查拉图斯特拉如是说 10 (3)

단차 | 2023.11.30 20:27:07 댓글: 0 조회: 163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23386
벗에 대하여
“내 주위에는 언제나 한 사람이 더 있다.” 은둔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언제나 하나에다 하나를 곱하지만 결국에는 둘이 된다.”
나와 또 다른 나는 언제나 너무 열심히 대화를 나눈다. 그러므로 다른 벗이 없었다면 어떻게 견딜 수 있었으랴?
은둔자에게 벗은 언제나 제3의 인물이다. 이 제3의 인물은 나와 다른 나의 대화가 깊은 곳에 가라앉는 것을 막아주는 코르크 마개다.
아, 모든 은둔자에게는 너무 많은 심연이 있다. 그 때문에 이들은 벗과 높은 곳을 그토록 그리워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어떤 점을 기꺼이 신뢰하고자 하는지를 드러내준다. 우리가 벗을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가 비밀을 누설하는 것이다.
또 사람들은 가끔 사랑으로 단지 시샘만을 뛰어넘으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공격당할 여지가 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간혹 공격하기도 하고 적을 만들기도 한다.
“차라리 내 적이라도 되어다오!” 감히 우정을 청하지 못하는, 진정으로 공경하는 마음은 이렇게 말한다.
벗을 가지기를 원한다면 그 벗을 위해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 그리고 전쟁을 벌이기 위해서는 적이 될 수도 있어야 한다.
벗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적도 존중해야 한다. 벗에게 넘어가지 않고 그대의 벗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는가?
벗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최상의 적을 가져야 한다. 그대가 벗에게 반대한다면 마음으로 그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그대는 벗 앞에서 어떤 옷도 입지 않으려고 하는가? 있는 그대로의 그대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그대의 벗에게 영광이 되겠는가? 하지만 그러면 벗은 그대를 악마에게 넘겨 주고 싶을 것이다!
자신을 조금도 숨기지 않는 자는 남의 분노를 산다. 그만큼 그대가 벌거벗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 그대들이 신이라면 그대들이 옷을 입은 걸 부끄러워할지도 모른다!
그대가 벗을 위해 아무리 멋지게 꾸민다 해도 지나친 게 아니다. 그대는 벗에게 초인을 향하는 화살이자 동경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벗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 이미 그의 잠든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데 벗의 평소 얼굴이 어떠하던가? 그것은 거칠고 고르지 않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아니던가.
그대는 이미 벗의 잠든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벗의 그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았는가? 오, 나의 벗이여. 인간이란 극복되어야 하는 그 무엇이다.
벗이라면 추측과 침묵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 그대는 모든 것을 보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대의 벗이 깨어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꿈으로써 알아내야 한다.
그대의 벗이 동정을 원하는지 그대가 먼저 알 수 있도록, 그대의 동정은 추측해야 한다.
어쩌면 그는 그대의 맑디맑은 눈과 영원의 눈길을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벗에 대한 동정은 단단한 껍질 안에 숨겨 두어야 한다. 그것을 잘못 깨물 경우 이 하나쯤은 부러질 각오를 해야 한다. 그래야 그대의 동정이 섬세하고 달콤한 것이 될 것이다.
그대는 벗에게 맑은 공기이고 고독이며, 빵이자 약인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족쇄를 풀 수는 없지만, 자신의 벗을 구원하는 사람은 될 수 있다.
그대는 노예인가? 그렇다면 벗이 될 수 없다. 그대는 폭군인가? 그렇다면 벗을 사귈 수 없다.
여인의 가슴속에는 너무 오랫동안 노예와 폭군이 숨겨져 있었다. 그 때문에 여인은 아직 우정을 나눌 능력이 없고, 사랑만 알 뿐이다.
여인의 사랑에는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모든 것을 부당하고 맹목적으로 대한다. 그것이 교화된 사랑일지라도 여전히 빛 외에도 비난과 번개, 밤이 들어 있다.
여인은 아직 우정을 나눌 능력이 없다. 여인들은 여전히 고양이요 새다. 또는 기껏해야 암소와 같다.
여인은 아직 우정을 나눌 능력이 없다. 하지만 그대 남자들이여, 내게 말하라. 그대들 중에 대체 우정을 나눌 능력이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는지?
아, 그대 남자들이여. 그대들의 영혼은 얼마나 빈곤하고 인색한가! 나는 그대들이 벗에게 주는 만큼 나의 적에게 주고자 한다. 그로 인해 더 가난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동지애라는 것이 있지만, 우정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천 개와 하나의 목표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많은 나라와 민족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많은 민족의 선과 악을 발견했으며, 지상에서 선과 악보다 더 큰 힘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치를 평가하지 못하는 민족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 민족이 자신의 삶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이웃 민족이 평가하는 식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한 민족이 선이라고 부르는 많은 것을 다른 민족은 수치나 치욕이라고 부르는 경우를 나는 보았다. 여기서는 악이라고 부르는 많은 것을 저기서는 보랏빛 명예로 장식하는 경우를 나는 보았다.

이웃끼리 서로를 이해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 민족의 영혼은 이웃 민족의 망상과 악의를 언제나 이상하게 생각했다.

민족들은 저마다 선을 적은 게시판을 걸어두고 있다. 보라, 그것은 민족이 극복한 것을 적은 게시판이다. 보라, 그것은 민족의 힘에의 의지의 게시판이다.

각 민족에게 어려운 일로 간주되는 것은 찬양할 만한 일이다. 꼭 필요하고 어려운 일이 선이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심한 곤경에서 풀려나게 하는 일, 드문 일, 가장 어려운 일, 이런 것을 각 민족은 신성하게 여기며 찬양한다.

어떤 민족으로 하여금 지배하고 승리하며 영광되게 하는 일, 이웃 민족이 공포에 떨며 시샘하게 하는 일, 이것이 그 민족에서 고귀하고 으뜸가는 일이며, 척도이자 만물의 의미이다.

참으로 나의 형제여, 그대가 일단 어떤 민족의 곤경, 대지와 하늘, 그 이웃 민족을 알게 된다면 그대는 그 민족을 극복할 수 있는 법칙을 알아맞히고, 왜 그 민족이 이 사다리를 타고 희망으로 올라가는지 알아맞히게 될 것이다.

“그대는 언제나 으뜸이어야 하고, 다른 자들보다 뛰어나야 한다. 질투심에 불타는 그대의 영혼은 벗 말고는 아무도 사랑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이 한 그리스인의 영혼을 전율케 했고, 그러면서 그는 위대한 길을 걸었다.

“진리를 말하고, 활과 화살을 잘 다루어라.” 내 이름23)이 거기서 유래하는 그 민족은 이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동시에 어려운 일로 여겼다. 그 이름은 나에게 소중하고도 어려운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고 영혼의 뿌리에까지 그들의 뜻을 따르라.” 어떤 민족24)은 이러한 극복의 게시판을 내걸었고, 그로써 강력하고도 영원한 민족이 되었다.

“충성을 바치고, 그 충성을 위해 악하고 위험한 일에도 명예와 피를 걸어라.” 어떤 민족25)은 이런 가르침을 강요하면서, 스스로를 절제함으로써 커다란 희망을 잉태하고 몸이 무거워졌다.

참으로 인간들은 자신에게 온갖 선과 악을 부여했다. 참으로 이들은 선과 악을 받아들이거나 찾아낸 것이 아니었고, 그것이 하늘의 음성으로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인간은 먼저 자신을 지탱하는 사물에 가치를 부여했다. 인간은 먼저 사물에 의미를, 인간적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인간은 자신을 ‘인간’, 즉 평가하는 자라고 부른다.

평가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들어라. 그대 창조하는 자들이여! 평가 자체가 평가된 모든 사물들에게는 보물이자 귀중품이다.

평가를 통해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 그리고 평가가 없다면 현존재라는 호두는 속이 텅 비어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 말을 들어라. 그대 창조하는 자들이여!

가치의 변화, 그것은 바로 창조하는 자의 변화다. 창조자가 되어야 하는 자는 언제나 파괴해야 한다.

처음에는 창조하는 자가 민족이었고, 나중에 가서야 개인이 되었다. 참으로 개인 그 자체는 가장 최근의 창조물이다.

일찍이 민족들은 선의 게시판을 자신 위에 내걸었다. 지배하려는 사랑과 복종하려는 사랑이 그러한 게시판을 함께 창조해 냈다.

군중에 대한 욕망이 자아에 대한 욕망보다 더 오래되었다. 거리낌이 없는 양심이 대중으로 불리는 한, 자아는 양심의 가책일 뿐이다.

참으로 간교한 자아, 사랑이 없는 자아는 다수의 이익을 빙자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한다. 그러한 자아는 대중의 근원이 아니라 몰락이다.

선과 악을 창조하는 자는 언제나 사랑하는 자들이자 창조하는 자들이었다. 모든 덕의 이름 속에는 사랑의 불길이, 분노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고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많은 나라와 민족을 보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자들이 이루어놓은 일보다 더 커다란 힘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것의 이름은 ‘선’과 ‘악’이다.

참으로 이러한 칭찬과 비난의 힘은 괴물과도 같다. 말하라, 그대 형제들이여. 누가 나를 위해 이를 제압할 것인가? 말하라, 누가 천 마리나 되는 이 짐승의 목에 족쇄를 채울 것인가?

천 개의 민족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천 개의 목표가 있었다. 다만 천 개의 목에 채울 족쇄가 아직 없을 뿐이고, 그 하나의 목표가 없는 것이다. 아직 인류에게는 아무런 목표가 없다.

하지만 나에게 말하라, 나의 형제들이여. 인류에게 아직 목표가 없다면 인류 자신도 아직 없다는 말이 아닌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웃 사랑에 대하여


그대들은 이웃 사람들 주위로 몰려들어 듣기 좋은 말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대들에게 말하건대, 그대들의 이웃 사랑은 그대 자신에게 해로운 사랑이다.

그대들은 자신을 피해 이웃에게 달아나서, 거기서 덕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하지만 나는 그대들의 ‘헌신’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다.

‘너’라는 말은 ‘나’라는 말보다 오래되었다. ‘너’라는 호칭은 신성하게 불리지만, ‘나’라는 호칭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웃에게 몰려가는 것이다.

내가 그대들에게 이웃 사랑을 권한단 말인가? 나는 차라리 이웃에게서 달아나 가장 멀리 있는 자를 사랑하라고 권한다!

이웃에 대한 사랑보다 가장 멀리 있는 자, 미래에 올 자에 대한 사랑이 더 고귀하다. 인간에 대한 사랑보다 사물과 유령26)에 대한 사랑이 더 고귀한 것으로 간주된다.

나의 형제여, 그대 앞으로 달려오는 이 유령이 그대보다 더 아름답다. 왜 그대는 이 유령에게 그대의 살과 뼈를 붙여주지 않는가? 하지만 그대는 두려워하며 그대의 이웃에게 달려간다.

그대들은 그대들 자신을 견뎌내지 못하고, 스스로를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다. 이제 그대들은 이웃을 사랑으로 유혹하려 하고, 이웃의 오류로 자신을 금칠하려 한다.

나는 그대들이 온갖 부류의 이웃과 그 이웃의 이웃을 견뎌내지 못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그대들 자신으로부터 그대들 벗과 벗의 넘쳐흐르는 마음을 창조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대들은 자신을 좋게 말하려는 경우 이웃이라는 증인을 끌어들인다. 그대들이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증인을 유혹했다면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이 아는 것과 반대로 말하는 자뿐만 아니라, 자신이 모르는 것을 무시하고 말하는 자야말로 거짓말을 하는 자다. 그리고 그대들은 이웃을 만나 자신을 그렇게 말함으로써, 그대들과 이웃마저 속이는 것이다.

바보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과 교제하면 성격을 망치는데, 성격이 없는 사람일 때 특히 그러하다.”

어떤 자는 자신을 찾으려고 이웃에게 가고, 또 어떤 자는 자신을 잃고 싶지 않아서 이웃에게 간다. 그대들 자신에 대한 그릇된 사랑은 고독을 감옥으로 만들어버린다.

이웃에 대한 그대들 사랑의 대가를 치르는 자들은 오히려 보다 멀리 있는 자들이다. 그대들 다섯 명이 모이면 여섯 번째 사람은 언제나 희생양이 되고 만다.

나는 그대들의 축제도 사랑하지 않는다. 배우들이 너무 많고, 구경꾼들도 때로는 배우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들에게 이웃이 아니라 벗을 가르친다. 벗이 그대들에게 대지의 축제요, 초인에 대한 예감이 되도록 하라.

나는 그대들에게 벗과 그 벗의 넘치는 마음을 가르친다. 그런데 넘치는 마음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려면 스펀지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대들에게 세계가 선의 껍질로 완성되어 있는 벗을 가르친다. 언제나 완성된 세계를 선사할 수 있는 창조하는 벗을.

그리고 세계가 그에게서 굴러가 버린 것처럼, 이제 세계는 다시 고리 모양으로 둘둘 말며 벗에게 되돌아온다. 선이 악을 통해 생겨나고, 여러 목적이 우연에서 생겨나듯이.

미래이자 가장 멀리 있는 것이 오늘 그대의 존재 이유가 되기를. 즉 그대는 벗의 내부에 있는 초인을 그대의 존재 이유로서 사랑해야 한다.

나의 형제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이웃 사랑을 권하지 않고, 가장 멀리 있는 자를 사랑하라고 권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창조하는 자의 길에 대하여


나의 형제여, 그대는 고독 속으로 들어가려는가? 그대 자신에 이르는 길을 찾으려는가? 그럼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내 말을 들어보라.

“찾는 자는 길을 잃기 쉽다. 모든 고독은 죄악이다.”라고 군중은 말한다. 그리고 그대는 오랫동안 군중의 일원이었다.

군중의 목소리가 아직 그대 마음속에 울릴 것이다. 그런데 그대가 “나는 더 이상 그대들과 하나의 양심을 갖고 있지 않다.”라고 말한다면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보라, 이 고통 자체를 낳은 것도 그 하나의 양심이었다. 그리고 이 양심의 마지막 불꽃이 그대의 슬픔 위에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그런데 그대는 그대 자신에 이르는 길이기도 한 슬픔의 길을 가려는가? 그렇다면 나에게 그대의 권리와 힘을 보여 줘라!

그대는 새로운 힘이자 권리인가? 최초의 움직임인가? 제 힘으로 굴러가는 수레바퀴인가?

그대는 또한 별들이 그대 주위를 돌게 할 수 있는가?

아, 높은 곳을 갈망하는 자는 얼마든지 있다! 경련하며 발작하는 야심가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대가 갈망에 사로잡힌 자도 야심에 불타는 자도 아님을 나에게 보여 다오!

아, 위대한 사상이라면서 풀무보다 못한 사상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들은 과장할수록 속이 더 비어 있기 마련이다.

그대는 자신을 자유롭다고 말하는가? 내가 듣고 싶은 것은 그대를 지배하는 사상이지, 그대가 멍에로부터 벗어났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대는 멍에로부터 벗어나도 되는 그런 자인가? 세상에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자신의 마지막 가치마저 던져버리는 자가 많기 때문이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냐고? 그것이 차라투스트라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런데 그대는 환한 눈길로 내게 말해 줘야 한다. 무엇을 위한 자유인지를?

그대는 그대 자신에게 선과 악을 부여하고, 그대의 의지를 율법처럼 머리 위에 내걸 수 있는가? 그대 자신이 그대 율법의 재판관이자 복수자가 될 수 있는가?

자기 자신의 율법의 재판관이자 집행관이 되어 홀로 있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러므로 별 하나가 홀로 있는 황량한 곳간으로, 얼음처럼 차디찬 에테르 속으로 내던져지는 것이다.

오늘도 그대, 홀로 있는 그대는 많은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있다. 오늘도 그대는 용기와 희망을 온전하게 지니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고독은 그대를 지치게 만들 것이고, 언젠가 그대의 자부심은 구부러질 것 이며, 그대의 용기는 찌부러질 것이다. 그대는 언젠가 “나는 혼자다!”라고 외칠 것이다.

언젠가 그대는 자신의 고귀함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자신의 비열함만 너무 가까이 보게 될 것이다. 그대의 고상함 자체가 마치 유령처럼 그대를 두렵게 할 것이다. 그대는 언젠가 “모든 것은 거짓이다.”라고 외칠 것이다.

고독한 자를 죽이려는 감정들이 있다. 이런 감정들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그것들 자신이 죽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대는 살인자가 될 능력이 있는가?

나의 형제여, 그대는 ‘경멸’이라는 단어를 이미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대를 경멸하려는 자에게도 정의롭게 대하려는 정의로움의 고통을 알고 있는가?

그대는 많은 사람들을 강요하여 그대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한다. 그들은 그대의 이런 행동을 가혹하게 평가한다. 그대는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가, 그대로 지나쳐버렸다. 그들은 이러한 행동을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그대는 그들을 타고 넘어 올라간다. 그러나 그대가 높이 오를수록 시샘의 눈초리에 그대는 더욱 작아 보인다. 더구나 날아가는 자가 가장 많이 미움을 받는다.

“그대들이 나에게 정의롭게 대하기를 어떻게 바라겠는가! 나는 그대들의 부당함을 나에게 주어진 몫으로 감수할 뿐이다.” 그대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그대들은 고독한 자에게 부당한 짓을 하고, 그들을 향해 더러운 것을 던진다. 하지만 나의 형제여, 그대가 하나의 별이 되고자 한다면 그들을 적지 않게 비춰야 한다!

그리고 선하고 의로운 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자기 자신의 덕을 만들어내는 자들을 십자가에 매달기 좋아한다. 그들은 고독한 자를 미워한다.

성스럽고 단순한 자도 조심하라! 이러한 자들이 볼 때 단순하지 않은 것은 모두 신성하지 않다. 그들은 또한 불장난을, 화형의 장작더미를 갖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또한 불쑥 그대에게 사랑의 감정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라! 고독한 자는 자신이 마주치는 자에게 너무 빨리 손을 내밀기 때문이다.

어떤 자에게는 손을 내밀지 말고 앞발을 내밀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대의 앞발에 발톱도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대가 마주칠 수 있는 가장 고약한 적은 언제나 그대 자신일 것이다. 그대 자신은 동굴과 숲 속에서 그대를 기다리며 숨어 있다.

고독한 자여, 그대는 그대 자신에 이르는 길을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의 길은 그대 자신과 일곱 악마 곁을 지나가는 것이다!

그대는 자신에게 이단자가 될 것이며, 마녀, 예언자, 바보, 의심하는 자, 성스럽지 않은 자, 악한이 될 것이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불꽃으로 그대를 불태우려고 해야 한다. 먼저 재가 되지 않고 어떻게 거듭나려고 하는가!

고독한 자여, 그대는 창조하는 자의 길을 가고 있다. 즉 그대는 그대의 일곱 악마로 하나의 신을 창조하려고 한다!

고독한 자여, 그대는 사랑하는 자의 길을 가고 있다. 즉 그대는 그대 자신을 사랑하고, 그 때문에 사랑하는 자만이 경멸할 수 있듯이 그대 자신을 경멸한다.

사랑하는 자는 경멸하기 때문에 창조하려고 한다! 자신이 사랑한 것을 경멸할 줄 모르는 자가 사랑을 알겠는가!

나의 형제여, 그대의 사랑, 그대의 창조와 함께 그대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나중에 가서 정의가 다리를 절며 그대를 뒤따라올 것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의 눈물과 함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나는 자기 자신을 넘어 창조하려고 파멸하는 자를 사랑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여, 그대는 무엇 때문에 어스름 속을 살금살금 걸어가는가? 그리고 외투 밑에 조심스럽게 숨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대가 선물 받은 보물인가? 아니면 그대가 낳은 자식인가? 아니면 이제 그대 스스로 도둑질을 하러 나섰는가, 그대 사악한 자의 벗이여?

참으로, 나의 형제여! 그것은 내가 선물 받은 보물이었다고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그것은 내가 들고 다니는 조그만 진리다.

하지만 그 진리는 어린아이처럼 버릇이 없다. 그래서 내가 그 입을 틀어막지 않으면 큰 소리로 마구 떠들어댄다.

나는 오늘 석양 무렵에 홀로 길을 가다가 한 노파를 만났다. 그녀는 내 영혼에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여, 우리 여자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정작 여자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노파에게 대꾸했다. “여자에 대해서는 남자들에게만 말해야지요.”

“나에게도 여자에 대해 말해 주시오. 나는 너무 늙어 들어도 곧 다시 잊어버리니까요.”

그래서 나는 그 노파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고 이렇게 말했다.

여자의 모든 것이 수수께끼이고, 그 모든 것엔 하나의 해결책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임신이다.

여자에게 남자란 수단이다. 그 목적은 언제나 아이다. 하지만 남자에게 여자는 어떤 존재인가?

진정한 남자는 위험과 놀이, 두 가지 종류를 원한다. 그 때문에 남자는 위험천만한 장난감으로서 여자를 원한다.

남자는 전투를 하도록, 여자는 전사의 피로를 풀도록 교육을 받아야 한다. 다른 모든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전사는 너무 달콤한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즉 가장 달콤한 여자라도 맛이 쓴 법이다.

남자보다 여자가 아이를 더 잘 이해하지만, 여자보다 남자가 더 아이 같다.

진정한 남자 속엔 놀이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가 숨어 있다. 그러므로 여자들이여, 남자 안에 든 아이를 찾아내도록 하라!

여자는 보석 같이 우아하고 섬세한 장난감이어야 한다.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여러 덕으로 빛을 발하는.

그대들의 사랑에 한 줄기 별빛이 반짝이기를! 그대들의 희망이 “난 초인을 낳고 싶다!”이기를!

그대들의 사랑에 용기가 깃들게 하라! 그대들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에게 그대들의 사랑으로 덤벼들어야 한다.

그대들의 사랑에 명예가 깃들게 하라! 그러지 않고는 여자가 명예를 이해할 길이 거의 없다. 하지만 언제나 사랑을 받기보다는 사랑을 하려고 하고, 결코 제2인자가 되지 않는 것이 그대들의 명예가 되게 하라.

남자여, 여자가 사랑할 때 여자를 두려워하라. 그때 여자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다른 것은 모두 무가치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자여, 여자가 미워할 때 여자를 두려워하라. 남자는 영혼의 바닥이 사악할 뿐이지만, 여자는 영혼이 속되기 때문이다.

여자는 어떤 사람을 가장 미워하는가? 쇠붙이가 자석에게 말했다. “내가 너를 제일 미워하는 까닭은 네가 나를 끌어당기기만 하지, 나를 붙들어 둘 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이야.”

남자의 행복은 “나는 원한다.”라는 데 있다. 여자의 행복은 “그가 원한다.”라는 데 있다.

“보라, 이제야말로 세계가 완성되었다!” 사랑의 감정으로 순종할 때 모든 여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여자는 순종하는 가운데 스스로 표면의 깊이를 발견해야 한다. 표면은 여자의 마음이고, 얕은 물 위에서 격렬하게 움직이는 살갗이다.

그런데 남자의 마음은 깊고, 그 흐름은 대지 아래 동굴 속으로 흘러간다. 여자는 남자의 힘을 어렴풋이 예감하지만,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러자 노파가 나에게 대꾸했다. “차라투스트라는 나에게 여러 가지 경청할 만한 이야기를 했구려. 특히나 그 말에 어울릴 만한 젊은 여자들을 위해서 말이오.

이상한 일이오. 아는 여자는 거의 없으면서 여자에 대한 말은 맞으니 말이오! 여자에게는 어떤 일도 불가능하지 않으니까 이런 일이 생긴 것인가?

자, 그럼 감사의 대가로 조그만 진리를 받으시오! 나는 그 진리를 알 만큼 나이가 들었으니!

이 진리를 천으로 둘둘 싸서 그 입을 막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 조그만 진리가 너무 시끄럽게 소리칠 거요.”

“여인이여, 그대의 조그만 진리를 나에게 주시오!” 내가 말했다. 그러자 노파는 이렇게 말했다.

“여자들한테 간다고요? 그럼 이 회초리를 잊지 마시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독사에게 물린 상처에 대하여


날이 무더웠던 어느 날 차라투스트라는 두 팔로 얼굴을 가리고 무화과나무 아래서 잠이 들었다. 그때 독사 한 마리가 다가와서 그의 목을 무는 바람에, 차라투스트라는 고통에 못 이겨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얼굴에서 팔을 내리고 그는 뱀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러자 차라투스트라의 눈빛을 알아챈 뱀은 어정쩡한 동작으로 몸을 돌려 달아나려고 했다.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도망치지 마라. 너는 아직 고맙다는 내 말을 듣지 못했다. 마침 너는 갈 길이 먼 나를 깨워 주었구나.”

그러자 독사는 슬픈 어조로 말했다. “그대의 길은 얼마 안 남았다. 내 독은 치명적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용이 뱀의 독 때문에 죽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느냐? 하여튼 너의 독은 너에게 돌려주마! 너는 나에게 독을 선물할 정도로 부유하지 못하니.” 그러자 독사는 다시 그의 목을 감고는 상처를 핥기 시작했다.

차라투스트라가 언젠가 이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들려주자 그들이 물었다. “그런데 차라투스트라여, 이 이야기에 담긴 교훈은 무엇입니까?” 차라투스트라는 대답했다.

“선하고 의로운 자들은 나를 도덕27)의 파괴자라 부른다. 말하자면 내 이야기가 비도덕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대들에게 적이 있다면 악을 선으로 갚지 않도록 하라. 그것은 적을 부끄럽게 할 뿐이다. 차라리 적이 그대들에게 선한 일을 했음을 증명하라.

그리고 그대들은 부끄러워하기보다 차라리 화를 내라. 저주의 말을 들었을 때에는 축복하지 마라.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차라리 같이 저주하라!

그리고 누가 그대들에게 크게 부당한 일을 하면 재빨리 다섯 개의 부당한 일을 행하라! 혼자 부당한 일을 당하는 것은 보기에도 좋지 않다.

그대들은 이미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부당한 일을 나누면 정의는 반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부당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자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전혀 복수하지 않는 것보다 약간이나마 복수하는 것이 보다 인간적이다. 그리고 처벌이 위반한 자에게 정의와 명예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그대들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자신이 옳다고 고집하는 것보다 자신의 그릇됨을 인정하는 것이 더 고상하다. 자신이 옳을 경우에는 특히 그러하다. 다만 그대들은 그럴 만큼 넉넉해야 한다.

나는 그대들의 냉혹한 정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대들 재판관의 눈에는 언제나 형리와 그의 차가운 칼이 엿보인다.

말하라, 바라보는 눈을 가진 사랑이라는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28)

그럼 온갖 처벌뿐만 아니라 온갖 사랑도 감당하는 사랑을 만들어내라!

그럼 재판관만 제외하고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정의를 만들어내라!

그대들은 이 말도 들으려고 하는가? 철저하게 정의롭고자 하는 자에게는 거짓말도 인간에 대한 호의가 된다는 것을.

그런데 어떻게 내가 철저하게 정의롭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어떻게 내가 각자에게 그의 것을 줄 수 있겠는가! 각자에게 나의 것을 주는 것으로 만족하라.

마지막으로, 나의 형제들이여! 모든 은둔자들에게 부당한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은둔자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가 보복할 수 있겠는가!

은둔자는 깊은 우물과 같고, 그 속에 돌을 던지기는 쉽다. 말하라, 바닥에 가라앉고 나면, 누가 그것을 다시 건져오겠는가?”

은둔자를 모욕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런데 이미 모욕했다면 차라리 그를 죽여 버려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와 혼인에 대하여


나의 형제여, 그대에게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그대의 영혼이 얼마나 깊은지 보려고 이 질문을 그대의 영혼 속에 추처럼 던진다.

젊은 그대는 아이를 원하고, 혼인을 원한다. 하지만 나는 그대에게 묻는다. 그대는 아이를 원해도 되는 인간인가?

그대는 승리를 거둔 자인가? 자신을 극복한 자인가? 관능의 지배자인가? 그대는 덕의 주인인가? 나는 그대에게 묻는다.

아니면 그대의 소망에는 짐승과 절실한 욕구가 들어 있는가? 아니면 고독해서인가? 아니면 자신이 불만스러워서인가?

나는 그대의 승리와 자유가 아이를 그리워하기를 바란다. 그대의 승리와 자유를 위해 그대는 살아 있는 기념비를 세워야 한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넘어서 세워야 한다. 하지만 일단 그대는 그대의 몸과 영혼을 반듯하게 세워야 한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계속 번식시킬 뿐만 아니라 드높여야 한다! 혼인의 동산이 그렇게 하도록 그대를 도와주리라!

그대는 보다 고상한 몸을, 최초의 움직임을, 제힘으로 굴러가는 바퀴를 창조해야 한다. 그대는 창조하는 자를 창조해야 한다.

창조한 자들보다 더 나은 한 사람을 창조하려는 두 사람의 의지, 이것을 나는 혼인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의지를 실현하려는 상대방에 대한 서로의 의지를 나는 혼인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그대가 말하는 혼인의 의미이자 진리가 되도록 하라. 하지만 많고 많은 사람들, 쓸데없는 어중이떠중이들이 혼인이라고 부르는 것, 나는 이것을 뭐라고 불러야 한단 말인가?

아, 두 영혼의 이 빈곤함이여! 아, 두 영혼의 이 더러움이여! 아, 두 영혼의 이 가련한 안락함이여!

그들은 이 모든 것을 혼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혼인이 하늘에서 맺어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쓸모없는 자들의 이러한 하늘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나는 하늘의 그물에 사로잡혀 있는 이러한 짐승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이 짝지어 주지 않은 자들을 축복하기 위해 다리를 절며 다가오는 신도 나에게 멀리 떨어져 있어라!

하지만 이러한 혼인을 비웃지 마라! 어떤 자식이라도 자신의 부모 때문에 울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어떤 남자는 품위가 있어 보였고, 대지의 의미를 알 만큼 성숙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아내를 보는 순간 대지가 나에게는 정신병원처럼 느껴졌다.

아, 두 영혼의 이 빈곤함이여! 아, 두 영혼의 이 더러움이여! 아, 두 영혼의 이 가련한 안락함이여!

그들은 이 모든 것을 혼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혼인이 하늘에서 맺어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쓸모없는 자들의 이러한 하늘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나는 하늘의 그물에 사로잡혀 있는 이러한 짐승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이 짝지어 주지 않은 자들을 축복하기 위해 다리를 절며 다가오는 신도 나에게 멀리 떨어져 있어라!

하지만 이러한 혼인을 비웃지 마라! 어떤 자식이라도 자신의 부모 때문에 울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어떤 남자는 품위가 있어 보였고, 대지의 의미를 알 만큼 성숙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아내를 보는 순간 대지가 나에게는 정신병원처럼 느껴졌다.

그렇다. 나는 성자와 거위가 서로 짝을 이루면 대지가 경련하며 부르르 떨기를 바랐다.

그 성자는 마치 영웅처럼 진리를 찾아 나섰으나, 결국 하나의 꾸며진 거짓을 손에 넣었을 뿐이다. 그러고 나서 이것을 자신의 혼인이라고 부른다.

그는 남을 사귀는 것을 꺼렸고, 상대를 까다롭게 골랐다. 그런데 그는 단번에 자신의 교제를 영원히 망쳐버렸다. 즉 그는 이를 자신의 혼인이라고 부른다.

그는 천사의 덕을 갖춘 하녀를 구하였다. 그런데 그는 단번에 한 여자의 시종이 되었고, 이제는 자신이 천사까지 되어야 할 판이다.

이제 나는 모든 구매자들이 신중하다는 것을 알았고, 모두들 교활한 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교활한 구매자라도 자신의 아내를 얻을 때에는 자루를 열어보지도 않고 자루째 사버린다.

순간순간의 많은 어리석은 일들, 이것을 그대들은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대들의 혼인은 순간순간의 많은 어리석음을 끝내는 하나의 기나긴 어리석음이다.

여자에 대한 그대들의 사랑과 남자에 대한 여자들의 사랑, 이 사랑이 괴로워하고 숨겨져 있는 신들에 대한 동정이라면! 대개 두 짐승은 서로의 정체를 알아맞힌다.

하지만 그대들의 최고 사랑도 한갓 황홀한 비유이자 고통스러운 열정일 뿐이다. 사랑이란 그대의 보다 고귀한 길을 비춰 줘야 하는 횃불이다.

그대들은 언젠가 그대들을 넘어 사랑해야 한다! 그러니 먼저 사랑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라! 그리고 그 때문에 그대들은 사랑의 쓴잔을 마셔야 한다.

최고의 사랑이라는 잔에도 쓴맛은 있다. 그리하여 이 잔은 초인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고, 그대 창조하는 자에게 갈증을 느끼게 한다!

창조하는 자의 목마름, 초인에 대한 화살과 그리움. 말하라, 나의 형제여. 이것이 혼인에 대한 그대의 의지인가?

나는 이러한 의지와 혼인을 신성하다고 부른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3) 고대 페르시아의 배화교를 창시한 조로아스터의 독일어 이름이 차라투스트라다.
24) 유대 민족을 가리킴.
25) 고대 게르만 민족을 가리킴.
26) 초인의 사상을 말함.
27)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에서 시간, 공간 및 인과율의 저너머에 있는 세계에서 도덕과 윤리의 기준을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제자인 니체는 이를 부정하고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도덕이 있는게 아니라 그것이 시대, 민족, 문화에 따라 다르고 선악에 대한 수많은 판단 기준이 있다고 주장한다.
28) 그리스 신화에서 법과 정의의 여신인 테미스는 눈을 가리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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