查拉图斯特拉如是说 10 (2)

단차 | 2023.11.30 20:23:53 댓글: 0 조회: 151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3385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나는 모든 글 중에서 자신의 피로 쓴 것만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리하면 그대는 피가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남의 피를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읽는 게으름뱅이들을 미워한다.

독자를 아는 자는 독자를 위해 더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백년이나 된 독자라면, 그 정신 자체는 악취를 풍길 것이다.

누구나 읽는 것을 배우면 결국에는 쓰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마저 썩고 말 것이다.

한때 정신은 신이었고, 그 다음에는 인간이 되었다가, 이젠 천민이 되었다.

피와 잠언으로 글을 쓰는 자는 읽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암송되기를 바란다.

산에서 산으로 갈 때 가장 가까운 길은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다리가 길어야 한다. 잠언은 봉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몸집이 크고 키가 큰 자라야 잠언을 알아들을 수 있다.

희박하고 순수한 공기, 임박한 위험, 흥겨운 심술궂음으로 가득 찬 정신, 이런 것들이 서로 잘 어울린다.

나에게는 용기가 있으므로 내 주위에 요마(妖魔)가 있었으면 좋겠다. 유령들을 쫓아버리는 용기는 스스로 요마를 만들어낸다. 용기는 너털웃음을 짓고자 한다.

나는 이제 그대들처럼 느끼지 않는다. 발아래로 보이는 이 구름들, 내가 비웃는 저 검고 묵직한 구름, 바로 이것이 그대들의 번개를 몰아오는 구름이다.

그대들은 높은 곳에 오르려고 할 때 위를 쳐다본다. 나는 이미 높은 곳에 있으므로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대들 중에 누가 웃을 수 있으며 동시에 높은 곳에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가장 높은 산에 올라가는 자는 모든 비극적 유희와 비극적 심각함을 비웃는다.

지혜는 우리에게 개의치 말고 조롱하며 난폭하게 행동하기를 원한다. 즉 지혜는 여인이라서 언제나 용사만을 사랑한다.

그대들은 나에게 말한다. “삶은 감당하기 어렵다.”고. 그런데 그대들은 무엇 때문에 아침에는 자부심을 지녔다가, 저녁에는 체념하고 마는가?

삶이란 감당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 앞에서 그렇게 나약하게 굴지 마라! 우리는 모두 짐을 지고 가는 귀여운 나귀들이 아닌가!

우리는 한 방울의 이슬만 떨어져도 파르르 떠는 장미 꽃봉오리와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참으로 우리가 삶을 사랑하는 것은 삶에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사랑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언제나 약간의 망상이 담겨 있다. 그러나 망상 속에는 언제나 약간의 이성이 깃들어 있다.

그런데 삶에 호의적인 내가 보기에도 나비와 비눗방울이, 그리고 인간들 중에서 그런 부류의 자들이 행복을 가장 많이 아는 것 같다.

이렇듯 가볍고 어리석으며 우아하고 활동적인 조그만 영혼들이 파닥거리며 나는 것을 보노라면, 차라투스트라는 이에 유혹되어 눈물을 흘리고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춤출 줄 아는 하나의 신만 믿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악마를 보고 진지하고 철저하며 심오하고 엄숙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중력의 영(靈)19)이었고, 이로써 모든 사물은 떨어지는 것이다.

인간들은 분노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웃음으로 죽인다. 자, 우리 중력의 영을 죽이도록 하자꾸나!

나는 걷는 법을 배웠고, 그런 이후로 자신을 내달리게 한다. 나는 날아다니는 법을 배웠고, 그 이후로 누구에게 떠밀리지 않아도 솔선해서 움직이게 되었다.

이제 나는 가벼워서, 이제 나는 날아다닌다. 이제 나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이제 어떤 신이 나로 인해 춤을 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산비탈의 나무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한 젊은이가 자신을 피해 가는 것을 목격했다. 어느 날 저녁 그가 ‘얼룩소’라고 불리는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길을 혼자 걸어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보라. 이 젊은이가 어떤 나무에 몸을 기대고 앉아, 피곤한 눈으로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차라투스트라는 그 젊은이가 앉아 있는 나무를 붙잡고 말했다. “두 손으로 이 나무를 흔들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거야.

그러나 우리 눈에 안 보이는 바람은 나무를 괴롭히고 마음대로 구부릴 수 있지. 우리도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가장 심하게 구부려지고 괴롭힘을 당하는 걸세.”

그러자 젊은이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의 목소리가 아닌가요. 그렇지 않아도 방금 전까지 당신을 생각하고 있던 중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대꾸했다.

“왜 그렇게 놀라는가? 인간은 나무와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나무는 높고 밝은 곳으로 오르려고 할수록 뿌리를 더욱 힘차게 대지를 향해 아래로, 어둠 속으로, 깊은 곳으로―――악(惡)의 내부로 뻗어가려고 하지.”

“그래요. 악의 내부로!” 젊은이가 소리쳤다. “당신은 어떻게 내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었나요?”

차라투스트라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먼저 영혼을 꾸며내지 않고는 결코 영혼을 들여다볼 수 없는 거라네.”

“그래요, 악의 내부로!” 젊은이가 또 한 번 소리쳤다.

“차라투스트라, 당신은 진리를 말했어요. 나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한 이후로 더는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으며, 아무도 나를 믿으려고 하지 않아요.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나는 너무 빨리 변해요. 나의 오늘은 나의 어제를 부정하거든요. 나는 올라갈 때 종종 계단을 건너뛰기도 하지만, 계단은 이런 행위를 용서하지 않아요.

위에 올라가면 나는 언제나 혼자입니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고, 고독이란 냉기는 나를 떨게 만들어요. 나는 높은 곳에서 무엇을 바라는 걸까요?

나의 경멸과 동경이 함께 커집니다. 내가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올라가는 그 자를 더욱 경멸해요. 그는 높은 곳에서 무엇을 바라는 걸까요?

올라가며 비틀거리는 내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몰라요! 나는 거칠게 헐떡이는 내 숨소리를 얼마나 비웃는지 몰라요! 나는 날아다니는 자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몰라요! 높은 곳에서 얼마나 피곤한지 몰라요!”

이 말을 하고 젊은이는 입을 다물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옆에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나무는 여기 산속에 외롭게 서 있군. 인간과 짐승을 굽어보며 높이 자랐어.

말을 하고 싶어도 자기 말을 듣는 자가 없을 거야. 그만큼 높이 자란 거지.

이제 나무는 기다리고 또 기다릴 것이다. 이 나무는 무얼 기다리는 걸까? 그것은 구름이 있는 곳과 아주 가까이 살면서 최초의 번개를 기다리는 게 아닐까?”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하자 젊은이는 격렬한 몸짓을 하며 외쳤다. “그래요, 차라투스트라, 당신은 진리를 말하고 있어요. 나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할 때 나의 멸망을 바랐어요. 그런데 내가 기다리던 번개는 바로 당신입니다! 보세요. 당신이 우리에게 나타난 이후로 나의 존재는 무엇이란 말인가요? 당신에 대한 시샘이 나를 파괴했어요!” 젊은이는 목 놓아 울며 말했다. 차라투스트라는 팔로 그를 감싸 안고 함께 길을 떠났다.

한동안 나란히 걷다가 차라투스트라가 말문을 열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구나. 그대가 하는 말보다 오히려 그대의 눈에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대는 아직 자유롭지 못하고, 여전히 자유를 갈망한다. 그대는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에 밤새 잠들지 못하고 극도로 긴장해 있다.

그대는 툭 트인 산꼭대기로 올라가려고 하고, 그대의 영혼은 별들을 갈망한다. 하지만 그대의 좋지 않은 충동도 자유를 갈망한다.

그대의 들개들은 자유를 그리워하고, 그대의 정신도 모든 감옥을 열어놓으려고 애쓰고 있을 때, 들개들은 지하실에서 쾌락을 달라고 짖어댄다.

내가 보기에 아직 그대는 자유를 꿈꾸는 포로다. 아, 그러한 포로의 영혼은 영리해지지만, 교활해지고 사악해지기도 한다.

정신이 해방된 자도 자신을 정화해야 한다. 그의 속에는 아직 감옥과 곰팡이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눈은 더 순수해져야 한다.

그렇다. 나는 그대가 처한 위험을 알고 있다. 그런데 나의 사랑과 희망을 걸고 간절히 애원하건대, 그대의 사랑과 희망을 내버리지 마라!

그대는 아직도 자신을 고귀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대를 원망하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다른 사람들도 그대를 고귀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고귀한 자가 모든 사람에게 방해됨을 잊지 마라!

고귀한 자는 선한 자들에게도 방해된다. 그래서 그들이 그를 선한 자라고 부를지라도, 그러면서 그를 옆에 제쳐놓으려고 한다.

고귀한 자는 새로운 것과 새로운 덕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반면에 선한 자는 낡은 것을 원하고, 낡은 것은 그대로 유지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고귀한 자가 선한 자가 되는 것은 위험하지 않다. 고귀한 자가 뻔뻔스러운 자, 조롱하는 자, 파괴하는 자가 되는 것이 위험하다.

아, 나는 최고의 희망을 잃어버린 고귀한 자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희망을 잃은 자들은 고상한 희망을 모조리 비방한다.

그들은 순간적인 쾌락에 빠져 뻔뻔스럽게 살았다. 삶의 목표가 없었던 것이다.

“정신도 쾌락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정신의 날개를 잃고 말았다. 이제 그들의 정신은 이리저리 기어 다니고, 이것저것 갉아먹으며 몸을 더럽힌다.

한때 그들은 영웅이 될 생각이었지만, 이젠 탕아가 되고 말았다. 그들에게 영웅은 원망과 두려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나의 사랑과 희망을 걸고 간절히 애원하건대, 그대의 영혼 속에 들어 있는 영웅을 버리지 마라! 그대의 최고 희망을 신성하게 간직하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을 설교하는 자들에 대하여


죽음을 설교하는 자들이 있다. 이 대지에는 삶을 등지고 떠나라는 설교를 들어야 하는 자들로 가득하다. 이 대지에는 쓸모없는 자들로 넘치고, 수많은 어중이떠중이들 때문에 삶이 망가져 있다. 그들을 ‘영원한 삶’이라는 말로 꾀어 이 삶을 등지도록 하면 좋으련만!

인간들은 죽음의 설교자를 ‘노란 인간’이나 ‘검은 인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그대들에게 그들을 또 다른 색으로 보여 주고자 한다.

마음속에 맹수를 품고 돌아다니며 쾌락에 탐닉하거나 자신을 갈가리 찢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을 하지 못하는 끔찍한 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쾌락이라는 것도 자신을 갈가리 찢는 것이다.

이들, 이 끔찍한 자들은 아직 인간이 되지 못했다. 이들이 삶을 등질 것을 설교하고 스스로 떠나버리면 좋으련만!

여기에 영혼의 결핵 환자들이 있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이미 죽어가기 시작했고, 피로와 체념의 가르침을 그리워한다.

그들은 기꺼이 죽어 있고자 하므로, 우리는 그들의 뜻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죽어 있는 자들을 깨우지 않도록, 이러한 살아 있는 관(棺)들을 훼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병자나 노인, 시체와 마주치면 즉시 “삶은 부정되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정된 것은 그들일 뿐이고, 생존의 한쪽 얼굴밖에 보지 못하는 그들의 눈일 뿐이다.

그들은 심상치 않은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혀, 죽음을 불러오는 사소한 우연을 갈망하면서, 이를 악물고 기다린다.

하지만 그들은 달콤한 과자를 향해 손을 뻗으며, 자신의 유치함을 비웃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의 지푸라기 같은 삶에 집착하면서, 자신들이 아직 지푸라기에 집착하고 있는 것을 비웃는다.

이들의 지혜는 말한다. “살아 있는 자는 바보이므로 우리도 바보다! 그리고 삶에서 가장 어리석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삶이 고통일 뿐이다.”라고 말하는데, 이들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그만 살도록 하라! 고통일 뿐인 삶을 그만두도록 하라!

그러므로 그대들의 덕은 이렇게 가르친다. “그대 자신을 죽이도록 하라! 그대 자신이 몰래 사라지도록 하라!”

죽음을 설교하는 자들 중에 “육욕은 죄악이니, 육욕을 버리고 자식을 낳지 마라.”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또 다른 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자식을 낳는 건 힘든 일이다. 왜 아직 아이를 낳는단 말인가? 불행한 자들만 낳을 뿐이다!” 이들도 죽음의 설교자들이다.

또 다른 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동정은 꼭 필요하다. 내가 가진 것을 가져라! 나 자신을 가져라! 그러면 삶의 구속이 덜해 지리라!”

이들이 진정으로 동정하는 자라면 이웃이 삶을 싫어하게 만들 것이다. 이들의 올바른 선의란 사악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삶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므로 이들이 자신의 쇠사슬과 선물로 남을 더욱 단단히 묶어둘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삶을 힘겨운 일이며 불안이라고 생각하는 그대들도 삶에 몹시 싫증을 느끼지 않는가? 그대들은 죽음의 설교를 받아들일 정도로 아주 무르익어 있지 않은가?

힘겨운 일을 좋아하고, 빠르고 새로우며 낯선 것을 좋아하는 그대들 모두는 자신을 제대로 견디지 못하고, 그대들의 부지런함은 도피이자 자신들을 잊어버리려는 의지이다.

그대들이 삶을 좀 더 신봉한다면 순간에 자신을 내던지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대들의 마음속에는 기다릴 만한 충분한 내실이 없으며, 게으름을 부릴 만한 내실도 없다!

죽음을 설교하는 자들의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진다. 그런데 대지에는 죽음의 설교를 들어야 할 사람들로 넘친다.

또는 ‘영원한 삶’에 대한 설교도 나에게는 마찬가지다. 이들이 빨리 사라지기만 한다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 20) 과 전사들에 대하여


우리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적들로부터, 또한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들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내가 그대들에게 진리를 말할 수 있도록 하라!

전쟁 중인 나의 형제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 나는 그대들과 같은 인간이고, 과거에도 그랬다. 그리고 그대들의 가장 강력한 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내가 그대들에게 진리를 말할 수 있도록 하라!

나는 그대들 마음속의 미움과 시샘을 알고 있다. 그대들은 미움과 시샘을 모를 정도로 위대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그대들이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을 정도로 위대해지도록 하라!

그리고 그대들이 인식의 성자가 될 수 없다면, 최소한 인식의 전사(戰士)가 되도록 하라! 인식의 전사는 그러한 신성함의 길벗이자 선구자다.

나는 수많은 병사들을 보고 있지만, 이제는 수많은 전사들을 보고 싶다! 그들이 입는 것을 ‘제복’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이 제복으로 감추고 있는 것이 획일적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대들은 언제나 그대들의 눈으로 어떤 적, 그대들의 적을 찾는 그런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대들 중에는 첫눈에 증오하는 자를 찾아내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적을 찾아내어 자신의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그대들의 사상을 위해! 그대들의 사상이 패배할지라도 그대들의 솔직함은 아직 승리를 외쳐야 한다!

그대들은 새로운 전쟁에 대한 수단으로 평화를 사랑해야 한다. 오랜 평화보다 잠깐의 평화를 더 사랑해야 한다.

나는 그대들에게 일이 아니라 싸움을, 평화가 아니라 승리를 권한다. 그대들의 일이 싸움이고, 그대들의 평화가 승리이기를!

활과 화살이 있을 때만 말없이 가만히 있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마구 지껄이며 다투게 된다. 그대들의 평화가 승리이기를!

그대들은 명분이 좋으면 전쟁도 신성하다고 말하는가? 나는 그대들에게 말한다. 모든 명분을 신성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좋은 전쟁이라고.

전쟁과 용기가 이웃에 대한 사랑보다 위대한 일을 더 많이 해왔다. 지금까지 불행에 빠진 사람들을 구한 것은 그대들의 동정심이 아니라 그대들의 용감함이었다.

“무엇이 선인가?”라고 그대들은 묻는다. 용감한 것이 선이다. 어린 소녀들이 이렇게 말하도록 하라. “귀여운 동시에 감동을 주는 것이 선하다.”

사람들은 그대들에게 피도 눈물도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대들 마음은 순수하고, 나는 그대들의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사랑한다. 그대들은 밀물처럼 들어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대들이 보기에 추한가? 그럼 좋다. 나의 형제들이여! 추한 것을 덮는 숭고함의 외투를 걸쳐라!

그대들의 영혼이 위대해지면 그 영혼은 오만해지고, 그대들의 숭고함 속에는 사악한 것이 깃들어 있다. 나는 그대들을 잘 알고 있다.

오만한 자와 나약한 자는 나쁘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런데도 둘은 서로를 잘못 이해한다. 나는 그대들을 잘 알고 있다.

그대들은 미워해야 할 적만 가져야지, 경멸해야 할 적은 갖지 말아야 한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적의 성공이 그대들의 성공이 되기도 한다.

반항하는 것은 노예들의 고귀한 행위이다. 그런데 그대들의 고귀한 행위가 순종이 되기를! 그대들의 명령 자체가 순종이 되기를!

훌륭한 전사는 “나는 하려고 한다.”라는 말보다 “너는 해야 한다.”라는 말을 듣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므로 그대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먼저 명령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삶에 대한 그대들의 사랑이 그대들의 최고 희망에 대한 사랑이 되도록 하라. 그리고 그대들의 최고 희망이 삶에 대한 최고의 사상이기를!

그러므로 그대들은 그대들의 최고 사상을 나에게 명령하도록 하라. 인간은 극복되어야 하는 그 무엇이라는 사상을.

그러므로 그대들은 순종하고 투쟁하는 삶을 살도록 하라! 오래 산다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전사가 무슨 보살핌을 받을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그대들을 보살피지 않고, 진정으로 사랑할 뿐이다. 전쟁 중인 나의 형제들이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


어딘가에는 아직 국가를 이루지 못한 민족과 집단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형제들이여,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에겐 국가가 있다.

국가? 그것이 무엇인가? 자! 내 말에 귀를 기울여 보라! 이제 그대들에게 민족의 죽음을 말하고자 한다.

국가란 온갖 냉혹한 괴물 중에서 가장 냉혹한 것이다.21) 그것은 차갑게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그 괴물의 입에서는 “나, 즉 국가가 민족이다.”라는 말이 기어 나온다.

그건 거짓말이다! 민족을 만들어내고, 그 민족 위에 하나의 믿음과 사랑을 걸어놓은 자들은 창조하는 자들이다. 이렇게 이들은 삶에 봉사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덫을 놓고, 그것을 국가라고 부르는 자들은 파괴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이 덫 위에 하나의 칼과 백 가지의 욕망을 걸어놓는다.

아직 민족이 있는 곳에서는 국가를 이해하지 못하며, 그들은 사악한 눈길이자 풍속과 법에 반하는 죄악이라고 국가를 증오한다.

나는 그대들에게 그 징표를 알려 주고자 한다. 민족마다 선과 악을 각기 자신의 언어로 말하지만, 이웃 민족은 그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민족마다 자신의 언어를 풍속과 법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는 선과 악을 온갖 말로 꾸며댄다. 국가가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고, 국가가 갖고 있는 것은 모두 훔친 것이다.

국가의 모든 것이 엉터리다. 물어뜯는 존재인 국가는 훔친 이빨로 물어뜯으며, 그의 내장조차 엉터리다.

선과 악을 말할 때 언어의 혼란이 일어난다. 즉 이것이 국가임을 알려 주는 징표다. 참으로 이 징표는 죽음에 대한 의지를 나타낸다! 참으로 이 징표는 죽음의 설교자들에게 오라고 손짓한다!

수많은 자들이 태어난다. 즉 국가는 이런 쓸모없는 자들을 위해 고안된 것이다!

보라, 국가가 수많은 어중이떠중이를 어떻게 유혹하는지를! 어떻게 그들을 집어삼켜 씹고 되씹는지를!

“이 대지 위에 나보다 더 위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질서를 부여하는 신의 손가락이다.” 괴물은 이렇게 울부짖는다. 그런데 무릎을 꿇는 자는 귀가 큰 자나 근시인 자들만이 아니다!

아,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인 그대들에게도 국가는 음산한 거짓말을 속삭인다! 아, 국가는 자신을 흔쾌히 바치는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를 알아맞힌다!

그렇다. 국가는 낡은 신을 정복한 그대들도 알아맞힌다! 그대들은 싸움에 지쳤고, 이제 지친 나머지 새로운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국가, 이 새로운 우상은 영웅과 존경할 만한 자들을 전면에 내세우고자 한다! 국가, 이 차가운 괴물은 떳떳한 양심의 햇볕을 쬐고자 한다!

그대들이 이 국가를 숭배하면 그 새로운 우상은 그대들에게 뭐든지 주려고 한다. 이렇게 하여 국가는 그대들의 빛나는 덕과 자랑스러운 눈빛을 매수한다.

국가는 그대들을 미끼로 삼아 수많은 자들을 유혹하고자 한다! 그렇다. 그러기 위해 지옥이라는 예술품, 신의 영광으로 장식되어 쩔렁거리는 소리를 내는 죽음의 말[馬]이 고안되었다!

그렇다. 스스로 생명이라고 미화하는 죽음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고안되었다. 참으로 이는 모든 죽음의 설교자들에 대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봉사가 아닌가!

선한 자나 악한 자가 모두 독을 마시게 되는 곳, 그런 자들이 모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곳을 나는 국가라고 부른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서서히 자살을 하면서, ‘삶’이라고 부르는 곳을 국가라고 부른다.

이 쓸모없는 자들을 보라! 이들은 발명가의 작품과 현자의 보물을 훔친다. 즉 이들은 도둑질을 교육이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이들에겐 모든 것이 병과 재난이 된다!

이 쓸모없는 자들을 보라! 이들은 언제나 병들어 있고, 담즙을 토해 내면서 이를 신문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서로를 집어삼키지만, 결코 소화를 시키지는 못한다.

이 쓸모없는 자들을 보라! 이들은 부를 긁어모으지만 그럴수록 더욱 가난해진다. 이들은 권력을 원하고, 무엇보다 권력의 지렛대인 많은 돈을 원한다.―――이 무능한 자들이!

날쌘 원숭이들이 기어오르는 것을 보라! 이들은 서로 뒤엉켜 기어오르고, 그러면서 진창과 심연으로 떨어진다.

이들은 모두 왕좌에 오르려고 한다. 왕좌에 오르면 행복하리라는 것이 바로 이들의 망상이다! 때로는 왕좌 위에 진창이 있고, 때로는 그 왕좌가 진창 위에 있기도 한데 말이다.

이들은 모두 망상에 사로잡힌 자들이고, 기어오르는 원숭이들이며, 열에 들뜬 자들이다. 냉혹한 괴물인 이들의 우상도, 그 우상 숭배자들도 모두 악취를 풍기고 있다.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이들의 주둥이와 욕망에서 뿜어내는 악취 속에서 질식할 것인가? 차라리 창문을 부수고 바깥으로 뛰쳐나가라!

나쁜 냄새에서 벗어나라! 쓸모없는 자들의 우상 숭배에서 벗어나라!

나쁜 냄새에서 벗어나라! 인간 제물들이 내뿜는 증기에서 벗어나라!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들에게는 아직도 대지가 활짝 열려 있다. 은은한 바다 냄새가 감도는 자리, 혼자서 또는 둘이서 은둔 생활을 하는 자들을 위한 자리가 아직 많이 비어 있다.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들에게는 아직 자유로운 삶이 활짝 열려 있다. 참으로 가진 게 별로 없는 사람은 그럴수록 덜 사로잡힌다. 하찮은 가난을 찬미하라!

국가가 소멸하는 곳에서 비로소 꼭 필요한 인간의 삶이 시작된다. 그곳에 꼭 필요한 인간의 노래가, 단 한 번뿐이고 대체할 수 없는 노래가 시작된다.

국가가 소멸하는 곳, 그곳을 보라.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눈에는 초인이라는 무지개와 다리가 보이지 않는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시장의 파리들에 대하여


나의 벗이여, 그대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나는 그대가 위인들의 소음에 귀먹고, 소인배들의 가시에 마구 찔리는 것을 본다.

숲과 바위는 그대와 더불어 침묵할 줄 안다. 다시 그대가 사랑하는 나무처럼 되라. 그 나무는 가만히 귀 기울이며 바다 위로 넓게 가지를 뻗고 있다.

고독이 끝나는 곳에 시장이 열린다. 그리고 시장이 열리는 곳에 위대한 배우들의 소음이 시작되고, 독파리들의 윙윙거림이 시작된다.

세상에 제아무리 훌륭한 것이라도 그것을 연출해 주는 자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러한 연출자를 군중은 위인이라 부른다.

군중은 위대한 것, 즉 창조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위대한 일을 연출하는 자들과 그 배우들을 파악하는 심미안을 가지고 있다.

세계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 발명가를 중심으로 눈에 보이지 않게 돌아간다. 그렇지만 군중과 명성은 배우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란 바로 이런 것이다.

배우에게도 정신이 있지만, 그 정신에는 양심이 거의 없다. 배우는 언제나 자신이 가장 믿게 만드는 것, 즉 자신을 믿게 만드는 것을 믿는다!

그는 내일이면 새로운 믿음을, 모레면 보다 새로운 믿음을 갖는다. 그의 마음은 군중과 마찬가지로 쉬 바뀌고, 변덕스러운 날씨와 같다.

뒤집어엎는 것, 이것은 그에게 증명을 뜻한다. 광분하게 하는 것, 이것은 그에게 설득을 뜻한다. 그리고 피는 그에게 모든 근거들 중의 최상으로 간주된다.

그는 예민한 귀를 가진 사람들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진리를 거짓말이자 무(無)라고 부른다. 참으로 그는 이 세상에서 시끄러운 소음을 내는 신들의 존재만 믿을 뿐이다!

시장에는 알록달록하게 차려입은 어릿광대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군중은 자신의 위인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즉 그들이 그 순간의 주인인 것이다.

하지만 어릿광대들은 시간에 쫓겨 그대를 몰아댄다. 그리고 그들은 그대에게서도 “네.” 또는 “아니오.”를 듣고자 한다. 슬프구나, 찬성과 반대 사이에 그대의 의자를 놓으려는가?

그대 진리를 사랑하는 자여, 이처럼 마구잡이로 몰아댄다고 이들을 질투하지 마라! 지금까지 마구 몰아대는 자의 팔에 진리가 매달린 적이 없었다.

이처럼 난데없이 구는 자들을 피해 그대의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라. 사람들은 시장에서만 느닷없이 “네?” 또는 “아니오?”를 강요할 것이다.

우물이 깊으면 어떤 체험이든 그 결과가 서서히 나타난다. 깊은 우물 속에 뭐가 떨어졌는지 알려면 한참 기다려야 한다.

위대한 일은 모두 시장이나 명성과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다. 예로부터 새로운 가치를 고안해 낸 자들은 시장이나 명성과 떨어진 곳에서 살았다.

나의 벗이여, 그대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나는 그대가 독을 품은 파리에 쏘이는 것을 본다. 거친 바람이 세차게 부는 곳으로 달아나라!

그대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그대는 하찮고 가련한 것들과 너무 가까이서 살아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의 복수를 피해 달아나라! 그들은 그대에게 오직 복수만을 노리고 있다!

그들에 맞서 다시는 팔을 들어 올리지 마라! 그들은 무수히 많고, 그대의 운명이 파리채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하찮고 가련한 것들은 무수히 많다. 위풍당당한 건물들이 빗방울과 잡초로 인해 무너지는 경우를 이미 여러 번 보지 않았던가!

그대가 돌은 아니지만, 많은 빗방울로 이미 움푹 파이지 않았던가. 그대는 앞으로도 수많은 빗방울로 인해 부서지고 쪼개질 것이다.

나는 그대가 독을 품은 파리들로 인해 지치고, 백여 군데나 쏘여 피투성이가 된 것을 본다. 그런데 그대는 자존심 때문에 화내지 않는구나.

독을 품은 파리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대의 피를 원하고, 핏기 없는 이들의 영혼은 피를 갈망한다. 그 때문에 그것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대를 쏘아댄다.

그런데 마음 깊은 그대여, 그대는 조그만 상처에도 너무 심한 고통을 받는다. 또 그대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같은 독충이 그대의 손 위로 기어오른다.

살금살금 갉아먹는 이것을 죽이기에는 그대의 자존심이 너무 세다. 하지만 독기 있는 부당한 짓을 죄다 견디는 것이 그대의 운명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들은 그대 주위에서 윙윙거리며 찬양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들의 찬양은 성가실 정도로 집요하다. 그들은 그대의 피부와 피 가까이에 있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은 신이나 악마에게 하듯 그대에게 알랑거린다. 그것들은 신이나 악마 앞에게 하듯 그대 앞에서 징징거린다. 어쩌겠는가? 그들은 알랑거리고 징징거리는 자들에 불과한데.

또한 그들은 그대에게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비겁한 자의 약은 꾀다. 그렇다. 비겁한 자들은 영악하다!

그들은 그들의 옹색한 소견으로나마 그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그대는 그들에게 언제나 우려스러운 존재다! 유념해서 많이 생각해야 하는 모든 것은 우려스러운 것이 된다.

그들은 온갖 덕을 지닌 대가로 그대를 벌한다. 그들이 진정으로 용서하는 것은 그대의 실책뿐이다.

그대는 마음이 부드럽고 올바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하찮은 삶을 살아간다고 해서 그들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옹색한 소견으로 “모든 위대한 존재는 죄악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대가 그들에게 부드럽게 대한다 해도 그들은 그대에게 경멸을 당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그대가 베푼 선행을 은밀한 악행으로 갚는다.

그대의 말없는 자부심은 언제나 그들의 취향에 거슬린다. 그대가 허황될 정도로 겸손한 태도를 보이면 그들은 기뻐 날뛸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인간에게서 알아내는 것, 그것은 그에게 불을 붙이는 격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소인배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그대 앞에서 너무 왜소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들의 비열함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복수심으로 그대를 향해 희미하게 또는 활활 타오른다.

그대가 그들에게 다가갈 때, 그들이 항상 입을 다물어버리고, 꺼져가는 불꽃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기력이 쇠하는 것을 그대는 눈치채지 못했는가?

나의 벗이여, 그대의 이웃은 그대를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들은 그대에게 아무 가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대를 미워하고, 그대의 피를 빨아먹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대의 이웃은 언제까지나 독을 품은 파리로 있을 것이다. 그대의 위대한 점, 바로 그 점이 그들을 더욱 유독하게 만들고, 점점 더 독을 품은 파리답게 만든다.

나의 벗이여, 달아나라. 그대의 고독 속으로, 거친 바람이 세차게 부는 곳으로! 그대의 운명은 파리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순결에 대하여



나는 숲을 사랑한다. 도시에는 욕정에 눈먼 자들이 너무 많아 살기 좋지 않다.

욕정에 불타는 여인의 꿈에 나타나는 것보다는 살인자의 손에 걸려드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런데 이 남자들을 보라. 이들의 눈은 이 세상에서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게 제일 좋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들의 영혼 밑바닥에는 진창이 깔려 있다. 이들의 진창에 정신마저 있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까!

그대들이 최소한 짐승으로나마 완전하다면 좋을텐데! 그래도 짐승에게는 순진함이 있으니까.

내가 그대들의 관능을 죽이라고 권한단 말인가? 나는 그대들에게 관능의 순진함을 권하는 것이다.

내가 그대들에게 순결을 권한단 말인가? 몇몇 사람들에게는 순결이 덕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거의 악덕이나 마찬가지다.

이들은 아마 억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하는 모든 일에서 관능이라는 암캐가 시샘의 눈길을 번득이고 있다.

심지어 덕의 높은 경지에까지, 냉철한 정신 속에까지 이러한 짐승과 그 짐승의 불만족이 이들을 쫓아다닌다.

그리고 관능이라는 이 암캐는 한 점의 살 조각을 거부당하는 경우 얼마나 애교 있게 한 조각의 정신을 구걸할 줄 아는가?

그대들은 비극을 사랑하고, 가슴을 쥐어뜯게 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가? 하지만 나는 그대들의 암캐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대들은 너무 잔혹한 눈을 가지고 있고, 고뇌하는 자들을 음탕한 눈길로 바라본다. 그대의 육욕이 자신을 위장하고, 스스로를 동정이라 부르고 있지 않은가?

비유하건대, 적지 않은 자들이 자신의 악마를 몰아내려다가 그만 암퇘지들 사이에 들어가게 되었다.22)

순결을 지키기 어려운 자에게는 그것에 집착하지 말라고 충고해야 한다. 순결이 지옥에 이르는 길, 즉 영혼의 진창과 욕정에 이르는 길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내가 더러운 것을 말하는 건가? 이것이 내가 하는 가장 고약한 일은 아니다.

인식하는 자가 물속에 뛰어들기를 꺼린다면 이는 진리가 더러워서가 아니라 얕아서이다.

참으로 근본이 순결한 자들이 있다. 이들의 마음은 그대들보다 더 부드럽고 그대들보다 더 흔쾌하며 그대들보다 활짝 웃는다.

이들은 순결에 대해서도 웃어넘기며 묻는다. “순결이 뭐란 말인가?

순결이란 어리석음이 아닌가? 하지만 순결이 우리에게 온 것이지, 우리가 순결에게 다가간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이 손님에게 숙소와 마음을 제공해 줘서, 그는 이제 우리 집에 살고 있다. 그는 우리 집에 있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있어도 좋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9) 'Geist' 라는 독일어에는 '정신', '영', '정령', '유령' 이라는 뜻이 있다. 중력의 영은 새털처럼 가벼워지려는 몸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으로, 제도와 관습, 법규와 도덕을 말한다. 이것은 프로이트에게는 초자아에 해당한다. 밀란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이러한 중력의 영을 떨쳐 버리고자 한다.
20) 니체가 말하는 전쟁이란 총 들고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가치들을 창조하고 그러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뜻한다. 그러므로 니체를 전쟁광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21) 니체는 히틀러적인 국가 지상주의에 반대한다.
22) [마태복음] 8장 30~32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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