구가 다같이 나가는데 
비부쟁이는 데리고 가고 계집하인 하나만 집에 남겨서 집을 보이었다.
  동자치가 아침을 해서 치르고 담 너머집으로 놀러가는데 상직 할미는 그 집의 
사는 꼴을 구경하고 온다고  다라가더니 얼마만에 혼자 돌아와서 꺽정이와 원씨
를 보고 “홍문집 기집하인이 오늘  상전 서방 다 없는 틈에 어디로든지 도망을 
시켜 달라고 울면서 매달리는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 하고 물었다. 원씨는 
먼저 “부질없는 짓 하지  말게. 나중에 그 집 주인이 알면  이웃간에 시비 나지 
않나? ” 대답하고 그 다음에 꺽정이는 “자네 생각에는 어떻게 해주구 싶은가? 
” 하고 되물었다.  “남소문댁으로 보내주면 어떨까요? ” “자네가  그렇게 해
주구 싶으면 해줘두 좋겠지. ”  상직 할미가 다시 원씨를 보고 “아씨, 그만 일
도 적선이니 그렇게  해주지요. 아씨는 그 집에서 알고 시비할까  봐 염려하시지
만 알 까닭이 없지 않아요. ” 하고 말  한 뒤 곧 건넌방으로 건너가서 나들이옷
을 입고 나오는데 꺽정이가 내다보며 “여보게 할멈. ” 하고 다시 불렀다. “지
금 곧 데리구 갈 텐가?  ” “구경터에서 오기들 전에 일찍 데려다 주려고 합니
다. ” “내가 지금 남소문 안에 갈 텐데  내 뒤를 딸려보내면 자네는 안가구 좋
겠네. ” “그렇게 해줍시사고  말씀하고 싶은 걸 어려워서 못했습니다. ” “그
럼, 그 기집을 이리 데리구  오게. ” “녜, 곧 가서 데리고 오겠습니다. ” 상직 
할미가 다시 담  너머집으로 가더니 한동안 뒤에  동자치와 함께 그 계집하인을 
데리고 와서 꺽정이와  원씨에게 문안을 드리게 하였다. 그 계집하인은  나이 새
파랗게 젊은 아직 애송인데  시골티는 빠지지 않았으나 사람이 똑똑하여 꺽정이
의 묻는 말을 대답할 때도 수줍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꺽정이가 그 계집하인을 뒤에  딸리고 한첨지 집에서 와서 한온이에게 맡기고 
난 뒤 그 계집하인의 입에서 열녀의 내력 이야기를 소상히 들었다.
  열녀는 충주 김씨의 집 딸로 나이 열일곱 살 때 제천 권씨집 열세 살 먹은 신
랑과 혼인하였는데 맏자란 신랑이 작기가 조막만하여 다 큰 색시에게 대면 어린 
동생 폭밖에 안 되었었다. 꼬마동이 신랑이 첫날밤에  색시의 옷도 못 벗기고 저 
혼자 쓰러져 자다가  한밤중이 지난 뒤에 홀저에  일어나 앉아서 뒤를 싸겠다고 
징징 울며 말하여  색시가 뒷간에 데리고 나와서  바래주는데 어스름 달빛 아래 
바라보니 울 밖에 수상한 기척이 있었다. 색시집은  장산 날가지 야산 밑이라 개
호주가 대낮에 집  뒤까지 내려오는 일도 없지 아니하였었다. 색시가  어른 나오
라고 재촉하여 신랑이 뒷간에서 나오다가 아이구 소리 한번 하고 호랑이에게 물
리었는데 색시가 이것을  보자 곧 호랑이 꼬리를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 호랑이
가 아가리에 한 사람을  물고 꼬리에 한 사람을 달고 산으로  들로 뛰었다. 색시
는 살이  찢어지거나 몸이 으스러지거나  죽자고 꼬리를 잡고  놓지 아니하였다. 
날이 훤하게 밝기 시작하여 먼 산 나무꾼이 나가고 들의 여름 일꾼이 나오게 되
었을 때  호랑이가 색시 악지에 져서  아가리에 다 들어온 밤을  토하여 놓았다. 
색시가 호랑이 꼬리를  놓고 신랑 목을 얼싸안을 때까지는 정신이  있었지만, 그 
뒤로 두메 사람의  집에 와서 신랑과 느런히 누워  있게 된 것은 정신이 돌아서 
감았던 눈을 떠볼 때 겨우 알았다고 한다.  색시집에서 첫날밤의 신랑 신부를 잃
고 사방으로 찾는 중에 연풍 땅에서 신랑 신부 찾아가란 기별이 와서 색시의 아
버지가 신랑의 위요와  같이 인마를 데리고 갔는데  신랑은 위요를 맡겨서 바로 
제천으로 보내고 신부만 충주로 데려왔었다. 신랑이  호랑이 아가리에 죽을 뻔하
고 그 뒤  일 년 동안 개신개신 살다가  마침내 죽어서 색시는 망문과 다름없는 
숫색시 과부가 되었었다.  열일곱 살 먹은 신부가 호랑이 아가리에서  신랑을 뺏
었단 소문이 퍼져서 원근  각처에서 일부러 색시를 보러오는 여편네가 허다하였
었고 희한한 열녀를 표창하여  달라고 선비들이 관가에 등장을 들어서 충주목사
가 감영에 보하고 충청감사가 조정에 장계하여 마침내 조정에서 열녀 정문을 내
리었었다. 열녀의 정문은  바로 제천 권씨집에 와서 붙었었으나 열녀는  과부 된 
뒤 칠팔 년 동안 충주서  친정살이를 하다가 기유년에 충주서 역옥이 나서 충주 
사람이 많이 죽을 때 역옥  죄인 삼십여 인 중에 열녀의 친정 일가가 하나 끼인 
까닭으로 열녀의 집안 여러 집이 통히 망하여 열녀는 비로소 제천와서 시집살이
를 하게 되었었다. 열녀가 시어머니게도 가끔  말썽은 부렸지만 그다지 심하지는 
않던 것이 며느리 잘 거느리던 시어머니가 돌아간 뒤로 기탄없이 큰소리를 지르
기 시작하여 시아버지가 멋모르고 타이르다가 여러 번 창피한 꼴을 당하고 마침
내 가래지를 못하였다. 열녀의 성질이 거세고 사나워서  부리는 종은 말할 것 없
고 늙은 시아버지와 양자한 어린 아들을 못살도록 볶는 까닭에 동네에서 뒷손가
락질 안  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을  때, 열녀는 아들아이 가르칠  것을 핑계삼아 
대처로 이사가자고 시아버지를 우겨서 서울로 이사온 것이 삼 년 전 일이었다.
  열녀의 내력 이야기를 다  들은 뒤에 꺽정이가 박씨집에를 가려고 일어서는데 
한온이는 그  계집하인을 큰첩의 집에  데려다 둔다고 꺽정이와  같이 일어섰다. 
꺽정이가 한온의 큰첩의 집 문앞에 다 와서  한온이더러 “내일 만나세. ” 하고 
인사하니 한온이가 “다시 오시지  않구 바루 가시렵니까? ” 하고 묻고 “저의 
큰집에서 저녁 잡숫고 가시지요. ”  하고 말하였다. “무슨 별찬이 있나? ” “
오늘이 형수의 생일이니까 여느 때버덤 찬이 낫겠지요?  ” “그럼 다녀옴세. ” 
꺽정이가 박씨에게 가서 해를 지우고  한첨지 집에 다시 와서 저녁밥을 먹고 석
후에 한온이의  발론으로 오래간만에 소홍이게게 놀러갔다가  눌러 자게 되어서 
이튿날 아침때에야 동소문 안으로 돌아왔다. 원씨가  꺽정이를 보고 “아침을 잡
숫고 오셨세요? 안  잡수셨으면 잡수셔야지요. ” 하고 물으며  부지런히 행주치
마를 앞에 두르는데 꺽정이가 조반을 먹어서 아침밥이 급하지 않다고 말하고 “
어제 담  너머집에서 야단법석이 났었겠지? ”  하고 물으니 “공연히 부질없는 
일을 하셔서 어제 내가 창피를 당했세요. ” 하고 원씨가 대답하였다. “무슨 창
피를 당했어? ” “어제 다  저녁때 그 집 비부쟁이가 와서 제 기집이 도망하는 
것을 우리 집에서 혹시 본 사람이 있느냐고 묻고 석후에 그자가 다시 밖에 와서 
저의 집 안주인이  나를 좀 오라고 한다기에  아무리 이웃간이라도 상종이 없는 
터에 어째 오라느냐 물어보랬더니 그자  말이 기집이 도망할 때 댁으로 오는 것
을 봤다는 여편네가 있어서 그 여편네를 청해다 놨으니 댁에서 와서 삼조대면하
라고 하더랍니다. 상직 할미가 이 말을 듣고  쫓아나가서 여편네가 우리 댁에 온 
일도 없거니와 설혹 왔다고  하기로소니 우리 댁 아씨께 삼조대면하러 오라다니 
별 망측한 소리를  다 듣겠다고 야단을 치니까  그자가 아뭇소리 못하고 무류해 
가더랍디다. 비부쟁이 간 뒤에 얼마 아니 있다가  그 여편네가 마당에 나서서 어
떤 년이 남의 집 종을  빼돌렸느냐고 소리소리 지르는데 어떤 년이란 것이 나더
러 하는  소리겠지요. 내가 남에게 년  소리를 들어도 한가할 수  없는 신세지만 
맘에야 창피한 생각이 없겠어요. ”  원씨가 말을 그칠 때 눈물이 핑 돌았다. 꺽
정이가 대뜸 “한번 버릇을  가르쳐 놔야겠군. ” 말하고 벌떡 일어섰다. “남의 
집 안여편네를 어떻게 버릇을 가르치실랍니까?  ” “내가 가서 삼조대면하자지. 
” “그런 일을 하시면  더 창피합니다. ” “그럼 욕 먹구 가만  있을 테야? ” 
“가래지 않고 가만 내버려두면 욕을 먹어도 덜  먹지요. 북은 칠수록 소리가 난
답니다. 그러고 우리 앞이  뻣뻣해야 탄하지요. ” "우리 앞이 뻣뻣하구 안 하구
가 어디 있담.  잘했으면 종이 도망할까? “ 꺽정이는 곧  담 너머집으로 쫓아가
고 싶었으나 원씨가 말리는 통에 참고 주저앉았다.
  꺽정이가 아침 밥상을 받고 앉았을 때 담 너머집에서 여편네의 큰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비부쟁이가 계집 잃고 가만히  자빠져 있다고 야단을 치더
니 다음에는 시아버지가  도망한 종을 찾을 생각 않는다고 사설을  퍼부었다. 비
부쟁이더러 밥 빌어먹을 자식이니  똥물에 튀할 놈이니 욕설하는 것도 해괴하거
니와 시아버지를 무참하게 해내는 것은 홑으로 해괴할 뿐 아니라 곧듣기가 송구
하였다.
  “사랑방 구석에 쥐죽은 듯이 들어앉아 무어하십니까? 도망한 종년을 찾지 않
고 가만 내버려두면 제발로 걸어들어올까요? 어째 찾을 생각을 안 하십니까? 옳
지, 나를 종년 대신 부려먹을 작정으로 아주 태평이십니다그려. 그렇지만 며느리 
명색이 물동이를 이게  되면 샌님도 편히 앉아 자시지 못하리라.  하다못해 빗자
루라도 드셔야 할걸요. 종년을 찾든 말든 맘대로 하십시오. 무어요? 찾을 도리가 
없어요? 빼돌린  연놈들이 있는데 그 연놈들을  잡아 족치도록 주선을 못하신단 
말입니까? 포도청에 옭아넣을  수가 없으면 장례원인가 어딘가 가서 송사질이라
도 하지요. 그래  찾을 도리가 없다고 손끝 맺고 가만히  앉았어요? 참말로 딱하
십니다. ” 여편네의 신이야 넋이야 퍼붓는 사설이  한마디도 빠지지 않고 다 들
이었더. 꺽정이 밥상머리에 앉았는 원씨가 처음에는  혼잣말로 “저 여편네 입은 
마구 난 창구녕이야.  ” “저런, 시아버지를 개 꾸짖듯 하네.  ” 하고 지껄이다
가 나중에 꺽정이더러 “빼돌린 연놈이란 소리 들으셨지요? 그게 우리더러 하는 
말 아니에요.  공연한 일에 욕 얻어먹는  것도 분하지만 시비가 크게  되면 저걸 
어떡허나요? ” 하고 말하니 꺽정이가 원씨의 말은 대답도 않고 바로 방문을 열
어 젖히며 “저  따위 망한 기집년이 무슨  쭉찌어질 열녀야! 그저 그년을  홍문 
밑에 자빠드려 놓구  아가리에 똥 삼태기나 퍼너주었으면 좋겠다. ”  하고 소리
를 질렀다. 원씨는 꺽정이의  맞장구치는 것이 마음에 마땅치 못하여 “아이. ” 
하고 눈살을 찌푸렸다가 다시 펴고 방문을 닫으며 “욕을 왜 자청해서 먹으려고 
그러세요? ” 하고  사살하듯 말하였다. “무슨 욕을 자청한단 말이야?  ” “그
럼 그 여편네가 대거리 않고 가만 있겠세요?  ” “내게다가 욕만 하라지, 담 넘
어가서 그년의 아가리를  찢어놓지 않나. ” “뒤탈은 생각 안  하시구요? ” “
뒤탈이 난다면 한껏해야 이  집에서 못 살게밖에 더 될까. ”  “국으로 사는 목
숨이 창피한 꼴이나 더  당하지 않게 그런 짓 마세요. ”  “양반의 댁 따님이라 
창피는 되우 아네.  ” “오장육부 가지고 창피한 것 모를  사람이 어디 있세요? 
상사람이나 양반 오장육부는 마찬가지겠지요.  ” “말대답 마라!” 꺽정이가 소
리를 꽥 지른 뒤 아직까지 손에 들었던  숟가락을 내던지고 뒤로 물러나 앉았다. 
원씨는 말을 다시 안 하려는  것같이 입술을 자그시 물고 한동안 새촘하고 있다
가 싹싹하게 마음을  돌리어서 꺽정이를 보고 “진지나 마저 잡수세요.  ” 하고 
권하였다. “고만  먹을테야. ” “공연히 화를  내셔가지고 진지까지 안 잡수세
요? ”  “먹을 만큼 먹었어. ”  “어디 얼마 잡수셨나요? ”  “그런데 그년의 
여편네 아무 끽소리가 없네. ” 꺽정이는 소리  한번 지른 뒤로 이웃집 여편네는 
꿀꺽 소리 한마디가  없었다. 원씨 생각에 대거리로 욕질할 듯한  여편네가 욕질 
안 하는 것은 괴상하고 족히 행패할 꺽정이가 행패 안 하게 되는 것은 다행이었
다.
  계집아이년들이 상을 내가고 방을 훔치고 건넌방으로 건너들 간 뒤 한동안 지
나서 벌써 자수를 다 서르짓고 나갔을 동자치가 누구하고 지껄이는 소리가 나더
니 안방 앞에 와서 아씨를 불렀다. 원씨가  마침 골방 안에서 바느질거리를 꺼내
다가 고개를 방문 편으로 돌리면서 “왜 그래? ” 하고 물으니 동자치가 문틈을 
조금 벌리고 들여다보며 간특스럽도록  가는 목소리로 “담 너머집 안에서 와서 
아씨를 잠깐 보입잡니다. ” 하고 말하였다. 원씨는 담 너머집 여편네 왔단 말을 
듣고 의외 일에 놀라서 손에 들었던 바느질거리를 방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을 못
하고 앉았는데 아랫목 벽에  비스듬히 기대고 앉았는 꺽정이가 문틈으로 동자치 
얼굴을 바라보며 “왔으면 데리고 들어오지 무슨 선통이야? ” 하고 꾸지람하듯 
말하였다. “여기 들어왔세요. ” 하고 동자치가 고갯짓으로 뒤를 가리키니 꺽정
이는 “어디? ” 하고  물으며 곧 앞으로 나앉아서 동자치가 문앞에서 비켜서기 
바쁘도록 왈칵 방문을 열어젖히었다. 마당 안에  들어섰는 여편네가 꺽정이와 눈
이 마주치자 아랫입술을  빼물고 슬쩍 외면하였다. 여편네는 늙도 젊도  않고 크
도 작도 않고 몸집은 뚱뚱하고 낯판은 둥그런데 거벽스럽고 심술스럽고 억척 있
고 끼억 있고  틀지고 거방져 보이었다. 꺽정이가 눈이 뚫어지도록  여편네를 내
다보는 동안에 원씨가 살그머니 꺽정이 귀 뒤에 와서 “내가 건넌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잘 말해 보낼  테니 안방에 가만히 앉아 기세요. ”  하고 가만가만 말
한 뒤 곧 일어나  아랫간 방문은 닫고 윗간 지겟문을 열고  마루로 나갔다. “좀 
올라오시지요. ” 원씨의  말끝에 그 여편네는 천천히 댓돌 위로  올라와서 건넌
방 옆마루에 턱 걸터앉았다.  “이 방으로 들어오세요. ” 원씨가 건넌방 지겟문
을 열어놓으니 그 여편네는 고개를  한두번 가로 흔들고 자기 앉은 옆을 가리키
며 “이리와 좀 앉으우. ” 하고 명령하듯 말하였다. 원씨가 그 여편네더러 올라
오너라 방으로 들어오너라  권하는 것은 겉인사성이지 속마음으로는 올라오지도 
말고 얼른 가기를 바라는 까닭에  방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을 은근히 해롭지 않
게 생각하여 더 권하지 않고 그 여편네 가까이 가서 사이를 두고 쪼그리고 앉았
다. 이때까지  건넌방 안에서 삐금삐금  내다보던 상직 할미와  아이년들이 모두 
나와서 원씨 뒤에  둘러서고 기둥 옆에 붙어섰던  동자치도 원씨 옆으로 가까이 
나섰다. “어째 오셨습니까?  ” 원씨의 말은 곱고 깍듯하고 “어째  왔느냐? 할 
말이 있어서 왔소.  ” 그 여편네의 말은 거칠고 거만하였다.  “녜, 하실 말씀이 
있어요? 무슨 말씀인가요? ” “대체 댁에서 우리 집하고 무슨 원수가 있소? ”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이웃간이라도 서로 누군지를 모르고 지내는 처지
에 무슨 은원이  있겠습니까? ” “그런데 어째 댁에서  우리 집 종년을 빼돌렸
소? ” 원씨의 대답이 나오기 전에 상직 할믹 “우리 댁에서 종년을 빼돌렸다고 
누가 그런 거짓말을  합디까? ” 하고 나서고 또  동자치가 “봤다는 년이 어느 
년이오? 그년은 눈깔이  둘이 아니고 넷입디까? ”  하고 나서는 것을 “잠자코 
있지 왜들 나서 지껄여! ” 원씨가 꾸짖어서 제지하였다. “잡아떼도 속을 리 없
으니까 잡아뗄 생각 마우. 그러고 고대 나더러 욕한 사람이 있지 않소! 목소리가 
사냅디다그려. 그래 남정네가 남의 집 안여편에에게  대고 더러운 입정을 놀리는 
것이 세상 천하에 어디  있는 법이오? 그런 법이 있으면 좀 압시다.  ” 그 여편
네가 손바닥으로 마룻장을 치면서  들이대는 서슬에 잔약한 원씨가 말문이 막히
어서 잠자코 있으니 “할 말 없소? 할 말 있거든  하우. ” 하고 그 여편네는 더
욱 기승을  부리었다. 안방에 들어앉았는  꺽정이가 벌써부터 나서고  싶은 것을 
그 동안 참기도 많이 참았는데 인제 더 참을 수 없어서 방문을 열어젖뜨리고 “
욕한 사람이 내니 나하구 말하자. ” 하고 대뜸 해라를 내붙이었다.
  꺽정이가 방문을 벼락치듯 열고  말을 불호령조로 내놓는 바람에 원씨는 놀라
서 벌떡 일어서고 상직 할미와 아이년들과 동자치는 일시에 머리를 돌려서 꺽정
이를 바라보는데 정작  그 여편네만은 흘낏 한번 안방  편을 바라본 뒤 곧 섰는 
원씨를 치어다보며 “긴말 할 것  없이 종년은 오늘 해안으로 도로 보내주고 또 
사내의 상없는 구습은 고치도록 하우. ” 하고  말하는 품이 곧 분부나 신칙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사내의 구습이라니? ” 꺽정이가 말끝을  잡아가지고 뇌
까리니 여편네는 시침을 뚝 떼고 원씨더러 “아무에게나 함부로 욕하는 것이 상
없는 구습이지 무어요? ” 하고 말하는 것으로  꺽정이에게 대꾸하였다. “꼴 보
니 사내를 좋아하게 생겼구나. 이리 와 나하구 말하자. ” 꺽정이의 정말 상없는 
구습이 골을 돋아서 여편네는 율기를 하고 원씨를 향하여 “보아하니 양반의 딸 
같은데 어째 순  불상놈을 데리고 사우? ” 하고 말하였다.  꺽정이가 마루로 뛰
어나왔다. “무어 어째,  이년아! 불상놈, 그래 나는 불상놈이다. ”  꺽정이가 여
편네게로 가까이 대들  때 얼빠진 사람같이 멍하니  기둥에 기대어 섰던 원씨가 
앞으로 고꾸라지는 듯 꺽정이의 소매를  잡아 매달리었다. “저리 비켜! ” “제
발 손찌검 마세요. ” 원씨는 말소리가 여짓 울려는 사람 같았다. 꺽정이가 한편 
손의 식지 가락을 내뻗치고 흔들면서  “이년아, 아까 한 말 다시 해봐라. ” 하
고 얼러대는데 여편네는  딴전하고 본 체도 아니하였다. 꺽정이가 한  걸음 앞으
로 나서서 여편네의 저고리 뒷고대와  머리 뒤를 검쳐 잡고 마루 위로 끌어올렸
다. “아이구머니, 이놈 보게. ”  “이년 죽일 년 같으니. ” “놔라, 이놈아! ” 
여편네의 얹은머리가 풀어져  내려와서 꺽정이가 고쳐 머리채를  잡았다. 여편네
가 꺽정이게 앞을 두고 엉거주춤 일어서며 곧 눈결에 수염을 움켜쥐고 잡아당겼
다. 여편네와 꺽정이는  고개를 마주 숙이고 원씨는 말리려고 사이에  들어서 세 
사람이 한데 뭉치었다. 아이년들이  원씨에게 “아씨. ” “아씨, 이리 나오세요. 
” 하고 소리를 지르고  동자치가 꺽정이더러 “나리 마님, 아씨 다치십니다. ” 
하고 소리치고 또  상직 할미가 꺽정이 옆에 와서 “나으리께서  참으십시오. 저 
따위 망한 여편네가 세상에  어디 또 있겠습니까? 봉변하신 건 미친개에게 물린 
셈 잡구 참으십시오. ”  하고 지껄였다. 꺽정이가 머리채를 놓고 팔회목을 쥐어 
손아귀에서 수염을 빼낸 뒤에 한편 어깨를 툭 치니 여편네는 마루에 궁둥방아를 
찧고 주저앉았다. “이년, 내 손이 한번 더 가면 너는 죽는다. ” “오냐 죽여라! 
내가 이 망신을  당하고 살면 무어하겠느냐. 자  죽여라, 내가 죽는 걸 무서워할 
줄 아느냐! 자, 어서  죽여라. ” 하고 여편네가 앉아서 뭉개뭉개  앞으로 나오는 
것을 꺽정이가 발끝으로  한번 걷어차서 쿵 하고  뒤로 나가자빠지며 곧 사지를 
펴고 두 눈을 감고 꼼짝도 아니하였다.  원씨가 속에서부터 떨려나오는 목소리로 
“아이쿠 큰일났어.  저걸 어떡해요? ” 하고  꺽정이를 쳐다보고 또  “할멈 좀 
가서 만져보아. ”  하고 상직 할미를 돌아보았다. “기운이 막힌  게지. 좀 들여
다보게. ” 꺽정이가  상직 할미더러 말하여 상직 할미가 여편네에게  와서 손을 
쥐어 보고 볼을 만져보고 코밑에 손을 대어보기까지 한 뒤에 동자치를 불러가지
고 둘이 같이 손바닥을 비벼 주었다. 얼마만에 여편네는 “후유! ” 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바로 일어 앉으려는 것같이 몸을 요동하였다.
  여편네가 잠시 기함하였을 동안에 꺽정이는  그 집에 안아다 둘 생각이 난 까
닭에 그 깨어나는 것을 보고 곧 옆에 와서 상직 할미와 동자치를 비켜나게 하고 
척 늘어진  몸을 두 손으로 떠받들어  올렸다. 여편네가 눈을 떠보고  죽을 힘을 
다하여 손짓 발짓을  하므로 한 팔로 윗도리를 감아  끼고 또 한 팔로 넓적다리 
밑을 떠받쳐서 우그려  안았다. 한달음에 담 너머집에 가서 바로  내정 돌입하여 
안방문을 발로 열고 안은  여편네를 들여놓은 뒤 바깥주인 늙은이의 쫓아나오는 
것과 동네 여편네들의 모여드는  것을 다 본 체 만 체하고  돌아왔다. 동자치 사
내가 원씨의 말을 드디어 홍문집의  늙은 생원님을 가서 보고 전후 곡절이 이러
저러하다고 말한즉 늙은  생원님은 긴말 아니하고 이  다음 주인 양반을 만나서 
시비곡직을 가릴 터이니 가라고 말할 뿐이었고,  동자치가 자의로 동네 여편네들
을 보고  사본사 이만저만하다고 이야기한즉 그  여편네들은 돌려가면서 홍문집 
흉을 찢어지게 보고 그런 열녀는 봉변하여 싸다고 말들 하였다.
  풍파 나던 날 저녁때는  담 너머집에서 여편네의 울음소리가 간간 들리었으나 
전에 없이 조용하였고 다음날  아침때부터는 여편네의 악쓰는 소리가 나기 시작
하였는데 “이놈 이놈, 내가  너하고 사생결단할 테다. 이놈 이놈! ”  똑같은 말
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였다. 여편네 벼르는 말에 원씨는 가슴이  덜컥덜컥 내려 
앉건만 꺽정이는 한두 번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한낮이 조금 기운 때 한온이가 
사람을 보내서 황천왕동이가 왔다고  통기하여 꺽정이가 남소문 안에 가서 천왕
동이와 같이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천왕동이를 떠나보낸 뒤에는 박씨집에 들렀
다가 박씨와 둘이 조용히 담화하느라고 해를 지우고 석후에 동소문 안으로 돌아
왔다. 전 같으면  지쳐나 두었을 바깥문이 잔뜩 닫아걸려서 적이  괴상하긴 하나 
그저 어쩌다가 일찍 닫아걸었거니  생각하여 문 열어주는 동자치 사내더러 “문
을 어느새 닫았어? ” 말하고  바로 안으로 들어오니 원씨가 곧 오래 그린 끝에 
만난 것 같이 반겨  하였다. 꺽정이가 아랫목 자리에 앉은 뒤에  원씨는 그 앞에 
모를 꺾어 앉아서 먼저 저녁을 어디서 먹었느냐,  손님이 벌써 갔느냐 이러한 말
을 묻고 그  다음에 밑도끝고 없이 어디 다른  데로 이사를 시켜 달라고 청하였
다. 꺽정이가 고개를  젖혀 벽에 기대고 천장을 치어다보며 “이사를  시켜 달라
구? ” 혼잣말하고 얼마 있다가  고개를 벌떡 일으켜 원씨를 바라보며 “왜? ” 
하고 묻는데 속을 알면서 짐짓 묻는 모양이 얼굴에 나타났다. “그저요. ” “그
저라니 까닭을 말해야지.  ” “이 집이 싫어요. ”이 집이  싫은가, 이웃이 싫은
가? “ ”이웃도 싫구요.  “ ”나 없는 동안에 그 망나니  여편네가 또 왔었나? 
“ ”밖에까지 와서  안에는 들어오지 못했어요. “ ”못 들어오게  누가 밀막았
나? “ ”어저께 다 저녁때 그 여편네가 우리 집 기둥을 팬다고 도끼를 들고 오
는데 동자치가 마침 밖에 나섰다가 얼른 앞질러 들어와서 문을 닫아걸고 열어주
지 않았어요.  도끼로 문짝을 몇 번  찍다가 동네 사람들이 저  여편네 미쳤다고 
떠드니까 고만 가더래요.  그래서 오늘은 식전부터 종일 문을 첩첩이  닫고 살았
세요. “ ”담을  넘어오면 어떻게 할 뻔했노? “ ”담에  구멍을 뚫고 들어오거
나 사다리를 놓고  넘어오거나 할까봐서 동자치 사내를  종일 어디 가지 못하게 
붙들어 두었는데요. “ ”그러면 그년이 기둥을 와  패어서 집이 무너진 뒤에 어
디루 이사하지. “ ”얼른 이사하는 게 상책이에요. 그러면 시비 없고 좋지 않아
요. “ ”그래 이사는 하기루  하더래도 며칠만 더 두구 보자구. “ 꺽정이가 원
씨의 마음을 안위시키느라고 며칠만 더 두고 보자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며칠 안
에 무슨 요정을 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원씨가 전날 밤에 공연히 조심이 되어서 잠을 못 자고 또 낮에도 눈을 붙이지 
못한 까닭에 밤이 그리 늦기도 전에 눈에  잠이 가득하였다. 꺽정이는 졸리지 아
니하나 원씨의 사폐를  보아서 일찍 자리를 깔게 하고 같이  드러누웠다. 원씨는 
바로 잠이 곤히  들어서 숨소리까지 거의 없는데  꺽정이는 잠이 안와서 어두운 
속에 눈을 떴다 감았다 하다가  마침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몸을 뒤척거리기까
지 하였다. 이리하는 중에 담 너머집 여편네  제독 줄 수단을 생각하기 시작하여 
잠이 영영  번놓이고 말았다. ‘그년의  여편네가 다시 말썽을  부리지 못하도록 
단단히 제독을 주어놔야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위인이 여간내기 아닌 줄은 
이왕 짐작하였지만 엊그제 죽이라고 대드는 걸 보니 섣부른 으름장 가지고는 제
독 주기커녕 되려 망신하기 쉽겠는걸. 기둥을 패려고  도끼 들고 오거든 도끼 들
려서 동네 조리를 돌려볼까. 동네 것들 왁자지껄하는  것 재미없어 광 속 같은데 
잡아넣고 죽일 것처럼 잡도리해 볼까. 그래서  말썽을 다시 안부린다고 항복하면 
좋지만 죽이라고 자꾸  발악이나 하면 그걸 어떡한담. 나이 이십  안짝에 호랑이 
꽁질 붙잡고 하룻밤  동안 매달려 다닌 계집이라니 세상에 희한한  독종인 거야. 
계집이란 것이 대체 사내들버덤 독하긴 하나 그 대신 약하니까 제아무리 독종이
라도 약한 계집으로서 죽는  걸 겁내기 않을 수가 있나. 그것도  독이나 악이 난 
때 같으면 모르지만  여느 때야 그렇지 못하겠지. 시퍼런 칼날로  볼때기나 서너 
번 쓱쓱 문대주면  대개 다 기절 않고  못 배길 게지. 오늘 밤에  환도를 가지고 
담 넘어가서 자는 년을 잡아일으켜 놓고 한번  혼뜨검을 내줄까 보다. 그래도 제
독이 안  되면 아주 요정을 내주는  수밖에. ’ 꺽정이가 일어나  앉아서 허리띠 
대님을 다시 주워 매고 벽장에  넣어둔 환도를 꺼내고 벽장문을 닫을 때 원씨가 
돌아누우며 한숨을  쉬었다. 자면서도 가끔  한숨을 쉬는 것이  원씨의 버릇이나 
혹시 잠이 깼나 하고 지근지근 건드려 보다가 정신없이 자는 것을 안 뒤에 좌우
쪽 이불자락을  잘 눌러주고 일어섰다.  원씨를 아직 기이었다가  나중의 재미를 
보려고 원씨의 잠이 행여 깰세라 가만가만 윗간에 나와서 지겟문을 살며시 여닫
고 밖으로 나왔다. 이때 절기가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가까운 때라 낮에는 봄뜻
이 다소 있으되 밤에는 겨울맛이  그대로 남아서 방안에 있던 따뜻한 몸에 바람
이 몹시 차련마는 추위를 모르는 꺽정이는  선득선득 시원하게쯤 여기었다. 보름 
전께 달이 인왕산 쪽으로 기운 것이 한밤중이 된 모양이라 네 이웃에 사람 소리
가 그치어서 괴괴하였다. 꺽정이가 마당에 내려서니  강아지가 마루 밑에서 쪼르
르 나와서 치어다보며 꼬리를 쳤다. 그 모양이  주인더러 딴짓할 생각 말고 저하
고나 놀자는 것  같았다. 원씨 집에는 이 쥐방울만한 강아지나마  먹이지만 홍문
집에는 주인 여편네가 짐승을 좋아 안 하는지  닭새끼 하나 치지 아니하였다. 개
가 있어도 겁날 것이 없지만 자취를 감추고 들어가려면 개 없는 것이 한 부조였
다. 꺽정이가 담  밑에 와서 단번에 뛰어넘으려다가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지 아
니하려고 손에 들었던 완도를 허리에 지른 뒤에 몸을 솟쳐 손으로 담 위를 짚고 
올라오며 곧  사뿐 담 안으로  내려섰다. 사랑방도 캄캄하고  행랑방도 캄캄하고 
오직 안방에만 불이  있는데 등잔 심지를 돋우지 아니한 듯  불빛이 희미하였다. 
꺽정이가 발소리를 내지 않고 마루 위로 올라왔다.  과부 여편네 혼자 자는 방이
라 으레 문고리가  걸렸으려니 짐작하고 배목이 솟쳐  빠질 만큼 힘껏 지겟문을 
잡아당기었더니 고리 걸리지  않은 문이 펄떡 열리며  꺽정이는 자기 힘에 몸이 
한편으로 휘뚝하였다. 꺽정이가 몸을 가누며 곧  칼날을 빼어들고 방안으로 들어
왔다.
  아랫목에서 자는 여편네가 이불을 홱 제치고 벌떡 일어 앉아서 윗목을 내려다
보며 “이놈! ” 하고 소리를 질렀다. 여편네는 첫잠이 깊이 들어 정신을 모르고 
자다가 지겟문 열리는  소리에 놀라서 잠이 깨었던 것이다. “죽기가  시각이 바
쁘거든 어서 소릴 질러라.  ” 꺽정이가 칼을 치어들고 여편네 앞에  와서 딱 서
니 여편네는 한참 동안  물끄러미 꺽정이의 얼굴을 치어다보다가 예삿말 소리로 
“오냐, 죽여라. ” 하고 고개를 길게  앞으로 내밀었다. 꺽정이가 속으로 어이없
어 하면서 목덜미 부연 살에 칼등을 슬쩍  갖다대니 목이 움찔하였다. “ ”네년
은 그저 죽일  년이 못 된다. 고개 쳐들구 말  들어라. “ ”그저 죽이지 않으면 
어떻게 할 테냐? “ 여편네가 이불자락으로 앞을 가리고 뒷벽에 가서 기대어 앉
았다. ”우선 네  죄가 죽어 싼 줄을 아느냐?  “ ”모르기에 대답이 없지. 내가 
죄목을 일러줄 테니 들어봐라.  늙은 시아비를 구박하는 것이 하나, 어린 자식을 
들볶는 것이 둘, 종년을 도망질하두룩 학대한 것이 셋, 이웃 사람에게 함부루 욕
설하는 것이 넷,  이웃집 와서 야료하는 것이 다섯, 이만해두  죄가 다섯 가지다. 
그러구 방정맞게  내 수염을 끄둘러서 채  좋은 것이 대여섯 개나  뽑혔다. 내가 
수염 아까운  생각을 하면 네년의 살점을  대여섯 점 포를 떠두  시원치가 않다. 
“ ”밥먹구 똥누는 건 죄가  안 되느냐? “ 여편네 얼굴에 냉소하는 빛이 나타
났다. ” 이년아, 건방진  말 마라! “ 꺽정이가 칼을 여편네 볼에 대고  한번 쓱 
문댄즉 여편네는 진저리가 치이는 듯 몸을  옹송그렸다. 꺽정이가 속으로 ‘기집
년이란 아무리 담대한 체해도 별수 없다. ’  하고 생각하며 빙그레 웃었더니 여
편네가 꺽정이의 웃는 것을 보고는 이를 바드득 갈고서 ”네가 할 말 다 했거든 
이제 내 말 좀 들어봐라. “ 말하고 꺽정이가  미처 대꾸하기 전에 말을 다시 이
었다. ”양반의 댁 기집종.  “ ”양반의 댁이란 다 무어냐? 이년아.  “ ”내 말
을 다 듣고  나서 말해라. 기집종을 빼돌려 팔아먹고 안부인네  몸에 손찌검하고 
밤중에 양반의 댁 안방. “ ”그래두 또  양반의 댁이야? “ ”양반의 댁을 양반
의 댁이라지 무어라고 하랴. 양반의 댁 안방에  밤중에 뛰어들어온 놈은 죄가 어
떠냐? 천참만육해도 싸지 않으냐. 네놈이 되려 나를 수죄를  해! 이놈아, 내가 너
하고 사생결단하려고 작정한 사람이다. 내 손으로 너를  못 죽이면 네 손에서 내
가 죽을 작정이다. 나 죽은 뒤에 시아버지가  원수를 못 갚아 주고 친정친지들이 
원수를 갚아 주고  또 나라에서 원수를 못 갚아  주드래도 내가 원수를 갚을 테
다. 내가 죽어 아귀가  되어서라도 너를 잡아가고 말 테다.“ 여편네의 입귀에서 
침이 튀도록  말이 부푸게 나왔다. ”네년의  오장이 어떻게 생겨  저 모양샌가? 
배다지를 갈르구 오장을 좀  봐야겠다.“ ”오냐, 배를 갈르든 목을 자르든 하고 
싶은 대루 해라. 아무렇든지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느냐!“ ”빼때기에 칼 들어
갈 때두 큰소리하나 어디 보자.“ ”죽는 년이 앞을 가리랴. 배를 내놔주께 가만 
있거라.“
  여편네가 앞가린  이불자락을 한옆으로 거두치고 끈  풀린 아래옷을 배꼽까지 
내려밀고 앞으로 나앉으며 “자, 찌르든지 가르든지 맘대로 해라.” 하고 씩씩하
게 말하였다. 꺽정이가  여편네를 여기지르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편네에게 여기
지름을 당하고 입맛이  썼다. 그러나 여편네의 허연 속살을 내려다보는  중에 꺽
정이는 생각이 달라졌다. 실상은 여편네를 처음 볼  때 좋게 여기는 생각이 없지 
아니하였는데 이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들어 있다가 이제 와서 온마음을 차지하
도록 번져나온  것이다. 꺽정이가 갑자기  칼날을 집에 꽂고  여편네에게 덮쳐서 
달리 요정을 내려고 하는 중에 여편네는 어느 틈에 손을 놀려서 사내의 가장 중
난한 곳을 움켜쥐었다. 
  여편네 손아귀에 잡힌 곳이 수염과는 달라서 꺽정이가 평생 처음 다아는 경계
라 이약 꺽정이로도 마음에  적이 놀라웠다. “이년아 놔라! 얼른 놔라,  안 놓을 
테냐!” 하고 연거푸 꾸짖으며 손으로 여편네의 팔을 눌러서 꼼짝 못하게하였다. 
“팔을 분질러 봐라, 내가  놓나.”여편네가 말은 억세게 하나 팔이 아프고 손이 
저려서 손아귀에 힘을 들일  수 없었다. “내가 조금 힘써 눌르면  팔 하나 병신 
된다. 진작  놔라.” “배를 갈르구 오장을  본다며 팔병신 될  것이 걱정이냐.” 
“죽일 테면 벌써 죽였지, 이때까지 있어? 장난으로 그래 봤지.” “주가 너하고 
장난하자드냐?” “지금 이게  장난이지 무어냐?” 여편네가 ‘장난’하고 되고 
한참 만에 “그래,  네 말대로 장난이라고 하고 장난한 뒤는  어떻게 할 테냐?” 
하고 말하는데  얼굴빛이 붉어지는 듯하였다.  “뒤를 어떻게 하다니?”  “나를 
어떻게 할 테냐 말이야.” “좋다면 같이 살고  싫으면 고만두고 네 소원대로 해
주지.” “거짓말 아니지?” “사내대장부가 부녀자에게 거짓말을 할 리가 있나.
”
  여편네가 이를 악물고 펴지 않던 손아귀가 어느 틈에 슬그머니 펴져서 꺽정이
도 팔 눌렀던 손을  떼었다. 꺽정이가 그제는 일어 앉아서 발에  신은 신발을 벗
어 윗목에 내던지고 꽁무니에 뻐티는  환도를 빼서 발채에 놓고 여편네 옆에 와
서 들러누웠다. 마침 이때 사랑에서 문을 열치는  소리가 나고 곧 뒤미처 안으로 
들어오는 신발 소리가  났다. 이불을 끌어덮고 누워 있던 여편네가  얼른 일어나
서 아랫목 앞문과 윗목 지겟문의  문고리를 모조리 걸고 다시 자리에 와서 누우
며 꺽정이에게 귓속말로 “아무  기척 말고 가만히 있소.” 하고 당부하였다. 두
어 사람의 발짝  소리가 안방 앞에 와서 그치더니  한참 만에 명토 없이 “자느
냐?” 하고 묻는 늙은 시아버지인 모양인데 여편네는  대답 않고 가만히 있었다. 
밖에서 다시 한번 “자느냐?”  묻고 나서 앞문을 흔드니 여편네가 그제사 “누
구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야.” “웬일입니까?” “문  열구 나 좀 보아.
” “밤중에 왜 자는 방문을 열라십니까? 망측스럽게.”  “물어볼 말이 있어 그
래.” “물어볼 말이  있거든 밝는 날 물어보시구려.” “잠깐만  내다보렴.” “
옷을 벗어서 못  일어나요.” “행랑에서 들으니까 안방에서  떠들썩하는데 죽인
다는 소리가 들리드라구  이애가 지금 사랑으루 쫓아들어왔어.”  “반실이가 귀
는 밝네. 나 혼자 자는 방에 누가  떠들썩해요. 옳지, 내가 꿈에 이웃집 사내놈을 
붙들어다 놓고 죽인다고 야단을 쳤더니 잠꼬대를 한 게로구먼.” 
  꺽정이가 눈을 흘기며 뺨치려는 시늉을 하니 여편네는 손을 가로 흔들며 빙그
레 웃었다. “나는 도둑놈이  들어온 줄 알았구나. 지금 들어오며 보니까 사람의 
그림자가 방문에 어른거리는 것 같더라.”  “어른거리긴 무에 어른거려요? 당치 
않은 소리 고만하고 나가 주무세요.” “나갈 테다.  불을 끄구 자. 불 켜놓구 자
니까 꿈자리가 사납지.” “불 끄겠어요.” 여편네가 일어나서 벽에 걸린 등잔불
을 꺼버렸다. 방문  밖에 발짝 소리들이 가까운 데서부터 차차로  멀어지더니 사
랑방 문 여닫응 소리가 들리고 그 뒤에 행랑방 문 닫히는 소리까지 들리었다.
  첫닭울이에 꺽정이가  일어서려고 하는 것을 여편네가  더 누워있다가 가라고 
붙잡아서 닭이 자칠  때에야 도로 담을 넘어왔다. 꺽정이가 지겟문을  곱게 열고 
방안에 들어서자 원씨가 자리에 일어 앉으며 “밤중에 어디를 갔다오세요?” 하
고 물었다. 꺽정이가  원씨의 묻는 말은 않고 “잠이 벌써  깨었나?” 하고 물으
니 아랫간으로 내려왔다.  어둠침침한 원씨가 꺽정이 손에 가진 물건이  있는 것
을 보고 “손에 가지신 것이 무에요?” 하고 물으니 꺽정이는 흡사 숨기려는 것
같이 “아니야.” 하고  말하며 벽장을 열고 그 물건을  집어넣었다. “아니라니, 
그게 환도 아니에요?” “환도야.” 원씨는 큰일난 줄로  짐작하고 기가 막혀 한
참 말을 못하다가 “담 너머집에 갔었지요?” 하고 묻는 것을 무서운 일 물어보
듯 하는데 “그랬어.”  꺽정이의 대답은 수월하였다. “아이구 나는  몰라. 그게 
무슨 짓인가요?” “내가 살인하구 온 줄루 아는구면.”  “그럼 어떻게 하고 오
셨세요?” “여편네를 보구 왔어.” “말썽을 다시  못 부리두룩 하셨어요?” “
말썽을 다시 못  부리두룩 제독을 주었지.” “그러자니 자연 손찌검하셨지요.” 
“손찌검 안 하면 항복을 받지 못하나?” “그래 그 여편네가 순순히 항복해요?
” “두구 보면  알지만 우리 집에 와서 말썽  무리는 건 고사하고 저의 집에서 
떠들지두 않을걸.”원씨는 속으로 꺽정이의 말이 헛말 아닐까 의심하였다. 
  꺽정이가 개잠이 든 동안에 원씨는 일어나 마루에 나와서 소세를 하는데 동자
치가 아침밥 쌀을 받으려고 이남박을 가지고 마루  앞에 와 섰었다. 원씨 마음에 
이웃집 여편네의 일이 궁금하여 동자치더러 이웃집 문간에 가서 안의 동정을 좀 
보고 오라고  말을 일렀다. 동자치가 가기  싫다고 안 가려고 하다가  원씨 말에 
못 이겨서  “잠깐 갔다 올께 얼른  쌀 내놓으세요.” 하고 이남박을  마루 끝에 
놓고 가더니 한동안  좋이 지난 뒤 비로소 돌아왔다. “왜  그렇게 오래 되었어?
” “아씨, 별일 다 봤세요.”  “무슨 별일?” “저 집 여편네가 아주 딴사람이 
되었겠지요. 지가 문간에  섰는걸 어느 틈에 보고 들어오라고 그러더니  여러 말
을 하는데 말하는 것이 모두 멀쩡해요. 자기가  본시 홧병이 있는데 혹시 화나는 
일이 있어서  홧병이 발작되면 꼭  미친 사람같이 된다구요.  이번에도 이웃집에 
공연히 시비를 걸어 가지고 미친  사람 구실을 해서 우세가 적지 않다고 조만히 
말합디다.” 안방에서 으 하는 트림 소리와 에헴 하는 기침 소리가 났다. “나으
리 기침하셨어. 아침  늦겠네. 어서 쌀 갖다 씻어 안치게.”  동자치가 쌀 이남박
을 들고 부엌으로  내려가면서 “아씨, 제 말이 곧이들리지 않으시거든  이따 할
멈더러 한번 가보라십시오.” 하고 수다를 부리었다.
  아침 후에 원씨가  조용히 꺽정이를 보고 여편네  제독 준 수단을 캐어물으니 
꺽정이는 말하기를 즐기지  않는 듯 차차 들으라고 말할 뿐이었다.  낮에는 별일
이 없었다. 밤에 원씨가 자다가 버스럭 소리에  잠이 깨어서 눈을 뜨고 살펴보니 
꺽정이가 아닌밤중에 새삼스럽게  의관을 차리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였다. “어
디 가세요?” “담 너머집에 좀 갔다오께 가만히  드러누워 자.” “담 너머집에
는 무어하러 또  가세요?” “미진한 말이 좀 있어.” “미진한  말이 무슨 말이
에요?” “차차 이야기할  테니 아직 가만 있어.” 원씨는 비로소  딴 의심이 들
어서 꺽정이 나간 뒤로 공연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긴밤을 새우다시피 하였다. 
  꺽정이와 과부 김씨가 같이  살기로 작정이 되었는데 첫날밤에는 말이 대강령
에만 그치었고 이튿날  밤에는 의논이 세절목에까지 미쳤었다.  꺽정이는 김씨를 
부실 대접 아니할 것과  김씨 살림에 시량 범절 돌보아 줄  것을 허락하였고, 김
씨는 시아버지 늙은이와 양자한  아들아이를 고향으로 보내버리고 들어 있는 집
에서 눌러 살림하게 할 것을 자담하였다.
  꺽정이가 김씨에게서 두번째  반밤을 새우고 돌아왔을 때  날은 아직 다 밝지 
아니하였는데 원씨가 벌써 자리까지 걷어치우고 오두마니  앉아 있었다. “왜 어
느 새 자릴 치웠어?” “곤하지 않거든 좀  앉아 이야기하셔요.” “이야기 듣기
가 그렇게 급해서 오밤중에 잠두 안 자구 앉았어, 사람두.” 꺽정이는 혀를 낄낄 
찼다. “나를 속이실  건 없어요.” “속이긴 누가 속여? 별소리  다하는군. 속시
원하게 다 이야기해 주지.” 꺽정이가 첫날밤 행동한  일과 이튿날 밤 작정한 일
을 대충 다 이야기하니 원씨는 벌써 미리 의심하고 있는 일이라 별로 놀랄 것은 
없었으나, 일 된 품이  왈가왈부하기도 더러워서 말 한마디 않고 가만히 있었다. 
“삼천 궁녀두  거느리구 살려든 기집 몇  개를 못 데리구 살까.  공평하게 해줄 
테니 염려 마라.”꺽정이의 말끝에 원씨는 눈이  뜨거워지며 고물이 맺혀서 듣고 
솟아서 흘렀다. 그러나 이 눈물은 꺽정이의 말이  자아낸 것이 아니고 자기으 설
움이 터져나오는 것이었다.
  이날 낮에 담 너머집에서는  김씨가 그 시아버지를 보고 고향으로 이사가자고 
의논을 내었는데 그 시아버지는 본래 서울을 시골만 못하게 여기는 늙은이라 며
느리의 의논을 선뜻  좋다고 찬동하였다. 그러나 김씨가  그  시아버지더러 아들
아이와 비부쟁이를 데리고 세간짐을  영거하여 가지고 먼저 내려가서 집도 수리
하고 세간도 정리하면 자기는 서울집을 팔아가지고 추후하여 내려간다고 주장하
는 것은 무능하기  짝이 없는 늙은이로도 좋다고 찬동하기가 어려웠다.  “단 며
칠 동안이라도 너 혼자  어떻게 있을 테냐?” “혼자 있으면 호랭이가 물어갈까
요?” 늙은이는 아들 죽은  후로 오랑이 물어간단 소리를 남유달이 듣기 싫어하
는 사람이라 “그게다 무슨 소린가!” 하고 상을 오만상 찡그렸다. “나 혼자 있
을 건 염려 마십시오.”  “집을 팔려고 하더라도 나다니며 주선을 해야지.” 늙
은이가 마침내 며느리의 말을 거스르지 못하여 그대로 작정하고 말았다. 
  이날부터 불과 오륙 일  안에 홍문집에서 이삿짐을 내실리는데 판다고 내놓은 
육중한 세간과 당장 쓸 솥  부등가리 외에는 문앞에 붙였던 정문까지 다 떼어서 
실리고 먼저 떠나기로 작정한 조손 노주 세  사람은 짐바리와 한날 떠나갔다. 김
씨의 시아버지 늙은이가 고향에 가서 며느리를 기다리다 못하여 다시 서울을 올
라와서 보니 그 동안 벌써 이웃 사내놈과 붙어서 펼쳐놓고 사는 판이라 할일 없
이 그대로 도로 내려가서 늙은이의 의뭉으로 며느리가 급한 병으로 죽어서 서울
다가 엄토하고 왔다고 고향 사람의 이목을 속인 것은 뒷날 일이다.
  김씨가 개새끼 하나 없는 빈집에  혼자 남아 있게 되며부터 꺽정이는 담을 넘
어다니지 않고 문으로  드나들되 내 집 드나들 듯하였다. 박씨는  살기가 있으나 
병이 있고 원씨는 대살지고 약하여 모두 김씨의 살 좋고 몸 튼튼한 것만 못한데
다가 새로 만난 사람이 이왕부터  같이 사는 사람과 달라서 꺽정이는 김씨 집에
를 파고들었다. 김씨는 그 많던 울화가 신통하게  없어져서 골낼 때보다 웃을 때
가 많고 전날 기습으로 간간 기성을 부리다가도 꺽정이의 꾸지람 한마디면 대번 
숙지는 까닭에 전에 비하면 참으로 딴사람과  같았다. 전의 한사람은 개차반이라
고 하면 뒤의  사람은 거의 명주고름이라고 할 만하였다. 박씨는  육례를 갖추고 
원씨는 정실로 자처하고 또  김씨는 부실이라고 아니하는 까닭에 꺽정이의 처가 
광복산에 있는 본처는 치지 말고 서울 안에만 세 사람이나 되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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