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18~21

단차 | 2023.11.22 22:25:25 댓글: 2 조회: 254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0165
18

어린 왕자는 사막을 가로질러 갔고, 그러는 동안 마주친 거라곤 꽃 한 송이가 전부였다. 꽃잎이 3장 달린 별거 없는 꽃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꽃이 답했다.
"사람들은 어디에 있나요?" 어린 왕자가 예의 바르게 물었다.
꽃은 예전 어느 날 한 무리의 상인들이 지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요? 예닐곱 명 정도 있긴 있는 것 같긴 해요. 몇 년전에 보긴 했는데, 어디 가야 찾을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바람 따라다니니까요. 뿌리를 내리지 않는 이들이라 그 점이 그들을 몹시 힘들게 해요."
"그럼 안녕히." 어린 왕자가 말했다.
"잘 가요." 꽃이 답했다.


19

어린 왕자는 높은 산에 올랐다. 이제껏 그가 알던 산이라고는 무릎 정도 오는 화산 3개가 다였고, 그중 하나인 사화산을 그는 의자처럼 사용하곤 했다.
'이렇게 높은 산에서라면 별 전체와 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오겠지.'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하지만 보이는 거라곤 뾰족하기 그지없는 바위 봉우리들뿐이었다.
"안녕하세요." 혹시나 하며 어린 왕자는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메아리가 대답했다.
"그쪽은 누구시죠?" 어린 왕자가 물었다.
"누구시죠... 누구시죠... 누구시죠..." 메아리가 답했다.
"친구가 돼줘요. 난 혼자에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난 혼자에요... 난 혼자에요... 난 혼자에요..." 메아리가 답했다.
'뭐 이런 웃긴 별이 다 있어! 모든 게 메마르고 모든 게 날카롭고 가혹해. 사람들은 상상력이 부족한 데다가 남의 말만 따라 하고... 우리 별에 있던 꽃은 늘 먼저 말을 걸어왔는데...'
20
사막과 바위와 눈을 가로질러 오랜 시간 걷고 또 걸은 어린 왕자는 마침내 길 하나를 발견했다. 길이란 사람이 사는 곳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안녕하세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곳은 장미가 만발한 어느 정원이었다.
"안녕하세요." 장미꽃들이 답했다.
어린 왕자는 그 꽃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자신의 꽃과 꼭 닮아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져 그가 물었다.
"그쪽은 누구시죠?"
"우리는 장미에요." 장미꽃들이 말했다.
'아...'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어린 왕자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의 꽃은 말해왔었다. 같은 종류로는 자신이 우주에서 유일하다고. 그런데 이게 뭔가. 꼭 닮은 꽃들이 정원 한 곳에만 5천 송이나 있지 않은가!
'이 상황을 본다면 내 꽃은 마음이 크게 상할 거야. 우스운 꼴이 되기 싫어 기침을 엄청나게 해대며 죽는 시늉을 하겠지. 그러면 나 역시 꽃을 돌보는 척해야 할 거야. 안 그랬다가는 나까지 창피 줄 작정으로 정말 죽으려 들지도 몰라.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그리고는 또 생각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꽃을 가졌으니 내 자신을 부자라 여겼는데, 그냥 평범한 장미였어. 그런 장미 한 송이에다가 무릎 높이의 화산 3개. 더구나 그중 하나는 영영 불 꺼진 화산일지도 모르는데. 이걸 가지고는 아주 훌륭한 왕자가 되긴 글렀어...'
그리고는, 풀밭에 엎드려 그는 울었다.





​​​
21
그때였다. 여우가 나타난 것은.
"안녕." 여우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어린 왕자는 공손히 대답하며 몸을 돌렸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쪽이야."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사과나무 아래..."
"너는 누구니?" 어린 왕자가 물었다. "아주 예쁘구나."
"나는 여우야." 여우가 말했다.
"외서 나랑 놀자." 어린 왕자가 권했다. "나 너무너무 우울해..."
"난 너랑 놀 수 없어." 여우가 말했다. "난 길들여지지 않았거든."
"아 그래! 미안." 어린 왕자가 말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더니 덧붙였다.
"근데 '길들인다'는게 무슨 뜻이지?"
"너는 여기 사람이 아니구나." 여우가 말했다. "뭘 찾고 있는 거니?"
"사람들을 찾고 있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길들인다'는 게 무슨 말이야?"
"사람들은 말야." 여우가 말했다. "총을 가지고 사냥을 하지. 거참 성가셔. 암탉도 키우는데 그게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야. 너도 암탉을 찾고 있니?"


"아냐. 난 친구를 찾고 있어." 어린 왕자가 답했다. "근데 '길들인다'는 게 무슨 말이야?"
"그건 너무 잊혀진 일이지." 여우가 대답했다. "길들인다는 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관계를 맺는다?"
"그렇지." 여우가 말했다. "아직 넌 내게 그저 수많은 소년과 비슷한 자그마한 소년에 불과해. 그러니 난 네가 필요치 않지. 너 또한 내가 필요하지 않고. 난 네게 수많은 여우와 비슷한 한 마리 여우일 뿐이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될 거야. 너는 내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나는 네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거고..."
"이해가 좀 되는 것 같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내게 꽃이 하나 있는데... 그 꽃이 나를 길들였었나봐..."
"그럴 수도 있겠지." 여우가 말했다. "지구엔 별의별 게 다 있으니까."
"아! 지구에 있는 꽃이 아니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여우는 적잖이 당황하여 물었다.
"그럼 다른 별에?"
"응."
"그 별에는 사냥꾼이 있니?"
"없어."
"오 그거 괜찮군! 그럼 암탉은?"
"없어."
"완벽한 건 없군 그래." 여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하던 얘기로 돌아왔다.
"내 삶은 단조로워. 나는 암탉을 쫓고 사람들은 나를 쫓지. 암탉들은 다 비슷비슷하고 사람들도 다 거기서 거기야. 그래서 난 좀 지루해. 그런데 만약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삶은 환해질 거야. 다른 발소리들과 구분되는 발소리를 나는 알게 될 거야. 동굴속으로 숨게 만드는 다른 발소리들과는 달리, 네 발소리는 나를 동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마치 음악처럼 말이지. 저기 봐봐! 저쪽에 밀밭이 보이지? 나는 빵을 안 먹잖아. 그러니 밀은 내게 쓸모가 없어. 밀밭을 본다 한들 떠오르는 것도 없고, 서글픈 일이지. 하지만 너는 금빛의 머리칼을 가졌잖니. 그러니 네가 나를 길들이게 된다면 근사할거야. 금빛 밀이 너를 떠올리게 할 거고 그러면 난 밀밭에 부는 바람 소리가 좋아질 거야."
여우는 말을 멈추고 한참 동안 어린 왕자를 바라보았다.
"제발... 나를 길들여줘." 여우가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어린 왕자가 대답했다. "시간이 별로 없어. 친구도 찾아야 하고 알아야 할 것들도 많고."
"자신이 길들이는 것만 알 수 있는 거야."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더이상 무언가를 알아갈 시간이 없어 상점에 가 모든 것을 사버리지. 그런데 친구를 파는 상점은 없다 보니 사람들은 더이상 친구가 없는 거야. 만약 네가 친구가 필요하다면 나를 길들여!"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 어린 왕자가 물었다.
"참을성이 꽤나 필요한 일이야." 여우가 대답했다. "처음엔 내게서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앉도록 해. 저기 저 풀밭 정도에 말이야. 그럼 나는 너를 곁눈질해 쳐다볼 거야. 그래도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이란 건 오해의 씨앗이니까. 매일 그렇게 너는 내게 조금씩 더 다가와 앉는 거야..."
다음날 어린 왕자가 다시 왔다.
"같은 시간에 오는 편이 나았을 거야." 여우가 말했다. "만약 네가 오후 4시에 온다고 하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행복이 차오를 거야. 4시가 되면 이미 나는 안절부절 불안해질 거고, 행복의 대가를 알게 되는 거지! 그런데 네가 아무 떄나 온다고 해봐. 그럼 나는 언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 절대 모를 거야... 의식이 필요해."
"의식? 그게 뭔데?"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것 역시 너무나 잊혀진 일이지." 여우가 말했다. "그건 어느 하루를 다른 날과 다르게 만들고,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들어 주는 일이야. 이곳 사냥꾼들에게도 의식이라는게 있단다. 그들은 목요일마다 마을 아가씨들과 춤을 추거든. 그러니 목요일은 멋진 날이 되는 거지. 그날이면 나도 저기 저 포도밭까지 산책을 나가. 만약 사냥꾼들이 아무 때나 춤을 춘다면 모든 날이 모두 같을 테니 내게 휴일 따위는 없을 거야."



그렇게 어린 왕자는 여우를 길들였다. 그리고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왔을 때 여우가 말했다.
"아! 나 울 것 같아."
"네 탓이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너를 힘들게 하고픈 마음따위 없었는데. 길들여달라고 했던 건 너였잖아."
"맞아." 여우가 말했다.
"근데 넌 울려고 하잖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맞아." 여우가 말했다.
"그렇담 넌 얻은 게 하나도 없다는 거네!"
"얻은 거? 있어." 여우가 말했다. "밀 빛깔 덕분에."
그리고서 여우는 덧붙였다.
"장미꽃들을 다시 보러 가봐. 너의 장미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리고 나서 내게 작별 인사를 하러 오렴. 그러면 내가 선물로 비밀 하나를 말해 줄게."
어린 왕자는 장미꽃들을 보러 갔다.
"여러분은 내 장미와 전혀 비슷하지 않아요. 여러분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그 누구도 여러분을 길들이지 않았고. 여러분 역시 아무도 길들이지 않았어요. 내 여우도 꼭 당신들 같았죠. 수많은 여우와 비슷한 한 마리 여우일 뿐이었죠. 하지만 나는 그 여우를 친구로 삼았고 이제 그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었어요."
장미꽃들은 꽤나 난처해했다. 어린 왕자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은 아름답지만 텅 비어 있어요. 그 누구도 당신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지 않아요. 물론, 지나가던 행인 눈에는 내 장미가 여러분과 닮아 보이겠죠. 하지만 내 장미는 그 한 송이만으로도 여러분 모두를 합친 것보다 훨씬 소중해요. 내가 물을 주고 유리 덮개를 씌우고 바람막이를 쳐준 꽃이니까요. 내가 애벌레들을 잡아준(나비가 되도록 두세 마리는 남겨두었지만)꽃이니까요. 툴툴거리거나 자기 자랑을 하거나 떄로 침묵할 때에도 내가 귀 기울였던 꽃이니까요. 나의 장미니까요."
그리고 그는 여우에게로 돌아왔다.
"잘 있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잘 가." 여우가 말했다. "자. 내 비밀을 알려줄게. 아주 단순한 거야. 오직 마음으로만 볼 수 있어.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아."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기억해두려고 어린 왕자는 되뇌었다.
"네 장미가 그처럼 소중하게 된 건 네가 그 꽃에 들인 시간때문이야."
"꽃에 들인 시간 때문이다." 어린 왕자는 기억해두려고 되뇌었다.
"사람들은 이런 진리를 잊어버렸어."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너는 잊어버리지 마. 네가 길들인 것에 넌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네 장미에게 너는 책임이 있는 거야..."
"나는 내 장미에 책임이 있다." 어린 왕자는 기억해두려고 되뇌었다.
​​
추천 (1) 선물 (0명)
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3/11/23 02:45:33

매주 수요일마다 쉬기에 일주일내내 자유의 그날을 기다리게 되지요.
이게바로 의식이구나.

길들이기.서연이와 지민이는 첨엔 아무사이도 아니엿지만 서로에게
길들여졋으니 서로의 마음속에 들어가 살게되고 또 서로를 책임져야
데네요.

단차 (♡.252.♡.103) - 2023/11/23 06:31:05

맞아요. 서로에게 쓴 마음과 시간만큼 길들여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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