圆月弯刀 5

3학년2반 | 2022.02.09 08:18:55 댓글: 0 조회: 777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7534
23. 장검려(藏劍廬)의 사효봉(謝曉峰)

4명의 검노(劍奴)들은 문이 발길에 차여 열리자 약간 놀라고 당황하는 태도였으나 표정은 더욱 차갑고 살기등등했다. 그들 4명은 갑자기 바깥쪽으로 달려 나갔다. 그들은 도망을 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10여 장(丈)쯤 달려나간 후에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런 후에 그들은 재빨리 흩어져 은밀한 곳에 몸을 숨겼다. 그들 4사람은 1번 들어가 몸을 숨겼으나 즉시 바깥으로 달려 나왔다. 검을 들고 들어갔다가 다시 검을 들고 나왔다.

들어갈 때의 검은 눈처럼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으나 달려나올 때의 검은 새빨간 피로 물들어 있었고 핏방울이 아래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4사람의 검이 모두 그러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사람을 죽인 것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검에서 방울져 떨어지는 피로 미루어 볼 때 죽인 사람은 결코 적지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은 1번 들어갔다가 즉시 달려나왔는데 사람을 죽이고 달려나온 것이었으며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았다.

살해된 사람조차도 어쩌면 자기가 남에게 목숨을 빼앗긴 사실을 모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정말 빠른 동작이었고 빠른 검이었다. 정붕(丁鵬)은 팔짱을 낀 채 아무런 표정이나 동작을 보이지 않았다. 아고(阿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그렇게 차분한 태도를 보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주살된 사람들은 그들과 무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소옥(謝小玉)의 안색은 약간 변했다.

“그들이… 저게 무슨 짓이지요?”

정붕(丁鵬)은 담담히 말했다.

“아마도 사람을 죽였겠지.”

이것은 당연한 소리였다. 누구도 사람을 죽인 것을 알 수 있었고 아마도라는 말을 붙일 필요가 없었다. 사소옥(謝小玉)은 목쉰 소리를 내질렀다.

“어째서 사람을 죽여야 하나요?”

정붕(丁鵬)은 빙그레 웃었다.

“아마도 그 사람들이 숨어서 이곳을 훔쳐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겠지. 나 역시 그런 일을 무척 싫어하오.”

사소옥(謝小玉)은 불만스러운듯 말했다.

“그들은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사람이에요…”

그녀는 마치 정붕(丁鵬)을 사람을 죽이라고 교사한 것처럼 말했다. 정붕(丁鵬)은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았는데 갑자(甲子)가 대답했다.

“그러나 장검려(藏劍廬)의 사람들은 아니오. 주인은 밖의 사람들에게 약법(約法)3장(三章)을 발표했소. 이 뜨락의 주위에 금지구역을 설정해 놓고 그 누구도 안을 엿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그 명을 어길 때는 죽음 뿐이라고 하셨소.”

사소옥(謝小玉)은 항의하듯 말했다.

“그것은 2장(丈) 안을 두고 말하는 거예요. 그들은 모두 금지구역 안에 있지 않았어요.”

갑자(甲子)는 그 말에 반박했다.

“2장(丈)은 문이 닫혀 있을 때의 거리이오. 이제 문이 열렸으니 범위는 더욱 확대된 것이오. 문안의 상황을 볼 수 있는 곳이면 모두 금지구역에 속하는 것이오.”

사소옥(謝小玉)은 물었다.

“그렇다면 이 뜨락의 안을 들여다본 사람은 모두 죽어야 하나요?”

갑자(甲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당신이 이곳으로 오게 되었을 적에 주인은 당신에게 말한 바가 있소. 만약 당신이 당신네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다면 이 사람들이 죽은 것은 당신의 과실이오. 만약 당신이 그들에게 이야기를 했다면, 그들이 죽음을 자초한 것이오.”

사소옥(謝小玉)은 응수했다.

“그들은 내 사람이 아니에요. 그들은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사람들이에요.”

갑자(甲子)는 여전히 반박했다.

“신검산장(山莊)에는 원래 저런 사람들이 없었소. 당신이 데리고 온 사람들이오.”

사소옥(謝小玉)은 정색했다.

“나는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주인이에요.”

갑자(甲子)는 대꾸했다.

“주인이 아직 살아 계시니, 당신은 주인이 될 수가 없소. 설사 주인이 계시지 않는다 해도 당신은 그저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주인에 불과하오. 장검려(藏劍廬)의 주인은 아니오. 그러니 당신은 이곳을 상관할 수 없는 것이오.”

정붕(丁鵬)은 갑자기 무척 호기심을 느꼈다.

보기에 사효봉(謝曉峰)과 사소옥(謝小玉)이라는 이 1쌍의 부녀 사이에는 어떤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사소옥(謝小玉)은 정붕(丁鵬)을 바라보았다. 자기가 너무나 많은 말을 1것처럼 느꼈는지 재빨리 웃음을 띠워 보였다.

“우리 부녀는 얼굴을 맞대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에 많은 일에 있어서 아직도 제대로 이야기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정(丁)오라버니는 이런 광경을 보고 웃으실 거예요.”

정붕(丁鵬)은 빙그레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소옥(謝小玉)은 눈동자를 1번 굴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반드시 죽어야 하나요?”

갑자(甲子)는 대답했다.

“그것은 모르겠소. 왜냐하면 당신들이 이미 문을 열어젖혔기 때문에 죽고 사는 것은 우리가 결정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오.”

사소옥(謝小玉)은 물었다.

“그럼 누가 결정을 하나요?”

갑자(甲子)는 대답했다.

“물론 안에 계신 분이 결정하는 것이오.”

사소옥(謝小玉)은 다시 물었다.

“저 안에는 사람이 있나요?”

갑자(甲子)는 대답했다.

“당신들이 들어가 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오.”

정붕(丁鵬)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우리들이 만약 들어가지 않겠다면?”

갑자(甲子)는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당신들이 문을 열고서도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이오?”

정붕(丁鵬)은 그 말을 받았다.

“우리는 어쩌면 안의 광경을 1번 엿보려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 아니겠소? 그리고 이미 문이 열렸는데 안에는 겨우 2개의 무덤밖에 없고 잡초만 무성하고 볼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나는 들어갈 생각이 없어진 것이오. 물론 확실히 사효봉(謝曉峰)이 안에 있다면 또 모르지.”

갑자(甲子)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건 우리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오. 당신들이 문을 열었으면 들어가야 하고,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라면 밖에서 죽어야 할 것이오.”

정붕(丁鵬)은 냉소했다.

“나는 원래 들어가려고 했지만 당신들이 그렇게 말하니 나는 오히려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군. 당신들이 무슨 방법으로 우리들을 문안으로 밀어 넣을지 두고 봐야 하겠군.”

갑자(甲子)는 입으로 대답하지 않고 행동으로 대답했다.

4사람은 검을 다시 가슴 앞에 쳐들고 검의 끝을 수평으로 뻗쳐내고 부채꼴로 늘어서서 천천히 정붕(丁鵬)의 앞으로 다가들었다. 검의 끝은 점점 앞으로 다가오게 되었고 그들의 검에서 뻗쳐나는 살기 또한 갈수록 거세졌다. 정붕(丁鵬)의 안색도 무거워졌다. 그 역시 4사람이 펼쳐 놓은 이 검진(劍陣)이 무척 무서워 1가닥 무형의 압력을 가지고 있어, 반드시 사람으로 하여금 뒤로 물러나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기실 뒤로 물러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나 1걸음이라도 더 물러서면 바로 문지방이었다. 아고(阿古) 역시 무척 무거운 표정으로 2주먹을 꼭 쥐고 뚫고나갈 채비를 차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역시 겨우 1걸음을 내디뎠을 뿐 곧 날카롭고 매서운 검기에 밀려 도로 물러서고 말았다. 조금 전에는 검이 그의 몸을 찔렀으나 그에게 상해를 입히지 못했지만, 지금의 무형의 검기는 그를 물러나게 만든 것이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그들 4사람이 이루어 놓은 검기가 이미 1폭의 형체 없는 막(幕)을 형성하고 천천히 앞쪽으로 모아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고(阿古)는 승복할 수 없는지 1발은 앞으로 내밀고 1발은 뒤로 뺀 채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구부리는 자세를 취했다. 정면으로 받아칠 채비를 차린 것이었다. 정붕(丁鵬)은 때 맞추어 호통을 내질렀다.

“아고(阿古), 내 뒤로 오게.”

아고(阿古)는 정붕(丁鵬)의 명령에 절대 복종이었다. 그는 즉시 자세를 거두고 정붕(丁鵬)의 뒤로 물러섰다. 정붕(丁鵬)이 그 대신 그 위치에 서서 손에 원월만도(圓月彎刀)를 들고 있었다. 공력을 한껏 돋구고 하늘을 놀라게 하는 1칼질을 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기세는 4사람을 압도한 것 같았다. 그들이 앞으로 들이닥치던 기세가 멈칫하게 되었고 서로 교착된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때 쌍방의 간격은 약 1장(丈)쯤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1장(丈) 안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서로 마주치고 있었다. 미풍에 하늘로 날렸던 낙엽들이 그들 사이의 빈 공간에 떨어지면 낙엽이 땅바닥에 닿기도 전에 갑자기 가루로 변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곤 했다. 아무것도 없는 1장(丈) 안에는 마치 수 천 자루의 예리한 검이, 또는 수 만 개의 형체 없는 손이 장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떨어지는 1알의 조그만 콩이라고 해도 수만 조각으로 잘려져서 육안으로 분간할 수 없는 미세한 가루로 화하고 말 것 같았다.

사소옥(謝小玉)의 안색은 놀라 창백해지게 되었고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에는 흥분의 빛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숨소리는 무척 급박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태반이 흥분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이토록 흥분하게 만든 것일까? 아고(阿古) 역시 잔뜩 긴장해 있었다. 그는 말을 할 수 없었지만 그의 입술은 끊임없이 달싹거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고함을 내지를 것만 같았다. 강호에 있는 사람들은 1번도 아고(阿古)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 아고(阿古)를 본 사람들은 그가 절정의 고수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평소에 그는 차갑고 무뚝뚝해서 표정이 없었으며 그를 격동시킬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 그는 쌍방의 대치로 인해서 무한히 격동되고 있었다. 이것만 보아도 정붕(丁鵬)과 그 4명 검노(劍奴)들의 대치가 얼마나 긴박한지 알 수 있으리라. 보기에는 서로 부딪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이미 수 천 수 만 번이나 무섭게 격돌한 것이었다.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는 충돌은 겉으로 보기에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충돌은 역시 충돌이었으며 반드시 결말이 나야 했다. 충돌은 반드시 어떤 결과가 있어야 했으며 이기든 지든, 죽든 살든 판가름이 나야 하는 것이었다. 정붕(丁鵬)과 검노(劍奴) 사이의 충돌은 오직 죽음만이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 그런 종류 같았다. 이것은 그들 쌍방이 함께 느끼고 있었다. 다만 누가 살고 누가 죽느냐가 다를 뿐이었다. 4명의 검노(劍奴)가 갑자기 1걸음 다가섰다.

서로 1장(丈)의 간격을 두고 있었는데 1걸음은 그저 1자 남짓한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며 결코 무기가 상대방의 몸에 닿을 수 있는 거리는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쌍방이 대치하는 정황을 두고 말할 때 이 1걸음이 생과 사를 가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정붕(丁鵬)이 놀랍게도 1걸음을 물러섰다. 쌍방의 간격은 여전히 1장(丈)이었다. 갑자(甲子)의 안색이 약간 이상해졌으며 더욱 긴장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여전히 차분했다.

이 충돌 가운데 전진할 수 있는 사람이 마땅히 유리하다고 해야 할 텐데 어째서 갑자(甲子) 등은 오히려 더 긴장하는 것일까? 검노(劍奴)들은 다시 앞으로 전진했고 정붕(丁鵬)은 다시 물러섰다. 1걸음, 2걸음, 3걸음, 4걸음. 사소옥(謝小玉) 역시 따라서 물러섰다. 끝내 그들은 문 안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은 닫혀졌다. 보기에 정붕(丁鵬)이 진 것 같았다. 정붕(丁鵬)은 칼을 거두어들였다. 안색은 차분했으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갑자(甲子) 등 4사람은 마치 1차례 큰 병을 앓고난 것처럼 거의 허탈 상태에 빠져 있었다. 4사람은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갑자(甲子)는 인내력이 강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는 검을 얼싸안고 공손한 태도로 얼굴에 고마워하는 빛을 띠었다.

“정(丁)공자, 정말 고맙소.”

정붕(丁鵬)은 빙그레 웃었다.

“천만에요. 당신네들이 나를 밀어 넣은 것이지요.”

갑자(甲子)는 무겁게 말했다.

“아니지요. 불초 등은 속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정(丁)공자가 만약 도기(刀氣)를 쏟아냈다면 우리들은 결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오.”

정붕(丁鵬)은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들은 반드시 나를 들여보내야 했소?”

갑자(甲子)는 대답했다.

“그렇소. 만약에 우리가 정(丁)공자를 들어가도록 하지 못한다면 우리들은 다만 죽음으로 사죄해야 합니다.”

정붕(丁鵬)은 빙그레 웃었다.

“그것이오. 나는 본래 들어오려고 했었으나 남에게 끌려서 들어오기는 싫었소. 만약 당신들이 공손하게 나보고 들어가라고 했다면 나는 진작에 들어왔을 것이오.”

갑자(甲子)는 입을 열었다.

“만약 정(丁)공자께서 한사코 들어오지 않으려고 하셨다면 우리들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었겠지요. 우리들은 고맙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들은 생명이 없는 검노(劍奴)였지만 명성을 떨친 그 어떤 검객보다도 은원을 분명히 할 줄 알았다. 정붕(丁鵬)은 그런 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듯 빙그레 웃었다.

“나 역시 그런 상황에서 당신들에게 밀려서 들어오고 싶지는 않았소. 그러나 내가 마음대로 들어오고자 했을 때는 반드시 칼을 휘둘러 당신들을 죽이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았소.”

갑자(甲子)는 공손히 말했다.

“공자께서 초식(招式)을 일단 펼쳐내면 우리들은 모두 죽게 되는 거지요.”

정붕(丁鵬)은 다소곳이 말했다.

“그 점에 대해서 나는 당신들보다 더욱 똑똑히 알고 있소. 다만 나는 당신들을 상대로 손을 쓰는 것을 원치 않았소. 나는 사효봉(謝曉峰)을 찾아와 결투를 하려는 사람이고, 당신들은 사효봉(謝曉峰)이 아니기 때문이오.”

바로 그때였다.

“좋아, 무척 좋아. 마도(魔刀)가 1번 펼쳐지게 된다면 반드시 혈광(血光)을 보게 되지. 당신은 이미 사람을 골라 마도(魔刀)를 펼칠 수 있게 되었으니 아마도 곧 마의(魔意)에서 벗어나게 되겠군. 젊은 친구, 이리 오시오.

우리 이야기를 1번 나눠 봅시다.”

창노한 음성이 멀리서 들려왔다. 띠로 지붕을 얹은 정자 안에서 그 음성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갑자(甲子) 등 4사람은 그 음성을 듣자 무척 공경하는 태도를 보였고 재빨리 허리를 구부리고 머리를 숙였다. 정붕(丁鵬)은 사소옥(謝小玉)을 바라보았다. 말하는 사람이 사효봉(謝曉峰)인지 아닌지 묻는 것이었다. 그는 사소옥(謝小玉)의 눈동자를 보고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1가닥의 공포가 떠오른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사효봉(謝曉峰)은 그녀의 부친이었다. 딸이 부친을 만나는데 뭐가 두려운 것일까? 하지만 정붕(丁鵬)은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사효봉(謝曉峰)을 찾아온 사람이고 이미 사람을 찾아내었으니 앞으로 나가서 1판의 승부를 결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칼을 얼싸안고 성큼성큼 모정(茅亭)으로 큰 걸음을 옮겨 놓았다. 사소옥(謝小玉)은 잠시 주저하다가 따라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다시 창노한 음성이 들려왔다.

“소옥(小玉), 너는 남거라. 그 혼자 들어오게 해라.”

이 1마디에 사소옥(謝小玉)은 걸음을 멈추었다. 아고(阿古)는 여전히 따라 들어갔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손을 흔들어 그곳에 남아 있으라고 신호했다. 사효봉(謝曉峰)은 정붕(丁鵬) 1사람만 다가오라고 1것이었다. 그곳은 무척 초라한 정자였다. 정자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돗자리와 다를 바 없는 방석 2개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방석은 서로 마주보도록 놓여 있었다.

회의의 노인이 1개의 방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다른 1개의 방석은 물론 정붕(丁鵬)을 위해 마련한 것이었다. 정붕(丁鵬)은 끝내 이 천하에 이름을 날린 전설적인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자기가 도전해서 이기고자 하는 사람을 앞에 두었을 때는 가슴속에 반드시 거센 불길이 솟아오르면서 투지를 불태워야 했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그런 것을 느끼지 못했다.

온 세상을 통털어 가장 존경을 받고 신격화되어 있는 천하제일의 검객을 마주한 이상 그의 마음속에도 흥분과 흠모의 정이 우러나야 했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그런 감정도 없었다. 음성을 들으면 사효봉(謝曉峰)은 무척 늙었다. 사효봉(謝曉峰)의 나이는 60이 채 못 되었을 것이니 강호인으로 말할 때 결코 늙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효봉(謝曉峰)을 직접 만나보니 그가 얼마나 늙었는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사효봉(謝曉峰)이 정붕(丁鵬)에게 준 인상은 바로 그가 평소에 생각하던 사효봉(謝曉峰)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사효봉(謝曉峰)에 관한 일을 적지 않게 들었고 사효봉(謝曉峰)의 일을 적지 않게 생각해 보았다. 사효봉(謝曉峰)을 만나기 전에 그는 이미 머릿속에 사효봉(謝曉峰)의 모습 1폭을 그려 놓고 있었는데 지금 그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거의 그가 그려 보았던 그 모습과 일치하고 있었다.

첫눈에 그는 사효봉(謝曉峰)이 노인이라고 느꼈다. 왜냐하면 그의 음성은 그토록 창노했고 1벌의 잿빛 포자(袍子)를 입고 방석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이 세상을 등진 은자(隱者)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붕(丁鵬)은 먼저 상대방의 눈초리를 바라보게 되었는데 그 눈초리는 그토록 피곤해 있었고 생명에 대해서 혐오와 권태를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 모두가 노인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자세히 살펴보면, 사효봉(謝曉峰)이 결코 늙지 않았으며 그의 머리카락에는 겨우 몇 가닥의 머리카락만 세었을 뿐이고 그의 기다란 수염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없었으며 살결은 여전히 윤기가 나고 부드러웠다. 그의 얼굴 윤곽은 무척 준수했다. 정말 미남자라고 칭찬을 들을만 했다. 그가 젊었을 때 그토록 풍류운사(風流韻事)를 즐긴 것도 무리가 아닌 것 같았다.

지금도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는 여전히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여자들을 미치게 만드는 폭풍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사효봉(謝曉峰)은 그저 정붕(丁鵬)을 1번 훑어보았을 뿐 매우 차분하고 온화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앉으시오. 무척 미안한 노릇이지만 이곳에는 돗자리로 만들어진 방석밖에 없구려.”

비록 짚으로 만든 방석이지만 주인의 맞은편에 놓여 있는 것을 볼 때, 자기와 평등한 신분으로 정붕(丁鵬)을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대단한 경의를 표시한 것이었다. 그 방석에 앉을 자격을 가진 사람은 아마 세상을 통틀어 몇 사람 되지 않으리라. 옛날 같았으면 정붕(丁鵬)은 틀림없이 겸연쩍어하거나 불안해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웅심만장(雄心萬丈)이었다. 자기를 제외하고는 사효봉(謝曉峰)과 함께 일어나고 함께 앉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연스럽게 앉았다. 사효봉(謝曉峰)은 그를 바라보았다. 눈에는 가상하다는 빛이 떠올라 있었다.

“좋소. 젊은 사람은 마땅히 그런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오. 자기 자신을 무척 높다랗게 보고 자기의 이상을 무척 높게 올려놓아야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오.”

이 1마디는 갸륵하게 여기는 말이었지만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는 말투였다. 사효봉(謝曉峰)은 확실히 그의 선배였다. 설사 나중에 그가 사효봉(謝曉峰)을 격패(擊敗)시킬 수 있다고 해도 그 사실만큼은 바꾸어 놓을 수 없었다.

사효봉(謝曉峰)은 갸륵하다는듯 다시 그를 1번 바라보고 1마디를 덧붙였다.

“나는 당신이 말 많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겠구려.”

정붕(丁鵬)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네.”

사효봉(謝曉峰)은 빙그레 웃었다.

“나도 예전에는 과묵한 사람이었소.”

그의 어조에는 쓸쓸함과 고독과 비애가 서려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이제 말이 많아졌소. 이미 내가 늙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된 셈이지.”

나이가 들면 말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고 수다스러워지지만 사효봉(謝曉峰)을 보기에 정말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정붕(丁鵬)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사효봉(謝曉峰)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직 이곳에서만 나는 말이 많아진다오. 그리고 사람이 없을 때, 나는 혼자서 중얼중얼 자기에게 들려주는 말을 한다오. 당신은 그 원인이 어디 있는지 아시겠소?”

정붕(丁鵬)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나는 수수께끼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1마디는 불손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효봉(謝曉峰)은 조금도 성을 내지 않고 빙그레 웃었다.

“맞았소. 당신은 젊으니 직접 말하기를 좋아하겠지. 그러나 나이가 든 사람은 이리저리 말을 빙글빙글 돌리기 때문에 1마디의 가장 간단한 말이라 해도 1바퀴 빙 돌게 된다오.”

나이를 먹은 사람들은 남아 있는 날이 많지 않은 것을 알고 있고, 몇 마디의 말을 더 하지 않는다면 이후에는 입을 열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어째서 천하에 이름이 알려진 검객이 이토록 수다스러운 모습이 되었을까? 어째서 이곳에서만 그는 그토록 말이 많아지는 것일까? 정붕(丁鵬)은 수수께끼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자기 스스로 그 해답을 얻고 싶었다.

따라서 그의 눈동자는 사방을 더듬어 보게 되었다. 이곳은 정말 그렇게 즐거운 곳은 못 되었다. 황량하고 지저분했으며 쓸쓸하고 삭막했다. 그리고 곳곳에는 죽음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을 뿐 생기라고는 1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리 뜻이 높고 기고만장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곳에서 오랫동안 머물게 되면 의기소침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사효봉(謝曉峰)에게 영향을 끼칠 원인은 아니었다. 검도에 높은 조예를 쌓은 사람은 이미 사물을 초월하게 되고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붕(丁鵬)은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사효봉(謝曉峰)은 그가 머리를 쓰도록 놔두지 않고 재빨리 해답을 알려주었다.

“왜냐하면 내 손에는 검이 없기 때문이오.”

이것은 전혀 대답이 되지 못할 것 같았다.

손에 검이 없는 것과 사람의 심경(心境)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담이 적은 사람이라면 무기로써 담력을 키울지 모르지만 사효봉(謝曉峰)이 검에 의지해서 담력을 키울 사람인가? 그러나 정붕(丁鵬)은 그 대답을 받아들였다. 적어도 그는 그 가운데의 뜻을 알았다. 사효봉(謝曉峰)은 이미 절정의 경지에 이른 검객이었다. 그는 한평생을 검과 함께 보냈다. 검은 이미 그의 생명이고 영혼이었다.

손에 검이 없다는 것은 바로 그에게 이미 생명이 없어지고 영혼이 없어졌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사효봉(謝曉峰)이 자기 생명 가운데 검에 속한 부분을 삭제한다면 남는 것은 하나의 평범하고 미약한 노인에 불과할 것이다. 사효봉(謝曉峰)은 정붕(丁鵬)이 정확하게 그 1마디의 말을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무척 기쁜빛을 띠었다.

“우리들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소. 당신은 내 말에 흥미를 느끼고 있을 것이오.”

정붕(丁鵬)은 약간 격동했다. 사효봉(謝曉峰)의 말은 그를 지기(知己)로 여긴다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남에게 지기로 인정받게 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었다. 더구나 사효봉(謝曉峰)에게 인정받는 것이었다. 어찌 유쾌할 뿐이겠는가?

“사실에 있어서 나는 20년 동안 검을 지니지 않았소. 신검산장(神劍山莊)에는 일찍이 1자루의 신검(神劍)이 있었으나 그것 역시 이미 나에 의해서 냇물 바닥으로 던져지고 말았소.”

그 일을 정붕(丁鵬)은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사효봉(謝曉峰)과 연(燕)13(十三)이 최후의 1전(一戰)을 겨룰 때, 연(燕)13(十三)은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끝내 그의 제15검(第十五劍), 천지간에 가장 잔악한 지살지검(至殺之劍)을 펼쳐내게 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연(燕)13(十三)은 그 1검(一劍)으로 사효봉(謝曉峰)을 격퇴시킬 수 있었지만 죽은 사람은 바로 연(燕)13(十三)이었다. 연(燕)13(十三)은 자기 자신을 죽여버렸는데 그 이유는 바로 지악지독(至惡至毒)한 그 1검(一劍)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사효봉(謝曉峰)의 음성은 무척 차분했다.

“신검(神劍)은 물밑에 가라앉았으나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이름은 여전히 남아 있소. 그것은 나라는 사람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오. 알겠소?”

정붕(丁鵬)은 고개를 끄덕였다. 검술이 지고무상의 경지에 도달하면 손에 검을 쥘 필요가 없었고 어떠한 물건이라도 손에 들리면 검으로 변할 수 있었다. 하나의 나뭇가지나 하나의 부드러운 천조각, 심지어는 1개의 수를 놓는 실이라도 마찬가지였다.

검은 이미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고, 검 역시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사효봉(謝曉峰)의 말은 무척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그런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사효봉(謝曉峰)의 다음 1마디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의 손에는 검이 없소.”

이 말은 먼저의 그 1마디를 반복한 것이고 그 의경(意境)은 더욱 깊었다. 정붕(丁鵬)은 물었다.

“왜죠?”

이것은 무척 우둔한 질문이었고 어떠한 사람도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 1마디의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물었다. 사효봉(謝曉峰)의 말을 완전히 이해한 후에야 가능한 질문이었다. 정붕(丁鵬)은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이 사효봉(謝曉峰)의 비밀스러운 사생활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효봉(謝曉峰)은 뜻밖에도 그에게 해답을 주었다. 사효봉(謝曉峰)은 손가락으로 2개의 황량한 무덤을 가리켰다.

무덤은 바로 뜨락 안에 있었으며 문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볼 수 있었다. 사효봉(謝曉峰)이 지적하자 정붕(丁鵬)은 그제서야 해답이 바로 무덤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덤은 흔히 보는 무덤이었고 죽은 사람을 묻어 놓은 곳이었다. 그 무덤에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바로 그 안에 묻혀 있는 사람이리라. 불후(不朽)의 사람이라면 무덤도 덩달아 불후의 무덤이 될 수 있었다.

서호(西湖)의 악왕묘(岳王墓 악비(岳飛, 1103-1142)의 묘), 새외(塞外)의 소군묘(昭君墓 4대 미녀’로 꼽히는 왕소군(王昭君, bc50-bc33~bc31~bc20-bc15)의 묘)처럼, 훌륭한 장군이나 충신 열사, 그리고 미녀들의 생명은 영원한 것이었다. 그들의 업적은 바로 묘비에 새겨져서 영원히 후대 사람이 기리고 조의를 표하도록 해 놓은 것이었다. 이 뜨락 안에 있는 2무덤에는 묘비가 없었고 묘비는 바로 정자의 난간에 꽂혀 있었다. 다만 2조각의 팻말인데 1조각은 왼쪽에 있었고 1조각은 오른쪽에 있었다.

그 2조각의 조그만 나무 팻말은 각기 황량한 무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것처럼 말이다.

-고(故) 외우(畏友) 연(燕)공(公)13(十三)지묘(之墓).

-선실(先室) 모용추획(慕容秋獲)지묘(之墓).

원래 그들 2사람이었다. 연(燕)13(十三)은 그를 패배시킨 적이 있는 사람이었고 모용추획(慕容秋獲)은 바로 그의 아내였으며 그의 가장 큰 원수요, 강적이었다.

그녀는 얼마나 많은 방법은 써서 사효봉(謝曉峰)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했던가? 이들 2사람은 모두 죽었지만 사효봉(謝曉峰)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효봉(謝曉峰)은 이곳에서 그의 손에 검이 없다고 말한 것이었다. 사효봉(謝曉峰)은 천하무적이었으나 그들 2사람에게 패한 적이 있었다. 모용추획(慕容秋獲)은 그가 몇 번이나 실패의 쓴맛을 보도록 했었다. 연(燕)13(十三)은 그를 겨우 1번 패배시켰으나 그로 하여금 영원히 의기소침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사효봉(謝曉峰)은 이곳을 장검려(藏劍廬 검을 파묻은 초가집)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의 검이 아무리 예리해도 이곳에 이르면 그 예리한 빛을 깡그리 잃게 되는 것이었다. 사효봉(謝曉峰)의 위용이 아무리 휘황한 광채를 띠고 있다고 해도 이들 2사람들 앞에서는 영원히 실패자였다. 정붕(丁鵬)은 속으로 이 노인에 대해서 불현듯 참된 존경심이 우러났다. 2사람은 이미 죽었다. 그런데도 사효봉(謝曉峰)은 이런 곳을 만들어서 자기 자신을 독려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연(燕)13(十三)과 모용추획(慕容秋獲)은 모두 존경할만한 사람이었다. 사효봉(謝曉峰)이 그들을 이곳에 묻어둔 것은 결코 그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리라.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정붕(丁鵬)은 무엇 때문이냐고 더 묻지 않았다. 묻어볼 필요가 없었으며 이미 해답을 알고 있었다. 오랜 침묵이 흐른 후에 정붕(丁鵬)은 몸을 일으켰다.

“저는 선배님에게 도전하러 왔습니다…”


24. 상승의 검도

사효봉(謝曉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소. 결투를 하려고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버렸소.”

정붕(丁鵬)은 말했다.

“저는 명성을 떨치러 온 것이 아니라 선배님과 겨뤄보고자 찾아온 것입니다.”

“알고 있소. 당신은 최근에 아주 유명해졌더군.”

“제가 칼에 쌓은 조예로 미루어 볼 때, 저는 선배님의 검과 1번 고하를 겨룰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너무나 겸손하군. 당신은 마땅히 나를 격퇴시킬 수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오.”

“그러나 지금 저는 선배님을 상대로 칼을 뽑을 수가 없군요.”

“내가 지금 손에 검을 쥐고 있지 않기 때문이오?”

“그런 건 아니지요. 지금 어떤 사람이라도 선배님을 죽일 수 있습니다.”

“맞았소. 그래서 나는 금지구역을 설정해서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설정했는데, 그것은 이곳에서 나는 닭 잡을 힘조차 없는 노인으로 변하기 때문이오.”

정붕(丁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사실이지만 제가 이곳에서 나가게 된다면 틀림없이 선배님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거야 단정할 수 없는 노릇이오. 승부라는 것은 무척 말하기 어려운 것이니까.”

정붕(丁鵬)은 칼을 얼싸안고 공수의 예를 했다.

“제가 졌습니다. 선배님에게 방해가 되었군요. 선배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사효봉(謝曉峰)은 결코 그를 붙잡을 뜻이 없는지 다만 1마디를 물었다.

“당신은 올해 몇 살이오?”

정붕(丁鵬)은 솔직히 대답했다.

“28입니다.”

사효봉(謝曉峰)은 빙그레 웃었다.

“당신은 무척 젊구려. 나는 이미 56이오. 그러나 내가 46살 되던 해에 이 장검려(藏劍廬)를 세웠으니, 나는 당신보다 18년 늦은 셈이오.”

“그러나 선배님은 이곳에서 이미 10년 동안…”

“아니오. 내가 이곳에 머문 시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으며 종종 밖으로 나간다오. 나는 떠돌기 좋아하는 습관을 여전히 고치지 못했소. 당신은 나보다 운이 좋소.”

“제가 선배님보다 행운이 좋다고요?”

“그렇소. 나는 줄곧 성공만 했기 때문에 실패의 교훈을 너무 늦게 배웠소. 그러나 당신은 처음부터 좌절을 겪었소. 그렇기 때문에 이후의 진도는 무한할 것이오.”

정붕(丁鵬)은 입을 열었다.

“훗날 선배님과 1전(一戰)을 겨룰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환영하오. 그러나 우리는 역시 이곳에서 만나는 것이 가장 좋겠소.”

“그건 어째서인가요?”

“당신이 이미 들어와 보았으니 장검려(藏劍廬)는 더 이상 금지구역이 아니오.”

“저는 무척 미안하게 생각하옵니다.”

“미안해 할 것은 없소. 당신이 오게 되었을 때 이곳은 여전히 장검려(藏劍廬)가 되오. 왜냐하면 이곳은 오직 당신과 나만 알고 있을 뿐이오. 이해하겠소?”

정붕(丁鵬)은 빙그레 웃었다.

“이해합니다. 나는 반드시 그 1마디를 기억하겠으며 어떤 사람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특별히 내 딸에게 말이오.”

정붕(丁鵬)은 약간 놀라며 물었다.

“그녀는 정말로 선배님의 딸인가요?”

“그렇소.”

정붕(丁鵬)은 더 말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서 나왔다. 정붕(丁鵬)은 장검려(藏劍廬)를 떠나게 되었을 때 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 2개의 무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띠로 이엉을 한 정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에 공경하고 탄복하는 심정이 가득 차 올랐다. 더욱 탄복한 것은 사효봉(謝曉峰)이 도달한 검의 경지였다. 문 입구에서 그는 5대(五大)문파(門派)의 우두머리가 도(刀)에 대해 논하는 소리를 들었다. 5대(五大)문파(門派)는 당금 강호에서 가장 실력을 갖춘 문파(門派)였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역시 강호에서 무공이 가장 고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강호에서 무공이 가장 고강한 사람이 천하에서 무공이 가장 고강한 것은 아니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들 스스로 인정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신검산장(神劍山莊)에 올 때 비굴하게 지조를 꺾는 사람들로 변했고 심지어 사소옥(謝小玉)이 그들에게 비아냥과 조롱이 섞인 욕을 했을 때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들은 정붕(丁鵬)의 만도(彎刀)가 이 속세에서 무적이라고 인정하고 있었는데 이런 견해는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더 높은 경지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바로 사효봉(謝曉峰)이 지금 추구하고 있는 경지였다. 사효봉(謝曉峰)은 검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경지 역시 검의 경지였다. 검은 무기이고 또 역시 무기였다. 무학이 지고의 경지에 도달하면 도(刀)와 검은 이미 구분이 없어지는 것이며 그것들은 그저 지체(肢體)의 연장에 불과할 뿐이었다. 정붕(丁鵬)의 경지는 칼이 사람이고, 사람은 여전히 사람이라는 경지에 이르러 있을 뿐이었다.

칼은 사람에게 부림을 당하고 사람은 칼의 혼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 속세의 고수였다. 그렇다면 사효봉(謝曉峰)은? 그가 언제 그런 경지에 도달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10년 전에 이미 그런 경지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단정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10년 전에 그가 이 장검려(藏劍廬)를 지었기 때문이었다. 이 장검려(藏劍廬)에서 그는 다른 경지를 추구하게 되었고, 반박귀진(返璞歸真)의 원리에 따라 현란함을 평범하고 담백한 경지로 되돌린 것이었다.

그것은 검은 검이고 나는 나이며, 검은 검이 아니고 나는 내가 아니라는 경지, 일종의 선(仙)과 불(佛)의 경지였다. 정붕(丁鵬)의 곁에는 언제나 떼어 놓지 않는 그 1자루의 칼이 있었다. 그 1자루의 만도(彎刀)는 휘어져 있는 것이 마치 초승달을 연상시켰다. 칼에 小樓一夜聽春雨 (소루일야청춘우) 작은 누각의 밤, 봄비 소리 듣다 7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 1자루는 칼집에서 벗어났다 하면 상대방을 2쪽으로 쪼개고 신귀(神鬼)가 모두 놀라 도망치는 마도(魔刀)였다.

만약 그 칼이 없었다면 정붕(丁鵬)은 어쩌면 다시 예전의 정붕(丁鵬)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결코 지금의 정붕(丁鵬)으로 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의 몸뚱이에서 칼을 떼어 놓을 수는 없었다. 사효봉(謝曉峰)의 손에는 원래 1자루의 신검(神劍)이 있었다. 그러나 사효봉(謝曉峰)은 이미 자신을 장검려(藏劍廬)에 가두고 그 신검(神劍)을 포기해 버렸다. 그는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반드시 장검려(藏劍廬)가 필요했다. 장검려(藏劍廬)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다만 2개의 흙무덤이 있을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2개의 무덤이 그에게 안겨주는 의의였다. 또 다른 곳에 2개의 무덤을 만들어 놓았다면 그 2개의 무덤이 그에게 똑같은 의의를 줄 수 있을까? 정붕(丁鵬)은 묻지 않았다. 물어보아도 사효봉(謝曉峰)이 대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정붕(丁鵬)은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금 연마하고 있는 경지는 전혀 낯선 경지였다. 1걸음 1걸음이 모두 예전 사람들이 도달해보지 못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경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그 안으로 들어가야만이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었다. 더군다나 설사 1사람이 들어갔다 해도 그의 느낌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그런 경험과 감수(感受)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1사람이 신기한 화원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후에 그의 동료에게 그 안의 꽃이 금색이고 과일은 7빛깔을 띠었다고 말한다고 하자. 하지만 그의 동료가 맹인이라면 절대로 그 화원의 정경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맹인은 색깔에 대한 감각이 없는 것이었다. 그는 어쩌면 향긋한 냄새에서 꽃과 과실을 분간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로 색깔의 아름다움을 채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붕(丁鵬)은 사효봉(謝曉峰)의 1마디를 기억했다.

“다음에 당신이 이곳에 오게 되었을 때 이곳에는 장검려(藏劍廬)가 없을 것이오.”

그것은 사효봉(謝曉峰)이 이곳에서 나오게 되었을 때 새로운 경지에 진입한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2개의 무덤을 그의 마음속에 옮겨 놓고 어느 곳이라도 장검려(藏劍廬)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정붕(丁鵬)은 그런 경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자기가 언제나 그런 경지에 들어설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가 사효봉(謝曉峰)보다 여전히 1수 뒤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사효봉(謝曉峰)에게 무척 공경하는 뜻을 품게 된 것이었다. 오직 사효봉(謝曉峰)과 같은 경지만이 정붕(丁鵬)으로 하여금 존경하는 뜻을 가지게 할 수 있었다. 사소옥(謝小玉)과 아고(阿古)는 원래의 자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정붕(丁鵬)이 문 입구에 이르게 되었을 때, 오직 4명의 검노(劍奴)만이 공경하는 태도로 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정붕(丁鵬)은 의아하여 물었다.

“이 문이 어째서 활짝 열려 있소?”

갑자(甲子)는 무척 흥분해서 말했다.

“왜냐하면 정(丁)공자께서 띠로 지붕을 해 덮은 정자에서 우리 주인을 만나 뵙고 나오기 때문이지요.”

이 1마디 말을 정붕(丁鵬)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은 모두 알았소?”

갑자(甲子)는 말했다.

“알았소. 그러나 역시 정(丁)공자에게 감사를 드려야 하지요.”

정붕(丁鵬)은 물었다.

“나에게 감사하게 생각하다니, 그것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이오?”

갑자(甲子)는 흥분된 어조로 대답했다.

“정(丁)공자께서 주인님을 도와 장검려(藏劍廬)에서 나오도록 했지 않습니까?”

“내가 주인을 도왔다니, 당신은 잘못 알지 않았소?”

“다년간 주인님은 줄곧 1가지 문제에 매달려 있었소. 바로 그 1초(一招)의 검식, 즉 그 연(燕)13(十三)의 제15검(第十五劍)이라는 1초(一招)에 매달려 있었소.”

“나도 그 1검(一劍)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 1검(一劍)은 이미 과거의 일이오.”

갑자(甲子)는 웃었다.

“정(丁)공자 앞에서 그것은 이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정붕(丁鵬)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숫제 그 검법을 본 적이 없소.”

갑자(甲子)는 웃었다.

“정(丁)공자께서는 보셨습니다. 우리 4사람이 정(丁)공자를 핍박해서 이 안으로 들어오게 한 것이 바로 그 1초(一招)의 검식입니다.”

정붕(丁鵬)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바로 그 1검(一劍)이란 말이오?”

“그렇지요. 바로 그 1검(一劍)입니다.”

“바로 그 1검(一劍)이 왕년에 천하제일 사효봉(謝曉峰)을 격퇴시켰단 말이오?”

갑자(甲子)는 아주 공손하게 대답했다.

“우리들의 조예는 물론 그 당시 연(燕)13(十三) 연(燕)대협보다 못하지요. 그러나 우리들이 펼친 것은 바로 그 1검(一劍)이랍니다.”

정붕(丁鵬)은 그를 바라보았다.

“조예가 부족한데도 그 1검(一劍)을 펼칠 수 있단 말이오?”

갑자(甲子)는 여전히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이치적으로 불가능하지요. 그러나 우리들은 10년간 오직 그 1식(一式)만 연마했으며 다른 일에 마음을 쓰지 않았지요. 그렇기 때문에 간신히 펼칠 수 있었지요. 더군다나 그 1식(一式)을 펼치게 되면 본래 지살무적(至殺無敵)이지만, 정(丁)공자의 신도(神刀)로 가하는 일격을 막아낼 수 없었지요.”

정붕(丁鵬)은 그만 입을 다물었다. 검식(劍式)을 펼칠 수만 있다면 이미 그 검초(劍招)의 정화(精華)를 발휘할 수 있었다. 오로지 다른 1식(一式)의 더욱 매서운 초식(招式)으로만 그 1검(一劍)을 깨뜨릴 수 있고, 그 외에는 달리 방법을 찾아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이치를 정붕(丁鵬)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1초(一招)의 검법 천외유성(天外流星)을 믿고 강호를 교만하게 굽어보려고 했을 적에도 그 이치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강호에 출도하게 되었을 때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그 죽일 놈의 유약송(柳若松)과 그 죽어 마땅한 가소(可笑)가 함정을 파놓고 그의 그 1초(一招)를 사취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유약송(柳若松)은 그 1검(一劍)을 깨뜨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 정붕(丁鵬)은 복수를 하게 되었고 그 가소(可笑)라고 불리는 여인을 죽게 만들었으며 유약송(柳若松)의 구차한 1목숨만은 살려준 것이었다.

유약송(柳若松)이 그 1초(一招) 천외유성(天外流星)의 결점을 찾아냈다는 것은 바로 그 1초(一招)의 검법이 무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갑자(甲子)는 다시 입을 열었다.

“주인은 이 몇 년 동안 검도의 연구에 몰두하여 이미 절정의 경지에 도달했지요. 그러나 시종 그 1검(一劍)이 안겨주는 곤경에서 벗어나지 못했답니다.”

정붕(丁鵬)은 그 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효봉(謝曉峰)이 스스로 장검려(藏劍廬)에 자기를 가둔 것은 불가(佛家)의 면벽(面壁)이나 도가(道家)의 좌관(座關)과 마차가지로, 사색을 통하여 그 무거운 질곡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이었다.

일단 터득하면 새롭게 허물을 벗고 또 다른 새로운 경지에 올라서게 되는 것이었다. 사효봉(謝曉峰)이 그 1검(一劍)에 곤혹스러움을 느끼고 자기 자신을 가둔 것은 바로 그 1검(一劍)의 압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그 1검(一劍)을 제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그 1검(一劍)을 깨뜨렸다. 무기에 피를 묻히지 않는 방법으로 그 1검(一劍)을 깨뜨린 것인데, 이에 사효봉(謝曉峰)은 모든 것을 확연히 관통(貫通)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정붕(丁鵬)은 사효봉(謝曉峰)에게 졌음을 시인했으나 사효봉(謝曉峰)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전에 정붕(丁鵬)이 사효봉(謝曉峰)과 겨루었다면 사효봉(謝曉峰)은 어쩌면 그에게 지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역시 그를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서로 대결한 결과 어쩌면 양패구상(兩敗俱傷)이거나 쌍방이 똑같이 무승부를 거두고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 2번째로 싸우게 되었다면 정붕(丁鵬)은 반드시 패했을 것이었다. 그의 재간이 이미 바닥이 나고 사효봉(謝曉峰)은 그로 인해서 그 관문을 뚫고 성큼 무궁한 발전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정붕(丁鵬)은 더욱 기뻐했다. 그는 약간 의기소침해져 있었으나 이제 그 1가닥의 의기소침했던 감정도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역시 천하무적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그는 웃으면서 눈앞에 서 있는 4명의 검노(劍奴)를 바라보았다.

“신검산장(山莊)에는 이후에 장검려(藏劍廬)가 없어질 거요.”

갑자(甲子)는 빙그레 웃었다.

“없어지지요. 있을 필요도 없고요.”

정붕(丁鵬)은 그 말을 받아 입을 열었다.

“당신들 4사람도 이곳에서 더 지키고 있을 필요가 없겠구려?”

갑자(甲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정(丁)공자는 비단 우리 주인을 도와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을 해탈(解脫)하게 해주었습니다.”

정붕(丁鵬)은 그들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4분은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을 계획이오?”

갑자(甲子)는 빙그레 웃었다.

“조금 전 사(謝)소저(小姐) 역시 우리가 남아주기를 원했지만, 우리는 거절했습니다. 신검산장(山莊)은 결코 우리들에게 적합하지 않지요.”

“어떤 곳이 당신들에게 적합하오?”

“많은 곳이 있지요. 우리는 원래 검을 위해 태어났고 검으로 삶을 영위해 왔지요. 이제부터 우리는 검을 접어두고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지요. 예를 든다면 나는 꽃을 가장 좋아하니까 어디든지 가서 꽃을 가꾸는 화장(花匠)이 될 수 있고, 을축(乙丑)은 물고기 기르는 것을 좋아하니 어장(漁場)을 열 수가 있으며 오로지 한마음으로 그의 고기를 기를 수가 있는 것이지요…”

“당신들은 검을 내려놓겠다는 것이오?”

“그렇지요. 우리들은 검을 내려놓을 참이지요.”

“당신들도 알다시피 당신들이 검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강호에서 무한한 존경을 받고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오.”

“알고 있습니다. 주인께서도 그 말씀을 하셨지요. 우리들이 만약 강호로(葫蘆) 나가게 된다면 당금 세상에서 좀처럼 적수가 만날 수 없으며 우리들은 즉시 일류고수가 되리라고 말씀을 하셨지요.”

“설마하니 당신들은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이오?”

“우리는 무척 바라지만 1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지요. 강호의 일류 고수가 된 후에는 우리들이 좋아하는 일을 할 여가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갑자(甲子)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정(丁)공자, 우리들의 나이는 적지 않으며 그야말로 반평생을 이미 산 사람들입니다. 앞의 반평생은 검을 위해 살았는데, 뒤의 반평생까지 검을 위해 살 수는 없지요.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 살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정붕(丁鵬)은 그들 4사람에 대해서 우러러보는 마음이 생겼다. 그들은 적어도 명리(名利)의 관문을 넘어섰으니 이후에는 반드시 무척 즐거운 생활을 보낼 수 있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그는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았다.

“당신들은 생활에 대해 어떤 안배를 했소?”

그는 사효봉(謝曉峰)이 틀림없이 안배해 놓았으리라 생각했다. 갑자(甲子)는 웃으며 대답했다.

“했지요. 주인께서는 장검려(藏劍廬)를 세우게 되었을 때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5만1200냥의 은자를 주었답니다.”

정붕(丁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적지 않은 재산이구려?”

갑자(甲子)는 웃었다.

“그것은 단지 첫해의 비용에 불과하답니다.”

정붕(丁鵬)은 그 말을 받았다.

“그것이 첫해의 비용이라면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당신들의 소득은 그야말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가 아니겠소?”

갑자(甲子)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지요.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빨리 헤아릴 수 있게 되었지요. 왜냐하면 겨우 1조각, 100냥짜리 은자 1조각만 남았기 때문이지요.”

정붕(丁鵬)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겨우 1조각이 남아 있다는 말이오?”

“주인은 실로 너그럽게 우리들을 대접해주었지요.”

“당신네 몇 사람은 혹시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오?”

“아니지요. 우리들은 무척 정상적이며 머리도 무척 맑습니다.”

정붕(丁鵬)은 자기의 머리통을 툭툭 쳤다.

“그렇다면 내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이로군.”

갑자(甲子)는 웃었다.

“정(丁)공자의 머리도 문제가 없습니다. 단지 주인과 우리들의 약정을 모르고 있을 뿐이지요.”

“아! 당신네 주인은 당신들에게 어떤 약정을 1것이오?”

“주인은 우리들과 약정을 맺었지요. 우리들이 이곳에 1년 동안 있다가 떠나려 한다면 5만1200냥을 가져갈 수가 있지만 다음해까지 남아 있다면 겨우 2만5600냥을 가져갈 수 있지요. 이렇게 매년 절반씩 줄어들지요. 지금까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꼭 알맞게 100냥이 남게 된 거지요.”

정붕(丁鵬)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이것은 어느 나라의 계산법이오?”

갑자(甲子)는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이것은 주인이 우리들에게 가르쳐준 계산법이지요. 만약에 우리들이 이곳에서 1년만 남게 된다면 검술에 전념하지 못하고 심기(心氣)가 어지러워지고 차분하지 못해 그토록 많은 은자가 있어야 안정되고 평온한 나날을 보낼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도적으로 전락된다는 것이지요.”

정붕(丁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하니 약간 도리에 부합되는 것 같구려.”

갑자(甲子)는 존경하는 투로 말했다.

“주인은 언제나 도리있게 말씀하시고 행동하지요.”

정붕(丁鵬)은 웃었다.

“하지만 만약에 내가 몇 년 늦게 나타났더라면 당신들에게는 겨우 1냥의 은자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 아니겠소?”

갑자(甲子)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지요. 우리들이 다시 주인을 몇 년 동안 더 모시게 되면 1냥의 은자마저도 없어지겠지만 우리들은 소박한 삶에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무척 유쾌하게 살아갈 수 있겠지요.”

정붕(丁鵬)은 웃었다.

“그렇다면 내가 오히려 너무 일찍 왔구려.”

갑자(甲子) 역시 웃었다.

“우리들에게 주인을 몇 년 더 섬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지만, 주인이 하루 바삐 그 1겹의 굴레에서 벗어나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서게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는 보람이 있는 일이지요.”

정붕(丁鵬)은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옳소. 정말 보람이 있는 일이오. 정말 보람이 있는 일이구려.”

그들은 자기들이 얻어야 할 보수가 줄었지만 오히려 덕을 보았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누구나 그들을 바보로 알겠지만 오직 그들 자신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정붕(丁鵬)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린 것이었다. 정붕(丁鵬)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은자가 부족하다고 여긴다면…”

갑자(甲子)는 재빨리 그 말을 받았다.

“아니지요. 우리들은 충분하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소망은 무척 단순한 것이며 무척 만족하기 쉽습니다. 더군다나 이 10년 동안 우리들도 일을 하는 습관을 키웠습니다. 그래서 나간 후에 우리들은 100냥의 은자를 다 쓰지 못할 뿐 아니라 어쩌면 3, 4년이나 4, 5년이 지나게 되었을 때, 100냥의 은자를 더 불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정붕(丁鵬)은 그만 탄복하고 말았다. 그는 강호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신가(身價)를 잘 알고 있었다. 5류에 속하는 검수(劍手)라 해도, 남의 집 사환이 된다 해도, 1달에 100냥의 은자를 벌 수 있었다.

그들 4사람으로 말하면 이미 특급(特級)의 검수(劍手)인데 4, 5년을 지내서야 겨우 100냥의 은자를 벌 수 있기를 바라고 있으니, 그거야말로 자기의 노력을 팔고 고생을 팔아서 은자를 벌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담백하고 드높은 마음씨인가? 그러나 정붕(丁鵬)은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甲子), 당신들은 나와 관계가 없고 나도 당신들을 위해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지만, 나의 생각에는 사효봉(謝曉峰)이 앞으로는 당신들을 돌볼 겨를이 별로 없을 것 같구려.”

“그렇지요. 주인께서도 1, 2년간 멀리 떠나 몇 명의 옛친구들을 찾아보겠다고 하셨지요.”

“아! 무척 멀리 떠나는 것이오?”

“무척 멀지요. 멀리 대막(大漠)이나 황량한 변경으로 가시려는 것 같았습니다.”

오직 그러한 곳만이 세상에서 은거한 고인기사(高人奇士)가 있을 수 있고 오직 그 사람들만이 사효봉(謝曉峰)의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정붕(丁鵬)은 사효봉(謝曉峰)에게 존경과 감탄하는 마음과 부러워하는 마음이 생겼다. 부러워하는 것은 사효봉(謝曉峰)이 이미 속세의 모든 것을 떨쳐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붕(丁鵬)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강호에 대해서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눈앞의 이 4사람이 그와 아무런 관계도 없지만 여전히 그들에 대해서 1가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성실하고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갑자(甲子), 바깥 세상은 결코 당신들이 상상하듯 그토록 단순하지 않소. 당신들이 진정으로 평범한 사람이 되겠다면 몰라도 말이오.”

그들 4사람은 물론 평범하지 않았다. 신검산장(神劍山莊) 사람은 누구나 평범할 수 없었다.

사효봉(謝曉峰)이 몸소 키우고 가르친 사람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갑자(甲子)는 그가 계속 말을 하기 전에 입을 열었다.

“우리도 알고 있지요. 우리에게 만일 처리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면 반드시 정(丁)공자의 도움을 청하겠소.”

이것은 정붕(丁鵬)의 뜻이었다. 그가 미쳐 입을 열기도 전에 갑자(甲子)가 먼저 말을 한 것이었다. 정붕(丁鵬)은 빙그레 웃었다. 총명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가장 유쾌하고도 힘이 들지 않는 일이었다. 정붕(丁鵬)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시 만납시다.”

다시 만나자는 말은 다시 만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는 뜻이었다. 그는 그들에게 평범하면서도 안정된 보금자리가 생기기를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었다. 아고(阿古)는 문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사람은 언제나 충성을 다했다. 그는 말을 하지 못했으나 지혜가 있었다. 그는 그의 주인이 장검려(藏劍廬) 안에서 더 이상 위험에 처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즉시 물러난 것이었다.

그는 문밖에 위험이 있을지 없을지 몰랐다. 그러나 위험이 있을 가능성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문 입구에서 기다린 것이었다. 사소옥(謝小玉)은 대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 역시 총명한 사람이었다. 장검려(藏劍廬)에서는 그녀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곳에서 떠난 것이었다. 그녀는 지위를 원했고 그녀의 지위를 표현할 수 있는 곳에 있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녀는 신검산장(神劍山莊)의 대청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기의 위세를 떨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거기서 정붕(丁鵬)을 기다렸다. 그녀는 정붕(丁鵬)에게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녀의 웃음 속에 숨겨진 것은 무엇일까? 정붕(丁鵬)은 그녀의 웃음을 보았으나 그녀의 의도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25. 아고(阿古)의 무공

정붕(丁鵬)은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고 아고(阿古)는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들은 신검산장(神劍山莊)이 야릇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사방에서 자기들을 엿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개의치 않았고 아고(阿古) 역시 개의치 않았다. 이 사람들은 걱정할만한 인물들이 못 되었다. 위험이 될 수 없는 엿보는 자들에 대해서 정붕(丁鵬)은 많은 주의를 기울이기가 귀찮았다.

그 사람들은 그야말로 집안 모서리에 숨어 있는 쥐새끼와 같았다. 거의 모든 집안에는 쥐새끼가 있기 마련이었다. 쥐새끼들은 언제나 어두운 곳에서 살그머니 움직였다. 간혹 가다가 고개를 내밀어 두리번거리기는 하지만 사람의 주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는 즉시 숨어버리곤 하는 것이었다. 쥐새끼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동물이었다.

쥐새끼들은 옷가지와 가구를 망가뜨려서 사람들에게 손실을 입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쥐새끼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집안에 쥐새끼가 있다고 해서 잠을 자지 못하는 법이 없었다. 이렇게 몰래 감시하는 사람들은 정붕(丁鵬)과 아고(阿古)에 있어서는 쥐새끼와 다를 바 없었다. 비록 그들 때문에 놀라거나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불쾌하고 혐오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끝내 정붕(丁鵬)은 참을 수가 없었다.

“아고(阿古), 이 사람들은 우리를 따른지 너무나 오래 되었네. 나는 매우 못마땅하다네.”

정붕(丁鵬)이 매우 못마땅하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일을 마무리지으라는 뜻이었다. 아고(阿古)는 무척 충성스럽고 책임을 다하는 하인이었다. 정붕(丁鵬)이 그 말을 다 끝내게 되었을 때 아고(阿古)는 이미 행동으로 옮겼다. 정붕(丁鵬)은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보지 않았다. 그는 아고(阿古)에 대해서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가 틀림없이 일을 원만하게 처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붕(丁鵬)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 향해 걸어갔다. 그의 뒤에서 약간의 소리가 들려왔다. 주먹으로 사람의 몸뚱이를 갈기는 소리와 뼈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정붕(丁鵬)은 약간의 만족감을 느꼈다. 이제부터는 적어도 그가 신검산장(神劍山莊)에서 걸어다니게 되었을 때는 쥐새끼같이 어두운 곳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없으리라. 쩡쩡! 창창! 이것은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였다.

정붕(丁鵬)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것은 들려오지 말아야 할 소리였다. 설마하니 쥐새끼들이 감히 반항을 하는 것일까? 쥐새끼가 궁지에 몰려 다급하게 되었을 때는 고양이에게 덤벼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고(阿古)는 1마리의 무척 경험이 많은 늙은 고양이였다. 그는 결코 쥐새끼들이 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었다. 쩡쩡! 창창!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여전히 계속되었다. 이것은 아고(阿古)가 1마리의 좀처럼 항복받을 수 없는 완강한 쥐를 만났으며, 더군다나 그 쥐가 틀림없이 1마리의 커다란 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정붕(丁鵬)은 참을 수 없어서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는 사(謝)선생을 볼 수 있었다. 그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총관 사(謝)선생 말이다. 정붕(丁鵬)은 사(謝)선생이 결코 낯설지 않았다. 그는 옛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우의가 돈독하지 못할 뿐이었다. 그가 처음 사(謝)선생을 만난 장소는 유약송(柳若松)의 만송산장(萬松山莊)이었다. 그날 사(謝)선생을 제외하고도 유약송(柳若松)과 명성을 같이 날린 세한(歲寒)3우(三友)도 있었다. 유약송(柳若松)은 그의 천외유성(天外流星)을 훔쳐가서 1차례 가소롭고 치사한 싸움을 진행시켰는데 바로 사(謝)선생이 중재의 역할을 맞고 있었다.

그날부터 정붕(丁鵬)은 사(謝)선생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날 일은 사(謝)선생을 탓할 수 없었다. 유약송(柳若松)은 모든 것을 너무나 잘 안배해 놓아 정붕(丁鵬)으로 하여금 입이 100개가 있어도 변명할 길이 없도록 만들어 놓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시종 사(謝)선생이 공평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고 느꼈다. 그가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총관(總管)이고 곳곳에서 존경받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유약송(柳若松)의 위인됨에 대해서 무척 잘 알 것이었다.

적어도 그는 만송산장(萬松山莊)에 가서 유약송(柳若松)과 같은 사람과 벗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서 그날 사(謝)선생의 중재는 상당히 공평한 것이었으나 정붕(丁鵬)은 시종 사(謝)선생이 유약송(柳若松)과 결탁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다시 사(謝)선생을 만나게 되었을 때, 정붕(丁鵬)은 매우 불손할 정도로 예의를 갖추지 않았고 심지어 신검산장(神劍山莊)의 대문 입구에서 그는 사(謝)선생을 우롱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謝)선생이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총관(總管)이라면 검법의 조예가 틀림없이 무척 출중할 터였다. 이것은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듯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강호에서도 사(謝)선생이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본 사람은 없었다. 오늘 정붕(丁鵬)은 보게 되었다. 사(謝)선생의 검술은 매서우면서도 능수능란할 뿐 아니라 악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정붕(丁鵬)은 사(謝)씨 집안의 검식(劍式)을 보지 못했으나 사(謝)선생의 검법이 결코 신검산장(神劍山莊)의 검법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천하에 으뜸가는 명예를 누리고 있는 사(謝)씨 집안의 신검(神劍)은 무적이었지만 그토록 음독하고 악랄한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을 터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신검산장(神劍山莊)이 무림에서 그토록 존경을 받고 숭고한 지위를 차지할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검도는 바로 인도(仁道)였다. 검심(劍心)은 바로 천심(天心)이었다. 무적의 검법은 사람을 죽이는 위력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인자(仁者)만이 무적이 될 수 있었다.

아고(阿古)의 솜씨는 정붕(丁鵬)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강호에서 떠돌아다니지 않았지만 강호에서 아고(阿古)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결코 5명을 넘지 않으리라 내다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그 사(謝)선생이 그들 5사람 가운데 1사람이었다. 아고(阿古)의 주먹은 이미 예리한 무기였다. 그가 팔에 끼우고 있는 금환(金環)은 수비 위주의 호신공구(護身工具)였다. 상대방이 예리한 무기를 사용하게 되었을 때야 그는 그 금환으로 막아내었다.

그러나 지금 아고(阿古)는 이미 다리에 꽂아 두고 1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비수를 뽑아 휘두르고 있었다. 그의 팔에는 1가닥의 혈흔(血痕)이 있었다. 이는 그 금환으로도 자기의 안전을 지키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었다. 아고(阿古)는 손에 비수를 들고 있었지만 여전히 열세를 만회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謝)선생의 검은 마치 독사처럼 사방에서 그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아고(阿古)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사람은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정붕(丁鵬)은 불현듯 흥미를 크게 느끼고 되돌아서서 2걸음을 다가가 사(謝)선생의 검을 펼쳐내는 수법과 초식(招式)들을 관찰했다. 그 사람에 대해서 좀더 이해해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謝)선생은 무척 교활했다. 그는 정붕(丁鵬)이 자기를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공세를 갑자기 늦추었다. 뿐만 아니라 초식(招式)에는 일부러 약간의 빈틈마저 드러내 보였다. 아고(阿古)는 경험이 노련한 사람이었다.

그는 상처를 입고 있었으나 결코 마음이 어지러워진 것은 아니었고 상대방이 갑자기 느슨해졌다고 해서 함부로 공세를 퍼붓지 않았으며 사(謝)선생의 초식(招式) 가운데 드러난 그 빈틈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비수를 어지럽게 휘두르고 있었으나 좀처럼 공격의 초식(招式)을 펼치지 않았다. 그러나 1번 펼쳤다 하면 날카롭기 이를 데 없는 일격이 되었다.

그는 사(謝)선생의 검식(劍式)에서 드러난 그 빈틈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1칼을 찔러내게 되었을 때 반드시 상대방의 몸에 조그만한 상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사(謝)선생이 바라는 바이며 이 싸움을 마무리짓는 방식이 되는데, 그것은 아고(阿古)가 원하는 것이 될 수도 없었고 정붕(丁鵬)이 바라는 바도 아니었다. 아고(阿古)가 매번 손을 쓰게 되었을 때 노리는 부위는 상대방이 반드시 죽게 되는 요해였다.

그 비수는 무척 짧아 상대방 장검의 4분지 1에 불과했다. 1푼이 길면 1푼이 강하고 1푼이 짧으면 1푼이 그만큼 위험하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무공을 연마하는 사람들이 옛날부터 흔히 입에 올리는 말이었다. 이 1자루의 비수는 아고(阿古)의 손에 들려지자 짧은 무기의 위험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었다. 위험하다는 것은 반드시 흉악하다는 것이고 흉악하다는 것은 손을 써서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모든 초식(招式)은 상대방이 반드시 구해야 할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절정의 조예를 가진 사람만이 해소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謝)선생의 표정은 무거워졌다. 그의 계획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가 감히 위험을 무릅쓰고 아고(阿古)의 그 1칼이 찔러 들어오도록 허락한다면 몰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는 감히 그럴 수 없었다. 살고 싶은 사람은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고(阿古)의 손 씀씀이가 너무나 급하고 너무나 매서웠다. 조금이라도 임기응변이 늦어지면 바로 상대방의 비수가 자기의 가슴팍을 꿰뚫게 되고 그렇게 되었을 때 신선마저도 자기를 살려내지 못할 것이었다.

그래서 사(謝)선생의 정묘한 초식(招式)은 숨길 수가 없었고 오히려 손을 쓰는 것을 망설였던 까닭에 더욱 정신을 돋구고 기운을 내야 위기를 해소시킬 수 있었다. 이런 타법(打法)은 물론 매우 힘겨운 것이었고 얼마 되지 않아 사(謝)선생은 땀을 흘렸으며 표정은 무척 초조하고 다급해지게 되었다. 그가 열세를 만회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열세를 만회한 후에는 곧장 정붕(丁鵬)의 그 날카롭기 이를 데 없는 1칼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정붕(丁鵬)은 한동안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

“아고(阿古), 손을 멈추게.”

사(謝)선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얼굴의 땀방울을 훔쳤다. 어려운 문제가 이미 지나간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너무 일찍 좋아한 셈이었다. 왜냐하면 정붕(丁鵬)은 곧이어 1마디를 덧붙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당신이 한숨 돌리고 반 시진 동안 쉬도록 해주겠소. 그런 후에 다시 가르침을 받겠소.”

사(謝)선생은 그의 전혀 표정없는 얼굴을 바라보자 1가닥 찬 기운이 가슴속으로부터 솟아오르고 온몸에서 뻗쳐나던 뜨거운 땀방울도 얼음과 같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껴야 했다. 그는 자기가 절대적으로 그 1칼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정붕(丁鵬)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장검려(藏劍廬)에서 나왔으며, 갑자(甲子) 등 4명의 검노(劍奴)로부터 그토록 존경을 받는 것을 보면 절대로 사(謝)선생이 감당해낼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정붕(丁鵬)은 웃음을 띠우고 다시 말을 이었다.

“정말, 만나게 되어 반갑구려. 사(謝)선생은 과연 명불허전이오.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총관(總管)으로 부끄럽지 않구려.”

사(謝)선생은 안간힘을 써서 얼굴에 1가닥 메마른 웃음을 띠우고 간신히 말했다.

“정(丁)공자께서는 과찬이시오. 공자께서는 이미 저의 주인을 만나보셨소?”

정붕(丁鵬)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보았소. 얼마 전에 헤어졌다오.”

사(謝)선생은 될 수 있는 1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했다.

“공자는 우리 주인과 무척 유쾌하게 상면을 1모양이구려?”

정붕(丁鵬)은 빙그레 웃었다.

“괜찮았소. 어찌되었든 간에 헛걸음은 하지 않은 셈이오.”

사(謝)선생은 놀랐다.

“설마하니 공자는 이미 우리 주인과 검법을 겨루었단 말씀이신가요?”

정붕(丁鵬)은 덤덤히 말했다.

“사(謝)선배님의 검술이야 신의 경지에 도달했는데 내가 어떻게 그 분과 검을 겨룰 수 있겠소?”

사(謝)선생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불초는 공자의 신도(神刀)와 우리 주인의 신검(神劍)이 이미 1번 마주쳤는가를 묻는 것이오.”

정붕(丁鵬)은 웃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오.”

사(謝)선생은 급히 물었다.

“그런데 승부는 어떻게 되었는지요?”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자 하는 문제였다.

사(謝)선생은 긴장되었으나 역시 참지 못하고 물어본 것이었다. 정붕(丁鵬)은 웃었다.

“귀하는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총관(總管)이니 그런 말은 물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오. 당신은 마땅히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니겠소?”

사(謝)선생은 변명하듯 말했다.

“그곳은 금지구역이라 불초는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총관(總管)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답니다.”

정붕(丁鵬)은 그를 바라보았다.

“적어도 당신은 그곳이 장검려(藏劍廬)라고 불려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을 것이 아니오?”

사(謝)선생은 부인할 수가 없었다. 모른다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정붕(丁鵬)의 안색은 그가 감히 헛된 수작을 붙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초는 그 검노(劍奴)들에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요.”

“귀하는 물론 귀 주인이 장검려(藏劍廬)에서는 검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오.”

“그건 제가 모르고 있었지요. 왜냐하면 저는 1번도 그곳에 들어가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것은 사실이었다.

따라서 정붕(丁鵬)은 덤덤히 설명을 하듯 말해주었다.

“이후 당신은 들어갈 수 있을 것이오. 나는 귀주인과 1차례 겨루었으나 그의 손에는 검이 없었기 때문에 나의 칼도 칼집에서 뽑지 않았소. 따라서 이번 승부는 무척 말하기가 어렵소. 내가 이겼다 해도 그는 반대하지 않을 것이고 그가 이겼다 해도 그 분은 역시 인정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오.”

사(謝)선생은 표정이 움직였다.

“그렇다면 공자께서 1수 더 높으신 모양이군요?”

정붕(丁鵬)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반대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소. 왜냐하면 그 분은 아직도 살아계시며 나 역시 살아 있기 때문이오.”

사(謝)선생은 아첨하듯 그 말을 받았다.

“고수끼리 대결에 있어서는 생사를 판가름할 필요가 없지요. 승부는 겨우 실낱과 같은 미세한 차이에 불과하지요. 쌍방이 스스로 짐작하는 이외에는 구경하는 사람도 똑똑히 알 수 있다고 말하지 못하지요.”

정붕(丁鵬)은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나라는 고수는 다르오. 내 성미는 반드시 상대방이 쓰러진 후에야 확정지을 수 있소. 왜냐하면 내 도법은 살인적인 것이고 상대방을 죽이지 못했을 때는 으뜸이라고 할 수 없소.”

사(謝)선생은 그저 네, 네, 하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 정붕(丁鵬)이 이어서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 분의 손에는 검이 없었고 나의 칼 역시 칼집에서 뽑히지 않았소. 우리들은 다만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오. 쌍방은 어느 정도 대체적으로 서로를 이해를 하게 되었소. 결론은 그 분은 나를 죽이지 않을 것이고 나 역시 그 분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이었소. 그래서 우리들 사이에는 승부를 여전히 낼 수가 없었던 것이오.”

사(謝)선생은 미미하게 실망의 빛을 띠우고 입으로는 건성으로 말했다.

“그것은 무척 잘된 일이군요. 공자와 저의 주인은 당금 세상의 이대 절정고수입니다. 그 누구도 2분 가운데 1분이 쓰러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붕(丁鵬)은 웃었다.

“하지만 나는 불만스럽소. 나는 다음에 그의 손에 검이 있을 때 그분을 만나 진정으로 1판의 승부를 결할 수 있기를 바라오.”

사(謝)선생은 재빨리 말했다.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집 주인은 언제나 검을 지니고 다니지요.”

정붕(丁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검을 가지고 다닌다고 해도 소용이 없소. 왜냐하면 그의 검이 검집에서 뽑혀지지 않는다면 여전히 내 가슴 속의 살기를 끌어올릴 수 없으니까 우리들은 여전히 싸우지 못할 것이오.”

사(謝)선생은 자기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는 검을 검집에 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긴장되어 검의 끝이 검집의 주둥이를 제대로 겨누지 못하고 헛돌기만 했다. 정붕(丁鵬)은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귀하는 어째서 검을 검집에 넣으려고 하는 것이오? 나중에 다시 뽑아야 할 것이니 지금 넣는다면 너무 번거롭지 않겠소?”

사(謝)선생은 웃었다.

“정(丁)공자님께서는 농담도 잘 하시는군요. 불초가 어떻게 감히 공자의 앞에서 검을 뽑겠습니까?”

정붕(丁鵬)은 덤덤히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나의 등뒤에서 검을 뽑지 않았소?”

사(謝)선생은 변명하듯 말했다.

“그것은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지요. 왜냐하면 귀하의 하인이 나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정붕(丁鵬)은 냉랭히 그 말을 받았다.

“나의 이 하인은 분수를 아는 사람이오. 그는 1번도 무단히 사람을 죽인 적이 없소. 만약에 그가 당신을 죽이려고 했다면 반드시 그가 사람을 죽일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오.”

사(謝)선생은 대꾸했다.

“어떤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몸을 달려오더니 손을 뻗쳐서 사람들을 때린 것이었으며 이미 본장(本莊)의 4사람을 때려 죽였습니다. 공자께서 믿을 수 없다면 담장가로 가서 살펴보시지요. 시체는 아직도 그곳에 있습니다.”

정붕(丁鵬)은 웃었다.

“가볼 필요는 없소. 그의 주먹질에 대해서 나는 똑똑히 알고 있소. 그의 1주먹을 얻어맞은 사람이라면 살아 있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오.”

“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를 건드리지 않았소.”

“그들은 나를 건드렸소. 나는 사람들이 어두운 곳에 숨어서 몰래 나를 엿보는 것을 가장 싫어하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죽이고자 한 것이오.”

사(謝)선생은 침을 삼켰다.

“정(丁)공자, 이곳은 신검산장(神劍山莊)이옵니다.”

“나는 알고 있소. 그건 당신이 깨우쳐줄 필요는 없는 것이오.”

“그들은 본장(本莊)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무슨 짓을 했든지 모두 자기 집안에서 행한 일입니다.”

정붕(丁鵬)은 웃었다.

“조금 전 내가 장검려(藏劍廬)에 들어가기 전에 몇 사람이 으슥한 곳에 숨어 있다가 갑자(甲子) 등에게 살해를 당했소. 만약 그들이 정말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피살될 수 있단 말이오?”

“그건… 그건 그들이 사사로이 금지구역을 엿보았기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이지요.”

정붕(丁鵬)은 차갑게 그 말에 응수했다.

“그들이 나의 금기를 어겼으니 똑같이 죽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오. 내 조처가 부당하다고 여긴다면 얼마든지 나에게 따지도록 하시오.”

사(謝)선생의 안색은 1번 변했다. 그러나 곧 화를 누르고 입을 열었다.

“모르고 한 짓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예전에 그들은 정(丁)공자의 금기를 몰랐으며 앞으로는 불초가 우리 장원 안의 사람들에게 잘 타일러 다시는 공자의 금기를 범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정붕(丁鵬)은 미소를 지었다.

“뭐 귀찮게 그럴 필요까지는 없소. 왜냐하면 내가 귀하의 그 검 아래 목숨을 건지게 되면 내 스스로 그들에게 알려줄 것이고, 그렇지 않을 때 귀하의 말을 그들은 듣지 못할 것이오.”

사(謝)선생은 뒤로 1걸음 물러섰다.

“정(丁)공자, 그건 무슨 뜻인가요?”

정붕(丁鵬)은 웃었다.

“나는 당신이 잘 알고 있으리라 믿소. 나는 당신과 1차례 결투를 벌이려는 것이오.”

“불초가 어찌 감히…”

정붕(丁鵬)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나는 1번도 에누리를 1적이 없소. 내가 셋을 헤아렸을 때 손을 쓸 것이니 당신은 정신을 돋구고 내가 셋을 헤아리기 전에 나를 처치할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오.”

이어서 그는 수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하나.”

사(謝)선생은 3걸음을 물러섰다.

“둘.”

사(謝)선생은 이미 8걸음을 물러섰다. 그의 손은 검자루를 꽉 쥐고 있었으나 뒤로 물러서는 것 외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정붕(丁鵬)은 뒤쫓아 가지 않았다. 심지어는 눈길을 옮겨 그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다만 천천히 칼을 쳐들었다. 마치 사(謝)선생이 아무리 멀리 물러난다 해도 그는 셋이라는 숫자가 입 밖에서 튀어나오게 되었을 때 1칼에 그를 2쪽으로 갈라놓을 자신이 있는 것 같았다.

“셋.”

사(謝)선생은 쓰러졌다. 그러나 정붕(丁鵬)의 몸뚱이는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의 칼 역시 칼집에서 뽑혀지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셋이라는 숫자는 그가 외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謝)선생의 몸뚱이도 2쪽으로 갈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정붕(丁鵬)의 칼을 맞고 쓰러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붕(丁鵬)의 마도(魔刀)가 두렵기는 했으나 칼이 뽑혀지기도 전에 사람을 죽일 수는 없었다. 그는 놀라서 자빠진 것도 아니었다. 그는 죽고 싶도록 두려웠으나 겁을 준다고 해서 땅바닥에 쓰러지는 사람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미 전력을 다해 1번 겨루어볼 차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발길질에 걷어차여 쓰러진 것이었다. 경사(經紗)를 걸치고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피가 끓어오르게 하는, 서리보다 더 희고 눈보다 더 고운 분퇴(粉腿)가 그의 허리를 걷어차 쓰러뜨린 것이었다. 신검산장(神劍山莊)에는 오직 1사람만이 그런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물론 사소옥(謝小玉)이었다. 사(謝)선생을 그녀가 차서 쓰러뜨린 것이었다.

그 셋이라는 숫자 역시 그녀가 외친 것이었다. 그런 후에 그녀는 사람을 취하게 하는 향기를 풍기며 정붕(丁鵬)의 면전에 섰다. 정붕(丁鵬)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눈 앞에 선 여자애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여인의 유혹은 그 누구도 감당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몸에 있는 모든 부분인 여인의 밑천을 이용할 줄 알았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로 충분한 밑천이 있었다. 진정으로 사람을 홀리는 여인은 온몸을 완전히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감추는지를 알았다. 발가벗은 여인은 남자를 유혹하는 힘이 있지만 그런 유혹은 한계가 있었다. 옷가지로 몸을 둘둘 말다시피한 여인들은 물론 아름답다는 느낌을 상실하게 만들지만, 전혀 가리지 않는 여인도 사람들에게 헤프다는 느낌을 주기 마련이었다.

사소옥(謝小玉)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발가벗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투명한 경사로 모든 부분의 살결을 남김없이 사람의 눈앞에 드러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은밀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가리는 수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신비한 부분을 교묘하게 가리고 있었다. 그녀는 경사 안쪽에 약간의 물건을 걸치고 있었다.

두 가닥 가늘고 긴 금빛 띠를 두르고 2줄의 1치 길이의 유소(流蘇 5색 장식 술)를 걸치고 있었다. 1줄은 그녀의 높다랗게 솟아 있는 가슴팍 앞에 드리워져 있어 꼭 알맞게 그녀의 젖꼭지를 가리고 있었고, 다른 1줄은 그녀의 작은 아랫배 아래에 걸려 있었다. 유소(流蘇)는 부드럽고 가볍게 흔들리고 있는데 흔들릴 때마다 남자들의 시선은 자기도 모르게 그 깊숙한 곳을 흘끔거리게 되는 것이었다.

그 흘금거림 가운데 사람의 가슴이 맹렬하게 뛰노는 것이었다. 그녀는 정붕(丁鵬)의 앞에서 멋지게 맴을 1번 돌아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자랑하듯 드러내 보이고 방그레 웃으면서 물었다.

“나의 이 옷이 보기 좋은가요?”

정붕(丁鵬)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사소옥(謝小玉)은 웃었다.

“정(丁)오라버니가 좋다면 정말 틀림없이 보기 좋을 거예요. 이 옷은 페르샤의 장사치가 가져온 거예요. 그는 수10냥의 은자를 주어야 판다고 했는데, 가지고 온 후에 그는 후회를 했어요. 왜냐하면 중원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감히 이 옷을 사서 입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나는 믿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그는 나와 내기를 했어요. 내가 입고 그에게 보여주기만 한다면 그는 이 옷을 나에게 선물하겠다고 했어요.”

정붕(丁鵬)은 웃었다.

“그래서 당신은 그에게 보여주었소?”

사소옥(謝小玉)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에요. 내 자신이 거울을 앞에 놓고 옷을 입어본 후에 나는 갑자기 이 옷이 내 몸에 걸쳐지면 수 천 냥의 은자보다 더 값지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내기에서 져서 그에게 1만 냥의 은자를 주었어요.”

정붕(丁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만한 가치가 있었소. 만약 내가 당신이라면 차라리 1만 냥의 은자를 주는 한이 있더라도 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오.”

사소옥(謝小玉)은 웃으며 가볍게 그 말을 부인했다.

“나는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정붕(丁鵬)은 물었다.

“당신은 무슨 뜻이었소?”

사소옥(謝小玉)은 대답했다.

“나는 이것이 무척 아름다운 옷이라는 것을 인정했어요. 그러니까 여인의 가장 아름다운 부위를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는 것을 알아낸 거지요. 아름다움이란 원래 사람들에게 돋보이도록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정붕(丁鵬)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소. 금의야행(錦衣夜行)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오.”

사소옥(謝小玉)은 다시 웃었다.

“나는 그 녀석이 너무나 속되어서 숫제 이런 아름다움을 감상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는 1번 시험해 보았지요. 이 옷을 입고서 몇 남자들 앞에서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정붕(丁鵬)은 말했다.

“그들은 틀림없이 크게 놀랐겠구려?”

사소옥(謝小玉)은 웃었다.

“그거야 말할 필요도 없지요. 모든 사람들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입을 헤 벌리고 내가 홀딱 벗었으면 속이 시원해할 것 같은 모습들이었어요.”

정붕(丁鵬)은 웃었다.

“그것은 그렇게 이상할 것은 없구려.”

사소옥(謝小玉) 역시 방그레 웃었다.

“그들은 나를 1조각의 비곗살로 여겼어요. 그때 그들의 눈에 나는 그저 여인이었으며 완전히 나의 아름다움을 무시했지요. 그렇게 눈이 있어도 눈알이 없는 남자들을 상대로 내가 굳이 나의 아름다움을 낭비할 필요가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나는 그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벌을 내렸어요.”

정붕(丁鵬)은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어떤 벌이었소?”

사소옥(謝小玉)은 대답했다.

“나는 그들 모든 사람들이 1조각의 살코기를 먹도록 했어요.”

정붕(丁鵬)은 픽 웃었다.

“그런 벌이라면 그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았겠구려?”

사소옥(謝小玉)은 음성을 약간 높였다.

“그 비곗살은 10근이나 되었으며 또한 생것이었어요.”

정붕(丁鵬)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좀처럼 삼키기 어려워겠구려.”

사소옥(謝小玉)은 웃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순순히 받아먹었어요. 뿐만 아니라 하나도 남기지 않았어요. 어떤 녀석이 1, 2모금 베어 먹더니 뱉어내길래 내가 그의 1알의 눈동자를 후벼 파버렸지요.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순순히 그 비곗살을 먹었어요.”

정붕(丁鵬)은 웃었다.

“고기를 먹는 것이 눈알을 도려내는 것보다 기분 좋은 일일 것이오. 하지만 당신도 너무나 지나쳤군. 원래 그것은 당신이 그들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니었소?”

사소옥(謝小玉)은 웃었다.

“맞았어요. 내가 그들을 청해서 보라고 한 것이지요. 그러나 나는 미리 그들과 약속을 했더랬어요. 감상 후에는 즉시 몸을 일으켜 옆에 있는 1칸의 방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느낌을 발표하도록 했어요. 그러나 그 누구도 감히 일어서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옆방에는 여자 검수(劍手)들만 있었고, 또 몇 명은 무척 신분이 있는 귀한 손님이었지요.”

정붕(丁鵬)은 웃었다.

“정말 그 남자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몸을 일으켜 다른 사람과 여유있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 남자는 훌륭한 물건이 못 되오. 그에게는 틀림없이 어떤 병폐가 있을 거외다.”

사소옥(謝小玉)은 웃었다.

“당신은 남자들 모두를 그렇게 못난 녀석들이라고 보지마세요. 적어도 나는 이미 1남자를 만나보았어요. 그는 전적으로 감상하는 눈길로 나를 보았으며 조금도 격동하지 않고 특별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어요.”

정붕(丁鵬)은 덤덤히 말했다.

“그렇다면 그 남자는 틀림없이 결점이 있겠구려?”

사소옥(謝小玉)은 웃었다.

“제가 아는 한 그 남자는 전혀 결점이 없었어요. 무척 건강하기 이를 데 없었고 유명한 창녀를 정복한 적도 있었어요.”

정붕(丁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그러한 남자가 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무척 감탄할 것이오. 그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나는 그와 친구로 사귀겠소.”

사소옥(謝小玉)은 방그레 웃었다.

“나는 당신이 틀림없이 그 사람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는 이미 그를 모셔왔어요. 이제 정(丁)오라버니를 안내해서 그 분을 만나볼 참이에요.”

정붕(丁鵬)은 입을 열었다.

“잠깐,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을 무척 좋아하기는 하지만, 내가 그를 만나러 가는 것은 좋아하지 않소. 그가 나를 찾아와 만나게 할 수는 없겠소?”

사소옥(謝小玉)은 대답했다.

“그가 오지 못할 이유가 있어요.”

정붕(丁鵬)은 담담히 말했다.

“나에게 이유는 통하지 않소.”

사소옥(謝小玉)은 방그레 웃었다.

“그러나 그의 이유는 정(丁)오라버니로 하여금 입으로나 마음으로나 승복하도록 할 거예요. 그러니 정(丁)오라버니는 가보도록 하세요. 만약 그 이유가 정(丁)오라버니를 만족스럽게 만들지 못한다면 정(丁)오라버니는 즉시 그를 죽이도록 하세요.”

정붕(丁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사소한 일로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소.”

사소옥(謝小玉)은 당돌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나를 죽이도록 하세요. 더군다나 정(丁)오라버니가 손을 쓸 필요도 없어요. 정(丁)오라버니가 그 이유가 부족하다고 인정한다면, 제가 즉시 나의 머리를 잘라내겠어요.”

그녀는 자기의 목숨을 걸고 내기를 하려고 했다. 이렇게 되자 정붕(丁鵬)은 그 사람에 대해서 흥미가 깊지 않았지만 이 일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26. 여체의 유혹

그래서 그는 사소옥(謝小玉)의 손을 잡고 꽃으로 가득 차 있는 통로를 따라 걸어 들어갔고, 1칸의 향기가 진동하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무척 이상한 방이었다. 꽃들 외에 다른 가구는 놓여 있지 않았다. 벽에도 꽃을 잔득 걸어 놓았고 꽃병에도 꽃을 잔뜩 꽂아놓고 있었으며 땅바닥의 양탄자는 여러 가지 꽃무늬로 수놓아져 있었고 유일한 탁자에도 꽃송이가 잔득 새겨져 있었다.

그야말로 꽃의 세계였다. 나무 위에 활짝 피어 있는 꽃이 있는가 하면 화원에서 자라난 꽃도 있었고 물속에 자라난 꽃도 있었다. 방안의 1모퉁이에 백석(白石)으로 하나의 조그만 연못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연못에는 몇 송이의 하얗거나 분홍색이 나는 수련(睡蓮)이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사소옥(謝小玉)은 웃으며 설명했다.

“이곳은 나의 침실이에요. 내가 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토록 어지럽게 만들어 놓았지요. 정(丁)오라버니는 웃지 마세요.”

어떤 사람이든 이곳에 오면 찬란한 색깔에 눈이 어지러워질 것이었다. 정붕(丁鵬)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옛사람들의 시를 읽어본 적이 있는데 꽃향기가 사람을 엄습한다는 말을 읽어 보았으나 시종 그 뜻을 터득하지 못했소. 왜냐하면 꽃의 향기는 부드럽고 도기(刀氣)나 검기처럼 사람을 습격하는 느낌이 없기 때문이었소. 그런데 오늘 당신의 이 방에 이르러 보니 정말 그런 일이 있는 것을 믿을 수 있겠구려. 당신의 방 안에 가득한 꽃들은 모두 1가닥 살기를 띠고 있는 것 같구려.”

사소옥(謝小玉)의 안색이 그만 변하고 말았다. 그러나 재빨리 그녀는 웃어 보였다.

“물론이에요. 저는 무녀(武女)이고 저의 부친은 천하에 이름이 알려진 검객이에요. 따라서 나는 여느 여자들처럼 그렇게 쉽게 무시당할 사람이 아니지요.”

정붕(丁鵬)은 수긍했다.

“나는 그 말을 믿소. 언제 이 꽃 속에서 목숨을 빼앗는 독화살이 튀어나올지 모르겠구려?”

그러면서 그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1송이의 매괴화(玫瑰花)를 튕겼다. 매괴화(玫瑰花)는 가시가 많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시가 찔러봤자 약간의 상처를 입힐 수 있을 뿐 사람의 목숨을 빼앗지는 못했다. 그러나 사소옥(謝小玉)의 매괴화(玫瑰花)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었다.

그 1대의 조그마한 강철 화살은 비단 쏘아지는 힘이 엄청날 뿐 아니라 파란 빛깔을 띠우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독을 묻힌 증거가 아닌가? 화살은 하나의 장식용으로 세워져 있는 매화(梅花)나무의 기둥에 박혀 탁, 하는 소리를 내면서 태반이나 푹 들어갔다. 놀랍게도 그 1그루의 매화(梅花)나무는 무쇠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1칸의 꽃송이만 잔뜩 있는 방 안에 어떻게 1그루의 무쇠 나무가 있는 것일까? 이 무쇠 나무는 또 어떤 용도가 있을까? 정붕(丁鵬)은 그런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매괴화(玫瑰花)를 되돌려 놓고는 빙그레 웃었다.

“좋아. 좋아. 매괴화(玫瑰花)는 다정하면서 가시가 많고 매화(梅花)는 무쇠로 만들어져 얼음과 같은 차가움을 지니고 있군. 당신은 꽃의 아름다움과 요염함을 이해했을 뿐 아니라 꽃의 영혼을 알고 있구려.”

사소옥(謝小玉)은 태연한 표정으로 웃었다.

“이런 조그만 장식들은 정(丁)오라버니의 눈에는 1번 돌아볼 가치조차 없겠지요?”

정붕(丁鵬)은 나지막한 탁자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사소옥(謝小玉) 역시 싱글벙글 웃으면서 그의 옆에 앉았다. 그녀는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소매에게는 남 몰래 소장해 둔 백화양(百花釀)이 있는데 백화(百花 온갖 꽃)의 영밀(英蜜 꿀)로 빚은 것이에요. 정(丁)오라버니는 1, 2모금 맛볼 흥미가 있으신지요?”

정붕(丁鵬)은 웃었다.

“물론 있지. 미인이 있는데 맛 좋은 술이 없다면 그야말로 기분 잡치는 일이 아니겠소?”

사소옥(謝小玉)은 변명하듯 말했다.

“다만 안주가 없군요. 그 백화양(百花釀)은 조금도 비린내를 맡아서는 아니 되어요. 그렇지 않으면 맛이 모조리 파괴되어요.”

정붕(丁鵬)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소. 이런 동천복지(洞天福地)에서 선희(仙姬)를 벗하는 마당에, 속세를 피하는 선음(仙飮)을 해야 할 터인데 어찌 비린 냄새를 맡을 수 있겠소.”

그는 마치 이상할 정도로 좋은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다. 사소옥(謝小玉)이 1마디만 하면 그는 모조리 찬성하고 설명까지 덧붙이는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마땅히 무척 분위기가 융합되어야 했다.

그러나 사소옥(謝小玉)은 얼굴에 근심의 빛을 띠우고 기뻐하는 빛이 없었다. 그녀는 그 조그마한 연못가로 가더니 물 속에서 백색의 자기로 된 항아리를 끌어올렸다. 항아리의 주둥이는 밀랍으로 밀봉되어 있었는데 그녀는 손가락으로 밀봉한 것을 떼어내고 다시 2개의 옥으로 만들어진 잔을 꺼내서 하나를 정붕(丁鵬)의 앞에 놓았다. 그런 후에 그녀는 다시 백자 항아리를 쳐들고 2개의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이 술은 차갑게 마셔야 해요. 그래서 저는 언제나 샘물에 넣어 두지요. 정(丁)오라버니, 드세요.”

정붕(丁鵬)은 미소를 띠우며 잔을 들었다. 손에 닿는 촉감은 얼음과 같이 차가웠다. 그는 1마디를 던졌다.

“오, 정말 차군.”

“맞았어요. 이것은 한천(寒泉)이라서 그 차가움은 얼음보다 더하지요.”

“나는 신검산장(神劍山莊)에 한천(寒泉)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구려. 내가 알기에는 저 먼 서쪽에 있는 성숙해(星宿海) 옆에 한담(寒潭)이 있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샘물이…”

사소옥(謝小玉)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정(丁)오라버니는 역시 박학하시군요. 그렇게 외지고 차가운 곳도 알고 있으니 말이에요.”

정붕(丁鵬)은 웃었다.

“나는 다만 한천(寒天)이라는 2글자에 흥미를 느끼고 있을 뿐이오.”

사소옥(謝小玉)은 간략하게 설명했다.

“기실 이 샘물은 무척 흔한 거예요. 다만 무석(無錫) 혜천산(惠泉山)의 혜천(惠泉)에다가 항주(杭州) 호포천(虎跑泉)의 물을 보탰을 뿐이에요.”

“그것은 천하에 이름이 알려진 이대 명천(名泉)이 아니오?”

“혜천(惠泉)의 물로는 술을 빚기에 적합하고 호포천(虎跑泉)의 물은 끓여 마시기에 좋지요. 나는 본래 찻물을 만들어서 마시려고 했던 것인데 술을 빚을 때 반씩 섞은 거예요. 그러니 별 것이 아니라고요.”

“2샘물을 섞어서 차갑게 만들다니, 처음 듣는 이야기구려?”

사소옥(謝小玉)은 방그레 웃었다.

“정(丁)오라버니는 정말 꼼꼼도 하시군요.”

정붕(丁鵬)은 덤덤히 말했다.

“이렇게 살기가 등등한 곳에서야 조심하지 않을 수가 있어야지?”

사소옥(謝小玉)은 그 말을 못들은 척하고 설명했다.

“2가지 샘물은 모두 차가운 것이 못 되어요. 이처럼 얼음과 같이 차가워진 것은 물길이 저 1그루의 매화(梅花)나무를 통과해서 흘러나오도록 했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매화(梅花)나무를 가리켰다. 바로 그 1대의 화살에 얻어맞은 무쇠로 만들어진 매화(梅花)나무였다. 정붕(丁鵬)은 그 나무를 1번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상할 것도 없겠구만. 뜨거운 물이라도 한철 위로 흐르게 되면 역시 얼음처럼 차갑게 변하니 말이오. 사(謝)소저(小姐)는 정말 총명하기 이를 데 없구려.”

한철(寒鐵)은 기이한 한기를 지니고 있으며 따가운 폭염 아래에서도 항상 얼음과 같은 차가웠다. 하지만 이런 무쇠는 명귀(名貴)해서 태반이 보도나 보검을 만드는 재료로 삼았다. 그런데 사소옥(謝小玉)은 그것을 가지고 1그루의 나무를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 나무가 한철(寒鐵)로 만들어진 것인데도, 조금 전 그 1대의 화살이 나무를 꿰뚫고 깊숙이 박힌 것을 보면, 그 1대의 화살은 더욱 뾰족하고 날카롭지 않겠는가? 그러나 정붕(丁鵬)은 그 문제를 생각 못한 것 같았다.

더군다나 사소옥(謝小玉)의 웃음은 그로 하여금 그 문제로 생각을 돌리지 못하도록 1것 같았다. 사소옥(謝小玉)의 지금 웃음은 뭐라고 말할 수 없이 요염했다. 정붕(丁鵬)은 그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해졌다. 사소옥(謝小玉)의 눈동자에는 마치 1겹의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 같았고, 그녀는 보기에 유혹하는 힘이 충만한 것 같았다. 하지만 정붕(丁鵬)은 한숨을 내쉬었다. 길고 긴 한숨이었다.

이때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한숨을 내쉬자 사소옥(謝小玉)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곧이어 정붕(丁鵬)의 1마디는 더욱 그녀로 하여금 놀람을 금치 못하게 했다.

“나는 당신의 아버님에게 당신이 그 분의 딸이냐고 물어보았었소.”

사소옥(謝小玉)은 흠칫하더니 한참 후에야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 분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정붕(丁鵬)은 덤덤히 말했다.

“그 분은 놀랍게도 반대하지 않더구려.”

사소옥(謝小玉)은 활짝 웃었다.

“나는 본래 그 분의 딸이에요. 그러니 그 분이 자연히 부인하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그녀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따져볼 필요가 무척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녀는 정붕(丁鵬)에게 되물었다.

“어째서 정(丁)오라버니는 그런 질문을 했나요? 설마하니 정(丁)오라버니는 내가 사효봉(謝曉峰)의 딸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건가요?”

정붕(丁鵬)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정말 닮지 않았소.”

“어째서 닮지 않았지요? 설마하니 아버지의 딸이 되는데 어떤 특별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나요?”

“그런 것은 아니오. 하지만 사효봉(謝曉峰)은 천하가 모두 우러러보는 대협객이오.”

“그것과 그의 딸이 무슨 상관이 있나요?”

“큰 상관은 없지만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사효봉(謝曉峰)의 딸도 마땅히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협녀라야 옳다는 것이오.”

사소옥(謝小玉)은 방그레 웃었다.

“정(丁)오라버니, 잊으신 것 같군요. 저의 아버님도 젊었을 때는 무척 풍류를 즐긴 남자였어요…”

그녀는 1마디를 덧붙였다.

“한때 얼마나 많은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그건 맞아요. 영존의 풍류는 그 분의 검법만큼이나 유명했으니까요.”

“딸도 어느 정도는 부친의 유전을 받기 마련이에요. 만약에 내가 그 분의 아들이라면 틀림없이 많은 여자들을 매료시켰을 거예요.”

정붕(丁鵬)은 부인할 수 없었다. 사소옥(謝小玉)은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나는 그 분의 딸이에요. 그래서 나는 그저 남자만 끌어들이는 거예요. 만약 내가 얌전한 숙녀라면 오히려 사효봉(謝曉峰)의 딸답지 않았을 거예요.”

그 점에 있어서 정붕(丁鵬)은 반대할 수 없었다. 사소옥(謝小玉)의 말은 계속되었다.

“저의 아버님은 풍류적이지만 결코 저속하지 않았어요. 그 분이 고르신 여인은 모두 천하절색이었으며 천 명 가운데 하나가 날까말까한 미녀들이었어요.”

사실 사(謝)씨 집안의 3(三)소야(少爺)가 여자를 보는 안목은 그의 검보다 더욱 유명했다.

그가 고른 여인은 모든 남자들이 가장 귀여운 여인이라고 공인했었다. 따라서 사소옥(謝小玉)이 사효봉(謝曉峰)의 딸이라면 그녀가 남자를 고르는 안목도 떨어질 리 없고 틀림없이 가장 뛰어난 남자가 되리라. 사소옥(謝小玉)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분명히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또한 정붕(丁鵬)이 물어보지 못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대답해주는 셈이 되었다.

정붕(丁鵬) 역시 웃었다. 그는 이 여자애의 대담함을 높이 샀다. 그 역시 몇 명의 대담한 여인들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들이 남자를 유혹하려고 했을 때 보여준 작풍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들에게 입으로 어떤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시인하라고 하면 그녀들은 우물쭈물 망설였던 것이었다. 빙긋이 웃고 정붕(丁鵬)은 입을 열었다.

“보기에 당신은 나를 고른 것 같군.”

사소옥(謝小玉)도 방긋 웃었다.

“맞았어요. 정(丁)오라버니는 무척 뛰어난 남자예요. 어느 남자도 정(丁)오라버니에게 견줄 수 없어요.”

“하지만 당신이 남자를 고르는 방법은 무척 유별나고 남자를 접대하는 방법은 더욱 유별나군.”

사소옥(謝小玉)은 방긋이 웃었다.

“그건 나도 인정해요. 왜냐하면 나 역시 무척 뛰어난 여자애니까요. 특별한 사내가 아니면 결코 나의 눈에 차지 않아요. 설사 무척 뛰어난 남자라 해도 그 특별한 시험에서 통과하지 않으면 나는 역시 마음에 두지 않을 거예요.”

정붕(丁鵬)은 물었다.

“당신이 말하는 특별한 시험이란 당신의 요상한 생각을 일으키게 하는 옷을 말하는 것이오?”

사소옥(謝小玉)은 방긋 웃었다.

“그것은 1종류에 지나지 않아요. 내가 이 옷을 입고 있는 것은 다만 그들의 심미안을 시험해보려는 것이에요. 만약 그들이 나의 몸뚱이만 보고 야수와 같은 충동을 일으키고 내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면 그 남자는 그렇게 특별한 남자라고는 볼 수 없겠지요.”

정붕(丁鵬)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라는 여자는 어떻게 그런 이치들을 알고 있소?”

사소옥(謝小玉)은 되물었다.

“당신은 내가 처녀가 아니라고 생각하나요?”

정붕(丁鵬)은 덤덤히 대답했다.

“나는 당신이 처녀라고 믿소.”

한참 생각한 후에야 그녀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정(丁)오라버니, 당신은 나를 맞아들이지 않겠지요?”

정붕(丁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소.”

사소옥(謝小玉)은 웃었다.

“그렇다면 정(丁)오라버니는 왜 굳이 그런 것을 묻나요?”

정붕(丁鵬)은 빙그레 웃었다.

“옳은 말이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정말 처녀에게는 그렇게 적합하지 못한 것 같구려.”

이 말은 수긍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사소옥(謝小玉)은 무척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여인이라 교묘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丁)오라버니는 여자에 대해서 무척 거칠겠군요?”

정붕(丁鵬)은 덤덤히 말했다.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때로는 아주 거칠다고 할 수 있을 것이오.”

사소옥(謝小玉)의 얼굴이 요염한 홍조로 물들었고 그의 몸뚱이는 더욱 그에게 바짝 붙었다.

“나는 정(丁)오라버니가 거친 것을 탓하지 않아요. 정(丁)오라버니가 거칠면 거칠수록 저는 기뻐요. 나 역시도 정(丁)오라버니가 여인에게 일종의 특수한 기쁨을 준다는 말을 들은 바 있어요. 유약송(柳若松)의 처는 1마리의 암캐였지만 한때 정(丁)오라버니에게 정신과 혼이 모조리 나갔었다고 하더군요.”

정붕(丁鵬)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즉시 거칠게 그녀의 몸에 걸쳐진 옷을 찢었다. 그것은 본래 1겹의 무척 가볍고 무척 엷은 망사와 2가닥의 가느다란 끈에 불과했다.

그래서 찢기에 조금도 힘이 들지 않았다. 잠깐 사이에 그녀를 발가벗겨 놓을 수 있었고 사소옥(謝小玉)은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부풀었다 꺼졌다 하는 아랫배는 물결처럼 사람을 유혹하려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정붕(丁鵬)은 그녀를 안았다. 사소옥(謝小玉)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1차례 흉악하고 사나운 충격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충격이 바로 그녀의 볼기짝에 떨어질 줄은 미처 생각 못했던 일이었다. 더군다나 칼집으로 무겁게 후려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일이었다.

처음 맞게 되었을 때 사소옥(謝小玉)은 그런대로 견딜 수 있었다. 그녀는 정붕(丁鵬)이 변태성욕자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5번째로 후려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정붕(丁鵬)은 그녀의 볼기를 후려치는 것 이외에 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10차례 얻어맞게 되었을 때 그녀는 1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정붕(丁鵬)은 그녀의 볼기를 때리려고 하는 것이지 다른 의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바둥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붕(丁鵬)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욕을 퍼부었다. 그러나 정붕(丁鵬)이 어떤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어찌 몇 마디의 욕지거리에 멈추겠는가? 그래서 사소옥(謝小玉)은 고스란히 얻어맞았고 정붕(丁鵬)이 스스로 손을 멈출 때까지 얻어맞았다.

다행히도 정붕(丁鵬)은 겨우 20대를 때리고 손을 멈추었다. 그러나 사소옥(謝小玉)은 이미 울부짖느라고 목이 쉬고 기운이 다 빠져 있었다. 정붕(丁鵬)은 거칠게 그녀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냉랭히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만약 당신이 사효봉(謝曉峰)의 딸이 아니었다면 나는 1칼로 당신을 쪼개버리고 말았을 것이오. 당신이 사효봉(謝曉峰)의 딸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분을 대신해서 당신의 버릇을 가르쳐주었소. 당신은 정말이지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지 못했소.”

사소옥(謝小玉)은 땅바닥에 누워서 땅바닥을 두드리며 큰소리로 욕을 했다.

“정붕(丁鵬), 후레자식, 당신은 사람이 아니고 1마리 돼지, 1마리 개새끼야!”

그러나 그 1마리의 개새끼는 이미 그녀의 욕을 들을 수 없었다. 정붕(丁鵬)은 이미 나간 것이었다. 사소옥(謝小玉)은 1차례 욕을 퍼부었으나 스스로 무료함을 느끼고 욕을 멈추었다.

처음에는 이를 갈았으나 곧이어 그녀는 웃고 말았다. 그 누구도 그녀가 1차례 매를 얻어맞은 후에 웃을 수 있다고는 생각 못했으리라. 그러나 사소옥(謝小玉)은 정말 웃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무척 기쁘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혹시 정신병자나 변태성욕자가 아닐까? 다른 사람이 그녀를 때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이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 사람은 중년 부인인데 생긴 것은 무척 평범했으며 얼굴에도 특징이 없었다.

그녀는 걸어 들어와 사소옥(謝小玉)을 한참 동안 눈여겨 바라보더니 물었다.

“소옥(小玉), 당신에게 혹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오?”

사소옥(謝小玉)은 얼굴을 돌렸다.

“아니, 정향(丁香). 나는 문제가 없어요.”

이 여인은 정향(丁香)이라 불렸다. 그녀와 사소옥(謝小玉)이 호칭하는 것과 서로에 대한 태도를 보면, 그녀의 신분은 애매모호한 것 같았다. 윗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랫사람도 아니었다.

그녀는 사소옥(謝小玉)과 관계가 밀접했다. 그녀는 사소옥(謝小玉)의 이름을 불렀고 사소옥(謝小玉) 역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이 여인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정향(丁香)은 냉랭히 말했다.

“당신은 조금 전에 그를 죽일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었어요.”

사소옥(謝小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회가 없었어요. 그 사람은 너무나 똑똑해요. 매괴화(玫瑰花)의 비전(飛箭)을 건드리기도 전에 그는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당신의 정향장(丁香帳)은 약간 움직이자마자 그에 의해서 2쪽으로 쪼개지고 말았어요.”

“그래도 그것은 2가지밖에 되지 않아요. 그대의 이 방안에는 9가지의 장치가 되어 있잖아요?”

사소옥(謝小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나도 그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믿어요. 기껏해야 스스로 욕됨을 자초할 뿐이에요. 당신도 그가 1잔의 신로(神露)를 마시는 것을 보았을 거예요. 그러나 그는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그 독화(毒花), 독가루를 펼친다 해도 효과를 본다고 장담할 수 없어요.”

정향(丁香)은 잠시 잠자코 있더니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은 정말 100년 동안에 1번 보기 힘든 굳센 사내예요. 당신의 부친이 젊었을 때보다 더욱 상대하기 어렵군요.”

사소옥(謝小玉)은 넌지시 물었다.

“정향(丁香), 우리 아버님은 젊었을 때 어땠어요?”

정향(丁香)은 다소곳이 대답했다.

“거의 비슷해요. 다만 심장(心腸)이 너무 여렸지요. 더군다나 여인에 대해서는 모질지 못했어요. 그와는 달랐지요. 감히 당신의 볼기를 때리다니 말이에요.”

사소옥(謝小玉)의 얼굴이 빛났다.

“그는 참된 사내 대장부예요. 어떤 짓은 하고 또 어떤 짓은 하지 않아요.”

정향(丁香)은 물었다.

“설마하니 당신은 맞는 것을 좋아하나요?”

사소옥(謝小玉)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누구도 맞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나 역시도 발가벗고 커다란 사내에게 볼기를 맞을 사람이 아니란 말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무척 즐거운 것 같았어요. 더군다나 여전히 웃고 있지 않아요?”

“그러나 이번만은 얻어맞아도 무척 기뻐요. 그것은 그가 정말로 저를 좋아하고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예요. 왜냐하면 나의 행동거지가 정말 맞아도 쌌으니까요…”

그녀는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지었다.

“만약 내가 어려서부터 그 사람처럼 나를 돌보는 사람이 있었고 가르 주었더라면 나는 지금의 이런 모양이 되지 않았을 거예요.”

정향(丁香) 역시 약간 격동되어 입을 열었다.

“그래요, 소옥(小玉). 그것은 당신 아버지의 탓이에요. 그가 종종 당신의 어머니를 보러 왔다면 당신도 오늘의 이런 모양은 아니었을 거예요.”

2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에 정향(丁香)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옷을 입도록 해요. 사운악(謝雲岳)이 올 거예요.”

사소옥(謝小玉)은 혐오스럽다는듯 말했다.

“그가 무엇하러 와요? 그보고 꺼지라고 해요.”

정향(丁香)은 달래듯 말했다.

“그러지 말아요. 소옥(小玉), 당신은 아직도 방수(幫手)가 필요해요.”

사소옥(謝小玉)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거울을 통해서 얻어맞아 멍이 든 볼기짝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만 화가 나서 손에 들고 있던 옷을 내던졌다.

“나는 옷을 입을 수 없어요. 나의 엉덩이는 어떤 물건이 닿아도 아파요. 그냥 이대로 그를 들어오라고 하는 것이 낫겠어요.”

정향(丁香)은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사소옥(謝小玉)은 눈을 부릅떴다.

“어째서 안 된다는 거예요? 그는 참된 남자도 아닌데 설마하니 당신은 그가 어떻게 할까봐 두려운가요?”

정향(丁香)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소옥(小玉) 그렇게 멋대로 굴지 말아요. 그는 여느 사내들과 다르지만 역시 사내이며 한때는 진정한 사내였어요.”

사소옥(謝小玉)은 내뱉듯 말했다.

“지금 사내가 아니기만 하면 상관이 없는 거예요.”

정향(丁香)은 쓰디 쓰게 웃었다.

“남자는 바로 남자예요. 그가 그 어떤 짓을 못한다고 하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남자예요. 그의 눈동자도 남자란 말이에요.”

사소옥(謝小玉)은 픽 웃었다.

“그는 당신의 사내인데, 혹시 당신은 질투하는 것이 아니오?”

정향(丁香)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소옥(小玉) 어째서 그런 말을 해요? 과거에 내가 친히 손을 써서 그의 물건을 못쓰게 만든 것임을 잊지 말아요.”

사소옥(謝小玉)은 웃었다.

“알고 있어요. 당신은 우리 어머니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서 그에게 그런 무거운 수를 쓴 거예요. 기실에 있어서 당신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도 말이에요.”

정향(丁香)은 얼굴 빛을 고쳤다.

“반드시 그래야 해요. 궁주(宮主)님의 존엄은 모독할 수 없는 거예요.”

사소옥(謝小玉)은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정향(丁香), 우리 어머님은 정말로 그렇게 중생을 전도시키는 마력이 있어서 모든 남자들이 기꺼이 그녀를 품으려고 했나요?”

“그래요. 궁주(宮主)의 묘상(妙相)은 끝이 없어서 감히 그 누구도 항거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우리 아버님을 붙잡지 못했어요. 바로 지금 내가 정붕(丁鵬)을 붙잡지 못한 것처럼 말이에요. 이로 미루어 볼 때 천하에는 아직도 미색에 넘어가지 않는 남자가 있는 거예요.”

정향(丁香)은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요. 그런 남자는 역시 너무나 적어요. 그래서 당신의 어머님은 당신의 아버님 때문에 한평생 고통 속에서 사신 거예요. 당신도 한평생을 즐겁게 보내려면 역시 정붕(丁鵬)을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좋을 거예요…”

사소옥(謝小玉)은 나직히 한숨을 내쉬며 얼른 그 말을 받았다.

“아, 잊을 수 있을까요?”

사소옥(謝小玉)의 어머니는 무슨 궁주(宮主)일까? 그녀는 물론 모용추획(慕容秋獲)이 아니었지만 어쩌면 제2의 모용추획(慕容秋獲)일 수도 있었다. 모용추획(慕容秋獲)은 한을 풀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사효봉(謝曉峰)이라는 사람을 망치려고 했다. 사소옥(謝小玉)의 어머니도 신검산장(神劍山莊)을 망치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딸을 신검산장(神劍山莊)으로 보내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주인이 되도록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망쳐 놓을 수 있을까? 정붕(丁鵬)은 신검산장(神劍山莊)의 사람이 아니었지만 정붕(丁鵬)이 있는 한 결코 그 어떤 사람이 신검산장(神劍山莊)을 망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효봉(謝曉峰)은 정붕(丁鵬)이 가장 존경하는 친구일 뿐 아니라 그가 가장 존경하는 적이기 때문이었다.


4필의 준마가 끄는 1대의 호화스러운 마차가 길을 나는 듯이 달리고 있었고 아고(阿古)의 기다란 채찍은 허공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정붕(丁鵬)은 신검산장(神劍山莊)을 떠나간 후에 아고(阿古)에게 1마디를 했다.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큰 성으로 가세.”

아고(阿古)에게 하는 말을 아주 간단했다. 더 많은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저 가장 간단한 명령만 내리면 되었다. 그리하여 마차가 화방(畵舫)에서 육지로 오르자마자 아고(阿古)는 즉시 마차를 질풍과 같이 몰게 된 것이었다. 이 마차는 이미 정붕(丁鵬)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모두들 정붕(丁鵬)을 보지 못했지만 정붕(丁鵬)이 반드시 마차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들 피했으며 아고(阿古)가 마차를 질풍과 같이 몰아서 갈 수 있도록 했다. 그 누구도 정붕(丁鵬)이 신검산장(神劍山莊)에서 어떻게 했는지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사효봉(謝曉峰)의 1전(一戰)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묻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사(謝)선생이 여러 사람들에게 설명했던 것이었다.

정붕(丁鵬)과 사효봉(謝曉峰)의 그 1전(一戰)은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고 모두들 무척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뒤따라가서 또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 살펴보려고 했다. 정(丁)공자가 그토록 급히 길을 재촉하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어떤 중요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 틀림이 없는데 그런 좋은 구경거리를 어찌 놓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자기들에게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더라도 젖혀두고 어떻게 될 것인지 지켜보아야 할 판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일도 없었다. 강호인들이 가장 자유스러운 점은 바로 그들에게 여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서 신경쓸 필요도 없었고 생활을 근심할 필요도 없었다. 허리춤에는 다 쓰지 못할 만큼의 은자가 있었다.

물론 크게 부자가 된 적도 없었지만 강호의 사람들은 좀처럼 굶어 죽는 일이 없었다. 그 누구도 그들이 어떻게 해서 돈을 벌었는지 몰랐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여유있고 유쾌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많은 아리송한 방법이 있어서 이 아리송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들 역시 많은 아리송한 일들을 위해서 바쁘게 설치고 있었다.

정붕(丁鵬)의 마차를 뒤쫓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아리송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물론 정붕(丁鵬)을 알았다. 그러나 정붕(丁鵬)은 그들을 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정붕(丁鵬)이 그토록 급히 달려가니 물론 마차를 멈추고 그들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었다. 정붕(丁鵬)이 그들에게 추월을 당한다 해도 밥 1끼 대접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줄기차게 뒤쫓아왔다. 적어도 수레를 끌고서 달리고 있는 4필의 준마들보다 더 기운을 내고 있었다.

말은 아고(阿古)의 채찍질을 받았기 때문에 죽어라 달려가고 있었다. 그 누구도 그들을 채찍질하지 않았으나 그들은 똑같이 죽어라 달려가고 있었으며 2발로 16개의 발을 뒤쫓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무척 고생스런 일이었다. 다행히 수레는 큰길에 접어들자 반드시 속력을 좀 줄여야 했다. 왜냐하면 대로에는 많은 행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약간 늦추어질 뿐이지 수레는 여전히 무척 빨리 달려가고 있었다. 갑자기 1어린애가 갈래길에서 달려 나왔다. 7살 정도밖에 되지 않는 남자애였다. 남자애는 자욱하게 일어나는 먼지를 보자 호기심을 금치 못하고 달려 나와 구경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달려오는 방향이 잘못되어 그들 한복판을 가로 막는 꼴이 되었다.

말은 수레를 끌고 급히 달려가고 있었고 그 누구도 그 말들을 멈추어 세울 수는 없었다. 보기에 수레와 마차는 그 어린애를 깔아뭉개 죽이고 말 것 같았다. 뜻밖에도 커다란 채찍이 어린애를 감아 들어 올렸고 가만히 길가에다 내려놓았다. 그리고 말과 수레는 나는 듯이 지나갔다. 그 어린애는 자기가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온 것도 모르고 박수까지 치면서 즐거워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어린애가 안전하게 된 것을 보자 환호성을 내질렀다. 정말 기막힌 어술(御術)이고 절묘한 편법(鞭法)이었으며 무척 심오한 공력이었다. 3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모자라게 된다면 그 어린애의 생명을 보존할 수 없었겠지만 아고(阿古)는 교묘하게 해낸 것이었다. 뒤의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질렀으나 그는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귀머거리에 벙어리였다. 그가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입의 모양새를 보고 읽어내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극히 미세한 기척이나 변동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생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영민한 감각에 의해서 가능했다. 하지만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들은 무척 만족했다. 그들은 기적을 목격한 셈이었고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차는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1커다란 객잔(客棧) 앞에 멈춰 섰다. 뒤따라 온 사람들은 정붕(丁鵬)이 객잔(客棧)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1걸음 늦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객잔(客棧) 안의 사환들이 다투어 걸어나와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마치 1가지 무척 중요한 일을 하러 가는 것 같았다. 그들은 감히 정붕(丁鵬)에게는 묻지 못했지만 감히 몇 명의 점소이(店小二)들을 잡아서는 물어볼 수 있었는데 1명의 점소이(店小二)가 그들에게 잡혔다.

“그 공자는 당신네 객잔(客棧)에 머물게 되었는가?”

“그렇소. 그는 가장 좋은 화원(花園)이 있고 화청(花廳)이 있으며 10여 칸의 커다란 방이 딸려 있는 뒷채를 빌렸습니다.”

“그는 혼자인가?”

“아니에요. 1사람이 더 있었지요. 그 사람은 마부인데 마치 금강역사(金剛力士)를 연상시켰소.”

“그는 왜 그토록 커다란 외딴 채를 빌렸는가?”

“모르지요. 어쩌면 손님을 청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손님을 청하다니 그가 누구를 청한단 말인가?”

“모르지요. 그러나 손님은 무척 많으며 무척 중요한 손님이래요. 왜냐하면 그는 우리 성안의 가장 훌륭한 주루에서 10상의 가장 훌륭한 주안상을 주문했지요. 그리고 우리 성안의 가장 아름다운 기녀들을 모조리 불러들이라고 했어요. 적어도 50명은 불러들이라고 하는뎁쇼.”

“성안의 가장 아름다운 기녀들은 몇 명이나 되는가?”

“하늘을 두고 양심에 따라 말씀을 드리는데, 가장 못난 기녀까지 긁어모은다고 해도 50명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공자께서는 너무나 돈 쓰는 것이 흥청망청하더군요. 기녀 1사람마다 은자 10냥을 상금으로 내린답니다.

그런데도 그 수를 채우지 못했지요.”

“다 채울 수 있겠는가?”

“10냥의 금이라면 설사 기녀가 아닌 여자라고 해도 1번쯤 몸을 팔 수도 있겠지요. 나에게는 누이 2명이 있고 마누라가 1명 있으니, 3몫의 상금을 탈 수 있겠지요.”

“뭐라고? 자네는 마누라와 누이동생까지 기녀로 삼겠다는 것인가?”

“그렇소. 1번에 10냥의 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거든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내 딸이 너무나 어려 겨우 5살밖에 되지 않는군요. 나이가 좀 많았다면 나는 10냥의 금을 더 벌 수 있었을 것이오.”

물어보던 사람은 한숨을 내쉬고 점소이(店小二)의 손을 놓았다.

“그렇다면 자네는 빨리 가보게. 자네가 돈벌이 할 기회를 놓치지 말게.”

그는 실로 이 점소이(店小二)에 대해서 탄복해마지 않았다. 그런데 더욱 그를 탄복케 하는 사람이 2명이나 나타났다.

그들은 1쌍의 자매였으며 강호에서는 그래도 이름이 나 있는 여검객이었다. 언니는 두령령(杜玲玲)이라고 하고 누이동생은 두진진(杜珍珍)이라고 하는데, 1사람은 별호가 흑수선(黑水仙)이고 다른 1사람의 별호는 백수선(白水仙)이었다. 그녀들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으나 그렇게 못난 편도 아니었다. 그녀들은 규모가 그렇게 크지도 적지도 않는 어느 표국(鏢局)의 여자 표사(鏢師)들이었다.

그녀들의 검법은 그렇게 고명하다고 할 수 없었으나 그렇게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그녀들은 그렇게 이름이 난 것은 아니지만 무명소졸은 아니었다. 그녀들의 나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그렇게 적은 편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들이 이때 하려는 일은 무척 사람을 놀라게 만들었다. 두령령(杜玲玲)은 그 점소이(店小二)를 불렀다.

“이것 보게. 자네가 그토록 많은 사람을 찾을 수 없다면 우리 자매 2사람을 끼워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점소이(店小二)는 그만 2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두진진(杜珍珍)은 웃으면서 2조각의 은자를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우리들은 금이 필요없네. 상금은 모두 자네가 가지도록 하게. 거기다가 20냥의 은자를 더 보태줌세.”

점소이(店小二)는 거의 이 2명의 여인이 실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무척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은자를 거두어들이고 물어 보았다.

“2분 소저, 소저들에게는 동료들이 있나요? 혹시 똑같은 장사를 할 사람이 더 없나요?”

두령령(杜玲玲)은 참지 못하고 웃었다.

“자네는 정말 만족할 줄 모르는군.”

점소이(店小二)는 웃었다.

“지난 달에 제가 관상을 1번 보았더니 관상쟁이 왕할자(王瞎子)가 말하기를, 내가 금년에 횡재를 해서 100냥의 금을 얻게 된다고 했소. 처음에 나는 그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인다고 여겼는데, 오늘 보니 그야말로 재신야(財神爺)가 나타나서 돈벌이를 해주지 뭡니까? 우리 집에는 3여자가 있는데 거기다 2분의 소저까지 합치면 50냥이 됩니다. 왕할자(王瞎子)가 보는 관상이 그토록 영험하니, 내 생각에는 틀림없이 50냥을 더 벌 수 있을 것 같군요.”

“맞았어요. 그 왕할자(王瞎子)이 관상을 무척 정확하게 잘 보는군. 자네는 그를 청해다가 다시 자네의 관상을 1번 더 봐달라고 하게나.”

점소이(店小二)의 눈은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은 아름답기 이를 데 없고 간드러진 여인이었다. 그녀의 곁에는 청의의 시녀까지 1명 딸려 있었다.

여인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 청의의 시녀만 하더라도 먼젓번의 그 두(杜)씨 집안의 자매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점소이(店小二)는 심장이 마구 벌떡벌떡 뛰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아름답고 간드러진 여인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자네는 자네의 처와 누이동생을 데리고 올 필요도 없네. 나에게 100냥의 금이 있으니 자네에게 주도록 하지.”

그녀가 손짓하자 옆에 있던 시녀가 즉시 보자기에 싼 것을 내밀었다.

펼쳐 보니 안에는 1줄의 누런 적금(赤金)으로 만들어진 원보(元寶)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점소이(店小二)는 거의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그 금덩이에 입을 대고 핥아 보았다. 싸늘하고 달짝지근했다. 그는 다시 2번 깨물어 보았다. 먼저 깨문 것은 금이었다. 그 금이 어느 정도 여문지 시험해본 것이었다. 그리고 2번째 깨문 것은 자기의 손가락이었다. 그는 자기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지 확인해 본 것이었다. 그는 금이 진짜이고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27. 창녀들과 마신 술

이상한 일은 해마다 생겨나지만 금년에는 유난히 많이 생기는 것 같았다. 금년에 강호에서 발생한 가장 큰 사건은 정붕(丁鵬)이라는 청년이 갑자기 출현하여 최고 고수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정붕(丁鵬)이 원월산장(圓月山莊)을 세운 것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러나 원월산장(圓月山莊)의 출현보다도 더 놀라운 일이 지금 이 조그만 성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10탁자의 주석(酒席)이 화청(花廳) 안에 가득 차려져 있었다. 50명의 기녀들도 10탁자의 주석(酒席)에 나누어 앉았다. 정붕(丁鵬)은 중간의 1탁자에 앉았고 그 옆에는 5명의 비교적 자색이 갖추어진 기녀들이 앉았다. 두령령(杜玲玲)과 두진진(杜珍珍)은 그 간드러지고 아리따운 여인과 함께 마지막으로 모셔져서 가장 끝에 있는 탁자에 앉았다. 그녀들이 들어서는 것을 정붕(丁鵬)은 보지 못했다.

한창 옆에 있는 2여인과 장난을 치며 히히덕 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 2여인 가운데 하나는 선선(仙仙)이라고 했고 다른 하나는 미미(美美)라고 했는데, 이 성안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2기녀였다. 그녀들은 이 돈이 많은 공자를 온 정성을 다해서 모시려고 했다. 선선은 1잔의 술을 가득 따라 손수건으로 받쳐 들고 정붕(丁鵬)의 입술에 갖다댔다.

정붕(丁鵬)이 술을 들이키는 것을 보고 그녀는 간드러지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정(丁)공자, 청하신 손님은요?”

정붕(丁鵬)은 빙그레 웃었다.

“당신들이 모두 손님이 아닌가?”

미미(美美)는 어리둥절해서 입을 열었다.

“공자께서 초청하신 손님이 바로 우리들인가요?”

정붕(丁鵬)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다. 나는 모두 50명을 청했는데 모두 왔다. 더 이상의 다른 손님은 없는 것이다.”

그녀는 다시 물었다.

“공자께서는 홀로 50명이나 되는 우리 자매들을 불러다가 무엇에 쓰려고 하나요?”

정붕(丁鵬)은 말했다.

“같이 술만 먹자는 것이 아니지. 당신들 가운데 노래를 불 줄 아는 사람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지. 내가 빌린 시각은 내일 밤까지야. 그 동안 당신들은 흥청망청 얼마든지 놀아도 좋아. 다만 1가지 조건이 있다면 그때까지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지.”

선선은 물었다.

“공자, 그건 무엇 때문인가요?”

정붕(丁鵬)은 웃었다.

“설마하니 예전에 다른 손님이 당신들을 청한 적이 없었는가?”

선선은 대답했다.

“물론 있었지요.”

정붕(丁鵬)은 다시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당신들을 불러서 무엇을 했는가?”

미미는 대답을 했다.

“시중을 들도록 했지요.”

정붕(丁鵬)은 웃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야.”

선선은 고개를 숙였다.

“공자, 이런 식으로 시중을 든 것이 아니에요.”

정붕(丁鵬)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네. 나 역시 술시중이나 들라고 부른 것이 아닐세. 남자들이 이런 곳에 오는 것은 주색(酒色)을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먼저 술을 마셔서 약간 흥취를 돋군 후에 서로 정이 무르익게 되면 함께 침대 위로 올라가는 것이지…”

그는 너무 솔직히 이야기했기 때문에 약간 귀에 거슬렸다. 그러나 상대방이 10냥이나 되는 거금을 낸 귀한 손님이니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해도 참아야 했다. 선선(仙仙)은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공자께서는 우리 50명 모두 공자를 침대 위에서 모셔야 한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녀의 표현은 무척 대담했다. 이것이 어쩌면 그녀가 총애를 받는 원인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정붕(丁鵬)의 대답은 그녀의 예상 밖이었다.

“맞았다. 나는 바로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다.”

정붕(丁鵬)의 말이 떨어지자 탁자 옆에 앉아 있던 모든 기녀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놀란 소리를 내질렀다.

가장 크게 소리를 지른 여자들은 바로 두령령(杜玲玲)과 두진진(杜珍珍) 자매였다. 그녀들이 일부러 소리쳐서 정붕(丁鵬)의 주의를 끌려고 했는지, 아니면 정말 놀라서 소리를 내질렀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들은 몸을 파는 기녀가 아니었다. 그녀들은 호기심에 들어와 정붕(丁鵬)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보려고 했던 것이었다. 정말 그녀들이 정붕(丁鵬)과 침대 위로 올라가야 한다면 그녀들은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했다. 그녀들이 속으로 그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기녀의 신분이 되어 정붕(丁鵬)과 함께 침대 위에 올라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녀들의 유난히 뾰족하고 날카로운 부르짖음은 정붕(丁鵬)의 시선을 끄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정붕(丁鵬)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몸을 일으켜 그녀들의 탁자 곁으로 오는 것을 보자, 두령령(杜玲玲)은 긴장해서 입술을 꼭 깨물었고 두진진(杜珍珍)은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 정붕(丁鵬)의 목표는 그녀들이 아니었다. 그는 그 간드러지고 아리따운 여인에게로 가더니 얼굴에 기쁜 빛을 띠었다.

“청청(青青), 당신이 왔구려.”

그 여인의 이름은 청청(青青)이었다.

얼마나 많은 질투의 눈빛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지 몰랐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그녀가 정붕(丁鵬)을 독차지한 것을 시샘하는 눈길이었다. 정붕(丁鵬)은 모든 여인들을 잊어버렸다. 그는 청청(青青)만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손을 잡고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이 언젠가는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소. 다만 어떤 방법을 써야 당신을 찾을 수 있는지 몰라서 별 수 없이 이 방법을 써서 1번 시험해 본 것이오.”

청청(青青)은 웃었다.

“당신의 이 방법은 정말 특별하군요.”

정붕(丁鵬)은 한숨을 쉬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소. 만약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는 별 수 없이 계획대로 실행했을 것이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여자를 필요로 하고 있소.”

정붕(丁鵬)은 청청(青青)의 팔을 잡고 뒤에 있는 방으로 갔다. 다만 청의의 시녀 1사람만 문 입구에 남겨 놓았다. 청의의 시녀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저희 집의 작은 마님이 이미 돌아왔으니 이제 여러분들은 필요 없어요. 여러분들은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갈 수 있어요. 돌아가고 싶지 않으면 이곳에서 놀아도 좋아요. 여러분들의 보수는 약속대로 지불하겠으며 이미 계산대에 넘겼어요.”

“뭐라고? 당신네 작은 마님이라고? 그 공자가 이미 장가를 들었단 말이에요?”

“그것이 어찌 거짓이겠어요? 조금 전에 당신들도 모두 보지 않았나요?”

정붕(丁鵬)이 청청(青青)을 만날 때의 표정은 무척 즐거운 것이었다.

더 이상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승복할 수 없었다. 그 2자매는 더욱 불만이 많았다. 두령령(杜玲玲)은 냉소를 띠우고 입을 열었다.

“그녀가 정(丁)공자의 여편네인가 보군. 그렇다면 어째서 직접 들어오지 않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몰래 들어왔지?”

청의의 소녀는 웃었다.

“왜냐하면 우리 작은 마님은 장난을 좋아하고 돈이 많아서 재미나게 돈을 쓰는 방법을 연구하고 계시거든요. 그것은 마치 어떤 여자들이 기꺼이 20냥의 은자를 써서 갈보짓을 1번 경험해 보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두령령(杜玲玲)의 안색이 즉시 변했고 두진진(杜珍珍)은 청의시녀 곁으로 다가가 1대의 주먹을 내질렀다. 그녀는 두(杜)씨 집안의 자랑하는 가전무학에 상당한 조예를 쌓고 있었다. 사실 그녀들 2자매의 주먹 아래 적지 않은 영웅호걸들이 쓰러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청의의 시녀는 가볍게 손을 뻗쳐서 그녀의 주먹을 움켜쥐고 웃었다.

“호호, 장난치지 말아요. 나는 간지럼을 잘 타요. 당신이 겨드랑이라도 건드리면 웃음을 참지 못할 거예요…”

두진진(杜珍珍)의 안색은 즉시 창백하게 변하고 말았다. 어찌나 아픈지 비명 소리조차 내지를 수 없었다. 두령령(杜玲玲)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누이동생을 업고 떠나갔다.


방문 밖의 왁자지껄한 소리는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었다. 청청(青青)은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그러나 그녀의 몸 위에서 정붕(丁鵬)은 여전히 1마리의 억센 황소처럼 사나웠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나직히 말했다.

“대… 대붕조(大鵬鳥), 나는 정말 견딜 수 없어요. 온몸의 뼈마디가 모조리 흩어질 것 같아요…”

그녀의 매끄러운 살결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정붕(丁鵬)은 놀라고 의아해서 입을 열었다.

“소청조(小青鳥), 당신 왜 그러오?”

대붕조(大鵬鳥)와 소청조(小青鳥)는 그들이 신혼 첫날밤에 서로 다정하게 불렀던 칭호였다. 지금 그 칭호를 쓰자 달콤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청청(青青)은 쓴 웃음을 지었다.

“나는 괜찮아요. 그러나 더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아요. 이미 5번째예요. 만약 다시 1번만 더 한다면 나는 죽고말 거예요.”

정붕(丁鵬)은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소청조(小青鳥), 나는 사소옥(謝小玉)이 나에게 준 그 1잔의 백화(百花)로 빚은 술의 약성이 무척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었소. 그래서 나는 죽어라 길을 재촉하며 내공으로 약기운이 퍼지지 못하게 억눌렀던 것이오. 그런 후에 1무더기의 여인들을 불러들인 것이오. 평범한 1여인을 상대한다면 반드시 그 여자의 목숨을 빼앗게 되기 때문이오.”

“알고 있어요. 나는 결코 당신이 황당한 짓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나는 여전히 당신이 오기를 바랬지. 결국 당신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소.”

“그래서 내가 오지 않았나요?”

“나는 당신이 나의 곤경을 해소시켜 줄 수 있으리라 여겼소. 내 생각에 당신은 틀림없이 방법이 있을 것이오.”

청청(青青)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나에게도 방법이 없어요. 여우[狐]에게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내가 닦은 도는 천호지도(天狐之道)예요.”

“천호(天狐)가 닦는 것은 무엇이오?”

“비교적 정통적인 도인데, 연기수성(煉氣修性)하고 벽곡수진(辟谷修真)하여 신선의 경지로 올라서는 거예요.”

“당신은 어느 정도 도를 닦았소?”

“나는 매우 얕아요. 그러니까 어느것도 제대로 닦아서 성공하지 못했는데 공교롭게도 업보를 해소시키지 못하고 당신을 알게 된 거예요. 천호(天狐)는 정욕을 꺼리는 것인데 나는 그만 범심(凡心)이 동하여 도기(道基 밑바탕)를 그르쳤으니 선업(仙業)은 바랄 수 없어요. 기껏해야 평범한 여인처럼…”

“소청조(小青鳥), 정말 미안하오…”

청청(青青)은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았다.

“그런 말씀은 마세요. 우리들은 인연이 있었던 거예요. 내가 당신을 위해서 1번째의 눈물을 흘리게 되었을 적에, 나는 내가 선업(仙業)과 단절되었지만 이 인간 세상에서 가장 구하기 힘든 행복을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것은… 그것은…”

“그것은 무엇이오?”

“사랑이에요. 생사를 같이하는 사랑이지요. 그리하여 매번 위급한 고비에 접어들게 되었을 적에 당신은 내 대신 죽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어요. 그와 같은 지정(至情)은 천선(天仙)이라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에요. 그래서 저의 할아버지도 감동을 하셨고, 우리들이 함께 있도록 허락하셨을 뿐만 아니라 내가 한평생 당신을 받들어 모시고 공경하고 사랑하도록 허락한 거예요.”

“원앙을 불렀으면 불렀지 신선을 부르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구려.”

“그래요. 이 세상에는 신선들이 하강했다는 신화들이 많이 있으며, 선녀가 하강해서 하늘나라로 되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들도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그것은 모두 사실이에요. 만약 원앙처럼 백수(白壽)해로(偕老)할 수 있다면, 어찌 만 년 선업(仙業)에 미련을 두겠어요…?”

그녀는 정붕(丁鵬)이 이미 움직임을 멈추었다는 것을 느꼈다. 정욕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물었다.

“당신의 몸에 스며있는 미독(媚毒)을 모두 배설했나요?”

“아니오. 아직 조금 남았구려.”

“그럼 어떡해요? 몸에 남겨두면 당신을 태워 죽일 거예요.”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을 것이오. 나는 내공으로 제압하고 있었기 때문에 천천히 내공으로 연화(練化)시킬 수 있을 것이오.”

“그건 너무 위험해요. 조금이라도 잘못 된다면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질 수 있어요.”

“하지만 나는 당신이 목숨을 잃도록 하고 싶지는 않소.”

청청(青青)은 갑자기 웃었다.

“내 자신은 어쩔 도리가 없지만 다행히 나는 방수(幫手)를 데리고 왔어요. 나는 소운(小雲)을 시켜 당신의 미독(媚毒)을 몸 밖으로 내보내도록 하겠어요.”

“소운(疎韻)? 당신이 말하는 사람은 그 나이 어린 하녀가 아니오?”

“그녀는 나이 어린 하녀가 아니에요. 그녀 역시 여우[狐]예요. 하지만 그녀가 닦는 것은 미호도(迷狐道)예요.”

“미호(迷狐)?”

“그래요. 미호(迷狐)는 좌도방문(左道旁門)이지만 당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녀가 오로지 갈고 닦는 것은 음양화합(陰陽和合)과 채양보음(採陽補陰)이에요.”

“뭐? 그 어린 것이 그런 도를 닦았다는 말이오?”

“여우[狐]는 2갈래 길로 득도를 할 수 있어요. 그녀의 자질은 그 길로 갈 수밖에 없으니 무슨 다른 방도가 있겠어요…”

그녀는 갑자기 요염하게 웃었다.

“당신은 그가 작다고 얕보지 말아요. 그것은 옷을 입었기 때문이에요. 겉모양으로는 일부러 그런 모양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녀가 나중에 당신과 더불어 침대 위에 오르게 되었을 적에 당신은 그녀가 여인일 뿐 아니라 여인 가운데 여인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청청(青青)의 말은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소운(小雲)은 처음 방에 들어올 때 여전히 수줍어했고 나이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

그러나 청청(青青)이 그녀를 정붕(丁鵬)의 침대 위로 밀어 올리고 그녀의 겉옷을 벗기게 되었을 때 정붕(丁鵬)은 이 나이 어린 소녀가 여자 중의 여자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의 가슴팍은 띠로 묶어 놓고 있었다. 정붕(丁鵬)이 그 가슴팍을 두르고 있는 띠를 풀자 둥그런 공 2개가 그녀의 가슴 앞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마치 마술사가 요술을 부리는 것처럼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2송이의 살색 실뭉치가 튀어나온 것 같았다.

둥글둥글하고 단단하고 여물면서 작고 아담한 젖꼭지는 마치 구름 속에 박혀 있는 앵두알처럼 발그레했다. 그것을 보는 남자로 하여금 가슴이 뛰도록 만들었다. 그녀는 몸에 입고 있던 옷들을 모조리 벗었을 때 사람을 유혹하는 동체를 정붕(丁鵬)에게 바짝 붙여 정붕(丁鵬)의 정욕을 격발시켰다. 더군다나 그녀의 애무 동작은 놀라울 정도로 숙련되어 있었다. 그녀의 유혹을 받아 2사람이 1몸으로 변했을 때 정붕(丁鵬)은 참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소운(小雲), 청청(青青)이 너를 불러들이기 전에 대강 너에 대해 설명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었지. 그래서 나는 여전히 내공으로 약성을 억눌렀던 거야.”

소운(小雲)은 킥킥 웃었다.

“나으리, 미약이라는 것은 흥을 돋구는 거예요. 그 어떤 미약이라도 황궁 안의 태감(太監 내시)에게는 소용이 없는 거예요.”

“그렇다면 어떤 것이 소용이 있지?”

소옥(小玉)은 웃었다.

“황궁의 태감(太監)들도 몰래 빠져나가 창녀를 찾는대요.”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였다.

“정말 그런 일이 있는가?”

그는 새삼스럽게 다시 물었다.

“그들은 모두 거세했는데 어떻게 창녀를 데리고 놀 수 있지?”

소운(小雲)은 웃었다.

“그들의 몸뚱이를 거세했을 뿐, 마음은 거세하지 않았거든요. 7정(七情)6욕(六欲)은 모두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말에도 일리가 있군.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마음속에 우러나는 욕정의 불길을 꺼뜨리지?”

“그들은 손이 있고 입이 있어요. 애무는 손과 입으로 더욱 훌륭하게 해낼 수 있지요.”

정붕(丁鵬)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거야 남들을 기분 좋게 해주는 것이고, 자기는 여전히 전혀 감각이 없는 것이 아니겠어?”

소운(小雲)은 웃었다.

“남자들이란 여자를 즐겁게 해주게 되었을 적에 더욱 만족하게 되는 거예요. 여인도 마찬가지예요. 가장 남자를 즐겁게 해주는 여인은 바로 쾌락의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하는 여인이에요.”

정붕(丁鵬)은 그녀의 관점이 무척 정확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접촉한 여인은 모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여인들이었다. 그를 끌어당기는 것은 그녀들 자신의 매력이 아니라 그녀들이 사랑의 환희에 빠졌을 때 드러내는 그 미친 듯한 표정이었다. 정붕(丁鵬)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소운(小雲), 정말 어린 네가 그토록 많은 것을 알다니, 생각하지 못했구나.”

소운(小雲)은 가뿐 숨을 몰아쉬며 웃었다.

“나으리, 저의 나이는 적지 않아요. 적어도 4, 500살은 되었어요.”

“네가 4, 500살이 되었다고?”

“그래요. 저는 여우[狐]이지 사람이 아니에요. 여우[狐]는 반드시 500년의 도기(道基)가 있어야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어요.”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믿을 수 없는 걸?”

소운(小雲)은 웃었다.

“나으리께서 믿지 않으시면 어쩔 도리가 없지요. 하지만 나으리는 저와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정붕(丁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정말 본 적이 없었다. 치기가 가시지 않은 어린 계집애가 갑자기 단번에 매력적인 성숙한 여인으로 변하다니, 여우[狐]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정붕(丁鵬)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사람을 정복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여우[狐]도 정복했다.

그렇기 때문에 소운(小雲)에게 500년의 도행이 있었지만 정붕(丁鵬)이 그녀의 몸속에서 자기의 몸을 떼어내게 되었을 때 그녀는 무척 나른해져 있었다. 그녀는 깊이 숨을 내쉬고 정붕(丁鵬)을 바라보았다. 정붕(丁鵬)은 이미 위험한 상태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의 몸뚱이는 그토록 건장했고 그의 정신력은 그토록 왕성했다. 그러나 그의 잠자는 모습은 사랑스럽고 어린애 같았다.

그는 식지를 입에 넣고 있는 것이 정말 어린애 같았다. 그렇게 잠자는 모습은 충분히 1여인의 모성애를 격발시킬 수 있었다. 그 여인이 막 그의 배 밑에서 기어 일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말이다. 소운(小雲)은 그의 잠자는 모습에 홀리고 말았다. 한참 동안 들여다본 후에야 결심을 내린 것처럼 살그머니 곁에 있는 자기의 옷가지를 더듬었다. 그녀는 옷을 입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1가지 물건을 끄집어 내었다.

한 자루의 침이었다. 길고 번쩍거리는 침이었다. 침을 쥔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정붕(丁鵬)의 가슴을 노리고 찔렀다. 침의 끝이 정붕(丁鵬)의 왼쪽 가슴에 닿았다. 정붕(丁鵬)은 여전히 어린애처럼 깊이 잠들어 있었고 입가에는 1가닥 미소마저 떠올리고 있었다. 이 웃음으로 소운(小雲)의 마음은 여려지게 되었다. 그녀는 더 힘을 줄 수 없었다. 그와 같이 멍하니 반 나절을 있다가 가까스로 결심을 내린듯 다시 침을 쳐들었다. 이번에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재빨리 힘주어 찌르려고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붕(丁鵬)의 심장을 찔러 들어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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