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3

단차 | 2023.11.29 23:20:31 댓글: 4 조회: 220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2977
3

코커스 경주와 긴 이야기

언덕으로 나온 동물들의 모습은 아주 볼만했다. 새들은 깃털이 땅에 질질 끌려 엉망이었고 다른 동물들은 털이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다들 전부 털이 젖어서 물을 뚝뚝 흘리며 언짢은 표정이었다.

이제 몸을 어떻게 말려야 할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 모두 그 문제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앨리스는 마치 오래전부터 그들을 알고 지낸 것처럼 동물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실제로 앨리스는 앵무새와 오랫동안 논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결국 앵무새가 토라져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보다 오래 살았으니 너보다 아는 것이 많은 건 당연해."

그러자 앨리스는 앵무새의 나이를 알기 전에는 인정할 수 없다고 했고, 앵무새는 끝까지 자기 나이를 말해 주지 않겠다고 버티었고 논쟁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마침내 그곳에 모인 동물들 중에서 권위 있어 보이는 생쥐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앉아서 내 말을 들어요! 내가 여러분의 몸을 말려줄 테니까!"

이 말을 듣고 모두가 순식간에 생쥐 주위로 빙 둘러앉았다. 앨리스는 어서 몸을 말리지 않으면 감기에 걸릴 것 같아 걱정스러운 눈으로 생쥐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생쥐가 으쓱대며 말했다.

"엣헵! 다들 준비가 됐지? 이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무미건조한 이야기야. 모두 잘 들어 봐! '정복자 윌리엄은 교황의 후원을 받아.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던 영국을 손쉽게 정복하게 되었지. 머시아와 노섬브리아 왕국의 백작이었던 에드윈과 모카......."

"에휴!"

앵무새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를 냈다.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어?"

생쥐는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점잖게 물었다.

"아니!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앵무새가 허둥대며 대답했다.

"난 또 뭐라고 하는 줄 알고. 그럼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지. 머시아와 노섬브리아의 백작이었던 에드윈과 모카는 윌리엄 왕을 지지했고, 애국심 투철한 캔터베리 대주교 스티갠드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판단했......."

"뭘 판단했다고요?"

오리가 물었다.

"그것을 말이야. 설마 '그것' 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생쥐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내가 판단한다는 것이야 잘 알죠. 보통 개구리가 좋을지 지렁이가 좋을지 하는 문제인데, 내가 묻고 싶은 건 대주교가 뭘 판단했냐는 거예요?"

오리가 되물었다.

생쥐는 이 물음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서둘러 말을 이었다.

"에드거 황태자와 함께 윌리엄을 만나 그에게 왕위를 수여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했지. 정복왕 윌리엄도 처음에는 온건하게 행동했지. 하지만 노르만족의 오만함은......."

생쥐가 앨리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제 몸이 좀 말랐니? 어때?"

앨리스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아직도 흠뻑 젖어 있어요.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마르는 것 같지 않아요."

도도새가 일어나며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회의를 중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예요."

새끼 독수리가 말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쉽게 말해 주세요. 그리고 당신 말은 믿을 수가 없어요."

새끼 독수리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다른 몇몇 새들은 대놓고 킥킥거렸다.

도도새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은 그러니까, 몸을 말리려면 코커스 경주를 하는 게 가장 좋을 거란 말이에요."

"코커스 경주가 뭔데요?"

앨리스가 물었다. 자신은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지만, 코커스 경주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동물들이 몇몇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아무도 물어보려 하지 않자 앨리스가 나섰던 것이다.

도도새가 말했다.

"코커스 경주가 어떤 건지는 직접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여러분도 추운 겨울날 몸을 따뜻하게 할 때 필요할지 모르니, 도도새가 어떻게 했는지 설명해 주겠다.)

도도새가 달리기 경주로를 둥그렇게 그렸다. (원을 그리면서 도도새는 "조금 삐뚤어져도 괜찮아." 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모두 선에 맞춰 자리를 잡았고 "하나, 둘, 셋, 출발!" 이라는 신호도 없이 각자 달릴 수 있을 때까지 달렸다. 그래서 경주가 언제쯤 끝이 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30분쯤 달리자 몸이 완전히 말랐다. 그때 도도새가 외쳤다.

"경주 끝!"

다들 숨을 헐떡거리며 도도새 주변으로 모여들더니 이렇게 물었다.

"누가 이긴 거예요?"

도도새는 잘 따져 보지 않고는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그래서 도도새는 손가락을 이마에 대고 오랫동안 생각한 끝에 대답했다.

"우리 모두가 우승자예요. 그러니 모두 상을 받아야 해요."

다들 합창이라도 하는 것처럼 되물었다.

"그럼 상은 누가 주는 거예요?"

도도새는 손가락을 치켜들며 앨리스를 가리켰다. 그러자 순식간에 앨리스 주위를 에워싸더니 정신없이 외쳐 댔다.

"상을 줘! 상을 줘!"

앨리스는 어쩔 줄 몰라 난감해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았다. 사탕 한 봉지를 꺼내 모두에게 상으로 주었다. (다행히 물에 젖지 않았다.) 사탕은 모두에게 정확히 하나씩 돌아갔다.

"저 아이도 상을 받아야 해요."

생쥐가 말했다.

"당연히 상을 받아야지."

도도새가 진지하게 대꾸했다. 그러고는 앨리스를 보고 물었다.

"네 주머니에 또 다른 건 없니?"

"이제 골무밖에 없어요."

앨리스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걸 내게 줘."

도도새가 말했다.

그러자 모두 다시 앨리스 주위로 몰려들었고, 도도새가 아주 엄숙하게 앨리스에게 다시 골무를 건네며 말했다.

"이 아름다운 골무를 수여하노라."

도도새의 짧은 연설이 끝나자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앨리스는 어이가 없었지만 다들 사뭇 진지해서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자 가볍게 인사를 하고 최대한 공손하게 골무를 받았다.

이제 사탕을 먹을 차례였다. 사탕을 먹는 동안에는 아주 수선스러웠다. 몸집이 큰 새들은 사탕이 너무 작아 무슨 맛인지 알 수 없다며 불평했고, 작은 새들은 사탕이 목에 걸려 등을 두들겨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어쨌든 모든 게 정리되고 다시 둥글게 둘러앉아 생쥐에게 다른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라 댔다.

"당신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약속했잖아요!"

앨리스가 말했다.

그리고 생쥐가 또 화를 내지 않을까 걱정하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당신이 왜 '양이'와 '멍이'을 싫어하게 되었는지도 말이에요."

생쥐는 앨리스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 얘기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길고도 슬픈 이야기란다."

앨리스는 생쥐의 꼬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꼬리가 꽤 길기는 기네요. 그런데 꼬리가 왜 슬프다는 거예요?"

앨리스는 생쥐가 이야기하는 동안 이 수수께끼 같은 말을 생각했고 생쥐의 이야기를 이렇게 받아들였다.


집에서 마주친 생쥐에게
사나운 개 퓨어리가
말했네. "우리 같이
법원에 가자.
난 널 고소할
거야.네가
싫다고 해도
이제 소용없어.
어쨌든 난
오늘 아침에
그 일 외에
달리 할 일이
없거든."
생쥐도
사나운 개
퓨어리에게
말했네.
"저기요.
배심원도
판사도 없는
그런 재판은
쓸데없는
일이에요."
"내가 배심원도
되고, 판사도
되어 이
사건을
맡아 널
사형에
처하고
말 거야."
교활한
퓨어리가
말했네.

"너! 내 말 안 듣고 있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니?"

생쥐가 엄하게 말했다.

"아, 미안해. 꼬리가 다섯 번 감기는 것 맞지?"

앨리스가 미안해하며 말했다.

화가 난 생쥐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아니야!"

앨리스가 말했다.

"매듭처럼 꼬였다는 거야?"

언제나 사람들을 잘 도와주는 앨리스는 안타까워 생쥐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어디 좀 봐! 어디가 어떻게 꼬였는데, 내가 풀어 줄게."

생쥐가 대답했다.

"난 그럴 필요가 없어!"

생쥐는 화를 냈고 일어나 가면서 말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그런 소리로 날 모욕하다니."

앨리스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런 뜻이 아니야. 왜 그렇게 화를 쉽게 내는 거니?"

생쥐는 대답하지 않고 찍찍거리기만 했다.

앨리스가 생쥐 뒤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제발 돌아와서 네 이야기를 마저 해 줘!"

그러자 다른 동물들도 한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빨리 얘기해 줘요!"

생쥐는 다 짜증스럽다는 듯 고개를 흔들더니 더 빠른 걸음으로 가 버렸다.

그렇게 생쥐가 완전히 사라지고 모습이 보이자 않자, 앵무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가야,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이성을 잃고 화를 내면 안 된단다. 화를 참을 줄 알아야지."

딸이 뾰로통하게 말했다.

"엄마! 엄마의 잔소리를 참아 낼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때 앨리스가 누군가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큰 소리로 말했다.

"다이너가 여기 있었다면 저 생쥐를 당장 데려왔을 텐데."

"다이너가 누군지 물어봐도 될까?"

앵무새가 물었다.

앨리스는 다이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으므로 신이 나 대답했다.

"다이너는 우리 집 고양이란다. 쥐 잡는 데는 선수야. 새도 얼마나 잘 쫓는지 몰라. 새가 눈에 띄면 그 자리에서 꿀꺽 삼켜 버릴걸!"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떠나가기 시작했다.

늙은 까치 한 마리는 조심스레 제 몸을 감싸며 말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밤공기는 목에 좋지 않거든!"

옆에 있던 카나리아도 떨리는 목소리로 아기 카나리아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이제 그만 가자! 잠자리에 들 시간이구나!"

금세 혼자가 된 앨리스가 풀이 죽어 말했다.

"다이너 이야기를 하지 말았어야 해. 아무도 다이너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다이너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고양이인데 말이야. 아, 귀여운 내 고양이! 내가 다시 널 볼 수 있을까?"

앨리스는 너무 외롭고 서글퍼서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잠시 후 멀리서 종종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아주 조그맣게 들려왔다.

앨리스는 생쥐가 마음을 바꿔 먹고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돌아오는 게 아닐까 기대하며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추천 (1) 선물 (0명)
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3/12/04 08:52:02

여기서 생쥐가 이야기꾼이군요.이거보니 이정현이 찍은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가 생각나네요.

단차 (♡.252.♡.103) - 2023/12/04 08:53:53

그 영화 저도 봤어요. 비극영화더라고요..

뉘썬2뉘썬2 (♡.169.♡.51) - 2023/12/04 08:57:53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잔혹동화죠.

단차 (♡.252.♡.103) - 2023/12/04 09:52:36

마지막으로 갈수록 더 비참해져서 놀라면서 봤어요. 바닥 밑에 바닥이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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