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球上唯一的韓亞 18~19

단차 | 2023.11.14 08:30:34 댓글: 6 조회: 201 추천: 3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7458
18


 “내려놔, 내려놔, 안 내려놓으면 쏜다!”

  “아저씨나 내려놔. 나 진심이야. 잃을 거 없다고!”

  정규와 주영은 서로의 말을 듣지 않고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총신이 자꾸자꾸 각을 바꾸며 서로를 향했다. 

  이 여자가 전화를 했던 그 여자인가? 아니, 목소리가 다르다. 어려, 끽해야 이십대 초반. 어쩌면 십대 후반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완전히 아마추어 같았다. 총은 뭐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델이었다.

  상대가 아마추어라는 것을 깨닫자 정규가 먼저 흥분을 가라앉혔다.

  “여기 삽니까?”

  정규가 차분한 존댓말로 물어보자, 주영은 대답을 할까 말까 망설였다. 

  주영 역시 정규의 얼굴을 지난 조사 과정에서 떠오른 얼굴들과 빠르게 매치해나가고 있었지만, 머릿속 어디에도 없는 얼굴이었다. 게다가 양복과 신발과 헤어스타일, 각이 장난 아니다. 이 사람, 경찰인가? 경찰이라면 이런 난감한 상황도 없는데, 망했네……

 
 “저는 여기 사는 남자에 대해 수사하고 있는 요원입니다. 신고가 들어와서 확인차 방문했는데 침입의 흔적이 있어 프로토콜을 따르고 있을 뿐, 먼저 공격할 의사가 없습니다. 이 주소의 거주자 김경민은 산업 스파이나 그에 준하는 위험인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무슨 관계에 있습니까?”

  “나도, 나도, 그 남자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온 것뿐이에요. 제 소중한 사람을 그 남자가 없앤 것 같다고요.”

  “그렇다면 양쪽의 목표가 일치하는 것 같은데, 이제 동시에 내려놓기로 합시다.”

  쏠 것 같지는 않다. 거짓말을 하는 눈은 아니다. 팬클럽 회장직을 하며 방송 음악계의 어둡고 탁한 인물들을 숱하게 봐온 주영은, 나이는 어리지만 사람을 빨리 파악하는 편이었다. 속성으로 관상학을 익힌 셈이었다. 가슴이 올라올 정도로 크게 숨을 들이마신 다음, 주영이 먼저 기척도 없이 총을 내렸다. 곧바로 정규도 팔을 풀고, 안전장치를 잠갔다.

 

  주영과 정규는 이제 총을 치우고 방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두 사람의 기민한 성격 덕분에 서로 빠른 설명을 할 수 있었고, 격한 긴장이 풀리고 나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아아아, 무슨 요즘 아이돌 빠…… 팬은 총을 들고 다녀요?”

  “아폴로는 아이돌이 아니라 싱어송라이터고요, 빠순이는 멸칭입니다. 기분 나빠요. 그리고 무슨 국정원이 팬클럽 회장보다 더 정보력이 달려요?”

  “그거 진짜 믿을 수 있는 얘기인가?”

  “그럼 저랑, 아저씨한테 전화한 그 여자분이랑 둘 다 무슨 환각이라도 봤단 거예요? 다른 설명이 불가능해요.”

  주영은 이야기를 나눠보니 정규가 자신보다 그다지 나이가 많지 않다는 걸 깨달았지만 아저씨라 부르면서 기선 제압을 하기로 했다. 정규는 <엑스 파일>에 나오는 그런 숨겨진 부서가 한국에도 있으려나 잠시 고민했다.

  “그래도 누구랑 이야기를 하니까 덜 미친 이론인 것 같고 안심되네요.”

 

 국가 공무원이 비슷한 의심으로 같은 장소에 와 있다는 것이 상당히 마음의 위로가 되는 주영이었다.

  “어, 근데 아폴로랑 세 살밖에 차이 안 나는데 왜 그쪽은 오빠고 전 아저씨인 건지……”

  “비교할 대상이랑 비교해야지.”

  주영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봐서, 정규는 입을 다물었다. 시험 준비를 하느라 몇 년을 보내고, 일하기 시작한 이후엔 내내 아저씨들과 함께 있다보니 아저씨화되고 말았다. 직장문화에 적합하게 바꾼 헤어스타일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는지도 몰랐다.

  “아아, 배고프다. 잠깐 체크만 하고 갈랬는데 말이죠.”

  “이 외계인인지 변태인지는 왜 집엘 안 들어와? 들킨 거 아닐까요?”

  “모르죠. 지원 요청을 해야 하나? 하지만 이 모든 게 우리 예상과 어긋난다면 저도 입장이……”

  “일단 뭐 먹을까요?”

  “나가서 뭘 사오는 게……”

  “그냥 배달시키죠.”

  서로 총을 겨눴던 두 사람은 나란히 경민의 부엌 서랍을 뒤지며 중국요릿집 번호를 찾는다.

  이것은 아주 이상한 밤의 시작.

 


 
19


 텐트 설치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경민은 꽤 편안한 캠핑 의자와 작은 온열기기를 꺼내주었다. 그 따뜻한 빛이 경민과 한아 사이의 공기를 살짝 누그러뜨렸다. 

  한아가 기억하는 경민은, 언제나 공기를 자기만의 색으로 채색하는 사람이었다. 

  이국적인 음식 냄새 한줄기에 한아의 손을 이끌고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맨 다음 끝내 새로운 식당을 찾아냈고, 사진 한 장을 보고 이름도 낯선 나라에 반해 그 나라의 모든 자료를 흡수하며 마치 전생에 거기서 태어났던 사람처럼 1년 내내 그곳 이야기를 해댔다. 

  경민의 여행 준비는 그렇게나 대대적이었다. 한아도 경민의 세상에 대한 관심과 쉽게 전이되는 흥분을 싫어하지 않았다. 매일 경이를 느끼는 사람, 바깥에 대해 늘 궁금해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건 즐거웠다. 

  경민에게 반할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을 재생시켜야 한다고 다짐한다. 어딘가 한아 안에 4K 화질로 저장되어 있을 거라고.

  오랫동안 마주앉아, 한아는 경민의 얼굴에서 낯익은 음영을 짚어내려 애를 쓴다. 나는 저 눈썹을 안다. 코를 안다. 심지어 저 다문 입안, 몇 번째 어금니에 금니가 있는지도 안다. 알고 있다.

  “이상해. 내내 봐온 얼굴인데 왜 달라 보였을까?”

  경민은 별 대답 없이 시계를 본다.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뭐가?”

  “아아, 저거다.”

  경민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한아는 뭐가 있나 함께 올려다본다. 빠르게 움직이는 하얀 선. 아주 작지만 빛나는, 떨어지는 별.

  “아, 저거 보러 온 거야?”

  질리지도 않나. 또 저거야. 생각보다 길게 떨어지네? 한아는 자세히 보려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곧 찌푸릴 필요가 없어졌다. 충분히 잘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너무 빨리 움직였다.

  게다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더이상 흰빛이 아니었다. 붉고 푸르게 불완전 연소하며 주변의 공기를 태우면서 강하했다. 한아는 문득, 스스로가 어울리지 않는 장르에 갇힌 만화 캐릭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아주 과장이 심한 스포츠 만화에 나오는 불꽃 강속구 아냐. 나는 한 회 나오고 옷이 까맣게 타버리는 불행한 엑스트라 골키퍼인가? 죽기 직전에 드는 생각이 스포츠 만화의 과장에 관한 단상이라니, 어쩜 내 인생은 이렇게나 볼품없는 거지? 아, 눈이 타버릴 것 같아. 감자. 감아버리자. 어째서 눈이 안 감겨! 한아가 겨우 눈을 감았을 때,

  소리가, 아주 괴로운 소리가 났다. 엄청난 굉음이었다.

  경민이 대신 한아의 귀를 막아주었다. 바보 같아. 눈은 감을 수 있는데 왜 귀는 안 감기지? 동물들은 곧잘 귀를 움직여 잘 닫더마는! 아, 나는 위기가 올 때 속으로 주절거리는 타입이었구나. 한아는 불빛에 놀라 로드킬을 당하는 동물들처럼 몸이 뻣뻣하게 굳는 걸 느꼈다. 

  경민이 한아를 진정시키려 이런저런 말을 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자기 손으로 내 귀를 막고 있으면서 뭐라 말하는 거야. 얘도 정신없군. 안 들려. 안 들린다고. 그럼에도 그 운석이 지표와 마찰을 일으키며, 나무들을 쓰러뜨리며 다가오는 진동을 한아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공터 가운데서 운석이 멈췄다. 두 사람을 덮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십 몇 미터는 떨어진 곳이었다. 바닥에는 한아의 키만큼 깊게 파인 자국이 나고, 한참을 탔다. 

  넋이 나간 한아를 잘 앉힌 경민은 텐트에서 냉각 스프레이 비슷한 것을 가져와 뿌렸다.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냄새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주 매운 냄새였다.

   

  타오르기를 멈춘 운석은 언젠가의 경민처럼 이질적인 녹색빛을 띠고 있었다. 외부의 여러 층이 충격으로 떨어져나가자 안에는 매끈한 금속이 보였다. 세라믹 도기 같은 하얀색이지만 금속성이었다. 한아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빠르게 경민에게서 몸을 떼고 텐트로 갔다. 백팩에서 전기 충격기를 꺼냈다. 전원을 켜려고 서두르는 바람에 손톱이 부러졌다. 

  경민은 그런 한아를 묵묵히 지켜보며 역시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한아가 한쪽 무릎으로 꿇어앉은 경민의 목 밑으로 전기 충격기를 겨눌 때, 경민이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반지였다.

  경민의 아주 고전적인 자세와, 그에 답하는 한아의 전혀 고전적이지 않은 자세. 연기와 빛 속에서 그건 정말 희한한 구도였다.

  “나도 저렇게 여기에 왔어. 2만 광년을, 너와 있기 위해 왔어.”

  한아는 울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실패했다.

  “경민이…… 진짜 경민이 어딨어?”

  “경민씨의 이름, 얼굴, 정보…… 특히 너와 관련된 정보들과 내 우주 자유 여행권을 서로 바꿨어. 완전히 자발적인 과정이었고 경민씨를 결코 해치지 않았어. 동의하에 바꾼 거야. 지금쯤은 이 은하계 바깥을 탐험하고 있을 거야. 그거 내려놔. 나한테는 괜찮은데 너한테 위험해. 나는 전도율이 꽤 높아서.”

 

  한아는 경민의, 아니 경민이라 생각해왔던 이의 설명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동시에 모두 이해했다. 충격 속에서 인간의 뇌는 경이로운 일들을 해내기 마련이다. 신경 세포들이 그렇게 풀가동된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그 과정을 마치고 나자, 한아는 결국 전기 충격기를 떨구었다. 최근의 상상이 최악이었던 것은 기본 전제가 더 끔찍했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야 도출해낸 것이다. 한아가 온 어깨로 전기 충격기를 흙바닥에 던지고, 그 바닥에 퍽 소리가 나게 앉아서, 울기 시작했다.

  “흐어어어어엉, 그 나쁜 새끼, 그럴 줄 알았어. 망나니 새끼, 지구 밖까지 도망가다니. 어떻게 나한테 이래?!”

  그렇게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우주로 떠나다니. 한아는 마지막 작별을 기억해내고는 치를 떨었다. 다이옥신 같은 새끼, 미세먼지 같은, 아니, 미세 플라스틱 같은 새끼, 낙진 같은 새끼, 옥티벤존, 옥시녹세이트 같은 새끼, 음식물 쓰레기 같은 새끼, 더러운, 정말 더러운 새끼, 밑바닥까지 더러운 새끼, 우주의 가장 끔찍한 곳에서 객사나 해라…… 더 심한 욕을 하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어휘력이 달렸다. 

  한아는 평소에 욕을 좀 연마해둘걸 후회했다. 유리가 욕을 잘하는데 좀 배워둘걸.

  경민이 한아의 발작적인, 비명과도 같은 울음에 멈칫하고 겁먹은 표정을 지었지만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나는 안 될까. 처음부터 자기소개를 제대로 했으면 좋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더 나은 방법일 것 같았어. 그래도 나는 안 될까. 너를 직접 만나려고 2만 광년을 왔어. 내 별과 모두와 모든 것과 자유 여행권을 버리고. 그걸 너에게 이해해달라거나 보상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아냐. 그냥 고려해달라는 거야. 너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냥 내 바람을 말하는 거야. 필요한 만큼 생각해봐도 좋아. 기다릴게. 사실 지금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괜찮은 것 같아.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이거면 됐어.”

  한아는 기가 막혔다. 이 정체불명의 외계인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 지금 이 순간 가장 증오스러운 얼굴을 빌려 쓰고서는? 한 번도 지구에 이런 걸 초청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뻔뻔스러운 외계 생물 같으니.

 “넌 대체 뭐야? 대체 원래는 어떻게 생긴 생물인 거야?”

  경민은 잠깐 망설였지만, 오래 망설이진 않았다. 양손으로 턱을 누르자 딸깍 하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는 한아의 눈앞에 대고 턱을 떨어뜨렸다. 턱이 끝없이 떨어졌다. 가만히 두면 배꼽까지 떨어질 것 같았지만 가슴께에서 멈췄다. 경민의 몸속에서 약간의 수증기와 함께 은은한 초록빛이 흘러나왔다. 한아가 몸을 일으켜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딸꾹.”

  한아는 울음을 멈추고 딸꾹질을 시작했다.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광경이 그 안에 있었다.

  훗날 한아는 그 순간이, 인생의 분기점이었다고 회고했다.

   

 

 
 
추천 (3) 선물 (0명)
IP: ♡.252.♡.103
산동신사 (♡.224.♡.187) - 2023/11/14 09:41:24

ㅎㅎ이제야 의문이 풀렸네요.한아의 경민이에 대한 저주가 극도에 달했네요.욕이 너무길어서 재미 있었습니다.

단차 (♡.252.♡.103) - 2023/11/14 09:47:12

욕의 세계도 참 다채롭죠? ㅋㅋ

너무 짧게 올리면 맥락이 끊기는 것 같아서 오늘부터 2편씩 올리기로 했어요.

로즈박 (♡.43.♡.108) - 2023/11/14 22:09:01

헐...외계인이라고?
넘 졸렷는데 갑자기 졸음이 확 깨네요.

단차 (♡.252.♡.103) - 2023/11/14 22:14:29

저도 여기까지 읽고 나서야 뭔가 독특한 소설이라는걸 깨달았어요. 외계인이라니요. 상상 그이상이었어요.

뉘썬2뉘썬2 (♡.169.♡.51) - 2023/11/15 06:40:02

료재지이에선 귀신과 사람의 사랑을 그렷다면 판타지소설에서눈
외계인과 인간의 사랑을 그렷네요.이게바로 현대문학의 도약이죠.
흥미롭네요.

단차 (♡.252.♡.103) - 2023/11/15 06:54:56

저도 료재지이 티비에서 재미있게 봤어요. 저는 이런 판타지 너무 재미있어요.ㅋㅋ
저는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이 소설 더 재밌게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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