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22~24

단차 | 2023.11.23 06:38:50 댓글: 4 조회: 256 추천: 2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0249
22

"좋은 아침." 어린 왕자가 말했다.
"좋은 아침." 선로변경 관리원이 말했다.
"여기서 뭐 해?" 어린 왕자가 물었다.
"여행객을 천 명 단위로 구분하고 있어." 선로변경 관리원이 답했다. "여행객이 탄 기차를 때로는 오른쪽으로 때로는 왼쪽으로 보내지."
그때 조명을 밝힌 급행열차 한 대가 천둥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갔고 선로변경 부스가 흔들렸다.
"엄청 급한가 봐." 어린 왕자가 말했다. "뭘 찾아가는 걸까?"
"그건 기관사조차 모를걸." 선로변경 관리원이 말했다.
그때 반대 방향에서 두 번째 급행열차가 천둥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벌써 돌아오는 건가?" 어린 왕자가 물었다.
"같은 열차가 아니야." 선로변경 관리원이 말했다. "엇갈려 가는 거지."
"있던 곳이 마음에 안 들었나?"
"사람들은 자신이 있는 곳에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어." 선로변경 관리원이 말했다.
그떄 불을 밝힌 세 번째 급행열차가 천둥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처음 여행객들을 뒤쫓아 가는 걸까?" 어린 왕자가 물었다.
"뭔가를 뒤쫓아 가는 게 아니야. 다들 기차 안에서 잠을 자거나 하품만 하는걸. 아이들만 차창에 코를 바짝 가져다 대고 있지."
"오직 아이들만이 자신이 뭘 찾고 있는지 알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아이들은 낡아빠진 천 인형 하나에도 자신의 시간을 쏟잖아. 그러면 인형이 너무 소중해져서 누군가 인형을 뺏으려 들면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거야..."
"아이들은 운이 좋구나." 선로변경 관리원이 말했다.
23

"안녕."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안녕." 상인이 말했다.
그는 갈증을 가라앉히는 개량 알약을 파는 사람이었다. 일주일에 한 알이면 더이상 갈증이 나지 않는 그런 약이었다.
"왜 이런 걸 팔아?" 어린 왕자가 물었다.
"시간을 엄청나게 절약할 수 있잖아." 상인이 답했다. "전문가들이 계산해보니 일주일에 53분을 아낄 수 있대."
"그렇게 생긴 53분으로 뭘 할까?"
"뭐든 원하는 걸 하는 거지..."
'나라면, 내게 마음껏 쓸 수 있는 53분이 주어진다면, 느긋하게 샘물로 걸어갈 텐데...' 어린 왕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24

24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 떨어진 지 8일째 되는 날이었다. 어린 왕자의 상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비축해둔 물의 마지막 한 모금을 끝냈다.
"그래. 멋지구나. 네 추억들." 나는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그런데 난 아직도 비행기 수리를 끝내지 못했고 이제 더는 마실 물도 없어. 나도 그렇게 느긋이 샘물로 걸어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내 친구 여우는 말이야." 그가 말했다.
"꼬마 친구. 여우 얘기할 때가 아닌 것 같아."
"왜?"
"목이 말라 곧 죽을지도 몰라."
그는 내 추론을 이해 못 하고 이렇게 답했다.
"곧 죽는다고 해도 친구를 가졌다는 건 좋은 거야. 난 여우 친구가 있었다는 게 너무 기뻐."
'이 아이는 위험이란 걸 가늠할 줄 모르는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배가 고프거나 목마른 법도 결코 없어. 약간의 햇살만 있으면 이 아이에겐 그만인 거야.'
그런데 그가 나를 쳐다보며 그런 내 생각에 답을 하는 게 아닌가.
"나도 목이 말라... 우물을 찾으러 가자..."
나는 지친 내색을 해 보였다. 이 광활한 사막에서 무작정 우물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걸음을 내디뎠다.
말없이 여러 시간을 걷는 동안 밤이 내리고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갈증 때문인지 나는 미열이 돌아 별빛이 꼭 꿈결 같았다. 어린 왕자의 말이 기억 속에서 아른거렸다.
"너도 목이 마르긴 한 거니?"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는 내 물음에 답하지 않고 그저 이렇게 말했다.
"물은 마음에도 도움이 돼..."
그의 대답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에게 캐묻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노곤해 했다. 그는 주저앉았다. 나도 그의 곁에 앉았다.
그리고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말했다.
"별들이 아름다워.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 때문이야."
나는 "물론"이라 답하며 달빛 아래 펼쳐진 사막의 주름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사막은 아름다워." 그가 덧붙였다.
사실이었다. 나는 늘 사막을 좋아했다. 모래 언덕 위에 앉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정적 속에서 환히 빛나는 무언가가 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린 왕자가 말했다.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어서야..."
순간, 놀랍게도 나는 사막의 그 신비로운 빛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어렸을 적 나는 오래된 집에 살았다. 전해오던 이야기로는 집 어딘가에 보물이 묻혀 있다고 했다. 물론, 그걸 찾아낸 이도 없었고, 찾겠다 나선 이도 없었던 걸로 안다. 하지만 그 보물 얘기는 집 구석구석을 매혹적으로 만들었다. 우리집은 저 깊은 곳 어딘가에 비밀을 감추고 있었던 거다!
"그래." 나는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집이건 별이건 사막이건 그걸 아름답게 만드는 건 눈에 보이는 게 아니지."
"아저씨가 내 여우와 같은 생각이라서 좋아." 그가 말했다.
어린 왕자가 잠이 들어버려 나는 그를 두 팔에 안고 다시 길을 나섰다. 가슴이 찡해져 왔다. 깨질 것 같은 보물을 안고 가는 느낌이었다. 지구 위에서 이보다 더 깨지기 쉬운 것은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달빛 아래서 그의 창백한 이마와 감긴 두 눈과 바람에 파르르 떨리는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기 보이는 것은 껍데기일 뿐이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반쯤 벌린 그의 입술이 옅은 미소를 띠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잠든 어린 왕자의 모습이 내 마음을 이다지도 울리는 것은 한 송이 꽃을 향한 그의 변함없는 마음 때문이다. 이리 잠들어 있는 순간에조차 그 안에서 램프 불빛처럼 환히 빛나고 있는 한 송이 장미 떄문이다...' 그러고 나니 그가 더더욱 깨져버릴 것만 같았다. 램프를 잘 지켜야 해. 한 번의 바람으로도 훅 꺼져버릴 수 있으니...
그리고 그렇게 계속 걷다가, 동틀 무렵 나는 우물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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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52.♡.103
봄날의토끼님 (♡.65.♡.126) - 2023/11/23 08:02:43

"사람들은 자신이 있는 곳에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어"
자신이 원하는 곳에 있음에도 그곳에 만족을 못하고 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네요.
내게 마음껏 쓸수 있는 시간이 53분만 주어진다는 무엇을 할가 잠간 고민해 보았어요.
음...해빛이 엄청 좋은 산책로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하염없이 걸을것 같아요 아름다운 추억들을 돌이켜보며...

단차 (♡.252.♡.103) - 2023/11/23 08:39:10

다들 그렇게 사는거겠죠. 안주하면 도태되는 것 같아서 계속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하고 앉으면서 일어날 생각을 하고 일어나서 걸으면서도 뛸 생각을 하죠.
저는 저에게 마음껏 쓸수 있는 시간이 53분만 주어진다면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비치는 숲을 걷고 싶어요. 새소리와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를 들으면서요.

뉘썬2뉘썬2 (♡.169.♡.51) - 2023/11/23 08:29:53

나에게 53분이 주어진다면 한국슈퍼와 중국슈퍼를 돌거예요.어제는 커피숍
가는길에 잠깐들려서 기장쌀하구 고구마라떼밖에 못삿어요.미숫가루라떼를
살려고햇는데 잘나가지 않느지 유통기한이 안좋아서요.재료를사야 요리를하
든 머를하는데.

눈에 보이지않는것이 가장 아름답죠.그것은 사람의 마음과사랑.

단차 (♡.252.♡.103) - 2023/11/23 08:40:38

사람마다 쓰고 싶은 시간이 다르죠. 하루가 길게 느껴질때도 있는 반면 너무 짧게 느껴지는 하루가 있어요. 그중 하나가 휴일이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말. 제가 참 좋아하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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