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밤

의천도룡기 6-4

3학년2반 | 2022.03.06 07:06:42 댓글: 0 조회: 400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3192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제 6 권

제 5 장 단양절(端陽節)의 도사대회(屠獅大會) #1/3

장무기는 녹장객이 도습한 일장을 얻어맞고 중상을 입게 되었
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구양진기를 체내에서 세 번 회
전시키자, 어혈(瘀血) 두 모금을 토해냈다. 비로소 막힌 흉구가
뚫리는 것 같았다. 이윽고 눈을 떠보니 조민의 얼굴은 온통 근심
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낭자, 나 때문에 고생 많이 했죠?"

"아직도 날 '조낭자'라고 부릅니까? 이젠 난 조정의 사람도 아
니고 군주도 아닙니다. 당신.....당신은 아직도 날 소요녀(小妖
女)로 취급하고 있습니까?"

장무기는 천천히 일어서면서 말했다.

"당신에게 한 가지 물어 볼 게 있는데, 사실대로 말해 주시오.
내 사촌누이 주아 얼굴의 검상은 도대체 당신의 짓입니까? 아닙
니까?"

"아닙니다."

"그럼 누구의 독수란 말이오?"

"난 당신에게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당신이 사대협을 만나면
그분이 당신에게 자세한 내막을 말해 줄 것입니다."

장무기는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내 의부가 알고 있다니?"

"내상이 채 완쾌되지 않아서 말을 많이 하면 몸에 해롭습니다.
이것만은 분명히 당신에게 말하겠어요. 만약에 은 낭자를 살해한
범인이 나라고 한다면, 내 스스로 자결하여 사죄할 겁니다."

장무기는 그녀의 단호한 말투를 듣자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잠
시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필시 파사국 명교가 그 배 안에 고수를 매복시켜 놓
고 사법(邪法)으로 한밤중에 우리를 기절시킨 후, 주아를 살해하
고 의천검과 도룡도를 훔쳐간 것이오? 나중에 우리가 의부를 구
출해 놓고 필히 파사국에 한번 들려서 소조에게 분명히 알아봐야
겠소."

조민은 입을 삐죽거리며 한 번 웃었다.

"당신은 소조를 만나려고 온갖 핑계를 둘러대는군요. 제발 엉뚱
한 생각일랑 말고, 하루속히 공력을 회복해서 소림사에 가는 일
이 시급합니다."

"뭐하러 소림사에 간단 말이오?"

"사대협을 구해야 할 게 아닙니까?"

장무기는 더욱 이상하게 느껴져 되물었다.

"의부가 소림사에 있단 말이오? 어째서 거기에 있는 겁니까?"

"어떻게 된 일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사대협께서
소림사에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이윽고 조민은 자기 수하 중에 있는 한 명이 소림사에 출가를
했는데, 사손이 확실히 소림사에 있다는 걸 증명해 주기 위해서
그의 머리카락을 잘라왔다는 일이며, 또 결국은 양장을 얻어맞고
죽었다는 얘기를 장무기에게 말해 주었다. 그러자 장무기가 말했
다.

"흠, 정말 지독하군."

그의 마음이 괴롭기 때문에 내식(內息)을 건드리게 되었다. 참
다못해 다시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 냈다. 그러자 조민이 급히
말했다.

"진작 당신의 내상이 이처럼 심하고 또 참을성이 없는 줄 알았
다면, 난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을 거예요."

장무기는 땅에 주저앉으며 바위에 기대서 운기조식을 하려했지
만,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소림신승 공견은 나의 의부가 칠상권으로 타사(打死)한 것이
오. 소림의 승속들은 이 십여 년 동안 원수를 갚으려고 칼을 갈
았소. 더구나 성곤이 바로 소림사에 출가했으니, 의부는 살아 남
을 수가 없지 않소?"

"너무 조급할 것 없습니다. 사대협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물건
이 딱 한 가지 있으니까요."

"무슨 물건이오?"

"도룡보도!"

장무기도 그녀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도룡도는 <무림지존>이
라고 호칭한다. 소림파가 수백 년 동안 무림의 우두머리 격으로
있었으며 이 보도에 대한 애착심은 어느 문파보다 더 강했다. 그
들은 보도를 얻기 위해서도 사손을 쉽게 해치지는 않을 것이다.
조민이 다시 말했다.

"사대협을 구출하는 일은 아무래도 우리 둘이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에 명교의 군웅들을 모집하여 소림을 대거 침
습하다면 쌍방이 많은 피해를 면치 못해요. 소림파가 만약에 명
교의 진공을 막아내지 못할 땐, 오히려 사대협의 생명에 지장이
있게 됩니다."

장무기는 그녀의 세심한 생각을 듣게 되자 내심 감동되었다.

"민매(敏妹), 당신 말이 모두 옳소."

조민은 처음으로 그가 <민매>라고 부르는 걸 듣자 말할 수 없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막상 부모의 은혜와 오빠의 정의를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장무기는 그녀의 마음을
알면서도 어떻게 위로해 줄지 몰랐다. 순간 억지로 일어나서 말
했다.

"우리도 떠납시다."

조민은 그의 안색이 창백한 걸 보자 상처가 몹시 심한 줄 알았
다.

"우리는 속히 이 위험한 떠나야 합니다. 산 아래로 내려간 다음
에 다시 머물 곳을 정합시다."

장무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비틀거리며 말을 끌고왔다. 막 말
에 올라타려는데 흉구에 한 차례 극렬한 통증을 느껴 올라갈 수
가 없었다. 그러자 조민이 이를 악물고 오른팔로 밀어서 그를 말
등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막상 힘을 가하자 비수에 찔린 가슴의
상처에서 다시 많은 피가 쏟아졌다. 그녀도 억지로 올라타서 그
의 뒤에 앉았다. 처음에는 장무기가 그녀를 부축했는데, 지금은
반대로 그녀의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잠시 숨을 헐
떡거리더니 천천히 말을 몰고 전진했다. 나머지 말 한 필은 뒤에
서 따라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하산한 후 아예 큰길을 택해서 갔다. 얼마 동안 가다
가 바로 작은 샛길로 접어들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약간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무리 왕보보가 사람을 시켜서 잡으려 온다 해도
이러한 후미진 샛길은 찾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길에는 온통 난석(亂石)과 가시밭으로 되어 있어서 말 두 필
의 다리는 가시에 찔려서 피투성이가 되었다. 절룩거리며 한 시
간쯤 걸었는데, 겨우 이십 리 정도밖에 가지 못했다. 날이 어두
워지자 갑자기 산 속에서 가느다란 연기 한 줄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았다. 그러자 장무기는 기뻐하며 말했다.

"앞에 인가가 있으니, 거기서 하룻밤 신세집시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곳은 인가가 아니라 절간이었다. 조민은
장무기를 부축하여 말에서 내렸다. 말머리를 서쪽으로 돌려놓고
나뭇 가지를 하나 주워서 말엉덩이를 몇 번 후려쳤다. 그러자 말
들은 울부짖으며 쏜살처럼 달려갔다. 그녀는 도처에 의진(疑陣)
을 펼쳐 놓아 왕보보의 추병(追兵)을 따돌리기만을 바라고 있었
다. 막상 말을 잃게 되면 도피하는데 더욱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것저것 가릴 겨를이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 부축하며 절간 앞으로 다가갔다. 대문 위에 있
는 현판에는 <중악신묘>라고 씌어 있었다. 조민이 문고리로 세
번 두드렸으나 전혀 반응이 없었다. 다시 세 번을 두드리자 갑자
기 안에서 음산한 소리로 말하는 게 들려왔다.

"사람이냐, 귀신이냐? 죽으러 왔느냐?"

삐그덕 하면서 대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문 뒤에서 인영(人影)
하나가 나타났다. 그 자의 얼굴은 똑똑히 불 수 없었으나, 대머
리에 승복을 입은 걸 보아서는 중이 틀림없었다. 장무기가 말했
다.

"우리 남매는 도중에 강도를 만나서 몸에 중상을 입었습니다.
부디 보찰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도록 대사께서 자비를 베푸시기
바랍니다."

그 자는 코웃음을 치며 냉랭하게 말했다.

"출가한 사람은 남의 편리를 봐주지 않는 법이오. 그러니 다른
데로 가보시오."

문을 닫으려 하자 조민이 급히 말했다.

"남의 편리를 봐주게 되면 자신한테 그 만큼 덕이 옵니다."

"무슨 덕이냐?"

조민은 귀걸이 한 쌍을 떼어서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 화상
은 귀걸이에 모두 진주가 박혀 있는 걸 보자 두 사람을 다시 훑
어보면서 말했다.

"좋소. 들어오시오."

조민은 장무기를 부축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 화상은 두 사람
을 데리고 대전과 원자를 지나서 동쪽에 있는 행랑채로 왔다.

"여기서 묵도록 하시오."

방 안에는 등불이 없어서 몹시 캄캄했다. 조민이 침상을 한 번
더듬어보니, 침상에는 초석 한 장만 있을 뿐 다른 물건은 아무것
도 없었다. 이때 밖에서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학사제(학四弟), 누굴 데리고 들어왔느냐?"

"지나가는 과객 두 사람이오."

그러면서 문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조민이 말했다.

"시주, 밥 두 그릇과 나물 한 접시 좀 부탁합니다."

"출가인은 남에게 적선하지 않는 법이오."

말을 하면서 유유히 사라졌다.

"저 중은 정말 못된 놈이군. 무기 오빠, 시장하시죠? 먹을 것
좀 구해야 할 텐데....."

순간 갑자기 발자국소리가 나면서 칠,팔 명이 걸어왔다. 그 중
두 명이 방문을 열면서 촛대를 높이 들고 두 사람을 비춰 보았
다. 장무기가 한 번 흘낏 보니 모두 필 명의 승인이었다. 모두가
우락부락하게 생긴자들 뿐이었다. 이윽고 주름살투성이의 노승이
말했다.

"당신들 몸에 지니고 있는 재물은 모두 내놓으시오!"

그러자 조민이 말했다.

"왜 그러시죠?"

"두 분 시주께서는 마침 이 절을 보수 공사하려는데 찾아 오신
겁니다. 그러니 두 분 몸에 지닌 재물은 모두 시주하시지요. 만
약에 인색하여 응하지 않으셔서 보살님이 화를 내시면 야단입니
다."

조민은 화를 내면서 말했다.

"그건 강도의 소행이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우리 팔 형제는 원래 강도짓을 했는
데, 최근에 개과천선해서 엉터리 중이 된 것이오. 아유, 이거야
말로 우리 출가인의 육근(六根)이 또 더럽히게 되는구료."

장무기와 조민은 몹시 놀랐다. 이 팔 명의 화상이 강도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더구나 이 노승의 말투를 들어보면, 어떠
한 일도 능히 해낼 수 있는 작자들이었다.

조민은 품안에서 칠,팔 덩어리의 황금과 진주 목걸이를 꺼내어
탁자에 놓으며 말했다.

"재물은 모두 여기 있습니다. 우리 남매도 무림의 사람이니 여
러분은 강호의 의기를 필히 고려해야 하오."

그러자 그 노승은 웃으며 말했다.

"두 분이 무림 사람이라니, 그거 잘됐군요. 어느 파의 문하죠?"

"우리는 소림의 제자요."

그 노승은 멈칫하더니, 바로 무서운 눈초리로 노려보며 말했다.

"소림의 제자라, 정말 잘 만났다!"

손을 내밀어서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려 했다. 그러자 조민은 손
을 움추려서 노승의 공격을 피했다. 이윽고 장무기가 조민에게
말했다.

"민매, 내 등 뒤로 오시오. 내가 이 팔 명의 도적놈을 요리 하
겠소!"

족지다모(足智多謀)한 조민도 이때만은 속수무책이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그 노승이 말했다.

"우리는소림사에서 쫓겨난 반도다. 다른 파의 강호 사람을 만
나면 살려줄 수 있지만, 소림의 제자들은 절대로 살려줄 수 없
다! 꼬마 아가씨, 네가 소림의 문하란 걸 알았으니, 우리는 할
수 없이 선간후살(先姦後殺)하겠다! 절대로 살려줄 수 없다!"

그러자 장무기는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옳거니, 당신들은 원진의 문하구료. 그렇죠?"

"이상한 일도 다 있구나. 네가 어떻게 알았느냐?"

그러자 조민이 말을 가로챘다.

"마침 우리는 소림사에 가서 진우량 큰 형님을 만나서 원진대사
님을 소림사의 방장으로 추거(推擧)하려던 참이오."

"잘됐구료. 아불여래 보도중생(我佛如來 普渡衆生)."

"그렇습니다. 우리는 마음과 힘을 합해서 좋은 결과를 얻어야
죠."

그녀가 이같은 말을 하자, 팔 명의 승인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
렸다. 이들 팔 명의 화상은 정말로 원진과 진우량의 일당이었으
며, 모두가 진우량의 소개로 원진의 문하로 들어간 것이다. 방금
그 노승이 <아불여래, 보도중생>이란 말은 그들 일당들이 만날
때 쓰는 암호였다. 만약에 본당의 사람이라면, <화개견불 심즉영
산(花開見佛 心卽靈山)>이라고 대답하면 서로가 알게 되는 것이
다. 조민은 그 노승의 말투에서 원진의 제자란 걸 알았으며, 아
울러 원진이 방장의 자리를 넘보고 있는 속셈을 알게 되었다. 그
러나 그들이 약정한 암호는 어찌 알겠는가!

키가 작고 뚱뚱한 승인 한 명이 말했다.

"부대형, 이 계집이 우리 사부님을 소림사의 방장으로 추거한다
는 말을 했는데, 도대체 어디서 이런 소식을 얻었을까요? 이 일
은 중대한 일이라 필히 자세하게 물어봐야 되겠소."

이 여덟 사람은 비록 삭발하여 중이 됐지만, 상호간에 아직도
큰형님, 둘째형님으로 칭하는 걸 보면 옛날에 녹림의 습관을 탈
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장무기는 그들이 웃음을 터뜨리자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
았다. 그러나 몸에 중상을 입은 후라 진기를 끌어모을 수가 없었
다. 이를 악물고 모아 보았으나, 시종 맥락(脈絡)을 따라서 운행
해 주지 않았다. 순간 그 노승은 다섯 손가락을 마치 독수리 발
톱처럼 세워서 조민에게 찍어갔다. 조민은 막아낼 힘이 없었다.
그러자 장무기는 몹시 다급했다. 그로서는 지금이라도 운기조식
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삼 성(成)의 공력을 회복해서
이 팔 명의 악적을 처치할 수 있기만 바랄 뿐이었다.

그 키가 작고 뚱뚱한 승인은 이 시점에서도 노골적으로 운기조
식하는 걸 보자 화를 내며 호통쳤다.

"대단한 녀석이군. 노자(老子)가 우선 너부터 하늘로 보내주
마."

말을 하더니, 오른팔을 쳐들고 부드득! 하며 소리를 내면서 장
무기의 가슴으로 맹렬하게 후려쳤다. 조민은 상황이 위급해지자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그 자는 일권을 후려치더니, 오른팔이 힘
없이 밑으로 떨구면서 두 눈을 부릅뜨고 서 있는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노승은 깜짝 놀랐다. 그가 한번 잡아당겨 보았더니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미 그는 죽어 있었다. 그러자 나머지
승인들은 제각기 격노하며 소리쳤다.

"이 녀석에게 사법(邪法)이 있다! 사술(邪術)이 있다!"

그 뚱뚱한 승인은 팔에 운경(運勁)하며 장무기의 흉구에 맹렬하
게 공격한 것이, 바로 담중혈(膽中穴)에 정통으로 맞았다. 장무
기의 구양신공은 적을 공격하기에는 부족했으나, 몸을 보호하기
에는 충분했다. 구양신공은 적이 가격해 온 권경을 되돌려 보냈
을 뿐만 아니라, 상대가 일격을 가해 그로서 그의 체내에 있는
구양진기를 인동(引動)시켰다. 경상가경, 역중관력(勁上加勁 力
中貫力)되어서 그 방승이 즉시 죽게 된 것이다.

그 노승은 장무기의 흉구에 독침 같은 물건이 있어서 그 방승을
죽게 만들었다면서, 즉시 출장하여 오른팔을 후려쳤다. 우선 그
의 팔을 부러뜨린 다음에 천천히 요리할 속셈이었다. 이 일초의
맹렬한 장력이 장무기의 팔에 부딪쳐 오자, 그의 체내에 있는 구
양진기가 인동하는 바람에 도리어 반격해 갔다. 그러자 그 노승
은 즉시 반격해 오는 힘에 밀려서 마치 화살처럼 창문을 뚫고 밖
에 있는 괴나무에 박혀 머리통이 깨지며 그대로 숨지고 말았다.

나머지 승인들은 모두 큰 소리로 외치면서 일제히 장무기의 앞
뒤 좌우로 공격을 퍼부었다. 순간 펑펑, 아이구! 푹푹.....! 하
는 소리가 울리면서 모두 차례로 진사(盡死)되었다. 이때 두 사
람은 지칠대로 지쳐서 전혀 움직일 힘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시체더미에 누워서 기력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장무기
와 조민은 모두 잠이 들었다.

두 사람은 중악신묘에서 며칠을 지냈다. 그 동안 편안하게 지냈
으며 더구나 소림사에서 연락하러 온사람도 없었다. 팔 일째가
되자 조민의 상처는 거의 완쾌되었다. 장무기의 체내 진기도 차
츰 관통되면서 사지에 힘이 생겨났다. 만약에 적이 온다 해도 능
히 도망갈 수 있을 정도였다. 다시 십여 일이 지나자 두 사람의
체력은 완전히 회복되었다. 장무기는 즉시 조민과 사손을 구출하
는 방법을 상의하였다. 이윽고 조민이 말했다.

"우선 소실산 밑으로 내려간 다음에, 기회를 엿봐서 행동하는
게 좋아요."

장무기와 조민은 절간에서 거주했던 모든 흔적을 조심스럽게 지
우고 나서, 이 십여 리 밖으로 걸어나왔다. 농가에서 옷가지를
구입한 후 후미진 곳으로 가서 갈아입었다. 원래 입었던 옷가지
는 구덩이를 파서 모두 묻어 버리고 천천히 소실산 밑으로 내려
갔다.

계속 ---

제 5 장 단양절(端陽節)의 도사대회(屠獅大會) #2/3

소림사에서 칠,팔 리쯤 떨어진 곳에 올 때까지 도중에 사중승인
(寺中僧人)을 세 번이나 만났었다. 그러자 조민이 말했다.

"더 이상 앞으로 가면 안 되겠어요."

그들은 산길 옆에 있는 초가집 두 채를 발견하였다. 문 앞에는
채소밭이 있었고, 마침 한 농부가 채소에 거름을 주고 있었다.

"그에게 하룻밤 신세지러 가지요."

그러자 장무기가 앞으로 다가가서 인사를 하며 말했다.

"노인장, 물 좀 얻어 마실 수 있습니까?"

그 농부는 마치 듣지 못한 듯이 대꾸를 하지 않았다. 장무기가
다시 한 번 말했으나 그 농부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갑자기
삐그덕! 하며 소리가 한 번 나더니 문이 열리면서, 한 백발의 할
머니가 걸어나오며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집 양반은 귀머거리에다 벙어리예요. 손님들, 무슨 볼일입
니까?"

"제 누이가 목이 말라서 물 좀 얻어 마시려 합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두 사람은 할머니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몹시 청
결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탁자와 의자도 모두 깨끗이 청소되어
있고 할머니의 옷가지도 몹시 청결했다. 조민은 내심 기뻐했다.
물을 마시고나서 은자를 한 덩이 내놓으며 웃으면서 말했다.

"할머님, 제 오빠가 절 데리고 외가로 가는 길인데 도중에서 발
목을 겹질려서 걸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밤 할머님 집에서 하룻
밤 신세를 질까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하룻밤 묵는 거야 무방하지만 우리에겐 방 한 칸과 침대 하나
밖에 없소. 설사 우리 두 늙은이가 방을 비워 준다 해도, 남녀
두 사람이 한 침상에서 같이 잘 수는 없지 않소? 호호..... 꼬마
아가씨, 이 할머니에게 이실직고 하시지? 댁은 아버지를 등지고
몰래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서 도망나온 것이지?"

조민은 그녀가 자신의 내막을 말해 버리자, 그만 얼굴이 빨개졌
다. 이 할머니의 날카로운 안력에 깜짝 놀랐다. 더구나 그녀의
말투를 들어보니 보통 농가의 노부(老婦) 같지는 않았다. 새삼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게 되었다. 조민의 눈에도 장무기는 그런
데로 보통 농부 같았지만, 자기의 용모나 행동거지는 절대로 농
녀 같지 않았다. 이윽고 맥없이 입을 열었다.

"할머님께서 알아버렸으니 더 이상 숨기지 않겠어요. 이 오빠는
제가 어려서부터 좋아해 온 사람입니다. 제 아버님은 그의 집안
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혼사를 반대했어요. 다행히 어머님의 도움
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할머님께서는 절대로 이 얘기를
남에게 알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자 노파는 껄껄 웃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도 젊었을 때는 풍류인물이었다우. 안심해요. 나의 방을 당
신 부부에게 비워 주겠수. 이곳은 몹시 외진 데라서 당신 집안
사람들이 찾지 못할 거유. 만약에 어떤 자가 당신들에게 난처하
게 굴면 이 노파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우."

조민은 그녀의 이같은 말을 듣자, 그녀가 무림의 인물이라는 걸
더욱 확신했다. 이곳은 소림사와 무척 가까이 있기 때문에 그녀
와 성곤이 친구인지 적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각별히 조심해서 빈
틈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무릎을 꿇고
말했다.

"할머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아우 오빠, 빨리 와서 할머님
에게 고맙다고 인사하세요."

그러자 장무기는 다가가서 읍례로 감사를 표했다. 그 노파는 웃
으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이윽고 자기 방을 즉시 비워 주더니,
대청에다 침대 하나를 새로 만들었다. 밑에는 볏짚을 깔고 위에
는 초석을 한 장 덮었다.

두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가자 장무기가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채소에 거름을 뿌렸던 그 농부의 재주가 더욱 대단하던데, 당
신은 눈여겨보지 않았소?"

"그래요? 난 모르겠는데....."

"그는 어깨에 분수(糞水)를 지고 아주 느리게 걸었는데도, 분수
두 통이 전혀 흔들림이 없었소. 그건 내력이 깊어야만 할 수 있
는 일이오."

"당신하고 비교하면 어떨까요?"

장무기는 웃으며 말했다.

"시험해 볼까?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소."

그러면서 조민을 안아들고 어깨에 짊어졌다. 마치 지게를 지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조민은 깔깔 웃으며 말했다.

"어머! 나를 분통(糞桶)으로 취급하는 거예요?"

그 노파는 밖에서 그들 두 사람이 장난치며 희희낙락하는 소리
를 듣자 좀전에 약간 의심했던 생각은 모두 사라졌다.

그날 밤, 장무기는 의자에 누워서 구양진기로 십이 주천(周天)
을 운기시키자 곧바로 잠에 떨어졌다. 그러나 조민은 침대에서
뒤척거리며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새벽 무렵에서야 그녀가 몽롱
하게 잠들려는 찰나 갑자기 발자국소리가 멀리서부터 차츰 가까
이 다가오는 것을 들었다. 매우 신속한 걸음으로 문 앞에 다가왔
다. 조민은 손을 내밀어 장무기를 밀었다. 마침 장무기도 소리를
듣고 깨어났다. 순간 문 밖에서 맑은 음성으로 말하는 소리가 들
렸다.

"두(杜)씨 현항려(賢伉儷) 계십니까? 야밤에 불쑥 찾아와서 실
례가 될지 모르 군요."

잠시 지나자 그 노파가 말했다.

"청해삼검(靑海三劍)입니까? 우리 부부가 먼 천서(川西)에서 여
기까지 피해 온 것은 당신 옥진관(玉眞觀)이 두려워서 그랬다고
치더라도 우리의 일은 한낱 사소한 마찰에 불과한데, 구태여 이
처럼 핍박할 건 없지 않소?"

그러자 문 밖에 있던 그 자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두 분이 정녕 겁에 질렸다면, 우리에게 정중하게 절을 세번 하
시오. 그러면 이 옥진관은 전에 있었던 허물을 모두 없었던 일로
하겠소."

순간 삐그덕! 하는 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렸다. 이윽고 그 노파
가 말했다.

"당신들의 소식통에 정말 놀랐소.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이때는 만월(滿月)이라 달빛이 환하게 대지를 비추고 있었다.
장무기와 조민은 벽 틈으로 밖을 내다보니, 문 밖에는 세 명의
황관도인(黃冠道人)이 서 있었다. 중간에 있는 짧은 수염이 달린
자가 말했다.

"두 분께서는 절을 하여 사죄할 겁니까? 아니면 쌍구 연자창으
로 사생결단을 낼 겁니까?"

그 노파가 미처 대답하지 않았는데, 그 벙어리 노인은 이미 큰
걸음으로 밖으로 나가더니 두 손을 양허리에 짚고 무섭게 세 도
인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노파도 따라나와서 남편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 짧은 수염의 도인이 말했다.

"두선생은 어찌 한 마디도 하지않습니까? 이 청해삼검하고 말
도 하기 싫은 겁니까?"

"제 부군은 귀머거리라서 세 분의 말을 듣지 못합니다."

"두선생은 바람소리를 듣고 무기를 식별할 수 있는 기술로 무림
에 유명한데, 어찌 귀머거리가 되었소? 정말 애석하게 되었소."

수염이 짧은 도인의 옆에 있던 뚱뚱한 도인이 장검을 뽑아 들고
말했다.

"두백당(杜百當), 역삼랑(易三浪), 그대들은 어찌 병기를 사용
하지 않는 겁니까?"

그 노파 역삼랑이 말했다.

"마도장(馬道長), 당신은 여전히 성격이 급하시군요. 두 분 소
도장(邵道長)께서도 몇 년 사이에 머리가 많이 하얗게 시셨구
료."

순간 갑자기 양손을 들어올리자, 파란 빛이 번뜩거리면서 양손
에 각각 반 치 정도 길이의 단도가 세 자루씩 있었다. 농아노인
두백당도 덩달아 손을 쳐들자, 역시 같은 단도 여섯 자루가 쌍장
에 나눠져 있었다. 이윽고 그의 왼손에 있던 칼이 오른손으로 굴
러오고, 오른손에 있던 칼이 왼손으로 굴러가면서 마치 손가락을
교차하는 것처럼 무척 숙달되고 정확했다.

세 도인은 모두 놀랐다. 그들은 무림에서 이러한 병기를 본 일
이 전혀 없었다. 크기와 모양은 비도와 비슷했지만, 사용하는 방
법이 전혀 달랐다. 두백당은 원래 쌍구로 천서에서 위력을 떨쳤
고, 그의 아내인 역삼랑은 연자창을 즐겨 사용했다. 그런데 지금
은 부부 두 사람이 모두 수십 년 동안 사용했던 병기를 사용하지
않고 이 열 두 자루 단도를 사용하는 걸 보면, 필시 매우 매섭고
또 몹시 괴이한 초수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그 뚱뚱한 마법통이 장검을 한 번 휘두르며 숙연하게 읊
었다.

"삼재검진천지인(三才劍陣天地人)!"

그러자 수염이 짧은 도인 소학이 말을 이었다.

"전축성치출옥진(專逐星馳出玉陣)!"

순간 도인 세 명은 걸음을 옮기면서 두씨 이로를 중간에 몰아넣
고 포위했다. 그러자 두씨 부부는 서로 등을 맞대고 네 손에는
은빛을 반짝거리면서 두 자루 단도를 교환하며 춤추고 있었다.
두 사람의 양손에 있는 단도가 서로 돌아가며 왔다갔다 할 뿐만
아니라, 두백당의 단도가 역삼랑의 손으로 옮겨가고 역삼랑의 단
도가 두백당의 손으로 옮겨졌다. 그러자 조민이 이상하다는 듯이
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그들이 뭐하고 있는 겁니까?"

장무기는 이마를 찌푸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더 쳐다보더
니 갑자기 말했다.

"아, 알겠소! 그는 내 의부의 사자후(獅子吼)를 겁내고 있는 거
라오."

"사자후라뇨?"

그러자 장무기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느닷없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흥! 저따위 무공을 믿고 도사복호(屠獅伏虎)하려 들다니!"

조민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혼자서 중얼거리니깐 답답해 죽겠어요."

그러자 장무기는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저 다섯 놈은 모두 내 의부의 원수들이오. 저 늙은이는 의부의
사자후가 무서워서 일부러 자기 귀를 멀게 만든 것이오....."

순간 탕탕.....! 소리가 들리면서 다섯 사람은 접전에 들어갔
다.

청해삼검이 연거푸 다섯 차례를 공격했으나, 두씨 부부가 모두
막아냈다. 두 사람 수중에 열 두 자루 단도는 돌아가며 왔다갔다
했다. 달빛 아래서 삼도광환(三道光環)을 연결하더니, 몸 부위를
둘러싸면서 매우 엄밀하게 수비했다. 청해삼검은 오랫 동안 공격
해도 별 성과를 얻지 못하자 즉시 수비태세로 돌렸다. 그러자 두
백당은 몸을 비비고 들어가서 단도로 그 왜소한 도인의 하복부로
찔러갔다. 그러자 마법통과소학은 장검으로 그의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모두 역삼랑의 단두에 저지당했다. 그제서야 그들 부부
가 연마한 도법이 일공일수(一攻一守) 라는 걸 알았다. 즉 공격
자는 공격만 전담하는 것이다. 소연은 그의 단도가 다가오자 뒤
로 물러서면서 피해 버렸다. 두백당은 즉시 그의 품안으로 덮쳐
가면서 그의 급소를 노리자 점점 더 위험하게 되었다. 그러자 소
학이 대갈일성하며 마법통과 옆에서 파고들며 일도(一道)의 검망
을 조성하여 두백당을 세 치 밖으로 밀어냈다. 세 검이 연방하게
되자 실로 물샐 틈이 없었다.

장무기는 다시 살며시 냉소하며 조민의 귀에 대고 말했다.

"저 두 가지 도법과 검법은 모두 우리 의부를 상대하기 위해서
연마한 것이오. 그들은 수비가 많은데 비해서 공격은 아주 적으
며, 게다가 수비를 오래하다가 다시 공격하게 되니 그들이 다시
하루 밤낮을 더 싸우더라도 승부를 가리지 못할 것이오."

과연 두백당이 여러 번 공격했으나, 파고들지 못하자 다시 수비
태세로 돌렸다.

조민이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금모사왕은 무공이 탁월한데, 저 다섯 녀석은 수비만 의지하면
서 어떻게 그를 이길 수 있죠?"

이때 마법통이 갑자기 소리쳤다.

"멈추시오!"

그러자 모두 뒤로 물러섰다. 마법통이 말했다.

"현항려가 연마한 도법은 도사(屠獅)에게 사용할 겁니까?"

그러자 역삼랑은 놀라워하며 말했다.

"당신의 안력은 정말 매섭군요."

"현항려는 사손에게 원한이 있기에 원수를 꼭 갚아야 합니다.
이미 그 작자가 소림사에 있다는 걸 알아냈는데, 뭣 때문에 주저
하고 있는 겁니까?"

역삼랑은 곁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건 우리 부부의 일이오. 도장께서 심려할 것 없습니다."

"옥진관과 현 부부지간에 있었던 마찰은 역삼랑의 말대로 사소
한 일에 불과한데, 구태여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가 있겠습
니까? 차라리 서로 친구가 되어서 같이 사손을 찾는 게 어떠한
지.....?"

"옥진관도 사손과 마찰이 있었소?"

"그런 건 없지만..... 흐흐!"

"사손과 아무런 원한도 없으면서 어찌 고심고예(苦心苦詣)하게
그 검법을 연마했습니까? 우리 쌍방의 초수는 모두 칠상권을 극
제(剋制)하기 위한 겁니다."

"역삼랑의 안력은 아주 훌륭합니다. 옥진관은 단지 도룡도를 한
번 구경하고 싶은 것뿐이오."

역삼랑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윽고 손가락으로 두백당의 장심
(掌心)에 재빨리 몇 자 적었다. 두백당도 그녀의 장심에 글을 썼
다. 부부들은 손가락을 혀를 대신해서 잠시 대화를 나눴다. 역삼
랑이 말했다.

"우리 부부는 오직 복수만 할 뿐, 도룡도에는 관심이 없소!"

마법통이 기뻐하며 말했다.

"그것 참 잘되었군요. 우리 사람 다섯이 연수(聯手)해서 소림에
쳐들어갑시다. 현 부부는 복수를 하고 옥진관은 보도 한 자루를
얻게 되니, 쌍방이 각각 소원 성취하면 화기를 상하지 않을 것이
오."

이윽고 다섯 사람은 동맹을 맺고 맹세하였다. 두씨 부부는 세
도인을 안으로 모셔서 복수와 탈도(奪刀)의 계획을 논의했다.

청해삼검은 집 안으로 들어가서 좌정했다. 그러나 방문이 굳게
닫혀 있는 걸 보자 몇 번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역삼랑이
웃으며 말했다.

"세 분은 신경쓸 것 없습니다. 저 안에는 대도에서 온 한쌍의
젊은 부부가 있는데, 전혀 무공을 할 줄 모릅니다."

그러자 마법통이 말했다.

"제가 현 부부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도모한 일이 실로 엄청난 일이라 자칫 잘못하면 천하 호걸들의
지탄을 받게 됩니다."

역삼랑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반나절이나 접전을 했는데, 그들 두 식구는 아직도 송
장처럼 자고 있습니다. 마도장께서 그래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면
직접 보시는 게 좋겠군요."

말을 하면서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
다.

장무기는 마침 이 다섯 사람에게서 의부를 찾아서 구출하는 단
서를 얻어낼 참이라, 당분간 그들을 처치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
다. 그래서 즉시 조민을 안아들고 옷을 입은 채 침대에 올라가서
자고 있는 척했다.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신발만 벗고 솜이불을
몸에다 덮었다. 이윽고 팍! 하는 소리가 나면서 빗장은 소학의
내경에 의해서 진단되었다. 역삼랑이 촛불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
자 청해삼검도 따라서 들어갔다.

장무기는 촛불의 불빛을 보자 잠에 취해 있는 눈으로 역삼랑을
바라보았다. 얼굴엔 온통 망연한 빛이었다. 마법통은 검을 뽑아
그의 목으로 찔러갔다. 몹시 매섭고도 신속한 초수였다. 그러자
장무기는 아! 하고 비명을 지르며 상반신을 앞으로 당기면서 오
히려 검끝에다 목을 갖다 댔다. 순간 마법통은 검을 거두며 역삼
랑에게 말했다.

"역삼랑의 말이 옳았소. 자, 나갑시다."

다섯 사람은 방문을 닫고 다시 대청으로 돌아왔다. 이윽고 마법
통이 말했다.

"사손이 소림사에 있다는 게 틀림없습니까?"

"그렇소. 소림사에는 이미 영웅첩(英雄帖)을 밖으로 살포했소.
그 영웅첩에 의하면 단양절(端陽節)에 소림사에서 도사대회(屠獅
大會)를 개최하기로 되어 있소. 만약에 그들이 사손을 잡지 못했
다면, 온 천하의 영웅들 면전에서 얼마나 큰 창피를 당하겠소?"

그러자 마법통이 다시 말했다.

"소림파의 공견신승은 사손의 권하에 죽어서 소림의 승속 제자
들은 당연히 복수를 해야 되겠군. 그러니 현항려는 단양절에 소
림사로 들어가서 가만히 원수가 죽어가는 걸 보기만 하면 됩니
다. 전혀 힘들이지 않고 피맺힌 원한을 갚게 되는 것이오. 그런
데 두 노선생님은 뭣 때문에 귀를 못 쓰게 됐으며, 또 소림파를
자진해서 적대 관계로 만들려 했습니까?"

역삼랑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 부군의 귀가 먼 것은 이미 오년 전의 일입니다. 우리는 그
사손이란 악적을 만나자마자 이 노파가 제일 먼저 그의 두 귀를
찔러서 멀게 할 것이오. 우리 부부는 그와 동귀여진(同歸旅盡)
되기만 바랄 뿐이오. 흐흐..... 제 사랑하는 아들이 그에게 살해
된 후부터 우리 노부부는 이승과 아무런 미련도 없습니다. 소림
파에게 잘못 보여도 좋습니다. 최악의 경우는 우리 부부가 죽기
밖에 더하겠습니까?"

장무기는 그녀가 말하는 걸 듣자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의부가 옛날에 성곤한테 당한 원기(怨氣)를 너무나 많은 무고
한 사람들에게 발산했구나. 이 두씨 부부는 그다지 나쁜 사람같
이 보이지 않는데, 다만 사랑하는 아들의 참사에 상심해서 의부
를 죽이고 아들의 복수를 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원한 관계는 절
대로 조처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의부를 구출하면 멀리 피하는
길밖에 없다. 그래야만 죄악을 더 짓지 않는 길이다.'

이때 옆 방에 있는 다섯 사람에게서 전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벽 틈으로 내다보니, 두씨 부부와 마법통 세 사
람은 손가락으로 찻 물을 찍어서 탁자 위에 글을 쓰고 있었다.

'이 다섯 사람은 정말 조심하는군. 비록 나와 민매가 강호의 인
물이 아니라는 걸 믿고 있어도, 여전히 기밀이 누설되는 걸 두려
워한다. 아아! 내 의부는 강호에 너무나 많은 원가(怨家)가 있으
며 또 도룡도를 노리는 사람은 더욱 많다. 그러니 소림사에서 조
금만 소홀해도 단양절이 되기도 전에 화를 당할지 모른다. 아무
래도 하루속히 의부를 구출하는 게 상책이다.'

이 다섯 사람은 손가락으로 글을 써 가며 계속 밀담을 나누었
다. 장무기는 더 이상 신경쓰지 않고 의자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니, 청해삼검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장무기가
역삼랑에게 말했다.

"할머님, 어젯밤에 세 분 도야께서 손에 반짝이는 칼을 들었던
데 왜 왔습니까? 전 처음엔 우리를 잡으러 왔는 줄 알고 몹시 놀
랐습니다. 나중에서야 아닌 줄 알았습니다."

계속 ---

제 5 장 단양절(端陽節)의 도사대회(屠獅大會) #3/3

역삼랑은 그가 장검을 칼이라고 부르는 걸 듣자, 속으로 매우
우스웠다. 이윽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들은 길을 잘못 찾은 것이우. 차 한 잔 마시고 바로 갔수.
점심 먹고 나서 우리는 나무 세 짐을 소림사에 갖고 가서 팔려고
하는데, 젊은이가 한 짐 좀 거들어 줄 수 있겠수? 절에 있는 중
이 물으면 우리 아들이라고 말하겠수. 이건 젊은이 도움을 얻으
려는 것이 아니고 절에서 의심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유. 색시
는 꽃처럼 예쁜 위인이라 밖으로 나가면 안 되우."

비록 듣기에는 그녀가 장무기와 상의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명령을 내려서 그가 거절하지 못하게 했다. 장무기도 듣자마자
이미 알아차렸다.

"할머님이 말한 대로 하겠습니다. 다만 우리 두 식구가 머물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 두 사람은 사방으로 도망다니며 하
루라도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오후가 되자, 장무기는 두씨 부부를 따라서 각자 나무 한 짐을
지고 소림사로 갔다. 그는 머리에 죽립(竹笠)을 썼고 허리춤엔
짧은 도끼를 찼고 맨발에 짚신을 신었다. 세 사람 중에 유독 그
가 짊어진 나무가 제일 많았다. 조민은 문 밖에 서서 미소를 지
으며 그를 전송했다.

두씨 부부는 일부러 아주 느리게 걸어가면서 숨을 헐떡거렸다.
소림사의 밖에 있는 산정에 오자 나뭇단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했
다. 산정에는 중 두 명이 앉아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세 사람을
보았는데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역삼랑은 머리를 싸맨 거칠은 헝겊을 풀어서 땀을 닦았다. 다시
손을 내밀어서 장무기의 땀을 닦아 주며 말했다.

"얘야, 힘들지?"

"전 괜찮습니다. 어머님이 힘드시겠어요?"

그는 어머니라고 부르자, 문득 자신의 모친이 생각나서 가슴이
몹시 아팠다. 역삼랑도 그가 어머니라고 부르자 그만 눈물을 흘
리고 말았다. 얼른 머리띠로 땀을 닦는 척하면서 사실은 눈물을
닦고 있었다.

두백당은 일어나서 나뭇짐을 지고 왼손을 한번 휘두르더니 산정
밖으로 나갔다. 비록 그는 두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해도 늙은 마
누라가 죽은 아들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두 승인에게 빈틈이 노출될까 봐 얼른 자리를 떠난 것이다.

장무기는 역삼랑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나뭇짐에서 두 묶음을 꺼
내어 자기의 짐더미에 올려놓고 말했다.

"어머님, 가시죠."

역삼랑은 그가 이처럼 다정한 걸 보자 잠시 생각했다.

'내 아들이 살아 있었다면 이 소년보다 나이가 더 많을 것이다.
난 손자도 몇 안았을 것이다.'

그녀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장무기가 짐을 지고 산정 밖
으로 나가는 걸 보자 그제서야 따라서 나갔다. 심정이 격동되어
서 걸음을 약간 산만하였다. 장무기는 뒤로 돌아서 부축해 주며
생각했다.

'만약 우리 어머님이 아직도 살아 계셨다면, 내가 이렇게 부축
해서.....'

한 승인이 말했다.

"이 소년은 효심이 지극하군. 정말 보기 드물다."

다른 승인이 말했다.

"할머님, 이 장작은 절 안에 갖고 가서 파실 겁니까? 요 며칠은
방장께서 법지(法旨)를 내려서 외인의 출입을 못하도록 했습니
다. 들어가지 마십시오."

역삼랑은 몹시 실망했다.

'과연 소림사의 방어 태세가 엄밀하구나. 정말 들어가기 힘들게
됐구나.'

두백당은 수 장을 걸어갔는데, 두 사람이 즉시 따라오지 않는걸
보자 걸음을 멈추고 기다렸다.

다른 한 승인이 말했다.

"이 시골 사람 일가는 모자자효(母慈子孝)하니, 우리가 편리를
봐 줍시다. 사제, 네가 그들을 데리고 후문으로 들어가서 향적주
(香積廚)로 가라. 감사가 만약에 알게 되면, 자주 오는 장작 장
수라고 말해라. 그럼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네. 감사(監査)가 외인 출입을 못하게 하는 건 잡인들을 방비
하는 겁니다. 이런 충실한 시골 사람들의 생계를 구태여 끊을 필
요가 없죠."

이윽고 두씨 부부와 장무기를 데리고 후문으로 돌아가서 절 안
으로 들어갔다. 세 짐의 장작을 채방(菜房)으로 갖고 가자, 향적
주를 관리하는 승인이 장작 값을 계산해 주었다.

역삼랑이 말했다.

"우리에겐 아주 좋은 배추가 있습니다. 내가 아우를 시켜서 내
일 몇 근 갖다 드리겠소. 그건 그냥 드리는 겁니다."

그녀를 데려온 승인이 웃으며 말했다.

"내일부터는 다시 올 수 없습니다. 감사가 알게 되면 정말 큰일
입니다."

향적주를 관리하는 승인이 장무기를 몇 번 쳐다보더니 갑자기
말했다.

"단양절 전후에 절엔 수천 명의 손님이 찾아올 겁니다. 물을 긷
고 장작을 쪼개며 모든 일이 분주할 겁니다. 내가 보기엔 이 젊
은 친구가 몹시 건장한 것 같은데, 두 달만 도와 줄 수 있겠습니
까? 한 달에 다섯 전씩 월급을 주면 어떠하겠소?"

역삼랑은 대단히 기뻐하며 얼른 말했다.

"그것 참 잘 되었군요. 아들도 집에서 별다른 할일이 없는데,
절에서 사부님들의 심부름을 하면서 몇 푼 벌어들이면 정말 좋겠
군요."

장무기는 곤란한 입장이 되었다.

'소림사에서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데, 두 달 동안 있게
되면 그들에게 발각될 것이다.'

"어머님, 제 색시는....."

역삼랑은이처럼 좋은 기회가 없다는 생각을 하자 얼른 말했다.

"네 색시는 집에 잘 있을 거다. 넌 이 애미가 그 애를 서운하게
대할까 봐 그러느냐? 넌 여기에 있으면서 사부님들 말씀을 잘 들
어라. 절대로 게으름을 피우면 안 된다. 애미와 색시는 며칠 후
에 널 보러 오마."

말을 하면서 그의 머리를 매만져 주었다. 눈에는 자상하고 사랑
하는 빛이 충만되어 있었다.

그 향적주를 관리하는 승인은 단양대회의 일 때문에 여러날 골
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는 장무기가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보여서
간곡히 그에게 권하였다. 장무기는 잠시 생각을 했다.

'내가 낮엔 주방에만 있으면 고수들을 만나지 않을 것이다. 밤
엔 기회를 봐서 의부의 행방을 알아보는 것도 괜찮겠구나.'

그러나 일부러 내키지 않는 척했다. 나중에 그를 데려온 승인이
옆에서 재차 권하자, 그제서야 억지로 승낙하며 말했다.

"사부님, 될 수 있으면 한 달에 여섯 전 은자를 주세요. 다섯
전은 제 어머님께 드리고 일전은 제 색시에게....."

그러자 향적주를 관리하는 승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좋다. 여섯 전을 주마!"

역삼랑은 다시 몇 마디 당부하고 나서 두백당과 함께 천천히 하
산했다. 장무기는 쫓아가서 말했다.

"어머님, 제 색시를 부탁합니다."

"알았다. 안심해라."

장무기는 주방에서 장작을 쪼개고, 석탄을 운반하고, 불을 지피
고, 물을 기르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그는 석탄을 운반할 때 일
부러 얼굴을 새까맣게 칠했다. 게다가 머리까지 산발해서 실로
아무도 그를 알아볼 수 없었다. 밤이 되자 그는 화공(火工)들과
함께 향적주의 작은 방에서 잤다. 그는 소림사가 와룡장호(臥龍
藏虎)한 걸 알고 더구나 화공 중에서도 간간이 절기를 지니고 있
는 자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을 하고 말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렇게 칠,팔 일을 지내는 동안 역삼랑은 조민을 데리고 그를
두 번 찾아왔다. 그는 아침부터 밤까지 어떠한 거칠은 일도 부지
런하게 해서 향적주를 관리하는 승인이 몹시 즐거워했다. 게다가
다른 화공들도 그와 매우 화목하게 지냈다. 그는 감히 탐문(探
問)하지 못하고 다만 귀를 바짝 세워서 다른 사람들의 잡담에서
단서를 찾고 있었다.

구 일째 되던 날 밤, 장무기는 잠결에 반 리(里)쯤 떨어진 곳에
서 호갈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래서 살며시 일어나 즉
시 경공을 전개하여 소리를 따라 달려갔다. 소리가 나는 걸 들어
보면 절의 왼쪽에 있는 숲 속이었다. 이윽고 몸을 솟구쳐서 한
그루 큰 나무 위로 올라갔다. 나무 뒤와 풀속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후 그제서야 이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날아가며 차츰 가
까이 다가갔다.

이때 숲 속에선 이미 병기가 교차되면서 여러 사람이 접전을 벌
이고 있었다. 그는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도광(刀光)이 종횡하
고 검영(劍影)이 번뜩거리면서, 여섯 사람이 두 군데로 나눠서
서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검을 사용하는 셋은 바로 청해삼
검이었다. 그들은 정반오행의 가삼재진(假三才陣)을 포진하여 매
우 긴밀하게 방어하고 있었다. 옆에서 공격하는 세 명의 승인은
각각 계도를 사용해서 파진하여 곧바로 공격했다. 이,삼 십 초가
지나자 푹! 하는 소리가 나면서 청해삼검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맞고 쓰러졌다. 가삼재진이 돌파되자 나머지 두 사람은 더욱 적
수가 못 됐다. 다시 몇 초가 지나자 한 사람이 외마디 비명을 지
르면서 칼에 맞고 죽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뚱뚱하고 키가 작
은 마법통이였다. 나머지 한 사람은 오른팔에 부상을 입었지만,
여전히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 그러자 한 승인이 조그만 소리
로 호통쳤다.

"잠깐 멈춰라!"

세 자루 계도는 그를 겹겹으로 포위할 뿐 공격을 하지 않았다.

"너희 청해옥진관과 우리 소림파는 전혀 원한 관계가 없는데,
뭣 때문에 야밤을 틈타서 기습해 온 것이냐?"

청해삼검 중에 남은 한 사람은 소학이었다.

"우리 사형제가 너희들에게 패전(敗戰)한 건 오직 우리들이 배
운 무예가 뛰어나지 못한 것이니, 더 이상무슨 할 말이 있겠느
냐?"

"너희들은 사손 때문에 온 것이냐? 아니면 도룡도를 얻을 생각
으로 온 것이냐? 흐흐.....! 난 사손이 옥진관에 있는 사람을 죽
였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으니 필시 보도 때문에 온 게로군. 네
놈들은 이따위 재주로 소림사를 넘보려 하느냐? 소림사는 천여
년 동안 무림을 이끌어 왔는데, 이처럼 과소 평가하는 건 정말
뜻밖이다."

소학은 그가 한참 얘기하는 걸 틈타서 일검을 곧바로 찔러 갔
다. 그 승인은 황급히 피했으나 결국 한 발이 늦어서 왼쪽 어깨
를 찔리고 말았다.그러자 옆에 있던 양승이 일제히 쌍도를 후려
치자 소학은 즉시 목과 몸통이 두 동강으로 변했다.

세 승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청해삼검의 시신을 들고 재빨리
절 안으로 달려갔다. 장무기가 막 뒤따라서 결과를 구경하려는
데, 갑자기 우측 전방의 풀밭에서 살며시 호흡하는 소리가 들렸
다. 그러더니 재빨리 조용히 엎드려서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 지
나자 풀밭에서 박수를 두 번 살짝 치더니 멀리서도 박수를 치며
응수했다. 이윽고 전후좌우에서 여섯명 승인이 일어섰다. 손에는
장창과 도검을 각각 들고 부채꼴로 흩어져서 절 안으로 돌아갔
다.

장무기는 그 여섯 승인이 멀리 가 버리자 작은 방으로 돌아왔
다. 같이 자고 있던 화공들은 여전히 갚은 잠에 빠져 있었다.

사흘이 또 지났다. 이날 밤은 천둥번개가 치며 큰 비가 내렸다.
장무기는 즉시 기뻐했다.

"하늘이 날 돕는군."

비는 점점 더 세차게 내렸고 사방은 칠흑같이 캄캄했다. 그는
재빠르게 앞에 있는 대전으로 다가갔다.

'나한당, 달마당, 반약원, 방장정사 네 곳은 소림사의 으뜸가는
근본 요지다. 내가 꼭 한 번 가봐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소림사에는 집채가 겹겹으로 되어 있어서. 도대체 어디
가 나한당이며 어디가 반약원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요리
조리 피하며 발길따라 걸어가자 한 대나무밭까지 오게 되었다.
앞에 작은 집이 한 칸 있었고, 창문으로 불빛이 새어나왔다. 이
때 그의 온몸은 벌써 젖어 있었다. 그는 살며시 창문 밑으로 다
가가자 안에서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방장 공문대
사의 음성이었다.

공문대사가 말했다.

"금모사왕 때문에 소림파는 한 달 동안 이미 이십 삼 명이 살해
됐다. 죄악을 많이 쌓게 하는 건 절대로 우리 부처님의 자비로운
뜻이 아니다. 명교의 광명좌사 양소, 우사 범요, 백미응왕 은천
정, 청익복왕 위일소는 차례로 사자를 파견해서 사손을 놓아 주
라고 나에게 빌었지만....."

장무기는 이곳까지 듣자 내심 기뻐하면서도 위안이 되었다.

'내 외할아버지와 양좌사 등이 이미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왔
었구나.'

공문은 다시 말을 이었다.

"비록 본사가 여러번 미뤄왔지만 명교가 이대로 호락호락 물러
나겠느냐? 그 장교주는 무공이 출신입화(出神入化)하며 끝까지
나타나지않는 걸 보면 필시 뒤에서 계략을 꾸미고 있을 것이다.
나와 공지 사제 등은 그의 도움을 받았으니 은정을 빚지고 있다.
만약에 그가 직접 와서 빌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하느냐? 이
일은 실로 어렵구나. 사제, 사질, 너희 두 사람에게 무슨 좋은
생각이 없느냐?"

창로음침(蒼老陰沈)한 음성이 살짝 기침을 한 번 했다. 장무기
는 그 소리를 듣자 마음이 크게 진동되었다. 바로 원진으로 이름
을 바꾼 성곤이란 걸 금방 알았다. 장무기는 한 번도 그와 대면
하여 대화를 나눈 적이 없지만, 그날 광명정에서 자루를 사이에
두고 그가 옛일을 말하는 걸 들었고, 암석을 사이에 두고 그가
호통치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러니 그의 음성은 몹시 귀에 익었
다.

"사손은 태사숙 세 분께서 지키고 계시니 절대로 걱정할 것 없
습니다. 이번 영웅대회는 우리 소림파 천백 년의 흥망이 걸려 있
습니다. 마교의 사소한 은원들은 방장사숙님께선 걱정하지 않아
도 됩니다. 다구나 만안사에 있었던 일은 마교가 몰래 조정과 내
통하여 육대문파들을 괴롭힌 것입니다. 방장사숙께서는 모르고
계셨단 말입니까?"

공문은 이상하다는듯이 되물었다.

"어째서 명교가 조정과 내통하였지?"

"명교의 장교주는 원래 아미파의 장문인 주 낭자와 혼인을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혼인하던 날 여양왕의 군주가 갑자기 그 장가
란 녀석을 데리고 떠나 버렸습니다. 이 일은 강호를 진동했으니,
방장사숙께서도 들었을 겁니다."

"그렇다. 그 일은 들었다."

"그 군주의 수하에는 아주 유능한 부하가 하나 있는데, 이름이
고두타라 합니다. 두 분 사숙님도 만안사에서 본 적이 있을 거라
고 생각됩니다."

공지는 만안사의 고탑(高塔)에서 조민에게는 무공을 선보이라고
핍박당하였고, 고두타에게는 몹시 수모를 당했다. 그 당시는 내
력을 전부 상실하여 전혀 반항하지 못했다. 지금도 아직 잔분이
남아 있었다.

"흥, 이번 큰일을 치루고 나면 난 다시 대도로 가서 고두타를
찾아 겨뤄 보겠다."

"두 분 사숙님께선 그 고두타가 누군지 알고 계십니까?"

"고두타는 아는 게 몹시 광범하다. 마치 각파의 무공을 모두 섭
렵한 것 같아서 그의 문도를 알 수 없었다."

"고두타는 바로 마교의 광명우사 범요입니다."

그러자 공문과 공지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정말이냐?"

몹시 경악하는 듯했다.

"원진이 감히 사숙님을 기만하겠습니까? 단양절에 그가 만약에
본사에 온다면, 두 분 사숙님은 즉시 알게 될 겁니다."

그러자 공지는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장무기와 그 군주는 확실히 몰래 내통한 것이다. 군
주로 하여금 육대문파의 수령 인물을 잡고, 다시 장무기로 하여
금 사람을 구해서 인정을 베푸는 것이군."

"십중팔구는 그럴 겁니다."

그러나 공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그 장교주는 충후협의한 게 그런 사람 같지 않
았다. 우리는 좋은 사람을 오해하면 안 된다."

"방장사숙님, 옛말에도 사람의 얼굴은 알 수 있어도 마음은 알
수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사손은 장무기의 의부이며 또 마교
의 사대호교법왕 중의 한 사람입니다. 마교는 필시 만사를 제쳐
놓고 구하려 할 겁니다. 도사대회가 열리게 되면 모든 일은 자연
히 알게 됩니다."

이윽고 세 사람은 어떻게 손님을 접대할 것이며, 어떻게 적이
사손을 강탈하는 걸 막을 것이며, 또 각 문파에 얼마나 호수가
있는가를 계산했다. 원진의 주장은 각파를 이간질시켜서 상호간
에 싸움을 붙이자는 것이었다. 소림파는 그들 중 몇몇이 패배하
고 또 부상을 입게 되면, 그 때 나가서 도룡도를 장관하고 사손
을 죽여서 공견에게 제물로 바치자고 의논했다. 그러나 공문은
정중하기를 주장하며, 또 인명을 많이 상하는 걸 원치 않으며,
또 마치 명교를 감히 얕잡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공지는 두 사람의 주장을 모두 찬성하며 말했다.

"제일 중요한 일은 아무래도 사손이 단양절 전에 도룡도가 있는
곳을 말하게끔 만드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도사대회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도리어 본파의 위명만 꺾이게 됩니다."

"사제의 말이 틀림없다. 우리는 필히 대회 중에 양도입위해야
된다. 이 무림지존의 도룡보도가 이미 본파로 돌아와서 보관하게
되었으니, 그 땐 본파가 천하를 호령하면 어느 누구도 복종하게
될 것이다."

"좋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원진, 네가 다시 사손에게 말해서
보도를 내놓으라고 타일러 보아라. 만약에 내놓는다면 우리는 그
의 목숨을 살려 줄 것이다."

"네, 두 분 사숙님의 분부를 명심하겠습니다."

발자국소리가 가볍게 나면서 원진이 밖으로 걸어나갔다.

장무기는 몹시 기뻐했다. 그러나 이 세 분 소림승은 무공이 아
주 고강해서 약간의 소리가 나기만 하면 즉시 그들에게 발각된
다. 만약에 세 사람이 일제히 출수하면 자기에겐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때 가서 의부를 구하려면 실로 천난만난하게 될 것
이다. 이윽고 호흡을 중단하고 꼼짝하지 않았다.

원진의 마르고 긴 신형(身形)이 북쪽으로 걸어갔다. 수중에 들
고 있는 기름종이 우산은 빗방울을 맞자 요란하게 소리가 났다.
장무기는 그가 십여 장 밖으로 걸어가는 걸 보자, 그제서야 살며
시 걸음을 옮기며 뒤를 쫓아갔다.

----- 제 6권 5장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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