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전집2 격정시대 하-64

더좋은래일 | 2023.11.14 08:44:58 댓글: 5 조회: 321 추천: 4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7467


64

한개 대대 병력의 보위를 받으며 야전병원은 극히 느린 속도로 이틀 가고 하루 쉬고 이틀 가고 하루 쉬고 하면서 완완히 이동을 하였다. 제 발로 걷지 못하는 환자가 태반이였으므로 적의 습격만 받으면 그 후과는 생각만 하여도 끔찍하였다. 청장하의 서쪽줄기를 따라 석갑방향으로 하루에 이삼십리 삼사십리식 굼벵이걸음을 하는데 의약품이 극도로 결핍한데다가 급양까지 마련이 없어놔서 환자들도 죽을 지경이려니와 의료일군들 또한 죽을 지경이였다. 한가지 정신적 위안이라면

<<이래두 2만5천리 원정때에 비하면 하늘과 땅입니다. 기운들을 냅시다.>> 하는 지도원들의 설복과 격려의 말이였다. 조선의용군 녀대원들은 모두 보조간호원노릇을 착실히 잘하였다. 총을 들고 일선에 나가 싸우는 동지들에게 미안해서도 몸을 사리거나 게으름을 부릴수는 없는 일이였다. 병원당국이 부상당한 일본포들도 일시동인하는것을 보고 송일엽이

<<저따위들을 저렇게 극진히 대우를 해선 무엇한다지? 일손이 딸려 죽을 지경인데!>> 하고 입술을 비쭉 내미니 전보경이 웃으며

<<팔로군의 정책이 그런걸 뭐.>> 하고 가볍게 넘기는데

<<별놈의 정책두 다 많지.>> 하고 송일엽은 눈을 샐쭉하였다.

<<포로를 우대하면... 목숨을 살려준다는걸 알게 되니까... 적들두 막다른 지경에서 결사적으루 저항을 하잖거던요. 그러니 결국은 우리한테 유리하지요.>>

장옥연이 세탁한 붕대를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건너맨 빨래줄에다 널며 알기 쉽게 설명을 하니 송일엽은 코웃음을 치며

<<왜놈두 우리 사람을 사로잡으면 저렇게 우대를 해줄줄 알구?>> 하고 엇나갔다. 장옥연은 그 가시돋친 비양조를 못 들은체하고 그저 붕대만 널어나갔다. 그는 송일엽의 그러한 성질을 날 알고있었는터였다. 전보경은 공연히 덧들이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고 일손을 다그쳤다. 이들은 피고름으로 범벅이 된 붕대를 시내가에 가지고 나와 빨아 널어 말려가지고 다시 감는 일을 하고있었다. 송일엽은 나이아래인 장옥연이 자기보다 아는것이 월등 많을뿐더러 남들도 다 자기보다 장옥연을 더 높이 보고 또 미덥게 여기는것이 고까와서 저도 모르게 속이 늘 좀 꼬부장하였었다.

한동안 지나서다. 다 마른 붕대들을 걷는족족 부지런히 도로 말고있을즈음 웬 낯선 군인 둘이 쥐대기로 만든 들것 명색에다 꼬마전사 하나를 담아가지고 시내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오는것이 눈에 띄였다. 송일엽이 동정심과 호기심에 끌리여 일손을 놓고 얼른 마주 나가 들것을 들여다보았다. 고열에 시달리는 꼬마전사는 눈을 감고 누워서 코날개를 자꾸 발름발름하고있었다. 송일엽이 들것을 따라 옆걸음으로 걸으며 뒤선 전사에게 물어보았다.

<<병이 났나요?>>

그 전사는 얼굴이 환한 녀전사가 말을 묻는 바람에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혔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을 아래로 깔고

<<녜.>>

대답을 하였다.

<<무슨 병인가요?>>

<<무슨 병인지... 우리 잘 모릅니다.>>

<<몇살인가요?>>

<<글쎄요. 여라문살 됐겠지요.>>

들것을 맞들고 가는 전사들도 자세한것은 모르는 모양이였다.

<<아이 가엾어.>> 하고 송일엽은 돌아와 다시 일손을 쥐며 한숨을 지었다.

꼬마전사가 입원을 하러 오는통에 다들 마음이 언짢아져 그저 묵묵히 일손들만 다그쳤다. 녀대원중에서 일을 가장 억척스레 잘하는것은 야초만습격때 붙들어온 위안부-무슨 옥 무슨 순들이였다. 형편없이 어지러운 빨래를 하면서도 그녀들은 얼굴에 절로 떠오르는 행복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인간생지옥에서 구원을 받은 기쁨속에서 삶의 참된 보람들을 느끼고있는것 같았다. 조선의용군 소속의 유일한 일본녀자-데라모도 아사꼬의 존재는 일본군부상병들에게 더없는 고무로 되였다. 팔로군의료일군들의 백마디 말보다도 데라모도 아사꼬의 한마디 말이 더 큰 영향을 그들에게 미쳤다. 필경은 피줄기가 잇닿은 동포였었다.

<<우린 장차 어떻게 됩니까?>>

일본군부상병들이 가장 굼금히 여기는것은 자신들의 장래의 운명이였다. 목숨을 빼앗가지 않으리라는데 대하여는 이젠 어느정도 자신들이 생겼으나 그것만으로는 종시 마음이 다 가라앉지를 않는것이였다

<<여러분께서 건강을 회복하신 뒤에는 대개 아마 반전동맹으루 넘어가시게 될겝니다.>>

데라모도 아사꼬의 말에 귀가 선 명사가 섞여나오니 부상병들은 모두 신경을 돋우었다.

<<뭡니까 그 반전동맹이란게?>>

<<우리 사람들루 조직이 된 반전단체... 차차 아시게 될겝니다.>>

<<그런게 있습니까 여기?>>

모두들 금시초문이였다. 부상병들은 서로 얼굴으르 돌아보았다.

<<있습니다. 이 죄악적인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그들은 지금 맹활약을 하구있습니다.>>

중국군복을 입은(팔로군의 군복과 조선의용군의 군복은 똑같았다) 동포녀성의 입에서 이와 같이 야무진 말이 나오는것을 듣고 부상병들은

(이런 세상두 있었구나!)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참으로 꿈도 꾸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였다,

<<그럼 왜 당신은... 데라모도씨는... 그 반전동맹인가에 가담을 하잖았습니까?>>

<<저는 이미 조선의용군의 한 성원이니까 구태여 그럴 필요 느끼지 않아섭니다. 반전동맹이나 조선의용군이나 다 이 침략전쟁을 반대해 싸우는건 마찬가지니까요. 저는 현재 이름두 권혁이라는 조선이름을 쓰구있습니다. 제가 이런 리치를 지금 이 자리에서 다 말씀을 드려두 여러분께선 수월히 받아들이시질 못할테니까... 앞으루 차차 알아듣기 쉽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구 당면문제는 하루바삐 건강들을 회복하시는겁니다.>>

일본군부상병들의 눈에 데라모도 아사꼬는 곧 천사로 보였다. 구세주로 보였다. 그들가운데는 데라모도 아사꼬를 황국을 반대하는 비국민이라고 욕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편견을 가지기에는 너무나 순진한 햇내기들이였다.

송일엽은 이날부터 아이낳이를 못해본 녀자의 배설할데 없던 본능적인 모성애를 꼬마전사에게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열세살먹은 꼬마전사-왕소성은 어느 부대 한 중대장의 시중을 드는 근무병(小鬼)이였는데 회귀열을 앓아 들것에 실려와 입원을 한것이였다. 송일엽이 그 어린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밤잠도 자지 않고 헌신적으로 간호를 하는 모습은 성스러울 정도였다. 송일엽의 사람됨됨이를 잘 알고있는 전보경도 그녀에게 이런 성모 마리아 같은 일면이 있는줄은 일찌기 몰랐었다.

이동하는 야전병원은 석갑에서 네댓마장 떨어진 큰 부락까지 와가지고 림시거점으로 병원마을을 새로 차렸다. 그리고 달포가량 지나서 어린 회귀열환자 왕소성이 거의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였다. 송일엽은 대견하여 설과 생일을 겸쳐 맞은것 모양, 기분이 명랑해졌다. 어린 퇴원환자가 반<<토벌>>작전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본부대와의 련계가 끊겨 복대를 할수가 없게 되자 병원당국에서 아이를 당분간 붙들어두고 잔심부름을 시키기로 결정을 하니 송일엽은 더욱 마음에 합당하여 입이 한껏 벌어졌다.

송일엽이 아이의 꿰진 군복을 기워주고 또 떨어진 단추를 달아주며 옆에 데리고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고향이 어대랬지?>>

<<지천 아시죠? 섬서 지천... 지천서 나서 지천서 자랐에요.>>

<<지천이 어디쯤이야?>>

<<황하에서 그리 멀잖아요. 한성에서두 그리 멀잖구.>>

아이가 소명하여 지리를 분명히 대건만 송일엽은 지리지식이 빈약하여 지천이 어디 가 박혔는지를 듣고도 몰랐다. 아무튼 중국땅 어디겠지쯤 가량잡고 지라과(课)는 그정도로 책장을 덮었다.

<<집에 엄마 아버지 다 기신가?>>

<<다 돌아가셨에요.>>

<<다 돌아가셨어? 그럼 누가하구 같이 살았자?>>

<<누나 집에 얹혀있었에요.>>

<<오, 누나 집에... 누나는 아이가 여럿인가?>>

<<아니요, 젖먹이 하나빡에 없었에요.>>

<<응. 그래 입대한지 얼마나 되지?>>

<<인제 1년이 좀 넘었에요.>>

<<공부는 못했나?>>

<<소학교를 한 이태 다녀봤에요.>>

<<그래 누나가 귀여워하던가?>>
<<그러면이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인걸요.>>

<<그럼 매부는?...>>

<<매부두 마찬가지예요. 그렇지만 살림이 워낙 구차해놔서요. 통 마련이 없는걸요.>>

<<그래 입대한 뒤엔 무얼 했지?>>

<<우리 중대장동지의 시중을 들었에요.>>

<<줄곧?>>

<<네 줄곧.>> 하고 받아뇌며 왕소성이 미간을 찡그려서 송일엽이

<<왜?>> 하고 그 미간 찡그리는 까닭을 마우쳐물으니 왕소성은

<<제가 없어서... 우리 중대장동지가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르겠에요.>> 하고 근심스레 대답을 하였다.

<<오호호!... 중대장동지가 뭐 어린앤가?>>

<<그래두요. 밤마다 취침전에 꼭 더운물루 발을 씻어야 하는데... 하루두 빼놓잖구 지가 꼭꼭 떠다드린걸요.>>

송일엽은 무사기하고 고지식하고 또 책임심이 강한 꼬마전사의 말에 적이 감동이 되여 나오는 웃음이 도로 들어갔다. 그결에 말머리를 돌렸다.

<<급료는 얼마지?>>

<<1원 50전이예요. 우리는... 일률적으로 1원 50전이예요.>>

송일엽은 기본급료 3원 50전에다 생리적조건을 고려하여 녀동지들에게만 따로 지급이 되는 보조비 50전을 합하여 매달 4원씩 받고있었다.

<<그래 그 돈은 무엇에다 쓰지?>>

<<용돈으룬 50전만 딱 쓰구... 그 나머지는 다 모아두었에요.>>

<<모아두어? 이담에 커서 장가갈 때 쓰려구?>>

송일엽이 싱글거리며 놀려주니 아이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송일엽이 지꿎이

<<왜 말을 안하지? 그 돈을 모아서 무얼 하려느냐구 묻는데.>> 하고 둘째손가락으로 아이의 이마를 콕 찌르니 아이는 겨우 고개를 들고

<<인편이 있을 때... 누나한테 부쳐주려구요... 구차하게 지내는데.>> 하고 말하는것이였다.

<<오. 누나한테...>>

송일엽의 얼굴에서 대번에 웃음기가 가셨다. 아이의 갸륵한 우애에 코허리가 찡해진것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차차로 가리산지리산이 되다가 나중에는 밤행군하는데로 번지였다.

<<밤새두룩 내처 걷기만 하니까 졸려서 사람이 어디 견딜수가 있어야지요. 그래 우리또래는 거지반 다 눈을 감구 그저 앞사람만 따라 걷지요. 그러다가 발을 헛디디구 낭벼랑에서 떨어져죽은 아이까지 있다지 뭡니까?>>

<<어머, 저걸 어쩌지!>>

<<그래서 중대장동지는 밤행군을 할 때... 제 혁띠에 줄으 매가지고 그 한끝을 당신 혁띠에다 비끄러매군 하셨지요.>>

<<오호호! 서루 떨어질가봐!>>

<<그렇게 하면... 원길을 벗어났다가두... 줄에 끌려 다시 들어오니까요.>>

<<오호호! 등산대원들이 로프를 사로 잡아매는거와 마찬가지구먼.>>

<<등산대원이 뭡니까?>>

<<등산대원이 산에 오르는 운동가지 뭐야.>>

<<그런 운동가두 있습니까? 전 처음 듣습니다.>>

<<락하산을 타구 비행기에서 뛰여내리는 운동가두 다 있는데.>>

<<헤, 그렇습니까?>> 하고 꼬마전사는 쌍까풀진 두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 인제 다 기웠으니 어디 한번 입어봐요.>> 하고 송일엽은 아이의 군복을 훌훌 털어서 건네주었다.

한왕진을 점령한 적군의 한갈래가 석갑방향으로 내려온다는 소식을 접한 야전병원마을은 자못 긴장해났다. 환자들을 안전한데로 옮기는 문제가 시급하였기때문이다. 마을에서 너덧마장 떨어진 곳에 천연으로 된 큰 동굴 하나가 있어서 중환자는 담가로 실어나르고 경환자는 제 발로 걷거나 곁부축을 하고 모두 그 동굴로 향하는데 윤곡흠지휘하의 조선의용군 녀전사들은 하루동안에 몇고팽이씩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려서 은을 내였다. 특히는 위안부출신의 무슨 옥 무슨 순들의 활약이 눈부시였다. 그녀들은 남자와 같이 담가로 환자를 실어나르면서도 힘들다는 소리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손이 모자라 쩔쩔매던 원장이 달려와서

<<이렇게 수고들 해서 어쩌나, 이렇게 수고들 해서 어쩌나.>> 하고 손바닥을 맞비비다가 또 진둥걸음으로 달려가는것을 보고 환자 하나를 곁부축하고 가던 전보경이 무슨 옥 무슨 순들을 부러워하는 어투로

<<다같은 사람인데... 우린 왜 이런 약골일가.>> 하고 역시 환자를 곁부축하고 오는 장옥연을 돌아보니

<<누가 아니래요.>> 하고 장옥연은 가쁜숨을 들이그으며 어깨를 들먹거렸다. 장옥연은 몸이 가냘프기로 소문이 났었다. 두눈을 다 붕대로 감아서 앞을 못 보는 환자를 곁부축하고 가파른 길을 앞서서 돋우 밟던 송일엽이 뒤를 돌아보고

<<우리두 촌생장이였더면... 무어 못할게 있어.>> 하고 꿰진 소리를 하였다. 누구나 또 무엇이나 자기보다 낫다기만 하면 승벽을 부리는게 그녀의 타고난 천성이였다.

밤, 환자들을 대충 다 안치한 뒤에 가늘고 낮은 말소리도 굉장히 웅글게 들리는 우중충한 동굴속에서 가물가물하는 평지기름불을 가운데 놓고 다들 와 둘러앉기를 기다려가지고 윤곡흠이 부드러운 바리톤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 형세를 보아하니... 적군은 금명간 들이닥칠 모양입니다. 그러니 우리두 한두 사람 간호병으루 전투부대에 참가를 했으면 어떨는지. 실지 용도두 용도려니와 그보다두 정치적영향이 더 클것 같아서 그럽니다. 외국벗들두 우리와 함께 있다는 이 한가지 사실이 전투원들의 사기를 고무할것은 의심할바 없습니다. 어떻겠습니까 여러분의 생각은?...>>

말이 미처 떨어지가가 바쁘게 송일엽이 선등으로 손을 들고

<<내가 가겠어요.>> 하는데 장옥연도 선뜻

<<저두 가겠습니다.>> 하고 그뒤를 따랐다. 잇달아서 칠팔명의 녀대원들이 너도나도 가겠다고 지원을 하니 윤곡흠은 손을 내저어 누르고

<<내 생각에두 송일엽, 장옥연 두분이 가시는게 워낙 좋겠습니다.>>

말하고 다시

<<그럼 내 이제 가 그런 취지루 원장하구 의논을 해보겠습니다. 다른 의견이 없으면 고만들 헤여지시죠.>> 하고 바로 일어나 굴밖으로 나갔다.

이튿날 늦은아침때다. 위생가방들을 메고 전투부대로 떠나가는 오륙명 일행중에 송일엽과 장옥연도 끼이였다. 실심한 얼굴로 청처짐하게 뒤를 따라오는 꼬마전사 왕소성에게 송일엽이 손을 내저였다.

<<인제 고만 들어가요. 곧 또 만나게 될텐데 뭘...>>

엄마의 사랑이란것을 모르고 자란 아이는 저를 따뜻이 보살펴주는 송일엽에게 정이 들어 갑자기 갈라지게 된 마당에서 마음이 몹시 허잔하였던것이다. 산모퉁이길을 돌아서다가 뒤를 돌아보니 아이는 풀기없이 서있던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다. 송일엽이 어서 들어가라고 또 한번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속이 상하여

<<아이구 내 이 원쑤년의 팔자야.>> 하고 혼자 푸념을 하였다. 장옥연이 그 마음을 헤아려

<<아이가 정이 있게 굴더니만...>> 하고 동정하여 말하니

<<누가 아니래여.>> 하고 송일엽은 무엇을 떨어버리기나 하려는것처럼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었다. 얼마동안 말이 없이 걷다가 송일엽이 손수건을 꺼내려고 군복호주머니에 손을 디미니 무슨 종이쪽지 같은것이 손에 만져졌다. 무언가 하고 꺼내보니 헌 종이를 차곡차곡 접은것이다. 괴이스레 여기며 부지런히 펼쳐보니 속에 든것은 두장의 기남은행권(하북성 남부은행권)-2원이다.

<<아이고.>> 하고 송일엽은 어이가 없는 한편 속이 언잖아 한동안 말을 못하였다.

<<왜요, 어떻게 되셨에요?>>

장옥연이 까닭을 물어서야 비로소 송일엽은 기가 차하며

<<고 깜찍한게 글쎄...>> 하고 손에 쥔 지전 두장을 내흔들어 보이며 하소연하듯 말하는것이였다.

<<내가 일전에 용돈으루 돈 2원을 싫다는걸 억지루 손에다 쥐여주었었지 뭐야. 제가 받는 급료는 누나한테 부쳐주겠다며 꽁꽁 묶어두구 절대루 헐지를 않는다니까. 아 그랬더니 글쎄 요 깜찍한것이... 아까 떠나올 때 어물어물 내옆에 와 부닐잖겠어... 그러더니 어느 틈에 이렇게 그 돈을 도루 내 호주머니속에다 넣어놨지 뭐야.>>

<<참말 깜찍하네요.>>

장옥연이 적이 감동이 된 어조로 말하는데 송일엽은 호 한숨을 짓고 다시 더 말이 없이 하염없는 생각을 더듬는것이였다.

무장부대의 주요목적은 적을 다른데로 유인하여 비전투단위인 야전병원을 엄호하는것이였다. 그래서 이 부대는 여느 부대들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는 전법을 쓰지 않고 그와 반대로 목표를 일부러 드러냄으로써 적의 이목을 제게다 끌기를 일삼았다. 적에게 얻어맞기 쉬운 목표물로 될것은 미리 각오를 한바였으므로 이부대에 딸린 위생병들의 임무는 특히 어렵고 또 중하였다. 아니나다를가 이튿날 늦은아침때 누른색군복들을 입은 일본군은 로략질한 근거지농민들의 농우 칠팔마리를 앞세우고 골짜기가 좁다고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로략질한 소들은 몰고 다니다가 잡아먹기도하고 또 짐바리로도 쓰는데 그보다 더 긴요한것은 앞세우고 다니며 지뢰밟기를 시키는것이였다. 팔로군과 민병들의 지뢰전술에는 혼이 많이 나봐서 겁들이 되우 나는 모양이였다. 유인기만전술로 적을 골짜기밖으로 끌어내기 위하여 매복에 실패한것 같은 가상을 조성하느라고 부대는 백주대낮에 적이 보는 앞에서 거미새끼같이 흩어지기도 하고 또 때로는 무모한 요격을 감행하는체도 해야 하였다. 동굴속에 피신한 환자들의 안전을 위해여 부대는 위험을 무릅쓰고 또 희생을 무릅써야만 하였다. 송일엽과 장옥연은 가냘픈 녀자의 몸으로 그러한 복새판에 끼여들어 정신없이 이리 닫고 저리 닫고 하면서도 간호병의 직책을 다해야만 하였다.

이날 전투중에 송일엽이 한 부상병의 관통상 입은 견대팔을 황급히 처치하느라고 거치적거리는 군복소매를 수술가위로 썩둑썩둑 잘라버렸다. 처치가 끝나자 애돼보이는 얼굴에 솜털이 보르르한 그 전사는 놓았던 총을 성한 손으로 얼른 다시 거머쥐고 부지런히 일어섰다. 그것을 보자 송일엽은 불현듯 <<8.13>>때 상해근교에서 부상당한 선장이가 한쪽 소매가 없는 군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붙이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송일엽의 머리속에 추억의 섬광이 피뜩하는 순간 10여메터 밖 바위너럭에 박격포탄 한알이 날아와 쾅 터졌다. 튀여난 파편 한쪼각이 쌩하고 날아와 송일엽의 손등을 스치는듯 따끔하더니 이내 이쑤시개모양의 좁고 짧은 상처에서 피가 쪼르르 흘렀다. 과즉 손칼에 조금 다친 정도였다. 장옥연이 이것을 눈결에 보고 재빠르게 달아왔다.

<<어디 다치잖았에요?>>

<<생치기가 좀 났나봐.>>

<<어디 봐요.>>

송일엽이 대수롭지 않게 다친 손을 앞으로 내밀어보이며

<<이것두 영예이 부상으루 쳐줄라나?>> 하고 우스개소리를 하였다.

<<아니예요. 그래두 처치를 해야지요.>> 하고 장옥연은 곧 대들어 재치있게 빨간약을 바르고 또 붕대를 감아주었다.

<<간호병이라는게 제가 먼저 붕대를 감았으니... 꼴 좋다.>>

<<그래두 천만다행이예요. 난 귀가 먹먹한걸요. 바로 등뒤에서 터지는 바람에.>>

<<그놈들이 대체... 무슨 목표를 보구 쏜거야... 그저 맹탕 쏜거야?>>

<<목표는 무슨 목표에요. 둔덕이 가려서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는데... 그저 맹탕 쏴본거겠죠.>>

<<얼뜨게 그따위 눈깔 먼 포탄에 얻어맞다니... 아이 분해!>>

밤을 자고나니 몸이 좀 이상한것 같아 송일엽이 곁에 누운 장옥연을 돌아보고

<<내 얼굴이 왜 자꾸 다는것 같구먼.>> 하고 좀 미심쩍어하니 장옥연은

<<어디.>> 하고 송일엽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열이 있나봐요.>> 하고 손을 내밀어 이마를 짚어보더니

<<어머, 따갑네요!>> 하고 놀라며 벌떡 일어앉았다.

당일 오후 고열에 시달리는 송일엽이 담가에 실려가지고 장옥연의 호송을 받으며 야전병원-동굴에 와닿았을 때는 이미 교근이 꽛꽛해져서 입을 벌리지 못하였다. 그리고 얼굴의 근육들이 강직성경련을 일으켜가지고 모두 푸들푸들 떨었다.

진찰을 마친 원장이 령솔자인 윤곡흠을 한옆으로 끌고 가 귀속말로 소곤거렸다.

<<파상풍입니다. 파상풍균은 바늘에 찔린 자리루두 감염이 되지요. 그런데 문제는... 병원에 약이 없는겁니다. 항독소혈청이 없단 말입니다. 속수무책입니다. 참으로 유감스럽습니다.>>

<<다른 약으루는 안됩니까?>>

원장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그럼 희망이 없단 말씀입니까?>>

원장은 입을 다물고 대답을 아니하였다.

<<정말 희망이 없습니까?>>

윤곡흠이 안타까이 다우쳐물으니 원장은 말이 없이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전보경이 붉어진 눈으로 의식 잃은 환자를 정신없이 지켜보다가 옆에 서있는 장옥연의 팔꿈치를 잡아당겼다.

<<어떻거지?...>>

장옥연도 눈물이 글썽하여 전보경을 마주보기만 하였다. 한참만에 속삭이듯

<<오늘밤을 넘기지 못할거래요.>>

말하고 고개를 외쳤다. 꼬마전사 왕소성은 자꾸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먹 쥔 손등으로 이리 씻고 저리 씻고 하면서 박은듯이 서서 사랑하는 외국아주머니의 림종을 애통해하였다.

송일엽은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자정이 되기전에 운명을 하였다. 밝은 날 초초히 내다묻은 뒤에 전보경과 장옥연이 고인의 유물들을 정리하다보니 그속에 연안에 있는 어린 남시에게 보내주겠다고 틈틈이 뜨던 쟈케트(재킷)가 들어있었다. 알맞춤한 예쁜 단추를 구하지 못하여 단추를 달지 못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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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차 (♡.252.♡.103) - 2023/11/14 10:03:33

저도 이런 혁명소설 좋아하는데요. 밤에 찬찬히 다시 볼게요. ㅋㅋ 감사합니다.

로즈박 (♡.43.♡.108) - 2023/11/15 05:38:37

송일엽이 이렇가 가네요..ㅠㅠ
선장이 알면 또 얼마나 속상할가요?
씨동이도 그렇게 가고..
아침부터 마음이 아프네요...

연길이야기 (♡.226.♡.47) - 2023/12/08 06:23:46

제 연재를 중단하려고 합니다.
이래저래 제약이/불편이 많아서 말입니다.

구구절절 다 말하느라면 길어 지기에 생략하고..

그동안 여러가지로 성원해 주셨는데
끝가지 가지 못하게 돼서 많이 아쉽습니다.

다음을 기약해 봅니다..

연길이야기 (♡.226.♡.47) - 2023/12/08 06:28:36

대신,
조만간 연길로 들어 가게 되니
책 하나 더 장만해서 래일님께 선물 드리겠습니다.

이 약속은 제 의지로 좌우할수 있는거라
분명히 지킬수 잇을거 같습니다 ㅎㅎㅎ

더좋은래일 (♡.208.♡.160) - 2023/12/08 08:36:01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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