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ㅡ "실컷 웃게 내버려 두세요"

단밤이 | 2024.01.18 09:27:44 댓글: 0 조회: 196 추천: 0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41180
The Secret Garden

(비밀의 화원)



“실컷 웃게 내버려 두세요”

비밀 정원이 디콘이 가꾸는 유일한 정원은 아니었다. 황무지에 있는 디콘의 집 주위에는 울퉁불퉁한 돌들을 야트막하게 쌓은 담장으로 둘러싼 작은 텃밭이 있었다. 이른 아침과 땅거미가 지는 저녁 시간, 그리고 콜린과 메리가 디콘을 볼 수 없는 날이면, 하루 종일 어머니를 위해 그곳에서 감자와 양배추, 순무, 당근, 각종 허브를 심고 키웠다. 디콘은 자신의 ‘동물 친구들’을 동무 삼아 텃밭에서 놀라운 일들을 해냈는데, 아무리 일을 해도 지겹지 않은 모양이었다. 밭을 갈거나 잡초를 뽑을 때면, 디콘은 휘파람을 불거나 요크셔 황무지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검댕이나 대장이나 일손을 거들도록 가르친 형제자매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디콘의 텃밭이 없다면, 우린 절대루 지금처럼 편허게 살지 못했을 거야.” 소워비 부인이 말했다. “디콘은 못 키우는 게 없어. 쟤가 키운 감자하구 양배추는 다른 사람들이 키운 것보다두 두 배나 커. 그리구 어느 누가 키운 것보다두 더 맛나지.”
소워비 부인은 잠시 여유가 생기면 밖으로 나가 디콘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해가 천천히 져서, 저녁 먹은 후에도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가 소워비 부인에게는 한갓진 시간이었다. 부인은 야트막한, 거친 돌담에 앉아서 주위를 바라보며, 그날 하루 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들었다. 부인은 이 시간을 사랑했다. 이 텃밭에서는 채소만 키우지는 않았다. 디콘은 1페니짜리 꽃씨 묶음을 가끔씩 사서, 구즈베리 덤불과 심지어 양배추들 사이에도 향긋한 꽃이 피는 씨앗을 뿌렸다. 그리고 텃밭 둘레에는 목서초와 패랭이꽃과 팬지를 키웠고, 해마다 아껴둔 씨앗들이나 뿌리가 봄에 꽃을 피우고 퍼져나가 군락을 이루는 꽃들도 키웠다. 돌담에 틈만 보이면 디콘이 황무지의 여우장갑꽃을 심어서, 돌담의 돌은 얼핏얼핏 보일 정도였다. 덕분에 이 돌담은 요크셔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물이 되었다.
“어머니, 누구라두 식물을 무럭무럭 잘 자라게 할라면요.” 디콘은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확실히 키우는 식물하구 친구가 되면 된다니깐요. 식물은 ‘동물’하구 똑같애요. 목이 마르면 물을 주구, 배가 고파하면 양분을 주면 되구요. 식물두 우리 사람들하구 똑같이 살구 싶어해요. 그러니까 걔들이 죽으면 저는 제가 나쁜 사람이어서 무정하게 대했나 부다 하는 기분이 들거든요.”
소워비 부인이 미슬스웨이트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들은 때도 바로 이렇게 땅거미가 지는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콜린 도련님’이 메리 아가씨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으며, 그런 산책이 도련님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밖에 듣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아이는 디콘네 어머니에게는 ‘비밀을 알려줘도 좋다’고 동의했다. 어째서인지 아이들은 디콘네 어머니가 ‘확실히 안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전히 아름다운 어느 저녁에, 디콘은 모든 이야기를 다 털어놓았다. 땅에 묻혀 있던 열쇠와 울새, 모두 죽어버린 것 같은 잿빛 안개와 메리 아가씨가 절대 남에게 털어놓지 않기로 했던 비밀들을 긴장감 넘치는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들려주었다. 어느 날 디콘이 찾아간 일이며 비밀을 듣게 된 경위, 콜린 도련님을 믿지 못하다가 마침내 숨겨진 정원으로 도련님을 데리고 갔던 드라마 같던 일, 담장 위로 불쑥 올라온 벤 웨더스태프 영감의 성난 얼굴 사건과 콜린 도련님이 갑자기 분노를 터트린 덕분에 힘을 낸 이야기까지 더해지자, 소워비 부인의 선한 얼굴은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안색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아이구머니나!” 부인이 말했다. “그 어린 아가씨가 미슬스웨이트에 온 건 행운이었구만. 덕분에 아가씨두 잘되었구 도련님두 잘되었으니깐. 제 발루다가 서다니! 우린 도련님을 몸에 곧은 뼈라군 없는, 반쯤 미쳐버린 가련한 아이라구만 생각했지 뭐냐.”
소워비 부인은 수없이 질문을 했다. 그러는 동안 부인의 푸른 눈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저택에선 도련님 달라진 모습을 어떻게 생각허냐? 몸이 좋아지니깐 기분두 좋구 불평두 하지 않을 건데.” 어머니가 물었다.
“저택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갈필 못 잡구 있다니깐요.” 디콘이 대답했다. “매일 원기를 회복하면서 인상두 달라졌어요. 얼굴에 살이 포동포동 쪄서, 전처럼 날카로워 보이지두 않아요. 핏기 없이 허옇던 안색두 좋아졌구요. 하지만 도련님은 예전에처럼 계속 불평을 한다구요.” 아주 재미있다는 미소를 지으며 디콘은 말을 이었다.

“에그머니나, 대체 왜?” 소워비 부인이 물었다.
디콘이 빙그레 웃었다.
“뭔 일이 일어났는가 사람들이 추측 못 하게 할려구 부러 그러는 거여요. 도련님이 설 수 있다구 의사 선생님이 아시게 되면 곧장 크레이븐 씨한테 편지를 써서 알릴 테니깐요. 도련님은 이 비밀을 잘 감춰두구 제 입으루다가 말하구 싶어하셔요. 도련님은 매일 자기 다리에 마법을 걸 거여요. 언젠가 크레이븐 씨가 돌아오시면, 도련님이 방엘 걸어 들어가서 다른 남자아이들처럼 똑바루 선 모습을 보여줄라구요. 그러니까 도련님하구 메리 아가씨는 다른 사람들이 낌샐 못 채게 가끔씩 끙끙거리구 짜증을 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구 생각해요.”
소워비 부인은 디콘이 마지막 문장을 끝내기 훨씬 전부터 마음이 놓이며 웃음이 터져나와, 나직하게 웃었다.
“어이쿠!” 부인이 말했다. “장담허는데, 그 두 애는 그 일이 재미있어서 죽을 지경일 거구만. 그 두 애는 연극 놀일 원 없이 하겠어. 애들이 연극 놀이만큼 좋아하는 것두 또 없지. 그 애들이 뭘 하구 있는가 좀 더 들려줘, 디콘.”
디콘은 풀을 뽑는 손을 멈추고 쪼그리고 앉아,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디콘의 두 눈이 재미로 반짝거렸다.
“콜린 도련님은 밖으루 나갈 때마다 휠체어를 타요.” 디콘이 설명했다. “그리구 조심스럽게 옮기지 않는다구 시종인 존한테 역정을 내구요. 도련님은 최대한 힘이 하나두 없는 시늉을 해요. 집에서 우리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절대루 고갤 들지 않구요. 사람들이 휠체어에 앉혀줄 때마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구 짜증을 잔뜩 부려요. 도련님이 끙끙거리구 불평을 하면, 아가씨가 이렇게 말하죠. ‘불쌍한 콜린! 그렇게 아프니? 그렇게 몸이 약하니, 가여운 콜린?’ 이러면서 도련님하구 메리 아가씨는 재미있어서 죽으려구 해요. 문제는요, 가끔 두 사람이 터지는 웃음을 잘 못 참는다는 거여요. 우리가 정원까지 안전하게 들어가면, 두 사람은 폐에 숨이 하나두 없어서 웃음이 안 나올 때까지 깔깔거리구 웃어요. 혹시 정원사들이 근처에 있다가 그 소릴 들을까 봐 콜린 도련님 쿠션에 두 사람이 얼굴을 처박구 있어야 할 정도라니깐요.”
“그 애들이 웃으면 웃을수룩 몸은 더 좋아질 테지!” 소워비 부인이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1년 중 언제라두 건강하구 착한 애들의 웃음이 약보다두 더 효과가 좋은 법이니깐. 두 애는 분명히 살이 통통하게 찔 거야.”
“두 사람 다 요즘 통통해지구 있어요.” 디콘이 말했다. “두 사람이 배가 어찌나 고픈지, 음식을 더 달라구 말하지 않구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방법을 몰라 고민 중이여요. 도련님은 음식을 자꾸 더 가져오라구 그러면 아무도 도련님이 환자라구 안 생각할 거라구 해요. 메리 아가씨는 자기 몫을 도련님한테 양보하겠다구 했지만, 도련님은 아가씨가 배 고프면 살이 빠질 거라구 하셨어요. 두 사람이 똑같이 살이 올라야 한다구요.”
소워비 부인은 생각지도 못한 아이들의 고충에 배꼽이 빠져라 실컷 웃었다. 푸른색 망토를 걸친 몸이 앞으로 뒤로 마구 흔들릴 정도였다. 그 모습에 디콘도 함께 웃었다.
“얘야, 이렇게 허자.” 마침내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소워비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 애들을 도울 방법이 있구만. 아침에 그 애들을 만나러 갈 때, 신선하구 맛나는 우유 한 통을 가져가. 그리구 내가 껍질 바삭헌 코티지 로프(크기가 다른 둥근 빵 두 개를 포개놓은 모양의 빵-옮긴이)나 건포도 넣은 번을 만들어줄게. 너희가 좋아하는 대루다가. 신선한 우유하구 갓 구운 빵만큼 좋은 게 어딨겠냐. 그 정도면 애들이 정원에 있는 동안 허길 달랠 수 있을 거야. 집에 가가지구서는 식사로 나온 맛있는 음식을 다 먹으면 될 테구.”
“와! 어머니!” 디콘이 존경 어린 태도로 말했다. “어머닌 정말 대단한 분이여요! 항상 문제를 풀어낼 길을 아셔요. 어젠 두 사람이 꽤 소란을 피웠어요. 아무리 생각해두 음식을 더 가져오라구 하지 않구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깐요. 두 사람은 배 속이 텅 빈 것 같다구 그랬어요.”
“그 두 애는 지금 한창 자랄 나이니깐. 게다가 건강을 되찾는 중이기두 하구. 그런 시기에 애들은 늑대 새끼들하구 다르지 않어. 애들이 먹은 음식은 다 피가 되구 살이 될 거구만.” 소워비 부인이 말했다. 그러더니 반달이 된 입술로 디콘처럼 웃었다. “그래두 다행이야. 두 애가 신나게 잘 지내구 있으니깐.”
푸근하고 훌륭한 어머니 소워비 부인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특히 아이들의 ‘연극 놀이’가 두 아이의 기쁨이라는 생각은 그보다 더 정확할 수 없었다. 콜린과 메리는 그 연극 놀이야말로 가장 긴장감 넘치고 즐거운 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 아이들에게 의심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불어넣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하는 간호사와 크레이븐 선생이었다.
“요즘 식욕이 몹시 좋아지셨네요, 콜린 도련님.” 어느 날 간호사가 이렇게 말했다. “전에는 통 아무것도 안 드셨잖아요. 게다가 입에 안 맞는 음식들은 또 얼마나 많았어요.”
“지금은 그런 음식은 하나도 없어.” 콜린이 대답했다. 바로 그때 자신을 바라보는 호기심 어린 간호사의 표정을 보고, 콜린은 문득 아직은 너무 건강하게 보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입맛에 안 맞는 음식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말이야. 이게 다 신선한 공기 덕분이지.”
“아마 그럴 거예요.” 간호사는 이렇게 대꾸하면서도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어쨌든 크레이븐 선생님과 이 문제를 이야기해봐야겠어요.”
“간호사가 너를 보는 표정을 봤니!” 간호사가 방에서 나가자 메리가 말했다. “뭔가 알아내야 할 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간호사가 알아내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콜린이 말했다. “아직은 누구도 알게 할 수 없어.”
아침에 왕진을 온 크레이븐 선생도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선생은 콜린이 몹시 짜증을 낼 정도로 질문을 잔뜩 했다.
“요즘 정원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구나.” 선생이 말했다. “어디로 가니?”
콜린은 무관심한 태도로 당당하게 대답했다. 요즘 콜린은 이런 태도를 제일 좋아했다.
“제가 어디로 가는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을 거예요.” 콜린이 대답했다. “어디든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거예요. 제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모두에게 말해뒀어요. 저를 힐끔거리고 빤히 쳐다보게 하지 않을 거예요. 아시겠어요!”
“하루 종일 밖에 나가 있는 모양이더구나. 하지만 그런 것이 네게 해롭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말고. 간호사는 네가 전보다 식욕이 훨씬 더 왕성하다고 하더구나.”
“아마도요.” 콜린은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 이렇게 대답했다. “어쩌면 부자연스러운 식욕일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음식이 네게 잘 맞는 것 같으니까 말이다.” 크레이븐 선생이 말했다. “요즘 빠르게 살이 오르고 안색도 훨씬 좋아졌어.”
“어쩌면, 어쩌면 저는 지금 몸이 붓고 열이 나는 걸 거예요.” 콜린이 기운 빠지게 우울한 척하며 대답했다. “곧 죽을 사람들은 종종 평소와 다르게 굴잖아요.”
크레이븐 선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사 선생은 콜린의 손목을 잡고, 소매를 밀어올려 팔을 살펴보았다.
“너는 열이 나지 않아.” 의사 선생이 생각에 잠겨 말했다. “그리고 최근에 오른 살은 건강한 살이야. 계속 이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얘야, 우리가 죽는다는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겠어. 이렇게 눈에 띄게 몸이 호전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네 아버지도 기뻐할 거야.”
“아버지에게 말하면 안 돼요!” 콜린이 버럭 화를 냈다. “내가 다시 나빠지면, 아버지는 실망만 하실 거예요. 그리고 나는 당장 오늘 밤에라도 몸 상태가 나빠질 수 있어요. 열이 펄펄 끓을지도 몰라요. 슬슬 열이 나는 것 같아요. 아버지에게 편지를 못 쓰게 할 거예요. 못 하게 할 거예요. 못 쓰게 할 거라고요! 선생님 때문에 화가 났어요. 화가 나면 제 몸에 해로운 거 아시죠. 벌써 뜨거운 것 같아요. 사람들이 나를 빤히 보는 게 싫은 것만큼, 내 이야기를 편지에 적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하는 게 싫어요!”
“쉬쉬! 얘야.” 크레이븐 선생이 콜린을 진정시켰다. “네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쓰지 않으마. 너무 예민한 것 같구나. 지금까지 좋아진 걸 다 망쳐서는 안 돼.”
선생은 크레이븐 씨에게 편지를 쓰겠다는 말은 더는 하지 않았다. 의사 선생은 간호사를 보고는, 콜린 앞에서 편지를 쓸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입도 벙긋하지 말라고 몰래 말해두었다.
“아이의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졌어요.” 의사 선생이 말했다. “좋아지는 속도가 정상이 아니에요. 물론 예전 같으면 억지로 시킬 수도 없었던 일들을 저가 좋아서 하는 덕이기는 하죠. 여하튼 저 아이는 너무 쉽게 흥분하니까, 애가 짜증을 부릴 말은 절대 입에 담지 말아요.”
한편 메리와 콜린은 몹시 놀라서, 걱정스럽게 의논을 했다. 바로 이날 두 아이의 ‘연극 놀이’ 계획이 시작되었다.
“한바탕 짜증을 터트려야 할까 봐.” 콜린이 분하다는 듯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지는 않아. 요란하게 성질을 부려야 할 정도로 비참하지 않으니까. 어쩌면 그런 짜증을 아예 낼 수 없을지도 몰라. 이제 내 목을 콱 막히게 하는 덩어리도 생기지 않아. 끔찍한 생각 대신 좋은 생각만 하는걸. 하지만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한다면 뭐라도 해야 해.”
콜린은 좀 적게 먹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왕성한 식욕이 찾아오는 데다가 소파 옆에 놓인 탁자에 집에서 만든 빵과 신선한 버터, 눈처럼 새하얀 달걀들, 라즈베리 잼, 클로티드 크림을 아침으로 차려둔 것을 보면, 이 기발한 계획을 도저히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메리는 항상 콜린과 함께 아침을 먹었다. 두 아이는 아침 테이블에 앉을 때면, 애처로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곤 했다. 특히 뜨거운 은제 뚜껑 아래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얇게 저민 햄이 군침을 부르는 냄새를 풍기고 있을 때면 더욱 그랬다.
“메리, 오늘 아침에는 전부 다 먹어야겠어.” 콜린은 언제나 이런 이야기로 말을 끝맺었다. “그러면 점심은 조금 남기고, 저녁은 왕창 남길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두 아이는 남길 음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주방으로 보낸 접시들을 본 하인들은 또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어댔다.
“소원이 있어.” 콜린은 이런 말도 했다. “햄을 조금 더 두껍게 썰어주면 좋겠어. 게다가 한 사람당 머핀 하나로는 부족해.”
“곧 죽을 사람이라면, 그걸로 충분하겠지.”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메리는 이렇게 대꾸했다. “하지만 계속 살 사람에게는 충분하지 않아. 황무지에서 날아온 향긋하고 신선한 히스꽃 향기, 가시금작화 향기가 열린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면, 가끔은 그 머핀을 세 개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날 아침 두 시간 동안 비밀 정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디콘은 커다란 장미 덤불 뒤로 들어갔다가 양철통 두 개를 가지고 나오더니 뚜껑을 열어 보여주었다. 통 하나에는 크림이 떠 있는 진하고 신선한 우유가 가득 들었고 다른 통에는 집에서 만든 건포도 빵들이 깔끔한 푸른색과 흰색 냅킨에 잘 싸여 있었다. 어찌나 꼼꼼하게 잘 쌌는지, 빵이 아직도 뜨거워서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한 기쁨에 한껏 들떴다. 소워비 부인이 이런 일을 생각하시다니, 얼마나 근사한지! 소워비 부인은 정말 상냥하고 영리하신 분이리라! 빵이 어쩌면 이렇게 맛있는지! 신선한 우유는 또 얼마나 맛있는지!
“디콘에게 마법이 있듯이, 부인에게도 마법이 있어.” 콜린이 말했다. “마법은 부인이 이런저런 일들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게 이끌어줘. 좋은 일 말이야. 부인은 마법을 부리는 사람이야. 우리가 정말 고마워했다고 전해줘, 디콘. 지극히 감사드린다고.”
콜린은 어른스러운 표현을 곧잘 썼다. 이렇게 어른스럽게 말하는 게 좋았다. 이런 표현을 좋아하다 보니 어느새 이런 표현들을 잘 구사하게 되었다.
“어머님에게 가서, 부인은 누구보다 너그러우시고 우리의 고마움은 한량이 없다고 전해줘.”
그러더니 잔뜩 점잔을 뺀 것도 다 잊고 털썩 주저앉아, 빵을 우걱우걱 씹어 먹고 통에 있는 우유를 꿀꺽꿀꺽 마셨다. 색다른 운동을 하고 황무지에서 불어온 바람을 들이마시고도, 식사를 하려면 두 시간이나 더 남은 배고픈 어린아이라면 누구나 그러듯이 말이다.
이날부터 시작해 비슷한 종류의 유쾌한 사건들이 연거푸 일어났다. 그러다가 메리와 콜린은 소워비 부인이 열네 명이 먹을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매일 두 사람의 식욕을 더 만족시키기 쉽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소워비 부인에게 자신들의 용돈을 얼마간 보내 먹을 것을 사달라고 부탁했다.
한편 디콘은 모두의 사기를 올려줄 만한 발견을 했다. 야생동물들에게 피리를 불어주는 디콘을 메리가 처음 만났던, 정원 밖 숲에서 작고 깊은 구멍을 찾아낸 것이다. 그 구멍에 돌멩이들을 쌓아, 감자와 달걀을 구워 먹을 작은 화덕을 만들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달걀은 전에는 미처 몰랐던 사치스러운 간식이었고, 신선한 버터를 올리고 소금을 뿌린 뜨거운 감자는 숲속의 왕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더할 나위 없이 맛있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감자와 달걀은 직접 사면 되니, 열네 식구의 입으로 들어갈 음식을 빼앗아 먹는다는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이 이제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었다.
매일 그림처럼 아름다운 아침이면, 꽃이 만발하던 시기는 금방 끝나고 녹색 이파리들이 겹겹이 돋아 지붕이 되어주는 자두나무 아래서, 신비주의자들이 둥글게 앉아 마법을 일으켰다. 마법의식을 한 후 콜린은 항상 걷기 연습을 했고, 때때로 새로 발견한 힘을 하루 종일 연습했다. 콜린은 날마다 더 튼튼해졌고, 점점 더 안정적으로 걷고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날마다 마법에 대한 콜린의 믿음은 커져만 갔다. 당연했다. 콜린은 실험에 실험을 이어나가면서, 스스로 힘을 얻는다고 느꼈다. 그리고 콜린에게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을 알려준 사람은 디콘이었다.
“어제.” 비밀 정원에 하루 오지 않은 다음 날 아침, 디콘이 말했다. “어머니 심부름으루다가 스웨이트엘 갔다가, 푸른 소 여관집 근처에서 밥 하워스 아저씰 만났어요. 그 아저씨는 황무지에서 젤루 힘이 센 사내여요. 레슬링 챔피언이구, 누구보다두 더 높이 뛸 수 있구, 누구보다두 해머를 멀리 던질 수 있어요. 아저씬 몇 해 동안 운동을 배우려구 스코틀랜드에서 지낸 적두 있어요. 밥 아저씨는 날 어린 시절부터 잘 아셔요. 게다가 상냥한 분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아저씨한테 몇 가질 물어봤어요. 어떤 신사가 아저씰 운동 선수라구 부르는 걸 들으니깐 도련님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물어봤죠. ‘밥 아저씨, 아저씨는 어떻게 근육을 그래 울룩불룩 키우셨어요? 그렇게 힘이 세질라구 따루 운동을 더 하셔요?’ 그랬더니 아저씨가 이렇게 대답하더라구요. ‘음, 물론이지. 운동을 따루 한단다, 얘야. 예전에 스웨이트에 공연하러 온 힘 센 장사가 나한테 팔다리하구 몸 근육을 전부 단련하는 방법을 보여주었어.’ 그래서 제가 또 물어봤어요. ‘몸이 약한 애두 그 방법으루 단련하면 튼튼해질까요?’ 그랬더니 아저씨가 웃으면서 물어보더라구요. ‘그 몸이 약한 애가 바루 너냐?’ 그래서 제가 말했죠. ‘아뇨. 오랫동안 병을 앓구 건강을 되찾는 중인 어린 신사를 알아요. 그래서 그분한테 알려줄 만한 방법을 몇 개 알구 싶어요.’ 전 이름을 안 밝혔구 아저씨두 물어보지 않았어요. 아까두 말하였다시피 아저씨는 상냥하시거든요. 아저씨는 벌떡 일어나가지구 좋은 운동법을 보여주셨구, 전 그 동작을 외울 때까지 따라 했어요.”
콜린이 흥분해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
“보여줄 수 있어?” 콜린이 소리쳤다. “응?”
“그럼요, 당연허죠.” 디콘이 대답하며 일어섰다. “근데 아저씨 말씀이 처음엔 동작들을 살살해야 허구 피곤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구 하대요. 사이사이에 쉬어야 하구 심호흡을 하셔요. 그리구 너무 무리하게 하지 마셔요.”
“조심할게.” 콜린이 말했다. “보여줘! 보여달라고! 디콘, 너는 이 세상 최고의 마법 소년이야.”

디콘이 풀밭에 서더니, 간단하지만 효과는 아주 좋은 근육 운동 몇 가지를 천천히 해 보였다. 콜린은 눈을 크게 뜨고 그 동작들을 지켜보았다. 그중 몇 가지는 앉은 채로도 따라 할 수 있었다. 콜린은 어느새 단단하게 땅을 딛을 수 있게 된 다리로 우뚝 서서, 조심스럽게 동작 몇 가지를 해보았다. 메리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디콘의 체조를 지켜보던 검댕이는 영 신경이 쓰이는지, 앉아 있던 가지에서 내려와 유난스럽게 주위를 폴짝거리며 뛰어다녔다. 자신은 그 동작들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체조는 마법 의식처럼 하루의 필수 일과가 되었다. 콜린과 메리는 매번 더 많은 동작을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식욕이 더욱 왕성해졌다. 디콘이 매일 아침 정원에 와서 덤불 뒤에 놓아두는 음식 바구니가 없었다면, 두 아이는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구멍에 만든 작은 화덕과 소워비 부인의 넉넉한 마음씨 덕분에, 메들록 부인과 간호사와 크레이븐 선생은 또다시 의문에 빠지게 되었다. 구운 달걀과 구운 감자와 크림이 풍부한 신선한 우유와 귀리 비스킷과 동그랗게 구운 빵과 히스 꿀과 클로티드 크림으로 배가 터지게 먹는다면, 아침을 아쉬워하지 않고 저녁을 그냥 물려도 될 것이다.
“아이들이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아요.” 간호사가 말했다. “어떻게든 달래서 영양분을 섭취하게 만들지 않으면, 아이들은 굶어 죽을 거예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 좀 보세요.”
“그러게 말이에요!” 메들록 부인이 분개해 소리쳤다. “에휴! 나는 그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아요. 그 아이들은 어린 악마 한 쌍이에요. 어느 날은 재킷이 터질 정도로 먹더니, 다음 날은 요리사가 어떻게든 구슬려서 먹이려고 만든 최고의 음식을 보고 콧방귀를 뀌지 뭐예요. 어제는 브레드 소스를 곁들인, 그 맛있는 어린 새 요리를 한 입도 안 먹고 포크도 대지 않았어요. 그리고 불쌍한 요리사가 두 아이를 위해 ‘고안한’ 푸딩도 있었죠. 그것도 돌려보냈어요. 요리사는 울음을 터트리기 일보 직전이었어요. 요리사는 아이들이 굶어 죽으면 자신이 욕을 먹을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에요.”
크레이븐 선생이 와서 콜린의 몸 상태를 한참 동안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간호사가 선생에게 보여주려고 일부러 남겨놓은,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음식을 보여주며 사정을 이야기하자 의사 선생은 극도로 염려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그런데 콜린의 소파 옆에 앉아 아이를 살펴보는 동안 훨씬 더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의사 선생은 용무가 있어 런던에 다녀오느라, 2주 동안 콜린을 보지 못했다. 콜린과 메리는 일단 건강해지기 시작하자 그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창백한 안색은 어느새 사라지고, 따스한 장밋빛 혈색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콜린의 아름다운 두 눈은 맑게 빛났고, 눈 아래와 볼, 관자놀이의 푹 들어간 부분은 살이 포동포동 올라 있었다. 예전에는 칙칙하고 무겁게 이마를 가렸던 머리카락이 어느새 건강하게 자라는 듯했고, 생기로 부드럽고 따스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입술도 통통해졌고, 정상적인 혈색을 띠었다. 사실, 장애를 안고 살 것이라 했던 예전 그 아이와 똑 닮기는 했지만, 이젠 전혀 환자로 보이지 않았다. 크레이븐 선생은 손으로 턱을 감싼 채 콜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네가 음식을 전혀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걱정이구나.” 의사 선생이 말했다. “그러면 안 돼. 그동안 붙은 살이 다 빠져버릴 거야. 그동안 놀라울 정도로 살이 올랐잖니. 얼마 전만 해도 밥도 잘 먹었고.”
“그건 부자연스러운 식욕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콜린이 대답했다.
그때 메리가 근처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기묘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얼른 가리려고 너무 급하게 입을 막다가, 목이 막히는 것 같은 꺽꺽 소리를 냈다.
“왜 그러니?” 크레이븐 선생이 메리를 돌아보며 물었다.
메리가 쌀쌀맞고 깍듯한 태도로 대답했다.
“재채기와 기침의 중간 정도 되는 거예요.” 메리가 나무라는 투로 점잖게 대답했다. “그게 목에 걸렸어요.”
“하지만.” 나중에 메리가 콜린에게 말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 네가 아까 먹은 큼지막한 감자며, 네가 그 감자에 잼과 클로티드 크림을 바르고 먹음직스럽고 두툼한 껍질을 씹을 때 입이 어떻게 죽 벌어졌는지 갑자기 생각이 떠오르는 바람에, 툭 튀어나왔단 말이야.”
“아이들이 몰래 음식을 구할 방법이 있나요?” 크레이븐 선생이 메들록 부인에게 물었다.
“그 아이들이 땅에서 캐거나 나무에서 따지 않는 한, 절대 없어요.” 메들록 부인이 대답했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정원에 나가 놀고, 자기들 외에 다른 사람들은 만나지 않아요. 그 아이에게 보내준 음식 말고 다른 것이 먹고 싶다면, 달라고 하기만 하면 된다고요.”
“음.” 크레이븐 선생이 말했다. “음식을 먹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면, 우리가 나설 필요는 없죠. 콜린은 완전히 딴사람이 되었더군요.”
“그건 그 여자아이도 마찬가지랍니다.” 메들록 부인이 말했다. “살이 붙은 데다, 못생기고 뚱한 인상이 사라지니 예뻐지기 시작했어요. 머리카락이 풍성해지고, 건강해 보여요. 안색도 밝아졌고요. 전에는 그렇게 침울하고 버르장머리가 없더니, 요즘은 콜린 도련님과 함께 미치광이 한 쌍이라도 된 듯 늘 깔깔 웃어요. 어쩌면 웃는 덕분에 살이 찌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크레이븐 선생이 말했다. “실컷 웃게 내버려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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