圆月弯刀 4

3학년2반 | 2022.02.09 08:17:53 댓글: 0 조회: 524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7533

16. 마교(魔教)의 전설

남궁화수(南宮華樹)는 천천히 말했다.

“그것은 옛날 천하 영웅호걸들이 공인한 면사철(免死鐵)령(令)이지요. 신검산장(神劍山莊)과 강호의 3대(三大)문파(門派)와 7대(七大)검파(劍派), 그리고 4대(四大)세가(世家)가 연명하여 천하 영웅 호걸들에게 그것의 권위를 인정하도록 1것이지요. 이 1조각의 면사철(免死鐵)령(令)이 있으면 그가 무슨 짓을 하든지 천하 영웅들은 그가 1번 죽을 것을 면제해준다는 것이오.”

손복호(孫伏虎)가 갑자기 외쳤다.

“저것은 가짜다. 틀림없는 가짜야!”

남궁화수(南宮華樹)는 그 말을 반박했다.

“천만에! 절대 가짜가 아니오.”

손복호(孫伏虎)는 따졌다.

“신검산장(神劍山莊)과 7대(七大)검파(劍派)는 모두 마교(魔教)와 철천지원수인데, 면사철(免死鐵)령(令)을 어찌 마교(魔教)의 장로(長老)에게 준다는 말이오?”

남궁화수(南宮華樹)는 말했다.

“이 가운데는 물론 원인이 있소.”

손복호(孫伏虎)는 다그치듯 말했다.

“무슨 원인이오?”

남궁화수(南宮華樹)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말할 수 없소. 그러나 나는 저 철령(鐵令)이 절대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소…”

그는 안색이 창백해져서 1마디 1마디 또렷하게 말을 이었다.

“오늘 그 누구든지 그를 죽이게 된다면 바로 신검산장(神劍山莊)과 3대(三大)문파(門派), 7대(七大)검파(劍派), 4대(四大)세가(世家)의 철천지원수가 되어 이레 안으로 죽게 될 것이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갑자기 몸을 훌쩍 날리더니 창문으로 달려나가 고개도 1번 돌리지 않고 떠나갔다.

철연(鐵燕) 부부와 정붕(丁鵬)은 저지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숫제 저지할 수 없었다. 그의 몸뚱이는 얼음이 얼어 있는 연못 위에서 몇 번 솟구치더니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누가 그에게 그 가운데의 비밀을 말하라고 강요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 비밀은 그가 절대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는 한평생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였소. 나에게는 아직도 1손이 남아 있어서 사람을 죽일 수 있소. 오늘 만약 내가 죽지 않는다면 이곳의 모든 사람들은 조만간 1사람씩 내 칼 아래에 죽게 될 것이오. 당신들은 밤낮 안절부절못하고 내가 당신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방비해야 할 것이오. 그리고 당신들은 잠을 자는 동안에 머리 없는 원귀(寃鬼)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오.”

그는 무척 느릿하게 말했으며 1마디씩 또렷하게 말했다.

그 1마디 1마디에 사악한 저주가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자 온몸의 솜털이 모조리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가 자기가 1말을 반드시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다시 입을 열었다.

“따라서 당신들은 오늘 내가 살아서 이곳을 떠나도록 하지 않아야 할 것이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당신들은 나를 죽일 수 없소.”

그 누구도 그 점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 누구도 감히 신검산장(神劍山莊)과 7대(七大)검파(劍派)를 적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철연(鐵燕)장로(長老)는 여러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나 나 자신은 나를 죽일 수 있는 것이오…”

그는 정붕(丁鵬)을 노려보았다.

“당신이 어떻게 그 1칼을 펼칠 수 있었는지 말해준다면 나는 즉시 이곳에서 죽어 보이겠소.”

그는 놀랍게도 자기의 목숨을 아까워 않고 그 비밀과 맞바꾸려 하고 있었다.

정붕(丁鵬)은 그 도법을 어떻게 연마했을까? 그 도법은 철연(鐵燕)장로(長老)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철연(鐵燕)장로(長老)는 어째서 반드시 알려고 하는 것일까? 모두들 정붕(丁鵬)이 말하기를 바랬다. 모든 사람들은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 일 자체가 이미 여러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모두들 철연(鐵燕)장로(長老)가 빨리 죽기를 바랬다.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다그치듯 물었다.

“당신은 말을 할 거요? 안 할 거요?”

정붕(丁鵬)은 대답했다.

“말하지 않겠소!”

그의 대답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솔직했다.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매서운 어조로 다그쳤다.

“당신은 정말 말하지 않겠소?”

정붕(丁鵬)은 담담했다.

“당신은 나를 죽일 수 없을 것이지만 나는 언제든지 당신을 죽일 수 있소. 오늘 나는 당신이 1번 죽는 것을 면하도록 해주지만, 앞으로 당신이 다시 1사람이라도 더 죽이게 된다면 나는 즉시 당신의 목숨을 빼앗고 말 것이오.”

그는 천천히 다시 말을 이었다.

“1조각의 면사철(免死鐵)령(令)은 단지 당신을 1번 구할 수 있을 뿐이오. 내 장담하는데 다음에는 그 누구도 당신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오.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장주(莊主)가 친히 왕림했다 해도 나는 당신을 죽이고 나서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장주(莊主)와 다시 따지도록 하겠소.”

그는 매우 느릿하게 말했다. 1마디 1마디 똑똑히 말한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들이 잊을 수 없는 힘이 서려 있었고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마력이 서려 있었다.

이 순간에 이 온화한 젊은이는 갑자기 키가 10장(丈)이나 되는 거인으로 변한 것 같았다. 사소옥(謝小玉)의 눈동자에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철연(鐵燕)장로(長老)의 표정은 그녀와 전혀 달랐다. 그는 독이 오른 1마리의 독사를 연상시켰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마귀들의 독살스러운 저주를 받은 것처럼 표독스러웠다. 정붕(丁鵬)은 천천히 1마디를 덧붙였다.

“내 경고하는데 당신은 지금 빨리 떠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오.”

철연(鐵燕)장로(長老)는 힘주어 말했다.

“나는 물론 떠날 것이오. 하지만 1가지 일을 나는 반드시 당신에게 말해주겠소.”

정붕(丁鵬)은 조용히 말했다.

“말씀해 보시오.”

철연(鐵燕)장로(長老)는 나직히 말했다.

“당신이 그 도법을 어디서 배웠든지 반드시 당신에게 무궁무진한 재앙을 안겨다 줄 것이오…”

그의 눈동자는 더욱 표독해졌다.

“그래서 당신이 그 1칼로 천하를 종횡하게 되더라도 재앙은 영원히 당신을 따르게 될 것이고, 시시각각 당신을 따르게 될 것이오. 설사 당신이 그 1칼로 천하무쌍의 명성을 얻는다 해도 당신은 한평생 영원히 슬픔과 고통 속에서 살게 될 것이고 그런 후에 상심해서 죽게 될 것이오.”

거기까지 말한 그는 갑자기 앙천대소했고 곧이어 매서운 어조로 부르짖었다.

“하하하, 천상과 지하의 모든 신마와 악귀들이 증명하는 바, 그것이 바로 당신의 운명인 것이오!”

이것은 정말 독살스러운 저주였다. 차가운 바람은 휙휙 거리며 연못 위를 스치고 있었다.

어둠속에 얼마나 많은 요마(妖魔)악귀(惡鬼)들이 그의 독살스러운 저주를 듣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저주를 내뱉고 나서 그들 부부는 독혈(毒血)보다도 더 짙은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정붕(丁鵬)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보기에 그는 아주 차분하고 침착했다. 사소옥(謝小玉)은 갑자기 달려와 그의 손을 잡았다.

“당신은 절대로 그들의 귀신같은 말을 듣지 마세요.”

그녀의 손은 얼음같이 차가웠으나 그녀의 음성은 봄의 햇살처럼 온화했다.

“그런 엉터리 말을 당신은 1마디도 믿지 말도록 하세요.”

정붕(丁鵬)은 침묵하더니 한참 후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귀신같은 말은 때로는 무척 영험하다오.”

사소옥(謝小玉)의 손은 더욱 차가워져서 떨릴 지경이었다. 정붕(丁鵬)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말은 나는 1마디도 믿지 않소. 왜냐하면 그들은 사람이지 귀신이 아니기 때문이오.”

사소옥(謝小玉)은 웃었다.

그녀의 음성은 더욱 부드러워졌다.

“그들이 정말 귀신이라 해도 나는 당신이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믿어요. 나는 하늘이 땅에서 당신이 두려워할 일이 결코 없다는 것을 믿어요.”

17살 먹은 소녀가 좋아하는 영웅호걸을 찬미하는 말만큼 남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 남자는 공교롭게도 바로 그녀가 찬미하는 영웅호걸이었다. 순진무구한 소녀가 믿고 의지하는 것보다 남자에게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없다.

더군다나 그녀는 아름답기 이를 데 없는 소녀였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결코 그런 것에 도취하지 않았다. 그는 사내이긴 하지만 범속한 사내는 아니었다. 그에게는 아내 청청(青青)이 있었고 청청(青青)은 사소옥(謝小玉)만큼이나 아름답고 순진무구했다. 청청(青青)은 눈빛에 순진함과 신뢰와 소리없는 찬사를 드러내었는데, 사소옥(謝小玉)이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욱 많았다. 그런 찬탄을 그는 많이 보았을 뿐만 아니라 어느덧 역겨움을 느끼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마음속에 남 모르는 고통이 있었다. 그것은 유약송(柳若松)의 처에 관한 것이었다. 가소(可笑)라는 이름으로 행세했던 1마리의 비천하기 이를 데 없는 암캐였다. 가소(可笑) 역시 이렇게 순진무구한 태도로 그를 기만했으며 그의 고결한 정조(情操)를 훼손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웃음은 갑자기 그의 얼굴에서 얼어붙었다. 그는 냉랭히 사소옥(謝小玉)의 손을 뿌리치고 차갑게 말했다.

“당신이 정말 사효봉(謝曉峰)의 딸이오?”

사소옥(謝小玉)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엇 때문에 이 남자가 냉담하게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두려워하며 대답했다.

“네… 그래요.”

정붕(丁鵬)은 더욱 차갑게 말했다.

“그러나 사효봉(謝曉峰)에게는 딸이 없다는 소문이 있소.”

사소옥(謝小玉)은 웃었다.

“가친께서 하신 일들을 아는 사람은 무척 적어요. 그리고 신검산장(神劍山莊)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드문데, 다른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정붕(丁鵬)은 냉소했다.

“천하에 명성이 쟁쟁한 사(謝)씨 집안의 3(三)소야(少爺)는 물론 소인과 내왕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이오.”

사소옥(謝小玉)은 갑자기 웃었다.

“혹시 당신은 저의 가친께서 당신의 초청을 받아들이지 않은데 대해 화를 내고 계신가요?”

정붕(丁鵬)은 어디까지나 냉담했다.

“감당할 수 없소. 나는 그저 내친 김에 초청장을 1장 그에게 주었을 뿐이며, 그가 정말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소.”

사소옥(謝小玉)은 정색했다.

“그 점에 대해서 당신은 그 어르신을 용서하셔야 해요. 몇 년간 가친께서는 이미 모든 응대를 사절하여 왔으며 오랜 옛 친구라도 만나주시지 않아요.”

그녀의 얼굴에는 다시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내가 오는 것을 그 어르신은 금지하지 않았어요. 뿐만 아니라 상진(商震)과 전일비(田一飛)에게 저를 보호하도록 했어요. 이로 미루어 볼 때 그 어르신은 역시 당신이라는 사람을 존중하고 있는 거예요.”

정붕(丁鵬)은 냉소했다.

“그는 마땅히 존중해야 할 것이오. 왜냐하면 그가 당신을 보호해달라고 부탁한 사람들은 당신을 보호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귀찮은 일을 불러일으켰소. 하지만 그가 얕잡아 보는 나 정붕(丁鵬)은 사람마다 두려워하는 마교(魔教) 장로(長老) 2사람의 비위를 건드리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철연(鐵燕)쌍비(雙飛)의 손에서 그의 딸을 구했기 때문이오.”

사소옥(謝小玉)은 다시 말했다.

“당신은 저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철연(鐵燕)쌍비(雙飛)를 격퇴했어요. 가친께서 아신다면 틀림없이 무척 훌륭한 일을 했다고 칭찬하실 거예요.”

그녀는 재빨리 다시 말을 덧붙였다.

“그 어르신께서도 당신에게 고마워하실 거예요.”

정붕(丁鵬)은 냉랭히 대꾸했다.

“만약 그가 나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면 그는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 것이오. 만약 그가 나라는 사람이 그런대로 괜찮다고 느낀다면 1차례 결투를 해야 할 것이오.”

사소옥(謝小玉)은 어리둥절해졌다.

“당신은 저의 가친과 결투를 하려고 하는가요?”

정붕(丁鵬)은 냉소했다.

“사(謝)씨 집안의 3(三)소야(少爺)는 강호에 출도한 후에 줄곧 천하에 명성을 떨친 검수들을 찾아 결투하고 모든 적수들을 격퇴시켜 신검산장(神劍山莊)의 혁혁한 명성을 드날리지 않았소.”

사소옥(謝小玉)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신검산장(神劍山莊)이라는 이름은 결코 저의 가친 때부터 유명해진 것이 아니에요.”

정붕(丁鵬)은 차갑게 그 말을 받았다.

“그러나 당신들의 조상들은 결코 영존처럼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았소. 그가 다른 사람을 격퇴시킴으로써 명성을 드날리게 되었던 것이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역시 다른 사람의 도전을 거절할 수 없는 것이오.”

그녀는 정색을 했다.

“가친께서는 당신과 결투를 하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당신은 검객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그 말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재빨리 1마디를 덧붙였다.

“설사 당신이 무척 고명한 검객이라 해도 가친께서는 당신과 결투를 하지 않을 거예요. 가친께서는 연(燕)13(十三)과 마지막으로 1차례 검을 겨룬 후에 다시는 남과 결투를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사효봉(謝曉峰)과 연(燕)13(十三)의 마지막 1전(一戰)은 오직 사장거(謝掌柜) 1사람이 목격했고 사장거(謝掌柜) 또한 말 많은 사람이 아니라서 1번도 그 누구에게 그 1전(一戰)의 승부를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1전(一戰)에서 사효봉(謝曉峰)이 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사효봉(謝曉峰)이 무적의 검신이라는 커다란 명예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고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위명(威名)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검객은 누구나 1, 2번 실패한 경험이 있는 것이고 실패란 결코 치욕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 1전(一戰)의 승리자인 연(燕)13(十三)은 스스로 자살을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가 자살한 원인은 사효봉(謝曉峰)을 격파한 그 1검(一劍)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악지살(至惡至殺)한 검법으로 인간세상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연(燕)13(十三)은 죽었고 그 검법마저 저세상으로 가져가 버렸다. 그래서 사효봉(謝曉峰)은 여전히 이 인간 세상에서는 유일무일한 최강의 검객으로 남아 있었다. 이 말은 사효봉(謝曉峰) 자신이 그 일이 있은 후에 몇 명의 친구에게 말한 것이었다.

사효봉(謝曉峰)이 친구로 사귀는 사람들은 무림에서 지극히 높은 명예를 누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그 어떤 사람도 그 소문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그 소문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다. 그는 냉소를 띠우고 입을 열었다.

“영존의 검 아래 많은 고수들이 죽음을 당했으나 그들은 결코 모두 검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소.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나의 도전을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오.”

사소옥(謝小玉)은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정붕(丁鵬)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냉랭히 말을 이었다.

“당신은 돌아가서 영존에게 내가 그를 열흘 동안 기다리겠다고 하시오. 열흘 안으로 그가 친히 찾아 와서 사의를 표하고 사과한다면 우리들은 어쩌면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오…”

이 1마디의 말에 모든 사람들은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너무나 건방진 말투였다. 사효봉(謝曉峰)은 한평생 몇 명의 친구밖에 없었다.

아니, 1명의 친구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것은 그가 남과 사귀는 것을 싫어하고, 그가 천하제일의 무적 검수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검은 검 가운데 신이었고 그는 사람들 가운데 신이었다. 정상에 선 사람들은 고독하기 마련이었다. 사효봉(謝曉峰)이 친구를 사귀는 것은 자기의 신분을 격하시키는 동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감히 그를 과소평가한 것이고, 그 누구도 그가 건방지다고 하지 않았다.

정붕(丁鵬)이 1칼로 마교(魔教) 철연(鐵燕)장로(長老)의 손목을 자른 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은 그 도법을 보지 못했고 어떤 사람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다만 철연(鐵燕)쌍비(雙飛)의 칼이 떨어지고 손이 떨어지는 것만 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은 그 칼은 흔한 무쇠 칼이었으며 단 1초(一招)에 팔을 잘라냈다는 것이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사효봉(謝曉峰)이 검을 펼쳐내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사효봉(謝曉峰)이 정붕(丁鵬)처럼 해낼 수 있다고 감히 단정할 수 없었다.

정붕(丁鵬)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따라서 정붕(丁鵬)의 다음 말에 대해서도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정붕(丁鵬)은 다시 입을 열었다.

“열흘 후에도 그가 오지 않는다면 나는 칼을 들고 신검산장(神劍山莊)으로 달려가겠소!”

사소옥(謝小玉)은 침을 삼키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정… 정(丁)공자, 정(丁)대협, 그 일에 대해서 저는…”

정붕(丁鵬)은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당신은 돌아가서 그에게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오. 나는 그 누구도 당신에게 상해를 가하지 못하리라 믿소. 당신은 이만 가 보시오.”

말이 끝나자 그는 몸을 돌려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 있는 모든 손님과 사소옥(謝小玉)을 놔두고 가버렸다. 정결하게 차려 입은 하인들은 비로소 술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원월산장(圓月山莊)의 연회는 끝난 것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은 제자의 신분으로 문 앞에서 손님들을 전송했다. 그는 모든 손님들에게 고맙다는 말과 더불어 안녕히 가시라는 겉치레의 말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약송(柳若松) 역시 한때는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사람들의 기억속 에서 말살된 것 같았다. 그러나 유약송(柳若松)은 조금도 다른 사람들의 냉담에 대해서 개의치 않았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은 중단된 적이 없었고 예의 바르게 모든 사람들을 접대했다. 그는 자기의 새로운 지위에 무척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정붕(丁鵬)의 제자가 되는 것이 남들에게 대협 소리를 듣고 장주(莊主) 소리를 듣는 것보다 더욱 영광스러운 일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그는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 못 되었지만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은 수100년에 1명 날까 말까 했다.

“그 1사람 뿐이라는 것이 천만다행이군!”

이것은 원월산장(圓月山莊)에서 떠나는 모든 사람이 유약송(柳若松)에 대해 느끼는 관념이었다.

멸시하면서도 일말의 가상하게 여기는 마음도 있었다. 사내 대장부는 움츠릴 수도 있어야 하고 뻗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들은 유약송(柳若松)이 기염을 토하고 기고만장하게 행동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유약송(柳若松)이 그렇게 자기 자신을 깎아 내리는 처세를 할 줄은 미처 몰랐었다.

“유약송(柳若松)은 정말 이대로 그 자신을 매몰시켜 영원히 그런 모양으로 욕됨을 참고 구차하게 살아갈 것인가?”

대답은 하나같이 부정적이었다.

“그의 무서운 점은 신검(神劍) 사효봉(謝曉峰)이나 새로 등장한 마도(魔刀) 정붕(丁鵬)보다도 더하다.”

십중팔구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10명 가운데 2명은 유약송(柳若松)의 곁의 떠나면서 구역질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토하지 않았다. 그들은 원월산장(圓月山莊)에서 많은 것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매우 만족하고 있었고 이번 길이 헛걸음이 아니라며 무척 기뻐했다.

이번 연회의 수확은 적지 않았다. 정붕(丁鵬)이 손님들에게 대접한 음식은 모두 이름난 요리사들의 작품이었고 평생 동안 1번도 맛보기 힘든 산해진미였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이 무슨 맛인지 몰랐다. 그들의 배는 음식 대신에 긴장과 자극으로 가득 채워진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무척 개운하게 느꼈고 원월산장(圓月山莊)에서 죽은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丁)공자는 죽은 사람들을 수렴하게 되었을 때 다시 1번 크게 돈을 썼다.

열흘이 후딱 지나갔다. 원월산장(圓月山莊)의 산 아래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목을 길게 빼고 사(謝)씨 집안의 3(三)소야(少爺)가 달려오기를 기다렸다. 많은 사람들이 신검 사효봉(謝曉峰)의 풍채를 1번 구경하고 싶어했다. 또 많은 여인들은 사(謝)씨 집안의 3(三)소야(少爺)가 곳곳에서 정을 뿌린 풍류검객이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은 나이가 좀 들었지만, 강산은 쉽게 바뀌어도 본성은 좀처럼 변하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자기들도 그의 눈에 들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냄새나는 계집년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강호인들은 사효봉(謝曉峰)이 오지 않기를 바랬다. 사(謝)씨 3(三)소야(少爺)가 오지 않는다면, 정(丁)공자는 그를 찾아가 결투를 하게 될 것이다. 결투는 감사를 드리고 사과를 하는 것보다 훨씬 보기 좋고 훨씬 재미있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신검(神劍) 대 마도(魔刀)의 결투이니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인가! 사효봉(謝曉峰)은 여러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는 오지 않았다. 사실 그가 나타날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하고 있었다. 사효봉(謝曉峰)은 결코 겸허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사람이 무척 겸허하고 친절하게 변해서 사귀기 쉬워졌다고 했다. 그러나 사효봉(謝曉峰)은 역시 사효봉(謝曉峰)이었다. 그는 무척 자만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도리를 따지는 사람이었고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쉽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의 성이 사(謝)씨이고 그의 조상들이 모두 사(謝)씨 성을 쓰기 때문에 가문의 자존심을 지켜야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붕(丁鵬)이 그의 딸을 구해준 것은 물론이고, 그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해도 그는 사의(謝儀)를 표하지 않을 것이었다. 정붕(丁鵬)의 초청을 거절한 것 때문에 찾아와 사과한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다. 사효봉(謝曉峰)이 그런 일로 사과를 한다면 사효봉(謝曉峰)은 1마리의 똥개보다도 못한 잡종개가 되고 말 것이었다.

사효봉(謝曉峰)이 오지 않으면 정붕(丁鵬)은 과연 그를 찾아갈 것인가? 열흘 동안 청청(青青)은 무척 우울했다. 그녀의 미간은 언제나 찌푸려져 있었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정붕(丁鵬)은 줄곧 자기의 무공 때문에 흥분하고 있었다. 그는 원월산장(圓月山莊)에서 가진 1번의 모임으로 인해 이미 그의 이름이 강호에 쩌렁하니 울려퍼지게 된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건방지고 오만하고 무지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사소옥(謝小玉)에게 돌아가 전하라고 1말은 확실히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건방진 말이었다. 하지만 그 자신도 사효봉(謝曉峰)의 검이 철연(鐵燕) 부부의 쌍도(雙刀)합벽(合壁)보다 훨씬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물론 사효봉(謝曉峰)이 오지 않을 것을 짐작하고 있었고, 1전(一戰)을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 1전(一戰)은 그가 바라던 것이었다. 열흘 동안 그는 1사람의 손님도 접견하지 않았고 청청(青青)의 방에도 좀처럼 가지 않았다.

그는 원월산장(圓月山莊)의 밀실에서 문을 닫아 걸고 깊은 생각에 빠져 고된 수련을 쌓고 있었다. 그는 그 1자루의 만도(彎刀)를 연마하고 있었고 그 신기한 도법을 갈고 닦았다. 그는 본래 야심이 큰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원월산장(圓月山莊)의 성공은 그의 자신감을 크게 증가시켰고 그의 웅심이 자라나게 만들어주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였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치밀해지고 그의 야심도 그만큼 커져갔다.

다른 사람은 사효봉(謝曉峰)을 격퇴시키는 것이 영웅세월(英雄歲月)의 정상의 도달하는 것이라고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하나의 시작으로 보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미 많은 구상을 하고 있었다. 모든 구상은 신검산장(神劍山莊)을 제압하는 것보다 더 위대하고 더욱 강호를 진동시킬 일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번째의 시도에서 반드시 성공을 거두어야 했다! 열흘이 흘러갔다.

사효봉(謝曉峰)은 오지 않았다. 11째 되는 날은 바람도 잔잔하고 햇살은 따사로웠으며 파란 하늘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출행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였다. 정붕(丁鵬)은 사효봉(謝曉峰)과 결투하기 위해 출발했다. 떠나기 전에 그는 청청(青青)을 만나보았다. 청청(青青)은 말했다.

“당신이 이번에 순풍에 돛단 듯이 명예를 가득 싣고 돌아오시기를 빌겠어요…”

정붕(丁鵬)은 껄껄 웃었다.

“하하하, 청청(青青), 당신은 정말 신통력이 크고 법력(法力)이 무한하구려.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각을 당신은 1번도 몰랐던 적이 없구려.”

그는 더 말하지 않고 청청(青青)의 곁을 떠났다. 정붕(丁鵬)은 1대의 금벽휘황(金碧輝煌)한 마차를 타고 달려가고 있었다. 마차는 온몸이 눈처럼 희고 광택이 나는 4필의 준마가 끌고 있었다. 이 4필의 말은 모두 대완(大宛)에서 나는 유명한 말들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1필을 구하기도 어려운데 그는 4필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4필로 마차를 끌도록 1것이었다. 천리마는 달리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결코 마차를 끄는데 적합하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낭비라 할 수 있었다. 1마리의 노새가 마차를 끄는 데는 더 적합했다. 이 4필의 준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습관이 되지 않았고 고분고분하지 않았으며 서로 용납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을 모는 마부는 훌륭한 솜씨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전신이 시커먼 곤륜노(崑崙奴)였다. 머리카락을 밀어버리고, 꽃을 수놓은 기다란 바지를 입었고, 어깨와 가슴을 드러냈다. 목에는 하나의 커다란 황금으로 만들어진 테를 목걸이 삼아 매달고 있었는데 마차 위에 턱 앉으니 철탑(鐵塔)을 연상시켰다. 그의 2손은 익숙하게 말고삐를 잡아 당겼고 채찍을 철썩철썩 소리가 나도록 휘둘러, 4필의 준마를 조종하여 위풍당당하게 달려가도록 만들고 있었다.

마차가 달려가는 기세는 마치 천군만마가 달려가는 것 같았고, 그 기세는 황제가 행차하는 것처럼 웅장하고 화려했다. 그러나 정붕(丁鵬) 나으리는 이런 수작을 좋아했다. 그는 다시 강호에 나타나면서 큰 부자처럼 행세했고 권력가처럼 행세했다. 이제는 아무리 써도 다 쓰지 못할 재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아직도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마차의 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따라오고 있었다. 정붕(丁鵬)은 무척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청하지도 않았는데 따라오고, 마치 가장 충실한 하인들처럼 그를 따라 신검산장(神劍山莊)으로 가려는 것이었다.


17. 신검산장(神劍山莊)의 나룻배

정붕(丁鵬)은 뒤에서 따라오는 1떼의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삼삼오오 떼를 지었거나 혼자서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강호에서 이름이 알려진 인사들도 더러 있었다. 정붕(丁鵬)은 속으로 기쁨을 느꼈다. 사효봉(謝曉峰)은 그보다 명성이 더 높을지 모르지만 사효봉(謝曉峰)에게 이런 국면을 만들 재간이 있을까? 그는 편안하고도 한가롭게 눈을 감고 마차 바퀴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그는 또 다른 1가지 일을 기뻐하고 있었다. 그것은 청청(青青)이 이번 일에 대해 보여준 태도였다. 출행을 하기 전에 그는 청청(青青)에게 이번만큼은 그녀가 따라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그 말을 하기가 거북했다. 청청(青青)은 무척 아름다웠으며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은 조금도 그를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청청(青青)의 무공은 무척 고강했다. 옛날에는 그보다 훨씬 고강했었다.

지금은 그에 비해 1수 정도 뒤떨어지지만 결코 그에게 부담이 될 수는 없었다. 청청(青青)은 그에게 대해서 무척 고분고분했으며 그의 일에 대해서 반대를 표명한 적도 없었고 그의 어떠한 행동도 구속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청청(青青)을 데리고 가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다만 1가지 이유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 이유를 거론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여우[狐]였다. 여우[狐]가 사람으로 둔갑하여 여우[狐] 티를 벗기는 했지만 여우[狐]는 역시 여우[狐]에 불과했다. 여우[狐]가 사람이 많은 곳에 나타나는 것은 적당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청청(青青)을 데려갈 수 없는 이유가 아니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청청(青青)의 곁에서 당분간 떠나 있고 싶었다. 이것은 그의 마음속의 충동이고 바램이었다. 그는 청청(青青)이 반드시 따라 나서려고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청청(青青)이 남아 있어야 할 이유를 만들려고 했었다. 그 이유를 대기 위해서 그는 사흘이라는 시일 동안 궁리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럴듯한 구실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떠나려는 마당에 청청(青青)이 먼저 입을 연 것이었다. 그녀는 순풍에 돛 단 듯이 개선해서 돌아오라고 축복해주었다. 마치 그를 따라가지 않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이것은 결코 신기한 일이 못 되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여우[狐]였기 때문이었다. 여우[狐]는 점을 치지 않고도 미리 알아차리고 사람의 마음속을 헤아리는 신통력이 있었다. 정붕(丁鵬)은 생각해 보았다.

(호녀(狐女)를 아내로 삼는다는 것은 실로 커다란 복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정붕(丁鵬)은 길을 가는 동안 아주 흐뭇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차가 흔들리는데도 잠을 잘 수 있었다.

마차가 흔들리는 것은 결코 길이 평탄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관도(官道)를 따라가고 있었다. 관도는 평탄하고 넓었으며 마차 바퀴 역시 무척 튼튼했다. 특별히 제작한 이 1대의 마차는 황제가 각지를 순시할 때 타고 다니는 어가(御駕)보다도 훌륭한 것이었다. 마차가 평온하지 못한 것은 마차를 끄는 말들의 발걸음이 일치되기 어렵고, 마차를 끄는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고(阿古)와 같은 훌륭한 마부가 마차를 몰고 있었지만 여전히 마차가 평온하게 달려가지 못한 것이었다. 아고(阿古)는 바로 그 곤륜노(昆侖奴)였다. 그는 청청(青青)이 깊은 산속의 호혈(狐穴)에서 데리고 나온 유일한 시종이었다. 아고(阿古)는 거의 만능이었다. 바느질부터 아름드리의 나무를 뽑는 일까지 그는 능수능란했다.

자기가 입고 있는 옷에 그 자신이 꽃을 수놓기도 했다. 이 1대의 호화스러운 마차 역시 그가 만든 것이었다. 아고(阿古)는 다만 2가지 일만 하지 못했다. 1가지는 어린애를 낳는 일이었다. 그는 남자이기 때문이었다. 또 1가지는 말을 하는 일이었다. 그에게는 혓바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 2가지 일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정붕(丁鵬)은 물론 아고(阿古)가 자기의 아들을 낳아주기를 바라지 않고 있었다.

아고(阿古)는 자기의 의견을 말할 필요가 없이 그저 명을 듣기만 했고 명령대로 실천하면 그만이었다. 아고(阿古)는 그런 면에서 보면 이상적인 시종이었다. 그래서 정붕(丁鵬)은 청청(青青)을 집에 남겨두었지만 아고(阿古)만은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 성을 나서자 오고 가는 행인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마차 뒤로는 길게 줄을 지어 사람들이 따르고 있었다. 모두 강호인들이었다.

정붕(丁鵬)은 갑자기 골탕을 먹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는 아고(阿古)에게 명령을 내렸다.

“마차를 빨리 몰게.”

아고(阿古)는 매우 충실하게 그 명령을 집행했다. 기다란 채찍을 휙 하니 휘둘렀고 말고삐를 가볍게 떨쳤다. 그 순간 마차는 기다렸다는 듯 쏜살같이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놀라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정붕(丁鵬)은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정붕(丁鵬)이 출타한 후에 원월산장(圓月山莊)은 썰렁해졌다.

이곳에 모여 있던 강호의 호걸들도 정붕(丁鵬)을 따라 떠났다. 정붕(丁鵬)이 초청해서 이곳에 머물도록 한 손님들도 모두 떠나갔다. 그들도 정붕(丁鵬)과 사효봉(謝曉峰)이 벌이는 1차례의 결전을 구경하고 싶었다. 다만 그들은 그 강호인들처럼 정붕(丁鵬)의 마차를 바짝 따르는 짓은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들이 정붕(丁鵬)과 사효봉(謝曉峰)의 결투를 구경하고 싶다면 어째서 즉시 뒤쫓아가지 않는 것일까?

정붕(丁鵬)이 먼저 신검산장(神劍山莊)으로 달려간다고 해도 그들이 그 자리에서 구경을 해주지 않으면 결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몇몇 사람들은 여유있게 호수 위에 배를 띠우고 기녀들과 한나절 동안 한가하게 수작을 걸다가 어둠이 내리자 슬그머니 그 누구도 주의하지 않는 틈에 1채의 별관으로 들어갔다. 객사(客舍)에서 그들은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지시를 받았다. 그들은 그 사람에게 무척 공손한 태도를 보였으며 객사(客舍)에 들어선 후에 그들은 1마디도 하지 않았다.

약간 묵직하고 공손하게 예, 하는 대답소리 이외에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이 사람들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들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지금으로서는 그들 자신 이외에는 그 신비한 어떤 사람만이 알 수 있으리라. 원월산장(圓月山莊)에는 아직도 1사람이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유약송(柳若松)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손님이라서 바로 떠날 수 있었으나 그만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는 정붕(丁鵬)의 제자이기 때문이었다. 정붕(丁鵬)은 그에게 무공을 조금도 가르치지 않고 그를 부려먹고 일을 시켰을 뿐이었다. 그러나 유약송(柳若松) 대장주께서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고 무척 공손하게 굴었다. 정붕(丁鵬)은 떠날 때 그보고 따라오라고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히려 무척 기뻐했다. 여러 곳을 1차례 둘러본 후에 그는 후원으로 갔다.

후원은 청청(青青)이 거처하는 곳이었다. 오직 2명의 매우 예쁘게 생긴 하녀가 시중을 들고 있었는데 1명은 춘화(春花)라고 했고 1명은 추월(秋月)이라고 했다. 춘화(春花)는 아름다웠다. 요염한 봄꽃을 연상시켰다. 추월(秋月)의 살결은 하늘에 떠 있는 달보다도 고결하고 매혹적이었다. 2하녀는 17살이었다. 가장 매력적인 나이였다. 이 2소녀는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남자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들은 원래 금릉(金陵) 진회하(秦淮河)에서 무척 유명한 1쌍의 가기(歌妓)였다. 정붕(丁鵬)은 1사람에 3천 냥의 몸값을 주고 사들였다. 그녀들은 하인이었지만 힘든 일을 하지 않고 다만 청청(青青)의 벗이 되어줄 뿐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은 나이는 약간 많은 편이었지만 무척 준수하게 생겼다. 만송산장(萬松山莊)의 유(柳)장주(莊主)는 원래 무림에서 유명한 미검객(美劍客)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은 지금은 강호인들의 마음속에서는 1푼의 가치도 없는 졸장부가 되었지만 춘화(春花)와 추월(秋月)의 눈에는 여전히 무척 매력적이고 힘이 강한 사내였다. 그래서 그가 후원으로 들어서자마자 2명의 꽃나비 같은 여자애들은 즉시 그를 향해 달려들어 1사람은 왼쪽에서 1사람은 오른쪽에서 그의 팔을 잡았다. 옛날 같았으면 유약송(柳若松)은 틀림없이 기뻐했을 것이다.

이 기회에 그녀들의 엉덩이를 슬쩍 쓰다듬거나 그녀들의 고운 뺨을 슬쩍 꼬집어 보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것은 옛날 이야기였다. 그가 대장주이고 대검객일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송(松), 죽(竹), 매(梅)라는 세한(歲寒)3우(三友)라는 이름이 강호에서 날릴 때였다. 지금 그는 정붕(丁鵬)의 제자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그는 사부의 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제자가 사부의 집에서 머물 때는 반드시 얌전해야 하고 조심해야 하며 행동에 있어서 법도와 예의를 차려야 했다. 유약송(柳若松)은 대협일 때도 그에 알맞게 처신했었는데, 남의 제자가 되었을 때도 역시 신분에 알맞게 행동했다. 그는 재빨리 1걸음 뒤로 물러서서 날아든 2무더기의 염복을 밀어젖혔다. 그는 점잔게 물었다.

“사모님은 어디에 계신가?”

춘화(春花)는 킥킥거리고 웃었다.

“호호호, 당신은 마님을 보러 왔나요?”

유약송(柳若松)은 여전히 점잔게 대답했다.

“그렇다. 나는 사모님에게 무슨 분부가 있는지 여쭈어 보려고 온 것이다.”

추월(秋月) 역시 웃었다.

“당신이 왜 마님을 찾지요? 일이 있으면 마님께서 사람을 보내 당신에게 알려줄 것이 아니에요? 주인 나으리께서는 당신이 볼일이 없는 한, 함부로 후원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당부하셨어요.”

유약송(柳若松)은 점잔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사부님이 집에 계실 때의 일이오. 이제 사부님께서 출타하셨으니, 이 제자가 조금이라도 효심을 보여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춘화(春花)는 깔깔거리며 간드러진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효심이라고요?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 남의 집의 착한 아들이 되어, 아침 저녁으로 1번씩 문안을 드리겠다는 것인가요?”

유약송(柳若松)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바로 그럴 참이라네.”

추월(秋月)은 웃었다.

“지금은 점심때예요. 아침 문안을 드리기에는 너무 늦었고 저녁 문안을 드리기에는 너무 빠른 감이 있네요.”

유약송(柳若松)은 얼굴을 붉혔다.

“그런 마음만 있다면 아침과 저녁을 구분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춘화(春花)는 웃었다.

“당신의 그 효심을 보아서라도 나는 당신을 위해 1마디 통지하지 않을 수 없군요. 하지만 지금 통지한다면 틀림없이 핀잔을 받을 거예요. 왜냐하면 마님의 심기가 좋지 않거든요. 조금 전에는 조용히 있고 싶으니 어떤 사람도 방해 말라는 당부가 있었어요. 당신이 마님을 만나고 싶다면 그녀의 심정이 좋을 때 다시 오는 것이 가장 좋겠네요.”

“그럼… 그녀는 언제쯤 심정이 좋아지겠는가?”

“그건 말하기 힘들지요. 최근 며칠 동안 마님은 심기가 불편했어요. 하지만 오늘밤 달이 뜰 무렵에 그녀는 달구경을 나오시게 될 거예요. 그때 그녀의 심기가 설사 좋지 않다 해도 무척 외로워서 그 누가 옆에서 벗해 이야기라도 나누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랄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눈빛을 빛냈다.

“그렇다면 나는 밤에 다시 오기로 하겠네.”

추월(秋月)은 즉시 그 말을 받았다.

“잠깐, 그녀가 당신을 만나줄지 아직 모르는 일이고, 그녀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이 당신이라는 법도 없는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말했다.

“상관없네. 나는 다만 성의를 다하려는 것뿐이네. 오늘 만나 뵙지 못하면 내일 다시 오고, 내일 뵙지 못하면 모레가 있지 않나? 지성이면 감천이고, 정성이 이르는 곳에 금석(金石)이라도 뚫린다고 하지 않는가…”

춘화(春花)는 냉소했다.

“금석은 뚫릴지 모르지만 후원의 문이 열리지 않으면 당신은 만나볼 수 없는 거예요. 매번 마님께서 달구경을 하게 되었을 때 언제나 우리들보고 후원의 문을 꼭 닫아걸라고 하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안으로 들어오려면 반드시 우리가 문을 열어주어야 되는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말했다.

“그렇다면 2분에게 1번 폐를 끼치도록 하겠네.”

추월(秋月)은 웃었다.

“그것도 아니 되어요. 우리들은 반드시 그녀를 모시고 있어야 해서 당신을 위해 대문을 열어줄 여유가 없단 말이에요. 만약 당신이 문을 두드리게 된다면 마님께서는 즉시 누각 위로 돌아가시게 될 거예요. 왜냐하면 마님은 당신을 만나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고 했어요. 만약에 당신이 온 것을 알면 틀림없이 우리보고 당신을 물리치라고 할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약간 실망했다.

“그렇다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세.”

추월(秋月)은 교활하게 웃어 보였다.

“유(柳)나으리, 만약 당신이 후원의 문을 통과하지 않고 월장해서 들어오려고 생각했다면 잘못이에요. 마님은 법도를 무척 따지는 분이에요. 이 뜨락은 밤이 되면 무척 삼엄하게 방비하고 있어요. 이틀 전에 어떤 사람이 살그머니 들어왔다가 기관매복에 걸려서 저 나무 아래서 죽어버리게 되었는데 겨우 1무더기의 옷만 남겼지요. 뼈마디마저도 녹아 없어지고 말았어요. 소문에 들으니까 그는 무슨 비천지주(飛天蜘蛛)라는 무척 유명한 비적(飛賊)이라고 한다더군요.”

유약송(柳若松)은 그만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나타날 때 그림자를 보이지 않고 갈 때도 종적이 없는 비천지주(飛天蜘蛛)는 하룻밤에 천 집의 물건을 훔칠 수 있으며 1번도 남에게 들킨 적이 없다고 했는데…”

춘화(春花)는 봄꽃처럼 활짝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올 때 그림자가 없었던 것은 틀림이 없지만 갈 때 종적이 없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그는 이미 1무더기의 물로 변해 있었으니까요.”

유약송(柳若松)은 몸을 1번 부르르 떨었다. 등줄기가 오싹오싹했으며 솜털이 곤두섰다. 추월(秋月) 역시 웃었다. 그 웃음은 결코 가을의 밤하늘에 떠 있는 밝은 달 같지는 않았다. 달은 싸늘하고도 차가웠으나 그녀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당신이 들어와서 마님을 만나보려면 1가지 방법밖에 없어요. 바로 우리 자매 2사람 가운데 1사람이 살짝 나와서 당신을 위해 문을 열어주고 당신을 마님 앞으로 데려가는 거예요. 이렇게 한다면 우리가 1, 2마디 꾸지람을 듣는다 해도, 적어도 당신이 마님을 만날 수는 있는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멍청이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는 길게 읍을 하며 그 말을 얼른 받았다.

“아무쪼록 2분이 여러모로 도와주시기 바라오.”

춘화(春花)는 빙그레 웃었다.

“너무 겸손할 것 없고 너무 예의를 차릴 것도 없어요. 우리 자매 2사람은 말을 참 잘 듣는 편이라고요. 우리들이 마음속으로 기쁠 수만 있다면 당신이 무슨 일을 해도 상관이 없어요. 하지만 반드시 우리 자매 2사람을 기쁘게 해주어야 해요. 당신은 우리가 가장 기뻐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세요?”

그녀는 몸을 슬쩍 붙여 왔다.

몸은 이미 뜨겁게 후끈거리고 있었다. 유약송(柳若松)이 바보가 아닌 이상 자연히 무슨 방법인지 알만했다. 2여인은 유약송(柳若松)을 1칸의 정자 안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그녀들이 좋아하는 일을 시작했다. 족히 1시진을 넘기고서야 유약송(柳若松)은 되돌아올 수 있었다. 2여인은 그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보기만 좋았지 쓸모가 없다는 것이었다.

2송이의 꽃과 같은 여인들이 그 일을 하게 되었을 때는 10명의 가장 음탕한 갈보를 합친 것보다도 더 음탕하게 굴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일이었다. 그에게 죽임을 당한 아내는 그야말로 1마리의 굶주린 이리와 같았다. 1마리의 굶주린 이리 때문에 그는 반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 그는 2마리의 굶주린 호랑이를 만난 격이었다.

이 몸뚱이와 뼈대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다. 보름달이 떠 있었다. 유약송(柳若松)은 청청(青青)을 만나러 가지 못했다. 그는 죽은 개처럼 침대에 누워 있었다. 기어 일어나려고 해도 일어날 힘이 없었다. 며칠 동안 달이 무척 밝을 것이다. 그러나 유약송(柳若松)은 감히 청청(青青)을 만나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는 자기가 며칠 동안 전혀 기운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침대 위에 누워서 꼭 1가지 일만 생각했다. 춘화(春花)와 추월(秋月)은 정말로 금릉(金陵)에서 사온 명기(名妓)일까? 그가 생각하기에 오직 서방(西方)의 신비한 종파에서 나온 여인만이 그렇게 음탕하고 그렇게 고명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지쳐서 눈을 뜰 힘조차 없었지만 그녀들은 여전히 그의 몸에 있는 어느 부위를 잔뜩 흥분시키는 재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남아 있는 1방울의 생명까지 빨아들이는 것이었다. 천하에 불가능한 일은 없고 다만 마음만 있으면 뜻을 이룬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정말 너무나 많이 알려진 속담이었고 글자를 모르는 할멈까지도 이 말을 이용해서 손자 손녀들을 훈계하곤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이 그토록 넓게 응용되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는 진리일 것이다.

유약송(柳若松)은 착실히 며칠 동안 쉬었다. 그는 유명한 하오문(下五門)의 채화적(採花賊)을 찾아가서 1봉지의 금창불도(金槍不倒)의 용호묘약(龍虎妙藥)을 구했다. 그 묘약을 복용하면 물건이 일단 발기했다 하면 오랫동안 죽지 않았다. 온몸의 땀을 2번이나 흘리면서 그는 가까스로 2마리의 굶주린 호랑이, 2마리의 음탕하고 요염하기 이를 데 없는 계집애들이 가뿐 숨을 연신 몰아쉬다가 축 늘어지도록 요리할 수 있었고 끝내 그는 청청(青青)을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느 달 밝은 밤이었다. 청청(青青)은 손으로 정자의 난간을 어루만지며 달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겨 있었다. 유약송(柳若松)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공손히 다가갔다. 지금 그의 눈앞에서는 불똥이 튀었고 발걸음은 휘청거렸다. 그 1봉지의 금창불도(金槍不倒)의 묘약은 그를 용감무쌍하게 만들어주었고, 그야말로 항룡복호(降龍伏虎)의 천신(天神)처럼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그의 체력은 대단히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여주인만 가까이 할 수 있다면 성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청청(青青)은 그를 1번 바라보더니 아무런 표정도 없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무엇하러 왔어요?”

유약송(柳若松)은 고개를 숙였다.

“제자는 사모님께 문안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청청(青青)은 눈살을 찌푸리며 혐오감을 드러내었다.

“나는 잘 있어요. 다른 사람이 문안을 드릴 정도는 아니에요.”

유약송(柳若松)은 처음부터 청청(青青)의 호감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겸손하고 비굴하게 입을 열었다.

“제자는 그래도 사모님에게 사부님의 소식을 알려드릴까 하옵니다.”

“그건 당신이 말할 필요가 없지요. 나 역시 잘 알고 있으니까요.”

“사모님께서는 전혀 바깥 출입을 하지 않으시는데…”

청청(青青)은 그의 말을 가로챘다.

“나에게는 나대로의 방법이 있어요. 어떤 방법이냐에 관해서는 당신에게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겠지.”

유약송(柳若松)은 연신 공손히 대답했다.

“네… 네. 그렇지요. 하지만 사모님께서 들으신 것은 그저 한쪽의 소식이니, 이 제자가 알고 있는 것만큼 정확하지 못할 것입니다.”

청청(青青)은 그 말을 받았다.

“나는 당신의 소식이 나보다 더 확실하다고 믿을 수 없네요?”

유약송(柳若松)은 아첨의 웃음을 띠었다.

“사모님께서 믿지 못하신다면 제자가 말씀을 드리도록 하지요. 사모님께서 아시고 계신 바와 1번 대조해 보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그때 사모님께서는 이 제자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청청(青青)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좋아요. 얘기해 보세요.”

유약송(柳若松)은 무척 우쭐해서 입을 열었다.

“사부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매일 100리만 가시며, 머무는 곳에서 반드시 사람을 놀라게 하는 거동을 보이곤 합니다.”

청청(青青)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요. 그 양반의 목적은 남의 주의를 끌기 위한 것이니까요.”

유약송(柳若松)은 여전히 우쭐한 표정으로 설명을 했다.

“사부님께서는 1번은 커다란 기루에서 술상을 차리고 강호의 여자들만 초청했었지요. 그녀들 가운데는 이미 시집을 간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그녀들의 남편이나 연인들은 모두 문밖으로 내몰았답니다.”

청청(青青)은 웃었다.

“그것도 상관없지요. 그가 억지로 불러 모은 것은 아니고 그 여자들이 스스로 원해서 간 것일 뿐이에요. 그녀들의 남편들도 반대하지 않았지요.”

“술상이 파하게 되었을 때 사부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12분의 비교적 젊은 여자들을 억지로 붙잡아 두고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그것은 무척 재미있었겠네요. 그러나 그가 억지로 붙잡아둔 것이 아니고, 붙잡힌 사람들도 별로 불쾌하게 생각지 않았겠지요. 오히려 붙잡히지 못한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끼게 되고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그들 가운데 5명은 남편이 있는 아낙이고 또 3명은 이미 약혼을 한 여자였죠.”

청청(青青)은 빙그레 웃었다.

“그녀들의 남편이나 약혼자들이 그로 인해서 불안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우쭐해하고 영광스럽게 느끼고 있을 걸요? 소위 백도의 호걸들은 모두 비위가 좋은 편이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기들의 아내가 외간 남자와 잠을 잔다고 해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

유약송(柳若松)의 얼굴이 붉어졌다. 따귀를 1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청청(青青)은 물론 명확하게 지적한 것이 아니었지만 확실히 그를 빗대어 말하고 있었다. 정붕(丁鵬)의 그 천외유성(天外流星)이라는 검초를 손에 넣기 위해서 유약송(柳若松)은 그의 아내인 가정(家丁)을 정붕(丁鵬)에게 보내 살을 섞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그 검법을 얻게 되었으나 잃은 것이 더 많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정붕(丁鵬)을 오히려 성공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왔고, 유약송(柳若松) 자신은 이토록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보복을 당하기까지 했다. 이런 일에 생각이 미치자 유약송(柳若松)은 한스러워서 스스로 따귀를 갈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결코 자기가 한 짓거리에 대해서 후회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한스럽게 여기는 것은 자기의 운수가 이토록 형편없다는 것이었다. 정붕(丁鵬)이 만난 기우(奇遇)가 어째서 자기에게는 찾아오지 않는단 말인가?

다행히 정붕(丁鵬)은 청청(青青)의 곁을 지키지 않았고 그녀를 집에 혼자 두고 명성을 떨치기 위해 출행에 나선 것이었다. 이 무척 얻기 어려운 기회가 자기에게 주어진 이상 이 기회를 잘 잡지 않는다면 자기는 정말 똥개와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유약송(柳若松)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성명(盛名)을 누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명성을 그렇게 짓밟는다는 것은 결코 슬기롭지 못한 일로…”

청청(青青)은 빙그레 웃으며 그 말을 가로챘다.

“그 양반의 일은 당신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는 다 큰 남자이니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그 스스로 잘 알고 있겠지요.”

유약송(柳若松)은 말했다.

“그러나 사부님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사모님에게 너무나 잘못하는 것이지요.”

청청(青青)은 얼굴을 굳혔다.

“당신이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유약송(柳若松)은 재빨리 말했다.

“제자는 다만 사모님을 위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지요.”

청청(青青)은 냉랭히 그 말을 받았다.

“나는 그 분을 믿어요.”

1마디로 유약송(柳若松)의 말을 봉쇄해버렸다. 청청(青青)은 그리고나서 다시 차갑게 말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일들이 겨우 그 정도라면 더 말할 필요 없어요.”

유약송(柳若松)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제자는 5대(五大)문파(門派)의 장문인(掌門人)들이 모두 놀라서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가 하면, 서둘러서 신검산장(神劍山莊)으로 달려갔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청청(青青)은 빙그레 웃었다.

“그거 역시 대수로운 소식은 못 돼요. 어떤 사람이 사효봉(謝曉峰)에게 도전한다는 것은 아주 중대한 사건이지요. 그들이 신나는 구경을 하고 싶어하는데 뭐가 문제인가요?”

유약송(柳若松)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들은 결코 구경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지요.”

청청(青青)은 탄성을 발했다.

“뭐라고요? 그럼 그들은 무엇하러 갔어요? 사효봉(謝曉峰)을 도와주려고 간 것은 아니겠지요?”

유약송(柳若松)은 웃었다.

“사효봉(謝曉峰)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의 검이 사부님의 칼을 이기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도움이 될 수 없어요. 그들은 이번 결투를 저지하려고 간 것입니다.”


18. 말하는 산신

청청(青青)은 웃었다.

“그럼 잘 되었군요. 그들이 저지해주면 정말 잘된 일이지요. 이번 결투는 실로 아무런 뜻이 없어요. 그러나 나는 정붕(丁鵬)을 이해해요. 아마 그들은 저지하지 못할 것이에요.”

유약송(柳若松)은 씩 웃었다.

“제자가 보기에 그들은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철연(鐵燕)쌍비(雙飛)의 청을 받고 간 것이니까요.”

청청(青青)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그들이 어떻게 철연(鐵燕)쌍비(雙飛)와 1통속이 되었지요?”

유약송(柳若松)은 청청(青青)을 1번 바라보았다.

“그건 제자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날 원월산장(圓月山莊)에서 사부님은 철연(鐵燕)쌍비(雙飛)를 격파했었지요. 그 후에 철연(鐵燕)쌍비(雙飛)는 면사철(免死鐵)령(令)을 내보였는데, 그것은 5대(五大)문파(門派)의 장문인(掌門人)들이 공동명의로 만든 거지요. 아마도 5대(五大)문파(門派)와 그들 사이에는 틀림없이 어떤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청청(青青)의 안색은 차분하지 못했다. 그녀는 재빨리 물었다.

“당신은 또 무슨 이야기를 들었나요?”

유약송(柳若松)은 이제 때가 무르익었다는 것을 느끼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들이 만약 사부님과 사효봉(謝曉峰)의 결투를 말릴 수 없게 되었을 때는 전력을 다 기울여 결투를 하기 전에 사부님을 제거한다는 거예요.”

청청(青青)은 냉소를 띠었다.

“그들은 그런 재간이 없어요.”

유약송(柳若松)은 넌지시 말했다.

“그들이 1사람씩 달려든다면 물론 사부님의 적수가 되지 못하겠지요. 그러나 그들 휘하에 있는 문하 제자들을 모조리 투입한다면 무서운 힘이 될 겁니다.”

청청(青青)은 냉소했다.

“얼마든지 투입하라고 해요.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말이에요.”

유약송(柳若松)은 말했다.

“5대(五大)문파(門派)의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사부님의 손에 들린 그 1자루의 신도(神刀)를 상대해낼 수는 없겠지요. 문제는 또 다른 1명의 무서운 인물입니다.”

“그게 누구지요?”

“사효봉(謝曉峰), 사(謝)씨 집안의 3(三)소야(少爺)지요.”

“그가 뭘 어떻게 한다는 거죠? 근년에 그는 강호의 일을 묻지 않고 있어요.”

“그러나 신검산장(神劍山莊)은 여전히 무림의 성지이며 사(謝)씨 집안의 3(三)소야(少爺)는 여전히 무림의 정의를 떠받드는 기둥으로 전체 무림의 질서를 지켜줄 책임을 가지고 있지요. 사부님께서 5장문인(掌門人) 가운데 어떤 1분에게 상해를 입히게 된다면 사효봉(謝曉峰)은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발벗고 나설 것입니다.”

청청(青青)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그가 나선다 해도 별것 아니지요. 상공은 본래 그를 찾아가 결투를 하고자 했어요. 사효봉(謝曉峰)의 1자루 검은 신출귀몰하지만 반드시 상공의 손에 들린 만도(彎刀)를 이길 수 있다고는 볼 수 없어요.”

유약송(柳若松)은 빙그레 웃었다.

“사효봉(謝曉峰)이 정면으로 사부와 결투를 하면 승부는 단판에 끝나기 때문에 두려운 일이 없지요. 문제는 사효봉(謝曉峰)이 정면으로 결투를 요구하지 않고…”

청청(青青)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검산장(神劍山莊) 주인의 신분으로 암산이야 하겠어요?”

유약송(柳若松)은 힘주어 말했다.

“만약 어떤 중대한 이유가 있다면 사효봉(謝曉峰)은 어떠한 일이라도 할 겁니다.”

청청(青青)은 깊은 생각 속에 잠겼다. 유약송(柳若松)은 다시 넌지시 입을 열었다.

“지금 유일한 방법은 방법을 강구해서 5대(五大)문파(門派)의 결맹(結盟)을 깨뜨려 그들이 손을 서로 맞잡지 못하도록 하는 겁니다.”

“방법이 있나요?”

“물론 있지요. 5대(五大)문파(門派)는 겉으로 서로 합작을 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많은 내분이 있지요. 예를 든다면 소림(少林)과 무당(武當)은 지위가 높아서 자존망대하기 때문에 나머지 3문파(門派)에서 속으로 무척 안 좋게 여기지요. 선동을 하면 그들은 단합이 깨지게 될 것이고 사효봉(謝曉峰)도 그들이 서로 다투는 것을 방관하지 않을 겁니다…”

청청(青青)은 신중히 말했다.

“그 일은 처리하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미소를 띠었다.

“사모님께서 이 제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내리신다면 이 제자는 해낼 자신이 있습니다.”

그는 끝내 자기의 목적을 드러내었다. 청청(青青)은 빙그레 웃었다.

“당신에게는 어떤 조건이 있겠지요?”

유약송(柳若松)은 속으로 흠칫했다. 보기에 아름답고 천진무구한 나이 어린 이 여인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반드시 이 여자를 정복하고야 말겠다고 마음을 다져 먹었다. 그는 씩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제자는 사문(師門)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것인데 어찌 감히 조건을 제시하겠습니까?”

청청(青青)은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을 생각인가요?”

유약송(柳若松)은 즉시 대답했다.

“하지 않을 겁니다. 제자는 오직 1마음으로 사모님을 위해서 일을 해서, 약소하나마 저의 성의를 보여드릴 뿐이지요.”

청청(青青)은 야릇한 미소를 띠었다.

“당신은 충직한 사람이 아니에요. 만약에 득이 없다면 당신은 고갯짓 1번 하는 것도 하지 않을 사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감히 당신에게 수고를 끼칠 수 없네요.”

유약송(柳若松)은 더 이상 시치미를 뗄 수 없음을 알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자는 어떠한 요구도 감히 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일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 제자는 다른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청(青青)은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말해 봐요. 당신은 무엇을 요구하는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속으로 흥분하여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는 이미 중요한 고비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았다. 이때 너무 큰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작은 것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흥정을 할까? 청청(青青) 역시 이 비열하고도 혐오스러운 사내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그가 무슨 요구를 해올까를 생각해 보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에 유약송(柳若松)은 입을 열었다.

“제자는 지금 명성이 땅에 떨어지고 반푼의 값어치도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청청(青青)은 빙그레 웃었다.

“그거야 보는 사람마다 관점이 다를 것이 아니겠어요? 어떤 사람의 눈에 당신은 큰 인물로 보일 것이에요. 가죽이 두껍고 마음이 검은 점에 있어서 당신은 충분히 당대(當代)종사(宗師)가 될만 하며 그 누구도 감히 흉내를 내지 못할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다시 1번 얼굴을 붉혔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이나 욕지거리에 대해서 이미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지만 절세 미녀 앞에서는 어느 정도는 체면을 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청청(青青)의 면전에서는 세상에 갓 나온 간난아기처럼 1점의 비밀도 감출 수 없었으니 난처하고 괴로운 일이었다.

그는 쓰디 쓰게 웃다가 입을 열었다.

“어떤 일들은 제자가 직접 할 수 없고, 반드시 남의 손을 빌려야 하는데, 남이 믿어주도록 하기 위해서 제자는 반드시 믿을만한 신분을 갖추어야 하지요.”

청청(青青)은 되물었다.

“정붕(丁鵬)의 제자라는 신분으로 부족하나요?”

유약송(柳若松)은 쓰디 쓰게 웃었다.

“사모님께서도 부족하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왜냐하면 사부님 스스로가 자기의 신분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지요.”

청청(青青)은 안색이 변했다.

“그 양반에게 어떤 신분이 있다는 거지요?”

유약송(柳若松)은 용기를 내었다. 그는 지금 1마디라도 잘못 대답하면 자기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만도의 주인이라는 신분이지요.”

“그게 뭐가 대수로운가요? 그의 몸에는 그 만도(彎刀)가 매달려 있으니…”

“그러나 그 칼에는 小樓一夜聽春雨 (소루일야청춘우) 작은 누각의 밤, 봄비 소리 듣다 라는 7글자가 새겨져 있어야 되지요.”

청청(青青)의 안색이 다시 변해서 매서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 7글자에 무슨 특별한 뜻이 있나요?”

“그 글자에 특별한 뜻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만, 어떤 사람들은 그 7글자를 들은 후에 그만 안색이 크게 변해서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게 되지요. 바로 그날의 철연(鐵燕)쌍비(雙飛)가 그 예라고 하겠습니다.”

“당신은 그 7글자의 뜻을 알고 있나요?”

“제자는 모르지요. 그러나 5대(五大)문파(門派)의 장문인(掌門人)들은 모두 그 7글자 때문에 찾아올 겁니다.”

청청(青青)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물었다.

“당신은 뭘 바라지요?”

유약송(柳若松)은 천천히 말했다.

“제자가 만약 그 7글자를 대표할 수 있다면 적어도 어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남에게 일종의 보증이 될 수 있고 일종의 경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청(青青)은 즉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안 돼요. 당신은 그만한 자격이 없고 나도 그만한 자격이 없어요.”

유약송(柳若松)은 다시 간곡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사모님께서는 제자를 위해 그만한 자격을 청해서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청청(青青)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월만도(圓月彎刀)의 싯귀는 이미 어떤 뜻도 대표할 수 없어요. 그것은 단지 칼에 새겨져 있는 1구의 싯귀이며 어떤 자격도 없는 거예요. 알겠어요?”

“제자는 알겠습니다만,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 마음대로 하라고 하세요. 나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네요.”

유약송(柳若松)은 약간 실망했다.

“그렇다면 제자는 1걸음 물러서서 다음 것을 바라도록 하지요. 저 스스로 약간의 일을 해볼까 합니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 거지요?”

“약간 5대(五大)문파(門派)의 손발이 어지러워지도록 하는 일이지요. 그들 가운데 1, 2명의 중요한 인물이 머리통을 잃어버리도록 하고, 그런 후에 다시 경고의 글귀를 남겨서 그들로 하여금 어려움을 알고 물러서도록 하는 것이지요.”

“안 돼요. 결코 그런 일은 할 수 없어요.”

“할 수 있습니다. 제자가 가장 약한 1문파(門派)를 상대로 손을 쓰는 거지요. 그들은 2, 3차례의 타격을 받게 된 후에 마음속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들의 문파(門派)가 절멸당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 일을 반드시 당신이 해야 한다는 법은 없는 거예요.”

유약송(柳若松)은 웃었다.

“제자가 가장 적합한 인물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모두들 바람소리만 듣고도 부엉이의 울음소리로 알 정도로 경각심을 돋구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좀처럼 그들을 가까이 할 수 없지요. 오직 제자만이 그들의 의심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제자에게는 몇 명의 친구들이 있어서 이 제자를 엄호해줄 수도 있고…”

청청(青青)은 빙그레 웃었다.

“듣기에 그 방법은 정말 그럴싸하군요. 그렇다면 당신이 가서 하도록 하세요.”

유약송(柳若松)은 웃었다.

“그러나 제자의 몇 수 검법은 2, 3류의 술수에 불과한데 제자가 상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1류의 고수들입니다.”

청청(青青)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 웃었다.

“당신은 나보고 검법을 전수해 달라는 것인가요?”

“검법이 아니라 도법이지요. 사람을 1칼에 2쪽으로 만드는 도법 말입니다.”

“나에게는 그런 도법이 없어요. 그 1수의 도법도 오직 상공 1사람만이 연성한 것이며 나도 배우지 못했어요.”

유약송(柳若松)은 재빨리 말했다.

“제자는 감히 사부처럼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철연(鐵燕)장로(長老)와 같은 솜씨는 있어야 사람들을 믿도록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그 도법을 하루만에 연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유약송(柳若松)은 웃었다.

“제자는 비록 재주가 없으나 요결을 알기만 한다면 사흘이나 닷새 안으로 반드시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제자는 이미 그 도법을 요모조로 가늠해 보았으니까…”

청청(青青)은 갑자기 깔깔거리고 웃었다.

“호호호, 당신은 정말 심기가 깊은 사람이네요.”

유약송(柳若松)은 겸손하게 말했다.

“제자는 다년간 남보다 높이 올라서기 위해서 버둥거렸으나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충실히 만드는 일에 언제나 유의해 왔지요.”

청청(青青)의 안색이 갑자기 변했다.

“안 돼요. 나는 당신에게 도법을 가르치지도 않겠지만 당신보고 어떤 일을 해달라고 하지도 않겠어요. 더군다나 당신을 이곳에 남겨둘 수 없어요. 당신이라는 사람은 너무나 위험해요. 이제 당신은 이 원월산장(圓月山莊)에서 떠나도록 해요.”

유약송(柳若松)은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사모님, 제자는 충심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청청(青青)은 웃었다.

“나는 당신의 충성심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당신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보수를 드릴까 해요. 비래봉(飛來峰) 아래에도 우리의 조그만 장원이 있으니 그걸 당신에게 주도록 하지요. 그리고 당신은 무척 2하녀를 좋아하는데 그들 2하녀도 당신에게 주도록 하지요.”

유약송(柳若松)은 대경실색했다.

“사모님의 두터운 은혜를 제자는 감히 받을 수 없습니다.”

청청(青青)은 방그레 웃었다.

“당신은 사양할 것 없어요. 이것은 당신이 마땅히 얻어야하는 거예요. 이제부터 당신은 다시는 정붕(丁鵬)의 제자라고 말하지 말고 이제부터 당신은 나를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말아요. 나는 그 이름을 들으면 구역질이 나요. 그리고 나의 그 하녀들은 상대하기가 좋으나 질투심은 굉장해요. 이후에 당신은 그녀들을 좀 더 잘 도와주고 다른 사람들과 쓸데없는 말을 건네지 않도록 하세요. 다른 여자들은 물론 안 되지만 남자들도 안 돼요. 그렇지 않을 때 그녀들은 당신을 무척 잘 요리할 거예요. 가 보세요.”

그녀가 손을 1번 휘두르자 2송이의 구름이 가뿐하게 날아 들어와 한쪽에서 1사람씩 유약송(柳若松)을 붙들었다. 그녀들은 손힘이 엄청나게 컸을 뿐 아니라 혈도를 꽉 잡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들이 유약송(柳若松)을 잡자 유약송(柳若松)은 반 점의 기운도 쓸 수 없었다. 이때서야 유약송(柳若松)은 자기가 얼마나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자기가 총명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청청(青青)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는 것을 알았다. 붙들려 걸어나가게 되었을 때 그는 1차례 현기증을 느꼈다. 이 2마리의 호랑이에게 시달리면서 도대체 자기가 며칠이나 더 살 수 있을는지 자신이 없었다. 이때 그는 자기가 마치 사람들에게 날개를 잡혀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수탉을 닮았다고 느꼈다.


청청(青青)은 1채의 다 허물어져 가는 산신묘(山神廟) 안에 앉아 있었다. 산신묘(山神廟)는 절반이 무너져 있었다. 본래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 지금은 더욱 작아 보였다. 하지만 산신묘(山神廟)의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무너지지 않은 신전(神殿)의 1모퉁이는 신상(神像)이 모셔진 곳이었다. 그 흙으로 빚은 산신은 여전히 손상되지 않고 멀쩡했다.

이 신상이 어느 유명한 신상을 본받아서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푸르죽죽한 얼굴에 뻐드렁니를 드러내고 있었고 2눈은 퉁방울처럼 부릅떠져 있었을 뿐 아니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신상의 눈동자는 결코 빛을 발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2알의 유리 구슬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유리 구슬은 빛을 발할 수 없었으나 빛을 반사할 수는 있었다.

다른 곳에 조금이라도 빛이 있고 그 빛을 유리 구슬 안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유리 구슬은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었다. 유리 구슬은 둥근 것이었다. 퀭한 신상의 눈구멍 속에 박혀 있었고 다른 반쪽은 바깥쪽으로 불거져 나와 있었다. 그래서 그것이 받아들이는 빛은 무척 넓은 편이었고 따라서 이 유리 구슬로 된 눈동자는 빛을 잘 발할 수 있었다. 허물어진 산신묘(山神廟)에는 돌보는 사람이 없었고 산 위에 모셔져 있었기 때문에 거지들도 이곳에서 잠을 자지 않았다.

산신묘(山神廟)의 나무로 얽어 만들어진 문짝도 소를 치는 어린이가 떼 내어 불을 피우는데 사용했는데 어째서 이 1쌍의 유리 구슬은 가져가는 사람이 없었을까? 소를 치는 왕소칠(王小七)이 한때 장난으로 몰래 그 유리 구슬을 뽑아낸 적이 있었다. 그는 그 중의 1알을 아랫마을 이대호(李大戶)의 아들에게 엽전 10냥을 받고 팔았다. 2어린애는 그 유리 구슬을 가지고 하루 저녁을 놀았다.

밤에 잠을 자다가 그들은 약속이나 1듯이 가위에 눌리게 되었다. 그 산신묘(山神廟)의 산신이 퀭하게 뚫린 눈구멍을 하고 그들을 찾아와 눈알을 내놓으라고 1것이었다. 2사람은 꿈에서 깨어난 후에 열이 나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소리 높여 외쳤다.

“내 눈을 돌려다오.”

두 집안의 어른들은 어린애의 입으로부터 그 원인을 알게 되자 재빨리 2알의 유리 구슬을 산신묘(山神廟)에 돌려보냈으며 돼지머리를 비롯, 3가지의 짐승을 잡아 고사를 지내고 신령이 무지한 어린애들을 너그럽게 용서해주기를 빌고 또 빌었다.

이대호(李大戶)는 산신묘(山神廟)를 세우고 신상에 금칠을 해주겠다고 맹세까지 했다. 그 후에 소를 치는 왕소칠(王小七)은 낫게 되었는데 이대호(李大戶)의 아들은 여전히 잠꼬대를 했다. 그 죄를 따지면 왕소칠(王小七)이 장본인인데 어째서 왕소칠(王小七)은 나았는데 이대호(李大戶)의 아들은 아직도 낫지 않을까? 그날 밤 이대호(李大戶)는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꿈에 신령이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산신은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속인들이 시끄럽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신상에 금칠을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제부터는 다시 산신묘(山神廟)를 찾아와 산신을 번거롭게 하지 않는다면 너의 아들을 용서해주마.”

이대호(李大戶)는 재빨리 장인들과의 예약을 취소해버렸다. 그러자 그의 아들은 무사해졌다. 산신이 현령(顯靈)한 일로 한동안 시끄러웠으나 신령이 이미 분부를 내렸기 때문에 산신묘(山神廟)를 찾아가는 사람은 없었고, 소를 치는 어린애들도 그곳을 피해서 멀리 돌아가곤 했다.

이때부터 산신묘(山神廟)는 사람이 없는 금지구역으로 변하고 대낮이든 밤중이든 찾아가는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되자 그곳은 여우[狐]와 도깨비의 세상이 되고 말았다. 청청(青青)은 여우[狐]이기 때문에 산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감히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녀는 여우[狐]이기 때문에 그녀가 그곳으로 가게 되었을 때는 그 누구도 볼 수 없었고 그녀가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전설에 의하면 여우[狐]가 도를 닦아 사람으로 화한 후에는 사람과 내왕을 할 뿐이고 오직 자기네와 같은 부류와 내왕한다고 했다. 청청(青青)이 인적이 드문 곳으로 온 것을 보면 물론 그녀는 여우[狐]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 산신은 왜 나타났을까? 달빛도 없었고 별빛도 암담했지만 어렴풋이 윤곽은 볼 수 있었는데 나타난 것은 정말 그 산신이었다.

아니, 다만 산신의 영체(靈體)라고 할 수 있었으며 흙으로 빚은 신상 자체는 아니었다. 그 흙으로 빚은 신상은 여전히 원래 모습 그대로 신전 안에 서 있었고, 이 신명(神明)은 산신묘(山神廟) 밖에 남 모르게 불쑥 솟아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산신묘(山神廟)에 모셔져 있는 신상과 완전히 똑같았다. 1장(丈)쯤 되는 몸뚱이에 갑옷을 걸치고 있었고 푸른 얼굴에 뻐드렁이를 드러내고 있었으며 눈동자는 푸른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살쾡이처럼 날렵했다. 간혹 조심하지 못해서 몸에 걸치고 있는 갑옷에 매달려 있는 쇳조각들을 흔들리게 해서 가벼운 기척을 낼 뿐,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는 청청(青青)의 앞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나직히 말했다.

“말장(末將)이 공주님에게 인사드리옵니다.”

청청(青青)은 여우[狐]이고 사람의 모습으로 둔갑한 여우[狐]인데 어떻게 공주가 된 것일까? 혹시 여우[狐]들에게도 하나의 왕국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산신은 바로 여우[狐]가 둔갑한 것이리라.

청청(青青)은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이 그가 부르는 호칭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

“우(右)장군, 안녕하셨나요. 정말 미안해요. 내가 신향(信香)을 태워 장군이 이곳까지 달려오게 했군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옷차림이지요?”

“말장(末將)은 이곳에 가끔 모습을 드러내어 약간의 수단을 썼지요. 그리하여 이 고장의 주민들이 조금도 의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런 옷차림도 만일의 경우 사람들에게 발견당하게 되었을 때 그 전설에 부합되도록 한 것이지요.”

“그건 별로 좋지 못하군요. 기껏해야 시골의 우둔한 백성들이나 속일 수 있을까, 강호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들은 요상한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니 오히려 의심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에요.”

“말장(末將) 역시 그 점을 고려해 보았습니다. 다행히 이 산신묘(山神廟)는 옛부터 있었고 말장(末將)은 다만 이것을 밖과 연락을 취하는데 사용할 뿐입니다. 그들이 설사 이곳에 와서 수색을 한다 해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계속 조사할 거예요.”

“말장(末將)은 조심할 것입니다. 반 년 전에 1번 3명의 화산파(華山派) 제자들이 이곳에서 5, 6일 정도 머물렀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지요. 그들은 그저 산신이 현령한 줄 알고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잘 되었어요. 나는 그들이 당신의 뒤를 뒤쫓아와 동부(洞府)를 찾아낼까 걱정이 되네요.”

“공주님, 그 점은 마음 놓으십시오. 말장(末將)은 다른 것은 감히 말할 수 없지만 경신법과 발걸음의 재빠름은 세상을 통틀어 저를 따라올 사람이 없답니다.”

“하늘 밖에 사람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법이에요.”

“공주님의 가르침이 심히 옳습니다. 하지만 말장(末將)이 매번 동부(同父)를 떠나올 때 언제나 빙그르 뒤를 돌 뿐 아니라 갈대를 밟고 강을 건너온답니다. 정말 그 누가 말장(末將)의 뒤를 미행한다면 갈대밭에 기르고 있는 개들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말장(末將)은 출입의 안전에 대해서는 무척 조심하는 편입니다.”

“그건 잘 했어요. 나는 우(右)장군이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이 몇 년 동안 당신들이 충성스럽게 지켜준데 대해 정말 고맙게 생각해요.”

“공주께서는 너무나 과분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말장(末將)은 그저 부끄럽기만 합니다.”

“우(右)장군, 당신의 충성심을 믿지만 최근의 정세는 별로 좋지가 않군요.”

산신은 약간 분노한듯 말했다.

“그것은 모두 금의노(金衣奴)가 수작을 부린 탓이지요. 다음에 말장(末將)이 그를 만나게 되면 결코 가볍게 그를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청청(青青)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금포(金袍)가 신위(神位)를 엿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외부의 사람과 결탁하거나 마각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요. 그러나 철연(鐵燕) 부부는 또 나타났답니다.”

“그 2명의 죽어 마땅한 배은망덕한 종놈들을 공주께서는 마땅히 없앴어야 했습니다.”

“나는 그럴 수 없었어요. 나는 모습을 드러내기가 거북했지요. 그들은 부마의 신도(神刀)에 손목을 잘리고 말았지요. 그러나 그들은 공교롭게도 5대(五大)문파(門派)와 신검산장(神劍山莊)의 면사철(免死鐵)령(令)을 가지고 있어서…”

산신은 화난 음성으로 말했다.

“그것은 틀림없이 그들이 5대(五大)문파(門派)를 끌어들인 결과이옵니다. 말장(末將)은 진작부터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느꼈었는데 이제 보니 정말 문제를 일으켰군요.”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거예요.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어찌 5대(五大)문파(門派)의 면사철(免死鐵)패(牌)를 가지고 있을 수 있겠어요.”

“면사철(免死鐵)패(牌)는 1번밖에 사용할 수 없으니 이후에는 그들을 지켜주지 못할 겁니다.”

“안 돼요. 지금은 그들을 건드리면 안 돼요. 왜냐하면 그들과 5대(五大)문파(門派)의 장문인(掌門人)이 함께 있기 때문이에요.”

산신은 더욱 놀란 표정이 되었다.

“5대(五大)문파(門派)의 장문인(掌門人)들이 머리를 맞댔다는 것입니까? 무엇 때문이지요?”

“부마의 손에 들린 원월만도(圓月彎刀) 때문이에요. 그들은 이미 그 칼에 새겨져 있는 그 싯귀를 본 거예요.”

“小樓一夜聽春雨 (소루일야청춘우) 작은 누각의 밤, 봄비 소리 듣다 말입니까?”

“그래요. 애시당초 그 칼자루에 그 7글자를 새기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것은 1토막의 지극히 사람을 감동하는 이야기지요. 공주께서 훗날 문호(門戶)를 이어받게 된다면 자연히 알게 될 겁니다.”

청청(青青)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문호(門戶)를 이어받을 생각은 없어요. 선천적인 체질의 한계를 느끼기 때문에 나는 그 1초(一招)의 신도(神刀)를 연성할 수 없었어요.”

“부마는 연성하셨나요?”

“그래요. 그의 선천적인 체질은 지극히 훌륭해서 그 1칼을 연성했을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보다 더욱 뛰어나요.”

“그렇다면 사효봉(謝曉峰)의 신검(神劍)과 1번 높낮이를 겨루어볼 수 있겠군요?”

“모르겠어요. 그는 사효봉(謝曉峰)에게 결투를 신청하러 갔어요. 하지만 나는 결코 그 승부를 걱정하지 않아요. 사효봉(謝曉峰)과 우리들은 결코 어떤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나는 5대(五大)문파(門派) 때문에 걱정이 되어요.”

“사효봉(謝曉峰)이 뒷배를 봐주지 않는다면 5대(五大)문파(門派)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청청(青青)은 한숨을 내쉬었다.

“신검산장(神劍山莊)은 무림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있어요. 필요할 때 그는 아마 나타날 거예요.”

2사람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청청(青青)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모두 안녕하신가요?”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지요. 다만 태공(太公)의 건강은 옛날보다 못합니다. 그 분들은 역시 늙었습니다. 늙음은 사람에게 가장 커다란 적이지요. 그래서 태공(太公)께서는 모든 희망을 공주님에게 걸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래도 그 분들을 실망시킬 것 같아요.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구요.”

“그러나 부마는 됩니다. 그가 그 신도(神刀)를 연성했다면 바로 우리들의 희망입니다. 신도(神刀)가 1번 나타나게 되면 천하 무적이지요.”

설마하니 여우[狐]들도 천하를 도모하고 손에 넣으려는 욕망을 가진 것일까? 2사람은 다시 침묵에 빠져들었다.

역시 청청(青青)이 먼저 정적을 깨뜨렸다.

“내가 우(右)장군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에요. 내일 이때쯤 내 다시 이곳에 와서 대답을 듣겠어요. 할아버지께서 무슨 지시를 하실지 지켜봐야 하겠어요.”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 없다. 이곳은 다른 사람의 주목을 이미 받고 있는 것 같으니 더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길에서 이미 2사람이나 해치웠다.”

그 소리는 바로 산신의 등뒤에서 들려왔다. 어느새 그곳에는 흑의인 1명이 더 불어나 있었다.

청청(青青)은 즉시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노인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대해서 조금도 놀라지 않은 것 같았다. 청청(青青)이 만약 여우[狐]라면 그녀의 조부도 자연히 도행(道行)이 깊은 여우[狐]일 것이다. 다년간 도를 갈고 닦은 영호(靈狐)는 이미 신선이 되는 것이고 무소불능(無所不能)이었다. 그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할아버지!”

“태공(太公)!”

칭호는 달랐지만 공경하는 태도는 일치하고 있었다.

노인은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일어나게, 일어나. 청청(青青), 너는 인간 세상으로 나가 1바퀴 돌아봤는데, 인간 세상의 재미가 어떠하더냐?”

청청(青青)은 순종하듯 몸을 일으켰으나 여전히 멀찌감치 서서 고개를 숙였다. 결코 흔히 볼 수 있는 손녀가 할아버지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고 할아버지를 보고 어리광을 부리며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여우[狐]의 규칙은 설마하니 사람들의 규칙보다 더 엄한 것일까? 청청(青青)의 대답하는 소리로 여전히 나직했다.

“손녀는 인간 세상에 나갔지만 집안에 틀어 박혀 땅속에 사는 것과 다름이 없사옵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떡이며 빙그레 웃었다.

“그것도 좋지. 네가 나가서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주의를 끌지 않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느낌을 주게 될 것이다. 정붕(丁鵬)이라는 녀석은 너에게 어떻게 대해주느냐?”

“무척 잘 대해주고 있어요. 그는 손녀에게 한마음 한뜻으로 대해주고 있는데 다만 너무나 오만하고 야심이 커요. 결코 옛날의 그 담백한 생활에 만족을 못하는 것 같아요.”

노인은 무척 기뻐하며 말했다.

“그것 참 잘 되었구나. 그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바이다. 그 녀석은 분수를 지키지 않는 기질이 있으며 훌륭한 인재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모든 협조를 아끼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시켰다.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를 만족시켜주겠다. 그렇게 되면 천천히 그는 우리와 같은 도(道)를 쌓는 사람이 될 것이다.”

청청(青青)은 불안한 어조로 말했다.

“할아버지 하지만 그는…”

노인은 예리한 시선으로 청청(青青)을 바라보았다.

“청청(青青), 그 사람은 네 스스로 고른 것이다. 나는 너에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으며 어떻게 하라고 그를 독려하지도 않았다. 만약 그가 담백하게 자기 분수를 지키고 초야에서 기꺼이 늙어가려고 했다면 나는 결코 방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위로 기어오르려고 하고 있는 이상, 나 역시도 그를 억누르고 싶지는 않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청청(青青)은 더 말할 수 없었다. 그저 네, 라고 대답했는데 너무나 나직해서 그녀 자신만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노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아형(阿亨)에게 1말을 나도 들어서 알고 있다. 일은 무척 잘 되어 가고 있으며 내 이상에도 잘 부합된다. 우리 도가 다시 일어날 그날이 도래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19. 신비한 집단

“할아버지, 정붕(丁鵬)으로 하여금 문호(門戶)를 이어가게 할 생각인가요?”

“그 녀석은 인재이다. 그는 1칼에 쌍연(雙燕)의 손을 잘라버렸는데 공력을 한껏 돋굴 수 있었고 자유자재로 응용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미 내가 작년 무렵에 닦은 화후(火候)와 맞먹는다. 나는 그의 나이에 그보다 못한 점이 많았다. 어쩌면 1칼로 그 2명의 반역도를 2쪽으로 갈라놓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결코 그들의 2손만 잘라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이미 자기 마음대로 칼을 뻗쳐내고 거두어들일 수 있으니 다시 시일이 흐르게 된다면 사효봉(謝曉峰)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청청(青青)은 다급해서는 물었다.

“할아버지, 지금은 그가 사효봉(謝曉峰)보다 못하다는 건가요?”

“못하다. 사효봉(謝曉峰)의 신검(神劍)이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이 어찌 우연이겠느냐? 금년에 그는 두문불출하면서 양기수성(養氣修性)을 했다. 그 결과 그의 검은 이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경지에 도달했다. 아마 연(燕)13(十三)이 다시 그 1검(一劍)을 펼친다 해도 그를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붕(丁鵬)은 아직 그만 못하다. 다시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온(穩)이라는 글자에 다시 공을 들이게 된다면 아마 비슷해질 것이다.”

“하지만 정붕(丁鵬)은 사효봉(謝曉峰)과 결투를 하려고 떠났어요.”

“알고 있다. 너는 내가 깊이 동부(洞府)에 처박혀 있다고 해서 세상사를 묻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라. 너희들의 일거일동은 내가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할아버지께서는 어째서 그를 저지하지 않았나요?”

“어째서 그를 저지하느냐? 정붕(丁鵬)이 길을 가는 동안 보여준 행동은 바로 그 자신의 마성(魔性)을 배양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한층 진보된 표현이기도 하다. 그 녀석에 대해서 나는 너무나 만족스럽다.”

그가 만족해하고 있는 것을 청청(青青)은 그의 말투에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산신은 노주인을 따른지 오래 되었으며 1번도 1사람에 대해서 이토록 노골적으로 칭찬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산신 역시 노주인처럼 기뻐했다.

“태공(太公), 그렇다면 우리들이 얼굴을 내밀 수 있겠군요?”

“그렇다. 머리를 들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산야에서 숨어 지내지 않을 것이고, 다시는 여우[狐]들처럼 사냥꾼의 사냥개와 활을 두려워하여 피할 필요가 없다. 우리들은 정정당당하게 나서게 될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머리 위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 약간 처량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날을 나는 어쩌면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희들은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기껏해야 10년이다. 10년 후에 그는 이 세상에서 적수를 찾을 수 없는 고수가 될 것이고 사효봉(謝曉峰)보다 더욱 높다랗게 치솟아 오를 것이며 원월만도(圓月彎刀)는 그 빛으로 천하를 싸늘하게 만들 것이다.”

청청(青青)은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노인의 눈초리는 무척 날카로웠다.

청청(青青)의 동작은 그를 속일 수 없었다. 그의 음성은 좀더 부드러워졌다.

“청청(青青), 너는 그런 것이 못마땅하냐?”

청청(青青)은 재빨리 눈물을 훔쳤다.

“어찌 청(靑)아가 감히 그런 생각을 가지겠습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눈물을 흘리느냐? 너는 우리가 좀처럼 눈물을 흘리는 않는다는 것을 알지 않느냐? 우리는 한평생 다만 1번만 눈물을 흘리는 것을 허락하고 있을 뿐이다.”

“네, 할아버지, 청(靑)아는 알고 있어요.”

“그 1번의 눈물을 너는 이미 써 먹은 적이 있다. 정붕(丁鵬)을 위해서 흘렸지 않느냐?”

“청(靑)아는 부끄럽습니다. 청(靑)아는 굳세지 못합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약자의 표현이다. 우리 문(門)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도 약자가 없다. 우리는 결코 지정지성(至情至性)을 말살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지정(至情)을 드러내게 되었을 때 흘리는 눈물이야말로 지존대신(至尊大神)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틀림없이 지정(至情)을 가진 사람만이 우리 문(門)에 몸 담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청(靑)아는 알겠어요.”

노인은 한숨을 내쉬더니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마음속으로 느끼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는 정붕(丁鵬)의 변화에 대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것으로 인해서 그를 잃게 될까봐 두려운 것이야.”

이 노인은 천안신통(天眼神通)의 능력을 지니고 있어 다른 사람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모양이었다.

청청(青青)은 나직히 말했다.

“청(靑)아는 정말 그 점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노인은 자상하게 웃었다.

“네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이다. 정붕(丁鵬)이 그렇게 바꾸어지지 않는다면 어느 날엔가 네 곁을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가 많이 바뀌면 바뀔수록 우리들과 더욱 가까워지게 되며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다시는 너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우리 문(門)에 몸을 담게 된다면 그는 다시는 외부의 사람과 접촉할 수 없고 영원히 언제나 너의 사람이 될 것이다. 바로 너의 조모처럼 되겠지. 그녀는 젊었을 때 나와 한평생을 같이 할 것이라고 생각 못했지만 지금 그녀는 나보다 더욱 경건하고 성실해졌다.”

청청(青青)은 용기를 내었다.

“할아버지, 청(靑)아는 정붕(丁鵬)에 대해서 약간 걱정이 되어요. 그의 변화는 어쩌면 일시적인 것인지도 모르며 장래에는 아무래도 할아버지의 이상과 부합되지 않을까 두려운 거예요.”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그럴 가능성이 있겠다. 그가 오만하기는 하지만 그의 본성은 역시 선량하다. 그가 점점 진상에 접근하게 되었을 때 그는 우리들을 반대하게 될지도 모른다.”

청청(青青)은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도 그 점을 꿰뚫어 보셨나요?”

“이 할아버지는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라 인성(人性)에 있어서 어떠한 사람보다도 훨씬 깊이 통찰했는데 어찌 알아보지 못하겠느냐?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방법이 있다.”

청청(青青)은 물었다.

“무슨 방법인가요? 혹시 그를 다른 사람들과 격리시키는 것인가요?”

“너는 5대(五大)문파(門派)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냐?”

“그래요. 그들은 줄곧 우리와 맞서고 있어요.”

“아니다. 너는 잘못 알았다. 나는 그들이 접근하기를 바란다.”

“그들이 우리의 과거를 모두 정붕(丁鵬)에게 이야기하고 정붕(丁鵬)에게 우리 곁을 떠나도록 종용할 거예요.”

“그것은 틀림없다. 나는 바로 그들이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정붕(丁鵬)이 우리에게서 더욱 멀어지지 않겠어요?”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얘야, 너는 역시 젊구나. 일을 보는 것이 그렇게 깊지 못하다. 정붕(丁鵬)은 어쩌면 한동안 우리를 떠날지 모르지만 나중에 그는 돌아설 것이다. 그는 우리들이 사악하다고 생각해서 우리 곁을 떠나게 될 것이지만, 다른 그 사람들이 우리들보다 더욱 비열하고 더욱 사악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는 그들을 저버리고 우리들에게 돌아올 것이고, 가장 경건하고 성실한 문인(門人)이 될 것이다.”

“할아버지의 이론은 너무나 현묘하군요.”

“현묘할 것도 없다. 이것은 진리이며 사실이다. 진리는 모든 이론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믿음이 있다. 왜냐하면 내 자신이 과거에 정붕(丁鵬)과 똑같았다. 나는 그의 몸에서 옛날의 내 모습을 볼 수 있고 나의 몸에서 너는 그의 장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흥분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는 비교적 복이 많구나. 왜냐하면 네가 볼 수 있는 것은 완전히 성공한 것이고 휘황한 장래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의 한평생은 실패한 것이니라.”

청청(青青)은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한참 후에야 다시 물었다.

“할아버지, 청(靑)아는 어떻게 하면 좋지요?”

“어떻게 할 것 없다. 믿음을 굳건히 가져라. 그리고 우리가 사악하다고 생각 말아라. 우리들의 본성은 어떠한 사람보다도 인자하다. 우리의 종지(宗旨)는 100번 날아가 떨어져도 깨어지지 않는 진리이며 지자(智者)의 지리(至理)이다. 다만 속인들이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반드시 너의 믿음을 굳건히 해라. 만약 너마저 믿음을 잃게 된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믿게 만들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너 말이냐?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그저 고분고분 선량한 아내가 되어 그의 말에 순종하고 네가 할 수 있는 어떤 도움이라도 그에게 주는 것이다.”

“그를 도와주어야 한다고요? 만약에 그가 저보고 본문(本門)의 비밀을 내놓으라고 하면 어쩌죠?”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그 1초(招)의 신도(神刀)는 바로 본문(本門) 최고의 비밀이다. 그는 이미 손에 넣었다. 그에게 있어서 본문(本門)은 이미 비밀이 있을 수 없다.”

“만약 그가 우리 사람을 내놓으라고 한다면요?”

“네 능력껏 그에게 넘겨주도록 해라.”

“그에게 넘겨준 후에 그 사람들이 살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면 너는 그에게 사정을 해서 몇 명을 남겨 두도록 해라.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장래 너희들의 부하가 될 것이다. 만약 그에게 사정을 해도 되지 않는다면 그가 죽이도록 내버려 두어라.”

“만약 다른 사람이 죽이려고 한다면요?”

노인은 오연하게 웃었다.

“그를 제외하고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우리들을 죽일 생각을 못할 것이다. 우리들은 그 무적의 신도(神刀)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을 제외하고, 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이다. 그 누가 감히 우리들을 죽이겠느냐?”

“할아버지, 나는 할아버지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네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그에게 본문(本門)의 충심(忠心)과 본문(本門) 제자의 도를 향한 결심을 증명해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천만 명의 사람이 죽이고 싶어해도 죽이지 못하는 고수라고 해도, 그의 1마디만 떨어지면 그 고수는 스스로 죽어 보일 것이다. 우리들 이외에 그 누가 그토록 고귀한 정조(情操)를 가질 수 있겠느냐?”

청청(青青)은 최대한의 용기를 내었다.

“할아버지, 만약에… 그가 만약에 할아버지를 내놓으라고 한다면요?”

“그에게 허락해주어라. 실제에 있어서 너 역시 나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된 이후 나는 내가 은거하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저보고 할아버지를 찾는데 끝까지 도와달라고 할 거예요.”

“그렇다면 그에게 모든 협조를 아끼지 말아라. 명심할 것은 가장 참되고 성실한 협조이고 얼렁뚱땅 넘기는 짓은 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의 모든 노력은 헛수고로 끝나게 될 것이고 또한 내가 안배한 모든 것들을 물거품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도대체 무슨 안배를 하셨는지요?”

처량하게 웃으며 노인은 서글프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 중대한 희생이다. 본문(本門)의 제자가 절멸(絶滅)에 임하는 안배이다. 안배 이후에 그들은 하나 하나 어두운 곳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정붕(丁鵬)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겠어요?”

“가치가 있다. 얘야, 그만한 보람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그렇게 숭고하고 위대한 이상을 아랫사람들에게 전하고 빛을 발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 목적만 달성한다면 모든 것은 보람이 있는 것이란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

“마지막에 가서 내 자신을 넘겨주게 되었을 때는 바로 우리가 희생을 치루는 마지막 고비가 되겠지. 그리하여 새로운 것을 영접해들이게 되고 빛의 시작이 되는 거란다.”

“할아버지,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나 모험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노인은 손을 내밀어 자상하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얘야, 네가 보기에 이 할아버지가 모험을 할 사람처럼 보이느냐? 오랜 세월에 걸쳐 나는 도를 갈고 닦으면서 깊은 산속에 틀어박혀 기회를 기다린 것이고, 정붕(丁鵬)과 같은 사람을 기다린 것이다.”

청청(青青)은 다소곳이 말했다.

“할아버지, 저는 할아버지가 안배한 것이 틀림이 없다는 것을 믿어요. 하지만 저에게도 은근히 걱정이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효봉(謝曉峰)…”

노인은 그녀의 말을 살짝 가로챘다.

“그렇다. 그 사람은 우리의 최대의 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무공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 됨됨이 때문이다. 일찍이 그는 만신창이 결점 투성이였다. 그런데 이미 그는 거의 성(聖)에 가까워졌다. 그것은 우리들보다 한층 높은 경지이며 우리들이 영원히 쳐서 쓰러뜨릴 수 없는 것이다. 정붕(丁鵬)은 어쩌면 장래에 있어서 무공에 있어서는 그를 이길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영원히 그를 능가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은 정말 강적이다. 다행히 이 하늘 아래에 오직 그 1사람뿐이로구나.”

청청(青青)은 다시 물었다.

“그가 정붕(丁鵬)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요?”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그럴 리 없다. 왜냐하면 그 자신마저도 극복할 수 없는 결점이 있는데, 그 결점은 공교롭게도 우리가 손에 쥘 수 있는 결점이란다.”

“그게 무엇인가요, 할아버지?”

“얘야, 그것만큼은 너에게 알려주지 못할 유일한 일이구나. 하지만 나는 네 스스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청청(青青)은 할아버지가 말할 수 없다면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끝내 노인은 손을 내저었다.

“가거라. 앞으로 다시는 이곳으로 오지 말아라. 온다고 해도 나를 찾지 못할 것이다. 만약 특별한 징후가 없다면 이것이 바로 우리 조손의 마지막 상면이 될 것이다. 명심할 것은 네가 정붕(丁鵬)의 아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네가 인간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유일하게 책임질 일이다. 모든 면에 있어서 그를 위주로 하고 그를 거슬리지 말 것이며 그로 하여금 화내지 않도록 해라. 그리고 1마리의 충성스러운 개처럼 그를 따르도록 해라. 설사 그가 발길로 너를 걷어찬다고 해도 너는 그의 곁에서 떠나지 말아야 한다. 너는 할 수 있겠느냐?”

청청(青青)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어요.”

노인은 자신있게 말했다.

“좋다. 할 수 있다면 해야 하느니라. 할 수 없어도 해야 한다. 나는 이제 그만 가 보겠다.”

1차례 벽력소리가 울려퍼지더니 산신묘(山神廟)는 무너져버리고 그 흙으로 빚은 신상마저도 눌려 박살이 나고 말았다.

이때부터 산신묘(山神廟)에서 다시는 신령을 찾아볼 수 없었다. 목동들도 다시 이곳으로 와서 소떼를 방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감히 그럴 수 있을까?


신검산장(神劍山莊). 사(謝)씨 집안 3(三)소야(少爺)가 살고 있는 신검산장(神劍山莊). 무림의 성지이며 강호의 금지구역이기도 했다. 신검산장(神劍山莊)에서 금지구역을 설정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1줄기 강물이 산장을 반쯤 에워싸고 있었고, 산장의 반은 험준한 산악의 절벽으로 단절되어 있었다.

절벽은 천 길이나 되었고 구름이 떠 있는 곳까지 솟아 있었으며 벽은 손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매끄러워 원숭이조차도 기어오를 수 없었다. 그래서 신검산장(神劍山莊)으로 가는 길은 1길밖에 없었다. 길은 강물에 의해 차단되었고 강물 위에는 다리가 걸쳐져 있지 않으며 오직 하나의 나룻배가 있을 뿐이었다. 강은 그렇게 넓지 못해 이쪽에서 저쪽을 바라볼 수 있었고 멀리 산허리께에 신검산장(神劍山莊)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때 신검산장(神劍山莊)이 썰렁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주인이 이미 늙었고 사(謝)씨 집안의 3(三)소야(少爺)가 강호를 떠돌아 다녔을 무렵이었다. 사효봉(謝曉峰)에게는 2명의 형이 있었으나 그들은 그들 동생만한 재주가 없었다. 신검산장(神劍山莊)에서는 검법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결코 3(三)소야(少爺) 때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 집안의 검술은 일찍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바가 있었다. 사(謝)씨 집안의 사람들은 모두 검법의 고수들이었다.

자맥질을 잘하는 자는 물에 빠져 죽는다고 했다. 사(謝)씨 집의 큰 도련님은 검에 찔려 죽었다. 사(謝)씨 집의 2째인 2(二)소야(少爺) 역시도 검에 맞아 죽었다. 사(謝)씨 집안의 주인인 노(老)태야(太爺)는 집안에서 쓸쓸하게 늙어 죽었다. 그는 검법이 천하무적인 아들이 있었고, 1자루의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진 훌륭한 검이 있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사(謝)씨 집안에 영광을 안겨다 주기도 했지만 번거로운 일을 일으키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검을 들고 3(三)소야(少爺)를 찾아와 검법을 겨루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효봉(謝曉峰)은 항상 집에만 있지 않았다. 그는 젊었을 때 기녀원(妓女院)에 머무는 시일이 집에 있는 시일보다 더 많았다. 그러니 객잔(客棧)이나 소녀의 규방에 머물 때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사효봉(謝曉峰)은 젊었을 때 무척 풍류적이었고 황당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평생 얼마나 많은 홍분지기(紅粉知己)를 가졌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러나 정식으로 아내를 맞아들이고 혼례를 꼭 1번 올린 적이 있었다.

그녀는 강호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모용추획(慕容秋獲)이었다. 그녀 역시 아주 무서운 여인이었다. 모용추획(慕容秋獲)은 하루도 사(謝)씨 집안의 며느리 노릇을 해본 적이 없었고 신검산장(神劍山莊)으로 들어와 사(謝)씨 집안의 여주인이 된 적도 없었다. 그녀는 한평생 사효봉(謝曉峰)의 그림자가 되어 사효봉(謝曉峰)의 뒤를 따랐다. 그와 더불어 나래를 편 것이 아니라 그에게 좌절을 안겨주려고 했으며 그녀 자신에 대한 불충을 그런 식으로 보복하려고 했다.

그녀는 신통광대(神通廣大)해서 다른 사람이 사효봉(謝曉峰)을 찾지 못할 때도 그녀는 찾아내었다. 사효봉(謝曉峰)이 일부러 밥을 빌어먹는 거지가 되고 조그만 주막에서 사환 노릇과 마부 노릇을 하거나, 가장 비천한 고된 품팔이를 해야 될 때도 그녀의 추격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사효봉(謝曉峰)의 일생은 그 여인 때문에 망쳐졌고, 또한 그 여인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사효봉(謝曉峰)을 위해서 아들을 낳았으나 그에게 사(謝)씨 성을 붙이지도 않았다. 또한 그를 신검산장(神劍山莊)의 다음대 주인으로 만들지도 않았다. 그러나 신검산장(神劍山莊)에는 새 여주인이 생기게 되었다. 사소옥(謝小玉). 그 누구도 그녀가 사효봉(謝曉峰)이 언제 어느 여인과 관계를 맺어서 태어난 딸인지 몰랐다. 그녀는 사효봉(謝曉峰)이 공명을 이루고 신검산장(神劍山莊)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을 때 갑자기 나타난 것이었다.

그녀는 신검산장(神劍山莊)에 와서 스스로 사효봉(謝曉峰)의 딸이라고 했다. 그녀가 찾아오게 되었을 때 이미 15살의 나이였다. 그때 사효봉(謝曉峰)은 집에 없었지만 그 누구도 그녀가 가짜라고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의 얼굴 모습은 사효봉(謝曉峰)의 모습을 닮았고 웃게 되었을 때는 아주 흡사했다. 사효봉(謝曉峰)의 웃음은 그의 검처럼 무적이었다. 그의 검은 모든 고수들을 격퇴시켰지만 그의 웃음은 모든 아름다운 여인을 정복했다.

아름답지 못한 여인들은 당연히 그의 웃음에 항거할 수 없었지만, 사효봉(謝曉峰)이 미녀를 고르는 안목은 무척 고명한 편이었다. 그는 웃음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매력이 없는 여인을 유혹하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매력이 없는 여인들도 그에게 빠지지 않았다. 그가 1여인과 침대 위에 오르게 되었을 때 그의 웃음은 그의 검보다 더욱 위력적이었다. 검은 1사람의 목숨만 빼앗아 갈 수 있었으나 그의 웃음은 1여인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았다.

세상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법이었다.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검으로 여인을 침대 위로 오르도록 다그칠 때 10번 가운데 8번이나 9번은 성공할지 모르지만 1, 2명의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여인을 만나게 되는 법이었다. 그러나 여인이 마음을 송두리째 남자에게 바치게 되었을 때는 그녀에게 시키지 못할 일이 없게 되는 것이다. 사효봉(謝曉峰)은 1명의 딸이 불쑥 나타난 것을 보고 무척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자기의 딸인데 어떻게 누구냐고 물어볼 수 있겠는가? 만약 그가 다른 사람 앞에서 딸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면 그 여자 애는 그의 딸이라는 증거를 내놓을 것이니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소옥(小玉). 그의 딸을 자처한 여자 애의 이름이었다. 사소옥(謝小玉)은 그를 만나자 그들끼리 무척 익숙한 것처럼 오랫동안 함께 있었던 것처럼 친밀하게 행동했다.

그녀는 훌쩍 달려와 그의 손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는 저를 데리러 오겠다고 하시고서는 시종 데리러 오지 않으시길래 별 수 없이 저 스스로 왔어요.”

사효봉(謝曉峰)은 약간 당황했다. 그는 한평생 많은 사람들이 각각 다른 이름으로 그를 호칭하던 소리를 들어 보았다. 어떤 것은 무척 듣기 좋았고 무척 음성이 아름다웠다. 그것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아름다운 여자들이 부르는 소리였다.

어떤 사람은 무척 비위를 잘 맞추었다. 그 사람들은 그를 흠모하는 사람들이고 틀림없는 강호인들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무척 악독했다. 그 사람들은 그를 미워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오직 이 칭호만은 오늘 처음 듣는 것이었다. 아버지. 그 칭호는 무척 흔하지만 사효봉(謝曉峰)은 1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고 무척 듣고 싶어하던 칭호였다. 물론 이 여자애가 그렇게 부르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모용추획(慕容秋獲)과 그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그가 자기의 부친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고집스러운 젊은 녀석은 속으로는 사효봉(謝曉峰)을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입으로는 아버지라고 1번도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를 찾아올 리도 없었다. 사효봉(謝曉峰)은 그 녀석이 언젠가 찾아와서 그의 면전에 무릎을 꿇고 그를 아버지라고 부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날은 언제일까? 어쩌면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둔 후에 수렴을 하고 입관하고 죽었다는 소문이 천하에 두루 퍼지게 되었을 때야 그 녀석이 소문을 듣고 달려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영전에 무릎을 꿇고 속으로 몰래 아버지라고 불러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효봉(謝曉峰)은 언젠가 아들이 찾아오리라 내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에 찾아오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다.

사효봉(謝曉峰)은 역시 늙었다. 늙어서 다시는 젊은 시절의 날카로운 기운을 찾아볼 수 없었고 성격마저도 약간 바뀌어져 있었다.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심경(心境)이었다. 그는 외롭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다. 천하무적이 되었을 때 느끼는 그런 외로움이 아니라 고독에 대한 혐오감이었다. 그는 1사람이라도 있어서 벗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여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었다. 슬하에서 재롱을 떠는 자식들이 있어서 마음을 붙들어 맬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랬다. 사효봉(謝曉峰)은 사람이었다. 신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었다. 그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갈망하고 있었다. 다만 그는 자기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있어서 그 누구도 그가 마음속으로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애가 불쑥 나타난 것이었다. 다정하고 간드러지고 가냘픈 음성으로, “아버지!” 하고 그를 부른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마음속으로 갈구했던 그런 음성이었다. 하지만 그가 바라던 아들의 음성은 아니었다. 그래서 사효봉(謝曉峰)은 놀랐고, 그의 친구들도 갑자기 그에게 딸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쫓아와 어떻게 된 노릇인지 살펴보려고 했다.

그들은 사효봉(謝曉峰)의 표정을 보고 이론이 분분해졌다. 다행히 신검산장(神劍山莊)에는 무척 부지런한 관사(管事), 그 무사불통(無事不通)의 사(謝)선생이 있었다.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얼버무렸다.

“주인 부녀가 서로 만나게 되었으니 반드시 서로 여러 가지로 할 말이 많을 것이니, 여러분들은 앞쪽의 대청으로 가서 잔치술이나 마시도록 하세요.”

잔치술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신검산장(神劍山莊)에 새로운 여자를 보태게 되어 이 사(謝)씨 집안의 1가족이 된 것을 축하하는 것이었다.

자연히 연회는 무척 융성했다. 사(謝)선생은 이미 그 여주인의 신분을 인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효봉(謝曉峰)과 사소옥(謝小玉)이 주고받은 말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2시진 후에 사효봉(謝曉峰)은 친구들과 더불어 2잔의 술을 마시고 다시 그의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사소옥(謝小玉)을 그는 부인하지 않았다.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은 물론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효봉(謝曉峰)은 그녀의 신세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물어보지를 않았다. 사효봉(謝曉峰)이 도대체 몇 명의 여자들과 관계를 했는지 그 누구도 몰랐다. 1명의 딸을 낳을 수 있는 여자는 아주 많았다. 그런데 왜 굳이 묻겠는가? 신검산장(神劍山莊)은 사소옥(謝小玉)이 들어오게 된 후에 적지 않게 생기가 감돌았다. 넓다란 장원 안에는 원래 몇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는데 이제는 하인들이 구름처럼 많아졌다.

집들도 새로 다듬어지고 화원의 꽃나무들도 다시 손을 보아 정리했다. 그제서야 신검산장(神劍山莊)답고 천하제일 검객이 살고 있는 곳처럼 되었다. 무림의 성지와 금지구역처럼 으리으리한 면이 있었고 위엄이 있었다. 금지구역 가운데 또 다른 금지구역이 있었다. 그것은 후원에 외로이 서 있는 조그마한 뜨락인데 담장으로 에워싸여 있었고 1년 내내 자물통으로 잠가 놓고 있었다. 이 작은 뜨락 안에 사효봉(謝曉峰)의 거실이 있었다.

바로 그가 검술을 연마하고 마음을 닦고 몸을 단련하면서 양성(養性)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 누구도 감히 이 뜨락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소옥(小玉)도 마찬가지였다. 사효봉(謝曉峰)이 안에 있을 때 문은 여전히 잠겨져 있었다. 그가 안에 없을 때도 문은 잠겨져 있었다. 자물통은 이미 녹이 슬어 있었지만 문고리에 달려 일종의 권위를 대표하고 있었다. 사효봉(謝曉峰)은 출입할 때 이 문을 이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가 어떻게 출입하는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뜨락에는 문이 1곳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간편하고 빠른 방법은 월장을 하는 것이었다. 담장이 높기는 했으나 사효봉(謝曉峰)을 어렵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자신의 집을 월장을 하면서까지 출입해야 하는 것일까? 사효봉(謝曉峰)이 어디로 가든지 공손히 대문을 열어젖히고 공손하게 그를 맞아들이는 사람이 있었다. 설사 그의 원수라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효봉(謝曉峰)의 지위는 이런 존경을 받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기의 집에 드나드는데 월장을 할 수 있을까? 그 누구도 그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그 누구도 그 일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들도 담벼락에 1짝의 문밖에 없으며 문은 이미 녹이 슬은 자물통에 잠겨져 있어서 자물통을 이미 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달리 통로가 있거나 혹은 담벼락을 뚫고 들어가는 법술을 갖추지 않는 한 월장을 하여 건너뛰는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사람들은 차라리 앞쪽의 2가지의 설명을 받아들였다. 월장이라는 것은 물론 광명정대한 일이 못되었지만 나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대협의 칭송을 받는 많은 사람들도 월장을 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사효봉(謝曉峰)이 그럴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의 사효봉(謝曉峰)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닌 것이었다.

1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서 신명(神明)이 되고 인격적으로 신화(神化)된 후에는, 십전십미(十全十美)의 화신(化身)이 되므로 어떤 결점이나 하자도 있을 수 없었다. 중문(重門)에 큼직한 자물통이 채워진 그 조그마한 뜨락에는 많은 비밀들이 숨겨져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안에 벌어져 있을 상황에 대해 지레짐작을 해보거나 추측을 해보지만 그 어느 누구도 감히 안으로 들어가 참된 상황을 파악하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곳은 사효봉(謝曉峰)의 거처이기 때문이었다.


20. 모욕

정붕(丁鵬)은 끝내 신검산장(神劍山莊)에 도달했다. 그는 칼을 지니고 있었고 4필의 준마가 끄는 호화스러운 마차를 타고 있었다. 아고(阿古)가 마차를 몰고 장원 앞에 이르게 되었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정붕(丁鵬)이 아무리 많은 재부(財富)를 지니고 있다 해도 1척의 조그만 나룻배를 타고 강물을 건너는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나룻배 1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검산장(神劍山莊)에 작은 여주인이 생긴 후에 내왕하는 사람도 많아지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극히 가문 내력이 있고 신분이 있는 헌칠하고 준수한 공자들이었다. 그들이 신검산장(神劍山莊)을 찾아온 것은 1째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이름을 앙모하기 때문이고, 2째로는 사소옥(謝小玉)이 무척 아름다운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사소옥(謝小玉)은 정말 아름다웠으며 무척 손님들을 좋아했고 무척 의젓했으며 사람들을 온화하고 친절하게 대했다.

그녀는 열성적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환영했다. 신검산장(神劍山莊)으로 들어온 사람은 사(謝)씨 집안의 사위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가능성에 지나지 않았다. 사소옥(謝小玉)은 모든 사람에게 무척 잘 대했으며 어느 특정인에게 유난히 잘 대해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호의 헌칠하고 준수한 공자들을 영접하기에는 원래 있던 작은 나룻배는 너무 초라했다.

그래서 사소옥(謝小玉)은 1척의 무척 큰 배로 바꾸어 놓았다. 이 배는 너무나 커서 보는 사람이 놀랄 정도였다. 너무나 커서 바다를 항해하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신검산장(神劍山莊)에는 이 배를 강을 건너는 나룻배로 사용했는데, 그 강의 폭이 2, 300장(丈)에 불과했다. 이것이야말로 낭비가 아닐까?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낭비가 아니다.”

그것은 신검산장(神劍山莊)의 명성이 대단하기 때문이었다.

신검산장(神劍山莊)에는 이렇게 커다란 배가 어울렸다. 바로 이 배를 타고 정붕(丁鵬)은 그의 마차와 함께 강을 건널 수 있었다. 그의 뒤를 많은 강호인들이 따르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명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강가에서 저지당했고 그 누구도 정붕(丁鵬)을 따라 함께 배에 오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오직 정붕(丁鵬) 1사람만이 사(謝)씨 집안의 3(三)소야(少爺)와 결투를 하러 온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든지 정붕(丁鵬)과 배에 탄다면 그것은 바로 그가 정붕(丁鵬)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그런 혐의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결투를 보려고 한 것뿐이었다. 정붕(丁鵬)의 결투를 도와주려고 해도 끼어들 능력도 없었다. 그저 한쪽 강가에 서 있으면 결투를 볼 수 있을까? 그 누구도 이 문제를 걱정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은 강을 건너간다 해도 결투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효봉(謝曉峰)과 정붕(丁鵬)의 결투는 결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서 진행될 수 없었다. 결투를 하는 쌍방을 제외하고는 구경꾼이 없을 가능성이 많았다.

그들이 천 리 길을 따라온 것은 다만 그 결과를 알고자 할 뿐이었다. 결투의 결과. 물론 그들이 오지 않는다 해도 그 결과는 알 수 있겠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의 입으로부터 듣는 것이니 양상이 달랐다. 그들이 이곳에 온 이상, 보지 못했다 해도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 그 경천동지(驚天動地)의 1전(一戰)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다고 해서 그들이 참되지 못하다고 욕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었다.

“그 1차례의 결투가 진행될 때 나는 바로 그 장소에 있었소.”

자기의 가슴을 두드리고 우쭐해서 이 1마디를 하기만 하면 충분히 옆 사람이 엄숙하게 경의를 표하게 되는 법이었다. 물론 싸움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모조리 강가에서 저지를 당한 것은 아니었다. 정붕(丁鵬)을 건네준 나룻배는 다시 돌아와 몇 사람을 태우고 신검산장(神劍山莊)으로 건너갔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그렇게 많을 수 없었다. 신검산장(神劍山莊)의 나룻배에 탈 수 있었던 사람은 겨우 5명이었다.

그들은 바로 5대(五大)문파(門派)의 장문인(掌門人)이거나 지극히 높은 권위를 지니고 있는 수좌(首座)장로(長老)들이었다. 무당파(武當派)와 소림사(少林寺)는 강호에서 지극히 명성이 높은 문파(門派)였지만 그들은 공문(空門)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속세의 사람들과 왕래하지 않았다. 그들의 장문인(掌門人) 역시 좀처럼 외부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의 수좌(首座)장로(長老)만큼 알려지지 않았다. 이 5분의 무림의 판도를 좌우할 수 있는 인물들의 왕림은 더욱 정붕(丁鵬)과 사효봉(謝曉峰)의 1전(一戰)을 자극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謝)선생이 정붕(丁鵬)을 신검산장(神劍山莊)의 대문 입구로 모셔 왔을 때, 사(謝)씨 집안의 대문 앞에는 이미 의장대가 열을 지어서 그들을 맞이했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마차 안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아고(阿古) 역시 무표정하게 마부석에 앉아 채찍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사(謝)선생은 정붕(丁鵬)에게 실례를 하지 않았다.

무척 공손한 태도로 그에게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으나 정붕(丁鵬)은 거절했다.

“나는 당신네 주인을 찾아온 것이오. 주인은 어디 갔기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단 말이오?”

사(謝)선생은 핀잔을 들었으나 털끝만치도 화를 내지 않고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정(丁)공자와 저희 주인은 시정잡배들처럼 속되게 길가에서 주먹을 휘두르며 거칠게 싸우는 것이 아니겠지요. 예의는 지켜야 하니 정(丁)공자께서는 우선 안으로 들어가서 잠깐 앉아 계십시오.”

“당신네 주인은 안에 계시오?”

사(謝)선생은 우물쭈물하다가 대답했다.

“모릅니다.”

정붕(丁鵬)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뭐라고요? 당신이 모른다고요?”

사(謝)선생은 겸연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불초는 정말 모릅니다. 주인은 이 몇 년 동안 일정한 거처가 없었기 때문에 행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지요. 그는 몇 달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다가 갑자기 집에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집안에서 10여 일을 보내면서도 집안 사람 그 누구와도 만나주지를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초는 정말로 모르고 있습니다.”

정붕(丁鵬)은 생각해보더니 물었다.

“그는 내가 그와 결투를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사(謝)선생은 웃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소저가 원월산장(圓月山莊)에서 돌아오게 되었을 때 마침 주인을 만나보고 그 즉시 정(丁)공자의 말씀을 전해드렸지요.”

“오! 그는 어떤 반응을 보입디까?”

사(謝)선생은 정중하게 말했다.

“저희 주인께서는 정(丁)공자가 소저의 목숨을 구해주어 무척 고마워하고 계십니다. 기회가 있으면 공자를 뵙고 반드시 감사를 드리겠다고 하셨지요.”

“나는 치하를 받으러 온 것이 아니오. 그가 치하할 마음이 있었다면 기한 안으로 원월산장(圓月山莊)으로 나를 찾아왔을 것이오. 그는 기한을 넘기고 오지 않았으니 분명 나와 1판 겨룰 속셈이 있는 것이오…”

사(謝)선생은 겸손하게 대꾸했다.

“저희 주인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지요.”

“결투에 대해서 그는 어떻게 말했소?”

“그 분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니?”

정붕(丁鵬)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사(謝)선생은 웃으면서 설명을 했다.

“저희 주인의 뜻은 언제나 파악하기가 어렵답니다. 그 분께서 말씀을 하시지 않으면 우리들도 물론 물어볼 수 없었지요. 하지만 저희 주인은 정(丁)공자의 뜻을 알았으니 틀림없이 어떤 분부가 있을 겁니다.”

정붕(丁鵬)은 담담히 물었다.

“그게 사실이오?”

지난번 유약송(柳若松)의 장원에서 사(謝)선생의 지위는 얼마나 숭고했는가? 그러나 지금 정붕(丁鵬)의 눈에는 1명의 하인에 지나지 않았다.

사(謝)선생은 온화하게 대답했다.

“그것은 불초의 추측이지요. 불초는 주인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추측을 1것입니다.”

정붕(丁鵬)은 냉랭히 그 말을 받았다.

“당신은 사효봉(謝曉峰)이 아니오. 따라서 그를 대신해서 말할 수도 없소. 더군다나 추측해서 하는 말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오.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은 바로 바지를 벗고 뀐 방귀와 같은 것이오…”

사(謝)선생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곳곳에서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 이런 모욕을 당하면 정말 무척 화가 날 것이었다. 그러나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총관(總管) 사(謝)선생은 역시 남과 다른 점이 있었다. 그는 노여운 얼굴빛을 순식간에 지워버리고 빙그레 웃었다.

“정(丁)공자께서는 말씀도 재미있게 하시는군요…”

정붕(丁鵬)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그 1마디는 조금도 재미가 없소. 바지를 벗고 엉덩짝을 드러내고 방귀를 뀌는 모양이 뭐가 재미있다는 것이오? 나는 당신네 주인을 찾아온 것이지 당신이 방귀 뀌는 소리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니란 말이오.”

사(謝)선생 역시 사람이었다.

그의 수양이 깊다고 해도 낯가죽이 유약송(柳若松)만큼 두껍지는 못했다. 그 말을 듣자 아무 말도 않고 곧장 배위로 올라가 배를 맞은편 언덕 쪽으로 몰았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들을 영접하러 가는 것이었다. 정붕(丁鵬) 역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차의 등걸이에 등을 기대고 기분 좋게 졸기 시작했다. 사(謝)선생이 사람들을 데리고 왔을 때 정붕(丁鵬)은 여전히 졸고 있었다.

사(謝)선생은 그 사람들 앞에서 다시 1번 희롱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못본 척했다. 그러나 그 5사람은 정붕(丁鵬)의 무례한 태도에 견딜 수가 없었다. 처음 나선 사람은 아미파(峨眉派)의 임약평(林若萍)이었다. 임약평(林若萍)은 5사람 가운데 나이가 가장 젊어 금년에 겨우 45밖에 되지 않았다. 그의 검술은 아미파(峨眉派)의 진전을 이어받았고, 아미파(峨眉派)의 명예를 널리 드날리고 있었다.

그는 성큼성큼 마차 앞으로 와서 오만하게 공수의 예를 취했다. 정붕(丁鵬)은 답례를 하지 않았다. 정붕(丁鵬)의 보지 못한척하는 행동은 더욱 임약평(林若萍)을 화나게 만들었다. 그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귀하가 바로 최근에 명성을 날리고 있는 마도 정붕(丁鵬)이오?”

정붕(丁鵬)은 냉랭한 시선으로 그를 1번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내가 바로 정붕(丁鵬)이오. 최근 내가 원월산장(圓月山莊)에서 손님을 청하게 되었을 때 오신 분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내가 당신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오.”

임약평(林若萍)은 냉랭히 입을 열었다.

“폐인(敝人)은 임약평(林若萍)이라고 하며…”

그가 신분을 밝히려고 하자 정붕(丁鵬)은 빙그레 웃었다.

“아! 당신이 임약평(林若萍)이구려? 내가 당신을 몰라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오. 이번에 원월산장(圓月山莊)에 손님을 초청하게 되었을 때 원래 당신에게도 1장의 청첩장을 보내려고 했소. 하지만 당신의 의형 유약송(柳若松)이 내 문하 제자가 되었소. 내 못난 제자 녀석 유약송(柳若松)이 말하기를, 당신이 그의 후배이니 초청장을 보내서는 안 되며 며칠 지난 후에 당신을 불러다가 나에게 문안을 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소.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소. 그런데 당신이 나에게 인사를 드리러 왔구려.”

임약평(林若萍)은 울화가 치밀어 졸도할뻔 했다. 그가 먼저 정붕(丁鵬)에게 시비를 건 주된 이유는 바로 유약송(柳若松) 때문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은 바로 그의 의형이었다. 하지만 유약송(柳若松)은 정붕(丁鵬)을 만난 이후로 절세적인 대검객에서 가장 추잡한 소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임약평(林若萍)은 세한(歲寒)3우(三友)를 친구로 사귄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약송(柳若松)은 죽음을 면하려고 정붕(丁鵬)을 사부로 모셨던 것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의 그 행동 때문에 임약평(林若萍)까지 체면이 크게 손상되었다. 그는 급히 정붕(丁鵬)을 찾아가 구겨진 체면을 회복하려고 했었다. 지금 정붕(丁鵬)이 먼저 그의 머리통을 막대기로 후려친 꼴이 되었다. 물론 진짜 막대기는 아니었지만 그의 눈에서 불똥이 튀도록 만든 것이었다. 임약평(林若萍)은 치솟는 분노를 겨우 억누르고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정붕(丁鵬), 유약송(柳若松)은 이미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소. 나는 바로 당신에게 이 1마디의 말을 전하고 싶었소.”

정붕(丁鵬)은 담담히 말했다.

“그렇다면 잘 되었소. 나 역시도 그렇게 못난 병신같은 제자 놈은 1명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소. 그런데 만약 유약송(柳若松)의 동생까지 내 제자가 되고 당신네 아미파(峨眉派)의 제자들이 모조리 나를 사부로 모신다면 나는 답답해서 죽을 것이오.”

임약평(林若萍)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이봐, 젊은이. 당신은 너무 건방져. 당신의 손에 들린 마도(魔刀)가 무적인 줄 아는가?”

정붕(丁鵬)은 빙그레 웃었다.

“그건 감히 말할 수 없소. 내가 아직까지 사효봉(謝曉峰)과 고하를 가리지 못했으니, 무적이라고 하기는 이르오. 나중에 내가 사효봉(謝曉峰)은 격퇴시킨다면 아마 무적이라고 해도 될 것이오.”

임약평(林若萍)은 고함을 버럭 질렀다.

“정붕(丁鵬), 당신은 너무 안하무인이군. 신검산장(神劍山莊) 앞에서 감히 그토록 건방지게 굴다니…”

그는 입으로는 거칠게 소리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자신이 별로 없었다.

정붕(丁鵬)이 철연(鐵燕)쌍비(雙飛)의 손을 자른 일을 그는 이미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1칼로 철연(鐵燕)쌍비(雙飛)의 손목을 자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기껏해야 1, 2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1사람은 바로 사효봉(謝曉峰)이고, 1사람은 바로 그들이 이미 죽었다고 인정하고 있고 그들이 밤낮으로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그 사람이었다. 물론 그들은 그가 죽었다고 인정했고 그가 죽었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죽었다는 사람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불안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그 칼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 1초(一招)의 도법 역시 나타났다. 바로 정붕(丁鵬)의 손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들은 반드시 정붕(丁鵬)의 칼이 어디서 난 것인지 캐물어서 알아내야 했다. 그리고 도법을 누구에게 배운 것인지, 그 사람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밝혀내야 했다. 가능하다면 정붕(丁鵬)을 죽여버리고 그 칼을 망가뜨리는 것이 가장 좋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소식을 너무 늦게 들었다. 정붕(丁鵬)은 이미 신검산장(神劍山莊)에 나타난 것이었다.

신검산장(神劍山莊)에 사효봉(謝曉峰)이 있으니 그 1자루 원월만도(圓月彎刀)에 피살될 가능이 많지 않아, 그들은 비교적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붕(丁鵬)을 죽일 가능성도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효봉(謝曉峰)이 자기의 장원에서 사람을 죽이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찌되었든 그 칼이 다시 강호에 나타나고 그 1초(一招)의 도법이 다시 강호에 나타나게 된 이상, 그들은 반드시 분명히 밝혀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곳까지 달려온 것이었다.

이 5사람 가운데 임약평(林若萍)은 그 칼에 대한 인식이 가장 부족했다. 왜냐하면 그 칼이 무림에 엄청난 위협을 주었을 때 그는 아직도 강호에 출도하기 전이었다. 5대(五大)문파(門派)가 은밀히 행한 맹세를 그는 장문인(掌門人) 직책을 이어받은 후에야 알았다. 그는 그 칼의 무서움을 알았으나 어느 정도로 무서운지는 모르고 있었다. 다른 4사람도 그에게 그 마도(魔刀)의 무서움을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그렇게 대담하게 정붕(丁鵬)에게 다음과 같은 1마디를 내던지지 않았으리라.

“칼을 뽑아라.”

이 말은 강호에서 무척 흔한 말이었다. 언제 어디서든지 사소한 분쟁이 있는 곳에서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원월만도(圓月彎刀)의 주인에게만은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옛날에 몇 사람이 그런 바보짓을 했다. 그 사람들은 모두 그만한 대가를 치르었다.

대가로 지불한 것은 그들의 생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번도 살아남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없었다. 임약평(林若萍)은 공교롭게도 그런 실수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행운아라고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정붕(丁鵬)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정붕(丁鵬)은 그 마도(魔刀)를 지니고 있었지만 아직도 그 마도(魔刀)의 마성(魔性)에 감염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사람을 골탕 먹이기를 좋아하는 편이었으나 사람을 죽이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자기에게 그렇게 대한 유약송(柳若松)마저도 죽이지 않았던 것이다. 임약평(林若萍)의 운수는 정말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말을 내뱉은 후에도 서 있을 수 있었고 머리에서 엉덩이까지 2쪽으로 갈라져 죽는 불상사를 당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정붕(丁鵬)의 표정이나 태도에 약간 마의(魔意)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는 1발을 마차 밖으로 내밀면서 냉랭히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소?”

임약평(林若萍)은 1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는 자기의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바라본 순간 그들의 눈에 드러난 표정을 읽고 그는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4대(四大)검파(劍派)의 우두머리격인 그들의 표정은 무척 복잡했다. 그것은 5푼 정도 고소해하는 빛이었고 2푼 정도는 흥분이었으며 3푼 정도는 두려움이었다. 두려운 것은 그들이 정붕(丁鵬)의 손에 들린 그 칼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검증할 필요도 없이 그들은 바로 그 칼이라는 것을 단정할 수 있었다. 두려움은 물론 그 칼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말 두려운 것은 칼을 쓰는 사람이었다. 칼이 정붕(丁鵬)의 손에 들려 있는데도 그토록 두려울 수 있다니… 정붕(丁鵬)의 1칼이 유약송(柳若松)의 간담을 찢어 놓을 것처럼 놀라게 만들었다. 1칼에 철연(鐵燕)쌍비(雙飛)의 손목을 잘라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소문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고 그들이 목격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소문을 절대로 믿을 수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관점이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전에 그 칼을 본 적이 있고 그 칼을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칼의 위력에 대해서 꼭 확인을 해야 했다. 누가 나서서 그 칼의 위력을 시험해 보아 그들이 비교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시험해볼 생각이 있었으나 감히 시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임약평(林若萍)이 나선 것이었다. 임약평(林若萍)은 갑자기 알아차렸다. 어째서 그들이 길을 오는 동안 그 일에 대해서는 적게 이야기했으나, 유약송(柳若松)의 일에 대해서는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했는지를… 그들은 일부러 자기를 바보로 만들 뜻이 있었던 것이었다. 임약평(林若萍)은 바보짓을 했으나 바보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잠시 주춤했으나 즉시 자기의 감정을 억누르고 입을 열었다.

“내가 당신보고 칼을 뽑으라고 1것은 여러 사람들에게 칼을 뽑아서 그 마도(魔刀)인지 아닌지 보여주라는 것이오.”

정붕(丁鵬)은 웃었다.

“칼에 小樓一夜聽春雨 (소루일야청춘우) 작은 누각의 밤, 봄비 소리 듣다 라는 7글자가 새겨져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이라면 나는 당신들에게 알려줄 수 있소.”

임약평(林若萍)은 냉소했다.

“그것으로는 결코 그것을 증명할 수는 없는 것이오. 사람마다 그렇게 생긴 1자루의 칼을 만들고 그 칼에 7글자를 새길 수 있는 것이오.”

정붕(丁鵬)은 빙그레 웃었다.

“맞았소. 당신의 말에 일리가 있구려.”

그는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은 정말로 천재로군. 그러니 당신이 장문인(掌門人)이 된 것도 무리는 아니오. 하지만 이 칼이 그 어떤 것을 증명할 수 없다면 내가 당신들에게 뽑아 보여준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이오?”

임약평(林若萍)은 다시 1번 농락당한 셈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훨씬 총명하게 굴었고 조금 전처럼 화를 내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빙그레 웃었다.

“그거야 저 몇 분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오. 왜냐하면 저 몇 분들은 예전에 그 칼을 본 적이 있고 그 칼 아래에 크게 당한 적이 있으니…”

그러면서 그는 4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아슬아슬한 위기를 다른 4사람에게 떠넘긴 것이었다. 그 4사람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들은 임약평(林若萍)이 이런 1수를 쓸 줄은 미처 생각 못했었다.

그들은 자연히 임약평(林若萍)을 노려보게 되었다. 정붕(丁鵬)은 그들 4사람을 훑어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내 칼이 알고 보니 그렇게 이름을 날린 적이 있었구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당신들 4분이 무림에서 무척 명성이 있는 사람들인지 아닌지 모르겠구려?”

임약평(林若萍)은 빙그레 웃었다.

“당신은 그들을 모르시오?”

정붕(丁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오. 나는 강호에서 떠돈지 얼마 되지 않았고 만나본 사람도 얼마 되지 못하오. 만약 당신의 의형인 유약송(柳若松)이 나의 제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당신을 몰라보았을 것이오. 제자를 거두게 되면 제자의 신분 내력을 알아보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소?”

임약평(林若萍)은 말했다.

“저 4분으로 말하면 대명이 쟁쟁한 인물들이오. 당신이 만약 그들을 모른다면 당신은 강호인이 될 자격이 없소.”

정붕(丁鵬)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더 말할 필요 없소. 나는 그들을 알고 싶지도 않소. 왜냐하면 나는 강호인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오.”

이 1마디의 말에 모든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고 임약평(林若萍)도 어리둥절해졌다.

“당신은 강호인이 되고 싶지 않다고?”

정붕(丁鵬)은 대답했다.

“나는 몇 명의 강호인을 사귀었는데 내가 만난 그 몇 사람은 하나같이 삶을 탐내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비열하고 치사한 뻔뻔스러운 도배들이었소. 하나가 그랬고 10명이 그랬으며 명망이 있는 사람이면 더욱 그랬소. 그들이 만약 매우 명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나는 차라리 몰랐던 것으로 하고 싶소.”

이 말은 모든 사람들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얼굴에 노여운 빛을 띠우고 정붕(丁鵬)과 손을 쓸 준비를 했다.


21. 비참한 패배

갑자기 손뼉치는 소리가 대문 안쪽에서 들렸다. 여자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호호호, 정말 묘하군요. 묘해요. 정말 욕 1번 잘했어요. 당신은 우리 아버님보다 담력이 더욱 크군요. 우리 아버지는 다만 등뒤에서 그들을 그렇게 평했을 뿐인데 당신은 그들의 면전에서 그들의 코를 가리키며 욕을 했군요. 저는 실로 탄복했어요.”

몸매가 날씬한 아름다운 여인이 웃으면서 걸어 나왔다.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은 눈앞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신검산장(神劍山莊)의 대문에서 걸어 나오며 그런 말을 할 사람은 물론 사(謝)씨 집안의 큰 소저이며 사효봉(謝曉峰)의 딸인 사소옥(謝小玉)이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실로 지난번 원월산장(圓月山莊)에서 본 사소옥(謝小玉)이라고 믿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녀는 훨씬 성숙해진 것 같았다. 착 달라붙는 옷은 그녀의 매력적인 육체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고 사람을 홀리는 매력을 발산시키고 있었다.

정붕(丁鵬)은 무척 정력(定力)이 강한 남자였다. 왜냐하면 그는 유약송(柳若松)의 아내 진가정(秦可情)이라는 아름다운 여인에게 속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죽일 진가정(秦可情)은 그로 하여금 가소롭고 추악한 꼴을 보이도록 만들었다. 또 지금의 그의 처는 여우[狐]였다. 여우[狐]는 사람을 홀리는데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호녀(狐女)를 아내로 삼은 사람은 적어도 다른 여인의 미혹(迷惑)에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정붕(丁鵬)이 그녀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은 정붕(丁鵬)을 탓할 수가 없었다. 문밖에는 또 2명의 출가인이 있었는데 1사람은 화상이었고 1사람은 도사였다. 천계(天戒)상인(上人)는 소림사(少林寺) 달마원(達摩院)의 수좌(首座) 장로(長老)였다. 자양(紫陽)도장(道長)는 무당파(武當派)에서 배분이 가장 높은 장로(長老)였다.

이들 2사람의 나이는 물론 무척 많은 편이었고 수위(修爲)나 정력(定力)은 결코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사소옥(謝小玉)의 절세적인 풍자에 2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딱 벌어졌다. 그녀는 5명을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미안해요. 5분, 그 말은 내가 1말이 아니라 저의 아버님이 말씀하신 것이에요. 그 어르신께서는 정(丁)오라버니가 방금 말한 바와는 다르게 말했으나 그 뜻은 완전히 같은 것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로 인해서 화가 났다면 우리 아버님에게 따지도록 하세요.”

천계(天戒)상인(上人)은 속으로 불쾌해서 퉁명스럽게 물었다.

“사(謝)대협은 계시오?”

사소옥(謝小玉)은 웃으며 대답했다.

“가친께서는 막 어르신의 서재에서 나오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보기에 그 분은 여러분에 대한 인상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더군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여러분들을 안으로 모시지 않겠어요.”

이 말에 5대(五大)문파(門派)의 우두머리격인 사람들은 그만 2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딱 벌어졌다. 사소옥(謝小玉)은 웃으면서 다시 정붕(丁鵬)에게 입을 열었다.

“정(丁)오라버니,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섭섭하게 행동하세요.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시니 말이에요.”

정붕(丁鵬)은 덤덤히 말했다.

“사(謝)소저(小姐), 나는 영존과 결투를 하러 온 사람이오.”

사소옥(謝小玉)은 웃었다.

“나는 이미 정(丁)오라버니의 말씀을 아버님에게 전했어요. 아버님이 어떻게 정(丁)오라버니와 결투를 하든 그것은 2분의 일이고 정(丁)오라버니는 바로 나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에요. 저는 먼저 정(丁)오라버니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 후에야 다른 문제를 논할 수 있겠네요. 자자,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그녀는 다가와서 정붕(丁鵬)의 손을 잡고 끌었다.

정붕(丁鵬)은 그만 망설였다.

“나는…”

사소옥(謝小玉)은 웃었다.

“일에는 선후가 있는 법이에요. 정(丁)오라버니가 저의 목숨을 먼저 구해주셨고 나중에 저의 아버님에게 도전을 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정(丁)오라버니가 저의 아버님을 찾아 결투를 한다 해도 먼저 저의 접대를 받은 후에 아버님과 결투를 하셔야 해요. 그래야만 저의 아버님이 결투를 하게 되었을 때 정(丁)오라버니에게 인정의 빚을 졌다 해서 손에 사정을 둔다거나 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여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모두 옳은 것이었다.

정붕(丁鵬)은 그녀에게 끌려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몇 걸음 옮기다가 갑자기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잠깐, 1가지 일을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소.”

그는 몸을 돌리더니 임약평(林若萍)에게 다가가 당당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조금 전 당신은 나에게 칼을 뽑아 보여달라고 했소. 그렇지 않소?”

임약평(林若萍)은 1걸음 뒤로 물러섰다. 정붕(丁鵬)은 냉랭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소.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더욱 싫어하오. 당신은 이미 나라는 사람을 보았는데도 내 칼을 보자고 했으니, 이것은 당신이 내 칼만 높게 평가했지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겠소? 좋소, 나는 이제 당신에게 내 칼을 보여주겠소. 하지만 내 칼은 1번도 헛되이 칼집에서 뽑혀지는 일이 없으니 당신도 검을 뽑는 것이 가장 좋겠구려.”

임약평(林若萍)은 놀라서 안색이 창백해졌다.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으나 혀가 굳어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붕(丁鵬)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사내 대장부가 죽으면 끝날 일을 어찌 그리 두려워한단 말이오? 당신이 죽음을 그렇게 두려워한다면 호걸인 양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지. 안 그렇소?”

임약평(林若萍)은 정말 두려웠다. 그러나 그는 1파의 장문인(掌門人)이었다. 못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검을 뽑아 들었다.

“터무니없는 소리. 누가 당신을 두려워한댔소?”

정붕(丁鵬)은 임약평(林若萍)을 향해 다가서며 칼을 뽑았다. 1자루의 평범한 칼이었다. 다만 도신(刀身)이 초생달처럼 휘어져 있는 것이 특이해 보일 뿐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 칼을 보았으나 그 누구도 정붕(丁鵬)이 어떻게 손을 썼는지 보지 못했다. 그는 다만 임약평(林若萍)의 검끝을 향해 칼을 디밀었을 뿐이었다. 임약평(林若萍)의 검이 갑자기 1자루에서 2자루로 변했다.

마치 1자루의 대나무를 깎아서 만든 검이 예리한 칼에 쪼개진 것처럼, 검의 끝에서부터 검자루까지 2쪽으로 갈라진 것이었다. 정확히 2쪽으로 갈라진 것이었다. 임약평(林若萍)은 2쪽으로 변해 땅바닥에 떨어진 검을 내려다 보며 완전히 넋을 잃고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는데 마치 하나의 석상(石像)을 연상시켰다. 정붕(丁鵬)은 1마디를 남겼다.

“앞으로는 함부로 나에게 칼을 뽑으라는 소리를 하지 마시오. 반드시 해야 하겠다면 먼저 자기의 무기가 얼마나 튼튼한지 검사를 한 후에 그런 망발을 하도록 하시오.”

그는 고개를 돌리고 그들 4사람에게 입을 열었다.

“당신네들도 마찬가지외다.”

말이 끝나자 그는 사소옥(謝小玉)을 따라 신검산장(神劍山莊) 안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가에서 저지를 당했지만 대문 입구에 늘어선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임약평(林若萍)처럼 멍청해진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그 칼을 보았다. 무척 평범하고 특별히 눈을 끄는 점은 없었다. 그 누구도 정붕(丁鵬)이 어떻게 손을 썼는지 보지 못했다. 다만 정붕(丁鵬)이 임약평(林若萍)의 검끝을 향해 칼을 디미는 것을 보았을 뿐인데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검이 2쪽으로 가지런히 갈라진 것이었다. 무림에서 상대방의 무기를 훼손하는 일은 자주 있어 왔다.

검이 부러지는 것은 다반사였다. 그러나 임약평(林若萍)의 검은 무쇠로 만들어진 칼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척 유명한 검이었으며 몇 대에 걸쳐 아미파(峨眉派)의 장문인(掌門人)에게 전해져 왔었다. 검이 존재하면 사람이 존재하고, 검이 없어지면 사람도 없어진다는 뜻이 서려 있는 검이었다. 아미파(峨眉派) 장문인(掌門人)의 권위를 대표하는 검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검이 다른 사람에 의해 망가지고 말았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막을 수가 없는 일종의 신도마법(神刀魔法)에 망가진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검을 잘 만드는 유명한 장인이라 해도 1자루의 검을 2자루로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해낸 것이었다. 임약평(林若萍)은 끝내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이미 문안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다만 아고(阿古)만이 충성스럽게 마차의 마부석에 앉아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임약평(林若萍)이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 떨어진 잔검(殘劍)을 집어들고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아! 나는 끝내 당신들이 어째서 그토록 그를 두려워하는지를 알았고, 끝내 그 칼을 보았소.”

천계(天戒)상인(上人)은 재빨리 물었다.

“임(林)시주(施主), 그가 손을 쓰는 것을 똑똑히 보았소?”

임약평(林若萍)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나는 처음 그의 칼만 보았고 그 수법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소. 다음 순간 칼은 칼집으로 되돌아갔소.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특별한 것도 느끼지 못했소. 단지 어느샌가 모르게 내 검이 2쪽으로 변해 있었을 뿐이오.”

그 말이 떨어지자 나머지 4사람은 깜짝 놀랐다. 자양(紫陽)도장(道長)은 재빨리 물었다.

“임(林)시주(施主), 정말 그런 느낌이 들었소?”

임약평(林若萍)은 냉랭히 대꾸했다.

“당신들이 친히 그 맛을 보면 될 것이 아니오? 어째서 나에게 묻는 것이오?”

천계(天戒)상인(上人)은 한숨을 내쉬었다.

“장문인(掌門人), 노납(老衲) 등은 예전에 맛본 적이 있었소. 그 맛은 시주가 맛본 것보다 더욱 기이하고 매서웠소. 칼이 미처 몸에 닿기도 전에 이미 세찬 기운이 몸으로 뻗쳐왔고 살갗을 베어내는 듯했소. 만약 사(謝)대협이 때 늦지 않게 도움의 손길을 뻗쳐서 그 1칼을 밀어내지 않았더라면 노납(老衲) 등 4사람과 영사는 이미 12조각이 나고 말았을 것이오. 그것은 정말 1자루의 무서운 마도(魔刀)였소.”

자양(紫陽)도장(道長)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소. 그 1자루의 원월만도(圓月彎刀)는 보기에 별로 기이한 점이 없었지만 일단 그 주인이 그 1초(一招)의 마도(魔刀)를 펼치는 순간에는 요상하고도 기이한 기운이 감돌아 사람으로 하여금 충격을 받은 나머지 어지러워지고 미혹(迷惑)에 빠지게 만들었지요…”

임약평(林若萍)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 말을 이어받았다.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소. 또 아무것도 볼 수 없었소. 다만 그 1자루의 칼이 나에게 닥쳐오는 것을 보았을 뿐이오. 그러더니 갑자기 그 사람의 몸뚱이가 내 면전에 서 있는 것이었소. 나의 검이 어떻게 2쪽으로 나게 되었는지 그저 신기할 뿐이오. 나는 당신들처럼 그렇게 기이하고 매서운 느낌을 받지도 않았소. 어쩌면 정붕(丁鵬)의 조예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만큼 높지 않고 그만큼 무섭지도 않은 모양이오.”

천계(天戒)상인(上人)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시주(施主)는 잘못 알았소. 정붕(丁鵬)의 조예는 이미 그 사람보다 더욱 높고 더욱 무서워졌소. 왜냐하면 그는 이미 칼을 부리되 칼에 부림을 당하지 않기 때문이오.”

칼에 의해 부림을 받는 것은 무엇일까? 칼은 바로 사람이고 사람이 바로 칼이며 사람과 칼은 나눌 수가 없는 법이었다. 칼은 사람의 살성(殺性)을 느끼고 받아들이게 되며 사람의 천품은 칼의 잔인한 성격을 받아들여서 사람이 칼의 노예가 되고 칼이 사람의 영혼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칼 자체는 바로 흉기인데 그 1자루의 칼은 흉기 가운데서도 지극히 흉악한 흉기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칼을 부리는 것은 무엇일까? 칼이 바로 나 자신이고 나는 여전히 나인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칼은 사람의 손과 팔의 연장이며 마음과 의지를 밖으로 표현하는 실체였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그 어떤 물건을 파괴하고 싶을 때는 칼이 내 뜻을 이루어줄 수 있었다.

사람은 칼의 영혼이며 칼은 사람의 노예인 것이다. 이 2가지의 의경(意境)은 2가지 경지를 대표하고 있었다. 어떤 경지가 높고 낮은지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판가름이 나 있는 것이다. 다만 웬만한 사람들은 그 2가지 경지를 눈으로 보아서는 구별하기 힘들 뿐이었다. 사람과 칼 사이에는 떼어 놓으려야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가 존재하는 것이었다.

칼은 흉기이며 사람이 흉악하지 않다 해도 어느 정도는 칼에 의해서 영향을 받기 마련이었다. 칼은 자체가 죽은 것이지만 칼은 칼을 쥔 사람에게 무형 중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바로 1조각의 새빨갛게 달구어진 쇳조각을 가까이 하게 되었을 때 그 뜨거운 열기를 느끼게 되고, 그 쇳조각을 손에 쥐게 되었을 때 그 쇳조각에 의해 살이 타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원월만도(圓月彎刀)는 마중지보(魔中至寶)였다. 왜냐하면 그것이 마성(魔性)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누구든지 그 마도(魔刀)를 가지게 된다면 똑같이 그 마성(魔性)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었다. 오직 대지대혜(大智大慧)한 사람만은 예외였다. 오직 지정지성(至情至性)한 사람만은 예외였다. 대문 밖에 모여 있는 5대(五大)문파(門派)의 인물들은 얼굴에 한결같이 두려운 빛을 띠었다. 그들의 두려움은 이유가 있었다. 임약평(林若萍)의 묘사에 의하면 정붕(丁鵬)의 조예는 이미 칼이 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경지에 도달했으니 천하에서 그 누구도 그 칼을 제압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양(紫陽)도장(道長)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謝)선생, 사(謝)선생이 보시기에 사(謝)씨 집안의 신검(神劍)은 정붕(丁鵬)의 칼을 제압할 수 있겠소?”

사(謝)선생은 매우 차분하게 말했다.

“10년 전이라면 불초는 불가능하다고 했을 것이외다. 그러나 10년 동안 우리 주인님의 성취는 헤아릴 수 없는 경지에 도달했소. 그렇기 때문에 불초는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군요.”

지금의 사효봉(謝曉峰)이 어떠한지 아는 사람이 없지만, 10년 전의 사효봉(謝曉峰)을 본 사람은 많이 있었다.

그의 검술은 경이로운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사(謝)선생은 지금의 정붕(丁鵬)보다 못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화산(華山)의 장문인(掌門人) 영비검객(靈飛劍客) 능일홍(凌一鴻)은 나직히 말했다.

“설사 사(謝)대협이 정붕(丁鵬)을 이길 수 있다 해도 우리들은 큰 기대를 걸 수가 없소. 왜냐하면 그를 모셔내어 이 일에 상관하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 정붕(丁鵬)을 상대하는 것보다 수월하지는 않을 것이니까요.”

모두들 고개를 숙였다.

사소옥(謝小玉)이 조금 전 1말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했다. 사효봉(謝曉峰)은 그들에 대해 이미 명백하게 비평했지 않은가? 그들은 감히 사효봉(謝曉峰)에게 청을 할 수도 없었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사효봉(謝曉峰)은 그들을 비평할만한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그 비평이 강호의 사람들에게 소문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 5명은 찾아올 때 무척 신명이 나 있었다.

사(謝)씨 집안의 새 배를 타고서 마치 주인처럼 산장으로 모셔진 것이었다. 그러나 떠날 때는 무척 낭패했다. 그들은 여전히 그 호화스러운 배를 탔으며 여전히 사(謝)선생이 그들을 전송했지만, 길 옆에 나열했던 젊은 의장(儀仗)의 검수들은 모조리 철수하고 없었다. 그들이 배에 오르기도 전에 철수한 것이었다. 이 뜻은 분명했다. 그 의장대는 그들을 환영할 목적으로 나열했던 것이 아니고 그들이 공교롭게도 때를 맞추어 이곳에 도달했을 뿐이었다.

그들이 떠날 때 신검산장(神劍山莊)에서는 오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의장대를 철수시킨 것이었다. 이것은 그들을 더욱 창피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그들의 배가 맞은편 언덕에 도달하고 많은 강호인들이 던지는 의아함과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과 마주치게 되었을 때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비록 신검산장(神劍山莊)에서 잔뜩 창피를 당한 셈이었지만 강호인의 마음속에서 그들의 지위는 여전히 숭고하고 신성했다.

그래서 그 누구도 감히 앞으로 달려나와 그들에게 도대체 맞은편 언덕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여러 사람들에게 가장 관심이 가는 일은 따로 있었다. 정붕(丁鵬)과 사효봉(謝曉峰)의 싸움이 어떻게 되었을까? 다행히 사(謝)선생이 있었다. 사(謝)선생으로 말하면 강호에서 언제나 온화하고 인심이 좋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은 사(謝)선생에게 다가서며 아는 체를 하려고 했다. 사(謝)선생은 쉽게 가까이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와 이러쿵 저러쿵 말을 나눌만한 사람은 그래도 어느 정도 명망이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가까이 다가간 이 사람은 라개정(羅開廷)이라는 사람이었다. 크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표국(鏢局)을 경영하는 총표두(總鏢頭)였다. 따라서 라(羅)표두(鏢頭)는 어찌되었든 간에 크지도 작지도 않는 명성을 지니고 있었다. 더군다나 사(謝)선생은 1번 그의 대접을 받은 적이 있었다. 언젠가 그의 표국(鏢局)이 있는 현성(縣城)을 지나게 되었을 때 하룻동안 그의 손님이 된 적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라개정(羅開廷)은 이때야말로 자기와 사(謝)선생이 교분이 깊다는 것을 나타내기 딱 좋은 때라고 느꼈다. 그런데 사(謝)선생이 먼저 그를 발견하고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아는 체를 했다.

“개정(開廷)형, 마중을 나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오. 언제 왕림하셨소? 어째서 이 형제에게 1마디 통지를 하지 않았소?”

이토록 많은 사람들 앞에서 친절한 인사를 받게 되자 라개정(羅開廷)은 너무 감동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사(謝)선생이 이토록 친절하게 그를 대해주자 그는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위가 가장 숭고해진 셈이었다. 사(謝)선생이 그보고 죽으라고 해도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슴 가득 끓어오르는 강호인의 뜨거운 피는 오직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만 팔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라개정(羅開廷)이 그만 입이 떡 벌어지고 혓바닥이 굳어질 정도로 격동되어 어떻게 대답할 바를 모르게 되었을 때 사(謝)선생은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개정(開廷)형, 만약 우리 주인과 정붕(丁鵬)의 결투를 보러 오셨다면 아무래도 실망을 하게 될 것이외다. 이번 대결은 어쩌면 실행되지 않을 것이외다.”

라개정(羅開廷)은 재빨리 물었다.

“그건 어째서지요?”

사(謝)선생은 빙그레 웃었다.

“왜냐하면 정(丁)공자는 이미 우리집 소저와 친구로 사귀고 있고, 한창 열렬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 때문이오.”

라개정(羅開廷)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결투에 관한 일은 어떻게 되지요?”

사(謝)선생은 빙그레 웃었다.

“모르지요. 그들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소. 하지만 정(丁)공자가 소저의 좋은 친구가 된다면 그녀의 아버님을 상대로 결투를 하자는 말은 차마 못하겠지요.”

사(謝)선생은 정붕(丁鵬)과 사효봉(謝曉峰)의 결투에 대해서 자기의 짐작을 발표했을 뿐이었다. 짐작은 물론 대답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謝)선생의 짐작은 대답이나 다름이 없었다.

왜냐하면 사(謝)선생은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총관이고, 사(謝)선생은 강호에서 남아일언중천금의 무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상당한 근거가 없다면 추측의 말을 입밖으로 낼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이미 대답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 틈에서는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애석하게 여기는 것 같기도 하고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은 천 리 길을 달려와 이번에 신나는 구경을 하려고 했지만 결코 그 1전(一戰)의 결과 누가 이기고 지는 것으로 끝장이 나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것 같았다. 사효봉(謝曉峰)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과 눈에 신이었고 지고무상의 검수였으며 명예의 상징이었다. 물론 그 어떤 사람도 마음속에 있는 신이 쓰러지는 것을 바라지 않으리라. 정붕(丁鵬)은 어떤 사람에게는 마음속의 우상이었다. 더욱이 젊은 사람과 여인네의 마음속에 그는 갑자기 솟아오른 태양과 같았다.

그리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행동거지와 일을 처리하는 방법, 그리고 전통을 깨뜨리고 윗대의 명성을 떨친 종사들에게 도전하는 자신감은 젊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충격을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정붕(丁鵬)이 패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사(謝)선생의 그 대답은 자극적이지 못하지만 모두가 기뻐하는 결과였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만족하게 여겼다.

“정(丁)공자는 우리 아가씨의 좋은 친구가 되었소.”

이것은 사(謝)선생이 여러 사람들에게 선포한 사실이었고 그 누구도 부인 못할 사실인 것처럼 보였다. 5대(五大)문파(門派)의 우두머리들은 정붕(丁鵬)에게 한바탕 농락을 당한 셈이었지만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소옥(謝小玉)이 정붕(丁鵬)의 손을 잡고 장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던 것이었다. 2사람은 무척 친밀한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의 상황은 여러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사소옥(謝小玉)은 무척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녀의 웃음 앞에서 남자들은 그녀가 내놓은 어떠한 요구도 거절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만약 그녀와 손을 잡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간다면 앞에 화산(火山)의 입구가 있다고 해도 남자들은 거침없이 뛰어들었으리라. 그러나 정붕(丁鵬)은 쉽게 정복당하지 않았다.

그는 유혹을 받은 적이 있었다. 유약송(柳若松)의 아내 진가정(秦可情) 역시 무척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또한 그에게는 1명의 처가 있었다. 청청(青青)은 그의 면전에서 어떤 미술(媚術 눈짓 유혹)을 펼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그 절세적인 자태와 용모, 물처럼 부드러운 정은 어떠한 여인도 따라오기 어려웠다. 사소옥(謝小玉)은 그 2여인과 달랐다. 마치 2여인의 장점, 진가정(秦可情)의 매력과 청청(青青)의 부드러움을 1몸에 갖추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진가정(秦可情)처럼 방탕하지 않았고 청청(青青)처럼 장난끼가 있지도 않았다. 다른 남자였다면 모르지만 정붕(丁鵬)은 쉽게 그녀의 매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간파했다. 그래서 2사람이 자리에 앉고 시중꾼들이 술과 음식을 날아오고 3잔의 술을 가볍게 마신 후에, 사소옥(謝小玉)의 눈초리가 취한 것처럼 변하면서 점점 여성의 매력을 발산하게 되었을 때 정붕(丁鵬)은 오히려 흥미를 잃고 말았다. 사소옥(謝小玉)은 시중꾼들을 물리치고 그를 위해 4잔째 술을 따른 후에 몸을 반쯤 기댄 채 나직히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자, 우리 1잔만 더 마셔요.”

다른 남자였다면 그것이 설사 1잔의 독약이라 해도 거절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정붕(丁鵬)은 냉랭히 그녀의 몸뚱이를 밀어내고 그 1잔의 술을 밀어냈다.

“3잔은 예의로 마신 것이지만, 4잔은 너무 많은 것이오.”

사소옥(謝小玉)은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남자에게 거절당한 것이었다. 그녀가 신검산장(神劍山莊)에 온 후에 아주 많은 젊은 검객들과 무사들이 신검산장(神劍山莊)으로 찾아와 손님이 되었고 그녀의 미색에 빠져 목숨이라도 바칠 것처럼 정성을 보였다.

심지어 그녀가 떨어뜨린 손수건을 서로 가지려고 2남자가 검을 뽑아 목숨을 걸고 싸우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남자에게 거절당한 것이었다. 이는 상당히 창피한 노릇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신기한 자극이기도 했다. 이 남자가 그녀의 유혹을 거절했으니 그녀는 반드시 그를 정복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방그레 웃었다.

“정(丁)오라버니, 저의 체면도 세워주지 못하시나요?”

정붕(丁鵬)은 눈살을 찌푸리고 아무런 감정도 없이 말했다.

“당신과 나 사이에는 그런 교분이 없소. 더군다나 나는 체면을 위해 술을 마시지는 않소.”

이 말은 상당히 무정했다. 마치 그녀의 얼굴에 따귀를 갈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웃음은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 말은 일찍이 없었던 굴욕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눈가를 붉히고 눈물을 글썽이며 측은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정붕(丁鵬)을 바라보았다.

그런 표정과 태도에 철석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녹아나고 말 것 같았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철석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심장(心腸)은 철석보다 더욱 단단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오히려 혐오의 빛을 떠올렸다.

“사(謝)소저(小姐), 당신은 풍정(風情)을 펼치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오. 하지만 소리내어 울면서 어리광을 부리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구려. 여인이 가장 혐오스러운 것은 바로 자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할 때라고 할 수 있소.”

사소옥(謝小玉)의 눈물은 흘러내리려고 하다가 그의 그 말을 듣자 말라버리고 말았다.

재빨리 그녀는 소맷자락으로 눈가를 훔치고 웃었다.

“정(丁)오라버니는 정말로 우스개 말씀도 잘 하시네요.”

그녀의 표정과 태도의 변화가 너무나 빨라 오히려 정붕(丁鵬)이 놀랄 지경이었다. 사람의 태도나 표정이 삽시간에 그토록 빨리 변하려면, 더욱이 여인이 그렇게 되려면 적어도 풍진(風塵)에서 몇 년 동안 굴러 다녀야 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붕(丁鵬)은 이 여인을 새삼스럽게 훑어보게 되었는데 그녀의 얼굴에서는 화난 빛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정(丁)오라버니는 정말 우스개 말씀도 잘 하시네요.] 이것은 무척 평범한 말이었다. 그러나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여자가 아니라면 이런 상황에서 그 1마디를 하기 어려웠으리라. 모든 겸연쩍은 일들을 그 1마디 말로 가볍게 얼버무린 것이었다. 이것은 말이 아니라 예술이었다. 정붕(丁鵬)은 참을 수 없어 1마디 물었다.

“당신은 몇 살이나 되었소?”

사소옥(謝小玉)은 깔깔 웃었다.

“천하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여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나이에요. 젊었을 때는 자기가 좀더 성숙해지기를 바래서 1, 2살 더 올려서 말하지요. 그러다가 그녀가 진정으로 성숙하게 되었을 때는 자기가 빨리 늙게 될까봐 1, 2살 줄여서 이야기하지요. 그리하여 몇 년의 세월이 흐르게 되면 그가 정말 늙게 되어 줄인 나이가 더욱 많아지게 되고 끝내 그녀 자신도 자기가 몇 살인지 모르게 되지요.”

정붕(丁鵬)은 말했다.

“하여튼 여자들이 스스로 만족하게 여기는 나이가 있을 것이 아니겠소?”

“그야 물론이지요. 그래서 대부분의 여자들은 19에서 20살 사이에서 살고 있지요. 그래서 작년에 19살이라고 말했다면 금년은 20살이 되고, 만약에 작년에 20살이라고 말했다면 금년에는 바로 19살이 되는 거예요.”

정붕(丁鵬)은 이 여자의 슬기롭고 영악한 점을 보고 퍽이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웃으면서 물었다.

“우리는 작년에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당신의 나이를 모르겠군.”

사소옥(謝小玉)은 방그레 웃었다.

“그것도 큰 관계가 없어요. 19아니면 20이에요. 정(丁)오라버니가 21살로만 보지 않는다면 나는 화를 내지 않을 거예요.”

정붕(丁鵬)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좋소. 내가 묻지 않은 것으로 합시다.”

사소옥(謝小玉)은 눈을 깜박였다.

“정(丁)오라버니는 바보같지 않은데 어째서 그렇게 바보같은 질문을 했었지요?”

그녀는 정말로 남자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매력적인 것과 간드러지면서 애잔하게 보이는 2가지 수단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 후에 재빨리 그녀는 3번째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은 정붕(丁鵬)의 다음과 같은 1마디가 그녀를 깨우쳐 준 탓이었다.

“풍정을 논하기에 당신의 나이는 너무나 어리고, 울면서 어리광을 부리기에 당신은 너무나 컸소.”

그녀는 즉시 자기가 정붕(丁鵬)의 눈에는 어떤 신분과 인상을 남기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동시에 정붕(丁鵬)이 높이 평가하는 여인상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녀 역시 속으로 자기가 멍청해서 잘못된 시도를 너무 많이 했다고 탓했다. 문 입구에서 그녀는 비아냥거리는 말로 5대(五大)문파(門派)의 우두머리들을 한껏 조롱했기 때문에 정붕(丁鵬)의 우의(友誼)를 얻을 수 있었고 그와 더불어 장원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여인의 각박하고 표독한 것을 좋아하는 남자는 무척 드물었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공교롭게도 드문 남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사소옥(謝小玉)은 더욱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이 남자를 정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약간 당황했고 두려움이 있었다. 그녀는 1번도 남자를 유혹하려고 시도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자기가 그런 여인의 역할을 잘 해낼 것인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음에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하나를 궁리했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그녀가 자기를 유혹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사(謝)소저(小姐), 이제 영존을 모셔 오시구려.”


22. 숙성한 여인

사소옥(謝小玉)은 어리둥절해졌다.

“아니, 정(丁)오라버니는 저의 아버님과 결투를 하려는 거예요?”

정붕(丁鵬)은 무뚝뚝했다.

“나는 바로 그 일 때문에 온 것이오.”

사소옥(謝小玉)은 머리를 몇 번이나 굴렸는지 몰랐다. 그러나 끝내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녀는 어떤 방법을 써야 이 1차례의 결투를 저지할 수 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그녀가 바라는 대답을 제공했다.

“사(謝)소저(小姐), 당신은 우리가 친구가 되기를 바라오?”

“물론이에요. 정(丁)오라버니가 목숨을 살려준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말한 것은 마음에도 없는 말이에요. 물론 정(丁)오라버니는 정말로 나를 구했어요. 그러나 나는 고맙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정(丁)오라버니는 나를 위해서 구한 것이 아니니까 말이에요.”

“아! 그렇다면 내가 무엇 때문에 당신을 구했단 말이오?”

“정(丁)오라버니는 정(丁)오라버니의 존엄을 세우기 위해서 저를 구했지요. 다른 사람이 정(丁)오라버니의 원월산장(圓月山莊)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거예요. 만약에 다른 곳이었다면 정(丁)오라버니는 모르는 척 했을 거예요.”

“아니오. 그건 당신이 잘못 알고 있소. 다른 곳에서도 나는 상관했을 것이오. 하지만 원월산장(圓月山莊)에서는 나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사람도 사람을 죽일 수 없는 것이오.”

사소옥(謝小玉)은 웃었다. 정붕(丁鵬)의 오만함은 그녀를 무척 기쁘게 했다. 오만하면 오만할수록 사람의 본성을 잘 드러내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원월산장(圓月山莊)에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모두 정(丁)오라버니가 직접 죽인 것은 아니었잖아요?”

정붕(丁鵬)은 담담히 말했다.

“그 사람들은 내가 죽인 것이 아니었지만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었소. 내가 죽어 마땅하다고 인정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죽여도 괜찮은 것이오. 내가 무엇 때문에 수고스럽게 몸소 손을 써야 한다는 것이오?”

그는 총명한 남자였다. 더군다나 자기 자신의 칠정육욕(七情六慾)을 장악할 수 있고, 감정에 치우쳐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소옥(謝小玉)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나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 아니었나요?”

“그렇소. 예전에 나는 당신을 숫제 몰랐으며 심지어 사효봉(謝曉峰)에게 딸이 있는 줄도 몰랐으니 자연히 당신이 마땅히 죽어야 할 이유를 알 수 없었지.”

“지금 정(丁)오라버니는 알았는데 여전히 내가 죽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나요?”

정붕(丁鵬)은 빙그레 웃었다.

“그렇소. 1사람이 죽어 마땅하냐의 여부는 그가 나의 위엄을 거슬렸느냐에 달려 있는데, 당신은 아직 그런 빌어먹을 짓은 하지 않았거든.”

“만약 어느 날 내가 정말로 정(丁)오라버니의 위엄을 거슬린다면?”

정붕(丁鵬)은 대답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조심해야 할 것이오. 설사 당신이 사효봉(謝曉峰)의 딸이라 해도 나는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오.”

사소옥(謝小玉)은 혓바닥을 낼름 내밀어 보이고 짓궂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반드시 수시로 내 자신에게 정(丁)오라버니의 위엄이 거슬리는 일을 하면 안 된다고 깨우쳐주겠어요.”

“당신은 총명하니, 나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하지 마시구려.”

“정(丁)오라버니, 나는 정(丁)오라버니가 싫어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몰라요.”

정붕(丁鵬)은 싸늘히 코웃음쳤다.

“흥! 지금처럼 시간을 질질 끌면서 나와 영존의 결투를 저지하려고 하는 수작이 바로 나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오. 나는 자기의 본분을 지키지 못하는 여인과, 남자들 사이에 끼어드는 여인을 가장 혐오하오.”

그는 이 1마디를 할 때 진가정(秦可情)을 생각했다. 그 죽어 마땅한 여인을 떠올린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얼굴에는 혐오하는 빛이 더욱 짙어졌다.

사소옥(謝小玉)은 흠칫했다. 그녀는 정붕(丁鵬)의 과거에 대해서 무척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그와 유약송(柳若松) 사이의 원한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유약송(柳若松)에게 가한 보복은 잔학(殘虐)에 가까운 것이었다. 물론 유약송(柳若松)이 그에게 가한 타격에 비하면 이것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 유약송(柳若松)이 더욱 지위가 높아지도록 하기 위해서 진가정(秦可情)은 정붕(丁鵬)을 속였고 정붕(丁鵬)을 농락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붕(丁鵬)은 그런 부류의 여인들을 통한스럽게 여겼으며, 남자들이 하는 일에 끼어드는 여인들까지도 미워하게 된 것이었다. 사소옥(謝小玉)은 즉시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즉시 예쁘게 웃었다.

“정(丁)오라버니, 정(丁)오라버니는 오해를 하셨군요. 나는 결코 정(丁)오라버니와 저의 아버님의 결투를 저지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것은 내가 저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마치 내가 우리 아버님을 모셔올 수 없는 것처럼 말이에요. 왜냐하면 나는 지금 아버님이 집에 계신지 안 계신지도 모르기 때문이에요.”

“뭐라고? 방금 당신은 계시다고 하지 않았소?”

“맞았어요. 얼마 전에 아버님을 만나 몇 마디의 이야기까지 나누었어요. 그러나 아버님은 결투의 일에 대해서는 어떤 표시도 하시지 않았어요. 받아들인다고도 거절한다고도 하지 않으셨단 말이에요…”

그녀는 정붕(丁鵬)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나는 아버님을 대신해서 어떤 결정을 내릴 수가 없는 거예요. 유일한 방법은 정(丁)오라버니를 데리고 아버님을 찾아가 뵙고 아버님의 뜻이 어떤지를 알아보는 거예요.”

3사람은 꼭 닫혀져 있는 대문 앞에 서서 그 녹슬은 커다란 자물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붕(丁鵬)과 사소옥(謝小玉), 그리고 아고(阿古) 3사람이었다. 이 충성스러운 하인은 말을 할 줄 몰랐다. 그러나 가장 눈치가 빠르고 사람의 뜻을 잘 헤아렸다.

그가 필요없는 경우에는 절대로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라는 사람이 필요할 때는 절대로 빠지지 않았다. 정붕(丁鵬)과 사소옥(謝小玉)이 뒤쪽으로 향하자 그는 그림자처럼 따라온 것이었다. 손에 들고 있던 가죽 채찍이 사라진 대신 허리에 1자루의 비수가 꽂혀 있었다. 손과 팔에는 2개의 은권(銀圈)이 둘려져 있었고 손가락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나 있는 권투(拳套)가 끼워져 있었다. 이런 것들은 그렇게 커다란 작용이 있는 무기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아고(阿古)의 몸에 있는 이런 소품들이 얼마나 커다란 위력을 지니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사소옥(謝小玉)은 손가락으로 그 높다란 담장을 가리켰다.

“오랫동안 아버님은 저 안에서 잠거(潛居)하고 계셨어요. 소매가 잠거(潛居)라는 2글자를 쓰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것 같지만, 그 어르신의 행적이 일정하지 않고 줄곧 저 안에만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쓴 거예요.”

그 점에 대해서 정붕(丁鵬)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신검산장(山莊)은 사소옥(謝小玉)이 나타난 후에 장원의 사람들이 더 많아졌던 것이었다. 사람이 많아지게 된다면 비밀이란 무척 지키기 어려워지는 법이었다. 사소옥(謝小玉)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버님이 만약 장원에 계시면 반드시 저 안에 계실 거예요. 그렇지 않을 때는 어디로 가셨는지 모르는 거예요.”

정붕(丁鵬)은 그 말을 받았다.

“얼마 전에 그는 집에 계셨다고…?”

사소옥(謝小玉)은 얼른 입을 열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계신지는 알 수가 없어요. 예전에도 종종 그러셨거든요. 그는 밖에서 다른 사람에게 아는 척을 했는데 눈깜짝할 사이에 보이지 않곤 했어요.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은 다른 성(城)에서 아버님을 보았다고 했는데, 시각을 대조해 보니 겨우 2시진의 차이가 나더군요.”

정붕(丁鵬)은 웃었다.

“2시진이면 충분히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소.”

사소옥(謝小玉)은 방긋 웃었다.

“그러나 그 성시(城市)는 이곳에서 500리나 떨어져 있어요.”

정붕(丁鵬)은 약간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건, 날개가 달려서 날아갔다면 몰라도 어려운 일이오. 혹시 영존이 축지법에 통달하신 게 아니오?”

사소옥(謝小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버님은 무슨 검선(劍仙)도 아니시고 축지법도 몰라요. 기껏해야 공력이 심후한 까닭에 몸을 움직이고 진기를 돋구는 공력이 여느 사람들보다 뛰어나지요. 그래서 어떤 장애라도 넘을 수 있으며 가장 짧은 거리로 질러 가니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빠르게 되는 거지요.”

정붕(丁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가능하겠구려. 산 왼쪽에서 산 오른쪽으로 길을 따라 돌아간다면 멀지만 만약 산을 넘어 가게 된다면 그 반도 안 될 것이오.”

사소옥(謝小玉)은 시인했다.

“아마도 바로 그런 것일 거예요.”

정붕(丁鵬)은 문의 자물통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이 문이 잠겨져 있지만 영존이 안에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겠구려.”

“그래요. 소매는 감히 건방진 소리나 거짓말을 할 수 없어요. 나는 정말 아버님이 안에 계신지 몰라요.”

“우리는 밖에 서서 1번 불러보도록 합시다.”

사소옥(謝小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도 소용이 없을 거예요. 소매도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예전에는 시험을 해본 적이 있어요. 어떤 때 그 어르신은 분명히 안에 계시면서도 응답하지 않았어요. 어르신은 사람을 만나려면 스스로 나올 것이며 그렇지 않을 때는 절대로 자기를 방해하는 일을 금하셨어요.”

정붕(丁鵬)은 물었다.

“그렇다면 문을 깨뜨리고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오?”

사소옥(謝小玉)은 대답했다.

“물론 그 1가지 방법밖에 없는 것은 아니에요. 월장을 해도 들어갈 수는 있어요. 그러나 정(丁)오라버니는 아마 월장을 하는 분은 아닐 거예요.”

정붕(丁鵬)은 말했다.

“맞았소. 나는 광명정대하게 영존을 찾아와 결투를 하려고 1사람이니 남 몰래 월장을 해서 들어갈 필요는 없는 것이오.”

그는 잠시 생각을 해본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문을 깨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당신은 저지하지 않겠지?”

사소옥(謝小玉)은 방그레 웃었다.

“나는 마땅히 저지를 해야겠지요. 그러나 저의 능력으로는 저지를 할 수 없으니 굳이 정력을 쓸데없이 허비할 필요가 어디 있겠어요. 이것은 1짝의 문에 지나지 않으니 목숨을 걸고 보호할 가치가 없는 거예요.”

정붕(丁鵬) 역시 웃었다.

“사(謝)소저(小姐), 당신은 실로 무척 총명한 여자요.”

사소옥(謝小玉)은 방긋 웃었다.

“제 아버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반감을 샀기 때문에 친구가 별로 없어요. 신검산장(山莊)이 천하에 이름이 알려져 있지만 나를 보호할 수는 없어요. 사효봉(謝曉峰)의 딸이라는 몸이지만 총명하지 않고서는 오래 살지 못할 거예요.”

정붕(丁鵬)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존의 쟁쟁한 명성도 다른 사람이 당신을 죽이는 것을 결코 막지 못할 것이오. 그날 당신을 죽이려고 하던 철연(鐵燕)쌍비(雙飛)를 그 누구도 막지 못하지 않았었소?”

사소옥(謝小玉)은 방그레 웃었다.

“정(丁)오라버니가 바로 그들을 막지 않았나요? 감히 사효봉(謝曉峰)의 딸에게 손을 뻗치는 사람은 결코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저를 보호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고 정(丁)오라버니와 같은 분은 더욱 적지요.”

정붕(丁鵬)은 냉랭히 그 말을 받았다.

“사(謝)소저(小姐), 나는 영존을 찾아 결투를 하러 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그리고 당신도 너무 서둘러서 나와 친구가 되려고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오.”

“그건 왜 그렇지요? 정(丁)오라버니는 아버님을 찾아와 결투를 하려고 1것이지 나와 결투를 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이건 우리가 친구가 되는 것과 아무런 관계도 없어요.”

“내가 영존과 결투를 1후에는 어느 한쪽에서 패하기 마련이오.”

“그야 물론이에요. 그러나 그것은 별 상관이 없어요. 무공이 당신들의 경지에 이르면 실력은 미세한 차이밖에 없으니, 결코 생사나 유혈의 참극을 빚어낼 리가 없는 거예요.”

“그건 말하기 어렵소. 나의 도식(刀式)은 일단 펼쳐지게 되면 수습할 길이 없소.”

사소옥(謝小玉)은 이번에도 여유있게 웃었다.

“정(丁)오라버의 칼은 철연(鐵燕)쌍비(雙飛)에게 상처를 입히고 임약평(林若萍)을 격퇴시킬 때, 자유자재로 펼치고 거두어들이지 않았나요?”

“그것은 그들이 너무나 뒤떨어지기 때문이오. 그리고 나는 전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소.”

“정(丁)오라버니, 저의 아버님과 결투를 하게 되었을 때는 더욱 전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어요. 고수들의 싸움은 기(技)와 예(藝)로써 판가름을 내자는 것이지 그 어느 쪽에서도 뚝심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에요. 어떤 때는 심지어 잠시 마주 서 있을 뿐이고 서로 손을 써서 초식(招式)을 전개하지 않았는데도 쌍방은 누가 이기고 졌는가를 알게 되지 않아요?”

정붕(丁鵬)은 마음속으로 움직이는 바가 있었다.

“당신의 조예는 무척 고명하군. 그렇지 않으면 결코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오. 그리고 어떤 경지에 도달하기 전에는 그런 체득은 없는 것이오.”

“정(丁)오라버니, 나는 사효봉(謝曉峰)의 딸이며 신검산장(神劍山莊)의 다음 대 주인이니 너무 뒤떨어질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어요?”

“당신의 조예라면 그날 철연(鐵燕)쌍비(雙飛)에게 쫓겨서 망명도배처럼 도망칠 지경은 아니오. 그들은 아직 당신처럼 고명하지는 못하오.”

사소옥(謝小玉)은 몸을 1번 흠칫 떨었다. 그녀는 정붕(丁鵬)이 이토록 세심하고 슬쩍 주고받는 말에서 그녀의 허실을 알아낼 줄은 생각 못했던 것이다.

재빨리 궁리를 하며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했다. 어떤 교묘한 변명이나 얼버무림보다는 차라리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방긋 웃었다.

“만약 정말로 내가 그들보다 훨씬 뒤떨어졌다면 어떻게 그들의 추살에서 빠져나와 원월산장(圓月山莊)까지 도망칠 수 있었겠어요.”

“그렇다면 당신은 일부러 그곳으로 도망 온 것이었소?”

“그렇게 말할 수 있지요. 나는 그 1쌍의 부부가 무척 무서운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누가 그들의 흉악한 위세를 억누를 수 있는지 보고 싶었고, 또한 저의 아버님이 천하에 명성을 떨치면서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어려움을 제거해주었는데 그의 딸이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 때 그 누가 나서서 나를 보호해 줄 것인지 알아보고 싶었어요.”

정붕(丁鵬)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결과에 대해서 당신은 무척 불쾌하게 생각했겠군?”

사소옥(謝小玉)은 말했다.

“맞았어요. 정(丁)오라버니의 원월산장(圓月山莊)에서 그날 모인 사람들은 거의가 명성이 쟁쟁한 협의도의 인사들이었어요. 결과는 저를 무척 실망시켰어요. 그래서 그날 이후 나는 협의도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념이 크게 바뀌고 말았어요…”

그녀는 방긋이 웃고서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전혀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적어도 정(丁)오라버니와 같은 젊은 영웅호걸이 나타나 주었으니까요.”

“나는 결코 협의를 펼치기 위해서 당신을 구한 것은 아니오.”

“하여튼 정(丁)오라버니는 저를 구해주었어요.”

“그것은 나의 집이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이 방자하게 살인을 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고 뿐만 아니라 나는 반드시 그들을 이길 수 있었기 때문이오. 그렇지 않을 때 나는 결코 바보처럼 목숨을 내던지고 당신을 구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오.”

“그래요. 소매도 알고 있어요. 나는 정(丁)오라버니와 그때 아무런 관계도 없었으며 정(丁)오라버니께 그렇게 해달라고 요구할 구실도 없었지요.”

“당신은 꽤나 활달한 성품이군.”

사소옥(謝小玉)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다만 내 자신에 비추어 다른 사람을 가늠해 본 거예요. 저보고 내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1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을 구하라고 한다면 나 역시도 구해주지 않을 거예요. 그야말로 내가 온 마음을 바쳐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나는 결코 그를 위해서 모든 것을 돌보지 않고 덤비지는 않을 거예요.”

“당신은 그런 사람을 찾았소?”

“아니요. 그러나 나는 곧 찾게 될 것이라고 믿어요…”

그녀의 눈길은 정붕(丁鵬)에게 향해져 있었다.

직접 정붕(丁鵬)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그녀의 그런 시선을 무시하고 냉랭히 입을 열었다.

“나는 찾아내었소. 그녀는 나의 아내 청청(青青)이오.”

사소옥(謝小玉)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방그레 웃었다.

“그녀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네요.”

정붕(丁鵬)은 이렇게 무료한 이야기를 끝내기로 결심했다. 그는 옆에 우둑커니 서 있는 아고(阿古)에게 손짓을 했다.

“자물통을 부수고 문을 열게.”

아고(阿古)가 앞으로 나와 주먹을 쥐고서 자물통을 후려치려고 했을 때 홀연 4사람이 난데없이 불쑥 나타났다. 그들 4사람은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단번에 갑자기 땅에서 솟아나듯 나타나 재빨리 아고(阿古)의 면전까지 다가온 것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차갑고 무뚝뚝했으며 나이는 40살 정도였다. 4사람은 모두 잿빛 장포를 걸치고 있었고 손에는 검을 들고 있었는데 그들의 안색은 딱딱하여 아무런 표정도 띠우지 않았고 잿빛을 띠우고 깊이 가라앉은 눈동자는 아고(阿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고(阿古)는 움직이지 않고 정붕(丁鵬)을 바라보며 지시를 기다렸다. 정붕(丁鵬)은 사소옥(謝小玉)을 바라보았다. 사소옥(謝小玉)은 그저 방긋 웃을 뿐이었다.

“정(丁)오라버니, 내가 이 4사람을 모른다고 말한다면 믿어주시겠어요?”

정붕(丁鵬)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그들이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오?”

“그건 내가 말할 수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나도 이곳에 온지 겨우 1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말이에요.”

“1년이라면 그렇게 긴 세월은 아니지만, 당신 자신의 집안에 있는 사람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한 것 같구려.”

사소옥(謝小玉)은 방긋 웃었다.

“다른 곳의 사람이라면 나는 물론 다 알고 있어요. 대부분 내가 이곳에 온 후에 청해온 사람이니까요. 그러나 이 뜨락 안의 사람에 대해서 나는 1명도 몰라요. 나는 1번도 들어간 적이 없으며 그들 역시 1번도 나온 적이 없었거든요.”

“1번도 나온 적이 없다면 그들은 어떻게 살아간단 말이오?”

“나는 모르겠어요. 나는 집안 살림을 돌보지 않고 사정생(謝亭生)이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사정생(謝亭生)은 바로 사(謝)선생이었다. 모두들 사(謝)선생이라고 칭하고 그의 이름을 몰랐다. 사소옥(謝小玉)은 산장의 주인이라 자연히 그를 사(謝)선생이라 부를 필요가 없었고 거침없이 그의 이름을 부른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1명의 중년인이 입을 열었는데 그 음성 또한 그 얼굴처럼 딱딱했다.

“사(謝)선생 역시 우리를 모르오. 우리들은 그의 숙부가 신검산장(神劍山莊)을 돌볼 때 산장으로 들어온 사람들이며, 이미 30년의 세월이 흘렀소. 10년 전 사장거(謝掌柜)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조카가 총관(總管)의 직을 이어받았지만 밖의 일만 상관했지 안의 일은 상관하지 않았소.”

사소옥(謝小玉)은 웃었다.

“그렇다면 4분은 신검산장(神劍山莊)에서 가장 오래 된 사람이 되겠군요?”

중년인은 대답했다.

“우리들은 신검산장(神劍山莊)에 속하지 않소. 다만 장검려(藏劍廬)에 속할 뿐이오.”

사소옥(謝小玉)은 물꾸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장검려(藏劍廬)는 어디인가요?”

중년인은 손가락질했다.

“바로 이 곳이오.”

사소옥(謝小玉)은 의아한 빛을 띠었다.

“원래 이 뜨락을 장검려(藏劍廬)라고 했군요. 나는 정말 부끄럽네요.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니. 나는 이곳의 여주인이에요.”

중년인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주인에게 들은 적이 있소. 그러나 장검려(藏劍廬)와는 상관이 없소. 이곳은 신검산장(神劍山莊)에 속하지 않으며 주인이 사사로이 거처하는 곳일 뿐이오.”

사소옥(謝小玉)은 웃으며 반박하듯 말했다.

“당신들의 주인은 저의 아버님이에요.”

중년인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주인의 장검려(藏劍廬) 밖에서의 관계를 묻지 않소. 장검려(藏劍廬)에는 오직 1분의 주인만이 있을 뿐이며 또한 어떤 것과도 관련이 없소.”

사소옥(謝小玉)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방그레 웃어 보였다.

“4분의 호칭은 어떻게 되지요?”

중년인은 대답했다.

“장검려(藏劍廬)에는 오직 주인과 검노(劍奴)만이 있을 뿐이며 성명은 필요 없소. 다만 호칭에 있어서 구별을 갖기 위해 간지(干支)에 따라 호칭을 붙이게 되었소. 나는 갑자(甲子)라고 하오. 다른 사람은 을축(乙丑), 병인(丙寅), 정묘(丁卯)가 되는 것이오…”

사소옥(謝小玉)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그렇게 헤아린다면 이 장검려(藏劍廬)에는 60명의 검노(劍奴)가 있는 셈이 아닌가요?”

갑자(甲子)라는 중년인은 대답했다.

“장검려(藏劍廬)는 이 세상과 격리되어 있으며 왕래가 없으니 말씀드릴 수 없소.”

정붕(丁鵬)은 그 말을 받았다.

“나는 사효봉(謝曉峰)을 찾아왔소. 그는 있소? 없소?”

갑자(甲子)는 대답했다.

“장검려(藏劍廬)에는 그런 사람이 없소.”

정붕(丁鵬)은 처음 어리둥절해졌으나 곧이어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장검려(藏劍廬)의 주인을 찾아왔소.”

갑자(甲子)는 냉랭히 말했다.

“만약 주인께서 당신들을 만나고 싶어한다면 자연히 밖에서 만나보게 될 것이오. 그렇지 않을 때는 당신이 찾아온다 해도 소용이 없소. 장검려(藏劍廬)에 외부의 사람이 들어가는 것은 용납되지 않소.”

정붕(丁鵬)은 다시 1마디를 물었다.

“주인은 있소, 없소?”

갑자(甲子)는 뻣뻣하게 맞섰다.

“말씀드릴 수 없소. 당신들도 이미 알고 있으리라고 믿소. 이 외딴채의 담장 밖의 2장(丈) 안은 모두 금지구역이오. 오늘은 처음으로 금기를 어겼으니 우리들은 경고만 하겠지만, 다음에는 따지지 않고 격살(格殺)하겠소. 당신들은 빨리 가시오.”

정붕(丁鵬)은 무거운 어조로 물었다.

“나는 사효봉(謝曉峰)과 결투하러 온 사람이오.”

갑자(甲子)는 여전히 똑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에게 그런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소? 당신이 사효봉(謝曉峰)을 찾겠다면 마땅히 다른 곳으로 찾아가야 할 것이오.”

정붕(丁鵬)은 냉소를 했다.

“어디로 가면 그를 찾을 수 있소?”

갑자(甲子)는 대답했다.

“모르겠소. 장검려(藏劍廬)는 바깥 세상과 단절되어 있소. 그 이름을 보더라도 장검려(藏劍廬)는 장검(藏劍)이라고 하는 만큼 다른 사람과 결투하는 곳이 아니오.”

정붕(丁鵬)은 넌지시 물었다.

“그러면 당신네들 손에는 어찌해서 검이 들려져 있소?”

갑자(甲子)는 대답했다.

“우리 손에 들린 것은 검이 아니오.”

정붕(丁鵬)은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검이 아니라면 무엇이오?”

갑자(甲子)는 냉담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마음대로 부르도록 하구려. 하지만 검이라고는 부를 수 없소.”

정붕(丁鵬)은 멸시하듯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분명히 검인데도 검이라 칭하지 않는다니, 당신들이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남을 속이며 눈 가리고 아웅하는 행위를 보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가 빠져라 웃겠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그 4사람이 정붕(丁鵬)의 그런 말을 듣게 된다면 무척 분노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차분했으며 추호도 격동된 빛을 보이지 않았다. 갑자(甲子)는 그가 웃음을 끝내자 그제서야 냉랭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칭호하든 그것은 당신의 마음이오. 그러나 장검려(藏劍廬)에서 우리는 이것을 검이라고 여기지 않소. 그러니 당신 역시 우리들에게 이것을 검이라 칭하도록 강요할 수 없는 것이오.”

정붕(丁鵬)은 웃음을 멈추었다. 사람을 욕해서 약을 올리는 것은 통쾌한 일이었다.

그러나 상대방이 숫제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재미를 느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머쓱해지는 법이었다. 그는 남아 있는 웃음소리를 억지로 집어 삼키고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내가 들어가는 것을 저지하려고 나온 것이오?”

갑자(甲子)는 대답했다.

“그렇소. 저 1짝의 문은 장검려(藏劍廬)를 봉쇄하는 것이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망가뜨려서는 아니 되오.”

정붕(丁鵬)은 시비조로 물었다.

“만약에 내가 반드시 깨뜨리겠다면?”

갑자(甲子)는 당돌하게 맞섰다.

“당신은 후회하게 될 것이오. 더군다나 다른 사람들도 당신이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지 말아야 했다고 나무랄 것이오.”

정붕(丁鵬)은 껄껄 웃었다.

“하하하, 본래 나는 반드시 저 자물통을 깨뜨릴 생각은 없었는데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나는 오히려 반드시 저 자물통을 깨뜨려야 되겠소. 왜냐하면 나라는 사람은 1번도 자기가 1일에 대해서 후회해본 적이 없소. 더군다나 나는 다른 사람들이 원망하는 일을 하기를 가장 좋아하오.”

갑자(甲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해서 당신을 저지하겠소.”

정붕(丁鵬)은 빙그레 웃었다.

“아고(阿古), 쪼개버리게.”

아고(阿古)는 다시 앞으로 나섰다. 4사람의 4자루 장검이 일제히 뻗쳐나 그의 가슴을 찌르려고 했다. 이렇게 찌르는 수법은 무척 간단하고 무척 평범해서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날카롭기 이를 데 없어 그 기세가 만균(萬鈞)이 넘는 것 같았다. 그 누구도 그 1검(一劍)의 예리함을 물리치고 피할 수 없으련만 그들은 공교롭게도 아고(阿古)를 만난 것이었다.

아고(阿古)의 몸통은 무척 큰 편이었다. 온몸의 살결은 칠흑과 같이 검으면서도 윤기가 났다. 마치 몸에 1겹의 검은 고약, 빛을 내는 고약이라도 바른 것 같았다. 고약이라는 것은 무척 매끄럽고 윤기가 나는 것인데 아고(阿古)의 살결 또한 그런 작용이 있는 것 같았다. 그 4사람의 4자루의 검이 동시에 그의 몸을 찔렀다. 그는 피하지 않았고 저지하지도 않았다. 아니, 숫제 그들이 검의 끝으로 찔러들어오는 것을 못 본 것 같았다. 어쩌면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지도 몰랐다.

검의 끝은 그의 가슴 앞에서 양쪽으로 미끄러졌다. 그의 살결을 따라 미끄러져 나간 것이었다. 마치 바늘로 광채가 나고 매끄러우며 윤기가 나는 검은 도자기를 찌르는 것처럼 바늘 끝이 한쪽으로 미끄러져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그들 4명의 검노(劍奴)가 펼치는 검식은 아주 요상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고(阿古)는 더욱 요상한 사람이었고 펼치는 것은 더욱 요상스러운 무공이었다. 사소옥(謝小玉)이 놀라 소리를 내지르게 되었을 때 아고(阿古)는 2팔을 살짝 쳐들었다.

갑자(甲子) 등은 그 바람에 밀려서 양쪽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그런 연후에 아고(阿古)는 손을 들더니 1주먹을 내려쳤다. 그의 주먹은 강철보다 단단했다. 더군다나 손에는 권투를 끼고 있었다. 그 자물통은 무척 컸지만 이미 녹슬어 있었다. 녹슬은 강철은 물론 좋은 강철일 수 없었다. 좋은 강철은 아고(阿古)의 손가락에 끼워진 권투처럼 번쩍번쩍 빛을 발하고 은과 같은 광택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그의 주먹이 1번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녹슬은 자물통은 즉시 박살나게 되었고 곧이어 1번의 발길질에 그 두터운 나무문이 열리고 말았다. 나무문 뒤에는 수10년 동안 봉쇄되었던 은밀한 세상이 있었다. 사효봉(謝曉峰) 외에는 그 누구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사소옥(謝小玉)마저도 무척 호기심을 느끼고 재빨리 고개를 내밀고 안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실망하고 말았다.

문 안의 뜨락은 꽤나 넓은 편이었으나 잡초들이 우거져 있어 원래의 정대(亭臺)와 누각(樓閣)들을 가리고 있었다. 이곳은 이미 황폐해진 정원에 불과했다. 신검산장(神劍山莊) 안에 위치하고 있고 일대 검신 사효봉(謝曉峰)의 잠거(潛居)하는 장소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가장 사람들의 시선을 끈 것은 2개의 흙무덤이었다. 그 흙무덤은 잡초와 허물어진 벽 사이에 높다랗게 솟아 있었는데 그 무덤에 묻힌 사람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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