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외전 5

3학년2반 | 2022.02.28 07:38:40 댓글: 0 조회: 519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1680

제 12장 : 파양호에 붉은 빛이 비치다.
장무기는 조심스럽게 보고, 곧 이 수백 명은 바로 개방, 곤륜파,
공동파, 화산파 등의 사람들임을 알았다. 갑자기 그들이 냉면인이
조제한 '칠충칠화고'를 복용한 것이 상기되었으나, 장무기는 곧 지
극히 난처해졌다. 눈을 돌려 조민을 보았지만, 그녀도 묵묵히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전혀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장무기는
이 수백 명이 땅에 꿇어앉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황급히 말했
다.

"여러 영웅분들, 일어나십시오. 제가 마땅히 전력을 다하겠습니
다."

모두들 장무기가 무공으로 논하자면 천하에 능히 필적할 이가 드
물며 의술로 논해도 역시 천하 제일이라고 말할 수 있음을 알고 있
었다. 그가 구제해 주겠다고 대답한 이상, 그의 손이 닿기만 하면
반드시 독이 빠져나갈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들은 일시에 모두
일어나며, 감사의 말이 끊이지 않고 했다.

송원교는 장무기가 망연자실할 뿐 대책이 없음을 보고 말했다.

"무기야, 정말 자신이 있느냐?"

장무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왕난고독경]의 기재에 의하면, 칠충칠화고는 독충 칠 종, 독화
(??) 칠 종으로 찧어서 바싹 달여 만듭니다. 중독자는 먼저 내장
이 근질근질함을 느끼며 마치 칠충(?蟲)이 무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낀 연후에 눈앞에는 곧 오색찬란한 변화가 진기하게 나타나서 마
치 칠화(??)가 비산하는 듯합니다. 칠충칠화고에 쓰는 칠충칠화
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남북이 다르며, 대개 가장 영험한 신효(佚
?)를 가진 자가 모두 사십 구 종의 조제법을 가지고 있으며, 상대
방이 바뀜에 따라 다시 육십 삼 종이 되는데 이것은 반드시 시독자
(荑?柱)가 친히 해독해야 합니다.

송원교 등이 아연실색하여 물었다.

"한번 해 볼 수 있겠느냐?"

장무기가 말했다.

"이 독을 해독하려면 전부 이독공독(??受?)에 의지해야 합니
다. 만일 이 십 사 종의 독약과 조제량이 조금이라도 부정확하면,
해약을 복용한 것이 독에 독을 더하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어 즉시
생명을 잃게 됩니다."

장무기는 그 자리에 서서, 이 수백 명이 일 개월 후면 곧 독이 퍼
져 죽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그저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한다는
사실에 참담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냉면인이 저지른 일이 이리
도 악랄함에 생각이 미치매, 장무기는 그저 자신의 무력함을 원망
하게 되었고, 이렇게 곤란한 일은 그만 두고 싶으며 군중들에게 지
접 자신이 이 독약을 제거할 능력이 없음을 인정해야겠다고 생각했
다.

이때 개방의 장봉용두의 말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이 사람에게 한 가지 방법이 있으니 이,
삼백 명의 목숨은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요."

당장에 어떤이가 이어 말했다.

"야, 이 사람아! 뭘 그렇게 변죽만 울리고 있나. 뀔 방귀면 빨리
뀌라구!"

장봉용두가 말했다.

"중독자는 적어도 사백여 명이 될 것입니다. '칠충칠화고'는 모두
백십 이 종의 조제법이 있으니, 그렇다면 우리 제비뽑기를 합시다.
먼저 백십 이 명을 선출하여 장 대협에게 시험해 보도록 하면 결국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 죽고 누가 사는지는 우리
모두 천명에 맡깁시다!"

이 말에 장무기가 막 반대하려 하는데, 수십 명이 좋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말했다.

"아마도 장 대협은 몇 사람 시험할 필요도 없이 곧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 제비뽑기에서 전후 순서를
명백히 하여야만 됩니다."

모두들 호응했다. 장무기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소인은 쓸데없이 명성만 높을 뿐이지, 어찌 감히 여러분의 생명
을 가지고 시험을 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시험을 하려면 반드시
독이 발산하는 날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발산 시간이 너무 짧아서
시험할 겨를이 없습니다."

소소가 말했다.

"혹시 토해 낼 수는 없을까요?"

한 사람이 말했다.

"그 방법은 저희들이 벌서 시험해 보았습니다. 도대체 냉면인이
어떤 괴상한 짓을 했는지 몰라서, 제가 직접 담즙을 모두 토해 내
보았으나, 아무리 해도 그 사람 잡을 환약은 없었습니다."

상승왕이 말했다.

"방금 중독된 영웅들 중에 이미 죽은 이가 있습니다. 어째서 그의
위장을 한번 해부해 보지 않겠습니까? 만일 약낭의 성분을 알 수
있다면, 스스로 방법을 강구하여 환약을 토해 내든지 혹은 대변으
로 배출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오히려 약이 퍼질 때
까지 기다려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장중에 가득한 강호호객들은 얼굴이 모두 새파랗게
변하는 것을 본 상승왕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원래 페르시아
일대에서는 의사들이 사자(?柱)의 사인을 알아보기 위해 자주 시
체를 해부하여 검사하기 때문에 이러한 방법은 페르시아에서는 매
우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중토 인사들은 오히려 인체의 완전
함을 중요시해서, 모두들 사람은 비록 죽었더라도 사자의 영혼이
그 사람의 몸에 붙어 있기에 만일 시체에 대해 불결한 일을 하면
그로 하여금 사는 것도 불가능하고 죽음도 얻을 수 없게 한다고 믿
었다. 이러한 관념은 중국인 사이에서 매우 뿌리가 깊은 것이어서
상승왕의 이 말은 확실히 엄청난 충격이었기에 장중은 온통 적막에
싸였다.

한참 후에 장봉용두가 말했다.

"장 대협, 이 사람이 무력하여 방주(玉嵯)를 보호하지 못하여 방
주로 하여금 냉면인의 독에 걸리게 만들었으니 원래 일찌감치 스스
로 목숨을 결단냈어야만 옳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장 대협이 이
사람의 배를 갈라서 약낭의 성분을 밝혀서 폐방의 방주 및 여러 영
웅들이 이 독을 해독케 해주십시오. 그리되면 이 사람이 내세에 가
서 틀림없이 장 대협의 대은대덕(暗組暗鴦)을 잊지 못할 것입니
다."

그러자 여섯 개의 포대를 짊어진 개방제자가 한 사람이 무리를 뛰
어 넘어 나와서 말했다.

"장봉용두는 폐방의 장로로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몸입니다.
소인이 장봉용두를 대신하여 죽길 원합니다."

말이 막 끝나자 또 한 사람이 큰소리로 말했다.

"이 몸은 무능무덕(午?午鴦)하여 세상에 사는 것이 진작부터 쓸
모사 없었습니다. 육대 장로께서는 공로를 이 놈에게 양보하십시
오."

곤륜파, 공동파, 화산파는 뜻밖에도 개방에 이토록 수많은 기개있
는 대장부들이 있음을 보고 그들도 또한 당장 수십 명이 나서며 죽
기를 원했다.

장무기는 이 상황을 보고는 십분 감동하여 곧 목이 메인 소리로
말하였다.

"여러 영웅들의 호의에 감사드리며, 응당 전심전력을 다하겠습니
다. 의서에 기재에 의하면, 삼국시대의 화타(??,?)가 일찌기 해
부술을 하여 상당히 효과를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생이 어찌
능히 화타와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여러 영웅들의 독이 발산
할 때까지는 아직 근 한 달의 시일이 있으니, 혹시 소생이 먼저 동
물을 가지고 한번 해부술을 시험해 보아 성공하면 하늘이 우리를
돕는 것이고 안된다면 다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떻겠
습니까?"

모두들 해독에 희망이 있음을 보고 회색이 만연했다. 유연주가 말
했다.

"여러 영웅께서 괜찮으시다면 폐관으로 가서 휴식하는 것이 어떠
하신지요?"

장봉용두가 말했다.

"저희들은 말할 수 없이 불결하여 도장의 청결한 수양지를 더럽힐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영령(苧?)이 매우 많으니, 이 사람들은 맞은
편 신상에 막을 치고 있으면서 조용히 장 대협의 기쁜 소식을 기다
리겠습니다!"

수백 명이 모두 이에 호응했다. 유연주는 억지로 되지 않을 것을
알고 부득불 따랐다. 모두들 떠나간 후에, 장무기 등은 무당관중으
로 돌아와 머물렀다.


날이 밝자 장무기와 조민은 무당산을 내려왔다. 한 마을에서 두
사람은 몇 명의 도부(艾?)를 찾아서 돼지를 가지고 하는 해부술에
대한 일을 알아보았다. 조민이 은 두 덩어리를 꺼내 주니 도부들은
흔쾌히 승낙했다. 덕분에 장무기는 묻기만 하면 되었고 모두들 앞
다투어 대답해 주었다. 장무기는 또 돼지 잡는 광경을 직접 목도하
여 돼지의 신체구조에 대해 분명하게 파악했다.

다음에 장무기와 조민은 돼지 한 마리를 사서, 한 접시의 마불산
(?尤韻)을 다린 후에, 몇몇 도부들의 도움 하에 그것을 돼지의 입
속에 부어 넣었다. 잠시 후에 이 돼지는 곧 쿨쿨 잠이 들더니, 아
무리 걷어차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마불산'은 화타가 창제한 마취약인데 한 번 시험을 해 보니 과연
그 약효가 정말로 영험했다. 즉시 돼지의 배 털을 깨끗이 깎아 내
고 매우 예리한 칼을 찾아서 센 불에 넣어 한 차례 달군 후에 돼지
의 뱃가죽을 갈랐다. 이어서 천천히 창자를 뽑아 내고 돼지의 위를
찾아내어 다시 이를 갈랐다. 그런 연후에 실을 이용하여 가른 부위
를 일일이 봉합했다.

모두들 조용히 변화를 지켜보았다.

다음날 오전, 이 돼지가 돌연히 죽었다. 장무가가 다시 배를 갈라
서 실로 봉합한 곳을 보니, 그곳은 이미 대단히 심하게 진물러 있
었다. 장무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도부가 갑자기 말했다.

"혹시 실이 돼지의 살과 융합되지 못하는 까닭이 아닐까요?"

장무기는 일시에 눈앞이 훤히 트이는 듯해서 당장 돼지 한 마리를
다시 샀다. '마불산'을 먹인 후에, 돼지 배의 털을 깨끗이 깎아 내
고 우선 예리한 칼로 가늘고 길게 몇 죽의 가죽을 베어 내서 깨끗
한 그릇에 얹어 놓은 연후에 비로소 위를 갈랐다. 봉합할 때 가늘
고 긴 돼지 가죽으로 실을 대체했다.

기적이 출연하여 삼 일 후에 이 돼지는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약간의 음식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장무기는 크게 기뻐하
며 다시 이 돼지의 배를 갈라서 봉합에 이용한 돼지 가죽이 이미
돼지의 위와 같이 접착되었으며 전혀 진무른 현상이 없었음을 확인
하였다.

장무기는 미친 듯이 기뻐하며 곧 조민과 함께 무당산으로 향했다.
그 돼지는 물론 몇 명의 도부들에게 나눠주었다.

후세에 중의에서 양장선(孱憎?: 양의 창자로 만든 선, 외과에서
봉합사로 쓰임)을 경맥 속에 이식하는 것은 그 연원을 추적하면 바
로 이때에 실시된 것이었다. 그러나 장무기는 더욱더 무공의 길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의술로써는 그 성과가 결코
화타, 장중경 등과 같은 대명의(暗髥?)를 따를 수 없다고 생각했
기 때문이었다. 이는 덧붙일 필요가 없는 쓸데없는 말로 더이상 언
급할 필요가 없겠다.


두 사람은 무당산에 올라, 즉시 신체 건장한 개방제자를 택하여,
이틀간 금식하게 하고는, 하제(台?: 설사약) 한 제를 복용시켰다.
그의 위장 속이 깨끗이 비워진 후, 장무기는 비로소 순서에 따라
진행했다.

장무기는 그의 위 속에서 위 벽에 단단히 눌러 붙은 대두(暗?)
크기의 붉은 색 환약을 발견했다. 장무기는 조심스럽게 환약을 꺼
내어 한 쪽에 놓은 후, 급히 상처를 봉합했다.

송원교와 유연주가 번갈아 운력하여 이 사람을 치료했고, 장무기
와 조민은 다른 조용한 방에 들어가서, 이 어렵사리 얻은 환약을
자세히 관찰했다.

몇 번을 보고서, 장무기와 조민 두 사람은 동시에 실소했다. 이
환약은 바로 지극히 자주 봐 온 것으로, 오랫동안 명성을 누려 온
산동정제아교에다 소량의 천년고송의 수지를 넣어 제조한 것이었
다. 이 둘을 점성이 매우 풍부하여, 위에 들어간 후에 위 벽에 단
단히 붙어 있던 것이었다. 단지 아교에 수지를 넣었기 때문에 소화
흡수가 쉽지 않아서 약성(疵?)이 당장 발산되지 않고 한 달이 지
나서야 아교와 수지가 점차로 소화되어 약성이 발산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장무기는 신중을 기하기 위해, 또 한사람을 뽑아 석고수 두 대접
을 복용시키고, 대변에 붉은 색 환약이 섞여 나오는지의 여부에 주
의 하도록 했다.

한 시간 후에, 이 사람은 기뻐 날뛰면 무당관중으로 달려들어와,
한편으로는 펄쩍펄쩍 뛰면서 한편으로는 기쁘게 외쳤다.

"나왔어요, 나왔어요!"

장무기와 조민을 보자마자, 그는 즉시 수중의 환약을 두 사람 면
전에 펼쳐 보였다. 조민은 그것을 보기도 전에 먼저 악취를 맡았으
나 피하기도 곤란하여 부득이 호흡을 억제하고 자세히 보니, 확실
히 냉면인이 그들에게 강제로 삼키게 했던 '칠충칠화고'의 약낭(疵
?)이었다.

장무기가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그 사람은 '풀썩'하고 무릎을 꿇고 말했다.

"두 분께서는 생명을 구해 준 은혜에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장무기는 황급히 그를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당신은 빨리 가셔서 사람들에게 알리십시오!"

그 사람이 막 달려나가려 할 때, 갑자기 조민이 말했다.

"잠깐 기다리세요! 당신이 다시 그들을 소집하여, 본래의 위치에
서 기다리도록 하면 되겠어요."

그 사람이 승낙함은 물론이었다. 장무기가 웃으며 말했다.

"조민 군주는 마치 속세의 화식을 먹지 않는 선녀같군요."

조민이 말했다.

"당신이 뭘 알아요! 그 수백 명이 모두 신바람이 나서 악취가 물
씬물씬 나는 환약들을 들고 무당산 관중으로 뛰어들게 되면, 장문
사숙께서 당신을 처벌하지 않는 것이 되레 이상할 거예요!"

장무기가 말했다.

"민 누이의 말이 맞소."

즉시 무당제자에게 분부하여 몇 솥의 석고수를 끓이게 하여, 산으
로 메고 올라가서, 각각 나누어주도록 했다. 조민이 다시 말했다.

"그들에게 붉은 색 환약을 발견하기만 하면, 당장 하산하여 가도
좋다고 말씀하세요. 그리고 장무기는 이미 무당산을 떠났다고 말하
세요."

무당제자는 대답하고 떠났다. 장무기가 웃으며 말했다.

"무당의 청송이 당연히 더욱더 무성해지겠구려!"

조민은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머리 속에는 좀 진지한 것일 넣어 둘 수 없나요?"

장무기가 이 말을 듣고 잠시 멍해지는 듯하더니, 마침 무슨 걱정
거리라도 생각났는지 웃던 얼굴이 갑자기 경직되며, 얼굴에 온통
근심스러운 빛을 띄웠다. 한참을 지나 조민이 장탄식을 하자, 장무
기가 놀라 정신을 차리며 곧 물었다.

"민 누이,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소?"

조민이 말했다.

"우리 몽고인은 성정이 조약하고, 체격이 건장한데, 어찌 병이 날
수 있겠어요?"

장무기가 대답할 말이 없어 기괴하게 그녀를 쳐다보니, 조민이 자
진해서 말했다.

"무림 중에, 또 미담 하나를 껴 넣어야 하겠어요. 명교 교주 장무
기가 동부인하고, 쌍쌍이 명교의군에 투항해서 매우 교활하고 간사
한 주원장을 암살하여 명교를 위해 더욱 뛰어난 공로를 세웠다고
말이에요."

장무기가 놀라서 말했다.

"아이구, 정말 희한하지. 지아비 되는 이가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일은 당신은 어찌 그리 잘 알 수 있지?"

조민이 '흥'하며 말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장 대협께서 어떻게 몽고 군주의 제도(?
?)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겠어요?"

장무기가 일부러 깊이 생각하는 척하며 말했다.

"알고 보니 내가 또 속임수에 당한 것 아니오?"

장무기는 조민의 아름다운 눈이 부릅떠진 것을 보고, 그녀가 벌컥
화를 낼 것 같아 황급히 말했다.

"사랑하는 부인께선 단지 지아비 되는 이가 생각하는 것의 반만
맞추었소. 내 비록 소졸로 가장하여 명교의군에 참가하려 하지만,
결코 주원장을 암살할 생각은 하지 않았소이다."

조민이 말했다.

"당신, 내기할 수 있어요?"

장무기가 말했다.

"뭘 내기하지?"

조민이 말했다.

"당신이 만일 어느 날 주원장을 암살한다면, 당장에 개 짖는 소리
세 번을 흉내내야 해요."

장무기가 말했다.

"좋소. 그러나 만일 당신이 지면 어쩌지?"

조민이 가볍게 말했다.

"내가 어떻게 질 수 있어요? 설사 진다 해도 세 번 짖는 것쯤은
문제 없어요."

장무기가 말했다.

"한 마디로 정합시다!"

두 사람은 손바닥을 쳐서 맹세하고는 녹민을 무당산에 남겨둔 채,
행장을 챙겨 무당칠협과 작별하고 회사(??) 일대를 향하여 떠나
갔다.

x x x

호주(蔽澯) 군대가 패한 후, 회사 일대의 군무는 곧 주원장이 지
휘하였다. 처음 몇 년 동안에는 지역이 협소하고 사람도 적어 역량
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주원장은 투항한 적을 우대하는 책략을 사
용하여, 적을 와해시키고 자신쪽을 충실하게 하였다. 지정 십 육
년 이 월에 주원장이 출병하여 집경(凄?)을 공격하더니, 원조의
장수인 진조(??)가 먼저 패전하여 그가 거느리던 부대의 삼만 육
천 명을 이끌고 와 투하했다. 이들 투항병들은 주원장이 장차 그들
을 어떻게 처치할지 몰라서, 내심 의구심을 가지고 불안해했다. 주
원장은 투항병들의 이런 의려(棕偃)를 눈치채고, 곧 이 삼만 육천
명 중에 오백 명의 용맹한 정병을 뽑아 자신의 막사로 데려갔다.
야간에 그는 이 오백 명으로 하여금 자기를 둘러싸고 자도록 했으
며, 자신의 신변 호위병들은 오히려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멀리
멀리 떼어놓았다. 그리고 그날 밤, 주원장은 갑옷을 벗어 놓고, 눕
자마자 기분 좋게 잠이 들어 날이 밝을 때까지 잤다.

다음날 새벽, 이 오백 명의 용사들은 너무도 감격해 했다. 성을
공격할 때, 한 사람 한 사람 용기백백하여 돌격했다. 나머지 삼만
여 무리도 주원장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집
경을 점령한 후, 주원장은 곧 집경을 응천부(足?繞)라고 바꾸고
이로써 중심을 삼아, 동쪽으로는 구용(授癤)에서 율양(爪暫)까지,
서적으로는 저주에서 무호까지 자신의 근거지를 건립했다. 지반이
비록 크지는 않았지만, 또한 그로 인하여 오히려 원조(??)의 주
목을 받지 않았다. 당시 주원장의 북면은 한림아, 유복통, 동면은
장사성, 서면은 서수휘였다. 이처럼 동서북 세 면을 모두 반원의군
으로 병풍을 삼으니, 주원장이 거느린 부대는 원조의 군대와 직접
적으로 접촉하지 않게 외었다. 비록 남쪽의 몇몇 부대의 산발적인
원군이 있긴 했지만, 주원장에 의해 일일이 토벌되었다. 지정 십
칠 년에 이르러서는, 진장(?析), 장흥(只鹹), 상주(位搾), 영국
(災髓), 강음(析遭), 상숙(位?), 지주(?搾), 휘주(賀搾), 양주
(資搾)를 잇달아 함락시켰다.

이때 유명한 유학자인 주승(錯怡)이 세 가지 계책을 제출했다.

'성을 높이 쌓을 것, 식량을 많이 비축해 둘 것, 천천히 세도를
넓힐 것'

주원장은 깊이 찬성하고, 주승을 군중에 머물게 했다. 또 강무재
(席墺?)를 영전사로 삼았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명군의 양식이
창고에 넘치게 되어, 더이상 뒷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지정
십 구 년, 다시 무주(譽搾), 제기(??), 구주(輸搾), 처주(?搾)
등지를 정복하였다.

절동(芷?)을 정복함으로써, 주원장은 토지가 비옥하고 인구가 조
밀한 좋은 거점을 얻게 되었다. 바로 이 해, 소명왕(蹂曄?)은 주
원장을 감남 등지의 중서성 좌승상으로 임명했다.

절동의 걸출한 인물로 이름이 높아서 유명한 명문 귀족인 유기(?
?), 엽침(栽?), 장일(葺?) 및 무주의 영염(災?)이 모두 주원장
에 의해 백방으로 물색되어 응천부로 초청되었는데 주원장은 이들
을 '사(?) 선생'으로 칭하며 은혜와 예의가 극진하게 대접했고 특
별히 예현관(籍??)을 지어 주었다. 주원장은 이로부터 점점 명교
의 통제를 벗어나, 더욱더 대호족들의 건의를 듣게 되었다.

후에 진우량(?定馭)이 서수휘를 살해하고 칭제(??)하여, 상류
에 웅거하며 빈번히 동쪽을 침범해 왔으나, 주원장에게 연전연패하
였다.

진우량은 영토가 점점 좁아지는 것을 보고, 부끄러움과 분노로 뒤
범벅이 되어 결사의 각오로 주원장과 자웅을 겨루고자 했다.

진우량은 대형 전함 백여 척을 건조하여, '혼강룡(鋪析汝)', '새
단강', '당도산(鮟哀雲)' 등으로 명명했으며, 그 외에도 또다른 수
백 척의 전함을 가지고 있어서 정말로 '투과단강, 축로천리(快峀十
析, *軸??咽: 창을 던져 강을 끊고, 배들이 꼬리를 물고 길게 늘
어질 정도로 대단함을 말한다)'를 이루었다. 그는 매우 기세등등하
여 금새라도 조롱 속에 든 새 같은 주원장을 멸하고 사로잡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주원장의 동면의 장사성이 출병하여 주원장을
협공하기로 약속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장사성은 악착같이 큰 뜻이
없었기에 그저 자신의 것만 고수하려 하여 여전히 주저하며 관망하
고 있었다.

진우량도 비록 야심만만하여 수차례 주원장보다 수배의 병력으로
진공 하였으나 오히려 패배하매, 사후에 이를 생각하고는 주원장에
대해서 또한 상당히 꺼리게 되었다. 그러니 만큼 장사성이 우유부
단한 태도를 보이자, 진우량도 감히 쉽게 발병(烏?)하지 못했다.

바로 이때, 북방의군이 계속 실패하여 명군은 부득불 후퇴하여 안
풍을 지키고 있었다. 원군의 대군이 경계선까지 밀어닥치니, 안풍
도 곧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바로 이 가장 위험한 순간에 원군이
다시 저희들끼리 서로 죽이니, 안풍은 일시에 위기를 모면했다.

주원장이 한숨 돌리기도 전에, 뜻밖에도 장사성이 기회를 틈타 대
장 여진(裝?)을 파견하여 대군을 이끌고 안풍을 공격했다는 놀라
운 소식이 들려 왔다. 안풍에서 계속 위급함을 알려오매, 주원장은
급히 지원병을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유기는 심히 반대하며
만일 대군을 보낸 후에 진우량이 허세를 틈타 진공한다면 진퇴무로
(?針午?)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원장은 오히려 안풍
은 응천의 바람막이이니 안풍을 잃게 되면 장사성의 영토가 나날이
커져 자신측에 불리하다고 여겨서, 곧 군대를 통솔하여 천 리를 달
려가 안풍을 구원하고 여진을 살퇴시켰다.

주원장이 천 리나 멀리 가서 독성(??, ?=拗?)을 구원할 때, 진
우량은 과연 이 기회를 틈타 진공하여 대군으로 홍도부를 포위했
다. 진우량은 마음 속에 분노와 원망을 품고 있어서, 특별히 수백
척의 대형전함을 만들었다. 그 전함의 높이는 수장(晙)이나 되며,
온통 붉은 칠을 한 상하 삼 층으로, 층층 마다 모두 마구간이 있었
다. 아래층에는 목조방을 설치하였고, 배의 노가 수십 개였으며,
이불 상자가 철로 싸여 있었다.

상하층 사람들은 서로의 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큰 것은 병졸
삼천 명을 수용하고, 작은 것은 이천(??)을 수용할 수 있었다.

진우량은 요번 출행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을 결심하고 마침내 처
자와 백관을 싣고 나라를 비워 두고 오니, 육십만 웅병을 거느렸다
고 알려졌다. 그는 스스로 홍도부는 당일에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여기고, 배를 기슭에 정박시키고 홍도부를 겹겹이 에워쌌다. 장무
기와 조민은 바로 이때, 홍도부로 쉽게 섞여 들어가 명군 소졸 노
릇을 했다. 홍도부는 진우량과 주원장의 사이에서 몇 번이나 주인
이 바뀌었다. 진우량이 함락시키면 여전히 옛 이름을 연용하여 남
창(辰諜)이라 칭하였고, 주원장이 빼앗으면 곧 홍도부로 개명하였
다. 홍도부는 바로 진우량과 주원장 사이의 일대 요충지였기 때문
에, 주원장이 재차 홍도부를 함락시킨 후에는 곧 조카 주문정(錯澳
賑)과 대장 등유(??)로 하여금 이 성을 진수하도록 하였다.

진우량은 병력이 텅 빈 응천부로 가서 진공하지 않고, 오히려 대
군을 거느린 주문정에게서 홍도부를 빼앗기 위해 마침내 병가의 대
기(暗?)를 범하였다. 주문정을 진우량이 나라를 텅 비어두고 왔다
는 소식을 듣고서, 급히 명을 내려 등유는 무주문(預搾?)을 지키
고, 조덕승(?鴦彛)은 관보(??), 사보(??), 교보(??) 삼 문
을 지키고, 설현(??)은 장강(葺析), 신성(靷?) 이 두 문을 지키
며, 우해룡(整?汝) 등은 유리(制軟), 담태(惡恥) 이 문을 지키도
록 했다. 주문정은 정병 이천 명을 거느리고 중간에서 지휘 통솔하
고 왕래하며 협동 작전을 폈다. 장무기와 조민은 등유의 휘하에 들
어가, 무주문을 지키는 데 협력했다. 진우량이 친히 독병 하에 무
주문을 맹공하였다. 그 수하의 사졸들은 왼손에 방패를 잡고 성 위
에서 비오듯 쏟아지는 화살과 돌을 막으며, 오른손으로는 미친 듯
이 성벽을 파헤쳤다. 몇 시간의 격전 끝에 '쿵'하고 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마침내 성벽이 이십여 장 무너져 내렸다. 수천 명이 막
밀려들어오는데, 갑자기 성내에서 화통 소리가 울리며 수많은 불꽃
이 날아왔다. 불꽃은 몹시 작렬하여, 잠깐 닿기만 해도 머리를 태
우지 않으면 이마를 데었다. 사졸들은 방패를 들어 막았으나, 누가
이 방패들이 죽제(慘?, ?=?)인지 알았겠는가. 방패는 불에 닿자
마자 타 버려서,진우량은 부득불 즉시 성 밖으로 후퇴하였다.

원래 주원장은 명교 오행기 출신으로, 열화기(?飄?)의 대단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열화기에 소용되는 것은 모두 서역에서 풍
부하게 생산되는 석유로, 중원지역에서는 석유를 사용할 수 없어서
화약, 유황으로 대체하였는데도, 그 위력에는 여전히 별 차이가 없
었다.

등유는 적병이 조금 후퇴하는 것을 보고, 급히 울짱을 세우도록
명했다. 그러나 울짱이 다 세워지기도 전에, 적병이 또다시 진공해
왔다. 쌍방은 어쩔 수 없이 혈육(?嘲)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장무기와 조민은 위급함을 보고, 신분을 감추고 있는 것도 잊고는
두 사람이 서로 호응하여 채소를 썰 듯 적을 죽이기 시작했다. 일
시에 수십 명이 죽임을 당하였다. 그러나 성벽이 무너진 곳에선 적
병이 서로를 밀치며 마침내 조수처럼 밀려들어오니 아무리 장무기
와 조민이 뛰어나게 용감무쌍하여도, 어찌 막아낼 수 있으랴? 막
대적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총수인 주문정이 정병 이천 명을 거느
리고 때맞춰 와서 구원을 해줌으로써, 겨우 적병의 공세를 막아냈
다.

등유는 한편으로는 싸움을 하며 한편으로 성을 다시 쌓았다. 진우
량이 어찌 이러한 호기를 놓칠 수 있겠는가. 그는 부하들이 후퇴하
는 것을 보고, 당장에 칼을 휘둘러 십여 명의 수령을 죽였다. 사람
들은 이 상황을 보고, 어차피 모두 죽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돌려 다시 성 안으로 공격해 갔다.

이렇게 거듭거듭 공격해 들어갔으나, 다시 성 내의 수병(艤?)들
에 의한 한 차례 격퇴되었다. 쌍방 모두 동료들의 시체를 밟으며
피투성이가 되어 싸웠다. 성벽이 수복되었을 때, 내외의 시체가 마
치 산처럼 쌓여, 쌍방의 사상(?轅)이 모두 매우 참혹했다.

진우량은 부득불 잠시 수병(艤?)했다. 등유는 곧 장무기와 조민
에게 막사로 오도록 하여 말했다.

"두 분의 무공이 고강하신데, 어찌하여 지금껏 당신 두 분을 뵌
적이 없었는지요?"

얼핏보니 등유는 삼십 세 전후로, 몸에는 전포를 걸치고 있었으
며, 영기가 넘쳐흘렀다. 장무기와 조민은 약 사십여 세의 형제로
가장하고 있었다. 방금 전의 한 차례 목숨을 건 격전으로 여전히
피로 얼룩진 전포를 입은 채였다.

장무기가 묻는 것에 대해 대답했다.

"저희 형제는 최근에서야 의군에 투항했습니다."

등유는 일찌기 장무기를 수차례 본 적이 있으며, 두 사람의 성질
이 매우 잘 맞았었다. 그러나 조민의 분장술이 매우 뛰어난데다가
더구나 장무기가 목소리를 낮게 하니 등유는 결국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또다시 말했다.

"두 분 호한의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장무기가 말했다.

"장군께 아룁니다. 저는 이빙이라고 하고, 제 동생은 이화라 부릅
니다."

등유가 말했다.

"금일 두 분께서 용감무쌍하게 적을 무찌르시어 대공을 세웠습니
다. 두 분 호한께서 저의 호위대가 돼 주심이 어떠하신지요?"

등유는 두 사람의 무공이 실로 너무 높음을 보고, 어투가 매우 겸
손했다. 장무기가 조민과 눈이 마주치자, 조민이 살며서 머리를 저
었다.

이에 장무가기 말하였다.

"장군의 후의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실 감히 속일 수 없으니 말
씀드립니다만 저희 형제는 진우량과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입니다.
이번의 항군(?琡)은 단지 원수를 저희들 손으로 죽이기 위해서이
니, 만일 원수만 갚는다면 저희 형제는 곧 강호에서 은퇴하고자 합
니다. 장군께서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등유는 이 말을 듣고 실망의 기색을 나타냈다. 그러나 억지로 할
수 없음을 알기에, 하는 수 없이 말했다.

"금일의 승리는 두 분 호한께서 도와주신 덕택입니다. 두 분께서
빠른 시일 내에 원수를 갚게 되기를 바랍니다."

장무기와 조민은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서 물러나와, 성벽 위로
돌아와 수비했다. 진우량은 수일간 싸움을 멈추고 무주문에는 등유
가 주둔하고 있어 공략하기가 지극히 어려움을 알고는, 당장에 신
성문을 기습해 오매 장무기와 조민은 그것을 보고 신성문으로 질주
해 갔다.

뜻밖에도 진우량이 이끄는 군대가 아직 성벽을 공격해 오기도 전
에 갑자기 성문이 크게 열리며, 성 내에서 한 부대가 마치 용처럼
호랑이처럼 튀어나오는데 그 기세가 너무도 당당하여 도저히 맞설
수 없었다.

대장은 바로 설현으로 칼을 들고 돌진하매 더욱 흉맹스러웠다.
장, 조 두 사람은 그 뒤를 바짝 쫓아서, 급히 군대 속으로 달려들
어가 진우량을 죽이려 했다.

진우량은 이를 보고 크게 놀라, 부득불 후퇴했다. 설현이 이끈 무
리들은 쫓아가 진우량의 수졸들을 한바탕 죽인 후에야, 다시 수병
하여 성으로 들어왔다. 성에 돌아오자마자 설현은 곧 부하를 시켜
장, 조 두 사람을 찾아오도록 하였으나,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복뿐이었다. 두 사람은 다시 등유의 수하로 돌아갔던 것이었다.

진우량은 대노하여 계속해서 성을 공격해 왔으나, 자신은 단지 후
군에서 독전할 뿐, 감히 맨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장무기도 멀리
서 진우량의 대기(暗?)만 볼 수 있을 뿐, 더이상 가까이 갈 수 없
었다.

진우량은 오랫동안 포위할 수 없음을 깨닫고, 곧 군대를 나누어
길안(豕?), 임강(?析)을 함락시키고, 몇 명의 명교 두령을 잡아
홍도부 성벽 아래로 호송하여 목을 베었다. 그리고 또한 홍도부 수
비병들을 위협했다.

"만일 끝내 투항하지 않으면, 이렇게 만들어 주겠다."

수비병들은 물론 꼼짝하지 못하였고, 진우량은 곧 다시 맹공을 서
슴지 않았다.

수장 주문정은 홍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친히 성벽에
올라 사졸들이 수비를 견지하도록 격려했다. 진우량은 아마도 더이
상 참을 수 없게 되었는지 포위를 철수하여 응천을 공격하러 가려
하니, 주문정이 불시에 성문을 크게 열고 맹진하여 한 차례 호되게
쳤다.

진우량은 홍도부를 한 달을 넘게 포위하고 있으면서도 공격해 오
지 못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이 이가 갈릴 정도로 화가 나서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주문정은 가장한 병사를 파견하여 내통시
킴으로써, 진우량으로 하여금 공격을 늦추도록 했다. 또 몰래 천호
장 장자명을 파견하여, 아무도 모르게 수문을 넘어 응천에 가서 급
보케 하였다.

장자명은 어부의 모습으로 분장하고, 일엽편주에 흔들리며 어부가
를 부르며 마침내 홍도를 빠져나왔다. 그는 주야를 쉬지 않고 가
서, 보름 후에야 겨우 응천에 닿아 주원장에게 보고했다. 주원장은
홍도가 포위된 것을 처음 알았기에 급히 물었다.

"진우량의 병세(?留)가 어떠한가?"

장자명이 말했다.

"진우량은 나라를 모두 비워 놓고 와서 육십만 웅병으로 알려졌으
며, 병세(?留)는 비록 강성하지만 전사자 또한 적지 않고 예기도
이미 꺾였습니다. 지금 강물이 갈수록 말라서 거함이 움직이기 불
편하고, 또한 출사한 지 오래되어 식량이 부족하니, 대군으로 쫓는
다면 당장 쳐부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유기가 기뻐하며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하늘이 장군을 보우하셨습니다."

유기가 말했다.

"유 선생께서 상세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기가 말했다.

"진우량이 나라를 비워 두고 온 이상, 곧 바로 응천까지 치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홍도 고성(巢?)에 갇히어 수십 일
을 교전하느라 정력이 온통 고갈되었으니, 장군께서 여차여차만 하
신다면 반드시 진우량이 빠져나갈 구멍도 없게 할 수 있을 것입니
다."

주원장이 크게 기뻐하며, 곧 장자명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먼저 주문정에게 돌아가 보고하시오. 다시 한 달을 더 견
수(?艤)하면, 내가 응당 친히 가서 구원하겠다고 말이오."

장자명은 명령을 받고 돌아왔다. 뜻밖에도 갈 때는 쉬웠던 것이
돌아올 때는 어려워서, 수문에 이르렀을 때 마침내 순찰병에게 붙
잡혀 진우량의 막사로 보내졌다. 진우량이 소리치며 물었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감히 이리도 대담하다니!"

장자명이 말했다.

"나는 장자명이오. 응천에 가서 구원을 요청하고 오는 길이오."

진우량이 놀라며 물었다.

"주원장이 올 것인가?"

장자명이 말했다.

"그렇소."

진우량은 무너지듯 자리에 풀썩 앉아서, 한참을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다.

"네가 만일 주문정에게 응천에서 원조하러 올 틈이 없다고 말하여
그를 신속하게 투항하게 한다면, 내가 너의 만대에 걸친 부귀를 보
증하겠다."

장자명은 약간 주저하는 빛을 띄우며,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
다.

진우량은 이를 간파하고, 곧 다시 힘주어 말했다. 장자명이 의심
스러워하며 말했다.

"그대는 나를 속이려 하지 마시오!"

진우량이 당장 정색하며 말했다.

"대장부가 말을 한번 꺼내면 태산과 같은데 어찌 말에 신용이 없
을 수 있겠는가!"

곧 장자명을 성 아래로 끌고 와서, 지척의 거리에서 주문정을 불
러오도록 했다. 수비병이 주문정에게 급보하였다. 일 각도 되지 않
아 주문정은 벌써 성벽 위로 올라가 말하였다.

"아랫쪽이 정말로 천호장 장자명인가?"

장자명이 말했다.

"맞습니다. 주 통수께서는 주의해서 들으십시오. 자명은 이미 응
천에서 돌아왔으며 주상께서 저에게 분부를 전달하도록 하셨으니,
성지(??, ?=?)를 견수하시면 원병이 수일 내로 곧 도착할 것이
라 합니다!"

진우량은 엄청나게 분노하며, 장검을 휘둘러 장자명의 허리를 둘
로 베어 버렸다.

주문정이 이를 보고서 엄하게 말했다.

"진우량, 초장왕은 해양(?資)을 죽이지 않았는데 당신처럼 좁은
도량으로 어찌 대업을 이룰 수 있겠소? 원군이 도착하면, 반드시
당신을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오!"

진우량은 더욱 분노하여, 곧 군대를 이끌고 밤낮으로 성을 공격하
였다. 진우량은 온갖 계략을 다하여 공략했으며, 성 중에서도 또한
온갖 방법을 다해 고수하며 원조를 기다렸다. 장무기가 진우량이
또 땅굴을 파서 성을 무너뜨리지 않을까 걱정하자, 곧 조민이 말했
다.

"홍도부는 강변에 근접하여 조금만 파내도 지하에 곧 물이 스며들
기 때문에 그 계책은 틀림없이 이룰 수 없을 것이에요."

장무기는 이 말을 듣고 매우 안심이 되어, 하루 종일 경궁을 들고
오로지 진우량을 기다렸다. 그러나 뜻밖에도 진우량은 앞으로 나서
지 않은 채, 그저 멀리서 독전할 뿐이었다. 장무기는 어찌할 수 없
어 부득불 몇 명의 진우량의 장령을 사살하여 분풀이를 했다. 이러
한 신기(佚?)는 명교의군들이 모두 탄복해 마지 않았다.(지은이
주: 진우량은 일찌기 송원교의 아들 송청서를 유인하여 무당칠협인
막성곡을 죽였고, 또 친히 명교의군의 수령인 서수휘를 암살하고
명교 서로의군의 지휘전을 찬탈하였기에, 장무기는 이자를 매우 증
오했다.)


각설하고 주원자은 홍도의 급전을 듣고 경악하며, 서달, 상우춘을
급히 회군하게 하여 모두 이십만 군대를 모아 서둘러 출발했다. 그
들은 며칠만에 호구(弊手)에 이르러, 대장을 각각 경강(?析) 입구
와 남호(辰弊) 입구에 주둔하게 하여 진우량의 퇴로를 차단했다.
또한 신주(藺搾)부대에 명령을 전하여 무양나루를 지키게 해서 진
우량의 도주를 방지하게 했다.

주원장은 준비를 다 마치고 이렇게 배를 지휘하여 파양호로 질주
하여 친히 홍도의 위험을 구하러 갔다.

파양호는 강서성 안에 있었으며 호구가 바로 파양호가 정강을 드
나드나는 통로여서, 주원장이 이 요지를 막음으로써 당연히 진우량
과 자웅을 겨루게 되었다.

이때는 이미 진우량이 홍도부를 포위한 지 팔십 오 일이 지나고
있어서 성벽이 비록 여러 차례 공격으로 파손되었으나, 성내의 수
군(艤琡)의 필사적인 격전으로 마침내 모두 보수되었다. 지금 주원
장이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진우량은 어쩔 수 없이 부
득불 홍도부의 포위를 철수하여 방향을 바꾸어 파양호로 진입, 주
원장과 맞서 싸웠다.

홍도 수비군 역시 수십 척의 전함을 가지고 있었으나, 진우량과
비교하면 역량의 차이가 너무 커서 하는 수 없이 수문으로 진입하
여 잠시 그 선봉을 피하였다. 이때 진우량은 파양호로 후퇴하였고,
수군이 주원장을 나가서 맞았다. 장무기와 조민 역시 수군 속에 섞
여 들어서 파양호로 진입했다. 안개로 뒤덮인 아득한 망망대해만
보일 뿐이었다.

호수의 파랑이 비록 대해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전함이 극히 작아
서 마치 거칠고 사나운 파도 속에 일엽편주가 떠다니는 듯했다. 잠
시 후, 전함은 곧 주원장의 수군과 한곳으로 합병되었다.

조민이 멀리서 보니, 주원장이 탄 배의 좌측에 있는 배에 높이 걸
려 있는 대기에는 '상'자가 씌어 있었고, 우측에 있는 전함의 깃발
에는 '서'자가 씌어 있었다.

그녀는 낮게 말하였다.

"무기, 상우춘 장군이 저기 있으니 우리가 건너가 보는 것이 어떨
까요?"

장무기는 주저하며 결정하지 못하였다. 조민이 다시 말하였다.

"당신은 상우춘 장군과 형제처럼 친한 사이이니, 몰래 만나면 결
코 위험하지 않을 거예요. 그를 만나보면 아마도 모든 일이 다 명
백히 밝혀질 수 있을 거예요."

장무기의 생각에도 그게 옳은 듯했다. 만일 상우춘이 태도를 바꾼
다면 자신이 먼저 배를 타고 도망나오면 그만이었다. 당장에 작은
배를 한 척을 부탁하여 두 사람은 상우춘이 타고 있는 배를 향하여
저어갔다. 가까이 이르매, 장무기가 상 장군을 뵙고 보고할 일이
있음을 알렸다. 전함에서 그들이 명교교인임을 알아보고 곧 밧줄을
내렸다. 두 사람은 전함으로 올라갔고 한 사졸이 보고를 하러 갔
다. 안에서 장무기에게 매우 익숙한 음성이 들려 왔다.

"들어오십시오!"

장, 조 두 사람이 선실로 들어가 눈을 들어보니 약 삼십 오, 육
세에 덥수룩한 수명에 호랑이 눈처럼 번뜩이며 위풍당당하니 마치
천신같은 장군이 선상의 가운데 단정히 앉아 있었다. 바로 장무기
의 생사지교(唯?柵?)인 상우춘 장군이었다. 수년 동안 보지 못했
지만 상우춘의 용맹함은 당년보다 훨씬 더 했다. 그러나 상우춘은
장무기와 조민이 변장을 하였기 때문에 두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물었다.

"두 사람은 무슨 일이 있으신지요?"

장무기는 상우춘의 신변에 호위병이 있음을 보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알현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우춘이 손을 한번 흔드
니 호위병이 선실 밖으로 물러났다. 조민은 뒤로 물러나 입구에 서
서 도청하는 이가 없는지 감시했다.

장무기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상 형님, 호접곡에서 죽음으로써 서로 구해 준 정을 소제는 종신
토록 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우처(情?)와 함께 뵈러 왔습
니다."

이 말을 들은 상우춘의 얼굴은 갑자기 밝아졌다. 그러나 의심스러
운 듯 앞에 있는 이 두 명교의군의 소족들을 보며 결코 알아차리지
못했다. 장무기가 살며시 웃으며 얼굴에서 석고물을 벗겨내자 본래
의 모습이 나타났다.

상우춘이 뜻밖에 기쁨으로 매우 즐거워하며 소리쳤다.

"무기 동생......!"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장무기가 급히 손짓을 해서 그로 하여금
작은 소리로 말하게 했다. 상우춘은 여전히 영문을 모르는 듯했으
나 소리를 낮춰 말했다.

"무기 동생,요 몇 년 동안 정말로 동생을 애타게 생각했소. 참,
제자 교주께 알현드립니다."

상우춘이 말을 마치고 막 무릎을 꿇으려고 하자 장무기가 황급히
그를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상 형님, 소제에게 너무 황송하게 하지 마십시오. 이 사람은 제
처이며 조민이라고 합니다."

조민이 예를 갖춰 인사하자 상우춘 역시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장무기는 상우춘의 희열의 정이 확실히 충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마음 속에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그때 조민이 말했다.

"상 형님께서는 무기 오빠와 말씀을 나누시죠. 저는 밖에 나가 경
치나 구경하겠습니다."

그러자 상우춘이 급히 말했다.

"제수씨께서 자리를 피해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앉아서 같이 오
랫동안 못 다한 정을 나눕시다."

장무기 역시 말했다.

"민 누이, 상 형님은 남이 아니니 당신도 자리에 앉구려."

상우춘은 장무기가 전에 교주를 지냈었기 때문에 그를 주석에 앉
도록 했다. 그러나 장무기가 끝내 사양하니 상우춘도 어쩔 수 없어
서 결국 세 사람이 모두 주객의 자리에 앉았다. 상우춘이 홀연 말
했다.

"무, 교주, 갑자기 교주의 직책을 사양하고 수년간 전혀 소식이
없었으니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장무기가 말했다.

"상 형님, 제사 이미 교주의 직을 그만 둔 이상, 서로 형, 아우로
부릅시다."

상우춘은 성격이 좋아서 이 말을 듣고 호쾌하게 말했다.

"좋소. 무기 동생, 이유를 말할 수 있겠소?"

장무기는 그가 이러함을 보고는 일시에 가슴이 마구 뛰며 얼굴색
이 더없이 창백해졌다. 지금 진상을 명백히 밝힌다면 상우춘은 바
로 의리를 배신한 표리부동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바로 원래의 그
호쾌하고 의리를 아는 영웅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어떠한 결론을
막론하고 장무기로서는 모두 엄중한 타격이었다. 바로 이러할 때,
그로 하여금 어떻게 스스로를 억제하게 할 수 있겠는가.
상우춘이 장무기의 얼굴빛이 삽시에 변하는 것을 보고 급히 말하
였다.

"동생, 혹시 몸이 불편한가?"

장무기가 고개를 젓자, 조민이 말했다.

"무기, 상 형님께 직언해도 괜찮아요."

조민은 이미 상우춘이 실로 강직한 사람임을 알아보고서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

장무기가 말했다.

"상 형님, 소제의 목숨은 오로지 형님의 도움에 달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형님을 이렇게 우연히 만나지 못했다면 저 장무기
는 아마도 일찌감치 한줌의 흙이 되었을 것입니다."

상우춘이 '하하'하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동생은 왜 그런 말을 하는가? 당년에 만일 자네가 손을 써 구해
주지 않았던들 내 일찌기 호접곡에서 죽었을 걸세. 이런 왕년의 일
들은 다시 언급하지 마세."

장무기가 말했다.

"소제는 요 몇 년 동안 이미 교주의 일에 관여치 않아서......"

그는 곧 자신이 멀리 페르시아에 갔던 수년 동안의 일을 얘기했
다. 상우춘은 계속 칭찬을 하며 또 두 사람의 득녀를 축하하고 후
일 틈이 나면 반드시 무당산에 가서 그 질녀를 보겠다고 말했다.

장무기가 계속 말하였다.

"냉면인의 일은 상 형님께서도 아시는지요?"

상우춘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일이 있기 수개월 전에 위복왕께서 이미 자세히 알려주셨지.
그러나 위복왕을 만나기 하루 전날, 형은 이미 군대를 옮기지 말라
는 명령을 받았다네. 처음에는 군대에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았는데
후에 한 달이 넘도록 아무런 전사(??)가 없었지. 형은 그 후 매
번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항시 총교제왕께 죄송함을 느꼈네. 듣자
하니 그 날 명교의 사상(?轅)이 심각했다고 하던데 도대체 상황이
어떠한가?"

조민이 자세한 상황을 얘기하자 상우춘은 오산인 중에 결국 장중
한 사람만 남았다는 얘기를 듣고는 자신도 모르게 깊이 탄식하고
한참을 말이 없었다. 장무기가 말하였다.

"아직 교중의 사무와 관계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소제 이미 비
록 명교의 일에 관여치 않으나 이 일은 소제와 매우 관련이 있기에
형님께서 직언해 주시길 바랍니다. 민 누이는 밖에 나가서 망을 봐
주시오."

조민은 대답하고 선실을 나섰다.

"장무기가 말했다.

"왕년에 호주성 지하감옥에서 상 형님과 서 형님 그리고 주 형님
께서 어떤이를 죽일 것을 상의한 적이 있지요. 그가 누구입니까?"

상우춘이 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이 너와 매우 관계가 좋아서 나와 서 형님은 본래 너에게
보고하려 했었으나 네가 페르시아에 수년 동안 가 있어서 마침내
너를 찾아서......"

장무기가 무심결에 소리를 질렀다.

"그 사람이 혹시......"

상우춘이 말했다.

"당시 교주께서는 잘 모르셨지만 우리들은 거의 모두 그에게 속았
지. 그가 원조에 암암리에 내통한 이에 대해서 나와 서 형님의 수
중에 확실한 증거가 있었지. 결코 그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게
아닐세. 단지 동생이 수년 동안 필경 감개가 무량할 걸세."

장무기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상우춘이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한림아일세. 주원장 형님의 말씀을 듣자니 자네가 당일 호주성에
온 적이 있으며 이 일을 그때 자네에게 보고했다고 하던데."

장무기는 머리 속이 '윙'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으며, 곧 맥없이
주저앉아 정신을 잃었다. 상우춘이 몹시 놀라며 말했다.

"동생, 동생, 무슨 일인가?"

조민은 상우춘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급히 선실 문을 열고 들어와
보고는 말했다.

"상 형님, 아무 일도 아닙니다. 그는 잠시 기절한 것이니 금세 괜
찮을 거예요."

라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장무기의 인중대혈을 눌러 약간의 내력을
투입시키니 장무기는 곧 정신을 차렸다.

조민은 장무기의 상황을 보고 그가 예전에 퇴위한 것이 틀림없이
주원장의 간계에 의한 것임을 알아챘다. 이 일은 그녀가 이미 예상
했던 것으로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그녀는 장
무기가 정신을 차리자, 급히 눈치를 주어 그가 침착하게 경거망도
하지 않도록 했다.

상우춘이 말했다.

"어떻게 된 겐가. 그럼 자네는 그 사실을 몰랐단 말인가?"

장무기가 탄식하며 말했다.

"사람이 이미 죽었으니 더이상 말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냥 놔두세요."

지극히 처절한 표정으로 화제를 바꾸어 상우춘에게 그간의 상황을
물었다. 상우춘은 담담하게 한참을 이야기하였으나 모두 군사에 관
한 일뿐이었다.

이렇게 한참을 지나니, 장무기 또한 정신이 돌아와 말했다.

"상 형님, 소제가 이번에 온 것은 단지 막칠숙의 원수를 갚기 위
해서입니다. 진우량 이 녀석을 제 손으로 죽일 수 있다면, 막칠숙
의 영혼에 위안이 될 것입니다."

막성곡의 죽음이 진우량과 관계가 깊음은 상우춘도 모두 아는 바
였다. 이 말을 듣고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네가 이곳에 있는 이상, 진우량 그 녀석을 결코 빠져나가지 못
할 것이오. 두 동생이 잠시 기다리면 내가 가서 서 형님께 이곳으
로 오시도록 하겠소."

장무기가 급히 말했다.

"형님, 앉으십시오. 소제가 이번에 온 것은 단지 사적인 원수를
갚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변장을 했지요. 서 형님께
서는 군사로 바쁘실 테니 번거롭게 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상우춘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했지만 장무기의 표정이 결연함을
보고는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장무기가 다시 말했다.

"소제 부부에게는 시로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으니, 상 형님께
서는 절대 누구에게도 저희 둘의 일을 얘기하지 마십시오. 만일 괜
찮으시다면 저희 둘은 이 전함에 남아 있다가 나중에 다시 상 형님
을 뵙겠습니다."

상우춘은 물론 승낙했다. 즉시 조민이 장무기를 좀전의 모습으로
바꾸었다. 상우춘이 한쪽에서 이를 지켜보며 몹시 놀라고 찬탄하며
말했다.

"제수씨는 정말 솜씨가 대단하십니다!"

장무기가 말했다.

"장군께 아룁니다. 소인은 이빙이라 하며 이 사람은 제 동생 이화
라 합니다."

상우춘의 웃음 소리에 선실이 흔들릴 정도였다.

"좋소, 뜻대로 하시오!"

장무기가 말했다.

"소제가 처음 의술을 배울 때, 약을 너무 독하게 하여 뜻밖에도
형님의 생명을 사십 년이나 감했지요. 요 몇 년 동안 소제는 어디
에 매임없이 마치 바람처럼 학처럼 한가로이 떠돌며 한 가지 방법
을 얻어서 단약 두 알을 만들어 항시 지니고 다녔습니다. 형님께서
이것을 복용하시면, 옛날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우춘은 그가 이 일로 줄곧 가책을 느껴왔음을 알고는 웃으며 말
했다.

"예전에 만일 동생이 구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목숨이
오. 몇 년 목숨이 줄었다고 한들 무슨 대단한 일이겠소. 괜시리 동
생을 걱정하게 만들었구려."

하고는 약을 받아 즉시 삼켰다.

장무기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상 형님은 명교의군의 대장이시니 어깨가 무겁습니다. 당연히 건
강을 아끼셔야만 합니다."

상우춘은 장무기가 갑자기 엄숙해지며 그 표정에 마침내 교주의
위신이 떠오름을 보고 당장 위엄을 갖추어 존중했다.

장무기는 본시 이러한 군국대사를 두통거리로 여겼었고, 주원장의
야심을 확실히 알게 된 후에는 더욱 꺼림직해졌으므로 그저 상우춘
과 서달 두 사람이 능히 신체를 보전할 수 있기만을 원했다. 이 두
사람만 있다면 주원장도 결코 제멋대로 할 수 없을 것이었다. 생각
을 바꾸어 다시 자신이 일교의 교주로서 주원장의 음모에 걸렸으며
서, 상 두 사람은 주원장의 부하이니 만일 그가 이 둘을 처치하려
한다면 그것은 아주 손쉬운 일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
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신도 모르게 서달과 상우춘 두 사람에 대
해 깊은 우려를 느꼈다. 상우춘이 말했다.

"애석하게도 군중의 명령으로 술을 마실 수 없군. 그렇지 않으면
우리 두 형제가 해후를 마땅히 한바탕 축하해야 할 텐데 말이야."

장무기가 말했다.

"기회는 많으니, 진우량을 친 후에 마셔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상우춘이 말했다.

"맞는 말이오."

바로 이때, 한 소졸이 보고했다.

"장군, 통수께서 영기(梓?)를 내리셨습니다. 장군께서 가셔서 의
논하시기 바랍니다."

상우춘이 말했다.

"이 두 분 형제를 잘 모시도록 하여라."

소졸이 대답하며 장무기와 조민을 데리고 갔다. 상우춘은 물론 누
구에게도 이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소졸을 두 사람을 삼 등(?) 선실로 안내하고는 두 사람에게 모포
두 장을 나눠주며 임시 휴식용으로 삼게 했다. 장, 조 둘은 고맙다
고 하고는 곧장 갑판에 올라갔다. 그들은 무심코 앞을 바라보다 문
득 소스라치게 놀랐다. 멀리 진우량의 함대에 올려진 돛대가 숲을
이루고 있었고 함대가 마치 구름처럼 이러진 것이 수십 척마다 모
두 철삭으로 연결되어 있어 그 기세가 확실히 대단했다. 주원장의
전함을 진우량의 거함과 비교하니 실로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장무기가 말했다.

"이화, 내가 보기에는 이 싸움은 결코 잘 해낼 수 없겠소!"

조민이 말했다.

"제가 처음에 진우량이 어떠한 영웅인지 말했지요. 오늘은 한번
보는 것에 불과할 거예요."

장무기가 말했다.

"한번 보는 데 불과하다고?"

조민이 말했다.

"조조가 당년에 수십 척의 배를 같이 연결해서 패했지요. 진우량
은 틀림없이 조조의 전군이 완전 소멸한 전철을 밟게 될 것이예
요!"

장무기가 말했다.

"이화, 변죽만 울리지 말고 모두 얘기해 주는 게 어떻겠소?"

조민이 말했다.

"가함을 연결하면, 비록 그 성세가 사람을 놀라게 할지는 몰라도
방향을 바꾸려 할 때는 무척 지체되고 확실히 민활하지 못하지요.
그러니 만일 화공(飄殺)을 한번만 당하게 되면 진우량은 부득불 호
수로 달아나게 될 거예요."

장무기가 말했다.

"혹시 다 못 태우지 않을까?"

조민이 말했다.

"형, 다시 한 번 내기하고 싶군요!"

장무기는 갑자기 무당산에서 조민이 내기를 걸며 자신이 반드시
주원장을 죽이러 갈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상기했다. 이 시각 가슴
에 손을 얹고 생각하매 비록 주원장의 교활하고 음독함을 몹시 원
망하지만 결코 그를 죽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막 무슨 말을 할까
망설이고 있을 때, 조민이 말을 시작했다.

"지금 만일 그를 처치한다면 틀림없이 광복의 대업에 지장이 있을
거예요. 일신의 원한 때문에 국가흥망의 대사를 망칠 수는 없겠지
요."

장무기는 뜻밖에도 자신의 심사를 조민이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을
보고도 결코 놀라지 않았다. 그는 아내가 더없이 총명한 탓에 이런
유사한 일을 실로 너무 많이 경험했던 것이었다. 곧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멀리 진우량의 수많은 거대한 전함
을 바라보는 것으로 묵인했다.

조민이 신음하듯 말했다.

"장 대협은 명교의 고수들이 하나하나 모조리 멸살되고 죽을 목숨
을 각오하는 전쟁이 극한에 다다르게 될 때에야, 비로소 나서서 뒷
수습을 할 거예요. 그러나 그때는 이미 옛친구들이 모두 죽었을 테
니, 장 대협도 처참한 상황을 면치 못하고 그저 처자식을 끌고서
산 속으로 가서 숨어 지내며 죽는 날까지 탄식이나 하다 가겠죠."

장무기는 그녀의 말에 혼비백산하여, 빨리 결정을 하지 못하면 바
로 조민의 말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매우 당혹하고
불안해 하며 말했다.

"민 누이, 당신이 나를 위해 방도를 강구해 주면 어떻겠소?"

조민이 말했다.

"뭐가 어렵단 말이에요. 도룡도를 한 번 휘두르면 되지 않겠어
요!"

장무기가 말했다.

"정말, 정말 지금 교전을 해야 하나? 이를 어찌한단 말이오!"

조민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는 원래부터 당신이 무슨 황제가 되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어
요. 당신이 할 수 없다면 너무 조바심치지 마세요. 그런 일로 자기
몸을 상할 필요는 없지요."

두 사람은 말없이 광활한 수면을 바라보며 마치 얼이 빠진 듯 서
있었다. 한참을 지나 상우춘이 함대로 돌아와서 사졸에게 화기(飄
?)를 준비하도록 명했다.

잠시 후, 주원장이 탄 배에 홍기가 올랐고 전체 수군이 이십 대로
나뉘어 돛을 올리고 진우량의 함대를 향해 질주했다. 결전이 시작
된 것이었다.

상우운이 명령했다.

"전선(??) 가까이 가면 먼저 화기를 발포하고 그 다음에 화살을
쏘아라."

장무기가 몸을 돌려보니 수백 명의 사졸들이 모두 각양각색의 화
기를 들고 배 옆에 서서, 얼굴빛이 숙연한 채 격전을 준비하며 한
사람도 결코 두려운 기색을 나타내지 않았다. 화기에는 화표, 화
통, 화전(飄旨), 불마름쇠(飄?孼:화질려), 화창, 장군통, 철포 등
등이 있었다. 과연 조민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주원장은 화공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장무기가 경탄해 하며 조민을 바라보니
조민은 오히려 입가를 삐죽거리며 익살맞은 표정을 하고는 다시 몸
을 돌려 앞쪽을 보았다.

이때 진우량 역시 배를 지휘하여 정면으로 달려왔다. 거선들이 서
로 연결되어 운항이 비록 완만하긴 했으나 산과 바다를 뒤엎을 만
한 기세였다. 명군의 전함은 매우 왜소했으나 그 움직임은 대단히
신속했다. 쌍방이 곧 사정권 안에 진입하였으며 맞은편의 신속하게
접근하고 있어 배 위에는 이미 화살과 표창을 든 사병들이 빽빽하
게 서 있었다. 어느 쪽이든 명령이 한번만 내려지면 곧 개전(詵?)
이 될 상황이었다. 장무기는 자신도 모르게 걱정이 되어 조민 곁으
로 한걸음 다가서서 왼손으로 조민의 날씬한 허리를 잡으며 오른손
에는 경궁(?恂)을 들고 그녀를 위해 화살을 막아낼 준비를 했다.

조민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무기, 당신도 조심하세요."

'요'자가 막 끝나기가 무섭게 함성이 폭발하며 사졸들이 계획에
따라 움직여 수백 개의 화기가 근접한 적함을 향하여 일제히 발사
되었다. 한바탕 귀가 멍멍할 정도의 포성이 지나간 후에, 그 적함
의 사병들과 서로 쏘아 대고 있었다. 장무기는 활을 휘둘러 메뚜
기처럼 쏟아지는 장전을 막아내며 전함이 가까이 접근하기만 하면
곧 뛰어올라 싸울 작정이었다.

쌍방의 전면적인 개전으로 고요했던 수면이 일시에 초연으로 가득
찼다. 화공을 쓴 계책은 매우 기발해서 삽시간에 진우량의 수십 척
의 전함에 불이 붙었다. 상우춘이 탄 배는 적진 속으로 돌격하였는
데 장무기와 조민이 막 상대편 거함으로 뛰어오르려 할 때 뜻밖에
도 높은 곳에서 이 배로 뛰어내리는 적병이 있었다. 당장에 백병전
이 벌어지며 도광(埃?)이 비무하고 사방이 캄캄해질 때까지 서로
죽이니, 호수가 온통 피로 물들었다.

한바탕의 격전 후에 장무기와 조민은 서로 등을 바싹 붙이고 적함
에 뛰어올랐다. 장무기는 발 밑에 아직 타고 있는 나무막대를 보고
는 틈을 타 주워들고 한편으로는 그들을 죽이고 또 한편으로는 크
게 불을 질렀다.

상우춘은 혹시 두 사람에게 사고가 있을까 적정해서 진작에 바싹
쫓아왔다. 세 사람이 한곳에서 힘을 합쳐 적들을 격살시키니 능히
막아낼 자가 없었다. 상우춘과 장무기는 조민을 중간에 보호했고
조민은 두 손에 각각 횃불을 들고 오로지 방화만 해댔다. 세 사람
은 이 배에서 저 배로 뛰어다니며 마침내 수십 척의 배에 불을 질
렀다. 일시에 짙은 연기가 자욱하며 화염이 충천했다.

상우춘이 홀연히 말했다.

"빨리 나를 따라오시오!"

하고는 서북방향으로 질주했다. 이때 쌍방의 함대는 막 혼전에 진
입한 때여서 배와 배 사이가 서로 대략 일 장(晙, ?=2, 3미터)도
안 되었다. 상우춘이 뛰어넘자 적병이 나타나 막아섰다. 결코 싸우
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기에 단지 혈로(??)만을 뚫은 채 여전히
서북방향으로 질주했다. 장무기와 조민도 그를 바싹 쫓아갔지만 무
슨 일인지는 알지 못했다. 조민이 갑자기 말하였다.

"주원장에게 문제가 생겼어요."

장무기는 눈을 들어 바라보매 농염한 검은 연기 속에 서북방향으
로 백색의 전함 한 척이 수척의 붉은 배에 포위되어 있는 것이 가
물가물 보였다. 백색 전함은 바로 주원장이 탄 전함이었다. 진우량
의 수군은 모두 일률적으로 붉은 색이었다.

원래 서달이 교전을 시작하자마자 몸소 사졸들의 앞장을 서서 거
함 한 척을 탈취했었다. 유통해(?枕?) 등이 사바에 불을 질러 적
선 이십여 척이 불타고 서달이 탈취한 거함에까지도 역시 재앙이
미쳤다. 서달은 부득불 한편으로는 급히 사졸들에게 불을 끄도록
명하고 한편으로는 더욱더 분발하여 재전했다. 서달의 전후좌우의
적함이 모두 불에 타고 있는 것을 보고 주원장은 혹시 서달이 잘못
될까 걱정되어 황급히 배를 파견하여 원조했다. 서달은 원조를 얻
고 더욱 용기를 떨쳐 마침내 돛을 높이 올리고 곧장 진우량의 함대
깊숙히 둘격했다. 적병은 뜻밖에도 서달의 용감무쌍함을 보고는 모
두 피하며 오히려 앞을 다투어 주원장을 포위 공격해 갔다. 주원장
의 신변에는 이미 호위함대가 없었기 때문에 배를 돌리도록 급명을
내려 부하들 쪽으로 접근하려 했다. 그러나 미처 멀리 가기도 전에
그가 탄 배가 별안간 좌초되었다.

진우량의 용장 장정변(遵珍?)이 이 상황을 보고 호령을 내려, 수
군을 이끌고 필사적으로 노를 저어 주원장의 군대가 막고 있는 곳
을 해치며, 일제히 주원장이 좌초된 곳을 향하여 운집했다.

주원장의 대장 정국승(瓆髓彛), 송귀(陰崧), 진조선(???) 등이
병사를 거느리고 막아서며 일당 십으로써 필사적으로 겨루니 날이
저물어 어두워질 때까지 격전이 계속되었다.

장정변은 대단히 용맹스러워서 사면으로 군사들을 지위하여 주원
장을 겹겹이 에워쌌다. 주원장의 부장 송귀, 진조선이 분발역전하
며 수십 개의 칼을 가지고 온몸을 피로 물들이더니 마침내 지쳐서
주원장의 면전에서 쓰러져 죽어 갔다. 주원장은 보시 용감한 무사
로 이 광경을 보고도 당황하거나 아연실색하지 않았다.

이때 상우춘, 장무기, 조민 세 사람은 이미 최후의 한 척의 적함
을 공격하고 있었으나, 주원장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었다. 세 사람
은 소리를 지르며 병기를 마구 휘둘러 마구 죽이며 이 배를 빼앗으
려 했다.

이 거함은 모두 삼 층으로, 이 시각 장정변의 소환을 듣고 황급히
뱃머리를 돌려 수백 명의 노수(??: 노젓는 이)들이 있는 힘을 다
해 주원장이 좌초된 곳으로 저어 가고 있었다. 장무기 등 세 사람
은 벌써 맨 위층의 적병 수십 명을 죽였고 나머지 병사들도 세 사
람의 위용을 보고는 비명을 지르며 전부 호수로 뛰어들어 목숨을
구하려 했다.

가소롭게도 아래 두 층의 적들은 이렇게 아우성 소리가 천지를 진
동시키는 전장에서 위층에서 벌어진 변고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곧장 주원장의 배를 향하여 몰아댔다.

상우춘은 타는 듯한 급한 마음으로 맨 위층에 서서, 상대방의
지휘자가 진우량 수하의 제일 용장인 장정변임을 분명히 보고는 더
욱더 놀라 허둥지둥했다. 장무기가 고개를 돌려보니 서달 등은 이
미 적진을 빠져나와서 급히 질주하여 진우량을 원조하러 가고 있는
데 거리가 아직도 너무 멀어 제때에 닿지 못할까 걱정되었다.

이때 적함의 사졸들의 시끄러운 외침 소리가 더욱 급해지며 기세
가 흉흉해졌고 간간이 '빨리빨리 투항하라'라는 등의 말이 들려왔
다. 그러나 주원장이 선실에서 뱃머리로 걸어나와 큰소리로 말했
다.

"진우량은 들어라! 우리 두 사람 때문에 이렇게 많은 군사들이 동
원되어 무고한 생명을 잃어가니, 서로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나는 오늘 네가 위풍있게 이 살육전을 중지하도록 요청한다!"

주원장은 말을 마치고 파도가 흉용한 호수 속으로 몸을 날려 마침
내 자살했다.

장무기가 깜짝 놀라 급히 '아이구'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조민이
말했다.

"무기, 안심하세요. 저 사람은 주원장이 아니에요."

상우춘 역시 말했다.

"음성이 다르군!"

원래 주원장에게는 한성(褪?)이라는 비장(?竣)이 있었는데 정세
가 위급함을 보고는 곧 보고했다.

"감히 청컨대 주공의 포복을 신과 바꿔 입으시길 바랍니다. 신이
주공을 대신하여 죽음으로써 적을 지체시키려 합니다."

주원장이 깊이 생각하며 묵묵부답했다. 이때 적병의 함성 소리가
더욱 커지고 주원장 군대는 확실히 더이상 지탱할 수 없는 형상이
었다. 한성은 더 기다릴 겨를이 없이 소리쳐 말했다.

"주공, 빨리 신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모두 같이
죽는 목숨이 될 터이니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주원장은 이제는 이미 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부득불 의관을 벗
었다. 한성은 그것을 두 손으로 빼앗아다 입고는 다시 관을 머리에
쓰고 말했다.

"주공, 몸조심하십시오. 한성은 갑니다!"

하고는 주원장이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뱃머리로 가서 몇 마디
말을 하고는 곧 호수로 뛰어들어 죽은 것이었다.

적병은 이 상황을 보고 공세를 약간 늦추었다. 단지 장정변만이
물러서려 하지 않고 여전히 독병하여 진공해 왔다. 장무기는 눈앞
의 정세가 위급하자 줄곧 몸에 차고 있던 경궁을 뽑아 활시위를 얹
었다. 막 발사 준비를 하려는데 조민이 심상치 않게 소리쳤다.

"무기!"

장무기는 잠시 주저하다가 그대로 '휙'하고 장정변을 향하여 화살
을 날렸다. 그 힘이 어마어마함에 설사 장정변이 이미 알아차렸다
해도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화살은 바로 그의 오른쪽 이마에 적
중하였다. 장정변은 자신은 부상당하고 또 서달, 유통해 등이 돌격
해오는 것을 보자 부득불 배를 지휘하여 철수하였다. 바로 이때 호
수면이 갑자기 올라가며 주원장의 함선을 솟아오르게 하매 함선은
파도에 따라 자유로이 떠돌았다.
주원장은 이 기세를 틈타 돌진해 나가며 다른 장수들에게 장정변
을 추격하돌고 명령했다. 장정변은 일면 교전하며 일면 후퇴하다가
마침내 수십 개의 화살을 맞았다. 그러나 다행히 목숨을 잃진 않고
작은 배로 탈주했다.

장무기 등 세 사람이 주원장의 위기가 이미 해결된 것을 보고는
몸을 돌려 내려가서 이 거함 아래 두 층에 있던 사졸을 살상하거나
호수로 뛰어들게 하고 막 노수들에게 돌격하도록 협박을 하고 있는
데 주원장이 징을 울려 수병(??)했다. 날이 한창 저물어 갈 무렵
세 사람은 함대로 돌아왔다. 이 한 차례 교전에서는 비록 진우량이
패하긴 했지만 주원장 역시 손실이 막중했다. 마침 몇 일간의 휴전
을 결정하고 있을 때 유기가 말했다.

"진우량은 대패하였으니 반드시 휴전을 하고 군사를 정비할 것입
니다. 주공께서 오늘 군중에서 결사대를 선발하여 야색을 틈타 경
주(?贊)를 몰아 적진으로 진입하게 하십시오. 경주에는 화약과 마
는 장작을 준비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피병지계(綻?柵稅)입니다."

주원장은 이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즉시 상우춘에게 이 일을
감독하도록 명령했다. 상우춘은 명령을 받고서 결사대 수십 명을
선발했다. 밤이 되어 결사대는 풍향을 정확히 보고 각각 인화성 물
품을 실은 칠 척(?)의 경주를 몰아 적진으로 뛰어들며 불을 질렀
다. 삽시간에 불길이 치열해지며 화염이 온 하늘은 뒤덮었다. 수면
위에 화공(飄?)이 충천하여 파양호의 물빛이 온통 새빨갛게 비추
었다.

진우량의 군대는 온종일의 격전으로 진작에 매우 지쳐 있었으며
또 함대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도주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웠기
때문에 군사들이 효사당하거나 물에 떨어져 익사한 자가 부지기수
였다. 진우량은 어쩔 수 없이 부득불 군대를 지휘하여 십수 리를
후퇴했으며 불타고 있는 모든 배를 포기하고 나서야 비로소 닻을
내리고 군사를 정비할 수 있었다.

수일 후에, 진우량은 잠시 휴식하고는 다시 배를 이어 교전을 준
비하며 깃발과 돛을 세웠으니 멀리서 보매 마치 숲을 이룬 듯했다.
이번에는 진우량도 방비를 하고 주원장이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곧 사졸들에게 높은 곳에서 화살을 쏘도록 명했다.

명군이 예정한 책략은 먼저 화기를 발사하고, 그 다음엔 활을 쏘
며, 최후에는 백병전으로 서로 맞붙어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것이
었다. 진우량은 이번에는 먼저 우위를 차지하고 주원장의 함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명군의 화기의 사정거리가 너무 짧
아서 진우량의 전함으로 하여금 위협을 느끼게 하기 어려웠기 때문
에 할 수 없이 화살을 쏘아 댔으나 함대가 너무 왜소하여 접전 한
시간 안에 대부분 패퇴했다. 주원장은 대노하여 친히 십여 명의 백
부장(王?只)을 처형했으나 여전히 저지할 수 없었다. 진우량의 거
함들은 서로 연결되어 태산처럼 바다처럼 밀려들며 시시각각 압박
해 왔다. 주원장은 하는 수 없이 그저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가슴
속은 온통 분노가 뒤흔들렸다.

유기가 말했다.

"주공, 분노를 삭이십시오. 적의 배는 거대하고 우리의 배는 지극
히 작으니 적은 내려다보며 공격할 수 있으나 우리는 맞서서 공격
해야 합니다. 이렇듯 상황이 완전히 다르니 승패도 물론 다를 것입
니다. 제 생각으로는 적진을 파괴시키려면 역시 화공이 아니면 안
됩니다!"

주원장이 낙담하여 말했다.

"전에도 화공을 이용하였으나 대승을 거두지 못하였는데 어찌 하
겠소?"

유기가 말했다.

"이렇게 교전하다 보면 아군은 식량에 부족함이 없고 또 홍도에서
공급할 수 있지만 진우량은 이미 주공에 의해 파양호에 갇혀서 시
일이 길어질수록 식량을 댈 수 없어 틀림없이 군중에 대혼란이 일
것입니다. 그때 주공께서 기세를 잡아 일격을 가하면 진우량의 대
패는 걱정할 것 없습니다."

주원장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선생의 말씀은 비록 일리가 있지만 도대체 얼마나 견딜 수 있겠
소. 만일 장사성이 틈을 타서 응천을 침범한다면 오히려 양난에 휩
싸이게 될 것이오. 이렇게 합시다. 서달을 응천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오. 선생 생각에는 어떻소?"

유기가 말했다.

"주공께선 영명하십니다. 그렇게 하심이 매우 좋겠습니다."

즉시 서달에게 전하여 응천으로 돌아가 진수하며 나오지 말도록
명했다. 유기가 다시 말했다.

"신이 전체(?천체) 현상을 관측해 보니, 주공에게는 천우신조가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이렇게 하시면 되겠습니다."

주원장은 기쁨에 넘쳐서 상우춘 등 제장(?竣)들을 들게 하고는
밀계(?稅)를 전달했다. 제장들은 명을 받고 흩어졌다.

해질 무렵이 되어 수면에 갑자기 광풍이 일어 진감(??) 방위에
서 시작하여 '휙' 소리를 내며 서남 방위로 곧장 질주했다. 진우량
이 마침 병사를 거느리고 순시를 하다가 별안간 호수에 칠 척의 작
은 배가 멀리서 달려오는데 사졸을 가득 태우고 풍세를 타서 눈 깜
짝할 사이에 곧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진우량은 명군이 침범해 오는 것임을 알고 급히 궁수들에게 맹사
(??)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때 호수에 사나운 파도가 일고 농
무가 가득 찼는데 명군 사졸이 여전히 뱃머리에 똑바로 서 있는 것
이 어렴풋이 보였다. 화살을 쏘아 댔으나 단 하 사람도 쓰러지는
이가 없었다. 작은 배가 더욱더 접근하여 이번에는 창으로 바꿔서
수십 개를 던졌으나 명군은 의연히 직립한 채 쓰러지지 않았다. 가
까이 다가와서 보니 이 사졸들은 전부 갑옷을 두르고 투구를 쓴 허
수아비들이었다. 진우량은 매우 의아스러웠다. 바로 이때, 배 안에
숨어있던 명군 사사(??: 대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이
각각 유황, 화약 등을 분분히 진우량의 거함으로 던졌다. 삽시에
치열한 불기둥이 공중을 갈랐고 거센 바람에 사방에 모두 불이 붙
었다. 상우춘과 장무기 등은 다시 돌격해 갔고 진우량은 끊임없이
비명을 질러 댔다. 더이상 대적할 수 없음을 알고 진우량은 곧 서
쪽으로 달아나려 했으나 어찌하랴! 거선들은 서로 연결되어 방향을
바꿈에 민첩할 수 없었다. 철삭을 베어 끊고 각자 도주하려 할 때
는 이미 분사하거나 익사 또는 피살된 사졸들이 부지기수였다. 진
우량의 군대는 놀라고 당황하여 도주하는 중에 또 여러 척의 전함
이 서로 충돌하며 침몰해 버렸다. 이 한 차례 교전은 명군의 전승
이었다. 진우량은 한참을 도망가다가 뒤돌아서 여전히 불길이 하늘
을 뒤덮을 정도로 타고 있는 전함을 바라보며 원한으로 이를 갈았
다.

진우량의 부하들은 화공의 위력이 어마어마함을 보고는 분분히 계
책들을 내놓았다. 그러나 진우량은 이 몇 번의 화공으로 이미 노발
대발하여 발을 구르며 제장들의 의논을 전혀 듣지 않고는 단지 명
령만 내렸다.

"주원장 이놈, 이 더없이 교활한 놈, 짐이 보니 그가 탄 배의 돛
은 바로 백색이었다. 내일 출전해서 백색 돛만 보기만 하면 곧 합
력해서 진공하라. 제장들하고 상대할 필요없다. 주원장을 죽여야만
과인의 한을 풀 수 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진우량의 제장들이 배를 몰아 나오며 가까이
가니 전면에 늘어선 명군의 전함의 돛들이 모두 백색으로 변해 있
어서 결국 주원장이 탄 배를 구별해 낼 수 없었다. 진우량의 제장
들이 놀라며 의아해 하고 있는데 주원장은 일찌감치 군사를 몰아
공격했다. 진우량의 군대는 할 수 없이 접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장의 혼전이 이른 새벽부터 해질 무렵까지 계속되었으나 서로 조
금의 양보도 없이 버티었다. 주원장이 혼신을 다해 진두지휘하고
있을 때, 홀연히 그가 탄 배가 계속하여 포탄에 격중되었다. 다행
히 부하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구해내서 주원장과 유기 등을 다
른 배로 옮겼다. 뒤쪽에서 한바탕 괴성이 울리더니 그 배가 다시
동시에 수포에 격중되어 마침내 폭파되어 산산조각이 나며 눈 깜짝
할 사이에 호수로 가라앉았다. 원래 진우량은 조타실에 높이 앉아
주원장의 배를 분별해 내고는 곧 집중포화를 명령하여 이 배를 완
전히 폭격하도록 하여 침몰시켰던 것이었다. 진우량이 막 매우 기
뻐할 때, 뜻밖에도 주원장이 다시 독군하며 돌격해 왔다. 진우량은
말 할 수 없이 놀라서 마치 귀신을 보는 듯했으니 어찌 더이상 접
전할 수 있었으랴. 그저 한편으로 싸우며 한편으론 후퇴하였으나
일시에 명군의 공격을 벗어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장정변이 목숨
을 걸고 구하여 겨우 겹겹의 포위를 뚫고 나가 혜산(篇雲)으로 물
러났다. 주원장이 앵자구(笠侏手)까지 추격했으나 수면이 너무 협
소하여 쉽게 진입하지 못하고 곧 입구에 배를 정박했다. 이렇게 수
일을 서로 대치하니 진우량은 감히 출전할 수 없었다. 주원장은 어
쨌든 무사하자 곧 편지를 한 통 써서 진우량을 한껏 희롱하여 말했
다.


'공(頌)께서는 꼬리가 너무 커서 흔들 수 없는 배를 타시어 병사
와 갑옷이 모두 피폐하여 쓸모없게 된 채, 저와 버티고 있군요. 공
이 평일의 광폭함으로써 지금 친히 사투를 겨루려 하니 어찌 천천
히 따르겠습니까? 만일 제가 지휘함에 따른다면 어찌 대장부가 아
니지 않겠습니까? 공께서는 단지 그것만 결정하시지요!'


이렇게 다시 수일이 지나도 사자(?柱)가 돌아오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갑자기 좌금오와 우금오가 부대를 이끌고 와서 투
항을 보고했다. 원래 쌍방이 대치한 날이 오래되어 진우량의 군대
의 식량이 부족하게 되자 벌써부터 군심이 흔들렸던 것이었다. 제
장들이 하명을 청하여 홍도부로 가서 식량을 빼앗아 오려 했으나
오히려 주문정에게 한바탕 요살을 당하여 타고 갔던 배들이 모조리
불타 버리고 목숨만 빠져 나왔으니 모두들 크게 낭패하여 귀순한
것이다.

본래 좌금오 장군은 계속 싸울 것을 주장했고 우금오 장군은 전함
을 불살라 버리고 서쪽으로 곧장 달아나서 장래를 도모하도록 하자
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우량이 주저하며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부
고 두 사람은 진우량이 대사를 이루기 어려움을 알아차리고 곧 서
로 약속을 하고 주원장에게 투항해 온 것이었다.

주원장은 크게 기뻐하며 두 사람에게 극진히 대해 주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와서 보고하길 진우량이 좌우 두 금오가 주원장에게 투항
한 것 때문에 분노한 끝에 신사(藺?)와 모든 포로가 된 명군의 장
사(竣?)들을 다 죽여 버렸다고 전했다.

주원장이 성을 내며 말했다.

"그 잘난 진우량의 도량이 이리도 좁군. 그가 내 장사들을 죽었으
니 나는 오히려 그의 장사들을 돌려보내서 과연 그가 어찌하는지
봐야겠다."

하고는 곧 포로로 잡힌 진우량의 장사들을 전부 풀어주고 부상당
한 자는 세심히 치료하도록 명했다. 또한 엄명을 하달하길 이후에
만일 진우량군을 잡거든 우대하지 절대 죽이지 말도록 했다. 또한
다시 진우량에게 편지를 보내 말했다.

'어제 내가 배를 저기에 정박하고 편지를 지닌 사신을 보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 공의 도량은 어찌 그리도 얕은가? 강회(析
?)의 영웅은 나와 공뿐인데 어찌 서로 병탄하려 하는가? 공이 지
금 제질(??)과 수장을 잃으니 또 어찌 분노치 않으랴? 공의 토지
를 내가 이미 다 취했으니 설사 잔병(鑄?)들이 몰아쳐서 성 아래
에 와 죽는다 해도 다시 얻을 수 없다. 설사 공이 요행히 달아나도
역시 마땅히 황제의 칭호는 진짜 주인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 않
으면 집안과 자신이 완전히 파멸한 후에는 후회해도 늦으리라! 대
장부가 천하를 도모함에 어찌 깊은 원한이 있으랴? 고로 기탄없이
다시 알린다.'


진우량은 읽을수록 화가 나서 곧 군사를 이끌고 와서 개전을 했
다. 그러나 주원장이 포로를 풀어 주었기 때문에 진군들은 일찌감
치 투지를 상실했다. 하나 명군의 사졸들은 진우량의 포로들을 잔
혹하게 죽인 것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다들 차라리 죽을지언정 결
코 투항하길 원치 않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분기탱천해 있었
다. 진우량은 계속 몇 차례를 패배하고는 대세가 이미 기울어졌음
을 알고 죽음을 무릅쓰고 포위를 뚫으며 명군의 정면에서 공격을
가하였다. 진우량은 도망치는 데 급급하여 결국 가솔들까지도 돌볼
겨를이 없이 용장 장정변만 데리고 배를 바꿔타고 몰래 호구를 건
넜다.

장무기와 조민은 진작에 그를 지켜보고 있다가 즉시 배를 타고 추
격했다. 진우량이 막 호구로 다가갈 무렵 갑자기 전면에 일률적인
명군의 수군들이 벌써부터 진지를 확고히 하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
는 것을 보았다. 부하가 놀라서 진우량에게 보고했다. 진우량은 창
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살펴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간담이 서늘해지
고 말문이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장무기는 그의 위치를 정확히 가늠하고 곧 활시위를 당겼다. '휘
익' 소리를 내며 날아간 장전(只旨)이 진우량의 오른쪽 눈에 명중
하여 뇌까지 관통하니 진우량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장무기가 길게 한숨을 쉬며 경궁을 호수로 집어던지고 말하였다.

"칠숙, 제가 오늘 칠숙을 대신하여 원수를 갚았습니다. 부디 하늘
에 계신 영혼이 안식하시길 바랍니다!"

이때 장정변이 의연히 죽음을 무릅쓰고 돌격했다. 장무기는 의기
소침하여 곧 배를 돌려 상우춘을 찾아갔다.

전사는 이미 그치고 수일 동안 휴식에 들어갔다. 주원장은 곧 대
군을 이끌고 응천으로 돌아갔다. 장무기는 본래 떠나자고 했으나
조민이 말했다.

"냉면인의 일이 아직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고 이미 온 지 오래 되
었으니 차라리 아예 응천으로 한번 가 봐요. 혹시 무슨 단서라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장무기는 그녀의 말에 따랐다. 두 사람은 여전히 변장을 하고 상
우춘의 군중에 있었다. 얼마 안 되어 응천에 도착했다. 장, 조 두
사람은 며칠 동안 단서를 찾기 위해 몰래 조사했지만, 결국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하였다. 장무기의 심중에는 마로 표현 못할 기쁨이
었으나 조민 또한 눈치채고 있어서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진우량이 전사하자 그 잔여 부대는 오래지 않아 곧 소멸되었다.
이때 동면의 장사성은 온종일 안절부절못하고 주원장이 언제 자신
을 공격해 올지 몰라서 잔뜩 웅크리고 있어 감히 확장을 도모하지
못했다. 북방 일대에서 고고특목이와 이사제 등도 한창을 싸우느라
겨를이 없어 주원장의 일에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이처럼 주원장의 강토가 날이 갈수록 넓어지니 수중의 웅병이 어
찌 백만에 그치겠는가. 이선장(??只), 서달, 상우춘 등이 누차
왕위에 오르도록 권하자 주원장도 곧 하고 싶어 견디지 못하고 즉
시 칭왕(??)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무슨 왕으로 칭할지, 한참 동
안 고심을 해야 했다. 장사성은 벌써 '오왕(全?)'으로 자칭했다.
응천은 마침 공교롭게도 역사상 손권의 오국의 도성으로 몇 년 전
한 동요가 떠돌았다.

'부자는 누각을 올리지 않고 빈자는 방을 짓지 않는다. 그러나 양
아년(孱??)을 보니 바로 오가구(全?髓)이다.(지은이 주: 이 동
요는 [경신외사(?一??)] 중 [원사(??)]권 51 [오행지(迹?
?)]에서 발췌했음.)'

보아하니 천하을 얻으려면 오왕을 칭하지 않으면 안 될 듯했다.

지정 이십 사 년, 주원장이 응천에서 '오왕'이라 칭하며 백관을
설치하고 중서성을 세우고 이선장을 우상국으로, 서달을 좌상국으
로, 상우춘, 유해통을 평장정사로, 양광양을 우사낭중으로, 장창을
좌사도사로 삼았다. 또한 장자를 세워 세자로 추대했다.

이때 세간에 동시에 두 명의 '오왕'이 있었으니 민간에서는 장사
성을 동오(?全)로, 주원장을 서오(?全)로 불렀다. 주원장이 어찌
장사성을 용납할 수 있으랴. 곧 병사를 일으켜 장사성을 토벌할 것
을 격문으로 천하에 알렸다.

장무기가 격문을 얼핏 보았다.


'듣자하니 고생하는 백성을 위로하고 죄 있는 통치자를 징벌하는
제왕의 스승을 옛부터 찾아보니 대대로 확연하다.
......가까이 보면 원 말(??)에 주인은 심관에 거하고 신이 위
복을 조종하며 관은 뇌물로써 이루고, 죄는 사사로운 정으로써 면
하며, 어사대는 친분을 내세워 원수를 가혹히 하고, 벼슬아치들은
가난한 자들을 털어 더욱 부자가 된다. 묘당은 돌보려 하지 않고
주인은 쓸데없이 관을 더하고 또 초법을 고친다. 수십 만 백성을
전쟁에 끌어내어 포연이 황화를 메우며 죽은 자가 길에 가득 뒹굴
며 곡 소리가 하늘에 퍼진다. 우민들로 하여금 요술에 걸리게 하여
게언(?欌)의 황당무계함을 풀지 않는 명교의 진리를 가혹하게 믿
게 하는......'


장무기는 여기까지 보고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두 손을 떨었다.
조민이 황급히 받아 들었다. 격문이 계속되었다.


'......치세를 바라며 곤고에서 벗어나 선향을 피운 무리들이 모
여 장(增), 영(猪), 막연하(??泰), 낙(娠)을 근거로 한다. 요언
이 행해지고 흉모가 드러나며 성곽을 불태우고 사무들을 살육하는
백성을 박해하고......'


장무기는 화가 나서 계속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온통 헛소리요!"

곧 격문을 쫙쫙 찢어 버리며 아직도 화가 덜 풀렸는지 '딱'하고
나무 탁자를 내리쳐 산산조각을 냈다.

상우춘이 이 소리를 듣고 달려왔는데 그 역시 수중에 격문을 들고
있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와서 바닥에 갈가리 찢긴 격문을 보고는
장무기가 어째서 화가 났는지 분명히 알았다. 상우춘은 장탄식을
하고 털썩 의자에 주저앉으며 손에 쥐고 있던 격문을 바닥에 떨어
뜨렸다. 세 사람은 안색이 침울하여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
다. 한참을 지나 장무기가 말했다.

"상 형님, 몸조심하십시오. 소제는 이만 작별을 고합니다."

말을 마치고는 조민의 손을 끌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갑자
기 상우춘의 굳은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기다리게!"


제 13장 : 천응교의 최후
장무기와 조민이 몸을 돌렸다.

상우춘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아우, 방금 정찰병의 보고를 들으니, 한 부대가 지금 은야왕부를
토벌하고 있다는 군."
"형님, 누가 한 짓인지 알 수 있습니까?"
"보고에 의하면 어떤 무공이 고강한 자가 냉면인의 사람을 시켜
한 짓이라고 하네."

장무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조민이 말을 가로챘다.

"상 형님, 냉면인에게 무슨 내력이 있는지, 그의 배후를 사주하는
자가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전혀 모른다네."

장무기가 말했다.

"형님, 속담에 말하길 '군주를 모심은 호랑이를 모시는 것과 같다
'고 하였습니다. 형님께서 더욱 몸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상우춘은 그렇게 한동안 중당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천신(?佚)같았으나 표정에는 한 줄기 암담한 기
색이 스쳐지나 갔다. 그는 두 손으로 천천히 읍하며 장무기 부부와
무언의 작별을 했다.

장, 조 두 사람도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곧장 절동(芷?)으로
향했다.

명교는 삼십 이 대(岩) 교주 양전천이 실종된 후, 자삼용왕이 제
일 먼저 모반을 일으켜 출교(出?)했고, 범요가 강호로 잠적하여
교주의 행방을 찾아 나섰다. 금모사왕 사손은 성곤으로 인해 크게
분개하여 강호에서 살생계를 벌였으며, 광명좌사 양소는 남아 있었
다. 백미응왕 은천정, 청익복왕 위일소, 오행산인 등은 교주직의
쟁탈 과정에서 서로 원한을 품게 되었다. 백미응왕 은천정을 화가
난 나머지 멀리 동남쪽으로 가서 천응교를 창시하고 스스로 천응교
교주로 자처했다. 그 교세의 대단함이 강호상에서 마침내 명교를
훨씬 넘어서자, 여러 두령들이 모두 분노하여 떠나가고 양소 한 사
람만 남아서 여전히 광명정을 지켰다.

명교의 제두령(???)들이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자 부하들도 통
제를 잃고 살인, 방화를 일삼으며 무고한 이들을 마구 죽였다. 그
악랄함이 사람들로 하여금 경악하게 하더니, 마침내 무림 전체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소림사가 나서서 무당, 아미, 곤륜,
화산, 공동 다섯파에 연락하여 육대파가 공동으로 광명정을 토벌함
으로써 명교를 일망타진할 생각이었다.

명교의 제왕(??)들은 이 소식을 듣고 비록 각자 양소에게 불만
을 품고 있긴 했지만, 명교의 위험이 조석에 달려 있음을 알고 모
두 일제히 광명정에 모였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대면하자 또다시
싸워 댔고 마침내 육대파가 기회를 틈타 광명정을 공격했다. 이렇
게 명교의 고수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하여 순식간에 전교가 멸망하
려 할 때, 생각지도 못했던 장무기가 홀연히 출현하여 여섯 파의
고수를 연패시키고 명교를 구했다.

명교의 제왕들은 즉시 장무기를 명교 제 삼십 삼 대 교주로 세웠
고, 백미응왕 은천정은 '천응교'를 없애고 다시 명교에 가입하여
장무기의 지시에 복종했다. 명교는 이때부터 다시 번창하기 시작했
다. 그리고 그 고인들 중에서 주원장 같은 제왕의 재목이 나왔던
것이다.

장무기의 모친 은소소는 백미응왕 은천정의 딸이고 은야왕의 누이
였다. 고로 백미응왕이 바로 장무기의 외조부이며, 은야왕은 장무
기의 외삼촌이었다.

백미응왕 사후에는 은야왕이 부하 교인들을 관리했다. 당초 천응
교가 비록 명교에 들어오기는 했으나, 그 세력이 연해 일대에서 매
우 방대하여 조직을 개편하지는 않고 단지 교인을 엄격히 단속하여
또다시 천리를 배반하는 일을 못하게 했다. 고로 명교 중에서는 주
원장을 제외하고는 은야왕의 세력이 최대로 손꼽혔다. 주원장과 은
야왕의 다른 점은 주원장은 행군정전(?琡疹?)하는 장군이나, 은
양왕은 위세 당당한 강호 고수라는 것이었다.

은야왕은 아버지의 직분을 계승하여 명교 동남 분타(?辰熔?)의
타주(?嵯)를 맡았고 조직 체계는 바꾸지 않았다. 조직 기구는 천
미, 자미, 천시, 삼당, 신사,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오단으로
나뉘며, 각 당주와 단주는 모두 절기(贄?)를 지닌 무림 고수들이
었다.

천응교는 민남 연해에 있는 천응산에서 수십 년을 지켜오며 천응
의 기험(??)에 의지하였고, 고수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때로
소림, 무당 등의 고수들이 도전해 왔으나 모두 대패하고 돌아가 확
실히 그 위세가 대단했다. 일반 강호 방회들은 천응교를 언급하면
모두 아연실색했다.

장무기가 교주를 계승한 이래 명교 교인들은 진작에 과거의 악행
을 삼가했으나, 천응교가 수십 년 동안 워낙 악명이 드높았고 명교
사람들의 행위 또한 왕왕 남들과 달라, 강호에서 일단 천응교를 언
급하면 모두들 용담호혈(井幄暴?)을 보듯하고 누구도 감히 쉽게
와서 집적거리는 이가 없었다.

장무기는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지만 냉면인만 떠올리면 매
우 꺼림칙하였다. 또한 은야왕이 바로 자신의 친 외삼촌이니 어찌
조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두 사람은 당장에 응천부를 떠나 서둘
러 민남 천응산으로 갔다.

수일 후에, 두 사람은 민남에 이르렀다. 천응산의 소재를 자세히
묻고서, 둘은 많은 산을 스치듯하며 급히 달려 해질 무렵에는 이미
천응산 기슭에 도착해 있었다. 하늘을 우러러보니, 산봉우리만 구
름 속으로 우뚝 솟아 있을 뿐, 산은 온통 어두컴컴하여 한 줄기 광
선도 없었다. 또한 쥐죽은 듯 고요한 것이 냉면인이 벌써 손을 썼
는지 그 여부를 알 수 없었다. 장무기는 조민의 손을 끌고서 산으
로 급히 내달렸다.

몇 걸음 가지 않아 곧 길가에 가슴에 긴 화살이 꽂혀 있는 흑의를
입은 시체 몇 구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장무기는 콧김을
뿜어 보아 이미 죽은 지 오래 되었음을 알고 벌떡 일어나 산정을
향해 질주했다. 산로에 시체들이 점점 많아지고 휜 도포를 입은 시
체도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 명교 교인임이 확실했다. 위로
올라 갈수록 산로는 더욱 좁아지고 시체는 더욱 많아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흑의를 입고 있었는데 아마도 지세가 험준한 덕택에 명교
쪽은 사상자가 적은 듯했다. 곧 한 석문 앞에 다다랐는데 온통 시
체가 널부러져 있었다. 장무기가 고개를 들어보니 석문에는 고아하
고 힘있는 큰 글씨로 '현무문(?俉?)'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장무기가 양쪽을 보니, 좌우 모두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산에
오르려면 이 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현무단은 삼당오단 중에 가장
끝에 있으며 진수(?艤)의 제일 관문이었다. 장무기가 조미의 손을
잡고서 석문으로 진입하니 눈에 닿는 곳은 모두 시체가 가득했다.
양쪽 처마 아래로는 흰 옷을 입은 시체가 비교적 많았다. 장무기가
대략 어림잡으니 명교도의 수는 약 이백 명 정도였다. 그는 의아함
과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삼당오단 중 현무단의 사람 수가 가
장 적었는데, 상황을 보아하니 필경 전부 여기서 전사한 듯했다.

장무기는 자세히 살피지도 못하고 다시 황급히 산에 올라, 한 시
간 후에 주작문, 백호문, 청룡 삼 문(?)을 지났는데 상황이 대부
분 현무문과 일치했다. 단지 산로가 점차 가파라진 탓인지 흑의 시
체가 더욱 많았다.

원래 이 천응산은 여러 산 중에 우뚝 솟아오른 만장고봉으로 사방
이 모두 다른 산과 연결되지 않으면 삼면이 험준한 암석으로 되어
이어 손발을 의지할 곳이 없었다. 단지 동쪽만이 바다로 향해 이어
산세가 다른 삼면에 비하여 다소 완만하며, 산등성이에 수만 개의
돌계단을 만들어 마치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처럼 구름 속에 우뚝
솟은 산정으로 곧장 뻗어 있었다. 돌계단은 올라갈수록 좁아져서,
청룡문을 지난 후에는 계단의 가장 넓은 곳에서도 두 사람이 어깨
를 붙여야만 겨우 지날 수 있었고 양쪽은 모두 쇠사슬로 둘러싸서
행인들이 실수하여 심곡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였다.

천응교는 바로 이 산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이었다. 좁디좁은 산
길에 경비가 삼엄하게 삼당오단을 지키고 있었다. 장무기가 생각해
보니 만일 단창필마(甚廳眈?)라면 자신도 결코 계속 올라갈 재주
가 없었다.

냉면인의 이러한 처사는 실로 성을 공략하는 작전과 다를 바 없으
며, 전부 인해전술에 의지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장무기는 냉면
인의 내력에 대하여 더욱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곳에는 산길
에 시체가 없었는데, 아마도 산길이 너무 비좁아 죽은 이들을 전부
심곡으로 던져버린 듯했다.

바로 이때, 갑자기 앞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 왔다. 군산 속에
서 심곡으로 떨어지는 이들의 처참한 울부짖음이 메아리쳤고 그 소
리는 더없이 처량하고 날카로왔다. 장무기는 갑자기 마음이 느긋해
졌다. 싸우는 소리가 아직 남아 있다 해도 은야왕은 당연히 무사할
것이었다. 곧 조민과 함께 청룡문으로 돌아와서 깨끗한 흑의 두 벌
을 벗겨 입고 변장을 한 후에 다시 신사문을 향해 올라갔다.

가까이 가서야 신사문 역시 냉면인에게 점령되었음을 알았다. 이
때 천시당이 냉면인들의 휴식을 틈타 기습을 할 때, 천시당은 벌써
패퇴하여 천시문으로 돌아갔다. 냉면인이 쫓으려 하지 않고 사람을
보내 망을 보게 하고는 다시 신사문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천응교 삼당오단의 관문이 설치된 곳은 모두 산등성이의 약간 넓
은 지역으로 험난한 지형을 따라 세워졌고 당의 입구가 바로 비좁
은 산길을 향해 있어 한 사람이 관문을 지키면 만 사람이 쳐들어와
도 통과하기 어려운 형세였다. 그런데도 냉면인은 오단을 공격했으
니 정말로 대단한 배짱이었다.

장무기는 야색을 틈타, 신사단 내에 약 천여 명이 있으며 물론 그
들이 모두 냉면인의 부하임을 확인했다. 장무기는 냉면인이 오단을
공격하여 잃은 인원이 이미 이천이 넘으며, 지금 이 천여 명만으로
지세가 더욱 험준하고 방어하는 이들의 무공이 더욱 높은 천응산
정상으로 진격한다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
금 천여 명이 모두 자리를 깔고 누웠는데, 그 중에 십수 명은 무공
이 매우 고강해 보였다. 필경 냉면인이 모든 고수들을 이곳에 데리
고 온 듯했다. 장무기는 한참을 주저했다. 만일 자신이 몰래 어둠
속을 더듬어 산에 으른다 해도 천시문 앞에 이르기도 전에 한 차례
화살 공격을 받아 고슴도치가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또 여기에서
싸운다 해도 냉면인 한 사람조차도 자신이 대적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물며 천여 명의 무리와 수십의 고수들이 주위를 지키고
있으니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하자 팔꿈치로 조민을 쿡쿡 찔렀다.

조민 역시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그의 이마를 톡톡
쳤다. 장무기는 물론 조민이 자신이 머리를 쓰지 못하는 것을 비웃
고 있는 것임을 잘 알았다. 그러나 그녀가 이렇게 험악한 환경에서
도 여전히 정다운 것을 보면, 머릿속에 좋은 대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장무기는 마음이 놓여서 눕자마자 잠이
들려 했다. 그러나 갑자기 조민이 귀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몹시 아
파서 부득불 다시 일어나 앉았다.

조민이 장무기의 손바닥을 끌어다가 손가락으로 몇 획을 그렸다.
장무기는 조민의 생각을 알고서 고개를 들어 주위를 한 번 둘러보
고는 일어섰다. 일부러 걸음걸이를 무겁게 하여 자다 일어나 소변
을 보러 가는 척하고는 서재 같을 방으로 몰래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조민의 곁으로 돌아와서 종이와 필묵을 건네주고
조민의 옆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막았다. 조민은 곧 희미
한 별빛에 의지하여 아무렇게나 몇 통의 편지를 썼다.


'오늘밤 삼 경 무렵, 내가 신사단 내에서 거사하고자 하니 호응을
바란다. 장무기'


두 사람은 편지를 몇 개의 화살에 묶어 두고는 그제서야 비로소
잠을 청했다.

날이 밝을 무렵, 모두가 건량을 먹고 나자 냉면인이 명령을 내려
현무단 내에 십여 개의 문판을 세우도록 했다. 문판에는 모두 손잡
이가 달려 있었고 각각 두 명의 장사가 한 개씩을 들었다. 냉면인
이 손을 젓자, 문판이 앞에 서고 그 뒤에는 궁전을 들고 허리에는
도검을 찬 이십여 명의 무사들이 따랐다. 이들이 출발하고 얼마 되
지 않아 또다시 이렇게 무리를 지어 출발했고 장, 조 두 사람은 그
뒤를 따라갔다. 일행은 천천히 천시당을 향해 올라갔다.

산세가 갈수록 가파라서 산길은 겨우 두 사람이 어깨를 붙여야 지
날 만했고 뒷줄에 있는 사람의 코가 앞줄에 있는 사람의 엉덩이에
닿을 정도였다. 조민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바로 이때, 머리 위에서 포성이 한 번 들리더니 곧이어 바위가 부
서져 내려 수십 명이 계곡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모두들 당황하지
않고 의연히 앞을 향해 올라가며 한편으론 쉬지 않고 활을 쏘았다.
장무기와 조민 역시 편지를 묶어 놓은 화살을 쏘아 댔다. 이때 두
사람은 빠져나올 수 없어서 부득불 무리를 따라 천천히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두 사람은 거의 맨 뒤쪽에 있어서 잠시 돌
덩이 세례를 피할 수 있었다.

진격하는 이들은 이런 상태로는 나아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
았지만, 철수 명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아무 소리 없이
위쪽을 향해 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또 십수 명이 심곡으로 떨어
져 처절한 비명소리가 귓가에서 끊이지 않았다.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아마도 낭떠러지가 너무 깊기 때문인 것
같았다.

눈앞의 상황이 너무 끔찍하여 아무도 천시문 앞까지 가려고 하지
않자, 냉면인은 부득불 후퇴를 명령했다. 장, 조 두 사람은 비로소
한시름 놓으며 신사단 내로 빠져나와 원래의 위치로 돌아왔다. 장
무기는 바위 틈에 감춰 둔 도룡도가 아직 있음을 확인하고, 아무말
없이 앉아 등을 벽에 붙여서 도룡도 칼집을 가렸다.

장무기는 냉면인이 도룡도를 보고 자신을 알아볼까 두려워 좀 전
에 도룡도를 숨겨 두었던 것이었다. 다행히 신사단 내에는 병기가
매우 많아 모두들 손쉽게 칼을 집어서 허리에 꽂았기 때문에 냉면
인이 자연히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냉면인, 홍발노인, 현명이로 등이 석실 안에서 잠시 상의하는 듯
하더니 곧 두 사람이 하산하는 것이 보였다 즉시 명령이 내려져 금
일은 휴전하며 더이상 진공하지 않는다고 했다.

장무기가 무리들을 보니, 모두들 표정이 무감각하여 전혀 기쁜 낯
이 아니었다. 이들은 틀림없이 냉면인의 약물 통제를 받고 있어 부
득이하게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있는 것으로, 조만간에 죽을 것
이니 하루를 더 산들 그들에겐 별 대단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눈을 들어 바로보니, 천응산 중턱에 있는데도 멀리 산봉우리들이
보일 뿐 발밑은 온통 망망운해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산정은 막혀
있었다. 그 옛날 백미응왕 은천정이 무슨 연유에서인지 몰라도 천
산만악(?雲??) 중에서 마침내 일세에 빼어난 이 천응산봉을 찾
아낸 것은 정말로 탁월한 혜안(愎?)을 가진 것이었다.

모두들 묵묵히 일몰을 지켜보다가 달이 나뭇가지에 걸리자 곧 잠
이 들었다. 장, 조 두 사람은 온 정신을 집중하여 냉면인의 거처를
눈여겨보고는 눈을 감고 안정을 취하며 삼경이 오기를 기다렸다.
천시당에서 '딱딱'하고 이경을 알리는 소리가 은은히 들려 왔다.

정적이 흘렀다.

장무기는 조민의 차가운 작은 손을 꽉 쥐고 있었다. 잠시 후, 조
민이 다시 장무기의 손바닥에 '난(神)'자를 썼다. 장무기가 고개를
끄덕여 명백히 의사표시를 했다.

한참이 자나 드디어 삼경이 울리자 장무기가 갑자기 신형을 일으
켜 쌍장에 십분 운력하여 냉면인을 향해 공격을 했다. 조민은 쌍검
을 뽑아 다른 방향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냉면인은 진작에 놀라 잠에서 깼으나 상대가 누구인지 확실히 모
른 채, 신형을 일으켜 쌍장으로 기습해 온 사람을 향해 쳐냈다. 장
무기는 냉면인의 응변(足?)이 이토록 신속(佚殷)함을 보고는 감히
그와 대적하지 못하고, 재빨리 신형을 바꾸어 유동신법을 전개하며
무리들 속으로 이리저리 달아났다. 신사단 내에 일시에 대혼란이
벌어졌다.

장무기는 이때, 구양신공이 온몸에 퍼졌으며 더구나 양빙이 그에
게 주입해 준 구음내공이 닿는 곳은 누구도 대적할 수 없었다. 그
의 손바닥, 팔꿈치, 어깨, 무릎, 온몸 상하가 어느 한 곳도 병기가
아닌 곳이 없었다. 순식간에 수십 명이 그에 의해 나가떨어졌다.

조민도 쌍검을 재빨리 휘둘러 십수 명이 피바다 속으로 고꾸라졌
다. 냉면인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 적들이 왔는지 알지 못했고, 또
한 적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으나, 신사단 내에서 사람의 그림자
가 흔들리고 한바탕 소란스러운 소리가 있음을 알아차리고서, 당장
운기로 신형을 보호하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모두 움직이지 마라!"

이 말에 잠시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러나 장무기가 어찌 무리들이
조용해지게 그냥 놔두겠는가. 당장 신법을 전개하여 한 장사를 집
어 들어서 냉면인을 향해 맹렬히 던졌다. 이 갑작스러운 공격을 냉
면인이 어떻게 받아내랴. 냉면인은 부득불 장(雋)을 휘둘러 받아쳤
다. 삽시에 공중에 시체들이 난무하여 다시 대혼란이 일어났다.

홍발노인과 현명이로 등이 병기를 뽑아들고 냉면인의 신변을 옹호
하며 검은 그림자가 날아오기만 하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제반
병기들로 일제히 그 그림자를 향해 공격했다.

신사단 내의 사람들은 생명에 위험을 느끼고 각자 병기를 휘둘러
자신의 급소를 가렸다. 이렇게 되자 암흑 속에서 적우(?定)를 가
리지 못하게 되었고, 또한 장무기와 조민이 한바탕 충돌질을 해놓
아서 마침내는 수십 명이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온통 병기가 부딪
치는 소리 속에 죽고 다치는 이들의 처참한 비명소리가 뒤섞였다.

장무기는 마음이 초조해졌다. 어찌하여 천시당에서 아무런 동정이
없는 걸까. 혹시 단신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기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랐다. 만일 천시당에서 협공을
해오지 않는다면, 아마도 자신과 조민은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다.
장무기는 즉시 조민의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다.

"위로 돌격합시다!"

말을 마치고 그들은 곧 헤어져 각자 다른 방향에서 신사단의 후문
을 돌격하여 천시당으로 도망가려 했다.

냉면인은 호위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놓고 상황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장내가 몹시 혼란스러웠으나 대부분은 자신의 부
하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 살피고서는 어떤 이의 신
법유동이 매우 날래며 제반 소요가 모두 그로 인해서 일어나고 있
음을 홀연 발견했다. 냉면인은 벌써 상황을 대략 짐작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다시 자신의 앞까지 달려오기를 기다렸다가 돌연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그를 덮쳤다.

장무기는 장내를 어지러이 누비고 다니면서도 줄곧 냉면인의 동정
에 유의했기 때문에, 그의 신형이 갑자기 솟아오르며 날아오는 것
을 보고는 이내 두 사람을 움켜잡아 냉면인에게 던지며 몸체를 웅
크려서 뒤쪽으로 달려갔다. 이때 조민은 이미 후문을 공격하여 문
밖에서 목소리를 바꿔가며 크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냉면인! 너는 이미 포위됐다. 빨리 투항하라!"
"냉면인을 죽여라!"
"덮쳐라!"

그녀의 백출한 임기응변 덕분에 한 사람이 소리지르는 것이 마치
수십 명이 공격하는 것과 같았다. 장무기가 크게 웃으며 그 또한
고래고래 외쳐대서 장내가 더한층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나 냉면인
은 벌써부터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다가 마침내 장을 휘둘러 장
무기의 등판을 맹격했다.

장무기는 양손을 재빨리 내밀며 또다시 두 사람을 잡아서 뒤쪽으
로 던져버렸다. 그러나 냉면인의 장력 또한 전혀 늦춰짐이 없어 날
아오는 두 사람을 향하여 매섭게 공격했다. '펑펑' 소리와 함께 그
두 사람은 이미 냉면인의 쌍장을 맞고 즉사했으며 순식간에 그 시
신이 장무기를 향하여 날아왔다.

장무기는 우장을 뒤로 휘둘러 시체를 격중시키고 자신은 그 힘을
빌어 후문으로 날아갔다. 곧 신형을 똑바로 세우고 조민을 잡고서
위쪽으로 질주했다. 천시당은 횃불이 환히 밝혀져 사람들이 때를
지어 움직이는 것만 보일 뿐 아무런 소리도 없이 괴이한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장무기는 그들이 틀림없이 아직 편지를 받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
고 크게 소리쳤다.

"소생은 장무기 부부이오니, 빨리 후문을 여십시오!"

냉면인이 이미 간발의 차이로 추격해 와서 소리쳤다.

"장 교주는 도망가는 데 꽤나 재주가 있군. 장을 받아라!"

장무기는 냉면인이 추격해 온 것을 보고 급히 말했다.

"민 누이, 빨리 달아나시오!"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전대(枝闇)에서 장전을 뽑아들어 냉면인의
쌍장을 향하여 찌르자 냉면인은 하는 수 없이 장을 멈추었다. 장무
기가 그 여세를 몰아 힘을 모아 화살을 던지자 냉면인이 몸을 숙여
그대로 피해 버렸다. 장무기가 다시 틈을 타서 몸을 돌려 몇 장을
뛰어오르며 동시에 화살 몇 개를 쥐고는 불시에 손을 뒤집어 던지
자, 그 힘이 너무 커서 할 수 없이 피하긴 했으나 냉면인은 여전히
악착같이 쫓아왔다.

조민은 자신의 무공이 너무 낮아 만일 쫓아가서 돕는다면 오히려
장무기의 손발을 묶는 꼴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줄곧 경
공을 전개하면서 천시당 석문을 향해 달려가며 입으로는 크게 외쳤
다.

"빨리 활을 쏘아 냉면인을 막아라!"

그러나 천시당은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 조민은 반드시 무슨
음모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천시당이 이토록 침묵함은 적의(?倧)
가 가득한 것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후퇴할 길이 없어 그저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장무기는 이제 수중에 화살이 세 개만 남아 있을 뿐이어서 더이상
마구 던지지 못하고 냉면인의 쌍장을 곧장 찔러 들어갔다. 냉면인
은 달리 방법이 없어 장무기의 하반신을 맹격했다. 장무기는 허리
를 구부려야만 냉면인의 쌍장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한 행동으로, 장무기는 크게 놀라 부득불 공중으로 솟구치며
날아올랐다. 이 치명적인 일격을 피하자마자 냉면인이 또다시 쫓아
와서 쌍장으로 장무기의 하반신을 재차 공격했다. 장무기는 어쩔
도리가 없어 화살 하나를 던져서 냉면인을 몇 보 후퇴하게 했다.

바로 이때 머리 위로 몇 개의 화살이 스쳐가는 소리가 들렸다. 조
민이 소리쳤다.

"무기, 조심하세요!"

그리고는 '탁탁' 소리를 내며, 몇 개의 화살을 막아냈다.

천시당에서 명령이 내려져 십여 개의 화살이 세 사람을 향하여 발
사된 것이었다. 화살이 하늘을 가르는 소리가 그토록 빠른 것으로
보아 분명히 고수의 소행이었다. 조민은 몹시 놀라 까닭을 알지 못
하고 그저 황급히 쌍검을 휘둘러 메뚜기처럼 쏟아지는 화살 세례를
막아냈다. 화살을 쏘던 이는 화살로는 그들을 해치울 수 없음을 알
고 더이상 쏘지 않았다. 그때 천시당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
다.

"냉면인, 단 한 번으로 그렇게 당했는데 또다시 해 보겠느냐? 내
가 네놈을 박살을 내겠다!"

말이 끝나자마자 당장에 바위 덩어리가 줄줄이 부서져 내렸다. 이
렇게 되자 냉면인과 장무기는 서로 싸울 여유가 없었으며 이리저리
로 바위를 피해 다니기에 급급했다. 장무기는 조민이 걱정되어 그
녀에게 급히 다가가려다 바위 하나가 정면에서 부서지는 것을 보고
바삐 손을 뻗어 밀어내면서 그 힘을 이용하여 건곤대나이심법을 전
개해서 그 바위를 냉면인에게로 던졌다.

'쿵쾅'하며 거석(洩?)이 산길 왼편의 쇠사슬을 부숴 끊었다.
'쏴' 소리와 함께 다시 바위 하나가 조민의 오른쪽으로 부서져 내
렸다. 조민은 재빨리 왼쪽으로 비켰다. 장무기가 소리쳤다.

"조심해!"

조민이 미처 깨닫기도 전에 왼쪽의 쇠사슬이 끊어져 나가며, 그녀
의 몸이 몇 번 흔들리더니 이내 계곡으로 떨어져 버렸다.

장무기가 이를 보고 황급히 뛰어올랐으나 결국 한 발 늦고 말았
다. 그는 너무도 비통하여 목이 쉬도록 외쳐댔다.

"민 누이 - "

갑자기 십여 장 아래쪽에서 조민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 왔다.

"철삭이 - "

장무기가 고개를 내밀어 보니 조민이 두 손으로 쇠사슬을 움켜쥐
고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발 아래는 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
디깊은 만장심연이었다. 장무기가 위로 내달아서 조민을 끌어 올리
려하는데 뜻밖에 냉면인이 다시 공격해 왔다.

장무기는 대노하여 '쨍'하는 소리와 함께 도룡보도를 뽑아서 한차
례 미친 듯이 휘둘러 냉면인을 한 장(晙) 넘게 물러나게 하고는,
잇달아 '씽'하고 수중의 화살을 각각 상하 양로로 나눠 냉면인에게
로 던졌다.

냉면인은 피할 겨를이 없었다. 그 위급함에, 가파를 산길에서 결
국 어색하게 철판교(?柝?) 일 초를 구사해 신체를 아래로 곧게
낙하하며 쌍장을 낙하한 후에 비로소 신형을 고정시켰다.

이때 장무기가 쇠사슬을 쥐고 말했다.

"민 누이, 조심하시오. 내가 도와주겠소!"

그리고는 손목을 한 번 돌려서 조민을 끌어올린 후에 왼손를 뻗어
조민의 허리를 감싸서 가슴에 안았다. 이때 두 사람은 천시당을 등
지고 있어서 더이상 어떤 방비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방금 부부
가 거의 영원히 헤어질 뻔 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났으니 이 두 사
람에게 생사는 이미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서로
만나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근한 온정이 가득했다.

냉면인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바보가 된 듯 멍하게 서서 이런 틈
을 이용하여 진공할 것도 잊고 있었다. 두 사람의 등 뒤에서 갑자
기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귀하는 장 교주와 어떤 관계이신데 장 교주의 칼을 갖고 계시는
지요?"

두 사람은 마치 꿈에서 놀라 깬 듯 갑자기 제 정신이 들었다.

장무기는 이 말을 듣고 쓴웃음을 지으며 얼굴의 변장을 풀고 고개
를 돌려 허리에 장검을 차고 있는 노인을 보았다.

그 노인이 대경실색하여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아이구! 이 늙은이는 죽어 마땅합니다."

이 사람은 바로 천시당 당주였다. 자신이 좀전에 공격한 사람이
놀랍게도 바로 교주 장무기인 것을 알고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그
의 놀라움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어서, 자신이 가파른 돌계단에
서있는 것도 잊고 그 자리에 꿇어앉으려고 하였다.

장무기가 손을 내밀어 그를 받치며 말했다.

"당주, 그렇게 자책할 필요 있겠습니까? 모르는 것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저와 제 처가 문으로 들어갈 수 있겠는지요?"

천시당 당주는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하고 황급히 한쪽으로 물러
나며 장무기 부부가 먼저 들어가도록 하려 했다. 장무기는 당황하
여 어찌할 바를 몰라 한 걸음 더 물러나는 바람에 그만 허공을 딛
어 하마터면 심곡으로 떨어질 뻔하였으나 조민이 급히 그를 잡아당
기며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은 길을 모르니 번거로우시겠지만 그래도 역시 당주
께서 길을 인도해 주셔야지요!"

당주기 어떻게 감당하겠냐며 필사적으로 사양하자, 장, 조 두 사
람이 하는 수 없이 앞섰고, 당주는 벌벌 떨며 뒤에서 따라왔다. 장
무기가 왠지 마음이 스산하여 뒤를 돌아보니, 냉면인은 여전히 혼
자 돌계단 위에 선 채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냉면인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검은 그림자가 어렴풋
한 청광(??)이 넘치는 돌계단에 홀로 외로이 서 있는 모습이 말
할 수 없이 처량하고 적막하게 보였다. 장무기는 가슴이 두근거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민도 고개를 돌려 이 광경을 보고
또한 마음이 어지러웠다. 부부가 서로 마주보니 눈빛에 말못할 번
민이 있었으며, 심중에 한 가닥 불길한 예감이 일었다.

당주 역시 고개를 돌려 이 상황을 보며 말했다.

"냉면인, 용기 있으면 내일 다시 싸우자!"

장무기가 급히 말했다.

"갑시다!"

당주는 가는 길에도 그들을 몰라본 것에 대해 계속 사죄하였으며,
장무기도 줄곧 그를 위로했다. 장무기는 이때야 비로소 천시당 당
주에게서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원래 냉면인은 현무단을 공격할 때만 일거에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는 냉면인이 먼저 기습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 천응산에 두루 경
보가 퍼진 후에는 냉면인이 단을 공격할 때마다 매번 사망자와 부
상자가 많이 생겼다. 각 단의 단주들은 정의롭게 싸우다 전사했다.
각 단마다 단지 한 사람만 남아 단주에게 전황을 보고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전사했다. 신사단에 이르렀을 때, 냉면인은 이미 보
름 동안이나 공격해 왔고 사상자가 절반이 넘어서 마침내 더이상
싸울 수 없게 되었다.

어느 날 정오경, 냉면인이 다시 무리를 이끌고 진격해 왔으나 화
살 몇 발만 쏜 후에 즉시 퇴각했다. 신사단 단주가 막 의심스러워
할 때, 몇 명의 부하가 화살을 가져와 단주에게 올렸다. 매장전마
다 모두 편지가 묶여 있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오늘 밤 삼경 무렵, 내가 청룡단 내에서 거사하고자 하니 호응을
바란다'


그리고 서명을 바로 장무기였다.

천시당 당주는 이 말을 하며 단신을 두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장
무기와 조민은 어리둥절해서 서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마침내 너무
도 놀라 혀가 굳어질 정도였다.냉면인과 조민이 쓴 편지와는 단지
한 곳만 틀렸으니 바로 신사단과 청룡단이라는 거사 장소의 차이였
다.

당시 신사단 당주는 몹시 기뻐했다. 삼경 무렵이 되자 과연 청룡
단 내에서 병기의 소리가 크게 일었고, 이어서 바로 일남일녀(?審
??)가 신사단을 향해 달려왔는데 냉면인이 바싹 그 뒤를 추격하
고 있었다. 신사단 단주는 즉시 단문을 활짝 열고 먼저 교중을 거
느리고 뛰어나가 호응했다. 단주가 그 일남일녀에게 막 가까이 가
자 그들은 뜻밖에도 동시에 검을 뻗어 단주를 찔러 버렸다. 신사단
단주는 방비할 겨를도 없이 검에 맞아 즉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교인들은 단주의 사망을 보고 마침내 모두 분발해서 공격하여 단
주를 위해 복수하고자 했다. 그러나 냉면인 등의 무공이 고강하여
그에게 줄곧 밀리어 문을 닫을 겨를도 없이 신사단을 빼앗겼다. 편
지를 천시당에 전하러 간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신사단 수백 명의
교인들이 모두 단주와 함께 전사했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 정오경
또 장, 조 두 사람이 쏘아 보낸 편지를 받았다. 전후 두 통의 단신
은 뜻밖에도 대동소이했다. 천시당 당주는 대노하여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삼경 무렵 전당 형제들에게 진지를 확고히 하도록
명령했을 뿐이었다. 시간이 되면 반드시 신사,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오단의 형제들을 위해 복수할 것이었다.

삼경 무렵이 되자 과연 신사단 내에서 혼란이 일기 시작했다. 신
사단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그 제자가 바로 천시당 당주 곁에 서
서 신사단 내의 혼란을 지켜보다가 한참이 지나도 달려나오는 사람
이 보이지 않자 이상스레 여기며 말했다.

"당주께 아뢰옵건대, 냉면인이 청룡단 내에서는 잠깐 동안만 싸웠
는데 이번에는 어찌 이렇게 길게 싸우는 걸까요?"

당주가 '흥'하며 말했다.

"거짓 놀음을 진짜처럼 하는 거니 그들을 상관하지 마라!"

잠시 후, 과연 두 사람이 달려나왔으며 뒤에는 냉면인 등이 그림
자처럼 따랐다. 신사단의 그 제자는 온통 의아한 표정이었다. 천시
당 당주가 말했다.

"왜 그러느냐?"
"저번에는 일남일녀 두 사람이 앞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어째서
냉면인의 부하 두 명이 앞에 있는지요?"

당주가 다시 비웃으며 말했다.

"자고로 전투에서는 적을 기만하는 전술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냉
면인의 이 계책은 절대로 잘못 계산한 것이다!"

천시당 당주는 천응교의 제 사호(?泡) 인물로 무공과 식견이 모
두 상당히 비범했다. 그는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고, 심지어는 겨
우 세 사람이 공격해 오는 것을 보고는 신사단 내부가 여전히 하나
로 뒤엉켜 어지러울 때, 의연히 활을 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조민의 무공이 매우 높아 화살로 손상을 입히지 못하는 것
을 보고, 또다시 바위를 부서뜨리도록 명하여 하마터면 조민의 생
명을 앗을 뻔했던 것이었다. 이는 모두 그때 장무기와 조민이 비록
가까이 오긴 했어도 모두들 장무기 부부를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
이었다.

그런데 조민이 계곡으로 떨어져 철삭에 매달려 있을 때, 장무기가
'민 누이'하며 크게 외쳤으니, 이는 반드시 진실일 것이며 결코 거
짓으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모두들 자연히 소스라치게 놀랐다.
계속해서 조민의 음성이 확실히 여자임을 듣고서 비로소 손을 멈추
었다. 장무기가 다시 천하에 명성이 드높은 도룡도를 뽑았을 때,
천시당 당주는 대경실색하여 곧 석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나 역시
안심하지 못하고 다시 제자들에게 문을 닫도록 명하고서야 겨우 장
무기에게로 갔으나, 조민의 변장술은 이미 입신지경에 이르러서 천
시당 당주는 여전히 의심스러웠다. 만일 두 사람이 본래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아마 무슨 말을 했더라도 그는 두 사람을 감히
당에 들여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이때 은야왕 타주가 도착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누군가가
총타에게 급보하여 은야왕이 서둘러 맞으러 온 것이었다. 문에 들
어서기도 전에 호쾌하고 박력있는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정말 무기가 왔단 말이냐?"

장무기가 바로 외삼촌 은야왕의 음성을 알아듣고 황급히 조민을
일으켜 맞으러 나가려 할 때, 후문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번뜩하더
니 이내 한 사람이 들어왔다. 얼핏 보니 나이는 육순에 가깝고 눈
썹과 수염이 모두 희끗희끗 세어서, 언뜻 천하에 위세를 떨친 명교
호법왕 중의 하나인 천응교 교주 백미응왕의 모습이 아련했다. 그
러나 백미응왕은 이미 죽었고 이 사람은 바로 은야왕이었다. 장무
기는 외삼촌이 아직 정정하고 위풍당당한 것을 보고 기쁘게 말했
다.

"외삼촌, 그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은야왕이 말했다.

"괜찮다. 무당산에서 헤어진 이래 벌써 일 년이 다 되가는구나.
너의 부부도 잘 지냈느냐?"

장무기가 대답하려는데, 천시당 당주가 풀썩 꿇어앉으며 말했다.

"제자는 눈 뜬 장님이오니, 타주의 처분만을 바랄 뿐입니다!"

갑자기 은야왕의 안색이 침울해지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지금까지
의 일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가 막 성을 내려 할 때, 장무기가 급
히 말했다.

"외삼촌, 이는 당주를 탓할 게 못 됩니다. 모두가 냉면인이 부린
간계 때문이니 외삼촌께서 명찰(曄撤)하시기 바랍니다!"

은야왕은 장무기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곧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그만 일어나시오. 금후로는 더욱더 조심해야 하
오!"

당주는 이렇게 쉽게 모면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기에
당장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며 말했다.

"타주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교주님 대단히 황송합니다. 저는 죽
음으로써 이 은혜를 갚겠습니다!"

장무기는 이 당주 또한 연로하였기에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서 다급히 그를 부축해 일으키며 말머리를 돌렸다.

"냉면인이 어째서 천응산을 침범해 왔는지요?"

은야왕이 침통하게 말했다.

"나도 도대체 무슨 까닭인지 알 수 없구나. 어쨌든 은리가 그의
손에 목숨을 잃었으니, 이 늙은이의 무공이 비록 모자라지만 이 원
수는 반드시 갚으련다. 그가 먼저 문을 두드린 이상 그와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

장무기가 동조하면서 말했다.

"외삼촌, 제가 보기에 냉면인의 부하는 불과 천여 명밖에 안 되니
아예 우리가 오늘 밤에 돌격해서 그들을 내쫓아 일을 해결합니다!"

은야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내가 본시 그렇게 하고자 했으나 무공이 모자랐는데, 너희 두 사
람이 도와준다면 더이상 좋을 것이 없겠다. 그러나......"

장무기가 은야왕의 기색을 살폈다.

"외삼촌, 무슨 근심이 있으신지요?"

은야왕이 말했다.

"천응산은 길이 협소하여 공격해 올라오든 돌격해 내려가든 양쪽
모두 몹시 곤란하다."

장무기가 말했다.

"천응산에 화약은 많이 있는지요?"
"화약으로 말하자면 참으로 많다. 나는 진작에 화약을 전부 총타
밑에 묻어 두고 냉면인과 함께 죽을 작정이었단다. 그런데 지금 이
렇게 너희 둘이 왔으니 아마도 이 삼촌이 몇 년은 더 살 수 있겠구
나."

말을 마치고는 '하하'하며 한참을 웃어댔다.

장무기는 은야왕이 부득이 이런 방법을 궁리한 것을 보고 가슴이
몹시 쓰라렸다. 이 세상에 자신의 육친이 많니 않음을 생각하니,
이번에는 반드시 냉면인을 제거할 수 있는 확실한 대책을 강구해야
만 하겠다고 생각했다.
장무기가 말했다.

"화약을 전부 천시당으로 옮겨 묻어 두고 냉면인이 다시 공격해오
면, 패한 체하고 달아나며 사사(??) 한 명만 남겨 화약에 불을
붙이게 하는 것이 어떨가요? 그렇게 되면 냉면인이 설사 하늘을 나
는 재주를 가졌다 해도 아마 빠져나가기 힘들 것입니다."
"그 계책은 나도 생각해 봤다. 계책은 좋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천응산을 천장산(?甑雲)으로 이름을 바꿔야 할 것 같구나."

장무기가 잠시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조민이 말했다.

"소녀의 견해로는 불시에 높은 곳을 차지하고서 화약을 작은 뭉치
로 나눠 신사단 내로 집어던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면 능히 적을 죽일 수 있고 또 산길을 파손하지 않게 될 것입니
다."

은야왕과 장무기는 모두 이 계책이 대단히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조민이 다시 말했다.

"다만 냉면인의 무공이 매우 고강하므로 이 계책으로는 혹시 그를
대적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가 달아나 버린다면 역시 후
환이 무궁할 것입니다. 기습부대가 냉면인의 퇴로를 차단하고 백호
단 내에 매복해 있는 다면 틀림없이 예상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당
할 것입니다."

은야왕이 말했다.

"자고로 천응산의 이 길은 기습군이 빠져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장무기가 말했다.

"밧줄을 타고 내려갈 수는 없는지요?"

은야왕이 불안해하며 고개를 저었다.

"내 비록 이 산에서 다년간 살았지만 사실 천응산이 도대체 얼마
나 높은 지 알지 못한다. 천응산에는 매가 아주 많은데 이 매들은
몸집이 아주 크고 잔인하여, 만일 부주의하여 그들의 둥지라도 밟
게 되면 그때는 공중에 걸려있으니 싸울 수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독사 또한 많으니, 그것은 아마도 안 될 것 같구나."

세 사람은 한참을 의논했으나 종내 대책을 찾지 못했다. 은야왕이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우선 냉면인을 하산시킬 수만 있다면 대단히 성공한 셈이며, 후
일 더욱 방비를 강화하면 되는 것이다."

당장 사람들에게 분부하여 총타 지하에서 화약을 꺼내서 작은 뭉
치들로 나누어 공격할 준비를 하도록 했다. 그러나 화약은 인화성
물질이라 깜박 부주의하여 당장에 몇 차례 폭발했으므로 부득불 천
천히 세심하게 뭉치를 나누었다. 그러자니 속도가 몹시 느릴 수밖
에 없었다. 다행히 요 며칠 냉면인은 더이상 진공을 하지 않고 신
사단 내에서 수비만 하고 있었다.

삼 일째 되는 날 밤, 순찰병이 갑자기 경종을 쳐서 장무기와 조민
이 급히 천시당 석문으로 달려가보니 냉면인이 무리를 지휘하여 느
릿느릿 공격해 오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문판으로 화살을 막아
내고 있었다.

은야왕은 궁전이 효과가 없는 것을 보고 곧 돌을 준비하여 적이
가까이 오면 사정없이 떨어뜨리도록 명했다.

쌍방에 정적만이 흐르며 차가운 산바람이 간간이 불어왔다. 냉면
인의 부하들은 마치 흑색의 긴 뱀처럼 유유히 이동하며 다가왔다.
은야왕은 막 명령을 내리려다가 갑자기 '뻥, 뻥'하는 소리가 수십
번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적들이 수중에서 화염을 내뿜어 천시당
내로 곧장 쏘아대는 것이었다.

천시당 내에는 화약이 가득 쌓여 있어서 수십 발의 화전(飄旨)같
은 이 물체가 떨어지자마자, 당내가 당장에 폭파하여 몇몇 사람이
폭파의 진동에 의해 당내에서 튕겨나가, 곧장 칠흑 같은 심곡으로
떨어졌다.

당내에는 대혼란이 일었고 사망자가 수십 명이었다. 적들은 여전
히 계속해서 방화했다. 장무기는 자세히 보고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적들의 수중에 있는 것은 바로 화통, 화전, 화질려, 대소
화창, 대소 장군통 류(驛)의 화기(飄?)로서 주원장이 진우량의 함
대를 불태울 때 사용한 것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었다.

천시당 내의 사람들은 이미 끊임없는 폭파의 진동에 의해 튕겨져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장무기는 가슴에 안고 있던 바위덩어
리를 부숴뜨리며 말했다.

"외삼촌, 철수하세요!"

이때 은야왕의 옷에 불이 붙었고, 조민이 황급히 그를 도와 불을
꺼주었다. 은야왕이 돌아보니 천시당 내는 이미 온통 불바다가 됐
고 화약 연기가 가득하여 지킬 수 없게 된 것이 명백하여 큰소리로
말했다.

"천사당은 명령을 들어라! 빨리 자미당으로 철수하라!"

천시당 당주가 말했다.

"타주께서 먼저 철수하십시오. 천시당이 죽음으로써 타주의 대은
대덕을 갚겠습니다!"

여러 제자들 또한 소리쳤다.

"타주께서 먼저 철수하십시오. 제자들은 죽음으로써 보답하겠습니
다!"

은야왕은 정세가 위급하고 모두를 설득할 수 없음을 보고, 부득불
조민, 장무기와 짙은 연기를 뚫고 자미당으로 후퇴했다. 뒤돌아보
니 천시당은 이미 점령되었고 냉면인이 승세를 몰아 추격해 오고
있었다.

냉면인이 가까이 돌진해 오기 전에 자미당에서 바위 몇 덩어리를
던졌으나, 거리가 너무 멀어 대부분 명중하지 못했고 심곡으로 떨
어졌다. 냉면인 무리들은 공세를 늦추지 않고 코앞까지 이르러 모
든 화기를 다시 동시에 발사하니, 명교는 마침내 당해낼 수 없었
다. 은야왕은 길게 탄식하며 부득불 천미당까지 철수했다. 천미당
은 이제 총타의 최후의 보루였다.

천미당 배후는 바로 만장심연으로 천응산 부봉은 의연히 높이 솟
아 있고 천미당과의 연계는 바로 백여 장에 이르는 몇 줄의 쇠사슬
이었다. 쇠사슬에는 단지 두 개의 바구니만 걸려 있으며 철삭 끝에
는 각각 거대한 교반(??)이 있어, 칠, 팔 명의 장사가 함께 교반
을 밀어야만 사람을 실어 오르내릴 수 있었고 매우 경비가 삼엄하
여 마치 용이 서리고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듯했다.

자미당에서 천미당까지는 보기에는 무척 가까웠으나 걷기 시작하
니 매우 힘들었는데, 이는 산길이 지극히 협소하여 겨우 한 사람만
지날 수 있으며 또한 대단히 가파라서 마치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
같이 갈 지(柵)자 형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지
역은 방어하기는 쉽고 공략하기는 어려운 곳이었다.

장무기는 이 지세를 보고 자연히 크게 안심했다. 오래지 않아 냉
면인이 자미당을 모조리 도륙하고 여세를 몰아 또 천미당을 공격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냉면인 무리들도 더이상 문판을 이용하여 엄호할
수 없어서, 빈손으로 올라왔다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들고 있던
화기를 일단 내려놓은 후에 화약을 가득 채우고 일은 지극히 시간
이 걸렸으며 또한 이때 그들의 신체는 모두 명교의 활 아래 노출되
어 있어서 사망자가 막대했다.

그러나 냉면인은 여전히 부중을 공격하도록 재촉했고, 간혹 후퇴
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 현명이로와 홍발노인의 일 장에 맞아 심
곡으로 떨어지는 신세가 됐다. 나머지 사람들은 어쨌든 곧 죽을 수
밖에 없었으므로 할 수 없이 앞으로 진공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매
번 화기를 쏘아 댈 때마다 모조리 화살에 의해 계곡으로 떨어져버
렸다. 명교는 오히려 사망자가 극히 적었다.

이렇게 삼 일을 싸우니, 냉면인은 이미 수천 명을 잃었으면서도
의연히 맹공을 멈추지 않았다. 도대체 아직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
는지 실로 알 수 없었다. 이 상황을 보면 냉면인은 흡사 피도 눈물
도 없는 냉혈 장군 같았다.

조민은 눈썹을 찌푸렸고 장무기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천응
산에는 식량이 매우 많이 비축되어 있어 한 해쯤이나 혹은 그 이상
도 버틸 수 있을 것이었다. 조민이 홀연히 말했다.

"외삼촌, 산에 비축된 화살은 충분한지요?"

은야왕이 하늘을 우러러보고 장탄식을 하며 말했다.

"노부가 설사 수십 년 동안 강호를 종횡무진했어도, 지금껏 이렇
게 무고한 이들을 함부로 살육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냉면인이 이
러하니 실로 노부보다 한 수 위다. 그저 탄복하고 감탄할 따름이
다."

장무기 또한 온몸이 서늘해짐을 느끼며 말했다.

"외삼촌, 자책하실 필요 없으세요. 이는 부득이한 것이며 천명은
어길 수 없으니 우리들은 냉면인과 끝까지 싸워야 해요!"

은야왕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고 말했다.

"계속 이렇게 쏘아 댄다면 산에 준비된 장전은 삼 일이면 바닥이
난다. 아아! 냉면인이 사람의 목숨을 마치 화살 한 발처럼 여기리
라 누가 생각이나 했겠느냐!"

장, 조 두 사람은 화살이 삼 일 동안 쏠 것만 남았다는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천응교는 원래 잔인하여 수단과 방
법을 가리지 않아서 강호에서 사람들이 말만 꺼내어도 얼굴이 질릴
정도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냉면인이 천만 목숨을 마치 아이들 장
난하듯 하는 것을 보고는, 은야왕과 조민같이 사악한 수단을 써왔
던 이들도 역시 간담이 서늘해짐을 금치 못했다.

장무기가 대노하여 산 아래를 향해 기운을 모아 큰 목소리로 말했
다.

"냉면인, 각하는 일신의 욕심으로 결국 수천 명을 죽음으로 내몰
아으니 너무 지나치다고 느끼지 않소?"

장무기가 의분에 차서 이 몇 마디를 포효하자, 산 중에 천둥치듯
어지럽고 귀가 울리는 것을 느끼며 놀라 탄복했다.

냉면인 역시 큰소리로 말했다.

"장 교주와 은 타주가 내 명령에 따르기만 한다면 수천 명의 목숨
을 구할 수 있게 된다!"

장무기가 화가 나서 말했다.

"내가 만일 당신에게 복종한다고 해도 여전히 천리를 위배하는 살
인을 계속될 게 아닌가? 그렇다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냉면인이 말했다.

"모두들 장 교주처럼 상황을 잘 알고 즉각 대응한다면, 내가 누구
를 더 죽이겠는가?"

은야왕이 말했다.

"냉면인, 용기 있으면 네가 올라와 봐라!"

냉면인이 기괴하게 웃으며 말했다.

"은 늙은이, 당신의 화살이 다 떨어지면 내가 당연히 왕림해야죠.
그때는 당신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오. 올라가라!"

말을 마치자 검은 옷을 입은 사졸 부대가 공격해 올라왔다.

조민이 말했다.

"외삼촌, 산길이 구비지고 협소하여 공격해 올 적들이 많지 않을
것이니 이렇게 많은 궁수들은 필요치 않습니다. 그들 중에서 십여
명의 궁술이 출중한 사람을 선발하면 될 것입니다."

은야왕은 승낙하고 즉시 궁수들을 대부분 철수시켰으며, 남은 이
들은 모두 백발백중의 솜씨로 순식간에 공격해 오는 적들을 사살시
켰다.

냉면인이 소름끼치게 말했다.

"은 늙은이, 설마 당신은 이 수천의 영혼이 당신에게 달라붙는 것
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

은야왕이 말했다.

"생각컨대, 이미 지은 죄가 너무 많으니 사후 또한 그리 태평한
날을 보내길 바리지 않소. 만일 무슨 귀신이 있다면, 아마 각하의
처지가 나보다 훨씬 못할 것이오."

냉면인이 말했다.

"그것은 나중 일이니 은 늙은이는 역시 눈앞의 일이나 신경쓰는
게 낫겠소. 올라가라!"

다시 십수 명이 화기를 들고 위로 달려왔다. 그러나 조민은 그것
을 못 본 듯이 궁전을 바라보며 멍해 있었다. 불상사가 생길까 두
려워 당장 그녀를 잡아끌어 앉혔으나, 그녀는 여전히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장무기는 더이상 그녀를 상대하지 않고, 일어서서 화살 아홉 발을
연발하여 몇 명의 적을 사살했다. 냉면인이 호령을 하자 화기가 일
제히 발사되어 자신 쪽의 사망자가 십수 명이 되었다. 당장 십수
명이 정상에 올라가서 적들이 화약을 장전하는 틈을 이용하여, 다
시 공격해오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사살시켰다.

이때 조민이 말했다.

"무기, 이것을 사용할 수 있는지 한번 시험해 보세요."

장무기가 돌아보니 조민이 손에 경궁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활
시위의 정 가운데에 쇠가죽으로 만든 작은 주머니가 매여 있었다.
장무기는 즉시 그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조민은 벌써 그에
게 둥근 돌 하나를 건네주고 있었다. 장무기가 돌을 얹어 화살을
날리자 '쌩'하며 날아갔다.

이것을 본 은야왕은 크게 기뻐하며 부하들에게 그것과 똑같은 것
을 여러 개 만들도록 명령했다. 한 시간쯤 후, 수십 개의 유사한
경궁이 만들어졌다. 이때 때마침 적들이 공격해 오니, 모두들 분분
히 화살을 날렸으나 장무기, 은야왕, 천미당 당주 등 몇 명만 적을
사살시켰고, 다른 이들은 내력이 너무 얕아 화살을 맞은 적이 '윽
윽'하며 고통을 호소할 뿐이었다. 이렇게 수일 동안 싸움이 계속되
자 화살은 벌써 다 써 버리게 됐고 겨우 몇 명만 돌을 쏘니 그 기
세로는 적을 막아내기 어려워졌다. 냉면인이 '하하' 웃으며 무리들
을 이끌고 맹공을 해 왔다. 천미당 교인들은 필사적으로 대항했다.
순식간에 대량의 적이 물밀듯 밀려들어오자, 당주는 황급히 은야왕
에게 총타로 돌아가 내부를 정리하고 새로운 계책을 세울 것을 간
청했다. 은야왕은 자신과 장무기가 일단 총타로 돌아가 버리면 천
미당이 얼마 지탱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냉면인이
쇠사슬을 절단하는 날에는 이 천미당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갇히는
꼴이 되므로 다른 길이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은야왕은 급히 장
무기 부부를 바구니에 오르도록 하였으나, 두 사람이 어찌 자신들
만 살기 위해 달아나려 하겠는가? 그들은 각자 도검을 뽑아들고 곧
장 입구를 향하여 돌격해 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백 명에 가까운
침입자들이 쓰러졌다. 그러나 공세가 약간 완화된 후, 이어서 적병
이 다시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공격해 온 적들의 무공은 매우 미천하여 모두 천미당 고인들에게
하나하나 죽어갔다. 냉면인 등 고수들은 이미 사람들의 물결을 따
라 천미당으로 들어왔으나, 산길이 겨우 한 사람이 설 정도여서 그
들도 무리들을 뛰어넘어 올라올 수는 없었다. 그러나 상황을 보아
하니 머지 않아 냉면인 등의 고수들이 곧 공격해 올 태세였다.

은야왕은 이미 온몸을 피로 목욕한 듯하여 명교의 흰 옷이 온통
선홍의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눈앞의 상황이 위급함을 보고
은야왕이 장무기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장무기가 어찌 방비할 수
있었으랴. 손목을 은야왕에게 잡히자, 당장 전신의 힘이 모두 빠져
나가는 걸 느꼈다. 은야왕은 손가락을 바람같이 하여 벌써 장무기
의 칠, 팔 곳의 대혈을 찍은 연후에, 그를 바구니 속으로 밀어넣었
다. 장무기는 그 뜻을 알아채고 황급히 말했다.

"외삼촌, 우리는 같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빨리 저를 놓아주세
요. 빨리......."

은야왕은 뜻을 굽히지 않고, 다시 장무기의 아혈을 찍고는 비로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기야, 총타에는 물과 식량이 충분하니 너희 부부가 몇 평생을
향용할 수 있을 것이다. 너희 두 사람은 마땅히 이 산에 남아 방법
을 강구하여 외삼촌과 여러 교인들을 위해 이 대원수를 갚거라!"

말을 마치고 조민에게 부드럽게 손짓을 해서 그녀도 바구니 속으
로 들어가도록 했다.

조민이 급히 말했다.

"외삼촌, 우리 같이 후퇴해요. 반드시 좋은 방법을 찾아낼 수 있
을 거예요!"

은야왕이 여전히 미소로 말했다.

"이렇게 많은 형제들이 모두 나를 위해 죽어 가는데, 외삼촌이 어
찌 그런 불의스러운 일을 행할 수 있겠는가?"

이때 공격해 오는 고함소리가 더욱 맹렬해지자, 은야왕이 엄하게
말했다.

"빨리 타거라!"

조민은 어쩔 수 없이 바구니 속으로 들어갔다. 은야왕이 손을 한
번 젓자 여덟 명의 장사들이 힘을 다해 교반을 밀어, 두 사람은 곧
천천히 천응산의 절봉을 향하여 나아갔다.

장무기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어려 있었다. 조민은 그의 심의를 알
고 곧 손을 내밀어 그를 위해 해혈을 해주려고 했으나 은야왕이 너
무 심하게 손을 써 놔서 결국 혈도를 풀지 못했다. 두 사람이 높이
올라갈수록, 천미당의 전경은 오히려 두 사람의 눈앞에 더욱 선했
다.

은야왕의 거대한 그림자는 이미 입구로 달려가 칼을 휘두르며 맹
렬히 맞섰고, 일시에 잘려진 사지가 난무하며 선혈이 사방으로 튀
어 적의 공세를 막았다. 이때 장무기와 조민은 이미 쇠사슬의 정
가운데에 이르러 멀리 군산(潚雲)을 바라보니 온통 운해 속에 있었
다. 몸을 굽혀 아래를 보니 저절로 아찔하고 현기증이 일며, 발 밑
에 운무가 서서히 피어올라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두 사람
은 마치 운무 중에 두둥실 떠다니는 듯했다.

이때 냉면인의 앞에는 아직 근 천여 명의 부하가 길을 막고 있었
으며, 천미당 입구에서 약 삼백 장쯤에서 은야왕에게 차단 당하여
반 보(?)조차도 더 이동할 수 없었다. 냉면인은 눈앞에서 조민과
장무기가 천천히 천응산정을 향하여 올라가는 것을 보자 마음이 초
조하여 곧 현명이로와 홍발노인에게 눈짓을 했다. 세 사람은 병기
를 꺼내 차례대로 앞쪽에서 막고 있는 부하를 쳐서 계곡으로 떨어
뜨렸다.

뒤쪽의 부하들은 이 광경을 보고, 몰골이 송연해져서 병기를 던져
버리고 아래쪽으로 미친 듯이 달아났다. 산길이 가파라 서로 충돌
하다가 결국 울부짖으며 계곡으로 떨어지는 이들도 있었다. 앞쪽의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는 모두 넋이 빠져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은야왕이 격분하여 말했다.

"냉면인, 이렇게 악랄하다니, 당장 멈추어라! 내가 이들을 천미당
으로 진입하게 하면 되지 않느냐?"

냉면인이 위엄있게 말했다.

"그러면 아주 좋지!"

은야왕이 준엄하게 말했다.

"병기를 버려라. 내가 그대들을 죽이지 않을 것을 보장한다."

냉면인의 부하들은 냉면인이 이토록 무정한 것을 보고는, 은야왕
의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당장 깊은 계곡으로 떨
어지는 것보다 훨씬 나았기에 고함을 치며 병기를 던지고 모두 천
미당 내로 돌진해 갔다.

은야왕은 과연 이들을 죽이지 않았으며 한쪽으로 서 있도록 했다.
이때 장무기와 조민은 쇠사슬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은야왕이 소
리쳤다.

"문을 닫아라!"

우지직하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천미당 입구로 천 근이나 되는 바
위가 굴러 떨어지는데 그 높이가 수장에 달했다. 은야왕은 교인들
과 십여 장 후퇴하여 인벽을 만들어 교반 앞을 차단했다.

'쉭쉭'하고 몇 번 소리가 나더니 냉면인, 홍발노인, 현명이로가
공중으로 솟아올라 천미당 안으로 넘어 들어와 은야왕 등 수백 명
앞에 섰다.

장무기 부부가 탄 바구니는 아직 절봉에서 삼 장 정도 떨어져 있
었으면 스무 명의 장사가 힘을 다해 밀고 있었으나 지금은 위로 이
동하는 속도가 더욱 완만했다. 은야왕이 보아하니 그것을 냉면인이
주시하고 있었으며 곧 발작할 듯했다. 은야왕이 손짓을 하자, 수백
의 무공이 고강한 명교 교인들이 용감하게 앞으로 돌진하여 칼을
휘두르며 네 명을 곧장 찔러댔다. 은야왕은 교반의 앞까지 물러나
두 명의 장사를 밀어젖히고 쌍장을 운력하여 교반을 맹렬히 밀었
다. 조민은 곧 바구니가 흔들거리는 것을 느꼈으며 바구니의 움직
이는 속도가 다소 빨라진 것을 알아차렸다.

냉면인쪽의 네 사람이 아무리 무공이 고강하다 하나 수백 명의 무
사가 죽어라 하고 필사적으로 매달려 싸우니, 양팔이 저릴 정도로
공격을 해도 의연히 목숨을 건 장사들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눈앞
에 장무기 부부가 탄 바구니가 절봉으로 삼 장, 이 장, 일 장, 이
척......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냉면인이 크게 포효하며 신형을 날려 공중으로 솟구치며 교반을
덮쳤다. 은야왕은 본체만체하며 계속 교반을 밀었다. 이제 곧 일
척만 더 올라가면 장, 조 두 사람은 안전할 것이었다. 은야왕은 별
안간 냉면인의 장풍이 머리 위에 닿는 것을 느꼈다.

은야왕은 장무기와 조민을 지켜보며 우장을 들어 대응했다. 조민
이 이를 보고 놀라 소리쳤다.

"외삼촌, 조심하세요!"

말을 마치자마자 '쿵'하고 커다란 소리가 나더니 곧이어 '찰칵'하
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장무기와 조민이 탄 바구니가 안전하게 땅
에 닿아 절봉의 쇠고리에 단단하게 걸려졌다.

은야왕은 이를 보고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띄우며 곧 땅에 쓰러져
죽었다. 방금 냉면인이 은야왕에게 일 장을 가한 것은 그가 손을
놓고 자괴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이때 만일 은야왕이 손을 놓기
만 하였다면 장무기와 조민은 곧 미끄러져 내려왔을 것이며, 그렇
게 되면 냉면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었다.

냉면인이 자신의 모략이 성과를 거두리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뜻
밖에도 은야왕이 필사적으로 자신과 대장하였던 것이었다 은야왕은
수십 년 동안 명성을 날려 왔으며 그의 내가(??) 수양이 이미 평
범하지 않아서, 만일 냉면인이 그의 정수리를 격중시켰다면 은야왕
도 냉면인의 단전대혈을 내리쳤을 것이며 그렇게 됐으면 둘 다 죽
음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냉면인은 중도에 초식을 변경하여 쌍장으로 은야왕의 우장
을 내리쳤다. 먼저 은야왕을 죽이면 장무기 두 사람도 벗어나기 힘
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쌍장으로 은야왕의 우장
을 격중시킬 때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자신의 내력이 은야왕의
체내로 곧장 밀려들어가리라고는 냉면인도 예상치 못했다. 냉면인
이 재빨리 잘못 된 것을 깨닫고 막 장을 거두고 뛰어오르려 할 때,
교반이 갑자기 앞으로 수척이 밀려나며 장, 조 두 사람이 안전하게
산봉우리에 내려섰다.

은야왕은 일찌감치 냉면인과 대적하 수 없음을 알고, 허장성세로
우장을 들어 휘둘렀다. 냉면인의 천 근이나 되는 장력이 밀려올 때
은야왕은 오히려 그 힘을 오른팔로 보내어 대형 교반을 밀었다. 그
리고 마침내 위기일발의 순간에 장, 조 두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은야왕은 미소를 머금고 죽어 간 것이었다.

조민은 실성한 듯 통곡했으며, 장무기는 아혈이 찍히긴 했으나 외
삼촌이 이토록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보고는 눈물로 온 얼굴을
적시며 참담하고 비통하여 분노로 몸을 떨었다.

남아 있던 이백 명의 제자들도 은야왕의 참사를 보고, 모두 병기
를 휘둘러 자결하여 그 처참한 광경이 극에 달했다. 삽시간에 천미
당 내에 시체가 나뒹굴어 장무기와 조민은 두 눈을 뜨고 차마 지켜
볼 수가 없었다.

홀연히 쇠사슬이 꼬이는 소리가 들려 와 두 사람이 고개를 들다가
자신들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랐다. 현명이로가 이미 또다른 바구
니에 앉아 있었고 홍발노인과 냉면인이 전력을 다해 교반을 밀고
있었다. 두 사람의 내력이 고강하여 현명이로를 실은 바구니는 절
봉을 향하여 곧장 미끄러져 왔다.

조민이 바구니에서 뛰어내려와 산정에 있는 또다른 교반을 보고
사방을 살펴 돌 하나를 주워서 교반의 손잡이를 눌렀다. 그러자 철
삭이 즉시 멈추었고 조민은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또다시 '툭툭'
소리가 나더니 교반의 손잡이가 아예 끊어져 버렸다.

냉면인은 이미 장무기가 혈도를 찍힌 것을 알아챘다. 추측해 보면
틀림없이 은야왕이 그의 혈도를 찍어 두 사람을 산에 오르게 했으
며 장무기의 혈도는 아직 안 풀어졌고 조민에게는 어찌할 능력이
없는 것이 명백했다. 따라서 현명이로가 먼저 간다면 생각컨대 조
민이 두 사람을 대적할 수 없을 것이었다.

사실 장무기의 내력이 은야왕보다 훨씬 월등하여 또 의리(?衍)에
정통하기 때문에, 만일 마음을 가라앉히고 운기충혈을 하면 막혀진
혈도를 풀 수 있었다. 그러나 현명이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왔
다. 시간이 없음은 말할 필요도 없고, 설사 아직 시간이 있다 해도
눈앞에서 외삼촌이 참사하고 천응교 전교가 전멸하는 것을 본 장무
기가 또 어찌 진정할 수 있겠는가?

현명이로가 다시 사, 오 장을 미끄러져 오매, 조민은 자세히 생각
할 겨를도 없이 쌍검을 뽑아 쇠사슬을 있는 힘을 다해 잘랐다.

그러나 의외로 몇 번을 내리쳐도, 워낙 굵은 쇠사슬은 결국 몇 점
의 백흔(王轄)만 튀길 뿐 어떻게 해도 잘라지지 않았다. 조민의 이
쌍단검은 또한 보검에 속하여서 비록 쇠사슬은 끊어지지 않았지만
쌍검은 여전히 처음과 똑같이 멀쩡했다.

원래 당령에 백미응왕 은천정이 천응산에 요새를 만들 때, 이 몇
줄의 쇠사슬이 실제 생명과 유관함을 고려하여 사람을 사방으로 보
내어 현철(??)을 수집하여 고인을 청해 주조하도록 한 것이니 보
통의 보도로써 어찌 끊을 수 있으랴?

조민은 속수무책으로 현명이로가 절봉에서 겨우 열 장 정도의 거
리에 와 있는 것을 보았다 학필옹이 말했다.

"군주 아가씨, 노부는 그래도 당신이 투항하길 권하겠소!"

조민이 '흥'하며 돌덩어리 몇 개를 집어들고 운력하여 두 사람을
향해 부숴뜨렸다. 그러나 현명이로는 무공이 고강하여 녹장을 한
번 휘두르고 학취필을 한 번 쳐들어 조민이 던진 돌을 일찌감치 하
나하나 날려버렸다.

조민이 크게 놀라며 보니, 두 사람은 또다시 세 장이나 가까이 와
있었다. 바로 이때 갑자기 한 차례 괴성이 들여와 뒤돌아보니 장무
기의 아혈이 아직 풀리지 않아 가까스로 발하는 소리였다. 그의 입
이 왼쪽으로 비뚤어지며 얼굴이 온통 우스꽝스럽고 괴상하게 변했
다. 조민은 그를 보며 아직도 무슨 장난할 여유가 있나 싶어 저절
로 화가 치밀었다. 막 고개를 돌려 그를 상관하지 않으려 하다가,
별안간 머릿속에 한 줄기 밝은 빛이 스쳐가는 것이 있어 급히 몸을
솟구쳐 장무기 앞으로 돌진해서는 그이 몸에서 무려 팔십 근이나
되는 도룡도를 뽑아 들었다. 그런 연후에 조민은 다시 쇠사슬 앞으
로 뛰어가서 도룡도를 치켜세우고 말했다.

"현명이로, 본 군주가 오늘 너희를 초도(超?)하겠다!"

학필옹이 질겁을 하여 말했다.

"군주, 안 됩니다."

조민은 그들이 아직 자신과 대여섯 장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을 보
며 말했다.

"왜 안 되지?"

학필옹은 말문이 막혔다. 조민은 더이상 거들떠보지 않고 도룡도
를 내리쳤다. '우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쇠사슬이 가볍게 절단되어
현명이로는 곧장 심곡으로 떨어져 버렸다. 학필옹의 절규가 들려
왔다.

"영주-"

조민이 한바탕 웃으려 할 때 갑자기 '쿵'하며 냉면인이 한 걸음
급히 나아가 쇠사슬을 잡고는 손을 뻗어 던지자 현명이로는 그것을
두 손으로 꽉 움켜잡고 허공 중에 떠 있게 되었다. 쇠사슬이 천미
당 상공을 가로지를 때 두 사람은 손을 놓으며 땅에 내려섰다. 학
필옹이 땅에 내려서자마자 무릎을 꿇고 말했다.

"목숨을 구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조민은 이를 보고 놀라 어안이 벙벙해 하더니, 곧 아름다운 목소
리로 질책했다.

"학필옹, 속담에 이르길 남자는 경솔하게 남에게 무릎을 꿇는 것
이 아니라 했는데 너는 이토록 비굴하게 남에게 빌붙으니 설마 부
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학필옹은 몸을 일으키며 이 말을 듣고 당장에 당당하게 말했다.

"영주께서 나에게 태산같이 막중한 은혜를 주시니 인천 번 큰절을
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오!"

조민은 차갑게 '흥'하고는 더이상 아랑곳하지 않았다. 냉면인이
다른 줄의 철삭을 주시하더니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조민이 다급
히 말했다.

"냉면인, 또 무슨 음험한 계략은 생각하지 마시오. 그러지 않으
면......."

냉면인이 받아서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다는 건가? 장 부인, 어디 말해 보시오!"

조민은 원래 '그렇지 않으면 단칼에 쇠사슬을 끊어 버리겠다'라고
말하려 했으나 그 말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자신이 정말로 쇠사슬
을 끊어 버리면 한평생을 이 음산한 천응산정에서 살 수밖에 없다
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던 것이었다.

냉면인이 오히려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장 부인이 정말 단칼에 쇠사슬을 끊어 버릴 텐가?
그렇게 하구려. 그리되면 내가 더이상 힘들일 필요도 없고 단정한
부부께서는 이 천응절봉에서 신선같은 부부가 되어 아무도 간섭하
지 않을 터이니 그 어찌 좋지 않겠소?"

조민은 평생 동안 남들과 입씨름을 해서 지금껏 한 마디도 져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냉면인에게 또다시 희롱을 당하자 일
찌감치 쇠사슬을 끊어 버려 가슴 속의 한을 풀어버릴까 하고도 생
각했다. 그러나 차마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조민은 자신도 모르
게 칼을 들고 그 자리에 선 채 분을 참지 못하여 몸을 부들부들 떨
었다.

장무기가 돌연 입을 열어 말했다.

"민 누이, 당장 잘라 버리시오!"

조민은 그가 돌연 입을 열어 얘기하는 것을 보고 아혈이 이미 풀
렸음을 알아챘다. 그러나 조민은 장무기가 자기에게 이렇게 권하는
것을 듣고도 잠시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장무기가
다시 말했다.

"냉면인은 언제나 나를 꺼려했소. 만일 나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강호를 통일하려는 그의 망상을 이루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소. 지금 당신이 잘라 버리지 않는다 해도 결국은 그가 부수어 버
릴 것이오."

조민은 장무기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러나 이
쇠사슬은 필경 유일한 생로일 것이었기에 마치 자신의 손을 자르는
것 같아서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만일 냉면인이 자른다면 이
는 그에 의한 것이니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장무기는 비록 조민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지만 냉면인이 반드
시 들을 수 있으리라고 예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말이 끝나자마자
냉면인이 곧 담담하게 말했다.

"장 교주, 격장지법(?竣柵擾: 사람을 격하게 하여 분발시키는 방
법)을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 내가 이토록 심력을 다 쏟으니 당연
히 두 분께서는 한 쌍의 신선 가족이 될 것이외다."

장무기가 말했다.

"민 누이, 마음 약해질 필요 없소. 당장 잘라 버려서 냉면인이 조
금은 안심하도록 하는 편이 좋겠소."

냉면인은 묵묵부답 하니 조민은 오히려 머뭇거리며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한참을 지나서 냉면인이 말했다.

"그러나 장 교주 부부께서 내 영에 귀순하길 원하신다면 노부는
참으로 무척이나 감격할 것이오!"

장무기가 말했다.

"각하께서는 설마 장 아무개의 의향을 모르시는 것은 아니겠죠?
다시는 언급할 필요 없소이다."

냉면인이 말했다.

"두 부부의 총명함은 절정에 이르니 틀림없이 하산할 방법을 강구
할 수 있을 것이오. 내가 밖에서 당신 두 사람을 두 달 동안 기다
리지. 두 달 후에는 순서대로 공동, 화산, 개방, 소림, 무당, 명교
각파를 전멸시킬 것이오. 두 부부께서 그때까지 여기를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들은 물론 다시 상봉하게 될 것이오."

장무기가 '하하'하고 크게 웃었다. 냉면인이 그가 다 웃기를 기다
린 후에야 말했다.

"장 교주, 무슨 즐거운 일이라도 있으신가? 만일 장 교주가 출수
하지 않는다면 누가 이기고 지는지는 단언하기 매우 힘들 것이오."

장무기가 냉담하게 말했다.

"귀하께서는 저를 너무 과대 평가 하시는군요!"

냉면인이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장 교주를 마음 속으로 흠모한 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만일 이승에서 장 교주를 얻을 수 있다면 실로 평생의
대운이오이다."

장무기는 그의 말이 진실함에 더이상 언사에 무례함이 없이 담담
하게 말했다.

"소생이 너무나 과분한 각하의 사랑을 받는군요."

냉면인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렇게 되면, 내가 쉽게 승리를 얻어도 생각컨대 뭐 그리 즐겁다
고 말할 게 못 되겠군."

장무기가 실소하며 말했다.

"각하께서는 입심이 너무 세군요. 자고로 사(?)는 정(賑)을 이길
수 없다 했으니, 설사 순조롭게 된다 해도 오래지 않아 곧 영웅이
나올 것이니 그때는 각하께도 이러한 대범한 호의가 있을 리 없겠
지요."

냉면인이 감개하여 깊이 탄식하여 오랫동안 말이 없더니, 이윽고
말을 꺼냈다.

"장 교주가 질질 끌길 원하지 않음은 혹시 사후에 후회막급할 것
이 두려워서인가?"

조민은 평생 총명함으로써 늘 다른 사람들을 손바닥에 가지고 놀
았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누차 냉면인과의 만남에서 그가
자신의 심사를 꿰뚫어 보지 않은 적이 없었고 또한 말로써 두 손을
들지 않은 적이 없었다. 조민은 이 말을 듣고는 격노하여 선을 들
어 칼을 내리쳤다. '우지직'하며 쇠사슬이 천천히 끊어져 나갔다.
한참 후에야 비로소 절벽과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철과 돌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가볍고 은은하게 들려 오는데 무
척이나 듣기 좋고 가슴이 찡했으며, 그 소리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멎었다. 냉면인이 말했다.

"이리하여 두 부부께서 신선과도 같은 나날들을 보낼 수 있게 되
었소이다. 정말로 부럽기 그지없소. 그러나 나 같은 속물에게는 그
런 생활은 곤란할 것이니 역시 속계로 돌아가 뒤엉켜 지내겠소. 장
교주, 장 부인, 우리 이만 여기서 작별해야 하겠소."

장무기가 갑자기 말했다.

"잠깐!"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 무슨 할 말이 있소?"

장무기가 말했다.

"지금 우리 부부 두 사람은 이미 절경에 와 있으니, 다시는 세상
으로 나갈 수 없소이다. 두 가지 궁금한 점이 있으니 각하께서 사
실대로 말씀해 주셔서, 소생이 많은 의심을 가짐으로써 이 신선같
은 날들을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냉면인이 말했다.

"좋소. 어디 말해 보시오."
"당신의 정체는 무엇이오?"

장무기의 물음에 냉면인이 대답했다.

"나는 강호를 떠돌다가 졸지에 무림 고인(俗?)으로 대성하였으
며, 그간 장 교주의 은혜를 깊이 입었소이다. 실로 뵐 낯이 없으니
장 교주께서 용서하시기 바라오."

장무기가 말했다.

"각하께서 진면목을 보이길 원하지 않는 이상 그만 둡시다."

냉면인이 물었다.

"두 번째 일은?"

장무기가 말했다.

"이 또한 각하께서 얘기하길 원하지 않을 테니 말하지 않겠소."
"장 교주, 말해도 괜찮소."
"그러면 좋소. 외람 되지만 각하는 주원장과 어떤 관계인지?"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 시로 난제를 물으셨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일찌기 주
원장과 한 번 만난 적이 있으나, 그 이후로는 다시 보지 못했소."

장무기가 '어'하며 무엇인가를 더 물으려 할 때 냉면인이 말했다.

"내가 여기에서 말을 마침을 용서하시오. 장 교주는 똑똑히 기억
하시오. 나는 밖에서 두 달을 기다리겠소. 두 달 후에 나는 순서대
로 공동, 화산, 개방, 곤륜, 소림, 무당, 명교 각 파를 전멸시킬
것이오. 장 교주께서 한가하시다면 그때 만나는 것도 괜찮겠지요."

말을 마치고는 몸을 돌려 천미당 입구로 향했다. 홀연 신형을 멈
추고서 좀전에 은야왕에 의해 구해진 그 수천 명을 보고는 손을 뻗
어 한 명을 움켜잡아 왼손으로 그의 혈도를 제압하고 오른 손으로
는 그의 머리를 누르더니 내력을 내뿜어 그의 머리에 있는 경맥을
절단 내고서 손을 풀었다.

그 사람은 마치 백치처럼 흔들흔들 걸으며 입 속에 흰 거품을 잔
뜩 물고서 알아듣지도 못하게 뭐라고 중얼거렸다. 냉면인은 삼엄하
게 무리를 향해 말했다.

"살려고 하는 자는 저자같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뛰
어 내려라!"

장무기가 대경실색하여 말했다.

"냉면인, 당신......."

냉면인이 뒤돌아보며 말했다.

"장 교주가 여기에서 도를 닦는 것을 외부인이 알게 할 수는 물론
없지. 그렇지 않으면 많은 이들이 찾아와 쓸데없이 번거롭게 할 테
니, 당신 두 사람이 어찌 성가시지 않겠소이까?"

냉면인이 재빨리 몸을 돌려 그 수천 명을 부릅뜬 눈으로 보자, 모
두들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당장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허둥지둥 몸
을 날려 심곡으로 뛰어들었다. 남아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주저하
며 결정하지 못했다. 네 마두가 일제히 손을 뻗어 여덟 개의 수장
(?雋)이 사람들의 머리를 내리치자 삽시간에 뇌장(?證)이 사방으
로 튀었다. 다시 수백 명이 만장심곡으로 뛰어들었다.

장무기가 통곡하며 호되게 욕을 하였으나, 냉면인 등은 모른 체
하며 바람처럼 수장(?雋)을 날렸다. 잠시 후, 의식을 회복하는 이
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자 이들 네 사람은 비로소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천응산에는 온통 시체가 낭자했으며, 사이사이 장력으로
인해 백치가 된 수십 명의 울부짖음이 더욱더 처절함을 자아냈다.

조민은 급히 장무기를 안고서 총타로 향했다.

석벽이 돌아서자 천응산정은 매우 평평했으며 중간에 수십 칸의
웅장한 석실이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뜬구름과 미풍 외에 한점의
사람 소리도 없는 것이 필경 모두 천미당에서 전사한 듯했다.

조민은 단지 자신과 장무기 두 사람만이 이 수십 칸의 석실에서
거주하게 될 것을 상기하자 저절로 소름이 끼쳐 가볍게 한번 몸을
떨었다. 장무기가 이를 알아차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민 누이, 정말 무섭소?"

조민이 고개를 들어 장무기를 보며 웃었다.

"당신 장 대협의 보호가 있는데 어찌 두려워할 것이 있겠어요?"

장무기가 말했다.

"민 누이, 나를 내려놓고 내 혈도가 풀린 이후에 같이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소?"

조민이 그를 내려놓고서 옆에 서서 그를 옹호했다. 산정에 이미
아무도 없는 것이 명백하니, 만일 누군가가 있다면 물론 자신의 편
이며 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조민은 이 수십 칸의 기세 웅장한, 하
지만 정적뿐인 석실을 바라보며 점점 긴장되어 자신도 모르게 쌍검
을 뽑아서 손에 꽉 움켜쥐고 있었다.

장무기가 몸을 뒤척이며 일어나서, 조민이 쌍검을 쥐고 있는 것을
보고는 안색이 창백해지며 그 자리에 섰다.

"민 누이, 여기는 외할아버지의 집이니 무슨 일이 생길 리 없소.
안심해도 좋아요. 응?"

조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쌍검을 칼집에 꽂았다. 조민이 장무기의
품에 기대서 두 사람은 느린 걸음으로 정전을 향해 걸어갔다.

장무기의 외할아버지인 백미응왕 은천정은 소림사에서 신승(佚弛)
셋과 사력을 다해 싸우다가 돌아가셨고, 모친 은소소와 부친 장취
산은 무당산에서 자결했다. 외삼촌 은야왕은 자신을 구하기 위하여
냉면인의 손에 운명을 달리하셨고, 사촌 누이 동생인 은리 또한 냉
면인의 손에 죽었다. 은야왕은 일찌기 첩을 얻었다. 본처가 바로
은리의 모친이나, 은야왕이 첩만 편애하고 조강지처는 오히려 괄시
하자, 은리가 이에 한을 품고 결국 그 첩을 살해하였고 생모 또한
이로 인해 자살하였다. 은야왕은 가정의 이런 대변을 겪고 더이상
아내를 얻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은 장무기 모친 가계의 일맥은 끊
어진 셈이었다.

대전으로 들어서자마자 정 가운데에 백미응왕의 영패를 모셔둔 것
이 보여서, 장무기와 조민은 공손하게 절을 올렸다. 두 사람은 한
참 그렇게 묵묵히 서 있었다. 장무기가 홀연히 떠오른 것이 있는
듯 측전으로 가는데, 복도를 지나고 정원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 지
극히 익숙한 듯했다. 조민이 몹시 기이하게 여기며 물었다.

"무기, 당신 전에 이곳에 와 보았나요?"

장무기는 마치 아무 소리도 들이지 않는 듯했으며, 몇 구비를 돌
아 문 하나를 열고 들어섰다. 뜰 안에는 온통 이름 모를 꽃들과 잡
초가 무성했다. 장무기는 발을 멈추지 않고 곧장 정교한 작은 뜰을
지나서 정문을 열었다. 그 안은 매우 우아하게 꾸며져 있었으며 그
가 어려서부터 아주 익숙했던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 왔다. 장무기
는 안쪽에 방 하나가 있고 문 앞에 주렴(竄?)이 드리워져 있는 것
을 보고 주렴을 가볍게 들어올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조민은 밖에서 한 폭의 산수시화(雲?益驃)를 감상하다가 갑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장무기의 통곡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놀라서 황급
히 주렴을 걷고 안으로 들어갔다.

제 14장 : 상전벽해(委址??)
조민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단아하고 청아한 향기를 느꼈으며,
실내의 장식을 보니 그곳은 소녀의 규방 같았다. 조민은 이곳이 틀
림없이 은소소의 규방이었으리라 생각했다.

은소소를 생각하자, 조민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이 시어머니
가 자기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 은소소는 '마교'의 딸로,
온 천하에 이름을 떨쳤던 무당 오협인 장취산과 사랑에 빠졌으며
결국은 핍박에 의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천하 영웅들에게 사
과했었다. 자신도 몽고 군주로서, 진심으로 몽고인을 중원에서 내
몰려고 하는 장무기를 사랑하게 되어 마침내 결합을 하였지만 그간
에 괴롭고 쓰라렸던 일들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여기까
지 생각이 미치자 장무기를 위로하기 전에 오히려 자신이 울기 시
작했다.

한참 후에야 두 사람은 겨우 울음을 그치고 서로 부축한 채 수십
칸의 방들을 두루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는 것이 확실했으며 대량
의 미주(?僭, ?=澯)와 식량만이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마주 보
고 씁쓸히 웃었다. 식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산정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으나, 사면은 모두 아득한 절벽으로 확실히 내려갈
길이 없었다. 둘은 여기저기를 살피다가 끝내는 방법이 보이지 않
아 부득불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장무기가 말했다.

"민 누이, 당신과 나는 일찍부터 은퇴할 마음이 있었잖소? 이곳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고 풍경도 또한 아름다우니 여기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수련이나 합시다."

조민이 말했다.

"그러나 우리 딸이......"
"우리 보배는 무당산에 있지 않소. 너무 응석받이로 커서 제 엄마
처럼 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오!"

조민이 화를 내며 말했다.

"제 엄마가 어떻길래요?"

장무기가 웃으며 말했다.

"제 엄마는 모략이 다양하고 흉악무도하지. 천하의 수많은 영웅들
이 그녀의 이름만 들어도 모두 원망하고 두려워하며 또 사랑하지!"

그러나 조민은 전혀 농담할 마음이 없었으며 오히려 근심스럽게
말했다.

"냉면인이 만일 무당산을 찾아가면 혹시 우리 딸이......"

장무기가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소. 그날 송 사숙께서 나와 함께 냉면인을 대적할
방법을 의논하셨으니, 모든 자세한 사항을 다 잘 알고 계실 것이
오. 그러니 냉면인이 찾아간다 해도 걱정 없을 것이오."

조민은 여전히 안심이 안 되어 말했다.

"당신 장 대협조차도 냉면인에게 정신을 못 차리게 당했으니, 송
사숙도 아마 냉면인을 대적하기 힘들 텐데요."

장무기가 참을성 있게 말했다.

"민 누이, 무당파에게는 여태껏 써 본 적 없는 진귀한 진법이 있
는데 '진무칠절진(?俉?至?)'이라 하오. 들어본 적 있소?"

조민이 망연히 고개를 저었다. 장무기가 다시 말했다.

"이 일은 내가 장 사숙에게서 들은 것이오. 이 무공은 태사조께서
만드신 일종의 득의 무공이라오. 무당산에서 모시는 이가 진무대제
인데 대제 옆에 거북이와 뱀이 한 마리씩 있소. 하루는 태사조께서
홀연히 큰 뱀이 재빨리 움직이는 것과 거북이가 꼼짝 않고 있는 것
을 떠올렸소. 태사조께서는 당장 그날 밤에 한양으로 급히 가셔서
귀사이산(???雲)을 관찰하고 사 일 동안 깊이 사색하여 마침내
절묘한 무공을 창조하셨지요. 그리고 산으로 돌아오신 후에 무당칠
협을 부르셔서 각자에게 무공을 전수하셨어요. 이 일곱 가지 무공
은 각각 나름대로의 오묘함이 있으며, 만일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공격과 수비가 겸비되어 위력이 대폭 증가하지. 세 사람이 같이 구
사하면 두 사람이 할 때보다 위력이 배로 강해지고, 네 사람은 여
덟 명의 고수에 상당하고, 다섯 사람은 열여섯 명에 상당하며, 여
섯 사람은 서른두 명에 상당하고, 일곱 사람은 육십네 명의 당대
일류 고수와 마찬가지요. 무당칠협 중에 현재 오협이 건제하며, 설
사 유 삼숙께서 나설 수 없다 해도 사협이 남아 있소. 이 사협의
무공은 이미 당대 일류고수의 대열에 이르니, 네 사람이 손을 잡으
면 여덟 명의 고수에 상당하지요. 게다가 송 사숙에게 냉면인을 이
겨낼 방법이 있으니 냉면인은 틀림없이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오.
또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송 사숙께서 나머지 사숙들과 또다른 더
욱 막강한 무공을 생각해 내셨는지도 알 수 없지요."

조민은 못 믿겠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로 그러한 진법이 있다면 어째서 좀더 일찍 사용하여 냉면인
과 겨루지 않았지요?"

장무기가 말했다.

"그날 무당산에서는 냉면인이 단신으로 출장하였으니, 무당제협같
은 신분에 어찌 한꺼번에 몰려 나가 다수로써 이기겠소. 그러나 이
번은 그 상황이 사뭇 달라서, 냉면인이 무당산에 도발하려는 것이
니, 무당제협이 또다시 자중하여 눈앞에서 냉면인이 무당산을 온통
불바다로 만드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소?"

조민은 그제서야 겨우 약간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냉면인이 천응
산을 공격한 것과 같이 무리를 거느리고 온다면 아무리 무당제협이
라고 해도 당해 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민이 막 다시 말
을 꺼내려 할 때 장무기가 말했다.

"민 누이, 차라리 우리 두 사람이 천응산에서 같이 뛰어내려 우리
들의 보배인 딸아이를 구하러 감이 어떻겠소?"

조민은 자신이 이렇게 마음이 여려진 것에 스스로도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던 차에 이 말을 듣고는 실소하며 말했다.

"천하영웅들 모두 당신처럼 이렇게 마음이 너그럽다면 모두들 수
많은 번거로운 일을 줄일 수 있을 거예요."

장무기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아차, 우리가 한 사람을 데려올 것을 잊었네!"

조민이 놀라 물었다.

"누구요?"

장무기가 말했다.

"주방 아줌마!"

조민이 한 손바닥을 치자 뜻밖에도 장무기가 응수해 와 넘어졌다.
조민이 장무기에게 또 농담을 하냐고 말하면서 막 발을 들어 그이
한 발을 차려는데 갑자기 그의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이내 기
절해 버렸다.

조민이 대경실색하여 맥을 짚어 보니 빨랐다 느렸다 하며 고르지
못함이, 양빙이 그이 체내에 주입해 준 구음진기와 구양진기가 합
해지지 않고 서로 배척하여 내식이 갈라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무공을 연마하는 이들은 모두 의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조민
은 당장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그를 위해 기(褶)가 중중으로 흐로
도록 했다. 한참을 지나 장무기가 겨우 깨어나며 방금 어떤 일이
발생했었는지 알아차렸다. 그는 조민이 다정하게 자신을 돌보고 있
는 것을 발견하고는 저절로 미소지으며 말했다.

"부인, 생명을 구해 준 은혜 정말 감사하오!"

조민이 여전히 정답게 말했다.

"지금 기분이 어때요?"

장무기가 말했다.

"괜찮소. 부인, 안심하시오."

조민이 말했다.

"구음진기를 체외로 몰아낼 수 없는지요?"

장무기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양빙 누님의 내공 수양이 이미 최고의 경지에 달하여, 만일 내공
이 그녀를 초월하는 사람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내 체내의 구음내공
은 제거하기 힘들 것이오."

조민이 다시 말했다.

"요 몇 달 동안 줄곧 괜찮았는데 어째서 지금 갑자기 발작하는 거
지요?"

장무기가 말했다.

"내 줄곧 구음진기를 음경(遭?) 속에 저장해 왔는데, 생각컨대
좀전에 외삼촌께서 나의 혈도를 막은 것 때문에 진기가 음경에 넘
쳐서, 구양진기와 충돌하게 되어 이렇게 된 것 같소."

조민이 기뻐하며 말했다.

"냉면인은 구음, 구양을 다 연마하여 무공의 조예가 비범하지만,
지금 당신 체내에 또한 이 양종의 신기한 내공이 있으니 그것을 결
합, 관통시킨다면 훗날 다시 냉면인을 만나도 무슨 겁날 게 있겠어
요?"

장무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 만장 절벽에서 설사 경제신공할 만한 연공을 가진들 무슨 소
용 있겠소?"

조민이 성을 내며 말했다.

"당치도 않은 말 자꾸하지 말고 빨리 방법이나 모색하세요!"

장무기가 말했다.

"연공을 하다 해도 또한 일시에 급하게 할 필요 없잖소. 아직 시
일이 많으니 천천히 다시 연마해도 늦지 않소. 더군다나 솔직히 말
해서 부인께서도 좀 들어보시오."

조민은 한 차례 천둥 소리같은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장무기의
배에서 나는 것을 들었다. 장무기가 배가 고파서 일부러 질기를 배
에서 격동시켜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의 꼬르륵 소리를 낸
것이었다.

조민이 말했다.

"본 군주는 장 대협에게 시집와서 부득불 주방 아줌마로 변하게
되었군요. 제가 곧 가서 장 대협께서 식사할 수 있도록 모시겠습니
다. 장 대협께서는 연공할 방법이나 생각하시지요."

조민은 비록 웃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얼굴은 잔뜩 정색하고 있었
다. 장무기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알겠어요, 알겠소. 소생이 어찌 감히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있
겠소."

말을 마치고는 곧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조민은 곧 주방으로 나갔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언젠가 하산하리
라는 한 가닥 희망이 있었다. 장무기의 신공이 이루어질 수만 있다
면, 다시 냉면인을 만나게 되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었다.

장무기의 의리(?衍)에 정통하여 인체에서 제반 경락식맥(?惹刃
?)의 유동 방항에 매우 익숙하였으므로 잠시 생각한 후에 곧 연공
의 방법을 찾아냈다. 냉면인이 예전에 음양 이공을 융합하고자, 장
무기에게 출장(出雋)하여 그를 도울 수 있도록 강요해서 그 힘을
빌어 진기의 융합을 격동시키고 현관을 뚫었었다.

장무기는 그러나 외부인의 도움이 없이 이 정도까지 해낼 수 있었
다. 그는 이미 명교의 호교 신공인 '건곤대나이'를 제 칠 단계까지
연마했는데 이는 바로 최고의 단계였다. 이 '건곤대나이' 심법은
바로 천하 제일의 정교하고 기묘한 사력(?淹)법문이었다. 이 법은
체내외의 힘을 이동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체내에서 구음과
구양의 양종 내공을 이동할 수 있었다. 다만 이는 천천히 이루어야
하며 또한 반드시 인체의 혈도를 피해야 했다. 한 달 후에 장무기
는 이미 구음과 구양 양대 신공을 하나로 융합하였다. 다시 한 달
이 더 지나서 전신의 현관을 뚫었다. 겨우 두 달의 시간에 장무기
는 기우(?瀞)를 만난 덕택에 마침내 절세의 신공을 연성하였다.

이날 대공을 처음 이루고 시연(瀷?)해 본 후, '쿵'하는 소리와
함께 앞쪽의 거석이 그의 타격에 의해 분쇄되었으며 그 부스러기
돌이 사방으로 격렬하게 튀어 나가는데 그 속도가 더없이 빨랐다.

조민은 이토록 엄청난 위력의 장력을 보고도 뜻밖에 아무런 기쁜
내색이 없이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먼 산을 응시하고 미간을 찡그
린 채 한마디 말이 없었다.

장무기가 이상스레 여기며 물었다.

"민 누이, 뭐 대문에 즐겁지 않은 거요?"

조민이 조용히 말했다.

"신공이 이루어졌다 해도 하산할 수 없으니 좋을 게 뭐가 있겠어
요?"

장무기가 위로하며 말했다.

"민 누이, 이제 신공이 연성되었으니 우리 하산할 방법을 찾아봅
시다."

사실 장무기는 하산할 어떠한 희망도 품고 있지 않아서 마음이 지
극히 편했다. 하산하지 못한다면 조민과 여기에서 일생을 보내는
것도 또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민이 근심을
털어 버리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도 마음이 약해져서 자신
조차도 믿을 수 없는 이런 말을 해 버린 것이다. 조민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요 두 달 동안 당신이 연공하고 있을 때, 이
산정의 곳곳을 샅샅이 찾아보았지요. 처음에는 비밀스러운 퇴로라
도 발견하길 희망했지만 결국 없더군요."

장무기가 할 수 없이 말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무공이 고강함을 믿으셨고 또한 요새에
의지하여 사셨기에 결코 위험이 없다고 생각하셔서 달리 퇴로를 남
기시질 않았을 것이오."

조민이 의심스러워하며 말했다.

"자고로 영웅은 모두 지혜가 출중한 이들이지요. 속담에 이르길
'교활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놓는다'고 했지요. 광명정과 소림사
가 왕년에 세력을 떨칠 때 또한 비도(澐?)를 남겼죠. 짐작컨대 이
천응산 역시 예외일 리가 없을 것입니다."

장무기가 말했다.

"민 누이의 말이 일리가 있소이다. 우리 천천히 찾아봅시다!"

조민이 초조하게 말했다.

"무기, 당신은 언제나 주관이 없이 기둥따라 올라가듯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기만 하고, 어째서 조금도 머리를 쓰지 않는 거지요?"

장무기는 그동안 자신이 항상 조민의 심사대로 하는 일을 따라하
기만 해 왔음을 크게 깨달았다. 뜻밖에도 조민이 지금 심정의 모순
이 백출한 듯했으나 실제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잠시 바보처럼 되
어 그녀를 따르니 자연히 조민의 번뇌가 갑자기 증가하였을 것이었
다. 마음 속으로 스스로를 자책하며 말했다.

'장무기야, 장무기야, 네가 사내대장부로서 하는 일이 조금도 주
관이 없으니 죽어도 마땅하다.'

그는 갑자기 그 자리에 멍청히 선 채 망연해 하더니 결국 아무 말
도 꺼내지 못하였다. 조민이 그의 얼굴이 온통 자책하는 기색인 것
을 보고 마음이 약해져서 말했다.

"외할아버지의 무공은 물론 고강하셨으니 걱정이 없었을 거예요.
그러나 당시 외할아버지께서 명교를 뛰쳐나와 스스로 천응교를 만
드셨을 때 처자를 데리고 나오셨지요. 그때 외삼촌과 당신 어머님
께서 아직 어리셨으니 외할아버지게서 어찌 그들을 위해 후로(避
?)를 만들지 않았겠어요?"

장무기는 가슴이 두근두근하며 깨달은 바가 있는 듯했다. 막 발걸
음을 옮기려 할 때, 조민이 깜짝 놀라며 날카롭게 외쳤다.

"누구냐?"

장무기도 뒤쪽에서 갑자기 기류가 파동함을 느끼며 크게 놀랐다.
자신의 지금의 공력으로써는 열 장 밖에서 오는 사람도 당연히 일
찌감치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자신의 뒤쪽에 와서
야 겨우 깨달았으니, 그의 공력의 고강함이 정말로 상상할 수 없음
이었다.

몸을 돌릴 겨를이 없어 손을 뒤쪽으로 하여 일 장을 날리자, '펑'
소리와 함께 그자가 자신의 일 장을 맞고 십여 장 밖으로 떨어지며
죽은 듯했다. 장무기는 너무도 기이함에 곧 그자에게로 뛰어갔다.

그자를 보매 두 사람은 저절로 기쁘기도 하고 또 놀라웠다. 죽은
자는 흑의를 입고 있었으며 멍청한 모습이 냉면인의 부하임이 확실
했다.

장무기가 말했다.

"민 누이, 산에 틀림없이 통로가 있소. 그렇지 않다면 이자가 어
디로 올라왔겠소?"

조민이 말했다.

"애석하게도 이자가 벌써 죽어 버렸군요."

장무기가 사방을 다시 살펴보았으나 더이상 아무도 없었다. 당장
조민의 손을 잡고서 모친 은소소의 규방으로 내달아 갔다. 조민 또
한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광명정의 비도도 그 입구가 바로 양소의
딸인 양불회의 침상 밑에 있었다. 은소소가 그 아버지인 백미응왕
의 총애를 깊이 받았으니 혹시 비도의 입구가 바로 은소소의 방 내
에 있을지도 몰랐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은소소의 방에 이르렀다. 이곳이 모친의 규방
이었기에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방안을 어지럽히지 않도
록 했다. 몇 시간 동안 장무기와 조민은 방안의 구석구석마다 모조
리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어떤 흔적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손으로
바닥을 두들겨 보았으나 곳곳에서 무거운 메아리만 전해 올 뿐, 방
밑에 비도가 전혀 없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두 사람은 뜰로 나서서 한치 한치 꼼꼼히 탐색하며 다음날 새벽
까지 찾아보았으나 여전히 아무런 이상함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부
부 두 사람은 서로 잠깐 마주보다가 신법을 전개하여 천응산정을
몇 차례 수색하였으나 다른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마도 흑의
를 입은 그자는 우연히 비도로 들어선 것 같았다. 참으로 어리석은
자가 두터운 복을 얻은 꼴이었다. 장무기 부부는 총명함이 절정에
이르렀지만, 또한 이런 총명함에서 오는 행운은 없었다.

장무기는 흑의를 입은 그 시체 옆으로 돌아와 의기소침하게 말하
였다.

"그가 귀신처럼 뒤쪽으로 몰래 와서, 무공이 틀림없이 세상을 깜
짝 놀라게 할 정도로 높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이렇게 일격도 견디
지 못할 줄 누가 알았겠소. 아, 귀하, 장무기가 가 당신에게 대단
히 미안하군요. 이렇게 합시다. 산정에 있는 것이라곤 암석뿐이니
귀하를 위해 뒷일을 처리하기 불편할 것이오. 산 아래 귀하의 많은
동료들이 있으니 소생이 당신을 보내드려 그들을 찾도록 하겠소."

말을 마치고 시신에 세 번 큰절을 한 연후에 심곡으로 던졌다. 조
민은 그가 여전히 아쉬워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무기, 이 또한 당신을 탓할 게 되지못해요. 사실 그가 귀신처럼
돌연히 출연하였으니 아마도 천명이 그러한가 봐요."

장무기는 아직도 후회 막심하여 말했다.

"나는 그를 해쳤을 뿐만 아니라 우리까지도 징벌을 받게 만들었
소. 이는 정말로 하늘의 그물이 아무리 넓어도 죄인은 벌을 면치
못함이오."

조민은 그가 결국 모든 것을 원망하는 것을 보고 '키득'하고 웃으
며 말했다.

"그만하세요. 장 대협, 산정에 비도가 있음이 분명하니 천천히 찾
아요. 찾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고요."

손을 꼽아 보매 천응산정에 거주한 지 이미 두 달과 하루가 지났
으니 냉면인이 틀림없이 공동파에게 손을 썼을 것이었다. 장무기가
말했다.

"공동파는 오늘 틀림없이 재난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을 것이오."

조민이 말했다.

"일체가 운명에 달렸으니, 우리 잠시 쉬고 나서 다시 계속해서 찾
도록 해요."

이때 아침 해가 막 떠올라서 천응산정이 눈부신 금빛으로 밝게 비
치며 구름이 피어오르고 안개가 감도는 것이 말할 나위 없이 장엄
하고 화려했다.

부부 둘은 하루 낮 하루 밤을 꼬박 괴로워했기 때문에 이때는 이
미 피곤을 느껴 방으로 돌아가 쉬어야 했다.

시간이 유수와 같이 흘러 어느덧 다시 이십 일이 지나갔다. 조민
과 장무기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천응산정의 모든 암석, 지붕, 가
구 등을 모두 샅샅이 살펴보느라 두 손에 모두 굳은살이 박힐 정도
였으나 결국 비도를 찾지 못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냉면인의
시간표대로라면 지금 이미 소림사를 찾아갔을 터이라 장무기는 마
음이 불타는 듯 초조하였으나, 도대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조민이 말했다.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봐요."

장무기도 달리 방도가 없으매 의기소침하여 조민의 뒤를 따라 모
친의 방으로 갔다.

뜰 문을 들어서 실내로 들어가며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여전히 아
무런 단서도 알아낼 수 없었다.

조민이 곧 뜰 중앙으로 돌아가자, 장무기가 낙담하여 돌계단에서
있다가 온 정신을 다 쏟아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 조민을 보며 갑자
기 말했다.

"민 누이, 나에게 한 가지 묘책이 떠올랐으니, 반드시 우리 두 사
람이 이곳을 빠져나가게 할 수 있을 것이오."

조민이 건성으로 '어'하며 계속해서 찾았다. 장무기가 큰소리로
말했다.

"민 누이, 내 말 좀 들어봐요."
"뭔데요?"

장무기가 말했다.

"민 누이, 지난 번에 산정에 올라왔던 그자가 정신이 흐릿한 게
마치 백치 같았던 것을 기억하지요?"

조민이 말했다.

"그래서 뭐가 어쨌는데요?"

장무기가 깊이 생각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오직 백치만이 비로소 비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조민은 그가 심오한 척하는 것을 보고 또 장난을 하는 줄 알고 퉁
명스럽게 말했다.

"맞아요. 이 산정에는 확실히 백치만이 겨우 올라올 수 있지요.
안타깝게도 장 대협은 너무 지나친 백치라서 아직......."

조민이 돌연 말을 멈추었다. 장무기는 조민이 말하려는 것이 물론
비도임을 잘 알았다. 자신 부부 둘이 모두 비도를 발견하지 못하였
으니 조민이 이렇게 말하면 그녀 자신도 싸잡아 욕하는 것 아니겠
는가.

장무기는 일부러 모른 체하며 진지하게 물었다.

"도대체 뭐가 아직이라는 것이오?"
조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장무기가 말했다.

"민 누이는 '아직 비도를 발견하지 못했소'라고 얘기하려는 거죠?
음! 일리가 있소. 남편 되는 이가 약간 멍청하고 단지 공력이 좀
있을 뿐이니 민 누이가 기꺼이 도와준다면 남편을 완전히 백치로
만들어 반드시 비도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오. 응, 맞소! 바로 이
렇게 현처께서 빨리 손을 쓰신다면 우리 부부 둘에게 이 난국을 극
복할 희망이 있소이다."

조민은 그가 장난을 진짜이듯 얘기하는 것을 보고 너무 가소로와
하며 말했다.

"장 대협이 백치가 된다면 설사 이 산정을 내려갈 수 있다 해도
또한 폐물이 될 것이니, 그럴 바엔 차라리 산을 내려가지 맙시다!"

장무기가 한참을 심사숙고하더니 말했다.

"현처께서 남편을 백치로 만들 수 있다면 틀림없이 또한 다시 원
상으로 회복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조민은 더이상 농담할 마음이 없어 화를 내면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찾아요."

장무기는 낙담하여 돌계단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다가 '땅'하는 소
리를 들었다. 도룡도가 돌계단의 한쪽에 부딪힌 것이었다. 장무기
는 갑자기 엉덩이 밑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돌계단을 천천히 밀
어보니 어두컴컴한 동굴 입구가 하나 나타났다.

장무기와 조민은 이 동굴을 보고 미친 듯이 기뻐했다. 둘이 냉정
을 되찾고 생각해 보매 너무도 괴이했다. 이 뜰 안은 두 사람이 매
우 자세히 탐색하였으며, 도룡도가 부딪힌 곳도 또한 찾아본 적이
있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었다.

이때 동굴 입구가 크게 열려 두 사람은 고개를 들이밀고 살펴보고
서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원래 입구의 기관이 몹시 견
고하여 만일 큰 힘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설사 장사가 그 돌 위에
선다 해도 열리지 않게 되어 있었다. 우연히 미물이 떨어져서 비밀
이 탄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인 듯했다.

도룡도 자체의 무게만도 약 팔십 근이며 거기에 칼집까지 하면 백
근이 넘는데다가, 장무기가 앉으면서 도룡도에 힘이 가해져 돌을
격중시킴으로써 기관을 움직인 것이었다.

장무기와 조민은 모친의 규방을 마주하고 무릎을 꿇고는 머리가
땅에 닿도록 여덟 번이나 큰절을 했다. 장무기가 말했다.

"어머님께서 남몰래 도와 이 난국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대사가 해결되면 이 아들이 반드시 천응산에 다시
오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장무기와 조민은 횃불을 가지고 동굴로 들어갔다.
몇 걸음을 가니 동굴 입구가 저절로 닫혀 버렸다. 조민은 설계한
이의 정교한 구상에 탄복했다. 동굴 안의 공기가 신선하매 통풍구
가 있음이 확실했으나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비도의 경사가 매우 심한 것이 틀림없이 천응산 계곡 아래로 직통
하는 듯했다. 속담에 이르길 '산에 오르기는 쉬어도 내려가기는 어
렵다'했으니 아무리 두 사람의 내공이 깊다 해도 역시 도중에서 몇
번 쉬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동국 안에는 곳곳에 횃불이 구비
되어 있었고 또한 조민이 세심하여 식량을 준비해 왔으므로 큰 문
제는 없었다. 이렇게 거의 꼬박 하루를 가서야 겨우 동굴의 출구에
다다랐다.

기관을 시동하자 동굴이 열렸다. 검푸른 녹색의 계곡 속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곧 석문
을 닫고 군산으로 나섰다. 한 마을에서 준마 몇 필을 사서는 밤낮
으로 달려 무당산으로 급히 내달았다.

날짜를 계산해 보니, 만일 냉면인에게 문제가 없었다면 지금쯤 소
림사에 있을 것이었다. 두 사람은 하루가 되지 않아 곧 무당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무기와 조민은 당장 말을 버리고 무당도관으
로 질주했다.

산중턱에 이르러 장무기는 병기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마
음이 조급하여 조민에게 자세히 설명할 겨를도 없이 한 마디만 했
다.

"내 먼저 오를 테니 민 누이는 천천히 오구려."

그리고는 그는 이미 수십 장을 날아가 버렸다. 장무기는 신공을
전개하여 금새 도관에 닿았다. 막 안으로 달려들다가 갑자기 한 계
책이 떠올라 곧 신형을 멈추었다. 후원을 돌아 쌍족일점하여 신형
은 벌써 지붕 위로 날아올랐다. 눈을 들어 장중을 바라본 그는 자
신도 모르게 몹시 놀랐다.

냉면인은 혼자 송원교, 유연주, 유대암, 장송계, 은리정 오협과
싸우는데도 여전히 여유만만했다. 무당오협들도 이검(?盛)을 쥔
채 공수에 서로 호흡이 일치하며 역시 불리한 위치로 빠지지 않고
있었다. 장무기는 무당제협이 틀림없이 '진무칠절진'을 펼쳐 냉면
인과 대항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왼쪽에 소림사 제승(?弛)
들이 서 있었는데. 공문대사는 쌍수를 합장하고 장중에서 벌어지고
있는 격투를 주시하고 있었다. 오른쪽 맨 앞은 바로 홍발노인 주오
정이었고 그 뒤에 현명이로가 서 있었으며 두 손에 아이를 하나씩
잡고 있었는데 바로 녹민과 은도였다.

장무기가 다시 장중을 쳐다보니 무당제협은 마치 진공을 서두르지
않는 듯하였으며 오히려 수비만 할 뿐이었다. 몹시 이상스레 생각
하고 있을 때 홍발노인이 말했다.

"무당칠협은 과연 명불허전이오. 노부가 모두들 중지하시길 권합
니다요. 이렇게 달라붙어 싸워가면 결국 영주의 맞수가 되지못할
것이오."

장무기는 제협이 득수할 것이 명백함에도 좋은 기회를 모두 놓치
는 것을 보며 잠시 생각해보니 이것은 필시 녹민과 은도가 그들에
게 잡혀 있어서 오협이 조심스러워 감히 냉면인을 해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명백했다. 그러나 만일 이렇게 시간만 보낸다면 '진무칠
절진'이 비록 막강하다 해도, 개인의 공력으로 논한다면 무당제협
은 모두 냉면인보다 한 수 아래니 시간이 길어지면 틀림없이 무사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유년시절에 현명이로의 음독이 무시무시한
'현명신장'을 맞음에 태사조인 장삼풍조차도 이를 제거하지 못했으
며 이 장독(雋?)으로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겪었었
다. 지금 현명이로가 낡은 수법을 다시 사용하니 더없이 분노하게
되었으나, 쥐 잡고자 독까지 깰 수는 없어서 경거망동하지 못했다.
속수무책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산길에 녹삼(?源, ?-?愿)이 언
뜻 보이더니 날씬하고 우아한 자태의 그림자가 질주해 와서는 곧장
관문을 넘어섰다. 바로 조민이 도착한 것이었다.

장무기는 질겁을 했다. 조민이 돌격하기만 하면 홍발노인과 현명
이로에게 부딪힐 것이었다. 조민의 무공으로는 몸을 빼내기가 물론
어렵지 않겠지만, 불행히도 녹민과 은도가 적의 손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면 모녀의 정이 깊으니 틀림없이 당황하여 아무런 대
책이 없을 것이었다. 만일 조민마저 또 홍발노인에게 사로잡히게
된다면, 그 결과는 명약관화했다.

장무기가 사방을 살펴보니 냉면인의 부하는 더 보이지 않았다. 아
마도 그는 지난 번 영웅대회에서 부하 세 명만 데리고 온 듯했다.

장무기는 조민이 곧 삼청전으로 들이닥칠 것을 보고 자세히 생각
할 겨를도 없이 즉시 몸을 튕겨 올려 공중으로 솟구치며 마치 독수
리가 하강 공격을 하듯 곧장 현명이로를 향하여 돌진했다. 현명이
로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장무기는 이미 공력을 십이 할 발휘하여
당장에 현명이로를 죽이려 했다.

현명이로가 줄곧 정신을 집중하여 관전하고 있다가 장무기의 더
없이 사나운 장력이 두 사람의 전신을 덮쳐 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어느 방향으로 피하든 간에 일격을 벗어나기 힘든 상황
이었다. 현명이로는 약속이나 한 듯이 녹민과 은도를 위로 치켜들
어 겨우 사, 오 세밖에 되지 않는 두 아이들로 장무기의 장력을
받아쳤다. 현명이로는 백전노장의 강호의 경험이 더할 나위 없이
많은 도사들로서 암습하는 자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해도
적인지 자신의 편인지는 알아차렸다. 그래서 전광석화같은 순간에
이렇게 음험하고 악랄한 독초를 걷어올린 것이었다.

장무기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력이 막 발출되려는 순간에 만일
억제를 강행한다면 자신은 틀림없이 중상을 입고 쓰러질 것이었다.
이 위기일발의 순간에 쌍장을 돌려서 홍발노인이 서 있는 곳을 공
격했다.

홍발노인은 진작부터 장무기가 현명이로를 덮치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호랑이 굴에서 전에 장무기에게 크게 당한 적이 있었으므로
속으로 몹시 그를 꺼렸다. 장무기의 쌍장이 밀려들어오자 홍발노
인의 신형은 벌써 재빨리 세 장(晙)을 물러섰다. 장무기의 쌍장이
허공을 내지르더니 '펑' 소리와 함께 그의 장력에 의해 지상에 큰
웅덩이가 패이며 흙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장중의 모든 이들이
다들 대경실색하였다.

조민은 쌍검을 뽑아 들고 막 문안으로 달려들 때, 홍발노인이 신
형을 재빨리 물러서 그의 등이 자신을 향하여 막 부딪혀 오는 것
을 보았다. 조민이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쌍검을 들어 재빨리 홍
발노인을 찔러 버렸다. 홍발노인은 막 허둥대며 장무기의 석파천
경같은 일격을 피하느라 놀란 가슴이 채 가라앉지도 않았는데 다시
뒤쪽에서 쌍검이 달려드는 것을 깨닫고는 혼비백산하여 신형을 황
급히 오른쪽으로 피했다.

'쫙'하는 소리와 함께 홍발노인이 왼쪽 어깨에 극심한 통증을 느
꼈을 때는 이미 조민에게 일 검을 맞은 후였다. 홍발노인은 뒤돌아
보지도 못하고 앞으로 몇 장을 내달은 후에야 겨우 몸을 돌려 똑바
로 서서는 암습한 이가 바로 조민임을 똑똑히 보았다.

홍발노인은 경악과 분노가 교차했다. 그의 무공이 조민을 훨씬 앞
서건만 창졸지간에 결국 조민의 득수에 의해 의검에 찔린 것이었
다. 홍발노인은 왼팔의 엄청난 통증으로 전신의 힘을 다 발휘할 수
없음에, 부득이 오른손에 진기를 모두 모아서 왼쪽 가슴의 혈도 몇
곳을 계속해서 눌러 혈류를 막으며 조민을 분노의 눈길로 쳐다보았
다. 그러나 중상을 입어 더이상 나서서 싸울 엄두는 내지 못하였
다.

조민은 현명이로의 수중에 잡혀 있는 것이 놀랍게도 바로 녹민
과 은도임을 발견하고는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못한 채, 아름다운
얼굴이 백짓장처럼 창백해져서는 멍청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장무기는 냉랭하게 현명이로를 쳐다보며 대갈일성했다.

"내려놓아라!"

그 소리가 가옥을 울리자 모두들 머릿속이 갑자기 '윙'하며 하마
터면 쓰러질 뻔했다. 학필옹은 장무기가 마치 천신(?佚)이 분노
하듯이 자신을 부릅뜨고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
라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은도를 내려놓았다.

은도는 놀라고 당황하여 멍청히 학필옹의 앞에 서서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하고 그저 몹시도 가련하게 장무기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무당제협이 장무기 부부가 같이 온 것을 보고는 크게 위로가 되어
검봉을 바싹 죄이니 냉면인은 마침내 험초(??)를 만난 꼴이었다.
이때 송원교는 벌써 검을 왼손으로 옮겨 쥐고 우장을 일 장 일 장
냉면인에게로 천천히 밀어 갔다. 냉면인은 송원교에게 이미 당한적
이 있어서 의외로 그를 상대하지 않으려는 듯 그의 장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그저 피하기만 했다. 기타 제협들은 검을 나란히 하여
재빨리 휘두르며 공을 교대하고 법도 정연하게 일 검 일 검을 맹렬
하게 냉면인의 급소를 향하여 공격해 들어갔다.

냉면인은 아연실색했다. 무당제협 각자의 무공은 자신보다 훨씬
아래로, 이렇게 난공불락의 진법을 쓰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
었던 것이다. 자신이 벌써 몇 시간째 살펴보았지만 결국 아무런 허
점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는 자신이 지나치게 자만했음을 뼈저리
게 후회하였다. 만일 인마를 거느리고 산에 올랐다면 어찌 이런 지
경에까지 이르렀겠는가? 냉면인은 장무기가 대갈일성하자 학필옹이
결국 은도를 내려놓는 것을 보았다. 장무기가 성큼성큼 현명이로에
게로 다가가는 것을 보고 냉면인은 몹시 초조했다. 그러나 지금 무
당오협이 연수하여 펼치는 진무칠절진은 이미 당세 호일류의 고수
십육 명의 공격도 막아낼 수 있었으며, 또한 더욱 두려운 것은 오
협이 모두 공수를 겸비하여 자신이 누구를 공격하든지 간에 나머지
사협이 반드시 자신의 급소를 찌를 것이라는 것이었다. 송원교는
또한 장무기의 방법을 배웠기에, 만일 내력을 강제로 자신의 체내
로 주입시키려 한다면 더욱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십육 명의 고수들이 포위, 공격하는 것과 맞먹는 이 상황에서 냉
면인이 어찌 감히 소리를 내서 학필옹을 멈추게 할 수 있으랴.

이때, 녹장객이 수장을 녹민의 머리 위에 얹으며 말했다.

"장 대협, 걸음을 멈추시오!"

녹장객의 내공수양은 상당히 정심했다. 녹민이 이렇게 어리니, 설
사 무공을 전혀 못하는 일지라도 머리를 손바닥으로 한 대 내려친
다면 또한 죽지 않을 수 없는 데 하물며 녹장객 같은 고수라면 어
찌 되겠는가.

장무긱 이를 두려워하여 걸음을 멈추며 삼엄하게 말했다.

"녹장객, 당신이 만약 그 어린 것을 털끝 하나라도 상하게 했을
때에는, 나 장무기는 당신을 피와 살이 뭉그러지도록 밟아 죽이지
않는 다면 사람이 아님을 맹세하오!"

학필옹도 이때는 이미 정신을 되찾아서 한 손으로 은도를 다시 끌
어당겨 우장으로 은도의 머리를 누르고 있었다. 장무기는 두 눈이
시뻘개져서 현명이로를 노려보았다. 현명이로는 온 정신을 집중하
여 장무기를 쳐다보며 그가 조금이라도 움직이기만 하면, 장력을
내뿜어 이 두 아이들의 머리를 피범벅이 되도록 내리칠 작정이었
다. 조민이 크게 외쳤다.

"얘들아!"

그녀가 쌍검을 휘두르며 막 돌격하려 할 때 장무기가 황급히 그녀
를 껴안았다.

녹민의 맑고 여린 외침 소리가 들려 왔다.

"엄마!"

조민은 마음이 초조하고 미칠 듯하며 머리 속에 온통 '윙'하는 소
리가 가득하더니 이내 혼절하여 장무기의 품안으로 쓰러졌다.

공문대사가 말했다.

"아미타불! 죄업이로다, 죄업이로다. 냉 시주, 금일 시주가 이미
지셨으니 아이들을 놓아주고 스스로 하산하시길 바랍니다!"

냉면인이 어찌 입을 열 수 있으랴?

녹장객이 말했다.

"무당제협, 물러서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노부는 이 아이를 죽일
것이오!"

오협은 이 말에 대경실색하며 삼 검을 질공하고, 곧 일제히 나와
검을 나란히 하여 가슴 앞으로 들어서 냉면인이 불시에 기습 올 것
을 방지했다. 장무기는 조민을 안고 있다가 그녀를 제협의 뒤쪽에
내려놓고는 몸을 돌려 똑바로 서서 냉랭하게 냉면인을 쳐다보며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장무기는 천하에 도대체 이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있음에
화가 솟구쳐 '당신, 당신' 소리만 해대며 그 다음 말을 잇지 못했
다.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는 정말 대단한 군자이나, 노부는 오히려 형편없는 소인
에 불과하오. 이는 장 교주께서 마땅히 일찌기 아셨어야지요"

장무기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장송계가 말했다.

"냉 시주께서는 뛰어나게 총명하시니, 지금 아이들을 놓아주고 하
산하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냉면인이 말했다.

"산은 물론 내려가야겠지만 급할 것은 없지요. 노부가 바라는 것
을 여러 도장과 신승께서 아직 승낙하지 않으셨으니 어찌 중도에
그만둘 수 있겠소이까?"

냉면인이 지금 다시 싸우려 한다면 무당오협이 나설 필요도 없이,
그의 체내에 아직 융합되지 않은 구음, 구양 진기가 격동하여 서로
공격할 것이었다 오협이 물러난 후, 냉면인은 두려움에 떨며 안절
부절 못하고 삽시간에 체내에서 불안하게 동요하는 기운을 억제하
며, 겨우 말을 꺼내고 있었다.

"두 부부께서 과연 천응산을 내려왔군요. 노부가 축하드립니다!"

장무기가 화가 나서 말했다.

"냉면인, 대장부가 하는 일이 당연히 공명정대해야 하거늘, 어찌
이리도 비열한 수단으로 사람을 협박하는가!"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니 차라리 매우 시원하군. 노부가
부끄럽소. 그러나 장 교주께서는 이미 누차 노부가 비열한 짓을 하
는 것을 보셨는데 지금 다시 논함은 무슨 뜻인지요?"

은리정이 대노하여 말했다.

"시주께선 대단히 뻔뻔스러우시군. 만일 우리가 일부러 양보하지
않았다면, 시주는 지금쯤 아마도 시체가 되어 머리와 몸이 따로 뒹
굴 것인데도 또 무슨 '귀순' 같은 얘기를 하는지?"

냉면인이 말했다.

"귀순 여부는 물론 여러분에게 달렸소이다. 그러나 이 두 공주와
공자의 목숨은 이 노부만이 정할 수 있겠지요."

은리정이 크게 호통쳤다.

"이 비열하고 파렴치한!"

냉면인이 말했다.

"노부가 이미 스스로 소인임을 인정했거늘, 은 대협께서 나를 어
찌 할 수 있겠는지요?"

은리정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장무기가 말했다.

"각하께서 온전하게 물러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냉면인이 말했다.

"귀하의 공주와 은 대협의 공자를 동반하고 있으니 노부가 하산하
려 한다면 힘들지 않을 것이오."

은리정이 미친 듯이 화를 내며 말했다.

"냉면인, 네가 설사 나의 아들을 죽이다 해도 이 몸은 결코 너에
게 귀순하여 앞잡이 노릇은 하지 않는다!"

이 말에 장중의 사람들은 모두 소스라치게 놀랐다. 은리정은 젊은
시절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연로하여 아들 은도를 하나 얻은 것이
었다. 은리정이 이제 이미 반백이 넘었으니 다시 아이를 낳으려 한
다면 아마도 천명을 어기기 힘들 것이었다. 모두들 은리정의 말을
듣고는 무당칠협에 대해 더욱 경의를 품게 되었다. 이때 조민은 이
미 송원교에 의해 정신을 되찾고 있었으며 은리정의 말도 듣게 되
었다. 장무기가 고개를 돌려 조민을 보매, 조민이 그의 뜻을 알아
채고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마침내 조금도 연연해하는 기색
이 없었다. 장무기는 눈언저리가 빨개지며 몸을 돌려 냉면인을 마
주 보고 말했다.

"각하, 두 아이들을 죽여주십시오. 그러나 각하께서는 평생 무당
산을 한 걸음이라도 밟을 생각은 하지 마시오!"

이 말을 듣고 모두들 다시 한 번 놀랐다. 공문대사가 말했다.

"아미타불! 오늘로써 마침내 노승은 무당제협에게 심복하고야 말
았소. 냉 시주, 아이들을 놓아주고 하산하시어 인과응보를 면하시
구려!"

냉면인이 말했다.

"다수에 의해 이긴 것을 함부로 협객이라 칭하니 가소롭구나!"

장무기가 말했다.

"각하께서 천응산을 피로 물들인 것은 설마 다수에 의해 취한 승
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냉면인이 말했다.

"노부가 진작에 소인임을 자인했어도 이토록 비열한 짓은 못 하건
만, 설마 그것을 무당대협께서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장무기는 그가 당당하게 이런 파렴치한 미친 소리를 내뱉는 것을
보고는, 그 의도가 무당제협을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것이 명백하매
그들에게 더이상 '진무칠절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서 냉소를
띄우고 말했다.

"각하의 의사는 일대일 대결을 하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냉면인이 말했다.

"맞소. 만일 장중에서 어떤 대협이나 혹은 대사라도 노부를 쓰러
뜨린다면, 노부가 곧 산에서 꺼져 버리고 영원히 다시는 소림사
와 무당산에 와서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리다."

이 말이 나오자 소림, 무당 양파의 고수들은 모두 아연해졌다. 냉
면인의 말은 비록 포악하지만 또한 매우 일리가 있었다. 자신들이
다수에 의해 승리를 취한다면, 시로 '합의' 두 글자에 위배되는 것
이었다. 그러나 만일 일대일로 대결한다면 장중의 사람들이 모두
냉면인의 손 아래 패장이 될 것이매, 설사 장무기라 해도 역시 양
패구상할 것이며, 이 또한 냉면인이 무방비한 틈을 노려야만 가능
했다.

잠시 생각해 보고는 송원교가 말했다.

"시주께서 꼭 일대일로 싸우길 원하시니 빈도가 먼저 가르침을 청
합니다."

냉면인은 방금 격투를 한판하고 난 후여서 호흡이 불순하였는데
이는 바로 지난 번 장무기와 대장할 때 입은 중상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즉시 말하였다.

"송 도장께서 차륜전을 사용하여 노부의 기운을 소모시키려 했으
나, 아직도 효과를 못 보셨소이다."

장무기가 말했다.

"각하의 신공이 세상을 덮으니, 소생이 각하께 초식을 가르침 받
고자 해도 이미 이기고 지는 것이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만
일 각하께서 양보해 주신다면 소생이 일 초 반 식에 이길 것이니
이렇게 되면 어찌하시렵니까?"

냉면인이 말했다.

"물론 영원히 소림, 무당을 찾아와 소란을 피우지 않을 것이오!"

조민인 말했다.

"애들은 어쩔 거지요?"

냉면인이 말했다.

"물론 남겨두지! 그러나 장 교주가 진다면 어찌하시겠소?"

장무기가 담담하게 말했다.

"소생이 진다면 당연히 명령을 받아도 좋소. 그러나 각하께선 반
드시 두 아이들을 남기셔야 하오."

냉면인이 말했다.

"장 대협과 강호에서 손을 맞잡고 행동을 같이하게 됨이 실로 이
노부의 평생 소원이오. 아이들은 당신의 말대로 남겨 두도록 하지
요. 그러나 한 가지, 만일 장 교주가 진다면 절대로 자진해서는 안
되오. 그렇지 않다면 노부가 한바탕 헛꿈을 꾼 것이 되지 않겠소이
까?"

장무기가 말했다.

"소생이 어찌 그렇게 하리오. 다만 한 가지 명백히 밝혀야 할 것
이 있으니, 소생의 패배는 단지 소생 한 사람에게만 귀결되어야 하
오. 나는 당신을 따라가 버리면 그만이나 소림, 무당의 여러 고승
과 도장들은 각하께서 절대로 영원히 괴롭혀서는 안 되오!"

냉면인이 말했다.

"이는 당신의 의견에 따르겠소!"

장무기가 말했다.

"각하께서 방금 호흡이 흩어졌으니 역시 잠시 운기조식함이 좋겠
소이다!"

냉면인은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여 말했다.

"장 교주의 안식이 대단하시군!"

말을 마치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운기조식했다. 결국
이 군웅들의 무서운 눈초리 앞에서 이토록 체면 깎이는 일을 함에
도 다른 이의 암습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함과 뻔뻔스러움에 소림
고승과 무당제협들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들 오늘의 일은 장무기가 부질없이 냉면인에게 너무 양보했으
며 또한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추절 달밤에 이들
모두 장무기와 냉면인이 양패구상이 될 정도로 겨루는 것을 직접목
격했던 것이었다. 지금 장무기가 만일 냉면인의 호흡이 불순한틈을
타서 그와 대적한다면 승리를 거두게 됨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모든 이들이 장무기를 대신하여 자신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었다.

냉면인이 이렇게 함은 사실 부득이한 것이었다. 그의 중상은 아직
완쾌되지 않았고, 또 방금 전에 '진무칠절진'과 상대함으로 인해
내력을 크게 소모하였다. 게다가 장무기의 일 장이 지면에 큰 웅덩
이를 만들어 낼 정도로 공력이 크게 진보했음을 보게 되었으니, 아
무리 그가 군웅들을 무시하더라도 지금은 더이상 감히 자만심으로
일을 저지를 수 없었다. 그렇지 않고 만일 장무기의 내력이 다시
그의 노궁혈로 침투하는 것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이번에는 결코
완치하기 힘들 것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대 군중(暗潚窓) 앞
에서 이렇게 별로 고상하지 못한 행동을 한 것이었다.

냉면인은 진작에 장무기가 암습할 리가 없으며, 다른 이들도 모두
득도한 방처지사(瘟?柵?)로서 물론 그런 소인배같은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냉면인은 속으로 이들의 어리숙함을
비웃었다. 그는 곧 정신을 집중하여 내력을 이동시켰다. 내력이 체
내에서 급속히 몇 바퀴 유동하자 즉시 눈을 뜨고 일어나며 말했다.

"장 교주께서 결코 노부의 불리한 상황을 틈타길 원치 않으니 노
부 또한 거짓군자가 되겠소이다. 솔직히 말해서 장 교주가 만일 노
부의 노궁혈을 진공할 생각이 있다면, 이는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
오. 장 교주 역시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낫겠소. 노부가 물론 삼
가 기다리지요."

장무기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각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만 소생은 한 시라도 빨리 영주의 휘
하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자, 시작하지요!"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께서 혹시 믿는 구석이 있어 두려움을 모르시는 것이 아
닌지요? 아니면 수장(?雋)에 또 무슨 이상한 것이라도 준비하셨는
지?"

장무기가 담담하게 웃으며 더이상 아무 말도 부연하지 않고, 오른
쪽 발을 한 걸음 크게 디디며 쌍장을 가슴 앞에 허응하여 천천히
앞으로 밀어냈다. 장무기의 쌍장에 결코 어떤 특이한 점이 없음을
모두들 똑똑히 보았다. 장무기의 첫 동작은 바로 무당 장권(雋瞬)
중의 '우궁전보' 일 초로서 초식이 평범하고 특이함이 없음에 다들
크게 의아해 했다.

냉면인은 장무기가 첫 동작에 바로 내력을 겨루고자 함을 보고,
가슴 속에 일시에 의혹이 솟아나 자신은 도리어 일 보 후퇴하며 쌍
장으로 가슴과 배를 보호하며 정세의 변화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장무기는 그가 응해오지 않는 것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왼쪽 발
을 내디디어 '우궁전보' 초식을 '좌궁전보'로 바꾸었고 쌍장은 여
전히 천천히 밀어냈다.

'좌우궁전보'는 천하 무학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초급 인문의 공부
(殺?)이나, 장무기가 이렇게 구사하자 장삼이 추호도 움직임이 없
었고 가슴을 모으고 등을 삐죽이 올린 것이 확실히 산같이 육중했
으며 그 기개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냉면인은 수차례 장무기와 겨루면서 항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고
그때마다 장무기를 몹시 낭패시켜 놀라 허둥대며 어쩔 줄 모르게
만들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지금 장무기가 오히려 자신에게 내력
을 겨루도록 강요하니 승부는 당장에 결판날 것이었다. 냉면인은
장무기의 구양내공의 수련이 자신보다 위이지만, 자신도 아직 구음
내공의 도움이 있어 장무기가 만일 정말로 공력을 한다면 사실 자
신에게 미치지 못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장무기의 초식이 더
욱더 평범해짐이 냉면인의 의구심과 불안도 더욱 증가되었다.

득도 고인(俗?)이 무학의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초식이 있으나
없으나 모두 한결같았다. 그것은 내공이 최상의 경지에 이르면, 설
령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일 초도 그 위력은 실로 대단한 까닭이
었다.

냉면인은 물론 이를 잘 깨닫고 있어서, 줄곧 양보하며 시종일관
감히 접장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장중을 한
바퀴 돌았다. 장무기가 계속 궁전보 일 초를 유지하자 냉면인 역시
쌍장으로 가슴과 배를 보호하며 장무기의 진공에 따라 보법을 신중
하게 하여 후퇴를 해 나갈 뿐이었다.

옆에서 보고 있는 이들은 모두 무학의 고수들로, 고수끼리 겨룰
때 항시 일 초로써 승부가 판정나기 때문에 아예 시작하지 않으면
모르나 일단 시작했다 하면 당장 승부생사가 판가름 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모두들 함성을 질러대어 기세를 돋굴 겨를도 없
이, 오히려 어리둥절하여 영문을 몰라 하며 실로 장무기의 초식 중
에 도대체 어떤 괴이함이 있길래 무공이 한 수 위인 냉면인이 저토
록 조심하고 신중한지 궁금해 했다. 다들 숨도 크게 내쉬지 못한
채, 눈을 줄곧 동작이 완만한 두 사람을 주시하고 십분 긴장하여
표정들이 모두 숙연한 것이 마치 석상과도 같았다.

이들 중 조민이 가장 여유만만한 셈이었다. 그녀는 냉면인이 줄곧
후퇴만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냉면인, 당신은 천하 제일의 무공을 자부하더니 지금은 어째서
그렇게 주저하며 벌벌 떠는지 꼭 고드름 덩어리 같소이다."

조민은 이 말을 하면서도 녹민과 은도 두 아이들에게 해가 될까
걱정스러울 뿐이었다. 장무기와 냉면인은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어
서, 정신이 빠져나간 듯하며 밖의 일에 대해서는 이미 지각을 상실
하고 있었다. 소림사 여러 고승들은 고목처럼 좌선한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무당제협은 장무기와 정으로 맺어졌기에 다들 정신
을 바싹 차리고 경계하며, 장무기가 조금이라도 지는 듯하면 당장
에 달려나가 '진무칠절진'으로 냉면인을 상대하여 장무기를 구할
생각이었다. 따라서 모두들 오관의 작용을 잃은 듯 이미 물아양망
(??自?)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냉면인은 오랫동안 정세를 살폈지만 사실 어떠한 괴상함도 발견하
지 못했다. 지난 번 장무기에게 양패구상을 당한 까닭에, 오히려
자신도 예상치 못했던 장무기의 내력이 자신의 노궁혈로 투입되어
자신의 체내에서 건곤대나이심법을 사용하게 된 연고를 상기했다.
지금 냉면인은 노궁혈을 봉쇄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수장 상의
모든 혈도를 막아버렸으매, 장무기가 더이상 들어올 틈이 없어진
것이었다. 모든 생각이 정리되자 냉면인은 비로소 기마자세로 쭈그
리고 앉아 공력을 십 할 다 운력시켜 쌍장을 가슴으로부터 천천히
밀어내어 곧장 장무기의 쌍장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모두들 이 일격이 틀림없이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엎을 정도
이리라 여겼으나 뜻밖에도 아무런 소리도 내색도 없었다.

손바닥이 막 서로 접하는 순간, 냉면인의 온몸이 진동하더니 삼보
후퇴하며 신체가 약간 흔들리고는 곧 똑바로 섰다.

장무기는 오히려 한 걸음만 후퇴했을 뿐이었다. 곧 왼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쌍장을 다시 냉면인에게로 내밀었다. 냉면인 역시 첨예하
게 대립하며 쌍장을 사납게 내쳤다. '쿵'하고 큰소리가 나며 장무
기가 비틀비틀 다섯 걸음 후퇴하다 가까스로 섰다. 냉면인 또한 급
히 세 걸음 후퇴하며 거의 뒤로 넘어지려 하매 부득불 한 번 땅으
로 굴렀다. 그러나 장무기의 더없이 위맹한 장력이 아직 사라지지
않음에 냉면인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네 걸음 물러나서야 겨우 바로
설 수 있었다.

장무기가 포권하며 말했다.

"물러나시지요!"

냉면인이 장무기를 곁눈질 했다. 모두들 그의 진면목을 보지 못했
지만 이미 냉면인이 진 것은 확실하여 가슴 속이 순간 느긋해졌다.

한참 후에야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 노부에게 명백히 설명해 줄 수 있는지?"

장무기가 말했다.

"소생은 감히 속이지 않겠소. 중추절 영웅대회에서 소생은 제 처
와 양 여협에게서 음덕을 입었었지요. 또한 천응산에서 두 달 동안
한거하며 소생이 어찌 공부를 등한시 했겠소이까? 그로 인해 내력
에 조금 진전이 있은 것이지요."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께서 바로 학구적 천인임에도 노부가 오히려 경시했었군
요."

장무기가 말했다.

"'학구적인 천인'이란 말씀은 소생에게 가당치도 않습니다. 이는
실로 하늘께서 돌보신 것이며 소자는 무학의 한 작은 경지만을 깨
달았을 뿐입니다."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께서 어떤 무공의 경지를 얻으셨는지 말해 줄 수 있겠는
지요?"

장무기가 말했다.

"소자가 이 정도로 말을 마침을 용서하십시오. 각하는 예지가 비
범하신 데 소생이 어찌 그런 대모험을 감행하겠소이까?"

냉면인이 말했다.

"이렇게 된 바에야 노부는 그저 수년 동안 좌관(且?)한 후에 다
시 장교주의 가르침을 청하러 오겠소이다."

장무기가 말했다.

"각하께서 만일 기꺼이 수년을 전심하신다면, 반드시 신공이 대성
할 것이외다. 그때는 각하께서 손끝에 사정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장무기의 이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으며, 몇 년이 지나기만 하
면 냉면인의 구음진경과 구양진경의 두 가지 경세 내공이 반드시
한가지로 혼합될 수 있을 것이었다. 또한 자신은 비록 열심히 구양
내공을 연마한다 해도 구음진경의 내공심법을 깨닫지 못했으니 물
론 구음내공을 증가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 냉면인이 다시 출현한
다면 자신은 틀림없이 대적할 수 없으리라.

냉면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노부는 작별을 고하겠소."

말을 마치고 홍발노인과 현명이로에게 말했다.

"가자!"

그러자 현명이로가 두 아이를 데리고 하산하려 했다. 장무기가 번
뜩하더니 이내 입구를 막아서며 말했다.

"각하께서는 약속을 준수하시어 아이들을 남겨 두시기 바랍니다."

냉면인이 말했다.

"노부가 장 교주의 적수가 못되니 어찌 아이들을 넘겨줄 수 있겠
소?"

장무기가 말했다.

"소생이 비록 재능은 적지만 대장부 일언이 중천금임을 잘 압니
다. 각하께서 아이들을 남기시기만 한다면 물론 당연히 각하가 하
산하도록 공손히 배웅해 드리죠."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 노부가 일찌기 내 자신이 진짜 소인밖에 안 됨을 자인
했었소. 그러나 두 아이들은 노부가 돌보는 것이 물론 타당 하외
다. 노부가 이렇게 함은 실로 어쩔 수 없음이오. 이 몇 년간은 틀
림없이 무학에 전심할 수 없을 것이오.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노
부가 아무래도 승산이 좀 많을 것이오."

장무기가 엄하게 말했다.

"냉면인, 만일 아이들을 남기기 않는다면 당신들은 하산할 생각은
하지 마시오!"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와 영부인께서는 한창 왕성한 때이니 반드시 자손이 번창
할 것이나 은리정 은육협은 이미 반백이 넘었으니 아이를 얻기도
힘들겠지요. 장 교주께서 결국 이렇게 모질게 마음을 쓰겠는지요?"

장무기는 순간 멍해졌다. 은리정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무기야, 대의가 중요하니 사사로운 정은 무시해라. 빨리 손을 써
라."

장무기는 은 육숙이 비록 대국을 고려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이 말
속에는 사랑하는 아들인 은도에 대한 끊기 어려운 정이 담겨 있음
을 느낄 수 있었다. 삽시간에 지나간 일들이 일 막 일 막 스치고
지나갔다.

은 대협의 청년 시절, 그는 아미파의 기효부 여협과 사랑하였으며
무당과 아미파에서도 이 일에 대해 모두 매우 즐거워했었다. 세상
일은 예측하기 어려우매 뜻밖에도 기효부가 서역에서 한 극악무도
한 무리를 추살할 때 당시 명교의 광명좌사인 양소와 우연히 만나
게 되었다. 양소는 그녀를 한 번 보고는 마음이 기울어 곧 그녀를
좇았다. 기효부도 원한이 사랑으로 바뀌며 양소와 정을 나누게 되
고 딸을 낳으매 그 이름을 양불회라 했었다.

양소의 무공, 인품이 모두 뛰어난데다가, 설사 기효부가 양소에게
강요를 당했다고 하더라도 딸의 이름을 양불회라 한 것을 보면 결
코 이 일에 대해 후회의 뜻이 없음이었다. 그러나 양소가 아미파의
대원수임에 양소와 기효부의 일을 아미파 장문인인 멸절사태가 알
게되어 분노하여 마침내 기효부를 일 장에 쳐서 죽게 했다. 그 딸
양불회는 장무기에 의해 양소의 거처로 오게 되었다.

육대협이 광명정을 토벌할 때 은리정이 서역 금강문의 무공에 부
상을 당하자 양불회가 세심히 그를 보살폈었다. 은리정은 비록 무
공이 고강하긴 해도 성정이 매우 온화하고 부드러워서 기효부에 대
해 줄곧 연연해하며 잊지 못하고 있었다. 양불회의 모습이 또한 그
어머니인 기효부와 매우 흡사하매 두 사람은 결국 한 쌍의 부부가
되었다. 양소는 이 일에 어쩔 도리가 없었으며 이렇게 해서라도 다
소라도 자신의 젊은 시절의 은리정에 대한 잘못을 메울 수 있으리
라 생각했다.

이런 지나간 일들을 장무기는 전부 잘 알고 이었기에 바로 지금
이렇게 우물쭈물하며 결정하기가 몹시도 힘든 것이었다. 고개를 들
어 무당제협과 소림제승을 바라보더니 모두들 고개를 숙인 채 온통
참담함 표정들이었다.

냉면인이 말했다.

"은 공자는 총명하고 영리하니 노부가 물론 유사(??)를 청하여
그에게 식자를 가르치도록 하겠소. 수년 후에 틀림없이 삼가 돌려
드리리다."

장무기가 어찌 냉면인의 이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만일
지금 손을 쓴다면 은도와 녹민은 당장에 목숨을 잃을 게 뻔하여 장
무기는 자신도 모르게 입구에 멍하니 선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 노부는 가겠소. 이후에 또 만납시다!"

말을 마치고 장무기의 옆으로 태연하게 지나갔다. 이어서 현명이
로가 녹민과 은도를 데리고 지나갔다. 홍발노인이 후방을 엄호하며
마지막으로 문을 나섰다. 일행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무당산을 내려
갔다.

공문대사가 말했다.

"아미타불, 선에는 좋은 결과가 있고 약에는 반드시 나쁜 결과가
있으리다. 일체가 모두 운명에 달렸소이다. 아마도 냉면인의 운명
이 아직 다하지 않은 듯하니 장 대협과 여러 도장께서 슬픔을 자제
하심이 상책인 듯합니다."

바로 이때, 산중에 갑자기 녹민과 은도의 울음 소리가 전해왔다.
조민은 가슴이 칼로 에이는 듯하여 풀썩 땅으로 쓰러지며 정신을잃
었다.

장무기와 은리정이 재빨리 도관을 뛰쳐나가더니 산 아래쪽으로 질
주했다. 냉면인 등은 이미 산기슭까지 내려가 있었다. 은리정은 비
틀거리며 두 눈엔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렸다. 장무기가 말했다.

"육 사숙, 관중으로 돌아가셔서 숙모님을 돌보는 것이 더 중요합
니다. 냉면인 등은 소질이 추격하겠습니다."

은리정이 이 말에 걸음을 멈추며 목이 메어 말했다.

"무기야, 더욱 조심하거라!"

장무기가 말했다.

"소질, 명심하겠습니다. 사숙께서는 돌아가십시오!"

은리정은 양불회가 마음에 걸려 할 수 없이 눈물을 뿌리며 돌아서
서 비틀비틀 무당 관중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장무기
는 마음이 쓰리듯 아프고 눈이 시리더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온
얼굴을 적셨다. 그는 급히 몸을 돌려 냉면인을 추격했다. 이미 마
음 속으로 결심을 굳혔으니 설사 녹민을 못 구하여 목숨을 잃게 될
지언정 은도만은 반드시 구해오리라.(하고 생각하였다.)

오래지 않아 냉면인 등을 따라잡았다. 녹민과 은도가 계속 울어대
매 장무기는 심기가 혼란스러워져서 곧 앞질러 갔다. 냉면인이 유
유히 말했다.

"장 교주께서는 무모한 행동을 할 필요가 없소이다. 그렇지 않으
면 종신토록 유감스러울 것이오!"

장무기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목숨을 걸고 싸울 생각을 단념했다.
냉면인이 다시 말했다.

"장 교주의 자식에 대한 정이 노부를 매우 감동케 하는군. 돌아가
시오. 노부가 비록 평생토록 한 일이 모두 몰염치했지만, 이 두 아
이는 노부와 결코 깊은 원한이 없으니 틀림없이 잘 돌볼 것이오."

장무기는 그의 말이 진실 됨에 마음이 다소 위로되었다. 그러나
두 아이들이 여전히 울고 있으니 장무기가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
는가. 그는 어쩔 줄을 몰라 쩔쩔매며 그들 뒤에 서서 오도가도 못
하고 있었다.

냉면인은 장탄식하며 더이상 아무 말 없이 장무기가 그들 뒤에 따
라오도록 내버려두었다. 일행은 이렇게 북쪽으로 향해 갔다.

장무기는 두 아이의 우는 소리가 점점 약해지는 것을 듣고 말했
다.

"냉면인, 당신이 이리도 거친 길만을 골라 가는데, 두 아이들 모
두 이미 배가 고플 테니 무엇으로 그들을 먹이려는 것이오?"

냉면인이 말했다.

"노부가 장 교주에게 정신이 없도록 당하여 잠시 잊었소이다. 이
렇게 합시다. 우리가 큰길로 가면 연도에서 두 아이를 잘 보살필
수 있을 것이오."

그는 말을 끝내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방향을 확인한 후에
동북쪽으로 질주했다. 잠시 후, 곧 관도로 들어섰다. 다시 한 시간
을 가서 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냉면인 등은 한 주점으로 들어
갔고 장무기도 그들을 따라 들어가 다른 탁자에 앉았다. 심부름꾼
이 와서 인사를 하자, 장무기가 손을 흔들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
음을 표시했다. 심부름꾼은 그가 허리에 도룡도를 차고 있음을 보
고는 감히 뭐라 하지도 못하고 그저 투덜거리며 돌아갔다.

장무기가 멍청히 녹민과 은도 두 아이들을 보니 그 둘은 한창 개
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녹민이 갑자기 말했다.

"아버지, 왜 안 드세요?"

장무기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귀염둥이, 너나 먹거라. 아버지는 배고프지 않단다."

녹민이 돌연 녹장객을 마주보고는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 내 손을 잡고서 뭘 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빨리 놓으세
요!"

표정도 마치 어른 같았다. 녹장객이 순간 어리둥절해 하며 고개를
돌려 냉면인을 쳐다보았다. 냉면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녹장객이 이
내 손을 풀었다. 녹민이 '흥'하며 두 손을 탁자에 버티고선 물었
다.

"당신이 냉면인 맞나요?"

냉면인이 말했다.

"맞습니다. 공주께서 무슨 일이 있으신지요?"

녹민이 정색을 하고는 말했다.

"나는 공주가 아니며, 내 성은 장이고 이름은 녹민이에요. 당신이
이 사람에게 내 삼촌의 손을 놓도록 하세요!"

은리정이 장무기의 사숙이니 촌수를 따지자면 은도는 바로 녹민의
삼촌이었다. 냉면인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여 학필옹에게 은
도를 놓아주도록 표시했다.

무당 문중은 송원교의 애자(?侏)인 송청서가 비적을 잘못 사귀어
지위도 명예도 모두 잃게 된 종말을 맺음으로 인하여, 은리정은 그
러한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은도에 대해 평상시에 매우 엄하게 가
르쳐서 은도를 보아하니 무학 고인의 후예같은 기개가 전혀 없었고
오히려 학자 집안에서 출생한 온화하고 예의바른 공자와 매우 흡사
했다.

녹민이 은도보다 한 살 적었지만 어려서부터 부모의 총애를 받아
서 지금 비록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어도 여전히 기세가 등등한 것
이, 은도의 어쩔 줄 몰라 허둥대는 태도보다 오히려 더욱 완고했으
며 모친인 조민과 실로 이곡동공의 묘가 있었다.

장무기는 딸이 이토록 대담함을 보고 번민스러웠던 심정이 다소
밝아졌다. 갑자기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귀엽고 영리한 딸을 얻었구려."

장무기가 씁쓸히 말했다.

"소생의 딸자식을 가르침이 엄격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귀여워하여
결국 각하께 웃음거리가 되었군요."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께서도 배가 고프실 테니 좀 드셔야지요. 걱정 때문에 몸
을 버려서는 안 되지요."

장무기는 이때 심정이 다소 좋아져서 이 말을 들음에 뱃속이 꼬르
륵거리는 것을 느꼈다. 곧 심부름꾼에게 음식을 가져오도록 하여
혼자 먹기 시작했다. 다 먹은 후에 장무기가 말했다.

"냉면인, 당신들은 다들 무예를 익히는 사람들이니 어찌 어린아이
를 잘 돌볼 수 있겠소. 소생의 보잘 것 없는 낯을 보시어 아이들에
게 보모를 구해 주시고, 또 마차를 한 대를 빌리시고, 몇 가지 옷
을 더 구입하심이 어떨런지요?"

냉면인이 말했다.

"노부가 어찌 명령에 따르지 않겠습니까. 홍발노인, 번거롭겠지만
장 교주의 분부대로 속히 이 일을 처리하도록 하시오."

홍발노인이 공손히 명령을 받고 나갔다. 장무기가 말했다.

"각하, 감사드립니다!"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 왜 그리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시오. 감사하다는 말은
이 노부가 실로 부끄러워 받을 수 없소이다."

장무기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로 이때 녹민이 돌연 몸을 돌려 장무기에게로 달려왔다. 녹장객
이 질겁을 하며 사납게 녹민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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