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7

단차 | 2023.11.20 10:56:33 댓글: 2 조회: 244 추천: 2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9252
07

다섯째 날, 언제나처럼 양 덕분에 어린 왕자의 또 다른 삶의 비밀이 드러났다. 한참 동안 말없이 생각에 빠져있던 어린 왕자는 느닷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
"양 말이야. 양이 키 작은 떨기나무를 먹는다면 꽃도 먹으려나?"
"양은 눈에 띄는 건 뭐든 먹어."
"가시가 있는 꽃도?"
"응. 가시 있는 꽃도 먹지."
"그렇다면 가시는 뭣 떄문에 있는 거야?"
"나는 뭣 때문인지 몰랐다. 그때 난 너무 세게 조여 있던 모터의 볼트를 푸느라 정신이 온통 그쪽에 쏠려 있었다. 비행기 고장이 심각하다는 게 드러나기 시작한 데다가 마실 물도 떨어져가니 최악의 상황이 올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시 말이야. 가시는 뭣 때문에 있는 거야?"
어린 왕자는 한 번 질문을 던지면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나는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볼트에 짜증이 나서 아무 답이나 해버렸다.
"가시?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거지. 그냥 꽃 쪽의 심술이랄까."
"아 그래?"
잠시 조용하더니 그가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내질렀다.
"그럴 리가 없어! 꽃은 연약해. 순진하다고. 할 수 있는 만큼 자신을 안심시키고 싶은 거야. 가시를 둘렀으니 자신이 무시무시하다 믿고 있는 거라고."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순간 속으로는 '이놈의 볼트, 계속 말을 안 들으면 망치로 내리쳐 버리겠어.'라고 중얼대고 있었다. 어린 왕자는 이런 내 생각을 다시 흐트러뜨렸다.
"아저씨는 그렇게 생각하는 거잖아. 꽃들이..."
"아니야. 아니라고! 난 아무 생각도 없어! 아무렇게나 대답한거야. 난 지금 진지한 일로 정신이 없다고!"
그는 멍하니 나를 바라다보았다.
"진지한 일?"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검댕이 묻은 손으로 망치를 들고서 몹시 흉하게 생긴 물건을 향해 몸을 구부리고 있는 내 모습을.
"꼭 어른들처럼 말하네."
어린 왕자의 그 말이 나를 조금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는 가차없이 덧붙였다.
"아저씨는 다 잘못 알고 있어. 다 뒤죽박죽이라고."
그는 정말이지 몹시 화가 나 보였다. 그의 환한 금발이 바람에 흔들렸다.
"내가 아는 어느 별에 얼굴 시뻘건 아저씨가 살고 있는데, 그는 꽃향기를 맡아 본 적도 없고, 별을 바라본 적도 없고, 사람을 좋아해본 적도 없어. 오로지 덧셈만 해. 그거 말고는 해본게 없어. 그리곤 아저씨처럼 온종일 이 말만 반복해. '나는 진지한 사람이다! 나는 진지한 사람이다!' 그 말에 혼자 우쭐해지지. 하지만 그런건 사람이 아니야. 버섯이지."
"뭐라고?"
"버섯이라고!"
어린 왕자의 얼굴이 화로 하얗게 질려버렸다.
"옛날 옛날부터 꽃들은 가시를 만들어 왔어. 그만큼 오래전부터 양들은 가시가 있다 해도 꽃을 먹어 왔고, 아무 쓸모가 없는 거라면 꽃들이 대체 왜 그리 힘들게 가시를 만드는 건지, 그걸 알려는 게 진지한 일이 아니란 말이야? 양과 꽃 사이의 싸움이 중요하지 않단 말이야? 이게 얼굴 시뻘건 아저씨의 덧셈보다 덜 진지한 일이란 말이야? 만약 내 별 말고는 그 어디에도 없는 세상 유일한 꽃을 내가 알고 있는데, 어린 양 한 마리가 어느 아침에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 꽃을 꿀꺽해서 사라지게 할지도 모른다 해도, 이게 중요한 일이 아니란 거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는 계속했다.
"수백만 개의 별들 중 어딘가에, 그런 종류로는 세상 유일한 한 송이 꽃을 누군가가 좋아한다면, 그 사람은 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거야. '저 별 어딘가에 내 꽃이 있겠지' 생각하면서 말이야. 근데 그 꽃을 양이 먹어 치워 버린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는 모든 별들이 순식간에 빛을 잃어버리는 거나 마찬가지가 되는 거야. 그런데도 이게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어린 왕자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는 돌연 울음을 터뜨렸다. 밤이 내렸다. 나는 손에 들었던 연장을 던져버렸다. 망치고 볼트고 갈증이고 죽음이고 그따위 것 뭐든 아무 상관 없어졌다. 어느 별에, 내가 사는 지구라는 이 별에, 위로가 필요한 어린 왕자가 있었다. 나는 그를 품에 안았다. 그를 달랬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네가 사랑하는 그 꽃은 위험해지지 않을 거야. 입마개를 그려줄게. 양에게 씌우자. 꽃에 두를 갑옷도 그려줄게...난...내가..."
더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너무도 서툴기만한 나 자신이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 그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는지, 어디서 그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는지...나는 알 수가 없었다. 눈물의 나라란 그다지도 신비로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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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34.♡.144
봄날의토끼님 (♡.65.♡.126) - 2023/11/20 11:24:16

저의 꽃도 저 수백만개 별들중에서 빛을 내고 있겠지요? 저도 그냥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싶네요.

단차 (♡.252.♡.103) - 2023/11/20 11:27:04

저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밤산책 나갈 때 밤하늘을 올려다보곤 했어요. 분명 어딘가에 있을거에요. 저는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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