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3-2

3학년2반 | 2022.03.03 07:15:18 댓글: 0 조회: 599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2484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3 권


제 2 장 장무기와 양불회의 고난(苦難)


두 사람은 반나절이 걸려 겨우 호접곡을 벗어났다. 양불회는 걸
음이 늦은데다가 자꾸만 쉬겠다고 성화를 부리는 바람에 이날 어
두워질 때까지 황산이령을 헤매야만 했다. 밤이 으슥해져 사방에
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양불회는 계속 울며 보챘다. 장
무기는 겁이 났다. 그는 산길 옆에 작은 동굴이 있는 것을 발견
하고 양불회와 함께 들어갔다. 그는 양불회를 품에 안은 채 짐승
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귀를 막아 주었다.

장무기에게 이날 밤은 유난히 길었다. 밤새도록 두 어린것은 배
고픔과 무서움에 시달려야만 했다. 간신히 날이 새기를 기다려
산에서 야생하는 열매를 따 허기를 채우고는 산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정오가 되었을 무렵, 양불회가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길 옆 느티나무를 가리켰다. 그 순간 장무기도 나뭇 가지
에 두 구의 시체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기겁을
하며 냅다 양불회의 손을 잡고 뒤쪽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얼마
달아나지도 못해 돌뿌리에 채여 함께 넘어졌다. 장무기는 용기를
내어 뒤돌아 보았다. 순간, 더욱 소스라치게 놀라 날카로운 일성
을 토했다.

"호 선생!"

나뭇 가지에 매달려 있는 앙상한 시체는 호청우였다. 다른 한
구의 시체는 머리카락을 풀어 해친 차림새로 보아 호청우의 아내
인 왕난고가 분명했다. 산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그녀의 옷자락과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나부껴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장무기는 정신을 가다듬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무서워하지 말자. 무서울 것 없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한 발 한 발 가까이 다가갔다. 과연 호청우
부부의 시체였다. 두 사람의 양미간에 제각기 한 송이의 작은 금
화가 꽂혀 있었다. 장무기는 아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호청우
부부는 결국 금화파파의 독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나귀가
끌던 수레는 한쪽 개울에 박살이 난 채 버려져 있었다. 나귀의
시체도 그 옆에 있었다.

장무기는 눈물을 흘리며 밧줄을 풀어 호청우 부부의 시신을 나
무에서 내렸다. 그 때 왕난고의 몸에서 책자 한 권이 떨어졌다.
그것을 주워 보니 겉장에 <왕난고 독경>이란 다섯 글자가 적혀
있었다. 겉장을 넘기자 깨알 같은 글씨로 모든 독물의 독성과 사
용법, 화해법이 수록돼 있었다. 독약과 독초 이외도 각종 독사,
지네, 전갈, 독거미 그리고 희귀한 어패류, 날짐승, 화목토석(花
木土石)이 총망라돼 있었다.

장무기는 그 책자를 품속에 갈무리하고 호청우 부부의 시신을
나란히 눕혀 돌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그 무덤 앞에 배를 올리고
나서 양불회의 손을 잡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몇 리쯤 걷자 관로가 나왔다. 얼마 뒤에 그들은 작은 고을로 들
어설 수 있었다. 장무기는 먹을 양식을 구하려고 했지만 이상하
게도 고을 안 모든 집이 텅텅 비어 있었다. 물론 사람의 그림자
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계속 길을 재촉해야만 했다.
논밭은 모두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잡초가 무성했다. 눈에 뜨이
는 것은 황폐뿐이었다. 장무기는 당황해졌다. 양불회가 배고프다
고 보채지 않고 자기를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고을을 벗어나자 길 옆에 몇 구의 시체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
였다. 뼈만 앙상한 것이 굶어 죽은 것임을 첫눈에 알아 볼 수 있
었다. 길을 갈수록 그러한 시체가 눈에 많이 띄었다. 장무기는
더욱 당황해지고 겁이 났다.

'우리는 이대로 굶어 죽는 게 아닐까?'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어느 숲 속에 이르렀다. 숲 속에서 마
침 희뿌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장무기는
뛸 듯이 기뻤다. 호접곡을 떠나 처음 대하는 인적이었다. 그는
곧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가까이 가보
니, 남루한 차림의 두 사나이가 장작불에 가마솥을 걸어 놓고 국
물을 끓이고 있었다. 그들은 장무기와 양불회를 발견하자 이내
구세주를 만난 듯 회색 만면하여 손짓을 했다.

"얘들아, 마침 잘 왔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어른들과 함께 오
지 않았느냐?"

장무기는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우리 두 사람뿐이에요. 어른은 없어요."

두 사나이는 서로 마주 보며 외심의 미소를 교환하더니 이구동
성으로 말했다.

"정말 운이 좋군."

장무기는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는 것 같아 무엇을 끓이는가 하
고 솥 안을 살펴보니 칡과 풀잎만이 둥둥 떠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 한 사나이가 냅다 양불회를 나꿔채며 징그럽게 웃었다.

"이 어린 양은 토실토실하고 연하니, 오늘 밤 진수성찬을 맛보
겠구나!"

다른 사나이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 남자애는 남겨 두었다가 내일 잡아 먹어야겠네."

장무기는 질겁을 하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오? 얼른 내 누이동생을 놓아주시오!"

사나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양불회의 옷을 찢더니 허리춤에서 예
리한 비소를 뽑아 입맛을 다셨다.

"이렇게 연하고 야들야들한 고기를 정말 오랜만에 맛보게 됐
군."

그는 양불회를 한쪽으로 끌고 가 각을 뜰 기세였다. 다른 한 사
나이는 사발을 들고 뒤를 따르며 퉁명스레 말했다.

"피를 버리기 아까우니, 선지탕을 끓여 먹어야겠네."

장무기는 놀란 나머지 혼비백산했다. 그들의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정말 양불회를 잡아먹을 심산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먹다니, 천벌이 두렵지도 않느냐!"

사발을 들고 있는 사내가 히죽 웃었다.

"이놈아, 이 어른신네는 석 달 동안 쌀 한 톨도 구경하지 못했
다. 그러니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선 사람이라도 잡아먹어야 할 게
아니겠느냐?"

그는 장무기가 달아날까 봐 대뜸 뒷덜미를 나꿔잡으려 했다. 장
무기는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며 오른손을 뻗어서 그의 등허리 급
소를 내리쳤다. 그는 근래 몇 년 동안 의술에 전념하느라 무공을
연마하지 못했지만, 사손으로부터 전수받은 무공 비결과 부친이
가르쳐 준 무당권법을 잊지 않았다. 그것은 모두 상승 무학이었
다. 그가 있는 힘을 다해 일격을 전개했으니 웬만한 무인이라 할
지라도 감당해 내기 어려울 것이다. 더군다나 상대방은 일개 촌
부(村夫)인지라 쓰러져 꼼짝도 하지 못했다.

장무기는 즉시 양불회 곁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남은 사나이가
우악스럽게 호통을 쳤다.

"우선 네놈부터 죽여 주마!"

그는 장무기의 가슴을 향해 비수를 내리꽂았다. 장무기는 무당
권법 중에 안시식(雁翅式)을 전개해 왼발로 사나이의 손목을 정
확하게 걷어찼다. 사나이의 손에서 비수가 벗어나는 것과 동시에
장무기는 다시 원앙연환퇴법으로 아래 턱을 걷어찼다. 사나이는
비명을 내지르며 울컥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하더니 그 자리에 쓰
러져 기절해 버렸다. 장무기는 얼른 양불회를 부축해 일으켰다.

바로 이때 발걸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다시 몇 사람이 숲 속
으로 들어왔다. 양불회는 화들짝 놀라 장무기의 품속으로 파고들
었다. 그러나 장무기는 상대방을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
다.

'간대협, 설대협!'

숲 속으로 들어오는 자는 모두 다섯 명인데, 한 사람은 공동파
의 간첩이고, 화산파의 설공원과 그의 두동문도 보였다. 이 넷
을 모두 장무기로부터 치료를 받아 완치된 사람들이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스무 살 가량의 젊은이로서 이마가 유난히 넓고 건장
하게 생겼는데, 장무기로선 초면이었다.

간첩은 예리한 눈빛으로 주위를 훑어보고 나서 입을 열었다.

"장형제! 자네가 이곳에 웬일인가? 그리고 이 두사람은 어떻게
됐나?"

장무기는 분연히 그간 경위를 얘기해 주고 나서 한 마디 덧붙였
다.

"사람까지 잡아먹다니, 아무리 말세라 해도 이럴 수가 있는 겁
니까?"

간첩이 묘한 시선으로 양불회를 쳐다보며, 갑자기 군침을 삼키
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꼬박 닷새를 굶었더니 하늘이 노랗군. 음..... 야들
야들한 살결..... 토실토실하니....."

장무기는 그의 눈에서 탐욕의 불길이 이글거리며 굶주린 이리처
럼 이빨을 드러내는 것을 보자, 본능적으로 양불회를 품안에 끌
어안았다.

설공원이 불쑥 물었다.

"그 계집애의 엄마는 어찌 보이지 않느냐?"

장무기는 내심 생각을 굴리며 둘러댔다.

"기여협은 쌀을 사러 갔으니 곧 돌아올 거예요."

그러나 철없는 양불회가 고개를 내두르며 소리쳤다.

"아니에요. 엄마는 하늘나라에 갔어요!"

간첩과 설공원은 두 사람의 엇갈리는 말을 듣자 기효부가 죽었
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설공원은 냉소를 날렸다.

"쌀을 사려 갔다고? 이 주위 오백 리 이내에선 쌀 한 줌도 찾아
내지 못할 것이다."

간첩은 잽싸게 설공원에게 눈짓을 하더니 일제히 몸을 솟구쳐
간첩은 장무기를, 설공원은 양불회를 나꿔챘다.

장무기는 경악하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간첩이 징그럽게 웃었다.

"봉양부(鳳陽府) 일대는 흉년이 들어 굶어 죽은 사람이 부지기
수다. 이 계집애는 너와 피가 섞이지 않았으니 우리가 삶아먹든
구워먹든 상관하지 말아라. 조금만 기다리면 너의 몫도 있을 것
이다."

장무기는 욕설을 터뜨렸다.

"명문정파라고 자처하는 당신네들이 이런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할 수 있소?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앞으로 무슨 낯으로 무림
동도를 대하겠소?"

간첩은 발끈하여 주먹으로 그의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호통을 쳤
다.

"소문이 안 나게 하기 위해선 네놈마저 잡아 먹어야 겠다!"

조금 전에 장무기는 두 촌부를 간단하게 처치했지만, 성수가람
간첩 같은 고수에게는 도저히 반항할 여지조차 없었다. 설공원의
두 사제는 밧줄로 장무기와 양불회를 꽁꽁 묶었다. 장무기는 요
행을 바라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 이들이 은혜를 원수로 갚을 줄
이야! 애당초 이들의 목숨을 구해 준 일이 후회막심했다.

간첩은 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놈아, 당장 굶어 죽게 될 이 마당에 설령 내가 낳은 친자식
이라 해도 잡아먹을 판이니, 저승에 가서라도 부디 우릴 원망하
지 말아라. 애당초 내가 우리의 목숨을 구해 줬으니 끝까지 살길
을 마련해 주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

이어 설공원의 사제에게 소리쳤다.

"어서 불을 지피지 않고 뭘꾸물대느냐?"

두 사람은 불을 지피고 물을 퍼오느라 수선을 떨었다.

장무기는 애원을 했다.

"설대협, 저 두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 그렇게 굶주림을 못 견디
겠으면 저들을 먹으면 되잖겠습니까?"

설공원은 유들유들하게 웃었다.

"저 녀석들은 뼈가 앙상한데다가 고기도 질기고 냄새가 나니 우
린 사양을 하겠다."

장무기는 본디 자존심이 강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누구에게 애
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양불회와 같이 남의 먹이가 될
것을 생각하니 당황해져 저절로 통사정을 하게 된 것이다.

한편, 이마가 넓은 젊은이는 한쪽에 서서 시종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간첩이 그에게 눈을 부라리며 한 마디 내뱉었다.

"자네도 연한 고기가 먹고 싶으면 어서 일을 거들어야 할 게 아
니겠나?"

젊은이는 얼른 대답을 하며 허리춤에서 한 자루의 단도를 뽑았
다.

"돼지나 소를 도살해 각을 뜨는 일이라면 내가 전문이오."

그는 단도를 입에 물고 한 손에 장무기를, 한 손에 양불회를 번
쩍 들어올려 성큼성큼 개울 쪽으로 걸어갔다. 장무기는 목이 터
져라 욕을 하며 그의 손등을 깨물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젊은이가 열댓 걸음 걸어나갔을 때, 설공원이 그의 뒷통수에 대
고 소리쳤다.

"이봐, 여기서 멱을 따라고!"

젊은이는 힐끗 고개를 돌리며 대꾸했다.

"개울에서 배를 갈라야 깨끗이 씻을 수 있을 게 아니겠습니까?"

그는 입에 칼을 물고 있어 말소리가 똑똑치 못했다. 그가 계속
개울을 향해 걸어가자 설공원이 신경질적으로 다시 소리쳤다.

"여기에서 멱을 따라니까 왜 말을 듣지 않나?"

그는 젊은이의 태도에서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었다. 젊은이가
서두르는 것으로 보아 마치 두 어린 양을 데리고 도망쳐 독식할
것만 같았다.

이때 젊은이가 갑자기 나직하게 말했다.

"어서 달아나라!"

그는 두 사람을 내려놓더니 칼로 밧줄을 끊었다. 장무기는 고맙
다는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양불회의 손을 잡고 다짜고짜 앞으
로 달려갔다.

설공원과 간첩은 일제히 성난 고함을 지르며 쫓아왔다. 젊은이
는 기다렸다는 듯이 칼을 비스듬히 올려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
다.

"멈춰라!"

간첩과 설공원은 그의 위풍당당한 기세에 흠칫 굳어졌다. 간첩
이 호통을 쳤다.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젊은이는 눈을 부라렸다.

"아무리 굶어 죽는 한이 있다 해도 천벌받을 짓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오?"

설공원은 성난 음성으로 소리쳤다.

"이 판국에 에미인들 못 잡아 먹겠느냐!"

그는 사제 둘에게 손짓을 하며 외쳤다.

"어서 쫓아라!"

장무기는 양불회가 빨리 달릴 수 없자 번쩍 들어 안았다. 그래
도 빨리 달릴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간첩과 설공원은 이미
무기를 뽑아 젊은이를 협공했다. 젊은이는 그들의 적수가 못 되
는지 이내 허벅지에 검상을 입어 피가 흘러내렸다. 그는 갑자기
단도를 설공원에게 던졌다. 설공원은 잽싸게 옆으로 피했다. 그
틈을 타서 젊은이는 밖으로 달려나갔다. 간첩과 설공원은 더 이
상 그를 추격하지 않고 장무기와 양불회를 잡으러 갔다. 젊은이
는 멀리 달아나며 소리쳤다.

"장형제, 당황하지 말고 기다리게! 내가 가서 동료들을 데려와
자네를 구해 주겠네."

간첩과 설공원은 신법을 전개해 어렵지 않게 장무기와 양불회를
다시 붙잡았다.

간첩은 눈에 쌍심지를 켜며 욕설을 터뜨렸다.

"그 서가 녀석이 감히 우릴 배신하다니! 어떻게 해서 그 녀석과
어울리게 되었소?"

설공원이 멋쩍게 대답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 같이 어울리게 됐는데, 그렇게 나쁜 녀석
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소? 이름이 그 무슨 서달(徐達)이라고 하
든가.....? 놈은 동료를 데리고 온다고 했지만 우리를 겁주려고
한 얘기일 거요. 이 야밤중에 어디에 가서 사람을 불러올 수 있
겠소?"

그의 사제 한 명이 낄낄 웃으며 한 마디 거들었다.

"녀석의 말투를 들어보니 이곳 봉양부의 토박이 같은데, 설령
사람을 데려온다 해도 촌뜨기밖에 더 있겠습니까?"

간첩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봉양부의 사람은 모두 굶주려 기어다닐 힘도 없을 것이오.. 하
핫.....! 어서 저 두 말의 양을 삶아 마음껏 배를 채웁시다."

잡힌 장무기는 코피가 터지도록 얻어맞고 옷까지 찢겨져, 품속
에 갈무리해 두었던 은자마저 땅바닥에 흩어졌다.

'그 사람의 이르이 서달이군. 좋은 친구였는데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으니.....'

그는 고개를 떨구다가 책자 한 권이 발 밑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왕난고 독경이었는데 때마침 바람이 불어와 책장
을 넘겼다. 순간, 장무기는 장작불의 불빛을 빌려 그곳에 독버섯
에 관한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독버섯의 모양과 냄
새, 빛깔, 독성, 화해법 등이 수록돼 있었다. 장무기는 마음이
어지러워 그 글이 뇌리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한데 시선을 돌리
려다 우연히 자기에게서 서너 자 가량 떨어진 곳에 빛깔이 선명
한 버섯이 열 댓 개쯤 자생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장무기는 순간적으로 뇌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저것이 무슨 버섯인지 알 수 없지만, 만약 극독을 지닌 독버섯
이라면 불회는 살아날 가망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생사에 대해선 아예 생각지도 않았다. 어차피 체내
의 음독이 발작할 것이니 죽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그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천천히 다가가 독
버섯을 모두 뜯었다. 설공원 등은 물을 끓이는데 정신이 팔려 있
었다.

장무기는 서달이 달아난 방향을 바라보며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서대가! 이제야 왔군요. 어서 살려 주세요!"

설공원 등은 사실인 줄 알고 일제히 무기를 뽑아쥐며 몸을 일으
켰다. 장무기는 그들의 시선이 동쪽에 집중돼 있는 틈을 타서 잽
싸게 등을 돌려 독버섯을 가마솥에 집어넣었다.

설공원 등은 아무도 보이지 않자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개잡종 같은 녀석! 곧 죽게 되니까 정신마저 돈 모양이
군."

설공원은 손을 툭툭 털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자, 이제부터 멱을 따야지. 누가 솜씨를 보일 거지.....?"

간첩이 그의 말을 받았다.

"내가 계집애를 죽일 테니 당신은 저 녀석을 맡으시오."

그는 우악스럽게 양불회의 뒷덜미를 잡아 들어올렸다.

장무기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설대협, 목이 말라 견딜 수 없으니 따뜻한 국물이라도 한 그릇
주십시오. 그러면 죽어 귀신이 되어도 당신을 못살게 굴지 않겠
습니다."

설공원은 느긋한 여유를 보였다.

"좋다. 국물 한 그릇 정도야 인색할 내가 아니지."

그는 곧 국자로 뜨거운 국물을 한 그릇 떠서 건네주었다.

장무기는 국그릇을 입에 갖다 대기도 전에 크게 감격하듯 소리
쳤다.

"야! 정말 향기롭군."

국물에다 버섯을 넣었으니 향기가 그윽한 건 사실이었다. 설공
원은 허기가 찌들어 있다가 향긋한 냄새를 맡자 절로 군침이 돌
아 냅다 장무기에게서 국그릇을 빼앗아 들이키더니 쩝쩝 입맛을
다셨다.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나.....!"

그는 다시 국자로 휘휘 저어 한 사발을 떠냈다. 그러자 간첩이
얼른 그에게서 국그릇을 빼앗아 뜨거운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꿀꺽꿀꺽 마시더니, 직성이 풀리지 않는지 다시 한 사발을 떠 마
셨다. 설공원과 그의 두 사제도 역시 연거푸 두 사발씩 들이켰
다. 오랜 허기끝에 뜨거운 국물을 마시자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좋았다. 간첩은 아예 가마솥에서 버섯을 건져 오물오물 씹어 먹
었다. 어느 누구도 버섯이 어디서 생겨 났는지 신경을 쓰지 않았
다.

간첩은 버섯을 씹어먹고 나서 배를 어루만지며 능글맞게 웃었
다.

일단 바닥은 깔았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양고기를 먹어야
지."

그는 양불회의 덜미를 들어올려 칼을 움켜쥐었다. 장무기는 그
들이 버섯국을 마시고도 별탈이 없는 것을 보자 마지막 한 가닥
희망마저 무산되었다.

한데, 간첩은 두어 걸음 내딛다가 갑자기 비명을 내질렀다.

"어이구!"

그는 비틀거리더니 썩은 통나무처럼 쓰러졌다. 그 바람에양불
회와 칼도 한쪽에 팽개쳐졌다.

설공원은 흠칫 놀랐다.

"간형, 어떻게 된 거요?"

그는 달려가 허리를 숙여 살피려다가 그대로 간첩의 몸위에 쓰
러졌다. 그의 사제 둘도 잇따라 독이 발작해 비명횡사 했다.

장무기는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하늘이 우리를 도와줬구나!"

그는 칼 옆으로 굴러가 뒤로 해서 칼을 집은 뒤, 양불회의 손을
묶은 밧줄을 끊었다. 양불회는 손이 떨려 장무기의 손에 상처를
두군데 내고서야 겨우 밧줄을 끊어 주었다. 두 사람은 죽음 일보
직전에서 목숨을 건지게 되자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서로 부둥
켜 안았다.

잠시 후 장무기가 설공원 등을 살펴보니 모두 얼굴이 숯처럼 시
꺼멓게 변해 그 모습이 심히 가공스러웠다. 장무기는 내심 감개
무량했다.

'독물이 나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좋은 사람을 구할 수도
있군.'

그는 곧 왕난고 독경을 소중하게 품속에 갈무리해 나중에 시간
을 내어 열심히 연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주위에는 두 구의
시체에서 이제 여섯 구로 늘어났다. 양불회는 너무나 놀란 탓인
지 울지도 않았다. 장무기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
다.

장무기는 양불회의손을 잡고 숲을 빠져 나왔다. 이때 동쪽으로
부터 횃불이 환하게 밝아오더니 대여섯 명이 손에 병기를 쥔 채
달려오는 게 보였다. 장무기와 양불회는 얼른 숲 속으로 몸을 숨
겼다. 상대방은 곧 가까이 달려왔다. 앞장 서 있는 자는 다름아
닌 서달이었다. 그는 왼손에 횃불을 높이 받쳐들고 오른손엔 장
창을 쥐고 있었다. 그는 형형한 눈빛으로 숲 속을 노려보며 호통
을 쳤다.

"천벌을 받을 식인귀야! 냉큼 목숨을 내놓지 못하겠느냐?"

그들은 즉시 숲 속으로 뛰쳐들어와 간첩 등 네 사람이 죽어 있
는 것을 보자 모두 아연실색했다. 서달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소리쳤다.

"장형제, 별고 없나? 우리가 자네를 구하러 왔네!"

장무기도 소리쳐 대답했다.

"서대가,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즉시 앞으로 뛰쳐 나갔다. 서달은 몹시 기뻐하며 그를 덥
석 끌어안았다.

"장형제, 자네처럼 협의심이 강한 사람은 아이들에겐 말할 것도
없고 어른들 중에서도 많지 않다네. 나는 자네가 악적의 손에 죽
은 줄 알고 무척 걱정했는데, 이렇게 살아 있다니 정말 다행이
네."

이어 간첩, 설공원 등이 중독된 상황을 묻자, 장무기는 그간에
있었던 일을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말해 주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나의 절친한 친구들이네. 그들은 황소를 한
마리 잡아 지금 황각사에서 삶고 있는 중이네."

서달은 여기까지 말하고 일행을 장무기에게 소개했다. 그들 중
네모 얼굴에 키가 유난히 큰 사람은 탕화(湯和)라 불렀으며, 만
면에 영기가 충만한 장한은 등유(鄧兪)라 불렀다. 검은 피부에
키가 장대처럼 큰 사람은 화운(花雲)이며, 얼굴이 희고 예쁘장하
게 생긴 두 형제는 오량(吳良)과 오정(吳禎)이라 했다. 마지막
한 명은 화상인데, 용모가 도저히 사람이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
로 못 생긴데다 아래턱이 넓적하게 휘어져 마치 주걱처럼 생겼으
며, 얼굴 전체는 온통 곰보투성인데다가 십 리 가량이나 움푹 들
어간 눈에선 신광이 번뜩였다.

서달이 그 화상을 가리켰다.

"이분 주(朱) 형님의 이름은 원장(元璋)이라 부르며, 황각사에
서 중노릇을 하고 있다네."

화운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는 놀기 좋아하는 풍류 화상인자라 독경 염불은 하지 않고,
날이면 날마다 술과 고기만 먹고 마시지."

양불회는 주원장의 못 생긴 얼굴이 무서워 장무기의 등 뒤로 숨
었다. 그러자 주원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나는 비록 고기를 먹지만 사람은 잡아먹지 않으니 조금도 무서
워할 것 없다."

탕화가 화제를 바꾸어 말했다.

"지금쯤 쇠고기가 다 익었을 거야."

화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재촉했다.

"빨리 가봅시다. 소매(小妹), 내가 너를 업고 가마."

하고 양불회를 등에 업더니 앞장서서 걸었다. 장무기는 이들의
호탕한 성격을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약 사,오 리 가량 걸어 조그만 절의 대웅전에 들어서자, 쇠고기
향기가 코를 진동시켰다.

서달이 장무기를 돌아보았다.

"장형제, 우리가 쇠고기를 가져 올 테니 그 동안 자네는 여기서
쉬고 있게."

장무기와 양불회는 방석을 깔고 나란히 앉았다. 잠시 후 주원
장, 서달, 탕화, 등유 등이 큰 대야에 익힌 쇠고기를 가득 담아
들고 왔으며, 오량과 오정 형제는 어디서 구했는지 백주(白酒)를
한 독 들고 뒤따라 들어왔다. 그들은 부처 앞에 빙 둘러앉아 술
과 고기를 마시고 먹기 시작했다. 장무기와 양불회는 며칠간 굶
었던 터라 마치 걸신 들린 사람처럼 먹어댔다.

화운이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으며 불만 섞인 어조로 말했다.

"서대가, 우리들의 교칙(校則)이 좋긴 하지만고기를 먹지 못한
다는 규칙은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순간, 장무기는 내심 크게 놀랐다.

'이제보니 그들은 명교 사람들이구나. 명교는 채식을 하고 마왕
을 숭배한다던데, 그들은 여기서 쇠고기를 뜯고 있으니.....'

서달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우리 교칙이 제 일 조는 선을 행하고 악을 물리치는 것인, 고
기를 먹는 것이 나쁘긴 하지만 맨 마지막 조항이야. 지금 이곳엔
쌀도 채소도 없으니 익은 쇠고기를 두고 굶어 죽을 수는 없지 않
는가!"

한창 신나게 먹고 마시고 있을 때, 밖에서 갑자기 발자국 소리
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탕화가 자리에서 벌떡 일
어서며 나직이 말했다.

"정선달 집에서 소를 찾으러 온 설양입니다."

이어 절문이 발길에 차여 열리더니, 체격이 건장한 두 명의 하
인이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잘들 놀고 있군. 장선달 집안의 황소를 감히 훔쳐 먹다니."

하며 그 중 한 명이 주원장의 멱살을 움켜쥐었으며 다른 한 명
은 계속 고함을 질렀다.

"이 땡땡이 중놈아, 오늘은 장물까지 여기 있으니 딴소리 하지
못할 게다. 내일 네놈을 관가로 잡아가 죽을 때까지 곤장맛을 보
여 주겠다."

주원장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큰 소리로 마구 웃어 댔다.

"정말 당치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는 구나. 우리들이 장선달네
황소를 훔치는 것을 누가 보았느냐? 출가인은 채식만 하는데 고
기를 먹었다고 억지를 쓰다니 그 죄가 얼마나 큰지 아느냐?"

그 하인은 대야에 담긴 쇠고기를 가리키며 고함을 질렀다.

"이건 쇠고기가 아니고 무엇이냐?"

주원장이 눈짓을 하며 빙글빙글 웃었다.

"이게 어째서 쇠고기냐?"

이때 오량과 오정 형제가 두 명의 하인 뒤로 돌아가 함성을 지
르며 그들의 팔을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주원장은 허리춤에서 비수를 뽑아들며 히죽히죽 웃었다.

"두 분 형씨, 솔직히 말하겠는데 우리가 먹은 것은 쇠고기가 아
니라 사람고기야. 그 광경을 너희들에게 들켰으니 비밀이 누설되
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죽여야겠군."

말을 끝내기 무섭게 한 하인의 가슴을 그었다. 그러자 옷이 갈
라지며 살갗에 혈선(血線)이 길게 그려졌다. 그 하인은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주원장은 쇠고기를 집어 두 하인의 입에 쳐 넣었다.

"삼켜!"

두 하인은 감히 씹지도 못하고 꿀꺽 삼켰다. 주원장은 주방에서
소털을 한줌 집어와 또 두 하인의 입 속에 쳐 넣었다.

"빨리 삼켜!"

두 사람은 울상을 하며 시키는 대로 소털을 삼켰다. 주원장은
또 히죽히죽 웃었다.

"너희들이 선달에게 우리가 그의 황소를 훔쳤다고 고자질하면,
나는 네놈들의 배를 갈라 누가 쇠고기를 먹었는지 선달에게 증명
해 보이겠다."

하고 칼등으로 그들의 배를 그어 보였다. 그들은 차가운 칼이
배를 스치고 지나가자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오씨 형제가 대
소를 터뜨리며 두 사람의 엉덩이를 발길로 내질러 쫓아버렸다.
두 하인은 평소 장선달의 세력을 믿고 선량한 백성들을 괴롭히다
이번에 혼이 나도록 봉변을 당하자 엉금엉금 기며 도주했다.

장무기는 이 광경을 지켜보고 내심 탄복을 금치 못했다.

'이 화상은 얼굴은 무섭게 생겼지만 일은 빈틈없이 처리하는구
나.'

주원장은 서달을 통해 장무기가 생명의 위험까지 무릅쓰고 양불
회를 구해 냈다는 말을 들었는지라, 장무기의 협의정신이 마음에
들어 연신 술과 쇠고기를 권하며 매우 호의적으로 대했다.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었을 즈음 등유가 가볍게 탄식했다.

"우리 한인(漢人)들은 오랑캐놈들의 압박을 받아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으니, 이런 생활이 계속되면 우리 한인은 모두 죽
게 될 겁니다."

화운도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봉황부에만도 백성이 절반 가량 죽었는데, 이런 일은 봉황부뿐
아니라 어디나 마찬가지입니다. 눈을 뜬 채 굶어 죽느니 몽고놈
들과 사생결단을 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서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즈음은 인명이 개나 되지 목숨보다 못합니다. 이 두 소형제
와 소매도 하마터면 잡혀먹힐 뻔했으니 얼마나 많은 양민들이
소, 돼지 신세가 되었겠소? 사내 대장부로 태어나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고만 있는다면 살아 있을 가치가 없지요."

이 말에 탕화도 동의했다.

"옳은 말이오. 우리가 오늘은 운이 좋아 황소를 훔쳐 잡아 먹었
지만 내일 또 훔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지요."

그들은 이 원인이 모두 몽고족들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주원장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여기서 아무리 떠들고 욕을 한들 무슨 소용 있겠소? 사내 대장
부라면 당장 몽고놈들을 죽이러 갑시다."

탕화, 등유, 화운, 오씨 형제들은 일제히 동조했다.

"좋소, 갑시다."

서달이 주원장을 돌아보았다.

"주대가, 당신도 이제 땡땡이 중노릇 그만 하시오. 그리고 당신
의 나이가 제일 많으니 앞으로 우리는 당신의 지시에 따르겠소."

주원장은 사양하지 않았다.

"좋소. 그럼 오늘 이 시간부터 우리는 생과 사를 같이 하며 즐
거움과 고생도 함께 누립시다."

그들은 일제히 축배를 들고 칼을 뽑아 탁자를 내리쳐 서로의 약
속을 다짐했다.

양불회는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라 겁에 질려 벌벌 떨었
다. 그러나 장무기의 생각은 달랐다.

'태사부님께선 내게 마교 사람들과 절대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
셨지만, 상우춘 형님과 이분 서 형님은 마교 사람이면서도 간첩
이나 설공원 같은 명문정파의 제자들보다 몇 배나 훌륭하구나.'

그는 장삼봉을 더없이 존경하고 있지만 마교 사람들에 대해선
편견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장삼봉의 분부를 어기
고 싶지는 않았다.

주원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사내 대장부는 말과 행동이 일치되어야 하오. 듣자니 장선달이
오늘 몽고 관병을 초청하여 잔치를 벌인다고 하니, 그 놈들부터
먼저 절단내어 버립시다."

화운이 뒤따라 칼을 집어들었다.

"잠깐!"

이때 서달이 주방으로 나가 바구니를 가지고 오더니 삶은 쇠고
기를 이십 근 가량 바구니에 담아 장무기에게 건네주었다.

"장형제, 자네는 나이가 아직 어려 우리와 함께 관리를 죽이는
일을 할 수 없네. 우리는 빈털터리라 주머니에 은자 한 푼 없으
니 쇠고기를 대신 주겠네. 요행히 우리가 죽지 않는다면 후일 다
시 만나 배가 터지도록 먹고 마시세."

장무기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구니를 받았다.

"여러분이 몽고놈을 깡그리 죽여 천하 백성들로 하여금 행복하
게 지내게 해주십시오."

주원장, 서달, 탕화, 등유 등은 다투어 장무기의 손을 잡으며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장형제의 말이 옳네. 그럼 인연이 있으면 다음에 또 만나세."

하고 제각기 병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장무기는 내심 생각을 굴렸다.

'불회만 없었다면 나도 저들과 함께 오랑캐를 죽이러 갔을텐데,
저들은 고작 일곱 명이니 만약 상황이 불리해지면 장선달 집에
모인 오랑캐 병졸들과 장정들이 이곳까지 뒤쫓아 올 게 분명하
다.....'

장무기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가 없었다. 그는 쇠고기가 담
겨 있는 바구니를 들고 양불회와 함께 길을 떠났다. 어둠을 뚫고
약 사, 오 리 쯤 가자 북쪽 하늘을 붉게 물들일 정도로 거센 불
길이 치솟아 오르는 게 보였다. 필시 주원장, 서달 등이 장선달
의 집을 불태운 것이라 생각하며 내심 쾌재를 불렀다.

이날 밤 두 사람은 산속에서 새우잠을 자고 날이 밝자마자 다시
서쪽으로 향했다. 두 어린 것은 기아와 추위에 시달리며 온갖 고
생을 겪었다. 다행하게도 양불회는 부모가 모두 무학의 명인이기
때문인지 선천적으로 강인한 체질을 타고나 병을 앓지 않았다.
두 사람은 보름이 지나서야 겨우 하남(河南) 경내로 들어설 수
있었다.

하남 경내도 다른 지방과 별 차이가 없었다. 가는 곳마다 기아
에 허덕이고 굶어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장무기는 나뭇 가
지를 꺾어 활을 만들어 짐승을 포획해 하루는 포식하고, 하루는
굶는 식으로 양불회와 천천히 서쪽으로 향했다. 다행하게도 도중
에서 몽고 병졸, 혹은 강호 인물과 맞부딪치지 않았다. 몇몇 예
사로운 불량배들이 그들에게 엉뚱한 짓을 하려고 한 적이 있었지
만 장무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이날 장무기는 도중에서 눈먼 노인과 만나게 되어 한담을 나누
다가, 곤륜산 좌망봉으로 간다는 얘기를 털어놓았다. 눈 면 노인
은 그의 말에 놀라 입이 딱 벌어졌다.

"곤륜산은 이곳에서 십만 팔천 리도 더 떨어졌을 텐데, 그 곳으
로 가려 한다니 혹시 미치지 않았나? 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도
록 하게."

장무기는 풀이 죽었다. 곤륜산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리라
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우선 무당산으로 돌아가 태사부
님을 만나 뵐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달리 했
다.

'남의 부탁을 받았는데 길이 멀다고 해서 도중에 포기할 수야
없지 않은가? 게다가 난 언제 죽게 될지도 모르는 몸이니, 죽기
전에 불회를 아버지에게 데려다 주지 못한다면 저승에 가서라도
기 아주머니를 뵐 면목이 없을 거야.'

그는 노인과 헤어져 다시 길을 재촉했다. 그로부터 스무 날이
경과되자 두 어린 것은 모두 옷이 남루해지고 얼굴도 초췌해 졌
다. 장무기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양불회가 보채는 일이었
다. 그녀는 엄마가 왜 아직도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느냐면서 질
질 눈물을 짜곤했다. 그럴 때마다 장무기는 지금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둘러대기도 하고, 옛날 얘기도 들려 주며, 때로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그녀가 눈물을 그치게 만들었다.

주마점(駐馬店)을 지나자 바람이 차가와졌다. 어느덧 가을이 막
바지에 이르러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두 어린 것은 아직도 얇은
옷을 입고 있으므로 몸을 덜덜 떨었다. 장무기는 자신의 낡은 겉
옷을 벗어 양불회에게 입혔다. 양불회는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무기 오빠는 춥지 않아?"

장무기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난 춥지 않아. 몸에서 열이 화끈거리는데."

그는 제자리에서 깡총깡총 뛰어 보였다.

양불회는 고개를 떨구고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시무룩하게 말했
다.

"오빠는 나에게 너무 잘해 누는 것 같아. 자기도 추우면서 옷을
나한테 주니....."

어린 계집애의 입에서 어른스러운 말이 나오자 장무기는 오히려
멍해졌다. 이때 산비탈길 뒤쪽에서 병기가 서로 부딪치는 음향에
이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인의 앙칼진 음성이 뒤따랐
다.

"악적! 넌 독이 뭍은 상문침(喪門針)에 맞았으니 빨리 달릴수록
빨리 발작될 것이다!"

장무기와 양불회는 얼른 잡초더미 속에 몸을 숨겼다. 곧이어 서
른 살 가량의 건장한 사나이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의 뒤에
는 몇 장의 간격을 두고 한 여인이 손에 쌍도를 쥔채 쫓아오고
있었다. 사나이는 갑자기 자세가 흐트러지더니 비틀거리며 땅바
닥에 쓰러졌다. 여인은 이내 가까이 달려왔다. 순간, 사나이가
펄쩍 몸을 솟구쳐 잽싸게 오른손을 힘껏 뻗어내 여인의 가슴팍을
적중시켰다. 여인은 심한 충격을 받아 벌렁 뒤로 나자빠지면서
손에 쥐고 있던 쌍도도 떨어뜨리고 말았다.

사나이는 손을 젖혀 등에 꽂혀 있는 독침을 뽑더니 싸늘하게 말
했다.

"어서 해약을 내놔라!"

여인은 냉소를 날렸다.

"이번에 스승님이 너를 잡기 위해 우리를 강호로 내보내면서,
단지 독이 묻은 암기만 주었을 뿐 해약은 주지 않았다. 그러니
죽이려면 어서 죽여라. 그 대신 너도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사나이는 왼손에 쥔 칼끝으로 그녀의 목을 겨냥하며, 오늘 손으
로는 주머니를 뒤져 보았으나 해약을 찾아 내지 못했다. 그러자
사나이는 극도로 화가 치밀어 그 독이 묻어 있는 상문침을 냅다
여인의 어깨에 꽂았다.

"자, 너도 이 독침의 맛이 어떤지 음미해 보아라! 너희 곤륜파
는....."

그는 말을 끝까지 잇지도 못하고 독성이 발작했는지 나직한 신
음을 토하며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여인은 몸을 일으키려다가
울컥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하며 다시 스러졌다. 그녀는 간신히 독
침을 뽑아 땅에 팽개쳤다. 그들은 길옆 풀밭에 쓰러진 채 한결같
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장무기는 설공원, 간첩 등에게 당한
후로부터 무림인에 대해 상당히 경계했다. 그래서 한쪽에 몸을
도사린 채 변화만 지켜볼 분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잠시 후 사나이가 장탄식을 하며 입을 열었다.

"나 소습지(蘇習之)는 오늘 이곳에서 목숨을 잃게 되면서도 아
직 당신네들이 곤륜파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소. 대
관절 날 끝끝내 죽이려는 이유가 무엇이오? 그것을 알아야지만
죽어서도 눈을 감을 수 있을 게 아니겠소?"

여인의 이름은 첨춘(詹春)이며 곤륜파의 제자였다. 그녀도 곧
상대방과 함께 목숨을 잃게 될 생각을 하니 모든 게 부질 없이
느껴져 울적하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신이 나의 사부님께서 검법을 연마하는 것을 훔쳐 보았기 때
문이에요. 그 양의검법(兩儀劍法)은 본문의 진산지학으로서, 설
사 문중제자라 할지라도 스승님께 직접 전수를 받지 않고 훔쳐
배우는 경우가 있으면 눈을을 후벼내는 중형을 받게 돼요. 더군
다나 당신은 외부 사람이잖아요."

소습지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빌어먹을! 정말 죽어야 할 놈은 따로 있군!"

첨춘은 이내 성난 음성으로 소리쳤다.

"당신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나의 사부님을 모독할 생각인
가요?"

"그에게 더 지독한 욕을 한들 날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난 백
우산(白于山)을 지나다가 낭자의 사부가 연검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된 것뿐이오. 언뜻 스쳐 본 것으로 그 검법을 배울 수 있는
실력이라면, 오늘 이 꼴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오. 첨 낭자, 분
명히 말하겠는데 낭자의 스승인 철금선생은 너무나 옹졸하오. 내
가 양의검법을 눈꼽만치 배우지도 않은 건 사실이지만, 설령 한
두 초식 우연히 배웠다 해도 그게 죽을 죄는 아닐 것이오."

첨춘은 침묵을 지켰다. 솔직히 말해 그녀도 역시 스승님의 처사
가 너무 지나쳤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습지가 우연히 연검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해서 여섯 명의 제자를 시켜 추살케 한 것이
다. 죽음을 눈앞에 둔 소습지의 말이니 거짓이 아닐 것이다.

소습지가 다시 입을 열어 투덜거렸다.

"그는 제자들에게 독이 묻은 암기를 내주면서 해약을 주지 않았
다니, 무림에 이런 법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오? 빌어먹
을.....!"

첨춘은 부드럽게 말했다.

"소대협, 모두 제 잘못이에요. 지금은 그저 후회스럽기만 해요.
그 죄값으로 소대협과 죽음을 함께 하게 됐으니 다소나마 위안이
되긴 하지만, 소대협의 집안 식구들을 생각하면....."

소습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 아내는 이미 이 년 전에 세상을 떠났소. 슬하에 여섯 살 짜
리 남자애와 네 살된 계집애가 있는데, 내일이면 그들도 고아가
될 것이오."

"집에 다른 사람은 없나요? 누가 어린애들을 돌보죠?"

"지금은 형수께서 보살펴 주고 있지만, 워낙 성깔이 거친데다가
손찌검이 심해 그 동안은 내 눈치를 보느라 어린 것들을 학대하
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그는 말을 데대로 잇지 못하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첨춘은 죄스러운 표정으로 나직이 말했다.

"모두 제가 지은 죄예요."

소습지는 고개를 내둘렀다.

"낭자를 탓하지는 않소. 낭자가 나와 무슨 원한이 있겠소? 단지
스승님의 분부에 따라 일을 행한 것이 아니오! 사실 나만 죽으면
그뿐인데 낭자에게까지 독침을 전개한 것이 후회스럽소. 그렇지
않고 내가 모든 사정을 털어놓고 간청을 했다면 낭자같이 마음씨
착한 사람이 내 불쌍한 애들을 돌봐 줄 수도 있었을 텐데....."

첨춘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는 당신을 해친 흉수인데, 어떻게 마음이 착할 수가 있어
요?"

"난 낭자를 탓하지 않소. 정말 낭자를 원망하지 않소."

지금의 상황은 조금 전에 목숨을 걸고 악투를 벌였을 때와 판이
하게 달랐다. 그들은 머지않아 죽게 될 것을 알고 진심을 털어놓
으며 서로를 위로했다.

장무기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내심 생각을 굴렸다.
'이들은 천성이 착한 것 같아. 더군다나 저 남자에게는 어린애
가 둘이나 있는.....'

그는 양불회와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되새기며 남의 일처럼 느
껴지지 않아 잡초더미에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첨 낭자, 그 상문침에 어떤 독이 묻어 있는지 알고 있나요?"

소습지와 첨춘은 잡초더미에서 남자애와 계집애가 불쑥 나타난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됐는데, 장무기의 엉뚱한 질문을 듣자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장무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의술을 약간 배운 바가 있어, 어쩌면 두 분의 독상을 치
료해 드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첨춘이 그의 말을 받았다.

"무슨 독인지는 나도 모르겠다.단지 상처 부위가 견디기 어려
울 지경으로 가렵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라면 우린 네 시진을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제가 상세를 살펴봐도 될까요?"

소습지와 첨춘은 그가 나이도 어린데다가 거렁뱅이처럼 생겨 독
상을 치료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소습지는 마치 조롱을 당하는 기분이 들어 거칠게 소리쳤다.

"우린 이제 곧 죽게 될 것이니, 귀찮게 굴지 말고 멀찌감치 물
러나라!"

장무기는 그를 거들떠보지 않고 상문침을 집어 냄새를 맡아 보
았다. 은은한 난화의 향기가 풍겼다. 근래에 그는틈이 생길 때
마다 왕난고가 남긴 독경을 읽어 천하의 온갖 해괴한 독물에 대
해 확연히 알고 있었다. 지금 이 향기를 맡자 상문침에 청타라화
(靑陀羅花)의 독액이 묻어 있다는 것을 이내 알아차렸다. 독경에
서술한 바에 의하면, 이 꽃즙 자체는 독성이 없어 한 사발을 들
이켜도 중독이 되지 않지만 일단 피와 혼합되면 극독으로 변하는
동시 비릿한 냄새가 향기로 변한다 했다.

"이것은 청타라화의 독이 분명합니다."

첨춘은 상문침에 묻어 있는 독이 무슨 독인지는 몰라도 스승님
의 화원에 여려 종류의 기화이초(奇花異草)가 심어져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장무기의 말을 신통하게 생각하며 얼른 물었다.

"아니..... 그것을 어떻게 알았지?"

청타라화는 그 원산지가 서역이므로 중원에선 좀처럼 보기가 어
려웠다. 장무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수가 있어요."

그는 곧 양불회의 손을 잡았다.

"우린 이만 가자."

첨춘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소형제, 만약 치료 방법을 안다면 우리 두 사람의 목숨을 구해
주게."

장무기는 본디 그들을 구해 줄 작정이었으나, 돌연 설공원 등의
배은망덕한 일이 떠올라 망설여졌다. 이번에는 소습지가 간청을
했다.

"소상공, 내가 고인을 몰라보고 무례한 언동을 한 것을 용서하
게."

장무기는 결심을 내린 듯 아랫 입술을 깨물었다.

"좋습니다. 한 번 시험해 보겠습니다."

그는 금침을 꺼내 첨춘의 가슴 단중혈과 어깨 양쪽 결분혈을 몇
번 찔렀다. 일단 장상을 입을 통증을 없애 주기 위해서였다.

"이 청타라화는 피를 봐야지만 독으로 변하니 삼켜도 상관 없습
니다. 우선 두 분이 서로 상대방의 상처 부위를 빨아 엉켜 있는
피를 제거해야 합니다."

소습지와 첨춘은 모두 쑥스러워했다. 그러나 목숨이 중요하므로
서로 번갈아가며 상대방의 상처 부위를 빨았다. 장무기는 산기슭
에서 세 가지 약초를 구해와 입으로 잘근잘근 씹어 두 사람의 상
구에 붙여 주었다.

"이 세 가지 약초는 독성이 더 만연되지 않게 할 뿐 독을 근본
적으로 제거하는데는 별 효험이 없습니다. 일단 가까운 마을로
들어가 약방을 찾아 다시 독을 치료하는 약을 조재해 드리겠습니
다."

소습지와 첨춘은 원래 상처 부위가 견디기 어려울 만큼 근질근
질했다. 그런데 약을 바르자 거짓말처럼 시원하고 사지가 마비되
는 증상도 사라졌다. 그들은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두 사
람은 나뭇 가지를 꺾어 지팡이로 삼아 천천히 걸어갔다. 첨춘은
장무기의 사문 내력에 대해 물었지만 장무기는 적당히 얼버무리
며 그저 어렸을 대부터 의술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고만 했다.

한 시진 후에 이들은 사하진(沙河鎭)으로 들어서 객점에 투숙했
다. 장무기가 약방문을 지어 주자 소습지가 점원을 시켜 약을 지
어 오게 했다. 예서(豫西)일대는 다행하게도 가뭄의 피해가 심하
지 않아 비록 넉넉지는 못해도 모두 나름대로 끼니를 때우며 살
았다. 점원이 약을 지어 오자 장무기는 탕약을 달여 소습지와 첨
춘에게 복용시켰다.

이들은 객점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장무기는 매일 약방문을 바
꿔가며 환부에 발라 주기도 하고 탕약을 복용시키기도 했다. 나
흘째 되는 날 두 사람이 당한 극독은 말끔히 제거되었다. 그들은
크게 감격해 장무기와 양불회가 어디로 가는 길인지 물었다. 장
무기는 곤륜산 좌망봉으로 가는 길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첨춘은 내심 생각을 굴리는 듯 하더니 아랫 입술을 지그시 깨물
며 말했다.

"저..... 소대협, 이 소형제가 우리의 목숨을 구해 주었지만 저
의 사형들은 계속 소대협을 찾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차라리 저
와 함께 곤륜산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어요?"

"곤륜산으로.....?"

"네. 저의 스승님을 만나뵙고 사실대로 양의검법을 훔쳐 배우지
않았다고 말씀드리세요. 그 어르신네가 생각을 달리 하시지 않는
한 언젠가는 후환이 닥칠 거예요."

소습지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난 단지 우연한 기회에 한 번 보았을 뿐인데, 끝끝내 죽음의
궁지로 몰려고 하니 세상에 이런 무경우가 또 어디 있겠소?!"

첨춘은 부드럽게 말했다.

"소대협, 소매는 곰곰이 생각한 연후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거
예요. 저의 스승님이 믿어 주시기만 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해
결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피해 다니시다가 저의 사형들에게 불행
을 당하게 된다면 소매도 죄책감 때문에 더 이상 살아갈 용기가
없을 거예요."

이들 두 사람은 죽음의 문턱에서 며칠간 생활을 같이 해오는 동
안 서로 정이 들었다. 소습지는 그녀의 염려어린 말을 듣자 이내
분노가 사라졌다. 곤륜파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쫓기다 보면 언
젠가는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니.....

첨춘은 그가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보자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 생각 말고 우선 저와 곤륜산으로 가세요. 무슨 급한 일이
있으시다면 곤륜산에 다녀온 후 소매도 함께 돕겠어요."

"좋소, 그렇게 합시다. 한데 영사가 내 말을 믿어 줄지....."

"스승님은 늘 저를 아껴 주셨으니 통사정을 하면 소대협을 난처
하게 만들진 않을 거예요. 이번 일을 매듭지은 뒤에 소매는 소대
협의 아드님과 따님을 만나보고 싶어요. 그들이 당신의 형수님께
학대를 받는 것이 안타까와요."

소습지는 그녀의 말투에서 자기에게 일생을 맡기겠다는 뜻을 간
파하고 내심 크게 기뻐했다. 그는 곧 장무기에게 말했다.

"소형제, 우리도 곤륜산으로 가야 하니 길벗이 되어 함께 가도
록 하세."

다음날, 소습지는 마차 한 대를 빌려 양불회와 장무기를 마차에
태우고 자기와 첨춘은 말을 타고 앞장섰다. 정오 무렵, 큰 마을
에 이르자 첨춘은 장무기와 양불회에게 새 옷을 사 주었다. 말쑥
한 모습으로 탈바꿈한 장무기와 양불회의 영준하고 귀여운 모습
을 보자 갈채를 보냈다.

서쪽으로 갈수록 하루가 다르게 날씨가 추워졌다. 소습지와 첨
춘의 보살핌을 받아 아무런 변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서역에 당
도하자, 곤륜파 세력 안으로 들어온 셈이니 더욱 말썽이 생길리
가 만무했다. 단지 뼈를 에일 듯한 한풍과 황사가 기승을 부려
견디기가 어려웠다.

서역으로 들어선 지 이틀 후에 이들 일행은 곤륜산 삼성요(三聖
拗)에 다다랐다. 이곳은 별천지였다. 융단을 깐 듯한 초원이 펼
쳐져 있고 곳곳에 기화이초가 만발했다. 이곳 삼성요 주위는 온
통 하늘을 찌를 듯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이상난류가
형성돼 있었다. 곤륜파는 곤륜삼성 별건가 이래 혁대 장문인들
모두가, 이 삼성요를 별지로 가꾸겠다는 노력하에 제자들을 강남
천축(天竺)가지 보내 기화이초를 옮겨와 뿌리를 내리게 했던 것
이다.

첨춘은 세 사람을 데리고 철금선생이 사는 철금거(鐵金居)로 갔
다. 문 안으로 들어서자 대청 밖에 몇몇 제자들이 서성거리며 모
두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첨춘은 무슨 일인가 궁금해 하면
서 사매 한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스승님은 안에 계시냐?"

그 여제자가 대답하기도 전에 철금선생 하태충의 벼락 같은 호
통소리가 후당 쪽에서 들려왔다.

"이런 밥통들, 무슨 일을 시키면 제대로 해내는 게 없구나! 너
희들 같은 제자를 키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어 탁자를 내리치며 야단법석이었다.

첨춘이 나직하게 물었다.

"스승님의 역정이 대단하신 것 같으니, 아무래도 내일 만나뵙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태충의 외침이 들려왔다.

"첨춘이냐? 뭘 소곤거리느냐? 그 소가 녀석의 목을 갖고 왔느
냐?"

첨춘은 안색이 약간 변하며 얼른 대청안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
었다.

"너에게 시킨 일은 어떻게 되었느냐? 그 소가 녀석을 없앴느
냐?"

"지금 밖에서 스승님께 사죄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본문의 규칙을 몰라 우연히 스승님께서 검술을 연마하시는 것을
보았지만, 단지 천하무쌍의 고명한 검술이라는 것만 느꼈을 뿐,
워낙 오묘하여 그 초식에 대해서는 조금도 깨우친 게 없다고 합
니다."

그녀는 스승님을 모신 지 오래 되므로 스승님이 무공에 대해 상
당한 자부심을 갖고 계시다는 걸 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소습지
가 본문의 무학을 극구 칭찬한다는 투로 말씀드린 것이다. 그래
야지만 스승님의 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평상시 같
았다면 하태충이 우쭐대는 기분에 첨춘이 바라는 대로 일을 가볍
게 처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은 상황이 달랐다. 하태충
은 냉소를 날리며 말했다.

"어쨌든 녀석을 잡아온 것은 잘했다. 그 녀석을 우선 뒷산 석실
에 가두어라. 나중에 천천히 처리를 하겠다."

첨춘은 그의 기분이 언짢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간청을 할 수
없었다.

"네."

하고 대답하며 다시 물었다.

"사모님들께선 모두 편안하시죠? 제가 내당으로 가서 그 분들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하태충은 처와 소실을 모두 다섯 명이나 거느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 다섯째 첩을 제일 좋아했다. 첨춘은 소습지의 일을 원만
하게 해결하기 위해 우선 다섯째 사모님의 환심을 사 둘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하태충은 갑자기 울적한 표정이 되어 장탄식을 했다.

"가서 오부인(五夫人)을 만나뵙도록 해라. 그녀는 중병에 걸려
마지막 상면이 될지도 모른다."

첨춘은 깜짝 놀랐다.

"갑자기 무슨 병을 앓게 되셨죠?"

하태충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병명이라도 알면 오죽 좋겠느냐? 이미 칠, 팔 명의 용하다는
의원들을 불러왔지만 병명조차 제대로 알아내지 못했다. 지금 온
몸이 퉁퉁 부어 그렇게 아름답던 모습이..... 정말 딱해서 못 보
겠다."

여기까지 말한 그는 연신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었다.

"그렇게 많은 제자가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나도 쓸
모가 없으니..... 장백산으로 가서 천 년 삼을 구해 오라고 보낸
지도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소식이 없지를 않나, 설련과 하
수오 같은 영초를 구해 오라고 시키면 번번히 빈손으로 돌아오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구나."

첨춘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장백산은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오가는데만 꼬박 두 달이 걸릴 텐데, 당도하자마자 천년 삼을 찾
아 낼 리도 만무할 것이다. 게다가 설련, 하수오 같은 기사회생
의 영초를 지닌 이물(異物)은 평생을 두고도 찾기 어려운 것인
데, 어떻게 짧은 시간 내에 구해 올 수 있단 말인가? 스승님은
이 소첩을 자기의 목숨처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엉뚱한 사람
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태충이 다시 분연히 말했다.

"흥! 만약 그녀가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 모든 돌
팔이 의원을 죽여 없애겠다."

첨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자가 직접 가 뵙고 싶습니다."

"좋다. 나도 함께 가마."

그들은 오 부인의 침실로 갔다. 문 안을 들어서자 마자 약냄새
가 진하게 풍겼다. 아니나 다를까, 하태충이 말한 대로 오 부인
은 온몸이 퉁퉁 부어 목불인견이었다. 그렇게 빼어났던 용모가
이렇게 추악하게 변하리라곤 첨춘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태충은 시중을 들고 있는 아줌마에게 짜증스럽게 분부했다.

"가서 그 돌팔이 의원들을 다시 불러와라."

얼마 후 쇠사슬이 질질 끌리는 소리가 들리며 일곱 명의 의원이
들어왔다. 그들은 발목에 모두 사슬이 묶여 서로 연결돼 있었다.
그 동안 얼마나 시달렸는지 안색이 초췌했다. 이들은 모두 사천,
운남, 강숙 일대에서 용하다고 소문이 난 의원들로서, 하태충이
제자를 시켜 간청 반, 위협 반으로 붙잡아 온 것이다. 한데 그들
의 견해는 서로 엇갈렸다. 오 부인의 증세가 수종(水腫)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원귀(寃鬼)가 뒤집어 씌운 거라고 부
득불 우기는 사람도 있었다. 자연히 그들이 내린 약방문도 각양
각색이었다. 그들에게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오 부인의 병을
조금도 호전시키지 못했다는 것뿐이었다.

하태충은 노발충천하여 그들을 모조리 사슬로 묶어 버리고, 만
약 오 부인을 완치시키지 못할 시에는 함께 매장시키겠다고 으름
장을 놓았다. 그렇치 않아도 의견이 엇갈리는 그들은, 생명의 위
험을 느끼게 되자 매번 회진을 할 때마다 더욱 자신들의 고집을
내세우며 심한 논쟁을 벌였다. 서로들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미
루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각자 진맥
을 한 후 곧장 논쟁으로 돌입했다. 하태충은 울화통이 터져 냅다
욕설을 퍼부어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첨춘은 문득 뇌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스승님, 제자가 하남에서 명의 한 사람을 모시고 왔습니다. 비
록 나이는 어리지만 누구보다도 실력이 뛰어났습니다."

하태충은 이내 얼굴이 환해지며 소리쳤다.

"왜 진작 얘기를 하지 않았느냐? 어서 모셔오도록 해라!"

첨춘은 곧 장무기를 데리고 왔다. 장무기는 하태충을 보는 순간
왕년에 무당산에서 부모님을 죽음의 궁지로 몰아넣은 사람들 중
에 끼어 있었다는 사실이 상기되어 내심 원망스러운 생각이 들었
다. 하지만 장무기는 그 동안 많이 성장하여 하태충은 그를 알아
보지 못했다. 그는 열 다섯 살 가량의 소년이 냉랭한 표정으로
첨춘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으며 첨춘에
게 물었다.

"네가 말한 명의는 어디에 있느냐?"

첨춘은 장무기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바로 이 소형제예요. 그의 의술은 아주 뛰어나 웬만한 증상이
라면 문제없이 완치시킬 거예요."

하태충은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런 판국에 농담을 할 작정이냐?"

첨춘은 진지하게 말했다.

"제자가 청타라화의 독을 당했는데, 바로 이 소형제가 치료해
주었습니다."

하태충은 깜짝 놀라며 내심 생각을 굴렸다.

'청타라화의 독이라면 본문의 독특한 해약 없이는 필시 죽기 마
련인데, 이 꼬마 녀석이 치료를 했다니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
군.'

그는 장무기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물었다.

"네가 정말 병을 치료할 줄 아느냐?"

장무기는 부모님의 참변으로 인해 본디 하태충을 원망스럽게 생
각했으나, 천성이 순박하여 원한을 가슴 속에 깊이 묻어두지는
못했다. 설공원 등의 병을 치료해 준 것도 그런 순박한 마음에서
였다. 장무기는 그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한 갈래의 이상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잠시 머물려 있는 동안 그 냄새가 짙어졌다가 다시 엷어
지는 것을 느끼고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는 하태충의 허락
도 얻지 않고 오 부인의 침상 앞으로 다가가 양쪽 손의 맥을 짚
어보고 나서 금침을 꺼내 갑자기 그 퉁퉁 부은 얼굴을 찔렀다.

하태충은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뭐하는 짓이냐?"

그는 장무기의 손을 나꿔채려 했으나, 장무기는 이미 금침을 뽑
았다. 그 즉시 오 부인의 얼굴에서 피가 섞이지않은 고름이 나
왔다. 장무기는 금침을 코에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아 보더니 턱을
끄덕였다.

하태충은 그의 느긋한 행동에서 한가닥의 희망이 생겨 다소 누
그러진 말투로 물었다.

"소..... 소형제, 이 병이 완치될 수 있을까?"

그는 한 문파의 지존이면서도 스스로 신분을 낮추어 장무기에게
소형제라 칭했다.

장무기는 대답을 하지 않고 갑자기 오 부인의 침 상 밑을 유심
히 살피더니, 다시 창문을 열어 화원을 살폈다. 이어 침상 밖으
로 뛰쳐나가 뒷짐을 진 채 울긋불긋한 기화이초를 감상했다. 하
태충은 오 부인을 총애하므로 창 밖에다 온갖 화초를 가꾸어 놓
았다. 그는 즉시 신통한 처방을 해 주기를 애타게 기다렸는데,
뜻밖에도 장무기가 창 밖으로 뛰쳐나가 여유작작하게 꽃을 감상
하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한 가
닥의 서광을 발견한 터라 억지로 울화를 눌러 참았다. 그러자니
안색이 푸르락누르락해졌다.

장무기는 화초를 잠시 살펴보고 나서 깨달은 바가 있는 듯 고개
를 끄덕끄덕 하더니 방 안으로 돌아왔다.

"병을 치료할 수는 있지만 치료하고 싶지 않습니다. 첨 낭자,
저는 이만 떠나야겠습니다."

첨춘이 얼른 그를 만류했다.

"장형제, 만약 자네가 오 부인의 병을 치료해 준다면, 우리 곤
륜파의 모든 사람이 자네의 은혜를 잊지 않을 걸세."

장무기는 하태충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의 부모님을 죽게 한 가람들 중에 이 분 철금선생도 끼어 있
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왜 그의 부인을 치료해 주어야 합니까?"

하태충은 흠칫 놀라 물었다.

"소형제, 자네의 성함은 무엇이며 영중영당이 누구인가?"

장무기는 힘주어 말했다.

"저의 성은 장이며 선친은 무당파의 제 오 제자입니다."

하태충은 이내 안색이 굳어졌다.

'이제보니 장취산의 아들이군. 무당파의 학문은 뿌리가 깊으니
내가 상상 못할 의술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는 곧 처연하게 장탄식을 토하며 입을 열었다.

"장형제, 영존이 생존해 계실 때 나하고는 친분이 매우 두터웠
네. 그가 뜻하지 않게 목숨을 끊자 내가 얼마나 비통해 했는지
그 땐 자네의 나이가 어렸으니 잘 모를 걸세."

그는 애첩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거짓을 꾸며 냈다.

첨춘도 스승님을 돕기 위해 거짓을 꾸며 냈다.

"영존과 영당의 죽음으로 인해 스승님께서는 문중으로 돌아와
통곡까지 하셨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늘 장오협과는 평생의 지
기라고 말씀하시곤 했네. 장형제, 왜 진작 신분을 밝히지 않았
나? 자네가 장오협의 혈육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더욱 대접을 잘
해 주었을 걸세."

장무기는 반신반의했다. 어쨌든 첨춘이 자기에게 잘 대해 준 것
만은 사실이므로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이분 오 부인께서는 꾀병을 앓고 있는 게 아니라 금은혈사(金
銀血蛇)의 독을 당한 겁니다."

하태충과 첨춘은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금은설사?"

"그렇습니다. 저도 이런 독사를 본 적은 없지만 부인의 증상으
로 미루어 틀림없는 겁니다. 철금선생, 부인의 발을 살펴보십시
오. 발가락 끝에 생소한 이빨자국이 있을 겁니다."

하태충은 즉시 이불을 젖혀 오 부인의 발가락을 유심히 살펴보
았다. 과연 발가락 끝부분마다 거무잡잡한 이빨자국이 나 있었
다. 하지만 워낙 미세하여 코를 가까이 대고 유심히 살피지 않으
면 절대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하태충은 그것을 확인하고 나서 장무기에 대한 믿음이 확실해졌
다.

"과연 발가락마다 이빨자국이 있네. 소형제, 정말 대단하네. 이
제 병의 근원을 알아냈으니 치료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 소첩
이 완쾌만 되면 내 후한 보상을 하겠네."

이어 한쪽에 멀건히 서 있는 일곱 의원들에게 호통을 했다.

"이런 돌팔이 같은 놈들! 발가락에 치흔이 있는 것도 발견하지
못했단 말이냐?"

그는 욕설을 하면서도 희색만면하였다.

장무기가 넌지시 말했다.

"부인의 증상은 워낙 특이하여 저들이 병의 근원을 찾아내지 못
한 것을 나무랄 수 없으니, 모두 돌려보내도록 하십시오."

하태충은 껄껄 웃었다.

"알았네, 알았어. 소형제가 왕림을 하셨는데 저런 돌팔이 의원
들을 무엇하러 이곳에 붙잡아 두겠나? 춘아야, 저들에게 각자 은
자 백 냥씩을 주어 집으로 돌려보내도록 해라."

일곱 명의 의원은 죽음의 수렁에서 목숨을 건진 거나 진배 없으
므로 날 듯이 기뻐하며 서둘러 떠나갔다. 행여나 장무기의 의술
마저 신통치 않다는 게 판명돼 한꺼번에 떼죽음을 당할까 봐 삼
십육계 줄행랑을 친 것이다.

장무기는 다시 엉뚱한 말을 했다.

"가람을 시켜 부인의 침상을 옮기라고 하십시오. 침상 밑에 작
은 구멍이 있을 겁니다. 그곳에 바로 금은혈사가 들락거리던 구
멍입니다."

하태충은 누구를 시킬 생각도 않고 스스로침상을 번쩍 들어올
려 한쪽으로 옮겼다. 과연 그 밑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는 즉시 소리쳤다.

"어서 유황을 갖고 와라! 당장 이 고약한 독사를 태워 죽여야겠
다."

장무기가 얼른 손을 흔들며 제지했다.

"아니 됩니다. 부인의 독을 제거하려면 그 두 마리의 독사가 필
요합니다."

하태충은 멍해졌다.

"그거 참 납득이 가지 않는군. 이유가 무엇인지 가르침을 주겠
나?"

장무기는 창 밖 화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철금선생, 오 부인의 기병은 저 화원에 심어져 있는 여덟그루
의 영지란(靈脂蘭)에서 비롯한것입니다."

"저것이 영지란이란 말인가? 사실 나도 이름을 몰랐네. 내가 화
초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한 친구가 서역에서 갖고 와 삼은 걸
세. 꽃도 예쁘거니와 향기도 좋아 애지중지했는데, 그게 화근일
줄이야....."

"책에 적힌 대로라면, 저 영지란의 뿌리는 둥근 구형(球形)으로
서 색깔이 핏빛처럼 붉으며 극독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과연
그런지 캐서 확인해 봅시다."

하태충은 곧 제자들을 시켜 영지란의 뿌리를 캐게 했다. 과연
장무기가 말한 그대로 였다. 장무기는 그것을 확인하고 나서 다
음과 같이 말했다.

"수고스럽지만, 여덟 그루의 뿌리를 모두 캐서 질그릇에 넣고
계란 여덟 개와 닭피 한 사발을 섞어 질퍽하게 찧어 놓도록 하시
오. 그리고 찧을 때 살갗에 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첨춘은 대답을 하고 사매 둘과 함께 물러갔다.

장무기는 다시 한 자 남짓한 죽통 두 개와 죽봉(竹棒) 하나를
요구해 한쪽에 놓아두었다. 한참 기다려서야 영지란의 뿌리가 질
퍽하게 찧어졌다. 장무기는 그것을 바닥에 빙 둘러 원을 만들고
는 두 치 가량의 틈새를 터놓았다.

"잠시 후 이상한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모두 소리를 내면 안 됩
니다. 독사가 놀라 달아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두
를 솜과 감초로 코를 틀어막으십시오."

일을 거들고 있는 여제자들은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장무기도
코를 틀어막고 나서 불을 붙여 영지란의 잎을 뱀구멍앞에서 태웠
다. 얼마쯤 시간이 경과되자, 작은 구멍 속에서 조그만한 뱀대가
리가 빠끔히 드러났다. 뱀의 몸은 핏빛이며 머리에 금빛 볏이 달
려 있었다. 그 뱀이 느릿느릿하게 기어 나왔다. 뜻밖에도 다리가
네 개 달려 있으며 몸의 길이는 여덟 치 정도였다. 잇따라 구멍
속에서 다시 똑같이 생긴 뱀이 기어나왔다. 단지 머리 위에 달려
있는 볏이 은색이라는 게 다를 뿐이었다.

하태충 등은 이 두 마리의 괴사를 보자 모두 숨을 죽였다. 두
마리의 괴사는 혀를 날름거리며 다정하게 서로의 등을 핥아 주더
니 천천히 그 영지란의 뿌리를 찧어 만든 동그라미 안으로 들어
갔다. 장무기는 얼른 죽통의 주둥이를 동그라미의 유일한 틈새에
다 내려놓고 죽봉으로 살짝 은관혈사(銀冠血蛇)의 꼬리를 건드렸
다. 그러자 은관혈사는 전광석화와도 같은 동작으로 그 죽통 속
으로 기어들어갔다. 금관혈사도 따라서 들어가려 했지만 죽통의
길이가 넉넉치 못해 두 마리가 한꺼번에 들어갈 수 없었다. 금관
혈사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다급해 했다. 장무기는 또 하나의 죽
통으로 금관혈사를 몰아 넣고는 마개를 막아 버렸다. 그제서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길게 숨을 불어냈
다.

장무기의 말에 따라 곧 여섯 명의 여제자가 뜨거운 물로 바닥을
깨끗이 청소했다. 장무기는 다시 창문과 출입문을 굳게 닫게 하
고는 웅황(雄黃), 대황(大黃), 감초 등 몇 가지 약제를 가루로
빻아 은관혈사의 죽통 속에 주입하자 이내 요란한 소리를 냈다.
거기에 따라 금관혈사도 마치 맞장구를 치듯 기성을 질렀다. 장
무기는 잠시 기다렸다가 금사의 죽통 마개를 뽑았다. 금사는 곧
죽통 속에서 나와 은사가 들어 있는 죽통을 중심으로 하여 몇 바
퀴 맴돌더니, 갑자기 침상 위로 뛰어올라 부인의 이불 속으로 뚫
고 들어갔다. 하태충은 소스라치게 놀라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장무기는 그 더러 조용히 있으라는 손짓을 하며 살며시
이불을 젖혔다. 그러자 금관혈사가 혀를 날름거리며 오 부인의
발가락을 핥다가 잘근잘근 깨무는 게 똑똑히 보였다.

장무기의 얼굴에희색이 띠어지며 나직하게 말했다.

"부인이 당한 금은혈사의 독을 지금 이 금은혈사를 이용해 다시
빨아내는 겁니다."

향이 반 자루가 타는 시간이 경과되자 발가락을 빨고 있던 금관
혈사의 몸이 거의 두 배 가량 불어났다. 그리고 금빛 볏이 더욱
선명해졌다. 장무기는 그제서야 은관혈사가 들어 있는 죽통의 마
개를 뽑았다. 금관혈사는 그 즉시 침상에서 뛰어내려 죽통 가까
이 기어와 입으로 독혈을 뱉어내 은사에게 먹였다.

장무기는 매우 만족해 했다.

"됐습니다. 매일 이렇게 두 번씩만 독혈을 빨아내게 하면 열흘
이내에 완치될 수 있습니다."

하태충은 크게 기뻐하여 장무기를 자기 서재로 데려갔다.

"소형제의 신기에 정말 감탄했네. 어떻게 해서 그런 방법을 생
각해 냈는지 가르침을 주겠나?"

장무기는 아는 대로 대답해 주었다.

"책에 기록돼 있는 바에 의하면, 이 한 쌍의 금관, 은관혈사는
천하 독물 중에 마흔 일곱 번째에 나열돼 있습니다. 그다지 무서
운 독물은 아니지만 한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그건 독을 흡취하
는 것으로 비상, 학정홍(鶴頂紅), 공작담(孔雀膽) 따위의 극독을
가장 즐겨 먹습니다. 오 부인 침실 밖에 심어 놓은 영지란의 독
성도 대단하기 때문에, 이 한 쌍의 금은혈사를 끌어들이게 된 것
입니다."

하태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었군."

하고 장무기의 독에 관한 지식에 탄복해 마지 않았다.

장무기가 설명을 계속했다.

"금은혈사는 필히 수컷과 암컷이 함께 있습니다. 조금 전에 제
가 웅황 등의 약재로 암놈을 탈진 상태로 만들자 수컷인 금관혈
사가 짝을 구하기 위해 부인의 발가락을 빨아 그 독을 암놈에게
먹인 겁니다. 다음엔 약재로 수컷을 적당히 다스리면 암놈이 독
혈을 흡취해 짝에게 먹일 겁니다. 그렇게 반복하면 부인의 체내
에 있는 독혈이 말끔히 제거될 겁니다."

여기까지 말한 그는 뇌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 한 쌍의 혈사가 애당초 왜 오 부인의 발가락을 깨물었을까?
거기엔 까닭이 있을 텐데.....'

그는 확실한 원인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
았다. 이날 하태충은 연회를 마련해 장무기와 양불회를 깍듯이
대접했다.

며칠이 지나자 오 부인의 퉁퉁 부었던 몸이 차츰 가라앉았다.
이제는 정신도 맑아졌고 음식을 섭취할 수도 있었다. 장무기는
작별의 뜻을 비쳤다. 그러나 하태충이 한사코 만류하는 바람에
눌러 앉았다. 열흘째 되는 날 오 부인의 몸은 완전히 회복되었
다. 이날, 오 부인은 특별히 정성드려 주연을 마련해 친히 장무
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표했다. 이 자리에 첨춘도 배석했다. 오
부인은 비록 아직은 안색이 초췌하지만 타고난 미모가 다시 되살
아났다. 하태충은 그저 좋아서 싱글벙글했다. 첨춘은 스승님의
마음이 흡족한 틈을 타서 소습지를 문하로 거두어 달라고 간청했
다.

하태충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춘아야, 너의 빈틈없는 계략에 두 손 들었다. 내가 그 녀석을
제자로 삼으면 나중에 자연히 양의검법을 전수해 줄 테니, 예전
에 한 번 훔쳐본 것쯤이야 뭐가 문제될 게 있느냐?"

"스승님, 만약 그 사람이 스승님이 연검하시는 것을 엿보지 않
았다면 제가 그를 잡으러 갈 리도 없었고, 그러면 장형제를 만나
게 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 모든 것이 스승님과 오 부인의 홍
복(洪福)이며 하늘의 보살핌입니다. 물론 장형제의 고명한 의술
덕분이지만, 소습지도 약간의 공로가 있는 셈입니다."

오 부인도 옆에서 한 마디 거들었다.

"당신은 많은 제자를 거두었지만, 결국 도움을 준 것은 첨낭자
밖에 없잖아요? 첨 낭자가 그 소습지라는 사람을 잘 본 모양인데
제자로 거두도록 하세요. 나중에 당신의 의발제자가 될지도 모르
잖아요."

하태충은 애첩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 주었다.

"알았소. 제자로 삼으리다. 그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소."

"그게 무엇이죠?"

오 부인이 묻자 하태충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내 문하에 투신한 후 열심히 배워야 하며, 춘아에게 엉뚱한 마
음을 품어 아내로 맞이하려 한다면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첨춘은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떨구었다. 오 부인은 까르르 웃었
다.

"맙소사! 스승이 솔선수범해야죠. 자기는 첩을 주렁주렁 거느리
고 있으면서 제자의 혼례를 금지시킬 수 있나요?"

하태충은 일부러 첨춘을 골려 주기 위해 한 말이었다.

그는 껄껄 웃었다.

"자, 술이나 마시지!"

어린 하녀가 나무 쟁반에 술주전자를 받쳐들고 가까이 다가와
각자의 술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끈적끈적한 술이 빛깔도 고울
뿐 아니라 향기 또한 농후했다.

하태충은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장형제, 이 술은 곤륜산의 명산으로 호박밀리주(琥珀密梨酒)라
고 하네. 다른 곳에선 마실 수 없는 술이니 몇 잔 마셔두게."

사실 그는 엉뚱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금모사왕의 행방을 캐내야 하는데, 일이
중요한 만큼 서둘러선 안 되겠지.....'

장무기는 본디 술을 마실 줄 몰랐다. 그러나 이 호박밀리주의
그윽한 향기에 구미가 당겨 술잔을 들어올려 입술을 갖다 대었
다. 그 순간 품속 죽통 안에 있는 금은혈사가 갑자기 이상한 소
리를 냈다.

장무기는 이내 느끼는 바가 있어 소리쳤다.

"이 술을 마시면 안 됩니다!"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멍해져 술잔을 내려놓았다.

장무기는 품속에서 죽통을 꺼내 금관혈사를 풀어놓았다. 그 금
사는 술잔 가까이 기어가더니 술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셔
버렸다. 장무기는 금사를 죽통 속에 몰아넣고 이번에는 은관혈사
를 풀었다. 은관혈사도 마찬가지로 술 한 잔을 깨끗이 비워 버렸
다. 이 한 쌍의 혈사는 짝없이는 살 수 없으므로 한 쪽만 풀어주
면 절대 달아나지 않았다.

오 부인은 영문을 몰라 그저 재미있다고만 생각했다.

"소형제, 이 한 쌍의 독사가 술을 마시니 정말 재미있는 일이
군."

장무기는 하녀에게 말했다.

"가서 강아지나 고양이를 잡아다 주었으면 좋겠는데....."

하녀는 공손히 대답을 하고 물러가려는데 장무기가 만류했다.

"낭자는 이곳에 남아 있고 다른 사람을 시키세요!"

잠시 후 한인 한 명이 누런 개를 잡아 왔다.

장무기는 하태충 앞에 놓여 있는 술잔을 집어 개의 입 속에 부
어넣었다. 개는 비명을 지르더니 곧 피를 흘리며 죽었다.

오 부인은 놀란 나머지 오돌오돌 떨었다.

"술에 독이..... 누가 우리를 독살하려던 모양인데, 장형제는
어떻게 알았지?"

장무기는 간단하게 설명했다.

"금은혈사는 독물을 즐겨 먹기 때문에 술 속의 독약 냄새를 맡
자 기뻐서 괴성을 지른 것입니다."

하태충은 안색이 새파랗게 변해 대뜸 하녀의 손목을 나꿔잡아
다그쳤다.

"누가 이 술을 갖다 주라고 했느냐?"

하녀는 놀란 나머지 혼비백산하여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저는..... 독이 있는지 몰랐어요. 큰 주방에서 들고 왔는
데....."

"큰 주방에서 이곳까지 오는 도중에 혹시 누굴 만나지 않았느
냐?"

"복도에서 행방(杏芳)을 만났어요. 그녀는 저를 붙잡고 얘기하
면서 주전자 뚜껑을 열어 술냄새를 맡아 보았어요."

하태충, 오 부인, 첨춘은 서로 마주 보며 모두 두려워하는 표정
이었다. 행방은 바로 하태충 정실부인의 몸종이었다.

장무기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철금선생, 한 가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 있어 줄곧 주의를
기울여 왔는데, 애당초 금은혈사가 오 부인의 발가락을 물어 사
독을 체내에 전달하게 된 것은 오 부인이 그 독약에 중독돼 있었
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예전에 오 부인에게 독을 전개했던 사
람이 바로 오늘 술에다 독을 풀어 넣을 자 일겁니다."

하태충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문이 열리며 한 줄기의 그림
자가 어른거리는가 싶더니, 장무기는 멍치 부위에 따끔한 느낌이
들며 이미 누구에 의해 혈도가 찍히고 말았다. 앙칼진 여인의 음
성이 들린 것도 바로 그 때였다.

"맞았다. 내가 독을 전개한 것이다!"

난데없이 나타난 자는 몸집이 우람한 반백의 여인으로서 머리카
락이 희끗하며 양미간에 살기가 서려 있었다.

이 여인은 대뜸 하태충에게 턱을 치켜들며 시비조로 말했다.

"내가 술에다 지네의 극독을 풀어 넣었으니 어떻게 하겠어요?"

오 부인은 겁먹은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 동안 별고 없으셨어요?"

이 몸집이 우람한 여인은 하태충의 정실부인이신 반숙한이었다.
또한 그의 동문 사제이기도 했다. 반숙한은 오 부인을 아예 거들
떠 보지도 않고 다시 하태충에게 다그쳤다.

"내가 독을 풀었으니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었는데, 왜 대답
이 없죠?!"

하태충은 양미간을 접으며 투덜거리듯 말했다.

"이 소년 의원이 못마땅하게 여겨져 술에 독을 푼 것은 이해가
가지만, 만약 나까지 중독되었다면....."

"닥쳐요! 이곳에 있는 사람을 모조리 죽여도 내 속이 풀리지 않
을 거예요!"

그녀는 술주전자를 집어 흔들어 술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더니, 하태충앞에 내려놓고 냉랭하게 말했다.

"난 원래 다섯 명을 모두 죽일 작정이었는데, 이 귀신 같은 녀
석에게 발각됐으니 네 사람의 목숨은 살려두겠어요. 어서 다섯
사람 중에 한 사람을 택해 그 독주를 한 잔 마시게 하세요!"

이렇게 말하며 검을 뽑아 쥐었다.

반숙한은 곤퓬파의 걸출한 인물로서 하태충보다 나이가 두 살이
나 더 많았다. 입문도 일찍 한데다가 무공도 하태충에 못지 않았
다. 하태충이 젊었을 때 영준하게 생겼기 때문에 사저의 환심을
살 수 있었다.

그들의 스승인 백녹자(白鹿子)는 명교의 한 고수와 싸우다 죽음
을 당하는 바람에 미처 유언을 남기지 못했다. 그러자 제자들은
장문인 자리를 쟁탈하기 위해 서로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서 반숙한이 적극적으로 하태충을 도왔다. 그들이 힘을
합치자 막강한 세력이 형성되어 다른 사형제들이 감히사심을 품
을 수 없었다. 결국 하태충이 장문인의 자리를 계승하게 된 것이
다. 하태충은 그녀의 은덕에 감격하여 곧 아내로 맞아들였다. 서
로 젊었을 때는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나이가 많아지자 반숙한
은 하태충보다 훨씬 늙어보였다. 하태충은 자식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첩을 얻기 시작했다.

반숙한은 수십 년 동안 그를 도와온 막강한 존재였다. 게다가
적당한 구실을 내세웠을 망정 첩을 얻은 것이 마음에 걸려 더욱
아내를 경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내를 두려워하면서도 첩을 늘
려가는 일에는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첩이 많아질수록 엄
처시하가 되어 갔다. 지금 아내가 독술을 자기 앞에 내려놓자 감
히 거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난 물론 독술을 마실 수 없다. 오 부인과 춘아도 마실 수 없
고..... 장무기는 날 구해 준 은인이니 저 계집애를 내세우는 수
밖에 없구나.'

생각이 여기에 미친 하태충은 자리에서 일어나 잔에 독술을 따
라 양불회에게 건네주었다.

"얘야, 네가 이 술을 마시도록 해라."

양불회는 질겁을 했다. 조금 전에 누런 개 한 마리가 술을 마시
고 즉사하는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감히 술잔을 받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싫어요! 난 마시지 않을래요!"

하태충은 대뜸 그녀의 멱살을 잡아 강제로 마시게 하려 했다.
장무기는 지켜만 볼 수 없었다. 그는 냉랭하게 말했다.

"내가 마시겠어요."

하태충은 아내를 의식해 만류할 수가 없었다.

한편, 반숙한은 남편이 오 부인만 총애하는 것에 대해 짙은 질
투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독살을 계획했는데, 장무기로 인
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증오심에 불탔다. 그녀는 차갑
게 말했다.

"저 녀석은 해괴한 짓거리를 많이 하니, 독을 제거할 방법이 있
을지도 모르지. 만약 그가 대신 마시겠다면 한 잔으로선 부족하
니 독술을 깨끗이 비워야 한다!"

장무기는 하태충에게 구원의 눈길을 던졌다. 그러나 하태충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첨춘과 오 부인도 겁
을 잔뜩 집어 먹고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장무기를 위해 입을
열기만 하면 당장 반숙한으로 부터 날벼락이 떨어질 것만 같았
다.

장무기의 가슴 밑바닥에서 찬바람이 일었다.

'저 사람들의 생명은 내가 구해 준 것인데, 내가 위기에 처하니
모두 수수방관만 하는구나.....'

그는 죽음에 대해 별다른 두려움은 없었다. 이미 오래 전에 죽
음을 초월한 것이다. 그러나 양불회가 걱정되었다.

"첨낭자,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누이
를 곤륜산 좌망봉에 있는 그녀의 아버님께 데려다 주실 수 있겠
습니까?"

첨춘은 자신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스승님을 쳐다보았다.

하태충이 고개를 끄덕이자 비로소 장무기에게 대답했다.

"좋아. 내가 그녀의 아버님께 데려가 줄께."

그러나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곤륜산의 범위가 천 리나 되는데, 좌망봉이 어디에 붙어 있는
지 알아야지.....'

그녀의 생각은 자연히 표정으로 표출되었다. 장무기는 그녀가
건성으로 대답하는 느낌을 받자 심한 배신감에 사로잡혀 냉소를
날렸다.

"명문정파라 자처하는 곤륜파가, 알고 보니 형편없었군. 좋소,
어서 술을 나에게 주시오."

하태충은 그의 모욕적인 말에 발끈했으나, 이제 곧 죽게 될 것
을 생각하니 노골적으로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는 사손의 행방
을 추궁할 생각도 잊은 채 술주전자를 건네주었다. 장무기는 이
미 죽을 결심을 한 터였으므로 주저없이 술을 모두 꿀꺽꿀꺽 마
셔 버렸다. 양불회는 장무기를 끌어안고 방성통곡을 했다.

반숙한은 코웃음을 날렸다.

"너의 의술이 제아무리 뛰어났다 해도 움직일 수 없으면 자신을
구할 재간이 없겠지!"

그녀는 장무기의 어깨, 허리 등 여러 부위에 혈도를 찍었다. 이
어 하태충, 첨춘, 오 부인, 양불회에게도 혈도를 찍었다.

"두 시진 후에 너희들의 혈도를 풀어 주러 오겠다."

그녀가 혈도를 찍을 때 하태충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반숙한은 한쪽에서 떨고 있는 하녀에게 호통을 쳤다.

"모두 밖으로 나가라!"

그녀는 맨 마지막으로 방을 나와 밖에서 문을 잠그어 버렸다.
독술을 마신 장무기는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고통이 엄습해 왔다.
그러나 고통을 참는데 익숙해진 그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는 고통을 참으며 암암리에 진기를 끌어올려 사손으로부터 배
운 방법으로 우선 몸에 찍힌 혈도를 차례차례 풀어나갔다. 그리
고 나서 머리카락을 몇 올 뽑아 입 안에 넣어 후두를 살살 건드
리자 즉시 울컥울컥 뱃속의 독술을 거의 다 토해냈다. 하태충과
첨춘 등은 혈도가 찍힌 그가 움직이자 모두 의아해 했다. 하태충
은 그가 술을 토하는 것을 막으려 했으나 혈도가 찍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장무기는 이제 더 이상 토해 낼 것이 없었다. 그저 헛구역질만
할 뿐이었다. 우선 양불회의 혈도부터 풀어 주려 했다. 한데 반
숙한의 점혈수법이 독특하여 좀처럼 풀 수가 없었다. 장무기는
해혈수법으로 거듭 시험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할 처지가 못 되었
다. 그는 곧 양불회를 안아 창문을 열고는 보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 창문 밖에 내려놓았다.

하태충도 반 시진 후면 자신의 진기로서 찍힌 혈도를 풀 수 있
었다. 지금 장무기가 달아나려는 것을 보자 당황해졌다. 아내에
게 나중에 문책당할 것도 문제겠지만, 장무기가 달아나 자기네들
의 배은망덕한 행위를 퍼뜨린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어떠
한 수를 써서라도 장무기를 죽여야만 했다. 그는 아내에게 이 사
실을 알리기 위해 소리를 지르려 했다. 장무기는 그것을 이미 예
측하고 품속에서 검은 알약을 꺼내 오 부인의 입 속에 쑤셔넣었
다.

"이것은 구비환(鳩批丸)이오. 열 두 시진 후엔 오 부인의 오장
이 파열돼 죽게 될 것이오. 내가 해약을 삼십 리 밖 나무 위에
올려놓고 표시를 해 놓을 테니 사람을 시켜 갖고 오도록 하시오.
그러나 내가 붙잡혀 죽는다면 부인도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소형제, 내가 사는 이곳 삼성당은 비록 용담호혈은 아니지만,
너의 실력으로선 빠져 나가지 못할 것이다."

장무기도 그의 말이 결코 근거없는 위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
다. 그는 냉랭하게 말했다.

"그러나 오 부인이 복용한 이 구비환의 독성은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해독할 수 없을 것이오."

"좋다. 나의 혈도를 풀어 주면 내가 직접 널 데리고 나가겠다."

장무기는 그의 말을 믿기로 했다. 지금 상황으로선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하태충에 찍힌 혈도를 풀기 위해 노력해 보았
으나 소용이 없었다. 물론 그의 해혈수법도 독특했다.

그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곤퓬파의 점혈수법은 과연 무섭군. 의부는 나에게 일곱가지 해
혈수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아무런 효용이 없으니.....'

하태충도 감탄을 금치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 녀석의 해혈수법은 괴이하면서도 정묘하군. 마누라가 분명
녀석의 일곱 군데 혈도를 찍었는데 스스로 간단하게 풀다니.....
무당파가 최근에 강호에서 명성을 크게 떨치고 있는 게 결코 우
연한 일만은 아니군. 그날 무당산에서 싸움을 벌이지 않았던 게
천만다행이다. 이 꼬마 녀석의 실력이 이 정도이니 장삼봉과 그
의 제자들은 오죽하겠는가?'

하태충은 장무기가 사손으로부터 스스로 혈도를 푸는 비법을 가
르침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물론 무당파는 나름대로
무림에 위명을 떨칠 만한 비학을 지니고 있었지만, 장무기의 이
두 가지 비법은 무당파와 무관했다.

하태충은 그의 해혈수법이 효용을 거두지 못하자 한 가지 묘책
이 떠올랐다.

"향차를 한 잔만 마시게 해줬으면 좋겠다."

장무기는 그가 이러한 상황에서 왜 갑자기 차를 마시려 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그러나 애첩의 생명을 생각해 감히 자기에
게 허튼 수작을 부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차를 한 잔 마시게
해주었다.

하태충은 차를 삼키지 않고 입 안에서 한 번 굴리더니, 갑자기
자기의 팔꿈치 안쪽 청냉연(淸冷淵)을 겨냥해 힘차게 뿜어냈다.
한 줄기의 물살이 쏟아지자 팔에 찍힌 혈도가 이내 풀렸다. 장무
기는 곤륜산 삼성당에 온 후로부터 줄곧 하태충의 연약한 면만
보아왔다. 그런데 지금 그가 신공을 전개하는 것을 보자 내심 놀
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곤륜파의 장문인답게 심후한 무공을 지니고 있군. 보아하
니 그의 무공은 나의 이사백님과 금화파파, 멸절사태에 비해 손
색이 없는 것 같다. 만약 그가 물화살을 내 얼굴에 뿜었다면 이
미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하태충은 곧이어 스스로 자신의 다리 부위 혈도를 풀었다.

"우선 해약을 내놓아라. 그러면 무사히 이곳을 벗어나게 해주
마."

장무기는 고개를 내둘렀다.

하태충은 다급해졌다.

"나는 곤륜파의 장문이다. 너 같은 어린애에게 약속을 어길 것
같느냐? 만약 그 동안 독성이 발작이라도 한다면 어떻게 하느
냐?"

장무기는 단호하게 말했다.

"독성이 절대발작하지 않을 것이오. 더구나 해약에다 한 가지
약초를 더 첨가해야 하므로 지금은 내줄 수가 없소."

하태충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다. 일단 몰래 이곳을 빠져 나가자."

두 사람은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그는 양불회의 등에다
소매를 살짝 떨치자 이내 혈도가 풀어졌다. 실로 경쾌하고 절묘
한 수법이었다. 장무기는 다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태충은 그
의 눈빛에서 마음을 꿰뚫어 보는지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띄더
니, 두 사람을 데리고 삼성당 뒤쪽 화원을 끼고 돌아 옆문으로
빠져 나갔다.

삼성당은 모두 아홉 칸으로 되어 있었다. 후화원의 옆문을 나와
꾸불꾸불한 꽃길을 지나 다시 여러 군데의 대청을 뚫고 나갔다.
그는 곳마다 처마와 처마가 줄줄이 이어진데다가 문이 워낙 많아
하태충이 앞장서지 않았다면 장무기는 영락없이 길을 잃었을 것
이다. 설령 곤륜파 제자들의 저지를 받지 않는다 해도 이곳을 빠
져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삼성당을 벗어나자 하태충은 양불회를 한 손으로 안고, 한 손으
로는 장무기를 잡더니 경공술을 전개해 서북쪽으로 질주했다. 장
무기는 달리는 도중에 품속에서 해독환을 두 알 꺼내 삼켰다. 한
데, 그들이 한참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여인의 앙칼진 외침소리
가 들려왔다.
"하태충..... 하태충! 멈추지 못하겠소?"

바람결에 실려온 이 외침소리는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기
도 하고 지척지간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반숙한의 음성이라는 사실이었다.

하태충은 엉거주춤하더니 걸음을 멈추었다.

"아내가 뒤쫓아온 모양이니 더 이상 너희들을 데리고 갈 수 없
다. 이제부터 너희들끼리 달아나도록 해라."

장무기는 내심 생각했다.

'철금선생은 아주 나쁜 사람이 아니군.....'

그의 순진함은 너무나 쉽게 감동하게 했다.

"철금선생, 이젠 돌아가세요. 내가 오 부인에게 복용시킨 것은
독약이 아니니 아마 염려 마세요."

하태충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정말 독약이 아니란 말이냐?"

장무기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 손으로 오 부인을 구했는데 어떻게 내 손으로 다시 해칠 수
가 있겠습니까?"

이때 반숙한의 외침이 다시 들려왔다.

"하태충.....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소?"

그녀의 음성이 훨씬 가까이 들렸다.

하태충이 장무기와 양불회를 데리고 달아난 것은 순전히 애첩의
안위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속임수 였음을 알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그는 다짜고짜 장무기의 뺨을 철썩철썩
후려쳤다. 장무기는 이내 얼굴이 붉게 부어올라 입가에서 선혈이
흘러내렸다.

장무기는 비로소 후회가 됐다.

'내가 왜 이렇게 어리석을까? 이젠 진심을 알았으니 나는 물론
이거니와 불회 누이까지 목숨을 잃게 됐군.....'

하태충이 다시 뺨을 때리려 하자 장무기는 발악을 하듯 무당 권
법 중의 한 초식인 도기룡(倒騎龍)을 전개해 주먹을 쭉 뻗어냈
다. 만약 유연주 등이 이 초식을 전개했다면 위력이 상당했을 것
이다. 그러나 장무기의 보잘것없는 실력으로서는 계란으로 바위
를 깨려는 꼴이었다. 하태충은 살짝 옆으로 피하며 그의 오른쪽
눈을 적중시켰다. 그 즉시 눈두덩이 부어 올랐다. 장무기는 도저
히 상대방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아예 반항을 포기
했다.

장무기는 눈에서 별들이 보일 정도로 호되게 얻어맞았다. 한참
정신없이 맞고 있는데 반숙한이 여제자 둘을 거느리고 달려왔다.
그녀는 장무기가 전혀 반항을 하지 않는 것을 보자 재미가 없다
고 느꼈는지 하태충에게 소리쳤다.

"이번엔 저 계집애를 때려 보시지!"

그녀의 몸에 잔인한 피가 흐르는 게 분명했다. 하태충은 그녀의
지시에 따라 이내 몸을 돌려 양불회의 뺨을 후려쳤다. 양불회는
아픔을 견디지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장무기는 참을 수 없었다.

"이 애가 무슨 잘못이 있다는 거냐? 차라리 날 죽여라!"

그는 하태충이 다시 양불회에게 손찌검을 하려는 것을 보고 다
짜고짜 그의 가슴에 머리를 쳐 박으며 덤벼들었다.

반숙한이 냉소를 날렸다.

"저 어린 녀석도 의리를 아는데 당신같이 의리가 없고 박정한
사람은 느끼는 게 없나요?"

하태충은 얼굴이 붉어지며 장무기의 뒷덜미를 잡아 냅다 한쪽으
로 집어던지며 호통했다.

"이 잡종 같은 놈! 저승으로 가서 네 애비, 에미나 만나거라!"

이번만큼은 진력을 사용해 장무기를 집어던진 것이다.

장무기는 무서운 속도로 허공을 가로질러 멀리 떨어져 있는 바
윗돌을 향해 머리부터 부딪쳐 갔다. 영락없이 뇌가 파열되어 목
숨을 잃게 될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한 갈래의
힘줄기가 뻗쳐와 장무기를 옆으로 밀어낸 것도 바로 이 순간이었
다.

장무기는 별다른 충격 없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혼비백산
하여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퉁퉁 부은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흰색 장포를 입은 중년 서생이었다. 반숙한, 하태충
부부는 서로 마주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서생이 언제
이곳에 당도했으며, 어느 방향에서 왔는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설령 그가 벌써부터 바위 뒤에 숨어 있었다 해도 자기네들의 예
민한 감각으로 눈치를 못 챌 리가 없었다. 하태충이 방금 장무기
를 집어던진 힘은 최소한 오, 육백 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서생
은 소매를 살짝 떨쳐 그 힘을 와해 시키지 않았던가! 이 한 가지
사실만 보아도 그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었다.

중년 서생은 냉랭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호수처럼 깊은 그
의 눈에는 왠지 우수가 담겨져 있는것 같았다.

하태충은 헛기침을 하고 나서 물었다.

"귀하는 누군지.....? 무엇 때문에 우리 곤륜파가 하는 일에 참
견을 하는 거요?"

중년 서생은 담담하게 말했다.

"두 분이 바로 철금선생과 하 부인이오? 나는 양소라고 하오."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하태충, 반숙한, 장무기는 동시에 놀란
외침을 토했다.

그러나 장무기의 외침 속에는 기쁨이 섞여 있었고, 하태충 부부
의 외침 속에는 분노가 깔려 있었다.

곤륜파의 두 여제자는 분부가 떨어지기도 전에 검을 뽑아 사부
와 사모님께 건네주었다.하태충은 즉시 장검을 가슴 앞에 세워
설포교(雪抱僑)의 자세를 취했고, 반숙한은 검끝으로 비스듬히
땅을 가리키며 소목엽(掃木葉)의 자세를 전개했다. 그들은 상대
방이 만만찮은 강적임을 알고 곤륜파 검법 중에 가장 심오한 초
식을 펼친 것이다.

양소는 그들을 무시하듯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다만 장무
기의 외침 속에 기쁨이 담겨 있는 것이 다소 이상하게 느껴져 그
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때 장무기는 눈두덩이가 붓고 코가 시퍼렇게 멍들어 얼굴이
온통 피로 뒤범벅돼 있었지만,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기쁨이 그
대로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장무기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소리쳤다.

"다...당신이 정말 명교의 광명좌사자 양소 양백부님이신가요?"

양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날 어떻게 알고 있지?"

장무기는 양불회를 가리키며 다시 흥분에 들뜬 음성으로 소리쳤
다.

"얘가 바로 당신의 딸이에요."

그는 양불회를 끌고 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불회야, 어서 아버지라고 불러라. 어서! 우린 드디어 찾아 냈
어!"

양불회는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양소를 쳐다보았다. 장무기의
말을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양소가 아버지든 아
니든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였다.

"엄마는 어디에 있지? 엄마는 왜 아직도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
는 거야?"

양소는 전신에 한 차례 진동이 일며 냅다 장무기의 어깨를 움켜
쥐었다.

"얘야, 방금 뭐라고 했느냐? 이..... 여자애가 누구의 딸이라
고? 그의 어머니는 누구냐?"

그가 힘주어 움켜쥐는 바람에 장무기는 어깨쭉지가 떨어져 나가
는 것 같았다. 좀처럼 비명을 지르지 않는 그도 앗! 하고 소리치
며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당신의 딸이에요. 그녀의 어머니가 바로 아미파의 여협
기효부예요."

본디 창백한 양소의 안색이 더욱 창백하게 변했고, 음성마저 떨
려 나왔다.

"그녀에게 딸이..... 있었단 말이냐?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느
냐?"

그는 얼른 양불회를 안았다. 하태충에게 맞아 뺨이 부어 있지만
기효부와 닮은 데가 많았다. 그가 직접 양불회에게 물으려는데
홀연 목에 걸려 있는 검은색의 쇠줄을 발견했다. 그 가느다란 쇠
줄 끝에 철패가 매달려 있는데, 한복판에 금색으로 불길 형상이
새겨져 있으니, 바로 자기가 기효부에게 준 명교의 철염령(鐵炎
令)이었다. 이제는 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불회를 품안
에 꼭 끌어안으며 다급히 물었다.

"너의 어머니는 어디 있느냐?"

양불회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엄마는 하늘나라로 갔어요. 나도 엄마를 찾고 있는데 저희 엄
마를 보지 못했나요?"

양소는 그녀의 나이가 어려 말을 분명하게 하지 못하자 장무기
에게 시선을 던졌다.

장무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양백부님, 제 말을 듣고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기 아주머니는
자기의 스승님 손에 목숨을 잃었어요. 죽기 전에 저더러....."

양소가 갑자기악을 쓰듯 소리쳤다.

"거짓말이야! 그럴 리가 없어!"

그는 엄청난 충격에 이성을 잃었다. 장무기는 그에게 팔이 잡혀
있었는데 양소가 악을 쓰는 순간 그만 팔뼈가 부러졌다. 그와 동
시에 양소와 함께 한쪽에 쓰러졌다. 양소는 여전히 오른손으로
딸을 안고 있었지만 눈을 희끄무레 까뒤집은 채 기절해 있었다.
엄청난 충격을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하태충
과 반숙한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장검을 뻗어내 양소의 목과
미간을 겨냥했다.

양소는 명교의 대고수로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반숙한
과 하태충은 스승님이 명교 고수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것만 알
뿐 흉수가 누구인지는 확실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곤륜파의 동
문들은 모두 양소의 소행일 것이라 추측하고 있었다. 하태충 부
부는 이곳에서 갑자기 양소를 만나게 되자, 이심전심 이미 살의
(殺意)를 품고 있었다. 그런데 출수를 하기도 전에 양소가 스스
로 까무라쳤으니,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라 생각해 즉각 급소를
겨냥하게 된 것이다.

반숙한이 잔인하게 말했다.

"우선 놈의 사지부터 자르세요!"

하태충은 여부가 있겠느냐는 듯 신이 나서 대답했다.

"알았소!"

양소는 죽음이 눈앞에 닥쳤다는 사실도 모르고 여전히 정신을
잃고 있었다. 다급해진 것은 그가 아니라 장무기였다. 그는 팔이
부러진 고통으로 인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기각을 잃지 않고,
황급히 발끝으로 양소의 정수리 백회혈(百會穴)을 살짝 걷어찼
다.

백회혈은 뇌의 중추혈도로서 가벼운 충격을 받자 양소는 이내
깨어나 눈을 떴다. 그 순간 음산한 한기가 미간을 엄습해 오는
것을 직감했다. 그의 몸이 마치 용수철에 의해 튕겨지듯 곧장 뒤
로 날아간 것도 바로 이 순간이었다. 오랜 경험에 의해 몸에 밴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뒤로 날아가는 그의 몸은, 빳빳한 것이 흡
사 죽은 송장의 목에 밧줄을 걸어 뒤에서 힘껏 끌어당겨진 것처
럼 보였다. 그가 날아가는 방향에 따라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며
피빛 무지개가 수놓아졌다. 뒤로 일 장 남짓 날아가 떨어져 내린
그의 가슴에 길다란 혈흔(血痕)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것은
미간을 겨냥했던 반숙한의 검끝이 아슬아슬하게 코끝은 스치고
가슴에 가벼운 상처를 낸 것이다. 그리고 사지를 자르기 위해 떨
쳐졌던 하태충의 검도 빗나가 단지 팔뚝에상처를 냈을 뿐이었
다. 실로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만약 반숙한의 검끝이 반 치
가량만 더 깊이 파고 들었다면, 양소는 가슴이 찢어져 오장육부
를 쏟아내며 참사를 당했을 것이다.

양소가 전개한 신법은 실로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놀란 것은 오
히려 하태충 부부였다. 그들은 분명 눈앞에서 벌어진 일인데도
불구하고 믿을 수가 없었다. 입을 멍하니 벌린 채 그들은 넋을
잃었다. 그 순간 양소의 몸이 다시 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튕겨
왔다.

뚝! 뚝!

하태충 부부의 장검이 부러졌다. 양소가 전광석화같이 발로 걷
어차 부러뜨린 것이다. 하태충 부부의 무공으로 미루어 볼 때,
양소의 무학이 제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동시에 두 자루의 장검을
걷어차 부러뜨릴 수는 없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초식이 워낙 괴이한데다가 하태충 부부는 그가 부상을 입은 상태
에서 느닷없이 반격을 해오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흠칫 놀라 미처 검을 거두지 못한 것이다.

모든 변화는 한 순간에 일어난 것에 불과했다. 더욱 놀라운 것
은 양소의 괴초가 그것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가 잇따
라 두 발을 날리자 부러진 장검의 앞토막이 격출되어 제각기 하
태충 부부를 행해 뻗쳐갔다. 하태충 부부는 반 토막의 장검으로
막아야만 했다. 순간, 맑은 금속성이 들리며 하태충 부부는 반
토막의 검끝으로 맞섰으나 손목이 얼얼했다. 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황급히 뒤로 물러나 서북 방향과 동남쪽으로 서로 갈라섰
다. 그들 손에 쥐어져 있는 장검은 비록 반 토막밖에 남아 있지
않았으나, 한 사람은 가슴앞으로 들어올려 하늘을 가리키고, 한
사람은 허리 아래로 내려 땅을 겨냥했다. 그것은 음양합벽(陰陽
合壁)으로서 바로 곤륜파의 진산비학인 양의검법의 기수식이었
다. 그들은 내심 다소 당황했지만 기세만큼은 태산을 압도하듯
위압감을 주었다.

곤륜파의 양의검법은 이미 수백 년 전에 명성을 얻은 천하명검
법중의 하나였다. 하태충 부부는 동문 사형매로서 어려서부터 무
공을 함께 연마해 왔기 때문에, 특히 이 양의검법에 대해서는 자
신만만 했다.

양소는 곤륜파의 고수들과 겨루어 본 적이 있어 이 양의검법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두렵지는 않지만 상대방을 격패하
려면 최소한 백여 초식 이상을 맞부딪쳐야 하 것이다. 한데, 지
금은 기효부의 비보로 인해 정신 집중이 어려운 데다가 부상까지
입어 시간을 오래 끌면 유리할 게 없었다. 하여, 냉랭하게 말했
다.

"곤륜파는 갈수록 검법이 퇴보하는군. 오늘은 이대로 돌아가겠
지만 나중에 필시 이 빚을 갚으리라!"

그는 왼손으로 양불회를 안고 오른손으로 장무기를 잡아 아무런
자세도 취한 것 같지 않았는데 홀연 일 장 밖으로 물러났다. 그
리고 눈깜짝할 사이에 이미 십여 장 밖으로 벗어났다.

하태충 부부는 그의 귀신 같은 신법에 다시 넋을 잃었다. 그들
은 이 대마두가 스스로 물러간 것을 다행이라 생각할 정도였으니
감히 추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양소는 단숨에 몇 리 밖으로 달려나가 별안간 걸음을 멈추고는
장무기에게 물었다.

"기효부 낭자가 어떻게 해서 죽음을 당했느냐?"

장무기는 독술을 토해 내고 해독환을 복용했지만, 아직 체내의
독이 말끔히 제거되지 않아 다시 복통이 일어났다. 그는 금관혈
사를 꺼내 자기의 왼손 식지를 깨물어 독을 빨아내게 하며 기효
부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어떻게 병을 치료해 주었으며, 어떻
게 해서 멸절사태와 만났고 목숨을 잃게 되었는지 소상히 얘기해
주었다. 이 무렵 금관혈사는 그의 체내의 독소를 모두 뽑아냈다.

양소는 기효부가 임종을 앞두고 한 말을 다시 자세하게 듣고 나
서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멸절, 그 잔인한 계집중의 요구에 따라서 날 죽였다면, 아미파
를 위해 큰 공을 세워 장문까지 계승할 수 있었을 텐데..... 효
부! 왜 죽음을 무릅쓰고 거절을 했소? 거짓이라도 좋으니 일단
승락만 했다면 우린 다시 만나게 됐을 것이고 당신도 목숨을 잃
지 않았을 게 아니오!?"

장무기가 그의 말을 받았다.

"기 아주머니는 인품이 곧아 당신에게 독수를 전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승에게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양소는 처연하게 웃었다.

"너야말로 효부의 지기구나. 그녀의 스승이 그런 잔인한 수단을
전개할 줄이야....."

장무기는 그의 품안에 안겨 있는 불회를 쳐다보고 나서 말했다.

"저는 기 아주머니의 유명에 따라 불회누이를 당신에게....."

양소의 몸에 한 차례 진동이 일었다.

"불회라고?"

그는 직접 양불회에게 물었다.

"얘야, 내 착한 보배야, 너의 성은 무엇이며, 이름은 무엇이
냐?"

양불회는 이내 대답했다.

"성은 양이고, 이름은 불회예요."

양소는 앙천장소를 했다. 그의 장소(長簫)에 주위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한참 후에야 그는 장소를 거두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과연 성이 양이군. 불회라..... 볼회..... 효부! 당신은 비록
억지로 나에게 몸을 잃었지만 후회하지 않았구료....."

장무기는 기효부에게서 두 사람 사이에 얽힌 얘기를 들었다. 지
금 양소를 보니 비록 그녀에 비해 나이가 많은 것이 흠이지만 영
준비범하여 멋진 미남자임에 분명했다. 순진해 보이기만 한 은이
정 숙부에 비해,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여건을모두 갖추고 있
는 것 같았다. 기효부는 비록 강압에 못 이겨 순결을 상실했지만
결국은 진심으로 그를 흠모하게 된 것이다. 장무기는 아직 어려
남녀지간의 복잡 미묘한 감정 변화를 알랴마는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었다.

장무기는 부러진 팔에 다시 통증을 느껴 나뭇 가지 두 개를 꺾
어 양쪽에 받치고 나무 껍질로 동여맸다. 양소는 가가 어린 나이
에 익숙한 솜씨로 접골을 하는 것을 보자 다소 의아해 했다.

장무기는 곧 작별을 고했다.

"양 백부님, 이제 기 아주머니의 분부대로 불회에게 아버님을
찾아 주었으니 이만 작별을 고할까 합니다."

양소는 진지하게 말했다.

"네가 불원천리 내 딸을 데려다 주었는데, 내 어찌 보답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원하는 것이 있으면 서슴없이 말해 보아라.
이 양소가 해내지 못하는 일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장무기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양 백부님, 기 아주머니를 너무 과소평가하시는 것 같군요. 혹
시 그녀의 죽음이 헛된 게 아닌지 걱정이 되는군요."

양소는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장무기는 힘주어 말했다.

"기아주머니는 저를 과소평가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따님을 당신
께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을 겁니다. 만약 제가 무엇을 바라는 놈
이라면 애당초 부탁이나 했겠습니까?"

그는 내심 투덜거렸다.

'불화와 이것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겪어야만 했던가!
죽을 고비도 여러 번 있었지. 만약 내가 이득을 바라는 소인배라
면, 오늘 당신네 부녀는 상봉하지 못했을 것이오.'

그는 공치사가 싫어 그간의 고생을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몸
을 숙여 정중히 읍을 하더니 곧 떠나가려 했다.

양소가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 너는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나 양소는 은원이 분
명한 사람이다. 자 나와 함께 가자, 일년 이내에 너를 절세고수
로 만들어 주겠다."

장무기는 이번 기회에 강호가 얼마나 험악한 곳인가를 알았기
때문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강한 무공을 배울 필요를 느꼈다.
그러나 절대 마교의 사람들과 어울려서는 안 된다는 태사부의 말
씀이 떠올랐다. 더군다나 자기는 수명이 반 년 남짓 밖에 남지
않았다. 설령 천하무적의 무공을 연성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
가!

"양 백부님의 뜻은 고맙지만, 저는 무당제자로서 다른 문파의
무공을 배울 수 없습니다."

양소의 낯빛이 약간 굳어졌다.

"네가 무당파의 제자라고? 그럼 은이정 은육협과도....."

"그분은 저의 사숙님입니다. 선친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은육숙
은 친숙부님 못지 않게 저에게 잘해 주었습니다. 저는 기 아주머
니의 부탁을 받아 불회를 이곳까지 데려왔지만, 은육숙에게는 미
안한 생각이 없지 않습니다."

양소는 그의 눈과 마주치자 내심 죄의식을 느껴 손을 흔들며 작
별을 고했다.

"너의 은혜는 나중에 보답하겠다. 그럼 너의 앞날에 하늘의 가
호가 있길 바라겠다."

그는 몸을 번뜩이더니 이미 몇 장 밖으로 물러났다.

양불회는 울먹이며 소리쳤다.

"무기 오빠! 무기 오빠!"

그러나 양소는 신법을 전개해 이내 멀어져 갔다. 따라서 불회의
외침소리도 차츰 멀어져 갔다.


----- 제 3 권 2 장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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