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화적편 11

3학년2반 | 2022.01.12 09:42:32 댓글: 0 조회: 608 추천: 0
분류연재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1706
  4. 피리
  이 해는 팔도가 거진 다  흉년이 들어서 삼남의 벼농사도 말이 아니고 양서의 
조농사도 마련이 없었다.  삼남에는 오월 한 달을 내처 가물어서  고래실 땅에도 
호밋모를 낸 데가 많았고, 엇답, 건답들은  거지반 메밀 대파를 하였었다. 가을에 
와서 지주와 작인 사이에 도조  재감으로 말썽이 많이 생겨서 된내기 온 뒤까지 
벼를 세워놓고 베지  않은 땅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삼남은  곡향이라 수한병식
하는 좋은 땅도 많거니와 밭곡식이 잘되어서  양서같이 참혹하진 아니하였다. 양
서는 첫가뭄이 들고 늦물이 가고  게다가 풍재에 박재까지 겸친 데가 있어서 두
태도 많이 줄었지만, 주장세우는 서속이 소출이 가량없이 줄었었다. 밤에 바심하
는 머슴들이 밤참 투정할 경도 없었고 북섬이를 숨치는 여편네들이 웃고 지껄일 
흥도 없었었다.  평년에 백 석 하던  사람이 이삼십 석만 하여도  잘한 양으로들 
말하였다.  청석골서는 매삭  도중 공용으로 쓰는 석수가 엄청나게 많았다. 대장
과 두령들은 녹을 먹고 두목과  졸개들은 요를 태우는데 대장은 백미가 일 석이
요, 황두가 십 두요, 두령 십인은 매인 백미가 십 두요, 황두가 오 두요, 두목 이
십여 명은 매명 요가  쌀 닷 말, 서속 닷 말이요,  졸개 백여 명은 매명 요가 쌀 
서 말, 서속 서 말이요, 이외에 마소먹이 콩이 두어 섬씩 나가서 육십 석 곡식을 
가져야 한 달을 부지할 수  있었다. 청석골서 평양 봉물을 뺏은 뒤로 관서, 해서 
감영과 각읍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진상과 인정을 대개 중간에서 가로채고 또 근
거와 해서의 여러 골로 돌아다니며 크면 읍을 치고 작으면 촌을 떨어서 모은 재
산이 적지아니  끼쳤었지만, 봄 이후로  벌어들이진 않고 쓰기만  한데다가 반이 
부비, 역사 부비 같은 모개용을 누차 써서  한온이가 재산 반을 들여놓지 않았다
면 다음  달 녹과 요도 자라지  못할 뻔하였었다. 목전에 있는  두목과 졸개들도 
흉년에 먹이기가 어려운데 먹고 살  수 없어서 입당하러 오는 사람이 하루 한둘 
없을 때가 없었다. 그나마 들뜨기로 오면 안 받겠지만, 도중과 연락 있는 사람의 
인권을 받고 오거나 두령과 친분 있는 사람의 청찰을 가지고 오는 까닭에 안 받
지도 못하였다.  어느  날 석후 여러 두령이 꺽정이 사랑에  모여 앉아서 담화를 
하는 중에 배돌석이가 졸개들의  초막을 사방 등성이 너머까지 지어주는 수밖에 
없다고 말을 하고, 그  다음에 또 김산이가 도중의 곡식이 항상  백여 석씩 준비
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하여  졸개는 늘고 양식은 딸리는 것이 화제가 되었
을 때, 서림이가 버릇으로 헛기침을 한번 한  뒤 꺽정이를 보고 “각처에서 방곡
들 하는 올 같은 흉년에 양식이 딸리는  것은 큰 두통거립니다. 흉년에는 조정에
서 백관의 녹을 감하는 전례두 있으니 우리 도중의 녹과 요를 일체루 감하면 어
떻겠습니까?” 하고 의향을 물으니 꺽정이는 웃으면서 “가령 한 달 지낼 걸 가
지구 두 달을 지낸다구 하구 두달 뒤에는  어떻게 할 테요?” 하고 되물었다. “
그때가서는 달리 변통해야 하겠습지요.” “그때 가서  변통할 걸 지금부터 미리 
변통하면 못쓰나. 그 따위 구차스러운 소리는 하지  말구 방곡한 골에는 가서 뺏
어 오구 방곡 안한  골에는 방을 붙입시다. 방을 붙여서 안  가져오거든 방 붙인 
놈의 집은 말할 것두 없구 그놈 사는 데가  읍이면 읍, 촌이면 촌을 아주 뿌리를 
빼옵시다.” 꺽정이의 말 끝에 여러 두령들이  이구동성으로 “대장 형님 말씀이 
지당합니다.” “대장 형님  말씀이 좋습니다.” 하고 떠들었다.   그 이튿날부터 
서림이는 방을 쓰기가 바쁘고 황천왕동이는 방을  붙이러 다니기가 바빴었다. 이
봉학이의 좌군과 박유복이 우군이 번차례로 나가기도  하고, 일시에 같이 나가기
도 하였다. 곡식 바리와  상목 바리가 꾸역꾸역 청석골로 들어왔다. 경기도 한쪽
과 황해도 한쪽은 조포섬  하는 사람이 살 수가 없었다.   청석골에 오가가 혼자 
있을 적에는 주장 벌이가 금교  장꾼을 떠는 것이었는데 장꾼이 서넛만 함께 와
도 감을 못 내서  떠는 것보다 그대로 보내는 것이 더  많았었고, 박유복이가 와
서 있게 된 뒤에는 사람이 여럿이 온다고 그대로 보내는 법은 없었으나 대개 금
교 장날 탑고개를 지키는  것은 오가 혼자 있을 적과 별로  다름이 없었고, 곽오
주와 길막봉이와 배돌석이가 와서  모인 뒤에는 박유복이까지 넷이 돌려가며 매
일같이 나와서 장꾼이고 행인이고  만나는 족족 떨었는데 떠는 자리가 탑고개인 
것만은 전과  같았었고, 서림이가 와서  평양 봉물을 금교역말서  뺏어온 뒤로는 
난데 나가서 불한당질을 많이  하게 되었으나 그래도 탑고개는 두목과 졸개들을 
내보내서 지키고 난데  나가지 않는 두령이 순을 돌았었고, 꺽정이가  대장이 된 
뒤로는 탑고개를 여전히  지키긴 지키되 황해도, 평안도에서  서울로 올려보내는 
봉물과 뇌물을 뺏어들이고 촌장꾼이나 보행인은 그대로 보내게 
하였었다.  오월 이후로 지키지 않던 탑고개를 다시 지키기 시작할 때, 서림이가 
꺽정이를 보고 물건을 많이 가진 장꾼이나 노수를 넉넉히 가져 보이는 행인들은 
탑고개를 지나가는데 세를 바치게  하자고 말하여 꺽정이가 그말을 좇아서 장꾼
과 행인에게 세를 받되 대개  십일조로 받고 불쌍한 것들은 그대로 보내라고 명
령을 내렸다. 촌장꾼과  보행 행인은 일체로 침책하지 마라는 때도  두목과 졸개
가 심심풀이로 말썽들도 부리고  술잔들도 뺏어 먹었거든 세를 받으라는 명령이 
있으니 장꾼과 행인을 못살게  굴 것은 정한 일이다. 불쌍하게 보고  안 보는 것
이 사람의 눈대중인데다가 누가 보든 불쌍하게 볼 만한 사람도 배주머니에 의송 
들었는지 모른다는 이유를 붙여서 보따리도 뒤지고  몸도 뒤졌다. 그러나 두목과 
졸개들이 귀찮은 생각이 나거나 순  돌러 나온 두령이 가만 두란 처분을 내리면 
세를 톡톡히 받을 만해도  받지 않고 그대로 보내었다.  금교  장날 탑고개로 나
가는 장꾼은 대개 청석골서 십 리 이십 리 이내에 사는 사람들이라 청석골 도중 
일을 새로 입당한 졸개들보다 더 잘 알았다.  졸개들이 장사꾼의 길을 막고 세를 
내라고 할 때 장꾼들 중에  “임대장은 우리 촌장꾼의 것을 뺏으시는 법이 없는
데 이게 혹 자하루들 하시는  일 아니오?” 하고 묻는 사람이 있어서 “쓸데 없
는 잔소리 마라.” 하고 두목이 윽박질렀다. “세라니 무슨 명목으루 세를 받소?
” “탑고개 지나가는 세야.” “길세란 말이오?” “아따  그 사람 잔소리 되우 
하네.” “알 건 알아야 하지  않소?” “자네네 장이 늦지 우린 상관없네. 알구 
싶은 건 실컨 다 알구 가게.” “세를  내자면 어떻게 내우?” “자네 자루 속에 
든 게 무언가?” “콩이오.”  “몇 말인가?” “두 말이오.” “그럼 여기 되가 
있으니 두 되만  떠내놓게.” “십일조를 떼는구려. 십일조  뗄 수 없는 저 나무 
같은 건 어떻게 받소?” “팔러 갈 때 받을 수  없는 물건이면 팔구 올 때 받지.
” “그래 이게 참말루 임대장 명령이오?” “대장 명령이 아니면 어쩔 텐가?” 
“등장 가겠소.” “등장 갈라거든 가게.  여기 두령 한 분이 와 기시니 가서 뵈
입구 말씀해 보게.” 이날 순 돌러 나온 두령은 황천왕동인데, 주막에 앉아 있다
가 두목과 졸개들의 일하는 것을 보러 나왔다.  그 장꾼이 황천왕동이 나오는 것
을 바라보고 “황두령이시군.” 말하고 앞으로 나가서  공손히 허리를 굽혀 인사
하였다. “왜들 이렇게 섰나?  어서어서 세를 내구 가지.” “길세를 받으신다니 
이 길이 언제 도중에서 내신 길입니까? 세를  무슨 턱으루 받으십니까. 이전처럼 
그대루 지나다니게  해주십시오.” “대체 자네들  가진 게 다  무엇무엇인가?” 
“저는 콩 두 말입니다.”  “그 다음은?” “달걀 세 꾸레미뿐이올시다.” “달
걀 뒤는 나뭇짐, 나무 뒤는  숯짐, 숯 뒤는 무언가?” “거피팥이 한 말두 못 됩
니다.” 황천왕동이가 장꾼들의  가진 물건을 강 받듯 물어본 뒤  두목을 불러서 
장꾼들을 다 그대로  보내라고 분부하였다.  그 다음 장날  길막봉이가 탑고개에 
나와서 두목과 졸개들을 친히 지휘하여  장꾼에게 세를 받을 때 지난 장날 달걀
을 가지고 가던 사람이 장마다  망둥이 난 줄 알고 도중에서 내지 않은 길에 무
슨 턱으로 길세를 받느냐고  말하다가 길막봉이 주먹에 대가리가 터지고 가지고 
가던 물건을 송두리째 빼앗기었다.  법 없는 천지라 세 받는 법도  이와 같이 대
중이 없었다.   나라에서 팔월에 왕세자의 관례를 지내고 구월에  별시로 과거를 
보이었는데, 과유 천여 명 중의 육백 명이 초시에  뽑히고 초시 육백 명 중의 십
팔 명이 전시에 뽑히었었다.  과거의 부정한 행이 이때도 아주 없진 않았겠지만, 
조선의 공도는 오직 과거뿐이란 속담까지 있던 때라 후세와 같이 급제될 사람을 
미리 정하여 놓고  과거를 보이진 아니하였었다. 그러나 백에 한둘  뽑히는 급제
에 참례하기는  하늘에 오르기만 못지않게 어려워서  노사숙유라고 일컫는 포부 
많은 선비들도 거지반 다  낙방거자들이 되었다. 황해도 평산, 봉산에서 과유 사
오십 명이 과거를 보러 왔었는데, 이 중에는  평산 신희복 신감사의 문인도 더러 
있었고 또 사수없이 독학한 사람들도 혹간 있었으나 열의 일곱여덟은 봉산 장가
순 장참봉의 제자이었다. 경학들은 유여하여 강경에는  대개 통 아니면 약이었으
나, 시부표책의 제술들이 부족하여 삼중이 많고 삼하도 적지 아니하였다. 사오십 
명의 태반은 초시  시부에 떨어지고 그 나머지는  용인방법을 물은 전시 책문에 
떨어졌었다. 과거들을 보러  올 때는 떼를 지어 왔지만 과거들을  못하고 내려갈 
때는 뿔뿔이  내려갔다.  초시에 뽑히고  전시에 떨어진 봉산 선비  중에 소과는 
이미 하고 대과를 아직 못한 생원 두 사람과 소과 않고 바로 대과하는 비렴급제
를 바라고 온 유학 두 사람이 성균관에 거재해 볼 생각으
로 서울에 남아 있으며 거재할 길을 자세히  알아본즉, 동서상제는 백 명 정원이 
차지 아니하여 사람을 더 들일 만하건만 경비관계로 금년내에는 새 사람을 들이
지 않는다 하고 하재의 유학은 상재의 생원,  진사와도 달라서 자원을 받지 않고 
동서남중 사부학당에서 취재를  뽑아올리는데 사학에 들어가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모양이나 동서하재의 백 명  정원이 다 차서 성균관으로 올라갈 가망이 없
었다. 시골집에들  내려가 있다가 명년  식년 과거나 다시  보러오자고 의논들이 
되어서 넷이 같이 작반하여 서울서 떠났다. 첫날 파주  와 자고 다음 날 송도 와 
잤는데, 송도까지 오는  동안 봄날같이 따뜻하던 일기가 밤 사이에  변하여 날이 
음산하고 비가 오다말다  하고 때아닌 우뢰 소리까지 났었다. 급한  길도 아닌데 
모우하고 갈 까닭이 없어서 아침밥을  먹고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앉
아서 이야기들 하였다. 네 사람 중의 정생원이란  사랍이 입이 재어서 거의 혼자 
떠들다시피 하고 다른 세 사람은 간간이 몇  마디씩 지껄일 뿐이었다. 동쪽 들창
에 햇발이 비치어서 정생원이 떠들다 말고 벌떡 일어나서 들창을 열고 내다보니 
검은 구름이 터지고  해가 나왔었다. “날은 갤  모양일세. 밥값 셈해 주구 떠나
세.” 여우볕이 난 것을 개는 줄로 날고  정생원이 뒤설레응 쳐서 숙소에서 불불
이들 떠나나왔다. 오정문  큰 길을 좇아서 오다가 오정문까지 나가지  않고 옥장
다리께서 파지동 앞으로 나가는 지름길을 잡아들  때, 바람에 나부끼는 가는비가 
물을 뿜듯 사람의  얼굴에 끼치었다. 가는비에도 옷이 젖으니 유삼이  있으면 들
렀을 것이지만, 유삼들은  안 가지고 우비라고 가진 것은 갓모들뿐이라  갓에 받
쳐 쓰고 오는 중에 가는비가 그치는 듯 굵은비가 시작하여 한 줄기를 제법 하였
다. 옷들이 함씬 젖었다.  미륵당이까지 오는 동안에 젖은 옷들이 몸에서 말라서 
뿌득뿌득하여졌으나 아주 말려들  입느라고 미륵당이에서 한동안 늘어지게 쉬고 
청석골로 나오는데, 골 어귀 동네 못 미쳐서  비가 또 시작하여 정생원은 웃옷자
락을 걷어들고  뛰었다. 동행 친구들보다 먼저  동네 와서 길가 집  처마 안으로 
들어서는데 그 집  방안에서 “치명이.” 하고 정생원의 자를 부르는  사람이 있
었다.  방안에 평산 선비 네 사람이  들어앉았는데 방문턱에서 비오는 것을 내다
보던 사람이 정생원을  보고 알은 체하였다. “자네 왠  일인가?” “자네들이야
말루 왠일인가?” “어서 길목 빼구 들어오게.”   정생원이 봉당에서 갓모 벗고 
웃옷 벗고 또 길목 벗는 동안에 뒤에 떨어진  동행이 다들 왔다. 먼저 와서 있는 
평산 선비 넷과  나중 온 봉산 선비 넷이  다 같은 장참봉의 제자라 동문수학의 
교분들이 자별하여 뜻밖에 만난 것을 서로 반기었다.  평산 선비 네 사람도 이번 
과거에 초시에 붙고 전시에 떨어진 사람들인데,  그중의 한생원이란 사람은 행검
이 있어서 자기  앞도 잘 닦거니와 입이 발라서  남의 허물을 용서 않고 면박을 
잘하는 까닭에 친구들 사이에  평산어사라는 별명이 있고 신진사란 사람은 풍채
도 좋고 문장도 좋고 언변까지 좋아서 어느 좌석에 끼이든지 한몫 볼 만하고 그
외의 두 사람도  다 평산 선비의 교초들이었다. 봉산 선비들이  방안에 들어와서 
좌정한 뒤 신진사가 먼저 “자네들은 서울서 거재해 본다더니 어째들 내려오나?
” 하고 물으니 정생원이 “거재두 우리에겐 참례  안 오데.” 대답하고 곧 뒤이
어서 “자네들은 벌써  집에 갔을 사람이 어째 여기들  와 있나?” 하고 되물었
다. “우리는 서울서 내려올 때 송도 경숙이하구  동행이 됐었는데 그 사람이 붙
잡구 놓지 않아서 송도서 놀다가 인제 집으루들  가는 길일세.” 봉산 선비 하나
가 정생원더러 “경숙이가  누구던가?” 하고 물어서 “차식이라면 자네두 짐작
할 테지. 그 사람의 자가 경숙일세. 어느 해 연분인가 우리 선생님께서 복재선생
에게 갔다오셔서 복재 문인 차식이의 시라구 고시 한편을 내놓으시구 귀귀이 칭
찬하시는 것을 자네는  못 들었든가? 그때 나는 속으루  어떻게 하면 나두 저런 
글을 지어서 선생님께  칭찬을 받아보나 차식이가 부럽기두  하더니.” 정생원은 
수다를 떨어서 대답하고 다시  신진사를 보고 “자네들두 오늘 송도서 떠났네그
려. 날세 좋은 때  다 내버리구 왜 하필 오늘 같은 날  떠났나? 경숙이도 우스운 
사람이지. 친구들을 일껀  붙들어서 묵히다가 이런 궂은 날 붙들지  않구 보내더
란 말인가.” 하고 말하였다. “우리는 어제  송도서 떠났네.” “어제 떠나서 하
루 종일 겨우  여기를 왔단 말인가?” “어제 떠날  때 우리끼리 두문동을 보구 
가자구 말하는 것을 경숙이가 듣구  두문동에다 시회를 차려서 글 짓구 술 먹구 
다 저녁때까지 놀다가 경숙이  부자와 중적이는 부내루 들어가구 우리는 미륵당
이 와서 잤네.” 경숙이 차식인 줄을 잘 알던 정생원도 중적이 누구인 것은
 생각이 잘 안 나든지 “중적이?” 하고  뇌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마희경이를 
모르나?” “옳지, 마희경이의 자가  중적이네. 화담 문하의 문장은 경숙이가 첫
째구 학행은 그  사람이 제일일걸.” “그 사람의 학행이 무던하지만  화담 문하
의 제일은 마치 모르겠네.  행주 사람 민순이가 있으니까.” “지금 경숙이 부자
라구 말했지? 경숙이가 몇 해 전에 참척을 봤는데 웬 아들이 또 있던가?” “죽
은 아들 재생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나?” “재생이라니 무슨  소린가. 금시초문
일세.” “경숙이의 죽은 아들 이름이 은로지. 은로가 죽어서 장사 지내던 날 밤
에 경숙이 내외가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꿈에  은로가 와서 하는 말이 옥황상제
의 명령이 계셔서 아들루  다시 태어나러 왔다구 하더라네. 그 꿈을  꾼 뒤에 경
숙이 실내가 바로 태기가 있어서  은로 죽던 이듬해에 지금 아들 천로를 낳았는
데 은로의 요사와  재생이 막비천수라구 이름을 천자루 지어 줬다구  하데.” “
재생이구 아니구 천로란 아이가 지금  나이 몇 살인데 시회에 부자 같이 왔더란 
말인가?” “지금 다섯  살밖에 안된 놈이 글자를 제법 많이  알데.” “그래 참
말 시를 지을 줄 알던가?” “다섯  자씩 한 귀 두 귀 자모듬을 해놓는 게 하두 
신통해서 내가 시회에  데리구 가자구 했네.” 신진사와 정생원이 이런  수작 하
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은  대개 두 사람의 수작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신진
사가 다시 말끝을 고쳐서 화담  가서 시 지은 이야기를 꺼내는데 한생원이 신진
사와 정생원을 보고 “방안  사람이 여덟인데 자네들 둘이서만 이야기해서 되겠
나. 자네들은 고만  쉬게. 다른 사람두 이야기 좀 하세.”  하고 말하여 신진사는 
두말 않고 이야기하던 것을 그치고 정생원은 “누가 다른 사람더러 이야기를 말
랄세 말이지. 이야기할  게 있거든 어서 하게.” 하고  한생원에게 말대답하였다. 
“내가 이야기할 게 있어 한 말이 아닐세.  자네들 둘이만 맞붙어 이야기하는 게 
여러 친구와 같이  이야기하는 것만 못하단 말이지.” 하고 한생원이  곧 시비나 
차리려는 사람같이 다리를  도사리고 앉았다. 자리가 잠시 버성기어졌다. 신진사
가 좌중을 돌아보며 “비는 종일  오다마다 할 모양인데 우리가 여기서 잘 수야 
있나. 금교까지는 가야지. 가다가  비를 만나거든 인가 있는 데선 그어가구 무인
지경에선 맞구 가세. 비  맞으면 추울 테니 술을 사다가 미리  한두 잔씩 어한하
구 나서 보세.” 하고 말한 뒤, 곧 그 집 주인을 불러서 “이 동네에 술 파는 집
이 있느냐?” 하고 물었다. “동네에는  술 파는 집이 없습니다. 술을 사자면 미
륵당이 주막이나 탑고개  주막에를 가야 합니다.” 하는 주인의 대답을  듣고 신
진사는 다시 좌중의 여러 친구더러  “가다가 탑고개 주막에서 술 몇 잔씩 사먹
구 금교 가서  오늘 밤에 금교 술에 실컨들 취해  보세.” 하고 말하였다.  비가 
그치는 동안에     여덟 사람이  골 어귀에서 탑고개로 나왔다. 주막  앞에 와서 
신진사가 주막 주인더러 술이 있느냐 묻고 들어앉아서 술들을 먹게 방을 치우라
고 일렀다. “방에는 먼저 오신 손님이 기십니다.” 하고 주인이 말할 때 방안에 
있는 사람이 닫힌 방문을 열어젖혀서 방을 들여다본즉  상제 복색한 손 하나, 탕
창한 손 하나, 사람이 둘인데 상제 손은 나이  새파랗게 젊고 탕건 쓴 손은 나이 
지긋하여 보이었다. 탕건 쓴 손이 한참 내다보다가  주인을 가까이 불러서 몇 마
디 말을 이르더니 주인이  신진사에게 와서 “다른 손님이 기셔두 상관없으시면 
방 위루들 들어가십시오.” 하고 말하여 “역려과로에  잠시 한방 거처두 인연으
루 알면 고만 아니냐.” 신진사가 주인의 말을  대답하고 나서 여러 친구의 앞장
을 서서 방으로 들어왔다.  방안의 두 사람이 일시에 한옆으로 비켜앉았다. 여덟 
사람이 다 방에 들어와서 좌정한  뒤에 넘너리성 있는 신진사가 먼저 두 사람을 
보고 인사를 청하였다. “나는  서울 사는 엄오위장이오.” 탕건 쓴 손은 통성하
고 상제는 평인과 달라서 인사  절차를 차리기가 싫은지 성도 말하지 않고 그저 
“나두 서울  삽니다.” 하고 말할 뿐이었다.  신진사가 “나는 평산사는 신진사
요.” 하고 인사한 다음에 “나는 봉산 정생원이오.” 정생원이 통성하여 인사하
고 그외의 다른 사람은 혹  앉아서 허리도 구부리고 혹 바라보며 고개도 끄덕이
어서 인사한 셈들로  쳤다. 신진사가 주인 불러 술을 들여오라고  하여 거섭안주
와 막걸리 술을 들여다 놓고  엄오위장과 상제더러 술을 같이 먹자고 청하니 둘
이 다 고사들  하였다. 여덟 사람이 한  방구리 술을 다 먹고 새로  한 방구리를 
들여왔을 때, 정생원이 한 그릇을 떠서  엄오위장을 권하니 엄오위장은 사양하다
가 그대로 받아먹고 또 한  그릇을 떠서 상제를 주니 상제는 다 지우고 한 모금
쯤 마시었다. “여러분들 별시 보구 가시는 길입니까?” 엄오위장의 묻는 말
을 “그렇소.” 하고 정생원이 대답하여 주었다. “이번 별시의 장원 민덕봉이는 
이 상제의  내종형이구 담화랑 정염이는 나하구  오촌척입니다.” “네. 그런 줄 
몰랐더니 두 분이 다  새 급제들과 척분이 기시단 말이지. 사촌  오촌 척분두 절
척이구려. 그래 창방들 하는 것을 보구 오셨소?”  “서울서 창방을 보구 떠나서 
잠깐 황해도  땅에 왔다 갑니다.”엄오위장이  정생원과 이런 수작을  하고 잠시 
밖에를 나갔다 들어오더니 얼마 뒤에  주인이 술 한 상을 들여오는데 술은 약주
가 한  양푼이요, 안주는 닭고기 전지가  상 대접에 가득하고 도야지  고기 저민 
것이 쪽목판에 수북하였다.   주막 주인이 술상을 엄오위장 앞에  놓고 나가려고 
할 때, 봉산 선비 하나가 주인을 불러세우고  “우리는 탁주나 먹을 사람이지 약
주는 못 먹을  사람인가. 우리두 탁주는 탁주  값 내구 약주는 약주 값  낼 텐데 
어째 저 손님하구 충하를 하나?” 하고 꾸중  쇰직하게 말하였다. “약주술은 저 
손님들께서 다른 데서 사오신 겝니다.”  “닭하구 돼지두?” “닭고기 돼지고기
두 따루 사오셨습니다.” 주인이 발명하는 위에 “촌  주막에 왠 약주 술이 있구 
고기안주가 있겠소?  주인은 잘못이 없으니  꾸지람 마시우.” 하고  엄오위장이 
싸주기까지 하여 그 선비는 할 말이 없어서 “그렇다면 모를까?” 하고 말 뒤를 
거두었다. 엄오위장이 여러 선비를 보고 “유리가  여러분의 술을 먹었으니 여러
분두 우리 술을 좀 자시우.” 하고 약주를 돌려 권하는데, 신진사가 첫쨋잔을 사
양 않고 받기 시작하여 다른 선비들도 잔을  주는 대로 받았다. 한생원이 눈살을 
찌푸리고 “남이 자시려구 멀리서  가지구 온 술을 자네들이 다 먹을 작정인가? 
염의들 좀 차리게.”  하고 친구들을 책망하니 정생원이 닭전지를 하나  들고 뜯
으면서 “그 말이 옳으이.  ”하고 뒤로 물러나 앉았다. “자네 얼얼지육이 무언
지 아나?  ” “맹자께서 인이후에 충기조라구  책망하신 진중자의 말이지 무어
야. " "논어의  오부영자란 구절을 생각하구 말하게. ” 한생원과  정생원이 유식
한 문자말을 주고받고 하는 중에  이때까지 별로 말이 없던 상제가 홀저에 엄오
위장더러 “알아듣지 못할  수작을 듣구 있느니 먹을 줄 아는  술이나 먹읍시다. 
” 하고 말하여 엄오위장이  상제와 둘이만 약주를 권커니잣거니 먹으면서 옆에 
선비들은 본 체도  아니하였다. 한참 오래 그치었던 비가 다시  시작하며 바람도 
같이 나서 바람소리 같은 빗소리와 빗소리 같은 바람소리가 어울려 들리는 속에 
가을이 시시각각으로 깊어지는 것 같았다. 여러  선비들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
고 무료하게들 앉았는 중에 신진사가 봉산 선비들을 돌아보며 “헛방 창방할 때 
아는 친구의  성명이 나오니까 핫방일망정  반갑네그려. ” 하고  말하니 “헛방 
말 말게. 나는 헛방 까닭에  실해를 착실히 봤네. ” 하고 정생원이 신진사의 말
을 받았다. “무슨 실해를 봤나? ” “삼관  관원들이 헛신래를 부를 때 거기 정
신이 팔려서 현제판 밑에 좋은  자리 잡았던 것을 영남 선비들에게 빼앗기구 뒤
루 밀려나갔었네. 그게 실해  아닌가. ” “장중의 자리쌈은 당연히 금할 일인데 
금하지 않으니 별일이야. ” “자리쌈을 금해야 하다뿐인가. ” “우리는 장중에 
들어가기두 남 뒤늦게 들어갔지만, 자리쌈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 글제이 글씨가 
겨우 보이는 데 가서 앉았었네. ” “우리  나중 잡은 자리 옆자리에 도희령이란 
사람이 앉았었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곤작인지 우리가 설폐.구폐 다  해놓구 편
마감들을 하려구  할 때, 그 사람은  겨우 허두 내놓구 조대를  못해서 쩔쩔매는 
모양이더니 그 사람이 방에 붙어두 높이 넷째루  붙었네. ” “북소리 난 뒤에라
두 납권만 했으면 고만이지 곤작이  무슨 상관 있나? ” 이때 비바람 소리가 그
치는 듯하여 방문 가까이 앉았던  평산 선비 하나가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
다. 봉당에 장정 너덧이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방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죽 일
어나서 방안을 들여다보는데 목자들이 
불량하였다. 선비들이 재물 안 가진  것을 믿고 또 사람수 많은 것을 믿으나, 대
개는 송구한 마음이 없지들 않더니 엄오위장이 그 장정들을 내다보며 “비 끄치
면 가겠다. ” 하고 말하는 것이 엄오위장과  상제의 하인인 듯하여 마음들이 놓
였다. 그 중의 정생원이 말을 못 참아서  엄오위장을 보고 “밖에 있는 사람들이 
하인이오? ”하고 물으니 엄오위장은 고개를  끄덕이었다. “나는 임꺽정이가 나
온 줄  알았소. ” “임꺽정이가 무섭소?  ” “그놈이 흉악한  대적놈인데 어째 
무섭지 않겠소. ”  “임꺽정이가 사람을 터지게 났답디다. ”“꺽정이패의 속내
를 잘 아시우? ”  “내가 적당이 아닌데 속내를 잘 알 까닭이  있소. ” “꺽정
이는 힘만 세지 꾀는 없는  없는 놈인데 그 밑에서 창귀 노릇하는 서가 성 가진 
놈이 갖은 못된 꾀를 다 내어 바친답디다.  서가놈이 꾀가 어떻게 배상한지 가짜
루 금부도사를  못 꾸미나 멀쩡한 감사의  사촌을 못 맨드나 갖은  짓을 다하우. 
” 엄오위장은 슬며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고 상제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같이 
웃고 있었다. 
  이때 청석골 두령  중의 무예 있는 사람은 대개  다 난데 나가고 대장 꺽정이 
외에 오가. 서림이. 김산이. 한온이 네 두령만 도중에 남아 있었다. 이 날이 장날
도 아니요, 날도 궂어서 탑고개 순 도는  것을 그만두기로 하였더니 서울로 물건 
하러 가는 도부장 수 십여 명이 금교역말서 자고 간다고 금교서 기별이 와서 두
목. 졸개 수십여 명을 탑고개로 내보내게  되었는데, 두목. 졸개들을 한온이가 거
느리고 나가보겠다고 자원하여 꺽정이가 허락하였으나 남의 재물을 강탈하는 데 
한온이는 경력  없는 사람이라 서림이와  같이 가자고 둘을  함께 내보내였었다. 
한온이와 서림이가  탑고개에 나와 앉아서 도부장수들  오기를 기다리다가 하도 
오래 오지 아니하여 졸개 하나를 금교까지 보내 보았더니 금교서는 떠났고 탑고
개에는 오지 아니한 것이 분명 용고개길로  돌아나간 모양이였다. 금교역말 갔다
오는 편에 약주와 돼지고기를 사와서 고기 안주하여 술이나 먹으며 비 그치기를 
기다리자고 서림이가  한온이와 공론한 뒤,  두목과 졸개들을 동네  사람의 집에 
가서 쉬라고 흩어보내고  단둘이 주막방에 앉았을 때 평산. 봉산  선비들이 주막
에 와서 술을 찾았었다.  상제는 한온이요, 탕창은 서림인데 서림이는 외가 성이 
엄가인 까닭으로 본성명을 감출 때 흔히  엄가로 변하였었다. 서림이가 선비들을 
방안에 들일 때는  심심파적이나 할 생각이요 해칠 뜻이 아니었는데,  주육을 권
하다가 얼얼지육 소리를 들은  것도 마음에 미타한데다가 서가놈이니 창귀니 욕
설하는 것을 듣고 악심이 생기어서 방 밖에 나와서 봉당에 있는 졸개 넷에게 빨
리 여럿을 불러모으라고  분부하였다. 그 졸개 넷은 목들이 컬컬하여  탁배기 한 
사발씩 얻어먹으러 왔었는데, 주인말이 방안에서 고기가  남아 나오거든 고기 안
주로 먹으라고 하여 술상이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졸개 넷이 다 함께 
동네로 뛰어간 뒤 얼마 아니 있다가 방안의  선비들이 주인을 불렀다. 술값을 치
러 주고 떠나려는 모양이라, 서림이가 졸개들  오기까지 지체를 시키라고 넌지시 
주인에게 말을 일렀다. 주인이 방문을 열고 “왜  부르셨습니까? ” 하고 물으니 
“술값 받으라구  불렀네. ” 하고 신진사가  말하였다. “안주두 변변치 않은데 
많이야 줍시사구 할 수 있습니까. 쌀 한말 값만 냅쇼. ” “큰 병만두 못한 방구
리루 술 두 방구리에 쌀  한 말 값을 내라?  되우 비싼 술일세.  ” “비싸지 않
습니다. ” 정생원이 앞으로  나앉으며 주인에게 이놈을 붙이었다. “왜 이놈 저
놈 합시오? ” “이 도둑놈아, 술 두 방구리에  술 한 말 값이 무어냐? 청석골이 
적굴이라더니 주막쟁이놈까지 도둑놈이구나.  ” “내가 샌님댁에 가서  무얼 훔
쳐왔소? 왜 도둑놈이라시우? ”“양반 앞에서 내라니 저런  죽일 놈 봤나. ” “
내라구 말구 소인이라구 하란  말이오? 소인이란 말은 내 평생에 한번두 입밖에 
내본 일이 없소. ” “오, 네가 버릇을  못 배웠으니까 좀 배워야겠다. ” “어려
서 아버지 어머니한테 못 배운 버릇을 지금 다 늙어 뉘게 배워요? ” “오늘 우
리가 먹은 술값을 봉산읍내 정생원댁에 와서 받아  가거라. ” “나는 외상술 팔
지 않았소. 쓸데없는 말 말구 술값 내구 가시우. ” “술값을 안 내구 가면 우리
를 어쩔 테냐?  ” “술값을 안 내면 백날이라두  못 가시지요. ” “이놈, 네가 
양반들을 사구류할 작정이냐! ” “양반  행티 너무 마시우. ” “양반 행티라니 
저런 죽일 놈의  말버릇이 있나. ” 정생원이 주막 주인과  아귀다툼하다시피 하
는 것을 한생원이 가만히 듣다가  못하여 “여보게 치명이, 내 말 듣게. 이런 데 
와서 술을 먹는 것이 우리의  불찰이니까 한 말 값이든 두 말 값이든 달라는 대
루 주구 가세. ”  하고 정생원더러 말한 뒤에 곧 주막 주인을 보고  “쌀 한 말 
값이 두자 상목으루 몇 밀이야? ” 하고  쌀값을 물었다. “올 같은 흉년 쌀금에 
다섯 필이야 안  주실 수 있습니까. ”  쌀 한말에 두자 상목 다섯  필이란 말도 
엄청나는 말이건만, 한생원은 두말 않고 자기의 가진  두 필을 먼저 내놓고 다른 
사람들더러 다섯 필을 채우라고 말하였다. 선비들이  상목을 모아서 술값을 치르
는 중에  두목과 졸개들이 풍우같이  몰려왔다. 서림이가 방안의  선비들을 죄다 
잡아 묶으라고 호령하여 이십여 명이 짚신발 신은 채 방안에들 뛰어들어와서 선
비 하나에 둘씩 셋씩 달려들어서 방 밖으로 끌어내다 앉혀놓고 바 새끼 있는 대
로 갖다가 뒷결박들을 지웠다.  
  서림이와 한온이가 장대고 나간  도부장수들은 만나지 못하고 뜻밖에 만난 선
비들을 잡아가지고 산속으로 들어왔다. 꺽정이가 선비들  잡아왔단 말을 듣고 서
림이를 보고 “그까지 낙방거지들은 왜 잡아왔소? ” 하고 책망 반 물으니 “그
놈들이 우리 욕을  망유기극하게 하기에 분풀이하려구 잡아왔습니다.  ” 서림이
가 잡아온  까닭을 말하였다. “그럼 지금  잡아들여다가 분풀이를 해보구려. ” 
“선비놈들에게는 첫째 위의를 보이는  게 좋으니 내일 아침 조사끝에 처치하지
요. ” “아무리나 생각대루 하우.  ” 이튿 날 아침 도회청에서 조사가 끝난 뒤
에 서림이가 꺽정이를 보고 “어제 잡아온 선비들을 어떻게 처치할까요? ”하고 
의향을 물으니  “다 죽여버리든지 다  놔보내든지 잡아온 사람이  맘대루 하우. 
” 하고 꺽정이는  서림이에게 밀어 맡기었다. “그럼 지금 선비들을  하나씩 잡
아다가 혼구멍을 내겠습니다. ” 하고 말한 뒤  서림이가 곧 자기의 교의를 대청 
끝으로 옮겨놓고 나와 앉아서 두목과 졸개들을 지휘하여 형장제구까지 차려놓게 
한 뒤,  가두어 둔 선비들을 하나씩  잡아오되 그중의 정생원이란 자를  맨 먼저 
잡아오라고 청령하는 졸개들에게 분부하였다. 얼마 동안  안 지나서 졸개 서넛이 
정생원의 등을 짚고 또 좌우팔을 잡아끌고 들어왔다. “게 끓려라! ” 서림이 호
령 아래 졸개들이 정생원을 뜰 아래 끓려앉히었다.  대청 위 교의에 걸터앉은 서
림이와 뜰 아래 맨땅에 끓려앉힌  정생원과의 사이가 예사로 하는 말도 서로 들
릴 만하건만, 서림이가 위의를 보이느라고 뜰 위의  두목과 뜰 아래의 졸개로 말
을 받아내리고  또 받아올리게 하였다.  “사람을 창귀라고 욕하는  입을 여기서 
한번 다시 놀려봐라! ” “모르구 잘못했소. 용서하우.  ” “용서해 줍시오 해두 
용서를 할둥말둥한데 용서하우? 용서 못하겠다.  탑고개서 먹은 술값을 봉산으루 
받으러 오라구? 그런 짓하란 것이 논어에 있더냐,  맹자에 있더냐? 한 일을 미루
어 열 일 알지. 네가 양반 자세하구 갖은 못된 짓 다 했을 게다. 너의 동네 백성
을 위해서라두 너는  죽여 없애야겠다. ” “술값으루 말씀하면 탁주  두 방구리
에 쌀 한 말 값을 내라니 이런 술값이  세상 천하에 어디 있습니까. 세상 천하에 
없는 술값을 내라는 것이 꽤씸해서 봉산으루 받으러 오라구 억탁의 말을 했습니
다. 그러구 이몸이 거향을 잘하구 못하는 건  봉산으루 알아보시면 대번 아실 일
이니까 구렁이 제 몸  추듯 말씀하지 않습니다. ” “네 말대루  다른 죄는 없다
구 치더라두 내 면전에서  욕설한 죄만 해두 열 번 죽어  마땅하다. ” “임장군
은 만부부당지용을 가지셨구 서모사는 지모가 제갈공명 같으시다구 말씀해야 옳
을 것을  그렇게 말씀 안한 것이  잘못인 줄 깨닫구   복복사죄하지 않았습니까. 
항자는 불살이라니  잘못했다구 사죄하는 걸  죽이는 법이 있습니까.  ” “그놈 
더러운 놈이다. 빨리 내다 목을 비어라! ” 하는 천둥같은 호령이 대청 안침에서 
나왔다. 꺽정이가 호령한 것이다.  좌우에 벌려 섰던 졸대들 중의 오륙명이 일시
에 내달아서  정생원을 잡아 일으켜  세우는데, 정생원은 벌벌  떨면서 서림이를 
치어다보고 “그저 목숨만 살려주시면 결초보은 하겠습니다.  ” 하고 우는 소리
를 하였다. “목숨은 아까운가  부다. 그렇게 살구 싶거든 요순우탕 문무주공 공
자 맹자 주자 하늘에 기신  여러 조상님네 굽어 살피셔서 잔명을 보전하게 해줍
소서 해봐라. 혹 살는지  모르니. ” 서림이가 조롱하느라고 한 소리를 정생원은 
살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조롱인 줄도 모르고  주문 외듯 그래로 옮기었다. 서림
이가 한바탕 깔깔 웃은  뒤 “그놈 삼천육부지자로구나. 참말 더러운 놈이다. 그
놈은 대장 명령대루  끌어내다가 목을 비구 그러구 다른 놈을  하나 끌어오너라. 
” 하고  분부하여 정생원은 여러  졸개들에게 끌려나갔다. 정생원  다음에 평산 
선비가 하나가 잡혀았다.  뜰 아래 맨땅에 끓어앉아서 대청 위  교의에 걸터앉은 
서림이를 치어다보며 자기는 말 한마디  잘못한 일이 없는데 무슨 죄가 있는 지 
죄목이나 알아지라고 말하였다. “네 얼굴빠대기를 보니  양반 자세하구 동네 백
성들에게 행학 많이 했을 게다.  그 죄가 죽어두 마땅하다. ” 서림이가 죄를 얽
어서 으름장을 놓으니 그 선비는  행학한 일 없다고 누누이 발명하고 또 살려달
라고 구구이 빌었다. “용서없이 죽일 것이로되  인생이 불쌍해서 약약히 볼기깨
나 때려 용서할 테니 그리 알아라. ”  “유죄무죄간 때리면 맞는 것이지만 이왕 
맞을 바엔  형문을 맞겠습니다. ”상사람이면  혹 형문두 치지만  양반은 반드시 
볼기를 치는 것이 우리의 법이다. “ ”그럼 할 수 있습니까. 볼기라두 맞겠습니
다. “ 서림이가  졸개들에게 형틀과 태장을 내놓으라고 분부할 때  꺽정이가 뒤
에서 ”여보 서종사, 볼기는 다 무어요? 그놈두 먼저 놈같이 목을 비라
구 내주우. “ 하고 말하여 그 선비도  마침내 여러 졸개들에게 끌려나가서 망나
니 구실하는 졸개 손에 머리를 넣게 되었다. 그  선비뒤에 봉산 선비 둘과 또 평
산 선비 하나가 차례로  잡혀와서 대개 먼저 선비와 어슷비슷하게 애걸복걸하다
가 모두 참혹한  죽음들을 당하였다. 정생원부터 여섯째 번에 잡혀온  사람은 한
생원인데, 졸개들이 먼저 다섯 사람과 같이 잡아  끓리려고 하니 한생원은 딱 버
티고 서서 앉으려 들지 아니하였다. ”빨리 끓혀앉혀라. “ ”빨리 굻려앉히랍신
다. “ ”네이. “ 호령 소리, 긴  대답 소리 바로 무시무시한데 한생원은 꿇려앉
히려고 애쓰는 졸개들을 뿌리치면서 ”양반이 죽으면  죽었지, 도둑놈 앞에 무릎
을 꿇지 않는다. “ 하고  소리질러 꾸짖었다. 막된 것들 여럿에 약한 선비 하나
라 한생원이 마침내 서 있지 못하고 주저앉았으나 한 무릎도 꿇지 않고 두 다리
를 앞으로  내뻗었다. 마른 정강이를  연해 걷어채여서 부러질  것같이 아프건만 
이를 악물고 다리를 오므려들이지 아니하였다. ”그걸 꿇리지 못한단 말이냐! “ 
하고 호령을 듣고 졸개들이 곧  다리를 분질러 접치려고 드니 한생원은 뒤로 벌
떡 드러누워  몸부림을 치고 발버둥질을  쳤다. 한생원이 한사코  꿇어앉지 않는 
것을 서림이가 보고  ”그대루 일으켜 앉혀놔라. “ 하고 분부하여  졸개들이 한
생원을 잡아 일으켜서 마음대로 앉게두고 한옆으로  물러섰다. ”양반 고집은 쇠
고집이라더니 너두 반명이라 고집이 무던하구나. “  서림이가 놀림조로 말을 하
니 한생원이 눈을  부릅뜨고 서림이를 똑바로 보며 ”이놈, 네가  누구를 놀리느
냐! 내가 너희 같은 도둑놈들에게  놀림받을 사람이냐! 너희가 나를 죽이기는 할
지라두 놀리지는 못한다. “ 하고 통통히 호령하였다. ”그렇게 기쓰구 발악하지 
말구 꿇어앉아서 빌어라. 빌면 목숨을  살려 줄 테니. “대체 빌긴 무얼 빌란 말
이냐? 우리가 너희에게 빌 일이 무어냐! 우리의 친구  하나가 꺽정이를 대적놈이
라구 또 서림이를 꺽정이의 창귀라구 말했다구 우리를 잡아다가 이 욕을 보인다
니 그래 꺽정이가 대적놈이 아니냐! 서림이가 꺽정이의 창귀가  아니냐? 그 말이 
무에 잘못이냐! 설사 그 친구의 말 삼가지 않은  것을 잘못이라구 하기루서니 우
리가 너희에게 빌 일이  무어냐? 그러구 너희 같은 무도한 도둑놈들에게 설려줍
시오 죽여줍시오 빌 사람이 누구냐? ”  한생원의 말이 끝나자마자, 꺽정이가 “
여보 서종사, 저  사람은 사내요. 저 사내는 내가 살려  보내겠소. 이때까지 잘못
했습니다, 살려줍시오 소리에 욕지기가 나서 못배기겠더니  인제 속이 좀 시원하
우. ” 하고 말하였다. 서림이가 한생원은 도회청 옆에 있는 허생원 약방에 보내
서 잠시 앉혀두게 하고 남아  있는 선비의 하나를 잡아오라고 하여 신진사가 한
생원 다음에 잡혀오게  되었다. 졸개들이 뜰 아래에 꿇려 앉히려고  하니 신진사
는 “에라 이놈들, 가만  있거라! ” 하고 졸개들을 제지한 뒤,  서림이를 치어다
보며 “비록 다 같은 죄수라두 사람 따라 대접이 각기 다르려든 황차 죄수 아닌 
사람을 천한 죄수루 대접하는 법두 있는가. 선비란  작위 없는 사람이나 작위 높
은 삼공육경고 등분없이 마주 겨루는 건 그대네두  잘 알 터이지. 조정의 공경과 
항례하는 선비가 적굴의  적괴와 항례를 못할까. 내가 무슨 말을  물으려거든 먼
저 계하수루  대접을 말라. 그렇지  않으면 천언만어를 묻더라두  한마디 대답할 
리가 없으니. ” 하고 여러 말을 늘어놓았다. 서림이가 먼저 한생원의 뻗대고 꿇
지 않던 것을  생각하고 “네 성이 신가라더니 참말 흉내내는  잔나비로구나. ” 
하고 말하였더니 신진사가 두  눈썹을 일으켜 세우고 “그게 무슨 소린고? 사가
살불가욕이라니 선비를 죽이면 죽이지 욕보일 법이 없는데 계하에 꿇려 욕을 보
이러 들고 또 언사에 하대하고  욕설까지 하니 그럴 데가 어디 있을까. 어, 고약
한지고. 나는 그대네가  적다이라두 서절구투 좀도적과 달라서  바른말을 바르게 
들을 도량들이 있을 줄루 믿었더니 내가 너무  지나치게 믿었군. ” 하고 준절하
게 책망하였다. “임자네를  우리가 상빈 대접하려구 뫼셔 온 줄  알았습나?  선
비 양반, 미안하지만 우리 눈에는 사람 같지  않구 초개같으니 칼루 치구 앗으루 
도리는 걸 알맞은 대접으루 알구 더 바라지 마소. ” 서림이는 농조로 말하는데, 
신진사는 정색하고 아래와 같은 긴말을 훈계하는  어투로 말하였다. “옛말에 양
상에 군자가  있고 녹림에 호걸이 있다  하니 그대네 중에 군자도  있을 것이요, 
호걸도 있을 것인데 그대네가 어찌하여 대당 소리들만 듣고 의적 노릇들은 하지 
않는가. 의적이 되려면  의로운 자를 도웁기 위하여 불의한 자를  박해하고 약한 
자를 붙들기 위하여 강한 자를 압제하고 또 부자에게서 탈취하면 반드시 빈자를 
구제하여야 할 것인데 그대네의 소위는 빈부와 강약과 의.불의를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박해하고 압제하고  탈취하되 인가에  불놓기가 일쑤요, 
인명을 살해하는 게  능사라 하니 이것이 그대네의 수치가 아닐까.  그대네가 전
일 소위를 다 고치고  의적 노릇을 해볼 생각이 없는가. 다  고쳐야 할 일이지만 
그중에도 지중한 인명을 무고히 살해하는 건 천벌을 받을 일이니 단연코 고치라
고. ” 서림이가  신진사의 말을 다 듣고 냉소하며 “우리가  선생님으루 받들어 
뫼실 톄니 입당하시겠소?”하고 물었다. “지금 말과 같이  꼭 나를 선생으루 대
접하겠소? 빈말루만 선생대접한다는 건  미덥지 못하니 꺽정이가 내 앞에 와 꿇
어앉아서 내말이면 팥으루 메주를  쑤래두 어기지 않겠다구 하늘을 가리켜 맹세
하면 입당해
보겠소.“ 서림이의  입당 권유도 진정이 아니지만,  신진사의 입당 허락도 역시 
진정이 아니었다. 서림이가 고개를 돌려 꺽정이를  보고 웃으면서 “저 선생님을 
어떻게 할까요, 놔보낼까요?” 하고 물으니 꺽정이는 고개를 끄덕끄떡하였다. 서
림이가 신진사를 약방으로 보내서 한생원과 같이 앉혀 두게하고 끝으로 봉산 선
비 하나 남은 것을 마저 잡아오게 하였더니 그 선비는 겁을 잔뜩 집어먹고 말문
이 꽉 틀어막혀서 죽인다고땅땅  어르는데도 살려달란 말 한마디 못하고 사시나
무 떨듯 떨기만 하였다.  “세상에 불쌍한 인생두 많다. 신진사 말마따나 천벌이 
무서우니 살려줄까?”하고  서림이가 혼자 말한 뒤  그선비도 갖다 앉혀 두라고 
약방으로 보내었다. 이리하여  평산·봉산 선비 여덟 사람 중의 세  사람만 살아
나가게 되었다. 세  선비를 탑고개로 내보낼 때 꺽정이가 한생원·신진사  두 선
비는 노수를 주어  보내라고 분부하여 김산이가 두자 상목 다섯  필씩 주었더니, 
한생원은 촌촌걸식하여  갈망정 도둑놈의 재물로 노수를  쓰지 않는다고 당초에 
받지 않고
신진사는 받아가지고 탑고개에  와서 호송하는 졸개들에게 행하로  다 주어갔다. 
평산·봉산 선비들이 잡히던 날부터 불과 사오 일 후에 종실 단천령이 탑고개에
서 잡혔다. 단천령은 태종 별자 익령군의 증손이요, 글 잘하고 거문고 잘하는 수
천부정의 손자니 이름은 억순이요, 자는 주경이다. 그 적형 함천 부수 억재와 형
제가 난형난제로 음률에 정통한 중에  형은 거문고를 잘 타고 아우는 피리를 용
하게 불었다. 함천의 거문고는 조부의 계적으로 청출어람이란 정평이 있었고, 단
천의 피리는 득음하기 어려운 거문고와 달라서 누가 불든지 소리가 나는 악기라 
곡조만 배워서 불면 고만 다 될 것 같지만,  사람의 입술과 피리의 혀가 서로 합
하여 둘이 하나 되어서 소리의 신통한 지경이 생기는 것은 가르칠 수도 없고 배
울 수도 없는 것이다. 단천령의 피리 부는  것을 들어보면 입김이 피리를 울려서 
소리를 내는 것  같지 않고 천지 안에 가득한  피리 소리가 조그만 피리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다가 다  들어가지 못하고 남아서 허공에 흩어지는 것  같았다. 단
천령의 피리가 용한 것을 밝히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못하겠지만, 단천령이 피
리 잘 부는 것을  아는 사람은 경향에 많았다. 무무한 시골  사람 하나가 단천령
을 함경도 단천군수로 알고 또 피리를 봄철에 아이들 부는 호드기로 알고서“세
상이 망할라니 별일이 다 많지.  호드기 잘 부는 걸루 유명한 원님두 다 있담.”
하고 말한 것이 굴러굴러 단천령 친구들 귀에 들어가서 단천령을 호드기 원님이
라고 조롱들  한 일까지 있었다. 익령군은  말한 것 없고 부천부정도  서자라 그 
가법이 적서에 대하여  까다롭지 아니하므로, 그 손자 육형제 중의  적출 삼형제
와 서출 삼형제가 모두 우애가 있었다. 그런  중에도 적출의 둘째 함천부수와 서
출의 둘째 단천령은  취미가 서로 합하여 우애가 특별하였다. 설산은  비록 각각 
하였으나, 의복차 음식감이  조금만 신기하여도 서로 나누지 않는 것이  없고 예
사 조석도 형제  겸상으로 회식하는 때가 많고  더구나 봄날 꽃달임이나 가을밤 
달구경 같은 운치 있는 자리에는 반드시 형제 모이어서 거문고와 피리 어우르는 
것을 인간에 다시 없는 즐거움으로 여기었다.  함천부수가 평안감사 유강과 친분
이 두터워서 이 해 늦은봄에 평양을 놀러가는데,  단천령은 그 형님을 뫼시고 갈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공교히 서울집을 떠나지 못할 사정이 있어서 못 갔더니 함
천부수가 평양서 돌아와서 그 아우를 보고 “기백이 너하고 같이 안 온 것을 매
우 섭섭히 말하더라. 기백이 이번에 나를 위해서  관하 각군의 음률 아는 기생들
을 일부러 뽑아올려다가 각기 소장으루 취재를 보이는데 영변 기생 초향이의 가
야고는 수법이 무던하더라.  초향이는 양녕대군께서 구난가를 지어  주셨다는 정
향이의 증손녀라나 종증손녀라구  하더라. 명기의 혈통이 달라서  지조두 있다더
라.“ 하고  이야기하여 단천령은 초향의  가야고를 한번 들어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영변까지  가볼 생각은 없었는데,  그후에 유감사가 그  형남에게 보낸 
편지 협지에 초향의 말이 함천  나리의 거문고를 들었으니 그 계씨 단천 나리의 
피리마저 들었으면 평생 원이 없겠다고 한다니 주경이를 권하여 한번 평양을 보
내라, 그러면 내가  초향을 불러다가 계씨에게는 천침까지 시켜서 그  계집의 평
생 원을 풀어주겠노라는  웃음의 사연이 있었다. 이 협지 사연을  보고 단천령은 
영변을 가볼 생각이 나서 속으로 벼르는 것이 한 달 두 달 밀려나오다가 왕세자 
관례가 끝난 뒤에  비로소 묘향산 단풍을 구경하기  겸 초향의 가야고를 들으러 
간다고 나귀 타고  하인 하나 데리고 영변길을 떠났었다. 단천령이  평양을 지날 
때 유감사를 찾아보았는데 유감사가  초향을 평양으로 불러온다고 하는 것을 이
왕 묘향산을 가는 길이니 고만두라고 굳이 사양하고 평양서 바로 떠나려고 하였
더니, 유감사가 붙들고  놓지 아니하여 수일 동안 묵어서 구일날  금수산 모란봉
에서 단풍놀이까지 하고  구일 다음날 떠나서 사흘만에 영변을 득달하였다.   단
천령이 전례서의 섭사  다니는 토관의 집에 하처를 정하게 되었는데,  주인 섭사
가 처음에는 행색이  초초한 것을 보고 자기  방에서 내다보고만 있더니 나중에 
서울 귀인인 줄 알고 하처방 앞에 와서  하정배로 문안을 드리었다. 단천령은 표
향산이 영변읍에서 백여 리 길인 줄 짐작 못하지 않건만 “묘향산이 예서 몇 린
가?“ 하고 묻는  것으로 말 시작을 내었다. “묘향산 구경  오셨습니까? 읍에서 
일백 삼십 리나 됩니다.”“약산은  가깝다지?”“네, 동대는 바루 지척이올시다. 
그러나 동대 구경은 꽃피는 봄철이 좋습니다.”“이  골에 가야금 잘하는 기생이 
있다지?”“있다뿐입니까. 여럿이올시다.”“가야금  잘하는 기생이 하나 있다던
데.”“아마 초향이 소문을 들으셨나 보오이다. 음률에 밝으시기루 유명한
 서울 양반 한 분께서 올 삼월에 평양감영에 오셔서 평안도 기생들을 취재를 보
이셨는데 그때 칭찬받은 기생이 그 여러  총중에 초향이 하나뿐이었답니다. 그년
이 그렇게  앙똥하구 방자합니다. 불러서는  안 옵지요만 그년의  집에를 뫼시구 
가면 가야고를  한번 들려 드리겠습니다. 그것두  여느 사람이 가서는 안됩니다. 
일껀 저 혼자  뜯다가두 손님이 가면 집어치우구 뜯지 않습니다.“  ”제가 막이 
하향 천기루  그렇게 방자하구 볼기를 안  맞을까?“ ”왜 안  맞겠습니까. 우선 
이번 사또께서  수청들라시는데 거역하다가 볼기를 두어  차례 톡톡히 맞았습니
다. 그년이 가야고만 잘뜯지 인물은 그리 출중나지  못한 까닭에 볼기 두어 차례
루 용서를 받았습지요.  만일 인물이 사또 눈에 들었더면 그년이  목숨이 붙어있
구서야 수청 안 들구 배기겠습니까.“  ”그년의 재주란 가야금뿐인가?“ ”시조
를 곧잘 지어서  부릅니다.“ 시조를 제가 짓는단  말이지?” “녜, 지어두 당장 
앉은 자리에서 지어 부르기를 곧잘 합니다.”  “방자한 것이 병통일는지 몰르나 
재주 있는 기집일세그려.” “그년의   지은 시조 하나 들어보시렵니까.” 창 밖
에 오동나무 까막가치  집이 되니 거문고 만들어서  예 곡조나 올려과저 어드메 
봉이 황 찾아 홀로  울고 예나뇨. 이 시조 하나만 들으셔두  그년이 얼마나 앙똥
하구 방자한 걸 아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년의 집은 어딘가?“ ”동문안이
올시다.“ ”동문안이 여기서  초간한가?“ ”그리 멀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들었네. 그런데 내가 점심을 설치구  와서 시장하니 저녁을 좀 일찍 
해줄 수 있겠나?“ ”녜, 곧  해 드리두룩 하겠습니다.“ 주인이 밖으로 나간 뒤
에 단천령은  초향이가 지음을 하나  못하나 한번 시험하여  보려고 궁리하였다. 
저녁은 재촉한 보람이  있어서 밥상을 일찍 들어왔다. 단천령이 밥을  먹고 상을 
물린 뒤 주인을 불러서 ”내가 어떤 사람을 찾아보러 갈 텐데 밤에 늦게 올는지
두 모르구  또 늦으면 자구 올느지두  모르니 기다리지 말게.“ 하고  말을 일렀
다.. ”삽작문은 닫아걸지 않구 지쳐  둘 테니 혹 늦게 오시거든 그대구 밀어 여
십시오.“ ”지쳐두지 말구 닫아 걸게. 내가 와서 들어올 수 없으면 열어 달라구 
소리함세.“ ”흔히 지쳐만  둡니다.“ ”나 위해서 지쳐 둘 건  없단 말일세. 그
러구 내가 자네에게 청할 일이 한 가지  있네.“ ”무엇입니까?“ ”내가 쓸데가 
있으니 헌 갓하구  헌 두루마기를 좀 얻어주게.“ ”그건  무엇에 쓰실랍니까?“ 
”쓰는 데는 나중에  말함세.“ ”갓이구 두루마기구 헌 걸수룩  좋습니까?“ 주
인이 물으니 단천령은 고개를 끄덕이었다. 주인이  나가서 부서진 제량갓과 때묻
은 두루마기를 가지고 왔다. 단천령이 훌륭한  창의를 벗고 꾀죄죄한 두루마기를 
입고 통량갓과 탕건과 망건을 벗고  탈망한 헌 제량갓만 쓰니 의복이 날개란 말
이 빈말이 아니어서 청수한 얼굴까지 갑자기  틀려 보이었다. 단천령이 구지레하
게 차리고 하인도 안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데 주인은 속으로 ‘저 양반이 어디 
가서 암행어사질을 할라나.’ 하고 생각하였다. 단천령이 하처에서 나설 때 햇발
이 다 빠지지  않았었는데, 동문안 초향이의 집을 물어서 찾아오는  동안에 벌써 
땅거미 다 되어서 저녁 연기 잠긴 속에  달빛이 나기 시작하였다. 싸리문 밖에서 
안의 동정을 살펴보니 안방에는  불이 켜 있으나, 불 있는 안방과  불 없는 건넌
방이 다같이 조용하여 마치 사람 없는 집과  같았다. 주인을 서너 번이나 연거푸 
부른 뒤에 ”순아, 밖에 누가 오셨나 부다.  나가 봐라.“ 여편네의 곱지 않은 말
소리가 안방에서 나더니 불  없는 건넌방에서 계집아이년 하나가 나와서 싸리문 
뒤에 와서 엉성한  바자 틈으로 내다보녀 ”어디서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지나가는 손이  하룻밤 자자구 왔다.“ ”우리  집에는 손님을 치지 않아요.“ 
”잘 데 없는  손이 하룻밤 재워 달라구 왔어.“ ”글쎄,  손님을 재우지 않아요.
“ ”네가 이 집 주인이냐?“ ”아니오.“ ”그럼  들어가서 주인께 말씀이나 전
할 것이지 네가 주제넘게 재운다 못 재운다  어 맨망스러운 년이로군.“ 하고 아
이년을 꾸짖을  때, 안방문이 열리더니 늙은  여편네 하나가 마당으로 내려왔다. 
”웬 양반이오?“ 하고 묻는 말소리로 아이년을 불러 내보내던 사람인 줄 알 수 
있었다. ”나는  지나가는 과객인데 하룻밤 자구  가자구 왔소.“ ”우리 집에선 
과객을 재우지  않소.“ ”과객 재우는 집이  어디 따루 있소?“  ”잔소리 말구 
얼른 다른 데나 가보우.“  ”나는 과객질하는 법이 여느 과객과 다르우.“ ”다
른 게 무어요? 모지라진 게요.“ ”내가 과객질  십 년에 어느 집에든지 가서 한
번 자자구 청한 뒤에는  갖은 구박을 다 받더라두 그 집에서  잤지, 다른 집으루 
옮겨 가 본 일이 없소. 이법을 내가 과객질 처음 나설 때 작정해 가
지구 십 년 동안  변치 않구 지켜 내려오는 것인데 어떻게  다른 집으루 가겠소.
“ ”임자의 작정한  법 임자나 알 게지 우리가  알 까닭이 무어요?“ ”그러니 
다른 데루 가란 말은 마시우.“  ”첫째 우리 집에는 손님 재울 방이 없소.“ ”
방이 없으면  봉당두 좋구 헛간두 좋소.  한뎃잠은 십 년 동안에  많이 자봤으니 
염려 마시우.“ ”우리  집은 여편네들만 사는 집이라 외간 남자를  봉당 헛간에
두 재울 수가 없소.“  ”삽작 안은 내근하다면 삽작 밖에서라두 자구 갑시다.“ 
”그건 맘대루 하구려.“  ”여기 바깥마당에서 자구 갈 테니 깔구  덮을 것이나 
좀 빌려주시우. 개가 아닌 바에  맨땅에서야 잘 수 있소.“ ”깔구 덮을 게 무어
요? 원앙금침 잣벼개 말이오?“  ”원앙금침이면 더욱 좋구 그만 못한 객침이라
두 좋소.“ ”미안하지만 우리  집에는 객침이 없어 못 빌리겠소.“ ”가을밤 찬
이슬을 맞구 밖에서 자라며 객침 하나 빌려주지 않는 그런 인심이 어디 있단 말
이오?“ ”누가 여기서 자랍디까. 다른  데루 가지.“ ”다른 데루 가란 말은 안
될 말이구 객침이  없으면 멍석이라두 한 닢 빌려주우.“ ”멍석을  빌렸다가 말
아서 걸머지구 가면 어떻게 하게.“  ”여보, 내가 멍석 도적이오? 그게 무슨 소
리요!“ 늙은  여편네가 혼잣말로 ”마당에서  잔다구 멍석 빌려 달라는  과객은 
생전 처음  보아.“ 하고 지껄이더니 얼마만에  헌 멍석 한 닢을  아이년과 마주 
들고 삽작 밖으로  나왔다. ”무거운 걸 들어다 주는데 가만히  보구 섰소? 어서 
와 받으우.“ ”거기 내던져 두면 내가 나중에 갖다 깔구 자리다.“ 늙은 여편네
가 홧증난 말소리로  아이년더러 ”여기 놔라.“ 말하고 싸리문 바로  앞에 멍석
을 내려놓았다. ”끼니때가  지났는데 군조석을 시키기가 미안해서  저녁은 굶어
자니 내일 아침 한 끼  잘해 주시우.“ ”녜, 진수성찬으루 아침 진지를 해 드리
오리다.“ 늙은 여편네가  비꼬아서 대답한 뒤 싸리문을 닫아 거는데  한동안 지
체하고 아이년을 앞세우고 들어갔다. 초향이의 집이  뒤는 바로 자그마한 동산이
요, 앞은  훨씬 나가서 행길이요, 오른편은  뒷산에서 뻗어내려온 언덕인데 언덕 
밑에 샘이 박히고 왼편은 김장  배추를 심은 채마전인데 채마전 지나서 남의 집
이 있고 언덕과 채마전 사이의 바깥마당이 멍석  여남은 닢 깔고 넉넉히 되는데, 
마당가에는 실도랑이 나고 도랑가에는  낙엽된 수양버들 서너 주가 띄엄띄엄 섰
다. 영변 도호부 성중이건만 자리가 궁벽하여 촌집이나 다름이 없었다. 단천령이 
헌 멍석을 대강 떨어서  넓은 마당 한중간에 갖다 깔고 앉았다.  품에 지니고 온 
학경골 피리를 손에 내들고 만지면서 ‘초향이가 과연 지음하는 기집이면 내 피
리 소리를 듣구 안 쫓아나올 리 없으렷다’  생각하고 혼자 웃었다. 학경골 피리
란 두루미 다리뼈로  만든 피리다. 단천령 집의 기르는 두루미가  개에게 물려죽
은 일이 있었는데,  그때 단천령이 두루미 다리뼈로 피리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
하고 시험조로 만들어 본 것이 뜻밖에 일품으로  좋았다. 채는 좀 짧으나 소리는 
제법 크게나고 소리의 울리는 맛이 대피리와 달라서 맑고도 가볍지 않고 강하되 
새되지 않았다. 단천령은 그 이후로 줄곧 학경골  피리만 불고 대피리는 별로 불
지 아니하였다. 학경골 피리를  여남은 개 좋이 장만하였는데, 이번에 가지고 온 
것이 그중에 소리 제일 잘 나는 것이었다.  단천령이 곧 초향이를 불러낼 생각으
로 피리를 다시 품에 넣고  일어나 도랑가에 가서 갓을 벗어 버들가지에 매어달
고 베개삼아 벨 만한  돌 하나를 들고 왔다. 찬 이슬이  내리는데 덮으려고 멍석
을 이불 개키듯 세골접이로 접치고  찬 돌을 그대로 베지 않으려고 멍석 밑에다
가 놓고, 그리고 또  두루마기를 벗어 착착 접어서 덧베개로 놓은  뒤에 마치 통
이불 속에  들어가듯 멍석 속에 들어가서  목 위만 내놓고 번듯이  누웠다. 달은 
하늘 복판에 가까이 와서 있고 흰구름장은 온하늘에  군데 군데 떠 있었다. 구름
이 밝은 빛 가리는 것을  달은 좋게 여기지 아니하여 여러 구름장들을 한달음에 
뚫고 나가려고 달음질을 치는 것같이 보이었다.  달이 구름장에 들어가면 희미하
고 나오면 환하여  희미하고 환한 것이 연해 섞바뀌어 변하였다.  단천령이 한동
안 달을 치어보다가 잠을 청하여 보려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멍석이 아래서 배
기고 위어서 누르고  또 벤 것이 거북하여 밤새도록  잠을 청하여도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가을 달밤의 임자는 벌레들이라 샘 둥천에도 벌레 소리, 채마전 머
리에도 벌레 소리, 도랑가와 싸리문 안에도 벌레 소리, 사방의 벌레 소리 요란한 
중에 별안간 가야금 줄 고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천령은 눈을 한번 떴다가 다
시 감고 귀를 기울였다. 줄 고르는 것이 끝나면 바로 계면조가 시작되었다. 가야
금 수단에 조화가 붙어서 사람의 말할 수 없는 애틋한 심정을 가야금 시켜 대
신 말하는 듯하였다.  백낙천을 울리던 심양강 위의 비파 소리가  저처럼 애원하
였을까, 단천령은 이런 생각을 하며 가야금 소리를  한참 듣다가 멍석 밖에 반몸
을 일으키고 앉아서  피리를 불어서 가야금 곡조를 맞추었다. 피리  소리와 가야
금 소리가 한참 서로 어울리는  중에 가야금 소리가 똑 그치어서 피리도 그치었
더니 얼마 아니 있다 가야금 소리가 다시  나서 피리도 다시 시작하였다. 그러나 
곡조가 다 끝나기 전에 가야금  소리가 또다시 그치고 이번에는 방문 여닫는 소
리가 나는 것 같고  또 사람의 신발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단천령은 초향이가 
피리 소리를 듣고 쫓아나오는 줄로  짐작하여 더 농락하여 볼 생각으로 얼른 피
리를 품에 품고 멍석 속에 얼굴까지 파묻고  드러누웠다. 삽작문 여는 소리가 나
고 짝짝 신발 끄는 소리가  바로 머리맡에 와서 그치고 한참 만에 ”손님?“ 하
고 부르는 것은  멍석 빌려주던 늙은 여편네의 목소리였다. 단천령이  자는 체하
고 대답을 아니하니 늙은 여편네가 연거푸 서너번 손님을 부르다가 멍석위에 손
을 대고  흔들었다. 단천령이 더는 자는  체할 수가 없어서 자다가  놀라서 깨는 
것같이 엉 소리를 지르고 멍석  밖으로 반몸을 일으키며 곧 늙은 여편네더러 ”
웬일이오? 밤중에 멍석을 쓸  일이 있소?“ 하고 물었다. ”손님, 지금 세피리를 
부셨소?“ ”세피리요? 아니오.“  ”지금 여기서 누가 부는 것  듣지두 못했소?
“ ”나는 자느라고 못 들었소.“ 단천령이  생파리같이 잡아떼니 늙은 여편네는 
입속말로 ”별 이상스러운 일두 다 많아.“ 하고  혼자 중얼거린 뒤 도로 안으로 
들어갔다. 한동안 좋이 지난 뒤에 가야금 소리가  다시 나는데 곡조도 화평한 평
조거니와 청이 먼저보다 훨씬 낮았다. 가야금으로  피리를 자아내서 들으려고 줄
소리를 짐짓  중이는 것이 환하였다.  단천령이 가야금을 맞추어서  피리를 불긴 
불되 멀리서  부는 것같이 들리도록 역시  청을 낮추었다. 소리만 다  내지 않지 
재주는 다내서 빠른  듯 가야금을 싸주고 느린 듯  가야금을 돋워 주되 장단 한 
점 빈 구석이 없었다. 가야금 소리 그칠 듯 그치지 않고 곡조를 다 마치었다. 곡
조가 끈난 뒤 단천령은 처음 누울 때와 같이 얼굴만 멍석 밖에 내놓고 드러누워
서 안에서 무슨  기척이 나려니 마음으로 기다리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싸리
문께 가벼운 신발 소리가 나는  것 같아서 단천령이 머리를 잠깐 치어드는 듯하
고 바라보니  아이년이 앞서고 그 뒤에  젊은 계집이 따라 나오는데,  키는 크도 
작도 않고 얼굴은 달덩이 같고  먼광이 나서 싸리문 앞에 달빛은 더 환한 것 같
았다. 이 계집이 초향인 것은  묻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단천령이 자는 체하려
느니보다도 바라보고 누워  있기 겸연한 생각이 나서 눈을 감았다.  신발 소리들
이 멍석 옆에까지 와서 그치고 소곤소곤 속살거리는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나더
니 아이년이 새된 목소리로  ”나리.“ 하고 불렀다. ‘탕건 안쓴 사람을 나리라
고 부르게 하니 피리 소리 듣고 짐작이  난 것이로군.’ 단천령은 속으로 생각하
며 눈을 떠보고 부지런히 일어  앉았다. ”네가 나를 깨웠느냐?“ ”녜, 나리 일
어나세요.“ ”나리가  웬 나리냐?“ ”우리 아씨께서  단천 영감 나리신  줄 다 
아셨세요.“ 아이년  말끝에 ”존전에서 아씨가  무어냐!“ ”아씨는 아씨거니와 
영감 나리가 무어냐?“ 하고 단천령은 껄껄 웃었다.  ”아무리 모르고 한 일이라
도 찬이슬 내리는데  한데 기시게 해서 죄만합니다. 어서 일어나서  안으로 들어
가시지요.“내 행식이 고만  탄로난 모양일세그려.” 단천령이 초향이를 보고 한
번 웃은  뒤 멍석자리에서 일어나서  툭툭 떨고 안으로  따라들어오는데, 베었던 
두루마기와 매어단 갓은  아이년더러 가지고 들어오라고 일렀다.  안방에 들어와
서 단천령이 먼저 앉은 뒤  초향이는 한 팔 짚고 절하고 옆에 와 앉아서 말끄러
미 얼굴만 치어다보고 말은 하지 아니하였다.  “맨상투바람에 꼴이 보기 우스운
가?” 단천령이 당치 않은  말을 물어서 초향이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고 “꿈
에라도 한번 보입고  싶던 나리께서 제 집에는  오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꿈만 
같습니다.” 하고 말하는데,  정이 말 밖에 넘치는 것 같았다.  “내가 이번에 겉
으루는 묘향산 구경  온다구 하구 실상은 자네의 가야금을 들으러  왔네.” “여
기를 언제 오셨습니까?”  “오늘 다 저녁때 들어왔네.” “들어오시는  길로 바
로 제 집을 찾아오셨습니까?”  “전례서 섭사 다니는 사람의 집에 사처는 정했
네.” “그런데 의관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길어서 봉적하셨습니까?” “아니 자
네게 와서 과객 행세하려구 폐포파립을 빌려가지구  왔네.” “나리께서 저를 농
락하셨습니다그려. 그러나 제가 만일 가야고 고만두고  일찍 잤던들 하룻밤 한데
서 떠실  뻔하셨지요?” “내가 한번 피리만  불면 자네가 자다가라두 쫓아나올 
줄 믿구있었
는걸.” “처음 계면조 부실 때는 본 사람이  없어서 어리석은 소견에 혹 신선이 
내려와서 저를 희롱하나  생각했었지만, 나중 평조 부실 때는 아이년이  울 틈으
로 망도 보았고 또  제 맘에 짐작도 나서 나리께서 오신  줄 알았습니다.” 이런 
수작들을 할 때, 늙은 여편네가 건넌방에서  건너와서 단천령을 보고 “초향이의 
어미올시다.” 하고 인사한 뒤 초향이더러 “나 좀 보자.” 하고 모녀 같이 마루
로 나갔다.  “약주 대접할라느냐?” “약주는  가서 받아오지만 안주를  어떻게 
하느냐?” 하고 공론하는 말을 단천령이 방에서  듣고 “여보게 초향이, 술을 줄
라거든 안주는 푸새김치라두 좋으니 따루 장만하지 말게.” 하고 말하였다. 초향
이가 단천령 옆에 와 붙어앉아서 공연히 소리내서 웃기도 하고 정답게 가만가만 
이야기도 하는  중에 초향이의 어미가  술상을 차려 들여보냈는데  술은 소주요, 
안주는 배추  겉절이와 마늘장아찌뿐이었다.  단천령이 소주를 즐기지  아니하나 
권에 못 이겨서 두어  잔 마신 뒤에 초향이더러 “자네두 한잔  먹게.” 하고 초
향이 손에 든 주전자를 달라고 하니 “저는  술을 접구도 못합니다.” 하고 초향
이는 주전자를 내놓지  아니하였다. “술이란 운에 먹는 음식인데 나  혼자 무슨 
맛인가. 나두 고만  먹겠네.” “안주 없는 술이나마 한두 잔  더 잡수시지요. 제
가 대작하는 대신으로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참말  자네가 시조를 잘 짓는다
데그려. 하나 지어 불러보게.” “잘 짓고  못 짓고 지으라시면 짓겠습니다.” 초
향이가 시조를 생각하느라고 얼마 동안  잠자코 있다가 “할 말이 없는 듯 많고 
많은 듯 없어서 시조가  안됩니다. 웃음거리로 들어줍시오.” 하고 말한 뒤 단정
하게 앉아서 시조를  불렀다. “상공은 금지옥엽 이 내 몸은  하향천기지기라 입
에 올려 일컫지는  못하오나 정에는 위아래 층이 없사올 듯하외다.”  “자네 수
고를 갚기 위해서  나두 되나마나 시조 하나 지어서 화답함세.”  “시조 부르실 
때 제가 가야고로 어우르까요?” “좋지, 장단이  혹 틀리거거든 가야고루 잘 싸
주게.” “그렇게 말씀하면  고만둘랍니다.” “자네가 어울러 주지 않구 고만두
면 나두 부르지 않구 고만두겠네. 그러지 말구 가야고를 어서 이리 가지고 오게.
” 초향이가 가야금을 가지고 와서  줄을 퉁기며 안족을 들이키고 내키고 한 뒤
에 단천령이 시조를  부르기 시작하였는데, 가야금 소리 곱게 흘러서  남청의 웅
장한 맛을 더 돋우었다.  그대의 높은 재주 귀에 저저 들었기로  그대를 보랴 하
고 천리  먼길 예 왔노라 그대가  싫다 않으면 같이 놀다가리라.  단천령이 시조 
삼장을 다 부르고 나서 “종장  사의가 자네 맘에 어떤가? 싫다구 하지 않을 텐
가?” 하고 물으니 초향이는 말없이 방그레 웃었다.  “싫다 않으면 여기서 자구 
싫다면 더  늦기 전에 가겠네.”  “멍석자리로 나가시겠단 말씀입니까?  멍석은 
벌써 거둬치웠습니다.” “나를  여기서 자게 할라면 내가 길을 와서  곤하니 좀 
일찍 자게해주게.” “녜, 그러십시오.” 초향이가  술상을 마루로 내보내고 가야
금을 벽에 갖다 걸고 방을 훔치고 자리를 내겨 까는 동안에 단천령은 피리를 품
에서 꺼내서 머리맡에  놓았다. 초향이가 자리를 다 깔아놓은 뒤  피리를 집어들
고 “이게 대가 아니고 뼙니다그려. 무슨 뼙니까?”  하고 물어서 “두루미 다리
뼈루 만든 겔세.” 하고  단천령이 대답하였다. “대피리보다 소리가 잘 납니까?
” “아까 들을 제는  대피리와 어떻든가?” “아까 들을 제는 대피리로만 알았
습니다.” “내일 가까이서 잘 들어보게.” “제가 지금 시조를 또 하나 부를 테
니 피리로  어울러 주시겠습니까?” “그리하세.”  이날밤 어인 밤가  어른님을 
뫼시도다 종없이 웃고 싶고 하염없이  울고 싶다 아마도 기쁨에 겨워 미칠 듯하
여라. 단천령이 종장 끝에 군장단까지 다 불고  피리를 입에서 뗄 때 “대피리보
다 소리가  더 청청하고 강한 맛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고  초향이가 말하니 
단천령은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고만 누우십시오.” “자네두  눕게.” “어
미를 잠깐 보고  와서 자겠습니다.” 초향이가 건넌방에 가서 별로  오래도 있지 
아니하였건만, 단천령은 그 동안에  벌써 잠이 어렴풋이 들다가 도로 깨었다. “
불을 켜놓구 자나?”  “아니요, 끄지요” 달이 서창으로 들이비쳐서  방안은 등
잔불 켯을 때보다 도리어 더 밝고 초향이의 얼굴은 등잔불 밑에서 볼 때보다 몇 
배 더 아름다워 보이었다. 이튿날 식전에  단천령이 초향이에게 부탁하여 아이년
을 하처 잡은 집에 보내서 의관을 바꾸어오게  하였다. 하처에 가야 별로 소간사
가 없는 까닭에  초향이의 집에서 아침을 얻어먹고 눌러앉아서 아악.향악.당악의 
각기 좋은 곳을  들어 이야기 하가다 이야기가  번지어서 장악원의 제도 변천을 
이야기하고, 세종대왕 때 관습도감사 박연이란 이가 악공을 교습시키던 방
법이 아직 남아서  조라치들 공부가 수월치 않은  것을 이야기한 끝에 “자네두 
서울 와서 장악원 같은 데 시사해 보면 어떤가?” 하고 물으니 초향이는 한숨만 
짓고 대답이 없었다. “자네가 서울 와 있어  본다면 내가 이번에 올라가서 주선
해 보겠네.” “서울  왈자들에게 부대낌을 받으러 서울까지 갈 맘은  아직 없습
니다. 장악원이나 내의원  같은 데 주선해 주실 생각을 마시고  나리댁에 시사를 
시켜 주십시오.” “내집에 와서 시사를 하겠다? 그것 좋은 말일세. 처음에 장악
원이나 내의원으루 올라왔다가  나중 내집으루 옮길 도리를  해보세그려.” “옮
겨 주실 것만 단단히 언약하시면 좋지 않은  시사라도 싫단 말 않고 가겠습니다.
” “내가 언약하기는  어렵지 않은데 우리 집에는  안에 호랑이가 하나 있어서 
자네가 옮겨왔자  하루를 배기기가  어려울걸.” “부인이 아무리  무서우시기로 
무지스러운 볼기야 때리겠습니까.  볼기 맞는 데 기생 노릇이 이에  신물이 납니
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맘을  먹으면 어디 다시 생각해 보세.” “언제쯤 올
라가시겠습니까?” “아직 작정 없네. 이왕 말하구 온  게니 일간 묘향산이나 갔
다와서 작정하겠네.” “묘향산을  보름 후에 가시면 저도 뫼시고 가겠습니다.” 
“자네가 같이  간다면 오늘이라두 가구 싶은데  보름 전에는 못갈일이 있나?” 
“보름 점고를 맞아야지요.” “점고 때문에 못 간단  말인가? 탈하면 고만 아닌
가.” “제가  사람이 고약해서 남더러  사폐 보아달라기도 싫고  또 보아달래야 
보아 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초하루  보름 점고는 몸져 누워  앓지 않으면 
빠지지 않고 치르고  그 대신 여느때는 관가에를 별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
내일이 보름날 아닌가?” “아리 모렙니다.” “그러면 글피 떠나보세.” “무얼 
타고 가십니까?”  “나는 타고 온 나귀가  있지만 자네 탈  것을 준비해야겠네. 
자네 말탈 줄 아나?” “올  봄에 중씨 나리께 보이러 갈 때도 말타고 갔었습니
다.”“그럼, 내가  삯마라두 얻어놓음세. 자네 가야고가  단벌인가?” “왜요?” 
“여벌이 있으면 갈 때 하나 가지구 가세.”  “가야고를 가지고 가자면 지고 갈 
사람이 따로 있어야지요.”  “내가 데리구 온 하인이 있으니까 그놈  지워 가지
구 가지. 대체 거추장스러운 악기는 이런 때  재미없는 까닭에 나는 거문고를 안 
배우구 피리를 배웠네.”  “어디를 가시든지 하인들을 데리구  다니시는데 거추
장스러운 악기면 어떻습니까.  거문고가 거추장스럽다고 안 배우셨단  말씀은 공
연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송장 묶은 거  같은 것을 길에 뻗지르고 다니기가 
무에 좋은가?” “그럼 이번에 가야고를 안 가지고 갈랍니다.” “이 사람아, 골
내지 말게. 거문고나  가야고가 그래 피리만큼 간단스러운가, 자네  말해 보게.” 
“퉁소 단소 젓대  생황 등속이 다 간단스럽지요. 어디  피리뿐입니까?” “그렇
지. 그런데 그중에서 피리가 제일 간단스럽단 말이야.” “제일 간단스러운 것이 
제일 좋은 것은  아니겠습지요.” “제일 좋은 것이라구 억지를 쓰고  싶으나 자
네가 가야고를 안  가지구 간다구 뻗댈까 겁이 나서 고만두네.”  “참말로 간단
스러운 걸 취해서 피리를 배우셨습니까?” “거짓말을 할  리가 있나. 우리 형님
이 거문고를 같이 배우지구 하시는 것을 나는  굳이 싫다구 하구 단소를 배웠네.
” “단소도 잘  부십니까?” “단소두가 아니야. 단소를  피리보다 더 잘 불지. 
그렇지만 세상에서 야속하게 안 쳐주니 할 수  있나. 우리 이야기는 고만하구 자
네 거추장스러운  악기와 내 간단스러운  악기를 한번 어울려  보세.” 초향이가 
웃고 일어나서 가야금을 가지고 와 앉아서 줄을 골랐다. “이거 보게. 어디 가지
구 다니기가 거북한 건 차치물론하구 집안에서두  뻗쳐놓을 자리가 있어야지, 줄
을 번번이 골라야지, 이것이 얼마나 거북살스럽구 번폐스럽구 거추장스러운가.” 
“가야고 타박은 고만하시고  무엇이든지 먼저 내세요.” “향악  영산이나 한바
탕 해볼까?” “좋지요.” 이야기가 그치며 바로 피리  소리와 가야금 소리가 어
울러 났다.
  서로 좋아하는 남녀가  세상 시름을 다 잊고 밤낮  웃고 지날 때 이틀 사흘은 
눈깜짝할 사이나 다름이 없엇 어느덧 보름이  지나 열엿새날이 되었다. 단천령이 
초향이를 데리고 향산 구경길을  떠나는데 단천령은 나귀를 타고 초향이는 집부
담 삯마를 타고 단천령의 하인은  길양식 자루와 술병을 짐 만들어 지고 가야금
은 삯마 마부가 짊어졌다. 유산 나선 길을  조여갈 까닭도 없겠지만 수석이 좋다
고 쉬고 단풍이 곱다고 쉬고 곰배곰배 쉬어서 일백삼십리 길을 사흘에도 해동갑
하여 왔다. 그 날 보현사에서 자는데 중들이  단천령을 서울 양반인 줄 알면서도 
색다른 동행이 있는  까닭으로 씁씁히들 대접하였다. 이날 밤에 달이  밝은데 청
정법계라 달빛도 깨끗한지 천지간에 티끌 한 점이  없는 것 같았다. 단천령이 초
향이를 데리고 밖에 나와 거닐다가 하인을 불러서 가야금을 가져오라 이르고 만
세루로 올라왔다. 그림폭  같고 꿈자취 같은 가까운 봉우리와 먼  묏부리를 돌아
보는 중에 가야금이 와서 초향이는 달빛이 비치는 곳에 앉히고 단천령은 난간을 
의지하고 서서 한 곡조를 어울렀다. 가릉빈가의 묘한 소리가 시방에 두루 찬 듯, 
균천광악의 희한한 곡조가 구소에서  내려오는 듯 세상에서 흔히 듣는 풍류소리
와 다른 것은 누가  듣든지 짐작할 수 있었다. 중들이 하나씩  둘씩 밖으로 나왔
다. 이때 보현사 선방에서 조실을 맡아보던 지식  있고 도덕 있는 청허당 휴정선
사까지 밖에 나서서 바라보았으니 젊은 중들이 누 아래 모여서서 치어다보는 것
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향산의 이날 밤  달은 오로지 단천령과 초향이를 위하여 
밝은 듯 하였다.
  초향이가 처음에 향산 구경 올 것을 작정할 때 저의 삼종조가 향산 중으로 당
호가 수월당인데, 수월당  노장스님이라고 하면 향산 안에서 모를 리  없다고 하
더니 단천령이 보현사에서 젊은 중  하나에게 물어본즉 과연 잘 알아서 그 노장
이 십여 년전에는 큰절 주지로  있었으나 지금은 큰절의 번뇨한 것을 피하여 내
원암에 가서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향산에  들어오던 이튿날 단천령이 초향이와 
같이 내원암에 와서 그 노장을 만나보니 나이 근 팔십 된 늙은이가 근력이 정정
하여 기거동작이  젊은 사람과 거의  다름이 없었다. 초향이는  내원암에 머물러 
두고 단천령은 그 노장의 상좌  둘에서 큰 상좌를 지로승삼아 데리고 고적 구경
을 나섰다. 쓰러져 가는 암자와 다 쓰러진  암자가 도처에 눈에 뜨이어서 단천령
이 상좌중더러 “암자들을  퇴락하게 내버려두구 중수 않는 것이 웬일이냐?”하
고 물으니 “와서 있을  중두 없는데 물역을 들여서 중수해 놓으면 무어합니까?
”하고 상좌중은 대답하였다.
  “보현사에 매인  암자가 수에 모두 몇이나  되느냐?” “예전부터 전해 오는 
말은 묘향산 안에  팔만구 암자라구 합니다.” “예전 팔만구 암자가  지금 몇이
나 남았느냐?” “지금두 퍽 많습니다.” 현재 암자  수는 상좌중이 똑똑히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삼성대를 와서 보고 앉아 쉴 만한 자리를 살피는 중에 단천령이 한 곳에 와서 
깨어진 기왓장과  삭은 재목이 풀 속에  널려 있는 것을 보았다.  “여기두 전에 
암자가 있었구나.” “녜. 여기  있던 암자는 이름이 삼성암인데 전에 이인이 한 
분 와서 기셨답니다.”  “전이라니 팔만구 암자 있을 때  말이냐?” “아니올시
다. 몇십 년밖에 안되었습니다.”  “그 이인이 지금은 어디 있느냐?” “돌아가
셨습니다.” “그래 이인을  너두 봤느냐?” “소승은 세상에 나기두  전에 돌아
가서 못 뵈었습지요만, 소승의 스님은 이인과 친하게 지냈답니다.” “무엇이 여
느 사람과 달라서 이인 소리를  들었다더냐?” “도술이 갸륵하더랍니다.” “갸
륵한 도술을 어디 들은  대루 이야기 좀 해봐라.” “이인의 일을  스님이 잘 아
니 스님에게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삼성대에서 내원암으로 오니 해가 거의 승석때가  다 되었었다. 구경을 따라다
니던 하인과 마부는 전날 묵던 큰절에 내려보내서 묵게 하고 단천령은 초향이과 
함께 내원암에서 저녁  대접을 받고 자게 되었는데  석반들을 먹고 나서 노장과 
셋이 솔밭같이 앉아서 한담할 때 단천령이 삼성암 이인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그전에 삼성암에 있던 이인은  중이로되 법호두 없구, 당호두 없구, 속인 적 
성명 이천년이란 것두 역시 본성명이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연산주 임술년 소승
의 나이 스물한 살 적일입니다. 이 해 오월에  소승의 은사 스님이 우연히 난 병
환이 대단 위중해서 소승이 영변읍내루 의원을 청하러 가게 되었는데 해는 길지
만 읍내를 당일에 들어가자면 첫새벽 떠나야 하는 까닭에 잔입으루 절에서 떠나
서 한 삼십 리  가량 새벽길을 걷구, 가지구 가던 백설기루  아침 요기를 하려구 
샘물을 찾아갔더니, 중 하나가  샘 둥천에 앉아 있다가 소승을 보구  너 인제 오
느냐 하구 마치 소승을 기다리구 있던 사람같이  말을 합디다. 머리를 깍은 것은 
중이나 수염은 속인같이 길게 기르구  꿈에도 본 일이 없는 사람인데 그렇게 말
을 하니 괴상하지  않겠습니까. 하두 괴상해서 소승은 대답두 못하구  뻔히 보구
만 있었습니다. 그  중이 빙글빙글 웃으면서 네가 지금 영변읍내  의원 아무개를 
청하러 가지 않느냐  하구 의원의 성명까지 알구 말합디다. 대체  누구신데 어떻
게 그렇게  소상히 아시느냐구 소승이 물었더니,  그 중이 묻는 말은  대답 않구 
내가 지금  너의 스님의 병을 봐주러  가는 길이니 나하구 같이  가자. 영변읍내 
의원은 가서 청해야 오지두 못하구  오더라두 그 의술 가지구는 병을 고치지 못
한다 하구  말합디다. 그 중의 외모만  보더라두 허튼말을 할 사람  같지 않아서 
소승이 그 중을 데리구  도루 절루 왔었습니다. 그 중이 와서  스님의 맥을 보구 
약을 쓰는데 첫번 약 서너 첩에 대세를 돌리구 나중 약 한 제에 그 위중하던 병
환이 운권청천이 되었었습니다.  소승의 스님두 그 중의 내력을 몰라서  여러 가
지루 물어봤지만 그 중이 차차 알라구 하구  잘 말하지 않습디다. 하여튼 중병을 
고쳐 준  은인이니까 간단 말하지 않는  것을 가라구 할 수야  있습니까. 그래서 
한 달 두 달 같이 지내는 중에 스님이 그 중에 어떻게 반했던지 다른 데루 간다
구 할까 봐 겁을  내게 되었었습니다. 대소사 무슨 일이든지 스님이  그 중의 훈
수를 받게 되었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일이 여의하게 되구 그  말을 안 들으
면 일이 낭패보게 되니 그런 훈수를 누가 안  받겠습니까. 일 년 남짓 지난 뒤에 
그 중이 강서 구룡산으로 간다구  하는 것을 스님이 향산에 있으라구 굳이 붙들
어놓구 그의 소원대루 삼성암에 혼자  와서 있게 하구 지필묵 가지구 책 저술하
구 삼십여년 동안 있다가 소승의 스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 그 중은 처음에 간다
구 하던 강서  구룡산으루 갔는데 나중에 들으니  가던 이듬해 기해년 그곳에서 
이 세상을 떠났답디다. 그  중이 여기 있는 동안에 속인 제자  두 사람을 거두어 
두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은 그 스승만 못지않은 이인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내
력은 소승이 잘 압니다.  그 사람은 본래 함흥 백정 양주팔인데  이 장자곤 이찬
성의 처삼촌이구 나중 동소문 안에 무명씨 갖바치루 조 광자조 조대사헌의 친구
이었답니다. 그 사람이  기해년에 강서 구룡산에서 자기 스승의 종신하구  그 길
루 여기 와서  소승의 제자루 삭발했었습니다. 소승에게서 얼마 동안  있다가 경
산으로 간다구 가더니 죽산 칠장사에 가서 있었다는데 승속간에 생불 대접을 받
다가 사오 년  전에 서천극락으루 갔답디다. 지금 세상에서 해서  대적이라구 떠
드는 임꺽정이가 그  사람의 제자랍디다. 임꺽정이가 그 사람의 재주를  다 배웠
으면 호풍환우두 할는지  모르구 둔갑장신두 할는지 모르구  백리 천리 밖 일두 
앉아서 환히 내다볼는지  모릅니다. ” 노장의 긴 이야기가 끝난  뒤에 단천령은 
노장을 보고 “그런  줄 몰랐더니 대사가 도둑놈의 대선생이군. ”  하고 웃음의 
소리를 하였다. 초향이가 단천령을 보고 “임꺽정이  있는 데가 청석골이라니 청
석골이 어딘가요? ” 하고  물으니 단천령은 노장에게 웃음의 소리 하던 심경이 
아직 변치 아니하여 “그건 왜 묻나. 꺽정이를  찾아보러 갈 생각이 있어? ” 하
고 실없은  말을 하였다. “내가 왜  도둑놈을 찾아보러 다니는  사람인가요? ” 
“도둑놈 찾아보는  사람이 어디 따루 있나.  누구든지 찾아보면 찾아보는 게지. 
” “나리도 꺽정이를 더러 찾아보셨습니까? ” “아직  못 찾아봤네. 자네 앙갚
음을 해서  속이 시원한가? ” “말씀을  함부루 해서 죄송합니다.  ” 초향이의 
사과하는 말을 단천령은  적이 웃으며 듣고 나서  “꺽정이의 소문이 굉장한 건 
알 수 있네.  영변 구석에 있는 자네가 다 청석골  이름을 아니. ” 하고 말끝을 
조금 달리 돌리었다.  “우리 골 사또께서 서울로 올려보내시는 봉물을  두 번이
나 연거푸  꺽정이에게 뺏겼답니다. 그래서 청석골  이름을 들었습니다. ” 하고 
초향이가 말한 뒤에 노장이  단천령을 보고 “꺽정이 까닭으루 서관대로가 막히
다시피 될 때가  많다지요? ” 하고 물었다. “아주 막히기야  할까만 도로에 작
경이 부절히
 있으니까 막힌단  소리두 날 만하지. ”  “꺽정이가 평안도루 온단  소문을 혹 
들으셨습니까? ” “그놈이  잡힐 듯하면 강원도루두 내빼구 평안도루두 내뺀다
구 말들 하드군. ”  “일시 피신하려 오는 게 아니라 아주  붙박여 있으러 온단 
소문을 혹 들으셨느냔 말씀이올시다. ” “별반 그런 소문은 못 들었어, ” “꺽
정이가 아마 평안도루  올 모양인갑디다. ” “대사가 무슨 짐작이  있나? ” “
짐작으루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천 향풍산 정진사  중 하나가 향일에 와서 이
야기를 하는데 꺽정이가 성천, 양덕 접계 두메  속에 와서 적굴을 만든단 소문이 
있어서 그 중이 일부러 무인지경 산속을 찾아들어가 본즉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새루 지어놨더랍니다. 그놈이 필경 평안도루 옮겨올라기에  성천 산중에 와서 그
런 큰집을 지었을  것 아닙니까. ” “꺽정이가 청석골을 버리구  성천 두메구석
으루 올 리가 있다구. ” “그 중이 꺽정이를 먼빛으루 보기까지 했다든걸요. ” 
“그것이 어느 달 일이라든가? ” “지난달이랍니다. ”  “그 중이 절에서 추석
을 쇠구  나섰다니까 아마 이십일경이겠지요.  ” “그게 꺽정이가  아니구 다른 
도둑놈일세. 꺽정이는 지난달 이십일경에 서울 장통방에  와 파묻혀 있다가 잡힐 
뻔했다는데 성천 와서 집 역사를 시키다니 날아다닌대두  안될 일 아닌가. ” “
그놈이 분신술을  하는지두 모르지요. ”  “꺽정이가 이인의 제자란  말은 오늘 
저녁에 대사에게 처음 들었지만 제가  만일 앞일을 미리 안다면 기집 셋을 잡히
게 가만 둘 리가 없구, 둔갑장신을 한다면  밤중에 오간수 구녕으루 도망할 리가 
없을 것일세. 장통방에서  실포한 때 꺽정이는 오간수 구녕으루 빠져  내빼구 서
울 안에 있던 꺽정이 기집 셋만 잡혔다네.  그러니까 꺽정이가 다른 재주는 가졌
는지 마치  몰라두 분신하는 재주를 가진  것만은 나두 잘 아네.  ” “꺽정이가 
분신술 부리는 걸 보신 일이 있습니까? ” “내 눈으루 본 일은 없지만 본 이나 
진배없지. 꺽정이가 지금  조선팔도에 없는 데가 없으니 분신 안  하구야 그렇게 
도처에 있을 수가  있나. 그런데 분신하는 방법은 별게 아니구  다른 도둑놈들에
게 이름을  빌려주는 거야. ” 하고  단천령이 웃으니 “꺽정이 같은  큰 도적은 
좀도적들에게 이름을 도적맞는 일두  더러 있겠지요. ” 하고 노장도 웃었다. 밤
에 잘 때 단천령과 노장과 노장의 상좌들은 한 방에서 같이 자고 초향이만 혼자 
딴 방에서 자게 되었다. 초향이가 자려고 불을  끄고 누웠는데 우수수 하는 바람 
소리에 공연히 처량한 생각이 나서 잠을 못  이루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였다. 
우수수 소리는 그치고  우 하는 소리가 멀리 들리다가 차차로  가까이 들려왔다. 
그 소리를 어찌 들으면 급한  비가 몰려오는 듯하나 남창에 달이 밝으니 빗소리
가 아니겠고 또 어찌 들으면 큰 물결 밀려오는 것 같으나 첩첩한 산중에 물결소
리 날 까닭이 없다. 높은 산 위에서  바람이 불어내려오거니 짐작하고 듣는 중에 
용에게는 구름이 따르고  범에게는 바람이 따른단 말이  문득 생각나며 곧 범이 
올까 무서워서 여럿 자는 방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변스럽에 여길 
듯 고만두었다. 방  뒤에서 별안간 버스럭 소리가  났다. 범이 와서 뒷벽을 발로 
허비는 것만  같아서 몸이 으쓱하여졌다.  버스럭 소리도 수상한데다가  벽의 흙 
떨어지는 소리가 완연히 들리니  범이 아니면 무엇이랴. 쥐랴. 쥐장난 같으면 우
르르 몰려다니는 소리도  나고 찍찍 소리도 날  터인데 한결같이 버스럭 소리만 
날 뿐이고 버스럭  소리는 벽을 허비는 것이 흙  떨어지는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틀림없이 범인 모양이다.  계집 사람이 암자에 와서 자는 것을 산신령이 
부정하게 여겨서 잡아먹으라고  밤을 보냈는가 보다. 인제는  변스럽게 여기거나 
말거나 여럿 자는 방으로 가려고  일어 앉기까지 하였으나 방문을 열고 나갈 수
가 없어서 방에 들어와서 잡아먹으려거든 잡아먹어라 마음을 먹고 도로 드러 눕
는데 치나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몸을  한줌 되도록 오그렸다.  팔다리가 떨리기 
시작하더니 온몸이 덜덜덜  떨리었다. 이를 악물고 떨지 않으려고 하나  점점 더 
떨리어서 오장육부가 다  떨리었다. 얼마를 떨었든지 떨다 떨다 지쳐서  잠이 들
었다가 새벽 종소리에  놀라 깨었다. 툇마루 구석 신중단 앞에서  예불하는 소리
가 나서 정신을 차리고 일어 앉아 방문을 조금 뻐기고 내다본즉 지새는 달빛 속
에 흰  장삼 입은 상좌가 너푼너푼  절을 하고 있었다. 범이  중으로 변화한다는 
옛날 이야기가 생각나서  뻐기었던 방문을 얼른 도로 꼭 닫았다.  예불이 끝나고 
툇마루에 발소리가 날 때 참말 상좌인가 아닌가  시험하려고 “스님, 손님 다 일
어나셨소? ” 하고 물어보니 “녜, 다 일어나셨습니다. ”하는 대답이 작은 상좌
의 목소리가 분명하였다. 초향이가 비로소 마음이 놓이어서 여럿 있는 방
으로 건너가는데 그래도  툇마루와 마루를 지나갈 때  마당 쪽을 바라보며 바쁜 
걸음을 걸었다. “벌써 일어났느냐? ” 노장이 묻고  “잘 잤나? ” 단천령이 묻
는 것을 초향이는 대답도 변변히  아니하고 노장을 보고 “밤에 무어 오지 않았
세요? ” 하고 물었더니 “오긴 무에 온단  말이냐. ” 노장의 대답이 하도 무뚝
뚝하여 밤 지난  이야기를 하려다가 말았다. 구경을 다하는 동안  자기 암자에서 
묵으라고 노장이 말하고 단천령은 노장의 말을 좇아서 일이일간 더 묵으려고 하
는데 초향이가 노장과  단천령을 번갈아 보며 “저는 오늘 나가겠세요.  ” 하고 
말하여 “자네 혼자 먼저 가겠단 말인가. 같이  왔다가 그런 법이 어디 있나? ” 
하고 단천령이 책을 잡았다. “나리께서 구경을 더  하신다면 저 혼자 먼저 가겠
세요. ”  “갑자기 웬일인가? ” “산에  다니시는데 따라다닐 수도  없고 혼자 
암자에 떨어져 있기도  싫고 그래서 먼저 가겠단 말씀입니다. ”  “그러면 같이 
가자구 말을 해야 옳지 않은가. ” “그럼 같이 가세요. ”“엎드려 절 받길세그
려. 아무리나 그래  보세. ” 단천령은 묘향산을  다시 오기가 쉽지 못하여 이왕 
온 길에 명승고적을 대강 고루 구경하고 갈 마음이 있었으나 초향이에게 끌려서 
고만두고 가기로 하였다.  초향이가 단천령을 따라 묘향산에 간 동안에  영변 진
관에 매인 태천현감과 운산군수가 영변 와서  모이었었다. 을묘년에 호남에만 시
행한 제승방략의 분군법을 그  뒤에 각도에 다 시행하여 진관제도가 유명무실하
게 되었으나  영변은 다른 진관과 달라서  대도호부사가 병마절도사를 겸임하는 
까닭에 진관에 매인  각읍 수령을 절제하는 것이 그전과 다름이  없었다. 태천현
감은 새로  도임하여 절도사에게 현신하러  온 길이요, 운산군수는  군오에 관한 
중요한 일을 절도사에게 취품하러 온  길인데 우연히 한때 와서 모이게 된 것이
었다. 영변부사가 운산군수와 태천현감을  위하여 운주루에서 자그마하게 잔치를 
하는데 주식은 전주국에서 진배하고  기악은 전례서에서 지휘하였다. 운산군수가 
기악을 듣다가 “초향이의 가야고는 사또께서 두구 혼자만 들으십니까? ” 하고 
웃음의 말로 초향이의 가야금 듣기를 청하여 부사가 행수 기생을 불러서 “초향
이는 어째 안 왔느냐. 그년 또 병탈이냐? ” 하고 물었다. 행수 기생은 초향이를 
못 잡아먹어 뭄살하는 계집이라 “그년이 어떤 서울 양반을 따라서 향산으로 유
산하러 가는데 말미도 받지 않고 갔답니다. ”  고 초향이의 뒤를 발기집어 내었
다. “무엇이야. 말미두  안 받구 출타하다니 그런  발칙한 년이 어디 있단 말이
냐? ” 부사가 화를 내서  말하고 곧 좌우에 뫼셔 섰는 통인들을 돌아보며 “수
노 불르래라. ” 하고  일러서 긴 대답 소리가 난 뒤 수노가 누  아래에 와서 대
령하였다. 부사가  누 아래를 내려다보며  “관기가 수유 않구  임의루 출타해두 
좋으냐? 그러다가는 어디루 도타해두 모르겠구나.  초향이란 년이 향산을 갔다니 
지금 곧 관노를 보내서 내일 해전으루 잡아오게  해라. ” 하고 수노에게 분부를 
내리었다. 부사 자리에  가까이 앉았던 판관이 “초향이를 데리구 간  서울 양반
이란 게 누군가  알아보시지요. ” 하고 말하여 부사는 수통인더러  서울 양반이 
누구인 것을 알아올리라고 일렀다. 수통인이 주  아래 내려가서 여러 토관들에게 
물어보는 중에 전례서 섭사가 종실 단천령이라고  말하여 주었다. 수통인이 올라
와서 그대로 아뢰니  부사는 듣고 판관을 돌아보며 “단천령이 어느  틈에 왔군. 
” 하고  말하였다. “온단 선성이 있었습니까?  ” “향일 관찰사  사또 하서에 
단천령이 가거든 극진 보호하란 부탁이  기셨는데 왔단 말이 없기에 아직 안 온 
줄만 알았네. ” “단천령이 음률을 잘 안다지요? ” “피리를 썩 잘 분다데. ” 
“초향이란 년이 지음해 주는 데 반해서 향산까지  쫓아간 겝니다 그려. ” “그
런 게지.  ” “단천령의 안면을  보아주시자면 초향이를 잡아오한  분부는 도루 
거두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판관의 말을 부사는 옳게  듣고 수노를 다시 
불러서 초향이가 오거든  치죄할 셈 잡고 잡으러  보내진 말라고 고쳐 분부하였
다. 운산군수가  단천령과 친분이 있어서  부사를 보고 “단천령  주경이가 여기 
오긴 의왼데요. ”  하고 말하니 “단천령과 친하시우?  ” 하고 부사가 물었다. 
“녜, 친합니다. ” “그럼 여기서 며칠  묵어서 만나보구 가시구려. ” “한만하
게 유산 나간 사람을 언제 올 줄 알구  기다립니까. ” “친한 친구 사이면 운산
까지 가기가 쉽겠소. ” “그 사람이 맘이  내키면 천리두 멀다 않구 찾아다니지
만 맘이 내키지  않으면 과문불입두 예사루 합니다. ” 운산군수와  부사 사이에 
이런 수작이 있은 뒤 판관과 태천현감이 번갈아가며 단천령의 인물을 물어서 운
산군수는 단천령이 시속사람과 다른 것을 한동안 입에 침이 없이 이야기
하였다. 단천령과 초향이가  묘향산에서 돌아온 지 이삼일 된 뒤  단천령이 초향
이 집에 와서 있을 때  사령들이 어깻바람나게 들어와서 바로 안방문을 잡아 열
어젖히다가 방안에 양반 한 분이 앉은 것을  보고 무춤하고 뒤로들 물러섰다. 초
향이가 내다보며 “웬일들이오? ” 하고 물으니 사령 하나가 초향이더러 나오라
고 손길을 쳤다. “글쎄  무슨 일이오? ” “무슨 일인 걸  알아야 나오겠나? 사
또께서 자네를 보자구 부르시네. 어서 이리 나오게. ” 초향이의 어미가 마침 동
네집에 간 것을  아이년이 쫓아가 불러서 허둥지둥 밖에서 들어왔다.  사령 하나
는 눈 한번 흘낏 떠보고 아무 말도 않고 초향이와 말하던 사령은 인사성으로 “
어디 갔다오시우? ” 하고 물었다. “자네들 오래간만일세. 초향이가 또 무슨 일
에 걸렸나? ”  “그런가 보우. ” “저 건넌방으루들 들어가서  이야기나 좀 속
시원하게 해주게. ” “언제 들어앉구 있겠소.  얼른 가야지. ” “아무리 잡혀가
더라두 옷이나 좀  바꿔 입어야지 이 사람들아.  ” “얼른 바꿔 입으라시우. ” 
“그 동안 잠깐이라두  좀 들어앉게그려. ” 사령들끼리 두어 마디  수군수군 지
껄인 뒤  초향이 어미의 뒤를  따라서 건넌방으로들 들어갔다.  초향이의 어미가 
사령들을 앉혀놓고 밖에 나와서  아이년더러 술을 사오라고 이르고 안방에 들어
와서 단천령을 보고 “나리께서 어떻게든지 잡혀가지  않두룩 해주시우. ” 하고 
말하였다. “부사가 잡아오란다는 걸 내가 무슨 수루  잡혀가지 않두룩 하나? ” 
“서울 양반님네가 그만 수두 없단  말씀이오? ” “자네 말 따라 내가 서울 양
반이니까 서울 가면 양반 자세를 더러 할 수  있지만 영변서는 하는 수 없네. ” 
“저애가 지금 잡혀가면 등으로  업어 내올른지 거적으로 말아 내올른지 생사가 
어찌 될지 몰라요.  그게 뉘 탓인데 뱃심  좋게 실없은 말씀을 하구  기시우? ” 
초향이의 어미가 단천령에게 곧 시비를 하러 대드는데 초향이가 눈살을 잔뜩 찌
푸리고 “어머니 왜 이러오? ” 하고 나무랐다.  “왜 이러다니 내가 못할 말 했
느냐? ” “어머니는  건넌방에 가서 술대접이나 하시우. ” “네  일로 온 사람
이니 네가 가서 대접하렴.  ” “어머니 그예 나 죽는 꼴을 보고  싶소? ” “그
게 늙은 어미 위로하는 말이냐? ” “나는 어머니를 위로하고 어머니는 나를 위
로해야 하지 않소. ”  초향이 눈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고  그 어미는 쓴입맛
을 다시며 일어나서  건넌방으로 건너갔다. “내가 자네 매를 벌어  준 모양이니 
자네 어머니가 나를 책망  안하겠나. ” “나리 때문에 매를 맞게  되면 하루 열
두 번 맞아도 달게 맞겠세요.  ” “자네 어머니야 어디 자네 맘과 같은가. ”“
제가 잡혀들어가서 나리  말씀을 해도 좋겠습니까? ” “좋다뿐인가.  내게 밀어
붙일 만 한  일이거든 죄다 밀어붙이게. ”   “지금 제 요량에는 말미  안 받고 
향산 간 것을 누가 고자질해서  잡힌 모양인데 나리께서 별안간 가자고 끌어 내
세우셔서 말미받을 새도 없었다고 발명해 볼까요? ”“자네 구변껏 발명하구 무
사히 나오기만 하게. ” “나리와 친쫍게 지내게  된 것을 묻거든 멍석잠 주무시
려던 것까지  다 이야기할까요? 이야기해도 창피하지  않으시겠세요? ” “나는 
그걸 창피한 일루 알지  않네. 우리들 그 동안 지낸 일이  우러러 하늘두 부끄럽
지 않구 굽어 땅두 부끄럽지 않은데 사람 앞에서  이야기 못할 게 무어 있나. ” 
안방에서 단천령과 초향이가 이런  수작을 하는 동안에 건넌방의 사령들은 두어 
차례나 간다고 서둘렀다.  초향이가 옷을 바꾸어 입고 건넌방에 가서  사령들 술
을 권하여 먹인 뒤에 사령들에게 붙들려서 관가로 들어갔다. “초향 잡아들였소. 
” 사령의 외치는 소리를 급장이 댓돌 위에서  받고 형리가 방문 밖에서 받았다. 
부사가 닫혔던 방문을 열어젖히고  댓돌 아래 쪼그리고 앉힌 초향이를 내려다보
며 “네가 관기의 매인 몸으로  자행자지를 하니 너는 관장두 두렵지 않구 법두 
무섭지 않으냐? ”  하고 호령을 내놓았다. “친쪼운 서울 양반  한 분이 묘향산
을 같이 가자고 끄시옵기에 매인  몸으로 수유 않고 갈 수 없다고 고사하였솝더
니, 그 양반께서 말씀이 묘향산이 타도 타군도 아니요, 영변 경낸데 경내에 잠깐 
갔다오는 것을 수유 안하면 어떠냐 핑계를 말라 하시며 화를 내셔서 할 수 없이 
그 양반을 뫼시고 갔다  왔소이다. ” 하고 초향이가 요요하게 발명하였다. 부사
가 단천령의 안면을 보아서 초향이의 수유 않고 출타한 것을 덮어두고 싶었으나 
중인 소시에 잡아오라  말라 하고 체면에 그대로  두기 어려워서 꾸중이나 한번 
하려고 잡아들인 까닭에 초향이를 댓돌 위에 올라서라고 명한 뒤 “네가 뫼시구 
간 서울 양반이 종실 단천령  나리시라지? ” 하고 예삿말 소리로 물었다. “녜. 
그렇소이다. ” “단천령 나리가 여기를 무어하러 오셨다더냐? ” “묘향산
 구경 겸 제  가야금을 들으러 오셨다고 하십디다. ” “네  가야금이 소문이 굉
장히 났구나. ” “그 중씨 나리께서 올  봄에 평양 오셨다 가셔서 말씀하셨답디
다. ” “그 나리의 피리 선성은 너두 전에 들었겠지? ” “녜, 익히 듣조왔었소
이다. ” “그 나리 피리가 과연  용하시더냐. ” “용하시다뿐이오니까. 이 세상
에는 짝이  없을 줄로 아옵니다. ”  “그 나리께서 여기 도착하시던  날 저녁때 
바로 찾아오셨는데  과객 모양을 차리고  오셔서 모르고 농락을  받았소이다. ” 
“네가 그 나리께 농락은 받았단 말이냐? ”  “녜. ” “농락받은 이야기 좀 해
봐라. ” 단천령이  한데 마당 멍석자리에 누워서 피리로 농락하던  것을 초향이
가 일장 다 이야기하여 부사가 듣고 웃으며  “풍류남아의 일이다. ” 하고 말한 
뒤 다시 정색하고  “네 이번 소행은 단단히  치죄해야 마땅하되 단천령 나리의 
안면을 봐서  특별 용서하니 일후에는 그런  일이 다시 없도록 하엿다.  ” 하고 
일렀다. 초향이가 잡혀올 때  매는 면부득 맞을 줄로 알았는데 다행히  매 한 개 
안 맞고 용서를 받았다. 초향이의 어미는 딸을  잡혀보낸 뒤 도무사의 전사로 있
는 먼촌 일가를 찾아가서 딸이  무사히 놓여 나오도록 주선하여 달라고 백번 천
번 부탁하고 관문 앞에 와서  동정을 살피려고 기웃거리고 있는 중에 전사가 관
문 안에 들어갔다  나와서 “어떻게든지 주선해서 무사히  나가게 할 테니 집에 
가서 기다리시우. ”하고 말하여 그 말을 태산같이 믿고 집에 와서 있었다. 별안
간 삽작 밖에서 “어머니. ”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나며 초향이가 웃고 들어와서 
초향이의 어미는 버선발로 쫓아나오며 “네 무사히 나왔구나. 아이구 고맙다. 전
사 아재 신세를 무얼루 다 갚는단 말이냐?  ” 하고 지껄였다. “전사 아저씨 신
세라니 무어요? ”  “네가 무사히 나오게 된  게 전사 아재 주선한  덕이다. ” 
“천만 도섭스러운 소리 고만하시우. 사또께서 단천령  나리 안면을 봐서 용서하
신다고 말씀하시던데 누가  무슨 주선을 했단 말이오. ” “사또께서  단천령 나
리 안면을 보시도록 주선했는지  누가 아니? ” “내가 잡혀들어가기 전은 몰라
도 잡혀들어간 뒤에는 전사 아저씨 그림자가 사또 앞에 얼른 하는 것도 못 보았
소. ” “이애 그래도 네가 한번 찾아가서 고맙다고 인사를 해두어라. ” “고맙
다고 인사하면  전사 아저씨 낯이  간지러우라고요. ” “사람이  무슨 일이든지 
뒷길을 두어야 하는 법이다. ” “뒷길 이야기는  두었다 하고 우선 단천령 나리
께 나 나왔다고 기별이나  하시우. ” “그건 그리 급할 게 무엇  있니? ” “궁
금해 여기실 텐데 얼른 알려 드리는 게 좋지  않소. ” “마당에 서서 긴 이야기 
하지 말고 방으로 들어가자. ” “어머니가 기별  안 해준다면 내가 가서 보입고 
오겠소. ” “누가 기별  않는다나 아이년을 보내자꾸나. ” “아주 보내고 방으
로 들어갑시다. ”  초향이의 우김 대로 계집아이년을 단천령 하처에  보내고 비
로소 모녀 같이 방으로 들어갔다. 단천령이 기별하러 간 아이년과 같이 왔다. 초
향이가 단천령을 보고 부사와 문잡한 말을 저저히 다 옮기고 끝으로 “사또께서 
수이 한번 만나보입자고 말씀을 여쭈라십디다. ” 하고 말하였다. “부사가 나를 
찾아나온다든가 나더러  관가루 들어오라든가? ” “그런  말씀 저런 말씀 없이 
그저 만나 보입자고만  말씀하십디다. ” “자네가 잡혀 갇히구 못  나오게 되었
더면 부사를 찾아봤을는지두  모르지만 인제는 부사를 찾아볼 일이 없네.  ” 옆
에서 듣던 초향이의 어미가  입을 실쭉하고 “영변부사를 찾아보면 종반 지체가 
떨어지시우? ” 하고 말참례하여  단천령은 마음에 불쾌한 것을 억지로 참고 내
색하지 않았다. 단천령이 초향이와  친하게 지낸 뒤로 아직껏 쌀 한  말 상목 한
자 주지 아니하여  초향이의 어미는 대접을 차차로 전만 못하게  하였다. 초향이 
집에서 숙식을 하는 때가 많은데 조석상의 찬만 가지고 말하더라도 처음에는 아
무쪼록 먹도록 해주는 정성이 반상에 가득하더니 그 정성은 어느 결에 없어지고 
찬 없다는 빈  입인사만 남았다가 종내는 그 인사마저 없어졌다.  단천령이 하처
에 가고 없을 때는 딸이  어미의 심장을 나무라고 어미가 딸의 심사를 뒤집어서 
초향이 모녀간에  말다툼이 자주 났었다.  초향이가 관가에 잡혀갔다  나오던 날 
낮부터 이튿날 다 저녁때까지 단천령  옆에서 먹고 자고 웃고 놀고 별로 건넌방
에도 건너가지 아니하였다. 초향이의  어미가 마당에서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데 초향이가 안방에서  내다보고 “어머니 저녁 곧 시키시우. 나리께서  아침 진
지도 얼마 안 잡수셨소. ” 하고 말하니  초향이의 어미는 단천령더러 귀 있거든 
들으라는 듯이 “거리 없는 저녁을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이냐? ” 하고 소리를 
질렀다. 초향이가 일어나서 마당으로 내려가더니 안방에서 보이지 않는 구
석에 가서 그  어미를 불러가지고 한바탕 말다툼을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단천령이 웃으면서 “자네  집엔 저녁이 없는 모양이니 나는 사처루  가겠네. ” 
하고 곧 일어나려고  하니 “굶더라도 같이 굶으셔야지  그런 인심이 어디 있세
요? ” 하고 초향이가 붙잡고 놓지 아니하였다.  방안이 어두워서 등잔불을 켜놓
은 뒤에 거리 없다는 저녁밥이  어떻게 되어서 단천령이 밥을 먹긴 먹었으나 마
음에 가시  먹는 것과 같았다. 밤에  초향이 집에서 자면 자연  이튿날 조반까지 
먹게 되는 까닭에 단천령은 볼일이 있다 하고  하처로 자러 왔다. 단천령 생각에 
일면부지 영변부사를 찾아보고 사정을 하더라도 괄시는  아니할 것이요. 친분 있
는 운산군수를 가서 보고 이야기를  하면 당장 변통이 될 것이지만 객지의 용쓸 
것을 서울 집에서 보내줄 터인데  꾸태여 남에게 구차한 소리 할 까닭이 없으므
로 서울서 전인이든지 환이든지  오는 동안 초향이 집에를 조석으로 놀러갈지라
도 숙식은 아니하려고 작정하였다. 이튿날 단천령이  아침밥을 먹은 뒤에도 한동
안 하처에 있다가 초향이 집에  와서 싸리문 안에 들어서니 방문들을 닫고 들어
앉아서 사람은 보이지 않고 말소리만 나는데 안방의 초향이와 건넌방의 그 어미
가 얼굴도 서로 보지 않고  말소리만 나는데 안방의 초향이와 건넌방의 그 어미
가 얼굴도 서로 보지 않고 말다툼을 하는 듯 “금지옥엽 귀한 양반을 건달 율객
이라니 그게  말이요 무어요? ” 한방에서  나는 초향이의 말소리는 독살스럽고 
“허울 좋은 하눌타리 다 봤다. 고만둬라. ” 건넌방에서 나는 그 어미의 말소리
는 느물느물하였다. 단천령은 싸리문 밖으로 도로  나갔다가 다시 돌쳐서서 들어
오며 에헴 큰기침하고  뚜벅뚜벅 신발 소리를 내었다. 건넌방에는 쥐죽은  듯 아
무 소리가 없고 안방에서는 버스럭  소리가 나며 곧 초향이가 마루로 나와서 “
왜 인제 오세요? ” 하고 늦게 온 것을 매원하는데 모녀간 말다툼할 때 난 독살
이 갑자기 다 풀리지  못하여 진정으로 매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어디 좀 가
네. ” “어딜  가세요? ” “운산을 잠깐 갔다오겠네.” “저하고  같이 가세요.
” “자네 매맞는 꼴 그예 나더러 보란 말인가?” “며칠이나 되시겠세요?” “
가봐야 알지만 늦어두 사오 일밖에 더 안될  테지.” “왜 올라오시지 않고 거기 
서셨세요?” “지금 곧 떠날 테니까 올라갈 새두 없네. 갔다와서 만나세.”
  단천령은 초향이의 집 마루 앞에 잠깐 섰다가 바로 하처로 돌아와서 하인더러 
나귀 안장을 지우라고 이르고 주인에게 운산을 갔다온다고 말하고 무슨 급한 일
이나 생긴 것처럼 총총히 운산으로 떠나갔다.
  운산군수가 단천령을 반갑게 맞아서  후하게 대접하고 서울 가서 갚는다고 쌀 
열 섬과  상목 열 필을 변통하여  달라는 것도 두말 않고  허락하였다. 단천령은 
운산서 하루 묵고 떠나오려고 하였더니 군수의 말이 운산에는 초향이 같은 명기
도 없고 묘향산 같은 명산도  없으나 천리 타향에 고인을 만나서 그렇게 홀홀히 
작별하고 갈 법이 있느냐고 책망으로 만류하여 오륙 일을 묵게되었는데 쌀과 상
목은 그 동안에 먼저 영변 초향이의 집으로 실려 보내었다.
  단천령이 영변으로 돌아오던 날  하처에서 저녁밥을 먹고 석후에 초향이를 보
러 온즉  초향이의 어미가 초향이보다  더 반가워하며 갖은  너스레를 다놓았다. 
기생 어미의 염량이 으레 그러하려니 셈을 치면서도 너스레 놓는 꼴이 우습기도 
하고 밉살스럽기도 하였다. 초향이가 오륙 일  그런 정희를 탐탐하게 이야기하는 
중에 “나리 안 기신  동안에 사또께서 저를 부르셨겠지요?” 하고 부사에게 불
린 것을 말하여 단천령이 “왜?” 하고 불린  까닭을 물엇다. “사또께서 밤저녁
에 한번 저의  집에를 나오시겠다고 말씀하세요.” “자네 아버지 무덤  위에 꽃
이 피었는가?” “나리를 만나러 나오신단  말씀이에요.” “나를 만나려면 사처
루 전갈이라두 하구 나올 것이지 어째 밤 저녁에 자네 집으루 나온단 말인가?” 
“나리께서 와서 노실  때 뒤로 기별해 드리면  미복으로 나오셔서 하룻밤 같이 
노시겠단 말씀입니다.” “우리들 정답게 노는 것을  발가리노러 나온단 말인 겔
세.” “제  가야고에 나리 피리 어우르시는  걸 들으러 나오신대요.” “부사가 
나를 율객으로 아는 모양일세그려. 내가 여기 더  있다간 무슨 망신을 할는지 모
르니까 곧 떠나야겠네.” “나리가 제게 와서 기실  때 기별해 드리지 않으면 고
만이지요.” “그러지 않아두  수이 떠날 생각이 있던 차이니까 하루  이틀 미룰 
것 없이 내일 바루 떠나겠네.” “어떻게 그렇게  속히 가세요?” “속히라니 여
기 온 지가 벌써 이십여 일인데 속히야.” “아주 한 달이나 채우고 가시지요.” 
“한 달 있으면 떠날 때 섭섭하지 않은가. 내일 내가 안 오거든 떠난 줄루 알게.
” “가시더래두  그렇겐 못 가세요.” “갈  때는 자네를 작별 안  하구 갈는지 
모르니 그쯤만 알아두게.” “참말 내일 떠나실 테요?”  “참말이구 아닌 건 내
일 보면 알겠지.” “난 싫어요.  난 어떻게 하란 말씀이에요?” “내년 봄쯤 서
울서 다시 만나두룩 해보세.” “내일 하루만 더 있다 가세요. 그것도 못 하시겠
세요?” “하루 더  있으나마나 매한가지 아닌가.” “제 손톱이  빠지도록 실컨 
이별곡이나 뜯고 이별하겠세요.” “그것두 좋겠지만 지금  우리 한 곡조 어울러 
보세.” 밤이 이슥하도록 피리와 가야금을 어울다가  단천령은 행역 끝에 피곤하
다고 풍류를 그치고 자리를 보게 하였다.
  이튿날 단천령이 초향이 집에서 조반을 먹고 눌러앉아 있다가 별안간 무슨 잊
은 일이 있는  것같이 말하고 하처에를 와서  운산군수가 객지의 잔용을 쓰라고 
준 상목 두 필에서 한  필은 주인을 내주고 납머지 한 필은 노수로 가지고 영변
서 도망하듯이 떠났다. 첫날은 안주 와서  숙소하는데 초향이가 쫓아와서 내버리
고 도망하였다고 매원하는 꿈을 꾸고  이튿날은 냉정 와서 숙소하는 데 꿈에 초
향이의 어미가 멱살을 들러 대들어서 호령하다가 잠이 깨고 그 이튿날은 평양을 
들어왔는데 이때 평안감사 유강이  벼슬이 내직으로 옮아서 새 감사와 교대하기
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찾아보고  벼슬 갈린 인사하고 하룻밤 자고 바로 떠났
다. 평양서 늦게 떠난  까닭으로 그 날은 중화 와서 숙소하고  그 다음날은 봉산
참을 못 대고 동선역에서 숙소하고 그 다음날은 서흥 와서 숙소하고 또 그 다음
날은 평산 와서 숙소하였다. 평산서 백십 리  송도를 숙소참 대려고 길을 조여오
다가 금교역에 와서 중화하는데 하처잡은  집 주인이 송도로 가는 줄을 알고 “
탑고개가 요새 버쩍 더 험해져서 행차가  무사히 지나가시기 어렵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탑고개가 요새  험하다니 도적이 자주 난단 말인가?”  “자주 여부
가 없습니다. 매일 난답니다.”  “그럼 탑고개루 사람이 못 다니나?” “다니기
야 다닙지요만 꺽정이에게  세를 바치구 다닙니다.” “그래 행인 한  사람에 세
를 얼마큼씩 받는다던가?” “근처 장꾼에게는 대개 십일조를 받구 여느 행인에
게는 들이없이 받는답니다.”  “인명은 살해하지 않는다던가?” “웬걸요. 선심
이 내키면 물건만 뺏구  선심이 들이키면 목숨도 뺏는갑디다. 며칠 전에두 평산, 
봉산 선비님네 여러분이  작반해서 탑고개를 지나오다가 꺽정이에게 붙들려가서 
다섯 분인가 여섯 분이 죽구 겨우 세 분이 살아갔습니다." "죽은 사람은 어째 죽
구 산 사람은 어떻게  살았다던가?” "말을 잘못한 양반은 죽구 말을 잘한 양반
은 살았겠지요." "지금 이 해  가지구 용고개루 돌아서 송도를 갈 수 있을까?" "
탑고개루 바루 가셔두 저물  터인데 더구나 길을 돌아가시면 밤중에나 들어가시
게 될걸요."  "요새 달이 좋으니까 홰  안 잡히구두 갈 수 있겠지." "용고개는 전
에 무사했었는데 근래 길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하두 많은 까닭으루 꺽정이패가 
용고개까지 나와서 지킨단 말이  있습디다." "돌아가두 도적이요 바루 가두 도적
이면 돌아갈 까닭  있나. 바루 가는 게지." "어뜩새벽이나 어둔  밤중이면 탑고개
두 대개 무사합니다.  여기서 주무시구 첫닭울이에 떠나가시지요." "밤중두  좋으
면 오늘 밤에 밤길루 가겠네."  "송두 가서 주무실 데가 없어서 고생하시지 않을
까요?" "새벽길 밤길 다 고만두구 지금 그대루 가겠네. 뺏길 만한 물건이 없는데 
겁날 것  있나." "그건 처분대루 하십시오."  단천령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만 믿고 금교역말서 그대로 떠났다. 
  이날 청석골 두령 중의  황천왕동이가 탑고개를 나오게 되었는데 한온이가 심
심한데 같이 가겠다고 꺽정이에게 말하고 황천왕동이를 따라나왔었다. 
  홀아비로 지내던 탑고개 주막 주인이 도망꾼이 젊은 계집 하나를 갓 얻었는데 
얼굴이 해반주그레하다고 하여 한온이는 주막 계집을 구경하려고 따라나온 것이
었다. 황천왕동이와 한온이가  주막방에 들어앉아서 계집을 데리고  희영수도 하
고 술도 먹었다. 해가  승석때가 다 되었을 때 두목 하나가  방 밖에 와서 "해가 
다 져 갑니다. 들어가지 않으시렵니까?" 하고 품하여 황천왕동이가 두목더러 "다
들 게 있느냐?" 하고 물으니 "네 다 여기 있습니다" 하고 그 두목이 대답하였다. 
"아무리나 고만 들어가자.  오늘 하루는 아주 빈탕이로구나." 하고  황천왕동이가 
먼저 방 밖에 나서서 방안의 한온이를 도랑보며 "이 사람아 고만 나와." 하고 재
촉할 때 길에 나섰던 졸개 하나가 쫓아와서 "나귀 탄 양반 하나가 이 아래  옵니
다." 하고 말하여 황천왕동이는  두목, 졸개 십여 명을 얼른 주막 헛간에 들여세
우고 혼자 주막 앞길에 나서서 기다리었다. 나귀  탄 양반이 하인 하나를 데리고 
오는데 행색은 초초하나 신수를 보든지 기상을 보든지 귀인이 분명하였다.
  "이애들 나오너라!" 황천왕동이가  소리를 치자 곧 두목과  졸개들이 헛간에서 
뛰어나와서 나귀 앞을 가로막았다. 하인은 대번에  궁둥방아를 찧고 주저앉고 양
반은 눈살만 찌푸리었다.  두목 하나가 졸개들을 보고  "얼른 끌어내리지 못하구 
구경들 하구 섰느냐!"  하고 소리를 질러서 졸개들이 끌어내리려고  달려드니 그 
양반은 찌푸렸던 눈살까지 펴고서 "대들지 말구 말루 해라. 너희가 내게 무얼 바
라느냐?" 하고 말하는데 말하는 모양이  태연하였다. 황천왕동이가 그 양반의 거
둥을 밉게 보지 아니하여 졸개들에게 "그 양반을 가만둬라." 하고 분부한 뒤 "우
리가 바라는 건  재물이니 재물을 가진 대루 다 내시우."  하고 대접하여 하오로 
말하였다. "다들 보다시피 행장은 아무것두  없구 저 하인이 걸머진 자루에 길양
식이 너댓 되 들었을 뿐이니 그거라두 달라면 주지." 남은 일껀 하오로 대접하는
데 아니꼽게 반말을  하여 "다른 재물을 가진  것이 없거든 나귀라두 두구 가라
구." 하고  황천왕동이도 반말짓거리를 하였다.  황천왕동이의 눈치가 좋지  않은 
것을 알았든지 그 양반은  바로 말시를 고쳐서 "나귀를 주면 나는 무얼 타구  가
란 말이오?" 하고 하오를 하는데 이번에는 뒤쪽으로  황천왕동이가 "정강말을 타
구 가지 무얼  타구 가?" 하고 반말로 내뻗었다.  "그대네 괴수가 임꺽정이 아니
오? 꺽정이가 여기 있거든 나를 상면 좀 시켜주구려." "댁은 대체 누구시우?" 황
천왕동이가 성정이 싹싹한 까닭으로 반말을 고만두고 다시 하오하여 주었다. "나
는 종실 단천령이오." 황천왕동이는 단천령을  잘 몰라서 누군지 아느냐 묻는 눈
치로 옆에 나와 섰는 한온이를  돌아보았다. 한온이가 단천령더러 "피리 잘 부는 
단천령이시우? 금지옥엽이시구려."  하고 말한 다음에  황천왕동이에게 귓속말을 
몇 마디 소곤소곤 지껄이었다. 황천왕동이가 단천령을 보고 "우리 대장을 상면하
구 싶거든 우리하구  같이 갑시다." 말하고 "여기  있거든 만나잔 말이지 일부러 
다른 데까지 가서 만날 건 없소." 하고  단천령이 싫다고 대답하는 말은 들은 척
도 아니하고 두목과 졸개들을 둘러보며  "이 양반을 잘 뫼시구 가자." 하고 분부
하였다. 두목, 졸개 십여 명이  나귀 탄 단천령을 전후로 옹위하고 또 벌벌 떠는 
하인을 양쪽에서 부축하듯 껴들고 산속으로 들어왔다.
  황천동이가 단천령을 허생원 약국에 잠시 앉혀 두게 하고 바로 한온이와 같이 
꺽정이 사랑에 와서 보니 꺽정이는 마침 소흥이 집에 가고 사랑에 없었다. "단천
령 노주의 저녁을 얼른  어디다가 시켜야 할 텐데 어떻게 할라나?" 한온이의 말
을 "형님 말을 들어봐야지. 형님 있는 데루 우리  가세." 황천왕동이가 대답한 뒤 
두 사람이 같이  소흥이 집으로 꺽정이를 보러 왔다. 소흥이가  광복산서 청석골
로 온 뒤에 초막 한 채를 조금 변작하여  가지고 딴살림을 하게 되었는데, 집 밖
에 울도 두르고  방 앞에 퇴도 놓았으나 원래가 초막이라  일자집 삼간뿐이었다. 
황천왕동이와 한온이가 소흥이 집 삽작 안에 들어와서 방 앞으로 가까이 오는데 
방문이 닫히고 방안에  말소리가 없어서 둘이 서로  눈짓하고 도로 나가려고 할 
대, 소흥이가 방문을 열고 내다보며  "탑고개들 나가셨다더니 언제 오셨세요? 대
장께서 여기 기십니다.  어서 이리 들어들 오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두 사람이 
방안에 들어와 앉은 뒤 황천왕동이가 단천령 붙들어 온 사연을 말하니 꺽정이는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나귀가 좋으면 나귀나  뺏구 보내지 그건 왜 붙들어온단 
말이냐?" 하고 말하는 것이 붙들어온 것을 긴치 않게 여기는 모양이었다. 황천왕
동이가 한온이를 가리키며 "이  사람이 붙들어가지구 와서 피리를 한번 듣구  보
내자구 말합디다. 그래서  붙들어왔습니다." 하고 한온이에게 밀어붙여서  한온이
가 단천령의  피리가 용하다는 소문을 이야기한  끝에 소흥이더러 "자네는  더러 
들어봤겠지?" 하고 물었다. "그 양반  형님의 거문고도 들어보고 그 양반의 피리
도 들어봤지요. 그  양반이 피리에는 귀신이에요." 꺽정이가 소흥이의 말을  듣고 
"이왕 붙들어왔으니 오늘 밤에 여럿이 모여서 피리를 한번 들어보자." 하고 황천
왕동이더러 일렀다. "그 노주의 저녁은 뉘게다 시킬까요?" "온이가 청해 온 손님
이니 온이 집에서  어련히 잘 대접하겠느냐?" 꺽정이가 일변 황천왕동이에게  대
답하며 일변 한온이를 보고 웃었다.
  꺽정이가 소흥이 집에서  사랑으로 왔을 때, 서림이가 마침 와서  단천령을 탑
고개에서 붙들어온 것과 여럿이 밤에 모여서 피리 들을 것을 꺽정이의 이야기로 
듣고 "단천령을 하루 묵혀서 내일 밤에 피리를 듣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
고 말하였다. "내일 밤이 좋을 게 무어요?"  "여러 가지루 좋겠습니다. 난데 나간 
이두령, 길두령 두 분이 내일은 들어올 테니  원만히 함께 모여서 하룻밤을 즐겁
게 보내는 것이  좋겠구요, 또 피리를 불  때 장단 쳐 줄 사람은  반드시 있어야 
할 텐데 이왕이면 내일 송도에  사람을 보내서 음률 아는 기생을 한둘 붙들어오
는 것이 좋겠구요. 그러구  또 여럿이 모여 놀 처소루는 옹색한  이 사랑보다 널
찍한 도회청이 좋겠는데 내일 밤이면  밤에 선선치 않두룩 준비를 잘할 수 있지
만 오늘 밤에는  준비할 새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  밤에 이 사랑에서 한번 
듣구 내일 밤에 도회청에서 또 한번 들으면 되지 않소?"  "여느 율객이나 광대만 
같으면 그렇게 하는 게 좋겠지요만  종반 중에두 내로라 하는 훌륭한 양반을 율
객이나 광대같이 대접해서 말을 잘 들을는지  모르겠습니다. 피리를 한사코 불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랍니까.  죽이기는 쉬워두 억지루 불리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또 억지루 불려서는 재주껏 불리 수두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내일 하루 손님으
루 대접을 잘해서 맘을 눅여주구 저녁 연석에서 술과 기집으루 흥을 돋아 준 뒤
에 피리를 한번 들려달라구 청하면 그 재주를 다 내놓게 될 듯합니다."
  서림이 말에 꺽정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곧 황천왕동이와 한온이를 불러서 피
리는 내일 밤에 듣게 하고 대접은 아무쪼록 잘하라고 말을 일렀다.
  이튿날 아침  후에 꺽정이가 황천왕동이더러 송도  가서 김천만이와 상의하여 
기생 두엇을 데려오게 하라고  하고 김산이더러 도회청 밤잔치를 한온이와 같이 
준비하라고 하고 또 서림이더러 한온이 집에 가서 단천령을 잘 대접하라고 분부
하였다. 서림이가 단천령에게 가 있다가 와서 "대장을 만나뵙구 싶어하는 눈치든
데 만나보실랍니까?" 하고 물어서 "만나볼 테니 이리 데리구 오구려." 하고 꺽정
이는 대답하였다. "이왕 특벽히 대접하실 바엔 가서 보시는 게 어떨까요?” “내
가 가서 하정배하리까?” “대접을 아주 융숭하게 해주시려면 가보시는 것두 좋
을 듯해서 말씀한 게올시다.” “안 온다거든 고만두구 온다거든 데리구 오우.” 
“만나자구 오라시면 오겠습지요. 그럼 가서  데리구 오겠습니다.” “그리 하우.
”
  서림이가 단천령을 데리러 간  동안에 꺽정이는 심부름하는 졸개들을 사랑 바
깥마당에 세우고 신불출이 곽능통이 두 시위를 사랑 마루에 세워서 손이 오거든 
거래하고 들이게 하였다. 미구에 졸개 하나가  나는 듯이 들어와서 “서종사께서 
손님을 뫼시구 오셨습니다.”  하고 아뢰고 신불출이가 밖에까지  들릴 큰소리로 
“손님 듭시라구 하랍신다.” 하고 외친 뒤에  서림이가 앞서고 단천령이 뒤따라 
들어오는데, 꺽정이가 열어놓은  방문으로 내다보니 단천ㄹ영의 얼굴  모습이 언
뜻보기에 이봉학이와 비슷한 데가 있어 보이었다.  단천령이 방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꺽정이가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서서 여러 두령  모일 때 이봉학이의 앉는 
자리를 가리키며 와 앉으라고 청하였다. 좌정하고  수인사가 끝난 뒤에 단천령이 
먼저 “내가 말씀할  일이 있소.” 하고 말을 내어서 “무슨  일이오?” 하고 꺽
정이가 물었다. “탑고개에 나왔던 사람들이 내  나귀를 달라는데 내가 서울까지 
이백 리 길을 도보루 가기가  어려워서 사정하구 싶으나 속담에 잔고기 가시 세
다구 그 사람들은 사정을 잘 들어줄 것 같지 않아서 대장을 만나게 해달라구 말
했다가 여기를 붙들려오게  되었소. 처음 뵙구 이런 말씀을 해서  믿으실지 모르
지만 사람 하나를 날  주면 내가 서울 가서 그 사람에게  나귀를 주어 보내리다.
” “나귀는 아무리  좋더라두 내가 욕심내지 않을 테니 염려  마시우.” “그럼 
나를 오늘 가게 해주시우.” “이왕 오셨으니 일이일간 묵어가시우.” “내가 집
을 떠난 지가 오래  돼서 생각에 일각이 삼추 같소.” “오늘  묵어서 내일 가시
우.” “지금 집에 갈 맘이 살 같아서 하루바삐 가야겠소.” “임꺽정이는 한 말
을 두 번 세 번 곱씹구 되풀이하는 사람이 아니오.”
  꺽정이의 말이 힘진 데 눌리었던지 단천령은 가겠단 말을 다시 하지 못혔다.
  단천령이 무료하여 앉았는 것을 서림이가 위로하느라고 “하루쯤 더 묵으셔서 
별루 낭패되실 일은 없겠지요?” 하고 말하니 단천령은 한참만에 “낭패될 일은 
없지만 잠시라두 있어 부질없은 사람을 붙들어 묵히시는 게 무슨 의사신지 의사
를 몰라서 궁금하우.” 하고  대답하였다. “서울 양반이 이런 데 오시기가 어디 
쉽습니까? 쉽지 않은  길이니 묵어가시란 말이지요. 우리가 예법은  모르는 사람
이지만 손님으루  대접하는데 악의는 먹지  않습니다. 맘을 놓으시구  하루 놀다 
가십시오.” “이 산속에 수석이나  좋은 데 있거든 한번 구경시켜 주시우.” “
내가 이번에 묘향산을  구경하구 오는데 산세두 웅장하구  수석두 기특합디다.” 
서림이는 묘향산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 “녜,  그래요?” 하고 말할 뿐인데 꺽정
이가 전에 본 산들을  비교하여 “묘향산이 산세가 웅장하기는 백두산만 못하구 
수석이 기이하기는 금강산만 못하지요.” 하고 단천령의 말을 뒤받았다.
  “대장은 백두산을 구경하셨소?”  하고 단천령이 묻는 것을 “우리 대장께서
는 북으루  백두산부터 남으루 한라산까지 조선팔도의  명산이란 명산을 골고루 
다 구경하셨답니다.”  하고 서림이가 대신  대답한 뒤 꺽정이가  이어서 “전에 
우리 선생님이 산수에 벽이 있는 분이어서 많이  따라 다녔었소.” 하고 다시 대
답하였다. “대장의  선생님이 이인이랍디다그려?” “우리 선생님  말씀을 뉘게 
들으셨소?” “이장곤 이찬성의  후취 처삼촌이 지인지감이 있어서 이찬성을 조
카사위 삼았단 이야기두 전에 들었구 갖바치에 숨은 인물이 이어서 조정암 선생
이 친구루 사귀구  영정대왕께서 영의정감으루 치셨단 이야기두  전에 들었지만, 
그가 한 사람인 것은 이번에 묘향산 가서  알았소.” “묘향산 중에 우리 선생님 
일을 자세히 아는  사람이 있습디까?” “수월당 노장중이 자세히  압디다.” “
옳지, 우리 선생님이 출가할 때 삭발해 드린 중이 그저 살았군.” “대장의 선생
님이 분신술도 할 줄 아시구 호풍환우두 할  줄 아셨소?” “난 모르우. 난 못봤
으니까.”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은 구경 잡술꾼인데 조정암 선생  같은 정인
군자가 잡술꾼을 친구루  사귀셨을 리가 없을 듯해서  나두 그런 말은 곧이듣지 
않았소.” “우리 선생님이 잡술은 아셨는지 모르지만 천문, 지리, 의약, 복서 무
엇에구 막힐 데가 없으셨소. 그러구 앞일을 잘 아셨소.” “대장두 앞일을 잘 아
시우?” “내가 앞일을 잘 알면 도둑눔이 됐겠소?” 꺽정이가 껄껄 웃은 다음에 
“우리 선생님이 돌아가실 때 내게  하신 유서가 있는데 그 유서가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이 없으니  한번 보실라우?” 하고 물었다. “무슨  뜻인지 모르더라두 
한번 보기나 합시다.”
  꺽정이가 머리맡에 놓은 조그만 손궤짝을 열고 그중에서 쪽종이 착착 접은 것
을 꺼내서 단천령을  주었다. 그 종이는 “삼년적리관산월  구월병전초목풍 부상
서지봉단석 천자정기재안중”  이란 절구 한  수 적힌 것이었다.  단천령이 한참 
들여다보다가 그  종이를 접은 금대로  도로 접어서 꺽정이  앞으로 밀어놓았다. 
“그 뜻을 아시겠소?” 꺽정이가  묻는데 단천령은 대답 없이 고개를 가로 흔들
었다. “글하는 이들이 모두  모른다니 무슨 글이 뜻이 그렇게 어렵단 말이오.” 
“글 뜻은 별루  모를 것이 없지만 유서루는 뜻을 땅띄임두  못하겠소.” “대체 
글뜻은 무어요? 아는  대로 말씀 좀 하시우.” “그게 당나라  두보의 글을 모은 
것이오. 첫구 안짝은 동쪽에서 서쪽으루 간단 뜻이겠구, 바깥짝은 천자의 깃발이 
눈에 보인단 뜻이오.”
  단천령이 말을 할  때 밖에서 두세두세하는 소리가  나더니 여러 사람이 사랑 
앞마당으로 죽 들어서며 그중의 두 사람은 바로 방으로 들어왔다.
  꺽정이가 방에 들어온 두 사람의 절을 받을 때는 “잘들 다녀왔나?” 말을 묻
고 마당에 선 여러  사람의 문안을 받을 때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었다. 두 사
람 중의 얼굴 희고 수염  검은 사람이 자리에 일어섰는 서림이와 수어수작을 하
는데 꺽정이가 “가서 옷들이나  바꿔 입구 오게. 다녀온 이야기는 나중에 듣세.
” 하고 말하여 두  사람은 섰다가 도로 나갔다. 두 사람이  마당의 여러 사람을 
거느리고 나간 뒤에 단천령이 먼저 있던 처소로 가겠다고 말하니 꺽정이가 그럴 
것 없다고 말리고 나서 “전에 종반 이가에 이학년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촌수를 
따질 수 있소?” 하고 물었다. “이학년이라니 신사년  안씨집 옥사에 죽은 사람 
말씀이오?” “네,  그렇소.” “촌수를  따지면 동고조팔촌일 것이오.”  “그럼 
그리 먼 일가두 아니구려.” “삼종이 무어  멀겠소. 그런데 그건 어째 물으시우.
” “일가 하나를 찾우시우. 그  아들이 여기 있소.” “그가 자제가 있어요? 그 
자제가 이름은 무어구 나이는  몇 살이오?” “이름은 봉학이구 나이는 올에 마
흔이오.” “갓마흔이면 신사생 아니오? 그럼 그 아버지 죽던 해에 났구려.” “
난 지 백  일두 되기 전에 그 아버지가 죽었다는갑디다.”  “참말 조고여생이구
려. 가까이 있거든 만나보게 해주시우.” “옷 바꿔 입구 오랬으니까 곧 올 것이
오.” “아까 왔다간 사람이오?” 
  꺽정이가 대답으로 고개를  끄덕이었다. 서림이는 이학년의 근본을  자세히 알
지 못하여 “아무리  천첩 소생이라두 종반 양반의  아들루 홍문관 관노 노릇을 
한 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하고 단천령더러 물어서 이학년이 노는 계집의 몸
에서 난 것을 그 아버지가 찾지 아니하여 모족을 따라서 천인이 된 것과 속량못
하고 천인 노릇을 하였지만  학문이 있어서 당대의 문인학사들과 추축이 많았던 
것을 단천령이 간단하게  이야기하였다. 이학년은 기묘년 조정암  옥사에 걸려서 
장류를 속 바치고 면하고 신사년  안처겸 옥사에 또 걸려서 처참을 당한 사람이
라 기묘년 이야기도 나오고  신사년 이야기도 나왔는데 꺽정이와 단천령이 서로 
돌려가며 말자루를 잡고 서림이도 간간이 말참례를 들었다.
  한동안 좋이 지나서 이봉학이가 탕창을 말쑥하게  차리고 왔다. 이봉학이가 서
림이의 비켜주는 자리에 와서 앉은 뒤 “이  양반하구 인사하게. 자네의 일가 양
반일세.” 꺽정이가  단천령과 인사를 붙이었다. “나는  이봉학이란 사람이오.” 
“나는 단천령이야. 선장 휘자가 학자 년자시라지. 우리가 촌수를 따지면 사종숙
질간인데 내가 숙항이니  처음 봐두 하게 하겠네.” “일가루 하게할  생각은 마
시우. 나는 일가가 없는  사람이오.” “선장 일을 생각하면 자네가 그렇게 격한 
말을 하는 것두  괴상할 것이 없지만 일가를 어떻게 억지루  떼어버리나. 그러구 
나두 지체가 자네나 별루 다름없는 사람일세. 증조  익령군은 말씀할 것 없구 조
부 수천부정두  서자시구 나 자신두  서자일세.” “그건 나를  양반의 서족으루 
알구 하는 말씀이지만, 아니오. 나는 상놈이오.”
  단천령은 말을 더  하지 못하고 한숨을 지었다. 평소에 불쌍하게  생각하던 일
가 학년이 아들이 있단 말만 들어도 반가울 터인데 그 아들 되는 사람을 만나보
게까지 되어서 반갑기가 그지없건만 정답게 수작을 붙일 수 없는 것이 애달팠던 
것이다. 꺽정이가 빙그레  웃으면서 “일가간에 정다울 줄 알구 일껀  인사를 붙
였는데 말하는  것이 곧 척진 사이  같으니 인사 붙인 사람까지  무안해.” 하고 
이봉학이를 나무라듯 말하니 이봉학이가 단천령을 돌아보며 “처음 뵙는 처지지
만 남과 달리 생각해 주시는 까닭에 진정을 속임없이 말씀한 게니 어찌 알지 마
시우.”하고 부드러운 언사로 말하였다.
  시월도 보름이 가까웠건만  일기 따뜻한 것이 봄날과 같았다. 해진  뒤에는 바
람이 좀 차나 장정들은 무명 고의 적삼으로 견딜 만하였다.
  하늘에 구름도 없고 공주에 진애도 없으나 산에서 남기가 내리는지 저녁 연기
가 아직 다 사라지지 않고 잠겨 있는지 초저녁 달빛은 조금 흐릿하여 물같이 맑
지 못하고 수은같이 희었다.
  조사 때만 지나면 종일 텅  비는 도회청에 이날은 낮부터 저녁까지 사람이 그
치지 않고 들락날락하였다.
  모정 같던 도회청을 그 동안 좀 변작하여 뒤와 좌우는 벽을 치고 전면은 양쪽
에 난간을 드리었었다.  난간 중간은 오르내리는 층계인데 층계 위만  틔우고 난
간 밖은 양쪽 다 휘장을  치고 대장 앉는 주홍칠한 큰 교의 하나만 남기고 그외
의 다른 교의는 다 치워버리고 대청 안에 멍석을 들여깔고 멍석 위에 등메를 덧
깔고 층계에서 정면에 놓인 주홍교의 양쪽으로 벌려서 또 좌우로 모꺾어서 보료 
방석들을 깔아놓고 대청 앞 추녀  끝에는 사초롱들을 달아놓고 대청 안 들보 아
래는 큰 등롱을  달았거니와 휘장이 바람을 막아서  아늑한 데는 나무 촛대들에
(이 때는 유기 촛대가 없었다) 대초를 붙여서 넓은 대청을 밝히었다.
  꺽정이 사랑에 모이었던  여러 두령들이 꺽정이를 옹위하고  도회청으로 왔다. 
두령 중의 아니 온 사람이  오가와 한온이와 김산이 셋인데 김산이는 음식을 보
살피고 올 것이고 한온이는 손님과 같이 올 것이나 오가는 두통이 나서 못 오겠
다고 아니 왔다. 오가가 상처한 뒤로 그전  놀기 좋아하던 풍치가 없어져서 노는 
자리에는 모피를 잘하므로 두통이 심하거든 머리를 동이고라도 오라고 꺽정이가 
박유복이를 보내고 또 서림이를  연거푸 보내서 오가를 억지로 끌어오다시피 하
였다. 오가까지 마저  온 뒤에 꺽정이가 한온이에게 사람을 보내서  손님을 뫼시
고 오라고 하여 단천령이 한온이를 따라왔을 때 꺽정이가 일어서니 여러 두령이 
모두 따라 일어서서 단천령을 정중하게 맞아들이었다.
  꺽정이의 걸터앉은 교의 양쪽에  보료가 하나씩 깔렸는데 왼쪽 보료에는 서림
이와 이봉학이가 앉고 바른쪽 보료에는 오가와  박유복이가 앉았다. 또 좌우편으
로 모꺾어서 보료  하나, 방석 둘씩 깔렸는데 왼편에는 단천령을  보료에 앉히고 
황천왕동이와 한온이가 방석에 앉고 바른편에는 배돌석이와 곽오주가 보료에 앉
고 길막봉이가 방석  하나를 깔고 방석 하나를  김산이의 앉을 자리로 남겨놓았
다. 좌정한 뒤에 낮에 서로 보지 못한  오가와 단천령을 꺽정이가 인사를 붙이었
다. 오가가 인사를 마치지마자 곽오주가 꺽정이를 바라보고 “나두 인사 못했소.
” 하고 인사 붙여달라고 말하는  것을 꺽정이가 못 들은 체하니 곽오주는 바로 
단천령을 건너다보며 “우리두  인사합시다.” 하고 제대로 인사  수작을 건네기 
시작하였다. “나는 성은 곽가구 이름은  오주요.” “나는 단천령이오.” “서울
은 단가가 많소? 나는 단가 성 가진  사람을 처음 보우.” 꺽정이가 곽오주의 말
을 듣고 “이눔아 그게 무슨 미친 소리냐!” 하고 나무랐다. “무에 미친 소리라
구 공연히 호령을 하시우?” “이 양반 성이 이씬 줄을 모르느냐?” “단천령은 
벼슬 이름이다.” “모두들 단천령이 단천령이 하기에  나는 성이 단가구 이름이 
천령인 줄 알았소.” “그렇기에 너 같은 무식한  눔은 인사할 생각두 말구 국으
루 가만 있지.”  꺽정이가 곽오주를 윽박지른 다음에 곧 단천령을  돌아보며 “
저눔의 행적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소. 요새  여인네들이 우는 애를  혼동시킬 때 
곽쥐라구 한답디다. 그 곽쥐가  곧 저눔이오.” 하고 말하니 단천령은 깜짝 놀라
면서 “어린애를.” 하고 말하다가 말을 중동무이하고 곽오주를 바라보았다.
  단천령 생각에 곽오주의 얼굴은  보기 흉악하기가 야차의 화상같아야 할 것인
데 이목구비가 여느 사람과  다름없는 것이 마음에 송구스러운데다가 죄없는 어
린애를 해치는 곽쥐와  같은 전고에 없는 흉악한  도둑놈과 마주 대하고 앉았는 
것이 진저리가 치이도록  불쾌하여 말도 않고 웃도  않고 고개를 숙이고 앉았었
다. 꺽정이가 계집들을  곧 불러오라고 재촉하여 김산이가 계집 셋을  데리고 왔
다. 셋 중에  둘은 송도서 온 기생이요, 나머지 하나는  소흥이었다. 소흥이는 전
에 단천령과 안면이 있다고 하여 꺽정이가 밤에 와서 같이 놀게 하라고 미리 일
러두었던 것이다.  꺽정이의 지휘로 소홍이는  꺽정이 교의 앞에  들어앉고 송도 
기생들은 단천령 좌우에 갈라 앉았다. 단천령은  초향이를 생각하여 마음과 뜻이 
멀리 영변으로 가고  가까이 옆에 앉은 기생들은  눈도 잘 거들떠보지 아니하였
다. 서림이가 단천령에게로 가까이 나와 앉아서 이런  말 저런 말 붙이다가 “우
리 청석골 자랑을 좀  들어보실랍니까?” 하고 말한 뒤 꺽정이와 길막봉이가 호
도와 잣을 엄지 식지 두 손가락으로 깨기 내기하던 것을 이야기하고 이봉학이와 
배돌석이가 을묘년에 전공 세운  것을 이야기하고 박유복이가 원통하게 죽은 아
버지의 원수 갚은 것을  이야기하고 황천왕동이가 여색에 근엄한 덕으로 김산이 
칼에 죽지 않은  것을 이야기하여 단천령의 귀를  흠씬 소승기어 놓고 곽오주의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곽오주가  남의 집에서 머슴을 살 때 주인의  아들이 과부 
하나를 첩 삼으려고 데려왔다가 연이  없어 같이 살지 못하고 곽오주를 내준 것
과 그 과부가 곽오주의 아들  하나를 나 놓고 산후발이로 죽어서 곽오주가 갓난
애를 안고 동네로 돌아다니며 동냥젖을 얻어먹인 것과 어느 날 밤중에 어린애가 
배고파서 우는데 젖은  얻어먹일 수 없고 가로안고  둥둥이를 치다 치다 겁겁한 
성미에 동댕이를 친 것과 어린애가 죽은 뒤 곽오주는 심질로 거의 폐인이 될 뻔
하다가 다행히 폐인은 되지 아니하였으나 어린애 우는 소리만 들으면 심질이 발
작되어서 정신모르고 어린애를 해치는 것을 자세히  다 이야기하여 들리었다. 송
도 기생들은 단천령과 같이 이야기를 잠착하게 듣고 그외의 다른 사람들은 가까
이 앉은 대로 서로 웃고 지껄이고 무슨 이야기 하는 것을 알려고도 하지 아니하
였다.   단천령은 전에 한번 어린애  우는 것이 듣기 싫어서  어린애를 포대기째 
방구석에 밀어박질렀다가 어린애의 경기를 고쳐주느라고 달포 애쓴 일이 있어서 
자기의 일과 곽오주의  일이 오십보 백보까지 틀릴  것이 없는 듯하여 곽오주가 
흉악한 조명을  듣게 된 것이 용혹무괴의  일로 생각이 들었다.   단천령 생각에 
흉악한 야차만 여긴  곽오주도 구경 자기와 다름이 없는 사람이나,  사람으로 생
김생김은 도둑놈 밖에 더 될 것이 없어  보이었다. 그러나 이건 곽오주 하나뿐이 
아니다. 우선 꺽정이부터  사내답게는 생겼으나 천생 도둑놈이고  그외의 여럿도 
목자 불량한 것이  숨길 수 없는 도둑놈들이었다. 어느 모로  뜯어보든지 도둑놈 
같지 않은 사람이 한가,  황가, 봉학이 셋인데, 언어 동작이 한가는 왈자요, 황가
는 상것이요,  오직 봉학이만 씨가 달라서  양반 같았다. 단천령이 곽오주로부터 
여러 두령들까지 한번 쭉 돌아보며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단천령이 꺽정이 앞
에 앉은 기생을  바라보니 낯은 익어 보이는데  이름은 생각나지 아니하여 “저 
사람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하고 혼잣말을 한 다음에  “자네 이름이 
무언가?” 하고  물었다. “소홍이올시다.” “소홍이?  자네 장악원에 시사하지 
않았나?” “네, 그랬습니다.” “여기서 만나긴 의욀세.” “녜.” 멀리 앉은 기
생과 수작하고 가까이 앉은 기생들을  모른 체할 법이 없어서 단천령은 자기 옆
의 기생들을  돌아보며 약간 말마디를  물어보았다.  꺽정이가  김산이더러 술을 
곧 가져오게 하라고  재촉하여 떡벌어지게 차린 주안상 두 상이  들어왔다. 여러 
사람이 자리들을 옮겨앉는데,  이때까지 혼자 교의에 걸터앉아서  거만을 부리던 
꺽정이도 교의를 뒤로 물리고  방석 깔고 내려앉았다.  꺽정이가 서림이, 이봉학
이 두 사람과 같이 한 상을 가지고 단천령을 대접하고 그외의 여러 사람은 모두 
딴 상으로 몰리었다. 소홍이는  꺽정이 상에서 술을 치며 권주가까지 부르고, 여
러 사람 상에 와서 시중을 들게 된 송도 기생들은 상제 오입쟁이 한온이와 만수
받이도 변변히 하지 못하고 그저 술치기에 분주하였다.   좌중 십여 인의 복색들
을 볼작시면 조관의  모습과 거의 다름이 없었다. 꺽정이는 진사립에  탕건을 받
쳐쓰고 홍포에 자주띠를 눌러 띠고  여러 두령들은 거지반 주사립 밑에 탕건 쓰
고 남철릭 위에 도홍띠 띠고 단천령은 복건 쓰고 창의 입고 오직 한온이만 상제 
노릇 하느라고 두건 위에 평량자를 쓰고 베직령  위에 삼띠를 띠었었다. 여러 사
람
 상에서 좌석을 좁히려고 먼저  파탈하기 시작하여 꺽정이, 서림이, 이봉학이 세 
사람도 운에 딸려서  의관들을 벗고 끝으로 단청령을  벗으라고 번갈아 권한 즉 
단청령은 선선하여 벗기 싫다고 방색하였다. 단천령  속에는 무슨 핑계든지 하고 
술자리에서 일찍 일어나 볼 생각이  있는 까닭에 파탈까지 하고 싶지 않았던 것
이다. 도회청 안이 별로 소냉하지 않은데  선선하다고 하므로 귀인이라 다르다고 
꺽정이가 단천령을 비웃은 뒤 곧 가까이 섰는 신불출에게 손님께 화롯불을 갖다 
드리라고 분부하였다. 사람  운김과 술기운으로 실상은 선선치도  않은데다 숯불
이 이글이글하는 청동화로를 옆에도 갖다  놓고 뒤에도 갖다 놓아서 땀이 날 지
경이라, 단천령이 더  방색할 말이 없어서 창의를 벗으려고 술띠를  끄르니 소홍
이가 선뜻 일어나 창의를 받아서  한곁으로 치워놓았다. “복건마저 벗으시지요?
” 하고 소홍이가 권하는데 “맨상투바람으로 앉았는 꼴이 보구 싶은가?” 하고 
단천령이 말하는 것을 꺽정이가 듣고 한온이를 불러서 “손님 감투가 집에 있겠
지. 얼른 사람 보내가져오게.” 하고 일렀다.  꺽정이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가 무
섭게 득달같이 탕건을 가져와서 단천령이 복건마저 벗었다.
  얼굴들이 불그레할 만큼  술기운이돌았을 때, 서림이가 꺽정이를  보고 “술은 
나중에 다시 먹을  작정하구 저 기집들의 음률을 한번 들어보시지요.”  하고 말
하여 꺽정이의 분부로 주안상들을 물리는데 곽오주,  길막봉이 같은 사람은 내놓
기 싫은 상을 억지로  참고 내놓았다. 여러 사람의 상이 놓였던  자리와 그 앞자
리에 송도 기생이 하나는 가야금을 안고 또  하나는 장고를 끼고 앉았다. 단천령
은 초향이의 가야금을 들은 귀가 더러워질 듯 생각하였던지 가야금 들여오란 말
을 들은 때부터 눈살을 찌부리고 있었다. 가야금  소리 나기 전에 단천령은 슬며
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난간 앞에 나와 앉아서 밖을 내다보려고 휘장을 치어드니 
먼저 화로를 갖다놓던 사람이 어느  틈에 뒤에 따라와 섰다가 옆으로 나서며 “
휘장을 좀  거드치오리까?” 하고 물어서  단천령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 사람이 휘장끝을  접침접침 접어서 줄 위로  걷어올린 뒤에 단천령이 난간을 
의지하고 앉아서 밖을 내다보며 “횃불이 달을  끄슬르는군.” 하고 혼잣말을 하
였다. 신불출이가 단천령의  혼자 하는 말을 듣고 꺽정이에게 가서  품하고 마루 
끝에 나서서 마당에  섰는 졸개들더러 홰를 끄라고 소리를 쳤다.  졸개들이 횃불
을 두들겨 끄는  중에 이왕이면 사초롱도 앞으로  두엇만 남기고 다 꺼버리라고 
꺽정이가 분부를 내리어서  불빛이 거의 다 없어지니 달빛이 밝게  솟아났다. 초
저녁의 흐릿하던 것이 맑아져서 달빛이 대낮같이  명랑하였다. 가야금 뜯는 기생
은 그 동안에 줄을 다  고르고 향악에 밑도드리부터 시작하여 벌써 이장을 마치
고 삼장을 뜯는  중인데 수단이 과히 망측하든 아니하나, 초향이의  수단과는 천
지 상격으로 틀리었다.  단천령이 초향이를 생각하고 산 너머 먼  하늘을 바라보
며 휘파람을 불었다.  단천령은 휘파람도 잘 부는 까닭에 소리가  초군 아이들의 
초적만 못하지  아니하였다. 꺽정이가 서림이를  돌아보며 빙그레 웃은  뒤 입과 
손으로 피리부는 시늉을 내고 턱으로 단천령을  가리켰다. 휘파람보다 피리를 불
게 하란 뜻이다. 서림이가 꺽정이의 뜻을 받고  단청령 옆에 와서 앉으며 “피리 
선성은 익히 듣조왔지만 휘파람까지 용하신 줄은  몰랐소이다.” 하고 말을 붙이
니 단천령은 휘파람을 그치고 한참 있다가 “오늘  밤 달이 좋소.” 하고 딴청으
로 대답하였다. “저 기생의 가야고가  어떻습니까?” “어떻다니?” “잘하느냔 
말씀입니다.” “잘하는구려.” 이때  가야금은 밑도드리 칠장이 다 끝나고 돌장
이 시작되었었다. “밑도드리가  인제 끝났구먼요.” “음률을 아시우?” “어수
귀나 겨우 떴다구  할까요.” “어수귀라니 무슨 말이오?” “눈에  어수눈이 있
으니 귀에 어수귀가 없겠습니까?” “훌륭한  재담이구려.” “대체 파리를 어떻
게 잘 부시면  고금무쌍이라구 칭찬을 받으십니까?” “누가 고금무쌍이라구 칭
찬합디까?” “세상  사람이 다들 그렇게 칭찬하지  않습니까?” “모르구 하는 
칭찬이 대중 있소.  그러구 그까지 피리가 정말루 고금무쌍이면  좋을게 무어요? 
율객 천명이  수치나 될 뿐이지.” “율객  천명이라니 천만의 말씀이지요. 우선 
선조부 영감께서두 거문고를 잘하셨다는데 세상에서 율객으루 친단 말씀은 듣지 
못했습니다.” “사람으루 보든지 학문으루 보든지 나  같은 불초손이 어디 있겠
소. 그러구 또 거문고는  점잖은 악기라 여느 악기와 다르니까.” “왜 거문고를 
배우시지 않구  피리를 배우셨습니까?” “배우려구  배운 것두 아니오.  장악원 
악공의 피리 잘 부는 사람이 우리 조부 때부터 집에를 다녀서 아이 적에 장난으
루 배운 것인데 그럭저럭  조명이 널리 나게 되었소.” “오늘 밤  이런 좋은 달
밤에 피리를 한번 안 부르시렵니까?” “달은 좋아두  흥이 나지 않소.” “내가 
귀뜸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고 서림이가  갑자기 가는 목소리로 소곤거리
듯 말하니 “무슨 말이오?” 하고 묻는 단천령의  말소리도 따라서 낮아졌다. “
오늘 밤  이 잔치의 속내를 아십니까?”  “내가 알 까닭이  있소.” “대장이란 
사람이 피리가 듣구  싶어서 일부러 이 잔치를 차렸습니다. 가야고  끝난 뒤에는 
필경 한 곡조  듣자구 청할 테니 처음에 좋은  낯으루 청할 때 선뜻 허락하십시
오.” “그 청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할  모양이오.” “아까 잔치 차릴 공론을 
할 때  일껀 잔치까지 차렸다가 피리를  안 불면 어떻게 하랴  말이 났었습니다. 
오복전 조르듯 조르자구 말하는 사람두  있었구 한 달이구 두 달이구 붙들어 두
었다가 그예 한번 듣자구 말하는 사람두 있었는데, 대장이  이 말 저 말 다 듣구 
나서 하는 말이  한번 불래서 불지 않으면 창피하게  조를 것두 없구 또 나중에 
듣자구 붙들어 둘 것두 없구  피리를 다시는 불지 못하두룩 입살을 짜개서 쌍언
청이를 만들구 두 손의  손가락을 끊어서 조막손이를 만들어 놔보내겠다구 합디
다. 이
런 불호광경이 나지 않두룩 조심하십시오. 저녁 전에  잠깐 뵙구 말씀을 해 드리
려구 한 것이 틈이 없어 못 갔습니다.”  서림이의 소곤소곤 지껄이는 말이 단천
령 귀에는  우뢰같이 울리었다. 단천령이  송구한 마음을 억지로  진정하고 한참 
생각하고 있다가 “여러 사람이 모두 피리를 듣구  싶어하우?” 하고 물었다. “
그러먼요. 피리를 들으려구 밖에 졸개들두 많이 모였습니다.” “여러 사람 낙망 
안 되게 한 곡조 불어볼까.  그러구 이왕 불 바엔 청하기를 기다릴 것두 없지.” 
“지금 부시렵니까?” “가야고가  끝나거든.” “가야고는 그만 두라지요. 피리
가 어디 있습니까?” “내  창의를 이리 가져오라시우. 소매에 피리가 들었소.” 
단천령이 서림이 꾀에 떨어져서 한  고조 불려고 마음을 먹고 창의 소매에서 학
경골 피리를 꺼내  들었다. 가야금 뜯는 기생은 듣는 사람들이  재미있게 들어주
지 아니하여 신명이 나지 않는 판에 고만두란 말을 듣고 끝이 조금 남은 타령을 
급히 몰아 마친 뒤에 가야금을 밀치고 일어나고,  장고 치는 기생은 서림이의 시
키는 대로 장고를  들고 단천령 뒤에 와서 앉고  꺽정이 이하 여러 두령은 대개 
앉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단청령 앉은 쪽을 바라보고들 있었다.  단청령이 피
리를 입에 대려고 할  즈음, 뒤에 앉은 기생이 “무슨 장단을  치라고 미리 말씀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여 단천령은 피리를 한손에 들고  뒤를 돌
아보며 “우조 초중대엽부터 삼중대엽까지.” 하고 대답하였다. 단천령이 피리를 
입에 갖다 대었다. 피리 소리가 나기 시작였다. 처음에는 여느 사람의 피리나 마
찬가지지 별수가 없었다. 처음  잠깐 듣고 일어서 간 사람이 있다고  치고 그 사
람더러 말하라면 “단천령이 피리를 귀신같이 분다더니  그저 그렇데.” 하고 말
하였을 것이다. 피리가 차차로 조화를 부리는 듯 우수수 지나가는 바람 소리, 딸
딸딸 구르는 낙엽 소리,  사람들의 지껄지껄하는 소리, 모든 소리를 다없이 하여 
여러 사람  귀에 들리는 것이 피리  소리밖에 없었다. 꺽정이 이하  여러 두령이 
서로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그만 피리에서  어찌하면 그런 웅장한 곡조가 
나오며 우스운 피리 소리에 어찌하면  그런  굉장한 기세가 나타날까. 그 곡조는 
그 기세를 좀 흔감스럽게 형용하면 큰바람이  바닷물을 뒤집는 듯러고, 바윗덩이
가 높은 산에서 내리구르는 듯하고, 호걸남자가 큰칼  비껴 들고 말을 놓아 천만
진중에서 횡행하는 듯하였다.  형용은 고만두고 말할지라도 대장부의  씩씩한 기
운을 돋워 줄 만하였다.  꺽정이 이하 여러 두령들이 어느 틈에  단천령 뒤에 와
서 둘러앉았는데 혹  어깨도 으쓱으쓱하였다. 단천령이 우조를 다 불고  뒤를 돌
아보다가 여러 사람 거동을 보고 적이 웃으면서  피리를 다시 불었다. 곡조가 달
랐다. 이번 고조는 처량하였다. 장고 치던 기생이 계면조를 모를 리 없건만 장고
채를 꽂아놓고 가만히 앉았으므로  소홍이가 장고를 끌어다가 끼고 앉아서 피리
를 따라 장단을 쳤다.   춘몽같은 세상이요, 초로같은 인생인데 시름도 첩첩하고 
설움도 첩첩하다. 첩첩한  시름과 설움을 피리로 풀어내는 듯 피리  소리가 원망
하는 것도 같고 한탄하는 것도 같고 하소연하는  것도 같으나, 어떤 마디는 천연 
울음을 우는 것과  같았다. 그칠듯 자지러지는 소리는 목에 메어  울음이 나오지 
않는 것 같고  호들갑스러운 된소리는 울음이 복받쳐 터지는 것  같았다. 사람의 
울음은 아니나 울음소리 같은 것은 필시 귀신의  울음일 것이다. 오가는 죽은 마
누라의 혼이 와서  울고불고 하는 듯 생각하고  닭의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
다. 다른 두령들도 각기 구슬프고 한심한 생각이  나서 혹은 눈을 끔벅거리고 혹
은 한숨을 지었다. 바깥마당에서는  누가 우는지 흑흑 느끼는 소리까지 났다. 꺽
정이가 마음이 공연히 비창하여지는 것을  억지로 참는 중에 이 광경을 보고 급
히 손을 내저으며 “피리를 고만 끄치우.” 하고 소리를 질렀다. 단천령이 못 들
은 체하고 피리를 그치지  아니하여 꺽정이가 벌떡 일어나서 단천령의 팔죽지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단천령은 팔죽지가 떨어지는 것 같아서 아이쿠  소리를 부
지중에 질렀다. 꺽정이가 잡은 팔죽지를 놓고 “우리  자리루 가서 술이나 더 먹
읍시다.” 하고 말하였다. 여러 사람이 다같이 먼저 앉았던 자리에 와서 다시 좌
정한 뒤에 꺽정이가 주안을 새로  가져오라고 하여 술들을 한 차례 먹고 다담을 
잇대어 가져오라고 하여  밤참들을 먹었다. 송도 기생 중의 가야금  뜯던 계집은 
단천령 가까이 앉는 것도 호강인 양 생각하는지 술 먹기 전부터 밤참 먹은 뒤까
지 단천령 옆을  잘 떠나려 들지 아니하였다. 서림이가 이것을  눈여겨보고 이봉
학이에게 몇 마디 귓속말을 하더니 자리를 피하고  일어들 설 때, 이봉학이가 그 
기생더러 “너는 손남을 뫼시구 가서 오늘 밤에 수청을 자거라.” 
하고 일러서  단천령을 딸려 보냈다.  이튿날 식전에 꺽정이가  도회청에 나사서 
조사를 마치고 사랑으로 돌아올 때, 서림이가 뒤따라 왔다.  “아침 먹으러 가지 
않구 어째 왔소?  무슨 할 말이 있소?” “단천령을 어떻게  하실랍니까, 놔보내
실랍니까?” “오늘 보내겠소.” “제 생각에는 아주 붙들어  두어두 좋을 것 같
은데 어떨까요?” “서종사, 피리에  반했구료.” “옛날 초한전쟁 때 한나라 장
자방이 계명산 가을밤에 퉁소를 불어서 초나라  대군을 흩어버린 일이 있답니다. 
단천령의 피리가 장자방의  퉁소만 못지 않을 듯한데  붙들어 두면 앞으루 혹시 
쓸데가 있을지 누가 압니까.” “그런 때 적진  군사는 흩지 못하구 자기 군사를 
흩으면 어찌하오?” “그거야 미리 단속해  두면 염려없겠지요.” “단천령이 입
당을 할 듯싶소?” “지금은  잘 안할러구 하겠지만 오래 두구 시달리면 모르지
요.” “당장은 고만두구  장래라두 꼭 쓸데가 있다면 또 모르지만  혹시나 쓸데
가 있을까 바라구 귀골  양반을 붙들어 둘 건 없소.” “칠장사  스님 유서에 ‘
삼년적리관산월’이란 글이 있습지요.  단천령을 삼 년 동안 붙들어 두면  그 글 
뜻이 맞을 듯 생각이  듭니다.” “관산달이란 말에 이별 뜻이 있다며. 이별이란 
좋지 않은 것인데 억지루  맞두룩 할 것 무어 있소.” “저두  꼭 붙들어 두자구 
말씀 여쭙는 건 아닙니다.” 이 때 마침  한온이가 퇴 앞에까지 들어오다가 도로 
나가는 것을 꺽정이가 열어놓은  방문으로 내다보고 “그게 온이 아닌가? 왜 안
들오구 도루 가나?” 하고  소리하여 한온이가 방에 들어와서 도로 나간 발명으
로 “무슨 의논들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무슨 의논을 하기
루 자네가 피할 까닭  있나.” “말씀할 일이 급한 일이 아니니까  좀 있다 다시 
오려구 했습니다.” “무슨 일인데?” “단천령이  식전 일어나며부터 와서 보입
겠다구 하는 것을 조사  끝나기까지 기다리라구 일러두었는데 지금 데리구 와두 
좋을는지 여쭤보러 왔습니다.” “오늘 가게 해달라구 나를 보자는 게지.” “아
마 그렇겠지요.”  “아침 후에 데리구  오게.” “아침은  먹었습니다.” “나는 
아침을 아직 안 먹었는데 나중에 데리구 오라구 통기할 테니 가서 있게.” 
  한온이와 서림이가 같이 일어서  나간 뒤에 꺽정이는 신불출이를 불러서 아침 
재촉을 시키었다. 전날  밤에 꺽정이가 도회청에서 소흥이 집으로 가서  음률 이
야기를 듣다가 그대로 눌러 자고  식전에 기침을 여느때보다 늦게 한 까닭에 자
리조반도 안 먹고  조사를 보러 나갔었다. 꺽정이가 안에 들어와서  아침밥을 먹
을 때, 그 누님 애기 어머니가 상머리에  앉아서 시중을 들면서 “대장두 어젯밤
에 피리  듣고 눈물을 냈다지?” 하고  물었다. “누가 그 따위  소릴 합디까?” 
“백손이 외삼촌이 우리를  속였구먼.” “실없는 것이 거짓부리하는  걸 고이듣
는 사람이 딱하우.” “우리만 보고 그런 소릴  하면 곧이 안 들었겠지만 백손이
더러 형님께서 눈물을 내셨다구 하구 바로  점잖게 말하기에 그럴싸하게 들었지. 
속은 걸 생각하니 분해  죽겠네.” “누님두 나와 들으셨소?” “죄다 나갔었지. 
누구 안 나간 사람 있어.” “그래 안식구들  중에 더러 운 사람이 있소?” “소
리내서 울기까지 한 사람은 갑돌이 처 하나지만  눈물 낸 사람은 한둘이 아니야.
” “갑돌이 처는 아주 통곡을 했소?” “난간 모퉁이에 가 붙어서서 우는 소린 
나두 들었서. 그년은 무슨 설움이 그렇게 많아서  통곡까지 했단 말이오?” “그
년이 어느 때는 꼭  산매들린 것 같으니까 매친 증이 났든  거야.” 꺽정이가 남
매 이야기하며 밥을 먹느라고 한동안 늘어지게 안에 있다가 사랑에를 나와 보니 
이봉학이, 박유복이, 배돌석이,  길막봉이 네 두령이 사랑에  와 앉아 있었다. 네 
두령이 일제히 일어섰다가  꺽정이가 자리에 와서 앉은 뒤에 다시들  앉는데, 그 
중의 길막봉이는 이날 탑고개를  나가게 되어서 꺽정이를 보고 가려고 기다리던 
차이라 일어선  채로 “저는 지금 탑고개를  나갑니다.” 하고 말하였다. “아직 
좀 있거라.” “무슨 이르실 말씀이 있습니까?” “단천령을  오늘 보낼 텐데 네
가 데리구 나가거라.”  “그럼 한두령에게 가서 단천령을 데리구 가겠습니다.” 
“가만 좀 있어. 내가 아직 가란 말두 이르지 않았다.” “데리구 나갈 아이들은 
도회청 앞에 세워놨는데  그 아이들이나 먼저 내보낼까요?” “가만히 있으라는
데 무슨 잔소리냐!”  하고 꺽정이가 꾸중기 있게 말하여 길막봉이는  입을 다물
고 우두머니 섰다가 다시 주저 앉았다.  꺽정이가 신불출이를 불러서 “한두령에
게 가서 손님을  데리구 오시라구 말해라.” 하고 분부할 때  서림이가 들어오더
니 꺽정이를 보고  “좀 있다 보내시지요.” 하고 말하여  “왜?”하고 꺽정이가 
물었다. “제가 지금  한두령에게를 다녀오는데 단천령이 황두령하구  내기 장기
를 둡디다.” “무슨 내기야?” “단천령이 지면 피리를  한번 더 불구 황두령이 
지면 탑고개까지  곧 데려다 주기랍디다.  단천령 장기가 황두령하구  맞둘 수가 
못되는 걸 황두령이 수를 속이구 한두령과 김두령이 부추려서 내기를 시킨 모양
입니다. 지금  사람을 보내시면 장기판이 깨질  테니 이따가 피리 소리  난 뒤에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꺽정이가 서림이의 말은  대답 않고 가지  않고 섰는 
신불출이를 돌아보며 “왜  안 가구 섰느냐? 얼른 가서 곧  오시라구 해라.” 하
고 재차 분부하여 내기 장기판을 끝마치게 하려고 청하던 서림이는 더 개구하지 
못하였다. 신불출이가간 지 얼마 아니 되어서  한온이가 단천령을 데리고 오는데 
황천왕동이와 김산이도 따라왔다. 꺽정이와 먼저 있던  네두령이 밤 잔 인사들을 
마치고 여러 사람이 다같이 좌정한  후에 꺽정이가 단천령의 보자는 뜻을 다 짐
작하면서 짐짓 “무슨 일루 나를 보자구 하셨소?”  하고 물었다. “어제두 누누
이 말씀했지만 내가 집에 갈 맘이 일시가 바쁘니 오늘 아침에는 꼭 떠나게 해주
시우. 이 말씀하려구 보입자구  했소.” “당신의 피리가 하두 용해서 우리 중의 
반한 사람이  많소. 당신을 붙들어서 한  삼년 같이 지내게 해달라는  청을 내가 
받구 왔소.” 단천령은 놀라서 입을 딱 벌리고 말을 못하였다. “어제 내가 오늘 
보내 드리마구 말했는데 대장부가 일구이언하겠소. 보내 드릴 테니 염려 마시우.
”꺽정이의 말에 단천령은 놀란  마음이 가라앉아서 “지금 곧 떠나게 해주셨으
면 좋겠소.” 하고 바짝 졸랐다. “그리하시우.  서울까지 가실 노수를 드리구 싶
으나 찐덥게 생각하실지 몰라서 고만두구 정으루  조그만 물건 하나를 빌리겠소.
”하고 꺽정이가 옷고름에 찬  먹감나무로 만든 제골장도를 끌러서 단천령을 주
면서 “길에서 혹시 작경하는 자들을 만나거든  이걸 내보이시우.” 하고 말하니 
단천령은 인사성으로 한번 치사하고 받았다. 
  단천령의 노주를 데리고  탑고개로 나가려고 할 때, 송도 기생들이  단천령 일
행과 같이  나가게 하여 달라고 황천왕동이를  졸라서 황천왕동이가 꺽정이에게 
말하고 같이 내보내는데 단천령에게 수청든 기생은 일례로 주는 상급 외에 피륙 
몇 필을  더 행하여 주었다.  단천령이 길막봉이의 배행으로  탑고개까지 나와서 
길막봉이에게 수어치사하고  곧 송도로 향하는데,  몸과 마음이 다  거뜬하여 곧 
날 것 같았다. 몸은 나귀 등에 실리었을 망정 마음은 날았다. 거미줄에 걸리었던 
나비가 거미줄에서 떨어져서 청산으로 날아가는 듯,  조롱에 갇히었던 새가 조롱
을 벗어나서 공중으로 날아가는 듯  단천령이 눈뜨고 꾸는 꿈에 나비 되에 너푼
너푼 날고 새가  되어 훨훨 날다가 나귀가 넓은  도랑을 건너뛸 때 하마 떨어질 
뻔하고 꿈이 깨어졌다. 댕갈댕갈 지껄이는 계집들  말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적굴
에서부터 동행하는 송도  기생 둘이 말들을 옆으로 타고 뒤에  따라오는데, 지껄
이는 것은  자기 이야긴 듯 양반  율객이란 말이 귓결에 들리었다.  율객 소리가 
귀에는 거치나 마음에 까지는 거슬리지 아니하였다.  그보다 더한 소리를 한대도 
시들스러웠다.  단천령  눈에 좌우 산천이 처음 대하는 것같이  새로워서 산보고 
좋아하고 물 보고 좋아하며 송도부중까지 들어왔다.  송도를 지나면 점심참이 없
으나 해가 점심때가 안 되어서  단천령이 송도서 쉬지 않고 그대고 지나가려 하
다가, 적굴에서 수청든  기생이 저의 집이 멀지 않다고 잠시  들러가라고 붙들어
서 그 기생의 집에 가서 점심 대접을 받고 묵어가라고 붙드는 것은 못하겠다 떼
치고 떠나왔다. 장단읍내 숙소할 작정하고 나귀를 술렁술렁 걸리었다. 어느덧 널
물이를 지나서 어룡개 앞길에 당도하여 산  한모퉁이를 돌아서자, 수건으로 머리
를 질끈질끈 동인 놈 서넛이 길가에 주저  앉았다가 죽들 이어섰다. 단천령의 하
인이 얼른 지나가려고 나귀를 채쳐 모니 세  놈이 길을 가로막고 나섰다. 하인은 
뒤로 주춤 물러서며 단천령을  치어다보고 단천령은 태연하게 나귀 등에 앉아서 
세 놈을 내려다보았다. “어서 내려라!” 하고 한 놈이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
서는데 단천령은  예사 언성으로 “왜  내리라느냐?” 하고 뇌까렸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보다  모르겠느냐? 노수 다 내놓구 나귀까지 두구  가거라.”  단
천령은 꺽정이 장도가 문득 생각나서 “보여 줄 만한 물건은 하나 있거니”"  하
고 말하며 창의 소매에  든 장도를 꺼내서 앞에 나선 놈을  내주었다. 그놈이 장
도를 받아들고 보는데  두 놈마저 와서 들여다보더니  세 놈이 서로 돌아보면서 
혹 입도 벌리고 혹 고개도 흔들었다. 장도  가진 놈이 단천령을 치어다보며 “이
걸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하고 깍듯한 말씨로 물었다. “장도  임자에게서 얻
었지 어디서  얻어?” “녜,  그러십니까. 그러신  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자, 어서  행차합시오.” “장도는 나를  도루 주어야지.” “녜,  예 있습니다.” 
단천령이 어룡개 앞길 후미진 곳에서  적환을 면한 뒤 꺽정이의 장도가 값 있는 
줄을 밝히 알았다. 이날 밤에 장단 숙소하고  이튿날 낮에 파주 중화하고 고양으
로 오는 길에 혜음령 중턱에서 단천령은 또  화적을 만났다. 화적 댓놈이 내달아
서 길을 막으며 “나귀,  게 세워라!” 하고 소리지를 때, 단천령은  화적들을 가
까이 오라고 손짓하여  불러다가 겉고름에 찬 장도를 보라고 내밀었다.  화적 한 
놈이 저의 동무들더러  “청석골 대장의 표신일세.” 하고 말한 뒤  길들을 비키
었다. 고양음에서 숙소하더라도  내일 입성하기는 일반인데, 단천령은 단 십리나
마 서울 더 가까이 오려고 새원 와서 숙소하고 이튿날 일찍 떠나서 아침결에 녹
번이고개를 넘어올  때 어떤 사람 하나가  나귀 머리에 와서 굽실  절을 하였다. 
단천령이 전에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누군고?” 하고 물으니 그 사람이 누구
란 말은 하지 않고  “청석골서 장두 가지구 오시는 행차시지요?” 하고 되물었
다. “그걸  어찌 알구 묻나?” “다  압니다. 그 장두를 이리  줍시오.” “그건 
돼 달래?” “찾아보내란  기별이 왔습니다.” “청석골서 사람이  왔단 말이야?
” “녜, 그저께  왔다 갔습니다.”“무어야? 내가 그저께  청석골서 떠났는데.” 
“오지 않은 걸 왔달  리가 있습니까. 황두령이 그저께 왔다 갔습니다.” “황두
령이라니 장기 잘 두는 사람 말인가?” “녜,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그저께 
청석골 있었는데 무슨 당치 않은 소린가?” “황두령이 장기 잘 두는 건 아셔두 
축지법하는 건 모르십니다그려. 요새 해에두 서울을 차례 도다녀갈 겁니다.” 단
천령은 더 말 안  하고 곧 장도를 끌러서 그 사람을  내주었다. 단천령이 입성한 
뒤 불과 삼사 일쯤 지나서부터 단천령의 봉변한 이야기가 남북촌 사랑의 이야깃
거리로 돌기 시작하였다. 당시 병조판서 권철이 어느 날 밤에 문객 사오
 인을 불러놓고 세상 소문을  이야기시키고 듣는 중에 문객 하나가 “종실 단천
령이 청석골 적굴에 붙잡혀  가서 피리 불구 대접받은 이야기를 들어 기십지요?
” 하고 물으니, 권판서는 고개를  한두 번 가로 흔들며 “못 들었네.” 하고 대
답하였다. “단천령 이야기가 요새 파다하든데 어째  대감께서 이때까지 못 들으
셨습니까?” “파다한 이야기를  인제라도 좀 듣게 이야기하게.” 그  문객이 단
천령 이야기를 몰라서  빼기도 하고 꾸며서 보태기도  하여 일장 이야기를 마치
자, 다른 문객 하나가 그 뒤를 받아서  황해도 선비들의 소조를 이야기하는데 주
워 들은 소문이라 죽은 사람과  살아간 사람의 수효가 다 틀릴뿐더러 사실과 뒤
쪽으로 말을 뻣뻣하게 한 사람들은 모두 죽고 창피하도록 애걸복걸한 사람은 살
아갔다더라고 이야기하였다. 단천령  이야기가 태반 터무니도 없는  이야기를 여
러 문객들이 받고채기로 지껄인 끝에 먼저 단천령의 일을 이야기하던 문객이 주
인 대감을 보고 “꺽정이 같은 근고에 없는 큰 도둑놈을 조정에서 얼른 잡아 없
앨 도리를 차리지 않는  것이 웬일이오니까?” 하고 물은즉 권판서는 잠자코 쓴
입맛만 다시었다. 
  매일 상참에는 임금이 편전에서  신하들은 접견하고 간인 조참에는 임금이 정
전에서 신하들  조회를 받던 것인데, 상참과  조참이 연산주 때 정지된  뒤 거의 
빈 이름만 남게  되어서 근신 외에는 신하들이 임금을 면대할  기회가 드물었다. 
권판서가 재상 몇 사람과 서로  의론하고 같이 예궐하여 위에 알현을 청하여 편
전에서 면계로 아뢰기를 “황해도 대당 근포하올 방책은 삼공이 이미 아뢰온 일
도 있솝거니와 근래 적세가 점점  더 성하와 행려를 욕보이는 건 여차이옵고 살
육까지 낭자히 하옵는 까닭에  서관대로에 행려가 두절될 지경이오며 심지어 조
관이라 칭하옵고  기탄없이 각군에를 출입하옵는대 수령이  혹 모르고 접대까지 
한자가 있었다  하오니 이런 해괴한  일이 어데 있소리까.  본도에서 체포한다는 
선성이 나오면  으레 강원도나  평안도로 도망하옵는데, 강원도에는  이천지경에 
소굴이 있솝고 평안도에는 양덕, 맹산지경에 소굴이  있다고 하옵건만 양도의 감
사나 병사가  체포할 방법을 강구한단  말이 없사오니 이것은  잘못된 일이외다. 
속히 체포하도록 비밀히 하유하옵소서. 또 그  흉악한 대당이 황해도에서 재물을 
약탈하와 개성부중에  가져다가 판매하기도 하옵고 도성  안에 와서 거접하기도 
한다고 하오므로 포도대장을  시켜 비밀히 근포라게 하였솝는데,  체포할 조처를 
한단 말이 없사오니  이것은 미타한 일이외다. 포도대장과  종사관들은 추고시켜 
그 한만한 것을 징계하옵시고 부장 군관들은 사목을 따라 치죄하게 하옵시고 금
군은 각별 택차하게 하옵소서.”  대개 이와 같이 아뢰어서 위의 윤허를 물었다. 
육칠 일 후에  사간원 간관들이 초기로 합계를 올리었는데, 그  계사는 이러하였
다. “황해도 한 도가 도적의 소굴이 되어서  행인을 무참히 죽이거나 잔생이 욕
보이와 도로가 막히게 되옵고 약탈한 물화를 싣고 서울와서 숨어 파옵고 조관이
니 감사의 친족이니 하고 각군의  허실을 엿보고 다녔다 하오니 이건 근고에 없
는 변이라 어찌  놀랍지 않사오리까. 수색하고 체포하는 건 수령들의  할 일이오
나 명령은 감사에게서 나올 것이온데 황해감사 유지선이 한 방면 전제의 책임을 
맡아가지고 간 지 지금  벌써 삼사 삭이 되옵건만, 도적 잡을  방략을 세운 것이 
조금도 없고 대적이 친족이라 하고 횡행한 일을 일찍 장계도 않고 덮어두었사오
니 이런 미타한  일이 어디 있사오리까. 속히 체차시키시고 문무  겸전한 사람을 
각별 택송합셔서 도적을 섬멸하와 지방을 간정케  하심을 바랍니다.” 위에서 간
관들의 계사대로 하라 처분을 내려서 이삼 일 후에 김덕룡이란 재상이 유지선을 
대신하여 황해감사로 나가게  되었고, 새 황해감사는 윤지숙이  적당에게 수치당
한 것을 들어 아는 까닭으로  도임초에 장파하고 신계현령 이흠례가 그 대에 봉
산군수로 승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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