绝代双骄 14

3학년2반 | 2022.02.14 08:00:57 댓글: 0 조회: 367 추천: 0
분류무협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8674
위무아의 사랑
소앵은 애가 타서 안절부절 하다가 얼굴에 미소를 띠우기 시작
했다.
이화궁주를 발견한 것이다.
이 두 자매는 멀리서 싸움을 돕고 있었다.
그녀들은 하나는 공격 자세를 하나는 수비 자세를 취했으나 그
동작은 매우 느렸다.
소어아보다 우둔한 사람이라 해도 그녀들이 자기에게 무공초식
을 가르치려는 것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거절을 하려 해
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요월궁주가 방금 사용한 수법을 소어아가 펼치자 위무아는 과연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위무아가 다시 공격을 해오자 그는 연성궁주의 수법을 사용했
다.
이 수법들은 보기엔 위력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열 번의 수
법이 지난 다음부터 소어아는 차츰 우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에야 소어아는 그들의 무술이 얼마나 신비한 것인가를 알았
다.
그 평탄한 수법들은 모두 위무아를 극복하는 것들 뿐이었다.
그녀들은 비록 위무아와 직접 싸우지는 않았지만 위무아의 무술
의 결점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녀들은 위무아를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위무아가 다음에 무슨
수법을 쓸지 다 예상하고 있지 않은가!
위무아가 그녀들을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숨도 제대로 쉬지 못
할 정도가 되어 있을 때였다. 그는 자신의 기이한 수법이 그토록
쉽게 패할지는 몰랐다.
두 이화궁주의 수법은 비단 평범할 뿐더러 간단했다. 사실 그녀
들은 이미 무공의 요점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장이 필요 없었고 단지 간단한 몇 마디로 재미있고 멋있게 무
엇인가를 표현할 수가 있었다.
정말 무공이 절정에 달할 때에는 기이한 것이 필요 없었다.
소어아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난 당신의 혀를 자르고 싶지도 않고 당신의 다리를 자를 생각
도 없소. 다만 당신의 눈알을 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해야겠
소."
바로 이때 돌연 '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는 동굴 밖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는데 굉음은 온통 산을
진동시켰다.
소어아는 기쁘면서도 놀랐다.
위무아의 차가 이미 석장(丈) 밖으로 밀려나갔다.
그는 의자 밑의 통로로 달아나려고 했으나 이화궁주가 그의 길
을 막았다. 두 사람의 표정은 여전히 싸늘했다.
연성궁주가 소리 쳤다.
"강소어, 빨리 와서 손을 쓰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위무아가 말했다.
"잠깐 나도 할 말이 있소."
"무슨 말이지?"
"밖의 소리를 들어 보시오. 당신들이 여기에 갇혀있는 것을 알
고 있는 것 같소."
이때 산밖에서 다시 '딩'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성궁주는 기쁜 빛을 보이며 담담히 말했다.
"그렇지."
이때 위무아가 냉소했다.
"당신들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우리가 너의 손에 죽을 것 같은가?"
"안에서는 문을 파괴할 수가 없어도 밖에서는 파괴할 도구가 있
으니 필시 당신들을 구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그래서
날 죽여도 괜찮단 말인가?"
"네가 이 산을 개척할 수 있었는데 왜 다른 사람은 못 하지?"
위무아는 고개를 들고 웃었다.
"그렇지. 여기는 태반을 사람들이 개척한 것이오. 그러나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얼마나 오랜 시간을 소비했는지 알고 있소?"
그는 미친 듯이 웃으며 다시 말했다.
"들어왔다가 나간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연성궁주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가 알면?"
"그는 당신들이 산에 갇혀있는 것을 알고 필시 전력을 다해 구
출하려고 할 것이오. 그렇다면 내가 빨리 공기통이라도 봉쇄하여
당신들을 죽여야 하는데 내가 왜 걱정하지 않을까?"
"우리 이화궁의 부하가 문 하나도 파괴하지 못 할줄 아느냐?"
"물론 열 수 있겠지. 그러나 적어도 삼 일 가량의 시간이 필요
해!"
"삼 일 동안은 기다릴 수가 있다."
"물론 삼 일 정도는 기다릴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밖에서 여
기까지는 열세 개의 문이 있소. 백 명을 동원한다 해도 일개월의
시간을 소요해야 들어올 수가 있소."
"일개월?"
"적어도 일개월이오. 어쩌면 그것보다 훨씬 오래 걸릴 지도 모
르지."
연성궁주는 요월궁주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모두 안색이 변
했다.
위무아는 말을 계속했다.
"여기에는 먹을 것이 없소. 당신들이 아무리 큰 재주가 있어도
열흘 정도 이상은 버틸 수가 없소. 밖에서 사람이 들어온다 해도
그때쯤은 당신들은 모두 냄새나는 시체가 되어 있을 것이오."
소어아가 돌연 큰소리로 말했다.
"정 그렇다면 우리는 더욱 너를 죽여 버려야지!"
"그렇지. 나를 죽여야 내 앞에서 망신스러운 꼴은 보이지 않겠
지. 다만......."
"다만 어떻다는 거냐?"
위무아는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지금 나를 죽이면 너무 애석하다는 말이야."
"애석하다고? 너를 개에게 먹여도 애석하지는 않아."
위무아는 여전히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웃음을 보였다.
"우선 나를 따라가서 몇 가지의 물건을 보는 것이 어때?"
"무엇을 말이냐?"
"날 따라 와보면 알게 돼."
소어아는 이화궁주를 슬쩍 쳐다본 후 말했다.
"좋아. 당신을 따라 가보지.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까."
그는 차를 밀며 지하도로로 들어섰다.
이화궁주는 그림자처럼 그의 뒤를 따랐다.
소어아는 소앵을 향해 말했다.
"산굴 아래에 지하실이 있는가?"
"네."
"지하실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지?"
"나도 몰라요. 한번도 내려가지를 못했으니까!"
소어아는 놀랐다.
"너까지도 내려가 보지 못했단 말이냐?"
"그는 이 지하실을 매우 소중이 취급해서 그 자신 외에는 그 누
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어요. 그의 제자 몇 사람이 언젠가 몰래
지하실에 들어갔다가 그에게 들켜서 죽음을 당했어요."
소어아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하실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지. 왜 사람이 보지 못하게 할
까?"
"누구도 그가 밑에서 무엇은 하는지 모르지요. 그러나 일종의
이상한 소리를 들은 적은 있어요."
"무슨 소린데?"
"그가 내려 가기만 하면 밑에서는 툭툭 탁탁하는 소리가 났고
때때로는 며칠 동안이나 끊기지 않았어요."
소어아는 눈앞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툭툭 탁탁? 그건 돌을 쪼개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그런 것 같아요."
소어아는 크게 기뻐서 말했다.
"밑에서 지하도를 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위무아는 이때 이미 하나의 석문 앞에 다가서고 있었다. 그 문
은 그가 남긴 비밀 통로인 것도 같았다.
소어아는 급히 달려갔다.
그러나 그는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석문 뒤에는 하나의 육각형의 석실이 있었으며 다른 문은 없었
다.
그 석실에는 광선이 침침했다.
소어아는 희미하게 하나의 큰 관을 볼 수 있었고 많은 석상들도
보았다.
위무아가 입을 열었다.
"지금에야 믿겠지. 난 이미 여기에 나를 위해서 청석(靑石)관을
준비했어!"
소어아가 물었다.
"이 석상들은 무엇에 쓰는 것이오?"
"이건 모두 나의 걸작이니 불을 켜고 자세히 보게."
소어아는 그의 웃음소리로 미루어 보아 필시 이상한 것이리라
느꼈다.
위무아는 벽에 놓여있는 열 개의 불을 차례로 켰다.
그가 네번째에 불을 붙쳤을 때 소어아는 넋을 잃고 말았다.
그 석상들은 모두 이화궁주와 위무아 자신의 모습을 조각한 것
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진짜 사람과 비슷했다. 세 개가 한 조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그 자태는 모두 틀렸다.
한 조의 석상은 이화궁주인 두 자매가 땅에 꿇어앉아 위무아의
옷자락을 잡고 그에게 애걸을 하는 모습이었다.
두번째 조의 석상은 위무아가 채찍으로 그녀들을 때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화궁주 두 자매의 표정은 마치 살아있는 듯 했으며 그 채찍도
마치 진짜인 것 같았다.
세번째 조에는 이화궁주가 땅에 누워 있었고 위무아가 그녀들의
가슴을 밟고 손에는 술잔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불빛 아래서 바라보니 무수한 이화궁주가 위무아의 학대를 받으
며 매질을 당하고, 소리치며 뿌리치고 있었다.
소어아는 그제서야 알았다.
위무아는 밑에서 조각을 하느라고 삼 일 동안 쉬지 않을 때도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분
노를 분출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석상은 잘 새겨져 있었다. 정말 교묘했다. 흡사 살아
있는 것만 같았다.
석상마다 예술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모두가 다 걸작들이
었다.
소어아는 그 석상들을 보면서 탄성을 울렸다.
"이 미친 놈이 이런 천재일 줄은 몰랐는데!"
이화궁주는 분노에 찬 나머지 온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녀들은 쏜살 같이 달려들어 석상을 들어 던져 버렸다.
소어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애석하구나! 만약에 이 석상들을 남겨 놓으면 가치가 클 텐
데!"
그렇게 견고해 보이던 석상들도 이화궁주의 손에서는 종이조각
같았다.
무수한 세월 동안 심혈을 기울인 석상들이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위무아는 그것을 조용히 바라보며 움직이지도 않았다.
연성궁주가 드디어 그의 앞으로 달려와 소리쳤다.
"너 이 짐승아! 이번에도 너를 놓아 줄 것 같으냐?"
그녀는 위무아의 옷을 잡아 그를 의자에서 들어내 석벽으로 던
졌다.
'펑' 하는 소리가 나면서 위무아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러나 사람의 몸이 어찌 '산산조각'이 날 수 있단 말인가?
연성궁주는 놀랐다.
그제서야 그 '위무아'가 돌로 만들어졌고 다만 옷을 입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진짜 위무아는 이미 어디론지 달아나버린 뒤였다.
소어아는 눈길을 돌리며 소리쳤다.
"이거 야단이군. 이번에는 정말 큰일났는데!"
석실의 문은 이미 닫혀 있었고 사방은 석벽뿐이었다.
이화궁주가 무거운 돌을 던져보았으나 석벽은 움직일 생각도 하
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은 석벽을 열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바늘 크기만한 구멍도 뚫리지 않았다.
소어아가 우선 포기를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약간의 힘을 남겨두고 있었다.
소앵이 그와 같이 석벽을 기대고 앉았다.
소어아는 한숨을 불어내며 말했다.
"정말 위무아에게 탄복했어! 그는 무서운 수완이 있는 사람이
야!"
소앵이 침묵을 지키다가 그의 말을 듣고 대답했다.
"그는 이미 우리를 가둬 죽일 수가 있었는데 왜 여기까지 데리
고 왔을까요?"
소어아는 입가에 웃음을 띠웠다.
"그 이유는 너무 많아. 첫째 우리를 여기에 가두어 두면 자유로
이 활동할 수가 있고 심지어는 마음대로 먹고 즐기다가 우리가 굶
어 죽은 후 나갈 수도 있지!"
"그는 자신도 죽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가 정말 우리와 같이 죽을 것 같아? 그의 함정이야. 그의 목
적은 우리를 여기까지 유인해 오려던 것이었어. 밖에서 한 말은
모두 유희에 불과해."
소앵은 고개를 숙이며 탄식을 했다.
소어아는 쓸쓸한 표정을 버리지 못했다.
"우리는 마치 우리 속에 갇혀 있는 원숭이들처럼 그의 장난감이
된 것이야."
"당...... 당신은 지금 그가 몰래 보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가 우리를 여기에 가둔 것은 우리가 죽기 전에 무슨 변화가
있으며, 어떤 추태를 부릴 것인가 보고 싶어서야."
소앵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 후 소어아가 돌연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죽기 전에 어떻게 될 것인지는 나 자신도 생각하지 못할
거야. 이건 재미있는데?"
소앵은 몸을 움직여 그의 몸에 기댔다.
"당신은 어떻게 죽든 간에 필시 귀여울 거예요."
소어아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누르며 말했다.
"내가 어쩌면 너를 잡아 먹을지도 모르는데 넌 두렵지도 않아?"
소앵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우리 둘이 한 사람이 되는데 무엇이 두렵겠어요?"
소어아는 그녀를 잠시 바라본 후 탄식을 했다.
"너는 너무 영리해. 그렇지 않다면 틀림없이 너를 좋아했을 거
야."
소앵이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여인은 아기를 나으면 영리하지 않게
된다고 했어요."
만약에 평상시였다면 소어아는 이런 말을 듣고 필시 웃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가슴 속에 달콤하고도 짜릿한 감정이 용솟음
쳐 오름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은 그 자신도 어떤 느낌인지를 몰랐다. 다만 지금까지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이때 이화궁주 자매가 손을 멈추었다.
두 사람은 멍하니 서있었다. 비록 겉으로 보기엔 여전히 싸늘함
과 오만함을 갖추고 있었지만 피곤함과 처절함을 감출 수는 없었
다.
얼마가 지난 뒤, 소어아가 일어서서 관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서서히 관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는 깨진 석상 조각들로
관의 주위에 담을 쌓기 시작했다.
이화궁주는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두 사람에게 소어아의 행동은 볼수록 기이하게 여겨졌다.
그들은 물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소앵이 먼저 물어보
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러나 소앵의 눈에는 그저 달콤함만이 가득찬 즐거운 표정이었
다.
그녀는 웃으면서 소어아를 바라볼 뿐 아무 것도 물어보지 않았
다.
마치 그녀는 소어아의 뜻을 잘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참 후 연성궁주가 참을 수 없었던지 입을 열었다.
소어아는 이미 돌을 사람의 높이 정도로 쌓아 올렸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
"먹고, 마시고, 싸고, 자고, 모두가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아니
겠소? 지금은 비록 먹을 것은 없어도 전에 먹었던 것은 나올테니
뱃속에 계속 둘 수는 없소. 그렇다고 바지에 쌀 수도 없으니 이런
방법 밖에는 없지요."
요월궁주는 크게 노했다.
"너...... 네가 감히 이토록 무례할 수가 있느냐?"
소어아는 웃음을 보였다.
"무례하다고요? 그럼 당신은 바지에 싸겠단 말이오. 그것이야
말로 무례요."
이화궁주는 그 말에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다시는 말을 하지
못했다.
소어아는 이미 깨어진 조각들로 벽을 쌓은 후 관 뚜껑을 위에
올려 놓으니 아주 훌륭한 뒷간이 되었다.
소어아는 그 청석(靑石) 관을 바라보며 웃었다.
"이토록 좋은 것은 임금님에게 진상할 만한 것이오. 가장 좋은
것은 이것이 무척 커서 사십여 명이 사용을 해도 흘러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오."
그는 손뼉을 치며 다시 웃었다.
"나는 항상 노인을 존경하오. 그러니 두 분 노인께서 사용하시
겠다면 두 분께서 먼저 쓰시지요."
이화궁주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소어아는 소앵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소앵도 얼굴을 붉히면서 서서히 말했다.
"난...... 난 지금...... 생각이 없어요."
"정 그렇다면 여러분, 난 사양하지 않겠소."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그는 천천히 다시 걸어 나오며 탄성을 쏟아냈다.
"아 시원하다. 세상에 이토록 시원한 일은 없을 것이야!"
그는 돌아와서 앉더니 눈을 감고 잠을 자려고 했다.
소앵이 조용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발자국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몸이 움직이자 소어아가 갑자기 한 쪽의 눈을 떠
서 웃으며 말했다.
"너 생각이 있느냐?"
소앵은 얼굴을 붉히면서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나쁜 사람이에요."
이런 일은 말을 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다. 그러나 누군가 먼저 말을 꺼내게 되면 생각이 나게 마련이
다. 그리고 일단 한 번 말이 나오게 되면 참을 수가 없게 된다.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연성궁주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무언가를 참는 눈치였다.
한참 후 그녀의 양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소어아는 이미 코를 골며 깊은 잠에 취한 것 같았다.
연성공주는 바람처럼 달려갔다.
그녀가 가장 무서운 상대와 싸울 때에도 이처럼 빠른 신법을 사
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소어아가 불쑥 '푸' 하며 웃고 난 뒤에 서서히 말
했다.
"나를 무례하다고 하지 말고 오히려 나에게 감사하시오."
세상에 어떤 일들은 항거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아무리 고귀하고 오만한 사람도 때때로 가장 비겁한 사람처럼
되어버릴 때가 있는 법이다.
이런 일들은 어느 사람이라도 동등하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도 가장 추악한 사람도 모두 늙는 것은 마찬
가지고 영리한 사람과 영리하지 않은 사람도 모두 배고픔을 느끼
고 추위와 피곤을 느끼는 것은 똑같다.
이것이 바로 일류 최대의 비극이라면 비극일 것이다.
이 삼 일이 지났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마치 십 년 세월처럼 느
껴졌다.
소앵은 이화궁주가 앉아 있는 것을 보자 위무아가 한 말이 생각
났다. 그녀는 속으로 탄식을 했다.
(우리는 정말 위무아가 말한 것처럼 되어버릴까?)
그녀는 눈길을 돌려 소어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소어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팔
베개를 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소어아는 마치 자기 방에서 편안하게 누워 잠이라도 자는 듯 태
연했다.
바로 이때 천정 위에서 돌연 하나의 구멍이 생겼다.
그리고 무엇인가가 위에서 떨어졌다. 귤이었다. 꼭 한 개의 귤
이었다.
그 귤은 황금보다도 더 귀중해 보였다.
그 한쪽의 귤을 먹기만 해도 화무결이 올 때까지 견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소앵은 그 귤을 바라보자 눈이 멍해졌다.
그녀는 하나의 귤이 이렇게 자기의 마음을 움직일줄은 몰랐다.
이때 이화궁주 자매의 눈도 그 귤 때문에 변하기 시작했다.
만약 다른 것이었다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수분이 많은 귤은 목마른 것과 배고픈 것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으니 바로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연성궁주가 서서히 일어섰다.
그때 돌연 소어아가 그녀를 보고 크게 웃었다.
"그토록 고귀한 이화궁주도 남이 먹다 남은 물건을 주어서 먹겠
다니 재미있는데."
순간 연성궁주는 멈추어 섰다. 그녀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여전히 그 귤을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소어아는 유유히 웃으며 말했다.
"잊지 마시오. 위무아의 한쌍의 도적 같은 눈이 몰래 당신을 바
라보고 있소. 당신이 만약 그 귤을 먹는다면 그는 배꼽이 터지도
록 웃어버릴 것이오."
연성궁주는 얼굴의 근육까지 떨면서 마음의 고통을 참고 있었
다.
그 귤이 유혹하는 힘은 정말 대단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눈을 감고 앉아 버렸다.
그녀는 죽어도 남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십만 명의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은 한 명 아니면 두 명밖에 없을
것이다.
소어아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난 남이 버린 물건을 주워먹어도 웃는 사람이 없을 것
이오. 나의 얼굴은 성벽처럼 두꺼우니까요."
그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 그 귤을 집어들었다.
소앵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설마 그가 혼
자 귤을 먹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정말 소어아를 이해할 수
가 없었다.
소어아는 귤을 갈았다. 과즙이 얼굴에 튀겼다. 그는 그것을 혀
를 내밀어 빨며 중얼거렸다.
"달콤하고 향기로운데, 낯이 두꺼운 것도 나쁜 일은 아니지!"
그는 돌연 소앵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너의 얼굴도 결코 얇은 것은 아닐테니 반쯤 먹어라!"
이런 때 귤을 반이나 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의 부모라해도 쉽게 주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 비단 인자한 마음 뿐만 아니라 희생의 용기도 필요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런 일을 할 때 필시 의리있는 척이라
도 해서 남의 존경을 받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소어아는 이런 일을 할 때 남을 욕하는 사람이었다.
소앵이 웃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때때로 정말 이상하게 여겨져요. 강도의 입을 가지고 있으면서
도 선량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군요."
"그러나 어떤 사람은 본래부터 강도와 좀 비슷하지!"
"네?"
"내가 알기로 어떤 사람은 도처에 가서 속이고 강탈해서 십만
냥의 은을 모은 뒤 길을 포장했지. 그도 좋은 사람이 된 거야."
소앵이 반쪽의 귤을 들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구두쇠 보다는 났지요!"
소어아는 남은 반쪽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더니 돌연 일어서서
이화궁주 자매의 앞으로 갔다.
"당신들은 나를 보지 않아도 향내는 맡을 수가 있겠지요?"
이화궁주는 고개를 돌리고 그를 외면하고 있었다.
소어아는 돌연 반쪽의 귤을 그들의 앞에 놓고 말했다.
"이것은 당신들 것이오."
요월궁주는 안색이 창백해지며 소리쳤다.
"가져 가라! 난 너의...... 너의......."
소어아는 그녀의 말을 가로 막았다.
"당신들은 절대로 남이 먹다 버린 것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
고 있소. 그러나 이 반쪽의 귤은 내가 공경히 보내온 것이니 두
분은 마음놓고 잡수십시오."
이화궁주는 서로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얼마 후 연성궁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네가 왜 우리들에게 이렇게 하는 것이냐?"
소어아는 한참 동안 사이를 두었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다 죽어갈 때에도 자기의 신분을 지키며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
는 사람들에게 탄복했기 때문이오."
그는 웃으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이건 내가 당신들을 존경해서 드리는 것이니 안 받지는 않겠
죠?"
소앵이 그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소어아가 귤의 반쪽을 그들에게 줄 것을 알고 있었
다.
소어아는 웃음띤 얼굴로 다시 걸어왔다.
마치 그는 백 개의 귤을 먹다가 남은 반 개를 남에게 준 것 같
은 인상이었다.
소앵은 짐짓 토라진 척 말했다.
"나...... 난 아직 당신이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방금 내가 말을 했잖아. 생각을 해봐. 그들이 창피를 두려워하
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찌 이 귤을 먹을 수가 있겠어?"
소앵이 나머지 반 개의 귤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당신은 왜 귤의 반은 그들에게 주고 나머지 반은 나에게 주는
것이지요?"
"이 귤은 이미 내가 가져왔으니 나의 것이야. 하지만 그 반은
나와 같이 얼굴이 두꺼운 너의 것이지. 그러나 나의 반쪽은 남에
게 주든 안 주든 나의 일이니 너와는 상관이 없어."
소앵이 할 말을 잊고 멍하니 소어아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불어
냈다.
"당신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며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남자가 한 여자에게 완전히 속을 드러내게 되면 그것이 오히려
큰일이야!"
소앵은 반쪽의 귤을 다시 반쪽으로 나누면서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반쪽의 귤을 나에게 주었으니 나의 것이 되었지요. 나
는 당신에게 반을 주겠어요. 이...... 이것도...... 경의를 표한
다고 해 두지요."
"난 필요 없어!"
"왜요?"
"너의 그 쪽이 더 크기 때문이지. 그 쪽을 줘!"
소앵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만약 당신 같은 아이를 낳는다면 약이 올라 죽을 거예
요."
"그럼 지금 죽어라!"
"뭐라고요?"
"네 아들은 필시 나를 닮아야지. 만약 다른 사람을 닮았다면 내
가 약올라 죽을 거야."
소앵의 얼굴은 온통 홍당무가 됐다. 그녀는 붉은 입술을 깨물며
새침하게 말했다.
"당, 당신은 정말로 나빠요. 왜 자꾸 사람을 놀리는 것이에요?"
소어아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난 큰 나쁜 놈이지만, 작은 나쁜 놈은 아직 낳지도 않았어!"
소어아의 지혜(知慧)
소앵은 소어아의 말을 듣자 이화궁주가 그녀를 보는 것도 잊은
채 소어아의 품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연성궁주는 서서히 눈을 감아버렸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방울이 맺혔다. 그러나 그녀가 무엇을 생
각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소어아는 중얼거렸다.
"금후에 누가 나에게 인성본악(人性本惡)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
의 따귀를 후려치겠어."
하나의 귤에 네 사람. 한 사람이 겨우 두세 조각밖에는 먹지를
못했다. 정말 보잘 것 없는 양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인성의 선량함을 같이 체험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존엄성은 위무아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파괴되
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죽음이 가까워진 것을 실감했다.
이미 피할수도 만회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죽음이 그들의 어깨
에 한쪽 팔을 걸쳤다.
너무나 높은 곳에 있어 사람들이 함부로 바라보지도 못했던 이
화궁주도 결국은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았다.
소어아는 새삼 그녀들도 평범한 인간들이라는 것을 느꼈다.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그녀들도 필요로 하며,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감정을 그녀들도 간직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눈물
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들이 그런 것을 인정할 수가 있을까?
소어아는 돌연 그녀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여러분들이 모두 살아나갈 수 있는 방도를 알고 있소."
순간 모든 사람들은 기갈이 든 상황에서 구원자를 만난 듯 소어
아를 바라보았다. 연성궁주가 곧 물어왔다.
"어떤 방법이지."
"이 방법은 비록 창피하기는 해도 필시 소용이 있을 것이오."
그는 두 이화궁주가 자기를 주시하는 것을 느끼며 계속해서 말
했다.
"위무아는 정에 미친 사람이오. 그는 당신들만을 생각하고 있었
고 절대로 다른 여자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살았소. 당신들이 그에
게 시집을 가겠다고만 한다면 우리는 모두 여기에서 살아나갈 수
있소."
소앵은 크게 놀랐다.
이화궁주가 필시 화가 나서 그에게 손을 쓸 것으로 알았기 때문
이다.
그러나 이화궁주는 그런 말을 듣고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
아 있었으며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나타내지 않았다.
소어아는 눈에서 빛을 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어떻든 간에 위무아는 당신들에게 정이 깊었소. 세상에 이런
남자도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오."
그는 이화궁주의 표정을 살피며 계속 말했다.
"그에게 시집을 가는 것은 무정한 사람에게 시집 가는 것보다는
낫소."
요월궁주는 입술을 깨물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연성궁주가 돌연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잠시 후 소어아가 물었다.
"생각을 해봤소?"
연성궁주가 얼굴을 그에게로 향했다.
"만약 몇 시간 전에 네가 그런 말을 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
지를 아느냐?"
"물론 알고 있소.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참았다가 말을 하는 것
이오. 사람이 죽음 앞에서는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오."
"그럼 너는 내가 지금 소앵에게 그에게 시집을 가라고 해도 좋
겠느냐?"
소어아는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소앵은 소어아를 뚫어질 듯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소어아는 길게 탄식을 했다.
"난 다만 그렇게 말을 했을 뿐이지 꼭 당신들에게 시집을 가라
는 것은 아니오."
소앵은 길게 탄식을 하며 말했다.
"난 당신의 마음을 알수만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어요."
"죽음은 어려운 일이 아니야. 누구에게나 오는 일이고 또 너무
쉽게 찾아오기도 하지."
그는 탄식을 했다.
"그러나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야."
그가 갑자기 이런 무거운 말을 하자 소앵도 가슴이 암담해졌다.
죽음을 기다리는 고통이야 말로 참을 수가 없었다.
소앵은 눈을 비빈 후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지금 조금의 희망도 없단 말이에요?"
"우리들이 침착하게 조용히 죽음을 기다린다면 조금의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지."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는데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
"위무아가 우리를 천천히 죽이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제정신을
잃고 비참한 모습을 한 채 죽어가길 바라기 때문이야. 그래야 그
의 한이 풀리는 셈이지."
"그렇겠군요."
"그러나 우리는 지금 모두 침착하게 견디고 있어. 우리가 이토
록 침착하게 행동을 유지한다면 그는 필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
야. 필시 무슨 기동이 있을 것이고 그때 바로 우리의 기회가 오는
것이지."
소앵은 고개를 서서히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요. 그가 계속 우리를 상관하지 않으면 우리는 목숨을 구
할 기회가 없지요. 그가 기동을 하는 것만이 우리가 살 기회에요.
다만......."
"다만 그가 우리보다 더욱 침착하면 큰 일이란 말이지?"
소앵은 큰 눈을 깜박거렸다.
"우리는 꼭 무슨 방법을 생각해내야 해요."
"그렇지."
"그러나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그 방법을 나도 너에게 묻고 있는 거야."
소앵은 입술을 지긋이 깨물고 다시 절망의 빛을 보였다.
한참 후 소어아는 돌연 일어서서 이화궁주 두 자매에게 공경히
인사를 했다.
"나 강소어는 이화궁주와 같이 죽게 되는 것도 인연이라 생각하
오. 지금 우리는 모두 죽게 되었으니 옛날의 원한을 없애 버립시
다. 당신들이 왜 화무결에게 나를 죽이도록 했는지 대체 무슨 비
밀이 있는지 나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겠소."
이화궁주는 그가 돌연 그런 말을 하자 눈을 크게 뜨고는 놀란
표정으로 그의 말을 기다렸다.
소어아의 말은 계속 되었다.
"우리는 달아날 희망이 없소. 나는 당신들이 나를 통쾌하게 죽
이길 바라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연성궁주가 말했다.
"네가 자살을 하려느냐?"
"그렇소. 난 벌써 말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소. 죽는 것
을 기다리는 것이 더욱 견디기 어렵소."
이화궁주 자매의 안색이 무거워졌다.
이번에는 요월궁주가 돌연 소리쳤다.
"안 돼."
소어아는 쓴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지금도 당신은 꼭 화무결에게 나를 죽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
오?"
그는 눈을 깜박거리며 두 이화궁주에게 눈짓를 보냈다.
요월궁주는 그저 놀랄 뿐이었다. 연성궁주는 뭔가 낌새를 알아
차리고 그녀의 옷깃을 당기며 말했다.
"좋아, 죽어도 좋다."
"고맙소. 내가 죽은 뒤에 염라대왕 앞에 서게 되면 당신들에 대
해 좋게 얘기를 해드리겠소."
소앵이 돌연 끼어들었다.
"여기에 두 알의 독약이 있어요. 바로 위무아가 자기의 제자들
에게 주기 위해 준비한 것이에요."
소어아가 말했다.
"그런 독약의 무서움은 나도 알지. 한 알이면 되겠지?"
소앵은 처절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죽으면 내가 잠시라도 살지 못할 것을 알아요?"
"좋아, 죽으면 같이 죽자! 저 세상에 가서 외로울지도 모르니
까."
이때 돌연 한 사람이 큰소리로 말했다.
"죽으면 안 돼! 죽으면 안 돼! 너희들 젊은이들은 사랑하면서
하루라도 더 사는 것이 좋을 텐데. 지금 죽으면 너무 억울하지 않
을까?"
위무아의 목소리였다. 소어아와 소앵은 마주보며 생각했다.
(그가 과연 우리 수법에 걸려 들었어.)
위무아가 다시 말했다.
"너희들이 만약 가슴이 답답하다면 술이나 조금 마셔라. 좋아질
거야. 하하 내가 술을 너희에게 주지!"
석실 위의 구멍에서 술병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소어아의 품속에는 열두 개의 작지 않은 술병들이 안겨
져 있었다.
소앵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술도 체력을 보충할 수는 있으니 이 열두 병의 술을 천천히
마시면 며칠을 더 살 수는 있겠군요."
"술은 비록 체력을 보충할 수는 있지만 성(性)을 어지럽게 하
지. 위무아가 이런 수를 쓰다니 정말 무서운데."
"그렇다면 당신은 왜 그 술들을 받았지요?"
"네가 그것을 모른단 말이야?"
소앵은 의아해 할 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소어아는 여섯 개의 병을 이화궁주 앞에 놓아주면서 말했다.
"지난번처럼 반 반씩 나눕시다."
요월궁주가 말했다.
"다 가져가거라. 나의 동생은 술을 마시지 않으니까."
"평소에는 마시지를 않았다 해도 지금은 좀 마셔도 좋소. 죽을
때까지 술맛을 모른다면 한평생을 헛 산 것이오."
잠시 후 그는 반 병의 술을 마셔버렸다.
그 술이 만약 독한 술이었다면 두 이화궁주는 마실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술은 최상급의 죽엽청(竹葉靑)으로 만
든 것이었고 그 향기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푸른색의 그윽한 술색깔을 보고도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
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심하게 목이 마르다면 독약도 마실 것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좋
은 술인데! 연성궁주는 요월궁주를 힐끗 바라본 후 참을 수 없다
는 듯 한 모금을 마셔버렸다.
그리고 연이어 그녀는 몇 모금의 술을 더 들이켰다. 뒤따라서
그녀의 온 몸의 피가 뜨거워졌다. 아애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
았으면 괜찮았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입을 댄 후에는 마시
고 싶은 것을 참을 수는 없었다.
소어아는 술병을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황하(黃河)의 물이 하늘에서 흘러내려 바다로 가고 돌아오지를
않는구나......."
이태백(李太白)의 시 장진주(將進酒)였다. 이화궁주 자신도 읽
어 본 적이 있었지만 술꾼의 미친 주정 정도로 생각했었을 뿐이었
다.
그녀 자매가 그런 싸늘한 성격으로 남의 뜨거운 시를 읽어보았
다는 것 조차도 확실히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연성궁주는 술을 몇 모금 마신 뒤라 그 시를 듣자 마음
이 움직였다.
그녀는 이미 피가 들끓고 있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한 병의 술을 모두 마신 뒤 중얼거
렸다.
"술은 미인과 마셔야 하니...... 자 한 잔 따라 부어라. 우리
모든 것을 잊어버리자."
소앵은 그녀의 추태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연성궁주는 한 방울의 술도 마실줄을 몰랐다. 그런 연성궁주가
술을 마시고 사람이 변해버린 것이다. 정말 연성궁주가 아니고 다
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는 속이 비어 있을 때 더욱 취하기 쉽다는 것을 몰랐다. 연
성궁주는 어느새 세 병의 술을 마셨고 이미 상당히 취해있었다.
소어아는 소앵에게 웃으며 말했다.
"어떠한 것이든 천천히 먹고 남겨둘 수 있지만 술만은 남겨두지
못한다는 것을 알겠지?"
소앵이 대답했다.
"다...... 당신은 정말 그녀를 취하게 만들 작정이에요?"
소어아는 대답을 하지 않고 다만 노래를 계속할 뿐이었다.
"조용한 창 밖에 사람이 없어 입맞춤을 하려할 때, 부심(負心)
이라 욕하고 몸을 돌려 반쯤 사양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
네......."
그 노래의 가사는 한쌍의 젊은이의 사랑에 대한 것이었다.
연성궁주가 일생에 그런 느낌을 느낄 수 있었을까?
그녀는 멍하니 넋을 잃으면서 양쪽 볼이 뜨거워졌다.
요월궁주도 비록 몇 모금의 술을 마셨지만 연성궁주가 연이어
술을 들이키자 이맛살을 찌푸리며 그녀의 술병을 빼앗았다.
"너는 이미 취했으니 술병을 내려라!"
연성궁주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누가 취했단 말이에요? 난 정신이 멀쩡한데!"
요월궁주는 무서운 소리로 말했다.
"너는 취했어!"
연성궁주는 크게 웃었다.
"내가 취했다고? 내가 취했는가? 언니가 취했어!"
"네가 취했든 안 취했든 넌 더 이상 마셔선 안 돼."
연성궁주는 돌연 소리를 크게 지르며 말했다.
"날 상관하지 말아요. 난 마셔야겠어요."
그녀는 요월궁주를 바라보며 다시 큰소리로 말했다.
"언니는 평생 동안 나에게 시시콜콜 참견만 했어요. 지금은 내
가 죽어가는 데에도 나를 상관하겠어?"
요월궁주는 놀랐다.
그녀는 연성궁주의 마지막 말을 듣자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담담
히 말했다.
"그렇지, 나 자신도 곧 죽게 될 테니 너를 상관할 필요는 없겠
지."
연성궁주는 그제서야 소어아에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 내가 한 잔을 권하지. 너는 정말 귀여운 아이야."
소어아는 이때 마치 별일도 아닌 듯 말을 건냈다.
"정 그렇다면 당신은 왜 나를 죽이려는 것이지요?"
요월궁주는 이 말에 안색이 변했다.
연성궁주는 깔깔 웃으며 말했다.
"그 비밀은 네가 죽은 뒤에 너에게 말해주겠다."
그 순간에도 그녀는 비밀을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했다.
소어아는 몰래 탄식을 하고 웃으며 말했다.
"좋소. 내가 죽으면 먼저 당신의 말을 들은 후 염라대왕을 찾아
가겠소."
"좋다, 좋아. 네가 죽으면 그때는 분명히 말을 해주겠다."
"정말이요? 그러나...... 당신이 나보다 먼저 죽는다면?"
"그럼 나와 같이 죽자. 황천길에서 너에게 말해 줄 테니까."
소어아는 탄식을 했다.
"당신과 같이 죽을 수 있는 것만해도 평생을 헛되게 산 것은 아
니오."
"정말 너는 나와 같이 죽겠단 말인가?"
"당신은 오직 위무아만이 당신에게 미친줄 아시오? 당신 같이
귀여운 사람은 난...... 난 정말......."
그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연성궁주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정말 귀여운가? 왜 남들은 나를 무섭다고 하지?"
"무서운 것은 당신의 무술이지 사람이 아니오. 당신은 사랑스러
운 여인이오."
연성궁주는 눈알을 돌리더니 소앵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그녀보다 더 사랑스럽단 말인가?"
"그녀를 어찌 당신과 비하겠소. 당신만 좋다면 난 지금 당신에
게 장가를 들겠소."
연성궁주의 얼굴이 붉어졌다.
"자식, 너는 작아도 마음은 작은 것이 아니야."
두 사람은 말을 할수록 서로를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소앵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요월궁주는 이미 화가 치밀어
몸을 떨고 있었다.
이때 연성궁주가 웃으며 소어아의 품속에 안겼다.
"난 평생에 이토록 기뻐해 보지는 못했어. 난......."
요월궁주는 눈에서 불을 뿜으며 노하기 시작했다.
"네가 미쳤느냐!"
연성궁주는 큰소리로 말했다.
"질투를 하는 것이에요. 왜 내가 이렇게 기쁠 때 나를 고통스럽
게 만들려는 것이지."
요월궁주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들어 달려들었다.
이때 돌연 소어아가 작은 소리로 요월궁주에게 말했다.
"당신은 위무아를 죽이고 싶은 생각이 없소?"
순간 요월궁주는 놀라며 어쩔 줄 모르고 흠칫했다.
"너...... 네가......."
소어아는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의 말대로 하시오. 우선 모두 불을 끄시오."
위무아는 과연 밖에서 엿보고 있었다.
그는 연성궁주가 소어아의 품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자 눈알이
빠질 뻔했다. 온 몸이 떨렸고 손은 땀방울로 축축히 젖어왔다.
바로 그때 돌연 석실 안의 불이 꺼졌다.
석실 안은 어두워서 자신의 손가락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위무아는 애가 타서 금방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둠 속에서 연성궁주의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요월궁주의 기압
소리와 손바람 소리가 여러 군데에서 들렸다.
그 두 자매가 서로 싸우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는 요월궁주의 비명소리가 났다. 아마 쓰러진 것 같았다.
위무아는 온통 땀투성이가 되어 중얼거렸다.
"불가능한 일이야. 연성이 절대로 요월을 쓰러뜨리지는 못할 텐
데. 필시 그들이 무슨......."
그러나 그는 다시 생각을 한 후 또 중얼거렸다.
"가능하기도 해. 연성궁주는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기운이
돋구어졌을지도 모르지. 요월은 힘이 모두 빠졌기 때문에 두 사람
의 무술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어둠 속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정적은 그를 더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위무아는 미칠 것만 같았다.
그는 그 석실 안을 꼭 보고 싶었다.
그는 너무나도 많은 심혈을 기울이며 오늘을 준비해 왔다. 그러
나 지금 그에게는 아무 것도 보이지를 않았다.
그는 미친 듯이 차를 밀며 불을 켜서 석실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러나 그 불빛마저 석실로 들어가자 마자 곧 꺼져버렸다.
소어아는 거칠게 호흡을 하며 소리쳤다.
"몰래 보지 마라!"
위무아의 가슴 속에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봐야겠어, 죽어도 봐야겠다!"
그는 요월궁주가 필시 쓰러졌을 것으로 생각했다.
연성궁주는 소어아와 어울려 있을테니 절대로 다른 사람을 상대
할 틈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술에 취하지 않았는가! 다만
남은 것은 소앵이었고 그는 그녀라면 마음에 두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몇십 년, 동안 기다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불을 켜들고 문의 기관을 눌렀다.
무거운 석문이 조용히 열렸다.
위무아는 숨이 막힐 것 같았고 손이 떨렸다. 그는 있는 힘을 다
해 차를 밀고 들어갔다. 그는 곤 자신이 원하던 것을 보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토록 무시무시했던 여인들이 자기 자매의 손에 죽은 것
과 정신을 잃고 부리는 추태를 보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때, 어둠 속에서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소어아는 미친 듯이 웃으며 말했다.
"위무아, 너는 드디어 나에게 또 한 번 당하는구나!"
위무아는 그 소리를 듣고 크게 놀랐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
다.
그는 소어아가 그의 앞에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그는 뒤
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요월궁주가 이미 문을 막아서고 있었다.
소어아는 크게 웃으며 만했다.
"당신이 필시 들어올 것이라 알고 있었소."
위무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 위무아가 한평생 살면서 너 같은 자식의 손에 당할줄은 꿈
에도 몰랐다."
소어아는 웃으며 말했다.
"천하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에게 당했는데도 억울하단 말이오.
사람들이 만약 나를 위해 비석을 세운다면 당신의 이름도 올려 줄
것이오. 당신의 이름도 영원히 전해지게 된단 말이오."
위무아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말했다.
"너...... 네가 어쩔 셈이지?"
소어아가 말했다.
"당신을 어떻게 할 생각은 없소. 다만 우리를 이 쥐구멍에서 나
가게 해주시오."
"그러나 내가 벌써 말했듯이......."
소어아는 안색을 무겁게 가지고 싸늘하게 웃으며 그의 말을 막
았다.
"우리에게 이곳의 출구가 모두 봉쇄됐다는 것을 믿어달라는 말
이오?"
그는 말을 하면서 위무아쪽으로 걸어갔다.
요월궁주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위무아는 돌연 크게 웃었다.
"너희들을 데리고 나가달란 말이지, 어렵지 않은 일이야!"
소어아는 눈앞이 밝아지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출구가 어디에 있소?"
"바로 여기에 있지!"
소어아는 놀라며 말했다.
"여기라고? 어디요?"
"내가 이미 밖으로 나가고 있는데 보이지도 않느냐?"
"당신이 지금......."
그의 말소리가 돌연 멈추어져 버렸다.
그는 온통 얼굴에 놀라운 빛을 띠우며 말을 잇지 못했다.
요월궁주는 그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발견하고 급히 물었다.
"무슨 일이냐?"
소어아는 위무아를 가리키면서 손을 떨고 있었다.
요월궁주는 위무아의 몸 뒤에 서있었기 때문에 그의 얼굴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소어아가 말했다.
"당신...... 와서...... 보시오."
요월궁주는 급히 위무아의 앞으로 달려와 그를 쳐다보았다. 그
녀는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불은 아직도 위무아의 손에 쥐어져 흔들거리고 있었다.
흔들리는 불빛 아래서 위무아의 얼굴은 검은 색깔로 변해가고
있었다. 입과 눈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그의 얼굴은 매우 기이한 형색이었는데 더더욱 이런 모습을 하
자 보는 사람을 소름끼치게 했다.
요월궁주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며 놀라 소리쳤다.
"그가 자살하여 죽었단 말이냐?"
소어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소, 그는 죽어도 우리를 살려보내지는 않으려고 했소. 이
자식은 과연 악독하고 무섭군. 나까지도 탄복하고 말았소."
위무아의 입가에서는 악독한 미소가 번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웃음을 띠우고 이화궁주를 바라보면서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난 비록 지금 죽지만 너희들도 살 수가 없어. 비록 너희들이
죽는 것을 보지는 못하겠지만 너희들이 살아서 나가는 것보다는
좋아!)
요월궁주는 제자리에 선 채로 넋을 잃고 말았다.
소앵은 창백한 얼굴로 위무아의 시체 앞에 다가섰다. 그녀는 절
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때 갑자기 소어아가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야단이야!"
그는 석문을 향해 달려나갔다.
요월궁주와 소앵은 서로 바라보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소어아를 의지하고 있었다. 아니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연성궁주는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혼란 중에 요월궁주가 이미 그녀의 수혈(睡穴)을 점한 것이다.
요월궁주는 연성을 안아들었다.
비록 죽었다해도 그녀와 미친 놈을 같이 두고 싶지는 않았다.
이 거대한 동굴은 여전히 아무 변화가 없었고 조용하기만 했다.
그러나 소어아는 가만히 서있었고 얼굴에는 조금의 혈색도 없었
다.
소앵이 참을 수 없어 물었다.
"무슨 일이 있어요?"
소어아는 안색을 무섭게 가지고 말했다.
"무슨 소리를 듣지 못했느냐?"
"아니오."
사방은 여전히 절간처럼 조용했다. 소어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
며 말했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무섭단 말이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앵의 안색이 변했다.
화무결이 만약 밖에서 땅을 파고 있다면 필시 그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러나 사방이 조용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은
필시 그가 손을 멈춘 것 같았다.
그들은 최후의 희망과도 단절되어버린 것이다.
소앵은 안색이 창백해져 말했다.
"왜 더 파지를 않을까요? 우리를 구할 가망이 없다고 보았단 말
인가요?"
소어아는 요월궁주를 힐긋 바라보고는 말했다.
"우리를 구할 가망이 없다해도 시체라도 가져가려 할 것이야."
요월궁주는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는 무결의 성질을 알고 있어. 그는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중
간에 멈추지는 않는 성미야. 그가 돌연 손을 멈춘 것은 필시 무슨
뜻밖의 일을 만났기 때문일 거야."
소앵이 말했다.
"뜻밖에의 일? 무슨 뜻밖의 일이지요?"
소어아는 쓴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만약에 알 수만 있다면 뜻밖의 일이 아닐테지."
요월궁주는 다시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우리 자신을 적정해도 시간이 모자
라는 판이니까."
소앵은 그 자리에 앉아 손을 머리에 올린 채 생각에 잠겼다.
소어아는 그녀의 앞에 서서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동굴 속의 불빛은 음산했다.
그러나 이 음산한 불빛은 그녀의 몸에 비치자 솜처럼 부드러워
졌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비록 헝클어졌어도 여전히 비단처럼 부드러
웠다.
소어아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무엇을 생각하지?"
소앵은 고개를 들어 웃었다. 그녀의 눈은 그윽했고 아름다왔다.
그녀는 가볍게 소어아의 다리를 안으면서 말했다.
"이런 걸 생각하고 있었어요. 위무아는 필시 자기의 마지막 길
을 남겨놓았을 텐데, 우리가 왜 그것을 찾지 않을까요?"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다시 말했다.
"난 이미 사방을 유심히 살폈지만 과연 모든 출구는 봉쇄되어
있었어요. 만약 산벽에 암문(暗門)이 있다면 필시 볼 수 있었을
거예요."
소어아가 말했다.
"만약 암문이 있다면 나도 알 수가 있지!"
"그럼 그 최후의 길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소어아는 돌연 웃으며 말했다.
"그 최후의 통로가 어디에 있는지 난 물론 알고 있지!"
그 말이 나오자 소앵과 요월궁주는 동시에 놀랐다.
요월궁주는 급히 소어아의 앞에 와서 물었다.
"어디지?"
"방금 당신들도 보았지만 주의하지 않았을 뿐이오."
요월궁주는 놀라서 말했다.
"우리가 정말 보았는가?"
"그렇소!"
그는 돌아서서 손을 들고 말했다.
"저쪽의 구석을 보시오, 튀어나온 돌이 보이지요?"
"기관이 그 돌 위에 있다는 것이냐?"
"아무 기관도 없소. 그러나 돌 밑의 큰 구멍을 여러분들은 보았
겠지요?"
"그 구멍은 한 자의 둘레밖에 되지 않는데 어떻게 사람이 빠져
나가겠느냐?"
소어아는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우리는 위무아가 최후의 통로를 남길 것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하나의 일은 잊고 있었소."
소앵은 즉시 그 말에 찬성했다.
"그래요. 우리는 가장 중요한 일을 잊고 있었어요."
요월궁주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무슨 일이지?"
"우리는 위무아의 몸이 기형이라는 것을 잊었소. 그 구멍은 우
리는 비록 출입을 하지 못해도 그는 자유로이 통과할 수가 있소.
그는 비록 길을 남겼지만 우리는 다만 볼 수밖에 없을 뿐이오."
요월궁주는 소어아의 설명에 너무나 기가 막혀 비틀거렸다.
이제 그들의 희망은 완전히 단절되었다. 죽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소어아는 소앵을 바라보며 말했다.
"위무아가 무섭다고 하는 말을 난 믿지 않았었다. 그를 제압할
수 있을 줄 알았지. 그러나 지금은 알겠어. 이 사람의 계획은 조
금도 결점이 없어. 그가 우리를 여기서 죽게하려고 했다면 우리는
살아나갈 수가 없지!"
요월궁주는 돌연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무결은 꼭 들어올 것이다. 꼭......."
소어아는 그녀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
"그럴 것이오. 그는 꼭 여기에 들어올 것이오.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게되겠지."
"위무아가 우리에게 귤을 주고 술도 주었으니 필시 다른 음식들
도 남겨두고 있을 거야. 우리가 그 음식들을 찾을 수만 있다면 화
무결이 올 때까지 견딜 수도 있지."
"우리는 물론 그 음식들을 찾을 수가 있겠죠. 그러나 찾을 수
있다해도 구경만 할 뿐 먹지는 못할 것이오."
"왜?"
소어아는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그가 먹는 것은 우리가 먹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오. 그가 먹을
수 있는 것을 우리는 먹지 못하오. 당신이 쥐를 먹을 수 있다면
몰라도......."
신방(新房)에 찾아온 악객(惡客)
소어아는 결국 위무아가 음식을 감추어 둔 곳을 발견해 냈다.
거기엔 몇 단지의 술 외에는 쥐들이 있을 뿐이었다.
요월궁주는 위무아의 계획이 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
었다.
그 계략의 묘한 점은 길은 있으되 다른 사람은 다닐 수 없고 먹
을 것은 있으되 다른 사람이 먹지를 못한다는 점이었다.
요월궁주는 절망감을 이기지 못하고 술병 옆에 주저 앉았다. 그
녀는 술을 몇 모금 들이마셨다.
소어아도 술단지를 들고 소앵을 끌어당겨 밖으로 나갔다.
소앵은 비록 절망에 쌓여 있었지만 오히려 편안한 감정을 느꼈
다.
그녀는 소어아의 면전에서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위무아가 한 말이 생각나요?"
소어아가 말했다.
"무슨 말인데?"
소앵은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우리는 인생의 맛을 몰라요."
소어아는 그녀의 상기된 얼굴과 그녀의 영롱한 눈을 바라보았
다. 아무리 목석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가 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가볍게 그녀를 안으면서 말했다.
"나의 신부, 당신을......."
소앵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소어아는 다시 말했다.
"안타깝게도 신방을 이 쥐구멍에다 차렸으니 미안하군!"
소앵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이...... 당신이 나를 잘 대해 준다면 쥐구멍이라도 나는
만족하겠어요."
소어아는 그녀를 껴안고 두어 걸음을 걷다가 돌연히 무엇이 떠
오른 듯 말했다.
"야단이야!"
"무...... 무슨 일이에요?"
소어아는 쓴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우리 신방에 곧 악객(惡客)이 찾아올 거야."
"요월궁주를 말하는 거예요?"
"그녀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렇지 않을 걸요. 이런 때에 어째서 당신을 괴롭히겠어요?"
소어아는 탄식하며 말했다.
"조금 전까지는 우리도 희망이 있었어.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모아 달아나려고 했었지. 그런 이유로 서로 협심을 했던 거야. 그
러나 지금은 모든 희망이 사라졌으니 날 놓아 주려고 하지 않을
거야."
소앵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그러나...... 어차피 모두 죽을 몸인데 그녀가 우리를
어떻게 하겠어요?"
"그녀는 내가 다른 사람의 손에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아. 화무결
을 시켜서 나를 죽이지도 못 할테니까 직접 손을 쓰겠지."
그의 말이 끝나자 마자 소앵 앞에 하나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요월궁주가 이미 그들에게 다가와 있었다.
소어아는 쓴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내 말이 어때? 때때로는 나의 추측이 틀리길 바랐는데......."
요월궁주가 싸늘하게 말했다.
"너희들의 말은 이제 끝났는가?"
소앵이 눈을 깜박깜박 하면서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좋아. 잠시 시간을 줄테니 할 이야기를 마저 다 해라."
소앵은 억지로 웃음을 보였다.
"우리는 아직도 하루 이틀은 더 살 수가 있는데 이토록 성급히
대항할 필요는 없지 않아요?"
"아니, 너희들이 살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어!"
"왜...... 왜?"
"내가 곧 너희들을 죽일 것이기 때문이야. 난 꼭 너희들을 나보
다 먼저 죽게 할 것이고 너희들이 나의 손에서 죽는 것을 이 두
눈으로 확인할 거야."
소앵은 소어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의 추측이 틀림없었군요."
소어아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 우리는 언젠가는 반드시 한 번은 싸워야 할 몸이니까.
그러나 당신은 우리에게 이야기할 시간을 준다고 했으니 절대로
위무아처럼 몰래 엿듣지는 않겠지요?"
그는 소앵을 한 구석으로 끌고 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소앵은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소어아가 말했다.
"알겠어?"
소앵이 우울하게 대답했다.
"알겠어요. 그러나 당신은...... 당신은 절대로 조심을 해야해
요."
요월궁주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더 조심을 해도 필요가 없으니 어서 이쪽으로 오너라!"
소어아는 그 자리에서 웃으며 말했다.
"나를 죽이고 싶다면 왜 당신이 오지를 않소?"
요월궁주의 안색이 변했다.
그러나 소어아는 말을 마치자 몸을 공중으로 날리면서 번개처럼
세장(掌)을 가했다.
그 세장은 무공의 절정으로 무서운 일격이었다. 무림 중에 그의
이 살수 삼 초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그러나 요월궁주의 눈에는 마치 어린애가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고 소어아의 세장은 그녀의 옷자락
도 건드리지를 못했다.
소앵은 그것을 보자 소어아가 요월궁주의 상대가 못된다는 것을
즉시 알아차렸다.
그녀는 더 이상 보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피해
버렸다.
소어아는 크게 웃으며 요월궁주에게 말했다.
"보았소? 이건 당신이 가르쳐준 수법이오. 내가 그것으로 지금
당신을 상대하고 있소."
요월궁주가 대답했다.
"내가 가르쳐준 수법으로 나와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야!"
"당신은 내가 꼭 패할줄로 아시오?...... 흐흐 그렇지도 않을
걸!"
그는 과연 싸우면 싸울수록 힘이 생겼으며 조금의 두려움도 없
었다.
그러나 그가 어떤 무서운 수법을 써도 요월궁주는 다만 가볍게
손을 저어 그의 수법을 무산시켜 버렸다.
그녀의 몸은 마치 구름처럼 자세가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녀는 이화접옥의 수법을 쓰지는 않았다. 살인적인 수
법도 쓰지를 않았다.
소어아는 눈을 깜박깜박하면서 말했다.
"당신은 도대체 나를 죽이려는 것이오, 아니면 장난하려는 것이
오?"
요월궁주는 싸늘하게 말했다.
"고기가 이미 그물에 걸렸는데 성급히 굴 필요는 없지?"
"나는 지루한 고통은 싫소. 당신이 애태우지 않아도 나는 지금
애가 타고 있소."
"너를 언제 죽일 지는 내 자유야. 네가 죽을 때를 선택하는 것
은 아니지."
"그럼 날더러 언제 죽으란 말이오?"
그는 요월궁주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내가 어떻게 힘을 쓰는지 알고 나서야 죽이겠다는 말이
죠?"
요월궁주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왜 네 녀석이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야 되지?"
"나의 힘이 뻗어나오는 방법을 모르면 이화접옥의 수법을 사용
하지 못할 테니까요."
그는 입은 입대로 말을 해댔고 손은 손대로 계속 공격을 퍼부었
다.
그의 한쌍의 눈은 여전히 요월궁주를 노려보고 있었다.
요월궁주는 안색이 차츰 변하여 갔다.
"내가 이화접옥을 사용하고 싶으면 사용할 것이다. 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어!"
소어아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날 속일 필요가 없소. 난 벌써부터 이화접옥의 비밀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말해 드릴까요?"
"너는 이화접옥이라는 네 글자를 말할 자격도 없어!"
"내가 왜 자격이 없소? 이화접옥이 무엇이기에 그리 대단하다고
그러시오. 그건 다만 남의 힘을 빌려서 하는 것 뿐인데. 무당(武
當)의 사양발천소, 소림(小林)의 점의십판질과 차이가 없소. 다만
매우 빨리 손을 써서 상대방이 완전히 힘을 쓰지 못할 때 기선을
차지하여, 그의 힘을 다시 되돌아가게 하는 것 뿐이오. 그래서 남
의 눈에는 매우 신기하게 보이지요."
요월궁주는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무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또 무엇을 알지?"
"세상 일이란 본래 많은 일들이 보기엔 매우 훌륭한 것 같아도
들통이 나면 아무 것도 아닌 법이오."
그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계속해서 말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만약 남의 공격하는 힘이 단전, 부사와 충
전에서 발생하여 대횡, 천곡등의 혈에서 다시 주영을 그리고 주영
에서 소음의 용천혈을 지난 것을 안다면......."
그는 잠시 멈추면서 요월궁주의 표정을 살피다가 계속 말했다.
"그 한가닥의 힘이 다시 태음경(太陰經)과 청영을 지나고, 소해
(小海) 신문(神門) 등의 혈을 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소부(小府), 소충(小충) 두 혈에서 나온 힘은 필시 손의
바닥에 집중 할 것을 알 것이오."
요월궁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당신은 그 힘을 소부와 소충혈에 들어가기 전에 청영과 소해
혈에서 돌려 보낼 것이오."
요월궁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지."
소어아는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이 힘이 청영과 소해 두 혈에서 물러가게 되면 진기(眞氣)가
역행하기 때문에 팔의 근육이 굽혀질 것이오. 그리고 그 힘이 다
시 소부와 소충혈에 충돌하면 그의 손은 당신의 몸을 때리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몸을 때리게 되는 것이오."
요월궁주는 안색을 무겁게 가지며 말했다.
"그 힘이 어찌 소충혈로 되돌아 갈 수가 있지?"
"그것은 진정 당신의 재주라고도 할 수 있소. 하지만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오. 나도 만약 칠팔 년 동안만 연마할 수 있다면
당신과 같아질 것이오."
"흥."
그녀는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려다가는 '흥'하는 소리만 내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 소어아와 많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낀
것이다.
소어아의 이야기는 계속 됐다.
"난 당신이 무슨 수법으로 남의 경맥에 있는 진기를 되돌리는지
는 모르오. 그러나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오. 당신 무술의 최대의
관건은 바로 우선 상대방의 진기가 어느 곳에서 어느 방향으로 흘
러 가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오."
"흥."
"보통 일반인의 힘은 태반 단전(丹田) 부근의 몇 군데 혈에서
발생이 되오. 그래서 당신은 쉽게 그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줄
을 알 수 있지만 그러나 난......."
소어아는 대소하며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배운 것은 어느 사람과도 다른 것이오. 나의 스승은 최소
한도 칠팔 십 명이 있으며, 당신도 그 중의 하나요. 나의 무술은
너무 복잡하고 내공(內功) 좋지 못한 것이 최대의 결점이오. 그렇
지만 당신과 싸우면 오히려 나에게 큰 도움이 되는 셈이오."
"넌......."
그녀는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가 또 그만두고 말았다.
"나는 내공(內功)이 좋지 않기 때문에 한 곳에서 힘을 끌어내
손을 쓰지를 못하오. 그래서 당신은 나의 내력(內力)이 어디서 나
오는지 몰라 이화접옥의 무술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오."
요월궁주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사용하지 못한다고?"
싸늘하게 웃고있는 그녀의 가느다란 열 손가락이 소어아의 곡
택, 천천(天泉) 두 곳을 재빨리 점해왔다.
그 두 군데의 혈은 수궐음성에 속했다.
소어아는 방금 두 번의 공격을 할 때 바로 그곳에서 힘이 발생
된 것이다.
그녀는 이미 소어아의 진기가 유동하는 방향을 알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손이 움직이자 이미 한가닥 무형의 힘이 소어아의 양팔
에 있는 곡택, 천천 두 혈로 들이 닥쳤다.
소어아가 그녀의 손가락은 피할 수 있다 해도 그녀가 발사한 힘
을 피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소어아는 몸을 돌리며 그 공격을 피해냈고 어떤 타격도
받지 않았다.
그 백발 백중의 이화접옥의 무술이 소어아의 몸에서는 조금도
작용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요월궁주는 그제서야 크게 놀랐다.
그녀는 분명히 소어아의 힘이 수족진음경에서 나온 것을 보았었
다.
소어아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생각을 못했죠? 당신은 나의 힘을 빌어서 날 때리려고 했지만
그러나 나는 조금의 힘도 주지 않았소. 이것이 바로 내가 이화접
옥을 상대하는 방법이오."
이화접옥의 가장 기묘한 것은 남의 힘을 빌어서 상대를 다시 제
압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상대방은 힘을 크게 쓸수록 더욱 심하게 다치게 되는 것
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별 힘을 주지 않는다면 힘을 가져올 곳이 없으
니 이화접옥의 무술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된다.
요월궁주는 안색이 변했다.
"좋아. 너 같은 놈만이 그런 못난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을 것
이다."
"이 방법이 왜 못났습니까?"
"네가 만약 손에다 힘을 주지 않으면 너는 상대방을 다치게 할
수가 없지. 싸워서 이기지를 못한다면 그게 바로 못난이지."
소어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나 자신도 이 방법이 못났다고 생각하오. 그러나 당신
같은 사람을 상대할 때에는 때때로 못난 방법이 더욱 소용이 될
수도 있소. 당신은 나를 죽이려고 하지만 나는 당신을 죽일 생각
이 없소. 그렇기 때문에 난 다만 내가 다치지만 않은다면 만족하
는 것이오."
요월궁주는 무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화접옥의 수법 외에는 너를 죽일 방법이 없을 줄도 아
느냐?"
"내가 보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오. 당신이 무슨 재주로
나를 죽일 수가 있겠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이미 한가닥의 힘이 닥쳐오는 것
을 느꼈다.
뒤따라 요월궁주의 한쌍의 손이 일곱 여덟 쌍으로 보이기 시작
했다.
소어아는 눈앞이 모두 요월궁주의 손으로 느껴졌고,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한 사람의 동작이 이토록 빠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는 간신히 몇 수를 피했다.
그러나 그 자신도 요월궁주의 다음 몇 장을 얼마나 더 피할 수
있을 지는 알 수가 없었다.
자기의 목숨이 남의 손에 달려있고, 수시로 남에게 위협을 받는
다면 그는 마음이 어떨까?
요월궁주의 마음은 어떨까? 최소한 피살당해야 하는 사람보다는
유쾌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비록 소어아를 죽이려 하고 있고 실제로 소
어아를 죽일 수도 있지만 그녀의 심정은 소어아보다도 더욱 고통
스러웠다.
그녀는 이십 년 동안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제 곧 수확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가 뼈에 새겨 준비한 계책을 스스로 파괴해
버려야 했다.
마치 한 명의 화가가 이십 년, 동안 고생하여 그린 그림을 마지
막 손질을 앞두고 찢어버려야 할 때의 그런 괴로움과 같았다. 그
녀의 심정은 도저히 남들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그녀는 모든 사람의 최후가 다가왔다고 생각했다.
모두 살아날 길이 없었고, 여기에서 죽어야만 했다.
그렇다면 소어아는 필시 그녀의 손에 죽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녀는 최후의 치명적인 일격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이때 돌연 소어아가 소리쳤다.
"잠깐, 난 아직 마지막 할 말이 있는데."
요월궁주는 그를 상관하지 않고 번개처럼 공격해왔다.
그러나 한 수법을 사용한 후 돌연 멈추어 버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여전히 소어아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그
녀의 눈초리는 여전히 소어아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너는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냐?"
소어아는 탄식을 한 후 쓴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당신은 이제 곧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갈 수 있는데, 내가 또 무
슨 수작을 부리겠소."
"그럼 무슨 할 말이 있느냐?"
"당신도 알겠지만 어떻든 간에 나는 달아날 수가 없소. 어느 누
구도 나를 구하지는 못하오. 나는 당신의 손에 죽고 말 것이오."
"그래서?"
"그러니 당신은 그 비밀을 나에게 말해 줄 수 없겠소?"
그의 눈은 온통 갈망하는 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정말 가련한 모습이었다.
어느 누구도 소어아가 이렇게 가련한 모습을 할 줄은 몰랐다.
요월궁주는 그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소어아는 여전히 가련한 표정을 보이며 말했다.
"사람마다 죽어갈 때 최후의 요구가 있다는 것을 아시오? 살인
강도라도 최후의 부탁은 있소. 더군다나 당신은 내가 죽어가는데
도 그 비밀을 가슴 깊이 간직한다면 너무 심하지 않소?"
요월궁주는 돌연 냉랭하게 대꾸했다.
"네가 죽은 뒤에 그 비밀을 소앵에게 말해 주겠다."
소어아가 말했다.
"당신...... 당신은 나에게 말을 해주지 않겠소?"
요월궁주는 말했다.
"안 돼!"
그 대답은 매우 단호했다. 추호도 양보의 여지가 없다.
소어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지독한 사람이오. 죽기 전의 마지막 부탁도 들어
주지를 않는군요."
그는 눈알을 돌리며 다시 계속 말했다.
"내가 만약에 다른 부탁이 있다면 들어 주겠소?"
요월궁주는 한참 동안 주저하는 빛을 보이다가 입을 열었다.
"너의 부탁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려 있지."
소어아는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소변을 보아야겠는데 그것도 안 된단 말이오?"
요월궁주는 약이 올라서 얼굴이 붉어져가고 있었다.
소어아는 여유있게 말했다.
"소변을 보는 것은 다만 조금의 편리요. 이건 천하에서 가장 간
단한 부탁일 것이오."
"너...... 넌 도대체...... 어쩔 셈이냐......?"
그녀는 분해서 말도 제대로 하지를 못했다.
"난 방금 술을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
소. 만약 당신이 허락을 하지 않는다면 난 여기에서 해결할 수밖
에 없소."
요월궁주는 크게 노하여 소리쳤다.
"난 지금 당장 너를 죽이겠다!"
소어아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배가 불어 오르면 무술을 사용할 수도 없소. 그럴 때 나를 죽
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오. 천하의 이화궁주가 사람의 소변도
못보게 할 줄은 몰랐는데요."
요월궁주는 그를 한참 노려보다가 싸늘하게 말했다.
"좋다. 나가거라. 네가 설마 다른 수작을 부리지는 못하겠지."
"여기가 바로 나의 죽을 자리요. 내가 파리라도 되어 날아갈 것
같소?"
그는 이렇게 말을 하고 벌써 앞으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어디엔가 뒷간이 있겠지. 뒷간이 어디에 있는지 위무아에게 물
어볼 걸 그랬는데."
요월궁주는 그림자처럼 그의 뒤를 따르면서 말했다.
"왜 그곳으로 가지 않느냐?"
소어아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당신이 말을 하지 않았으면 잊을뻔 했군. 내가 뒷간을
하나 만들어 두었었지!"
그들은 다시 지하석실로 돌아갔다.
위무아의 시체는 이미 말라서 축소되기 시작했다.
요월궁주는 그것을 보자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빨리!"
소어아는 눈을 깜박거리며 말했다.
"당신은 들어오지 않겠소? 내가 달아날 우려가 있을 텐데요."
요월궁주는 그를 상관하지 않았다.
이 석실에는 오직 하나의 출구 뿐이니 소어아가 아무리 날고 기
는 재주를 가졌다 해도 달아날 길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다.
소어아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냄새는 나지만 들어와도 무방할 텐데 다른 사람이 절대로 볼
수가 없으니 당신도 여기에서 실례를 해도 되오."
요월궁주는 치를 떨었다.
잠시 후 '화라락' 하며 소변을 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요월궁주는 평생에 이런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녀는 얼굴이 더욱 붉어져 귀를 막고 싶었다.
다행히 어떤 사람이든 소변을 그리 오래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
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화라락화라락'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
다.
다시 얼마가 지나도 그 소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요월궁주는 참을 수가 없었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비록 남자에 대해 잘 알고 있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천하
의 남녀를 불문하고 그토록 오래 소변을 보지는 못할 것이다.
십여 명의 사람이 소변을 순서대로 본다해도 이렇게 오래 걸릴
수는 없었다.
요월궁주는 참을 수가 없어 소리쳤다.
"강소어, 아직도 끝나지 않았느냐?"
그러나 여전히 소변보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
요월궁주는 비록 소어아가 달아날 길이 없는 줄은 알고 있었지
만 차츰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 자식이 다른 하나의 출구를 찾았단 말인가. 출구가 여기에
있는 줄을 알고 계책을 써서 달아나 버린 것은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그녀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급히 달려 들어갔다.
그러나 석실 안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화라락화라락' 하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러나 담이 시
선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소어아가 안에 있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요월궁주는 손을 휘둘렀다.
'펑' 하는 소리가 나면서 석상조각을 쌓아만든 담의 앞쪽이 허
물어졌다. 그러나 소어아는 그림자도 없었다.
다만 큰 술병이 묶어져 메달려 있었으며 그 술병 아래엔 구멍이
뚫려 있었다.
병 속의 술은 계속해서 관 속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도대체 소어아는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요월궁주는 순간 한 사람이 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
다.
알고보니 소어아가 문 뒤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요월궁주가 놀라 몸을 돌렸을 때는 석문은 이미 소리없이 닫히
고 말았다. 소어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요월궁주는 정말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평생 무슨 일을 당해도 남에게 애걸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때 만큼은 그녀도 눈앞이 캄캄해져 소리를 치고 말았다.
"강소어, 빨리 문을 열어라. 날 나가게 해다오!"
잠시 후 소어아의 소리가 환기통을 통해 들려왔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오게 해달라고? 나를 죽이려고?"
요월궁주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나...... 난 절대로 너를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하겠다."
그녀는 평생 남에게 조건을 내걸고 무엇을 부탁해 본 일이 없었
다.
석실에는 절대로 나갈 길이 없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
다.
언젠가는 죽어야 하겠지만 그러나 여기에서 홀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더우기 위무아의 시체가 옆에 있었으며 소어아에게 자기가 죽는
것을 보이기가 싫었다.
소어아는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나를 죽이지 않는다해도 나는 당신을 내보내지는 않을
것이오. 당신이 나를 죽이지 않아도 나는 어차피 죽을 것이오. 우
리 사이의 원한이 작지 않다는 것을 아시오?"
요월궁주는 놀라며 할 말을 잃었다.
소어아는 다시 말했다.
"당신은 나와 소앵이 최후의 말도 마저 하지 못하게 했소."
인류의 진통제
소어아가 다시 말했다.
"내가 소앵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아시오?"
이렇게 말을 한 그는 크게 대소하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그때 나는 그녀에게 술병에 구멍을 뚫어놓으라고 한 후 기관에
서 기다리라고 했소. 그리고 내가 나가면 즉각 문을 닫으라고 했
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당신과 싸우고 있는데 그녀가 어찌
혼자 갈 수가 있었겠소."
요월궁주는 온 몸을 떨며 말했다.
"그러나 그녀...... 그녀는......."
"그녀는 바로 여기에서 자랐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여기 기관
들에 대해서는 위무아 외에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
이오."
요월궁주는 전신의 힘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그녀는 허탈감에 빠져 중얼거렸다.
"내가 너무 소홀하게 생각했지. 난 정말 너무 너를 소홀히 했
어."
"지금 후회해야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오? 누가 당신을 구할 것
같소?"
그는 크게 웃으며 계속 떠들어 댔다.
"얌전하게 거기에서 죽기를 기다리시오. 비록 냄새는 나지만 파
리는 없을 것이오. 더군다나 위무아가 옆에서 당신과 같이 있으니
외롭지는 않을 것이오."
요월궁주는 소리쳤다.
"너...... 너, 입을 닥쳐라......!"
"위무아야, 위무아. 너는 살아 있을 때는 비록 그녀와 같이 동
침을 못했지만 죽은 뒤에는 그와 생명을 같이 하는 원앙이 되었구
나. 복도 많구나. 그러나 내가 도와 주었다는 것을 잊지 말고 귀
신이 된다해도 나에게 보답을 해야 돼."
요월궁주는 돌연 위무아의 시체 앞으로 달려가 손을 들어 내려
치려고 했다.
소어아는 급히 말했다.
"무엇을 하려는 것이오? 당당한 이화궁주가 죽은 사람을 괴롭히
다니?"
요월궁주의 손은 공중에서 멈추었다. 마치 얼어버린 것처럼 움
직일줄을 몰랐다.
소어아는 길게 탄식을 하며 말했다.
"사실은 나도 당신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오. 어느 사람이든
그런 곳에서 죽기는 싫어하겠지요."
요월궁주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소어아는 다시 말을 이었다.
"어느 때는 난 당신을 두려워 했었지만 때때로는 당신을 가련하
게 여겼었소. 당신의 일생은 외로우며 하나의 친구도 없지 않소?
만약에 다른 사람이었다면 당신보다도 더욱 고독하고 더욱 잔인하
게 되어 버렸을 것이오. 세상에는 고독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다
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어요."
요월궁주는 고개까지 숙였다.
"난 정말로 당신을 그렇게 비참하게 죽이고 싶지는 않소. 다만
당신이 한 가지의 일에 대답만 해준다면 당신을 나오도록 하겠
소."
"무슨 일이냐?"
"당신이 그 비밀을 이야기 한다면 즉각 내보내 주겠소."
요월궁주는 탄식을 했다.
"너...... 너는 그런 생각을......."
"당신은 위무아와 같이 죽겠단 말이오? 만약 후에 다른 사람이
여기에 와서 당신이 위무아와 같이 동굴에서 죽은 것을 보면 어떻
게 생각하겠소?"
그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필시 이렇게 말할 것이오. 요월궁주는 보기엔 비록 싸늘했어도
사실은 하나의 은밀한 낭군이 있었구나. 두 사람이 이런 곳에서
밀회를 했고 또......."
그는 일부러 여기에서 말을 멈추며 더 이상 계속하려고 하지 않
았다.
요월궁주는 벌써부터 몸을 떨고 있었다.
"당신은 다시 한 번 잘 고려해 보시오. 당신이 말을 하면 내가
곧 당신을 내보내 드릴 것이오. 나 역시 설사 비밀을 듣는다 해도
오래 살지 못할 것이오. 내 말을 깊이 명심해 두시오."
소어아의 옆에서 소어아의 말을 듣고 있던 소앵이 입을 열었다.
"이런 상황에서 비밀을 알아서 뭘 하지요? 설사 그녀가 말을 한
다 해도 무슨 이익이 있겠어요? 다만 고통만 더할 뿐이에요."
소어아는 대답을 하지 않고 반문 했다.
"나와 화무결은 아무 이유도 모른 채 내가 그들을 죽이든, 그가
나를 죽이든 했어야 했어. 난 그 이유가 무엇인지 꼭 알아야겠
어."
소앵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당신을 정말 죽이려는 마음이 없었고 당신도 그를 죽이려
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알아요."
"그러나 그것은 나와 그의 운명이고 변경시키지는 못해. 난 사
실 많은 방법을 생각해 시간을 끌어왔지만 언젠가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 되버릴 거야."
소앵이 암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어아는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난 꼭 그것을 변경시키고 말 거야. 그래서 나는 그 비
밀을 더욱 알아야 해. 왜 우리를 서로 싸우게 하는지 그 이유를
알면 난 해결할 수가 있을 거야."
소앵이 말했다.
"그러나...... 그러나 지금 당신들의 운명은 이미 바뀌었잖아
요?"
"누가 그래?"
"당신이 그를 죽이지도 못하고, 그도 당신을 죽이지 못하게 되
었잖아요. 당신은...... 당신은 곧 여기서 죽을 거예요."
"누가 날 여기서 죽인다는 거야?"
소앵이 놀랍고도 기뻐서 급히 말했다.
"그럼 당신은 밖으로 나갈 방법이라도 있단 말이에요?"
소어아는 유유히 말했다.
"나의 인생에는 복이 많아. 어떤 위험이 닥쳐도 위험을 피할 수
가 있지. 필시 나를 구할 사람이 있을 거야."
"누가...... 누가 당신을 구해줄 것 같아요?"
소어아는 눈을 깜박깜박하면서 말했다.
"생각해 봐."
소앵은 한참 동안 생각을 해보다가 만했다.
"본래 화무결이 당신을 구해주려고 했을 텐데 지금은 그 자신도
뜻밖의 일에 부딪쳤나 봐요."
"그가 무슨 뜻밖의 일을 만났을까?"
소앵이 한동안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당신 생각엔 그 십대악인이 그를 저지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요?"
소어아는 손을 만지면서 웃었다.
"그렇지, 그는 필시 그들을 만났을 거야. 그들은 여기서 강옥랑
과 약속이 있었으니 꼭 여기에 왔을 거야."
"그들은 화무결이 구멍을 파는 것을 보고 우리를 구하는줄 알고
그를 저지한 것이지요?"
"음."
"그럼 그들이 당신을 구해줄 것 같아요?"
소어아는 쓴웃음을 보였다.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 지금 그들은 내가 다른 사람과 내통하
여 그들을 상대할까봐 내가 죽기를 바라고 있을 거야."
"그럼 그들이 이화궁주를 구해 주겠이요?"
"그렇지는 않겠지. 이화궁주가 여기서 죽는 것은 바로 그들이
기대하는 일이니까."
"그렇다면 그들이 왜 굳이 여기를 들어온다는 것이죠. 만나기로
한 사람도 없고......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는 모양이지요?"
"그럴 수도 있지."
소앵이 놀라면서 물었다.
"무엇 때문이지요?"
"그들도 들어와서 보고 싶을 거야."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그들은 자기의 보물을 위무아가 감추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만
약에 들어와서 그들이 확인해 보지 않는다면 단념을 못할 거야."
"그들이 들어온다 해도 필시 우리가 죽은 것을 확인할 수 있어
야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여기 내부의 사정을 알겠어? 그
들이 어찌 위무아가 우리들을 급히 죽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겠어!"
소앵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그렇군요. 그들은 우리가 지금까지도 죽지 않은 것을 모를 거
예요. 그들은 필시 우리가 지금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요."
"그들은 꼭 들어올 거야."
"그들이 여기에 들어올 방법이 있을까요?"
"그들 몇 사람의 재주로는 여기가 철벽이라 해도 들어올 수가
있지."
"이번에도 그 짐작이 꼭 맞았으면 좋겠어요."
그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
했다.
소어아는 손바닥을 매만지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나의 재주를 알아주겠지!"
"과연 대단해요."
그러나 이번에는 그 소리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지난번처럼
크게 진동되지도 않았다.
"이 사람들은 밥을 먹지 않았나? 왜 이렇게 힘이 없지?"
소어아는 웃으며 말했다.
"그들이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도구가 너무 날카롭기
때문에 소리가 작은 거야. 생각을 해봐. 칼로 두부를 자를 때 소
리가 날까?"
소앵은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과 같이 있으면 난 바보가 되고 말아요."
소어아가 말했다.
"내 생각에는 네가 갈수록 영리해 진다고 보는데?"
소앵이 눈을 깜박거리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것은 또 무슨 말이죠?"
"벌써 말을 했잖아. 여자는 영리할수록 남자 앞에서 바보처럼
행동한다고 말이야. 이제는 네가 내 앞에서 바보가 되었으니 난
꼭 너에게 당할 날이 있을 거야."
"안심해요. 난 절대로 당신을 당하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소어아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어이, 과연 그럴까?"
"내가 벌써 당신에게 깊숙이 걸려들었다는 것을 당신은 몰라
요?"
요월궁주는 격동하는 마음을 가라 앉히려고 온갖 힘을 썼다.
결국 그녀는 조용히 앉아 운공조식을 하면서 무아경의 지경에까
지 이르렀다.
소앵은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그녀는 비밀을 말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나 봐요."
소어아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난 항상 여인의 마음이 잘 변하는줄 알았는데 그녀만은 예외
야."
"밖의 사람들이 빨리 들어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곳을 완전히
봉할 수가 있어요. 그녀를 저 속에서 숨이 막혀 죽게 할 수도 있
어요. 연성궁주는 지금 이미 죽은 사람과 다름이 없으니까."
소어아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녀들이 비밀을 말하기 전에는 죽일 수가 없어!"
"그러나 당신이 지금 그녀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화무결이 온 후
에 그녀들이 필시 당신과 싸우라고 시킬 것이 아녜요?"
"그러나 그녀들은 나를 위해 일이 년 동안 해독약을 찾아야 한
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그렇게 되면 난 필시 그동안 다른 수를
생각해낼 수 있을 거야."
소앵은 다시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당신은 중독이 되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왜 해독약을 구해 주지
요?"
소어아는 놀라며 말했다.
"왜 내가 중독이 되지 않았어? 최소한도 세 사람이 내가 그 독
균을 먹는 것을 보았는데."
"당신이 수작을 부리면 세 사람이 아니라 삼십 명의 사람도 속
일 수가 있어요. 당신의 수법이 그들의 눈보다 빠르다는 것을 나
는 잘 알고 있어요."
소어아는 한동안 놀라면서 말했다.
"내가 수작을 부렸는 줄로 아느냐?"
소앵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독균을 먹는 척 한 것과 산굴로 떨어진 것 등은 그녀들
에게 화무결과 싸움을 시키지 못하게 하려는 수단에 불과했어요.
교묘했지만 당신은 잊은 것이 있어요."
"내가 무엇을 잊었지?"
"중독이 된 사람이 어찌 요월궁주와 싸울 수가 있었어요?"
"여아홍의 독성이 발작되는 데에는 일정한 시각이 없어 발작을
하지 않을 때에는 중독이 되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야."
"당신은 역시 잊고 있었어요. 여아홍에 중독 된 사람은 술을 마
시면 발작을 하지요."
소어아는 눈을 크게 뜨고 할 말을 잊고 있다가 쓴웃음을 보였
다.
"너는 내 앞에서 바보처럼 굴 뿐 결코 바보가 아니야. 정말 날
놀라게 하는군."
소앵은 까르르 웃었다.
"당신을 편안하게만 해주면 날 좋아하지 않게요?"
소어아는 돌연 그녀를 품속으로 끌어 안았다.
소앵은 그의 허리를 안고 고개를 그의 품속에 파묻었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 그녀들을 죽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요. 그
러나 지금은 그 길밖에 없어요."
소어아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잠겨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는 내가 중독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나 그녀들
도 반드시 알고 있다는 보장은 없지!"
"너무 그녀들을 무시해선 안 돼요. 그녀들은 인생변고에 대해서
는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아요. 원래 외롭게만 살았으니 남과 접
촉할 시간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것 이외의 다른 일
에 대해서는 그들의 지혜가 우리보다 뒤떨어지지는 않아요. 그렇
지 않다면 그녀들이 어떻게 그런 뛰어난 무술을 배울 수가 있었겠
어요."
"지금 그녀에게 화무결이 곧 오게 된다고 알려줘야 하겠는데."
소앵은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녀가 여기를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비밀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게 아녜요?"
"그렇지도 않아. 그녀는 지금 절망하고 있기 때문에 죽어도 말
을 하지 않으려는 거야. 그러나 살 수 있게 되면 그 생각이 틀려
질지도 모르지."
소앵은 눈앞이 밝아지면서 어떤 계교라도 머리에 떠오른 듯했
다.
"그래요. 우선 그녀에게 화무결이 곧 올 것이라고 알린 후에 다
시 그녀에게 만약에 말을 하지 않는다면 이곳을 봉하겠다고 알려
야 돼요. 내 생각엔 그녀가 그 비밀을 소중히 여겨도 자기의 목숨
보다 더 소중히 여기지는 않을 거예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등 뒤에서 한 사람의 소리가 들려왔
다.
연성궁주의 목소리였다.
"넌 틀렸어. 그녀는 확실히 그 비밀을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길
거야."
그 말소리는 차가왔지만 평온했다.
그러나 소어아와 소앵의 귀에는 마치 공중에서 떨어지는 벼락
소리같이 들렸다.
불빛이 연성궁주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었다.
소어아는 탄식하며 웃음을 보였다.
"이제보니 위무아는 인색한 자식이로군. 좋은 술을 주지 않은
모양인데."
연성궁주는 막막히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직도 취기가 남아
있는 것 같이 보였으며 웬지 부끄러워 하는 듯한 인상이었다.
소어아는 계속 이어가며 말했다.
"좋은 술일수록 독하지, 위무아가 준 것이 좋은 술이라면 최소
한도 반 나절 동안은 취해 있어야지 이렇게 빨리 깨어나지는 않을
거야."
연성궁주가 그 말을 받았다.
"내가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느냐?"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소어아는 눈알을 돌리면서 말했다.
"당신은 지금 속이 나쁜 것 같군요. 사실 술을 마시는 것이 그
리 나쁜 일은 아니오. 이 세상에는 매일 수십 만의 사람들이 술에
취해 있을 텐데 뭐가 나쁜 것이 있겠소?"
연성궁주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난...... 난......."
소어아가 말을 받았다.
"당신은 술을 마셔본 일이 없지만 주량은 남들보다 강해요. 그
리고 품행도 좋아요. 남들은 술에 취하면 떠들어대는데 당신은 매
우 조용하더군요."
"나...... 난 아무일도...... 하지 않았는가?"
"아무일도 없었어요. 당신은 술이 취한 뒤 잠이 들었는데 무슨
잠꼬대를 하시더군요."
"그렇지, 난 확실히 꿈을 꾸었어.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지!"
소앵은 소어아의 얼굴은 조용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흐
뭇함과 소어아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한참 후 연성궁주가 서서히 말했다.
"지금은 요월궁주가 너를 죽이지 못하니 놓아주어라!"
그녀의 말투는 오히려 어색했고 조금도 강압을 쓰는 뜻이 없었
다. 마치 부탁을 하는 듯했다. 소어아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소앵
을 데리고 기관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나 연성궁주는 따라오지
않았다.
소어아는 돌연 웃으면서 말했다.
"연성궁주가 매우 안심을 하는 것 같으니 이상한 일이야. 내가
이 기관을 파괴할까 걱정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소앵은 미소를 띠우면서 말했다.
"그녀는 당신을 점점 좋은 사람으로 느꼈기 때문이에요."
"왜?"
"여인은 모두 이상한 심리가 있어요. 만 가지의 나쁜 일을 한
사람도 자기에게 좋은 일을 하나만 하면 즉각 그 사람을 좋은 사
람으로 느끼고 감격하는 버릇이 있어요."
소어아는 이상히 여겼다.
"그녀는 왜 나에게 감격해 할까?"
"그녀가 술이 취한 뒤 무슨 말을 했는지 정말 모르는 줄 알아
요? 당신이 그녀의 체면을 생각해 주자 그녀도 현실을 도피하고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지요."
자기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은 인류 특유의 재주인 것이다.
사람은 포도를 먹지 못할 때, 포도알이 시다고 해서 자기 자신
을 편안하게 할 수가 있었다.
만약 사람이 자기 자신을 속이는 재주가 없다면 많은 사람들은
살아 나가는 것이 더욱 고통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의 진통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연을 당할 때에는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
을 하곤 한다.
"난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어. 더군다나 그녀보다 좋은 여인들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으니까."
만약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 그는 자살하고야 말 것
이다.
소어아는 소앵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여인의 마음은 여인만이 알 수 있을테지."
그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 그 기관을 만지려 했다.
소앵이 급히 말했다.
"당신은 정말 요월궁주를 내보내려는 것이에요?"
"물론이지!"
"그러나...... 이 기관을 파괴하는 것이 더욱 쉬울텐데요."
"그렇겠지. 요월을 여기에서 죽이고 연성궁주 한 사람을 상대하
는 것이 더욱 쉬운 일이겠지만 난 그렇게 하지는 않겠다."
"왜요?"
"남이 나를 믿지 않는다면 백만 번 그를 속여도 기쁘지만, 남이
나를 믿을 때에는 절대 그를 속일 순 없어!"
그는 싱긋이 웃더니 계속 말했다.
"이것이 남자와 여자가 다른 점이다. 여자는 그녀를 믿는 사람
을 속이지만, 남자는 그렇지가 않아."
"당신의 말을 들이니 마치 여자에게 만 번 이상을 당한 사람 같
군요."
"그건 네가 모르는 소리야. 여인에게 당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여인에게 대해서 잘 알고 있지. 내가 만약에 여인에게 만 번 이상
당했다면 오히려 여인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가 없어."
소앵은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남자의 일도 남자만이 이해를 하겠군요!"
소어아는 그 석실의 문을 열었다. 그는 요월공주가 곧 밖으로
나올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안에서는 여전히 아무소리가 없었다.
소앵은 참을 수가 없어서 입을 열었다.
"이상한데요. 요월궁주가 왜 나오지를 않지요?"
"저 속이 마음에 들어서 나오기가 싫은 모양이지?"
그들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가만히 안으로 들어섰다. 요월
궁주는 정말 그 석실에서 나올 생각도 하지 않고 석벽에 기댄 채
앉아 있었다.
연성궁주는 멀리서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기쁨이 교차했지만 또 질투하는 빛도
엿보였다.
소어아는 볼수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연성궁주의 표정도 이상했지만 요월궁주의 안색은 더욱 이상했
다.
그녀의 안색은 빨갛지도 하얗지도 않았고 투명해 보였다.
불빛 아래서 그녀의 근육이 온통 투명한 것 같았다.
그 절정의 아름다운 얼굴은 기묘한 공포감을 주었다.
"이것이 어찌된 일이지요. 그녀는...... 그녀가 이미 귀신이 됐
단 말인가요?"
소어아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을 하지 않았다.
연성궁주는 여전히 멍하니 넋을 잃고 있었다. 무엇을 생각하는
지는 모르지만 깊은 생각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소앵과 소어아가 바로 그녀의 앞에 서있는데도 마치 그들을 보
지 못하는 것 같았다.
소어아는 참을 수 없어 먼저 말을 걸었다.
"얼굴이 투명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군. 이것
도 당신들이 연마한 것이오?"
그는 연성궁주의 모습을 보고 그녀가 필시 대답을 하지 않을 것
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연성궁주는 서서히 입을 열었다.
"그렇지 명옥공(明玉功)을 최후까지 연마하면 이런 현상이 일어
나게 되지."
"명옥공? 그게 무슨 무술이오? 종래에 듣지를 못했는데?"
"그 무술이 강호에서 사라진 지 이미 백 년이 되었으니 너는 물
론 모르겠지."
소어아는 말했다.
"그럼 그 무술은 굉장히 무섭겠군요?"
"모두 아홉 단계가 있는데, 여섯 단계까지 익히면 지금의 제일
고수와도 겨를 수가 있지. 만약 아홉번째 단계까지 익힌다면 천하
무적이 될 수도 있어!"
소어아는 눈을 깜박거리면서 신기한 듯이 물었다.
"그럼 당신들 자매는 몇 단계까지 그 무술을 익혔소?"
연성궁주는 가볍게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여덟번째까지!"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십 년 전에 우리는 이미 여덟단계까지 연마했었지. 본래 우
리정도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라면 여덟단계까지 연마 하는데 삼십
여 년의 세월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이십사 년의 시간으로 가능했
어. 우리는 사오 년만 더 연마하면 절정에 달할 수가 있었어!"
소어아는 그녀가 계속 말을 할 줄 알고 아무소리 않고 조용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과연 연성궁주는 다
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이십 년 동안 우리의 무술은 더 이상 진보되지 못하
고 멈추고 말았어."
이번에는 소앵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 무술도 아홉째단계까지 연마한 사람이 있었나요?"
"명옥공은 천하의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들이 꿈 속에서도 잊지
못하는 무술이지. 누구든 간에 이 무술의 비결만 알면 무술을 연
마할 수가 있지. 자질이 평범한 사람이라도 모두 성공할 수가 있
어!"
소어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병신도 이런 무술을 배울 수가 있나요?"
"병신도 연마할 수는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합니까!"
"그건 어느 정도의 병신인지 좀 봐야지."
"만약에 저...... 위무아 같은 바보라면?"
연성궁주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위무아는 병신이 아냐. 하지만 그가 그 무술을 연마하려면 팔
구십 년이 필요하지."
"팔구 십 년이? 그가 열 살 때부터 시작했다면 완성 되었을 때
는 죽지 않겠소?"
"바로 그거야. 그래서 이 무술을 연마할 때는 어릴 때부터 배워
야 진보가 잘 되지. 그렇게 해야 소용이 있어. 그렇지 않고서
는......."
"그렇지 않으면 역시 독특한 자질이 필요하기는 하겠군요."
"그렇지. 그런 사람이 오직 여섯 사람 있었지!"
이번에는 소앵이 물었다.
"오직 여섯 사람이라고요? 그 사람들은 누구지요?"
"우리 자매 외에, 남해 광명도의 일부(日府)가 있었고, 제앙곡
주 소왕손(蕭王孫), 종횡칠해 철색선의 선주와 무림 제일기재인
심랑(沈浪)이 있었어."
그 네 사람의 이름을 듣자 소어아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지금 그 사람들은 모두 저 세상으로 갔지만 그러나 그들의 이름
은 영원히 무림에 남아있었다.
연성궁주의 말은 계속 되었다.
"우리 자매 두 사람 외에 네 사람은 모두 이 무공을 완성했지."
소어아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들의 이름을 들으니 그들이 그것을 완전히 연마했다는 것을
알 수 있소."
소앵은 참을 수 없어 물었다.
"그러나 당신들은 당신들은 왜 완성하지 못했지요?"
연성궁주가 대답했다.
"강호에서는 모두 심랑(沈浪) 노 선배가 백 년에 보기 드문 절
정의 기재라는 것을 알지. 내가 알기로는 그도 이십 사 년 동안
연마를 해서 여덟째 단계까지 도달했고 다시 육 년을 연마해서 절
정에 달했어. 우리 자매의 전반 이십 사 년의 속도도 늦은 것은
아니야. 그러면 육칠 년만 더 연마했으면 절정에 달할 수가 있어
야 하는데...... 우리는 우리가 왜 최고봉에 달하지 못했는가 궁
금했었지......."
소앵이 말했다.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르세요?"
"이젠 알 것도 같아."
소어아가 끼어들었다.
"무엇 때문이지요?"
연성궁주가 그를 보면서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마치 그에게 해도 되는 말인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소어아도 서두르지 않고 그녀가 얘기하기를 기다렸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갔다.
연성궁주는 드디어 길게 탄식을 하면서 서서히 입을 열었다.
"그것은...... 이십 사 년 동안 연마할 때에는 속세에 아무런
마음도 없었지. 그러나 그후의 이십 년은 우리도 마치 속세의 사
람과 같이 번뇌와 고통 속에 있었으니 마음을 집중하지 못했기 때
문이야."
소어아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중얼거렸다.
"이십 년 전, ...... 이십 년 전, ......."
그는 말소리를 멈추었다.
연성궁주의 안색이 점차 창백하게 변해갔다.
소아어의 모습은 이십 년 전, 바로 그녀들이 처음으로 강풍을
보았을 때의 모습이었다.
소앵이 다시 말했다.
"지금...... 지금 요월궁주는 이미 그 무공을 완성했나요?"
"그렇지!"
그녀의 눈길에서는 부러움과 질투의 빛이 감돌았다.
"이십 년 동안 연마를 해도 성공하지 못했었는데 이런 때에 이
런 곳에서 성공할 줄은 몰랐어. 나...... 난 정말 기쁜데!"
소어아는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이건 내가 그녀를 도운 것이오."
"그렇지, 그녀는 너에 의해 여기에 갇혔어. 절망 상태에 달했을
때 사람은 왕왕 뜻밖의 수확이 있지. 한순간에 그녀는 도통을 했
고, 그녀 자신도 이런 뜻밖의 수확이 있을지는 몰랐겠지."
"사실 여덟단계까지 연마해서 이미 천하 무적이라면 구단계까지
연마하지 못해도 상관없으니 괴로워할 필요는 없소."
소어아의 이런 말은 그녀를 위로한 말이었지만, 연성궁주는 안
색이 더욱 암담해지면서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었다.
"여덟단계까지 사용할 수 있으면 천하무적이라 할 수 있지. 그
래도 연남천 같은 고수를 만나면 꼭 이길 자신이 있는 건 아니
야!"
"당신들의 무술은 천하 무적인데 어찌 이길 수 없다는 거요?"
"우리의 공력이 연남천보다는 뛰어나지만 그러나 차이가 많지는
않아. 그리고 고수들이 싸울땐 무술의 강약 이외에도 그들 자신의
체력, 주변, 상황도 영향이 있지. 그리고 기분, 싸울 때의 환경과
날씨...... 이런 것도 모두 승부를 가리는 원인이 될 수가 있어."
"그녀가 명옥공을 구단계까지 연마했다면 연 대협은 그녀를 이
길 수가 없나요?"
"조금도 기회가 없다고 말할 수 있지."
소어아는 아무소리도 하지 않았다.
연성궁주가 그렇게까지 말을 할 수 있으니 필시 헛소리가 아닐
것이다.
연성궁주는 갑자기 한마디를 더했다.
"그리고 옛말에 만약 명옥공을 구단계까지 연마할 수 있다면 영
원히 천하 무적일 뿐 아니라 영원히 젊어진다고 했었지. 듣기엔
일부(日府)는 백오십 살까지 살다가 죽었다는데 죽을 때의 얼굴은
마치 처녀와 같다고 하더군."
밖에서는 산을 파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소어아는 그 소리를 들으며 망연히 서있었다.
요월궁주가 정말 천하 무적이 되었으니 이번에 나가게 되면 더
욱 살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바로 이때, 산을 파괴하는 소리가 멈추었다.
소앵과 연성궁주는 한참 동안을 참으면서 다시 소리가 들려오기
를 기다렸으나 숨 죽인 듯한 고요만이 찾아올 뿐이었다.
다시 그들은 실망을 해야 했다.
십대악인의 계책(計策)
하루가 지났으나 밖은 여전히 조용했다.
그 하루가 그들에게는 만 년 보다도 더 길게 느껴졌다.
소앵은 소어아에게 가만히 물어 보았다.
"그들은 왜 멈추었을까요? 누가 그들을 저지 했을까요? 그들을
저지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그러나 이번에는 소어아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십대악인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무림천지에 몇 명 되지
않았다.
소앵은 다시 말했다.
"강별학이 아닐까요?"
"강별학은 지금 이미 연남천의 손에 있으니 아무리 큰 재주가
있다 할지라도 결코 달아나지는 못할 거야."
"그럼 연 대협일까요?"
"더욱 그렇지는 않을 걸. 만약 사람이 여기에 갇혀 있는 것을
알면 비록 그 사람이 원수라도 그는 우선 사람을 구출할 거야."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도대체 어떤 사람이 십대악인을 저
지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의 목숨은 바람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나무잎과 흡사하게
느껴졌다.
요월궁주의 얼굴은 다시 자신의 혈색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
러나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일종의 기이한 빛을 내고 있었다.
소앵은 그녀를 쳐다보면서 웃어보였다.
소어아가 중얼거렸다.
"무슨 재미있는 일이 생각났다면 나에게도 말해봐라. 나도 지금
은 웃을 수가 있으니까."
소앵이 유유히 입을 열었다.
"난 지금에야 세상에는 확실히 재미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았
어요."
"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고, 나의 소원은 당신과 함
께 있는 것이에요. 지금, 위무아는 비록 우리를 모두 죽게 했지만
그러나 그가 만약 우리를 여기에 가두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당신
과 같이 있게 되었겠어요? 나는 지금 그를 미워해야 할지 감사해
야 할지 모르겠어요."
소어아는 그녀의 말을 듣자 탄식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그를 미워하든 감격하든 간에 지금은 그와 아무 관계도 없게
되었어!"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난 평생 중에 이토
록 유쾌해보지는 못했는 걸요."
그녀는 다시 요월궁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천하 무적의 무술을 완성한다는 것은 매우 기쁜일이겠죠. 또
게다가 젊어질 수도 있다니...... 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요? 여
기서 죽어야만 하니 말이에요."
"재미있어, 이런 일은 정말 재미있는데. 하지만 난 웃지를 못하
겠구나!"
소어아의 말에 소앵은 탄식을 했다.
"나도 이런 일은 아직 재미있다고 느끼지 않아요. 세상의 많은
일들은 복잡하고 풍자스럽고 환락과 고통에 싸여 있지요. 정확한
한계가 없기 때문에 종종 고통이 환락을 가져오며 환락이 고통을
몰고 오지요."
소어아는 다만 조용히 들을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피곤해지는 감을 느끼고 있었고 말을 하기가 싫어졌
다.
아무 것도 생각하기가 싫었고, 심지어는 공포도 느낄 수가 없게
되었다.
마치 자신이 무감각한 목각이 되는 것 같다.
소어아는 절정에 달하도록 영리했지만 그러나 천리안은 없었다.
점도 치지 못했으니 그의 예상이 항상 맞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도 없었다.
세상 일은 변화가 많아서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일이
허다했다.
한편 화무결은 철심난을 찾지 못했다.
철산난은 갑자기 신비스럽게 사라져버렸다.
화무결의 경공으로 철심난을 뒤쫓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라나 그는 온 산을 뒤졌지만 철심난을 만나지 못했다.
그가 실망하여 돌아왔을 때 그는 위무아의 동굴이 닫혀 버린 것
을 발견했다.
이 변화는 정말 화무결을 어쩔 줄 모르게 만들었다.
그는 미친 듯이 소리쳐 불렀지만 아무런 회답도 없었다.
이화궁주와 소어아가 이 산 속에 갇혀 있으니 그냥 갈 수도 없
었다.
그가 나무꾼에게 하나의 삽과 망치를 빌려왔을 때는 석양이 물
든 저녁이었다.
그는 온갖 힘을 다하여 산굴을 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교적 손쉽게 작업을 할 수가 있었으나 갈수록 돌이
점점 단단해졌다.
그는 자기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작업을 멈출
수가 없었다.
동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니 그는 미칠 것만 같
았다.
어둠이 대지에 깔리게 시작했을 때 막막한 하늘 아래 돌연 한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아무말도 해지 않고 다만 조용히 서서 멍하니 화무결을
바라볼 뿐이었다.
화무결은 아무소리도 듣지 못했지만 그러나 본능적으로 무엇인
가를 느끼고 서서히 손을 멈추며 재빠르게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그도 그 그림자처럼 멍하니 서서 움직이지를 못했다.
그는 그의 앞에 서있는 사람이 자신이 온 산을 헤매며 찾았던
철심난일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는 철심난에게 할 말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철심난을 마주 보게 되자 오히려 아무말도 하지를
못했다.
철심난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눈동자도 그와 마주
치지 못하고 조용히 고개를 숙여 버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바람에 날리는 옷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녀는 석상처럼 서있었는데 어찌보면 태평해 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그런 자세로 얼마의 시간을 보낸 후 화무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디에 갔었소?"
철심난은 더욱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난 어디에도 가지 않았어요. 그냥 여기에 있었어요."
화무결은 웃고 싶었으나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다시 무겁게 입을 뗏다.
"알고 보니 당신은 멀리 가지 않았었군. 그런데 난......."
철심난은 재빨리 말했다.
"나를 찾고 있었어요?"
"난 모든 곳을 찾았지만 당신이 여기에 있을 줄은 몰랐소."
"나도 당신이 나오는 것은 봤지만 나를 찾아가는 줄은 몰랐어
요."
화무결은 그녀를 한 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철심난이 말을 이었다.
"내가 여기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면 왜 다시 돌아온
것이지요?"
"난......."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면 왜 여기에 돌아왔지요? 그들은 모두
갔는데 왜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어요?"
화무결이 돌연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들이 모두 가버렸단 말이오?"
"물론 당신의 스승과...... 소 아가씨 등은 이미 가버렸어요."
화무결은 급히 달려가서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당신은 정말 그들이 이미 가는 것을 보았소?"
철심난은 가볍게 말했다.
"물론 정말이에요. 당신은 그들을 보지 못했어요?"
화무결은 놀랍고도 기뻐서 웃으며 말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난 그들이 이 속에 갇혀 있는 줄 알았습니
다."
"누가 감히 이 속에......."
"위무아가 했는 줄 알았소."
철심난은 눈을 깜박거리면서 말했다.
"위무아를 보았어요?"
"난 보지를 못했소. 이 속에는 한 사람도 없었소. 그러나 난 위
무아가 필시 숨어 있다가 그들이 경계하지 않을 때 출구를 막아버
렸다고 생각했었소."
철심난은 고개를 숙이고 웃은 뒤에 말했다.
"당신의 의심도 작지 않군요."
화무결도 고개를 숙인 채 웃어버렸다.
화무결은 그제서야 자기가 아직도 철심난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며 즉각 손을 놓았다.
철심난은 다시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 산굴은 당신의 스승이 막아 버렸어요. 다른 사람들이 들어
가지 못하게 한 것 같았어요. 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한
이에요."
화무결은 자기의 가슴이 계속 뛰는 것을 느끼며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사실 이 속에는 보기 좋은 것도 없소."
"듣기엔 위무아가 일생 동안 기이한 보물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
해서, 세상에 보기도 드문 것들을 간직하고 있다던데 당신은 그런
것을 보지 못했어요?"
"난 아무 것도 보지 못했소. 그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갔을 거
요."
화무결은 정신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그들이 어느 쪽으로 갔는지 당신이 보았소?"
철심난은 달이 뜨는 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바로 저쪽이에요."
화무결은 양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이상한데? 내가 어찌 그들을 보지 못했을까? 그들은 왜 나를
기다리지 않았을까?"
"그들은 마치 무슨 일이라도 생긴 듯 급히 갔어요."
"그들이 간 지 얼마나 되었소?"
"당신이 돌아올 때쯤 그들이 막 떠났어요."
"그럼 지금 찾아가도 찾을 수가 있겠군요."
"하지만 난 가지 않겠어요."
화무결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나를 따라가야 하오. 꼭......."
철심난은 그의 말을 막았다.
"난 안 가요. 당신도 가지 말아요."
화무결은 놀라면서 물었다.
"왜?"
"난 그들을 보고 싶지 않아요. 당신도 그들을 보지 마세요."
화무결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다가 돌연 그녀의 눈초리가 매우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눈은 본래 맑고 깨끗했다.
그런데 이 며칠 동안 많이 우울했기 때문에 보는 사람의 마음을
슬프게 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눈은 매우 음험하고 교활하게 보여 사람을
소름끼치게 했다.
그가 다시 곰곰히 살펴보니 그녀의 몸과 얼굴은 철심난과 같았
지만 다만 한쌍의 눈은.......
그 한쌍의 눈은 어떻든 간에 철심난의 눈이 아니었다.
화무결은 섬칫한 감을 느끼며 즉시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화무결은 온몸의 감각이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손을 휘둘렀지만 그 철심난의 몸은 바
람처럼 뒤로 석장이나 물러섰다.
그는 다시 쫓아가려고 했지만 손발은 이미 움지일 수가 없었다.
철심난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화무결아 화무결, 너는 소어아보다는 못하구나. 소어아라면 벌
써 나를 알아차렸을 거야."
화무결은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
"넌 대체 누구냐?"
"너의 스승이 너에게 말을 하지 않았느냐?"
화무결은 길게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당신과 같이 비겁한 사람을 나의 스승이 입에 올렸겠소?"
철심난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지금 말해주지. 천하에 도(屠) 할머니의 변장 같은 것은
둘도 찾을 수가 없을 거야."
화무결은 불남불녀 도교교의 이름이 생각났다.
그러나 그는 몸의 힘이 완전히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결국 쓰
러지고 말았다.
이때 다른 한 사람이 싸늘하게 웃으며 나타났다.
"너무 만족스럽게 생각하지는 말아라. 너의 변장술에 결점이 있
어서 결국 알아차리게 했잖아?"
도교교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그는 마지막에 가서야 알아차렸지. 그러나 그건 다만
그가 철심난의 모습을 자세히 볼 틈이 없었기 때문이야. 그녀를 (
) 시간 동안만 연구했을 뿐이야. 나에게 반 나절의 여유만 있었다
면 대낮이라도 이 자식이 알아차리지는 못했을 거야."
그 사람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몇 년 동안 너의 다른 무술은 진보가 되지 않았으나, ( )
너의 큰소리는 하루 하루 늘었구나. 큰 입의 늑대에게 배웠기 때
문인가?"
말을 한 사람은 물론 손인불이기 백개심이었다.
두살, 합합아, 이대취도 모두 뒤따라 나왔다.
다만 그 반인반귀 음구유는 언제나 그렇듯이 얼굴을 내밀지 않
았다.
그러나 수시로 뒤에서 나타날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그래왔지
않은가!
화무결은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이제야 알 수가 있었다.
그는 자기가 이런 사람들의 손에 떨어졌으니 이제는 죽은 것이
나 다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화궁주와 철심난의 운명이 자기보다 더 위험할 것만 같
았다.
합합아가 입을 열었다.
"화 공자, 미안하오. 우리는 화 공자를 무례하게 대하려 하지는
않았으나 공자의 무술이 너무 뛰어나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
소."
백개심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 뚱뚱이는 입에는 꿀을 발랐지만 마음은 누구보다도 악독하
오. 그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 것이 좋을 거요."
이대취가 크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가 말한 것은 개소리지만 너의 소리는 개똥이다."
그는 크게 웃으면서 화무결을 아래 위로 자세히 뜯어보면서 중
얼거렸다.
"좋아, 좋아, 너무 좋아. 이렇게 좋은 고기는 십만 명 중에서도
보기 드물 것이다. 다만 약간 야윈 것이 흠이지만 불고기로 해먹
으면 맛있을 거야."
그는 말을 하면서 군침을 삼켰다.
그는 손을 내밀어 화무결의 배를 만지려고 했다.
화무결은 분노하였으나 저지할 수가 없었다.
두살이 이때 큰소리로 외쳤다.
"멈추어라!"
이대취는 손을 거두면서 웃음을 보였다.
"그를 죽이는 것도 아니고 다만 만져보려는 것인데 무슨 상관이
야!"
"이 사람은 당대의 영웅이야. 예절로 상대해야 돼. 그를 죽이는
것은 괜찮지만 모욕을 주어서는 안 돼!"
화무결은 그제서야 사람다운 소리를 듣고 탄식을 하면서 말했
다.
"감사하오!"
두살은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너의 신분을 존경하는 것은 아니다. 너의 무술을 존경하
기 때문이야. 어떤 사람이든 너의 무술을 보면 모두 존경할 것이
다."
화무결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미 여러분의 손 안에 있으니 생사를 다 잊었소. 하지만
철심난은......."
그는 두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철심난이 여러분의 손에 있소?"
그는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두살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는 이 다섯 사람 중에서 살기가 감도는 이 사람만이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됐다.
"그렇다!"
화무결은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
"각하는 사나이니 절대로 여자를 괴롭히지는 않겠죠?"
도교교가 희죽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여자라고? 그녀도 여자란 말이냐? 내가 보기엔 그녀가 남자보
다 더욱 강하다고 느꼈는데. 그러나 너는 안심을 해라. 우리가 그
녀를 괴롭히지는 않을테니까."
화무결은 다른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고 두살을 바라보며 또 말
했다.
"각하께서 그녀를 놓아주기만 한다면 저는 죽어도 한이 없겠
소."
"그녀를 놓아주는 건 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녀를 다치지는 않
겠어."
화무결이 말했다.
"정말이오?"
"내가 말해두겠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나의 친구야. 내가 어찌
그녀를 괴롭히겠어?"
"그녀의 부친이......?"
백개심이 크게 웃으면서 그들의 대화 속으로 뛰어들었다.
"너는 그녀의 아버님이 세가 출신이고 그녀는 명가 규수인줄 알
았느냐? 사실 말이지만 그녀의 아버지도 우리와 같이 좋은 놈은
아니다."
화무결이 말했다.
"그녀...... 그녀의 아버지는 도대체 누구요?"
도교교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광사 철전'이야. 너의 스승이 말하기도 싫어
하는 비겁한 사람 중의 하나지. 너는 절대로 그의 이름을 들어보
지 못했을 것이다."
두살이 무서운 목소리로 외쳤다.
"철전도 '십대악인'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성질이 오만한
것 외에는 그의 소행은 절대 협객들에게 뒤지지 않아."
화무결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각하께서 그렇게 말하시니 안심이 되오. 그리고 각하에게 한가
지 물어볼 말이 있소?"
"말해보아라."
"스승이......."
그가 이 한 마디를 하자 도교교가 먼저 웃으면서 말했다.
"그 일은 네가 안심을 해라. 그들은 모두 위무아의 산굴에 갇혀
있으니 산을 치울 수 있는 사람이 오기 전에는 그들은 나올 생각
을 버려야 해."
화무결은 몸을 떨면서 말했다.
"그 말이 정말이오?"
두살이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들이 나오는 것을 난 보지 못했다!"
화무결은 눈을 감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이대취는 그를 바라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이 사람은 하나의 좋은 점이 있는데."
도교교가 물었다.
"무슨 좋은 점인데?"
"그는 최소한도 언제 눈을 감아야 할지를 알고 있단 말이야."
"하하, 맞았어. 비록 여자들 틈에서 자라났지만 언제 자기의 입
을 다물어야 하는지 알고 있으니 정말 기특한데."
이때 합합아가 끼어들었다.
"그것은 너희들이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야. 여자들 틈에서
자라난 사람일수록 말을 하기 싫어하는 법이지."
이대취가 물었다.
"왜?"
"생각을 해봐, 그 많은 여자들과 같이 있었으면 그가 말할 기회
가 있었을 것 같은가?"
이대취는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맞았어. 네가 평생 동안 한 말 중에 이 말보다 더 멋있는 말은
없었어."
도교교는 화무결의 옆에 와서 말했다.
"지금 '이화궁'의 유일한 전인(傳人)이 여기에 있고, 이화궁주
는 갇혀서 나오지를 못하니, 이름을 날렸던 이화궁도 오늘부터 사
라지는구나. 이것이 누구의 공이냐? 여러분들은 알겠어!"
합합아가 대답했다.
"하하, 이건 자연히 전부 너의 공로다."
"너희들은 나의 공로를 인정하는데, 그럼 어떻게 보답하겠느
냐?"
백개심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이대취를 너에게 주지. 네가 여인이 될 때는 너의 남편을 삼
고, 네가 남자가 될 때에는 그의 입을 대용품으로 쓰면 되니까."
그는 자기가 익살스럽다고 느꼈던지 스스로 웃어버렸다.
이대취가 날뛰면서 무섭게 소리쳤다.
"너 이 개 같은 자식아! 개 같은 소리 하지 말아라."
도교교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안심해. 나에게 주어도 받지는 않을 테니까."
합합아가 나섰다.
"하하, 그럼 무엇을 원하지?"
"다만 상자를 나에게 많이 주면 돼!"
합합아가 즉각 말했다.
"문제 없어. 많이 주지!"
그러나 백개심은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그 몇 개의 상자를 누구도 얻지 못할 것으로 알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도교교가 웃으며 말했다.
"그 상자들이 우리 손에 들어오지 않을 것을 그가 어떻게 알
지?"
"상자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지 않는가?"
"어쩌면 내가 알지도 모르지."
백개심은 펄쩍 뛰면서 말했다.
"상자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도교교는 그를 상관하지 않고 두살을 보고 말했다.
"두 노대, 그 상자 하나를 나에게 주겠나?"
두살은 그녀를 한동안 바라본 후 말했다.
"좋아!"
"다만 두 노대가 승락만 한다면 난 안심이야!"
이대취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상자가 어디에 있지?"
도교교가 말을 받았다.
"그 상자들은 아직도 산굴 속에 있을 거야. 위무아는 급히 갔으
니 절대로 무거운 상자를 가지고 가지는 못했을 것이니까."
"그러나 화무결은 보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는 자연히 그 몇 개의 상자를 주의하지는 않았을 거야. 내
생각엔 구양 형제가 그런 순간까지 우리를 속이지는 않았을 테니
까, 그 상자는 필시 산 속에 있을 거야."
백개심이 말했다.
"그렇다면 너는 들어가서 보고 싶단 말이냐?"
"음."
백개심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좋아. 빨리 들어가시지. 상자는 필시 속에 있을 테니까.
그러나 나는 가야겠어!"
그는 정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가버렸다.
이대취가 말했다.
"그는 우리가 결코 들어가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 지금
우리가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할 거야."
"그렇지. 우리가 들어가기만 하면 나오는 사람은 이화궁주가 될
거야. 위무아는 그녀를 가두어도 그들을 다치지는 않을테니. 그리
고 그녀들은 절대로 우리가 구해주었다고 고맙게 생각하지도 않을
거야."
합합아가 한마디를 더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가야지?"
도교교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들어가면 그것은 자살행위야. 반드시 지금 들어가라는 법
은 없으니까!"
식인석(食人石)
합합아는 눈에서 빛을 내며 말했다.
"하하, 그렇지. 지금 꼭 들어가라는 법은 없지!"
도교교가 말을 받았다.
"위무아는 그들을 안에 가둬 둘 수 있었으니 필시 상세한 계획
이 있었을 거야. 그 산굴에는 먹을 것이 전혀 없을지도 모르지."
"그렇지. 위무아는 그들을 굶어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을런지도
몰라."
이대취의 장단에 도교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몸이 건강하지?"
이대취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항상 말했잖아. 사람의 고기는 가장 영양이 많다고 말이
야. 사람 고기를 먹으면 몸이 자연히 좋아지지."
"그러면 너는 얼마 만큼이나 굶을 수 있지?"
이대취는 말했다.
"난 열흘 내지 보름은 굶을 수가 있어. 그러나 물은 이틀만 마
시지 못해도 견딜 수가 없을 거야."
"바로 그점이야.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이틀 간이나 물을 마
시지 못하면 쓰러진다는 점이야. 이화궁주가 아무리 다른 사람보
다 강하다고 해도 삼 일 이상은 견디지 못할 거야."
합합아는 손을 만지면서 말했다.
"하하, 그렇지. 삼 일 내지 오 일을 기다린 후에 들어가는 것이
어떨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개심이 나무에서 뛰어 내리며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우리가 삼 일 동안 기다린 후에 들어가기로 하자. 하하,
도교교야 도교교, 너도 확실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더욱 영리
하구나!"
화무결은 눈을 감고 있었으나 귀로는 그들의 말을 모두 듣고 있
었다.
그의 마음은 마치 바닥이 없는 산골짜기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
합합아가 계속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하하, 하여튼 우리는 여기에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있으니 석
달을 기다려도 무방해."
백개심이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기다려야 한단 말이야?"
"물론 여기를 지키고 있어야지. 절대로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
가선 안 되지. 누구든 여기에 오면 쫓아버려야 하는 거야."
두살이 침묵을 지키다가 도교교의 말에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
다.
"만약에 위무아가 돌아온다면?"
백개심의 안색이 즉각 변했다.
"그렇지. 위무아가 어쩌면 돌아와서 볼지도 몰라."
그는 엉덩이를 치면서 웃었다.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려라, 난 가야겠다!"
도교교가 유유히 말했다.
"넌 가거라! 이번에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라."
두살이 말했다.
"만약 이번에 돌아온다면 너의 양다리를 잘라 버리겠다."
백개심은 쓴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두 노대, 방금 너는 위무아가 돌아온다고 하지 않았어. 그의
무술을 알고 있다면 기다려서 그와 싸우겠다는 것이야?"
두살은 안색을 무겁게 가지면서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싸늘하게 자기의 잘린 팔을 바라보면서 눈에 점차 살기(殺
氣)를 더해갔다.
도교교는 백개심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보기엔 위무아의 무술과 연남천을 비교하면 어떻다고 생
각되느냐?"
백개심은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자연히 연남천이 강하지."
"연남천 같이 강한 사람과도 두 노대는 싸울 수가 있었는데 더
군다나 하나의 쥐새끼쯤은 더욱 문제없지."
백개심은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너도 위무아와 싸우겠단 말이냐. 너는 언제부터 그런
용기가 생겼지?"
"내가 왜 그와 싸우지? 그가 온다면 난 다만 그와 친구가 되고
싶을 뿐이야."
백개심이 그녀의 말에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하하! 네가 그를 친구로 사귀어? 위무아가 너와 친구가 될 것
같으냐? 위무아가 너와 친구가 된다면 늑대도 닭과 친구가 되겠
다."
"만약 반 나절 전이라면 나와 친구가 되지 않겠지만 그러나 지
금은 그전과 틀려!"
"지금은 뭐가 틀리다는 말이냐?"
"지금은 내가 그와 친구가 될 밑천이 있기 때문이야."
"친구를 사귀는데 무슨 밑천이 필요하다는 말이냐?"
"오히려 장사를 하는데는 밑천이 필요 없어도 되겠지만 친구를
사귀는데는 밑천이 필요해. 너는 몇십 년을 살았는데도 그 도리를
모른단 말이냐?"
"난 몰라!"
"예를 들자면, 백만 장자와 친구가 되려면 팔십 만이 필요하고,
만약에 대신의 아들과 사귀려면 자기의 아버지도 장원(壯元)은 되
어야해. 그렇지 않고서는 가슴을 보여줘도 그가 너를 보지도 않을
거야."
"그렇지, 지금에야 네가 깨닫는구나."
"그러나 너는 무슨 밑천으로 위무아와 친구가 되겠다는 것이
지?"
"지금 나의 본전은 화무결이야!"
백개심은 손을 매만지면서 웃음을 보였다.
"이제 알겠다. 너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십 배나 더 나쁜 놈
이구나."
"넌 지금은 갈 생각이 없느냐?"
백개심이 눈알을 크게 굴리면서 말했다.
"내가 언제 간다고 했지? 우리는 몇 년의 우정을 가졌는데 내가
어찌 너희들을 두고 가겠어? 위무아가 너와 친구가 되지 않겠다고
하면 나도 그와 싸울테다."
화무결은 옆에서 들으면서 넋을 잃어 버렸다.
만약에 직접 보지 않고 듣지 않았다면 세상에 이렇게 낮이 두텁
고 마음이 이토록 간사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을 것
이다.
지금 그는 이런 사람들의 손에 빠져버렸으니 어찌할 수가 없었
다.
도교교가 말했다.
"여러분은 이미 여기에 남기로 했으니 할 일이 생겼네."
백개심이 말했다.
"그렇지. 우리가 여기 있기로 결정한 이상 그 두 계집애를 데리
고 와야지. 그 반인반귀의 괴물이 그들을 지키고 있지만 난 마음
을 놓을 수가 없어."
"그렇다. 그 두 여자가 필요할지도 모르니 합합아, 네가 그녀들
을 데리고 오너라."
백개심은 펄쩍 뛰면서 말했다.
"왜 깨끗하지도 못한 가짜 중을 보내. 왜 나를 보내지 않지?"
도교교가 웃으면서 말했다.
"난 그 미친 놈의 딸을 남에게 줄 수는 없어. 그래서 합합아에
게 수고하라는 것이다."
합합아가 말을 받았다.
"걱정할 필요 없어. 난 지금 게을러져서 땀이 나는 것을 싫어
해. 선녀 같은 미인을 내앞에 놓아주어도 난 보기조차 싫어!"
백개심이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럼 나는 무얼하라는 것이지?"
"너는 가서 먹을 것을 찾아와라. 우리가 삼 일 동안 먹을 수 있
게 말이다."
이대취는 날뛰면서 소리쳤다.
"너는 왜 그를 시키느냐? 그 자식은 먹는 것을 몰라. 그는 하나
의 식은 빵으로도 하루를 지낼 수 있는 놈이야. 그가 구해온 것은
누구도 먹기 싫을 거야."
"그 말은 맞아. 하지만 네가 가는 것보다는 좋겠지. 너는 네 먹
을 것이나 구해봐."
이대취는 '흥' 하는 소리를 내고 말했다.
"좋아, 너희들이 마음을 놓지 못한다면 하는 수 없지."
"다른 할 일이 있지."
"무슨 일인데?"
"산 밑의 마을에 철물점이 하나 있으니 네가 가서 산을 파는 기
계를 구해와라. 내가 보기엔 산을 뚫는 것이 과히 쉬운 일이 아니
니까."
합합아가 한마디 거들었다.
"하하 만약 쉬운 일이었다면 이화궁주인 그들이 벌써 나왔을 것
이다!"
세사람은 각각 자기 갈 길을 떠났다. 날이 어두워졌을 때 가장
먼저 돌아온 사람은 합합아였다.
그는 한 마리의 노새를 끌고 왔다. 노새는 하나의 큰 돌을 끌고
있었다.
풀이 많이 돋아난 돌은 약 한장(丈)의 높이나 됐고 일곱 여덟
자의 넓이는 족할 만큼 컸다.
그것은 네 개의 바퀴가 달린 수레 위에 놓여 있었다.
적어도 천 근은 되어 보였다.
노새는 보기엔 약해도 잘 생긴 놈이었다.
이상한 것은 노새가 천 근의 무게나 되는 돌을 끌어도 조금도
힘들어 하는 기색이 없다는 점이었다.
화무결은 걱정을 하며 철심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합합아가 다만 한 마리의 노새만을 끌고오자 화무결은
실망하고 말았다.
바로 이때, 더욱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그 돌 속에서 신음하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동시에 섞여 나왔기 때문이다.
(저 돌 속에 요괴라도 들어 있단 말인가?)
화무결은 자기의 눈을 의심했으며, 더우기 자기의 귀를 믿을 수
가 없었다.
도교교는 그를 한 번 바라본 후 돌연 입을 열었다.
"이 돌을 보았느냐? 이것은 하나의 마석(磨石)이야. 사람을 먹
을 수 있다 해서 식인석(食人石)이라고도 부르지. 너의 철 아가씨
는 벌써 그 뱃속에 들어가 버렸다."
화무결은 이를 악물면서 말을 하지 않았다.
도교교는 그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믿지 못하는 모양인데 그럼 보여주지."
그녀는 그 돌 옆으로 가서 입으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렸다. 곧
이어 큰소리를 치며 말했다.
"식인석, 식인석, 빨리 문을 열어라!"
화무결은 도교교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참을 수가 없어 그쪽을 향하고 있었다.
도교교가 손을 흔들자 그 돌이 정말로 열리기 시작했다
돌 속에 정말 두 명의 사람이 있었다.
이 두 명의 사람은 산군부인(山君夫人)과 철심난이었다.
화무결은 정말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합합아와 도교교는 일제히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화무결도 드디어는 그 돌이 천으로 만들어졌으며 다만 그 위에
칠을 한 것임을 발견했다.
아주 교묘한 솜씨였다. 또한 어두운 밤이라서 화무결의 눈이 예
리했어도 미처 알아 보지를 못한 것이다.
그 속은 철망처럼 되어 있었고, 백 부인과 철심난이 그 속에 갇
혀 있었다.
철심난은 그 속에 앉아서 고개를 숙인 채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
고 있었다.
백 부인의 몸은 완전한 전라체에 가까왔다.
그녀는 울먹이다가 웃다가 하며 신음을 하고 있었다.
화무결은 한 번 힐끔 본 후 더 이상은 쳐다보지를 못했다.
그는 철심난의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았지만 더우기 백 부인의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철심난이 그를 상심하도록 했고, 백 부인은 그를 구역질나게 만
들었다.
도교교는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이것을 마석이라고 한 것은 완전히 거짓은 아니야. 낮에
길을 갈 때에는 위만 덮으면 하나의 마차가 되지. 어느 누구도 신
경 쓰지는 않을 거야."
합합아가 계속 말을 이었다.
"밤에 쉴 때에는 우리는 이것을 나무 숲에 놓아두지. 멀리서 또
는 가까이서 보아도 좌우로 봐도 하나의 돌에 불과하지. 누가 그
속에 사람이 있는 줄 알겠어?"
"우리가 그 속에 있으면 물론 안전하고 편리하지. 우리가 사람
을 잡아서 집어넣으면 남들이 찾지도 못하고."
화무결은 몰래 탄식을 했다.
그는 그제서야 이 사람들이 확실히 보통 이상의 재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재주는 그들이 아니라면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도교교가 유유히 웃으면서 말했다.
"철심난, 철 아가씨. 우리가 누구에게 말을 하는 것인지 보시겠
소?"
철심난은 여전히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들지 않는다.
합합아가 또 말했다.
"너는 왜 눈을 떠서 보지 않느냐? 네가 보면 필시 놀랄 것으로
난 믿고 있는데."
화무결은 철심난이 눈을 뜨지 않기를, 자기를 보지 않기를 바랐
다.
그는 철심난을 상심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철심난은 서서히 손을 내렸다.
그녀의 몸은 곧 떨기 시작했다.
그녀는 당장 일어서서 철창을 손으로 부여 잡았다.
그녀의 눈에서는 비통과 절망의 눈물이 가득히 고여 있었다.
그녀는 소리를 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그녀의 눈은 더욱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화무결은 눈을 감았다.
그는 온통 대지가 무너지고 자기도 사라지기를 바랐다.
도교교는 낄낄대며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화 공자, 축하하오. 난 지금에야 그녀가 정말 당신을 좋아한다
는 것을 발견했소. 소어아의 손에서 그녀를 빼앗을 수 있다니 과
연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오."
합합아는 그 소리를 듣자 크게 웃었다.
"하하, 그래서 소어아가 질투를 하는군."
화무결은 돌연 모든 힘을 다하여 소리쳤다.
"닥쳐!"
그는 두살을 쏘아보며 말했다.
"당신은 절대로 그녀를 다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지 않았소?"
두살이 말했다.
"그랬지."
"당신들은 왜 그녀를 저렇게 대해야 하오?"
"누구도 그녀를 다치지는 않았어."
"그러나 당신들은 그녀를 상심하게 만들고 있소."
"상심이라고? 난 그런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몰라!"
화무결은 다시 놀라면서 말했다.
"당신...... 당신은 종래에도 상심을 해 본 적이 없소?"
순간 두살의 두 눈이 칼처럼 변했다.
"난 상심할 필요가 없어!"
화무결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는 갈수록 이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
다.
그는 이 사람을 미워해야 할지 가엾게 생각해야 할지를 몰랐다.
한 사람이 만약 상심조차 못한다면 더욱 슬픈 일이었다.
바로 이때, 백개심이 돌아왔다.
그는 두 보따리의 물건을 가지고 왔다. 그는 거칠게 호흡을 내
쉬면서 중얼거렸다.
"고생을 해서 너희들을 위해 먹을 것을 가져오다니 나자신도 믿
지 못하겠는데?"
합합아가 그를 쳐다보았다.
"하하, 이건 너의 평생에 처음으로 해보는 남을 위한 일이겠
군!"
백개심이 말했다.
"마지막이야!"
두살이 물었다.
"이대취는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지?"
"그는 귀신을 만났을 거야."
"너는 그와 같이 마을에 가지 않았느냐?"
"내가 어찌 그 늑대와 같이 가겠어? 만약 그가 서천(西天)으로
가면 난 지옥을 택하겠어."
도교교가 물었다.
"그럼 이 먹을 것은 어디에서 찾아왔지?"
"바로 산 끝의 절간이야."
도교교가 소리치면서 말했다.
"절간에? 그렇다면 삼 일 동안에 채소만 먹으란 말이냐?"
"너는 절간의 중들이 모두 채소만 먹는줄 아느냐? 말해 두지만
너는 운이 좋아. 내가 찾은 절간에는 술과 고기도 있었어."
"절간은 식당도 아닌데 어찌 중에게 그런 것들이 있어?"
"너는 절간과 식당이 무슨 구별이라도 있는줄 아느냐?"
"물론 틀리지."
"식당에서는 좋은 물건을 손님들에게 주지만, 중들은 다만 두부
를 만들어 주고 자기들은 부엌에서 고기를 몰래 먹지. 그리고 거
기서 먹는 두부의 값은 식당의 고기보다도 더욱 비싸!"
"세상에는 술과 고기를 먹는 중만 있는 게 아니야. 먹지 않는
중이 더욱 많은 숫자를 차지하지."
"고기를 먹지 않으면 어때? 고기를 먹지 않으면 좋은 사람인줄
아느냐? 그들은 아무일도 하지 않고 남이 고생하며 모은 돈을 그
들에게 바치게 하는 거야."
그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상에는 세 가지의 밑천 안 드는 장사가 있지. 첫째는 몸을
파는 것이고, 둘째는 강도이고, 셋째는 중이야."
합합아는 정말 중처럼 합장을 했다.
"나무 아미타불, 안 됐군. 너는 죽은 뒤에 혀를 잘리고 지옥으
로 갈 것이야."
"중이 되면 하늘로 올라갈 것 같으냐? 흐흐, 하늘에 오르고 싶
으면 모두 중이 되어야겠군."
도교교가 나섰다.
"넌 싫도록 욕해라. 네가 어떻게 욕을 해도 중들은 듣지 못할테
니까."
합합아가 대꾸했다.
"하하, 들었다해도 개소리로 취급할 뿐이다."
그는 보따리에서 고기를 집어내어 듬뿍 깨물었다.
"입은 먹으라고 생긴 것이지 욕하라고 생긴 것은 아니야. 만약
에 이것을 잘못 사용하면 불행한 것은 자기 자신이야."
철창 속에 갇혀있던 백 부인이 돌연 날뛰면서 그 두 개의 보따
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에는 채찍으로 얻어맞은 상처가 많았다.
그녀는 이미 사람 같지가 않았다. 사람의 존엄성이 그녀에게는
없었다.
그녀는 눈초리도 맹수와 같았다.
도교교가 한조각의 빵을 꺼내더니 말했다.
"너도 먹고 싶으냐?"
백 부인이 말했다.
"세상에는 매를 맞는 죄수는 있지만 배고픈 죄수는 없어!"
"미안하지만 너희들은 굶어야겠어!"
백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몸이 가려워지기 시작한 것
이다.
두살은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너는 왜 그들을 굶게 하느냐?"
도교교가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그녀들을 가지고 시험을 해보아야겠어. 그들이 언제나 힘이 빠
지는지, 그 때가 되서 구멍을 파기 시작하면 돼."
백개심은 고개를 저으면서 탄식을 했다.
"남들은 여자의 마음이 악독하다 하지만 이런 불남불녀의 마음
도 이렇게 악독한지는 몰랐는데."
도교교는 껄껄 웃었다.
"그녀의 마음을 몰라. 그녀가 지금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
하면 오해야."
"그녀가 고통스럽지 않단 말이냐?"
"그렇지, 세상에는 남에게 고통을 받은 것이 낙이라고 하는 사
람도 있지. 지금 그녀의 신음하는 소리로서 그녀가 고통을 겪는지
쾌락을 느끼는지 알 수가 있지."
마지막으로 돌아온 것은 이대취였다.
그가 돌아올 때에는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 그는 조금의 피곤
한 기색이 없었고 오히려 흥분한 빛을 보였다.
백개심은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의 만족스러운 모양을 좀 봐요?"
도교교가 입을 삐죽거렸다. 하여튼 백개심은 그들과 무엇인가
맞지 않았다.
"그의 개소리를 듣지마라. 빨리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 좀 해
봐?"
이대취가 입을 열었다.
"내가 이상한 일을 만났는지 어찌 아느냐?"
도교교가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거울을 보면 어떻게 내가 알 수 있었는지 알 거야."
이대취는 자기의 턱을 매만지면서 웃음을 보였다.
"나의 최대의 결점은 말을 하는 것이야. 내가 언제 두 노대처럼
될 수 있을까?"
"두 노대는 정말 표현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야. 다만 그는 얼굴
에 나타날 만큼 무엇을 좋아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야."
이대취는 웃으면서 말했다.
"여하간 너희들은 잘도 알아 맞추는구나. 난 비단 이상한 일을
겪은 것만이 아니라 재미있는 일도 보았지."
두살이 침묵을 깨뜨렸다.
"대체 무슨 일이냐?"
"나는 산을 내려갈 때 자정이 되었으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잠
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그러나 마을에는 불이 켜져 있었으
며 사람들도 거리에 다니고 있었고 성내보다도 더욱 복잡했어."
"북경성이라 해도 밤중에 복잡하지는 않을 텐데?"
도교교의 물음이었다.
"그래서 나도 이상히 여겨 한 사람을 붙잡고 물어 보았지. 그런
데 알고 보니 두 사람이 마을에서 도박장을 차렸다더군. 비단 성
내의 사람 뿐 아니라 부근 몇백 리 안의 사람들이 모두 밤새도록
거기서 도박을 한다고 하더군. 조용한 마을을 아주 복잡하게 만들
어 버렸지."
"작은 마을의 도박장이 무슨 그렇게 큰 마력(魔力)이 있을까?
그 사람들은 평생 한번도 도박을 못해보았단 말이야?"
백개심이 끼어들었다.
"하하, 도박을 하는 것은 큰 이익이니 우리도 가볼까?"
이대취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것도 좋지.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돈을 딸 수 있는 도박
장이니까."
도교교가 물었다.
"왜?"
"그들이 도박장을 차린 것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야. 거기
에서 도박을 하면 주인이 돈을 주고 진다고 해도 절만 하고 나오
면 돼. 듣기엔 삼 일이 못 돼서 두 주인이 몇십 만 냥을 잃었다고
하더군."
백개심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밑지는 장사를 하다니 그 두 사람은 어떻게 된 것이 아닐까?"
"그 두 사람은 다른 병은 없지만 도박에는 중독이 된 모양이야.
사람들이 도박을 해주면 매우 기뻐하고 지고 이기든 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거야."
도교교는 웃으면서 말했다.
"세상에 도박에 그토록 미치 사람이 있다니 믿지 못하겠는
데......."
그녀는 갑자기 소리를 멈추고 이대취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 사람이라면?"
"그 외에 또 누가 있겠어!"
합합아도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하하, 나도 알겠어. 그런 도박꾼은 그 사람 외에 또 누가 있겠
나?"
두살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정말 헌원삼광이야?"
이대취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물론 그 사람이지!"
"그를 만났는가?"
두살의 물음이었다.
"나는 그를 봤지만 그는 나를 보지 못했어. 그때 그의 눈에는
도박 뿐이었으니 그의 아버지가 오더라도 몰랐을 거야."
도교교가 물었다.
"도박꾼이 도박을 할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지. 너는 그가
남에게 돈을 주는 것을 보았나?"
"거기 도박 방식도 재미가 있더군. 절을 한 번 하는데 한 냥으
로 치고 엉덩이를 한 번 맞는 데는 오 전(錢)이지. 그가 만약에
이기면 도박장은 즉각 절을 하는 소리와 엉덩이를 때리는 소리가
났는데 그의 웃음 소리로 복잡하게 되어버리지."
도교교가 말했다.
"그가 진다면?"
"그가 진다면 당장에 숫자대로 은을 물어주지."
"이거 이해 못하겠는데. '악도귀'는 도박을 할 때 모험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계산은 분명했어. 그와 같은 도박 방법으로는 필시
다 털릴 날이 있을 거야."
합합아도 한마디 했다.
"하하 어차피 그의 주머니에 돈이 들어 있었던 적이 있는가? 그
는 항상 가난했지. 한쌍의 신발도 사지를 못했어. 엄동설한에도
그는 다 떨어진 짚신을 신고 있잖아!"
"틀림 없어. 악도귀는 가난한 것으로 유명하지. 돌연 돈이 많이
생겼다니 그 돈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대취가 말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알겠어?"
"좋은 친구를 만났는데 반가운 인사도 나누지 않았나?"
"이십여 년 전 그와 도박을 한 뒤, 난 그를 만나면 골치가 아
파. 너희들도 알겠지만 사람을 먹는 것 외에는 난 좋아해본 것이
없어."
백개심이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너는 그 한 가지 취미만으로도 지옥으로 가야 돼. 네가 만약에
다른 취미가 있었다면 염라대왕은 너를 어디로 보내야 할지 고민
했을 거야."
"고민하긴 뭘 고민해? 너의 엄마의 침대 위에 보내줄 걸."
백개심이 펄쩍 날뛰면서 말을 하려는데 두살이 돌연 입을 열었
다.
"그와 같이 주인행세를 하던 사람을 넌 아느냐?"
"보기는 했지만 누구인지는 모르겠어."
두살이 다시 물었다.
"그 사람은 어떻게 생겼지?"
"글쎄, 네가 좋아하게 생기지는 않았어."
도교교는 옆에서 유유히 말했다.
"그렇지도 않지. 어쩌면 난 그 사람에게 흥미가 있을지도 몰
라!"
백개심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 사람에게 흥미가 있어. 그가 어떻게 그 악도귀와 친구
로 사귀었는지 알고 싶군. 악도귀의 은은 어쩌면 그가 내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우리들이 모두 그에게 흥미를 느낀다면 오늘밤에 그에게 가볼
까?"
이대취가 말했다.
"그러나 난 산을 파야겠어. 이화궁주는 이틀 동안 갇혀 있었으
니 오늘밤부터는 손을 써야 돼."
도교교가 애교있게 웃으며 말했다.
"이분 화 공자도 가만히 있는데 네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애를
태우는 것이지?"
백개심은 싸늘하게 웃었다.
"이건 임금이 서둘지 않는데 오히려 내시가 신경을 쓴다고 하는
것과 같지."
이대취가 다시 입을 벌리면서 말했다.
"내가 만약 내시라면 너는 누가 낳은 자식이냐."
밤이 깊었지만 마을은 여전히 대낮처럼 불이 밝혀져 있었다.
한길의 사람들은 모두 흥청망청하고 있었다.
그들은 열 명 중에서 아홉 명은 정상적인 사람 같지가 않았다.
도교교는 돈이 많지 않은 사람처럼 차리고 있었다. 마치 공부하
는 사람처럼 보이도록 했다.
백개심은 그녀를 시중드는 사람으로 차렸다.
마을의 대로에는 양쪽으로 음식점들이 많았다.
국수에서 보신탕까지 팔지 않는 것이 없었다.
도교교는 하나의 식당을 찾아서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국수와
계란과 쇠고기를 주문했다.
백개심은 다만 옆에서 침을 삼키며 구경을 해야 했다.
그 식당의 주인은 늙은이였다.
그는 국수를 건지면서 말했다.
"당신들도 도박을 하러 왔소?"
도교교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말했다.
"그렇지 않소."
그 늙은이는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내가 보기에도 당신은 그런 사람 같지가 않소. 남에게 절을 해
야 하고 엉덩이를 맞아야 하다니......."
그는 국수를 도교교의 앞에 놓고 계속 말을 이었다.
"사실 말이지만 참 추잡스러운 것이 사람들의 심정이오."
"당신은 그런 사람들이 보기 싫다면서 왜 그들을 상대로 돈을
버는 것이오?"
그 늙은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지만 은은 그렇지 않소."
도교교도 웃으면서 말했다.
"도박장을 경영하는 사람들을 당신은 보았소?"
그 노인은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그건 두 미친 놈이오. 더우기 그 홀쭉한 사람은 마치 아버지가
죽은 것처럼 항상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소. 그러다가도 도박이 벌
어지면 즉각 정신을 차리지요. 그는 삼 일 동안 쉬지도 않았소."
"그들은 그렇게 잃고도 아직 돈이 있소?"
"듣기엔 그들이 두 마차의 은을 가지고 왔다고 하오."
도교교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기를 먹어가면서도 고개를 갸
우뚱했다. 얼마 후 그녀는 일어서며 말했다.
"계산 하시오!"
"만약에 깡패들이 왔다면 국수만도 오분(分)의 은을 받겠지만
그러나 당신에게는 모두 합쳐서 삼분(分)을 받겠소."
이때 돌연 한 아이가 달려와서 소리쳤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오늘 밤에 나는 다만 다섯 번 절을 하고
열두 냥을 땄어요."
그 늙은이는 달려나가서 막았다.
백개심은 웃고 있었다.
"알고 보니 저 노인도 체면을 모르는 사람이군!"
도교교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호북(湖北) 사람이군. 말을 하는 것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는
데."
백개심이 다시 말했다.
"친절한 것은 사천 사람과 비슷하지!"
도교교는 이리저리 물어 보았지만 아직도 특별한 것을 알아내지
는 못했다.
알아낸 것이라고는 헌원삼광의 그 친구라는 도인(道人)이 도박
을 하지 못하면 마치 죽은 사람과 같이 된다는 것 뿐이었다.
백개심은 웃으면서 말했다.
"악도귀야말로 이번에 좋은 친구를 찾았군."
도교교가 말했다.
"내가 보기엔 그 사람이 필시 무슨 상심되는 일이라도 있기 때
문일 거야. 그래서 도박으로 자극을 찾는 것 같아. 남들이 말하는
데 도박을 하면 모든 일을 잊게 된다는군."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난 세상에서 헌원삼광보다 더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것
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은 마을의 유일한 여관으로 다가
갔다.
여관은 크지 않았으나 지금은 터질 것만 같았다.
헌원삼광의 도박장은 바로 그 여관에 자리잡고 있었다.
여관에는 네 개의 방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네 개의 방을 터서
서로 통하게 만들었다. 앞뜰에 있는 담도 모두 무너져 있었다.
도교교가 들어가 보니 도처에서 사람들이 사람을 밀어부치고 있
었다.
그녀는 키가 크지 않아서 헌원삼광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볼 수
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드디어 헌원삼광의 목소리를 들었다.
한 사람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하나 하나씩 올라와라. 더 밀면 너희들은 불알이 터
질거야!"
도교교는 비록 이십 년 동안이나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그 목소리를 듣자 악도귀라는 것을 즉시 알았다.
백개심이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도 앞으로 가보자. 이 악도귀가 우리를 보면 필시 놀라고
말 거야."
"잠깐, 서둘지 말아라!"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을 기다리는 것이지?"
"그 자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좀 봐야겠어!"
"그러나 여기선 앞사람의 엉덩이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
아!"
도교교는 백개심을 담쪽으로 끌고 와서 앞사람의 혈도를 점했
다. '쿵' 하는 소리를 내며 그 사람은 쓰러지고 말았다.
도교교는 두 사람을 포개놓고 그 위에 올라섰다.
그녀는 결국 그 '악도귀' 헌원삼광의 모습을 이십 년만에 보게
된 것이다.
지금, 그들은 '홀짝'으로 도박을 하고 있었다.
하나의 탁자 위에는 하얀 천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는 검은 줄
이 그어져 있었다.
왼쪽은 홀수였고 오른쪽은 짝수였다.
만약에 결과가 홀수가 나오면 짝수의 사람은 절을 하고 엉덩이
를 맞아야 했다.
이런 도박의 방법은 정말 간단하고도 통쾌했다.
정말 도박을 하는 사람은 통쾌하게 도박을 하는 것이다.
헌원삼광은 주발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걸레쪽 같은 옷에 머리도 헝클어졌으며 더러운 수건을 질
끈 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기름 투성이었으며. 눈에는 핏발이 서있었다. 마치
돼지를 죽이는 사람 같았다.
그의 앞에는 몇 조각의 고기로 구운 만두가 있었다.
그는 잠도 자지 못했고, 밥도 먹지를 못한 듯했다.
그의 행색은 초라했으나 그래도 계속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백개심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으면서 말했다.
"이런 도박이 무슨 재미가 있다고 그럴까. 정말 고생뿐인데!"
"그가 고생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그 자신은 하늘을 날으는 것
같은 기분일 거야. 도박꾼들이 도박을 할 때에는 변소에서 한다고
해도 냄새를 맡지 못해."
그녀는 헌원삼광 옆에 있는 사람을 보았다.
백개심도 그녀의 눈초리를 따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정말 검고 말라 있었다.
잘생기지도 않았고 빨간 한쌍의 눈에서만 빛을 내고 있었다.
도교교가 말했다.
"저 자식을 본 적이 있나?"
"본 것 같기도 한데......."
"누구지?"
백개심이 한동안 생각을 하는 듯하다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는 걸."
헌원삼광의 큰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여러분, 빨리 돈을 거시오. 시작합니다."
탁자 위의 '홀 . 짝' 양쪽에는 모두 물건들이 걸려 있었다.
철판도 있었고 돌을 올려 놓은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는 글씨를
쓴 사람도 더러 있었다.
탁자 옆에서는 두 사람이 아직도 절을 하는 것이 보였다. 너무
많이 잃은 모양이다. 헌원삼광은 여전히 주발을 흔들며 소리쳤다.
홀짝이 표기된 표시품이 그 주발 속에서 딸그락 거리고 있었다.
그 검고 마른 사나이는 옆에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마에서는
땀을 무척 많이 흘리고 있었다.
돌연 헌원삼광이 큰소리를 쳤다.
"열어라!"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주발을 상 위에 올리더니 그는 그 주발
을 제꼈다.
사람들 틈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중 한 사람이 크게 웃
음을 터뜨렸다.
"칠 점, 홀수구나. 내가 이겼다."
헌원삼광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기는 사람이 있으면 지는 사람도 있지. 이긴 사람은 돈을 가
지고 진 사람은 이리 와서 절을 해라!"
그는 탁자에서 돈을 꺼내어 헤아렸다. 그는 그 돈을 몇 덩이로
나누다가 돌연 소리쳤다.
"누가 우리에게 오십 냥을 속였지? 나중에 오십 냥을 더 표시한
놈이 누구냐? 이리 나와라."
그는 계속하여 세 번을 물어 봤지만 응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백개심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악도귀가 당했어. 누가 그를 속였으니 말이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검고 마른 사나이가 돌연 날아서 공중에
서 돈 후 한 사람의 머리를 잡아 당겼다.
그 사람은 황급히 소리쳤다.
"난 아니오...... 난 아니오......."
그 마른 사나이는 발을 다른 사람의 어깨에 디딘 후 그 사람을
제자리에 돌려보냈다.
도교교는 안색이 변했다.
"날씬한 경공인데!"
백개심도 혀를 찼다.
"재주가 좋군."
"저 사람은 비단 경공이 좋을 뿐만 아니라 신법도 기인한데, 저
런 것은 본 적이 없어."
"나는 본 것 같기도 하다만......"
"다만 지금은 잊었단 말이지. 그렇지?"
백개심은 웃으면서 말했다.
"틀림이 없어."
이때 그 검고 마른 사나이가 태양혈에 고약을 붙인 파란 옷의
사나이를 상에 던졌다. 그 사람은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내가 아니오. 당신이 잘못 봤오!"
헌원삼광이 그를 끌어내리며 소리쳤다.
"너희들은 나의 눈이 쓸모가 없는줄 아느냐? 여기의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라. 내가 잘못본 적이 있는가?"
그는 그의 따귀를 후려치며 소리쳤다.
"너 같은 자식은 도박의 규칙도 모르는구나. 빨리 꺼져 버리란
말이다."
그는 손을 들어 그 사람을 사람들 틈으로 던져버렸다.
어느 사람도 다시는 그를 속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장내에는 다시 엉덩이를 때리는 소리와 절하는 소리, 그리고 헌
원삼광의 웃음소리로 부산해졌다.
도교교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보기엔 이 '악도귀'의 별명을 갈아야겠어."
"어떻게 고치지?"
"그의 도박하는 방식으로 '광도귀'(狂賭鬼)라 고쳐야겠어!"
백개심이 이상한 웃음을 터뜨렸다.
"재미있어! 그 이름이 아주 적합하군."
"도박을 너무 많이 하면 결국은 미쳐 버리는가봐. 그러니 그가
미친 사람이 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렇지. 그는 벌써부터 미쳐야 했으니까."
"이상한 것은 저 검은 자식이 어찌 그와 같이 있게 되었느냐는
점이야. 그리고 그 은은 어디서 난 것이지?"
그녀는 웃으면서 계속 말했다.
"저 자식은 너무 젊어서 돈의 소중함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우리의 나이가 되면 이 세상에 돈보다 더 귀중한 것이 없다는 것
을 깨닫게 되겠지."
"자기의 아들도 돈보다는 못하지. 오십이 다 된 네가 그런 도리
를 모르겠어?"
도교교는 눈을 크게 뜨면서 말했다.
"내가 오십이 됐다고? 난 서른 여덟 살이다."
백개심은 가볍게 웃었다.
"너는 작년에는 서른 아홉 살이었는데 금년에는 어찌 여덟이 됐
지?"
도교교는 무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영리한 남자들은 알지. 여자가 서른이 되면 그녀의 나이는 적
어도 오 년은 멈추게 돼. 사십이 되면 나이가 거꾸로 돌아가게 되
지!"
헌원삼광과 세 명의 미인
이때 헌원삼광이 다시 소리쳤다.
"자, 모두들 준비되었소. 내가 다시 엽니다."
그는 '탁' 하며 그 주발을 상 위에 놓았다. 돌연 한 사람이 소
리쳤다.
"잠깐, 나를 기다리시오!"
그 소리는 여인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문 앞에 있는 것 같았으
나 그 낭랑한 목소리가 모든 소리를 눌러버렸다. 헌원삼광은 웃으
면서 말했다.
"도박장의 규칙은 늦은 사람은 다음에 해야 돼. 그러나 너는 목
소리가 좋으니 기다리지."
"감사하오!"
그녀의 웃음소리는 말소리보다 더욱 듣기가 좋았다.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누구인지 보고 싶었다. 앞의 사람들은 목
을 길게 뽑았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것도 보지를 못했다.
다만 문 옆의 사람들이 방쪽으로 쓰러지면서 하나의 남자 목소
리가 들려왔다.
"비켜, 길을 비켜라!"
뒤따라서 다섯 여섯의 금의(錦衣) 사나이들이 손에다 채찍을 들
고 걸어 들어왔다.
도박하러온 사람들이 어찌 뒤에 온 사람에게 길을 비키랴!
어떤 사람은 이미 눈을 치뜨고 화를 내려했다.
그러나 그 몇 명의 금의 사나이의 모습을 보고서는 놀라서 즉각
길을 비켜주었다.
그 몇 명의 금의 사나이는 양쪽으로 늘어서서 사람들을 담쪽으
로 몰아 놓았다.
도교교와 백개심도 사람들에게 밀려 잘 서있을 수가 없었다. 백
개심은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이 자식들이 큰소리를 치는데 맛을 좀 보여줘야겠군."
도교교는 눈에서 빛을 내며 말했다.
"잠깐, 좋은 구경을 하려면 움직이지 마라."
밖에서 다시 네 명의 금의 사나이가 걸어 들어왔다.
두 사람이 하나씩 큰 상자를 들고 있었으며 매우 무거운 것 같
았다.
그들은 상자를 탁자 앞에 놓고 양쪽으로 물러섰다.
헌원삼광은 눈알을 굴리면서 웃으며 말했다.
"우리의 이 작은 절간에 대보살님이 오셨군!"
그는 그 검고 마른 사나이의 어깨를 힘차게 '툭' 치며 다시 말
했다.
"형제, 도박의 양이 차지 않다고 했죠? 자 큰 것이 왔소!"
그 검고 마른 사나이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말도 하지 않았
다. 만약 그의 눈이 떠져 있지 않았다면 잠이 들어있는 것으로 생
각할 정도였다.
바로 이때, 세 명의 요염한 소부인들이 걸어 들어왔다.
장내는 복잡했지만 그녀들이 걸어 들어오자 사방은 즉각 조용해
졌다.
사람들은 입을 크게 벌렸으며 그 미색에 혹하여 숨이 막힐 지경
이었다.
그 세 명의 부인은 너무나도 아름다왔다.
세 사람은 모두 갸름한 얼굴에 앵두 같은 입술이었고 약간의 화
장을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모두 소부인들 사이에 가장 유행하는 머리를 하고 있
었다.
그 검은 머리에는 꽃이 꽂혀 있었고 옷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고
상하고 몸에 잘 맞았다.
그녀들은 손과 몸에 장식품을 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이라도 한번만 바라보면 즉시 그녀들이 평
범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녀들의 품위와 채취로도 그 신분이 매우 높은 사람이라는 것
이 짐작이 갔다.
이처럼 작은 마을이 아니라 큰 도시에서라도 이런 여인들은 보
기가 쉽지 않았다.
장내의 사람들은 모두 멍하니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개심도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는 거칠게 호흡을 내쉬며 마치 발정을 한 늑대처럼 몸을 부르
르 떨었다.
도교교가 그의 귀에다 조용히 말했다.
"무엇을 생각하는 거냐? 너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좋을 걸.
네가 만약 이 세 사람에게 신경을 쓴다면 너의 큰 불행일 거야!"
"왜?"
"그녀들을 괴롭히고도 무사할 것 같아?"
"저들이 누구인데? 왜 괴롭히지 못한단 말이지?"
"비록 그녀들의 내력은 모르지만 그러나 결코 예삿 사람들이 아
니야. 믿지 못하겠다면 두고 보아라. 오늘 이 '악도귀'도 그들에
게 당할 테니까."
옷색깔 외에는 이 세 명의 부인은 그 모습이 아주 비슷했다. 걸
음 걸이도 같았다. 그녀들은 헌원삼광의 앞에 와서 가만히 웃음을
띠웠다.
그중 자의 소부가 말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대단히 죄송해요."
"괜찮소. 난 이미 오랫동안 미인들과 도박을 하지 못했으니 더
기다려도 무방하오."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매우 보기드문 일이었
다.
백개심은 웃으면서 조용히 말했다.
"알고 보니 저 악도귀도 미인을 좋아하는군!"
"그건 그가 아직 도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도박을 시작하
면 아무 것도 보이지를 않지."
"그렇지. 이대취도 미인을 보면 다만 그녀의 살결에만 신경을
쓰지. 이 악도귀도 사실상 속에는 노름 생각 뿐일 거야. 나만이
진정 여인을 아끼는 사람이지."
금의 사나이가 밖에서 세 개의 의자를 끌고 들어왔다. 그는 그
것을 깨끗이 닦은 뒤 공경하게 세 분의 부인에게 앉으라고 권했
다.
헌원삼광이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좋아, 아가씨들은 돈을 놓아도 좋소."
그 자의 소부는 옆의 금의 사나이에게 약간 고개를 끄덕여 보였
다. 그 사나이는 즉각 하나의 상자를 열어 보였다. 그 속에는 찬
란한 빛이 눈을 부시게 했다.
"아가씨들은 정말 멋지게 해볼 생각이군요. 아가씨들은 정말 사
람을 잘 찾았오."
그 자의 소부가 말했다.
"여기는 돈의 제한이 있나요?"
헌원삼광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안심을 하시오. 제한이 되어 있지 않으니까."
자의 소부가 다시 말했다.
"그럼 좋아요."
그녀는 손을 휘두르면서 말했다.
"오만(萬)이고, 짝수예요."
이 '오만'의 소리가 나오자 관중들은 자기의 귀를 의심할 정도
였다. 그러나 그 금의 사나이는 정말 오만의 은을 앞으로 내밀었
다.
백개심은 놀라며 도교교에게 말을 건냈다.
"저 세 명의 미인이 정말 도박을 하러왔나?"
도교교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녀들은 도박을 한다해도 이런 곳에는 오지 않지!"
"그럼 그녀들은 이 악도귀를 혼내주러 왔단 말이냐!"
"아직은 그녀들의 뜻을 모르겠어. 그러나 두고 보아라. 이 악도
귀가 오늘에는 필시 당할 테니까."
이때 그 마른 사나이가 마치 꿈 속에서 깨어난 듯 검은 얼굴에
붉은 빛을 냈다.
헌원삼광은 계속해서 손을 매만지고 있었다.
"좋아, 정말 좋아. 정말 재미있는데!"
그는 한쌍의 손으로 그 낡은 주발을 잡으면서 소리쳤다.
"열어라!"
결과는 다섯 점이었다.
"오점, 주인이 이겼다!"
사람들 틈에서 즉각 탄식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자의 소부는 눈 한번 깜짝하지 않았다.
곁에 있던 두 소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손을 저으면서 당당히 말했다.
"오만! 역시 짝수!"
헌원삼광이 웃으며 말했다.
"좋아, 다시 해봅시다."
그는 그릇을 쩔렁 쩔렁 하는 소리가 나도록 흔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그릇을 제꼈다.
구점이었다.
또 홀수였다.
그 자의 소부는 계속해서 여섯 번이나 '짝수'에 돈을 걸었다.
그러나 그릇을 제낄 때의 결과는 여섯 번 모두 '홀수'였다.
두 개의 큰 상자는 점점 비어갔고 장내의 사람들의 이마에서는
진땀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 자의 소부의 안색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의 곁에 있던 여인들도 시종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
다.
그녀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이맛살 한번 찌푸리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자세도 움직이지 않았다.
헌원삼광은 눈에서 빛을 내며 웃었다.
"자, 다시 해보시오!"
그 자의 소부는 말했다.
"얼마 남았지?"
금의 사나이가 말했다.
"이십만이오!"
자의 소부는 담담히 말했다.
"모두 걸어라!"
"홀수요, 짝수요?"
자의 소부는 입술을 가볍게 움직이면서 말했다.
"짝수!"
그녀가 택한 것은 여전히 짝수였다.
사람들 틈에서는 잔잔한 흥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발의 소리가 나자 장내는 다시 조용해졌다. 심지어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헌원삼광은 '탕'하며 그릇을 상 위에
놓고 양손으로 누르고는 그 자의 소부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당신이 정말 짝수에 건단 말이오?"
"짝수예요."
"좋아, 놀랐어. 나까지도 당신에게 탄복했소."
헌원삼광도 웃고 있었지만 긴장에 쌓여 있는 듯 보였다.
그 검고 마른 사나이는 양눈을 크게 뜨고 헌원삼광의 손을 바라
보고 있었다. 그 역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다시 소리가 들렸다.
"연다!"
수백 개의 눈이 일제히 헌원삼광의 손에 집중되었다.
사람들이 일제히 앞으로 밀렸다.
헌원삼광은 돌연 빠른 기세로 그릇을 들었다. 다시 홀수였다.
이번에는 헌원삼광 자신까지도 놀랐다.
그는 자신의 운수가 이렇게 좋을지는 몰랐다.
계속하여 일곱 번이나 홀수였다.
사람들은 놀라면서 탄성을 발해냈다.
그러나 그 세 명의 부인은 여전히 안색하나 변하지 않았으며 심
지어는 머리 위의 꽃도 움직이지 않았다.
세 사람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헌원삼광이 이때 급히 소리쳤다.
"잠깐!"
자의 소부가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오?"
"나 헌원삼광은 천하를 다니면서 사오십 년이나 도박을 했소.
그러나 아가씨처럼 시원하고 통쾌한 사람은 이번이 처음이라 하겠
오!"
"고마워요."
"아가씨와 같은 도박꾼은 정말 보기드문 경우이오. 하나의 도박
꾼이 아가씨와 같은 상대를 만나고도 그대로 보낸다면 그 사람은
십팔층 지옥으로 가야할 것이오."
자의 소부는 눈알을 돌리면서 말했다.
"당신은 우리에게 한 번 더 도박을 하라는 것이오?"
"아가씨들은 본전을 찾을 생각이 없소?"
"오늘은 모조리 잃었으니 다음으로 합시다!"
"도박장에서는 잃고 따는 것이지 외상이 없소. 그렇지만 아가씨
와 같은 손님은 예외요."
그는 '탕' 하고 탁자를 치면서 통쾌하게 말했다.
"아가씨들은 걸기만 하시오. 말만 하면 되니까!"
자의 소부는 옆의 자매 두 사람을 바라본 후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를 믿어요?"
"아가씨들이 하시기만 한다면 난 아가씨를 믿겠소!"
자의 소부는 잠시 생각한 뒤 곁의 부인들과 눈짓을 교환했다.
그녀는 몸을 돌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도교교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난 벌써 그가 그녀들을 놓아 주지 않을 줄 알았어."
백개심도 조용히 말했다.
"보기엔 이 세 명의 미인은 도박의 방법도 모르는 것 같은데?
본전을 찾아? 후후 그녀들은 다 잃어 버릴 거야."
"그녀들이 정말로 본전을 찾으려는 줄 알아?"
"아니면 무엇이냐? 너는 방금 그녀들이 시비를 하러 왔다고 했
지만 아무런 소란이 없잖아?"
도교교는 잔잔히 웃음을 보일 뿐 말을 하지 않았다.
검은 사나이와 모용구매
헌원삼광의 붉은 얼굴은 기쁨이 가득찼다.
"얼마나 걸겠소?"
자의 소부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우리를 믿는다고 했지만 우리는 이 도박장의 규칙을 위
반하고 싶지는 않아요. 더군다나 돈도 없이 말만 하는 것은 재미
가 없어요."
헌원삼광은 크게 웃었다.
"맞았어, 맞았어. 아가씨들은 과연 도객(賭客)이오."
그는 돌연 다시 웃음을 멈추면서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아가씨들은 이제 걸 돈이 없지 않소?"
"비록 은은 다 잃었지만 사람은 아직 잃지 않았어요."
헌원삼광은 놀라면서 물었다.
"사람?"
자의 소부가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도박을 할 때 때때로 사람을 걸 수도 있지요. 댁은 오십 년 동
안이나 도박을 했다면서 그것을 모른다는 거예요?"
헌원삼광은 크게 웃었다.
"좋아, 좋아요. 아가씨들은 나보다 더 도사이시군!"
자의 소부가 말했다.
"남자들은 도박을 할 때 급하면 자기 마누라를 맡기지만 우리는
마누라가 없으니 자기를 맡길 수밖에 없군요."
그녀는 미소를 보이더니 다시 말했다.
"그래서 여자들은 항상 남자보다 더 잘하죠!"
"재미있어. 난 온 천하를 다니면서 도박을 벌였지만 오늘에야
정말 상대를 만났군!"
그는 손을 비비면서 말했다.
"아가씨는 어떻게 도박을 하시겠는지 말만 하시오."
"우리의 도박하는 방법은 간단해요. 하나를 걸면 하나를 물어주
는 것이지요."
헌원삼광은 눈을 깜박거리더니 말했다.
"무엇을 걸겠소!"
"한 사람을!"
헌원삼광의 눈초리가 그들의 몸을 감돌더니 크게 웃음을 지었
다.
"그러나 아가씨 같은 사람과 비교될만 한 것은 나에게도 없소."
헌원삼광은 눈을 더욱 크게 뜨더니 말했다.
"아가씨가 진다면!"
자의 소부는 여전히 미소를 보였다.
"만약 우리가 진다면 우리 자매 중의 한 사람이 당신을 따라가
는 것이오!"
이 말이 나오자 장내에는 다시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이런 도박의 방법이 헌원삼광에게 유리하다
고 생각하였다.
만약 이런 미인을 이길 수 있다면 큰 복이 굴러들어오는 것이고
진다고 해도 이런 미인과 같이 다니게 된다니 남자들이 바라던 세
계로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백개심은 눈을 크게 뜨고 도교교에게 말했다.
"저 여인이 악도귀에게 반했단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도박이 어디있지?"
도교교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나까지도 점점 알 수 없게 만드는군. 그녀들이 왜 왔는지 모르
겠는데."
헌원삼광은 쉬지 않고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좋아. 정말 좋아...... 하, 하."
자의 소부는 그의 웃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
다.
"그렇다면 우리의 방법에 당신이 동의한다는 말이지요?"
"내가 동의 못할 것이 어디 있지?"
"그럼 당신의 친구는 어떻소? 그도 동의하는 것이오?"
비록 헌원삼광에게 물어 보았어도 그녀의 눈초리는 그 침묵을
지키고 있는 신비스러운 검은 사나이를 향하고 있었다.
도박의 결과가 나타날 때마다 그의 얼굴이 약간 격동하며 강렬
한 빛을 내는 것 외에는 그는 시종 멍하니 앉아서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마치 이 도박장의 떠드는 사람들을 떠난 것 같았고, 이 세계를
떠난 것 같은 태도였다.
헌원삼광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의 이 동생의 병은 나와 같소. 아무 것도 좋아하지 않지만
도박만은 좋아하오. 도박이라면 어떤 방식도 동의 할 거요."
자의 소부는 여전히 검은 사나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저는 그의 한마디 말을 들어야겠어요."
헌원삼광은 그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좋다. 그럼 네 자신이 한마디 말을 해라!"
검은 사나이는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사방을 몇 번 둘러보다가
말했다.
"무엇을?"
"만약 우리가 진다면 그녀들을 따라 가겠니?"
검은 사나이는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
"좋아!"
자의 소부가 즉각 물어왔다.
"어디 가든 간에 다 좋단 말이에요?"
검은 사나이는 길게 탄식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어디에 가든 상관이 없어. 나에게는 어디든 마찬가지니까!"
"그렇게 정합시다."
검은 사나이는 말했다.
"음."
헌원삼광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의 이 동생이 비록 바보 같이 생겼지만 사실은 그도 사나이
오. 한 번 말을 하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성미지."
자의 소부는 웃으면서 말했다.
"난 믿어요."
헌원삼광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아가씨들이 먼저 거시오."
그는 낡은 주발을 잡고 자의 소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번에 당신은 홀수에 걸겠소, 짝수에 걸겠소."
"짝수!"
그녀는 여전히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는 듯 짝수를 택했다.
사람들은 다시 탄식 소리를 냈다.
그들은 이번에도 그녀가 질 것으로 생각했다.
헌원삼광은 주발을 흔들다가 멈추면서 말했다.
"아가씨는 호남(湖南) 사람인가요?"
"아니에요."
"호남사람이 아니면 어찌 노세와 같은 성질이 있지?"
그는 크게 웃으면서 다시 그릇을 흔들었다.
자의 소부는 화를 내지 않고 조용히 그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
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헌원삼광은 이미 그릇을 상 위에 내렸으
나 한쌍의 큰 손은 여전히 그릇을 덮고 있었다.
그릇을 흔들 때 그는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도박꾼들은 그 맑은 주발의 소리를 들으면 즉각 모든 것을 잊을
수가 있다.
그러나 그릇을 내려놓은 후 그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어떻든 간에 이번에는 정말 큰 도박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세 분의 아름다운 부인은 여전히 안색도 변하지 않고 미소를
띠웠다.
그들은 마치 도박의 승부는 마음에 두지 않는 것 같았다.
헌원삼광도 그녀들에게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있기 때문에 장내는 조용하기만 했
다.
돌연 큰소리가 났다.
"젖혀라!"
이대취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 두 자식이 어디로 갔지? 혹시 그 악도귀와 붙은 것이 아닐
까?"
합합아가 말했다.
"하하, 안심을 해라. 칼을 목에 들이 댄다해도 백개심은 도박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 악도귀의 얼굴에 꽃이 핀 것도 아닐 텐데 왜 아직까지도 돌
아오지 않는 것이지?"
두살이 돌연 소리쳤다.
"기다릴 필요가 없다. 우리가 먼저 손을 쓰자."
이대취는 즉각 하나의 예리한 도구를 들고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벌써부터 손을 써야 했어. 이화궁주는 조금의 힘도 남아
있지 많을 거야."
"하하, 이대취도 이렇게 돈에 미치는 줄은 몰랐는데?"
"내가 그 몇 개의 상자를 보고 싶어하는 줄 아느냐?"
"그렇지 않단 말이냐?"
"우리는 몇십 년의 친구인데 내마음도 몰라 주니 정말 슬픈 일
이군!"
합합아는 눈알을 돌리면서 웃으며 말했다.
"내가 정말 너의 마음을 모르고 있는줄 아느냐?"
"네가 안단 말이냐?"
"빨리 들어가서 이화궁주의 고기를 먹고 싶단 말이지? 죽은 사
람의 고기는 먹고 싶지가 않을 테니까 죽기 전에 빨리 손을 쓰
자!"
"좋아, 과연 내 친구다."
그는 도끼를 들고 벽을 치기 시작했다.
화무결은 마음 속으로 기쁘기도 하였지만 긴장에 휩싸였다.
그들은 드디어 일을 시작했다.
그들이 산을 파괴하는 것을 보면서 화무결은 마음 속에서 일어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이 산굴에 들어선 후 이화궁주가 만약 반항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붙잡힌다면 그때에 일어날 일을 화무결은 생각할 수도 없
었다.
도끼를 내려치자 불꽃이 사방으로 튀겼다.
짝수다!
이번엔 짝수였다.
도박장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환호성을 올렸다. 도박꾼들도
필경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진 사람을 동정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헌원삼광은 긴장을 하지 않고 오히려 웃고 있었다.
그가 만약에 이 정도의 아량이 없었다면 악도귀라 불릴 수 있었
을까?
그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당신들이 이겼구나. 당신들이 자주 패하면 도박의 매력
을 잃게 될 텐데, 그러면 되겠나?"
자의 소부가 살짝 웃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이긴 셈이죠?"
"물론 당신이 이겼소."
"그럼 주인이 물어 주어야지요."
헌원삼광은 옷소매로 얼굴의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아가씨는 정말 날더러 따라가잔 말이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당신이 아니에요."
헌원삼광이 놀라운 빛을 드러내면서 물었다.
"내가 아니면 누구요?"
"이 사람이에요."
그녀의 손은 그 검은 사나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귀하는 우리를 따라 가시지요?"
검은 사나이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돌연 일어섰다.
헌원삼광은 그를 잡고 말했다.
"너...... 네가 정말 갈테냐?"
검은 사나이가 말했다.
"음!"
"이곳의 자본 중 반은 너의 것이야."
"모두 가지시오!"
그는 자기의 몸까지 아끼지 않았는데 재물이 보이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헌원삼광은 탄식을 했다.
검은 사나이는 이미 부인들 앞에 섰다.
자의 소부가 웃으면서 말했다.
"안심하시오. 당신이 우리를 따라가면 불행은 없을 테니까요."
검은 사나이는 마치 하늘을 날 듯이 아무소리도 듣지 못한 태도
였다.
부인들은 헌원삼광에게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리고는 세
여인이 몸을 돌렸다.
헌원삼광은 그녀를 쳐다보고 있다가 소리쳤다.
"잠깐!"
소리를 치면서 그의 커다란 몸이 하늘의 새처럼 날았다. 그는
문앞까지 날아 가서 부인들의 갈 길을 막아 버렸다.
그가 경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그 자의 소부는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우리는 본전도 필요없고 이제는 도박도 하기 싫으니 비키시
오."
헌원삼광은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들이 나의 이 검은 동생 때문에 왔다는 것을 알았소. 당신
들은 도대체 어쩌자는 거요? 그를 어디까지 데리고 갈 작정이오?"
"이 일은 당신이 상관할 필요가 없어요. 지금 당신이 패한 마당
에서 어쩔 셈이오?"
악도귀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당신들이 만약에 졌다면 정말 나를 따라 왔겠소?"
"물론이지요!"
헌원삼광은 아래 위로 이 부인들을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당신들의 자매는 정말 많더군요."
"물론 많죠!"
"아홉 명이 아니오?"
자의 소부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서서히 말했다.
"그래요."
이 말이 나오자 헌원삼광은 눈을 크게 떴다.
그 침묵을 지키던 검은 사나이도 놀라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그
러더니 그 부인에게 소리쳤다.
"당신은 당신은 모용......."
자의 소부가 입가에 미소를 보였다.
"난 칠랑이에요. 이 분은 여섯번째의 언니이고...... 이 사람은
여덟번째의 동생!"
그녀의 옆에 서있던 부인들도 미소를 지었다. 그 중에서 나이가
좀 많은 사람이 말했다.
"당신은 비록 우리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우리는 오래 전부터 당
신을 알고 있었소."
그 검은 사나이는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뒤로 물러섰다.
모용칠랑이 미소를 띠우면서 말했다.
"우리도 당신이 한 말을 변경 않는다는 걸 아오. 당신이 졌으니
우리를 따라가야지요."
헌원삼광은 돌연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강호에서 듣기엔 모용 아홉 자매가 모두 좋은 남편을 찾았고,
또 재주가 있다고 들었소."
모용칠랑이 담담이 물었다.
"재주가 없는 사람이 어찌 좋은 남편을 찾겠어요?"
"그 말이 맞아. 말은 잘 했소."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강호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지. 모용자매 중에서 무술이 가
장 뛰어난 사람은 두번째의 모용쌍이오. 가장 재주가 좋은 것은
칠랑이고, 그리고 가장 영리하고 아름다운 것은 막내 모용구매
지."
모용구매란 이름을 듣자 그 검은 사나이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
다.
헌원삼광은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내가 보기엔 당신들 세 분도 모용구매보다 못생기진 않았
소. 다만 남자의 마음 속에서는 처녀가 항상 예쁠 뿐이지."
모용칠랑이 미소를 보였다.
"당신도 말을 잘했어요. 또 다들 알고 있는 것을 말해 보시오."
"난 이 모용구매의 운수가 여덟 명의 언니보다 못하다는 것을
아오. 어느새 묘하게 사라져 버렸지요. 그녀의 여덟 명의 형부들
은 비록 세가(世家) 출신의 사람이고 천하를 많이 다녔지만 그녀
를 찾지 못했소."
묘용칠이 싸늘하게 말했다.
"당신은 아는 것도 많군요."
모용육도는 웃으면서 말했다.
"인해가 막막한데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에요."
헌원삼광은 웃음을 뚝 그치더니 돌연 말했다.
"그러나 나의 이 동생은 그녀를 잘 대했고, 또 양으로 음으로
그녀를 보호했는데 남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가 모
구매를 유괴했는줄 알고 있었지."
모용칠랑이 말했다.
"둘째 언니와 세째 언니는 그를 심문할 의사도 없었고 또 악의
도 없었소. 다만 그 동안의 막내 동생의 생활을 알아보고 싶었던
거요."
모용육랑이 말을 받았다.
"둘째 언니와 셋째 언니는 너무나 막내를 걱정한 나머지 물어볼
때 성질을 부렸을 것이오. 그러나 그들은 마음 속으로 그에게 감
사하고 있을 거예요."
모용팔랑이 다시 말을 받았다.
"그래서 그가 떠나갈 때 그녀들은 그에게 보수를 주려고 했던
것이오."
헌원삼광이 말했다.
"그렇지. 그가 떠나갈 때 그녀들은 그에게 오천 냥의 금을 주겠
다고 했으니까. 그것도 작은 숫자는 아니야. 만약 거지에게 주려
면 만 개 이만 개 이상으로 나누어야 할 테니까."
헌원삼광은 돌연 안색이 새파랗게 되어 날뛰면서 소리쳤다.
"그러나 나의 이 동생은 거지가 아냐! 그는 너희들의 막내 동생
때문에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어. 고생은 말할 나위가 없었
고. 그가 너희들의 약간의 돈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줄 알아? 너
희들 자매는 모두 영리한 사람들인데 왜 그의 뜻을 모른단 말이
냐?"
모용칠랑이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다만......."
헌원삼광이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모용자매의 남편들은 모두 훌륭한 남편들인데 나의 이 검은 동
생은 돈도 없고 세력도 없지. 또 명문 출신도 아니지. 동생을 이
쪽으로 시집보낼 수는 없다는 말이지?"
그는 다시 날뛰면서 소리쳤다.
"그러나 나의 이 동생이 어느 점이 어울리지 않지? 그는 비록
부자는 아니지만 사나이란 말이다. 너희들 자매의 동생이 그에게
시집을 오는 것은 영광이야."
그는 손을 휘두르면서 소리를 치다가 손가락이 모용칠랑의 코를
칠 뻔했다.
그러나 모용칠랑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우리는 그가 좋은 사람이고 우리의 동생을 모욕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헌원삼광이 싸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야 아느냐?"
"큰 언니가 나에게 말하기를 황금 오천 냥을 그의 앞에 주어도
그는 보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버렸다고 하더군요."
"그가 가는 것은 너희들이 바라던 것이 아니냐? 한편으론 오천
냥의 금을 절약할 수도 있는데 왜 그를 찾는 것이지? 왜 그를 데
리고 가느냐 말이다."
모용칠랑은 다시 길게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그가 이 일을 모두 당신에게 말했다면, 나의 막내 동생이 이
몇 년 동안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겠죠. 그리고 중병에 걸렸다
는 것도 말예요?"
"내가 알기로는 흑 동생이 그녀를 돌려보낼 때는 그녀의 병에
차도가 있었지. 너희들은 그녀가 좋아질 줄 알고 그에게 시집보내
지 않으려 했던 것이야."
"그때에는 우리도 확실히 그녀의 병이 좋아질 줄 알았죠. 그때
는 그녀가 이미 큰언니를 알아보았어요. 그런데 이분 흑 노제가
떠난 뒤 그녀의 병이 돌연 악화되어서 큰언니를 알아보지 못했어
요. 그리고 하루 종일 말을 하지 않았지요."
모용육랑도 탄식을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녀가 입을 벌릴 땐 '그 이는 갔어요?' 하고 묻는 것이 고작
이었어요. 그후 그녀는 아주 말도 하지 못하고 매일 멍하니 눈물
만 흘리는 것이에요."
그 검은 사나이는 물론 오만하고 괴상스러운 흑 지주였다.
그는 마치 인형처럼 서있다가 이런 소리를 듣자 얼굴을 침으로
찔린 것처럼 움찔했다.
헌원삼광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알고 보니 그 구(九) 아가씨는 다정한 사람이었군."
모용칠랑은 여전히 탄식을 했다.
"지금에야 우리는 그녀의 마음을 알았어요. 세상에 어떤 일은
억지로 할 수가 있지만 '정(情)'만은 그렇게 안 된다는 것을 알았
어요."
"너희들은 너무 못나지도 않았군."
모용육랑이 대답했다.
"막내 동생은 그토록 심하게 앓고 있으면서도 그를 잊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동생은 그에게 깊이 정을 느끼고 있어요. 사람의 가
슴도 살로 만든 것이니 이런 이상 그가 어떤 사람이든 우리는 반
대하지 않겠어요."
모용팔랑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찾으려는 거예요."
모용칠랑이 그 말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도 그의 행방이 묘연해서 어디로 가서 찾아야 할지
를 몰랐죠. 다행히 다섯째 형부가 무한을 지나면서 당신과 그의
도박을 목격했어요."
헌원삼광은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너의 다섯번째 형부가 누구지? 어찌 우리를 알지?"
"나의 다섯번째 형부는 바로 '신안서생' 낙명도예요. 그는 몇
년 전에 당신을 한 번 본 적이 있지요. 그는 한 번 본 사람은 잊
지 않아요."
"그가 나를 안다고 해도 나는 그 사람을 모르는데 나의 이 흑
노제는 항상 신출귀몰하여 그를 본 사람은 얼마 없지."
"다섯번째의 형부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지요. 그러나 그를 찾기
위해 셋째 언니는 많은 그림을 그렸어요. 다섯번째 형부는 그림을
본 후 그가 어디서 이 사람을 보았는지 생각이 났던 거예요."
모용육랑은 미소를 보였다.
"나의 셋째 언니는 그림을 잘 그리죠. 어느 날 그녀는 나의 둘
째 언니와 형부랑 농담을 하게 한 후 형부를 벽에다 그렸는데 언
니는 한때 분별을 못했기 때문에 벽에 대고 오랫동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모용팔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의 둘째 언니는 너무 많이 공부를 했기 때문에 눈이 좀 나
빠요."
헌원삼광은 탄식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너희 집에는 인재(人才)도 많구나. 그래서 강호의 사람들이 너
희들에게 어쩔 수 없이 당하는구나."
모용칠랑이 말했다.
"우리는 다섯번째 형부의 말을 듣자 즉각 무한쪽으로 달려 왔어
요. 마침 당신들이 이 근방에서 도박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찾은 것이에요."
"그러나 너희들은 착각을 말아라. 나의 이 흑 노제는 나와 달라
서 그는 도박을 즐기는 것이 아니고 심정이 아프기 때문이야."
애정에서 실의에 빠진 사람이 도박장에서 기분을 내는 것은 옛
날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전통이다.
모용칠랑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의 심정은 우리가 이해를 해요. 그가 오만한 사람이라는 것
도 알고 있어요. 우리가 그냥 찾아와 가자고 했으면 그는 필시 가
지 않을 거예요."
모용육랑은 미소를 보이면서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처럼 도박의 방법을 생각했던 거예요."
헌원삼광은 참을 수가 없어서 물어 봤다.
"그러나 너희들이 만약 패했다면 어떻게 하였겠느냐?"
"만약 우리가 졌다면 우리의 자매 중에 한 사람이 당신들을 따
라가겠죠. 그렇죠?"
"그렇지!"
"그래서 우리가 만약에 진다면 막내동생을 당신들에게 따라가게
할 작정이었어요. 난 우리 셋 중 하나를 걸겠다고 말한 것이 아니
고 우리 자매 중 하나를 걸겠다고 했으니까요. 당신들은 절대로
그녀에게 불친절하지는 않으니 그녀만 좋다면 누가 누구를 따라가
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어요?"
헌원삼광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좋았어. 너희들 자매는 과연 대단하군!"
"그러나 우리는 당신의 도박친구를 하나 빼앗아 버렸어요. 그가
우리의 막내 동생과 혼인이 맺어지면 다시는 오지 않을 거예요."
헌원삼광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다만 직접 이 동생과 그 아가씨가 혼사를 이루는 것을 보
고 국수라도 먹는다면 석 달 동안 밥을 먹지 않아도 관계가 없
지."
그는 돌연 웃음을 멈추면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안 돼. 국수는 먹지를 못할 거야."
모용칠랑이 물었다.
"왜요?"
"모용가의 아가씨가 혼사를 치룬다면 필시 이름이 있는 인물들
이 초대될 거야. 나 이 악도귀가 만약 그 자리에 찾아간다면 김이
새어 버린단 말이다."
모용칠랑은 화사하게 웃었다.
"안심하세요. 그 술자리에는 당신이 없으면 안 돼요. 다른 사람
은 초대하지 않는다 해도 당신은 청할 거예요."
헌원삼광은 손뼉을 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좋아. 내가 만약에 가지 않는다면 난 개새끼다."
그러다가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돌연 이마를 치며 말했다.
"가져가라! 여기있는 은도 모두 가져가라. 조금도 남기지 말
고."
"이거...... 이건 무엇 때문이죠?"
"잔치술을 마시려면 자연히 예물을 드려야지. 당신들이 받지 않
으면 나를 무시하는 것이며, 잔치에 나를 초대하지 않으려는 것이
오."
"정 그렇다 해도 당신이 도박할 금을 남겨야 하잖아요?"
"절대로 남겨선 안 돼. 난 돈을 완전히 잃지 않으면 멈추지 않
는 성질이야. 그래서 난 큰 재산을 얻게 된 후에는 한번도 잠을
편히 자본 적이 없지. 지금, 돈을 내버릴 기회가 있으니 당신들이
받지 않는다면 나를 해치게 되는 셈이야."
모용칠랑은 미소를 띠우면서 말했다.
"당신이 이처럼 손이 넓으니 우리가 받지 않으면 안 되겠죠?"
헌원삼광은 크게 웃었다.
"모용가의 아가씨가 이토록 통쾌할줄은 몰랐는 걸. 나의 이 흑
노제가 이만큼이나 눈이 좋을지는 몰랐는데."
그는 손으로 흑 지주의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동생, 아직 가지를 않겠느냐? 너의 마음 속으론 애가 타고 있
는 줄을 알아. 그러나 이젠 너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 그 아가
씨가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흑 지주는 멍하니 혼빠진 사람처럼 서있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
다.
"내...... 내가 어떻게 그곳에......."
헌원삼광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무엇을 망서린단 말이냐? 대장부가 하는 일은 통쾌해야 돼. 더
군다나 도박에 졌다면 목을 쳐도 할 이야기가 없는 거야."
결국 흑 지주는 웃고 말았다.
"소어아는 필시 산에 있을 것이니 그를 본 후에 잊지 마시오."
"안심을 해라. 난 그를 알거든. 잔치에 달려 가라고 할 테니
까."
그들이 좋은 친구가 된 것은 도박 때문은 아니었다. 소어아 때
문이었다.
그들은 소어아가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구든 간에 소어아를 보면 잊을 수가 없었다.
헌원삼광은 그들을 문까지 바래다 주고서는 돌연 웃으면서 말했
다.
"칠랑 아가씨, 손이 가렵거든 찾아 오시오. 당신 같이 통쾌한
사람은 처음 보았소!"
드디어 흑 지주는 가버렸다.
그의 일생은 고독했지만 이제는 행복을 찾은 셈이다.
이것은 처음부터 그가 얻어야 했던 그의 몫이었으므로 어느 누
구도 입에 오르내릴 수는 없었다.
모용구매도 그녀의 안식처를 찾았다.
그녀는 비록 기억력을 상실했고, 지혜를 상실했지만 그러나 행
복을 얻었다. 어떤 일이라도 행복과 바꿀 수 있다면 그건 가치가
있는 일이다.
여인의 최대 행복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찾는 일이다.
이런 행복을 대신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게 바로 인생이 아니겠는가?
그녀가 만약 전처럼 괴팍스럽고 오만하고 교활하고 싸늘했다면
그녀는 다만 하나의 성공한 여인이라 할 수밖에 없지 행복한 여인
은 이미 아닌 것이다.
- 제8권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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