绝代双骄 12

3학년2반 | 2022.02.14 07:57:52 댓글: 0 조회: 322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8671
옷 벗는 계교(計巧)
도약사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아름다운 여자는 태반이 영리하죠, 형수도 그렇지 않소?"
"십여 년 동안 보지 않았더니 말 솜씨도 늘었군!"
그녀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이것이 바로 여인들의
병이다. 남자의 입에 발린 말도 꼭 믿고 싶어하는 것이다.
도약사는 웃는 낯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
"나는 소식 기관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다니지를
못했지. 한 군데 가만히 숨어 있었소. 한참 후 위마의가 한 자식
을 데리고 와 그의 혈도를 점하고 나무에 매달더군."
백산군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멀리서 욕하는 소리를 듣고 필시 그가 욕을 하고 있는
줄을 알았지."
"나는 정말 그 자식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소. 그러나 바로 그때
숲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을 내가 알고
있었지."
"누군데?"
"바로 자기의 마누라까지 삶아서 먹은 이대취였소."
백산군은 놀라며 말했다.
"그 사람이 나타났단 말인가?"
백 부인도 다그쳐 물었다.
"이대취가 그 자식을 알고 있던가?"
"알지."
백 부인은 양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자식은 어떻게 생겼지?"
"나이는 약 이십 세 정도였고 얼굴에 많은 칼자국이 있었소. 그
러나 어찌된 일인지 조금도 흉악해 보이지가 않았소."
그는 웃으면서 계속 말했다.
"그를 모르오?"
백 부인은 무거운 소리로 침울한 표정을 보였다.
"비록 그 사람을 본 적은 없지만 누구인지 짐작은 가."
"어!"
"사람들이 강호에 하나의 혜성이 나타났다고 하던데 그 이름이
무슨 어(魚)라고 하더군. 소어라고 하던가? 무술은 별로 뛰어나지
않아도 지략이 뛰어나서 그를 건드린 사람은 모두 그에게 당하게
된다지. 강별학 같은 사람도 그를 보면 골치를 않는다던데."
도약사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그 자식이 바로 그 사람이야. 그는 정말 무서워. 위마
의 같은 사람도 그의 앞에서는 쩔쩔 매더군......."
백산군은 수심에 찬 얼굴로 물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이화접옥과 무슨 관계가 있지?"
"내가 물어 보겠는데 지금 천하에 이화접옥의 무공 비결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오?"
백 부인이 말했다.
"알고 있는 사람은 몇몇 있지만 말을 할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
어."
"나는 그중 한 사람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할 수가 있소."
"정말?"
"소앵이야!"
백 부인의 기뻤던 표정이 탄식으로 변했다.
"당신이 그 계집애의 입을 열 수 있다면 나도 할 수가 있어."
도약사는 입가에 미소를 보였다.
"믿기지 않소?"
이번에는 다시 백산군이 나섰다.
"도 동생에게 방법이 있다면 필시 좋은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러나 백 부인은 다시 탄식을 했다.
"좋아요. 무슨 방법이 있는지 말이나 해보아요."
도약사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무거운 소리로 말했다.
"나의 이 방법은 소어아의 몸에 달려 있지!"
"그것이 무슨 방법이지! 난 모르겠는 걸?"
"그 소씨라는 계집애가 이미 소어아에게 반했으니 우리가 소어
아를 잡을 수만 있다면 꼭 말을 하게 할 수 있소."
백 부인이 물었다.
"글쎄 그렇게 될까. 우리가 알기로는 그 계집애는 천생이 건방
져서 천하의 남자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던데."
"아무리 마음이 강한 여자라도 마음이 움직일 때가 있소. 형수
도 우리의 백형에게 마음이 움직인 것이 아니오?"
백 부인은 웃었다.
"내 마음이 움직였어? 난 다만 그를 가련하게 생각하고 있을 뿐
이야."
이번에는 도약사가 웃었다.
"왜 나를 불쌍하게 여기지는 않는 것이오?"
백산군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어떻든 간에 한 번 해보는 것이 좋겠어."
도약사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성공할 것이오."
백 부인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다만 그 소어아를 잡는 것이 어려운 문제인데."
"형수는 녀석을 상대할 방법이 있소?"
백 부인은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안심해요. 까부는 남자일수록 내게 상대할 방법이 있으니까."
화무결은 멍하니 방 안에 앉아 있었다. 마치 나무로 만든 인형
처럼 보였다.
강옥랑이 철평고와 함께 방으로 들어 왔을 때 그들은 밖에서 도
약사와 백산군이 철평고의 몸에 대해 얘기하면서 히히덕거리는 것
을 들을 수 있었다. 철평고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강옥랑은 그녀의 수심에 찬 모습을 보자 그녀의 혈도를 풀며 말
했다.
"여자에게 가장 유리한 점은 남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거야. 그들이 너 때문에 혼이 나갈 정도면 오히려 기뻐해야지 왜
그런 표정을 하는 것이지?"
철평고는 드디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당신...... 좀 사람다운 말은 하지 못 하나요?"
강옥랑은 당황해서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다만 너를 위로할 마음에 그런 소리를 했어. 눈물을 흘려도 쓸
모가 없으면 흘리지 않는 것이 더 좋아."
철평고는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달아나지 않겠어요?"
강옥랑이 쓴웃음을 보였다.
"네가 보기엔 우리가 달아날 수 있는 것 같은가?"
"내가 기회를 만들어 보겠어요."
"만약 너 혼자서 달아난다면 이삼십 리 쯤은 달아날 수 있을 거
야. 그러나 역시 잡히게 되겠지. 또 네가 만약 나를 업고 간다면
반리도 달아나지를 못 해."
"최소한 시도는 해 볼만 하지 않아요?"
"쓸데 없는 일을 시험해볼 수는 없어."
"그럼 당신...... 당신은 어쩔 셈이에요?"
"기다려야지. 기회를 기다려야 돼. 참고 참으면서......."
그는 돌연 웃더니 계속 말했다.
"당신은 알아? 참는 것으로 말하자면 난 천하무적이야!"
그 말은 절대로 거짓말이 아니었다. 강옥랑은 정말 악독하고 참
을성이 많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는 벌써 소미미의 동굴에서 죽
었을 것이다.
철평고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강옥랑은 화무결에게 웃으며 말을 건냈다.
"우리는 비록 원수지간이지만 지금은 같은 처지가 됐소. 더군다
나 원래 당신과 나는 좋은 친구가 아니었소?"
화무결은 그저 그를 멍하니 바라볼 뿐 아무 반응이 없었다.
강옥랑의 웃음섞인 목소리가 계속 말했다.
"내 앞에서 그런 행세를 할 필요가 있겠소? 다른 사람을 속일
수는 있어도 나를 속이지는 못 할 것이오."
그러나 화무결은 여전히 그를 상관하지 않았다.
"당신 같이 영리한 사람이 이렇게 될 줄이야. 우리는 필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당신을 실토하게 할 테니 그렇게 되면 고생일 것이
오."
화무결은 눈 한번 깜박하지 않았다.
"당신은 자신이 그 비밀을 소앵에게 말한 것이 후회 되어서 다
시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지!"
화무결의 얼굴은 여전히 나무토막처럼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강옥랑은 철평고에게 말했다.
"그 늙은 호랑이가 그의 혈도를 점했는지 좀 봐주겠니?"
철평고는 화무결의 몸을 살핀 후 말했다.
"손발의 복토혈과 태음의 태횡혈을 점했군요."
강옥랑은 화무결에게 말했다.
"이런 것으로 보아서 백산군 부부는 완전히 너에게 마음을 놓은
게 아니야. 그래서 너의 혈도를 점했어......."
"만약 당신이 정말 넋을 잃었다면 그들은 이렇게 당신의 혈도를
점하지도 않았을 것이오."
철평고가 탄식했다.
"당신은 말을 알아듣지도 못 하는데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말했다.
"그 이화접옥의 비결 중에 두 가지만 나에게 말해 준다면 당신
의 혈도를 풀어서 내보내 주겠소!"
철평고가 다시 말했다.
"생각을 해봐요. 그가 그 비밀을 당신에게 이야기해 줄 것 같아
요?"
"전부를 이야기하라고 하면 해주지 않겠지. 하지만 한두 가지만
으로 목숨과 교환하면 응답을 할 걸."
"그러나...... 그는 정말 백치가 되지 않았더라도 달아날 힘은
없을 거예요."
"그의 무술로는 십분의 팔구의 힘이 손상됐다 해도 달아날 기운
은 있지. 더군다나 나는 그를 위해 백산군 부부를 막을 수가 있
어."
그는 말을 하면서 화무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화무결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목석처럼 앉아 있었다.
강옥랑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언젠가는 당신이 나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 것이오. 그
렇게 되면......."
그는 말소리를 멈추었다.
이때 백산군 부부와 도약사가 걸어 들어왔다.
백 무언은 강옥랑의 앞에 와서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도 아프냐?"
강옥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프오...... 매우 아프오."
백 부인은 가볍게 그의 양어깨를 주무르면서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이러면 아프지 않지?"
"아프오...... 아프오. 정말 아프오. 다만...... 다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연 그는 비참한 소리를 질렀다.
백 부인은 그의 어깨를 한쌍의 손으로 꽉 쥐고 있었다.
강옥랑의 아픔은 엄살이 아니었다. 그는 온 몸의 모든 골격이
부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백 부인은 여전히 웃음띤 얼굴로 부드럽게 물었다.
"좀 어떠냐?"
강옥랑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 소리쳤다.
"제발 부탁이니...... 손...... 손을 놓아 주시오......."
철평고는 급히 백 부인쪽으로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백산군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웃음을 보였다.
"아가씨, 질투를 하는 것인가?"
철평고가 소리쳤다.
"당신들에게 아무 잘못도 없는데 당신들은 당신들은...... 왜
그이를 이렇게 대하는 거예요?"
백 부인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왜 가슴이 아프냐?"
"그이를 이렇게 대하려면 차라리 나를 죽이세요."
"다만 그의 뼈를 주물렀는데 그토록 가슴이 아프냐? 만약 그를
죽이면 너는 더 마음이 아프겠지?"
철평고는 미칠 것만 같았다.
"당신들은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당신들은......."
"우리가 그를 놓아 주기를 바라겠지?"
철평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 부인은 여유를 보이며 말했다.
"네가 우리를 위해 한 가지 일만 해주면 우리는 즉각 그를 놓아
주겠다."
철평고는 생각할 여유도 없이 즉각 말했다.
"좋아요. 좋아......."
"무슨 일이든 모두 승낙을 하는 것이지?"
"그를 놓아 주기만 하면 무슨 일을 해도 괜찮아요."
백 부인이 탄식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남녀지간의 애정의 힘은 이토록 크구나!"
그녀는 손을 놓고 가볍게 강옥랑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러더
니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
"자식, 과연 재주가 있구나. 여자가 이토록 너에게 도취하게 만
들수 있으니 말이다."
도약사가 돌연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소앵이 소어아에게 반한 정도는 더욱 무섭지!"
백산군도 따라서 크게 웃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이 더욱 쉬워지겠군."
"그렇소!"
백 부인은 백산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묘책이 성공하지 않은 적 있어요?"
백산군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없지. 우리 부인의 묘책은 성공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지."
"당신은 이곳에 남아 있어요. 그리고 이 두 사람은 당신이 알아
서 맡아요."
백산군은 미소를 띠웠다.
"마음 놓고 빨리 가기나 해요."
철평고는 강옥랑의 몸에 엎드려서 울음을 터뜨렸다.
백 부인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
"빨리 나를 따라 와라...... 그리고 기억해 두어라. 네가 만약
말을 듣지 않고 일을 망치게 되면 너의 강옥랑은 나의 손에 죽고
말 것이다."
소어아는 애가 탔으나 찬찬히 마음을 가라 앉히며 걸음을 늦췄
다. 너무 급히 서두르다가 중요한 흔적을 스쳐갈까봐 염려가 되었
기 때문이다.
깊은 밤은 지났다. 그러나 산에는 구름이 덮혀 있었으며, 그 속
에서 무림 고수들이 남겨 놓은 발자국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
다.
그는 우선 하나의 개울을 찾았다. 그리고 먼저 세수를 한 후 잠
시 휴식을 취했다. 그는 자기의 상처를 만져보았다.
상처는 별로 심하지 않았지만 무서운 것은 독이었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 쉬며 행공을 해보았다. 곧 그는 이미 몸
속의 독이 모두 제거되었음을 깨달았다. 다만 침대에 너무 오래
누워있었기 때문에 온 몸이 찌뿌둥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 계집애는 나의 상처가 무척 심하다고 하더니...... 나를 가
지 못하게 하려고 그랬구나. 아 여자들! 누가 여인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그러다가는 한평생 여자의 노예가 되고 말지.)
그러나 소앵의 따뜻한 정을 생각하자 그는 가슴이 달콤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든 간에 한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유쾌
한 일이었다.
그는 개울 옆의 돌에 앉아서 한참 동안 생각을 거듭했다. 어떻
게 화무결을 찾아야 할까를 생각하고 있을 때 돌연 개울을 따라
빨간색의 물건이 흘러 내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소어아는 몸을 일으켜 나무 가지로 그 물건을 건졌다. 그것은
여인의 치마였다. 그 위에는 섬세한 자수가 수놓여 있었다. 부인
이 입는 것 같았다. 허리 부분이 이미 찢어져 있었고 마치 남에게
강제로 찢긴 것 같이 보였다.
소어아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런 깊은 산에서 여자의 치마를 벗기다니? 이 여자가 혹시 겁
탈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혹시 위무아 문하의 계략이 아닐까 하고도 생각했다. 그러
나 위무아의 동굴은 서쪽에 있었고 이 개울은 동남쪽에 있었다.
바로 이때 개울에 다른 빨간색의 물건이 또다시 흘러 내려왔다.
그것은 여인의 신발이었다.
소어아는 웃으며 중얼거렸다.
"자식 치마를 벗겼으면 됐지 신발까지 벗겨?...... 발 냄새를
맡아 보자는 것인가?"
그는 이 일이 화무결의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단정했다. 화무결
은 치마를 입지 않을 뿐더러 빨간 신발도 신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소어아는 호기심과 의협심이 움직여 그 놈을 처벌하고
싶어졌다.
소어아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이끼가 돋은 험준한 바위들이
가득한 지형이었으나 그는 과감히 몸을 날렸다.
그는 돌들 위를 뛰면서 네다섯장을 나아갔다. 그러다가 그는 물
속에서 찢겨진 물건을 또 하나 발견했다.
소어아는 양미간을 찌푸렸다.
"자식, 여자들은 비록 별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여자를
괴롭히는 남자는 더욱 나쁘지!"
그는 다시 앞으로 걷다가 또하나의 물건을 발견했다.
역시 이미 다 찢겨진 옷가지였다.
소어아는 중얼거렸다.
"하나의 여자가 아니라 두 명의 여자였군!"
그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그 옷가지를 손에 잡고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이런 산중에 이런 옷차림의 여자가 둘씩이나 나타나다
니.......)
바로 이때,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매우 가느다란 소리였지만 다급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소어아는 돌 위에서 한참 동안 움직일 줄 모르다가 입가에 신비
스러운 웃음을 보이더니 중얼거렸다.
"여인...... 여인...... 왜 내가 가는 곳에는 이상한 여인들이
득실거리는 것일까?"
개울의 상류에는 폭포가 있었다. 그 아래로 커다란 바위 하나가
그 물결을 받고 있었다.
거대한 바위에 부딪치는 물결은 사방으로 튀기며 우렁찬 소리를
냈다.
물보라가 뽀얗게 이는 그 광경은 정말 장관이 아닐 수가 없었
다.
그 거대한 바위 위에 두 명의 여자가 눕혀져 있었다.
그들의 몸은 전라의 상태였다. 폭포가 그녀들의 몸 위로 쏟아지
고 있었고 그녀들은 맨 살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소어아는 그곳까지 다다르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일종의 죄악의 유혹이 깃들어 있었고 남자들을 가슴 뛰게 하고,
자기를 억제하지 못 하게 만들 광경이었다.
안개, 구름, 샘물, 폭포, 전라의 미녀, 비참한 형벌...... 정말
불가사의한 광경이었다.
소어아는 계속 중얼거렸다.
"누가 행한 짓일까? 정말 미친 놈이다!"
그 두 명의 여인은 사람이 온 것을 보자 떨리는 목소리로 구원
을 청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소어아는 큰소리로 외쳤다.
"너희들은 혼자서 움직이지는 못 하느냐?"
한 여자가 애걸했다.
"제발 부탁이니...... 우리를 살려 주세요!"
"당신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은 어디 있소?"
그 여자의 목소리는 점점 약해졌고 소어아는 하나도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들과 두장쯤 거리가 되는 돌 위에 서있었
다.
두 장의 거리라면 웬만한 경공으로는 한 번에 건너가기가 어려
웠다. 그러나 천하의 어떤 남자가 이런 상황을 보고도 건너갈 생
각을 하지 않을 수 있으랴!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그저 방
관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 남자가 악한이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이 두 여자를 구한
후, 필시 덕을 볼 생각을 할 것이다. 그리고 남자가 옳바른 사람
이라 하더라도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유혹을 뿌리치기는 힘든 것
이었다.
그러나 소어아는 그저 자리에 서있다가 돌 위에 앉아 그들을 쳐
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돌 위의 여인은 물론 백 부인과 철평고였다.
백 부인은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해낸 계책은 정말 기발한 것이었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것이었고 강한 유혹력으로 상대방을 항거
할 수 없도록 계산된 것이었다.
그녀는 상대방이 총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더욱 조심성을
다 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는 나무에 매달려 힘을 썼으니 필시
물을 마셔 야 할 것이다. 더우기 영리한 사람은 일을 하기 전에
냉정을 찾으려 할 테니까. 필시 휴식을 취하며 다음으로 취해야
할 방도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황산에서 물을 마실 수 있는 곳
은 이 개울 뿐이었다.
남자들은 개울에서 여인이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는 징조를 발견
하면 필시 그 상황을 알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그녀의 아름다운 육체를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
다.
그러나 그녀는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이미 나이가
먹은 그녀의 육체가 유혹력을 감소시킬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
서 철평고도 끌어 들였다.
철평고가 소어아를 한 번 구해 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강옥랑이 그들 부부를 찾아 왔을 때 그녀는 비단 강옥랑의 내력
을 잘 알아 두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데려온 여자의 내력도 꼬치
꼬치 캐물었다.
강옥랑은 그녀의 믿음을 얻기 위해 철평고의 모든 일을 말했다.
그녀는 소어아가 철평고와 인연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찌
소어아가 철평고를 보고도 구하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바위는 폭포에 닮고 이끼가 끼어 매우 미끄러웠다. 방기 중
앙에 움푹 들어간 곳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그 위에 설 수가
없었다.
백 부인과 철평고는 그 움푹 들어간 곳에 누워 있었다. 만약 소
어아가 구하러 가다가 가볍게 딛기만 해도 물 속으로 빠지고 말
상황이었다.
도약사는 물 속에 숨어 있었다. 그는 대나무 대롱을 물 밖으로
내밀고 호흡을 하고 있었다. 소어아가 떨어지기만 하면 잡히게 되
는 것이었다. 불 속에 빠져 경황이 없는 사람을 잡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폭포 아래의 매끈한 바위 위에는 이렇게 교활한 계책이 도사리
고 있었다. 소어아가 아무리 큰 재주가 있다 해도 건너 오기만 하
면 빠지게 되고 말 일이었다.
그러나 소어아는 구하러 올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멀리서 구경
만 하고 있었다. 자칭 총명하다고 으시대는 백 부인이 어찌 이러
한 상황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폭포의 물은 매몰찼다.
백 부인은 비록 내력이 뛰어났지만 물의 압력으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 할 지경에 이르렀다.
소어아는 천연덕스럽게 그곳에 앉아 신발을 벗고 물 속에 발을
씻고 있었다. 그 태도는 매우 유유자적했다.
얼마가 지나자 그는 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했다.
"맑은 샘물로 발을 씻다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여인의 구경거리가 있으니,
이 아니 기쁜 일인가!
인생이 이러면 또 무엇을 바라겠느냐?"
백 부인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저 자식은 사람도 아냐...... 이미 나의 계획을 눈치챘단 말인
가?"
이 말은 물론 철평고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거센 물소리에 소
어아가 엿들을 염려는 없었다.
철평고는 매우 창피스러웠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필시 알았을 거예요!"
"이 계획에는 절대로 허점이 없는데, 어찌 알았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천하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이라 하더니 그
것이 틀림 없군요."
그녀의 공력은 백 부인 보다 못 했다. 이때 이미 그녀는 물의
압력으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직 정신이 맑았
기에 말은 똑똑히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백 부인은 싸늘하게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에게 눈치를 채게 하려는 것이냐? 잊지 말아라. 너의 애인
옥랑이 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이 일을 성공리에 완수하지 못 하
면 너는 결혼도 해보지 못 하고 과부가 될 것이 분명해!"
자승자박(自繩自縛)
강옥랑에 대한 말을 듣자 철평고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녀는
비록 강소어를 속이기는 싫었지만 강옥랑이 죽는 것은 더욱 싫었
다.
분명히 강옥랑이 천하 제일의 나쁜 놈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강옥랑은 그녀의 전부이기도 했기 때문
이다.
남자는 돈과 폭력으로는 여인의 몸을 정복할 수 있어도 마음까
지는 절대로 정복하지 못 한다. 그러나 달콤한 말로는 마음도 녹
일 수가 있는 것이다.
철평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잠시 후 백 부인이 다시 물어보았다.
"너는 그 사람을 한 번 구한 적이 있지?"
"음!"
"왜 그는 너를 구해 주지 않는 것이지?"
"어쩌면...... 어쩌면 그가 아직 나를 몰라 봤을지도 몰라요."
"그렇지. 남자는 미인을 바라볼 때 몸만 보고 얼굴은 소홀히 할
때가 많아."
철평고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돌연 소어아의 눈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기의 가슴과 다리를 가리
고 싶었다......."
그러나 강옥랑을 위해 그녀는 움직이지를 못 했다.
백 부인이 또 말했다.
"지금 고개를 저쪽으로 향하고 사람 살려 달라고 애절한 목소리
로 말해라. 소리를 너무 크게 지르지도 말고 그렇다고 너무 작게
해서도 안 돼. 그의 귀에 간절하게 들릴 수 있도록 해야 돼. 알았
지?"
철평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소어아를 향해 외쳤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그러나 소어아는 발을 다 씻고 돌 위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다.
백 부인은 그것을 보자 이를 갈면서 말했다.
"간사한 놈, 마음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이때 돌 밑에서 한 사람이 불쑥 대답했다.
"내 말이 맞지? 이 고기는 잡기가 힘들어!"
알고 보니 도약사가 참을 수 없어 고개를 반쯤 내밀었던 것이
다.
백 부인이 급히 말했다.
"빨리 내려가. 그에게 발각되기 전에 어서!"
도약사는 웃으며 말했다.
"그가 아무리 재주가 좋다 해도 눈길을 꺾을 수가 있겠소? 어찌
돌 뒤를 불 수 있겠소?"
백 부인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나왔다.
"당신이 보기엔 그가 우리의 계획을 눈치챘을 것 같아요?"
"당신이 보기엔 어떻소?"
"이 계획은 절대로 완벽한데 그가 어찌 알아차릴 수가 있겠어?"
"그럼 그는 왜 오지를 않지?"
"저 자식도 천생에 의심병이 있나 보군. 의심이 많아서 오지 않
고 저쪽에서 상황을 살피려고 하는 것 같아."
도약사는 물에 흠홈뻑 젖은 머리를 털며 쓴웃음을 보였다.
"우리는 여기서 고생을 하는데 그는 저기서 재미를 보고 있으니
이대로 가다간 우리가 어찌 견디겠소?"
"그는 바로 우리가 참을성이 있는가를 보고 있는 거야. 우리가
움직이면 우리의 계획이 깨지게 되는 것이지."
도약사는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애석하기는 해도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소."
"그럼 어떻게 해? 이 자식은 물고기보다 더욱 뺀질거려. 만약
눈치채게 되면 다시는 그를 잡지 못 할 거야."
"우리 세 사람의 힘으로 한꺼번에 덤벼들면 그 놈이 어떻게 하
겠어?"
백 부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듣기에 저 자식은 나이는 젊어도 무술도 뛰어나고 간사하다고
하더군. 낌새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즉시 달아나버릴 텐데. 이화
궁주도 그를 어떻게 할 수 없었다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
도약사는 안타까운 마음을 억누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 그렇다면 버틸 수밖에 없군. 그러나 얼마나 더 버틸 수 있
을지 의문이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일각이라도 더 버티어 봐야지."
그러나 바로 그때 소어아가 돌연 일어섰다.
백 부인은 놀랍고도 기뻐서 급히 말했다.
"빨리 내려가요. 이젠 고기를 낚게 되요."
도약사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물 속으로 들어갔다.
소어아가 중얼거렸다.
"이건 계책이 아닐 거야. 그렇지 않다면 그녀들이 이토록 오랫
동안 참을 수는 없지."
그는 탄식을 하면서 다시 중얼거렸다.
"계책이 아니라면 마땅히 내가 가서 그녀들을 구해야지."
그는 다시 신발을 신었다.
백 부인은 그가 곧 오게 될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철평고는 울음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이미 강옥랑의 문제를 잊었고, 심지어는 큰소리를 쳐서
소어아에게 오지 말라고 알리고 싶었다. 꼭 소어아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생사의 순간에 가슴 깊이 있었던 도덕심이 되살아났기 때
문이다.
그러나 백 부인은 눈치를 채고 무섭게 외쳤다.
"너의 애인을 잊지 말아라!"
철평고는 열렸던 입을 다물고 혀를 물었다. 하고픈 이야기는 사
라졌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어아가 이때 소리쳤다.
"아가씨, 두려워 마시오. 내가 곧 갈테니까!"
그는 이렇게 소리를 치면서 바위쪽을 향해 몸을 솟구쳤다.
백 부인은 그의 자세를 보자 약간 실망했다.
백 부인은 그의 자세가 필시 멋있을 것으로 상상했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가볍지도 않았으며 보기 좋지도 않았다. 엉성하게 몸을
놀리는 것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원숭이 같았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여 그물을 쳤고 그 고기를 잡게 되었으나
그 고기는 너무 작았다.
백 부인은 속으로 탄식했다.
(영리한 사람은 과연 고생하여 무술을 배우지는 않는구나. 그의
무술이 이 정도라는 것을 알았다면 굳이 이토록 고심할 필요가 없
었을 것이다.)
이때 풍덩 하며 소어아가 물 속에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어아는 온갖 힘을 다하여 바위를 잡으려 했지만 돌이 너무 미
끄러웠기 때문에 잡지를 못 한 것이다.
그는 '꼴깍꼴깍' 하는 소리를 내면서 몇 모금의 물을 마셨다.
그는 들이킨 물을 코로 내뿜으며 소리쳤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나 죽는다......."
사람을 구하겠다고 온 사람이 오히려 자기를 구해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백 부인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백 부인은 소어아
의 무술과 수성(水性)이 이렇게 형편없는 줄은 몰랐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는 도약사가 대기하고 있던 곳과는 거리가
꽤 떨어진 곳에 떨어졌다. 그렇지 않았다면 도약사가 이미 소어아
를 손에 넣었을 것이다.
소어아는 소리도 치지 못 하고 물장구를 치며 물 속으로 가라앉
으려 했다.
백 부인은 중얼중얼 욕설을 퍼부었다.
"만약 네가 필요 없다면 정말 죽게 내버려 두고 싶다."
그녀는 일어서려고 하다가 도약사가 뒤에서 돌아와 소어아의 발
끝까지 다가가는 것을 보자 그대로 사태가 잘 되어가는가를 주시
했다.
그러나 이때 소어아는 어찌된 일인지 물에서 힘을 주며 솟구쳤
다.
그는 손에서 가볍게 환약을 하나 튕겨냈다. 그것은 도약사가 숨
을 쉬던 대나무 대롱 속으로 떨어졌다.
그리고는 소어아는 급히 손을 내밀어서 그 대나무 대롱을 낚아
챘다.
도약사는 다만 소어아의 발을 볼 수 있었을 뿐 물 위의 상황을
볼 수는 없었다. 그는 뭔가 짭짤하고 냄새나는 것이 목구멍을 타
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구역질을 느끼며 그것을 뱉어내려
고 했으나 순간 입에 물었던 대나무 대롱이 뽑혀져 나가고 말았
다. 그는 당황하여 물과 함께 그 냄새나는 것도 삼켜 버리고 말았
다.
도약사가 물 속에서 고생하고 있는 것을 백 부인은 위에서 알
리가 없었다.
그녀는 다만 '화라락 화라락' 하며 물장구를 치는 소리를 들었
을 뿐이다.
이때 소어아가 대나무 대롱으로 급히 그녀의 발 밑의 용천혈을
점했다.
백 부인은 죽은 말처럼 돌 위에 누워서 움직이지 못 하게 되었
다.
백 부인은 자신의 혈도가 점해지자 영문도 모르고 마치 꿈을 꾸
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뿐 놀라지는 않았다. 그녀가 곁눈으
로 도약사를 보니 그는 옆의 바위 위에서 눈물, 콧물을 흘리고 있
었다.
그녀가 다시 소어아를 바라보니 소어아는 어느새 처음에 있던
돌위로 돌아가 있었다. 그는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아
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자약 했다.
백 부인은 그제서야 고기를 낚으러 간 사람이 고기에게 낚인 것
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한편으로는 놀라고 한편으로는 분노가 들끓었다.
"빨리...... 빨리 나의 혈도를 풀어요."
도약사는 눈을 비비면서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무...... 무슨 혈도요?"
"용천혈이야!"
도약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소어아는 자기를 바라보며 빙긋빙
긋 웃고 있었다.
"내가 만약 당신이라면 절대 그녀를 구하지 않겠소."
이 말에 도약사의 손이 공중에서 멈추었다.
"왜?"
"남을 구할 힘이 있으면 우선 자기를 구하시지요."
이 말을 들은 도약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방금 그...... 그게 도대체 무엇이었소?"
"그것도 모르겠소?"
도약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독...... 독약인가?"
"그럼 보약인줄 아셨소"
도약사는 전신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소어아가 다시 말했다.
"내가 구해주기를 바란다면 앉아서 움직이지 마시오......."
백 부인이 소리쳤다.
"그의 말을 듣지 말아요. 우선 나의 혈도를 풀어요. 그럼 내가
당신을 구할 방법이 있어요."
소어아가 크게 웃었다.
"당신이 그를 구한다고? 그가 무슨 독에 중독이 되었는지를 아
시오?"
"무슨 독이든 난 해독할 방법이 있으니까!"
"그런 말은 세 살짜리 어린애에게 해도 믿지 않을 것이오."
"어떻든 간에 우선 나의 혈도를 풀면 해독약을 강제로라도 얻을
수가 있지."
"당신들 두 사람으로는 나에게 어림도 없소!"
두 사람은 서로 한마디씩을 주고 받았고 도약사는 백 부인의 말
을 들어야 할지 소어아의 말을 들어야 할지 어쩔 줄을 모르고 있
었다.
철평고는 놀랍고도 기뻤다. 그녀는 멍하니 있다가 돌연 물 속으
로 뛰어 들어갔다.
백 부인은 도약사를 향해 급히 소리쳤다.
"당...... 당신은 왜 손을 쓰지 않는 것이지?"
도약사는 탄식을 하며 쓴웃음을 띠웠다.
"비록 당신을 구하고도 싶지만 나의 목숨도 소중하오."
백 부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는 나를 위해 목숨을 걸 수도 있다고 하더니 모두 잊었단
말인가?"
"남자가 여자를 쫓아다닐 땐 항상 여자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
고 하지. 그 말대로 한다면 천하의 남자들은 모두 죽어버렸을 것
이오."
백 부인은 눈을 크게 뜨고 할 말을 잃었다.
소어아는 박수를 치면서 웃었다.
"좋아 좋아. 그 말은 정말 맞소. 천하의 여인들이 모두 들어야
할 말이오."
이때 철평고가 헤엄쳐 와서 돌 위로 올라서려 했다. 그러나 그
녀는 몸 위에 전혀 옷을 걸치지 않았기 때문에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소어아는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철평고는 고개를 수면 가까이까지 숙였다.
소어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군자가 아니라고 생각할 테지. 군자라면 절대로 너를 이
렇게 바라보지 않을 테니까. 그들은 보려면 몰래 바라보겠지!"
철평고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당신...... 당신이......."
"내가 고개를 돌렸으면 좋겠지?"
철평고는 젖은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고개를 돌려주지. 그런데 묻고 싶은 것은 거기에
누워있을 때는 창피해 하지 않더니 지금은 어째서 부끄러워 하는
것이지."
"난...... 난 다만......."
"나를 함정에 빠뜨릴 생각이었지, 그렇지? 그러나 함정에 빠진
사람은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야."
이 말이 나오자 철평고는 얼굴이 하얗게 되었고 목소리도 떨렸
다.
"당신...... 당신은 왜 자꾸 나를 억울하게 만들어요?"
"억울하다고?...... 하하 너는 몸도 움직일 수가 있고 말도 할
수 있는데 왜 나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지?"
"그것은 내가...... 내가......."
그녀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눈물만 주루루 흘릴 뿐
이었다.
소어아가 말했다.
"울 필요는 없어. 난 화무결이 아냐. 네가 아무리 울어도 난 동
정하지 않아."
그는 탄식하며 다시 중얼거렸다.
"정말 모르겠다. 왜 많은 사람들이 남자가 일을 저지를 때엔 욕
을 하고, 여자가 일을 잘못하면 용서해 줄 수 있는가 말이다."
철평고는 온 몸을 떨면서 소리쳤다.
"난 용서를 빌지는 않았어요. 절대로 용서를 빌지는......."
소어아의 웃음소리가 그녀의 말을 막았다.
"좋아 나도 네가 부탁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 나를 배반하면
그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난 용서를 못 해. 나도 마찬가지야. 내
가 남을 배반해도 용서를 빌지는 않을 거니까."
그는 눈을 크게 뜨고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왜 나를 배반했는가 하는 것이야.
무엇 때문에?......."
철평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신이 너무 오만하고 이기주의이고 무엇이든지 남보다 강하다
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남의 손에 죽기를 바라겠어요."
소어아는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 그녀의 말은 악에 바쳐 나오
는 것이 아니고 그를 그만큼 생각하고 있었기에 나온 말이었다.
"여인이 큰소리로 말을 할수록 진실이 아니야. 네가 이렇게 말
을 하는 것은 네가 원해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말 못 할 사정이
있기 때문일 거다. 어쩌면 내가 정말 너를 용서해야 할지도 모르
지."
철평고는 오히려 넋을 잃고 말았다. 이 사람이 하는 일과 하는
말은 모두 사람을 놀라게 했다. 누구든 영원히 그의 마음을 알 수
가 없었다. 그가 천하에서 가장 악한 사람으로 생각되는 순간에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소어아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계속 말을 이었다.
"어쩌면 너와 가까운 사람이 그들의 손에 빠졌기 때문에 그 사
람을 구하기 위해 나를 배반했을 게다."
그는 탄식을 하면서 계속 말했다.
"정 그렇다면 너를 나무랄 수는 없지. 나는 다 알고 있어. 여자
들은 자기 마음의 사람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까지도 버릴 수가 있
다는 것을."
이 몇 마디의 말은 철평고의 가슴 깊이 파고 들었다. 그녀는 소
어아가 이토록 남의 고충과 마음을 이해하는 줄을 몰랐다. 그녀는
그의 품속으로 뛰어 들어 통곡을 하며 자기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도록 울고 싶었다.
소어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누구인데 네가 이렇게 희생할 필요가 있을
까?"
철평고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당신...... 당신은 알 거예요. 그러나 난 내 입으로 말할 수가
없어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소어아는 누구 때문인지 짐작이 갔다.
소어아의 안색이 변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
로 말했다.
"강옥랑을 말하고 있느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말을 인정하는 것과
같았다. 소어아는 돌연 펄쩍 뛰면서 큰소리로 소리쳤다.
"좋아, 좋아. 강옥랑 같은 잡종을 위해 나를 팔아 먹어! 너는
그 자식이 얼마나 못된 놈인지 아느냐? 백 번 이상 죽어야 할 놈
이야!"
철평고는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
소어아의 노기도 보통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랬다면 난 용서할 수가 있어. 그러나 그
를......."
철평고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누가 용서를 빌었어요?"
소어아는 울부짖는 그녀를 보자 깊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사실 너를 욕한 것이 아니다. 그 자식이 달콤한 말을 잘 하기
때문이지. 너 뿐 아니라 너 보다 열 배 이상 영리한 여자일지라도
그에게 속아 넘어가고 말지."
철평고는 아직까지 물 속에 떠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지쳐서 어
찌할 바를 몰랐다.
소어아의 마음은 평온을 되찾았다.
그는 웃으며 일어서서 도약사에게 말했다.
"좋아, 당신은 과연 영리해서 움직이지를 않았군. 당신 같은 영
리한 사람이 마누라를 맞이하면 불행한 일이오!"
도약사가 탄식을 했다.
"난 마누라가 없소!"
소어아는 놀라면서 백 부인을 바라보았다.
"재미있군. 그렇다면 당신은 내 상상보다 더 영리하군...... 그
러나 저런 여자는 남자가 없다면 미쳐버릴 텐데 그의 남편은 어디
에 있소?"
그는 눈동자를 몇 번 굴리더니 즉각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그 늙은이는 강옥랑을 돌보고 있겠지?"
"바로 그렇소."
소어아는 몸을 가볍게 날려 도약사가 있는 돌 위로 올라섰다.
소어아는 웃으면서 백 부인을 바라보았다.
"당신 같은 늙은이가 아직까지도 그렇게 피부가 좋다니 흔치 않
은 일이군. 당신은 남편도 있고 애인도 있는데 왜 나를 찾소?"
백 부인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영리하다면 한 번 알아 맞춰 보시지!"
"당신들은 비록 화무결을 잡았지만 그가 이화접옥의 비밀을 이
야기 하지 않아서 나를 찾는 것이야. 당신들은 소앵이 나 때문에
애태우는 것을 알고 나를 빌미로 소앵을 협박하여 비밀을 알려는
것이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 부인은 이미 얼굴색이 납덩이처럼
변하고 있었다. 그에게 알아 맞추라고 했지만 그가 이토록 정확히
알아 맞출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 했다.
소어아는 크게 웃었다.
"이제야 나를 상대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겠소?"
백 부인은 분했으나 어찌할 수가 없었다.
소어아는 말했다.
"그러나 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이렇게 옷을 벗고 자신을
괴롭힐 필요는 없지. 이건 당신이 남에게 자기의 나체를 보이고
싶어하기 때문일 거야. 어떤 미친 놈들은 여자를 향해서 소변을
보기 좋아한다던데 당신의 병과 별 차이가 없군."
백 부인은 입술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 말로 소어아에게 욕설을 퍼부었
다. 그러나 소어아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눈길을 돌렸다.
물에 잠겨 있던 철평고는 나오지도 못 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
다. 물은 차가웠다. 그녀는 입술까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마음
속으로는 슬프고 부끄러워서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 뿐이었다.
이때 소어아가 큰소리로 도약사를 향해 말했다.
"당신은 이 철 아가씨가 나와 어떤 사이인줄 아시오?"
도약사가 말을 받았다.
"모르오."
"그녀는 나의 생명의 은인이고, 나의 좋은 친구요. 그녀가 지금
물에 잠겨서 나오지를 못 하고 있으니 내 마음이 어떻겠소?"
그가 갑작스레 이런 말을 하자 철평고는 자신이 기쁜지 놀라운
지 알 수가 없었다.
도약사의 대답이 들려왔다.
"각하는...... 필시...... 가슴이 아플 것이오."
소어아는 노한 듯 소리쳤다.
"내가 가슴이 아플 줄 알면서 왜 옷을 벗어 그녀에게 주지 않는
것이야!"
도약사는 쓴웃음을 보였다.
"그럼 나는?"
"산 사람은 옷을 입어야 하지만 죽은 시체가 옷을 입어 무엇하
겠소."
도약사는 아무말도 하지를 못 했다. 그는 급히 옷을 벗어 철평
고에게 던져 주었다. 철평고는 그 옷을 받아들고 입어야 할지 말
아야 할지 잠시 망서리고 있었다.
소어아가 다시 도약사를 향해 말했다.
"철 아가씨가 옷을 입는 동안 네가 한 번이라도 바라본다면 너
의 눈알을 파내겠다. 알았지?"
도약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내가 그런 것이나 쳐다볼 기분이겠는가?)
소어아가 다시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긴 뱃속에 냄새나는 독약이 있는데 백 명의 여자가 앞에서
옷을 갈아 입는다 해도 볼 마음이 들겠어?"
그러는 동안에 철평고는 옷을 모두 입었다.
소어아는 뒷짐을 진 채 말했다.
"옷을 다 입었는지 모르겠는데!"
도약사가 대답했다.
"다 입었소."
소어아는 고개를 돌리며 크게 노했다.
"몰래 보았구나!"
"아니...... 아니오."
"몰래 보지 않았으면 어떻게 다 입었는지를 알았지?"
"제...... 제가......."
소어는 한바탕 호쾌한 웃음을 웃었다.
"사실 좀 훔쳐봤다 해도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겠느냐."
도약사는 소어아를 쳐다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실 그의 무술은 무림의 고수에 속했기 때문에 무림 중에 그를
이길 사람이 얼마 없었다. 그런데 이런 어린 아이에게 놀림을 당
하게 되자 정말 생사를 걸고서라도 한 번 싸우고 싶었다.
그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번민하고 있을 때 소어아가 어깨를 툭
치더니 또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분 나빠 할 필요는 없소. 병신만이 자기의 목숨을 가
볍게 여기지. 나에게 순복하는 것이 영리한 생각이야. 남들이 결
코 당신을 업신여기지는 않을 것이오."
도약사는 한숨을 내쉬며 탄식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정말 얼르고 뺨치는 놈이로구나)
소어아는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나를 위해 한 가지 일만 해준다면 곧 해독약을 주겠
소."
도약사는 쓴웃음을 보였다.
"정말 나에게 해독약을 주지 않는다 해도 결국 해야 되지 않겠
소?"
"하하, 그렇지!"
"그렇다면 명령을 들어야지요."
"그녀의 남편에게 나를 안내해 주시오!"
도약사는 화무결이 백산군의 손에 있는 것을 생각하자 오히려
화무결로 협박을 하면 해독약을 얻을 수도 있을 지 모른다고 생각
했다.
"그렇게 하지요."
"좋아, 갑시다."
도약사는 백 부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소어아는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옷을 벗고 목욕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그대로 내
버려 두시오."
얼마 안 되어 그들은 그 돌집 가까이에 다다랐다. 집안은 조용
했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어아는 돌연 손을 내밀어서 도약사의 손을 잡고, 무거운 소리
로 말했다.
"그들이 집안에 있는가?"
"그렇소."
소어아는 양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집안에 세 명이나 있다면서 왜 아무소리도 없지?"
철평고가 한마디 했다.
"내가...... 내가 우선 가보죠."
소어아는 다른 한 손으로 그녀를 잡고 무거운 소리로 말했다.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을 그리 서두루는 것이지?"
"나를 생각해 주세요. 그를 죽이지는 마세요."
"왜 그를 살려 두려는 것이지?"
철평고는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렸다.
소어아는 여인의 눈물을 보자 탄식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 자식이 빨리 죽을수록 너에게 좋다는 것을 알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끝장이야."
철평고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 인생은 이미 끝장이 났어요. 당신이 만약 그를 죽이면
난...... 난 살아가지도 못 할 거예요."
소어아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그 자식이 이미 너를 깊숙히 속였구나. 그러나 나는 군자가 아
니니 날 믿으면 안 돼!"
"입으로는 그렇게 말해도 당신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아요. 당신...... 당신...... 그이를 죽이지는 않겠지요?"
소어아는 돌연 도약사를 향해 무섭게 말했다.
"그들에게 어서 나오라고 해. 들었어?"
도약사는 헛기침을 하며 외쳤다.
"백형, 나오시오. 동생이 왔소."
그의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산을 울렸다. 그러나 여전히 조용
할 뿐 집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번에는 소어아가 소리
쳤다.
"백씨, 너의 애교넘치는 마누라가 나의 손에 잡혀 있다. 정 나
오지 않는다면 마누라를 팔아 버리겠다!"
도약사는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내가 들어가 보겠소."
소어아는 생각을 거듭한 후 말했다.
"좋아, 네가 먼저 들어가거라. 하지만 만약 허튼 수작을 하면
죽여버리겠다!"
도약사는 탄식을 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들어갔다. 그는
문을 열자 강옥랑이 구석에서 떨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백산군과 화무결은 보이지 않았다.
어형과 강형의 만남
도약사와 철평고는 의아한 생각에 동시에 놀랐다. 그러나 소어
아는 강옥랑을 바라보자 화가 치밀어올랐다.
강옥랑은 그를 바라보자 비굴한 웃음을 보였다.
"알고 보니 어형이 오셨군요. 오래간만이군요."
소어아는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었다.
"누가 나를 너와 형제라고 하던가?"
"어형, 그러지 마시오. 우리는 한때 생사를 같이 하던 사이가
아니오?"
"애석하게도 그때 너를 죽이지 못 했지. 그렇지 않았으면 연 대
협이 어찌 너의 손에 죽었겠느냐?"
그는 말을 하면서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는 달려가 강
옥랑의 얼굴을 후려쳤다.
강옥랑은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얻어맞은 후 소리쳤다.
"어형, 좀 봐주시오. 나는 이미 병에 걸려 맞을 힘도 없소."
소어아는 더욱 노했다.
"얻어맞기를 두려워한다면 왜 그런 악한 짓을 했지?"
철평고는 곁에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감히 말리지를 못 했다.
강옥랑이 소리쳤다.
"나의 병히 완쾌된 후 다시 싸움을 합시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영웅이 아니오."
소어아는 싸늘하게 웃었다.
"누가 날더러 영웅이라더냐? 내가 만약 영웅이었다면 벌써 너를
죽였을 것이다."
그는 다시 주먹을 들어 강옥랑을 후려쳤다. 철평고는 고개를 돌
리고 차마 보지를 못 했다. 그러나 소어아는 그를 죽일 생각은 없
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일격에 그를 해치우지 않겠는가.
그것을 눈치챈 그녀는 마음이 아팠으나 한편 안심이 됐다.
강옥랑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평아, 왜 그를 말리지 않지? 너는 그의 생명의 은인이니 그는
너의 말을 들을 거야. 너는 내가 죽는 걸 이대로 보고만 있겠느
냐?"
철평고가 탄식을 했다.
"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런 교훈을 받은 뒤 제발 마음을 좀
고치라는 거예요. 당신이 마음을 고친다면 난 죽어도 좋아요."
강옥랑은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 제꼈다.
"좋다, 나를 죽여라. 내가 이맛살을 찌푸리면 사람이 아니다."
소어아가 말했다.
"사나이 행세를 하려고? 좋아, 더 때려주지!"
강옥랑은 여전히 크게 웃을 뿐이었다.
"그러나 정말 나를 죽이면 다시는 화무결을 볼 생각을 하지 마
시오!"
소어아의 주먹이 돌연 공중에서 멈추었다. 새삼 그제서야 백산
군과 화무결이 집안에 없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강옥랑은 크게 웃었다.
"왜 안 때리시오?"
소어아는 그의 멱살을 움켜잡고 무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화무결은 어디에 있지?"
"그를 만나고 싶소?"
"어서 말을 하지 않겠느냐?"
"그를 만나고 싶다면 공손히 나에게 부탁을 해야지......."
소어아는 다시 주먹을 쥐며 말했다.
"잡종 같은 놈, 내가 너에게 부탁을 해?"
"좋소. 때리시오. 그러나 주먹으로는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 할
것이오. 당신이 나라면 얻어맞고도 말을 하겠소."
소어아는 돌연 크게 웃으면서 소리쳤다.
"내가 때렸어?...... 내가 언제 때렸지?"
그는 강옥랑의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며 일으켰다.
"강형, 오랜간만이오. 요즘 어떻소?"
강옥랑은 껄껄 웃었다.
"좋아요. 다만 방금은 미친 개에게 물렸었지."
소어아도 크게 웃었다.
"미친 개는 미친 개만 문다고 하던데 강형은 미치지도 않았고
개도 아니면서 어찌 미친 개에게 물렸소?"
"그렇다면 제가 잘못 보았군요."
"하하하, 강형은 나를 너무 그리워했는지 눈이 빨개지도록 운
것 같은데 혹시 시력이 나빠져서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오?"
"그렇소. 나는 어형의 근황이 궁금했소. 혹시 정신병에 걸리지
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슴을 애태웠지요. 하하 가슴이 탔어
요!"
"나는 그렇고 강형 같은 사람은 필시 아무 병도 없을 것으로 생
각했는데, 그러나 오늘 이렇게 만나보니 강형은 마치 정신병에 걸
린 것처럼 땅에 앉아 떨고 있군요."
두 사람은 서로 노래를 부르듯 얘기했다.
도약사는 한쪽에서 그들이 하는 짓을 바라보다가 어이가 없었던
지 쓴웃음을 지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재미있군. 내가 아는 놈들 중에 꽤 말을 잘 한다고 뻐기
던 놈도 이 두 소년에 비하면 천지 차이야."
소어아가 다시 말했다.
"이렇게 적막한 곳에 혼자 있었으니 혹시 귀신이 찾아올까 두렵
지는 않았소?"
"그건 어형이 걱정할 필요가 없소. 요즘 주머니가 비어 있으니
만약 귀신이 찾아오면 팔아서 몇 냥의 은과 바꾸어 술을 먹겠소.
더군다나 조금 전까지도 나는 혼자 여기에 앉아 있지는 않았었
소."
"어? 누가 여기에 있었단 말이오?"
"그중의 하나가 화씨이며, 어형도 알 텐데요?"
"화무결인가?"
강옥랑이 웃음을 보였다.
"바로 그놈이오!"
"나도 그를 찾아 할 일이 있는데 그는 지금 어디에 있소?"
"저는 어형과 그가 맞서게 될 것을 알고, 그가 당신을 괴롭힐까
봐 죽이려고 했소."
소어아가 껄껄 웃어댔다.
"강형이 그를 죽이면 나에게는 편리한 일이지요. 살인은 피곤한
일이니까."
강옥랑도 껄껄 웃어댔다.
"그러나 생각을 해보니 내가 직접 그를 죽여봐야 별 이득될 것
도 없어서 그에게 약을 먹였지요."
도약사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백...... 백산군도 너의 약을 먹었느냐?"
강옥랑이 대답했다.
"많이 먹지는 않았으니까 삼 일 내지 오 일이면 깨어날 수 있을
것이오."
삼 일 내지 오 일 동안 졸도할 정도의 약이면 깨어나도 병신이
아니면 폐인이 되고 말 것이다.
소어아는 눈알을 돌리며 돌연 크게 웃었다. 두 사람은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다.
철평고와 도약사는 그들이 왜 웃고 있는지 영문도 몰랐다.
소어아는 배를 매만지며 말했다.
"재미있어! 배가 터질 것 같군."
강옥랑도 크게 웃으며 말했다.
"화 공자와 백산군이 나의 한줌 하얀 가루약으로 까물어치다니
정말 재미있는 일이야!"
소어아는 고개를 저으며 계속 웃었다.
"내가 웃는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야!"
"그럼 어형은 왜 웃고 있는거요?"
소어아는 갑작스레 웃음을 그치고 강옥랑을 쏘아보며 말했다.
"강형은 곧 죽을 사람처럼 힘이 없는데 어찌 칠팔십 근의 남자
를 업어 감출 수 있겠소. 정말 웃기는군."
도약사도 그제서야 생각했다.
(그렇지, 소어아를 속이는 것은 과연 쉬운 일이 아니군.)
그러나 강옥랑은 여전히 유유자적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들이 나의 약에 중독되지 않았다면 어디로 갔겠소?
백산군이 화 공자를 데리고 산책이라도 나갔단 말이오?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재미있는 일이지."
"그렇지, 산책을 간다 해도 너를 데리고 나갔을 거야. 어찌 너
를 혼자 여기에 놓아두었겠나!"
"잘 아는군요."
"그러나 만약 화무결이 도망친다면 그 백씨가 쫓아가지 않을
까?"
"물론이죠."
"그 정도의 일이라면 너를 버려두고 가겠지?"
"어형은 과연 상상력이 풍부하군요. 하지만 화 공자는......."
"소어아는 애가 타서 말을 되받아 물었다.
"화 공자가 어떻게 됐지?"
"이분 도 선생에게 물어보시오. 화 공자가 걸을 수 있는가를?"
소어아는 도약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말해보시오."
도약사는 탄식을 하며 말했다.
"화 공자는 비단 혈도가 점해졌을 뿐만 아니라 큰 타격을 받고
제정신이 아니오. 몸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소."
소어아는 고개를 비틀고 손으로 자기의 이마를 계속 치면서 웃
음을 참으려는지 쿡쿡 거렸다.
"그렇다면 그들이 정말 당신에게 당했단 말이오?"
"흐흐, 그렇지요!"
순간 소어아의 눈에서 빛이 반짝했다.
"정말 네가 그들을 업고 갔단 말이냐?"
"나의 병은 때때로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오. 발작을 할 땐 온
몸이 뒤틀려서 내장이 터질 정도로 괴롭지만 발작하지 않을 땐 좀
힘들기는 해도 사람쯤은 업을 수가 있소."
소어아는 도약사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옥랑은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내 말이 맞죠?"
"거짓말이 아니군...... 하지만 넌 왜 돌아왔지? 몸이 가려워서
얻어맞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냐?"
"평아가 아직 그들의 손에 있는데 어찌 갈 수가 있겠소? 어형이
와서 나를 죽인다 해도 여기서 평아를 만나야지요."
소어아는 빙그레 웃었다.
"강옥랑이 언제부터 그런 다정한 사람이 됐지. 재미있
군......."
철평고는 벌써 강옥랑에게 매달려 울기 시작했다.
소어아는 탄식을 한 뒤 중얼거렸다.
"병신 같은 계집애! 방귀에서 향내가 난다해도 그의 말을 믿어
볼 작정인가?"
그는 도대체 여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자에게 반하
기만 하면 분명히 자기가 속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믿고 싶어하는
것이다.
철평고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상처가 어때요? 아파요?"
강옥랑은 가볍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는 부드러
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를 보면 아프지 않게 되는구나!"
"그러나 난...... 난......."
강옥랑의 목소리는 더욱 부드러워졌다.
"네가 일부러 내가 얻어맞는 것을 보고 싶어 그런 것이 아니라
는 것을 난 알아. 너를 이해하지!"
소어아가 이들을 바라보고 서있다가 돌연 소리를 지르며 말했
다.
"됐어 됐어, 보기도 싫어. 너희들의 연극은 언제나 끝나지?"
"무슨 분부라도 있소."
"지금 물건이 너의 손에 있으니 네가 주인이야. 무슨 조건인지
말을 해 봐라!"
강옥랑은 서서히 웃으며 말했다.
"어형은 내가 병을 어디서 얻게 됐는지 아시오?"
소어아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혹시 소앵이......."
"그렇소. 나의 병은 소 아가씨가 준 것이오. 형은 그 아가씨와
친하다죠?"
"내가 그녀를 모르고 있다면 이런 일들이 생길 수 있었겠느냐?"
"만약 어형이 소 아가씨를 찾아가 나의 병을 치료해주겠다면 나
도 곧 화 공자를 찾아 그의 병을 치료해드리겠소."
"소앵이 만일 거절한다면?"
"천하에 어형의 말을 안 들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소?"
소어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여인...... 여인...... 아, 내가 한 명의 여자도 모른다면 얼
마나 행복하겠는가!"
강옥랑은 입가에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허락하는 것이오?"
"좋아, 가자."
이때 도약사가 갑자기 소리쳤다.
"안 가는 것이 좋겠소!"
강옥랑은 그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왜?"
"소 아가씨는 곧 이곳에 도착할 것이오."
강옥랑은 놀라며 양미간을 찌푸렸다.
"어찌 그녀가 곧 여기에 올 줄을 아시오?"
"소 아가씨는 소어 공자에 대해 정이 깊으니 소어 공자가 떠난
이상 찾아나섰을 것이오."
강옥랑은 손뼉을 치며 웃었다.
"어형의 마력이 과연 대단하군요!"
그런 그는 다시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나 꼭 여기를 찾아온다는 보장은 없지 않소?"
"그건 염려할 필요가 없소. 필시 찾아 올 테니까."
강옥랑은 생각을 거듭한 후 웃으며 말했다.
"그렇겠지. 어형이 그녀를 협박할 생각이었으니까 필시 길에다
약간의 흔적을 남겨 그녀를 찾아오게 했겠지?"
소어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그녀를 기다리도록 하지."
백 부인이 돌 위에서 겨우 조금씩 조금씩 몸을 움직여 폭포줄기
의 힘으로 혈도를 풀었다.
그러나 그녀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경공을 써 몸을 날릴 수도
없었으며 헤엄을 칠 힘도 없었다.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돌연 맞은편의 잡초 속에서
한쌍의 눈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백 부인은 재빨리 가슴을 위로 내밀고 애교있게 웃으며 혼잣말
처럼 말했다.
"자식, 여자가 목욕을 하는 것을 처음 보았느냐?"
그 사람은 넋을 잃은 듯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백 부인은 웃으며 다시 말했다.
"눈에 뭐가 생길까 걱정하지 않는다면 아예 나와서 보라
고...... 가련한 녀석, 여자가 목욕하는 것도 보지 못 했으니 꽤
심심하게 살았겠군."
그 사람이 돌연 말했다.
"나...... 나도 여자예요."
그는 말을 하면서 풀숲에서 일어섰다. 옷은 지저분했지만 몸매
는 아름다왔다.
백 부인은 약간 실망했다.
백 부인은 그녀의 가냘픈 허리며 튀어나온 가슴과 긴 다리를 바
라보았다.
"너는 정말 아름다운 여자이구나. 눈이 멀었다 해도 할 말이 없
군...... 먼 길을 가는 것 같은데."
"음!"
"여기는 외진 곳인데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지?"
그 소녀는 멍하니 한동안 서있다가 말했다.
"나...... 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요."
"이 산 부근에 사는 사람은 내가 모두 알고 있지. 아가씨는 누
구를 찾지?"
소녀는 고개를 숙인 채 탄식을 했다.
"당신은 그이를 모를 거예요."
하여튼 간에 깊은 산속에 들어와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필시 무
슨 곡절이 있는 일이었다.
만약 평상시였다면 백 부인은 그 사유를 물어보았을 것이다. 그
러나 지금 자신을 돌볼 틈도 없는데 어찌 남의 비밀을 알아볼 심
정이 있겠는가!
그 소녀는 서서히 몸을 돌리더니 생각에 빠져 명하니 걸어가기
시작했다.
백 부인은 급히 소리쳐 불러세웠다.
"아가씨! 아가씨의 이름을 말해줄 수 있겠어?"
소녀는 주저하며 말을 하지 않으려 했다.
백 부인은 여전히 웃음을 보이며 다시 말했다.
"남자들은 종종 우연히 만난 사람과 깊은 우정을 맺기도 하는데
우리 여자들은 왜 그렇게 할 수가 없을까? 여자의 마음이 너무 좁
은 탓일까?"
소녀는 얼굴은 붉히더니 뒤로 돌아서 입을 열었다.
"나의 이름은 철심난이에요."
철심난은 개울 옆에 주저앉았다.
이 며칠 동안 그녀는 마음이 복잡했다. 그녀는 소어아와 화무결
을 찾아 온 산천을 헤메고 다녔다.
그러나 어디서 그들을 찾아야 할지 정말 막막했다.
철심난은 며칠만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자 약간 긴장이
풀렸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밑이 닳은 신발을 벗고 발을 물 속
에 담궜다.
오랫동안 걸어다녀 피곤했던 발을 시원한 물에 담구자 그녀는
날아 갈 것 같은 상쾌함을 느꼈다.
그녀는 가볍게 신음을 하면서 눈을 감았다.
백 부인이 그녀의 태도를 살피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처럼 시원하게 목욕을 하지 그래?"
철심난은 눈을 뜨며 얼굴을 붉혔다.
"여기서 목욕을 해요?"
"왜?"
철심난은 시원한 물을 바라보자 마음이 움직였으나 조용히 웃었
다.
"그러나 여기서...... 여기선......."
"나는 매일 한번씩 이곳에서 목욕을 하지만 너 이외에 다른 사
람은 만나본 적이 없어."
철심난은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정말 이곳에는 사람이 오지 않나요?"
"사람이 자주 온다면 내가 어떻게 여기서 목욕을 하겠어?"
철심난은 마음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난...... 난 역시 발이나 씻는 것이 좋겠어요."
백 부인은 애교있게 웃으며 말했다.
"나를 두려워하느냐? 내가 여자인줄을 몰라?"
"장님이라 해도 알 수가 있죠. 그래도......."
"눈을 감을 테니 옷을 벗고 물 속으로 들어와요. 난 보지 않을
테니까!"
철심난은 여전히 주저했다.
백 부인은 이미 눈을 감고 웃으며 말했다.
"무엇이 두려워?"
철심난은 다시 맑고 깨끗한 물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정말 몸
이 가려웠다.
백 부인이 웃으며 다시 말했다.
"됐어?"
철심난이 급히 말을 받았다.
"아직...... 눈을 뜨지 마세요."
그녀는 풀숲으로 숨어 급히 말을 받았다. 비록 그녀는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으나 볼이 붉게 상기됐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옷을
벗은 그녀는 급히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시원한 물이 그녀의 몸
을 포옹했다.
그녀는 그제서야 숨을 내쉬며 거짓없이 웃었다.
"됐어요!"
백 부인이 눈을 떠 그녀를 바라보았다.
"좋으냐?"
철심난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음."
"좋아, 나도 물 속으로 내려갈테니 나를 좀 도와줘!"
그녀는 그제서야 숨을 내쉬며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양다리는 힘이 빠져 있었다. 만약 그녀를 부축하는 사람
이 없었으면 물살에 떠내려갈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철심난은 그녀를 부축하면서 말했다.
"당신...... 당신은 지금 가려는 것이에요?"
백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저쪽으로 가서 있을테니 안심하고 목욕을 해요."
"하지만 멀리 가지는 마세요."
"너 같은 미인이 목욕을 하는데 내가 어찌 갈 수 있겠어?"
철심난은 귀까지 붉어졌다.
백 부인이 그녀의 부축을 받아 뭍으로 올라섰다.
"좋아, 옷을 입어야겠군."
철심난은 눈을 감고 보지 않았다. 그녀는 백 부인의 유혹적인
육체를 보기가 민망했다. 그녀는 여자의 육체가 비단 남자에게 유
혹이 될 뿐만 아니라 여자에게도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고 생각
했다.
이때 백 부인은 그녀의 옷을 입고 있었다.
옷이 비록 더러웠지만 입지 않은 것보다는 나았다. 전라로 길거
리를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철심난은 한동안 눈을 감고 있다가 백 부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옷은 품질은 좋지만 너무 헌 것이 됐구나!"
철심난은 급히 눈을 떴다. 순간 얼굴이 노랗게 변해버렸다.
"어째서 내 옷을 입는 것이죠?"
"내가 너의 옷을 입지 않으면 누구의 옷을 입겠어?"
철심난이 놀라서 소리쳤다.
"당신...... 당신의 것은?"
"난 옷이 없기 때문에 널더러 목욕을 하라고 했던 거야. 좀 더
러워도 상관없지!"
철심난의 목소리는 떨려왔다.
"당신이 내 옷을 입고 가면 난 어떻게 하죠?"
"여기서 좀더 씻어라. 이곳을 왕래하는 사람이 적은 수는 아니
니까. 비록 모두가 남자이긴 하지만, 남자들이라고 모두 색골은
아니지. 어쩌면 좋은 사람을 만나서 옷을 빌려줄지도 몰
라......."
철심난은 너무나 다급해서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백
부인은 유유히 웃으며 말했다.
"남자의 바지를 입어본 적이 있나? 비록 크긴 해도 넓어서 바람
이 잘 통하니 좋을 거야!"
철심난이 얼굴을 붉히면서 소리쳤다.
"이 미친 여자야! 빨리 옷을 내놓아라!"
그녀는 금방이라도 물에서 뛰어나올 것 같았다.
백 부인은 박수를 치며 놀려댔다.
"사람들아! 이리와봐요. 이 여자는 옷을 입지 않았군요!"
철심난은 물 속에서 나오려다가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당신...... 적어도 나에게 하나쯤은 남겨줘야지......."
그러나 백 부인은 그녀를 상관하지 않고 웃음소리를 남기며 훌
쩍 떠나버렸다.
철심난은 분노한 나머지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욕을 해댔다.
"너는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야. 암캐이고......."
백 부인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웃으며 말했다.
"싫도록 욕해라! 그러면 부근의 남자들이 다 이곳으로 모이게
될지도 모르니까."
철심난은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아무소리도 하지 못 하게 되었
다.
그녀는 물 속에서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차라리 빨리
죽고 싶었다.
두 여인(二女人)
백 부인은 그곳을 급히 빠져나갔다. 그녀는 소어아와 그녀의 남
편과 도약사의 행방이 궁금했다.
그녀는 정신없이 집을 향해 가다가 돌연 나뭇가지에 몇 개의 옷
이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붉은색의 수가 놓여 있는 그 옷은
아주 진귀한 것 같았다.
그녀에게는 지금 보물이 눈앞에 있다 하더라도 별로 탐내지 않
았을 것이다. 그러나 깨끗한 옷은 유혹이 매우 컸다.
백 부인의 마음이 움직였다.
그녀는 그 옷을 향하여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옷을
어떻게 할까 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이런 좋은 옷이 나무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옷은 어디에서 나타났을까? 어찌 이런 황산의 숲속에 걸려있을
까?)
백 부인은 중얼거렸다.
"어쩌면 간계가 있을지도 몰라. 이미 괴로움을 많이 당했는데
더 이상 귀찮은 일을 당하고 싶지는 않구나."
그러나 그 옷은 아주 섬세한 고급품이었다.
여자가 아름다운 옷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것은 마치 남자가 아
름다운 여자를 보고 못 본 척 하는 것과 같았다.
백 부인은 크게 호흡을 한 뒤 결심을 하고 생각했다.
(이건 다만 하나의 옷이다. 이빨이 생겨서 나를 물기라도 하겠
나?)
그녀는 손끝으로 옷을 살짝 만져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하나의 옷에 불과했고 아무런 병도 이상도
없었다. 그녀는 드디어 나뭇가지에서 옷을 내렸다.
백 부인은 나무 밑에 혹시 함정이 있는가 하고 살폈다. 또 나무
가 무슨 이상이 없나 살폈다. 그녀는 마치 큰 적을 만난 것처럼
조심했다.
그러나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 옷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져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백 부인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철심난의 누더기 같은 옷을
벗어버리고 새옷으로 갈아입었다. 새옷의 촉감은 마치 애인의 부
드러운 손길과도 같았다. 그러나 백 부인은 돌연 온 몸이 가려운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한 마리 벌레가 그녀의 옷 속에 기어들어
온 느낌이었다.
그러나 한 마리의 벌레가 열 마리로 변하고, 백 마리로, 천 마
리로 늘어난 것처럼 그녀는 온 몸이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미칠 정도로 가려워서 걸음을 제대로 걷지도 못 했다.
긁을수록 더욱 가려웠다.
그녀는 너무나 가려워 긁어댈수록 기분이 좋은 것 같기도 했고
나쁜 것 같기도 했다. 또 웃고도 싶었고 울고도 싶었다.
잠시 후, 돌연 한 사람이 은방울처럼 웃으며 말하는 소리가 들
려왔다.
"기분이 어떻소?"
백 부인은 크게 놀라며 소리쳤다.
"누구냐?"
"나의 목소리까지 잊었는가?"
한 사람이 숲속에서 걸어나왔다. 그녀는 하얀 옷을 입고 있었으
며 사람의 혼을 빼버릴 만큼 매혹적인 자태를 하고 있었다.
바로 소앵이었다.
백 부인은 눈동자가 빠져버릴 것 같았다.
"이 옷은 너의 것이냐?"
소앵은 미소를 보이면서 말했다.
"내 새 옷인데 당신이 먼저 입었군요."
백 부인은 가려워서 몸을 긁으며 목소리를 떨었다.
"옷에 무엇이 있지?"
"아무 것도 아니지. 다만 가려운 약이니 며칠만 지나면 좋아질
거요."
백 부인은 마치 남이 목을 조르기라도 하듯 몸을 비틀었다.
그녀는 미칠듯이 가려웠다. 차라리 채찍으로 얻어맞고 싶었다.
한 시간도 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데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한다
니......."
소앵이 웃으며 말했다.
"그 옷을 입고 애인을 만나러 가려고 했는데 더럽히거나 찢어지
면 변상을 해야 되오."
백 부인은 미친 여자처럼 옷을 벗어던지며 소리쳤다.
"나는 너와 아무런 원한이 없는데 너는 왜 나를 해치려는 것이
냐?"
"잘 생각을 해봐요. 나를 괴롭히지 않았는가를?"
백 부인은 옷을 완전히 벗었는데도 몸은 여전히 가려웠다. 그녀
는 땅을 구르며 눈물을 흘렸다. 나중에는 애걸까지 했다.
"아가씨, 동생, 내가 잘못했으니 나를 용서해요!"
"가려운 것이 정말 그토록 괴로운가요?"
"세상에 가려운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어!"
"화무결을 훔쳐서 데리고 간 사람이 누구요?"
백 부인은 급히 말했다.
"나야."
소앵은 얼굴을 찌푸렸다.
"어디에 숨겨두었지요?"
"계곡에 한 채의 집이 있는데......."
"돌로 만든 집을 말하는 거예요?"
"어딘지 아는가?"
소앵이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대답했다.
"정말 그 사람을 거기에 숨겨두었소?"
"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나?"
소앵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황산에 그런 돌집이 있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아요?"
백 부인은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보아도 아무런 이상한 점을 발
견할 수 없었다.
"그 집이 무슨 이상이라도 있나?"
소앵은 고개를 가볍게 저을 뿐 다시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백 부인은 그 일을 자세히 물어볼 경황이 없었다. 다만 가려움
증을 멈추게 하고만 싶었다.
"모든 것을 이야기했으니 나를 놓아주겠지?"
"당신이 지금 어디에서 왔는지 똑바로 이야기 하시오?"
"저쪽 개울에서!"
"그럼 당신은 그곳으로 돌아가시오!"
철심난은 기가 막혔다. 그녀는 사방을 둘러보며 혹시 누구라도
갑자기 나타날까봐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 주변은 조용
했다. 너무나 조용하여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철심난은 물밖으로 나가려고도 했다. 그러나 나체의 여자가 어
디로 간단 말인가? 만약에 남자를 만나게 되면.......
그녀는 더 이상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이때 앞에서 한 나체의 여인이 달려 오는 게 아닌가? 그녀는 급
히 물 속으로 뛰어들어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철심난은 놀랍고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왜 옷을 벗고 다시 돌아왔을까? 철심난은 도무지 알 수
가 없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그녀만을 쳐다보았다.
백 부인은 물 속에 뛰어든 후에야 가려움이 멈추었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철심난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자 미소를 지
어 보였다.
"내가 다시 돌아와서 이상한가?"
"음!"
백 부인이 미친 여자처럼 깔깔 웃어댔다.
"난 모든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다만 목욕만은 환영하지!"
철심난은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며 소리쳤다.
"나의 옷은 어디에 있어? 빨리 돌려줘!"
이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이 당신의 옷인가요?"
철심난이 고개를 돌리자 소앵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소앵이 개울 옆에 서있었다. 마치 갓 피어난 연꽃 같았다.
철심난은 그녀 자신도 여인이었지만 넋을 잃고 말았다.
소앵은 웃으면서 재차 물어 보았다.
"이것이 당신의 옷인가요?"
철심난은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였다.
"내것이오!"
"목욕을 하기 싫으면 빨리 입으시오."
철심난은 같은 여자였지만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옷을
입지 않을 수도 없었기에 재빨리 물 속에서 나와 옷을 받아들고는
숲속으로 달려갔다.
백 부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도 이제 밖으로 나가 옷을 입고 싶군."
소앵이 담담히 말했다.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시오. 당신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으
니까!"
백 부인은 돌 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물밖으로 나오자 다시 죽
도록 가렵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시 물 속으로 뛰어들고 말았다.
소앵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나오겠소?"
백 부인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이대로 계속 물 속에만 있을 순 없잖아?"
"가렵지 않게 되면 수시로 나올 수가 있소."
"그럼...... 그럼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지?"
"하루, 혹은 삼 일...... 하여튼 당신은 목욕을 좋아하니 기분
이 나는데까지 목욕을 해보시오."
백 부인은 놀라 졸도할 지경이었다.
이때 철심난은 옷을 다 입고 숲에서 나왔다.
"아가씨, 감사하오."
그녀가 몸에 걸친 옷은 비록 지저분했지만 막 목욕을 끝낸 모습
은 매우 아름답게 보였다.
소맹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남자들은 모두 줄을 서서 당신에게 구혼을 해야 할 거예요. 그
런데 당신 같이 예쁜 여자가 왜 이런 산속을 헤메고 있죠? 누구를
찾고 있나요?"
철심난은 얼굴을 붉혔다.
"나...... 난......."
"남자예요?"
"그래요."
"어떤 사람이 그렇게 복이 많죠?"
"그 이...... 그 이는......."
"나에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어요. 알지도 못 할 테니까요. 절
따라 오세요. 좀 쉬게 해드릴테니까요."
철심난은 그녀의 뒤를 따라 한참을 가다가 가볍게 탄식을 했다.
"당신처럼 차라리 그를 모르는 게 나을 거예요."
소앵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왜죠? 아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재주라도 있는 모양이지
요?"
철심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소앵은 돌연 고개를 돌려 큰 눈을 하고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
았다.
"그의 이름이 무엇이죠?"
철심난은 그녀의 변화를 미처 보지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인 채
가볍게 탄식을 한 뒤 말했다.
"성은 강이고 남들은 소어아라고 부르지요."
'소어아'라는 세 글자가 나오자 소앵은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그녀의 옆에서 걷고 있는 이 아가씨가 자기의 연적이라는 것을 깨
달았다.
철심난을 바라보는 그녀는 갑자기 가슴에 불길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소어아, 소어아! 당신은 과연 안목이 뛰어나군요.)
철심난은 소앵에게 웃으며 말했다.
"소어아! 소어아라는 이름이 있다니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요?"
소앵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재미있군요!"
"그러나 때때로 그는 사람을 죽고 싶도록 하기도 해요."
"그를 미워해요?"
"가끔은 그렇기도 하지만 그러나 때로는......."
소앵은 그녀의 말을 재빨리 가로챘다.
"그러나 때때로 죽도록 좋아한단 말인가요?"
철심난은 다만 지긋이 입술을 깨물고 얼굴을 붉힐 뿐 아무말을
하지 않았다.
소앵은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돌연 큰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가 꼭 당신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 않소?"
철심난은 눈이 점차 따뜻해졌고 입가에는 미소를 보였다.
"나에게 불친절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친절하거든요."
소앵은 그녀의 달콤한 미소를 보자 가슴이 다시 아팠다. 정말
철심난의 가슴에 수십 개의 구멍을 파서 영원히 소어아를 생각하
지 못 하게 하고 싶었다.
철심난은 여전히 그녀의 표정의 변화를 보지 못 하고 다만 멍하
니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았다. 마치 구름에서 소어아가 자기를 향
해 웃기라도 하는지!
그녀는 부드럽게 계속 말했다.
"나는 그를 알게된 지 오래 되었지요. 그 많은 시간 동안 그는
나에게 고통도 많이 주었지만 즐거움도 많이 주었지요. 사실
난...... 난 만족을 느끼고 있어요."
소앵은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고 일부러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에게 친절하다고 해도 꼭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오. 혹 모
든 여자에게 친절하고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지도 모르지."
"나에게 잘해주기만 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하든 상관 없
어요."
"질투하지는 않소?"
"어떤 남자든 한 여자가 결코 독차지할 수가 없죠. 소어아 같은
사람을 나는 잘 이해하기 때문에 질투는 하지 않아요."
이 말에 소앵은 약간 샐쭉했다.
"마음은 넓군요!"
그녀는 철심난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철심난이
조금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을 보자 오히려 자기의 행동이 우습다고
생각되었다.
"그건 당신이 한 남자 밖에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를 위
해 충실하기 때문이지요. 만약 많은 남자를 알게 된다면 달라질
거예요."
철심난은 안색이 약간 변했다.
소앵은 말을 계속했다.
"나의 말이 틀린 것 같아요?"
"나...... 난......."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소앵은 그제서야 그녀의 태도가 변한 것을 알았다.
"알고 있는 남자가 그 한 사람이 아닌 모양이지요?"
철심난은 고개를 떨구었다.
"음."
소앵은 눈치가 빠른 여자였다. 더구나 같은 여인의 심정의 변화
쯤은 쉽게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녀는 눈을 깜박거리면서 철심난의 손을 잡고 웃었다.
"다른 한 사람은 누구죠? 그보다 더욱 좋은가요?"
철심난은 얼굴이 더욱 붉어지면서 말을 하지 못 했다.
소앵은 은방울 같이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한 여자가 두 남자를 좋아하면 더욱 골치가 아프지. 그러나 재
미는 있겠지......."
철심난은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사이를 두더니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지금 나를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겠지요?"
"보는 사람마다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두 남자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 하는 것 뿐인데 그렇게 난처하게 느껴진단 말이에요?"
"난 일생을 소어아에게 받치기로 작정했어요. 그가 나에게 어떻
게 하든 간에 절대 변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러나......."
소앵이 빙그레 웃으며 재빨리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한 남자가 반항하지 못 하도록 친절하게 대단한
말이지요?"
철심난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떨어졌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친절한 것은 소유하고 싶은 것이 아니
고......."
"그가 그렇게 할수록 더욱 그에게 미안한 감을 느끼겠죠?"
"음."
"남자의 그런 수단을 난 벌써부터 알고 있어요."
"당신...... 당신은 그가 수단을 쓰는 것 같아요?"
"그런 수단은 정말 뛰어난 것이지요. 남자에 대해서는 약간 거
리를 두고 서둘지 말아야해요. 너무 성급히 다루다간 잃기가 쉬우
니까!"
그녀는 웃으면서 철심난을 힐끗 바라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나도 여자이니 여자의 마음을 잘 알지요."
"이건...... 이건 당신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하는 말이
에요."
"난 알아요. 그는 필시 소어아 같이 영리하고 귀엽고 재미있는
사람일 거야. 약간은 밉기도 하고."
"틀렸어요."
"어?"
"그와 소어아는 극단적으로 틀린 남자예요. 조금도 상통되는 점
이 없어요. 그는 여자에 대해선 조금의 농담도 하지 않아요."
"그런 집지키는 개 비슷한 사람이라면 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그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단 말인가요?"
철심난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나...... 난 좋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나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나에 대해서......."
그녀의 말소리는 모기소리보다 작아졌다. 소앵은 웃으며 말했
다.
"비단 당신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친절히 대한다는 말이지요?
그에게 감사를 하지는 않아도 감격을 해야 된단 말이지요?"
"음."
"그러나 감격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틀리다는 것을 알아야 돼
요!"
철심난은 입술을 깨물고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 잠시 후 체념
한 듯한 목소리로 서서히 입을 열었다.
"어쩌면 내가 그를 좋아한다 해도 그이는 나를 거부할지도 몰라
요."
"그 사람이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찌 친절하겠어요. 그
사람이 머리에 이상이라도 있단 말인가요?"
"그가 나를 돌보는 것은 소어아를 위해서예요."
소앵은 그제서야 크게 놀랐다.
"소어아를 위해 친절하다니 전 모르겠는데요."
"그는 나와 소어아......가 같이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는 소어아의 친구예요?"
철심난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말을 계속했다.
"그들은 좋은 친구라 할수도 있지요. 만약에 상대방이 위험이
있는 줄 알면 자기의 목숨을 걸고라도 구해요. 그러나 때때로는
너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싸우기도 해요."
소앵은 돌연 그녀가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한동
안 넋을 잃은 듯 말을 끊었다가 중얼거렸다.
"이 일은 정말 묘하게 되어버렸군."
"내가 이렇게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으니 저를 비웃는 것은 아
니겠지요?"
소앵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어찌 비웃겠어요? 마음에 꺼림칙한 일이 있다면 호소할
상대방이 있는 것이 좋죠."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처음 만났는데......."
"지금은 처음 봤지만 점차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금후의 일을 어떻게 알지요?"
소앵은 돌연 그녀의 손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당신이 좋아졌으니 내가 싫지 않으면 언니가 되어주겠어요?"
그토록 부드러운 부탁이 아름다운 아가씨의 입에서 나오는데 그
누가 거절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철심난은 소앵의 언니가 되어버렸다.
물소리와 새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을 타고 사람을 취하게 하는
꽃의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철심난은 지금까지 오늘처럼 기쁜 날이 있을 줄은 몰랐다.
소앵은 그녀의 손을 당기며 웃었다.
"지금은 당신이 나의 언니이니 이대로 소어아를 찾아가서는 안
돼요."
철심난이 말했다.
"왜?"
"남자들은 비겁해서 애타게 그를 찾을수록 만족스럽게 느끼고
거드름을 피우지요.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오히려 언니를
찾아올 거예요."
"그럼......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언니는 아무일도 할 필요 없이 조용히 기다리기만 하세요. 내
가 그 사람을 찾아올 수 있어요."
철심난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그러나 너는 그 사람을 알지도 못 하는데......."
"난 그 사람을 만난 적이 있어요."
"뭐?"
"눈이 크고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나 밉
게 보이지는 않고, 줄곧 웃고 있고 걸음걸이가 항상 오만한 자세
이지요."
"그는 천하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이지."
소어아를 생각하니 소앵은 매우 흐뭇해졌다.
"천하에서 가장 낯이 두꺼운 사람일 거예요."
"언제 그를 봤지?"
"얼마 안 됐어요. 한 이틀 전인가요?"
철심난은 길게 탄식을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한시도 제자리에 있지를 못 하지. 하루 전에
그를 봤지만 지금은 그가 어디에 있을지 몰라."
"안심해요. 그가 이 산에만 남아 있다면 찾을 수가 있으니까
요."
"무슨 방법이라도 있어?"
"난 이 산에서 자랐어요. 여기의 남녀노소는 모르는 사람이 없
지요. 그같이 특이한 사람을 찾는 것은 극히 쉬운 일이에요."
철심난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그럼 나...... 난 여기서 기다려야 한단 말이야?"
"여기선 내가 마음을 못 놓겠어요. 남이 또 언니의 옷을 속여가
면 어떻게 해요?"
그녀는 웃으면서 철심난의 말은 기다리지도 않고 계속 말했다.
"안전을 위해서 내가 지금 한 곳으로 안내를 하지요."
"어디로?"
"그곳의 주인은 나의 의부(義父)에요. 비록 얼굴은 못 생겼어도
마음씨는 매우 좋지요. 더군다나 나에 대해서는 아주 친절해요."
"이 언니까지도 마음을 너에게 주고 싶은데 너의 의부는 더 말
할 나위가 없겠지!"
그녀는 철심난이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보며 웃었다.
"나의 의부의 성은 위씨에요. 당신이 나의 언니라는 것을 알면
필시 잘 대해줄 거예요. 다만 그가 무섭게 생겼다고 겁을 내지는
마세요."
"무섭다면 보지 않으면 되겠지!"
소앵은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그래요. 좋은 방법인데요."
그녀는 철심난을 끌고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얼마를 걸은 후 소앵은 돌연 걸음을 멈추더니 말을 꺼냈다.
"아! 잊을 뻔했군. 약속이 있었는데."
"약속?"
"한 사람과 뒷산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시간이 다가오는군요. 어
떻게 하죠?"
"애태우는 것좀봐. 네가 마음을 주는 사람과의 약속이냐?"
"그렇지는 않아요."
철심난은 짓궂게 말했다.
"말하지 않으면 내가 따라가겠어."
소앵은 애교를 보이며 말했다.
"언니만 마음의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나는 안 된단 말이에요?"
철심난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애가 타지만 따라가지를 않겠어."
"저기 산쪽으로 가면 얼마 안 되서 바로 나의 의부(義父)의 집
이 보일 거예요."
"너는...... 날더러 혼자 가란 말이야?"
"혼자 가도 괜찮아요. 그곳에 가게 되면 자연히 마중나오는 사
람이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그들은 나를 알지 못 할 텐데?"
소앵은 머리에서 하나의 비녀를 뽑았다.
"이 비녀를 그들에게 보여주면 그들은 필시 공경하게 초대할 거
예요."
철심난은 좀 망설여졌으나 소앵의 말을 믿고 따르기로 했다.
소앵은 그녀가 떠나가는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때
돌연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불쌍한 계집애야, 자기가 남에게 팔려가는지도 모르다
니!"
또다른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이분 소 아가씨가 그녀를 너에게 팔지 않아서 참견하는
것이냐?"
세번째 사람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본래 그 철 아가씨가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분 소 아
가씨와 비하면 호박인 걸."
네번째 사람이 말했다.
"우리의 소어아가 호박에게 장가가게 할 수는 없지."
바위 뒤에서 돌연 네 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첫번째 사람은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으며 매우 낡은 옷을 걸치
고 있었다. 꼭 거지의 행색이었다. 그러나 손에는 긴 담뱃대를 들
고 있었다.
두번째의 사람은 계속 웃고 있었는데 얼굴이 둥글고 배도 둥글
었으며 나이가 적지도 않았는데 마치 어린애 같았다.
세번째의 사람은 머리를 보석으로 장식했으며 얼굴에 너무 많은
분을 바르고 있어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그가 아름다운지 추악한
지 늙은 것인지 젊은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얼굴은 분명히 여자였는데 몸에는 남자의 용을 입었으며 발에는
빨간색 신발을 신고 있었다.
네번째의 사람은 키가 큰 사나이였고 눈에는 빛이 감돌았다. 입
은 매우 커서 자기의 주먹까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식초를 많이 먹은 고기와 군자(君子)
소앵은 이 네 사람의 이름이 백개심, 합합아, 도교교와 이대취
라는 것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 네 사람을 만난 적은 있었다.
그녀는 직접 자기 눈으로 이 네 사람이 위마의를 상대하는 것을
보았다. 지금 이 네 사람이 나타나 그녀를 포위하자 그녀는 안색
이 변했다.
이대취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소앵 아가씨, 두려워할 필요는 없소. 이 이틀 동안 나는 위장
이 아파서 당신을 먹으려면 며칠을 기다려야 하오."
도교교가 옆에서 껄껄 웃었다.
"이런 아름답고 영리한 사람을 먹고 싶다고 하다니...... 아까
운데."
백개심이 빠질 리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먹는 게 좋겠어."
합합아도 한마디 거들었다.
"하하, 이대취가 그녀를 먹으면 너에게 무슨 이익이 있지?"
"난 팔릴 염려가 없으니까 안심할 수가 있지."
"하하, 그녀가 왜 너 같은 비렁뱅이를 팔아먹어?"
백개심은 입술을 씰룩였다.
"자기 언니까지 파는데 왜 나를 팔지 못 해?"
소앵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려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
"네 분은 철심난을 위해 따지러 왔나요?"
도교교가 탄식하며 말했다.
"그 계집애가 좀 불쌍하기도 해!"
"네 분께서는 내가 그녀를 속이는 줄 알면서도 왜 그녀를 막지
않았지요?"
백개심이 대답했다.
"그녀는 내 딸도 내 마누라도 아니야. 속든 안 속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 내가 왜 참견을 하지?"
합합아가 말했다.
"더군다나 위무아가 그녀를 좋아하게 되면 일이 재미 있어 지겠
지?"
도교교가 그 독특한 웃음을 껄껄 웃어댔다.
"여자는 남자를 얻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다하게 되지. 소어아 같
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여서라도 차지하려고 할 지
몰라."
"정 그렇다면 네 분은 무엇하러 왔소?"
이대취가 말을 받았다.
"하나의 일을 상의하기 위해서야."
"무슨 일이오?"
"하하, 물론 서로가 유익한 장사지. 승낙하겠느냐?"
"만약 서로에게 유익한 일이라면 왜 승낙하지 않겠어요?"
"좋아, 그럼 물어보겠는데 너는 소어아에게 시집가겠다고 생각
하고 있지?"
도교교의 물음에 그녀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꼭 그렇게 하겠어요."
"하하, 결심이 좋구나. 그러나 소어아와 함께 생활하는 것은 결
코 쉬운일이 아니야."
합합아는 소앵의 의도를 알아보기 위해 슬쩍 말해보았다. 그러
나 소앵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 쉬운 사람이었다면 나는 시집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예
요."
"시집가서 그와 잘 살 자신이 있느냐?"
"자신이 없는 일은 할수록 재미가 있죠."
도교교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 하면 재미가 없겠지?"
소앵은 탄식했다.
"그건 재미 없겠지요."
"좋아, 우리가 너를 도와서 소어아에게 시집가게 도와주지. 그
러나 너도 우리를 위해 일을 한 가지 해주어야겠어!"
"당신들이 정말 그럴 자신 있어요?"
도교교가 계속 말을 받았다.
"물론 자신이 있지. 잊지 말아라. 소어아는 우리가 키운 거야.
우리가 어찌 그의 성질를 모르겠어?"
"그럼 당신들은 날더러 무슨 일을 하라는 거예요?"
"그를 산 채로 위무아의 동굴로 데리고 들어갔다가 다시 산 채
로 데리고 나오는 거야."
"왜 그렇게 해야 하죠?"
"우린 그 애에게 무슨 물건을 가지게 하려는 거야."
소앵은 잠시 생각을 한 후 말했다.
"그가 승낙을 않는다면?"
도교교가 야릇한 웃음을 보였다.
"그는 지금은 꼭 가야 돼. 네가 철심난을 그쪽으로 보냈으니
까."
"만약 내가 승낙을 하지 않는다면?"
이대취가 기다렸다는 듯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승낙을 하지 않는다면 나의 위장이 곧 좋아지겠지."
"저는 대여섯 살 때 나무에서 떨어진 적이 있기 때문에 몸에 상
처가 있어요."
그녀는 웃으면서 계속 말했다.
"그러나 두어 곳을 제외하고는 내 고기는 어떻게 먹어도 맛이
있을 거예요. 다만 구워서 먹기에 적당한 고기는 아니에요."
그녀는 마치 친구들에게 요리 강습을 하는 것 같았다.
이대취 등 악인들은 그녀의 말에 너무 어이가 없어 잠시 할 말
을 잃었다.
이대취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나를 깨우쳐 주는구나. 그런 고기는 천하일품이지. 오래
간만에 제대로 된 일품 요리를 먹게 되겠는걸!"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비결도 알려드리지요."
"무슨 비결이지?"
"살아있을 때 고기를 베어서 요리를 해야 하는데 식초를 넣지는
마세요."
"고맙군. 나는 사람을 무수히 먹어봤지만 너 같이 친절한 사람
은 처음이야."
소앵은 서서히 그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좋은 음식을 보고도 그렇게 참을 수가 있어요?"
"벌써부터 참을 수가 없어지는데."
"참을 수 없다면 왜 손을 쓰지 않지요?"
"물론 손을 써야지."
그가 두어 걸음을 걸을 때까지 소앵이 여전히 앉아있는 것을 보
자 정나미가 떨어져서 그녀가 마치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주먹밥
처럼 생각되기 시작했다.
도교교가 돌연 말했다.
"이대취, 우선 앉아라. 내가 할 말이 있으니까."
그녀는 이대취를 한쪽으로 끌고가서 조용히 타일렀다.
"정말 그녀를 먹을 작정이냐?"
"일이 이렇게 됐으니 그녀를 놓아줄 수가 있어? 하여튼 내가 먹
는다 해도 소어아는 모를 테니까."
이대취는 여전히 웃으며 여유있게 앉아 있는 소앵을 한 번 바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저 계집애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봐라. 그녀가 아무 계책이 없는데도 저렇게 하겠어? 세
상에 그런 바보가 어디 있겠어?"
이대취는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지. 저 계집애는 계책이 많아서 필시 나를 함정에 빠뜨릴
계책이 있을 거야."
"알면 됐어."
"하지만 도대체 무슨 수로 나를 골탕먹이려고 하고 있을까? 자
기 몸에다 독을 칠해서 내가 먹으면 중독이 되도록 하려는 것일
까? 그러나 그 방법은 내 뱃속에 이미 들어간 후에나 효과가 있는
방법인데."
"그녀가 어찌 그런 못난 방법을 사용하겠어?"
"그것 외에는 이런 약한 여자가 무슨 방법이 있겠어?"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라면 다른 사람들이 그토록 그녀를 두
려워하지도 않았을 거야. 더군다나 당신은 그녀가 그저 약한 여자
로만 보이느냐? 위무아가 그녀를 보배처럼 생각하는데 무술을 물
려주지 않았겠어?"
이대취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너의 뜻은......."
"내가 보기엔 그만 두는 것이 좋겠어."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어. 그런데 이
제와서 저런 계집애에게 당하면 그것이야말로 억울한 일이지 않겠
어."
"그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지."
이때 소앵이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빨리 오세요. 기다리는 것만큼 고기가 늙는 거예요."
이대취는 크게 웃으며 이미 생각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너의 살은 너무 쉬어서 먹기가 싫다."
"먹어보지도 않고 어찌 쉬었다는 걸 아시지요?"
"나는 경험이 풍부해서 먹지 않고 그저 보기만 해도 알지."
소앵은 탄식했다.
"나의 고기가 쉬었다니, 혹시 내가 평상시에 식초를 너무 많이
먹은 것은 아닐까요?"
그녀는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
"더 볼 일이 없으면 이만 실례하겠소."
이때 돌연 백개심이 소리쳤다.
"잠깐만!"
소앵은 냉소를 보이며 말했다.
"귀하의 위장은 이 선생보다 좋단 말이오?"
백개심이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나는 그와는 틀리지. 그는 먹기를 좋아하지만, 난 색골이야."
그는 소앵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크게 웃었다.
"색단포천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
소앵은 자기도 모르게 뒤로 섬칫 물러섰다. 그러나 얼굴에는 여
전히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귀하께서 홀아비 생활이 싫어졌다면 중매를 서둘 수도 있소."
"네가 중매한다고?"
"저쪽 개울에 한 명의 미녀가 목욕을 하고 있소. 그녀는 나보다
더욱 매력이 있으며 재미도 있고, 더욱 고혹적이지요."
백개심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너만 필요하지 다른 사람은 필요 없어!"
그는 두 손으로 소앵을 잡으려 했다.
이때 이대취가 도교교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의 말을 듣지 말 걸 그랬어. 봐라, 하나의 맛좋은 고기가 개
의 입으로 들어가잖아?"
소앵은 너무 다급한 형편이라 무슨 수를 써야 좋을지 생각이 금
방 떠오르지 않았다. 도교교는 이대취의 말을 듣자 웃으면서 말했
다.
"그가 일단 쓰고 난 후 네가 먹을 수도 있잖아?"
"저 자식이 사용한 물건은 개도 먹기 싫어하는데 내가 어찌 먹
을 수 있겠어?"
'찍'하는 소리가 나면서 소앵의 옷이 이미 찢어지고 있었다.
바로 이때 한 사람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내 대장부가 어찌 여자를 괴롭히는 것이냐?"
비록 말소리는 침착하고 평온했지만 그 사람의 행동은 번개 같
았다.
백개심은 하나의 그림자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자 크게
놀라 급히 공격을 시도했다.
분명히 상대방의 복부를 목표로 악독하게 공격을 했는데 도중에
그는 무슨 힘에 휘말렸는지 오히려 자기의 따귀를 때리고 말았다.
이어서 이미 남이 자기의 머리채를 강한 힘으로 당기는 것이 아
닌가!
이대취 등 악인들은 그 그림자와 따귀 소리를 듣는 순간 백개심
의 몸은 이미 나무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소앵이 눈을 들어보니 하나의 멋있는 미소년이 우뚝 서있었다.
옷은 비록 남루하게 입었어도 고귀함을 갖추고 있었다.
소앵은 자기를 구한 사람을 보자 돌연 안색이 변하며 더듬거렸
다.
"다...... 당신은...... 화무결!"
화무결은 그녀를 향해 담담히 웃어보이고는 이대취 등 악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또 누가 손을 쓰겠소?"
이대취 등 악인들은 화무결을 보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화
무결은 그들을 몰랐지만 그들은 화무결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화무결이 비범한 무술로 모용자매를 상대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들 같이 영리한 사람들이 어찌 시비를 걸겠는가!
이대취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벌써부터 이 색골이 싫었는데 공자께서 지금 그를 교훈
했으니 그보다 더욱 좋을 수가 없지요."
도교교도 웃으면서 말했다.
"다만 공자는 너무 가볍게 손을 썼소."
합합아도 한 걸음 나섰다.
"하하, 공자가 그를 더욱 멀리 던져서 우리도 그 꼴을 보지 않
게 해주었으면 좋겠소."
백개심은 악인들이 화무결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를 부드
득 갈았다. 그는 나무에서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난 다만 그녀를 만지려 했지만 이대취는 그녀의 고기까지 먹으
려고 했어."
순간 이대취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개소리를 하고 있소. 공자는 그의 말을 믿지 마시오."
"너야말로 개소리야. 산 채로 먹으려고 했지 않았느냐!"
이대취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건 아가씨가 한 말이야."
백개심은 나무에 걸려있는 그대로 크게 웃었다.
"그는 개소리를 하는 거요. 저 아가씨가 미쳤다고 사람을 먹는
이대취에게 자기의 고기를 베어가라고 했겠소?"
"너 이 못난 자식아!"
이대취가 욕설을 퍼붓자 백개심이 질세라 소리쳤다.
"너 이 개 같은 놈아!"
그들은 외인을 상대할 생각은 않고 자기들끼리 싸우려 했다. 화
무결은 그들의 하는 양을 보고 탄식을 했다.
"여러분들은 그래도......."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대취는 이미 소리를 지르면서 백개심
을 향해 달려갔다. 백개심은 이대취의 주먹을 맞고 석장(丈)이나
나가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소리를 지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네가 사람을 때려?"
"이십 년 전부터 나는 너를 죽이고 싶었다."
그는 욕을 하면서 쫓아갔으나 백개심의 발에 걸려 넘어지고 말
았다. 두 사람은 서로 멱살을 잡은 채 엎치락 덮치락 했다.
긱별한 주먹과 쌍욕이 오갔으며 보기도 듣기도 매우 거북한 장
면이었다.
화무결은 그들이 무림의 고수들인 것으로 생각했었으나 지금보
니 깡패들이나 다름 없었다.
합합아가 한쪽에서 웃으며 말했다.
"좋아, 잘한다. 빨리 그의 머리를 잡아라."
도교교도 말했다.
"그러나 이대로 계속하게 할 수는 없어. 그중에 하나가 죽으면
우리가 시체를 치워야하니 빨리 말려야 돼."
이대취와 백개심은 풀숲 속으로 굴러들어갔고 서로 거친 호흡을
내쉬며 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도교교와 합합아가 달려가며 소리쳤다.
"싸우지 마라...... 더 싸우다가는 사람이 죽겠다."
곧이어 두 사람도 풀숲 속으로 뛰어들어 싸움을 말렸다.
화무결은 그들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띠운 채 고개를 저었다. 이
런 못난이들을 만났으니 고개를 저을 수밖에 더 있겠는가!
소앵은 돌연 미소를 보였다.
"화 공자, 당신은 그들에게 당한 것이오."
"무엇을 당했다는 거야?"
"그들이 정말 싸우고 있는 줄 아시오?"
화무결이 놀라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달아나려고 계책을 쓴거예요. 저 두 사람의 무술은 비
록 대단치는 않지만 만약 정말 당신과 싸우게 된다면 사 백 수법
이내에 그들을 다칠 생각은 말아야 될 걸요."
화무결이 달려가보니 수풀 속에는 과연 한 사람도 없었다.
나무에는 글씨가 남아 있었다.
"용서해줘서 감사하오."
"인사 않고 그냥 간 것은 황공하오."
"간이 적은 것이 부끄럽소."
"의리가 없는 것은 아니오."
화무결은 한동안 멍하니 서있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속았군!"
"그 네 사람은 계책이 많아요. 화 공자 같이 정직한 사람은 필
시 속을 거예요."
화무결이 돌연 웃으면서 말했다.
"정직한 사람? 그렇지도 않지...... 조금 전에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당했으니까."
"누군데요?"
그녀는 이렇게 물어보면서 즉시 짐작가는 바가 있었다.
"백산군이군요."
화무결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보였다.
"음!"
"내가 당신을 치료하기 위해 먹인 약은 부작용이 없어요. 바람
이 불기만 하면 정신이 깨게 되지요. 그들이 당신의 혈도를 점하
지 않았고서야 그렇게 남에게 업혀가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녀는 미소를 보이면서 계속 말했다.
"당신은 일부러 정신이 없는 척 해서 그들이 긴장을 풀었을 때
몰래 이화접옥의 내력으로 혈도를 푼 후 탈출한 거죠?"
"아가씨와 같은 지혜도 찾기가 드물 것이오."
"당신이 보기엔 내가 천하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 같아요?"
화무결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며 탄식이 새어나왔다.
"아가씨, 당신도 비록 지략이 좋지만 내가 알기로는...... 아가
씨도 그 사람을 만나면 필시 당하고 말 것이오."
소앵도 고개를 숙이며 탄식했다.
"당신 말이 맞아요. 난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뿐만 아니라 한
번 당했었어요."
화무결의 얼굴에 놀란 빛이 나타났다. 소앵이 다시 말했다.
"얌전한 화 공자도 사람을 속인 것은 그 사람에게 배운 덕분이
죠. 내 말이 맞아요?"
화무결은 참을 수 없어 웃으면서 말했다.
"환경 문제이지!"
"그러나 군자(君子)는 군자이군요. 나는 비록 당신을 그렇게 대
했지만 당신은 보복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구했어요."
화무결의 안색이 일순간 무거워졌다.
"내가 왜 당신을 구해냈는지 아시오?"
소앵은 그의 안색이 변한 것을 보고 놀랐다.
"이미 말했잖아요. 당신은 군자라고요."
"군자도 때로는 사람을 죽이지!"
"당신이 만약 나를 죽일 생각이라면 왜 구했죠?"
"세 가지를 말해야겠소. 첫째, 이화접옥의 비밀은 남에게 알려
서는 안 되는 것이오. 그리고 혹 알게 된 사람은 죽어야 하오. 이
것은 이화궁의 금예(禁例)라 예외가 없소."
소앵은 여전히 웃고 있었으나 결코 영기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
다.
화무결의 말은 계속 되었다.
"두번째는 이화궁의 문하는 어떤 일이든 자신이 직접 손을 쓰지
남의 손을 빌리지는 않소."
"세...... 세번째는?"
"셋째는 나도 이화궁의 문하이니 어떻든 간에 나는 이화궁의 규
칙을 파기할 수는 없소."
소앵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나왔다.
"그렇다면 나를 구한 것은 나를 직접 죽이기 위해서란 말인가
요?"
화무결은 그녀를 보지 않고 말했다.
"꼭 그렇게 해야겠소."
"그럼...... 그럼 내가 세 가지의 일을 말씀해 드리지요."
그녀는 화무결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말을 시작했다.
"첫째, 나는 당신을 죽일 기회가 많았지만 죽이지 않았어요. 당
신이 나를 죽이면 의리가 없는 것 아니겠어요?"
화무결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탄식을 하고 있었다.
소앵의 말은 계속됐다.
"난 비록 이화접옥의 무술을 알았지만 절대로 연마하지 않았고
남에게 말을 하지도 않았어요. 나를 죽이면 너무한 처사예요."
화무결의 마음이 약간 움직였다.
소앵의 눈은 화무결의 몸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셋째, 잊지 말아요. 나는 여자예요. 그리고 조금의 힘도 없어
요. 남자가 여자를 괴롭히는 것은 무례할 뿐입니다. 파렴치한 일
이에요."
화무결은 이미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소앵은 그의 표정을 살폈다.
"당신이 정히 그런 의리없고 파렴치한 일을 하겠다면 나도 하는
수가 없죠. 그러나 철심난이 알면 필시 실망을 할 거예요."
화무결은 떨구었던 고개를 반짝 쳐들며 소앵의 말을 되뇌였다.
"철심난?"
"그렇지요. 철심난...... 그녀는 자주 말을 했지요. 당신이 가
장 다정하고 예의바른 사람이라고요. 저도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그러나 지금......."
그녀는 일부러 탄식을 하면서 말을 하지 않았다.
화무결의 손은 떨고 있었다.
"당신...... 당신이 철심난을 아시오?"
"나와 그녀는 아직까지는 그다지 친밀하지 않으나 이미 결매한
자매 사이에요."
화무결은 돌연 한 대 얻어맞은 듯 한동안 말을 잃고 말았다. 그
는 얼마 후에 중얼거렸다.
"불가능이야...... 절대로 불가능해."
"믿기지 않으면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그녀는 어디에 있소?"
"그녀는 지금 여기에 있지만 당신은 찾아가지를 못 해요."
화무결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그녀를 위무아에게로 보냈소?"
"당신도 영리한 사람이군요."
화무결은 노기 서린 목소리로 그녀에게 쏘아 부쳤다.
"왜 그녀를 해치려고 하오?"
"그녀를 해쳐요? 그녀는 나의 언니인데 왜 해친다고 하지요?"
"그러나 위무아......."
"위무아는 다른 사람에게는 무섭지만 우리 자매에게는 예외에
요."
화무결은 한참 동안 잠자코 있다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이화궁의 비밀을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는 안 되
오."
소앵은 다짐을 하듯 힘주어 말했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이화접옥의 비밀을 알게 되면 즉시 나를
죽이세요."
화무결은 길게 탄식했다.
"그때는 이미 늦소. 그러나...... 나는 당신을 믿겠소."
그는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독초(毒草) 여아홍(女兒紅)
소앵은 급히 화무결의 뒤를 쫓았다.
"잠깐, 제가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요."
그녀는 화무결이 걸음을 멈추는 것을 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당신과 같이 갇혀 있던 사람이 강옥랑이라고 하던데 아세요?"
화무결은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그를 몰랐으면 얼마나 좋을까."
"당신도 그를 싫어해요?"
"물론이지!"
"당신이 그를 죽였나요?"
"아니."
소앵은 탄식을 했다.
"왜 그를 죽이지 않았죠! 인간 세상에 남겨두면 정말 후환이 많
으리라 생각해요."
"지금 몸에 병이 있는데 내가 어찌 손을 쓰겠소."
"그것이 바로 군자의 결점이에요."
그녀는 화무결이 몸을 돌리는 것을 보고 다시 큰소리로 말했다.
"잠깐, 할 말이 또 있어요."
"무슨 말이오?"
"철심난의 말이 맞아요. 당신은 다정한 사람이에요."
소어아의 성질이 급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런 성질이 급한 사람에게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었다. 소어아는 급했다. 그는 왔다 갔다 걸어다니면서 자주 도약
사에게 물었다.
"꼭 소앵이 여기 온다고?"
도약사는 매우 자신있게 말했다.
"그렇소."
그러나 잠시 후 도약사도 급하게 말했다.
"제가 중독된 것이 발작할 시간이 다가왔죠?"
"날더러 지금 독을 빼달라는 거요?"
"공자의 분부는 다 듣겠소. 다만......."
소어아는 날뛰면서 소리쳤다.
"말해두지만 소앵이 오지 않으면 독도 해독하지 않을 거야!"
소어아도 흥분해 있었지만 도약사는 그보다 더 급했다. 식은땀
이 흘러 옷을 적셨다.
다만 강옥랑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그는 웃으면서 앉아 있
었다. 그는 그의 약효가 점점 약해지며 몸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
고 있었다.
소어아는 눈이 빠지도록 바라보았으나 소앵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드디어 참을 수가 없었던지 소리쳤다.
"가자. 우리가 그녀를 찾아가자."
강옥랑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그녀를 찾아가면 때가 이미 늦소."
소어아의 눈이 달걀보다 더 크게 떠졌다. 그는 무서운 소리로
말했다.
"늦었다고? 왜 늦어?"
"우선 소 아가씨를 찾아서 다시 화 공자를 구하려면 화 공자는
이미......."
그가 일부러 말을 멈추자 소어아는 그의 생각대로 더욱 날뛰면
서 소리쳤다.
"어떻게 된단 말이냐?"
강옥랑은 일부러 천천히 말했다.
"사실 내가 화무결을 가둔 곳은 그리 좋은 곳이 아니오. 공기가
통하지 않아서 시간이 오래되면 사람이 죽소!"
소어아는 몸을 날려 죽이고 싶었으나 노기띤 얼굴을 거두며 다
시 웃음띤 얼굴로 바꿨다.
"강형은 영리한 사람이니 화무결이 죽으면 이익이 없다는 걸 알
겠지?"
"그것은 제가 물론 알고 있지요. 다만......."
그는 소어아를 바라보면서 말을 계속 이어갔다.
"내가 그 사람을 구하면 무슨 이익이 있겠소?"
"네가 그를 구하면 내가 책임을 지고 해독약을 얻어오겠다."
강옥랑은 얼굴에 쓴웃음을 보였다.
"난 이미 각오가 되어 있소. 세상의 일은 모두 허무한 것이고,
생사의 일은 다만 하나의 꿈이오. 독약이 있든 없든 상관을 하지
않겠소."
그가 돌연 이런 놀라운 말을 하자 소어아는 놀라서 그를 바라보
았다.
"너...... 네가 정말 강옥랑이냐?"
"진짜든 가짜든 상관이 없소!"
소어아는 크게 웃고 말았다.
"묘하군 묘해. 강형의 전세(前世)는 중이었구려!"
그는 웃음을 그치더니 말했다.
"강형이 도통을 했다니 정말 기쁜 일이군. 그럼 우리 지금 화무
결을 구하러 갑시다."
강옥랑은 다시 탄식을 했다.
"저는 비록 생사를 마음에 두지 않지만, 다만......."
그는 고개를 돌려서 철평고를 힐끔 바라보았다.
"다만 그녀...... 그녀의 나에 대한 사랑을 버릴 수는 없소."
철평고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눈에는 눈물방울이 고여 있
었고 놀라움과 기쁨에도 불구하고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
는 눈치였다.
소어아는 거침없이 말했다.
"그렇지. 정이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강형의 뜻은......."
"전 다시는 강호에서 싸우고 싶지도 않고 조용한 은거 생활로
남은 생명을 보내고 싶은데......."
그는 비참하게 웃은 뒤 계속 말했다.
"그러나 비록 이런 뜻은 있어도 전에 잘못한 일이 너무 많으니
당신은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강형의 생각은 훌륭하오. 내가 탄복을 하는데 어찌 강형을 괴
롭히겠소?"
강옥랑은 여전히 탄식을 했다.
"어형을 꼭 못 믿겠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어아는 군자가 아니니 나를 믿지 못 하는 것은 당연해요. 그
럼 어떻게 해야 나를 믿겠어?"
강옥랑은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는지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
다.
"어형은 견식이 풍부하니까 야생초 중에서 여아홍(女兒紅)이라
하는 것을 알겠지요?"
소어아는 안색이 약간 변했다. 그러나 순간 다시 웃으면서 말했
다.
"내가 어찌 견식이 풍부하겠나. 다만 돌아다니면서 '여아홍(女
兒紅)'이라는 것을 들은 적은 있지."
철평고는 참을 수 없어 물어보았다.
"그 여아홍이 무엇이지요?"
소어아가 대답했다.
"여아홍은 음침한 곳에 생기는 독버섯인데 누구든지 그것을 먹
으면 삼 일 내지 오 일 안에 이상한 병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오."
"무슨 병이지요?"
"그 병은 밥도 먹히지가 않고 잠도 오지 않는 것이 마치 상사병
에 걸린 것 같이 되는 것이오. 달마다 '악파초(惡婆草)'를 찾아
뿌리를 먹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병이 점점 악화되어 일 년 내로
죽게 되오. 다만 악파초로만 여아홍을 극복할 수 있으니 재미있는
일이지!"
소어아는 웃으면서 계속 말했다.
"강형은 혹시 나에게 상사병에 걸리라는 것이 아니오?"
강옥랑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렇소!"
도약사는 강옥랑이 이런 제의를 하자 그가 미친 것으로 생각되
었다. 소어아가 만약 승낙을 하여 여아홍을 먹는다면 그도 미친
놈임에 틀림이 없었다.
소어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귀한 물건을 지금 어디서 구해 나에게 먹이지?"
"다른 곳에 가서 찾는다면 삼 년 내지 오 년 안에는 찾지 못 할
것이오. 그러나 마침 이 근처에 그것이 있으니 내가 가서 파오겠
소."
철평고는 펄쩍 뛰며 막았다.
"당신 미쳤어요? 어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그가......
승낙을 할 것 같아요?"
강옥랑은 그녀쯤은 관계없다는 듯 대답도 않고 서서히 말했다.
"어형은 필시 알고 있을 것이오. 그 악파초도 여아홍처럼 매우
귀한 물건이나, 사람이 키울 수가 있소. 마침 내가 재배 방법을
알고 있지요."
소어아는 눈동자를 옆으로 돌리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강옥랑의 말이 다시 계속 되었다.
"이곳의 일을 끝낸 후 저는 즉각 은거하여 형을 위해 악파초를
재배하겠소. 어형이 몸을 보전하려면 자연히 내 목숨을 보호해야
하오."
도약사는 그제서야 그의 계산을 알았다. 이 일로 소어아를 영영
자신의 손아귀에 넣어두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강옥랑의 생각이 너무 순진하게 느껴졌다. 도약사
는 강옥랑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너는 소어아가 바보인줄 아느냐? 삼척동자도 그 속셈을 알 정
도인데 더군다나 소어아가.......)
소어아는 심드렁하게 말을 받았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너를 믿지? 어떻게 네가 꼭 악파초를 재배
하고 나에게 먹이겠다는 것을 보장하겠어?"
강옥랑은 탄식을 했다.
"난 독기운으로 몸이 허약해졌으니 나를 죽이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오."
소어아가 말했다.
"그러나 만약 내가 너를 찾지 못 한다면?"
"하하, 어형이 정말 나를 찾겠다고 마음먹으면 하늘이 나를 덮
겠소, 땅이 나를 숨기겠소?"
소어아 같은 사람이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다니 확실히 재미
있는 일이었다.
강옥랑의 대답은 하나마나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어아는 진지하게 다시 한마디를 물었다.
"내가 만약 그 여아홍을 먹으면 화무결을 구하러 가겠느냐?"
"만약 배신을 한다면 당장 나를 죽여도 좋소."
소어아는 길게 장탄식을 했다.
"좋아, 승낙을 하지......."
소어나는 정말 승낙을 했다.
도약사는 멍하니 소어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미친 놈! 미친 놈! 이 녀석이 정말 미쳤군. 너무 영리한 사람
은 종종 미친 사람으로 변한다고 하더니 정말 틀림이 없구나.)
철평고도 할 말을 잃었는지 아무말도 하지 못 했다.
강옥랑은 과연 매우 아름다운 여아홍을 캐내왔다.
소어아는 웃으며 받자마자 먹어버렸다.
잠시 후 그는 입을 닦으면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묘해 묘해. 이 여아홍은 과연 별미로군. 나의 한평생 이런 것
은 먹어보지 못 했어."
강옥랑이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절대 가인(絶代佳人)은 모두 화(禍)의 원인이오. 그리고 치명
의 독물은 왕왕 냄새가 좋은 것이지요."
소어아는 급히 그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듣기 좋은 말에는 거짓말이 많으니 잔소리 말고 빨리 가서 사
람이나 구하시지!"
소어아의 눈에는 아무도 거절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석옥(石屋)이 있는 땅은 매우 황폐했다. 강옥랑이 소어아를 데
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길은 가면 갈수록 험준해졌다.
그는 병이 다시 발작했다. 거치른 호흡을 내뿜으며 두 다리가
계속 떨렸다.
소어아는 미칠 것만 같았다. 드디어 참을 수가 없어 그를 안으
며 소리쳤다.
"그 곳이 도대체 어디지? 말을 해라. 내가 안고 갈테니까!"
"어찌 어형에게 신세를 끼쳐드리겠소?"
소어아는 '피식'웃고 난 후 말했다.
"괜찮아. 너의 뼈는 가벼우니 힘들지 않을 거야."
"어형의 뼈는 무거운가요? 그럼 금후에 제가 어찌 어형을 들 수
있겠소?"
철평고는 발을 구르며 말했다.
"두 사람은 입다툼을 하지 말아요."
"내가 어찌 형과 다투겠어! 다만......."
그의 말소리가 잠시 멈추어졌다. 그는 손으로 위를 가리키며 말
했다.
"어형은 위의 동굴이 보이시오?"
소어아가 그의 손길을 따라 위를 바라보니 많은 풀이 돋은 산벽
에 과연 하나의 검은 동굴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창문 비슷
한 것이 하나 있었다.
"네가 화무결을 저 동굴에 숨겼느냐?"
"여기가 괜찮지요!"
소어아가 말했다.
"너는 돌로 그 입구를 막지 않았지?"
"화 공자는 이미 걷지 못 하니 달아날 염려가 없소."
소어아가 언성을 높였다.
"동굴의 입구를 막지 않았는데 그가 어찌 숨이 막히겠느냐?"
강옥랑은 안색을 바꾸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어쩌면 죽지 않았는지도 모르오. 그러나 황산의 동굴에는 사나
운 맹수가 있을지도 모르니......."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어아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강옥랑은 소리쳤다.
"어형, 우선 나를 놓아주시오!"
그 산벽에는 풀이 많이 돋아 미끄러웠다. 소어아가 그를 놓아주
자 그는 일어서지도 못 하고 동굴의 입구까지 기어갔다. 안을 바
라본 그는 돌연 큰소리로 말했다.
"화 공자, 내가 구하러 왔는데 들리시오?"
동굴에서는 메아리가 계속 들렸지만 화무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강옥랑이 양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말했다.
"화 공자 당신...... 당신...... 어떻게 됐소?"
소어아는 급한 생각이 들어 강옥랑을 끌어내린 후 자기가 엎드
려 동굴 안을 바라보았다. 동굴 속은 어두웠기 때문에 손가락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어형, 화 공자가 보여요?"
소어아가 노하여 소리쳤다.
"너 이 자식아! 무슨 수를 쓴 것이냐? 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연 등 뒤에서 큰 힘이 자신을 내리찍는
것을 느낀 소어아는 몸이 이미 낙엽처럼 동굴 속으로 빠져버렸다.
걷지도 못 하던 강옥랑은 맹호처럼 일어서서 동굴 속을 향해 소
리쳤다.
"어형!"
소어아에게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잠시 후에 '퉁' 하는 소리
가 들렸다. 그 동굴은 무섭도록 깊었다. 강옥랑은 하늘을 향해 크
게 웃었다.
"소어아...... 소어아, 결국 너는 나에게 당하는구나!"
철평고는 강옥랑이 매우 만족스럽게 웃는 것을 보자 깜짝 놀랐
다.
"소어아를 어떻게 했어요?"
"너는 도대체 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냐? 아니면 나에게 관심
을 갖는 거냐?"
"그러나...... 그러나 당신은 그렇게......."
"내가 어떻단 말이야?"
"당신이 그를 해쳤어요?"
"내가 그를 해치지 않고 그가 나를 해치기를 기다려야 되겠어?"
철평고는 놀라서 소리쳤다.
"당신은 마음을 고치지 않았군요. 조용히 여생을 보내겠다고 했
잖아요. 그런데......."
그녀는 말을 하며 위로 올라오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만
한겹 겉옷을 입고 있을 뿐이었다.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면 밑에
있는 도약사에게 엉뚱한 구경이나 시켜주게 되고 말 일이었다. 그
녀는 급히 다시 내려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도약사도 한동안 넋을 잃고 있다가 몸을 날려 강옥랑의 곁으로
갔다.
"소어아는 여아홍에 중독이 되었는데 앞으로 그것을 이용하여
말을 듣게 할 수 있지 않느냐. 그런데 지금 그를 해치면 너무 애
석하지 않을까?"
"그 이유를 모르겠소?"
"나는 정말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는데."
"소어아도 몰라서 나에게 당한 것이오. 방금 그 여아홍은 가짜
요. 이제 알 것 같소?"
도약사는 다시 놀라고 말았다.
그는 이 강옥랑의 수단이 정말 악독하다고 생각하며 놀랄 뿐이
었다.
"그는 너무 혼자 영리해. 스스로 절대로 남의 속임수에 넘어가
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병이지. 사람이 너무 잘난 척하면 때
때로 가장 쉬운 방법에 걸리고 말지."
강옥랑은 한바탕 즐겁게 웃고 나서 말을 이었다.
"소어아야, 너는 항상 네가 세상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야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영리한 사람인지 알겠지?"
도약사는 참을 수 없어 다시 말했다.
"화무결도 네가 해쳤단 말이냐?"
"화무결은 벌써 갔지."
"갔어?"
"당신은 화무결이 병신이라고 생각하시오? 말해두지만 그도 사
람을 잘 속이지요. 그는 고의로 그런 병신 같은 행세를 해서 당신
들이 소홀히 하는 틈을 이용해서 달아났소."
"그럼 백산군은?"
"그때는 나의 병이 발작이 심해서 잘 보진 못 했어도 아마 화무
결을 쫓아가는 것 같았소."
도약사는 고개를 들어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럼 지금 너의 병은......?"
"약들 중에 어떤 것은 무섭긴 해도 발산이 빠르오."
도약사는 돌연 날뛰면서 소리쳤다.
"나는 그에게 해독약을 구해야 했었는데!"
"좋아, 그럼 따라 내려가시오."
싸늘한 웃음 속에 그는 돌연 손을 내밀어 도약사에게 일격을 가
했다.
도약사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몸의 중심이 흔들렸고 호흡이 흐트
러져 버렸다. 만약 즉시 뛰어내린다면 피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호흡이 흐트러진 상태에서 땅으로 떨어지면 상처는 입지
않는다해도 필시 중심을 잡지 못 할 것이다. 그때 강옥랑이 계속
공격을 한다면 다시 피해내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십이성상은 모두 큰 적을 많이 상대해온 무림호걸이었고
도약사는 그 중에서도 날뛰던 사람이었다. 순간적인 판단에 능했
다.
강옥랑이 일격을 가하자 도약사는 피하지 않고 그것을 맞받으면
서 그 자리에서 발을 강옥랑을 향해 휘둘렀다.
강옥랑이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제법 하는군."
그의 몸이 솟구치며 양발로 공격을 시도했다.
도약사는 그가 이런 공격을 할지는 몰랐다. 그는 크게 놀란 나
머지 피하지 못 하고 어정쩡한 상태에 있었다.
그는 손으로 강옥랑의 발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강옥랑의 발은 이미 그의 목을 향하고 있었다.
손의 힘이 어찌 발보다 크겠는가! 그가 이 발을 막아낸다 해도
아래로 떨어지게 되는 것은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강옥랑의 발을 잡게 되면 두 사람이 같이 떨어질 것이
다.
그는 급한 나머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강옥랑의 몸은 공중에서도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의 양다리는 순간 일곱 여덟 번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공격해왔다. 도약사는 그의 발을 잡기는 커녕 그의 발이
어디를 공격하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도약사는 그제서야 강옥랑이 악독하고 교활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무술의 고강함은 그의 생각밖의 일이었다.
그는 자기가 더 이상 반항을 하지 못 할 것을 알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강옥랑에게 걷어차여 그 동굴 속으로 떨어져버렸
다.
철평고는 멍하니 그자리에 서서 움직이지도 않았다. 강옥랑은
묘기를 자랑하기 위해 공중에서 몸을 뒤짚으며 나비처럼 그녀의
몸옆에 떨어졌다.
강옥랑은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방금 내가 공격한 수법을 보았느냐?"
철팽고는 그를 보지도 않고 담담히 말했다.
"보았어요."
"그것은 북파(北派)의 정화 '와어팔식'과 호가보(胡家堡)의 '무
영각(無影脚)', 무당파(武當派)의 '유운보(流雲步)', 곤륜파(崑崙
派)의 '비룡식(飛龍式)', 이 네 가지의 무림절기를 혼합한 것이
야. 내가 이름 짓기를 '제사인불매명 천하무쌍마각(天下無雙魔
脚)'이라 했는데 어때? 재미있지?"
"재미있군요."
"너는 무술이 이토록 훌륭한 남편이 있는 것이 자랑스럽지 않
아?"
철평고는 대답을 않고 돌연 고개를 돌리더니 달려갔다.
강옥랑은 급히 그녀를 막아서며 물었다.
"왜 그러는 거지? 우린 이미 오랫동안 같이 지내지 않았어? 이
젠 나의 병이 나았으니 같이 기분을 낼 수 있는데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거야?"
"다른 사람이나 찾아가서 기분을 내세요. 당신 같이 영리하고
무술이 뛰어난 무림 호걸과 내가 어찌 같이 어울리겠어요?"
"다른 사람을 찾으라고? 누구를 찾을까? 난 다만 너를 좋아하는
데!"
그는 철평고를 안고서 그녀에게 입맞춤을 하려 했다.
철평고는 뿌리치면서 발버둥을 쳤다.
"당신...... 당신...... 놓지 못 하겠어요?"
강옥랑은 깔깔대며 웃었다.
"못 놓겠어! 나를 때려 죽인다해도 손을 못 놓겠어!"
그의 손은 이미 철평고의 옷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철평고는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선 손을 놓으세요. 내가 물어볼 말이 있으니까요."
"물어봐라. 나는 너의 입을 막지는 않았으니까."
"소어아를 해치면 됐지 왜 도약사까지도 해쳤지요?"
"너는 그 이유를 정말 모르느냐?"
"몰라요."
"그 자식이 너에게 반한 모습이 보기 싫어서 죽여버렸어!"
"당신...... 당신이 그를 해친 것이 나 때문......."
"흐흐, 무엇 때문인지 어떤 놈이든 너를 바라보면 난 기분이 나
빠져. 더군다나 그는 너를 어찌할 생각까지 하였으니까. 나 외에
는 어느 누구도 너를 건드리지 못 해.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를
죽이고 말 거야."
그는 이렇게 말하며 손을 더욱 그녀의 옷 속 깊숙히 넣었다.
철평고는 탄식을 하며 말했다.
"당신의 질투심이 이토록 심한지는 몰랐는데요."
"내가 너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찌 질투심이 생기겠어?"
철평고는 얼굴에 노한 기색이 사라졌고 혈색이 붉어졌다. 그뿐
아니라 말소리가 떨림과 동시에 몸까지 떨기 시작했다.
강옥랑은 입술을 그녀의 귀부리에 대고 무엇인가 말을 했다.
철평고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안 돼요. 여기서는 안 돼......."
"왜 여기서는 안 된다는 거야?"
철평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에...... 만약에 남이......."
"여기는 귀신도 없는 곳인데 어찌 남에게 발견되겠어.
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철평고가 그의 품에서 떨어지며 비명을 질
렀다.
강옥랑은 놀라서 급히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철평고
는 두 다리를 공중에서 버둥거리며 팔구장(丈) 높이의 절벽에 있
는 나무로 뛰어올랐다.
그녀는 나뭇가지에 옷자락이 걸려 벗겨지는 바람에 나체로 나무
에 걸려버렸다.
강옥랑은 그녀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놀랐다.
"빨리 내려와. 받아 줄테니까."
철평고는 놀란듯 움직이지도 못 했다. 얼굴에는 조금의 혈색도
없었으며 눈은 공포에 가득차 있었다.
그녀의 눈은 강옥랑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다.
강옥랑이 그녀의 눈초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다가 그제서야 자기
앞에 언제인지 모르게 장발의 백의인(白衣人)이 서있음을 발견하
였다.
그녀는 흰옷을 바람에 나부끼며, 몸은 마치 나무로 만든 사람처
럼 움직이지도 않았다. 얼굴에는 나무로 조각된 가면을 쓰고 있었
는데 마치 땅에서 솟아나온 유령 같았다.
철평고는 바로 이 사람에 의해 공중으로 던져진 것이다.
그녀의 손에 철평고가 팔구장(丈) 높이까지 솟아 올랐으니 이런
무공은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강옥랑은 자기보다 무술이 뛰어난 사람을 만나면 자기에게 똥을
먹으라 해도 마다하지 않을 성질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막 운우지정을 나누려던 차가 아니었던가. 강옥랑은 노
여움이 앞서 벼락같이 호통을 쳤다.
"무슨 일이야? 왜 나를 괴롭히느냐?"
백의인은 여전히 움직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강옥랑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 그는 손을 뻗어 일격을 가했다.
그러나 백의인은 오직 가볍게 옷소매를 휘저었을 뿐이었다. 그
러자 강옥랑의 주먹은 어찌된 일인지 자기의 얼굴을 때리고 말았
다.
강옥랑의 얼굴은 즉각 부어올랐다.
"당신은...... 당신은 이화궁주가 아니오?"
"너 같은 놈도 이화궁주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가 있느냐?"
강옥랑은 그 자리에 꿇어 앉아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후려치
며 말했다.
백의인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뿐 더 이상 말을 하지는
않았다.
강옥랑과 십대악인의 거래
강옥랑은 그녀가 말을 하지 않자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의
하얀 얼굴은 이미 돼지의 간처럼 변했고 입가에서는 계속 피가 흘
렀다.
철평고는 마음이 아파 참을 수가 없었다.
"궁주, 제발 부탁이니 그를 용서해 주세요."
백의인은 철평고의 목소리를 듣자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너는 그를 위해서 빌고 있지만 누가 너를 위해 빌어 주겠느
냐?"
철평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죄가 막중하여 용서를 빌 자격도 없습니다."
"좋아, 그럼 너에게 물어 보겠는데 너는 소어아를 어디로 데려
갔지?"
"소어아 그는."
그녀는 돌연 망설였다. 만약에 자기가 사실을 말하여 소어아가
강옥랑의 손에 죽었다는 것을 궁주가 알게 되면 강옥랑은 필시 살
길이 없을 것이다.
백의인이 다그쳐 물었다.
"소어아가 어떻게 됐는지 왜 말을 하지 않지?"
"그는...... 그도 여기에 왔었는데 필시 동쪽에 있을 것입니
다."
"좋아, 내가 찾아가지. 거짓말은 아니겠지?"
강옥랑은 여전히 자기의 얼굴을 후려치고 있었다.
백의인이 소리쳤다.
"됐어, 멈추어라!"
강옥랑은 급히 인사를 차렸다.
"궁주, 정말 감사하오."
"지금부터 너는 그녀를 지켜라. 누가 그녀를 데려가면 네가 대
신 하여 목숨을 바쳐라!"
"네."
강옥랑이 고개를 들었을 때 백의인은 이미 유령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탄식을 하며 말했다.
"이게 바로 이화궁주로군. 이화궁주가 이렇게 생겼구나. 오늘
그녀를 만난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강호에서 이화궁주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없어!"
철평고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다행히 오늘 온 사람은 소궁주(小宮主)에 불과해요. 만약에 대
궁주(大宮主)가 왔다면 당신은 벌써 죽었을 거예요."
강옥랑은 눈길을 멀리 돌리며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철평고가 또 말을 이었다.
"그녀가 돌아오면 우리는 살 수가 없어요. 당신이 소어아를 해
치웠으니 그녀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왜? 그녀는 화무결에게 소어아를 죽이라고 했는데?"
"그래요. 그러나 그녀는 화무결만이 직접 소어아를 죽이라고 했
지 다른 사람이 소어아를 다치게 하지는 않았어요. 그녀 자신도
소어아를 다치게 하지는 않아요."
강옥랑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떠올랐다.
"그건 무엇 때문이지? 이상한 일인데!"
"나도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들 자매는 워낙 괴인들이
라 하여튼 간에 빨리 나를 내려줘요. 나는 이미 도를 점했어요."
강옥랑은 쓴웃음을 보였다.
"내가 어떻게 너를 구하지?"
"당신...... 당신이 나를 구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구해요?"
"내가 너를 구한다해도 우리는 달아나지를 못 해."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지 시도를 해봐야지요. 그녀가 돌아와도
죽어야 한다면 차라리 지금 달아나서 은밀한 곳을 찾아요. 그러면
좀더 오래 살 수도 있어요."
그녀는 처절하게 웃고난 후 계속 말했다.
"다만 당신과 조용히 며칠만 재미있게 지내고 싶어요. 죽어도
그 후엔 아무런 한이 없겠어요."
강옥랑은 고개를 숙였다.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참 후 고개를 번쩍 들더니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네가 소어아를 죽였다는 소리만 하지 않으면 그녀도 나
를 죽이지는 않을 게 아니냐?"
철평고는 놀라며 말했다.
"혹시......."
"방금도 그녀를 속였는데 왜 계속 속이지 못 하겠느냐?"
"그러나...... 그러나 난......."
강옥랑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어차피 죽어야할 사람인데 왜 굳이 나와 같이 죽으려 하
느냐? 네가 만약 정말 나를 좋아한다면 희생하여 나를 구해야지.
그러면 난 영원히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철평고는 세상에 태어나서 정말 이토록 기가막힌 적은 없었다.
그녀는 강옥랑이 그런 말까지 할 줄은 정말 몰랐었다. 그건 정
말 사람으로서 할 말이 아니었다.
이때 한 사람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오래간만에 그런 악독한 말을 들어보는군."
다른 한 사람이 또 웃으며 말했다.
"이 분이 여자였다면 소어아도 당하고 말았을 거야."
셋째 사람이 말을 받았다.
"하하, 두 명의 소미미라도 당하지 못 하겠지."
네번째 사람이 크게 웃었다.
"구양 형제가 죽은 후 사람이 없어서 걱정을 했는데, 지금 바로
앞에 하나가 있잖아?"
웃음소리 중에 산 뒤에서 네 사람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이 네 사람 중 하나는 입이 매우 컸고 하나는 계속 웃고 있었으
며, 또 한 명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 차림이었
으며, 마지막 하나는 거지차림으로 등에 보자기를 하나 걸머지고
있었다. 그 보자기 속에서는 이상한 신음소리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음소리는 매우 고통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 했으나 어쩌면 좋
아서 교태를 부리고 있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 거지 같은 사람은 왼손에 든 나뭇가지로 보자기를 때렸다.
보자기 속에서는 즉각 비명 소리가 크게 흘러나왔다. 그것은 여
자의 목소리였다.
"제발 부탁이오...... 더 힘차게 때려요 제발......."
그 거지는 채찍을 내리며 말했다.
"세상에 얻어맞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
강옥랑은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눈이 커졌고 입이
다물리지가 않았다. 나무 위에서는 철평고가 부끄러운 나머지 정
신을 잃고 말았다.
네 사람은 바로 이대취, 도교교, 백개심과 합합아였다.
이대취는 강옥랑 앞으로 결어와 그의 독특한 웃음을 보였다.
"친구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오?"
강옥랑은 비록 이 사람들의 내력은 몰랐지만 어쩐지 그들을 함
부로 화나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고쳤다.
"저는 장평(蔣平)이라 하는데 여러분들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는
지요?"
이대취가 껄껄대며 말을 받았다.
"나이는 젊어도 심대악인이라는 것을 들어는 봤겠지?"
강옥랑의 안색이 즉각 변했다.
"십대악인, 귀하들은......."
이번에는 합합아가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하하, 그의 입을 보면서도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나?"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강옥랑의 손에는 땀이 축축이 베어 나왔
다.
도교교도 껄껄 웃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안심해. 우리가 너를 찾은 것은 악의가 없으니까."
강옥랑이 급히 표정을 바꿨다.
"여러분은 모두 무림 선배이시니 자연히 무명 후배를 괴롭히지
는 않겠지요. 저는 안심을 하겠습니다. 선배님들을 만나 뵙게 되
다니 매우 기쁘군요."
"이 애가 얼마나 말을 잘 하는가 좀 들어봐요."
"하하, 이런 사람은 정말 마음에 들지. 그래서 나무 위의 아가
씨가 목숨을 바치는군."
강옥랑이 말했다.
나무 위의 아가씨는 다만 도의상의 친구이지 절대로 남녀의 정
은 없습니다. 선배님들이 농담을 하시는군요!"
도교교가 말했다.
"도의상의 친구라면 그녀가 나체로 나무에 매달려 있는데 왜 그
녀를 구하지 않느냐?"
강옥랑은 탄식을 하며 말했다.
"저는 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나 그러나...... 그러나 성인 남
녀가 부부가 아닌 바에 어떻게 서로 손을 잡겠습니까? 또 지금 그
녀는 모욕을 당하고 나체로 나무에 매달려 있으니......."
"그렇다면 너는 정인군자(正人君子)가 되었구나!"
"저는 비록 강호의 나그네지만 그러나 예의(禮儀)라는 두 글자
를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도교교가 껄껄 웃으면서 강옥랑을 가리켰다.
"봐요. 정말 재주가 좋은데. 소어아 뿐만 아니라 구양 형제가
왔어도 스승이라 모실 거야."
합합아가 말했다.
"하하, 구양 형제의 말은 그래도 세마디 중 한마디 정도는 진실
이 있었는데, 그러나 그는 네마디 중 네마디 모두가 거짓말이야."
강옥랑은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선배께서는 농담을 잘 하시는군요. 제가 선배님 앞에서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어찌 거짓말을 하느냐고. 하하 또 거짓말!"
"제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인데 선배께서는 믿지 않으시
니......."
도교교가 그의 말을 끊었다.
"너의 말이 모두 사실이란 말이야? 그럼 물어보겠는데 네가 장
평이라면 강옥랑이라는 나쁜 놈은 또 누구란 말이냐?"
거짓말이 탄로났을 때 얼굴 색깔이 변하지 않는 사람은 백 사람
중에 하나가 있을까 말까 하다. 강옥랑이 바로 그중의 하나였다.
그는 얼굴을 전혀 붉히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웃어버렸다.
도교교는 그를 바라보면서 그가 점점 재미있다고 느꼈다. 자기
도 웃으면서 말했다.
"무엇이 우습지?"
"난 돌연 내 자신이 재미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오."
"왜?"
"선배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인데, 도망가려
해도 힘이 없으니 우습지 않아요?"
합합아가 손뼉을 치며 재미있어 했다.
"말을 잘했어. 하하, 이 녀석은 정말 알랑방귀도 잘 뀌는군."
"선배들은 필시 나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이미 나의 내력을
완전히 알고 계셨군요?"
"그렇지. 우리는 네가 강옥랑이고 강남대협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지. 그리고 또 저 나무 위의 아가씨는 일대 이화궁의 문하라는
것도 알고 있어."
도교교의 말에 강옥랑이 대꾸했다.
"선배들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관심을 보이시니 무안해지는군
요."
"너는 왜 우리가 너에게 관심을 보이는지 아느냐?"
"선배들께서는 혹시 저에게 중매를 서려는 것입니까?"
"내가 만약 딸이 있다면 차라리 이대취에게 시집을 보내지 너에
게 주지는 않겠어. 이대취는 최소한도 그녀의 머리는 먹지 않을테
니까. 그러나 너는 뼈까지도 삼킬 것 같은데."
도교교의 말이었다.
강옥랑은 미소를 보였다.
"선배, 과찬이십니다. 저를 어찌 이(李) 선배와 비하겠습니까?"
이대취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겸손할 필요가 없어. 나는 사람을 하나 하나씩 먹지만 그러나
너는 사람을 줄을 꿰서 삼키더군. 쌍사표국의 사람들을 하룻밤에
먹지 않았느냐?"
그러나 강옥랑은 여전히 안색이 변하지 않았다.
"선배들이 나를 그토록 자세하게 조사한 것은 무엇 때문이지
요?"
도교교가 대답했다.
"너는 모를 거야. 구양 형제가 죽은 후 십대악인에는 아홉 명만
남았어."
"열 명 중에서 두 명을 감하면 여덟 명이 되어야 하는데요?"
"하하, 너는 정말 계산을 잘 하는구나. 내가 장사를 하면 너를
점원으로 채용하겠다."
도교교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알아야 돼. 구양 형제는 너무 남의 편만을
보려했단 말이야. 그렇게 변변치 않으니 그들 두 사람을 합해서
한 사람으로 쳐버렸던 게지."
강옥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십대악인이 되려면 남의 편의를 지나치게 봐서는 안
되겠군...... 이 말을 명심 해야지."
"구양 형제는 죽었고 악도귀는 점점 바른 길로 가려 하며, 광사
철전은 행방불명이야. 미사인불배명(迷死人不賠命)의 소미미는 어
느 동굴에 숨어 버렸고. 우리는 십대악인의 이름이 이미 강호에서
그리 위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
강옥랑은 물론 소미미가 있는 곳을 알고 있었다. 소미미는 이미
그와 소어아에 의해 지하에 수장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는 다만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선배께서는 사람을 찾아서 구양 형제의 자리를 대신 하자는 것
입니까?"
"그렇지. 우리는 십대악인의 이름을 다시 정리해야겠어."
"그러나 그런 사람은 찾기가 어렵지요. 내가 알기로 강호에 선
배들과 어깨를 같이 할 사람은 몇 명 없을 거요."
"바로 너야!"
강옥랑은 급히 말을 받았다.
"제가 어찌?"
"하하, 사양할 필요는 없어. 너는 나이가 젊지만 벌써 이런 성
취가 있으니 이 년만 더 있으면 우리가 너를 따르지 못 할 거야."
"이 년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지. 지금도 우리는 이미 그와 비할
수가 없어."
합합아의 말이었다. 강옥랑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급히 말했다.
"감당치 못 하오. 선배들께서 이렇게 사랑해주시는데 어떻게 보
답을 해야할지......."
이대취가 한편에 앉아 있다가 불쑥 끼어들었다.
"재미있어. 네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네가 의리가 있다
는 거야. 하여튼 좋았어."
한마디도 없던 백개심이 돌연 입을 열었다.
"이 녀석아, 절대로 이들에게 당하지 마라. 이들이 너를 칭찬하
는 것은 다만 그들에게 일을 하나 해달라는 것뿐이니까."
"이분 인형 손인불이기(損人不利己)의 별명은 과연 명불허전이
야. 그는 말을 그리 많이 하지는 않지만 일단 말을 하면 무섭지."
도교교가 웃었다.
"이 자식은 남을 이간질 하는 것이 특기야. 그러니 그의 말을
믿어선 안 돼."
백개심이 소리쳤다.
"내가 한 말은 정말이야.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다."
강옥랑은 입가에 미소를 보였다.
"제가 선배들을 위해서 일을 할 수 있으면 영광된 일이오. 선배
께서는 무슨 분부가 있으면 말을 하시지요."
도교교가 말했다.
"무림에 무서운 사람이 있는데 위무아라고 하지. 너도 그가 이
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그런데 그의 쥐동굴에 손님이 찾
아 온 것을 알고 있느냐?"
그녀는 돌연 위무아의 얘기를 화제에 올렸다. 강옥랑은 미소를
감추면서 헛기침을 했다. 할 말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 세상에 손을 잡고 싶지 않은 사람이 단 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위무아요. 나는 그와 알고 싶지 않소. 그의 동굴에 손님이
왔는지도 모르고, 또 알고 싶지도 않소."
"안 됐지만 그 귀빈은 너를 알고 있단 말이다."
강옥랑은 놀라움을 금치 못 하고 도교교에게 급히 물었다.
"날 안다고요? 내가 누구란 걸 어떻게 알죠?"
"위무아는 평생에 친구가 없지. 십이성상의 다른 놈들조차 그를
보면 피해 버리는 형국이야."
"그것은 바로 쥐를 보면 사람들이 잡아 죽이려고 하는 것과 같
죠. 독사 같은 맹수와 친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요.
그러나 쥐와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도교교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틀렸어. 쥐와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지!"
강옥랑은 또 놀랐다.
"어!"
도교교의 이야기가 계속됐다.
"그 사람이 위무아와 친구가 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어. 이상
한 것은 그가 위무아를 자기와 친구가 될 수 있게끔 만들 수 있는
재주가 있다는 점이야."
이대취가 그의 말을 받아 계속했다.
"사실상 그는 위무아를 순복하게 만들었지. 그가 무슨 말을 해
도 위무아는 다 들어 주고 있지. 위무아는 평생 그처럼 사람을 잘
대해 본 적이 없어."
"그렇다면 그 사람 재주가 보통이 아니겠군요."
"너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겠느냐?"
강옥랑은 눈알을 굴리면서 말했다.
"그 사람이 저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오?"
"그는 너와 관계가 있을 뿐더러 밀접한 관계가 있어."
강옥랑의 얼굴에 드디어 놀라운 기색이 나타났다.
"나는 그런 재주가 있는 친구를 알고 있지 않은 데요."
"누가 그 사람이 너의 친구라고 했어? 너는 그런 큰 재주를 가
진 친구는 없지만 그런 아버지는 있지."
강옥랑은 그제서야 노골적으로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
"나의 아버지가?"
"그렇지. 위무아의 손님은 바로 강남대협 강별학이야."
강옥랑은 놀라면서 길게 탄식을 했다.
"나의 아버님이 위무아와 친구가 되다니!"
그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 했
다.
도교교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위무아와 친구가 되는 것이 무엇이 나쁘겠나? 그런 튼튼한 배
경이 있으면 이화궁주가 그를 괴롭혀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
강옥랑이 물었다.
"그럼 선배의 뜻은 날더러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아버지는 위무아의 친구이니 네가 가면 곧 귀빈이 될 것이야.
그러니 네가 쥐구멍에 가서 우리 대신 일을 해달라는 부탁이야."
"제 능력으로 할 수만 있다면 선배들께서 분부하시오."
도교교와 이대취는 서로 바라보다가 이대취가 먼저 입을 열었
다.
"네가 만약에 위무아의 친구가 된다면 동굴에서는 마음대로 다
닐 수 있겠지?"
"선배께서는 날더러 무슨 일을 알아내라고 하는 것이 아니오?"
"그렇지. 너 같이 영리한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매우 유쾌
한 일이야."
"그래 무슨 일입니까?"
이대취와 도교교는 또 서로 눈짓을 교환하다가 이번에는 도교교
가 웃으면서 말했다.
"대단한 일은 아니야. 다만 우리는 몇 개의 상자가 위무아의 손
에 있다는 소리를 들었지. 너는 가는 길에 상자가 정말 있는지 좀
봐주기만 하면 돼. 만약에 있다면 어디에 있고 또 우리가 빼 낼
방법도 생각을 해봐야지."
강옥랑의 눈에서는 빛이 반짝였다. 그는 이 일에 대해 구미가
당겨졌다. 그러나 얼굴에는 전혀 기쁘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담
담히 말했다.
"그 상자는 무슨 상자이며, 또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지요?"
"하하, 그건 다만 몇 개의 낡은 상자인데 검은 색이고 매우 무
거워. 그런 무거운 상자는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없으니 보면
곧 알 거야."
"상자가 비어 있나요?"
"상자 속에는 보물들이 담겨 있지. 그러나 위무아가 이미 꺼냈
는지도 몰라."
"상자가 비어 있을지도 모른다면 선배들은 왜 꼭 찾으려 하지
요?"
도교교가 탄식을 하면서 대답했다.
"남의 눈에는 비록 몇 개의 낡은 상자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우
리의 눈에는 그것도 보물이지."
강옥랑의 눈이 더욱 반짝였다.
"보물이라고?"
"하하, 그 상자 위의 칠은 우리에겐 백만 냥을 준다해도 팔 수
없는 보물이야."
도교교는 강옥랑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계속 말했다.
"그것은 피로 만든 것이야. 바로 우리의 원수의 피로 만든 것이
야. 우리는 모두 늙었어. 그리고 그 상자는 바로 우리의 자존심이
야. 우리는 그 몇 개의 상자로 옛날의 찬란했던 날을 회상하고 스
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싶을 뿐이야.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희
생이 있어도 그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게 할 수는 없어."
그 말을 이어 이대취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강호에서 다시 일어서려면 꼭 그 몇 개의 상자가 있어
야 돼!"
강옥랑은 점점 넋을 잃으면서 말을 하지 못 했다.
도교교가 다시 말했다.
"만약 그것이 보통의 보물이라면 위무아의 손에 들어갔어도 우
리는 상관하지 않겠어. 돈이 필요하다면 다른 곳에서 약탈하면 더
욱 쉬운 일이지. 그렇지 않은가?"
이대취가 주먹을 굳게 쥐며 말했다.
"그러나 만약 이 몇 개의 상자를 잃어버리면 우리는 한평생을
산 보람이 없어지는 거야. 그러니 너는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좀 도와줘야겠어. 결코 네 은혜를 잊지는 않을 테니까."
강옥랑은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이대취가 물었다.
"자네는 우리를 믿지 못 하겠는가?"
강옥랑은 그제서야 웃음을 보였다.
"선배의 말이 이토록 간절하니 저는 감동을 했습니다. 왜 믿지
를 않겠어요. 다만......."
"다만 어떻다는 것이냐?"
"그 몇 개의 상자는 남의 눈에는 아무 가치도 없으니 위무아도
소중히 하지는 않았을 거요. 그가 상자 속의 보물을 꺼냈다면 벌
써 상자를 버렸을지도 모르지 않겠어요?"
도교교가 말을 받았다.
"그 문제도 생각해 봤지. 위무아가 상자를 버렸다 해도 상자를
어디에 버렸는지 좀 알아다 주겠는가?"
그녀는 웃으며 계속 말했다.
"물론 네가 그냥 수고를 할 순 없지. 일이 성공하면 우리는 필
시 황금과 미녀로 너에게 기분을 내게 해주겠어. 그리고 비밀도
지켜주겠네."
강옥랑의 안면에는 기쁜 표정이 역력히 드러났다.
"제가 지금 곧 가야하나요?"
"물론 빠를수록 좋지!"
강옥랑은 흥분된 상태로 철평고가 걸려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말
했다.
"그럼 저 여자는......."
도교교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너는 정말 그녀를 사랑하나?"
"선배는 눈치 채셨겠지요? 나는 다정한 사람이 아니오. 다
만......."
도교교가 그의 말을 급히 막았다.
"그녀가 이화궁의 문하이기 때문이겠지. 너는 이화궁의 문하와
사귀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겠지. 그리고 금후로 그녀를 이용해
이화궁과 관계를 맺겠다는 것이겠지?"
그녀는 한바탕 웃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 원인 때문에 시종 그녀를 버리지 못 한다는 것이냐?"
"선배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부인할 필요는 없겠는 걸
요."
"그러나 지금은 그녀와 같이 있는 것이 짐스러울 뿐 이익이 없
다는 걸 알아야 돼."
강옥랑이 탄식을 했다.
"이익이 있다해도 괴로움 보다 많지는 않지요."
"바로 그것이야. 바로 그것이야. 그녀는 생긴 것도 몸매도 좋
아. 그러나 네가 일만 성공리에 끝내준다면 내가 책임지고 더 예
쁜 미녀들을 구해주겠네."
그녀는 강옥랑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내가 우선 그녀들에게 너를 유쾌하게 해주는 방법을 가
르쳐주지."
강옥랑은 좋아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정 그렇다면 제가 곧 떠나겠습니다. 그러나 일을 완수한 후 어
떻게 여러분과 연락을 할 수 있지요?"
도교교는 애교를 떨며 말했다.
"일을 완수하든 그렇지 못 하든 삼 일 후에 동굴 입구에서 산책
을 하게. 우리가 자네와 이야기를 할 방법을 찾을 테니까."
강옥랑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우리는 그렇게 결정을 했소!"
이렇게 말을 하고는 그는 철평고를 돌아보지도 않고 나는 듯 급
히 떠나 버렸다.
열녀(烈女) 소앵
이대취는 강옥랑의 뒷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
다.
"저 자식이 너무 빨리 가는 것을 보니 좀 불안한데!"
합합아가 그 말을 받았다.
"하하, 그는 이화궁주가 와서 괴롭힐까봐 저렇게 빨리 가버리는
거야."
백개심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보기엔 그는 우리의 말을 믿지 않을 것 같아. 너희들이
그가 필시 우리를 위해 상자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끝이
야!"
"내가 하는 말이 매우 합리적인데 그가 왜 믿지를 않겠어? 더군
다나 그 자식은 재물과 여자를 좋아하는데, 황금과 미녀들이 그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 할까?"
"그가 상자를 찾았다 해도 꼭 우리에게 준다는 보장이 없잖아?"
"그가 우리에게 주지 않고 빈 상자를 무엇에 쓰겠어?"
합합아가 크게 웃었다.
"하하, 그 자식은 영리한 사람이야, 빈 상자로 황금과 미녀를
바꿀 수 있는데 그가 이 일을 왜 하지 않겠어?"
백개심은 참을 수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찾아온 후에 그 낡은 빈 상자의 용도를 듣고 그가 어떤
얼굴을 하는지 좀 보아야겠어."
"하하, 그때 그의 안색은 너의 엉덩이보다 더 재미 있을 거야."
엉덩이를 말하자 백개심의 눈이 철평고가 있는 나무쪽으로 돌려
졌다. 그는 곧 눈을 감고 웃으며 말했다.
"어이! 아가씨, 위의 바람은 차가운데 춥지 않소?"
철평고는 여전히 정신이 었었다. 이대취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 이자식아, 등에 하나를 업고 또 무슨 생각이냐?"
"저 아가씨가 가엾어 보이는데. 그런 양심도 없는 자식을 만났
으니 정말 불쌍하군. 내가 위로하지 않으면 또 누가 위로하겠나?"
도교교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좋아, 빨리 가서 위로해라! 그러나 만약 이화궁주가 찾아오면
우리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원망은 말아."
백개심이 헛기침을 하며 기뻐했다.
"사실 말이지만 그녀와 같은 고통 속에 있는 여인은 위로해 주
는 것이 좋지. 하지만 나의 보자기 속에 있는 여자도 나이가 좀
많긴 하지만 꽤 쓸만해. 어쩌면 늙은 여자가 더 나올 수도 있지."
"너는 지금에야 남녀지간의 도리를 알게 된 모양이구나. 그러나
남자는 젊고 힘센 것이 좋아. 그렇지 않으면......."
백개심이 크게 웃었다.
"내가 나이 많은 게 다행이군. 그렇지 않았다면 네가 나에게는
큰 골치덩어리 일뻔 했는데!"
"무엇이 골치덩어리라는 말이지?"
백개심은 웃으며 말했다.
"다른 것은 괜찮겠지만 네가 언제 남자가 되고 또 언제 여자가
되는 지를 잘 모르니 시간을 잘못 맞추면 큰 망신이 아니겠어?"
그 말을 들은 이대취가 옆에서 크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묘해. 너 같은 사람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니 묘한데. 요 며
칠 사이에 나에게 전염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요 며칠 사이에 나는 이형과 같은 사람과 지내서 점점
재미있게 된 것 같애."
이 두 사람은 본래 천생의 원수였다. 비록 두 사람은 모두 십대
악인의 이름에 놓여 있었지만 그들은 만날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
았고 또 만난다고 해도 만날 때마다 서로 다투었다.
백개심은 강호에 원수가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대취
때문에 들개처럼 여러 군데를 돌아다녀도 악인곡(惡人谷)으로는
돌아가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가 이런 말을 하자 이대취는 놀라고 말았다.
백개심은 웃으며 말했다.
"요 며칠 동안 나는 말을 하는 것도 이형의 감화를 많이 받았을
뿐 아니라 위장도 많이 변했소. 고기 같은 것들을 먹을 때 매우
싱거운 것을 느꼈지. 조금도 배부르지가 않으니...... 그래서 나
도 사람 고기가 먹고 싶어졌어."
이대취가 참을 수 없었던지 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남녀지간의 문제를 알았을 뿐 아니라 먹는 것도 도통을
했군."
"그러나 사람 고기는 돼지 고기를 먹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는 않고 많은 연구를 해야 돼. 그렇지 않으면 먹지 않는 게 났
지."
사람 고기를 먹는 이야기를 하자 이대취는 정신이 번쩍 난듯 신
이 났다.
"그렇지, 사람 고기를 먹는 덴 많은 것을 연구해야 돼. 첫째,
먹을 사람은 필시 먹기 좋은 사람이어야 돼. 그 자신이 좋은 것을
먹어야 고기도 맛이 있지. 둘째, 그는 무술을 단련해야 해. 무술
을 단련한 사람이야말로 고기가 부드럽고도 탄력이 있지. 그러나
무술을 연마한 사람도 외가(外家) 무술은 안 돼. 셋째는......."
그는 돌연 탄식을 한 후 고개를 저었다.
"사실은 세번째를 말할 필요는 없지. 요즘에는 생활이 나빠져서
두 개의 조건에 적합한 사람도 없지 않아!"
백개심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바로 저 나무 위에 하나가 있지 않소? 그녀는 어떻소?"
이대취는 철평고를 두어 번 바라본 후 군침을 삼켰다.
"다른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저 두 다리만 해도...... 나는 몇
년 동안 저처럼 아름다운 다리는 먹어보지를 봇 했어."
"왜 지금 그녀의 다리를 잘라서 맛있게 먹지를 않지? 그녀가 우
리의 뱃속에 들어간다면 이화궁주가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그녀를
찾지는 못 할 텐데."
"좋은 생각이야. 정말 좋았어."
웃음소리 중에 그는 돌연 '팍'하며 백개심의 따귀를 후려쳤다.
백개심은 날뛰며 소리쳤다.
"너 이 망할놈아, 남은 성의있게 이야기를 하는데 너는 왜 사람
을 때리지?"
"하하하, 네가 나와 이야기를 하는 거냐? 난 벌써부터 네놈이
좋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네가 나를 함정에 빠
뜨리려 하지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야."
"너 이 녀석아, 누가 너를 함정에 빠뜨린데?"
"이것이 함정이 아니냐? 내가 만약 이화궁주의 제자를 먹으면
좋은 나날을 보낼 수 있겠느냐? 난 굶어서 땅에 쓰러지는 한이 있
어도 그녀는 손가락 하나도 건드리지 않겠다."
"네가 그녀를 송두리째 먹어버리면 이화궁주가 어찌 알지?"
"너 이 못난 더러운 입아! 그녀가 왜 모르겠어?"
백개심은 놀라는 척 하더니 쓴웃음을 보였다.
"정말 너를 죽이지 못 하는구나. 확실히 너는 나보다 강해."
그는 말을 하면서 이대취의 따귀를 후려쳤다.
이대취는 한참 동안 신나게 웃고 있었기 때문에 피하지를 못 했
다.
"좋아, 자식아 네가 나를 때려? 내가 네녀석을 죽여주지."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면서 어느 누구도 먼저 손을 쓰지
는 못 했다.
그들은 이미 많이 싸웠다.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함부
로 손을 쓸 수도 없었다.
도교교가 껄껄 웃으며 참견했다.
"이제 끝장이 났냐? 끝장이 났으면 돌아가자."
합합아도 한마디 했다.
"그렇지. 두 노대가 저쪽에서 지치도록 기다리고 있을 거야. 하
하 너희들은 알겠지? 두 노대가 화를 내면 큰 일이 난다고."
백개심이 노하여 말했다.
"좋아, 두 노대를 봐서 너를 용서하겠다."
이번에는 이대취가 노했다.
"두 노대가 기다리고 있지만 않다면 벌써 너를 죽였을 거야."
두 사람은 서로 욕을 하고는 있었지만 그대로 끝낼 작정이었다.
도교교가 돌연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너희들이 계속 싸워도 무방해. 두 노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너희들이 아니니까."
백개심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싸늘한 두 노대가 그토록 소어아를 친절하게 대할줄은 몰랐
어. 만약 소어아가 영원히 돌아가지 못 한다는 것을 알면 필시 상
심을 할 거야. 우리 빨리 돌아가서 그를 좀 위로하지."
이대취가 크게 웃었다.
"너는 소어아가 정말 강옥랑에게 해를 입었는줄 아느냐?"
"방금 보지도 못 했어!"
"안심을 해라. 강옥랑이 만약에 정말 소어아를 해칠 수 있다면
그는 나별 놈이 아니고 신선(神仙)이 되는 거야."
합합아가 말을 받았다.
"신선도 소어아를 죽이지는 못 할 거야. 나는 안심을 하지."
"소어아가 죽었다면 나도 눈물을 흘릴 텐데 어찌 이토록 기쁠
수가 있지?"
물론 도교교의 말이었다.
백개심이 말했다.
"네가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겠어?"
"그렇게 귀여운 아이가 죽으면 왜 상심이 되지 않겠어? 더군다
나 그는 우리가 키웠어. 그는 어릴 때 우리의 몸에다 오줌을 싼
녀석이야."
"정 그렇다면 너희들은 왜 그를 해치려는 것이지? 일부러 표시
를 남겨 그를 쥐구멍으로 안내해 쥐손에 빠지게 했지?"
"그건 우리가 그 큰쥐도 그를 죽이지는 못 할 것으로 알고 있었
기 때문이야."
백개심은 싸늘하게 웃었다.
"당신들은 그런 좋은 마음이 없었을 걸? 너는 다만 그와 연남천
이 연합해서 너희들을 죽일까 봐서 남의 힘을 빌려 그를 죽이려
했지?"
이대취가 크게 분노했다.
"너의 개 같은 입에서는 영원히 사람다운 말이 나오지를 못
해."
백개심의 안색이 변했다.
"왜 내가 하는 말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지?"
이대취와 백개심이 또 싸우려는 순간 그들 사이로 도교교가 끼
어 들었다.
"인정을 해도 무방해. 그러나 그가 남에게 해를 입게 되면 우리
는 분명히 눈물을 흘릴 거야......."
이때 정말 나무 위에서는 눈물 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무심코 그냥 떠나고 말았다.
철평고는 정말 졸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비참한
상황 아래서 졸도하는 흉내를 내는 것 외에는 별 수가 없었다.
그들이 한 말을 그녀는 모두 듣고 있었다.
그는 강옥랑이 자기를 대하는 것이 거짓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었다. 더우기 강옥랑이 이렇게 자기를 버리고 갈 줄은 정말 몰
랐었다.
그녀의 마음은 걸레처럼 산산조각으로 찢어졌다. 그녀는 그들이
떠나간 후 참을 수가 없어 소리를 내어 울어버렸다. 그녀는 정말
죽고만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죽지도 못 했다.
세상에 어느 여인도 이런 모욕을 참을 수는 없다. 그 남자들의
눈, 그녀는 세상의 남자들이 모두 장님이 되기를 바랐다.
이화궁에 있을 때 그녀는 도망나와 마음이 맞는 남자를 찾고 싶
었다. 그것은 소녀들의 공통적인 꿈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경우는 너무 불행했다.
그녀가 만난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독사보다도 악독하고 무정한
짐승이었다!
그녀는 왜 그런 짐승에게 정을 주게 되었을까!
어쩌면 그녀가 이화궁에서 너무 감정을 억제하며 살았고 또 너
무 외로웠으므로 감정을 수습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리라.
얼마가 지난 뒤, 그녀는 한쌍의 눈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
을 느꼈다. 그러나 그 한쌍의 눈은 다른 사람들처럼 차가운 눈초
리가 아니었다.
이 한쌍의 눈은 아름다왔으며 마치 봄날 저녁에 떠오른 하나의
별과 같았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족했다.
철평고는 이처럼 아름다운 눈을 일찌기 본 적이 없었다.
이 한쌍의 눈을 가진 주인이 살며시 웃었다.
비록 봄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녀가 웃을 때엔 마치 분위기가
봄바람이 스쳐간 대지와 같았다.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가씨의 성함은 어떻게 되오?"
"저의 성은 철씨에요."
그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철씨라고? 재미있군. 나의 언니도 철씨에요. 나는 철씨와 인연
이 있나 봐요. 나와 친구가 되보고 싶지는 않은지요?"
철평고는 그녀의 우아한 자세와 아름다운 옷을 보자 자기의 처
지를 생각하고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 소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나를 만나고 싶지 않겠죠? 그러나 너무 상
심은 마세요.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너무 많아 우리 여자들은
많은 고난을 당하지요. 세상에 당신보다 더욱 불행한 사람도 있다
는 것을 알게 되면 이토록 상심하지는 않을 거예요."
철평고는 참을 수 없어서 물었다.
"세상에 나보다...... 나보다 더욱 불행한 사람도 있어요?"
"어찌 없겠어요? 세상의 곳곳에는 가련한 여자가 많아요. 그들
은 자신이 가련하다는 것을 알지도 못 하고 심지어는 미워하는 사
람에게 짓밟히면서도 당신처럼 울지는 않아요. 오히려 웃는 얼굴
을 하며 다른 짓밟힌 사람들을 위로해주지요."
그녀는 확실히 남을 잘 위로 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어떤 불행이 닥쳐도 자신보다 더욱 불행하다고 생각 되는 사람
을 만나면 위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도박을 할 때 비록 돈을 많이 잃고도 보다 더욱 많이 잃
은 사람을 보면 마음이 훨씬 편해지는 것과 똑같은 이치였다.
더우기 여자들은 그녀보다 더욱 불행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모든 고통을 잊고 오히려 남을 위로하게 된다.
철평고는 과연 다시는 울지 않았다. 그녀는 얼마의 시간이 지나
자 차츰 이성을 찾을 수 있었고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를 구해 주세요. 그럼...... 당신에게 감사하겠어요."
그 소녀는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나도 당신을 구하고는 싶지만 난 계단도 제대로 올라가지를 못
해요. 이렇게 높은 나무는 보기만 해도 어지러워요."
"당신...... 당신은 조금의 무술도 모르나요?"
"이상히 생각되는 모양이군요? 세상에는 무술을 못 하는 사람이
무술을 하는 사람보다 휠씬 많아요. 많은 정상적인 사람들은 무술
을 못 해요."
철평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당신...... 당신은 빨리 가세요."
"그러나 최소한도 나는 당신을 위해 일을 할 수는 있어요. 춥지
는 않아요? 내가 불을 피워 드릴께요."
철평고는 너무 화가 났고 수치스러웠으며 무서워서 추운 것도
잊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말을 듣자 온 몸이 춥고 떨리는 것을 느
꼈다.
그 소녀는 과연 나뭇가지를 들고와 나무 아래에다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철평고는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친절하군요?"
"남들은 나의 마음이 독하다고 하는데요?"
"당신......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나에게 말해 주겠어요?"
그 소녀가 웃으며 말했다.
"난 소앵이에요."
"소앵? 당신이 바로 소앵이오?"
철평고는 놀라서 소리쳤다. 소앵은 웃으며 그녀를 올려다보았
다.
"당신도 나의 이름을 들어 보았나요?"
철평고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말했다.
"당신이 여기에 온 것은 한 사람을 찾으려는 것이지요?"
이번엔 소앵이 놀랐다.
"당신이 어찌 그것을 알죠. 그렇다면...... 그 사람을 아시오?"
"그래요. 그를 알지요."
소앵이 탄식을 하면서 쓴웃음을 띠웠다.
"세상의 아름다운 여자는 모두 그를 알고 있으니...... 경쟁하
는 상대가 너무 많군요."
"나는 당신과 경쟁을 안 해요. 영원히 경쟁하는 사람이 못 될
거예요?"
그녀는 말을 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 모습을 본 소앵은 안색이 돌연 변하면서 말했다.
"무슨 뜻이지요?"
철평고의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그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해침을 받았어요!"
소앵의 피가 갑자기 얼음처럼 차가와졌다.
"당신...... 당신이 말하는 사람은 소어아가 아닐 거야. 필시
그가 아닐 거야!"
"내가 말한 사람은 바로 소어아요."
소앵이 돌연 웃어버렸다.
"필시 착각을 했을 테지요. 소어아가 남에게 당하다니, 세상에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어요? 그가 남을 해치지 않는 것만도 다행
인데."
철평고는 처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를 해치지 못 할 것으로 알았는데
그러나 이번에는 믿지 않으면 안 되게 됐어요. 내가 두 눈으로 직
접 보았으니까."
소앵의 온 몸이 떨렸다.
"당신이 직접 보았다고? 누...... 누가 해쳤지요?"
"그 사람은 강옥랑이라고 해요. 그가 소어아를 산벽쪽의 동굴로
밀어 버렸는데, 그 산 굴의 깊은 정도는 알 수가 없지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앵은 이미 산벽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 산벽은 매우 높았다. 그 동굴은 땅과 적어도 십장(丈)의 높
이였다. 경공이 약한 사람은 올라가기가 힘든 곳이었다. 더군다나
소앵은 무술을 하지 못 했다.
평시에는 그토록 침착하던 소앵이었지만 이때에는 매우 흥분해
있었다.
"내가 왜 무술을 배우지 못 했지? 무술이 왜 소용이 없
어......."
철평고가 큰소리로 말했다.
"소 아가씨! 괴로워 말아요. 그럴수록 고통만 심해질 거예요.
소어아 그는 살지 못 할 거예요."
그녀는 자기의 고통과 불행을 잊고 오히려 소맹을 위로했다.
소앵은 말했다.
"그가 죽었다 해도 나는 만나봐야 해요. 더군다나 그는 아직 살
아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당신은 올라갈 수가 없어요."
"방법을 생각해서 꼭 올라가야지요."
그녀는 이를 악물고 결연하게 말했다. 말을 끝내자 그녀는 눈물
을 닦고 다시는 울지를 않았다.
그녀는 비록 울고 싶었지만 지금은 울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눈물이 일을 해결하는 데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다.
철평고는 그녀의 그런 결심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연약해 보이는 여자가 이토록 강한 집념이 있을 줄은 생
각지 못 했는데. 그러나 나는.......)
그녀는 소앵을 보면서 결심과 용기가 세상의 어떠한 보물보다
더욱 가치가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여인이 살아가는 것은 남들의 이해로 인해서가 아니라 남들의
사랑에 의해서다."
이말은 아주 그럴듯 하나 완전하지는 않다.
사실상 여자 뿐만 아니라 많은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살
아가는 것은 남에게 이해를 받아서가 아니고 남에게 미움을 사고
남에게 사랑을 받기 때문인 것이다.
소어아도 바로 그 중의 하나였다.
세상에는 소어아를 사랑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미워하는 사람은
더욱 많았다. 그러나 진정으로 소어아를 이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남들보다 소어아를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도
교교, 이대취와 합합아 등이었다.
그들은 다 알고 있었다. 소어아가 쉽게 남에게 해침을 당할 사
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어떤 위험한 순간에도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물론 그것은 완전히 그의 기지에 의해서만은 아니었고 때때로는
그의 운도 따랐다. 그러나 한 사람이 만약 너무 '운'을 무시한다
면 그 사람은 때때로 불행을 맛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동시에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하나는 땅
에 떨어져 목을 다쳤고, 다른 한 사람은 물에 빠져서 조금도 다치
지 않았다고 치자. 이게 운이 아닐까? 이것이 운이 아니면 무엇을
운이라고 말하겠는가?
도약사의 운은 나쁘지 않았다.
그는 그 산굴에 빠진 후 그것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깊다는 것
을 알았다. 이 산굴의 밖은 다만 십장(丈)의 높이였지만 그 안쪽
은 다섯 배 이상의 깊이였다.
오십장(丈)의 높이에서 떨어진다면 그 사람은 경공이 극도에 달
해있다 해도 산산조각이 될 것이다.
도약사는 자기가 필시 죽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순간 '풍덩'하는 소리가 나
면서 몸이 물 속에 빠져 버렸다. 알고보니 그 밑은 물이었다.
만약 보통 사람이 그런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면 물 속에 빠졌다
해도 곧 기절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도약사는 무공이 약하지 않
아 다만 몸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을 뿐이었다. 바로 이때 그는 웃
음소리를 들었다.
도약사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그 놀라움은 즉각 기쁨으로 변했
다. 그가 죽지 않았다면 소어아도 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어아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외로워할 때 친구가 하늘에서 뛰어내렸으니 정말 기쁜 일
인데. 다만 여기는 깨끗한 물이 없으니 이런 더러운 물로 초대할
수밖에 없어."
산굴은 비록 어두웠지만 위에서 약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
다.
도약사는 눈을 비비면서 소어아를 바라보았다.
소어아는 하나의 큰 돌위에 앉아 있었다.
도약사는 그쪽으로 헤엄을 쳐가며 물었다.
"탈출구를 찾았소?"
"이 산굴은 마치 큰 술단지처럼 생겨서 기어 나갈 수도 없는데
무슨 탈출구가 있겠어!"
도약사는 놀라면서 말했다.
"나갈 길이 없는데 왜 그토록 기뻐하는 것이오?"
"그럼 날더러 심각한 표정을 지으란 말이야?"
"걱정이 되지도 않소?"
"걱정을 해서 탈출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지."
도약사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그 해독약은 물에 침수된 후에도 효력이 있소?"
"안심 하시오. 그 해독약은 방수가 되어 있소."
도약사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우리가 함께 위험 속에 있으니 서로 협력을 해야하지
않겠소. 지금 나에게 해독약을 주시오."
"안 돼!"
"왜...... 무슨 이유요?"
"내가 해독약을 주지 않아야 넌 나의 말을 잘 들을 거야. 나에
게 아들이 있다해도 너처럼 말을 잘 듣지는 않겠지. 그런 사람이
옆에 있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인데 내가 왜 해독약을 주겠어?"
"그러나...... 난......."
"안심해. 그 독은 짧은 시간 내에 발작을 하지는 않으니까. 그
리고 입 좀 다물고 있어봐."
도약사는 그의 말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동굴 밖에서 얘기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굴 입구는 마치 토끼의 귀처럼 주위의
소리를 모아 동굴 안에 울려퍼졌다.
강옥랑이 철평고에게 달콤하게 속삭이는 것을 들으며 소어아는
계속 머리를 저었다.
돌연 철평고가 소리를 질렀다. 소어아는 강옥랑이 또 어떻게 그
녀를 괴롭혔나 생각했다. 이때 강옥랑도 소리를 쳤다.
뒤따라 그는 강옥랑, 철평고와 이화궁주가 하는 말을 들었다.
그 대화를 들은 소어아는 마치 돌사람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 제7권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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