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소설 - 어느날 갑자기 1

3학년2반 | 2022.02.08 07:50:23 댓글: 0 조회: 459 추천: 0
분류엽기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7223


(이 이야기에 나오는 실제 지명은 사정상 밝힐 수 없습니다.)


쉴 곳을 잃은 자는 방황할 수 밖에 없다.
때로는 살의를 품고......






때늦은 겨울비가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싸늘한 겨울 습기가 얼굴을 스치자, 재원이와 함께 만났던 그 여자
가 생각났다.
재원이, 자식... 아직도 죽었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 여자를 만난 날도 이렇게 스산한 날씨였다.
재원이는 내키지 않았던 내게 귀찮을 정도로 그 여자를 만나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항상 들어갈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병원은 차가운 느낌을 준다.
특히 철문으로 닫혀있는 정신병동에 들어갈 때는 일말에 공포까지
느껴진다. 재원이가 정신과 레지던트 선배에게 한참을 졸라 허락을
미리 받았다고 했지만, 워낙 패쇄적이고 엄격한 곳이라 밤 늦은 시
간에 남의 눈을 피해 찾아가야 했다. 재원이 말로는 자기와 친한
선배가 당직 일때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
만, 그날 우리가 찾아간 것이 알려진다면 병원에서는 큰 문제가 될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다는 것이었다.
음산하고 캄캄한 정신병동 복도를 따라 한참을 들어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병원 제일 구석에 있는 격리실이었다.
우리를 안내해준 선배 레지던트는 그 격리실 문을 열기전에, 약간
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재원이에게 얘기했다.

"조심해라! 무슨 일 있으면, 즉시 뛰어나와서 날 부르고!
스테이션에 있을테니.."

그 말에, 생각없이 여기까지 따라온 나는 갑자기 으시시함이 느껴
졌다. 격리실안에 말로만 듣던 미친 살인마라도 있다는 듯한 말투
였기 때문이었다.

"철커덕"

격리실 문을 여는 소리가 그렇게 크게 느껴졌다.
재원이가 격리실안의 불을 켜자, 서너평 남짓한 하얀 병실에 침실
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졌고,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정신병
자들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압박복을 입고, 침대에 묶여져 있는 것
이었다. 꽤 발작이 심한 환자처럼 보였다.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섬?함이 느껴졌다. 광기와 공포가 뒤섞인 눈빛이었다.
첫 눈에 봐도 그 여자가 험한 일을 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재원이가 구석에 있는 의자를 두 개 끌고와 그여자 머리맡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를 시작했다.

"지연씨, 제가 지연씨 얘기 믿어줄 신문기자를 데리고 왔으니
그 얘기 다 해주세요...
이 분은 정말 지연씨 얘기 다 들어줄거예요.."

재원이의 거짓말덕분에 갑자기 기자가 된 나는, 누운채로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시선을 나를 바라보는 그 여자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치곤 괴기할 정도로 낮은 목소
리로 하지만 앙칼지게 내게 얘기했다.

"기자 아저씨, 내 모든 얘기 다 해줄테니,
제발 날 여기서 끄내줘요!
여기 이렇게 있다간 그 사람이 나를 죽이러 온다니까!"

나는 머뭇거리며 최대한 도움이 되어 드리겠다고 했지만, 정신병자
를 속인다는 것이 마음이 걸렸다. 하지만 그 여자에게서 풍기는 괴
기함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무슨 얘기인지 꼭 듣고 싶어졌다.
그렇게 해서 재원이 나는 침대에 묶여있는 미친사람일지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그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 여자는 뭔가에 쫓기는 듯한 초조함이 보였고, 얘기 중에도 계속
주위를 돌아보는 등 불안해 보였다.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다.
그 여자가 들려준 얘기는, 그 여자가 왜 그렇게 불안하고 두려움에
떨게 되었는지 설명 아닌 설명이었다.
어떤 것이 진실일 줄은 아직 모르지만...
아니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아마 제 얘기를 믿지 않을 거예요..
여기 의사들도 아무도 믿지 않았으니까...
아직도 그 사람이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을거예요.
꿈속에서 까지 나타나 나를 괴롭히고 있어요.
언제가 나를 데리러 오겠죠.
지옥에서..
그러니 빨리 나를 여기서 내보내줘요! 제발!!!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통행료 받는 일을
했었어요. 아주 단조롭고 평화로운 일이었죠..
그 일을 5년동안이나 하고 있었죠.
아시다 시피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아니에요.
다만, 매연을 들이마시며 하루 8시간씩 자리에 앉아 돈을 받는 일
이란 단조로움과의 싸움이지요.
일이 단순할수록 스트레스도 많은 것 같았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담당하는 톨게이트는 충청북도 P시로 나가는 곳이었어요.
아주 작은 곳이었죠.
통행료 받는 곳이 왕복 6개 밖에 없고, 그나마 평상시에는 3곳을
운영해요. 추석 등의 명절때를 제외하고는요..
추석때 말이 나와서 그렇지, 그때는 정말 난리가 나요.
바로 우리 톨게이트를 지나면 큰 공원묘지가 있었거든요.
추석때만 되면, 하루종일 한번도 쉬지 않고 지나가는 차들에게 통
행료를 받아야 해요.
이런 일을 하다보면 별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요.
돈 없다고 배째라하는 식의 운전사들, 술취한 채로 운전하고 오다
가 톨게이트에 차를 박는 사람들, 졸고 있다 통행료를 내고 있던
앞차를 박아 싸우는 사람들, 통행증을 잊어버렸다며 그냥 통과시켜
달라는 사람들, 납치범들, 범죄자들, 차 막혔다고 욕하고 가는 사람
들... 정말 별의별 사람들을 다 보게 되요..
하지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말 없이 돈만 내고 가죠.
어떤 날은 하루종일 한 마디도 않하고 끝날때도 있어요.
사람들과 차는 많이 지나가지만, 마치 무인도에 혼자 앉아 있는 기
분이지요..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이 되면, 하루종일 문을 열고 일해야 하기
때문에 괴로울 때도 많아요..
눈이나 비 올때도 그렇고요..
그런데 그 사람은 바로 비오는 밤마다 나타났어요...
날씨가 스산해지고, 비가 내리는 밤이면 항상 우리 톨게이트를 지
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그 사람인줄 알게 되었냐고요?
처음에는 그냥 우연인줄 알았죠..
하지만 세상에는 우연은 그리 많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가을 어느 비오는 날이었어요.
작년에는 여름에 가뜩이나 비가 많이 와서 전국이 난리가 났었는
데, 가을에도 역시 비가 많이 왔어요.
가을비 내리는 밤은 특히 톨게이트에서 일하기에는 참 나뻐요. 낮
에 비해 쌀쌀하고 손이 시려울 정도죠.
그날도 평범한 날이었죠. 다만 밤에 혼자서, 간간히 지나가는 차의
통행료를 받는다는 것이 무료할 따름이었죠.
같이 당직인 숙자언니는 피곤하다며, 내게 톨게이트를 맡기고 톨게
이트 건너편에 있는 사무실로 자러 들어갔어요.
밤에는 돈받는 톨게이트는 하나만 열거든요.
그런데 그 날따라 비가 심하게 내려서인지, 정산소안의 전등이 나
갔어요. 통행료 정산기는 말짱한데 전등만 나간 거예요..
사실 그런 일은 종종 있거든요, 그럴 때 대비해서 손전등과 촛불은
항상 준비되어 있죠. 돈은 줘야 되니까요..
어떻게 보면 불이 나간 날은 재수 없는 날이지요.
어두컴컴하고 한적한 곳에 혼자 앉아 밤을 지새야 하는 것이니까
요. 더구나 지방의 소규모 톨게이트는 아시다시피 인적이 가장 뜸
한 외곽이 있잖아요.
비까지 내리는 음산하고 으시시해졌어요.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등
을 들으면서 빨리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죠..
밤 3시쯤 되었을까..
지나가는 차도 뜸해지고 저도 슬슬 졸려오기 시작했어요.
비는 그칠줄 모르고 내리고 있었고, 잠깨라고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는 DJ의 졸린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잘 나오던 라디오가 지지직거리더니 잡음만 들리는
것이었어요. 몇번 만져봐도, 계속 잡음만 들렸어요.
비 때문인가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 고속도로쪽을 쳐다보니, 빗속을
뚫고 천천히 들어오는 차 헤트라이트가 보이는 것이었어요.
하루에도 수백번이상 보는 헤트라이트 불빛인데, 그때는 이상할 정
도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요. 아니에요, 정확히 말하면 이유모를
무서움이 느껴진 것이죠.
어둠속에 혼자 있다는 것이 갑자기 무섭게 느껴진것이죠..
그 불빛은 저의 두려움을 아는 것처럼 천천히 다가왔어요.
나는 괜히 겁먹을 필요없다며, 손을 내밀어 표를 받을 준비를 했어
요. 그 차는 비속에서 천천이 미끌어져와 정산소 옆에 섰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를 운전하는 사람의 얼굴이 잘 안보이는 거예
요. 원래 정산소에 앉아있으면, 운전하는 사람의 얼굴은 다 볼수 있
거든요. 정산소는 검문 목적도 있고 해서, 그렇게 만들어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얼굴은 이상할 정도로 어둠에 쌓여
보이지 않았어요.
그럴 수도 있겠지라는 생각에 표를 받으려고 손을 내미는데. 갑자
기 그 사람으로부터 뭐가 썩는 듯한 기분 나쁜 냄새가 확 나는 것
이었어요.
그러고는 어두운 차안에서 불쑥 손이 나와, 표와 함께 돈을 내밀었
어요. 자기가 낼 금액을 이미 아는지, 돈을 같이 내는 것 같았어요.
저는 괜히 머리 속을 스치는 불길한 생각을 지우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돈과 표를 받았아요.
그런데, 그 표와 돈이 젖어있는 것이었어요.
빗물 때문에 젖었으려니 하고, 표에 묻은 물기를 닦기 위해 책상위
에 있는 휴지를 집어들었어요. 젖은 채로 표를 정산기에 넣으면 고
장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 순간 그 차는 거스름돈도 받지 않은채 출발해버렸어요,
너무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당황한 저는 멀어지는 그 차의 뒷
모습을 쳐다보았지만, 번호판은 물론 아무 것도 제대로 볼 수 없었
어요.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그 차의 뒷모습을 보고, 저는 한숨을 내쉬며
그 차 운전사 가짜 돈을 내고 도망가는 구나 생각했어요. 밤이 되
면 가끔 그런식으로 아무런 종이나 내놓고 도망가버리는 차들이 있
거든요.
그 차도 그런 차인줄 알았아요.
혹시나하고 젖어있는 돈의 액수를 확인하기 위해, 손전등을 비춰보
았어요.
처음에는 색깔이 이상해 돈이 아닌 줄 알았어요.
시커먼게 묻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상했어요.
그때 번쩍하고 번개가 쳤어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사방은 환해졌죠.
그 순간 저는 제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너무 놀라 움직일 수 없었어요.
돈과 표에 묻은 것은 빗물이 아니라,
새빨간 핏물이였던 것이었어요.
몸서리를 치며, 그 피묻은 표와 돈을 치웠어요.
그런데 다음 순간 지직거리던 라디오가 제대로 켜지고, 정산소안의
불도 들어왔어요.
이상하고 무섭기까지 했어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표와 돈을 줏어들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어요.
그 차에 탔던 사람이 단지 코피를 흘렸다거나, 손을 베서 피가 묻
었으리라 생각하기로 했어요. 피묻은 표와 돈을 집어들자, 왠일이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등골이 오싹해졌어요.
그래서 대충 핏물을 휴지로 닦아내고, 말리기 위해 책상 구석에
치워놨어요.
한참을 멍하니 있는데, 숙자 언니가 정산소로 들어왔어요.
이제 자기가 교대해줄테니, 사무실에서 눈좀 붙이라고 했어요.
그날 밤은 더 이상 정산소에 혼자 있기가 무서워 그냥 사무실에 들
어갔어요.
사무실 당직실에 누워, 그 피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잠이 들
었어요.
기억나지 않은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데, 웅성웅성하는 소리 때문에
잠이 깼어요. 눈을 떠보니 어느새 환한 아침이더군요.
밤새 내리던 비는 그쳐있고..
사무실에는 출근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고요. 저는 퇴근 준비나 할 생각으로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는
데, 전화를 받고 있던 소장님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이었어
요. 사무실안에 있던 우리들은 소장님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에 갑
자기 조용해졌어요.
수화기를 내려놓은 소장님은 자기에 집중하고 있는 우리들을 돌아
다보더니, 심각한 목소리로 그 충격적인 얘기를 해주었어요.

'여러분, 이제부터 야간 근무할 때는 각별히 조심하도록 하세요.
지금 들은 얘긴데,
어젯밤에 경상남도 L톨게이트에서 야간 당직을 서던
직원이 살해당했데요.
그것도 칼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군요.
뭐, 팔이 잘리고, 목이 난도질당한 채로 발견되었데요..
아직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통행료를 노린 강도일 것 같으니
각자 조심하도록 하세요..
휴.. 세상이 너무 무서워지고 있어...'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속이 뭔가 맞은 듯한 충격으로
멍해졌어요.
전날 밤 받은 피묻은 그 표가 바로
L 톨게이트로부터 온 것이었어요.....




톨 게이트 <중>

그 여자를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갑자기 담배 생각이 났다.
이런 믿기지 않는 얘기를 들을때는 담배라도 한 대 피면서 듣고 싶었
다. 담배를 꺼내며 재원이의 눈치를 살폈지만, 고개를 가로젖는 모습
에 다시 주머니에 담배를 집어넣었다.
묶여진 채로 고개만 움직이며 얘기를 하고 있는 그 여자와, 의자에 앉
아 이상한 얘기를 듣고 있는 우리 모습이 기묘하게 느껴졌다.
재원이가 누워있는 그녀에게 물을 먹여주었고, 그 여자는 아직도 할
얘기가 많은 지 숨돌리기가 무섭게 얘기를 계속했다...


"너무 놀란 저는 전날 밤 제가 경험했던 얘기를 해 주었어요.
소장님은 좀 심각하게 받아들었지만, 나머지 직원들은 반신반의했어
요. 사실 다들 비슷한 경험들을 해봤거든요. 받은 표와 돈에 피가 묻
어있었던 적도 있고, 숙자 언니는 자기가 받아든 표에 어떻게 된 일인
지 냄새가 고약한 대변이 묻어져 있는 적도 있었대요.
그러니 내가 봤던 그 사람이 살인범이라는 얘기는 잘 믿겨지지 않나
봤어요.
소장님이 경찰에 전화해 신고해서 제가 받은 피묻은 표와 돈을 가져
갔지만 피를 닦아내고 밤새 말려졌기 때문에 희미한 핏자국만 남아있
는 상태였어요.
이번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는 젊은 형사가 직접 그 표를 가지러 왔어
요. 그 형사 말로는 그 피가 살해당한 피해자의 피 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제일 먼저 할 일인데, 이 정도 핏자국으로는 밝혀내는데 일주일
이상 걸린다고 했어요. 무슨 DNA 검사도 해야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형사가 살해당한 검표원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줬는데, 정
말 끔찍했어요. 살해당한 시체의 모양을 보면, 차를 몰고 톨게이트로
들어온 살인범이 표를 받기 위해 손을 내민 피해자의 손을 잡아당긴
다음에 날카로운 칼로 얼굴과 목을 난자했데요. 그리고 발버둥치던 그
불쌍한 피해자의 팔을 잘라버렸데요.
범행 현장을 보면 피가 사방으로 튀어 정말 끔찍하다고 했어요. 피해
자는 즉시 죽지 않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 출혈과다로 서서히 죽
어 갔데요.
저는 그 얘기를 듣고 내가 받았던 그 표에 묻어있던 피가 그런 끔찍
한 살인의 자취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다
리 힘이 쫙 풀렸어요.
그래도 곧 범인을 잡을 것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그 젊은 형사의 말에
나름대로 안심을 하고 퇴근했어요.
집에 가서도 그 얼굴 없는 사람의 악몽에 시달렸어요.
그리고 아무 일도 없이 며칠이 지나갔어요.
저도 처음에 느꼈던 공포심도 점차 사라지고, 일상적인 일로 돌아가게
되었어요. 하지만 경찰은 아직 그 톨게이트 살인범의 단서조차 못 잡
았다고 했어요. 제가 준 표에 묻은 피검사 결과도 나오지 않았고요.
그래도 며칠 동안 무서워 야간 당직을 피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부
탁해 당직을 계속 바꿨던 거예요.
며칠은 그런 식으로 당직을 안 했지만, 결국 내 차례가 돌아왔어요.
야간 당직에 대한 두려움도 별로 없어지고해서 그냥 하기로 했어요.
저녁 먹고, 톨 게이트로 나서는데 비가 한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어
요. 비가 오니 괜히 불길한 기분마저 들었어요.
번잡한 퇴근 시간이 지나자, 금새 톨 게이트는 적막이 흐르기 시작했
어요. 가늘던 비는 더 굵어졌어요.
비가 오는 밤이 되니, 괜히 그날 밤이 생각났어요.
어둠을 헤치고 나타나는 헤트라이트만 보면 가슴이 괜히 철렁해졌어
요. 우습게 생각하시죠.
톨 게이트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자동차 불빛만 보면 무서워한다는게.
몇 번을 마음을 졸이면서 빨리 밤이 새기를 바랬어요.
시간은 참 느리게 갔어요.
밤 3시쯤 되서 같이 당직을 서게 된 경수엄마와 교대를 했어요.
몇 시간만 버티면 차도 많아지고 날도 밝아올 것 같았어요.
하지만 아직 주위는 칠흙 같은 어둠에 둘러 쌓여있고, 비는 점점 거세
지고 있는 거예요. 두려움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라디오를 켰어요.
한 30동안 차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아요.
시간이 좀 지나자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어요.
그때 갑자기 정산소 전등이 지지직거리고 깜박거리기 시작했어요.
몇번을 지직거리다가 전등이 나갔어요.
동시에 라디오도 꺼졌어요.
갑자기 그날 밤 생각이 나서 겁이 덜컥 났어요.
죽음 같은 적막과 어둠이 정산소 주변을 덮고 있었어요.
단지 빗소리만 들렸지만, 그 빗소리는 다른 소리들을 차단하고 있어
더욱 무서워졌어요. 어디서 뭔가가 나타날지 몰랐어요.
손전등과 촛불을 켜야 하는데, 손이 덜덜 떨려 제대로 켤 수 없었어
요. 마음 같아서는 길 건너편에 있는 사무실로 뛰어들어가고 싶었지만
어둠 속으로 뛰어나가는 것도 무서웠어요.
그때였어요.
저 멀리 고속도로쪽에서 헤트라이트 불빛이 하나 다가오는 것이 보였
어요. 그 불빛을 보는 순간 온몸이 얼어붓는 듯한 두려움이 느껴졌어
요.
점점 다가오는 그 자동차 헤트라이트는 마치 악마의 눈처럼 느껴졌어
요. 왠지 모르게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는 불빛 같았어요.
그 불빛을 보고 있으려니, 온 몸에 힘이 풀리고 너무 무서워서 손하
나 움직일 수 없었어요.
정말 무서워서 미칠 것 같았어요.
빗속을 뚫고 그 차는 미끄러져 왔어요.
이윽고 톨게이트로 진입했어요.
그리고는 내가 있던 정산소 앞에 차를 세웠어요.
저는 덜덜 떨면서, 간신히 그 차쪽을 바라보았어요.
직감적으로 그날 밤 그 차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어두워서 차 색깔은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검은 색이나 어두운 색
같았어요. 차속은 아무 것도 안 보이고...
창문이 열리고, 표와 돈을 든 손이 나왔어요.
그날 났던 그 뭔가 썩는 듯한 기분나쁜 냄새가 확 났어요.
저는 무서워서 손을 내밀어 그 표와 돈을 받을 수 없었어요.
그냥 그 차가 지나가길 간절히 바랬어요.
하지만 그 차는 시동을 건 채 그냥 서 있었어요.
손에 그 표와 돈을 든 채.
마치 저를 기다리는 죽음의 사신같았어요.
두려움으로 미칠 것 같았어요.
갑자기 "빵"하고 그 차가 경적을 올렸어요.
빨리 표와 돈을 받아가라는 명령같았어요.
이상하게도 저는 그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어요. 내 의지와 관계없이
손을 뻗어 그 표와 돈을 받았어요.
저는 자동차 안 어둠 속에서 칼아 튀어나와 내 손을 자를 것 같아 숨
마저 쉴 수 없었어요.
그 표와 돈을 받는 순간, 갑자기 그 차는 출발해버렸어요.
그 차는 이번에도 쏜살같이 어둠속으로 사라졌어요.
나는 그 차가 주고 간 표를 쥔 채로 움직일 수 없었어요.
떨리는 손으로 그 표와 돈을 확인하기 위해, 손전등을 켰어요.
확인하는 순간 저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번에도 표와 돈에 시뻘건 피가 범벅이 되어있던 거예요.
그 시뻘건 피에 충격을 받아 저는 의식을 잃었어요...

누군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것 때문에 의식을 차릴 수 있었어요.
간신히 눈을 떠보니, 같이 당직을 서던 경수엄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얘기를 들어보니, 경수 엄마가 새벽 4시반 쯤 당직을 교대해 주려고
정산소로 왔는데, 제가 기절해 있었다는 거예요.
한손에는 손전등을 쥐고 있는 채로.
저는 놀라서 경수 엄마에게 그 표에 대해 물어보았죠. 경수 엄마는 그
런 피묻은 표는 보지도 못했다고 했어요.
그 말에 충격을 받은 저는, 어안이 벙벙한 체 나를 보고 있는 경수 엄
마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산소 문을 열고 뛰어나가 비를 맞으
면서 미친 듯이 그 표를 찾아봤어요.
손전등을 가지고 찾다보니, 바로 정산소 앞에 떨어진 표 한 장을 발견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빗물에 씻겼는지, 그 표에는 핏자국이 거의
않보였어요.
이번에는 진입지가 경상북도 M 톨게이트로 되어있는 표였어요.
경수 엄마는 그 표를 가지고 멍하는 서있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
보았어요.
저는 제가 경험했던 일들을 경수엄마에게 설명했지만, 경수 엄마는 오
히려 제 말을 믿지않고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았아요.
할 수 없이 저는 소장님이라도 빨리 출근하는 것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어요. 소장님이라면 제 얘기를 믿어 줄 것 같았어요.
내가 피곤해 보인다며, 경수엄마는 저를 사무실에서 쉬게 했어요.
아침이 되자 한 사람씩 출근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사람들에게 전날밤 또 그 차가 피묻은 표를 주고 갔다고 말했지
만, 다들 별로 믿지 않는 눈치였어요.
소장님이 출근하지 마자, 저는 또 그 차를 봤다고 얘기했죠.
하지만 이번에는 소장님도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이 저를 대했어요.
똑같은 일이 똑같은 사람에게만 계속 일어난다는 것이 좀 이상했나봐
요. 다들 제가 졸다가 꿈꾼 것을 착각했거나, 그냥 지어낸 얘기로 생
각했어요
아무도 제 말을 안 믿어주자,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았어요.
소장님도 제가 피곤해 보인다고, 일찍 들어가 쉬라고 하는 거예요.
할 수 없이 퇴근 준비를 하는데 소장님에게 전화가 한통 왔어요.
아무 생각없이 전화를 받던 소장님의 표정이 갑자기 변하더니, 목소리
가 높아졌어요.

'뭐라고요? 경상북도 M 톨게이트라고요?
이번에도 똑같단 말이예요?'

M 톨게이트라는 말을 듣자 저는 불길한 예감이 들면서, 무서워졌어요.
전화를 끊은 소장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얘기했어요.

'살인사건이 또 발생했데요.
이번에는 경상북도 M 톨게이트에서 일어났데요.
지난번과 똑같이 정산소에서 표 받던 직원이 팔을 잘린채로
처참하게 죽어있는 것이 발견되었다네요.
어쩌면 지연씨가 본 그 차에 진짜 범인이 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휴..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야?'

다들 그 얘기를 듣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어요.
그런데 그때 저는 벽에 걸려있는 고속도로 지도를 보고 눈을 땔 수
없었어요. 왠지 지도에 자꾸 맘에 걸리는 것이 있었지만, 잘 알 수 없
었어요.

그것을 깨닫는 순간, 저는 멍할 정도의 전율과 두려움으로 들고 있던
커피잔을 떨어뜨렸어요..
처음에 살인사건이 난 경상남도 L톨 게이트와 두 번째 살인사건이 발
생한 M 톨 게이트 사이에는 3개의 톨 게이트가 있었어요. 그런데 두
번째 살인 장소인 M 톨 게이트로부터 4번째에 위치한 톨 게이트는
바로 우리 톨 게이트였어요.
지도에 따른 다면,
다음 살인은 바로 우리 톨 게이트에서 일어난다는 얘기였죠.....


두 번째 사건이 있은 후, 모두들 공포에 떨었어요...
특히 야간 당직은 누구도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더구나 저는 다음번
에는 우리 톨게이트에서 살인이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더더욱
무서웠어요. 그래서 고속도로 관리공단 측에서는 모든 톨게이트에 호
신용 가스총을 비치하고, 야간 당직은 당분간 남자 직원들만 세우기로
했어요. 경찰의 추리에 의하면, 그 살인범이 정신 이상자이거나, 톨게
이트만 노리는 살인 강도라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그 살인범은 현장에서 살인만 했지 돈을 훔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는 거예요. 단지 한적한 톨게이트를 골라 표 받는 직원들을 잔
인하게 죽여왔다는 얘기가 들려왔어요.
그러니 더욱 무서워졌죠. 차라리 강도면 그래도 난데, 이건 살인을 일
삼는 싸이코라니...
여하튼 제가 목격했던 그 차가 살인범이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
기에 다시 그 젊은 형사가 찾아왔어요.
그 형사는 제 얘기를 듣더니, 제가 봤다는 차와 안에 탄 사람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아보았어요. 그러나 저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어요,
사실 그 차와 운전사의 모습은 이상할 정도로 보이지도 않았고, 특징
적인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아요, 단지 어두운 색깔의 차와 기분나
쁜 냄새가 전부였어요.
처음에는 흥미를 가진 것으로 보였던 그 젊은 형사도, 저의 모호한 증
언에 좀 실망한 듯 보였어요. 나중에는 암만 제가 강하게 얘기해도 건
성으로 듣는 것 같았아요. 제가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으로 보였나 봐
요. 더구나 그 차가 나타날 때 마다 꺼지는 전등과 라디오의 얘기까지
해 주었더니 완전히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더군요.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아요.
형식적으로 수사에 고맙다는 말을 마치고 일어서는 형사에게 제가 처
음에 받았던 그 피묻은 표에 대해 물어봤어요. 형사는 피식 웃더니 그
검사결과에 대해 말해주더군요.
그 표에서 나온 피는 살해당한 피해자의 피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
다더군요. 그러니 저를 더욱 안 믿은 거였어요.
이번에 받은 표도 거의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마지막으로 제가 살인이 발생한 톨 게이트들을 보면 다음은 우리 톨
게이트 같다는 얘기를 해주었어요. 형사는 그 얘기 역시 상상력 풍부
한 저의 황당한 추리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였어요. 수사에 참고하겠
다는 의례적인 말만 반복하는 것이었고..
형사는 시간낭비 했다는 듯이 돌아갔어요.
제 얘기를 안 믿는데 안타깝고 답답했어요.
하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제 얘기가 지어낸 황당한 얘
기를 들릴 수 있을 것 같았아요. 형사 말대로 한 미친놈이 돌아다니면
서 닥치는대로 살해한다는 것이 사실이고, 제가 본 것이 그 미친 놈이
라고 생각하니 무섭고 끔찍해서 미칠 것 같았아요.
차라리 제가 헛것을 본 거나, 평범한 사람인데 겁에 질려 상상해낸 것
이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퇴근할 때마다, 야간 당직 때문에 출근하는 남자 직원들을 볼 때 마다
안쓰럽고 걱정되었어요. 하지만 가스총 때문인지 며칠 동안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 살인마가 이제 살인은 멈추고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어요.
강박관념처럼 저를 따라다니던 그 차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없어졌어요.
그러던 어느날이었어요.
점심시간에 잡담을 하다가 경수엄마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어요.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께.
우리 바깥양반이 톨 게이트 지나자마자 있는 공원묘지에서
관리인을 하고 있잖아.
며칠전 그이에게 톨 게이트 살인사건하고 지연이가 봤다던
그 시꺼먼 차에 대해서 얘기해 주었더니,
자기가 농담조로 그 범인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어.
지난 여름에 비가 엄청많이 왔잖아.
그때 온 비로 남편이 근무하던 공원묘지도 난리가 났데.
너무 많이 온 비로 많은 묘지들이 유실되고, 시신들이 물에 쓸려
내려갔다는 거야. 300구가 넘는 시체가 훼손되었다는 거야.
불행중 다행인지 공원 묘지 근처에 강이 없어, 시체들이 다른 곳처럼
강물에 떠내려가지는 않았데.
그래도 자기 조상이나 가족의 시체가 없어진 사람들은 난리가 났지.
빨리 시신을 찾아내라고 난리였대.
우리 남편도 몇주동안 그 없어진 시체를 찾아 묘지 근처를
돌아다녔대. 대부분의 시체는 묘지 입구 어귀 밭에서 찾아냈대.
딴데보다는 쉬웠지만, 그래도 썩을대로 썩고 물에 불은 시체들을
찾는 것 정말 싫은 일이었데.
남편은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했는데, 시체를 찾아주며 돈을 받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는 거야, 글쎄..
그 사람들은 시신을 못 찾아 안달이 난 가족들에게 얼마씩 받고
시신을 찾아주는 일을 했다는 거야.
남편은 처음에 별일로 돈을 다 버는 놈들이라고 생각했데.
그런데 그 사람들은 기막힐 정도로 시신을 잘 찾아왔데.
그것도 가족이 원했던 그 시체라는 거야.
남편은 그 사람들이 너무 시체를 잘 찾아, 어디서 훔쳐오는 줄
알았데. 그래서 찾는 것을 보러 직접 따라 갔데.
그 사람들은 남편처럼 무식하게 돌아 다니는 식으로 시체를 찾는 것
이 아니었데. 먼저 가족으로부터 찾으려는 시신이 살아생전 쓰던 물
건을 하나 받는데. 그것이 없으면 가족이 쓰던 물건이던지 아니면 제
일 좋아했던 물건과 같은 종류라도 달라고 했데.
그 사람들 중에 멀쩡한 젊은이가 그 물건을 가지고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잠시 정신을 집중하는 것 같더니 눈을 번쩍 뜨고 외쳤다
는 거야. 서남쪽으로 330보! 이런식으로..
그 말을 따라 그 곳에 가서 시체를 찾아보면 정말 찾을 수 있었대.
남편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지만, 믿을 수 없었대.
하지만 확실히 시체를 찾아내긴 찾아내더래.
그 사람들이 온 후로, 사실 남편도 편해졌데.
시체들을 다 찾아주니 한 시름 덜었다는 거야. 가족들도 공원 묘지
측에 맡기기보다는 몇푼 더 주고 금방 찾아주는 그 사람들에게 찾아
달라고 했다는 거야.
일주일도 안되서 300구가 넘는 시체를 다 찾아냈데.
그런데... 딱 1구의 시체는 찾지 못했데.
딱 1구의 시체를..
남편 말로는 그 사람들도 그 시체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아 찾으려
고 했지만, 못 찾았다는 거야.
무서운 얘기는 여기서 부터야.
부자로 보이는 노인이 와서 자기 아들의 시체를 찾아달라며
거액을 내 놓더래.
그 사람들은 그 시체가 생전에 쓰거나 좋아했던 물건을 하나 달라고
했는데, 그 노인은 한참 머뭇거리다가 날카로운 사냥칼을 주더래.
아무 생각없이 그 칼을 받아든 그 사람들은 똑같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 칼을 쥐고 뭔가를 찾는 듯 했데.
그런데 예전에는 5분도 안 돼서 찾던 사람들이, 그 때는 1시간이
넘게 땀을 뻘뻘 흘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거야.
한참을 그런 식으로 집중하던 그 젊은 사람이 갑자기 창백해진 얼굴
로 벌떡 일어나더니 한마디 내 뱉었데.

'제기랄!
이렇게 되다니! 씨팔!!!'

그 뒤 아무말 없이 그 노인에게 받았던 돈을 돌려주고, 일행들
과 함께 떠날 준비를 하더래. 갑작스런 그들의 행동에 호기심을 느낀
남편이 그들에게 다가가 이유를 물어보았데.
처음에는 그냥 떠난다고 하다고 하다가, 자꾸 물어보니까 신경질적으
로 이상한 대답을 하고 사라졌데

'우리는 시체만 찾는단 말요! 돌아다니지 않는...'

남편은 그들의 이상한 행동과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데.
아들의 시체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던 돌발스런 그들의 행동에 그 노
인 역시 멍한 채로 서 있더래. 남편은 그 노인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냐고 물어봤데. 노인은 한 숨을 내쉬며 신세 한탄조로 얘기하더래.

'휴... 이게 다 내 업보지.
자식 하나 잘못 둬, 이런 일까지 당했지..
죽어서도 속 썩이다니...
그 놈이 살았을 때는 지 마누라와 딸을 죽였던 잡놈이었소.
사형당한 시체를 수습해 여기다 묻었더니, 그 시체마저
없어져 속을 썩이고 있다우...'

그랬다는 거야.
이 얘기를 해주면서 남편이 그랬어.
그 톨 게이트에서 살인하고 다니는 놈이 찾지 못한 시체일지도
모른다고..
그럴 듯 하지?
자기 식구를 몰살시킨 살인자가 무덤에서 나와서 또 살인한다!
어때 좀 무섭지?'

경수 엄마의 얘기에 같이 듣고 있던 직원들은 막 웃으면서 재미있고
소름끼치는 얘기라고들 했어요. 어떤 직원은 아예 모든 얘기가 경수엄
마가 지어낸 것 아니냐고 놀려대기도 하고요. 경수 엄마는 자기 남편
이 정말 겪었던 얘기라고 했고. 여하튼 분위기는 떠도는 으시시한 얘
기 들은 것처럼 가벼운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그 얘기를 듣고 서로 농담하는 그 분위기에서 저 혼자만은 이
상할 정도의 두려움과 불길함이 느꼈어요.
내가 본 그 차에 마치 그 사라진 살인범의 시체가 있었던 것 같은....


경수 엄마의 이야기가 제겐 그럴듯한 공포로 느껴졌어요. 하지만 아무
도 그 얘기엔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저도 그 무시무시한 얘기를 잊어버
리려 했지만, 뇌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표 받을 때도 그 생각이 머리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러다가 갑자기 그 차가 지나갈 때 나던 기분나쁜 냄새가 생각났어
요. 생각해보니, 꼭 시체 썩는 냄새 같았어요.
이런 생각까지 나니, 그 살인마는 정말 무덤에서 나온 악령같이 느껴
졌어요. 혼자만 고민하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제 생각을 동료들에
게 얘기했어요.
아무도 진지하게 듣지 않았어요. 오히려 제가 재미없는 농담하는 걸로
생각했어요. 몇 번을 얘기했지만, 점점 저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
더 이상 얘기하지 못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한 동안 그 톨 게이트 살인마가 잠잠 했어요.
분명히 제 생각에는 곧 우리 톨 게이트에 그 살인마가 살인을 저지를
것 같은데 아무 일도 없었던 거예요. 저는 점점 마음이 놓이고 내가
생각했던 것이 신경과민증상으로 생각했어요.
긴장이 느슨해진 것은 저 뿐만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남자직원들도 전부 야간 당직을 싫어했는데, 시간이 가고 아
무일도 않 생기니까 모두들 야간 당직을 자기가 하려고들 하는 것이
었어요. 그 동안 그 살인사건 때문에 야간 당직을 모두 회피하니까,
공단에서 야간 당직 수당을 좀 인상했거든요. 그러니 그 살인 사건이
없어진 것 같으니 남자 직원들은 야간 당직을 오히려 하고 싶어했던
거예요.
범인에 대한 단서도 잡지 못한 채,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난지 어느덧
한 달이 좀 넘게 지났어요. 그 사이에 톨 게이트 일 중에서 가장 힘들
다는 추석도 지났어요.
그런 평온한 어느날이었어요.
그날도 여자 직원들은 모두 퇴근할 준비를 하고 있고, 야간 당직을 하
기 위해 남자 직원 두 명이 출근하고 있었어요.
저는 혹시나 몰라 그 사람들에게 조심하라고 했어요.
그들은 지급 받은 가스총을 카우보이처럼 흔들더니 여유 있는 웃음과
함께 걱정 말라고 하더군요.
그들의 태연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놓였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오늘 밤에 가을 가뭄을 해소할 비가 내
린다는 일기 예보를 들었어요. 그 때는 아무 생각없이 그 예보를 들었
어요.
밤에 잠을 이루려는데 자꾸 뭔지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어
잠을 잘 잘 수가 없었어요. 잠이 덧 든 상태에서 계속 기억도 나지 않
는 악몽에 시달리는 것 같았어요.
한참을 뒤척이다가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천둥소리에 잠이 깼어요.
눈을 떠보니, 아직 밤이었고 억수같이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시계를 보니 밤 3시 반이 좀 넘었어요.
꿈자리가 뒤숭숭했지만, 한참은 더 잘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잠을 청
했어요. 번쩍 하고 번개가 치고, 좀 있다 하늘이 무너질 듯이 천둥이
쳤어요.
그 순간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어요.
바로 비 였어요.
두 번 다 그 살인마는 비올 때 나타나 살인을 저질렀던 것이 떠올랐
어요.
두 번째 살인 사건이후로 그때까지 비가 한 번도 안 내렸던 것을 깨
닫게 되었어요. 그 사실을 깨닫게 되자, 소름이 쫙 끼치고 온 몸이 부
르르 떨렸어요.
밖에는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퍼붓고 있었어요.
잠시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 사실을 알고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침대에서 일어나, 톨 게이트 사무실로 전화해봤어요.
신호는 가는데 아무도 안 받는거예요.
그러니까 더 불안했어요.
내가 틀렸겠지 하고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잘 수가 없었어요.
대충 옷을 챙겨입고, 차를 몰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톨 게
이트로 향했어요.
가는 동안 별 생각이 떠올랐어요.
불빛 한점없는 비오는 밤길을 달리다 보니, 무서워졌어요.
저 어둠 속에서 그 살인마라도 나타날 것 같았아요.
뭔가가 뒤에서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저 길가 암흑속에서 뭔가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도 같았어요.
비는 오고 어두워서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자꾸 뒤가 신경쓰이
는 것이었어요. 운전하면서 뒤가 불안해 힐끗힐끗 뒤를 봤어요.
어둠 속에서 뭔가 불길한 기운마저 느껴지기까지 했어요.
뭔가에 쫓기듯 빗속을 뚫고 톨 게이트를 향했어요.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톨 게이트 쪽에서 이쪽을 향하는 자동차 헤트
라이트가 보이는 것이었어요.
톨 게이트를 지나오는 것 같은 자동차 불빛을 보자 좀 마음이 놓였어
요. 자동차가 지나다닌다는 것은 아무 일도 없다는 얘기잖아요.
괜히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을 하며 차의 속도를 좀 늦쳤어요.
그런데 그 차의 불빛이 갑자기 가까워지는 것이었어요.
그 차의 불빛을 보고 있던 저는 두려움으로 온 몸이 마비되는 것 같
았어요.
그 차의 불빛은 보통 헤트라이트 불빛이 아니었어요.
마치 지옥에서 나온 악마의 붉은 눈빛처럼 보이는 것이었어요.
그 차가 다가오자, 무서워 미칠 것 같았어요.
내 정면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어요.
저는 일초라도 빨리 그 차에서 벚어나기 위해 속력을 높였어요.
그 차는 시시각각으로 기분나쁜 헤트라이트 불빛을 발하며 덮치듯이
나를 향해 다가왔어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죠.
순간 그 차는 내 옆을 지나갔어요.
눈을 감았지만, 확실히 느낀 것은 그 차에 타고 있던 그 무언가가 나
를 보고 웃었다는 거예요.
안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히 전 느꼈어요.
그 차는 이제까지 내게 피묻은 표를 주던 그 차였고, 그 차를 운전하
던 그 무엇은 나를 보고 기분나쁜 미소를 지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순식간에 그 차는 제 옆을 지나갔어요.
혹시나 하고 백밀러를 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방금 전에 분명히 내
옆을 지나갔던 그 차가 안보이는 것이었어요.
백 라이트라도 보여야 정상인데, 아무런 흔적 없이 암흑만이 보이는
것이었어요.
불안해하는 도중에 톨 게이트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정산소의 불빛이 다 꺼져 있던 거예요.
비가 와서 톨 게이트 안에 누가 있는지 잘 안 보였어요.
저는 차를 톨 게이트 앞에 세우고 손전등과 우산을 들고 차에서 내렸
어요.
불길한 얘감을 억누르며 천천히 정산소로 향했어요.
소리쳐 불러보았지만, 비 소리 때문인지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요.
손전등으로 정산소를 비춰보았지만, 아무도 안 보이는 것이었어요.
정산소 문앞에 서자 피비린내 같은 것이 났어요.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어요.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어요.
손전등으로 정산소 안을 비춰보았어요.
그 순간 저는 놀라서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어요.
불과 몇 시간전만 해도 가스총을 들고 여유 있어 하던 남자 직원이
팔이 잘려 나간채 피투성이가 되어 난도질 당한채 죽어있는 것이예요.
시체의 쾡한 눈은 흉칙함을 더했어요.
저는 너무 무서워 정신없이 거기에서 뛰어나왔어요.
시체가 벌떡 일어나 제 뒷덜미를 채갈까봐 비 맞는 것도 개의치 않고
달렸어요.
나도 모르게 사무실 쪽으로 달려갔어요.
헉헉대며 사무실의 문을 열었어요.
사무실 역시 불이 나가서 깜깜했어요.
누구 없냐고 소리쳤지만, 들리는 것은 비소리 뿐이었어요.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갑자기 번개가 쳤어요.
짧은 순간이나마 사방이 환해졌어요.
그 순간 저는 너무 끔찍한 것을 봤어요.
제 바로 눈앞에 고깃덩이처럼 너덜너덜해진 시체가 하나 보이는 것이
었어요. 그 시체의 멍한 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정신을 잃었어요..
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사방이 사람들로 북적되었을 때였어요.
경찰, 직원, 응급차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어요.
내가 깨어나자, 경찰들이 몰려와 사정없이 질문을 해대는 거예요.
저는 간신히 전날 밤 본 것에 대해서 얘기했죠.
하지만, 경찰들은 제 말보다는 왜 제가 한 밤중에 여기에 왔냐고 캐
묻는 것이었어요.
마치 용의자 심문하듯이 나를 심문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밤에 본 그 기분 나쁜 차와 살인마가 비올 때 마다 찾아온다는
것을 얘기했어요. 역시 아무도 안믿고, 오히려 저를 의심하는 것 같더
군요.
무섭기도 답답하기도 해 미칠 것 같았어요.
경찰 말로는 피해자들이 사냥칼로 수십 번 난도질당한 채로 죽어있다
는 것이었어요.
경찰의 심문이 끝나자 저는 톨 게이트 근무를 해야 했어요.
사람은 죽었지만, 고속도로를 패쇄할 수는 없는 일이었어요.
오히려 직원이 둘이나 죽었기 때문에, 일손이 딸리는 형편이
었으니까요.
경찰도 벌써 3번째 살인사건이 일어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는지, 각
톨 게이트마다 밤에 두 명의 경찰을 배치하기로 했어요.
그래도 무서워질 대로 무서워진 직원들은 야간 당직은 피하려고 했어
요. 사실 톨 게이트에서만 살인을 저지르는 그 놈이 언제 어디서 나타
날지 모르니까요.
제 생각에는 다음 비오는 날 분명히 또 나타날 것 같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으니까요.
여하튼 그래서 경찰 두 명이 지켜줄 때까지 우리 톨 게이트 야간 당
직은 1명으로 하기로 했어요.
죽기보다 하기 싫은 야간당직이었지만, 직장을 그만둘 형편도 못 되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저도 하게 되었어요.
우리 톨게이트에서 살인이 일어난 지 일주일이 넘게 지났는데도, 경찰
은 범인에 대한 단서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어요.
경찰 역시 매일 밤 톨 게이트 당직을 서야 하는 것에 피곤함도 느끼
는 것 같았고요.
그러다 결국 그 날이 온 것이지요.
야간 당직 하게 되는 날이면 항상 일기 예보를 확인했거든요.
혹시 밤에 비라도 오는지.
그런데 그 날은 비 올 확률은 10%미만이라도 예보에서 나왔어요.
그걸 믿고 야간 당직을 서게 되었죠.
그 실수가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이예요.
저와 같이 야간 당직을 하게 된 경찰은 공교롭게도 이 사건을 담당하
는 형사였어요. 왜 이쪽 담당도 아닌 그 사람이 저와 당직을 같이 하
게 되었는지 좀 이상했지만 별로 신경 안 썼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어요.
여하튼 아무 것도 모르던 저는 단지 아무 일도 없길 바라기만 하면서
정산소에 앉아 있었어요.
그 형사는 저와 같이 정산소에 앉아 있었고, 그와 같이 온 동료 경찰
은 톨 게이트 근처에 세워놓은 차에 앉아있었어요. 두 명의 경찰은 서
로 교대하며 정산소와 차를 왔다갔다 했어요.
저는 낮에 푹 자서 별로 피곤하지 않았어요.
매일 혼자만 앉아 있는 정산소에 다른 사람과 같이 있으려니 좀 이상
했어요. 그것도 경찰과.
밤이 깊어지자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어지고 무료해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형사와 형식적인 대화만 나누다가, 슬슬 많은 얘기를 나누었
어요. 특히 젊은 담당 형사와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 사람은 젊은 사
람답지 않게 침착한 것 같았어요.
그 사람과 얘기를 하고 있으려니 무서움이 사라졌어요.
그래도 경찰이 지켜주고 있는데 괜찮겠지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것 저것 얘기하다 시간을 보니 벌써 밤 2시가 지나고 있었어요.
그때까지는 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않했던 그 형사가 점점
사건에 대해 이것 저것 질문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아무 생각없이 제가 보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얘기했어요.
그 무덤과 못 찾은 시체 얘기까지 다 해 주었어요.
그 형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제 얘기를 다 들었어요.
제 얘기가 끝나자 형사가 살인사건에 대해 몇가지 의혹을 얘기해 주
었어요.

'음... 그랬어요...
하긴 이번 사건,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아요.
저도 많지는 않지만, 살인 현장은 꽤 봐왔거든요.
그런데 이번 살인 현장에서 받은 인상은 좀 이상해요.
살인범이 살인을 할 때 아무런 감정없이 사람을 죽인 것 같아요.
원래 살인이란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사람의 감정이 개입될 수 밖에
없는 범죄인데, 이번 살인은 하나의 감정도 느낄 수 없었어요.
무슨 껍데기만 있는 놈이 살인을 저지른 것 같아요.
그리고 이상한 점은 더 있어요.
이 톨 게이트에서 발생한 살인만 해도 그래요.
두 명의 피해자가 똑같이 그렇게 심하게 난도질을 당했는데도 아무
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마치 무슨 최면에 걸려있었던 것처
럼, 또는 자다가 당한 사람들처럼 전혀 반항의 흔적이 없었어요.
자다가 습격을 당해도 그 정도의 난도질을 당하면 바둥거리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냥 당한 것 같아요.
그런 걸 보면 살인범이 면식범일 가능성도 있어요.
혹시 모르죠.
지연씨 말한대로 무덤에서 나온 악령이 그 범인일지도...'

형사의 말을 잘 들어보니 제 얘기를 비웃는 것 같기도 해서, 한마디
하려는 순간이었어요.
갑자기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었어요.
분명히 일기예보에도 없었던 비가 내리는 것이었어요.
비가 오기 시작하자, 저는 무서워서 미칠 것 같았어요.
오늘도 분명히 그 살인마가 나타날 것 같았어요.
그 형사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안절부절 못해하는 나를 안심시키려 애
썼어요. 하지만 두려움이 미칠 지경인 저는 빨리 여기서 도망가자고
소리쳤어요.
형사는 아무 일도 없을 거라며, 걱정말라고 하며 저를 정산소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어요.
그때였어요.
갑자기 지지직 거리더니 정산소 불빛이 꺼졌어요.
그 살인마가 나타날때랑 똑 같았아요.
비가 내리고, 정산소 불이 나가고.
저는 무서움으로 실신할 지경으로 소리쳤어요.

'이제 그 놈이 나타난다고요! 그 놈이!
우리를 죽이러!!!'

불이 나가도 침착해하던 그 형사는 저를 진정시키다가,
갑자기 권총을 꺼내들었어요.
제 어깨 너머로 뭔가를 본 것 같았어요.
형사는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어요.

'저게 지연씨가 말하던 그 놈이 온 것 같네요'

그 말에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그 광경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악' 하는 비명 소리를 질렀어요.
거기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그 어두운 색 차가 톨 게이트 앞에서 악마
의 눈 같은 헤트라이트를 밝힌 채로 서 있는 거예요.
우리를 노려보며....




톨 게이트 <하>

...형사는 그 자동차 불빛을 노려보며, 다급히 무전기를 들고 차에 있
을 동료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러댔어요.

'이봐 최 형사, 그만 자고 일어나!'

최형사라는 사람은 자다 일어난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뭐야 무슨 일이야?'
'기다리던 손님이 오신 것 같아.
톨게이트 앞쪽을 봐.'

잠시 있다 긴장된 최형사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잠깐... 어! 짙은 색 자동차가 한 대 보여.
저 차 왜 서 있지?'
'그 놈일지도 몰라'

무전기 너머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러더니 최 형사의 목소리가 들
려왔어요.

'시팔! 하필 비올 때 지랄하는거야!
차안에 우산도 없는데...
내가 나가보지.'

그 말과 함께 무전기 너머로 자동차 문소리와 함께 빗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들렸어요. 저와 같이 있던 형사는 다급한 목소리로 무전기에
대고 외쳤어요.

'최 형사! 조심해!
혼자 설쳐대지 말고!'

그런데 비 때문인지 무전기에서는 최 형사의 목소리가 지직거리며 잘
들리지 않았어요. 하이빔을 켰는지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자동차 불빛
때문에 최형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아요.
최형사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무전기에서 들렸지만, 뭐라고 말하는 지
잘 알아들을 수 없고 지직거리며 목소리의 일부만 들려왔어요.

'....지금....앞이야.....
..........................
차.....안.....아무도.. 안......
...............
문....앞......
경찰.......
...............
잠시.......차....내려........'

나와 형사는 뭔가에 홀린 듯 그 얘기를 들으면서 차만 바라보고 있었
어요. 이상하게도 그 상태에서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요. 지금 생각해도 왜 저와 형사가 그 순간 밖으로 나갈 생각을 안 했
는지 의문이예요...
그때였어요.
무전기에서 잡음과 함께 최 형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어요.

'.....뭐야!.......
......아악!!'

무전기에서의 비명과 함께 창 밖에서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는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그 소리와 동시에 총구에서 번쩍이는 듯한 불빛과 함께 '타앙!'하는
총소리가 여러번 들렸어요.
총소리는 빗속에서 매아리쳤어요.
그리곤 죽음 같은 적막이 갑자기 흘렀어요.
총소리를 듣자마자, 저와 같이 있던 형사는 '제기랄!'하며, 제가 말리
새도 없이 권총을 들고 밖으로 뛰어 나갔어요.
빗 속을 헤치고, 형사는 그 자동차로 달려갔어요.

'경찰이다!
꼼짝 말고 차에서 내려!
최 형사! 최 형사!
어떻게 된 거야?
어디 있어?'

불빛 때문에 형사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고,
다급한 외침만 들려왔어요.

'아니! 최 형사!!
씨팔! 어떤 새끼야!!
숨어있지 말고 빨리 나와!!
이 살인마 개새끼!!'

갑자기 분노한 형사의 목소리를 들으니, 최 형사가 무슨 일을 당한 것
을 발견한 것 같았어요.
저는 무서웠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해 미칠
것 같았어요. 차의 불빛만 보이고, 형사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어
요. 형사가 제게 뭐라고 외쳤어요.

'지연씨, 밖으로 나오지 말고 꼼짝 말고 있어요!!'

그리고는 형사의 험악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빨리 문열고 나와!!
손들고!
나와!! 이 개새끼야!!'

형사가 차안에 탄 누군가를 발견하고 외치는 것 같았어요.
그때 저는 차에 타있던 그 사람이 살인마가 아닐지도 몰랐지만, 형사
가 그냥 그 사람을 총으로 쏴버렸으면 했어요. 하지만 형사는 그러지
않았아요.

'두 손을 들고, 천천히 문열고 나와!!
빨리! 이 새끼야!!'

그 다음까지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제게는 정말 오랜 시간처럼 느
껴졌어요. 나도 모르게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무서웠어요.
'철컥'하고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문소리와 함께 목이 쉰
것 같은 형사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천천히.. 천천히 나와...'

정말 숨막힐 것 같았아요.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어요.
그때였어요.
뭔가 무시무시한 것을 보고 겁에 질릴대로 질린듯한 형사의 처절한
외침과 비명이 들려왔어요.

'뭐야..... 넌..
설마.......
아악!!!'

형사의 절규하는 비명이 들리며, 번쩍이는 불빛과 함께, 총소리가 계
속 들렸어요.
총알이 다 떨어졌는지, 총소리가 멈췄어요.
형사의 정신나간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제발...
더 이상 다가오지마!!
제발!
아악!!!!!!'

정말 온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의 처절한 비명이었어요.
그리고는 갑작스런 적막이었어요...
빗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아요.
그 차의 불빛은 살기를 띤 것처럼 눈이 부실정도로 비춰대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어요.
저 불빛 너머로 뭔가 무시무시한 것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어
요. 두 형사는 정말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요. 머리 속은 여기서 빨리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지만,
몸이 도저히 움직여지질 않았아요.
그때였어요.
죽음 같은 적막을 깨고, 자동차 불빛너머로 뭔가가 휙 하고 움직이는
것이 보였어요. 움직이는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차
릴 수 있었어요. 그 움직이는 무엇이 이번에는 나를 죽이러 오고 있다
는 것을...
본능적으로 여기를 빠져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산소 문을 열려고 하는데, 왠일인지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었어요.
마치 밖에서 잠근 것처럼 꼼작을 않는 거예요.
미친 듯이 문을 열려고 했지만, 열릴 생각을 않는 거예요.
문밖에서는 뭔가가 나를 향해 오는 것 같았어요.
덜덜 떨면서, 손잡이를 놓고 창밖을 내다 봤어요.
여전히 눈 부신 자동차 헤트라이트 불빛밖에 보이지 않았아요.
다시 문을 열어볼 생각을 하고, 문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었어요.
그런데 꼼짝도 않던 문고리가 저절로 천천히 돌아가는 것이 보였어요.
그것을 본 순간 저는 무서워서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누군가 밖에서 손잡이를 돌리는 것 같았아요.
생각할 새도 없이 돌아가는 손잡이를 잡았어요.
하지만, 문을 열려는 힘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해서, 필사적으로 두
손으로 잡았지만, 계속 돌아가는 것이었어요.
무서워서 거의 정신을 잃을 것 같았어요. 이 문이 열리면 나도 칼로
난도질 당해 죽을 것 같았어요.
문밖에 무엇이 문을 열려고 하는지 볼 수 없었어요.
덜덜 떨면서 손잡이를 잡은채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머리속은 어떻게
해서라도 여기를 벋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어요.
두손으로 잡고 있었지만, 어느새 문 손잡이는 거의 다 돌아갔아요.
곧 문이 열릴 것 같았어요.
저는 온 몸으로 느끼는 공포에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어요.
문이 열리는 순간, 아무 생각이 안들었어요. 단지 이 무서움에서 빠져
나가야 겠다는 생각에 몸을 전면 유리창으로 날렸어요.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저는 큰 충격을 느끼며 창밖으로 나동그라
졌어요.
떨어질 때 충격으로 잠시동안 몸을 가눌 수 없었어요.
유리의 파편 때문인지, 얼굴에 끈적끈적한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어
요. 억수같이 내리는 비와 섞인 피는 입속으로 흘러들어와 찝찌름한
맛이 느껴쪘어요.
손이 유리 파편에 베어지는 것도 못 느끼면서, 저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어요.
문을 열려고 하는 그 놈이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았어요.
간신히 몸을 일으켰지만, 밖으로 떨어질 때 충격으로 몸이 비틀거렸어
요.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과 눈이 부실 정도로 비춰지는 헤트라이트
때문에 더욱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그 불빛 쪽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갔어요.
뒤에서 그 무언가가 나를 쫓아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아요.
무서워서 뒤를 돌아볼 수는 없었어요.
내가 그 때 할 수 있었던 전부는 단지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가는 것
뿐이었어요.
뒤에서 다가오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어요. 빗소리인지 그것의 발소
리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언제라도 제 뒷덜미를 낚아챌 것 같았어요.
자동차 불빛을 지나는 순간, 저는 뭔가에 걸려 호되게 넘어졌어요.
발버둥치며 일어나려는데, 발에 걸렸던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
요. 자동차 불빛에 비춰 보이는 그것은 바로, 나와 같이 있던 형사의
끔찍한 시체였어요.
가슴팍은 칼로 수십번 난도질당한 모습이어서, 허연 뼈까지 보일 듯
했어요.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있었고, 무언가 무시무시한 것을 본
것처럼, 눈은 공포에 질린 채로 떠 있었어요.
부르르 떨며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불빛 너머로 그것이 다가오는
것이 언뜻 보였어요.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그 놈이 한 손에 들고 있
는 칼은 확실히 보였어요. 칼 끝에는 빗물인지, 핏물인지 알 수 없는
물이 뚝뚝 떨어졌고요.
저는 앉은 채로 뒷걸음질 쳤어요.
그 놈은 점점 제게 다가오는 것이었어요.
몸을 일으키지도 못한 채, 앞을 보며 필사적으로 바둥거리며 뒤로 갔
지만, 그 검은 그림자는 점점 다가왔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손에 뭔가가 건들어졌어요.
피묻은 권총이었어요.
그 형사가 놓친 것같았아요.
본능적으로 그 권총을 쥐어서 다가오는 그 놈에게 겨냥했어요.
난생 처음 들어보는 권총이라 그런지, 너무 무겁게 느껴졌어요.
한 손으로는 들 수 없어서, 두 손으로 잡았아요.
내게 다가오는 그 놈은 권총을 못 봤는지, 아니면 무시하는 건지 내게
로 걸어왔어요.
눈을 감고 있는 힘껏 방아쇠를 당겼어요.
귀청이 떨어져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손이 반동으로 위로 올라갔어
요. 하마터면 권총을 떨어뜨릴뻔 했어요.
눈을 떠보니, 그 놈은 총에 안 맞았는지 거침없이 바로 제 앞으로 다
가와있는 것이었어요.
겁이 난 저는 다시 한번 권총을 그 놈에게 겨냥했어요.
권총이 무거워서인지, 아니면 너무 겁이 나서인지 총을 든 두 손이 걷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흔들렸어요.
그 놈이 바로 제 앞에 서서 칼을 든 손을 치켜들었어요.
나를 난도질하려는 것이었어요.
이번엔 눈을 똑바로 뜬 채로 그 놈의 안보이는 얼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어요. 예의 강한 충격과 함께 권총이 발사된 것을 느꼈어요.
그 놈의 머리가 터지면서 끈적거리는 피가 제 얼굴에 튀겼어요. 그 피
는 마치 썩은 것처럼 악취를 풍겼고 불쾌할 정도로 끈적거렸어요
이번엔 제대로 맞았는지, 그 놈의 고개가 뒤로 재껴지면서 주춤거리며
뒤로 밀렸어요.. 하지만 그 놈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 틀림없다는 것
을 그?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총을 정통으로 머리에 맞았는데도 쓰
러지기는커녕 주춤거리더니 다시 자리에 서는 것이었어요.
그 놈에 대한 두려움이 온몸을 감쌌어요.
하지만 동시에 그 놈에 대한 격렬한 증오심이 생겼어요.
나중에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무서움이 극도로 다달으면 분노를
느끼게 된다고 하더군요.
제가 그랬나 봐요.
생각할 새도 없이 그 놈의 머리통을 향해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겼어
요. '탕'하는 소리와 함께 그 놈의 머리가 다시 한번 뒤로 제껴지며 몸
까지 뒤로 밀렸어요.
알 수 없는 광기에 사로잡힌 저는 그 놈의 향해 계속 방아쇠를 당겼
어요. 그 놈은 총에 맞을 때마다 뒤로 밀렸어요. 하지만 쓰러지지는
않았어요.
그 놈을 차 있는 데까지 몰아부치고, 방아쇠를 당기는데 총소리 대신
철커덕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였어요.
몇번을 당겨봤지만, 철커덕 소리만 공허하게 울렸어요.
차에 기대고 있던 그 놈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몸을 일으켰어요.
얼굴은 총에 맞아서 인지, 만신창이가 되어있어 알아 볼 수 없을 정도
로 끔찍했어요. 얼굴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거기서 풍겨나오
는 사악함은 그것을 보는 사람을 하여금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들
정도였어요.
저는 그 놈을 향해 필사적으로 방아쇠를 계속해서 당겼지만, 총알이
다 떨어졌는지 찰카닥 소리만 날 뿐 나가지 않았어요.
그 놈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칼을 든 손을 다시 한번 높게 쳐들었
어요. 이번에는 정말 죽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포기한 채로 힘없이 방아쇠를 당겼어요.
그 순간 총알이 발사되는 충격과 함께, 자동차가 펑하고 폭발하고 그
폭발력에 저의 몸이 공중으로 붕 날랐다가 바닥에 사정없이 내 팽겨
쳐졌어요.
갑작스런 폭발에 영문도 알 수 없이 나가떨어진 저는 그 충격에 정신
을 잃었어요. 정신을 잃기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칼을 든 그 놈이 화
염에 휩싸인 채로 비틀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것이었어요.
의식을 잃으면서도, 저는 필사적으로 몸을 가누고 그 놈에게서 도망치
려고 했어요, 하지만 몸이 제 뜻대로 움직여지질 않았어요.
그 놈이 내게 다가와 내 몸을 난도질 할 것 같았아요.
하지만 그런 생각만 날 뿐 사방이 뿌옇게 되고 의식을 잃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사방은 밝아있고 경찰들과 사람들이 부산거리며 왔
다갔다 하는 것이 보였어요.
내가 살아있는 것 같았아요.
눈을 뜨자, 경찰들이 달려와 쉴 틈도 안주고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
했어요. 영문도 모르는 저는 어제 어떻게 된 것인가에 대해 물어봤어
요. 자동차는 연료통에 총알을 맞아 폭발했다는 거예요..
경찰 말로는 아침에 새까맣게 타버린 자동차 한 대와 갈기갈기 ?겨
나간 형사 두명의 시체가 그 주변에서 발견되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형체도 알 수 없게 타버린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체도 한 구
발견되었고, 좀 떨어진 곳에 피 투성이가 된 채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저를 발견했다는 거예요.
저는 경찰의 질문에 그날 밤 제가 봤던 일들을 자세히 얘기해 주었어
요.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 있었어요.
아무도 제 얘기를 믿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 타버린 시체의 신원을 밝혀보면 알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심하게
타버린 데다가 총에 맞아 치아와 턱구조도 박살이 나서 알아볼 방법
이란 없다는 거예요.
아무리 얘기해도 제 얘기를 믿어주는 사람도 없고, 결국에는 미친 여
자로 취급해 나를 이 병원에다 가둔 거예요.
기자 아저씨,
제발 저를 미친 여자로 보지 말고, 믿어 주세요.
직접 그 톨게이트 가서 조사해 보시면 제 말이 맞을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이대로 여기 있다간, 언젠가 그 놈이 나타난 나를 죽일 거예요.
제발 부탁이예요..
제 말을 믿어주고, 여기서 나가게 해 주세요.
나는 아무런 죄도 없고, 미치지도 않았어요.
부탁이예요..
제발!!!!"

그 여자의 믿을 수 없는 긴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서 나는 한동안
멍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황당한 얘기를 믿어야 하는지..
더구나 처절하게 자기의 얘기를 믿어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니 그
여자가 미쳤다는 것이 잘 믿겨지지 않았다.
재원이는 잠시 멍해있는 나를 보고 이제 나가자고 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찾아왔지만, 그 여자의 얘기는 너무 충격적이어서
쉽게 일어날 수 없었어요. 하지만 더 이상 병실에 머무를 수 없는지
재원이의 재촉에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일어서는 것을 보고 광기어린 눈빛으로 그녀는 외쳤다.

"저를 여기서 꺼내 주세요!
나를 놨두고 그냥 가지 마세요!!
무서워요!!!
제발!!!"

문을 열고 나가는 재원이의 뒤를 따라가면서, 나는 그 여자를 보고 동
정심에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너무 기대는 마시고...
얘기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병실 문을 닫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 여자를 돌아보았다. 사지가 결박
되어있는 채로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그 여자의 모습을 보니 이상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두침침하고 음산한 정신 병동 복도를 말없이 걸어나오는데, 재원이
가 말을 건넸다.

"저 여자 말 어때?
진짠 거 같아?"
"휴... 모르겠다, 모르겠어..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그래?
그런 내가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줄게..
날 따라와.
저 여자를 담당하고 있는 선배 레지던트를 만나보자."

재원이는 나를 데리고 정신과 레지던트 당직실로 갔다.
거기에는 아까 재원이와 나를 병동으로 들어가게 해 주었던 레지던트
가 책을 읽고 있었다.
우리를 보더니 반갑게 맞아주면서, 그 여자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일한씨라고 했죠?
어때요? 그 여자 얘기 들어보니깐..."

"잘 모르겠어요..
저도 이런 얘기는 그래도 많이 들어봤다고 생각하는데요..
다들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정상인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솔직히 잘 구분 못하겠어요.
그 여자가 미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살인을 하고 다니는 악령을
본 것인지..."

그 레지던트는 내 얘기를 듣더니, 빙그레 웃으며 담담하게 얘기를 시
작했다.

"사실 그 환자의 얘기만 듣고는 아무도 그 얘기의 진실성을 알 수가
없죠.
일한씨, 그런 얘기 들어봤어요? 진실의 양면성이라는 것이요..
진실은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얘기래요.
그 환자의 얘기도 그렇게 생각하면 될 거예요.
지금까지 제가 그 환자를 치료하고 검진해본 결과, 그 여자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예요. 진실만을 말하고 있죠.."

그 여자가 진실만을 얘기했다는 레지던트의 말은 나에게 더 큰 충격
을 주었다.

"그렇다면.. 그 여자가 사실을 말했다면..
그 여자가 본 것이 전부 사실이라는 거예요?"

당황한 나의 질문에 그 레지던트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얘기를
계속했다.

"글쎄요..
그 환자가 진실을 얘기했지만,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고 해두는
것이 맞죠.
그 환자는 자기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얘기했어요.
그런데 그 진실이 실제 일어났던 사실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죠.
그 환자가 이 병원에 이송되었을때는 환자의 입장이라기 보다는
살인 용의자로 왔어요.
사람을 난도질해 죽인 범인으로 병원에 왔어요.."

나는 처음에는 레지던트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레지던트의 친절한 설명은 나를 큰 충격에 몰아넣었다.

"일한씨도 그 환자로부터, 무덤에서 나왔다는 살인자 얘기를 들었을
거예요. 그 살인자의 악령이 톨게이트를 돌아다니며 살인했다는 얘기
였죠?
그 환자는 입원 첫날부터 그 얘기를 되풀이 했어요.
하지만 그 환자를 이송한 경찰의 보고서는 다른 진실을 보여
주었어요.
그 보고서에 따르면, 그 환자가 얘기한 모든 살인 사건은
바로 그 환자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는 것이였어요.
젊은 여자가 칼로 그 많은 사람을 난도질 해서 죽인 것이지요.
경찰은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정황증거로 그 환자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집중했다더군요.
그 환자가 받았다는 표에 묻었던 혈액은 다름 아닌 그 환자의 피로
판명이 되었데요. 그래서 그 날 그 지역 경찰이 아닌 담당 형사들이
정산소에 온 것도 사실은 유력한 용의자였던 그 환자를 감시하기 위
해서였데요. 그러다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지만..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칼에서도 그 여
자의 지문이 채취되었다는 거예요.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 여자는 자기가 한 일을 전혀 기억못하고,
무덤에서 나온 살인자가 모든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검진 결과 그 여자는 정신질환자로 밝혀졌어요.
자기가 저지른 살인을 진짜로 기억못하고, 전부 자기가 굳게 믿고
있는 그 악령이 살인을 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게 믿고 있고...
아, 물론 약간에 의문은 있데요..
현장에서 태워진 채로 발견된 차는 도난차량으로 발견되었데요.
그리고 타버린 시체의 신원은 밝혀내지 못했데요.
경찰은 그 시체가 차를 훔쳐달아나다 죽음을 당한 차량 절도범으로
결론 짓고, 신원파악에 주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오리무중이고요..
또 짧은 밤 시간에 그 환자가 그 먼거리를 왔다갔다 하며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도 약간 신빙성 없고요. 하지만 경찰 주장에 의하면
시속 160킬로 정도로 달리면 살인하고 돌아올 수 있다더군요.
아무리 차가 없는 시간이라도, 심야 빗속을 그런 속도로 달렸다는 것
이 좀 이상하긴 하지요...
그래도 가장 확실한 것은 그 여자였기 때문에 살인범으로 체포했지
만, 진술이 너무 황당해서 정신감증을 의뢰했고..
결국은 정신질환자로 판명되어서 이 병원에 있는 거예요..
이게 바로 그 환자가 말한 진실의 다른 면이지요..."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혼란스러워 질 수 밖에 없었다.
그 여자가 사람을 몇 명이나 난도질해서 죽인 살인자라니..
갑자기 의문이 머리에 스쳤다.

"그 여자가 진짜 살인범이라면 살인의 동기는요?
아니면,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미치게 된 원인은 도대체 뭐지요?"
"이 얘기를 들으면 다들 그런 의문을 갖게 되지요..
다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상식때문이예요..
모두들 정신병 하면, 뭔가 큰 충격이라던가 아니면 성장기에 겪은
비정상적인 일이 원인이 되어 발병하는 것으로 생각하지요.
하지만, 아직 정신질환의 정확한 원인은 의학계에서도 규명하지 못했
습니다. 그런 개인적 경험이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고요..
쉽게 말하면, 이유없이 미친다는 것도 성립될 수 있는 거예요.
멀쩡하던 사람이 자다가 이유없이 급사하듯이, 정상인이 어느날 갑자
기 미쳐버릴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미친 사람을 마귀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했지요.
이 환자도 이유 없이 미쳐 버린 수많은 정신질환자 중에 하나로
보는 것이 맞겠지요.."

나는 레지던트의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받아들이
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 여자의 말을 믿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하지만, 레지던트의 말이 휠씬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귀신의 존재가 모든 것을 합리화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할 말도 잊고, 찜찜한 채로 가만히 있었다
당직실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그 침묵을 깨는 끔찍한 비명소리가 복도 저편에서 아스라히
들렸다. 멀어서 그런지 희미하게 들렸지만, 그 비명소리를 들으니 이
상할 정도로 소름이 끼쳤다 그와 동시에 당직실 전화가 요란하게 울
렸다. 레지던트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 전화를 받았다.

"뭐라고요? 또 시작했다고요?
지금 제가 가보죠."

전화를 끊고 레지던트는 다급하게 일어서며 멍해있는 나와 재원이에
게 얘기했다.

"그 환자가 또 발작을 시작했다더군요.
매일 밤 심한 발작을 해요.
정말 무서운 것이라도 본 것처럼..
지금 가 봐야하는데..."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도 없어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당직
실을 나서는데 레지던트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얘기했다.

"사실 나도 그 환자의 얘기를 듣고 나름대로 알아봤어요.
그 동네 보건의로 제 동기가 하나 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환자가 말한대로 그 동네 묘지에서 시체를
한 구 못 찾았데요. 그것도 그 환자 말대로 살인 전과자의..
그리고 좀 무서운 얘기가 하나 있어요.
국립과학 수사 연구원에 다니는 선배가 얘기해 준건데요.
그 신원을 알 수 없다는 타버린 시체 있잖아요?
그 시체가 부검실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부검하기 위해 시체를 옮겨 놓았는데, 밤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
다는 거예요. 살아서 걸어나간 것처럼요..
국과수에서는 난리가 났더래요.
중요 피해자의 시체가 사라졌으니..
결국 용역회사의 착오로 화장된 것 아닌가 추측하고
종결지었다고 하더군요..
참 이상하지요...
그 환자 말대로 정말 그 시체가 살인마의 귀신이었을까요?...
잘 모르겠네요..."

그 얘기를 던지고 레지던트는 정신과 복도 저편으로 황급히 걸어갔다.
큰 충격을 받은 나는 멍하니 선 채로 음산한 정신과 복도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레지던트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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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선택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랑일까?
모든 것을 모두 사랑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
생명까지도..






그 사람은 자기의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나 역시 한 사람을 사랑해서 평생을 같이 하기로 서약했지만, 그 사람같
은 방식으로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의 정답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을 처음 본 곳은 우리의 신혼 여행지였던 몰디브였다.
그 때는 설레임과 행복에 겨워서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비행기
안에서 부터 불길한 일이 있었다.
늦은 시간에 결혼식을 했기 때문에, 서울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
침 비행기로 신혼 여행을 출발해야 했다.
전날 피로연에서 ?굳은 친구들 때문에 억지로 마신 술 때문에 속도 불편
했고 머리도 지끈 거렸다. 찬경이도 그리 좋은 컨디션이 아니었다.
신혼 여행지인 몰디브로 가는 경유지인 싱가폴로 가야했다.
최종 목적지인 리조트까지는 꼬밖 24시간이나 걸리는 긴 여정이었지만,
지구 최후의 낙원이라는 몰디브를 가기 위해서는 감수하기로 했다. 물론
찬경이가 가고 싶어한 것도 큰 원인이었지만.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낙원이라도 모든 것이 다 아
름다울 수는 없었다..
여하튼 싱가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우리는 몸은 좀 피곤해도 설레
임을 억누를 수는 없었다.
결혼식 얘기등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를 향하는 따가운 시
선이 느껴졌다. `
그 시선이 오는 곳은 바로 내 반대편 옆자리였다.
그 자리에는 잿빛 승려복을 입은 늙은 비구니였다.
온화한 인상과는 달리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할머니 스님이었다.
그 비구니가 입은 승려복은 흔히 볼 수 있는 옷이 아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두 젊은이는 어제 결혼 했나 보군요?
축하해요.
하지만....하지만..."

그 할머니 승려는 뭔가 마음에 걸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멈추었
다. 우리는 그 비구니의 괴상한 행동에 호기심과 이상함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싱가폴로 가시나요?"

그 비구니는 우리 둘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천천히 대꾸했다.

"아니, 저는 싱가폴을 거쳐 스리랑카로 돌아갑니다.
저는 스리랑카에서 살 거든요...
그런데..."

그 비구니는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무슨 이유인지 망설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망설임이 마음에 걸려 물어보았다. 솔직이 우리 둘만의 소중한
시간을 쓸데없이 뺏기는 것도 싫어서, 그 스님의 이상한 관심을 무시하고
싶었지만 그 의미있는 시선을 그냥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스님, 뭔가 저희께 말씀 해주실 것이 있으세요?

그 할머니 스님은 약간 망설이다가 결심한 듯이 얘기를 시작했다. 그 얘
기가 끝났을 때, 서늘함이 느껴지며 차라리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두 분은 정말 천하가 질투할 정도로 행복해 보이네요..
속세와 인연을 끊은 저 마저도 부러울 정도로요..
하지만, 삼라만상이 모두 두 분을 축복하는 것 같지는 않은 것 같네요.
앞으로 호된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두 분의 얼굴에서 저는 볼 수 있어요..
가능하면, 신혼 여행은 동쪽으로 갔어야 하는데...
바다쪽도 피하는 것이 좋았는데...
제가 노파심에서 한마디 드리죠.
기분 상해 마세요.. 만약 제가 하는 말이 귀에 거슬리면, 늙은이의 노망
이라고 무시하셔도 되요..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두 분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세요..
미워하지 마세요...
그 사람들도 자기 나름대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이해하도록 하고... 그냥 그대로 놔 주세요...
방해하지 말고, 끼어 들지 말고....
행복하시길....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 스님은 그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얘기를 하고, 마치 자기 임무는
다 끝났다는 듯이 우리가 질문을 할 틈도 주지 않고 고개를 돌리고 앞을
보았다.
황당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건지..
우리의 앞길을 축복한 것인지, 저주 한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한 마디로 정신 나간 늙은 중의 얘기를 들은 것 같았다.
찝찝했지만, 그 비구니도 더 이상 얘기하고 싶은 것 같지도 않고, 우리도
그 얘기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안했기 때문에 그냥 무시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스님은 우리가 어떤 일을 경험할 것을 알았던 것 같
았다. 일종의 경고요, 영험한 예언이었던 것이었지만, 그때 우리는 쉽게
그 얘기를 잊어버렸다.
그 스님은 자는지, 명상을 하는지, 비행기가 싱가폴에 닿을 때까지 감은
눈을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방해를 받지 않아 더 좋았다.
비행기가 싱가폴에 도착하자, 그 스님은 먼저 자리에서 출구로 향하면서
우리를 향해 말했다.

"부디 행복하시고, 이번 시련도 잘 넘기시길 바랍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참 이상한 스님이다라는 얘기를 하면서, 우리는 싱가폴 창이 공항에 내렸
다. 싱가폴에 오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모든 것이 쾌적하다는 것이 느
껴졌다.
몰디브로 가기 위해서는 8시간을 싱가폴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해산물 요리로 유명한 이스트 코스트로 잠깐 나가서 저녁을 하기로 했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이스트 코스트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왕게 요리로 가장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을 중국계 택시운전사로부터 듣고
찾아갔다. 유명한 집이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이 대기중이었다.
다행히 두명 자리가 있었는지, 우리는 별로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200명 정도 앉을 만한 큰 홀에 빈자리 하나 없이 꽉 차 있었다.
우리는 웨이터에게 요리를 주문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요리를 기
다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우리 옆에서 "쨍그랑!"하는 그릇깨지는 소리가 나면서, 여자의 날
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중년의 웨이트레스가 우리를 보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뭘보고 놀란 것인가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특별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
다. 다시 그 겁에 질린 모습의 웨이트레스를 돌아보니, 우리를 향해 손가
락질하면서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미친 여자 같은 그 여자의 행동에 멍해있었다.
식당안의 400개의 시선은 우리를 향했고, 왁자지껄하던 주위는 갑자기 쥐
죽은 듯한 침묵이 흘렀고 그 여자의 공포에 질린 듯한 괴성만 들렸다.
중국어인지, 동남아 어느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지껄여대는
것이었다. 당황한 듯한 식당 매니저와 동료 웨이터들이 몰려들어, 그 여자
에게 뭐라고 말하고 강제로 식당밖으로 끌고 갔다.
그 여자는 끌려가면서도, 우리를 저주하듯이 노려보며 발악하듯 소리를
질러댔다. 그 여자의 겁에 질린 눈은 끝까지 우리를 노려봤다.
황당해 있는 우리들에게 다가온 매니저는 매우 당황해하며 지금 있었던
일에 대해 사과를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주문한 요리값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매니저의 사과는 받아들였지만, 그 여자가 갑자기 왜 우리들을 보고
그렇게 무서워했는지 궁금했다.
매니저 말로는 갑자기 그 여자가 미쳐버린 것 같다고 했지만, 그 여자가
우리에게 떠든 말이 어떤 뜻이었는지 얘기는 안 해주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식사를 하던 손님들도 우리를 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았
다. 뭔가 우리를 좀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동정하는 것 같기도 했
다.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의 시선을 피하고 눈치를 보는 것이
었다.
너무 이상한 분위기 때문에 주문한 요리가 나왔는데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자리를 떴다. 매니저는 정말 미안한지, 식비를 받지 않고 식당밖까지
따라 나왔다.
우리가 식당을 가로질러 나가는 동안, 식당 안은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우리의 시선을 노골적으로 피했다.
찬경이는 궁금함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지, 미안하다며 연신 사과를 해대
는 매니저에게 그 여자가 한 얘기가 무슨 뜻이었는지 다시 한번 물어보았
다. 매니저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하는 것을 꺼려하는 눈치
였다. 나까지 나서면서 얘기 해달라고 하니, 잠시 망설이다가 주위를 조심
스럽게 둘러보면서 심각한 얼굴로 그 얘기를 해 주었다.
너무 신경쓰지 말라며 매니저가 해준 얘기는 정말 황당했다.
우리를 겁내며 소리친 그 여자는 우리나라로 치면 무당의 일을 돕는 사람
인데 파트타임으로 레스토랑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우리
를 보고 '뤼촨'의 기운이 주위에 맴도는걸 봤다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매
니저 말에 의하면 뤼촨은 싱가폴 원주민들의 고대 전설에 나오는 악령으
로 행복을 불행으로 바꾸고 생명을 죽음으로 바꾸는 능력을 가졌다고 한
다. 그런데 그 여자는 나와 찬경이 곁에 뤼촨이 웃고있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매니저가 말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뤼촨
이 맴도는 사람은, 반드시 그 주위 사람이 죽거나 미친다는 것이었다. 그
리고 맨 마지막에는 그 사람도 끔찍하게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얘기를 끝낸 매니저는 요즘은 아무도 믿지 않는 황당한 전설일 뿐이라고
했지만 찬경이는 겁이 나는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나 역시 별로 기
분이 좋지 않았다. 신혼 여행길에 그런 얘기를 들으니 솔직히 화가 났다.
하지만 찬경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웃으면서 그 레스토랑을 나왔다.
나오면서 돌아 본 레스토랑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우
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항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찬경이는 연신 그 뤼촨의 얘기가 맘에 걸
리는지 밝지않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찬걍이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려
니 나 역시 찝찝했다.
하지만, 긴 기다림 끝에 몰디브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자, 싱가폴에서 있
었던 그 불길했던 일은 금새 잊게 되었고, 설레임만 남게 되었다.
4시간의 비행은 좀 지루했지만, 밤 바다 사이에 군데 군데 빛나는 섬들의
불빛은 마치 별나라에 온 기분이었다.
비행기는 별나라에 내리듯이 바다 한가운데에 내렸고, 드디어 우리는 지
상 마지막 낙원 몰디브에 도착했다.
우리가 묵을 리조트에 가기 위해서는, 하루 수도 말레에서 지내고 다음날
아침에 수상비행기를 타야했다.
말레에서 하룻밤을 보낸, 우리는 옥색 바다와 하늘이 맞 다아있는 몰디브
를 상공을 날아올랐다. 수상 비행기에서 바라본 몰디브의 전경은 환상 그
자체였다. 바다에 띠엄띠엄 떠있는 산호섬들은 숨막힐 정도였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곳이 어두운 얘기를 숨기고 있을지는 꿈에도 생각하
지 못했다. 앞으로 경험할 일들이 어떤 것일지 전혀 몰랐던 우리는 그 광
경에 감탄만 보낼 뿐이었다.
생각보다 부드럽게 옥색 바다위로 착륙한 수상 비행기 앞으로 리조트에서
나온 보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바다위에 떠 있는 비행기에서 조심스럽게 배로 ?겨탔다.
그런데, 보트에 타고 있던 리조트 직원들의 표정들이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그 직원들은 비행기로 뭔가를 옮겨 싣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흰 천으로 둘러 쌓인 사람 크기 만한 물건 두 개였다.
흰 천에 곳곳에는 빨간 핏자국도 보여있었다.
찬경이는 겁이 나는지, 내 옆에 바싹 붙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리조트 직원들에게 물어봤다. 하지만, 그들은 영어를 알
아듣지 못하는지, 아니면 뭔가를 감추려고 하는지 대답은 안 하고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런 대답도 못 들었지만, 그들이 뭔가에 겁에 질려
있다는 것은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들이 옮겨 싣고 있는 것은 대충 봐도 시채로 보였다.
비행기로 옮겨 싣는 일이 끝나고, 우리는 리조트로 향했다.
리조트의 직원들의 굳은 표정에서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0분정도 배를 타고 가니, 우리가 묵을 리조트 섬이 보였다.
밀가루 같은 산호가루로 이루어진 하얀 백사장, 푸르디 푸른 야자수들...
한 없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도 불길한 분위기를 완전히 감추지 못했다.
배가 리조트 간이 항구에 도착하자, 리조트에 상주하는 한국인 가이드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그 가이드 역시 표정이 어둡고, 뭔가 겁이 난 표정이었다.
나는 호기심을 못 참고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자기 이름이 경태라고 밝힌 그 가이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믿기지 않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요즘 이 리조트에서 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두 달 전부터 끔찍한 살인사건이 이 리조트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계속>


그 경태라는 한국인 가이드는 끔찍한 얘기를 계속했다.

"이슬람 국가인 이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참혹한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죠..
이 나라 경찰 한 30명이 이 섬에 와서 조사를 하고 있는데도 계속 일어
나고 있어요."
"계속이라뇨? 한번이 아니고요?"
"예... 벌써 5건이나 발생해, 10명이 죽었어요.
내가 그래서 서울 본사에 잠정적으로 이곳 관광을 중단하자고 몇번이나
얘기했는데...
신혼 성수기를 놓치기 아까운지, 계속 보내고 있네요.
하긴 이 리조트 놈들도 똑같지. 이런 일이 났는데도 장사를 계속하려 하
다니... 들리는 얘기로는 이 나라 정부에서도 리조트 문을 닫는 것을 반
대한데요. 아무것도 없는 나라에 들어오는 외화는 전부 관광수입이니 그
렇죠 뭐..."

신혼 여행지에 연쇄살인이라...
정말 믿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찬경이는 겁이 난 표정이었다.

"도대체 어떤 사건인데요?"
"저도 잘 몰라요. 무슨 이유인지, 이 나라 사람들이 얘기하기를 꺼려서
요. 대충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희생자들은 모두 맹수에 당한 것처럼 살
점이 심하게 뜯겨나갔고, 과다 출혈로 죽었데요..
그런데 그 희생자들 모두 쌍쌍이었데요.
부부 동반 여행자들이거나, 애인과 함께 온 사람들었데죠..
좋지 않을 때 이곳으로 오신 셈이네요.
원래 이곳은 정말 지상 천국인데...
여하튼 조심하세요...
밤에 나갈 일 있으면, 꼭 리조트 직원에게 에스코트를 부탁하세요.
요즘 그 서비스는 되거든요.
그리고 아침마다, 체크 전화가 방으로 갈 것입니다.
귀찮아도 대답해주세요.
무슨 일이 났는지 확인하는 것이니까요.."

그 가이드는 우리들의 어두워진 표정을 봤는지, 위로조로 한마디 했다.

"너무 걱정마세요.
아직 한국분들 중에 변을 당한 사람은 없거든요.
일본 부부는 한쌍 있었지만..
그리고 이 작은 섬에 경찰이 30명이나 있으니, 곧 범인은 잡힐 것입니다.
낮에 즐기는 것들은 모두 괜찮고요.."

나와 찬경이는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정 취소하는 것에 대해 물어보았다.

"죄송합니다만, 교통수단이 없어요.
아시다시피, 이 섬으로 오는 10인승 수상 비행기는 하루에 한편인데, 이
미 꽉 찼어요. 정부에서 증편도 허가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고..
수도까지 가는 배도 없고, 있는 배로는 주위 무인도로 나가거나 낚시배
가 전부여서...
불쾌하셨으면, 귀국하셔서 본사에 항의하세요.
죄송합니다만, 현실적으로 그 방법밖에 없어요.
어제도 몇 분이 제게 화를 냈지만, 제게 화내봤자 아무 소용없잖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가이드 말대로, 그때 우리로써는 아무 선택권이 없었다.
그 가이드 역시 좋아서 이곳에 있는 것 같지도 않고, 화내봤자 아무런 방
법이 없는 것도 옳은 말이었다.
너무 황당했다.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러 온 신혼 여행지에 그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
나다니...
로비에서 가이드가 수속을 하는 동안, 우리는 3박 4일동안 이런 무시무시
한 곳에서 어떻게 지내야 할까 막막했다.
가이드가 숙소인 수상방갈로까지 안내해주고, 우리에게 의미심장하게 인
사를 하고 돌아갔다.

"짐은 이 객실 담당자가 가지고 올 거예요.
그 사람이 이 객실 전담이니까, 필요한 것 있으면 그 사람에게
부탁하세요.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조심하시고요...
아차, 이 나라 원주민들이 얘기 하기로는 달무리가 생기는 밤에 살인
귀가 움직인다고 하네요. 믿을 수 없는 얘기지만, 그래도 모르니까 달무
리가 생기는 날이면 더 조심하세요.."

으시시한 기분에 들어간 객실은 분위기와는 달리 너무 좋아보였다.
계곡물처럼 맑은 바닷물 위에 둥실 떠 있는 수상 방갈로는 그런 끔찍한
사건만 없었더라면,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아름다운 곳을 즐기지 못하고 그냥 멍하니 앉아있었다.
잠시 후, 원주민으로 보이는 직원이 우리 짐을 가져왔다.
그런데, 선량해 보이는 그 직원은 끔찍하게도, 한쪽 팔과 한쪽 귀가 떨어
져 나가 있었다. 문을 연 찬경이는 그 모습에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나역시 그 모습에 놀랐다.
하지만, 그 직원은 그런 반응에 익숙한지, 빙그레 웃으면서 친절하게 짐을
방으로 옮겼다. 이 나라 사람치고는 유창한 영어로 자기 이름이 비시뉴
라고 소개한 그 사람은 무슨 일이 있으면 자기를 불러달라고 했다.
팁도 거절한 그는 방문을 나가면서, 우리가 너무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그가 나간 후 찬경이는 그 사람에 대해 좀 이상한 것이 있다며 얘기해 주
었다.

"그 사람이 우리가 행복해보인다고 얘기할 때, 'She said'이라는 말을
덧붙였어. 그녀가 누구지? 이 나라 사람들이 영어할 때 붙이는 말인가.
아니면 내가 잘못 들었나..
그리고 오빠, 그 사람 슬퍼 보이지 않았어?
괜히 안 되 보이더라...."

나는 못 느꼈지만, 찬경이는 그 사람에게 대해 뭔가를 느낀 것 같았다.
내가 느낀 것은, 그래도 국제적인 리조트인데 그렇게 보기 흉한 사람을
직원으로 일하게 한다는 것이 좀 이상했다. 어떻게 보면 보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는데...
다음날 우리는 리조트를 돌며,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파란 해변과 맞물려 있는 수영장, 바다 한 가운데 떠있는 수상 식당, 해변
이 한 눈에 보이는 비치 바, 온갓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산호 해
변... 하지만, 그 아름다운 곳에서 만나는 직원이나 여행객이나 모두들 불
안한 모습이 보였다.
다들 겁이 난 것을 감추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잠실 운동장 만한 작은 섬을 돌아다니는데, 우리를
계속해서 주시하는 불길한 시선을 느꼈다. 기분 탓이려니 하고, 무시했다.
좋은 곳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퍼져있는 어두운 분위기가 싫어 일찍 방
으로 들어왔다.
방에는 어제 그 외팔이 직원이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보고, 자기가 청소를 늦게 해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나며 너무 미안해하는 것이었다.
괜찮다고 하니, 그 사람은 우리가 미안할 정도로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 바닥에 떨어진 모래 한 톨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깨
끗하게 치우는 것이었다.
한참을 깨끗하게 방을 치운 그는, 역시 팁을 거절하는 것이었다.
한쪽 팔로 고생 고생하면서, 방을 치운 그를 보고 우리는 오히려 미안한
느낌마저 들었다. 괜찮다며 방을 나서던 그는 갑자기 하늘을 보고, 표정이
험악해 지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혼잣말로 지껄였다.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그는, 나의 놀란 표정을 보고 당황한 표정
으로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했던 말에 대해 죄송하다고 했다.
그 사람 말로는 오늘 날씨를 보니, 밤에 달무리가 질 것 같다고 했다.
그 사람 역시 달무리가 불길한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무 일
도 아니고, 미개한 자기들 만의 미신이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는 했지만,
그의 심상치 않은 표정은 마음에 걸렸다.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며, 우리 방을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저쪽 편에 휠체어에 앉아 있는 한 여자쪽으로 다가갔
다. 그리고는 그 여자의 휠체어를 한 손으로 밀고 멀어졌다.
휠체어에 앉아 있던 모습은 왠지 불길해 보였다.
이런 동떨어진 리조트에 휠체어를 타고 있는 환자가 있는 것도 이상했고,
아무런 감정도 나타나지 않은 무표정한 그 여자의 모습도 좀 어색해 보였
다. 하지만, 그는 그 휠체어에 탄 여자와 어떤 관계인지 극진히 대하는 것
같았다.
이상해 보였지만, 괜히 과민반응이겠지 생각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밤이 되자, 그 사람 말대로 달무리가 생긴 달이 떴다.
남국의 낭만적인 밤일수도 있지만, 섬 전체에 내려앉은 불길한 기운 때문
인지 기분이 별로 였다.
우리는 발코니에 앉아 와인을 기울이며, 달빛이 반사되는 수면을 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찬경이는 피곤한지 먼저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왠일인지 잠이 안 와 발
코니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고 있었다.
그러다 발코니에 앉은채, 깜박 잠이 들었다.
무슨 날카로운 소리에 잠이 깼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구름이 꼈는지 그렇게 밝던 달도 모습이 안 보이고
사방은 암흑천지였다. 찬경이는 침대에서 잘 자고 있었다.
나도 침대로 돌아가 잠을 잘까 했는데, 내 잠을 깨웠던 그 기분나쁜 소리
가 옆방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이 리조트에서 일어났다는 연쇄살인 사건 얘기가 생각났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방에 있던 비상 렌턴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손에는
무기가 될만한 카메라 삼밭이를 들고 방을 나섰다.
방을 나오니, 그 소리는 더욱 또렷히 들렸고 옆방에서 나오는 것이 확실
한 것 같았다. 아무런 빛도 새어나지 않는 옆방은 문도 열려 있었다.
온 몸에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천천히 그 방안으로 다가갔다.
그 소리는 점점 커졌다. 또렷해진 그 소리는 불쾌하게 느껴졌다.
뭔가를 긁는 소리 같기도 했다. 심호흡을 하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안에는 비린내 같은 것이 풍겼다.
비상 렌턴을 키고 방안을 비춰봤다.
피가 홍건히 있는 것이 보였다.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떨리는 손으로 렌턴을 들고 천천히 방안을 비춰보았다.
다음 순간, 나는 렌턴에 비친 모습을 믿을 수 없었다.
거기에는 피 투성이가 된 두 구의 시체가 뒹굴어져 있었고, 머리를 풀어
헤친 사람이 그 시체에 얼굴을 박고 뭔가를 게걸스럽게 뜯어먹고 있는 것
이었다. 전율로 움직일 수 없었다.
불빛이 비춰지자, 시체를 파먹던 그것은 나를 돌아다 봤다.
얼굴에 피투성이가 된 그것의 쾡한 눈과 마주치는 순간,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뱀앞에 몰린 쥐처럼 다리에 맥이 풀리며 정신을 차릴 수 없
었다. 다음 순간 그것은 내 시선에 사라졌다.
카메라 다리를 든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쥐어졌다.
온 몸이 두려움으로 덜덜 떨렸다.
내 옆에 뭔가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생각할 사이도 없이 손에 든 카
메라 다리를 힘껏 휘둘렀다. '퍽'하고 뭔가가 내리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쪽으로 렌턴을 돌리는 순간, 갑자기 이번에는 뒤통수가 뭔가 묵직한
것으로 내려치는 충격을 느꼈다.
머리에 뭔가 둔기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이 느껴지며, 다리 힘이 풀리며
자리에 쓰러졌다.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쓰러지면서도 발버둥 쳤지만, 정신을 차릴 수 없
었다. 눈이 감기며, 마지막으로 내 눈에 비친 것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
람을 부축해 문 밖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는 힘을 다해, 방안의 전화를 들어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는 의식을 잃었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찬경이의 눈물이 글썽거리며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얼굴이었다.
찬경이 말로는 내가 쓰러지자 마자, 몰디브 경찰이 몰려왔고 옆방에서 잔
인하게 살점이 뜯겨나간 시체 두 구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이번 피해자도 독일에서 여행 온 부부였다는 것이다.
나는 그 나라 경찰에게 천천히 내가 그 옆방에서 보고 경험했던 모든 사
실을 얘기해 주었다. 나는 솔직히 경찰들이 과연 내 얘기를 믿을까 걱정
했는데, 몰디브 경찰들은 이상할 정도로 내 얘기를 믿어주었고 두려워하
는 것 같았다.
뒤통수에 혹이 난 것을 보니, 살인자들에 의해 뭔가로 얻어맞은 것이 확
실했다. 리조트쪽에서 나온 의사는 내 머리를 치료해 줬다.
나와 찬경이는 리조트 담당자에게 당장 이 섬을 떠나게 해달라고 요청했
다. 그때 그 기분으로는 도저히 이런 무시무시한 곳에 머물 수는 없었다.
담당자는 비행기에 자리가 없어서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나는 거의 화를
내며 그 담당자를 닥달했다.
한참을 소리치고 있는데, 담당자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였다.
내 뒤에서 점잖은 목소리로 자기 비행기를 이용하라고 하는 말소리가 들
렸다. 뒤를 돌아보니, 그 나라 사람으로 보이지만, 뭔가 권위를 풍기는 초
로의 사람이 서 있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인지, 그 사람 말 한마디에 냉담하던 담당자가 갑
자기 태도를 바꿨다.
그 사람은 자기가 이 리조트의 주인이라고 소개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몰디브 나라 전체 경제권의 20 퍼센트를 좌
지우지하는 이 나라 최고의 재벌인 라만 그룹의 총수인 라만이었다.
이런 리조트도 다섯 개나 가지고 있는데, 무슨 이유로 이 리조트에 머무
르고 있다가 우리에게 자기 전용 비행기를 쓰게 하는 것이었다.
그 라만 회장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하다며, 내일 해가 뜨는
데로 자기 비행기를 타고 이 섬을 떠나라고 했다.
그리고 손해나는 비용은 전부 배상하겠다고 했다.
흥분된 감정을 가라앉힌 우리는 라만 회장에게 고맙다고 하고 방으로 돌
아왔다.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찬경이는 그 라만 회장이 왠지 모르게 슬
퍼 보인다고 했다. 나는 자기 리조트가 살인 사건으로 장사가 안 될까봐
걱정하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내일 출발하기 위해, 짐을 쌓다.
그런데, 동이 트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걱정했지만, 비는 점점 거세졌다.
라만 회장에게서 기상 때문에 오늘 비행기가 못 뜨게 되었다고 전화가 왔
다. 그 전화를 받고 우리는 힘이 쭉 빠졌다.
이런 끔찍한 섬에서 하루를 더 보내야 한다는 것이 두렵고, 싫었다.
하지만 더욱 무서워 할 것 같은 찬경이 때문에, 겉으로는 티를 안 냈다.
그날 우리는 하루종일 내리는 비를 보면서, 방에서 떠나지 않았다.
식사는 라만 회장이 제공해주는 최고급 룸 서비스로 해결했다.
오후가 되자, 방을 치우기 위해 그 외팔이 직원이 왔다.
그는 전날 밤 있었던 사건에 대해 들었는지, 더욱 조심스럽게 방안을 치
웠다, 그리고 마치 내가 변을 당한 것이 자기 잘못인 것처럼 민망할 정도
로 용서를 구하고 미안해 했다.
나는 괜찮다며, 이번에는 꼭 받아달라며 팁을 줬다.
몇번을 거절하던 그 사람은 팁을 받더니, 잠시 기다려 달라며 방에서 나
갔다. 얼마 후 그는, 주황색 색깔의 상쾌한 냄새가 나는 액체를 병에 담아
서 가져왔다. 그리고는 그것이 이 나라 고유의 과실주인데, 맛 보라며 주
었다. 맛을 보니, 참 상쾌하고 이상 야릇한 맛이었다.
팁 한번에 그런 것까지 가져다 주니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
상할 정도로 'I'm sorry'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방을 나갔다.
찬경이는 그 과실주가 맛있었는지, 저녁과 함께 몇 잔을 들이켰다.
나는 속이 좋지 않아 한잔 정도 마시고, 저녁도 걸렀다.
밤이 되자, 비는 그치고 구름도 없어졌다.
달을 보니, 전날과 같이 달무리가 져 있었다.
그 달무리를 보니, 괜히 으시시해졌다. 오늘밤도 뭔가가 일어날 것 같았
다. 비가 그쳤으니, 비행기가 뜰 수 있냐고 물어보았지만, 수상 비행기는
밤에 움직일 수 없다는 답만 들었을 뿐이었다.
찬경이는 전날 밤일이 너무 힘들었는지, 어느새 잠이 들어있었다.
나는 이상하게 긴장이 되었는지, 잠이 안 왔다.
한참을 침대에 누워 위성 티비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잠결에 이상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떠보니, 우리 방을 담당하는 외팔이 직원이 침대 옆
에 서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 역시 내가 눈을 뜨는 것을 보자, 움찔 하며 놀라며 한 손에 들고 있던
것으로 나를 향했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그가 나를 향해 겨냥한 것이 뭔가 봤다.
그것은 권총이었다.
찬경이는 무슨 약이라도 먹은 사람처럼 꼼짝도 않고 잠에서 깨지 않고 있
었다. 나는 그 외팔이 직원의 황당한 행동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 사람은 총을 겨누고 있지만, 여전히 미안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총을 겨눈 그 사람 옆에는 휠체어에 전에 봤던 여자가 앉아있었
다. 무슨 일인지 그 여자는 휠체어에 묶인 채였고, 이전의 감정없는 무표
정한 얼굴이 아니라 뭔가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괴로워하는
모습이 너무 처절해서 소름이 끼쳤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그 사람은 내게 권총을 겨눈채 한동안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다가,
정말 충격적인 얘기를 했 주었다.

"당신은 오늘 저녁과 내가 준 술을 안 먹었군요..
그러니 정신을 차리고 있지. 당신 아내는 수면제를 탄 그것들을 먹었고.
정말 미안하오..
하지만 내게는 이 방법 밖에 없소.
죽기 전에 제발 나를 이해해 주기 바라오.
나는 의사였소.
일류 의사가 되기 위해 인도까지 유학을 갔다왔소.
하지만, 최고의 의사라 불리던 나도, 내 아내의 병을 고치진 못했소.
그래서 이 방법을 택하게 되었지..
이 휠체어에 앉아있는 여자가 내 아내요.
지금은 병 때문에 볼품없는 모습이지만, 한때 그녀는 천사 그 자체였소.
나의 모든 것이었소.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을 정
도로 그녀를 사랑했소.
우리는 당신네들만큼 행복했소.
저주받은 이 섬에 오기 전까지...
이 섬이 리조트로 개발되기 전부터, 이상한 전설이 있었소.
죽어 가는 가오리의 침을 쏘이게 되면, 그 원한으로 괴기한 병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오. 현대 의학을 공부한 나는 그런 미신적인 전설은 당연히
믿지 않았소.
그러던 중, 해변을 거닐던 아내가 해변에 올라와 죽어 가는 가오리를 다
시 바다로 돌려보내다가 그 침에 쏘였소.
기절한 아내는 고열에 시달리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소.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아내는 정신도 못 차리고 점점 악화되었소.
아무리 큰 병원, 좋은 병원을 찾아 미국까지 같지만, 그 혼수상태는 치료
할 수 없었소. 세계적인 권위자를 만나봐도, 내 아내의 증세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었소.
아내는 내 눈앞에서 점점 죽어갔소.
나는 괴로움으로 미칠 것 같았소.
그때 이 섬의 주술사가 찾아왔소.
이런 환자를 죽지않게 하는 방법을 안다고 했소.
나는 그것이 어떤 희생을 치뤄야 하는 것이라도, 아내를 살리는 것이면
무엇이라도 할 것이라고 하늘에 맹세했소.
그런데 그 주술사가 얘기해 준 방법은 정말 참혹한 방법이었소.
이대로라면, 내 아내는 2번의 달무리가 지난 후 죽는다는 것이었소.
그런 아내를 소생시키기 위해서는 달무리가 질 때마다, 산 사람의 피와
살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소. 그것도 여자와 남자의 살과 피를 동시에.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소.
하지만, 한 번의 달무리가 지난 후 악화된 아내의 모습을 보고 괴로움에
견딜 수 없었소.
나는 결심을 해야 했소.
마지막 달무리가 있던 날, 나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내 팔을 그녀의 입에
갖다대고 물게 했소. 그러자 괴기한 일이 일어났소.
그때까지 죽은 듯 누워있던 아내가 벌떡 일어나, 걸신 들린 사람처럼 내
팔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소.
나는 팔이 떨어져나가는 고통에 나도 모르게 팔을 ?소.
그랬더니, 아내는 벌떡 일어나, 내 귀를 물어뜯어 먹었소.
나는 고통으로 이성을 읽고, 그녀를 내리쳤소.
그녀는 내 귀를 문채 떨어져 나갔고, 이내 기절했소.
나는 대충 출혈을 막고, 아내의 상태를 살폈소.
그런데 이게 왠 일이오.
아내의 얼굴에 혈색이 도는 것이었소.
그때부터, 나는 아내의 약이 되는 사람을 찾아 다녔소.
달무리가 질 때마다 나는 그녀에게 두 사람을 구해다 주었소.
아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의 살점과 피를 동시에 먹어야 ?소.
그 때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산 사람의 살점과 피를 먹어치웠소.
그리고 그녀의 얼굴은 혈색이 돌고, 말은 아직 하지 않고 있지만 혼수상
태에서는 벗어났소.
이제 더욱 많은 사람을 섭취하면, 내 아내는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오.
나는 내 아내의 약을 구하기 위해, 사람이 많은 이 리조트에 일하게 되
었고..
내 행동을 심판하려 들지 마시오.
나는 내 아내를 살리긴 위해서는 뭐든 다 할 것이오.
신의 심장이 필요하다면 잘라낼 것이고, 악마에게 내 영혼도 팔을 수
있소. 이미 팔았는지도 모르지만...
고통은 없게 해 주겠소.
이 과실주를 마시오. 그러면 아무 것도 느끼지 않을 거요.
당신 아내처럼....."

나는 그 말을 듣고 충격과 함께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 사람은 내가 반항할 것을 대비하는지, 총구를 찬경이 쪽을 향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사람은 천천히 휠체어에 다가가, 그 여자의 결박을 풀었다.
그 여자는 굶주린 짐승처럼 나지막히 으르릉 거리며 찬경쪽을 게걸스럽게
노려봤다. 결박이 풀리면 순식간에 덮칠 것 같았다.
미칠 것 같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 모두 저 광기 어린 여자에게 뜯어 먹힐 운명이었
다. 총을 맞는다 하더라도, 여기서 가만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까닥하면 찬경이에게 총이 발사될 것 같았다.
찬경이는 지금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이윽고 휠체어의 결박이 다 풀렸다.
그 여자는 게걸스러운 눈빛으로 찬경이를 노려보며, 덮치려고 했다.
나는 "안돼!!!"라고 소리쳤다.
그 여자가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키고 짐승처럼 찬경이로 향하는 순간, 나
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찬경이 앞을 가로막았다.
다음 순간에 나를 덮칠 충격을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탕!"하는 소리와 함께 화약냄새가 났다.
눈을 떠보니, 그 여자가 피를 흘리며 내 앞에 쓰러져 있었다.
그 외팔이 직원은 놀란 표정으로 소리가 난 문쪽을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한 사람이 총을 들고 서 있었다.
다음 순간 다시 한발의 총성이 울리며, 외팔이 직원이 쓰러졌다.
그 사람은 총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에도 자기 아내에게 기어갔다.
그 사람의 눈에는 그녀를 향한 애정과 광기가 뒤섞여 보였다. 그러다가
자리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우리를 구해준 사람을 바라 보았다.
총을 쏜 사람은 이 리조트의 주인인 라만 회장이었다.
그 사람은 나를 보고 슬픔이 가득찬 눈으로 말했다.

"이 애는 하나뿐인 내 딸이오..
죽어가는 내 딸을 살리기 위해, 사위의 행동을 다 묵인했지.
여기서 일하게도 해주고...
그것이 이런 끔찍한 죄악인지도 알면서...
다 내 죄요...
그러니 내가 처리해야 하오...
미안하오...
이런 경험을 하게 해서..."


몰디브를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몰디브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라만 회장은 경찰에 자수했고, 자기가 그 살인범이라고 자백했다.
딸과 사위의 죄를 덮고 싶어했다. 나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들의 처절
했던 범죄는 영원히 비밀이 되었다.
나는 라만 회장의 뜻을 존중해, 그의 자백대로 증언했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회교국에서 그런 정도의 엽기적인 범죄는 공개 참수
형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 최고의 재벌이 모든 것을 포
기하고 그런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약에 중독되어 있느라고, 아무 것도 모르게 된 찬경이에게는 나중에 모든
것을 얘기해주었다.
비행기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몰디브는 그 끔찍한 사실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아름다움이 더 할수록 그 끔찍함은 더해지는 것 같았
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섬들을 보고 있으려니, 그 사람의 처절한 절규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내 행동을 심판하려 들지 마시오.
내 아내를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소.
이미 팔았는지도 몰랐지만...."

몰디브의 옥빛 바다는 모든 것을 깨끗이 삼킨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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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낚시

이곳는 익사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이오니,
수영 및 밤낚시를 절대 금합니다....
- 어느 저수지 경고문에서






일한이 너도 아마 잘 믿지 않을꺼야..
내가 직접 경험했지만, 아직까지 믿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두 눈으로 본 것은 확실해..
의심나면 상호에게 물어봐. 그 놈도 다 보지는 못했지만, 같이 있었으
니까...
그날은 오늘처럼 몹시 무더운 날이었어..
찌는 듯한 날씨때문인지 모든 일에 의욕까지 상실될 정도였어.
시원하게 어디 피서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
그때 마침 상호에게 전화가 왔어. 좋은 낚시터가 있으니 밤낚시나 가자
고.. 원래 나는 낚시같은 것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그때는 더워서 그런지
어디 밖으로 나가는 것이라는 것에 흔쾌히 응했어.
지금 생각하면 좀 이상해... 평소에 잘 가지도 않는 낚시를 하필 그때 거
기로 가게 되다니.. 여하튼 평소에 낚시를 즐기는 상호가 모든 것을 준비
하고, 나는 텐트하고 술만 준비해서 가기로 했어.
끈적끈적한 도시를 탈출할 수 있다는데 마음이 설레기 까지 했지...
시외 버시 터미날에서 상호을 만나, 가자는 대로 따라 갔어.
버스안에서 상호는 정말 한적하고 좋은 저수지라며 한참 떠벌렸어.
3년전에 거기를 갔다온 선배가 강력하게 추천했다는 거야. 원래는 낚시터
가 아닌데, 그 선배도 우연히 낚시를 하게 되었는데 고기반 물반이었다고
자랑했다는 거야. 상호도 그 얘기를 한참전에 들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가 그날에서야 처음 가게되었다는 거야. 나는 3년전 정보를 믿고 가야되
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그때는 별로 마음에 두지는 않았어.
서울에서 한 두시간 반정도 갔을까..
시외 버스는 고개를 몇 개 넘더니,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작은 마을에 섰어.
상호는 다왔다며 내렸어. 너무 작은 마을이어서 이 마을에 저수지가 있을
것 같지 않았어.
나는 상호에게 이런데 무슨 저수지가 있내고 계속 핀잔했어.
상호는 자기도 확실히 들었다고 했지만, 너무 왜딴 곳이었는지 자신 없는
목소리였어. 혹시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물어볼까 했지만, 초저녁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지나가는 사람이 어무도 없었어.
유령마을 같았지...
상호는 들은 기억을 되살려 마을을 가로질러 갔어. 아무도 안 사는 마을
처럼 쥐죽은 듯 했어. 마친 버려진 마을 같았지...
좀 겁이 났지만, 저수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금방 잊었어.
마을을 벗어나 좁은 숲길을 10분정도 걷다보니, 이윽고 눈앞에 저수지가
나왔어. 인공으로 만들었다기 보다는 자연적으로 생긴 것 같은 저수지였
어. 산골 마을에 있다고 보기에는 꽤 큰 저수지였어.
저수지 주위에 무성한 나무들을 보니, 사람의 손이 꽤 오랫동안 거치지
않은 곳 같았어. 너무 한적해 나는 상호에게 이곳에서 낚시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지..
상호의 대답은 간단했어. 말리는 사람도 없고, 특별한 간판도 없으니 그냥
하면 되지 않느냐라는 것이었어. 혹시 누가 못하게 하면 담배값이라도 집
어주고 하자는 거였어.
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가 뭐해 상호의 말을 따라 자리를 잡
고 텐트를 쳤어. 상호는 재빨리 낚시준비를 했어.
빨리 고기를 잡아 매운탕으로 저녁을 해 먹을 생각이었어.
낚시를 시작하자마자 나와 상호는 놀랐어. 세상에 그렇게 쉽게 고기가 잡
히는 곳을 아마 없을거야. 미끼를 달아 던지자 마자, 고기가 잡히는 거야.
얼마나 신나던지...
한시간도 못되어 10마리도 넘게 잡었지. 물고기들도 다 큼지막한 것들이
었지.. ..
주위는 어느새 어두워졌어.
물고기가 잘 잡혀서 그런지 시간이 금방 가더라.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2
시가 되가는 거야..
우리가 켜놓은 랜턴만이 불빛의 전부였어..
분위기가 음산해지니까 상호가 무서운 얘기를 들려줬어. 자기는 진짜라고
하는데, 글ㅆ.. 아직도 믿을 수는 없는 얘기지만..
"한승아...
너 귀신 본적이 있니?
하긴, 이 정도 분위기면 물귀신이라도 나올지도 모르지...
작년 이맘때 쯤이었을거야....
그때도 오늘같이 더운 날이었어. 친구들과 함께 피서차 설악산으로 가는
길이었어. 차가 막힌다고, 서울에서 밤 11시가 다 되어 출발했어.
쉬엄쉬엄 가다보니 새벽 3시쯤 미시령에 도착했어.
대낮에 가기에도 험한 길인데, 밤이면 오죽하겠니...
더구나 밤안개까지 껴서 천천히 운전했어.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지나가는 차는 하나도 없었어...
운전은 친구가 했고, 뒷자리에 탄 애들은 잠자고 있었어.
나는 운전하는 놈이 졸릴까봐, 졸음을 참으며 옆자리에 앉아 있었어.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천천히 가는데, 저 앞 길가에 헤트라이트 불빛에
뭔가가 히끄므레한 것이 보였어.
차가 다가가면서, 그게 가까이 보이는 데 깜짝 놀랐어.
어떤 할머니가 흰옷을 입고 우리를 보고 서 있는 거야.
그렇게 늦은 시간에... 소름이 쫙 끼치더라...
헤트라이트에 비치는 흰옷 입은 할머니의 모습은 섬ㅉ했어...
휙하고 지나가는데,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
이런 시간에, 아무 것도 없는 산중턱에서 뭐하고 있는지...
운전하던 놈도 그 할머니를 봤는지, 몸을 부르르 떨며 무서웠다고 하는
거야.. 그런데 지나가고 보니 왠지 그 뭔가가 이상한거야...
그 이상한 점이 뭐였다는 것을 깨달았을때는, 등골이 오싹해졌어.
그 할머니는 그냥 서있던 것이 아니라 뒤로 걷고 있던거야...
운전하던 놈에게 얘기했더니 무서운 얘기 좀 그만 하라고 하는 거야...
이윽고 정상을 지나게 되었어. 나는 그 할머니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 겁
이 났어. 잠이 확 달아난 거지...
그 할머니 섬뜩한 모습을 잊어버리기 위해, 운전하는 놈과 이런 저런 얘
기를 했어. 험한 내리막 길이라 더욱 천천히 갔지...
운전하는 친구를 보면서 한참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벌벌떨면서
그 놈이 내 손을 꽉 쥐는 거야. 나는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돌려 앞
을 보았지... 휴...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아까 봤던 그 흰옷 입은 할머니가 저기 앞에 서 있는거야..
이번에도 똑같이 뒤로 걸어가고 있는거야...
나는 움직일 수도 없었어. 운전하던 놈도 움직일 수 없었는지 그 할머니
옆을 지나 낭떨어지 쪽으로 계속가는 거야.
내 비명소리에 간신히 핸들을 틀었어. 지금도 아찔하다...
최면에서 깨어난 듯,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뒤를 돌아보았지..
어둠속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
그 흰옷입은 할머니는 깜쪽같이 사라진 거야...
식은 땀으로 온 몸이 젖었지..
그때 뒷자리에서 자던 놈들도 차가 갑자기 흔들리자 깨어났어.
그런데 그 자다 깨어난 친구들이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얘기하는데, 둘
다 똑같은 꿈을 꾼거야...
바로 흰옷입은 할머니 꿈을 꿨다는 거야.
자기들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끌고 가려고 했다는 거야.
싫다고 하는데도 손을 꽉 붙잡고 안 놓아 주었다는 거야...
그러다 갑자기 잠이 깨었고...
더욱 섬ㅉ한 것은 둘 다 똑같은 꿈을 꾼거야...
우리 모두는 모두 창백해질 정도로 겁에 질려 간신히 미시령을 내려왔
어. 우리 넷은 그 할머니가 귀신이라는 것을 확신했어..
얼마나 무서웠는지...
나중에 속초에서 우연히 만난 버스 운전사 아저씨에게 들은 얘기인데,
미시령의 귀신 얘기는 유명하데... 밤 늦게 운전하던 사람 앞에 나타나
교통사고로 목숨을 앗아간다는 거야...
때로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때로는 젊은 여자의 모습으로, 때로는 아이의
모습으로.. 다들 뒤로 걷고 있는 모습이라는 거야..
그 귀신들이 왜 거기 나오냐고..
옛날에 산사태로 죽어간 사람들의 혼령이 미시령에 어려있다는 거야...
그 아저씨 말은 믿기 힘들었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본 것은 귀신이었다
는 거야...
무섭지....."
상호 그 자식 얘기를 들으니 소름이 쫙 끼쳤어.
하지만, 너도 상호 알잖아? 그 자식 워낙 그런 얘기를 잘 지어내고, 뻥이
심한 놈이라 이번에도 또 지어낸 얘기겠지 하면서 거짓말 그만 하라고 핀
잔을 주었지.
그랬더니 그 자식은 정색을 하더니 진짜라는 거야..
나는 괜히 주변이 음산하니, 분위기 잡으려고 쓸데 없는 거짓말 그만하라
고 했어.
그렇게 상호를 핀잔 주는 동안에도 물고기는 계속 잡혔어.
메기, 붕어 등등.. 종류도 여러 가지고 다들 살이 통통히 찐 준 월척급이
었어.
저수지 분위기는 어둡고 아무도 없어 좀 으시시했지만, 물고기가 잘 잡히
니까 기분이 좋았어.
그런데 상호가 갑자기 내가 잡은 물고기들을 손전 등을 비치며 살펴보더
니 황당한 소리를 해대는 거야.
"한승아, 이 고기들 좀 봐!
좀 이상해..."
상호의 약간 긴자된 목소리에 나는 좀 귀찮았지만, 낚시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상호 있는데로 갔어.
상호는 내게 우리가 잡은 물고기들을 모아둔 그물을 들어 보여주었어.
그 그물안에는 10마리가 넘는 물고기가 서로 엉켜있었어.
언뜻 보기에는 별로 특별한 것이 없어 뭐가 이상하냐고 상호에게 물어보
았어. 상호는 여기 자세히 보라며 손전등으로 그물의 한 부분을 보여 주
었어.
자세히 들여다 보았지.
처음에는 단지 물고기들이 엉켜있고, 낚시 바늘에 ㅉ긴 것치고는 좀 피가
많이 흐른 것 같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로 이상함을 못 느꼈어.
그런데, 상호가 말하던 이상한 점을 발견하자,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껴졌어.
그 그물안에는 물고기들이 무슨 이유인지, 서로를 물어뜯고 있는 거야.
어떤 물고기는 몸통의 반이 떨어져 나간 채로 피를 흘리고 있었고, 어떤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의 아랫배 부분을 물어뜯고 있는 거야.
그렇게 서로를 물고 있는 것이 엉켜있는 것으로 보였어.
얼마나 놀랐던지...
그런 일은 처음이었어.
같은 붕어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다는 것은 처음 들었거든.. 더구나 자기보
다 더 큰 메기마저 물어뜯는 것은...
그것도 무슨 상어가 먹이를 공격하듯이, 서로의 몸을 먹고 있는거야.
자세히 보니, 엄청 참혹하더라... 보통 물고기 같지가 않았어.
너무 이상해서, 손전 등을 가까이 대고 그 물고기들을 살펴봤어.
내 상식으로는 보통 민물 붕어나 메기와 외관으로는 다른 점을 발견했어.
기분탓인지, 평소에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물고기의 눈에서 뭔가
흉폭한 느낌이 들었어. 말도 안되는 생각이지만, 보면 볼수록 뭔가 공격적
이고 괴기한 것 같았어. 상호에게 얘기하니, 자기도 왠일인지 그런 느낌이
든다는 거야.
일한아, 너도 생각해봐라..
항상 봐오던 멍한 듯한 물고기 눈이 살기를 풍기며 희번덕거리는 모습을..
보기에도 끔찍했어.
갑자기 낚시 하고 싶은 생각이 싹 가셨어.
상호도 그런 것은 처음 보는지, 좀 겁난 것 같더라. 나는 그런 물고기 메
움탕 해먹기 그러니까, 다시 버리자고 했어.
상호는 그래도 좀 아까운지, 좀 망설이다가 다시 잡으면 되지 하며 그물
을 들어올렸어.
나도 옆에서 도와주었지.. 그물을 뒤짚에 피 범벅이 되고 거의 한 덩이가
된 물고기를 저수지에 다시 버렸지.
그런데, 갑자기 상호가 '아악!' 소리를 지르더니, 그물을 팽개치며 미친
듯이 손을 흔들었어.
너무나 갑작스런 일이라, 멍하니 보고만 있었어.
상호는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더니, 손에 든 뭔가를 땅에 패대기를
치더니 욕을 헤대며 사정없이 그것을 짓밟는 거야.
무슨 일인가 보니, 상호가 손바닥 만한 물고기를 발로 짓이겨 놓는 거야.
가까이 보니, 상호의 손에 피가 흐르고 있었어.
상호의 집게 손가락을 그 물고기가 물었다는 거야.
설마 했지만, 상호의 손을 보니 그 얘기는 진짜였어. 상호의 손은 무슨 개
에 물린 것처럼 날카로운 이빨 자국과 함께 피가 흐르는 거야.
그물을 뒤집는데, 갑자기 한 마리의 물고기가 상호의 손가락을 물었다는
거야.
믿겨지지 않지?
하지만, 정말이었어. 물고기가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사람의 손을 물어뜯
은 거야.
상호는 피가 흐르는 손을 감싸며 욕을 헤대고 있었어.
나는 상호가 형체도 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짓이겨놓은 그 물고기를 살
펴보았어. 징그럽더라..
나뭇가지로 그 물고기의 입을 살펴보니...
세상에.. 그 물고기의 입에는 상어의 날카로운 이빨 같은 것이 나와있는거
야. 황당하더라...
이런 물고기가 있다니.. 말로만 듣던 아마존 강에 서식한다는 식인 물고기
파라냐인 것 같았어.
그런데 그 물고기가 여기에 살리도 없는데 말야...
더구나 더 이상한 것은 우리가 잡아올렸을 때는 분명히 보통 물고기였는
데 말야. 그런 이빨이 있었으면, 낚시 바늘을 ㅃ 때 알 수 있었을 텐데 그
때는 아무것도 없었거든..
정말 말도 안되는 삼류 영화에만 나오는 얘기같았어.
하지만 그 때는 상호의 손을 치료하는 것이 더 급했지.'
피는 많이 났지만, 다행히 깊게 긁힌 정도지 손가락이 잘려나갈정도는 전
혀 아니었어.
가져온 손수건으로 대충 묶고, 가져온 반창고로 임시 치료는 했지.
우리는 낚시대는 신경도 않쓰고, 텐트에 앉아 이 황당한 것에 대해 얘기
를 했어. 마음같아서는 당장 여기를 떠나고 싶었지만, 마을로 나가봤자 너
무 늦은 시간이어서 아무런 방법이 없을 것 같았어.
하는 수 없이, 메움탕에 넣으려고 가져온 라면을 끓여 소주를 마시기 시
작했어. 대충 여기서 시간을 때우다가, 아침에 버스가 다닐 시간이 되면
여기를 나서기로 했어.
그때 기분은 황당하더라.. 모처럼 낚시 하러 왔는데 골 때리는 일을 당하
고 낚시는 종쳤고..
우리 둘은 투덜되면서 불어터진 라면을 안주삼어 소주를 계속 들이켰어.
아마 우리는 스멀스멀 느껴지는 두려움을 잊기 위해서 더 술을 빨리 들이
켰을 거야.
생각해 보니 밤에 아무도 없는 저수지에 있는 것 자체가 무서워진 거겠
지.. 더구나 그런 이상한 물고기가 사는..
소주 두 병째를 비고 나서, 좀 술이 취한 듯한 상호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기분나쁜 얘기를 시작했어.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상호에게 좀 화가 나더라..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도,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그 놈에게 좀 짜증이
났어.
"한승아, 너한테 깜박 잊고 얘기 안한게 있는데...
나도 이제서야 생각이 났다.
이 저수지를 추천해 줬던 선배가 예전에 술자리에서 자기 낚시 무용담을
들려 주면서 자기가 갔던 괴상한 저수지에 대해서 얘기를 했어.
그때는 몰랐는데, 아마 이 저수지에 대한 얘기였는지도 모르겠어.
그 선배의 술자리의 뻥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낚시를 좋아하던 그 선배는 곧잘 혼자서도 밤낚시를 다녔대.
그러다 보니, 전국에 저수지는 안 가본 곳이 없다는 거야.
물고기나 물이 있는 곳은 정말 다 찾아가 봤다고 하더라. 이 저수지도
아마 그러다 찾아냈을거야.
그런데 그 선배가 한번은 밤낚시하러 갔다가 좀 기괴한 경험을 했대.
그날도 남들이 잘 모르는 저수지에서 혼자서 밤낚시를 하고 있었대.
낚시꾼이 없어서 그런지 물고기가 참 잡혔대..
너무 물고기가 잘 잡히니까, 오히려 재미가 없었다는 거야.
밤새도록 혼자 있기가 그날은 좀 심심하더래.
그때쯤, 저쪽에서 불빛이 보이더래.
선배는 같은 낚시군이면, 가서 소주나 같이 할 생각으로 다가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불빛의 주인공은 혼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중년의 낚
시꾼이었대.
선배는 인사를 하고, 옆자리에 않아서 말을 걸었데.
그런데 그 사람은 낚시찌로부터 눈을 떼지도 않더래.
들고온 소주를 한잔 권했지만, 낚시에 푹 빠졌는지 못 본척하고 찌만 응
시하고 있었다는 거야.
머쓱해진 선배가 일어나서, 자리를 뜨려고 하자 갑자기 그 사람이 고개
를 돌리며 기분나쁠 정도로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는 거야.
'여보슈... 미끼는 뭐 쓰고 있수?'
갑작스런 그 사람의 질문에 선배는 얼떨결에 그냥 떡밥하고 지렁이라고
대답했대. 그랬더니 그 사람이 자기 옆자리에서 뭔가를 부시럭대더니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며 비닐 봉지를 하나 내밀며 그러더래.
'이 미끼 한 번 써 보슈...
고기들이 떼로 몰릴거유..'
그리고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표정하게 찌로 고개를 돌렸다
는 거야.
황당한 선배는 얼떨결에 고맙다는 말을 하고, 그 자리를 떠났대.
참 이상한 낚시군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그때는 그렇게 이상한 지 느
끼지 못했데.
자리에 돌아와서, 그 낚시군이 준 미끼를 살펴보았데.
말랑말랑한 것이 크기는 새끼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였고, 무슨 껍질 같
기도 하고, 고기 조각같기도 했지만 전혀 처음 본 미끼였데. 한 열댓개
정도 받았데.
호기심 반으로 그 미끼를 껴서 낚시를 던졌데.
그런데, 황당한 것은 정말 낚시를 던지자 마자 팔뚝만한 월척이 걸려올
라왔다는 거야. 선배는 놀라면서도 신이 났데.
흥분한 선배는 그 미끼를 다시 껴서 던졌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이번에도 바로 물고기가 걸려 올라왔데.
더 큰 몰고기가 걸렸다는 거야.
아무리 물반 고기반이라고도 해도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데.
선배는 그 미끼가 정말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데.
무뚜뚝해도, 미끼를 준 낚시군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어 그쪽을 보니, 어
느새 가버렸는지 불빛이 없어졌더래.
그렇게 낚시에 집중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이상했지만, 그려러
니 하고 다시 한 번 그 미끼를 썼데.
그때도 낚시대를 들여놓기가 무섭게 고기가 딸려왔데.
선배는 그제서야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 미끼를 자세히 관찰했데.
냄새도 맡아보고, 위아래를 살펴보았지만, 너무 특이하게 생겨서 뭔지 감
이 안잡히더래..
그런데 그 미끼의 촉감이 너무 익숙했다는 거야.
그 미끼를 계속 만지작거리니 이유도 모르게 갑자기 소름이 쫙 끼쳤데.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 미끼를 다 꺼내 손전등 아래 놓고 펼쳐보았데.
자세히 보니, 하나의 덩어리르 잘라놓은 모양이었데.
선배는 조각그림 맞추는 것처럼, 잘려진 미끼 조각을 맞추어 보았데.
미끼를 하나 하나 맞추던 선배는 완성된 원래 미끼 모양을 보고 '비명'
을 지렀다는 거야.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쳤고, 그 발에 차여 그 미끼들
은 저수지를 빠졌고...
선배 말로는 그걸보고 그 자리에서 토했다는 거야.
그 미끼가 뭐였을 것 같니?
아직도 그 선배가 거짓말했는지 알 수 없지만, 선배가 맞춘 미끼 조각들
은 사람의 귀를 자른 것들이었데.
사람의 귀를 형체를 짐작 못할 크기로 잘라놓았던 거라는 거야....
..선배는 너무 끔찍하고 무서워서, 아무 생각도 못하고 짐을 쌌데.
오바이트 한 입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무작정 짐을 챙겼다는 거야.
세상에 그렇게 무서웠던 적은 정말 처음이었데.
닦치는 대로 짐을 싸고, 저수지를 벗어나려는데 그 미끼를 주었던 낚시
군이 있던 반대쪽에 불빛이 보이더래.
선배는 혼자 있기가 너무 겁나, 그 불빛쪽으로 뛰어갔데.
거기에는 할아버지 낚시군이 있더래.
숨이 찬 선배는 그 할아버지 낚시군에게 뛰어가, 숨을 헐떡 거리며 말을
걸려고 했데.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마침 그 낚시군이 뭔가를 잡았는지
낚시를 들어올리더래.
선배는 무의식중에 낚아올려지는 것에 시선이 갔데.
낚시대에 걸려올려진 것은 고기같지가 않았데. 그 노인 낚시군은 그 걸
려온 것을 손으로 잡았데.
선배는 그 순간, 손전 등에 비춰진 그것을 똑똑히 보았데.
그리고는 충격으로 기절할뻔 했데.
그것은 바로 사람의 손이였다는 거야.
선배는 두려움과 충격으로 자기도 모르게 '끄응'하고 신음소리를 냈데.
그 노인 낚시군은 그제서야 선배의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돌아다보았데.
그 낚시군은 자기가 사람의 손을 건져 올린 것에 별로 놀라지도 않은 얼
굴로 선배를 돌아 보았데. 오히려 자기를 보고 빙그레 웃더라는 거야.
선배는 어안이 벙벙해서 그 노인을 보고 있는데, 그 노인이 자기가 잡아
올린 것들이 든 그물을 들어 보이며 자랑이라도 하듯이 씨익 웃으면서
말을 하더래.
'오늘은 이렇게 많이 건졌수다...'
선배는 먼저 그 노인의 괜히 등골이 오싹해지는 웃음이 싫었데.
하지만, 그 그물에 들어있던 것이 뭔가를 알아차리고는 다리의 힘이 풀
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 했데.
그 그물안에는 물에 젖고 반쯤 썩은 사람의 머리, 팔, 다리 등이 토막된
채로 담겨 있었다는 거야.
선배말로는 분명히 자기가 똑똑히 봤다는 거야.
다음 순간 선배는 아무 생각도 못하고 죽을 힘을 다해서 뛰었데.
몇번을 넘어져도 개의치 않고 도망쳤다는 거야. 선배 말로는 자기 등 뒤
에서 그 노인의 소름끼치는 웃음 소리가 들렸데..
죽을 힘을 다해, 자기 차있는데 까지 와서, 뒤도 안 돌아보고 차 시동을
걸고 그 길로 180 놓고 서울로 올라왔다는 거야..
그때는 아무도 그 얘기를 안 믿었어.
단지 선배가 애들 재미있으라고 지어낸 얘기로 생각했지.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선배가 고기 잘 잡힌다고 얘기했던 여기가 거기였
다고 얘기한 적은 없지만, 왠일인지 그곳이 여기라는 생각이 들어.
어때 좀 오싹하지..."
상호 자식 얘기를 들으니, 등골이 오싹해지고 정말 무섭더라.
하지만, 그 얘기가 사실 같지는 않았어.
상호가 지었냈던지, 그 선배가 지어낸 얘기같았지.
여하튼 상호는 내가 무서워하는 것에 만족해 하며 술을 들이켰어. 소주를
다섯병 가져갔는데, 왠일인지 상호가 술을 많이 마시더라. 평소에는 소주
한병이면 떨어지는 놈이 연신 들이키는 거야. 나중에 물어보니, 솔직이 너
무 무서워서 그랬다는 거야.. 술로 공포심을 잊으려고 한 거지..
그게 화근이었지...
너도 알잖아? 상호 항상 취하면 경애 얘기 끄내는 거...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어.. 갑자기 경애 얘기를 꺼내더니 혼자 술을 막 마
셔대는 거야.. 말려도 소용없더라...
한참을 넋두리 하더니, 푹 쓰러지는 거야.. 그 자식 술 먹으면 항상 그러
잖아.. 취해서 그 자리에서 자는 거야.. 지겨운 자식..
그때부터 모든 것이 잘못되기 시작한거야..
황당했어. 아무리 깨워도 상호는 이미 인사불성이었어.
이의가 없더라... 자기가 여기까지 낚시하러 오자고 했놓거선....
더구나 그런 찝찝한 곳에 혼자 깨여있다는 것은 정말 싫어지더라..
어쩔 수 없이 텐트로 그 놈을 옮겼어...
그 놈을 탠트로 옮기고 나니 갑자기 무서워졌어.
이렇게 어둡고 아무도 없는 곳에 나 혼자 깨어있다는 것이...
상호 자식은 무심하게 코까지 골고 자고 있었어...
나도 상호 옆에 누워 잠이나 청할까 했지만, 잠이 안왔어.
할 일이 없어 그냥 일어나서 낚시대 앞에 앉았지...
시간은 어느새 2시가 넘어있었어..
얼마전까지 아무렇지도 않았던 저수지 주변에 갑자기 물안개가 끼기 시작
했어. 순식간에 주위는 자욱한 물안개로 뒤덮혔어.
정말 음산하고 으시시했어.
그런 분위기에서 가만히 앉아 찌만 보고 있으니, 더욱 무서워지기 시작했
어. 뒤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고, 물에서도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아 떨렸어. 상호가 들려준 얘기까지 생각나니 더욱
무서워지더라...
그리고 이상한 것은 아까 초저녁에는 그렇게 잘 잡히던 물고기들이 다 어
디 갔는지 입질이 하나도 없는거야...
그 괴기한 물고기는커녕, 물결마저 없는거야.
수면까지 잔잔하니까 더욱 무서워지는 거야...
정말 세상에 나 밖에 없는 것 같았어...
어느새 사방에 풀벌레 소리도 안들리는 거야.
도저히 무서워 무슨 밤낚시냐하고 짐을 챙겨 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때였어.
"여기서 밤낚시하고 계신가요?"
아무런 인기척도 없이 갑자기 사람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린 거야.
너무 놀라서 가슴이 덜컥하고 내려앉았어. 목소리 나는 쪽을 돌아다 보니
중년의 사내가 어느새 내 옆에 있는거야..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대답했어. 그 사람은 자기는 이 마을 사람인데 잠이 안와서 산책나왔다가
불빛을 보고 왔다는 거야. 이 시간에 산책이 이렇게 깊숙한 곳까지 왔다
는 것이 좀 이상했지만, 별 생각없이 들었어. 그런데 그 사람은 음산한 목
소리로 내게 경고를 하는거야.
"그런데 하필 여기서 밤낚시하고 계시죠?
여기 올 때 경고판을 못 보셨나보죠.
거기에 보면 여기서 밤낚시와 수영은 하지 말라고 써 있는데...
금지하는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3년전부터 지금까지 이 저수지에서 20명이 넘는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
어요. 수영하다가 익사한 사람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밤낚시하다가 익사
한 사람도 많은 거예요...
그래서 결국 밤낚시도 금지하고 수영도 금지한 것이지요.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저수지에 빠져 죽은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3년전에 바로 이 자리에서 한 처녀가 자살했거든요..
그 후 여기서 물에 빠져 자살한 사람이 계속 생기는 거예요. 그러더니
수영하던 아이들도 물에 빠져 죽고, 낚시꾼들도 익사체로 발견되고....
들리는 얘기해 의하면 그렇데요..
오늘 밤같이 짙은 물안개가 자욱하개 낀 날, 여기서 밤에 낚시하고 있으
면, 밤 3시쯤에 저수지 저쪽에서 부터 철썩 철썩하는 물소리가 들린데요.
그 소리가 점점 다가오고...
그 처녀의 귀신이 물속에서 천천히 떠올라 낚시꾼을 물 속으로 데리고
들어간다는 거예요...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좀 으시시하죠....
저수지마다 도는 믿거나 말거나 스토리죠.
하지만 이 말을 믿으시면, 빨리 낚시대를 거두고 여기서 떠나는 것이
좋을 걸요... 흐흐..."
그 사람은 음침한 목소리로 얘기를 하고, 기분나쁜 미소를 지었어.
나는 무서워서 식은땀이 흘렀어. 하지만 그 사람의 사악한 눈빛과 기분나
쁜 웃음을 보니, 나를 겁주려고 거짓말하는 것 같았어.
괜찮다며 낚시나 계속하겠다고 대답하니, 그 사람은 노골적으로 비웃이며
자리에서 일어났어.
"겁이 별로 없으신가봐요...
저라면 이렇게 혼자라면 무서워 집에 가겠는데...
그럼 낚시 잘하세요...
아무 일 없이...."
기분나쁜 말을 던지고, 그 사람은 올때처럼 마찬가지로 어둠속으로 스르
륵 사라졌어. 사라져 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니 갑자기 소롬이 쫙 끼
쳤어. 앉아있을때는 어두워서 몰랐는데, 걸어가는 것을 보니 방금 물에서
나온 사람처럼 온 몸이 젖어있었고 맨발이었던 거야...
내가 잘못 봤으려니 하고 좀더 자세히 보려고 하는 순간, 그 사람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어. 별 사람 다 있네라는 생각을 하고 낚시나 다시 하기로
했어. 가만히 떠 있는 찌를 보고 있는데, 자꾸 그 사람이 한 말이 생각나
는거야...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자꾸 시계를 보게 되었어.
시계바늘은 점점 3시로 다가가고 있었어. 그 사람이 한 말은 전부 거짓말
이다라고 위안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맥박이 점점 빨라지며 겁
이 나기 시작했어. 물고기는 웬일인지 입질도 안하고 있었어.
3시간만 참으면 동이 틀 거라고, 위안을 했지만, 그런 상황에서의 3시간은
영겁과 같이 길게 느껴졌어.
자꾸 딴 생각을 하려고 했지만, 시계쪽으로 눈이 가는거야. 신경쓰지 않으
려고 시계를 풀어놓고 낚시에 집중했지만, 점점 무서워지는 거야.
사방은 쥐죽은 듯이 고요했어. 짙은 밤안개는 솜처럼 소리를 빨아들이는
것 같았어. 모든 것이 멈춰있는 것 같았어.
나도 뭔가에 홀린 것처럼 가만히 있었어.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풀어놓은 시계를 보니, 어느새 3시가 된거야.
가슴이 철렁하더라...
나도 모르게 떨리더라..
유심히 귀를 기울여 봤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거야... 휴, 하고 한숨
을 내쉬며, 그 헛소리 한 사람에 대해 속으로 욕을 했지.
그때였어.
저 멀리서 희미하게 철썩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어.
온 몸이 얼어붙는 듯 했어. 정신을 집중해서 귀를 귀울였어.
잘못 들은게 아니었어.
그 철썩하는 소리는 천천히, 하지만 점점 가까이오기 시작했어.
온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어. 빨리 상호를 깨우러 가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어.
그 소리는 점점 다가왔어.
천천히 다가오는 것 같던 그 소리는 순식간에 바로 앞에서 들려왔어.
나는 간신히 렌턴을 들어 그 소리가 나는 쪽을 비췄어.
휴...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무서워 죽는 것 같았어.
불빛에 비친 것은 지저분해진 소복을 입은 여자의 모습이었어.
수심이 그렇게 얕을 것 같지는 않은데, 다리는 반쯤 물에 잠겨 있었고, 온
몸은 물에 젖은 채였어. 젖은 머리는 풀어해체져 있었고, 얼굴은 섬ㅉ할
정도로 창백했어.
제일 무서웠던 것은 그 여자의 눈이었어.
두 눈을 뭔가가 파먹은 것처럼 횡한거야. 눈에 눈동자가 없이 검은 구멍
만 보이는 거야...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목구멍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어. 그 여자는 물에 반쯤 잠긴채로, 한손으로 물을 철썩 철썩하고 치
는 거야.
그러면서 점점 다가오는 거야...
너무 무서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 나는 앉은채로 필사적으로 뒷걸
음질쳤지. 그런데, 뭔가 축축한 것이 뒤에서 나를 물쪽으로 미는거야.
너무 놀라 뒤를 돌아다 보니, 세상에... 아까 내게 물귀신 얘기를 들려준
그 남자가 씨익 웃고 있는거야. 그 사람 역시 온 몸이 젖은 채로 나를 물
로 밀고 있는거야.
나는 필사적으로 바둥거렸지. 하지만 소용없었어.
어느새 물속에서 다가온 그 여자가 내 다리를 잡아 물속으로 끌어들이는
거야. 뒤에서는 그 남자가 밀어대고... 아무리 저항했지만, 내 몸은 점점
물에 빠져 들어갔어. 다리에 차가운 물의 감촉이 느껴졌어. 서서히 내 몸
도 물에 빠져 드는 거야.. 상호의 손을 물어뜯던, 몰고기들이 내 다리에
달려들기 시작했어.
저수지 물은 내 다리에서 흘러나온 피로 벌겋게 되었어.
그 여자와 남자는 계속해서 나를 물로 집어넣었지.
나는 차라리 이 공포의 순간이 일찍 끝나고 그냥 죽어버리기를 바랄 정도
였어.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저항도 못할 지경이었어.
결국 얼굴까지 물에 잠기고,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
발목은 잡은 그 여자는 나를 계속해서 물 속에서 잡아 당겼고...
이제 그 식인 물고기는 온몸을 덮쳤고..
점점 숨이 막혀오고, 정신이 희미해졌어.
그 순간 누군가가 내 머리를 잡고 물밖으로 거칠게 꺼냈어.
나는 물밖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어.
나중에 알고 보니 나를 물속에서 꺼낸 사람은 바로 상호였어.
상호 말로는 자다가 목이 말라 일어났는데, 밖에 낚시대만 보이고 내가
안보여 텐트에서 뛰어 나왔다는 거야. 그런데 내가 저기 물속에서 허우적
거리다가 뭐가 밑에서 잡아당기듯이 쑥하고 가라앉았다는 거야. 그걸보고
뛰어 들어 나를 구한 것이지.
상호는 나를 물밖으로 꺼낸 다음에, 무슨 일이었냐고 흥분해서 물어보는
거야. 나는 숨을 몰아쉬며 대답하기에 앞서 랜턴으로 사방을 비추어봤지
만, 아무 것도 안 보였어. 재촉하는 상호에게 내가 보고 경험했던 것들을
다 얘기해주었지..
상호는 당연히 믿지 않더라.. 그도 그럴 것이 그때 시간이 새벽 4시인거
야. 나는 시간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
분명히 물위의 그 여자를 본 것이 3시였는데, 어느 순간 한시간이 흐른
것이야. 상호는 내가 술에 취해 낚시 중에 졸다가 물에 빠진 거라는 거야.
내가 본 귀신들은 꿈을 꾼 것이고...
그 말도 일리가 있었지만, 나는 인정할 수 없었어.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내가 생생하게 경험한 것이였거든...
내가 하도 강력하게 주장하니까, 상호는 혼잣말 비슷하게 한마디 했어
"..그래서 그 선배가 밤낚시는 하지 말라고 했나?"
상호와 나는 젖은 옷을 말리며, 이제 낚시고 뭐고 집으로 가자고 했어. 나
는 더 이상 이런 무서운 곳에 있고 싶지 않았아.
옷을 말리고 짐을 싸니 어느새 주위가 뿌옇게 밝아왔어. 그렇게 자욱하던
안개는 흔적없이 걷히고....
나는 꾸물럭거리던 상호를 재촉해서 그 저수지를 빠져나왔어.
저수지를 벗어나오려는데, 발밑에 뭔가가 밟혔어.
뭔가 보니 간편같았어.
혹시나 하고 그 쓰러진 간판에 쓰여 있는 것을 읽어 보았는데...
충격으로 숨을 쉴 수가 없었어.
거기에는 빨간 글씨로
<이곳은 익사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이오니,
수영 및 밤낚시는 절대로 금합니다.>
라고 써 있는 것이었어. 그 사람이 아니, 그 귀신이 얘기해준 그 간판이었던
거야. 그러니 내가 본 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던 거야.
저수지를 빠져나오며, 나는 흥분해서 상호에게 한참 설명하고 있는데, 자전거
를 끌고 한 사람이 지나는 거야. 그 사람은 낚시꾼차림으로 저수지에서 나오
는 우리를 보고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어.
"당신들 거기서 밤낚시하고 오는 거예요?
간판은 못 봤수.... 당신네들은 아무 일 없었소?
거기는 들어가면 안되는 곳인데..
3년전부터 거기서 밤낚시하거나 수영한 사람은 거의 물에 빠져 죽었어
요. 아무리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해봐도 소용없었죠...
거기에는 한에 서린 물귀신이 있어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 근처에는 얼씨도 않하죠...
아니 다들 이사갔수다..
저수지 때문에 유령마을이 된 거외다...
3년전 어느날 바람난 정씨와 딸 또래의 술집여자가 거기서
자살했거든요.. 마을 사람들이 하도 손가락질하고 괴롭혀서 였는지....
그 후 그 저수지를 맴돌면서, 사람을 물로 끌어들이는 거에요..
한을 품은 물귀신이 된거죠.....
그 저수지에 시체의 살을 뜯어먹고 사람고기에 맛을 들인 게걸스런
물고기 밖에 없을거외다.
그리고 또, 가끔씩 이상하게도 썩지도 않은 조각난 시체 조각들이
건져 진다우..
정말 저주 받은 저수지라우...
탐욕스럽게 사람을 먹어치우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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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恨江)

너희가 과연 생명의 존귀함을 아느냐...





낮에는 그렇게 무덥더니, 밤에도 그 더위는 물러가지 않았다.
그래도 한강변은 강바람이 선선히 불어 시원함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만난 주상이 형이 맥주 한잔 하자며 고수부지에 나왔는
데, 나와보니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 건너편 가로등불이 강위에 반사되어 나름대로 예쁜 모습이었
다. 강변에 앉아 주상이 형과 캔 맥주를 들이키며 이런 저런 얘기
를 하고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처음 발견한 사람은 주상이 형이었다.

"야, 저것 봐라..
저기 떠 내려오는 거...
어떤 놈이 저렇게 큰 쓰레기를 한강에 버린 거야.."

주상이 형이 가르킨 곳에는 허연 것이 떠내려오고 있었다.
형은 저런 것을 버려 한강이 오염된다며 분개하며, 맥주를 들이켰
다. 나는 주상이 형의 오버 액션에 피식 웃으며 맥주 캔을 입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떠내려오는 허연 것에 시선이 자꾸 갔다.
그 허연 것은 점점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주상이 형과 얘기를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자꾸 그것을 보게 되
었다. 그것이 점점 가까이 오자, 나는 말을 멈추고 그것을 뚫어지
게 보았다.
가까워짐에 따라, 그것의 형체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지 허연 부대처럼 보였다.
거의 우리 발밑까지 왔을 때, 같이 떠내려오던 나무 판자에 부딪
혀서 그것이 뒤집혔다.
뒤집혔지만, 처음에 나는 그것이 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것이 뭔가를 먼저 알아챈 주상이 형이 손에 들고 있던 맥주캔
을 떨어뜨리고 겁에 질린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어..억...이것이...억.."

나 역시 주상이 형의 신음소리와 함께 그것이 뭔가를 알아차렸다.
그 순간 충격과 함께 구역질이 느껴졌다.
떠내려온 그것은 퉁퉁 불은 갓난아기의 시체였다...



사건현장에 도착한 김 형사는 의아함을 느꼈다.
강력계 형사인 자신을 88도로에 일어난 교통사고현장으로 호출한
것을 보고, 뭔가 업무에 착오가 발생한 줄 알았다.
하지만, 현장에는 반장도 나와 있었다.
반장은 김 형사를 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괴기한 지시를 내렸다.

"김 형사, 오늘로 2주일째 11건 발생했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교통사고 같지만, 똑같은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네.
피해자는 모두 20대 여자고, 자동차 전용도로인 88도로를 무단
횡단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네.
내 직감으로는 분명히 단순 교통사고는 아닌 것 같네.
자네가 이 사건을 파헤쳐봐..
늑장부리고 있다가, 신문에서 먼저 터트리면 곤란하니까..."

김 형사는 반장의 황당한 지시에 잠시 멍해있었다.
하지만, 반장의 심각한 표정에 어쩔 수 없이 엠브란스에 실려가는
시체를 형식적으로나마 살펴봤다.
심하게 으깨진 전형적인 교통사고 피해자였다.
그런데 김 형사의 이상하게도 시선을 끄는 점이 있었다.
시체의 눈은 뭔가 무시무시한 것을 본 것처럼 극도의 공포에 질
려 있었다....



신고를 받은 강변 초소의 경찰은 별로 놀라지도 않고, 그 갓난아
기 시체가 떠내려온 곳으로 갔다.
그러더니, 한숨을 내쉬더니 그 갓난아기 시체를 건져냈다.
그 시체를 검은 비닐 봉투에 집어넣고,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를 보고 한마디했다.

"휴.. 불쌍한 것...
세상이 어떻게 되는 건지..
요즘 이런 일이 빈번 합니다.
올해만 들어도, 이 근처에서 벌써 20구도 넘는 갓난아기 시체를
건져냈수다.
어떤 천벌 받을 연놈들이 이런 짓을 하는지...
내 경찰로써 할 말은 아니지만, 그런 놈들 있으면 다 쏴 죽여야
돼요!"

경찰의 넋두리를 들으며, 나와 주상이형은 말없이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가슴속이 답답해지고 알 수 없는 응어리가
느껴졌다....


김 형사는 어디서부터 수사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15년 경찰 생활에 이런 황당한 사건은 김형사로서도 처음이었다.
우선 피해자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그 자료 조사부터 시작했다.
교통 사고로 죽은 피해자는 모두 20대 미혼 여성이었다.
직업은 술집 접대부, 대학생, 공무원, 직장인, 스튜어디스 등등 다
양했다. 주거지 역시 다들 다른 곳이었고, 서로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 같았다.
처음부터 김형사의 수사는 벽에 부딪혔다. 교통사고로 죽은 피해
자들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부검기록도 없었다. 간신히 유가족의
허락을 맡아 부검을 하게된 마지막 희생자로부터도 특별한 사항
은 발견할 수 없었다.
김형사가 그런 기괴한 사건을 맡았다는 소문이 경찰서 내에 퍼지
자 동료 경찰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기상천외한 추리를 내 놓
았다.
사이비 종교 교도들의 집단 자살극, 전염성 몽유병, 화장품에 들
은 정체 불명의 환각제 등등 글자 그대로 황당한 얘기들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봐도,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일을 짧은 기간에 많은
사람이 저질렀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모두 20대 미혼 여성이라는 것도 이상했다.
그러던 중에 똑같은 사건이 또 발생했다.
이번에도 이십대 초반 여성이 88 도로를 한밤중에 무단 횡단하다
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다. 김형사는 점점 초조해 지기 시작했
다. 반장 말대로 결코 우연한 교통사고 같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유가족을 간신히 설득해 철저한 부검을 실시했다. 하지
만 역시 특별한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희생자에게서도 김형사의 시선을 끄는 점이 하나 있었
다. 바로 지옥을 본 듯 공포에 질린 희생자의 눈이었다.
공포에 질린 그 눈을 보는 순간, 김형사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느끼고 있던 꺼림직함이 생각났다. 어디를 가던지 자신을 주시하
는 그 무엇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특히 혼자 밤길을 걸을때나, 서에 남아서 밤늦게까지 자료를 검토
할 때 항상 그 무엇이 자기 주변에 맴도는 괴기한 느낌이 들었다.
김 형사는 이번 사건에 너무 몰두해서, 체력적으로 지쳐 그런 느
낌이 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가끔씩 그 기괴한 시선이 혹시
이 사건과 관련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수사는 진전을 못하고 있었다. 김 형사는 마치 어둠속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자포자기 상태로 퇴근길에 혼자 소주를 마시던 김형사는 갑자기
피해자들 사이에 공통점일 지도 모르는 것을 생각해 냈다. 그 길
로 서로 돌아와 두 희생자의 부검기록을 꼼꼼히 살펴 보았다. 그
리고 집에서 곤히 잠자고 있던 담당 부검의에게 전화를 걸어, 몇
가지 확인을 했다. 날벼략을 맞은 격이었던 부검의는 짜증을 냈지
만, 그래도 김형사가 원하는 답을 주었다.
김형사는 그 공통점을 확인하기 위해, 나머지 10명의 피해자 유족
들을 찾아갔다.
예상을 했던 일이지만, 유족들은 하나 같이 그 사실들을 완강히
부인했다. 사실 유족들 대부분도 정말 모르고 있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검증되지 않은 공통점만으로 사건을 해결할 수는 없었
다. 피해자들의 병원 기록을 다 찾아봤지만, 그 공통점을 검증해
줄 기록들은 찾기가 힘들었다. 다들 가명을 썼거나, 작은 병원에
서 처리했기 때문에 기록을 찾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 형사의 수사는 다시 한번 난항에 부딪혔다.
그 공통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단서였다.
수사가 답보 상태였을 때, 김 형사에게 뭔가 단서를 제공해 줄 것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똑같은 교통사고에서 피해자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것이었다.
그 여자 역시 한밤중에 88도로를 무단 횡단하다가, 자동차에 치인
것이었다. 그런데 노련한 운전사의 운전 기술덕분에 가벼운 타박
상만 입게 된 것이다.
김 형사는 그 피해자를 찾아가,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려고 했다.
병원에 도착한 김형사는 그 피해자가 입원실이 아닌 정신병동에
입원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담당 의사 말로는, 외상이라고는 팔과 무릎에 타박상정도로 가벼
웠고, 후유증 검사를 위해 엑스레이와 CT촬영까지 했지만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 피해자는 특별한 원
인없이 갑자기 정신 이상자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발작이 너무 심해, 보통 입원실에서는 더 이상 있을 수 없어
정신병동으로 보냈다고 했다.
김 형사는 주치의 입회 하에 정신병동에서 그 피해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 피해자는 역시 20대 초반의 여자였다.
격리실 문을 열고 들어가 그 여자를 보자마자, 김 형사는 충격을
느꼈다. 겁에 질린 그 눈빛은 이제까지 봐 왔던 시체들의 눈빛과
거의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제발!!! 내가 잘못했어요!!!
나를 그만 놔주세요!!
나도 그냥 죽으면 되잖아요!!
제발!!!"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압박복으로 묶여있는 그 여자는 연신 발작
을 해대며, 괴성을 질러댔다.
의사가 아무리 노력을 해보았지만, 그 여자가 한 소리란 고작 이
한마디였다.

"내가 죽을 죄를 지었어!
차라리 그냥 나를 죽여줘!!"

뭔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김형사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
너졌다. 정신과 의사에게 이 여자가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해 설명
을 부탁했지만, 의사역시 명쾌한 답을 주지 못했다.

"글쎄요...
이런 경우는 좀 특이해서요.
대부분 교통사고등으로 끔찍한 체험을 한 사람들이 그 충격으로
자아를 닫고 정신 질환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환자의 경우는 좀 다르네요.
극도의 공포심과 죄책감, 그리고 거기서 오는 자살 욕망이 나타
나고 있습니다. 너무 갑작스런 변화고 극단적인 증세를 나타내고
있어 저희들도 난감해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환자가 엄청난 심리적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끔찍한 일을 경험한 것이죠...."

처음에는 우연한 사고나 자살로 생각하던, 김 형사는 정확한 추리
를 해낼 수 없지만, 이번 사건이 타의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는 확
신을 가졌다. 하지만, 그 확신을 입증해줄 구체적인 단서는 하나
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피해자 역시 그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한 김 형사는 이 사건 모두 거기서 출발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역시 그 확신을 뒷받침할 논리마저 생각해낼 수 없었다.
수사의 실마리를 풀지 못한 김형사는 지친 몸을 이끌고 경찰서로
돌아왔다. 그날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들 일찍 퇴근하고 사
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무실에 혼자 남아, 피해자들의 자료를 보던 김 형사는 피곤함을
못이기고 어느새 잠이 들었다.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뜬 김 형사는 자기책상 스텐드만 불이켜
져 있고 사무실 전체가 불이 꺼진 것을 알았다. 시계를 보니, 어
느새 밤 2시가 다 되가고 있었다. 기지개를 피며 뻐근한 몸을 풀
고 퇴근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이유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고
으시시한 느낌이 들었다. 정신이 번쩍 난 김형사는 예의 그 불길
한 시선을 느껴 주위를 돌아보았다.
사무실 구석 구석 그늘진 어둠 속에서 뭔가 끔찍한 것이 자리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평생 무서움을 모르고 자라왔다던 김형사도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기가 피곤해서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무실 구석의 어두운 곳을 자세히 보자, 붉게 빛나는 눈
동자들이 하나씩 눈에 띠기 시작했다.
그 붉은 눈동자들의 수는 점점 많아 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희미하게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
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소리는 점점 또렷해졌다.
그 소리가 또렷해질수록 김 형사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숨도 제
대로 못 쉴 정도였다. 빨리 이곳을 빠져 나가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안 들었다.
그 순간, '삐리릭' 소리와 함께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을 무시하고 이 사무실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온 몸이 후둘
후둘 떨리고 움직일 수 없었다. 휴대폰 소리는 계속해서 어둠속으
로 퍼졌다. 마치 나 여기있다고 알리는 소리 같았다.
김 형사는 벨소리를 없애기 위해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받았
다. 휴대폰에서는 여자의 흐느낌과 함께 욕설이 쏟아졌다.
두려움으로 정신을 거의 못 차리고 있던 김 형사는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 천벌받을 놈아...
흐흑... 소희가 오늘 죽었어...
다 너 때문이야... 개자식....
니 놈의 씨를 밴 것이 잘못이지... 흐흑...
불쌍한 것...
죽어도 그렇게 죽다니.....
88에서 차에 치여 끔찍하게 죽었어..
이 빌어먹을 놈아!!"

김 형사는 처음에는 그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소희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을 소희를 돌봐주던 김마담 같았다.
소희라면, 김 형사가 경찰이라는 신분을 앞세워 억지로 범한 술집
종업원이었다. 김 형사는 소희가 자기 애를 임신한 것을 안 후,
억지로 낙태시키려 했다. 하지만, 소희는 자기 손으로 애를 낳았
다. 김 형사는 자기 비리의 증거인 애기를 없애기 위해, 소희를
찾아가 갖은 협박을 했다. 애비 없는 아이가 얼마나 비침해 지는
지.. 차라리 고아원에 맡기라고 윽발질렀다.
고아원 출신인 소희는 그것만은 안 된다고 반항했지만, 김 형사는
안그러면 자기가 애를 갖다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그러자, 한달전 소희는 사라졌고, 김 형사는 그 기억을 머리속에
서 지웠다.
그런데, 그 소희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기가 조사하는 사
건과 동일한 형태로....
휴대폰 속에서는 계속 김형사를 저주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구석에서 빛나던 수십개의 빨간 눈동자 점점 또렷해지면서, 김 형
사 쪽으로 다가왔다.
순간 김 형사는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 답을 생각해내는 순간, 공포로 얼굴이 이그러졌다.
점점 또렷해지는 그 기분 나쁜 소리는 이제 알아들을 수 있을 정
도였다.

"아빠...엄마....
아빠... 엄마...."

김 형사는 두려움을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 빨간 눈동자들이 가까이 오자, 김 형사는 그 끔찍한 모습을 보
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빨간 눈동자들은 수십명의 갓난 애기들의 눈들이었다.
반쯤 썩은 갓난 애기들이 서로 녹아 붙어서 '아빠... 엄마....'를 부
르며 김 형사에게로 다가오는 모습이었다.
참혹하기 이를데 없는 모습으로 썩은 고사리같은 손을 휘저으며
김 형사에게 다가오는 모습은 지옥 그 자체였다.
김 형사는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자기도 모르게 옥상으로 올라온 김 형사는 문을 잠그고, 품속에서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꺼내 문쪽을 겨냥했다.
김 형사는 이 사건의 모든 비밀을 알 수 있었다.
이제까지 죽은 여자들은 모두 미혼모였다. 다들 출산한 적이 있지
만, 그 아기들이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다들 그 아기들을 어디론가 버린 것이다. 소희도 아기를 버린 것
이었다. 김 형사는 몰랐지만, 그 아기들은 모두 한강에 버려졌다.
산채로...
김 형사는 문을 권총으로 겨누며 뒷걸음질 쳤다.
"엄마.... 아빠...." 라고 부르는 감정 없고 단조로운 소리가 점점 가
까워졌다. 김 형사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 귀를 막았다. 하지만
그 소리는 고막 속을 파고 들어왔다.
이윽고 옥상의 문이 열리고 다시 수십 개의 빨간 눈동자와 그 참
혹스런 모습이 보였다.
김 형사는 절규하듯 소리쳤다.

"오지마!!! 이 괴물아!!!"
"아빠... 엄마.... 아빠.... 엄마...."

그것은 김 형사의 절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김형사에게
로 다가갔다. 뒷걸음질 치던 김형사는 자기가 난간에 다달았다는
것을 알았다.
김 형사는 손을 떨면서 권총으로 그것을 향해 쐈다.
그것은 권총을 맞을 때마다 비명을 지르면서, 검붉은 피를 토해냈
다. 하지만, "아빠... 엄마...."하는 소리와 함께 김 형사에게 더욱
다가오는 것이었다.
어느새 김 형사의 권총은 총알이 다 떨어졌다.
그 끔찍한 것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김 형사의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졌다. 그리고 발밑을 내려다 봤
다. 6층 높이가 그리 높게 안 느껴졌다.
김 형사는 더욱 가까워진 그것을 보고, 망설이지도 않고 뛰어내렸
다. 기다란 비명소리와 함께, 몇초 후 밑에서 '빠지직' 하고 김 형
사의 두개골이 뭉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한강에서 발견된 그 아기의 그 참혹한 시체 때문에 며칠 밤
을 설쳤다. 그날 아침도 그 아기 시체에 대한 악몽에 시달리다 잠
을 깼다.
조간 신문을 읽고 계시던 아버지는 사회면을 보시더니, 안 됐다는
표정을 하시며 그 신문을 넘겨주셨다.

"쯧쯔... 요즘 살기가 그렇게 힘들어도 그렇지..
한창 일할 나이의 사람들이 참...
차라리 죽을 각오로 다시 일어나지... 쯧쯔..."

그 신문 기사의 제목은 '자살 급증. 하룻밤 새 7명이 투신 자살!'
이었다.

<요즘 들어 직장인들의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어젯 밤에만 강남 경찰서의 김 모 형사를 비롯
7명의 30,40대 직장 남성이 직장 건물에서 투신자살을 했다.
경찰은 자살 원인에 대해 조사 중이지만, 정황으로 봐서
IMF로 인한 격무를 견디지 못한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
자살은 직장인 뿐만 아니라, 20대 여성들 사이에서도 눈에 띠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실례로 지난 한달 동안 88도로에 몸을 던
져 자살한 20대 여성이 20명에 이르고 있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20배가 증가한 자살 빈도 수다.
정부와 경찰은 비상 회의를 소집해 대비책을 마련하는등 다각도
의 해결책을 마련하는데 고심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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