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ㅡ 둥지 만들기

단밤이 | 2024.01.16 22:59:43 댓글: 0 조회: 172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0894
The Secret Garden

(비밀의 화원)


둥지 만들기


일주일 동안 내린 비가 그치자, 높고 둥근 천장 같은 푸른 하늘이 다시 나타났고, 쏟아지는 햇살이 제법 뜨거웠다. 메리 아가씨는 그동안 비밀 정원도 디콘도 볼 기회가 전혀 없었지만,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주는 금방 지나간 것 같았다. 메리는 매일 콜린을 찾아가, 라자나 비밀 정원, 디콘이나 황무지의 시골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몇 시간을 보냈다. 두 아이는 아름다운 책들과 그림을 보았다. 때로는 메리가 콜린에게 책을 읽어주었고, 때로는 콜린이 메리에게 조금 읽어주었다. 콜린이 뭔가에 재미나 흥미를 느낄 때면, 메리는 사촌이 전혀 몸이 불편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콜린의 안색이 너무 창백하고, 언제나 소파에 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아가씨는 정말 꾀가 많으시군요. 그날 밤 울음소리를 듣고 잠자리에서 빠져나와서 그 소리를 따라갈 생각을 하시다니.” 한번은 메들록 부인이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아가씨 행동은 우리 모두에게 일종의 축복이었어요. 아가씨와 친구가 된 후로, 도련님은 성질을 부리거나 징징거리며 떼를 쓰지 않거든요. 간호사는 도련님에게 너무 지쳐서 관둘 작정이었답니다. 그런데 요즘은 아가씨가 도와주니 그냥 있어도 상관이 없대요.” 그러고는 짧게 웃었다.

메리는 콜린과 이야기를 할 때는 비밀 정원에 대해서 몹시 조심하려고 애를 썼다. 메리가 콜린에게서 알아내고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하지만 콜린에게 솔직하게 물어보지 않고 스스로 알아내야만 할 것 같았다. 일단 메리는 콜린과 함께 있으면 즐거웠기 때문에, 사촌이 비밀을 말해줘도 되는 아이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콜린은 디콘과 닮은 점이라고는 없었지만, 아무도 모르는 정원이 있다는 생각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기에 일단 믿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콜린과는 막 알게 되었으니,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었다. 메리가 두 번째로 알아내고 싶은 건 이것이었다. 콜린을 신뢰할 수 있다면,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콜린을 아무도 모르게 정원에 데려갈 수 있을까? 저명한 의사 선생님은 콜린이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 한다고 충고했다. 콜린도 비밀 정원에서라면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일이 싫지 않다고 했다. 콜린이 신선한 공기를 한가득 마시고, 디콘과 울새와 만나고, 황무지에서 자라는 동식물을 직접 보면,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메리는 최근에 가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인도에서 도착했을 때 거울에 비쳤던 여자아이와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로운 아이는 전보다 예뻐 보였다. 마사조차도 메리에게 일어난 변화를 알아차렸다.

“황무지에서 온 공기 덕에 벌써 아가씨가 튼튼해졌어요.” 마사가 말했다. “인제 아가씨 안색은 누르께허지두 않구 빼빼 마르지두 않구요. 심지어 머리카락두 머리에 찰싹 붙어 있지 않다니깐요. 머리카락에 생명이 있는 거처럼 비죽비죽해요.”

“머리카락도 나랑 닮았어.” 메리가 말했다. “점점 더 튼튼하고 통통하게 자라니까. 숱도 많아진 것 같아.”

“확실허게 그런 것 같아요.” 마사가 메리 얼굴주위로 흘러 내려온 머리카락을 살짝 부풀려주며 말했다. “얼굴두 전보다 예뻐지구 두 볼에 홍조두 돌구요.”

정원과 신선한 공기가 메리의 건강에 좋았다면, 콜린에게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콜린은 남들의 시선을 싫어하니, 디콘을 보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왜 사람들이 널 쳐다보면 화가 나?” 어느 날 메리가 물어보았다.

“난 언제나 그게 싫었어.” 콜린이 대답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어. 어릴 때 사람들이 나를 바닷가에 데려갔어. 내가 유아차에 누워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마다 나를 빤히 바라봤지. 부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내 유모에게 말을 걸고, 소곤거리기 시작하는 거야. 그때 그 사람들이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 못 살 거라고 말한다는 걸 알았어. 어떨 때는 부인들이 내 볼을 토닥거리면서 ‘불쌍한 아이!’라고 말하기도 했지. 그러다 한 부인이 또 그런 짓을 하기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손을 꽉 물어버렸어. 그 부인은 겁에 질려서 도망을 갔지.”

“그 부인은 네가 개처럼 미쳤다고 생각했을 거야.” 메리는 조금도 감탄하는 기색 없이 말했다.

“그 부인이 무슨 생각을 하건 상관없어.” 콜린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내가 이 방에 들어왔을 때는 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나를 깨물지 않았어?” 메리가 말했다. 비로소 아이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번졌다.

“네가 유령이거나 내가 꿈을 꾸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콜린이 말했다. “유령이든 꿈에서 본 사람이든 깨물 수는 없잖아. 암만 소리를 질러 봐야 신경도 안 쓸 테고.”

“혹시, 혹시 어떤 남자애가 너를 쳐다보면, 화가 날 것 같니?” 메리가 우물쭈물하며 물었다.

콜린은 다시 쿠션에 등을 기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떤 남자애가 있어.” 콜린이 단어 하나하나를 생각해 말하는 듯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나를 봐도 괜찮을 것 같은 남자애 말이야. 그 애는 여우들이 어디에 사는지 아는 디콘이야.”

“네가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 메리가 말했다.

“새들은 신경 쓰지 않잖아.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고.” 콜린은 여전히 생각에 빠져 말했다. “그러니 나도 신경 쓰면 안 될 것 같아. 디콘은 말하자면 동물을 잘 다루는 사람이고 나는 남자아이 동물이니까.”

그러더니 콜린이 웃음을 터트렸고, 메리도 따라 웃었다. 굴에 숨은 남자아이 동물이라는 생각이 너무 재미있어서 둘은 박장대소를 하며, 대화는 끝이 났다.

메리는 콜린이 디콘을 싫어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다시 파랗게 갠 첫째 날 아침, 메리는 일찌감치 일어났다. 커튼 틈새로 햇살이 비스듬히 쏟아져 들어왔다. 메리는 그 광경에 몹시 신이 나서, 침대에서 훌쩍 튀어나와 창가로 달려갔다.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자, 신선하고 향긋한 공기가 곧장 불어 들어왔다. 황무지는 푸른색이었고, 온 세상은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여기저기 사방에서 부드러운 피리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꼭 새들이 연주회를 하려고 음을 맞춰보는 듯 들렸다. 메리는 손을 창밖으로 내밀어, 햇살을 한 손 가득 담았다.

“따뜻해! 따뜻해!” 메리가 말했다. “이러면 녹색 싹들이 땅 위로 계속해서 솟아오를 거야. 그리고 알뿌리랑 다른 뿌리들도 땅속에서 온힘을 다해서 자라려고 애를 쓰겠지.”

메리는 무릎을 꿇고, 최대한 멀리 창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한껏 숨을 들이마시고 공기를 킁킁거리다 보니 웃음이 터졌다. 디콘의 어머니가 디콘에게 토끼처럼 코를 찡긋거린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주 이른 새벽인가 봐.” 메리가 말했다. “작은 구름들이 전부 분홍색이야. 이런 하늘은 난생처음 봤어. 아무도 안 일어났어. 마구간지기들 소리조차 안 들리는 걸 보면.”
그때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 메리는 벌떡 일어섰다.

“더는 못 기다리겠어! 정원을 보러 가야겠어.”

메리는 이제 혼자서 옷을 입을 줄 알았다. 그래서 5분만에 옷을 다 입었다. 메리는 혼자서도 빗장을 열 수 있는 작은 옆문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긴 양말만 신은 발로 계단을 날듯이 뛰어 내려간 후, 홀에서 구두를 신었다. 메리는 체인을 풀고, 빗장을 내리고, 자물쇠도 열었다. 문이 열리자, 한 번에 계단을 뛰어내렸다. 이제 메리는 풀밭에 서 있었다. 그동안 풀은 녹색으로 변한 것 같았다. 햇빛이 아이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고, 따스하고 달콤한 향기가 주위로 확 퍼졌다. 그리고 사방의 덤불과 나무에서 피리 소리와 지저귀는 소리와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메리는 순수한 기쁨에 사로잡혀,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온통 푸른색과 분홍색, 영롱한 진주색과 하얀색이 뒤섞여 있고 봄빛이 흘러넘치는 덕분에, 메리는 자신도 피리를 불고 큰 소리로 노래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러니 개똥지빠귀와 울새와 종달새들이 노래를 부르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메리는 관목들을 빙 둘러 달려서 비밀 정원으로 가는 산책로를 뛰어갔다.

“벌써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어.” 메리가 말했다. “풀은 녹색이 더 진해졌고, 사방에 새싹들이 튀어나오고 있어. 말려 있던 이파리들은 펴지고 녹색 새순도 돋아났어. 오늘 오후에는 분명히 디콘이 올 거야.”

한동안 계속된 따스한 봄비에, 아래쪽 담장을 따라 난 산책로의 가장자리 화단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무리진 식물들의 뿌리에서 흙을 뚫고 나온 싹들이 자라고 있었다. 크로커스 줄기 사이 여기저기에서 푸르스름한 자줏빛과 노란색 꽃잎들이 펼쳐졌다. 반년 전만 해도, 메리 아가씨는 세상이 어떻게 잠에서 깨어나는지 봐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것도 놓치지 않았다.
메리는 덩굴 아래 문이 숨겨진 곳에 도착하자마자, 커다랗게 들리는 낯선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까마귀가 까악까악 우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게다가 그 소리는 담장 꼭대기에서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커다란 검푸른 색 까마귀가 앉아 몹시 영리한 눈빛으로 메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메리는 까마귀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었기에, 조금은 불안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까마귀가 날개를 활짝 펼쳐 퍼덕거리며 정원으로 날아갔다. 메리는 까마귀가 정원에 있지 않았으면 했다. 혹시 그 새가 정원에 있을까 봐 걱정하며 문을 밀어서 열었다. 정원으로 한참 걸어가서야 메리는 까마귀가 쉽사리 떠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새가 키 작은 사과나무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과나무 아래에는 꼬리털이 복슬복슬한, 털이 붉은 작은 짐승이 누워 있었다. 그 짐승과 까마귀는 몸을 구부린 빨간 머리 디콘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편, 디콘은 풀밭에 무릎을 꿇은 채 뭔가에 열심이었다.

메리는 날 듯이 풀밭을 뛰어 디콘에게 다가갔다. “오! 디콘! 디콘!” 메리가 소리를 쳤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어떻게 온 거야! 해가 이제 막 떴잖아!”

디콘이 웃음을 터트려 주위를 환히 빛내며 일어서더니, 머리를 벅벅 문질렀다. 디콘의 두 눈은 하늘 조각 같았다.

“야호!” 디콘이 말했다. “해님두 일어나기 훨씬 전에 일어났으니깐요. 어떻게 침대에 계속 누워 있겠어요! 오늘 아침에 온 세상이 다시 시작되었잖아요! 온 세상이 먹일 찾구, 흥얼거리구, 긁어대고, 노랠 부르구, 둥질 만들구, 향길 뿜어내면, 침대에 등 붙이구 누웠을 게 아니라 냉큼 일어나야죠. 해가 하늘루 훌쩍 뛰어올랐더니만 황무지가 미치게 좋아했다구요. 그래서 저두 히스 들판 한가운데루 나가서, 미친 사람처럼 노랠 부르구 소릴 치며 달렸어요. 그러다 여기루 곧장 왔어요. 안 올 수가 없었어요. 이 정원이 여기서 기다리구 있잖아요!”

메리는 자신도 마구 달린 것처럼 숨을 헐떡이며, 양손을 가슴에 댔다.

“오, 디콘! 디콘!” 메리가 말했다. “지금 너무 행복해서 숨도 못 쉬겠어!”

디콘이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꼬리가 복슬복슬한 작은 동물이 나무 아래에서 일어서 다가왔다. 한편 까마귀는 까악 하고 울고는, 나뭇가지에서 날아 내려와 디콘의 어깨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얘는 작은 새끼 여우여요.” 디콘이 그 자그마한 동물의 빨간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름은 ‘대장’이구요. 여기 요 녀석은 ‘검댕이’여요. 저하구 함께 검댕이는 황무지 위를 날아다니구 대장은 사냥개 무리에 쫓기는 것마냥 달려요. 둘 다 저하구 똑같이 느껴요.”

까마귀도 새끼 여우도, 조금도 메리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디콘이 주위를 거닐기 시작하는데도, 검댕이는 어깨에 가만히 앉아 있고 대장은 바로 옆에서 살금살금 따라다녔다.

“여기 좀 보셔요!” 디콘이 말했다. “이 싹들이 땅 밖으루 얼마나 솟았는지 한번 보셔요. 여기두, 여기두! 세상에! 여기 이것들 보셔요!”

디콘이 몸을 던지듯 무릎을 꿇자, 메리도 그 옆에 무릎을 꿇었다. 두 아이는 보라색과 주황색, 황금색 꽃이 활짝 핀 크로커스 무리와 마주쳤다. 메리가 고개를 숙여서 그 꽃들에 연거푸 입을 맞췄다.

“사람이라면 절대 이렇게 입을 맞추지 않을 거야.” 메리가 머리를 들며 말했다. “꽃들은 정말 달라.” 디콘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활짝 웃었다.

“어이쿠!” 디콘이 말했다. “하루 종일 황무지를 쏘다니다 집으로 돌아갔는데 문가에서 햇살 받으며 서 계신 어머니가 너무나 행복하구 편안해 보여서, 어머니한테 그런 식으루 수두 없이 입을 맞췄구먼요.”

두 아이는 정원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뛰어다니며 어찌나 경이로운 모습을 많이 목격했는지, 그곳에서는 속삭이거나 작은 소리로 말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신히 떠올리곤 했다. 디콘은 메리에게 죽은 것처럼 보이던 장미 가지에서 점점 자라는 잎눈들을 보여주었다. 흙을 뚫고 새로 나온, 셀 수 없이 많은 싹도 보여주었다. 두 아이는 신이 나서, 어린 코를 흙에 가까이 대고 봄철의 땅이 내쉬는 따스한 숨결을 킁킁 들이마셨다. 흙을 파고, 잡초를 뽑으며, 기쁨에 겨워 소리 죽여 신나게 웃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메리 아가씨의 머리는 디콘처럼 헝클어지고 두 볼도 빨간 양귀비 색이 되었다.

그날 아침, 비밀 정원의 땅에서는 사방에 기쁨이 넘쳤다. 그리고 그 기쁨의 한가운데로, 그 무엇보다 크나큰 기쁨이 찾아왔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 기쁨에는 한층 더 큰 경이로움까지 더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가 쏜살같이 담장을 넘어와, 모퉁이에 바짝 붙어 자라는 나뭇가지들 사이로 쏙 날아 들어갔다. 붉은 가슴이 불길 같은 작은 새 한 마리였는데, 부리에 뭔가를 물고 있었다. 디콘은 그대로 서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둘이 예배당 안에서 깔깔거리고 웃고 있었다는 사실을 별안간 알아차린 사람처럼 메리를 붙잡았다.

“꼼짝두 마셔요.” 디콘이 심한 요크셔 말투로 말했다. “우린 숨두 쉬면 안 되겠구먼요. 지난번에 그 울새를 봤을 때 짝 찾는 중이라구 알겠더만요. 저 새는 벤 웨더스태프 영감님 울새여요. 녀석은 지금 둥지를 만들구 있어요. 우리가 겁을 주지만 않으면, 계속 여기 있을 거여요.”
두 아이는 풀밭에 살며시 주저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주 가까운 데서 울샐 지켜본다구 티 내면 안된다구요.” 디콘이 주의를 줬다. “지금 우리가 곁에서 보구 있다는 걸 눈치채면, 울샌 우리를 영원히 떠날 테니깐. 짝짓기가 끝날 때까지 울샌 다른 새라두 된 양 굴 거여요. 울새는 지금 가족을 만드는 중이라, 한동안 낯두 가리구 툭허면 화두 낼 거여요. 지금은 우릴 찾아와서 수다 떨 틈이 없어요. 그러니깐 우린 풀이나 나무나 덤불처럼 보이게 가만 있어야 허죠. 울새가 우릴 익숙하게 느낄 즈음에 지저귀는 흉내를 살짝 낼라구요. 그러면 울새두 우리가 방해 안 할 거라구 안심헐 거여요.”

메리 아가씨는 디콘의 말대로 풀이나 나무나 덤불처럼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디콘은 그 괴상한 일이 세상에서 가장 쉽고 자연스러운 일인 듯 말하지 않는가. 그러니 메리는 디콘에게는 그 일이 무척 쉬울 거라고 짐작했다. 메리는 디콘이 어떻게 소리 없이 녹색으로 변신해 몸에서 가지와 잎사귀들이 돋아나는지 궁금해하며, 몇 분 동안 유심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디콘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마침내 디콘이 입을 열었을 때는 어찌나 소곤거리는지, 메리는 알아들을 수나 있을까 싶었지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것두 봄에 일어나는 일이어요. 둥지 짓는 거요.” 디콘이 말했다. “장담허는데, 세상이 시작된 후로 해마다 똑같은 식으로 해왔을 거구먼요. 새들한테는 새들 나름대로 생각하구 행동하는 방식이 있어요. 그러니깐 사람은 방핼 허지 않는 편이 좋아요. 너무 궁금해허면, 다른 계절보다두 봄에는 더 쉽게 친구가 떨어져 나간다니깐요”
“울새 주위를 걷다 보면, 자꾸 울새를 쳐다보게 돼.” 메리가 최대한 나직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해. 네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우리가 다른 이야기를 하면 울새두 좋아허겠지요.” 디콘이 말했다. “할 이야기가 있다니 뭐여요?”

“음, 혹시 콜린에 대해서 아니?” 메리가 소곤거렸다.

디콘이 고개를 돌려 메리를 바라보았다.

“아가씨는 도련님에 대해서 뭘 아셔요?” 디콘이 물었다.
“실은 콜린과 만났어. 지난주에 매일 콜린과 이야기를 하고 놀았어. 콜린은 내가 와주기를 바라. 나랑 있으면, 자신이 아프고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대.” 메리가 대답했다.

동그란 얼굴에서 놀란 기색이 사라지자, 디콘은 정말 마음이 푹 놓인 것 같았다.

“그래 되었다니 기뻐요.” 디콘이 소리쳤다. “정말 기뻐요. 맘이 한결 가볍구요. 도련님에 대해서 입을 꾹 다물구 있어야 하는 건 알지만 뭔갈 숨기는 게 정말 싫었으니깐요.”

“이 정원에 대해 숨기는 것도 싫어?” 메리가 물었다.

“정원에 대해선 절대루 말허지 않을 거여요.” 디콘이 대답했다. “허지만 어머니에게는 이래 말씀을 드렸어요. ‘어머니.’ 제가 말했죠. ‘저한테 비밀이 하나 있어요. 절대 나쁜 일이 아니여요. 그건 아시죠. 새 둥지가 어딨는지 비밀루 하는 정도의 비밀이여요. 그러니까 어머니한테 비밀루 하여도 되죠, 그렇죠?’”

메리는 디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어?” 메리는 대답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물었다.

디콘이 다정하게 웃었다.

“역시나 어머니였어요. 그 대답 말이여요.” 디콘이 대답했다. “어머니는 제 머릴 쓰다듬구,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이구야, 얘. 그런 비밀이라면 얼마든지 가지구 있어두 된다니깐. 내가 널 12년이나 알았잖냐.”

“너는 콜린을 어떻게 알아?” 메리가 물었다.

“크레이븐 씰 아는 사람들 중에 그분한테 등이 굽게 될 어린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어요. 사람들이 그 아이에 대해 수군대는 걸 크레이븐 씨가 안 좋아한다는 거도 다 알구요. 마을 사람들은 크레이븐 씨를 안됐다구 생각해요. 크레이븐 부인은 몹시 젊구 아름다우셨구, 두 분이 진짜루 사랑하였으니깐요. 메들록 부인은 스웨이트에 갈 적마다 우리 집엘 들르는데, 우리가 있거나 말거나 어머니한테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으셔요. 우리가 믿음직한 아이들루 자랐다는 걸 아시니깐요. 아가씨는 도련님을 어떻게 아셨어요? 마사 누나가 지난번에 집에 와서 꽤 난처해했어요. 도련님이 짜증 내는 소릴 아가씨가 듣구 물어봤는데, 뭐라구 대답을 해야 헐지 난감했다더라구요.”

메리는 한밤에 잠을 깨게 만든 휘몰아치던 바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는 울부짖는 목소리에 이끌려, 양초를 들고 컴컴한 복도를 돌고 돌아 흐릿하게 불을 밝힌 방 한구석에 조각 기둥이 네 개 달린 침대가 있는 방의 문을 열게 된 이야기를 다 들려주었다. 메리가 상아처럼 하얀 얼굴과 기이할 정도로 새까만 속눈썹이 난 눈에 대해 들려주자, 디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련님 눈은 크레이븐 부인 눈을 쏙 빼닮았지만, 부인 눈은 언제나 웃구 계셨다더라구요. 그래서 크레이븐 씨는 차마 깨어 있는 아들을 보실 수 없는 거라구 말들 하죠. 도련님 눈이 부인하구 생긴 건 똑같지만, 도련님이 너무 비참한 표정을 하구 있어서 완전히 다른 눈처럼 보여 그런대요.”

“너는 콜린이 죽고 싶어한다고 생각해?” 메리가 속삭였다.

“아니지요. 허지만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거라구 생각허시지 않겠어요. 어머니는 아이에게는 그런 생각이 젤 끔찍허다구 하셔요. 아무두 원하지 않는 아이들은 좀처럼 건강허게 자라질 않어요. 크레이븐 씨는 그 불쌍한 도련님을 위해 돈으로 되는 거면 뭐든 사주시지만, 정작 도련님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잊구 싶어하시니깐요. 무엇보다두 나중에 등이 굽어버린 아들을 보게 될까 봐 두려워하시는 거여요.”

“콜린도 그걸 너무 두려워해서, 앉으려고 하지 않아.” 메리가 말했다. “콜린은, 혹이 자라는 게 느껴지면 자신은 미쳐서 죽을 때까지 비명을 지를 거라는 생각을 늘 한다고 했어.”

“에구! 거기 누워서 그런 생각이나 하구 있음 안 되는데.” 디콘이 말했다. “그런 생각만 허구 있다가는 누구라두 몸이 나빠질 거여요.”

새끼 여우가 디콘 옆 풀밭에 눕더니, 토닥여달라는 듯 가끔 고개를 들어 디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디콘이 몸을 굽혀 여우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잠시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마침내 디콘이 고개를 들고 정원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여기 첨 들어왔을 때.” 디콘이 입을 열었다. “보이는 거는 온통 회색이었어요. 지금 주위를 둘러보셔요. 달라진 모습이 보이지 않으셔요?”

메리가 주위를 둘러보다 숨을 헉 들이쉬었다.

“세상에!” 메리가 소리쳤다. “저기 회색 담장이 변하고 있어. 녹색 안개가 그 위로 기어가는 것 같아. 투명한 녹색 베일 같아.”

“맞어요.” 디콘이 말했다. “그리구 앞으루 녹색이 더 진해지면, 회색은 완전 사라질 거여요. 제가 지금 무슨 생각했는지 아시겠어요?”

“아주 좋은 것이라는 건 알아.” 메리가 열렬하게 말했다. “콜린에 관한 걸 거야.” “도련님이 이곳엘 나오게 되면, 등에 혹이 자라나 안 자라나 신경 안 쓸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대신 장미 덤불에 싹이 트는 모습을 지켜보실 거구, 더 건강해지시겠죠.” 디콘이 설명했다. “도련님이 휠체어를 타구 여기 나와서 나무 아래 누워보구 마음을 돌릴 방법이 없을까요?”

“나도 그 생각을 해봤어. 콜린에게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 생각을 했어.” 메리가 말했다. “콜린이 비밀을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게다가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고 콜린을 이곳으로 데려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내 생각에는, 네가 휠체어를 밀 수 있을 것 같아. 의사 선생님이 콜린은 신선한 공기를 많이 마셔야 한다고 하셨어. 콜린이 우리에게 밖으로 데리고 나가달라고 하면, 아무도 콜린을 말리지 않을 거야. 그 애는 다른 사람들 시선 때문에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거야. 하지만 하인들은 콜린이 우리와 함께 나가겠다고 하면 좋아할 거야. 콜린이 근처에 있지 말라고 지시를 해두면, 정원사들에게 이곳을 들키지도 않을 테고.”

디콘은 대장의 등을 긁어주며 열심히 생각했다. 

“장담허는데, 여기 나오면 도련님 몸에 좋을 거여요.” 디콘이 말했다. “우리는 도련님이 태어나지 않은 편이 낫다구 생각허면 안 돼요. 우리는 이 정원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본 두 아이일 뿐이에요. 도련님은 이곳을 지켜볼 또 다른 아이구요. 남자아이 둘하구 여자아이 하나가 봄날의 정원을 지켜보게 될 거라구요. 그게 의사 선생님 약보다두 훨씬 더 좋으리라구 장담해요.”

“콜린은 그 방에서 너무 오래 누워 있었고, 늘 등에 대해서 걱정을 했어. 그 때문에 괴상한 아이가 되고 말았어.” 메리가 말했다. “책에서 본 이야기들은 잔뜩 알고 있지만, 다른 건 아무것도 몰라. 콜린은 너무 아파서, 꽃과 나무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대. 그리고 집 밖으로 나오기를 싫어하고 정원과 정원사들도 싫어해. 하지만 이 정원 이야기는 듣고 싶어해. 왜냐하면 이 정원은 비밀이거든. 콜린에게 이야기를 많이 해줄 수가 없었지만, 콜린은 이 정원을 보고 싶다고 했어.”

“우리, 언젠가 도련님을 꼭 여기로 데리구 나와요.” 디콘이 말했다. “난 도련님 휠체어를 잘 밀 수 있어요. 우리가 여기 앉아 있는 동안, 그 울새가 제 짝하구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보셨어요? 저 나뭇가지에 앉아 가지구 부리에 물구 있는 잔가지를 어디 두면 젤 좋을지 고민하는 모습을 한번 보셔요.”

디콘이 나지막한 휘파람을 불어 새를 부르자, 울새가 고개를 돌려 디콘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잔가지는 여전히 부리에 물고 있었다. 디콘은 벤 웨더스태프 영감이 하듯이 새에게 말을 걸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친구처럼 다정하게 조언을 하는 말투였다.

“그걸 어디 둬두.” 디콘이 말했다. “괜찮어. 너는 알에 있을 때부터 둥지 트는 법을 알았잖어. 어서 서둘러, 친구야. 더 허비헐 시간이 없어.”

“오, 네가 울새에게 이야기하는 걸 들으니 정말 좋아!” 메리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깔깔 웃으며 말했다. “벤 웨더스태프 영감님은 울새를 야단치고 놀리기도 해. 그러면 울새는 주위를 폴짝폴짝 뛰면서 말을 다 알아듣는 것처럼 바라봐. 그러고 보면 울새는 그런 걸 좋아해. 벤 웨더스태프 영감님은 울새가 어찌나 으스대는지, 관심을 받지 못하면 제 몸에 돌이라도 던질 거래.”

디콘도 웃음을 터트리며 계속 말했다.

“우리가 널 귀찮게 안 한다는 거 너두 잘 알지.” 디콘이 울새에게 말했다. “우리두 자연에 사는 동물하구 비슷해. 우리두 둥지를 만들구 있거든. 우리 둥지를 절대 남한테 말하면 안 돼.”

울새는 부리에 뭘 물고 있어서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메리는 울새가 잔가지를 물고 제 둥지가 있는 한구석으로 날아갈 때 보여준 이슬처럼 초롱초롱한 새까만 두 눈의 눈빛이, 아이들의 비밀을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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