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ㅡ "드디어 왔어!"

단밤이 | 2024.01.17 00:17:12 댓글: 0 조회: 187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0901
The Secret Garden

(비밀의 화원)


“드디어 왔어!”

당연하게도, 콜린의 짜증이 폭발한 다음 날 아침 크레이븐 선생이 왕진을 왔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저택에서는 선생을 불렀다. 도착해보면, 뚱해서는 어찌나 히스테리를 부리는지 말 한마디에도 울음을 와락 터트리기 일쑤인 남자애가 얼굴이 허옇게 질려서는 벌벌 떨며 침대에 누워 있곤 했다. 사실 의사 선생은 이렇게 까다로운 왕진이 지겹고 지긋지긋했다. 이번에는 아예 오후가 되어서야 미슬스웨이트에 왔다.
“아이는 좀 어떻습니까?” 의사 선생은 저택에 도착하자 메들록 부인에게 좀 짜증스럽게 물었다. “그렇게 자꾸 발작을 일으키면, 언젠가는 혈관이 터질 겁니다. 그 아이는 히스테리를 부리고 막무가내로 굴다가 반쯤 미친 것 같아요.”
“음, 선생님.” 메들록 부인이 대답했다. “도련님을 직접 보시면 믿기지 않으실 거예요. 도련님만큼이나 고약했던, 그 못생기고 표정이 심술궂은 아이가 도련님의 혼을 쏙 빼놓았어요.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그 여자애가 어디 볼품이 있기를 하나, 말을 많이 하기를 하나. 그런데 우리 중 아무도 못한 일을 그 애가 했지 뭐예요. 지난밤에 새끼 고양이처럼 도련님에게 달려들더니, 발을 쾅쾅 구르면서 도련님에게 그만 울라고 소리를 꽥꽥 지르지 않겠어요. 그 애가 어찌나 도련님을 놀라게 했는지, 도련님이 그만 울음을 뚝 그치셨어요. 게다가 오늘 오후에는 ……, 아니에요. 직접 가서 보셔야 해요. 도저히 못 믿으실 거예요.”
크레이븐 선생이 방으로 들어갔을 때 맞닥뜨린 장면은 실로 놀라웠다. 메들록 부인이 문을 열자 까르르 웃으며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콜린이 가운을 입고 소파에 있었는데, 등을 꽤 곧게 펴고 앉아 정원 가꾸기 책 한 권을 보며 못생긴 여자아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실 그 순간만큼은 기쁨으로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어서 못생겨 보이지 않았다.
“기다랗고 가는 줄기에 꽃이 달린 것 말이야. 우리는 이 꽃도 잔뜩 심을 거야.” 콜린이 선언하듯 말했다. “이 꽃은 델피니움이라고 해.”
“디콘은 이건 커다랗고 멋지게 자라는 참제비고깔이라고 했어.” 메리 아가씨가 소리쳤다. “거기 가면 이미 무리지어서 잔뜩 자라고 있어.”
바로 그때 두 아이는 크레이븐 선생을 보고 말을 딱 멈췄다. 메리는 그대로 굳어버렸고, 콜린은 짜증스러운 것 같았다.
“지난밤에 네가 아팠다는 말을 들어서 마음이 편치 않구나, 얘야.” 크레이븐 선생이 약간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선생은 꽤나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다.
“지금은 좋아졌어요. 훨씬 좋아요.” 콜린이 라자처럼 대답했다. “날씨만 좋으면, 하루나 이틀 후에 휠체어에 앉아 밖으로 나갈 거예요.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요.”
크레이븐 씨는 콜린 옆에 앉아서 맥을 짚더니, 신기한 듯 아이를 바라보았다.
“날이 아주 청명해야 해.” 선생이 말했다. “그리고 절대 몸에 무리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게 몸에 무리일 리 없어요.” 어린 라자가 대답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 어린 신사가 분노로 고함을 지르면서 신선한 공기를 맡으면 감기에 걸려 죽을 거라고 악을 쓴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콜린이 방금 한 말에 의사 선생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선한 공기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의사 선생이 말했다.
“혼자라면 저도 싫어요.” 라자가 대답했다. “하지만 내 사촌이 함께 나갈 거예요.”
“물론, 간호사도 나가야겠지?” 크레이븐 선생이 제안했다.
“아뇨, 간호사와 가지 않을 거예요.” 그 말투가 어찌나 위풍당당하던지 메리는 인도의 어린 왕자가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와 진주로 온몸을 치장하고 앉아, 커다란 루비 반지를 낀 까무잡잡한 작은 손을 흔들어 하인들에게 살람을 하고 명령을 받으라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사촌은 나를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 다 알아요. 사촌이 옆에 있으면 항상 몸 상태가 더 좋아요. 지난밤에도 이 애가 제 기분을 더 좋게 해줬어요. 내가 아는 몹시 건강한 남자애가 내 휠체어를 밀 거예요.”
크레이븐 선생은 불현듯 불안해졌다. 걸핏하면 히스테리를 부리는 이 지긋지긋한 아이의 건강이 좋아지기라도 하면, 크레이븐 선생이 미슬스웨이트의 재산을 상속받을 가능성이 몽땅 사라진다. 하지만 선생은 나약한 의사이기는 해도 부도덕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콜린이 실제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그 아이는 튼튼하고 힘이 세야 한단다.” 의사 선생이 말했다. “그 아이에 대해서 나도 알고 있어야겠구나. 그 애가 누구니? 이름이 뭐지?”
“디콘이에요.” 메리가 불쑥 끼어들어 대답했다. 황무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디콘도 알 거라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짐작은 옳았다. 메리는 순간 어두웠던 크레이븐 선생의 얼굴에 안도하는 미소가 편안히 번지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오, 디콘.” 크레이븐 선생이 말했다. “디콘이라면 안전할 거야. 그 아이는 황무지 조랑말만큼 튼튼하니까, 디콘 말이야.”
“그리구 믿음직허지요.” 메리가 말했다. “디콘은 요크셔에서 젤루 믿음직헌 남자애여요.” 메리는 콜린과 요크셔 말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계속 요크셔 말을 썼다.
“그 말투도 디콘이 가르쳐줬니?” 크레이븐 선생이 껄껄 웃으며 물었다.
“프랑스 말 배우는 거처럼 배우구 있어요.” 메리가 조금 쌀쌀맞게 대답했다. “인도에서 쓰는 원주민 말 같애요. 아주 영리한 사람들은 그 말들을 배우려구 하니깐요. 난 요크셔 말투가 맘에 들구 콜린두 그래요.”
“그래, 그래.” 의사 선생이 말했다. “요크셔 말투를 재미있어한다고 무슨 해를 입겠니. 지난밤에 진정제를 먹었니, 콜린?”

“아뇨.” 콜린이 대답했다. “처음에는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고, 나중엔 메리가 나를 진정시키고 재워줬어요. 메리가 정원으로 살며시 찾아온 봄에 대한 이야기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줬거든요.”
“그렇다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의사 선생은 아까보다 더 놀라며, 늘 앉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양탄자를 내려다보고 있는 메리 아가씨를 곁눈으로 힐끔 보고 말했다. “네 상태를 보니 확실히 좋아졌구나. 하지만 기억해야 …….”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또다시 나타난 콜린 안의 라자가 말을 잘랐다. “혼자 누워서 곧 몸 여기저기가 아프기 시작할 거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거요. 너무 싫어서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것들을 자꾸 곱씹어야 한다는 것도요. 아프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는 대신, 그걸 잊게 만드는 의사 선생님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면, 그분을 이곳에 데려오고 싶어요.” 그러더니 콜린은 정말로 왕가의 문장을 새긴 루비 반지들을 주렁주렁 끼고 있을 것만 같은 가냘픈 손을 내저었다. “사촌 덕분에 제 상태가 나아진 건, 제가 아프다는 사실을 잊게 해줬기 때문이에요.”
‘짜증 부리기’가 끝난 다음 크레이븐 선생이 이번만큼 짧게 머무른 것은 처음이었다. 평소라면 당연히 오랫동안 저택에 머무르며 온갖 처치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날 오후에는 아무 약도 주지 않았고, 새로운 지시 사항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혹시 모를 불쾌한 상황들과도 맞닥뜨리지 않았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내내 선생은 생각에 골몰한 모습이었다. 잠시 후 도서실에서 메들록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부인이 보기에 의사 선생은 몹시 당황하고 놀란 듯했다.
“음, 선생님.” 부인이 슬쩍 말해보았다. “이제 제 말을 믿으시겠죠?”
“확실히,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군요.” 의사 선생이 말했다. “이전보다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어요.”
“수전 소워비가 말한 대로예요. 저는 확신한답니다.” 메들록 부인이 말했다. “어제 스웨이트에 가는 길에 수전네 집에 들러서 잠시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때 수전이 이러더라고요. ‘음, 사라 앤, 메리 아가씨가 착하지는 않을지 몰라. 예쁜 아이가 아닐 수두 있구. 허지만 아직 아이야. 아이들한테는 아이들이 필요해.’ 우리는 학교를 같이 다닌 사이랍니다, 수전 소워비와 저말이에요.”
“그 부인은 제가 아는 가장 최고의 간병인이죠.” 크레이븐 선생님이 말했다. “어느 집에 갔는데 그 부인이 와 있으면, 저는 제 환자를 살릴 수 있겠다고 확신을 한답니다.”
메들록 부인이 미소를 지었다. 부인은 수전 소워비를 정말 좋아했다.
“수전에게는 수전만의 방식이 있어요, 아무렴요.” 메들록 부인이 꽤 솜씨 좋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제 수전이 한 이야기를 오전 내내 생각해보았답니다. 수전이 이런 이야기를 해줬거든요. ‘예전에 우리 아이들이 한바탕 싸우구 난 담에 내가 이렇게 일장 연설을 해준 적이 있다니깐. 아이들한테 말했지. 이 엄마가 학교를 다닐 때, 지리 선생님이 이 세상이 오렌지처럼 생겼다구 말씀해주지 않으셨겠냐. 이 엄마는 열 살두 되기 전에, 오렌지 전체를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구 깨달았어. 자신한테 주어진 몫 이상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두 없어. 근데 가끔은 나눠 가질 오렌지 조각들이 충분하지 않다구 보일 때두 있어. 허지만 너희들은, 너희들 누구두 오렌지 하나가 온전히 자기 거라구 생각하면 안 돼. 그렇게 생각하는 건 실수야. 그리구 호되게 당하구 나서야 실수를 깨닫게 될 거야.’ 수전은 또 이렇게 말했어요. ‘아이들이 아이들한테 배우는 교훈은 이거야. 오렌지 한 갤 껍질까지 다 움켜쥐구 있어봐야 의미가 없단 거야. 그렇게 허면 씨조차 얻을 수 없어. 어차피 씨는 너무 써서 먹지두 못 허겠지.’”
“그 부인은 슬기로운 사람이군요.” 크레이븐 선생님이 코트를 입으며 말했다.
“음, 수전에게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어요.” 기분이 한결 유쾌해진 메들록 부인이 이렇게 말을 끝냈다. “가끔 제가 수전에게 이렇게 말해요. ‘에휴! 수전, 네가 다른 사람이구, 요크셔 말투가 그렇게 심하지 않다면, 내가 널 똑똑한 사람이라구 말하였을 상황이 몇 번이나 있었을 거야.’”
그날 밤, 콜린은 한 번도 잠에서 깨지 않고 푹 잤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편히 누운 채로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신기하게도 몸이 너무나 편했기 때문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 것이다. 게다가 눈을 떠 아침을 맞이하니, 참으로 행복했다. 그래서 콜린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팔과 다리를 느긋하게 펴 기지개를 켰다. 온몸을 꽉 붙잡고 있던 단단한 끈들이 스르르 풀어져서, 몸을 놓아준 것만 같았다. 크레이븐 선생이라면 신경의 긴장이 느긋하게 풀어져 편히 쉬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테지만, 콜린은 그런 건 잘 몰랐다. 누워서 벽만 보며 이대로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대신, 콜린의 마음속은 어제 메리와 함께 세운 계획들과 정원 그림들, 디콘과 동물 친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생각할 거리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었다. 콜린이 깨어나고 10분 정도 지났을까. 복도를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메리가 문가에 나타났다. 다음 순간 메리는 방으로 들어와 아침 향기가 가득한 신선한 공기를 몰고 침대로 달려왔다.
“너 나갔다 왔구나! 나갔다 왔어! 향긋한 나뭇잎 냄새가 나!” 콜린이 소리쳤다.
메리는 풀어 내린 머리를 휘날리며 방 안을 마구 뛰어다녔다. 콜린은 미처 알아보지 못했지만, 메리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볼이 분홍빛으로 물들어 화사했다.
“정말 아름다워!” 어찌나 빨리 뛰어다녔는지, 숨을 헐떡이며 메리가 말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은 한 번도 못 봤을 거야! 드디어 왔어! 다른 날 아침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막 왔더라고. 지금 여기 와 있어! 왔다고, 봄이! 디콘이 그렇게 말했어!”
“봄이 왔다고?” 콜린이 소리쳤다. 콜린은 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심장이 마구 고동치는 것 같았다. 콜린은 어느새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있었다.
“창문을 열어!” 콜린이 환희에 찬 흥분과 상상해온 광경에 대한 기대감으로,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어쩌면 황금 트럼펫 소리가 들릴지 몰라!”
콜린이 그렇게 웃는 동안 메리는 잽싸게 창으로 다가가, 더 잽싸게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신선한 공기와 온갖 냄새와 새들의 노랫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이게 신선한 공기야.” 메리가 말했다. “드러누워서 길게 숨을 들이마셔 봐. 디콘은 황무지에 누워서 그렇게 해. 디콘이 그러는데, 신선한 공기가 핏줄을 타고 온몸을 흘러서 몸이 건강해지는 것 같대. 그래서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살 수 있을 것 같다나. 숨을 쉬어봐. 또 쉬어.”
메리는 디콘의 말을 반복했을 뿐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콜린의 환상에 불을 당겼다. 

“죽지 않고 오래오래라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디콘은 그렇게 느껴진대?” 콜린이 말했다. 그리고 메리가 하라는 대로 숨을 몇 번이고 길게 들이마시자, 어느새 새롭고 즐거운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메리가 다시 콜린 옆으로 왔다.
“별별 것들이 땅에서 셀 수 없이 솟아나고 있어.” 메리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활짝 피어난 꽃들하고 봉오리 맺힌 꽃들이 사방에 생겼어. 회색이었던 곳이 거의 녹색 베일에 덮였고, 새들은 짝짓기에 너무 늦지나 않을지 걱정스러워하며 둥지 주위를 다급하게 날아다녀. 어떤 새들은 비밀 정원에서 좋은 자리를 두고 싸우기까지 해. 장미 덤불들은 그렇게 쑥쑥 잘 자랄 수가 없어. 산책로와 숲에는 앵초꽃이 만발했고, 우리가 뿌린 씨들도 잘 자라고 있어. 디콘이 여우와 까마귀와 다람쥐들에다가 갓 태어난 양도 데리고 왔어.”
거기까지 말한 메리는 숨을 쉬려고 말을 멈췄다. 디콘은 사흘 전 황무지를 다니다가 가시금작화 덤불 사이에 죽어 있는 어미 옆에서 새끼 양을 발견했다. 어미를 잃은 새끼 양을 처음 본 것도 아니기에, 디콘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았다. 디콘은 새끼 양을 재킷에 폭 싸서 집으로 데려갔다. 불가에 양을 누이고 따뜻한 우유를 먹였다. 새끼 양은 사랑스러운, 얼빠진 얼굴에, 몸에 비해 조금 긴 다리를 가진 귀여운 녀석이었다. 디콘은 주머니에 다람쥐 한 마리와 우유병을 넣고 양을 품에 안은 채 황무지를 지나왔다. 메리는 나무 아래에 앉아 따뜻한 네 다리를 옹송그린 새끼 양을 무릎에 올리니 기묘한 기쁨이 가슴 가득 벅차올라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양이라니! 아기처럼 무릎에 누운 살아 있는 양이라니!
메리는 크나큰 기쁨에 벅차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콜린에게 들려주고, 콜린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데, 간호사가 들어왔다. 간호사는 활짝 연 창문을 보고 살짝 놀랐다. 콜린이 창문을 열어두면 사람들이 감기에 걸린다고 굳게 믿는 바람에 수많은 따뜻한 날에도 숨 막힐 듯한 방을 지키곤 했기 때문이다.
“쌀쌀하지 않으세요, 콜린 도련님?” 간호사가 물었다.
“응.” 이렇게 대답했다. “신선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는 중이야. 그러면 몸이 튼튼해지거든. 일어나서 아침을 먹으러 소파로 갈 거야. 내 사촌이 나와 함께 아침을 먹을 거야.”

간호사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두 아이의 아침을 준비하라는 말을 전하려고 방에서 나갔다. 간호사에게는 환자의 방보다 하인들의 구역이 훨씬 더 즐거웠다. 지금은 모두가 위층에서 간호사가 가져올 새로운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인기 없는 어린 은둔자에 대해 농담을 즐겨 했다. 가령 요리사는 “임자를 만났으니 도련님에게도 잘된 일”이라고 했다. 하인들은 지금까지 콜린이 성질을 부릴 때마다 마음고생이 심했다. 가족이 있는 집사는 “호되게 때려주는 편”이 환자에게는 더 나을 거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콜린은 메리의 아침까지 탁자에 차려지고 자신도 소파에 앉자, 간호사에게 그 어느 때보다 라자 같은 태도로 말했다.
“남자아이 한 명과 여우 한 마리, 까마귀 한 마리, 다람쥐 두 마리, 갓 태어난 새끼 양 한 마리가 오늘 아침 나를 보러 올 거야. 도착하자마자 위층으로 데려오도록.” 콜린이 말했다. “그 동물들을 하인 출입구로 들여보내 거기서 놀게 하면서 잡아두지 마. 난 여기서 그 동물들을 보고 싶으니까.”
간호사는 놀라서 숨이 턱 막혔지만, 헛기침으로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했다.
“네, 도련님.” 간호사가 대답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줄게.” 콜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마사에게 동물들을 이곳으로 데려오라고 해. 남자아이는 마사의 동생이야. 이름은 디콘이고, 동물을 다루지.”
“동물들이 물지 않으면 좋겠네요, 콜린 도련님.” 간호사가 말했다.
“그 애는 동물을 부리는 사람이라고 했잖아.” 콜린이 근엄하게 말했다. “그런 사람의 동물은 절대 물지 않아.”
“인도에는 뱀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메리가 말했다. “그 사람들은 뱀 머리를 자기 입에 집어넣을 수 있어요.”
“맙소사!” 간호사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이들은 열린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공기를 맞으며 식사를 했다. 콜린은 음식을 매우 맛있게 먹었고, 메리는 진지한 표정으로 관심 있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너도 나처럼 곧 포동포동 살이 찌기 시작할 거야.” 메리가 말했다. “인도에서 살 때는 아침을 먹고 싶은 적이 한 번도 없었어. 그런데 이제는 매일 먹고 싶어.”
“오늘 아침에는 나도 배가 고팠어.” 콜린이 말했다. “아마 신선한 공기 덕분인가 봐. 디콘이 언제쯤 올 것 같아?”
디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10분쯤 후 메리가 한 손을 들었다.
“들어봐!” 메리가 말했다. “까악 소리 들었어?”
콜린이 귀를 기울이자, 집 안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치고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소리가 들렸다. 목이 쉰 듯한 “까악까악” 소리였다.
“들려.” 콜린이 대답했다.
“저건 검댕이야.” 메리가 말했다. “다시 들어봐. 매애 소리가 들리지 않아? 작은 소리지만?”
“오, 맞아!” 콜린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대답했다.
“저건 새끼 양이야.” 메리가 말했다. “디콘이 지금 오고 있어.”
디콘이 황무지에서 신는 장화는 두껍고 투박했다. 그래서 길게 이어진 복도를 아무리 조용하게 걸으려고 해도 쿵쿵 소리가 났다. 메리와 콜린에게 디콘이 행진하듯 쿵쿵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마침내 디콘이 양탄자 벽걸이 문을 지나 콜린의 방이 있는 통로의 폭신폭신한 양탄자 위를 걸어왔다.
“도련님.” 마사가 문을 열며 소개했다. “도련님, 괜찮으시다면 여기 디콘하구 디콘의 동물 친구들이 왔습니다.”
디콘이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한 미소를 활짝 지으며 들어왔다. 새끼 양이 품에 안겨 있고, 자그마한 붉은 여우가 그 옆에서 경쾌하게 따라왔다. 밤은 디콘의 왼쪽 어깨에, 검댕이는 오른쪽 어깨에 앉았고, 껍질의 머리와 앞발 두 개가 코트 주머니에서 빼꼼 나와 있었다.
콜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아, 디콘과 동물들을 보고 또 봤다. 메리를 처음 봤을 때처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번은 경이로움과 기쁨이 깃든 눈빛이었다. 솔직히 콜린은 지금까지 디콘에 대해 귀가 따갑게 들었지만 정작 어떤 모습일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여우와 까마귀와 다람쥐들과 새끼 양이 어찌나 디콘에게 바짝 붙어 있고 친근한지 그 동물들이 디콘의 일부나 다름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동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콜린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남자아이와 이야기를 해보지 않은 데다 솟구치는 기쁨과 호기심에 압도되어 말을 할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하지만 디콘은 전혀 부끄럽거나 어색해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디콘은 당황하지도 않았다. 디콘이 검댕이를 처음 만났을 때도 까마귀는 사람의 언어를 몰라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 말을 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상대에 대해서 잘 알 때까지는 늘 그렇다. 디콘이 소파로 다가와 양을 살며시 콜린의 무릎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양은 포근한 벨벳 가운으로 몸을 돌려 가운의 주름들 사이로 파고들며 털이 곱실거리는 머리로 다급하게 콜린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아이라도 입을 열 수밖에 없으리라.
“이게 뭐야?” 콜린이 말했다. “뭘 하고 싶은 거야?”
“제 엄마를 찾는 거여요.” 디콘이 점점 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새끼 양이 우유를 먹는 모습을 도련님이 보구 싶어하실 것 같어서, 배가 좀 고픈 채루다가 데려왔어요.”
디콘은 소파 옆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주머니에서 우유병을 꺼냈다.
“이리 와라, 애기야.” 디콘은 다정한 갈색 손으로 털이 북슬북슬하고 하얗고 작은 머리를 돌리며 말했다. “여기 너가 찾는 게 있어. 너가 원하는 거는 그 실크 벨벳 옷이 아니라 여기에 있어. 자.” 그리고 우유병의 고무 꼭지를 자꾸 비비대는 입에 밀어 넣었다. 새끼 양은 맹렬하게 우유병을 빨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었다. 새끼 양이 잠에 곯아떨어질 즈음 질문이 마구 쏟아졌다. 물론 디콘은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해주었다. 디콘은 사흘 전 아침 해가 솟을 무렵에 양을 발견한 이야기를 두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디콘은 황무지에 서서 종달새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디콘은 종달새가 맴을 돌며 점점 하늘 높이 날아가더니, 저 푸른 하늘에 작은 점이 될 때까지 지켜보았다.
“노랫소리가 아니면, 그 새가 어디루 가버렸는가 못 찾을 뻔했어요. 저 새가 순식간에 세상 밖으루 날아가 버린 거 같은데 어째 소리가 들릴까 신기해하구 있었죠. 바로 그때였어요. 저 멀리 가시금작화 덤불 사이에서 뭔 소리가 난 것 같더라구요. 매애매애 하는데, 금방이라두 끊어질라구 했죠. 듣자마자 새끼 양이 배고파서 우는 소리란 걸 알겠더라구요. 어미를 잃은 게 아니면, 새끼가 배가 고플 리 없단 것두 알구 있었어요. 그래서 당장 양을 찾아 나섰어요. 에휴! 한참을 찾아다녔지 뭐여요. 가시금작화 덤불 안으루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빙빙 돌아다녔어요. 자꾸만 엉뚱한 방향으루 가는 거 같더라구요. 그러다가 마침내 황무지 꼭대기 바위 옆에서 하얀 덩어리 같은 걸 보았어요. 얼른 올라가 보니깐 춥구 목말러서 반쯤 죽은 이 양이 있었어요.”
디콘이 이야기보따리를 털어놓는 동안, 검댕이는 열린 창문으로 점잖게 날아갔다가 다시 들어오며 바깥 풍경에 대해 까악까악 이야기를 했다. 한편 밤과 껍질은 창밖의 커다란 나무들로 가서 줄기를 오르내리고 가지들을 탐험했다. 대장은 디콘 옆에 몸을 말고 누웠고, 디콘은 편하다며 벽난로 앞 깔개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정원 가꾸기 책들에 실린 그림들을 함께 보았다. 디콘은 책에 나오는 꽃들을 그 지역에서 뭐라고 부르는지 알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어떤 꽃들이 비밀 정원에 있는지도 다 알았다.
“그런 이름은 몰렀어요.” 디콘은 아래에 ‘아퀼레지아’라고 적혀 있는 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린 매발톱꽃이라구 불러요. 그리구 저기 있는 꽃은 금어초라구 허는데, 두 꽃 모두 야생으루다가 산울타리에서 자라죠. 허지만 이 꽃들은 정원에서 키운 거라 더 크구 더 예쁘네요. 우리 화원에두 매발톱꽃이 크게 무릴 지어서 몇 군데 자라요. 꽃이 피면 파랑 하양 나비들이 팔랑거리는 화단처럼 보인다구요.”
“그 꽃들을 보러 갈 거야.” 콜린이 외쳤다. “나는 꼭 그 꽃들을 보러 갈 거야!”
“그렇구먼, 꼭 그렇게 하여야 해.” 메리가 몹시 진지하게 말했다. “꽃을 볼라면, 낭비헐 시간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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