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마법사 3~4

나단비 | 2024.02.01 21:32:11 댓글: 2 조회: 132 추천: 2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4847
제3장 도로시는 어떻게 허수아비를 구했나

도로시는 혼자 남자 시장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찬장 속의 빵을 잘라 버터를 발랐다. 토토에게 빵을 조금 나누어준 후, 선반에서 통을 꺼내 들고 시냇가로 가서 맑고 반짝이는 물을 담았다. 토토는 나무로 뛰어가더니 가지에 앉은 새들을 향해 짖기 시작했다. 도로시는 토토를 데리러 갔다가 나무에 매달린 먹음직한 과일을 발견했다. 아침 식사로 먹으면 좋을 듯했다.

집으로 돌아온 도로시는 토토와 함께 맑고 시원한 물을 마음껏 마셨다. 그리고 에메랄드 시로 떠날 채비를 했다.
도로시는 입고 있는 옷 외에 여분의 옷이 겨우 한 벌뿐이었는데, 깨끗한 상태로 침대 옆에 걸려 있었다. 흰색과 파란색 체크무늬가 있는 무명 드레스로, 많이 빨아서 파란색이 바랬지만 여전히 예뻤다. 도로시는 조심스럽게 몸을 씻고, 깨끗한 무명 드레스로 갈아입은 다음 머리에 분홍색 모자를 썼다. 그러고는 작은 바구니를 꺼내서 찬장에 든 빵을 챙겨넣고 위에 흰 천을 덮었다. 발을 내려다보니, 낡고 닳은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먼 길을 갈 텐데 이 구두로는 견디지 못할 거야, 토토.”

도로시가 말했다. 토토는 검은 눈망울로 소녀를 올려다보며 무슨 말인지 안다는 듯 꼬리를 흔들었다.

그 순간 도로시는 테이블에 놓인 동쪽 마녀의 구두를 보았다.

“내 발에 맞을지 모르겠다. 저 구두는 닳지 않을 테니까 먼 길을 가기에 적당하겠지.”

도로시가 토토에게 말했다.

도로시는 낡은 가죽 구두를 벗고 은 구두를 신었다. 구두는 처음부터 도로시의 발에 맞춘 것처럼 딱 맞았다.
마침내 도로시는 바구니를 들었다.

“따라와, 토토. 우리 에메랄드 시로 가서 위대한 오즈에게 캔자스로 돌아가는 방법을 물어보자.”

도로시가 말했다.

도로시는 문을 잠근 후 열쇠를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뒤에서 터벅터벅 따라오는 토토와 함께 길을 나섰다.

근방에서 몇 군데 길이 보였지만, 노란 벽돌이 깔린 길을 찾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시는 잰걸음으로 에메랄드 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은 구두가 단단한 노란 벽돌에 닿아 쨍쨍 소리를 냈다. 햇살이 환하게 빛났고, 새들은 예쁘게 노래했다. 도로시는 갑자기 고향을 떠나 낯선 나라 한가운데에 떨어진 여자아이답지 않게, 그다지 우울해하지 않았다.

길을 걷는 동안 시골 풍경이 어찌나 예쁜지 놀랄 정도였다. 길 양쪽으로 늘어선 깔끔한 울타리들은 예쁜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그 뒤로 곡식과 채소가 풍부한 밭이 펼쳐졌다. 뭉크킨들은 솜씨 좋은 농부여서 수확량도 많은 듯했다. 한참 후 도로시가 어느 집 앞을 지날 때 사람들이 그녀를 보기 위해 몰려나오더니 그녀에게 절을 했다. 도로시가 나쁜 마녀를 물리치고 자신들을 구속에서 풀어주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뭉크킨의 집들은 큰 돔 지붕을 얹은 둥그스름한 형태의 이상한 모양이었다. 집들은 하나같이 파랗게 칠해져 있었다. 이 동쪽 나라에서는 파란색이 가장 선호하는 색깔이었다.

저녁이 되자 도로시는 걷는 데 지쳐서 밤을 어디서 보낼지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때 다른 집들보다 유난히 큰 집 하나가 나타났다. 집 앞의 푸른 잔디밭에는 여럿이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작은 사람 다섯 명이 바이올린을 큰 소리로 연주하는 중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웃고 노래했다. 그들 옆에 놓인 큰 식탁에는 맛좋은 과일이며 견과류, 파이, 케이크를 비롯해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사람들은 도로시를 친절하게 맞이하며,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같이 밤을 보내자고 청했다. 이곳은 뭉크킨 나라에서 손꼽히는 부자의 집이었고, 그의 친구들이 모여서 악한 마녀의 속박에서 풀려난 것을 축하하고 있었다.

도로시는 배부르게 먹고, 뭉크킨 부자의 시중을 직접 받았다. 그의 이름은 보크였다. 도로시는 긴 의자에 앉아서 사람들이 춤추는 모습을 구경했다.

보크가 도로시의 은 구두를 보고 말했다.

“아가씨는 뛰어난 마법사인가보군요.”

“왜요?”

도로시가 물었다.

“은 구두를 신었고, 악한 마녀를 죽였으니까요. 게다가 흰 옷을 입었잖아요. 마녀와 여자 마법사만 흰 옷을 입는답니다.”

“제 옷은 파란색과 흰색 줄무늬인걸요.”

도로시는 옷의 주름을 펴면서 대답했다.

“그렇게 입어주시니 고맙군요. 파란색은 뭉크킨의 색깔이고, 흰색은 마녀의 색깔이거든요. 덕분에 저희는 당신이 다정한 마녀라는 걸 알 수 있지요.”

보크가 말했다.

도로시는 이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사람들은 그녀를 마녀로 보지만, 도로시는 자신이 우연히 회오리바람에 실려 이상한 곳에 온 평범한 소녀일 뿐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로시가 춤 구경에 싫증이 나자, 보크는 그녀를 집 안으로 안내하여 예쁜 침대가 있는 방에 데려다주었다. 침대보는 파란색이었고, 도로시는 그 위에서 아침까지 곤히 잤다. 토토는 옆의 파란 깔판에서 웅크리고 잠을 잤다.
도로시는 배불리 아침 식사를 하고는 뭉크킨 아기가 토토의 꼬리를 당기며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기가 소리를 지르면서 웃는 모습을 보니 퍽 즐거웠다. 모든 사람이 토토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이제껏 개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도로시가 물었다.

“에메랄드 시까지는 얼마나 먼가요?”

“아직 그곳에 가본 적이 없어서 나도 모릅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오즈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지요. 하지만 에메랄드 시까지는 먼 길이니 며칠 걸릴 거예요. 시골은 풍요롭고 상쾌하지만, 거칠고 위험한 곳들을 지나야 여정을 끝내게 될 겁니다.”

이 말에 도로시는 조금 걱정스러워졌다. 하지만 위대한 오즈만이 다시 캔자스로 돌아가게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돌아서지 않겠노라고 용기 있게 결심했다.

뭉크킨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도로시는 다시 노란 벽돌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몇 킬로미터쯤 가다가 잠시 멈춰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길 옆 담장 꼭대기로 올라가 앉았다. 담장 너머에는 너른 옥수수 밭이 펼쳐져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 허수아비가 보였다. 기둥 높이 매달린 허수아비는 새떼가 익어가는 옥수수에 다가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도로시는 손으로 턱을 괴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허수아비를 바라보았다. 지푸라기를 채운 작은 자루로 만든 머리통에는 눈, 코, 입이 얼굴을 표시하기 위해 그려져 있었다. 전에 어느 뭉크킨이 썼음직한 뾰족한 낡은 모자를 머리에 쓰고, 낡고 색이 바랜 파란 옷을 걸친 모습이었다. 몸통에도 지푸라기가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발에는 이곳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는 코가 파란 낡은 부츠를 신은 채로 옥수수 대 위로 솟은 기둥에 걸려 있었다.

도로시는 허수아비의 이상하게 칠한 얼굴을 차분히 바라보다가 그가 천천히 윙크를 하자 깜짝 놀랐다. 캔자스에는 윙크하는 허수아비가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잘못 봤다고 생각했지만, 곧 허수아비가 도로시에게 다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로시는 담장에서 내려와 허수아비에게 다가갔고, 토토는 짖으면서 기둥 주변을 뛰어다녔다.

“어서 와.”

허수아비가 목이 쉰 듯한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말을 할 줄 알아?”

도로시가 놀라서 물었다.

“물론이지! 안녕?”

허수아비가 말했다.

“그래, 너도 안녕?”

허수아비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난 별로 안녕하지 못해. 밤낮 없이 여기 걸려서 까마귀만 쫓고 있자니 너무 지겨워서 말이야.”

“내려오지 못하니?”

도로시가 물었다.

“응. 내 등이 기둥에 걸려 있거든. 네가 나를 기둥에서 빼준다면 정말 고마울 텐데.”

도로시는 양팔을 벌려서 허수아비를 기둥에서 빼냈다. 허수아비는 지푸라기로 만들어져서 아주 가벼웠다.

땅바닥에 내려서자 허수아비가 말했다.

“정말 고마워. 새 사람이 된 기분이야.”

도로시는 허수아비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지푸라기 인간이 말을 듣고, 인사를 건네고, 자신과 나란히 걷는 모습을 보자니 이상야릇하기만 했다.

허수아비는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고 나서 물었다.

“너는 누구니? 어디로 가는 거야?”

도로시가 대답했다.

“내 이름은 도로시고, 에메랄드 시로 가는 길이야. 위대한 오즈에게 나를 캔자스로 보내 달라고 부탁하려고.”

“에메랄드 시가 어딘데? 또 오즈는 누구야?”

허수아비가 물었다.

“어머나, 그걸 몰라?”

도로시가 놀라서 물었다
.
“응, 몰라. 난 아무것도 몰라. 너도 알다시피 나는 지푸라기로 만들어져서 뇌가 없거든.”

허수아비가 서글프게 대답했다.

“저런. 정말 안타깝다.”

“내가 너와 함께 에메랄드 시에 가면, 그 위대한 오즈가 나한테 뇌를 줄까?”

허수아비가 물었다.

도로시가 대답했다.

“그거야 모르지만, 같이 가고 싶으면 그렇게 해. 오즈가 뇌를 안 준다고 해도 지금보다 나빠질 것은 없으니까 말이야.”

“맞는 말이야.”

허수아비가 말했다. 그는 자신 있는 말투로 덧붙였다.

“내 팔과 다리와 몸은 지푸라기여도 괜찮아. 다치지 않으니까. 누가 내 발을 밟거나 몸에 바늘을 꽂아도 상관없어. 감각이 없거든. 하지만 사람들이 나를 ‘바보’라고 부르는 건 싫어. 내가 머리에 너처럼 뇌를 가지는 대신 지푸라기를 채운 채로 살아야 한다면 뭘 제대로 알 수 있겠어?”

“네 기분이 어떨지 알겠어. 나랑 같이 가면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 달라고 오즈에게 부탁해볼게.”

도로시는 허수아비가 진심으로 가여웠다.

“고마워.”

허수아비가 감사해하며 대답했다.

그들은 다시 길로 향했고, 도로시는 허수아비가 담장을 넘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들은 에메랄드 시를 향해 노란 벽돌 길을 걷기 시작했다.

토토는 처음에는 일행이 느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짚더미 속에 쥐의 집이라도 있다고 의심하는 양 킁킁대며 허수아비 주위를 맴돌았다. 또 사납게 으르렁거리기도 했다.

“토토는 신경 쓰지 마. 물지 않아.”

도로시가 새 친구에게 말했다.

“아, 난 안 무서워. 어떻게 지푸라기한테 상처를 주겠어? 내가 바구니를 들어줄게. 난 지치지 않으니까 괜찮아. 내가 비밀을 말해줄까?”

허수아비는 계속 걸으면서 말을 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무서워하는 게 딱 하나 있어.”

“그게 뭔데? 너를 만든 뭉크킨 농부?”

도로시가 물었다.

“아니, 불붙은 성냥이야.”

허수아비가 대답했다.




제4장 숲을 지나서


몇 시간이 지나자 길이 험해지기 시작했고, 걷기가 매우 힘들어졌다. 허수아비는 울퉁불퉁한 노란 벽돌에 자주 걸려 넘어졌다. 때때로 벽돌이 깨지거나 빠져서 구멍이 생긴 곳도 있어, 토토는 뛰어넘고 도로시는 빙 돌아야 했다. 뇌가 없는 허수아비는 그대로 걸어가다가 구멍에 빠져 단단한 벽돌 위로 자빠졌다. 하지만 다치지는 않았고, 도로시가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러면 허수아비는 도로시와 함께 자신의 실수를 비웃었다.

좀더 걸어가자 버려진 들판이 나타났다. 집도 과일 나무도 없었고, 가면 갈수록 더 칙칙하고 쓸쓸한 시골 풍경이 되었다.

정오에 그들은 냇가 근처의 길 옆에 앉았고, 도로시가 바구니를 열어 빵을 꺼냈다. 도로시가 빵조각을 건넸지만 허수아비는 사양했다.

“나는 배가 고픈 적이 없어.” 허수아비가 말했다. “다행스런 일이지. 난 입이 그림이잖아. 먹으려고 구멍을 내면 지푸라기가 삐져 나와서 머리통 모양이 엉망이 될 거야.”
지당한 말이었다. 도로시는 고개를 끄덕인 후 빵을 먹기 시작했다.

“네 얘기 좀 해봐. 네가 살던 곳에 대해서도.”

도로시가 식사를 마쳤을 때 허수아비가 물었다. 도로시는 캔자스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든 것이 잿빛인 그 고장의 이야기를. 그리고 돌풍을 타고 이 이상한 오즈의 나라에 오게 된 사연까지. 허수아비는 그녀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말했다.

“이 아름다운 나라를 떠나 ‘캔자스’라는 메마르고 우중충한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너는 뇌가 없어서 모를 거야. 인간들은 아무리 칙칙한 곳이라도 고향에서 살고 싶어해. 다른 곳이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집 같은 곳은 없다고.”

허수아비는 한숨을 쉬었다.

“당연히 나야 모르지. 나처럼 머리에 짚이 차 있다면 다들 아름다운 곳에서 살려 할 테고, 그럼 캔자스에는 아무도 없어지겠지. 너희가 뇌를 가져서 캔자스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인걸.”

“쉬는 동안 얘기나 해주지 않을래?”

허수아비는 도로시를 못마땅한 듯 쳐다보다가 대꾸했다.

“나는 살아온 시간이 워낙 짧아서 아는 게 없어. 겨우 그저께 만들어진걸.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몰라. 다행히 농부가 머리를 만들 때 가장 먼저 귀를 그린 덕분에, 당시 상황을 들을 수 있었어. 다른 뭉크킨이 옆에 있었는데, 처음 들은 건 그 농부의 말소리였지.

‘귀가 마음에 들어?’

‘똑바르지 않은데.’ 곧 다른 사람이 말하더군.

‘괜찮아. 귀는 다 마찬가지니까.’ 농부가 그렇게 대꾸했는데, 사실 맞는 얘기지.

‘이제 눈을 그려야겠군.’ 농부는 그렇게 말하고 오른쪽 눈을 그렸어. 곧 내 앞에 있는 그가 보였어. 무척 궁금해서 사방을 둘러봤지. 그때 처음으로 세상을 본 거야.

‘눈이 예쁜데. 눈에는 파란색이 어울린다니까.’ 지켜보던 뭉크킨이 말했지.

‘다른 눈은 더 크게 그려야겠어.’ 농부가 말했지. 그가 두 번째 눈까지 다 그리자 한결 잘 보였어. 농부는 코와 입을 그렸지만, 당시에는 입을 뭐에 쓰는지 몰라서 아무 말도 안 했지. 그들이 내 몸통과 팔다리를 만드는 모습이 재미있었어. 마침내 그들이 머리통을 고정시키고 나니 어깨가 으쓱해졌지. 내가 보통 인간처럼 된 줄 알았거든.
‘이 친구가 까마귀 떼를 쫓겠지. 사람이랑 똑같이 생겼으니까 말이야’라고 농부가 말했어.

‘사실 인간이지 뭐.’ 다른 뭉크킨이 하는 말에 내심 나도 맞장구쳤지. 농부는 나를 겨드랑이에 끼고 옥수수 밭으로 가서 네가 본 긴 막대기에 날 세워두었어. 농부와 그 친구는 곧 날 혼자 두고 가버렸지.

이렇게 버려지는 건 싫어서 따라가려 했지만 발이 땅에 닿지 않았고, 난 그 막대기에 걸려 있어야 했어. 방금 만들어졌으니 생각할 거리도 없고 정말 외로웠지. 까마귀 떼와 다른 새들이 옥수수 밭으로 날아왔지만, 날 보자마자 뭉크킨으로 알고 날아가버렸어. 그걸 보자 기분이 좋았고,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았지. 그러다 늙은 까마귀 한 마리가 가까이 날아와서 날 찬찬히 보더니 어깨에 걸터앉아 말했어.

‘농부가 고작 이런 걸로 날 속이려 들다니. 약간의 분별력만 있다면 어느 까마귀든 네가 짚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 거야.’ 까마귀는 내 발치로 내려가서 옥수수를 마음껏 쪼았지. 그가 아무 해도 입지 않는 걸 보고서 다른 새들도 옥수수를 먹으러 왔고, 곧 내 주위에 새 떼가 모여들었지.

내가 그리 훌륭한 허수아비가 못된다는 게 드러나 서글펐지만, 늙은 까마귀는 ‘네 머리에 뇌만 있다면 인간 같을 거고, 심지어 몇몇 인간보다 나을 거야. 까마귀든 인간이든 뇌만이 이 세상에서 가질 만한 가치가 있지’라고 했어.

까마귀 떼가 가버린 후 나는 그 말을 곰곰이 생각했지. 그리고 나서, 뇌를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기로 결심했어. 운이 좋았던 덕에 네가 와서 나를 막대기에서 내려주었고, 네 말을 들으니 우리가 에메랄드 시에 도착하면 위대한 오즈가 나한테 뇌를 줄 것 같아.”

“그렇게 뇌를 갖고 싶어하니 꼭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
도로시가 성의껏 대답했다.

“그래, 정말 갖고 싶어. 자기가 바보라는 것을 아는 건 언짢은 일이거든.”

“자, 가보자.”

소녀가 말했다. 도로시는 바구니를 허수아비에게 건넸다.

더 이상 길가에는 울타리가 없었고, 대신 거칠고 경작하지 않은 땅이 이어졌다. 저녁 무렵 그들은 거대한 숲에 닿았다. 큰 나무들이 빽빽이 자라 노란 벽돌 길 위로 나뭇가지들이 닿았다. 가지 틈으로 빛이 들지 않아서 어두컴컴했지만, 도로시 일행은 멈추지 않고 숲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허수아비가 말했다.

“들어가는 곳이 있으면 반드시 나오는 데가 있을 거야. 길 끝에 에메랄드 시가 있을 테니까 길을 따라가야 해.”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

도로시가 대꾸했다.

“그렇겠지. 내가 아니까 말이야. 뇌가 있어야 알 수 있는 거라면, 나는 그런 말을 못했겠지.”

허수아비가 대답했다.

한 시간 후 빛이 사라졌고, 그들은 어두운 숲 속을 걷게 되었다. 도로시는 앞을 볼 수 없었지만, 개들은 어둠 속에서도 잘 보는 법이므로 토토는 앞을 볼 수 있었다. 허수아비 역시 낮처럼 잘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서 도로시는 그의 팔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도로시가 말했다.

“혹 집이나 쉬어갈 만한 곳이 보이면 꼭 알려줘. 어둠 속에서 걷는 것은 불편하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허수아비가 걸음을 멈추었다.

“저기 오른편에 나무로 지은 작은 오두막이 보여. 거기로 갈까?”

“그래, 그러자. 너무 피곤해.”

소녀가 대답했다.

허수아비는 도로시를 데리고 나무들을 지나서 오두막으로 향했다. 도로시가 집에 들어가니, 구석에 마른 나뭇잎으로 만든 침대가 있었다. 도로시는 곧장 침대에 누워 토토를 옆에 끼고 잠들었다. 고단함을 느끼지 못하는 허수아비는 한쪽 구석에 서서 아침이 오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추천 (2) 선물 (0명)
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4/02/07 20:17:16

지도도없이 네이비도없이 무작정 에메랄드시로 찾아가는 도로시일행이 참 대단한듯요.
아무리 칙칙한 곳이라도 사람은 고향에서 살고싶어하고 집이 최고라는 말이 와닿네요.

나단비 (♡.252.♡.103) - 2024/02/07 20:36:17

집은 안식처죠. 마음의 고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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