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21~22

나단비 | 2024.02.13 09:27:23 댓글: 0 조회: 107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6861
21

진통제 케이크





6월의 마지막 날 앤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부엌 식탁에 석판과 책을 내려놓으며 투덜거렸다.
“이 세상에는 만남과 이별밖에 없어요, 린드 아주머니 말처럼.”
빨개진 눈을 닦고 있는 손수건은 흠뻑 젖어 있었다.
“마릴라 아주머니, 오늘 학교에 손수건을 한 장 더 가져가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손수건이 더 필요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거든요.”
“네가 필립스 선생님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다. 선생님이 가신다고 눈물을 닦을 손수건이 두 장씩이나 필요할 만큼 말이다.”
마릴라가 말했다.
“저도 제가 선생님을 좋아해서 눈물이 나온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그냥 다른 애들이 우니까 저도 덩달아 우는 거예요. 루비 길리스가 맨 먼저 시작했어요.”
앤이 학교에서의 일을 돌아보며 말했다.

“루비 길리스는 선생님이 싫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선생님이 작별 인사를 하려고 일어서자마자 그냥 울음을 터뜨리지 뭐예요. 그러니까 모든여자아이들이 차례로 울기 시작했어요. 저는 눈물을 참으려고 했어요, 마릴라 아주머니. 필립스 선생님이 저를 길…… 아니, 그남자아이와 앉게 한 일, 칠판에 제 이름을‘e’자를 빼먹고 쓴 일, 기하를 저처럼 못 하는 바보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던 일, 제가 철자를 틀렸다고 비웃던 일 등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참으려고 했어요. 하여튼 선생님이 밉고 빈정거리던 때를 생각해내려 애썼지만, 이상하게 그렇게 되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저도 울 수밖에 없었어요. 제인 앤드루스는 한 달 전부터 선생님이 떠나서 정말 좋다고 절대 울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더니 가장 많이 울었어요. 그렇게 장담해서 그랬는지 손수건을 가져오지 않아 자기 동생한테 손수건까지 빌려야 했다니까요. 물론남자아이들은 울지 않았어요. 오, 마릴라 아주머니,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필립스 선생님이 아주 멋지게 작별 인사를 시작했어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라고요. 그 말이 무척 감동적이었어요. 선생님도 눈물을 흘렸어요, 마릴라 아주머니. 아아, 전 학교에서 선생님을 원망하고 석판에다 선생님을 그리면서 프리시와 선생님을 놀렸던 때를 생각하면 미안하고 후회돼요. 미니 앤드루스처럼 모범생이었다면 참 좋았을 것 같아요. 미니 앤드루스는 양심에 걸리는 게 없었을 거예요.여자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계속 울었어요. 잊을 만하면 캐리 슬론이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고 계속 말했거든요. 그래서 우리 기분이 풀릴 만하면 다시 또 울어야 했어요. 마릴라 아주머니, 정말이지 슬퍼요. 하지만 이제 두 달간의 방학을 앞두고 절망의 늪에 빠져 있을 순 없겠죠? 그런데 새로 오신다는 목사님과 부인을 만났어요. 역에서 오시는 길이라고 했어요. 필립스 선생님께서 떠나서 슬프기는 했지만 새로 오시는 목사님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수는 없잖아요. 사모님은 정말 예뻤어요. 물론 화려하게 예쁘지는 않았지만요. 목사님에게 화려하게 예쁜 부인은 좋을 것 같지 않아요. 나쁜 본보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린드 아주머니 말로는, 뉴브리지 목사님 사모님은 유행 따라 옷을 입어서 나쁜 본보기를 보인대요. 사모님은 아름다운 퍼프 소매가 달린 파란 모슬린 옷을 입고 장미로 테두리가 장식된 모자를 쓰셨더라고요. 제인 앤드루스는 퍼프 소매가 목사님 사모님에게는 너무 세속적이라고 말했지만 저는 그렇게 매정하게 말할 수 없었어요. 퍼프 소매를 입고 싶은 마음이 어떤 건지 잘 알거든요. 또 얼마 전에야 목사님 사모님이 되었으니까 이해해줄 수도 있잖아요? 목사관이 정리될 때까지 두 분은 린드 아주머니 댁에 계실 거래요.”
그날 저녁 마릴라는 지난겨울에 빌린 누비이불 틀을 돌려줘야 한다는 이유로 린드 부인 집에 갔지만, 실제로는 에이번리 사람 대부분이 품고 있던 궁금증 때문이었다. 린드 부인은 많은 사람에게 이러저러한 물건을 빌려주었고, 때로는 돌려받지 못할 거라고 포기하고 있던 물건까지 그날따라 돌려주겠다며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 새 목사, 아니 부인까지 데려온 목사는 특별한 재밋거리라고는 없는 작고 조용한 마을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앤이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던 벤틀리 목사는 18년 동안이나 에이번리 교회의 목사로 재직했었다. 에이번리에 처음 올 때부터 홀아비였고, 해마다 누군가와 결혼을 할 거라는 소문이 돌기는 했지만 끝내 홀아비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벤틀리 목사는 설교에는 뛰어나지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함께 지낸 착한 목사에게 정이 들어, 지난 2월 그가 떠날 때는 모두가 아쉬워했다. 그 후로 에이번리 교회에는 일요일마다 목사 후보자들이 와서 설교를 해보였고, 마을 사람들은 다양한 종교적 체험을 즐겼다. 판단은 전적으로 어른들의 몫이었지만, 커스버트 가족석 한구석에 얌전히 앉은 빨간 머리의 작은 소녀에게도 후보 목사들에 대한 나름의 의견이 있었고, 그것을 매슈와 나누었다. 마릴라는 항상 어떤 식으로건 목사님에 대한 비난은 원칙적으로 삼간다는 생각이었다.
“전 스미스 목사님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매슈 아저씨. 린드 아주머니는 스미스 목사님의 설교 솜씨가 너무 떨어진다고 하셨지만 제 생각에 가장 큰 단점은 벤틀리 목사님처럼 상상력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테리 목사님은 상상력이 너무 지나치세요. 제가‘유령의 숲’을 생각해낼 때 그랬듯이 상상의 나래를 지나치게 펼쳐요. 게다가 린드 아주머니 말로는 그분의 신학이 건전하지 못하대요.그레셤목사님은 사람도 좋고 신앙심도 무척 깊지만 재밌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사람들을 교회에서 웃게 해서 위엄이 없는 것처럼 보여요. 목사님이라면 위엄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매슈 아저씨? 제 생각에는 마셜 목사님이 가장 매력적이었어요. 하지만 린드 아주머니가 특별히 조사해봤더니 그분이 결혼도 하지 않고, 심지어 약혼도 하지 않았더래요. 에이번리 교회에 결혼하지 않은 젊은 목사를 데려올 수는 없대요. 만약 교회 신자와 결혼하면 그게 문제가 될 수 있다고요. 린드 아주머니는 정말 먼 훗날까지 내다보는 분이에요. 그렇죠? 전 우리가 앨런 목사님을 모셔와서 정말로 기뻐요. 설교도 재미있었고, 기도도 기계적으로 하지 않고 정성을 다하시는 것 같아 무척 마음이 들어요. 린드 아주머니는 앨런 목사님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연간 750달러로 완벽한 목사님을 기대할 수는 없는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또 아주머니가 교리를 꼬치꼬치 물어봤는데 앨런 목사님의 신학 이론은 건전하더래요. 그리고 린드 아주머니는 사모님 집안도 알아봤는데 모두가 훌륭하고 여자들도 모두 알뜰한 살림꾼이더래요. 건전한 교리를 가진 남자와 알뜰하게 살림을 잘하는 여자라면 목사 부부로는 이상적인 결합이라고도 하셨어요.”

새로 온 목사와 목사 부인은 젊고 상냥해 보이는 부부로, 아직 신혼이었고, 그들이 선택한 평생의 일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했다. 에이번리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나이를 떠나 모두가 높은 이상을 가진 솔직하고 쾌활한 젊은 목사와, 목사관의 안주인 역할을 떠맡은 밝고 예의 바른 젊은 숙녀를 좋아했다. 앤은 즉시앨런 부인에게 푹빠져버렸다. 앤은 영혼이 통하는 친구를 한 사람 더 알게 된 것이다.
“사모님은 완벽하게 멋진 분이에요.”
앤이 어느 일요일 오후 이렇게 말했다.
“사모님이 우리 반을 맡았는데 정말로 좋은 선생님이에요. 사모님은 곧장 선생님만 질문을 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한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아주머니도 아시잖아요, 저도 항상 그렇게 생각했다는걸. 사모님은 우리에게 언제라도 질문을 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전 질문을 많이 했어요. 전 질문을 잘하잖아요, 마릴라 아주머니.”
“그럼 그렇고말고.”
마릴라가 맞장구를쳤다.
“그런데 루비 길리스 이외엔 누구도 질문하지 않았어요. 루비가 올여름에도 주일 학교에서 소풍을 가느냐고 물었어요. 전 그 질문이 수업 내용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적절한 질문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사자 굴에 들어간 다니엘을 배우고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사모님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시면서 소풍을 가게 될 거라고 대답하셨어요. 사모님의 웃는 모습은 정말 예뻐요. 양 볼에 아주 예쁜 보조개가 생기거든요. 저도 그런 보조개가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릴라 아주머니. 제가 여기에 왔을 때보다 살이 많이 올랐는데도 아직 보조개는 생기지 않아요. 저한테 보조개가 있다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예요. 사모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려고 항상 노력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사모님은 모든 것을 너무 재밌게 얘기하세요. 전에는 종교가 그렇게 즐거운 것인지 몰랐어요. 종교는 슬픈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모님을 보면 그렇지 않아요. 사모님처럼 될 수 있다면 전 기독교인이 되는 게 좋아요. 하지만 벨 장로님 같은 기독교인은 되고 싶지 않아요.”
​​“벨 장로님을 그렇게 말하는 건 못된 거야. 벨 장로님은 정말로 좋은 분이다.”
마릴라가 엄히 꾸짖었다.
“오, 물론 좋은 분이죠.”
앤이 동의를 했다.
“하지만 종교에서는 전혀 위안을 구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착한 사람이 되면 그 때문에 기뻐서 온종일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거예요. 사모님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엔 나이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물론 목사의 부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짓일 수도 있죠. 하지만 전 그분이 기독교인이어서즐거워한다는걸 알 수 있어요. 아마 교회에 안 다니고도 천국에 갈 수 있더라도 기독교인이 되셨을 거예요.”
“조만간 목사님 부부를 초대해서 차를 대접해야겠다. 우리 집을 빼고는 거의 모든 집에 들르신 것 같더라.”
마릴라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다음 주 수요일이면 두 분을 초대하기에 괜찮을 것 같구나. 하지만 매슈 아저씨한테는 입도 벙끗하지 마라. 목사님 부부가 오신다는 걸 알면 무슨 핑계로든 그날 나가 있으려고 할 테니까. 벤틀리 목사님하고는 낯이 익어서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새로 오신 목사님과 바로 허물없이 지내기는 어려울 거다. 거기다 새 목사님 부인을 보면 놀라 까무러칠지도 몰라.”

“전 죽은 듯이 입 꽉 다물고 있을게요. 그런데 마릴라 아주머니, 제가 그날 케이크를 만들어도 될까요? 사모님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요. 제가 요즘엔 케이크를 제법 잘 만들잖아요.”
앤이 말했다.
“그래, 레이어 케이크28)는 네가 만들어보거라.”
마릴라가 허락해주었다.
월요일과 화요일,‘초록 지붕 집’은 목사 부부를 맞을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목사 부부에게 차를 대접하는 일은 신앙심에 관련된 일이어서 무척 중요했다. 그래서 마릴라는 에이번리의 어떤 주부에게도 뒤지지 않겠다고 굳게마음먹었다. 앤도 흥분하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화요일 저녁 해가저물 쯤에앤은 다이애나와‘드리아드의 샘’가에 있는 커다란 붉은 바위에 앉아 전나무 수지를 적신 작은 가지를 물에 띄워 무지개를 만들며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됐어, 다이애나. 내가 아침에 케이크를 만들고, 마릴라 아주머니가 차 마시기 직전에 내놓을 비스킷만 만들면 돼. 다이애나, 이틀 동안 마릴라 아주머니와 나는 정말 바쁘게 움직였어. 목사님 부부에게 차를 대접하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야. 전에는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었어. 우리 집 부엌을 너도 봐야 하는데. 정말 볼만해. 젤리를 바른 닭고기와 차가운 혓바닥 요리도 준비했어. 젤리는 붉은색과 노란색 두 종류를 준비했고, 생크림과 레몬 파이와 체리 파이, 세 종류의 과자와 과일 케이크, 또 목사님 드리려고 마릴라 아주머니의 특기이자 유명한 자두 잼도 따로 준비해두었지. 게다가 좀 전에도 말했듯이 파운드케이크와 레이어 케이크, 비스킷도 있어. 빵은 새로 구운 빵과 오래된 빵을 둘 다 준비했는데, 목사님이 위가 약해 새 빵을 못 드실 경우를 대비한 거야. 린드 아주머니 말로는 목사님들은 대부분 위가 약하다고 하지만, 내 생각에 앨런 목사님은 얼마 전에야 목사님이 되셨으니까 아직은 괜찮을 것 같아. 내가 만들 레이어 케이크만 생각하면 소름이 돋아. 오, 다이애나, 케이크가 맛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어젯밤에는 머리가 커다란 레이어 케이크처럼 생긴 무시무시한 악귀한테 쫓기는 꿈까지 꾸었다니까.”
“맛있을 거야. 잘될 거야, 보름 전에 네가 점심으로 만든 케이크를‘한가로운 황야’에서 먹었잖아. 정말 맛있었어.”
다이애나가 친구답게 안심을 시켜주었다.
“그래, 하지만 케이크는 이상한 버릇이 있어서 잘 만들려고 하면 엉망이 돼버려.”
앤이 특히 더 수지가 잘 묻은 가지를 물에 띄워 보내버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여하튼 하느님께 맡기고 밀가루 넣는 걸 잊지 않도록 신경 써야지. 오, 저기 좀 봐, 다이애나, 아주 예쁜 무지개야! 우리가 간 다음에 숲의 요정 드리아드가 나와서 목도리로 쓰려고 저 무지개를 가져가는 것 아닐까?”
“숲의 요정 같은 건 없다는 걸 너도 알잖아.”
다이애나가 말했다. 다이애나의 어머니도‘유령의 숲’이야기를 알게 되어 몹시 화를 냈다. 따라서 다이애나는 더 이상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없게 되었고 아무런 해도 없는 숲 속의 요정 드리아드조차도 생각하지 않게 돼버렸다.
“하지만 요정이 있다는 걸 상상하기는 쉽잖아. 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드리아드가 정말로 여기 앉아 샘물을 거울로 삼아 머리를 빗는지 궁금해서 창밖을 내다봐. 그리고 아침에는 이슬에 젖은 땅에 요정의 발자국이 남았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오, 다이애나, 숲의 요정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마!”
앤이 말했다.
마침내 수요일 아침이 됐다. 앤은 너무 흥분해서 잠을 자지 못하고 해가 뜨자마자 일어났다. 전날 밤 샘물에서 물장난을했기때문에 심한 감기에 걸렸지만, 폐렴에 걸리지 않은 이상 그날 아침의 요리를 물리칠 수는 없었다. 아침을 먹고 앤은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케이크를 오븐에 넣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번에는 잊은 게 없어요, 마릴라 아주머니. 분명히 반죽이 잘 부풀어 오르겠죠? 베이킹파우더가 안 좋은 거면 어쩌죠? 새 통에서 꺼내 사용하긴 했는데. 린드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요즘엔 모든 것에 불량품이 많아서 베이킹파우더도 좋은 걸 구하기 힘들대요. 정부가 나서서 이런 문제는 해결하는 게 당연한데, 토리당 정부가 그런 일을 해결하겠다고 나설 날은 없을 거라고 하셨어요. 마릴라 아주머니, 케이크가 부풀어 오르지 않으면 어쩌죠?”
“다른 음식이 많이 있으니까 괜찮다.”
마릴라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케이크는 잘 부풀어 올랐다. 오븐에서 꺼내자 케이크는 황금빛 거품처럼 가볍고 부드러웠다. 앤은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좋아하며 루비색 젤리를 케이크에 발랐고, 머릿속으로 앨런 부인이 케이크를 먹으며 한 조각을 더 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물론 제일 좋은 찻잔을 사용하실 거죠, 마릴라 아주머니? 식탁을 고사리와 들장미로 장식해볼까요?”
앤이 물었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라. 중요한 것은 먹을 것이지 겉치레 장식이 아니다.”
마릴라가 빈정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배리 아주머니는 식탁을 장식하셨대요. 그래서 목사님이 아주머니 솜씨를 멋진 말로 칭찬해주셨대요. 음식 맛도 좋았지만 눈도 성찬을 즐겼다고요.”
앤 역시 이브를 유혹했던 뱀의 못된 꾀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래? 그럼 네가 원하는 대로 해보렴.”
배리 부인이든 누구에게든 지고 싶지 않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던 마릴라가 허락을 했다.
“하지만 접시와 음식을 놓을 자리는 남겨야 한다는 건 잊지 말고.”
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식탁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배리 부인의 솜씨 정도는 초라하게 만들어버릴 만큼 풍성한 고사리와 장미로 매우 예술적인 감각을 가미해 장식해놓아서 목사 부부는 자리에 앉자마자 식탁이 아름답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앤이 한 겁니다.”
마릴라가 무뚝뚝하게 말했지만, 앨런 부인의 미소는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앤에게 안겨주었다.
매슈도 앤의 온갖 꼬임에 빠져 참석했다. 매슈는 너무나 수줍어하고 불안해해서 마릴라는 절망에 빠져 포기해버렸지만 앤이 매슈를 설득해 가장 좋은 옷까지 갖추어 입고 식탁에 앉아 목사와 그럭저럭 대화까지 나누었다. 앨런 부인에게는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것까지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앤이 만든 레이어 케이크를 대접하기 전까지는 결혼식의 종소리가 울려 퍼질 때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앨런 부인은 이런저런 음식을 많이 먹어 케이크를 사양했다. 그러나 앤이 실망하는 얼굴을 보고 마릴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 조각이라도 드셔야 해요, 사모님. 앤이 사모님을 위해 특별히 만들었거든요.”
“그럼 맛이라도 봐야겠군요.”
앨런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세모꼴의 케이크 한 조각을 접시에 올려놓았고, 목사님과 마릴라도 한 조각씩 집었다.
그런데 케이크를 한 입 깨문 앨런 부인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천천히 케이크를 끝까지 다 먹었다. 마릴라가 그 표정을 보고 자신도 얼른 케이크 맛을 보았다.
“앤 셜리! 도대체 이 케이크에 뭘 넣은 거니?”
마릴라가 소리쳤다.
“요리책에 쓰인 대로 했어요, 아주머니. 왜, 맛이 이상한가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앤이 물었다.
“이상하냐고! 이건 끔찍한 맛이다. 앨런 목사님은 입도 대지 마세요. 앤, 네가 직접 맛을 보아라. 너, 어떤 향료를 사용한 거니?”
“바닐라요.”

케이크 맛을 본 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얼굴이 새빨개졌다.
“바닐라밖에 넣은 게 없어요. 베이킹파우더 때문일 거예요. 베이킹…….”
“베이킹파우더 때문이라고! 가서 네가 썼다는 바닐라 통을 가져와 봐.”
앤이 부엌 찬장으로 뛰어가 갈색 액체가 든 작은 통을 갖고 돌아왔다. 통에는 ‘최고의 바닐라’라고 노랗게 쓰여 있었다.
마릴라가 그것을 받아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았다.
“세상에나! 앤, 넌 이 케이크에다 진통제액을 넣었어. 내가 지난주에 진통제 병을 깨뜨려서 바닐라 향빈 병에다 부어놓았거든. 내 잘못인 것 같구나. 너한테 미리 말해주었어야 했는데. 하지만 왜 냄새를 맡아보지 않았니?”
앤은 이런 이중 망신에 눈물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전 냄새를 맡을 수 없어요, 감기에 걸렸거든요!”
말을 마친 앤은 다락방으로 올라가서는 침대로 뛰어들어,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한 소녀처럼 울어댔다.
그때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계단에서 들렸고, 곧 누군가가 방에 들어왔다.
“오, 마릴라 아주머니, 전 영원히 이 불명예를 씻을 수 없을 거예요. 이 망신은 결코 되돌릴 수 없어요. 이번 일이 알려질 거예요. 에이번리에서는 비밀이 없잖아요. 다이애나도 제 케이크가 어땠냐고 물을 텐데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럼 전 케이크에 진통제를 넣은 애로손가락질받을거예요. 길…… 또 학교에서남자아이들이 틈만 나면 저를 비웃을 거예요. 오, 마릴라 아주머니, 아주머니가 기독교인으로 조금의 동정심이라도 있다면 저에게 내려가서 설거지를 하라고는 하지 마세요. 목사님 부부가 가신 후에 하겠어요. 앞으로 사모님 얼굴을 다시는 쳐다볼 수조차 없을 거예요. 제가 사모님을 독살하려 했다고 생각하실지도 몰라요. 린드 아주머니도 그랬잖아요, 은인을 독살하려 했던 고아를 알고 있다고요. 하지만 진통제액은 독약이 아니에요. 케이크에 넣는 건 아니지만 먹을 수는 있는 거예요. 사모님께 그렇게 말씀해주시지 않겠어요, 마릴라 아주머니?”
앤이 고개를 들지도 않고 서럽게 울며 말했다.
“일어나서 네가 직접 그렇게 말하면 어떻겠니?”
명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앤이 벌떡 일어나 보니 앨런 부인이 웃음 띤 얼굴로 침대 옆에 서서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귀여운 꼬마 아가씨가 그렇게 울면 안 되지. 이건 누구라도 저지를 수 있는 재미있는 실수일 뿐이야.”
부인은 앤의 비극적인 얼굴에 진심으로 마음이 아픈 모양이었다.
“오, 아니에요. 저니까 그런 실수를 저지른 거예요. 전 그 케이크를 아주 맛있게 만들어드리고 싶었어요, 사모님.”
앤이 너무나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나도 알아. 케이크가 아주 맛있게 만들어진 것처럼 나는너의 친절하고 사려 깊은 마음을 고맙게 생각한다. 이제 그만 울고 나하고 내려가자. 네 꽃밭을 보여주지 않겠니? 커스버트 아주머니 말로는 네가 직접 꾸민 작은 화단을 갖고 있다던데. 네 꽃밭을 보고 싶구나. 나도 꽃에 무척 관심이 많거든.”
앤은 따라 내려가면서 앨런 부인이 마음이 넓고 이해심 깊은 분이라 천만다행이라고 안심했다. 진통제 케이크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화제에 오르지 않았다. 손님들이 떠난 후, 앤은 그런 끔찍한 사건이 있었던 걸 감안하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즐거운 오후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앤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릴라 아주머니, 내일은 아직 아무런 실수도 일어나지 않은새날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 좋지 않으세요?”
“내가 장담하지만 너는 내일도 실수를 저지를 거다. 난 너처럼 툭하면 실수를 저지르는 애를 본 적이 없다.”
마릴라가 말했다.
“맞아요. 저도 잘 알아요.”
앤이 침울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저한테도 바람직한 면이 있다는 건 아시지요, 마릴라 아주머니? 같은 실수를 두 번 저지르지는 않잖아요.”
“항상 새로운 실수를 저지르는데, 그것이 그리 좋은 점인지 난 잘 모르겠구나.”
“어머! 마릴라 아주머니, 그걸 모르세요? 한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도 틀림없이 한계가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실수를 다 저지르면 더는 실수할 것이 없을 거라고요.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져요.”
“자아, 그 케이크는 돼지한테나 줘버리는 게 낫겠다. 사람이 먹을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제리 부트라도 그건 먹지 않을 거다.”

마릴라가 말했다.



28) 크림, 잼 등을 사이에 넣어 여러 겹으로 쌓아 만든 스펀지케이크.



22

목사관에 초대받은 앤





우체국에 뛰어갔다 돌아온 앤에게 마릴라가 물었다.
“이젠 또 무슨 일로 눈이 그렇게 튀어나올 지경이 되었니? 영혼이 통하는 친구를 또 찾아냈니?”
앤이 얼마나 흥분했던지 두 눈이 반짝거렸고, 온몸에서 흥분한기운이느껴졌다. 8월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과 나른한 그늘을 뚫고 앤은 바람에 날리는 요정처럼 춤을 추듯 오솔길을 달려왔다.
“그런 건 아니에요, 마릴라 아주머니. 하지만 무슨 일인지 맞춰보세요? 내일 오후에 목사관에 차를 마시러 오라는 초대를 받았어요! 사모님이 우체국에 편지를 남기셨어요. 이것 좀 보세요, 마릴라 아주머니.‘초록 지붕 집’의 미스 앤 셜리에게.’ 제가 미스라고 불린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이 편지를 받고 가슴이 얼마나 떨렸겠어요! 이 편지는 가장 소중한 보물로 영원히 간직할 거예요.”
“앨런 부인이 주일 학교 아이들을 모두 차례대로 초대할 생각이라고 하시더라. 그러니까 괜히 수선 피우지 마라. 모든 걸 침착하게 받아들이는 것부터 배워야겠다.”
마릴라가 이 멋진 초대를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말했다.
앤에게 모든 것을 침착하게 받아들이라는 요구는 앤의 천성을 바꾸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활기와 불과 이슬’ 그 자체였던 앤은 삶에서 즐거움과 고통을 강렬하게 받아들였다. 마릴라도 앤의 천성을알 만했고, 그 때문에 너무나 충동적이어서 기뻐하는 이상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어린 영혼이 삶의 부침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그래서 마릴라는 앤이 차분하고 한결같은 마음을 갖도록 훈련시키는 것이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라 생각했지만, 얕은 시냇물에서 춤을 추는 햇살만큼이나 앤에게는 낯설고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앤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앤은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어떤 간절한 희망이나 계획이 좌절되면 ‘고통의 늪’에 빠져버렸고 그 소망이 이루어지면 끝없는 환희의 세계에 젖어버렸다. 결국 마릴라는 이 천방지축인 아이를 얌전하고 예절 바르게 행동하는 모범적인 아이로 바꿔가려는 생각을 체념하기 시작했다. 또 앤이 그렇게 변한다고 해서 지금의 앤보다 더 좋아하리라는 확신도 없었다.
그날 밤 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바람이 북동쪽에서 불어와 다음 날 비가 올 것 같다고 매슈가 말했기 때문이었다. 집 주변에서 미루나무 잎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내도 앤은 그것이 빗소리일까 봐 불안에 떨었다. 다른 때 같으면 멀리 해안가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의 야릇하게 귓가를 맴도는 그 낭랑한 음률을 즐겼겠지만, 지금처럼 화창한 날을 간절히 바라던 어린 소녀에게는 폭풍과 불행의 전조인 것처럼 들렸다. 앤에게는 아침이 결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무슨 일에나 끝은 있는 법, 목사관에 초대를 받은 날 앞에서 밤도 물러갔다. 다행히 매슈의 예언과는 달리 아침은 활짝 개었다. 앤의 기분도 한껏 들떴다.

“오, 마릴라 아주머니, 오늘은 제가 만나는 사람은 누구라도 사랑할 것 같아요.”
앤이 아침에 먹은 그릇들을 설거지하며 말했다.
“제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아주머니는 모르실 거예요! 이런 기분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겠어요? 제가 매일 초대를 받는다면 모범생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마릴라 아주머니, 오늘은 정말 중요한 날이에요. 그런데 너무 불안해요. 제가 예의 바르게 행동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죠? 제가 목사관에서 차를 마셔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아시잖아요. 여기 온 다음부터 <패밀리 헤럴드> 신문의 에티켓 난에 소개된 규칙을 공부하긴 했지만, 에티켓 규칙을 모두 알지는 못하거든요. 엉뚱한 짓을 저지르고, 제가 꼭 해야 할 것을 잊어버릴까 봐 겁나요. 많이 먹고 싶어서 또 달라고 해도 괜찮을까요?”
“앤, 너는 너 자신을 너무 생각을 많이 하는 게 문제다. 넌 앨런 부인의 처지가 되어서 생각을 해야 해. 어떻게 해야 앨런 부인이 즐거워하고 기쁘게 생각할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하는 거다.”
마릴라가 생전 처음으로 건전하고 동정 어린 충고를 해주었고, 앤은 곧바로 그 뜻을 깨달았다.
“아주머니 말씀이 맞아요. 이제부터 제 생각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겠어요.”
앤은 ‘에티켓’에 크게 어긋나는 실수를 하지 않고 목사관의 초대를 무사히 넘긴 것 같았다. 선홍색과 장미색을 띤 구름들이 길게 이어진 높은 하늘 아래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때 앤은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와, 부엌문 앞의 커다란 사암 돌판에 털썩 주저앉아 곱슬곱슬한 머리를 마릴라의 무릎에 올려놓고 행복하게 그날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시원한 바람이 서쪽의 전나무 언덕 끝에서부터 추수기를 맞은 긴 밭을 지나 미루나무까지 불어왔다. 밝게 빛나는 별 하나가 과수원 위에 떠 있었고, 개똥벌레들은‘연인의 오솔길’에서 춤을 추듯 가볍게 풀고사리와 작은 나뭇가지 사이로 날아다녔다. 앤은 그 풍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했고, 바람과 별과 개똥벌레가 하나로 뒤엉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이 달콤하고 황홀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듯했다.
“오, 마릴라 아주머니, 너무 매혹적인 시간이었어요. 제가 헛되게 살지 않았다는 기분이에요. 또다시 목사관에 초대를 받지 못하더라도 이 기분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아요. 제가 도착하자 사모님께서 문까지 나와 맞아주셨어요. 주름 장식이 많고 소매가 팔꿈치까지 오는 연분홍색 모슬린 드레스를 입고 있으셨는데 그 모습이 천사 같았어요. 저도 크면 목사님 부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마저 했다니까요. 목사님은 세속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으니까 제 빨간 머리도 개의치 않을 거예요. 하지만 목사님의 부인이 되려면 천성적으로 착해야 하는데 저는 그렇지 못할 거니까 그런 생각을 해도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 같아요. 천성적으로 착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잖아요. 전 그렇지 못한 사람에 속해요. 린드 아주머니가 저는 원죄로 가득한 사람이래요. 그래서 제가 착해지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천성적으로 착한 사람처럼 될 수는 없을 거예요. 기하하고 무척 비슷한 것 같아요, 제 생각이지만.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겠어요? 사모님도 천성적으로 좋은 분이에요. 전 사모님을 너무너무 사랑해요. 매슈 아저씨와 사모님처럼, 큰 문제 없이 우리가 곧바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물론 린드 아주머니처럼 사랑하려고 무척 애를 써야 되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 사람은 많은 것을 알고 교회에서도 적극적으로 일하는 사람이어서 사랑해야 하지만, 그들을 잊지 않고 사랑하려면 계속해서 머릿속에 담아둬야만 해요. 다른 아이도 목사관에 초대받았더라고요. 화이트샌즈 주일 학교에 다니는 아이였는데 이름은 로레타 브래들리였고, 무척 예뻤어요. 저랑 영혼이 통한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주 착했어요. 우리는 우아하게 차를 마셨고, 제 생각에도 제가 모든 에티켓 규칙을 잘 지킨 것 같아요. 차를 마신 후에 사모님이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고, 로레타와 저에게도 노래를 부르라고 하셨어요. 사모님은 제가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면서, 다음부터 주일 학교 성가대에서 노래를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 생각만 해도 온몸이 짜릿해져요. 저도 다이애나처럼 주일 학교 성가대에서 노래를 하고 싶었지만, 너무나 벅찬 영광이어서 꿈에도 바라지 못하던 소망이었어요. 로레타는 오늘 밤에 화이트샌즈 호텔에서 발표회가 있고 자기 언니가 거기에서 낭송을 한다고 일찍 집에 돌아갔어요. 로레타가 그러는데, 그 호텔에 있는 미국인들이 샬럿타운 병원을 도우려고 2주마다 발표회를 개최하면서 화이트샌즈 사람들에게 출연해달라고 부탁한대요. 로레타도 언젠가 출연 요청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어요. 로레타가 부럽더라고요. 로레타가 떠난 후에 사모님과 저는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었어요. 전 사모님에게 모든 것을 얘기했어요. 토머스 아주머니와 쌍둥이들, 캐티 모리스와 비올레타에 얘기를 했고, ‘초록 지붕 집’에 오게 된 과정, 기하에서 겪는 어려움마저 모두 얘기했어요. 그런데 마릴라 아주머니, 사모님도 기하학을 정말 못 했다고 저한테 고백했다는 게 믿어지세요? 그 말에 제가 얼마나 용기를 얻었는지 짐작도 못 하실 거예요. 제가 목사관을 나오려는데 린드 아주머니가 오셨어요. 린드 아주머니가 왜 오셨는지 짐작하세요, 마릴라 아주머니? 학교 이사회에서 새 선생님을 고용하셨는데 여자 선생님이래요. 이름은 뮤리엘 스테이시래요. 정말 낭만적인 이름이지 않나요? 린드 아주머니는 에이번리에 여자 선생님이 오는 건 처음이라며, 위험을 감수한 개혁이라고 생각하신대요. 하지만 저는 여자 선생님이어서 너무 좋아요. 학교가 시작하려면 아직 2주나 남았는데 그동안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모르겠어요. 빨리 새로 오신 선생님을 만나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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