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15~17

단차 | 2023.11.22 22:18:38 댓글: 2 조회: 132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0161
15
여섯 번째 별은 10배는 더 넓은 별이었다. 그 별에는 어마하게 큰 책을 쓰고 있는 노신사가 살고 있었다.
"어랏! 탐험가가 왔구나!" 어린 왕자가 온 것을 보고 노신사가 소리쳤다.
어린 왕자는 탁자에 걸터앉아 가쁜 숨을 잠시 골랐다. 이미 꽤 긴 여행이었던 거다.
"넌 어디서 왔니?" 노신사가 어린 왕자에게 물었다.
"이 두꺼운 책은 뭐에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거죠?"
"나는 지리학자란다." 노신사가 답했다.
"지리학자가 뭔데요?"
"바다와 강이 어디 있고 산과 사막이 어디 있는지 그 위치를 알고 있는 학자를 말하는 거지."
"아, 그거 재밌네요. 이제야 직업다운 직업을 만났어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리고는 지리학자 주변으로 눈을 돌려 그의 별을 훑어보았다. 이처럼 위엄 있는 별은 이제껏 본 적이 없었다.
"별이 무척 아름다워요. 이 별에는 큰 바다가 있나요?"
"그건 알 수가 없구나." 지리학자가 말했다.
"아!(어린 왕자는 실망했다) 그럼 산은요?"
"그건 알 수 없구나." 지리학자가 말했다.
"그럼 마을이나 강이나 사막은요?"
"그것 역시 알 수가 없구나." 지리학자가 말했다.
"아니, 지리학자라면서요!"
"그건 맞지." 지리학자는 말했다. "그렇다고 내가 탐험가는 아니거든. 여긴 탐험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단다. 마을과 강과 산과 바다와 대양과 사막의 개수를 파악하는 것은 지리학자의 일이 아니야. 그렇게 돌아다니기에 지리학자는 너무 중요하지. 자신의 사무실을 벗어나지 않아. 대신 탐험가를 사무실로 불러 탐험에 대한 그들의 기억을 묻고 그걸 기록해 둔단다. 그중 흥미롭다 싶은 게 있으면 조사에 돌입하게 하지. 탐험가의 도덕성에 대해 말이야."
"그건 왜죠?"
"거짓말을 하는 탐험가라면 지리학자 책에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잖니. 술을 너무 마셔대는 탐험가도 마찬가지고."
"어째서 그렇죠?" 어린 왕자가 물었다.
"술꾼들 눈엔 사물이 2개로 보이니까. 그러면 지리학자가 산을 2개라고 기록하게 되잖니. 실제로는 산이 하나뿐인데 말이지."
"나쁜 탐험가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 한 명 떠오르네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럴 수도. 아무튼 탐험가의 도덕성이 건전하다 싶으면 그떄 그가 발견한 것에 대한 조사에 들어가는 거야."
"가보는 건가요?"
"아니. 그러면 너무 복잡하고. 대신 그 탐험가에게 증거를 갖춰오라고 요구하지. 예를 들어 거대한 산을 발견했다고 치자. 그러면 그 산에 있는 거대한 돌을 가져오라고 하는 거야."
지리학자가 갑자기 흥분해 말했다.
"그런데 너 말이야. 너 멀리서 온 거지! 탐험가였어! 너의 별에 대해 묘사해주렴."
지리학자가 자신의 기록부를 펼치더니 연필을 깎았다. 탐험가의 이야기는 우선 연필로 받아 적어 두었다가 탐험가가 증거를 가져오면 그제야 잉크로 쓰게 된다.
"자, 그래서?" 지리학자가 물었다.
"아. 내가 사는 별이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다지 흥미롭진 않을 텐데요. 아주 작거든요. 화산이 3개 있는데. 2개는 활화산이고 1개는 사화산이에요.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요."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지리학자가 말했다.
"꽃도 한 송이 있어요."
"꽃은 기록하지 않아." 지리학자가 말했다.
"그건 왜죠? 별에서 제일 예쁜데!"
"꽃은 한때의 존재니까."
"'한때'라는 게 무슨 의미죠?"
"지리책은 모든 책 중 가장 귀한 책이야. 시대가 바뀐다고 결코 구닥다리 책이 되거나 하지 않아. 산이 자리를 옮긴다던가 바닷물이 마른다든가 하는 건 무척 드문 일이니까 말이야. 우리 지리학자들은 영원한 존재만 기록한단다."
"하지만 사화산이 다시 살아나기도 하잖아요." 어린 왕자가 끼어들었다. "'한때'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
"화산이 죽었든 살았든 우리 지리학자에겐 결국 마찬가지야." 지리학자가 대답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산이야 산. 산은 변치 않으니까."
"근데 '한때'라는 게 무슨 말이냐니까요?" 한 번 질문을 던졌다 하면 결코 거두는 일이 없는 어린 왕자가 또다시 물었다.
"그건 '곧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라는 의미야."
"내 꽃이 곧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고요?"
"물론이지."
'내 꽃은 한때의 존재였어.' 어린 왕자는 중얼거렸다. '세상에 맞서 자신을 지킬 거라고는 4개의 가시가 전부인데! 그런 꽃을 내가 별에 혼자 내버려 두고 온 거야!'
처음으로 드는 후회의 감정이었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다시 용기를 냈다.
"제가 어느 별에 들르면 좋을지 조언을 주실 수 있을까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지구라는 별이 있어." 지리학자가 대답했다. "평판이 좋은 별이지..."
어린 왕자는 자신의 꽃을 떠올리며 그 별을 떠났다.16
일곱 번째 별은 그리하여 지구였다.
지구는 그저 그런 별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왕이 111(물론, 흑인 왕들까지 빼놓지 않고 쳐서), 지리학자가 7천 명, 사업가가 90만 명, 술꾼이 750만 명, 허영꾼이 3억 1100만 명, 다시 말해 20억에 가까운 어른들이 살고 있었다.
전기가 발명되기 이전 시절에는 지구의 6대륙을 통틀어 46만 2511명에 이르는 점등인 부대가 필요했었다는 사실을 전한다면, 지구의 크기에 대해 여러분이 좀 더 감을 잡을 수 있으리라.
조금 떨어져 바라보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점등인 부대의 움직임은 오페라 발레 무용단의 움직임처럼 규칙적이고 정확했다. 첫 등장은 뉴질랜드와 호주의 점등인들로, 그들은 가로등에 불을 밝히고는 잠을 자러 갔다. 그 다음은 중국과 시베리아 점등인들 차례로, 그들 역시 불을 켠 뒤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러고 나면 러시아와 인도 점등인들 차례가 오고 그 뒤로 아프리카와 유럽 점등인들 차례였다. 모두 무대 등장 순서에 있어 결코 실수하는 법이 없었다. 대단한 광경이었다.
다만 북극에 단 하나 있는 가로등을 담당하는 점등인과 남극의 유일한 가로등을 담당하는 그의 동료 점등인만이 슬렁슬렁 한가로운 생활을 누렸다. 그 둘은 일 년에 단 2번만 일을 하면 됐으니 말이다.


17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려고 욕심내다 보면 거짓말을 살짝 보태는 경우가 생긴다. 여러분에게 점등인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는 완전히 정직하지는 못했다. 우리 별을 모르는 이에게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줄 뻔했다. 지구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면적이란 정말이지 얼마 되지 않는다. 만약 지구에 사는 20억 명이 모임에서처럼 바짝 붙어 선다면, 가로세로 20마일인 광장 하나에 너끈히 들어가고도 남을 거다. 태평양의 가장 작은 섬 하나에 온 인류를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거다.
분명 어른들은 여러분의 이런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아무렴, 자신들이 그 정도 보다는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을 바오밥나무만큼 거대하다고 여기는 거다. 그 러니 그런 어른들에게는 계산을 좀 해보라고 권하는 게 좋겠다. 숫자를 사랑하는 이들이니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그렇다고 여러분까지 그 지루한 일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쓸데 없는 일이니까. 내 말을 믿어도 좋다.
지구에 도착한 어린 왕자는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아 몹시 놀랐다. 다른 별로 온 게 아닌가 싶어 겁이 나 있는데, 달빛 색의 고리 하나가 모래 속에서 움직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좋은 밤." 어린 왕자는 혹시나 하여 인사를 했다.
"좋은 밤." 뱀이 말했다.
"대체 내가 어느 별에 떨어진 거니?" 어린 왕자가 물었다.
"지구야. 아프리카." 뱀이 대답했다.
"아! ... 지구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니?"
"여기가 사막이라서 그래. 사막에는 사람이 없어. 지구는 크거든." 뱀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돌 위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은 사람들이 언젠가 자신의 별을 다시 찾을 수 있게끔 저렇게 환히 빛나는 게 아닐까. 내 별을 봐봐. 바로 우리 위에 있어... 그런데도 얼마나 먼지!"
"예쁜 별이네." 뱀이 말했다. "근데 넌 여기 뭐하러 온 거야?"



"꽃이랑 사이가 안 좋아져서."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랬구나!" 뱀이 말했다.
그리고는 둘 다 말이 없었다.
"사람들은 어디 있는 거야?" 어린 왕자가 겨우 다시 말을 이었다. " 사막은 좀 쓸쓸하네..."
"사람들 사이에서도 쓸쓸하긴 마찬가지야." 뱀이 말했다.
그런 뱀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어린 왕자가 말했다.
"너는 참 희한한 동물이구나. 손가락처럼 가늘어..."
"이래 봬도 난 왕의 손가락보다 힘이 세단다." 뱀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세 보이지는 않는걸... 넌 발도 없잖니... 여행도 못 할 텐데..."
"난 커다란 배보다 더 멀리 너를 데리고 갈 수 있어." 뱀이 덧붙였다. " 하지만 넌 순수하고 별에서 왔으니..."
어린 왕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거친 지구에 있기에 너는 너무 여려서 안쓰럽네. 언젠가 너의 별이 너무도 그리워지는 날이 오면 내가 너를 도와줄게. 내가 도울 수 있어."
"아! 무슨 말인 지 잘 알겠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근데 왜 너는 늘 수수께끼 같은 말만 하니?"
"난 그걸 다 풀어내니까." 뱀이 말했다.
그리고는 둘 다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추천 (1) 선물 (0명)
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3/11/23 03:23:58

어린왕자가 하필이면 사람이없는 사막에와서 뱀을 만낫네요.ㅜ

단차 (♡.252.♡.103) - 2023/11/23 06:30:29

중요한 만남이죠. 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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