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외전 4

3학년2반 | 2022.02.27 07:55:41 댓글: 0 조회: 535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1458

제 10장 : 쫓는 자, 쫓기는 자
장무기는 의기소침하여 조민을 내려놓았다. 두 부부의 안색이 침
울했다.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의 도움에 감사드리오. 이 몸은 이미 회양, 중급, 관원,
구미, 자궁, 승장 등 수처의 현관이 뚫렸소."

장무기는 속으로 몹시 놀랐다. 이들 현관은 모두 임맥(??)에 속
하는데 자신의 일 장이 그의 임맥현관을 뚫게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도 못했었다.

그렇다면 며칠도 안 되어서 냉면인의 십이경, 기경팔맥, 십사경별
과 사십 칠 곳의 기혈이 모두 뚫리게 되면, 그때는 자신의 생명은
마치 독 안에 든 쥐나, 도마 위의 고기처럼 그저 처분에 맡길 수밖
에 없게 되는 것이었다.

장무기는 눈앞의 상황에서 결코 좋은 계책을 얻을 수 없었기에 그
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축하드리오, 각하!"
그때 조민이 말했다.
"그러나 수처의 현관이 막 뚫려서 진기가 왕래하는 사이에는 반드
시 어느 정도 서툴 것이니, 당신이 만약 지금 먼저 손을 쓰려 한다
면, 당신에게 불리할까 걱정되는군요!"

냉면인이 말했다.
"장 부인께서는 요 몇 년 동안 장 교주와 함께 지내며 영향을 받
으시더니 확실히 견식비범하시군. '근주자적, 근묵자흑'이란 옛말
이 딱 맞군요. 장 부인께서 설명해 주시니 이 몸이 이제야 알겠소.
지금 현명하신 두 부부를 쫓는 것은 단지 두 분의 힘을 덜어 드리
고자 함인데 이렇게 달아나시니 장력(只淹)이 어찌 도움이 되겠
소."

"감사합니다!"

조민의 말을 끝내고 장무기를 끌고서 태연하게 살구나무 옆을 지
나갔다. 냉면인도 막지 않고, 그들 두 사람이 스스로 떠나도록 했
다.

장무기가 말했다.

"만일 민 누이가 간파하지 못했다면 나는 정말로 바보가 되었을
것이야!"

그러나 조민은 웃지 않았다. 눈을 들어 산들이 겹겹이 쌓인 군산
을 보니 연면한 기복이 천 리에 그치지 않아 언제 이 심산을 빠져
나갈 수 있을지 일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마음이 답답하여 고개를
떨군 채 바삐 걸었다. 깊은 산 속, 장로가 무릎까지 차고 '쏴쏴'하
는 풀 소리만이 들려 왔다.

장무기는 홀연히 조민을 등에 업고 신법을 쓰며 앞으로 돌진했다.
그는 냉면인이 지금쯤 반드시 행공을 해서 진기를 거침없이 순행시
키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무 방법도 찾을 수 없으니
일단 되도록 멀리 달아나서 인가가 밀집한 곳에 이르면 어쨌든 빠
져나갈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조민이 뒤를 돌아보니 두 사람은 이미 수리를 달려왔고 냉면인은
쫓아오지 않았다. 조민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장무기를 돕지 못하
니 부득이 장무기로 하여금 있는 힘을 다하여 달아나게 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풍덩' 소리가 들리더니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두 사람은
굴 속으로 떨어졌다.

원래 땅 위에 잡초 더미가 동굴의 입구를 가렸던 것으로 장무기가
막을 틈도 없이 두 사람은 발이 공중에 뜨며 밑으로 고꾸라졌다.

다행히 두 사람의 무공이 심후하고 동궁의 깊이도 겨우 두 장 가
까운 정도여서 다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정신을 집중하여 주위
를 경계하였다. 한참을 지나도 아무 이상이 없자 장무기가 불을 붙
였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매우 평평했으며 앞쪽에 또 하나의 굴
입구가 있었는데 그 크기가 한 사람이 몸을 옆으로 하여 겨우 지날
수 있는 정도였다.

조민이 땅 위에 마른 나뭇가지를 보고 집어들더니 묶어서 두 개의
횃불을 만들었다. 장무기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쥐 신세가 되는 것이 귀신이 되는 것보다는 낫지. 민 누
이가 만일 여기서 쥐로 태어날 수 있다면 귀신으로 태어나는 것 보
다는 낫지!"

바로 이때, 머리 위에서 소름끼치는 웃음 소리가 한바탕 들려왔
다.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는 정말 갈수록 한심해지는구나. 그대들이 어찌 쥐가 되
겠소!"

장무기는 자기도 모르게 씁쓸히 웃었다. 자신이 이처럼 냉면인에
게 낭패를 당하는 것이 참으로 쥐가 고양이에게 희롱 당하는 것과
같았다. 이젠 그가 이렇게 자신을 조롱하는 말을 들어도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냉면인이 사납게 말하는 것이 들렸다.

"장 대교주, 당신이 나오지 않으면 이 몸은 불을 지를 것이오. 하
하하, 현명하신 부부께서 연기에 그을려 쪼글쪼글해지실 것을 생각
하니 흥미진진하오. 자, 빨리 나오시오!"

장무기가 말했다.

"냉면인, 재주가 있으면 당신이 내려오구려. 우리 일천 합(??
把)을 겨뤄 보면 어떻겠소?"

냉면인은 땅굴 속에 어떤 기괴한 것이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장무
기가 조민을 잘 숨겨 두어 걱정이 없어졌으니 자신이 무슨 이득을
얻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한동안
'바스락바스락'하는 소리만 들려 와 장무기는 냉면인이 건초를 모
아 불을 놓으려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민이 갑자기 허리를 굽히더니 마른 나뭇가지를 한아름 집어 안
았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 웃었다. 장무기가 먼저 종유동굴로 걸
어가고 조민이 바짝 따라 들어갔다.

동굴 안은 습기가 엄청났다. 둘은 수십 장을 걸어 들어갔다. 장무
기가 돌연히 말했다.

"민 누이, 이 동굴에 기괴한 것이 있는지 모르오. 혹시 이상한 냄
새가 없소?"

조민이 말했다.

"설마 이 굴 안에 무슨 들짐승이 있는 건 아니겠지요?"

두 사람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발은 오히려 멈추지 않았다. 다시
수장을 더 들어가니, 한 가닥 비릿한 냄새가 갈수록 짙어졌다. 장
무기가 말했다.

"호랑이? 사자? 표범? 이리?"

어투가 장난하듯 매우 가벼웠으며 사실은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조민은 매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기 오빠, 정말로 걱정할 일이에요."

바로 이때, 동굴 깊은 곳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 소
리는 두 사람의 귓속에서 '웅웅'하는 소리가 나도록 울려 댔다. 조
민이 질겁하며 말했다.

"호랑이!"

장무기는 혀를 차며 말했다.

"귀엽기도 하지. 설마 저 소리를 듣고 호랑이 두 마리가 있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조민이 말했다.

"어떻게 하지요?"

장무기가 말했다.

"가 봅시다. 이것이 바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 어찌 목숨
을 구하랴!'하는 것이오."

조민은 키득 웃으며,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다시 수장을 더 가서
한 구비를 도니, 동굴 속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둘은 기뻐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광선이 점점 밝아졌고 호랑이의 울부짖음도 갈
수록 커졌다. 갑자기 몸 뒤쪽에서 멀리 냉면인의 소리가 들려 왔
다.

"장 부인, 만약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면, 설사 귀신이라도 살아날
수 없겠지?"

장무기는 이 좁은 동굴에서 냉면인에게 추격을 당하면 자신의 무
등나취교 중의 나머지 기법으로 그와 죽도록 싸울 수밖에 없으니
그로 하여금 또 연공케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
해 졌다.

그게 생각하니 가슴 속의 분노가 극에 달해 당장 앞으로 질주해갔
다. 다시 한 구비를 도니, 눈앞이 확 트이며 환해져 좁은 굴의 끝
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들은 속으로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
다.

눈앞에 바로 거대한 수직 동굴이 나타난 것이었다. 장무기가 고개
를 들어보니 종유동굴의 입구가 엄청나게 거대한 것이 보였으며 푸
른 하늘, 흰 구름이 선명하게 보였다. 비록 두 사람이 있는 곳에서
족히 십여 장 높이가 되는 곳에 사방으로 우뚝 선 바위들이 돌기해
있었으나, 이곳에서 빠져나간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험난하게 느껴
졌다.

발 밑이 은은히 진동하여 몸을 굽혀 보니 육칠 장 아래가 바로 종
유동굴의 바닥으로 네 마리 호랑이가 여전히 으르렁거리며 두 사람
이있는 곳으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두 사람이 있는 곳까지는 사오
장의 거리가 차이가 나며 더이상 뛰어오르지 못했다.

뒤쪽 십여 장의 거리에서, 냉면인이 말하는 것이 들렸다.

"장 교주, 아직 살아 있는가?"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냉면인은 이미 삼 장 가까이에 있었다. 장
무기는 냉면인이 이 좁은 동굴 속에서도 신법이 이처럼 여전히 빠
른 것을 보고 저절로 마음이 사그러진 재 같아지며, '쨍' 소리와
함께 도룡도를 뽑아 들었다.

이때, 홀연히 두 사람의 발 밑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 왔
다.

"무기냐?"

장무기는 크게 기뻐 대답했다.

"맞습니다. 아래는 바로 은 육숙이십니까?"

은리정이 말했다.

"빨리 내려오너라!"

나이 든 목소리가 또 들렸다.

"영주님께서 왕림하셨습니까? 주오정이 영주님을 환영합니다."

장무기는 몹시 놀랐다. 어떻게 은육숙과 홍발노인이 이곳에 왔단
말인가! 그러나 자세한 것을 묻기 전에 냉면인이 이미 바짝 추격해
왔다. 장무기가 말했다.

"민 누이는 내려가오!"

말을 하면 두 사람이 함께 냉면인을 향해 돌격했다. 잠시 후, 장
무기만이 도룡도를 미친 듯 휘두르며 냉면인과 싸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냉면인은 보도가 날카로운 것이 두려워, 감히 강하게 부딪치지도
못하고 오히려 장무기를 몇 장 물러나게 했다.

조민이 머리를 내밀어 보니 삼 장 아래쪽에 은리정이 칼을 쥐고
암석 위에서 정답게 머리를 들어 보이고 있었다.

그 옆쪽으로 사 장 거리에 역시 돌출한 암석이 있었으며 그 위에
한 사람이 엎드려 있었는데 어깨에 둘러진 긴 홍발이 얼굴을 가리
우고 있었다. 아마도 냉면인을 환영하는 듯했다.

은리정은 조민을 자세히 보고 그녀에게 뛰어내리라는 손짓을 했
다. 조민이 고개를 돌려 동굴을 보니 장무기와 냉면인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좁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싸우고 있었
다. 조민은 어쩔 수 없이 뛰어내렸다.

갑자기 새하얀 물체가 바로 자신의 허리를 향해 돌격해 오는 것을
느꼈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호랑이의 울부짖음 속에서 분명하게
들렸다. 이 일척은 확실히 내공이 비범한 것이었다. 조민은 자신이
결코 막아낼 수 없는 것을 잘 알았으나, 부득불 칼을 뽑아 올렸다.
막 서로 부딪치려 할 때, 돌연 은리정의 노호한 외침이 들려 왔다.

"홍발노적, 방자하게 굴지 마라!"

무언가 홍발노인의 암기를 치고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조민은 안
전하게 은리정의 측면으로 떨어지며 주위 상황을 자세히 볼 새도
없이 큰소리로 말했다.

"무기 오빠! 나는 육숙과 같이 있어요. 오빠도 내려오세요!"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당연히 장무기를 안심시키려는 것이었
다. 과연 장무기는 조민이 무사하다는 얘기를 듣고 당장 마음이 안
정되어 칼끝을 거두고 기회를 틈타며 냉면인만 보면서 아무 우려없
이 손뼉을 치며 다가갔다. 장무기는 순식간에 칼을 휘둘러 냉면인
의 우로를 맹렬히 치려 했다. 냉면인은 어쩔 수 없이 왼쪽으로 급
히 피했다.

장무기는 장신을 날려, 벌써 냉면인의 뒤쪽으로 가로질러 가서 크
게 웃으며 말했다.

"냉면인, 당신이 호랑이 밥이 되어야만 하겠군."

말을 마치고 칼을 휘두르며 원숭이처럼 하여 공략했다. 냉면인의
혈육지구(?嘲柵酬)가 어찌 강호에 소문난 보도를 당해 낼 수 있
으랴! 그저 일 보 일 보 동굴 입구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냉면인은 아래쪽의 굶주린 호랑이들의 노호를 듣고 마음이 급하여
재삼 재사 장무기의 뒤쪽을 덮치고자 생각했다. 그러나 장무기는
결심을 단단히 하고 그를 호랑이 입속으로 몰아넣고자 팔십 근이나
되는 보도를 휘둘러 대며 마침내 좁은 동굴을 물샐틈없이 봉쇄하였
다.

손으로 싸워도 장무기는 본래 냉면인을 겁내지 않는데 지금 도룡
도까지 가지고 있으니 과연 용감히 나아가 냉면인을 계속 후퇴케
하였다.

냉면인은 뒤쪽에서 나는 소름끼치는 호랑이 울음 소리를 듣고 사
실 몇 마리의 굶주린 호랑이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어서
마음이 조급하여 장무기의 뒤쪽으로 무리하게 공격하려 했다. 보도
가 내려쳐지는 것을 보고 냉면인은 왼손을 홱 뻗어 칼등을 눌렀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오른손 바닥이 동시에 장무기를 향
해 쳐들어가고 몸을 비스듬히 하여 돌진할 생각이었다. 장무기는
이미 그의 심중을 꿰뚫고 즉각 보도를 떨구어 냉면인이 기력으로
공격할 수 없게 하였다. 보도가 내려진 후 냉면인은 왼손으로 안공
(?囚)하며 오른손 바닥으로 여전히 공격해 왔다.

장무기는 보도를 위로 치켜올리며 전력을 다해 뇌정만균(?緝?
?)의 자세를 취하였다. 이 초는 양패구상(自??轅)에 속하는 타
법으로 자신이 비록 가슴에 일 장을 맞을 위험을 무릅썼으나 이 칼
을 전력으로 걷어올린다면 냉면인은 틀림없이 뒤쪽으로 잘려질 것
이었다. 냉면인은 질겁을 하고 오른손 바닥을 방향을 바꿔 동굴 벽
위로 향하며 그 힘을 빌어 삼 장을 뛰어넘어 이 석파경천(?啄?
?)의 일격을 피해 갔다. 그는 이미 동굴 입구에 서 있었으며 몸
뒤쪽은 바로 거대한 종유동굴이었다.

장무기가 어찌 그에게 기회를 틈타게 하겠는가. 몸은 벌써 그림자
처럼 따라올라 갔고 도룡도를 일횡, 일별, 일날하고 최후로 일점하
여 가슴을 향해 곧장 찔러 들어오니 바로 태극점의 '태(梔)'자였
다.

천하의 초수 중에 원래 이 초는 없었다. 장무기가 냉면인이 서 있
는 동굴 입구가 겨우 두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임을 보고
그가 또 목숨을 걸고 안쪽으로 공격해 올 것 같아서 보도를 크게
휘둘러 진로를 봉쇄코자 했다. 누가 일횡, 일별, 일날 후에 마침내
'대(暗)'자를 그려낼 줄 알았겠는가. 냉면인이 좌우를 살피는 것을
본 장무기는 영감이 막 떠올라 칼의 힘이 약화되기 전에 일찌감치
중궁(猖循)을 향해 직진하며 냉면인의 흉부를 기습하니 '대(暗)'자
의 아래쪽에 일점을 더하여 '태(梔)'자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이 초식의 위력이 커서 가령 평지 위에 있었다면 제아무리 냉면인
이라 할지라도 빠져나올 수 없었을 것이었다. 단지 신형을 급히 빼
야만 겨우 그 칼끝을 피할 수 있었다.

냉면인은 부득이 역으로 뛰어올라 몸을 높이 솟구치며, 아래로 떨
어져 버렸다. 장무기는 '하하' 크게 웃으며 말했다.

"각하! 호랑이에게 당신 대신에 무공을 하도록 청해 보시죠. 아!
육숙, 빨리 올라오세요!"

냉면인은 떨어지면서 칠순이 넘는 포악한 얼굴에 붉은 머리를 늘
어뜨리고 공포스럽게 생긴 노인이 병기를 던져 주며 '영주님! 이것
을 이용하십시오!'라고 하는 것을 보았다.

냉면인은 발밑에 풍향을 듣고 물체가 날아오는 것을 잘 보기도 전
에 오른쪽 발로 한 점을 찍었다. 그는 벌써 그 힘을 이용하여 홍발
노인이 서 있는 곳으로 날아갔는데 이는 바로 완전한 구양진경신법
이었다.

그 병기는 냉면인이 추락하던 힘을 받아 섬광처럼 밑으로 떨어지
며 종유동굴 바닥의 호랑이에게 박혔다. 호랑이는 처참하게 으르렁
거리며 곧 죽어 갔다.

홍발노인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소인이 하등의 도움이 되지못했사오니 영주님의 용서를 바랍니
다."

냉면인은 '흥!'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들어 위를 올
려다보았다.

장무기가 막 일성을 질렀을 때 은리정은 이미 그 뜻을 알아차리고
조민을 데리고 두 발로 일 점을 찍으며 무당 제운종신법을 전개해
서 민첩하게 장무기의 곁에 내려섰다. 내려다보니 냉면인 또한 마
침 홍발노인 옆에 떨어져 있었다. 만일 장무기가 제때에 일깨워 주
지 않았다면 냉면인이 내려서자마자 곧 은리정과 조민에게 진공했
을 것이니 사태는 더욱 험악해졌을 것이었다.

지금은 강약지세로 보아 장무기쪽 세 사람이 높이 위치하고 있으
니 냉면인의 무공이 더 높다 해도 감히 공략해 올 수 없었다. 게다
가 밑에는 굶주린 호랑이가 노려보고 있으니 냉면인의 처지는 바로
진퇴양난이었다.

은리정이 때를 놓치지 않고 일갈을 질렀다.

"무기야, 너는 괜찮으냐?"
"아주 좋습니다. 육숙께서는 어찌 이곳에 오시게 됐습니까?"
"아,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단다. 먼저 이 두 마수들을 처치한 다
음 얘기하자."

장무기는 차마 그럴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육숙, 그들은 지금......."

조민이 말을 가로채며 힘있게 소리쳤다.

"악은 철저히 없애야 해요!"

장무기는 멍하니 만일 지금 저 둘을 제거함으로써 사실상 무림의
일장혈전을 면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냉면인도 올라올 수 없고 장무기 등도 내려갈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조민이 갑자기 소리쳤다.

"돌!"

장무기는 순간 얼이 빠졌으나 즉각 반응하여 칼을 휘둘러서 동굴
벽쪽으로 내리쳤다. '착'하는 가벼운 소리에 십여 근이나 되는 돌
이 갈라졌다.

계속 몇 번을 내리친 후, 도룡도를 칼집에 집어넣고 한 덩어리를
들고는 동굴 쪽으로 갔다.

"냉면인, 우물에 돌을 던져서는 안 되지 만 사실 당신을 남겨 둘
수 없으니 나를 탓하지 마시오!"

말을 마치자 장무기는 돌덩어리를 '쏵'하고 산산이(?=산산히) 쪼
개었다.

그때 갑자기 '펑'하고 큰소리가 나서 보니 냉면인과 홍발노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단지 냉면인의 목소리만 동굴에 울렸다.

"장 교주는 역시 힘을 좀 아끼는 것이 낫겠소!"

홍발노인이 딛고 있는 암석은 석벽이 오목하게 수장이나 들어가
있어서 두 사람이 그 속에 은신하니 돌덩어리가 당연히 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한 순간에 세 사람 모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원래 은리정과 유연주는 각각 대처로 나가 녹민을 찾기로 했다.
은리정이 도중에 공동파를 지나쳤을 때 우연히 홍발노인 주오정이
공동파의 장문인인 당문량을 귀순하도록 협박하는 것을 목격했다.
당문량은 바로 공동파 오로의 네 번째로 그 사람됨이 매우 강직하
고 의로우며 장문의 직책을 승계한 후에는 더욱 공정과 강직불굴의
정신을 드러냈으니 그를 귀순케 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쌍
방이 말로써 해결하지 못하고 막 대결을 시작하려 할 때 은리정이
의를 쫓아 싸움을 시작하였고 공동오로가 다 있다 해도 홍발노인을
대적할 수 없어서 부득불 황망히 도주했다.

여럿이 나누어 추격하더니 홍발노인은 유독 은리정 한 사람만 쫓
아왔다. 두 사람이 십여 차례 대결했으나 모두 막상막하로 결판이
나지 않았다. 엉겨 붙어 싸우며 이곳까지 오니 굶주린 호랑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마침내 종유동굴 속으로 쫓겨 들어가던 중, 다행히
도 두 사람 모두 석벽으로 뛰어올라 호랑이 입 속에서 빠져나온 것
이다. 단지 두 사람의 머리 위에 출구가 있는지 아니면 결국 그대
로 갇히고 마는지 알 수 없음을 애석해 하고 있었던 차에 장무기
일행을 만나게 된 것이다.

위아래의 쌍방이 서로 한참을 생각해도 끝내는 방법이 없자 침묵
을 깨고 장무기가 입을 열었다.

"육숙과 조민이 먼저 나간 후에 제가 곧 따라나가는 것이 어떻겠
습니까?"
"보아하니 냉면인의 운명이 아직 끝난 것 같지 않으니 우리는 무
당산에서 그의 왕림을 기다리기로 하겠다. 그러니 무기야, 부디 몸
조심하여라!"
"육숙, 안심하십시오. 이 몸 혼자서 빠져나가려 한다면 결코 어렵
지 않습니다."

조민은 하고 싶은 말을 억제하고 부득이 은리정을 따라 동굴을 빠
져나갔다. 그러나 조금 걸어가던 조민이 되돌아왔다. 그녀는 옷깃
으로 한아름의 과일을 싸왔는데 그것은 장무기가 며칠 동안 먹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조민은 할 말을 잊고 장무기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조민은
장무기가 혼자 있으면 오히려 사고가 생기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호랑이 굴 안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런 조민의 마음을 읽었는지 장무기가 미소를 머금고 조민을 위
로했다.

"민 누이, 걱정할 것 없소. 삼 일 후 나도 곧 따라가겠으니 걱정
말고 빨리 가시오. 육숙이 기다리고 있소."
"무기, 조심하세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조민은 몸을 돌려 뛰어갔다.

장무기는 냉면인의 장력이 엄청남을 생각하고 도룡도를 오른손에
뽑아 들고 왼손으로 과일 하나를 집어 한 입 깨물었다.

동굴 안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장무기는 냉면인과 홍발노인이
종유동굴 속에서 애타 하는 것을 보며 그들을 더 애타게 만들었다.

"당신 두 사람! 필경 배가 고플 것 같은데, 여기 과일이 있으니
한 두 개 먹겠소?"

냉면인이 장무기를 올려다보았다.

"몇 개 던지시오!"

배가 고픈 냉면인은 장무기가 돌덩어리를 부수어 버리는 것도 두
려워하지 않았다. 장무기는 과일 몇 개를 던졌다. 장무기는 냉면인
의 의연함에 경의를 느꼈다.

"사양할 것 없소."

냉면인은 대답도 없이 과일 두 개를 홍발노인에게 나누어주었다.
홍발노인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한동안 종유동굴 위아래에서 과일 씹는 소리만이 들려 왔다. 갑자
기 장무기가 탄식을 하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냉면인이 말했다.

"알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는데 각하께서 가르침을 주실 수 있으신
지요?"

냉면인이 말했다.

"'가르침'이란 말씀은 이 늙은이가 감당할 수 없으나 장 교주가
무엇을 알고 싶어하는지 들어봅시다."

장무기가 말했다.

"각하의 신공으로써 무림을 영광되게 하실 뜻이 있으시다면 진심
으로 천하대행(?台暗?)이오!"

냉면인이 말했다.

"이 몸은 비록 회천지력(??柵淹:국가의 쇠운이나 형세를 일변시
키는 힘)이 없다고 느끼지만 교주의 말씀대로 행하고 싶소."

장무기는 매우 이상하게 여기며 말했다.

"그러나 중추절 밤, 무당산정은 대도살의 아수라장으로 변할 것이
니 이를 어찌 무림의 영광이라 말할 수 있겠소?"

냉면인이 말했다.

"어린 생명이 태어날 때에는 당연히 온몸에 피가 얼룩지기 마련이
오."

장무기는 순간 어리둥절했다. 냉면인이 계속 말했다.

"장 교주께서 원나라 조정에 들어가 황제를 올바로 지도하지 않음
은 당신의 입장에서 보자면 당연히 중원 백성을 위해 일장대공을
세운 것이오. 그러나 장 교주도 일찌기 생각해 보았을 것이오. 그
렇게 해서 얼마나 많은 몽고인이 한인의 칼 아래 죽어 갔소? 몽고
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장 교주는 무슨 대영웅이나 대협이 아니오.
아마, 흐흠, 아마도 그들은 당신을 원나라를 멸망시키는 대간신으
로 볼지도 모르지."

장무기는 움찔 놀랐다. '간신'이라는 두 자가 자신의 신상에 붙여
진 것은 이것으로 벌써 세 번째인 것이었다. 전에 두 번은 조민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으나 이번에 냉면인의 입에서 나오니 가슴이 저
절로 망연해졌다. 그는 마치 자언자어(株欌株場)하듯 말했다.

"세상사를 어찌 '시비(裏?)' 두 글자로 명확히 분별할 수 있는
지......."

냉면인이 말했다.

"세상에는 원래 시비의 구별이 없으나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뿐이
오. 강자가 바로 '시(裏)'이고, 약자가 '비(?)'일 따름이지요."

장무기는 이 말이 터무니 없다고 생각했으나 반박할 말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 한참 후에야 겨우 말했다.

"각하의 무공은 고강하신데 이번에 소생과 우처를 죽음에 빠뜨리
려 하는 것은 각하로 보면 자연히 '시(裏)'가 되겠지요. 그러
나......."

냉면인이 말했다.

"당연히 그렇소!"

장무기가 말했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저희 부
부를 이리도 핍박을 하는지? 만약 저희 부부가 당신에게 해를 입는
다면 천하의 사람들은 반드시 당신이 불의(寓琮)하다고 말할 것이
오."

냉면인이 말했다.

"이 몸에게 불의 하다고 하는 이가 있다면 늙은이가 당장 죽여 버
릴 것이오. 그러나 만약 누군가가 나를 죽인다면 당연히 이 몸에게
'불의'하다고 말할 수 있지."

장무기가 크게 소리쳤다.

"아니오!"

냉면인이 말했다.

"왜 아닌가?"

장무기가 말했다.

"아무튼 아니오!"

냉면인이 냉소하며 말했다.

"일자무식쟁이가 멋대로 강변하는군. 장 교주, 당신은 이 몸을 동
굴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인가?"

장무기가 말했다.

"천만의 말씀, 삼 일 후에 소생은 응당 물러갈 것이니 그땐 각하
뜻대로 하시오."

냉면인이 사납게 말했다.

"장 교주, 당신은 내가 올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는가?"

장무기가 말했다.

"각하, 그래도 삼 일은 조용히 기다리시며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게 좋을 것이오!"

그러나 냉면인은 쌍족일점(???稷)하여 이미 원래의 위치에서
은리정이 있던 곳으로 날아왔다. 장무기가 돌을 안고서 잠시 주저
하는 사이 냉면인은 홍발노인에게 일점두(?稷?)하여 두 사람이
훌쩍 뛰어올라 곧장 장무기가 서 있는 동굴 입구로 동진 했다.

장무기는 한숨을 쉬며 돌을 내려놓고 도룡도를 든 채 굴 속으로
일 장 후진했다. 잠깐 사이에 냉면인과 홍발노인은 이미 똑바로 멈
춰섰다.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의 선심인택(?入?致)은 크게 필요치 않소."

장무기가 말했다.

"두 분께서 역시 스스로 뛰어올라 오셨군요. 호랑이 굴로 떨어진
것은 결코 소생의 본의가 아니오니 오해 마시오."

냉면인이 말했다.

"강호의 사람들은 칼날 위에서 뒹굴며 사는 인생이지요. 목이 잘
리는 것은 순간의 일이오. 장 교주, 한 수 받아 보시지."

말이 막 끝나자마자 홍발노인의 장풍이 오니, 과연 맹렬했다.

장무기는 그의 내력을 시험해 볼 생각으로 더이상 재빨리 피하지
않았다. 왼손 바닥을 휘두르자 '쾅' 소리가 나더니 홍발노인이 껑
충껑충 껑충 세 번 물러나 절벽 끝에 이르렀다.

냉면인의 쌍장이 가슴 앞에서 허응(?簇)하더니 창졸지간에 이 구
십 팔 장으로 공격해 왔다. 장무기는 그와 강경하게 대장(癌雋)하
길 원치 않아서, 그저 도룡도를 흔들며 그의 주위를 선회했다.

홍발노인이 소리를 지르며 그를 도와 공격해 왔다. 그러나 유감스
럽게도 동굴이 너무 좁아 두 사람이 합세하자 오히려 제 실력을 발
휘할 수 없었다. 냉면인이 중지하도록 외칠 때 홍발노인이 장무기
에게 내리친 일 장이 중도에 별안간 방향을 바꾸어 냉면인의 아랫
배를 향해 쳐들어왔다.

냉면인이 황망히 막아내자 홍발노인이 놀라서 어리둥절해 하며 변
명을 했다.

"영주님, 저는 아닙니다.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원래 장무기는 냉면인의 장력을 끌어들일 자신이 없어서 홍발노인
의 장력을 냉면인에게 유인하고 자신은 칼을 잡고 선 채로 공격하
지 않은 것이었다.

냉면인이 장무기를 곁눈질하며 말했다.

"장 교주의 건곤대나이심법은 정말로 대단하오."

장무기가 말했다.

"각하, 역시 내려가시죠. 삼 일 후에 우리 각자 길을 가면 됩니
다. 어떠시오?"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 다시 한 번 나의 몇 장을 받아 보시오!"

말이 끝나자 갑자기 쌍장이 난무하여 마치 수십 개의 손바닥이 날
아다니는 것 같았다. 계속 보고 있자니 장무기는 눈이 어지러워 그
의 손바닥이 어디에서 자신을 공격해 오는지 알 수 없었으며 그저
도룡도를 휘두르며 겨우 몸을 가릴 뿐이었다. 이 방법은 잠깐 동안
은 몸을 지킬 수 있으나 내력이 크게 소모하여 시간이 오래되면 살
아남을 수 있을지 예측하기 힘들었다.

바로 이때, 갑자기 '땅' 소리가 들리며 돌 하나가 도룡도를 기묘
하게 쳤으나 곧 가루가 되었다. 홍발노인이 옆에서 돌을 던져 냉면
인을 돕는 것이었다.

장무기는 생각했다. 자신이 만약 줄곧 양보만 한다면 계략에 걸릴
지도 모르니 오늘의 일은 부득이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마음을 정하자 즉시 칼을 휘두르며 선제공격을 하니 냉면인
은 보도의 예리함에 밀려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장무기는 삽시간
에 두 사람을 끝까지 몰고 가 도룡도를 크게 휘둘러 동굴 입구를
봉쇄하고 더이상 공격하지 않은 채 말했다.

"냉면인, 소생이 부득불 이렇게 하니 역시 삼 일을 더 기다리시
오!"

홍발노인이 재빨리 공격하며 두 손으로 금나수법(?蝕?擾, ?=나
금수법)을 전개하여 바로 칼등을 쥐었다. 그의 손가락이 칼등에 올
려져 있는데 장무기가 갑자기 내력을 발하니 홍발노인은 외쪽 팔이
몹시 저려 왔다. 홍발노인이 어찌 참을 수가 있으랴. 할 수 없이
손을 놓았다.

이렇게 약간 느슨해지자 냉면인이 원숭이 자세를 하고 우측에서
일 장을 날렸다. 장무기가 만일 대장 하지 않는다면 냉면인은 곧
동굴 안으로 밀려들어갈 것이었다.

전광석화지간에 장무기는 차장을 내뻗고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곧
장 찌르니 바로 양패구상의 목숨을 건 초수였다. 장무기는 냉면인
이 한 번 공격해 오면 그 후환이 엄청나리란 것을 알았다. 자신이
만일 그와 동귀어진(?崇雜?:함께 희생되다)한다면 무림은 제반의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냉면인은 칼의 움직임에 따라 전력 질주했다. 자신의 일 장이 비
록 장무기를 격상(?轅)시킬 수 있어도 보도를 몸에 지닌 이상 자
신 역시 중상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니 승산이 전혀 없으매 당장 뒤
로 뛰어오르며 이 일 초를 피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홍발노인이 합신하여 덮쳐 왔다. 장무기는 보도
가 이미 호외(枰?)에 있어서 거둬들일 겨를이 없이 즉각 회주하여
맹격하였다. 동시에 왼손을 역으로 감아 올리며 냉면인이 틈을 타
서 공격해 올 것이 걱정되어 오른발로 방위를 측정하여 공중을 가
르며 솟아올랐다. 만일 냉면인이 공격해 오기만 하면 옆구리에 반
드시 부상을 입을 것이었다. 삽시간에 삼 초를 한꺼번에 펼쳤다.

'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오른쪽 팔꿈치가 홍발노인의 일 장에
부딪혔다.

그 힘의 크기가 너무 커서 결국 홍발노인이 이 보(?) 물러나며
동굴 벽에 부딪힌 후 곧 땅에 힘없이 쓰러지니 분명 부상이 심상치
않은 듯했다.

장무기는 오른쪽 다리를 공중으로 내질렀다. 갑자기 눈 아래 검은
그림자가 번쩍하더니 이내 없어졌다. 뜻밖에도 냉면인이 땅에 바싹
붙어 동굴 안으로 날아 들어가는데 마치 제비가 수면(??)을 스치
듯하여 그 자세의 기묘함을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장무기는 가슴이 '쿵' 내려앉으며 기운이 쭉 빠졌으나 칼을 든 채
곧장 굴 안으로 추격해 갔다.

냉면인이 질주하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러나 장무기는 이 등신법(?壬擾)을 알지 못하여 속으로 끊임없
이 비명을 질렀다.

진기를 강력히 끌어올리며 동굴 끝까지 달려갔다. 머리를 들어 보
니 원래는 한 줄기의 빛도 없던 동굴에 약간의 양광이 스며들고 몇
그루의 나뭇가지가 아직 미미하게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냉면인은
이미 동굴을 빠져나간 것이 분명했다.

장무기는 쌍족일점하고 도룡도로 머리를 감싸고 좌장으로 기를 모
아 가슴과 배를 보호하며 동굴을 뚫고 나가 횡으로 삼 장(晙)을 난
후에 지상에 내려섰다. 그때 등 뒤에서 냉면인이 말하는 것이 들렸
다.

"장 교주, 신법이 훌륭하군!"

장무기는 몹시 화가 나서 매섭게 말했다.

"덤비시오. 내가 각하의 일천 초를 삼가 받겠소."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께서 오늘 수차례 양보하셨으니 이 늙은이는 더 싸울 면
목이 없소이다. 지금 영부인을 급히 쫓아가려면 장 교주께서도 같
이 가셔야 하지 않은 지요?"

장무기가 격노하며 말했다.

"파렴치한!"

냉면인은 괴이하게 웃으며 말했다.

"군자는 지(?)를 겨루고 용(截)을 겨루지 않지요. 잘 가시오!"

냉면인은 말을 끝내고 앞으로 질주해 갔다. 장무기는 어쩔 수 없
이 냉면인의 뒤를 바짝 쫓아 산 밖으로 달려갔다.

냉면인의 경공은 정말로 놀랄 만해서 장무기가 아무리 전력을 다
해도 한 시간쯤 후에 냉면인의 검은 모습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장무기는 자신이 잠깐 동안의 선한 생각으로 냉면인을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었다고 후회했다. 만일 은 육숙과 조민이 그에게 추격
을 당한다면 아마, 아마도...... 장무기는 더이상 생각할 수 없었
다. 다만 공력을 십 이 할까지 발휘하여 목숨을 다해 남쪽으로 쫓
아 가며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기만을 바랬다.

이틀 후, 장무기는 마침내 진예(?謫) 경계처의 고성에서 은리정
과 조민을 따라잡았다. 두 사람은 장무기의 표정을 보자마자 냉면
인이 이미 달아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장무기가 오히려 이상하다
는 듯이 물었다.

"냉면인이 아직 쫓아오지 않았단 말인가?"

두 사람은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무기가 자세한 상황을 얘기하지 조민이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변장을 해서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낫겠어요!"

은리정과 장무기는 이 계책이 매우 기발함에 찬성했다. 조민은 곧
객점의 심부름꾼에게 분부하여 거리에 가서 일련의 필요한 물건들
을 사 오도록 했다. 하룻저녁을 묵고서 다음날 이른 새벽에 세 사
람은 부상(繇院)의 모양으로 차렸다. 은리정은 높은 신분인 듯, 장
무기와 조민은 마치 남매처럼 꾸미고 세 필의 건마(涉?)를 사서
곧장 성문을 나가 남쪽으로 향했다.

세 사람은 말을 나란히 하고 천천히 나아갔다. 정오 무렵이 되자
도로 양변이 모두 높이 솟은 푸른 산이었고 머리 위에는 한 가닥
푸른 하늘이었다. 이 산구(雲手)를 빠져나가자 곧 예서북(謫?溶)
경계로 들어갔다. 다시 수일을 더 가면 무당산에 닿을 수 있었다.

세 사람은 가는 길에 줄곧 냉면인의 무공에 대해 생각했다. 이 세
사람이 아무리 경험이 많은 백전노장이라 해도 역시 타당한 설명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그들은 중추절 모임의 일 장에 대해서 특별
히 필승의 자신이 없었다. 막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세 명의 기병
이 구빗길을 돌아갔다. 갑자기 길 앞으로 십 장쯤의 거리에 네 사
람이 세 마리의 말을 타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앞장선 한 사람은
놀랍게도 바로 냉면인이었고 뒤의 세 사람은 또한 과거 조민의 수
하 삼형제였다.

아대(?暗)는 비쩍 마른 늙은이로 마른 몸에 키가 크며, 만면에
주름살 투성이에 수심이 가득 찬 얼굴로 손에는 칼을 쥐고 서 있었
다. 아이(??) 역시 비쩍 말랐으나 몸집은 아대보다 약간 작으며
대머리가 번쩍번쩍 빛나고 태양혈이 깊이 반 촌 정도로 움푹 들어
간 것이 확실히 내가(??)의 고수로 보였다. 아삼(?寃)은 건장하
고 건실한 체구에 호랑이같이 위엄이 넘쳤고 얼굴, 손, 목 등 무릇
피부가 보이는 부분은 온통 울퉁불퉁 무섭게 근육이 튀어나왔다.
마치 몸 전체가 모두 정력으로 터져 나갈 듯이 부푼 것처럼 보였
다. 왼쪽 뺨에 검은 점이 하나 있었고 그 점 위에 긴 털이 약간 나
있었다.

삼형제는 서역 금강문중의 고수로 과거 무당산에서 모두 장무기의
손아래 쓰러졌었다. 아이, 아삼은 일찌기 금강장마외문(?鋤雋??
?)의 신공으로 무당칠협 중의 제 삼협인 유대암과 육협 은리정의
전신 관절을 모조리 부러뜨리고 또한 소림사의 신승 공성의 용조수
를 격파하고 그를 살해하였기 때문에 그 당시 무당산에서 장무기도
아이의 양팔비골, 가슴늑골, 어깨쇄골과 아삼의 사지를 모두 운력
으로 부러뜨리고 그들에게 독문해약인 '흑옥속단고'를 내놓도록 몰
아쳤었다. 당일 조민은 무당산에 명교 고수들이 운집한 것을 보고
그들의 음모를 이루기 힘듦을 알고 이내 하산하여 물러갔었다. 장
무기가 아삼을 막 사로잡으려 할 때 불시에 또 현명이로의 양장을
맞아 부득불 멈추었고 조민이 무리를 이끌고 하산케 하였다.

장무기는 '흑옥속단고'를 반드시 얻어내어 무당이협의 부상을 치
유코자 결심하고 즉시 무당산을 내려갔다. 그는 한 객점에서 아삼
이 '흑옥속단고'를 바른 채 누워서 치료하는 것을 엿보게 되었고
당장 문을 부수고 들어가 탁자 위에 있는 약을 훔쳐내 왔다. 그러
나 그것은 뜻밖에도 조민의 술책에 빠진 것으로 탁자 위의 약은 가
짜였다. 조민은 거기에 극독의 '칠충칠화고' 독약을 넣었던 것이었
다. 무당이협은 그로 인해 하마터면(?=하마트면) 목숨을 잃을 뻔
했다. 장무기는 하는 수 없이 조민이 그에게 요구한 세 가지 사항
을 승낙했다. 그제서야 조민은 해약과 '흑옥속단고'를 장무기에게
주었었다.

그때 조민은 장무기가 믿도록 속이기 위해 결국 대머리 아이와 아
삼 두 고수들이 잘못 되는 것에 괘념치 않고 두 사람의 몸에 가짜
'흑옥속단고'를 사용했었던 것이다. 후에 비록 해약을 썼지만 그러
나 사형제(???) 세 사람은 이에 분개하여 떠나 버렸고 그 후로
조민과 각기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상전벽해(委址??)를 누가 예상했으랴. 정말 인간사
는 알 수 없는 것이니 장무기와 조민이 뜻밖에도 원수 사이에서 부
부로 맺어지고 또한 이 삼형제가 어떻게 냉면인의 마수(??) 아래
투항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이렇게 갑자기 다시 만나니 비록 장, 조 두 사람이 이미 삼
형제가 냉면인에게 투항한 소식을 고고특목이에게 들어서 알고 있
었다고 해도 여전히 엄청난 놀라움이었다. 장무기는 냉면인이 자신
이 은리정과 조민 두 사람을 따라잡기 전에 손을 쓰지 않은 까닭을
금새 알아차렸다.

그 속셈은 자신이 그와 전력으로 대장케 하여 자신의 힘을 빌어
현관(??, ?=?)을 뚫고자 함이 명백했다. 수하인 금강문 세 고
수는 바로 그를 옹호하기 위해서 소환되어 온 것이다.

장무기와 조민은 차치하더라도 은리정이 아삼을 대면한 것은 원수
지간에 서로 만난 것이니 갑자기 안색이 변하며 당장에 대결하려고
했다. 이때 조민이 목이 마른 듯이 말했다.

"아버지, 산길이 이렇게 요원한지 일찍 알았더라면 깨끗한 물을
더 많이 준비해 올 걸 그랬어요."

은리정은 잠깐 멍하게 있더니 곧 진정하게 되었다. 시세(裡留)를
판단하니, 자신 쪽은 세 명이고 상대방은 네 명으로 만일 대결하게
된다면 짐작컨대 결과가 크게 우려할 만했다. 그러나 조민의 변장
술이 뛰어나니 혹시 속아넘어가게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가 곧
말했다.

"앞쪽 멀지 않은 곳에 맑은 샘이 있으니 거기에 가서 잠깐 쉰 후
에 다시 가는 것이 좋겠구나."

세 사람은 암암리에 경계하며 얼굴은 오히려 염려할 것 없다는 표
정으로 일언반구도 없는 냉면인 일행을 향해 점점 가까이 다가갔
다.

거로의 거리가 삼 장쯤 되었을 때 냉면인이 돌연히 말했다.

"장 교주, 어떻게 이렇게 갈수록 형편없이 되는가. 이제는 결국
음식받이 도련님 노릇까지 하게 되는구려? 명성이 자자한 무당육협
께서 장두로미(蒸???)하시니 위풍을 잃지 않겠소?"

장무기는 내력을 간파 당하자 부득불 멈춰서며 말했다.

"각하, 안식이 대단하십니다. 소생은 오히려 당신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은리정은 이렇게 간파 당한 것이 무당육협의 명성에 정말로 명예
롭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화가 나서 얼굴이 굳은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냉면인이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장 교주를 번거롭게 할 수밖에 없겠군!"

말을 마치며 몸을 훌쩍 솟구쳐 곧장 세 사람의 머리 위를 덮쳤으
나 쌍장은 단지 조민에게만 향할 뿐, 장무기와 은리정에게는 전혀
미치지 않았다.

은리정은 대노했다. 푸른빛이 번쩍하더니 장검이 칼집에서 빠지며
바로 냉면인의 전중대혈을 향했다. 공격할 필요도 없이 냉면인은
고꾸라지며 저절로 칼끝에 부딪혔다.

그러나 그때 아대가 냉면인을 옹호하며 장검을 찔러 왔다. 아대의
장검은 비록 일 보 늦었지만 칼끝은 도리어 은리정의 사물혈(??
?)을 재빨리 찔렀다. 은리정은 할 수 없이 검을 휘둘러 아래를 막
으면서 동시에 좌장을 위로 찍었다. 그는 자신의 내공이 냉면인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을 잘 알았기에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
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장검이 헛찔러졌다. 은리정은 상황이 심상치 않
음을 속으로 감지하였다. 정신이 이렇게 잠깐 흐트러지매, 곁눈질
하여 보니 아대는 벌써 칼을 쥐고 뛰어올라 더이상 진공하지 않았
다. 귓가에 우렁찬 소리가 들려오고 계속해서 '쨍그랑' 소리가 몇
번 나더니 조민의 겁에 질린 소리가 들렸다.

눈을 들어보니 장무기의 말이 사족이 절단되었고, 냉면인은 육칠
장을 날아가 땅에 내려서며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운공충관(?殺沖
?)을 하고 있었다. 아대, 아이, 아삼은 각자 냉면인 주위에 서서
그를 옹호하였다. 원래 장무기는 냉면인이 전력을 다해 덮치는 것
을 보고 은리정과 조민이 일을 당할까 몹시 걱정되어 곧 말에서 뛰
어오르며 일 장에 맞섰으나 오히려 냉면인의 웅혼거대한 장력에 밀
려 말 위로 떨어졌던 것이었다. 냉면인의 장력의 거대함이 결국 장
무기가 말 위로 떨어질 때 그 말의 사지를 누르게 하여 절단나게
하니 그 말은 당장에 생짜로 진사(??)하였다. 장무기는 본인도
저절로 기혈이 용솟음쳐 급히 눈을 감고 조식하였다.

은리정과 조민은 이 상황을 보고 매우 놀라며 황망히 말에서 내려
검을 들고 장무기의 신변을 보호했다. 다행이 냉면인도 운공을 하
는 중이라서 쌍방이 서로 경계할 뿐, 다시 겨루려 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 장무기가 수공(?殺)을 하며 일어났다. 두 사람이 묻기
도 전에 장무기가 낮게 말했다.

"빨리 갑시다!"

장무기와 조민이 말 한 필에 같이 타고 세 사람은 말을 몰아 앞으
로 나아갔다. 아대, 아이, 아삼은 그들을 막지 않은 채, 그냥 떠나
가게 내버려 두었다.

세 사람은 채찍을 휘두르며 수리를 달렸다. 장무기가 말이 지친
것을 보고 곧 땅으로 뛰어내려 경공을 펼쳐서 다른 말에 뒤지지 않
게 하였다.

세 사람은 모두 말이 없었다. 지금은 가능한 한 빨리 달려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으며 무당산에 이르기만 하면 냉면인이 결
코 경거망동하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장무기가 갑자기 뒤에서 세 기병이 쫓아오는 소리를 듣고 신음하
듯 말했다.

"육숙, 민 누이, 당신 둘은 먼저 가 보시오!"
조민은 놀라며 그 이유를 물었다. 은리정은 이때 이미 뒤쪽 멀리
에서 말발굽 소리를 듣고 곧 장무기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조심하거라!"

하며 조민과 함께 의연히 앞쪽으로 질주해 갔다.

장무기는 쌍족일점하여 몸을 잎이 무성한 거목으로 날려서 나뭇잎
들 사이에 은신했다. 차 반 잔 마실 시간이 지난 후, 아대, 아이,
아삼이 말을 몰고 지나갔다.

장무기는 세 사람이 지나간 후, 곧 나무에서 뛰어내려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두 시간 후에는 아까 싸우던 곳으로 돌아와 있
었다. 죽은 말은 여전히 길에 가로누워 있었고, 냉면인의 뒷모습이
바위처럼 굳어 있는 것이 아직도 운공충관을 하고 있는 것이 확실
했다.

장무기는 도룡보도를 뽑아 들고, 천천히 냉면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막 가까이 다가가려는 순간,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오른
손에 칼을 들고는 있었으나 그 얼굴에는 주저하는 빛이 역력했다.

만약 지금 냉면인의 목숨을 빼앗으려 한다면 설사 그의 신공이 세
상을 덮을 정도라고 하더라도 이 운기충관의 험요(?箭)한 고비에
서의 기습은 강호에서는 비난당할 일이며 특히 무림정파 인사들이
가장 통한하는 행동이니 일대대협의 신분인 장무기가 어찌 실행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장무기는 급히 생각을 달리하였다. 장무기는 만일 냉면인
이 중추절에 약속대로 무당산에 나타난다면 그 뒤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단지 자신의 명예에만 급급해 한다면 실로 수많은 강호동도(析弊?
?)에게 얼굴을 들 수 없게 될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도룡도를 재빨리 냉면인의 요유혈점(癲??稷)으로 향하였다.

장무기는 냉면인이 이미 임맥혈관이 뚫렸으므로 지금은 반드시 독
맥현관을 공격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어쨌든 자신의 배후 기습은
소인의 행동에 속하니 어찌 정말로 냉면인의 목숨을 앗을 수 있으
랴!

요유혈은 독맥현관에 속해서 이 경혈이 파손되는 것은 막론하고
일단 한 대 명중하기만 하면 일시에 전신이 마비되며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장무기는 생각했다. '단지 냉면인의 기선을 제압하여
그들 물러서게만 해야지 절대 그의 무공을 못 쓰게 해서는 안 된
다.'

이 행동은 비록 곤혹스럽긴 했지만 그러나 어쨌든 냉면인의 생명
은 유지시킬 수 있었다.

장무기는 그의 목숨을 상하지 않기로 한 이상, 도룡도에 운력(?
淹)을 싣지 않았다.

도룡도는 이미 요유혈을 명중시켰다. 바로 이때 냉면인이 갑자기
긴 탄식을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처량함과 적막함이 가득했다. 장무기는 문득 망연자실해졌으
며 그의 심정도 한없이 울적해져서 그저 망연히 냉면인의 뒤에 서
있었다.

냉면인은 의연히 단좌(兒且)한 채 움직이지 안더니 한참 후에야
말을 했다.

"당신은 왜 칼을 휘둘러 베지 않는가?"

장무기는 마치 듣지 못한 듯, 냉면인의 그 긴 탄식을 따라 마음은
벌써 요원한 과거로 날아가고 있었다.

......무당산정에서 양친께서 천하의 영웅들 앞에서 자결하시는
것을 직접 목격했던 일.
......곤륜파에서 자신이 하태충의 협박으로 독주를 마셨던 일.
......주장령과 무열에게 쫓겨 부득불 몸을 날려 만장심연으로 뛰
어내렸던 일.
......원숭이들과 몇 년을 함께 지내면 구양진경을 연마했던 일.
......호주(蔽澯)성 안에서 주원장의 계략으로 의기소침하여 명교
교주의 자리를 물러났던 일.
......조민이 주지약 때문에 화가 나서 가 버린 후, 자신이 수년
간 힘들게 찾아 헤맸던 일.
......

홀연히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깊은 생각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 장무기는 냉면인과 자신이 대적하여 서 있는 것을 발견했
다.

장무기의 얼굴은 아직도 망연지색으로 지금의 상황을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 왜 나를 단칼에 죽이지 않는가?"

그의 말은 마치 장무기가 그를 죽이지 않는 것을 탓하는 것처럼들
렸다.

장무기는 그 말을 듣고 멍하더니, 비로소 자신이 여기에 온 목적
을 기억해 내고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소생은 본래 살인을 좋아하지 않지요."

냉면인이 심사숙고하며 말했다.

"어쩐지......."

장무기는 호기심이 생겨서 물었다.

"각하, 무슨 말을 하시려는 건지?"

냉면인이 그를 직시하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어쩐지 그래서 주원장이 계책을 쓰자마자 곧 그렇게 쉽게 당신을
퇴위시킬 수 있었군. 당신은 정말 흉대무지(閑暗午?)한 사람이
군."

장무기가 이상하게 여기며 물었다.

"주원장이 무슨 계책을 썼지요?"

냉면인은 '흥'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더이상 대답이 없었다.

장무기는 벌써 두 번째 다른 이들이 자신을 '흉대무지'하다고 하
는 말을 들었다. 그 첫 번째는 여양왕부에서 고고특목이가 말했던
것이 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이번에 냉면인 역시 그렇게 말한 것이
었다.

"소생은 단지 천하지인(?台柵?)이 되길 바랄 뿐이니 그저 평안
하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 이상 무슨 욕심이 있겠소?"

냉면인이 무심하게 말했다.

"그러하다면 당신은 마땅히 강호에서 섞여 살지 말았어야지."

장무기가 말했다.

"소생의 비천한 재주는 대부분 본의 아니게 얻은 것입니다."

냉면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이렇게 강호의 자질구레한 일들에 참견하면
서 어찌 부인과 함께 강호를 등지고 은둔하여 우옹(情?)이 되려
하지 않는 것인가?"

장무기가 말했다.

"각하께 솔직히 말해서 소생도 그럴 뜻이 분명히 가지고 있지요.
그러나 각하의 웅심(?入)이 이리도 크신 데도 무고한 사람들과 대
적하니, 그들이 혹시 소생과 친여골육(?醬誦嘲)이거나 혹은 간담
상조(?樂爲?)하는 친구라면 소생이 어찌 떠나 버린 채 그들의 생
사에 대해 불문불문(寓?寓汚)하겠소? 다만 각하께서 손을 놓으신
다면 소생은 우처(情?)와 딸아이를 데리고 강호를 등지고 은둔하
여 평생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오."

냉면인이 말했다.

"당신은 벌써 이 늙은이가 손을 떼지 않을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장무기가 말했다.

"소생은 죽기를 맹세코 각하와 끝까지 대적할 것이오."

그러나 냉면인은 고개만 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무기
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째서......, 설마 소생이 상대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
겠죠?"

냉면인이 말했다.

"무공으로 말하자면 천하에 당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 늙은이
의 맞수가 될 자가 없지. 그러나 지모(?聆)로 말하자면 장 교주는
아직 멀었소. 영부인은 원래 총명교활했으나 당신과 몇 년을 지내
고 나더니 그녀 또한 똑같이 우둔하게 되고 말았더군."

장무기는 그의 욕이 조민에까지 미치는 것을 보고 화가 머리끝까
지 치밀어 올라 말했다.

"소생은 각하를 인(?)으로써 대하는데 뜻밖에도 각하는 이를 구
실로 누차 소생을 협박해 오니 실로 대장부의 기개를 찾아볼 수가
없군요!"

냉면인이 말했다.

"맞소. 호랑이 굴에서 만일 장 교주가 이 늙은이가 호랑이 주둥이
에 죽는 것을 가엾게 여기지 않았다면 이 늙은이가 신공을 펼 수
없었을 것이니 이것이 그 하나요, 방금 당신이 여기에 오자마자 곧
살수를 썼다면 이 몸은 반드시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니 그것이 그
둘이오. 이 늙은이가 지금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장무기는 낙담하여 침울한 얼굴로 묵묵부답이었다. 지금 이 당대
의 양대고수가 서로 마주보고 서 있으니 둘 중 누가 먼저 손을 써
도 상대방은 모두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냉면인이 탄식하며 말했다.

"장 교주는 스스로 자처해서 무림의 재난을 구하는 중책을 지고자
하면서, 일을 행함에 있어서는 이리도 우유부단하니 아마도 명교
교주와 같은 그런 책임을 떠맡긴 힘들거요."

장무기가 말했다.

"명교는 수백 년 동안 유전(役?)해 왔소. 아무리 각하의 무공이
고강하다고 해도 단 한 번에 무너뜨리는 것은 아마 그리 순조롭지
못할 것이오."

냉면인이 '흥'하고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광명정이 그리도 대단하단 말씀이구먼. 그러나 만약 그때 당신이
서둘러 오지 안았다면 짐작컨대 당신의 그 간담상조하는 교우들은
일찌감치 귀신이 되었을 거요. 당신의 본성이 이러한데 또 구태여
교활한 궤변을 늘어놓을 필요가 있는가?"

장무기가 묵묵히 말했다.

"무림 중에는 은자가 매우 많으니 소생이 몸소 그들과 어깨를 나
란히 하고 각하와 겨룰 수 있소."

냉면인이 말했다.

"더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은 무익하지. 장 교주의 불살지정
(寓垣柵盡)을 입어 이 몸이 또 요유, 영태, 상성 등 독맥의 제혈
(??:여러 혈도)을 뚫었소이다. 늙은이는 이제 작별을 고하고 영
부인을 쫓으려 하니 사정을 좀 봐 주시오!"

장무기가 급히 말했다.

"잠깐!"

냉면인이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장 교주, 또 무슨 가르침이라도 주시려는지?"

장무기가 말했다.

"소생은 각하가 소생을 협박하는 것은 각하와 대장(癌雋)케 하여
그를 이용하여 현관을 뚫게 하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
소. 그러니 소생이 스스로 가 버리면 각하의 계산은 자폐(株?)되
지 않겠소?"

냉면인은 기묘히 웃으며 신형(壬阪)을 전개하여 곧장 조민이 간
길을 쫓아갔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장무기의 귀까지 들려 왔다.

"장 교주, 그대의 생각 대로이기를 바라오. 그러면 그 이상 좋을
것이 없겠지. 이 몸이 지금 가서 은 늙은이를 죽여 버리고 영부인
을 사로잡으면 중추절에는 훨씬 승산이 클 것이오."

이 말이 끝났을 때 냉면인은 이미 수십 장을 달려가고 있었다. 장
무기는 그의 말에 안색이 변하며 그저 바싹 뒤를 쫓았다. 그는 마
음속으로 모질게 말했다. 만일 또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잔인하게
죽여 버릴 것이다. 다음에 절대 용서치 않겠다!

여덟 시간을 황망히 달려서 장무기는 광활한 대지에 이르렀다. 날
이 저물며 석양이 지고 있었다. 이때, 아대, 아이, 아삼은 은리정
과 조민을 둘러싸고 싸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은리정의 나이는 이미 오십에 가까왔다.

무당칠협 중에서 검도로는 그의 조예가 가장 높으니 그가 장검을
한 번 휘두른다면 아대 등이 어찌 그의 적수가 되겠는가! 근 혼자
서 아대, 아이 두 사람을 상대하는데도 확실히 우세하며 또 불시에
틈을 타고 조민과 맞붙은 아삼에게 재빨리 일격을 가하니 마침내
세 명의 사형제(???)를 허둥지둥, 낭패천만하게 만들었다.

아삼은 조민이 전에 그의 몸에 고육책을 쓴 것에 몹시 분노하고
있었으므로 쌍권으로 사나운 바람을 일으키며 일 초 일 초마다 조
민을 사지(??)로 몰아넣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조민은 그와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고 단지 신법만을 전개
하며 계속해서 이동했다. 한 쌍의 단검으로 홀연히 일 초는 아미파
의 점미자, 또 다른 일 초는 곤륜파의 양의검법을 그려냈다. 그리
고 그 검초가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다시 화산파의 반양의도법을
전개했다. 그녀의 도법과 검법의 어우러짐 속에서 아삼의 내공이
제아무리 심후하다 해도 이미 조민의 동병서주(???燦:여기저기
서 긁어모으다)한 검법에 의해 낭패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은리정이 불시에 일 검을 공략해 오자 아삼은 몇 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놀람과 두려움으로 더욱더 엉망이 되었다. 그
러나 냉면인은 뒷짐을 지고 한쪽에 선 채 무심히 지켜보고만 있었
다.

냉 영주가 현장에 있으니 어찌 아삼이 싸움을 중지할 수 있으랴.
그는 부득불 목숨을 걸고 조민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세 사람이 매우 위험할 때 냉면인이 재빨리 손을
써서 구해 냈다. 위험한 순간이 지나가자 냉면인은 다시 그 싸움에
서 몸을 빼고는 수수방관하는 자세로 돌아가서 사형제 세 사람은
한층 두려움에 떨었다.

냉면인은 장무기가 멀리서 전광석화처럼 달려오는 것을 발견하고
말했다.

"장 교주의 달리는 실력도 대단하군!"

장무기는 진작에 장중지세(準猖柵留)를 정확히 판단하고 십 장이
나 멀리서부터 도룡도를 뽑아 들고 곧장 냉면인에게 바싹 달려갔
다.

장무기가 먼저 기선을 제압하여 냉면인과 겨뤄서 많은 힘을 들일
필요 없이 이 사형제 세 사람을 은리정과 조민의 손에 죽게 해야만
했다.

냉면인이 어찌 이것을 간파하지 못하랴? 장무기가 자신에게 바싹
다가오는 것을 보고 냉면인은 돌연 조민을 향해 날아갔다. 그는 아
삼에게 물러서라고 외치면서 하장을 조민에게 뻗었다.

그러나 조민은 몸을 비스듬히 피했고, 장무기의 도룡도는 어느새
냉면인의 가슴 앞에 있었다. 조민은 질풍같이 상승무공하며 왼손으
로 곤륜파의 정양의검법을, 오른손으로는 반대로 화산파의 반양의
도법을 구사했다. 그녀의 지혜와 민첩성 덕분에 마침내 이 완전히
상반되는 서로 다른 무공이 동시에 발휘된 것이었다.

부부 두 사람의 손에 병기가 있으니 냉면인은 일시에 두 사람을
대적할 수 없었다. 세 사람이 수비, 공격하고 몰고 몰리는 때의 신
법이 번개보다 빠르게 보였다.

아삼이 두 형제의 전단(?芯)에 가입하여 은리정을 중간에 두고
에워쌌다. 아대는 검을 휘두르고 아이, 아삼은 장권(雋瞬)을 같이
해서 '윙윙' 소리를 내며 은리정을 향해 공격해 왔다.

은리정은 장검을 휘둘러 무당태주검법을 그려냈다. 장검은 큰 원,
작은 원, 수직 원, 수평 원, 이 하나 하나의 원들이 끊이지 않고
연면히 이어지니 태주검의 원전여의, 충허원통(?池醬倧, 沖??
枕: 원활함이 그 뜻과 같고 잡념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니 원활하
다)의 도가 심후했다.

그러나 이 사형제 세 사람은 각자의 무공의 조예가 모두 강호의
일류고수의 경지에 이르니 은리정은 이미 수비가 많고 공격이 적어
졌다. 단시간 동안은 아무 염려가 없었으나 시간이 길어지매 패배
를 면하기 힘들었다.

조민의 초수는 비록 정기박잡(秩??峻)하나, 내공은 사실 냉면인
과 비교하면 너무 보잘 것 없기 때문에 초수를 하나 쓰고 나면 곧
내력을 유동(役?)하는 것이 몹시 힘듦을 느꼈다. 정세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 그녀는 부드럽게 소리쳤다.

"칼을 받아라!"

쌍검이 손에서 떨어지며 좌측에서 바로 냉면인의 옆구리를 공격했
다. 장무기는 기회를 틈타 냉면인의 우로(幀?)를 차단하여 그가
오른쪽으로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냉면인의 쌍장이 재빨리 뻗어지며 이내 쌍검을 움켜쥐었
다. 장무기는 크게 놀라 급히 좌측을 덮쳤다.

냉면인은 벌써 장무기가 기회를 보며 앞에 있다가 도룡도를 던지
니 쌍검을 향해 날아가 바로 쌍검을 도룡도상으로 끌어당겼다. 원
래 이 도룡도는 현철(??)로 만들어서 자성이 엄청나매, 천하 모
든 암기의 극성(??: 적수, 어려운 상대; 한자가 이상함)이었다.
조민의 단검은 바로 정철(秩?)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끌려간 것이
었다.

장무기는 속으로 긴 탄식을 하며 쌍장에 기를 모아 가슴 높이에
대고 밀어냈다.

갑자기 '펑'하고 큰소리가 나더니 장무기가 비틀비틀 십여 보 후
퇴하며 땅에 풀썩 주저앉아 눈을 감고 운기조식했다. 얼핏 보니 그
의 안색이 창백하고 입가에는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조민은 황급히 도룡도를 집어들고 장무기의 옆으로 달려가 똑바로
섰다.

이쪽에서 극렬하게 싸우던 세 명의 사형제는 냉면인이 차력(剔淹)
으로 성공한 것을 보고는 고함을 치며 재빨리 철퇴해서 냉면인의
곁으로 뛰어가더니. 혼신의 힘을 다해 경계했다.

은리정이 긴 한숨을 쉬며 천천히 장검을 집어들어서 막 운력으로
부러뜨리려는데 갑자기 조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육숙, 먼저 가십시오!"

은리정은 그 말을 듣고 참담하게 웃으며 검을 부러뜨리려던 생각
을 그만 두고 검을 거두어 장무기 옆으로 갔다. 조민이 다시 말했
다.

"육숙, 저희 소질(蹂?) 둘은 잠시 동안은 생명에 지장이 없을 것
입니다. 이렇게 가시면 무당산에 수일이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육
숙께서 먼저 가시고 추후에 다시 돌아오셔서 소질들을 지원하셔도
역시 늦지 않을 것입니다."

은리정은 얼이 빠져서 가볍게 신음하며 처연하게 말했다.

"그것도 괜찮겠구나. 너희들, 몸조심하거라!"

말을 마치고 앞으로 나가 말을 끌었다.

아대는 그가 달아나려 하는 것을 보고 그가 지원병을 청하러 가는
것으로 알고서 즉시 칼을 휘둘러 은리정을 공격했다. 아이, 아삼은
여전히 냉면인 옆에 머물렀다.

은리정은 매우 화가 나서 '쏴쏴쏴' 삼검연환으로 찌르며 중궁을
따라 직진했다. 아대가 검을 휘두르며 대적했으나 뜻밖에도 은리정
의 검신이 갑자기 굽어지며 '쫙'하는 소리와 함께 아대의 왼팔을
찔러 일시에 선혈이 내뿜어졌다.

은리정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고 더이상 기회를 잡아 진공하지 않
은 채 훌쩍 말 위로 뛰어올라 팔을 들어 채찍을 휘두르며 쏜살같이
달려가 버렸다.

은리정의 검도가 출중함은 아대도 결코 모르지 않았지만 지금 이
렇게 무리하여 눈 딱감고 공격한 것은 사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
다고 후에 냉 영주가 엄중하게 문책을 한다면 어찌 변명할까 두려
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은리정의 내력수양이 이미 입신지
경에 이르러 운력으로 장검을 구부러뜨린 것이었다. 갑자기 무당의
절기인 칠십 이 초 요지유검(甸??盛)을 구사하니 아대가 어찌 당
해낼 수 있으랴! 아대는 즉시 고약을 급히 바르고 스스로 상처를
싸매더니 의연히 오른손에 검을 들고 냉면인의 옆에 섰다.

조민이 이를 보고 화가 치밀어 말했다.

"아대, 너는 언제부터 그렇게 충성심에 불타게 되었지?"

아대가 대답했다.

"영주께서는 아랫사람 대하는 은혜가 태산같으니 자애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군주(조민을 말함)와는 다르오. 선비는 자기를 알
아 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 했지요!"

조민은 당일 장무기를 계략에 빠뜨리기 위해 한 행동이 대머리 아
이와 아삼에게 사실 너무 지나친 처사였음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사후에 두 사람의 독을 풀어 주긴 했지만 이 '칠중칠화고'가 얼마
나 독했던지 대머리 아이와 아삼은 톡톡히 고생을 겪었기 때문에
조민에게 골수에 사무치는 원한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조민은 지금껏 남에게 당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그 소
리를 듣고 당장 말했다.

"냉면인은 물론 너를 잘 알겠지만 너는 오히려 그를 잘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우둔해서 아직도 무슨 호한(貶洞:사내 대
장부)이라고 사칭하면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구나!"

아삼이 대노하여 성큼성큼 조민에게로 걸어왔다. 그러나 아대가
그만 두라고 소리치자 하는 수 없이 '씩씩' 화를 내며 물러갔다.
조민은 진작에 냉면인이 틀림없이 세 사람에게 자신을 해치지 못하
도록 명령을 내렸으리라 추측하고 있었다. 그녀가 냉소하며 말했
다.

"냉면인이 만약에 너희들과 그렇게 막역한 사이라면 왜 너희들이
나를 죽여 원수를 갚는 것을 허락하지 않지? '선비는 자기를 알아
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흥, 김치국물부터 마시는군."

아대가 성을 내며 말했다.

"군주는 서둘러서 목숨을 내놓을 필요 없소이다. 영주님의 신공이
대성하게 되면 당신의 목숨을 취하기가 자루 속의 물건을 찾기보다
더 쉬울 것이오."

조민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신공이 대성한다고? 제발 백일몽으로 끝나지 않기를."

아대의 상처는 뼛속까지 미쳐 화를 내자마자 통증이 골수까지 스
미며 얼굴이 검게 변해서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쌍
방이 이렇게 대치하고 있었다. 머지 않아 석양이 서쪽으로 넘어 가
고 대지에는 점점 어둠이 드리워져 갔다. 장무기는 여전히 운기조
식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번의 행공(?殺)은 벌써 두 시간이나 지
났으나 장무기가 아직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아 아마도 부상이
매우 심한 듯했다.

조민은 자신이 장무기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는 것이 괴로워
서 일시에 슬픔이 복받쳤다. 자신과 장무기가 함께 지낸 몇 년 동
안을 생각해 보니, 강호를 종횡무진 누비며 천하에 따라올 사람이
없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요 몇 일 냉면인에게 이처럼 핍박을 당
하고 보니 자신도 좋은 계책을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지금 마음
을 가라앉히고 묵상을 하고 있긴 하나 한참이 지나도 여전히 속수
무책일 뿐, 머릿속은 온통 장무기와 냉면인이 대결할 때의 정경뿐
이었다.

바로 이때, 장무기가 수공을 하고 일어서며 한숨을 쉬면서 말했
다.

"대단하군! 진전이 이토록 빠르다니."
조민은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차리고 더이상 묻지 않고 말했
다.

"제가 가서 말 두 필을 끌어오겠어요."
하고는 바로 아대 등 세 사람의 말 쪽으로 걸어갔다. 세 사람은
이미 그녀의 의도를 알고서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뭘하려는 건가?"

장무기는 상황을 알고 슬쩍 날아올라 말 세 필을 모두 끌어왔다.
세 사람은 장무기에게 크게 당한 적이 있었거니와 또 그가 영주에
게 일 장을 맞았으면서도 잠깐동안 좌선을 하더니 곧 멀쩡해진 것
을 보고 감히 나서서 막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저 눈만 멀뚱멀
뚱 뜨고서 두 사람과 말 네 필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
보고 있었다.


장무기가 말했다.

"민 누이, 이 일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결단을 내야 하오. 그렇지
않고 다시 삼사 장 이상을 겨룬다면 냉면인은 신공이 곧 원상을 회
복하여 그때는 도망가자고 해도 이미 늦을 것이오."

조민은 수미(??)를 약간 찌푸리며 장무기의 말을 못 들은 체했
다. 장무기는 그녀가 심사숙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방해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말을 몰아 질주했다.

이때, 날은 완전히 저물고 양쪽 청산(?雲) 사이에 좁은 길이 끊
임없이 이어져 있었다. 네 필의 말은 모두 준마로서 이 심산 고요
한 밤에 말굽을 높이 치켜들고 갈기를 휘날리며 걷는 것이 대단히
용맹하고 건강해 보였다. 만일 평소였다면 말을 탄 사람들은 반드
시 기세가 드높았으리라.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장무기는 고개를
저으며 씁쓸히 웃었다. 자신에게 지금 무슨 한가한 심정이나 안일
한 정취가 있으랴. 그저 도망하기 위해 달아날 뿐이었다. 갑자기
조민이 말하는 것이 들렸다.

"있어요!"

장무기가 물었다.

"뭐요?"

조민이 말했다.

"내일 그가 또다시 당신과 대결을 한다면 당신은 다만 그렇게 하
면......."

장무기가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다.

"저......."

조민이 조소를 하며 말했다.

"냉면인도 정인군자(賑?宿侏)는 아니에요.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누차 당신의 인의를 이용하여 극력으로 핍박하는 거지요? 당신이
만일 언제까지나 이렇게 세상물정에 어둡다면 우리 둘은 아마도 천
명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될 거예요."

장무기가 말해다.

"맞는 말이오. 좋소, 부인의 말대로 하겠소. 그런데 왜 진작 말하
지 않았지?"

조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왠지 몰라도 냉면인 생각만 하면 나는 춥지 않아도 막 떨려요.
나는 이미 무공이 고강한 사람을 많이 봐 왔지만 그들에 대해 두려
움을 느낀 적이 없었어요. 예를 들어 나는 당신을 지금껏 무서워해
본 적이 없어요."

장무기가 말했다.

"그것은 내가 항상 인으로써 사람을 대하기 때문에 당신이 당연히
무서워하지 않는 거지."

조민이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허풍떨지 말아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나는 줄곧 냉면인
배후에 틀림없이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조사
(??) 장 도인께서 임종하실 때, '주원장이 비록 일방에서 웅거하
긴 하겠지만 반드시 천하를 얻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나머지 호걸들은 모두 각자 제 문호만 지킬 것이니 주원장은 오직
명교가 그를 견제할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사람은 웅대한 재
능과 원대한 지략에 또한 음험 교활함을 겸비했으니 방비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지요. 이 말씀을 기억하시는지요?"

장무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말은 바로 무당제협이 그에게 전해
주었으며, 당시 조민도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 이 때문에 장송계
가 내막을 탐지하려고 명교의 군에 갔는데 결과가 어떨지 모르겠지
만 지금 같아서는 주원장과 아무 관련이 없기만 하면 좋겠다는 심
정이었다.

조민이 또 말했다.

"냉면인은 산을 나가자마자, 우리를 죽일 거예요. 생각컨대 우리
가 이미 그의 정체를 알아차렸으니 우리를 죽여 입을 막으려는 거
죠. 그런 후에 우선 멀리 있는 광명정의 명교 총교를 찾아낼 거예
요. 무엇 때문이냐고요? 만일 강호를 통일하려 하는 것이라면 왜
하필 가까이 두고 멀리 찾겠어요. 소림사와 무당산을 없애버리면
명성이 자자해질 것이 아닌가요? 그렇게 되면 중원의 방회들은 당
연히 혼비백산하여 도주하게 되겠지요."

장무기는 속으로 두려움을 느끼며 얼굴빛이 당황함과 불안함에 싸
였다.

조민은 그의 상황에 이상이 있음을 보고 곧 물었다.

"무기 오빠, 뭘 상상하는 거지요? 말해도 괜찮아요. 왜 날 안심시
켜 주지 못하지요?"

장무기는 한숨을 쉬며 채찍을 공중으로 휘두르며 말을 재촉해 갔
다. 그는 한참 달린 후에야 비로소 입을 열었다.

"냉면인이 방금 한 가지 일을 제기했소. 그가 '어쩐지 주원장이
계책을 써서 그렇게 쉽게 당신을 퇴위케 만들었구나'라고 말했소.
아마, 아마도 이 일은 정말로 주원장과 유관한가 보오."

조민이 말했다.

"당신이 퇴위한 일에 대해 민 누이는 줄곧 당신에게 그 이유를 묻
지 않았어요. 냉면인이 그렇게 말한 이상 그 중에는 틀림없이 술수
가 있을 거예요. 무기 오빠, 말해 줄 수 있어요?"

장무기는 매번 이 일을 생각하게 될 때마다 언제나 우울하고 불쾌
했다. 자신이 평소에 계략을 쓰는 데 능숙하지 못하지만 아마 이
일은 정말로 주원장과 유관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조민이 아무리
기지백출(拾?王出)하다고 해도 그 일에 대해 무슨 방법을 간파해
낼 것이라고 단언하기 힘들었지만 그는 조민에게 그날 호주에서의
일을 말하였다.

원래 장무기와 조민은 당일 명교교중(?窓)들을 놀라게 하지 않으
려고 몰래 호주성에서 주원장을 찾아냈다. 주원장은 땅에 엎드려
절을 한 후에 곧 주연을 베풀었다. 그 자리에서 장무기와 조민은
모두 미약(?疵:마취약)에 의해 혼절하여 지하감옥에 갇히었다. 이
내용은 조민도 물론 알고 있었다.

장무기는 내공이 조민보다 훨씬 월등해서 먼저 깨어났는데 옆방에
서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들은 우리 교를 배반하고 원조(??)에 투항했다. 증거가 확실
하여 의심할 바가 없으니 지극히 가슴 아픈 일이다. 두 분 형제,
당신들이 보이에는 어떻소?"

서달과 상우춘 두 사람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주원장이 말했
다.

"이목이 많고 군중(琡猖)의 도처가 모두 그의 심복이니 우리 그의
이름을 들먹이지는 맙시다."

서달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주 형님, 큰일을 이루려면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말고 화근을 철
저히 없애서 후환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상우춘 역시 그러했다. 주원장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서, 상 두 분 형제께서 모두 이렇게 말하는 이상, 그럼 이렇게
합시다. 다만, 이 어린 놈이 평소부터 본교교중에게서 상당한 은덕
(組鴦)을 가지고 있고, 두 분 형제도 그와 평소 교분이 두터우니
이 일은 절대로 누설되어서는 안 됩니다."

서달과 상우춘이 모두 말했다.

"대업을 위해서는 친구간의 사사로운 교분을 돌볼 수는 없지요."

장무기는 당시 여기까지 듣고서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고 곧
운기신공하여 몸에 감겨진 결박을 풀고서는 아직 깨어나지 않은 조
민은 안고서 몰래 월장을 하여 탈출, 교주의 지위를 양소에게 양위
하러 갔다.

서달과 상우춘은 모두 장무기의 목숨을 구해 준 적이 있었기 때문
에 세 사람의 친분이 두터워서 장무기는 줄곧 이 일을 일생일대에
유감스러운 일로 여기고,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평
소 어쩌다 그 일이 떠오르기만 해도 황급히 생각을 끊어 버리고 다
른 일을 생각했다. 조민이 다 들은 후에 말했다.

"그들 세 사람은 줄곧 당신의 이름을 얘기하지 않았나요?"

장무기가 말했다.

"줄곧 꺼내지 않았소."

조민이 말했다.

"이 일에는 반드시 무슨 계략이 있어요. 제가 보기에 서, 상 두
분은 기개가 있는 대장부이고, 평소 당신에게 매우 공경스러웠지
요. 당신은 일교의 교주로서 천하를 평정하였으므로 당연히 황제에
는 당신이 오를 것인데 구태여 원조와 결탁하겠어요? 서, 상 두 분
은 틀림없이 당신인지 모르고 한 얘기일 거예요. 이는 확실히 의심
할 바가 없어요. 당신이 만일 못 믿겠다면 나중에 서달과 상우춘을
만나게 될 때, 솔직히 물어 보세요. 곧 단서를 알게 될 거예요."

장무기가 탄식하며 말했다.

"범요도 이미 유사한 의심을 가지고 있소."

조민은 언짢은 기색으로 말했다.

"그는 지모가 뛰어난데, 그마저도 그렇게 말한다면 이 일은 더 의
심할 여지가 없어요."

범요는 일찌기 스스로 얼굴을 망가뜨리고 여양왕부에 잠입하여 지
내다가 후에 조민의 수중에서 만안사에 잡혀 있던 육대파 고수들을
구출했었다. 이 때문에 조민은 범요를 언급하면 곧 과거 그에게 속
았던 것이 생각나서 자연히 말투가 그리 부드럽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도 범요의 고심(素入)에 대해서는 오히려 경복하지 않을 수 없
었다. 장무기는 웃으며 말했다.

"어쨋든 나는 황제에 앉고 싶을 뜻이 없고 그저 당신과 함께 산림
으로 은둔할 수 있다면 다른 것은 더 바랄 것이 없소."

조민이 말했다.

"아마도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요."

장무기가 말했다.

"어째서?"

조민이 말했다.

"단신은 명교교중, 무당제협, 소림고승들이 살해를 당하는데 모르
는 척할 수 있나요?"

장무기가 말했다.

"이 일을 끝내고 곧 은퇴하면 괜찮겠지?"

조민이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몽고병(叡召?)이 아무리 악독하다고 해도 강호호객들을 모두 멸
살시키려고는 생각도 안했을 것예요. 이후에 아마도 저 몽고인은부
득불 장 대협을 따라서 한족들에게 크게 살생계를 벌이게 될 거예
요."

장무기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까지는 안 되겠지?"

조민이 숙연하게 말했다.

"당신 허리에 찬 그 칼은 뭐 하는 데 쓸 거죠?"

장무기가 의아해 하며 말했다.

"도룡도 말인가?"

조민이 말했다.

"무림에 가장 존귀한 것은 도룡보도다. 천하를 호령하니 감히 따
르지 않는 자 없도다. 의천이 나오지 않으면 누가 더불어 선봉을
다투리오?"

조민은 말을 마치고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갔다. 장무기는 그 말
을 듣고 가슴이 두근두근해서 달리는 말 위에 멍청히 앉아 만면에
망연한 기색을 띠었다. 조민이 말했다.

"바보, 빨리 달아나야죠. 지금은 냉면인을 상대하는 게 더 급하단
말이에요."

장무기가 말했다.

"뭘 두려워하지? 부인은 이미 묘책을 가지고 있지 않소?"

그는 원래 농담을 할 생각이었으나 의외로 어조가 너무 무미건조
해서 전혀 즐거운 맛이 없었다. 한밤중에 장무기와 조민은 한 마을
에 도착했다. 마을은 온통 칠흑같이 어두웠고 사람들은 모두 잠들
어 있었다. 두 사람은 객점 문 앞에 이르러, 심부름꾼을 불러 깨워
서 위층의 상방(袁溫:안채)을 요구했다. 조민이 또 귓속말을 하자,
잠시 후에 심부름꾼이 몇 가지 물건을 조민에게 갖다 주었다. 장무
기가 말했다.

"간신히 안온하게 잠을 잘 수 있게 되었구려."

한편 말을 하면서 한편으로 조민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조민은 얼
굴이 빨개지더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장무기를 등지고 기름
등불 아래서 한참을 분주하게 하더니 비로소 불을 끄고 휴식했다.

다음날 새벽녘, 장무기 부부는 한바탕 외치는 소리에 시끄러워 잠
을 깼다. 바로 냉면인이 도착해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두 부부께서는 잘도 주무시는군. 이 늙은이들은 일부러 한밤중에
달려서 방금 도착했소이다. 장 교주, 내려오시지요. 이 몸이 한턱
낼터이니, 두 부부께서 간단히 한 잔 하는 게 어떻겠소?"

장무기가 말했다.

"족제비가 닭한테 세배를 하니, 각하께서는 틀림없이 진정이 아닌
것 같소. 그 술은 정말 감히 먹을 수가 없습니다."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가 바로 천하 제일의 독약 판별 전문가인데 이 몸이 감히
반수 문전에서 도끼질하겠소이까?"

장무기는 여전히 잠이 덜 깬 채 말하였다.

"좋소. 번거로우시겠지만 각하께서 몇 시간만 더 기다려 주시오.
소생은 한숨 더 자고 싶소이다."

냉면인이 기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장 교주가 진정 안 일어난다면, 이 늙은이가 정말로 불을 지르겠
소."

장무기가 막 비웃으려 하다가 오히려 조민에게 낮은 목소리로 호
통을 당했다.

"당치도 않은 말하지 마세요. 그가 저렇게 소란을 피우게 해서 어
쩌려는 거예요. 빨리 일어나세요!"

장무기는 조민의 아직 피곤한 모습에 얼굴에 약간 화가 난 표정이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참지 못하고 그녀를 껴안았으나 도리어
조민에게 떠밀려 버렸다. 장무기는 하는 수 없이 일어났고 둘은 매
무새를 잘 다듬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냉면인과 아대, 아이, 아삼은 이미 탁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고,
술과 음식도 벌써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조민이 말했다.

"당신, 정말로 한턱 낼 생각이세요?"

냉면인이 말했다.

"늙은이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받아 주시기 바라오."

조민이 말했다.

"그럼 좋아요. 우선 저 세 녀석들은 꺼지라고 하시지요."

조민은 아대가 어제 불손하게 말을 해서 사람들 앞에서 군주의 위
신을 떨어뜨렸기 때문에 화가 나서 그들 세 사람을 내쫓고 나서야
자리에 앉겠다고 했다.

그들 사형제 세 사람은 갑자기 안색이 변해서 화를 내려 하다가
영주의 위엄에 두려움을 느끼고 감히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였다.

장무기는 조민이 하는 행동이 속으로 몹시 우스웠으나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채, 한쪽에 서서 구경을 했다.

냉면인이 이 말을 듣고 잠시 멍하더니 곧 괴이하게 몇 번 웃고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삼가 군주의 명을 받들어 너희들이 다른 탁자로 옮기는 것이 어
떠하겠느냐?"

말을 끝내고는 조민이 입을 열기도 전에 냉면인이 큰소리로 심부
름꾼에게 술상 하나를 더 차리도록 분부했다. 심부름꾼은 당연히
몹시 흥이 나서 분주히 준비했다. 세 사람은 다른 탁자로 가서 앉
았다. 잠시 후에 술과 요리가 날라지고 장무기와 조민은 전혀 사양
하지 않고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이쪽 삼형제는 줄곧 화가 나서 조금도 식욕이 없었으며 모두 독기
품은 눈빛으로 조민을 노려보다가 결국 술 한방울도 입에 적시지
않았다. 조민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매우 고상하게 술과
음식을 먹기만 했다.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의 도움에 감사드리오. 이 몸은 또 협백, 사상, 지기, 충
문 등 제처(??)의 혈관이 뚫렸소이다!"

장무기는 속으로 몹시 놀랐다. 이 네 곳의 혈관은 각각 태음폐경
과 족태음비경에 속하는데 냉면인이 마침내 자신의 일장지력에 의
하여 동시에 두 줄기 경맥의 혈관을 뚫었다면 그의 내공이 이 수일
사이에 뜻밖에도 크게 진보했음을 설명한 것이었다.

"축하합니다, 각하. 각하께서 아직 몇 장(雋)이 더 있어야 대성공
을 거두실 수 있을지 모르겠소?"

냉면인이 말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장 교주께서 세 차례를 더 베풀어주신다면 되
겠소이다."

장무기는 '어'하며 의아해 하는 기색을 약간 나타냈다. 냉면인이
다시 말했다.

"장 교주는 물론 잘 알 것이오. 다음 일 장은 늙은이가 네 줄기
경맥의 혈관을 뚫고, 그 다음 장은 여덟 줄기 경맥을 뚫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오. 그때는 십 사 경맥이 정말로 모두 뚫리게
되지. 최후의 일 장은 모든 경멸, 근경 및 경외기혈을 다 뚫을 수
있지. 장 교주가 매번 내려 주신 일 장으로 늙은이의 공력이 일층
진보하니 다음에 혈도를 맞을 때는 자연히 얼마간은 용이할 것이
오."

장무기는 도대체 자신이 이런 대마두(暗??)를 만들어 낸 것을
어찌 감히 믿어야 할지 의아해 하며 말했다.

"그래서 어찌하려고?"

냉면인이 말했다.

"늙은이가 강호상의 일류가 되지요."

장무기는 여전히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그런 후에는?"

냉면인이 말했다.

"늙은이가 무림을 복되게 해서, 천고에 이름을 남길 것이오."

장무기가 또 물었다.

"천고 후에는?"

냉면인은 잠시 멍하더니 기괴하게 웃으며 말했다.

"장 교주는 어찌하여 어린 것들이나 하는 꼬치꼬치 깨물어 대는
놀이(스무 고개)를 흉내내는가?"

장무기가 말했다.

"이렇게 된 바에, 소생이 각하에게 삼 배를 올리겠소!"

냉면인이 말했다.

"가당치도 않소이다. 오히려 이 늙은이가 장 교주께 올려야 되지
요."

장무기가 술을 받쳐들고 말했다.

"이 제 일 배는 각하의 신공이 이루어지기 힘들기를 기원합니다."

말을 끝내고는 잔을 비웠다.

냉면인은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알아볼 수 없었으나 그도 묵묵히 잔을 비웠다.

장무기는 술을 가득 따르고 또 말했다.

"이 이 배는 각하께서 중추절에 낙황이도(新???:큰길을 버리고
황야로 도망가다)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잔을 비웠고 장무기는 또 잔에 술을 가득 채우
고 말했다.

"이 제 삼 배는 만사가 각하의 뜻과 같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두 사람이 다 마신 후에,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 당신은 이 늙은이 평생 가장 즐거운 일이 무엇인지 아
시오?"

장무기가 말했다.

"소생은 마의(?縱) 관상을 보지 않으니, 아시고자 하면 달리 고
명한 사람을 청하시는 것이 무방하겠소이다."

냉면인이 방향을 바꾸어 조민에게 말했다.

"장 부인은 아시는지?"

조민은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술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
다.

"당신이 가장 의기양양해 하는 일은 장무기를 핍박해서 당신을 위
해 공력을 증진시킨 연후에 이 공력을 이용하여 그를 제압하는 이
상의 것은 없지요."

냉면인이 기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장 부인은 여중호걸답소. 탄복하오. 늙은이가 당신에게 삼가 한
잔 올리니 부인께서는 아무쪼록 제 체면을 봐 주십시오."

조민이 말했다.

"함께 하지 못함을 양해해 주십시오."

냉면인은 책망하지 않고 자신이 그 술을 마셨다. 막 말을 하고자
할 때, 장무기가 말했다.

"민 누이, 우리 출발할까?"

조민이 고개를 끄덕여 호응했다. 두 사람은 일언반구 없이 곧장
객점 문을 나가 남쪽을 향해 갔다. 마을에서 삼 리를 나오자, 냉면
인이 이미 나무 그늘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장무기가 공수(釗?)하며 말했다.

"수고스럽게도 각하께서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또한 죄를 용서하
십시오."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에게 무슨 죄가 있겠소. 오히려 늙은이가 이렇게 귀찮게
굴어서 그만 두 부부를 싫증나게 만들었소이다. 다행이 이 삼 장
(寃雋)만 더 받으면 되니 장 교주가 아예 하루 안에 늙은이에게 내
려주면 어떻겠소?"

장무기가 말했다.

"한번 해 봅시다."

냉면인이 말했다.

"그렇게 해주겠다니 대단히 고맙소!"

'소'자가 끝나기도 전에, 냉면인은 이미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곧
장 조민의 머리를 공격했다. 조민은 진작에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치는 이런 성동격서(猶???)의 술수에 습관이 되어 전
혀 피하지 않고 아름다운 얼굴에 의외로 약간 장난기까지 띄고서
흥미진진하게 이 일절을 보고 있었다. 게다가 칭찬까지 했다.

'당신 몸이 이주 좋군......"

'요' 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곧 '펑'하고 크게 소리가 나며 냉면인
의 몸이 마치 종이 연처럼 공중 회전하여 십여 장을 나아가서 안전
하게 지상으로 낙하하더니 똑바로 소소 미동도 하지 않고 장무기를
응시했다.

장무기가 말했다.

"소생의 행동은 부득이한 것이었으니 또한 탓하지 마시오."

조민은 오히려 웃음을 함빡 머금고 말했다.

"각하, 빨리 행공(?殺)하시죠!"

냉면인이 천천히 말했다.

"장 교주 부인이 먼저 의견을 표명하시니 기쁘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왝' 소리를 내며 선혈을 토해 내고 몸이
비틀비틀하였으나 이내 진정을 하고 나서 말했다.

"늙은이 오늘은 이만 작별을 하고 다음에 다시 뵙겠소!"

장무기가 말했다.

"소생은 무당산에서 삼가 기다리겠소이다."

냉면인은 재빨리 몸을 돌려 가볍게 스치며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순간 눈앞이 횡하다고 느꼈을 때, 그 어디에 냉면인의
그림자라도 남았겠는가? 이러한 신법은 사실 귀매(??)에 속하는
것과 같아서 비록 그의 몸이 내상을 당했다 해도 장무기를 한참 동
안이나 말을 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놀라게 했다. 아직도 정신이
혼미한 채 말했다.

"정말 대단하구나. 민 누이, 만일 당신이 묘책을 쓰지 않았다면
설사 요번에 빠져 나왔다 해도 냉면인의 신공이 이미 완성되었을
테니 어찌 더이상 그를 대적할 수 있겠소?"

조민이 나무라며 말했다.

"이게 무슨 묘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보다 당신은 평생 정직하
다가 돌연히 한번 술수를 썼으니 참으로 막기 힘들었을 거예요."

원래 조민은 지난 밤에 심부름꾼에게 여자들이 꽃자수를 놓을 때
쓰는 골무 두 개와 보통 바느질 바늘 몇 개를 달라고 해서 실을 가
지고 바느질 바늘을 골무에 묶어서 장무기에게 둘째 손가락과 중지
사이에 끼우게 했다. 냉면인과 대장할 때, 냉면인은 너무 갑작스러
운 일이라 미처 막아낼 수 없어서 자연히 계략에 빠지게 된 것이었
다.

사실 냉면인은 손바닥이 장무기와 막 닿으려 할 때, 이미 장무기
장중의 강침을 발견했었다. 그러나 그때는 몸이 이미 공중으로 날
아올라 있었기 때문에 수세할 틈이 없었으므로 급히 내력을 억지로
되돌렸으나 이는 자신의 석파경천(?啄??)의 일격으로써 자신을
반격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서 중상을 입게 되었다. 더욱기 장무기
가 승세를 잡고 전력으로 반격하여서 냉면인의 부상은 확실히 가볍
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겉치레 말은 명백히 다 마친
후에야 은신이퇴(詔壬?針)하였으니, 이러한 내공수양은 실로 이미
입신경지에 다다른 것이었다.

즉시 두 사람은 말에 올라타서 무당산을 향해 질주했다. 도중에
송원교, 유연주, 은리정, 소소, 상승왕 등과 만났다. 그들은 두 사
람이 무사한 것을 보고 물론 매우 기뻐하고 안심하였다. 일행은 방
향을 남쪽으로 돌려서 이틀 후에 무당산에 이르렀다.

x x x

이때는 중추절이 겨우 한 달여 남짓해서 무당제협은 냉면인과 대
적할 일을 상의했으나, 모두 무슨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장무기의 말을 듣고는 비록 냉면인이 내상을 입긴 했
어도 그의 내공수양으로 매우 빨리 회복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
가 준비를 하고 온 이상, 결코 단지 몇몇 강호 호객들을 이끌고 될
일은 아니었으며, 틀림없이 많은 도모(愛聆)가 필요했다. 모두들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하고 더욱 방비를 강화했다. 냉면인이 무당산
을 점찍었으니 그가 사전에 무당파를 공격해 오는 것을 막아야만
했다.

다시 보름이 흘러가고 장송계가 명군에서 돌아왔으나 냉면인과 주
원장이 결탁한 단서는 찾아내지 못하였다. 장무기는 이 말을 듣고
남몰래 한숨을 돌렸다.

이후 며칠 동안 계속하여 강호인사들이 산을 올라왔다. 지금까지
도사들의 수양지였던 무당산이 마침내 날이 갈수록 시끌벅적해졌는
데 다행히 무당파에게는 냉령(??, ?=?)이 아직 내려지지 않았
다. 이 일을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되어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모
두 무당 뒷산에 간이 나무 움막을 짓고 임시 거주지로 삼았다. 하
루 종일 음주(阻僭)를 차려 냈고 고함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또한
어떤 이들은 원수끼리 만나서, 중추절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당장에
맞붙어 싸워서 이미 수십 명이 사상(?轅)하기도 했다. 실로 보기
만하여도 무당제도(??)들의 눈살을 크게 찌푸리게 하는 일이었
다.

무당제도들은 교대로 수비를 하며 예측불허의 일들을 방비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또 보름이 지나 내일이 바로 중추절이었다. 이날
밤 장무기는 갑자기 한 가지 일을 떠올렸다. 냉면인에게는 근 한
달의 시간이었으니 이미 내공을 회복하는데 충분한 시간이었을 것
이다. 그의 지금의 공력으로 정수(秩懿)하고자 하면 물론 하루에
천리를 갈 수 있다. 더구나 그는 벌써 인체의 가장 주요한 현관을
뚫었다. 이번에 와서 만일 일대일로 싸운다면 지신은 아마도 승리
하기 어려울 것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더욱 가망성이 없을 것이었
다.

조민이 그의 얼굴의 근심스러운 빛을 보고 말했다.

"무기 오빠, 뭘 생각하고 있는 거죠?"

장무기가 걱정하는 일을 얘기하자, 조민이 말했다.

"당신이 연마한 것이 '구양진경'이고, 양빙 언니가 연마한 것이
'구음진경'이며 당신들 두 사람이 각자가 연마한 것이 모두 냉면인
보다 월등히 우세하니 내일 당신과 양빙 언니가 제휴하면 결코 패
배하지 않을 거예요."

장무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일의 상황은 아마 오로지 일대일 격투가 될 것이오."

조민이 탄식하며 말했다.

"무기 오빠, 그만 걱정하세요. 모든 일은 응당 하늘이 정하는 것이
니 아무리 조급해 해도 소용없어요."

눈을 들어보니 탁자 위에 흰 천으로 싼 꾸러미 하나가 놓여 있었
다. 바로 전진교 장교인 안덕룡이 그에게 맡겨 수장(?蒸)한 전진
교 전적이었다. 장무기는 한참을 탄식하며 말했다.

"무당, 소림, 아미 제파(?駝)들이 이 싸움을 겪어 내지 못한다면
모두 전진교와 마찬가지로 쇠퇴해 버리겠지."

꾸러미를 들고 와 흰 천을 풀고 단향목 뚜껑을 열어, 서신을 꺼내
읽었다.


'장 대협, 이 몸은 수명이 다하여 갑니다. 고로 이 몸이 정리해놓
은 전진전적을 양빙 여협에게 부탁하려 하니 그녀에게 전해 받도록
해주시오. 잘 보존하여 후세 사람들이 단 한 번이라도 쓸 수 있기
를 간절히 바라오. 전진교는 다년간 영예를 누려 왔고, 그 도가 발
래정심하니 장 대협께서 한가하실 때 보셔도 무방하오. 혹 약간의
깨달음을 가질 수 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소. 삼가 부탁드립니
다. 안덕룡 자(做) 돈수(??).'


장무기가 그것을 읽고 마음이 동하여 목궤 속을 살피자, 제 일 권
면서(?柚)에 '도덕경'이라는 세 글자가 씌어진 것이 보였다.

장무기는 손 가는 대로 집어들고 촛불을 밝혀 읽기 시작하였는데
경문이 박대정심하다고 생각될 뿐이었다. 그는 아는 글자가 많지
않아 그 속의 도리를 이 삼 할 정도만 이해할 뿐이었다.


'천하의 모든 것은 그것이 아름다움을 알고 아름답게 하면 그것은
악이다. 그것이 선함을 알고 선하게 하면 그것은 선함이 아니다.
고로 유무(?午)는 서로 잘 맞고, 난이(蜃?)는 서로 잘 어울리고,
장단(只俄)은 서로 비교하고, 고하(俗台)는 서로 기울고, 음성(釣
猶)은 서로 합치되며, 전후(?避)는 서로 따른다. 그러므로 성인이
처함에 할 일이 없고, 행함에 가르칠 말이 없으매, 만물은 만듦에
마다치 않고, 생겨남에 있지 않으며, 행함에 집착치 않고, 공성(殺
?)에 머물지 않는다. 무릇 머물지 않으니 가지 않는다.'

마음 속에 깨닫는 바가 있는 듯하여 한참을 깊이 생각하였으나 그
요점이 분명치 않았다. 그는 천성이 유순하고 또 탐구하길 원하지
도 않아서 곧 계속하여 읽어 내려갔다.

이때 조민은 이미 책상에 엎드린 채로 잠이 들어 있었다. 장무기
는 그녀에게 장삼을 살짝 덮어 주었다. 다시 앉아서 계속 전적을
일독했다. 차 반 잔을 마실 때쯤, 장무기는 ?도덕경?도 완파했
다. 특별히 자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다시 면서 한 권을 집어들고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다. 이는 바로 장자가 지은 내외 십 오 편 및
잡편 십 일 편이었다.

양생주 '포정해우(?晉?整)'편을 읽을 때, 장무기는 가슴이 두근
거렸다. 마치 느끼어 깨달은 바가 있는 듯했으나, 또한 이유를 알
지 못했다. 자신도 모르게 온몸의 조열을 참기 어려워, 방을 나섰
다. 정원으로 걸어가며 입으로는 몇 구의 경문을 묵고(敖笑)했다.

"처음 신이 소를 가를 때에는, 소의 겉모양만 보였습니다. 삼 년
뒤에는, 소의 완전한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신
은 오직 마음으로 할 뿐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각 기관은 그칠
줄을 알고, 마음은 움직이려 합니다. 천리(?衍)를 따름은......
본래의 모습에 따르는 것입니다......."

이때, 날이 밝아 왔고 장무기는 여전히 중얼중얼 외고 있었다.

"천리를 따름은, 본래의 모습에 따르는 것이다. 천리를 따름은,
본래의 모습에 따르는 것이다......."

몇 시간 후, 하늘은 이미 훤해졌고 태양이 동쪽의 군산(潚雲) 중
에서 솟아올랐다. 조민이 옷을 걸치고 나오며, 장무기가 밤을 꼬박
새고 홀로 정원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외우
고 있는 글귀를 듣자마자, 조민은 그것이 장자의 문장임을 알았다.
그의 얼굴의 엄숙하고 고심하는 듯한 표정으로 보아, 명상에 잠긴
듯했다. 조민은 방해하지 않고 잠시 혼자 생각하다가 빠른 걸음으
로 송원교의 거처로 향했다.
자소궁 삼청전을 지날 때, 무당제협과 소소 등이 모두 모여 오늘
냉면인을 대적할 일을 상의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조민은 곧장 안
으로 들어가 그들을 본 후에 바로 송원교에게 말했다.

"송 사숙, 무기 그 사람이 발새 자지도 않고 입으로 중얼중얼 장
자의 문장을 외고 있어요. 어렴풋이 무공과 어떤 관련이 있는 듯한
데, 충분히 이해되지 않아요. 사숙께서 가셔서 가르침을 주시는 게
어떠시겠어요?"

송원교는 무당칠협의 첫째로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송청서가 불의
의 죽음을 당한 이후에, 장문의 직을 이협인 유연주에게 맡게 하고
그 자신은 칩거하며 좀처럼 나오지 않은 채, 역리와 노장철학을 깊
이 연구했다. 만일 이 방면을 논하자면, 당세에 아마도 그보다 더
나은 이가 없을 것이었다. 조민의 이 요청은 정말로 사람을 잘 선
택한 것이었다.

송원교는 이때 이미 칠순이 넘어서 수염과 눈썹이 모두 하얗게 세
었으며, 표정은 더욱 부드럽고 평화로왔다. 그는 조민의 말을 듣고
'아'하며 유연주에게 말했다.

"무기가 또 무슨 경세신공을 깨달은 듯하니, 늙은이가 가서 보고
먼저 그 기쁨을 맛보겠소. 여기 일은 장문 사제와 여러분들께서 많
은 수고를 해주시기 바라오."

유연주는 송원교를 매우 존경하므로, 이 말을 듣고 일어나며 말했
다.

"사형께서는 안심하고 가십시오. 이쪽의 사사로운 일은 저희들이
기회를 보아 조처하겠습니다."

송원교는 도포를 한 번 털고서, 잠시 후 곧 장무기가 심사숙고하
고 있는 곳으로 갔다. 장무기는 우울해 하다가 즐거워하다가 하더
니, 잠시 후에는 의심할 여지없이 벌써 혼이 나간 지경까지 들어
갔다. 송원교는 미소를 지으며 옆에 서서 유심히 지켜봤다.

장무기는 이때 방금 외운 경문의 요지가 '구양진경'의 총강 '그가
난폭함은 그 자신이 난폭함에서 연유하나, 명월은 대강(暗析)을 비
춘다. 그 자신이 잔인함은 그 자신의 악함에서 오나, 나 자신은 한
숨의 진기로 족하다.'와 시로 동공이곡(?殺?粟:곡은 달라도 교묘
한 솜씨는 똑같다.)의 묘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 둘은 비록 설명한
바는 틀리지만, 그러나 자연에 따른다는 종지는 추호도 틀림이 없
었다.

장무기의 얼굴에는 실망의 기색이 역력했다. 비록 두 경서의 소리
가 동일함을 발견했으나 스스로 진일보하여 깊이 파헤칠 수 없으
니, 역시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었다. 장무기는 홀연히 장자의
'소요유'편 속의 경문 두 귀절을 상기했다.

'천지의 바른 것을 타고, 육기(俎褶)의 분별을 다스림으로써, 무
궁(午栒)에 논다.'

그는 생각했다.

'옛말에 전하길 열자가 바람을 다스려 나아갈 수 있다 했는데, 설
마 정말로 이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장무기는 일어서서, 대자연을 판별하는 기운을 집중하여 자연의
맥률(?捐)을 찾아내어 그것을 잘 다스리고자 기도(?愛)했다. 그
는 송원교와 정면으로 마주쳤으나, 보지 못한 듯했다. 이때 장무기
의 오관은 모두 이미 그 기능을 상실했고, 겨우 감관(??)에 의지
하여 자연에 감응했다.

바로 이때, 장무기는 한 줄이 미풍이 스쳐 옴을 느꼈다. 그는 정
확하게 미풍기류의 유동을 느끼고 신체가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바
람을 따라 올라가서 바람을 다스리며 수장을 떠돌다가 송원교를 보
고는 어안이 벙벙하여 어쩔 줄을 모르더니, 뜻밖에도 '뚝'하고 땅
으로 떨어졌다.

방금은 결코 바람을 다스려 나아간 것이 아니고 경공에 의해 기류
에 붙어서 표류한 것에 불과했다. 내력을 상실했을 때, 미풍이 어
찌 장무기의 이 수십 근이나 되는 신체를 떠받칠 수 있으랴. 자연
히 땅에 떨어질 수밖에. 장무기는 이렇게 떨어지고 나서 미심쩍은
듯, 머리를 긁적거리며 송원교의 안색이 엄숙하게 자신을 똑바로
주시하고 있는 것을 언뜻 보았다.

장무기는 순간 놀라서 급히 일어나며 그를 맞았다. 송원교가 침울
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기야, 너는 이미 잘못 된 길로 들어섰구나. 빨리 너의 생각을
말하거라."

장무기는 놀랍고 두려워서, 어제 생각했던 바를 모두 얘기했다.
송원교가 다 들은 후에 말했다.

"장자와 ?구양진경?의 작자는 모두 학문을 연구한 이들이다. 이
는 바로 소위 영웅들의 소견이 대체로 같다는, 길은 다르지만 이르
는 것은 같다는 명험이다. 이 두 박학지인은 일문일무(?澳?俉)하
니, 네가 그들을 융합하려는 생각은 옳은 것이다. 전하는 말에 의
하면, ?구양진경?을 쓴 사람은 소림사의 득도 고승으로 그 자신
은 결코 무공을 할 줄 모르나, 이 '구양신공' 등의 정심한 내공을
창조해냈다고 한다. 장자, 이 득도 고인(俗?)의 문장 속에서 무학
의 또 다른 경지를 엿볼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네가
방금 바람을 다스려 나아가려 하다가 도리어 방인술사(瘟???)로
떨어진 것은 대도의 길을 위배하는 것이다. 이는 모두 네가 경문을
이해하는 데 잘못이 있는 연유이다. 장자가 말한 '천지의 바른 것'
에서 '바른 것'은 바로 자신의 본성의 기질이다. '육기'는 결코 단
순한 기류가 아니라, 양(暫), 음(遭), 풍(憚), 우(町), 회(?), 명
(曄)을 가리키며, '무궁에 논다'는 사람의 생각이 시간의 무시무종
(午痍午?), 공간의 무변무제(午?午?) 속에서 주유할 수 있음을
말하며, 육체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단장취의(十葺?
琮)하니 어찌 일을 그르치지 않겠느냐?"

장무기는 한없이 부끄러워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송 사숙의 가르치심이 옳습니다. 소질 학식이 미천하오니, 사숙
께서 바로잡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송원교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무기야, 함부로 자신을 낮추지 말거라. 내공으로 말하면 네가 사
숙보다 훨씬 월등하다. 학식을 논하자면 사숙이 너보다 몇십 년을
덧없이 더 살았으니 자연히 많은 것을 이해하겠지......."

그는 장무기가 또 겸양하려는 것을 보고 손을 저어 그를 막으며
다시 말했다.

"네가 방금 말한 바는, 나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장자의 문
장에 숨겨진 대도(暗?)를 무공에 적용한다면 아마도 또 다른 방도
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자. 내가 경문의 원뜻을 설명
할 테니, 네가 그것으로써 무공과 서로 연계한다면 아마 이와 같이
하기에 더욱 빠를 것이다. 오늘 냉면인 냉 시주가 사에 오르면, 싫
든 좋든 한판 또 겨뤄야 한다."

장무기는 이제야 비로소 그 일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네."

이때는 해가 벌써 높이 떠서 막 정오에 가까왔다. 송원교는 더이
상 되풀이하지 않고 말했다.

"노자의 이 문장은 음양이 서로 돕고, 수미(??)가 서로 따르며,
군자는 처세함에 마땅히 언제나 중간에 서며, 어느 한 쪽을 소홀히
하는 바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귀결될 수 있다."

장무기는 정신을 집중하고 조용히 경청했지만, 그것이 무공과 무
슨 연계가 있는지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송원교가 이를 보고 다
시 말했다.

"양생편은 바로 유명한 백정과 양혜왕의 대화이다. 양혜왕은 백정
이 소의 사지를 가를 때 매우 능숙함을 보고, 크게 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정이 칼을 내려놓으며 아뢰었다.

'신이 좋아하는 것은 바로 도(?)이며, 이는 기술보다 더 중요합
니다. 신이 처음 소를 가를 때에는, 눈에 보이는 것은 바로 소의
겉모습뿐이었습니다. 삼 년 후, 저는 이미 온전한 소의 모습은 보
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소의 근골(?誦) 구
조였습니다. 지금은 신의 안중에 어떤 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소를
기를 때, 신은 마음으로 느끼며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눈은 이미
작용을 잃었고, 모두 마음에 의지할 뿐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송원교는 장무기가 깨달은 바가 있는 듯함을 보고
서 곧 말을 멈추었다.

장무기는 잠시 깊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사숙, 소의 신체의 구조는 고정불변하나 사람의 무공의 초수는
오히려 변화무쌍합니다. 만일 백정처럼 이렇게 보이는 바가 없고
단지 마음에 의지하여 대적하려 한다면, 반드시 상대방 무공의 초
수에 익숙해야 하며 혹은 일순간에 바로 완전히 익숙해진 연후에야
비로소 마음에 의지하여 대적할 수 있습니다. 백정에 비하면 한층
더 어렵습니다."

송원교가 말했다.

"확실히 그러하나 초를 겨룰 때, 이러한 요구는 실로 너무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공이 고강하여 상대방의 초식에 동반되는
호흡의 유동상태를 감지하여 제때에 상대방의 초식을 추단해 낼 수
있다면 오히려 반격시에 눈이 필요 없단다."

장무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당시 소질의 의부인 금모사왕은 두 눈이 실명하고도 여전히
바람의 변형을 듣는 방법으로 상대와 겨루었습니다. 단지, 상대방
의 출초가 완만하면 바로 감지하기 힘들었습니다."

송원교가 말했다.

"자연의 만물은 모두 리듬과 법칙이 있어서 순환할 수 있다. 설사
상대방이 출초가 완만해도 틀림없이 기류를 대동한다. 그러나 이것
은 내공보다 한층 도 요구가 높다. 보아하니 이 경문은 초를 겨루
는데 결코 적합하지 않다. 아, 만일 내력을 필사적으로 겨룰 때 사
용한다면 어떻겠느냐?"

말을 마치고 송원교도 깊이 생각에 잠겼다. 장무기는 곧 이해하고
한참을 생각하였으나, 역시 적당치 않다고 느꼈다. 송원교 또한 고
개를 저으며 말했다.

"상대방과 목숨을 걸고 내공을 겨룰 때, 비록 진퇴는 있으나 오히
려 방어를 엄밀히 하여 절대로 상대방의 내력이 자신의 체내로 투
입되게 해서는 안된다. 만일 이렇게 되면 이미 진 것이니, 더 겨뤄
도 소용이 없다."

장무기는 입을 열고 말을 하려다 그만 두었다. 송원교가 잠시 기
다리니, 장무기가 말을 했다.

"사숙, 다시금 경문을 설명해 주십시오."

송원교가 말했다.

"'......소의 천연상의 구조에 따라 칼을 근골의 틈 사이로 찌르
고, 칼을 골절의 구멍으로 이끌며, 소 몸뚱이의 본래 구조를 따라
그 틈에서 칼을 놀리니, 일찌기 근육이 엉긴 곳을 거친 적이 없으
며, 칼로 큰 뼈를 찍는 것은 더욱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능숙한
백정은 일년에 한 자루의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그가 무리하게 베
는 연유입니다. 보통의 백정은 일 개월에 칼 한 자루를 바꾸는데,
그것은 무리하게 찍는 연고입니다. 신의 이 칼은 지금까지 이미 십
구 년이 되었으니, 가른 소의 수가 어찌 수천 두에 그치겠습니까?
그러나 칼날은 오히려 여전히 새로 숫돌에서 갈아낸 것과 같습니
다. 그 원인은 바로 소의 골절은 틈이 있으나, 칼날은 도리어 지극
히 얇아서 거의 두께가 없는 것입니다. 거의 두께가 없는 칼날로
골절의 틈에 넣으니, 반드시 칼을 놀리는 데 여유가 있습니
다.......'"
"사숙!"

장무기가 이상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송원교는 장무기의 표정이
극도로 흥분하여 긴장한 채, 무엇인가를 사색하고 있는 것을 보고
슬며시 웃고는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 이렇게 몇 시간이 지나도록
장무기는 줄곧 기뻐하다가 의아해 하다가 하며 긴장하여 무엇인가
를 생각하고 있었으나, 송원교의 심정은 오히려 갈수록 조급해졌
다. 장무기는 마침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바로 이때에 드디어 환히
뚫리는 경지를 만났다. 오래지 않아 해는 점점 서산으로 기울고,
무당산 뒷산의 정황이 어떠한지 알 수 없는 순간, 장무기는 돌연
한껏 소리를 내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사숙! 됐어요, 됐어요!"
제 11장 : 사라져 가는 영웅들
송원교는 다소 한시름 놓으며, 장무기가 이처럼 미친 듯이 기뻐하
며 희색이 만면하여 자신도 모르게 빙그레 웃는 것을 보고 말했다.

"무기야, 어떤 경세신공(?(?=?)由佚殺)을 깨달았는지 사숙에게
먼저 들려주어 즐겁게 해주면 어떻겠니?"

장무기는 멋쩍은(?=멋적은) 기색으로, 공손하게 말했다.

"소질이 결코 무슨 경세신공을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숙
의 가르침 중에서, 냉면인에게 대적할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다만,
성공할지 알 수 없으니 또한 사숙께서 바로잡아 주십시오."

송원교가 기뻐하며 말했다.

"네가 말해도 무방하다면 어디 들어보자꾸나."

장무기가 말했다.

"냉면인의 내공은 구양과 구음신공이니, 만일 일체로 융합하여 연
마한다면 아마도 타파할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는 지금 겨우 두 개의 임독기혈과 수태음 및 태양이경이 뚫렸을
뿐입니다. 설사 냉면인이 이 한 달 내에 다시 몇 개의 경맥을 뚫는
다 해도, 그날 엄중한 내상을 당해서 절계(贄稅)가 제맥(??) 현
관을 모두 뚫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수궐음심포경과 족궐음간
경은 최후의 양경입니다. 소질은 그와 대장을 하게 될 때, 내력을
한가닥으로 응집하여 손바닥의 노관혈에서 틈을 찾아 냉면인의 체
내로 투입할 것입니다. 인체의 경맥은 수미가 상접하여, 일경에 투
입하기만 하면 소질이 즉시 음양 양기가 융합하지 못하는 곳의 경
계를 찾아 건곤대나이심법을 운용하여 냉면인 체내의 구양진기를
격동시킨 연후에 그것을 끌어내어 그 자신 체내의 구음진기를 공격
하게 할 것입니다. 냉면인의 공력이 고강하다 하나 단지 구양진기
로만 말하자면 오히려 소질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 방법은
틀림없이 충분히 유용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냉면인 체내의
구음과 구양, 두 종의 진기가 백중하여 반드시 서로 상대됩니다.
설사 냉면인의 내공을 못 쓰게 할 수는 없더라도 그의 몸에 중상을
입힐 수는 있을 것입니다."

송원교는 한참을 심사숙고하더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냉면인의 구양신공은 물론 너에게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네가
어떻게 그의 구음진기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겠느냐?"
장무기는 순간 멍하더니, 다시 깊이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이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소질은 부득불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습니다!"

송원교는 얼굴에 책망의 빛을 띄웠다.

"지금 정파무림 중에 너의 내공수양이 최고인데 어찌 이렇게 경솔
하게 일을 할 수 있느냐. 네가 만일 대적하지 않는다면 냉면인이
성공을 위해 크게 도모하지 않겠느냐? 참으로 어리석구나!"

송원교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 송청서가 죽자 평소에 훈도가 부
족하여 그런 비극을 야기한 것이라 여기며 깊이 후회했다. 장취산
부부가 자결한 이후, 무당제협은 모두 장무기를 자기의 친자식으로
여기며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지금 송원교는 장무기가 일을 하
는 데 있어서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심하게 꾸짖는 것이었다.

장무기는 놀라고 두려워서 공손히 말했다.
"사숙의 가르치심이 옳습니다. 이제 소질이 잘못을 아오니 사숙께
서 더 화를 내지 마시길 바랍니다."

장무기는 송청서의 일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알고 있었으며 지금
비록 꾸지람을 받으나 송원교가 자신을 친자식처럼 대하고 있는 것
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마음 속으로 대단히 감동했다. 그러니
만큼 그 말투도 매우 공손했고 감히 원망스러운 마음이 있을 수 없
었다.

송원교는 장무기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자신이 좀 심했음을 느끼
며 장탄식을 하고 말했다.

"다시 여러 모로 고려해 보자꾸나. 반드시 좋은 계책이 없는 것은
아닐 게다."

장무기도 '네'하고 대답하고 곧 자리에 앉아, 골똘히 생각했다.
송원교는 하늘을 보았다. 해는 이미 서쪽으로 저물고 있었다. 뒷산
의 상황이 어떠한지 아직 알 수 없었다. 방향을 돌려 다시 생각해
보았다. 만일 필승의 자신이 없다면 가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더군
다나 냉면인이 자신과 장무기 두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아마 주저
하게 되고 의심스러워 결정 못함이 불가피할 것이었다. 설사 그가
오늘 대승하고 간다 하여도 장무기가 능히 그를 제압할 수 있기만
한다면 어찌 큰 힘을 들여 위험한 국면을 만회할 수 없다고 걱정하
겠는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심중의 잡념을 내버리고 대책을
고심했다. 그의 무당내공심법의 제 일 과는 바로 입정(??)이었
다. 송원교는 정의(?琮)가 생겨나서 즉시 냉면인에 대한 일을 머
리 속에서 지워 버리고 평생 배운 바를 동원하여 자세히 연구하기
시작했다.

일노일소(???遊)가 이렇게 정좌하길 대여섯 시간이었다. 그 사
이에 조민은 걱정스런 모습으로 세 차례나 왔었으나, 그 긴장된 상
황을 보고는 차마 방해하지 못하고 번번이(?=번번히) 그냥 물러갔
다.

송원교가 장무기에게로 간 후, 유연주가 곧 말했다.

"사형제, 친구 및 무당파 모든 제자 여러분, 오늘을 벼른 친구 혹
은 적수들이 반드시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선은 여러분들
께서 먼저 참고 양보하시어 냉면인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나서
다시 겨룹시다. 호령이 없는 한, 무당문하의 제자들은 잠시 뒷산에
가지 마십시오. 또한 오늘 산에 오른 이들 중에는 반드시 우리들의
친구들도 있을 테니 예의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이 일은 은육제가
책임지기 바라오."

은리정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소제 삼가 장문 사형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몸을 굽혀 인사하고 물러났다.
유연주가 또 말했다.
"장송계 사제께서는 사질 셋을 영솔하여 뒷산으로 가셔서 그곳의
동정을 관찰하시고 무슨 상황 변화가 있으면 수시로 사람을 보내어
보고해 주시기 바라오!"

장송계는 중당으로 들어가서 말했다.
"삼가 장문 사형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몸을 굽혀 인사하며 삼청전을 물러나서, 이미 기다리
고 있던 세 명의 무당제자들과 함께 뒷산으로 갔다.

유연주가 다시 말했다.
"오늘 대적(暗?)이 산에 오르니 모든 일에 철저히 방비해야 합니
다. 조민 여협, 소소 여협, 상승왕 대협, 유대암 삼제께서는 십 명
의 제자를 대동하시고 무당도관을 순시하시고 또한 은도와 녹민,
두 아이를 잘 보호해 주시기 바라오. 이 모든 것을 조민 여협께서
주지(嵯?)하시고 나머지 분들은 모두 지시대로 따르시오."

이 말을 들은 조민이 어찌 감당하겠냐며 막 사양하려 하자 유연주
가 웃으며 말했다.

"질부께서는 응당 그만한 기량이 있으니, 오늘 이 사숙의 짐을 덜
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잠시 후에 소림방장이 도착하면 빈도는 그
와 충분히 상의해야 하오. 그럼, 여러분께서는 이렇게 아시면 되겠
습니다!"

소소, 상승왕, 유대암은 모두 명령을 받았다. 이렇게 되자 조민도
더이상 사양하지 못하고 명령에 응했다.

유연주가 말했다.
"시간이 다 되어 가니 질부는 분부하십시오!"
조민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
"분부라는 말씀은 정말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유대암 삼숙께서는
세 명의 무당제자를 거느리고 중앙에서 진수(?艤)하시며 은도와
녹민, 두 아이를 보호해 주십시오. 소소와 상승왕은 세 명의 제자
를 거느리고 무당도관을 순시하십시오. 저의 무공이 형편없으니 네
분 무당 고도(俗扼)께서는 서로 호위하며 순시하시기 바랍니다. 이
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유연주가 말했다.
"그 정도면 매우 훌륭하니 모두들 각각 분담하여 시행하시오. 빈
도는 여기서 차나 마시며 오히려 여러분을 번거롭게 하렵니다."

모두들 평소엔 더할 나위 없이 엄격한 유연주가 오늘 이렇게 명랑
한 것을 보고서 각자의 마음에 드리워졌던 검은 구름이 금세(?=금
새) 환히 걷히는 듯했다. 또 그들이 제각기 명령을 따랐음은 물론
말할 필요도 없었다.

도동이 차를 날라 와서 유연주가 막 받고나자 한 제자가 와서 말
했다.

"장문 사숙께 아룁니다. 명교 양 교주 및 각 두령들이 도착했습니
다!"

유연주가 황급히 맞으러 나갔으나 이미 교주 양소, 우광사 범요,
자삼용왕 대기사, 청익복왕 위일소, 철관도인 장중, 포대화상 설부
득, 팽영옥 팽화상, 주전, 냉겸 등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모두
들 대면한 후에 양소가 말했다.

"명교인은 교중(?窓)이 많으니 여기에서 있으면 방해가 되어 좋
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합시다. 두 분 호법왕과 오산인은 오행
기를 이끌고 먼저 뒷산으로 가서 진지를 구축하고 주둔하시어 무당
의 청정한 땅이 오염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다들 명을 받들어 떠나고 유연주는 양소와 범요를 삼청전으로 인
도해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그들이 채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소림
사 공문방장이 승려들을 거느리고 왔다는 보고를 들었다. 유연주는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양소와 범요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두 분께서는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두 사람 모두 말했다.
"유 도장, 너무 신경쓰실 필요 없습니다!"
유연주가 마중을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방장 공문대사, 공지
신승 등을 인도하며 삼청전을 들어섰고 나머지 소림사 제자들은 모
두 달마당(阿?眼) 구로승(??弛)이 영솔하여 먼저 뒷산으로 가서
기다렸다.

모두들 대면한 후, 자리에 앉았다. 유연주가 말했다.
"여러분들께서 마침 잘 오셨습니다. 빈도는 지금 속수무책이오나,
여러분의 도움이 있다면 무당은 아마 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입
니다."

다들 겸손의 말을 하자, 양소가 말했다.
"유 도장, 본교 장 교주께서 지금 귀산(崧雲)에 계시는지 모르겠
군요?"
유연주는 곧 네 사람에게 장무기 부부가 도중에 냉면인에게 바짝
쫓기다가 어떠한 계책을 써서 냉면인을 내상케 했으며, 또 지금 송
원교와 관중에서 무공을 자세히 연구하고 있는 사실을 하나하나 명
백히 설명했다.

공문대사가 불호(尤泡)를 외며 말했다.
"이번에 냉면인이 연무대를 무당산에 설치했는데, 유 도장은 틀림
없이 이미 대응책을 가지고 계시겠지요?"

유연주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빈도가 무능하여 마침내 냉 시주를 이곳까지 오게 했으나 그에
대응할 방도가 없으니 무당파의 청예(?荻)가 빈도의 수중에서 무
너지는 셈이 되었습니다."

공문방장이 말하였다.
"유 도장께서는 어찌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냉면인은 무림의 각대
문파를 통째로 삼키려 하고 있습니다. 냉 시주에게 도대체 어떤 재
주가 있기에 그토록 천하영웅들도 안중에 없는지 오늘 정말로 한번
봅시다."

유연주가 말했다.
"양 교주 휘하에 영웅이 많아서 근래 명교의 명성이 천하를 뒤흔
드니, 오늘의 일은 또한 양 교주께서 총괄적으로 지도하시어 냉 시
주와 상대하심이 참으로 좋겠습니다."

양소가 급히 말했다.
"명교가 근래 비록 약간 성세는 있었으나 모두 장 교주의 힘에 의
지한 것이니, 제가 어찌 감히 탐천지공(仄?柵殺: 남의 공적을 훔
쳐 자기의 공적으로 삼다)하겠습니까? 유 도장과 공문대사께서 자
리에 계시는데 제가 어찌 견마지로(??柵?)를 다하지 않겠습니까
마는 지도하는 일은 만부당합니다."

유연주가 막 무슨 말을 하려는데 공문대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노승의 견해로는 오늘의 약속은 비록 무당파가 정한 것은 아니지
만 장소가 무당산인 이상 유 도장께서 반은 주인이라 할 수 있으니
그 전반적인 지도에 관한 일은 수고스럽겠지만 유 도장께서 하셔야
겠습니다. 어쨌든 무슨 이득이 있는 일이 아니니, 유 도장께서는
겸양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림사 상하는 모두 오직 힘을 다할 것입
니다."

양소도 또한 말했다.
"공문대사의 말씀이 일리가 있습니다. 명교는 유 도장의 명을 따
르겠습니다."

유연주는 매우 난처하여 몇 번 사양을 하였으나 어찌 이구동성으
로 권해 오는 것을 견딜 수 있으랴. 그는 하는 수 없이 말했다.

"여러분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빈도는 더이상 사양하지 않
겠습니다. 그러나 필히 설명드릴 일이 있습니다. 무당산의 여러 도
사들은 아직 그리 좋은 방책을 찾지 못했고 다만 먼저 목숨을 걸고
필사적으로 나설 뿐입니다. 다행히 여러분께서 왕림해 주셨으니 아
마도 겨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께 무슨 고견이 있으
시다면, 직언(?欌)해 주시기 바랍니다. 빈도는 그저 말씀에 따를
뿐입니다. 지나치게 사양하시어 오히려 대사를 그르치는 일이 없도
록 해 주십시오."

그러나 즉시 양소가 말했다.
"본교는 금일, 오행기와 천지풍뢰(??憚?) 사문을 모두 대동하
고 무당산에 올라와서 그 수가 약 삼천 명 정도이며, 무공이 쓸 만
한 형제 또한 십 수명 됩니다. 만약에 일대일로 겨룬다면, 무당과
소림 각파의 고수들이 있으니 틀림없이 문제가 크지 않을 것이고,
또 냉면인이 집단으로 싸우려 한다면, 오행기와 천지풍뢰 사문이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면, 예상컨대
전군이 전멸하는 결과는 초래하지 않을 것입니다."

유연주가 이를 듣고 기뻐하며 말했다.
"명교가 여기 계신데, 빈도가 부질없이 너무 걱정을 한 듯합니
다."

그때 공문대사가 말했다.

"그러나 만일 일대일로 싸운다면 장 교주도 냉면인을 대적하기 힘
드니 그 나머지 사람들은 아마도 도움이 안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모두들 입을 다물고 묵묵히 있었다. 바로 이때, 무
당제자 하나가 와서 보고를 했다.

냉면인이 이미 약 사천 명을 이끌고 뒷산으로 올라갔으며, 또한
무당파에게 빨리 명령에 따르도록 재촉했다는 것이었다. 모두들 서
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냉면인은 매우 대단해
서 명교가 여기에 올 것을 일찌감치 예상했기 때문에 털끝만큼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는 이미 정오에 가까워져서 모두들 한참 소식(潤燐: 고기 반찬
이 없는 밥)을 하고 있는데 아미파가 벌써 뒷산으로 갔고 패금의
장문인이 유 도장의 안부를 묻고는 뒷산에서 보자고 하며 관중에
와서 방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유연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아미파가 무당의 관중에 들어
서길 원치 않는 것은 결국 장무기와의 관계 때문임을 잘 알고 있었
다. 서둘러 소찬을 끝내고 일행은 뒷산으로 갔고, 조민 등은 여전
히 무당의 도관에 남아 수비하며 뜻밖의 사고에 방비하기로 했다.


차 반 잔을 마실 시간에 일행은 뒷산에 이르렀다. 넓은 땅 위에
보이는 것은 단지 떼를 지어 움직이는 인파뿐으로, 못 되어도 일만
명은 될 듯했다. 그러나 그 중앙에 사방 열 장 정도의 넓은 장소가
비어 있었다. 아마도 무예를 겨룰 장소로서 남겨놓은 듯했다. 동수
(??)의 주인의 자리는 냉면인이 그의 무리를 거느린 채 차지하고
있었고 중간에 목조막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 무
림 황제의 행궁(?循)인 듯했다.

기타 제파는 모두 서수(??)에 주둔해 있었다. 중간은 바로 명교
의 삼천 교중이며, 좌측은 무당파, 우측은 소림사 제자, 다시 삼
장을 지나서는 바로 검은 옷을 입은 아미파 일백여 명의 여도사들
이었다.

유연주, 공문대사, 양소 등은 각자 자신들의 무리 속으로 들어갔
다.

장송계가 유연주에게 말했다.

"장문 사형, 냉면인의 성세가 비록 크다 하나 제가 보기엔 이끌고
온 무리 중에 무공이 있는 자는 많아야 이백 명을 넘지 않으며 그
밖에는 모두 무공을 할 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틀림없이 냉면인이
무슨 진법(?擾) 종류의 것을 준비했을 것이니 방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연주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매 과연 그러한지라 곧 머리를 끄덕
였다. 사방을 보니 남북방에 각각 드문드문 천여 명이 앉아 있는
데, 생각컨대 그들은 강호상에서 행사께나 하는 호한들로 어떤 문
파에도 속하지 않은 이들인 것 같았다.

바로 이때, 산길에 약간의 사람들이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
이 오니 그들은 바로 무산방, 해사파, 신권문, 삼강방, 오동도 등
삼산오악(寃雲迹?)의 소방회(蹂玉?)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냉면인의 막 앞에 가서 도착을 보고한 연후에 순서에
따라 냉면인 앞에 섰는데, 그 모습으로 보아 확실히 이미 냉면인에
게 굴복당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유연주 등은 결코 개의치 않고 조용히 지켜보며 변화를 기
다렸다.

이어서 곧 화산파 백여 명이 도착을 했다. 유연주가 그들을 맞으
려 할 때, 뜻밖에도 화산파는 일고일저(?俗??) 두 사람의 지휘
아래, 냉면인의 목조막 앞으로 가서 고개 숙여 절한 후에 한쪽으로
물러섰다. 잇달아 곤륜파 백여 명, 공룡파 근 백여 명에 가까운 이
들이 모두 이렇게 냉면인의 목조막 양측으로 늘어섰다.

유연주가 크게 기이해 하자, 장송계가 낮게 말하였다.

"장문 사형, 제가 보기에 개방, 화산, 곤륜파 사람들의 얼굴이 침
울한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냉면인의 협박을 받는 것이니 꼭 우리
들과 맞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연주는 냉면인 수하가 이미 오천 명에 달한 것을 보고는 이 말
을 듣고도 여전히 찌푸려진 미간을 펴지 못한 채 장송계에게 말했
다.

"제자를 보내 조민 등을 모두 오도록 하고 관중에는 십 수명의 제
자만 남기면 되겠소. 그밖에 은폐할 곳을 찾아서 은도와 녹민을 가
두어 그들이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시오."

장송계가 명령을 전하자 제자 한 명이 관중을 향해 갔다. 잠시
후, 조민, 소소, 상승왕, 유대암, 은리정 및 수십 명의 무당제자들
이 도착해서 냉면인의 이런 성세를 보고는 모두 크게 놀랐다.

양소는 이 광경을 보고 청익복왕 위일소를 불러서 그에게 성호령
하나를 건네주며 즉시 가까운 곳에 거서 명군을 소집하여 구원하러
오도록 했다. 위일소는 영을 받고서 한 줄기 연기처럼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다시 한 시간을 기다려도 냉면인에게서 어떤 동정도 없는 듯하자
모두들 점점 떠들썩해졌다.

"우리는 여기에 결코 햇볕이나 쬐려고 온 것이 아니다!"
"냉 영주, 도대체 무슨 일을 하려 하는지 빨리 방법을 정하셔야
모두의 심중에도 자신이 생기겠소이다."

갑자기 새 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남해상어, 당신은 그리도 간절히 일찍 죽기를 바라는가?"

낭해상어로 불리워진 사람이 말했다.

"북왜귀(북왜귀: 왜귀는 난쟁이, 땅딸보를 말함), 너는 여기서 바
싹 구워지고 싶으냐?"

두 사람이 입씨름이 계속되고 있을 때, 냉면인 축에서 한 사람이
걸어나오더니 광장을 가로질러 무당파 앞까지 와서 말했다.

"소생 유 장문인께 아룁니다. 영주께서는 송원교 송 대협과 장무
기 장 교주께서 나오셔서 담화하길 청합니다."

유연주가 막 답하려 하자, 장송계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당신은 가서 냉면인에게 전하시오. 송 대협과 장 교주는 지금 중
요한 일이 있으니, 당연히 볼 때가 되면 보게 될 것이라고 말이
오."

그 사람은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돌아갔다. 장송계가 말했다.

"장문 사형, 소제가 무례하였......."

유연주가 말했다.

"이 계책은 매우 기발하오. 냉면인으로 하여금 마음 속에 꺼리는
바가 있게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지금 대적이 눈앞에 있으니,
이러한 허례는 그만 둡시다!"

장송계가 말했다.

"네!"

두 사람의 생각은 약속이나 한 듯 송원교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이
었다. 틀림없이 이 계책은 냉면인에게 커다란 압력을 줄 것이다.

광장에서 떠들어대던 여러 사람들은 냉면인의 사자가 갔다가 되돌
아오는 것을 보고 무슨 말들이 오갔는지 몰랐지만 시끄럽던 소리가
이내 조용해졌다. 사자가 목조막 앞에 이르러 말을 전했다. 오래지
않아 냉면인 좌하에서 또 한 사람이 걸어나왔다. 그는 나이가 칠순
을 지난 듯했으며 얼굴엔 온통 포악한 기색이 가득하고 홍발이 어
깨와 등까지 길게 늘어져 있어 그 외모부터 이미 사람들을 공포스
럽게 했다. 무당제협들 모두 이 사람을 알고 있었으니, 그가 바로
홍발노인 주오정으로 무당파의 냉령은 바로 그가 보낸 것이었다.

은리정은 홍발노인과 겨뤄본 적이 있기에 곧 낮게 말하였다.
"장문 사형, 이 홍발노인의 내공은 평범치 않아서 소제 또한 그와
가까스로 비길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유연주는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홍발노
인은 벌써 장중으로 나와서 사방을 빙빙 돌며 읍을 하고 말했다.

"가문, 각파, 각방회 및 강호호한 여러분, 저는 냉 영주의 명을
받들어 당신들께 귀순토록 명합니다. 만일 어기는 자가 있다면 가
차없이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군중들이 일시에 시끌거리고 어떤이가 말했다.
"냉면인은 무슨 허풍을 떠는 거냐. 이렇게 많은 영웅호한들이 정
말로 다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또 냉 영주에게 귀순하면 무슨 이점
이 있는가?"

홍발노인이 말했다.
"영주께서 강호를 통일하면 당파에 얽매인 편견을 없애고 천하의
무학을 발양광대(烏資?暗)할 것이니 여러분은 당연히 수익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수천 명이 떠들어대는 소리 속에서도 홍발노인의 음성은 분명하게
각자의 귀에 전해졌다. 그의 이러한 무공수양은 실로 사람들을 경
복케 했다.

즉시 어떤 이가 말했다.

"만약 불복한다면 어떤 격투방법을 쓸 생각 인가요?"

홍발노인이 말했다.

"광장 중에 여러 영웅분들이 어찌 수천, 수만에 그치겠소. 만일
사람들마다 모두 겨루고자 한다면 도대체 언제까지 싸워야 끝이 나
겠습니까? 소생의 견해로는 각파마다 두 사람씩 내보내어 만약 지
게 되면 당장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주전이 크게 웃었다.

"아유, 구린내! 구린내 난다!"

수천 명이 '와'하고 크게 웃자, 홍발노인이 삼엄하게 말했다.

"다른 고견이 있으시면 한번 들어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주전이 말했다.

"당신 말은 인파에서 겨우 두 사람을 내보내어 만일 진다면 나머
지는 곧 응당 냉면인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것 아니오?"

홍발노인이 말했다.

"맞소이다."

주전이 말했다.

"만일 나머지 사람들이 불복한다면?"

홍발노인이 냉소하며 말했다.

"누구라도 감히 불복하는 자가 있다면, 때려죽이면 그만이오!"

주전이 말하였다.

"알겠소. 그런데 조만 간에 모두 죽일 거라면 어찌 오늘 한꺼번에
다 죽이지 않소이까? 아꼈다가 나중에 다시 죽이려는 것은 오히려
번거로울 것이오."

일시에 수천 명이 '잘한다'하고 떠들썩하게 외쳤다. 모두 주전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 만약 명령을 듣지 않아 죽임을 당한다
면, 이는 이미 무슨 무예를 겨루는 것이 아니라 바로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주전은 평소에는 말하는 것에 본래 조리와 순서가 없었
으나, 오늘의 말은 확실히 한마디로 급소를 찌른 것이었다.

홍발노인의 말이 들려 왔다.

"이분은 틀림없이 바로 그 명성이 자자하신 주전 선생이군요?"

주전이 말했다.

"이 몸이 바로 그 자자한 명성을 가진 주전이오."

군웅들은 그가 조금도 겸손하지 않게 홍발노인을 조롱하는 것을
보고 모두 '하하' 웃었다. 홍발노인이 말했다.

"당신은 자신의 목숨을 유지할 수 있을지 스스로 생각해 보셨소?"

주전이 대답도 하기 전에 포대화상 설부득이 일찌감치 장중으로
걸어나가며 말했다.

"늙은이, 당신도 꼭 살아남을 수 있다곤 할 수 없지. 나오시오.
우리 둘이 먼저 이 늙은 목숨을 걸어 봅시다."

홍발노인이 말했다.

"이 참을성 없는 친구분이 틀림없이 포대화상 설부득이시겠군?"

설부득은 한편으로는 군중 속으로 물러나면서 말하였다.

"헤헤, 이 늙은이가 그래도 강호의 경험을 가지긴 했는지 정말 의
심스럽군."

홍발노인은 수십 년 동안 이름을 날렸고 왕년에는 그 위엄이 무림
을 떠들썩하게 했으며 강호에 피비린내가 진동케 해서, 그의 이름
을 듣기만 해도 얼굴색이 변할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설부득이 뜻
밖에도 이렇게 심한 말로 희롱하자, 군웅들이 모두 즐거워하며 갈
수록 크게 웃어댔다.

그러나 홍발노인 또한 감정을 정말로 잘 억누를 줄 알아서 침착한
태도로 말하였다.

"그러면 여러 영웅들께서는 모두 주전과 설부득의 의견에 동의하
여 모두가 겨루지 않으면 통쾌하지 못하다는 거지요?"

수천 명이 대답했다.

"맞습니다!"

홍발노인이 다시 말했다.

"이러한 이상, 영웅호한들의 뜻에 따르겠소. 그러나 반드시 몇 가
지 규정을 정해야 하오. 첫째, 이는 무예를 겨루는 것이 아니니,
각자 천명(?鹽)에 맡기고 사상(?轅)으로써 승패를 정함이 어떻
소?"

수천 명이 일제히 대답했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 수천 명의 왁자지껄한 소리 속에서 모두들 한마디 불호(尤泡)
를 들었다.

"아미타불!"

아마도 틀림없이 공문방장이 염불을 한 듯했다.

홍발노인이 말했다.

"공문방장께서는 득도한 고승이시니 만일 살상계를 벌이길 원하지
않으시면, 영주의 휘하로 뛰어들기만 하십시오. 그러면 이 혈광(?
?)의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문방장이 말했다.

"아미타불! 노승이 덧없이 수십 년을 살았으나, 냉 시주처럼 이렇
게 살기 등등한 사람은 듣고 본 적이 없소이다. 소림사는 천 년을
유전(役?: 세상에 널리 퍼지다)했으니, 노승이 어찌 감히 이를 저
버리고 천고의 죄인이 되겠소이까! 비록 우리 불교는 자비롭지만
오늘 제자는 부득불 살생계를 벌여 이살지살(?垣?垣: 살생으로써
살생을 멈추게 한다)할 수밖에 없소이다. 아미타불!"

홍발노인이 말했다.

"제 이 조는 매 개인마다 두 사람에게 연승하면 곧 퇴장하여 잠시
휴식을 하는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이 수만 명의 차륜전(陟戀?)
은 설사 당신들의 무학이 신통하다 해도 아마 막아낼 수 없을 것이
오. 영웅 여러분, 이 조목은 따를 만합니까?"

수천 명이 모두 큰소리로 응답했다. 많은 이들이 오늘의 일은 냉
면인이 결심을 단단히 하고 천하영웅들을 멸살하려고 하는 것임을
모두 알고 있었다. 일부의 영웅호걸들의 의분이 가슴에 가득 차서
전혀 생명을 개의치 않았기 때문에 대답 소리가 마침내 일파, 일파
점점 높아지며 지극히 크고 낭랑하게 오래오래 무당산 기슭에 메아
리쳤다.

홍발노인이 다시 말했다.

"제 삼 조, 일대일 격투만 허용하며 포위공격은 불허합니다. 그렇
지 않으면 틀림없이 집단 살생하게 되어 서로 용서하지 않게 될 것
입니다."

많은 이들이 동의했다. 갑자기 홍발노인이 손을 흔들자, 냉면인의
목조막 뒤에서 사십 명의 흑의를 입은 대한(暗洞)들이 달려나와 한
쪽에 앉아 활시위를 얹고서 장중으로 겨누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
만 그 의도가 너무도 분명했다.

만일 누구라도 이 규정을 위반하면 즉각 사살하겠다는 뜻이었다.
갑자기 주전의 소리가 들렸다.

"영웅 여러분, 들으셨죠? 주전에게 한 가지 요구가 있습니다. 이
집법(?擾)인들은 모두 냉면인 수하라, 저 주전은 정말로 조금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명교도 사심 명을 내보내 이 광장을 포
위하여 만일 냉면인이 독수(??, ?=??)를 쓰고자 하면 우리도
방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말씀하십시오. 맞습니까, 틀
립니까?"

물론 또한 응답이 있었다. 양소가 손을 흔드니 그의 뒤쪽에서 사
십 명의 백포를 입은 예금기(赤??) 교중이 달려나와서 냉면인 수
하들 사이에 각각 나누어 끼어 섰으며, 또한 활시위를 얹어 장중으
로 겨누었다. 이렇게 해서 모두 합하여 팔십 명이 일흑일백(?閒?
汪)으로 끼어 있어서 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설부득이 다시 말했다.

"홍발노인, 방귀 뀌는 소리 다 했는가? 이 늙은이가 정말로 죽고
싶으니 당신이 도와주는 게 어떠한가?"

홍발노인이 말했다.

"이 몸은 영주의 호령을 받아야 하지만, 당신이 목숨을 보존하고
있기만 하면 이 몸이 당신을 실망하지 않도록 해줄 것이오. 영웅
여러분, 영주의 수하에는 아직 몇 명의 쌍검합벽 등의 초식을 연마
한 이가 있으며, 출장할 때 당연히 두 사람이 함께 나올 것입니다.
여러분도 도와줄 사람을 청해 같이 나오는 것은 무방하지만 여전히
일대일입니다. 이 조항에도 어떤 이의가 없겠지요?"

홍발노인은 많은 이들이 대답하는 것을 보고 퇴장하여 목조막 옆
에 서 있었다.

잠시 후, 곤륜파 장문인인 첨춘과 그의 남편인 소습지가 광장으로
들어와 빙빙 돌며 읍을 하고는 첨춘이 말하였다.

"저는 곤륜파 장문 첨춘이오며, 부군과 함께 일련의 양의검법을
연마했습니다. 어느 두 분, 영웅께서 나오셔서 일 초를 베풀어 주
실지 궁금하군요?"

말이 막 떨어지자마자, 장중에는 벌써 공중을 가르며 두 명이 날
아 내렸다. 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소생은 축공이라고 부르며, 이 사람은 소생의 동생으로 우휘라
부릅니다. 강호의 친구들이 소생의 두 형제를 좌우쌍검이라 칭하지
요. 가름 침을 받고자 나왔으니 칼끝에 사정을 봐주시기 바랍니
다!"

말을 마치고 '창'하는 소리를 내며 두 형제가 검을 뽑아 들었다.
공축은 외손에 검을 잡고 우휘는 오른손에 검을 들고 두 사람이 장
검을 가슴 높이로 한 채 정신을 집중하고 시작을 기다렸다.

첨춘 부부 역시 칼을 뽑아 들고, 양검은 하늘을 음검은 땅을 각각
가리켰다. 과연 바로 쌍검합벽이었다. 첨춘의 나이는 약 삼십으로
용모가 꽤 아름다웠으나, 소습지는 오히려 극히 평범한 외모였다.

고함 소리에 좌우쌍검은 이미 공격을 시작했고 첨춘 부부 역시 양
의검법을 전개하여 쌍방이 곧 엉켜서 싸우기 시작했다.

유연주들은 일찌기 곤륜파 전임 장문인인 하태충 부부가 이 검술
을 펼치는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이 양의검법은 하락팔괘도 중에
서 변화해 왔으며 옛날 장무기가 이 검술 하에서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던 것으로 그 대단함을 알 수 있다. 유연주는 단지 수초만을
보고는 곧 고개를 저어 댔다. 첨춘 부부의 검술 초식은 비록 양의
검법이긴 하였으나, 그 신운(佚?)은 하태충 부부에 비하여 훨씬
뒤떨어졌다. 얼핏보니 좌우쌍검의 출초는 매우 재빠르고 번뜩번뜩
민첩하여 비록 고수라고 할 수는 없더라도 첨춘 부부에 비하면 오
히려 훨씬 고명했다.

유연주는 첨춘 부부가 지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삼 초가 지나자 첨춘이 오른팔에 검을 맞았다. 이
것을 본 소습지는 급한 마음에 실수를 하여 '윙, 윙' 두 번 가볍게
소리를 내더니 역시 좌우 양견(自?)에 검을 맞고는 장검을 떨어뜨
려 패배를 표시하고 부득불 물러났다.

이어서 냉면인 휘하의 화산이로가 출전했다. 이 두 사람 중 사형
(??)은 키가 작고 사제(??)는 큰데 둘은 모두 대도(暗埃)를 사
용했다. 둘은 장중으로 걸어가더니 그 중 키 큰 사람이 말했다.

"우리 둘은 화산이로요. 당신 둘이 진 것을 인정한다면 빨리 물러
나시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그의 사형이 갑자기 소리쳤다.

"잔소리 그만 두거라."

사제가 말했다.

"잔소리를 그만 두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죠. 저는 그저 그 둘이
곤륜파에게 사정을 봐줘서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고 생각할 뿐입니
다."

공축이 냉랭하게 말했다.

"귀하께서는 터무니없는 말씀을 하시지만, 우리도 그리 만만치는
않을 것이오."

사제가 또 말했다.

"당신들은 이 반양의도법의......"

그의 사형이 화를 냈다.

"잔소리 그만하고 싸워 봐라!"

사제는 '네'하고 대답하며 재빨리 일소를 찍어 나갔다. 그런데 그
방위가 지극히 괴이하여 좌우쌍검은 부득불 후퇴했다. 화산이로는
일 도, 일 도 점점 빨라져 그 내력이 모두 평범한 도법과 상반되었
다. 좌우쌍검은 크게 놀라 급히 뒤쪽으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어떻
게 몸을 뺏는지 화산이로는 일찌감치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쨍
그렁'하고 두 번 소리가 나더니 공축의 왼팔, 우휘의 오른팔이 모
두 나란히 잘려 나갔다.

상처에서 선혈이 용솟음치자 둘은 얼굴빛이 창백해지며 서로 혈도
를 눌러 혈류를 막고는 몸을 돌려 퇴장하여 산 아래로 내려갔다.
두 사람은 지극히 굳세어서 그토록 통증이 극심해도 결국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후로는 강호상에 좌우쌍검의 명두(髥?)
가 없어진 셈이었다.

화산이로의 키 큰 사제가 말했다.

"사형, 우리들이 너무 모진 게 아니에요?"

작은 사람이 화를 내며 말했다.

"우리 둘은 어쨌든 오늘 살아남을 수 없다. 아마 다음은 바로 우
리 형제가 목숨을 잃을 차례일 것이다!"

유연주는 그의 말이 기괴함을 느끼고 반드시 무언가 속사정이 이
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세한 생각이 미치기 전에 키 큰 사제의
말소리가 들렸다.

"이제 어느 두 분 영웅께서 나오셔서 우리 두 사형제를 죽이겠
소?"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경악했으며 유연주는 이 둘의 성질을
매우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아연해졌다. 조민이 말했다.

"유 삼숙, 질부가 보기에는 화산, 곤륜, 공동, 개방 등은 틀림없
이 협박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장송계 역시 말했다.

"그럴 가능성이 매우 많습니다."

유연주도 틀림없이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양소가 몰래 탐지해 낸
성과를 유연주에게 말했다.

"유 도장, 이들은 냉면인의 협박을 받은 것이지, 결코 본심에서
이 자리에 나온 것이 아니니 방법을 강구하여 그들을 구해야 합니
다."

우연주 역시 말했다.

"양 교주의 말씀이 맞습니다. 무슨 고견이 있으신지요?"

그러나 양소가 말을 꺼내기 전에 공문방장이 이미 장중으로 뛰어
들어가 말했다.

"아미타불, 두 분 시주께서는 어찌 일찌감치 칼을 거두시고 우리
불문 아래로 뛰어들지 않으시는지요?"

키 큰 사제가 말했다.

"사형, 이 공문방장께서는 명성이 높으시니, 아마도 막아낼 수 없
을 것 같습니다. 우리 빨리 항복합시다. 여보시오. 대화상, 항복은
가능하지만 화상은 절대로 못 됩니다."

군웅들이 '와'하고 웃었다. 유연주와 양소는 서로 한 번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공문방장에게 어떤 의도가 있음을 간파했
고, 그가 화산이로를 거두어 제자로 삼겠다고 운운한 것은 사실 그
둘의 목숨을 구하려는 의도임을 알았다.

공문방장은 이미 대단한 고령에 이르렀으며, 보상(?爲: 불상의
장엄한 모습)이 장엄하였다. 그는 키 큰 사제의 말을 듣고는 곧 말
했다.

"아미타불, 시주는 화상이 되길 원하지 않으면 그것도 무방합니
다. 소림사에는 많은 속가제자가 있으니 시주께서도 얼마든지 참가
할 수 있습니다."

작은 키의 사형이 말했다.

"대사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우리 사형제 두 사람은
우매하고 완고하여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대사께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문이 말했다.

"아미타불!"

사형이 말했다.

"시작하거라!"

사제가 주저하며 말했다.

"정말 싸울 겁니까?"

사형이 노하며 말했다.

"그러면 가짜로 싸우는 것도 있느냐?"

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쏴'하며 칼을 공문대사의 머리를 향
해 찍어 내렸다. 공문대사는 번개처럼 피하며 여전히 염불했다.

"아미타불!"

이 화산이로의 사제는 비록 신체가 컸지만 사형을 가장 존중하고
두려워하여 모든 일을 오로지 사형의 행동에 따랐다. 사형이 진짜
로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그도 곧 칼을 휘둘러 정말로 던졌다.

이 반양의도법과 곤륜파의 양의검법은 일정일반(?賑??)으로,
서로 어울려 기묘함을 더하였다. 사형제 두 사람은 이 칼에 수십
년 동안 길들여져 왔기에 당연히 그 위력을 경시할 수 없었다. 공
문대사는 삼 초 양보한 후에 갑자기 출수하여 두 사람의 손목혈도
를 찍었다. 내력이 닿자 두 사람은 모두 손목이 저리고 마비되어
명기가 곧 손에서 벗어나 땅에 떨어졌다.

공문은 일 보를 후퇴하며, 또 불호를 외치고는 말했다.

"두 분 시주님, 만일 출가를 원하신다면, 당장 노승을 따라갑시
다."

말을 끝내고는 퇴장하여 물러났다.

화산이로는 얼굴이 사그라진 재처럼 되어, 냉면인의 앞으로 돌아
와 앉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펑펑'하는 둔탁한 소리가 나서 모
두들 쳐다보았을 때는 화산이로는 이미 현명이로의 갑작스런 출장
(出準)에 죽어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군중들은 크게 놀랐으며 어떤 이는 성난 목소리로
호통쳤다. 공문은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미타불! 죄악이오, 죄악이오."

주전은 더 참지 못하고 심하게 욕을 했다.

"냉면인, 제미 십팔 대나 붙을."

그때 공동파 오로 중의 제 사로인 당문량이 냉면인의 목조막 앞으
로 가서, 절을 하며 말했다.

"영주님, 출전명령을 바랍니다."

쉰 목소리가 말하였다.

"가거라!"

당문량이 장중으로 걸어와 차렷자세로 말하였다.

"공동파 장문인 당문량이 삼가 무당 장문 유이협의 가르침을 받길
청합니다."

유연주는 다소 놀랐다. 공동오로 중에서는 당문량이 가장 기개가
있는 축에 들었다. 바로 이 연유 때문에 공동파 장문인의 서리 후
에 당문량이 비록 오로 중에 네 번째의 위치였지만 장문인이 피선
된 것이었다. 이런 철골(?誦) 쟁쟁한 기개 있는 대장부도 냉면인
에게 귀순하게 되었다니, 정말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은리정이 검을 잡고 나서며 말하였다.

"장문 사형, 소제가 나서서 그를 해치우겠습니다."

유연주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일엔 반드시 무슨 수상한 점이 있으니, 그가 나를 지명한 이
상, 내가 나가겠다!"

말을 마치고 느린 걸음으로 장중에 들어가며 말했다.

"듣건대 당 장문의 칠상권의 위력이 대단하다는데, 오늘은 사정을
(?=를) 보아 주십시오."

그러자 당문량이 낮은 소리로 말하였다.

"유 도장의 신공은 하늘을 덮는데, 제가 어찌 감히 무례한 짓을
하겠습니까? 다만 소생이 한 가지 청할 일이 있으니 도장께서 윤허
해 주시길 바랍니다."

유연주는 잠시 멍청해지며 말했다.

"당 장문, 말씀하십시오. 빈소는 마땅히 전력을 다해 도와 드리겠
습니다."

당문량이 말했다.

"곤륜, 화산, 개방, 공동 제파......."

갑자기 뒤쪽에서 쉰 목소리가 들려 왔다.

"당문량, 벌써 세상 살기가 진절머리 나나 보지?"

당문량이 고개를 돌려보니 공동오로의 나머지 사로가 모두 현명이
로, 요동악마 관문, 홍발노인 주오정에게 흉후요혈을 잡혀 있었
다. 일단 그들이 내력을 보내기만 하면 사로는 틀림없이 무사할 수
없을 것이었다.

공동오로는 수십 년 동안 이름을 떨치며, 그 무공이 이미 강호상
의 일류고수의 대열에 들었다. 그러니 만일 준비를 하였다면 결코
두 당문량이 냉면인의 지극히 정심(秩?)한 내공을 미처 생각지 못
해 생겨난 결과였다. 그와 유연주의 대화는 당문량이 음성을 지극
히 낮게 하여 공동사로는 그 내용을 듣지 못하였는데 냉면인은 정
심한 내공으로 일찌감치 당문량의 말을 한 자도 빠짐없이 듣고 있
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 대화 내용을 들은 냉면인이 홍발노인 등
을 곁눈질하여 보니, 네 사람이 슬그머니 공동사로의 몸 뒤쪽을 더
듬으며 일제히 손을 움직여 절기(贄?)를 지닌 공동의 노대가들의
요혈을 일거에 잡았다. 이제 냉면인의 한마디 명령을 내리기만 하
면, 이 네 명의 생명을 당장에 보낼 수 있었다.

당문량은 얼굴 색이 참담해지며, 대장부의 눈가에 한줄기 눈물을
떨구면서, 목이 메어 말했다.

"형제 여러분, 이렇게 사는 것은 시로 죽느니만 못할 것이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유연주에게 다시 말했다.

"각파의 고수들이 모두 이미 칠충칠화고 환약을 복용했......"

바로 이때, 뒤쪽에서 몇 번의 둔탁한 소리가 들려 왔다. 유연주는
그 소리를 듣고 얼굴빛이 돌변했다. 장외의 공동사로는 이미 죽어
서 쓰러져 있었다.

당문량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계속 말했다.

"만일 일 개월 후에 냉면인의 해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독이 퍼져
곧 죽게 될 것이오. 유 도장, 당신께 부탁컨대 어찌되었던 간에 모
두의 생명을 구해 주시오!"

유연주가 말했다.

"당 형님, 안심하십시오. 빈도가 진력으로 임하겠습니다."

당문량이 몸을 돌려 큰소리로 말했다.

"여러 친구분들, 손에 아직 선혈을 적시기 전에 빨리 달려오십시
오. 아마도 아직 구원의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가 말을 마치자 전신의 근골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유연주가 급히 말했다.

"당 형님, 안 됩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재빨리 당문량의 배유대혈을 짚었으나 이미 한발
늦었으니 당문량은 스스로 경맥을 끊어 죽은 것이었다.

유연주는 막 땅에 고꾸라지려는 당문량의 시신을 부축하면서 갑자
기 사방에서 들려 오는 둔탁한 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냉
면인이 이미 제파의 사람들을 도살토록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유
연주는 대노하여 즉시 몸을 날려 앞으로 돌격했다.

방금 전의 당문량의 외침에 힘입은 공동파의 제자들이 앞으로 달
려나와 무당, 소림쪽으로 도망 오려 했다. 그러나 그 중 몇몇 이들
은 잠시 주저하는 바람에 시작이 약간 늦어 즉각 살해당하였다. 화
산 곤륜, 개방 등 제파 사람들도 이 광경을 보고는 분분히 앞으로
도망나왔다. 그러나 냉면인 수하의 무공이 워낙 출중하여, 이미 십
수명이 그 자리에서 타살 당하고 있었다. 또한 광장 주위에 둘러
서 있던 사십 명의 대한들이 활을 당겨 사격을 하니 옆에 웅크리고
있던 명교교중과 싸움이 시작되었다.

삽시간에 장중이 크게 혼란스러워지며 무당, 소림, 명교, 아미 및
기타 강호의 호객들이 모두 재빨리 튀어 일어나 사람들을 구하러
나갔다.

유연주가 갑작스레 몸을 일으켜 곧장 홍발노인을 덮쳤다. 홍발노
인은 피하지도 않고 손바닥을 들어 유연주를 직격했다. 쌍방은 맞
대장을 시작하며 각자 일 보 후퇴하면서 속으로 서로 상대방의 무
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유연주가 쌍장을 이리저리 날려 홍발노인을 몇 보 후퇴시켰다. 그
런데 갑자기 머리 뒤에서 장검이 공중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을 느꼈다. 유연주는 기습한 사람의 무공이 고강함을 알고 몸을 즉
시 왼쪽으로 향해 날리며 동시에 손바닥을 들어 아대와 녹장객을
향해 쳤다. 아대의 장검이 곧장 찔러 들어오자 유연주는 태극권 중
의 교작옥 일 초를 구사하며 팔로 아대의 장검을 흔들었다. 내력이
이르자 아대는 결국 힘을 쓰지 못하게 되어 장검이 곧 손에서 떨어
져 나갔다.

유연주의 손바닥이 막 녹장객의 쌍장과 닿으려 할 때 불현듯 현명
이로의 현명독장이 지극히 음독함을 상기하고 번개같이 손바닥을
뒤집어 녹장객의 손목을 강하게 내리쳤다. 녹장객도 상황을 재빨리
알아채고 즉시 대금나수를 펼치며 오히려 유연주의 손목을 쳤다.

그러나 유연주는 이미 쌍장을 좁히고 양 다리로 녹장객의 하반신
을 기습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민첩하기 그지없이 팔퇴(?琛)를 공
격해내니, 녹장객은 부득불 피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때 공문,
양소, 범요, 자삼용왕, 공지 등의 고수들이 잇달아 내달려서 각기
맞수를 찾아 혼전이 시작되었다.

그때 갑자기 쉰 목소리가 들려 왔다.

"물러나라!"

냉면인의 부하들이 전부 이 혼전 속에서 달려나가 목조막 앞으로
후퇴해 갔다.

냉면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역시 약속대로 싸우는 것이 어떻겠소?"

일이 이렇게 되니 유연주 등도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장중에는 이미 백구의 가까운 시체들이 뒹굴고 있었는데 대
부분은 화산, 개방 제파의 제자였다. 오늘 양소가 이끌고 무당산에
오른 오행기중은 모두 무공을 지닌 사람들로서, 방금 집행한 쌍방
의 집단격투에서 예금기는 십이 명이 사상했지만 상대방은 오히려
이십 일 명이 죽었고 또한 조민에게 한 명이 생포되었다.

양소가 열화기파 육십 명에게 명하여 자기 편 시체를 옮기도록 하
자 냉면인의 부하들 또한 자기 편의 시체를 한쪽으로 옮겼다. 쌍방
이 잠시 휴전했다.

조민이 사로잡은 사람에게 막 무엇인가를 심문하려 할 때, 시체를
거두던 한 노인이 돌연 수전(?旨)을 쏘아 그 사람의 미간에 명중
시켜 그 흑의를 입은 이는 곧 절명했다. 조민이 몹시 화가 나서 시
체를 던져 버리고 당장 쫓아가려 했으나 그 노인은 신형(壬阪)을
민첩하게 달려서 벌써 목조막 앞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옆에 있던 유연주 등은 모두 아연히 서로 쳐다보았다. 그 노인의
수전은 너무도 신속(佚殷: 귀신같이 빠름)해서 자신이 비록 미리
알아차리긴 했지만 전혀 막을 사이가 없었다. 이 수전이 만약 자신
에게 쏘아졌다면 아마도 미처 피할 사이가 없었을 것이었다. 모두
들 그 노인을 보았으나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뜻밖에도 상대 편
에 이런 고수가 있으니 잠시 후 상대를 하게 되면 대적하기 힘들
것이라고들 생각했다.

쌍방은 장중에 나와 겨룰 수 있는 이들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포
대화상 설부득이 벌써 장중으로 걸어나가며 말했다.

"홍발 늙은이, 당신이 이 노자를 도와주는 것이 어떠한지?"

냉면인이 말했다.

"홍발노인, 나가시오!"

홍발노인 주오정이 절을 하며 대답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는 곧 장중으로 걸어나갔다.

설부득은 홍발노인이 가까이 오기 전에 '휙' 소리를 내며, 포대
하나를 홍발노인의 머리를 향해 덮어 씌웠다.

홍발노인이 크게 놀라 뒤로 뛰어올랐으나 설부득은 이미 바삭 추
격하고 있었다. 포대가 하나하나 그의 품에서 꺼내지는데, 도대체
아직도 얼마나 많은 포대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홍발노인은 당황
하여 허둥지둥하면서도 포대 속에 무슨 괴이한 것이 있는지 알 수
없어 감히 손을 뻗어 잡지 못하고 공중을 가르며 손바닥을 휘저어
서 포대를 날려보냈다. 포대는 하늘거리며 전혀 힘을 견디지 못했
으며 홍발노인의 장력으로 곧장 앞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 장력은
장중에 있던 군웅들로 하여금 모두 말문이 막히게 했다.

삽시간에 광장 상공에 포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포대화상 설부
득이 왼손을 뻗은 채 몸을 정지하고 빙그레 웃으며 홍발노인을 보
고 말하였다.

"홍발 늙은이, 당신 이게 뭐하는 짓인가. 내 포대를 전부 날려보
내서 나와 싸우지 않겠다는 것이 무슨 경우인가? 이 몸이 포대를
다 썼으니 기다리시오. 내가 포대를 주워 오거든 다시 처음부터 싸
워봅시다."

말을 마치고는 정말로 직접 장중에서 포대를 주웠다. 그런 그의
신법은 너무나 재빨라서, 눈 깜짝할 사이에 두 개를 주워 손에 들
고 있었다.

홍발노인도 이미 잰걸음으로 그를 쫓아서 손바닥을 펼쳐 설부득의
등을 향해 내리쳤다.

설부득은 진작에 손바닥이 다가옴을 알았으나 결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손을 돌려 포대 하나를 던졌다. 홍발노인은 포대 안에 아무
계책이 없음을 알아차리고는 곧 포대를 받아서 운력하여 던졌다.
설부득은 미처 이 수를 예상하지 못하여, 순간에 막아내지 못하고
결국 포대를 뒤집어쓰게 되었다.

그는 질겁을 하며 신형을 앞으로 내달아 홍발노인을 피하고자 했
으며 포대를 벗겨 내는 것은 나중 일이었다. 주전이 장외에서 황망
히 소리쳤다.

"설부득, 빨리 달아나시오!"

그러나 홍발노인(이) 어찌 이 좋은 기회를 놓치겠는가. 신형이 이
미 귀매(??)처럼 달라붙었다. 잠시 후, 그가 쌍장을 일제히 날리
는 것이 보였을 뿐인데 두 차례 둔한 소리가 난 후에 포대화상 설
부득의 몸은 장중을 데굴데굴 구르더니 곧 아무런 미동도 없이 땅
위에 누워 있었다. 머리에는 여전히 포대를 쓰고 있었다. 홍발노인
은 더이상 진격하지 않고 냉소 지으며 장외로 물러났다.

명교 오산인은 평시에 비록 말씨름이 끝이 없었지만 다섯 사람 사
이의 정의(盡倧)는 친형제 사이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눈앞에
서 포대화상 설부득이 장중에 누운 채 꼼짝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보
고는 생사가 어찌되었는지 궁금하여 주전이 장중으로 뛰어들어 설
부득에게 곧장 달려갔다. 가까이 가서 호흡을 살피니 뜻밖에도 한
가닥의 숨결도 없었다. 주전은 몹시 슬퍼하며 시체에 엎드려 큰소
리로 울부짖었다.

이때 철관도인 장중, 팽영옥, 냉겸 세 사람도 설부득의 시체 옆에
와서 이 상황을 보고 모두 크게 비통해 했다.

팽영옥 화상이 큰소리로 말했다.

"냉면인, 명교 오산인도 한 가지 진법을 연마했지. 고수 네 명을
내보내셔서 우리 오산인을 제도하시지요!"

오산인에게는 사실 무슨 진법이 없었다. 팽영옥의 이 말은 설부득
과 같이 죽고자 하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이 말 속에 담긴 의
도를 양소가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그가 범요에게 고개를 끄덕이
자 범요가 큰소리로 말했다.

"명교 오산인은 명령을 따르시오. 교주께서 영을 내리시어, 당신
들에게 속히 퇴장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오산인은 들은 체 만 체했다.

주전이 눈이 시뻘개져서 설부득의 시신을 일으켜 자신의 몸에 기
대었다. 냉겸은 장중에서 양소를 향하여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교주님께 삼가 아룁니다. 오산인의 정(盡)은 형제의 사이를 넘으
니 교주께서 이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양소는 묵묵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양 손으로 가슴 앞에 불꽃 무
늬를 그렸다. 명교 수천 명은 이를 보고 곧 모두 가부좌를 틀고 앉
아서, 양 손 열 손가락을 가슴 앞에 들고서 불꽃이 공중으로 떠오
르는 모양을 만들었다. 이어서 교주 양소가 말했다.

"성화여! 이 몸을 태우니 이글이글 타올라라!
삶이 어찌 즐거우며 죽은 들 어찌 괴로우랴?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하니 오직 광명의 길로 나아간다.
기쁨도, 즐거움도, 슬픔이나 근심도 모두가 하나의 먼지에 불과하
거늘,
세상 사람 불쌍함은 우환이 많음에서라!
세상 사람 불쌍함은 우환이 많음에서라!"

명교교중은 반복해서 경문을 낭송했다. 모두들 고개를 드리우고
더이상 장중으로 눈을 돌리지 않았다.

군중들은 명교의 이러한 기개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어서 모두들
숙연해졌다. 공문대사가 낮게 말했다.

"아미타불!"

유연주와 장송계는 심히 우려되어 서로 쳐다보았다. 이때 냉면인
이 손을 젓자 아대, 아이, 아삼 및 홍발노인 주오정이 장중으로 걸
어 들어왔다. 설부득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오산인은 사실 네 사람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설부득의 시신이 주전에 의해 부축되어 있어
서 보기에는 여전히 다섯이었다.

쌍방은 가까이 다가가서는 서로 말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행동
으로 들어갔다. 주전은 왼팔에 설부득의 시신을 낀 채로 솔선하여
아대를 향해 공격했다. 그의 무공수양은 원래 아대와 우열을 가릴
수 없었으나 왼손으로 설부득을 보호하고 있어서 신법이 기민하지
못하여, 수회가 끝나기도 전에 아대의 일검에 심장을 찔려서 그 자
리에서 절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설부득과 함께 장중에 꼿꼿이 선 채 쓰러지지 않았
다.

냉면인은 진작에 오산인이 결코 무슨 진법을 가진 게 없고 각자
진영을 만드는 것에 불과할 뿐이며 이는 사실 일대일의 격투와 다
름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냉면인은 군웅을 설복시키기 위해
서 일부러 아대가 득수(??)한 것을 보고 즉시 퇴장하라고 소리쳤
다.

오산인 중에 무공은 냉겸이 최고였는지 홍발노인을 대장하도록 만
들었다. 설사 승리를 얻지 못하여도 홍발노인의 내공을 더 소모시
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다고 생각했다.

홍발노인도 냉겸이 이토록 목숨을 걸고 강하게 대항해 오는 것을
보고 어찌 빠져나갈 수단을 찾을 수 있겠는가. 냉겸의 쌍장이 바람
을 끼고 질주해 오는 것을 보고 부득불 쌍장으로 맞섰다. '펑' 소
리가 울리더니 냉겸이 삼 보 후퇴하는데 홍발노인의 몸은 단지 경
미하게 흔들릴 뿐이었다.

유연주는 장탄식을 하며 자신도 모르게 무당도관의 방향을 바라보
았다. 조민이 그의 심의를 알아차리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육 이숙, 질부가 가서 보겠습니다."

유연주가 고개를 끄덕여 승낙하자, 조민은 곧 몸을 돌려 무당관중
으로 질주했다.

정원에 도착하니 송원교와 장무기는 마치 노승이 입정(?珍)한 것
과 같았으며 그녀의 도래에 대해서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조민
은 한참을 주저하다가 할 수 없이 되돌아 갔다. 뒷산에 돌아왔을
때, 장중에는 그녀가 모르는 두 사람이 싸우고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검을 휘두르며 공력이 서로 비슷하여 경각에 승부를 가리기
들었다.

조민은 유연주에게 천천히 고개를 젓고는 곧 소소 곁으로 물러났
다. 소소가 말했다.

"민 언니, 오산인 중에 냉겸, 평영옥, 주전, 설부득은 이미 죽었
고 장중 또한 중상을 입고 혼미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어요.
아이와 아삼도 이미 장중과 팽영옥에게 맞아 죽었어요. 장중의 흑
의를 입은 사람은 냉면인 수하로 벌써 한바탕 승리를 거두었고 산
동박도왕에게 자상을 입혔어요. 방금 달마당 구로승과 냉면인의 아
홉 명 부하들이 격투하여 쌍방에 아직 죽은 이는 없으나 모두 부상
을 입어 양패구상의 종국으로 떨어졌어요. 민 언니, 공자님은 어떠
세요?"

조민이 낮게 말하였다.

"상세한 내용은 모르겠고 그 두 분은 지금 입정을 하고 있는 중이
라 결과가 어찌될지 몰라."

소소가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민 언니, 잠시 후에 상승왕을 내보내 한 차례 싸우게 하면 어떻
겠어요?"

조민은 상승왕의 내공이 어떠한지 몰랐지만 그의 무공이 괴이하니
아마 정말로 상대방이 미처 막아낼 틈도 없이 겨룰 수 있을지도 모
른다고 생각하고 즉시 말했다.

"그리하는 게 좋겠구나."

소소가 말했다.

"상승왕, 잠시 후에 당신이 출장하세요!"

상승왕이 공손하게 말했다.

"네!"

소소가 다시 말했다.
"조심하세요. 만일 대적할 수 없으면 즉시 내려오세요. 위세 부리
느라고 계속 싸우지 말고요."

상승왕은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바로 이때, 냉면인 수하의 흑의
를 입은 이가 패하여 물러나자, 군웅들은 환성이 우뢰와 같이 울려
퍼졌다. 소소가 말했다.

"장중의 저 영웅은 강남 팔대 준걸의 하나로 이름은 야우군이라
해요."

야우군은 한 판을 이겼기 때문에 규정에 따라 한 판을 더해야만
했다. 얼핏 보니 냉면인 목조막에서 한 서역인이 걸어 나왔다. 그
는 몸집이 거대하고 홍포를 입고 있었는데 바로 금륜법왕의 후대제
로 일찌기 종남산에 와서 양빙과 무예를 겨루었던 삼형제 중의 하
나였다. 그는 장중으로 걸어와서 야우군을 마주하고 주먹을 쥔 채
말하였다.

"저는 노온아(???)라고 합니다. 야 대협께 고초(俗?)를 가르
침 받고자 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귀하의 검에 사정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야우군은 방금 자신과 무공이 엇비슷한 맞수를 이겼기 때문에,
지금은 내력을 많이 소모한 상태였다. 보아하니 상대방의 신법이
신중하여 자신이 결코 필승할 자신이 없었기에 막 맞붙어 싸우자마
자 곧 수세(艤留)를 진공할 틈을 찾고자 했다.

노온아는 마치 그의 심사를 다 안다는 듯이, 싸움을 시작하자마자
장검을 잡고 광풍 속에 어지러이 흐트러진 나뭇가지처럼 맹공격을
해 와서 수합이 채 안되어 야우군은 왼팔에 검을 맞고 부득불 퇴장
하게 되었다.

이때 상승왕이 훌쩍 뛰어들어 장중에 똑바로 선 채 말하였다.

"소생 상승왕이 귀하의 고초를 가르침 받고자 나왔습니다."

노온아는 말했다.

"별 말씀 다하십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중토인과 크게 달라서 군영(潚苧)들은 모두 십
분경이해 하며 장중을 지켜보았다. 격투를 시작하며 장외의 사람들
은 모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경악했다. 그러나 상승왕이
동서로 왔다갔다하며 휘두르는 한 쌍의 단검은 확실히 신출귀몰하
고 괴이하기 그지없어서, 군웅들은 모두 놀라며 만일 자신이 상승
왕과 만났다면 정말로 대책이 없었을 것이라고들 생각했다.

노운아는 벌써 당황하여 허둥지둥 대며 상승왕의 단검이 자신의
왼쪽 어깨를 향하여 찔러 오자 검을 휘두르며 위쪽을 막았으나 예
상치도 못하게 '콱'하는 소리와 함께 오른쪽 어깨를 칼에 맞았다.
한차례 극심한 통증이 온몸에 퍼지니 장검을 지탱하지 못하고 땅에
떨어뜨렸다.

상승왕이 더이상 진격하지 않고 읍을 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노온아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왼손으로 상처를 감싸고 퇴장하
였다. 일시에 군웅들은 상승왕의 이토록 괴이한 무공을 보고는 모
두 아연실색하여 갈채의 박수도 잊고 있었다.

한참 동안 냉면인의 장막에서 출전하는 이가 보이자 않았다. 이미
해는 서편으로 기울고 군웅들은 점점 고조되어 갔다. 그때 중인들
은 갑자기 눈앞이 힐끗하더니 장중에 사람이 하나 늘은 것을 깨달
았다. 그의 모습은 너무 초라했고 회색장삼은 차마 볼 수 없을 정
도로 더러웠다. 그러나 오만한 태도로 그가 말했다.

"나는 요동악마 관문이다. 하찮은 오랑캐가 감히 중원에 와서 방
자하게 노는구나. 어디 초수 좀 보자꾸나!"

말이 끝나자마자 관문은 장검을 곧장 찔러 진공해 들어왔다. 그는
상승왕의 검술이 괴이함을 보고 그가 먼저 진공하는 것을 막기 위
해서 싸움을 시작하자마자 곧 재빨리 기세를 잡아 공격한 것이다.
관문의 몸은 검을 따라가며 당장에 종전의 산만하고 오만한 태도가
일소되어 장검을 잡고서 마치 교룡이 동굴에서 출연하듯 의외로 기
세가 드높고 살기가 등등하게 휘둘렀다.

관문은 일검을 찌르면 반드시 완전히 적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
했으나 뜻밖에도 상승왕의 보법이 괴이하매 급히 피하며 쌍검을 거
의 불가능한 방향에서 찔러 댔다. 이렇게 세 번을 거듭하자 관문은
상승왕의 내공이 자신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검술이 기이하여 감히
소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번 위급해질 때마다 관문의 장
검은 상승왕 신체의 요해를 향하여 찔러 대며 그로 하여금 자구(株
狩)케 했다. 관문은 한편으로는 계속 상대하며 한편으로는 상승왕
의 검로(盛?)를 정확히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의외로 상승왕은 일 초도 중복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한참을 공격하지 못하자 그는 몹시 조급해져 민첩함이 약간 줄어들
었다. 관문은 기회를 포착하여 장검을 상승왕의 단검의 검신에 부
딪히며 내력을 보내니, 상승왕은 팔이 저리고 마비되어 단검을 땅
에 떨어뜨렸다. 그것을 본 소소는 놀라 소리를 지르며 일시에 얼굴
이 새파랗게 질렸다.

은리정은 검을 집고 막 뛰어나가려 하다가 상승왕의 몸이 급회전
하며 좌검으로 관문의 뒷목을 향해 찔러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관
문이 질겁을 하며 앞으로 달려들어 막 몸을 돌려 다시 싸우려 할
때, 상승왕이 읍을 하며 말했다.

"귀하의 내공이 출중하여 소생이 병기를 놓쳤으니, 제가 졌음을
인정합니다."

말을 마치고는 몸을 돌려 퇴장했다.

상승왕은 더이상 싸움을 계속하면 비록 자신이 생명을 잃을 염려
는 없다 해도 역시 관문을 처치하지 못할 것임을 잘 알았다. 자신
이 병기를 놓쳤음은 어쨌든 일 초를 진 것이었으므로 패배를 인정
했던 것이었다. 상승왕은 성정(?盡)이 강직하며 무공이 높은 무사
들에 대하여 평소부터 경복해 왔으며 패배는 그저 패배일 뿐, 결코
참지 못할 굴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군웅들은 모두
상승왕이 뜻밖에도 이토록 태연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것을 이해하
지 못하고 아연실색했다.

상승왕은 소소의 앞까지 걸어와서 말했다.

"제자가 무능하오니 처분을 기다리겠습니다."

소소가 일찌기 그에게 건곤대나이심법을 전해 주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비록 사도의 예는 행하지 않았지만 상승왕은 여전히 스스로
제자라고 자칭했다. 소소는 그에게 몇 차례 그렇게 하지 말도록 권
했으나 계속 그리하였다. 상승왕이 몸을 돌려 물러나자, 소소는 희
열의 정이 넘쳐흐르는 작은 소리로 진실 되게 말하였다.

"천하의 무학은 지극히 박대(?暗)하니, 어찌 범인이 다 이룰 수
있겠는지요. 패배는 그저 패배일 뿐이니, 아무 관계도 없소이다!"

상승왕이 공손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조민이 옆에서 그들을 지켜보며 저절로 미소를 지었다. 소소는 조
민과 눈이 마주치자, 몹시 쑥스러워 했다. 당장에 양 볼이 새빨개
지며 고개를 떨구고는, 조민과 상승왕을 다시 쳐다보지 못했다.

요동악마 관문의 무공, 검술이 매우 높아서 군웅 중에 또한 능히
맞설 이가 거의 없었다. 오늘의 일전에서 명교, 소림, 무당의 고수
들을 모두 보았다. 은리정이 상승왕이 퇴장하는 것을 보고 급히 유
연주에게 말하였다.

"장문 사형, 사제가 출장함이 어떻겠습니까?"

유연주가 말했다.

"조심하시오. 태극권을 사용하고, 그 사이에 칠십 이 식 유지유검
을 혼합하시오."

은리정이 절을 하며 대답하고 곧 장중으로 나아갔다. 은리정은 비
록 무당칠협 중의 여섯 번째 였지만 그러나 만일 검술의 조예로써
논한다면, 무당칠협 중에서 당연히 그를 최고로 꼽았다.

장중에 곧게 서서 은리정이 말했다.

"소생은 일찌기 요동악마의 대명(暗髥)을 들었습니다. 한 수 베풀
어 주시기 바랍니다."

은리정은 장검을 들고 칼끝을 주시하며 마음 속의 온갖 잡념을 없
앴다. 곧이어 가슴을 움츠리고 등을 내밀며 어깨를 낮게 하고 팔을
떨구었다. 이는 바로 태극검의 개시동작이었다.

은리정은 검술로써 수십 년 동안 명성을 떨쳐서 천하에 모르는 이
가 없었다. 관문은 오늘 한 판이 생가존망이 걸린 대사이기 때문에
감히 더이상 자웅(株脹)하여 틀림없이 먼저 출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쫙'소리와 함께 칼끝으로 은리정의 왼쪽 어깨를 비
스듬히 찔렀다.

은리정은 일 보 후퇴하여 왼손으로 검을 바꿔 쥐고 '삼환투월' 일
초를 휘두르며, 오른손으로 검결(盛?)을 만들며 쌍지를 내밀어 관
문의 오른쪽 눈을 향하였다. 이 초식은 수비중에도 공격이 있으며
도량이 넓어서 옆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일시에 찬탄의 소리를 내질
렀다. 관문은 머리를 약간 움직여 지풍(?憚)을 지나가게 하고, 동
시에 신형을 거칠게 움직여서 미친 듯이 공격해 오며 장검을 바람
처럼 파도처럼 휘둘러 힘차게 다가왔다.

은리정은 결코 그와 쾌속전을 하지 않았으며 칼을 다시 오른손으
로 잡고는 여전히 느릿느릿 검을 움직이며 대항했다. 그러나 '대괴
성(暗??)', '연자초수(?侏??)', '풍파하엽(憚舵胎栽)' 등 일
초 일초의 태극검을 원전여의(?池醬倧)하게 구사해 냈다.

관문의 한 차례 진공은 의외로 헛수고가 되었으며 오히려 내력을
크게 소모하여 부득이 검세를 늦추고 은리정과 초를 겨루었다.

이때 은리정의 검초는 더욱 느렸으나 검세를 원전여의, 수미상관
(??爲?)했다. 관문은 마침내 조금의 빈틈도 찾지 못하고, 도리
어 은지정의 장검이 그려내는 원 속에 갇히어서 하는 수 없이 칼을
들어 굳게 막았다. 매번 막아낼 때마다 체내의 기운이 극심하게 진
동하며 명치 끝이 말할 수 없이 답답하여 참기 힘들었다. 몸을 빼
내어 물러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일시에 얼굴이
참담해 지며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은리정이 말했다.

"검을 거두고 항복하시지요!"

관문은 아무 말도 없더니, 은리정이 말하는 틈을 타서 곧장 중궁
을 찔러 들어왔다. 그러나 은리정은 차갑게 '흥'하고는, 왼손 둘째
손가락으로 재빨리 관문의 장검을 제압하고 왼손의 장검으로는 관
문의 목을 누르며 말했다.

"각하, 항복하시지요!"

관문은 불만이 가득하여 여전히 운력하여 장검을 똑바로 밀었다.
관문은 이미 호흡이 어지러웠고 은리정은 벌써 이 점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두 손가락으로 그의 장검을 제압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관
문이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굳세게 검을 밀고 들어오자 은리정 또
한 전력으로 대항하지 못하였다. 장검이 한 치 한 치 막 명치 끝을
향하여 밀려오매, 이때 은리정이 가볍게 검병을 보내기만 하면, 관
문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천성이 온화하여,
진실로 살상을 원치 않았다.

양소가 큰소리로 말했다.

"은 육협, 사양하지 마시오. 악은 철저히 제거해야 합니다!"

은리정이 길게 한숨을 쉬며 장검을 흔들어 관문의 오른손을 향해
내리쳤다. 뜻밖에도 '쨍그렁'하는 소리가 나더니, 관문의 오른팔이
팔꿈치 부위에서 잘려져 나갔다. 또한 관문의 장검도 이미 은리정
의 왼팔을 관통하고 있었다.

원래 관문이 마지막 모험을 걸고, 은리정이 막 그의 손목을 자르
려 할 때, 장검을 비틀어 은리정의 왼손 식지와 중지를 자르며 동
시에 검을 세워 똑바로 찌른 것이었다. 은리정은 통증이 극심하여,
왼손을 애써 밖으로 벌리며 여전히 일 보 늦게 하여, 왼팔을 칼에
맞았다. 은리정은 대노하여 왼팔의 검을 잡아 뽑아서 관문에게 던
졌다. 관문의 잘려진 팔이 아직도 검명을 쥔 채 계속 흔들거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팔에서 피를 한없이 흘리며 각자 몸을 돌려 퇴장했다.
쌍방이 황급히 부상자를 치료하니, 잠시 장중에 나서는 이가 아무
도 없었다.

양불회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은리정을 부축하고 있었고, 공
문, 양소, 패금의 등은 모두 그를 둘러싸고 상세(轅留)를 살폈다.
그의 식지와 중지는 이미 끊어졌으나, 다행스러운 것은 팔의 상처
가 비록 크긴 해도 상처가 뼛속까지 미치지 않아서 달포 가량 휴양
을 하면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때 군웅 중에 어떤 이들은
관문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본래 강호에서는 언어에 기탄이
없었지만 욕설이 너무 심하자 아미파의 여도사들은 미간을 잔뜩 찌
푸린 채 듣고만 있었다.

이때 유연주가 얼굴에 근심스러움 빛을 띄었다. 장 밖을 둘러보니
쌍방에 아직 출장할 수 있는 자는 모두 팔 명이었다. 자기 편은 자
신과 장송계, 공문방장, 공지대사, 양소, 범요, 자삼용왕, 은야왕
등이었으며, 상대방 팔 명 중에는 현명이로, 홍발노인 주오정, 아
대 및 두 명의 서역승려들도 무시할 수 없었고, 방금 수전을 쏘았
던 그 노인은 정말로 꺼림칙했으며, 냉면인 또한 결코 한 사람이
대적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이때 이미 날이 저물어 석양이 서쪽 하늘로 가라앉고 있었다. 한
차례 저녁 바람이 스쳐가니, 모두들 산바람이 엄습함을 느끼며, 온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우연주, 양소, 공문 세 사람이 서로 눈길을 보내어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양소가 말했다.

"제가 이미 위일소에게 원조를 요청하러 가도록 명령했습니다. 지
금은 날이 저무니, 만일 냉면인으로 하여금 내일 다시 대적할 수
있게 한다면, 한번 겨뤄 볼 만할 것입니다!"

유연주는 비록 이것이 시간을 벌 수 있는 계책은 아니지만, 만일
하룻밤의 시간을 끈다면, 장무기와 송원교가 만전지책(??柵梢)을
생각해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양 교주의 이 계책은 기발하지만 냉면인이 과연 승낙할지 모르겠
습니다."

즉시 큰소리로 냉면인의 목조막을 향하여 말했다.

"냉 시주, 지금은 날이 이미 어두웠으니 내일 다시 겨루어도 늦지
않겠지요?"

냉면인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유 장문이 귀순을 원한다면 응당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우리 등불을 밝히고 야전(仔?)을 합시다."

유연주는 더이상 대답이 없었고, 양소가 거목기에게 분부하여 가
서 땔감을 베고 횃불을 준비하여 철야하도록 했다.

조민은 잠시 일이 없음을 보고 곧 다시 무당관중을 향해 질주해
갔다. 정원에 다다르니 장무기와 송원교는 아직도 여전히 입정하고
있었다. 조민은 몹시 조급했으나, 그저 한 쪽에서 조용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뒷산의 일은 자신이 간다 해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여기에 남아 있으면 혹시 무슨 좋은 생각이라
도 짜낼 수 있을 지도 몰랐다.

몇 시간 후, 하늘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졌다. 송원교가 홀연히 말
을 꺼냈다.

"무기야, 무슨 좋은 대책을 생각해 냈느냐?"

장무기가 말했다.

"사숙, 저는 무지해서 아직 대책이 없습니다."

송원교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숙에게 계책이 있는데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장무기가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사숙, 가르침을 주십시오."

송원교가 말했다.

"사숙이 음기를 너의 체내로 주입시키면, 반 시간 안에는 주입된
음기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비록 냉면인의 박대정심한 구음신공
에는 못 미치겠지만 이러한 음기를 가지고 대항한다면 아무래도 없
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만약 이렇게 해줄 수 있는 몇 명의 고인
(俗?)이 있다면, 참으로 좋겠지."

장무기가 심히 이상스레 여기며 말했다.

"혹시 사숙께서 구음진경류(驛)의 내공을 연마하신 적이 있으신지
요?"

송원교가 말했다.

"너는 ?황제내경(????)?을 숙독했으니 응당 이 몇 귀절을
잘 알 것이다. '음양 양자가 불화함은, 봄이면 가을이 아니고 겨울
이면 여름이 아닌 것이다...... 음양의 조화는 바로 혈기가 부드럽
고 매끄러움이다...... 음이 평온하고 양이 감취(?)지면 정신이 비
로소 다스려진다.'"

장무기는 이 말을 듣고 대경실색하여 말했다.

"사숙, 소질이 어찌 감히 그렇게......"

송원교가 말했다.

"이는 결코 사숙 한 사람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비록 신체
에 장애가 있다 해도, 몇 년의 수명이 감소되는 것에 불과할 따름
이다. 하지만 만일 냉면인을 상대할 수 없다면, 아마도 우리들은
오늘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대사에 처한 자는 사소한 것에 구애
받지 않는 것이니, 무기야 한 번 해 보는 것이 어떠하냐?"

장무기는 마음 속이 몹시 혼란해졌다. 송원교가 말한 것은 그도
일찌기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일은 절대 한 된다고 생
각했기에, 그것을 지워 버리고 다른 생각을 했던 것이었다.

장무기는 병리에 대단히 정통했기 때문에 인체 내에서 음양이기는
반드시 평형을 유지해야 하며 만일 음양이 조화를 잃는다면 중의
(猖?)에서 보면 이는 바로 병이 난 것임을 응당 잘 알고 있었다.
설사 무공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신체 내에 역시 음양이기
의 조화와 평형을 가지고 있다. 다른 점은 범인의 음양이기는 심
장, 간장, 비장, 폐장, 신장 속에 저장된 것이어서, 또한 장기(曾
褶)라고 불리운다. 매 사람마다의 오장육부에는 모두 음양 양기를
가지고 있어서 예를 들면 신음(壹遭), 신양(壹暫)이라고 말함은 바
로 이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연공(?殺)하는 이들이 연마한 음양
이기는 단전에 저장되는 것이며, 이는 바로 후천적인 인력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단전 속의 진기는 대부분 음기와 양기 양종으로 나
눠지며 음공을 연마한 자는 음기를 저장하고, 양공을 연마한 자는
바로 양기를 저장한다. 그러므로 냉면인의 이러한 음양 양기의 동
시연마는 전대미문의 행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송원교가 음기를 가지고 장무기를 돕겠다는 것은 바로 인체의 장
기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장기에 일단 심한 편차가 발생하면, 송원
교 같은 고령의 사람에게는 몹시 위험한 일이었다. 그래서 장무기
가 이리도 대경실색한 것이었다.

송원교가 말했다.

"이 방법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숙이
재삼 고려해 보아도, 이 외에는 달리 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저 힘
껏 해 보자꾸나."

장무기가 아직도 망설이며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송원교가
엄하게 말했다.

"오늘의 일은 이미 양쪽이 모두 원만하기 어렵다. 빨리 손을 뻗어
라!"

조민은 줄곧 옆에 서 있었으나, 두 사람이 너무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이때 돌연 말을 꺼냈다.

"사숙, 질부가 하도록 해주세요."

송원교는 잠시 멍하더니, 곧 조민의 뜻을 이해했다. 여자는 음이
고 남자는 양이니, 만일 조민이 음기를 보내 주면 당연히 자신보다
훨씬 강할 것이었다. 잠시 동안 심사숙고하더니 말했다.

"질부가 약간만 보낸다면 괜찮다. 이 방법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아직 자신이 없단다."

조민이 대답하고는, 곧 장무기의 맞은편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두 사람은 각자 우장을 내밀어 서로 맞대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손바닥을 떼고 운공조식했다.

조금 있다가 송원교가 말했다.

"무기야, 사숙은 지금 이미 장 속의 음기를 경맥으로 밀어 넣었
다. 건곤대나이심법으로 보낼 수 있는지 한 번 시행해 보아라."

장무기는 이 방법이 그지없이 흉험(瀚?)하며, 자신의 힘이 조금
이라도 지탱할 수 없다면 당장에 송원교의 생명을 빼앗게 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시행하지 않을 수 없어서, 전심전력하여 완만
하게 우장을 들어 올려서 송원교의 우장과 맞붙였다.

송원교가 필신수양한 내공의 진기로 장무기를 공격해 왔다. 장무
기는 더이상 저항하지 않고 내력을 한 선으로 응결시켜 송원교의
우군로궁혈을 따라 맹렬하게 밀어 넣었다. 송원교는 내력을 급히
촉진 시켜서 장무기의 내력을 체외로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장무
기의 내력이 고강하여서, 삽시간에 송원교의 수궐음심경과 족궐음
간경에서 몇 바퀴를 순행하고, 칠 팔 곳의 음양이 상접한 곳을 찾
아냈다. 그는 감히 요해(箭?) 부위에서는 송원교의 음양이기를 일
으키지 못하고, 엄지발가락 외측의 발톱 모서리 옆의 대돈혈 부근
에서 건곤대나이심법을 전개하며, 송원교의 음기가 양기를 공격하
도록 분발시켰다. 이렇게 이약공강(?恣受惜)하는 것은 후환이 크
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송원교 체내의 양기가 박대하여 음기가 공격해가
니 도리어 반격을 당하였다. 송원교는 엄지발가락에 한 차례 극심
한 통증이 일며 체내의 진기가 갑자기 흩어짐을 느꼈다. 장무기는
크게 놀라서 속으로 처절히 비명을 지르며 한없이 후회했다. 자신
은 원래 단지 오장육부 및 기항지부(?頗柵欲) 같은 요해부위에서
먼 사지말단에 보낸다면 걱정할 것 없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뜻밖
에도 십지(??)가 모두 심장에 연결되어 이토록 통증이 극심하리
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송원교는 정신이 곧 분산되며 각 경맥 중
에서 순행하고 있던 장기가 즉시 제어를 잃게 되어 체내에서 이리
저리 날뛰며 좌충우돌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
내고는 막 쓰러지려 했다.

조민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가, 이 상황을 보고 황급히 송
원교를 부축하여 똑바로 앉혔다. 장무기는 즉각 구양신공으로 송원
교의 심맥을 보호하며, 제어를 상실한 진기를 송원교의 단전으로
이끌어 들이고, 또 경맥에 있는 각종 장기를 하나하나 자세히 분별
하여 흩어지게 했으며, 그것을 일일이 장부(曾欲) 속으로 되돌려서
저장시켰다. 운공이 송원교의 내상을 치료해 주어 약 두 시간 후에
장무기는 비로소 손바닥을 떼었다. 송원교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무기야, 큰 성공을 거두었으니 지금 뒷산으로 가보거라."

이때는 보름달이 이미 높이 걸려, 청산 중에서 유난히 밝고 청신
했다.

세 사람은 무심히 관상하며 경공을 써서 뒷산을 향해 달려갔다.
장무기와 송원교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질주했다. 조민의 공력은
두 사람에 미치지 못하여 뒤쪽에 처졌으나, 지금의 상황이 너무도
긴급하여 둘은 그녀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잠시 후, 장무기와 송원교는 이미 뒷산에 닿았다. 사방에 횃불이
환히 비추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고서, 두 사람은 크게 놀라며
서로 바라보았다. 자기 편의 고수들이 모두 죽지 않으면 부상을 당
하여, 뜻밖에도 똑바로 설 수 있는 이가 한 사람도 없었다. 냉면인
은 조용히 장중에 서서 뭇 영웅들을 훑어보았으나 확실히 출전할
만한 이가 없었다. 냉면인은 재빨리 장무기와 송원교를 보고는 의
외로 전혀 아무런 내색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늙은이가 삼가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장 교주께선 허세가 대단
하구려!"

조민이 간 후 얼마 되진 않아 쌍방은 몇 무더기의 횃불을 피우고,
곧 다시 무예를 겨루었다. 범요와 자삼용왕이 현명이로와 싸우매
양패구상이라, 현명이로는 중상으로 피를 토했고, 범요와 자삼용왕
은 각각 '현명신장'을 맞았다.

장송계는 두 서역인을 연패시키고 두 번째 출장시에 수전을 날린
그 노인에게 부상을 당하여 피를 토하고 혼미하여 깨어나지 않았
다. 공지, 공문도 모두 이 노인의 손바닥 아래에서 패하여 내상을
입었으나, 양소가 그를 격살시켰다. 냉면인이 출장하여 양소, 유연
주, 은야왕, 양빙을 연패시키니, 네 사람 모두 중상을 입었다. 이
후에는 이미 출장할 이가 없었다. 냉면인이 막 영웅들에게 귀순하
도록 하며 그렇지 않으면 더욱 살육을 가하겠다고 협박하려 할 때
송원교와 장무기가 마침 때맞게 도착한 것이었다.

양빙은 조민이 떠난 후에야 비로소 도착했었다. 그녀는 이십여 상
자의 옥봉(??)과 호봉(怖?)을 가지고 산에 올라왔다. 노상에서
짐꾼이 조심하지 않고 호봉상자 두 개를 떨어뜨려 산산조각을 내는
바람에 한참을 고생한 끝에 겨우 호봉을 다시 모아 오느라고 늦게
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예상 외로 출장하여 냉면인과 몇 번 겨루지도 못하고, 대
장하다가 패하여 물러났다.

다행히 냉면인이 군웅들을 굴복시키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
에 고수들에게 악독한 살수를 쓰지 않았으나 모두 가볍지 않은 부
상을 당했다.

장무기는 각자의 상세를 자세히 살핀 후에 몸을 돌려 냉면인에게
말했다.

"각하, 잠시 기다리셔서 소생이 동도(??)들을 좀 치료한 후에,
다시 각하께 죽음을 받아도 될런지요?"
"만사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냉면인이 말을 마치고 퇴장하였다.

이때 조민이 서둘러 도착하여, 이 광경을 보고 말했다.

"먼저 양빙 언니를 구하세요."

장무기는 조민의 뜻을 알아서 그녀의 말에 따라 양빙 곁으로 갔
다. 송원교도 친히 가서 부상자를 치료했다.

양빙이 인사불성인 채 깨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흑백의 긴 치마
를 입은 여덟 명의 어린 하녀들은 양측에 서서 모두들 울분이 가득
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장무기는 더이상 남녀지간의 꺼림을 생각지 않고 우장을 양빙의
신유혈에 붙이고 구양신공을 그녀의 체내에 주입시켜 어지러이 흩
어진 진기를 단전으로 끌어들였다. 잠시 후, 양빙이 곧 깨어나매,
장무기는 여러 말할 틈도 없이, 양빙에게 운기조식을 하도록 부탁
했다. 이때 송원교는 이미 유연주를 깨어나게 했으며, 장무기는 곧
명교의 무리로 들어가서 쌍장을 각각 범요와 자삼용왕의 단전대혈
에 붙였다. 대략 차 반 잔을 마실 시간이 지나자, 비로소 두 사람
체내의 '현명신장'의 독이 모두 제거되었다. 두 사람이 막 고맙다
는 말을 하려 할 때, 장무기는 손을 저으며 다시 양소를 구하러 갔
다. 이렇게 네 시간을 분주하게 보내고 나니 겨우 모두에게 초보적
인 치료를 해줄 수 있었다. 양빙, 범요, 자삼용왕, 공문, 유연주
다섯 사람은 공력이 비교적 깊어서, 이 좌선조식 후에 공력을 이미
오 육 할 정도 회복하였다.

조민은 송원교가 생각해 낸 대책을 양빙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고,
양빙은 물론 한 마디로 좋다고 했다. 즉시 여러 사람들이 냉면인의
시선을 가리고 양빙과 장무기는 그들 뒤에서 서로 마주하고 앉아
서, 각자 우장을 내밀어 맞대었다. 양빙은 곧 구음신공을 천천히
끊임없이 장무기에게 주입했다.

장무기는 본래 단지 체내에 약간의 음기를 저장해서, 냉면인과 겨
룰 때 능히 얼마 동안만 지탱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
러나 뜻밖에도 양빙은 전력을 다하여 마치 그녀가 소유한 구음신공
을 모두 장무기에게 보내려는 듯했다. 장무기는 몹시 놀랐다. 그의
손바닥은 양빙에 의해 단단히 끌어 당겨져서 마침내 빼낼 수가 없
었다. 내력을 운행하여 양빙을 떨어지게 하려 했으나, 양빙이 어려
서부터 수련해 온 ?구음진경?은 공력으로 말하자면 장무기와 우
열을 가릴 수 없다고 말할 정도이니, 이렇게 전력을 다하매 장무기
가 어찌 그녀를 대항해 낼 수 있으랴.

장무기는 지극히 감동하여 양빙에게 멈추라고 권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 수 없음이 괴로왔다. 장무기는 몹시도 조급했다. 양빙이
막 부상을 당한 것을 잘 알고 있는데, 또 이처럼 내력을 자신에게
주입해 주니 실로 그 뒷일이 어떠할지 알 수 없었다.

송원교는 한쪽에서 자세히 보고 있다가 곧 손바닥을 뻗어 양빙의
요유혈을 누르고는 즉시 이 혈을 봉쇄하며 동시에 내력을 양빙의
체내에 주입하여 그녀를 위해 요해(箭?)를 보호했다. 송원교는 장
무기가 양빙의 이렇게 많은 내력을 받기를 꺼릴 것이 걱정되어 곧
운력하여 대항하였다. 자신이 양빙의 혈도를 막고 있었기에 장무기
가 수공(?殺)할 겨를이 없어서 도리어 양빙을 상하게 하기는 어려
웠다.

장무기는 진작에 이를 예상하고 있어서 양빙의 내력이 정지되자마
자, 즉시 손을 떼고 좌선을 하여 체내에 구음신공을 수삼음과 족삼
음경맥으로 끌어들였다. 잠시 후, 눈을 떠 보니 송원교가 양빙을
위해 조식을 하고 있었다. 곧 일어나서 아무 말 없이 양빙에게 허
리를 굽혀 절을 하고 막 몸을 돌려 장중을 향해 나아가려 할 때 청
익복왕 위일소가 유령처럼 뒷산으로 날아와서 순식간에 양소 옆에
이르렀다.

위일소는 침울하고 분노를 띤 얼굴에 낮은 목소리로 양소에게 몇
마디 말했다. 양소의 안색이 갑자기 더할 수 없이 참담해지면서 고
개를 돌려 장무기에게 말했다.

"장 교주님, 앞으로 몇 걸음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소생이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장무기는 두 사람의 안색이 이처럼 엉망임을 보고 반드시 교중에
무슨 변고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급히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서
자 양소가 낮게 말하였다.

"교주님, 소생이 추측컨대 냉면인은 반드시 주원장과 관계가 있는
듯합니다."

장무기가 '어'하며 말했다.

"무슨 증거라도 있는지?"

양소가 말했다.

"지금은 아직 없습니다. 처음 뒷산으로 왔을 때 소생이 냉면인에
게 사람이 많아 세력의 막강함을 보고 만일 혼전을 하게 되면 우리
쪽이 그를 대적하기 어려울까 걱정되어 곧 위복왕에게 성화령을 가
지고 가서 가까운 곳에서 명교의군을 모아 오도록 했었습니다. 위
복왕이 환서(??)에서 상우춘 장군과 주원장의 막부서기 이선장을
찾아냈답니다. 두 사람은 병사를 이끌고 급히 달려오려 했으나, 주
원장이 어제 급히 기병을 보내 사령(??)을 전하였는데, 만일 주
원장의 친필 서신이 없으면 누구라도 일병일졸(????)도 이동시
킬 수 없으며, 위반한 자는 즉시 참수형에 처한다고 했답니다."

장무기는 가슴이 두근거리며 일시에 암운이 밀려오는 듯했다. 고
개를 들어보니 휘영청 밝은 중추절 보름달이 벌써 중앙에 높이 걸
려 있었고 머나먼 하늘 끝에 아직 남아 있는 쓸쓸한 별들이 몹시도
적막하고 처량했다.

장무기는 양소, 위일소, 범요, 자삼용왕, 은야왕과 일일이 한참
동안 마주 보고 나서 천천히 말했다.

"지금은 냉면인을 상대하는 일이 긴급하니, 양 교주께서는 준비를
완료하셨는지요?"

양소가 말했다.

"오행기와 천지풍뢰 사문이 모두 이미 접전을 준비했습니다. 그러
나 냉면인 쪽이 우리측보다 일천여 명이 많으니 중과부적으로 잠시
후 다시 겨루게 되면 확실히 필승할 자신이 없습니다."

장무기가 심사숙고하고는 말했다.

"여러분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곧 돌아오겠습니다."

말을 마치고는 몸을 돌려 양빙에게로 갔다. 이때 양빙은 이미 정
신을 차렸으며 장무기는 굳이 예를 차리지 않고 직접 양빙에게 물
었다.

"양 누님, 이 상자들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정말로 옥봉과 호봉입
니까?"

양빙이 말했다.

"맞아요. 나는 진작에 냉면인이 틀림없이 좋은 마음을 품었을 리
가 없다는 것을 알고 옥봉과 호봉을 모두 가지고 왔어요."

양빙은 장무기의 얼굴에 주저하는 기색이 있음을 보고 말했다.

"소취(蹂?)야, 네가 물약을 영웅분들에게 나누어주어 머리에 떨
어뜨리도록 하여라."

소취가 대답했다. 몇 명의 하녀들이 나무상자에서 수많은 작은 병
을 꺼내어 영웅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작은 소리로 몇 마디 당부했
다.

양빙이 말했다.

"병 속에 들은 것은 바로 견우화와 호접분의 혼합액체입니다. 호
봉은 견우화를 꺼리며 옥봉은 호접분을 꺼립니다. 머리 위에 몇 방
울 떨구기만 하면 무사할 것입니다."

장무기가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무림차생이 모두 양 누님의 고정후의(俗盡馮琮)에 의존합니다!"

양빙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호봉은 바로 장 대협께서 저에게 준 것입니다."

장무기는 그녀가 공로를 드러내길 원치 않음을 알고, 곧 양소 등
에게 자세히 설명했으며, 모두 희색을 띄었다. 그러나 자삼용왕이
말했다.

"비록 그렇게 하여도 또한 쉽게 대적할 수는 없을 것이오. 만일
냉면인이 다급하여 한 차례 모험이라도 걸어올지도 모르니 모두들
조심해야만 합니다."

모두들 이 말이 지극히 옳다고 생각했다. 장무기가 곧 몸을 돌려
장중에 나가서, 큰소리로 말하였다.

"소생 장무기는 냉면인 각하께서 양보해 주시어 대단히 감사합니
다. 이제 많은 형제들의 상처가 이미 치료되어, 소생이 이렇게 나
와서 죽음을 받으려 합니다."

장중의 만여 명은 몹시 시끌벅적했었으나, 장무기가 출장하자 사
방이 일시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불빛에 비친 장무기는 허리에
팔십 근이나 되는 도룡보도를 차고, 체구가 장대하고 돈후하며, 전
신에서 영기(苧褶)가 넘쳐흐르고, 표정에는 약간의 총기를 띤 듯이
보였다. 장무기는 지금 이미 삼십을 넘었으며, 이전보다 또한 다소
신중한 모습이 늘어 있었다.

송원교, 유연주는 서로 바라보며 실로 생각지도 못했던 오사제 장
취산의 외아들이 마침내 이토록 뛰어나게 성장한 것을 보고, 모두
감개무량했다. 그러나 장무기가 곧 냉면인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표정들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암암리
에 혼신을 기울여 경계하며 만일 장무기에게 어떤 위험한 상황이
출현하기만 하면 비무(旭俉)의 규율이 어떻든 간에 부득불 그것을
어기고서라도 필경 사람을 구해 내는 것이 더 긴요하다고 생각했
다.

바로 이때, 냉면인도 느린 걸음으로 장중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흑의를 걸치고, 얼굴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아무런 표
정없이 말했다.

"장 교주,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 몸 수하의 부상자들도
대부분 회복했습니다. 장 교주가 비록 이 몸을 위해 수처의 현관
(??)을 뚫어 주었으나, 영부인께서는 오히려 당신에게 술수를 쓰
도록 해서 이 몸이 내상을 입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몸과 당신은
누구도 서로에게 빚진 게 없으니 쌍방이 깨끗하다고 할 수 있겠구
료."

장외의 군웅들은 모두 장무기가 협박당한 일을 몰랐기에 냉면인의
말을 듣고는 다들 서로 어깨를 들썩이며 놀라서 영문을 몰라 했다.

장무기는 여전히 예의를 잃는 것을 원치 않아 허리를 굽혀 절하며
말했다.

"각하께서 누차 사정을 봐 주시니, 소생은 대단히 감사합니다."

냉면인이 더 참지 못하고 말했다.

"당신도 일찌기 이 몸에게 사정을 보아 주셨지요. 우리는 오늘 결
코 옛일을 나누러 온 것은 아니지요. 장 교주, 당신은 아직도 그
천 초의 효력을 믿고 있는지요?"

장무기가 말했다.

"소생이 어찌 감히 그리 방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일은 소생
으로서도 정말 부득이한 것입니다. 각하의 신공으로 천하의 영웅들
이 이미 모두 견문을 넓히었으니, 소생은 생각컨대 결코 각하의 적
수가 못 될 것입니다. 만일 각하께서 기꺼이 무리를 이끌고 하산하
신다면, 어찌 무림중생의 복이 아니겠습니까?"

이 말을 함에, 그 뜻을 아는 자는 장무기가 재삼 거절하고 겸양하
다고 말했고 모르는 자들은 장무기가 당황하고 주눅들은 것이라고
말했다.

금새 수백 명이 소란을 피웠다. 냉면인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서
냉전(?祉)같은 눈빛을 소란스러운 곳으로 쏘아 댔다. 눈빛이 닿는
곳의 군웅들은 모두 간담이 서늘해져서 고개를 숙였다. 어찌 감히
소리를 내겠는가. 냉면인이 냉담하게 장무기에게 말했다.

"이 늙은이는 이미 준비를 하고 왔으니, 장 교주가 더 말해도 소
용이 없습니다. 오늘 만일 이 늙은이에게 귀순하지 않는 자가 있다
면 흥, 누구도 살아서 하산할 생각은 하지도 마시오!"

장무기가 낙담하여 말했다.

"그러시면, 소생이 먼저 죽음을 받도록 하지요."

말을 마치고는 도룡도를 천천히 꺼내며 참담한 표정으로 가슴 앞
에 칼을 세우고 정신을 집중하며 시작을 기다렸다.

광장의 사람들은 적우(?定)의 구분 없이 당세의 양대 고수가 곧
상대할 것을 보고 모두 마음을 졸이며 손에 땀을 쥐었다.

장무기는 냉면인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위엄 있게 서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신분을 자중하여 결코 선행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을 알고
말했다.

"실례합니다!"

말을 끝내며 도룡도를 냉면인의 가슴을 향하여 느릿느릿 뻗어갔
다.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 사양하실 것 없소이다."

'없소이다'를 막 끝내고 나서, 냉면인의 신형이 사납게 움직이며,
눈 깜짝할 사이에 바로 이, 칠, 십 사 장(雋)을 쳐냈다. 장무기의
신법 또한 전혀 뒤지지 않아서, 냉면인을 따라 공수(受艤)와 진퇴
를 맞추었다. 보도의 예리함이 두려워 냉면인의 십 사 장은 모두
중도에서 곧 거두어졌다.

냉면인이 돌연 '아이구'하며 사납게 소리쳤다.

"장무기, 네가 어떻게 '구음진경'을 수렴했지?"

장무기는 '하하'웃으며 말했다.

"각하(께서) 기우(?瀞)를 얻은 이상, 소생이 무엇 때문에 하지
않겠습니까?"

말은 비록 이렇게 했어도 속으로는 몹시 놀라고 의아했다. 자신은
막 그와 겨루기 시작하여 아직 출장(出雋)하여 대항하지도 않고 그
저 칼을 휘둘러 막았을 분인데 뜻밖에도 냉면인에게 단서를 보이고
말았으니 이 사람은 확실히 대단했다.

냉면인은 장무기를 상대하지 않고 몸을 돌려 장외를 보더니 돌연
양빙을 주시하며 말했다.

"양빙, 언제 장무기 녀석과 내통했지!"

이 말이 나오자 즉시 질책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양빙의 여덟
명의 하녀와 소소 등의 여자들이었다. 양빙은 개의하지 않고 그저
무심하게 웃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냉면인은 장무기를 응시하면서 한참 후에 말했다.

"장 교주는 금생에 정말로 도화살이 꼈군. 흐응, 다만 여자들이
결국 꾀임에 빠지게 될 게 걱정일 뿐이지......"

장무기는 그가 뜻밖에도 천하 영웅들의 면전에서 이런 말을 뱉어
내자 마음이 대단히 조급해져서 다만 그가 다시 무슨 좋지 못한 말
을 꺼내서 양빙 등의 깨끗한 명예를 더럽힌다면 어찌 처리할 수 있
을지가 걱정될 뿐이었다. 즉시 칼을 칼집에 꽂고서 말했다.

"각하는 안식이 대단하군요. 각하와 소생이 모두 '구음진경'과
'구양진경'을 수련했음에도 소생이 다시 보도의 예리함에만 의지하
여 천하영웅을 조소와 멸시를 받게까지 만들었습니다. 우리 몇 장
을 겨루어서, 서로 배운 바를 보는 것이 어떠한지요?"

장외에서 당장 어떤이가 말했다.

"장 대협, 별 말씀 다하십니다. 그 같은 간신배와 싸우시는데, 뭘
주저하십니까?"

냉면인은 모르는 체하며 말했다.

"장 교주, 당신은 수화상제(?飄爲?)의 날이 아직 이르니 역시
칼을 뽑아서 천하의 여자들의 상......"

장무기는 그가 말을 채 끝내기 전에, 벌써 쌍장을 내리쳤다. 냉면
인은 음양의 상반된 두 줄기 진기가 이미 문면(??)까지 압박해
옴을 느끼며 장무기의 공력이 도대체 어떠한 경지인지 참으로 경이
로왔다.

이렇게 하여, 그는 '상심하지 않도록 하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였
다. 그러나 군웅들은 진작에 온통 떠들썩해졌다. 천하영웅들은 모
두 주지약과 조민의 우스운 일을 알고 있었는데 거기에 지금 다시
자태가 단아하고 아름다움이 마치 선녀같은 양빙까지 더하니, 냉면
인의 말도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로 인해
원래 긴장되었던 심정들이 훨씬 느슨해졌다.

조민은 냉면인의 이 말을 듣고는 벌써부터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
로 화가 나서 아리따운 몸이 약간 휘청거렸다. 소소가 황급히 조민
을 부축하며 말했다.

"언니, 이런 허튼 소리에 상관해서 뭐하겠어요!"

조민은 고마워하며 그녀를 보았다. 두 사람은 곧 눈길을 돌려 장
중을 바라보았다.

장무기는 쌍장이 막 냉면인의 쌍장과 부딪치자, 즉시 전신에 엄청
난 한기를 느끼며 몹시 놀랐다. 냉면인이 겨우 한 달 남짓의 시간
에 내상을 완전히 원상으로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공격 역시 갑자
기 한층 증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만일 양빙이 방금 힘을
다해 돕지 않았다면 장무기는 이미 지탱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계
속해서 장무기는 신체 왼쪽의 한기가 심상치 않으며, 체내의 구음
진기의 기류가 갈수록 정체됨을 느꼈고 잠시 후엔 곧 자신을 지키
기 힘들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장무기는 무리하게 구음진기
를 응집시켜서 냉면인의 우장의 노궁혈에 투입했다. 겨우 수촌(寸)
이 통했으나 냉면인이 이미 알아차리고는 곧 음양이기를 이동시켜
조금씩 조금씩 장무기의 내력을 몰았다. 누차 내력을 촉진시켰음에
도 불구하고, 일 보(?)도 나아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절
절히 패퇴(?針)했으며 곧 자신의 체내로 되돌려 보내질 참이었다.

장무기의 얼굴은 마치 불꺼진 재 같았으며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
러내렸다. 송원교와 유연주는 이미 상황이 잘못 되었음을 알아차리
고는 자신도 모르게 장중으로 몇 걸음 나아갔다. 상대방의 홍발노
인과 현명이로도 이를 보고 역시 앞으로 걸어 나왔다. 만일 송원교
등이 시작하기만 하면 그들도 즉시 뛰어나와 막을 것이었다.

장무기는 대단히 황급해졌다. 내력이 노궁혈로 밀려 나가기만 하
면 냉면인은 준비가 되어 있어 막아낼 것이다. 다시 여기에서 밀고
들어가려 해도 전혀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자신이 만
일 패배한다면 장중의 영웅들도 틀림없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지만
자신이 목숨을 건다면 눈앞의 피비린내 나는 학살은 면할 것이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 갔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두 눈을 꼭
감았다. 일시에 가슴이 공허해지며 맑아졌고 흩어짐이 없었다. 우
장의 내력으로 세심히 찾으니 여전히 냉면인 체내의 음양이 교차하
는 곳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그리 분명하지는 않았으나 전혀 일
체로 융합되지 않아서 종전의 추측이 틀림없이 실증(稔釵)했다. 장
무기의 내력이 이 박약(?恣)한 곳을 맹공하니, 마침내 다시 몇 촌
을 전진했다.

냉면인은 이미 장무기의 의도를 알아차리고서 곧 체내의 진원을
이동하여 음양이 상접하는 곳을 끊임없이 동요시킴으로써 장무기가
확실히 간파할 수 없게 했다.

그러나 장무기가 냉면인의 약점을 찾아낸 이상 어찌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겠는가. 곧 정신을 집중하여 쫓으며 매우 강한 구양진기
가 꽉 붙어 있는 냉면인의 음양상합의 곳을 놓치지 않았다. 냉면인
의 진기의 격동에 따라 장무기의 구양신공 역시 쉬지 않고 요동했
다.

냉면인은 이때 이미 장무기가 팔꿈치 부위까지 투입한 진기를 몰
아낼 방법이 없었으나 장무기 또한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쌍방이 이렇게 대치하고 있었다.

장무기는 신체 좌측이 갈수록 써늘하고 굳어지며, 혈행(??)이
더욱 지체됨을 느꼈다. 혈액이 일단 굳어지게 된다면, 양빙이 자신
에게 주입해 준 구음진기 또한 곧 운행할 수 없을 것이다. 냉면인
의 좌장은 자신과 서로 버티어 한치의 양보가 없었으나, 우장은 오
히려 점점 우세를 차지했다. 이렇게 계속 버텨 나간다면 장무기는
전혀 승산이 없었다.

장무기는 일찌감치 오늘은 온전히 물러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서
처음에는 패중구승(?猖穗彛; 패배 중에서 승리를 구하다)을, 최후
에는 양패구상(自??轅: 쌍방이 모두 손상을 입다)을 각오했다.
냉면인을 출장할 수 없게만 한다면 자시 편의 송원교 등이 곧 안전
하게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순식간에
좌장의 구음진기를 모두 철회하고 일부분만 남겨서 심폐(入?)를
보호하며 나머지는 신속하게 우장을 맞추어 재빨리 냉면인의 체내
를 향하여 공격해 갔다.

냉면인이 한창 전력을 다하여 장무기와 필사적으로 내력을 겨룸에
장무기가 뜻밖에도 이런 하책(台梢)을 쓰리라 어찌 상상이나 했겠
는가! 전광석화지간에 냉면인 우장의 음기가 아무런 장애도 없이
곧장 장무기의 체내로 밀려들었으며 단지 심폐 두 곳에서 약간의
저항에 부딪쳤을 뿐으로 뜻대로 되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약간
흩어졌다. 고수끼리 서로 겨루니, 어찌 조금이라도 소홀할 수 있으
랴. 바로 이 일 분 일 초를 다투는 긴박한 순강에 장무기의 내력이
냉면인의 수궐음과 족궐음의 두 경맥 사이에서 음양 두 진기의 결
합부 몇 곳을 찾아냈다.

냉면인은 질겁을 하며, 당장 장무기의 심맥을 진단(?十)해야만
하며,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지극히 힘들 것임을 알아차렸다.
장무기가 남겨 두었던 심폐이경(入???)의 진기가 비교적 적었었
기 때문에 냉면인이 작정을 하고 내력을 세차게 밀어부치니 어떻게
막아낼 수 있으랴!

바로 이 위기일발의 순간에 장무기가 반 보 먼저 건곤대나이심법
을 운기하여 냉면인 체내의 요해 부위 세 곳에서 음양이기를 격동
시켜 대항케 했다. 냉면인은 구음 혹은 구양의 내공을 막론하고 현
재 모든 최상급의 고수들을 막아낼 수 있었다. 이렇게 싸우며 만일
양대 고수가 서로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면 당연히 양패구상하게 되
는데, 더구나 이는 바로 냉면인의 체내에서의 싸움이었다.

'왝'하며 냉면인이 뜨거운 피 한 모금을 장무기의 얼굴에 뿜어냈
다. 곧이어 다시 '왝' 소리가 나더니, 장무기의 입 속의 선혈이 냉
면인의 머리에 사납게 뿜어졌다. 두 사람은 동시에 뒤쪽으로 쓰러
졌다.

송원교, 유연주, 양소, 범요, 자삼용왕, 청익복왕, 공문대사, 홍
발노인, 현명이로, 세 명의 서역인이 동시에 급히 나아가서 각각
장무기 냉면인을 재빨리 옮겨갔다.

송원교와 유연주는 이미 혼절한 장무기를 바닥에 똑바로 눕히고
서, 송원교의 손바닥으로 장무기의 전중혈을 막고, 유연주의 손바
닥으로 장무기의 기해혈을 눌렀다. 두 노도(??)는 안색이 굳은
채, 눈을 감고 운력하여 장무기를 치료했다.

조민은 장무기의 온 얼굴이 선혈로 가득하고 인사불성인 것을 보
고 실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어 '무기'하고 부르고는 곧 뒤
로 쓰러졌다. 소소는 민첩하게 조민을 손으로 덥석(?=덥썩) 떠받
쳤으며, 조민이 기절할 정도로 애태우는 것을 보고 양빙과 양불회
등이 그녀를 둘러싸며 한바탕 허둥거렸다. 원래 장무기가 비록 냉
면인보다 먼저 발공(烏殺)했으나, 냉면인이 장무기를 사지(??)에
몰아넣고 자구(株狩)를 얻으려 했기 때문에 체내에 이미 극진(?
?)이 발생하여 장무기의 심폐 두 곳에 세차게 밀어닥친 냉공이 세
력을 잃고 비록 완만해졌다 해도 여전히 장무기의 심폐 양맥을 손
상시킨 것이다.

심폐 양맥은 인체의 가장 관건이기 때문에 이 당세의 양대 고수들
이 마침에 동시에 중상을 입고 모두 피를 토하며 혼절한 것이었다.

군웅 중에서는 냉면인고 장무기, 이 양대 고수가 서로 겨루면, 그
무공이 반드시 사람들의 식견을 크게 높여 줄 것이라 말하여, 두
사람이 맞붙어 수회가 되기 전에 곧 필사적으로 내공으로써 상대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비록 충분히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모두들
망연자실해 했다.

이때 장중의 적과 아군 쌍방의 세력이 곧 바뀌어서, 냉면인과 장
무기가 동시에 손상을 당하여 더이상 출장할 수 없음을 보고 군웅
들은 모두 승리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말하며 희색(盒兪)이 만면(?
?)했다. 다소 노련하고 신중한 이들은 냉면인 뒤쪽의 소리하나 없
이 조용한 수천 명을 바라보며 여전히 엄숙한 표정이었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장무기를 문안 와서 장무기가 아직도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못하여 공문대사와 양소가 그를 위해 치료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송원교와 유연주는 한 쪽 옆에 앉아 좌선조식을 했으
며, 이는 방금 장무기를 대신하여 조식하느라고 두 도장의 내력이
크게 소모된 까닭이 분명했다. 모두들 이번의 비무(旭俉)가 어떤
결말을 거두게 될지 궁금해하며, 청산의 심야 중에 조용히 앉아 고
개를 들어 머리 위에 높이 걸려 있는 만월을 바라다보았다.

두 시간 후, 홀연 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천하의 영웅들, 참으로 이 늙은이에게 귀순하길 원치 않는가?"

모두들 대경실색하여 의아해 하며 서로 쳐다보았다. 그 사람은 바
로 냉면인이었다. 군중들은 방금 전에 그가 분명히 중상으로 피를
토하며 혼절하여 쓰러진 것을 보았는데, 뜻밖에도 그가 두 시간 내
에 곧 회복하리라 누가 예상했으랴. 이때는 사방이 쥐 죽은 듯 조
용했으며 비록 명월이 밝게 비추고 횃불이 환하게 타고 있었지만
뒷산에 모여 있던 만여 명의 강호호객들은 모두 전신을 벌벌 떨며
마치 귀신을 만난 것 같았다.

바로 이때, 장무기도 깨어났다. 유연주가 가볍게 숨을 내쉬며 그
에게 운기조식하도록 하고 자신은 몸을 돌려 장중으로 나가서 말했
다.

"냉 시주의 신공이 세상을 뒤흔드니, 빈도는 그저 탄복할 따름입
니다. 그러나 강호 각문 각파 모두 독자의 역사연원을 가지고 있으
니, 빈도가 실례를 무릅쓰고 외람 되게 냉 시주께 가르침을 베푸시
길 청합니다."

냉면인의 쉰 목소리가 밤하늘에서 들려 오매, 지극히 괴이하게 느
껴졌다. 단지 그의 말소리만 들렸다.

"이 몸은 지금 이미 유도장의 맞수가 아니오."

유연주가 약간 멍하더니 곧 말했다.

"아마도 시주 수하에 아직 고수들이 있을 테니, 나와서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냉면인이 말했다.

"이 몸은 이미 도장의 고수들을 대적할 수 없소이다."

유연주가 어안이 벙벙하여 그 자리에 서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어리석음을 용서하시고, 시주께서 지시를 내리시길 바랍니다."

냉면인이 엄하게 말했다.

"궁수(恂?)는 어디 있느냐?"

'쏵'하는 소리와 함께 사면팔방에서 갑자기 수천 명이 튀어나와서
군웅들을 겹겹이 둘러쌌다. 그들은 모두 목가(迎?)를 한 대씩 밀
로 있었으며 목가마다 모두 수십 개의 화살촉이 실려 있었다.

수천 명이 동시에 대답했다.

"궁수, 대령했습니다!"

말을 마치고 목가를 밀며 천천히 나아가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까지 들어간 후에 멈추었다. 활시위에 얹힌 수만 개의 화
살이 중간에 둘러싸인 군웅들을 차갑게 마주하고 있었다.

장송계가 몹시 놀라며 말했다.

"주원장의 비노대(??昻)!"

양소 등이 크게 놀라며 급히 말했다.

"장 도장, 단정할 수 있습니까?"

장송계가 말했다.

"빈도는 냉면인이 주원장과 관계가 있는지를 추적 조사하기 위해
서 전에 명군 속에서 수개월을 머문 적이 있습니다. 비노대는 바로
주원장이 창안해 낸 것으로 기타 각 지방의 의군과 원군(?琡)은
이런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저들의 것은 바로 주원장이 만
든 것과 완전히 똑같습니다."

명교의 모든 이들의 얼굴빛이 참담해졌다. 양소가 이를 갈며 얘기
했다.

"오행기는 제자리로 돌아가고, 천지풍뢰 사문은 동서남북 사방을
점검해라!"

명령이 내려지자, 오행기는 금, 목, 수, 화, 토(?, 迎, ?, 飄,
勅) 오행의 방위에 따라 서고 천지풍뢰 사문은 동서남북 사방에 따
라 서서 군웅을 장중에서 보호하며 냉면인의 수하들과 마주했다.
그러나 사람 수가 훨씬 적어서 만일 냉면인이 명령을 내리기만 하
면 오행기와 천지풍뢰 사문은 아마 누구도 목숨을 보존하지 못할
것이었다.

냉면인이 말했다.

"양 교주, 늙은이의 말 좀 들어보시오. 명교의 몰락은 조만간의
일이니, 공연히 수천 명의 목숨으로 천명(?鹽)을 위배하는 일을
할 필요는 없소이다."

양소가 말했다.

"명교가 몰락할지 안할지는 응당 하늘이 정하는 것이니 귀하께서
마음 쓰실 것 없습니다."

말을 끝내고 무리들을 뛰어넘어서, 오행기와 천지풍뢰 사문의 교
중 앞에 섰다. 나머지 명교인들도 교주가 몸소 앞장서는 것을 보
고, 모두 양소의 좌우에 따라 섰다.

군웅들은 명교가 이처럼 정의를 받드는 것을 보고 곧 수백의 영웅
호걸들이 오행기와 천지풍뢰 사문이 서 있는 곳으로 가서 수만 개
의 장전(只旨)을 마주했다. 모두 냉면인이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비처럼 퍼부을 화살 속에서 목숨을 유지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의(暗琮)가 있는 곳에서 다들 죽음을 집
에 돌아가는 것 같이 여기며 두려워하지 않았다(溺?醬崇).

바로 이때, 장무기는 이미 조식을 끝내고, 잠시 주위를 훑어보고
는 곧 눈앞의 군웅들의 상황을 이해했다.

"냉면인, 당신은 무엇이 안타까워서 이런 옥석구분(???于: 착
한이와 악한이가 함께 화를 입다)의 짓을 하는가?"

냉면인이 괴이하게 웃으며 말했다.

"장 교주, 오늘은 광명정에 있는 것이 아닐세. 늙은이는 예전에
호쾌하게 패배를 인정했는데, 장 교주는 오늘 어찌 조금도 굴복하
지 않고 온전한 몸으로 물러나려 하는가?"

장무기가 말했다.

"소생이 보아하니 오늘도 예전 광명정에서와 비슷합니다. 각하는
언제나 백 가지 치밀함 중에 한 가지를 소홀히 하니(王??倫, ?=
胤), 소생은 실로 각하를 대신하여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냉면인이 '어'하며 말했다.

"자세한 것을 듣길 원하오!"

장무기가 말했다.

"각하께서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면, 우리 편은 어떤 법문도 섣불
리 사용할 리 없으며 더욱이 먼저 공격할 리 없소. 각하께서 하산
을 원하신다면, 소생이 물론 공손히 배웅하겠습니다."

냉면인이 말했다.

"'공손한 배웅' 운운하니, 이 몸이 정말 황송하오이다. 장 교주께
서 어떤 법문이 있는지 좀 들어보는 것도 괜찮겠소이다."

장무기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양빙 누님, 한 곡 연주해 주시는 것이 어떠한지요?"

양빙이 말했다.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손을 한 번 저으니, 소취 등 팔 명의 소녀들이 신속하게 이십여
개의 벌통을 열었다. 일시에 소금(淪?, ?=崙)을 합주하매, 그 소
리가 확실히 천상의 선악(??)같이 청아하고 수림의 기운이 더하
니, 모두들 마침내 매혹되어 정신없이 듣고 있었다.

이 미묘한 음악 소리 중에, 어렴풋이 '윙윙'소리가 갈수록 커져서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밝은 달빛 아래 어슴푸레 일백일흑(?汪?
閒)의 두 무리의 물체가 냉면인과 그 부하들의 머리 위에서 떠들고
있었다. 시력이 다소 좋은 이들은 이미 이 흑백 두 무리의 물체가
바로 벌떼임을 똑똑히 보았다.

장무기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각하께서는 틀림없이 백색의 벌이 옥봉이고 흑색은 서역 호봉임
을 모르실 리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 음악은 이들을 이끄는 것
에 불과할 뿐이니, 만일 동시에 칠, 팔 대를 쏘이게 되면, 아마도
결과는 차마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 귀인(崧?)은 잘 잊어버리지요. 서역의 심산에 ?왕난
고독경? 한 권을 감춰 놓지 않았는지요? 이 늙은이가 한가할 때
가끔 몇 번 뒤적여 봐서 다행히 아직 옥봉과 호봉의 해법을 기억
하지. '결과는 차마 상상할 수 없다'는 말은 오히려 장 교주께 삼
사 돌려드립니다."

장무기가 말했다.

"설사 각하께서 해법을 안다 해도, 이 짧은 시간에 어찌 그 많은
해약을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각하께서 벗어날 수 있다 해도, 당
신 수하의 이 수천 명의 생명은 매우 단언하기 힘들 것입니다."

냉면인은 '하하'하고 기묘하게 몇 번을 웃더니, 갑자기 목이 쉬도
록 고함을 질렀다.

장무기는 몹시 놀라며 사람들 틈으로 날아오는 두 개의 화살을 막
아냈는데 귀에는 온통 참혹한 신음소리가 청산협곡 사이로 울려 퍼
지는 것만 들릴 뿐이었다. 장무기는 자세히 볼 여유가 없었다. 냉
면인이 홍발노인, 현명이로 등 마두를 이끌고 산 아래로 달려가는
것을 보고, 급히 쫓아가다 홀연 송원교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무기야, 그들을 가게 놔둬라!"

장무기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리어 그제사 겨우 장중에 이미 무
수한 시체가 뒹굴고 있고 그 참담한 상황이 목불인견(零寓??)임
을 똑똑히 보았다.

또한 군산심처(潚雲??)에서 심폐를 찌르는 울부짖음이 간간이
전해 오니 바로 냉면인 수하의 궁수들이 옥봉과 호봉에게 쫓겨 칠
흑 같은 밤 속에서 온 산을 이리저리 달아나는 것이었다.

장무기가 말했다.

"양 누님, 옥봉과 호봉을 불러들일 수 있는지요?"

양빙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덟 명의 흑의, 백의 소녀들이 소금을
불었다. 더없이 미묘한 음악 소리 사이로 더없이 극심한 고통의 신
음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장무기는 고개를 들어 멀리 밝은 달을 바
라보았는데, 가슴 속의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한판으로 군웅들은 거의 한바탕의 화살 비에 절반 이상이나 사
살(?垣) 당했다. 만일 옥봉과 호봉이 궁수들을 공격하지 않았다면
결과가 어떠했을지 실로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수천 명이 넘는
궁수들의 이 한 차례 광분으로 또한 무당산산에 얼마나 많은 시체
가 나뒹굴며 부패하게 될지 참으로 알 수 없었다.

장무기가 다시 양빙에게 말했다.

"양 누님, 정말로 해약을 가지고 있어요?"

양빙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 진작에 장 대협이 틀림없이 선심을 크게 베풀 줄 알고 충분한
해약을 준비했지요."

곧 소취 등에게 각각 벌에 쏘인 궁수들을 구하러 가도록 분부했
다.

이때 장중은 온통 혼란스러웠으며, 부상을 입지 않은 자들은 부상
자들을 치료하느라 바빴다. 다행히 장중의 군웅들은 신상에 모두
금창약을 준비하고 있어서, 잠시 붕대를 감으면 괜찮았다.

양소가 충혈된 눈으로 장무기에게 보고했다.

"교주, 오행기와 천지풍뢰 사문이 절반 이상 손상을 입었습니다.
교주께서 무슨 분부가 있으신지 여쭙겠습니다."

장무기는 눈언저리가 빨개지며, 오행기와 천지풍뢰 사문이 최전선
에서 대항했기 때문에 사상자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고서 즉시
물었다.

'양 형님, 부상당한 형제들은 모두 구해 냈는지요?"

양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치료하고 있습니다. 교주, 제가 방금 몇몇 부상당한 궁수들
을 심문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연해 일대의 사람들로, 명군에 참가
하지 않았고 냉면인이 임시로 거금을 들여 모집해 온 것이었습니
다. 그들은 모두 그 목가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릅니다."

그때 갑자기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장무기에게로 다가와 무릎을 꿇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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