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ㅡ "나는 죽지 않고 영원히 오래오래 살 거야!"

단밤이 | 2024.01.17 00:18:19 댓글: 0 조회: 180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0902
The Secret Garden

(비밀의 화원)

“나는 죽지 않고 영원히 오래오래 살 거야!”

하지만 세 아이는 일주일이 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바람이 몹시 거센 날이 며칠이나 이어졌고, 다음엔 콜린이 감기에 걸릴 조짐이 보였다. 이어서 찾아온 이 두 가지는 예전이라면 분명 콜린이 불같이 화를 낼 만한 일이었지만, 이제 아이들은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은밀하게 매우 꼼꼼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거의 매일, 디콘이 단 몇 분이라도 콜린을 찾아와, 황무지와 산책로와 산울타리와 시냇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야기해주었다. 디콘은 새들 둥지와 들쥐와 들쥐 굴은 말할 것도 없고, 수달과 오소리와 물쥐의 집에 대해 들려주었다. 동물의 사랑을 받는 디콘이 소소한 부분까지 자세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분주한 땅속에서 동물들이 얼마나 정성을 들여 일을 하는지 깨닫게 해주었고 흥분으로 온몸을 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동물들두 우리하구 똑같아요.” 디콘이 말했다. “동물들은 집을 해마다 지어야 한단 점만 다르죠. 그래서 바쁘다 보니깐 늘 종종걸음으루 돌아다녀요.”
하지만 세 아이가 가장 빠져든 부분은 콜린을 몰래 비밀 정원으로 데려갈 계획을 짜는 시간이었다. 관목 담장 모퉁이를 돌아서 담쟁이덩굴이 무성한 담장 바깥 산책로로 접어들고 나서는 두 아이와 휠체어의 모습이 절대 남의 눈에 띄지 않아야 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그 정원을 둘러싼 미스터리야말로 그곳의 가장 큰 매력이라는 콜린의 느낌은 강한 확신으로 변해갔다. 그 무엇도 이 매력을 절대 망칠 수 없었다. 그 누구도 세 아이에게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의심조차 하면 안 되었다. 사람들은 콜린이 메리와 디콘을 좋아하고 이 아이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기에, 함께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야 했다. 아이들은 비밀 정원까지 어떤 길로 갈지, 오랫동안 무척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이 길을 따라서 갔다가 저 길을 따라서 갔다가 다른 길을 가로지른 후, 분수 화단들 사이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수석 정원사 로치 씨가 잘 배치해놓은 ‘옮겨 심은 묘목들’을 구경하는 체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돌아다니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아무도 그 산책에 비밀이 숨어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을 터였다. 아이들이 관목 담장을 따라 난 산책로로 접어들면, 긴 담장까지는 모습이 보일 리 없었다. 그 계획은 위대한 장군들이 전쟁 중에 짠 진군 계획만큼 진지하게, 공을 들여 생각해낸 묘안이었다.
콜린의 거처에서 새롭고 신기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은 하인들의 공간에서 마구간, 정원사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이렇게 소문이 분분해도, 로치 씨는 어느 날 할 이야기가 있으니 콜린 도련님의 방으로 오라는 전갈을 받자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콜린의 거처에 아무도 들어간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런.” 로치 씨는 서둘러 겉옷을 갈아입으며 혼잣말을 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지? 다른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던 대단하신 분이 눈길도 준 적 없는 나를 부르다니.”
로치 씨도 궁금증이 솟아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정원사는 콜린의 모습을 얼핏이라도 본 적이 없었다. 대신 콜린의 묘한 외모와 태도며 미치광이 같은 성격에 대해서, 열 배는 과장된 이야기들만 들었을 뿐이다. 그중에서도 콜린이 조만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와 굽은 등과 쓸모없는 팔다리에 대해 온갖 상상과 억측을 더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 모두 콜린을 한 번도 못 본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이었다.
“이 저택에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로치 씨.” 메들록 부인이 로치 씨를 안내하며 저택 안쪽 계단을 올라 수수께끼에 싸인 거처가 있는 복도로 가는 길에 말했다.
“더 나은 쪽으로 변화하기를 기대해봅시다, 메들록 부인.” 로치 씨가 대답했다.
“더 나빠지려 해야 더 나빠질 수도 없었죠.” 부인이 말을 이었다. “정말 이상한 이야기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훨씬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혹시 로치 씨 근처에 야생동물들이 있다거나, 마사 소워비의 동생 디콘이 저나 로치 씨보다 더 제 집처럼 편하게 지낸다고 놀라지 마세요.”
메리가 늘 속으로 믿은 것처럼, 디콘 주변에서는 정말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로치 씨는 디콘의 이름을 듣자 인자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애는 버킹엄 궁전에 있건 탄광 바닥에 있건, 제 집처럼 편하게 지낼 거예요.” 정원사가 말했다. “게다가 그 아이는 염치없게 굴지도 않아요. 정말 좋은 아이죠, 그 아이는.”
이렇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몹시 놀랐을 테니 말이다. 콜린의 방문이 열리자, 조각해서 장식한 의자의 높은 등받이에 제 집마냥 편안하게 앉아 있는 커다란 까마귀가 큰 소리로 ‘까악까악’ 울어서 손님이 도착했다고 알렸다. 메들록 부인이 미리 경고했음에도, 로치 씨는 뒤로 나자빠져 망신을 당하는 일만은 간신히 피했다.
어린 라자는 침대에도, 늘 앉아 있던 소파에도 보이지 않았다. 콜린은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고, 새끼 양 한 마리가, 먹이를 먹는 양이 으레 그러듯이 꼬리를 흔들며 그 옆에 서 있었다. 한편, 디콘은 무릎을 꿇고서 우유병으로 양에게 우유를 먹였다. 다람쥐 한 마리가 앞으로 굽힌 디콘의 등 위에서 조심스럽게 밤을 갉아먹었다. 인도에서 온 여자아이는 커다란 발 받침대에 앉아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로치 씨가 오셨습니다, 콜린 도련님.” 메들록 부인이 말했다.
어린 라자가 고개를 돌리고 자기 신하를 살펴보았다. 적어도 수석 정원사는 그때 자신이 신하가 된 느낌이었다.
“오, 당신이 로치군요, 그렇죠?” 콜린이 말했다. “매우 중요한 지시 몇 가지를 내리려고 이렇게 불렀어요.”
“알겠습니다, 도련님.” 로치는 얼른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영내의 떡갈나무를 전부 베어버리라거나 과실수들을 수생 식물원으로 옮기라는 지시를 받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오늘 오후에 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갈 예정이에요.” 콜린이 말했다. “신선한 공기가 내게 잘 맞으면 매일 나가려고 해요. 내가 나가면, 정원 담장을 따라 난 ‘긴 산책로’ 근처에 정원사들이 얼씬도 하지 말아야 해요. 아무도 거기 있으면 안 돼요. 두 시쯤에 나갈 테니까, 작업 장소로 다시 돌아와도 좋다는 전갈을 보낼 때까지 모두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해요.”
“잘 알겠습니다, 도련님.” 로치 씨는 떡갈나무도 목숨을 부지하고 과실수들도 안전하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으며 대답했다.
“메리.” 콜린이 메리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야기가 끝나서 사람들을 보내고 싶을 때, 인도에서는 뭐라고 말한다고 했지?”

“이렇게 말하면 돼. ‘그만 물러가도록 하시오.’” 메리가 대답했다.
라자가 손을 흔들었다.
“그만 물러가도록 하시오, 로치.” 콜린이 말했다. “그리고 내 지시를 명심해요.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까악까악.” 까마귀가 쉰 목소리지만 예의 바르게 한소리했다.
“잘 알겠습니다, 도련님. 감사합니다.” 로치 씨가 말했다. 그러자 메들록 부인이 정원사를 데리고 방에서 나갔다.
성품이 매우 좋은 로치 씨는 복도로 나오자 환하게 미소를 짓더니, 어느새 껄껄 웃었다.
“맙소사!” 로치 씨가 말했다. “도련님이 국왕 폐하라도 되는 것처럼 구네요, 그렇지 않나요? 저 도련님은 왕실 가족을 몽땅 합쳐서 한 사람으로 만든 것 같네요. 여왕의 부군이며 전부 다 말이에요.”
“그건 말이죠!” 메들록 부인이 반박하듯 말했다. “도련님이 걸음마 뗄 무렵부터 우리 모두를 마구 대하도록 내버려 둬서 그래요. 덕분에 도련님이 태어날 때부터 아랫사람들은 그런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저 태도도 고쳐지겠죠, 살 수 있다면요.” 로치 씨가 말했다.
“음, 한 가지만은 확실해요.” 메들록 부인이 말했다. “도련님이 돌아가시지 않고 인도에서 온 아가씨가 계속 이 저택에서 산다면, 그 아가씨가 똑 부러지게 가르쳐줄 거예요. 수전 소워비의 말마따나 오렌지 하나가 몽땅 도련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러면 도련님도 자기 몫이 어느 정도인지 깨닫게 되겠죠.”
한편 방에서는 콜린이 쿠션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이제 전부 안전해. 그리고 난 오늘 오후면 그곳을 볼 거야. 오늘 오후엔 그 정원에 들어갈 거라고!”
디콘은 동물들을 데리고 비밀 정원으로 돌아갔고, 메리는 콜린과 함께 남았다. 메리가 보기에 콜린은 피곤한 것 같지 않았는데 도 점심 식사가 오기 전까지 몹시 조용했다. 심지어 점심을 먹는 동안에도 통 말이 없었다. 메리는 그 이유가 궁금해 물어보았다.
“눈이 엄청 커졌어, 콜린.” 메리가 말했다. “너는 생각에 잠기면 눈이 접시만큼 커져.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게 어떤 모습일지 자꾸 생각하게 돼.” 콜린이 대답했다.
“그 정원?” 메리가 물었다.
“봄.” 콜린이 말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봄 풍경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잖아. 드물게 나가더라도,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어.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
“나도 인도에서 봄을 본 적이 없어. 그곳에는 아예 봄이 없거든.” 메리가 말했다.
태어난 후 줄곧 병색이 완연한 채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콜린은 메리보다 훨씬 상상력이 풍부했다. 적어도 콜린은 아름다운 책과 그림을 보면서 수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가.
“네가 뛰어 들어와서 ‘봄이 왔다고! 봄이 왔어!’ 하고 외친 아침, 네 모습을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그 소리는 마치 봄이 대단한 행진과 우렁차게 울리는 웅장한 음악과 함께 온다고 하는 것 같았어. 내 책 중에 그런 그림이 있어. 아름다운 사람들과 아이들이 활짝 핀 꽃으로 만든 화환과 나뭇가지들로 치장을 하고, 모두 모여서 춤을 추고 웃으며 피리를 불어. 그래서 내가 그런 말을 한 거야. ‘어쩌면 황금 트럼펫 소리가 들릴지 몰라’ 하고. 그리고 네게 창문을 열어달라고 한 거야.”
“이렇게 신기할 수가!” 메리가 말했다. “봄이 오는 건 정말 그런 느낌이거든. 모든 꽃과 이파리와 초록 식물들과 새들과 야생동물들이 동시에 춤을 추며 지나가면, 그 광경이 얼마나 대단할까. 나는 모두 춤을 추고 노래를 하고 피리를 불 거라고 확신해. 그러면 우렁찬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겠지.”
두 아이는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 생각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간호사가 콜린에게 외출 준비를 시켜주었다. 간호사는 옷을 입혀주는 동안 콜린이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누워만 있지 않고 일어나 앉아서 스스로 입으려고 애를 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게다가 준비를 하는 내내 메리와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을 터트리기까지 했다.
“오늘은 도련님에게 행복한 하루네요, 선생님.” 간호사가 의사 선생에게 말했다. 크레이븐 선생이 마침 콜린을 진찰하러 들른 것이다. “기분이 좋으니, 덕분에 몸이 더 좋아지고 있어요.”
“오늘 오후에, 콜린이 돌아온 후에 다시 들러야겠어요.” 의사 선생이 말했다. “외출이 콜린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봐야겠어요. 이왕이면.” 목소리를 낮춰서 덧붙였다. “당신과 함께 나가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같이 가자고 하면, 여기에 있느니 당장 관두겠습니다.” 간호사가 느닷없이 단호하게 말했다.
“꼭 그렇게 해달라는 말은 아니고.” 의사 선생이 살짝 당황한 듯 말했다. “시험 삼아 내보내 봅시다. 디콘이라면 난 신생아도 믿고 맡길 수 있으니까.”
저택에서 가장 힘이 센 남자 하인이 콜린을 아래층으로 옮겼고, 저택 밖에서 기다리는 디콘 옆에 둔 휠체어에 앉혔다. 하인이 휠체어에 무릎 담요와 쿠션을 놓아주자, 라자는 하인과 간호사에게 손을 내저었다.
“이제 그만 물러나도록 하시오.” 콜린이 말하자,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냉큼 사라졌다. 그들은 집으로 확실히 들어가자마자 깔깔거리고 실컷 웃을 것이다.
디콘이 휠체어를 천천히 안정감 있게 밀기 시작했다. 메리 아가씨는 그 옆에서 걸었고, 콜린은 뒤로 몸을 기대고 얼굴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둥근 천장 같은 하늘이 높이 솟아 있었다. 수정처럼 맑은 푸른 하늘 아래로, 눈같이 새하얀 구름이 날개를 활짝 펼치고 날아가는 하얀 새처럼 둥둥 떠다녔다. 황무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부드럽고 큰 숨결처럼 지나갔는데, 신기하게도 자연의 깨끗하고 달콤한 향기가 깃들어 있었다. 콜린은 그 공기를 잔뜩 들이마셔 연약한 가슴을 계속 부풀렸다. 아이의 커다란 두 눈은 사방 소리를 듣는 것처럼 보였다. 귀 대신 모두 들으려는 것 같았다.
“노래하고, 윙윙거리고,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너무 많이 들려.” 콜린이 말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진해지는 이 향기는 뭐야?”

“탁 트인 황무지에 핀 가시금작화여요.” 디콘이 대답했다. “이야! 오늘 벌들이 거기서 꿀을 잔뜩 따겠네.”
아이들이 가는 길에는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정원사나 정원사의 조수는 전부 마법처럼 그곳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즐거움을 만끽하려고 관목 숲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서 분수 화단을 따라 돌며, 꼼꼼하게 세운 계획대로 걸었다. 마침내 모퉁이를 돌아 담쟁이덩굴 담장을 따라 이어진 ‘긴 산책로’로 접어들자, 아이들은 곧 맞닥뜨릴, 전율하게 만들 흥분감에 휩싸인 채 자신들도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이유로 속삭이듯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바로 여기야.” 메리가 숨을 죽이며 말했다. “바로 이 길을 이쪽저쪽으로 오가면서 문이 어디에 있을지 궁금해하고 또 궁금해했어.”
“그래?” 콜린이 소리쳤다. 두 눈이 열렬한 호기심으로 반짝거리며 담쟁이덩굴을 뒤지듯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보여.” 콜린이 속삭였다. “문이 없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메리가 말했다.
그 순간 그곳에는 숨을 죽인 아름다운 침묵과 휠체어가 굴러가는 소리뿐이었다.
“저곳이 벤 웨더스태프 영감님이 일하는 정원이야.” 메리가 말했다.
“정말?” 콜린이 되물었다.
몇 미터를 더 가자 메리가 다시 속삭였다.
“이곳에서 울새가 담장 위로 포르르 날아갔어.” 메리가 말했다.
“그랬어?” 콜린이 소리쳤다. “오! 울새가 다시 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저곳.” 메리가 차분하게 기쁨을 드러내며, 커다란 라일락나무 아래를 가리켰다. “저곳에서 울새가 작은 흙더미에 내려앉더니, 열쇠가 있는 곳을 보여줬어.”
그러자 콜린이 똑바로 앉았다.

“어디? 어디? 어디?” 콜린이 소리쳤다. 콜린은 『빨간 모자』에서 빨간 모자가 늑대에게 왜 눈이 그렇게 크냐고 물었을 때의 늑대처럼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었다. 디콘이 발걸음을 멈춰 휠체어를 세웠다.
“그리고 여기.” 메리가 화단으로 올라서서 담쟁이덩굴로 다가가며 말했다. “울새가 담장 꼭대기에서 나를 향해 재잘거릴 때, 내가 울새에게 말을 걸려고 다가갔던 곳이 바로 여기야. 그리고 바람에 담쟁이덩굴이 휙 들린 곳이 바로 여기야.” 그러더니 메리가 담장에 걸린 녹색 커튼을 손에 쥐었다.
“오! 그래, 그래!” 콜린이 숨을 헉하고 들이쉬었다.
“그리고 여기에 손잡이가 있어. 여기에 문이 있고. 디콘, 콜린을 밀어 넣어. 얼른 밀어 넣어!”
그러자 디콘이 흔들림 없이, 든든하고 절묘하게 휠체어를 문 안으로 밀었다.
콜린은 기쁨으로 숨을 헐떡이면서도, 쿠션을 댄 등받이 쪽으로 몸을 기댔다. 그리고 양손으로 눈을 가린 채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모두 담장 안으로 들어오고, 마법처럼 휠체어가 멈춰 서고, 문이 꼭 닫히고 나서야, 콜린은 양손을 내리고 디콘과 메리가 한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둘러보고, 또 둘러보았다. 부드러운 작은 이파리들로 만들어진, 꽤 짙은 녹색 베일이 담장과 땅과 나무들과 그네처럼 늘어진 잔가지들과 덩굴손들 위를 기어가듯 뒤덮고 있었다. 나무 아래 풀밭과 벽감 안의 회색 화병들은 물론, 여기저기 사방에 황금색과 보라색, 흰색이 물보라 튀듯 흩뿌려져 있었다. 콜린의 머리 위 나무들은 분홍색과 흰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사방에서 날개가 퍼덕거리는 소리와 희미하고 달콤한 피리 소리들과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사방에 향기가 진동했다. 애정을 담아 얼굴을 어루만지는 손길처럼, 콜린의 얼굴로 떨어지는 햇살은 따사로웠다. 메리와 디콘은 경이로운 기분에 사로잡혀 콜린을 바라보았다. 콜린은 평소와 너무 다르고 낯설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온몸이 분홍색으로 물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평소 상앗빛이었던 얼굴과 목덜미, 양손까지 전부 다 말이다.
“나는 건강해질 거야! 건강해질 거라고!” 콜린이 소리쳤다. “메리! 디콘! 나는 건강해질 거야! 그리고 영원히 오래오래 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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