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庸 - 连城诀 4

3학년2반 | 2022.03.08 07:16:52 댓글: 0 조회: 504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53723
7. 한쌍의 호랑나비(梁山伯 祝英台)

적운은 다시 보름동안을 계곡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혈도성의
도법과 내공을 완벽하게 익혔다. 이제 어디서나 자유자제로 쓸수
있는 완벽한 경지에 이르자 그는 혈도경을 태워 재로 만든 다음
혈도노조의 무덤에 뿌렸다. 이 보름동안 그는 여전히 동굴 밖의
큰바위에서 잠을 잤다. 수생이 없다고 해서 동굴에서 잠을 자려
고 하지 않았고 요나 방석따위는 쓰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생각
했다.
'이제 갈때가 되었다. 이 깃털옷은 가져갈 필요가 없겠지. 나
는 일을 다 마치면 이 계곡에 들어와서 살아야겠다. 이곳에는 그
누구도 오지 않겠지. 아무래도 이곳에서 지내는 것이 좋겠어'
그는 계곡을 나와 동쪽으로 향했다. 그는 먼저 옛 고향인 상서
마계포에 가서 사부의 소식을 알고자 한 것이다. 자기는 어려서
부터 사부에 의해 양육되었고, 세상에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사부
와 사매뿐이었다. 동굴이 있는 곳에서 상서까지는 반드시 사천
(四川)을 지나야만 했다. 적운은 군웅들이 자기와 아무런 원한없
이 자신을 적대한것은 모두 머리를 깍고 중옷을 입었기 때문이라
고 생각했다. 이때 그의 무공은 상당한 경지에 이르고 있었으나
남과 싸울 자신은 없었다. 한두사람의 고수를 만나면 그들에게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시골
사람들이 입는 파란 옷을 사서 입고 보상의 승복을 태워버렸다.
그리고 얼굴에는 검정칠을 해서 자신을 숨겼다. 그는 계속 동쪽
을 향해서 걸었는데 가끔 자신을 추격한 것 같은 강호인들을 만
났으나 다행히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삼십여일이 지나서야 마계포의 옛집에 도착하였다. 날씨
는 따듯했고 논의 벼들은 이미 한뼘 정도 자라있었다. 옛 풍격이
눈에 들어오자 적운은 감개무량하여서 눈시울이 뜨거워졌으며 가
슴에서 뜨것운 것이 솟아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그는 어렸을적에
다니던 샛길을 통해서 옛집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옛집을 보는
순간 그는 깜작 놀랐다. 그는 자기의 눈을 믿을수가 없었다. 작
은 개울가의 버두나무 옆에 있던 세칸의 작은 집은 이미 하얀색
의 벽과 검정 기와지붕을 한 큰집으로 변해 있었다. 이 집은 원
래 집보다 적게 잡아도 세배는 컸다. 그집을 살펴보니 호화롭지
는 않았지만 매우 웅장했다. 그는 놀라면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틀림없이 사부가 살던 옛집이었다.
'사부께서는 돈을 벌어 돌아오신 것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는 기쁜 나머지 큰 소리로 외쳤다.
"사부님!!!"
그러나 단 한마디만 외쳤을뿐 곧바로 입을 다물고 내심 생각했
다.
'안에는 다른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거지꼴을 보여
주면 사부님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것이니 자세히 살펴본 다음 들
어가자.'
그는 이 몇년동안 심한 고통을 당했기 때문에 신중하게 행동하
는 법을 알고 있었다. 이 생각 저생각을 하고 있는데 집안에서는
한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 사람은 눈을 들어 그를 살펴 보았다.
그는 멸시하는 표정으로 적운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무엇하는 사람인가 ?"
적운은 그사람이 모자를 비뚜러지게 스고 온몸에 먼지가 묻어
있는 것을 보자 이 집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의 표정
을 살펴보니 일꾼들의 우두머리 같았다.
"말씀을 묻겠읍니다. 척사부님게서는 집에 계십니까 ?"
그사람은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척사부? 그런자는 이곳에 없다."
적운은 멈칫하며 물었다.
"이곳의 주인은 척씨성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까 ?"
그 사람은 반문했다.
"나는 그런 것을 왜물어보느냐? 동냥을 하는 방법도 여러가지
그나. 없다! 이 거지야. 빨리 꺼지기나 해라."
적운은 사부의 안위가 궁금하여 천리길도 멀다하지 않고 가까
스로 돌아왔는데 어찌 그의 말 한마디에 돌아갈수 있겠는가. 그
래서 다시 물었다.
"나는 동냥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물어보는데 옛날
이곳에서 척씨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읍니다. 그 어르신께서
는 아직도 이곳에서 살고 계십니까 ?"
그 사람은 냉소했다.
"이 거지좀 보게나? 이곳은 주인은 척씨도 아니고 착씨도 아니
고 축씨도 아니야! 자자, 빨리빨리 이곳에서 떠나 주게나."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는동안 집안에서 또 한사람이 나왔
다. 이 사람은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었고 옷이 깨긋한 것이 부
잣집에서 집을 관리하는 집사 같았다. 그사람은 말했다.
"이봐요 평(平)씨! 큰소리로 떠드는 것을 보니 또 누군가와 사
우고 있는 모양이군."
평씨라고 불리운 사람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보세요. 이거지가 글쎄 구걸을 할려면 할것이지 감히 주인어
르신의 성을 묻고 있지 않겠읍니까?"
그 관린인은 적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말했다.
"여보게 친구, 자네는 주인어르신의 성을 알아서 무엇하려 하
는가 ?"
만약 오륙년전이었다면 적운은 하나도 남김없이 그들에게 사실
을 말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 몇년 사이에 사람들의 마음이
매우 간사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관린인의 눈빛에서 의아해
하는 기색을 보자 생각했다.
'나는 천천히 알아봐야겠다. 이중에는 틀림없이 어떤 곡절이
있을것이다.'
그는 말했다.
"나는 주인어르신의 성이라도 알아서 큰소리로 그분의 성을 부
르면서 동냥을 하려고 했읍니다. 당신은 바로 이집의 주인어르신
이군요."
그는 고의로 멍청한척 하면서 상대방이 의심을 하지 않도록
했다. 그 집을 관리하는 자는 껄껄 웃었다. 비록 이사람이 멍청
하다고 느끼고 있었으나 자기를 이집의 주인으로 여기고 있자 마
음이 흡족했다.
"나는 이집의 주인이 아니다. 여보게, 자네는 어째서 나를 이
집의 주인이라고 여기고 있지?"
적운은 말했다.
"당신의... 당신의 모습은 무척 보기가 좋읍니다. 위풍당당하
신 것이 당신은... 당신은 부잣집의 주인의 상을 가지고 계십니
다."
집을 관리하는 그 집사는 더 기뻐하며 웃었다.
"멍청한 놈! 내가 훗날 정말 부자가 된다면 네게 많은 돈을 주
지. 내가 보기에는 너는 몸이 튼튼한 것 같은데 어째서 일을 하
여 돈을 벌려 하지 않느냐 ?"
적운은 말했다.
"나보고 일하라고 하는 사람이 없읍니다. 주인나으리 제발 젝
게 밥한술만 주십시요."
그 집을 관리하는 사람은 평씨성을 가진 자의 어깨를 툭툭치더
니 말했다.
"당신 들어보게나. 그는 말끝마다 나를 주인나으리라고 부르니
별수 없이 밥을 한덩이 주어야겠군. 여보게, 평씨. 자네가 이자
를 데려다가 흙나르는 일을 시키게나. 나는 그에게 삯을 주어야
겠네."
그 평씨성을 가진자가 말했다.
"알았읍니다. 분부대로 행하지요."
적운은 두사람의 말투를 들어보니 평씨성을 가진자는 상서지방
의 사람이였고 관린인은 북방의 사람 같았다. 그는 아무 내색안
혹 아주 공경스럽게 말했다.
"주인나으리, 주인나으리. 정말 감사합니다."
그 일꾼은 웃음섞인 말투로 욕을 했다.
"제기랄! 말이면 다 되는줄 아나?"
그 관리인은 너무 우스워 발을 동동굴리며 말했다.
"나는 이집의 주인나으리고 자네는 이집의 주인도령이고 허
허.. 이거 거저로 직위가 올라갔군."
그 일꾼의 우두머리는 적운의 귀를 잡고 웃었다.
"들어가거라! 들어가거라! 먼저 밥을 먹은후에 저녘때부터 일
을 하거라."
적운은 조금도 항거하지 않고 그를 따라 들어갔다. 그는 내심
생각했다.
'어째서 낮에 일을 하지 않고 밤에 일을 하는걸까 ?'
그는 큰집의 안뜰을 지나게 되자 깜작 놀랐다. 집가운데는 커
다란 구덩이가 파져 있었으며 그 구덩이는 집밖을 둘러싸고 있는
벽과 인접해 있었다. 그 사이에는 한개의 좁은 통로가 나있었다.
구덩이 속에는 삽, 곡괭이와 흙은 지어 나르는 기구들로 가득하
였다. ㅋ으로 보기에는 위엄있고, 조용한 이집안에 이런 큰구덩
이가 어째서 파여 있는 것일까? 그 하인의 우두머리는 말했다.
"이곳의 일은 절대로 밖으로 나가 발설하지 말아라. 알겠느냐
?"
적운은 말했다.
"네, 네! 알았읍니다. 알고보니 이곳이 명당자리라서 주인 나
으리께서는 묻힐 무덤을 파고 있으니 외부의 사람이 알면 절대
안되겠지요."
그 우두머리는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 꽤 총명하구나. 자, 나를 따라와라. 밥을 먹여 줄테
니."
적운은 주방에서 밥을 배불리 먹었다. 그 우두머리는 그에게
낭하에서 기다리며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적
운의 궁금증은 한층 더 해졌다. 집안의 모든 설비들은 간단하고
누추했다. 부엌에는 벽돌로 쌓은 아궁이도 없었으며 단지 몇개의
돌을 쌓아 놓고 그 위에 솥을 걸어 놓았다. 탁자와 의자같은 물
건들도 모두 가난한 집에서 쓰는 물건들이어서 이 크나큰 집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저녘이 되자 집안에는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몰
려 들었다. 모두 이 부근의 힘센 농민들이었는데 모두 떠들석하
게 밥과 술을 먹고 마셔대기 시작했다. 적운도 그 사람들과 함께
밥을 또 먹었다. 그는 이 지방의 말을 사용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주의하지 않았다. 모두 그를 이 지방에서 놀고 먹는 청년으
로 여겼던 것이다.
밥을 먹자 평씨는 모두를 대청앞에 모아놓고 말을 했다.
"모드들 힘을 써서 파주시요. 오늘 저녁 운이 좋아 어떤 물건
을 파낸다면 중한 상을 내릴 것이오."
여러사람들은 대답하였다. 삽을 들어 파내는 소리와 곡괭이로
땅을 찍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한명의 나이가 비교적
많은 그 지방사람이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두달동안 흙을 팠으나 보물은커녕 쇠똥도 구경하지 못했다.
설령보물이 있다해도 인연이 있어야 얻는 법이지 억지로는 안
돼."
적운은 생각했다.
"그들은 보물을 파낼려고 하는가보다. 이곳에 무슨 보물이 있
단 말인가 ?"
그는 우두머리가 멀리가자 옆의 사람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
보았다.
"아저씨, 그들은 무슨 보물을 파낸다고 하던가요 ?"
그 사람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의 보물은 모두 대단하지. 이곳의 주인은 기대가 크다오.
그는 이곳사람이 아닌데 멀리서 이땅에 보물의 기운이 있음을보
고는 이 땅을 사고 이렇게 집을 지어서 몰래 보물을 파려합니
다."
적운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했다.
"알고보니 그랬군요. 그런데 무슨 보물인지 아십니까 ?"
그 사람은 말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무슨 상자인데 물건을 넣고 하루만 지나
면 그 상자에 그 물건으로 가득차 있게 된다네."
적운은 말했다.
"정말 보물입니다. 보물입니다."
그 사람은 또 말했다.
"만약 우리가 그 상자를 찾아 낸다면 주인은 우리에게 그것을
하룻밤씩 빌려주어서 원하는 물건을 넣으라고 했소. 당신은 그것
을 찾으면 무엇을 넣을 것이요 ?"
적운은 한참 생각하고는 말했다.
"나는 늘 배가 고픕니다. 그러니 한알의 쌀을 집어 넣으면 다
음날 쌀이 가득할 것이니 얼마나 좋겠읍니까!"
그 사람은 껄껄 웃더니말했다.
"그래, 그래! "
그우두머리는 웃음소리를 듣고는 다가와서 힐책했다.
"잔소리는 그만두고 빨리 파거라."
적운은 낮은소리로 다시 물었다.
"이집의 주인은 성이 어떻게 되신답니까 ?"
그 사람은 말했다.
"저기 주인이 나오네."
적운이 그가 가르키는 뒷뜰에서 걸어나오는 사람을 바라보니
눈빛이 형형하고 옷차림도 매우 화려했다. 나이는 오십세 정도
되어 보였다. 적운은 그를 쳐다보고는 곧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
다. 그는 급히 고개를 돌리고 그를 더 쳐다 보려하지 않았다.그
는 생각했다.
'이사람은 내가 어디서 본 사람이야. 이사람을 어디서 봤지
?'
그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서녁 모두들 서쪽으로 삼척정도 파주시요. 종이조작이든
나무조각이든 돌맹이든 절대 하나라도 놓치면 안되오."
적운은 그 사람의 말소리를 듣자 머리속에서 한사람이 떠올라
서 깜작 놀랐다.
'맞다. 알고보니 그 사람이구나.'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곁눈으로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이집
의 주인은 만진산의 집에서 그에게 삼초의 검법을 전해주었던 그
늙은 거지였다. 그때는 옷이 낡았고 머리는 봉두난발이었으며 옘
몸이 지저분 했었는데 오늘은 대부호의 옷차림이었다. 그래서 그
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누구인가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
다. 적운은 단번에 구덩이에서 뛰쳐 나가서 그를 아는척 하려 했
으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그는 요 爭竪옛 고초를 당했기 때문
에 모든일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본증처럼 되어 있었다. 그는 기
분 내키는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이 거렁뱅이 노인은 내게 참 잘 대해 주었다. 그해 내가 그
큰 도둑놈인 여통과 겨루고 있을때 그가 손을 써서 나를 구해주
지 않았던가. 나중에는 나에게 정묘한 삼초식을 알려주었지. 지
금 생각해보면 그 삼초는 평범하기 그지 없지만 당시에는 그에게
서 가르침을 받아서 치욕을 벗어날수 있었지 않은가 ?'
그는 다시 생각했다.
'오늘 다시 만났으니 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지. 그러나
이곳은 우리 사부님이 옛날에 살던 집인데 그는 이곳에서 무슨
물건을 파낼려고 하는거지. 어째서 이렇게 큰 집을 세우고 사람
의 입과 귀를 막고 있을까 ? 그는 옛날에 거렁뱅이였는데 어떻
게 이렇게 부자가 될수 있었을까 ?'
그는 이것저것을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확실히 알고난 다음에 행동을 해야겠다. 그가 비록
나의 은인이지만 그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는 나의 사부님께서 돌아오시면 어찌하려고 이러는가?
혹시... 사부님께서는 이미 돌아가신것이 아닐까 ?'
적운과 일꾼들은 밤새도록 작업을 했다. 그 주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옆에서 감시하고 있다가 날이 밝아오자 작업을 비로서 중
지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고 여닐곱명은 집
이 먼 연고로 큰짐 낭하에서 돗자리를 펴고 잠을 잤다. 적운도
그들틈에 끼였다. 점심때까지 잔후 모두들일어나서 밥을 먹었
다. 적운의 몸은 무척 더러워서 옆의 사람들은 그와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밥을 먹을때는 더욱 멀리 떨어져 있었다. 적운은
정말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의 변장이 탄로날 염려가 없어졌
기 때문이다. 적운은 점심을 먹고 난뒤 삼리밖의 작은 마을로 갔
다. 그곳에 가서 사부의 행적을 탐문하려 했던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니 자기의 어릴적 친구들이 장성하여 어른이 되어 있었으
나 자신의 정체를 알리고 싶지 않아서 아는체를 하지 않았다. 그
는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에게 물어 보았으낵 사부님이 다
시 마을로 돌아왔다는 소리를 듣지는 못했다. 더더구나 이해할수
없었던 것은 어떻게 늙은 거지가 이곳에 와서 보물을 파려 하는
것인가였다. 우연이라기에는 너무나 공교로운것이었다.
그는 논밭을 지나 푸른 채소가 심어져 있는 밭을 지났다. 푸른
잎사귀의 공심채가 가득 심어져 있었다. 그는 공심채를 보자 갑
자기 아려왔다. 그녀의 사매인 척방이 생각났던 것이다. 공심채
는 원래 이지방에서 아무렇게나 가꾸어도 잘 자라는 채소로 줄기
가 소이 텅 비어 있어서 공심채라고 불리었다. 그는 허리를 숙여
한포기의 공심채를 캐서 냄새를 맡으면서 천천히 서쪽으로 걸어
갔다. 마을의 서쪽에 있는 산은 돌투성이라서 밭을 만들수가 없
었다. 이 산의 한구석에서는 척방과 적운만이 알고 있는 동굴이
하나 있었다. 그는 옛날 생각이 나서 자기도 모르게 동굴을 향해
서 발걸음을 돌렸다. 두개의 언덕을 지나서 은밀하고 황량한 동
굴의 입구에 이르렀다. 키만큼 자란 풀들이 동굴의 입구를 막고
있었다. 그는 다시 마음이 쓰러려 왔다. 동굴안에 들어가보니 동
굴안의 모든 물건들은 그 옛날 그와 척방이 떠나갈때와 조금도
다른바가 없었다. 단지 먼지만이 가득히 쌓여 있었을 뿐이였다.
구석에는 척방이 바느질할때 쓰던 바느질그릇이 놓여 있었다. 구
리고 그옆에는 한권의 책이 있었는데 적운은 다가가서 책을 들었
다. 책의 겉장에는 당시선집(唐詩選輯)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그
당시의 척방과 적운은 글자를 많이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글을
읽을수가 없었다. 그는 책장을 열어 두개의 색종이를 꺼내어 들
었다. 그것은 한쌍의 나비였다. 적운은 그 당시를 회상해 보았
다.
한쌍의 노란 바탕에 검은 줄이 있는 큰 호랑나비가 날아서 굴
속으로 들어와 서쪽에서 날고 동쪽에서 날고 있었는데 두마리의
호랑나비는 떨어질줄을 몰랐다.척방이 외쳤다.
"양산백 축영대(梁山伯 祝英台)!"
상서 일대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긴 큰 호랑나비를 양산백 축영
대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 호랑나비는 암수 한쌍이 잠을 잘때나
날아다닐때나 항상 같이 붙어 다녔다. 적운은 이때 짚신을 엮고
있다가 나비가 날아오자 짚신으로 탁 쳐서 땅에 떨어뜨려서 죽였
다. 척방은 악! 하고 비명을 지르더니 화가나서 말했다.
"지금 .... 무슨 짓을 하는거야 ?"
적운은그녀가 갑자기 화를 내자 영문을 알 수가 없어 금방이라
도 꺼져가는 소리로 말했다.
"네가... 호랑나비를 좋아하니까 ... 나는 호랑나비를 잡아서
너에게 주려고 했어."
죽은 나비는 땅바닥에 떨여져 꼼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죽지
않은 한마리의 호랑나비는 계속해서 그 위를 날고 있었다. 척방
이 말했다.
"공심채는 사이 좋은 한쌍을 해쳤어. 그들은 다시 어울릴수 없
게 되었단 말이야."
적운은 그녀의 안색이 변하고 그녀가 괴로와하는 모습을 보자
내심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쿠! 내가 잘못 죽였구나!"
나중에 척방은 그 죽은 나비의 모양을 본따서 종이로 나비모양
을 오려서 그녀의 신발에 붙였다. 설날이 오자 그녀는 한개의 복
주머니를 그에게 만들어 줬는데 역시 한쌍의 호랑나비가 수놓아
져 있었다. 그 복주머니는 계속 가지고 다녔으나 형주에서 감옥
에 갖힐때 옥졸이 가져가 버렸다. 수늘 놓을때 쓰던 종이 나비를
들고 있는 그의 귓전에 척방의 목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았다.
"보세요. 당신은 못된 짓을 해서 그들 부부를 생이별하게 했군
요."
그는 멍청히 그 종이를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책속에 끼워넣었
다. 그가 다시 몇장을 넘겨보니 수를 놓을때 사얜하던 몇종류의
문양이 나왔다. 거기에는 산양도 있었고, 민어나 토끼의 모양도
있었다. 그는 한장을 집어 들고 자세히 바라보려 했을때 갑자기
수십장 밖에서 돌맹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는 사람이 온적이 없다. 그럼 맹수들이 온걸까 ?'
그는 각종의 모양이 그려져 있는 문양을 품속에 갈무리 했다.
한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 일대는 황량하기 짝이 없어으니 절대이곳에는 없을 것입니
다."
늙은 말소리가 들려왔다.
"황량할수록 사람들은 보물을 그곳에 숨겨두는 법이씔. 우리는
이곳을 잘 살펴보자."
적운은 내심 생각했다.
'어째서 이곳까지 와서 보물을 찾을가 ?'
그는 재빨리 동굴에서 빠져나와 큰나무뒤에 몸을 숨겼다. 얼마
후 사람들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발걸음 소리를 들어보니 칠
팔명은 되어 보였다. 그가 나무에서 얼굴을 내밀고 바라보니 맨
첫번째 사람은 옷이 화려 했으며 대머리였고 얼굴색이 희었는데
모습이 눈에 익었다.이어서 한사람이 손에 사슬을 들고 따라오고
있었다. 이 사람의 몸매는 상당히 컸으며 기골이 장대했다. 적운
은 금방이라도 뛰어나가 그를 죽이고 싶었다. 이 사람은 바로 그
의 사매를 빼앗아가고 자신을 감옥에 보내어 수많은 고통을 준
바로 만규였던 것이다. 그가 어째서 이곳에 나타났을까 ?
옆에 있는 사람은 바로 만진산의 막내제자 침성이었다. 두사람
을 뒤따르고 있는 사람은 모두 만진산의 제자로 노곤,손균, 복
원, 오감, 풍탄등이었다. 만진산에게는 모두 여덟명의 제자가 있
었으나 주기는 형주의 폐허에서 적운에게 죽임을 당했고 지금 나
타난 것은 일곱명이었다. 적운은 매우 의아했다.
'이놈들은 이곳까지 와서 무슨 보물을 찾으려는 거지? 이놈들
도 도깨비 방망이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침성이 외쳤다.
"사부님, 사부님! 이곳에 동굴이 있읍니다!"
그러자 청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
그 목소리에는 억제할수 없는 기쁨이 담겨 있었다. 이어서 몸
집이 거대한 사람이 걸어왔다. 바로 오운수 만진산이였다. 그의
음성은 낭랑했고 발걸음도 무거웠으며 조금도 늙은 것 같지 않았
다. 만진산이 먼저 동굴로 들어갔고 여러 제자들도 뒤따라 동굴
로 들어갔다. 굴속에서 말소리가 들려 왔다.
"이곳은 원래 사람이 살던 곳이군요."
"먼지가 이렇게 쌓인 것을 보니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 같군요."
"아닙니다. 여기 발자국이 새로 나 있읍니다."
"그렇군요. 여기 손자국도 있읍니다. 누가 금방 왔다갔나 봅니
다."
"틀림없이 언사숙일 것입니다. 그는... 그는 연성검법을 홈쳐
갔을 것입니다."
적운은 깜작 놀랐다.
'그들은 연성검법의 검보를 찾으려고 하는구나. 언사숙이라면
사부께서 말씀하시기를 둘째 사숙이신 언달평은 이미 오래전에
실종되어 생사를 모르고 있으며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하
셨는데 어떻게 연성검보를 노리고 있을까? 그들읊 내가 남신 발
자욱과 손자욱을 보고 언사숙이 남긴 자욱으로 아는가 보다.'
만진산이 말했다.
"모두들 우왕좌왕하지 말고 사방을 조심해서 찾아보거라."
어떤 사람이 말했다.
"언사숙께서 이곳에 오신 이상 가져가지 않았을리가 있겠어요
?"
또 한 사람이 말했다.
"척장발은 잔꾀가 많으니 검보를 이곳에 숨겼다면 다른 사람들
이 쉽게 찾지를 못할 것입니다. "
한 사람이 말했다.
"물론 잔꾀가 많지. 그렇지 않으면 어찌 철소횡강이라고 불리
웠겠는가 ?"
만진산이 말했다.
"우리는 조금전 그 시골 사람의 뒤를 ㅉ아 왔는데 그자의 걸음
걸이가 매우 빨랐다. 그 사람이 이일과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구
나."
만규는 말햇다.
"그 사람은 이곳의 지리에 밝아 작은 길로 떠나갔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아니었다면 이곳에 동굴이 있다는 것을 일년이나 이
년이 지나도 알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적운은 생각했다.
'알고보니 그들은 내 뒤를 따라왔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은밀한 곳을 알고 있겠는가 ?'
여러사람들이 시그럽게 떠들며 곳곳을 살피는 것을 적운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샅샅이 뒤졌으나 몇개의 물건을 집어 냈을 뿐이었다.
이어서 삽으로 땅을 파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굴속은 모두 바위
덩어리인데 어찌 파내려 갈수 있겠는가 ?
만진산은 말했다.
"아무것도 없구나. 밖으로 나가자 우리는 밖으로 나가 상의 하
도록 하자."
그들은 만진산을 따라 동굴에서 나와 개울 옆 바위 위에 앉았
다. 이 여덟사람의 말소리는 낮아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 없었
다. 잠시후 여덟사람은 몸을 일으켜 사라져갔다. 적운은 생각했
다.
'그들은 연성검보를 나의 둘째사백 언달평께서 홈쳐갔다고 단
정하고 있구나. 나의 사부의 집을 큰집으로 바뀌었고 그 늙은 거
지는 무슨 보물을 찾는다고 했는데... 아, 맞다! 맞어!'
그는 갑자기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 늙은 거지는 보물을 찾는다고 했으나 사실은 연성검보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사부님의 수중에 있는줄 알고 이
곳으로 와서 자세히 찾아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이목이 있
어 먼저 큰집을 지은 후 뜰안을 파내고 있으며 소문이 나갈까봐
헛소문을 내 보물단지를 찾는다고 했다. 그것은 시골사람들을 속
이기 위한 방법이지.'
그는 또 생각을 했다.
'그날 만사백이 생일잔치를했을 때 이 늙은 거지가 왔다갔다
한 것엔 무슨 꿍꿍이 속이 있었을 것이다. 음! 만진산 그들이 검
보를 찾지 못했으니 틀림없이 그 큰집에 가서 찾겠구나. 어쩌멱
몇년전에 찾아봤는지도 모르지.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나는
큰집에서 구경이나 해보자. 일이 이상하고 엉뚱하게 진행되는구
나.'
그는 자리에 일어나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의 사부는 어디 계실까? 그 어르신은 어디 계실까?
그의 집은 다른 사람이 벌집 쑤시듯 쑤셔 놨는데 그는 알고 있을
까 ? 모르고 있을까? 사매는? 그녀는 형주에남아 마님노릇을 하
며 잘 살고 있겠지. 만가의 사람들이 그녀의 부친집에 와서 뒤지
고 있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그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
을까 ?"
저녁이 되자 큰집은 횃불을 밝혔다. 십여명의 일꾼들은 곡괭이
를 들고 땅을 파고 있었다. 적운도 그 사람들 틈에 끼어서 땅을
팠다. 그는 힘을 써 일하지도 않았고 게으름도 하지 않았다. 그
의 머리는 봉두난발이었고 수염을 깍지 않아 털투성이였다. 그리
고 검정칠이 칠해져 있어 진면목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만진산
이 올까봐 머리에 매고 있던 흰끈을 풀어내고 주머니속에 있던
푸른천을 머리에 다시 맸다.
이날 저녁 그들은 북쪽을 향해 파고 있었는데 그 늙은 거지는
뒷짐을 지고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물론 그는 거지차림이 아니
고 매우 화련학 옷과 많은 보석을 걸치고 있었다. 갑자기 적운은
집밖에 사람이 오고 있는 기척을 알아차렸다. 동서남북의 사방을
사람들이 에워싸고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 사람들은 아직 멀리
있어서 늙은 거지는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년전 적운은 그 늙은 거지를 매우 존경했고 좋아했었다. 그
는 겨우 늙은 거지에게 3초식을 배워서 만진산의 여덟제자를 만
나 그들이 손쓸 여유도 주지 않았었다. 그런 그가 어찌 이리 무
공이 무디어졌을까 ?
적운은 자신의 무공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
고 있었다. 그가 분명히 들을수 있는 소리도 옆사람의 귀에는 들
리지 않았다. 적운은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이 만문의 여덟사람은 꽤나 웃기는구나. 그들이 다가오는 것
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 숨소리를 죽이고 다가오다니.'
그 여덟사람육 십여장쯤 다가오자 그 늙은 거지는 그제서야 귀
를 기울이는 듯했다. 적운은 생각했다.
'그는 들었을까 ?'
기실 그 여덟사람의 거리는 아직도 멀었다. 만약 일이년전의
적운이였다면 그 역시 들을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욱
가까이 온다해도 들을수 없었을 것이다.
그 여덟사람은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몇 걸음을 옮기더니 문
득 멈추었다. 틀림없이 안에 있는 살마들에게 들킬까봐 조심하는
것 같았으나 늙은 거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몸을 돌리더니 담벼락에 놓여 있던 용두괴장을 집어 들었
다.갑자기 여덟사람은 동시에 집 주위를 둘러쌌다. 펑 하는 소
리가 나면서 대문이 열렸으며 만규가 제일 먼저 들어왔고 이어서
침성과 복원이 따라들어왔다. 일곱사람은 각기 장검을 뽀아 들고
순식간에 그 늙은 거지를 에워쌌다. 그 늙은 거지는 껄껄 웃더니
말했다.
"하하! 좋구만! 형제들이 다 모였으니! 만사형, 어째서 들어오
지 않으시오 ?"
문밖에 서 있던 한사람이 껄껄 크게 웃더니 들어왔다. 바로 우
운수 만진산이였다. 그와 그 늙은 거지는 똑바로 선채 서로를 쳐
다 보았다. 만진산이 웃으면서 말했다.
"언사제,몇년 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 사이에 돈을 많이 벌었
구먼!"
이 말을 들은 적운의 머릿속은 한바탕 혼란이 일어났다.
'무엇이라고? 이 사람이 바로 둘째 사백인 언달평이란 말인가
?'
그 늙은 거지는 말했다.
"사형, 나는 최근 몇년동안 돈을 조금 벌었소. 당신은 장사가
잘 되오 ?"
만진산은 말했다.
"덕분에! 음, 얘들아. 어찌 사숙에게 절을 올리지 않느냐 ?"
그러자 노곤등은 일곱명의 모든 제자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
했다.
"제자들이 사숙님께 인사드립니다."
늙은 거지는 말했다.
"됐어! 됐어! 이제 됐어! 손에 무기가 들려 있으니 절을 하기
가 불편할 것이야. 절은 관두게나."
적운은 내심 생각했다.
'이사람이 언사백이구나! 그가... 그가...'
만진산은 말했다.
"사제는 이곳에서 금광을 찾고 있는가? 어째서 이곳에 큰 구멍
을 파고 있지 ?"
언달평은 킥킥 웃더니 말을 했다.
"사형은 잘못 아시었소. 소제는 원수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오
이곳에 깊은 구덩이를 파는 것은 두가지 쓸모가 있어서지요. 소
제가 그 원수들을 죽인다면 그들을 구덩이속에 매장하고 소제가
그들에게 당한다면 소제가 이곳에 묻히려눗 것입니다."
만진산은 말했다.
"그것 참 묘하군. 사제는 정말 용의주도하단 말이야. 사제는
뚱뚱하지도 않은데 이 구덩이는 너무나 넓단 말이야. 더 이상 팔
필요도 없겠어."
언달평은 말했다.
"물론 한 사람을 묻기에는 너무나 크지요. 그러나 여덟사람을
묻기에는 아직도 부족한 것 같군요."
적운은 두사람이 만나자 마자 입씨름으로 날카롭게 대립을 하
자 언뜻 정전의 말이 생각났다.
'그들 사형제들은 합심하여 그들 사부를 죽였다. 은혜를 베푼
사부도 죽였는데 그들끼리야 무슨 정분이 있겠는가? 정형이 말하
기를 그들의 사형제는 연성검보를 빼앗았지만 그러나 요결은 얻
지 못했다고 하셨어. 그 요결은 모두 숫자로 된 것인데 첫번째
숫자는 4이며, 두번째 숫자는 51이고, 세번째 숫자는 33이고 네
번째 숫자는 27이라고 했다. 정형께서 숨이 끊어지실때까지 말씀
을 하셨지. 검보는 이미 그들의 수중에 있을텐데 어찌 이곳에 와
서 찾을까 ?'
만진산은 말했다.
"우리는 동문수학한 사이라 너는 나의 마음을 알고 있었으며
나도 너의 마음을 꿰뚫고 있다. 말을 돌릴 필요는 없을 것 같구
나. 가져 오너라."
하면서 우측손을 내밀었다. 언달평은 말했다.
"아직 찾지 못했소. 세째인 척장발은 꾀가 대단히 많아 우리들
은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나는 아직 그가 어디에다가 검보
를 숨겼는지 찾지 못했읍니다."
적운은 멈칫했다.
'그들 세분 사형제가 검보를 빼앗았는데 나의 사부님이 모두
가져갔단 말인가? 사부님은 이곳에 안계시며 그 검보는 사부님께
서 가지고 계실텐데 어째서 여기에 와서 검보를 찾고 있을까 ?'
그는 만진산과 언달평이 절대 멍청이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자기보다 열배는 총명한 사람들이었다. 이중간에는 린뮌 음모와
술수가 숨겨 있을 것이라고 짐작이 갔다. 만진산이 껄껄 웃으면
서 말했다.
"사제, 사재는 왜 거짓으로 꾸미고 있는가? 사람들은 세째사제
를 철소횡강이라고 부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자네가 더욱
두려운 사람이라네."
그는 다시 우측손을 흔들어 빨리 가져오라는 뜻을 표명했다.
언달평은 옷을 툭툭 털면서 말했다.
"사형, 그 물건을 설사 이 언달평이 얻었다해도 나 혼자서는
절대로 그 비밀을 풀지 못할 것입니다. 반드시 형님이 지도를 동
생은 옆에서 거들어야 되겠지요. 그러나 사형께서 얻었으면 사
형 문하의 제자들은 아직 공력이 약하니 이 동생이 사형을 거들
어야 할 것입니다."
만진산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는 그 산동굴에서 무엇을 가지고 왔느냐 ?"
언달평은 이상해서 물었다.
"무슨 동굴입니까 ? 이 부근에 동굴이 있읍니까 ?"
만진산은 말했다.
"사제, 자네와 나는 똑같이 나이를 먹고 있는데 두 사람의 의
리를 해칠수 있겠는가? 같이 보세나 앞으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같이 연구하는 것이 어떤가?"
언달평은 말했다.
"그것참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가. 당신은 어째서 내가 가져갔
다고 단정을 하십니까? 만약 내가 손에 넣었다면 아직도 이곳에
서 땅을 파고 있겠읍니까 ?"
만진산은 말했다.
"자네는 간계가 많은데 무슨 속셈인지 알 수가 있겠는가 ?"
언달평은 말했다.
"척사제의 물건을 그렇게 쉽게 찾을수 있겠읍니까 ? 그 물건은
이집에 없는 것 같읍니다. 그래서 나는 삼일정도 더 파보다가 아
무런 결과가 없다면 더 이상 파내려 가지 않을 작정이였읍니다."
만진산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흥! 내가 보기에 자네는 열흘이고 한달이고 파내려 갈 것일세
그래야 그럴듯 하지 않은가 ?"
언달평은 핏기 가신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화를 억
누르고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해야 믿을수 있겠읍니까 ?"
그러더니 그는 옷을 풀고 장포를 벗더니 웃옷의 한 귀퉁이를
잡고 몇번이고 흔들었다. 쨍그랑 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몇개의
동전과 한개의 비연후따위가 떨어졌다. 만진산은 말했다.
"자네는 참 멍청하군! 그것을 찾았다면 다른 곳에 두었을 테지
옷에 넣고 다닐 이유가 있겠는가? 우리를 바보로 아는가 ?"
언달평은 탄식했다.
"사형께서 믿지 못하신다면 와서 찾아 보시지요."
만진산은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해야 겠군."
그러더니 만규와 침성에게 눈짓을 보냈다. 두사람은 고개를 끄
덕이더니 검을 검집에 넣고는 언달평의 좌우로 다가갔다. 만진산
이 복원과 노곤 두 사람에게 눈짓을 하자 두 사람은 언달평의 등
뒤로 가서 검을 겨누었다. 언달평은 주머니를 톡톡 치면서 말했
다.
"자, 뒤져보게나."
만규는 말했다.
"사숙님, 죄송합니다."
그러더니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었다. 갑자기 악! 하면서 만규
가 급히 주머니에서 손을 빼면서 뒤로 물러섰다. 불빛 아래서 보
니 손등에는 약 세치정도 되는 전갈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가
재빨리 뿌리치니 전갈은 픽!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러나
손등은 이미 부어오르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언달평은 대경실색하면서 말했다.
"아이쿠! 만현질, 자네는 어디서 독충을 가지고 왔는가? 이것
은 꽃무늬가 새겨진 전갈인데 무섭기 짝이 없는 놈이라네. 이 물
건은 가지고 놀면 안돼! 사형, 빨리 손을 쓰지 않는다면 해독할
수 없읍니다. 아이쿠!"
만규의 손등은 붉은 색에서 자주색으로 변했고 다시 검은색으
로 변했다. 한줄기 빨간색이 천천히 손목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
다.만진산은 언달평의 함정에 빠졌음을 알고 당황한 어조로 말했
다.
"사제, 내가 승복하겠다! 내가 졌네. 자네가 해독약을 준다면
손을 털고 우리는 떠나가겠네. 자네에게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
겠네."
언달평은 말했다.
"이 해독약은 내게 있었읍니다만 오래 되어 잊어버리지나 않았
는지 모르겠읍니다. 며칠후 나는 약을 찾아가지고 찾아 뵙겠읍니
다. 해독약이 없으면 나는 대명부에 가서 처방을 찾아다가 약을
조제하여 해약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형제는 의리가 깊
은게 탈이지요."
만진산은 이 말을 듣자 금방이라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큰
독사나 전갈에 물리면 한시진안에 목숨을 잃는다. 이 빨간선이
가슴까지 가면 금방 숨이 끊어질 것이 분명했다. 며칠 뒤에 약을
가져온다는등, 천리먼 하북의 대명부에 가서 약을 지어 온다는등
의 말뿐만 아니라 염치없게도 형제간의 의리가 깊다는 말을 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지라 별수없이 치미는 화를 참으며 말했
다.
"사제, 이 시합에서는 내가 졌다. 자네는 요구하고 싶은 것을
요구하게나."
언달평은 천천히 겉옷을 입고 단추를 채우더니 말했다.
"사형, 내가 무슨 요구조건이 있겠읍니까? 당신이 하고 싶은대
로 하시구려."
만진산은 생각했다.
'오늘은 너하고 싶은대로 하거라. 앞으로는 그럴 기회가 없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그는 말했다.
"좋다. 이 만가는 영원히 자네를 만나지 않겠다. 이 약속을 어
긴다면 나는 성을 갈겠다."
언달평은 말했다.
"그 맹세는 너무 심하군요. 이 동생은 다만 연성검보가 언달평
의 소유라고만 해주시면 만족합니다. 만약 이동생이 찾아냈으면
말할 것도 없고, 음! 사형의 손에 들어간다 해도 응당 이동생에
게 양보를 하셔야 합니다."
만규의 독기운은 점점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의 몸은 자신
도 모르게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노군이 부르짖었다.
"사제!"
노곤이 그의 옷자락을 찢어보니 빨간선은 이미 겨드랑이까지
올라가 있었다. 그는 머리를 돌려 만진산을 향해서 외쳤다.
"사부님! 오늘은 어떤 대답이라도 하셔야합니다."
만진산은 말했다.
"좋다. 연성검보는 사제의 것이다. 축하하네, 축하해!"
그가 축하한다는 말을 할때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그
리고 눈빛은 표독스러웠다. 언달평은 말했다.
"그렇다면 찾아보지요. 어쩌면 해독약을 찾을수 있을지도 모릅
니다. 만현질의 운은 거기에 달려 있지요."
그러더니 천천히 방안으로 들어갔다. 만진산이 눈짓을 보내자
노곤과 복원이 따라 들어갔다. 한참이 지나도 세사람은 나오지를
않았다. 만규의 표정은 이미 혼미해졌고 침성이 부축하지 않았다
면 이미 땅위에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만진산은 초초해져서
풍탄에게 말했다.
"들어가서 살펴보거라."
풍탄은 말했다.
"예."
그가 막 들어가려고 할때 언달평이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다행입니다. 다행입니다. 찾았읍니다."
그의 손에는 한개의 자기병이 들려 있었다.
"이것은 해독약입니다. 전갈의 독을 물리치는데 제일 효험이
좋죠. 만현질, 자네는 명이 길구만. 앞으로는 이런 독물을 함부
로 만지지 말게나."
그러면서 그는 만규에게 가까이 가더니 그의 손등에 흑색의 가
루약을 뿌렸다. 이 해독약은 효험이 좋았다. 얼마 있지 않아서
상체에서는 천천히 검은피가 흘러나왔다. 검은피의 양은 갈수록
많아졌으며 만규의 검은손도 점차 제 색깔을 찾았다. 만진산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내심 마음을 놓았으나 생각을 하면 할수록
약이 올랐다. 한참후 만규가 눈을 뜨더니 소리쳤다.
"아버님!"
어달평은 자기병을 들어 품속에 갈무리 하더니 용두괴장으로
땅바닥을 가볍게 치며 웃었다.
"자, 됐다. 자네는 교훈을 얻었으니 앞으로는 사람들의 주머니
를 뒤질 땐 절대 조심하도록 하게나."
만진산은 침성을 향해 말했다.
"그들보고 나오라고 해라."
침성은 대답했다.
"예."
그는 대청으로 들어가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노사형, 복사형. 빨리 나오십시요! 우리는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신음소리만 몇 차례 들려올뿐 대답하는 소리
는 없었다. 손균과 침성은 사부의 명을 받지도 않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곧 노곤과 복원을 부축하고 나왔다. 두사람의
얼굴은 창백했고 한사람은 왼쪽다리가, 다른 한사람은 오른쪽 다
리가 부러져 있었다. 조금 전 언달평의 마수에 걸린게 분명하였
다.
만신산은 대노했다. 그는 언제나 언달평을 없애려고 했는데 지
금 좋은 구실을 발견한 것이다. 지금까지 받은 수모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는 싹! 하고 장검을 뽑아 들었다. 순간 검끝은
언달평의 목을 향해 찔러가고 있었다.
적운은 지금까지 만진산의 무공은 본적이 없었다. 이때 그의
초식이 날카롭고 신속하며 무겁게 보이자 내심 생각했다.
'이 일검은 빈틈이 없구나.'
적운의 현재 무공수준은 매오 심오해져 있는 상태였다. 전수해
준 사부는 없었어도 상대방의 초식을 보면 그 헛점을 훤히 알수
있었다.언달평은 몸을 살짝 피하면서 왼손으로 지팡이의 아랫쪽
을 잡고 오른손으로 지팡이의 머리를 거무쥐었다. 다음순간 흰빛
이 번쩍하였다. 그의 손에는 이미 한자루의 장검이 쥐어져 있었
다. 본래 용두괴장의 용머리는 한자루의 검이었으며 검의 날은
자루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그는 일검을 손에 쥐어잡자 즉지 만
진산의 칼을 받아냈다. 쨍그랑!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퍼
졌다. 두사람은 흙무더기위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몇 초를 겨루
더니 그들은 똑같이 기합을 지르면서 구덩이 안으로 뛰어 들었
다. 땅을 파던 사람들은 두 사람이 말다툼을 시작할때부터 벌써
불안해 했으며 두사람이 병기를 들어 겨루기 시작하자 무서워서
한쪽 구석에 모여 웅크리고 있었다. 그누구도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적운도 역시 무서운척 가장하고 두 사람을주의깊게 살폈
다. 두 사람의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적운은 생각했다.
'두 사백의 내공이 너무 부족하구나. 설령 그 연성검보를 얻었
다 해도 별로 쓸모가 없을 것 같구나. 연성검보가 내공을 증가시
키는 비급이라면 몰라도.... 연성검보라고 불리는 것으로 보아
단지 검법의 이치를 설명해 놓은 것일 뿐이겠지.'
그는 몇초식을 보자 더욱 이상하게 생각됐다.
'유승풍, 화철간과 같은 낙화유수 네분 대협의 무공은 이 두분
의 사백과 비교해 보면 더욱 실력이 뛰어 나다. 두분의 사백은
초식의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내공과의 배합을 하지 않고 있다.
그게 무슨 까닭일까 ? 그 옛날 사부도 나에게 그렇게 검술을 가
르쳐 주었지. 보아하니 만사백, 언사백 그리고 나의 사부 모두
그렇게 배운 모양이다. 이런 무공들은 그들보다 약한 적을 만난
다면 물론 우세하겠지만 상대방의 내공이 조금만 강하다면 이런
변화가 많은 수법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될 것이다. 왜 이렇게
배웠을가 ? 왜 이런 검법을 배웠을까 ?'
손균, 오감, 풍탄 세사람은 각자 장검을 뽑아들고 구덩이로 뛰
어 들어서 만진산과 합세하여서 언달평을 공격했다. 언달평은 껄
껄 소리내더니 말했다.
"좋읍니다. 좋아요! 대사형, 당신의 실력은 갈수록 좋아지는구
려. 그리고 졸개들을 소집하여서 일제히 사제에게 공격을 하게
하는구려."
그는 비록 겉으로는 아무일도 없다는 듯 태연히 떠들고 있었으
나 검법은 이미 상당히 무디어지고 있었다.
적운은 생각했다.
'저들 두사형제의 검초는 각기 장점이 있구나! 언사백에 나에
게 가르켜준 자견식, 이광식, 거검식의 삼초식은 만문의 제자들
을 상대하는데 효과가 있겠지만 만사백을 상대할때는 아무런 효
과가 없겠구나. 아, 그들은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구나. 검초
의 변화만을 능사로 알고 내공이 뒤를 받쳐주지 않는다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말이다. 아무래도 쓸모가 없다. 정말 이상하다.
이 같은 기본적인 이치는 나같은 멍청이도 알고 있는데 그들은
매우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으로서 어찌하여 모르고 있을까? 혹시
내가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
갑자기 마음속에 한줄기 빛이 스치는 것 같았다.
'정형은 나에게 신조경의 내력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지. 틀림없
이 사조 매념생은 이 사실을 알고 계셨을거야. 그런데 왜 제자에
게 말을 해주지 않았을가? 설마... 설마...'
그는 마음속으로 설마 설마하고 연신 외쳐댔다. 등에서는 식은
땀이 흘러내렸고 자기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며 가볍게 몸을 떨었
다. 옆에 있넌 한명의 시골사람은 계속해서 불경을 외고 있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절대로 살생을 하지하지 마십시요. 이보
게, 친구, 갓서워하지 말게나. 무서워하지 말게나."
그는 적운이 떨고 있는 것을 보자 싸움을 보고 무서워하고 있
는줄로 알고 있었다. 적운도 자기들처럼 혼비백산해 있는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적운은 진상을 분명히 알수 있었다. 그 진상은 알고보면 너무
나 지나치고 음훙하고 악독했다. 그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
았다. 만진산, 언달평, 손균, 풍탄, 오감... 이사람들이 일초식
을 펼때 마다 한가지씩을 그는 확증하게 되었다.
'그렇다! 틀림없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아마 그러
지는 않을 것이다. 사부가 된 자럭館 어찌 이토록 악랄하고 음흉
할수가 있겠는가? 아닐 것이다. 아닐 것이다... 그런 만약 아니
라면 어지하여 이런 결과가 나올까? 정말 이상하기 짝이 없구
나.'
그의 머릿속에는 한장의 그림이 확연히 그려졌다.
'몇년전 이 집 밖에서 나와 사매가 무술연마를할때 사부께서
옆에서 가르쳐 주셨다. 사부께서 한초식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
은 참으로 이상했다. 나는 열심히 배웠으나 두번째로 사부가 그
것을 가르쳐 주실대는 먼저 배운 것과 또 달랐다. 당시 나는 단
지 사부의 검법이 그 변화가 무쌍해서 그렇게 된졀摸 알고 있었
다. 지금 생각해보니 후에 가르쳐준 검초가 왜 다르게 되었는지
그이치를 분명하게 알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마음이 고통스러워졌다.
'사부께서는 고의적으로 나에게 틀리게 가르쳐주셨고 고의로
나에게 그렇게 가르쳐 주었다. 자기는 무공에 대한 경지가 상당
했으나 고의적으로 나에게는 별볼일 없는 검초를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그가... 그가... 언사백의 무공과 사부님의 무공은 응
당히 비슷할텐데 언사백이 나에게 가르쳐준 삼초식의 검법은 사
부보다 훨씬 고명하지 않았던가.'
그는 다시 생각했다.
'언사백께선 나에게 어째서 삼초식의 검법을 가르쳐주셨을까?
틀림없이 좋은 마음으로 가르쳐 주지 않았을 거야. 맞다! 그는
만사백이 나의 사부님을 의심하도록 만들고 둘간에 싸움을 붙혀
서 어부지리를 얻을 생각이었을 것이다.'
적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만사백도 똑같다. 그가 사용하는 무공은 제자들과 완전히 다
르다. ... 그런데 어째서 자기 아들에게조차 숨길까? 아, 맞다!
자기 아들에게만 가르쳐 줄수는 없기 때문에 가르쳐주지 않았을
거야. 정말 거울을 보듯 분명하구나!'
언달평은 좌측손으로 검결을 짚고 우측손목을 음직여 검끝으로
일곱개의 둥근원을 연속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리고 신속하게
만진산의 가슴을 향해 찔러갔다. 만진산은 검신을 옆으로 내리치
더니 연신 그 일곱개의 둥근원을 격파했다. 적운은 옆에서보고
또 생각했다.
'이 일곱개의 둥근원은 모두 쓸모가 없고 마지막의 일검이 진
짜다. 그런데 그 일검은 만사백의 좌측가슴을 찔렀는데 어째서
똑바로 찌르지 않았을까? 그렇게 하면 빠르고 매서웠을텐데. 만
사백은 옆으로 내리쳐 일곱개의 원을 격파한 것은 얼핏보기에는
교묘하나 사실은 멍청하기 짝이 없는 초식이구나. 만약 언사백이
만사백의 아랫배를 향해 반격f
했더라면 승부는 이미 판가름이
났을 것이다.'
그는 순간 옛날 사매와 대련을 할때의 생각이 났다. 적운은 척
방만큼 총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초식을 알고 있지 못했다.
그렇기에 척방이 연속적으로 공격을 가해오자 미처 대응을 못하
고 연신 물러나고 있었다. 척방이 구석에 몰린 적운에게 연속적
으로 삼초식을 공격해 왔을때 적운은 사부가 가르쳐준 검법을 생
각할 틈도 없이 아무렇게나 반격을 했었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
'척방은 부청문경풍 연산석포도 의 일초식을 써서 나의 공격을
막아 냈다. 그러나 그때 나의 검초는 내 스스로 발견한 것이고
사부가 가르쳐준 초식대로 하지 않았는데도 척방의 교묘한 검법
은 오히려 나의 공격을 막을수 없었다. 그때 내가 일검을 내리치
자 똑바로 사매의 어깨에 닿았었다. 막 이러고 있을때 사부께서
는 옆에서 달려 나왔는데 손에 들고 있던 작대기로 나의 손에 있
던 장검을 날려 버렸지. 척방은 무서워서 얼굴색이 변했고 사부
님은 가르쳐준대로 하지 않는다고 호통을 쳤었다. 나는 그때 어
째서내 마음대로 펼친 초식이 정확한 초식을 구사한 사매를 이
겼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그때 사매가 진정한 고수가 아니
였기때문에 이길수 있었지 진정한 고수를 만났더라면 나의 엉터
리 검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찌 알았
으랴. 사부가 알려준 검법보다 오히려 내가 내리찍은 검초가 더
욱 실용적이었다는 것을...'
적운은 지금은 무공이 높아서 그동안의 사연을 분명하게 알수
가 있었다.
만진산과 언달평이 사용하는 검법중에는 상당수가 쓸모없는 초
식이였고 또 만진산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검법은 척장발이 적
운과 척방에게 전수해준 검법보다 쓸모없는 초식이 더욱 많았다.
말할 것도 없이 사조인 매념생은 이미 세명의 제자가 음흉하다는
사실을 알고 전수할때 이미 그들이 엉뚱한 길로 들어서도록 잘못
인도하였고 또 만진산과 척장발은 자기 제자를 가르칠때 고의로
또는 무의식중에 더욱 엉뚱하게 가르쳤던 것이다.
적과 마주해서 쓸모없는 검법을 펼치는 것은 쓸모없는 정도에
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으로 하여금 우위를 잡게하여서 자신의
생명을 적에게 맡기는 꼴이였다. 왜 사부, 사조, 사백은 이렇듯
악랄하고 음흉한 것일까 ?
'그들은 자기 아들과 딸에게 무슨 원한이 있었을까? 어째서 고
의로 자기제자들을 망쳐놓았을까? 아, 고의가 아니였으면 좋겠구
나. 또다른 중대원 원인이 있겠지.혹시 그 연성검보때문은 아닐
까? 그래맞다. 만사백과 언사백은 검보때문에 자신의 사부를 살
해했고 또 목숨을 걸고 상대방을 해치우려 하는 것이다.'
구덩이속의 결투는 갈수록 격렬해 졌다. 만진산과 언달평 두사
람의 검법은 비슷했으나 만문의 제자들이 옆에서 돕고 있었기 때
문에 언달평은 정신이 분산되었다. 이렇게 결투가 있을때 손균이
언달평의 목을 내리쳤다. 언달평은 검을 들어 막더니 날카롭게
일검을 내리쳤다. 손균은 아이쿠! 하며 소리를 지르고 호구에 상
처를 받고 검을 놓치고 말았다. 이때 만진산이 언달평의 헛점을
발견하고 일검을 내리찍으니 언달평의 우측팔뚝에 커다란 상처를
낼수 있었다. 언달평은 참지 못하고 급히 좌측 손으로 검을 옮겨
쥐었다. 그러나 좌측손으로는 익숙하게 검을 휘두를수 없었고 우
측팔뚝의 상처는 심하여 선혈은 그의 하체마저 적시고 있었다.
칠팔 초식을 더 겨루었을때 그는 다시 좌측 어깨에 일검을 맞고
말았다.
시골의 일꾼들은 이 모습을 보자 모두 겁이나서 안색이 창백해
졌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집밖으로 나가고 싶어으나 감히 음직일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만진산은 오늘 언달평을 죽이려고 결심하였는지 일검을 내리칠
때마다 악랄한 초식만을 골라서 썼다. 잠시후 다시 언달평은 우
측가슴에 일검을 찔렸다. 상황을 보니 언달평은 몇초식 내에 만
가의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 같았다. 언달평은 죽음이 다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살려달라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와 사형과는 십여년동안 동문수학을 했으며 십여년동안 암투를
해왔으므로 상대방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적운은 내심 생각했다.
'몇해전 내가 형주에 있을 때 언사백은 한개의 밥그릇으로 나
를 도와서 도둑 여통을 물리치고 또 나에게 삼초의 검법을 알려
주어서 만문의 여덟제자에게 복수할수 있도록 해주었다. 비록 그
가 나에게 성의를 보여준 것은 다른 속셈이 있었다 해도 나는 결
국 그의 은혜를 받지 않았던가. 절대로 그가 비명에 죽도록 내버
려 둘수는 없다.'
그는 즉시 손에 들려있던 삽으로 흙을 가득 퍼냈다. 만진산이
언달평에게 다시 일검을 찔러대는 모습이 보였다. 언달평은 몸을
비틀거리기만 할분 그 검을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적
운은 삽으로 흙을 가볍게 퍼내어서 한무더기의 흙을 만진산의 얼
굴을 향해서 날려보냈다. 적운은 이때 적지 않는 내공을 주입했
다. 만진산은 이 한무더기의 흙을 얼굴에 맞아 서 있지 못하고
뒤로 벌렁 자빠졌다. 적운은 몇 삽의 흙을 떠서는 등잔과 횃불을
향해서 던지니 대청안은 금세 어둠으로 가득찼다. 이틈을 타서
적운은 재빨리 언달평을 안고 밖으로 뛰쳐 나왔다. 적운은 집 밖
으로 나오자 언달평을 어깨에 메고는 뒷산으로 달려갔다.

적운은 이 일대의 지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될수 있는대
로 황폐하고 걷기 힘든 길을 골라서 달려 올라갔다. 언달평은 그
의 등에 업혀 있었는데 귓전으로 바람소리가 세차게 일어서 마치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적운은 언달평을 메고 그 일대에서 제
일 높은 봉우리로 올라갔다. 산기슭은 비탈지고 위험한 곳이었는
데 적운역시 한번도 온적이 없는 곳이였다.
그는 언달평을 조심스럽게 땅에 내려놓고는 말했다.
"당신한테 상처에 바르는 약이 있소 ?"
언달평은 절을 하며 말을 했다.
"은인의 성함은 어찌 됩니까? 언달평이 오늘 은혜를 입었으니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 지 모르겠군요."
적운은 사백의 절을 받을 수 없어 급히 무릎을 끓고는 답례를
하면서 말했다.
"선배께서는 이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읍니다. 소인은 이
름도 없는 떠돌이이니 이 일에 대해 보답한다는 말은 거두어 주
십시요."
언달평은 몇번이나 간곡히 청했으나 적운은 거짓말을 할줄 몰
라서 가짜이름도 대지 못하였다. 언달평은 그가 아무말도 하지
않자 품속에서 바르는 약을 꺼내어서 상처에 바르면서 생각했다.
'이 사람이 조금이라도 늦게 왔다면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
었을 것이다.'
이때 적운이 말했다.
"저는 몇가지 의문이 있는데 선배께 물어보아도 괜찮겠읍니
까?"
언달평은 급히 말했다.
"은인께선 더 이상 선배라는 말을 하지 마십시요. 그리고 무엇
을 물어보신다 할지라도 이 언달평은 조금도 거짓없이 말씀을 해
드리겠읍니다."
"그렇다면 좋읍니다. 선배님께 물어보겠는데 그 큰집은 당신이
지으신 것입니까 ?"
"그렇읍니다."
적운은 다시 물었다.
"선배께서 사람을 고용하여 땅을 파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연
성검보를 찾을려고 함입니다. 그런데 연성검보를 찾으셨읍니
까?"
언달평은 멈칫해서 생각해본다.
'이자가 좋은 듯으로 나를 구해주었을리가 없다. 이제 보니 그
연성검보때문이였군.'
생각을 마친 그는 대답했다.
"저는 무수한 심혈을 기울였으나 지금까지 아무 단서도 찾아내
지 못했읍니다. 은인께서도 아시다시피 이 손인은 실로 숨기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이 언달평이 얻었다면 즉시 두손으로 은인
에게 바쳤을 것입니다. 이 언달평이 생명의 은인께 무엇인들 아
까워 하겠읍니까?"
적운은 연신 손을 흔들면서 말을 했다.
"나는 그 검보를 가질려는 것이아니요. 선배님께 말씀드리지만
저의 무공은 평범하지만 연성검보는 저와 같이 높은 내공을 가진
사람에게는 별로 필요하지 않읍니다."
언달평은 말했다.
"예, 예. 은인의 무공은 신출귀몰하여서 이미 이 세상에 누구
도 대적할수가 없겠지요. 그 연성검보는 한개의 검법도보일뿐입
니다. 소인과 소인의 사형들은 다지 이것이 본문의 공력이므로
서로 매우 중시하고 있으나 밖의 사람들에게는 별 볼일 없는 물
건이지요."
적운은 그의 말투에 진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모르
는 체 하고 다시 물었다.
"듣자하니 그 큰집의 주인은 원래 당신의 사제인 척노선배님의
소유라고 하더군요. 척노선배를 가리켜 사람들은 철소횡강이라고
부르던데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
그는 어려서부터 사부밑에서 자라왔다. 자기 눈으로 볼때 사부
는 실로 충실하고 선량한 시골사람으로 보아왔는데 정전은 그가
매우 간사하고 계략이 많다고 했으므로 다시 한번 물어보아 정전
의 말이 틀렸는지 맞았는지를 알아보려고 했다. 언달평은 말했
다.
"나의 사제 척장발은 철소횡강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그가 계
략과 술책에 뛰어나며 사람들을 대할때 악랄하기 그지없어서 그
렇게 불렀지요. 마치 한개의 큰 쇠사슬로 강을 봉쇄하여 강의 배
가 올라갈래야 올라갈수도 없고 내려가고 싶어도 내려갈수 없는
경우라는 뜻이지요."
적운은 내심 괴로웠다.
'정형님의 말씀이 틀림없구나. 나의 사부가 이런 인물이었다
니. 나는 어려서부터 그에게 사기를 당한거야. 그는 처음부터 끝
까지 나에게 진면목을 보여주지 않았어. 그러나 그는 줄곡 나에
게 잘 대해주었으니 나를 속였다 해도 해를 입은 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한가닥의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다.
적운은 언달평을 향해 물었다.
"강호에서 부르는 호칭은 믿을 것이 못되지 않소? 어쩌면 척장
발의 원수가 그를 모함하기 위해서 그를 그렇게 불렀을지도 모르
지않소? 당신과 당신의 사제는 동문수학을 했으니 자연히 그 사
람의 성격과 마음을 잘 알 것이요. 도대체 그의 성격은 어떠하
오 ?"
언달평은 탄식하면서 말했다.
"자기와 동문수학을 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은 옳지 않지만
은공께서 물어보시니 조금도 숨기지 않고 말하겠읍니다. 나의 척
사제는 겉으로는 마치 소나 말처럼 우둔해 보이지만 마음은 영악
하기 이를데없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연성검보가 척사제
의 손에 떨어졌겠읍니까 ?"
적운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참이 지난후에 다시 물어보았다.
"당신은 어떻게 연성검보가 확실히 그의 수중에 있다고 믿으시
요? 친히 보았소 ?"
"두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소인이 자세히 추측을 해본결과 틀
림없이 그가 가져갔다고 단정지을수가 있었읍니다."
적운은 말했다.
"내가 듣기로는 당신은 거지로 분장하기를 좋아한다고 하던데
그렇소이까 ?"
언달평은 또 한번 깜작 놀랐다.
'이 사람 정말 무섭구나. 그 일까지 알아내다니.'
그는 머리를 조아렸다.
"은공께서는 정말 영롱하십니다. 제가 하는 짓들을 당신한테만
은 속일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처음에 저는 이 연성검보가 만사
형의 수중에 있지 않다면 척사제의 수중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
지요. 그래서 거지로 변장을 해서 상서와 형주를 오가면서 둘을
감시했지요."
적운은 물었다.
"어째서 당신은 그 검보가 두사람의 수중에 있다고 생각했소?"
"나의 은사께서 임종하실때 그 검보를 우리 세 사형제에게 주
셨지요."
적운은 만진산, 언달평, 척장발 세사람이 힘을 합쳐 사부인 매
념생을 모살했다는 정전의 말을 상기하고 코웃음을 쳤다.
"당신의 사부께서 친히 당신들께 준 것입니까? 아마...아마...
그렇지 않았겠지요? 그는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읍니까 ?"
언달평은 순간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은 바로 정...정... 정전 어르신이군요."
정전이 매념생을 안장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
다. 적운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정전이 아니요. 정형님은 나쁜 것을 보면 참지 못하는사
람입니다. 그가... 그분은 친히 당신들 사형제 세사람이 협력하
여 사부를 죽이는 것을 보았지요. 만약 내가 정형님이라면 오늘
당신을 구해주지도 않았을 것이요. 당신이 만... 만진산의 검에
죽도록 내버려 두었을 것입니다."
언달평은 여전히 믿을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시요 ?"
적운은 말했다.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알 필요가 없소. 당신들이 저지른 일이
폭로되는 것이 두렵다면 그런 일은 애당초 하지 않았어야 했소.
당신들은 협력하여 사부를 죽인 다음 연성검보를 빼았었는데 그
후는 어찌 되었소 ?"
언달평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은공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면서 어째서 저에게 물어보십
니까 ?"
적운은 말했다.
"어떤 일은 알고 있지만 어떤일은 자세히 모르고 있소. 당신은
사실대로 말해주시요. 나는 기필코 진상을 캐내고 말것이요."
언달평은 놀람과 두려움에 떨면서 말을 했다.
"내 어찌 은공을 속이겠읍니까? 우리 세형제는 연성검보를 뺏
은 다음 살펴보니 검보만 있을뿐 검별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지
요. 그래서 아무런 쓸모가 없어 검결이 있는 곳을 뒤ㅉ고 있었읍
니다."
적운은 내심 생각했다.
'정형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검결은 보물이 숨겨져 있는 곳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셨는데 지금 매념생, 능소저, 정형님 모
두 세상을 떠나셨으니 어느 누구도 이 검결에 대한 비밀을 알지
못하겠구나.'
언달평은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 세사람은 서로를 믿지 못해서 그저 날마다 한방에서 잠
을 자고 이 검보는 쇠로 만든 상자속에 집어넣어 잠갔지요. 우리
들은 그 쇠상자의 열쇠를 강물에 던지고 쇠상자는 방에 있는 탁
자속에 집어넣었읍니다. 쇠상자에 또 다른 세가닥의 사슬을 연결
하여 각각 세사람의 손에 묶고 누구도 가지려고 해도 나머지
두사람이 알 수 있도록 했지요."
적운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왜 그렇게 엄밀한 방비를 했소 ?"
언달평은 말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배반자가 나왔읍니다. 그날 밤 우리 형제들
이 잠을 잤소이다. 다음날 아침에 만진산이 검보가 없어졌다고
외쳤읍니다. 제가 깜작놀라서 일어나 상자를 열어보니 상자의 뚜
겅도 열려 있었으며 그 상자안에 있던 검보는 깜족같이 가라지고
말았읍니다. 우리들 세사람은 너무 놀란 나머지 눈에 불을 켜고
찾았읍니다만 찾을수가 없었읍니다. 방의 창문은 여전히 쇠못으
로 박힌 채 잠겨 있었고 열린 흔적은 없었읍니다. 따라서 검보는
밖의 도둑놈이 홈쳐간 것이 아닌 만사형 아니면 척사제가 홈쳐
간것입니다. "
적운은 말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밖의 사람이 홈쳐간 것 처럼 위장하지 않았
을 까요 ?"
언달평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우리들 세사람의 손목은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었읍니다. 약간
미동하여 그 탁자의 설합을 열고 쇠로 만든 상자를 열수는 있었
지만 멀리가서 창문을 연다면 아마 쇠사슬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
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적운은 말했다.
"그렇겠군요. 그렇다면 당신들은 어떤 방법을 썼소 ?"
언달평은 말했다.
"제가 어떻게 알겠읍니까 ? 그 당시 세사람은 서로를 책망했으
며 싸우기 시작했읍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소행이
라는 증거가 없어서 별수없이 헤어져서 이렇게 서로를 노리고 있
답니다."
적운은 말했다.
"한가지 모르는 일이 있소. 당신의 사부께서는 그 검보를 무덤
속까지 가지고 갈 것도 아닐 것인데 어째서 악랄한 방법을 써서
검보를 빼앗었소이까 ?"
언달평은 말했다.
"저의 사부님은 늙어서 망령이 났지요. 그는 우리 세 사형제의
마음이 올바르지 못하다고 여기고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들에게
그 검보를 전수해 줄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심지어 그 검보를 다
른 사람에게 전수해 주려고 했지요. 우리 세사람이 어찌 참을수
있었겟읍니까? 그래서 어쩔수 없는 상황하에서 비로소... 비로소
그런 수단을 썼지요."
적운은 말했다.
"알고보니 그랬군요. 그런데 검보가 어떻게 척사제의 손에 들
어갔다고 확신하시요 ?"
언달평은 말했다.
"저는 원래 검보를 만진산이 가져갔다고 생각하고 있었소. 왜
냐하면 그가 가장 먼저 소리를 질렀으니 제일 의심받을만 했소.
나는 암암리에 그자의 뒤를 오랫동안 밟아서야 그의 소행이 아니
었음을 알아냈소이다. 그는 척사제를 뒤ㅉ고 있었으니까요. 검보
가 만약 만진산의 수중에 들어갔었더라면 그는 절대로 다른 사람
의 뒤를 밟지 않았을것이고 틀림없이 바로 시골구석에 숨던지 아
니면 깊은 계곡에 숨어 검법을 연마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
나 매번 그를 볼때마다 항상 입술을 질근질근 씹으면서 매우 초
초하고 애석하게 보였읍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바꾸어 척장발
을 추격하기 시작했지요."
"그렇다면 무슨 단서를 찾아 냈읍니까 ?"
언달평은 고개를 흔들면서 말을 했다.
"이 척장발이라는 자는 너무 용의주도하여서 아무런 흔적도 남
기지 않았읍니다. 내가 예전에 그가 자기의 딸과 제자에게 기술
을 가르쳐주는 것을 엿보았는데 그는 고의로 멍청한 척 하며 당
시에서 나온 검초의 명칭을 엉터리로 바꾸어놓고 있었소. 정말
옆사람이 들었다면 배꼽을 잡고 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런 행동을 할수록 나는 그가 더욱 수상하다고 여기고 있었지
요. 내가 계속해서 삼년동안 뒤를 밟았는데 그는 그때까지 아무
런 빈틈도 보여주지를 않았읍니다. 그가 외출할때 나는 몇번이고
그의 집에 숨어들어가 자세히 수색해 보았는데 검보는 고사하고
쓸모없은 책한권도 찾지를 못했읍니다."
적운이 말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소 ?"
언달평은 말했다.
"나중에 만진산이 갑자기 잔치를 차린다고 두제자를 파견하여
척장발에게 형주에서 잔치술을 먹으라고 청하였지요. 물론 잔치
를 한다는 것은 가짜였고 척장발의 허실을 염탐하는 것이 진짜였
지요. 척장발은 딸과 멍청하기 짝이 없는 제자, 이름이 뭐라고
하더라. 아! 적운이라고 부르는자와 함께 갔지요. 연회석상에서
이 적운이라는 자와 만가의 여덟명의 제자가 싸움이 붙었지요.
적운이라는 자는 삼초의 정묘한 검술이 노출되어 만진산의 의심
을 불러 일으켰지요. ... 허허... 은인께선 금방 뭐라고 하셨읍
니까 ?"
적운은 묵묵히 고개를 흔들었다. 언달평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만진산은 척장발을 청해서 서재에 가서 이야기를 하려
고 했지요. 두 사람은 서로 한마디씩 주고 받으면서 얼굴을 붉혔
지요. 두 사람은 서로 한마디씩 주고 받다가 척장발이 갑자기 만
진산을 때려 눕히고 도망갔지요. 그후부터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읍니다. 이상하지요. 정말로 이상하기 짝이 없읍니
다."
적운은 말했다.
"무엇이 이상하단 말씀이십니까 ?"
언달평은 말했다.
"척장발은 그때부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어디에 숨었는
지 알수 없게 되었읍니다. 척장발은 형주에 갈때 홈쳐온 검보를
몸에 지니고 가지 않고 틀림없이 이곳 어디 은밀한 곳에 숨겨 놓
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빠른 말을 구해
서 그의 집에 가서 그가 검보를 꺼내는 순간을 포착하려 했지요.
그러나 척장발은 오랫동= 지나도 오지를 않더니 어느덧 몇년이
흘렀읍니다. 그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지었읍니
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와서 여기저기 찾아보고 땅을 파헤쳐 검
보를 찾아보려고 시간을 쏟았으나 아무런 성과도 없었읍니다. 만
약 은공께서 오늘 이 목숨조차도 이곳에 묻힐 뻔 했읍니다. 허
허. 나의 그 만사형은 정말 잔혹한 사람입니다."
적운은 말했다.
"당신 생각에는 척장발이 지금 어디에 있을 것 같소 ?"
언달평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는 정말 추측해 낼수 없었읍니다.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숨을 곳이 있겠읍니까? 어디서 맹수한테 잡아 먹혔는
지도 모르지요."
적운은 그가 그런 말을 하면서 얼굴에 기쁜 빛을 띄자 얄미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부가 여지껏 아무런 소식도 없는 걸로
보아 아마도 어떤 불행한 일을 당했을 것 같았다. 그는 몸을 일
으켜 세우며 말했다.
"그렇게 숨기지 않고 솔직히 말씀해주셔셔 감사합니다. 이제
여기서 헤어져야겠군요."
언달평은 공손하게 읍을 세번씩이나 하면서 말했다.
"은공의 큰 은덕을 언달평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적운은 말했다.
"그=것은 아주 사소한 일이니 마음에 두지 마십시요. 하물며...
하물며... 당신은 옛날에... 당신은 이곳에서 상처를 치료하도록
하십시요. 만진산은 절대로 이곳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언달평은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 지금쯤 그는 마치 뜨거운 냄비속의 개미떼처럼 우왕좌왕
하며 나를 찾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적운은 이상해서 물었다.
"왜 그렇소 ?"
언달평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나의 독이 있는 전갈은 그의 아들을 물었지요. 이 독을 빼낼
려면 반드시 약을 열차례 발라야 합니다. 한번만 =》簫杉鳴 무
슨 소용이 있겠읍니까 ?"
적운은 놀라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 만규라는 자의 목숨을 보장할수 없겠군요."
언달평은 득의만만해서 말했다.
"이런 꽃무늬가 새겨져 있는 전갈은 실로 독이 대단합니다. 이
것은 서역의 회강에서 전해져 온것인데 특이한 것은 만규라는 자
가 금방 죽지 않고 한달간 고통에 시달리다가 그제서야 죽게 된
다는 것입니다."
적운은 말했다.
"한달뒤에 죽는다면 그것은 그리 급할 것이 없겠군요. 그동안
용한 의원을 찾아서 치료하면 되지 않겠읍니까 ?"
"은공께서는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이 전갈은 제가 키운 것으
로 새끼때부터 많은 해독약을 복용시켜서 이 전갈의 독은 많은
해독약에 대해서 저항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일반적인 해독약으로
는 아무런 쓸모가 없읍니다. 아무리 고명하고 의술이 높다해도
아무런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오로지 제가 가지고 있는 이 해독
약으로만이 해독을 할수가 있을 뿐입니다."
적운은 곁눈질을 하면서 생각했다.
'이 사람은 정말 악독하구나.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내가 이
자의 전갈에 물려 죽을지도 모르겠구나. 정형님께서는 강호에 돌
아다닐려면 조=ㄸ 마을 가지라고 하셨다. 아무래도 이자에게
서 해독약을 빼앗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 좋겠다.'
그는 즉시 말했다.
"그 해독약을 나에게 주시요 !"
언달평은 고개를 조아렸다.
"네, 네"
그러나 즉시 꺼내지 않고 질문을 했다.
"은공게선 해독약을 어디에 쓰시려 하십니까 ?"
적운은 말했다.
"당신의 전갈은 독이 대단하니 다음에 내가 물려 목숨을 잃을
지도 모릅니다. 몸에 그 해독약을 간수한다면 마음을 놓을수 있
겠지요."
언달평은 난감한 기색을 띄우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은공께서 소인의 생=명을 구해주셨는데 어찌 감히 은공을 해치
겠읍니까? 은인께선 정말 의심이 많으십니다."
적운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쓰지 않고 몸에 간직해도 나쁠 것은 없지않소 ?"
언달평은 말했다.
"네, 네!"
그는 별수없이 약을 꺼내어 적운에게 건네어 주었다.

적운은 산봉우리에서 내려와서 또 큰집에 가서 살펴보았다. 집
안의 일꾼들은 모두 흩어졌으며 그 집을 돌보던 사람들도 어디로
갔는지 알수가 없었다. 적운은 생각했다.
'사부님은 돌아가셨고 사매는 이미 다른데로 출가했으니 이곳
에 나도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겠구나!'
그는 한참을 걸어가다가 눈에 익은 풍경을 보고 상념에 잠겼
다.
'이제 이후로는 여기에 올 필요가 없겠구나.'
그는 어깨에 메인 보따리를 추켜올리며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계획했던 일이 아직 한가지도 끝나지 않았구나. 이 길로 형주
에 가서 정전형의 유골을 능소저와 합장시켜드리자. 만규 이 악
독한 놈은 다행히 독에 중독되어서 목숨을 잃게 되어 악한 자는
악한 보답을 받았으니 내 친히 가서 복수를 할 필요는 없겠구나.
그러나 혹시 용한 의원이 나와서 그의 상처를 치료할지도 모르니
그렇데 =홱摸 나는 그에게 일검을 가하여 개만도 못한 그를 처
치해야겠다.'
그는 어제저녁 만진산과 언달평이 검을 겨루는 것을 보고 그때
부터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것 같은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8. 당시선집 (唐詩選輯)

상서와 형주와의 거리는 멀지 않아 며칠이 안돼서 그는 형주에
도착하였다. 형주에 오는 길은 그 옛날 사부를 따라서 사매와 함
게 지나갔던 길이다.
산천은 변한게 없었으나 그 당시 함께 웃으며 걷던 척방은 찾
아 볼수가 없었다. 그 당시 길거리에는 그녀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성밖에서 알아보니 능퇴사는 여전히 형주부의 지부노릇을 하고
있었다. 적운은 여전히 얼굴에 검정칠을 하여 자기의 본래 모습
을 감춘 채 성안으로 들어갔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친히 만규가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보아야겠다. 그는 상
처가 치료가 되었을가? 그는 이곳에 이미 돌아와 있을까? 그는
어쩌면 호남에서 치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진산의 집에 당도하고 보니 멀리서 침성이 총총걸음으로 대
문을 나오고 있었다. 그 표정은 매우 심각해 보였으며 당황해 보
였다. 적운은 내심 생각했다.
'침성이 이곳에 있으니 만규도 틀림없이 집에 있을 것이다. 날
이 어두워지면 내가 들어가 살펴 보아야겠다.'
그는 폐허가 된 농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폐허가 된
농가는 만진산의 집에 그리 멀리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날 정전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고 주기와 경천패는 이 폐허가
농가에서 죽임을 당했다. 지금 그 장소에 다시 돌아와 보니 사방
의 잡초는 옛날과 다름없었다. 주위엔 기와와 벽돌들이 널려져
있었다. 옛날과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오래 된 매
화나무 옆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매화나무를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그날 정형님은 이 늙은 매화나무가지에 기댄 채 세상을 떠나
셨는데, 이 매화모양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는데 정형님은 이미
세상을 떠ぜ堅립.'
그는 즉시 매화나무 아래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삼경 정도
가 되자 잠에서 깨어나 품 속에서 마른 음식을 꺼내먹고는 그 폐
허가 된 농가에서 나와 만씨집에 도착했다. 만씨집 뒤를 돌아
담을 넘어 화원에 들어서자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이 시큰해졌다.
'그날 나는 몸에 상처를 입고 이 창고에 숨어 있었지. 사매가
나의 상처를 보고도 구해주지 않은 것만해도 서운 했었는데 그녀
는 오히려 자기 남편을 불러와 나를 죽이려고 했다.'
막 발걸음을 음직이려고 하는데 갑자기 바위옆에서 세줄기의
불빛이 음직였다. 그는 나무뒤에 몸을 숨기고 빛이 나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세개의 불빛은 향로에서 타고 있는 불빛이었다.
향로는 작은 탁자위에 놓여 있었으며 탁자 앞에는 두 사람이 무
릎을 끓고 하늘을 향해 절을 하고 있었다. 잠시 뒤에 그들은 몸
을 일으켰다.
그는 분명히 볼수 있었다. 바로 척방과 그녀의 딸인 공심채였
다. 척방이 기도하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첫 번째 향에 불을 붙여 천지신명께 간절하게 비나이다. 저의
부군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전갈의 독에 목숨을 잃게 하
지 마옵서서. 공심채야 , 너도 말해라. 천지신명께 아버지의 병
이 낫게 해달라고 빌어라."
어린 계집아이는 말했다.
"네, 엄마. 천지신명께 빌겠어요. 아버지가 더 이상의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해주세요. 다시는 아파서 끙끙거리지 않게 해주세
요."
적운과의 거리는 비록 가깝지 않았으나 그는 모녀 두 사람의
말소리를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두 모녀의 말투속에서 만규
가 중독되어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그는 내심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희열을 맛보았다. 그러면서도 척방이 이렇게 자
기 남편에게 정성을 다하 있는 말을 듣게 되자 왠지 마음이 울
적해졌다. 척방의 말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두번째 향을 붙여 천지신명게 비나이다. 저의 아버지께서 편
안무사하시도록 보호하사 빨리 돌아오시게 해주시옵서서. 공심채
야, 너도 천지신명께 외할아버지가 백살가지 살도록 빌어보아
라."
어린 계집애는 말했다.
"예, 외할아버지 빨리 돌아오세요. 외할아버지께서는 어째서
오시지 않나요 ?"
척방은 말했다.
"천시신명께 비나이다. "
어린 계집아이는 말했다.
"천시신명께서는 외할아버지를 도와주세요. 그리고 할아버지
아버지도 지켜 주세요."
그 아이는 아직 척장발을 본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자기에게
기도를 하라고 하자 그녀는 자기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척방은 잠시 멈추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
"세번째 향을 피우노니, 천지신명께서는 그분이 편안하시고 만
가지의 일이 잘 풀리도록 해주십시요.그분이 하루 빨리 현숙한
처를 얻고 아들 딸 잘 낳아..."
여기까지 말하는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옷소
매를 들어 눈물을 닦았다. 어린 계집아이는 말했다.
"엄마, 엄마는 또 그 삼촌생각을 하시는군요 ?"
척방은 말했다.
"너도 빌어보아라. 공심채 아저씨가 편안하시도록..."
적우은 그녀가 세번째 향을 붙이며 비는 소리를 듣고 내심 의
아해 하고 있는중에 가ㅂ기 그녀가 공심채 아저씨라는 말을 하자
머리가 크게 어지러워옴을 느꼈다.
'그녀는 지금 내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지금 나를 말
하고 있는 것일까 ?'
그 어린 아이는 말했다.
"엄마는 날마나 공심채 삼촌을 염려하고 있ㅇ고 날마다 천지신
명께 삼촌이 돈 많이 버시고 큰 인형을 사서 저에게 주시기를 기
도하고 있는데. 그도 공심채隔 나도 공심채예요. 엄마, 공심채
삼촌은 어디에 가셨어요? 어째서 아작 돌아오지 않나요 ?"
척방은 말했다.
"공심채 삼촌은 아주 먼 곳으로 갔단다. 아, 삼촌은 너의 엄마
를 버려두고 오시지 않는구나. 엄마는 날마다 그를 기다리고 있
는데..."
여기까지 말하던 그녀는 딸아이를 가슴에 안고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적운은 향로가까이 다가서서 반짝이며 타고 있
는 향불을 바라보며 ㄴ을 잃고 있었다. 그는 멍하니 서 있었다.
세개의 향이 끝까지 타고 모두 재로 변했어도 그는 여전히 미동
도 하지 않 서 있었다.
다음날 새벽 적운은 만씨집 화원을 빠져 나와 형주성의 이곳
저곳을 마구 돌아다녔다. 갑자기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
다. 그것은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약을 파는 사람이었다. 적운
은 문득 두눈으로 만규가 울부짖고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
었다. 그리하여 열냥의 은자를 주고 약상사의 옷가지부터 잡동사
니까지 몽땅 사버렸다. 그 떠돌이 약장수는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이 물건들이 귀중한 것도 아니고 전부 비싸게 팔아야 세냥 남짓
한데 적운이 몇배나 되는 은자를 주자 아주 기쁜 마음으로 선뜻
그에게 팔아버렸다. 적운은 폐허가 된 농가로 돌아와서 약장수의
옷으로 갈아입고 만씨집안의 사람이 자신을 알아볼까봐 얼굴에
고약을 붙이고 약초를 얼굴에 발랐다. 그래서 자기의 얼굴을 알
아 볼수 없도록 하고는 만씨집의 앞으로 갔다. 그는 문앞에 당도
하자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악기를 두드렸다.
"천하에서 제일 가는 약이 있읍니다! 어떤 독도 없앨수 있고
더욱 독충에 물렸다면 즉시 효험이 있는 약이 있읍니다! "
이렇게 서너번을 왔다갔다 하자 대문에서 한사람이 초총히 걸
어나왔다. 그 사람은 손짓을 해서 적운을 부르더니 말했다.
"여보시오, 의사선생. 이쪽으로 와 보시오. 이쪽으로 와 보시
오."
적운은 그가 바로 만진산의 제자이고 그날 자기의 다섯 손가락
을 잘라낸 오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적운의 차림새
와 모습이 그때와는 너무나 달라서 오감은 그를 알아 볼수가 없
었다. 적운는 그가 자기의 목소리를 알아 볼까봐 천천히 걸어가
면서 목소리를 낮추고 목쉰f
음성을 냈다.
"나으리께서는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몸에 무슨 낫지 못할 병
이라도 있는지요 ? 그렇지 않다면 무슨 독에라도 물렸읍歐 ?"
오감은 ㅌ! 하고 침을 밭더니 말했다.
"당신의 눈에는 내가 중독된 사람처럼 보입니까? 보시오. 전갈
한테 물린 사람을 당신은 치료할수 있소 ?"
적운은 재빨리 대답했다.
"청죽사, 적련사, 금각대, 철산두와 같은 무서운 독사가 사람
을 물었을때도 말끔하게 치료할수 있읍니다. 전갈쯤이야 무슨 문
제가 있겠읍니까 ?"
옥마은 말했다.
"당신은 그렇게 허풍을 떨지 마시요. 이번에 사람을문 전갈은
그리 흔히 볼수 있는 놈이 아니였소. 형주성의 유명한 의사들도
와 보고는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소. 당신 역시 치료할 재
간이 없어 보이는구려."
적운은 눈쌀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렇게 무섭읍니까? 천한의 전갈은 단지 회모갈, 흑백갈, 금
전갈, 마두갈, 홍미갈, 낙지교낭갈, 백각갈... 등에 불과합니
다."
그는 들은 풍월과 자기가 아무렇게나 지은 전갈의 명칭을 단숨
에 주워섬겼다. 그리고는 말했다.
"모든 전갈은 독성이 제각기 다르지요. 전갈마다 틀리기 때문
에 그 특징에 따라 치료를 해야 합니다. 설사 유명한 의사라도
그 전갈의 특성을 모른다면 치료를 할수가 없읍니다요."
오감은 그가 얼굴이 上피構 옷은 남루하며 비록 전갈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지만 말투가 더듬거리며 분명치 못하자 대단한 의
사가 못된다고 생각했던지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들어가서 한번 살펴보시요.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
래 죽으나 마찬가지 아니겠소? 개똥도 약이 될 때가 있다고 하지
않소 ?"
적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 만씨집의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을 들어서자 옛날 사부를 따라 사매와 함께 이곳에 왔던 정
경이 되살아 났다. 그때는 시골 소년이 도시에 들어왔으므로 눈
에 보이는 것 마다 모두 신선해 보였고 호기심을 느꼈으므로 자
기와 사매는 이것 저것 만져보았는데 오늘 다시 보아도 옛날 그
대로 인 것을 보자 내심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오감을 따
라 대문을 지나 동쪽의 건물 앞에 이르렀다. 오감은 고개를 빳빳
이 세우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형수님, 떠돌이 의사가 전갈의 독을 고칠수가 있다고 합니다.
사형의 상처를 한번 보여주는 것이 어떻겠읍니까 ?"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이 열리더니 척방이 창문으로 고개
를 내밀며 말했다.
"좋아요. 오사제 정말 고마워요. 사형께선 오늘 더욱 아프신
모양입니다. , 선생님, 올라오세요."
오감은 적운에게 말했다.
"자 올라가시오."
그리고는 자기는 올라가지 않고 서 있었다. 척방은 말했다.
"오사제께서도 위로 올라오시지요. 와서 좀 도와 주세요."
오감은 대답하고는 올라섰다. 적운은 섬돌에 올라서 바라보니
건물 중간의 창문 가까운 곳에 하나의 커다란 책상이 놓여 있었
고 책상에는 지필묵과 십여권의 책이 널려 있었으며 또 반쯤 짓
다만 어리아이의 옷이 놓여 있었다.
척방이 방에서 나와 맞이했다. 얼굴은 화장을 하지 않아서인지
매우 초췌해보였다. 적운은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 그녀가 자기를
알아차릴까봐 더 이상 바라볼수가 없었다. 그래서 곧바로 방안으
로 들어갔다. 방안의 침대위에는 한 사람이 누워있었는데 계속해
서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바로 만규였다. 그의 어린딸은 침
대옆의 의자에 앉아서 아버지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그녀는
지저분하고 괴상하게 생긴 적운의 얼굴을 보자 놀랜 기색을 보이
더니 어머니 몸 뒤로 숨어버렸다. 오감은 말했다.
"저의 사형은 전갈에게 물렸는데 차도가 없으니 점점 심해지는
것 같읍니다."
적운은 말했다.
"오, 그렇읍니까 ?"
그는 문 밖에서 오감과 이야기를 할때에는 태연자약했으나 이
때 척방을 보자 가슴이 크게 울렁거리고 두뺨이 화끈화끈 달아올
랐으며 목이 마르고 입술이 타기 시작하여 아무 말도 할수가 없
었다. 그는 침대 가까이 가서 만규의 어깨를 툭툭쳤다. 만규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눈을 뜨고 적운의 표정을 바라보자 심히 놀
라는 눈치였다. 척방은 말했다.
"여보, 이분이 바로 오사제께서 당신을 위해 모셔온 의사선생
님이십니다. 이분은... 이분은 어쩌면 당신을 낫게 할 수 있을지
도 모릅니다."
그 말투를 들어볼때 이 떠돌이 의사에 대해서 심히 믿지 않는
눈치였다. 적운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만규의 부어오른 손등을
바라보았다. 그 손등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으먀 무척 위험한
증세였다. 그는 목쉰음성을 내어 말했다.
"이것은 상서, 원릉 일대에서 서식하는 꽃무늬 전갈이 물은 것
입니다. 우리 호북지방에는 이런 전갈이 없지요."
척방과 오감은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네, 네, 바로 상서 원릉의 전갈에게 쏘인 것입니다."
척방은 기쁜 어조로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전갈의 내력을 아시고 계시니 틀림없이 치료도
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적운은 손가락을 짚어 날짜를 계산해 보더니 말했다.
"이것은 저녁에 물린 것이고 지금까지 이미 칠일정도가 지난
것 같소이다."
척방은 오감을 한번 더 쳐다보더니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정말 귀신 같으십니다. 틀림없이 밤에 물린 것
이고 오늘까지 정확하게 칠일이 되었읍니다."
적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나으리께서는 일장을 가하여 그 전갈을 때려죽이지 않았읍
니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조금은 희망이 있었는데... 그 전갈
이 죽으면서 독성을 있는대로 모두 손등에 내 쏟았기때문에
독을 빼내려면 정말 어렵겠읍니다."
척방은 그가 원래 날자까지 정확히 알아 맞추자 틀림없이 치료
할 방법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희색이 만면했으나 그가 이렇게
말하자 다시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알겠읍니다. 어쨌든 선
생님께서는 그의 생명을 건저 주시기 바랍니다."
적운이 떠돌이 의사로 분장을 하여 만씨집에 들어 온 것은 본
래가 눈으로 만규가 고통하고 신음하며 죽는 광경을 보고 싶었고
그래서 마음속에 쌓여있던 울분을 풀려고 한 것이다. 따라서 그
의 생명을 구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는 어
려서부터 척방의 말이라면 모두 따랐고 그 어느것 하나 거슬린
적이 없었다. 이때 그녀가 이렇듯 초초히 구해달라고 하자 마음
이 약해져 약상자를 열고 언달평에게서 빼앗은 약병을 꺼낼뻔 했
다. 그러나 바로 생각이 바뀌였다.
' 이만규라는 놈은 내게 무수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나
의 사매도 빼앗아 간 놈이다. 나의 손으로 그를 죽이지 않는 것
만 해도 자비를 베푸는 것인데 내가 왜 그의 생명을 구해주어야
하는가 ?'
그는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내 구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독이 너무 깊게 들어갔읍
니다. 또시간을 너무 지체하여 독성이 깊숙히 침투했으니 고칠수
가 없읍니다."
척방은 눈물을 떨구면서 딸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
"공심채야, 이리 오너라. 너는 이 아저씨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생명을 구해달라고 빌어라."
적운은 급히 손을 흔들며 말을 했다.
"아닙니다! 절을 할 필요까지는 없읍니다..."
그러나 그 여자에는 매우 착했다. 지금까지 말을 듣고 자기의
아버지의 병이 매우 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때문에 아이도 걱정
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 즉시 땅에 무릎을 끓고는 땅바닥에 이
마가 닿도록 절을 세번을 했다. 적운은 우측손가락이 모두 절단
되었기 때문에 옷소매에 손을 숨기고 있었다. 그는 즉시 좌측손
을 꺼내어 그 여자아이를 부축해 일으켰다. 그 여자아이가 몸을
일으켜 세웠을때 보니 목에는 덕용쌍무라고 세겨진 금목걸이가
보였다. 적운은 그것을 보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그
날 자기가 만씨집안의 창고에서 정신을 잃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의 몸은 배에 실려서 떠내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그
의 옆에 금목걸이가 있었는데 킥藪〉 이와같은 문귀가 세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는 머리속이 극도로 혼란해졌다.
'내가 이 만씨집의 창고에서 기절하여 쓰러져 있을때 만약 사
매가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그 누가 나를 구해주었겠는가? 옛
날에 ㄴ는 그녀가 나를 밀고했다고 의삼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
제밤에... 그녀는 기도하면서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지 않았는가
? 그날도 틀림없이 나를 곤경에 빠뜨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
다면... 그렇다면... 천지신명께서 도우셔셔 나와 사매가 이런
고난을 격은 뒤 다시 함께 모여 살수 있게 안배해 주시는 것이
아닐까 ?'
함께 모여산다는 생각을 하자 그는 저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눈을 들어 척방을 힐끗 쳐다보니 그녀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차
있었고 눈도 돌리지 않은채 만규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한
그녀의 눈빛은 염려와 슬픔으로 가득차 있었다.
적운은 그녀가 그런 표정을 짓자 가슴이 서늘해져 왔다. 그는
분명히 기억할 수가 있었다. 그날 자기와 만문의 여덟제자사이에
싸움이 벌어져 자신이 얻어 맞았을때 사매는 그의 옷을 꿰매주면
서 그와 같은 눈빛을 띄지 않았던가?
'만약 내가 그에게 해독약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 누가 나를
탓하겠는가? 만규가 신음하다 죽은 뒤에 밤붕에 살며시 그녀를
데리고 간다면 그 누가 내 앞을 가로 막겠는가? 나는 옛날 일을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그녀와 다시.... 다시 부부가 되어, 이
여자아이를 기른면 되지 않겠는가? 안된다! 안돼! 사매는 이 몇
년동안 이 만씨 집에서 마님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다시
소를 먹이고 밭을 가는 일을 할수 있겠어? 또, 나는 이미 병신이
되었는데 어찌 그녀와 어울리겠서? 그녀가 나를 외면하고 말거
야.'
자기의 처지를 珝▤求 내심 부끄러워서 고개가 땅으로 떨어
졌다. 척방이 떠돌이 약장사의 마음속에 이렇게 무수한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단지 그를
멍청하게 쳐다보며 그가 구할수 있다는 말을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만규는 계속해서 몸을 뒤척이고 있었는다. 이때 전갈의 독은
이미 겨드랑이 관절까지 번지고 있었으며 손목과 손바닥은 퉁퉁
부어 있었다. 또한, 표정역시 극도의 고통을 참느라고 찡그리고
있었다. 척방은 아무리 기다려도 적운이 아마말도 하지 않자 다
시 애걸했다.
"선생님, 한번 시험삼아 해보세요... 다만... 다만... 그이의
고통만... 고통만이라도 덜어주셔요.... 절대로 당신을 탓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말은 만규의 생명은 이미 붙잡을수가 없으니 통증이라도 가
라 앉혀주기를 바란다는 의미 같았다. 결국 죽음은 면치 못할것
이니 고통이라도 덜어달라는 것이었다.
적운은 음 하는 소리를 지르며 상념에서 천천히 깨어났다. 그
는 이순간에서 죽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그는 전심전력으로
사매를 사랑해 왔지만 지금 그녀는 자기의 원수에게 시집을 가서
자기보고 이 원수를 구해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차라리 만규가 되었으면 좋겠다. 몸은 비록 고통을 당하
지만 사매의 이런 정을 듬뿍 받을수 있으니 설령 며칠 못살고 죽
는다 해도 아무런 여한이 없겠다.'
그는 천천히 한숨을 쉬고는 상자를 열어 언달평에게서 빼앗은
해독약을 꺼내어 들었다. 그 병에서 검정색의 가루를 꺼내더니
만규의 손등에 뿌렸다. 오감은 외쳤다.
"아이고... 바로... 바로 이런 종류의 약입니다! 이번에는 생
명을 구할수 있겠군요."
적운은 그의 말투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본래 살아 날수 있다
는 말을 하면 응당 기쁨에 차야할텐데 그의 말투는 실망하는 투
였고 기분 나쁜듯한 기색이 섞여 있었다.
적운은 심히 이상하게 생각하고 고개를 갸우뚱하여 그를 쳐다
보았다. 순간 오감의 눈빛에 매섭고 독살스러움이 나타났다가 사
라지는 것이 보였다. 적운은 더욱 의아해 하다가 만문의 여덟제
자끼리 암투갚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내심 탄식했
다. 만진산, 언달평, 척장발이 동문끼리 서로 죽이고 싸운걸로
보아 만규와 오감도 사이가 좋지는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
각했다. 그런데 오감은 어째서 만규를 위해서 의사를 찾아 나섰
을까 ?
만규의 손등에 약이 뿌려지자 얼마 있지 않아 상처에서는 검은
피가 흘러 나왔다. 그는 고통이 점점 감소되자 입을 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이 해독약은 정말 좋군요."
척방은 크게 기뻐하여 몇개의 대야를 가져다가 피를 받아냈다.
뚝둑 가벼운 소릴φ 나면서 피가 대야속으로 떨어졌다. 척방은
적운을 향해 계속하여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오감은 말했다.
"형수님, 이번에는 소제가 크게 공을 세웠죠 ?"
척방은 말했다.
"예, 정말 오사제께 감사를 드려야겠군요."
오감은 웃으면서 말했다.
"감사하다고 말로만 하시면 안됩니다."
척방은 더 이상 말대꾸를 하지 않고 적운에게 말했다.
"선생님의 존칭은 어떻게 되나요? 우리는 무엇으로 보답을 해
야 하지요 ?"
적운은 고개를 흔들면서 말을 했다.
"감사할 필요는 없읍니다. 이 독은 계속하여 열차례 약을 묽渗
야만 비로서 완전히 해소시킬수 있읍니다."
그의 마음은 쓸쓸하고 고통스러웠다.
"자, 이 한병의 약을 전부 당신께 드리지요."
그는 약병을 건네주었다. 척방은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릴 줄은
몰랐는지 얼른 손을 내밀어 약병을 받지 못하고 말했다.
"약을 사도록 하지요. 얼마나 드리면 될지 모르겠군요."
적운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당신에게 드리는 것이니 돈은 필요없읍니다."
척방은 매우 기뻐하면서 두손으로 약병을 받아들고 몸을 숙여
깊이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말했다.
"선생님께서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정말 어떻게 감사해
야 할지 모르겠읍니다. 오사제님, 당신은 이 의사선생님을 모시
고 아랫층에 내려가 잠시 기다려주세요."
적운은 말했다.
"아닙니다. 이만 물러가겠읍니다."
척방은 말했다.
"아니예요. 선생님께서는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우리는 그대에
게 보답은 못해도 약주한잔이라도 대접하고 싶읍니다. 선생님은
절대 가지 마세요."
가지마세요라는 말을 듣자 적운의 마음은 금방 부드러워졌다.
그는 내심생각했다.
'이젠 복수도 할수 없게 되었구나. 정형님을 안장시킨 다음 다
시는 이 형주성에 돌아오지 말자. 내가 살있는 한 절대로 사매를
만나지 말자. 그녀가 나에게 술을 대접한다고 하니 그녀를 잠시
만 바라보아도 나쁠 것은 없겠지.'
그렇게 생▤構 고개를 끄덕였다. 술 좌석은 아랫층 작은 객
실에 차려져 있었다. 적운이 상석에 앉고 오감은 옆에서 술을 따
랐다. 척방은 은덕에 감격하여 친히 부엌에 나가 요리를 만들었
다. 만진산등은 마침 집에 없는 것 같았고 다른 제자들도 술좌석
에 나타나지 않았다. 척방은 공손하게 그에게 세잔의 술을 따라
주었다. 적운은 그 술을 받아마셨다. 갑자기 가슴속에 울컥 치밀
어 오르는게 있었고 눈물이 핑돌았다. 더 이상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조금만 더 앉아 있다가는 자기의 정체가 노출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즉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술은 충분합니다. 저는 떠나겠읍니다. 이후 절대로 저를 찾지
는 못할 것입니다."
척방은 말했다.
"선생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는데 우리는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여기 백냥의 은이 있으니 선생님께서 가시다가 술이
나 사서 드세요."
말을 하면서 두손으로 한주머니의 은덩이를 받쳐 들었다. 적운
은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쳐다보며 껄껄 웃으며 외쳐댔
다.
"내가 그를 구했다! 내가 그를 살려냈어! 하하하! 정말 웃긴
다! 이 세상에 나보다 멍청한 사람이 있을까? 하하하!"
그는 마음껏 크게 웃었다. 두뺨에는 두 줄기의 눈물이 흘러 내
렸다. 척방과 오감은 그의 미친 듯한 태도를 보자 모두 아연실색
했다. 척방의 딸인 계집아이가 말했다.
"아저씨가 울어요. 아저씨가 울어요."
적운은 깜작 놀랐다. 그는 척방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
다.
'지금부터 나는 절대로 너를 만나지 않을 것이다.'
왼손을 품속에 집어넣고 뎠欄셀【 가져온 당시선집을 더듬어
오른쪽 옷소매 위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옷소매를 천천히 내려
살며시 의자 위에 당시선집을 내려놓으며 더 이상 척방을 쳐다볼
자신이 없어 고개를 돌리며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척방은 말했
다.
"오사제님, 당신이 이분을 바래다 주세요."
오감은 말했다.
"좋읍니다."
그러더니 적운의 뒤를 따라나갔다. 척방은 손에 은덩이를 들고
있으면서 웬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 의사선생님은 누구일까? 그의 웃음소리는 어째서 그 사람
과 그렇게 닮았을까? 아, 내가왜 이럴까? 이 며칠동안 남편이
심하게 앓고 있는데 내 마음이 이렇게 뒤죽박죽 이라니... 언제
나... 그를... 그를...'
그녀는 은덩이를 탁자위에 내려 놓으며 의자에 앉아 손으로 턱
을 고였다. 그 의자는 적운이 앉았던 의자였는데 척방은 의자에
무엇인가 놓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급히 몸을 일으켜 보니 한
권의 노란 헌책이었다. 책 갈피에는 당시선집이라는 네글자가 씌
여져 있었다. 그녀는 깜작 놀라며 책장을 펼쳤다. 책장속에는 한
쌍의 꽃무늬가 나타났다. 바로 자기가 옛날 상서의 옛집에서 오
려낸 것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몇장을 넘겼다. 한쌍
의 호랑나비 문양이 보였다. 그 옛날 적운과 굴속에서 어깨를 나
란히 하고 앉아 이 호랑나비를 오려내던 정경이 갑자기 번개처럼
뇌리에 떠 올랐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세에 엇!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것은... 이 책은 어디서 나타났을까? 누가... 누가 가져온
것일까? 설마하니 그 떠돌이 약장수 의사선생님일까 ?'
계집아이는 어머니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하자 놀라서 연신 외
쳤다.
"엄마! 엄마! 왜 그러세요 ?"
척방은 멍청히 서 있더니 그 책을 집어 품속에 넣고 나는듯 아
랫층으로 달려 내려갔다. 그녀는 만씨집에 시집을 온후 항상 점
잖게 행동했으며 이렇게 대청사이를 급하게 뛰어간 적은 없었다.
만씨집 하인들은 마님이 경공을 전개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랬
다. 척방이 대청에 이르자 오감이 대문에서 들어오는 것이 보였
다. 그녀는 급히 물었다.
"그 떠돌이 의사 선생님은 어디 있읍니까 ?"
오감은 말했다.
"그 사람은 정말 이상하기 짝이 없읍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가버렸어요. 형수님은 왜 그자를 찾으십니까? 사형의 상처는 어
찌 되었읍니까 ?"
척방은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급히 대문쪽으로 달려가 사방을 두루 살폈다. 그러나 약장수의
종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매우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
다. 그녀는 대문 밖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손을 들어 품속에서
그 헌책을 꺼내어 뒤적였다. 문양 한장씩을 볼 때마다 어렸을 때
기쁘게 뛰놀던 일이 생각났다. 눈물은 쉬지 않고 옷깃을 적시고
있었다. 그녀는 문득 떨오르는 생각이 있어 중얼거렸다.
'내가 어째서 이렇게 멍청할까? 시아버지와 남편이 최근 상서
성의 언사숙을 만나러 가지 않았는가? 그들은 묽ダ퓰컨傷 산동굴
에 들어갔다가 이 책을 가져왔을 것이다. 이 떠돌이 의사가 어찌
이 책과 관계가 있겠는가?'
그러나 즉시 다른 생각이 떠 올랐다.
'아니다. 아니다. 일이 그렇게 딱 들어 맞을수는 없다. 그 산
동굴은 은밀하기 짝이 없어서 아버지조차도 모르시는데 남편과
시아버지가 어찌 그 동굴을 찾을수 있겠는가? 그들은 언사숙을
방문하러 갔는데 어떻게 그 산동굴속에 들어갈수 있었겠는가? 조
금전에 내가 술 좌석을 마련할때 분명히 그 의자를 닦은 적이 있
었는데 그때 이런 책은 그곳에 없었다. 만약 그 떠뎠뮌 약장수가
가져 오지 않았다면 어디서 나온 것이지 ?'
그녀는 마음속 깊숙히 많은 의문을 남긴채 천천히 방안으로 들
어갔다. 만규가 약을 바른 다음 정신이 많이 좋아져 있었다. 그
녀는 그 책을 남편에게 보이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
'절대로 경거망동을 해서는 안된다. 만약 그 의사가... 그 의
사가...'
만규가 말했다.
"그 의사선생님은 나의 은인이시요. 반드시 후하게 대접해야
될 것입니다."
척방은 말했다.
"그렇지요. 내가 그분에게 백냥의 은을 드렸는데 그는 받지 않
으셨읍눙求. 정말 강호에 보기 힘든 인물입니다. 이 해독약은...
어! 해독약은요 ? 당신이 거두었읍니까 ?"
만규는 말했다.
"나는 갖지 않았소. 책상에 없소 ?"
척방은 탁자위와 침대, 화장대, 의자, 상자, 침대 위아래, 책
상등 구석구석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해독약은 보이지가 않았다.
그녀는 내심 초초해졌다.
'조금전 내가 정신이 없어 뛰어 나갈때 땅에 떨어뜨렸을까? 아
니다. 내가 분명하게 기억하기로는 그 약을 책상위에 놓아 두었
다. '
만규역시 초초하여 말했다.
"당신은... 당신은 빨리 찾아보시요. 어째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요? 내가 조금전 눈을 붙였는데 잠을 자기 전에도 그 약이
탁자위에 있는 것을 보았소."
그가 이렇게 말하자 척방은 더욱 초초해졌다. 방을 나와 딸아
이를 잡고 물어보았다.
"조금전 엄마가 이 방을 나갈때 누가 들어왔니 ?"
어린딸은 말했다.
"오아저씨가 왔었어요. 그는 아빠가 잠이 드신 것을 보자 나가
셨어요."
척방은 문득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느꼈다. 그러나 만규는
병중에 있는 모이라 그에게 걱정을 끼칠수 없었다. 그래서 말했
다.
"공심채야, 너는 아빠와 함께 있거라. 엄마가 그 의사선생님께
가서 약을 한병사서 아버지의 상처를 치료해야겠구나."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엄마, 빨리 돌아오세요."
척방은 정신을 가다듬고 책상 속에서 한자루의 비수를 꺼내들
고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며 생각했다.
'오감, 이자는 사람이 없을 때는 항상 엉뚱한 마음을 품고 있
었지 이 의사는 그가 모셔왔다. 혹시 그가 의사와 긴밀하게 내통
하여서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어째
서 의사는 돈을 받지 않았고 그 해독약도 보이지 않는 것일가 ?'
그녀는 생각을 하면서 뒷뜰로 갔다. 회당에 이르자 오감이 난
간에 기대어 연못속의 금붕어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척방은 말했다.
"오사제, 당신은 왜 혼자서 이곳에 있나요 ?"
오감은 고개를 돌리며 환히 웃더니 말했다.
"누가 오는가 했더니 알고보니 형수님이였군요. 어째서 사형과
함께 방에 계시지 않고 이곳까지 행차를 하셨읍니까 ?"
척방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혼자 있고 싶어서지요. 하루종일 사형과 함께 있다보니 사형
도 성질이 나빠졌어요. 나와서 산책도 하고 말상대를 찾아 대화
를 나누지 않으면 정말 답답해 죽을 거예요."
오감은 이 말을 듣자 기다렸다는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사형은 정말 너무 행복에 겨워서 그런 것입니다. 당신처럼 꽃
과 같이 아름다운 미인과 함께 있는데 성질을 부리다니요? 정말
로 간호하기 어렵겠읍니다."
척방은 그의 몸 가까이 가서 난간에 기대어 연못속의 금붕어를
바라보며 말을 했다.
"이 형수는 늙은 할망구가 되었는데 무슨 아름다움이 있겠읍니
까 ? 정말 다른 사람이 들으면 웃을 것입니다."
오감은 급히 말했다.
"아닙니다. 아룸다움이 어디 가겠읍니까? 처녀때는 처녀때의
아름다움이 있고 이렇게 작은 마님이 되시니 작은 마님에 어울리
는 아름다움을 갖고 계십니다. 모두들 말하기를 형주성에 한떨기
꽃이 있는데 그 한떨기 꽃은 만씨집에 있다고 합니다."
척방은 킥킥 웃으면서 몸을 돌려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져오세요."
오감은 웃으면서 말했다.
"무엇을 가져 오라고 하십니까 ?"
척방은 말했다.
"그 해독약을 주세요."
오감은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무슨 해독약입니까? 만사형의 그 해독약 말입니까 ?"
척방은 말했다.
"바로 그래요. 반드시 당신이 가져 갔을 것입니다."
오감은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그 의사는 내가 모셔왔읍니다. 해독약은 내가 찾아낸 것이지
요. 만사형은 한번 해독약을 바르셨으니 며칠동안 고통을 모르실
것입니다."
척방은 말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열번을 발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오감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는 지금 후회가 막심합니다. 후회가 막심해요."
척방은 말했다.
"무엇이 그렇게 후회가 되나요 ?"
오감은 말했다.
"내가 그 떠돌이 약장수 의사를 봤을 때 몰골이 지저분 한것이
마치 거지와 같아서 재주가 없으리라 생각되어 볍廚關 집에 데리
고 왔던 것입니다. 그 사람을 데리고 집에 들어간 것은 당신을
한번 더 보고 싶은 핑계였읍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재수가 없으
려니 그가 해독약을 내놓은 것입니다. 이건 내 본뜻과 너무나 다
릅니다."
척방은 이 말을 듣자 너무나 화가 났다. 그러나 약은 이자의
손에 들어 있으므로 먼저 그 해독약을 손에 넣어야만 했다. 그러
고나서 그와 끝장을 내야 한다고 생각해야 했다. 그녀는 화를 참
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당신 말대로라면 당신의 사형이 당신께 감사를 드려야 됩니
까? 그래야만 비로선 그 해독약을 내놓으시겟읍니까 ?"
오감은 탄식하더니 말했다.
"셋째 사형은 이미 몇년동안 염복을 누렸읍니다. 벌써 죽었어
야 마땅하지요."
척방의 안색이 확 변했다. 그녀는 입술을 악다물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오감은 말했다.
"그해 당신이 형주성에 오셨을때 우리 사형제 여덟사람은 당신
의 모습을 보고 넋을 잃지 않은자가 하나도 없었읍니다. 그 멍청
한 적운이라는 자가 하루종일 당신과 붙어 있으니 우리들은 모두
그꼴을 보고 화가 났지요. 그래서 모두가 합심해서 먼저 그 놈의
머리통을 부셔놓고... 굇榴牡..."
척방은 말했다.
"알고보니 당신들이 우리 사형을 때린 것은 순전히 저 때문이
군요."
오감은 말했다.
"그때 우리는 그 시골뜨기가 중간에 나서서 여통과 싸움을 하
여 만문의 체면을 깎았다고 핑계를 댔지만 다른 계획이 있었지
요. 사실 모두의 마음은 모두 형수님 당신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에게 옷을 꿰매주고 다정하게 말을 나누고 있었지요. 이렇게
다정하고 정다운 꼴을 우리 사형제 여덟명은 도저히 눈뜨고 볼수
가 없었지요. 우리는 모두 식초항아리(질투가 강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한문을 직역하면 식초항아리가 됨 - 빼긴이 주)가 됐지
요. "
척방은 암암리에 깜작 놀라며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나때문에 일어난 화인가? 그런데 남편은 어째서
지금까지 그런 말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
그녀는 태연한 얼굴을 지으려고 애쓰며 웃어보였다.
"오사제, 오사제께서는 정말 농담도 잘 하는군요. 그때 나는
시골처녀라 시골 냄새를 물씬 풍겼고 차림새도 꼴볼견이었는데
내가 그렇게 이뻤단 말인가요 ?"
오감은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진짜 미인은 화장을 할 필요가 없었지
요. 당신이 만약 엽痢≥湧 마음을 빼앗지 않았다면....."
거기까지 말하고 말을 멈추고는 계속하지 않았다. 척방은 말했
다.
"계속해 보세요."
오감은 말했다.
"우리들이 당신을 이 만씨집에 머물도록 하는데는 이 오감이
적지 않은 힘을 썼읍니다. 그러나 형수님께서는 평소 저를 보시
고 웃지 않으시니 이것은 너무나 공평치 못한 일입니다."
척방은 ㅌ! 하고 침을 뱉더니 말했다.
"내가 이 만씨집안에 남아 있고 또 당신의 사형께 시집을 간것
은 내 스스로 기꺼이 원해서였읍니다. 당신이 무슨 힘을 썼읍니
까 ? 그때 당신은 나엽“ 한마디도 하지 않았잖아요? 정말 그런
말은 마세요."
오감은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내가... 내거 어째서 힘을 쓰지 않았단 말입니까? 당신은 그
런 말을 하지 마십시요."
척방은 더욱 놀랐으나 즉시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오사제, 당신은 나에게 말씀좀 해주세요. 당신이 어떤 힘을
썼는지 말이예요. 나는 절대로 당신의 호의를 잊지 않겠읍니다."
오감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흘러간 이야기인데 그 얘기를 꺼내면 뭐 하겠소. 당신이 알아
봤자 아무런 쓸모가 없으니 우리는 다른 말이나 합시다."
척방은 말했다.
"좋읍니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그만 두세요. 발리 그 해독약
이나 주시죠. 만약 사람들이 우리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본다
면 그때는 좋지 않을거예요."
오감은 웃으면서 말했다.
"낮에는 보는 사람이 많지만 밤에는 이곳에 오는 사람이 없읍
니다."
척방은 뒤로 한발자욱 물러서서 싸늘히 얼굴을 굳히고는 말했
다.
"당신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지요 ?"
오감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만약 만사형의 상처를 낫게하고 싶으면 그건 어렵지
않죠. 오늘밤 삼경에 나는 저쪽 창고에서 당신을 기다라고 있겠
소. 당신이 만약 내 뜻에 따른다면 나는 당신에게 한번 바를 약
을 드리겠소."
척방은 입술을 깨물며 욕을 했다.
"개같은 자식! 네놈이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 담도 크구
나."
오감은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나는 벌써 죽을 각오를 하고 있읍니다. 죽을놈이 무슨 짓을
못하겠읍니까? 만규라는 자는 나보다 한 곳이라도 나은 곳이 있
읍니까 ? 단지 사부의 아들일뿐이고 팔자가 좋은 가문에 태어난
것 뿐이지요. 우리 모두가 힘을 썼는데 어째서 이 멍청한 놈 혼
자서 복을 누려야 한단 말입눙歐 ?"
척방은 그가 연신 몇차례 힘을 썼다는 말을 하자 마암속에 의
구심이 더욱 깊어졌다. 그러나 그가 말을 함부로 하자 계속듣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말했다.
"시아버님께서 돌아오시면 나는 사실대로 아뢸 것입니다. 그렇
게 되면 당신은 곱게 죽지 않을 것입니다."
오감은 말했다.
"나는 이곳을 지키고 떠나지 않겠읍니다. 사부가 나를 부르기
만 한다면 나는 먼저 이 해독약을 이 연못에다가 뿌려 금붕어에
게 먹이겠읍니다. 내가 그 떠돌이 의사에게 물어보니 그는 해독
약은 오로지 한병뿐이고 다시 만들자릴 일 이년 내로는 만들수
없다고 합니다."

그는 한편으로 말을 하고 한편으로는 품속에서 해독약을 꺼내
어 병뚜껑을 열며 연못에다가 갖다 대었다. 손이 조금만 음직이
여도 해독약은 금방 연못속에 뿌려 질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만
규의 생명은 끝장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척방은 급히 말했다.
"보세요. 농담은 이제 그만 하시고 약을 빨리 거두세요. 우리
는 천천히 상의해봐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오감은 웃으면서 말했다.
"무슨 상의할 것이 있읍니까? 당신이 남편의 생명을 구하고 싶
다면 나의 말을 들어쓩 할 것입니다."
척방은 말했다.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나에게 오래전부터 마음이 있었고 또,
힘을 썼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나는 절대로 당신의 뜻에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오감은 크게 기뻐하면서 해독약의 병마개를 닫으면서 말했다.
"형수님, 내가 만약 진실을 말한다면 당신은 오늘밤에 나와 만
나 주시겠읍니까 ?"
척방은 말했다.
"그건 당신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두고봐야 하겠
지요. 사람을 속인다면 당신을 상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감은 말했다.
"정말 사실입니다. 어찌 조금의 거짓이라도 있을수 있겠읍니
까? 그것은 침사제가 생각해낸 계략이었읍니다. 주사형과 복사형
은 거짓으로 여자를 강한해서 적운이 도홍의 방에 들어와 사람을
구하도록 만들었고, 그동안 제가 그작자의 침대밑에 금붙이와 은
그릇을 넣어 두었지요. 형수님, 만약 우리가 그렇게 교묘한 방법
을 쓰자 않았다면 어떻게 당신을 이 만씨집에 머무르게 할수 있
었겠읍니까 ?"
척방은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져옴을 느꼈다. 오감의
말 한마디는 예리하게 자기의 심장을 한조각 한조각씩 도려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망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제가... 제가 당신을 잘못 보았읍니다. 당신에게 억울한 누명
을 씌었읍니다."
그녀의 몸은 기우뚱거리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손을
내밀어 난간을 꼭 잡으며 절규했다.
"나는 믿지 않아요!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예요?
이것은 당신이 거짓으로 꾸며낸 말에 지나지 않아요!"
"당신은 믿지 않읍니까? 좋읍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물어 볼수
가 없으니 도홍에게 물어 보십시요. 그녀는 그날이후 뒷마당의
사당에 살고 있으니 물어보십시요. 우리 형제들은 이 일을 말을
안하기로 모두 맹세했읍니다. 만약 당신이 아니였다면 나는 절대
로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나는 무슨일
든 할 수 있읍니다."
척방은 큰소리로 외치며 뛰어 나갔다. 화원의 뒷문을 밀치고
바깥으로 미친듯 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금방이라도 찢어 질 것 같았다. 뒷문을 달려 낙
온 후 몇개의 채소밭을지났다. 그제서야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
고 북쪽의 낡은 사당을 바라보았다. 빗장이 헐렁하게 채워져 있
어서 손으로 밀자 문은 그냥 열렸다. 땅바닥은 먼지투성이였고
탁자와 의자들은 심히 낡았고 부서져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시아버지의 첩인 시도홍이 어째서 이런 곳에 살고 있을까? 오
감이 사람을 속인 것일까? 혹시...혹시.. 이놈이 사람을 속여내
어 이곳에서 나쁜짓을 하려는 것이 아닐까? 아무래도 빨리 돌아
가야겠다.'
그때 느린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내당에서 한명의 여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는데 중년정도 돼어 보이는 여자거지였다. 그
거지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자 깜작 놀라 몸을 돌려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내당으로 들어가더니 얼굴을 돌려 다시 한번
척방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척방의 모습을 확실히 본듯했다.
그래서인지 돌연 악! 하는 괴성을 질렀다. 그녀는 뒤로 두발자욱
물러 나더니 갑자기 무릎을 끓고는 말했다.
"마님, 마님, 절대로 말슴하지 마세요. 제가 여기 있다고요."
척방은 크게 놀라 물었다.
"당신은 누구지요 ?"
그 거지부인은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말을 하면서 몸을 일으키더니 빠른 걸음으로 내당 안으로 사라
졌다. 이어 급한 발자욱 소리가 들리더니 거지부인이 빠른 걸음
으로 뒷문으로 잽싸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척방은 의문 투성이였
다.
'이 여자는 어째서 나를 발견하고, 그리도 무서워했을까? 아!
생각났다. 그녀는... 그녀는 바로 도홍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척방은 어느샌가 사당의 대문을 나가 깨어
진 기와를 밟으며 뒷문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녀는 비수를 허
리에서 뽑아들고 외쳤다.
"도홍! 너는 이곳에서 음흉하게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
그 거지는 정말 도홍이였다. 척방이 자기 이름을 부르자 크게
당황한데다가 척방이 손에 날이 시퍼렇게 선 비수를 들고있자 더
욱 무서워하며 온몸을 덜덜 떨며 땅에 무릎을 끓고 고개를 연신
조아렸다.
"마님, 마님! 한번만 살려주십시요!"
척방은 만씨집에서 몇번인가 도홍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부터 그녀가 보이지 않았었다. 적운이 이 여자와 눈이
도망치려고 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그녀는 마치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으며 그 때문에 이 여자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에게도 묻지 않았었다. 그것은 척방에게 있어서는 기
억하기조차 싫은 과거였다. 그런데 어째서 그녀가 이런 곳에 숨
어 있는 것일까? 이 사당은 만씨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척방은 만씨집에 들어와 마님이 된 이후에는 모든 일을 조
심했고 처녀때와는 사뭇 다르게 밖으로 돌아다니지도 않았으며
여러차례 이 사당 앞을 지나다니면서도 이 사당의 낡은 문만을
보았지 들어와 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도홍의 지금 모습은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얼굴에는 때가 더덕
더덕 붙어 있어서 몇년동안 보지 못한 사이에 마치 이십녀은 더
늙은 것 같았다. 만약 도홍이 아무일도 없는듯 척방의 눈앞을 천
천히 지나갔더라면 척방은 절대 그녀가 도홍이라는 사실을 알아
챌수가 없었을 것이다. 척방은 비수를 치켜들며 싸늘한 어조로
물었다.
"너는 이곳에 숨어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빨리 이실직고 하
지 않겠느냐 ?"
도홍은 말했다.
"전... 전 아무짓도 하지 않았읍니다. 마님, 어르신께서 저를
ㅉ아내시면서 내가 이 형주에 있는 것을 보기만 하면 저를 잡아
죽이겠다고 하셨읍니다. 그러나... 그러나... 저는 아무래도 갈
곳이 없고 해서 별수없이 이곳에 숨어서 밥을 얻어 먹고 살았읍
니다. 마님, 형주성을 제외하고는 나는 아무데도 아는 곳이 없읍
니다. 저보고 어디로 가라고 하십니까 ? 마님... 마님, 절대로
어르신께 말씀하지 말아주십시요."
척방은 그녀의 말을 듣자 퍽이나 가련함을 느끼면서 비수를 거
두며 말했다.
"어르신께서는 왜 그대를 ㅉ아 내셨지? 어째서 내가 모르고 있
었는가 ?"
도홍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했다.
"저도 어르신께서 왜 저를 싫어 하셨는지 모르겠읍니다. 그 호
남의... 적씨성을 가진자의 일은 내 잘못이 아닙니다. 아이고!
제가 그런말을 하면 안되는데..."
척방은 말했다.
"좋다, 네가 말하기 싫다면 나와 함께 어르신을 만나러 가자."
손을 내밀어 그녀의 멱살을단숨에 움켜 잡았다. 척방은 원래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도홍의 옷자락은 온통 때가
묻어 있어서 손으로 잡자 손끝이 미끌미끌 한 것이 극히 기분이
안좋았다. 그러나 그녀는 적운이 억울하게 누명을 쓴 진상을 알
아내기 위해서는 이것보다 천배 백배 더 지저분한 것이라도 만졌
을 것이다.
도홍은 온몸을 떨며 급히 말했다.
"제가 말하지요. 제가말하겠어요. 마님, 제가 무슨 말을 하기
를 바라십니까 ?"
척방은 말했다.
"적씨성을 가진 자와의 일이 어찌 된 영문인지 말해라! 너는
왜 그와 도망치려 했느냐 !"
도홍은 놀라도 당황한 나머지 눈을 크게 뜨고 말을 하지 못했
다. 척방은 멍하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마음속으로 느끼는 두
려움은 도홍이 느끼는 두려움보다 천배 백배 더했다. 그녀는 정
말 도홍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만약 그 당시
적운이 그녀를 꾀어서 도망치려 했다는 말이 나올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이때 척방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해 있었고 심장은 금방
이라도 튀어 나올것 같았다. 도홍은 천천히 말했다.
"이건... 이건... 저의 탓이 아닙니다. 도련님이 강제로 나에
게 그렇게 하라고 시켰읍니다. 내게 호남에서 온 적씨성을 가진
자와 꼭 껴안고 있으면서 적씨성을 가진자가 도망을 자가 꾀었다
고 하라고 시켰읍니다. 저는 어르신께서 그말을 했지만 어르신은
그말을 믿지 않으셨읍니다. 단지 저에게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시
며 옷과 패물을 주셨지요. 그런데... 그런데 내가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어르신께서는 나를 ㅉ아내셨읍니다."
척방은 기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그녀는 이루 형용할수
없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사형, 사형. 내가 나쁜년입니다. 나는 애당초 당신의 진심을
알았어야 했읍니다. 정말 당신은 억울합니다. 당신은 너무나 많
은 고생을 하셨읍니다.'
이때 그녀는 도홍이 밉지 않았고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
다. 그녀는 자기가 풀지못한 마음속의 매듭을 풀어주었던 것이
다. 심지어 오감에게까지 감격을 하였다. 그가 진상을 폭로하고
자기에게 이 사당에 와서 도홍을 찾아보라고 가르쳐주었기 때문
이다. 상심이 되고 처량한가운데 쓸쓸하고 달콤한 느낌이 들었
다. 만규에게 시집을 갔지만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
는 사람은 적사형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적운의 잘못이라
고 생각하고 있었던 때 조차도 그분 만이 척방이 탄식과 눈물을
흘릴때 생각났던 유일한 사람이다. 여러가지 고민과 미움이 일시
에 자책으로 변했다.
'만약 내가 벌써 알았더라면 나는 설령 몸이 가루가 되는데 한
이 있었다고 해도 그이를 구해냈을텐데... 그분이 이렇게 많은고
초를 당했는데 그 사람은... 그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
실까 ?'
도홍은 척방의 안색을 홈쳐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님, 고맙읍니다. 저를 놓아주세요. 저는 형주성을 떠나 영
원히 돌아오지 않겠읍니다."
척방은 탄식하며 말했다.
"어르신께서는 왜 당신을 ㅉ아 냈나요? 내가 그일을 알까봐 두
려워서 그랬었나요? 아, 오늘에야 나는 모든 것을 확실히 알았어
요."
말을 하는 그녀는 도홍에게 옷을 지어주고 돈이라도 쥐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나오는 바람에 몸에는 아무런
재물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도홍은 척방이 자기를 풀어주자 마음
이 변할까봐 염려되어 급히 뒷걸음치며 중얼거렸다.
"어르신께선 저녁에 귀신을 보고나서 담을 높이 쌓으라고 하셨
는데 어째서 그게 내 탓이란 말인가? 또... 나는 그 일을 말하지
않았는데..."
척방은 ㅉ아가며 물었다.
"귀신을 보고 담을 쌓는다는 것은 무슨 뜻이죠 ?"
도홍은 자기가 말을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급히 말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르신께서는 밤에
늘 귀신을 보시고 한밤중에 일어나셔서 담을 쌓으셨읍니다."
척방은 그녀의 말이 앞 뒤가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아무래도
도홍은 시아버지에게 ㅉ겨난 후 생활이 너무 어려워진 나머지 머
리까지 돈 모양이라고 생각되었다. 시아버지가 왜 한밤중에 일어
나 담을 쌓겠는가? 그녀는 지금껏 시아버지가 담을 쌓는 것은 보
지 못했다. 도홍은 그녀가 믿지 않을까봐 염려되어 말했다.
"그것은 가짜 담입니다. 어르신께서... 어르신께서는 한밤중에
벽돌을 쌓는 사람이 되기를 좋아하셨지요. 내가 몇마디 그에게
어르신께서 크게 화를 내며 나를 죽도록 때리고 나를 ㅉ아 냈지
요. 만약 내가 그 어르신의 눈 앞에 나타나기만 한다면 저를 때
려 죽이겠다고 하셨읍니다..."
그녀는 중얼중얼 계속해 말을 하면서 이윽고는 뒷걸음질쳐 도
망쳤다. 척방은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그녀는 아무리 많아도 나보다 열살 위일텐데 이러한 몰골로
변하더니, 시아버지는 어째서 그녀를 집밖으로 내ㅉ았을까? 무슨
귀신을 보고 담을 쌓았다는 말인가? 이 여자는 미친걸까? 아닐
까? 이 바보같은 여자때문에 사형은 평생 고초를 당하고 계시는
구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고 나
중에는 아예 큰소리를 내며 엉엉울어버렸다.

그녀는 한구르의 오동나무에 기대어서 한바탕 울었다. 울고 나
니 마음이 약간 풀어져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후원의
문을 피하여 동쪽의 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윗층으로 올라갔
다. 만규는 그녀가 오는 발걸음 소리를 듣자 초조해져 급히 물었
다.
"해독약은 찾았어 ?"
척방은 방안으로 걸어들어왔다. 만규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
고 있었는데 안색은 심히 초췌하였으며 전갈에게 쏘인 한쪽 손에
서는 검은피가 천천히 흘러나와서 침대밑의 대야에 떨어지고 있
었다. 어린딸은 아버지의 다리 밑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다.
척방은 오감과 도홍으로부터 말을 들었으므로 만규가 한없이 미
웠으며 비굴한 수법으로 적운을 해쳤기 때문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몰골을 보자 몇년동안 나누
었던 정과 사랑이 솟아나 그녀의 마음은 조금 누그러졌다. 그녀
는 생각했다.
'결국 나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형을 모함했던거야.
그가 사용한 수단은 악랄했지만 사형에게 고초를 안겨준것은 모
두 나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만규는 다시 물었다.
"해독약은 찾았어 ?"
척방은 일시적으로 오감의 말을 사실대로 남편에게 말해야 될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말했다.
"그 떠돌이 의사를 찾았읍니다. 그에게 돈을 주고 다시 그 약
제를 구해다가 약을 만들라고 청했지요."
만규는 안도의 함숨을 내쉬며 웃음을 지었다.
"나의 생명은 당신이 찾아준것이나 다름없구려."
척방은 억지로 웃어보였다. 대야에 담긴 피냄새가 코를 찔렀
다. 그녀는 도자기그릇을 가져와 바꾸어 놓고 그 대야는 밖으로
가지고 나갔다. 몇발자국을 걸어가는데 피에서 나는 냄새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울지경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 전갈의 독은 이렇게도 무섭구나.'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가 그 대야를 탁자 아래에 내려 놓았
다. 그리고 몸을 돌려 품속에서 수건을 꺼내 코를 막은 다음 그
피를 쏟아 버리려고 했다. 그녀의 손이 품속에 들어가자 그 당시
선집의 책이 손에 잡혔다. 더듬어 헌책을 꺼내어서 그 탁장에 앉
아 한장 한장을 뒤적였다.
그녀는 분명하게 기억할수 있었다. 그날 헌옷을 뒤집어내다가
상자 밑바닥에 있던 헌옷가지 사이에서 이 책을 발견했던 것이
다. 아버지는 그리 유식한 편이 못되었으므로 어째서 이 책을 가
져 왔는지가 사뭇 궁금했다.그녀는 마침 두개의 소놓은 문양을
오렸기 때문에 그 책속에 문양을 끼워넣고 그날 오후 적운과 함
께 산동굴에 갔고 그 이후에는 계속 그 동굴속에 남겨두었던 것
이다. 어째서 여기까지 왔을까? 적사형이 그 떠돌이 의사에게 이
것을 가져다 주라고 했을까?
'이 떠돌이 의사는 ... 혹시... 혹시... 그의 우측손의 다섯
손가락은 오가놈이 잘라 버렸는데 이 떠돌이 의사는... 이 의사
는 어째서 그의 우측손을 내밀지 않았을까 ?'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그 떠돌이 의사가 딸아이를 부축했을
때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또, 그가 약상자를 열고 약을 꺼내
고 약병을 열고 약가루를 따랐을때의 정경을 회상해 보았다.
그가 척방이 따라준 술잔을 입에 갔다대고 마셨을 때를 생각해
보았다. 이 모든 일들을 모두 왼손으로 한것 같았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유의하지 않아서 확실히 기억할수 없었다.
'설마 그가 사형일까? 어째서 모습은 하나도 닮지 않았을까 ?'
그녀는 번민에 휩싸였다. 슬품이 자기도 모르게 가슴에서 우러
나왔고 눈물이 한방울씩 손에 들고 있던 그 책위에 떨어졌다.
눈물은 점점 많아 떨어졌고 그 책종이를 오린 두마리의 나비위
에도 떨어졌다. 이 나비는 바로 양산백과 축영대였다. 그들은 죽
어서 비로서 못다한 정을 누리고 있을까?... 이때 만규가 옆방에
서 말했다.
"여보, 가슴이 답답해요. 일어나 좀 걷고 싶소."
그러나 척방은 회상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지 못했
다. 그녀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날 적사형이 한마리의 나비를 죽였지. 정다운 두마리를 헤
어지게 했다고 천지신명이 그에게 이런 고통을 내리셨을까 ?'
갑자기 뒷쪽에서 놀랜 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은... 이것은 연성검보이다."
척방은 깜작 놀랐다. 고개를 돌려보니 만규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방배, 방배! 당신은 어디서 이 책을 가지고 왔소 ? 보시오!
아, 알고보니 이렇구나. 바로 이거야!"
그는 두손으로 당시선집이라는 책을 움켜 쥐었다. 성과사라는
한수의 시 제목 옆에 삼십삼(三十三)이라는 담황색의 글자가 나
타나 있었다. 이 몇글자위에 척방의 눈물이 묻어 있었다. 만규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아픈것 조차도 잊어 버렸다.
"비밀은 여기에 있구나! 물에 젖으니 비로서 글자의 흔적이 나
타나는구나! 묘하다! 장밀 묘해! 틀림없이 이 책일 것이다! 공심
채, 공심채야!"
어린아는 대답을 하고 나갔다. 만규는 그 시집을 품에 안고 고
통도 잊은채 소리쳤다.
"틀림없을 것이다! 틀림없어! 아버지는 그 검보가 당시선집이
라는 명칭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들은 이 책의 비밀을
아나내지 못했어. 알고보니 이 책은 물에 담궈야만 비밀이 나타
느는 것이였어!"
그가 이렇게 기뻐하며 펄쩍 뛰며 외치고 있을 때 척방 역시 놀
라고 있었다.
'그럼 아버지와 시아버지가 다툴때 말하던 연성검보란 말인가?
그렇다면 원래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색종이
나 오려서 넣어두곤 했으니 아버지께선 이 책이 보이지 않았는데
어째서 찾지 않으셨을까? 음, 틀림없이 ㅊ으셨을것이다. 여기저
기 찾다가 찾지 못하자 사백이 홈쳐갔다고 여기셨겠지.왜 나에게
물어보시지 않으셨을가? 정말 이상하다.'
만약 적운이라면 이때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
다. 그는 알고 있었다. 척장발이라는 사람은 예측할수 없는 모사
꾼이므로 살령 딸 앞에서도 저래도 그런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을
것이고 책이 보이지 않자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찾았을 것이다.
찾지 못하자 아미일도 없는 척 가장하고 암암히에 살펴보며 이곳
저곳을 살폈을 것이다.
적운이 홈쳐갔을까? 그렇지 않으면 딸이 홈쳐 갔을까? 척방은
홈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떳떳했으므로 자연히 척장발은 눈치채
지 못했던 것이다.
만진산은 이때 거리에서 돌아와 마침 간식을 먹고 있다가 손녀
딸의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한그릇의 국수도 다 먹지 못하고 급
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손녀를 껴안았다. 그리고는 큰걸음으로 아
들이 거처하는 방으로 왔다. 층대에 올라서자 마자 아들이 기쁜
어조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원 세상에 이렇게 교묘한 일이 있겠는가? 여보, 당신은 어떻
게 이 책에다가 물을 묻히게 되었소?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뜻이
요! 하늘이 뜻이오!"
만진산은 큰 걸음을 떼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만규는 당시선집
을 들고 기쁜 음성으로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 이것좀 보세요. 이것이 무엇입니까 ?"
만진산은 그 노란 종이의 책을 보자 큰 충격을 받은것 같았다.
급히 손녀를 내려놓고 아들이 건네주는 책을 받았다. 마음이 방
망이질하듯 마구 뛰었다. 온갖 심혈을 기울여 십몇년간을 찾던
연성검보가 결국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틀림없다! 바로 이책이
다.
그와 언달평, 척장발이 사부를 죽인 것도 바로 이 책때문이었
다. 세사람은 객주 집에서 한개의 이 검보를 샅샅이 넘겨 보았
다. 그러니 이 책은 평범하고 이상한 것이 없어 책방에서 파는
당시선집과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똑 같았다. 그들 사부가 그들
에게 가르쳐준 당시검보는 당시의 싯귀로 검초를 딴 것인데 이런
싯귀들은 이책에 다 수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해내려오
는 연성검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였었다. 사형과
사제 세사람은 이 책을 가지고 태양빛 아래에서 한장 한장 비추
면서 그 책속에 무슨 비밀이 있는가를 살펴보았고 또 이 책속에
있는 몇십 수의 시를 똑바로 읽어보기도 하고 꺼구로 읽어도 보
고 한자한자 뛰어서 읽어보기도 했다. 그들은 온갓 방법을 다해
비밀을 알아내려 했으나 모든 일이 허사였다.
세사람은 각자 다른 두사람은 이 비밀을 발견하였는데 자기만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사람은 저녁에 잠을 잘때면 이 책을 쇠로
만든 상자속에 집어 넣고 쇠로 만든 상자를 다시 쇠사슬로 각각
의 발목에 연결해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이책은
날개가 달린 듯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부터 십몇년동안 수많은 심혈를 바쳐 찾던 책이 눈앞에 나
타난 것이다. 틀림없었다. 네번째 장 죄착 상단에 자그마한 조각
이 떨어져나간 흔적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당시 암암리에 해놓
은 표시였다. 언사제, 척사제가 똑같은 당시선집으로 바꾸어 치
기 할까봐 그런 표시를 해놓은 것이다. 만진산은 또 열여섯번째
장을 넘겨 보았다. 그 당시가 자기가 손톱으로 해논 표시가 나타
났다. 이것은 진본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기쁜 표정을
억제하며 아들에게 말했다.
"바로 이책이다. 너는 어디서 이것을 가져온것이냐 ?"
만규는 척방을 바라보았다.
"방매는 이 책을 어디서 가져온 것이요 ?"
척방은 만규가 기뻐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디 가셨을까? 이 불효한 딸이 그의 책을 산동굴에
가져다 놓아 그 어르신은 정말 한참 찾으셨을거야. 아버지에게는
이 책이 대단한 보물일텐데. 이책이 어떤 책이며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러나 이것은 나의 아버지가 가져 온 것이
다. 이것은 아버지의 책이다. 절대로 시아버지에게 빼앗길수 없
다.'
만약 이 일이 하루전에 적운이 모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때라면 남편의 위치가 아버지보다 더 소중했을 것이다. 아버
지가 언제 돌아오시며 어디 계시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더욱 그랬
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사정이 달랐다.
'절대로 아버지의 이 책을 그들의 수중에 넘길 수는 없다. 적
사형이 이 책을 가져다 내 손에 갖다 준 것은 아버님을 대신해서
보관하라고 그런 것이다. 절대로 그들에게 빼앗겨서는 안된다.
이것은 아버지를 위함이고 적사형을 위하는 길이다.'
만규가 그녀에게 어디서 났느냐고 물을때 그녀의 마음 속에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이 책을 다시 빼앗아 올수 있을까하는 생각
뿐이었다. 만진산의 무공은 탁월하고 남편은 옆에 있으므로 강제
로 빼앗는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었다. 그녀의 생각은 아주 빠
르게 음직였다.
그녀는 탁자 옆에 있는 놋쇠로 만든 대야를 내려다 보았다. 대
야에는 반대야가 넘게 핏물이 담겨져 있었다. 그것은 만규가 얼
굴을 딱은 물이었는데 그의 손등 상처에서 흘러나온 독이 묻은
피가 떨어져 물은 검정색으로 변해 있었다. 만약 살며시 책을
이 핏물안에 집어 넣는다면 그들은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책은 젖어서 망가지겠지. 그러니 이런 기회를 틈타 손을 쓰지 않
는다면 앞으로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차라리 그 책이 망가질 지
언정 그들의 마음대로 처치하게 놔둘수는 없다. 만씨부자는 척방
을 뚫어지게 쳐다 보고 있었다. 만규가 다시 물었다.
"여보, 이책은 어디서 난 것이요 ?"
척방은 멈칫하면서 말했다.
"저도 모르겠읍니다. 조금전 나는 방에서 나오는데 이 책이 탁
자위에 놓여 있었읍니다. 이것은 당신 것이 아닙니까 ?"
만규는 자기도 어리둥절해 있었으므로 더 이상 따지려 들지 않
았다.
"아버지, 보세요. 책장에 물이 묻자 글자의 흔적이 나왔읍니
다."
그는 식지를 내밀어 성과사 라고 쓰여진 시 제목옆에 드러나
있는 담황색의 삼십삼이라는 글자를 가르켰다.
만약 그가 이것이 자기 아내의 눈물이고 또 그 눈물은 적운을
생각하여 흘린 눈물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는 마음속으로 어찌 생
각을 했을까?
만진산은 손가락으로 그 시를 쓰다듬으면서 한글자 한글자 읽
어 내려갔다.
"노자중봉상(路自中峯上), 반회출벽라(盤回出壁蘿), 도강오지
진(到江吳地盡), 격반월산다(隔반越山多), 고목총청하(古木叢靑
霞), 요천침백파(遙天浸白波), 하방성(下方城)..."
제 삼십삼번 글짜는 바로 성(城)이라는 글자였다. 만진산은 무
릎을 탁 치면서 말했다.
"맞다! 바로 이 방법이야! 알고보니 비밀은 여기에 있었어! 얘
야, 너는 참으로 똑똑하고 총명하구나! 다행히 네가 이런 이치를
생각해 냈구나! 물이 필요해! 맞아! 물로 해야한다. 우리는 그때
물을 써야 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척방은 그들 부자가 머리를 맞대고 그 책의 비밀을 알아내고
미치도록 좋아 날뛰자 즉시 딸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끌고 들어
가 딸아이를 품속에 끌어 안으며 말했다.
"공심채야, 저쪽의 대야가 보이지 ?"
계집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예, 보여요!"
척방은 말했다.
"조금있다 할어버지, 아버지, 엄마가 함께 달려 나가면 이 엄
머가 할아버지 손에 들려 있는 저 책을 설합 속에 넣을거야. 너
는 가서 꺼낸 다음 저 대야속에 잠궈 물에 흠뻑 젖도록 해라. 절
대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알게 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못 찾도
록 하자."
딸 아이는 기뻐했다. 어머니가 자기와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는
줄 알고 손뼉을 치며 웃었다.
"좋아요! 재미 있어요!"
척방은 말했다.
"절대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알게 해서는 안된다. 또 그들에
게 말을 해서도 안된다."
딸아이는 말했다.
"이 공심채는 말하지 않을거예요. 공심채는 말하지 않아요!"
척방은 방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시아버님, 이 책이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으세요 ?"
만진산은 몸을 돌리며 물었다.
"무엇이 이상하단 말이냐 ?"
그는 내심 이 책이 갑자기 나타나고 너무 쉽게 손에 들어오자
암암리에 길조는 아니라고 염려하고 있었다. 며느리가 이렇게 말
하자 더욱 의구심이 깊어졌다. 척방은 말했다.
"바로 여기예요."
말을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만진산은 책을 건네주었다. 척방
은 책을 펼치더니 책속에 끼워져 있던 종이나비를 꺼내며 말했
다.
"시아버님, 이 책속에는 애당초 이와 같은 나비가 있었나요 ?"
만진산은 두마리의 종이나비를 받아 자세히 살펴보고 말했다.
"없었지."
척방은 말했다.
"이게 무슨 덫입니까? 무림 중에 화호첩(花蝴첩)이라는 사람이
있는지요? 또 강호에 호첩방이라는 문파가 있는지 모르겠읍니다.
그들이 이 책을남겼다면 아마 좋은 뜻은 아닐 것입니다."
강호의 인물중에 이런 표적을 나타내어 경고를 나타내는 일은
상당히 빈번했다. 만진산은 평생 나쁜 일을 적지 않게 했으므로
원수들도 상당히 많았다. 척방의 말을 듣고 그 나비를 보니 매우
정교했다. 그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나와 원수를 맺은 사람들 가운데 화호첩이라는 사람이 있었는
가? 또 호첩방이라는 패거리들이 있었나?'
그가 깊이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척방이 일갈했다.
"누구냐? 누구냐? 거기 숨어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
손을 내밀어 창 밖의 지붕위를 가르켰다. 만씨부자는 동시에
창밖을 쳐다보았다. 척방은 몸을 돌리더니 벽에서 두자루의 장검
을 꺼내 한자루른 만진산에게 주고 한자루는 만규에게 주면서 외
쳤다.
"지붕위에 사람이 있었읍니다."
민씨부자는 병기를 받아 들었다. 척방은 책상 설합을 열더니
당시선집을 설합속에 던지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적에게 빼앗겨서는 안되지요."
만씨 부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사람은 일제히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지붕위에 서서 사방을 살펴보았으나 아무도 없었
다. 만진산이 말했다.
"아래로 내려가서 살펴보자."
세명이 뒷뜰로 내려와서 살펴보자 벽에 한사람의 그림자가 보
였다. 만진산은 일갈했다.
"누구냐 ?"
몸을 날려 앞으로 가니 그 사람은 바로 여섯번째 제자인 오감
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너눈 아무도 보지 못했느냐 ?"
오감은 사부와 만규, 척방이 검을 쥐고 오는 것을 보자 자기의
속셈이 폭로된 줄 알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사부가 이렇
게 묻자 마음이 놓여 급히 말했다.
"어떤자가 이쪽으로 달려 갔읍니다. 그래서 제자가 재빨리 이
쪽으로 와서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감추기 위해 척방의 거짓말을 도와준 셈이
된 것이다. 네 사람은 곧장 뒷문으로 달려갔다. 오감은 연신 휘
파람을 불어 노곤과 복원등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아무런 흔적
도 발견할 수 없었다. 만진산과 만규는 연성검보가 걱정이 되어
노곤등에게 계속해서 적을 찾으라고 명령하고는 척방을 불러 이
층 방으로 돌아왔다. 만진산은 책상설합을 열었다. 설합에는 그
책이 없었다. 만씨부자는 깜작 놀랐다. 서재의 구석구석을 살펴
보았지만 찾을수 없었다. 어린 딸에게 물었다.
"사람이 들어온적이 있느냐?"
딸 아이는 말했다.
"아니요."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눈을 껌벅껌벅 거렸는데 매
우 득의 양양한 표정이었다.
만씨부자는 틀림없이 척방이 그 책을 설합에 집어넣고 적을 추
격하고 있을때 그녀가 자기들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으므로 그녀
의 소행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틀림없이 적이 조호이산지계(調虎
離山之計)의 방법을 써서 검보를 홈쳐간 것이다. 만씨부자는 서
로 쳐다보았는데 매우 실망한 표정이었다. 반면 척방모녀는 서로
눈을 껌벅이면서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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