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외전 3

3학년2반 | 2022.02.27 07:54:08 댓글: 0 조회: 488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1457

제 7 장 : 냉면인의 출혈(出?)
장무기는 놀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아니야. 지약의 무공은 그렇게 높지를 않아."
조민은 놀란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당신이 이미 ?구음진경?을 그녀에게 돌려주지 않았나요?"
"나는 그날 그녀가 심한 상처를 입은 것을 보았소. 알(?=아)다시
피 ?구음진경?은 본래 아미파(??駝)의 무공비급(俉殺澐?)이오!
그녀에게 돌려주었소. 그러나 방금 검은 그림자으 장풍은 얼음장같
이 차면서도 타오르는 불꽃같기도 했어. 그런 무공은 ?구음진경?
에는 없소."

조민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장무기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방금 그와 부딪혔을 때 그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않았
나요?"

장무기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내가 앞으로 한걸음 나아갔을 때 그가 강한 장풍으로 나를 공격
했기 때문에, 나는 급히 장풍을 막느라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었
소."
"마른 체구에 안면은 마치 죽은 사람 같았는데...... 맞아! 은리
가 그를 냉면인(???)이라고 했고 또 가짜라고 했으니, 혹 가면
(??)을 쓴 게 아닐까요? 그는 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조민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
다 문득 어떤 생각이 났는지 중얼거렸다.

"큰일 났다! 그자가 방금 서쪽으로 갔는데, 그곳은 광명정(?曄?)
이야. 설마, 설마......."

장무기와 조민은 중원(猖?)의 경계에 들어선 후, 명교도인(曄?
??)들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 광명정에 들르지 않았다. 그런데
검은 그림자가 그 광명정으로 간 것이다.

"금화파파! 방금 그 검은 그림자가 서쪽으로 갔어요. 명교에 일이
생길 것 같으니 제가 먼저 달려갑니다. 다른 사람들은 뒤따라 오십
시오."

장무기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쾌마에 몸을 던지며 앞으로 달려나
갔다. 상승왕도 말에 올라 뒤쫓으려 하는 찰나, 멀리 장무기의 목
소리가 울려퍼졌다.

"상 형! 잠시 후에 오시오. 나 먼저 가리다."
상승왕은 장무기의 외침 소리에 고삐를 뒤로 제끼고 말을 멈추었
다. 상승왕은 냉면인이 명교도인들을 기습할 것을 염려하여 장무기
가 먼저 다려가려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금화파파는 일찌기
명교도인들과 사이가 나빠져 교를 나온 후, 다시는 광명정에 한발
짝도 들여놓지 않겠다고 맹세한 바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상황이
매우 급작스럽게 변하였고 또한 그녀의 호기도 많이 누그러져 있었
다. 만일 명교에 일이 생긴다면 수수방관할 수만을 없는 노릇이었
다. 금화파파는 마음의 결심을 굳히고 어린 녹민을 힐끗 바라보았
다. 어린 녹민(??)을 놔두고 갈 수는 없었다.

조민은 그녀가 광명전의 위기를 걱정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금화파파, 당신은 하인을 시켜서 어린 녹민을 먼저 대도의 여양
부(?暫繞)로 데려가게 해주세요. 우리들이 광명정의 일을 처리하
고 이들을 따라가면 아마 대도에 도착하기 전에 그 뒤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

금화파파는 잠시 멈칫했으나 곧 조민의 뜻을 알아차렸다. 조민은
비록 여자의 몸이긴 하지만 그녀의 뜨거운 핏속에는 몽고인의 호기
가 흐르고 있어 위험에 직면해도 과감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 여
장부였다. 그녀는 냉면인이 얼마나 지독한 사람인가를 잘 알고 있
기에 부부가 일체가 되어 강적에게 대항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할 수 없군."

금화파파는 하인 몇 명을 평상복으로 갈아입혀 조용하고 안전하게
녹민을 영양왕부로 데려가도록 했다. 비록 몇 명 안 되는 하인들이
었지만 그들의 무공은 만만치 않았다. 웬만한 무림인(俉殮?)들은
그들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조민은 녹민과 헤어지자 곧바
로 말에 올라 앞으로 달려나갔고 그 뒤를 금화파파 일행이 따랐다.

옥문관에 이른 장무기는 역참(?瞻)을 자나가게 되자 말에서 내려
곧장 마굿간으로 달려갔다. 몽고인 몇 명이 앞에서 막아서자 장무
기는 장풍을 일으켜 그들을 모두 꺼꾸러뜨리고 서너 마리의 말을
빼앗아 앞으로 힘차게 달렸다.

말 안장도 없이 삼 일을 달려 광명정 아래에 이르렀다. 장무기는
말에서 내리자 경공을 이용하여 산꼭대기로 급히 올라갔다. 오르는
도중에는 명교도인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무슨 흔적이라도 없는지 열심히 찾아보았다. 산정
(雲?)에 이르니 많은 명교도인들이 질서정연하게 성화청(濡飄?)
을 향하여 가고 있었다. 교인들의 표정은 모두 엄숙해 보였지만 뭔
가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들은 모두 오행기
교도인(迹?????)들이었다.

장무기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냉면인이 벌써 성화청에 와서 파츆
꾼들에게 모두 철수토록 명령했다는 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지풍뢰(??憚?)의 사문(??)을 통과했다.

교인 한 명이 장무기를 알아보고 아주 기쁜 듯 외쳤다.

"장 교주께서 오셨다!"
장무기는 대답도 하지 않고 급하게 성화정문에 당도했다. 이때 쉰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 교주의 걸음걸이도 결코 늦지는 않군!"
냉면인이 다시 비웃는 말투로 말했다.
"명교도인 중에 당신 빼놓고는 어디 인물이 있겠소? 모두 밥통들
뿐이지."

장무기는 냉면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 몸을 돌려 곧장 양소(斫閏)에게로 다가갔다. 교주인 양소 우측
에는 광명좌사 범요(撓纏)가, 좌측에는 청익복왕(????) 위일소
가 서 있었고 그 아래쪽에는 오산인(迹韻?)이 서 있었다.

얼굴 표정이 침울했던 사람들은 장무기가 갑자기 나타나자 마음
속으로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때 냉면인이 침묵을 깨고
돌연히 말을 꺼냈다.

"당신들 스스로 성화불을 끄겠소, 아니면 내가 친히 손을 써야겠
는가?"

양소가 대답했다.
"귀하가 우리 명교와 무슨 나쁜 인연이라도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하겠소."

냉면인이 말했다.
"나는 착한 사람들을 현혹시키려는 당신들 명교인들의 농간을 보
았소. 당신들의 행동이 눈에 거슬려 더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소이
다. 그래서 이렇게 친히 걸음을 한 것이오."

양소가 냉랭(?=냉냉)하게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 성화는 귀하가 싫든 좋든 간에 몇백 년을 이어져 내려왔소.
오늘 당신의 말 한마디로 그렇게 간단하게 끌 수 있는 것이 아니오."

냉면인은 가엾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좋소! 당신들 마음대로 해 보시오."
"잠깐!"
장무기가 소리를 지르며 군중 앞으로 나갔다. 비록 현재는 교주가
아니었지만 그의 말에는 영웅기개와 천군만마를 잡은 것 같은 기개
가 넘쳐 흘렀다. 장무기는 즉시 몸을 굽혀 냉면인에게 예를 갖추고
말했다.

"몇 일 전에 귀하가 나를 공격하면서 손에 사정을 둔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있소! 하지만 오늘은 여러 말 할 필요없이 오직 한 마디
로 귀하가 먼저 나의 의심을 풀어주시오."

냉면인이 대답했다.
"당신이 먼저 말씀하시오."
장무기가 입을 열었다.
"은리(肇涅) 동생이 임종 직전에 나에게 한 말이 있는데 당신이
바로 냉면인이라고 하던데?"

장무기의 물음에 냉면인이 몸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내가 냉면인이오. 은리가 당신에게 다른 말 한 것은 더
없소?"
"최후의 한 마디가 있었소! 귀하는 '가짜'라고 외치며 죽었는데
이 뜻을 모르겠으니 나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시오."

장무기의 말에 냉면인은 주위를 둘러보던 또렷또렷한 눈빛을 거두
고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

"맞습니다. 이몸은 인피면구(?誕??)를 쓴 가짜요. 장 교주가
만약 이 인피면구를 벗길 수 있다면 어디 벗겨 보시오."

장무기가 대답했다.
"어찌 그럴 수 있겠소. 나의 무공 실력은 당신에게 미치지 못함을
알고 있소."
"그럼, 장 교주께서 성화를 꺼 주는 게 어떻소?"
장무기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대답했다.
"귀하의 명령에 따르지 못함을 용서해 주시오."
장무기는 주위를 쭈욱 둘러보며 다시 위엄스럽게 말을 꺼냈다.
"성화는 명교의 존망(??)을 상징하고 있소. 하찮은 이개 교인인
내가 어찌 수백 년을 이어 내려온 성화를 끌 수 있겠소?"

많은 사람들은 장무기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예전
의 장 교주를 하늘처럼 떠받들던 마음으로 돌아가 그의 영웅적인
기개를 우러러 보았다.
냉면인은 울화를 참아내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당신은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오?"
장무기가 대답하였다.
"귀하가 본교(??)와 어떤 원한이 없는 이상 산을 내려가시오.
그럼 제가 직접 모셔다 드리겠소."

냉면인이 대꾸하였다.
"좋소. 그렇지만 나에게도 한 가지 조건이 있소. 성화청의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해 내 앞에서 무릎을 꿇리고 자살하도록 해
주시오."

냉면인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분노의 눈빛을 거두지 못했다. 사실
이들은 만일 장무기가 교주의 이름으로 자살을 하라고 했다면 너도
나도 거리낌없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렇게 냉면인이 명교교인들
을 모욕하는 조건을 내놓자 주전(蹉祗)이 먼저 분노를 참지 못하여
욕을 내뱉었다.

"이런 무례하기 짝이 없는 놈아!"
주전이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분노를 터뜨리며 다른 욕을 말하려
는 찰나에 이미 그의 목덜미는 냉면인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다. 군
중들은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때 냉면인은 어느새
재빠른 신법(壬擾)으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장무기는 고
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음! 구음진경이로군!"
냉면인이 웃으며 말했다.
"장 교주, 당신은 역시 뭘 볼 줄 아는군. 그럼 다시 보시오. 이게
무슨 권법인가?"
냉면인은 왼손을 들어 성화를 향해 장풍을 내뻗었다. 성화와 냉면
인의 거리는 적게 잡아도 8장(晙)이나 떨어져 있었고 성화 앞에는
명교의 최고 고수들이 가득 서 있었다. 군중들은 냉면인의 장풍을
막으려고 모두 손을 들었다. 다만 교주인 양소와 광명좌사 범요만
이 뒷짐지고 선 채, 많은 무리의 군중으로 한 사람의 적에 대항하
지 않겠다는 듯 손을 뻗지 않고 있었다.

주전을 제외하고 청익복왕 위일소와 오산인도 모두 장풍으로 대항
을 했으나 모두 냉면인의 기세에 꺽이고 말았다. 장무기가 놀란 목
소리로 외쳤다.

"구양신공이다!"
"장 교주는 과연 영웅이오! 그럼 이 구양신공과 장 교주의 무공을
서로 견주어 보면 어떻겠소?"
"이 몸은 대항할 수가 없을 듯하오."
냉면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약 내가 두 손을 사용한다면 장 교주는 맞설 수 있겠소이까?"
장무기가 냉면인을 처음 대했을 때에는 비록 그의 무공에 방비를
못하여 지긴 했지만 다친 곳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냉면인의 무공
실력을 직접 확인한 지금은 마음 속으로 적지 않게 놀라고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용호교합(井暴?把)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한걸음 더 나아가서 서로 쌍장을 교환했더라면 장무기는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장무기는 잠시 망설이다 무언
가 마음 속으로 다짐을 한 듯 천천히 말했다.

"이몸의 말이 조금은 방자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두 시진 동안
은 능히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오."

냉면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장 교주, 그렇게 겸손할 필요는 없소이다. 수천 초라도 버틸 수
있으면 버텨야 하지 않겠소?"

장무기가 담담하게 웃므며 말했다.
"수천 초를 버틴 후에는 어떻게 하겠소? 귀하는 나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지만 나는 그대의 무공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소이다. 그
러나 당신이 만약 두 시진 내에 나를 이기지 못하고 계속해서 치열
한 싸움을 하게 된다면 이몸이 크게 이길 수 있을 것이오."

냉면인은 놀란 듯 말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이오?"
"당신은 구음진경과 구양진경을 모두 얻었소. 이 점에 대해서는
경탄해 마지 않소. 그러나 이 두 가지 신공은 어느 하나라도 수십
년에 걸쳐서야 터득할 수 있소. 귀하의 예지가 남들과 비할 바 없
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두 무공을 동시에 연마했다면 아직 그다지
큰 성과는 없을 것으로 생각하오."

냉면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장무기, 당신도 모르는 게 있소이다. 예로부터 무공을 음과 양,
두가지로 나눈 것은 범인들의 억지로 그렇게 한 것일 뿐이오. 사람
의 몸은 남녀를 막론하고 모두 음양의 두 기(褶)가 있소. 만일 음
기 하나만 단련하면 음은 강해지고 양은 약해져서 양이 음에 응할
수 없고 자연히 음기도 길러질 수 없소. 그러나 음양이기를 함께
단련하면 아주 빠른 무공을 연마할 수 있소."

장무기는 냉면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귀하의 그 한 마디 말이 책을 십 년 읽은 것보다 낫군요."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 너무 겸손할 필요 없소."
냉면인은 장무기와 말을 하면서도 오른손을 들어 쉬지 않고 장풍
을 쏟고 있었다. 위복왕과 몇 사람들이 그 장풍을 막으면서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소요이선(??)은 얼굴에 근심을 담고서 의연
하게 방관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들 두 사람은 명교에서는 이름
난 고수들이었지만 지금은 가담한다 해도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뿐더러 자신들도 곤경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함부로
나서지 못하고 다만 장무기가 나서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무기
는 지금은 비록 교주의 직분이 아니었지만 명교에 있어서 그의 위
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장무기는 오히려 전혀 아무 일도 없다는 태평한 표정으로 냉면인
에게 말했다.

"귀하는 세상을 뒤덮을 무공을 지녔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소."

냉면인이 놀란 듯 물었다.
"그게 무엇이오?"
장무기가 얘기했다.
"음양의 기운은 비록 두 기운이 있지만 수화(?飄)가 서로 건너다
니며 몸을 이루고 있소. 당신이 억지로 음양이기를 가하면 안 될
것이 없지만, 시일의 여유가 주어져야 수화가 서로 도울 수 있게
됩니다. 이몸이 귀하의 무공을 자연스럽게 보니 음기가 양기에 출
입(出?)하지 아니 하고 또한 양기 역시 음기에 출입하지 않고 있
소. 즉, 음양이기, 수화진기(?飄?褶)가 서로 건너다니는 경지에
아직 다다르지 않았소. 만일 누군가와 사력을 다해 두 시진 정도
싸운다면 수화가 서로 건너다니고 용호지세(井暴柵留)가 만나게 되
겠지요. 이때가 무공을 연마하는 무림인들로서는 생명이 가장 위험
한 순간으로, 무공을 모르는 노인이나 어린아이도 귀하의 생명을
가볍게 제압할 수가 있소."

냉면인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장 교주가 한 말에는 일리가 있소. 그러나 당신 역시 백밀일소
(王??允)한 게 있소."

장무기는 잠시 대꾸할 말을 잊었다. 냉면인이 계속 입을 열었다.
"내가 저 다섯 사람의 목숨을 뺏으려 작정한다면 순식간에 해치울
수 없다고 보시오?"

장무기는 냉면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사실을 인정하고 아무 말
도 하지 못했다.
냉면인이 계속 말했다.
"그때 장 교주와 겨루어 만약 싸움에서 진다 해도 아마 아무도 나
를 막지는 못할 것이오."

장무기는 냉면인의 말에 미소를 띄운 채 서서히 앞으로 나서며 말
했다.

"당신은 자신을 너무 높이 생각하고 있는 듯하오! 오행기(迹??)
는 어디 있는가?"

장무기의 말이 떨어지자 천지사방에서 응답의 소리가 전해 왔다.
많은 사람들이 뇌성같은 소리로 성화청이 울릴 만큼 요란하게 소리
쳤다.

장무기는 다시 냉면인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귀하는 먼저 내 말을 들으시오."
장무기는 냉면인이 고주일척(巢撰??)하여 다섯 사람의 생명을
앗을까 염려되어 짐짓 부드러운 말투로 입을 연 것이다.

이때 바로 금화파파의 그림자가 대청 입구에 나타났다. 뒤따라온
사람들 중에서 무공이 가장 뛰어난 그녀가 제일 먼저 도착했던 것
이다. 그녀의 눈빛이 서서히 대청을 지나 소요이선과 서로 마주치
자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를 전달했다. 금화파파는 알겠
다는 듯 대청문 입구를 지켜고 섰다. 이제 만일 냉면인이 도망치려
면 자삼용왕(朱源(?=愿)井?)을 제쳐야 했다.

잠시 후, 조민과 상승왕 그리고 소소가 말없이 금화파파의 옆에
도착했다. 장무기가 침묵을 깨고 말았다.

"명교 오행기 중에 예금기(赤??)는 활과 표창에 뛰어나고, 거목
기(洩迎?)에는 천 근이 넘는 거목들이 수십 그루가 있으며, 열화
기(?飄?)의 사람들은 모두 기름을 소지하고 언제든 불을 다룰 준
비를 하고 있으며, 홍수기(彪??)의 사람들은 모두 독수(??) 한
통 씩을 가지고 있으며, 후토기(馮勅?)는 땅 속에 구멍내는 일에
뛰어나오. 지금 오행기의 교인들은 모두 귀하가 손을 쓰기를 기다
리고 있소."

냉면인은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당신이 나라면 어쩌겠소?"
말투가 무척 날카로왔다. 만일 한 마디라도 맞지 않으면 당장에
손을 쓸 태세였다.
장무기는 의연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성화를 존중하오. 명교의 많
은 제자들은 만약 성화를 유지하지 못하면 성화와 함께 자신의 생
명도 소멸된다고 생각하고 있소. 오행기의 교인들은 이제껏 명교를
위해 사력을 다해 왔고 죽음에 초연하오. 귀하의 무공 실력이 비록
대단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사력을 다하면 귀하도 뜻대로 할 수는
없을 것이오. 나는 다만 귀하가 넓은 아량으로 이곳을 떠나주었으
면 하고 바랄 뿐이오."

힘이 넘쳐 흐르는 장무기의 이 몇 마디 말은 많은 명교인들의 심
금을 울렸다. 냉면인도 장무기의 말에 암중으로 수긍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는 하나도 거짓이 없었다. 사실 오행기의 교인들의 수백
개의 화승총에서 연기가 뿜어나오고, 도수가 하늘 전체에서 뿌려져
내리고, 또 후토기가 땅에서 어지럽히고, 거기다가 성청의 무공수
만도 수십 명이 넘게 있어 이들이 동시에 합세한다면 냉면인이 아
무리 탁월한 능력이 있다 해도 이 아수라장같은 곳에서의 살육을
면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냉면인도 굳이 모험을 하다가 이곳에서 장사 치러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장 교주! 그대는 흉금이 바다처럼 넓고 깊은 사람이오. 오늘은
내가 그대 앞에 무릎을 꿇은 셈이오."

냉면인은 씁쓸하게 웃으며 장풍을 거두었다. 위복왕을 위시한 다
섯 사람은 갑자기 압력이 줄어들자 전력으로 힘을 쓰던 반동으로
풀썩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장무기는 재빨리 손을 모아 고마움의
표시를 했다.

"귀하의 아량에 감사를 표하오!"
장무기의 말에 냉면인은 덤덤하게 말을 받았다.
"나는 매우 오랫동안 장 교주의 소식을 듣지 못하여 못 만날 줄
알았는데 오늘 이렇게 뜻밖으로 만나게 될 줄이야 어찌 알았겠소."

장무기는 냉면인의 말에 자신에게 오랫동안 어디 갔었느냐고 묻는
듯하여 무겁게 입을 열었다.

"멀리 페르시아에 가서 옛친구를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 오래 걸리
게 되었소. 중토(猖勅)에 돌아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소."

냉면인은 탄식하여 말했다.
"생각컨대 이는 천명인 듯하오. 명교의 명(鹽)이 길다고 할 수 밖
에......."

장무기는 냉면인의 말을 듣고 내심 놀라는 맘을 진정하기가 어려
웠다. 그의 말 속에는 다음날 고수들을 데리고 와서 결말을 내겠다
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몸의 당돌함을 용서하시오. 나는 당신이 왜 이러는지 그 까닭
을 모르겠소. 도대체 명교와 무슨 원한 관계가 있소?"

냉면이이 곧바로 대답했다.
"장 교주, 사실을 숨기지는 않겠소. 나는 명교을 뿌리 뽑은 후,
다시 소림과 무당으로 갈 참이었소. 그런데 오늘 이곳에 그대가 나
타났으니 나는 당신의 영웅스러움을 존경합니다. 그렇다면 자꾸 왔
다갔다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이번 중추절에 무당산에서 모든 은
원을 결말짓도록 합시다."

장무기는 그가 혹시 무림의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갖고 있지는 않
나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대답했다.

"장무기와 우리 명교도인들은 그대의 말에 동의를 표하겠소."
냉면인은 손을 모으고 말했다.
"그럼 여기서 이만 헤어지도록 합시다."
냉면인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재빠르게 신형을 돌려 군중들의 시
야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이 '......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냉면인
은 이미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져 저멀리 산 아래로 내달리고 있었
다.

냉면인의 이러한 신법은 장무기조차 흉내낼 수 없는 고도의 경공
술이었다. 대청 안은 갑자기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그들은 전 교
주인 장무기를 다시 만났다는 환희의 기쁨조차 표할 수 없을 만큼
긴장하고 있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서야 현 교주인 양소가 먼저 입을 열었
다.

"교주와 자삼용왕이 돌아왔으니 대사 중의 대사요, 기쁨 중의 큰
기쁨이오. 오행기는 모두 철수하고 천지풍뢰(??憚?) 사문에는
주연을 준비하시오."

군중들의 함성이 대청을 빠져나갔다. 장무기는 한 걸음 앞으로 나
서서 위복왕의 부상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도 부상이 심하지 않아
며칠 쉬면 될 것 같았다.

자삼용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양소와
광명사자 범요가 자삼용왕 곁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모든 이 희
비가 엇갈린 사태에 마음 속으로 흐느껴 울었다.

자삼용왕은 장무기에게 범요가 여양왕부사(?暫?繞?)의 일에 말
려들어 용모가 흉해졌다고 들었다. 옛날에는 명교에서도 소문난 미
남이었던 그의 얼굴은 온통 상처투성이었다. 미끈했던 피부는 이미
흉측하게 주름으로 가득차 있었다.

자삼용왕 대기사(殃屍?)가 광명정에 처음 왔을 때 명교의 영웅
청년들은 모두 그녀를 사모했었다. 광명사자 범요도 예외가 아니었
다. 대기사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후에 자신이 명교
를 나왔을 때 청년 교인들 사이에 반목이 생긴 것도 모두 자신과
관계가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삼용왕 대가사가 자신이 젊은 시절에 호승심이 강해 많은 형제
자매간에 정을 끊어놓은 사실을 상기하고는 부끄러움에 황급히 땅
에 꿇어앉자 범요는 재빨리 앞으로 나와 자삼용왕의 어깨를 부축하
며 말했다.

"오늘 이렇게 서로 만났으니 이 범요는 죽어도 여한이 없소. 자삼
용왕께서는 일어나십시오. 많은 형제 자매가 서로 만났으니 당연히
서로 화목해야지요."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아무런 말도 못하고 조용히 일어났다. 이때
교도 한 사람이 와서 연회가 준비되었다고 알려왔다.

연회가 파한 후에 장무기, 양소, 범요, 자삼용왕은 밀실로 자리를
옮겼다. 네 사람은 둥근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침묵을 깨고 장무
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냉면인의 내력을 알 수 있나요?"
양소와 범요 두 사람은 모두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부터 중추절까지는 아직 여덟 달이나 남았습니다. 그동안 명
교, 소림, 무당 세 파에는 아무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호
방회(析弊玉?)에는 아마도 많은 어려움이 발생할 것입니다. 양 교
주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습니까?

양소와 범요가 서로 쳐다본 후에 대답했다.
"지금 우선 해야 할 일은 바로 냉면인의 내력을 알아 보는 것입니
다. 그 다음에 소림, 무당과 서로 회동하여 상의한 후에 다시 행동
은 결정하도록 합시다."

장무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양 교주의 말대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럼 이번 일은 내일부
터 각자 분담하여 처리합시다. 그리고 양 교주! 요즘 명교 의병들
의 전황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죠?"

양소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범요를 바라보았다. 장무기도 고개를
돌려 범요를 바라보았다. 범요는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
을 못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설마 싸움에서 패한 것은 아니겠죠?"
양소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의병들은 가는 곳마다 적을 무찔러 기세가 등
등합니다."
"그것 참 잘 됐군요."
장무기의 호쾌한 말에 범요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의병들을 모두 명교에서 보냈
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명교교인뿐만이 아니라
한인(洞?)이면 누구나 군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장무기가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더욱 잘 됐군요!"
범요가 답답한 듯 말을 계속 이었다.
"주원장의 세력은 이미 우리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강대해졌습니
다. 그는 이제 광명정에 대해서 전혀 가치 없는 존재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냉면인의 배후와 주원장과는 적지 않은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양소가 급하게 말했다.
"범형, 너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장무기는 주원장의 인물 됨됨이를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 자신이
주원장의 독수에 걸렸을 때 재빨리 도망치지 않았다면 그의 손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때 주원장이 총단의 명령을 듣지 않고 명
교를 멸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범형의 염려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원나라를 이
땅에서 몰아내는 일이 우선입니다. 형제들의 걱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잠시 제쳐둡시다. 이런 말이 전해나가게 되면 명교의 앞
날에 불리합니다."

그 말에 양소, 범요 두 사람이 몸을 굽혀 응답했다. 장무기는 알
았다는 듯 계속 말을 이었다.

"내일 아침 일찍 나는 종남산에 갔다가 소림과 무당을 방문하겠습
니다. 범형께서는 연해(??) 일대의 여러 방파에 이 사실을 통지
해 주시기 바랍니다. 양 교주께서는 광명정에 유진(堤?)하시어 어
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십시오."

세 사람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삼용왕은 한마디 말
도 않은 채 자리에 앉아 있다가 장무기와 공적인 말을 마치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양소와 범요 두 사람은 장무기가 여자아이를 얻
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기이하게 여겨 물었다.

"어째서 아이는 안 보이지요?"
장무기가 그간의 사정 얘기를 하자 범요는 놀라서 말했다.
"여양왕 찰한특목이가 이미 대도를 떠나 섬서 일대로 출전을 하여
여양왕부 내에는 한 사람도 없지 않을까 두려울 뿐입니다."

장무기가 이 말을 듣고 멍청한 표정으로 말을 못 하자 자삼용왕이
말했다.

"장 교주, 너무 심려하지 마시오. 저도 범형과 함께 대도에 가겠
습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하루에 이틀 거리를 따라가면 녹민을 따
라 잡을 수 있습니다."

장무기는 자삼용왕과 범요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밀실을 빠져
나왔다. 군중들은 이미 연회를 파하고 대청과 뜰에서 각자 나뉘어
쉬고 있었다.

이튿날 새벽, 많은 명교의 무리가 하산하려 할 때 갑자기 냉면인
의 사자가 광명정에 나타났다. 성화청에 이른 냉면인의 사자는 바
로 현명이로(?閻??)였다. 장무기는 소스라치게 놀라 벌어진 입
을 다물지 못했다. 곁에 있던 조민이 한걸음 나서서 냉랭하게 말했
다.

"현명이로, 당신들은 어찌 지조를 버리고 매주구영(?嵯穗抵)하려
합니까?" (?嵯穗箏)

현명이로 가운데 녹장객(?茁選)은 호색(貶兪)하고, 학필옹(兎帑
?, ?=兎湯?)은 부귀를 탐했다. 이 두 사람은 원래 조민의 부하
였는데 나중에 범요의 계략으로 여양왕부에서 쫓겨났다. 두 사람은
고고한 성품을 잃은 폐운야학(??孜兎)처럼 동유서탕(?蹄?峙)하
다가 뜻밖에 냉면인을 만나 그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이들의
무공은 당세(謁由)에 능치 대적할 수 있는 자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민의 말에 녹장객은 고개를 돌렸고, 학필옹이 화가 난 듯 크게
소리쳤다.

"여양왕의 말은 못 믿겠소. 이몸은 암흑을 버리고 광명을 얻었소.
이제 이몸이 군주(璹嵯)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오?"

조민이 웃므면서 말했다.
"당신이 암흑을 버리고 올바른 길로 전향했다고요? 그래 어떤 좋
은 길로 전향했는지 궁금하군요?"

학필옹이 '흥'하면서 대꾸했다.
"우리가 냉면 대협(??暗?)을 따라 천하를 통......."
고개를 돌렸던 녹장객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그 말같지 않은 소리 그만 하시오! 오늘 우리는 냉령(??)을 전
달하러 온 것이지 입싸움하러 온 것이 아니오."

녹장객의 호통에 학필옹은 큰소리로 입을 열었다.
"명교의 교주는 속히 냉령을 받으시오!"
양소가 그의 거친 말투에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무슨 성지(濡?)라도 왔습니까?"
녹장객이 대답했다.
"거의 비슷하오. 당신이 바로 명교의 교주요?
"그렇소. 내가 바로 교주요."
양소의 대꾸에 학필옹이 소리쳤다.
"어서 빨리 무릎을 꿇고 영(梓)을 받지 못하겠소!"
양소가 웃으면서 말했다.
"만일 내가 무릎을 꿇지 않으면 당신은 냉령을 안 주겠죠. 그렇죠?"

학필옹이 말했다.
"그야 물론이지요."
그러자 양소가 몸을 돌려 걸어가면서 말했다.
"그럼 좋습니다. 나에게는 냉령 같은 것은 필요없소이다!"
학필옹은 양소의 말재주에 당하자 다급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이-, 어이-, 그 자리에 서시오!"
양소가 몸을 돌리며 다시 말했다.
"냉면인은 당신들 두 사람에게 반드시 냉령을 내 수중에 건네주도
록 명령했지요? 그렇게 하지 못하면 당신들은 살아남기가 어렵겠죠?
그렇지 않소?"

학필옹이 신기한 듯 외쳤다.
"당신이 어떻게 그 일을 알고 있소?"
양소가 웃으며 말했다.
"만일 내가 냉령을 받지 않으면 당신은 돌아가서 목숨을 잃게 됩
니다. 그러니 오히려 당신이 나에게 간처을 해야 합니다. 그렇죠?"

학필옹은 양소의 말에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말에 일리가 있소."
이에 양소가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니 어서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나에게 영을 건네주어야 하지
않겠소?"

양소는 원래 나이가 많았고 평사시에는 말을 하거나 웃는 일이 적
었다. 그런데 마침 장무기와 자삼용왕이 광명정에 다시 돌아온 것
에 대한 마음 속의 기쁨을 감추기 어려웠던 차에 이런 웃음거리를
보자 그들 두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학필옹은 벼슬에도 오르고 부자가 되고 싶었으나 이제까지 제대로
얻은 바가 없었다. 그러니 그는 관직이 높지 않은 사람을 만나도
매우 공손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의 무공만 가지고
논한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각
자 뜻이 있으므로 그 속사정을 알 수는 없었다.

양소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여 마치 임금이 신하를 대하는 듯하자
학필옹은 그 기세에 눌려 얼떨결에 무릎을 꿇으려 했다. 그 모습을
본 많은 명교인들이 참지 못하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이때 갑자기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양 교주! 조심하세요!"
녹장객은 사제 학필옹이 이렇게 어리석은가 생각하며 무릎 꿇는
그의 얼굴이 도대체 어떤가 보려고 몸을 웅크리는 척하면서 한 손
으로는 학필옹의 옷소매를 잡고 한 손으로는 가슴 속에서 낼령을
꺼내 양소에게 무섭게 던지며 말했다.

"명교 교주는 냉령을 받아라!"
한 줄기 흰 빛이 양소를 적중시키자 군중들은 경악을 했다.
양소는 좌수일초(侘???)로 냉령을 손바닥에 받고 나서 돌연히
'아-'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양소는 뭔가 심상치 않다는 표정으로
냉령을 다시 오른손으로 옮겼다. 그의 얼굴 표정은 이미 괴이하게
변하였다.

장무기가 앞으로 걸어나와 냉령을 건네받았다. 장무기는 손이 차
갑고 이상한 것을 느꼈으나 소리는 내지 않았다. 그는 구양신공을
끌어내어 두 손으로 냉령을 안전하게 받을 수 있었다.

녹장객과 학필옹은 이미 대소(暗尹)하며 득의양양하게 하산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교주의 명령을 받지 못하여 그들이 돌아가
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장무기의 손바닥에 놓여 있는 냉령은 초승달같은 모양에 온통 옥
(?)처럼 맑았으나 무게는 아주 무거웠다. 영(梓)의 위에는 산뜻하
고 아름다운 붉은 글씨로 몇 줄이 새겨져 있었다.


'중추절의 둥근달이 있는 무당산정에서 영웅대회를 개최하니 참가
하길 바란다. 냉령을 위반하는 자는 즉시 처단되리라.'

냉면인의 서명이 뚜렷하게 보였다. 양소가 기이한 듯 물었다.
"이것은 어떤 물건으로 만든 것일까요?"
장무기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이리저리 살피기만 하였다. 냉령은
마치 옥같으면서도 옥이 아닌 듯하고, 돌같으면서도 돌이 아니고,
쇠같으면서도 쇠가 아닌 듯 도저히 무엇으로 만든 것인지 알 수 없
었다. 장무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도 모르겠어요."
주전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도 좀 봅시다!"
그는 손을 내밀어 장무기의 손에서 냉령을 잡다 '아이쿠'하는 소
리를 냈다. 주전의 오른손 손바닥은 마치 불에 그을린 것처럼 시커
멓게 탄 자국이 났다. 이때 자삼용왕이 안명수쾌(?曄??)의 수법
으로 주전이 떨어뜨린 냉령을 잽싸게 낚아채서 자세히 살폈다.

"이 돌은 페르시아에서 나는 것으로 한혼석(吐幅?)이라 부릅니다.
냉면인이 이것으로 주전 형을 놀라게 할 줄을 몰랐는데요."

주전이 불복하듯 말했다.
"어디 다시 한 번 봅시다. 내가 그것을 손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
이 의심스럽습니다."

자삼용왕이 웃으며 말했다.
"됐어요. 이 돌의 질은 아주 부서지기 쉬워서 만지면 곧 부서져
버려요. 그러면 다시 긁어 모을 수 없어요. 만일 주전 형이 이 돌
을 박살내면 냉면인이 쫓아올 테고 그렇게 되면 주형은 페르시아로
이 돌을 구하러 가야 합니다."

군중들은 자삼용왕의 말에 크게 웃었다. 주전은 그 말에 냉령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물러나야 했다. 자삼용왕은 냉령을 양소에게
건네주었다. 양소는 단단히 기운을 넣고 냉령을 받아 성화청의 성
화 밑에 옮겨 놓았다. 군중들은 모두 냉령을 주게 삼아 여기저기서
토론을 벌였다. 주전은 여전히 불만인 듯 투덜투덜 욕을 해댔다.

"냉면인이 이렇게 뽐내는 것은 동도주(??嵯)가 되고 싶어서야.
차라리 자기 집에서 대회를 열 것이지 멀리 무당산까지 가서 뭔 짓
을 하겠다는 심사야?"

장무기는 주전의 말을 들으며 일행과 함께 명교에 작별을 고하고
질풍처럼 하산했다.

산 아래 도착하자 장무기는 조민과 소소(蹂鍮), 그리고 상승왕과
함께 종남산(?辰雲)으로 발길을 돌렸고 범요와 자삼용왕은 대도
(暗?)로 방향을 잡고 녹민을 쫓기 시작했다.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아 장무기와 세 사람은 이미 종남산에 이르렀
다. 그는 일찌기 전진교의 장교(雋?)인 백안덕룡(頑?鴦汝)이 자
신의 수명이 삼 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예언한 일을 생각했다. 그래
서 장무기는 자신이 해외에서 돌아오면 반드시 그곳에 다시 가리라
마음 먹었었다. 만일 그의 예언이 들어맞았다면 지금 이 시각에 백
안덕룡은 이미 이 세상에 있지 않을 것이다. 장무기는 더욱 걸음을
빨리하여 하루도 되지 않아 전진교에 이르렀다. 멀리 종남산을 바
라보던 장무기에게 슬픔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옛날 호화기파(砲?褶駝)의 전진교도관은 이미 온통 폐허로 변해
있었다. 보이는 곳은 모두 불에 타버린 나무와 검게 그을린 무너진
벽뿐이었다. 장무기는 백안덕룡의 흔적을 어디에서 찾아야 될지 몰
라 그저 넓디 넓은 폐허에 대고 절을 몇 번 한 뒤에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

세 사람은 그의 심경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모두 묵묵히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네 사람은 산기을 따라 걸음을 재촉했다. 차 반 잔을 마실 시간에
이미 활사인묘(???汭)의 금지 구역에 이르렀다. 장무기는 경계
비 앞에 발기을 멈추고 기(褶)를 모아 활사인묘 쪽을 향하여 소리
쳤다.

"양빙(斫?) 누님! 장무기가 만나러 왔습니다. 옥봉(??)을 잘
관리해 주십시오. 이번에는 호봉(怖?)을 가지고오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수풀 속에서 맑고 듣기 좋은 세 가지의 요금(??) 소리
가 들려왔다. 이윽고 황삼(?源, ?=愿)을 입은 양빙이 손수 나와
서 장무기 일행을 영접하였다.

장무기는 양빙에게 세 사람을 소개시켰다. 그녀는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조민과 소소의 손을 이끌고 앞장서서 걸어갔다. 장무기와
상승왕은 서로 바라보고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한참을 지나 동굴 입구에 다다르자 소취(蹂?)가 여러 시비들을
지휘하며 요리를 준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탁자에는 신선한
과일과(?=가) 맛있는 술이 가득 놓여 있었다. 장무기와 일행은 양
빙이 권하는 자리에 앉아 음식을 들기 시작했다.

"양빙 누님! 전진교의 백안덕룡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장무기의 말에 양빙이 대답했다.
"장 공자가 떠난 후, 백안 장교(雋?)께서 이곳에 한 번 오셨지요.
그분은 수명이 다하여 장 공자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다고 하시면
서 장 공자에게 전해달라고 어떤 물건을 저에게 맡기셨어요. 그리
고 그분은 그 다음날 돌아가셨어요. 가만히 따져보니 장 공자가 떠
난 지 꼭 삼 년째 되는 해였어요."

양빙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던 소취에게 말했다.
"네가 가서 백안덕룡 장교의 유물을 가져오너라."
장무기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백안덕룡의 학문을 잘 알고
있었다. 장무기는 백안 장교가 이미 도(?)를 깨우쳐 천인(??)과
같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여겼다. 아쉬운 점은 자신이 좀더 일찍 돌
아와 그를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이것이 종신 유감스
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양빙에게 다시 물었다.

"전진교가 어찌 저 지경이 되었습니까?"
양빙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장 공자의 공로(殺?)라고 할 수 있지요."
장무기가 아주 의아한 듯 되물었다.
"제 공로요?"
양빙이 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무기 동생도 기억할 거예요. 전에 전진도사(????)의 손에서
호봉 한 상자를 훔쳐서 나에게 주었지요."
장무기가 고개를 끄덕이자 양빙이 계속해서 말했다.
"저도 사부에게서 들은 적이 있어요. 서역에 호봉이 있는데 옥봉
의 천적이래요. 그러나 이 호봉은 모으기도 무척 어렵지만 또한 옥
봉과 서로 천적이라는 중요한 사실도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
데 그날 무기 동생이 서역 호봉을 가져왔다고 해서 사실 무척 놀랐
어요."

장무기는 그저 웃을 뿐 말이 없었다. 양빙이 계속 입을 열었다.
"무기 동생이 떠난 후 호봉을 나무 상자에 넣고 옥봉 몇 마리를
함께 넣었어요. 호봉은 옥봉을 보자마자 싸우려고 대들었고 옥봉은
겁에 질린 듯 싸울 뜻이 없어 목숨만 살려달란 듯이 등을 돌렸어요.
얼마 후, 옥봉은 모두 호봉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양빙은 옥봉이 호봉에게 무참히 패한 사실이 분한 듯 힘주어 말을
이어나갔다.

"그때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나무 상자를 불살라 호봉을 모두 죽일
생각이었습니다. 다행이도 소취가 한 가지 사실을 일깨워 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뒤의 일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을 겁니
다."

말을 여기까지 했을 때 소취가 이미 흰 천으로 싼 꾸러미를 가지
고 와서 장무기에게 건네주었다.

양빙이 한던 말을 멈추고 장무기에게 말했다.
"먼저 이것을 보시고 나서 말씀해 주세요."
장무기는 꾸러미를 공손하게 받아 들고서 흰 보자기를 풀었다. 그
안에는 단향목(雙?迎)으로 나무 합(擺)이 놓여 있었다. 뚜껑을 밀
어 젖히니 서찰(柚綴) 하나와 서적이 가득 담겨 있었다.

서찰을 가만히 보니 장무기에게 당부하는 백안덕룡의 글이 씌어
있었다.

< 장 대협, 노부의 수명이 다 되었습니다. 이에 이몸이 정리해 놓
은 전진교(???) 전적(??)을 대협에게 전해 주고자 양빙 아
가씨에게 이를 위탁합니다. 후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보존해
주십시오. 다년(??) 동안 명예를 누려온 전진교의 도(?)는 박
대정심(?暗秩?)합니다. 장 대협이 한가할 때 보시면 아마도 영
오(猪專, ?=邸殿)한 얻음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 말 늘어놓지
않고 잘 부탁드립니다. 백안덕룡 돈수(??) >
장무기는 대략의 내용을 구중에게 알려준 후 서찰을 가슴에 넣었
다.

"양빙 누님! 방금 얘기하던 중요한 얘기들을 계속하는 게 어때요?"
장무기가 화재를 바꾸자 양빙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때 소취가 '아가씨, 만일 불살라 버리면, 그 귀찮은 도사(??)
들이 호봉을 찾으러 왔을 때 번거로와집니다. 차라리 우리가 호봉
을 길들이는 게 오히려 장원지계(只?柵稅) 될 것입니다.'라고 말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취의 주도면밀한 생각을 칭찬해
주었다. 양빙이 계속 말했다.

"당시에 저도 소취의 말이 옳다고 여겼어요. 그래서 여러 사람들
이 호봉을 길들이려고 갖은 방법을 모아 시도해 보았지만 모두 허
사였어요. 그 호봉은 비길 데 없이 흉한(瀚討)하여 도리어 우리가
쏘일 판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참 소취! 그 방법은 네가 생각해냈
으니 네가 말해 봐라."

소취는 부끄러운 듯 사양하였으나 좌중이 모두 요구하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맛있는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한편으로는 소취가 호봉을 길들이는 방법을 들었다.

"방법은 사실 아주 간단했습니다. 어떤 동물이든지 모두 두려워하
는 것이 하나씩 있는데 이 호봉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저와 자매들이 여러 종류의 화훼(?河-화초)들을 호봉 앞에 놓았었
죠. 어떤 것들은 전혀 작용하지 않았고 어떤 화훼들은 호봉이 아주
잘 먹었습니다. 어느날 제가 견우화(?整?) 한 뿌리를 호봉 상자
에 넣었더니 호봉이 아주 무서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몇
번 시험을 해 본 후 이번에는 견우화를 옥봉 앞에 놓았더니 오히려
옥봉은 견우화를 잘 먹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견우화를 먹은 옥봉
을 호봉 상자 안에 넣었더니 흉폭했던 호봉이 옥봉을 두려워하며
피했습니다. 일이 이렇게 쉽게 끝난 것입니다. 사실 아주 간단한
것이었어요."

소취는 무슨 신기한 방법도 아니라면서 겸손한 표정으로 말을 끝
냈다. 양빙이 말을 받아 입을 열었다.
"이 호봉은 옥봉에 비해 너무나 지독해서, 저는 그놈을 순화시켜
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만일 도사 나부랭이들이 와서 화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그들이 감히 마구 덤빈 게 화근이었어요.
호봉을 순화시키는 것은 단지 참을성과 충분한 시간만 있으면 성공
할 수 있었을 텐데......."

조민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백안덕룡 어른이 죽은 후에 그들 제자들이 정말로 호봉 상자를
찾던가요?"

양빙이 얼른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전진교 제자들은 가면 갈수록 무력해졌지만, 장덕재
(遵鴦?)와 손덕무(誾鴦俉) 이 두 제자만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들
은 호봉 상자를 들고 나타나서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이 우리에
게 마구 욕을 해댔어요. 저는 화가 나서 잘 훈련된 호봉을 풀어 놓
았습니다. 호봉은 번식이 무척 빠릅니다. 무기 동생이 들고 왔을
때에는 먼길을 오느라고 이미 반은 죽어 있었지만 장덕재와 그들이
왔을 때에는 호봉은 이미 열 상자가 넘었습니다. 제가 호봉을 풀자
호봉은 도사들이 가지고 온 호봉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의 호봉까지
모조리 물어 죽였어요. 게다가 장덕재를 따라온 도사들까지도 모두
벌레 쏘였지요. 충분히 손봐 주었다고 생각되어 피리를 불어서 호
봉을 돌아오도록 했지만 그놈들의 야성(孜?)이 나타나 피리의 지
휘를 안 들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바로 그 호봉이 전진교도관에까
지 들어가서 도사들을 모두 쏘아서 죽게 하거나 부상당하게 만들었
습니다. 도사들이 놀라서 이리뛰고 저리뒤는 와중에 등이 넘어져
큰 불이 났습니다. 살아남은 도사들은 바삐 하산하여 도망가고 도
관은 불바다 속에 잠겨 어쩔 수 없었어요. 할 수 없이 호봉을 묘
(汭) 속으로 불로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큰 불은 꼬박 삼 일
낮, 삼 일 밤 동안 타고 나서야 꺼졌습니다. 그래서 무기 동생이
보신 그러한 상태가 된 것입니다."

양빙은 여기까지 말을 하고는 몹시 울적한 표정을로 울먹였다. 좌
중은 호봉이 사람을 쏘는 정경(盡?)을 상상하고서는 가슴이 뜨악
해지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어느 누가 옛날에 강호의 대교파(暗?
駝)로 명성을 누렸던 전진교가 호봉떼에게 궤멸되리라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장무기도 기분이 침울한 듯 말했다.
"전진교의 대세(暗留)가 점점 쇠약해진 것도 이미 수십 년의 일이
지요. 이 모든 일은 하늘이 정해준 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
행히도 백안덕룡이라는 인물이 나타나서 전진교의 책을 후세인에게
남겨주었으나 이제 이 교의 도사를 만드는 것 역시 부질없는 일이
되었군요."

장무기는 한동안 침침한 가슴 속을 진정하느라 멍한 표정으로 하
늘 끝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장무기는 양빙을 바라보며 입을 열
었다.

"야빙 누님!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주위 경치를 보면서 어찌 선
경의 음을 듣지 않을 수 있겠어요? 누님이 우리들의 범속한 기운
(妖戎柵褶)을 벗겨주세요."

양빙은 웃으면서 말했다.
"장무기! 당신을 갈수록 말을 잘 하시는군요. 도대체 어디서 배웠
어요?"

장무기는 양빙이 고의로 농담을 하는 것을 알고서 몰래 조민을 훔
쳐보았다. 그는 조민의 얼굴이 새빨개진 것을 보고서 흐뭇한 표정
으로 술을 한 잔 따라 마셨다.

"소취야, 들었느냐? 빨리 장 공자에게 한 곡 연주해 드려라."
소취가 입가에 엷은 웃음을 담고 말했다.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이때 홀연히 숲 밖에서 사람 소리가 났다.
"활사인묘의 주인은 들으라! 속히 냉령을 받으라!"
냉령의 사자가 일부러 내공을 넣어 큰 목소리로 낭랑하게 소리치
고 있었다. 그 소리에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술잔이 약간 흔들렸다.
몇 명의 시비들이 귀와 가슴이 떨리는 듯 휘청거렸다. 양빙이 크게
노하여 소리쳤다.

"누가 이토록 방자한가? 냉큼 모습을 나타내지 못할까!"
냉령 사자는 여전히 내공을 주입한 채 소리쳤다.
"나는 오늘 단지 명령을 전하러 왔을 뿐이다. 싸우고 싶다면 다음
날 겨루겠다."

양빙은 더욱 화가 솟구쳐 몸을 일으켜 숲 밖으로 달려갔다. 자움
기가 급하게 따라가며 말했다.

"누님! 조심하세요. 그 냉령은 차가운 기운이 이상하더군요."
잠시 후, 두 사람은 어느새 숲 밖에 도착하였다. 냉령 사자는 경
계비 앞에 서 있었다. 그자의 얼굴색은 녹색이었고 허리에는 장검
을 찼으며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회색빛 장삼을 걸치고 있었다.
장무기와 양빙이 나타나자 냉령 사자는 의젓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
다.

"나는 관문(??)이라 하고 호(泡)는 요동악마(纏???)로 통하
오. 오늘 주인의 명을 받들어 냉렬을 전하러 왔소. 누가 이곳의
주인이오?"

장무기는 상대가 그 악명 높은 요동악마라는 말에 심중으로 깜짝
놀랐다. 양빙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나에요."
냉령 사자 관문은 가슴에서 냉령을 꺼내 두 손으로 양빙에게 건네
주었다. 양빙은 장무기가 주의를 준 것을 기억하고 기(褶)를 우장
(幀雋)으로 옮기면서 냉령을 건네받았다.

냉령 사자 관문은 양빙의 손에 냉령을 건네자 몸을 돌렸다.
"가겠소."
관문의 표정과 태도가 어찌나 무례하기 짝이 없던지 양빙이 화를
참지 못하자 장무기가 말했다.

"누님, 돌아가요. 이 일은 제가 약간이나마 아는 바가 있어요."
장무기는 양빙의 손에 들려있는 초생달 모양의 냉령을 자세히 살
펴보았다. 혹시나 광명정에서 받은 것과 다르지는 않나 하는 생각
에서였다. 냉령에는 선홍색의 글씨가 광명정(?=무당산)에서 본 것
과 같은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중추절에 둥근달이 떠있는 무당산정에서 영웅대회를 개최하니 참
가하길 바란다. 냉령을 위반하는 자는 즉시 처단 되리라. 냉면인.'


양빙이 해괴한 듯 물었다.
"무당산이라! 이 일이 무당파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장무기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양빙에게 알려주었다.
"장 공자! 나는 거의 강호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는데 냉면인은
어떻게 나 있는 곳을 알았을까요?"

장무기가 대답했다.
"냉면인은 처심적려(?入?臆)한 인물이므로 상대하기가 쉽지 않
아요. 그러니 신중하게 의논해야 합니다."

두 사람은 다시 탁자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내가 전에 한 번 겨뤄 보았는데 냉면인의 무공은 확실히 정통한
구양진경과 구음진경이었어요."

양빙은 장무기의 말에 더욱 놀라 소리쳤다.
"구음진경이라고요?"
장무기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외람되게 제가 모르는 바가 있어 누님에게 지혜를 구할 게 있어
요."

양빙이 말했다.
"무슨 일인지 정확하게 말씀하세요."
"저는 일찌기 소림에서 나온 구양신공을 익혔고 이것을 아무도 모
르는 곳에 감춰 놓았습니다. 지금 소림사의 내공(?殺)을 보면 이
무공이 실전(林?)된 것을 알 수 있어요. 세상에서 이 내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저 한 사람뿐일 겁니다. 저는 이 무공을 얻고
나서 그 고마움을 표시하고자 소림사에 가서 방장 공문대사(囚?暗
?)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또 예전에 구음진경의 비급을 대략 몇
쪽 본 적이 있는데 저는 그것이 진정한 구음진경이라 여기고 의천
검(卒?盛) 속에 감췄어요. 그리고 아미파의 진파지보(?駝柵?)인
의천검을 장문인(雋??)인 주지약에게 전해 주었지요. 그러나 외
부인에게 전해질 리가 만무한데......?"

장무기는 잠시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끝마쳤다.
양빙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나의 구음진경이 어디서 났는지 묻고 싶은 거죠?"
장무기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조상과 아미파는 매우 심원한 관계였어요. 그래서 나으 ㅣ
구음진경이야말로 아미파의 원본이라 할 수 있지요."
"그것은 이미 오래 전에 유실(除林)되지 않았던가요?"
양빙이 웃으며 말했다.
"이것은 구두로만 전해 온 것으로 사본은 전혀 없어요."
양빙의 대답에 장무기의 얼굴은 오리무중에 빠진 듯한 당혹감을
띄고 있었다. 조민이 웃으면서 말했다.

"냉면인이 아직 음양상교(遭暫爲?)의 비법을 터득하지 못했으니,
양빙 언니는 구음진경의 무공으로 싸우고 당신은 구양진경의 무공
을 싸우면 되지 않겠어요?"

조민의 꾀에 장무기의 얼굴색이 환해졌다. 소소가 끼어들면서 입
을 열었다.

"중추절까지는 아직 칠 개월이 남아 있으니 그때까지 냉면인이 융
회일체(窕???)의 경지에 이른다면 그 또한 심히 번거로와질 텐
데요."

상승왕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 염려 놓으세요. 그때 가서는 너 죽고 나 살자 식으로 죽
어라 하고 싸우면 됩니다."

장무기는 상승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그렇게 쉽게 생
각할 수만은 없었다. 냉면인이 천하의 여러 문파를 없애고 자신이
직접 무림황제의 권좌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는 이상 분명
히 일인공수(??囚?)로 무당산에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장무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빙에게 작별을 고하고 하산길을 재촉
했다. 장무기 일행은 다시 하루가 걸리지 않은 시간에 소림사에 도
착하였다. 객승(選弛)이 장무기를 알아보고 방장실(瘟晙淋)로 안내
하였다. 장무기 일행은 공문대사와 인사를 나누고 좌정하였다.

"대사, 냉면인의 일을 아십니까?"
공문대사는 품속에서 냉령을 꺼내며 장무기의 말에 답했다.
"장 대협, 이것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장무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대사의 고견(俗?)은 어떻습니까?"
공문은 두 손을 합장한 채로 말했다.
"아미타불! 세사난측(由?蜃?)이라, 때가 되어야만이 알 수 있습
니다. 장 대협께서는 인심선택(?入?致)하시니 무림 도(?)의 중
임(脹?)을 맡아 주십시오. 그때가 되면 소림사도 당연히 참가하겠
습니다."

장무기는 황망히 궁신(橓壬)의 예를 갖추고 말했다.
"대사, 말씀이 과하십니다. 소생이 어찌 그 같은 대임을 해낼 수
있겠습니까?"

공문대사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장 대협이 명교를 통솔하고 다스린 일이 어찌나 질서정연하였던
지 무림동도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비록 퇴위(針
?)하였지만 군웅들은 모두 장 대협을 존경합니다. 장 대협께서는
무림의 중생을 위해서 사양해서는 아니 되오."

장무기가 여전히 강력하게 대임을 사양하자 공문대사는 손을 들어
흔들며 말했다.

"오 년 전에 시주(荑嵯)와 헤어지고 난 이후로 소식이 감감하여
무척이나 걱정하였소. 몇 일 전, 이 냉령을 받고서는 장 대협 생각
에 불안을 떨구지 못했지요."
"대사님, 이몸 부끄러워 진땀이 날 지경입니다. 사실대로 말씀드
리자면 소자는 이미 냉면인과 교수(??)해 보았습니다만 만일 그
가 양보해 주지 않았다면 소자는 필시 아주 심하게 다쳤을 것입니
다."

공문대사가 적지 않게 놀라 말했다.
"시주는 그 사람을 아십니까?"
장무기는 이제까지 벌어진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이야기해 주고
나서 궁금한 듯 입을 열었다.

"대사님, 소림사에 전해 내려오는 구양신공이 어찌하여 유실되었
지요?"

공문대사는 불호를 크게 외친 후 말했다.
"사실 그 신공은 유실된 지가 근 백 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일찌기 익힌 구양진경의 무공은 소림사의 것인데 모르시다
니요?"

공문이 대답했다.
"전해져 온 구양진경은 앞서 계셨던 고승(俗弛)께서 능가경에 써
놓은 것인데, 시주께서 익힌 것이 바로 그것이옵니까?"
"그렇습니다. 그 책은 제가 서역(??)에 숨겨 놓았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소생이 반드시 가져다 귀사에 드리겠습니다."

공문대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몸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소림사는 저의 생명을 구해 주었습니
다. 구양진경의 일은 그 은혜와 비교하면 대수로운 게 못 됩니다."
"시주는 심히 불(尤)과 연(?)이 깊소. 이것이 창생지행(剃唯柵?)
인데, 과연 행(?)이 무엇일고? 아미타불!"

공문대사의 말에 장무기가 입을 열었다.
"대사는 다른 초본(??)의 구양신공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습니까?"
"소승은 초본이 있다 없다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이 신공이
소림사에서 유실된 것이 근 백 년이 넘는다는 사실만큼은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장무기는 공문대사의 단호한 말에 갑자기 무엇에 놀란 듯한 표정
을 지었다. 장무기의 얼굴은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하였다. 조민 역
시 장무기를 바라보며 그의 얼굴색이 변한 것에 무엇을 감지한 듯
한 표정을 지었다.

강호에서 구음진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오직 주지약과 양빙뿐이
다. 그리고 장무기가 구양진경을 묻은 곳을 능히 추측해서 알아낼
수있는 사람은 모두 네 사람이 있다. 바로 은리와 소소, 그리고 조
민과 주지약이다. 은리는 이미 죽었고, 소소는 지금까지 계속 페르
시아 명교의 교주를 하고 있었으며, 조민은 장무기 곁에 있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사람은 바로 주지약뿐이다.

장무기와 조민은 동시에 주지약을 떠올렸다. 그리고 조민은 더욱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녹류산장(?力雲烝)의 폐허에서 냉면
인이 사납게 공격할 때 먼저 자신이 안고 있던 녹민을 공격했던 일
을 회상했기 때문이다.

조민이 놀라는 모습을 보고 장무기는 그녀의 손을 살짝 잡아주었
다. 조민의 손은 얼음장보다 찼다. 이때 공문대사의 탄식하는 목소
리가 들려왔다.

"아-! 장진인(遵??)이 만일 살아계셨다면 이 무림에 이런 재난
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공문대사의 이 뜻밖의 말에 장무기는 너무 놀라 자신도 모르게 소
리쳤다.

"뭐라고요? 태사조(梔??) 그분이, 그분이...... 돌아가셨다고
요?"
"아미타불! 시주께서는 중원(猖?)에 돌아온 지 오래 되셨는데도
아직 장진인이 돌아가신 것을 모르고 계셨단 말이오?"

장무기는 어느새 눈물을 흘리며 큰소리로 통곡하고 있었다. 그는
어려서 양친을 잃고 장삼풍(遵寃彈)의 보호 아래 유년시절을 보냈
다. 장무기가 현명이로의 한빙장에 당했을 때 장진인은 소림사에
수모를 받아가면서 그의 치료를 부탁하기도 하였다. 이 세상에서
장무기를 그토록 아끼고 보살펴 준 사람은 장삼풍 태사조, 한 사람
뿐일 것이다. 장무기는 그를 친조부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데
이렇게 그의 비보(郵?)를 듣게 되었으니 어찌 그 슬픔이 크지 않
겠는가!

장무기와 일행은 소리없이 흐느끼고 공문대사는 염불만 외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 지난 후, 장무기는 슬픔을 거두고 일어나 공문대사에게 작별
을 고하고 무당산으로 길을 떠났다. 장진인이 세상을 떠난 지는 벌
써 일 년이 지났지만 장무기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천
하의 사람들이 장무기가 먼 길을 떠나는데 혹시 몸에 병이라도 나
는 나쁜 일이 발생할까 두려워 함구(特手)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숭산(?=승산) 소림사와 무당산 무당파는 그다지 먼 거리에 있지
않았다. 수일 후에 장무기는 무당산에 도착하였다. 장무기는 일행
에게 먼저 산에 오르겠다고 말한 후,질풍처럼 산꼭대기로 뛰어갔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은 어디다 비할 데가 없
었다.

삼청전(寃??)에 이르렀을 때 장무기는 돌계단에 이상이 있음을
느꼈다. 처음에는 눈물로 아물거려서 그렇다고 생각했으나 몇 계단
을 오르면서 계단 위에 발자국이 찍혀 있음을 눈치챘다. 이곳의 돌
계단은 모두 청석(??)으로 깎아 만든 것으로 이미 닳아서 반짝거
렸다. 돌 위에 찍힌 발자국은 고도의 내공이 정밀한 고수가 아니면
남길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무기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다
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설사 냉면인이 바로 눈앞에 나타난다
해도 장무기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장무기는 단숨에 자하궁(朱颱循) 삼청전(寃??)으로 달려갔다.
정면 벽에는 태사조의 유상(除遠)이 높이 게시되어 있었다. 마치
생전처럼 흰 머리와 흰 수염, 온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유상의
앞에 송원교(陰??), 유연주(??贊), 장송계(遵飮聲), 은리정(肇
緣桭), 양불회(斫寓?)가 단정히 앉아 있었다.

"태사조!"
장무기는 자세히 볼 새도 없이 영당 앞에 엎드려 절을 하고 울부
짖다가 혼절했다.

정신이 들었을 때, 장무기는 자신이 정실(?淋, ?=稔)로 옮겨진
것을 알았다. 무당칠협(俉謁??) 중에 돌아가신 부친 장취산(遵?
雲)과 막내 막칠협(???)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분이 그를 바라
보고 있었다.

장무기는 곧바로 일어나 한 분 한 분에게 모두 인사를 올렸다. 그
리고 장무기는 다시 슬픔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은리
정 은육협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무기야, 태사조게서는 우화등선(汀票??)하시었으니 너무 상심
하지 말거라. 지금은 우선 냉령에 대해 의논하는 게 급선무인 것
같구나."

장무기가 깜짝 놀라 말했다.
"아니, 그럼 무당도 냉령을 받았단 말입니까?"

무당칠협 중의 송대협은 역리(?衍)에 정통하였고, 원래 무당(俉
謁)의 장문(雋?) 직(?)을 계승하고 있었다. 다만 애자(?侏)인
송청서(陰?柚)가 도적 진우량(?定馭)을 잘못 만나게 되어 숙부인
막성곡 막칠협을 죽이고 장삼풍의 일 장(?雋)에 죽게 된 후, 죄책
감에 못 이겨 늘 슬픔 속에 지내고 있었다. 이미 송원교는 칠순(?
?)이 넘어 머리가 서리내린 것처럼 하얗게 세어 있었다.

무당(?=무장) 장문의 직(?)은 이협(??) 유연주가 맡았다. 무
당칠협 중 무공으로는 유 장문이 최고 절정인 것 같았다. 그의 됨
됨이는 외강내열(?惜??)이었고, 전혀 의미 없는 말을 하거나 웃
음을 겉으로 나타내는 법이 없었다. 머리는 히끗히끗하였고, 얼굴
에도 적지 않은 주름이 새겨져 있었다. 앉아 있는 모습 역시 속으
로 품고 겉으로는 나타내지 않는 위엄있는 태도가 은연중 드러나
있었다.

"돌계단의 발자국은 바로 냉령 사자가 남긴 것이죠?"
장무기의 돌연한 물음에 유연주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렇다. 냉령 사자는 홍발노인(杓蜈??, ?=杓烏)이라는 사람이
다."

장무기는 놀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사람의 이름
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연주가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홍발노인은 사십여 년 전에 나쁜 짓을 너무 많이 저질러서 무림
인들의 공분을 샀다. 그때 무림정파에서 그를 사로잡았는데 다시는
중토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았단다. 그 당년(謁?)에
소림사 방장이 일념지인(??柵?)만 아니었어도 오늘과 같은 환
(?)은 없었을 텐데."

장무기가 입을 열었다.
"그자의 무공은 어떻습니까?"
"그자는 어려서부터 기인으로부터 무공을 전수받았고, 그 당시에
도 무림에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혈유생풍을 만들어 놓았지. 아마
지금은 더 많이 익혔을 것이다. 이번 중토에 다시 와서 대대적으로
악기(?褶)를 필히 떨칠 모양인 것 같다."
"냉면인도 패도(??)를 믿고 이 무당산에다 연무대(?俉庵)를 만
들 텐데, 정말 있어서는 안 될 당치도 않은 일입니다."

송원교가 나서며 말했다.
"무당산은 풍수(憚?)가 아름다운 곳이니 냉면인이 오려고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를 탓할 수만은 없습니다."

유연주가 장송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제(??), 사제의 생각은 어떠한가?"
장송계 장사협은 무당칠협 중에서 기지(拾?)가 가장 뛰어난 사람
이다. 또 유연주는 물욕이나 사리사욕을 버린 사람으로 난제가 생
기면 모두 이 사제에게 솔직히 얘기해서 의견을 물었다.

"적이 어둠에 있고, 내가 밝은 곳에 있으면 우선 적이 올 수 있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기 부부가 아미파에 가서 연락
을 하고 나는 명교 의병에 가서 실정을 알아 보겠습니다. 둘째 형
과 은육 동생은 길을 나누어서 섬서로 들어가 길을 가면서 녹민의
행방을 알아보십시오. 이 일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만일 녹민이
냉면인의 손에 떨어지게 된다면 우리는 투서기기(快???:쥐를 잡
으려다 그릇을 깰까봐 걱정하다)의 환난에 걸려 큰 우를 범하게 됩
니다. 큰 형과 세째 형 및 상승왕, 소소, 불회 동생들은 무당산을
지키세요. 둘째 형,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유연주가 장송계의 말에 동의를 표하였다.
"사제의 말대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장무기는 자신이 혼절해 있을 때 조민이 여러 가지 일들을 무당오
협에게 세세하게 알려주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음 속으로 그저 감
동할 뿐이었다.

"유 삼숙, 은 육숙, 두 분의 상처는 다 완쾌되었습니까?"
유대암과 은리정 두 사람은 적의 대력(暗淹) 금강지(?鋤?)에 의
해 전신의 관절이 부러져 버려 장무기가 치료해 준 적이 있었다.
은리정은 예전처럼 완쾌되었는데 유대암은 부상 당한 시일이 이십
년이 되어가도록 걸을 수는 있지만 무공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모두 좋아졌으니 무기는 아무 걱정 말아라."
장무기는 두 사람의 쾌활한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 장송계에게
물었다.

"사숙(??), 왜 명교 의병에 가시려고 하세요?"
장송계가 유연주를 한 번 슬쩍 보았다. 유연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송계가 얘기했다.

"사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말씀이 있다. '자고로 제왕이 나
라를 얻은 직후에는, 교활한 토끼가 죽고 나면 사냥개는 주인에게
삶아 먹히게 되고 잡을 새가 없어지면 좋은 활도 간직만 하게 되는
것(?齒?, 刹綏?, ???, 棧恂)과 같다'고 하셨지. 주원장은 겨
우 한 지방에 웅거(?舌)하고 있으므로 결코 천하를 얻을 수는 없
을 것이다. 나머지의 호걸들은 모두 자성문호(株??枰)한 자들로
오로지 주원장만이 명교의 견제를 받는다. 그렇지만 이 사람은 뛰
어난 재능과 무략이 있고 아울러 음흉하고 교활하기 때문에 방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나도 그를 의심하고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장무기는 장송계의 말을 듣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묵묵히 있었다.
마음 속으로 이 일이 절대로 주원장고 아무런 관계가 없기를 빌었
다. 그렇지 않으면 명교인들과 영웅호걸이 지극히 위험한 상태에
빠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협의를 끝내고 많은 사람들이 분담해서 일을 진행했다.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아 장무기와 조민은 이미 아미산에 이르러 접대를 맡은여
도사를 향하여 외쳤다.

"장무기와 조민이 아미장문 주지약 여협을 만나기를 구합니다."
접대역의 여도사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장무기는
영문을 모른 채 조민을 보았다. 그녀 역시 무슨 이유인지 몰라 눈
썹을 찌푸리고 있었다.

홀연지간에 아미산상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마치 큰 난이 임한 것
처럼 매우 긴박한 종소리였다. 잠시 후에 패금의(??拙)가 먼저
앞장서서 도관에서 나오고 그 뒤로 독무염수(?午在?) 정군민(晉
宿?)이 나오고 있었다. 장무기는 정민군을 보자 심중에 울화가 치
밀어 올랐으나 겉으로는 내타내지 않았다. 뒤이어 정현사태(???
梔)가 검을 잡고 급하게 나타났고 정공(?囚), 정조(??), 정혜
(?愎)의 정자(?做) 무리의 여도사들이 뒤따랐다. 맨 뒤로 연장자
인 여제자(贓?侏)가 속가(戎?) 제자들을 데리고 한쪽에 섰는데
이 여제자가 바로 소몽청(輪例?)이었다.

장무기는 아미파 사람들이 모두 장검을 두르고 자기를 성난 눈으
로 쏘아보는 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영문을 몰라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나온 후에 패금의가 한 발 내딛고서는 물었
다.

"장 대협 부부가 이곳에 무슨 용무가 있습니까?"
장무기가 대답도 하기 전에 누군가 비아냥거렸다.
"흥! 족제비가 닭에게 세배드리러 왔으니 그 마음 씀씀이 한번 가
상하구나!"

장무기가 눈을 들어 보니 그 말을 한 사람은 바로 정군민이었다.
장무기는 그녀의 성격이 비열하고 음흉한 것을 알기에 그를 상대하
지 않고 패금의에게 궁신(橓壬)하며 말했다.

"장무기 부부가 장문 주지약을 만나기를 구(穗)합니다."

그러자 패금의의 눈 언저리가 붉어지면서 말했다.
"장 대협, 주 사저는 이미 사 년 전에 살해당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장무기와 조민은 대경실색했다.
"장무기, 이 일은 당신과 관계없소?"
정군민이 톡 쏘는 말투로 소리쳤다. 장무기는 해명하려 했으나 조
민이 노하여 소리쳤다.

"정가야, 악독한 말로 남을 중상모략하지 말아라!"
정군민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장(遵)의 큰부인이 누구인가 했더니 영웅티 내는 몽고 오랑캐인
이었군! 흥!"

조민은 얼굴색이 하얗게 질리도록 화가 나서 검을 뽑아 싸우려고
일어섰지만 장무기가 그녀를 막았다. 장무기는 조민이 일찍이 아미
파의 몇 사람을 잡아 만안사에 가둔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바로 정
군민이 그 속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미의 아랫사람, 윗
사람이 모두 화가 난 얼굴로 조민을 애워쌌다. 장무기는 속으로 오
늘은 절대로 싸울 수 없다고 생각해서 즉시 패금의에게 말했다.

"패 사저, 저는 요 몇 년 동안 멀리 서역에 가 있었습니다. 그래
서 중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 패 사저가
주여협의 피살 경위를 알려주지 않겠습니까?"

패금의가 말했다.
"무재(午?)한 제가 주 장문사저의 죽음으로 인해 장문의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안으로 들어가시어 말씀 나누지요."

장무기가 몸을 굽히며 말했다.
"제가 아미장문 패 여협을 뵙겠습니다."
조민도 따라서 첨임(??: 부녀자의 절)으로 예를 나타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장 대협, 조 여협,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패금의는 말을 하면서 손을 내밀어 두 사람을 인도하였다. 두 사
람이 막 말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정군민이 또다시 소리쳤다.

"잠깐, 몽고인은 아미관에 한 발짝도 들여놓을 수 없소!"
장무기는 너무 화가 나서 정광폭사(秩???)의 눈으로 정군민을
직시했다. 정군민도 장무기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미파를 없애려 해도 아무것도 두렵......."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현사태가 엄한 목소리로 정군민으 꾸짖
었다.

"군민아! 쓸데없는 소리 그만 두지 못할까!"
정현은 멸절사태의 대제자로 멸절사태가 죽은 후에 아미파 안에서
그녀의 배분이 최고였다. 그녀의 큰 고함소리에 정군민은 감히 따
르지 않을 수 없어 즉각 궁신하고 물러갔지만 얼굴에는 화가 난 모
습이 역력했다.

장무기와 조민은 아미관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장문 패금의
와 정현사태가 안으로 들어와 정실 중앙에 앉았다. 패금의가 차(脊)
를 권한 후에 입을 열었다.

"사 년 전에 주 사저는 아미파에 돌아온 즉시 모든 파의 상하(袁
台) 귀빈을 초청하여 장문의 자리를 저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주 사
저는 후산(避雲) 목실(迎淋) 한 채를 짓고 그곳에서 좌관(借?: 좌
선수업)을 하시느라 밥과 차를 나르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들어가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삼 개월 후인 어느 야밤에
후산(?=호산)에서 돌연히 참혹한 소리가 들려서 모든 제자들이 놀
라 깼습니다. 사람들이 황망히 후산으로 갔더니 주 사저는 이미 피
바다를 이룬 땅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머리...... 머리는 적이 중
수법(脹?擾)을 가해서...... 박살을 내버려 이미 숨이 끊어져 있
었습니다."

비록 수년이 지난 일이었지만 패금의는 말을 하면서 여저히(?) 처
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현은 듣지 않은 사람처럼 얼굴에 무표
정한 빛을 띄우고 있었다. 마치 생사의 고(素)와 낙(呻)을 모두 간
파(?啄)한 도인 같았다.

장무기가 답답한 듯 물었다.
"적의 행방은 찾을 수 있었나요?"
패금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적은 무림의 고수같아 보였지만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요 몇 년, 많은 문하의 제자들이 다방면으로 조사했으나 역시 별다
른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몇 일 전에 냉령을 받게 된 일
이 더 중대해서 제자들을 모두 암중(?猖)으로 돌아오도록 했습니
다."

장무기가 놀라서 물었다.
"아미파도 이미 냉령을 받았습니까?"
패금의가 끄덕이며 물었다.
"무당산으로 장소를 정했던데 설마 무당파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
은 아니겠지요?"

장무기는 그동안의 사정 얘기를 했다. 정현과 패금의 두 사람은
그 연유에 대한 추측이 맞아떨어지지 않아서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장무기는 마음 속으로 주지약이 피살된 것은 구음진
경 때문이란 것을 알고 더이상 묻지 않고 말했다.

"패 사저, 저...... 저는 주 장문의 영혼이라도 만나보고 싶습니
다. 가능할까요?"

장무기와 주지약의 관계는 천하가 다 알고 있는 일이었다. 패금의
가 긴 한숨을 쉬더니 바로 몸을 일으켜 세워 앞에서 인도했다.

잠시 후에 아미산의 후관(避?)에 다다르니 무수히 많은 능대(?
庵)들이 높이 솟아 있어서 분위기가 자못 엄숙하고 경건했다. 이곳
에는 아미파의 네번째 장문인과 많은 도고(?少) 청령(??)들이
고이 잠들어 있었다. 패금의가 한 묘비 앞에 무릎을 꿇고 세 번 머
리를 조아려 절을 하고 두 손을 합장한 채 옆으로 물러났다.

장무기는 두어 걸음 나아가 묘비에 새겨진 몇 줄의 글씨를 보았다.
'아미파 제 사 대 장문인 주 여협 주지약의 묘(汭). 아미파의 제
오 대 장문인 패금의와 동문이 삼가 세우다.'
장무기 역시 무릎을 꿇고 세 번 절을 한 연후에 일어나 옆에 섰다.
조민 역시 감개무량하였지만 묘 앞에 서서 세 번 국궁(塾橓: 허리
만 굽혀서 하는 절)만 하였다. 장무기는 이 두 여자가 물과 불의
관계인 것으 알았기에 조민이 이렇게라도 해준 것이 자기의 얼굴을
보아준 때문임을 알았다.

이제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져서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많
은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참연(尖?)했다. 장무기는 고개를 깊게
숙이고 있다가 조민과 함께 아미산을 내려갔다.

아미산은 천하에 이름난 풍경의 명소였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한
없이 무거워서 그것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x x x
장무기와 조민은 아미산을 떠난 후에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
았다. 장무기는 힐끗힐끗 조민을 바라보다 겨우 입을 열었다.

"민 누이, 나는 곤륜산에 가서 구양진경을 가져오려고 하는데, 누
이는 먼저 무당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소?"

조민과 장무기는 결혼한 이후로 몇 년 동안 단 하루도 서로 떨어
져 본 적이 없었다. 조민은 지금 역시 떨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
장무기는 할 수 없이 그녀를 데리고 갔다. 두 사람은 곤륜산 기슭
에 도달했다. 다시 몇 일을 더 지나가니 지난 날 장무기가 떨어졌
었던 절벽에 다다랐다. 절벽 아래서는 운무만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얼마나 깊은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조민은 고개를 숙이
고 아래를 내려다보다 어질어질하고 눈이 아물거리자 장무기의 팔
뚝을 꽉 움켜잡았다. 조민은 사랑하는 남자가 이전에 여기에서 떨
어진 적이 있었는데도 죽지 않았던 것은 착한 사람은 하늘이 도와
준다는 그말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임을 마음 속으로 되새기며 그
저 하늘의 상제(袁?)님께 감격해 마지 않을 뿐이었다.

이렇게 조민이 눈을 감고 생각에 젖어 있는데 홀연히 몸이 허공으
로 붕 뜨더니 바로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귓가에는 바람소리만 횡
횡 지나갈 뿐이었다. 조민은 눈을 떴다가 깜짝 놀라 장무기의 품에
더욱 안기었다. 장무기는 그런 그녀를 안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
다.

옛날 주장령(錯只?) 같이 서툰 사람도 장무기를 잡고서 떨어지는
속도를 줄일 수가 있었는데 장무기의 무공은 그보다 열 배가 넘는
실력이었으니 자유자재로 속도를 조정할 수 있었음은 두 말할 나위
가 없었다.

그는 두 팔을 양 옆으로 벌려 떨어지는 속도를 아주 느리게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장무기가 말했다.

"다 왔소!"
조민은 눈을 뜨고서는 몹시 아쉬운 듯 장무기를 바라보았다. 장무
기는 그녀의 붉어진 뺨을 보고 참지 못하여 살짝 입맞춤을 해주었
다.

이때 두 사람은 절벽에서 약간 튀어나온 암석(??) 위에 있었다.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절벽 꼭대기들이 높이 솟아 있어 아득히 바
라보일 뿐이었다. 발 아래를 굽어봐도 골짜기의 끝은 보이지 않았
다. 조민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다 고개를 돌려보니 장무기
가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옆에 산 동굴이 있었다. 조민이 막 몸을 숙
여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후-'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이상한 물체
하나가 동굴에서 날아왔다.

조민이 급히 손을 뻗어 잡아서 보니 그것은 잘려진 사람의 모으
경골(?誦)이었다. 그녀는 '아-' 소리를 지르며 그것을 심곡(?贖)
에 던져버렸다. 끊이지 않고 '후-', '후-'하는 소리가 나면서 인체
의 토막난 굉골(?誦), 관골, 늑골(?誦)이 계속 날아왔다. 조민은
감히 손으로 잡을 수가 없어서 뼈들이 몸 앞에 떨어지기를 기다렸
다가 장력을 이용하여 심곡으로 떨어뜨렸다.

조민은 장무기의 짓궂은 장난이란 것을 알고 화가 나서 말했다.
"장난꾸러기 같으니라고! 당신이 멈추지 않으면 내가 암기(??)
를 던질 거예요."

또다시 '후-'하는 소리와 함께 뼈다귀가 날아오는데, 그 속도가
너무 빠르고 강해서 조민은 장력을 쓸 수가 없어 덥썩 손으로 잡았
다. 고개를 숙여 자세히 보니 사람 해골이었다. 조민은 놀라 괴성
을 지르며 해골을 멀리 던지고 씩씩거리며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제 8 장 : 망가지는 산하(雲泰)
동굴은 음침하고 어두웠다. 동굴 벽을 더듬으며 가던 조민은 손에
뭔가 딱딱한 이물(??)이 느껴져 자세히 더듬어 보니 사람의 지골
(?誦) 같았다. 그녀는 무서움에 큰 소리로 장무기를 불렀다.

"무기 오라버니, 당신은 어디에 있어요?"
암흑 속에서 장무기의 목소리가 전해 왔다.
"나 여기 있어. 당신이 기어오던 대로 계속 오면 되오."
조민은 그의 말투가 아주 평담(?岳)하자, 힘이 든 것을 잊어버리
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엔 그에게 화내지 않는 것이 좋겠
다.' 몇 장을 기어오르니 갑자기 앞이 밝아졌다. 조민은 더욱 속도
를 빨리해서 앞으로 달렸다. 잠시 후에 또 다른 동굴 입구에 다다
르니 장무기가 동굴 벽 좌측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녀는 단걸음에 달려가 장무기의 어깨를 치려 하다 그의 처참해져
있는 모습에 공중에 있던 팔이 뻣뻣하게 멎어 버렸다. 눈길을 돌려
보니 돌벽 위에 두 줄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 한 줄은 '장무기 경
서(?=결서)를 묻어둔 곳', 또 한 줄은 '장무기가 남긴 ?구음진경?
에 감사하다-냉면인' 이었다.

장무기의 앞에는 한무더기의 유포(??: 동유(??)를 칠한 방수
포)가 널려 있었는데 맨 위의 한 권의 책 이름은 또렷하게 ?구음
진경?일고 쓰였는데, 오른쪽 윗부분이 이미 없어졌고 땅에는 약간
누런 가루가 한 켜 쌓여 있었다.

조민은 책이 그대로 있음에 반가워 손을 내밀어 잡았다. 책의 감
촉은 아주 부드러웠다. 이때 장무기가 슬퍼하며 말했다.

"?구음진경?, ?구양진경?, ?호청우 의경(怖?整??)?, ?왕
난고 독경(?神梳??)?의 모든 경서를 냉면인이 내공을 사용하여
가루로 만들어 버렸소."

조민은 화가 나서 말했다.
"이런 악랄한 냉면인!"
장무기는 한(土)이 사무치듯 말했다.
"냉면인, 이 장무기가 너와 끝까지 싸우지 않으면 맹세코 대장부
가 아니다!"

조민이 황급히 말했다.
"무기 오빠, 서두르지 마세요. 이 일은 반드시 만회할 수 없는 것
은 아니예요."

장무기는 '어?'하면서 마음이 갑자기 밝아졌다. 그는 조민의 심지
(入?)가 아주 영리하여 반드시 어떤 방법으로 보완할 수 있으리라
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조민이 말했다.
"이곳에 청수(??)가 있을 거예요. 빨리 가서 가져 오세요."
장무기가 이에 응하여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에 장무기는 빈 손
으로 돌아왔다.

조민이 말했다.
"물이 없어요?"
장무기는 손가락으로 물렁물렁한 배를 가리키고 있었다. 조민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당신은 정말 바보군요. 이런 바보같은 방법을 쓰다니, 경서가 있
는 곳으로 가서 모두 골고루 물을 뿌리세요."

장무기는 그대로 뱃속에 가득찬 청천지수(??柵?)를 경서 위에
뿌렸다.

조민은 경서가 축축하게 젖자 입을 열었다.
"됐어요. 당신은 구양신공으로 말리세요."
장무기는 비록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주문대로 경서를
말렸다. 조민은 유포로 경서를 꼭 묶고는 숨을 길게 쉬며 말했다.

"다 됐어요!"
장무기가 기이하게 여기자 조민이 말했다.
"제가 대도(暗?)에 있을 때 표화대사(?驃暗?) 한 분을 알았는
데 그분의 이름은 구양묘수(睡暫濊?)예요. 그는 그림을 표구하거
나 혹은 위조품을 제작하는 사람인데 찾아오는 사람의 발길이 끊이
지 않았어요.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사기를 당했지요. 관인
(??), 귀인(崧?)이 의뢰하는 표구는 대부분이 진품이었어요. 이
때 구양묘수가 모사하는 수준은 이미 가짜를 진품처럼 만들어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지요. 그는 신의 경지에 이른 그런 훌륭한 진품
들을 어떻게 해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어요. 그자는 이리저리 궁
리 끝에 한 가지 절묘한 방법을 생각해냈어요. 무기 오빠, 당신이
어떤 방법인지 알아맞춰 보세요!"

장무기는 웃으며 말했다.
"민 누이, 이렇게 남편을 난처하게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오.
난 평생을 생각해도 맞출 수가 없으니 당신이 그냥 얘기해 주시구
려. 그런데 잘못 해서 진품이 훼손되는 일은 없소?"

조민이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사람들이 모두 당신처럼 바보거나 백치인
줄 아세요?"

장무기가 또 이어서 말했다.
"그럼 그림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단 말이오?"
조민이 그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당신 도대체 들어요. 안 들어요?"
장무기가 말했다.
"부인, 화를 식히시오. 소인이 마음을 비우고 가르침을 받겠소."
조민이 말했다.
"이런 진품들은 모두 상등품의 견지(??)로 그림을 그려요. 그래
서 물에 들어가면 흐물흐물해지지요. 이 견지는 찬 물에 담그면 자
연히 약간 두꺼워지죠. 문장(澳葺)을 이렇게 윗면으로 놓아요. 구
양묘수의 두 손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묘(濊)했어요. 대나무
날로 얇게 한 겹을 떼어내면 진품이 한 장으로 떨어져요. 그 후에
나머지 연지는 모두 서늘하게 해서 말려 표구를 하면 원 진품과 전
혀 다르지 않아요. 그러나 가치에 있어서는 떼어낸 종이와는 상대
가 되지 않아요. 구양묘수는 떼어낸 종이도 서늘하게 해서 말린 후
정성을 다해 표구를 해요. 그러면 이것 역시 진품이 되는 거죠."

장무기는 설명을 듣고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당신이 진품이 한 겹 떨어진 후의 가치는 떼어낸 그 한 겹과는
다르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로 다르오?"

조민이 화내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멍청하기 이를 데 없군요. 이 첫 장에 힘이 많이 들
어갔으니 자연히 기품이 묻어 있죠. 원품(?鐸)이 떼어내진 후 글
정취는 약간 넓어져요. 단, 비교해 보지 않는다면 발견해낼 수 없
어요."
장무기는 너무 놀라 황홀할 지경이었다.
"당신, 모두 몇 겹이나 떼어낼 수 있는지 맞추어 봐요."
장무기가 놀래서 말했다.
"한 겹만 떼어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설마 다시 또 한 겹을 떼어
낼 수가 있겠소?"

조민이 말했다.
"구양묘수의 말에 의하면 그가 가장 많이 떼어낸 것이 범관(撓?)
의 '계산십리도(聲雲?咽愛)'란 그림으로 일곱 번이 넘게 떼어냈다
고 했어요."

장무기는 길게 한숨을 쉬며 묵묵히 있었다. 조민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장무기가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
"훗날에 우리 두 사람 강호에서 물러나 은거하면 당신은 이런 절
묘한 손 기술로 남편을 먹여 살릴 수 있겠구려."

조민이 말했다.
"그렇게까지 정통하지는 못해요. 자, 가요. 밖에 어떤 다른 무릉
도원이 있는지 보도록 해요."

두 사람은 칠요팔괴(?甸??)하듯이 손을 잡고 걸어나가 또 다른
동굴 입구에 다다랐다. 그곳에 이른 조민은 자신도 모르게 놀라 탄
성을 질렀다. 눈앞의 정경은 오색찬란하게 화려한 붉은 꽃과 푸르
른 나무들이 서로 잘 어울려 마치 선경(??)같았다.

눈을 들어 주위를 살펴보니 사면이 온통 설봉삽운(??爰?)이 고
고한 경치였다. 그곳은 산세가 험하여 기어오르지 않으면 출입할
방법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동굴 입구에서 취곡(?贖)의 끝은 여전히 몇 장(晙)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가볍게 풀 위에 내려앉았다. 풀 향기로운
냄새가 코에 전해져 왔다.

여기저기에서 아름다운 새소리가 들렸고 나뭇가지에는 신선한 과
일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작은 새들이 가지 위에서 지지배배 지
저귀고 있는 정경은 바로 다름아닌 무릉도원이었다.

"무기 오빠, 당신이 그 당시에 이렇게 아름다운 명산승경에 있었
다니 정말 행운이었어요. 만약 이곳에서 오래 산다면 정말 아름답
겠어요."

장무기가 말했다.
"그것 참 좋겠소. 냉면인을 제거하고 나서 우리 둘이 이곳에 은거
하면 어떻겠소?"

조민은 비록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건만 지금도 이런 소리를 들
으면 대단히 감미롭게 느껴졌다.

"내가 이 곡(贖)에 들어온 사실은 세상에서 역우 몇 사람만 알 뿐
이오. 냉면인이 이 천산만학(?雲?擇) 중에서 이곳을 찾는다는 것
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오."

조민은 그의 얼굴에 불안감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
다. 장무기는 이곳에서 몇 년을 살았었기에 이곳의 지리에 대해서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다시 조민을 잡고 절벽을 뛰어넘어 처
음의 동굴로 돌아왔다.

장무기는 옛날 주장령(錯只?), 주구진(錯??), 무열(俉?), 요
청천(???), 무청영(俉?樗), 위벽(?瑤) 여섯 사람을 생각했다.
주장령은 동굴 속에서 깔려 죽었고, 주구진은 은리의 손에 죽었으
며, 나머지 네 사람은 이 일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들의 명성
이 높아서 찾는데 그리 어렵지 안으리라 생각했다.

동굴에서 빠져나온 두 사람은 길에서 한 초부(樵?)를 만났다. 장
무기가 읍(雕)하며 예를 갖추고 물었다.

"무열, 무청영, 요청천, 또 다른 사람들은 사 년 전 어느 날 밤에
모두 살해되었소. 게다가 집조차도 불에 깡그리 다 타버렸소."

장무기와 조민은 서로 마주 보고 같은 생각을 했다.
"냉면인이 아주 악랄하게 해치웠군!"
장무기는 초부의 말투를 듣고 그가 무열 등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것 같다는 추측이 들었다. 주무(錯俉) 양 가(?)는 모두 심혈을 기
울여 무공을 연구하여 훌륭한 경지에 이른 사람들로서 스스로 어리
석음에 빠져 죽었으니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지만 악인은 결코 빠
뜨리지 않는다'라는 옛말이 맞았던 것이다. 장무기는 심중이 무척
감개(?璇, ?=?璇)하여, 즉시 조민과 곤륜산을 내려왔다.

두 사람의 이번 여행은 결국 헛수고가 되어버렸고, 냉면인을 여전
히 신비로운 존재로만 여겨지게 되었다. 장무기는 긴 한숨을 쉬고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천명에 맡기기로 했다. 두 사람은 한 달이
지나서야 다시 무당산이 멀리 바라보이는 지역에 이르렀다. 중추절
까지는 아직도 육 개월 정도가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녹민이 염
려되어 급하게 무당산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산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자하궁 삼청전에서 녹색치마를
입은 어린아이가 달려나와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소리쳤다.

"아빠! 엄마!"
바로 녹민이었다. 장무기는 몇 발자국 앞에서 녹민을 높이 들어올
려 물었다.

"아빠, 엄마가 보고 싶었느냐?"
녹민이 말했다.
"보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 거리낌없는 솔직한 아이의 말이었다. 그동안에 많은 사람들
이 그 아이를 공주처럼 떠받들어 준 것 같았다. 무당산의 많은 도
사들은 녹민이 아주 총명하고, 영리하며, 예쁘고, 귀여워서 모두
친 딸처럼 대해 주었다. 은리정과 양불회 부부에게도 남자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이름은 은도(肇?)였다. 녹민보다 한 살 위로 두 어
린아이는 서로 시기하지 않고 의기투합하여 친하게 지냈다.

장무기는 녹민의 이 말을 듣고는 약간 당황은 했지만 곧 낭랑하고
큰소리로 웃었다. 이때 조민이 옆으로 다가오자 녹민은 바로 조민
의 품속으로 달려갔다.

"엄마, 나 외할아버지 못 봤어."
녹민이 말했다.
"엄마는 외할아버지를 볼 수가 없대."
조민은 아이의 이 말이 아주 불길하게 들렸는지 즉시 얼굴이 침울
하게 되어 말했다.

"아가야, 그런 나쁜 소리는 하지 말아라!"
녹민은 '앙'하고 울었는데 뱃속에서 태어난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오늘처럼 조민의 마음을 놀래킨 적이 없었다. 조민은 부드러운 말
로 위로해 주다가 그녀가 벌써 세 살인데 이렇게 응석을 다 받아준
다면 아이에게 이익이 안 된다고 생각을 달리하고서는 더이상 그녀
를 상대하지 않았다. 눈을 들어 바라보니 무당의 모든 제협(??)
들과 소소, 상승왕 등이 이미 나와 맞이해 주고 있었다.

조민이 많은 사람들에게 막 인사를 하려고 할 때 품속에 있는 녹
민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건 삼촌이 말한건데, 삼촌은 외할아버지가 하늘에 가셨대. 몇
년 후가 되어야만이 다시 오실 수 있다고 했어......."

조민은 너무 놀라 쓰러질 것 같았으나 어린아이 말이라 정확히 알
수 없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물으려고 앞으로 나갔다. 사람들은 모
두 눈길을 돌리고 그녀를 감히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조민이 '어'하며 쓰러지려고 하자 장무기는 재빨리 부축하였다.
소소는 급히 몇 걸음 나가서 녹민을 안았다. 장무기는 조민이 이미
기절한 것을 보고 그녀의 혈상(?袁)을 가볍게 누르니 조민이 즉시
깨어났다.

x x x

이 일은 얘기하자면 길다. 개방에 원래 진우량(?定馭)이라는 장
로가 있었다.

이 사람은 간사하기 이를 데 없었고, 야심도 만만치 않았다. 그의
원래 생각은 강호를 통일하고 명교를 제압하려는 데 있었다. 원정
(?畛)과 싸울 때 수단이 너무나 비열무치(藕?午?)했던 사건이
발각되자, 그는 명교 의병의 수령인 서수휘(愈矣鰕)에게 몸을 의탁
하였다. 서수휘는 그의 무공이 고강(俗惜)한 것을 보고 즉시 장무
기에게 용서를 구하였다. 장무기는 어쩔 수 없었으므로 오직 서수
휘에게 그 사람을 조심하라는 것만 신신당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
러나 서수휘는 성격이 곧고 호탕한 사람이었다. 진우량이 그의 휘
하에서 꽤 여러 번 전공(?殺)을 세운데다가 갖은 방법으로 아첨하
였기 대문에 서수휘는 결국 많은 병권(?純)을 그에게 넘겨주고 말
았다.

진우량은 야심이 대단한 자이라 일거에 황제가 되고 싶어, 서수휘
가 통솔하는 대군을 이용하여 주원장에게 싸움을 붙였다. 지정(?
賑) 20년 5월에 서수회의 군대는 주원장의 태평과 채석(哨?) 두
요충지를 공격하였다. 진우량은 혼자서 득의양양하면서 계략을 꾸
며 서수휘를 살해하고, 채석진(哨??)의 오통묘(迹枕猊)를 행전
(??)으로 삼았다. 그날 진우량이 제위에 오르고자 하였으나 장정
변(遵珍?), 전풍(址彈) 등 몇 명의 심복들이 하늘에 먹구름이 짙
게 깔린 것을 보고 불길하여 그에게 다른 길일(豕?)을 잡도록 권
했다. 그러나 진우량은 한시라도 빨리 황제가 되는 기분을 맛보고
싶어 자기의 고집대로 강행했다. 진우량은 급하게 만들어 놓은 용
상에 앉자마자 하늘에서 별안간에 벼락이 떨어지고 광풍폭우가 바
로 그 위를 이었다. 천지간에는 갑자기 돌과 모래가 마구 날아다녔
고 큰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많은 부하들이 대경실색하여 서로 쳐
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는데 오직 진우량만은 아주 침착하게 말했다.

"짐이 오늘 제위에 오르니 나라 이름을 한(洞)이라 한다. 많은 경
들은 바로 짐의 공신(殺日)들로 전력을 다하여 정벌에 힘쓰시오.
짐이 그대들에게 후일에는 반드시 영화부귀를 누리게 해줄 것을 보
장하겠노라!"

진우량의 내력(?淹)이 깃든 설명의 목소리가 뇌우(?町)의 소리
를 뒤엎어버렸다. 많은 부하들은 그저 폭우 속에서 무릎을 꿇고 만
세삼창을 할 뿐이었다. 제위식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은 이미 온몸
이 비에 젖어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서 연회석 앞에서 모두 벌
벌 떨고 앉아 한기를 없애기 위해 독주를 벌컥벌컥 마셔댔다. 어느
누가 자기 스스로를 황제로 봉하고 국호를 만든 사람의 말을 듣고
자 하겠는가!

진우량은 서수휘를 죽인 후에 인심을 잃게 되어 매우 고립되었다.
서수휘의 옛 부하들은 모두 명교 출신이었다. 이때에 그들은 진우
량의 독수(??)를 두려워한 나머지 모두 응천부(足?繞)의 주원장
을 찾아갔다. 주원장은 과거지사의 감정은 접어두고 그들을 모두
받아들였다.

그러나 진우량은 여러 차례 출병하여 황제의 군대라는 이름으로
사방을 강탈하여 그 세력이 날로 신속하게 커져갔다.

이때에 남방의 진우량은 태평(梔?) 일대를 점거하고서 원래의 명
고 서로군(??琡)을 통솔하였다. 호주(蔽澯)에서 패한 한산동(褪
雲?)의 진영은 군무(琡譽)를 주원장에게 넘겨주었다. 이때 주원장
은 웅천(??)의 제군(?璹)을 점거하고 있었다. 주원장은 우측의
연해 일대에는 고소(少輪)의 장사성(只?琉)과 대주(庵搾)의 방국
진(瘟髓?) 두 대령이 버티고 있었다.

각지의 호걸들은 이미 서로 세력을 형성하고 결코 양보함이 없이
전쟁을 일으켜 끊임없이 싸워 서로 죽이고 다칠 뿐 승패가 쉽게 나
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원나라 조정에 유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원조 황제
타환첩목이(???霙?)는 사직을 지키지 못할 위기에 직면했음에
도 불구하고 궁 안에서는 무녀들의 춤을 보는 일만 하고 있었다.
이것은 정말 '나라의 백성은 난리로 고통받는데, 궁 안의 무녀들은
허리를 살찌운다'라는 지경이었다.

더욱 심한 것은 승상 탈탈(醉醉)이 강직된 후에 합마승(播?怡)이
좌승상이 되었고 설설(??)이 어사대부(蠶?暗?)가 된 것이었다.
이 두 형제가 권력을 잡음으로써 조정은 더욱더 온통 뒤범벅이 되
어버려 수습이 불가(寓?)하게 되어버렸다.

영웅들은 이때를 틈타 각지에서 풍기운용(憚柴?岾)의 폭풍같은
의병으로 들고 일어났다. 원나라 조정에서는 몇 명의 대장(暗竣)
을 의군 지역에 파병했다. 이때 패라첩목아(???迎?), 이사제
(???), 장량필(遵語耽) 등이 출병하였다. 그러나 조정이 그토록
혼란하였으므로 조정의 명령은 이미 그 효력을 상실하였다.

강력한 몽골의 군대를 장악한 원나라 조정의 몇몇 장수들은 오히
려 각자 자기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위병의 항복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서로 성(?)을 공략하고 죽임으로써 돌이
킬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조정에서는 여러 차례 급보(??)를 보냈으나 명령이 먹혀들지 않
았다. 원 순제는 이러한 상황을 수습할 방도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여양왕 찰한특목이(撤統墮靈?)에게 명하여 황급하게 병(?)을 인
솔하여 경기(?蠅) 지역으로 가서 국면을 수습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패라첩목아와 장량필은 이미 황제의 명령을 무시하고 서로
힘을 합하여 동시에 찰한특목이와 이사제를 공격하였다. 쌍방은 모
두 몽고의 정병(秩?)들이었기 때문에 이 큰 싸움에서도 서로 승부
를 내기 어려워 그저 원기(?褶)만을 크게 소모했을 뿐이다.

원나라 조정은 여러 차례에 걸쳐 싸움을 멈추도록 종용하였다. 조
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각자에게 세력의 범위를 명확히 구분하여
주었다. 이에 여양왕 찰한특목이는 다시 병(?)을 이끌고 진우량을
공격하였다.

여양군부는 몇 개의 성을 계속 공격해 들어가 제녕(??)에 이르
렀다. 제녕을 지키는 사람은 바로 진우량의 사당(?唵)인 전풍(址
彈)이었다. 이 사람 역시 진우량처럼 음험하고 교활하며 악한 짓은
안 해 본 것이 없는 자(柱)로 제녕 백성들 중 전풍을 말할 때에 얼
굴색이 변하고 이를 갈지 아니하는 자가 없었다.

전풍은 찰한특목이의 세력이 심히 강한 것을 보고 성문을 열어 투
항(快?)토록 했다. 찰한특목이가 말 병을 이끌고 남하하려 할 때
갑자기 급보가 전해졌다. 패라첩목아와 장량필이 뒤쪽에서 이 기회
를 이용하여 공격해 오고 있다는 급보였다. 이 급보를 접한 찰한특
목이가 크게 노하여 즉각 회병(??)하면서 이 두 도적을 수습한
후에 다시 오리라 생각하였는데 이때에 전풍이 찰한특목이의 진영
앞으로 나왔다. 이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전풍의 사람됨을 이미
알고 그를 조심할 것을 알렸다.

그러나 찰한특목이는 흔쾌히 말했다.
"나는 사람을 믿음으로 대하여 스스로 항복을 하는데 어찌 그것을
막겠는가?"

많은 사람들은 근위병을 데려가기를 청했으나 찰한특목이는 굳이
사양하여 허락하지 않고 단지 열한 명의 사람만이 따르도록 했다.
전풍의 진영으로 들어서자 어디에선가 한마디의 명령이 떨어지면서
수백 개의 표창(?廳, ?=?廳)이 메뚜기처럼 날아왔다. 용감무쌍한
찰한특목이에게 있어서는 순식간에 열한 명의 사람과 말이 모두 표
창에 찔려서 땅에 곤두박질쳤다.

찰한특목이의 몸에는 예닐곱 개의 표창이 적중되었다. 그의 몸을
뚫고 지나간 표창은 땅에 꽂혔고, 그는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그의
뺨은 삼호극장(寃砲?遵)의 분노가 가득차 두 눈을 부릅뜬 채로 끝
내 죽고 말았다.

이런 비보가 전해지자 군중(琡猖)은 삽시간에 혼한스러워졌다. 다
행스럽게도 조민의 친오빠인 고고특목이(掃掃墮靈?)가 아버지의
군중에 있었기에 군심(琡入)을 안정시키고 제녕성을 빙둘러 포위하
여 맹공맹타(?殺??)하였다.

전풍도 성이 함락당하는 날에는 자신 역시 어떻게 개죽음을 당하
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성 아래에서 백계(王稅)
로 공격해 오면 역시 백계로 필사적으로 막아내었기 때문에 결국에
는 쌍방이 오래 버텨내지 못했다.

이때 대기사(殃屍?)의 부하들이 녹민을 안고 군중으로 와서 고고
특목이를 찾았다. 원래 대기사의 부하들은 여양왕이 대도에 있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제녕성 일대로 찾아나섰는데 결국 천군만마 속
에서 여양군부를 찾아낸 것이다.

고고특목이는 녹민이 누이동생 조민을 쏙 빼어 닮은 것을 보고 심
중(入猖)의 기쁨을 참지 못했다. 그러나 전세가 너무 긴박할 때라
하인 몇 사람을 시켜서 녹민을 무당산으로 데리고 가게 했다. 많은
사람들은 여양왕이 죽은 연유를 알고서 서기할 때마다 이를 갈며
욕을 해대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는 비록 몽고족과 한족의 구분(叡洞柵熔)이 있었지만 무림중
인(俉殮猖?)은 오히려 의기(琮褶)가 충천했다. 만약에 진우량의
나쁜 수작만 없었어도 막칠협 역시 참사당하진 않았을 것이었다.
송대협 송원교의 사랑하는 아들 역시 잘못 된 길로 들어서 장삼풍
의 일장에 죽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즉각 제녕에 가서 전풍을 죽이지 못하는 것을 한스
러워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장무기 부부가 아미파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재론(??)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들은 장무기가 이렇
게 곤륜산에 가서 두 달 후에 돌아오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
이다.

유연주는 계속해서 대도를 따라 녹민을 찾았고, 다른 한 길로는
제녕을 따라갔는데 모두 녹민을 만나지 못했다. 도중에서 황제가
고고특목이에게 아버지의 지위를 대신하여 천하병마(?台??)를
통솔하도록 명하였다는 것을 들었다. 많은 군중들은 찰한특목이가
황제에게 의심을 받아서 군대를 통솔할 수 없었는데, 나라가 수습
하기 어려운 상황에 닥치자 그제서야 그를 출사하도록 명한 것이라
고 수군수군댔다. 어느 누가 그가 싸움에 나가 전풍 등의 간인(?
?)의 손에 죽으리라 생각했겠는가!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때를 만
나지 못한 영웅의 목숨만 헛되이 바쳐진 것이리라!

이때에 장송계는 주원장의 군중(琡猖)에 조사하러 가서 돌아오지
않았고 은리정은 대도에 가서 녹민을 데리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길에서 일이 있어 늦어지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조민과 장무기는 상복을 입고 군중과 헤어져 무당산을 떠난 지 하
루가 못되어 제녕성 아래에 도달했다.

멀리 바라보니 제녕 성벽은 이미 탄흔(娶轄)이 승승했었으나 여전
히 견고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마침내 몽고 군중으로 들어가지 않은
군사들이 소민군주(玧?璹嵯)를 알아보고서는 고고특목이에게 급히
통보했다.

고고특목이가 이들 두 사람을 환영하러 나가려 할 때 조민과 장무
기는 이미 주수장(嵯衣蠢) 앞에 와 있었다. 남매는 오랫동안 못 만
났고 게다가 아버지까지 돌아가셨으니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들은 영당(這眼)에 가서 아버지의 위패에 절을 올렸다.

장무기는 옛날에 자기가 밤에 여양왕부에 갔다가 무의식중에 여양
왕이 자기를 대단히 추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둘 다 모
두 각자의 중요한 일이 있었기에 같이 손을 맞잡고 천하를 구하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장무기 역시 여양왕의 빈틈없는 계지
와 박대흉금(?暗閑?)한 성품에 대해서는 마음 속으로 흠모한 지
이미 오래 되었었다. 원래 이번에 중토에 다시 돌아와서는 이런 대
영웅들과 만나기를 희망했었건만 이렇게 와 보니 살아서는 다시 만
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누가 예측이나 했었겠는가? 무릎을
꿇고 위패에 공공경경(衰送??)하게 여덟 번 절을 했다. 그리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고고특목이를 따라 주수장에 들어가 앉았
다.

조민이 말했다.
"전풍, 이 간사스러운 놈은 아직 성 안에 있어요?"
고고특목이가 말했다.
"그래."
"좋아요. 오늘밤 내가 성 안으로 잠입해서 전풍을 죽이겠어요!"
고고특목이가 말했다.
"누이야, 안 된다. 열여덟 명의 무공을 익힌 번승(嵬弛:티베트승)
이 이미 여러 번 시도해 보았지만 성벽이 너무 높고 성 안의 수비
가 아주 삼엄하여 발각되기만 하면 난전(神旨)을 퍼부어대서 열여
덞 명의 번승도 이미 여러 사람이 부상당했다."

고고특목이의 수하에는 열여덟 명의 무공을 익힌 번승이 있었는데
'십팔금강(???鋤)'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모두 오도(迹埃), 오
검(迹盛), 사장(?茁), 사발(?熬)로 나뉘어져 있었다. 만일에 한
사람씩 싸운다면 무공은 강호일류의 고수에는 못 미친다 해도 여럿
이 같이 공격한다면 그들을 막아내기는 아주 어려웠다. 장무기는
그들과 겨루어 본 적이 있었기에 이 십팔번승의 무공실력을 잘 알
고 있었다.

고고특목이가 말했다.
"누이야, 걱정을 말아라. 내가 이미 이사제(???)에게 사람을
보내어 등운대(??昻) 부대를 즉각 이동해 오도록 했으니 이 조그
만 제녕성을 격파시키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조민의 아름다운 두 눈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본 장무기는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위로했다.

"부인, 걱정하지 마오. 오늘 밤에 우리 둘이서 먼저 가 보는 게
어떻소?"

조민의 얼굴이 약간 기쁜 빛을 띄는 듯했으나 찰나간에 다시 밀려
오는 슬픔이 너무 커 보였다. 고고특목이가 장무기의 말을 듣고 무
척 이상하다고 느껴서 말했다.

"장형은 제녕성 안에 아직 적지 않은 명교교도가 있다는 것을 알
고 있나?"

장무기가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날 주원장이 태평과 채석의 명교교도인들을 심하게 공격하여
사람들이 두려움으로 주원장의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도
망가지도 못했다네."

장무기가 이해가 안 돼 말했다.
"제가 듣기로는 주원장은 과거의 감정 따위는 결코 기억하지 않는
다고 들었는데요."

고고특목이가 말했다.
"그렇다고는 했었네. 그러나 어느 누가 사전에 예측할 수 있었겠
는가? 전해 오는 소식으로는 진우량이 아주 철통같이 방어하여 만
일에 도주하는 사람이 있으면 잡아와 아주 비참하게 죽이기 때문에
극소수의 죽음을 감수한 사람만이 도망하였다네."

장무기는 놀라서 말없이 마음 속으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곤란
했다. 그는 성이 무너지는 날에는 성 안의 모든 전풍 부하들이 절
대로 살아나기 어려우며 많은 명교교도들 역시 빠져 나올 수 없다
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기가 어찌 그들을 구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을 볼 수 있겠는가?"

장무기는 명교인들과 몽고인들의 세력이 수화(?飄)같아서 절대로
투항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만일 투항하지 않으면 죽음을
면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은 중간에 끼어서 아주 어
려운 입장에 빠지게 되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진저리가 쳐져서
이런 군국대사(琡髓暗?)는 원래 자신의 능력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약해져서 이번 일이 끝나면 자기는 조민과
강호에 은거하여 다시는 이런 일에 상관하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

갑자기 몽고 병졸이 나타나 수장 앞에 무릎꿇고 말했다.
"장군님께 보고합니다."
고고특목이가 물었다.
"무슨 일이냐?"
병졸이 대답하여 말했다.
"장군님께서 이사제 장군에게 보냈던 사절(?識)이 돌아왔습니다."
고고특목이가 기뻐하며 말했다.
"응? 등운대가 왔느냐?"
그 병졸은 말을 하려다 말고 그만 두었다. 고고특목이는 큰소리로
말했다.

"사절을 들여보내라!"
병졸이 명령대로 몸을 돌려 나간 뒤 잠시 후에 몇 명의 몽고 사병
들이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 사람을 부축하여 수장 앞으로 데리고
와서 앉혔다.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의 두 귀, 코, 입술이 모두 잘
려나간 모습에 대경실색했다.

고고특목이가 놀라 말했다.
"무슨 변고가 있었는지 빨리 말해 보아라."
그 사절이 말했다.
"장군님! 이 장군이 발병(烏?)을 원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소인
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사절의 두 입술이 잘려져서 두 줄의 하얀 이빨들이 밖으로 드러나
말하는 소리가 아주 모호하였으나 간신히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고고특목이가 노하여 말했다.
"발병을 원치 않는다고? 도대체 무슨 연유인지 나에게 상세하게
말해라."

사절이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소인은 감히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고고특목이가 말했다.
"너는 이 일과 아무 관계 없으니 한 자도 빠트리지 말고 말해라!"
사절이 할 수 없이 말했다.
"소인은 장군님의 조병문서(??澳柚)를 받들어 이 장군 군(琡)
처소에 이르러 문서를 건넸습니다. 이 장군은 그것을 읽은 후에 문
서를 발기발기 찢어 버리고 큰소리로 욕...... 욕을......."

고고특목이가 노하여 말했다.
"그가 뭐라고 욕하더냐, 사실대로 다 말해라!"
사절이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다.
"이 장군이 욕하기를 '젖 비린내 나는 녀석 같으니라고. 노인이
아직 퇴(針)하지 않았는데 뭐, 나더러 오라구! 내가 너의 부친과
술 대작을 하였을 때 너는 내 앞에서 서서 걷지도 못하였는데' 그
리고 사람을 시켜 소인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원문(??) 밖
으로 내던졌습니다."

고고특목이는 황제가 자신에게 모든 군마를 지휘하라는 명을 내렸
다고 해서 이사제가 먼저 그에게 반목(?零)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사제는 고고특목이가 아랫사람인데도 자기의 머리 위에
올라가서 명령하는 것을 들으니 어찌 배알이 꼴리고 화가 나지 않
을 수 있겠는가.

고고특목이는 사절의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나 온몸이 부들부들 떨
려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갑자기 크게 소리 지르며 탁자를 치
고 일어나 장력으로 딱딱한 나무탁자를 쳐 톱밥으로 만들어 사방에
날리게 하였다.

"이사제, 네가 나의 문서를 찢었고, 나의 사절을 욕보였도다. 내
가 만일 너를 갈기갈기 찢어놓지 않으면 맹세코 나는 사람이 아니
다."

고고특목이가 크게 말했다.
"나의 명령을 전하라. 사면을 포위하라!"
말을 끝내기 무섭게 고고특목이는 곧바로 무장하고 출장(出蠢)하
였다.

장무기와 조민도 할 수 없이 함께 출장하였다.
나팔 신호가 한 번 들리자 원래는 아주 조용해야 할 정오였는데,
갑자기 죽이라는 소리가 하늘을 울렸고, 잠깐 사이에 무거운 포격
소리가 몇 번 들렸다.

제녕성 밖에 있는 몇 사람이 수만 명의 몽고병이 사방에서 조수
(??)처럼 제녕성으로 몰려오는 것을 보고 호각을 불어댔다. 성
안에서는 한마디의 명령이 떨어지자 수많은 화살을 몽고 진영으로
쏘아댔다. 앞에서 돌격하던 몽고병들은 말에서 뛰어내리거나 말의
복부로 숨어 화살을 피하였다. 철퇴 명령을 받지 않은 몽고 병사들
은 계속 앞으로 돌격하기는 하였으나 빗발처럼 쏟아지는 화살에 공
세가 어느새 느슨해졌다.

그러자 고고특목이는 고삐를 한 번 흔들어 전마(??)가 울음소리
를 내게 하는 신호로 병사들에게 공격을 명했고, 십팔번승 역시 말
을 쳐서 빠르게 바싹 따라갔다.

장무기도 돌격하려 할 때 조민이 그를 꽉 잡았다. 고개를 돌려보
니 조민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만군지중(?琡柵猖)이라, 당신이 가도 소용없어요!"
장무기는 어쩔 수 없이 원래의 자리에 섰다. 앞을 바라보니 고고
특목이와 십팔번승이 이미 몽고군 안으로 돌격해 들어가 여전히 성
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몽고병들은 원수(?衣)께서 친히 진중(?
猖, ?=?猖)으로 나와 죽이라는 소리를 더욱 높이자 모두가 목숨
을 걸고 성벽을 향하여 맹공격을 했다.

이때에는 고고특목이의 그림자는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먼 곳에서
십여 점의 홍점이 이동하고 있어서 바로 십팔번승이 고고특목이를
바싹 뒤따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십여 개의 구름 사다리(??)가 이미 성벽에 위에 걸려져 있고 몽
고 병사들이 몸을 도사리지 않고 용감하게 기어올라가는 것이 보였
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십여 개의 구름 사다리 위에 몽고병이 모두
기어 올라갔다. 갑자기 군중(琡猖)에서 놀라는 소리가 들려 왔다.
성벽 위에서 수십 개의 장간(只?)이 나와서 구름 사다리를 성벽에
서 밀어버려 뒤로 넘어뜨렸다. 구름 사다리로 기어올라가던 몽고
무사(俉?)들은 공중에서 땅으로 떨어져버렸다.

성 안의 사람들은 고고특목이를 발견하자 일제히 집중 공격했다.
홍기를 들고 뒤따르던 십팔번승은 재빨리 이동하였다. 성 위에서
홍기가 있는 곳으로 많은 화살들을 한꺼번에 쏘니 십팔번승의 무공
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이렇게 많은 화살을 당해낼 수는 없어서 할
수 없이 고고특목이를 에워싸고 군내로 철수하였다.

고고특목이는 하는 수 없이 징을 울려 군사를 돌아오도록 하였다.
그는 침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싸움에서 몽고병들은 한
사람도 성벽에 오른 사람이 없었고 십팔번승 중에 몇 사람도 화살
에 맞았다. 다행히도 경상이라서 몇 일 쉬면 괜찮아질 것이었다.

조민이 말했다.
"오빠, 오빠는 동, 서, 남 세 군데에서 공격하고, 나와 무기 그리
고 아직 부상당하지 않은 번승은 북문으로 몰래 쳐들어 갑시다."

고고특목이는 고개를 가로 저을 뿐이었다. 그러나 조민의 거듭되
는 간청을 더이상 막을 수가 없어서 대답하였다.
"딱 한 번이다. 무지한 짓은 하지 말아라."
조민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야밤 삼경이 되자 명령을 내려
동, 서, 남 세 문을 동시에 공격하였다. 조민은 장무기와 몰래 북
문으로 쳐들어 갔다. 성문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까지 왔을 때 성을
지키는 병사에게 발각되었다. 병사가 고함치자 성문 위가 갑자기
떠들썩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쳐다보니 성벽 위에서
사람 머리가 떼를 지어 움직이므로 할 수 없이 공격을 포기하고 사
방으로 징을 울려 병사를 돌아오게 하였다.

고고특목이, 조민, 장무기 세 사람은 아무런 대책 없이 장중(蠢猖)
에 앉아 있었다. 고고특목이가 말했다.

"공격을 못 하니 이렇게 포위해서라도 적을 죽일 방도를 찾아야하
네. 진우량이 발병(烏?)하여 전풍을 돕는다면 어떡하겠나. 그렇게
되면 일이 낭패야. 이사제 이 나쁜 놈을 하(土)할 뿐이네."

장무기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형장(?只), 걱정 놓으세요. 이 동생이 진우량의 사람 됨됨이를
알아요. 제녕성은 태평에서 아주 멀리 있을 뿐만 아니라, 진우량은
결코 이 고성(巢?)을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지 않을 것입니다."

고고특목이가 말했다.
"그러나 전풍은 진우량의 대장 중의 한 사람이오."
장무기가 말했다.
"물론 그의 친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여기 계셨다면 진우량도 오
지 않을 수 없겠지요."

고고특목이가 못 믿겠다는 듯이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되기만 바랄 뿐이네."
바로 이때, 가마 정찰병이 보고하기 위하여 왔다. 장무기 부부가
막 물러 가려하자 고고특목이가 손짓을 했는데 돌아가지 말라는 표
시였다. 두 사람은 다시 앉았다.

온 사람이 보고하는 말을 들으니 패라첩목아, 장량필, 이사제 세
사람이 또 서산(?雲), 하남(泰辰), 섬서(??, 餐:? 做가 아니라
섬돌 내 做인데 이야기 한자 폰트의 ?做임, 섬서의 섬 做는 좁을
협 做의 좌우 사람 ? 做 두 개를 반대로 놓은 글자임) 일대에서
혼전(鋪?)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고고특목이는 보고를 끝마친 그를 보내고 긴 한숨이 섞인 소리로
말했다.

"조정이 위험에 빠진 것은 이 세 사람의 죄신(嗟日) 때문인 것 같
도다."

장무기는 그의 용감하고 민첩한 정신 중에도 이런 근심의 빛이 아
주 역력한 것을 보았다. 고고특목이는 천하병마(?台??)를 통솔
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므로 그의 명령은 곧 황제의 조서(?柚)와 다
름 없었다. 그렇지만 이들 세 원조(??)의 병마 중신(脹日)들은
아예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장무기 역시 지금의 이 난관은 몽고군이 상호공벌(爲翩殺僥)하고
있는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산하는 그저 의연한데 이들이
사분오열로 만들어 놓고, 또한 각지는 초연미만(硝???:초연으로
가득찬 전장)의 전장이 되었으니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

장무기 부부가 처소로 물러가자마자 이미 준비된 듯한 온갖 물품
이 들어 있는 함이 전달되어 왔는데 그것은 고고특목이가 사람을
시켜 급하게 사 들여온 것 같았다.

장무기는 자신도 모르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민 누이, 당신은 정말 사람을 잘못 골랐소. 장무기와 사는 평생
은 죽도록 가난할 것이오."

조민이 말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우리 둘이 대도에 같이 있을 때 구양묘수
의 절기를 배웠지 않아요. 진품이 하나로 팔구백 내지 천 개 정도
만들어 팔면 천하에 없는 갑부가 될 텐데 무슨 걱정입니까!"

그들 두 사람은 냉면인에 의해 훼손된 경서를 몸에 지니고 왔었다.

장무기가 말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오. 그런데 삼 할은 사기 같은데 이것이 민
누이 평소의 기질과 딱 맞구려."

조민이 오히려 힐난하며 말했다.
"당신이 마교교주(???嵯)였잖아요. 사기(?褶)로 말하자면 민
누이는 당신 장 대교주에 미치지 못하지요."

장무기가 웃으며 말했다.
"이것을 바로 유유상종, 인이군분(??潚熔)이라 하오. 나의 사기
가 당신보다 중(脹)한 것은 당신이 명예를 보고 시집오게 된 그것
이오!"

조민이 갈수록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그를 보고 삐죽거리며
말했다.

"근래에 당신은 다른 것은 배운 것이 없는데, 말만 번지르하게 하
는 기술에만 정진했군요."

장무기가 또 웃으며 말했다.
"그게 모두 다 민 누이에게서 배운 것이라오. 만약 부족한 점이
있다면 은사로 모시겠으니 많은 가르침 바라오. 이 제자가 종신토
록 받들겠소. 하하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조민이 장무기의 귀를 꼬집었다. 사실 조민이
용력(粘淹)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는데 장무기는 아주 아픈 척 크게
소리를 질렀다. 조민이 말했다.

"계속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 할거예요?"
장무기가 곧 정색하여 말했다.
"시진(裡?)이 늦었소. 출발해야 하오."
조민이 의아해 물었다.
"출발요? 당신 뭐 하려는 거죠?"
장무기가 말했다.
"제녕성에 들어갑시다."
조민은 이 계획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같이 이렇게 한
바탕 싸운 날에는 성 안의 모든 사람이 피곤하여 방비에 더 힘쓰지
않을 것이었다. 두 사람은 즉시 검은 야행복으로 갈아입었다. 장무
기는 또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렸다. 조민은 그의 모습에 약간 놀
랐으나 즉시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성 안에는 명교인들이 있는데
만약 그들이 알아본다면 명교에 도움이 전혀 안 되는 것이었다. 조
민도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반짝이는 두 눈만을 밖으로 드러
냈다. 두 사람은 마치 도적질하러 가는 것 같은 차림으로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장무기는 이 모양을 보고 우스게 소리 몇 마디를 하
려다가 여양왕에게 생각이 미치자 그만 두었다. 두 사람이 영장(抵
蠢)을 살그머니 나와서 남문 벽 끝을 더듬어 올려다보니 성벽의 높
이가 약 칠, 팔 장(晙)은 되어 보였고, 사람의 그림자는 안 보였지
만 순야(?仔)하는 발자국 소리는 들을 수가 없었다. 방범(窪撓)이
아주 엄밀한 것 같았다.

장무기가 손에 있는 밧줄을 꺼내 한쪽을 허리에 묶었다. 그는 방
향을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되어 조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민이
쪼그리고 앉아 두 손으로 그의 발목을 부축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용력을 했으나 장무기만이 공중으로 튀어올라가서 제운종(???)
의 수법으로 다시 위로 두 장(晙)을 기어올라가 성벽과 같이 평평
해졌다. 계속해서 그는 건곤대나이심법(贍巽暗殖?入擾)을 이용하
여 몸을 앞으로 두 장 정도 날려 아무 소리 없이 손으로 성타(??)
를 잡고 성벽에 붙어 있었다.

바로 이때 누군가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서 장무기는 찍 소
리 않고 귀를 기울였는데 모두 열 명 정도의 사졸이 걸어오는 것으
로 바로 순야병(?仔?)들이었다.

사졸들이 지나간 후에 장무기는 왼손으로 손가락을 펼쳐 밧줄을
성벽에 꽂았다. 그는 구양신공을 일으켜 밧줄을 성벽 틈에 박았다.
용력을 시험하여 밧줄을 잡아당기니 성타에 힘이 먹혔다. 그는 다
시 왼손으로 줄을 잡아 세 번 흔들었다.

잠시 후에 조민이 뒤로 삼 장 물러나 줄을 팽팽하게 하여 역시 세
번 흔들었다. 장무기가 왼손을 한 번 흔들었을 때 검은 그림자 하
나가 그의 근처로 빠르게 다가와 두 손을 성타에 꼭 붙이고 붙어
있었다. 이때 역시 순시하는 사병이 걸어오자 두 사람은 침착하게
조용히 그대로 있었다. 초병(硝?)이 지나간 후에 장무기가 왼손
을 흔들어 긴 줄을 손에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성벽
위로 몸을 날려 앞으로 질주해 갔다.
"어떤 놈이냐. 서라!"
외침이 들렸다. 장무기가 조그마한 소리로 외쳤다.
"큰일났군!"

두 사람은 성벽을 횡단할 때 이미 순시하러온 두 명의 초병에게
발각되었던 것이다. 두 대(昻)의 순시 초병 이십여 명이 창을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성벽 위에서 지키던 수천 명의 사졸들이 놀라 일어
나 멍청해져서 적이 어느 쪽에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큰소리로
떠들 뿐이었다.

장무기는 사태가 위급한 것을 파악하여 긴 줄을 성 안으로 던져
성벽을 등에 대고 '합-'하면서 도룡도를 꺼내들고 조민에게 말했다.

"당신 먼저 내려 가시오!"

조민은 좌우에서 각각 열 명의 순시 초병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놀라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장무기의 허리에 매어 있는 줄을 잡고
성 안으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조민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중에 두 명의 초병이 동시에 달려들어
장무기의 양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다. 장무기는 허리에 매어 있는
줄에 조민이 매달려 있어서 움직이기가 불편했다. 그는 오른손으로
는 칼을 들어 오른쪽의 긴 창을 밀어내고, 왼손으로는 좌측에서 찌
르고 들어오는 창끝을 막아냈다. 그는 왼손 하나로 창을 든 초병을
막고 발끝으로 그 사람의 혈도를 막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또다시 네 개의 긴 창이 양측에서 찌르고 들어
오자 장무기는 도룡도를 휘둘러 네 개의 창 끝을 부러뜨렸다. 장무
기는 사졸들이 이렇게 용맹스러우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그들은
창 끝이 잘려나간 것을 보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술수를 바꿔서
손에든 창 자루를 다시 장무기의 머리를 향해 공격했다.

계속해서 두 개의 창이 흉부를 향해 질주해 왔다.

장무기는 건곤대나이심법을 전개하여 두 손을 들어 머리로 쳐내려
오는 네 개의 짧은 막대기를 막고, 두 개의 긴 창을 올려쳐서 이
위기를 모면했다.

여섯 사람이 제대로 서지도 못한 채 장무기 앞으로 나왔다. 장무
기는 손가락을 바람같이 재빠르게 날려 여섯 사람의 혈도를 찍어버
렸다.

네 개의 짧은 막대기를 일거에 내리치며 두 개의 긴 창을 땅에 박
아버렸으나 여섯 사람 모두 쓰러지지 않고 장무기 앞을 겹겹으로
에워쌌다.

다른 나머지 사람들은 여섯 사람이 장무기를 에워싼 것을 보고 이
제 장무기를 잡았다고 외치며 앞다투어 앞으로 달려나왔다. 장무기
는 아래에 있는 조민이 '좋았어!'하고 외치는 소리와 함께 무기 부
딪치는 소리를 듣고 아래에서 그녀가 사졸들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
했다.

막 몸을 날려 아래로 가려고 할 때 벽 위에 있던 사람이 뭔가 잘
못 된 것을 느꼈는지 어느새 긴 창을 들고 사람 사이를 뚫고 장무
기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장무기는 도룡도를 칼집에 집어넣고 두 손으로 찌르고 들어오는
두 개의 창 끝을 잡아 손을 흔들어 긴 창을 빼앗았다. 이때 또다른
몇 개의 긴 창이 깊숙히 찌르고 들어왔다. 장무기는 몸을 날려 성
아래로 뛰어내려갔다. 성 아래에는 성을 지키던 사졸들이 벌써 불
을 피워서 주위를 대낮같이 훤히 밝혔기 때문에 수십 명이 조민을
애워싸고 싸우는 것이 보였다. 또한 먼 곳에서는 대대인마(暗昻?
?)가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조민의 등 뒤로 일곱, 여덟 개의 긴 창이 찌르고 들어가는 모습에
장무기는 공중으로 천둥치듯이 대갈일성 소리를 쳤다. 그러자 많은
사병들이 갑자기 어리둥절 하며 공격하던 목표를 바꾸어 장무기를
향하였다. 장무기는 땅에 떨어지면서 몇 번 구르며 긴 창을 막아내
니 일곱, 여덟 명이 같이 쓰러진다. 창 자루를 거머쥔 장무기는 창
끝을 바람처럼 날려버려 찰나간에 수십 명을 넘어뜨렸다. 많은 군
중은 그의 귀신같은 무공에 모두 겁을 먹고 뒤로 슬슬 물러나기 시
작했다. 그러나 더이상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막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이 되어 황급히 말했다.

"빨리 갑시다!"
장무기는 손에 긴 창을 들고 사졸을 향하여 돌진해 갔다. 많은 사
람들은 감히 당해낼 엄두도 못 내고 그저 창 두 개를 허공에 휘두
르며 양 옆으로 길을 내주었다. 조민이 바싹 그 뒤를 따라 겹겹의
포위망을 뚫고 한쪽 길을 따라 성 안으로 도망갔다.

뒤에서는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모두 쫓아 오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 그들을 따를 수 있겠는가! 장무기가 길을 꺾으니 앞에서 기세
가 충천한 일대기병(?昻蒔?)이 장무기를 보고 즉시 활시위를 얹
는 것이 보였다.

장무기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슁-'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무거운
물체 하나가 장무기의 가슴으로 돌진해 왔다. 다급해진 장무기는
재빠르게 몸을 낮추었다. 동그란 물체가 그의 머리 위를 지나가
'피-악'하고 땅에 떨어지자 뒤이어 사람의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전
해졌다.

장무기가 깜짝 놀라 돌아 보니 조민이 '호호호'하며 간드러지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손가락으로 길 위에 늘어진 긴 줄을 가
리킬 뿐 말은 하지 않았다.

장무기는 그제서야 깨닫는 바가 있었다. 원래 그의 허리에 긴줄이
묶여있었는데 너무 위급했었던지라 지금까지도 거두지를 못했었다.
그들 두 사람이 성벽 아래에서 도망할 때, 한 사졸이 그의 몸에 긴
줄이 달려 있는 것을 보고 얼른 잡아서 장무기를 끌어당길 생각이
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게 장무기가 경공을 펼쳐 몸을 귀매(??)처럼
빨리 날렸던 것이다. 그 사졸은 졸지에 마치 종이연처럼 긴 줄 끝
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날아가게 된 것이다. 사졸은 양쪽 풍경을 바
라보다 날아가는 기세가 마치 땅이 뒤로 빠르게 빠져나가는 것 같
아 혼비백산이 되어 만일 자신이 이 손을 놓게 되면 땅에 곤두박질
당해 얼굴이 온통 멍이 들어 엉망이 될 것이라는 것이라 여겼다.

바로 그때 장무기는 급하게 구양신공을 전신에 유동(??)하여 전
력을 다해 적을 대적하느라고 자신의 몸 뒤에 이런 꼬리가 길게 붙
어 있는지조차 느끼지를 못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장무기가 서버
리자 그 불운한 사졸은 줄을 놓지 못하고 있다가 앞으로 날아가 넘
어진 것이다. 사졸의 신음소리에 기운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넘어진 상태가 가벼운 것 같지는 않았다.

장무기 역시 그 꼬락서니가 우스워 웃음을 터뜨리려는 찰나에 '쉭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긴 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왔다. 장무
기는 황급히 몸을 움츠리며 길 모퉁이로 숨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뒤에서는 병장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장무기는
다급하게 조민에게 소리쳤다.

"집으로 들어가!"
'쉭-쉭' 소리가 두 번 났을 때에 두 사람은 이미 옥상 위로 뛰어
올라가 있었다. 조민이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꼬리나 빨리 치우세요!"
장무기는 웃으며 그 긴 줄을 말아서 허리춤에 집어넣었다. 두 사
람은 즉시 경공을 펼쳐 눈 깜짝할 사이에 제녕성에 있는 수천 개가
넘는 거므스름한 집의 처마 속으로 사라졌다.

두 사람이 북쪽으로 한걸음 내달린 후에 다시 돌아보니 이제는 추
격병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잠시 멈춰서서 사방을 한 번 훑어
보았다.

조민이 왼쪽 앞에 깊숙하게 자리잡은 새까맣게 지은 대저택을 가
리키며 말했다.

"이 집 어때요?"
장무기가 웃으며 말했다.
"조민, 당신은 정말 공주 기질이 있구려."
조민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그 집으로 달려갔다. 두 사람은 여러
차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큰 저택의 한가운데로 날아갔다. 집 안을
둘러보니 부자집인 것 같았다. 집 안에서는 두 사람의 숨소리만 들
려왔는데 아마도 부부 두 사람으로 이미 아주 깊은 잠이 든 것 같
았다.

장무기가 조민에게 단검을 받아 문틈으로 들어가 문 빗장을 가볍
게 몇 번 밀어내니 '타닥'하는 가벼운 소리가 나며 빗장이 빠졌다.
가만히 귀를 기울였지만 집 안의 두 사람은 못 느낀 것 같았다. 장
무기와 조민은 살짝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 살그머니 문을 닫았
다.

암흑 속이었지만 촛대가 있는 것이 잘 보였다. 조민이 다가가 촛
불을 붙였다.

약간 어두운 촛불 불빛 속에서도 집 안의 장식이 모두 호화스러워
보였다. 대홍라장(暗杓?蠢)의 침대엔 부부 두 사람이 여전히 숙면
에 취해 있었다.

장무기가 기침 소리를 내고 말했다.
"두 분은 일어나십시오!"
나장(軾蠢) 안에서 움직임이 있은 후에 남자가 잠이 덜 깬 듯한
소리로 말했다.

"뭐가 이리 시끄러워. 아직-어? 당신들 뭐 하는 사람이오?!"
장무기가 말했다.
"두 분은 무서워 마십시오. 옷을 입고서 이야기 좀 합시다."
"두 분 어르신네들, 무슨 일인가요? 은량(蚤養)을 내놓으시라면,
소인은......."

조민이 엄하게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마시고 어서 옷을 입으세요!"
"예, 예, 그러지요. 그렇게 하지요."
잠시 후에 두 중년 부부가 부들부들 떨면서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들은 장무기와 조민 두 사람의 분장을 보고 마치 강도라도 만난
듯이 연신 굽신거리며 살려달라고 했다. 장무기가 참지 못하고 말
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오. 우리 두 사람은 강도가 아니오. 어
서 일어나시오!"

두 사람은 머리가 땅에 닿도록 조아리며 입으로는 쉬지 않고 말했
다.

"나으리,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장무기는 속으로 이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반드시 전풍
이 성 안에서 마구 강탈해 가서 일반 백성들에게 버릇이 되어 있거
나, 그렇지 않으면 사실은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단지 그런 척하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조민이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은 여기에서 며칠 묵다가 갈 것이오. 그 외에 다른
계획이 없으니 당신들은 일어나 얘기해 보시오."

이 두 부부는 반신반의하면서 일어났지만 여전히 떨고 있었다.
조민이 물었다.
"당신 이름이 무엇이오?"
남자가 말했다.
"소인은 장유기(遵??)라 하옵고, 못난 아내는......."
조민이 '푸아-'하고 웃음을 터뜨리자 장유기는 너무 놀라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조민이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말
했다.

"부인의 존함은 말 안 해도 되요. 당신에게 한 가지 묻겠어요. 전
풍이 어디에 살죠?"

장유기가 깜짝 놀라 말했다.
"전풍 장군은 이웃하고 있는 두 길가의 아문중(??猖)에 있습니
다. 어르신네는 뭐 하시게요?"
조민이 말했다.
"묻는 말 외에는 하지 마시오. 당신 같이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
은 장무기(遵午?)라고 부르는 게 더 적합할 것 같네요."

장유기가 말했다.
"소인이 말이 많은......."
조민이 말했다.
"집에 다른 사람은 없어요?"
장유기가 괴로운 얼굴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 전풍 장군에게 잡혀갔어요. 모두 가서 전풍 장군의 수성(艤
?)을 도와주고 있어요. 집에는 오직 저와 못난 아내만 있습니다."

장무기가 차갑게 말했다.
"당신들 두 사람은 어떻게 안 갔소?"
장유기가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소인의 집은 파산될 지경입니다. 억지로 일만
량 보은(??養?蚤)을 채워내고서야 겨우 부역의 고통을 면했습니
다."

장무기가 말했다.
"살이 피둥피둥 찐 것을 보니 아직 재물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은
데 아마 당신에게 다시 백은 십만 량(汪蚤??養)을 내라고 하면
당신은 또 낼 수 있을 것이오!"

장유기가 낯빛이 새파래졌다. 다시 그들이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
고 애원하자 조민이 말했다.

"장유기, 우리 부부가 이곳에서 며칠 묵으려 하는데 번거로운 일
이 있나요?"

장유기가 울상 지으며 말했다.
" 두 높으신 분들이 소인의 집에 머무르시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많은 군졸들이 사흘이 멀다하고 집집마다 상세히 조사하여 조금이
라도 낯선 사람이 있으면 즉시 죽여버리며 주인까지 연루되게 됩니
다. 결코 소인이 관련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오라, 오직 두 분
의 생명이 걱정될 뿐입니다."

조민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는 게 장무기하고 비슷하군요."
장유기는 영문도 모르고 조민을 쳐다보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를 몰라했다.

장무기는 조민의 이런 농담을 듣고 소리없이 웃었다. 그는 탁자
위에 진지(??)로 만든 물건을 들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서 몇
번 비빈 후에 손바닥을 펴 보았다. 그 물건은 이미 완전히 가루로
부서져 있었다.

사실 이런 류의 무공 같은 것은 무림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평범하
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장유기는 눈이 커지고 입이 딱 벌
어져 너무 놀라 얼이 빠질 지경이었다.

바로 이때 갑자기 멀리서 큰 소동 소리가 들려오면서 어슴푸레하
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장유기는 얼굴이 즉시 하얗게 질려
말했다.

"두 분 신선님, 소인 목숨 좀 살려주십시오. 제발 빨리 떠나주시
오. 그렇지 않으면 소인은 죽습니다요."

장무기는 그의 말에 신경쓰지 않고 태사(梔?) 의자에 앉았으나
그다지 마음이 유유자적한 것은 아니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점
점 가까이오자 장유기는 건담이 써늘해져서 그저 살려달라고 애원
할 뿐이었다. 장무기는 여전히 모르는 체하며 눈을 감고 안정하는
자세를 취했다.

조민이 웃으며 말했다.
"장유기, 제가 한 가지 알려드리겠어요."
장유기는 얼굴이 화색이 만연해지더니 말했다.
"선녀님, 알려주십시오."
조민은 뭔가 신비한 듯한 척하며 말했다.
"우리 둘을 숨겨주면 됩니다."
장우기가 놀래서
"그건, 그건......"
말을 하지 못했다.
바로 이때 맹렬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 열어라, 문 열어라, 빨리 열어라!"
여러 사람의 외치는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장유기는 다급해져 빙빙 돌았지만 장무기와 조민은 본 척도 하지
않고는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취할 뿐이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더욱 다급해지며 갖은 고함 소리가 들려왔
다.

"장유기, 빨리 문을 열지 않으면 도끼로 부수겠다!"
장유기가 할 수 없이 큰소리로 응했다.
"아이구! 이리 오세요. 이리 와요!"
그는 한편으로 말을 하면서 부인에게 조그만 소리로 속삭였다.
"그들을 들여보냅시다!"
그의 부인이 약간 망설이자 장유기가 말했다.
"한 시가 급해요. 빨리 가요. 빨리 가. 내가 가서 문을 열겠소."
부인이 어쩔 수 없이 침대 머리맡의 한 장치를 누르니 '삐거걱'소
리가 울리면서 침대 밑에 구멍이 나타났다. 장무기는 전혀 주저함
이 없이 밑으로 뛰어내려갔고, 뒤이어 조민도 급하게 따라내려갔다.
바로 이때 머리 위에서 '꽈당-'하고 소리가 약간 울리더니 지하의
문이 닫혀졌다.

지하실 안은 아주 넓지는 않았으나 안에는 많은 음식물과 맛있는
술이 비축되어 있었다. 장무기가 안의 촛대에 불을 붙이고 나서 단
지 하나를 집어들어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은 뒤에 한 모금 맛을
보고서는 바로 조민에게 좋은 술이라는 표시로 엄지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조민이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정말 늙은 암컷 쥐 같군요!"
그는 우스개 말을 하고 나서 계속 벌컥벌컥 소리를 내며 술을 마
셨다. 조민이 손짓으로 그에게 소리내지 말라고 했다. 머리 위에서
발자국 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온 것
같았다. 한 사람이 말했다.

"장유기, 당신 무슨 짓을 하느라고 밤이 깊어 삼경이 되었는데 아
직 불을 켜 놓았어?"

장유기가 말했다.
"오 두령, 이거...... 밤 늦게 술을 두어 잔 마시다가 그만 불을
끄는 것을 잊은 것 같습니다. 오 두령, 밤이 많이 깊었는데 아직
쉬지 않으셨는가요?"

오 두령이 아주 기분 나쁘게 말했다.
"쉬는 거 같은 소리하고 있네. 막 잠이 들어 잘 자고 있었는데 갑
자기 성 안에 두 명의 자객이 들어왔다고 나한테 집집마다 조사하
라는 명령이 전해졌다. 그런데 밤새 뒤져도 귀신 그림자도 없잖아.
당신이 두어 잔 마셨다고 했는데 설마 술을 또 숨겨놓은 건 아니겠
지?"

장유기가 말했다.
"헤헤- 이 사람아, 사실은 아직 조금 있다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오 두령 당신 공무가 끝난 후에 내가 박주(?僭)를 조금 준비해 놓
으리다. 그러니 오 두령이 오셔서 맛 보시는 게 어떤가?"

오 두령이 말했다.
"좋네, 꼭 그렇게 하지. 가자!"
장유기가 말했다.
"잘 가시오. 잘 가!"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갔다. 조사하던 사람들이 간 것 같았다. 장
무기와 조민은 서로 쳐다보고 크게 웃었다. 이때 '쾅' 소리가 나면
서 동굴 문이 열렸다.

"두 분 신선님! 그곳에서 계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서 나오
십시오!"

조민이 웃으며 말했다.
"이 반쪽 신선이 취했어요. 번거로우시겠지만 장 대인께서 안주를
좀 내려주시는 게 어떻겠소?"

장유기의 울음섞인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신선님 좀 참아주세요. 그 술은 담근 지 백 년이 넘는
것으로 소인도 보기만 해도 아까워하던 것인데 아휴, 어쩌나......
!"

장무기는 일부러 혀가 꼬부라진 것처럼 말했다.
"아이구 어쩌나, 당신이 좀 일찍 얘기해 주시질 않구요. 이미 내
가 다 마셔 버렸는데!"

장유기는 무척이나 원망스러운 듯한 소리로 계속 비명을 질러댔다.
조민이 먼저 기어나오며 말했다.

"걱정 말아요. 술은 반 단지가 넘게 남았어요!"
장무기는 그가 그렇게 애석해 하는 것을 보고서는 더이상 마시지
않고 술단지를 닫고 지하실에서 기어나왔다.

조민이 말했다.
"지금 길에 나가 돌아다니는 데는 불편이 없겠죠?"
장유기가 말했다.
"별일은 없을 것입니다만 지금 병마와 군사가 어지러이 날뛰어 어
수선하니 두 분은 아직 나가시지 않는 게 좋습니다."

조민이 말했다.
"당신은 우리 두 사람이 당신을 곤경에 빠지게 할지도 모르는데
괜찮나요?"

장유기가 말했다.
"신선님들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그저 두 분이 평안무사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저에게도 행운입니다."

장무기는 그가 말끝마다 신선님, 신선님하고 부를 것이 어딘지 모
르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말했다.

"장유기, 우리 두 사람은 절대 신선이 아니오. 우리는 지금 전풍
을 잡......"

조민이 황급하게 말했다.
"장유기, 우리 부부가 며칠 신세를 지고 가려 하오. 그러나 절대
로 어떤 일에도 당신들을 끌어들이지는 않을 것이오. 이것은 변변
치 않지만 받아두시오. 아마 한동안의 우리 밥값으로는 충분할 것
이오."

조민은 말하면서 족히 열 량이 넘는 황금 덩어리를 건네주었다.
장무기는 어안이 벙벙해지면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는 그녀가 정
말로 공주 신분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이렇게 값비싼 것은 고고특
목이의 처소에서 가지고 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장유기는 어떻게 감히 받을 수 있느냐면서 죽어도 못 받는
다고 하며 받지 않았다. 조민은 하는 수 없이 도로 집어넣고서 말
했다.

"묻고 싶을 게 있는데요. 혹시 노인이 입던 낡은 옷이 있나요? 만
약 있다면 번거로우시겠지만 우리 두 사람에게 잠시 빌려주시오!"

장유기가 말했다.
"요리하던 부부가 입었던 옷이 몇 벌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남루
해서...... 괜찮을까요?"

조민이 말했다.
"아주 좋아요. 빨리 가져오시오!"
부인이 잠시 후에 남루한 옷을 가지고 들어왔다. 두 사람은 곧바
로 갈아입었다. 조민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어 두 사람의 머리에 바
르니 즉시 검었던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변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다 '히히'웃으며 등을 약간 구부렸다. 한눈에 보아도
영락없이 환갑이 넘은 노년의 부부와 아주 흡사하게 되었다.

장유기 부부는 너무 놀라워했다. 장무기와 조민이 익살스런 표정
을 짓고 그들에게 작별을 했다.

"혹 밤 늦게 다시 와서 소란을 피우더라도 용서 바라오."
두 사람은 장유기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구부정한 몸을 서로
부축하며 길로 나갔다. 장유기 부부는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
할 바를 몰라 한참 동안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

장무기가 말했다.
"할멈, 당신은 그들이 고발할 것이 두렵지 않소?"
조민이 말했다.
"그들이 우리가 평안무사하기를 간절히 바래요. 만약에 우리 두
사람이 잡히면 그들의 지하실 보물이 보존될 수 있을까요?"

장무기가 말했다.
"할망구, 점점 사문(??)이 되는구려!"
조민이 말했다.
"할아범은 어째 갈수록 멍청해지는구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 사람은 이미 제녕부 부아(繞?)에 이르렀
다. 그들은 세 걸음에 초소, 다섯 걸음에 보초병이 있는 것을 보고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부내(繞?)는 위병(??)들로 빽빽하게 채
워져 있었다. 두 사람은 어젯밤에 무공이 강한 자가 입성했다는 소
식에 전풍이 이렇게 일찍부터 경계를 더욱 강화시킨 것이라 생각했
다. 장무기는 전풍이 경계망을 펼친 까닭에 그를 사로잡는다는 것
이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두 사람은 바로 동문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많은 사졸들이 노약
자들과 병약한 자들을 독려하며 집을 부수고 돌을 옮기는 것을 감
독하고 는 모습을 목격했다. 동작이 조금이라도 늦는 사람이 있으
면 즉시 사졸이 채찍으로 사정없이 때렸다. 두 사람은 눈앞에서 기
진맥진하여 죽은 노인을 보게 되었다.

그때 갑자기 멀리서 통곡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소리에는 사졸들
의 때리고 욕하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두 사람이 가까이 가서 보
았더니 노파 한 사람이 그의 집을 헐지 말라고 간절히 애원하고 있
었다. 그때 몇 명의 건장한 사졸들이 노파를 발길로 차서 한쪽으로
밀어버렸다. 노파는 또 일어나서 부서져 버린 문짝을 죽어라 하고
안고서는 놓지 않았다. 이때 한 사졸이 칼을 꺼내 노파의 양 어깨
를 아주 힘껏 내리찍었다.

노파는 참혹하게 소리지르며 그 자리에서 기절하여 죽었다.
장무기가 크게 노하여 막 나서려 할 때 조민이 팔을 부여 잡았다.
장무기는 폭발하려는 감정을 겨우 억눌렀다. 두 사람이 떠나려 할
때 한 사졸이 소리쳤다.
"헤이-, 당신들 아직 안 죽은 두 늙은이, 이리 와!"
조민이 뒤돌아 보고서 자기들을 부르는 것을 알고 느릿느릿 걸어
갔다. 그 사졸이 고함치며 말했다.

"이 문짝을 동문으로 가져가라!"
장무기는 약간 어리둥절해 있다가 채찍 세례에 신음 소리조차 내
지 않고 이를 악물고 문짝을 들었다.

사졸은 그가 아무런 신음 소리도 내지 않고 참는 것을 보고 말했
다.

"당신, 아주 센 노인인데? 이렇게 꼿꼿한 늙은이인 줄 몰라 봤네!"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또 한 번의 채찍이 장무기의 어깨를 내리쳤
는데 장무기도 이번의 채찍은 너무 아파 고통스러웠다.

조민은 장무기가 참아내지 못할 것이 걱정되어 즉시 노인의 목소
리를 흉내내어 말했다.

"어르신! 노여워 하지 마세요. 그 사람은 벙어리라서 말을 못해요."
사졸은 그제서야 채찍을 멈추고 말했다.
"흥! 그러면 그렇지, 문짝을 동문으로 가져가라."
조민이 말했다.
"알았습니다, 어르신. 금방 가요. 바로 동문으로 들고 가겠습니다."
두 사람은 늙어서 기력이 없어 휘청휘청하는 것처럼 힘을 다하여
문짝을 땅에서 들어올려 동문으로 들고 갔다. 사졸과 멀어지자 장
무기는 참지 못하고 마구 욕을 해댔다. 그는 조민이 눈물이 흥건한
채 안쓰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무기, 많이 아프죠?"
장무기는 한참 동안 울분을 터뜨린 후에 말했다.
"괜찮소, 구양신공으로 버텨냈으니 걱정 말아요."
두 사람은 어느새 동문에 다다르게 되었다. 장무기는 원래의 동문
이 커다란 바위 덩어리와 깨어진 기와며 자갈로 완전히 메워져 있
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두 사람은 또 나머지 세 군데의 성문이
모두 이렇게 되어버린 것을 보았다. 제녕성의 사대문은 이미 꽉 막
혀버렸다.

장무기가 욕을 했다.
"이놈의 전풍, 이렇게 악랄하다니. 대장부라면 사내답게 일을 해
야지, 무고한 백성을 끌어들여 이토록 부려먹다니!"

조민이 말했다.
"전풍이 이렇게 사력을 다해 방비하는 것으로 봐서는 성을 무너뜨
리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요."

장무기가 말했다.
"우리 오늘 밤에 가서 그놈을 죽입시다."
조민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의 방위가 이렇게 주도면밀하니 우린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합
니다."

장무기가 말했다.
"그러면 우리 둘이서 사졸로 분장하여 당신 오빠가 진공해 올 때
를 기다려 성벽 위에서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어떻소?"

조민이 말했다.
"그때 성벽 위에서 수없이 많은 사졸들이 막는다면 당신은 그들을
다 죽일 수 있나요?"

장무기는 그녀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만약에 혼자서 싸운
다면 수많은 적들을 모두 쓰러뜨리는 것도 결코 간단하게 생각해서
는 안 되었다. 아무리 몸이 신공(佚殺)으로 단련되어 있어도 어떻
게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인가? 또 죽일 수 있다 하
더라도 어찌 이러한 대량학살을 감행할 수 있겠는가?

조민이 별안간 외쳤다.
"있어요, 있어요!"
장무기가 급하게 물었다.
"뭐가 있소?"
조민이 설명해 주었다.
"밤이 깊어지면 당신과 나 둘이서 방화(瑥飄)를 하는 것이에요.
그렇게 되면 오빠가 성 안에 일어난 불을 보고 반드시 치러올 것입
니다. 그때 가서 성을 부수면 안 될까요. 그때......"

장무기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네 곳의 성문이 모두 막혀버렸는데 방화로 어찌 성 안의 사람을
모두 타 죽게 할 수 있소? 안 되오!"
조민이 한숨지으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죠?"
장무기는 언뜻 광명정의 비밀 통로가 생각이 나서 얼떨결에 외쳤
다.

"그래, 땅굴(??)이다!"
조민이 말했다.
"무슨 땅굴요?"
장무기가 기분이 좋아져서 말했다.
"당신 오빠로 하여금 성 밖에서 땅을 파서 입성하도록 하면 되지
않겠소?"

조민이 비아냥거리듯이 말했다.
"우리는 지금 이 성 안에 있고 오빠는 성 밖에 있는데 도대체 어
떻게 오빠에게 땅굴을 파게 한단 말이에요?"
"이것 보오, 당신은 어떤 때는 총명했다가도 어떤 때는 아주 멍청
하구려. 우리 둘이서 몰래 성벽으로 가서 편지를 써서 긴 화살에
묶어 쏘면 당신 오빠가 바로 알 수 있지 않겠소."

조민이 그제서야 기뻐하며 말했다.
"그 계책은 기발하군요!"
두 사람은 장유기의 집으로 가면서 그 일을 자세하게 의논하였다.

장유기 부부는 그들 둘이 일이 잘못 되어 자기들의 지하실의 비밀
을 얘기할게 될까봐 불안초조하여 문에 나와서 기다리며 좌불안석
이었다. 원래는 전풍이 일찌기 부자집의 남아 있는 양식과 그외의
다른 많은 것들을 몰수하여 공유화하면서 만일 사장(?蒸)하는 자
가 있으면 양식은 몰수해 버리고 사람은 살려두지 않겠노라고 엄령
을 발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둘이 아무 일 없이 돌아오자 아주 반갑지만은
않아 이야기는 나누었지만 정성스럽게 맞이하지는 않았다.

"두 분 어르신, 제가 사졸 몇 사람을 초대하여 밥을 차려주려고
하는데 번거로우시더라도 두 분은 지하실에 잠시 기거해 주십시오.
괜찮으시겠죠?"

여기까지 말을 한 장유기는 난처해 하는 얼굴 표정을 한 채 뭔가
얘기를 하려다 그만 두었다.

장무기가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시는 그 명주를 안 마시겠으니!"
장유기가 그 소리를 듣고는 기뻐서 말했다.
"두 분이 먼저 지하실로 내려가셔서 음식을 좀 드세요. 잠시 후에
몇 사람이 올 것입니다."

두 사람은 그를 난처하게 할 수 없어서 서로 웃으며 지하실 속으
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장유기 부부가 술과 안주를 차려
서 내려주고는 급히 올라가 입구를 닫아버렸다.

조민과 장무기는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밥을 먹은 후
에 두 사람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오 두령과 한무더기의 사
졸들이 밖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모두들 다 얼떨떨하도록 마시며 밤
이 깊도록 떠들어대다가 떠났다.

그러자 장무기와 조민이 나와서 먼저 입었던 야행복으로 갈아입고
전풍이 거주하는 곳으로 몰래 들어갔다. 그러나 경비가 대단히 삼
엄한 것을 보고는 손댈 길이 없자 두 사람은 어쩔 도리 없이 으슥
한 곳에서 두 명의 사졸을 때려눕혀 그들을 둘러메고 장유기의 집
으로 갔다. 이렇게 하는 것은 또다시 장유기 부부를 놀라게 하는
것이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필이면 그 두 사졸은 명교인이
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장무기를 알아봤다.

장무기는 두 사졸을 지하실에 숨기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었다.
도 사졸은 성이 함락돼도 목이 달아날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지자
장무기에 대하여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해 했다.

장유기는 이런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아니 오히려 그의
사림이 부유하기에 몇 사람쯤은 와서 밥을 먹는 것도 크게 어렵지
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장무기와 조민 두 사람은 전풍 부하의 사병옷으로 갈아입고 내용
이 같은 짧은 서신을 적어서 몇 개의 창에 나누어 묶고 고고특목이
가 공격할 때를 기다렸다.

그들 두 사람은 혼란한 틈을 타서 성벽으로 기습하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에 많은 사람들이 잠이 덜 깨어 비몽사몽일 때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경종(?徵)이 울렸다. 사방은 일대 대혼란으로 시끌
시끌했다. 장무기는 고고특목이가 공격을 개시했다고 생각했다. 장
무기와 조민은 사람들 속에 끼어서 몰래 성벽으로 갔다.

눈을 들어 바라보니 광활한 대지 위에 수만의 몽고병들이 질서정
연하면서도 맹렬한 기세로 성벽을 향해 공격 대형을 이루고 있었다.

군 중앙의 수십 개 군기 아래 용모가 우람한 호랑이 얼굴의 장수
가 수명의 만부장(??只)에게 무슨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바로
고고특목이였다. 그의 뒤에는 십팔번승이 각각 자리잡고 서서 좌우
로 호위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몇 명의 만부장이 각각 군중으로 들어가니 고고특목이
가 손을 흔들어 전교(??)를 울렸다. 동시에 수만여 명의 몽고병
이 동문을 향하여 총돌격을 했다. 그외의 몇만 명은 손에 사다리를
들고서 동문을 향하여 두 방향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성벽 위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활을 시위 위에 올려놓고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몽고병이 서서히 죄어들어가 화살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자 수만
명이 동시에 함성을 질렀다. 소리의 기세로 적을 누르려는 심산이
었다.

이때 성벽 위에서 갑자기 호각소리가 울리며 수만 명의 궁수들이
일제히 활을 쏘았다. 사정거리에 들어온 무수히 많은 몽고병들이
화살에 맞고 쓰러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공세는 전혀 완
만해지지 않았다. 몽고병들은 동료의 시체를 뛰어넘으며 필사적으
로 돌격했다.

이때 쌍방의 죽이라는 소리가 하늘을 뒤흔들 정도로 울렸고 한 줄
한 줄의 몽고병들이 화살에 맞아 쓰러져 갔다. 성벽 위에서도 불시
에 화살에 맞아 죽은 시체가 성 아래로 떨어졌다.

장무기와 조민은 차마 지켜볼 수가 없어서 재빠르게 짧게 쓴 서신
을 묶은 몇 대의 긴 화살을 몽고 군중으로 날려 보냈다. 그후에 장
무기와 조민은 전대(旨央) 안에 있던 화살을 있는 대로 사람이 없
는 곳에다 다 쏴 버리고서는 화살을 가지러 가는 척하면서 몸을 돌
려 성벽을 내려가 장유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제 9 장 : 황산야령에서의 소망
장무기와 조민은 즉시 병복(??)을 벗어 두 명교교도에게 다시
입혔다. 장무기는 그들을 밖으로 보내며 말했다.

"두 분은 어두울 때 돌아가서 명교 형제들에게 전하십시오. 나 장
무기가 말하기를 주원장 장군에게 모두 투항하란다고 하십시오. 진
우량을 따라나서는 자에게는 오직 죽음의 길밖에 없다고 했다고 말
해 주십시오. 성 안에 오색인화(迹兪?飄)가 타오를 때를 기다렸다
가 바로 오른팔을 걷어올리고 군사를 일으켜서 전풍을 사로잡으십
시오. 이때에 몽고병과는 싸우지 마시고 약속대로 앞에 있으면 일
이 끝나는 대로 내가 다시 배치시켜 주겠습니다."

두 사람은 머리를 조아리고 돌아가 은밀하게 연락을 취했다.
장무기와 조민 두 사람은 지하에서 정기를 키우고 예기를 모았으
며 하루의 세 끼 식사는 장유기 부부가 대신 수고해 주었다. 조미
은 오직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잊지 못하는 듯 연신
눈물을 글썽였고 장무기의 부드러운 위로를 받고 나서야 겨우 마음
이 밝게 바뀌었다.

닷새 후에 갑작스럽게 동성(??) 밖에서 삼성포(寃猶?, ?=?)
가 울렸다. 바로 뒤이어 서성(??) 밖에서도 역시 삼성포가 들려
왔다. 이것은 바로 장무기와 고고특목이가 서로 약속한 공격신호였
다. 두 사람은 즉시 집을 나와 불을 붙인 폭죽을 하늘로 올렸다.
'슝-'하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폭죽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먼 하늘 끝에서 '펑-'하고 터진 폭죽은 홍색, 황색, 남색, 자색의
다섯 가지 색으로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바로 이것은 명교교
도들에게 행동개시를 명하는 신호였다.

장무기와 조민 두 사람은 즉시 지붕으로 뛰어올라가 부아(繞?)
방향으로 돌진하여 갔다. 제녕성 밖에서는 몽고병이 이미 성을 공
격하고 있었다. 성 안에서는 병기들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렸고,
땅굴 속에서는 몽고의 정병들이 줄을 이어 계속해서 뚫고 나와 전
풍의 부하들을 찾아내 죽이고 있었다. 명교교도들과 몽고병 쌍방은
약정을 지켜 서로 교전(??)하지 않았다.

제녕부아를 보니 이곳 역시 일대 혼란이었다. 원래 전풍의 보위병
중에도 명교교도들이 있었으나 그들 역시 몽고병과 합세하여 전풍
의 위병들을 죽이고 있었다.

장무기와 조민 두 사람이 부문으로 달려가니 천 수백 명의 사졸들
이 뾰족한 입과 원숭이 볼을 한 우락부락한 장수를 에워싸고 나오
는 중이었다.

조민이 큰소리로 꾸짖으며 지붕에서 아래로 몸을 날려 전풍에게로
달려갔다. 전풍이 급히 피하자 많은 사람들이 검과 창을 들고 조민
의 앞을 가로막았다.

장무기도 조민 옆으로 내려와서 잠시 멈추어 섰다가 마치 오이를
자르고 채소를 절단하듯이 전풍을 보위하는 사졸들을 죽이고 전풍
을 사로잡으려고 했다.

전풍은 장무기의 이런 귀신같은 무공을 보고 기겁을 하여 천여 명
의 위병들을 데리고 도망갔다.

장무기는 재빨리 지붕으로 뛰어올라 몇 번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추
격하였다. 몇 걸음 가지 않아 장무기는 전풍과 사졸들을 추월하여
그들의 길을 가로막았다.

사람들은 기겁을 하면서 걸음을 멈추었다.
장무기가 칼을 빼어들고 소리쳤다.
"오늘의 일은 단지 전풍과 관계있는 일이므로 너희들이 만일 투항
한다면 절대 다치지 않게 해주겠다."

장무기의 우렁찬 말이 떨어지자 몇 명의 병사들이 병기를 내던졌
다. 이것을 신호로 계속해서 병사들은 땅바닥에 무기를 버렸다.

장무기가 엄중한 목소리로 외쳤다.
"물러가라!"
병기를 버린 수백 명의 병사들이 모두 뒤로 물러갔다. 전풍은 하
얗게 질려서 도망을 가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서서히 장도를
뽑았다.

장무기가 전풍에게 돌진하려 몸을 움직일 때 조민이 말했다.
"무기 오빠, 제가 나갈게요!"
장무기는 그녀가 손수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하는 것을 알았기
에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고 자신은 몸을 한 번 돌려서 전풍이 도망
가지 못하도록 뒤에서 막았다.

조민이 사납게 말했다.
"전풍, 너는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전풍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당신이 누군지 어떻게 알겠소?"
조민이 말했다.
"내가 너를 죽이는 이유를......"
장무기가 돌연히 말을 했다.
"민 누이, 그로 하여금 투항하도록 합시다."
조민이 말했다.
"너는 찰한특목이를 기억하겠지?"
전풍은 그 말을 듣고 대경실색했다. 조민이 바싹 접근하여 말했다.
"내가 바로 그의 딸이다!"
전풍은 찰한특목이가 죽은 상황이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는 것
을 알고 있었기에 놀란 가슴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지금 눈앞의 사
람이 바로 그의 딸이라니, 싸울 힘이 빠져 버렸다. 조민이 위엄있
는 목소리로 외쳤다.

"무릎을 꿇어라!"
전풍은 '털썩-'하는 소리를 내며 땅에 꿇어 앉아서 살려달라고 말
했다.

"공주께서 소인의 이 한 목숨을 살려주시기 바랍니다. 소인은 천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
려, 살려......"

조민은 일대 영웅인 아버지가 이렇게 비겁하고 하찮은 놈에게 죽
임을 당했다는 치욕에 화를 참지 못하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
의 따귀를 때렸다. 전풍의 한쪽 볼이 즉시 퉁퉁 부어올랐다. 전풍
은 이때 손에 칼을 잡고 있었지만 그저 살려달라고 애원할 뿐이었
다.

조민은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하늘을 우러러보며 긴 한숨
을 쉬었다.

"아버지, 당신은 너무 억울하게 돌아가셨어요!"
그때 마침 일개 소대의 몽고병이 다가왔다. 장무기는 전풍을 끌고
가며 몽고병들에게 조민을 잘 보호할 것을 명령하고 자신은 몸을
돌려 성벽을 향하여 달려갔다.

장무기는 성벽에 도착하자 바로 전풍으로 하여금 병사들에게 투항
하라는 명령을 내리도록 하였다. 그때 전풍은 오직 목숨만 살려달
라고 애원하며 시키는 대로 했다. 전풍이 큰소리로 말했다.

"투항할 것을 명령한다! 투항할 것을 명령한다!"
이 광경을 본 전풍의 부하들은 대부분 병기를 버리고 투항하였으
나 투항할 것을 원치 않은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대항을
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전풍 같은 인간에 비하면 그들의 장열지
정(竣?柵盡)은 가히 탄복할 만 했다.

장무기는 싸움이 대강 끝나가자 전풍을 고고특목이에게 넘겨주고
제녕부의 부아로 급히 돌아왔다. 이미 수천 명의 명교교인들이 그
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무기를 보자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교주 만세!"
장무기는 한껏 소리내어 말했다.
"교도인 형제 여러분, 일어나십시오. 저는 이미 교주가 아닙니다.
이번에 여러분들이 큰 공을 세웠으나 장무기는 보답할 길이 없습니
다. 여기 한 통의 편지를 썼으니 여러분들은 주원장 장군에게로 가
든지, 혹은 다른 길을 찾든지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장무기는 서신을 먼젓번에 옷을 빌렸던 그 두 사람에게 전달해 주
었다. 그때 동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장무기와 수천 명의 오른팔을 걷어올린 병사들은 동문을 빠져나왔
다. 십 리(?咽)쯤 이른 길목에서 장무기는 많은 사람들과 헤어졌
다.

장무기가 몽고 진영으로 돌아왔을 때 조민과 고고특목이는 찰한특
목이의 위패 앞에 있었고 전풍은 이미 웃통이 벗겨진 채로 깃대 위
에 묶여 있었다. 그들은 장무기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전풍의 목으
로 제사를 드리려고 준비중이었다.

장무기는 진영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고 여덟 번 절한 후 좌중의
옆에 조용히 섰다. 이때 수십 만의 몽고 대군은 이미 군장비를 모
두 챙기고 아주 엄숙하게 위패 앞에 조용하게 서 있었다.

전풍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현실에 계속 두려움으로 입을 움직였
고, 온몸은 사시나무 떨 듯 덜덜 떨고 있었다. 땅 밑이 축축한 것
은 아마도 너무나 놀라 두려운 나머지 오줌을 싼 것 같았다. 몽고
인들은 평소에는 무사(俉?)를 존경했지만 전풍 같은 인간은 개,
돼지만도 못하다고 여기는지 쳐다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사
람들은 모두 여양왕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그를 갈기갈기 찢어 죽
이고 싶지만 오히려 손이 더러워질 것 같아 참고 있었다.

장무기도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어쨌든 당신도 수만의 병력을 통솔한 장군인데 대장부로서 죽으
면 죽었지 더이상 추잡한 꼴을 보여 동포의 얼굴에 먹칠하지 말아
다오."

고고특목이는 오른손에 예리한 칼을 쥐고 왼손에는 냉수 한 그릇
을 들고 천천히 전풍 앞에 가서 섰다. 잠시 후 전풍의 심장이 생생
하게 도려내어졌다. 즉시 고고특목이는 그릇에 전풍의 심장을 담아
찰한특목이의 영전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

"아버님, 아들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갚았습니다. 하늘에서 평안
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도 모두 무릎을 꿇고 여양왕을 위하여 기도를 했다.
x x x

이튿날 고고특목이는 장무기와 조민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두 사람은 먼저 대도에 돌아가 구양묘수를 찾은 연후에 다시 무당
산으로 가서 냉령에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냉령 이야기에 고고
특목이는 모르는 일인 듯 조민에게 말했다.

"민 누이야, 듣자하니 너의 수하인 아대(?暗), 아이(??), 아삼
(?寃)이 모두 냉면인에게 돌아서버렸다던데 내가 보기에는 그 사
람을 대적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으니 부디 항상 조심하거라."

장무기는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두 사람이 막 떠나
려 하는데 성지(濡?)의 급보가 도착하였다. 두 사람은 어떤 소식
이 또 이렇게 급하게 왔는가 궁금하여 잠시 떠나는 발걸음을 멈추
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고특목이가 장중(蠢猖)으로 돌아와
말했다.

"패라첩목아가 대도(?=대로)를 공격하여 성상(濡袁)을 협박하였
다네. 성상이 어쩔 수 없이 그를 우승상으로 봉함과 아울러 천하군
마를 다스리게 하였다네. 성상이 밀지(??)를 나에게 보내셨는데,
나더러 들어와 보호해 달라는군. 우리 함께 가세."

조민이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요?"
고고특목이가 한탄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요 몇 년 동안 몇 명의 장군들 사이에 세력 확충을 위한 싸움이
일어났지. 조정에서는 몇 차례 그들을 위하여 경계선을 그어 주었
지만 패라첩목아는 그것을 무시하고 계속 전쟁을 일으켰다네. 성상
께서 진노하시어서 그의 병권(?純)을 박탈했는데 그자가 법령을
어기고 경기(?蠅) 지역으로 침범해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조민이 말했다.
"간덩이가 부었군요!"
고고특목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근 몇 년 동안 성상에 대하여 간이 커진 사람이 어찌 패라첩목아
한 사람 뿐이겠는가! 그날이 언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오빠
역시 이 이상 화가 나게 되면 그런 일을 할 수도 있다."

조민이 이상하게 여기고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죠?"
고고특목이가 말했다.
"한마디로 말할 수 없다. 그저 너무나 무능하기 짝이 없을 뿐이다.
내 얘긴 하지 않았지만 사정이 이렇게 급하니 우리 같이 출발하자!"
고고특목이의 명령 한마디에 그의 수하에 있는 정병 육십만은 수
십 리에 깃발을 날리며 호탕하게 대도로 출발했다. 장무기는 이러
한 진세(?留)를 보고서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조민이
불쾌하게 물었다.

"왜 그러죠?"
장무기가 말했다.
"나는 정말 잘 모르겠소. 어떻게 이런 정예(秩赤)의 병마(??)로
패배할 수 있는 거요?"
조민이 화를 냈다.
"장무기, 여기에 당신도 한몫 한 것일 수도 있어요. 당신 기억하
죠? 만약 내가 원사(??)를 쓴다면 그 간신전(?日?)의 첫번째
인물은 바로 당신이에요!"

장무기는 당시 순황제 궁에서 황제가 나쁜 짓을 하도록 방임하였
었다. 장무기가 페르시아 총단에 갔을 때 조민은 소소로 변장하여
장무기와 대면한 적이 있었다. 장무기는 그때 바로 앞에 앉은 사람
이 소소라고 생각하고 이 모든 얘기를 다 해주었다. 그런데도 소소
는 즐거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녀가 바로 조민이
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소소로 분장하고 있었던 것을 누가 알겠
는가.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이 일에 대하여는 두 사람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장무기는 이때 조민이 분개하는 모습에 이 일이 중대한 일과 관련
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정색을 하고 말했다.

"민 누이, 페르시아에서 내가 그런 일을 말했을 때 그날 당신은
나에게 '공자(頌侏), 당신은 어떻게 이렇게 어리석죠? 원조(??)
가 망하고 망하지 않는 것은 하늘의 뜻에 달려있어요. 당신이 이러
는 것은 사실 간신들과 다를 게 없어요. 공자, 자중하세요!'라고
말했잖소. 그러나 그 사실을 말하자면 당신 아버지인 여양왕이 계
속 원 순화제에게 중용(脹粘)되지 못한 것은 황제가 어리석었던 것
때문이지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소. 만약 내가 정말 당
신의 말대로 간신이라면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요."

조민은 장무기의 말에 자신이 좀 심했다고 느껴져 마음이 몹시 심
란해졌다. 그녀는 많은 일들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 잠깐 사이에 금
방 판단해낼 수가 없어서 한숨만 쉬고 장무기와 같이 고삐를 잡고
말에 올랐다. 두 사람은 모두 묵묵무언으로 말을 달렸다.

가는 도중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대도에 가까이 갔
을 때 성지가 또 왔다. 패라첩목아는 고고특목이의 수십 만 정병들
이 대도 근처에 들이닥치자 전의를 상실하였다.

그의 부하들도 싸울 뜻이 전혀 없는 듯 한바탕 궁 안에서 소란만
피우고는 흩어져버렸다. 패라첩목아는 대세(暗留)가 갑자기 갈피를
못 잡을 지경에 이르자 도망갈래야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
는 아예 왕부(?繞) 안에 있으면서 종일 술과 여자에게 빠져 있었
다. 원 순제는 이 기회를 틈타 그를 잡아 죽였다. 다시 온 성지에
는 고고특모이를 원조의 좌승상으로 삼아 천하병마를 다스리도록
하였으니 즉각 입경하라는 교지였다.

고고특목이는 병마를 경기의 밖에 주둔시켜 놓고 십팔번승, 장무
기 조민을 데리고 대도의 궁성으로 들어갔다. 입성 후에 고고특목
이는 성상을 배알하러 갔고, 장무기와 조민은 바로 구양묘수를 만
나러 갔다.

조민은 대도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길에 대해서는 아주 익숙하였
다. 잠시 후에 두 사람은 조용한 사합원(?把?)의 문 앞에 이르러
집안에 알리지도 않고서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장무기는 조민의
뒤를 바싹 뒤따라 원문으로 들어갔다.

사합원 중앙에 정교하면서도 우수하게 그린 가짜 산이 보였으며
사주랑(?蹉樣) 구석에는 화초가 심어져 있어 아주 그윽하며 맑고
우아한 정취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조민이 말했다.
"구양대사님, 오늘은 또 어느 단골이 재수없이 당했나요?"
그때 집 안에서 '하하하' 웃는 웃음소리가 전해지면서 누군가가
말했다.

"군주가 어떤 일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왕림하셨나요?"
말을 마치자 한 사내가 나왔다. 나이는 약 사십 살 전후로 모습은
매우 수척한 자였다. 한눈에 학자 냄새가 물씬 풍겼다.

조민이 말했다.
"구양대사의 장사가 이렇게 번창했는지 미처 몰랐네요."
구양묘수가 즐거운 듯 말했다.
"모두 군주의 덕택입니다. 소생의 장사는 여전히 잘 굴러갑니다.
경(?)에서 군주의 친오빠가 조정의 좌승상으로 승진하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두 분, 안으로 들어가 앉으십시오. 자,
들어오세요......"

세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 좌정을 하였다. 장무기는 사방을 유심히
둘러보았다. 벽면은 온통 유명인의 자화(做驃)로 메워져 있었다.
장무기는 비록 자화에 대한 지식은 아직 얕았으나 온 벽에 가득 걸
려 있는 자화는 정품으로 많든지 적든지 간에 한둘은 감상할 줄 알
았다.

조민의 말이 들렸다.
"구양대사, 속담에 무사불등 삼보전(午?寓?寃??)이라 해서 일
이 없으면 삼보전에도 오르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저 역
시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구양묘수가 몸을 약간 구부리며 말했다.
"군주의 명에 소인이 어찌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조민은 몇 권의 경서를 탁자 위에 펼쳐 놓고서 자초지종을 얘기했
다. 구양묘수가 한참 동안을 심사숙고하고 나서 말했다.

"군주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인이 힘을 다해 보겠습니다."
조민은 그의 말을 듣고서 이 진귀한 경서를 복구할 수 있다는 사
실에 기뻐하며 물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어요?"
구양묘수가 말했다.
"한 달 후에 군주께서 오셔서 취(?)하십시오."
조민이 말했다.
"좋아요, 꼭 그렇게 해주세요. 그럼 우린 가보겠어요!"
두 사람은 하직인사를 하자마자 바로 문을 나왔다. 장무기는 이
경서를 보존할 수 있다는 희망에 기쁨이 넘쳐 조민과 서로 웃으며
얘기하면서 대도 부근의 유명한 풍경을 유람했다.

한 달 후, 두 사람은 약속대로 경서를 취하러 갔다. 마당에 들어
서면서 조민은 구양대사를 세 번 불렀으나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니 탁자 위에 유포(??) 보따리가 놓
여 있는 것이 보였다.

조민은 기쁨에 넘쳐 열어보고는 '아!'하는 놀라는 소리와 함께 당
황한 얼굴색을 감추지 못했다.

장무기가 황급히 다가가 보니 유포 보자기 안은 축축한 지장(?證
:펄프)이 처음 그대로 있었다. 바로 옆에 한 장의 서신이 놓여 있
었다.


'헤어진 부부가 만나기 어렵듯 엎질러진 물도 다시 모을 수 없다.
경서는 이미 훼손되어 버렸으니 헛수고할 필요 없다!'


먹물이 아직 채 마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
다. 필체를 자세히 보니 냉면인의 필체였다. 두 사람은 내심 크게
놀라 집 위로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
다. 이때 집 안에서 조민의 공포스런 외침소리가 들렸다.

"무기!"
장무기는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 심장이 찢어지는 듯하여 집 안으
로 뛰어 들어갔다. 조민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다.
장무기는 그녀가 무사란 것을 보고 마음이 가라앉았다. 눈길 가는
데로 쳐다보니 구양묘수가 땅에 엎어져 있었고 머리에 다섯 군데의
피를 흘린 구멍이 있었다. 바로 구음백골조(?遭汪誦?)에 의한 상
처로 보였다.

몸을 구부려 자세히 보니 구양묘수는 이미 죽어 있었다. 그러나
시신에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죽은 지 얼마 되지 않
은 것 같았다.

장무기가 너무 화가 치밀어서 고개를 드니 조민이 얼굴색이 새파
랗게 변해 공포스러운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무기는
너무 놀라서 두어 걸음 다가가 조민을 가슴에 안아줬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냉면인을 생각했다. 아마도 그는 몰
래 자기 부부를 따라다니며 두 사람의 목숨을 노렸으나 두 사람을
막아내기 어려웠던 것 같았다.

장무기가 말했다.
"민 누이, 우리 어서 무당산으로 갑시다!"
조민은 장무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두 사람은 여양왕부로
가면서 고고특목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여양왕부 안에 들어가니 생각지도 않게 고고특목이가 행랑을 챙기
고 경기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원래 황태자는 후궁의 음란한
생활에 대해 계속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혼자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어 감히 경거망동을 할 수가 없었다. 이때 황태자는 이미 성
장하여 성인이 되어 있었다. 그는 고고특모이의 정예군마가 경기
밖에 주둔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아버지를 협박하여그 직위를 물려
받고자 고고특목이와 몰래 의논했다.

고고특목이는 수년 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황태자에게 성상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해 왔다. 또한 장무기가 몰래 보낸 서신 속에
도 성상의 신변은 많은 능력있는 사람들이 보호하고 있으므로 해치
려는 마음을 없애라고 신신당부 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황태자는 그 아버지를 협박하여 황위에서 물러나게 하고
자 하였으나 고고특목이가 앞에 나서며 끊임없이 말리므로 대노하
여 돌아갔다.

고고특목이는 자신이 황태자를 화나게 했으니 경(?) 내에 머물렀
다가는 위험에 빠질 것으로 판단하였다.

게다가 그는 군려생활(琡彦唯?)이 습관이 되어 있어 조정의 여러
번문욕절(猥澳鐫識:번거롭고 불필요한 예절)을 참아내기가 어려웠
다. 그의 이러한 군인 기질은 적지 않은 조정의 신하들에게도 눈
밖에 나고 있었다. 바로 이때 회사(??) 지방에서 주원장이 위세
를 크게 떨치자 원의 조정은 깜짝 놀라 바로 태자로 하여금 친히
정벌할 것을 명령하게 되었다. 그때 고고특목이가 천자 앞에 무릎
을 꿇고 태자를 대신하여 정벌에 나서겠다고 아뢰었다.

원조 황제 역시 고고특목이가 병력을 다스리는 것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고고특목이의 용맹이 그 아버지인 여양왕에 뒤지지 않는
다는 것은 조정에서도 소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에 황제는
즉시 출정을 허락하였다. 조서를 내려 고고특목이의 관직을 우상승
으로 한 단계 승직시키고 천하병마를 주어 그에게 즉각 경(?)을
떠나가서 난(神)을 평정토록 했다.

고고특목이는 비록 승관(怡?)되었고 또 경도(??)를 떠나 한 지
역을 독점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얼굴에는 전혀 기쁜 내
색이 없었다. 조민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 이유를 물었다.

고고특목이는 한숨을 길게 토해 내면서 말했다.
"내 비록 천하병마의 대원수(暗?衣)이기는 하나 유명무실한 직책
에 불과하지. 이사제 같은 인간들이 어찌 나의 명령을 듣겠느냐!
아직 명교와는 교전이 없었으니 이것은 동굴 속에서 한바탕 싸우는
꼴이구나!"

조민은 이에 아무 말이 없었다. 서로 진중(?脹)한 후에 고고특목
이는 군중(琡猖)으로 돌아가고 조민과 장무기는 서남방향으로 향해
무당산으로 갔다.

중추절까지는 아직도 삼 개월이나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일은
아주 중대한 일이기에 반드시 일찍부터 준비를 해야만 했다. 장무
기와 조민은 밤낮을 쉬지 않고 무당산으로 달려갔다.

x x x

하루도 걸리지 않은 시간에 두 사람은 태원(梔?)에 도착하였다.
두 사람이 여관에 투숙하지 않았을 때에 거리에는 거지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서너 개의 자루를 짊어진 거지 몇 사람
을 볼 수 있었는데 바로 개방의 제자들이었다.

개방의 제자들은 방 내에서도 지위에 고저(俗?)가 있었다. 그들
은 등에 짊어진 자루 수로 서열을 정하였다. 즉, 자루가 많으면 많
을 수록 높은 지위였다.

소림사의 영웅대회에서 개방은 그들의 방주(玉嵯)가 실종되는 위
기에 처했을 때 장무기가 잘 해결해 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
부러 명교를 도와주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미파와 서로 싸울
때 전공장로(?殺只?), 집법(?擾)장로와 장발용두(雋筽井?)의
삼대(寃暗) 개방 고수가 모두 죽고 말았다.

지금의 방주 사홍석(?杓?)은 전임 시 방주의 독녀(??)인데 나
이는 겨우 열세 살에 불과했고 용모는 추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의
콧구멍은 하늘로 향해 있었고, 큰 입의 가운데에는 아주 큰 두 개
의 이빨이 드러나 있어 마치 멧돼지를 연상시키는 추녀였다. 게다
가 전혀 무공을 할 줄 몰랐다. 이치대로 따지자면 강호의 각문, 각
파, 각 방회의 장문이나 교주는 모두 몸에 절기를 지니고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신망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방의 많은 장로들은 전임 시 방주가 많은 형제들에게 은
혜를 베풀었기 때문에 그가 혼원벽력수 성곤(鋪??勵? ?損, ?=
飽?樂?? ?蓀)과 그 도제(扼?)인 진우량의 수하에게 참사된 후
에 그 딸 사홍석을 방주로 추대했던 것이다. 방 내의 모든 일들은
전공, 집법, 두 장로가 책임을 맡았으나 두 사람이 참사된 후에 개
방의 근황이 어떤지 잘 몰랐다.

장무기는 옛날에 소림사의 영웅대회에서 황삼여인 양빙에게 은혜
를 입은 적이 있었는데, 양빙은 그에게 개방의 일을 여러 가지로
잘 돌봐줄 것을 부탁했었다.

그때에 장무기는 그렇게 해주겠다고 대답을 했었는데 그 후 페르
시아에서 몇 년을 지내게 되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몰랐다. 그래서
장무기에게는 그 일이 항상 걱정거리로 남아 있었다.

이때에 많은 개방제자들이 태원으로 운집하였는데 사람들의 얼굴
은 모두 침울해 보였다. 장무기는 개방에 큰일이 일어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무기가 조민을 쳐다보니 그녀도 알았다는 듯 고
개만 끄덕였다. 두 사람은 곧 가까운 객사로 들어가 묵기로 했다.
장무기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개방제자의 모
습으로 바꿨다. 장무기는 그럭저럭 외모가 그들과 흡사하게 되었다.
조민은 낡은 의복을 걸친 그 모양새에 참을 수가 없어 피식피식 웃
고만 있었다. 마침 그때 개방은 오의파(氈縱駝)가 서로 파벌을 조
성하여 다툼이 계속되고 있었다. 조민은 눈살을 찌푸리다 할 수 없
이 정의파의 한 제자로 분장을 했다.

두 사람은 객사에서 나와 개방제자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눈 깜
짝할 사이에 모두 가버리고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장무기는
이상하게 생각되어 조민에게 물었다.

"이것이 어찌된 일이오?"
조민은 대답하지 않은 채 사방을 살펴보고 부근에 있는 주점(僭直)
으로 걸어갔다. 조민은 거지의 규칙대로 연화락(??揶:통속적인
가곡으로 보통 노래의 매 단락마다 ??揶, ??揶이라는 후렴을
붙임) 노래를 부르며 주점으로 들어갔다.

주점의 심부름꾼이 보고서 바쁘게 뛰어나와 맞이하였다.
"물론 두 분은 식사를 하시겠지요? 제가 들어가서 곧 준비하겠습
니다."

장무기는 속으로 웃었다. 많은 개방제자들이 일시에 태원성으로
몰려들어 장사꾼들을 놀라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개방
의 규칙은 매우 엄해서 만일 힘을 믿고 약한 자를 괴롭힌다면 조사
받은 후에 즉시 죽임을 당했다. 평민 백성들은 모두 개방의 규칙이
너무 엄격하여 그들이 비록 옷이 남루하거나 아주 지저분해도 감히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민이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의 걸음이 좀 느려서 이렇게 뒤쳐졌습니다. 부탁컨
대 우리 형제들이 간 방향을 알려주십시오."

심부름꾼은 두 사람이 밥을 얻고자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기뻐하며 말했다.

"그분들은 방금 동쪽으로 갔는데 성을 나가려는 것 같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두 사람은 지체없이 바로 동문으로 향했다. 이때 하
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천지간이 희뿌옇게 되었다. 멀리 바라보
니 드문드문 있는 촌사(村?)들이 넓은 평원에 흩어져 있었다. 그
러나 개방제자들의 그림자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할
수 없이 앞으로 달려갔다. 마침내 두 사람은 개방제자들이 간 길을
물어물어 하늘이 어두워질 때에서야 속혈곡(戎?贖)에 이르러 그들
을 따라잡았다.

곡중(贖猖)에는 이미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많은 개방
제자들이 불 주위에 둘러 앉아 있었다. 개방제자들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작은 소리로 서로 의논을 하고 있었다. 장무기는 개방대회
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을 알고 기뻐했다. 두 사람은 군중 속으
로 몰래 들어가 어렵게 앞쪽으로 가서 많은 사람들 속에 앉았다.

어린 방주 사홍석은 중간에 앉아서 오른손에 방주의 신물인 타구
봉(?燧?)을 집고 있었으며, 그녀의 우측에는 장봉용두(雋?井?)
가 서 있었고, 좌측 역시 내공이 뛰어난 몇 명의 개방제자가 서 있
었다. 장무기는 그들을 잘 알지 못했다. 장무기는 그들이 새로 승
격된 제자라고 생각하였다. 좌우에는 수십 명이나 되는 팔대(?央)
제자들이 서 있었다.

장무기는 이런 성세(猶留)를 보고 마음이 조금 위로가 되었다. 장
무기는 지금까지 몇 년 동안 개방 내에 아직 큰 일이 일어나지 않
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로부터 강호에서는 이런 말들이 전해져 내려왔다.
"명교, 개방, 소림사."
이것은 바로 교회(??)는 명교가 가장 크고, 방회는 개방이 최고
이며, 무학문파(俉澤?駝)를 논하자면 소림사를 존중해 준다는 뜻
이다. 지금의 개방 형세만 보고서도 이 말이 거짓 같지는 않아 보
였다.

장봉용두가 몸을 굽혀 사홍석 방주에게 무슨 말을 하자 그녀는 고
개를 끄덕거렸다. 장봉용두가 곧이어서 큰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조용, 조용. 방주께서 하실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내공을 갈무리하여 일시에 속혈곡에 모여 있는 수천 명의,
개방제자들이 들을 수 있도록 소리쳤다.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웅성
거림이 멈추고 이내 조용해졌다.

장봉용두가 말했다.
"형제 여러분, 본방은 냉령을 이미 받았습니다. 냉령이 본방에게
그들의 명령을 들을 것을 명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본방
의 제자들을 모조리 때려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이 일이 이렇게 중
대하기 때문에 형제 여러분을 이 자리에 초대한 것입니다. 자, 모
두 힘을 합쳐 논의합시다!"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속혈곡 안은 어느새 웅성웅성해지더니 다시
아주 혼란스러워져서 어떤 말도 잘 들리지가 않았다.

장봉용두는 사람들이 좀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계속해서
말했다.

"삼산오악(寃雲迹?)의 무수한 방파들이 냉령의 발 아래 무릎을
꿇었습니다. 무산방(豫雲玉), 해사파(??駝), 신권문(佚瞬?), 삼
강방(寃析玉), 오풍도(迹憚埃), 단혼창(十幅廳) 등 여러 문파방회
(?駝玉?)의 방주나 타주들이 피상되었거나 습격당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냉령 교주가 시킨 것으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장(準)중의 많은 사람들이 또 시끌벅적하
더니 어떤 사람이 외쳤다.

"개방은 천하에서 제일 큰 방회인데 어찌 그 사람에게 굴복할 수
있는가!"
"맞습니다. 우리는 거지로서 근심, 걱정이 없습니다. 목숨을 버리
는 한이 있더라도 개방의 얼굴에 먹칠할 수는 없습니다!"
"냉령주가 어떤 물건이기에 이렇게 크게 놉니까?"
"......"
장봉용두가 말했다.
"개방이 강호에서 수백 년의 명예를 누려와서 소림, 무당, 명교조
차도 감히 지금까지 우리를 우습게 여기지 못합니다. 오늘 이 일이
생긴 이상 우리는 죽음의 맹세로 냉령주와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형제들, 이의 없습니까?"

많은 군중이 '와-'하며 감전이 격앙되었다. 장무기는 내심 무척
놀랐다. 냉면인의 욕망이 깊고 그의 수하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가 먼저 손을 써 그렇게 많은 강호방문의 사
도(??)를 정벌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만약 또 다른 일이 개방의 머리 위에 떨어진다면 자기도 수수방관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장봉용두가 말했다.
"반 시진이 지나면 냉령의 수하인이 이 속혈곡으로 올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을 죽입시다!"
"그 개새끼들을 죽여 구워 먹읍시다!"
장봉용두가 말했다.
"무공이 아주 높은 것으로 보아 우리는 절대로 그들의 적수가 못
됩니다. 그러나 대장부로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개방의 이름을 실
추시킬 수는 없습니다. 개방은 이미 형제 여러분들을 위하여 맛있
는 술을 잔뜩 준비했습니다. 우리 한 번 실컷 마시고 적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끝까지 혈전(??)합시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와-'하고 호응을 하였다. 사람들은 마치 죽
는 일을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이 여기는지 조금도 두려워하는 태
도가 아니었다.

장무기는 마음 속으로 크게 감동 받았다. 술이 가득찬 단지가 그
에게로 돌아왔을 때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크게 한 모금 마셨
다. 그는 조민이 술을 못 마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바로 조민의
뒷사람에게 전해 주었다.

그때 장무기가 갑자기 공기가 이상해진 것이 느껴져 고개를 들어
보니 회색의 사람 그림자가 장중(準猖)으로 스쳐내려오고 있었다.
어찌나 내공이 심후한지 사람의 그림자는 내려온 후에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악명높은 요동악마 관문으로, 그는 다 떨어
진 장삼으로 분장하고서는 입으로는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
다.

개방은 사람 소리로 떠들썩해서 아무도 그가 온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었다.

장무기는 속으로 경계를 하고서는 만약에 관문이 어떤 행동이라도
하려 한다면 자기가 즉시 몸을 날려 나가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관문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개방은 명령을 들어라!"
수천 명의 웅성거림 속에서 관문의 외침은 아주 정확하고 또렷하
게 사람들의 귀를 뚫고 속혈곡 안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장봉용두와 세 명의 팔대제자는 즉시 방주 사홍석의 앞을 막았다.
이때 갑자기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번쩍하더니 장(準)중에 두 사람
이 더 나타났다. 그들이 바로 현명이로였다. 녹장객은 시커먼 얼굴
위에 듬성듬성하게 희끗희끗한 긴 수염이 흐트러져 있었고, 학필옹
의 푸른 얼굴은 밝은 불빛 아래에서 아주 괴상하게 보였다. 세 사
람은 모두 말없이 차갑게 장봉용두를 응시했다.

좌중에서 참기 어려워하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방금 현
명이로가 공중에서 장내로 내려오면서 사람들에게 퍼부은 장력에
내상을 입은 적지 않은 개방제자들의 고통스러운 소리였다.

개방의 제자 중에서 무공이 비교적 높다는 제자들은 이미 방주를
좌우에서 보호하고 있어서 주위에 흩어져 앉아 있는 제자들은 무공
이 약했다. 또한 악랄한 현명이로가 갑자기 뒤에서 공격하여 모두
방어를 하지 못해 수십 명이 순식간에 당한 것이었다.

장무기는 현명이로가 흉악하게 출수하는 것을 보고 일어나서 몸을
움직였다. 그때 재빨리 조민이 팔을 붙잡아 제자리에 앉도록 했다.
바로 이때 학필옹이 호통치듯 말했다.

"냉령 사자가 오셨다. 개방의 방주(玉嵯)는 아직 무릎을 꿇지 않
고 무얼 하느냐?"

장봉용두가 흔쾌하게 말했다.
"개방이 강호에서 종횡한 지 수백 년이 되었어도 지금까지 누구에
게 머리를 숙여 본 적이 없다."

학필옹이 말했다.
"방주에게 물었는데?"
장봉용두가 말했다.
"방주가 어려서, 개방의 일은 이 늙은 거지와 몇 명의 장로들이
책임을 지고 있다. 너는 무엇하러 이곳에 왔느냐?"

학필옹이 말했다.
"오늘 우리가 온 것은 한 가지 일을 위해서이다. 너희들은 오랫동
안 의논하였을 테니 그 결과가 어떤 건지 빨리빨리 보고해라!"

학필옹의 말투는 아주 공식적인 어투였다. 원래 그는 조민의 수하
로 있었다. 그는 조민의 아버지인 여양왕을 통해 관직(??)에 오
르려 했으나 운이 따르지 않아 결국은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광경을 본 조민은 자신도 모르게 '흥!'하는 소리가 나왔다.

장봉용두가 소리쳤다.
"냉령주가 본방의 일에 신경을 쓸 필요가 뭐 있느냐!"
학필옹이 말했다.
"그렇다면 네가 우리를 이길 재간이 있느냐?"
장봉용두가 말했다.
"대장부가 처세(?由)함에 있어서는 대도를 따름이 마땅한 것으로,
설사 대적할 수 없다 해도 결코 굴복하지는 않는다. 길고 짧은 것
은 대봐야 하지 않겠는가?"

장봉용두는 학필옹의 알 수 없는 듯한 표정을 읽고서는 다시 말했
다.

"먼저 한 초를 양보해 주겠소."
녹장객이 관문에게 말했다.
"관 대협, 우리 형제의 대명(暗髥)은 이미 들어 알고 있을 테니
우리가 솜씨를 보여 시야를 넓혀주면 어떻겠소?"

요동악마 관문이 말했다.
"'요동악마'니 혹은 '대협'이라고 하는 두 호칭은 사실 나에게 가
당치 않을 것이오. 내 얼굴에 금을 발라주는 아첨은 필요없으니,
내가 개방을 망신줘도 무방하겠지?"

관문은 말을 끝내고 천천히 칼을 뽑아들고 곁눈질로 장봉용두의
관심없다는 얼굴 표정을 읽었다.

녹장객이 대답했다.
"천만의 말씀이오."
그는 말을 하고서는 학필옹과 한쪽으로 물러가 장내(準?)로 길을
열었다. 현명이로는 자신들의 무공이 높고 강한 것만 믿고서는 많
은 무리의 개방제자들은 거의 안중에도 두지 않고 등을 권외(盾?)
로 돌린 개방제자의 앞으로 갔다. 갑자기 개방제자들이 소리를 지
르며 현명이로를 공격했다.

"초식을 받아라."
개방제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공격함과 동시에 신음 소리가 들려왔
을 때에는 이미 세 사람의 개방제자가 현명이로의 뒤에 쓰러져서
입에서 선혈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들은 상처가 아주 심하여 살아
나기 어려울 듯했다.

개방제자들은 현명이로가 자신들을 너무 업신여기는 것에 화가 나
서 그들을 둥 뒤에서 공격한 것이다. 개방은 지금까지 무림의 정파
(賑駝)로 혁혁한 명성을 떨쳤다. 개방제자들은 의협심이 강해서 남
을 뒤에서 기습하는 것을 원치는 않았기 때문에 뒤에서라도 먼저
소리를 냈던 것이다.

현명이로는 무공이 고강하여 고개를 돌리지 않고서도 삼 장(寃雋)
을 발하여 세 명의 개방제자를 그 자리에서 격살시킬 수 있었다.
나머지 개방제자들은 이 광경을 보고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함
성을 지르며 수십 명이 공격했지만 상대가 되지 못했다.

현명이로는 개방제자들의 이런 기세를 보고 그들이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기며 꺼리는 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두 사람은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가 장중(準猖)으로 물러갔다. 이때 키가 훌쩍 큰 개방
장로 한 명이 소리쳤다.

"물러나서 타구진(?燧?, ?=?)을 만들어라!"
수천 명의 개방제자들이 '와-'소리를 지르며 동에서 한 무리, 서
에서 한 무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조민과 장무기는 어느 사람이
어디에 자리잡고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 모두가 다 잘 알고 있는 듯
한 모습에, 타구진의 밖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키가 훌쩍 큰 개방
장로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서 놀란 듯이 물었다.

"당신 두 사람은 뭐하는 사람입니까?"
장무기가 궁신(橓壬)의 예를 차리고 말했다.
"방주께 양 언니의 친구가 왔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 사람은 장무기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사홍석에게 보고하였다.
사홍석은 '양 언니'이라는 세 자를 듣고, 양빙을 부르며 뛰어왔지
만 처음보는 장무기와 조민을 알 리가 없었다. 이 어리고 못생긴
방주의 얼굴에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조민이 부드럽게 말했다.
"사 방주, 양 언니는 일이 있어서 올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에게 개방으로 가서 도와줄 것을 명하였기에 기쁜 마음으로 이
곳에 왔습니다."
사홍석 방주는 조민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그러시다면 저를 따라오십시오!"
사홍석은 엄숙하고 위엄있는 방주의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은 서
로 바라보고는 웃음지으며 따라갔다.
이때 장중에서 장봉용두와 관문 두 사람이 서로 싸울 태세를 갖추
고 기다리고 있었다. 요동악마 관문은 장검을 들고 상대를 전혀 안
중에 두지 않고 정(晉)자도 아니고 팔(?)자도 아닌 걸음으로 장봉
용두에게 다가갔다. 장봉용두는 엄숙한 표정으로 장봉(只?)을 비
스듬하게 거머쥐고서 정신 집중을 하면서 관문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관문이 조용하게 말했다.
"내가 먼저 실례하겠소!"
관문은 말을 끝냄과 동시에 원기왕성한 기운으로 장봉용두를 공격
했다. 장봉용두는 여전히 미동없이 비스듬하게 장봉을 거머쥐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검광을 번뜩이며 관문이 말했다.
"담력과 식견이 아주 좋군요!"
장봉용두가 말했다.
"과찬이오이다!"
원래 관문은 일부러 농(?)을 걸어 장검을 마구 휘두르기만 하고
진공(?受)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뜻밖에 장봉용두는 그것을 미리
간파하고 피하거나 공격하지 않고 관문이 하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
다.

관문이 장검을 옆으로 들고서 장봉용두의 왼쪽 어깨를 찔렀다. 그
러자 장봉용두는 오른쪽으로 한 걸음 옮기면서 장봉을 바람처럼 내
리치며 관문의 허리를 공격했다.

관문은 검초에 힘을 다 쏟아 장봉용두의 두 눈을 여러 차례나 계
속해서 찍었다. 장봉용두는 할 수 없이 뒤로 공중회전하며 장봉을
앞으로 쭈욱 뻗었다.

관문의 신법(壬擾)은 번개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재빨리 땅바닥을
차면서 공중으로 치솟았다. 관문의 검끝은 여전히 장봉용두의 얼굴
에 있었다.

장봉용두가 아무리 빨리 피한다고 해도 관문의 검끝은 일거에 장봉
용두를 구멍낼 수 있었다. 장무기는 기세가 위급해진 것은 보고 가
볍게 장풍을 쏟아냈다.

관문은 순후정대(?馮賑暗)한 큰 힘이 자기를 향하여 치고 들어오
는 것을 느꼈으나 그다지 거세지 않은 듯하여 피하지 않았다. 순간
장무기의 좌장(侘雋)이 맹렬하게 다가왔다.

'펑'하는 소리가 나면서 관문은 허공을 한 바퀴 돌아서 뒤로 날아
가 땅에 곤두박질쳤다. 겨우 일어난 관문은 '쿵쿵쿵'거리며 세 걸
음 뒤로 물러나서 말뚝을 잡고서야 제대로 설 수가 있었다. 그는
너무 놀라서 장무기를 바라보았다.

장봉용두는 장무기가 도와주는 것을 모르는 채 급히 뒤로 몸을 뺐
다가 관문이 사오 장 앞에서 겨우 몸을 지탱하는 것을 보고 영문을
몰라 깜짝 놀랐다. 이때 장무기가 입을 열었다.

"장로(只?)님, 소인이 먼저 공격하도록 해주십시오. 만약에 실패
하면 그때 장로님께서 다시 출수해 주십시오."
장봉용두는 고개를 돌려 방주 옆에 서 있는 장무기를 보았다. 목
소리는 아주 낯익었으나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아 그저 방중의 어
느 제자겠지 생각했다. 그는 관문이 아주 악랄하다는 것을 알고 있
어서 방중에서 자신을 제외하고는 관문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
다고 여겼다. 장봉용두 장로가 뭔가 말하려는 찰나 장무기는 이미
몸을 날려 장중으로 들어가 관문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요동악마, 너는 장로의 적수가 안 된다. 내가 먼저 너를 처리하
겠다."

관문은 지금까지 자기의 내공과 검술이 비범하다고 자부하고 있었
으나 지금 생각지도 않은 개방제자의 장풍을 맞자 자기 스스로도
참을 수가 없었다. 비록 자신이 공중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어쩔
수 없이 낭패를 당했다고 해도 이런 것은 평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
다. 처음에 관문은 오만방자한 생각으로 공력의 삼 할 정도만 넣었
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충격적으로 당한 것은 뜻밖이었다.

장무기는 관문의 무공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았다. 만일 지금 처치
하지 않으면 중추절 무림대회에서는 더욱 힘들 것이라고 판단했다.
더우기 현명이로가 함께 있었기에 세 사람이 만일 손을 잡으면 더
욱 다루기가 어려울 것이다. 장무기는 마음 속으로 단호하게 살수
(垣?)를 써서 먼저 관문을 요리한 후에 다시 현명이로를 공격하려
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녹장객이 장무기를 알아보고서는 차갑게 말했다.
"장 교주, 오늘은 우리가 냉령의 사절로 왔으니, 만일 당신이 우
리와 싸우고 싶다면 중추절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겠소."

녹장객은 사실 장무기에 대하여는 꺼려했다. 지금의 진세(?留)로
봐서는 자기들 세 사람이 힘을 합친다면 장무기에게 절대로 지지는
않겠지만, 타구진을 형성한 수천 명의 거지를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세히 따져보면 자기들에게 승산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말로써 먼저 장무기를 묶어 놓으려 생각했다.

장무기는 갑자기 멍해져서 말했다.
"이 요동반도 악마는 어찌 이리 출수가 악랄하냐?"
학필옹이 끼어들며 말했다.
"냉령 영주께서는 개방의 거지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그들을 수하
에 두어 편히 입고 먹을 수 있도록 하려고 하신다."

장무기가 냉소를 머금고서 말했다.
"그런 다음에는?"
학필옹이 말했다.
"임금의 녹을 먹으면 임금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 당연한 일
이듯, 이후에 영주의 명령이 있으면 개방은 당연히 따라야지."

녹장객이 끼어들며 말했다.
"사제, 입좀 다물게. 우린 그만 가세나!"
세 사람이 몸을 돌려 떠나려 하자 조민이 홀연히 말했다.
"잠깐 기다리시오!"
녹장객이 서서 돌아보고 조민을 향해 비꼬듯이 대꾸했다.
"군주께서 뭐 지시내릴 것이라도 있나요?"
조민이 말했다.
"당신들이 방자하게 마음대로 왔다가 마음대로 가니 도대체 개방
의 이 많은 영웅호걸이 눈에 안 보인단 말이오?"

녹장객이 말했다.
"군주께서 언제 개방으로 오셔서 의탁하셨나요?"
장무기는 조민의 뜻을 알고 여러 말 할 필요없이 쌍장(?雋)을 모
으며 소리쳤다.

"초를 받아라!"
장무기는 곧바로 현명이로를 향하여 쌍장을 내리쳤다. 그는 어렸
을 때 현명이로의 독수에 맞아 거의 목숨이 끊어질 뻔 한 적이 있
었다. 장무기는 수차에 걸쳐 현명이로를 죽이고자 하였으나 번번히
실패하였다.

이번에는 반드시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장무기는 십성의
공력을 써서 현명이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현명이로는 타오르는 듯한 열기(?褶)가 정면으로 치고 들어오자
급히 좌우로 갈라지며 장무기에 대적하였다. 두 사람은 병기를 뽑
아들고 몸을 비스듬하게 기울여 장무기의 옆구리를 공격했다.

녹장객의 무기는 그 끝이 예리하게 갈라져 사슴 뿔처럼 생겼다.
녹장객은 겉이 온통 까만 현철단장(??俄茁)을 들고서 장무기의
오른쪽에서 공격했고, 학필옹은 손에 붓끝이 학 주둥이같이 예리하
면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쌍필(?帑)을 가지고 그 왼쪽에서 공격하
였다.

장무기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 형제들, 다시 한 번 공격해 보시겠소?"
장무기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녹장객이 장무기의 우측 옆구리
를 찌르려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서 학필옹의 목을 찌르고 있었
다. 학필옹이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장무기, 대장부가 어찌 이런 해괴한 요법을 쓰느냐?"
원래 장무기는 건곤대나이심법을 사용하여 자기를 향해 공격해 오
는 녹장객의 병기를 학필옹의 몸으로 가도록 한 것이었다. 이 건곤
대나이심법은 심오한 법문(擾?)으로 남의 힘을 빌어서 남을 칠 수
있는 무공이었다. 그러나 녹장객과 같은 고수의 힘을 끌어내어 사
용할 때에는 아주 심오하고 복잡한 내공이 필요하여 비상한 사람만
이 해낼 수 있는 무공이었다.

현명이로는 여러 번 무공으로 남에게 당해 본적은 있었으나 사형
제끼리 서로 싸운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장무기의 고의적인 수법을 보고 두 사람은 모두 겁이났다. 공격하
자니 또 자기의 무기가 상대의 몸을 칠까봐 두려웠고, 공격을 안
하자니 장무기가 일 장, 일 장, 치고 들어오는 것을 어떻게 막아낼
수가 없었다.

학필옹이 말했다.
"관문, 우리 어깨를 같이 나란히 해서 싸워볼까요?"
관문과 학필옹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서로 쳐다보다가 동시에 장
무기를 향해 공격했다. 장무기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만면에 웃
음을 머금고 두 사람을 골탕을 좀 먹이려고 타구진 안으로 들어갔
다. 현명이로도 순간적으로 동시에 십 장을 건너뛰며 안으로 들어
갔다.

장무기는 타구진 속에서 몽둥이들이 나타나 어지럽게 흔들리는 것
을 보고 재빨리 공중으로 치솟으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사실 타구
진은 매우 법도(擾厄)가 있는 진법이었다. 장무기는 공중으로 치솟
으면서 현명이로가 솟구칠 수 없도록 모든 방향을 봉쇄하였다. 현
명이로는 순간적으로 타구봉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하고 몸의 몇 군
데를 맞았다.

장무기는 순간적으로 타구진법이 정묘하기 이를 데 없고 신비롭다
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명이로는 내공이 심후하였기 때문에 몇
대를 얻어맞았어도 그렇게 심하게 다치진 않았다. 두 사람은 기회
를 엿보고 있다가 재빠르게 등과 등을 맞대고 타구진을 돌파하였다.
개방제자들은 장무기의 손짓에 따라 그들이 도망가게 그냥 두었다.
눈 돌리는 순간에 그들은 이미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관문은 현명이로가 간다는 이사도 없이 도망치자 자기들의 무공이
부족하기 때문이려니하고만 생각했지 장무기에 대해서는 전혀 적수
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즉시 장검을 빼어들고 다를 방향으로 타
구진에 들어가 검을 마구 휘둘러 개방제자들을 죽였다.

장무기는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막대기를 보고서는 타구진의 요지
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어서 안으로 뛰어들어가 도와주지
못했다. 관문은 이미 진 밖으로 나와 몸을 돌려 사홍석에게 소리쳤
다.

"사(?=시) 방주, 중추절의 달밤에 무당산에서 봅시다!"
관문도 타구봉에 얻어 맞아 몸에는 상처 자국이 적지 않았지만 최
후의 일진까지 죽이면서 순식간에 진을 뚫고 도망갔다. 장무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塑)할 틈도 없이 조민의 손을 잡고 관
문의 뒤를 쫓았다.

관문은 타구봉의 세례가 약간 느슨해진 때를 틈타서 두 발을 하나
로 모아 날듯이 진을 벗어나 곡(贖) 입구로 도망갔다.

장무기는 조민과 함께 그 뒤를 쫓아갔다. 장무기는 관문이 혼자
있을 때가 그를 제거하기에 좋은 적기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관문의 경공술은 그리 약하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곡구(贖手)로 도망쳐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겨 버렸다. 장무기는 만
일 혼자서 쫓아갔다면 벌써 따라 잡을 수 있었겠지만 조민이 걱정
되어서 이렇게 한 발 늦었다고 생각했다.

암흑 속에서 비록 관문은 보이지 않았지만, 장무기는 내공이 심후
하고 청력이 아주 뛰어났기 때문에 관문의 경미한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장무기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따라
갔다. 이렇게 두 시간을 따라간 후에 장무기는 조민이 점점 몸을
지탱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는 그녀를 업고 신법을 전개하면서 계
속 쫓아갔다.

장무기는 조민을 업고 쫓는 바람에 이미 적지 않은 원기를 소모해
서 쓰러질 지경이었으나 갑자기 체내에서 구양진기가 급속하게 유
통되어 피곤을 느끼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정력이 넘쳐 흐
르고 있었다.

조민은 장무기의 등에 기대어 양쪽의 산촌이 쉬지 않고 빠르게 뒤
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지만 오히려 앞은 칠흙같은 어둠이라 눈을
질끈 감았다. 앞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도 않았으며 더
욱이 관문이 앞에 있는지 없는지조차 몰랐다.

다시 반 시진 정도 달려가자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오더니 어느새
환해져 버렸다. 이때 관문은 공력이 부족한 듯 걸음이 늦어지기 시
작했다. 장무기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쫓았다. 차 한 잔 마실 즈
음에서야 그는 관문을 따라잡을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때 등 뒤
에서 목이 쉰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장무기, 이렇게 이른 새벽에 아내를 업고 이 황산야령(?雲孜?,
?=?)으로 도망오다니 이게 어찌된 일이오?"

장무기는 너무 놀라서 걸음을 멈추고 몸만 돌려보니 사 장 정도의
거리에 깡마른 체구의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그자의 얼굴에는 전혀
표정이 없었다. 그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몸에서는 괴이한 살
기가 뻗쳐 나왔다. 바로 냉령 영주인 냉면인이었다!

장무기는 방비함도 없이 졸지에 일어난 일이라 그 자리에서 얼이
빠져 조민을 내려놓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냉면인이 쉰소리로 또
말했다.

"장 교주, 부인을 내려놔도 괜찮소. 이 깊은 심곡에서는 그녀를
빼앗아갈 사람은 아무도 없소. 그렇지 않겠소?"

장무기는 조민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여 쳐다보니 그녀의 얼굴은
아주 창백해져 있었다. 장무기는 그녀의 차가운 손을 잡고서는 어
찌할 도리없이 그저 웃음만 보여줬다.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은 조민
의 지혜가 백출(王出)하니 이 나쁜 상황을 그녀의 지혜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또다시 냉면인의 말소리가 들렸다.
"장 교주가 지혜가 풍부하고 계략이 많다는 것은 익히 들어왔소이
다. 이번에 현명하신 부부가 어떻게 이곳을 벗어날지 계획을 해보
시오. 서두를 필요는 없소이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천천히 두
사람이 의논을 해 보도록 하시오. 자, 이것은 청수와 건량(贍漁)이
오."

장무기는 두 덩어리의 물건이 자기를 향하여 던져지는 것을 보고
잡으니 과연 청수와 건량이었다. 그러나 감히 어떻게 먹을 수 있겠
는가?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 당신은 독이 있을 것을 염려하는군. 당신의 뛰어난 의
술로 독을 감별해내는 것은 쉬운 일일 텐데?"

장무기는 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냉면인은
무공도 뛰어나고 지모도 뛰어난 사람이라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에게는 냉면인의 술수를 막을래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차라리 풀을 뜯어 먹을지언정 감히 이것을 먹는 모
험은 할 수가 없었다.

냉면인이 말했다.
"음-, 역시 당신은 마음을 놓지 못하는군. 그건 당신에게 달려 있
소. 당신도 생각해 보시오. 당신을 죽이려 한다면 꼭 돌을 쓸 필요
는 없소. 짐작컨대 당신은 도망갈래야 갈 수가 없을 것이오."

장무기는 마음이 오히려 평안해져서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한 말리 다 옳지는 않소."
냉면인이 놀라 '응?'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고견을 듣고 싶소."
장무기가 말했다.
"광명정에서 내가 이미 외람되게 말을 했었소만 내 비록 당신과
천 초가 되도록 싸웠지만 진 것은 아니었소."

냉면인이 말했다.
"그 말을 당신은 아직 기억하고 있군. 그날 장 교주는 두려워하지
않았소. 나는 당신의 그 뛰어난 재지(??)를 사실은 흠모했었소."

장무기가 말했다.
"당치 않소."
냉면인이 말했다.
"그날 장 교주는 천시(?裡), 지리(?燃), 인화(?表)를 겸비하고
있었는데다가 총명과 기지를 갖추었으니 이는 내가 질 수 밖에 없
었던 환경이었음을 인정하오. 그러나 오늘 장무기가 그 구태의연한
낡은 방법을 다시 써서 천 초를 다시 제안하는 것은 아마도 좋은
계책이 아닌 듯하오."

장무기가 말을 받았다.
"당신이 벌써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용호가 서로 합하여졌다면
몰라도......"

냉면인이 대답했다.
"나는 그날 장 교주에게 일깨움을 얻어서 요 몇 일 부지런히 쉬지
않고 연습하여 겨우 조금의 진전이 있었을 뿐이오. 이 점을 말하자
면 장 교주에게 고마움을 표하오."

냉면인은 말을 마치고 읍의 예를 취했다. 장무기가 말했다.
"가당치 않소."
냉면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천 초 내에 당신을 이
길 수가 없소. 만일 당신 부인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면 장무기, 당
신은 막아낼 자신이 있소?"

장무기는 냉면인의 말을 듣고서는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시켰다.
눈앞의 냉면인의 무공이 설사 자신보다 낮을지라도 장무기는 자신
도 보호하면서 조민을 구해야 한다. 장무기는 순간적으로 온몸이
떨려와 어떻게 말을 할 수 없었다. 냉면인은 기분 나쁜 웃음으로
장무기의 대답을 재촉하자 그는 어쩔 수 없이 사실대로 말했다.

"내겐 그럴 만한 능력이 없소."
냉면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장 교주가 졌다는 것을 인정 할 수 있겠소?"
장무기가 침울하게 말했다.
"졌다고 인정하면 어떻소?"
냉면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이어서 말했다.

"장 교주가 만일 졌다고 인정한다면 즉시 냉령을 들어야 하오."
장무기가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뭘 도모하려는 게요? 그리고 나에게 뭘 하게 하려
는지 모르겠소!"

냉면인이 말했다.
"지금 천하의 무림은 각기 파별(駝?)로 강분(惜熔)되어 있소. 나
는 각 문파들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할 작정이오. 내가 원하
는 것이 바로 강호의 통일이오."

장무기는 담담하게 말했다.
"당신의 뜻은 크나 아무래도 부질없는 것 같소. 어떤 사람은 신
것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단 것을 좋아한다면 당신의 기호에 맞
추어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소?"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의 말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무(俉)를 배우
는 사람치고 어느 누가 무공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원치 않
겠소? 일개인이 한 문파에 얽매어 갇혀 있다면 무공이 떨어지는 것
을 면할 수가 없는 것이오."

장무기가 말했다.
"당신이 하고자 하는 뜻은 확실히 선한 일이기는 하나 그 수단은
너무나 악랄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것이오. 당신의 생각에 동조
하지 않는 자는 때려 죽여도 무방하다는 것이오?"

냉면인은 소름끼치는 말을 했다.
"그건 당연하오. 그런 폐인을 남겨둬서 뭐 쓸 데가 있겠소?"
장무기가 말했다.
"그렇다면 냉령의 명을 듣는다는 것은 사실상 사람을 때려 죽이는
것이오?"

냉면인이 말했다.
"바로 그렇소이다."
장무기는 아주 혼란스러운 근심에 빠졌다. 그들 두 사람이 이야기
할 때 조민은 계속 말없이 침묵하고 장무기의 몸에 바싹 붙어 있었
다. 하늘은 이미 점점 밝아오고 있었다. 세 사람이 있는 곳은 깊은
황산야곡으로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아침 햇살에 보이는 초목은
무성하였고 삼림은 빽빽하였다. 새벽 아침의 새소리가 간간이 울리
는 산속은 정말로 맑고 아름다웠다.

한참 후에 장무기가 말했다.
"만약 진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냉면인은 서늘하다 못 해 차디찬 얼음같은 눈으로 장무기를 한참
주시하다가 말했다.

"장 교주는 무림의 기재(??)이기에 나는 차마 당신을 없앨 수
없소. 무림 중에서 나를 제외하고는 당신의 적수가 될 사람은 아무
도 없소. 나는 반드시 당신을 제압해서 나를 막아내지 못하게 할
것이오. 장 교주는 신의가 있는 사람이니 나 역시 명백하게 말해
주리다. 나는 당신을 죽일 수는 없소. 단, 당신 부인에 대해서 말
한다면 나에게는 필요없는 사람이오. 나는 언제고 그녀에게 살수를
쓸 것이니 장 교주께서 특별히 보호를 해야만 할 것이오."

장무기는 조민의 손이 갑자기 얼음장같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장무기는 그녀를 쳐다보고는 미소를 지어주고 냉면인에게 말했다.

"냉면인, 당신이 만일 나의 애처를 죽인다면 나는 절대로 혼자는
살지 않을 것이오."
냉면인은 온몸을 떨더니 고함쳤다.
"그 말이 사실이오?"
장무기가 말했다.
"당신은 내가 신의가 없는 사람으로 보이오?"
냉면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바로 얘기했다.
"사실 당신이 끝내 나의 일에 도움을 주지 않고 내가 강호를 통일
하는 데 장애가 된다면, 나는 애석하지만 당신을 죽이지 않을 수
없소. 대국(暗鬚)에 방해가 된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소."

장무기는 아주 침착하게 말했다.
"당신은 바로 손을 쓸 것인가요?"
냉면인이 말했다.
"아니오. 나는 아직 당신에게 구(穗)하는 것이 있소!"
장무기는 의아하여 물었다.
"당신이 나에게 구할 것이 있단 말이오?"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는 의리(?衍)에 정통하므로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
오. 나는 지금 수화가 서로 돕고 음양이 서로 융화되기에는 한 치
정도가 모자라오. 만일 나 혼자 수련하는데 시일이 충분히 있다면
수련을 하면 된다지만, 중추절의 달밤까지는 이제 얼마 안 남았소.
그러니 장 교주의 손을 빌어서 주요 부분을 배워 공(殺)을 속히 이
루고 싶소."
장무기가 어찌 모르겠는가! 이럴 때에 만일 외공이 심후한 몇 사
람이 그가 현관(??)을 뚫을 수 있게끔 도와준다면, 다시 말해서
구양신공과 구음신공의 수화가 서로 돕고 일체가 되면, 냉면인의
박대심후(?暗?馮, ?=?暗?馮)한 깊은 내공은 곧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게 되는 것이다.

장무기가 말했다.
"당신은 내가 명령에 따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냉면인이 냉정하게 말했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소."
장무기가 말했다.
"내가 지금 하고픈 마음이 있어 마음은 굴뚝같다고 해도 힘이 부
족해서 할 수가 없소. 그런데 더군다나 나는 그럴 뜻이 전혀 없소
이다."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 내가 부인에게 단호하게 살수를 쓴다면 당신은 구하 수
가 없소. 당신이 부인을 도와주려면 나와 반드시 겨루어야 하고 나
와 겨룰 때에 당신의 내공은 필히 나의 체내로 빨려들어올 것이오.
이때 나는 약간의 도움을 받기만 해도 현관이 뚫리게 되오. 당신의
공력으로 보아 단 한 번으로는 나의 신공을 성공시키지는 못하오.
그러나 여기에서 무당산까지 가려면 한 달 이상이 걸리므로 우리가
여러 번 겨루다 보면 무당산 아래에 도착할 때에는 나의 신공이 모
두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있소. 장 교주의 생각은 어떻소?"

장무기는 마음껏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계략이 다 이루어진다 해도 백밀일소(王??胤)를 면하기
는 어려울 것이오. 확실하게 말해서 내가 눈앞에서의 목숨만 구하
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당신의 뜻대로 다 하겠소. 그러나 비록 이
런 곤경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할지라도 무림을 위하여 해로운 것을
제거할 수 없다면 나는 처와 경맥을 스스로 끊어서 죽을 것이오.
내가 어찌 장신을 도울 수 있겠소! 당신이 물론 비범하다고는 하나
아마도 우리 두 사람의 자살을 막을 재간은 없을 것이오."

장무기는 죽을 결심을 말할 때에는 더이상의 예의를 차리지 않았
다. 그의 말이 끝나자 냉면인이 갑자기 온몸에 닭살이 돋을 만큼
소름끼치는 아주 괴상한 웃음 소리를 냈다. 마치 밤에 기분 나쁘게
우는 소리처럼 들렸다.

두 사람은 말 할 수 없이 놀라 마치 대낮에 귀신을 보는 것 같았
다.

냉면인은 그 괴상한 웃음 소리를 돌연히 그치고서는 말했다.
"장 교주가 지금 죽는다면 나는 구하고자 하는 것을 얻지는 못하
겠지만 강호를 통일하겠다는 나의 큰 뜻은 그 즉시 이룰 수 있을
것이오. 좋소! 당신 마음대로 스스로 경맥을 끊으시오. 자결이라..
.... 하하하!"

장무기는 금새 얼굴이 시퍼렇게 변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는 냉면인의 이 말이 틀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일
자기가 죽는다면 냉면인의 기모지계(?英?稅)가 성공하여 강호에
피가 비 뿌리듯이 되어 바람 속에서 조차 피비린내 나는 아주 두려
운 일이 생길 것이 뻔하였다. 그렇다고 자기가 살겠다고 조민이 죽
임을 당하는 꼴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냉면인의 신공이 다 이루
어지면 자기는 그에게 대적할 수가 없어 이 또한 걱정이었다. 장무
기는 살래야 살 수도 없고 죽고자 해도 죽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조민에게 도움을 구하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평상시에는 완고하
고 고집스러우며 궤계백출(馴稅王出)한 그녀도 지금은 두려움에 젖
어 장무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바로 이때 한 줄기 미풍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장무기는 콧
속으로 아주 익숙한 여자의 향기를 맡고는 갑자기 온몸을 떨면서
말했다.

"주지약!"
냉면인이 말했다.
"두 부부는 뭘 그리 놀라시오. 주지약은 나의 일 장에 맞아 죽었
소. 그렇지 않고서는 ?구음진경?이 어디에서 나왔겠소?"

장무기가 말했다.
"냉면인, 그렇다면 주, 주지약은 당신이 죽였단 말이오?"
냉면인이 말했다.
"맞소. 주지약은 바로 내가 죽였소. 이야기를 하자면 길어지지만
말하리다. 만일 당신이 중토에서 그렇게 바쁘게 뛰어다니지만 않았
다면, 내가 설사 ?구음진경?을 빼앗고 싶었다 해도 나는 아미파
의 주대장문(蹉暗雋?)을 두려워 했을지도 모르오."

장무기는 냉면인의 말에 의심스러운 점이 많아서 이해가 되질 않
았다. 그는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당신은 남을 중상모략하지 마시오."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 진정하고 조급하게 굴지 마시오. 내가 자세하게 얘기하
는 것을 기다리는 게 어떻소?"

그는 장무기가 아무 소리 없는 것을 보고서는 이어서 말했다.
"장 교주는 주지약이 연마했던 무공이 ?구음진경?에 있는 것임
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오. 그러나 그녀는 완벽하게 무공을 연마
하지도 않은 채 무모하게 나에게 공격해 왔소. 사실 그녀는 ?구음
진경?에 있는 무공의 아주 적은 부분만을 연공하고서도 소림사의
영웅대회에서 천하제일의 호칭을 얻어낼 수가 있었던 것이어. 당연
히 장 교주가 중토에서 양보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오."

장무기는 그이 말이 이상하게 생각되어 물었다.
"그것 또한 당신이 어떻게 알고 있소?"
냉면인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혼자서 말했다.
"나중에 원군(?琡)과 교전할 때 많은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송청
서(陰?柚)의 몸에 의천검과 도룡도가 숨겨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
소. 그러나 이미 두 개의 무림보도 안은 모두 비어 있었소. 그때
주지약의 무공이 갑자기 발전한 사실이 떠올랐소. 그리하야 보도
안에 무공비급이 숨겨져 있었다고 생각한 것이오. 그날 두 사람이
주지약을 찾았는데 두 사람은 바로 현명이로였소. 격투중에 주지약
은 '현명독장'에 맞았소. 다행히도 장 교주가 구양신공으로 도와주
게 되어서 그녀는 위험에서 벗어났소. 구음진경은 체내의 한독(吐
?)의 장(雋)과 아주 비슷한 것이오. 장무기 당신의 무공 실력으로
는 단번에 분별하기가 어려웠지만, 당신이 두번째 출수할 때는 모
두 분별할 수 있었는데도 당신은 일부러 자세히 알아내지 않고서
주지약의 구음진경을 모두 없앤 것이오. 즉 그렇게 해서 내력으로
말하면 주지약도 역시 평범한 여자와 별차이가 없게 되었소. 그래
서 내가 손쉽게 ?구음진경?을 손에 넣을 수가 있었소. 그러니 장
교주가 사실은 나를 여러 차례 도와준 셈이오. 그래서 내가 이렇게
고마워하고 있소!"

냉면인은 말을 마치고는 손을 모아 국궁(塾橓)의 예를 갖추었다.
장무기는 이 말을 듣고서는 간까지 떨려오는 놀라움으로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냉면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
고 있었다.

장무기는 자신이 큰 실수를 범한 것이 어이없으면서도 안타까운
듯 연신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장무기의 중얼거림에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 그날 소림사 뒷산 위에서의 일을 잘 생각해 보오. 주지
약은 당신이 독물을 치료해 준 후에 '구음백골조(?遭汪誦?)'로
당신 부인의 머리를 공격하여 은혜를 원수로 갚지 않았소? 그대는
그 일을 반드시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송청서가 불과 몇 개월 동안
을 주지약에게서 구음진경을 전수 받았을 뿐인데도 그는 능히 개방
의 두 장로를 죽일 수 가 있었지 않았소. 하물며 주지약이 당신 부
인과 사이가 안 좋아 구음백골조로 공격할 때 손톱만큼의 정을 남
겼을 리가 없소. 그러나 그녀의 기상천외한 일격에 당신 부인의 머
리가 그저 몇 군데 할퀸 듯한 상처만을 입을 것은 그 끊어진 인연
속에서도 당신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소?"

장무기는 풀이 죽은 것처럼 앉아 있었지만 속으로는 후회막급이었
다. 조민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주지약! 당신은 이전부터 이런 신공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째서
머리를 감추고 꼬리만 드러내는 것이지요?"

냉면인이 말했다.
"장 부인, 당신은 어떤 이유로 그런 말을 하시오?"
조민이 '흥'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만일에 주지약이 아니라면 당연히 이런 일들은 알 리가 없어요!"
냉면인이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일들이 어찌 이런 사소한 것뿐이겠소. 장 교주가
일찌기 원조 후궁(??避循)에 들어가 순제(??)와 치열하게 싸운
일에 대해서는 대략 알고 있소. 장 부인께서는 나에게 원 순제에
대하여 얘기해 주실 수 있겠소?"

장무기는 냉면인이 그 일조차도 알고 있자 마음 속으로 별의별 생
각이 다 떠올랐다. 그러나 일부러 놀라지 않은 듯이 담담하게 말했
다.

"내게 아직 분명치 않은 일이 하나 있소. 당신이 어떻게 그런 모
든 일들을 알게 되었소?"

냉면인이 말했다.
"당신은 내가 ?구양신공?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 내력을 묻
고 싶은 것이 아니오?"

그는 장무기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나서 말했다.
"내가?구음진경?을 손에 넣고서는 다른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가 오로지 수련에만 몰두할 생각으로 곤륜산에 가던 중이었소. 그
때 마침 공교롭게도 무가장(俉?烝)의 무열장주(俉?烝嵯)를 만나
서 얘기를 하게 되었소. 그때 나는 당신이 절곡(贄贖)에 떨어졌다
는 것을 알게 되었소. 그러나 당신이 이렇게 다시 나타날 줄은 몰
랐소. 나는 그때 하늘이 나에게 큰 임무를 내렸다는 것으로 미루어
생각하여 지름길을 물은 후 바로 무가장의 짐승같은 그런 사람들을
모두 죽여버려 장 교주를 대신하여 원수를 갚았소. 다시 지름길로
곡(贖) 안으로 들어갔더니 장 교주가 묻힌 곳이라는 데를 보게 되
었다. 나는 ?구음진경?과 ?구양진경?을 동시에 수련해야 내공
에 진보가 있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소. 지금의 이 뜻밖의 만남에서
도 장 교주가 나의 연공(?殺)을 도와주신다면 감격해 마지 않겠소!"

장무기와 조민은 서로 얼굴을 쳐다볼 뿐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냉면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장 교주께서는 밤새 달려오셨으니 배가 고플 것이오. 두 부부께
서는 내가 준 음식을 먹기를 원하지 않으시니 스스로 산속으로 가
셔서 식용 야생 과일을 따도록 하시오. 장 부인께서는 대단히 총명
하다는 것을 익히 들어왔소. 이번에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면 내가
우러러 보겠소이다."

냉면인은 말을 마치자 땅에 앉아 장무기 앞에 있던 물통을 열어
던져주고는 태연자약하게 건량을 씹어 먹기 시작했다.

장무기와 조민은 서로 말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냉면인과 거리가
좀 멀어지자 장무기가 그때서야 말했다.

"민 누이, 벗어날 수 있는 계책이 있소?"
조민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냉면인의 경공은 우리 두 사람보다 뛰어나서 이 어둡고 침침한
준령계곡을 벗어날 수 없을까 두려워요."

장무기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좋겠소?"
조민은 한숨을 쉬며 조용하게 말했다.
"무기 오빠, 당신은 내가 경맥을 끊고 자살하면 혼자 도망가세요.
생각해보니 만일 당신에게 걱정거리가 없어지면 냉면인도 반드시
당신을 어쩌지는 못할 것......"

장무기는 크게 놀라서 말했다.
"민 누이, 이러지 말아요. 당신이 만약에 만약에...... 그러면 나
는 역시 결코 혼자 살아남지 않겠소!"

조민은 장무기가 결코 자기를 버리고 혼자 가지는 않을 것을 알았
다. 다만 여자의 마음이라 남자에게서 죽는 한이 있어도 변함이 없
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그런 강력한 말을 듣고 싶은 심리가 있
었던 것이다. 이런 말은 일을 풀어가는 데에 실질적인 도움은 안
될지라도 일시적인 안도와 만족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조미
은 한때 강호에서 위세가 당당했던 여양왕부의 군주였지만 지금은
한 남자의 아내로 이런 일을 만나니 역시 집 테두리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 단지 그녀는 장무기의 품속에 기대어 묵묵히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장무기가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
"민 누이, 냉면인이 나에게 연공을 도울 것을 강요하는 것은 그가
지금 대공(暗殺)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얘기이니까 당신에게 즉
시 살수를 쓰지는 못할 것이오. 만약에 우리 두 사람이 공격한다면
그 중 한 사람은 넉넉히 맞설 수 있을 거요!"

조민은 장무기의 이 말을 듣고서는 마음이 조금 안정이 되었다.
원래 냉면인의 무공이 대단히 뛰어나긴 했지만 살아날 수 있는 희
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조민이 돌연히 말했다.

"이 황산야령에서는 우리들이 도망가기 어려울지라도 사람이 많이
사는 마을에서는 능히 기회를 엿보면 도망칠 수 있을지 몰라요."

장무기가 기뻐서 말했다.
"민 누이의 말에 일리가 있소. 우리는 열매를 찾아 먹고 기력을
기릅시다. 그래야만이 그와 상대할 수가 있을 것이오!"

두 사람은 이번 일이 너무나 창졸 간에 일어났기에 놀라움으로 반
나절이나 그대로 보냈다. 그러나 지금은 기분이 좀 진정되었다. 그
들은 이제야 둘이 같이 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당산에 있
는 어린 녹민을 반드시 잘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사
람은 갑자기 마음이 밝아지기 시작하여 손을 맞잡고서 정답게 깊은
산 속으로 먹을 것을 찾아나섰다.

장무기는 어렸을 때에 수년 간이나 야과(孜帥)만 먹고 살아온 적
이 있어서 어떤 열매가 맛이 있는지 보기만 하여도 식별할 수가 있
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 사람은 한아름의 맛있는 과일을 따가
지고 풀이 넉넉히 자라 있는 자리에 앉아서 흥미진진하게 먹으면서
한편으로는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했다.

냉면인은 사신(?佚)처럼 두 사람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작은 산
위에 서 있었다. 검은색의 옷이 미풍에 움직이고 있는 그 모습은
신묘막측하고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장무기와 조민은 아직 냉면인이 있는 위치를 알지 못했다. 두 사
람은 일어서서 방향을 분간하여 아주 정답게 산 밖으로 걸어갔다.

장무기 부부는 비록 겉으로는 웃으며 얘기를 하고 있었으나, 속으
로는 경계를 단단히 하면서 갑작스레 일어날 일에 방비를 하고 있
었다.

장무기는 도중에 갑자기 몸 뒤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재빠르
게 고개를 돌렸다. 냉면인이 귀신같은 모습으로 벌써 자기들 뒤에
서 두 장(晙) 거리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냉면인은 경공이 높아
서 장무기가 발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두 손을 교차하여 조민을
향하여 치고 들어왔는데 그 차가움이 뼛속까지 스밀 정도로 두 눈
에서 윈한을 뿜고 있었다.

일 장 정도 떨어졌을 때 장무기는 온몸이 얼음구덩이 속으로 떨어
지는 것 같으면서도 화로 속으로 뛰어드는 듯한 기운을 느꼈다. 냉
면인의 내공은 녹류장의 폐허 위에서 보다도 한층 진보한 것 같았
다.

장무기는 냉면인의 공격을 받자 체내의 진기가 되받아치면서 자연
스럽게 나와 반격을 가하니 조민을 몇 장 밖으로 밀어내면서 오른
쪽 발을 한발 내딛어 두 손으로 십할의 공격을 써서 냉면인을 향해
공격했다.

순간 '펑'하는 큰소리가 울리면서 냉면인의 검은 몸이 공중에서
곡선을 그리며 둥실둥실 떠서 십여 장 밖으로 날아가서 땅에 내려
왔다. 그는 즉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기를 모아 현관을 뚫고
있었다.

조민이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장무기도 온몸을 떨면서 땀을 흘리
고 있었다. 장무기는 순간적으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운공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다. 한눈에 몸의 내부가 심하게 다친 것 같았
다.

조민은 그가 방해받지 못하도록 쌍검을 뽑아들고 장무기의 신변을
보호해주었다.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보니 냉면인은 십여 장 밖에
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역시 운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냉면인
은 장무기와 상태가 달랐다. 지금 냉면인은 연공(?殺)을 하고 있
는 것이었다.

조민은 생각 끝에 쌍검을 꽉 쥐고서 냉면인이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장무기는 필사적으로 일 장을 쏟아내자 갑자기 단전(沈址) 속에서
진기가 대단한 기세로 요동치기 시작하여 휘청거리며 자리에 앉아
정신을 집중시켜 운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임맥과 독맥을 거치면
서 요동치고 있는 진기를 하나하나 단전 속으로 끌어모으고 있었다.

장무기는 구양진경을 오랫동안 연습했기 때문에 그의 내공은 평원
처럼 넓고 바다처럼 깊었다. 그는 단숨에 몇 단계의 내공수련을 해
야만 얻을 수 있는 효과를 이루었다. 장무기는 긴 한숨을 토하고서
눈을 뜨다가 조민이 손에 쌍검을 들고 냉면인과 삼 장 정도에 거리
에 있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 소리쳤다.

"민 누이, 안 되오!"
조민은 고개를 돌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장무기를 쳐다보았
다. 장무기는 일어나 조민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그의 걸음걸이는
아직 흔들거렸다. 장무기는 냉면인이 연공을 하고 있을 때 조민이
공겨을 하면 비단 그를 죽일 수 없을 뿐 아니라, 진기의 반탄력으
로 오히려 조민이 몸에 해를 입을까 걱정이 되어 소리친 것이다.

장무기는 다급한 소리로 계속 말했다.
"민 누이, 지금 냉면인은 온몸에 진기가 흐르고 있어서 파리나 모
기가 다가가면 단숨에 파괴되어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 것이오. 당
신이 만약에 믿지 못하겠으면 먼저 열매로 그를 시험해 봐도 괜찮
소."

조민은 반신반의하면서 자루 속에서 주먹만한 열매를 하나 꺼내
냉면인의 미간 사이로 힘껏 던졌다. 그러나 팍'하는 소리만 요란하
게 울리며 열매는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날아가버렸다. 몇 개
의 과일 조각이 역으로 날아와 조민의 얼굴에 부딪쳤다. 비록 부서
진 야과 부스러기에 불과했지만 조민은 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녀
는 방심하고 있다가 너무 놀라서 냉면인을 보았다. 비록 삼 장 밖
에서 냉면인이 운공을 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살수를 쓰면 이 정도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냉면인은 여전히 미동도 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마도 조민이
그에게 한 행동을 모르는 것 같았다. 조민은 너무 놀라 장무기 옆
으로 달려왔으나 마음 속에는 여전히 공포가 남아 있었다. 돌아보
니 냉면인은 마치 돌 조각같이 조금의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조민은 부들부들 떨면서 장무기에게 말했다.
"그는 사람이 아니고 귀신이에요."
이때는 이미 해는 중천에 있었고 천지간은 따듯한 기운으로 가득
해졌다. 조민의 말에 장무기도 떨려오는 두려움을 막지 못하고 경
공을 전개하여 산 밖으로 급히 도망갔다.

사오 리(咽)를 달린 후에 조민이 말했다.
"무기 오빠, 당신은 어떻게 그의 전신에 강기(鋤褶)가 찬 것을 알
았죠?"

장무기는 몸을 조금도 늦출 수가 없어서 뛰면서 말했다.
"냉면인의 내공은 좀 다른 것이오. 그는 내 쌍장의 기력을 모두
자기 체내로 빨아들여 자신의 현관을 뚫으려고 하였소. 이때 그의
온몸에는 진기가 충만하게 흐르고 있었는데 내 쌍장의 힘을 더하니
어찌 천 근만 되겠소. 만일 이러한 때에 무모하게 공격을 하게 되
면 반탄지력에 오히려 그 힘이 당신에게 돌아와 중상을 면치 못했
을 것이오."

조민은 놀람과 동시에 탄복하여 말했다.
"무기 오빠, 당신은 괜찮아요?"
장무기가 말했다.
"나는 단지 내공이 좀 흔들렸을 뿐인데 바로 가다듬어서 아무 일
이 없소. 그때 그가 우리를 죽이려 마음만 먹었다면 우리는 절대로
그를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오. 이 점이 가장 두려웠소."

조민이 말했다.
"냉면인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장무기가 말했다.
"만약에 치열하게 싸운다면 그의 내공 수련은 매우 박대(?暗, ?
=?暗)하여 천 초(?) 이내에서만 내가 응대할 수 있소. 그러나 갑
자기 공격해 온다면 확실히 나는 전력을 다하여 싸워야 하오. 음-
말하지 맙시다. 지금 그는 현관을 뚫는 것에 몰두하고 있으니 두
시진 내에는 절대로 우리를 따라오지 못할 것이오. 우리는 이 기회
를 틈타서 될 수 있는 한 멀리멀리 도망갑시다!"

조민이 쓴웃음을 짓고서 말했다.
"천하의 장무기 부부가 이 심산유곡에서 도망다니는 꼴이 되어 상
갓집의 개처럼 궁지에 빠지리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겠어요!"

장무기는 조민의 숨이 차 헉헉거리는 모습을 보고 그녀를 등에 업
고 더욱 빠르게 달렸다. 세 시진이 지난 후에 두 사람은 이미 수십
리나 멀리 달려왔다. 장무기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고 냉면인
이 아무리 재간이 높다 해도 자신들이 방향없이 마구 도망왔으니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이때 수십 장 떨어진 앞에서 차디찬 음성이 들렸다.
"장 교주, 이젠 좀 쉬어야 되지 않겠소?"
장무기는 그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바로 삼 장의 거리밖에 안 되
는 은행 나무 위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한가롭게 앉아서 살구
를 입속으로 던져 넣고 있었다. 얼굴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으며 아
무 표정이 없었다. 바로 냉면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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