拉普拉斯的魔女 11

단차 | 2023.11.30 12:34:38 댓글: 4 조회: 247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3106
 11
     

     

     

     

  날씨가 좋아서 도쿄치고는 공기가 맑은 편이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날씨가 좋은 건 아닐 터였다. 이런 때 북녘 지방은 대개 눈이 내린다. 동해 쪽에서 피어오른 수증기가 대륙에서 밀려드는 한기에 차가워져서 눈이 되어 떨어진다. 그래서 재미있게도 늦더위가 심한 때일수록 겨울에 눈이 자주 내린다. 바닷물의 온도가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오에는 연구실 창문 옆에 서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멍하니, 가 아니다. 머릿속 한 귀퉁이로는 나흘 전에 찾아온 나카오카의 이야기만 줄곧 곱씹고 있었다.

  아카쿠마 온천에서의 일은 자살도 아니고 단순 사고도 아니다—. 그는 그런 말을 내비쳤다. 즉 타살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피해자의 아내가 관련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단언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황당무계한 얘기라고 몰아붙인 것은 경솔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장소가 실외라서 황화수소를 대량으로 발생시켜야 한다고 말했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다. 나카오카가 말했던 방법으로 피해자를 잠들게 했다면 머리에 비닐봉지를 씌워버리면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황화수소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농도니까 그렇게 하면 극히 적은 양으로도 중독사할 수 있다. 사망을 확인한 뒤, 황화수소를 발생시킨 액체며 용기는 비닐봉투로 밀폐해 다른 장소에서 처분한다. 물론 일련의 행동 중에는 반드시 가스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그런 방법이라면 화학 방호복까지는 필요하지 않다.

  아오에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 원인은 아카쿠마 온천에서의 사고가 너무도 불가사의하다는 게 내내 머릿속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그곳은 황화수소의 분출이 활발한 지역이기는 하다. 하지만 나카오카에게 말했던 대로, 사망 사고로 이어질 만한 ‘불행한 우연’이 일어나리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 것이다.

  마음에 걸리는 점이 한 가지 더 있었다. 피해자 일행이 그런 곳에 들어갔다는 게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고 했지만, 그런 짐승 통로로 들어섰으면서도 이상하다는 느낌이 없었을까. 카메라 배터리를 깜빡 잊고 왔다고 아내 혼자 여관으로 돌아갔다는 것도 뭔가 석연치 않았다. 만일 아오에가 피해자였다면 최소한 등산로 입구까지는 아내와 함께 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게 아내 쪽에서 계획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얘기가 착착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추리에도 무리한 점은 있었다. 나카오카는 수면제로 잠들게 했을 거라고 말했지만, 피해자가 그 장소에 도착한 때에 딱 맞춰 잠들게 할 수 있는가.

  역시 지나친 의심인가, 하고 생각은 번번이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교수님, 하고 등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흠칫 놀라서 돌아보았다. 오쿠니시 데쓰코가 부루퉁한 얼굴로 서 있었다. 안경 렌즈가 번쩍 빛난 것처럼 보였다.

  “왜 그래, 갑자기 큰 소리로 불러서 깜짝 놀랐잖아.”

  “갑자기가 아니에요. 아까부터 몇 번이나 불렀는데 대답이 없으셨죠.”

  “엇, 그랬어? 미안해, 못 들었네.”

  “못 들은 게 아니라 들을 마음이 없으셨겠지요. 시험문제 얘기만 나오면 항상 들은 둥 만 둥 하신다니까.” 오쿠니시 데쓰코가 쓰윽 노려보았다. 마른 편이라 나이보다 주름살이 많다. 특히 미간의 주름이 깊어서 항상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

  “그런 게 아니라 자네를 신뢰하는 거지.”

  “그렇다고 제가 맘대로 시험문제를 제출할 수는 없잖아요. 따분하시겠지만 제 말 좀 잘 들어주세요.”

  “알았어, 알았어.”

 
 오쿠니시 데쓰코는 손에 들고 있던 파일에 시선을 떨구었다.

  “지구 대기의 성분을 모두 화학식으로 표기하라. 그중 온실효과가 있는 성분은 어느 것인가. 그리고 그중 가장 농도가 높은 성분은 어느 것인가. ……어떻습니까?”

  “응, 좋은데?” 아오에는 눈썹 옆을 긁적였다. “딱 좋은 함정이야. 좀 모자란 학생이라면 얼른 CO2라고 써내겠지.”

  CO2는 지구온난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성분이지만, 압도적으로 농도가 높은 것은 H2O, 즉 수증기다. 실은 수증기에도 온실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럼 다음 문제입니다. 톨루엔을 지름 1.6밀리미터, 길이 50밀리미터의 가느다란 관이 달린 확산 튜브에 0.15그램을 넣었다. 이 확산 튜브를 섭씨 35도의 항온조恒溫槽에 설치하고, 확산 튜브를 설치한 실험용 상자에 0.5…….”

  오쿠니시 데쓰코가 거기까지 읽었을 때, 책상 위의 전화가 울렸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네, 그렇습니다. ……예에?”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아오에를 보았다. “네, 계십니다만.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무슨 일이야, 라고 아오에는 작은 소리로 물었다.

  오쿠니시 데쓰코는 송화구를 손으로 가리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신문사에서 온 거예요. 교수님께 상의할 일이 있대요.”

  “신문사? 어떤?”

  “호쿠리쿠 마이초 신문사래요.”

  호쿠리쿠 지방의 신문사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아오에의 가슴을 스쳤다. “무슨 일이지?”

  그게요, 라고 말하면서 오쿠니시 데쓰코는 입술을 혀로 적셨다.

  “황화수소 중독 사고가 일어났답니다. L현의 도마테 온천에서.”

     

  도마테 온천 역에 마중을 나온 사람은 작은 몸집의 여자였다. 나이는 사십 대 후반 정도일까. 쇼트커트에 안경을 쓰고 있었다. 마음 착한 아줌마 같은 분위기였다. 그 밖에는 그럴듯한 인물이 없으니 그 여자가 우치카와라는 기자일 터였다.

  개찰기를 나서는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 그쪽에서도 금세 알아봤는지 총총걸음으로 다가왔다. “아오에 교수님이십니까?”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녀는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먼 곳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호쿠리쿠 마이초 신문사의 우치카와라고 합니다.”

  그녀가 명함을 꺼내주길래 아오에도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어떻게 할까요. 여관은 예약했다고 하셨죠, 먼저 체크인부터 하시겠습니까?”

  “아뇨, 우선 현장부터 가보고 싶군요. 지금이라면 사고가 일어난 시간대와도 얼추 비슷하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역 앞에 택시를 불러뒀어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작은 역을 나서자 하얀 눈 풍경 속에 아담한 로터리가 나타났다. 한쪽에 서 있던 택시가 슬슬 달려와 두 사람 앞에 멈췄다. 등 표시가 ‘전세’로 되어 있었다.

  어서 타시라는 우치카와의 말에 아오에는 택시에 올랐다.

  뒤따라 탄 우치카와는 운전기사에게 “조금 전에 말했던 그 코스로 부탁합니다”라고 행선지를 알렸다. 그녀도 아오에가 먼저 현장부터 갈 것이라고 예상한 모양이었다.

  “기사에 의하면 그 사고 현장은 출입금지 구역이 아니었다던데요?” 차가 출발하자마자 아오에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렇습니다. 관광진흥과 담당자에게서도 얘기를 들어봤는데, 그런 사고는 전혀 상정하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황화수소 농도를 측정한 적은 있습니까?”

  “그건 정기적으로 측정했다고 하던데요. 단지 주의해서 지켜본 건 주로 가스가 고이기 쉬운 실내였고 실외에 대해서는 별로 고려하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그렇군요.”

 
 아오에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도로 옆에 하얀 눈의 벽이 만들어졌다. 그 너머로 드문드문 민가가 보였다.

  도마테 온천에서 중독 사고가 일어난 것은 이틀 전의 일이었다. 도쿄에서 온 관광객이 피해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아오에는 어제 우치카와의 전화로 들었다. 사고를 취재하던 우치카와는 아카쿠마 온천 쪽의 기사를 통해 아오에를 알고 연락해 온 것이었다.

  그녀의 용건은,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어떤 점들을 거론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이었다. 거기에 대해 아오에는 아직 정확히 말할 수 없다, 라고 대답했다. 도마테 온천에는 가본 적이 없어서 현장 상황을 보지 않고서는 코멘트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치카와는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현장 사진을 메일로 보내겠다, 그 밖에 필요한 데이터라면 어떻게든 입수해서 보내드리겠다, 라고 적극적으로 나왔다. 목소리는 아줌마였지만 일을 밀어붙이는 추진력은 역시 신문기자다웠다.

  그런 사진이나 데이터만 봐서는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아오에는 말했다. 하지만 사고 자체에 흥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해보았다.

  “만일 교통비를 부담해준다면 제가 직접 찾아가는 것도 괜찮습니다만.”

  분명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입니까?”라면서 우치카와가 덥석 물었다. 그러고는 꼭 와달라, 자신이 안내하겠다고 힘차게 대답했다.

  아오에가 흥미를 가진 것은 물론 아카쿠마 온천의 일이 머릿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의 원인을 분석해낸다면 그쪽의 대책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나저나 웬만해서는 일어나지 않을 사고가 두 달 남짓한 사이에 두 건이나 터지다니—. 우치카와의 전화를 받았을 때, 맨 처음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이었다. 앞으로 전국의 황화수소계 온천지마다 대책을 강구하느라 정신이 없겠다고 뻔히 예상이 되었다.

  택시는 좁은 눈길을 달려갔다. 이윽고 Y자의 분기점이 가까워졌지만 그중 왼편으로 가는 길이 통행금지 상태였다. 방한 코트를 입은 경관이 서 있었다.

 
 “여기서 세워주세요.” 우치카와가 말했다. 운전기사는 택시를 갓길에 붙여 세웠다.

  우치카와는 차에서 내려 경관에게로 다가갔다. 명함과 서류 등을 내보이며 뭔가 얘기하고 있었다. 머플러로 목을 감싼 경관이 이쪽을 흘끔 쳐다보았다.

  우치카와가 돌아왔다.

  “얘기가 잘됐어요.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가야 합니다.”

  “알았어요.”

  아오에는 차에서 내려 우치카와와 함께 눈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될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스노부츠를 신고 왔다. 아카쿠마 온천에서의 사고 조사를 위해 사들인 부츠였는데 다른 곳에서까지 신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좁은 길이 산의 비탈면을 가로지르듯이 이어졌다. 눈 덮인 나무들 틈새로 오른편 아래쪽에 건물들이 보였다. 우치카와에게 물어보니 그곳이 도마테 온천가라고 했다.

  “조금 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온천가예요.”

 
 “그러면 이 길은 어디로 나가게 되지요?”

  “3월부터 11월까지는 산 반대편으로 나갈 수 있다는군요. 하지만 요즘은 눈 때문에 통행이 금지됐어요.”

  “그럼 이대로 가면 막다른 길이에요?”

  “아뇨, 저 앞에서 다시 길이 갈라져요. 통행이 금지되지 않은 쪽 길로 가면 역시 온천가로 나갈 수 있습니다. 장소에 따라서는 이쪽 길로 온천가에 가는 게 더 빠른 모양이에요.”

  앞쪽에 몇 명인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오에 일행이 다가가자 맨 앞에 있던 헬멧을 쓴 남자가 고개를 들고 이쪽을 쳐다보았다. “신문사에서 나온 분?”

  “네, 오늘 아침에 연락드렸었죠.”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얘기 들었어요.”

  “지금은 어떤 상황입니까?”

  “어떤 상황? 뭐,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그거 농도계군요.” 아오에는 남자가 들고 있는 계측기를 보며 말했다. “수치는?”

 
 “거의 제로인데…….” 남자가 의아한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아, 여기 이분은 다이호 대학의 아오에 교수님이에요. 이번 사고의 검증을 위해 모시고 왔습니다.” 우치카와가 설명했다.

  남자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네에, 잘 부탁합니다.”

  명함을 내밀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아오에는 주위를 둘러보며 “현장은 어딥니까?”라고 물었다.

  “저 앞이에요.” 우치카와가 말하고는 남자 쪽을 향해 확인했다. “보여드려도 괜찮지요?”

  “괜찮긴 한데, 입구까지만 가능해요.”

  “알고 있습니다. 자, 그럼 교수님, 가실까요.”

  “입구라는 건?”

  “가보시면 알 거예요.”

  조금 걸어가자 남자들이 도로 오른편에서 뭔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출입금지 간판을 설치하려는 것 같았다. 바로 옆에 비탈길로 내려가는 오솔길 입구가 있었다.

 
 “산책길이에요.” 우치카와가 말했다. “여기로 내려가면 걸어서 온천가로 갈 수 있습니다. 즉 지름길이죠.”

  “아, 그렇군. 온천가까지의 거리는?”

  “1킬로미터쯤 될 거예요.”

  “꽤 걸리는군요.” 아오에는 입구 안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좁은 길에 눈이 쌓여서 걷기 힘들 것 같았다. “혹시 피해자가 여기로?”

  “맞습니다. 여기서 300여 미터 들어간 곳에서 쓰러져 있었어요.”

  우치카와는 숄더백에서 태블릿을 꺼내 익숙한 손놀림으로 터치했다. 화면을 아오에 쪽으로 내보이며 “현장 사진이에요”라고 말했다.

  화면에는 나무로 둘러싸인 오솔길이 찍혀 있었다. 우치카와는 화면을 슬라이드해가며 몇 장의 이미지를 불러냈다. 모두 비슷비슷한 사진이지만 대략적인 상황은 알 수 있었다. 폭 2~3미터의 눈길이고 약간 커브를 그리며 굽어 들었다. 사방에 눈이 쌓여 높이가 1미터 가까이 높아졌다. 자그마한 빨간 벤치가 덜렁 놓여 있었다. 벤치의 다리 부분은 눈에 깊숙이 파묻혔다.

  “이 벤치 옆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반대쪽에서 걸어오던 사람이 발견했습니다. 발견자는 이 지역 사람이라서 일주일에 몇 번은 이 길을 지나다녔답니다. 그분이 지나가지 않았다면 발견이 훨씬 더 늦어졌을 거예요.”

  “그렇다면…….”

  “네, 이 산책로는 주로 여름이나 단풍철에 이용하고 요즘 같은 철에는 사람들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다는 얘기지요. 보통 신발로는 걷기도 힘드니까요. 그래서 피해자가 왜 이 길로 들어갔는지 잘 모르겠어요. 더구나 혼자서.”

  “피해자가 이쪽으로 들어갔다는 건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눈이 내린 직후라서 발자국이 남았으니까요.”

  “발자국이라…….”

  머릿속에서 눈길에 점점이 발자국이 찍힌 풍경을 떠올렸다. 그러자 문득 묘한 의문이 뇌리를 스쳤다.

 
 “이상한 질문인지도 모르지만, 발자국은 한 사람 것이었습니까?”

  “예?”

  “아니, 그날 이 산책길로 들어간 또 다른 사람은 없었나 해서.”

  우치카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다행히 없었던 모양이에요. 그 밖에 다른 발자국은 없었다고 하니까요.”

  “그래요…….”

  우치카와는 아오에의 질문을, 혹시 산책길로 들어간 사람이 또 있었다면 피해자가 늘어났을지도 모른다, 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오에는 전혀 다른 가능성을 확인해보려고 발자국 수를 물어본 것이었다. 실은 피해자에게는 동반자가 있었고, 그 인물이 피해자를 뭔가의 방법으로 황화수소 중독사 하게 한 것이 아닌가, 라는 가능성이다.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형사 나카오카의 추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발자국은 없었다는 말을 듣고 아오에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더 이상 이상한 의심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상한 질문인지도 모르지만, 발자국은 한 사람 것이었습니까?”

  “예?”

  “아니, 그날 이 산책길로 들어간 또 다른 사람은 없었나 해서.”

  우치카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다행히 없었던 모양이에요. 그 밖에 다른 발자국은 없었다고 하니까요.”

  “그래요…….”

  우치카와는 아오에의 질문을, 혹시 산책길로 들어간 사람이 또 있었다면 피해자가 늘어났을지도 모른다, 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오에는 전혀 다른 가능성을 확인해보려고 발자국 수를 물어본 것이었다. 실은 피해자에게는 동반자가 있었고, 그 인물이 피해자를 뭔가의 방법으로 황화수소 중독사 하게 한 것이 아닌가, 라는 가능성이다.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형사 나카오카의 추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발자국은 없었다는 말을 듣고 아오에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더 이상 이상한 의심은 하지 않아도 된다.

  “어떻습니까?” 우치카와가 의견을 청해 왔다.

  “현장 사진을 보면 나무나 눈에 둘러싸여 있어서 만일 가까이에서 황화수소가 발생했다면 가스가 고이게 될 우려는 충분히 있겠지요. 과거에 비슷한 사고가 일어난 적이 있습니까?”

  “그 점을 저도 이 지역 사람들에게 확인해봤는데, 전혀 이런 일이 없었답니다. 이 산책로에서는 유황 냄새가 났던 적도 없었대요.”

  “냄새가 났던 적도 없다? 거참, 묘하네요.”

  “그래서 교수님의 의견을 여쭤보려고 했는데요.” 우치카와가 눈을 슬쩍 위로 치켜뜨고 아오에를 쳐다보았다. 전문가라는 사람이 아마추어와 똑같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어서야 되겠느냐는 말을 하고 싶은 눈치였다.

  “이 근처의 지형이 자세히 표시된 자료가 있을까요? 원천의 분포도 알고 싶군요. 그리고 온천가와의 위치 관계도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관 목욕탕에서 배출된 황화수소 가스가 바람에 날려 왔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아 참, 당일의 날씨도 알고 싶군요. 풍향이나 풍속을 알면 참고가 되겠습니다.” 아오에는 우선 생각난 것을 전부 말해보았다.

  “알겠습니다. 오늘 밤이 되기 전까지 모두 준비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여관으로 갖다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우치카와는 수첩을 꺼내 잽싸게 메모했다.

  그다음에는 주변을 잠시 둘러본 뒤에 택시로 돌아와 온천가로 향했다.

  “사망한 사람이 남자라고 했죠? 몇 살쯤 되는 사람입니까.” 차 안에서 아오에가 물었다.

  “그건…….” 우치카와가 조금 전의 수첩을 다시 펼쳤다. “네, 39세로 나와 있네요.”

  “그렇게 젊은 사람이에요? 온천 여관에 혼자 찾아왔다면 좀 더 나이 든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 취향도 다양하니까요. 게다가 여관은 잡지 않은 모양이에요.”

  “그래요?”

  “여관 전부에 문의해봤는데 어디에도 예약된 곳이 없었어요. 혼자 여행 중에 훌쩍 들러본 길인가…….”

  “훌쩍 들러본 길?” 아오에는 뒤를 돌아보았다. “근데 저 산책로 입구까지는 어떻게 왔죠? 역에서 택시를 타고?”

  “네, 그랬을 거예요. 차를 갖고 온 건 아닌 모양이니까요.”

  “그러면 역에서 택시를 탔는데 온천가로 곧장 가지 않고 일부러 저 산책로를 타고 넘어가려고 했다는 건가요? —기사님, 그러는 사람이 많습니까?”

  “아뇨, 그런 손님은 태워본 적이 없습니다.” 운전기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요즘 시즌에 그 길로 드나드는 건 이 지역 사람들뿐이지요.”

  “그럼 피해자는 왜 그런 길을 택했을까요?” 우치카와에게 물었다.

  글쎄요, 라고 그녀는 고개를 외로 꼬았다.

  “유족들은 뭐라고 했습니까?”

  “근데 그게요, 아직 가족과 연락이 안 되고 있다네요?”

  “그래요? 그러면 유체는 지금 어디에?”

  “아마 현의 대학병원에 있을 겁니다. 부검을 끝낸 뒤에 그대로 안치해둔 모양이에요. 가족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 경찰도 난처해하면서 인수해 갈 사람을 찾는 중이래요.”

  “혼자 살던 사람인가. 그렇다면 일과 관련된 쪽으로 알아보는 수밖에 없겠군요.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이에요?”

  “그게 말이죠.” 우치카와는 그 즉시 말을 어물거렸다. “알 수가 없어요. 소지한 명함에는 일단 배우라고 나와 있다는데…….”

  “배우였다고요?”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런 배우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고, 유감스럽지만 별 인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뭔가 부업을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참고로, 이름이 어떻게 되지요?”

  “아, 그건…….” 우치카와는 다시 수첩을 들여다보며 ‘나스노 고로’라는 이름의 배우였다고 알려주었다. 분명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이름이었다. 본명은 ‘모리모토 고로’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아오에는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해보았다. 몇 가지가 나오기는 했지만 하나같이 오래된 정보들이었다.

  얼굴 사진이 있어서 우치카와에게 보여주었다. “이 사람이에요?”

  “네, 맞아요. 저도 검색해봤는데 이런 배우, 전혀 본 적이 없지요?”

  인터넷에 올라온 이미지는 꽤 오래전 것이었다. 험상궂은 얼굴 생김새인데도 연예인답게 세련된 분위기가 있었다.

  “나도 드라마 같은 건 거의 안 보는 편이라서……. 완전히 딴 세상 사람이군요.”

  그렇게 말하며 스마트폰을 호주머니에 넣는 순간, 뭔가가 머릿속에 걸렸다. 딴 세상 사람, 영화 업계 사람—. 최근에 누군가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났다.

  이윽고 아하, 하고 생각이 났다. 형사 나카오카에게서 들은 것이다. 아카쿠마 온천에서 사망한 미즈키 요시로라는 인물이 영화 프로듀서라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영화 업계 관련자가 단 두 달 사이에 연달아 사망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온천지에서 황화수소를 흡입하고. 이건 과연 우연일까.

  잠시 생각하다가 아오에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당연히 우연일 뿐이다. 내 입장에서는 딴 세상 일이지만, 영화 업계도 분명 상상 이상으로 넓은 곳이다. 그쪽에 관련된 사람 두 명이 비슷한 사고로 사망했다고 해도 그게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닐 터였다.

  택시는 온천가로 들어섰다. 길을 따라 여관이 줄지어 서 있었다. 평일이라 그다지 북적거리지는 않았지만 관광객인 듯한 나이 든 사람들의 모습이 띄엄띄엄 눈에 들어왔다.

  앗, 하는 소리가 저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차 바로 옆의 여관을 막 나서는 사람이 눈에 익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아, 죄송한데 차 좀 세워주세요.”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우치카와가 물었다.

  “아뇨, 그게…….” 선뜻 설명하지 못한 채 아오에는 그 인물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역시 틀림없다. 그 여학생이다. 아카쿠마 온천에서 같은 여관에 묵었던 그 젊은 여자. 그때와 똑같이 후드 달린 방한복을 단단히 여며 입고 핑크색 니트 모자를 썼다.

  “왜 그러세요?” 우치카와가 다시 한 번 물었다. “누구, 아는 사람이라도?”

  “아니, 아는 사람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고…….”

  아오에는 여학생의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그녀는 다시 그 옆의 여관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기사님, 내가 묵을 여관은 어디쯤이죠?”

  “바로 저기예요.” 운전기사가 손끝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저기요, 간판이 나와 있는 곳.”

  그 간판은 아오에도 확인이 가능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치카와를 보았다.

  “나는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그다음은 걸어서 갈 테니까.”

  “그건 괜찮습니다만……. 그러면 자료 준비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우치카와만을 태운 택시가 달려가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 아오에는 여학생이 들어간 여관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녀가 이곳에 묵고 있는 건가.

  그러자 현관에서 그 여학생이 나타났다. 뭔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아오에를 보고는 흠칫 놀란 듯 멈춰 섰다. 그쪽에서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순간적으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아서 우선 “안녕?”이라고 말해보았다.

  “안녕하세요.” 경계하는 눈빛을 보이면서도 그녀가 인사를 건네 왔다.

  “너는 거기, 아카쿠마 온천에서도 만났었지? 출입금지 구역에 마음대로 들어가 아저씨한테 혼이 났었어.”

  “아, 그때 그……. 어디서 봤다 했더니만.”

  “자주 만나는구나.”

  “그러네요.” 퉁명스럽게 말하고 그녀는 다시 걸음을 뗐다.

  아오에는 그 옆에 나란히 서서 걸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산책.”

  “아니, 그게 아니라 뭘 하려고 이런 곳에 왔느냐는 거야.”

  “난 온천에 오면 안 되나요?”

  “왜 이 온천이지? 사고가 났다는 거, 몰랐어?”

  그녀는 발을 멈췄다. 하지만 아오에 쪽을 쳐다보려고 하지 않았다.

  “역시 알고 있었구나?”

  그 말에 그녀가 쓰윽 노려보았다. “왜 그런 걸 물어보는데요?”

  “마음에 걸리니까 그렇지. 황화수소 중독 사고가 일어난 아카쿠마 온천에서 만났던 사람을 똑같은 사고가 일어난 이 온천가에서 또 만났어. 이건 우연이라고 생각하기 어렵지. 어떻게 된 건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잖아?”

  그녀는 예쁘장한 코를 움찔 치켜 올렸다.

 
 “그러면 내 쪽에서도 질문. 그렇게 말하는 아저씨는 왜 여기 있어요? 아저씨도 아카쿠마 온천에 있었는데 여기에도 있잖아요. 우리 둘 다 똑같네, 뭐.”

  “나는 사고에 관해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온 길이야.”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조사?”

  아오에는 품속에서 대학 명함을 꺼내 내밀며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했다.

  “아, 대학 교수님이시구나.” 니트 모자의 여학생은 명함을 쓱 훑어볼 뿐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여기 사고 현장은 가봤어요?”

  “근처까지는 가봤어. 현장은 사진으로만 봤고.”

  “장소가 어디예요? 산책로 안쪽이라고 하던데, 정확히 어디쯤이죠?”

  이번에는 아오에가 미간을 찌푸릴 차례였다. “너도 사고에 대해 조사하는 중?”

  “그렇다고 하면 정보를 주실래요?”

  “무엇 때문에 조사를 하지? 화산학이나 환경 화학 학자로는 보이지 않는데?”

 
 “그냥 흥미가 있어서요. 그런 건 안 되나요?”

  “왜 흥미를 가졌을까. 젊은 여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는 아닌 것 같은데.”

  “그거야 내 자유죠. 그보다 정확한 장소나 알려주세요.”

  “그걸 알아서 뭐하려고?”

  “아저씨와는 관계없는 일이에요. 아무튼 좀 알려주세요.”

  “네가 말했던 대로 산책로 안쪽이야.”

  “좀 더 자세한 걸 알고 싶다니까요.” 그녀가 답답한 듯한 목소리를 냈다.

  아오에는 승부욕이 강해 보이는 그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녀는 시선을 돌리는 일도 없이 마주 쏘아보았다.

  “남에게 뭔가를 물어볼 때는 우선 자기소개를 하는 게 예의야. 너는 대체 누구야?”

  그녀는 후우 하얀 입김을 토해냈다.

 
 “알았어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으면 되죠?” 한 손을 슬쩍 쳐들더니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향해 “나는 요 앞의 스즈야 여관에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마음 바뀌면 연락해. 내일 오후에는 도쿄에 돌아가니까 그 전에 연락해라.” 못 들었을 리는 없는데 그녀는 발을 멈추지 않고 손도 흔들지 않았다. 아오에는 한숨을 내쉬고 반대편으로 걸음을 뗐다.

  스즈야 여관은 전형적인 일본식 건축의 조촐한 여관이었다. 숙박 수속을 할 때, 퍼뜩 생각난 것이 있었다.

  “오늘 여기에 젊은 여자가 찾아오지 않았어요? 핑크색 니트 모자의.”

  안경을 쓴 남자 종업원이 눈을 깜작거렸다. “머리가 긴?”

  “맞아요. 눈이 약간 치켜 올라갔고 기가 드세 보이는 여학생.”

  남자 종업원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에, 왔었습니다.”

  “흠, 역시.”

 
 짐작했던 대로였다. 택시 안에서 봤을 때, 그녀는 한 여관에서 나와 바로 그 옆의 여관으로 들어갔다. 이 온천가의 여관을 한 집 한 집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그 여학생이 뭔가 물어보지 않았어요?”

  “네, 물어봤어요. 젊은 남자 사진을 보여주면서 최근에 이곳에 오지 않았느냐고 했습니다.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서 그렇게 대답해줬는데요.”

  아카쿠마 온천 때와 똑같았다. 그녀는 피해자가 묵었던 여관의 여주인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사고와 뭔가 관련이 있는 건가.

  방에 올라와 여관에서 준비해준 유카타로 갈아입고 대욕탕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황화수소계 온천 특유의 냄새가 났다. 옛날에는 탕 안에 지나치게 오래 머물던 손님이 중독 증세를 일으킨 적도 있지만 요즘은 충분한 배기와 환기가 의무 사항이라서 그럴 걱정은 없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온천물에 들어앉아 바깥의 눈경치를 바라본다—. 오쿠니시 데쓰코에게 말하면 그런 사치스러운 아르바이트를, 이라면서 눈을 흘길 것이다. 물론 솔직히 얘기해줄 마음은 전혀 없지만.

  방으로 돌아오자 우치카와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료가 모두 준비되었으니 지금 가져가겠다는 것이었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저녁 식사는 오후 7시부터였지만 그 전에 로비에서 우치카와를 만났다. 그녀가 건네준 대형 봉투에는 온천지 주변의 지형도, 원천의 위치를 기입한 지도, 사고 현장이며 그 주변 사진, 당일의 기상 데이터, 그리고 현시점에서의 각 지역의 황화수소 농도를 기록한 것들이 들어 있었다. 짧은 시간에 용케도 이만한 자료를 준비했구나 하고 내심 감탄했다.

  “고맙습니다. 이걸 참고로 나름대로 연구해보도록 하지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머리를 숙이며 공손히 인사하고 우치카와는 물러갔다.

  그 길로 저녁 식사 회장으로 가서 밥을 먹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새 이불이 깔려 있었지만 대충 접어 벽쪽으로 밀어놓고 테이블을 방 한가운데로 옮겼다. 그 위에 우치카와에게서 받은 자료들을 펼쳐놓았다.

  우선은 지형도를 들여다보며 사고 당일의 바람을 점검했다. 공기보다 무거운 황화수소는 지대가 낮은 곳으로 이동해 정체되기 쉽다. 하지만 바람이 강하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기상 데이터를 살펴본바, 그날은 거의 무풍이었다.

  그렇다면 온천가에서 배출된 황화수소가 바람을 타고 현장 주변까지 흘러들었을 가능성은 낮다는 얘기다. 원천의 위치도 확인해봤지만 모두 현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아오에는 지형도를 들여다보며 끄응 소리와 함께 팔짱을 꼈다. 산책로 인근에서 원천은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화산가스는 어디서 배출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를 말하자면 어디서든 나올 수 있다. 지면은 단순한 흙에 지나지 않아서 기체를 완벽하게는 차단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스가 다량으로 분출할 우려가 있는 포인트가 산책로 바로 옆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그 포인트를 찾아낼 수 있을까.

  모형을 만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라고 아오에는 생각했다. 현장 주변의 지형을 충실히 재현한 미니어처를 제작하는 것이다. 그것을 수조에 넣고 황화수소 대신 물보다 비중이 무거운 염료를 이용해 어떻게 확산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사고 현장에 황화수소가 정체되는 조건을 파악하면 가스 발생 포인트도 유추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또 다른 의문이 생겨났다. 현지의 지면은 눈에 덮여 있었다. 발생하는 가스를 그 내리쌓인 눈이 차단하지 않았을까…….

  기분 전환으로 맥주라도 마실까 하고 방 전화를 집어 들려는데 그 전화가 갑작스레 울리기 시작했다. 수화기를 들고 네, 라고 대답했다.

  “쉬고 계실 텐데 죄송합니다. 여기, 프런트예요.” 남자 목소리가 말했다. 숙박 수속을 할 때 마주했던 종업원이다.

  “무슨 일이지요?”

  “실은 지금 그 여학생이 찾아와 아오에 교수님을 뵙고 싶다고 하는데, 방 번호를 알려줘도 될까요?” 목소리를 작게 낮추며 남자 종업원이 물었다.

 
 “그 여학생이라면, 핑크색 모자를 쓴?”

  “네, 그렇습니다.”

  깜짝 놀랐다. 여관을 알려주기는 했지만 설마 진짜로 찾아올 줄은 몰랐다.

  “괜찮아요. 방으로 올라오라고 해주세요.”

  잘 알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남자 종업원은 전화를 끊었다.

  아오에는 유카타에 단젠을 입고 있었지만 서둘러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녀에게는 이곳에 조사를 위해 왔다고 말했다. 온천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섭섭한 일이다.

  유카타를 둘둘 말아 붙박이장에 던져 넣은 직후에 노크하는 소리가 났다. 아오에가 문을 열자 그 여학생이 서 있었다. 얼굴은 거의 무표정이었다. 모자는 벗었다. 방한복 호주머니에 넣어둔 것이리라.

  “어서 와라.” 아오에는 말했다.

  그녀는 방 안을 슬쩍 들여다보는 몸짓을 하더니 “혼자?”라고 물었다.

  “물론이지. 자, 들어와.”

 
 그녀가 안으로 들어와 부츠를 벗었다. 방에 발을 딛자마자 매우 잽싼 동작으로 테이블 옆에 앉았다. 자료가 펼쳐져 있는 것을 본 모양이었다.

  “엇, 교환 조건도 없이 보여주면 안 되지.” 아오에는 서둘러 자료를 치웠다.

  그녀는 일순 아오에를 노려보았지만 곧바로 눈의 힘을 풀었다. “부탁할 게 있어요.”

  “음, 그렇지 않고서야 여기까지 찾아올 리가 없겠지. 하지만 부탁을 하기 전에 우선 자기소개를 하는 게 어떨까.”

  그러자 그녀는 호주머니에서 종이쪽 한 장을 꺼내더니 무기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명함, 교환하죠.”

  “아까 내가 준 명함은 받지도 않더니?”

  “마음이 바뀌었어요.”

  “허허, 자기 좋을 대로구나.”

  아오에는 자신의 명함을 그녀에게 건넸다. 교환으로 받아 든 종이쪽에는 ‘우하라 마도카’라고 손 글씨로 적혀 있었다. 아래쪽에는 휴대전화 번호가 있었다.

  “본명이겠지?”

 
 그러자 그녀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아오에에게 내보였다. 신용카드인 데다 분명 ‘MADOKA UHARA’라고 찍혀 있었다. 가짜 카드인 것 같지는 않았다.

  “오케이, 이제 이름은 알았군.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자기소개라고 할 수 없겠지. 어디서 뭘 하는 사람인지 알리는 게 자기소개야. 너는 뭐 하는 사람? 학생인가? 그렇다면 어느 대학?”

  우하라 마도카는 고개를 저었다. “학생 아니에요.”

  “그럼 직업은? 무직이라고는 하지 마. 그런 사람이라면 신용카드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무직인데요.”

  “거짓말은 안 된다니까.”

  “거짓말 아니에요. 이 카드는 아버지의 패밀리카드예요.”

  흠, 그렇게 나온단 말이지, 라고 아오에는 내심 혀를 찼다.

  “그러면 아버님 직업은?”

  “의사.”

 
 “성함은? 어느 병원이지?”

  이 물음에 마도카는 부루퉁한 얼굴이 되었다.

  “자기소개를 할 때, 아버지에 대해서도 꼭 말해야 돼요?”

  아오에는 말문이 턱 막혔다. 반론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마도카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어디서 뭘 하느냐고 했죠? 그건 대답할 수 있어요. 난 사람을 찾고 있어요. 그러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중이에요.”

  “젊은 남자?”

  마도카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어떻게 알았어요?”

  “아카쿠마 온천 여관의 여주인에게서 들었어. 이곳 프런트에서도 들었고. 여주인 말에 의하면 그 청년이 네 친구라고 했다던데?”

  마도카는 스마트폰을 꺼내 빠른 손놀림으로 터치한 뒤에 아오에 쪽으로 화면을 내보였다. 스무 살 전후일까. 예민해 보이는 청년의 웃는 얼굴이 찍혀 있었다.

 
 “아주 소중한 친구예요. 꼭 찾아야 해요.”

  “왜, 실종이라도 됐나?”

  “뭐, 그런 셈이죠. 그래서 좀 도와주셨으면 해요.” 마도카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 말에는 웬일로 정감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적당히 둘러대는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고 아오에는 느꼈다.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 부탁이라는 건 뭐지?” 우선 그것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교수님은 그 사고를 조사한다고 하셨죠? 그러면 현장에 들어가실 수도 있겠네요?”

  갑작스럽게 교수님이라고 하는 바람에 아오에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현장이라니…….”

  “그 사고 현장 말이에요. 벌써 가보셨어요?”

  “아니, 현장까지는 못 갔어. 입구까지만 가봤지. 현장은 출입금지 상태였어.”

  “하지만 조사를 의뢰했다면…….”

  아오에는 그녀의 말을 손으로 제지하고 고개를 저었다.

 
 “나한테 조사를 의뢰한 건 경찰이나 관청 쪽이 아니라 신문사야. 따라서 어떤 특권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가는 것도 인정해주지 않아.”

  “……그렇구나.” 마도카는 낙담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만일 내가 현장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물론 나도 데려가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죠. 대학 교수님이시니까 조교라든가 학생을 데려간다고 하면 되잖아요.”

  아오에는 그녀의 조그만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무엇 때문에? 네 목적은 실종된 친구를 찾는 거잖아. 이번 황화수소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지?”

  마도카는 입을 삐죽이며 흥 콧숨을 내쉬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말 못 해요.”

  “왜?”

 
 “글쎄 말 못 한다니까요. 게다가 교수님과는 관계없는 일이에요. 전혀 아무 관계도 없다고요.” 야멸친 어조로 말하더니 “저거나 좀 보여주세요”라면서 자료가 든 봉투를 가리켰다.

  아오에는 봉투를 꽉 잡았다. “자세한 사정을 밝히지 않으면 보여줄 수 없어.”

  “교수님이 그런 얘기 들어봤자 별 볼 일 없다니까요?”

  “아니, 호기심이 채워진다는 매우 큰 메리트가 있지.”

  마도카는 지겹다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덩달아 아오에도 그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시계는 9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료 속에 사진이 있었죠?” 마도카가 불쑥 말했다.

  “사진?”

  “현장 사진 말이에요. 벤치가 찍혀 있었어요, 빨간 벤치.”

  “그게 어떻다는 거지?”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대로 나가려고 하는 바람에 아오에는 서둘러 뒤따라가 팔을 잡았다. “잠깐, 잠깐.”

  “아야얏, 놔요.”

  아오에는 팔을 놓았다. “어쩔 셈이야?”

  마도카는 잡혔던 부분을 손바닥으로 비비면서 말했다. “꼭 대답할 의무는 없지요?”

  “혹시 지금 현장에 가보려고?”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딱 맞혔다고 아오에는 확신했다. 빨간 벤치를 찾아 산책로로 들어갈 생각인 것이다. 시계를 보고, 이 시간이라면 감시하는 사람도 없을 거라고 예상한 게 틀림없다.

  “안 돼. 거긴 출입금지야. 게다가 산책로라고 해도 밤에는 위험해.”

  “상관 마세요. 아니면 혹시 경찰에 신고라도 하시려고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고맙네요, 라고 말하고 마도카는 부츠를 신기 시작했다. 아오에는 초조했다. 이대로 가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위험하기 때문에, 라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여기서 이렇게 헤어지면 다시는 이 여학생을 만날 수 없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만나지 못한다면 맹렬히 커져버린 자신의 호기심은 영원히 허공에 떠버린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

  부츠를 다 신은 마도카가 의아한 듯 돌아보았다.

  “알았어, 자료 보여줄게. 자세한 사정을 알고 싶지만 오늘은 내가 꾹 참기로 하지. 그러니 다시 방으로 들어와.”

  아무튼 오늘은 자신이 이 여학생에게 뭔가 선물을 해주었다는 상황을 만들어놓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마도카는 “아뇨, 됐어요”라고 깨끗이 포기하는 태도였다. “부츠도 벌써 다 신어버렸고. 자, 그럼.” 문손잡이를 잡으려고 했다.

  “아, 잠깐, 잠깐만.” 아오에는 문을 팔로 밀었다.

  마도카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번에는 또 뭐예요?”

  “갈게, 나도 함께 간다고. 젊은 여자 혼자서는 위험해. 나와 같이 못 가겠다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 자, 어떻게 할래?”

  그녀는 곤혹스러움과 망설임이 뒤섞인 표정을 보였다. 하지만 불쾌해하는 것 같지는 않아서 아오에로서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윽고 마도카의 입이 움직였다. “그럼 빨리 준비하세요.”

     

  산책로의 온천가 쪽 입구에도 <출입금지>라고 크게 써넣은 간판이 서 있었다. 그 앞으로 로프를 빙 둘러쳤다.

  아오에는 손전등으로 산책로를 비춰 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큰일이네.”

  “뭐가요?” 마도카가 물었다.

  “조금 전까지 눈이 내렸잖아. 산책로에도 쌓여 있어. 이런 곳을 걸어가면 우리 발자국이 줄줄이 찍히게 돼.”

  “아무렴 어때요? 우리 발자국인 줄 알 리도 없고.”

  “그래도 누군가 들어갔다는 걸 알고 한바탕 시끄러워질 거야.”

 
 “아뇨, 괜찮아요.” 마도카는 전혀 개의치 않는 기색으로 산책로를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녀의 부츠 발자국이 또렷하게 찍혔다.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아오에는 그 뒤를 따라갔다.

  바람도 없어서 산책로는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귀에 들어오는 것은 두 사람이 눈을 밟는 소리뿐이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흰 눈이 덮인 나무들뿐. 주변이 온통 새하얀 색깔이어서 손전등 불빛은 상상 이상으로 멀리 퍼져나갔다. 어둠 속에 떠오른 눈경치는 실로 환상적이었다.

  “꽤 머네.” 20분쯤 걸어간 참에 아오에가 말했다.

  “그러게요. 하지만 사망한 사람도 이 길을 걸어왔겠죠?”

  “아니, 피해자는 반대쪽에서 걸어왔다고 했어. 그때도 눈이 내린 직후여서 피해자의 발자국만 남아 있었다던데.”

  “반대쪽? 거기까지는 어떻게 왔는데요? 버스든 뭐든, 운행하는 거예요?”

  “그런 건 없다고 했어. 탈 수 있는 건 택시뿐인데 그런 어중간한 곳에서 내리는 손님은 없다는 거야. 내가 탔던 택시 운전기사가 이상하다고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어.”

  마도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오에도 새삼 의아한 마음이 깊어졌다. 피해자는 왜 그런 짓을 했을까. 굳이 온천가 반대쪽의 산책로로 가다니,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나저나 마음에 걸리는 건 역시 마도카의 친구라는 청년이다. 황화수소 사고와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일순 머리를 스친 것은 그 청년이 이번 사고를 일으킨 게 아닌가, 하는 상상이었다. 그렇다고 하면 마도카가 사고가 일어난 장소를 알아보고 다니는 것도 설명이 된다. 하지만, 하고 아오에 자신의 지식이 즉각 그런 상상을 부정했다. 그런 일은 있을 리 없다.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사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카쿠마 온천의 경우라면 형사 나카오카가 말했던 대로 강제적인 방법도 혹시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은 무리다. 피해자는 달랑 혼자였다. 발자국은 한 사람 것밖에 없었다. 무슨 본격 미스터리 소설도 아니고, 범인이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눈 위를 이동할 방법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도카가 “아, 저건가?”라면서 자신의 손전등을 앞쪽으로 향했다. 아오에도 그쪽으로 시선을 던졌지만 벤치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어디냐고 물었다.

  “저기요, 저기.” 마도카의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그 발자국을 아오에도 쫓아갔다.

  길이 커브를 그리며 굽어 들고 그 한 귀퉁이에 네모난 눈 덩어리가 있었다. 그 앞에서 발을 멈추더니 마도카는 장갑 낀 손으로 눈을 털어냈다. 그 아래 나타난 것은 벤치의 앉는 면이었다. 이어서 등받이도 나타났다.

  “정말이네. 이렇게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용케 알아봤구나.”

  자신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거라고 아오에는 생각했다.

  “별거 아니에요. 벤치의 상태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말하고 마도카는 손전등으로 주위를 몇 번 비추더니 마지막으로 위쪽 비탈길로 빛을 향했다.

  “뭘 하고 있지?” 아오에가 물었다.

 
 “어디서 가스가 흘러들었나 하고요.”

  “위에서라는 건 틀림이 없겠지. 황화수소는 공기보다 무거워. 만일 여름철이었다면 설령 가스가 지면에서 분출했다고 해도 금세 확산되었겠지만.”

  “지열 때문에 상승기류가 발생하기 때문이죠?”

  시원스럽게 척척 대답하는 마도카의 옆얼굴을 아오에는 돌아보았다.

  “아주 잘 아는구나. 맞아. 반대로 겨울철에는 지면이 차가워져서 바람 없는 날에는 공기가 거의 움직이지 않아. 그러니까 가스는 마냥 낮은 쪽으로 이동해 웅덩이 등에 고이게 되지.”

  그러자 마도카가 떨떠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지금 이 계절을 노린 거겠죠.”

  “노리다니, 무슨 말이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도카는 얼굴을 찌푸리며 니트 모자 위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보다 교수님, 피해자에 대해 뭔가 들은 거 있어요?”

  “뭘?”

 
 “뭐든 좋아요. 주소라든가 이름이라든가 직업 같은 거.”

  “아, 이름과 직업은 들었어. 별 인기가 없는 배우였다던데.”

  “배우?” 마도카의 눈이 번쩍 빛난 것처럼 보였다. “이름은요?”

  “흠, 나스노 고로라고 했던가.”

  마도카는 그 이름을 입속에서 몇 번 되뇐 뒤에 다시 물었다. “그 밖에 또 들은 얘기는요?”

  “내가 들은 건 그것뿐이야. 그리고 유체를 인수해 갈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경찰이 난처해하고 있다는 정도?”

  그렇군요, 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마도카의 표정은 눈에 띄게 침울해져 있었다.

  “왜 피해자에 대한 것을 궁금해하지? 실종된 친구와 뭔가 관계가 있는 사람이야?”

  그러자 마도카는 차가운 눈빛을 던졌다. “오늘은 꾹 참겠다고 하셨잖아요.”

  “뭘?”

 
 “자세한 사정을 알고 싶지만 오늘은 꾹 참겠다고 아까 얘기하셨어요. 그거, 거짓말이었어요?”

  “아니, 거짓말은 아니지.”

  “그렇다면 더 이상 캐묻지 마세요.” 마도카는 발길을 홱 돌리더니 “그만 가요”라면서 걸음을 뗐다.

  온 길을 말없이 되돌아갔다. 아오에는 머릿속에서 다양한 의문이 소용돌이쳤지만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묻지 않기로 약속한 것도 있었지만, 질문을 던지지 못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우하라 마도카의 등에서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윽고 입구에 도착했다. 아오에는 산책로를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의 발자국이 또렷하게 눈에 띄었다.

  “내일 아침에 저 발자국을 발견하고 한바탕 시끄러워지겠네.”

  그러자 마도카가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이제 곧 눈이 내릴 테니까.”

  아오에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반짝이는 점들이 눈에 띄었다. “별이 떴는데?”

 
 “지금 잠깐뿐이에요.” 마도카가 딱 잘라 말했다. “밤 12시 조금 지나서부터는 눈이 쏟아질 거예요.”

  “그걸 어떻게 알아?”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온천가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우하라 마도카와는 스즈야 여관 앞에서 헤어졌다. 그녀가 묵고 있는 여관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말했지만 단호히 거절했던 것이다. 뭔가 딴 속셈이 있는 것으로 생각할까 봐 아오에는 너무 끈덕지게 권할 수 없었다.

  여관방에 돌아와 유카타로 갈아입고 다시 자료들을 들여다보았다. 현장에 다녀온 덕분에 다양한 수치의 의미를 파악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하지만 우하라 마도카의 일이 마음에 걸려 아무래도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문득 창밖으로 시선을 던져보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오에는 시계를 보았다. 시곗바늘은 정확히 0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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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52.♡.103
지평선2 (♡.88.♡.15) - 2023/12/01 10:53:10

흥미진진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기무라의 소행인거 같은 생각입니다.
기무라의 계획이 한두가지 아니고 엮어서 덩어리가 큰 계획인거 같은 느낌요 .

단차 (♡.252.♡.103) - 2023/12/01 11:19:04

오 예리하시네요.ㅋㅋ

지평선2 (♡.88.♡.15) - 2023/12/01 11:30:41

기무라와 마도카는 비애의 인연일거 같은, 암튼 심상치 않을 깊은 인연일거 같은요...

단차 (♡.252.♡.103) - 2023/12/01 11:32:23

네. 두 사람이 주인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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