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球上唯一的韓亞 46~48

단차 | 2023.11.16 07:52:20 댓글: 4 조회: 162 추천: 2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7915
46


 엑스는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았다. 안에서부터 뭔가 비어가고, 그 내부의 빈 공간을 이기지 못해 몸이 꺼져드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 도착했을 때 한아의 구두에 부러진 뼈 말고도 다른 뼈들이 부러지기 시작했다. 엑스를 일으켜 밥을 먹이고, 스펀지 목욕을 시킬 때도 종종 ‘두둑’ 혹은 ‘뻑’ 하고 뼈가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다지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견딜 수 없는 소리여서, 한아는 결국 엑스를 거의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엑스는 음식을 거부했고, 모공이 죽어버린 것처럼 땀을 흘리지 않았고, 몸안의 모든 순환이 멎어버린 것처럼 배출되는 것들이 거의 없었다.

  “이런 오줌 색깔은 처음 봐.”

  “그러게. 하루하루 무지개처럼 변하네.”

  한아는 엑스의 몸이 무너지는 속도가 무서웠는데 엑스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유리가 영양 링거액을 가져왔지만, 엑스는 거부했다.

  “오래 붙잡고 있고 싶지 않아.”

  “웃기지 말고 링거 맞아.”

  “내가 가야, 그 사람이 돌아오지. 너 기다리고 있잖아.”

  한아와 유리는 엑스의 의사를 무시하고, 그 힘없는 팔에 링거 바늘을 꽂아보려 했다. 하지만 아마추어인 두 사람은 혈관을 잡을 수 없었고 그 와중에 손가락을 두 개 부러뜨렸기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

  몸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엑스였지만 단 한 가지, 자는 시간만은 아까워 죽으려 했다. 자다가도 번쩍 번쩍 눈을 떴다. 눈을 뜬다 해도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그러고는 한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한아는 아무것도 부러뜨리지 않으려 애쓰면서, 너무 말라 절지동물의 다리처럼 보이는 손을 잡았다. 엑스의 손에서는, 손과 다른 모든 부분에서는, 가루가 묻어나는 것 같았다. 세포들이 응집력을 잃고 부슬부슬 말라서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잠시 자고 일어났는데 엑스가 누워 있던 곳에 재만 남아 있어도 한아는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곧 눈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아.”

  엑스는 시력을 완전히 잃기 전에 경민의 잠수함 겸 우주선을 보고 싶어했다. 한아는 엑스를 업고 경민의 작업장을 자세히 구경시켜주었다. 몸이 더 부서졌지만 엑스는 큰 신음을 내지 않았다. 

  엑스를 업고 있는 건 기분이 이상했다. 원래 키는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지만, 늘 단단하고 꽉 찬 느낌이 드는 체구였는데 업지 않은 것처럼 가벼웠다. 언젠가의 바닷가에서 엑스가 한아를 업고 달렸던 때의 기억이 났다. 

  모래가 업힌 한아에게까지 튀던 것과 다 달리고 났을 때 뜨거워졌던 엑스의 허벅지가 생각이 났다. 완벽하게 균형 잡힌 것은 아니었으나 그 불균형이 오히려 묘한 균형을 만들어내던 아름다운 근육들이. 이제는 지점토 인형을 업고 있는 것 같았다.

  “안쪽도 보고 싶어.”

  엑스는 소형 우주선의 안쪽에 누워 천천히 살펴보았다. 한아는 잔잔한 미소를 보고 엑스가 먼 곳을 떠올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순간부터 우주선이 엑스의 마지막 침상이 되었다.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던 머리카락과 눈썹을 시작으로 온몸의 털들이 몸을 떠났다. 쑥 빠지기보다는 끝에서부터 흩날려 떨어졌다. 

  한아가 치워주려고 했지만 손에 닿으면 더 잘게 나뉘고 사라졌다.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피부가 지독하게 건조해지고, 기묘하게도 촛농 같아졌다. 

  몸의 여기저기가 움푹 꺼져들어갔고 일부 뼈들은 돌출해나와서 전반적으로 잘못 만든 인체 모형처럼 보였다. 엄청난 고통이었을 텐데, 고통보다는 한아의 시간을 빌린 것에 대한 미안함이 더 많이 엑스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떠나지 않았다면 내 평생이 모두 네 것이었을 거라는 잔인한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던 한아는 그저 엑스가 조금이라도 편해지길 바랄 뿐이었다.

  시력이 악화되던 속도는 다소 줄어, 엑스는 초점이 살짝 어긋난 뿌연 눈으로도 이내 한아를 발견하곤 했다.

  “놓아버리고, 놓쳐버린 걸 인정해. 하지만 정말 사랑했던 걸 알아?”

  “말하지 마. 괜히.”

  “아니, 해야겠어. 세상에…… 우주 끝까지 갔더니 네가 그걸 아는 게 나한테 가장 중요한 문제더라. 진부하게 말이지.”

  “이제 아네. 알게 됐네.”

  한아는 자기가 정말 알게 되었다고 희미하게 신기해했다.

  “너의 사랑할 수 있는 능력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해준 거 알아. 고맙게 생각해.”

  “미안해. 한도가 작은 남자라. 더 한도가 큰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다. 뭔지 모를 외계인이긴 하지만.”

  엑스는 정말로 안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덧붙였다.

  “그때 내 자리와 모든 걸 넘기고 떠난 건, 짐작처럼 이기적인 행동은 아니었어. 언제나 충분히 채워주지 못했던 걸 알고 있었으니까. 네가 티를 낸 건 아니지만, 티를 내지 않아서 더 신경쓰였거든. 너무 애쓰고 있는 것 같아서.”

  “애썼지. 확실히 그때의 난 지나치게 애를 쓰고 있었어.”

  한아는 거의 전생처럼 느껴지는 과거를 되짚어보았다.

 
 “이젠 그러지 않니?”

  “응. 따지고 보면 전혀 자연스러운 관계가 아닌데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대화가 끊이질 않아. 매일 소리 내어 웃고, 서로를 할퀴지 않아. 경민이의 한도는 어디까진지 모르겠어.”

  언젠가 그의 것이었던 이름에 엑스의 초점이 잘 맞지 않는 눈이 흔들렸다. 그러더니 힘겹게 부탁했다.

  “나도 한 번만 더 그 이름으로 불러줄래?”

  한아는 오랜만에 다시 한번 애를 써야 했다. 경민아, 라고 엑스를 불렀을 때 위장이 비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죽고 나면, 여기 묻지 말고 우주로 보내줄래? 죽은 몸이라도 다시 약속을 지키고 싶네. 여긴 그 사람 자리지.”

  그 정도는 어떻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한아는 승낙했다.

  “이름, 그 사람이 계속 써줄 수 있니? 좋아 보여. 네 옆에 있는 사람이 한때 내 이름이었던 이름을 쓰는 거. 네가 그 이름에서 날 발견하지 않는다 해도.”

 

  한아는 잠깐 망설였다. 엑스와 경민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너무나 분명히 보았고, 어쩌면 엑스의 죽음과 부재를 더이상 파묻는 건 도리가 아니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만약 경민이 전혀 다른 얼굴과 이름으로 돌아온다 해도, 다시 알아보고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생겼는데……

  그러나,

  “우린 빚을 졌으니까. 그래, 그럴게.”

  한아는 경민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이미 소원을 세 개 들어줬으니까, 이번 부탁은 들어주지 않아도 좋아. 100분의 1초라도, 키스해주지 않을래?”

  한아는 머리카락이 쏟아져내리지 않도록 한 손으로 붙들고 고개를 숙여 짧게 입을 맞추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엑스의 입술은 거기 없는 것 같았다.

  마침표 같은 키스.

  그게 끝이었다. 엑스는 그날 저녁에 죽었다.

   


47



 돌, 아, 와.

  한아는 옥상에 서서 입 모양으로 말했다. 경민은 어디에 있는지 전화 통화가 되지 않았다. 짠돌이가 로밍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망원경은 가지고 갔을 것이기 때문에, 한아는 어느 방향에서 보고 있을지 모를 경민을 위해 차례차례 방향을 바꿔가면서 메시지를 보냈다. 벌써 몇 시간째였다.

  “돌아와, 이 멍청아!”

  보다못한 유리가 아예 소리를 질렀다.

  “소리는 안 들려.”

  “아는데 답답하니까.”

  “벌써 5일이나 지났는데 어째서 돌아오지 않는 거지? 이제 다 끝났는데.”

  한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엑스의 임종을 지킨 건 한아보다도 경민의 의지였다. 그런데 어째서 돌아오지 않는 걸까.

 
 “야, 정확히 끝난 건 아니지. 지하실에 시체가 누워 있는데 어디가 끝난 거냐?”

  엑스의 시신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다행히 소형 우주선에 냉각 기능이 있어서 꽉 닫은 채 보관할 수 있었다. 한아는 엑스가 죽은 후 바로 우주선을 닫았고, 다시 열지 못했다. 두꺼운 창 너머로 얼핏 비치는 엑스는 더이상 수축하지 않는 듯했지만, 한때 그토록 한시도 제자리에 머물지 않던 몸이 완전히 멈춘 채 남아 있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계속 저렇게 두는 건 도리가 아니지 않겠니?”

  유리가 재촉했다. 유리는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너무 많은 걸 겪은 친구 대신 자신이 강해져야 할 때라는 걸 알았다. 강해짐의 의미가 시신 유기 감행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걸까, 입속으로 중얼거렸지만 그뿐이었다. 유리는 마음을 다잡은 후 한아를 끌고 지하실로 향했다.

  “생각보다 간단한데? 설명이 잘되어 있네.”

  얼리 어답터인 유리는 능숙하게 우주선의 설명서를 읽었다. 경민이 꼼꼼하게 정리해둔 것이었다. 우주선은 50미터 안팎을 물위에서 질주하면 날아오를 수 있다 했으며, 심지어 활주로로 쓸 만한 후보 장소 다섯 곳까지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었다. 민간 공항이나 군 관제소의 레이더 범위를 적절히 벗어난 해안가나 호숫가들이었다.

  “꼭 이런 일이 있을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준비해놨네.”

  한아의 머릿속에서 불안이 점점 커져갔다.

  “이거 원래 탈출용으로 남겨둔 거였잖아. 꼼꼼한 성격이니까 혹시 자기한테 무슨 일이 생길까봐 만들어놓은 거겠지. 엉뚱한 생각 하지 마.”

  “근데 왜 오지 않아?”

  “경민씨도 이런저런 생각들 정리 좀 할 필요가 있지 않겠어? 이런 시기를 거치며 또 단단해지고 그런 거지.”

  유리는 한아의 불안이 옮아오는 걸 느끼며 평소보다 더 확고한 목소리를 내려 노력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자연스러운 핑계를 대고 빌린 트럭에다가 우주선인지 관인지 모를 것을 싣는 일도 수월하게 끝났다.

  위층에서 한아에게 두꺼운 니트를 가져다 입히고 마스크를 씌웠다. 일이 잘못될 경우 CCTV 같은 데 찍히면 곤란했다. 미세먼지 수치가 나쁜 날이어서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도 점퍼를 끌어올려 얼굴을 최대한 가렸다.

  “리스트에 있는 곳 중 제일 가까운 데로 가자. 지금 출발하면 어두워질 때쯤 도착할 거야. 성수기도 아니니 사람도 없을 거고.”

  한아는 평생 큰 차를 몰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2종 자동 면허였다. 유리도 큰 차에 대한 로망은 없었으나 혹시나 몰라 1종을 따둔 게 다행이었다. 유리는 낯선 트럭을 조심스럽게 운전하며 속으로 경민 욕을 했다. 돌아오기만 해봐라.

   

  찾아간 곳엔 아무도 없었다. 수상 레포츠 시설도 휴업중이었고, 식당들은 폐업한 듯했다. 한아는 그것이 다행이면서도 황폐한 마음속을 닮은 풍경이라는 생각을 했다. 트럭 턱에다 바나나킥을 까서 펼치고, 칭다오도 한 병 땄다.

  “뭔데 이거? 제사상이니?”

  유리가 어이없어 했다.

  “아, 뭐, 평소에 좋아하던 거라도.”

 

  한아가 넋을 놓은 듯 말했기 때문에 유리는 구색을 맞춰주기로 했다. 맥주병을 들고 시원하게 마신 후 건배했다.

  “생전에 늘 미워해서 미안해요.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도 싫어할 것 같으니까 제발 비슷한 구석에서 태어나지 맙시다. 우리 한아랑도 마주치지 말고요.”

  유리는 여느 때처럼 솔직했다.

  “다음번에는 속하게 된 곳을 더 사랑할 수 있거나, 아니면 함께 떠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좋겠어. 여기도 아니고 나도 아니었지만, 다음번에는 꼭.”

  한아는 마지막 인사와 함께 어떤 부분은 차갑고 어떤 부분은 뜨거운 우주선을 쓰다듬었다. 처음 잠수함으로 이 우주선을 만들었던 경민을 떠올렸다. 우리의 사랑이 너무 많은 비용을 치른 걸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렇다면 더더욱 돌아와야 하지 않아? 한아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입술로 말했다.

  우주선을 수면에 띄우고 간단한 외부 조작으로 출발시켰다. 정확한 목적지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바깥으로 향하게 설정했다. 작은 우주선, 지구인으로서 가장 멀리 갔던 자의 검소한 관은 수면 위를 상쾌하게 달리다 가벼이 하늘로 치솟았다.

  두 여자는 젖은 무릎을 하고 한동안 물가에 앉아 있었다. 수평선은 어둠에 보이지 않았고, 한아는 그 역시 마음속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48


 한아는 최소한의 활동만 했다. 청소년 쉼터도 회사도 이제 여러 사람이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말을 걸 때만 여러 결정들에 참여하면 되었다. 

  사람들은 대화하다가 한아가 집중력을 잃었다는 걸 알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아무도 무슨 일이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몸이 좀 나른한가보다 했을 뿐이었다. 한아는 날아다니는 먼지를 쳐다보느라, 가끔 눈 깜박이는 걸 잊었다. 식사 대신 서랍 속의 플라스크에서 독주를 꺼내 마셨다. 그게 좋을 리 없어서 종종 토했다.

 

  조용하게 토하는 법을 익혔고, 유리만 한아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았다.

  “너희 집안 술 문제 있다고 늘 싫어했잖아. 왜 이래, 너.”

  “사람이 꺾일 때도 있는 거지. 평생 뭘 보호하자고, 보호하자고만 살았는데 파괴하고 싶을 때도 있는 거지.”

  “그럼 같이 꺾고 같이 파괴하자. 아이고, 내 간세포.”

  한아와 유리는 가벼운 술에서 걸쭉한 술, 차가운 술에서 뜨거운 술까지 가리지 않고 마셨다. 가끔 취해서 자다 깨면 해가 지는지 뜨는지 구분하기 힘들 때가 있었다.

  “가게, 다시 열지 않을래?”

  툭 던지듯 유리가 물었다. 한아는 잠든 척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유리는 한아가 안주나마 입에 대는 걸 확인하고, 자다가 기도가 막혀 죽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할 수 있게 된 다음에야 귀가했다. 

  혼자 남은 한아는 술이 깨는 걸 싫어하며 다시 날아다니는 먼지를 구경했다. 우리는 다 먼지가 될 거야, 한아는 생각했다. 빈집에 메밀 베개처럼 누워서, 사지를 움직이지 못했다. 움직여야 하는데, 나가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 수 없는데…… 머릿속이 그런 말들로 가득했지만 팔도 다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실이 끊어진 것 같았다. 

  한아의 우주가 점점 좁아져 이 집이 되고, 집조차 점점 한아의 안으로 말려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난 아마 점이 될 거야. 먼지가 될 거야. 모든 게 의미 없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오고, 문을 두드리기도 했지만 한아는 없는 척했다. 소라게같이 없는 척하기. 우주에는 그런 생물들이 많지 않을까 했다. 무거운 껍데기 속에 숨는, 안으로 다리를 감추는 존재들. 그중 하나가 되는 게 뭐가 그리 나쁘겠는가? 역시 식욕은 들지 않았다. 유리를 안심시켜놓고 그러면 안 되지만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점이 되고 점이 되다가, 죽는 걸까? 경민은 한아가 죽고 나서야 돌아오는 걸까? 그런 비극, 외계인들도 좋아하나? 그럼 넌, 나한텐 어떤 관을 만들어줄래? 난 날아오르는 관은 싫어. 어떤 관이 가장 친환경적일지 고민하다가 한아는 의식을 잃었다.

   
 스며든 빛과 해장국 냄새에 눈을 떴다. 콩나물과 파, 버섯이 든 맑은 국물의 냄새가 집안에 가득했다.

  부엌 창에서 쏟아져들어오는 역광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는데도, 한아는 그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 실 한 가닥이 움직인 것처럼 미소 지었는데도 그 미소를 똑똑히 보았다. 둘 중 어느 쪽도 먼저 말하거나 다가가지 못하다가, 경민이 먼저 그 상태에서 벗어났다. 칫솔에 치약을 근사할 정도로 적당량을 묻혀 한아에게 내밀었다.

  한아는 영원히 칫솔질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매운 거품이 계속 목 뒤로 넘어갔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눈이 뜨거워졌다. 경민이 뒤에서 한아를 안았다. 한아는 거울로도 경민의 눈을 볼 수가 없었다.

  “힘들었지?”

  한아는 말 대신 거품을 뱉었다. 의문 대신 입속을 씻었다.

  “분절이 있어야 할 것 같았어. 그 사람의 마지막에 내가 끼면 안 될 것 같았어. 우리가 만났을 때 너무 연속되어 있었으니까. 그게 널 오래 혼란스럽게 했으니까. 이번만큼은 제대로 분절, 마디, 매듭을 만들고 싶었어. 내가 돌아와도, 바로 그 사람 대신은 아니게. 그래도 많이 힘들었지?”

  “……안 돌아올 줄 알았어.”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렸다. 말을 오래 안 해선지, 자주 토해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럴 리가.”

  “돌아올 거라고 믿었는데 그걸 믿는 날 믿을 수가 없었어. 믿으면서도 전혀 믿을 수가 없었어.”

  고장난 고래어 번역기처럼 한아가 말했다. 경민이 한아를 위로하기 위해 목덜미에 천천히 입을 맞췄다. 그러고 나서 팔을 풀고, 한아를 앞으로 돌려 다시 안았다. 돌아와서 처음 입을 맞췄다.

  아, 입술이 거기 있었다.

  대단한 존재감의 입술이었다. 한아는 눈을 감았고 자신의 차갑고 젖은, 치약 맛이 나는 입술에 경민의 온도 높은 입술이 닿는 걸 느꼈다. 떠나기 전보다 조금 거칠게 느껴졌고, 입술 주름들이 도드라진 것 같았다. 그게 가능한 일이라면 말이다. 

  한아의 모든 세계가, 경민의 입술에서부터 폭발적으로 뻗어나갔다. 다시 집이 생기고, 별이 생기고, 무한대로 뻗은 항로가 생겼다. 숨을 내쉬었다. 우주적인 입술이었다.

  그 입술이 원래 다른 누군가의 입술을 따라 만든 모형이라는 건, 껍질뿐이라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벗어날 수 없는 껍질은 언제까지나 남기 마련이었다. 

  지구와 은하계와 이 차원을 넘어선다 해도 분명 알 수 없는 세계가 더 큰 바깥벽으로 존재할 터였다. 그러니까 결국 한아에겐 지금, 여기, 이 입술밖에 없었다. 멀리 날아온 입술. 한아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입술. 떠났다가도 돌아오는 입술.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해 조각된 입술. 그 감정적인 입술이 가짜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매듭이 지어진 거야, 이제?”

  한아가 약간 뒤로 물러서며 물었다.

  “응. 난 한동안 망원경을 박스에 넣을 생각이야. 다시는 널 멀리서 지켜볼 생각이 없어.”

  한아는 경민에게 온 체중을 실어 안겼다. 경민의 오래된 스웨터에서 먼지 냄새, 바람 냄새, 시간 냄새가 났다. 한아는 그 순간의 두 사람이 얼마나 완벽하게 꼭 들어맞는가를 가만 느끼고 있었다. 우주가 그들을 디자인했다. 재단하고 완벽한 스티치로 기웠다. 한아는 그 솜씨를 죽었다 깨도 못 따라 하리라는, 기이한 감탄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매듭 이후, 끊임없이 이어질 달콤한 하루의 첫날. 셀 수 없을 키스 중의 첫 키스였다. 흔하지 않지만 어떤 사랑은 항상성을 가지고, 요동치지 않고, 요철도 없이 랄랄라 하고 계속되기도 한다.

  우주 가장자리에서 일어나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러브 스토리의 시작이면서, 끝이었다.

 

 

 
 

 

추천 (2) 선물 (0명)
IP: ♡.252.♡.103
산동신사 (♡.173.♡.19) - 2023/11/16 09:35:49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경민이가 우주에서 돌아와서 금방 죽는게 너무 생각밖이였습니다.칭도우맥주도 좋아했다고 해서 더 안타깝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단차 (♡.252.♡.103) - 2023/11/16 09:42:34

저는 처음에 이 소설 읽을때는 전경민을 이해 못했는데 여러 번 읽다보니 참 안쓰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큰 지구에 자기의 마음 둘 곳이 한아 한 명뿐이었다는게 안타깝고, 그걸 또 놓쳤다는 게 슬프더라고요.
같은 지구에 산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중력을 받는 것은 아닌거죠.
전경민은 그 중력이 너무 약해서 머나먼 우주로 떠난거에요. 결국 다시 돌아오기는 했지만 이미 늦었죠. 아니면, 그제라도 깨달았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일런지요.

산동신사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로즈박 (♡.43.♡.108) - 2023/11/17 16:27:57

아..엑스경민은 하늘나라로 가버리고 현경민이 드디여 돌아왓네요...
휴..좋아하는 사람 기다리는 그 마음 나도 절절이 같이 느껴보네요..
두사람 다시 행복하나요?

단차 (♡.252.♡.103) - 2023/11/17 16:34:11

저는 여러 번 봐도 또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기다리는 절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요. ㅋㅋ 이제 행복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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