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화적편 9

3학년2반 | 2022.01.11 08:00:45 댓글: 0 조회: 293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1463
이날 밤에 군수가 또 술을 먹자고 동헌으로 청하는데, 박참봉은 곤하다고 초
저녁부터 수청 기생을 데리고 자기의 침소인 작은방에 건너가서 일찍 자고 유도
사만 혼자 술대접을 받았다. 군수가 술을 여남은 잔 대작한 뒤부터 연해 하품을
하더니 마침내 앉아 배개지 못하고 술상 옆에 드러누워 코를 곯아서 유도사는
기생들만 데리고 술을 먹다가 나중에 술 한 병, 마른 안주 한두 접시 기생들에
게 들려 가지고 자기 사처방으로 내려와서 한 병 술을 마저 들어낸 뒤에 기생들
과 그대로 같이 잤다. 이튿날 유도사와 박참봉이 봉산서 떠나는데, 유도사가 군
수의 말을 빌려 타게 된 까닭에 박참봉 타고 온 말은 반부담 위에 하인의 걸며
졌던 짐들을 주워얹어서 아주 복마를 만들었다. 군수가 마부까지 주며 데리고
가서 말을 주어 보내라고 하는 것을 유도사가 하인 하나를 서울집에 올려 보내
는 순기편에 말을 돌려보낼 테니 염려 말라고 마부는 고만두게 하였다.
봉산읍에서 이십 리 사인암을 지나오니 여기는 황주땅이라 황주 관속들이 마
중을 나와서 등대하고 있었다. 봉산 통방에서 전날 방위사통을 놓아서 감사의
사촌이 오는 줄을 황주서 미리 알았던 것이다. 관속들이 말머리에 느런히 서서
일제히 문안을 드린 뒤에 그중의 안전 하나가 유도사를 쳐다보며 “마침 사또
안 기신데 행차합셔서 재미가 없으시겠소이다.” 하고 말하였다. “너의 사또 어
디 가셨느냐?” “서울댁에 행차하셨소이다.” “판관 나리는 기시겠지?” “네,
기십니다.” “그럼 판관 나리나 잠깐 만나보구 가겠다.”
유도사와 박참봉이 황주 관속들을 전후로 늘여세우고 황주 성안에 들어와서
판관을 만나본즉, 할 수 없는 고리삭은 샌님이라 데리고 말할 잡이도 못 되고
국물을 우려낼 건덕지도 없으므로 점심 한 끼만 얻어먹고 황주읍에서 삼십 리
구현원 와서 숙소하였다. 여기는 평안도 중화 땅이니 평안감사 새로 올 때 신구
감사가 교대하는 곳이다.
유도사와 박참봉은 밤중까지 이야기를 하느라고 잠을 별로 안잤건만 그 이튿
날 첫새벽에 일어났다. 조반을 재촉하여 먹은 뒤에 길들을 떠나는데, 박참봉은
하인, 마부 네 사람을 다 데리고 평양길로 가고 유도사는 말을 자견하고 혼자
황주길로 도로 왔다.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황주 근방 양반이 먼길 하는 정분
좋은 친구를 평안도 초입까지 같이 와서 작별하고 돌아가는 것과 같았다. 유도
사가 황주읍에를 왔을 때, 전날 사인암으로 마중나왔던 사령 하나가 길거리에
섰다가 깜짝 놀라는 것을 곁눈으로 보았지만 사령이 와서 알은 체할 사이 없이
말을 달려 지나왔다. 동선역에 와서 해를 쳐다본즉 점심때는 아직 멀었으나, 말
의 배를 채워 주려고 길가집 앞에 말을 세우고 주인을 불러내서 상목으로 셈할
테니 점심 한 끼 해주겠느냐 물어보았다. 사람 양식과 말먹이를 통히 안 가지고
두자 상목 십여 필만 견대에 넣어서 말안장 뒤에 달고 온 까닭이다. 주인이 묻
는 말은 대답 않고 “어제 황주루 가시던 손님 아니십니까?” 하고 되물었다.
“그래.” “어째 도루 오십니까?” “급한 볼일이 있어 도루 오네.” “네, 급
한 볼일루 도루 오세요? 점심때가 상기 멀었는데 어느새 점심을 잡수시렵니가?
” “조반을 설치구 왔어.” “읍이 얼마 안 되는데 읍에 들어가셔서 잡수시지
요.” “점심을 못 해주겠단 말인가?” “아니오. 해달라시면 해드립지요만 찬이
없어 놔서.” “찬은 장진건이만 해두 좋구, 그러구 사람버덤두 말을 잘 먹여주
게.”
유도사가 그 집에서 상목 두어 끗을 주고 말, 사람이 다같이 배를 든든히 불
린 뒤에 먹은 것이 자위 돌 동안 밖에 나와서 말을 가찰하여 몸뚱이도 긁어주고
갈기도 쓰다듬어 주고 하다가 다시 타고 봉산읍으로 달려왔다.
유도사가 봉산 장터 한바닥을 꿰뚫고 나오며 좌우를 돌아보아도 관속 하나 눈
에 뜨이지 아니하였다. 서흥 가는 길목까지 거의 다 나오다가 홀저에 말머리를
돌이켜서 관가를 향하고 들어왔다. 말이 눈에 익은 홍살문을 바라볼 때 대가리
를 치켜들고 으흥 소리를 질렀다. 작청 앞에 박힌 등구나무 아래 사령 서넛이
앉아 있다가 말소리를 듣고 부지런히들 쫓아나가니 유도사는 말을 세우고 사령
들 오기를 기다리었다. 사령들이 말머리에 와서 허리들을 굽실굽실한 뒤 “나리
웬일이십니까?” “어째 도루 오셨습니까?” “평양 행차를 고만두시기루 파의
하셨습니까?” 제각기 한마디씩 묻고 다같이 유도사를 쳐다들 보는데 “이눔들
아, 이 눈깔 없는 눔들아!” 유도사 입에서 까닭 없는 호령이 나와서 사령들은
어리둥절하였다. “나를 유도산 줄루 아느냐? 이눔들아, 내가 임꺽정이다, 임꺽
정이야!” 꺽정이란 이름이 마른 하늘의 벼락치는 소리만 못지 아니하여 사령들
의 얼굴이 당장 마전한 것같이 되었다. 그 중의 하나는 겁을 잔뜩 집어먹어서
두 어깨를 귀밑에 닿도록 추키고 부들부들 떨기까지 하였다. “너의 원님한테
내 말 좀 전해다우. 이틀 동안 특별한 후대를 받아서 내가 치사하더라구 하구,
그러구 말은 두구 가야 옳지만 다시 생각해 본즉 전 군수 박응천이 때 내 말 한
필이 여기 와 있으니까 그 대신으루 타구 간다더라구 해라. 똑똑히들 들었느냐!
” 사령들이 눈을 멀뚱멀뚱하게 뜨고 달려가는 말 뒤를 바라보고 섰다가 겨우
입들이 떨어져서 “안전께서 올에 망신살이 뻗치셨네.” “구관 같으시면 허무
하게 속지 않으셨을걸.” “꺽정이가 하여튼 담보 큰 놈일세.” “나는 그놈이
우리를 죽이는 줄 알았네.” “얼른 관가에 들어가서 말씀이나 아뢰세.” 서로
지껄이고 흥살문 안으로 몰려들어왔다.
군수가 사령들의 아뢰는 사연을 듣고 처음에는 기가 막히고 나중에는 분통이
터져서 펄펄 뛰었다. 방에서 일어섰다 앉았다 하다가 대청으로 나와서 발을 구
르며 사령들을 호령하였다. “너이놈들이 힘이 모자라서 그놈을 못 잡으면 말이
나 뺏을 게지 말까지 타구 가게 가만두었단 말이냐! 말고삐를 잡구 매달려서 아
우성들을 지르면 그놈이 아무리 담대한 도둑놈이라두 말을 내버리구 도망할 거
아니냐? 이놈들, 내 말을 찾아놔라.” 군수가 옆에 나와 섰는 통인들을 돌아보며
“형틀을 들이래라!” 하고 이르고 곧 다시 “아니다, 수교를 먼저 부르래라.”
하고 고쳐 일렀다. 통인 하나가 대청 마루 끝에 나서서 “급장아.” “네이!”
“수교 부르랍신다.” “네이!” 급장이 삼분 밖을 향하고 서서 “사령.” “네
이!” “수교 부르랍신다.” “네이!” 긴 대답 소리가 끝난 뒤 얼마 아니 있다
가 수교가 들어와 대령하였다. “꺽정이란 놈이 유도사루 행세하구 와서 내 말
을 훔쳐갔다. 지금 서흥길루 내뺐다니 오늘 해에 검수나 서흥밖에 더 가겠느냐.
장교 오륙 명 걸음 잘 걷는 아이를 뽑아서 곧 그놈 뒤를 쫓아 보내라. 그놈이
검수서 묵거든 역졸들의 조력을 받구 서흥까지 갔거든 서흥 관속과 합력해서 그
놈을 잡으면 좋구 그놈을 놓치더래두 말은 꼭 찾아오게 해라. 그러구 그놈이 혹
촌가에 들어가서 묵을는지 모르니 연로에 잘 알아보며 가라구 신칙해라.” 수교
가 군수의 분부를 드디어서 장교 다섯을 뽑아서 쫓아보냈는데, 그 장교들은 서
흥까지 밤길 걷고 이튿날 돌아와서 애매한 매들만 맞았다. 사령 셋이 전날 매를
죽도록 맞은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꺽정이는 그날 봉산읍에서 단참에 검수역말을 와서 말을 여물 먹이느라고 지
체한 뒤 다시 쉬지 않고 빨리 왔는데, 서흥강을 건널 때 해가 꼬박 다 졌었다.
그러나 달이 밝아서 달빛을 띠고 서흥읍에 들어와서 자고 가려다가 앞길을 더
좀 줄이려고 용천역 와서 숙소하고, 이튿날 평산읍을 지날 때 봉산서와 같이 본
색을 알리려다가 친한 이방에게 말썽이 있을까 염려하여 그대로 지나 김암역말
와서 중화하고 해 다 진 뒤에 청석골을 들어왔다. 말이 걸음을 잘하여 삼백 리
넘는 길을 이틀에 쉽사리 온 것이었다.
꺽정이가 박유복이를 데리고 떠나갈 때 이봉학이더러 자기가 다녀온 뒤 광복
산으로 가라고 이르고 또 자기없는 동안이라도 사랑을 쓰라고 허락한 까닭에,
여러 두령들이 전과 다름없이 매일 저녁 꺽정이 사랑에 모이는데 이봉학이가 사
람이 상냥하고 꺽정이같이 무섭지 아니하므로 자연 좀 무랍들이 없었다. 이날
낮에 곽오주가 데리고 있는 아이놈들이 서로 쌈질하는 것을 곽오주가 빌어서 간
신히 뜯어말리더라고 길막봉이가 이야기하여 여러 두령이 곽오주를 조롱하느라
고 사랑이 떠나가도록 웃고 떠드는 판에 두목 하나가 사랑 앞으로 뛰어들어오며
“대장께서 오십니다.”하고 소리를 쳐서 여러 두령이 일어나서 부산히 벗어놓
은 의관들을 다시 차릴 때 벌써 꺽정이의 탄 말이 사랑 댓돌 아래 들어왔었다.
꺽정이가 방에 들어와 앉아서 두령들의 절을 받고 또 말 뒤에 쫓아들어온 두
목과 졸개들의 문안을 받은 뒤에 이봉학이를 보고 그 동안 별일 없었느냐, 광복
산 안신을 들었느냐, 두어 마디 말을 묻고 바로 마루에 섰는 신불출이를 내다보
며 “저녁 다 지났겠지? 내가 지금 시장하니 얼른 밥을 시키구 그러구 말을 잘
먹이라구 일러라.”하고 분부하였다. “형님이 타구 오신 말이 절따가 아니니 그
게 웬 말입니까?”하고 이봉학이가 묻는데 꺽정이는 웃으며 대답 않고 “내가
타구 온 말을 서종사 자세히 보았소?”하고 서림이를 돌아보았다. “신관이 어
떠신가 보입느라구 말은 미처 눈여겨 보지 못했습니다.” “끌어오래서 한번 보
우.” “제가 어디 말을 잘 압니까?” “알구 모르구 그대루 보구려.” 밖으로
끌어내간 말을 다시 끌어오라구 해서 달 밝은 마당 한중간에 세우고 서림이와
다른 두령 몇 사람이 말구경하러 마당으로 내려가려고 할 때, 배돌석이가 마루
에서 바라보고 “윤지숙이 말이구먼요.”하고 외치듯 말하였다. 꺽정이가 마루에
나와서 배돌석이더러 “네가 알아보는구나.”하고 말한 뒤 신발 신고 댓돌 아래
내려서서 말을 앞으로 끌어오라고 하여 말 목을 몇 번 툭툭 쳐주고 또 고삐 잡
은 졸개더러 “마굿간 첫칸에 갖다 들여매구 마죽에 콩을 많이 넣어줘라.”하고
일렀다.
늙은 오가가 꺽정이 돌아왔단 기별을 듣고 보러 와서 꺽정이가 오가와 같이
방으로 먼저 들어오고, 그 뒤에 다른 두령도 따라 들어와서 아래윗간에 좌정들
하였다. “윤지숙이의 말을 어떻게 뺏어 타구 오셨습니까?” 서림이가 묻는 것
을 꺽정이는 “이야기가 기니 밥이나 먹구 나중 이야기합시다.”대답하고 곧 오
가를 돌아보며 “요즈막은 설움을 좀 잊으셨소?”하고 물었다. “잊었으면 좋겠
는데 잊어지질 않습니다.” 오가의 대답에 “요새두 하루 몇 차례씩 산소에를
올라가신답니다.” 서림이가 발을 달았다. “웬 성묘를 그렇게 자주 다닌단 말이
오?” “속 답답할 때 무덤 앞에 가서 마누라를 좀 부르면 속이 좀 시원한 것
같아요.” “그럼 숫제 시묘를 살아보시구려.” “망발 토달아놓구 그런 생각두
없지 않아 있습니다.” “고적한 데서 여러 생각이 나시는 게니 첩 하나를 얻으
시우. 그럼 위로가 되시리다.” 오가가 대답은 없이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왜
그러시우?” “내 맘 속에 살아 있는 마누라를 마저 죽이게요? 싫습니다.” “
내처 홀아비루 지내실 테요?” “지금 말씀한 거와 같이 내 몸은 홀아비래두 내
맘은 아직두 핫애빕니다.” “서종사가 정문 세울 공론을 낼 만두 하우.” 꺽정
이가 서림이와 이봉학이를 돌아보며 웃었다.
얼마 아니 있다가 열두 접시 쌍조치의 저녁상이 들어와서 꺽정이가 밥을 먹고
상을 물린 뒤에 비로소 평산서 황주까지 가며 대접받은 이야기를 일장 다하여
여러 두령들이 듣고 모두 좋아하였다. 그중의 서림이는 첨속으로 “쌈 않구 이
기는 것을 병법에 제일루 칩니다. 평산, 서흥, 봉산, 황주 네 골을 대병으루 내리
무찌른들 이보다 더 통쾌할 수 있습니까. 대장께서 대공을 세우시구 돌아오셨으
니 한번 큰잔치를 배설하구 승전곡을 울리며 질겁게 노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
다.”하고 말하다가 당치 않은 소리 한다고 꺽정이에게 핀잔을 받았다.
이튿날 서림이가 뒤로 두령 몇 사람을 충동이어서 잔치를 차리자고 꺽정이에
게 등장을 들다시피 하여도, 꺽정이는 종시 고개를 외치는 것을 이봉학이가 추
석에 떡섬이나 나우 만들고 소바리나 더 잡혀서 추석놀이 어울러 한번 잔치를
하자고 말하여 겨우 허락을 받았다. 승전곡을 울리자면 기악을 변통해야 한다거
니 오두령 부인 졸곡안이니 기악은 고만두자거니 잔치할 공론들이 분분한 중에,
남소문 안 한첨지가 작고하였다고 전인으로 통부가 와서 꺽정이는 곧 서울을 간
다고 하여 잔치고 추석놀이고 다 고만두게 되었다.
청석골 두령들이 거지반 한첨지 부자와 면분이 있지마는 그중에 서울을 자주
다니는 황천왕동이는 한온이와 교분이 두터운 사이라 초종 때 가보겠다고 하고,
이봉학이도 서울 가서 조상하고 서울서 광복산으로 가겠다고 하여 꺽정이는 이
봉학이와 황천왕동이더러 다같이 가자고 말하였다.
꺽정이가 청석골에 남아 있을 두령들을 보고 자기 서울 갔다올 동안 대소사를
서로 의논들 하여 조처하라고 이른 뒤에 “이번에 서울 가선 서울 있는 안식구
명색 넷을 모두 이리 데려올 작정인데 내가 한첨지의 장사까지 보구 오자면 그
안에 먼저들 내려보내게 될는지도 모르니 초막 너덧 채 미리 치워놔두게 해라.
”하고 말을 하니 다른 두령들은 그저 들을 만하고 있는데, 서림이가 웃으면서
“서울가서 치가하신 사람이 셋이라더니 셋이 아니라 넷입니까?”하고 물었다.
“하나는 기생인데 그 기생이 치가한 기집들버덤 더 떼기가 어렵소.” 꺽정이가
서림이의 묻는 말을 대답하고 나서 먼젓번 서울 갔을 때 소흥이에게 자기 본색
까지 알린 것을 비로소 여러 두령에게 이야기하였다. 서림이가 꺽정이 듣기 좋
게 소흥이를 조감 있는 기생이라고 칭찬한 뒤 “서울 여편네들을 초막 살림시키
는 건 너무 가엾지 않습니까?”하고 말하니 “그럼 대궐을 짓구 데려올까?”하
고 꺽정이는 허허 웃었다. “광복산과 평안도 세 군데의 안주인으로 한 사람씩
보내 두시면 어떨까요?” 꺽정이가 서림이의 말은 대답 않고 다른 두령을 돌아
보며 다른 말을 시작하였다.
이튿날 꺽정이가 서울길을 떠나는데 이봉학이, 황천왕동이 두 두령 외에 내행
을 내려보낼 때, 배행시킬 사람으로 신불출이, 곽능통이 두 시위와 집안 하인같
이 두고 부리는 졸개 두 명을 데리고 가기로 하여 서울서 온 전인까지 일행 여
덟 사람이 늦은 아침때 청석골서 떠나서 길에서 두 밤을 자고 사흘 되는 날 일
찍 서울을 들어왔다.
한첨지 큰집에로 와서 보니 사랑방에 빈소를 만들고 앞마루에 달아내어서 여
막을 지었는데, 여막 안에 한온이가 혼자 있었다. 한온이의 형 한윤이는 폐인이
라 상주 노릇도 못하는 듯 조상을 받지 않았다. 조상을 마치고 한온이와 수작을
하는 중에 다른 조상 손이 왔다고 하여 꺽정이가 이봉학이와 황천왕동이를 데리
고 여막 밖에 나섰는데, 머리사랑에서 일보던 서사가 쫓아와서 “어디들 들어앉
으셔야 할 텐데 조용한 방이 있어야지오.”하고 여막 안에 들어가서 주인 상주
와 수어하고 나오더니 꺽정이를 보고 “그전에 와서 기시던 방을 치워 드릴께
저를 따라들 오십시오.”하고 일각문 밖에 있는 옆집으로 인도하였다. 안방, 건
넌방에 사람들이 가득가득 있는데, 서사가 안방 사람을 다른 데로 보내고 방을
치워 주었다. 꺽정이가 서사더러 바쁜데 미안하지만 잠깐 기다리라고 말하여 황
천왕동이를 밖에 내보내서 졸개들 지고 온 짐을 들여오게 하여 가지고 온 부의
를 내주고 부의 외에 상목 온 필 두 필을 내주며 전 지낼 제물을 장만하여 달라
고 부탁하였다.
한첨지의 집은 남소문 안 적당으로 양대의 다아놓은 지정이 있는 까닭에 상가
와 와서 붙박여 있는 사람도 버걱버걱하도록 많거니와,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
더욱 많아서 뻔찔 그치지 아니하는 데 사내는 어뜩비뜩 오합잡놈이 태반이요,
여편네는 수상스러운 무리개짜리가 다수이었다. 말하자면 서울 안 무뢰배의 도
회청인 듯하였다. 이봉학이가 꺽정이를 보고 이목이 너무 번다해서 재미없으니
어디든지 조용한 데로 거처를 옮기자고 말하여 꺽정이는 그 말을 쫓아서 한첨지
집에서 가까운 남성밑골 박씨집 안방을 치우고 세 사람이 옮기고 두 시위와 두
졸개를 마저 옮기려고 박씨집 이웃에 방 하나를 빌렸더니, 방이라고 됫박만 하
여 장정 넷이 잘 수가 없으므로 두 졸개는 동소문 안 김씨집 빈 행랑에 갖다 두
었다.
꺽정이 일행이 상경한 이튿날이 한첨지 작고한 지 한이레라 동소문 밖 흥천사
에 나가서 칠일재를 올린다고 하여 꺽정이, 이봉학이, 황천왕동이가 다같이 재구
경을 간다고 말하였는데, 재에 보시 쓸 포목을 따로 유렴하여 가지고 오지 아니
하여 꺽정이의 객지 비용 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봉학이의 광복 노수 쓸 것
까지 알뜰히 다 보시에 쓰기로 하였다. 보시를 많이 쓰면 재주인의 낯이 나는
까닭에 더 있으면 더 써도 좋지만 한온이더러대라기 외에는 달리 변통할 길이
없었다.
“한첨지집 서사더러 말씀해 보시지요.” 황천왕동이가 말하는 것을 꺽정이는
듣고 대답이 없는데, 이봉학이가 꺽정이 대신 대답하듯 “아무리 나중 회계는
해주더라두 당장 경황없는 집에 말하기가 무렴하지 않아?”하고 말하였다. 꺽정
이가 이봉학이와 황천왕동이더러 “좀 창피하지만 내 한 군데 가서 물어보구 오
지.” 말하고 나와서 장찻골다리 소흥이를 찾아왔다. 서로 만나 반기는 수작이
끝난 후에 꺽정이가 한첨지 초종에 온 것과 흥천사 칠일재에 갈 것을 말하고 보
시 쓸 상목 열 필쯤 변통해 주겠느냐고 물으니 소흥이가 웃으면서 “한 동이라
도 쓰실라면 쓰십시오.”하고 선선하게 대답하였다. “지금 자네게 있나?” “내
일 절에 나가실 때 가지고 가시게 해드리지요. 그럼 낭패없지오?” “뉘게서 꾸
어 줄 작정인가?” “나도 그만한 근력은 있으니 염려 마세요.” “내가 갚을
때는 장리구 곱절이구 자네 요구대루 해서 갚음세.” “갚으신다면 나는 안 드
릴테요.” “갚지 말라면 나는 안 쓰겠네.” “내게 선다님 게고 선다님게 내게
지요. 갚는 건 다 무에요?” “그만침 알구 가겠네.” “수선한 상가에 와서 주
무실라고 그러세요? 내게서 저녁 잡숫고 주무시지요.” “이번에 내 동생을 둘
이나 데리구 와서 가봐야겠네.” “다같이 와서 주무셔도 좋지 않아요. 저 아랫
방을 치우까요?” “고만두게. 이따 봐서 내가 자러 옴세.” 꺽정이가 남성밑골
로 들어와서 이봉학이와 황천왕동이더러는 변통될 포서가 있으나 내일 식전에
보아야 알겠다고 어리뻥뻥하게 말하여 두었다.
석후에 이봉학이와 황천왕동이만 남성밑골서 자게 하고 꺽정이는 장찻골로 자
러 왔다. 소흥이가 술을 사다 두어서 일 년 중 제일 밝은 달 아래에서 미인이
권하는 술잔을 손에 드니 짬짬이 있을 이봉학이와 황천왕동이가 자연 마음에 걸
리었다. “술이 있을 줄 알았더면 동생들을 데리구 올 걸 그랬네.” “내일 저녁
에 같이 오시지요.” “내일 절에서 늦게 들어오면 오게 될는지 모르겠네.” “
그럼 모레 오시지요.” “모레 동생들이 시골을 안 가면 데리구 옴세.” “저녁
한 끼 대접하면 어떠까요?” “그건 주인의 처분이지.” “그럼 저녁들 잡숫고
밤까지 노시게 하세요.” 밤이 이슥한 뒤 자리에를 누워서 꺽정이는 봉산군수
윤지숙을 두 차례 망신시킨 것을 이야기하고, 소흥이는 뒤로 모은 천량 손 모아
서 신실한 사람에게 맡긴 것을 이야기하여 이야기에 깨가 쏟아져서 자지들 않고
닭을 울리었다.
이튿날 식전에 꺽정이가 상목 열 필을 소홍이의 집 바깥 심부름하는 사람에게
지워가지고 남성밑골을 와서 얼마 안 되었을 때, 노밤이가 몸을 뒤흔들며 들어
오더니 성큼 마루 위로 올라와서 방 안을 들여다보고 절을 꾸벅꾸벅 세 번 하였
다. “너 어떻게 알구 왔느냐?” 꺽정이 묻는 말에 노밤이는 “선다님 오신 것
을 저야 모를 수가 있습니까.”대답한 뒤 곧 이어서 “선다님께서 서울 오셨으
면 오셨다구 제게 기별을 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선다님두 야숙하십니다.”말
하고 외눈을 희번덕거리었다.
“남소문 안을 다녀왔느냐?” “동소문 안을 다녀왔습니다.” “엇먹지 말구
정당히 묻는 말이나 대답해라.” “엇먹다니 천만의 말씀을 다하십니다. 남소문
안 놈들이 고약들 해서 저는 다시 안 갈랍니다.” “남소문 안에서 알면 저눔이
뼈도 못 추릴라구 저런 소릴 하지.” “선다님께서 오실 듯해서 지가 요새 날마
다 남소문 안에를 갔습니다. 어제두 가서 선다님 오셨냐구 물으니까 모른다구들
합디다. 그놈들이 저를 왜 속입니까. 그런 천하의 고약한 놈들이 어디 있습니까?
” “그래 동소문 안에 가서 나 온 줄을 알았느냐?” “선다님께서 동소문 안에
와서 기실 듯 생각이 들어서 허허실수루 식전 일찍 갔더니 웬놈이 문 밖에서 세
수를 하는데 낯이 익어 보이겠지요. 그래서 다시 보니 작년에 짐을 져다 주던
놈입디다.” “짐을 져다 주다니?” “지가 선다님을 따라올 때 선다님 짐꾼놈
이 제 짐까지 져다 주지 않았습니까?” “옳다, 네가 그때 쌀자루 하나 짐 위에
얹어달라구 호부했지. 그러니 네가 오늘 부자 상봉한 셈이냐?” “선다님께서
저를 보시구 실없은 말씀 안 하시면 심심하십지요?” “예끼눔.” “선다님 오
늘 절에 행차하십니까?” “그건 왜 묻는냐?”“선다님께서 행차하시면 저두 뫼
시구 갈랍니다.” “고약한 눔들이라구 욕을 하면서 젯밥은 얻어먹으러 갈라느
냐?” “그 집안 놈들은 고약하지만 주인 상주와 정분이 자별한 처지에 칠일재
를 안 가봐 줄 수 있습니까?” “네가 안 가면 섭섭하다구 할는지두 모르지.”
말하는 꺽정이와 옆에서 듣는 이봉학이며 황천왕동이가 모두들 웃는데 노밤이는
능청맞게 “섭섭하다구 하다뿐이겠습니까.”하고 꺽정이의 말을 대답하였다.
이때 신불출이와 곽능통이가 같이 들어와서 꺽정이에게 식전 문안을 드리었
다. 이봉학이와 황천왕동이에게는 먼저 와서 문안을 드리고 갔던 것이다. 꺽정이
가 마루에 놓아 둔 상목 덩이를 재에 보시 줄 것이라고 일러서 신불출이와 곽능
통이에게 내맡기는데, 노밤이가 “저 많은 상목을 다 보시 주실랍니까?”하고
물어서 “너더러 누가 그런 참견 하라느냐!”하고 꺽정이가 꾸짖었다. “선다님,
저 몇 필만 줍시오. 저이가 요새 지내는 게 아주 마련이 없습니다.” “너 줄 것
없다.” “중놈들 좋은 일 하시느라구 펀히 굶다시피 하는 부하를 봐주시지 않
는 법이 있습니까?” “이눔아, 되지 않은 소리 듣기 싫다.” “아무리 재하자
말씀이라두 바른 말씀은 바르게 들어 주세야지요.” “듣기 싫다는데 그래두 지
껄이는구나.” “더두 바라지 않습니다. 두서너 필만 저를 줍시오.”
꺽정이가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를 내다보며 “그눔 밖으로 내쫓아라!”하고 분
부하여 노밤이가 두 시위에게 등밀려 나가면서 “선다님이 제게 이렇게 하실 줄
은 몰랐습니다.” “이래서야 어디 선다님을 믿구 살 수 있습니까.” “사람을
남게 오르라구 흔드시는 게지 도덕여울서 태평 잘 지내는 놈을 공연히 서울 백
사지땅에 끌어다 노시구.” 연해 두덜거리었다.
꺽정이가 이봉학이와 황천왕동이를 데리고 남소문 안에 와서 아침 상식 참례
하고 상식 끝에 서사 시켜서 따로 준비한 전을 드리고, 늦은 아침때 상주 일행
과 작반하여 흥천사를 나오는데 노밤이가 어디 있다 왔는지 뒤에 따라오면서 갖
은 미치광이짓을 다하였다.
흥천사는 태조대왕이 신덕왕후 강씨의 혼령을 천도하려고 이룩한 절이라, 처
음에 문안 황화방 정릉동에 있었는데 태조 승하 후에 태종대왕이 신덕왕후의 정
릉을 황화방에서 양주 사아리로 천봉할 때 절도 따라 옮기었었다. 태종이 신덕
왕후를 태조의 둘째 배위로 치지 아니하여 종묘에 묘주를 뫼시지 않고 능침에
능관을 두지 아니한 까닭으로 정릉은 임자 없는 묵무덤같이 되어서 무덤 뒤의
곡장이 군데군데 무너지고 무덤 위에 억새가 길길이 자랐으나, 흥천사만은 경산
절로 유수하여 문안의 큰 시주를 많이 받는 까닭을 법당도 일신하게 중수하고
중들도 근감하게 많았다. 요부한 한첨지 집에서 물력을 아끼지 않고 큰재를 하
므로 중들의 대접이 특별하여 상주의 가족은 차치하고 상주의 친구까지 칙사같
이 떠받을었다.
상사난 때 불사를 세우하는 것은 고려 적부터 내려오는 풍속인데, 불사의 큰
것을 들어 말하면 상사난 뒤에 한 차례 중들을 청하여 빈소에서 법문을 펴는 것
은 이름이 법석이니 야단스럽기가 짝이 없었고, 일칠일로부터 칠칠 사십구일까
지 칠일마다 절에 가서 재 올리는 것은 이름이 식재이니 물력이 많이 드는 중에
일칠일 첫재와 사십구일 마지막재에는 상가에서 물력을 더 많이 들일 뿐 아니라
친척 고구가 모두 와서 보시를 쓰므로 부비 드는 것이 엄청났었고, 또 소대상과
기타 기고날 중들을 집으로 청하여다가 제사 전에 먼저 만반 공양하는 것은 이
름이 승재니 중들의 인도를 받아야 혼령이 와서 운감한다고 믿었었다. 한양 개
국 후 칠팔십 년까지는 사대부가에서도 불사를 으레 하던 것인데, 성종대왕 즉
위 원년에 법을 세워서 이것을 금하였다. 사대부들은 국법이 두렵고 물의가 무
서워서 차차로 못하게 되고 여엄에서 옛 풍속을 지켜서 하기는 하나, 기강을 세
우고 풍속을 바로잡는 사헌부 관원들이 알고 까다롭게 굴면 국법에 비쳐서 죄책
을 당하게 되므로 관원을 잘 기이는 사람이거나 또는 국법을 우습게 아는 사람
이라야 비로소 예전 세월같이 상사에 불사를 세우할 수 있었다.
한첨지의 집은 대대로 불사에 정성을 들여서 어른 상사는 말할 것 없고 어린
아이 초상에도 법석을 차리고 사십구일 지난 뒤 백일에도 굉장한 재를 올리는
집인데, 흥천사가 단골 절인 까닭으로 조만한 재나 불공에는 얼굴도 내놓지 않
는 주장중이 나와서 여러 젊은 중들을 데리고 친히 재를 올리었다.
보시들을 쓰게 될 때 노밤이가 꺽정이를 와서 보고 보시 쓰게 상목 한 필만
달라고 간청하여 꺽정이가 상목 열 필을 세 사람이 똑같이 세 필씩 쓸 가량하고
한 필은 노밤이를 내주었다. 노밤이가 보시 놓는 것을 꺽정이는 보지 못하였으
나 놓았으려니 하였더니, 저녁때 재가 파하여 문안으로들 들어올 때 황천왕동이
가 노밤이 허리에 상목 한 필을 둘러감은 것을 보고 꺽정이에게 말하여 꺽정이
가 일부러 길가에 서서 뒤에 오는 노밤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밤이가 앞에 와
서 서는데 허리에 감은 상목이 홑두루마기 아래로 환히 다 보이었다.
“왜 안 가시구 여기 서셌습니까?” 노밤이의 묻는 말에 꺽정이가 들은 체 않
고 “너 허리에 감은 것이 무어냐?”하고 호령기 있는 말로 물었다. 노밤이는
제 허리를 굽어보며 “이것 봐, 훤히 보이네. 일껀 선다님 못 보시게 할라구 감
추었는데.”하고 능글능글하게 말하였다. “이눔, 네가 얼마나 죽구 싶어서 나를
속이느냐!” “지가 선다님을 기망할 길이 있습니까. 처음에 보시를 놨습지요.
아니, 놓다가 생각하니까 부처님이 쓸 것 같으면 아깝지 않지만 까까중이놈들이
쓸 것인데 아깝더구먼요. 그래서 도루 집었습니다.” “잔말 말구 풀어서 이리
내라.” “선다님, 주신 것을 도루 뺏으시렵니까?” “주먹으루 얻어맞기 전에
얼른 풀어내라!” 노밤이가 앙탈 않고 순순히 두루마기를 벗고 친친 감은 상목
을 풀어서 꺽정이 앞에 사려놓았다. 꺽정이가 황천왕동이를 돌아보며 “이것을
얼른 갖다가 절에 주고 오너라.”하고 일러서 황천왕동이가 상목을 거두어들고
흥천사로 다시 갈 때, 노밤이는 황천왕동이의 가는 뒤를 바라보면서 “선다님두
이심하십니다.”하고 꺽정이를 매원하였다.
꺽정이가 심부름도 시키고 재구경도 시키려고 겸삼수삼 절에 데리고 갔던 신
불출이와 곽능통이는 바로 남성밑골로 가라고 남소문 안 사람을 따라보내고, 이
봉학이와 황천왕동이를 끌고 원씨집으로 들어왔다. 남성밑골 박씨는 이미 인사
들 하고 보게 하였으므로 동소문 안 원씨와 김씨를 마저 보게 하려고 역로에 원
씨집에 먼저 온 것인데, 이 집 저 집으로 끌고 다니지 않고 원씨집에 앉아서 김
씨까지 데려다가 인사들을 시키었다. 이왕 들어온 길에 원씨의 반찬 솜씨를 보
이려고 저녁밥을 시키었더니, 군저녁에 별찬까지 장만하느라고 동안이 걸려서
밥들을 먹을 때 벌써 길거리에 행인이 그치었었다. 동소문 안에서 자게들 되었
는데 김씨집에 빈 사랑이 있지마는 전에 노인이 거처하던 구들인데 오래 폐방한
구들의 누기를 갑자기 점화하여 제할 수 없으므로 김씨의 쓰는 안방을 비어서
이봉학이와 황천왕동이를 재우고 김씨는 원씨집에 와서 외롱서 한방에서 자게
하고 꺽정이까지 삼내외 같이 잤다.
이튿날 원씨집에서 아침들 먹고 남소문 안으로 올 때 이봉학이와 황천왕동이
가 한온이를 잠깐 보고 바로 광복산으로 떠나겠다고 하는 것을 꺽정이가 오늘
소흥이에게 가서 놀고 내일 떠나라고 붙들었다. 한온이에게는 조객들이 오는 까
닭에 오래 앉았지 못하고 남성밑골로 왔다. 일기 좋은 날 방에 가만히 들어앉았
기 심심하여 남산에를 올라가자고 공론하는데, 박씨가 꺽정이를 와서 보고 송편
이 있으니 자시려느냐 물어서 송편으로 점심을 엇기고 나서려고 할 때 곽능통이
가 따라오고자 하는 눈치로 증왕에 남산을 올라가 보지 못하였다고 말하여 꺽정
이가 곽능통이 외에 신불출이까지 다 데리고 나섰다.
남산 잠두를 향하고 올라오는 길에 한 곳에 와서 꺽정이가 걸음을 멈추고 뒤
에 오는 이봉학이를 돌아보며 “을사년 국상 나던 해 내가 여기를 올라와 보구
그 뒤 오늘이 처음일세.”하고 말하니 이봉학이도 꺽정이를 따라서 걸음을 멈춘
뒤 입으로 을부터 경까지 천간을 외면서 손가락을 꼽아보고 “그럼, 열여섯 해
만입니다그려.”하고 대답하였다. “그때는 캄캄한 밤에 여기 와서 헤매느라구
꽤 고생했네.” “어째 밤에 여기를 올라오셨습디까?” “선생님 심부름으루 왔
었어. 내가 이야기를 아니했든가?” “형님께 그런 이야기를 들은 생각이 나지
않는데요.” “이야기를 한 것두 같구 안한 것두 같구 의사무사해.” “대체 무
슨 심부름이에요?” 꺽정이가 이야기를 하려고 돌아서니 황천왕동이는 이봉학이
뒤에 섰다가 옆으로 나서고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는 황천왕동이 섰던 자리로 들
어섰다.
“지금 영부사 윤원형의 형 윤원로가 인종대왕을 방자해 죽이려구 김륜이를
데리구 여기 와서 움집을 묻구 있었네. 김륜이란 우리 선생님하구 동문수학했다
는 술수하는 사람이야. 나는 처음에 까닭두 모르구 선생님 하라신 대루 여기 와
서 두 놈을 혼뜨검내서 쫓은 뒤에 움집 안에 있는 제웅에서 생년월일 써붙인 종
이쪽을 떼구 앞뒤에 꽂아놓는 바늘 사십여 개를 다 뽑구 그러구 제웅을 불에 살
라버렸네. 그 움집 묻었던 자리가 바루 저길세.” 꺽정이가 가리키는 곳은 조그
만 골짜기 안에 있는 자리 한 닢 깔 만한 편편한 둔덕이었다. “윤원로의 방자
를 형님이 제지하신 줄은 우리두 이때껏 몰랐으니까 세상에선 더구나 알 까닭이
없지요.”하고 이봉학이가 말하니, 꺽정이는 이봉학이를 빈정거리듯 또는 자기
몸을 조롱하듯 “세상에서 알면 나 죽은 뒤에 비 하나 세워 줄까?”말하고 한바
탕 껄껄 웃었다. “잠두에 올라가서 십만 장안을 굽어봐야 그 세상이 어디 우리
세상인가. 올라갈 재미 없네. 여기서 바루 소흥이게루 내려가서 술이나 얻어먹
세.”
꺽정이가 말하여 이봉학이와 황천왕동이가 다같이 한옆으로 비켜서서 꺽정이
의 앞서갈 길을 틔워놓을 때, 곽능통이가 황천왕동이를 보고 “저이나 잠깐 잠
두에 올라갔다가 남성밑골루 내려갑지요.”하고 묻는 것을 꺽정이가 듣고 “너
희두 같이 가자.”하고 말하였다.
소흥이는 꺽정이가 다 저녁때 올 줄 알고 방마루도 아직 어질더분한 채 치우
지 않고 있다가 초면 손님들을 데리고 갑자기 들이닥치는 바람에 심부름하는 계
집아이와 조석해 주는 여편네 외에 살림해 주는 늙은이까지 다 나서서 허둥지둥
비질, 걸레질 들을 하고 꺽정이 일행을 맞아들이는데, 꺽정이의 말을 드디어서
가외로 따라온 두 사람은 따로 뜰아랫방에 들여앉히었다.
이봉학이와 황천왕동이가 꺽정이 앉은 자리에서 모를 꺾어 나란히 앉은 뒤 소
흥이가 두 사람을 향하고 쪼그리고 앉아서 한 팔을 짚고 고개를 다소곳하고 “
안녕들 합시오?”하고 도거리로 인사하는데 이봉학이는 초면이므로 “나는 이선
달이란 사람일세.” 황천왕동이는 남소문 안에서 한번 만나본 일이 있는 까닭에
“우리는 구면이지.”하고 각각 인사 대답들 하였다. 인사들이 끝나자마자, 꺽정
이가 소흥이를 보고 “내가 이사람들하구 소풍하러 남산에를 올라갔다가 갑자기
술두 먹구 싶구 자네두 보구 싶어서 산에서 곧장 자네 집으루 내려왔네. 저녁
전에 술 한 차례 주겠나? 그러구 저 아랫방에 있는 군들은 내 수족 같은 사람인
데 이왕 데리구 나선 길이기에 그대루 같이 왔네. 지금 술잔 먹여서 보내두 좋
구 이따 저녁까지 먹여서 보내두 좋으니 그건 자네 처분대루 하게. 저녁을 먹이
더라두 우리 대궁상에 밥 두 그릇만 놔주면 되네.”하고 긴말을 늘어놓으니 소
흥이가 먼저 “그런 건 염려 마십시오.” 간단하게 대답한 뒤 다시 “보구 싶단
말씀만이라두 감격합니다.” 덧붙여 말하고 누가 보든지 밉지 않게 웃었다.
소흥이가 마루에 나가서 살림해 주는 늙은이와 조석해 주는 여편네를 데리고
안주 장만할 것을 의논하는 중에 꺽정이가 마루를 내다보며 “안주 장만할 것
없이 술을 얼른 주게. 지금 목이 말랐네.”하고 말하여 소흥이는 모든 것을 늙은
이에게 쓸어 맡기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소흥이가 이봉학이와 황천왕동이의
맞은편 방문 앞에 앉은 것을 꺽정이가 아랫목 옆자리로 불러서 꺽정이와 이봉학
이의 중간에 와서 앉았다.
“술을 얼른 가져오라구 일렀나?” “녜, 일렀세요. 안주는 없으니 그리 아세
요.” “자네 웃음이 제일 좋은 안준데 다른 안주 찾을 거 있나.” “이따 술 부
어놓구는 자꾸 웃어야겠습니다그려.” “그래 자꾸 웃게.” “다른 양반도 웃음
안주를 잡술 줄 아십니까?” 이봉학이는 말없이 빙그레 웃고 황천왕동이는 딴
데를 보고 있었다. “한 분은 이선다님이시고 또 한 분은 성씨가 뉘댁인가요?”
소흥이가 황천왕동이의 성을 물어서 “구면이라면서 성두 모르나?” 꺽정이가
핀잔 주듯 말하였다. “선다님께서 한서방 집에 와서 기실 때 선다님께 놀러갔
다가 한번 보입긴 했지만 성씨는 못 들은 것 같아요. 정신이 사나우니까 그때
듣고도 잊었는지 모르지요.” “황선달이라구 불러 두게.” “황선다님은 보입기
에 글하시는 선비님네 같으세요.” 소흥이 말에 “나는 글 못하는 선비구 활 못
쏘는 한량일세.” 황천왕동이가 대답하니 “선다님 자기 칭찬이 너무 과하시지
않습니까?”하고 소흥이는 호호호 웃었다. 꺽정이가 소흥이더러 “저 황선달이
남의 없는 재주를 가진 사람일세.”하고 말한 다음에 다시 이어서 “걸음을 삼
현령 역마처럼 빨리 걸어서 여느 사람 백 리쯤 갈 동안에 사오백 리 무난히 가
네.”하고 말하니 소흥이가 입을 딱 벌리고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왜 거
짓말 같은가?” “선다님 말씀이 아니면 곧이듣기지 않겠세요. 황선다님 다리도
무쇠다리는 아니시겠지요?” “그렇기에 남의 없는 재주라지.” “이선다님은
또 무슨 재주를 가지셨세요?” 소흥이가 이봉학이를 돌아보고 묻는데 “이선달
은 활이 고금에 드문 명궁일세.” 꺽정이가 대답하였다.
늙은 여편네가 소흥이를 들여다보며 “약주상을 들여갈까?”하고 물어서 소흥
이가 들여오라고 고개를 끄덕이고 좌중을 돌아보며 “갓하고 웃옷들을 벗으시지
요.”하고 말하여 세 사람의 의관을 모두 받아서 걸 데 걸고, 얹을 데 얹은 뒤에
시중들기 편하도록 방문 앞으로 옮겨앉았다. 술상이 들어오는데 마른 안주, 진
안주가 상에 가득 늘여놓였다. 꺽정이가 술상을 들여다보며 “웬 안주가 이렇게
많은가?”말하고 이봉학이가 또 꺽정이의 뒤를 받아서 “없다던 안주가 갑자기
어디서 이렇게 생겼나?”하고 말하니 “되지 못한 것 가짓수만 늘어놓았지 정작
잡수실 만한 것이 있어야지요.” 소흥이는 겸사로 대답하였다. 송편 점심이 다
내려가서 속들이 출출한 판이라, 세 사람이 술잔을 뻔찔 돌려 잡는 중에 이봉학
이의 바른손 엄지가락이 특별히 굵은 것을 소흥이가 보고 “선다님 우궁을 쏘십
니까?”하고 물었다. “그건 왜 묻나? 묻는 뜻을 말해야 대답하겠네” “바른손
엄지가락이 유난히 굵으시니 깍짓손으로 세우 쓰셔서 그런가 하고 여쭤봤세요.
” “자네가 용하게 알아냈네. 그렇지만 좌궁도 남만큼 쏘는걸.” “좌우로 다
쏘시더라도 우궁을 더 잘 쏘시겠지요?” “그야 그렇지.” “우궁으로 쏘시면
언제든지 오중몰기하십니까?” 꺽정이가 빈 잔을 소홍이 앞으로 내밀며 “이 사
람 이야기 고만하구 술 좀 치게” 하고 재촉하여 술 한잔을한 모금에 마시고 나
서 “이선달 같은 명궁더러 오중몰기하느냐 묻는것은 사천왕보구 앙징하단 셈일
세” 하고 소홍이의 말을 책잡아 말하였다. 소홍이가 이봉학이를 보고 “말씀을
지망지망히 해서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하니 “경진년 무과가 수두룩하게 많은
세상에 오시오중하는 사람이면 명궁 아닌가. 나는 자네 말을 지망지망하다구 생
각 않네.” (세조 경진년 무과에 일전팔백여 명을 뽑고 또 종종 경진년 무과에
일천 명을 뽑았는데, 그중에 활을 만져보지도 못한 사람이 많이 뽑힌 까닭으로
경진년 무과란 말을 활 못 쏘는 한량이란 말과 같이 썼다.) 하고 이봉학이는 웃
었다. 이때 별안간 밖에서 “이놈 이놈!” 무엇을 쫏는 소리가 나고 그뒤에 “저
걸 어떻해요?” “그걸 누가 먹어 갖다 내버리지.”“박살할 놈의 고양이 미워
죽겠네.” “누가 좀 잡아 없애지 못하나.” 지껄이는 소리들이 들리어서 소홍이
가 열어놓은 방문으로 밖을 내다보며 “뭘 그래?” 하고 물으니 아이년이 앞으
로 뛰어와서 “고놈의 도둑고양이가 아까 사다놓은 닭을 물어죽이고 뜯어먹다
내뺐세요.” 하고 말하였다 “얼른 광충다리 가서 새루 한 마리 사오라구 그래
라. 닭장수가 다 가지나 않았을지 모르겠다.” 가호 소홍이가 아이년더러 말한
뒤, 곧 돌아앉아서 세 사람을 보고 “큰 도둑괴 한 마리가 두어 달 전부터 요
근방에 와서 돌아다니는데 고기고 생선이고 밖에 놓아두기가 무섭게 번쩍하면
물어간답니다. 어떻게 잘 물어가는지 기가 막혀요. 뒷집에서는 지난 달에 영계
세 마리를 샀다가 이틀 동안에 다물려보내고 그 뒤로 그집주인 박선달이 고양이
를 활로 쏘아 잡으려고 벼르지만 활을 내들기만 하면 벌써 들고 내빼서 잡지를
못한답니다.” 하고 이야기한 끝에 황천왕동이가 웃으면서 “활이 있으면 지금
잡아주지”하고 말하였다. “참말씀이세요?” “왜 나는 못 잡을 것 같아 보이
나?” “선다님은 활을 못 쏘신다면서요.” “경진년 축이 아닌 담에 아무러기
루 고양이야 못 쏘아 잡겠나.” “선다님 말씀이 큰소린가 아닌가 어디 보십시
다.” 소홍이가 아이년을 불러다가 “고양이가 어디로 갔니?” 하고 물어서 “
아직도 지붕 위에 웅크리고 앉았세요.” 하는 아이년의 대답을 들은 뒤 “그럼
너 얼른 박선다님댁에 가서 활하고 화살하고 좀 빌려 줍시사고 해서 주시거든
고양이가 못 보게 잘 감춰 가지고 오너라.” 하고 말을 일렀다. 얼마 동안 지난
뒤에 아이년이 활과 전동을 행주치마 밑에 숨겨 가지고 왔는데, 활은 각궁이나
넘어도 튀지 않을 물씬물씬한 태평궁이요,살은 과거 보는 정량 엿냥이나 깃을
좀이 먹어서 한 대도 쓸 것이 없었다.설혹 쓸 것이 있다손 잡더라도 굳센 활이
아니면 제작을 보내지 못할 무거운 살로 태평궁에는 당치 아니하였다. 이것은
활을 잘모르는 사람도 알 수 있거든 하물며 활에 귀신 다 된 이봉학이랴. 이봉
학이가 한 손으로 잠깐 활을 다뤄보고 곧 소홍이더러 “활이구 살이구 죄다 못
쓸 겔세.” 하고 말하니 소홍이 대답하기 전에 꺽정이가 대번에 “박선달이란
게 어떤 놈인지 죽일 놈일세. 빌리기가 싫으면 안 빌리는 게지 빌린다고 못쓸
것을 빌린단 말인가. 활이구 살이구 전동이구 다 아궁지에 처넣어버리게. 그눔이
도루 달라구 말썽을 부리면 그건 내가 담당할 테니 염려 말게.” 하고 말하는데
박선달이란 자가 어찌 괘씸하든지 흰자 많은 눈방울까지 굴리었다. 이
봉학이가 꺽정이를 보고 “형님 그럴 게 아니라 고양이를 잡아서 박가놈의 집에
보냅시다. 그놈이 달포 두구 벼르며 못 잡안단 고양이를 이 활, 이 살루 잡아보
내면 그놈의 코가 납작해질 테니 그게 상쾌하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을
소홍이가 듣고 반색하다시피 좋아하며 “그랬으면 좋겠세요. 참말 상쾌가겠세요.
”하고 말하였다. 소홍이는 이웃간에 공연한 말썽을 내는 것이 재미스럽지 못하
여 활과 전동을 도로 보내고 싶으나 꺽정이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워서 말 못하
고 있던 차이었다. “활이구 살이구 다 못쓸 것이라며 그래.” 꺽정이의 말을 “
아무리 못쏠 활이구 못쓸 살이기루 지붕에 있는 고양이야 못 쏘겠습니까. 내가
잡아놓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뒤 곧 이봉학이는 활에 시위를 메기 시작하였다.
소홍이가 아이년을 불러서 “고양이 그저 있나 보아라.” 하고 말한즉 “그 동
안에 어디로 가고 없세요.” 하고 아이년이 대답하여 “다시 오거든 눈에 뜨이
는 대로 얼른 와서 말해라.” 소홍이는 아이년에게 말을 일러두었다. 술상을 물
리고 한담설화를 하는 중에 동자하는 여편네가 한데 우물에 저녁 밥쌀을 씻으러
나갔던지 이남박 위에 받침반을 얹어 이고 들어오더니 이남박을 내려놓고 마루
앞으로 와서 “밖에 누가 와서 임선다님께서 오셨느냐구 묻기에 오셨다구 했더
니 잠깐 보입게 해달라구 말합디다.” 하고 찾아온 사람이 있다고 연통하여 꺽
정이가 뜰아랫방을 내려다 보혐 “불출아!‘” 하고 불렀다. 신불출이와 곽능통
이는 점실을 궐하여 신장한데다가 소홍이 집에서 주는 술을 양에 겹도록 먹어서
술이 취하여 누웠다가 잠들이 들었었다. "그 방에들 없느냐!“ 꺽정이가 소리를
질러도 대답이 없어서 동자하는 여편네가 쫓아 내려가서 방문을 열고 ”여보여
보, 선다님께서 부르시우. “ 하고 소리치니 그제사 공중잡이로들 일어나서 녜녜
대답들 하며 뛰어나왔다. ”지금 무슨 잠들이란 말이냐! 밖에 누가 왔다니 하나
나가 봐라. “ 신불출이가 밖으로 나갔다가
얼마 만에 들어와서 “애꾸눈이 노가가 와서 잠깐 비입겠다구 하옵기에 이따나
내일 남성밑골루 오라구 말씀했솝더니 급한 일이 있어서 지금 꼭 뵈어야 하겠다
구 하옵디다. ” 하고 말하여 꺽정이가 급한 일이 무슨 일인가 의아해 하면서
“들어오래라. ” 하고 일렀다. 노밤이가 신불출이의 뒤를 따라들어와서 계하에
서 공손히 허리를 굽히었다. “급한 일이 무슨 일이냐? ” “약주를 잡수러 오
셨습니까? ” “급한 일을 말하라니까 왠 딴소리냐! ” “녜, 말씀합지요. ” “
얼른 말해라. ” “저의 집에 저녁거리가 없습니다. 어떻게 처분 좀 해줍시오.
” “그게 급한 일이냐? ” “저녁을 굶게 되는데 그게 급하지 않으면 무에 급
합니까. ” “이애들 그 미친 눔 꼭두잡이해 내쫓아라. ” 하고 꺽정이가 분부하
여 신불출이와 곽능통이가 꼭두잡이하려고 달려드니 노밤이는 손을 내저으며 “
달려들지 마라. 내가 나갈 테니. ” 하고 말한 뒤 가장 거드럼스럽게 걸어서 밖
으로 나갔다.
이날 점심때 노밤이가 남소문 안에 갔다가 여러 사람 틈에 끼여서 국밥 한 그
릇을 얻어먹고 점심 뒤에 꺽정이를 보려고 남성밑골을 거쳐서 동소문 안에들 갔
더니, 꺽정이는 역시 없고 꺽정이의 졸개들이 점심 먹고 할 일이 없
어 방에 드러누워서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졸개 둘 중의 하나는 구면으로 전에
도 농지거리하던 터수이나 다른 하나는 이번에 처음 만나서 겨우 인사수작한 처
지인데 노밤이는 둘을 함께 껴잡아서 “이 자식들아, 염병을 하느냐 왜 늘비하
게 자빠져느냐! ” 하고 욕을 푸짐하게 내붙였다. 구면 졸개가 누운 채 “너는
욕이 인사란 말이냐, 미친 놈아! ” 하고 대꾸한 뒤 동무 졸개보다 나중 일어 앉
아서 노밤이더러 “이리 들어오너라. ” 하고 말하였다. “이런 일기 좋은 날 굴
속 같은 방에 들어가서 무어하게. 나더러 들어오라지 말구 너희들이 나오너라.
” “나가선 무얼하느냐? ” “구경이라두 다니려무나. ” 졸개 하나는 서울길
이 이번이 초행인테 아직 구경을 다니지 못하여 심중이 나던 차에 노밤이 말에
귀가 번쩍 뜨이어서 “나 서울 구경 좀 시켜 주게. ” 하고 말하니 노밤이가 그
졸개에게 “서울 온 지가 벌써 며칠인데 이때까지 무엇했느냐? 구경두 안다니
구. ” 대답하고 나서 구면 졸개를 보고 “이놈아, 동무를 데리구 다니며 구경이
나 좀 시켜 줄게지 날마다 낮잠만 자빠져 자구 있어! ” 하고 부옇게 핀잔을 주
었다. “내가 길을 모르는 걸 남 구경을 어떻게 시켜 주니? 남소문 안두 길 잃
어버릴까 봐 못 가구 있다. ” “네가 길눈 밝은 품이 대낮 올뻬미로구나. 자 나
오너라. 내가 바쁘지만 오늘 반나절 너희들 데리구 다니며 구경을 시켜 주마. ”
“나는 구경이 소원 아니니 술이나 좀 사다우. ” “오냐 그래라. 남촌 술두 사
주구 북촌 떡두 사주마. ” 노밤이가 졸개들을 데리고 동소문 안에서 나서서 박
석티를 넘어 배오개 네거리로 나와서 종루 큰거리를 향하고 올라오며 저기가 동
관대궐이다, 여기가 원각사 절타다 가르치고, 종루에 와서 인경을 구경시키고 선
전 앞에서 여리꾼에게 붙들려서 곤경을 치르고 황토마루께로 올라와서 광화문을
바라보고 들어가며 육조아문을 일일이 일러주고, 마침 궐내에서 퇴출하는 제상
행차를 구경시키고 황토마루로 되곱쳐 나오는 중에 구경을 고만하고 술집을 찾
아가자고 구면 졸개가 노밤이를 졸라서 “그럼 남촌으루 건너가자. ” 하고 노
밤이가 말하였다. “북촌에는 왜 술집이 없나? ” “아까 가르쳐 주었는데 고
동안에 잊어버렸느냐! 북촌 떡이구 남촌 술이란다. 맛좋은 술을 먹으러 가잔 말
이야. ” 노밤이가 졸개들을 끌고 남촌을 건너와서 남소문 편으로 내려오다가
어느 막다른 골목 안에 있는 용수 달린 집으로 들어왔다. 문밖에 용수는 달았으
되 내외하는 안침술집이라 문간에 놓인 뒤트레 방석에 앉아서 술들을 먹었다.
처음 내온 술그릇이 비어서 심부름하는 아이가 술 가지러 안에 들어간 사이에
노밤이가 졸개들더러 “너이들 술값 낼 것 없지? 나두 마침 안 가졌다. 이 집
사람 안보는 틈에 슬그머니 일어서 가자. ” 말하고 셋이 같이 불불이 일어서
나가려고 하는데, 일이 안 되느라고 때마침 포교 하나가 마주 들어오며 셋의 아
래위를 한번 훑어보더니 바로 안으로 향하고 “아주머니, 밖에 오신 손님들 술
값을 받으셨습니까? ” 하고 소리쳐 물었다. 아이가 안에서 쫓아나와서 포교를
보고 “언니 왔소? ” 허고 인사한 뒤 “남더러 술을 더 가져오라구 해놓고
몰래들 내뺄라구 했구먼. ” 하고 말하여 포교가 대번에 이 사람의 뺨을 치고
저 사람의 빰을 칠 때, 안여편네가 문간 차면 뒤에 나와 서서 술값이나 받지 손
찌검은 말라구 말리었다. 술값을 내라고 포교가 대드는데 노밤이가 평생 구변을
다하여 갖은 사정을 다한 끝에 셋이 옷갓을 벗어놓고 갔다가 술값 낼 것을 가지
고 와서 찾아가겠다고 한즉, 포교 말이 술값 낼 것이 태산 더미가 아닌 바에 셋
씩 갈 것이 무엇이냐, 셋중에서 볼모를 남기고 가라고 하여 노밤이가 혼자 갔다
오마고 하는 것을 구면 졸개가 노밤이만 보냈다가는 십상팔구 다시 오지 않을
줄 짐작하고 포교의 허락을 얻은 뒤 노밤이를 따라왔다. 노밤이가 소홍이 집에
와서 꺽정이를 보고 술값 줄 것을 저녁거리라고 말하고 달라다가 빈손으로 쫓겨
나왔을 때, 골목 밖에서 기다리던 졸개가 쫓아와서 술값이 변통되었느냐고 물으
니 노밤이는 고개를 가로 흔든 뒤 다른 데나 가보자고 남소문 안으로 같이 왔
다.
한온이가 첩의 집에를 갔는지 사랑에 있지 아니하여 노밤이가 서사를 보고 “
상제님 작은 댁에 가셨소? ” 하고 물으니 서사는 무엇에 골난 사람같이 “난
몰라. ” 대답하는 것이 퉁명스러웠다. 서사더러 말을 더 물어야 말만 귀양 보낼
줄 짐작하고 노밤이가 사랑에서 나와서 중문밖에 세워 두었던 졸개를 데리고 한
온이의 가장 사랑하는 작은첩의 집에 와서 문간에서 하님을 불렀다. 누가 왔나
보러 나온 계집아이년더러 “상제님 여기 기시냐? ” 하고 물은즉 계집아이년이
대답 않고 들어갔다가 얼마 만에 다시 나와서 상제님 안 오셨다고 대답하는 것
이 한온이가 안에 있느며 없다고 따는 모양이나, 쫓아들어가서 치고 뺏지 못할
바엔 할 수가 없었다. 노밤이가 한온이에게 술값을 조르려고 장대고 온 것이 틀
리고 보니 다시 돌아서 말할 데도 없고 말할 데가 있다고 하더라도 더 가고 싶
지 아니하여 졸개를 보고 “인제 나는 집으로 가구 너는 동소문 안으루 가는 수
밖에 없다. ” 하고 말하니 졸개는 다짜고짜로 노밤이의 멱살을 잡고 “이놈아,
볼모 잡히구 온 사람은 어떻게 하란 말이냐! ” 하고 소리를 질렀다. 노밤이가
멱살 잡은 졸개의 손을 뿌리치면서 “가만 있거라. 어디 다시 생각해 보자. ”
말하고 한참 만에 “칼 물구 뛰엄뛰기나 한번 해볼까. ” 혼자말하듯 말한 뒤
졸개를 끌고 남성밑골 박씨의 집으로 왔다. 노밤이가 박씨를 보고 “ 세분이 지
금 장찻골다리 소홍이 집에서 약주들을 잡숫는데 댁선다님께서 그 집 사람들에
게 행하를 주시려는지 상목 한 필 부담상자에서 꺼내 줍시사구 해서 가지구 오
라구 하십디다. ” 하고 능청스럽게 거짓부리를 하여 박씨가 속는 줄을 모르고
상목 한 필을 꺼내주었다. 노밤이와 졸개가 한달음에 술집으로 와서 그 집의 자
와 가위를 얻어가지고 두자치로 끊어서 그중에서 먼저 먹은 술값을 치러 주고
새로 먹을 술값까지 선셈하였다.
노밤이가 지난번 남성밑골서 등밀려 쫓겨난 것과 절에 갔다 들어오는 길에 길
에서 망신한 것이 다 잊혀지지 않는데다가 이번 기생의 집에서 꼭두잡이당할 뻔
한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꺽정이가 밉기 짝이 없었다. 미움이 쇠하여 악으로 변
하여 노밤이는 번히 포교가 않에 있는 줄 알면서 “너이 대장이 환장했더라. ”
“대적 소리를 듣는 사람이 다랍게 상목 한두 필을 아낀단 말이냐? ” “청석골
두 더 볼 것 없다. 너이두 진작 알아채려라. ” 이런 말을 드러내놓고 떠들었다.
졸개들이 기가 막혀서 “이 자식이 술취했나? ” “저녁때 다 되었네. 고만 일
어나세. ” 둘이 먼저 일어서서 옷에 묻은 먼지들을 떠는데, 노밤이는 좌우손으
로 졸개들의 옷소매를 잡고 “먹든 술이나 마저 다 먹구 가자. ” 하고 일어서
지 아니하였다. 졸개들이 노밤이에게 붙들려 다시 주저앉아 남은 술을 다 먹고
남은 상목을 나뉘서 허리춤에 지르고 술집에서 나서니 이때 해는 벌써 서산에
걸치었었다. 술집에서 나와서 두어 간 동안도 채 못 왔을 때 뒤에서 “여보 이
분들 술값 내구 가우. ” 하고 소리를 지르며 수건으로 머리 동인 하나가 쫓아
와서 셋이 다같이 돌아섰다. “술값이 무슨 술값이오. ” 노밤이가 물으니 “당
신들 술 먹구 언제 술값 냈소? ” 그 사람은 바로 목자를 부라리었다. “
우리는 술값 선셈하구 먹었소. 정신 없는 소리 하지 마우. ” “술값 선셈이란
게 다 무어요? 세상 천하에 선셈하고 술먹는 놈두 있습디까. ” “긴말 하기
싫으니 술집 아낙네에게 가서 자세히 물어보우. ” “지금 나더러 술값을 받아
달라는데 무얼 자세히 물어보란 말이야! ” “우리 먹은 술값을 정녕 안 받았다
구 합디까? ” “술을 두 차례 먹구 먼저 한 차례 값만 냈다구 합디다. ” “그
집 아낙네의 조카 되는 포교가 받았으니 그 포교를 이리 불러가지구 나오. ”
“포도군관은 벌써 자기 집으로 갔는걸. ” “그 포교가 받아가지구 안 내놓구
간게요. 내놓았거나 안 내놓았거나 그게야 우리가 알 배때기 있소. ” “무엇이
어째! 포도군관이 중간에서 술값을 훔쳐먹었단 말이야? 별 웃은소리 다 듣겠네.
” “웃은소리라두 훔쳐먹은 걸 어째란 말이야! ” “포도군관을 불러올께 삼주
대면합시다. ” 이렇게 술값으로 실랑이가 벌어져 세 사람이 다시 술집에 와서
포교 불러오기를 기다리는데 가까이서 산다는 포교가 부르러 간지 한식경이 되
어도 오지 아니하여, 얼마 안 되는 술값이니 재징이라도 물어주고 가자고 셋이
공론하는 중에 포교 사오명이 일제히 손에 방망이들을 빼어들고 풍우같이 들이
닥치었다.
그 안침술집 안여편네의 친정 조카는 포교 구실을 다닌 지 불과 몇 해 안 되
는 애송이나 사람이 워낙 영리하여 좌포청에서 한몫 보는 포교이었다. 이날 우
연히 저희 고모를 보러 왔다가 공술 먹고 도망하려던 술꾼 셋을 붙들어서 술값
을 받아내는데, 그 술꾼들의 인물이 아무리 보아도 좀 수상하여 잡아서 등을 치
며 뜻밖에 밥을 토할 것 같으나 그래도 혹시를 몰라서 손댈 마음을 먹지 못하고
있던 차에 저희들 아가리에서 대장이니 대적이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을 듣고
곧 잡아 옭히려니 혼잣손에 셋이 버거워서 동무 포교들을 데리러 가는데 눈치를
들리지 아니하려고 문으로 나가지 않고 안 뒷담을 넘어 나가고, 또 갈 때 근처
의 막벌이꾼 하나를 얻어서 술꾼들이 가려고 하거든 시비를 붙든지 쌈을 걸든지
수단껏 하여 자기 오기 전 못 가게 하라고 이르고 갔었다. 이리하여 노밤이와
졸개들은 술집에서 좌포청으로 들려오게 되었다.
서울 처음 온 졸개는 사람이 제법 다부져서 잡힐 때 순순히 잡히지 않고 뒤트
레방석으로 포교들의 면상을 냅다 쳐서 포교 두서너 사람 얼굴에 생채기까지 내
주었으나, 그 대신 포교들 방망이에 머리가 깨졌었다. 포청에 온 뒤에 포교들이
이 졸개를 맨먼저 끌어다가 제잡담하고 방망이로 사다듬이 한 차례 하고 비로소
말을 물었다. “너이가 대장이 있을 젠 뜨내기 좀도둑놈이 아니구나. 너이 대장
이란 게 어디 사는 어떤 놈이냐? 죽더래두 곱게 죽구 싶거든 얼른 바루 대라.
” “멀쩡한 양민을 도둑놈으루 모니 이게 무슨 일이오? 대장이란게 무언지 난
생전 듣두 보지 못했소. ” “이놈 양민 봐라. 옳지, 대장이란 건 듣두 보두 못
했겠다. 네가 얼마나 안 불구 배기나 어디 보자. ” 말 묻는 나이 많은 포교가
포교 중 영수인 듯 다른 포교들을 돌아보며 “올곧게 불기까지 사그리 조기게.
” 하고 일러서 툭툭한 보병것이 피투성이 되도록 몹시 얻어맞았거난, 이 졸개
는 줄곧 불지 아니하였다. “이놈은 치어놓구 다른 놈을 조겨 보세. ” 그 졸개
는 묶어서 한구석에 처박아놓고 다른 졸개를 밖에서 끌어들여왔는데, 이 졸개도
방망이로 한 차례 톡톡히 얻어맞고도 먼저 졸개와 같이 도둑놈이 아니요, 대장
이 없다고 잡아떼었다. “너이놈들이 방망이찜질은 무서워하지 않는 모양이니
학춤을 한번 추어 봐라. ” 나이 많은 포교가 다른 포교들을 시켜서 이 졸개를
두 활개 벌려서 동그마니 매어달고 아랫도리에 잔채질을 하였다. “묻는 대루
다 말할테니 끌러놔 주시수. ” “너이 대장이 누구냐 대라. 그러면 끌러놔 주
마. ” “임꺽정이요, 임꺽정이. ” 포교들이 모두 놀라는 얼굴로 서로 돌아보는
중에 “이놈 거짓말이지? ” 나이 많은 포교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거짓말
이라면 할 수 없지요. ” “꺽정이가 지금 어디 있느냐? ” “청석골 있소. ”
“너이는 어째 서울에 와 있느냐! ” “서울 심부름 왔소. ” “무슨 심부름? ”
“물건 사러 왔소. ” 나이 많은 포교가 다른 포교들을 보고 “말이 맞나 한 놈
마저 물어보세. ” 하고 말하여 그 졸개도 먼저 졸개와 같이 묶어서 한구석에
처박아 두고 맨 끝으로 노밤이를 끌어들여왔다. 노밤이는 방망이로 두서 너 번
얻어맞은 뒤 곧 “때리지 마루. 내가 다 이야기해 주리다. ” 하고 말하였다. “
너이 대장의 성명이 무어냐? ” “저기 저놈들은 대장이 있어두 나는 내가 대장
이오. ” “네가 저놈들의 대장이란 말이냐? ” “아니오. 저놈들의 대장은 임꺽
정이오. ” “그럼 너두 꺽정이의 부하지 네가 대장이란 게 다 무어냐? ” “내
이야기를 좀 들어보시우. 나는 본래 강원도 철원서 사령 다니던 사람인데 상처
하구 홧김에 난봉을 부리다가 천량두 까불리구 구실두 날리구 살 수가 없어서
작년에 서울에 올라봐서 벌잇자리를 이리저리 구하는 중에 어떤 사람의 인권으
루 어떤 집에 가서 비부를 들었었소. 처음에는 주임이 임선달인 줄만 알았더니
차차루 알구 보니까 그 임선달이란 게 곧 해서 대적 임꺽정입디다. 대적의 집인
줄 안 뒤에야 하룬들 거기서 살 수 있소? 그래서 나는 그 집에서 나와서 따루
사우. 그 집에서 두서너 달 있는 동안에 저놈들하구 얼굴이 익었는데 오늘 길에
서 만나서 술 한잔 사내라구 자꾸 조릅디다. 저놈들은 무서울 거 없지만 저놈들
뒤에 있는 임꺽정이가 무서워서 저놈들을 얼렁얼렁 어루만져 배송낼라구 술집에
를 데리고 갔었소. ” 노밤이가 힘도 안 들이고 수월수월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포교 다니는 사람은 버릇이 양민도 도적놈으로 보려고 하고 참말도 거짓말로
들으려고 하여 양민을 도적놈으로 그릇 알망정 도적놈을 양민으로는 좀처럼 그
릇 알지 않고 참말을 거짓말로 속을 망정 거짓말을 참말로는 좀처럼 속지 아니
하므로, 노밤이의 힘 안들이고 하는 거짓말이 흡사 참말 같았지만 그 말을 곧이
듣고 흉물스러운 화상을 양민으로 여기는 넉적은 포교는 하나도 없었다. 나이
많은 포교는 곧이듣는 것처럼 연해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네가 도둑놈의 동류
아니구 긴것은 나중에 자연 핵변이 될테니 발명 고만하구 꺽정이 집이 어느 동
넨가 그게나 일러주게. ” 해라하던 말투까지 하게로 고쳐 말하였다. “집구경을
가실라면 몰라두 꺽정이를 잡으러 가실라면 그 집에 가서 소용없소. ” “꺽정
이가 지금 그 집에 없나? ” “그 집에 없으니까 말이지요. ” “그럼 어디 가
있나? ” “꺽정이를 잡으면 나두 상금을 후히 주실라우? ” “우리가 상금을
후히 준다구는 말할 수 없지만, 후히 받두룩은 해줄 수 있네. 염려말게. ” “그
럼 좌우포청 사람을 한 백 명 모아 가지구 나하구 같이 갑시다. ” “좌우포청
이 쏟아져 나가거나 오위군사가 풀려나가거나 그건 자네가 아랑곳할 것 없구 꺽
정이가 있는 데만 말하세. ” “글쎄, 내가 가르쳐 줄테니 같이 갑시다. ” “같
이 갈 때 같이 가더래두 우리가 먼저 알아야겠네. 말하게. ”“꺽정이가 장통방
에 사는 기생 소홍이 집에 있기가 쉽소. 거기 없으면 두서너 군데 다른 데 가
보면 영락없이 있을 게요. ” “꺽정이가 기생방에 갔으면 저 혼자 갔겠지? ”
“그건 알 수 없소. 부하를 너더댓 데리구 갔을는지 모르우. ” “꺽정이 부하가
서울 안에두 많은가? ” “아니오. 청석골서 데리구 온 놈들이오. ” 나이 많은
포교가 술집 여편네의 조카 되는 포교를 옆으로 오라고 손짓하여 불러가지고 “
우선 시급히 대장댁에 가서 품할까, 더 자세히 문초들을 받을까 자네 들어가서
부장나리께 여쭤 보게. ” 하고 이른 뒤 다시 노밤이를 보고 “자네 참 성명이
무어냐? ” 비로소 성명을 물으니 노밤이가 본성명은 감추고 전에 들은 철원 사
령의 성명 하나를 빌려서 “김춘선이오. ” 하고 대답했다. “나이는 몇살인가?
” “마른이 이마 위에 와닿았소. ” 노밤이 옆에 가까이 있던 젊은 포교가 노
밤이의 귀싸대기를 철컥 우리고 “이놈이 서른 아홉이면 서른 아홉이라구 마흔
이면 마흔이라지 이마 위에 와닿은 건 다 무어냐! ” 하고 꾸짖었다. 노밤이는
얻어맞은 귀를 손바닥으로 누르고 비비다가 손바닥을 떼고 고개까지 흔들어본
뒤 “귀가 먹먹해 죽겠네. 귀창이 떨어졌나 보우. 그만 말에 그렇게 손찌검할 거
무어 있소? ” 하고 두덜두덜하였다. 나이 많은 포교가 노밤이의 하는 꼴을 가
만히 보고 있다가 한참 만에 “여기가 자네 집 안방이 아니니 말대답을 조심해
서 하게. ” 하고 타이르듯 말하니 “인제는 무슨 말을 묻든지 대답 안할 테요.
” 노밤이의 입술이 열닷 발이나 앞으로 나왔다. “대답을 안 하면 더 경치지
별수 있나. ” “무슨 물을 말이 더 있소? ” “있다마다. 인제 겨우 부리만 헌
셈인데. ” “사람을 기름을 내릴 작정이구려. ” “쓸데없는 소리 고만하구 물
을 말이나 좀 물어보세. 꺽정이 집종년을 아직두 데리구 사나? ” “그 집에서
나올 때 그년을 내버리구 나왔소. ” “그러면 지금은 홀아빈가? ”“그렇소. ”
부장청에 들어갔던 포교가 도로 나오더니 “부장 나리가 대장댁에 가서 지휘를
물어가지구 오실 테니 그 동안에 번난 사람들을 불러모으라구 하시구 만일 우변
사람이 알면 되지 못하게 가리를 들기가 쉬우니 알리지 않두룩 하라구 하십디
다. 그러구 저놈들을 앞장세우구 갔다가는 어수선한 틈에 도타할 염려가 없지
않으니 아직 남간에 접어 너두었다가 장통방에 갔다와서 다시 문초를 받게 하라
구 하십디다. ” 하고 말하고 노밤이와 졸개들을 굴속 같은 간으로 끌려들어가
게 되고 포교들은 번난 동무들을 부르러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다. 얼마 동안 지
난 뒤에 포도부장 하나가 포교 이십여 명을 거느리고 장통방으로 나가는데, 이
때 밤은 이경 가까웠고 달은 대낮같이 밝았다.
장찻골다리에서 소홍이 집을 찾아가자면 다리 남쪽 큰 골목을 십여 간쯤 나가
다가 동쪽 실골목으로 꺽이는데, 그 실골목이 사람 서넛만 늘어서면 팔 놀리기
거북할 만큼 너비도 좁다랗거니와 길이 역시 짤막하였다. 실골목 안을 들어서면
바른손편은 큼직큼직한 집 뒷담이요, 왼손편은 작은 집들 문앞인데 맞은바라기
서향으로 문난 집은 치지 말고 작은 집이 모두 다섯 채에 안침 다섯째가 소홍이
의 집이었다.
소홍이의 집은 기역자 원채에 안방, 안방 부엌, 대청, 건넌방이 있고 일자 아
래채에 문간, 뜰아랫방, 광이 있는데, 서쪽 안방 뒤와 북쪽 대창 뒤와 동쪽 장독
대 담 너머는 삥 돌아 남의 집이요, 오직 남쪽 아래채 앞이 실골목이다. 아래채
가 광 있는 쪽은 막다른 집행랑 뒷벽과 나란하나, 문간 있는 쪽은 옆집보다 조
금 앞으로 나와서 문간과 안방 부엌 모퉁이에 조그만 기역자 담이 끼었는데 그
담 위에는 좀도적 방비로 두깨그릇 깨어진 것이 수북하게 얹혀 있었다.
소홍이 집을 찾아오는 손님이 수효도 많거니와 그 손님들이 열의 여덟아홉은
조신치 못하여 아닌 밤중에 드잡이놓을 때도 있고 오밤중까지 떠들 때도 많아서
이웃 불안이 적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소홍이 집 문이 일찍 닫히는 날 밤에는
드잡이도 안 나고 떠들지도 않으므로 이웃집 사내들은 “그 기집년 잘두 물어들
인다. ” 하고 웃고 여편네들은 “오늘 밤엔 조용하겠구먼. ” 하고 좋아하였다.
이날 소홍이 집의 저녁밥은 대중없이 늦어서 인정 친 뒤에 겨우 끝났으나, 문
만은 초저녁부터 닫아 걸고 오는 손님들은 모조리 따돌리었었다. 밤이 이경쯤이
나 되었을 때 누가 와서 문을 두들기는데 하도 몹시 두들기어서 조석해 주는 여
편네의 사내가 뜰아랫방 들창문을 치어들고 밖을 내다본즉 평량자 쓴 사람 하나
가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며 문짝을 두들기다가 들창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뒤
로 물러나섰다. “누굴 찾소? ” “임씨 성을 가진 양반이 지금 여기 와 기시
우? ” “어디서 왔소? ” “그 양반의 친구 양반들이 알아오라십디다. ” “지
금 여기서 약주를 잡수시우. ” “몇 분이 기신가요? ” “세분이오. ” “네,
잘 알았소. ” 소홍이 집에 있는 사람이 들창문을 닫고 돌아서서 눈뜨고 누워있
는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를 내려다보며 “가서 말씀해야지? ” 하고 물으니 두
사람이 다같이 고개 끄덕이는 시늉을 하였다. 그 사람이 안방에 있는 꺽정에게
사람 왔다간 것을 말하러 간 동안에 신불출이와 곽능통이가 서로 돌아보며 “누
가 알러 보냈을까? ” “남소문 안에서 보냈는가베. ” “초상 상제가 설마 기
생방에 올라구. ” “그 외에는 여기 와 기신 줄을 짐작할 사람이 별루 없는걸.
” “우리는 남성밑골루 못 가구 여기서 자는데 서울 사람은 인정친 뒤에두 맘
대루 나다니는 모양일세. ” “순라에 잡히지 않는 무슨 표나 패를 가지구 다니
는 게지. ” 이런 말들을 지껄이었다. 꺽정이가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는 저녁들을
먹여서 남성밑골로 보내려고 한 것이 저녁밥을 다 먹기 전에 인정을 쳐서 순라
에 잡히지 않도록 보내려고 궁리하는 것을 소홍이가 보고 그대로 밤들을 지내고
가게 하라고 말하고, 조석해 주는 여편네는 늙은이와 아이년이 자는 건너방에
가서 자게 한 뒤 그 여편네의 사내와 셋이 같이 뜰아랫방에서 자게 한 것이었
다. 신불출이와 곽능통이가 왔다간 사람이 어디서 온 것을 물어보지 않은 탓으
로 꺽정이에게 불려 올라가서 꾸중 실컷 듣고 내려온 뒤, 한식경이 채 못 되었
을 때 안방 부엌 모퉁이에서 질그릇 깨어지는 소리가 나서 신불출이가 소홍이
집 사람보다 먼저 방문을 열치고 내다보니 기역자 진 담 위로 사람의 얼굴 하나
가 보이었다. “그게 웬놈이냐? ” 신불출이가 소리치자, 곧 그 얼굴이 아래로
내려가더니 한참 만에 다시 더 불끈 솟아오르며 담 위에 얹힌 깨진 그릇을 마당
으로 집어던져서 짜끈짜끈 소리가 나고, 또 한편에서는 문짝을 부수는 듯 우찌
끈 우찌끈 소리가 났다. 뜰아랫방의 사내들은 다시 말할 것 없고 안방의 사내들
까지 모두 마당으로 쫓아나왔다.
포도부장이 포교들을 거느리고 꺽정이를 잡으로 나올 때 꺽정이가 과연 소홍
이 집에 있는가 알려고 포교 하나를 앞서 보냈는데, 그 포교가 눈치를 들리지
아니하려고 고의적삼 바람에 평량자를 쓰고 갔었다. 포도부장과 포교들이 장찻
골다리 북쪽 천변에까지 왔을 때 앞서 보낸 포교가 겅충겅충 다리를 건너와서
부장을 보고 꺽정이와 그 동류 두 놈이 지금 소홍이 집에서 술들 먹더라고 고하
여, 이제 남은 것은 소홍이 집에를 어떻게 들어가랴뿐인데 문을 속여 열리자니
기생의 집이라 한번 닫은 문은 좀처럼 열어줄 리가 없고 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니 흉악한 도둑놈 세 놈이 미리 준비를 차리고 있다가 싸우러 덤빌 것이라 다
신통지 못하고, 한 가지 된 수는 가만가만 담들을 넘어들어가서 세 놈이 미쳐
준비를 차리기전에 칼과 창을 앞으로 들이대고 꿈적 말라면 제아무리 신출귀몰
하기로서니 곱게 잡히지 별수 없을 것이다. 부장이 담 넘어들어갈 꾀를 말한 뒤
사다리 얻어올 공론을 내고 포교 중의 한 사람이 수표교 근처에 사는 친척의 집
에 사다리가 있다고 동무 포교 두엇을 데리고 그 집에 가서 사다리를 들고 왔었
다. 실골목 앞까지는 예사 걸음들로 걸어오고 실골목 안에 들어올 때는 부장이
단속하여 발자취 소리들을 내지 않고 사뿐사뿐 걸었다. 포교들이 부장의 지휘를
좇아 소홍이 집 부엌 모퉁이 담에 사다리를 기대어 세우고 가만히 넘어갈 준비
로 사다리 위에 서넛이 층층이 올라서서 도깨그릇 깨진 것을 집어 내리는 중에,
어떤 것이 위아래가 서로 엇걸려 엊히었던지 위의 것을 집어들자마자 아랫 것이
땅에 떨어져 요란스러운 소리가 나서, 이왕 발각난 바에는 얼른 깨진 그릇을 치
우고 담으로도 넘어가서 닫힌 문짝을 부수고 문으로도 들어가게 하라고 부장이
포교들을 재촉하였었다.
꺽정이가 마당에 내려와서 휘휘 돌아보다가 광 앞으로 뛰어가서 발을 구르며
몸을 솟치었다. 손이 처마 끝에 닿자, 몸이 바로 지붕위에 올라갔다. 꺽정이가
뜰아랫방 지붕 댓마루 가까이 와 서서 밖을 내다보니 실골목 안에 포교가 가득
한데 칼과 창을 가진 자도 여럿인 듯 번쩍번쩍 빛이 났다. “이눔들 내 말 들어
라! 내가 지붕에서 지붕으로 뛰면 넉넉히 피할 수 있지만 너이눔들을 피해갈 내
가 아니다. 너이눔들이 나를 잡겠다구? 같지 않은 눔들 같으니! ” 꺽정이가 큰
소리를 지른 뒤에 지붕 댓마루의 수키왓장을 손에 닿는 대로 벗기어서 포교들을
내리쳤다. 포교 두서넛이 아이쿠지쿠 하며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을 포표부장이
보고 “이애들, 빨리 골목 밖으루 나가자. ” 하고 소리쳤다. 포교들이 머리를
싸고 골목 밖으로 몰려나갈 때 그중의 담기 있는 사람들이 고꾸라진 동무를 잊
지 않고 끌고 나갔다. 꺽정이가 실골목 안을 두루 살펴보고 지붕에서 문 앞으로
뛰어내리며 곧 담에 세운 사다리를 들고 와서 뉘어서 길이로 뻗쳐들고 골목 밖
에 결진하고 섰는 포교들을 쫓아나가며 “사닥다리루 너이눔들을 모주리 때려죽
일 테니 내빼지 말구 게섰거라! ” 하고 호통하였다. 포교 대여섯이 앞으로 나오
는 사다리 끝을 붙잡아서 뺏으려고 하다가 꺽정이가 한번 흔드는데 모두 허깨비
같이 나가떨어졌다. 포교들은 차치하고 포도부장부터 속으로 겁이 나서 장찻골
다리 천변으로 뒷걸음을 치기 시작하였다. 이봉학이 황천왕동이 신불출이 곽능
통이 네 사람이 이때 비로소 꺽정이의 뒤에 쫓아나오는데, 이봉학이는 고양이
잡으려던 활과 화살을 가지고 나왔다. 포도부장이 뒷걸음으로 천변까지 다 나와
서 포교들을 돌아보며 “이러다가는 저놈들을 잡지 못하구 놓치겠다. 활을 안
가지구 온 것이 실책이다. ” 하고 말할 때 봉학이가 활을 포도부장에게 그어대
었다. 부장이 눈결에 이것을 바라보고 급히 몸을 굽히었으나, 몸 굽히는 것보다
살 오는 것이 더 빨라서 어깨바디에 살을 맞고 옆으로 비실걸음을 치다가 개천
에 떨어졌다. 활과 화살이 모두 못쓸 것이고 또 부장의 몸이 움직인 까닭에 산
멱통으로 들어갈 살이 어깨바디로 흐른것이었다. 부장이 살 맞고 나가떨어지자
포교들이 와 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하는데 기왓장 맞은 포교들은 멀리 도망
하지 못하고 개천에 뛰어들어가서 다리 밑에 엎드렸다.
꺽정이가 사다리를 들고 천변까지 쫓아나와서 위로 광제교쪽과 아래로 수표교
쪽을 이리저리 바라보더니 포교들의 도망하는 꼴이 우습든지 한번 껄껄 웃고 사
다리를 개천에 내던졌다. 개천가 건바닥에 환도 하나가 떨어져 있어서 황천왕동
이가 집어오려고 뛰어내려가는 것을 화살 맞은 자가 죽었는가 보러 가는 줄로
꺽정이가 생각하고 “그깐눔 죽었거나 살았거나 들여다봐 무어하느냐. 고만두고
올라오너라. ” 하고 말을 일렀다. “아니오. 칼 집으러 내려왔세요. ” “그게
그눔의 칼인가 부다. 이왕 칼을 집을 바엔 그눔의 몸에 칼집이 있나봐라. ” 황
천왕동이가 환도를 집어서 손에 든 뒤에 사지를 뻗치고 있는 부장에게 화서 허
리에 찬 환도집을 떼었다. 부장은 어깨바디에 화살을 맞을 때 과녁박이 자리를
얼른 비키려고 할 정신까지 있으면서 자시 선 곳이 다리와 천변의 어름인 것을
생각을 못하고 그대로 옆으로 비켜나가다가 한 길이 넘는 개천 속에 모로 나가
떨어지는데, 옹이에 마디로 머리를 빨랫돌에 부닥뜨리고 기절하여 다 죽은 송장
같이 되어 있었다. “화살 맞구 죽은 눔 외에 다리 밑에 숨어 있는데 어떻게 할
까요? 마저 다 죽여버리까요? ” 황천왕동이가 아래서 묻는 것을 “그깐눔들 내
버려두구 얼른 올라오너라. ” 하고 꺽정이가 대답하였다. 황천왕동이가 천변에
올라와서 “이 칼 형님 드릴까요? ” 하고 집에 꽂은 환도를 앞으로 내미니 꺽
정이는 받아서 날을 뽑아 달빛에 비추어보며 “그대루 쓸 만한가 보다. ” 말하
고 집에 도로 꽂아서 허리춤에 지른 뒤 “인제 고만 들어가지. ” 하고 이봉학
이를 돌아보았다. “다시 들어가는 것이 부질없지 않아요? 바루 가시지요. ” “
의관이나 해야지. ” “불출이 능통이더러 가서 가지구 나오랬습니다. ” “다른
데루 간다면 어디루 가는 게 좋을까? ” “내 생각엔 지금 바루 성 밖으루 나가
는 게 제일 상책일 것 같습니다. ” “월성하잔 말인가? ” “월성할 것 없이
오진수 구녕으루 나가 봅시다. ” “동소문 안에 있는 아이들은 어떻허구? ”“
그놈들은 나중에 소문 들으면 저이대루 오겠지요. ” “오늘 밤 동소문 안에 가
서 자구 내일 아주 다 데리구 가는 게 좋지 않을까? ” “내일은 성문에서 기찰
을 심하게 할걸요. ” “그두 그래. 그럼 긴말할 것 없이 밤에 오간수루 나가세.
” 꺽정이와 이봉학이가 수작하는 동안에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는 세 사람의 옷
깃을 나눠 들고 나와서 한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길에서 의관들을 자리는 중
에 “대체 우리가 소흥이 집에 와 있는 걸 포청놈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꺽정
이가 말하여 “어떤 놈이 밀고한 게지요.” 이봉학이가 대답하는데 황천왕동이
가 옆에서 “밀고한 것이 놈인지 년인지 어떻게 아시우?”하고 말깃을 달았다.
“년이라니 자네 맘에 의심나는 기집이 누군가?” “나는 첫째 소흥이가 의심나
는걸요.” “나두 처음엔 그런 의심이 들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그렇지 않
는 성싶어.” “소흥이가 우리보다 더 놀라는 걸 보시구 그러지 않은 줄루 생각
하셨나요? 거짓 울기두 잘하구 거짓 웃기두 잘하는 기생년이 거짓 놀라는 시늉
은 못하겠소?” “아니야, 만일 소흥이가 미리 밀고해 두었으면 형님 기시구 안
기신 걸 알러 왔을 리가 있나. 나는 의심이 낮에 왔던 노가에게루 가네.” “노
밤이가 미덥지 못한 놈이지만 그래두 소흥이에게 대면 되려 미더울걸요.” 황천
왕동이와 이봉학이가 각자 자기 소견 말하는 것을 꺽정이는 잠자코 듣다가 “소
흥이두 아니구 노밤이두 아닐 게다. 나중에 알아보면 어떤 눔의 한 짓인지 알
수 있겠지. 고만 가자.” 하고 말하였다. 꺽정이가 활 가진 이봉학이를 맨 앞에
세우고 아무것도 안 가진 황천왕동이와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를 중간에 세우고
자기는 맨 뒤에 서서 수표교 천변으로 내려오는 중에 뒤에서 “잠깐만 기다리세
요.” 소흥이가 소리쳤다. 꺽정이가 돌아서니 다른 사람도 다 따라서 돌아섰다.
소흥이가 종종걸음을 쳐서 쫓아오는데 손에 자그마한 보퉁이를 들어서 꺽정이는
무엇을 주러 오는 줄만 짐작하고 소흥이가 앞에 와서 선 뒤 “그것이 무엇인가?
” 하고 물으니 소흥이가 보퉁이를 내들어 보이면서 “이거요? 도망꾼이 봇짐이
에요.” 하고 말하였다. “도망꾼이 봇짐이라니?” “나도 선다님 따라서 도망할
라고 나왔세요.” “허허, 이 사람 보게.” “아무리 창황중이라도 어떻게 하란
말씀 한마디 없이 가신단 말씀이오? 그렇게 인정 없는 선다님을 쫓아오는 내가
실없은 년일는지 모르지요.” “집은 대체 어떻게 하구 나왔나?” “여기 섰지
말고 가면서 이야기하십시다.” “그 보퉁이는 이리 주게.” “선다님이 들고 가
실래요?” “속에 든 게 무엇이게 보기버덤 꽤 막직해.” “되지 않은 패물이지
만 내버리고 오기가 아깝길래 싸가지고 왔지요.” 꺽정이가 신
불출이를 돌아보며 “이거 들구 가자.” 하고 소흥이에서 받은 보퉁이를 내어주
었다. 다른 사람들은 먼저와 같이 앞세우고 꺽정이는 소흥이와 둘이 같이 붙어
가는데 소흥이의 걸음이 허우적거려서 손목을 잡고 끌다시피 하였다. “자네 집
사람들에게 말하구 왔나?” “그러머니요. 나중 포청에들 불려가서 말할 것까지
일러주고 왔는데요.” “무어라고 말하랬나?” “공연히 횡설수설하지 말고 모
르쇠로 내뻗으랬지요.실상 다들 아무것도 모르거든요. 오늘 밤 풍파를 겪고도 선
다님이 누구신지 아직 모르는걸요.” "자네가 포청에 잡혀가서 조련질 받을 것이
겁이 나서 나를 따라오네그려.“ ”그뿐만 아니에요.“ “또 무엇이 겁이 나든
가?” “선다님께 의심을 받을는지 몰라서요.” 일행보다 얼마 뒤떨어진 꺽정이
와 소흥이가 이때 하랑교 다리목을 지나는데 순라군들이 건너편 골목에서 내달
아서 다리로 쫓아 건너오며 “가지들 말구 게 섰거라.”하고 소리를 질렀다. 꺽
정이가 소흥이더러 앞서 간 일행을 따라가라고 말하고 다리 위에 올라서서 순라
군들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순라 잡힐 사람이 아니다!“하고
호령하니 순라군들이 꺽정이의 위아래를 훑어보고 같지 않게 여기는 듯 코방귀
를을 뀌었다. ”너이들 순경 고만 돌구 좌우변 포청에 가서 임꺽정이가 오간수
루 가드라구 말이나 해라.“ 꺽정이가 순라군들의 몽치 든 바른팔을 양쪽 손으
로 일시에 붙들고서 ”너는 우변으루 가구.“ 하고 바른손의 순라군을 동댕이치
고 ”너는 좌변으루 가거라.“ 하고 왼손의 순라군을 동댕이쳤다. 철썩 철썩 순
라군들이 개천물에 떨어진 뒤 꺽정이는 천변에 와서 앞서가지 않고 기다리고 섰
는 소흥이를 끌고 부지런히 일행을 쫓아왔다. 오간수 다리께를 와서 일행 여섯
사람이 한데 모여서 개천 바닥으로 내려가려 할 때, 오간수에서 파수 보는 군사
둘이 긴 창들을 질질 끌고 쫓아오는데 하나는 노닥다리인 듯 걸음이 지척지척하
고 또 하나는 포병객인 듯 기침을 콜록콜록하여 한참 바쁘게 쫓아오는 꼴이 여
느 사람의 걷는 폭만 못하였다. 꺽정이가 이봉학이를 돌아보며 ”그 화살 두었
다 무엇하나? 저놈들 혼뜨검이나 내게.“ 하고 말하여 이봉학이는 활을 들고 군
사들 오는 편으로 마주 나갔다 ”이놈들 살 받아라!“ 이봉학이가 활을 내리키
고 치키고 두 번 쏘아서 한번은 앞에 오는 노닥다리의 발목을 맞치고, 또 한번
은 뒤따라오는 병객의 벙거지 꼭대기를 꿰었다. 발목을 맞은 노닥다리는 다시
말할 것 없고 벙거지만 맞은 병객까지 도망도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었
다. 이봉학이의 장난조 활이 파수 군사들을 혼구멍 낸 뒤에 꺽정이가 일행을 데
리고 개천바닥으로 내려와서 물이 말라 잦은 수구 구멍을 골라서 기어나가는데,
소흥이가 선등 나가서 한 사람의 갓을 받고 먼저 나간 사람이 차례로 다음 사람
의 갓을 받아서 사내 다섯 사람이 갓 하나 부수지 아니하였다. 성 밖에 나와서
다시 천변길로 영도교 다릿목에 왔을 때, 앞장선 이봉학이가 걸음을 멈추고 돌
아서서 꺽정이에게 ”어디루 가실랍니까?“ 하고 물으니 ”앞서서 가는 대루 따
라가니까 난 몰라.“ 하고 꺽정이가 너털웃음을 웃었다. 의외의 큰 풍파를 겪고
야반 도주하는 사람이 너털웃음을 웃을 경황도 없고 덧정도 없을 것이지만, 화
를 당할 뻔하고 면한데다가 소흥이가 따라오는 것이 대견하여 꺽정이는 소흥이
집에서 술먹을 때와 같이 흥이 났었다. ”우리가 바루 청석골루 가려면 서울을
안구 돌아서 모래재(무악재)루 나가야 할 텐데 조정에서 비상한 수단을 써서 모
래재 길목을 미리 지키지 말한 법두 없구요, 또 우리가 아무리 밤도와 길을 가
더래두 내일 모레나 청석골을 들어가게 될 텐데 조정에서 신속히 조처하면 내일
하루 안에 서울서 송도까지 연로의 방비를 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청석골
루 가지 말구 광복산으루 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하고 이봉학이가 긴말하는
것을 꺽정이가 간단하게 ”좋을 대루 하는 게지.“ 하고 대답하였다. 광복산으로
들 가기로 작정하고 영도교를 건너와서 논틀밭틀길로 다락원 가는 큰길을 찾아
나오는 중에 소흥이는 벌써 발이 아파서 꺽정이가 거들어 주지 아니하면 걸음을
잘 떼어 놓지 못하게 되었다. 황천왕동이가 꺽정이를 보고 ”오늘 밤길은 많이
가기 틀렸으니까 장수원 가서 자구 가지요.“ 하고 말한 뒤 ”제가 먼저 가서
방을 치워놓으라구 이를까요?“ 하고 물으니 꺽정이가 ”그래 봐라.“ 하고 고
개를 끄덕이었다. 장수원은 상거가 가까운 다락원에 내왕 행인을 몰수히 앗기어
서 원이라고 명색뿐인 곳이나, 지난해 청석골패들이 광복산에 가서 있을 때 꺽
정이가 서울을 오는 길에 하룻밤 숙소한 일도 있거니와 그 뒤에 황천왕동이가
서울을 자주 오르내리는 중에 원주인과 면분이 생기어서 어느 때 한번 무슨
날이라고 술대접까지 받은 일이 있었다. 황천왕동이가 순식간에 까맣게 멀리
가는 것을 소흥이가 정신놓고 바라보다가 발을 헛디디고 넘어질 뻔하여 꺽정이
가 얼른 붙들어 주며 ”이 사람 앞을 안 보구 어디를 보나?“ 하고 나무랐다.
”걸음이 어찌나 저렇게 빠르시까요? 저 양반 걸음 걸으시는 걸 보니까 나는 걸
음이 더 안 걸려요.“ ”밤새두룩 가면 설마 장수원이야 가겠지.“ ”장수원이
예서 몇 린가요?“ ”한 삼십 리 될겔세.“ ”삼십 리요? 어떻게 가면 좋아요?
“ ”저애들한테 업혀 갈라나?“ 꺽정이가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를 가리키니 ”
싫어요.“ 소흥이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그럼 내가 업구 갈까?“ ”아이구
망측해라.“ 소흥이가 말은 먼저보다 더 호들갑스럽게 하여도 머리는 갸우뚱 아
양을 짓는 것이 마음에 얼마쯤 솔깃한 모양이었다. ”자, 내게 업히게.“ ”그대
로 걸어갈 테니 손만 붙들어 주세요.“ 소흥이가 전과 같이 걱정이에게 손을 잡
히고 끌려오다시피 한삼 마장 가량 더 온 뒤에 끌려오는 것도 약약하든지 ”난
인제 더 못 가겠세요.“ 하고 꺽정이를 보고 울상을 하였다. 꺽정이가 웃으며 ”
어부바“ 하고 소흥이를 두리쳐 업으니 ”아이구 남부끄러워라.“ 하고 소흥이
는 꺽정이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소흥이가 큰머리를 내려놓고 밑머리만 틀어얹
었던 까닭에 업히는 데 가로 걸치는 것이 없었다. 꺽정이가 소흥이를 업은 뒤로
는 길이 잘 붙었으나 밤이 워낙 늦어서 첫닭 울이에야 장수원을 대어 왔다. 원
주인이 황천왕동이와 같이 나와서 일행을 원집 큰방으로 맞아 들이는데 방바닥
에는 공석을 깔고 멍석을 깔고 그 위에 기직자리 서너 닢까지 덧깔았고 방 중간
에는 질화로에 숯불을 발갛게 피워 놓았었다. 그러나 방안은 소냉하였다. 밑에서
올라오는 찬기운은 공석, 멍석, 기직자리가 막지마는, 문새가 맞지 않는 앞뒷문
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은 화롯불 하나로 가실 수가 없었다. 주인이 인사성으로
”이부자리를 안 가지구 오셨으니 치워서 어떻게들 주무시나요?“ 하고 꺽정이
보고 말하는 것을 이봉학이가 옆에서 ”주인이 선심으로 이불 한 채만 빌려 주
구려.“ 하고 가로채어 대답하였다. ”이불이라구 어디 덮으실 만한 것이 있어야
빌려 드리지요.“ ”이불이면 덮는 게지 덮을 만하구 못하구 어디 있겠소.“ ”
참말 더러운 포대기쪽이라두 덮으시겠소?“ ”빌려 주면 덮다뿐이오.“ 주인이
자기네 살림하는 처소로 가더니 한참 만에 이불 쳇것에 요 명색까지 껴가지고
온 것을 문밖에 나섰던 신불출이가 받아서 방안에 들여놓았다. ”곤하실 텐데
어서들 누우시지요.“ 주인이 방안을 들여다보며 인삿말 한마디 하고 도로 가려
고 하는 것을 꺽정이가 할 말이 있다고 방안으로 불러들이었다. ”여보 주인, 우
리가 양식을 안 가졌는데.“ 꺽정이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주인이 연거푸 녜녜
대답하며 ”아까 황선달께 말씀을 들었습니다. 초련 먹으려구 풋바슴한 양식이
라두 있으니까 내일 아침 진지들을 해드립지요.“ 하고 말하였다. ”우리가 갈
길이 멀어서 앞으루 여러 끼를 먹어야 갈 테니까 길 양식을 아주 좀 변통했으면
좋겠소.“ ”이런 사정은 말씀을 안 해두 다 아실 테지만 원에 손님들이 안드니
까 대궁술두 얻어먹을 수 없구 생계가 농사뿐인데 남의 땅 너댓 마지기 지어가
지구 여러 자식새끼하구 입구입해 가기두 어렵습니다. 길양식을 변통해 들릴 주
제가 어디 됩니까.“ ”주인에게 없으면 이웃에서라두 쌀 너덧 말 꾸어 줄 수
없겠소?“ ”이웃집두 다 저 같은 가난뱅이들이라 꾸이라구 말할 데두 없습니
다.“ ”우리가 떼어먹을까 봐 핑계하는 것 아니오?“ ”원 천만의 말씀을 다하
십니다. 아까 황선달께두 말씀했지만 제가 식구만 없으면 곧 따라다니며 하인
노릇이라두 하겠습니다. 그런데 쌀 너덧 말을 안 꾸어 드리겠습니까?“ 꺽정이
가 소흥이를 돌아보며 ”자네 자장붙이를 한 가지 내놓게.“ 하고 말하여 소흥
이가 보퉁이를 풀어서 그대로 꺽정이 앞에 내놓으니 꺽정이는 보퉁이 속을 뒤적
뒤적하다가 말굴레 같은 은가락지 한 벌을 꺼내 들고 ”은가락지 가지구 쌀을
바꿀 수 있겠소?“ 하고 주인더러 물었다. "다락원이나 가면 혹시 바꿀 수 있을
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들구 나는 것이라구 제값어치를 다 주지 않을걸
요." "제값 다 못 받아두 좋소. 내일 식전 일찍 가서 바꿔 가지구 오우." 꺽정이
가 은가락지를 주인에게 내준 뒤에 "그러구 또 한 가지 청할 것이 있소. 삯마 한
필만 얻어주우. 마삯은 가서 후히 줘보내리다." 하고 소흥이의 탈것을 부탁하였
다. 얼마동안 있다가 주인이 간 뒤에 잘 자리들을 보는데 이봉학이가 이부자리
를 소흥이더러 깔고 덮으라고 말한즉 소흥이는 구질구질하다고 싫다고 하여 개
떡쪽 같은 요는 신불출이와 곽능통이를 내주고 포대기쪽만한 이불은 소흥이
까지 네 사람이 깔고 자려고 펼쳐 깔았다. 소흥이는 기직자리 위에 나가서 보퉁
이를 베고 동그마니 따로 누웠다. 나중에 소흥이가 추운 것을 견디다 못하여 한
갓지게 치워놓은 화로를 가지러 가려고 일어나는 것을 꺽정이가 잠이 들려말려
하다가 눈을 떠서 소흥이를 끌어다가 품안에 누이어서 추위를 모르고 자게 하였
다. 이튿날 식전에 주인이 은가락지를 가지고 가서 쌀 한 섬을 바꾸어 왔는데
꺽정이가 닷 말만 길양식으로 내놓게 하고 나머지는 다 주인을 내주었다. 소흥
이 탈 말과 말 따라온 마부까지 마사람 여덟이 늦은 아침때 장수원서 떠나갔다.
장통교 천변에서 부장이 화살 맞는 것을 보고 거미새끼같이 흩어진 포교들 중의
칠팔 명은 바로 파자교 모퉁이에 있는 좌포청으로 뛰어왔으나, 포청에 사람이
몇 안 되고 더욱이 대장의 명령을 못 받아서 뒷조처를 급히 할 도리가 없으므로
달음질 잘하는 포교 두엇이 장달음을 놓아 낙산 밑 포장댁으로 쫓아왔다. 이때
좌변 포도대장 남치근은 꺽정이 잡은 기별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가 잡지 못하
고 놓쳤단 말을 듣고 화가 천둥같이 나서 기왓골이 울리도록 고래고래 소리질러
서 포교들을 야단친 뒤 곧 말에 안장을 지우라고 하인들에게 분부하였다. 남치
근이 좌포청에 나와 앉아서 청에 있는 상하 소속을 친히 지휘하여 꺽정이의 거
처를 빨리 탐지해 오게 하고 소흥이 집 식구를 있는 대로 다 잡아오게 하고, 또
집에 나가 있는 종사관, 부장으로부터 서원, 사령들까지 모두 불러들이게 하였
다. 좌포청 소속이 한 사람 두 사람 연방 청으로 모여드는 중에 꺽정이가 하랑
교에서 순라군사들을 동댕이쳤다는 기별이 들어오고 또 꺽정이 일행이 계집 사
내 수십 명이 오간수 구멍으로 빠져나갔다는 기별이 들어왔다. 꺽정이 일행의
사람 수효가 엄청 많아진 것은 오간수 파수 군사들이 빗보았거나, 그렇지 않으
면 허풍친 것이니 듣는 이 짐작으로 들을 말이었다. 남치근이 이튿날 새벽 파루
치기 전에 꺽정이를 그예 근포하려고 생각하였던 것이 틀린 줄 알고는 화가 복
받쳐서 한참 동안 안절부절을 못하다가 아닌밤중에 좌기하고 졸개 세 놈 국문할
거조를 차리었다. “간에서 한 놈씩 꺼내오게 해라.” 대장의 분부가 내린 뒤 초
참에 문초를 받던 나이 많은 포교가 가장 다기지게 불지 않던 졸개를 맨먼저 잡
아 내오게 하였다. “꺽정이의 서울집이 어느 동네 있으며 꺽정이의 무엇 되는
것이 그 집에서 사느냐?” 그 졸개가 처음에는 꺽정이의 서울집이 없다고 잡아
떼다가 치도곤에 초죽음을 당하고 비로소 꽂정이의 안해 김씨가 동소문 안에서
산다고 저희 와서 있던 집을 대었다. “그 집이 동소문 안 어느 동네냐?” 그
졸개는 동명을 몰라서 대지 못하는 것을 기만할 심산으로 자세히 대지 않는다고
성정이 혹독한 남치근이 압슬하라고 호령하였다. 튼튼한 나무널 두 쪽 사이에
두 무릎을 집어넣고 양쪽 끝을 지지누르는데, 그 속에 뿌린 서슬 있는 새금파리
가 아지직아지직 부서지며 살에 들어가 박힐때 졸개는 끔뻑끔뻑 죽다가 살아났
다. 촛불 등불이 바람에 후려서 침침하다 환하다 하는 대청 위에 높이 않은 포
도대장은 염라대왕인 듯, 사람의 얼굴에 주토빛이 나도록 동횃불이 이글이글하
는 뜰 아래에 벌려 선 군사와 사령들은 야차나 아귀인 듯, 산 몸이 염라국에 가
서 고초를 겪는지 죽은 혼이 포도청에 와서 악형을 당하는지 졸개는 정신이 가
물가물하다가 고찰하는 호령소리가 귀에 들릴 때 한껏 말한다는 것이 얼른 죽여
달란 말밖에 더 하지 못하였다. “그놈은 도루갔다 집어넣구 다른 놈을 꺼내오
너라.” 나이 많은 포교가 남간 앞에 와서 그 졸개 다음에 노밤이를 끌어내게
하고 노밤이더러 “꺽정이 기집이 사는 동네를 바루 대지 않으면 자네두 지금
저놈처럼 다 죽어 들어오게 될 테니 미리 알아차리게.” 하고 귀뜀해 주듯 말하
니 노밤이는 “ 네, 잘 알았소.” 대답하고 나서 “대관절 꺽정이는 잡았소?”
하고 물었다. “그건 지급 대답할 수가 없내. 나중에 알게.” “꺽정이 기집의
성은 무엇이라구 합디까?” “그 기집의 성을 자네는 모르나?” “먼저 말한 놈
이 무어라구 말했는지 말이 서루 와착이 날까 봐 그러우.” “그년의 사는 동네
만 바루 대면 성은 모른다구 아니 대두 상관없네.” “먼저 말한 놈이 외댔는지
바루 댔는지 그걸 알면 내가 짐작이 나설 일이 있어 알구 싶소.” “김가라구
하데.” “인제는 외착날 염려가 없소.” 노밤이가 양쪽 팔죽지를 잡고 있는 사
령들더러 “자, 고만 들어가 봅시다.” 하고 말하였다. 사령들이 노밤이를 상투
들고 또 덜미 짚어서 잡아들여다가 뜰 아래 꿇려놓을 때 대청 위에서 “바루 형
틀에 올려매라!” 하는 호령이 내리었다. 노밤이가 달려드는 사령들을 잠깐 참으
라고 손을 내젓고 곧 대청 위를 치어다보며 “그저 물으시더라두 소인이 아는
것을 다 곧이곧대루 바루 아뢰겠소이다.” 하고 말햐여 뜰 아래의 사령이 그
말을 받아올리었다.
“꺽정이의 기집이 어디서 사느냐?” “동소문 안 숭교방에서 사옵는데 집을
찾기가 거북합네다. 포교 하나만 주시면 소인이 같이 가서 들똘같이 잡아다 바
치겠소이다. 그 집에 있는 사람이 꺽정이 기집외에 늙은 할미 하나, 기집년아이
하나뿐이올시다. 셋을 한데 묶어두 사내 하나 폭이 못되오니까 포교 하나와 소
인과 둘이 가면 넉넉하외다.” 대청 위의 남치근이 뜰 위에 섰는 부장 하나를
앞으로 가까이 불러서 “포교 서넛더러 저놈을 앞세우구 나가서 꺽정이의 기집
과 그 집에 같이 있는 것들을 다 잡아오라구 해라. 그 집은 단단히 봉쇄하구 이
웃 사람들을 불러서 풀 한 포기하두 있던 것이 없어지면 이웃에서 죄책들을 당
할 테니 잘 지키라구 이르래라. 그러구 저놈은 그대루 데리구 가지 말구 항쇄해
서 끌구 가게 해라.” 하고 분부하였다. 포교들이 넉자 길이 쇠사슬로 노밤이의
목을 옭아서 개같이 끌고 나간 뒤에 꺽정이 졸개 세 놈 중의 남은 한 놈을 마저
잡아내서 도적질들 한 죄상을 국문하는데, 노밤이의 근본과 행사도 그 졸개의
입에서 다 나왔다. 노밤이는 포교 하나와 같이 가게 되면 틈을 타서 도망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 포교가 셋이나 같이 가게 될뿐더러 더구나 목에 항쇄가 있
어서 도망할 가망이 없는 까닭에 갑자기 마음이 변하여 요공을 하려고 김씨와
격장하여 사는 원씨도 꺽정이의 계집인 것을 포교들에게 일러바쳤다. 포교들이
김씨를 잡은 뒤에 노밤이의 말한 것을 김씨에게 물어보는데, 김씨가 물귀신 심
사로 원씨를 끌고 들어가서 원씨와 원씨 집 사람까지 다 함께 포청으로 잡혀오
게 되었다. 김씨는 제천 양반 권씨의 집 과댁으로 서울 와서 사는 중에 자칭 임
선달이란 자에게 욕을 보고 욕볼 때 죽어 마땅한 것을 죽지 못하였다고 수월히
다 대답하고, 원씨는 당시 재상 원계검의 딸인 것을 숨기고 서울 여염가 계집아
이로 임가에서 잡혀와서 살았다고 네댓 번 다그쳐 물어야 겨우 한두 마디씩 대
답하였다. 둘아 다 꺽정이의 계집이로되 소위 임선달이 꺽정인 줄도 모르고 꺽
정이가 유명한 대적인 줄까지도 전혀 몰랐었다. 두 계집의 초사가 거짓말인가
아닌가 물어보기 겸 먼저 졸개의 입에서 나온 말이 무함인가 아닌가 다져보려
고, 남치근이 사령들더러 항쇄한 놈의 항쇄를 끄르고 앞으로 잡아내라고 분부하
여 사령들이 한옆에 죽쳐 앉았던 노밤이를 앞으로 끌어내서 굴복을 시킨 뒤에
첫대 “네 성명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니 본성명이 졸개 입에서 나온 줄을 모
르는 노밤이는 서슴지도 않고 먼저 위조한 대로 “김춘선이올시다.” 하고 대답
하였다. “정녕 김춘선이냐?” 노밤이는 가슴이 조금 뜨끔하나 “네, 그렇소이
다.” 하고 그대로 내뻗었다. “네가 꺽정이의 부하 노릇을 몇 해나 했는냐?”
“꺽정이의 부하 노릇은 하루두 한 일이 없소이다.” “그럼 너는 너대루 도둑
질하구 다녔느냐?” “소인은 도둑놈이 아니올시다.” 남치근이 별안간 큰소리
로 “천하의 죽일 놈 같으니, 뉘 앞에서 거짓말이야!” 호령하고 노밤이가 변명
할 사이도 없이 곧 뒤이어서 “그놈을 빨리 형틀에 올려매라!” 하고 분부를 내
리었다. 전하는 말이 곤장을 썩 잘 치는 사람은 무지스러운 대곤이로 연한 두부
를 벼락같이 내리치되 두부가 위만 좀 부서지고 아래는 모가 깨지지 않게 할 수
도 있고, 또 그보다는 더 어렵게 두부가 겉은 성하고 속만 으스러지게 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곤장 치는 여기 이르면 희한한 재주라 이런 재주를 가진 사람은
흔치 않겠지만, 대개 집장 사령 노릇하는 사람은 다 조금씩 손대중으로 농간을
부려서 혹 죄인에게 두남을 두기도 하고 혹 죄인을 곯리기도 하였다. 노밤이는
이런 물계가 횅한 사람이라 사령들이 대들어서 형틀에 올려맬 때 “상목 한 동
찾을 어음쪽을 내 몸에 지녔는데 틈타서 내드릴 떼니 찾아서 노놔 쓰시우.” 사
령들을 보지 않고 혼자 중얼거리듯 지껄였다. 뜰 위에 섰는 부장이 사령들더러
“그놈이 무어라구 지껄이느냐?” 하고 물으니 사령하나가 뜰 위를 치어다보며
“실성한 놈처럼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지껄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노밤이 지껄인 소리에 집장 사령의 손대중이 많이 달라졌다. 되우 치라는 호령
아래 내리치는 치도곤이 겨우 살가죽을 터쳤을 뿐이건만 노밤이는 곧 죽는 것처
럼 엄살을 떨었다. 남치근이 치도곤을 세 개에 중지시키고 나서 문초를 받기 시
작하였다. “네 성명이 무엇이냐?” “소인의 성명은 대중이 없소이다. 어느 때
는 노밤이라구 하옵구 어느 때는 김춘선이라구 하옵구 또 어느 때는 임꺽정이라
구까지 하옵내다.” “무엇이야 꺽정이야?” “소인이 철원, 영평 등지로 돌아
다닐때는 임꺽정이루 행세했소이다.” “네가 철원서 살인한 적이 있지?” “소
인이 남의 재물은 뺏은 일이 있어두 남의 목숨은 뺏은 일이 없솝는데, 철원서
른 놈 눈 똥에 주저앉아서 누명을 흠빡 뒤집어썼소이다.” 노밤이가 이와 같이
거짓말 참말 뒤섞어서 공초를 다한 뒤에 “소인의 죄를 사합시구 소인에게 상을
줍신다면 꺽정이의 기집 하나두 마저 잡아바치구 또 꺽정이의 와주두 잡아바치
겠소이다.” 하고 아뢰었다. “꺽정이의 기집이 대체 몇이게 또 있단 말이냐?”
“꺽정이의 안해 명색이 소인이 확실히 아는 것만 넷이온데 하나는 시골 있솝구
셋은 서울 안에 있소이다.” “그 기집은 어디 살며 와주는 누구냐?” “두번
다시 아뢰옵기는 황송하오나 소인에게 상급을 내리시겠습니까?” “상급을 준다
고 해야 말하겠느냐?” “지당하외다.” “지당하다? 오냐, 치도곤 몇 개까지 네
놈이 말않고 배기나 보자.” “아니올시다. 치도곤 상급은 소원이 아니올시다.”
노밤이가 제 입으로 벌어서 치도곤 노댓개를 더 얻어맞고 남성밑골 박씨의 집과
남소문 안 한온이의 이름을 홱홱 다 불었다. 포교 두 패가 남성밑골과 남소문
안으로 나가더니 남성밑골 나간 패는 박씨의 모녀와 아이년까지 세 식구를 잡아
왔고 남소문 안 나간 패는 빈손으로 들어와서 “한온이란 놈이 제 아비가 죽어
서 엊그제 지관을 데리구 구산하러 나갔는데 십여 일 후에 들어오리라구 하옵디
다. 그놈의 아비의 빈소만 지키면 그놈은 절루 잡히게 될 듯하외다.” 하고 대장
께 아뢰었다. 꺽정이는 잡지 못하고 놓쳤으나 꺽정이의 계집을 셋이나 잡은 까
닭이\ㅡ로 남치근이 화가 적이 풀리어서 오래전부터 밖에 와서 대죄하고 있는
화살 맞은 부장을 비로소 집으로 나가라고 분부하였다. 꺽정이의 계집 셋과 노
밤이까지 꺽정이의 졸개 셋은 남간 두 간에 갈라넣고 세 계집의 사람들과 소홍
이의 집 사람들은 북간 두 간에 나누어 넣게 한 뒤, 남치근이 좌기를 파하고 다
샐 녘에 집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늦은 아침때 지난 뒤 남치근이 좌포청에 나와
서 잠시 있다가 바로 예궐하여 탑전에 들어가서 “작야에 해서 대적 임꺽정이의
도당 세 명을 체포하와 꺽정이가 동류 사오명과 같이 장통방에 모여 있는 것을
아옵고 체포하려고 부장 군사 이십여 명을 내보냈솝더니, 지휘하던 부장이 도적
의 화살을 맞고 넘어지는데 군사들이 경겁하와 도적들을 체포하지 못하고 놓쳤
사오니 부하를 잘 동독하지 못한 신의 죄가 막대하온줄로 아옵네다. 신이 삼경
이 등청하와 부하들을 데리고 달야하오며 꺽정이의 도당 세 놈을 국문하온 결
과, 그놈들의 초사로 꺽정이의 처와 도당과 기타 간련 인물을 다 형조로 보내올
지 어찌하올지 탑전정탈을 받자와지이다.” 하고 아뢴즉 꺽정이는 심상한 도적
이 아니요, 곧 반적인즉 비록 처속과 도당이라도 형조로 보내는 건 헐후하니 포
청에서 세세히 문초를 받은 후 전옥에 내려 가두게 하고, 그외 간련 인물은 형
조로 보내서 경중을 분간하여 치죄하게 하라고 위의 처분이 내리었다. 남치근이
퇴궐하는 길에 다시 포청에와 앉아서 북간의 십여 명은 모두 형조로 넘기고 남
간의 여섯 명만 포청이 남겨두게 하였다. 남녀 여섯명이 용모 파기를 일일이 다
낸 뒤에 세 계집의 원정을 받는데 뎨집들 원정에 한온이의 강도 와주인것이 여
지없이 다 드러나서 남차근이 한온리를 체포하려고 그 병신 형과 본안해를 볼모
로 잡아다가 포청에 가두어 두고 또 포교들을 보내서 그 아비의 빈소를 지키게
하였다. 세 계집 중의 원씨는 원정할 때도 어염가 여자로 근본을 꾸미느라고 말
이 구석이 비고동이 잘 닿지 아니하여 남치근이 노밤이를 잡아내다가 원씨의 근
본을 물었더니, 모전다리 원판서의 딸을 꺽정이가 업어 내왔다는 말이 노밤이
입에서 나왔다. 모전다리 원판서란 당시 예조판서 원계검이라 남치근이 속으로
는 놀라웠으나, 재상가 문호의 수치 될 것을 생각하여 겉으로 율기하고 “그놈,
멀쩡한 미친 놈이구나. 그 따위 미친 소리 또 하면 아가리를 찢어놓을 테니 그
리 알아라.” 노밤이를 다시 말 못하도록 윽박지른 뒤에 원씨의 근본을 덮어두
고 더 밝히지 아니하였다. 꺽정이의 계집들을 잡은 뒤 나흘 되는 날, 사간원에서
일어나서 초장 탄핵하는 합계를 올리었다. “국가에서 포도청을 설치하고 좌우
대장을 둘 때 소관이 많고 절목이 자세하온데, 지금 대장이 책임을 가진 사람들
은 수탐하는 것이 무엇인지 체포하는 것이 무엇인지 통히 알려고도 하지 아니하
여 대적패가 경기 경내에서 큰 소요를 지어도 잡지 못한 것이 오로지 군율이 엄
하지 못하고 조처가 합당치 못한 탓이옵고, 일전에 대적들이 장통방에 모여 있
는 줄을 알았으면 대장 된자가 당연히 계책을 내서 다 잡아야 할 것이온데 도적
들이 도성안에서 관군을 저항하고 심지어 부장까지 활로 쏘았다 하오니 이것은
근고에 없는 변이외다. 도적이 화살 한 개 쏜다고 군졸들이 사방으로 도망하여
도적의 괴수는 놓치고 겨우 그 처속과 졸도를 오륙명 잡았다 하오니 이런
한심한 일이 어디 있소리까. 좌변대장 남치근은 먼저 파직시칸 후 다시 추고
시키시고 도적을 놓친 부장과 군졸들은 금부에 내려서 치죄시키고 또 우변대장
이몽린은 비단 나이 늙었을 뿐 아니라 다리에 종기가 나서 집안에서도 행복을
잘못하므로 대장의 중한 책임을 감당 못할 것이온즉 체차시키심을 바랍니다.”
사간원 계사는 대지가 이와 같고 위에서 내린 비답은 남치근의 파직은 너무 과
하니 체차시킨 후 추고하게 하고, 그외는 다 계사와 같이 하라 하여 좌우변 포
도대장이 일시에 갈리게 되었다. 남치근과 이몽린이 정원에 들어와서 몸에들 찼
던 병부와 대장패와 전령패를 도로 바치고 나간 뒤, 정원에서 포장 중임을 일시
라도 비워두지 못할 터이온데 어찌하오리까 하고 위에 품하여 포장의 망단자를
빨리 바치도록 병조에 재촉하란 처분을 물었다. 남치근이 정원에 들어왔다가 나
갈 때 궐문 밖에서 마침 궐내로 들어오는 예조판서 원계검을 만났었다. “위에
서 특별하신 처분으로 간원 느르셔서 염감이 체차만 되셨다지?” 원계검이 위로
인사로 말을 묻는데, 남치근은 밤에 잠 못자고 애쓴 보람 없이 체차에 추고까자
겸쳐 덩헌 곳을 속으로 못내 분하게 여기면서 입에 발린 말로 “천은이 망극해
서 황감하기 이를 데 없소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영감은 연부역강하구 더욱
이 지우가 특별하니까 곧 다시 조용되겠지만 이포장은 이번 체차에 전정이 낭패
일걸.” “이포장은 사직하려구 상초까지 내놓구 있던 차에 체차를 당했다구 말
씀합니다.” “이포장을 어디서 만났소?” “지금 궐내에서 만났습니다.” “이
포장은 먼저 나갔소?” “아니올시다. 지금 막 정원으루 명소 환납하러 들어갔
습니다.” “영감은 벌써 명소를 두루 바치고 나가는 길이구려.” “녜, 그렇소
이다. 그런데 대감께 한번 조용히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말이오?” “
여기서는 여쭐 수가 없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여쭐 바엔 속히 여쭤 드려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대체 무슨 일이오? 우선 운만 좀 떼어보우.”
“대감댁 문호에 관계되는 일입니다.” “그게 무슨 일일까? 이따 저녁때 영감
이 내 집으루 좀 오구려.” “지금 댁으루 못 나가시겠습니까?” “지금은 못
나가겠소. 동궁 관례절차 외 대신께 품할 일이 있어서 빈청에를 들어가는 길이
오.” “추고 중에 한만히 출입하기가 어려우니까 지금 집으루 가는 길에 잠깐
대감댁에를 들러 갔으면 좋겠어서 말씀입니다.” “그러면 영감이 먼저 내 집에
가서 좀 기다리우. 내가 빈청에 다녀나온 뒤 잠깐 마을에 들러보구 곧 집으루
나가리다.” “오래 되시진 않겠습니까?” “아니 오래 될 건 없소.” “그럼 이
길루 대감댁에 가서 기다리구 있겠습니다.” “사랑 문이 닫혔거든 상노아이 불
러서 열라구 하구 들어가 앉아 기시우.” 원계검은 궐문 안으로 걸어들어가고
남치근은 궐문 밖으로 멀리 걸어나와서 말을 타고 원판서 집으로 왔다.
남치근이 주인 없는 사랑에서 혼자 앉았다 누웠다 하며 주인을 기다리는데 오
래 되지 않는다던 주인이 너무 오래도록 오지 아니 하여 그대로 가려고까지 생
각할 때, 문간이 떠들썩하며 주인 대감이 사랑으로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우.” “얼른 말씀을 여쭙구 가봐야 겠습니다.” “조용히 할 말이라
지? 그럼 이방으루 들어오우.” 원계검이 옷도 갈아 입지 않고 바로 침방으로
남치근을 인도하였다. 단둘이 서로 대하여 앉은 뒤에 원계검이 먼저 “대체 무
슨 일이오?” 하고 물었다. “일전에 잡은 꺽정이의 처 셋 중에 원씨 성을 가진
기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 기집이 제 말은 여염 사람이라고 하나 언어 동작이 재
상가 생장 같구 그 본집을 대는 말이 되숭대숭해서 수상하기에, 꺽정이의 도당
한 놈을 잡아내서 그 기집의 근본을 캐어 물어본즉 그놈의 말이 꺽정이가 모교
천변 원판서댁 따님을 업어내다가 데리구 살았다 합니다. 그놈을 미친놈으로 돌
리구 그 따위 소리를 다시 하면 아가리를 찢어 놓는다구 야단을 쳤습니다. 그러
구 그 기집의 근본을 더 자세히 캐지 않구 어물어물해서 덮어두었습니다.” 원
계검의 얼굴에 핏기가 없어진 것을 보고 남치근이 말을 더 하지 않고 그만 그치
었다. 원계검은 열기 없는 눈으로 남치근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가 한참 만에 겨
우 “그게 무슨 소리요?” 하고 말하는데 말소리가 앓는 사람의 신음하는 소리
와 같았다. “새루 나는 포장이 혹시 생각이 부족하면 대감께서 의외의 망신을
당하실는지 모릅니다. 이번에 애는 애대루 쓰구 세찬에 추고에 겹철릭을 입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습니까.” “염감두 아실는지 모르나 내 딸이 형제에 큰것
은 출가해서 자식까지 여러 남매 두었구 작은 것은 출가 전에 요사했는데 웬 딸
이 또 있단 말이오?” “그러면 그 기집의 근본을 밝혀두 좋은 걸 지나친 염려
를 했습니다.”“그러니 아니니 떠들기만 해두 나는 망신이니까 영감 용의가 고
맙소.” “인제 물러가겠습니다.” “내가 수이 한번 영감을 찾으리다.” 원계검
이 남치근을 보낸 뒤에도 한동안은 넋잃은 사람같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
내 딸이 도둑놈의 계집이 되다니, 그년이 아비 어미의 혈육을 더럽혀도 분수가
있지, 제게 수치요, 부모형제 수치요, 온 문내에 수치인 걸 그대로 무릅쓰고 살
았으면 그년이 오장육부가 썩은 게지. 오장육부 성하고야 그럴 수 있나. 그년 성
깔에 강포의 욕을 당하고 살 리가 없는데 천하 흉악한 도둑놈의 계집 노릇을 하
고 살다니 그 천참만육할 도둑놈이 무슨 약을 먹여서 사람을 등신을 만들어 놓
았나. 등신이 아니라도 죽어야 하지만 더구나 등신이면 살아서 무어하나. 하루바
삐 죽어야지. 전옥에 내려 가두라신 처분이 내렸을 젠 필경 극형에 처할실 모양
인데, 군기시 다리나 당고개로 나가기 전에 소리소문 없이 약사발을 안겼으면
좋겠다. 마누라가 알면 요량 분수없이 딸을 살려내라고 조르렸다. 딸 까닭에 성
화상성된 사람이 무슨 해거를 누릴는지 누가 아나. 마누라에게도 알리는 게 부
질없지. 남포장이 우물쭈물 해놓은 대로 일이 끝나면 좋겠지만 만약 새로 나는
포장이 찰찰하게 발기집어내면 큰 탈이야. 위에 입문이 되고 조관들이 다 알게
될테니 내가 인두겁을 쓰고서야 다시 조정에 나설 수가 있나. 지금 불과 칠팔
일만 지나면 동궁 관례에 찬 노릇하고 직품이 종품으로 돋쳐서 귀 뒤에 도리옥
을 붙이게 될 텐데, 도리옥 맛을 못 보고 만다. 될 말인가. 포청에 두지 말고 빨
리 전옥으로 옮기도록 주선이라도 해야지. 남포장부터 보기가 부끄러워서 안나
오는 발명을 억지로 했더니 다시 생각하니 숫제 까놓고 이야기하고 이런 의논이
라도 해 볼 걸 잘못했나 보다. 아니야, 갈린 포장과 의논서 소용 있나. 혹 무슨
도리가 있을까. 장의동이나 가보겠다.’원계감이 혼자 속을 지글지글 끓이던 끝
에 장의동 이량을 찾아갈 생각이 났으나, 그러나 이량과 의논하거나 또는 이량
에게 청촉하려고 마음을 먹지는 못한 것이 이량의 사랑에는 항상 손이 많아서
조용치 않고 설혹 조용하더라도 얼굴에 개가죽을 뒤어쓰기전에 개구하여 말하기
가 어려운 까닭이었다.
원계검이 이량의 집에 왔을 때 마침 주인은 궐내에서 일찍 나왔고 매일같이
댁 대형하는 손들은 아직 모이지 아니하여 사랑이 의외로 조용하였다. “대감
지금 마을에서 나오시오? 마을에 무슨 일이 있소?” 이량이 묻는 말에 원계검은
고개를 가로 흔들며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럼 웬일이시오?” “이렇
게 조용한 때를 좀 와서 보이려고 일찍 왔소.” “내가 일찍 퇴궐하기를 잘했구
먼.” “오늘 포장이 새로 났나요?” “네, 났소.” “좌변이 누구요?” “김순
고요.” 김순고는 원계검과 세혐이 있는 사람이다. 원계검의 아버지가 무슨 별성
으로 김순고의 조부 어디 부사를 장파시킨 일이 있어서 서로 세혐을 보았다. 김
순고의 좌포장은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셈이라 원계검이 속으로 왼새끼를
꼬지 않을 수 없었다. 원계검의 기색이 좋지 못한 것을 이량이 보고 “대감, 무
슨 근심이 생기셨소?” 하고 물었다. “내가 벼슬을 버리고 어느 시골로든지 낙
향하게 될까 보오.” “그게 웬 말씀이오. 급류용퇴할 생각이 났단 말씀이오?”
“아니오. 그런 생각이 난 게 아니라 그럴 사정이 있소.” “그럴 사정이 무어
요?” “집안 사람들도 모르게 숨겨둔 문호의 수치 되는 일이 한 가지 있는데
말씀하잔즉 낯이 뜨뜻하오.” 원계검이 이렇게 말한 끝에 출가 전 작은딸이 하
룻밤새 없어져서 죽었다고 헛장사를 지낸 일을 이야기한 다음에, 남치근의 말하
던 사연을 옮기어 말하고 나서 “이 일을 아는 사람이 집안에서 우리 내외뿐이
고 외인으로는 지금 남포장이 기연가미연가 하게 알 뿐인데 새로 난 좌포장은
내집과 세혐 있는 사람이니 알기만 하면 온세상 사람이 다 알도록 떠들어놓지
않겠소. 그러면 내가 갓철대를 이마에 붙이고 남의 앞에 나설 수가 있소.” 하고
눈물까지 머금으며 말하였다. 이량이 원계검의 말을 들은 뒤 “김순고가 손을
대지 못하게 하면 염려가 없겠구려. 그만 일이 무에 어렵겠소? 내가 이를 테니
염려 마시오.” 하고 말하여 원계검은 염려가 적이 놓이었다.
새로 제수된 좌변 포도대장 김순고가 처음 시무하기 시작하던 날, 꺽정이 계
집과 졸개들의 구초받아 적은 것을 뒤적뒤적 보다가 종사관 한 사람을 불러서
“원가 성 가진 기집년은 서울 여염 사람의 딸이라구만 했지, 그아비 이름두 없
구 그 본집 동명두 없구 꺽정이의 기집 된 경로두 분명치 않으니 문초를 어떻게
받은 셈인가?” 하고 나무라는 구기로 말을 물으니 그 종사관은 자기가 잘못이
나 한 것같이 황송하여 하며 “그 기집이 하두 깐깐해서 그나마두 받는데 힘이
여간 키이지 않았소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깐깐하다구 문초를 건정 했단 말
인가?” “그런 건 아닙지요만 그 기집이 사람이 잔약해서 뺨 한 번 맞구두 까
물치니 어떻게 매질을 할 수가 있어얍지요.” “그 기집과 같이 잡혀온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이라두 조겨서 물어볼 게지.” “재상가의 딸을 꺽정이가 업어내
왔다구 꺽정이의 부하 한 놈이 말하옵는 것을 전 대장 염감께서 미친 놈 소리
한다구 윽박 지르시구 더 캐어묻지 않으셨소이다. 이번 꺽정이의 기집들을 잡게
된 데는 그놈의 내통한 힘이 많습니요만, 그놈이 사람이 실성한 놈 같구 말이
사구일생이외다.” “원씨의 재상가라면 지금 원계검 원판서밖에 더 있나?” “
그놈이 모교다리 원판서라구까지 말하옵디다.” “도무지 새판으루 내가 한번
문초를 받아봐야겠네.” “지금 곧 거조를 차리라구 하오리까?” “오늘은 내가
몇 군데 인사 다닐 데가 있어서 일찍 나가야겠으니 내일 하세.” “소인은 처소
루 물러나가오리까?” “그러게.”
김순고가 종사관을 내보낸 뒤 얼마 아니 있다가 집으로 나가려고 하는 차에
패초령이 내려서 집으로 나가지 못하고 궐내로 들어왔다. 위에서 김순고를 편전
으로 불러들여서 꺽정이의 계집들과 도당들을 곧 전옥으로 보내서 가두게 하라
고 분부를 내리었다. 김순고는 원계검의 딸이란 계집이 아닌가 긴가 밝혀볼 마
음이 골독하여 “초사의 불분명한 점이 간혹 있사오니 신이 일차 추문하온 후
하옥하면 어떠하올지?” 하고 품하였다. “꺽정의 처와 도당인 것은 분명하지?
” “그는 분명한 줄로 아뢰오.” “그러면 초사를 더 상세히 받을 것이 없으니
그대로 즉시 전옥으로 보내라.” “지당합시외다.” 김순고가 어명을 받고 궐내
에 물러나오는 길로 다시 포청에 와서 꺽정이의 계집 셋과 졸개 셋을 다 전옥으
로 압송시키었다.
노밤이가 치도곤을 맞을 때 상먹 한 동 어음쪽을 나중에 사령을 준다고 일시
발림수로 거짓말하고 이튿날 사령 두엇이 간 앞에 와서 어음쪽을 내라고 말할
때, 옷고름을 뜯고 넣어 둔 것이 숭교방을 갔다오는 동안에 길에 빠졌는지 없어
졌다고 거짓말 뒷갈망으로 또 거짓말하여 사령들이 터무니없는 거짓부리로 사람
을 놀렸다고 노밤이를 곧 잡아먹을 것같이 별렀었다. 집장 사령이 어느 때 간앞
을 지나다가 도끼눈을 뜨고 들여다보며 “이놈아, 요 다음엔 대매에 심줄이 끊
어질 테니 그리 알아라!” 하고 벼르는데 “여보 한번 별르지 말구 열 번 치라
는데 사람을 공연히 왜 그렇게 별르우? 상목 한 동은 내가 나가는 날루 곧 여러
분께 내줄 테니 염려 마우.” 하고 노밤이는 이죽이죽 말하였다. “이놈아, 나가
긴 어딜 나가! 궁귀서 다리루 나가?” “나를 상급은 안 주더래두 백방이야 안
할라구.” “백방! 이놈아 쉬어라.” “두구 보우.” “두구 봐야 모가지 뎅겅이
다.” “내가 죽으면 시원할 게 뭐요? 상목 몇 필만 떠나가지.” “상목 소린 다
시 입밖에 내지 마라. 듣기두 싫다.” “지금은 저래두 상목 줄 때는 싫단 말 않
구 여게 노첨지 고마웨하구 받을 테지.” “뒷덜미에서 사자밥을 짊어진 놈이
잘두 너덜댄다.” “실없는 말은 고만두구 내가 언제쯤이나 놓여가겠다구 말들
합디까?” “너이 연놈을 허루이 다스린다구 간관들이 먹어대서 남대장께서 벼
슬이 떨어지셨다. 새 대장이 누가 오시든지 너이는 여기서 초죽엄하구 궁귀서
다리나 당고개에 가서 영죽엄한다. 내 말이 헛말인가 두구 봐라.” 사령이 삵의
웃음을 웃어가며 말하는 것을 듣고 노밤이는 마음이 좀 떨떠름하여졌다.
강도의 초범으로 죽일 죄상이 없는 자는 이마에 강도라고 자자하여 먼 변지로
귀양을 보내고, 또 강도의 처자는 소재관에 관비, 관노를 박는 것이 법전의 정한
형벌이니, 법전대로 시행하면 꺽정이의 졸개 두사람과 계집 세 사람도 다 죽지
않으려든 하물며 노밤이의 공로 있음이랴. 꺽정이의 있는 처소와 계집들과 와주
를 고해 바친 공로가 아무리 줄잡더라도 전에 지은 죄는 넉넉히 대속할 만하므
로 노밤이는 죽을리 만무할 줄 믿고 있었다. 남치근 대에 새로 나는 포도대장이
남치근보다 더 혹독한 사람이라도 억지로 죽을 고에 몰아넣을 리는 없겠지만,
문초는 다시 받기가 첩경 쉬운데 문초를 다시 받는다면 땅벼락같이 벼르는 집장
사령의 손에 치도곤을 맞을 염려가 없지 아니하여 반죽 좋은 노밤이도 치도곤은
무서워서 손톱여물을 썰게 되었었다.
새 포도대장이 등청한 뒤에 문초는 다시 받지 않고 불각시 전옥으로 넘기더니
전옥에서 스물닷근 칼을 씌우고 착고까지 채우는 것이 분명히 사죄수로 다루는
모양이라, 노밤이는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아니하였다. 노밤
이가 갇혀 앉아서 곰곰 생각하여 보니 상급은 주지 않더라도 포청에서 백방해야
옳을 것을 백방하지 않고 넘기면 형조로나 넘겨야 옳을 것을 형조로도 넘기지
않고 전옥에 갖다 가두어도 유만부동이지 머리에 스물닷근 칼이 당하며 다리에
착고가 당한가. 그러나 옳지 않은 것을 따질 데도 없고 당치 않은 것을 물을 데
도 없으니, 인제는 살지 않으면 죽을 판인데 죽는 것이 얼뜨고 사는 것이 장사
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지, 설마 아주 죽으랴. 살아나갈 꾀를 이
것저것 생각하는 중에 마침 쇄장이 하나가 창살 앞으로 지나갔다. 쇄장이를 불
러 말을 좀 해볼 생각으로 노방이가 여보여보 소리치니 쇄장이는 한번 흘끗 옆
눈질만 하고 그대로 가버린다. 노밤이가 홀저에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울음소리
가 야단스러울 때 쇄장이가 창살 앞에 와서 들여다 보며 “이놈아, 시끄럽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쇄장이를 부르느라고 우는 울음이라 노밤이는 울음을 뚝
그치고 “내가 원통해서 죽겠소.” 하고 우는 소리로 말하는데, 쇄장이가 무엇이
바쁜지 대꾸도 안허고 또 그대로 가버리려고 하였다. “여보시우, 참봉 나리를
좀 뵙게 해주시우.” “참봉 나리는 왜?” “말씀 여쭐 일이 있소.” “말씀 여
쭐 일이 있거든 뒀다가 지만 올릴 때 실컨 여쭤라.” “내가 역적 고변을 할라
구 그러우.” “역적 고변을 할라면 진작 포청에서 할 것이지 왜 여기 와서 수
선이냐!” “포청에선 고변 안하구두 놓여나갈 줄만 알았더니 인제 할 수 없어
서 고변하구 목숨이나 살아나갈 생각이오.” “내가 말씀을 여쭤 줄 테니 시끄
럽게 굴지 말구 가만 있거라.” 비록 죄수라도 고변한다는 것은 막는 법이 없다.
노밤이가 고변한다고 말한 지 사흘 만에 의금부에서 노밤이를 데려가게 되었다.
여느 사람이 고변을 하여도 죄인같이 몽두를 씌울 뿐 아니라 항쇄, 족쇄까지 다
하였다. 금부 나졸들이 노밤이를 끌고 와서 몽두를 벗기고 항쇄, 족쇄를 풀고 상
투 잡아 끌어다가 당직청 댓돌 아래 꿇여놓은 뒤 번 든 도사가 대청위에서 내려
다보며 “네가 역적 고변한다구 한 놈이냐?” 하고 호령으로 말을 물으니 노밤
이는 가장 황송한 체하면서 “네, 그렇소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역적모의하
는 놈의 성명이 무엇이냐?” “임꺽정이올시다.” “임꺽정이? 임꺽정이란 도둑
놈이 아니냐?” “그놈이 여느 도둑놈이 아니구 역적질하려는 도둑놈이올시다.
” “역적질을 어떻게 하려구 하느냐?” “그놈이 군사를 끌구 서울을 쳐들어
올라구 합니다.” “그 기일이 언제냐?” “기일이란 날짜 말입지요? 날짜는 아
직 작정이 없습니다.” “서울 안에 내응이 많으냐?” “네, 많습니다. 남소문안
패가 모두 내응하기루 됐습니다.” “남소문안패란 무엇이냐?” “서울 안 도둑
놈패의 엄지가락이올시다. 그 패의 괴수가 남소문안에서 사는 까닭에 남소문안
패라구 이릅니다.” “그 괴수가 누구냐?” “괴수 한백량이가 얼마 전에 죽구
그 아들 한온이가 괴수 노릇을 합니다.” 이 때 마침 나장이 하나가 도사에게
와서 “지사 대감께서 잠깐 들어오시라구 여쭈십니다.” 하고 말하여 도사가 노
밤이에게 묻는 것을 중단하게 되었다. 판의금이 유고하여 들어오지 아니한 까닭
에 마을일을 지의금이 총찰하였다. 지의금이 당직청에서 들어온 도사를 보고 “
고변하다는 놈이 성이 노가라지?” 하고 물은 뒤 “포청에서 문초받던 문안이
통히 여기 와 있으니 한번 내려보게.” 하고 앞에 놓인 문안을 도사에게 내주었
다. 도사가 초사 중의 노밤이의 것만 자세자세 내려다보고 다시 당직청으로 물
러나와서 마당 한구석에 죽쳐 앉은 노밤이를 끌어내다가 앞에 꿇리게 하였다.
“꺽정이가 흉악한 대적인 것은 다시 더 말할 것 없고 한온이가 꺽정이의 와주
인 것도 포청에서 받은 초사에 다 드러났는데 새삼스럽게 무슨 고변이냐? 고변
한다구 떠든 의사를 바루 아뢰어라.”“소인이 꺽정이하구 가까이 지나는 동안
에 그놈이 도둑질은 여차구 역적질하려구 골독한 것을 알구서 그놈을 나라에 잡
아바치구 소인의 몸에 붙은 도적의 때를 씻으려구 맘을 먹었소이다. 그래서 일
껀 꺽정이의 처소를 포청에 고해 바쳤드니 포도부장과 포교들이 변변치 않아서
독 안에 든 쥐를 놓쳤소이다. 꺽정이만 잡혔더면 소인이 상급을 타면 타지 전옥
에 갇히게 되겠습니까. 소인이 변변치 않은 포도부장과 포교들의 엉걸을 입은
셈이올시다. 소인이 어떻게든지 그예 꺽정이를 잡아서 나라에 바치구 그 공로루
죄명두 벗구 도적 때도 씻구 테평성대의 양민으루 맘놓구 살어보구 싶어서
새삼스러운 줄까지 알면서 고변한다구 했소이다.” “꺽정이를 네가 어떻게 잡
아바칠 테냐, 꺽정이가 어디루 도망한 것을 너는 아느냐?” “꺽정이 도망해 간
데는 청석골 아니면 광복산이겠지요만, 청석골이든지 광복산이든지 쫓아가서 힘
으로 잡자면 일이 너무 거창하니까 꾀로 잡아야 합니다.” “꺽정이 잡을 꾀가
있거든 말해 봐라.” “지금 소인의 생각에는 제일 좋은 꾀가 꺽정이의 어미를
먼저 잡는 것이올시다. 그놈의 어미는 적굴이 싫다구 혼자 따루 사는 까닭에 잡
기가 쉽습니다. 그 어미를 잡아다가 전옥 같은 데 가두어 두면 꺽정이가 천하무
도한 놈이지만, 제 어미에겐 효성이 무던하니까 파옥하러 올 것이구 파옥할 힘
이 없으면 자수라도 할 것입니다.” “꺽정이의 어미는 어디서 사느냐?” “역
시 청석골 산속이지만 적굴에서 상거가 거의 오 리 가량이나 됩니다. 소인이 포
도군사 서넛만 데리구 가면 동소문 안 꺽정이의 기집을 잡아오듯 든손 잡아올
수가 있습니다.” 도사가 노밤이의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하다가 나장이 하나를
불러서 노밤이를 아직 금부 장방에 가두어 두게 하고 노밤이의 말한 사연을 곧
지의금과 동의금에게 고하였다. 꺽정이를 잡으면 조정의 큰 근심거리 하나를 덜
게 되므로, 지의금과 동의금이 다 노밤이의 말을 기특하게 여겨서 조금도 의심
않고 그대로 준신하여 꺽정이의 어미부터 잡아올리도록 위에 품하자고 상의를
할 때 도사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서 “꺽정이란 놈이 어미 아비가 있단 말을
들은 일이 없습니다. 그 어미가 과연 살아 있나 그것부터 알아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고 말하여 지의금 한 분과 동의금 두 분이 다 함께 고개를 크게
끄덕이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볼까?” 지의금 묻는 말에 “꺽정이 속내를 잘
아는 사람이 나장이, 나졸 중에두 더러 있을 줄 압니다.” 하고 그 도사가 대답
하였다. 꺽정이의 어미 아비가 없는 줄을 아는 나장이와 나졸이 대여섯이나 되
는데, 그중의 나장이 하나가 그 아비는 죽은 지 얼마 안 되고 그 어미는 죽은
지 오래 된 것까지 자세히 알았었다. 노밤이의 말이 허무맹랑한 거짓말이라면
거짓말한 까닭이 무엇인가 일차 국문하자고 지의금이 동의금들과 의론한 뒤, 곧
나졸들을 호령하여 형구를 벌이고 노밤이를 잡아들이게 하였다. 나졸들이 노밤
이를 호두각 대청 섬돌 아래 잡아 엎치고 “죄인 잡아들였소.” 하고 소리친 뒤
에 지의금이 노밤이의 성명과 연령과 꺽정이와 관계된 것을 묻고 나서 “꺽정이
의 어미가 어디 있느냐?” 하고 내려 물으니 “청석골 근처에 있소이다.” 하고
노밤이는 대답을 올리었다. “죽은 년의 무덤이 청석골에 있느냐?” “아니올시
다. 꺽정이의 죽은 어미의 무덤은 양주에 있솝구 청석골에 있는 것은 산 어미올
시다.” “꺽정이의 어미 아비는 다 죽었는데 웬 산 어미가 또 있단 말이냐! 이
놈, 네가 얼마나 죽구 싶어서 거짓말을 하느냐!” “꺽정이의 어미가 있거나 없
거나 소인에게 꼬물두 이해 상관이 없솝는데 공연히 없는 걸 있다구 말씀을 여
쭐 리가 있소리까.” “꺽정이의 산 어미가 정녕 있느냐?” “네, 있소이다.”
“그럼 산 어미는 무슨 어미구 죽은 어미는 무슨 어미냐?” “죽은 어미는 낳은
어미옵구 산 어미는 양어미올시다.” “꺽정이가 양자 간 일이 없는데 웬 양어
미가 있단 말이냐? 그게 거짓말이 아니구 무엇이냐?” “꺽정이의가문 내력을
소인이 아뢰리다. 이 장자 곤자 이찬성 대감 부인의 고모되는 꺽정이의 할미가
자식 형제를 두었솝는데, 큰자식은 함흥서 대대루 해먹던 고리백정질을 해먹구
작은 자식은 이찬성 부인을 바라구 서울을 올라왔다가 양주 쇠백정의 데릴사위
가 되어서 양주서 푸주를 했소이다. 쇠백정의 딸년이 꺽정이 삼남매를 낳았솝는
데, 꺽정이의 손위 누이는 이찬성 부인의 사촌 올케가 되었다가 서방이 일찍 죽
어서 청춘과부로 친정살이를 하게 된 것이 지우금 꺽정이와 같이 지내옵구 꺽정
이의 동생은 연전에 양주 옥중에서 그 아비와 함께 죽었소이다. 꺽정이의 아비
가 살았을 때 그 형이 딸자식 하나두 두지 못하구 죽어서 그 형수를 함흥서 데
려오구 꺽정이를 형의 몫으루 형수에게 바친 까닭에 꺽정이의 큰어미가 곧 양어
미올시다. 꺽정이 낳은 어미는 벌써 죽은 지가 오래지요만 양어미는 아직두 얼
마를 더 살는지 피둥피둥하외다.” “지금 네 말에 일호 거짓이 없지? 달리 알
아봐서 만일 거짓말이 섞였으면 장하에 물고를 내두 원망을 못하렷다!” “원망
을 못하다뿐이겠습니까. 다만 한 가지 미리 아뢰올 말씀이 있솝는데 들어 주실
는지요?” “무슨 말이니?” “소인의 말과 틀리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솝거든
그 사람과 소인과 면질시켜 주셨으면 좋겠소이다. 그건 다름이 아니오라 이목
넓은 포청에두 꺽정이의 일을 잘 아는 사람이 없어서 꺽정이의 기집이 서울 안
셋씩이나 있는 것을 소인의 말을 듣구 비로소 알구 웬 기집이 그렇게 많으냐구
모두 놀라옵디다. 포청뿐 아니올시다. 당장 꺽정이 수하에 있는 도둑놈들두 두령
이나 꺽정이에게 신임받는 두목들 외에는 꺽정이의 일신상 일을 소인만큼 아는
놈두 별루 없소이다. 잘 알지 못라구 소인의 말을 거짓말이라구 하오면 소인이
억울하온 까닭에 미리 이런 말씀을 아뢰옵는게올시다. 제일 좋기는 소인이 나졸
이나 포교들과 같이 가서 잡아오는 기집을 닦달해 봅셔서 꺽정이의 어미가 아니
옵거든 소인을 어떻게든지 치죄합시오.” 노밤이의 대답이 처음부터 조금도 구
김이 없어서 누가 듣든지 거짓말 같지 않고 참말 같았다. 노밤이를 장방에 도로
갔다 가두어 두라고 분부하여 나졸들이 밖으로 나간 뒤에 지의금이 동의금과 도
사들을 돌아보며 “그놈의 말이 아주 허무맹랑한 거짓말 같지 않지?” 하고 물
으니 “그놈의 대답하는 것이 별루 어색한 데가 없어 보입디다.” “꺽정이의
아비가 이찬성 후취 부인과 척의 있단 말은 나두 전에 들은 법합니다.” 동의금
들이 이렇게 대답할 뿐 아니라 먼저 꺽정이의 어미 있단 말을 의심하던 도사까
지 “그놈의 생김생김은 흉물스러우나 하는 말은 바이 거짓말 같진 않습니다.”
하고 의심이 적이 풀린 모양으로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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