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화적편 5

3학년2반 | 2022.01.10 07:43:42 댓글: 0 조회: 421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1229
 5
  꺽정이가 광복산 두메 구석에 엎드려 있기가 답답하여 서울로 올라올 때 과즉 
한 달포 놀다  가려고 생각한 것이 늦게 난봉이  나서 갖은 오입을 다하고 종내 
계집을 셋씩이나 얻어서 각 살림을  시키는 동안에 세월이 가는 줄 모르고 오륙 
삭이 지나갔다.  그 동안 광복산 도중에서  꺽정이에게 오라는 재촉이 없었던가. 
도중에 비록 대리 괴수가 있기로서니  정작 대장이 오래 밖에 나와 있는데 어찌 
재촉이 없었으라. 광복산  재촉은 성화 같아도 꺽정이가 갈 생각을  아니하고 서
울에 눌어붙어 있었다. 도중에 일이 있다고 재촉이  오면 꺽정이는 그 일이 무슨 
일인가 알아보고 서울  앉아서 지휘할 건 지휘하고  조처할 건 조처하되 멀리서 
지휘하기 거북하고 조처하기 어려운 일은 뒤로 미루기를 일쑤 하였다.
  청석골을 버리고 도망들 한 뒤에  관군이 빈 소굴에 들어가 불을 질러서 도회
청과 살림집이 모두 타서 없어진  까닭에 광복산을 떠날 때 청석골로 다시 갈까 
다른 곳으로 옮아갈까 이것이  여러 두령들 사이에 중대한 공론거리가 되었는데 
두 가지 의론이  맞서서 서로 일치히지 못하였다. 다시 청석골로  나가서 청석골
패의 전날성세를 회복한 뒤에 어느  산성 한 자리를 빼앗아 가지고 이진하는 것
이 득책이라고 주론한  사람은 서림이요, 이왕 청석골에 오래 있을  작정이 아닌 
바엔 불탄 자리에 새로 배포  차리느라고 군일할 것 없이 바로 어느 산성하나를 
가서 차지하고 웅거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주론한 사람은 이봉학이나 두 의론이 
맞서게 되도록 부득부득 세우고  뻑뻑 우긴 사람은 서림이와 이봉학이가 아니고 
늙은 오가와 곽오주였다.  늙은 오가는 청석골에 정이 들어서 다른  곳으로 옮아
갈 생각이 적은  사람이라 서림이의 득책이란 것도  내심에는 다 합당치 못하나 
그나마 좋다고 서림이의  말을 찬동하고, 곽오주는 서림이의  말이라면 언제든지 
뒤쪽으로 잘나가는 사람이라 이봉학이의 상책이란 것이 상책인지 아닌지도 모르
면서 그대로 덮어놓고 이봉학이의 말에 붙좇았다.  주론한 사람들 제쳐놓고 둘이 
서로 맞붙어서 청석골로 가느니 못 가느니 말다툼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어느 때는 곽오주가 이면없이 말을  뒤받는 데 늙은 오가가 홧증이 나서 “대체 
자네가 무얼 안다구 툭하면  나서나, 자네는 국으로 가만히 좀 있게.” 곽오주를 
꾸짖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늙은 오가가 구변으로 몰아세우는 데 곽오주가 골
딱지가 나서 “서종사 말이라면 당신은 사죽을 못 쓰니까 당신하구는 더 말하기 
싫소.” 늙은 오가를 박주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말다툼들 하는 중에 늙은 오가
의 입에서는  “다른 사람 다 안  간다면 나 혼자라두 청석골루  갈 텔세.”하는 
말이 나오고  곽오주의 입에서는 “난  죽어두 청석골루 안  가겠소.”하는 말이 
나온 일까지 있었다. 일인즉 일찍 결정짓고 미리  준비 차려야 할 일인데 꺽정이
의 말을 들어보지 않고 결정짓지  못할 것은 고사하고 꺽정이 아니고는 늙은 오
가나 곽오주나 한 편을 누르고 결정지을 수가 없어서 꺽정이더러 속히 내려오라
고 재촉하러 황천왕동이가  서울을 올라왔었다. 꺽정이의 내려가야만  할 사정을 
황천왕동이가 증언부언 말할 때  꺽정이는 듣는지 만지 건성으로 들으면서 속으
로 광복산 떠날 공론을 뒤로  미루어 두게 하려고 생각하고 “개춘이나 한 뒤에 
어디루든지 가게 될 텐데 공론이  어느 새 무슨 공론이란 말이냐? 미리 준빌 한
다니 준비할 일이 무어냐? 가령 집을 새루 짓기루 하구 역사를 시키더래도 해토
나 돼야지. 나는 아직 서울  좀더 있다 가겠으니 그리 알구 가거라. 그러구 가서 
공연히 수선들  부리지 말라구 내  말루 일러라.”하고 말하여  황천동이를 재촉 
온 보람 없이 그대로 돌려보냈었다. 꺽정이가 서울 와서  있게 된 뒤 처음 한 달
포 동안은 광복산서 사람이 거의 사흘돌이를 올라오는데 그 중에 전부터 서울길
을 자주 하던 황천동이가 더욱  자주 올라왔었고 광복산 사람이 오는 것을 꺽정
이가 긴치 않게 여기고  거북하게 여기고 민주스럽게까지 여기어서 한번 황천왕
동이더러 별일이 없거든 자주 오지 말라고 말을 하여 그 뒤로 다른 사람은 차치
하고 황천왕동이까지도 서울  길이 전보다 드물어져서 한  달에 두세 번 오거나 
말거나 하였었다. 황천왕동이가 자주 올 때 으레  하룻밤은 자고 가던 사람이 드
문드문 오게 되며부터  사대문이 닫히기 전에 볼일이  끝나게 되면 가다가 자고 
일찍 들어간다고 당일  되짚어서 떠나는데 이런 때  꺽정이는 마음에 합당한 양 
잘 가라 인사하고 붙들어서 재워 보내려고 하지 않았었다.
  황천왕동이가 잠시잠시 다녀가도 원체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뉘게 이야기 들
을 것도 없이  꺽정이의 난봉 부리는 것을  십분 짐작하였으나 꺽정이의 기안에 
눌려서 드러내놓고 말 한마디 못 하였을 뿐이지 속으로는 톡톡히 책망하고 싶은 
마음이 남유달리 많았다. 까닭에 본계집 두고  계집질하는 사람을 부족하게 아는
데다가 더구나 세상에 둘도 없는  자기 누님이 꺽정이의 안해라 자연 마음이 누
님 편으로 쏠려서 꺽정이를 홑으로 부족하게만  알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누님의 
속을 상하여 주지 아니하려고 그런  이야기를 누님에게 하지 않은 것은 말할 것
도 없고 말이 다리를 넘을까 저어하여 자기  내외간에도 말한 일이 없었다. 꺽정
이가 특별한 볼일 없이 서울  가 눌어붙어 있는 것을 의심 안할 리 없게 되었을 
때 꺽정이의 안해 백손 어머니는 “정녕코 기집이  미친 게야.” “젊은 년을 얻
어가지구 죽자사자 하는  게지.” 이런 말을 하며 혼자 푸닥거리도  하고 “너는 
다 알면서 나를  속이지?” “친동기간에 속이니 다른 사람 탓할  거 무어 있어.
” 오지 않는 데 백손  어머니는 속에 열방망이가 치밀어서 설인지 만지 지내고 
새해 문안가는 사람과 같이 서울을 가겠다고 부득부득 나서는 것을 시누이 애기 
어머니가 말리고 아들 백손이가  말리고 다른 두령들까지 말리어서 간신히 주저
앉히었었다. 여러  두령이 꺽정이의 일을  가지고 두세 사람  끼리끼리 뒷공론들 
한 일은 없지 아니하나 도중에서 펼치어놓고 의론한 일은 없었는데 백손 어머니
가 서울 간다고 법석을 꾸미던 때부터 도중의 공론거리로 의론이 되기 시작하였
다. 꺽정이의 동정을 알아오자는 사람도 있고  꺽정이의 진의를 물어보자는 사람
도 있었지만 꺽정이 같은 큰  인물이 큰일을 낭패하도록 여색에 침혹할 리가 만
무하니 가만히 기다려보자는 의견이 나온 뒤에는  동정을 알아보지, 진의를 물어
보자 하던 사람들까지 모두 그 의견으로 쏠리었는데 유독 서림이가 고개를 외치
고 자디 소견이 다른 것을 말하였다.
  "여러분 말씀은 대장께서  영웅이신 까닭에 여색에 침혹하실 리가  만무하다구 
하시지만 나는 여러분과  뒤쪽으루, 영웅이신 까닭에 도리어  여색에 침혹하시기
가 쉬웁다고  생각합니다. 영웅 호색이란  말이 영웅은 여색을  특별히 좋아한단 
뜻입니다. 특별히 좋아하면  침혹하기두 쉽지 않습니까. 옛날에 진문공이란 이가 
있었는데 조그만 나라 임금으루  천하 각국 임금들을 좌지우지 휘두르던 영웅이
었습니다. 그가 임금이 되기  전에 고국에 있지 못할 사정이 있어서  부하 몇 사
람을 데리구 다른 나라루 떠돌아다닐  때 제나라 임금이 준 여자 강씨에게 반해
서 고국에 돌아가 큰일할 것두  생각 않구 강씨와 같이 제나라에서 늙어 죽으려
구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부하들이  강씨의 도움을 얻어서  제나라를 떠나두룩 
일을 꾸몄습니다. 강씨 같은 동뜬 여자가 아니었던들  진문공 못 되구 여자 손에
서 썩었을는지 모르지요. 지금 우리가 대장만 믿구  가만히 있는 건 생각이 부족
한 일루 압니다. 대장  부인께서 서울 가시는 것두 해롭지 않은  일인 걸 공연히
들 못 가시게 하였습네다."
  여러 두령이 꺽정이 내려오게  할 계책을 공론하다가 전일에 황천왕동이가 듣
고 온  말도 있고 하니  개춘하기까지나 그대로 기다려보자고  작정들 하였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돌아와서 양지바른 산달에 풀잎이  포릇포릇 돋고 눈 녹이는 
산골 도랑에 물소리가 졸졸 날 때가 되었는데 꺽정이는 오지 아니하여 황천왕동
이가 다시 한번 채촉하러 서울  가서 하룻밤 묵어가며 이야기한 끝에 겨우 수이 
오겠다는 허락을  받고 돌아왔었다. 그런데  수이 온다던 사람이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어서 다른 두령들이 황천왕동이더러 서울을 한번 
더 갔다오라고 말한즉  황천왕동이가 자기는 또 가기  싫으니 다른 사람이 한번 
가보라고 말하니 아니  가려고 하다가 빠른 걸음에 속히 갔다오라,  이왕 맡아놓
고 다니다시피  하는 길이니 사피할 생각  말라, 이번만 더 갔다오면  다시 가란 
말을 아니하마 다른  두령들이 이 소리 저  소리 지껄여서 마침내 황천왕동이가 
또 가기로 되었는데 대리 괴수 노릇하는 이봉학이가 이번에는 대장을 뫼시고 오
도록 하고 정히  뫼시고 오지 못하겠거든 분명히  어느 날 오신다는 말씀이라도 
듣고 오라고 서울  가서 할 소임을 일러주고, 모사 행세하는  서림이가 이번에도 
대장이 뒤로 미루고 안 오러  드시거든 우리들이 전부 다 서울로 올라가거나 그
렇지 않으면 다 사방으로 흩어지게 될지 모른다고 단단히 말씀하라고 꺽정이 만
나서 할 말을 가르쳐 주었다.
  황천왕동이가 광복산서 첫새벽에도 떠났지만 해가 제법 길어져서 서울을 들어
올 때 승석때가 못 되었었다. 꺽정이의 처소는  가 보아야 으레 비었으려니 짐작
하고 한온이의 큰집 사랑으로 들어왔더니 사랑에 있는 서사가 나와 맞으며 “황
서방 오셨습니까?”하고 인사한 뒤 “너머집에를 안 들르시구 바루 이리 오셨습
니까?”하고 물어서 황천왕동이는 안 들렀다고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오늘이 
우리 집  작은주인 생일이지요. 임선다님두 너머집에  와서 기십니다. 아니 저녁 
잡숫기 전에 어디  출입 안 하셨을 겝니다.” 한온이가 꺽정이를  위하는 마음으
로 자기 집에서  숙식하지 않는 것을 광복산  두령이나 졸개에게 알리지 않도록 
하라고 집안 사람들을 신착하여 둔  까닭에 서사가 무심코 다른 데서 온 것으로 
말하였다가 얼른 출입 안한 것처럼 고쳐  말한 것이었다. 황천왕동이는 꺽정이가 
처소에 있는 줄을  안 바엔 서사와 더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 없어서 곧 “그럼 
나는 저 집으루 가보겠소.” 말하고 도로 사랑  중문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서
사가 “저 샛문으루 가시지요”하고  일러주어서 큰집과 너머집 사이에 있는 일
각문으로 나왔다. 문 열어놓은 건너방에는 상노아이  서넛이 머리들을 한데 모으
고 바스락장난을 하고 문 닫힌  안방에서는 남녀 섞여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
었다. 황천왕동이가 뜰 앞 가까이 들어왔을  때 상노아이들이 내다보더니 하나가 
마루로 쫓아나오며  곧 안방 윗간  문을 열고 방안을  들여다보면서 “임선다님, 
시골서 손님이 오셨습니다.”하고  고하였다. 꺽정이는 들은 체 아니하는지 아무 
소리가 없고  “어디?”하고 묻는 것은  한온이의 목소리였다. 황천왕동이가  뜰 
위에 올라서서 여기 왔노라 알리듯이 헛기침을 한번 크게 하니 상노아이가 한옆
으로 비켜서며 한온이가 내다보고 대뜸 실없은 말로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구 
왔느냐? 이왕 올라면  어제쯤 와서 오늘 아침밥이나 같이  먹게 할 것이지 인제 
다 저녁때 온단 말이냐. 네가  종시 생각이 좀 부족해. 하여간 삼백여 리 전도에 
생일날 전위해 온 것만은 기특하다. 어서 올라와서 절이나 한번 해라.”
  한온이와 황천왕동이가 서로  친하여 실없이 농지거리하는 사이지마는 원처에
서 온 친구를 보고 나와 인사도 않고 가만히 앉아서 농부터 거는 것은 황천왕동
이의 마음에 적이  불쾌하여 “실없은 자식.”하고 가볍게 대꾸한 뒤  마루 끝에 
걸터앉아서 버선을 바꾸어 신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방안에 사람 여섯이 들어앉아 있는데  그중에 넷은 몸에 주사니 것을 감은 계
집이고 먹다 둔  주안상 하나가 중간에 놓여  있고 거문고, 가야금, 장고 등속이 
한옆에 밀쳐 있고 그외에 아래윗간에 벌려놓은 방 세간이 있어서 간반방이 가득
하였다. 황천왕동이가 아랫목에  앉은 꺽정이를 향하고 비좁은  틈에서 거북살스
럽게 절을 하는데 꺽정이는  눈도 거들떠보지 아니하고 한온이가 중뿔나게 “오 
잘 왔느냐?”하고  점잔을 빼고 말하여 계집  두엇이 서로 눈짓하며 소리없이들 
웃었다. 꺽정이에게 냉대받고 한온이에게  멸시당하고 계집년들에게까지 창피 보
는 것 같아서  황천왕동이는 골이 발끈 났다. 주안상을 한편으로  밀어버리고 한
온이 앞에 와서 앉으며 곧 “이자식, 내가 네 놀림친구란 말이냐!” 하고 대어드
는데 황천왕동이의  거동과 기색이 약차하면  바로 주먹질을 시작할  것 같았다. 
한온이가 자아낸 골에 꺽정이  외 계집들에게서 옮겨온 골이 엄치어서 상글상글 
웃어가며 농담을 주고받고 하던  전날 사람과는 딴판이라 한온이가 도리어 어이
없어 하며 “자네와 나  사이에 농담한다고 성낼 줄은 몰랐네.” 하고 말하였다. 
“농담도 분수가 있지. 멀리서  온 친구를 보고 나와 인사 한마디  않구 대뜸 농
담을 시작해! 게다가 기집년을 끼구 방에 들어앉아서, 그것이 친구 대접이냐? 친
구는 고만두구 수하 사람이라두 그따위루 대접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 황천동
이가 한온이를 토죄하는데 꺽정이에게  피침한 소리를 하였더니 이때껏 입을 꽉 
다물고 있던 꺽정이가  별안간 “듣기싫다. 지껄이지 마라!”  하고 소리를 질렀
다. 되지 못한 계집년들 보는 데서 꺽정이의  위풍 부리는 것을 황천동이는 비위 
사납게 여겨서 눈을 똑바로 뜨고 꺽정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를 노려보면 
어쩔 테냐?” “형님은 좀 가만히 계시우. 이  자식하구 말 좀 해보구 나서 이야
기합시다.” 황천동이가 다시  한온이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그래  네가 잘했느
냐 잘못했느냐  말 좀 해라. 들어보자.”  하고 소매를 거드치고  팔을 뽐내었다. 
“내가 잘못했네. 그렇지만...”  “그렇지만 어떻단 말이냐?” “자네두 잘한 건 
없단 말일세. 자네가 나를 붙들구 조용히 책망하면  자네 책망을 내가 고맙게 들
었을 것인데 곧 드잡이를 놓을  것같이 팔을 뽐내고 덤비니 자네가 팔을 뽐내면 
누가 기절할 줄 아나? 앗게,  저리 물러나게.” “네가 되잡아 나를 책망하는 셈
이냐?” “되잡구 바로잡구가  없지.” “네가 무얼 잘했다구  뻣뻣이 구느냐?” 
“잘못했다는밖에 더 어떻게 하란 말인가. 녜, 죽을 때라 잘못했으니 용서하십시
오” 한온이의  비꼬는 말이 입에서 나오자마자  황천왕동이의 손길이 번개같이 
한온이 볼치에 올라가서  찰싹 소리를 내었다. “이놈이  뉘게다 손질을 하나!” 
한온이가 일어서고 “오냐,  해볼 테면 대들어라.” 황천왕동이가 일어서는데 황
천왕동이의 뺨에 육중한 손이 와서  떨어지며 눈에 불이 번쩍 나고 정신이 얼떨
떨하였다. “당장 도루  가거라.!” 꺽정이의 언성이 귀에 들릴  때 황천왕동이가 
비로소 꺽정이에게 뺨 맞은 줄을 알았다.  대장이요, 자형이요, 사생을 같이 하자 
굳게 맹세한 의형제 꺽정이가 한온이의 편을 들어서 자기의 뺨을 치다니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라 황천왕동이는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왔다. “얼른 나가거라!
” 꺽정이가 떠다  밀어서 황천왕동이가 방구석에 가서 쿵 하고  넘어졌다. 황천
왕동이는 뺨도 아픈 줄 모르고 벽에 부딪뜨린 머리도 아픈 줄 모르고 일어 앉아
서 물끄러미 꺽정이를 치어다 보는 중에 이십 년 동안 친한 정분과 앞으로 사생
을 같이 할 굳은 맹세가 일시에 없어지고 사라지는 듯 생각이 나며 부지중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한온이가  꺽정이 앞에 가서 “선생님, 자리에 가서 앉으시지
요.” 하고 권하며  일변으로 아랫목에 몰려 섰는 계집들을 돌아보고  “왜들 죽 
섰나? 소홍이 이리 와서 선다님을 뫼셔다가 앉으시게  하구 자네들도 다 앉게.” 
하고 말하여 꺽정이와 계집들을 모두 앉힌 뒤에 윗간 구석에 앉아있는 황천왕동
이게 와서 “여보게  저리 가세.” 하고 말을 붙이고 “자,  일어나게.” 하고 손
목을 잡아 일으켰다. 황천왕동이는 서울 온  사연이나 꺽정이에게 이야기하고 해 
빠지기 전에 떠나가려고  생각하고 한온이 끄는 대로 앞으로 나와  앉았다. 한온
이가 옆에 와서 앉으며 “하윗술이나 한잔씩  먹어야지.” “먹다 남은 찌꺽지루 
친구 대접한다구 꾀까다름  부리기 전에 술을 새루 내와야겠다.” 하고  혼자 지
껄이고 나서  건넌방을 향하고 “이놈들, 이리  좀 오나라.” 하고 상노아이들을 
불렀다. “나는 술 생각이  없으니 그만두게.” 황천왕동이의 말을 “이 사람 하
윗술 싫다는 데가 어디 있나?” 한온이가 대답하는 중에 상노아이들이 건너와서 
한온이는 곧 상노아이들보고 방에 있는 주안상을 내가고 안에
 들어가서 새로 한상 잘 차려 내오라고 말을  일렀다. 상 내가는 수선이 끝난 뒤
에 황천왕동이가 꺽정이를 향하고 앉아서 “인제는 내가 오구 싶어 온것이 아니
지만 이번은 어째  그렇든지 오구 싶지 않은 것을  하두 갔다 오라구 말들 해서 
할 수 없이 왔습니다. 내가 오죽 오지 않으려구  해야 이번만 갔다 오면 다시 가
란 말 아니하마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겠습니까. 나는  이번만 오구 다시 안 오게 
될 줄까지  생각 못하구 왔더니 인제는  참말루 다시 올 리가  없습니다. 사람이 
입찬 소리는 못할 것이지요만 이번이 내 일생의 마지막 서울길이 될는지도 모르
겠습니다. 내가 이번 온  사연은 말씀 안 해두 아실 테니까 긴 말씀  할 것 없구 
여러 사람의 하든 말이나  대강 전해 드리구 곧 떠나가겠습니다.” “여보게, 잠
깐 내 말 좀  듣게.” 한온이가 황천왕동이의 말끝을 무질뜨리려고 하였다. “말
씀하던 것 마저 다 하구 나서 자네 말을  들을 테니 조금 가만있게.” “아니 내 
말부터 듣게. 자네  떠나가긴 어디를 떠나간다나. 그리구 서울길이 마지막이라니 
내가 보기 싫어  서울 안 오겠단 말인가?” “아니.” “아니면  무언가? 사내자
식이 그만 일에 꽁해  가지구 친구를 끊다니 말이 되나. 저런  색다른 친구들 듣
는데 창피하니  우리 다른 이야기나  하세. 뒤늦게 묻기는  계면쩍지만 여러분들 
다 평온하신가?” 황천왕동이가 고개만  끄덕이고 나서 “오늘 가든 안 가든 말
씀하든 것이나  다 하구.” 하고 다시  꺽정이보고 말을 이어 하려고  하는 것을 
한온이가 손을 내저으며 “이런 자리에서 말씀이  무슨 말씀이야. 말씀은 두었다 
나중에 하게.” 하고 가로막아 못하게 하였다. 아무 소리 않고 가만히 앉아 있던 
꺽정이가 황천왕동이더러  “이야기는 이따가  하자.” 하고 말하는데  말소리가 
제법 부드러웠다. 황천왕동이는 꺽정이의 말이 한온이의  뜻을 받아 나온 것이거
니 고깝게 생각하여 부드럽게 하는  말을 평소에 홀뿌려 하는 말만큼 못 여기었
으나 계집년들 듣는 데서 이런 말 저런 말 할 것 없이 꺽정이 말대로 이따가 나
중에 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얼마 동안 안 지나서  떡 벌어진 주안상 한 상이 들
어왔다. 한온이가  황천왕동이 맞은편에 가서  앉은 뒤에 계집들을  보고 “넷이 
한테 포갬포갬 앉았지 말구 둘쯤은 이리 나와 앉아서 손님께 술을 많이 권해 주
게.” 하고 말하여 계집 둘이 황천왕동이 옆에 와서 앉았다. “내가 자네하구 하
위하려구 내는 술이니까  첫잔을 자네가 들게.” “뒤에 오면 석  잔이라니 자네
가 더 먹어야 하네.”  한온이가 첫잔부터 연해 권하는데 “우리가 많이 먹었다. 
어서 먹어라.” 꺽정이가  역시 권하여 황천왕동이가 서너 잔 폭배한  뒤에 잔이 
순으로 돌기  시작하였다. 황천왕동이는 술 먹을  흥이 없을 뿐 아니라  술 먹을 
마음조차 적건마는 본래 잘 먹는 술을 갑자기 못 먹는다고 어쌔고비쌔고 하기가 
싫어서 잔이 앞에 오는 대로 덥석덥석  받아먹었다. 한온이는 오입쟁이라 원수를 
맺었다 풀었다  하는 오입판에서 마음도 서그러질  대로 서그러졌거니와 자기의 
탓으로 황천왕동이가  꺽정이에게 뺨 맞고 걷어차이고  눈물까지 머금게 된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므로 아무쪼록 황천왕동이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내가 삼십 평
생에 생일날 볼치떡을  얻어먹기는 오늘이 처음일쎄. 자네 덕에 생일을  잘 쇠어
서 고맙기 이가  갈리네.” 이와 같은 웃음의 소리를 하는  끝에 황천왕동이더러 
“여보게, 자네 기생맛을 본 일이 있나?”  하고 물어보니 계집들이 가만히 듣고 
있지 않고 “기생이란 음식  이름인가요?” “무슨 음식입니까? 댁에 있거든 우
리들도 맛 좀  보이시오.” 중구난방으로 나서는 것을 한온이가 손을  내저어 누
르고 황천왕동이게 하던  말을 이어 하였다. “맛으루 말하면 장가처가  첩만 못
하구 첩이  기생만 못하니 기생맛을 못  보면 기집맛은 모르네. 기집맛  좀 보구 
가려나? 서울 안  일등 명기 넷이 이  자리에 모였으니 넷 중에  하나 골라보게. 
아니 저 선생님 옆에 바짝  붙어앉은 내가 마음대루 할 수 없으니까 빼구 셋 중
에서 하나를 고르게. 자네가 속으루 골라놓구 넌지시  내게 말을 하면 내가 자네 
위해서 조방꾼이 노릇을 한번 함세. 이름들을 일러줄까?  자네 옆에 보라 저구리
는 추월색, 분홍  저구리는 홍련화, 내 옆은 소월향, 선생님  곁은 두자 이름으루 
소홍이라네.” 소홍이란 계집은 “저 양반이 기생 점고를  하나?” 하고 하하 웃
고 추월색,  홍련화 두 계집은 “조방꾼이  노릇을 썩 잘하시는군.” “오입쟁이 
날이 나면 건달이 되고, 건달이 배고프면 조방꾼이 된다지.” 하고 서로 보며 깔
깔대고 소월향이란 계집은  웃지 않고 “이 양반이 오늘 미치셨나  보아.” 하고 
한온이를 곱게  흘겨보았다. 한온이가 허허  웃고 꺽정이도 껄껄  웃어서 방안의 
웃음소리 요란한 속에 황천왕동이만은 억지 웃음으로 따라 웃는 체하였다.
 한온이가 웃음의 소리 하는 데서 황천왕동이는 소월향이가 한온이와 사이가 좋
고 소홍이가 꺽정이와 관계가 있는 것을 짐작하여 유심히 소홍이를 살펴보며 속
으로 ‘저 따위 년에게 홀려서 헤어나지를 못하다니  눈에 무에 쓰인 게지. 본정
신으로야 그럴 수가 있나.’  생각도 하고 또 ‘내가 서울 온  일은 저년도 아마 
짐작하렷다. 그러면 내가 몰골 사나운 일 당하는  것을 저년은 고소하게 여길 테
지.’ 생각도 하여 소홍이가 밉기 짝이 없었다. 황천왕동이의 눈이 소홍이에게로 
자주 가는 것을 한온이가 보고  “자네두 어떤 양반처럼 살기 있는 기집을 좋아
하는 모양일세그려. 그렇지만  그건 안 되겠네. 처음부터 빼라니까  그래.” 하고 
실없이 말하여 황천왕동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미친 자식이로군.”  하고 욕을 
하니 한온이는 옆에 소월향이를  돌아보며 “네가 나더러 미쳤다구 하기 때문에 
미친 자식이라구 욕을  먹는다. 욕하는 입을 네가  막어다구. 얼른 술 한잔 부어 
드려라.” 하고 싱글싱글 웃었다.  입을 빼물고 있던 소홍이가 “욕맛이 꿀맛 같
소. 온갖 맛 다 잘 아는  이가 자청해 자실 제는 정녕코 단맛이 나는 게지.” 하
고 한온이게 말을 걸었다. “자네  맛 좀 보려나?” “나는 싫소.” “싫으면 빨
기나 하려나?” “빠는 건 다 무어요. 당신의 입은 사복개천이야.” “자네 입버
덤은 정할걸. 자네 입은 뭇사내 입에, 고만둬라.” “왜 고만두시오? 실컨하지.” 
“그러다가 밤참을 날리게.” “오늘 밤참은 벌써 틀렸소.” “실없은 말 고만두
구 밤참은 장만하지 말게.  손님이 기시니까 선생님두 못 가실 것  같구 나두 못 
가겠네.” “손님하고 같이 오시구려.” 황천왕동이는 한온이와 소홍이의 말하는 
손님이 자기 말인 줄  알면서도 모른 체하고 아무 말 아니하였다.  해질 물에 기
생들이 각기 저의 집으로  돌아가는데 소홍이는 잠시 뒤떨어져 있다가 일어서며 
한온이더러 “되지 못한  음식이나마 숙불환생이니 꼭 오시오.”  하고 당부하니 
한온이는 대답을 아니하고 꺽정이의  입을 바라보고 소홍이가 다시 꺽정이 옆에 
가서 “선다님, 어떻게 하실랍니까?”  하고 물으니 꺽정이는 “글쎄.” 하고 대
답을 근지하였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무얼 그러지 말란 말이냐?” “내
가 누구를 푸대접하드냐?” “누가 오지랖 넓게 남의  말 할라구요. 내가 선다님 
뵈압구 할 말씀이 많습니다. 오늘 밤에 꼭 오세요.” "할 말씀 많으면 오늘 종일 
보구 왜 말 안 했느냐?”  “마부가 기다리니까 긴말 할 새 없어요. 자, 나는 갑
니다.” 소흥이가 밖으로 나갈때 황천왕동이에게 “놀러오십시오.” 하고 인사조
로 말하는 것을  황천왕동이는 딴전하고 못 들은 체하였다. 소흥이가  마루 아래
까지 내려가서 다시  방 앞문을 빠끔히 열고  꺽정이를 들여다보며 “꼭 오시지
요.” 하고 다지니 꺽정이는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었다.
  꺽정이와 소흥이의 사이는 계집의  욕심이 사내의 정보다 더 많아서 들러붙고 
떨어지지 아니하여 꺽정이가 박씨, 원씨 두여편네를  데리고 살면서도 이따금 소
흥이 방에 가서 잤었는데 나중 김씨를 얻은 뒤로 한동안 통히 소흥이를 찾지 아
니한 까닭에 한온이가 중간에서 공연한 매원을  들었었다. 소흥이가 한온이의 생
일날 사랑놀음 오기를 언약할 때  생일날 밤참은 정의 집에서 준비할 터이니 임
선다님과 같이  놀러오라고 청하는 것을 한온이는  선선히 허락하고 꺽정이에게 
미리 말까지 하였었다. 이런 속을 황천왕동이는 알 까닭이 없으
므로 혼자 심중에  생각하기를 소흥이란 년이 흉악한 년이다. 저의  선다님을 내
가 빼어가려고 온 줄 짐작하고  밤에 같이 자며 이야기도 못하게 하느라고 갖은 
요신을 다 부려서 저의 집으로 끌어가는 모양이다.  이 별장 말대로 며칠씩 묵어
가며 같이 가자고 졸라야 소용없을 건 정한 일이고 오늘 밤에 자세한 이야기 하
기도 틀린 바엔  대충 할 말 하구서  성문 닫기 전에 떠나가는 게  좋겠다. 하고 
꺽정이를 보고 “나는  지금이라두 떠나겠습니다.” 하고 말하니  한온이가 먼저 
“이 사람 나더러 미쳤다더니 정작 자네가 미쳤네그려.  지금 어딜 떠나 이 사람
아.” 하고 어깨를  툭 치고 꺽정이가 그 다음에 “지금  해 다 졌다. 자구 내일 
가려나.”
하고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죽장같이 부어오른  뺨을 꺽정이는 처음 조는 
듯이 “빰이 아프지나 않느냐?  ” 하고 물어서 황천왕동이가 머리를 가로 흔든 
뒤 곧  “내가 올 때……” 하고  서울 온 사연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별장 
말씀이 이번에는 꼭 뫼시고 오거나  그렇지 못하면 분명히 어느 날 오신다는 말
씀을 듣구 오라고 합디다.  그런데 뫼시구 갈 가망은 없는 것  같으니까 어느 날
쯤 서울서 떠나신다구 대개 날짜라두 정해서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꺽정
이가 흰자 많은  눈을 뜨며 보면서 “내가 너의들에게 매어  지내는 사람이냐!” 
하고 호령하듯 말하는데 언성만 높지 않을  뿐이었다. “매어 지낸다니 말씀이지
만 내가 오구두  싶지 않은 서울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 남에게 매어 지내는 
신세가 가련한  줄을 뼈에 사무치게 알았습니다.”  “그래, 신세가 가련한 줄은 
알았으니 장차 어떻게 할 테란 말이냐?” “여러 사람들이 전부 다 서울루 오거
나 그렇지 않으면  사방으루 흩어진 다구들 하는데  만일 서울루들 오게 된다면 
나는 혼자 광복산버덤 더한 두메 속에 들어가 화전뙤애기를 일워 먹더래두 따라 
오지 않겠습니다.” “무엇이 어째! 사생동고한다구 맹세한  눔들 말본새 되었다.
” “도중 여러분두 가끔들 사생동고 맹세를  들춥디다.” “너부터 말본새가 되
었느냐 말이야!” “나는  말씀 들어봐서 이번에 아주 영결루 하직하니  갈 생각
까지 없지 않습니다.” “영결이든  아니든 갈 놈들은 다 가래라.” “말씀을 더 
들어볼 것 없으니까  인제 나는 떠나가겠습니다.” 황천왕동이가  분연히 일어서
려고 할 때 뗑뗑 울리는 인정 소리가 들리었다.
  황천왕동이가 서울 온 사연을  꺽정이에게 말하는 중에 한온이는 슬며시 마루
로 나가더니 마루에서 거닐면서  “여보게, 안경 소리 듣게. 인제 문밖을 나가려
면 월장하는 수밖에 없네.  그래두 갈텐가?” 하고 황천왕동이더러 말하였다. “
이리 들어오게. 자네에게두 좀 할 말이 있네.” “나더러두 같이 가자구 조를 셈
인가?” 한온이가 웃으며 방안으로 들어와서  황천왕동이를 마주 대하고 앉았다. 
“내가 자네에겐 사과를 해야겠네.” “ 그런 말  하자구 나더러 들어오랬나? 녜 
이 사람.” “자네 몸에 손을 댄  것만은 잘못이거든.” "글쎄 이 사람아, 빰한번 
치기두 예사구 빰 한번 맞기두  예사지 그까지 일에 사과를 하느니 삼전을 하느
니 할 게 무어 있나?  더구나 하윗술까지 먹구  난 뒤 새삼스럽게. 그런 줄 몰랐
더니 자네가 옹졸한 사람일세.”
 “그러구 내가 이번 가면 또  언제 서울을 올는지 모르니까 자네 하구 다시 만
나기두 쉬웁지 못할 것 같애.”  “글쎄, 지금 두 분 수작하시는 말씀에 내가 밖
에서 다 들었는데 날 같은  가욋사람이 참견할 일은 아지니만 나 듣기에는 자네
두 격해서 하는 말이구  선생님두 화나서 하시는 말씀인데. 한 번  더 생각을 해
보시구 다시 이야기하시는 것이  좋을 줄 아네. 이왕 주제 넘게  말을 낸 길이니 
내 소견을 잠깐  말하겠네. 대체 선생님께서 오랫동안 도중을 떠나  가시니까 도
중 여러분이 궁금할 때두 많구 답답할 때두  많겠지. 그렇지만 서울루 다 온다거
나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진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말일세.  우리네가 명호를 
중하게 여기구 의리를 중하게 여기는 까닭에 된 사람 안된 사람 한데 모여서 죽
을 고 살 고를  가리지 않구 일을 하지 않나. 그런데 지금 선생님  명령 없이 서
울루들 온다는 것두 부하루서 대장을 무이 여기는 일이니까 안될 말이지만 사방
으루 흩어진다는  것은 명호뿐인가 의리를  통히 잊어버리는 일  아닌가. 의리를 
잊어버린다는 건
 안될 말이라구 말할 나위두 없네. 그나마  쥐대기루 모인 도중 같으면 오히려두 
모르지만 그래 아무개패  칠형제라면 어느 패에서든지 다  알 만큼 소문이 높이 
난 터인데 사방으루 흩어진다니 빈말이라두 듣기  놀랍지 않은가. 자네루 말하면 
의리 외에 정리가  다른 여러분두 다른데 선생님  앞에서 영결루 하직한단 말이 
어떻게 입에서 나오나? 선생님 화내시는 건 당연한  일일세. 아까 선생님이 자네
게 너무  과하게 하셨으니까 지금 자네  말이 격해 나오기두 쉽지.  그너니 오늘 
밤 자구 내일쯤 다시 이야기를 하시면 좋겠네.”  한온이가 말을 마치고 곧 꺽정
이를 돌아보며 “선생님 제  말이 옳지 않습니까?” 하고 물으니 꺽정이가 한참 
만에 고개를 끄덕이었다.  이때 상노아이 하나가 방문 밖에 와서  “저녁 진지가 
다 되었는데  진지상을 할까 여쭈어 보랍니다.”  하고 말하니 한온이가 “오냐, 
내가 안에  들어가 다녀나올 테다.”  대답한 뒤 황천왕동이더러  “우리 아버지 
저녁 잡숫는 것 잠깐  보입구 나옴세.” 하고 일어서 나갔다. 꺽정이는 외상하고 
황천왕동이는 한온이와 겸상하여  저녁밥을 먹은 뒤에 한온이가 황천왕동이더러 
소흥이에게 같이 가서 놀다 오자고 여러 차례 졸랐으나 황천왕동이는 끝끝내 싫
다고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나중에   꺽정이와 한온이가 기생년에게  실신할 수 
없다고 소흥이 집에 놀러갈 때  한온이는 황천왕동이를 혼자 두고 가는 것이 마
음에 미안하든지 말벗으로 서사를  불러다 준다고 하는 것을 황천왕동이가 일찍 
잔다고 고만두게 하였다.
  황천왕동이가 혼자 짬짬하니 앉았다가 막 자리에 누웠을 때 중문이 열리는 소
리가 곧 마당으로  들어오는 신발 소리가 났다. 건너방의 아이놈들은  벌써 잠이 
들었는지 아무 소리가 없어서 황천왕동이가 내다보려고 다시 일어 앉는 중에 방
문 밖에서 어떤 사람이 “선다님, 예서  주무십니까?” 하고 말을 묻는데 말소리
가 황천왕동이 귀에  익히 들이었다. 황천왕동이가 방 앞문을 열고  내다보며 “
그게 누구냐?” 하고 물으니 어둔 속에 섰는 사람이 “언제 오셨읍니까?” 인사
하고 앞으로 나서는데 보니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요 곧 애꾸눈이 노밤이
었다. “아까는 눈에 보이지 않더니 어디  갔다오나?” “어딜 갔다와요? 선다님
을 찾아왔지.” “자네 여기 와 있구 어디  다른 데 가 있나?” “선다님댁 가서 
있지요.” “선다님댁,  선다님댁이 어디야?”  “동소문 안이오.” “방으로  좀 
들어오게.” “방에 들어 갈 것 없지요. 선다님은 대체 어디 가셨습니까?” “여
기 젊은 주인하구 같이 놀러나가셨네.”  “그렇지, 기생방에 가셨지. 그렇다니까 
술이 취해서 안 오신다구 가 뫼시고 오라구  사람을 성가시게 굴어.” “누구?” 
“누가 그러겠소!  선다님 밀짝이 그러지.”  “잠깐이라두 들어오게. 지금  내가 
잠은 안 오구 혼자서 심심해 못 견디겠네.” “그럼 잠깐 들어가 앉았다 갈까.” 
노밤이가 방으로 들어오며 곧  아랫목에 와서 엉거주춤하고 “방이 차지나 않은
가요?” 하고 요 밑에 손을 넣어보고 그대로 주저물러 앉았다. “여보게, 선다님 
첩두 기생 퇴물인가?” “선다님 첩이 어디 있소?” “자네가 선다님 첩의 집에 
가서 하지 않았나?” “언제 내가 그렇게 명토  박아 말합디까. 그저 선다님이랬
지.” “그럼 선다님이  기집 없이 홀아비 살림을  하시나?” “여기 가두 기집, 
저기 가두  기집, 기집에 걸려서 자빠질  지경인데 홀아비란 다  무어요? 데리구 
살림하는 사람만두 자그마치  셋씩이나 된다오. 그런데 그 세 사람이  각기 본기
집이라지 첩이란 사람 하나 없소. 정작 본마누라님이 이런 걸 알면 기가 찰걸.” 
“네끼 미친 사람.” “누가 미친 사람이란 말이오?  기집에 미친 임선다님 말이
오?” “그래 선다님이 서울서 장가를  세 번 드셨단 말인가? 첩을 셋씩 들어앉
혔대두 곧이가 들리지 않네.” “공연히들 나를  거짓말 잘하는 사람으루 돌리지
만 실상은 나처럼 정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그리 흔치 않습디다.” “자네는 거
짓말을 정말처럼 한다며?” “내가 정말을 거짓말처럼 한 때는 혹간 있었을는지 
몰라두 거짓말을 정말처럼  한 적은 꿈에두 없소.” “선다님 장가  세번 들었다
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구  정말인가 그래?” “장가를 세 번 들었다면 거짓말이 
되게. 서울 본기집 노릇하는  사람이 셋이란 말이지.” “장가 안든 본기집이 어
디 있나, 그 말부터 구석이  비네.” “남성 밑 박씨는 귀밑머리 풀구 성례를 갖
추었다구 본기집이라구, 동소문 안 원씨는 재상 딸을 자세하구 본기집이라구, 역
시 동소문 안 나 있는 집 김씨는 첫날밤에 첩노릇 안 하기루 언약했다구 본기집
이라구, 모두 다 본기집이라지  첩이라지 않습디다. 내말이 왜 구석이 빌 까닭이 
있소?” “박씨, 원씨,김씨란 다 어디서 생긴 것인가?” “선다님이 기집을 주름
잡는 이야기를 통히 못  들으셨구려.” “자네 어디 이야기 좀 하게.” “이야기
할 테니 내게서 이야기 들었다구 선다님더러  말이나 마시오.” 꺽정이가 산림골 
가난한 양반의 집의 딸 박씨에게  장가든 이야기와 당시 재상 원판서의 딸을 업
어온 이야기와 정문 받은 열녀  김씨와 붙어 사는 이야기를 차례로 다하고 노밤
이 자기가 김씨의 집 계집종을 첩으로 데리고 살게 되어서 창피하게 행랑살이한
다는 것까지 이야기하였다. 황천왕동이는 꺽정이의 난봉  부리는 것이 주장 기생
오입이려니 생각하였을 뿐이고  아주 첩을 두었으리라고까지도 생각 못하였더니 
천만 뜻밖에 안해로  대접하는 계집이 셋이나 된단  말을 들으니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노밤이의 얼굴울 뚫어지도록 바라 보고 있다가  “거짓말루 나
를 놀리면 자제 내  손에 죽네.” 하고 야무지게 말하니 노밤이는  말 같지 않게 
여기는 모양으로  히웃으며 “거짓말이면 내  목을 내 손으루  비어 바치리라.” 
하고 다짐 두듯 대답하였다. “자네  동소문 안으루 갈 테지? 나하구 같이 가세.
” “오늘 밤에 같이 가잔 말이오? 길에서  순라에게 붙들려 갈라구요.” “자네
는 어떻게 안 붙들려 가나?” “나는 성균관  수복이패를 가졌소. 순라가 붙잡구 
물으면 관의 급한  심부름을 갔다온다구 거짓말을 꾸며대지요.  성균관을 맹꽁징
꽁하구 밥먹는 데라구 말하는  사람두 있습디다만 실상 옛날 성인들을 뫼셔놓구 
나라에서 춘추루 두 번 굉장하게  치성을 드리는데 그 치성드리는 것을 식전 올
린다구 한답디다. 나라에서 위하는 데라 밤의 순라들두 성균관
 지경에는 발을  들여놓지 못한다우.” “자네  그런 패가 어디서 났나?”  “그 
따위 위조는 이 집에 들이장여 있소.” “서사더러  말하면 하나 얻을 수 있겠네
그려.” “서사가 주인의  말없이 내놓겠소? 공연히 섣부른 수작하다  코떼지 말
구 내일 낮에 선다님을 앞장세우구 오시우. 다  알구 상면 시키라는데 설마 못한
다구 하겠소.” 황천왕동이는 말을 그치고 잠자코  앉았는데 종없이 지껄이기 좋
아하는 노밤이는 지껄일  만큼 지껄이고도 미진하여 혼자서  자꾸 시벌거리었다. 
“남성 밑  박씨는 그 동안 한번  낙태를 했지요. 발써 달포나  되었는데 아직두 
그 빌미루 앓는답디다. 운씨는 약하디약하게 생겼어두  강단이 있어서 밤잠두 별
루 없는갑디다. 선다님이 안 가 주무실 때는  밤늦도룩 언문책을 보는데 초성 좋
기라니 천하일품이오. 우리 안주인이 원씨의 책  보는 소리를 기생년 노랫소리라
구 비웃어 말하지만  실상 기생년들 노랫소리보덤 더 듣기 좋소.  안주인은 사람
만 딱장떼구 아무 취할 것이 없건만 선다님께  제일 고임을 받소. 아무두 잠자리
를 잘하는 모양이야.  원씨는 본래 내 몫으루 정하구 업어오기두  내가 업어왔는
데 선다님이 가루채 가구 김씨네 기집종을 나더러 첩으루 데리구 살라구 내주기
에 기집 없는  놈이 그나마 받았더니 안주인이  나를 곧 비부쟁이루 대접하는구
려. 물계 모르는 여편네는 책망할 것이 없지만  선다님이 그런 대접을 시키는 건 
어찌 생각하면 조금 야숙하다구 할 듯하지요. 안주인이  내 첩이란 것을 보구 내
말을 하자면 꼭 네  서방이라구 하우. 비위 좋기루 팔도에 소문난  나두 그 소리
를 들을 때는 욕지기가  절루 납디다. 그래두 내나 하니까 그  아니꼬운 걸 참구 
지내지 다른 사람 같으면 하루두 못 살구  벌써 나갔을 것이오. 나는 선다님하구 
정분이 여타자별한 터에 나가느니 들어가느니 할  수가 있소. 선다님이 광복산으
루 가게 되면 나두 따라갈  작정인데 서울 살림들을 걷어치우구 가지 않구 나보
구 뒷수습이나 하라면 성가실 모양이오.” 노밤이는  꺽정이가 서울 있는 계집들
을 저에게 내맡기고 얼른 광복산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까닭에 미친놈
처럼 시벌거리는  속에 그 마음이 들여다보이어서  황천왕동이가 속으로 저놈이 
참말 숭물스러운 놈이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노밤이가 저 혼자 실컨 지껄이다가  너무 늦어서 간다고 일어서 나간 뒤로 황
천왕동이는 밤이 가는  줄도 모르고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황천왕동이 마
음속에 이 생각 저 생각  여러 가지 생각이 나는 중에 노밤이 같은 미친놈의 말
을 준신할 수는  없으나 백인데 서사를 끌고  나가서 술잔을 먹여가며 물어볼까 
상노아이들을 꾀솜꾀솜하여 물어볼까.  서사는 바로 말해 줄는지  모르고 상노아
이들에게는 체신을 잃기 쉬워서 생각을 얼른  질정하지 못하였다. 건너방에서 상
노아이들 코고는 소리가 나다 말다 할 뿐이고 온 집안이 조용할 때 큰집과 통래
하는 일각문을 요란하게 열어젖히는  소리가 나며 곧 뒤미처서 “천왕동아 자느
냐?” 한온이의 술취한 말소리가 났다. 황천왕동이는 이때껏  자지 않고 벽에 기
대어 앉아 있었으나 신발 소리로  꺽정이가 오지 않는 것을 알고 비위가 틀려서 
자는 체하고 가만히 있었다. 한온이가 방 앞으로 가까이 오면서 "불을 켜놓구 자
느냐?”하고 소리치는데 불 끄고 자던 건넌방의 상노아이들이 일어나 마루로 나
왔다. “손님 자리를 깔아 드렸느냐?” “손님이  주무신 제 오래냐?” 상노아이
들을 보고 말을 묻고 “이 자식 잠이 꽤  깊이 들었구나.” “네가 길을 와서 곤
한 게다.”  황천왕동이에게 대고 혼잣말을  지껄인 뒤 한온이가  일각문 쪽으로 
도로 갈 때 방안의 황천왕동이는 갑자기 한온이를 불러들일 생각이 나서 “어른 
주무시는 방 앞에  와서 기탄없이 떠드는 자식이 누구냐!”하고 방  앞문을 열치
었다. 황천왕동이가 서사나 상노아이들에게  캐어 물어보려는 것을 한온이에게서 
파내어 들어보려고  생각한 것이다.  한온이가 돌아서서 황천왕동이를  바라보며 
“저 자식 깨었네.” 말하고 마루 앞으로 와서  손에 든 초롱을 상노아이에게 내
맡기고 방으로 들어왔다. “어른  들어오시는데 일어나지두 않느냐! 버릇없는 자
식이로군.” “장승처럼 버티구 섰지  말구 어서 앉아라.” “너 앉은 자리를 비
켜다우. 내가 앉을 테니.” “내  옆에 앉구 싶으냐? 자, 이리 와 앉아라.” 황천
왕동이가 펼쳐 있는  이불자락을 밀치고 요 위에 한온이를 앉게  하였다. “내가 
오늘 밤에 술을 많이 먹었다.” “배움술이 많이 먹어야 서너 잔 먹었겠지.” “
서너 잔 열 꼽절 더 먹었다, 이 자식아.”  “거짓말 마라. 네가 삼십 잔 술을 먹
으면 다 컸게?” “이놈, 버릇없는  소리 마라.” “어린 속에 점잖은 것이 들어
가서 눈이 뒤집힌  게구나. 누구더러 이놈이라니.” “너더러 이놈이랬다.  뺨 한
번 맞구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는 못생긴 너더러 이놈이랬다.” “실없는  말 고
만두세. 내가 자네에게 정당히  물어볼 말이 있네.” “선생님 말을 물어보구 싶
으냐?” “그래.” “선생님은 기생방에서 곯아떨어지셨다. 술을 배운 제자가 번
고를 두세 번 하두룩  취했을 젠 술을 가르친 선생은 알조  아니냐. 너들의 대장
이 내 술선생이야. 너 아니?”  “내가 자네게 물어볼 말은 다른 말일세.” “다
른 말은 무슨 말이냐?” “우리  대장이란 이가 서울서 하는 일이 무언가?” “
술상 받으면 술 먹구 밥상 받으면 밥 먹구  그렇지.” “그 동안 안해 셋이 생겼
는데 중신은 다  자네가 했다데그려.” 한온이가 물끄러미  황천왕동이를 보면서 
“그런 말 뉘게 들었니?”하고  물었다. “광복산 있는 우리들두 귀가 둘씩일세. 
그런 말두 못 들겠나?” “풍설이다. 그 따위  풍설을 듣구 온 까닭에 네가 선생
님께 말을  막하구 내게 골부림을  했구나.” “풍설이라니 헛말이란  말인가?” 
“그렇지, 똑똑한 사람이 왜 헛말을 곧이듣는단 말이냐?” “남성 밑 박씨, 동소
문 안 원씨,  김씨 그것들은 다 무언가?”  “그것들이 무언지 나두 모르겠다.” 
“박씨는 낙태한 뒤 성치  못하구, 원씨는 약하디약하구, 김씨가 제일 고임을 받
는 것까지 다  들었네.” “다 듣구 무얼 묻느냐? 내가  지금 정신이 들락날락한
다. 내일 이야기하자.”  “이 사람 자네가 나를  친구루 알거든 내 말 한마디만 
대답해 주게.  그 세 기집이 다  첩이 아니구 본기집이라니  그것이 정말인가?” 
“본기집 아닌 것이 본기집이라구 하면 본기집이 되나.  그런 건 묻는 사람이 소
견이 없지. 그런  것들이 본마누라 노릇을 하려구 한대두 너의  누님을 쫓아내구 
들어앉진 못할 테니  염려 마라. 허허허, 네가  너의 누님 대신 바가지를 긁으러 
왔구나. 허허허.” “웃지  말게, 속상하네.” “아따 이 사람아,  인생 백년에 시
름 잊구 웃는 날이 몇 날이나 되겠나.” 한온이가 황천왕동이의 어깨를 치고 '반
나마 늙었으니' 노래를 내놓기 시작하였다.
  한온이가 노래 한마디를 법제로 부르고  나서 “어떠냐, 잘하지?” “시굴뜨기
가 소리를 들을 줄이나 아나.” 찧고 까불듯  말하고 또 허허허 웃는데 황천왕동
이는 수심에 싸인 것같이 양미간에 주름을 잡고  펴지 못하였다. “젓국 먹은 괴
양이 상호를 하구 앉았지 말구 좀 웃구 지껄여라.” “나는 자겠으니 고만 가게.
” “내가 바루 가  잘 것이지만 네가 혹시 기다리구 있을까  봐서 일부러 왔다. 
황송한 줄을 모르구  가라다니 너두 사람 될라면 아직 멀었다.”  “진정 말이지 
내가 웃구 지껄일  경이 없네.” 황천왕동이가 말하는 것까지 힘담이  없는 것을 
한온이는 딱하게 보았던지 홀저에 정중한 말소리로  “여보게 근심 말게. 선생님 
일간 가신다네.”하고 말하였다. “기생방에서  그런 말을 다 할 틈이 있던가?” 
“기생방은 왜?” “그럼 어디서?”  “내가 선생님하구 같이 가면서 말씀을 들
어봤네.” “요전번에 수이  나려온다구 하구 반 달이 지났으니까 그  일간두 또 
얼마 동안이나  될는지 누가 아나.”  “선생님이 자네들에게 잠뿍  미쁘지 않게 
보였네그려. 그렇지만 이번에  두구 보게. 틀림없이 가실 테니. 사오  일 안에 가
시나 안  가시나 나하구 내기라두 하세.”  “분명히 사오 일 안에  떠난단 말을 
들었나?” “내가 선생님께  말씀하기를 광복산에서 뿔뿔이 흩어질 리는 없지만 
서울루들 오기는  쉬운데 우들 오면 수선스러우시겠다구  하니까 선생님 대답이 
일간 곧  내려가신다구 하시데. 그래서  일간이야 내려가실 수가  있습니까 하구 
내가 뒷수습할 일을 말씀하였더니 뒷수습은 다시 와서 하드래두 사오 일 안으루 
떠난다구 하시데. 이왕  이렇게 작정하실 바엔 자네를 묵혀서 같이  떠나시는 게 
어떠냐구 여쭈어보지  않았겠나? 선생님 말씀이 가기  싫은 걸 억지루 끌려가는 
것 같아서 재미없다구 자네는 자네대루 보내구 나중  가신다구 하데. 사오 일 안
으루 가실 건 정한 일이니까 자네는 다시 긴  말씀 하지 말구 먼저 가게.” “그
렇지 않아두 나는 내일 첫새벽에 떠나갈 작정일세.” “아침이나 먹구 떠나게.” 
“아침밥은 가다가 지어먹든 얻어먹든 할 테니까 이른  아침 시킬 것 없네.” “
그럼 조반 요기래두 해야지 잔입으로 떠날 수야  있나. 어떻든지 식전 일찍 떠나
게 해줄  테니 그건 내게 맡겨두게.”  “자네가 늦잠 자면 보두  못하구 갈는지 
모르네.” “선생님은  보입구 갈 테지. 선생님  오실 때쯤 나두  나옴세. 그런데 
여보게 흩어지느니 서울루 올라오느니 하는 것이 자네가 지어한 말은 아니겠지?
” “그건 왜 묻나?” “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먼저 나왔나?” “글쎄 그건 왜 
묻느냐 말이야.” “선생님이  벼르시데. 그런 말을 먼저  낸 놈은 그대루 둘 수 
없으니까 가시는 날루  곧 채근해서 별반조처를 하신다데.”  “별반조처를 하거
나말거나 맘대루 하라게.”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알 일이 아니야. 선생님 벼
르시는 폼이 살육이라두 내실 모양 같데. 자네가 가서 미리 입들을 잘 모아두게.
” “자기 앞이 뻣뻣하구 큰소리를 해야지.” “저 사람 보게. 선생님 성미를 잘 
알면서 저런 소리를 하나?” “자네  졸리지 않는가? 나는 눈 좀 붙이구 일어나
야겠네.” “내가  올 때까지 자네 자지  않았었나?” “지금이 어느  땐가 닭이 
벌써 몇 홰째 울었네.”  “자, 나는 갈 테니 어서 자게.” 한온이가  간 뒤에 황
천왕동이는 참말  눈을 붙이려고 이불을 끌어덮고  누웠으나 눈이 반들반들하고 
잠이 오지 아니하여 뜬눈으로 밥을  새우고 파루 치는 소리가 나며 곧 누구에게 
간다 온다 말도 없이 남소문 안에서 떠나나왔다.
  황천왕동이가 서울서 떠날 때는  곧 아침결에 광복산을 들이대일 것같이 빨리 
걸었으나 불과 삼십 리 다락원을  왔을 때쯤부터 일신의 맥이 풀리는 듯 걸음이 
스스로 느려져서 겨우 연천 와서 점심 참을 하고 놋다리고개를 해동갑하여 넘고 
이천읍내를 캄캄하여 들어와서 저녁밥을 새로 지어먹고 밥 먹고 나서 한참 늘어
지게 앉아 있다가  광복산 육십 리를 밤길로  걸어나오니 벌써 한밤중이라 파수 
보는 졸개들 외에는 모두 잠들이 들었었다.  황천왕동이가 먼저 이봉학이 처소에 
가서 자는 것을 일으켜 앉히고  서울 갔다 온 희보를 대강 말한 뒤에 자기 처소
로 왔다. 안해 백씨가 아들아이를 끼고 자다가  남편 목소리에 놀라 일어나서 “
이 밤중에 웬일이세요?”하고 등잔에 불을 켜고 “진지 한 그릇은 솥 속에 넣어
두었지만 해잡수실 것이  없는데 국이나 끓여서 잡수실까요?”하고 관솔에 불을 
당기는 것을 황천왕동이는 배고픈 것보다 첫째 졸려서 못 견디겠으니 불을 끄고 
자자고 말하고 안해보다 먼저  자리에 드러누워서 자는 아들을 어루만지다가 잠
이 들었다. 이튿날  식전에 황천왕동이가 잠은 일찍 깨었으나 노독이  났는지 몸
이 무겁고 머리가 아파서 일어나지  못하고 안해가 갖다 주는 조당수 한 그릇을 
자리 속에서 어린 아들과 같이  나눠먹고 해가 한나절이 되도록 누워 있는 중에 
신불출이가 와서 여러  두령이 모여 앉아서 오기를  기다린다고 통기하였다.황천
왕동이는 처음에  “골치가 아파서  어디 일어나겠다구.”하고 말하였다가  다시 
말을 고쳐서 “소세하구 밥 좀 떠먹구 갈 테니 여러 두령께 가서 그렇게 말씀하
게.”하고 일러 보냈다. 신불출이 간 뒤에 황천왕동이가 일어나서 세수하러 나오
는데 세숫물을 놓아주는 백씨가 얼굴을 보다가 갑자기 놀라며 “한쪽 뺨이 부셨
으니 웬일이에요?”하고 물었다. “인제 봤어?”  “아까도 보았겠지만 무심했지
요. 뺨을 뉘게  맞으셨어요?” “그랬어.” “뉘게요?” “나중에 이야기할께 밥
상이나 얼른 채려노우.” 황천왕동이가 부지런히 세수를  다하고 곧 밥상을 받아
서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 그  누님 백손 어머니가 보러 왔다.  “어제 밤중에 
왔다지? 나는 이때까지  까막히 모르고 있었다. 식전에 와보지  못하겠으면 기별
이라도 좀 해줄 게지.” “몸이 아파서 인제 일어났소.” “어디가 아파?” “골
치가 아프구 다리팔두 아프구.” “노독이 난 게다. 왜 밤길을 걸어오니? 중간에
서 자구 오지. 시급한 일도 없을 텐데.” “이천읍내에서 자구 올까 하다가 고만 
그대루 왔소.” “서울서 늦게 떠났든가?”  “떠나기는 첫새벽 떠났지만 걸음이 
야숙히 안 걸려서 놋다리고개서 해를 지웠소. 겨울해에두 그런 일은 없었는데.” 
“너 간 뒤에 이번에는 그  애 아버지가 너하고 같이 오리라고 모두들 말하더라
만 나는 안 올 줄 알았다.” “일간 온답디다.” “너를 따돌려 보내느라고 일간 
온다고 한 게지.  수이 온다고 하고 보름이 넘어도 안  오는 걸 봐라. 일간이 또 
보름이 될지 한 달이 될지  누가 아니?” “왔다가 다시 가더래구 오긴 곧 온답
디다.” “서울에 무에 못잊어 또 가? 한번  오기만 하면 누가 그렇게 문문이 다
시 가게 둘 줄 알구. 썩 틀렸다.” “자기 발루 가는 걸 누님이 어쩔 테요?” “
내가 허리띠에 목을 매더래도 못 가게 할  테니 두고 보려무나.” “이번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형님이 환장된 사람입디다.”  “무슨 이야기를 들었어?” “
얘기를 하자면 자연  말이 길 테니까 내가 여러  사람들 모인 데 가보구 나중에 
누님께루 가리다.” 황천왕동이는 곧 일어나서 의관을 차리고 처소에서 나왔다.
  여러 두령이 모이는 곳을 도중 상하가 입에들 익은 대로 도회청이라고 부르지
만 대청이 열두 간이던 청석골 도회청과는 비교하여 말할 수 없는 간반통 삼 간
방 하나인데 그나마 꺽정이가  따로 거처하느라고 꾸민 방을 도회청으로 겸하여 
쓰게 된 것이었다.  청석골 도회청에서 위의들을 갖추고 앉을 때와  달라서 일을 
의논하다가 잡담을  섞기도 하고 앉아  있기가 싫으면 비스듬히  눕기도 하였다. 
명색 도회청이란 곳에  여러 두령이 모여서 혹 눕고  혹 앉아 잡담들 하고 있는 
중에 황천왕동이가 들어왔다.  누워 있던 사람들이 분분히 일어 앉으며  여러 사
람이 각인각색으로 인사들 하였다. “잘 다녀왔나? 이리 와서 앉게. 자네가 조금
만 더 늦게 안 오면 우리가 자네게루  제진했을지 모르네.” 늙은 오가는 수다하
고 “며칠 될 줄 알았더니 속히 왔네.”  박유복이는 말수가 적고 “서울 갔다오
신 회보는 이두령 말씀으루  대강들 들었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려구 오시기
를 기다리구들 있소.”  서림이의 말은 요령이 있고 “이번에두 대장  형님을 못 
뫼시구 오구 혼자 와?”  배돌석이의 말은 되바라지고 “밤길 좀 걸었다구 해가 
똥구녁까지 치밀두룩 잔단 말이오?” 길막봉이는 말이 별미쩍고 “오는 길루 우
리 이쁜 아주머니를  못살게 하느라구 발을 새운 꼴이구려.” 곽오주는  입이 마
구 난  창구멍이었다. 인사 수작들이  끝난 뒤에 이봉학이가  황천왕동이를 보고 
“올 때 대장 형님을  못 보입구 왔다구 했지?”하고 물어서 황천왕동이가 “보
입구 더 할  말두 없구 늦두룩 기다리구 있기가 싫어서  그대루 와버렸소.”하고 
대답하니 좌중에서 어찌하여  뫼시고 오지 않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또 안 
보입고 와서 화를 내시지 않겠느냐고 염려하는  사람도 있었다. 황천왕동이는 여
러 사람이 괴상히 여기도록 한참  동안이나 입을 봉하고 앉았다가 한 번 좌중을 
돌아보고 나서 “지금 내 생각에는 우리 대장이란 이가 꼭 오장이 바뀐 것 같은
데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이번에  내가 보구 듣구 온 것을 조금두 숨기
지 않구  죄다 이야기할 테니 다들  생각 좀 해보시우.” 허두를  놓고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꺽정이가 기생년을 끼고 방에 들어앉아서  내다보지도 않고 방에 들
어가서 절을 하여도 눈도 거들떠보지 않던 것과 한온이와 시비를 차리는데 꺽정
이가 한온이 편을 들어서 뺨치고 떠다박지르던 것과 꺽정이가 한온이와 같이 기
생방에 놀러가서 한온이만 돌려보내고  자기는 자고 오지 아니한 것과 꺽정이가 
기생방에 가기 전에 틈을 타서 같이 오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느 날 오겠다고 분
명히 날짜를 말하여 달라고 조른즉 내가 너희들에게 매여 지내는 사람이냐 소리
지르고 도중에서 다 서울로  올라가게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될는지 모른다고 말한 즉 갈  놈들은 다 가거라 소리지르던 것을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노밤이의 이야기와  한온이의 수작을 옮기어서 여럿에게  들리었다. “그
것 보시오. 세상에는 영웅이 더 염려라구 내  말하지 않습디까?” 서림이가 먼저 
한마디 하고 “대장 형님이 기집에 곯아죽었더면  서종사는 퍽 신통할 뻔했소.” 
곽오주가 뒤받아 한마디 하고 “우리 대장이  기집질에두 대장일세.” 늙은 오가
도 한마디 하고 “사생동고하자구  맹세하구 갈 놈은 누구며 가랄 놈은 누구야?
” 배돌석이도 한마디 하고 “시골 안해 한 분에 서울 안해 셋이면 대장 형님두 
배두령 형님과 같이  사취 장가까지 드신 셈이군.” 길막봉이도 한마디  하여 이 
사람 저 사람이 다들  한마디씩 지껄이는데 이봉학이와 박유복이는 입들을 다물
고 말참례를 하지 아니하였다.
  황천왕동이가 이봉학과 박유복이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형님네는 아이적 동
접으루 자형 일을 고주리미주리까지  다 잘 아시지만 기집동사에 생각이 어떻든 
건 나만큼 모르시기  쉬우리다. 본기집이 튼튼해서 애새끼 낳을 만한데  첩을 두
는 건 잡놈의  짓이다, 오입으루 기집질을 하더라두  첩은 둘 것이 아니다, 첩을 
두면 집안이 시끄러워 못쓴다, 우리 누님을 보구  자네가 늙다리 되기 전엔 첩을 
안 둘 테니 안심하게, 첩을  둘라면 벌써 두었네, 계제가 없어 못 두었겠나 이런 
말 하는 것을 내 귀루두 많이 들었소.평일에 이런  말을 하던 이가 지금 첩두 아
니구 본기집으루 기집을 셋씩이나 두었다니 오장이 바뀌지 않구야 그럴 리가 있
소? 우리 남매가 허항령 무인지경에서 세상을 모르구 자란 사람으루 자형 한 사
람을 믿구 바라구 세상에 나와서  이십 년 세월을 지나는 동안에 누님뿐 아니라 
나두 자형을 하늘같이 여겨 왔는데 하늘이 사람을  속일 줄이야 누가 알았소. 내
가 뺨맞구 떠다박질린 건 그  당장 야속했을 뿐이지만 자형이 환장한 것은 생각
할수록 분하우. 형님네두 우리 남매가 돼서 생각 좀 해보시우. 이렇게 분할 데가 
어디 있겠소.”하고 원정하듯 하소연하듯 말한 뒤에 한숨까지 길게 쉬었다. “아
주머니 보였나?” 박유복이가 물어서 “누님  말씀이오? 보였소.” 황천왕동이가 
대답하였다. “아주머니께서  펄펄 뛰시겠네.” “누님께는 아직  말씀 못했소.” 
“말씀 안  하기를 잘했네.” “이따가 말씀할  작정이오. 누님이 그러지 않아두 
동기간에 말을 기인다구 늘 사살을  하는데 이런 일을 말씀 안할 수 있소?” “
말씀하는 게 부지러울 것  같애.”“내가 말씀 안 하면 모르실 일일세 말이지요.
” “말씀을  하더래두 좀 두었다가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다른  데서 말이 
나서 듣구 보면 나는 누님만 기인 사람이  될 테니 말씀하겠소.” 박유복이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할  그 즈음에 이봉학이가 박유복이더러 “남매간에 이야기하
구 안  하는 건 대사가 아니니까  황두령이 자량해 할 일이야.”  말하고 좌중을 
향하여 “대장 형님께서 잠깐 왔다  또 가신다면 여간 큰일이 아니니 무슨 수단
으루 다시 못 가시두룩  할까 그게나 좀 의논들 해보지.”하고 말하였다. “서울 
있는 기집들을 다 끌어 내려오면 다시 안  가시겠지.” “우리들이 못 간다구 붙
잡구 늘면  어쩌겠소?” “또 가신다거든  우리들두 다같이 간다구  나섭시다.” 
“우리 재물을 노루 다 찾읍시다. 재물이 없으면 기집질두 못할 것 아니오.” 여
러 사람이 중구난방으로 말하는 중에 서림이가 헛기침을 한번 하고 “안팎 손이 
맞으면 다시 못 가시게 할 수 있지요.”하고  말하여 “안팎 손이라니?”하고 이
봉학이가 물었다. “안에는 첫째 대장 부인 그외에 다른 식구들, 밖에는 첫째 우
리 그외에 두목과 졸개들 전부가  합심해 가지구 다시 못 가신다구 붙잡을 사람
이 붙잡구 매달릴 사람이 매달리구 애걸할 사람이 애걸하구 사리루 말씀할 사람
이 말씀하구 등장을  들 사람이 등장 들면 대장두 꼼짝  못하시리다.” 서림이가 
말을 끝내고 좌중을 돌아볼 때  마침 꺽정이의 아들 백손이가 밖에 와서 헛기침
하며 곧 방문을  열고 들여다 보았다. “너 어째 왔느냐?”  이봉학이 묻는 말에 
백손이는 “외삼촌 아저씨를  좀 보러 왔세요.” 대답하고  나서 황천왕동이더러 
밖으로 나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황천왕동이가 방에서  나가지 않고 “왜 나오라
느냐?”하고 물으니  백손이가 누구의 심부름이란 말도  없이 그저 “심부름 왔
소.”하고 대답하였다. 황천왕동이는  성미 급한 누님이 자기를 기다리다 못하여 
부르러 보낸 줄을  짐작하고 “오냐, 곧 갈  테니 너 먼저 가거라.”하고 이르니 
“심부름을 잘했느니 못했느니  잔소리 듣기 싫소. 같이 갑시다.”하고 백손이가 
혼자는 안 가러 들었다. 
  황천왕동이가 생질을 앞세우고 오는데  그 누님이 싸리문 밖에 나와서 기다리
고 있다가 “잠깐 다녀온다더니  웬걸 그렇게 오래 있니?”하고 더디 오는 것을 
나무랐다. “언제  내가 잠깐 다녀온다구  합디까?” “와서 이야기한다기에  곧 
올 줄 알았지, 누가 오래  될 줄 알았어? ” “서울 갔다온 이야기가 좀 길었소.
” “그럼 나두 한옆에 가 앉아서 들을  걸 그랬다.” “누님이 도회청에 무어하
러 온단 말이오?” “너 하는 이야기야 들으러  못 갈 것 무어 있어.” “누님이 
들어야 화나구 속상할 이야기뿐이오.”  “신신치 못한 이야긴 줄 나도 다 안다.
” “누님께는 이야기를 안 하구 고만둘 생각두 없지 않소.” “오, 내가 성말라 
죽는 걸 보고 싶으냐? 그 따위 소리 하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자.” 안방, 건넌방 
두 방에 안방은 꺽정이의 누님  애기 어머니가 쓰고 건넌방이 백손 어머니의 쓰
는 방이라 남매 모자 세 사람이 건넌방으로 들어오는데 안방에서 애기 어머니가 
내다보고 “봉산 양반이  오시는군.”하고 말하며 밖으로 쫓아나왔다. 애기 어머
니까지 네 사람이 건넌방에들  들어와서 앉은 뒤에 황천왕동이가 애기 어머니를 
보고 “애긴  어디 갔소?”하고 물었다. “산상골네가  앓는데 어린애 좀  가 봐 
주라고 보냈어.” “산상골  아주머니가 어딜 앓소? 대단친 않기에  박두령 형님
이 도회청에를 왔지.” “어제 저녁밥이 체했다나 보아.” “그런 이야기는 고만
두고 어서 서울 이야기나 좀 해라.” 백손  어머니의 말에 황천왕동이는 녜 대답
하고 “애기 어머니두 좀 들어보시우.” 말하고  나서 꺽정이에게 뺨맞고 떠다박
질린 것부터 먼저  이야기 하였다. 백손 어머니는 눈이 샐쪽하여지며  “그래 너
는 가만히 있었어?”하고 황천왕동이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가만 있
지 어떻게 하우?”  “어떻게 하우란 무어야. 힘이 모자라면  말로라도 해보아야
지.” “마음이 변한 사람에게  말이 귀에 들어가우? 말하면 말이나 귀양보내지.
” 애기 어머니가  황천왕동이더러 “잘했소. 그 사람은 덧들이지 않는  게 제일
이야.”하고 말하는 것을 백손  어머니가 “그게 자디 동생만 아시는 말이지. 아
무 죄없는 사람을  때려죽이려고 해도 가만히 있어요?”하고 가로  탄하였다. “
내 동생이 자네겐  아무것도 안 되나?” “내게야 무에 되요?  남남끼리지.” “
남남끼리라는 자네가  친동기간인 나보담 더  가까울걸.” “형님은 고만두세요. 
누가 형님하구  말하쟀세요.” “내가 먼저 자네더러  말하자든가?” 황천왕동이
가 중간에서 손을  내저으며 “내 이야기나 다 듣구 말씀들  하시우.”하고 꺽정
이의 서울 안해가 셋씩이나 되는 것을 마저  다 이야기 하였다. 백손이는 “아버
지가 미쳤군.” 말하고  애기 어머니는 “동생이 그게 웬일일까?”  말하는데 백
손 어머니는  말도 못하고 얼굴빛에  새파랗게 질리고 몸까지  부르르 떨리었다. 
황천왕동이가 한참 동안 가만히 앉아서 그 누님의 모양을 바라보고 있다가 “누
님 좀 누우시려우?”하고  물으니 백손 어머니는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형님
이 맘 변한  건 나두 분하니까 누님이야  더 말할 것 있소?  그렇지만 참으시우. 
형님이 앞으루 어떻게 하나 하는 꼴이나 좀  두구 봅시다.” 황천왕동이가 그 누
님을 안위시키는 말에 “그럼,  우리 여편네는 무슨 일이든지 참는 게 제일이야.
” 애기 어머니가 동을 달고 “두구 본다니 두구 보면 아저씨 무슨 수 있소? 어
머니가 소박뜨기나 되구  말지.” 백손이는 뒤받았다. 황천왕동이가 생질보고 “
나두 생각이 있다.” 말하고 백손이가 외삼촌에게 “무슨  생각이오? 나 좀 들어
봅시다.” 말대답하여 구생간에  말이 오고가기 시작하였다. “너의 아버지가 우
리 누님을 소박하면  우리 누님두 너의 아버지를 소박하지. 외소박  내소박이 맞
장구치면 고만 아니냐.” “아저씨가 어머니를  다른 서방 얻어주겠단 말이오?” 
“내소박이 다른 서방 하는 것인 줄 아느냐?” “그럼 무어요? 아버지하구 맞장
구를 치자면 어머니가 다른  서방을 얻어야 하지 않소.” “말 같지  않은 말 하
지 마라.” “아저씨 생각을 좀 똑똑히 말해 보우.” “누님이 내외간에 같이 살
지 못하게 된다면 나는 할 수 없이 누님을  뫼시구 다른 데루 갈 생각이다.” “
다른 데 어디루 갈 테요?” “갈 데 없어 못 사겠느냐? 우리 부모 산수 밑에 가
서 살다가 죽은  귀신이라두 부모 형제 한테 모이구 좋지.”  “기껏하여 백두산 
속으루 도망갈  생각이구려. 그게 어디 맞장구요.  내 생각에는 아버지가 기집을 
셋이구 넷이구 끌구 와야 다  따루 살리지 우리하구 한데서 살라진 않을 테이까 
그까지 년들 우리하구 상관없으면 고만 아니오.”  “너의 아버지의 안해면은 네
게 어머니야. 너부터 상관없이  못 지낼 게다.” “아버지가 기집에 미쳐서 줏어
들이는 년들을 어떤 쓸개빠진 눔이 어머니라구 하겠소? 이년 저년 하며 해라
해두 좋지.” “너의 아버지한테 맞아죽으려구?”  “내가 맞아죽을 지경이면 그
년들을 다 때려죽이구 죽지 외자루 죽지 않소.” “어디 두구 보자.” “두구 보
구려.” 백손이가 외삼촌에게서  얼굴을 돌리어 어머니를 향하고  “아버지가 우
리를 돌봐 주지 않더래두 내가  나이 이십인데 설마 어머니 하나를 편하게 먹여 
살리지 못하리까.  아무 염려 마우.”하고 말하니  백손 어머니는 들어붙은 입이 
겨우 떨어져서 “듣기 싫다.”하고 소리를 질렀다.
  도회청에 모였던 다른 두령들은 다 각각 자기 처소로 돌아가고 이봉학이와 서
림이 두 사람이 뒤에 남아서  바둑으로 소견하고 있는 중에 애기 어머니가 이봉
학이를 찾아서 도회청에를 나왔다. “누님  웬일이시우?” “백손 어머니가 서울 
간다고 나갔어. 아무리 말려야  말을 들어야지. 백손이란 자식이 좀 지각이 있으
면 저의 어머니를 못 가게 붙들 것인데 이 자식이 저두 간다고 뜨주거리고 따라
갔어. 모자가  서울을 가고 보면 무슨  일이 날는지 모르는데 이걸  어떻게 하면 
좋아!” “황두령이 가서 서울 이야기를 했구먼요.” “서울 이야기를 백손 어머
니가 듣고 곧 기절할 것 같았어.” “황두령은  어디 있나요?” “이야기하고 한
참 앉았다 자기 집으로 갔지.” “황두령더러 쫓아가서 뫼시구 오라구 이르지요.
” “황두령이 혼자 가서 될 듯하면 내가  바루 황두령에게 가서 말했게. 황두령 
혼자 가서 안 되어.  여러분이 다같이 가셔야지.” “여러 두령들을 불러모아 가
지구 이야기하리다.”  “멀리 가기 전에 얼른  쫓아가도록 해요.” “염려 말구 
누님은 들어가시우.” 이봉학이가 즉시 도회청 가까이  있는 두목과 졸개를 불러
서 여러 두령에게 나눠 보내며 빨리들 가서  뫼시고 오라고 분부하였다. 여러 두
령들 오기 전에  서림이가 초벌 의논삼아 의견을 말하였다. “대장의  부인과 아
들이 서울을 가면 일장풍파는 나겠지만 그 대신 대장이 속히 오시게 되구 또 가
신단 말을 못하게  될는지 모르니 쫓아가서 붙들지  말구 그대루 내버려 두시면 
좋겠소.” 서림이의 말을  이봉학이가 처음에는 옳게 여기고 “글쎄.”하고 고개
를 끄덕이다가 다시 생각하고 “그래두 그대루 내버려  둘 수야 있소. 우리가 몰
랐으면 모를까.”하고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황두령을 같이 가라지요.” “황
두령이 갈라구 하까?” “황두령이  안 간다면 박두령이 어떠까요?” “이왕 사
람이 따라갈 바에는 풍파 나는  것을 진정시킬 수단 있는 사람이 갔으면 좋겠는
데.” “그건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이두령께서 친히 가시는 게 제일이오.” “내
가 웬  그런 수단이 있을세 말이지.”  여러 두령이 하나둘 오기  시작하여 잠깐 
동안에 다 모이었다.  이봉학이가 여러 두령들을 보고 백손 어머니가  아들 데리
고 서울길 몰래  떠난 것을 말하고 여럿이  다같이 쫓아가서 붙들어보다가 정히 
붙들리지 않거든 누가 서울까지 따라가기로 하고 내처 따라갈 사람을 아주 작정
하여 가지고 쫓아가자고 말한  다음에 고개 숙이고 앉았는 황천왕동이를 바라보
며 “황두령 한 번만 더 가려나?”하고 물어보았다.  “내가 다들 가는 데까지는 
같이 가두 서울은 못 가겠소. 몸두  괴롭구 또.” “긴말은 고만두게.” 이봉학이
가 황천왕동이의  말을 중둥무이시키고 “너  가보려느냐?”하고 옆자리에 앉은 
박유복이를 돌아보았다. “내가  가서 되겠소?” “무에 되겠느냔  말이야?” “
대장 형님 내외간에 쌈이 나면 내가 어디 말릴  수 있소.” “그야 누군 가면 말
릴 수 있나.” “이두령 형님!” 황천왕동이가 불러서 이봉학이가 고개를 앞으로 
돌리었다. “내가 아까  들으니까 산상골 아주머니가 편치 않으시답디다. 집안에 
우환이 있는데 박두령  형님이 가실 수 있소. 그리구 형님이  가셨으면 누구버덤
두 낫겠소.”  이봉학이가 황천왕동이의 말은  대답 않고 다시  박유복이를 돌아 
보며 “아주머니가 병환이 났어?”하고 물었다. “배가 좀 아프답디다.” “대단
친 않아?” “대단친 않아요.” “그럼 긴말 할  것 없이 너하구 나하구 둘이 가
기루 작정하구 가보자.” 황천왕동이가 먼저 “그러면 더욱 좋겠소.” 말한 뒤에 
다른 두령들도 다  좋다고 말하였다. 이봉학이가 서림이를 뒤에 남기며  졸개 하
나에게 길양식을 지워서  곧 보내라고 이르고 그  나머지 두령들과 같이 백손이 
모자의 뒤를 쫓아나섰다. 산에서 내려와서 거의  오릿길이나 오도록 백손이 모자
의 그림자도 보이지 아니하여 황천왕동이를 먼저 가서 붙들고 있으라고 앞서 보
내고 다른 두령들은 뒤에 오는데 십리를 훨씬 넘어 와서 황천왕동이에게 붙들려 
앉은 백손이 모자와 서로  만났다. 가려는 사람은 외곬이요, 붙드는 사람은 두동
싸니 붙들릴 리가  없다. 이봉학이가 박유복이가 마침내 백손이 모자와  같이 서
울까지 가게 되었다.
  백손 어머니가 이십 년 동안 먼 길을 걸어본 일이 없으나 백두산 속에서 들짐
승같이 자랄 때  연골에 배운 걸음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일행 중에 앞설 때가 
많고 뒤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광복산서 떠나던 날부터  나흘 되는 날 저녁때 일
행이 남소문 안  한첨지 집으로 들이닥치는데 이때  마침 한첨지 부자는 불일간 
작별할 꺽정이를 청하여 점심에 술대접을  하고 술 뒤에 서로 한담들 하고 있었
다. 광복산에서 손님들이 오셨는데 아낙네가 한 분,  총각이 한 분, 전에 한두 번 
보인 듯한 어른이 두 분, 그외에 짐꾼이  하나라고 바깥 심부름꾼이 거래하는 것
을 서사가 받아서 한온이에게 말할 때 이때까지 화평하던 꺽정이의 얼굴이 갑자
기 험하여졌다. 한온이는  꺽정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황가눔이  도망하듯 몰래 
가더니 가서 무슨 소리 지껄인 게로군. 모두  서울루 올 작정하구 이번에 선진이 
왔나, 어째  안부인네가 다 오셨을까?”  혼잣말로 지껄이고  한첨지는 꺽정이의 
눈치를 살핀 뒤  아들을 보고 “네가 나가서  안으서는 안으루 들어가시게 하구 
두령들은 사랑으루 들어오게  하렴.”하고 말을 일렀다. 꺽정이가 한첨지에게 “
그럴 거  없습니다.”하고 말한 뒤에  곧 한온이더러 “심부름꾼  시켜서 옆집에 
갖다 들여앉히게 하게.”하고 말하였다.  “안부인네가 누구시까요?” “글쎄, 우
리 누님이  왔는지두 모르겠네.” “나가보시지 않으렵니까?”  “누님이 왔더라
두 이따 가서 보일라네.” “그럼 내가  나가지요.” “고만두게, 자네두 나갈 거 
없네.” “심부름꾼만 시켜서야  어디 대접이 됩니까? 저 사람이라두  나가 봐야
지.”하고 한온이가 서사더러  오신 손님들을 옆집으로 인도하라고  말하여 내보
냈다. 꺽정이가 공연한 늑장을  부리고 앉았는 중에 마당에서 “여보 형님, 우리
들 왔소.” 이봉학이의 말소리가 나는데 한온이가  방문을 열고 내다보며 “아이
구, 이두령 박두령 두  분이 오셨네. 어서 들어보십시오.”하고 방으로 청하였다. 
이봉학이와 박유복이가 방에 들어와서  꺽정이와 한첨지에게 각각 절들 하고 한
온이의 벌 한번을 둘이 함께 받고 자리에 앉은 뒤에 꺽정이가 체증기 있는 말소
리로 “왜들 왔나?”하고 물으니 이봉학이가 선뜻 “서사에게 말을 들으니까 세 
분이 한담들 하구 기시다기에 주인 부자분을 보입기 겸해서 형님 오시기를 기다
리지 않구 우리가 왔소.”하고 옆집에서 온 것을 발명하여 대답하였다. “시굴서 
왜 왔느냐는 말이야?”  “시굴서는 안 올 수가  없어 왔소.” “안 올  수 없는 
일이 무슨  일이야?” “우리가 형님하구  쌈질하러 왔소.” “쌈질? 못할  소리 
없군.” “쌈질을 해두 톡톡히 하려구 대장 한 분을 뫼시구 왔소.” “한다 할수
록 점점 더하네그려. 안식구하구 같이 왔다니  안식구가 누군가? 우리 누님인가?
” “형님이 누님하구 쌈할 일이 있소? 어째 누님으루 생각이 드실까?” “그럼 
누구야, 백손이 모자하구 같이  왔나?” “인제 옳게 아셨소.” “천왕동이란 눔
이 가서 그 누이를  충동인 게군. 그러나 그것들이 오는 것을  너희들이 못 오게 
안 하구 되려 따라온단 말인가. 사람들이 지각이  있나 없나?” “아주머니 모자
만 오게 내버려 두었더면 우리는 지각 있는  사람이 될 뻔했구려.” “왜 내버려
두어! 못 오게 못하구.” “대판 쌈하러 오는 사람을 뉘  장사루 못 오게 막겠소.
” “누구하구 쌈을 하러 와? 그년이 죽구  싶은 게지.” “우리들 듣는 데는 아
주머니께 년자두 놓지 마시우. 우리 둘이 다 아주머니 편이오. 형님 있구 형수지
만 형님이 그르구 형수가 옳은데야  형수 편을 안 들 수가 있소?” “자네가 나
를 싯까스르는 모양인가? 무에  그르구 무에 옳다구 잔소린가?” “형님이 서울 
와서 한 일을 속으루  생각해 보시우. 잘했나 못했나.” “잘했으면 어쩌구 못했
으면 어쩌란 말이야?” “잘못한 건 잘못했다구  말하는 게 옳지, 그래 잘못하구
두 염체없이 뻗대야 옳소?  형님이 잘못했다구 한번 고패만 빼면 우리들은 말할 
것 없구 아주머니두 부득부득 쌈하러 덤비지  않을 게요. 몰골사납구 수퉁스러운 
꼴이 나구 안 나는 게 형님께 달렸으니  생각해 하시우.” 이런 말이 황천왕동이 
같은 사람 입에서  나왔으면 벌써 듣기 싫다고  소리를 질렀을 것인데 꺽정이가 
이봉학이를 황천왕동이  등대로 홀대하지 않는  까닭에 그 말을  잠자코 들었다. 
꺽정이의 내외간 쌈을 미리  방지할 생각으로 이봉학이가 꺽정이에게 실없는 말 
쇰직하게 여러 말 하는 것을 박유복이는 가만히 듣고만 있더니 이봉학이의 생각
을 꺽정이가 잘 모를까 염려가 되든지 “형님,  아주머니를 욱대길 생각 말구 잘 
달래시우.”하고 당부하듯 말하였다.  “너희들이 짜구 와서 나를 흔드는 모양이
냐?” “흔들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발명두 듣기  싫다.” 박유복이는 
다시 말을 못하고 이봉학이는 더 말을 아니하여 좌중에 말이 그
치게 되었을 때 한첨지가  이봉학이와 박유복이를 보고 “어디서 점심들을 자셨
는지 시장하시겠소.”하고  말한 뒤 곧  아들더러 “저녁이 어떻게  되었나 재촉 
좀 해라.”하고 말하여 한온이가 녜 대답하고  일어서며 꺽정이에게 “저녁을 어
디서 잡수시렵니까?”하고 물었다. “어디서 먹다니 나는  저녁을 안 줄 말인가?
” “내외분과 부자분이 모쪼와서 단란하게 잡수실라느냐구 여쭤 보는 말씀입니
다.” “허 그 사람 참.” 꺽정이가 어이없어 하는 것을 한첨지는 보고 웃으면서 
다시 아들더러 “모자분 저녁만 저 집으루 내보내게 해라.”하고 일렀다. 한온이
가 안으로 들어간 뒤  박유복이가 이봉학이를 보고 “아주머니가 기다리실 텐데 
우리라두 좀 갔다와야 하지 않소?”하고 의논하는 것을 꺽정이가 “고만두구 여
기 앉았게.”하고 일러서 가지 못하게 하였다.
  백손 어머니가 광복산서  뛰어나올 때는 꺽정이와 사생결단하려고까지 마음을 
먹었었으나 이봉학이와 박유복이와 길에 오면서 이런 말 저런 말로 마음을 얼마
쯤 눅여 줄  뿐 아니라 나흘 날짜가 지나는  동안에 마음이 절로 조금 석어져서 
꺽정이가 얻은 계집들을 다 보내고 광복산으로 같이 간다면 쌈도 이심스럽게 아
니할 생각이 나게 되었다. 이봉학이와 박유복이가  꺽정이를 데리고 온다고 나갈 
때 백손 어머니는 곧들 올  줄 알았다가 오래도록 오지 아니하여 겁겁한 성미에 
곧 쫓아가 보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는 중에 방안이 침침하여지며 아이 하
나가 촛불을 켜놓고 바깥이 컴컴하여진 뒤 여편네 하나가 겸상인 밥상을 가지고 
왔다. 백손 어머니가 “우리하고 같이 온 양반들  어디 있소?”하고 물어보니 상 
가지고 온 여편네가 “앞사랑에들 기신가 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앞사랑이 
어디요?” “큰사랑방을  앞사랑이라고 한답니다.” “여기서  가찹소?” “가찹
고말고요. 한집안 속인데요.” “거기서들 저녁을 먹는답디까?” “우리 젊은 서
방님까지 겸상겸상  네 분 진지를  앞사랑으로 내갔습니다.” “그럼  이건 우리 
모자 먹을  밥상이오?” “녜, 그렇습니다.” 백손이가  밥상을 보더니 시장기가 
갑자기 나는지 “어머니, 얼른 먹어치웁시다.”하고  밥상으로 대들었다. 그 여편
네가 “우리 주인 아씨 동서분이 나와 보일 텐데 자제 도령이 기시다고 해서 못 
나오신다고 말씀하십디다. 시장들 하실 테니 어서 많이 잡수십시오.” 전갈과 인
사를 뒤섞어 하고  나가자 백손이가 먼저 숟가락을 들기 시작하였다.  백손 어머
니는 두서너 술 뜨다가 고만두고  백손이는 저의 밥을 다 먹고 부족하여 부리만 
헐다 만 어머니의 대궁까지  마저 다 먹었다. 저녁상을 내간 뒤에도  또 오래 있
다가 꺽정이가 비로소 오는데 그 뒤에 이봉학이와 박유복이가 따라오고 또 백손 
어머니의 낯모를 사내 하나가 따라왔다.
  꺽정이가 여러 사람의 앞을 서서  방안에 들어설 때 백손이 모자가 모두 윗간
에 올라와 있는데 백손 어머니는 치맛자락을 휩싸고 살천스럽게 앉아 있고 백손
이는 떡 일어서  있다가 들어서는 발밑에서 절을 하였다. 꺽정이가  뒤따라온 세 
사람과 같이 아랫간에 내려가서  앉은 뒤에 이봉학이가 백손 어머니의 낯모르는 
젊은 사내를 가리키며 백손 어머니께  “이 친구가 이 집 젊은 주인인데 아주머
니를 보이러 왔습니다.”하고  인사를 붙이고 한온이가 일어서서  “절하구 보입
겠습니다.” 말하고 공손히 절하는데 백손 어머니는  일어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일어나듯 가까스로 일어나서 절을 맞았다. 한온이가  다시 앉으며 이봉학이를 돌
아보고 “저 총각이 선생님 자제  백손이지요? 선생님을 많이 닮았습니다.”하고 
인사를 시켜 달라는 눈치로  말하여 이봉학이가 백손이를 한온이에게 절하고 인
사하게 하였다.  꺽정이는 아랫목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았고  백손 어머니는 
아랫간을 등지고 돌아앉아서 서로  보지 않고 백손이는 골난 사람같이 뿌루퉁하
게 앉았고 박유복이는  어리석은 사람같이 덤덤히 앉아서  모두 말이 없고 오직 
이봉학이와 한온이가 몇  마디 수작을 하다가 말다가 하고 한동안이  지났다. 한
온이가 더  앉았기 재미없든지 이봉학이와 박유복이더러  “우리는 도루 나갑시
다.”하고 말하니 이봉학이는  선뜻 한온이와 같이 일어서고  박유복이는 무춤무
춤하고 잘 일어서지 않은 것을  이봉학이가 가자고 끌어서 세 사람이 같이 마루
로 나가서 수군수군  공론하고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백손 어머니가 이제  좀 말
을 해보려고 꺽정이를 향하고  앉아서 말시초를 시비가락으로 낼까 인사조로 낼
까 주저하는 중에 꺽정이가 몸을  일으켜 꼿꼿이 앉으며 큰기침을 한번 하고 “
너희들은 내 말  없이 어째 서울을 오는  거냐!” 아들과 안해를 한데  껴잡아서 
말을 내었다.  백손이는 말대답을 아니하여도  좋을 것인데 아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은 것같이 얼른  “나는 아버지를 보이러 왔소.”하고 
대답하였다. “누가 보구 싶다구  오라드냐?” “보입구 할 말씀이 있소.” “할 
말이 무어냐?” “나두 장가 좀 들여주시우.” “장가? 이눔 뻔뻔스럽게.” “아
버지는 장가를  자꾸 드신다며 나는 안  들어주실라우?” “네가 뒤어지구 싶으
냐, 이눔!” 담 작은  사람은 초풍을 할 만큼 꺽정이가 큰소리를  질렀다. 백손이
는 본래 무섭게  구는 아비 앞에서 할 말  다하는 위인이라 조금도 겁내지 않고 
“아버지더러 장가들여 달라는 게 무슨  죽을 죄요?”하고 들이대었다. “아가릴 
찢어놓기 전에 가만히  닥치구 있거라.” 꺽정이가 호령할 때 윗간  방문이 열리
고 이봉학이가 백손이를  들여다보고 “잠깐 이리 나와서 내 말  좀 들어라.”하
고 불러내 가더니  억지로 끌고 건넌방으로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자식에게라
두 그렇게 당해  싸지.”하고 백손 어머니가 혼잣말로 말을 내기  시작하자 “무
엇이 싸단 말이야,  이년아!” 꺽정이가 대뜸 년자를 내붙였다.  “무얼 잘했다구 
큰소리야!” “이년아,  내가 네게 큰소리 못할  게 무어냐!” “콧구멍 둘  마련 
잘했다. 사람이 기가 막혀 죽겠네.” “되지 못한 말 지껄이지 말구 가만히 있거
라.” “되지 못하게 기광 부릴 생각 마라.”  “이년을 곧.” “곧 어째?” “내
가 창피한 생각이  없었으면 너희들은 벌써 초죽음했다.” “꼴에 창피를  다 알
아.” “지금 한 말 다시 한번 더  해봐라. 가만두니까 꾄 듯싶어서.” “다시 한
번만? 백번이라도 더 할 테야.” 꺽정이가 벌떡  일어나서 한걸음에 뛰어오며 곧 
백손 어머니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꺽정이가 해거를  부리려 들자마자 백손 어
머니 입에서 발악이 막혔던 물 터진  것같이 쏟아져나왔다. “오냐, 어디 해보자. 
네가 나를 죽이기밖에 더하겠느냐? 내가 네 손에 죽지 않으면 내 손으로 자결해
서라도 죽지, 뒷방에서 천덕꾸러기  노릇하고 살지 않는다. 첩도 안 얻겠다던 놈
이 본기집이란 게 자그마치  셋씩이야? 본기집 명색이 한꺼번에 셋씩 넷씩 되는 
법이 어디 있더냐, 이놈아! 지금은 부모 거상을 삼 년 입는 세상인데 너 혼자 옛
날 법이라고 스무이레 입고 시지부지 고만두더니 상제 복색 입고 기집질하기 거
북해서 미리  고만두었느냐? 내 머리에 흰  당기는 너 아버지  거상이다. 흰당기 
드린 머리를 끄둘르는 것이  죽은 부모 대접이냐?” 꺽정이가 백손 어머니를 머
리채 잡아서 치켜들고 내두르다가 흰당기 내세울 때 손을 놓아서 백손 어머니는 
방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백손  어머니가 다시 일어나며 곧  꺽정이게로 바락바락 
달려들어서 꺽정이는 치고 차고 백손 어머니는 물고 뜯고 쌈을 하는데 건넌방에 
있던 사람들이 우 건너와서  이봉학이, 박유복이, 한온이 세 사람이 꺽정이의 앞
을 둘러막고 백손이가 저의 어머니 앞을 가로막아서 쌈을 떼어놓았다. 꺽정이
도 몸에 몇 군데 상채기가 났지마는 백손 어머니는 그 동안에 벌써 참혹하게 당
하였다. 육중한 손에  이마가 터져서 피투성이가 되고 센 발길에  앞정강이가 부
러져서 다리 한 짝이 병신이 되었다.
  부러진 뼈를 들이맞춘다, 산골을 갈아서 먹인다, 버드나무 조각을 앞뒤로 대고 
버들껍질로 동여맨다, 찬찬한 이봉학이와  진중한 박유복이까지 황당스럽게 구는 
백손이와 한온이만 못지않게 수선들을  부리는 중에 바깥방에 나가 있는 상노아
이들 들어온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대소가의 안팎 심부름꾼이 많이 몰려와서 마
루에도 사람이요, 마당에도 사람이었다. 아랫간에 가서 가만히 앉아 있던 꺽정이
가 훌쩍 말없이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는데 백손 어머니가 쫓아가 붙들려고 앉은 
채로 날뛰면서 "이놈아, 사람을 이 지경 병신 만들어놓고 어디로 도망가느냐! 내
가 오늘 밤에 죽든 살든 양단간 끝을 낼  테다. 도망갈 생각 말고 이리 들어오너
라!"하고 악을 들이썼다. 꺽정이가 문밖에서 "저년이 참말 미쳤지 성하구야  저럴 
리가 있나." 혼잣말로  말하고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꺽정이는 동소문 안이나  남
성 밑으로 갈까 하고 일어서  나온 것인데 도망질친단 소리를 듣고 가기도 창피
하고 그렇다고 들어오라는데 도로 들어가기도 창피하여 건넌방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백손 어머니가  꺽정이를 놓칠까 겁이 나서 곧 건넌방에  쫓아갈 작정
으로 동인 다리를 디디고 일어서려고 하니 이봉학이가 잠깐만 참으라고 말린 뒤
에 백손이를 시켜서 물 축인  수건으로 면상의 피를 씻어주게 하고 기름에 개어
온 밀타승을 이마  상처에 발라주게 하고 머리까지 거두어 주라고  하는데, 백손 
어머니가 자기  손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거듬거듬  거둬서 모양없이 틀어얹으며 
백손이더러 "나를 좀 붙들고 건너방까지  가자."하고 말하였다. "그리하면 아버지 
맘을 다 알았는데  또 쫓아가서 무어하우? 성한 다리  하나 마저 부러뜨리고 싶
소?" 백손이 입에서 곰살궂지 않은 대답이 나오니 백손 어머니가 매서운 눈으로 
아들을 노려보며 "고만뒤라."하고 한 다리를 뻗은 채 앉은뱅이 걸음을 쳐서 앞으
로 나가다가 다리가  문지방에 다닥뜨려서 이를 악물고  아픈 것을 참고 갑자기 
문설주를 붙들고 혼자 일어섰다.  박유복이가 백손이더러 붙들어드리라고 말하려 
백손이가 마지못해 와서 부축하려고  하는 것을 백손 어머니가 매몰스럽게 뿌리
치고 외짝다리로 깨금을  뛰어서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건너갔다.  이봉학이와 박
유복이는 쓴입맛들을 다시면서 바로  뒤를 따라가고 백손이는 눈물이 나는 것을 
주먹 쥔 손등으로  이리 씻고 저리 씻고  하다가 뒤떨어져서 쫓아가고 한온이는 
마루 위와 마당 아래 여러 사람들을 꾸짖어 내쫓느라고 한동안 마루에서 지체하
였다. 백손 어머니가 건넌방  문지방을 넘어서며 곧 주저물러 앉아서 “자, 속시
원하게 아주 죽여라.”하고  이를 갈며 몸을 옮겨서 꺽정이 앞으로  들어가니 꺽
정이는 어이가 없는지 깃구멍이 막히는지 “허  그거 참.”하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가 가까이 간 백손 어머니의 성한 다리  무릎께를 한 손으로 내밀었다. 꺽정
이의 힘들이지 않은 것이 분명히 사렴을 두고  미는 것이건만, 백손 어머니의 몸
은 이때껏 애써 들어간 것이 헛일이 되도록  주르륵 밀려나왔다. “왜 못 죽이느
냐!” 백손  어머니가 다시 앞으로  들어가며 이번에는 내밀지 못하게  소매라도 
붙잡으려고 생각하였으나 몸을 옮길 때  두 팔로 방바닥을 짚는 까닭에 미처 손
을 놀릴 사이 없이 또 주르륵 내밀리었다.  실컨 내밀어 보아라 안채우듯이 백손 
어머니는 부적부적 들어가고  누가 지나 보자 배짱을  먹은 듯이 꺽정이는 자꾸 
내밀었다. 쌈의 승부가 여기 달린 것같이 내외가  서로 지지 않고 들어가면 내밀
고 내밀면 들어가고 하는데  이봉학이와 박유복이는 백손이를 데리고 한옆에 가
만히 서서 구경들만  하였다. 한온이가 안팎 심부름꾼들을 다 내쫓은  뒤에 건넌
방 문을 열고 들어오려다가 말고 안방에서 방 치우는 상노아이를 불러서 일각문
과 중문을 아주 걸어두라고 말을 이르며 한 발을 먼저 들여놓고 남은 발을 마저 
들여놓을 즈음에 꺽정이 손에 내밀린 백손 어머니의 몸이 한온이 다리에 부닥쳤
다. 다리가 삐끗하여  몸이 휘뚝 앞으로 고꾸라져 백손 어머니에게  덮쳐 누르게 
되는 데 한온이가 놀라서 몸을 얼핏 가눈다는 것이 백손 어머니 등뒤에 가서 쓰
러지게 되었다. 한온이는 백손 어머니를 인사하려고  의관을 정제하고 온 사람이
라 활개가 벌어질 때 큰 소매가 너푼하고 머리가 방바닥에 닿을 때 넓은 갓양태
가 꺾여서 깔렸다. 한온이 입에서 “아이쿠!” 한마디는 경황없이 나왔으나 뒤미
처 나온 “새우쌈에  고래등 터지네.”하는 말은 말소리까지 익살스러웠다. 한온
이가 일으켜 주기를 기다리는 것같이  쓰러진 채 누워 있는 것을 박유복이가 쫓
아가서 붙들어 일으켰다.  한온이가 평지낙상하는 동안에 꺽정이의  내외쌈이 잠
시 중단되고  또 조금 묽어졌다.  백손 어머니가 뭉그적뭉그적  한온이를 피하여 
앉은 뒤에 슬금슬금 꺽정이게로 가까이 오는 것을 꺽정이가 보고 손을
 내저으며 “대들 생각  말구 거기 앉아서 말루 해.” 자기부터  비로소 말로 하
는데 말소리도  그다지 거칠지 아니하였다.  이봉학이가 얼른 백손  어머니 앞에 
나와 서서  “아주머니, 그렇게 하십시오. 두발부리를  하실 때 하시더라두 우선 
시비를 말루 가리구 나서 하십시오.” 은근히 백손 어머니를 가로막았다. “이리 
와서 앉게.”
  꺽정이가 이봉학이를  옆에 불러다가 앉히고 그  다음에 박유복이와 한온이를 
보고 이리들 오라고 말하여 박유복이가 한온이와 같이 꺽정이 앞에 와서 모꺾어 
느런히 앉았다. 백손  어머니가 꺽정이에게로 가자면 이봉학이의  자리를 지나고 
박유복이의 무릎을 스치게 되어서 갈  생각을 안 먹고 도리어 뒤로 물러나 앉고 
백손이고 혼자 섰기가 싫든지 저의 어머니 옆에 와서 쭈그리고 앉아서 꺽정이와 
이봉학이가 아랫목 자리를  차지하고 박유복이, 한온이와 백손 어머니, 백손이가 
양옆자리에 각각들 마주 대하여 앉게 되었다. “오늘  저녁 같은 창피한 꼴은 내 
평생 처음이야.” 꺽정이가  이봉학이를 돌아보니 이봉학이는 꺽정이의  말은 대
답않고 “아주머니 말씀 안 하시우?”하고  백손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서울에 
기집이 몇이야? 어디 속시원하게 말 좀 들어보자구.”  백손 어머니가 말을 붙이
고 “기집이 몇이냐구? 뜨내기 기집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구 붙백여 데리구 사
는 것만이 셋이다. 인제 속이 시원하냐?” 꺽정이가  말을 받아서 살풍경의 드잡
이가 거연히 옥신각신하는  말다툼으로 변하게 되었다. “뻔뻔도 하다. 인두겁을 
쓰고 그런 말이 입에서 잘 나온담.” “이년아, 말이라면 다 하는 건 줄 아느냐? 
서방더러 뻔뻔은 무어구  인두겁은 무어냐?” “그버덤 더한 말을  못할까, 망나
니 대접 그것도 과하지.” “내 부아를 돋우면 네게 돌아갈 것 주먹밖에 없다.” 
“오냐, 다리 하나 마저  분질러라.” “앉은뱅이가 되구 싶어서 몸살이 나느냐?
” “죽인대도 겁 안 난다. 맘대로 해라.” “죽여 달라구 지다위하러 왔느냐?” 
“지다위가 무슨 지다위야?” “그럼  무어냐?” “나 몰래 기집질하는 걸 알고 
가만히 있으까? 죽든  살든 해보고 말지. 내가 딴서방을 몰래  얻으면 가만히 있
겠나 생각 좀 해보지.” “기집년하구  사내대장부하구 같으냐?” “사내나 여편
네나 사람은 매한가지지.” “저게 소견없는 기집년의 생각이야. 그래 같은 사람
이면 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구 종이나 상전이나 마찬가지냐?” “아이에 머
슴애도 있고 종에  사내종도 있지. 기집애만 아이고 기집종만  종인가?” “말귀
나 터졌어야 남의 말을 알아듣지. 누가 머슴이나  사내종이 없다느냐? 기집을 아
이루 치면 사내는  어른이구 기집을 종으루 치면 사내는 상전이란  말이지.” “
사내가 어른이면 기집도 어른이고  사내가 상전이면 기집도 상전이지 어른을 아
이로 친다고 아이가 되고 상전을 종으루 친다고  종이 될까.” 한온이가 홀저 허
허 웃으며 “초록은  동색으루 저두 사내니까 선생님  편을 들어서 말씀 한마디 
하겠습니다. 아이와 여자를  한데 쳐서 아녀자란 말은 있어두 아남자란  말은 없
지 않습니까? 또 여편네를  문서 없는 종이라구는 하지만 사내더러야 누가 그렇
게 말합니까. 안  그렇습니까?”하고 백손 어머니를 바라보니 백손  어머니는 독
살스러운 눈으로 마주  바라보며 “그 따위 다  같은 심장이니까 맞붙어서 갖은 
짓들 다했지.”하고 쏘아붙였다.  백손 어머니의 위인이 낯선 사내라고 부끄러워 
말 못할 숫기 없는 여편네가  아닌데다가 더욱이 악이 오른 판이라 낯이 설거나 
말거나 사리지 않고 해내려고 하였다. “천왕동이란  자식이 무슨 말씀을 여쭈었
는지 모르나 저는  원통한 꾸중을 듣습니다.” “천왕동이란 자식이라니, 쳔왕동
이가 자기 자식인가? 내가 천왕동이  누이인 줄 번히 알면서 내 앞에서 그게 무
슨 말버릇이야. 그리고  천왕동이가 무슨 말을 했다고 공연한 사람을  말밥에 올
려?” “무심쿠 한  말이 잘못됐습니다.” 꺽정이가 백손 어머니에게  “너는 죽
으려구 환장한 년이니까 가만둔다.” 말하고 곧  한온이를 돌아보며 “자네 망신
이 아니라  내 망신일세.”하고 말하였다.  이봉학이가 꺽정이더러 “아주머니는 
형님이 환장했다구 하시니까 내외분이 피장파장이오.”: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새
삼스럽게 화를 벌컥 내면서 “저깟년은  말할 거 없지만 그래 너희들이 나를 망
신시키려구 저년을 데리구 온단  말이냐!”하고 언성을 높이었다. 이봉학이는 목
소리를 도리어 낮추어 가지고 “형님, 새삼스럽게  화내실 거 무어 있소? 조용히 
이야기합시다.” 말하고 잠시  꺽정이의 눈치를 살펴본 뒤  “망신이라면 형님이
나 아주머니나 다같이 망신인데 형님버덤두 아주머니가 더 톡톡히 망신한 셈 아
니오. 우리가 형님 망신시키러 왔다는 건 억설이니까  발명두 할 것 없구 아주머
닌들 형님 망신시키구 자기 망신하자구 서울까지 오셨을 리야 있소?”하고 차근
차근 말하였다. “그럼 왜 왔어?” “내 생각에는  아주머니가 형님께 말씀 한마
디를 하려구  허위단심하구 삼사백 리 길을  오신 줄 아우.” “무슨  말을 하러 
왔단 말이야?” “아주머니 속에 있는 말을 내가 짐작으루 말해 보리까? 형님이 
서울서 얻은 기집들을 다 내버리구 우리와 같이 광복산으루 가잔 말
 외에 다른 말이  없을 게요.” “버리라면 버리구 가자면 가구  내가 장이 문문
한 모양일세.” “처분은  형님께 달렸지요.” 이봉학이 말끝에 한온이가 “지금 
선생님께서 내일  모레 양일간  떠나가시기루 작정하구 기십니다.”  말참례하고 
나섰다. 이봉학이는 한온이의 말을 듣고 백손 어머니에게 “아주머니, 조그만 참
구 기셨더면 좋을 걸 공연히 오셨소.”하고 말한  뒤에 다시 꺽정이를 보고 “우
리들두 하루 쉬어  가지구 가게 모레쯤 떠나시면 꼭 좋겠소.”하고  말하니 꺽정
이가 볼멘소리로 “나는 내일 떠나겠네.”하고 대답하였다. 이봉학이가 한온이더
러 “우리 아주머니는 내일 가시자면 승교바탕이라두  타셔야 할 텐데.”하고 말
하여 한온이가  “그런 준비는 염려  마십시오.”하고 대답할 때  백손 어머니가 
이봉학이를 바라보며  “나는 내일 안 가요.”  말하고 고개까지 가로 흔들었다. 
“타구 가시면 될  텐데 왜 안 가신답니까?”  “나는 서울 좀 더  있다 가요.” 
“우리가 다  가두 혼자 떨어져 기시겠단  말입니까?” “백손이는 나하구 같이 
가겠지요.” “서울 구경하구  가실랍니까?” “구경할 것이 어디  있나요?” “
그럼 무슨 일루  내일 안 가신답니까?” “볼일이 있어요.”  “볼일을 말씀하면 
우리가 내일  식전 봐드리지요.” “아니오.”  “아니라니, 우리더러  말씀 못할 
볼일이 무업니까?” “말 못할  것도 없지만 먼저들 가시면 백손이를 다리고 찬
찬히 볼일 보고 갈 테요.” 백손이가 옆에서 듣다가 “어머니, 무슨 볼일이오?”
하고 물으니 백손 어머니는 아들을 돌아보며  “나중에 알려주마.”하고 핀잔 주
듯 대답하였다. “볼일은  무슨 볼일이오? 내일 다  함께 갑시다.” “너는 어미 
원수도 갚아 줄 생각이  없니?” “원수라니, 무슨 원수요? 난 모르겠소.” “그 
못된 기집년들 탓에 내가  다리까지 분질러졌는데 그년들을 그대로 가만두고 간
단 말이냐?” “아이구 참 어머니두. 그 기집들이  어머니 다리를 분질르라구 아
버지를 꼬대기기나 했다면 또 모르지만 어머니 다리 부러진데 그 기집들이 무슨 
상관이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우.” “고만둬라. 네까지 자식이 자식이냐? 나 
혼자 떨어져 있다가  그년들을 보고 갈 테다.” “보구 어떻게  할 테요?” “보
고 어떻게 하든지 그건 알아 무어하니?” 모자간에 말이 왔다갔다 하는 동안 꺽
정이는 백손  어머니를 노려보며 주먹까지 몇번  부르쥐고 이봉학이는 꺽정이를 
돌아보며 연해 고개를 흔들고  박유복이는 직수굿하고 앉아서 쓴입맛을 쩍쩍 다
시는데 한온이가 백손  어머니를 건너다보며 “내 말씀은  좀 들으십시오.”하고 
말하여 백손 어머니가 한온이에게로 고개를 돌리었다.
  백손 어머니가 꺽정이 갈 때 같이 안 가고 뒤에 떨어지면 자연 한온이게 성화
를 바치게 될 터이므로  한온이는 백손 어머니를 호구별성 마마처럼 배송이라도 
낼 생각이 있었을 것이라 그래서 백손 어머니더러 가라느니 진배없이 “서울 구
경을 하신다거나 다른 볼일이 있으시면 몰라두 지금 말씀하신 일루는 혼자 떨어
져 묵으실 게  없습니다.”하고 말을 하니 백손 어머니는 코웃음을  치면서 “댁
에서 못 묵게 하면 객주를 잡고 나가리다.”하고 비아냥스럽게 대답하였다. “제
게서 묵으시는 게 싫어서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럼 무슨 말이로?” “지
금 시앗쌈하러 가셨다가는 되려  덤테기를 만나시거나 망신을 당하실 테니까 그
래서 말씀입니다.”  “어째서요?” “선생님이 다  내버리구 가시는 판  아닙니
까?” “내버리다니 아주  관계들을 끊었단 말이오?” “녜, 그렇습니다.” 백손 
어머니가 다른 말을  하기 전에 백손이가 한온이에게 “참말이오?”하고 다진즉 
한온이는 부러진 갓양태가 근덩든덩하도록  고개를 끄덕거리었다. 이때까지 통히 
말참견을 아니하던 박유복이가 홀저에 꺽정이를 보고  “형님, 기집들을 다 버렸
소?”하고 말을 물으니 꺽정이는 눈살을  찌푸리고 대답을 아니하였다. 꺽정이는 
마음이 불쾌한 때 누가 무슨 말을 묻듣지 대답을 잘 아니하는 것이 평소의 버릇
이라 박유복이나 다른 사람들이나 모두 꺽정이의 대답 않는 것을 괴상히 여기지 
아니하는데 한온이의 거짓말이 저절로 덮이어서 이봉학이가 백손 어머니더러 “
아주머니, 인제  내일 가시지요?”하고 물을 때  백손 어머니도 “글쎄요.”하고 
갈 의사를 보이게  되었다. 박유복이가 얼굴에 만족한 빛을 띠고  “그러면 그렇
지, 형님이 그럴 리가  있나.”하고 혼잣말로 지껄이는 것을 꺽정이가 듣고 박유
복이를 뻔히 바라보다가  “무에 그럴 리가 있느냐 말이냐?”하고  캐어 물었다. 
“형님 결단성으루 기집버덤 더한 것이라두 끊으러 들면 못 끊을리가 없는데 형
님이 기집에 빠져서 영이 헤어나지  못할 것같이 말들 하니까 사람이 속이 답답
하지 않겠소?” “그렇게 말들  하는 사람이 누구누구야?” “광복산 있는 사람
은 거지반 다 형님이 내려가서두 서울 기질을 못잊어서 얼마 안 기시구 곧 도루 
서울 오시려니  생각들 하구 있소.” “내가  기집에 홀려서 정신 못  차릴 줄루 
아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러군.” “다들 서종사의  말을 곧이듣구 그렇게 생각하
지요.” “서림이가 내 흠담을 많이  했단 말이지. 참말 내가 좀 물어볼 말이 있
다. 여럿이 다 서울루  오거나 사방으루 흩어지거나 하자구 공론들 했다지. 그런 
공론을 누가 먼저  냈느냐? 서림이가 냈느냐?” “그런 공론은 한  일 없었소.” 
이봉학이가 박유복이의 뒤를 이어서  “서종사가 한번 황두령더러 그런 말을 합
디다.”하고 말하니 꺽정이는 “그럴 테지.”하고 고개를 끄덕이었다.
  이날 밤에 꺽정이는  이봉학이 박유복이 두 사람과  같이 안방에서 자고 백손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건넌방에서 잤다. 이튿날  식전에 꺽정이가 한온이를 찾
아가서 지난 밤에 여러 가지로 생각 끝에 박씨, 원씨, 김씨 세 계집을 다 버리기
로 결심하였다고 이야기한 뒤 아무쪼록 속히 팔자들을 고쳐 가도록 권하고 가기
들 전까지는 시량범절을  돌보아주라고 부탁하였다. “팔자들을 안  고친다면 어
떻게 합니까?” “반 년이구 일 년이구 두구 봐서 끝끝내 다른 데루 안 가면 내
가 데려가두룩 하지.” “선생님이 아주  말들을 이르구 가시렵니까?” “식후에 
한 바퀴 돌아다니며  말을 이르겠네.” “울며불며 선생님 뒤를 쫓아들  오지 않
을까요?” “글쎄 모르지. 내가 대개 운만 떼어서  일러 두구 갈 테니 뒤는 자네
가 잘 알아서 조처해  주게.” “제가 한 군데 성화를 안  받으려구 거짓말을 했
더니 거짓말한 죄루  세 군데 성화를 받게 됩니다그려.” 꺽정이는  한온이와 이
러한 수작을 하고 와서 곧 길 떠날 준비를 차리었다.
  백손 어머니만 교군마당을 태우고 꺽정이까지 보행으로 가기로 하였는데 광복
산서 온 졸개 하나 외에  짐꾼 둘이 더 늘어서 한첨지 집사람이 교군꾼 둘 아울
러 넷이 가는  까닭에 일행이 모두 열사람이 되었다. 식후에  꺽정이는 이봉학이
더러 일행을 데리고 먼저 떠나서 가는 대로 가다가 점심참에 기다리라고 말하고 
남성밑골과 동소문 안으로 돌아다니며 작별들 하는데 생리사별하는 사람같이 말
을 막잘라 하였다. 다시 만나기가 어렵다는 말에  박씨는 눈물이 비오듯 하고 원
씨는 기함하여 쓰러지고  김씨는 못 간다고 옷자락을 붙잡고 날치었다.  세 집에
서 세 차례를 각각 좋이 지체하고 해가 한나절이나 되었을 때 꺽정이가 작별 나
오는 한온이와 같이 동대문 밖으로 나오니 김씨 집에서 나올 때 보지 못한 노밤
이가  미리 앞질러 성 밖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앞으로 나서며 “저는 보두 
않구 가십니까?”하고 원망하듯  말하였다. “너를 보려구 찾다가 없어서  네 기
집에게 말을  일러두구 왔다.” “무슨 말을  일러두셨습니까?” “무슨 말이야, 
못 보구  간단 말이지.” “못 보면  못 간다구는 말씀  못하시구요.” “이눔아, 
시룽거리지 마라.” “제가 지금 몸이 다는데  어느 해가에 시룽거리구 있겠습니
까. 선다님이 대체 저를 비부쟁이루 늙어죽으라구 내버리구 가시는 셈입니까, 어
떻게 하시는 셈입니까? 제가  도덕여울서 팔포재상 부럽지 않게 지내는 걸 서울
까지 끌구 와서 하인으루 부리구  비부쟁이루 부리다가 지금 와서 나 모른다 하
구 내버리구 가시다니 말이  됩니까?” “ 도덕여울이 못 잊히거든 도루 가려무
나.” “선다님하구 일평생을 같이 지내기루 했지, 언제 중간에 갈리기루 했습니
까? 하룻밤새 변덕이 나셔서 정답게 같이 살던 여편네들을 노끈 끊듯 몽창 끊으
시는 선다님두 저는 끊지 못하십니다.” “나를  따라가구 싶거든 지금이라두 같
이 가자.” “진작 그런 말씀을 해주셔야 저  혼자 생각두 하구 기집년하구 의논
도 하지요. 선다님,  문안으루 도루 들어가서 오늘 하루만  더기십시오.” “미친 
눔 같으니.” “선다님같이 인정 없는 양반 저는 처음 보았습니다.” “네눔하구 
같이 지껄이다간 길 늦겠다.”꺽정이가 걸음을 떼어놓으려고  하니 “제 말 한마
디만 더 들어줍시 오.” 노밤이가 앞을 막아 들어섰다. “이눔이 날 붙잡구 실랭
일 하는 셈 아닌가.” “제가 선다님을 마지막 뵈입구 다시 안 뵈입습니까, 그럴 
리가 있습니까?” “어서 저리 비켜라!” “말 한마디만 더  여쭈어 보구 물러가
겠습니다.” “무슨  말이냐?” “서울 안으서들을 나중에  데려가시지 않으시렵
니까?” “그건 왜 묻느냐?” “안 데려가시구 영 내버리신다면 저두 기집을 내
버리구 나오든지 달구  나오든지 양단간에 작정하구 선다님  뒤를 쫓아갈랍니다.
” “나중 봐가며  데려갈는지두 모르지만 지금은 내버리구  간다.” “시량이나 
용은 전대루  대어주십니까?” “나를 바라구들  있는 동안까지 대어줄  테다.” 
“그럼 제가 아직 서울 처쳐  있어서 세 집으루 돌아다니며 바깥일을 보살펴 줄
까요?” “그건 네  생각대루 해라.” “안으서님들을 잘 보호하는  것두 선다님
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그러면 저 혼자 뒤에 떨어져두  섭섭하지 않습니다.” 
“더 할 말 없거든 고만 들어가거라.” “다락원까지나 뫼시구 갑지요.” 노밤이
가 어슬렁어슬렁 꺽정이의 뒤를  따라오다가 한온이가 작별하고 들어갈 때 “저
두 다락원까지 갈 것 없이 여기서  하직 여쭙구 들어가겠습니다.”하고 한온이와 
같이 떨어졌다.
  먼저 간 일행 중의 백손  어머니는 꺽정이가 뒤에 떨어진 까닭으로 천천히 가
자고 말하는 것을 이봉학이가  비선거리 가서 중화하며 기다린다고 길을 재촉하
여 다락원에서도 교군꾼, 짐깐 들 술잔 먹이는  동안밖에 더 오래 쉬지 아니하였
다. 중화참을 대어왔을  때 해가 한낮이 훨씬 지났었는데 점심을  지어놓고 기다
리고 먹고 나서  기다려도 꺽정이가 오지 아니하여  백손 어머니는 공연히 빨리 
왔다고 사살사살하다가 마침내  서울로 도로 가자고 조르게  되었다. 이봉학이도 
기다리기에 갑갑증이 났겠지만 백손 어머니의 마음을 가라앉히느라고 조금도 갑
갑한 티를 보이지 않고 늘어진 소리를 하였다. “아주머니, 여기서 눌러 잘 작정
하구 기다려 봅시다.” “며칠이고 몇 달이고 여기서  묵을 테요?” “그건 공연
한 말씀이지 며칠씩 묵게 될 까닭이 있습니까?” “안 오는 사람을 기다리면 무
어하오? 얼른 가보는  게 수지.” “안 오실 리 없으니  갑갑하더래두 좀 참으십
시오.” “우리를 따돌려 세우려는 꾀로 같이  떠난다고 어벌쩡하다가 기집의 집
에 가서 드러누웠는지  누가 아우?” “아주머니 의심이 너무  과하십니다.” “
전 같으면 의심할 까닭이 없지만  지금은 오장이 바뀐 사람이니까 믿을 수가 없
소.” “기집들을 다  보냈다는데 무슨 기집이 또 있으리라구 당치  않은 의심을 
하십니까?” “한씨집 아들이 거짓말로 우리를 속였는지 누가 아우?” “어젯밤 
한온이의 말이 거짓말  아닙니다.” “어떻게 거짓말 아닌 줄  분명히 아시우?” 
“오늘 아침에 형님이 한첨지 늙은이하구 수작하는 걸 옆에서 듣구 분명히 알았
습니다.” “무어라구 수작합디까?” “한첨지가 형님더러  서울을 언제쯤 또 오
시겠냐구 묻는데 형님이 이번 가면 언제 또 올른지 모른다구 대답하니까 한첨지
는 형님의 대답을 의외루 여기는 눈치가 보이며 한번 우리들을 돌아보더니 다시 
형님더러 서울 벌여놓으신 일은 어떻게  하시우 하구 묻는 것을 형님이 그건 다 
걷어치우구 갑니다 하구 대답합니다. 한첨지까지두 아직  잘 모르는 모양이나 형
님이 기집들을 다 보낸 것은 분명한 줄루  압니다.” “그런 일을 한첨지가 어째 
모를까요? 한첨지 모르는 것이 우선 안 보낸 표적이 아닐까요?” “한첨지는 자
기 집안일두 작은아들에게 쓸어맡기구  알은 체 안하는 늙은이니까 모르기두 쉽
지요.” “어쨌든지 여기서 기다리구 있느니 도루 가봅시다.” “오늘 하루 여기
서 묵을 작정하구 기다리면  꼭 오십니다. 만일 안 오시거든 내일  식전 도루 가
십시다.”
  백손 어머니가 다리만 성하면  이봉학이가 아무리 말리더라도 혼자 서울로 쫓
아올 것인데 쫓아오지는 못하고  겁겁한 마음을 억지로 참느라고 눈물까지 내었
었다. 여러 사람이 기진하도록  기다린 끝에 꺽정이가 오기는 왔으나, 해가 벌써 
서쪽으로 다 기울어져서 길을 더 가지 못하고 비선거리서 자게 되었다.
  서울서 떠난 뒤 나흘 되는 날 저녁때 일행이 무사히 이천읍내에 당도하였는데 
이때 해가 노루 꼬리만밖에  남지 아니하여 광복산까지 대어가자면 밤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교군꾼과 짐꾼들은 모두 자고  가자고 말하는 것을 꺽정이가 듣
지 않고  밤길로 나가기로 작정하여 이봉학이가  박유복이와 백손이더러 “우리 
세시 홰꾼 노릇하자.” 하고 말한 뒤 홰  세 자루를 준비시키고 졸개는 빈몸으로 
먼저 나가서 선통을  놓게 하였다. 이천읍내서 저녁 요기들까지 하고  밤길을 걸
어서 광복산으로 나오는데 삼십 리 남짓 오니 황천왕동이가 혼자 와서 마중하고 
다시 이십 리쯤 더 오니  배돌석이와 곽오주와 길막봉이가 같이 와서 마중들 하
고 광복산에 다다르니 늙은 오가와 서림이가 여러 두목과 졸개들을 거느리고 산
밑에 내려와서 기다리고  안식구들까지 산 위세 나와 서서 기다리었다.  여러 두
령이 꺽정이의 돌아온  것을 바로 큰 경사같이  여겨서 소잡아 찬치하려고 하는 
것을 꺽정이는 못하게 금지하다가 “형님이 오래간만에 오셔서 두목과 졸개들은 
한번 호궤하는 것두 좋으니 금지하지 마시우.” 
  이봉학이의 말을 듣고 여러 두령들 하는  대로 내벼려두고 알은체 아니하였다. 
꺽정이가 돌아오던 이튼날부터  이삼 일 동안 소잡고  도야지 죽이고 떡 만들고 
술 걸러서 도중  상하가 배들을 불리었다. 꺽정이가 새로 도임한  원이나 감사처
럼 사흘 만에 비로소 일을 보기 시작하였는데 여러 두령들을 모아놓고 공식으로 
할 말하고  들을 말 들은 뒤에  서림이를 돌아보며 “서종사, 군법을  좀 물어볼 
것이 있소.”하고 말하였다.  “무었이오니까?” “부하루서 대장을 멸시하는 일
이 있으면 그 죄가 무엇에 해당하우?”
  서림이가 꺽정이의 눈치를  살피느라고 대답이 조금 더디었다.  “참하여 마땅
합니다.” “또 종없는  말루 도중 인심을 소동시키는 일이  있으면?” “그것두 
참하여 마땅합니다.”
  꺽정이가 바로 밖을  향하고 “이리 오너마!” 하고 좌우 시위를  불러서 “서
림이를 잡아내라.” 하고  호령하였다. 좌우 시위는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하다
가 “빨리 잡아내게  못하느냐!” 벽력 같은 호령 소리에 경겁하여  당장 서림이
를 잡아끌고 밖으로 나갔다.  “의관을 벗기구 계하에 꿇려라.” 계하에 꿇어 엎
친 서림이를 꺽정이가 내다보며 “너는  네 입으로 참하여 마땅하단 되를 두 가
지 겸쳐 지었으니  죽어두 원통하게 새악 마라.” 하고 이르니  서림이가 고개를 
치어들고 “제가 언제  대장을 멸시한 일이 있으며  도중 인심을 소동시킨 일이 
있습니까?” 하고 발명을 시작하였다. “너의 죄상은 내가  다 알구 있으니 발명
하여 소용없다.” “제가 혹시 뉘 모함에 들었는지는  알 수없으나 그런 죄를 지
은 일은 꿈에두 없습니다. 인명에 관계 없는  작은 죄라두 모호하게 조주는 법은 
없으니 제 죄상을 아신 대루 자세히 일러주십시오.”  “네가 내 험담을 한 일이 
없느냐, 또 여럿이 같이 서울루 가거나 사방으로  흩어지자는 말을 한 일이 없느
냐?” “제가 무슨  험담을 하였다구 들으셨습니까?”“기집에 흘렸느니 신세를 
망치느니 그런 소리를 안 했느냐? 했다면 그게 나를 멸시하구 험담한 것이 아니
구 무어냐?” “제가영웅이란  원래 색을 좋아한다구 말한 일이  있은 법합니다. 
영웅호색이란 옛말이지 제 말두 아닙니다. 대장께서  색에 범연치 않으시단 말이 
나기에 제가 영웅이신 까닭이라구 말한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험담입니까? 더
구나 그게 무슨 멸십니까?” “  그래 한 가지는 네 발명대루 죄가 되지 않는다
고 하자. 또 한가지두 마저 발명할 말이  있느냐?” “발명할 말씀이 있다뿐이오
니까. 그 말은 제가 한 말입니다. 그러나 그 말이 도중 여러 사람의 맘을 소동시
키려구 한 말이 아닙니다. 제가  말할 때 이두령,황두령 두 분밖에 더 들으신 분
이 없는 걸 보셔두 아실 일이구 또 졸개 하나라두 그 말루 소동된 일이 없는 걸 
보셔두 아실 일이  아닙니까. 대장께서 오래 도중을 떠나기신 까닭으루  도중 일
이 정체되어서 어떻게 하면 대장을 속히 내려오시게 할까 여러분이 모두 고심들 
할 때 제가 옅은 생각으루  대장께서 그런 말을 들으시면 맘이 혹시 움직이실는
지 모른다구 말한 것이올시다.  그게 죄될 것두 없을 것인데 무슨  죽을 죄가 될 
까닭이 있습니까. 설사 죄없이라두 죽이시면 죽지  별수 없는 목숨이지만 억지로 
죄명을 씌우시면 죽어두 눈을 감지 못하겠습니다.”
  서림이가 절절히 발명하는 말을 듣고 말없이  여러 두령을 돌아보았다. 꺽정이
가 서림이와 황천왕둥이 두  사람을 속으로 벼르는 중에 서림이는 홍와조사하였
다고 죽여 없애려고까지 마음을 먹고  온 터이라 공사를 개시하는 첫날 바로 죽
이려고 거조를  차리게 된 것인데, 서림이의  발명을 듣고 본즉 실상  죽일 만한 
죄가 없어서 도리어  어색하여졌다. 꺽정이가 여러 두령을 돌아본 것도  다른 뜻 
없이 전수히 어색한 데서 나온  일이건만 여러 두령들은 거진반 다 꺽정이가 각 
사람의 의견을  들으려는 줄로 짐작하였다.  그중의 늙은 오가가  계제를 놓칠까 
겁내는 것같이 얼른 먼저  “ 서종사의 말이 조금두 은휘 없는  말이오. 만일 죽
일 죄가 있으면 군법 아래 언감생심 두호할 리가 있겠소만 사실루 죽일 죄가 없
으니 서종사를 용서해  주시우.” 하고 말하는데 평소의 능란한 말주변이  다 어
디 갔는지  말이 대단꺽꺽하였다. 늙은 오가의  말이 끝난 뒤에 “죽일  죄 없는 
사람을 죽여 쓰나요?” 박유복이의  말을 “죽을 죄 없이두 죽는 사람이 세상에 
들어쌨지 않소.” 곽오주가 뒤받고 “형님 거조가 좀 과하셨소.” 이봉학의 말을 
“과하지요.” “과하다뿐이오.” 배돌석이와  황천왕둥이가 붙쫓는 것을 꺽정이
는 듣는 체 만 체하고  가만히 있다가 얼마만에 “여럿 생각에는 서림이가 죄가 
없단 말이지?” 하고 말하니 말참례 들지 못한 길막봉이가 “녜, 그렇지요.” 하
고 말을 대답하였다.  꺽정이가 다시 두말 않고 좌우 시위에게  “서종사를 방으
로 모셔들여라.”  하고 분부를 내리었다. 서림이가  의관을 다시 갖추고 좌우로 
부축을 받고 방에 들어와서  자리에 앉으며 곧 꺽정이를 향하여 “유죄무죄간에 
촉노한 것은 불민한 탓인데 용서하여 주셔서  황감합니다.” 말하고 머리를 굽히
니 꺽정이는  “불안하우.” 한마디로 대답하고 긴말을  하지 아니 하였다. 늙은 
오가가 꺽정이를  보고“서종사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  주자면 불가부득 술이 
있어야 할 테니 어떻소?”“우리  고만 술판을 차려보실라우?” 하고 너스레 잘 
치는 봄색을  내놓는데 꺽정이는 고개를  외치고 바로 “이애  천황동아, 네게두 
말을 좀 물어 볼 것이 있다.” 하고 천황동이를 바라보았다.
“네가 나를 안  보구 내빼온 것이라든지 너의  누이를 충동여 보낸 것이라든지 
모두가 꽤씸한 일이지만 그런 건 다 덮어두구 네가 내 앞에서 마지막 하직을 하
느니 마느니 하지  않았느냐? 마지막 하직이란 게 어떤 것이냐?  소견을 말해라, 
어디 좀 들어보자.”
  꺽정이의 역정으로 하는 말을 황천동이가 숫제 대답 않고 가만히 있었으면 한
껏해야 호령이나 듣지 별일  없을 것인데 황천동이는 자기가 빰맞고 떠다박질때 
때 배리 틀린 것이 누님의  정강이 부러진 것을 보고 다시 일층 더 틀려서 꺽정
이를 미워하는 마음까지 생긴데다가  뒷생각이 원체 좀 부족한 탓으로 “그것도 
참할 죄요?” 하고 엇나가는 대답을 하였다.
“무엇이야, 네가 참을  당하구 싶으냐?” “목을 잘르든지 사지를  찢든지 맘대
루 하시구려.” “네가 나를 넘보구 대드느야?” “네, 넘봤소. 멸시했소. 참한다
지요.” 꺽정이는 얼굴에 핏대가 서고 눈귀가 찢어지게 되었다.
“불출아!” “능통아!” 좌우 시위  신불출이와 곽능통이의 이름을 꺽정이가 연
달아 불렀다. 좌우  시위가 “네, 네.” 대답하고  방문 앞에 들어서자, 꺽정이는 
곧 졸개 대여섯 놈만 빨리 불러  대령하라고 호령하였다. 박유복이는 황천왕동이
더러 기탄없이 대답하였다고 나무란 뒤 황천왕동이를 대신하여 꺽정이의 용서를 
빌고 이봉학이는 꺽정이에게 황천왕동이의 방자한 것을 쳐서 발한 뒤 화를 참고 
조용히 꾸중하라고 권하였으나  꺽정이는 눈을 딱 감고  앉아서 검다 쓰다 대답 
한마디가 없었다. 얼마  동안 안 지나서 좌우 시위가 졸개들을  데리고 황천왕동
이를 잡아 일으켜 방문 밖으로 내밀며 시위와 졸개들에게 “너희들이 이놈을 끌
구 나가서  당장 목을 베어 바쳐라.  시각을 천추하면 너희들두 다  목이 떨어질 
테니 그리 알구 거행해라.” 하고 추상 같은 호령을 내리었다. 방안에 앉아 있던 
여러 두령이 우둘 일어났다. “형님, 망령이 나셨소? 이게 무슨 일이오?”“영을 
얼른 도루  거두시오.”“사생을 같이 하자구  맹세한 사람을 죽이다니  말이 되
우?”“무슨 큰죄가  있소. 불과시  말다툼한 죄루 죽인단  말이오?”“우리들을 
그대루 두구는 황두령을 죽이지 못하우.”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지 못할 만큼 여러 말이 함께 섞여서 떠들석한 중
에 늙은 오가의 입에서 “여보게  이사람들, 내 말 좀 듣게.” 굵은 말소리가 나
왔다. 늙은  오가가 여러 두령더러  “여럿이 한꺼번에 떠들어서야  대장께서 잘 
들으실 수가 있나. 찬찬히 차례차례 말씀들을 여쭙게.”말하고 밖을 내다보며 “
아따 이놈들아, 나가지 말구  게 좀 있거라.” 소리치다가 꺽정이가 “장령을 어
린애 장난같이 여기는  모양이오.” 하고 눈을 부라리는 바람에 다시는  입을 뻥
긋 못하고 한구석으로 비켜섰다.  여러 두령들 중에서 형님, 하며 꺽정이 앞으로 
대어드는 사람도 있고 대장 형님  나 좀 보라고 꺽정이의 소매를 압아당기는 사
람도 있었다. 꺽정이가 소매를 뿌리치고 소요 떨지  말라고 소리를 지른 뒤에 여
러 두령들을 돌아보며 “천화동이루 말하면 여럿들버덤 내가 사정으루 가깝지만 
용서할수 없다. 이  자리가 사석 같으면 모르지만 대장이 부하에게  말하는 공석
에서 드  따위루 무엄하구 방자하게  말대답하는 것을 어떻게 용서하란  말이냐! 
숫제 나더러  대장 노릇을 고만두라지  천황동이를 요서하란 말은  마라.” 하고 
말을 이르는데 뜨문뜨문 하는 말에 꾹꾹 눌러  하였다. 박유복이가 한 걸음 여러 
사람 앞으로 나서서 “대장  형님. 죄를 주시더라두 죽이진 마십시오.” 하고 말
하니 꺽정이는  고개를 가로 흔들면서 “대장의  체모를 보전하자면 천황동이를 
안 죽일 수 없다.  죽이는 내가 죽이지 말라는 너희들버덤 속이  어 아프지만 그
건 사정이니까 사정으로 장령을 변개할 수 없다.  장래 다른 사람의 본보기루 천
황동이는 죽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천왕동이의 죄를 우리가 다 나눠서 
당할 테니 천황동이의 목숨을 붙여 주십시오.”  박유복이가 애걸하듯 말하는 것
을 “쓸데없는 소리 마라!”  꺽정이가 불호령으로 내리눌렀다. 박유복이가 눈물
까지 떨어뜨리며 물러설 때 배돌석이가 야무진 말소리오 “나는 사생을 같이 하
자구 맹세한 황두령하구  함께 죽지 더럽게 살지 않겠소.” 말하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럼 나두 같이 죽으러 가겠소.” 길막봉이가 배돌석이의 뒤를 이어나
가고 “죄를 나눠 당한다고 말까지 한 내가 남의 뒤에 떨어질 수 없으니까 나두 
같이 가서 죽겠소. 일일이 하직 못하구 가니 용서하시우.” 박유복이가 길박봉이
의 다음에 나가고 “나두 갈 테니 같이  갑시다.” 곽오주가 박유복이의 뒤를 쫓
아 나갔다. 꺽정이는  어이가 없어서 우두머니 보고 섰는데 이학봉이가  앞에 나
와서 “다들 의리루 죽으러 가는데  혼자 떨어질 수 없어서 나주 형님을 버리구 
가겠으니 용서하우 형님, 이 다음 저승에서나 만납시다.” 말하고 하직으로 절을 
하였다. “자네까지 마저.”꺽정이늬 말이 뒤가  없었다. 이학봉이는 뒷말을 기다
리는 것처럼 잠시 동안 꺽정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섰다가 한숨을 한번 쥐고 돌
아서서 “오두령, 서종사 마지막  작별이오.” 하고 말한 뒤 천천히 걸어서 방문 
밖으로 나갔다. 뒤에 남은 늙은 오가와 서림이는  꺽정이의 하느 꼴을 두고 보자
고 약속한 것같이 둘이 입을 함봉하고 아무 소리도 아니하였다.
  꺽정이가 펄썩 주저앉듯 앉으면서 늙은 오가와 서림이더러 앉으라고 손짓하고 
한참 만에 “이런 법두 있소?” 말하고 물끄러미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꺽정이
의 눈치가 말들  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아서 두  사람이 함봉한 입을 열게 되었
다. “다섯 문 두령이  의를 세우려구 죽음으루 나가는 걸 보니  의리는 태산 같
구 죽음은 홍모같단  옛말이 헛말이 아니오.” 늙은 오가는 강개한  어조로 말하
고 “다섯 분이 같이 살  의리는 생각 않구 같이 죽을 의리만 세우려구 하니 다
섯 문의 일을 꼭 옳다구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서림이는 주저주저하며 말하였
다. “서종사, 나가서 여럿이 알아듣두룩  말하구 같이 들어오게 하우.”“황두령
까지 같이 데리고 들어오리까?” 꺽정이는  고기를 가로 흔들었다. “황두령에게 
사를 내리신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구야 여러분이 들어올 리가 있습니까?”“그
럼, 내버려 두구려.”“여러분이 다 없구 보면 대장께서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저희들이 다 죽으면 나두 죽지.”“대장 같으신  전고에 드문 영웅을 하느님께
서 이 세상에  내실때 일생을 그렇게 허무하게  마치시라구 내셨을 리가 있습니
까. 한번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신출불이와 곽능통이가 방문 밖에 와 굽실거
리는 것을 꺽정이가 내다보고 “어째들 들어 왔느냐?” 하고 물으니 신출불이가 
다시 한 번 굽실하고 “여러분 두령께서 다 각각 나 먼저 죽이라구 죄인을 제치
구 대드시니 소인들 힘으루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말을 아뢰었다. 꺽
정이가 한참 동안  잠자코 있다가 “황두령을 도루 끌구 오느라.”  하고 분부하
여 신출불이와 곽능통이가 일시에  네 대답하고 나가더니 얼마 뒤에 황천동이를 
좌우로 붙들고 들어오는데 다섯 두령도 뒤를  따라 들어왔다. 꺽정이가 황천왕동
이를 뜰 앞에 세워놓고 “대장의  체모를 손상한 죄가 죽여두 싸지만 여러 가지
루 생각애서 이번은 특별히 용서하니  이 다음에 다시 그런 일이 없두룩 조심해
라.” 하고 타이른 뒤에 다섯 두령과 함께 방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서림이와 황천왕동이가 참을 당할 뻔하던 이튿날,  꺽정이가 여러 두령을 모아
가지고 광복산 떠날 의론을 결정지을 때 이봉학이의 의론과 서림이의 의론을 다
시 자세히 들어본 뒤에 서림이의 의론이 좋다고 하고 청석골에다가 임시로 거접
할 배포를 차리고 나가기로 결정하니 늙은 오가가 싱글벙글 좋아하는 대신에 곽
오주는 골이 나서 식식하면서 “나는  청석골로 안 간다고 말한 삶인데 나를 내
버리구 갈라구  그렇게 작정하우?” 하고  꺽정이에게 들이대었다. “내가  한번 
결정지어서 영을  내린 뒤에는 다른  소리 할 생각  마라.”“그렇기에 그런영을 
내리지 말라구 미리 말하지 않소?” 꺽정이가 곽오주의 말은 대답 않고 다른 두
령들을 돌아보며 “아무리 임시 거접이라두 집 몇  채는 세워야 할 테니 이두령, 
오두령만  여기 남아서 식구들과  같이 있구 그 나머지 두령들은 다 날 따라 청
석골 나가서 역사를 시키자.  이 뒤에 만일 청석골루 가느니 안  가느니 하는 사
람이 있으면 용서없이 군법을  쓸 테다.” 하고 명령으로 말하였다. 곽오주가 덩
치 큰 값도 없이 간드러지게  내개개 서리를 지르는 것을 박유복이가 눈을 흘기
며 그리  말라고 고개를 흔들어  보이었다. 곽오주가 옆에  앉은 황천왕동이더러 
“품앗이해 줄라우?” 밑도끝도없는  말을 물으니 황천왕동이는 무슨 말인지 몰
라서 “무어야?”  하고 되물었다. “내가 죽게  된다면 같이 죽는다구  할 테냐 
말이야?” “실없는 소리  하지 마라.”“내가 청석골루 안 간다구  우기면 군법
으루 죽인다구  할 테니까.” 잡담들  말라고 꺽정이가 소리를  질러서 곽오주는 
말끝도 마치지 못하고  모가지를 움찔하였다. 곽오주가 서림이의  주장을 좇기가 
싫고 또 늙은 오가와의 말다툼에 지기가 싫어서 청석골로 안 간다고 황소고집을 
부리었으나, 청석골을  가기 싫을 까닭이  없는 건 고사하고  도회청과 살림살이 
다 타고 자기  거처하던 등 너머의 외딴집만 성하게  만아 있단 말을 들은 뒤로 
은근히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까지  없지 아니하였다. 곽오주가  꺽정이 장령에 
눌리기도 하고 또  눌리는 체도 하여 일자 이후로  청석골을 간다 안 간다 말한 
일이 없었다. 청석골로 역사하러 갈 준비들을 차릴  때 늙은 오가가 짓궂이 곽오
주를 보고 “안  간다든 자네가 나버덤 먼저 가겠네.” 하고  씨까스르니 “갈라
면 선등 가는 게  좋지.” 뱃속 편하게 대답하고 “자네가 죽어두  안 간다구 하
지 않았나?” 하고  오금을 박으니 “내가 죽으면  당신에게 좋을 게 무어요?” 
넉살좋게 대꾸하였다. 그러나  서림이의 주장이 득승한 것만은  곽오주가 마음에 
종시 불쾌하여 “청석골  가서 군일하는 품삯은 서종사가  내야 할걸.”“청석골 
역사는 서종사가  다 해놔야 경계가  옳지 않소.” 서림이를  앉혀놓고 빈정거린 
일도 있고 이봉학이가 꺽정이의  수고를 대신하려는 뜻으로 청석골 역사 시키러 
가기를 자원하여 꺽정이가  광복산에 남아 있기를 변경하게  될 때 “갈 사람은 
바궈두 갈 자리는 바꾸지 못하나?” 꺽정이 면전에서  문말한 일도 있었다. 꺽정
이와 늙은 오가 이외에 여러  두령이 두목과 졸개 근 이십명을 데리고 청석골로 
나가는데 이십 명 사람이 함께  몰려갈 묘리가 없다고 세 패로 띄엄띄엄 떠나갔
다.
  청석골 소굴은 형지가 없었다. 즐비하던 기와집과  총총하던 초막이 하나도 없
고 깨어진 기왓장과 타나 남은 끄트럭과 다  탄 재가 땅바닥에 갈렸을 뿐이었다. 
이봉학이 이하 여러 두령이 두목과 졸개들을 거느리고 빈터를 돌아볼 때 여기저
기 보금자리  친 빔승들이 사람 발자취에  볼라서 이리 닫고 저리  닫고 하였다. 
등너머에 남아 있는 곽오주의 집이  방 이간 퇴 한간 삼간뿐이라 좁기는 하지만 
달리 전법할 곳이 없어서 상하 이십여 명  소솔이 삼간에서 복대기를 치는데, 졸
개들 중에는 뜰  위에 나가서 한진하는 사람이 밤마다 서너너덧씩  되었다. 이봉
학이가 여러 두령과 상의한 뒤 금교역말 어물전에서 양식과 장건건이며 당장 한
진할 제구로  차일과 멍석이며 아쉬운 대로 쓸 연장들을 얻어오고 그 다음에 장
단, 토산, 강음 각처에 묻어주고 간  졸개들을 모아들이었다. 식구가 나날이 자꾸 
느니 양식이 큰일이라 친분 있는  인근 읍 나전들에게 힘을 빌리고 관할하던 각 
동네 백성들에게 폐를 끼쳐도  뒤가 연해 알리어서 이봉학이와 서림이는 청석골 
앉아서 일을  보고 황천왕동이는 각처로 연신을  다니고 박유복이와 배돌석이와 
곽오주와 길막봉이는 두  패 세 패 혹은 네 패로  졸개 몇 명씩 거느리고 백 리 
내외로 나다니며 화적질을 하여 양미와 재목을  거두어들이었다. 모든 것을 임시 
배포로 차리는 끼닭에 도회청과  꺽정이 거처할 빕외에는 살림집을 몰밀어서 삼
간 초가로 짓고  졸개들의 초막이란 것은 게딱지만큼 쥐대기로 짓게  되었다. 모
군 서는 사람은 수효가  적을 때 사오십 명씩 되고 목수일,  미장이일 하는 사람
도 십여 명이나 되어서 일이  잘 붓는데다가 닫는 말에 채질하듯 이봉학이가 일
을 건몰아서  한  달 안에 역사가 얼추 다 끝이 났다. 그전  생각을 하면 심풍스
럽지만 한 달 전에 비하면 딴세상이 되었다.
  꺽정이가 여러 집  권속을 데리고 광복산에서 나와서  집들을 별러 들인 뒤에 
도거리로 낙연성을 차리는데 인근  읍 아전에게서와 각 동네 백성들에게서 부조
가 많이 들어와서 주식이 진진하였다.
  청석골 도회청은  관군의 불꾸러미가 한번 지나간  뒤에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정자 비슷한 초가로 변하고 벽도  없고 분합도 없는 네모 번듯한 마루 시간뿐이
나 드높고 시원한 것만 하여도 광복산 움구석 같은 방에는 댈 것이 나니고 좌우
의 익랑터와 정면의 대문간 자리를 모두 마당으로 닦아서 마당이 전보다 곱절이
나  넓었다.
  청석골을 비워놓고 도망할 때 여러  군데 감추어 두고 간 곡식과 세간과 병장
기를 모두 찾아내서 썩어 못쓸  것은 골라 버리고 쓸 것이라도 세간과 병장기는 
못질하고 푸레질하고 칠  벗은 것 칠 올리고 이삼십  명이 오륙 일 동안 분주히 
일을 한 뒤에 도회청 마루위에  교의도 놓이고 도회청 축대 아래 기치도 꽃히게 
되었다. 도회청 뒤에는 청포로 만든 휘장을 치고  도회청 안에는 해와 달을 그린 
두쪽 병풍 앞에 주홍칠한 큰  교의 하나를 놓고 큰 교의 좌우로 각각 작은 교의 
넷씩 휘우듬하게 늘어놓고 도회청 앞에는 각색기치 외에 창검과 부월을 벌려 세
웠다. 휘장은 밤낮  쳐두는 것이요, 교의는 날마다 떨고 닦고  하는 것이요, 기치
는 아침이면 내어꽂고 저녁이면 빼어들이는 것이요,  창검과 부월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나 내세우는  것인데, 이날 점고가 있는 까닭에 창범부월이  아침 햇빛
에 번쩍이었다. 두령들은 아직 겹옷을 벗지 아니할  때지만 벌써 많이 홑것을 입
은 졸개들이 바람기가 쌀쌀한 햇살퍼지기 전부터 도회청 넓은 마당으로 모여
들어서 두목들이 지휘하는 대로 칼잡이  창잡이 활잡이가 다 각각 떼를 지어 섰
다. 사산의파수  보는 졸개들과 두령들  집의 심부름하는 졸개들과  그외에 다른 
소임을 가진 졸개들도  하나씩 둘씩 오기 시작하고  시위한 사람이 와서 있다가 
여러 두령이 다 온 것을 보고 간 뒤 대장 꺽정이가 비로소 와서 일월병 앞에 놓
인 큰 교외에 전좌하였다. 졸개들은 머리를  수건으로 질끈질끈 동이고 두목들은 
머리에 벙거지를 썼을 뿐이고 여러 두령과 두 시위는 산수털벙거지를 쓰고 군복
을 입었고 종사관 서림이는  탕건에 진사립을 눌러쓰고 창의를 입었고 꺽정이는 
머리에 쓴 것은 금관이요 몸에 입은 것은  홍포이었다. 마루 위의 두령들과 축대 
아래 두목들이 두 시위의 창을  따라 국궁진퇴하여 조사를 마친 뒤레 꺽정이 입
에서 “점구를 시작해 보지.”말 한마디가 떨어지며 곧 “점구를 시작해 보지.” 
“점구를 시작하랍신다!” 두 시위가  쌍으로 받아내리고 “네이.” 여러 두목이 
일시에 긴 대답을  올렸다. 서림이가 꺽정이에게 품하고 마루 끝에  나와서 점고
할 방법을 자세히  지휘하였다. 졸개들 섰는 편에는 청기 하나를  세우고 건너편
에는 홍기 하나를 세우게 한뒤 졸개들이 성명이 불리거든 청기 아래서 대답하고 
홍기 밑으로 건너가되 건너갈 때 대상을 향하여 군례를 한 번씩 하라 하고 좌우 
시위더러 축대에 나가 서서 전날 도록에 적힌 성명을 차례로 부르되 세 번 불러
서 대답이 없거든 그 성명에는  표를 지르고 다음을 부르라 하고 점고를 시작할 
때와 끝마친 때에 군호로  북을 치고, 처음 북소리 난 뒤부터  나중 북소리 나기
까지 일체 헌화를 금지하라 하였다. 서림이가 자기  교의에 도로 와서 앉은 뒤에 
꺽정이가 서림이를  돌아보며 “헌화 금지하는 걸  두목들에게만 맡겨두지 말고 
두령 몇이 나가서 보면 어떻겠소?” 하고  물어서 서림이가 “청,홍기 양쪽에 한 
분씩 두분만 나가서 섰으면 좋겠습니다.”하고 대밥ㅎ여  꺽정이는 곧 좌우편 끝 
교의에 앉은 황천왕동이와  갈막봉이를 마당으로 내려보냈다.   둥둥둥 북소리가 
났다. 마당이나 마루나  다같이 조용하였다. 무식한 신불출이는 도록책을 펼쳐들
고 글자 아는  곽능통이는 성명을 불렀다. “이오종이.” “녜, 등대하였소.” “
김몽돌이.” “녜, 등대하였소.”  “최오쟁이.”“녜, 등대하였소.”“안되살이.” 
“녜, 등대하였소.” “정갑돌이.”  “녜, 등대하였소.” “박씨종이.” “박씨종
이.” “박씨종이.” “신복동이.” “녜, 등대하였소.” “구봉득이.” “녜, 등대
하였소.” “장귀천이.” “장귀천이.” 장귀천이는 귀가  먹어서 못 알아듣고 가
만히 섰는 것을 옆에 사람들이 눈짓 입짓으로  가르쳐 주어서 “녜 녜.” 연거푸 
대답하여 뛰어나왔다. “김억석이.”  전에 뒷산 파수꾼 패두이던 김억석이가 아
직까지 다시 오지 아니한 것은 다들 잘 아는 까닭에 곽능통이가 세 번까지 부르
지 않고  다음에 적힌 성명을  불렀다. “화선이.” “녜.”  “춘선이.” “녜.” 
“산봉이, 산봉이, 산봉이.” “백만이, 백만이, 백만이.” “차돌이.” “녜.”  “
쇠돌이.” “녜.”  “수동이.” 강수동,차수동이  수동이 둘이 쌍대답을  하였다. 
“강수동이.” “녜.”  “차수동이.” “녜.”  “강득이.” “녜.”  “몽득이.” 
“녜.” “서노미.” 노미가  서노미,허노미,이노미 서넛이나 되어서 일껀 성까지 
껴서 부르는데 허노미는 제가  불린 줄 알고 서노미보다도 앞질러 대답하였다가 
다시 서노미 부르는 것을 듣고 뒤통수를 긁었다.  다른 졸개들은 이것을 보고 웃
음을 참느라고  입들을 악물었다. 홍기쪽에  있는 황두령은 가만히  한군데 섰을 
뿐 아니라 많이 딴데를 보는 까닭에 졸개들이 소곤소곤 지껄이기도 하고 가만가
만 웃기도 하지만, 청기  쪽에 있는 길두령은 어떤 놈이 혹시  웃나 지껄이나 하
고 큰 눈을 두리번거리면서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까닭에 졸개들이 끽소리도 
못하였다. 허노미와 이노미가  다 불린 뒤에 개똥쇠와 작은쇠가 불리고  그 다음
에 덜렁쇠가 불리었다.  덜렁쇠는 이름과 같이 사람도 덜렁이라 녜  대답하고 곧 
쏜살로 홍기 쪽으로 건너갔다가 두목에게 볼치 맞고 다시 나와서 현신하고 들어
갔다. 연하여 불리는 이름 중에 존이,출이,녹이,복이,동이 같은 외자 이름도 꽤 많
고 삽살개미치,  자릅개똥이 같은 다섯자 이름도  혹있고 광노, 양필,  맹효 같은 
점잖은 관명도 더러 있으나  강아지, 도야지, 부엌개, 마당개, 쥐불이, 말불이,  쇠
미치, 말미치 같은  천한 아명이 제일 많았다.  청기 아래 두목과 졸개가 하나도 
남지 아니한 뒤에도 도록에 적힌 성명은 두서넛 더 있었으나 곽능통이가 부르지 
않고 표를 질렀다.  해가 늦은 아침때가 지난  뒤에 점고가 끝이 났다. 북소리가 
둥둥둥 나며 홍기 아래는 와글와글하였다.
  도회청지기 소임을 가진 아이들만 남아 있고 그외는 다들 가라고 꺽정이가 영
을 내려서 두목과 졸개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갔다. 도록에 성명이 적힌 두목
과 졸개는 백 여명이 넘으나 점고받은 수효는  육십여 명밖에 더 아니되었다. 이
때까지 다시 오지 아니한 것들은  종내 오지 아니할 것이고 설혹 오더라도 받아
두지 않는다고 꺽정이가 사람 없는 빈 성명을  모두 꺾자 치게 하였다. 서림이가 
곽능통이의 표지르던 붓을 달래 가지고 도록에 표질한 성명을 꺾자 쳐 내려가다
가 홀저에 붓을  멈추고 꺾정이를 돌아보며 “김억석이는  아직 좀 그대루 두구 
보시지요.” 하고 꺾정이의 의향을 물었다. “어디루 갔는지두 모른다는 걸 두구 
봐 무어하우?” “사람이라도  내놔서 찾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럼 안 
온 놈들을 다  찾을테요? 누군 찾구 누군 안 찾겠소.”  “김억석이는 다른 놈들
과 다르지 않습니까.” “오,  배루령의 가시아비라구 찾아야 한단 말이오?” “
배두령의 장인두 되려니와 우리 청석골에 유공한  사람이 아닙니까.” “찾을 때 
찾더라두 다른  놈들과 같이 꺾자쳐  두우.” 서림이가 꺾정이의  말을 드디어서 
김억석이 성명까지 꺾자쳐 버렸다.
  꺾정이가 먼저 가고 그 다음에 여러 두령이 각각 헤어져 갈 때 배돌석이가 서
림이와 같이 오다가 “그러지 않아두 나는 요새  집에서 졸려 못살 지경이오. 제 
아비 재 동생을  찾아달라구 사람을 오복전 조르듯 하우.” 하고  안해에게 성화
받는 것을 이야기하였다. “일부러 내보낸 이야기를  않구 가만 내버려 두었으면 
도망한 걸루 알구서  찾아달란 말두 못할 것인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해들리랍니
까?” “저의 부녀가 다시 만나게 될 때까지 나는 이야기 안하구 덮어두려구 했
었는데 올 정월  초생인가 보우. 싱검쟁이 오주가 놀러왔다가 죄다  이야길 해주
어서 오주 간 뒤에 미리 이야기 안했다구 포달을 떨어서 내가 한바탕 곤경을 치
렀소.” “결자해지루 곽두령더러 찾아다가 주랬으면 좋겠구려.” “우리 집에선 
서종사더러 찾아달라구 야단이오.”  “김억석이를 못 찾는 날이면  내가 칼침을 
맞지 않겠소.” “하는  대루 내버려 두면 벌써 서종사에게 시비를  붙으러 갔을
는지두 모르지요.” “이거  큰일났구려.” 서림이와 배돌석이가 서로 보며 웃었
다. 얼마 앞서  가던 길막봉이와 황천왕동이가 두 사람의 웃음소리를  듣고 둘이 
같이 돌아서면서 길막봉이가  큰소리로 “여보 성님, 서종사하구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우?” 하고 물었다.
  “자네들은 못 들을 이야길세.” “우리 못 들을  이야기가 무어람?” “못 들
을 이야기라니  굳이 좀 들으러  갈까.” 길막봉이와 황천왕동이가  쫓아들 와서 
“무슨 이야기들 했소?  역적모의했소?” 황천왕동이가 먼저 말을  붙였다. “우
리들 밤낮 하는 것이  역적모읜데 무슨 역적모의를 타루 한단 말이야?” “대장
을 들어내자구  하면 따루 역적모의가  되지 않소.” “빈말이라두  큰일날 말을 
다하네. 자네가 광복산에서 혼구멍이 나구두 대장이 무서운 줄을 모르나.” “그
런 소리는 듣기  싫소. 고만두우.” “자네가 먼저 듣기 싫은  말을 하지 말지.” 
“글쎄 고만두어요.” 길막봉이가  다시 황천왕동이 뒤를 이어서  “무슨 이야기
들 했소?” 하고  물으면서 배돌석이와 서림이를 번갈아 보았다.  “배두령이 장
인과 처남을 못  찾으면 내외간 의초가 상하겠다구  나보구 사정 이야기를 하신 
끝이오.” 하고 서림이가  웃음의 말로 말하였더니 길막봉이는  그저 들떼어놓고 
말하고 황천왕동이는 “사정이 무슨 사정이요, 치사스럽게.” 배돌석이를 핀잔주
었다. 
  배돌석이가 황천왕동이가  대장 들어낼 역적 모의했느냐고  말한 것이 실없은 
말이라도 귀에 거친데다가 또 서림이의 웃음의 말을 곧이듣고 정말 창피한 사정
이나 한 줄로 아는 것이 마음에 불쾌하여  배돌석이는 골이 난 것인데, 황천왕동
이는 배돌석이가 자기 말에 무안을 타는 줄로 짐작하고 풀어 말한답시고 “무안
해할 것까진 없소.”  하고 말하니 “무안하긴 무에 무안해? 별  기급할 소릴 다 
듣겠네.”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소린  왜 지르우? 사람 귀청 떨어지겠소.” 
“자네가 날 깔보는 모양인가?”  “무안에 취해서 골이 났구려.” “글쎄, 내가 
무안할 게 무어야?” “그럼  왜 골을 내우?” “골내는 게 잘못인가?” “그렇
게 골낼 것  같으면 내가 잘못했나 보우.” “골낼 것  같으면 잘못했나 보우?” 
“잘못했다는데 다시 뇔  건 무어 있소?” “다시  뇌면 어쩔테냐?” “이거 막 
쌈을 하러 덤비는구려.”  “쌈할 테면 해보자, 너 같은 놈은.”  “너 같은 놈이
라니.” 황천왕동이도 얼굴을  붉히었다. 길막봉이가 사이를 타고 들어서며 “이
러다간 참말루 쌈  되겠소.” 말하고 그 다음에 서림이가 “내가  공연히 실없은 
말 한마디를  했다가 두 분 사이에  말썽이 되어서 미안하우.” 하고  말한 뒤에 
“배두령 고만 갑시다.”  하고 배돌석이의 군복 소매를 끌었다. "도둑질을  해먹
구 살더래두  도둑놈의 의리는  있어야지.” 배돌석이는 황천왕동이를  노려보고 
“내가 의리 없는 짓 한 게 무어야?”  황천왕동이는 배돌석이를 노려보았다. “
칠장사 부처님 앞에서  맹세할 때 이렇게 막보기루 했더냐!” “누가  먼저 막보
구 대들었기에 말이야.”  “네가 대장 형님 내버리구 어디루 간달  제부터 맹세
를 소중히 안 여기는 줄  알았다.” “그런 웬 되지 못한 수작이야!” “되지 못
한 수작? 나는 된 수작 할 줄 모른다.” 배돌석이가  다시 한 번 “되지 못한 수
작?” 하고 뇌며 곧 서림이 손에 잡힌 소매를 뿌리치고 앞으로 내달아서 황천왕
동이에게 덤비려고  하였다. “이거 왜들  이러우. 글쎄  고만두우.” 길막봉이가 
사이에서 가로막고 “졸개들이 보면 창피하지  않소? 고만두고 갑시다.” 서림이
가 뒤에서  붙들었다. 황천왕동이가 다시  아무 소리 않고  있었으면 배돌석이도 
그럭저럭 그만두었을지 모를 것을 발끈하는 성정에 “덤비면  어쩔 떼야! 거먹초
립의 버릇이 그저  남아서 아무 데나 덤비려구.” 황천왕동이 뇌까리는  말이 타
는 불에 기름을 끼어얹은 것 같아서 배돌석이는 펄펄 뛰게 되었다. "오냐,  내 밑
천은 역놈이다. 너같이 밑천을 잘 찾는 놈이  어째 지지하천 백정놈 아들에게 누
이를 바쳤느냐! 이놈아,  거먹초립이 어떻단 말이냐. 말  좀 더 해봐라.” 뒤에서 
붙드는 서림이를 떠다박지르며 곧 군복을 훌훌 벗어 내던지고 저리고 앞을 풀어
제치고 칼자국에 군살이  더덕더덕 붙은 가슴을 주먹으로 땅땅 쳤다.  앞에서 가
로막는 길막봉이를 밀어젖히려고 하나 잘 밀리지 아니하여  “저리 비켜라!” 소
리를 질렀다. “이거 무슨 짓이오?” “말리지 마라. 내가 오늘 죽든지 청석골을 
하직하든지 할 테다.” “여보 좀  참우. 우리 형제들 새에 이래서야 말이 되우?
” “형을 형같이 안 아는  놈하구 형제가 다 무어냐?” “우리 가서 여럿이 모
여앉아서 시비를  따져봅시다.” “아니다. 내가  저놈하구 단둘이  따져볼 테다. 
저리 좀 비켜라.” “글쎄 좀  참우.” “너까지 날 막보느냐?” “막보는 건 다 
무어요?” “안 비켜 줄 테냐?” “못  비키겠소.” 배돌석이가 길막봉이를 잡아
먹을 것같이 노려보다가  “오냐, 안 비켜 줄 테면 고만둬라.  난 집으로 갈테다.
” 말하고  벗어던진 군복을 주워들면서  “우리 이따가 단둘이  만나자.” 하고 
황천왕동이를 별렀다.
  배돌석이가 나중에 황천왕동이를 말릴 사람 없는 데로 끌고 가서 단둘이 맞붙
어 톡톡히 해보려고 마음을 먹고 자기 집으로 가려들 때에 박유복이가 뛰어오고 
또 뒤미쳐서 이봉학이 외 늙은 오가가 쫓아들  왔다. 졸개들이 어디서 보고 가서 
말들을 한 것이었다. 박유복이는 배돌석이를 붙들어  세우고 늙은 오가는 배돌서
이의 군복을 입혀 주었다. “대체  웬일이오? 서종사 본 대루 이야기 좀 하우.” 
박유복이 묻는 말에 “두 분 새에 말다툼 난 것이 귀기본하면 내가 웃음의 소리 
한마디 잘못한  탓이오.” 서림이가 이야기  시초를 내놓을 때  이봉학이가 손을 
저으며 “여기저기서 내다보는 것들이  창피하니 우리 어디 가 들어앉아서 이야
기합시다.” 하고  서림이의 이야기를 가로막았다.  “대장댁 사랑으루들 가실까
요?” “아니 대장댁  사랑은 재미 없구 어디루 갈까. 좁더래두  우리 집으루 갑
시다.” 이봉학이가 배돌석이와 황천왕동이와 기외에 다른  사람들을 다 끌고 집
에 와서 계향이 모자를 다른  집으로 보내고 방을 치우고 들어앉은 뒤에 서림이 
시켜서 두 사람의  말다툼한 것을 자초지종 이야기하게 하였다. 서림이가  두 사
람 면전에서 이야기를 하는 까닭으로 한편에 치우치지 않도록 말을 극진히 조심
하고 옥신각신한 말을 옮길  때도 연해연방 길막봉이를 돌아보며 틀림이 없느냐
고 물어보았다.
  서림이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 이봉학이가 황천왕동이와 배돌석이를 번갈아 보
면서 “우리가 각성바지루 모여서 형이니 동생이니 하구 지내는데 친형제버덤두 
더 우애 있게 지내야 하지 않는가. 그까진  일에 서루 얼굴을 붉혀가지구 쌈질을 
하려구 하다니  자네들 둘이 다 지각이  없는 사람일세.” 하고 두  사람을 한데 
꾸짖고 그 다음에 황천왕동이더러 “대체루 말하면 자네가 형 대접 잘못하는 데
서 말다툼이 났으니까 자네  잘못이 많은데다가 거먹초립이니 무어니 그게 무슨 
철딱서니없는 말인가.” 또  배돌석이더러 “찬왕동이가 자네게는 전날  친한 동
무요 지금 정다운 동생인데 말버릇이  좀 고약하다고 웃통을 벗어 붙이구 곧 사
생결단이나 할 것처럼 대들었다니  그게 어디 지각 있는 사람의 짓인가? 그러구 
형이란 사람이 매사에  용서성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하고 두사람을  각각 책
망하는데 두 사람은 다같이 고개를 숙이고 말  한마디 못하였다. 늙은 오가가 허
허 웃으며 “친형제간에두  비위 틀릴 때는 쌈질을  하는데 의루 모은 형제간에 
말다툼 좀 하기두 예사지 무어. 이 사람들 부끄러워할 거 없네.” 하고 너스레를 
내놓았다. 박유복이가  황천왕동이더러 “자네가  먼저 사과하게” 하고  말하여 
사람이 싹싹한 황천왕동이가 선뜻 배돌석이를 보고  “내가 잘못했소.” 하고 사
과하니 배돌석이는 안간힘  쓰듯이 응 소리를 한번  하고 나서 가까스로 “나두 
잘못했네” 하고 마주 사과하였다.
  배돌석이와 황천왕동이의 말다툼이 낙착이 다 났을 때 신불출이와 곽능통이가 
같이 와서 “배두령, 황두령  두 분을 대장께서 오라십니다.” 하고 꺽정이의 분
부를 전하여 배돌석이와 황천왕동이가 꺽정이게로 불려오는데 이봉학 이외의 여
러 사람도 모두들 따라왔다.
  꺽정이는 배돌석이와 황천왕동이가 도회청 뒤 길가에서 드잡이를 하였다고 말
을 듣고 화가 대단히 난 까닭에 여러 두령들이 함께 몰려오는 것을 보고 부르지 
않은 사람은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다른 사람은  다 무료하여 말도 못하고 나
가려고 하는데 이봉학이가 앞으로 나서서 “둘이 말다툼하는 것을 시종 본 사람
이 서종사하구 막봉이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시는 게 좋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길가에서 드잡이를 했다는데 말다툼이라는  게 다 무어야?” “어떤 
놈이 형님께 와서 풍을 떨었구려. 서종사더러 이야기를 하라구 들어보시우.” 배
돌석이와 황천왕동이의 서로 말다툼한 것과 서로 화해한 것을 서림이가 모두 이
야기하여 꺽정이는 다 듣고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황천왕동이를 앞으로 불러 내
세우고 “네가 정말 사과를 하려면 김억석이를  찾아와야겠다. 조선팔도를 다 휘
매서라도 찾아오너라.  만일 못 찾아오면  돌석이는 고만두구 내가  우선 용서를 
못하겠다.” 하고 분부하였다. 서림이가 뜰 위에 올라가 서서 이야기하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마당에 선  채로 서 있었다. 꺽정이가 황천왕
동이에게 분부하는 말이 끝나자마자 여러 사람 틈에 끼여 섰던 배돌석이가 앞으
로 나서서 “잘못하기루 말하면 나나 천왕동이나 똑같이 잘못했으니까 청왕동이
만 잘못한 걸루 치실 일두 아니구 그러구 천왕동이하구 나하구 서루 용서하기루 
벌써 말까지 다 했는데 김억석이를 찾아와야  용서한다는 건 공연한 층절입니다. 
어디 가 파묻혀 있는지 소식두 모르는 사람을 건공대매루 나가서 어떻게 찾습니
까. 억석이를  찾으실 생각이 있으면 차차  수소문해서 찾두룩 하시지요.” 하는 
말이 배돌석이로는  한껏 구변을 다한  것이었다. “너는 용서를  햇거나 말거나 
억석이를 못 찾아오면  내가 용서 한할 떼란 말이다.” “어째서  하필 억석이를 
찾아와야 용서를 하신답니까?” “억석이를 찾을 이야기루 천왕동이가 발측스럽
게 굴었다니까 그벌루 찾아오란 말이지.” “그럼  나두 천왕동이하구 같이 찾으
러 가겠읍니다.” “너는 못 간다.”  “왜 못 갑니까?” “내가 너는 안 보내겠
다.” 이봉학이가 배돌석이  옆으로 나서며 “말다툼한 벌루  김억석이를 찾으러 
보내실라면 둘을 같이 보내는  게 옳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이 꺽정이가 
중뿔나게 나서지 말라고  말하고 “천왕동이는 오늘 해안으로  떠나가러가.” 하
고 더 분부한 뒤 곧 열어놓고 앉았던 방문을 소리나게 닫았다.
  여러 두령들이  한동안 서로 돌아보다가 밖으로  몰려나오면서 “대장 처사가 
공평치 못하시군.” “화가  잔뜩 나셨다기에 나는 또 좌기를 하느니  군법을 쓰
느니 할까 봐 속으로 염려를  했었지.” “군법두 쓸 때가 있지, 말다툼 좀 했는
데 무슨 군법이란 말이오?” “군법에 비쳐서 처단할라면  할 수 있지.” 권하여 
황천왕동이는 술을 나우 먹어서 점심도 궐하고 길을  떠나게 되었다. 떠날 때 해
는 벌써 서로 많이 기울었으나  그 해만 가지면 황천왕동이의 빠른 걸음으로 백 
여리 길도 넉넉히 갈 만하였다. 그러나 날이  따뜻하고 바람이 차지 않고 거기다
가 술이 취하여 황천왕동이는 눈이  절로 감기도록 졸려서 걸음을 걸을 수가 없
었다. 잔디밭 잔솔포기 밑을 찾아와서 보따리를 베게삼아 베고 드러누었다. 강음
읍 오십 리 길은 한숨 자도 갈 수  있거니 생각하였던 것이다. 저녁 바람이 산들
산들 불 때에 황천왕동이가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니 장등 위에 햇발이 없어지
고 골 안에 어둔  빛이 생기었다. “아뿔싸 너무 늦었구나.” 허둥지둥 일어나서 
비틀비틀 몇  걸음 걸으며 곧 줄달음을  놓기 시작하였다. 한참 오는  중에 등이 
서운하여 보따리  놓고 온 것을  생각하고 걸음을 멈추며 “이런  제기!”소리를 
질렀다. 보따리 속에는 고의적삼이  들고 길목이 들고 또 상목이 들었다. 과객질
로 돌아다닐 작정하고 길양식은 한 되도 안가지고 술잔이나 사먹을때 쓰려고 두
자짜리 상목을 여남은 필 넣어가지고 나왔었다.  “내가 이렇게 정신이 나가두룩 
취했었나?” 혼자말을 지껄이며 돌아서서 가던 데까지 다시 오는 중에 ‘강음읍
내까지 가자면 밤도 들려니와 우선 허기가 져서  못갈 텐데 어떡하면 좋을까. 산
으로 도로 들어갔으면 좋겠지만 하직 작별 다하고 나왔다가 도로 들어가기 계면
쩍고 오늘 밤에는  금교역말 어물전에 가서 잘까부다. 어물전 주인  부자더러 찰
방에게 알아봐달라고 부탁하고 내일  강음읍내로 들어가지.’생각하고 그제는 걸
음도 재게 걷지  아니하였다. 황천왕동이가 보따리를 찾아가지고  금교역말을 향
하고 왔다.  아주 캄캄 어두워서 어물전  늙은 주인이 방 앞에  들어서는 사람을 
못 알아보고 누구냐고 묻다가  황천왕동인줄을 알고 어서 들어오라고 방으로 맞
아들이었다. “어디를 갔다오시우? 어디를 가시우?” “산에서 나오는 길이오.” 
“저녁을 일찍 자시구  나오셨소?” “아니 저녁 안 먹었소.”  “군저녁을 시켜 
미안하우.” “천만에 말을  다 하시우.얼른 안에 가서 이루구  나오리다.” “아
들은 어디 갔소?” “그 애가  어디 밤에 집에 붙어 있소? 저녁만 떡먹어치우면 
나가버리지.” “간데를 알거든 좀  불러 오시우.” “집의 애보구 할 말씀이 있
소?” “부자분하구 같이 상의할 일이 있소.” “무슨  수나 생길 일이오? 곧 오
라구 부르러 보내리다. 잠깐만 혼자 앉아 기시우.” 늙은 주인이 일어서 나간 뒤
에 황천왕동이는 팔베게하고  누웠는데 늙은 주인이 다시  와서 누워 있는 것을 
들여다보고 “누워 기시우. 목침이 저 구석에 있소.”말하고 도로 안으로 들어갔
다. 한동안 늘어지게 지낸 뒤에 술이 거나하게  취한 젊은 주인이 방으로 들어오
며 첫대에   “무슨 상의할 일이 있어서 밤을  도와 나오셨소?”하고 묻는 것이 
그 아비에게 먼저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내가 김언석이를 찾으러  나선 길일
세.” “김언석이라니, 상쟁이 데리구 도망한 사람 말이오? 그 사람이 어디 가서 
있단 소문을 들으셨소?”  “소문두 못 듣구 그대루 찾아나섰네.”  “그 사람이 
어느 분의 장인이라든가?” “배두령의 장인이지.”  “그럼 배두령 안해의 청을 
받구 나섰구려.” 이때 늙은 주인이  방 밖에서  “이애 상 좀 받아라.” 심부름
꾼 들려가지고  나온 밥상을 아들  시켜서 받아 들여놓게  하였다. 황천왕동이가 
시장한 끝에 밥 한 그릇을  후딱 다 먹고 상을 물린 뒤에 관상쟁이 조가의 사는 
곳을 찰방에게서 알아내  달라고 부탁하니 젊은 주인이  웃으면서  “내가 요전 
산에 다녀와서 찰방꼐  친쫍게 다니는 사람을 다릴 놓구 알아봤소.  그 상쟁이가 
마전 사람이랍디다. 산에서들은 청홍도 사람이라구 하셨지. 마전 적성이 어디 청
홍도 땅이요, 경기 땅이지.”하고 언죽번죽  말하였다. 마전 소지명까지 알았느냐
고 황천왕동이가 물으니 젊은 주인은 고개를 가로 흔들면서 “소지명은 알지 못
했소.”하고 대답하였다. “다시 한번  자세히 알아봐 줄 수 없겠나?” “알아봐 
달라구 부탁은 곧 할 수 있지만 그 회보를 듣자면 보름이 될지 한 달이 될지 모
르지요.” “어째 그렇게 오래 걸릴까?” “내가 부탁할  사람이 찰방께 가서 그
런 말씀을 여쭤 보자면 여쭤 볼 만한 계제를 봐야 하니까 자연 오래 걸릴 것 아
니오.” “그렇게 오래 걸릴래선  부탁할 것두 없네. 내일 읍내 들어가서 알아봐 
달라지.” “읍내 들어가서 누구더러 알아봐 달라시우?” “이방보
구 말해 볼라네.” “그런  건 이방더러 말했자 소용이 없소. 이방이 찰방한테는  
길이 잘 닿지 않소.”  “아니 강음원님한테 알아봐 달라구 할 텔세.” “원님이 
알는지두 모르구  알기로서니 이방으로서 원님더러 그런  말을 물어보기가 어디 
쉽소?” “이방은 모를까?” “모르구 말구. 마전 사람인 줄두 모르리다.” 관상
쟁이란 것이 유표하여 마전읍에 가서 물어보면 그의 사는 소지명을 곧 알 수 있
으려니 생각하여 황청왕동이는 강음읍에를 들어가지 않ㄱ고 마전으로 직행할 마
음을 먹었다.
 이튿날 아침 후에 황천왕동이가 금교서 떠나서  개성.장단 적성 땅을 지나서 마
전읍에를 오니 해가 겨우 점심때쯤 되었었다.  읍내 바닥으로 돌아다니다가 그중
의 좀 정갈스러워  보이는 술집에 들어가 앉아서  술을 사먹으며 주인 계집더러 
말을 물어보았다.  “이 골에 유명한  관상쟁이가 있다는데 그  관상쟁이가 어느 
동리 사는지 아우?” “나는 장단서  살다가 이리 온 지기 얼마 안돼서 여기 일
을 잘 몰라요.” 밖에  섰던 사내 하나가 “ 여보 관상쟁이는 왜  찾소? 상을 보
러 왔소?”하고 물어서 황천왕동이가 “네 그렇소.”하고 대답하였다. “여기 달
골이란 데 상 잘 보는이가 하나 있을텐데.” “그가 성이 무어요?” “조씨요.” 
황천왕동이가 속으로   “옳다. 됐다.”생각하며 달골 가는 길을  물었다. 달골은 
읍에서 지척이라 술집에서  나서는 길로 바로 찾아나왔다. 상 보는  조씨는 집이 
동네 안침에 있는데  초가집일망정 제법 큼직하였다. 황천오왕동이가  삽작 밖에
서 주인을 찾으니  한참 만에 아이놈 하나가 안에서  나오며 곧 “샌님 집에 인 
기시오.”하고 말하였다. “어디 가셨느냐?”  “풀물골 잔치에 가셨소.” “풀물
골이란 데가  예서 머냐?, 가까우냐?” “풀물골이  여기서 가찹소.” “그럼 곧 
오시겠구나.” “저녁 전에 오시겠지요.” “애 너의 댁 샌님이 어디서 데려오신 
사람이 있지.” “샌님이  데려온 사람이 누구요?” “너만한 아이  하나하구 그
애 아버지하구 데려오셨지,” “난 몰라요.” “너는  못 봤느냐?” “난 몰라요.
” “모르거든  고만둬라. 이따가 너의 샌님  보이러 다시 오마.” 황천왕동이가 
달골 동네와 동네 근처를 바장이며 해를 보내고 이 집 저 집에서 저녁연기가 일
어날 때 조씨의  집에 다시 와서 물어본즉 주인이  아직도 오지 아니하여 그 집 
앞에서 오락가락 하는데 먼저 보던 아이놈이  어디를 갔다오면서 “여보시오, 나 
좀 보시오.”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를 불렀느냐?” “녜,샌님이  풀물골서 자
구 오시기가 쉽답디다. 여기서  기다리지 말구 갔다가 내일 아침에 오시우.” “
풀물골서 사람이 왔느냐?”  “샌님하구 같이 갔던 양반이 한  분 오셨습디다.” 
“내가 난데서 온 사람이라 갈 데가 없으니  너의 집에서 좀 자야겠다.” “마나
님 말을 들어봐야지요.”하고 아이놈이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곧 도로 나와서 “
마나님이 안된다구  합디다. 난 공연히 야단을  만났소.”하고 볼멘 소리를 하였
다.황천왕동이가 읍에 들어가서  자고 나오려고 생각하다가 읍에  들어가야 마찬
가지 과객 노릇을  할 바에는 이 동네 어느  집에 서 하룻밤을 자자고 해보리라 
다시 생각하고 잘 곳을 찾으러 다니었다. 황천왕동이가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다니는 중에 어느 집 앞을  지나가자 삽작 앞에 섰는 사내가 태가 벗은 품이 촌
농군 같지 아니하여 말벗이 훌륭히  될 듯하므로 그 사람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
를 져보려고 삽작 앞에 가까이 들어서며  “여보?”하고 브르니 그 사람이 삽작 
밖으로 나와서  “누구를 찾소?” 하고  묻는데 말소리가 제법  우렁우렁하였다. 
“댁이 이 집 주인이시오?” “녜, 그렇소.” “나는 지나가는 손인데 하룻밤 자
자구 청하러 왔소.” “어렵지 않은 청이나 내  집이 협착해서 손님을 재울 데가 
없소.” “봐하니  댁이 그다지 협착하지  않은데 재우기 싫어서  핑계하는 말씀 
아니오?” “남의 집 요리를  어찌 알구 핑계라구 그러우. 방이라군 안방.건너방 
둘뿐인데 안방은 식구가  쓰구 건너방은 도깨그릇이 차지했소.”  “방이 없으면 
봉당두 좋구 헛간두 좋소.” “쓸데없는 소리 말구 어서 다른 데나 가보우.” “
내가 유년 과객질을  하구 다녔어두 한번 자자구 청한  집에서 못 자본 일이 없
소.” “이 양반이 뉘게 떼를 쓸 작정  아닌가.” “여보,노형 같은 손 대접할 줄 
알만한 친구에게 떼를 못  쓰면 무지랭이 농군들에게 가서 떼를 쓰란 말이오?” 
“허허,그 친구 떼를  잘 쓰는군. 그렇지만 참말루 손님을 재울  데가 없소. 그러
니 저녁밥은 내게서  자시구 자기는 다른 집에 가서 자우.”  “도ㄲㅒ그릇 옆이
라두 몸 하나만  부빌 틈이 있으면 잘 수  있을테니 건너방에서 좀 자게 해주구
려.”“저녁 자신 뒤에 잘  데를 내가 지시해 드리든지 어떻게 할  테니 우선 들
어오시우.” 화천왕동이가 그 집 주인을 뒤따라서  삽작안으로 들어올 때 부엌에
서 여편네가 내다보는데 억굴이 해끔하였다. 주인이  방 윗간에 들어가서 방안의 
어절더분한 것을 거두어  치우웠다. 이 동안 황천왕동이는 방문 앞에  서 있었는
데 부엌 안에 해끔한 얼굴이 두어번이나  나왔다 들어갔다 하였다. 황천왕동이가 
방안에 들어앉은 뒤에  비로소 주인을 보고 인사를  청하여 주인이 성이 김가인 
줄을 알았다. 주인은  인사만 겨우 마치고 바로 일어나서 부엌으로  내려 가더니 
사내 여편네의 지껄이는 소리가 한동안 뒤섞여 들리고 그 끝에 “들어
가 앉아 이야기나 하우, 밥상은 내 갖다 드릴께.”여편네의 말과 “얼른 차려 주
어, 내가 들구 갈  테야.”  사내의 말이 똑똑히 들리었다. 주인이  불 붙은 관솔
가지를 가지고 와서 벽에 걸린  등잔에 불을 당겨놓고 다시 가서 겸상으로 차린 
밥상을 들고 왔다. 겸상한 것을 가지고 주인은  상이 하나밖에 더 없어서 외상으
로 대접 못한다고 발명하여 말하고 황천왕동이는 일시 지나가는 손을 너무도 정
숙하게 대접한다고 치사하여 말하였다. 황천왕동이가 머리에  쓰고 있던 갓을 벗
어놓고 주인과  같이 겸상밥을 먹는  중에 “물그릇 받으시우.”  해끔한 얼굴이 
한번 방 안문으로  나타나고 “찬이 없어 싱겁지요? 고추장을  여기 떠왔소.”해
끔한 얼굴이 또  한번 아래윗간 사잇문으로 나타났다. 해끔한 얼굴이  나타날 때
마다 주인의 미간에 주름살 잡히는 것이 환하였다.  저녁밥들을 다 먹고 상을 치
운 뒤에 주인이 황천왕동이더러 “윗간이나마 여기서 주무시려우?”하고 물어서 
황청왕동이는 “윗간은 좋지만 너무  내근해서 거북하니 건너방에 가서 자게 해
주시우.”하고 청하였다. “건너방은  폐방한 방이라 사람이 잘 수  없소. 내근한 
건 조금두  관계없으니 여기서 주무시우.”  “초면 만난 친구에게  신세를 너무 
지우.” “별 말을 다하는구려. 자 옷을  벗구 좀 누우시우.”말하고 주인은 사잇
문을 열고 아랫간으로 내려갔다. “오늘 저녁에 마슬을 좀 가야 할 텐데.” “꼭 
가야 할  일이 무어 있소?” “가야  할 일이 있으니까  말이지.”“가지 않아서 
낭패될 일이면 이따가 손님 잠든 뒤에  잠깐 갔다오구려.” “글쎄, 그래 볼까.” 
아랫간의 주인 내외가 이러한  수작을 하는 중에 밖에서 “김서방,김서방!”부르
는 소리가 났다. “밖에 누가  오지 않았어?” “저 위의 오서방 목소리 같소.” 
“그런거 같군.” 아랫간 앞문을 주인이 밖으로  나가느라고 여닫고 얼마만에 다
시 들어오느라고 또 여닫았다.  “오서방이 왜 왔습디까?” “읍내 가자구 왔서.
”“읍내는 왜?” “이주부  소상에 인사 치러 가자구.” “이주부  소상이 벌써 
되었어?” “덧없는 세월이 일년이 잠깐이지.” “그래  못 간다구 말했소?” “
남이 가자는 데 안 가면 나중에 이주부  아들들이 알더래두 섭섭하달 것 아니야.
” “그건 그렇지만 손님을  집에 두고 어떻게 가겠소?” “그래두 가봐야지 어
떡하나?” “그럼, 가서 인사만 치고 올 테요?”  “가면 자연 제사까지 보구 오
게 될테지.” “나는 밤에 혼자 잘 수 없소.” “손님이 윗간에서 주무시지 않는
가베.” “윗간에  손님이 기시니까 말이지. 뒷집  할머니나 청해다가 같이 자리
까?” “그건 맘대로 하라구.” “지금 오서방이  밖에서 기다리구 있소?” “아
니 내가 옥갓 하구  가마구 했어.” “윗간의 갓을 떼어와야겠구려.” “갓두 떼
어오려니와 손님더러 말두  해야지.” 아랫간에서 주인 내외가 하는 말을   윗간
의 황천왕동이는 다 듣고 앉았는데 주인이 사잇문을 열고 올라와서 “내가 오늘 
밤에 어딜 좀 갔다가  내일 식전에 올 테니 밤에 잘  주무시우.”하고 인사로 말
하였다. “주인이 어디 가시면 여기서 자는 게 피차에 거북하니 잘 데를 "말타툼
하는 것두 죽일 죄란 망이오?“ ”어디 죽이는  것만 군법인가.“ ”요전에 황두
령이 대장하구 말다툼하다가 군법을 당할 뻔하지 않았어?“ ”그때는 대장 명령 
거역한다구 했지  언제 말다툼한다구 했는가베.“    ”우리가  그때처럼 들싼을 
놓으면 군법을 쓸라니  쓸 수 있오.“ ”들싼을 놓을까 봐서  우리를 내쫓으려구 
하셨는지 모르지.“  ”내쪼ㅈ는다구 우리가 모르게  되나.“ 여럿이 받고채기로 
지껄이는 중에 황천왕동이는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걸어나왔다.  배돌석이가 황
천왕동이 옆에  와서 ”어떻게 할 텐가?“  하고 물으니 황천왕동이는 흥심없이 
”어떻게 하다니 오늘 떠나지  별수 있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럼 나두 같이 
갈 텔세.“ ”고만두우. 걸음이 재지 못해서 동행하기두 갑갑하구 또 가지말라는 
걸 가면 뒤에 말썽스럽소.“ ”길양식 지구 갈 아이 하나는 데리구 가겠지. 그러
자면 자연  걸음을 맘대루 못  걸을 거 아닌가.“  ”홀가분하게 괴나리봇짐이나 
해 지구 혼자  떠나갈라우.“ ”사람두 하나 안 데리구 갈  까닭이 무언가?“ ”
사람 안 데리구 혼자 다니는  건 성가시지 않구 좋지만 기한두없구 정처두 없이 
떠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기가 막히우.“ 황천왕동이  말끝에 늙은 오가가 황천왕
동이를 보고 ”이  사람아, 억석이를 생전 못 찾으면 생정  떠돌아다닐 텐가? 그
저 한 열흘 유산 나선 셈 잡구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들어오게그려.“ 하고 말
할 때 ”밖에 나와서 무슨 공론들 하우?“ 곽오주가 맞은편에서 오며 소리를 질
렀다. 곽오주는 등  너머집에 넘어가 있다가 배두령과 황두령이 쌈을  하고 대장
댁에 잡혀갔단 소리를 듣고 쫏아오는 길이었다. 곽오주가 와서 박
유복이의 이야기로 전후 사단을  다 들은 뒤에 황천왕동이더러 ”김억석이란 놈
은 보낸 사람이 찾아놔야 할 텐데 공연히  횡액에 걸렸구려. 지금 그놈을 찾자면 
천왕동이 성님이 조선팔도  동소임도두령 노릇을 해야겠소.“ 하고 말하였다. 황
청왕동이가 곽오주 말을 대꾸하기  전에 늙은 오가가 ”동소임의 도두령이란 뭐 
말러뒈진 겐가.“ 하고 물으니 곽오주는 싱글싱글  웃기만 하고 대답을 아니하였
다. ”되지 않은  소리 지껄인 걸 묻는  내가 실없지.“ ”김억석이란 놈이 지금 
어디 가 있는지 모르지 않소?“  ”그래서?“ ”어디 가 있는지 모르는 놈을 찾
자니 아무래두 각 골 각 말루 돌아다녀야 하지 않겠소?“ ”그래서?“ ”그러니 
각 말에 들어가서 소임이 동네 오이듯 하는  수밖에 없겠단 말이오.“ ”참말 꼭 
된술세.“ 서림이가 곽오주 듣거라  하고 ”실없는 말씀두 할 때가 있지. 황두령
은 곧 떠나야 할 텐데 실없은 말씀 하다가  해 지우겠소.“ 하고 늙은 오가를 핀
잔 준 뒤에 곧 황천왕동이를 향하고 ”여보  황두령, 내 생각에는 김억석이가 관
상쟁이를 따라간 것  가ㄸ소. 강음현감의 손에 단련을 받다가 놓여나갈  때 금교
역말 어물전 주인에게루 가느냐구  물으니까 어디루 갈는지 나서 봐야 알겠다구 
하구 동행이 있느냐구 물으니까 동행이 있다구  하드라우. 잡혀 갇혔다가 놓여나
오는 길루 곧 어디서 다른 동행이 생겼겠소? 그 동행이란 것이 십상팔구 관상쟁
일 것이오. 또 설혹 동행을 하지 않았더래두  관상쟁이는 억석이의 거처를 알 듯
하니까 관상쟁이의 뒤를 알아보는 게 억석이 찾는  데 첩경이 될 듯하우.“ 하고 
말하여 여러 두령이  둘러서서 관상쟁이의 뒤 알아볼 도리를 의논들  하였다. 관
상쟁이가 청석골 와서  잡혀 있는 동안 늙은  오가가 데리고 한담설화하는 중에 
혹 근지를 캐어물어  보았건만 고향이 청홍도(충청도)라고 하고 골  이름도 말하
지 아니하여 청홍도사람 조가로만 알았더니 향일에 금교 어물전 젊은 주인이 인
사하러 들어왔을 때 억석이 이야기 끝에 관상쟁이 말도 니ㅆ었는데 젊은 주인의 
말은 청홍도 사람이 아니요 근기 사람이라고 하니 관상쟁이가 처음에 적굴인 줄
을 모르고 왔다가  알고서는 겁이 나서 고향까지도  바로 말하지 않은 모양이었
다. 관상쟁이의 사는 곳을 아는 것이 제일  긴요한데 그것을 누구에게 가서 물으
면 알 수  있을까 여기에 여러 가지 의논이 분분하였다.  관상쟁이가 금교찰방과 
가장 친분이 있었다니 금교찰방에게 다리를 놓아서  물어보자는 사람도 있고, 금
교찰방이 강음현감에게 천거하여  관상쟁이가 강음관가에서 오래 묵었다니 강음 
이방더러 알아보내라고 기별하자는 사람도 있고, 또  지금 서흥부사 노인이 관상
을 좋아하는 까닭으로 서흥부중에  관상쟁이가 많이 모인단 말이 있으니 관상쟁
이 조가도 혹시  거기 가서 있지 아니한가 알아보자는 사람도  있었다. 서림이는 
여러 사람의 의논을 잠자코 듣다가 남나중 ”여러분  내 말씀 좀 들으시오.“ 하
고 말을 내었다. ”대장께서 황두령더러 오늘  해안으루 떠나라고 하셨는데 언제 
금교찰방에게 다리 놓구 물오보구 언제 서흥을 가서 알아온다 말씀이오. 황두령, 
오늘 강음읍내 들어가서 이방을  찾아보구 물어보시구 강음서 알 수사 없다거든 
금교역말 나와서 어물전 주인 시켜서 찰방에게  다리 놓구 물어보두룩 하시구려.
“ 황청왕동이가 서림이의 말을 듣고 나서 ”서종사 말대루 오늘 강음읍내루 가
겠소.“ 하고 여러 두령들을 돌아보았다. 늙은 오가가 황천왕동이더러 ”자네 점
심 뒤에 곧  떠날 텐가?“ 하고 물으니 황천왕동이가 ”글쎄,  오늘 강음읍내 가
서 잘 작정이면 다  저녁때 떠나두 좋겠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럼 떠나기 
전에 우리 모여서  술이나 한잔씩 먹세.“ 늙은 오가의 말끝에  이봉학이가 술을 
내겠다고 말하고 바로  함께 가자고 끌어서 여러  두령이 다시 이봉학이 집으로 
몰려오는데 황천왕동이는 자기 집에 잠깐 다녀온다고  따로 떨어졌다. 늙은 오가
가 황천완동이를  돌아보며 ”잠깐이란 게  한정없이 오래 되렷다.  정다운 젊은 
내외가 작별할 이야기를 하느라면 해 가는 줄  모르지 쉽지.“ 하고 웃어서 다른 
두령들도 따라 웃었다. 술자리에서 배돌석이가 화해술로  권하고 여러 두령이 작
별술로 한 군데 지시해  주구 가시우.” “단 내외 사는 집에  내가 어딜 나가면 
집이 쓸쓸해서 안사람이 무섭다구 하는데 오늘 밤에는 황서방이 의외에 와 주무
시게 되어서 든든해 좋으니 조금두 거북하게  생각 마시우.” “나버덤두 안에서 
거북하실 것 아니오.” “든든해  좋다는데 그러우. 아무 염려 말구 편히 주무시
우.” “주인 내외분이  나를 그처럼 믿어 주시는 바엔 염체없이  여기서 그대루 
자겠소.” “내가 내일 식전  일찍 오리다.” 주인이 말코지에 걸린 갓을 떼어들
고 다시 아랫간으로 내려갔다. 얼마 아니 있다가 주인이 나가는데
 주인 여편네도  따라나가는 모양이더니 삐걱 삽작문을  닫고 짝짝 신발을 끌고 
들어왔다. 황천  왕동이가 목침도 달라고  말하기 어려워서 보따리를  베고 누워 
있다가 아랫간의 여편네가  사잇문을 바시시 여는 바람에 벌떡 일어  앉았다. “
이부자리를 좀  내려가야겠습니다.” “네, 내려가시지요.” 여편네가  윗간에 내
려와서 시렁에 얹힌  이불을 내리는데 발을 저겨  디디고도 잘 내리지 못하므로 
황천왕동이가 일어나서 거들어 주었더니 여편네는 이불을 방바닥에 내려놓고 나
서 황천동이를 돌아보고  쌍끗 웃었다. 해끔한 얼굴에 도화진 두  볼이 두드러지
게 눈에  뜨이었다. 여편네가 맵시 낸  것이나 몸가지는 것이 촌생장  같지 않고 
허울 쓴  것도 그만하면 면추라고 할  만하였다. “아이그머니 딱하지, 보따리를 
비셨었네.” 여편네가 시렁에서 베개 하나를 내려서 “이 베개를 비세요.” 황천
왕동이 앞에 밀어놓는데 베개 마구리에 붙은 붉은 헝겊이 검어지도록 때가 묻은 
것이었다. “베개는 고만두구  목침이나 하나 주십시오.” “베개가 더러워서 싫
다십니까?” “아니요, 천만에.” 여편네가 또 시렁에서 헌 처네 한 쪽을 내려서 
옆에 갖다놓으며 “더럽지만 밤에 배 위에나  걸치십시오.” 말하고 연해 곁눈질
을 하였다.
  여편네가 얼굴 해끔한 값으로  조신치 못한 모양이라 황천왕동이는 말 대척을 
아니하고 잠자코 있었더니 여편네가 한동안 몸을 비비 꼬고 섰다가 홀저에 골난 
것같이 이불을  덥석 집어안고 뽀르르  내려가며 사잇문을 탁  닫았다. 아랫간에 
가서 한참 무어라고 종알종알하고 그 뒤에는  자는 것같이 조용하였다. 황천왕동
이가 고정하게 베개를 내놓고 보따리를  다시 베고 누워서 잠을 청하는 중에 아
랫간에서 나는 기척에 귀가 절로 쏠리었다. 잠  안자는 표를 알리려는 뜻인지 헛
기침을 가끔 하고 사내 냄새가 콧속을 간지르는지  재채기를 여러 번 하였다. 갑
작스럽게 병이 난  것처럼 끙끙 앓는 소리를 하더니 얼마  뒤부터는 “아이구.” 
“아이구머니.” “아이구 아파 죽겠네!”  죽어가는 소리를 줄달아 하여 황천왕
동이는 들랴말랴 하는 잠이  그만 번놓이었다. “손님.” “아이구 손님?” 자지
러지게 부르는 것을  대답 안 하고 “내려와서 물 조금만  데워주세요.” “얼른 
와서 가슴 좀 눌러주세요.” 안타깝게 사정하는 것을 가만 내버려두었다. 사잇문
이 별안간 펄떡 열리고 여편네가 근두질치듯 굴러들어오며 곧 옆에 와서 달라붙
었다. “속의 적이 치밀어요.”  “숨이 막혀 죽겠어요.” “아이구 죽겠네.” “
사람 좀 살려주세요.” “억센 손으로 꽉 좀 눌러주세요.” 황천왕동이가 어이없
어서 누운 채 가만히 있었더니  여편네의 얼굴이 가슴에 와서 닿고 손이 허리에 
와서 얹히었다.  황천왕동이는 본래 방외  색에 대하여 근엄하기가  도덕군자 볼 
쥐어지를 사람인데다가 여편네의 행실이 하도 더럽고 망측해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도리어 더 단단하여졌다. 여편네를 떠다 밀고  일어 앉아서 “네 병은 내가 
말루 고쳐줄 테니 일어나서 말을 들어라.” 해라를 내붙였다. 여편네가 무춤무춤
하고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을 황천왕동이가 잡아 일어켜 앉히고 “너갈이 부끄럼
이 없는  기집은 내 평생에 처음  봤다. 서방 없는 기집이라두  부끄럼이 없으면 
못쓸 텐데 뚜렸한 서방 있는 기집으루 너같이 부끄럼이 없어서야 사람이냐 개짐
생이지. 개짐생두 너버덤은 낫다.  암캐가 수캐에게 먼저 덤비는 법이 없구 수캐
가 덤벼두 꼬릴 샅에  낄 때가 많다. 너 같은 기집은  개짐생으루 치구서 잔등이
가 부러지두룩 패주어두 좋겠지만 네 서방 낯을  봐서 내가 십분 참구 고만둔다. 
이후에는 아예 더러운 행실을  할 생각 마라. 내 말이 네  병에는 당약이니 명심
해 들어두어라.”  통통이 꾸짖었다. 여편네는 앓는  소리도 못하고 낯바닥도 못 
들고 앉아 있다가 황천왕동이 입에서 “고만 가서  아무 소리 말구 자거라.” 말
이 떨어진 뒤  비로소 힘없이 일어나서 아랫간으로  내려가며 바로 일장 통곡을 
내놓았다.
  ‘이웃 사람이  쫓아와서 우는 까닭을 물으면  저년이 무어라구 대답할라노’ 
황천왕동이는 이웃 사람이 아닌밤중의 곡성을 듣고 쫓아오려니 생각하였는데 통
곡이 끝나도록 오는  사람이 없었다. 여편네가 곡을 그치고 앞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안방 뒤꼍으로 돌아가더니 “김도령, 김도령!”  사람을 불렀다. ‘저년이 
내게 분풀이를 하려구 이웃집 총각놈을 청병하지  않나.’ 황천왕동이가 귀를 기
울이고 있자니 남녀의  지껄이는 소리가 나는 중에  여편네의 가는 말은 분명치 
않고 사내의 굵은 소리만 똑똑하였다. “밤중에 왜  울었소?” “나는 또 놈팽이
에게 얻어맞구 우는 줄 알았어.” “과객놈이 덤비거든 받아주지.” “울음을 내
놓으니까 찔끔해서 내빼더란 말이지. 그 자식 얼뜬 자식일세.” 여편네가 들린다
고 말을 했는지 사내 소리도 가늘어졌다. 한동안  지난 뒤에 남녀의 발짝 소리가 
뒤에서 앞으로 나오고 밖에서 방으로 들어왔다.  ‘총각놈이 저년의 거짓말을 곧
이듣고 분풀이를 해주러  왔으니까 몽둥이라두 들구 샛문으로  뛰어들려니.’ 황
천왕동이가 일어나서  사잇문을 바라보고 있는 중에  아랫간에서 음탕한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저년을 가만둘 수가 있나. 쫓아올라가서 연놈을 한데 짓밟아 
줄까 부다.’ 황천왕동이가 생각할  때 아랫간 앞문이 왈칵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연놈 다  꿈쩍 말구 가만 있거라.”  말하는 목소리가 바깥주인이 틀림없었다. 
소상집에 가서 밤새우고 온다던 사람이 어느  틈에 소리없이 돌아왔다. 황천왕동
이는 아랫간에서 천변수륙을 다하더라도 모른 체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사잇문
으로 총각놈이 뛰어들어오려고  하여 사정없이 발길로 내질렀다.  총각놈이 나가
자빠지자, 쫓아들어온 주인의 손에서 긴 칼이 번쩍하였다. 방구석에 붙어앉은 여
편네가 “살인이야!” 외치는데 주인이 “이년.”하고 칼로  쳐서 “아이구.” 소
리를 지르며 앉은 자리에 쓰러졌다. 피비린내가 코를 거슬렸다. 황천왕동이가 살
인에 참섭되는 것을 재미없게 생각하여 사잇문을 닫고 자리에 와 앉아서 ‘어디 
다른 데로 가는 게 좋겠는데  밤중에 갈 데도 없고 관상쟁이를 보고 가야 할 텐
데 멀리  갈 수도 없고 어떡하면  좋을까.’하고 생각을 얼른 질정  못하는 중에 
주인이 아랫간에서 내려오더니  앞에 와서 절을 너푼 하였다.  “절이 웬일이오?
” “세상에 드무신  양반을 몰라뵈옵구 잘못한 일이 많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무에 세상에 드물단 말이오?” “밤중에 품속에 기어드는 젊은 기집을 꾸짖어 
내쫓는게 어디 제마다 할 수 있는 일입니까.”  “꾸짖어 내쫓은 건 어떻게 알았
소?”“제가 죄다  엿들었습니다.” “그럼 벌써 왔구려.”  “당초에 읍에를 안 
가구 삽작문으루 나갔다가  울타리 구멍으루 들어와서 집안에  숨어 있었습니다.
” “내가  하마트면 죽을 걸  아슬아슬하게 면한 모양이군.”  “그년이 행실이 
부정한 줄을  짐작하구 조련질까지두 몇번 해봤지만  죽어라구 토설을 아니해서 
언제든지 한번 등시포착을 하려구 속으로 벼르구 있는 중인데 그년이 당신을 뵈
입구 눈치가 다르기에  거짓말루 소상집에를 간다구 하구  숨어서 지켰습니다.” 
“인제 살인까지 하구 어떻게  할 테요?” “등시 포착으루 살인한 것이니까 관
가에 들어가서 자수하면  대살 당할 리 만무하지요만  부모두 없구 처자두 없구 
단지 저  한몸인데 구태여 옥 속에  들어가서 고생할 까닭 있습니까.  이 밤으루 
도망할랍니다.” “나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밝는 날까지 여기 기시다간 
횡액으루 고생하실 테니 밤에 떠나가셔야 합니다.”  “밤에 떠나가긴 어렵지 않
지만 이 동네  관상쟁이 조씨를 꼭 좀 만나보구 가야겠으니  난처하우.” “관상
쟁이 조생원은 무슨 일루  만나보시렵니까?” “조씨의 일을 자세히 다 아우?” 
“한동네 살구 친하니까 소상히 압니다.” “조씨가  작년 구월에 금교역말서 올 
때 김억석이란 사람 부자를  이리 데리구 오지 않았소?” “조생원이 작년 구월
에 금교역말을 간 일이  없는걸요.” “조씨가 작년 가을에 강음,평산 등지루 돌
아다니었는데 금교역말을 간 일이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하하 잘못 아
시구 오셨습니다그려. 작년 가을에 청석골 적굴에  잡혀가서 죽을 뻔하다가 살아
온 관상쟁이 말씀 아닙니까. 그  사람은 나이 아직 오십 못 되었지요. 여기 조생
원은 근 칠십한 노인입니다.” “그럼 그 관상쟁이는  어디 사우?” “두일 삽니
다. 두일 장터에 조씨가 여러  집 살지요.” “두일이 어디오?” “역시 마전 땅
인데 적성 접곕니다.” “마전 땅에 조가 성  가진 관상쟁이가 둘인 줄이야 누가 
알났나. 인제 나두 밤에 떠나가겠소. 두일을 가자면 어디루 가우?” “저두 그쪽 
길루 갈 테니까 두일  장터까지 뫼시구 가겠습니다.” “그럼 곧 같이 떠납시다.
” “옷이나 좀 갈아입구 찬찬히 떠나십시다.” “아닌 밤중에 
곡성이 나구 살인이 나두 이웃에서 꿈쩍 아니하니  괴상한 동네두 다 많소.” “
가까운 이웃이란 것이 총각놈 모자가 사는 뒷집 하나뿐인데 총각놈의 어미가 귀
가 절벽이라  벼락이나 치면 모를까  여간 큰소리는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주 태평 믿구 일을 차렸구려.”
  주인이 손 좀 씻고 들어온다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더니 얼마 뒤에 세수를 멀
쩡하게 하고 들어와서 시렁  위의 옷고리짝을 내려놓고 새 고의적삼을 찾아내서 
피묻은 옷과 갈아입고 짚신 감발까지 하였다. 이날  밤 닭 울 녘에 황천왕동이는 
그 집주인과 같이  달골서 떠났다. 별빛이 일어서 길바닥이 희미하게  보이는 까
닭에 발을  더듬어 떼어놓지 않고 그대로  길을 걸을 만하였다. 달골  동네 밖을 
나온 뒤에 읍내 가는 길을  등뒤에 두고 서쪽길로 나오게 되었는데 길모르는 황
천왕동이가 항상 앞을 서서 갈림길을 만날 때마다 뒤에 오는 김가를 기다리느라
고 한참씩 서성거리었다.  김가가 처음에는 “밤길을 잘 걸으십니다.” “어떻게 
빨리 걸으시는지 저는  따라올 수가 없습니다.” 걸음이 빠른 것을  칭찬하여 말
하다가 나중에는 “이렇게 빨리 걸으면  닭이 자치기 전에 두일 장터를 가게 될 
텐데 오밤중에 가서  어떻게 하실랍니까. 숫제 길에서 날 새울  작정하구 천천히 
가시는 게 좋지  않습니까?” 빨리 걸을 묘리가 없는 것을  깨우쳐 말하였다. 황
천왕동이가 그제는 김가를 앞세우고  늘쩡늘쩡 걸어오며 서로 이야기를 하기 시
작하였다. “둘 다 목숨만은 붙여주었소?”  “목숨을 붙여주다니요? 모가지들을 
도려놓고 왔습니다.” “어느  틈에 그렇게 참혹한 짓을 했소?”  “저는 조금두 
참혹하게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전에두 그런 일을 더러  해봤소?” “천만
에요.” “초대루는 제법 다부지게 했소. 다 죽어자빠진 사람을 재칼질 할 때 손
이 떨리지 않습디까?”  “그런 말씀 고만두구 다른 이야기나  하십시다.” “집
에를 한번 다시  가보구 싶은 생각은 나지 않소?” “글쎄,  다른 이야기나 하십
시오.” “김서방 올에  나이 몇이오?” “병술생 서른다섯입니다.” “여편네는 
이십 남짓밖에 안 되어 보이든데.” “제가 두  번 상처하구 세번째 장가든 기집
입니다.” “그래서 나이 치지했군. 나는 첩인  줄 알았소.” “댁이 어디십니까? 
이 담에 혹시  찾아가 뵈입더래두 알아두었으면 좋겠습니다.”  “금교역말이 청
석골서 가찹지요?” “청석골은 어째  묻소?” “제가 청석골 적굴에 가서 피신
할 작정입니다.” “청석골 적굴에 아는 사람이 있소?”  “그 적굴의 괴수 임꺽
정이가 저의 큰아버지께 검술을 배운 사람입니다.”  “그럼 꺽정이를 잘 알겠구
려?” “임꺽정이를 한번 본 적두 없구 서로 상종한 일도 없지만 만나서 이야기 
하면 잘 알 겝니다.”  “김서방 이름이 무어요?” “산입니다.” “김산이 김산
이.” “성명이 우습습니까? 경상도 골이냐구 조롱하는 사람두 있습니다.” “임
꺽정이가 큰아버지께 검술을 배울 때 어째 한번 보지두 못했소?” “큰아버지가 
재주가 특별하니만큼 성미가 괴상해서  저의 부모가 뫼시구 지내려구 해두 말을 
안 듣구 부평 요광원이란  데 가서 혼자 따루 사셨습니다. 그때  저의 집은 파주 
멀원이 있었으니까  임꺽정이를 만나보지  못했습지요.” “임꺽정이 말은  뉘게 
들었소?” “큰아버지가 마지막 저의  집에 다니러 왔을 때 저더러 ‘네가 이담
에 검술을 배우구 싶거든 양주 백정의 아들  임꺽정이에게 가서 배워라. 그 아이
가 내게 배웠으니까, 네가  내 조칸 줄 알면 성심껏 가르쳐  줄 게다’말해서 그
래서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청석골 화적 괴수 임꺽정이가 양주  백정의 아들
이랍디다.” “그럼 왜  임꺽정이에게 가서 검술을 배우지 않았소?”  “제가 검
술을 배울 맘두 부족하구 부모가 백정의 자식에게 가지 말라구 보내주지두 않아
서 그럭저럭 못 배우구  말았습니다.” “부모는 파주서 농사를 지었소?” “네, 
부모는 농군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첫번 장가 든 뒤에 처가  발련으루 작성 
가서 구실을 다녔습니다.” “무슨 구실을  다녔소?” “처음에 통인으루 들어가
서 수통인으루 제색 색리루 열댓 해 동안 관가 물을 먹다가 연전에 남에게 먹혀
서 구실이 떨어지구  달골루 이사를 왔었습니다.” “세상에 공교한 일두  다 많
소.” “무슨 일이  공교합니까?”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청석골 임꺽정이
의 처남 되는 사람이오.” “그렇습니까? 그러세요.  그럼 잘됐습니다. 저를 데리
구 가주십시오.” “내가 김억석이란 자를 찾자면  앞으루 며칠이 걸릴는지 모르
니까 나하구 동행하기는 좀  어렵겠소.” “만나보신다는 관상쟁이나 만나보시구 
곧 가시지요.” “관상쟁이를 만나본 뒤 다시 이야기합시다.” 두 사람이 걸음도 
더디 걸었거니와 솔고개에 와서 늘어지게  앉아 있은 까닭에 두일 장터 못 미처 
찬우물동네 가까이 왔을 때 날이 환히 밝았다.
  김산이가 개울 건너 동네를 가리키며 황천왕동이더러 “저 동네에 저 친한 사
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들어가서 조반을 얻어먹구 두일루 내려갈까요? 두일이 
바로 요 아랩니다.”  하고 말하여 황천왕동이는 김산이를  따라서 찬우물동네로 
들어오게 되었다. 동네 어귀에  다 왔을 때 나무 가는 초군  아이 너덧이 동네에
서 나오는데 그중의 한  아이가 황천왕동이 눈에 낯이 익어보이어서 이목구비를 
자세히 보며 생각하여 보니  분명히 김억석이의 아들이라 황천왕동이가 그 아이 
앞을 막아서며 “이애 나 좀 봐라. 날 알겠느냐?” 하고 물었다. 그 아이가 한번 
치어다보고 놀라는  듯 입을 벌리고 한참  만에 “여기를 어째 오셨세요?”하고 
말하는데 황천왕동이는 뜻밖에 만난 것을 너무도 신통하게 여겨서 “날 알지?”
하고 공연히  다져 물었다. “그럼 몰라요?”  “너의 아버지가 이  동네서 사느
냐?” “아니오.” “아니라니?” “저만 이 동네 와서 있세요.” “너의 아버지
는 어디 있구?” “꽃뫼서 살아요.” “꽃뫼가  어디냐?” 김억석 아들이 대답하
기 전에 김산이가 나서서 “꽃뫼라구 이웃에  조그만 동네가 있습니다.”하고 말
한 뒤 “저애  아버지가 찾으시는 사람입니까?”하고 물어서 황천왕동이는 고개
를 끄덕이었다. “그럼 두일을  갈 것 없이 꽃뫼루 가야겠소.” “하여튼지 조반
은 여기서  잡숫구 가시지요.” “이애를 데리구  가면 좋겠는데.” “저는 꽃모 
못 가요.”하고 김억석의  아들이 말하여 “왜?”하고 황천왕동이가 돌아보았다. 
“주인집 나무를 가니까 어디 갈 수 있어요?” “너 이 동네 와서 머슴 사느냐?
” “녜.” 황천왕동이가 김산이를 보고 “나는  이애보구 말을 좀 물어보겠으니 
그 동안에 먼저 가서  밥을 시키면 어떻겠소?”하고 말하니 김산이는 선뜻 “그
렇게 하시지요.”대답하고 나서 “집을 모르실 테니  제가 조반을 시켜놓구 다시 
뫼시러 나오겠습니다.”말하고 동네로  들어갔다. “어디 가 좀 앉아서 이야기하
자.” 황천왕동이가 앉을  자리를 둘러보다가 “저기 좋겠다.”하고 길가의 편편
한 언덕을 가리키니  김억석이 아들은 동무 초군  아이들더러 “너들 먼저 가거
라. 나두 곧 갈께.”하고 말한뒤 황천왕동이의  뒤를 따라왔다. 언덕에 와서 앉은 
뒤에 김억석이 아들이 비로소  “우리 누나 잘 있세요?”하고 누이의 안부를 물
었다. “너의 누님은 너를  보구 싶다구 늘 말하는데 너는 누님을  보구 싶은 생
각이 없느냐?” “누나를 찾아가 보겠다구  아버지더러 말까지 해봤세요.” “너
의 아버지가 못 가게 히든?” “그러먼요. 남들  듣는 데서는 누나 말두 하지 말
라는데요.” “이번에 나하구 같이 가자.”  “아버지가 가래야 가지요.” “너의 
아부지도 내가 데리구 갈테다.” “새어머니가 못 가게 할걸요.” “너의 아버지
가 여편네를 얻었느냐? 옳지,  그래서 귀여운 아들을 머슴살이를 내놨구나.” “
아버지가 지금두 저를  귀애하지만 전만은 못해요.” “새어머니가  사람이 좋으
냐?” “무당이랍니다.” “화랭이두  아닌 너의 아버지가 어째 무당  서방이 되
었어?” “처음에 조생원이,  조생원 아시지요? 관상쟁이 말씀이오?” “그래.” 
“아버지를 은인이라구  붙잡구 놓지 않아서  두일 조생원 집으루  같이 왔지요. 
조생원 아낙네는  우리 온 것을 좋아  안해서 우리 때메 내외가  쌈까지 했세요. 
아버지가 다른 데루 가기루 작정하구  곧 떠난다구 하더니 그 집에 다니는 과부 
무당하구 어떻게  이야기가 되어서 갑자기  같이 살게 되었세요.  아마 조생원이 
붙여주었는 갑디다.”  “그래 조생원이 꽃뫼다가 살림을  차려주었느냐?” “아
니오. 꽃뫼집이 새어머니  집이에요. 새어머니가 송도 대왕당 큰무당의 조카딸이
루 장단  관가 단골 무당의 이성사촌아라나요.”  “그렇지요.” 한동안 지난 뒤 
김산이가 동구 밖에 나와서 황천왕동이를 오라고 불렀다.
  김산이 친한 사람의 집에서  식구들이 먹으려고 해놓은 이른 아침밥으로 먼저 
손님을 대접하여 조반 요기가  별로 지체되지 않은 까닭에 황천왕동이가 김산이
와 같이 찬우물동네서 꽃뫼로 올라왔을  때 해가 아직도 늦은 아침때가 못 되었
었다. 꽃뫼 동네는 작은 동네요, 무당집은 단 한 집이라 한번 묻고 두번 물을 것 
없이 바로 집을 찾았다. 삽작은 지쳐 있고 집안은 사람 없는 것같이 괴괴하였다. 
황천왕동이가 삽작을  밀어젖히고 안으로 들어오며 주인을  부르니 “주인 어디 
갔습니다.” 방 속에서 대답하는  사람이 있었다. “주인 없다는 사람은 누구요? 
나 좀 내다보우.”  김억석이가 방에서 목을 내밀고 바라보더니 무서운  것을 본 
사람처럼 눈이 휘둥그래지며  목이 자라목같이 옴츠라져 들어갔다.  “여보게 억
석이.” 김억석이가 허둥지둥 나와서  황천왕동이에게 문안하고 낯모르는 김산이
에게까지 문안하였다.  “자네 깊숙이 들어와서 숨어  사네 그려.” “제가 여기 
와 사는  걸 어떻게?” “어떻게 알았느냔  말이지. 청석골 이목이  사방에 널려 
있는데 자네가 꽃뫼 와서 무당서방 노릇하는 걸 모르겠나.” “황송하외다.” 김
억석이가 구상전을  만난 것같이 벌벌  떠느라고 말을 똑똑히  못하였다. “우선 
방으루 좀 들어가세.”  황천왕동이가 김산이와 같이 김억석이를  따라서 방으로 
들어왔다. 밥그릇, 물그릇,  반찬그릇 등속이 방바닥에 놓여  있는 것을 김억석이
가 부산히 치우는데  황천왕동이가 “인제 아침인가? 먹다 말았거든  마저 먹게.
”하고 말하니 김억석이는  “다 먹었습니다.”대답하고 물그릇에 담긴  물을 꿀
꺽꿀꺽 마시었다. 황천왕동이와  김산이가 앉은 뒤에 김억석이도  쭈그리고 앉았
다. 김억석이가 물을  먹고 떨리는 속이 진정되었는지 비로소 똑똑한  말로 “저
를 보시려고 전위해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자네를 잡으러 왔네.” “제
가 무슨 죄야  있습니까?” “다시 오지 않구 숨어  사는 것이 도중을 배반하는 
것이니까 그게 죄지 무엔가?”  “어찌하다가 그렇게 됐습지 제가 딸 생각을 하
기루 배반할 맘을 먹을 리야 있습니까.” “그럼 두말 말구 나하구 같이 가세.” 
“오늘 가잔 말씀입니까?” “지금 곧  나서란 말일세.” “말씀하긴 황송하지만 
먼저 행차하시면  저는 추후해서 가겠습니다.”  “같이 가지 못할  일이 무엇인
가?” “새루 얻은 기집이란 것이 송도에 있는 저의 고모가 앓아서 어제 갔습니
다. 지금은 집이 비어 못 가겠습니다.” “대장 분부내에 자네가 무슨 핑계를 하
구 같이 오지 않으려구 하거든 자네 목을  비어 가지구 오라셨네.” “핑계가 아
니올시다.” “자네는 핑계가 아니라지만 대장께서 그렇게 아시나. 잔말 말구 같
이 가세.” “제가 가면 죄를 당하겠습니까?” “지금  나하구 같이 가면 무사할 
겔세.” “다시  나오진 못하게 되겠습지요.” “자네가  여기 와서 무당의 서방 
노릇하구 살구 싶다면  내가 배두령하구 상의해서 되두룩 힘써 줌세.  도록에 실
린 성명을  없애주지.” “꼭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내가 언제  자네보구 
실없은 말 하든가?”  “그럼 집을 비구라두 뫼시구 가겠습니다.”  “집을 맡길 
사람이 없나?” “이웃집 늙은이이게 부탁해  보겠습니다.” “어서 가서 부탁하
구 오게.”  황천왕동이가 김억석이를 재촉하여 꽃뫼서  별로 지체 않고 곧 떠나
게 되었다.
  밥재 윗고개 길로 고량진까지  나오는 데는 김억석이와 김산이가 길라잡이 노
릇을 하였고 고량진서 점심 요기하고 장단을 지나 송도까지 오는 데는 황천왕동
이가 앞서 오며 뒤의 사람을 재촉하였다.  황천왕동이는 노량으로 걸었지만 김억
석이와 김산이는 따라오느라고 죽을 애들을 썼다. 점심  위에 팔십 리 길을 오고 
보니 삼사월 긴긴 해도 벌써 다 지고 달빛이  생기었다. 세 사람이 달을 보고 청
교를 지나올 때 황천왕동이가 뒤를 돌아보며 “시장들  하지. 우리 어디 가서 술
잔이나 먹구 가세.”하고 말하니 김억석이가 풀기  없는 말소리로 “송도서 주무
시지 않구 바루 나가실랍니까?”하고 물었다. “그럼 밤에  나가지 이삼십 리 남
겨놓구 잔단 말인가?” “저는 발병이 나서 십리두  더 못 갈 것 같습니다.” “
밤중에 들어갈 작정하구 찬찬히 걸어가세.” “제  처의 고모가 검은학골서 사니 
거기 가서 하룻밤  주무시구 가시지요.” “자네 여편네가 검은학골  와서 있나?
” “어제 당일은 못  왔을 게구 오늘 왔습지요.” “그래 여편네를  보구 갈 생
각인가?” “집을 비워놓구 왔으니까 얼른 가라구 말을 이르구 갔으면 좋겠습니
다.” 황천왕동이가 김산이를 돌아보며 “어떻게  할까?”하고 의향을 물으니 김
산이도 다리가 아파서 밤길 걸을 덧정이 없는 판이라 “검은학골 가서 주무시구 
가는 게 어차피 좋을 것 같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황천왕동이가 고집을 세우
지 않고  “셋동행에 둘의 말을 안  좇을 수 있나.”하고 말한  뒤에 김억석이를 
앞세우고 검은학골로 올라왔다.  무당의 집 앞에 와서 김억석이가 잠시  서 있으
라고 말하고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한동안 착실히 지나도 나오지 아니하여 “잠
깐 섰으라구 하구 들어간  사람은 꿩 구어먹은 소식이니 웬일일까?” “집을 비
어놓고 왔다구 여편네가  사살낱이나 하는가 봅니다.” “아지미집두  남의 집인
데 손들을 끌구 왔다구 좋아  않는지 모르지.” “글쎄요. 그럼 어디 다른 데 가
서 주무시지요.” “요기들이나 하구  그대루 가는게 좋은 걸 공연히 왔어.” 황
천왕동이와 김산이가 서로 보고  지껄이는 중에 김억석이가 여편네를 데리고 나
왔다. 여편네가 걸음걸이는  멋들어 보이고 허리는 늘씬하고 얼굴은 말상이었다. 
“이게 제 처올시다.”  김억석이 말끝에 여편네는 황천왕동이와  김산이를 향하
고 긴 허리를 굽실굽실하였다. 황천왕동이가 여편네더러  “이렇게 우들 와서 미
안하우.”하고 말하니 여편네는  “천만에 이렇게 밖에 오래 서 기시게  해서 지
가 미안합지요.”대답하고 말하기  어려워하는 모양을 보이면서 “제  고모가 대
단히 앓아서 지금  경황들이 없습니다.”하고 말을 내었다. 황천왕동이가 김억석
이를 보고 “우리 가는  게 좋겠네.”하고 말하자, 여편네가 선뜻 “이런 미안하
고 황송할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정이 난처한 것을 통촉하셔서 용서하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김억석이는 말할 것 없고  김산이와 황천왕동이도 검은학골서 자려고 장을 대
고 갔다가 자지 못하고 도로  큰길로 내려오는 중에 술 파는 집을 찾아들어가서 
술잔으로 요기들 하고 청석골로 나오는데, 김억석이와  김산이가 모두 걸음을 못 
걸어서 황천왕동이는 갑갑한 것을 참다 못하여 마침내 탑고개 동네에 와서 그날 
밤 쉬고 이튿날 식전에 산속으로 들어왔다.
  황천왕동이가 찾아러 간 김억석이 외에 김산이까지 새로 데리고 온 것을 여러 
두령들이 모두 좋아하는 중에 꺽정이는 옛날 검술선생의 생각으로 그 조카를 못
내 반겨하였다. 나중에 김산이는 꺽정이의 특별한  대접으로 청석골서 두령이 되
고 김억석이는 황천왕동이의 주선으로 꽃뫼 가서 무당 서방 노릇하고 살게 되었
다.
추천 (0) 선물 (0명)
IP: ♡.221.♡.199
23,397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단차
2023-11-30
1
149
단차
2023-11-30
0
135
단차
2023-11-30
1
156
단차
2023-11-30
0
222
단차
2023-11-29
1
194
단차
2023-11-28
1
245
단차
2023-11-28
0
202
뉘썬2뉘썬2
2023-11-28
1
248
뉘썬2뉘썬2
2023-11-28
1
190
단차
2023-11-25
0
204
단차
2023-11-25
1
265
단차
2023-11-24
1
230
단차
2023-11-24
3
686
단차
2023-11-23
2
288
단차
2023-11-23
2
220
단차
2023-11-23
1
191
단차
2023-11-23
2
228
뉘썬2뉘썬2
2023-11-23
0
157
뉘썬2뉘썬2
2023-11-23
0
204
뉘썬2뉘썬2
2023-11-23
1
217
단차
2023-11-22
1
233
단차
2023-11-22
1
112
단차
2023-11-22
1
202
단차
2023-11-22
1
133
단차
2023-11-22
0
135
단차
2023-11-21
1
126
단차
2023-11-20
1
198
단차
2023-11-20
1
182
단차
2023-11-20
2
220
단차
2023-11-20
1
172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