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球上唯一的韓亞 에필로그 (완결)

단차 | 2023.11.16 07:57:28 댓글: 7 조회: 259 추천: 3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17916


에필로그 



 2085년, 다행히 지구는 아직 멸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민에겐 곧 지구가 끝나려는 참이다. 한아가 임종 침상에 누워 있다. 나쁘지 않은 인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연명 치료는 거부했고 평생을 살아온 집에서 조용히 마지막을 보내기로 했다.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한아였지만 어쩔 수 없을 때는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몸은 이미 감옥이었다.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끝없이 한아를 방문했다. 한아는 남기고 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놀라워하고 기뻐했다.

  모두가 돌아가고 경민은 한아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싼 채 거기에 이마를 기대어 있었다. 감긴 눈꺼풀 위의 주름이 두드러졌다. 

  한아에게 보조를 맞추기 위해 외부 슈트를 주기적으로 리모델링해왔었다. 노인의 모습으로도 그 안에 푸르게 빛나는 젊은 사랑을 가릴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한아는 사랑하는 배우자, 정말 흔하지 않은 이를 다정하게 보았다. 스스로의 숨소리가 지나치게 크고 버겁게 들렸다. 지금 눈을 감으면 다시 볼 수 없겠지. 한아는 애써 조금만 더 경민을 바라보려 했다.

  그때 경민이 눈을 떴다. 고개를 숙여 한아의 옆얼굴에 입술을 댔다. 입맞춤인가 했지만 귓속말이었다.

  “한아야, 그동안 즐거웠어.”

  나도, 한아가 입술을 움직였다.

  “그리고 이제부터 더 즐거울 거야.”

  응? 한아가 움찔했다. 무슨 얘기?

  “이제 네가 잠들면, 너를 이전 전문가에게 데려갈 생각이야.”

  이전이라니 무슨 이전인지 알 수 없었다.

  “넌 우주를 잘 견딜 수 있는 아주 튼튼한 새 몸을 갖게 될 거야. 걱정하지 마. 이전되며 유실될 기억은 0.8퍼센트도 안 된대. 그 정도 유실률은 감당할 수 있잖아.”

  한아는 거부의 뜻을 나타내고 싶었지만 마음속의 격렬함은 미미한 신음으로 흘러나올 뿐이었다. 경민은 웃으면서 한아의 이마를 쓸었다. 다정한 몸짓이었지만 한아는 21세기 내내 이어져온 이 관계에 대해 회의를 품었다.

  “그렇게 거부감을 가질 필요 없어. 생각해보면 네가 하던 일들도 비슷했잖아. 특별히 사랑스러운 것들을 부활시키는 거지. 동의한다고 말해줘.”

  동의하지 않으면 나한테 그런 짓 할 수 없는 거야? 한아가 눈빛으로 물었다.

  “음, 사실 서류상으로는 이미 동의된 거긴 해. 기억나? 우리 결혼식 때 주례 선생님과 나중에 서류를 하나 작성했었잖아. 우주 공용어로 되어 있던 거.”

  한아는 기억을 더듬었고, 간단한 신고서라는 경민의 설명에 별 의심 없이 서명했던 게 기억났다. 한아의 오래된 심장이 철렁했다.

  “남겨질 날 좀 이해해줘. 너 없이 어떻게 닳아가겠니.”

 
 경민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한아는 그게 잘 설계된 시스템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그 모습에는 늘 약해져버렸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이러는 게 어딨어, 이 못 믿을 외계인 같으니. 한아는 임종 침상이 이토록 억울함과 기막힘으로 넘칠 줄은 몰랐다.

  “이 얘길 들으면 너도 분명 생각이 바뀔 거야.”

  경민이 급작스럽게 눈을 반짝였다.

  “유리씨와 유리씨 남편이 먼저 가 있어. 우리가 가면 깨어나게 해놨어. 유리씨는 하루도 채 고민 안 하고 동의했다니까.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

  그 카드를 꺼내다니. 한아는 맥이 탁 풀려서 그대로 죽을 뻔했다. 유리가 지독하게 보고 싶었다. 먼저 세상을 뜬 지 10년이 넘은 친구가. 다소 쾌락주의자였던 동양화가는 평균 수명까지 살지 못했고, 그 충격에 유리의 남편도 곧바로 뒤를 따랐다. 아니, 그랬나? 그게 자연스러운 죽음이었나? 한아는 갑자기 헷갈렸다. 

  어쨌든 유리가 없는 노년은 쓸쓸했고, 경민조차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언제나 남아 있었다. 다시 만나고 싶어. 10분이라도 좋으니 수다를 떨고 싶어. 아주 쓸데없는 얘기라도 하고 싶어. 남편 욕을 하고 싶어. 남편 욕을 바가지로 하고 싶어. 미저리인지 머저리인지 모를 외계인이라고. 유리라면 분명 편을 들어줄 거야. 들어……줄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우리 또 다 같이 있으면 진짜 재밌을 텐데, 그럼 동의하는 거지?”

  죽기 직전까지 경민과 이상한 동맹 관계를 맺어 일을 꾸민 유리가 원망스러우면서도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경민의 손바닥에 빛이 들어왔고 두 사람은 악수를 했다. 한아의 손바닥에 빛이 잠깐 옮겨왔다 희미해졌다.

  근데 그거 비싸지 않아? 또 엄청 빚지는 거 아냐? 한아는 지구에서의 한평생을 교통비를 갚느라 쓴 경민이 애처로워 눈빛으로 물었다.

  “거짓말 안 할게. 우주가 끝날 때까지 갚아야 할 빚을 질 거야. 하지만 너도 튼튼한 몸을 얻을 거고, 같이 이것저것 해서 갚으면 되지.”

  경민이 웃었다. 그토록 젊은 웃음. 들키지 않은 게 기적이었다. 한아도 웃고 말았다. 웃음과 함께 호흡의 리듬이 흐트러졌다. 더이상은 버티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한아는 장난스러운 눈을 한 경민을 마지막으로 보고 눈을 감았다.

 
 심장이 마지막 걸음을 할 때, 경민이 속삭였다.

  다시, 다시, 다시 태어나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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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스물여섯에 쓴 소설을 서른여섯 살에 다시 한번 고치게 되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과거의 자신에게 동의하기도 하고 동의하지 않기도 하며 같은 이야기를 통과해보았습니다. 점점 더 정교해지고 풍부해지는 작가가 되고 싶은 것과 별개로, 작은 사랑 이야기들에서 처음 출발했다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단추를 모으듯이 이름 모으는 것을 좋아합니다. 몇 명의 한아들과 마주친 적 있는데, 하나같이 멋진 여성들이어서 주인공 이름으로 꼭 써보고 싶었습니다.

  경민의 이름은 어린 시절 아래윗집에서 함께 자란 아는 동생의 것입니다. 늘 감탄할 정도로 활기와 재기가 넘치는 여성의 이름인데, 어느 쪽 성에도 상관없이 쓰일 수 있는 이름이기도 해서 즐겁게 빌렸습니다. 하지만 캐릭터의 나머지 부분은 ‘마음에 안 들었던 친구 남자친구들의 각종 면모’를 합쳐두거나 반전한 것이었음을 밝힙니다. 어쩌면 이 책은 유리의 시선으로 쓰였을 수도 있겠네요.

  주영과 유리는 아껴 마지않는 친구들의 이름입니다. 그 친구들의 빛나는 부분을 채 담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10년 동안 이름을 빌려줘서 고맙고, 10년 더 빌려주면 좋겠습니다.

  아마 다시는 이렇게 다디단 이야기를 쓸 수 없겠지만, 이 한 권이 있으니 더 먼 곳으로 가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2019년 여름

  정세랑

 

 
 

 





산동신사님이 100포인트 선물하셨습니다.
로즈박님이 100포인트 선물하셨습니다.
추천 (3) 선물 (2명)
IP: ♡.252.♡.103
산동신사 (♡.173.♡.19) - 2023/11/16 10:30:20

우주인은 수명이 얼마나 될가 상상해 봅니다. 한아는 우주에서 또 다른 세상을 살아가겠지요 ㅎㅎ.
단차님 올리시느라 수고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단차 (♡.252.♡.103) - 2023/11/16 10:36:07

둘은 아직도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겠죠?

완결까지 다 올리고나니 마음이 편하네요.ㅋㅋ
저야말로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포인트 선물도 감사드려요:)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되세요~

뉘썬2뉘썬2 (♡.169.♡.51) - 2023/11/17 07:09:37

단차단차 영차영차 끝내 소설이 완결댓네요.나는 단차소설 읽느라고
내꺼는 정리해서 올릴새도 없네요.허허

그리고 나두 한아처럼 오래덴것을 좋아해요.

단차 (♡.252.♡.103) - 2023/11/17 07:14:45

저도요, 오래되고 낡은 것에 정이 가요. 한아에 투영하면서 몰입감있게 봤어요.
이번에 여기에 올리면서 이 소설을 다섯번은 봤어요.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다음 집 궁금해요.
천천히 올려주세요 ㅋㅋ

로즈박 (♡.43.♡.108) - 2023/11/17 16:32:09

나도 죽으면 제발 우주로 보내줘..ㅎㅎ
우린 죽으면 머가 될가요?
요즘은 넘 바빠서 이제서야 몰아서 보네요..
저녁 먹고 또 나가봐야해서..ㅠㅠ
그동안 꾸준히 올려주셔서 너무 잘 보앗어요..고마워용~~
포인트는 어디다 다 써버렷는지 한도초과래요..ㅎㅎ
내일 드릴게용~~
편안한 주말밤 보내고요

단차 (♡.252.♡.103) - 2023/11/17 16:35:49

포인트 부담 갖지 마시고 시간 되실때 와서 재밌게 봐주시기만 해도 저는 보람을 느껴요.ㅋㅋ 같이 읽어주시고 댓글 도 많이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아마 죽으면 별이 되겠죠? 우주로 돌아갈 것 같아요.
뭐, 그건 나중일이고 일단 우리는 사는 동안 행복하게 보내보아요. 로즈박님도 편한 주말 보내세요~

단차 (♡.252.♡.103) - 2023/11/18 08:35:04

로즈박님 포인트 선물 감사드려요.
일부러 또 들러주시다니요.(◍•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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