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球上唯一的韓亞 37~39

단차 | 2023.11.16 07:36:20 댓글: 2 조회: 144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7909
37



 “나 임신해버렸지 뭐야.”

  유리가 붓을 놀리며 심상하게 말했을 때, 한아는 깜짝 놀라서 재봉틀을 멈췄다.

  “콘돔이 터진 것 같아. 잘 확인했어야 하는데.”

  “뭐?”

  “근데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까, 그런 확률을 뚫은 아이라면 한번 낳아볼까 하고.”

  한아는 한 번도 질러본 적 없는 희한한 소리의 기쁜 비명을 질렀다.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지만 그걸로도 축하의 뜻은 잘 전달되었다.

  “낳을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말이야. 언젠가 네가 말했잖아. 지구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사람 아닌 생물들한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고. 나도 거기에 동의했었는데. 쯧, 인생 마음대로 안 돼.”

  “좋은 환경주의자로 키워내면 되지! 우리는 쪽수가 더 필요해.”

  “쪽수라니, 품위 없게.”

  유리가 깔깔 웃었다. 웃다가 정색하고 물었다.

  “근데 늘 궁금했는데…… 음, 너희는 어떤 방식으로 되는 거지?”

  “아아, 음…… 비슷해.”

  “비슷할 리가, 반광석이라며? 그럼 상당히 단단한 거 아냐?”

  “광석인 부분은 한참 안쪽인걸. 상관없다고. 경민이 몸은 일종의 슈트잖아. 그래서 센서가 많이 달린 돌출부가 있고, 내가 좋아하니까 몇 개 더 만들어줬어.”

  “뭐야 그거, 완전 섹스 토이네.”

 

  “그렇지만 정말 살갗 같은 느낌이고 다른 게 있다면…… 전반적으로 뜨겁나? 발열 문제가 있는 것 같아.”

  “경민씨…… 여기 오기 전에 연구 많이 했나보네.”

  “정말 그런 듯해. 가끔 인체에 대해 나도 몰랐던 걸 가르쳐줘.”

  “어떤 거?”

  유리가 눈을 빛냈다.

  “다른 어떤 뼈에도 붙어 있지 않은 갈비뼈가 있는 거 알고 있었어? 외로운 갈비뼈. 그런 곳을 짚어줘.”

  “엥, 뭐야, 하나도 안 야해. 그런 거 궁금하지 않아. 그거 말고는?”

  “원래 경민이보다 조금 더……”

  “조금 더, 조금 더 뭐? 조금 더 커?”

  “조금 더 함께 있는 기분이야.”

  유리는 야유했고 한아는 웃었다. 함께 있는 기분이 드는 건 경민이가 외계인이고 아니고는 상관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뭔가 되게 다른 걸 기대했는데.”

  “뭘 기대한 거야, 대체? 그래도 가까이서 보면 좀 다르긴 해. 특히 머리카락이…… 지나치게 균일하게 두피에 꽂혀 있달까? 자연스럽게 불규칙한 것일수록 재현하기 힘들대. 그래서 약간 가발 같아. 가끔은 바람이 심하게 불면 붕 떴다가 고 모양 고대로 다시 내려앉는다니까? 레고로 끼운 것도 아니고.”

  “에이, 재미없어. 그건 우리 이모부도 그래. 그게 뭐 신기한 거라고.”

  비록 경민이 유리의 기대보다 별로 재미없는 외계인이긴 했지만, 유리네는 정식으로 경민에게 부탁을 했다. 만약 뜬금없는 소행성과 충돌해 지구가 멸망할 것 같으면 아이를 꼭 탈출시켜달라고. 경민은 그 부탁을 아주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받아들였고, 지하실의 잠수함을 우주선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만약에, 네가 아이를 원하면 말야. 경민씨의 유전자 정보로 내가 가능하게 할 수 있어.”

  경민이 말했을 때 한아는 고개를 저었다.

  “걔 진짜 아무것도 안 보고 사인했나보네. 유전자 정보까지 넘겼단 말야?”

 
 “기본적으로는 내가 뭔가 곤란한 일에 휘말려 입안을 면봉으로 긁히게 될 때, 경민씨 정보가 나오게 하는 용도였지만 용도를 한정 짓지 않은 계약이었거든.”

  “그래서 계약서는 꼼꼼하게 봐야 한다니까, 바보가…… 어쨌든 나는 원하지 않아. 지구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이대로 90억, 100억이 되면 돌이킬 수 없이 나빠지고 말 거야. 낳지 않는 사람이 훨씬 훨씬 늘어야 해. 유리를 위해서는 기쁘지만, 나는 내 신념이 있으니까.”

  한아가 말했고 경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민은 한아만큼 한아의 신념을 사랑했다. 한아의 안에도 빛나는 암석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이다.



 

 38


 언젠가 결혼을 한다면, 11월에 결혼해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여행을 싫어하는 한아였지만 그래도 신혼여행 정도는 가고 싶었고, 그럼 성수기인 6월, 7월, 8월, 12월, 1월, 2월은 자동 탈락되었다. 그리고 한아는 봄이 싫었다. 계절 자체가 싫다기보다는 봄의 신부니, 5월의 신부니 하는 말의 전형적인 느낌이 싫었다. 그래서 9월, 10월, 11월이 남았고 아예 덥거나 아예 춥거나 해야 드레스 디자인이 용이할 것 같아서 10월이 빠졌다. 최종 후보인 9월과 11월 중에는, 11월을 소재로 한 노래들이 수는 적지만 더 달콤한 게 많아서 11월을 고르게 되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선택 과정이었다.

  경민과 함께한 지 3년째 되는 8월이 되자, 한아는 11월의 차가운 공기를 떠올렸다. 콧속이 찡하는 시원함과 여름보다 훨씬 기분 좋은 냄새 입자들이 함유된 겨울 초입의 공기를. 올해 11월이구나, 그토록 오래전에 정해두었던 11월은. 한아는 중얼거렸다. 결심이라기보다는 자각이었다. 지구만큼 거대한 시계가 움직이기라도 한 것처럼 한아는 그냥 알게 되었다. 슬슬 준비를 해야겠는데.

  한아는 일을 하다가 짬짬이, 드레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표백을 하지 않은, 그래서 눈이 시린 하얀색은 아닌 따뜻한 미색의 원단을 바탕으로 애틋한 손님들의 옷에서 떨어져나온 흰색 계통의 자투리천들이 들어갔다. 한아는 11월의 바다처럼 짙은 코발트색 실을 썼는데 그로써 드레스 하나에 새로운 것, 오래된 것, 빌린 것, 파란 것 모두가 들어간 셈이었다.

  유리는 한아가 뭘 만드는지 뒤늦게 깨달았는데, 한아에겐 알은체하지 않고 얼른 가게 바깥으로 튀어나가 경민에게 전화를 했다. 프러포즈 작전이 끝나고도 이상한 동맹 의식이 남아 있는 둘이었다. 어쨌든 경민은 어느 지구 약혼자보다 훨씬 기뻐했고, 경민 나름대로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한아 커플이 유리를 경유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결혼 이야기를 꺼내게 되는 데는 무려 3주가 걸렸다. 경민의 입장에서는 먼저 말을 꺼내는 게 강요하는 꼴이 될까봐 망설여졌고, 한아의 입장에서는 결혼이 지구에서조차 유효 기간이 지난 제도가 아닐까 문득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이걸 하기로 한 게, 네가 여기 머무는 문제 때문이었잖아.”

  “응.”

  “만약 결혼을 하지 않고 지금 상태로 계속 있으면 갑자기 떠나야 할 수도 있는 거야?”

 

  “정확하게 판단하기가 어려워. 정책이 계속 바뀌어서 유의미한 관계에 대한 기준도 해석하기 나름이더라고. 위장 이주로 의심받을 수는 있지만, 같이 가서 감정 테스트를 받으면 잘 통과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네가 원하는 대로 하면 돼.”

  “우주에서는 다들 어떻게 사나?”

  “여기와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많지만 여러 개체가 한 단위가 되는 풍습은 꽤 보편적으로 있어.”

  “여러 개체가 한 단위가 되는 풍습…… 그건 마음에 드네. 생활동반자법이 있으면 고민을 덜할 텐데 왜 안 만들어주는지 몰라. 일단 하자. 해버리자.”

  한아가 단호하게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경민은 웃었다.

  “다행이다. 여기 머무는 문제도 그렇지만, 나중에 함께 지구 바깥으로 여행하려면 역시 서류가 명확하고 편한 쪽이 좋지.”

  “싫어, 난 지구에서 죽을 거야.”

  “그러지 말고 마음을 좀 열어봐.”

 

  경민이 부드럽게 한아를 껴안았다. 중요한 결정을 언제나 한아에게 맡겨주는 게 좋았다. 불안한 부분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인 것도. 흔한 방식으로 불행한 결혼을 하게 될까봐 걱정했던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그 방향으로는 걷지 않게 될 걸 알았다.

 

 
 

 39


  “업체를 끼지 않고 하고 싶어. 낭비 없이.”

  한아의 의견에 경민 역시 전적으로 동의했다. 시간과 노력은 많이 들겠지만 탄소 발생을 줄이고 쓰레기 없이 한다면 더 의미 있을 것이었다.

  첫번째 단계는 빌라 옥상에 정원을 가꾸는 일이었다. 정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다소 방치된 상태였는데 식을 치를 수 있을 만한 장소로 동선을 생각해서 가다듬었다. 어차피 가까운 가족과 유리네와 친구 몇이 전부일 것 같아 큰 공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이가 나가거나 유약이 벗겨진 그릇들을 기증받아 부드러운 곡선의 화단을 만들었다. 11월에도 시들지 않을 식물들을 잔뜩 심었다. 악천후를 대비해 대형 천막도 준비했는데, 더이상 쓰지 않는 광고 현수막들을 얻어와 한아가 직접 만들었다.

  “난 대충 웨딩홀에서 했는데, 너희 하는 걸 보니까 대단하다, 야.”

  유리가 말했다.

  “그때 넌 나랑 가게 안 하고 회사 다녔었잖아. 힘들고 바쁠 때는 이렇게 할 수가 없지.”

  “그야 그렇지만 거대한 산업용 컨베이어벨트 위에 실린 느낌이었다고. 아주 개인적인 행사인데 전혀 개인적이지 않았어.”

  “좋긴 한데 골치 아파. 골치 아파 죽겠어.”

  음식 역시 큰 문제였다. 맛있으면서도 탄소 배출량이 적고 음식물 쓰레기가 덜 나오는 한 그릇 음식이어야 했다. 고민 끝에 해초칼국수와 시래기수제비, 마파두부덮밥을 준비하기로 했다. 세 메뉴 중에 손님들이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직접 먹고 싶은 양만 담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음료는?”

 
 유리가 중요한 부분을 짚었다.

  “아직 생각한 게 없는데.”

  “내가 주스도 짜고, 술도 담가줄게!”

  “힘들지 않겠어?”

  유리는 부모님의 과수원에서 과일을 받아온 후 온갖 과일주를 직접 담가 먹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고 나서 본인은 한동안 못 마신다는 걸 깨닫고 잠깐 실의에 빠지긴 했다. 한아네 결혼 일주일 전 뚜껑을 열자, 아주 잘 익은 냄새가 났다.

  주례는 경민의 체류 담당자인 ‘지구-아시아 대사’가 맡기로 했다. 정확한 직책이 뭔지 몰라도 한아는 그렇게 이해했다. 원래 어느 별 출신인지 몰라도 일단 여기에서는 아주 연륜 있어 보이는 뉴델리의 인류학 교수였다. 한국어도 완벽히 해냈으므로 가족들에게는 경민이 아는 교수님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이 불편한 한아가 조금 툴툴댔다.

  “그냥 정말 아무 교수님한테 부탁하지 그랬어. 원래 경민이가 교수님들 애제자였거든. 학점은 나빴어도 하도 깨방정을 떨어서 존재감이 있었는데.”

  “하지만 이쪽이 더 광범위하게 공신력 있는 결혼식 같잖아.”

  한아를 데리고 다른 별로 이민이라도 갈 기세로 경민이 결연하게 주장했다.

  “뭐, 직접 보시면 너를 갑자기 지구 밖으로 뻥 쫓아내진 않겠지.”

  한아는 외계인 주례 선생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원래의 성별은 짐작하기 어렵고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여성형 슈트를 입고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긴 했다.

 

 

 
 
 
 
추천 (1) 선물 (0명)
IP: ♡.252.♡.103
로즈박 (♡.43.♡.108) - 2023/11/17 16:20:45

아..드디여 결혼 하는구나요..축하해용~~

단차 (♡.252.♡.103) - 2023/11/17 16:26:06

이런 결혼이라면 저는 대찬성이에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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