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외전 6

3학년2반 | 2022.02.28 07:40:34 댓글: 0 조회: 497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1681
제 15장 : 하늘을 뒤덮는 검은 구름
장무기가 이를 보고 대경실색하여 황급히 몸을 솟구치며 우장에
칠 할의 공력을 모아 녹장객에게로 날리며 왼손을 내밀어 녹민을
품에 안았다. 녹장객은 일 장을 맞고는 공중회전을 하더니 벽에 부
딪히며 땅으로 고꾸라졌다.

장무기는 몸을 멈출 겨를도 없이 이미 학필옹의 곁으로 신형을 날
려서 오른손으로 재빨리 은도를 움켜잡았다. 그러나 냉면인의 우장
이 이미 은도의 머리에 올려진 것을 보고는 크게 놀라며 부득불 손
을 멈추었다.

학필옹이 장을 날려 장무기 옆구리에 있는 녹민에게로 공격해 오
매, 장무기가 대노하여 신형을 좌측으로 하고 오른쪽 다리를 날려
학필옹을 지붕으로 차 버렸다. '쿵'하고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학
필옹이 견고한 지붕에 퉁겨 굴러 떨어졌다. 그 떨어지는 힘에 '우
지직'하며 나무 탁자가 부서지고 학필옹은 그 위에 가로누운 채 꼼
짝하지 못하는 것이 중상을 입은 듯했다.

냉면인이 우장으로 은도의 머리를 누르며 침착하게 말했다.
"장 교주, 이미 딸을 빼앗아 갔으니 그만 물러서시길 바라오!"
장무기가 부득불 원래의 자리로 물러 와 앉았다. 녹민이 은도를
바라보며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멍청한 삼촌, 왜 도망 오지도 못해요?"
은도는 장무기가 현명이로를 게속해서 부상입히는 것을 보고는 벌
써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놀라 있었다. 이 말을 듣고 우물쭈물하
며 말했다.
"질녀, 삼촌은...... 못......하겠어요."
장무기가 말했다.
"각하, 소생이 당신과 교환할 수 있겠는지요?"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의 협인지심(??柵入)에 노부는 정말로 탄복했소. 딸은
당신이 데려가시오. 은 공자는 이 노부가 대신 돌보아 주리다."
장무기의 마음을 냉면인이 어찌 모르겠는가. 장무기는 은도를 구
해내기만 한다면 당장에 사랑하는 딸 녹민의 생명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에게 곧 살수를 뻗쳐 올 것이었다. 때문에 냉면인은 차라리 장
무기가 녹민을 빼앗아 가게 할지언정 은도는 절대 빼앗길 수 없었
다.

장무기가 냉면인으로 하여금 무당산을 내려가도록 한 까닭은 모두
은도의 작은 생명을 위해서였다. 지금 이미 녹민은 찾았지만 마음
은 결코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한참 심사숙고하며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홍발노인이 한 중년
부인을 끼고 주점을 들어서다 그 상황을 보고 크게 놀랐다.

냉면인이 말했다.

"홍발노인, 현명이로의 상처가 어떠한지 보아라."

홍발노인은 옆구리에 꼈던 부인을 내려놓고 현명이로에게로 다가
갔다. 이 중년 부인은 아혈과 다른 혈도들을 찍혔으며 온통 놀라고
당황한 기색이었다. 장무기가 차마 볼 수 없어서 앞으로 걸어나가
우장의 중지를 공중으로 솟구치며 부인의 막힌 혈도를 풀어 주었
다.

중년부인이 풀썩하며 장무기 앞에 꿇어앉아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
다.

"나으리, 살려주십시오. 나으리,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장무기는 우장에 장력을 내보내어 부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주머니, 놀랄 것 없습니다. 저는 그저 아주머님께서 이 두 아
이들을 보살펴 주길 바랄 뿐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부인이 어찌 이 믿을 수 있겠는가? 장무기는 반드시 홍
발노인이 무슨 독랄한 수를 써서 다짜고짜로 마구 잡아오는 것으로
임무를 마쳤으리라 생각했다. 곧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아주머니, 댁은 어디신지요? 다른 가족들은 있으신지요?"

부인은 장무기의 웃음어린 얼굴을 보고는 다소 정신을 차렸으나
여전히 떨면서 말했다.

"대답하겠습니다. 이 몸은 아무 친척도 없고 읍내 왕 노인 집에서
일을 해주고 있습니다요."

장무기가 말했다.

"이 아이는 저의 여식이며 저 남자 아이는 제 막내 동생입니다.
우리들이 갈 길이 급하니 두 아이를 돌보아 줄 이가 없어 이렇게
번거롭게 아주머니의 도움을 청합니다. 좀전에 저 형께서 너무 실
례를 많이 했으매 제가 아주머니께 대신 용서를 빕니다."

부인은 말을 들으니 자신을 보모로 삼으려 청했음에 마음이 안정
되었다. 그러나 이 일은 너무도 뜻밖에 당한 일이고 장무기를 제외
하곤 다들 흉악한 귀신처럼 그 모습이 괴이하니, 어찌 감히 입을
열어 대답할 수 있겠는가?

장무기가 부인을 보매 그녀는 비록 일꾼의 모습이었지만, 낡은 무
명옷이라도 깨끗해 보였으며 표정에는 성실함이 매우 역력했다. 이
여인에게 아이들을 돌보아 주도록 한다면 자신도 조금은 안심할 수
있으리라 여기며 말했다.

"냉면인, 당신이 지닌 황금백물(??王?)이 적지 않을 터인즉,
소생에게 좀 빌려주심이 어떠한지요?"

냉면인이 말했다.

"물론 기꺼이 드리겠소."

말을 마치고 품속에서 이십 냥쯤 되는 황금 두 덩어리를 꺼내어
장무기에게 던져 주었다. 장무기가 이를 받고서 돌연 부인 앞에 무
릎을 꿇고 말했다.

"아주머니, 저의 조그마한 성의입니다. 결코 경의를 다 표시할 순
없으나, 두 아이들을 먹이는 데 써 주시길 바랍니다. 일이 끝난 후
에 아주머니께서 무당산으로 직접 가셔서 이 얘기를 꺼내기만 하시
면, 우리 무당이 틀림없이 그 대은대덕에 깊이 감사하며 종신토록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 여자는 단지 평범한 백성에 불과하기에, 장무기의 이러한 모습
을 보고 너무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허둥대기만 할 뿐 어떻게 대답
해야 할지 망설였다. 장무기는 부득불 이 일의 전후 사정을 얘기했
다. 그 부인은 마음이 누그러지며 장무기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
고 또 녹민과 은도의 총명하고 귀여운 모습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
게 동정심이 절로 솟아나 당장 말했다.

"나리마님, 일어나세요. 이 몸이 응당 두 아이를 잘 보살피겠습니
다. 단지 제가 굼떠서 공자님과 아가씨를 잘 모실 수 있을지 두렵
습니다."

장무기가 몹시 기뻐하며 '쾅쾅쾅'하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세 번
씩이나 큰절을 했다. 부인이 막을 겨를도 없이 장무기가 장신을 일
으키며 말했다.

"아주머니의 은덕은 장무기가 후일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부인이 말했다.

"제가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장무기가 황금 두 덩어리를 그녀의 수중에 밀어 넣고는 돌아서서
냉면인에게 말했다.

"소인이 알기로는 각하께서는 사람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기시
지요. 그러나 이 아주머니는 소생에게 대은대덕이 있으니, 각하께
서 두 아이를 어떻게 다루시든 상관없소이(다)만, 이 아주머니께는
잘 대해 주시길 장무기가 감히 부탁합니다. 각하의 뜻이 어떠할지
모르겠군요."

냉면인이 말했다.

"모든 것을 장 대협의 분부에 따르겠소. 장 교주께서 말씀하신 두
아이는 혹시......."

장무기가 몸을 굽혀 녹민에게 말했다.

"귀염둥이, 아버지 말을 듣거라......"

녹민이 입을 삐쭉 내밀고 말했다.

"아버지께서 제 말씀을 안 들으니 저도 아버지 말씀을 안 듣겠어
요!"

장무기가 멍해져서 억지로 웃고는 말했다.

"아버지가 뭘 너의 말을 안 들었다는 거냐?"

녹민이 말했다.

"제가 전부터 저를 '귀염둥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말했잖아요. 아
버지는 왜 또 그렇게 부르시는 거예요?"

장무기는 가슴이 저리어 실소하며 말했다.

"좋다, 좋아. 아버지가 잘못했다. 장녹민, 아버지의 부탁 한 가지
를 들어줄 수 있겠니?"

녹민이 말했다.

"무슨 부탁이요?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장무기가 대답하기 전에 중년부인이 저절로 실소하매, 장무기는
너무 부끄럽고 당황스러웠지만 부득불 말했다.

"첫째, 지금부터는 반드시 이 아주머니의 말씀에 따라야 한다."

녹민이 큰 눈을 몇 번 깜박거리더니 말했다.

"둘째는요?"

장무기가 말했다.

"장녹민이 은도 삼촌을 모셔 줘라. 아버지가 후일 너희들을 맞으
러 갈 것이다. 좋겠지?"

녹민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왜 지금 저와 삼촌을 데려가지 않지요?"

장무기가 멍청해지며 할 수 없이 말했다.

"아버지는 지금 너희 둘을 구할 수 없단다."

녹민이 말했다.

"좋아요. 제가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 드리지요."

말을 하고는 은도에게로 가서 그의 곁에 앉아서 말했다.

"은 삼촌, 우리 아버지가 지금 우리 둘을 구할 수 없으니, 내가
삼촌과 같이 있겠어요. 많이 먹었어요?"

은도가 말했다.

"많이 먹었어."

녹민인 냉면인을 위협하듯 말했다.

"당신 손을 치우세요!"

냉면인이 그 말에 손을 옮기며 장무기에게 말했다.

"과연 문을 나서면 호녀(暴?)가 된다 하더니 그 말이 틀림없구
려."

장무기는 마음이 비통하여 이 말에 대답했다.

"딸자식이 예의를 모르니 각하께서는 너무 책망하지 마십시오."

냉면인이 말했다.

"노부가 어찌 어린 아이들과 식견이 같겠소? 장 교주께선 안심하
십시오."

이때 현명이로가 홍발노인에 의해 치료를 받고 깨어났다. 냉면인
이 그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가자!"

일행이 주점을 나서자, 부인이 녹민과 은도를 데리고 마차에 올랐
다. 냉면인이 머리를 흔들자 홍발노인 역시 마차로 올라탔다. 학필
옹이 마차를 몰고 냉면인과 녹장객이 전후하여 마차를 옹호하였다.
그들은 큰소리로 말을 몰아 북쪽을 향해 내달았다.

장무기는 탈 말도 없이 엉거주춤 그들 뒤를 따라갔다. 다행히 마
차의 속도가 빠르지 않아 비교적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

장무기는 두 아이를 구할 희망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줄곧 쫓아갔다. 냉면인 역시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식사를 하고
객점에 묵을 때도 다들 장무기를 못 본 듯 대했으며 장무기 또한아
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눈에 띄게 검게 야위어 갔으며
날이 갈수록 점점 초췌해졌다.

이렇게 한 달을 넘게 가서 진북(?溶), 안문관에 닿았다. 이날 점
심때쯤 일행이 한창 길을 재촉해 가고 있을 때, 냉면인이 갑자기
고삐를 당겨 말을 멈추었다. 잠시 후, 장무기가 빠른 걸음으로 서
둘러 다가왔다. 두 사람이 한참을 서로 마주보다가 냉면인이 말했
다.

"장 교주, 그렇게 힘들게 쫓아오는 것 보니 정말로 이 노부를 못
믿겠소이까?"

장무기가 말했다.

"소생은 각하처럼 그렇게 뛰어난 재능과 원대한 계략이 없으며,
그저 두 아이들이 평안 무사하다면 평생 더이상 다른 바램이 없소
이다."

냉면인이 말했다.

"이미 안문관에 이르렀으니 장 교주께서는 그만 돌아가십시오."

여러 날을 쫓아왔건만 냉면인의 방비가 삼엄하여 장무기는 전혀
기회를 틈타지 못하였다. 지금 이 말을 들으니 더이상 가망이 없음
이 명백했다. 게다가 자신이 무당산을 이렇게 오랫동안 떠나 있으
니 사실 조민 등 여러 사람들이 매우 염려스러웠다.

장무기는 냉면인과 한참을 마주 보다가 포권의 예를 취하고는 방
향을 돌려 남으로 떠나며 그들과 작별했다.

멀리 가지 않아서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급히 들려 와서 장무기가
고개를 돌려보니 냉면인이 고삐를 늦추며 달려왔다. 장무기가 다소
의심스러워하며 신형을 똑바로 하고 무슨 일이 있냐는 얼굴로 냉면
인을 보았다.

준마가 장무기 앞으로 와서 멎더니 갑자기 사람이 일어나며 똑바
로 멈춰 섰다.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 노부가 작별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장무기 역시 포권을 하며 말했다.

"각하, 소생은 여기서 작별하겠습니다. 후에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장무기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급히 남쪽으로 가버렸다.

냉면인은 한참 동안을 그대로 서 있다가 장무기의 신형이 시야에
서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말머리를 돌려 북쪽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장무기는 가슴 속이 사그러진 재처럼 되어 무당산으로 돌아왔다.
모두들 그가 빈 손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장무기는 대략의 상황을 말했다. 그러나 녹민을 구했다가 자신이
스스로 호랑이 입속으로 보내 버린 것은 얘기하지 않았다.

모두들 한참을 묵묵히 있었다. 유연주가 말했다.

"무기야, 네가 간 후에 양빙 여협께서 무당산에 왔다가며 이 물건
을 너에게 전해 주도록 부탁했었다."

말을 마치고는 납작하고 정교한 나무 상자를 하나 건네주었다.

장무기가 받아서 그 자리에서 열어 보니, 나무상자 속에는 한 권
의 아주 얇은 견서(?柚)가 있었고, 책 표지에 청아하고 수려한 붓
글씨로 '구음진경'이라고 씌어 있었다.

장무기가 말했다.

"장문 사숙께 보고드립니다. 양빙 여협께서 주신 것은 바로 ?구
음진경? 책입니다."

유연주가 다소 어안이 벙벙해 하더니 곧 말했다.

"양 여협은 실로 명문의 후손임이 부끄럽지 않구나. 비록 여자이
지만 흉금이 이리도 넓으니 정말로 고금을 통털어 보기 드문 일이
다. 무기야, 네가 양 여협의 부탁을 받은 이상 마땅히 우리 모두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장무기가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며 대답했다.

"장문 사숙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은리정이 말했다.

"무기야, 이번에 네가 냉면인을 가도록 내버려둔 것은 모두 은도
를 생각해서 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육숙은 또한 대국을 고려할
수 없으니, 지금 오로지 네가 잡념을 떨쳐 버리고 전심전력으로
'구음진경'을 연마하여, 너와 나의 이 큰 잘못을 만회할 수 있기만
을 바랄 뿐이다!"

장송계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육 사제, 자책하지 마시오. 냉면인이 비록 한때 성공을 거두었으
나, 그이 심보가 고약하니 무공 또한 최고의 경지에 이르기 힘들
것이오. 무기가 이렇게 한다면 훗날 틀림없이 다시 돌이킬 여지가
있을 것이오. 추측컨대 냉면인은 수년 동안 결코 무슨 행동을 하지
않으리다.(않을 것이다) 이 기간에 무기는 좌관하고 ?구음진경?
을 탐구하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장무기가 늠름하게 대답했다. 송원교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도가는 충담홍원(沖岳輻?) 청정수양을 중요시하니, 무기야, 지
나간 일은 연기와 같은 것이다. 모두 떨쳐 버리거라. 숙질이 총명,
예지로우니 둘이서 같이 연습토록 하여라. 만일 의문이 있으면 언
제라도 얘기해서 모두들 함께 연구해 보도록 하자꾸나. 타산지석으
로 옥을 갈 수 있다 하지 않았느냐?"

장무기가 말했다.

"반드시 여러 사숙들의 가름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유연주가 말했다.

"냉면인의 일은 내가 제자들에게 알아보도록 명할 터이니, 무기
야, 너는 초조해 하지 말거라. 몇 달 동안을 고생하였을 테니 가서
좀 쉬도록 하려무나."

장무기는 여러 사숙들께 큰절을 하고 조민과 같이 뒤뜰로 가서 앉
았다. 한참을 서로 쳐다보다가 장무기가 말했다.

"민 누이, 많이 야위었구려."

조민 역시 말했다.

"당신도 많이 수척해지셨어요."

장무기가 말했다.

"민 누이, 내 당신께 솔직히 할 말이 있으니 날 용서하길 바라
오."

조민이 탄식하며 말했다.

"무기, 당신과 내가 서로 알게 된 그날부터 당신은 줄곧 나에게
미안한 일을 했지만, 내가 언제 잘 몰랐던 적이 있었나요?"

장무기가 녹민을 구해 냈던 일을 얘기하자, 조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무기, 만일 당신이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나도 그렇게 온갖
수단을 다 써서 당신에게 시집오지 않았을 것예요. 다행히 녹민이
당신처럼 멍청하지 않으니, 짐작컨대 우리가 구하러 가기 전에 그
애가 은도 삼촌을 데리고 무당산으로 돌아올지도 모르지요."

조민이 비록 쓰디쓴 웃음을 지으며 말을 했지만, 그러나 그 말투
속에는 녹민이 이렇게 임기응변할 수 있는 것에 대해 퍽이나 자랑
스러워하는 듯했다. 장무기가 조민이 이처럼 사리에 밝음을 보고
무척이나 감격해 하며 '민 누이'하고 그녀를 불러 놓고 더이상 말
을 잇지 못했다.


이때부터 장무기는 ?구음진경?을 수련하는 데 몰두했다. 그는
의술, 경맥의 학문에 매우 정통했고, 게다가 무당제협들의 옆에서
도와주니 진전이 무척 신속했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 어느덧 몇 년
이 지나갔다. 그 사이에 소소와 상승왕이 몇 차례 무당산에 들러
잠시 묵었으며, 그들이 말하길 광명정의 방비가 몹시 삼엄하여 강
호상에서 더이상 냉면인의 소식을 듣지 못하였고, 명군이 연승함을
로써 서달, 상우춘 등은 이미 군대를 거느리고 각각 대도(暗?)를
공격하매 원조(??)가 더이상 버티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듣고 장무기는 가슴 속이 한없이 망연해지며 왠지 조금도
기뻐하는 빛이 없이 그저 길게 한숨만 쉬며 다른 말이 없었다.

다시 한 달이 지나갔고 장무기는 드디어 ?구음진경?의 마지막
한쪽을 끝맺었다. 때는 이미 가을에 이르러 뜰에는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장무기와 조민은 무당제협에게 작별을 고하고 곧
바로 안문관을 향해 달려갔다.

지정 이십팔 년 정월, 주원장이 응천부에서 황제에 즉위하여 나라
를 세우고 국호를 대명(暗曄)이라 했다.

그런데 주원장은 자신이 지은 황조(??)의 이름으로 인해 무척이
나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주원장과 그 공신인 서달, 상우춘, 탕
화, 등유 등 중신들은 모두 원래 명교의군 출신이었다. 명교에는
본래 '명존(曄?)'일라는 출세(出由)의 설법이 있었는데, 수백 년
동안의 공개적이고 또 비밀스러운 전파를 거치어 '명존' 출세는 이
미 세인들이 숙지하는 예언이 되었다. 주원장이 설사 명교를 싫어
한다 해도 대세에 끌리어 부득불 국호를 대명이라 정함으로써 명교
의 의(琮)를 절대로 잊을 수 없음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명교교중은 물론 당연히 좋아들 했다. '명'은 선명(?曄)이며, 화
(飄)이며, 분리하면 바로 '일월(??)' 두 글자였다. 옛부터 내려
오는 예절에 '대명'이라는 제사가 있으니 아침은 '일'. 저녁은 '월
'이라고 하였다. 수천 년 동안 '대명'과 '일월'은 모두 조정의 정
사(賑?)로서, 역대 황제들이 모두 이를 매우 중시했다. 이 관점은
역대로 사대부 등 유사들이 기꺼이 담론해 온 바였다.

게다가 주원장은 남방에서 세력을 일으켰는데, 음양오행으로 추론
해 보면 남방은 화(飄)에 속하며 양(暫)이고 색(兪)으로는 적(?)
에 속한다. 북방은 수(?)에 속하며 음(遭)이고 색은 흑(閒)이다.
주원장이 남방에서 칭제하였으며, 원조는 대도에 수도를 정하니 바
로 북방이었다. 오행 상극의 이치로써 화(飄)가 수(?)를 이기고
양이 음을 멸하며 명(명)이 암(암)을 이기니 정교(賑?)가 상생(爲
唯)함이었다.

주원장은 심사숙고한 끝에 마침내 국호를 대명으로 정하길 결정했
던 것이었다. 명교의 수령과 선조(??) 유생들에게 다른 해석들이
나왔지만 결국 국호를 대명으로 정하는 데 동의했다. 주원장은 또
한 해석을 가하지 않고 그들 양파의 사람들이 멋대로 추득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이렇게 하여 양파의 완전히 상반되는 사람들이 하나
로 뭉치게 되었다. 주원장은 웅대한 재능과 원대한 지략, 교활한
기지는 이로써 그 일단을 볼 수 있었다.

제 15장 : 하늘을 뒤덮는 검은 구름

칠 월이 되어 원 순제(???)가 서달, 상우춘이 양도 대군으로
협공해 옴을 보고 곧 대도를 지킬 수 없음에 황급히 도망하여 북쪽
의 망망한 초원으로 숨어들었다. 팔 월에 서달이 대도를 공격, 점
령하니 원조는 전멸한 셈이었다. 주원장은 곧 수도를 응천으로 정
하고 국호를 대명이라 정함을 천하에 고하고 종묘에 제사지냈다.
고고(俗笑)를 현 황제(???)로 추서하고 묘호(猊泡)를 덕조(鴦
?)라 하였으며, 존조고(??笑)를 항(頗) 황제로 칭하고 묘호를
의조(宗?)라 하여다. 조고(?笑)를 유(祭) 황제로 칭하고 묘호를
희조(抗?)로 하였고, 황고(?笑)를 순(?) 황제로 칭하고 묘호를
인조(??)라 하였다. 왕비 마씨(??)를 황후로 세우고 세자를 황
태자로 추대했다. 여전히 이선장을 좌승상, 서달을 우승상, 유기를
어사중승 겸 태사령으로 삼았다.

물론 명왕실은 기반이 닦여져 있었고 제위도 이미 정해졌으니, 역
사는 주원장을 명 태조로 칭한다. 모든 일이 다 정리되자, 명 태조
주원장은 친히 공신의 순위를 정하고 강녕(析?) 서북 계룡산 아래
공신묘(殺日猊)를 세우고 전사한 공신은 상(遠)을 마련하여 숭배하
게 하고 살아 있는 자들은 그 순서대로 비워 두도록 성지를 내렸
다. 그 스무 명은 이러했다.


서달(愈阿) 자(做) 천덕(?鴦), 호주인(蔽搾?).
상우춘(位瀞春) 자 백인(曰?), 회원인(???).
이문충(?澳忠) 자 사본(??), 우이인(政??).
등유(??) 홍인(標?), 초명(?髥), 우덕(定鴦).
탕황(値表) 자 정신(?日), 호인(蔽?).
목영(鈴苧) 자 문영(澳苧), 정원인(珍??), 태조 주원장의 양자.
호대해(怖暗?) 자 통보(枕?), 홍인.
풍국용(歎髓粘) 정원인.
조덕승(?鴦彛) 홍인.
경재성(???) 자 덕보(鴦?), 오하인(迹泰?).
화고(?俗) 함산인(套雲?).
정덕흥(晉鴦鹹) 정원인.
유통해(?枕?) 자 벽천(??), 호인.
장덕승(遵鴦彛) 자 인보(??), 합비인(把蕓?).
오량(全語) 정원인, 초명 국흥(髓鹹).
오정(全袗) 정원인, 초명 국보(髓?), 오량의 도생.
조양신(?棧日) 안풍인(?彈?).
강무재(席墺?) 자 수경(矣?), 기인.
오복(全?) 자 백기(頑柴), 합비인.
모성(羚?) 정원인.
손흥조(誾鹹?) 호인.


이 스물한 명에게 모두 작위를 봉하고 장전(烝址)을 수여하고 아
울러 천하에 포고하였다. 장무기는 묵묵히 포고문을 다 보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우울한 얼굴로 북쪽으로 향해 갔다. 조
민은 그의 마음을 모두 알 수 있었다. 이들 스물한 명의 명조 개국
공신 중에는 광명정의 영웅들은 한 사람도 없었다. 문제는 여기에
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원장이 명교의 영웅호걸인 강호고수들
에게 단 한마디도 언급이 없었으매, 아마도 틀림없이 무슨 음모가
있는 듯했다.

장무기와 조민은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일며, 이미 강호상에서
친히 목격해 왔던 것과 같은 피비린내 나는 무고한 자들의 참사가
실로 얼마나 더 생겨날지 알 수 없었다.

장무기는 조민이 평소와 달리 너무도 정답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
는 것을 보고는 곧 담담하게 말했다.

"민 누이, 우리 부부가 오랫동안 당연히 내가 관직에 오를 뜻이
없음을 알았지만, 이렇게 되니 더욱 참을 수 없구려. 이번에 녹민
과 은도 두 아이를 구해 낼 수 있다면, 우리가 은거할 곳을 찾아서
몇 년 동안 조용한 날들을 보냅시다!"

조민이 씁쓸히 웃었다. 언제 그렇게 되길 희망하지 않은 적이 있
었던가. 그저 하늘의 뜻을 어기기 힘들었을 뿐이리라. 그녀가 말했
다.

"이번에 아이들을 찾게 될 수 있을지는 예측하기 어려워요. 냉면
인의 소식이 수년간 끊어지니 그가 도대체 어느 곳에 숨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장무기 역시 망연했다. 수년 전 냉면인 등을 쫓아 안문관까지 갔
다가 자신도 어쩔 수 없어 돌아오지 않았던가? 냉면인 일행이 안문
관을 지나 북으로 간 것은 확실하지만, 그러나 과연 이렇게 끝없이
망망한 초원 어느 곳에서 냉면인을 찾을 수 있으랴? 조민이 말했
다.

"오빠가 태원(梔?)에 주둔하고 있으니 우리 먼저 오빠에게 가서
알아보는 게 어때요?"

장무가가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소."

두 사람은 더이상 아무 말 없이 태원으로 달려갔다.

원래 지난 번 조민, 장무기 두 사람이 고고특목이와 사별(??)한
후, 고고특목이는 곧 군대를 이끌고 남하하여 각로 의군을 토벌하
고자 했었다. 이때 고고특목이는 순제에게 천하 병마의 지휘, 통솔
권을 받았으며, 또한 그는 이 일에 대해 일찌기 근심이 태산같았
다. 과연 예상을 벗어남이 없이 원조의 관중(?猖) 사장군인 이사
제(???), 장양필(遵棧耽), 공흥(灑鹹), 탈열백(醉?頑) 네 사람
이 결맹하여. 이사제를 맹주로 추대하고 고고특목이에게 항명(判
鹽)하였다.

고고특목이는 노여움을 억제할 수 없어 곧 군대를 지휘하여 서쪽
으로 진공하여, 이사제 등 네 사람과 격전을 계속하여 승부를 가리
고자 했다.

쌍방이 거느린 자들이 모두 몽고의 정병인즉, 수년 동안 격전하여
도 여전히 난형난제로 승부를 가리기 어려웠다. 원(?) 순제가 누
차 사신을 보내 화해하도록 했으나 모두들 조정의 명령은 거들떠보
지도 않은 채 계속해서 서로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흐르도록 싸워댔
다.

원 순제는 이들을 화해시킬 수 없음을 알고, 다시 조서를 내려 고
고특목이로 하여금 오로지 명교의군하고만 대적하도록 하였다. 고
고특목이는 이사제 등 사장군과의 원한이 너무 깊으매, 곧 원 순제
에게 답신을 보내어 자신이 기필코 관중을 평정하고자 함을 표명하
고 곧 남하했다.

원 순제는 답신을 받고 대노하였으며, 황태자도 고고특목이가 예
전에 기꺼이 협력하기를 꺼렸던 것으로 인하여 진작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 이제는 부자(遙侏)가 모두 고고특목이를 꺼리매, 곧 긴급
조서를 보내어 그의 관직과 병권을 모조리 박탈케 하고, 황태자에
게 직접 여러 장군을 통솔토록 하였다.

고고특목이 또한 조서를 받고 몹시 화가 나서 이를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는 군대를 지휘하여 태원을 공격, 점령하고서 원조에서 임명
한 관리들을 남김없이 죽여 버리고 자신이 다시 지방 관원을 위임
했다.

순제가 이 소식을 듣고 노기충천하여 막 병사를 보내 고고특목이
를 토벌하려 할 때, 뜻밖에도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있었으니 바로
응천부 주원장이 서달을 정호대장군(疹暴暗竣琡)으로 상우춘을 부
장군으로 임명하여 이십오 만의 정예 군대를 통솔해서 북상 진공하
여 곧장 대도로 몰아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명군은 파죽지세로, 그들이 거쳐간 곳은 큰 성, 작은 성(?)을 막
론하고 마침내 모두 투항했다. 그들은 오래지 않아 원조의 대도를
관중의 사장군과 격리시켰다.

원 순제는 이제 완전히 빈털털이가 된 채, 명군이 대거 침범해 오
는 것을 보고 놀라서 정말로 간이 떨어지는 듯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 원조에서 군대를 통솔할 만한 대장은 겨우 고고특목이
한 사람뿐이었다. 그와 화해할 뜻이 있었으나 지난 번 자신이 한
일이 너무 심했음을 생각하고는 할 수 없이 황태자에게 대신 속죄
양이 되도록 하여 일체의 죄과를 모두 황태자의 신상에 미루어 태
자의 병권을 박탈하고 고고특목이의 관직을 완전히 회복시켰다.

한편, 관중 사장군은 고고특목이와 아웅다웅하고 있을 때, 명군의
대거 진공 소식을 듣고는 역시 허둥지둥 어쩔 줄 몰라 하더니 황급
히 군대를 수습하여 출발 준비를 갖추었다. 그러나 이때, 서달과
상우춘은 벌써 군대를 지휘하여 대군의 방어가 전혀 없는 대도로
점점 육박해 오고 있었으므로 만회할 겨를이 없었다.

원 순제는 어쩔 도리가 없게 되자 부득불 대도를 포기하고 칠흑같
은 밤에 백관, 가솔을 이끌고 건덕문(涉鴦?)을 열고 도망하여 용
관(竊?)을 거쳐 상도(袁?: 원대 세조 때의 칠합이다륜현(?播?
?宴?)의 동남)로 북상하여 망망 초원으로 달아나매, 마침내 조상
홀필렬(暴貪?)의 고거로 돌아가게 된 것이었다.

원조의 대도를 점공한 후에, 주원장은 보고를 듣고 크게 기뻐하며
친히 대도에 가서 군사들을 술과 음식으로 위로하고, 대도를 북평
(溶?)으로 개명하였다. 이때 원 순제는 비록 도망을 갔지만 원조
조정의 기구는 여전히 완벽하여 관중 사장군 및 고고특목이는 모두
조정에 대군은 장악하고 섬서, 산서, 영하 등 제 경계에 웅거, 수
비하고 있었다.

명 태조 주원장은 곧 서달과 상우춘에게 서정군(?疹琡)을 조직해
서 북평에서 서쪽으로 진공하여 관중 사장군 및 고고특목이 등을
공격하도록 명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태조 주원장은 곧 남하
하여 곧장 응천부로 돌아갔다. 바로 이때 장무기와 조민 두 사람은
태원으로 가서 고고특목이를 만났다. 수년간 보지 못하였지만 고고
특목이는 여전히 빈틈없이 용맹스러웠으며, 이마에 몇 줄의 주름이
늘어 더욱더 노련하고 신중해 보였다. 그러나 양 미간에 음울한 기
색이 덮혀 있는 것이 요 몇 년 동안 만사가 다 뜻대로만 되지는 않
았음이 확실했다.

세 사람은 오랫동안 못 다한 정을 나누었다. 고고특목이는 녹민과
은도가 냉면인에게 수년간 잡혀 있다는 얘기를 듣고 크나큰 놀라움
을 금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고특목이 역시 수년 동안 냉면인의 행
방을 듣지 못했다.

고고특목이가 말했다.

"내가 최근 군무가 번잡하니 두 사람은 이곳에서 알아서 안돈하시
오. 녹민의 일은 내가 사람을 파견하여 알아보고서 일단 무슨 소
식이라도 있으면 즉시 사람을 시켜 무당산 여러 도장께 알려드리도
록 하겠소."

장무기 두 사람은 스스로 숙소를 찾아가 쉬었다. 한밤중에 부부는
성 안에 군대를 소집하는 호령을 듣고, 고고특목이가 정벌에 나서
야 함을 알았다. 장무기와 조민은 서로 바라보고 아무 말도 못한
채 곧장 잠자리에 들었으나 각자 시름에 잠기었다.

원래 고고특목이의 기마 정찰병이 보고하길 명군의 서정군은 이미
산서를 향해 대거 공격해 오고 있으며 통솔하는 장군은 바로 서달
과 상우춘이라 했다. 고고특목이는 잠시 심사숙고하여 곧 한 계책
을 얻었다. 서정군이 대거 섬서로 진공하면 대도(북평)의 수비가
반드시 허술할 것이니, 이내 독군하여 안문관을 나가서 서정군의
주력을 피하여 우회하면 대도(북평)를 직접 취할 수 있으리라 생각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군행 도중에 갑자기 태원 수군(艤琡)의 급보를
받으매, 서달, 상우춘의 군대가 이미 태원을 포위하였으니 고고특
목이에게 급히 와서 구해 달라는 것이었다. 고고특목이는 부득불
회군(?琡)했다. 그가 태원성 아래 도착했을 때, 서달, 상우춘은
벌써 성을 부수고 들어가 삼엄하게 수비하며 적을 기다리고 있었
다. 고고특목이는 독군을 하여 태원성 밖에서 주둔하며 군대를 다
소 정비한 후에 즉시 성을 공격했다.

서달, 상우춘은 진작에 고고특목이가 대도(북평)를 기습하고자 함
을 알아차렸었다. 두 사람이 상의하길 지금 서정군이 태원에 가까
우니 차라리 기회를 틈타 태원을 공격하고서 다시 군대를 보내 대
도(북평)를 원조하기로 했다. 고고특목이로 하여금 물러나 수비를
할 수도 없고 나아가 진공할 수도 없게 하려는 것이었다.

태원의 수군은 비교적 적어서 서달, 상우춘이 성을 포위하는 것을
보고는 잠시 저항하다가 이내 투항해 버렸다. 그렇게 되자 장무기
와 조민은 뜻밖에 태원성 안에 갇히게 되었다. 성이 함락되는 날,
두 사람은 탄로나지 않도록 다시 변장을 하여 늙은 부부로 분장했
다.

조민이 보니 서, 상 두 장군은 군대를 통솔하는 것이 매우 능숙하
며 명군이 입성한 후에 즉시 안민고시(??塑離)를 반포하여 민중
을 위로하고 추호도 저촉됨이 없었다. 그리고 바로 대부호, 원조
관리에 대해서도 역시 함부로 소란을 피우지 못하게 했다. 조민이
탄식하며 말했다.

"원이 나라를 얻음에 어찌 또한 이와 같지 않았겠어요? 그러나 후
인들이 조상의 교훈을 지키지 않으니 곧 금일과 같은 변이 있음이
외다."

장무기 역시 말했다.

"중원의 왕조가 바뀌는 것도 그 원인을 따지자면 대부분 이러하니
천하의 백성들이 이렇게 불의의 재난을 만나게 됨이 가련할 뿐이
오."

조민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장 대협께서 사회의 부패와 백성의 고통에 대해서 비분, 강개하
시니 흡사 유생같군요."

장무기가 말했다.

"이 이치가 매우 간단 명료하니, 설사 보통의 백성이라 해도 역시
그 도리를 잘 알 터인즉, 어찌 민 누이처럼 이렇게 문장에 뛰어난
학자뿐이겠소. 그러나 하늘의 뜻이 이러하니 어찌 하겠소이까?"

조민이 말했다.

"지금 우리가 뭐 하는 거지요?"

장무기가 말했다.

"지금 당장 대원의 전사(??)가 일촉즉발이니 우리가 몇 일을 더
기다린 후에 간다 해도 그리 늦지는 않을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혼란 중에 번거로울 것이오."

부부는 더이상 관아에 머물 수 없었으나, 다행히 태원성의 많은
사람들이 전란을 피하여 이미 멀리 타향으로 떠나 버려서 두 사람
은 곧 사람이 살지 않는 한 민가로 들어가 묵었다.

뜻밖에도 한밤중에 역서(??)에서 대혼란이 일어나 싸워대는 소
리에 전성의 백성들이 놀라 깨보니, 온통 불빛이 하늘 높이 솟구쳐
서 태원성 안까지도 눈빛처럼 환희 비추었다. 장무기는 처음에 이
대전이 최소한 동틀 무렵까지 계속되리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몇 시
간 후에 요란한 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불빛도 곧 어두워졌다. 누가
이기고 졌는지 궁금해하고 있을 때, 서달, 상우춘 등이 승리를 거
두고 돌아왔다. 고고특목이의 수하는 사만 명의 사졸과 사만 필의
준마가 포로로 잡혔다.

이를 본 조민은 대경실색하여 고고특목이의 안위를 걱정하며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장무기가 그녀를 부축하여 실내로 들어가며 말
했다.

"민 누이, 조급해 하지 마시오. 내가 가서 알아보리다."

그는 말을 마치고 나가서 고고특목이의 행방을 탐문했다. 원래 상
우춘 수하에 곽영이라 불리우는 용장이 한 명 있었다. 곽영이 높이
올라 바라다보니 고고특목이가 역서에 주둔하는데 군사가 대략 수
만 이매 성으로 들어와 상우춘에게 말했다.

"적병의 병영이 비록 크신 하지만 방비가 그리 엄하지 않습니다.
어둠을 틈타 병영을 침입해 들어가면 응당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
입니다."

상우춘이 주(嵯) 막사로 들어와 서달에게 말하자 서달 또한 그렇
게 여기매 곧 구체적인 순서를 상의하는데, 갑자기 고고특목이의
병영에서 밀사가 서신을 보내어 보고를 하였다. 두 사람은 서신을
펴보는 순간 몹시 기뻐했다.

원래 고고특목이의 휘하에 활비마(???)라고 하는 장수가 있었
다. 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원조의 대세가 이미 기울었고 또 서
달이 투항해 온 자들에게 잘 대해 준다는 얘기를 듣고 부하들을 이
끌고 투항할 뜻을 가지고서 고고특목이를 배신하고 몰래 서달에게
서신을 보내어 호응해 주길 원했다. 서달이 곧 회신을 보내어 암호
를 약속했다. 삼경 무렵이 되어 밤하늘이 어두침침하고 먹구름이
사방을 뒤덮고 있을 때, 곽영은 정예 기병 삼백 명을 거느리고 해
진 천으로 말발굽을 싸고서 몰래몰래 고고특목이의 막사 부근으로
더듬어 갔다. 한 차례 폭파 소리가 나더니 삼백 명이 곧 사방에 불
을 질렀다. 삽시간에 불빛이 솟구쳐 밤하늘을 빨갛게 비추었다.

그때 상우춘이 대대 인마를 이끌고 고함을 치며 고고특목이의 군
중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고고특목이의 영중에서도 일대 인마가 달
려나오매 소리를 치며 돌격해 왔으나 오히려 암호가 통하자 죽이지
못하고 상우춘의 대군을 이끌고 주엉(嵯抵)으로 돌진해 갔다.

고고특목이는 마침 막사에 단정히 앉아 병서를 읽고 있다가, 갑자
기 영내에 싸우는 소리가 하늘까지 이러질 정도로 드높으매, 내외
에 변고가 생겼음을 알고는 황급히 책상을 밀치고 일어나 전마에
올라 타고 십팔 명의 라마승의 호위하에 혈로를 뚫고서 북으로 도
망갔다. 고고특목이의 부하들은 지휘하는 자가 없어지매 분분히 혼
란에 빠져 붕괴해 갔다. 상우춘이 즉시 명을 내려 투항자들을 사면
토록 했다. 몽고병은 눈앞의 대세가 이미 기울 어감을 보고 분분히
병기를 내던지고 무릎을 꿇어 투항했다. 가련하게도 고고특목이는
용맹스럽고 뛰어난 장군이었지만 원조가 쇠진한 까닭에 결국 이렇
게 참패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장무기는 정확히 알아 본 연후에 급
히 조민에게로 돌아와 말해 주었다. 조민은 오빠가 십팔 명 라마승
과 탈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위안은 되었으나 어쨌든 우울한
표정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장무기가 말했다.

"민 누이, 날이 밝은 후에 곧 태원을 떠납시다."

조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부답이더니 이내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날이 밝아 성문이 열리자 두 사람은 곧 북문으로 빠져
나갔다. 떠나기 전에 조민이 은 한 덩어리를 그 집 방 안에 놓아둠
으로써 숙소를 빌린 비용으로 충당하였다.

하루가 안 되어 둘은 안문관에 도착하였으나 보이는 것은 관 밖의
망망한 초원뿐 어는 곳에서 냉면인을 찾으리! 장무기와 조민은 관
밖에서 수개월을 맴돌았으나 여전히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이날
정오 무렵, 그들은 유하주(?泰搾)에 이르렀는데 절기가 이미 겨울
이 되어 한 차례 삭풍이 불어오매 그 한기가 뼛속까지 사무쳤다.

두 사람이 대책 없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멀리서 일대 대군이 두
사람이 있는 곳을 향해 우르르 달려오는데 나부끼는 깃발이 수리에
걸쳐 길게 이어져 있었다. 잠시 후,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장
무기와 조민은 이들이 명교 서정군이 분명함을 알 수 있었다. 장,
조 두 사람은 이때 변장을 하지 않았기에 장무기가 명교 사람들에
게 알려지길 꺼리어, 곧 말머리를 돌려 길 옆으로 피해 갔다.

명교의 철기(?蒔)가 두 사람의 옆을 지나 질주해 갔다. 조민이
갑자기 말했다.

"무기, 상우춘 형님이에요."

장무기가 곁눈질로 바라보니 그들의 깃발 중에 '상(位)'자가 새겨
진 것이 보였다. 바로 상우춘의 부대가 이곳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원래 태원을 공격한 후에 주원장은 곧 상우춘에게 대도(북평)를
수비하도록 명했었다. 서달은 군대를 이끌고 경양(?暫)을 공격했
다. 상우춘이 대도(북평)로 돌아온 후, 부장 이문충과 함께 군대를
몰아 북진하여 금주(?搾)에 닿아 원장 강문청을 격패시키고는 전
녕(??)으로 들어가 원승상을 대패시켰다. 대군이 대흥주(暗鹹搾)
를 바싹 죄어오자 뜻밖에도 원의 수장(艤竣)은 싸우지도 않고 도주
했다. 상우춘은 말을 멈추지 않고 곧장 개평(詵?)으로 내달았다.
이대 순제가 마침 개평에 주둔하고 있다가 상우춘이 공격해 온다는
보고를 듣고서, 다시 부득불 창망하게 북으로 도망했다. 상우춘이
몇십리를 추격하여 원군 장사(竣?) 만여 명, 마차 만 량, 말 삼천
필, 소 오만 두를 포획했다. 그는 계북을 다 평정한 후, 곧 대도
(북평)로 환군했다. 도중에 서달이 경양을 포위한 지 이미 삼 개월
이 되었으나 수장인 장양신이 요새에 의지하여 완강히 저항하여 결
국 공략하지 못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급히 경양으로 달려가서
서달을 도와 성을 공격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장무기와
여기에서 마주친 것이었다.

이때 하늘은 먹구름이 용트림하듯 뒤덮고 지상에는 삭풍이 미친
듯 불어 대는데, 게다가 철기(?蒔)까지 경동천지(????)할 정
도로 스쳐지나 가니 장무기는 왠지 모르게 몸서리가 쳐졌다. 그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민 누이, 상 형님은 군무가 번망할 테니 번거롭게 찾아가 뵙지
맙시다."

두 사람은 얼굴을 한쪽으로 돌렸지만 그러나 눈길은 재빨리 달려
오는 중군을 곁눈질했다. 수십 개의 대기 앞의 정가운데의 호장(暴
竣)이 바로 상우춘이었다.

그런데 막 가까이 질주해 갈 때만 해도 여전히 신위 늠름하던 상
우춘이 돌연 달리는 말에서 몸을 숙이더니 말이 달리는 것에 따라
위, 아래로 움직여 자칫하면 떨어질 것 같았다. 편장(?竣) 이문충
이 황급히 상우춘의 말고삐를 잡아당기며 왼손으로 상우춘을 부축
했다. 적마가 길게 울더니 사람이 똑바로 서자 이내 멈추었다.

이문충이 상우춘을 땅에 내려놓고 즉시 손짓을 하자 호각 소리가
들리더니 수만의 인마가 당장에 그 자리에 멈춰섰다.

장무기는 이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더이상 다른 것은 생각할 겨
를이 없이 말을 몰라 상우춘에게로 달려갔다.

몇 명의 호위병들이 멈추도록 소리쳤으나 장무기가 정지하지 않자
창을 치켜들고 찔러 들어왔다. 장무기는 벌써 말 안장에서 솟구치
며 그들의 머리 위를 날아서 상우춘 앞에 내려서며 급히 말했다.

"상 형님, 상 형님!"

상우춘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를 꽉물고 있었으며 얼굴에는
어렴풋이 푸른빛이 감돌았다. 장무기는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
라 혼비백산하여 황급히 손을 뻗어 상우춘의 단전혈을 누르고 내력
을 천천히 투입했다. 왼손으로 손가락 몇 개를 계속 눌러 상우춘의
심맥과 별맥이 연접하는 낙맥을 막았다.

이문충이 장무기를 알아보고 황망히 말했다.

"장 교주, 상 장군은 어떻습니까?"

장무기가 지금 말할 정신이 어디 있겠는가. 그저 이문충에게 고개
만 끄덕인 채 전심으로 상우춘을 치료했다. 조민은 이대 호위병의
차단을 뚫고 상우춘 곁으로 달려와서는 막 '상.......'하며 말을
하려다가 눈앞의 일을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문충은 급히 부하들에게 그 자리에 막사를 치도록 명하여 상우
춘, 장무기, 조민 세 사람을 막사 안에 숨게 했다. 또한 군대도 막
사를 치고 임시 주둔하며 중군을 더욱 엄중히 방어하도록 분부하고
서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이때 상우춘이 '웩'하며 검은 피를 한 무더기 토해 내고서
겨우 정신이 돌아왔다. 장무기는 온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
었고 울분을 가누기 어려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상우춘이 말했다.

"무기 아우, 우리......의 일은 나중에 다시 말합시다."

장무기는 그 마음을 알기에 눈물을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민과 한쪽으로 물러섰다. 상우춘이 말했다.

"이 장군, 여러 지휘 사령들을 오도록 해주시오."

이문충이 분부하여 당장에 막사 안으로 십 명의 두령이 들어오자
상우춘이 말했다.

"여러 형제분, 우춘이 곧 임종할 것 같으니 군중의 일은 모두를
이문충 장군의 명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다들 이 말을 듣고 대경실색하였지만 그러나 모두 응답했다. 상우
춘이 말했다.

"이렇게 되었으니 우춘은 여러분과 작별 인사를 해야겠군요. 여러
형제분들께서 더욱 몸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각자 군중으로 돌
아가십시오."

제장들이 일일이 큰절로 작별하며 눈물을 뿌리며 막사를 나갔다.
상우춘이 말했다.

"이 장군, 모든 호위병들을 이십 장 밖으로 물러나게 하시고 어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죽여도 무
방하오!"

이문충이 눈물을 머금고 명령을 받고 나갔다. 장무기가 상우춘의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상 형님, 그가 꾸민 계책이 아닌지요?"

상우춘이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무기 아우, 나도 확신이 없소. 지필(?帑) 좀 건네주시오."

제 15장 : 하늘을 뒤덮는 검은 구름

장무기가 지필을 상우춘에게 건네주었다. 상우춘은 극심한 통증을
참으며 단신 한 통을 써서 편지함에 넣고 봉한 후에 장무기에게 건
네며 말했다.

"무기 아우, 이 서신을 될 수 있는 한 빨리 직접 서달 형님께 전
해 주시오."

장무기가 받아 들고는 분노하여 말했다.

"상 형님, 도대체 그가 맞나요, 아닌가요?"

장무기는 상우춘을 보자마자 그가 '춘아(春?)'의 독에 중독 되었
음을 알아차렸다. 이 독의 명칭은 비록 듣기는 좋지만, 만일 상처
를 입은 적이 있으면 반년 후에는 설사 이미 회복한 지 수십 년이
되는 *구질(??, ?=?)이라도 상처 부위가 터져 선혈이 줄줄 흘
러나오며 어떤 약을 쓰더라도 결코 이를 완쾌시킬 수 없다. 이 독
약의 이름인 '춘아'는 바로 그것이 땅을 뚫고 나옴에 당할 수 없음
을 가리키는 뜻이다. ?왕난고독경? 해약 처방란에 명시되어 있기
를 '해독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상우춘은 적의 선봉을 꺾어 진지를 함락시키는 데 항시 사졸들의
앞장을 섰고 어떤 병기들의 세례에 직면하든지 간에 지금껏 조금도
두려움을 나타낸 적이 없었고 언제나 용감하게 직진했다. 여러 차
례 위험한 국면을 만회하여 명군, 심지어 주원장까지도 위급한 상
황에서 구출해 냈다. 그가 치른 전투가 어찌 수백 번에 그치겠는
가!

거대한 체구의 온몸 전체에 칼자국, 화살 자국의 검은 흉터가 없
는 곳이 없었다. 그런데 엄청나게 음독한 이 극독을 맞았으니 제아
무리 상우춘의 신체와 정신이 웅건 하더라도 역시 참기 어려운 통
증으로 인해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계속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
었다. 몸에 있는 상처 부위가 하나 하나가 모두 곪아 터져서 피가
땀과 섞이어 옷으로 스며들었다.

장무기는 상우춘이 말하기를 원치 않음을 알고 더이상 묻지 않았
다. 그가 손가락을 꼽아 보니, 반 년 전에 서달, 상우춘이 대도를
공격할 때 주원장이 대도(북평)에 들러 군대를 위문한 적이 있었
다. 혹시 주원장이 그때 악의를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장무기가 상우춘의 성격을 잘 알고 있듯이 상우춘은 주원장에게
타당하지 않는 점이 있으면 그는 즉시 대중 앞에서 질책하여 여러
번 주원장을 빠져나가기 곤란하게 만들었었다. 지금 이미 대적이
제거되었고 상우춘 또한 항시 스스로 말하길 능히 십만의 무리를
이끌고 천하를 횡행할 수 있다 하매 군중에서도 장난으로 그를 상
십만(位??)이라 불렀다. 주원장이 어찌 이를 꺼리지 않을 수 있
겠는가?

장무기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라 자
신도 모르게 가슴이 마구 뛰었다. 주원장이 의술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보기 드문 독약을 구할 수 있단 말인
가? 설마 냉면인이 또 개입한 것은 아니겠지? 즉시 물었다.

"상 형님, 형님은 냉면인에 대한 일을 진작에 알고 계셨는지요?"

상우춘은 이때 이미 '헉헉'하고 숨을 내쉴 정도로 고통스러워했지
만 이상하리 만큼 고집을 부리며 끝내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고
개만 저었다.

장무기는 의술에 정통하나 상우춘이 이토록 비참하게 당한 것을
보고도 자신이 도와줄 수 없자 참담한 표정으로 멍청히 서 있었다.
상우춘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아우, 호청우가 예전에 내게 아무리 많아도 사십 까지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 않소? 하늘의 뜻이 이러하니 아우가
조급해 할 필요 없소이다."

장무기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오! 상 형님, 소제가 어렸을 때 무학무능하여 형님의 수명을
사십 년이나 줄게 만들었지만 파양호에서 소제가 형님께 드린 단약
은 소제의 실수를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 것이었지요. 만일 누군가
의 음모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틀림없이 이렇게 돌연한 발작은 없
었을 것입니다!"

상우춘이 말했다.

"아우, 이 형이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하나 있는데 승낙할 수 있
겠소?"

장무기가 울며 말했다.

"형님, 말씀하십시오!"

상우춘이 말했다.

"이는 아우께서 절대로 누설되지 않게 해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필히 군심이 크게 동요될 것이고, 명교의 의거가 하루 아침에 엉망
이 될 것이오."

장무기는 부득불 승낙했다. 상우춘은 점점 숨이 꺼져 갔고 장무기
는 소용이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여전히 단전혈을 통해 내력을 상
우춘의 체내에 주입시켰다. 인체에서 기(褶)는 양(暫)에 속하고 혈
(?)은 음(遭)에 속한다. 상우춘은 지금 온몸의 상처 부위에서 선
혈이 콸콸 흘렀다. ?중의(猖?)?에서 말하길 '음만으론 만들어지
지 않고 양만으론 증가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장무기는 내력을 촉
진시켰음에도 상우춘의 오랜 시련을 거친 모래 벌판같이 검붉던 얼
굴은 이미 점점 창백하게 변하여 곧 죽을 것이 확실했다.

상우춘이 말했다.

"무기, 서달 형님을 찾은 후에 속히 광명정으로 가......"

여기까지 말하다 상우춘은 갑자기 숨이 끊어졌다. 장무기는 시신
을 안고 대성통곡하였고 조민 역시 얼굴을 가렸다. 이문충이 장무
기의 통곡 소리를 듣고 급히 막사로 달려들어 와서는 역시 슬피 울
었다.

한참을 지나 조민이 낮게 말했다.

"무기, 해야 할 일이 더 급해요."

장무기가 주춤 놀라며 울음을 그쳤다. 갑자기 상우춘의 유언이 떠
올랐다. 혹시 광명정에 무슨 변고가 있는 것이 아닐까? 당장 무릎
을 꿇고 큰절을 세 번 하고서 몸을 일으키며 이문충에게 말했다.

"이 장군, 소생은 중요한 일이 있으니 상 형님의 후사는 장군께서
알아서 처리해 주십시오!"

말을 마치고는 조민과 함께 말을 급히 몰아 경양으로 직행했다.

그들은 수일 후 경양에 이르렀다. 장무기는 조민을 병영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자신은 보고를 통하지도 않고서 직접 주(嵯) 막사로
뛰어들어갔다. 호위병이 놀라 소리치자 삽시에 수십 명이 쏟아져
나와 장무기에게로 바싹 다가섰다.

장무기는 그들과 싸우길 원치 않아 곧 말 위에서 몸을 날려 병영
으로 내려서며 경공을 전개하여 한 막사에서 다른 막사로 날아가는
데 그 신법이 어찌나 빠른지 사졸들은 그저 멍청히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장무기가 주 막사에 내려서기 전에 서달이 이미 소란스러운 소리
를 듣고서 막사를 나와 자켜보다가 그 소란의 주인공이 장무기임을
알고는 몹시 기뻐하며 추격해 오던 사병들을 질책하고서 장무기를
막사 안으로 들도록 하였다.

장무기는 여러 말할 겨를이 없으매 서신으 서달에게 전해 주고는
말했다.

"서 형님, 소제가 급한 일이 있는데 말 몇 필을 빌려주실 수 있는
지요?"

서달은 서신도 보지 않고 당장에 호위병에게 준마 열 마리를 끌어
오도록 명령하였다. 장무기가 포권하며 말했다.

"서 형님, 상우춘 형님께서 불행히도 급사하시며 형님께서 몸조심
하시도록 부탁하셨습니다. 소제는 나중에 다시 뵙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서달의 대답이 있기도 전에 신형이 벌써부터 말 안장
위로 날아가 있었다.

장무기는 서달이 준 나머지 아홉 필의 전마를 끌고 병영 밖으로
내달으며 고개를 돌려 서달이 맥이 빠진 채 땅에 주저앉아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조민과 만난 후, 두 사람은 지난 번 상우춘이 천응산의 일을 알려
주었으며, 그 결과가 너무도 뜻밖이었음을 상기했다. 이번에 광명
정에 또다시 변고가 생긴다면 정말로 만 번 죽어도 어쩔 도리가 없
었다.

장무기와 조민은 안장이 벗어나지 않고 말만 바꿔 타며 쉬지 않고
달려 멀리 서역의 광명정으로 서둘러 갔다.

제 16장 : 광명정의 성화는 식어가고
낙양에 도달했을 때, 장무기는 성문 앞에 한 무리의 군중이 모여
서 웅성대는 것을 보았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은 모두 매우 괴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장무기와 조민은 호기심이 생겨 군중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성벽에 방이 하나 붙어 있는데 서두에는 명나라
의 사이비 종교와 도사의 금지 법규가 명시되어 있었다. 장무기는
큰 숨을 내쉰 뒤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다. 내용은 이러하였다.


'도술을 이용하여 신을 내린다거나 부적을 써서 주문을 외우는 행
위, 단공, 태보, 사파로 자칭하거나 혹은 명교, 미륵교, 백련교,
백운종과 같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작태를 보이는 단체들, 신상을
몰래 섬기거나 군중을 모아 향을 피우는 행위, 한밤중에 집회하여
새벽에 해산한다든지 선행을 한다는 핑계로 민심을 현혹하는 행위,
이 모든 행동의 주모자들은 참형에 처할 것이며 추종자들은 각기
곤장 백 대와 삼천 리 밖의 유배형에 처한다. (지은이 주: 명교에
서는 남자가 수행을 쌓는 것을 문계라고 하며, 마니광불(???尤)
을 섬기는데 '명존' 또는 '마니(??)'라고도 일컫는다. 단공(兒
頌), 태보(梔?)는 신이 내린 남자이며, 사파는 신이 내린 부인네
들을 뜻한다. 백련교는 옛 정통의 교를 수행하듯이 현재에는 미륵
십팔용천을 섬기며 염불을 외운다. 백운교 등은 석가모니의 지류로
서 칠십이 개로 나뉘어져 있으며, 황매종 또는 조계종에 속한다.)

이상의 여러 종교들은 전부 사이비에 속하며 민심을 교란시키는
작태 또한 수만 가지에 이르는데, 경미하게는 사람이 거기에 미쳐
집을 나오게 되고, 크게는 마음과 의지를 전부 잃게 된다. 그리고
함부로 군중 집회를 하여 사건을 일으키고 예측불허의 변을 일으키
는 등 이미 눈에 보이는 해악이 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본 방은 발포한 날부터 즉시 실행되며, 각지의 관가는 엄히 그들
을 해체시키고, 위반하는 자는 압송할 필요 없이 즉각 처단하라.
홍무 원년'


장무기는 방을 보고 난 후, 놀랍기도 하고 또 화가 나서 조민을
데리고 군중 사이를 헤치고 나와 즉시 말에 올라타고 급히 달렸다.

낙양성을 나오자 두 사람은 방향을 돌려 서쪽으로 달렸다. 장무기
는 입을 꼭 다문 채 오직 말을 재촉하여 질주할 뿐이었다.

달리는 말발굽 소리를 헤치고 조민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주원장은 정말 지독해요. 자신도 명교 출신이면서 황위에 오르자
마자 노골적으로 명교를 금지시키다니, 정말 하늘이 무서운 줄 모
르는 자군요."

장무기는 코웃음을 쳤다.

"법으로 금하면 금할수록 막기가 더욱 어려울 거야."
"말이야 그렇지만 언제쯤에야 세상이 태평해질 수 있을까요?"

장무기는 온몸의 피가 들끓는 것을 느끼며 개탄했다.

"내 비록 명교 교주의 자리는 타의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맡았었
지만 양소가 쓴 ?명교, 중국으로의 유전기?를 본 후에는 명교의
교리에 몹시 탄복하고 말았소. 주원장이 만약 우리를 괴롭히면 내
이자를 죽이고 말 것이오!"
"명교의 역사가 깊다니 처음 듣는 이야기로군요. 제게 상세하게
들려주시겠어요?"

장무기는 양소가 저술한 ?명교, 중국으로의 유전기?를 그 요점만
뽑아서 일일이 들려주었다.

명교는 페르시아에서 비롯되었는데 원래는 마니교라고 불렀다. 당
나라 무후 연재 원년에 중국으로 전해졌고 그로부터 중국인은 명교
를 신봉하기 시작했다. 당나라 대역 삼년 유월, 장안 낙양에 명교
의 '대운광명사'를 준공했고, 그 후로는 태원, 경주, 양주, 홍주,
월주 등 중요한 곳에 '대운광명사'를 지었다. 회창 삼년, 조정에서
명교 신도를 말살하라는 명이 내려져 그때부터 명교의 세력은 크게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그 후, 명교는 비밀 교파가 되어 수대에 걸쳐
금지를 당했다. 이때부터 명교의 신도들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
이 행동을 은밀히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니교의 '마(?)'자를
'마(?)'자로 고쳐서 그들을 마교(??)라 칭했다.

명교의 신도들은 대부분 가난한 농민 출신으로 누구든지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신도들이 힘을 모아 서로 도와주었다. 그러니 벼슬아
치나 탐관오리들이 백성들을 탄압하는 일이 끊이지 않는 한, 결국
명교와 관부의 싸움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북송 때, 방납 교주
가 절강성 동쪽에서 거사를 일으켰고, 남송 때에는 건염년에 왕종
석 교주가 신주에서 거사를 일으켰으며, 소흥년에는 여오파 교주가
오주에서, 이종 소전년에는 장삼창 교주가 강서, 광동 일대에서 거
사를.......


장무기가 의미삼장하게 입을 열었다.

"비록 매번 거사에서 실패를 거듭했지만 명교는 이미 사람들 마음
속 깊이 새겨져 있으니 제아무리 주원장이라 할지라도 이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야."
"이번 주원장의 처사는 장 교주와 깊은 관계가 있을 거예요."
"그럴 리가"
"당신은 교주의 신분이었으면서도 부하를 너무 풀어 줘서 주원장
에게 병권을 쥘 기회를 줬고, 생각하는 것 또한 너무 좁아서 호주
성에서 주원장의 꾀에 그대로 넘어가 아주 쉽게 쫓겨났어요. 아무
리 당신이 황제 자리에 별 욕심이 없었다지만 어쨌든 당신의 나 몰
라라 하는 식의 행동 때문에 명교로 하여금 천하를 얻어 놓고도 더
욱 빛내기는 커녕 오히려 명망의 길로 치닫게 한 것이지요."

이 말을 들은 장무기는 크게 당황했다. 비록 명교가 현재의 지경
까지 된 이유가 자신의 야망이 없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지만 이
크나큰 실수의 책임을 전부 감당하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아 잘못
을 시인할 수 없었다.

"명교가 이미 수백 년간 금지되어 왔지만 여태까지 건재했소. 그
러니 아무리 주원장이라 할지라도 명교를 어쩔 수는 없을 것이오."
"주원장은 명교 출신이라 일반 백성들에게 명교가 얼마나 깊은 영
향을 미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어요. 또 명교 신도들의 죽음을 불
사한 투혼 덕분에 자신이 천하를 얻은 것인데, 어찌 명교의 무서움
을 모르겠어요? 또 그 자신, 주원장이 명교를 업고 천하를 얻었는
데 다른 사람이 명교를 업고 천하를 못 얻으란 법은 없잖아요? 어
차피 천하는 주원장 자신의 것이 됐는데 이제 명교를 남겨 놓아 봤
자 이들 될 것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큰 장애만 될 뿐이니 제거할
수밖에요! 아마 명교를 철저히 분쇄시키지 못하면 주원장은 잠도
편히 이룰 수 없을걸요?"

조민의 말을 듣고 있던 장무기는 등에 식은땀이 흥건히 배이는 것
을 느끼며 경악을 금치 못하고 크게 소리쳤다.

"민 누이, 그만하시오!"

조민은 장무기의 저지에도 아랑곳없이 계속 말했다.

"오늘은 속시원히 말 좀 해야겠어요. 당신은 황제가 되기 싫었기
에 황제의 자리를 주원장에게 넘겨주고는 오히려 피해를 보았죠.
지금 당신은 비록 주원장을 죽이려 하지만, 주원장을 죽인 후 어떻
게 하겠어요? 당신이 황제를 하겠어요? 물론 장 대협께서는 이런
오해를 일으킬 우를 범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요?"

장무기는 조민의 말을 들으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말을 잃고 양
다리에 힘을 주었다. 고통을 느낀 전마는 앞을 향해 더욱 빠른 속
도로 달려갔고 조민도 역시 말에 채찍질을 가하여 광명정으로 향했
다.

산길은 경비가 대단히 삼엄했으나 장무기와 조민이 광명정에 이른
때까지 다행히 사고가 생기지 않았다. 명교 신도들은 모두 장무기
부부를 알기 때문에 그들 부부는 곧장 광명정 성화청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성화청 안에는 양소, 범요, 자삼용왕, 청익복왕, 철관도인 장중,
소소, 상승왕 및 오행기의 각 기사들과 천지풍뢰의 네 두령들이 모
여 뭔가 큰 대사를 의논하고 있었다.

그들은 장무기 부부가 들어서자 모두들 기뻐하며 몸을 일으켜 서
로 인사를 나누었다. 다들 착석을 한 후, 장무기가 말했다.

"양 교주, 주원장이 이미 포고령을 내려 명교를 엄히 금지했다는
소식을 들으셨소?"

양소는 성지를 장무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미 소식을 전해 들었으며 아침에는 성지도 받았습니다."

장무기는 성지를 펼쳐 보았다. 성지의 머릿말에 '하늘의 명에 따
라'란 글귀가 씌어 있는 것을 보고는 냉소를 지으며 계속 읽어 내
려갔다.


'너희들은 헛되이 명교로 자칭하며 군중을 모아 향을 피우거나,
야밤에 집회하여 새벽에 해산하고, 민심을 현혹하여 종묘사직에 해
를 끼치니 금명 이 성지를 받은 날부터 삼 일 안에 모든 신도들은
해산시키고, 우두머리들인 양소, 범요, 자삼용왕 대기사, 청익복왕
위일소는 즉시 관부에 출두하여 자수하라. 성지를 어긴 자는 결코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장무기는 담담히 웃으며 성지를 양소에게 건네주며 물었다.

"양 교주께서는 무슨 대책이라도 세웠습니까?"
"속하도 각 두령들을 소집하여 이 일을 막 의논하던 참이었습니
다. 모두들 죽음을 불사한 일대 결전을 결심했으며 절대 항복은 않
기로 했습니다. 더구나 마침 교주님께서도 오셨으니 이는 정말 명
교의 흥복입니다."
"이 전령은 냉면인이 보내 온 것입니까?"
"아닙니다. 제가 요 몇 년 동안 사람을 풀어 냉면인의 행방을 알
아 봤지만 여태 소식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양소의 말을 들은 장무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녹민과 은도의 일을
소소가 양소에게 말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자가 얼굴을 안 내민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만약을 위해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군요."
"속하들은 이미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교주님께서
오셨으니 교주님께서 이곳의 총지휘를 맡아서 주원장과 맞서 싸워
주십시오."
"그것은 절대 아니될 말씀입니다. 양 교주께서는 그런 말씀을 다
시는 꺼내지 말아 주십시오. 이곳은 여전히 양 교주께서 맡아서 총
지휘를 하시고 저는 냉면인을 전적으로 맡겠습니다."

더이상 억지를 부려도 소용이 없음을 안 양소는 현재의 각 준비
사항을 세세히 장무기에게 들려주었다.

"양 교주의 배치는 정말 대단히 치밀하시군요. 단지 한 가지, 제
가 안심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설명을 다 듣고 난 장무기는 이렇게 말하면서 조민을 바라보았다.
그 뜻을 알아챈 조민은 그날 냉면인이 천응산을 포위, 공격한 일을
상세히 말해 주었다. 조민의 이야기를 들은 군웅들은 모두 침중한
얼굴빛을 띠우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한참 후에야 양소가 입을
열었다.

"이 일로 봐서는 각 길목의 초소들을 다시 새로 배치해서 화공으
로 방비해야겠군요. 그리고 또 한편으로 병기와 긴 화살도 도 많이
준비해야 하겠구요."

장무기가 맞장구 쳤다.

"바로 그래야 합니다. 양 교주께서 명을 내리시지요."

양소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자삼용왕, 소소, 상승왕과 교주 부인께서는 기문둔갑술에 조예가
뛰어나시니 광명정의 개조 공사를 네 분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양소의 명을 들은 네 사람은 몸을 숙여 명에 따랐다.

양소는 또 이어서 말했다.

"열화기는 신도들을 시켜 기름을 더 많이 비축시키도록 하고 나머
지 사람들은 자삼용왕의 지휘를 따르라."

열화기의 장기사는 명을 받들어 곧바로 몸을 돌려서 떠났다.

"예금기는 모두 활과 화살을 서둘러 만들고, 홍수기는 독물을 더
많이 준비하며, 후토기, 거목기는 모두 자삼용왕의 명에 따르라!"

각 두령들은 명을 받들었고 자삼용왕, 소소, 상승왕과 조민 이들
네 사람도 성화청을 나와서 각 지형을 탐사하여 초소들을 개축했
다.

성화청에는 장무기, 양소, 범요, 위일소, 장중 이렇게 다섯 사람
이 남아 있었는데 오랜 침묵 끝에 장무기가 말했다.

"주원장도 이제 명교를 소멸시키기 위해 작정하고 나섰으니 결코
얕볼 수 없습니다. 제가 한 마디 드리고 싶은 말씀이 생각났는데
옛말에 이르기를 '대장부는 펼칠 줄도 알아야 하고 굽힐 줄도 알아
야 한다'고 했습니다. 광명정이 비록 명교의 성지이지만 정세가 심
각하게 될 경우, 양 교주와 기타 형제분들은 긴 안목으로 생각하시
어 무모한 행동을 삼가했으면 합니다."

범요가 말했다.

"교주님의 말씀은 지극히 지당하십니다. 속된 말로 '청산이 남아
있는 한 장작나무가 걱정되리!'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기왕 주
원장이 우리에게 관부에 와서 자수하라고 했으니 우리 한번 가볼까
요?"

위일소가 말했다.

"주원장이 그토록 의리를 외면한다면 우리도 아예 한칼에 그놈을
베어서 분이라도 풀어 버립시다."

장중은 침울한 안색으로 긴 한숨을 지었다. 무당산 중추 대전 이
후, 오산인 중 그 혼자만 살아남자 몇 번이나 자결을 시도했지만
매번 양소의 만류로 실패하고는 그 후로 줄곧 온종일 한숨으로 지
내며 입도 열지 않았다.

장무기가 말했다.

"정히 그렇다면 광명정의 비밀 통로에도 보초를 세워야 할 겁니
다. 이 비밀 통로는 이미 세상에 알려진 것이니 주원장이 아마 우
리의 이 한 수를 미리 예견하고 사람을 보내 오거나 이곳을 폭파시
킨다면 큰일이니까요."

양소가 말했다.

"교주님깨서는 안심하십시오. 그곳은 속하가 이미 배치를 했습니
다. 그 비밀 통로는 이미 세상에 다 알려졌기 때문에 벌써 사람을
시켜 또 다른 비밀 통로를 팠습니다."

장무기가 말했다.

"과연 양 교주께서는 지혜로우십니다. 그럼 우리는 나가서 한바퀴
돌아보고 자삼용왕께 무엇이 필요 한지도 물어 보죠."

장무기 일행은 성화청을 나섰다. 비록 앞길이 암담함을 알지마 아
직은 적과 상대할 때가 아닌지라 모두들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삼용
왕을 도와 초소를 개조하였다.

세째날 오후,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모두들 주원장이 공략해 오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째날 아침,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이 성화청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서로 만나서도 단지 고개만 약간 끄덕일 뿐 말이 별로 없었
고, 각기 자기들의 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약 반 잔의 차를 따를 시간이 지났을 때쯤, 한 신도가 급히 성화
청으로 달려와 명나라 십만의 군대가 광명정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고 보고했다. 다시 반 잔의 차를 따를 때쯤해서 또다시 명군의 동
향을 보고하러 사람이 왔다. 정오가 되자 명나라 군대는 이미 광명
정 산 아래에서 포진을 끝냈는데 군대의 총지휘관은 바로 이사제
(???)였다.

장무기와 조민은 보고를 듣고 의외라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
다. 이사제는 원나라에서도 유명한 관중의 사대 장군 중 우두머리
인데 어떻게 이곳까지 군대를 이끌고 왔을까?

양소는 두 사람의 얼굴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교주께 아룁니다. 이사제는 원래 서안을 지키고 있었는데 원나라
가 패망할 쯤에 서정군(?疹琡)이 들이닥치자 이사제는 다시 봉상
으로 후퇴했고, 이어서 다시 임조로 후퇴했으나 서정군이 계속 밀
려들어오자 이사제는 기진맥진하여 항복을 한 것이죠. 그런 그에게
십만 대군의 지휘를 맡게 하고서도 주원장은 안심할 수 있군요."

조민이 말했다.

"이사제와 원나라 장군들은 명교를 매우 미워해요. 주원장이 그에
게 대군의 지휘를 맡게 한 데에는 매우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요. 주원장의 부하들 대부분은 모두 명교와 함께 향을 피운 정이
있기 때문에 이들로 하여금 우리와 적대하게 한다면 주원장이 어찌
안심할 수 있겠어요?"

장무기가 쓴웃음을 지며 말했다.

"광명정에는 많아야 기껏 이만 명 밖에 없는데, 주원장은 십만 대
군을 보내어 우리와 대적하게 하다니 정말 조심해야 하겠군요."

중인들의 의견이 분분히 일며 주원장의 악독함을 욕하기 시작했
다. 바로 이쯤에 이사제가 사자를 보내 왔다는 통보를 받고 양소는
들게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성화청으로 들어온 사자는 서한을 양소에게 건네주었다. 양소는
그것을 다 본 후에 말없이 장무기에게 건네주었다. 장무기가 서한
을 받아 거침없이 읽어나갔다.


'성상께서 정한 기한이 이미 지났다. 너희 광명정의 모든 요사한
것들이 그래도 항복을 안한다면 우리 대군이 너희들을 한 놈도 살
리지 않고 전부 죽이리라. 이사제 씀.'


장무기는 서한을 다시 양소에게 건네주고는 눈을 감고 정신을 가
다듬을 뿐 말이 없었다.

이사제의 사자가 말했다.

'이 장군님의 명이니 명교의 교주도 회답을 하나 써 주십시오."

양소는 이사제의 서한을 천천히 반으로 찢은 후, 그중 반 쪽을 사
자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것이 회답이니 어서 가거라!"

사자는 그 반 쪽의 서한을 갖고 하산했다.

한 시진이 지난 후, 산 아래에서 포성이 들려 왔다. 공격이 시작
된 것이다.

"범요와 자삼용왕께서는 산정에 남아서 이곳을 지켜 주시고 나머
지 분들은 저를 따라오십시오."

명령을 내린 양소와 장무기는 명나라 군대 약 삼천 명이 하늘을
찌를 듯 함성을 지르며 벌떼같이 몰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산
위에는 오히려 적막만이 흐를 뿐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장무기는 매우 의아해 했다. 수천 명이 이미 첫번째 관문 초소까
지 몰려와 공격해 오고 있는데 어째서 명교의 반격이 없을까?

바로 이때, 갑자기 신호음과 함께 명군의 양쪽에서 수백 명의 명
교 신도들이 손에 분사기를 갖고 나타나 삼천 명의 명나라 군대를
향해 독물을 퍼부었다. 언덕 위의 명나라 군졸들은 모두 비명을 지
르며 병기도 버린 채 삽시간에 산 아래로 물러갔다.

바로 홍수기의 신도들이 독물을 분사한 것으로, 이 장면을 본 장
무기는 그저 탄성만 터뜨릴 뿐이었다.

"아깝다. 아까워!"

조민이 기분 나쁜 듯 말했다.

"뭐가 아깝다는 거죠?"
"계책이 비록 좋았지만 독이 너무 약해서 모두 도망치고 말았잖
소?"
"이 계책을 누가 세웠는지 아세요?"
"내가 어찌 알겠소?"
"바로 내가 세운 계책인데 틀렸단 말인가요?"
"민 누이는 언제부터 그렇게 인자하게 변했소?"

양소는 장무기 부부가 거의 사십이 가까운 나이에도 이렇게 말장
난을 하는 것을 보자 씨익 웃었다.

갑자기 산 아래서 비명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 오자 모두들 그곳
을 보고는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삼천 명의 명나라 군졸들이
온몸이 가려워지는 것을 더이상 참을 수가 없자 땅에서 구르기 시
작하더니 급기야는 손으로 온몸을 긁어서 피투성이가 됐고 나중에
더 못 견디게 된 군졸들은 분분히 칼을 들어 자결을 했다. 삽시간
에 반 이상이 땅에 쓰러졌고 자결을 안한 군졸들은 계속 처참한 비
명만 지르고 있었다. 이사제의 십만 대군은 비록 모두 다 백전의
용사들이었지만 이 참담한 광경 앞에서 뭇군졸들은 하늘 높이 솟은
광명정을 바라보면서 전부 두려움에 온몸을 떨었다.

이사제가 손을 휘젓자 그의 휘하에서 이천 명의 군졸이 나와서는
중독된 동료들을 전부 죽였다.

양소는 단 한 명의 희생도 없이 명군 삼천 명을 전멸시키자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교주 부인의 신묘하신 계책에 속하는 정말 탐복했습니다."
"양 교주께서 칭찬이 과하십니다. 이것은 홍수기의 공로이지 어찌
제 공로이겠어요?"

그때 장무기가 장난스레 말했다.

"나무아미타불! 조 시주의 악랄함이 젊었을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군요!"

군중들은 이사제가 초전에서 패해 기선을 제압당하였으므로 오늘
은 더이상 공격을 못하리라 생각하고 모두들 돌아가 경축하려고 성
화청으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몇 발짝 못 가서 호각 소리가 들리
면서 적군들이 개미떼처럼 몰려와 재차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닌가!

모두들 이사제의 이러한 완강함에 의아해 하면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소소가 물었다.

"공자님, 아까의 계책을 조 언니가 뭐라고 이름을 지은 줄 아세
요?"
"소소, 어서 말해 보시오. 뭐라고 이름 지었소?"
"공자님께서 직접 물어 보세요."

장무기는 조민은 향해 두 손을 모으고는 물었다.

"부인께 여쭙겠소이다. 종전의 계책을 뭐라고 부릅니까?"
"인자지계(?呪柵稅)라고 해요."

군웅들은 조민이 아까 장무기가 한 말에 아직도 화가 안 풀려 계
속 비꼬는 말을 하자 웃음을 금치 못했다. 위일소가 말했다.

"교주 부인께서 좀 자세히 저희들에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조민은 위일소가 물어 오자 좀 쑥스러워 하며 말했다.

"사실은 별 명목이 없는 건데 소소가 자꾸 이름을 지으라고 해서
할 수 없이 그냥 '적을 놀라게 하다(漱?)'라고 정했어요."

군웅들은 이 계책이 절묘한 만큼 이름 또한 매우 적절하다고 느꼈
다. 이사제는 원래 십만 대군을 이끌고 기세당당하게 오면서 분명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을 터인데 어느 누가 이토록 처참한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고 군졸들이 전부 겁먹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
가? 이 일격으로써 적군의 기세는 한풀 꺾였으니 재차 격돌시에는
패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장무기가 갑자기 물었다.

"양 교주, 비밀 통로는 잘 지키고 있는지요?"

양소는 금방 그 뜻을 알아챘다. 전에 육대 문파가 광명정을 토벌
하러 왔을 때, 진우량의 사부 성곤이 바로 비밀 통로를 이용해서
들어와 명교가 미처 준비 못한 틈을 타서 일거에 명교의 여러 고수
들을 쓰러뜨렸던 일이 있었는데 장무기는 바로 이런 옛날의 일이
다시 재현될까 우려하여 물은 것이다.

"교주께선는 안심하십시오. 이 비밀 통로는 위에서 아래로는 갈
수는 있으되, 밑에서 위로는 올라갈 수 없습니다. 지난 날의 성곤
같은 일은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양 교주의 치밀함에는 정말 당할 수가 없군요."
양소가 바로 겸손의 말을 하려는 찰라, 갑자기 적진에서 포성이
울리고 적군이 만 명씩 네모 형식으로 서서히 걸어왔다. 산 밑까
지 몰려오자 곧 양쪽으로 일 리 정도 퍼지더니 삼 인이 한 조가 되
어 서로 거리를 넓히면서 서서히 산을 향해 공격해 왔다.

장무기는 마음 속으로 '앗차!'했다. 적군이 흩어져서 산을 공격해
오면 어쩌나 한 것이다.

이때 소소가 웃으면서 말했다.

"조 언니의 신묘한 지략에 정말 탄복했어요."

조민은 단지 미소를 지을 뿐, 응답을 안 했다. 군웅들은 또다시
기뻐했다. 마음 속으로 조민이 적의 계책을 이번에도 미리 알았다
면 분명 이기리라는 생각에 군웅들은 한 편의 극을 보듯이 팔짱을
낀 채 도민의 이번 걸작을 감상했다.

적의 군졸들은 조금 전 삼천 명의 군졸들이 당한 곳을 지나면서
여전히 세 사람이 한 조가 되어 각기 삼, 사 장(晙) 간격으로 서서
히 공격해 올라왔다.

관전하는 군웅들은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 이사제를 평가하기
시작했는데 다들 그의 임기응변이 신속하고 결단력이 있어 실로 장
군의 재목이지만 원나라를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주원장에게 조
종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했다. 바로 이때, 산의 계곡에서
호각 소리가 나더니 땅 속에서 갑자기 좌, 우, 중 세 갈래로 사람
들의 무리가 나타났는데, 이들은 좌우 양쪽은 각기 천 명, 중간에
는 삼천 명의 명교 신도들로 모두들 웃옷을 벗을 채 손에 도검을
들고는 분연히 앞으로 베어 갔다. 더우기 중간에서 좌측의 신도들
은 오른쪽을 향해 공격하고 오른쪽의 신도들은 좌측을 향해 공격해
갔다.

양소가 말했다.

"교주님, 저들은 예금기가 아닙니까!"

명교의 오행기 중에서 예금기는 가장 도검을 잘 썼으며 무예 또한
비범했다. 명나라 군대가 비록 수적으로는 많았지만 서로의 간격이
너무 멀리 벌어져서 예금기의 공격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삽시간
에 산 언덕 위에는 이천여 명의 명나라 군졸들이 쓰러졌다.

명나라 군졸들은 상대방의 무서움을 맛보자 할 수 없이 서로 간격
을 좁혀 두 갈래로 뭉쳤다. 예금기가 비록 대단하였지만 적의 수가
너무 많아지니 단시간에 승리하기에는 무리였다. 결국 양쪽은 일시
적인 대치 상태로 맞서게 됐다.

장무기가 내심 계속 이렇게 싸워 나가다가는 중과부적으로 예금기
가 분명 패할 거라고 생각하고 초조해 할 때, 마침 두 갈래의 무리
사이에서 갑자기 손에 분사기를 들고 등에는 물주머니를 맨 천 명
의 신도들이 나타났다. 바로 홍수기의 신도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나 양소가 의아해 하며 물었다.

"아니, 저들은 거목기의 신도들이 아니오? 어째서 저런 분장을 하
고 있죠?"

조민은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는 않았다.

명나라 군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조금전 그들 삼천 명의 명나라
군졸들이 죽음보다 못한 경우에 처한 것도 바로 이 같은 손에 분사
기를 들고 등에는 물 주머니를 진 자들의 소행인 것을! 그래서 그
들을 보자마자 모두 대경실색하며 벌써부터 투지를 잃었다. 호각
소리가 나자 모두 어쩔 줄을 몰라 황급히 산 밑으로 내려갔으나 예
금기의 신도들은 칼을 거두고 부동 자세로 적을 뒤쫓아가지 않았
다.

명나라 군졸들은 막 산 아래로 뛰어내려가면서 내심 안도의 숨을
쉴 때, '홱'하는 소리와 함께 전방 수장(?晙) 밖 산 아래에는 벌
써부터 이천 명의 명교 신도들이 나와 있었다. 그들은 손에 분사기
를 들고 비할 데 없는 맹독을 정신없이 산 아래로 도망쳐 내려오는
명나라 군사들을 향해 뿌려 댔다.

맨 앞에서 달려오던 군졸이 급히 걸음을 멈췄지만 뒤에서 달려오
던 군졸들에 밀려 앞으로 거꾸러지면서 난장판이 됐다. 홍수기의
신도들은 맹독을 다 뿌린 후에야 유유히 비밀 통로를 통해 다시 산
위로 올라왔다.

겨우 예금기의 도검 아래에서 구사일생으로 도망친 칠팔천 명의
명나라 군졸들은 또다시 홍수기의 독물 세례를 받게 되자 그중 거
의 오륙천 명의 몸에 독물이 묻어 그들이 지르는 참혹한 비명 소리
는 조금 전보다 더욱 가공스러웠다.

장무기가 몰래 손등으로 위일소를 몇 번 쳤다. 그러자 그 뜻을 안
위일소는 크게 웃으며 물었다.

"교주 부인께 교주의 분부로 여쭙겠는데 이번의 계책은 또 어떻게
부르는지요?"

군웅들이 모두 웃자 장무기와 조민은 둘 다 멋적어졌다. 소소가
말했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다(詵???)'란 이름인데 복왕께소는 어떻
게 생각하세요?"

위일소가 혀를 차며 말했다.

"이름은 매우 듣기 좋은데 내용은 정말 매섭군요."

군웅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민이 말했다.

"저의 작은 꾀도 이제 다 썼으니 내일은 소소가 나설 것이에요."

군웅들은 소소에게 무슨 계책이 있는지 물었지만 소소는 단지 얼
굴에 웃음만 가득 띄우고는 대답을 않고 딴청만 부렸다. 그러자 위
일소가 말했다.

"상형, *소제는 정말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으니 상형께서 대신
물어봐 주시겠소?"

위일소가 이미 오십을 넘었고 상승왕보다도 스무 살이나 많은데도
상승왕에게 '상형'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얼마나 궁금해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상승왕이 듣기에도 좀 쑥스러워서 말했다.

"위형께서는 그 무슨 말씀이신가요? *소제의 나이가 어린데 어찌
저에게 '형'이라고 부르십니까? *소제도 들은 이야기인데 소소 교
주의 계책을 '푹 삶은 콩'이라고 부른다는 것만 알 뿐, 다른 것은
전혀 모릅니다."
"정말 입이 싸군요."

라고 소소가 성을 내며 말하자 상승왕은 매우 어색해 했다. 위일
소는 영문도 모르고 다시 물었다.

"'푹 삶은 콩'이 무슨 뜻이오?"

장무기는 또 그가 상승왕의 입장을 난처하게 할까 봐 급히 말했
다.

"위 형님께서는 성급해 하지 마십시오. 내일이면 자연히 알게 될
테니까 그만 갑시다. 산으로 돌아 가야죠."

이때는 이미 해가 서쪽으로 질 무렵이었으며 이사제도 두 번씩이
나 격패를 당했으니 감히 심야에 공격은 못할 것이었다. 이사제는
이날 수천 명이 아픔을 호소하며 질러 대는 비명 소리에 심기가 어
지럽고 불편했지만 차마 또 이들을 전부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
다. 군의관을 시켜 그들의 상처를 살피게 했는데 독액이 묻은 상처
부위의 피부는 이미 썩어 문드러졌고 지독한 악취에 게다가 가려움
또한 대단했다. 이들 부상병들은 절대 긁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
면서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죽어라 긁고 있었다. 긁으면 긁을
수록 피부가 썩어 뼈가 보이면서 피가 흘렀지만 반대로 그만큼 시
원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처음에는 독액이 묻은 곳만 가려웠지만 상처 부
위를 긁으면 긁을 수록 상처가 더욱 커져서 몇 시간 뒤에는 벌써
온몸이 썩어 문드러져 악취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어떤 자는 심
지어 해골까지 드러날 정도로 머리를 긁어 댔으니 정말 가공스러울
노릇이었다.

그중 몇몇은 낌새가 안 좋음을 알고는 스스로 독액이 묻은 팔이나
다리 등 신체의 일부를 잘라 겨우 생명만은 건져냈다. 그러나 대부
분은 거의가 머리, 얼굴 또는 가슴 부위에 독액이 묻어 있어 자를
수도 없는지라 결국은 비참한 비명을 동반할 채, 피투성이의 몸으
로 땅에서 데굴데굴 굴렀고 자살하는 사람도 점점 많아졌다.

이들의 군의관들 또한 대부분 보통 의원 출신이니 어찌 이 같은
독을 풀 수 있겠는가? 그저 끔찍한 광경만 바라보면서 행여 독액이
자신의 몸에 묻을까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사제는 고개를 들어 장탄식을 했다. 눈앞에 보이는 이 평범한
산 언덕도 이토록 난공불락일진데 하물며 저 높은 산봉우리를 또
어떻게 공략한단 말인가! 이런저런 걱정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 부하 하나가 이사제의 귀에 몇 마디 속삭이기 시작했다. 말을
다 듣고 난 이사제는 희색이 만연하여 곧 취사를 명하고 그곳에서
머물며 쉴 것을 명했다.

이날 저녁, 명나라 군졸들은 고통과 신음 소리에 날이 밝을 때까
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날이 밝은 후 보니 어제 상처를 받은
군졸들은 이미 독이 퍼져 죽었고, 아직 죽지 않은 군졸들은 아예
아픔을 호소할 기력조차 잃고 단지 조용히 죽음만을 기다릴 뿐이었
다. 명나라 군졸들은 이 같은 참혹한 광경을 보고는 이 추운 아침
바람 속에서 더욱 떨었고 오늘은 또 어떤 날이 될지 아무도 자신의
운명을 예측하지 못했다.

명나라의 각 장교들은 이사제의 막사에서 나와 각자 자신의 군영
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이천 명의 군졸들이 어제 홍수기(彪??)
가 명나라 군대를 공격한 곳으로 와서는 이리저리 수색을 하면서
지하도의 입구를 찾기 시작했다. 결국 지하도의 입구를 찾아내자
모두들 일제히 들어갔다.

반 시간이 지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또 반 시간이 지났으나 지하
도에 들어간 이천 명의 군졸들은 땅으로 꺼진 듯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사제는 다시 세 명의 군졸을 시켜 들어가 탐색하
게 했지만 그들 역시 감감무소식이었다.

이사제는 대노하여 군졸들을 서로 앞뒤 이어서 들어가게 하고 수
시로 소식을 통보하도록 명했다. 반 시간이 지나서 전해오는 소식
들은 모두 다 정상이며 맨 앞에 들어갔던 이천 명의 군졸들은 여전
히 못 만났고 오히려 몇몇 명교 패들의 저항을 받았지만 곧 적들을
격퇴시켰다는 것이었다.

이사제는 지하도로 들어간 군졸들이 거의 사천 명이 되자 곧 정지
시켰다. 그리고는 다시 사천 명의 군졸을 산 언덕으로 공격시켜서
내외 협공의 이득을 얻어 그곳을 탈취하려 했다.

산 언덕을 공격하는 명나라 군졸들은 지하도에 이미 사천 명이 들
어가 적의 기습을 막자 더이상 주저할 것 없이 용맹스럽게 앞을 다
투어 공격해 갔다. 반 장의 차가 식을 때쯤이 지나서도 명나라 군
졸들은 추호의 저항도 받지 않고 산 꼭대기에 도달했다.

지휘관은 산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갑자기 대경실색하면서 급히 후
퇴 명령을 내렸다. 군졸들은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지휘관이 시위
병들을 이끌고 급히 산 아래로 후퇴하자 따라서 후퇴했고 결국 산
언덕의 군졸들은 금새 우왕좌왕 엉망이 됐다.

이사제가 고개를 들어보고 언덕 꼭대기까지 공격해 들어가던 명군
이 뒤쫓는 적군도 없는데 갑자기 썰물처럼 후퇴하자 내심 또 명교
의 음모임을 짐작하고는 급히 군대를 후퇴시켰다. 막 십 장(?晙)
을 후퇴하자 갑자기 둔탁한 굉음이 들리더니 땅이 맹렬히 진동하기
시작하면서 말들도 몸을 가누지 못해 이사제를 땅에 떨어뜨렸다.
모두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고는 놀라서 심장이 터질 것만 같
았다.

거대한 산 언덕이 지진이 일어난 듯이 중간에서부터 무너져 가고
있었다. 아직도 산 언덕 위에 있던 명나라 군졸들은 거의 반 수가
흙과 함께 갈라진 틈 사이로 빠져 들어갔다.

이사제는 너무 놀라 정신이 멍해지면서 지진이 일어난 줄로만 알
았다. 후에 요행히 살아 돌아온 지휘관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 진상
을 알게 된 이사제는 화가 치밀어 한 줄기 피를 토하면서 곧장 뒤
로 쓰러졌다.

성화청에서는 각 두령들이 기뻐하며 신나게 조민과 소소를 천신처
럼 높이 떠받들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명교는 단지
몇 십 명이 희생됐을 뿐이지만 이사제는 거의 이만 명의 군졸들을
잃었으니 이것은 완전한 대승리인 것이다.

원래 자삼용왕의 인도 아래 전체 지형을 관찰할 때, 광명정의 산
밑에 아주 좁고 긴 산 계곡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산 계곡은 별
로 깊지도 않아 너비는 약 수십 장(??晙)이며 맞은편은 수십 리
길로 길게 이어진 낮은 산 언덕들이라 매우 안전하게 보여서 초소
는 설치했지만 보초는 세우지 않은 상태였다. 자삼용왕과 조민 등
은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이 산 언덕을 매우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들은 곧 후토기(馮勅?)와 거목기(洩迎?)
를 시켜 이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산 언덕을 죽음의 계곡으로 만
들기 위해 철야로 공사를 단행하였다. 조민이 두 번씩이나 이사제
를 격퇴한 것도 알고 보면 다 이 산 언덕의 무수히 교차된 비밀 통
로의 덕을 본 것이다. 기습 군대가 도처에 속출하니 당연히 이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날 조민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자삼용왕과 소소는 거기에다
조미료를 더 가미해서 명나라 군졸 일만 명을 더 묻어 버린 것이
다. 처음부터 소소는 이사제가 비밀 통로의 입구를 찾아 그 길로
공격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곧바로 비밀 통로에 함정을 만
들어 놓은 것이다. 이천 명의 명나라 군졸들이 비밀 통로에 다 들
어왔을 즈음, 함정을 도발시키자 통로 양쪽 벽에서 비오듯 화살이
날아들어와 그들은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죽일 수 있게 된 것이
며, 비록 그 중에서 수백 명이 살아 있었지만 소소는 전혀 개의치
않고 통로의 입구를 막았다. 후에 뒤따라온 세 명의 군졸들도 전혀
엄호가 없는 상태여서 역시 죽음을 면하지 못했다. 나중에 이사제
가 다시 군졸을 보내 비밀 통로를 공격해 오자 소소는 소수의 예금
기(赤??) 신도들로 하여금 거짓 저항을 하게 하다가 계속 후퇴를
하면서 적을 더 깊게 유인하게 했다. 그런데 의외로 이사제가 군졸
을 사천 명씩이나 통로로 보내 오자 소소는 뛸 듯이 기뻐하며 급히
명교의 신도들을 철수시켰다.

이곳의 비밀 통로는 거의 명교 신도들이 파 놓은 것이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소소의 철수 암호를 듣자마자 순식간에 전부 철수
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명군의 사천 명의 군졸들은 통로에 대해
서 전혀 모르고 또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기습을 받을까 봐 매우 조
심하다 보니 자연 행동이 느려지게 됐다.

소소는 적이 거의 함정 안으로 다 들어오자 곧 미리 묻어 놓은 화
약에 불을 붙이라고 명령했다. 언덕 위로 공격을 해 오던 지휘관이
마침 불에 타들어 가는 도화선을 보고 대경실색하며 급히 후퇴를
명령했던 것이다.

이미 속을 완전히 파헤쳐 거의 빈 껍데기만 남은 언덕은 '쾅!
쾅!'하는 굉음과 함께 폭탄이 터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무너져 내렸
다. 비밀 통로에 갇혔던 사천 명의 군졸과 요행히 아직 죽지 않은
수백 명의 군졸들은 결국은 이 언덕 속에 깊이 생매장되고 말았고
마침 비밀 통로 바로 위의 언덕에 있던 군졸들도 무너져 내리는 흙
속으로 역시 적지 않게 생매장됐다.

위일소가 말했다.

"소소 교주의 '푹 삶은 콩'은 비록 맛있어 보이지만 삼키기는 정
말 어렵군요."

장무기가 말했다.

"위형께서도 감히 맛을 못 볼 정도이니 나는 보기만 해도 떨릴 지
경이오. 소소, 좀 다른 요리로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소소가 방실방실 웃으면서 말했다.

"다음 요리는 조 언니의 솜씨랍니다."

조민이 웃으면서 말했다.

"소소, 이 요리는 모든 분들의 입맛에 다 맞을 수는 없어. 내 요
리가 망쳐지더라도 그때 가서 내 잘못이라고 날 탓하지는 말아
줘!"

위일소가 말했다.

"교주 부인께 감히 여쭙겠는데 이번 요리는 뭐라고 이름을 지었습
니까?"

소소가 말했다.

"역시 위 오빠의 식성이 제일 좋군요. 제가 말씀드리죠. 이번 요
리의 이름은 '설날의 지내다'이지요. 바로 조 언니가 지은 이름이
고요."

위일소는 듣고서 어리둥절했다.

"'설날을 지내다'라니, 무슨 뜻이지?"

소소가 웃으면서 말했다.

"어차피 가르쳐드려 봤자 마음만 조급해질 뿐일 거예요."

조민이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번 요리가 잘 만들어진다 해도 전부 제 공로는
아니죠. 또 만약 잘못 만들어진다면 그 책임은 아마 금화파파에게
도 있을 것이고, 소소에게도 있을 것이며, 상승왕에게도 있고, 물
론 저한테도 그 책임이 있을 거예요."

자삼용왕이 웃으면서 말했다.

"어째서 이 늙은이까지 끌어들이는 것이냐?"

조민이 말했다.

"파파는 우리의 두목인데 어떻게 책임을 면할 수 있겠어요? 제 견
해로는 이번 요리를 '모듬요리(잡당)'하고 부르는 것이 좋겠군요."

소소가 손뼉을 치며 좋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해
하며 좀더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이 네 사람이 입을 꼭 다물고 더
는 대답을 안하려 하는 것을 알고 아예 묻지 않았다. 그들은 화제
를 돌려 다시 토론을 한 후에 모두 이사제가 오늘은 더이상 공격을
못 해 올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내일의 고전에 대비해서 각지
돌아가 쉬었다.

다음날 아침, 이사제는 군열을 재정비하여 공격을 시작했다. 수천
구의 시체가 묻힌 산 언덕을 넘어서 겨우 광명정의 산 밑까지 공격
해 왔다. 한 마디의 호령이 내리자 일천 명의 명나라 군졸들이 왼
손에는 방패를, 오른손에는 큰 칼을 들고 산 위를 향해 서서히 공
격을 했다. 약 수십 장(??晙) 정도 진행했을까? 갑자기 기암괴석
의 뒤에서, 숲속에서 또는 토굴에서 수십 줄기의 붉은 용이 날아오
는데 그것은 바로 열화기(?飄?)가 석유를 쏘아 날린 것이다.

명나라 군졸의 방패는 대개 가죽으로 만든 것이라서 불만 대면 금
방 타 버려 삽시간에 수백 명의 몸으로 불이 번지니 황급히 또 후
퇴를 했다.

이사제가 명교의 엄호물을 발견하고는 곧 큰 깃발을 휘두르자, 뒤
쪽에서 군졸들이 수십 문의 대포를 밀고 나왔다. 한 마디 호령이
떨어지자 각 대포가 일제히 명교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몇십 발의
포성이 들린 후에 산 위에 엄호물은 이미 파괴됐고 명교의 신도들
또한 후퇴했다.

명나라 군졸은 곧바로 위를 향해 공격해 갔는데 모두의 손에는 각
종 화기가 들려 있었으며 허리에는 긴 칼을 찼고 명교의 저항이 있
을 때는 수십 개의 화기가 동시에 발사됐다. 명교는 더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다시 후퇴를 했다. 명나라 군졸은 그 기세를 타고 추
격해 갔으며 조금만 저항이라도 있거나, 혹은 명나라 군졸들이 진
격할 수 없게 될 때는 이사제가 즉각 군졸을 시켜 대포로 밀어붙이
게 했다. 수십 문의 대포가 올라가자 아무리 견고한 엄호물도 견딜
수 없게 됐다. 명교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후퇴하게 됐으나 다행히
사상자는 많지 않았다.

이렇게 며칠 동안 명교는 계속 후퇴를 거듭했다. 이사제는 병력을
지휘하여 이미 산 중턱까지 올라갔으며 산세가 비교적 완만한 산의
반쪽을 전부 다 점령했다.

그러나 올라갈수록 산세가 점점 더 험해져서 명나라 군졸 역시 한
걸음 나설 때마다 사망자의 수 또한 매우 많아졌다. 이제 강공으로
는 더이상 효과를 못 보자 이사제는 군졸들에게 명을 내려 대포를
사용케 했다. 이 방법은 비록 더디지만 그런데로 진전이 있었으며
이 방법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사제에게는 아직 칠만 명의 군졸들이 남아 있었고, 그중에서 삼
만 명은 대포의 운전 및 배급을 맡아서 전적으로 명교와 대적했다.
위일소는 그제서야 왜 '잡탕'이라고 명(髥)했는지 깨달았다. 명나
라 군졸들은 각종 화기들로 먼저 공격을 하고 나서야 군졸들을 보
내는 형식으로 공격했다. 이사제는 그들 대포의 활력과 사람이 많
은 것만을 믿고, 한 발, 한 발씩 광명정을 향해 거침없이 공격해
왔다.

각 두령들이 걱정을 하며 미간을 찌푸리자 장무기가 말했다.

"이렇게 계속 버티다가는 언젠가는 이사제에게 모두 당하게 될 테
니 다른 방도를 강구해야겠소."

위일소가 분노를 터뜨렸다.

"이사제, 그깟 놈이 무슨 재간이 있겠습니까. 단지 대포만 믿고
저렇게 까불고 있는 거죠. 그래, 아예 우리 오늘 밤 몰래 그들 진
영으로 숨어 들어가 이사제의 화약에 불을 붙여서 놈들을 튀겨 버
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양소가 말했다.

"정말 절묘한 생각입니다. 단지 이사제가 화약을 저장한 곳에는
분명 경비가 삼엄할 테니 침입하기가 좀 힘들겠구료. 이렇게 합시
다. 오늘 밤 우리는 두 갈래로 나누어서 한 쪽은 몰래 적 진영으로
숨어 들어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이사제의 화약과 군량미에 불을
붙이고, 남은 다른 한 쪽은 옆길로 돌아가 명군 진영 앞의 대포들
을 계곡 밑으로 밀어 버리는 거요."

그들은 곧 사람들을 두 갈래로 나누어서 장무기는 조민, 범요, 소
소, 상승왕을 데리고 대포를 책임졌고, 양소, 자삼용왕, 철관도인
장중은 적 진영으로 숨어 들어갔다.

이들의 행동은 매우 위험한 것이었기에 신도들을 데리고 가지 않
았다. 그들은 밤 열두 시경에 각기 자신들의 맡은 일을 실행했다.

장무기 등은 광명정의 길을 잘 알았기 때문에 절벽 위에서 밑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조용히 명나라 진영으로 들어가 사방을 둘러보고
내심 '맙소사!'를 연발했다. 알고 보니 대포마다 옆에는 거의 이십
명의 군졸들을 누워 자도록 했으니 조그만 소리라도 내면 수천 명
의 구졸들을 깨우는 것이라 정말 난감했다.

이때, 범요가 장무기의 귀에다가 몇 마디 속삭이자 장무기는 고개
를 몇 번 끄덕였다. 범요는 곧바로 아래를 향해 몰래 수십 장(??
晙)을 살금살금 걸어가 산 허리의 적 진영에 도착하여 어깨를 으쓱
하며 당당하게 적진을 향해 걸어갔다.

보초병이 물었다.

"누구냐?"

범요가 성을 내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놈아, 왜 소리를 지르느냐! 난 범 어르신네이시다!"

보초병은 그가 큰소리를 치자 갑자기 어리둥절했다. 막 다시 물으
려 할 때 범요는 이미 그의 곁으로 몸을 날려 쌍장을 날리면서 삽
시간에 세 명의 보초병을 해치웠다. 그 소리는 곧 근처의 초소를
깨워 모두가 범요를 향해 소리치며 달려왔다.

범요는 횃불 두 개를 뽑아 들고는 급히 적의 막사로 달려가 불을
지르며 목청을 높여 외쳤다.

"본 어르신네는 명교 광명정의 우사(幀?) 범요다. 나는 혼자다.
용기가 있으면 어디 이 어르신네에게 덤벼라!"

범요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도 계속 불을 질렀다. 보초가 그
를 향해 달려갔지만 어떻게 그를 쫓을 수 있겠는가! 결국 범요의
뒤를 쫓으면서 소리만 쳤다. 얼마 안 가서 막사의 사방 곳곳에 불
이 번지게 됐다. 명나라 군졸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 갑자기 불이
난 것을 보자 적이 기습해 온 것으로 알고는 순식간에 시끌시끌해
졌다. 겨우 칼을 쥐고 막사 밖으로 뛰쳐나왔지만 사방에 불이 붙고
적은 온데간데 없자 갑자기 어리둥절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범요가 계속 사방에 불을 지를 때, 갑자기 큰 막사에서 한 사람이
칼을 쥐고 달려나와 매섭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범요는 그의 말투를 듣자 내심 큰 벼슬아치임을 짐작하고는 곧 그
를 향해 달려가면서 말했다.

"장군, 범 어르신네께서 보호하러 왔네."

그 사람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뭐라고?"

그가 이 말을 끝냈을 때는 이미 범요가 오른손으로 그의 허리 뒤
를 잡아챘고 왼손으로는 그 기세를 몰아 칼을 빼앗아 막사 밖으로
달려나갔다. 한 소대의 명나라 군졸들이 마주 오자 범요는 손에 자
고 있는 사람을 휘둘러 병기로 이용하면서 왼손의 칼을 크게 휘두
르며 앞의 군졸들을 향해 공격해 갔다.

갑자기 한 사람이 소리쳤다.

"잡힌 사람은 손 지휘관이다. 칼을 치워라!"

범요는 '하하'하고 크게 웃으며 그곳을 떠나갔다. 적 진영을 빠져
나오자, 범요가 그자에게 물었다.

"네가 지휘관이라고?"

그 사람이 말했다.

"제기랄, 죽이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 괜한 헛소리는 집어치우
고!"

범요가 말했다.

"과연 사내 대장부답군. 어르신네는 범요라고 한다. 용기 있으면
내일 광명정으로 와서 본 어르신네를 잡아 봐라. 가 봐!"

그가 말을 끝내자마자 오른팔을 휘두르니 그 지휘관은 십몇 장 밖
으로 날아가 '파닥'하는 소리와 함께 막장 내로 떨어졌는데 죽었는
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범요는 손을 털고 장무기쪽으로 몸을
돌려 달려갔다. 바로 이때, 갑자기 산 아래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
려오자 범요는 양소가 이미 성공한 것을 알고는 기뻐했다. 한편으
로 장무기, 조민, 소소, 상승왕 등 네 사람은 범요가 불을 질러 그
곳 초소병들을 놀래키자 그 틈을 타서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먼저
장무기는 곧바로 한 대포 앞으로 달려가서는 쌍장을 휘둘러 한 무
리의 군졸들을 날려보냈고, 곧 쌍장으로 약 수백 근에 달하는 대포
를 잡고는 다른 대포를 향해 던져 버렸다. 대포는 금새 뒤집어지고
수명이 밑에 깔려 죽었다.

조민이 말했다.

"무기, 깊은 계곡으로 던져야 해요."

장무기는 그제서야 이렇게 크고 묵직한 대포는 아무리 쳐도 부술
수 없으니 아예 깊은 계속 밑으로 밀쳐 내는 것이 났다는 것을 깨
달았다.

소소가 상승왕을 엄호하고 조민이 장무기를 엄호하는 동안 상승왕
과 장무기의 손, 발은 쉴 새 없이 '휙', '휙'하며 십 몇 문의 대포
를 산 계곡 밑으로 던지거나 장풍을 날리니 한 장풍에 하나씩 명나
라 군졸들이 피를 토하면서 날아가 사방에 시체가 쌓였다. 명나라
군졸들은 적이 겨우 네 명뿐이자 자신들의 수가 많은 것을 믿고 후
퇴는 안했지만 감히 앞으로 나서서 공격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눈만
크게 뜨고 대포가 계곡 밑으로 던져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입으로
계속 욕설만 퍼부었다.

바로 이때, 산 밑에는 양소 등이 짧은 시간에 이사제의 화약고를
폭파시켰고 동시에 산 위에서도 오행기의 신도들이 밀려와 명나라
군졸들과 격돌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장무기, 조민, 범요, 소소,
상승왕이 대포를 전부 계곡 밑으로 던지고 나서 달려와서는 오행기
를 도와 명나라 군졸들과 맞붙었다. 일반 군졸들은 이들의 적수가
아니었지만 그들은 당황하기는 했어도 전혀 동요없이 필사적으로
싸웠다. 얼마 후, 양소 등이 도착했는데 장무기는 그들 중에서 철
관도인 장중이 안 보이자 놀라면서 물었다.

"장중은 어디 계시오?"

양소는 두 눈에 눈물을 머금고 아무런 대답 없이 양 손을 휘저어
철수의 손짓을 했다.

오행기가 뒤를 막으며 그들 일행이 성화성으로 다 가서야 양소가
말문을 열어 장중의 일을 말해 줬다.

본래 양소 등은 산 밑으로 숨어 들어가서 화약고를 발견했지만 그
주위에는 거의 천 명에 가까운 명나라 군졸들이 지키고 있어서 경
비가 매우 삼엄했고 도저히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장중이 말했다.

"자삼용왕과 위 형님더러 먼저 적 진영에서 소란을 피우게 하시면
저와 교주님은 여기서 기회를 엿볼 수 있을 겁니다."

양소도 그 말을 듣고 일리가 있다고 느껴 곧 위일소와 자삼용왕을
시켜 적 진영으로 들어가 불을 지르며 교란시키도록 했다. 잠시
후, 적 진영에는 대 소란이 일어났지만 화약고를 지키는 군졸들은
명령을 받았는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고 그 소란은 그들
을 놀래키기는 커녕 오히려 경계심만 더욱 불러일으킨 셈이 되었
다.

장중은 대노하여 머리의 철관모를 벗어 병기로 삼고 양소에게 말
했다.

"교주께서는 뒤로 물러서 계십시오. 장중이 가겠습니다!"

그는 양소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앞으로 몸을 튕겨
나갔다. 양소가 크게 놀라 급히 돌아오라고 명령을 내렸으나 장중
은 여전히 듣지 않고 경공을 펼쳐 적의 경비병들을 향해 달려갔다.
양소도 막 도우려고 나서려 할 때, 자삼용왕이 벌써 돌아와 급히
양소를 말렸다.

"교주, 위험한 행동은 삼가해야 합니다!"

눈앞에서 수십 명의 적들이 창으로 장중을 향해 찔러 왔지만 장중
은 반격하지 않고 공중으로 몸을 날려 이 수십 명의 적을 뛰어 넘
다가 불행히도 오른발을 창에 맞았다. 장중은 땅에 떨어진 후에 철
관모를 날려 수십 자루의 창을 비켜 들게 하고는 곧바로 화약고를
향해 달렸는데 이때 등에 또 창을 맞아 그의 몸은 화약고 속으로
떨어졌다.

양소 등은 장중이 두 번씩이나 창에 맞았으니 이제 무사하기가 힘
들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는데 갑자기 화약고 안에서 장중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 오는 것이었다.

"교주께서는 어서 후퇴하십시오!"

양소는 차마 갈 수가 없었지만 자삼용왕이 억지로 그를 끌고 수십
장 밖으로 달려갔다. '쾅!, 쾅'하는 굉음이 나면서 화약고가 폭발
했는데 그 여파는 양소와 자삼용왕을 땅에서 나뒹굴게 할 정도였
다. 두 사람은 몸을 일으켜 달려가다 얼마 못 가서 곧 위일소를 만
나 함께 산 위로 올라가 장무기 등과 회합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명교의 오산인(迹韻?)은 냉겸(??), 주전(蹉祗), 팽영옥(?沮
?), 그리고 이번에 장중(遵猖)까지 모두 전사하였다. 성화청에는
한동안 고요한 적막이 흘렀고 장내의 군웅들은 분노에 찬 처참한
표정으로 몹시 괴로워했다.

양소가 말문을 열었다.

"여러 형제 자매님들, 명교가 이곳 중원에 전해지면서 줄곧 관가
의 금지를 당해 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겪었던 일들은 이미 수
백 년 전부터 명교가 줄곧 겪어 왔던 일들입니다. 그러나 명교는
아무리 험난한 역경을 겪었어도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이것
은 바로 우리 명교가 민심을 얻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들 중에
서 마지막 한 사람만 남게 된다 해도 마땅히 우리의 명교를 계속
널리 포교해야 합니다!"

양소는 이때 이미 고희의 나이에 접어들었는데 그의 말을 들은 군
웅들은 마음 속에 뜨거운 것이 들끓는 것을 느끼며 모두 명나라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워다.

끝으로 양소가 말했다.

"오늘은 여러분들 모두 수고하셨으니 들어가 쉬십시오."



다음날, 오행기의 맹충은 수차례 명나라 군졸의 화기에 의해 밀려
나가자,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나 수비만 했다. 이렇게 며칠을 대
치하는 동안 명나라 군졸들은 또다시 대포를 몰고와서 다시 재정비
하고는 곧 명교 진지를 향해 맹렬히 쏘아 댔다.

위일소가 다시 적 진영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려고 하자 양소가 말
했다.

"이사제가 이번에는 만반의 준비 태세를 했을 것이니 성공하기 힘
들 것이오."

명나라 군대가 갈수록 점점 더 가까이 접근하면서 명교의 사상자
는 점점 더 많아져 갔다. 명교의 인원 중 거의 반 수를 탄약과 군
량미 운송에 썼고 지원도 없는 고립된 상태인지라 버틸 수 있는 시
간은 정말 며칠도 못 되었다. 장무기는 더이상 오행기(迹??)와
천, 지, 풍, 뢰 이들 네 문이 광명정의 이슬로 사라져 가는 것을
볼 수가 없어 양소에게 그의 뜻을 전했다.

이렇게 된 상황에서 양소도 다른 방도가 없자 곧 후토기(馮勅?)
에게 명령을 내려 성화청 안에 화약을 묻게 했다. 모든 조치를 다
적당히 안배한 뒤, 이날 저녁에 양소는 범요, 자삼용왕, 소소, 상
승왕, 위일소 및 오행기(迹??)와 천(?), 지(?), 풍(憚), 뢰
(?) 네 문(?)의 두령들을 전부 성화청 안으로 소집했다. 군웅들
도 현 사태가 험악하다는 파악하고 만약 계속 저항해야 한다면 결
국은 순교(??)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했기에 모두들 침묵만 지키
며 조용히 양소 교주의 분부만 기다리고 있었다.

양소는 이때 비록 큰 변을 당했음에도 얼굴 표정은 이상할 정도로
진정되어 있었다.

"나 양소가 교주의 신분으로서 명교를 더욱 빛나게 할 수 없다는
것이 황송할 따름이오. 현재 상황에서 계속 싸운다는 것은 전혀 무
익한 일이기에 나는 오늘 저녁 광명정에서 철수할 것을 결정했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몇 명의 두령들은 몸을 일으켜 말했다.

"저희들은 죽으면 죽었지 절대 철수는 안겠습니다!"

장무기가 성난 어조로 말했다.

"여러분은 모두 사내 대장부들이오. 그러나 만약 한때의 혈기로
억지를 쓴다면 명교는 그 길로 망하게 되고 결국에는 주원장의 간
교한 계략에 넘어가는 꼴이 되는 것이오. 여러분은 응당 양소 교주
의 분부대로 신중하게 일을 의논해야 합니다."

몸을 일으켰던 두령들은 다시 제자리에 앉았고 양소는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 새벽 열두 시경에 천, 지, 풍, 뢰 네 문과 예금, 거목, 홍
수, 열화, 후토의 다섯 기는 차례대로 광명정에서 철수하시오. 후
토기는 계속 엄호를 하다가 명나라 군대가 성화청 안으로 진격해
들어올 때 곧 화약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후 철수할 것이며 절대로
일시의 혈기를 참지 못하고 싸우는 일은 없도록 하시오. 적의 포위
를 뚫은 뒤에는 적의 이목을 분산시키기 위해 모든 문(?), 혹은
기(?)는 각기 두령들의 인솔 하에 흩어져 활동을 하며 서로간에
계속 연락을 유지하시오. 때가 성숙해지면 우리 다시 한 곳에 모여
대사(暗?)를 도모합시다!"

오행기와 천, 지, 풍, 뢰 네 문의 두령들은 명령에 복종했다.

양소는 아주 냉엄하게 말했다.

"여러분은 우리의 교리에 따라 권선징악(淳?悽?)할 것이며 생활
을 검소하고 절도 있어야 하고 형제들간에는 서로 우애를 돈독히
하시오. 만에 하나 이를 어길 시에는 다른 문족들이 합세하여 징벌
할 것이오!"

각 두령들은 엄숙하게 명을 따랐다.

양소는 서서히 성화청 중앙으로 걸어가더니 성화청 중앙에서 훨훨
타오르는 성화 앞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나머지 사람들도 곧
그를 따라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더니 양 손의 열 손가락을 다 펴서
가슴 앞까지 올려놓아 타오르는 화염 모양을 만들고 양소를 따라서
명교의 경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성화여! 이 몸을 태우니 이글이글 타오르라!
삶이 어찌 즐거우며, 죽은 들 어찌 괴로우랴?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하니 오직 광명의 길로 나아간다.
기쁨도, 즐거움도, 슬픔이나 근심도 모두가 하나의 먼지에 불과
하거늘,

세상 사람 불쌍함은 우환이 많음에서라!
세상 사람 불쌍함은 우환이 많음에서라!"


군웅들은 양소를 따라서 연달아 명교의 경문을 외우고 또 외웠다.
여러 두령들의 얼굴엔 온통 눈물 자국투성이었으며 표정 또한 매우
비분(郵踊)에 차 있었다.

저녁 열 시쯤 되자, 양소는 곧 비밀 통로의 입구를 열고는 각 두
령들로 하여금 하산하여 부하들을 소집하라고 명했다. 명교의 신도
들은 모두 침묵을 지키며 일사불란하게 지하 통로로 들어갔다.

양소, 장무기, 조민, 범요, 자삼용왕, 소소, 상승왕 등 여덟 사람
은 성화 옆에 서서 각 신도들과 일일이 작별을 고하며 몸조심하라
고 당부했다.

끝으로 후토기(馮勅?)의 기사(??)가 말했다.

"교주께서도 철수하십시오. 속하는 부하를 이끌고 엄호하다가 내
일 이 통로로 나가겠습니다."

양소 등은 다 같이 몸조심하라고 이르고는 차례대로 지하 통로로
들어가 산의 뒤쪽으로 향했다. 그들은 약 한 시간을 걸은 후에야
겨우 통로 출구에 도착했다. 양소가 다 왔다고 말하고는 솔선하여
출구 밖으로 나섰다. 여덟 사람이 하나씩 나오면서 고개를 들어보
니 하늘에는 차가운 달이 중천에 떴고 한 무리의 산들은 싸늘하고
맑은 이 밤과 어우러져 매우 고요했다.

이들 여덟 사람이 막 그곳을 떠나려 할 때, 수 장 밖의 한 바위
뒤에서 갑자기 섬광같이 몇 사람의 그림자가 튀어나오면서 그중 한
사람이 찢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 교주, 양 교주 그리고 여러 여협과 대협들, 노부 여기서 기다
린 지 오래 됐소!"


제 17장 : 목숨을 건 도박

여덟 사람이 깜짝 놀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니 눈
앞에는 바로 냉면인(???)과 홍발노인(杓蜈??) 그리고 현명이
로(?閻??)가 서 있었다.

장무기가 매섭게 소리쳤다.

"냉면인, 두 아이는 어쨌느냐?"

냉면인이 말했다.

"몇 년 못 만난 동안에 장 교주의 성격이 더 거칠어진 것 같군
요."

말을 끝낸 후 손을 흔들자, 곧 바위 뒤에서 두 명의 팔구 세 된
아들이(아이들이) 걸어나왔다.

뒤 따라 나온 한 여인네가 말했다.

"장 어르신네, 공자와 아가씨께서는 잘 계시니 마음 푹 놓으세
요."

장무기가 말했다.

"고맙소!"

여자 아이가 물었다.

"아버지, 어머니, 지난 몇 년 동안 왜 우리를 구하러 오시지 않았
나요?"

조민은 목이 메어 말했다.

"녹민아, 어머니와 아버지는 날마다 너희를 그리워했단다."

녹민이 말했다.

"저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리웠어요."

장무기가 물었다.

"은도(肇?)도 잘 있었느냐?"

은도가 답했다.

"형님, 전 잘 있었습니다."

조민은 자신도 모르게 녹민의 곁으로 다가가자 냉면인이 소리쳤
다.

"장 부인, 걸음을 멈추시오!"

조민은 깜짝 놀라 급히 뒤로 몇 걸음 물러났고, 그 사이에 현명이
로는 이미 두 아이를 자신들의 앞에 두고는 손바닥을 아이들의 머
리 위에 얹어 놓았다.

냉면인이 물었다.

"몇 년 동안 못 뵈었는데, 장 교주는 그동안 별고 없으셨소?"

장무기가 말했다.

"당신이 염려해 준 덕분에 모두가 다 잘 있었소. 당신의 신공이
완성됐는지 심히 궁금하군요."

냉면인이 말했다.

"약간의 성공은 이뤘소이다."

장무기가 말했다.

"축하하오."

냉면인이 고맙다고 하자 장무기가 말했다.

"내 자식과 아우를 지난 몇 년 동안 보살펴 주시어 매우 고맙소."

냉면인이 말했다.

"영얘의 총명함과 기지는 그녀의 모친 못지 않더군요. 녹민은 노
부를 몇 번이나 속여 거의 탈출했지만 은도(肇?)는 너무 고지식해
서 한 번도 탈출에 성공하지 못했소. 녹민은 할 수 없이 다시 이
은도 아저씨 곁으로 돌아왔다오. 녹민이 총명하고 똑똑한 것은 말
할 것도 없으나, 더욱이 중요한 것은 어린 나이에도 그토록 의리를
중요시한다는 것이오. 이 점은 정말 노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더
군요."

장무기는 마음이 격동되어 한참 후에야 말할 수 있었다.

"녹민아, 아버지는 네가 그렇게 한 것이 매우 기쁘단다, 알겠니?"

녹민이 말했다.

"아버지, 마음놓으세요. 저는 반드시 아버지의 분부대로 은도 아
저씨 곁에 있을게요."

장무기가 창연히 크게 웃고는 말했다.

"내 이런 자식을 뒀으니 이 이상 뭘 더 바라겠소? 냉면인, 이번에
온 목적이 뭔지 어서 말해 보시오."

냉면인이 말했다.

"노부가 그동안 산속에 은거하면서......."

녹민이 갑자기 소리쳤다.

"거짓말! 당신은 지난 몇 년 동안 계속 응천에 있었잖아요!"

장무기 등은 벌써부터 냉면인과 주원장이 암암리에 연계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었다. 전에는 단지 추측이었는데 이제 녹민의 말을
듣고 나서 그것이 사실로 확인이 되자 모두들 마음 속으로 큰 충격
을 받았다.

냉면인은 그저 웃으며 더이상 말이 없었다.

장무기가 말했다.

"당신의 경천동지할 무공이라면 충분히 자신의 문파를 만들어 온
천하에 이름을 떨칠 수 있을 터인데 어째서 비굴하게 주원장의 앞
잡이로 나서는지 난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렵군요."

냉면인이 말했다.

"장 대협께서 그렇게 칭찬을 아끼시지 않다니 어쩔 수 없이 말해
야겠군요. 솔직히 노부와 주원장은 평등하게 사귀는 사이이지 절대
상관과 부하의 관계가 아니오. 우리는 그저 서로 이용할 따름이라
오."

양소가 냉랭하게 말했다.

"주원장은 명교를 제거하려 하고 당신은 또 그를 위해 일을 하는
데 귀하와 명교가 무슨 원한이 있어서 천응산을 피로 물들였는지
차치하고 먼저 대체 귀하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속시원히 말해 보
시오."

냉면인이 말했다.

"노부가 원하는 것은 온 천하가 이미 알고 있듯이 바로 강호를 통
일해서 모든 문파의 편견을 없애고 무림을 빛내는 것이오."

양소가 말했다.

"아마 그렇지는 않을껄?"

냉면인이 돌연히 소리쳐 물었다.

"양 교주, 그것은 무슨 뜻이오?"

양소가 말했다.

"귀하가 진정 무림을 빛내고 싶다면 어째서 공동, 곤륜, 화산, 개
방의 수많은 고수들을 전부 다 도살했단 말이오? 무림을 빛내? 흥,
내가 보기에는 전부 다 눈가림일 뿐이오. 귀하가 정말로 의도하는
것은 단지 장 교주를 못살게 굴자는 것일 게요!"

냉면인이 소름끼치게 말했다.

"양 교주의 말씀은 정말 틀림이 없군요. 비록 천하에 영웅이 수천
수만에 이르지만, 어쩌겠소? 노부는 장 교주만이 마음에 드니, 장
교주만 귀의하게 할 수 있다면 천하의 무림인을 전부 다 죽인다 해
도 노부는 전혀 상관하지 않을 것이오."

양소가 냉소하며 말했다.

"귀하는 그럴 능력이 없소."

냉면인이 말했다.

"양소, 넌 내가 널 못 죽일 것 같으냐?"

양소가 크게 웃었다.

"양소는 이미 살 만큼 오래 살았으니 귀하께서 어서 손을 써 보시
지!"

냉면인이 말했다.

"좋다, 노부가 네 소원대로......."

그때 장무기가 '잠깐!'하고 소리치자 냉면인은 말을 멈췄다. 장무
기와 냉면인은 서로 오랫동안 바라보더니 한참 후에 장무기가 말했
다.

"내 귀하와 여러 번 만났지만 한번도 속인 적이 없었소. 대장부가
처세함에 있어 마땅히 광명정대해야 할진데, 천응산 위에서 귀하는
어째서 주원장과 관계를 감히 시인 못했소?"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는 정말 건망증이 심하시오. 그날 노부에게 그 일을 물어
왔을 때, 노부는 분명히 주원장과는 한 번밖에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지 않았소?"

장무기가 말했다.

"그런데 당신은 주원장과 무관하다고 했잖소!"

냉면인이 말했다.

"노부는 지금까지 정말로 주원장을 한 번밖에 만난 적이 없소. 단
지 그 만남에서 며칠 밤을 새우면서 같이 계획을 짰고 여태껏 그것
을 실행해 온 것이었소. 노부는 요 몇 해 동안 줄곧 응천에 있었으
며 그후로는 주원장을 만난 적이 없소. 이것은 절대 거짓이 아닌
사실이오."

장무기가 말했다.

"정말로 그렇다면 당신이 했던 강호 무림을 통일한다는 말도 다
세상을 속이는 거짓이었군. 냉면인, 대체 당신의 정체가 무엇이
오?"

냉면인이 말했다.

"그것은 노부가 이미 말하지 않았소? 노부는 단지 강호의 한낱 무
명소졸에 불과했으나 후에 몇 번의 기연을 만나 이제서야 오늘날과
같은 활개를 펼 수가 있었던 것이오. 노부에게 오늘날이 있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알고 보면 전부 다 장 교주의 덕택이었소. 아직
대사(暗?)가 성사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부는 장 교주와 얼굴을 맞
댈 낯이 없구료. 만약 장 교주가 귀순을 한다면 그때는 자연히 상
황히 틀려지겠지요."

장무기가 물었다.

"귀하의 그 제의에 난 이미 내 의사를 표명했을 텐데 왜 이렇게
집요하게 요구하시오?"

냉면인이 말했다.

"장 교주께서 그렇게 고집을 피우신다면 노부도 할 수 없이 무력
을 동원해야겠군요."

장무기가 담담하게 말했다.

"귀하는 또 아이들의 생명을 갖고 날 협박하려는 것이오?"

냉면인이 말했다.

"노부는 지난 몇 년 동안의 수련으로 무공이 좀 늘은 것을 느꼈기
에 이제 장 교주에게 몇 수 가르침을 받을까 하오. 장 교주께서 만
일 더 할 말이 없다면 지금 한판 겨뤄 봅시다."

장무기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차가운 달은 이미 서쪽으
로 기울어 가며 동녘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 오고 있었다.

"귀하께서 정녕 날 죽이려 한다 해도 그리 급히 서두를 것은 없을
것이오. 날이 완전히 밝으면 내가 죽음을 자청할 테니 좀더 기다렸
다 하는 게 어떻소?"

냉면인이 물었다.

"장 교주는 후토기(馮勅?)때문에 마음이 안 놓여서 그러시는 겁
니까?"

장무기가 대답을 안하자 냉면인이 다시 말했다.

"노부가 이미 천, 지, 풍, 뢰 이 네 문과 예금, 거목, 홍수, 열화
이 사기(??)를 내보냈는데 설마 후토기한테 뭘 어쩌겠소? 후토기
가 광명정을 다 폭파시킨 뒤에 노부가 그들을 산 밑으로 내려보낼
것이오. 한낱 몇천 명의 패잔병들이 더이상 무슨 작용을 하겠소?"

장무기가 놀라서 물었다.

"그 일을 어떻게 당신이 알고 있소?"

냉면인이 말했다.

"노부는 다른 장점은 없지만 장 교주의 생각만큼은 어지간히 맞출
수 있소. 노부는 이 일뿐만 아니라 장 교주께서 이 길로 응천으로
가셔서 주원장을 없애려 한다는 것도 알고 있소."

장무기가 말했다.

"그만 둡시다. 귀하의 지략과 선견지명에 나는 두 손을 들어 탄복
할 따름이오. 죽기 전에 아직 한 가지 일을 묻고 싶은데 귀하의 거
짓없는 가르침만 바랄 뿐이오."

냉면인이 말했다.

"말씀하시오."

장무기가 물었다.

"상우춘(位瀞春) 형님의 죽음도 혹시 귀하가 한 짓이 아니오?"

냉면인이 답했다.

"장 교주께서 이미 '춘아(春?)'를 알아봤다면 그것은 물어보나마
나 한 것 아니오?"

장무기는 대노하였다.

"알고 보니 그랬었군. 자, 이제 날 죽여 보시오!"

그는 말을 끝내자 곧 앞으로 두 걸음 나서면서 쌍장에 족히 십이
성의 공력을 넣고는 냉면인을 향해 맹렬히 쏟아 갔다. 냉면인도 추
호의 양보 없이 양 팔을 가슴 높이로 밀쳐 내면서 장무기의 쌍장을
매섭게 공격했다.

바로 이때, 산봉우리에서 경천동지하는 듯한 커다란 굉음이 들려
왔다. 후토기가 광명정에 묻은 화약에 불을 붙인 것이다. 산봉우리
의 폭발음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반경 몇 리(咽) 내를 밝게 비췄다.

냉면인과 장무기의 쌍장이 맞부딪치는 소리는 폭음에 가려졌으나
냉면인은 온몸이 진동하여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장무기는 그가
상우춘을 독살한 데에 매우 화가 나서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았
다. 앞으로 두 걸음 나선 후, 다시 쌍장을 들어 냉면인의 가슴을
향해 공격했다.

냉면인도 손을 들어 맞서자 '퍽'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냉면인
이 뒤로 세 걸음 물러나더니 '왁'하고 피를 한 모금 토했다.

장무기는 증오에 차서 말했다.

"냉면인, 난 이미 양빙 여협(斫?贓?)의 구음진경(?遭??)을
터득했는데 무슨 할 말이 더 있소?"

냉면인은 대답도 하기 전에 또 피를 한 모금 토하더니 몸을 가눌
수 없이 흔드는 것이 곧 쓰러질 것 같았다. 장무기는 미친 듯이 화
를 내며 소리쳤다.

"내 상(位) 형님의 목숨을 내놔라!"

그는 쌍장을 수평으로 내밀어 냉면인을 공격해 갔다.

갑자기 녹장객(?茁選)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장 교주, 멈추시오!"

장무기가 곁눈으로 바라보자 녹장객의 손바닥은 녹민의 머리 위에
놓여 있었고, 학필옹(兎帑?)의 오른손도 은도의 이마에 가 있었
다.

장무기가 기겁을 하면서 손을 멈추자 냉면인은 쓰러질 듯이 땅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얼마 안 돼서 또
한 모금의 피를 분출하듯이 토해냈다.

불빛에 비친 냉면인의 인피면구(?誕??)는 음산하고 공포스럽고
괴상했다. 군웅들은 몸을 부르르 떨며 몸서리치면서 멍청히 서 있
었다.

비밀 통로에서는 철수를 한 후토기가 전부 나왔다. 나오자마자 이
광경을 본 후토기의 두령은 손을 흔들어 부하들로 하여금 냉면인
등을 포위하게 했으나 양소가 소리쳐 중지시키고 철수하라는 손짓
을 했다.

후토기의 신도들은 양소와 장무기에게 공손히 인사한 후 물러갔으
며 얼마 안 가서 산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명교의 천, 지, 풍, 뢰 이 네 문과 오행기는 이를 끝으로 각자 산
속으로 응집하여 관부와 맞서 싸웠다. 양빙은 줄곧 활사인묘(??
?汭) 안에서 기거했었다. 그러나 주원장은 계속 여러 차례 파병하
여 소란을 피우게 했고 급기야 양빙을 화나게 하여 활사인묘를 폭
파하고 부하들을 이끌고 조정과 대적하게 하였다. 후에 그들은 명
교의 천, 지, 풍, 뢰 이 네 문과 오행기가 연합하여 명성을 크게
떨쳤고, 단시일 내에 성을 공략하여 조정 대신을 죽였다. 주원장은
여러 차례 파병을 하여 그들을 소멸하려 했지만 모두 궤멸되고 말
았다. 양빙은 또 의병을 이끌고 사천성(???)과 섬서성에서 분전
을 아끼지 않았지만 홍무 이십팔년(彪俉????)에 반역자에 의해
배신당하여 순국하였고 의군(琮琡)은 그제서야 진압이 됐다.

하지만 각지의 의군들은 여전히 분전하여 주원장과 맞서 싸웠다.
역사에 기록된 내용에 의하면 홍무 원년(彪俉??)부터 주원장은
각종 종교가 서로 결속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시켰고 영락 칠년
(諍也??)까지 각지에서는 계속해서 거사가 일어났다고 하는데 그
중에 가장 큰 주류가 바로 양빙이 이끄는 명교의 의군들이었다. 나
머지 또 한 무리 역시 명교의 의군에 속하며 서북 일대에서 거사를
일으켰는데 자칭 사천왕(???)이라 하는 왕금강노(??鋤?) 전
구성(???)은 자칭 후명황제(避曄??)라고 했고 연호(?泡)는
여전히 용풍(井憚)이라고 했으며 공교롭게도 호(泡)를 천왕(??)
이라 했다. 고복흥(俗?鹹)은 미륵불(?沿尤)이라고 자칭했고 제호
(?泡)와 연호(?泡)는 전부 한산동(褪雲?)의 것을 계승하여 썼으
며 주원장의 통치를 부정했다. 용풍 십일년 팔월에 나평현(軾??)
의 남축아(尋丑?)는 자칭 팽영옥(?沮?)이 다시 소생한 것이라면
서 백성들을 소집하여 거사를 일으켰고 도장을 팠으며 관리들도 죽
였다. 홍무 삼년 구월(彪俉寃???)에 청주인(?搾?) 손고박(誾
召?)이 자칭 황건적이라며 영주(抵搾)를 공격하여 현감 모노(玲
?)를 죽였고, 홍무 육년 정월(彪俉俎?賑?)에 근주의 왕옥이(?
??)는 사람들을 불러들여 향을 피우고 거사를 일으켰다. 홍무 육
년 사월(彪俉俎???)에 나전현(軾址?)의 왕불아(?尤?)는 자칭
미륵불이 소생한 것이라 하며 불호를 써서 전했다. 홍무 십일년 오
월(彪俉???迹?)에 개동인(詵??) 오면아(全??)가 거사를 일
으켰는데 홍무 십팔년 칠월에 비로소 양화의 계책에 유인되어 체포
됐고 사만여 명이 포로로 잡혔다. 홍무 십이년 사월에는 성도(?
?) 가정주(?珍搾) 미현(??) 사람인 팽보귀(??崧)가 명교의
이름으로 의거를 일으켰고......

명교의 반항은 명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각지에서 계속 이어져 나
갔다. 이것은 뒷말이니 여기에서는 더이상 거론하지 않겠다.

한편, 냉면인이 부상하여 조식(?刃)하는 동안 현명이로(?閻?
?)가 녹민과 은도를 잡고 위협하자 장무기는 이길 수 없음을 알고
는 군웅들을 이끌고 응천(足?)으로 향해 달려갔다. 가는 도중에
냉면인이 또 미리 경고를 할까봐 장무기는 쉴 틈 없이 군웅들과 함
께 달려갔다.

이때의 응천부(足?繞)는 주원장이 개조를 시킨 뒤라 보기에 대단
히 번화했다. 장무기, 양소, 범요, 자삼용왕, 소소, 상승왕, 조민
이들 일곱 사람은 제각기 변장을 하고는 응천부로 잠입하여 각기
소식을 정탐했다.

저녁 무렵이 되자 모두들 응천부의 서쪽 관제묘(??猊)에 모였
다.

장무기가 말했다.

"난 확실히 주원장이 이곳 응천부에 있다는 소식을 알아냈소."

양소가 말했다.

"나와 위 형제가 궁궐 부근을 탐색해 보니 주원장이 이미 우리가
온 것을 알고 있는지 경비가 매우 삼엄했소."

곧이어 자삼용왕이 말했다.

"동쪽 성문이 궁궐과 비교적 가까워서 난 이미 말을 준비해 뒀으
니 일을 성사한 후에 바로 동문을 통해 나가면 될 거예요."
"궁궐 안의 방이 한두 개도 아니고 주원장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
조차 파악이 안 된 상태이니 성공하기는 쉽지가 않을 거요."

라고 장무기가 말하자 위일소가 조급히 말했다.

"날짜도 얼마 안 남았는데 냉면인이 다시 나타나는 것에 방비해야
할 것이오. 어쨌든 간에 오늘 저녁에는 반드시 성공을 해야 하오."

자삼용왕이 웃으면서 말했다.

"위 오라버니는 언제나 성급하군요. 내게 작은 꾀가 하나 있어
요."

장무기가 말했다.

"어서 말씀해 보십시오."

자삼용왕이 말했다.

"주원장이 파양호에서 진우량(?定馭, ?=語)을 격패한 후 잡은
포로 중에서 미녀 한 명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진우량의 빈으로서
이름이 서씨였어요. 듣기로는 주원장은 그녀를 매우 총애한다고 했
어요. 내 이미 서씨의 거처를 알아냈으니 열두 시경에 우리가 그곳
으로 가면 어쩌면 그곳에서 주원장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요."

모두들 좋은 묘안이라고 말했다.

양소가 말했다.

"이렇게 합시다. 위형, 교주 부인, 소소, 상승왕, 이렇게 네 분은
문밖에서 열두 시경쯤에 성을 지키는 보초병을 제압하여 성문을 열
고, 장 교주님과 범요 형, 자삼용왕 및 나, 이렇게 네 사람은 궁궐
로 들어가 그 서씨를 찾아가는 거요."

군웅들은 모두 찬성하고 휴식에 들어갔고 더이상은 거론하지 않았
다.

-계속-
寔竊 暗泰??只?蹂?

[??] 卒 ? 艾 汝 是

? 寃 珣
제 17장 : 목숨을 건 도박 #2/3

한편, 냉면인은 몇 시간을 조식한 후에야 비로소 내상(?轅)이 약
간 치유되자 곧 광명정으로 올라가 이사제에게 어서 응천에 사람을
보내 주원장에게 경고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사제는 감히 허술하
게 할 수 없어 곧 건장한 병졸 몇 명을 골라 각자 열 필의 준마를
주어 주야로 응천을 향해 달리게 했다.

장무기 등이 막 응천에 발을 들여놨을 때 경고하러 온 병졸들도
동시에 응천에 도착하여 곧바로 궁궐로 들어가 냉면인의 서신을 주
원장에게 건네줬다.

주원장은 봉투를 뜯어서 서신 내용을 본 후에 대경실색을 했다.
서신의 내용은 이러했다.


'장무기의 무공은 더욱 증진하여 저희들도 적수가 못 됐습니다.
지금 장무기, 양소, 범요, 자삼용왕 대기사(殃屍?), 청익복왕 위
일소, 조민, 소소, 상승왕 등 여덟 사람이 이미 응천으로 떠나 성
상을 시해하려 하니 방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도 곧 그곳에 당
도할 것입니다. 냉면인 씀.'


주원장은 원래 냉면인이 이번에는 반드시 장무기 등을 잡아올 거
라 생각했는데 세상일이란 정말 알다가도 모른다더니 장무기의 무
공이 그토록 신통할 줄은 미처 몰랐다. 주원장은 명교의 인물에 대
해 매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여덟 사람의 무공이 전부 당
세 무림의 일류 고수이고 그들에 대적할 고수를 찾기 힘들다는 것
을 알고 있었다. 이 여덟 명의 마두들이 응천으로 왔으니 아무리
방비를 튼튼히 한다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 내심으로 매우 당황
하기 시작했다.

주원장은 궁전에서 좌불안석으로 매우 불안해하며 한참 배회하다
가 저녁 무렵에서야 겨우 한 계책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계책의
성공 여부는 이 명나라 개국 황제인 주원장조차도 내심 필승의 자
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 방법 외에 더는 다른 방도가 없어 할 수
없이 밀고 나가기로 했다. 주원장은 곧 도성의 수위를 책임지는 주
문정(錯澳賑)을 불러들여서 말했다.

"문정, 오늘 저녁에는 성문을 닫지 말고 모두 열어 놓게. 그리고
길에서 순찰을 도는 순찰병들도 모두 철수시키고 그대는 오천 여명
의 기마병들을 이끌고 이러이러하라!"

주문정은 분부대로 떠났다. 주원장은 또 궁안의 총관을 불러서 말
했다.

"오늘 저녁에 어떠한 일이 생겨도 궁내의 수위들은 모르는 척해야
한다. 만약 위배할 경우에는 누구든 능지처참할 것이다!"

총관은 분부대로 물러가 성상의 성지를 전달한 것은 말할 것도 없
었다.

하늘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주원장은 또 명을 내려 좌상(侘爲) 이
선장(??只)을 불러들여와 신속히 응천에 있는 문무백관을 속히
입궁시켜 대사를 의논하게 했다. 얼마 안돼서 좌상 이선장, 태사령
(梔??) 유기(??), 우사낭중(幀??猖) 왕광양(??灼), 좌사도
사(侘???) 장창(遵貼), 주승(錯怡), 섭태(?幟), 송겸(陰?) 등
수십 명의 문무백관들이 속속히 입궁하여 주원장을 알현했다.

이들 문무백관들은 아직 식사도 하기 전에 갑자기 태조 주원장의
부름을 받고 황급히 달려온 것이었다. 문무백관이 절을 하고 몸을
일으킨 후에도 주원장은 아무런 한 마디 말도 없이 그저 수심에 가
득찬 얼굴로 금란보좌에 앉아 있기만 했다. 이들 백관들은 서로 얼
굴을 마주 볼 뿐, 오늘 성상에게 무슨 중요한 일이 있는지 궁금했
지만 성상이 말을 하지 않으니 여러 신하들이 어찌 감히 묻겠는가!

이때 이미 야색은 짙어져 여러 사람들의 배 속에서는 계속 '꼬르
륵, 꼬르륵'하고 짖어댔지만 주원장은 아랑곳 않고 용상에 높히 앉
아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 여러 신하들이 몰래 바라보니
성상의 나이는 이제 약 쉰 살로 아래 턱은 앞으로 약간 튀어 나와
마치 한 자루 쇠삽과 같았으며, 얼굴은 울퉁불퉁한 것이 많은 검은
점들로 가득했고, 두 눈은 깊이 쑥 들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주원장의 이러한 외모는 못 생겼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괴이하다
고 하는 것이 더욱 적당하였다. 이 점에 대해서는 주원장 자신도
스스로 알고는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간사한 것이 인간인지라 그는 앞뒤로 여러 유명 화가를 불러와 그
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는데, 이들 화가들이 그린 그림은 매우 사실
에 가까웠으며 사실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주원장의 마음에는 안
들었다. 후에 매우 총명한 한 화가가 얼굴의 윤곽은 매우 닮게 그
렸으나 분위기는 온통 화기애애하고 자상하게 그려내니 그제서야
사람을 시켜 이 그림을 복사해서 여러 대신들에게 나눠줬다. (지은
이 주: 이 같은 다른 두 초상화는 아직도 그 전본이 남아 있다.)

또 몇 시간이 흐르자 대신들은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파 왔는데
그제서야 주원장은 명령을 내려 주안상을 내와 대신들을 대접했다.
대신들은 겨우 한숨을 돌려 황제의 성은에 감사한 후에 자리에 앉
았다. 대신들 모두가 이제는 좀 배불리 먹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웬걸, 요리가 상에 올라오자 모두 깜짝 놀랐다.


새벽 열두 시가 되자 장무기, 양소, 범요, 자삼용왕은 궁궐 안으
로 들어갔고 조민 등은 조금 후에 출발하여 몰래 동쪽 성문으로 갔
다.

한편, 장무기 등은 자삼용왕을 따라 절세의 경공을 전개하여 얼마
후 곧 후궁 안으로 몰래 들어가서는 서씨의 궁실로 찾아갔다. 네
사람은 각기 사방을 포위하였다. 장무기가 소리치자 네 사람은 동
시에 창문을 부수고 내실로 쳐들어 갔다.

안에 있던 서씨는 깜짝 놀라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사색이 됐다.
막 소리를 치려 할 때 장무기는 벌써 도룡도(艾汝埃)를 서씨의 목
에 갖다 대고 매섭게 말했다.

"소리치지 마라. 안 그러면 널 베어버릴 것이다!"

서씨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기도 바쁜데 어디 감히 소리 지를
정신이나 있겠는가. 양소, 범요 그리고 자삼용왕은 구석구석을 살
펴 봤지만 주원장의 종적은 찾을 수 없었다.

장무기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주원장이 어디 있는지 어서 말하라!"

서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천첩은 이미 임신한 몸이라 성상께서 안 오신 지 며칠이나 됐습
니다. 천첩은 정말 모릅니다."

장무기는 깜짝 놀라 급히 도룡도를 치웠는데 과연 이 미부인의 배
가 불룩한 것이 그녀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보여줬다. 장무기는 말
을 더듬으면서 사과했다.

"본인은 정말 몰랐소. 용서해 주시오."

서씨가 어찌 감히 말을 하겠는가. 그저 전전긍긍하며 이불을 끌어
올려 맨살이 드러난 팔을 가리기에 바빴다. 장무기 등은 매우 궁색
해져서 급히 나왔다.

"황비께서는 무례를 용서하시오."

하는 자삼용왕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서씨의 혈도를 눌러
그녀로 하여금 사십 시간 동안 혼수했다가 저절로 혈도가 풀리면서
몸에는 전혀 이상이 없이 깨어나게 한 후에야 비로소 방 밖으로 뛰
어나왔다.

네 사람은 잠시 침묵을 한 뒤에 곧 몸을 날려 옥상으로 올라가 사
방을 둘러봤지만 동북쪽이 온통 불빛으로 밝혀져 있는 것이 보일
뿐 사람들은 보이지가 않았다. 양소가 이상히 여기며 말했다.

"저곳은 주원장의 의사청인데 이 새벽에 무슨 급한 공무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범요가 말했다.

"알 게 뭡니까, 우리 그냥 가 봅시다."

네 사람의 신법은 귀신보다 더 빨라 금새 주원장의 궁전 옆까지
날아갔다. 범요가 한 번 훑어본 후에 속삭였다.

"교주님, 궁전으로 가죠."

장무기가 고개를 약간 끄덕여 보이자 네 사람은 숨어 있던 곳에서
몸을 튕기며 나와 소리없이 조용히 대전(暗?) 위에 떨어졌다. 몸
을 숙여 내려다보니 주원장이 여러 대신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중
이었다. 범요가 막 공격하려 하자 장무기가 잠시 기다리라고 알렸
다.

네 사람이 어리둥절하여 내려다보니 대신들과 주원장이 먹는 음식
은 바로 허기에 찌든 백성들이나 먹는 산나물이었다.

바로 이때, 주원장이 목소리를 내리깔면서 침중하게 말했다.

"경들은 짐의 말을 들어보시오. 과인이 경들을 일부러 박대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백성들의 처지를 몸소 느껴보라는 것이오. 해마
다 병화(??)와 인화(??)로 인해 곳곳은 쇠퇴해져 갔고, 온 천
하가 가시밭길처럼 험난해져서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만신
창이가 된 백성들의 모습이오. 보고에 의하면 하북평원(泰溶??)
일대에는 도처에 가시덤불만이 있고 사람의 시체가 작은 산을 이룬
채 인가를 볼 수가 없다고 했소. 다른 지역도 거의 그와 비슷하여
굶어 죽은 시체가 곳곳에 널려있지 않은 곳이 없고 온통 피폐된 논
밭이며 심지어는 서로 자식을 교환해서 먹는 참사도 생기는 상태라
고 하오. 오늘 우리들이 먹는 이 음식은 백성들에게는 산해진미인
것이오. 과인은 일국의 군주로서 매번 이 일만 생각하면 수면을 이
루지 못해 밤잠을 설치기 부지기수요. 오늘 경들을 불러들인 것은
바로 이 일을 논의하기 위해서요. 경들은 할 말이 있으면 솔직히
말해서 짐과 함께 고민을 나눕시다."

삽시간에 문무백관들은 저마다 입을 모아 성상의 공덕과 영명(苧
曄)함을 크게 찬양했다. 계속 듣고 있던 장무기가 따분하여 더이상
참을 수 없어 막 내려가려고 할 때, 갑자기 주원장의 말소리가 또
들려왔다.

"찬양은 이제 그만 하시오. 만약 정말로 경들의 찬양대로라면 헐
벗고 배고픈 백성은 벌써 의식(縱燐)이 풍족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
내고 있었을 것이오. 헛소리들은 그만하고 어서 좋은 묘안이나 생
각해 보시오!"

장무기는 어리둥절했지만 내심 주원장은 원 순제(???)처럼 어
리석지만은 않구나 하고 생각하고는 주원장에게 어떤 계획이 있는
지 두고 보기로 하고 마음을 잠시 진정시켰다.

유기(??)가 금방 진언을 했다.

"성상께 아룁니다. 작금의 주요 현안은 피난민들을 안정시키고 그
들에게 밭을 개간하도록 장려하는 것입니다. 해마다 곳곳에 전쟁이
일어나 백성들의 가난은 더욱 극심해 졌으니 성상께서 성은을 베푸
시어 농민들에게 삼 년 동안 면세를 해주십시오."

주원장이 말했다.

"태사령(梔??)의 말에 일리가 있군. 그렇게 실행하도록 하시
오."

다음에는 주승(錯怡)이 말했다.

"성상께 아룁니다. 원나라가 망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노비를
비축하는 제도 때문이었기도 합니다. 원나라의 고관들은 좋은 논밭
을 차지하고 수천, 수만의 노예를 갖고 있어서 조정의 세수(紐?)
에도 매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원나라가 비록 멸망은 했지만 수
많은 명문 귀족들은 여전히 폐단을 답습하고 있으니 성상께서 조치
하여 주십시오."

장무기가 듣고 나니 과연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주원장이 이미
국토를 갈라서 여러 왕을 봉했으니 이것은 필시 처리하기가 매우
곤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다시 주원장에게로 시선을 돌려 만약
주원장이 이번 일을 물리친다면 즉시 그를 죽일 것을 내심 결정하
고 있었다.

주원장도 과연 그 일의 중요함을 알고는 한참 동안 신음을 한 후
에 말했다.

"경의 말에도 일리가 있으니, 그럼 이렇게 합시다. 전쟁으로 인해
노비가 된 사람들은 모두 풀어 주라고 노예주들에게 엄히 명령을
내리고, 가난과 배고픔 때문에 노예로 팔려 간 사람들은 조정에서
대신 몸값을 내 주시오. 그리고 조정 왕후장상(?豊竣爲)들의 노비
는 아무리 많아도 스무 명을 못 넘게 하고 나머지는 전부 풀어주게
하며 이 명령을 위배하는 자는 황족이든 누구든 간에 모두 처벌할
것임을 알리시오."

주승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목이 메어 말했다.

"성상의 현명하심은 곧 천하 백성들의 복입니다. 소신들은 영명한
군주를 모실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나머지 대신들도 감동하여 대전에 엎드려 만세를 삼창했다. 이때
주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들은 일어나시오. 짐도 역시 평민 출신으로 하늘의 보살핌을
받는 처지에 어찌 내 근본을 잊겠소? 좌승상(侘履爲), 오늘 회의의
내용을 경이 밤새워 문서로 작성하여 내일 아침 전국 각지로 보내
시오. 절대 실수가 없어야 하오."

이선장이 응답하자, 주원장이 또 말했다.

"걸음은 빨리 걸을수록 걸려 넘어지고 현은 급히 탈수록 끊어지며
백성이 궁해지면 소란이 생기는 것처럼, 오늘날의 위정자들은 관용
을 베풀어야 하오. 관용을 베풀어야 민심을 얻을 수 있고 그 반대
면 민심을 잃게 되는 것이오. 이제 막 안정을 되찾았지만 백성들은
이미 재력이 고갈되어 마치 막 날 줄 아는 새와 같으니 그들의 깃
털을 뽑아서는 아니되고, 새로 심은 나무처럼 그들의 뿌리를 흔들
어서는 절대 안 될 것이오. 그들을 안식시켜서......"

여기까지 듣던 장무기는 돌연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
이 들며 귓속에서는 계속 주원장의 말이 메아리쳐 왔다. '이제 막
안정을 찾았지만 백성들은 이미 재력이 고갈되어 마치 막 날 줄 아
는 새와 같으니 그들의 깃털을 뽑아서는 아니되고......' 장무기는
생각했다. 자신이 만약 단칼에 주원장을 베어버린다면 명교의 복수
를 할 수는 있겠지만 그로 인해서 세상은 다시 어지러워질 것이다.
순간, 머리 속이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 망연히 양소를 바라보았
다.

양소가 말했다.

"개인의 복수는 작은 일이고 국가의 대사가 우선이겠지요."

장무기도 마음 속으로 생각을 굳히고 막 떠나려 했다. 그러나 범
요가 어찌 이 한을, 어떻게 명교의 이 핏빛 어린 원한을 그냥 잊을
수 있겠는가. 마음 속의 분노를 더이상 가눌 수 없어 '챙'하는 소
리와 함께 검을 뽑아들었다. 장무기와 양소가 급히 말렸다.

"범형, 멈추시오!"

그러나 '쉭'하는 소리와 함께 장검은 이미 주원장 바로 앞의 탁상
에 꽂혔으며 그 검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검신(盛壬)이 전부 박
혀 들어갔다. 범요가 한스럽게 말했다.

"이놈은 갖은 만행을 벌여서 조금이라도 징벌을 않고는 도저히 내
한을 풀 수가 없습니다."

이때 대전(暗?) 안은 이미 난장판이 됐다.

양소가 급히 말했다.

"어서 갑시다!"

네 사람은 곧 궁궐의 처마 위에서 경공을 펼쳐 동문쪽으로 향해
달려갔다. 자삼용왕이 말했다.

"범 오라버니가 아까 하신 일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주원장
에게 경고가 되니까요. 만약 그가 또 한 번 불의를 저지르면 그때
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지요."

양소와 장무기가 말했다.

"자삼용왕의 말에 정말 일리가 있군요."

사실 범요의 무공 실력으로 주원장을 죽이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대국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단
지 주원장에게 경고하는 것만으로 끝낸 것이다.

네 사람은 동문에서 조민 등과 회합하고 말을 재촉하여 서쪽을 향
해 달려갔다.

한편으로 주원장은 장검이 깊숙히 탁상에 꽂힌 것을 보고 자신의
계책이 성공을 거둔 것을 알고는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띄우더니
심히 안심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내심 깊은 곳에서는 솔직히 떨렸
다. 만약 이 장검이 이대로 탁상이 아닌 자신에게로 왔다면 어디
목숨이 남아 있겠는가!

명교 장무기 등의 무공을 주원장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검
이 탁상에 꽂힌 것이 결코 그들의 실수가 아니라 경고 및 위협의
의미를 띤 것임을 알기에 마음 속으로 미미하게 냉소를 띄웠다. 대
신들이 놀라서 당황을 하는 것을 보자 주원장은 담담하게 말했다.

"짐은 하늘의 보살핌을 받은 몸인데 이깟 도적놈들이 어찌 짐을
다칠 수 있겠는가? 경들은 진정하고 이제 자리에 앉읍시다."

대신들은 자객이 사라지자 마음을 가라앉혔으며 또 성상이 그토록
의연하게 위기에 대처하자 또 한 차례의 찬양을 한 것은 말할 나위
도 없었고 주원장은 단지 미소만 지을 뿐 말은 안했다.


장무기의 인품과 성격은 아마도 주원장이 장무기 본인보다 더 잘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냉면인의 서신을 받은 후, 주원장은 사실
한때 공포에 휩싸였으나 한참 동안 생각을 한 후에 마침내 한 계책
이 떠올랐다.

양소가 비록 현재 교주 자리에 앉아 있지만 장무기한테는 거의 무
조건 복종을 하다시피 했다. 오늘 주원장이 한 이 모든 연극은 사
실 오로지 한 사람, 장무기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장무기가
분명 대국을 염두에 두어 결국은 자신을 죽이려는 생각을 그만 둘
것을 주원장은 이미 계산에 넣은 것이다. 하지만 자삼용왕과 범요,
그리고 위일소 등이 과연 장무기의 명에 따를 것인지에 대해서는
주원장 본인도 자신이 없었다. 단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모험을 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비록 요행히 이 난관을 피
했지만 이 여덟 사람을 죽이지 못하면 평생 후환이 될 것도 알았기
에 주문정을 시켜 오천명의 궁수(恂?)를 거느리고 도중에 매복하
고 있다가 장무기 등이 동문을 나서기만 하면 죽이라고 하였다.

과연 그의 짐작대로 얼마 후 수위병이 그들 여덟 사람이 동문을
나섰다고 보고하자 주원장은 내심 쾌재를 부르면서 주문정에게서
후환을 없앴다는 승전 보고가 오기만을 학수고대했다.

한편, 조민 등은 암살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몇 번의 탄식을 했
고, 그 난감한 상황에서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는 것에 동감
했다. 얼마 안 가서 곧 말머리를 돌려 냉면인을 막고 녹민과 은도
를 구하기 위해 서쪽을 향해 달려갔다.

잠시 후, 여덟 필의 말이 한 산길에 접어들었는데 양쪽은 모두 수
십 장 높이에 달하는 절벽이었으며 맨 꼭대기 위에는 별들이 이 길
고 긴 하늘에서 반짝이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갑자기 한 마디 호령이 들리더니 앞뒤로 각기 천여 명의 군졸들이
나타났는데 손에는 전부 활과 화살을 들고서 겹겹이 십여 층으로
앞, 뒤 양쪽 길을 꽉 막았다. 여덟 사람은 깜짝 놀라 급히 말을 멈
추었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함정에 빠져 버린 것이다.

절벽 위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 대담한 자객들아, 어서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여덟 사람은 고개를 들어 위를 보더니 금새 얼굴색이 변했다. 절
벽 맨 꼭대기 위에도 양쪽으로 거의 천오백여 명의 군졸이 역시 손
에 활과 화살을 들고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양소가 말했다.

"장군은 누구며 왜 우리보고 자객이라고 하는 것이오?"

왼쪽 절벽에서 한 사람이 말했다.

"난 주문정이다. 너희 여덟 사람은 응천으로 잠입하여 황제 폐하
를 암살하려 했거늘 어서 죄를 시인하지 않고 뭘 꾸물대느냐?"

양소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주 장군이었군요. 주 장군께서는 우리가 누구인
알고 계시오?"

주문정이 말했다.

"너희가 자객이면 그뿐이지 누구이든 내가 알 게 뭐냐."

양소가 말했다.

"난 양소요. 그리고 여기 몇 분은 명교의 장무기 교주, 광명우사
범요, 자삼용왕 대기사, 청익복왕 위일소, 장교주의 부인 조민, 소
소, 그리고 상승왕이시오."

주문정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떻게 여러분들이......"

당초 주원장은 장무기 등이 동문쪽으로 나와서는 곧 녹민과 은도
를 구하려고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려갈 것을 미리 예측하고는
자신의 친조카인 주문정을 시켜 군졸들을 거느리고 이곳에 매복을
하게 하였다. 하지만 주원장은 자객이 누구란 것은 말하지 않고 단
지 자객이 여덟 사람인 것만 얘기한 것이다. 주문정은 오래 기다리
다 이제 겨우 여덟 명의 기사가 함정으로 들어오자 호령하여 이들
을 포위했지만 이들이 명교의 각 수령들일 줄은 생각도 못한지라
깜짝 놀라 할 말을 잃었다.

양소가 말했다.

"주 장군은 아마 우리 명교의 사정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주원
장이 이사제를 필두로 하여 이미 명교의 광명정을 폭파하게 했소.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여기 응천으로 온 것이오. 하지만 주원장의
민정을 걱정하고 생각해 주는 행동에 우리는 천하창생을 위해 우리
자신의 개인 원한을 버리고 그냥 궁궐을 빠져나오는 길이며 결코
암살을 하지는 않았소."

주문정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사제가 이미 명교를 멸했단 말이오?"

양소가 차갑게 웃었다.

"이사제의 그깟 재주로 어찌 명교를 멸할 수 있겠소? 허나 그는
십만의 정예 군대를 이끌고 왔기에 우리도 정면 대결을 할 수가 없
어 안전을 기해 잠시 자리를 피한 것이오."

주문정이 '어'하고 소리내며 물었다.

"정녕 그렇다면 여러분은 저를 따라 응천으로 함께 가셔서 본인이
성상께 아뢴 다음에 떠나시면 어떻겠소?"

양소가 되물었다.

"주 장군께서는 우리들을 다 죽이려는 것이오?"

주문정이 말했다.

"제가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단지 어명을 받드는 몸
이라 단지 용서만 바랄 뿐입니다."

갑자기 조민이 속삭였다.

"모두들 어서 앞의 바위 밑으로 가세요!"

그들은 갑자기 닥친 일에 놀라 얼이 빠져있었으나 조민만이 세심
히 지형을 관찰한 것이다. 그들이 말을 듣고는 앞을 바라보니 과연
수장(?晙) 앞의 왼쪽 길에 안으로 파여진 벽이 보였는데 여덟 사
람은 족히 수용할 수 있는 크기였다. 여덟 사람은 길게 생각할 것
도 없이 말을 재촉해서 바위 밑까지 달려가 말에서 내리고는 말로
몸 앞을 가렸다.

양소가 크게 소리쳤다.

"모든 병사들은 들으시오. 난 명교 교주 양소요. 우리가 주원장을
죽이려 했던 것은 결코 황제가 되려고 한 것이 아니오. 우리는 단
지 주원장이 우리 명교의 신도들을 무참히 죽인 데 대해 분노하여
어쩔 수 없이 항쟁에서 나선 것이오. 주장군, 당신도 명을 받고 온
몸이니 난처하게 하진 않겠소. 어서 명령을 내리시오."

-계속-
寔竊 暗泰??只?蹂?

[??] 卒 ? 艾 汝 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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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장 : 목숨을 건 도박 #3/3


장무기도 이미 도룡도를 꺼내 들어 양소와 서로 어깨를 같이 하고
있었다.

한편 주문정 역시 결정하기가 매우 난처하여 한참 동안 침묵이 흐
른 뒤에 쉰 목소리로 말했다.

"본인은 군주(宿嵯)의 녹을 먹고 사니 마땅히 충성을 다 바쳐 일
을 해야 하는 것을 그대들은 이해해 주시기 바라오."

양소가 소리 높여 길게 웃으며 말했다.

"주 장군 손에 죽는다 해도 원망은 않겠소!"

주문정도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내렸다.

"쏴라!"
삽시간에 화살이 바람처럼 쏟아져 오고 양소와 장무기는 군웅들
앞에서 병기를 휘둘러 몸 앞으로 온 화살들을 전부 비껴놨다. 여덟
필의 말은 화살에 맞아 몇 장(晙)을 달려가서는 전부 다 쓰러졌는
데 말에는 거의 수십 촉의 화살이 꽂혀 있었다.

범요와 자삼용왕이 막 앞으로 나서려는 참에 장무기가 말했다.

"여러분은 잠시 기다렸다가 우리 둘이 더이상 버티지 못할 때 다
시 나서시오."

장무기는 입으로 말을 하면서도 손으로는 계속 도룡도를 휘둘러
이미 수십 촉의 화살을 비껴냈다.

양소가 말했다.

"화살을 주으시오!"

범소와 자삼용왕은 무슨 뜻인지 감지하고는 곧 검을 휘둘러 몸 앞
을 가리면서 얼마 안 되어 각자 한아름의 화살을 주워와 양소와 장
무기의 몸 뒤로 물러섰다.

'쉭쉭'하는 소리와 함께 두 자루의 긴 화살이 양소와 장무기의 사
이를 뚫고 소소를 향해 날아갔다. 소소는 급히 옆으로 피했으나 화
살은 '탁'하는 소리와 함께 소소의 머리카락을 뚫고 벽에 맞았다가
다시 땅에 떨어졌고 소소 머리의 파란 끈들도 몇 가닥 끊어졌다.
상승왕은 몹시 다급해져서 소소의 몸 앞으로 급히 갔다. 나머지 한
자루 화살은 범요가 낚아채어 손에 넣었다. 범요와 자삼용왕은 대
노하여 손에 있던 긴 화살에 공력을 가하여서 적을 향해 던졌다.
두 마디의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두 명의 궁수가 절벽 위에서 떨어
졌는데 그들이 갖고 있던 활이 공교롭게도 장무기의 발 옆으로 떨
어졌다. 장무기가 왼발로 뒤(를 향해서)로 치니 상승왕과 조민이
각기 한 개씩 잡고는 곧 위를 향해 시위를 당기자 거의 백발백중인
것이 매번 실수가 없었다. 더구나 범요와 자삼용왕이 동시에 공격
에 가담하자 순식간에 십여 명의 적들이 위에서 떨어졌다. 이때 날
아오던 화살도 처음보다는 약간 수그러지자 범요와 자삼용왕은 또
몇 아름의 화살과 십여 개의 활을 주워왔다.

장무기와 양소는 앞에서 화살을 막았고 기타 다른 사람들은 뒤에
서 계속 화살을 쏴대어 얼마 안 가서 또 수십 명의 적을 쏴 죽였
다. 적들이 점점 겁을 먹고 분분히 뒤로 물러서게 되면서 적의 공
세가 늦춰졌다.

조민이 말했다.

"어서 빨리 죽은 말들을 끌고 오세요!"

장무기, 양소, 범요, 위일소 이 네 사람은 급히 달려나가 각기 말
두 마리씩을 끌고 눈 깜짝할 사이에 돌아왔다. 그들은 죽은 말들을
앞에다 반원 형으로 놓아 방패막을 형성했다.

갑자기 몸 뒤의 절벽 꼭대기에서 주문정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 본인을 따라 그만 응천으로 돌아갑시다."

위일소가 말했다.

"주 노형,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는데 더이상 예절을 따질 필요는
없소. 어서 통쾌히 공격이나 하시오!"

세 장군이 동시에 답했다.

"네!"

앞의 절벽 위에서 또다시 화살이 비오듯 날아왔다. 장무기와 양소
는 여전히 앞에서 화살을 막고 있었으며 나머지도 계속 화살을 쏘
아대니 명나라의 궁수들이 화살에 맞아 밑으로 떨어지며 지르는 비
명 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조민은 길 양 옆에 있던 이천 명의 적군들이 점점 거리를 좁혀오
자 내심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설사 명나라 궁수들이 맞은편의 아
군들이 맞을까봐 화살을 못 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인해전술로 온
다면 이 이천여 명의 군사들에 의해 깔려죽을 것이 뻔했지 때문이
었다.

바로 이때, 이(?) 지휘관의 명령이 들려왔다.

"활을 쏴라!"

조민은 이런 식으로 활을 쏜다면 어떻게 우리를 맞출 수 있겠는가
하고 내심 의아해 했다. 이(?) 지휘관 휘하의 명나라 궁수들은 화
살을 활에 끼운 후 당(案) 지휘관의 부하를 향해 쏘아 댔고, 뒤쪽
의 궁수들은 위로 주문정과 장(遵) 지휘관을 향해 쏘아댔다. 당
(案) 지휘관은 활 한 번 쏴보지 못하고 화살에 맞아 땅에 쓰러져
죽었다. 주문정은 이 모양을 보자 놀라고 화가 나서 소리쳤다.

"이(?) 지휘관, 당신은 반역을 하려는 것이오?"

이(?) 지휘관이 말했다.

"주 장군, 용서해 주십시오. 본인과 부하들은 원래 명교 예금기의
신도들입니다. 장 교주님은 우리 예금기에게는 생명의 은인이신데
어찌 그냥 모르는 체하겠습니까!"

이 좁은 산길에서는 화살들이 어지러이 날아들어 가고 땅에 쓰러
지는 사람 또한 점점 많아져 갔다. 명나라 궁수들은 높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기에 얼마 안 가서 이(?) 지휘관의 부하 중 거의
반 수가 죽어갔다.

조민이 큰소리로 외쳤다.

"이(?) 지휘관, 어서 빨리 왼쪽으로 붙어서 먼저 오른쪽의 적을
공격하세요!"

이(?) 지휘관은 그녀의 지시에 따라 행동을 취했고, 곧 사백 명
이 전부 등을 왼쪽 벽에 붙이고는 오른쪽 절벽 위의 장(遵) 지휘관
부하들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그러자 반대편 주문정쪽의 일천여
명나라 궁수들은 눈만 멀건히 뜬 채 전혀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뒤쪽의 당(案) 지휘관 부하들은 이(?) 지휘관 부하들이 위를 향
해 공격하는 틈을 타서 시체들을 뛰어 넘어 신속히 장무기가 있는
쪽으로 접근해 갔다.

장무기는 크게 고함을 지르면서 적들을 향해 도룡도를 휘둘러 갔
고 양소도 곧 뒤따랐다. 두 사람이 위풍당당하게 위력을 발휘하며
병기가 거쳐간 곳에는 약하게는 팔이나 다리가 잘려 나갔고 심하게
는 허리나 머리가 잘려져 나갔다. 두 사람은 한참 정신없이 계속
쓸어가면서 당(案) 지휘관 부하의 거의 반 수를 처치했고 나머지는
일 리(?咽) 밖으로 쫓겨갔다. 남아 있는 자들도 형세가 매우 위급
함을 알고는 산산이 흩어져 각자 살 길을 찾아 도망쳤다.

장무기와 양소는 다시 돌아와 오른쪽 벽에 대고 경공을 펼쳐 조민
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장(遵) 지휘관이 이를 발견하고는 급히
궁수들로 하여금 맹렬히 쏘라고 명령했으나 두 사람은 오른손으로
병기를 휘둘러 날아오는 화살을 일일이 날려보내며 결국 조민 등
이 몸을 숨긴 곳에 도착했다.

이때는 범요와 위일소가 앞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막고 있었다. 장
무기가 앞을 바라보자 이(?) 지휘관 부하는 이제 겨우 이백 명 남
짓 밖에 안 남았다. 장무기는 다급해져 급히 활을 하나 주워 화살
을 끼우고는 장(遵) 지휘관을 향해 '쉭'하고 날리자 그는 그대로
화살에 맞아 쓰러졌고 부하들은 대경실색하며 전부 후퇴하느라 감
히 다시는 머리를 내밀지 못했다.

장무기가 사방을 둘러보니 길 위에는 온통 화살이 꽂힌 시체가 천
여 구나 널려있는 것이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제 적들의 공격은 조금 늦춰졌지만 주문정의 부하가 아직 일천
여 명이나 남아 있어 군웅들은 아직도 위기에 놓여있는 처지였다.

장무기가 말했다.

"양 교주, 이 절벽 위로 올라갈 수 있겠소?"

양소가 위를 한 번 바라보더니 말했다.

"속하, 한번 해 보겠습니다."

장무기가 말했다.

"이렇게 합시다. 양 교주와 제가 저 꼭대기까지 올라갈 테니 나며
지 분들은 이(?) 지휘관의 부하들을 이끌고 앞으로 탈출해 주십시
오."

서로 계획이 정해지자 범요와 위일소는 양소의 양발을 받쳐들고,
상승왕과 자삼용왕은 장무기를 받쳐들었다. 준비가 다 완료된 후에
장무기가 '시작!'하자 네 사람이 동시에 힘을 모아 위를 향해 두
사람을 밀쳤다. 이들 네 사람의 무공이 매우 높으니 이 밀치는 힘
또한 수천 근을 훨씬 넘어 장무기와 양소를 육칠 장(晙) 밖으로 밀
쳐냈다. 밑에서 받은 힘이 거의 다 떨어지자 장무기는 무당파의 제
운종(???) 경공을 펼쳐 공중에서 복부를 들이쉬고는 위로 삼 장
(寃晙)을 더 올라가서 절벽 위에 살짝 내려섰다. 양소는 공력이 약
간 떨어졌지만 바로 눈앞에 절벽의 틈새를 비집고 자란 소나무를
이미 봐뒀기에 몸이 가까워지자 양 발로 소나무 가지를 밟으니 '뿌
지직'하는 소리를 내며 소나무 가지는 이미 부러져 아래로 떨어졌
으나 그는 그 힘을 빌어 절벽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양소는 발이
땅에 닿자마자 검을 뽑아 들고는 장무기를 뒤따라갔다. 일단 두 사
람이 힘을 합쳐서 앞을 향해 맹공을 펴니 명나라 군졸들은 두 사람
을 당해 낼 수가 없어 삽시간에 질서가 무너지고 말았다. 어떤 자
는 피한다는 것이 그만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절벽 아래에 남아 있던 나머지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자 손을 흔
들어 함께 앞으로 질주했다. 절벽 위의 명나라 군졸들은 이미 난장
판이 되어 더이상 활을 쏠 마음이 없어졌기 때문에 절벽 아래의 사
람들은 아주 쉽게 탈출할 수 있었다.

명나라 군졸들은 비록 장무기와 양소의 세상을 뒤덮을 만한 신공
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지만 주문정이 친히 감독을 하는데 누가
감히 후퇴를 하겠는가? 적수가 못된다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벌떼같이 몰려 공격했다. 장무기도 이들 졸개들의 무공이 하찮아
이렇게 죽일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대
대적인 살생을 안할 수가 없었다. 비록 상황이 이렇다지만 형세는
여전히 절대적으로 위급했다. 절벽 위의 땅은 울퉁불퉁하여 평평하
지 않았고 명나라 군졸들은 여전히 목숨을 건 듯 공격해 왔다. 장
무기와 양소는 서로 등을 맞대고 미친 듯이 병기를 휘둘러 삽시간
에 선혈(??)이 온통 사방으로 튀었고, 수많은 팔다리가 잘려져
날아갔다. 그러나 명나라 군졸은 여전히 서로 밀고 밀리면서 몸을
두 사람의 병기에 갖다 댔다. 장무기의 도룡도는 예리하기 짝이 없
지만 어떤 때는 자신에게 넘어오는 시체를 미처 밀쳐 내기도 전에
또다시 칼을 휘둘러야 했다.

이렇듯 한 시간이 흐르자, 두 사람은 양 팔이 점점 저려옴을 느꼈
다. 장무기가 말했다.

"양 교주, 내려갑시다."

양소가 말했다.

"교주께서 먼저 가십시오."

장무기가 다시 말했다.

"잔소리 말고 어서 내려가요."

양소는 할 수 없이 급히 긴 검을 휘둘러 명나라 군졸들을 밀쳐내
고는 그 기세를 몰아 절벽 밑으로 뛰어내려갔다. 장무기도 곧 뒤따
라 도룡도로 큰 원을 그어 네 명의 명나라 군졸의 허리를 두 쪽으
로 잘라 버리고는 칼을 칼집에 꽂고 역시 절벽 밑으로 뛰어내려갔
다.

장무기와 양소는 쌍장으로 석벽을 쳐서 떨어지는 속도를 줄였고
얼마 안 가서 절벽 아래에 당도하여 발이 땅에 닿자 두 사람은 연
기처럼 몸을 앞으로 날렸다. 절벽 위의 명나라 군졸들은 이것을 보
자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자세를 고치기도 전에 두 사람은 벌써
근 백 장(王晙) 밖으로 갔으니 정말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 아닌
가!

주문정은 긴 한숨을 내쉬고는 응천으로 돌아가 용서를 빌어야 했
다. 주원장은 여덟 사람 전부를 놓쳤다는 말에 내심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 마침 이대 좌승사 이선장이 밤새 작성한 공문을 갖
고와 결재를 받으려 했다.

주원장은 내심 장무기 등이 만약 이 조서를 못 본다면 반드시 요
수일 내로 다시 올 것이 분명하니, 비록 화는 나지만 어쩔 수 없어
어용(蠶粘) 붓을 들어 붉은 먹물로 대충 '이상의 것을 허락한다'란
글을 쓰고는 곧 붓을 집어던지고 옷소매를 뿌리치며 나갔다.

좌승상 이선장은 성상이 어째서 진노(??)하는지 이유를 몰라 전
전긍긍하며 조서를 받아 들었다. 그러나 결국 성상이 동의를 해주
자 곧 걱정이 기쁨으로 변하여 싱글벙글하면서 준비하러 나섰다.
며칠 후, 이 조서는 전국 방방곡곡에 붙여졌고 천하 중생들은 모두
매우 기뻐하였다.

주문정은 일처리 능력이 떨어져 몇 년 못 가서 결국은 주원장에게
트집을 잡혀 단칼에 목숨을 잃었다. 물론 주원장은 대의멸친(暗琮
??)이란 위선된 명분으로 그를 죽였고 조정 대신들이 또 한 차례
성상의 영명하고 공정한 처사에 감복했음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한편, 장무기 등은 조서를 본 후 서로 마주 보며 웃기만 하고 다
를 말은 하지 않았다.

이(?) 지휘관은 후에 남은 이백 명의 부하를 데리고 곤륜산으로
들어가 명교의 천, 지, 풍, 뢰 이 네 문의 오행기를 찾아 나섰다.
그후, 양빙을 따라 장렬하게 거사를 일으키고 나중에는 양빙과 함
께 전사, 순교했다.

이때 소소가 말했다.

"이제 이 일도 완결됐으니 어서 녹민과 은도를 구할 방도를 강구
해야겠어요."

모두 찬성했으나 냉면인을 찾는다 해도 일은 역시 난감했다. 냉면
인은 이제 장무기보다 무공이 훨씬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후
수시로 두 아이의 목숨을 내세워 위협할 것이 뻔한 일이었고 그 수
단은 더욱 비열하고 악랄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소소가 말했다.

"내게 아주 둔한 생각이 있는데 모두 듣고 웃지는 말아요."

군웅들은 어서 말하라고 재촉했다. 소소가 말했다.

"분명히 냉면인이 주원장에게 우리가 암살하러 간다는 것을 알렸
기에 주원장이 그런 연극을 우리에게 보여줬을 거예요. 주원장도
우리가 절대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런 큰소
리를 쳤고요. 어차피 큰소리 치는 데 힘들 것은 없으니 일단 빠져
나오고 보자는 식이었겠죠. 그런데 범요 오빠의 그 일검이 충분히
주원장을 떨게 했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말한 일을 실천할
수밖에 없었죠. 그렇다면 냉면인도 곧 응천으로 달려와 주원장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러 올 거예요."

소소는 군웅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하자 계속 말했다.

"이곳은 냉면인이 응천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에요. 이곳에 온다면
냉면인은 필히 밥을 먹고 가겠지요, 그렇죠?"

위일소가 말했다.

"그야 당연하지."

소소가 말했다.

"우리는 모두 여덟 명이니 한 객점에서 한 명씩 묵으면서 객점 주
인을 매수하는 겁니다. 그리고 장 공자께서 한 봉지의 흔적없는 독
약을 조제해 주시기만 한다면 거의 일이 성다된 것이나 같지요."

위일소가 말했다.

"안 될 말이오. 그럼 두 아이도 같이 독살되는 게 아니오?"

양소가 말했다.

"위형,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소. 장 교주께서 독을 쓰시니 물론
그 독을 풀 수도 있는 것 아니겠소?"

위일소가 말했다.

"노부가 너무 지나친 걱정을 했군요."
"제게 한 가지 좋은 방법이 떠올랐어요. 냉면인도 잡고 두 아이도
무사할 수 있는 방법이죠."

조민이 이렇게 말하자 장무기가 크게 기뻐하며 물었다.

"혹시 '십향연근산(????韻)'이 아니오?"

조민이 미소를 띄고 말했다.

"바로 그거예요."

군웅들은 크게 기뻐하며 모두 좋은 묘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십향연근산(????韻)'은 비록 독이지만 무공을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전혀 해가 없고, 또 내공이 있다 해도 생명에는 별로
지장이 없이 단지 이 약 때문에 억제되어 내공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옛날에 조민이 바로 이 무색무미(午兪午?)의 독약으로 육대
문파의 고수들을 전부 대도 만안사에 생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
지어 독약에 정통한 장무기와 금모사왕(?獰??) 사손(?吟)도 역
시 중독되어 수개월 후에야 겨우 서서히 해독할 수 있었다.

군웅들은 곧 각자 시내 중심가로 가서는 따로 한 객점마다 들어가
주인을 매수하고 냉면인을 기다렸다. 모두의 손에는 한 봉지의 '십
향연근산(????韻)'이 들려 있었다. 다만 상승왕만이 중원인들
과 달라 아무리 조민이 변장을 시켜도 그 모습이 너무 괴이하여 누
구든지 한번 보면 금방 주위를 끌기 때문에 나중에는 포기를 했다.
어차피 이들이 묵고있는 객점들은 모두 하나 같이 시내에서는 가장
좋은 곳이므로 냉면인도 이번만은 절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상승왕은 한 객점을 골라 종일토록 문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방안
에서 눈감고 조용히 '건곤대나이(贍巽暗殖?)심법'을 수련하기 시
작했다.

삼일 후, 세 필의 말과 마차가 시내로 들어오더니 조민이 묵고 있
는 객점 박에 섰는데 바로 냉면인, 홍발노이 그리고 현명이로였다.
잠시 후, 차내에서 한 부인이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나왔는데 바로
녹민과 은도였다.

객점 종업원은 급히 마중 나왔고 일행은 객점에 들어가 앉았는데
조민은 이미 독약을 주인에게 주고 윗층에서 몰래 살피고 있었다.

얼마 후, 요리가 올라오자 홍발노인 등은 벌써부터 너무 허기가
졌었는데 게걸스럽게 먹어댔으나 단지 냉면인만이 조용하게 혼자
천천히 먹어갔다.

조민은 감히 소리를 낼 수 없어 그저 약기운이 퍼지기만을 기다렸
다. '십향연근산(????韻)'은 또 하나 묘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먹은 뒤에도 운공(?殺)을 하여 적과 대적하지 않는다면 절대
중독된 것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장무기, 양소, 범요, 자삼용왕, 청익복왕, 소소, 이 여섯 사람은
조민이 성공했다는 것을 알고는 모두 변장을 한 채 아무 일도 없다
는 듯이 길에서 계속 구경만 하고 그저 독약이 발작하여 손을 쓸
기회만 기다리고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나 조민이 이층에서 손짓을 하자 이들 여섯 사람
은 모두 객점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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