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25

단차 | 2023.11.23 09:59:58 댓글: 2 조회: 211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0327
25

어린 왕자는 말했다.
"사람들은 급행열차로 우르르 몰려 들어가지만 자신이 뭘 찾고 있는지 더는 몰라. 그러다 보니 불안해서 왔다 갔다 뱅글뱅글 도는 거야."
그리고는 덧붙였다.
"그럴 필요 없는데..."
우리가 다다른 우물은 사하라 사막의 여느 우물과는 달라 보였다. 사하라 사막의 우물은 그저 모래에 파인 구덩이인데, 이 우물은 마을에 있는 우물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곳에 마을이라고는 없었기에 나는 이게 꿈이 아닌가 싶었다.
"이상하네." 나는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모든게 준비되어 있잖아. 도르래도 두레박도 밧줄도..."



그는 웃으며 밧줄을 만져보고 도르래를 움직였다. 그러자 한동안 바람이 잠잠할 때 낡은 풍향계가 삐거덕거리듯 도르래가 신음 소리를 냈다.
"들어봐." 어린 왕자가 말했다. "우리가 우물을 깨웠더니 우물이 노래를 해..."
나는 그가 힘쓰길 원치 않았다.
"내가 할게. 네겐 너무 무거워."
나는 천천히 두레박을 끌어당겨 우물의 둘레돌 위로 엎어지지 않게 올려놓았다. 도르래의 노래는 내 귀에 계속 맴돌았고, 아직 찰랑거리고 있는 물에는 해가 비쳐 일렁였다.
"그 물을 마시고 싶어. 마시게 해줘."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나는 그제야 그가 찾고 있던 게 뭔지를 깨달았다.
나는 두레박을 그의 입술까지 들어 올려 주었다. 그는 눈을 감고 물을 마셨다. 축제처럼 감미로웠다. 그 물은 보통의 물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 물은 별빛 아래의 걸음과 도르래의 노래와 내 두 팔의 애씀을 통해 얻은 것이었다. 이 물은 마치 선물처럼 마음에도 좋았다. 어렸을 적.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과 자정 미사의 음악과 다정한 미소는 내가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더더욱 빛나게 해주었더랬다.
"아저씨네 별 사람들은 정원 한 곳에 5천 송이나 되는 장미를 키우잖아. 그래놓고도 거기서 자신들이 찾는 걸 발견 못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발견 못 하지." 나는 대답했다.
"그들이 찾는 건. 한 송이 장미나 조금의 물에서도 얻을 수 있는 건데 말이야."
"물론." 나는 대답했다.
어린 왕자가 덧붙였다.
"하지만 눈으로는 보지 못해. 마음으로 찾아야 해."
나도 물을 마셨다. 숨 쉬는 게 한결 나아졌다. 동틀 무렵의 사막은 꿀 빛을 띤다. 그저 그 빛깔만으로도 나는 행복해졌다. 왜, 뭣 때문에 그리 애를 썼어야 했단 말인가.
"아저씨. 약속 꼭 지켜줘야 해." 다시 내 곁에 와 앉은 어린 왕자는 나직이 내게 말했다.
"약속?"
"알잖아... 내 양의 입마개 말이야... 난 이 꽃에 책임이 있다고!"
나는 주머니에서 대충 그려놓은 그림들을 꺼냈다. 어린 왕자는 그 그림들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가 그린 바오밥나무는 양배추를 조금 닮았는걸..."
"헉!"
난 내 바오밥나무 그림에 꽤 우쭐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 여우는... 귀가... 꼭 뿔 같고... 엄청 길어!"
그는 또 웃었다.
"꼬마 친구. 이건 아니지. 나는 속이 안 보이는 보아구렁이와 속이 보이는 보아구렁이 말고는 다른 건 그릴 줄 모르잖니."
"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아이들은 알아봐."
나는 입마개를 그렸다. 그것을 어린 왕자에게 건네려는데 가슴이 조여 오듯 아팠다.
"너, 내가 모르는 계획이 있는 거지..."
그러나 그는 답하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있잖아. 내가 지구로 떨어진 지... 내일이면 1년이 돼."
그러고는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바로 이 근처에 떨어졌더랬어..."
어린 왕자는 얼굴을 붉혔다.
왠지 모르지만 나는 다시 묘한 슬픔에 사로잡혔다. 그러면서도 마음에서 한 가지 의문이 일었다.
"그러니까 일주일 전, 내가 너를 만난 그 아침에, 사람 사는데서 수천 킬로 떨어진 곳에서 너 혼자 그렇게 걷고 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거야! 넌 그때 네가 떨어졌던 장소로 돌아가고 있던 거였니?"
어린 왕자는 또다시 얼굴을 붉혔다.
나는 주저하며 덧붙였다.
"혹시... 일 년이 되어서인 거야?"
어린 왕자는 다시 얼굴을 붉혔다. 그는 절대로 질문에 대답하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얼굴을 붉히면 그것은 '그렇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아! 난 두렵구나..."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내게 이렇게 대답했다.
"작업하러 가야 하잖아. 비행기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 난 여기서 기다릴게. 내일 저녁에 다시 와."
하지만 나는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여우 얘기가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고 나면 조금은 울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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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52.♡.103
봄날의토끼님 (♡.65.♡.126) - 2023/11/23 11:28:08

'자신이 뭘 찾고 있는지 더는 몰라'
이미 답을 찾은 사람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아주 자주 자신한테 해야할 질문인것 같아요.

단차 (♡.252.♡.103) - 2023/11/23 15:59:58

네. 그 답을 알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 대화를 깊게 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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