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조각사 30

3학년2반 | 2022.01.24 07:58:35 댓글: 0 조회: 503 추천: 0
분류인터넷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344748

차례


1) 암벽 협곡의 대재앙

2) 불의 전사

3) 투브칼 봉우리

4) 도시의 석상

5) 흑기사의 길

6) 광장의 조각상

7) 끝없는 욕심의 헤르메스 길드

8) 바하모르그를 위한 노래

9) 안타로사의 몬스터

10) 바하모르그의 기억력


1) 암벽 협곡의 대재앙


위드도 짙은 고뇌에 휩싸였다.

'사실은 내가 감춰진 천재가 아니었을까.'

학교 성적은 사실상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불합리한 교욱의 희생자라고 생각했다.

"시험 성적에서도 국영수만 조금 부족했지, 나머지 성적은 괜찮았던 거 같아. 아, 그러고 보니 도덕 시험 점수가 좀... 많이 낮았지."

기억을 자세히 돌이켜 볼수록 선생님들에게 야단맞았던 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학교 체벌 폐지의 최대 수혜자!

아무튼 지금 슬레이언 부족을 유인하는 데에는 대성공이었다.

"놈들은 우리가 파 놓은 함정에 빠졌다. 끄윽끄윽!"

"죽이자. 잡아먹자!"

"쿠오오오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암벽 협곡의 좌우에서 거칠게 포효하는 몬스터들!

얕은 물이 흐르는 암벽 협곡 아래에서는 슬레이언 부족의 짙은 청색의 피부색과 들고 있는 창의 칼날, 활 들만이 보일 정도였다.

제아무리 대륙에서 많은 모험을 했다고 자부하는 모험가라도 이런 광경을 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도 완벽하게 고립되어서 맞아죽기 딱 좋은 아래쪽에서는!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페일이 들고 있는 화살이, 부담감으로 살짝 떨렸다.

"지금까지 익힌 궁술 스킬이 있으니 협곡의 위쪽을 겨냥해서 아무렇게나 쏘기만 하더라도 맞히기야 하겠지만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죠?"

뒷감당이 불가능!

슬레이언 전사들은 계속 함성을 질렀다. 전투에 앞서서 그들 스스로 사기를 높이려는 행동이었다.

몬스터도 대군이 되면 사기가 중요하게 작용하여 기본적인 능력치가 달라진다.

"인간들은 도망도 치지 못하고 우리의 식량이 되어 줄 것이다."

"키야아아!"

전사들이 암벽 협곡의 유리한 지형을 장악한 채로 시끄럽게 고함을 지르며 위협했다.

이곳에 모인 슬레이언 전사들만 최소한 3,000이 넘어간다.

지형이 험해서 이동하기가 어려운 하르셀 산악 지역에서도 최악의 장소 중 한 곳에서 적들을 맞닥뜨리게 된 것.

누렁이는 구슬픈 눈으로 울었다.

"음머어어어어......"

탐스러운 꽃등심 부위가 드디어 구워지게 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킹 히드라는 9개의 머리를 사방으로 뻗치면서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는 않으리라 험악한 의지를 불태웠다.

블랙 이무기도 용맹스럽게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를 준비를 하였다.

비행 생명체인 만큼 공중에만 있었더라면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았을 텐데 굳이 지상으로 걸어가라고 명령한 위드에게 조금 원망스러운 기분도 들었다.

그럼에도 최후까지 같이 싸울 작정이었다.

지골라스에서 생명을 부여받은 47마리의 조각 생명체들 역시 의지를 다졌다.

"끝까지 1마리라도 더 죽인다."

"이곳에서 사라지더라도... 짧은 삶에 후회는 없다."

조각사들이 염원을 다해서 만든 생명체들인 만큼 불꽃처럼 격렬한 마지막을 불태우고 죽을 각오.

빙룡과 금인이, 와이번들은 으외로 태평하고 느긋한 편이었다.

"저 인간이 또 무슨 비열한 작전을 세웠을지 궁금하다."

"얍삽하기는 하다, 골골골!"

"우릴 여기서 죽일 리가 없다. 앞으로도 계속 부려 먹으려고 하던데."

위기도 하루 이틀이지, 위드와 같이 있다 보면 몬스터 대군을 만나는 정도는 따뜻한 밥 먹은 다음 물 마시는 일처럼 익숙하다.

오래 같이 지냈던 빙룡과 와이번들이 특히 위드를 잘 알았다.

그사이에 점차 함성이 잦아들면서 슬레이언 전사들은 전투를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의 선택은 활!

까마득히 높은 암벽 협곡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아래로 화살을 쏘려고 했다.

슬레이언 전사들은 강철 촉이 달려 있는 화살을 쏘기에 명중률이 좋고 공격력도 상당히 높았다.

화살이 일제히 발사된다면 지상에서는 영락없는 화살 비처럼 느끼리라.

생명력이 높은 킹 히드라나 불사조 외에는 큰 위험에 처하게 될 터!

비행 생명체들은 날아서 도주할 수도 있었지만, 위드와 다른 일행을 지키기 위하여 공중에서 싸우기로 했다.

조각 생명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직면할 수 있는 큰 위기였다.

아껴 왔던 부하들이 전멸하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다시 생명 부여를 하거나 아니면 새로 부하를 만들어야 된다.

하지만 위드는 여전히 입가에 썩은 미소를 드리우고 있었다.

"난 역시 천재야."

본인에게는 아주 좋은 일이 그리고 상대방에게는 매우 불행한 일이 벌어지게 되면 참지 못하고 나오는 흐뭇한 웃음!

"위드 님, 빨리 어떻게든 해 봐요."

이리엔의 재촉을 받고 나서야 위드는 품에서 조각품을 꺼냈다.

이곳 암벽 협곡의 조각품!

유린이 상세하게 그린 지형도를 보고 귀한 청옥으로 된 돌판에 깎은 조각품이었다.

고급 조각술 9레벨에, 귀한 재료를 쓰고 정성을 들여서 파낸 덕분인지 걸작이 나왔다.

"부수기에는 조금 아깝기는 하지만... 이렇게 쓰는 것도 확실하겠지."

부족의 대장로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일제사격을 준비시키고 이에 슬레이언 전사들이 활에 화살을 걸려 하는 순간이었다.

위드가 조각품을 꺼내자 일행의 시선이 모였다.

옆에 서 있던 수르카가 물었다.

"조각 파괴술을 쓰실 거예요?"

힘이나 민첩에 예술 스탯을 몰아넣는다면 환상적인 전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여신의 기사 갑옷까지 착용하고 있는 지금은 더욱 시원하게 날뚜리 수 있으리라.

빛의 날개를 펼치고 절벽을 날아오르면서 슬레이언 부족의 전사들과 싸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불리한 싸움을 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적들을 끌어들인 건 물론 아니었다.

"아니야. 지금 써야 될 스킬은...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이지!"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술 스탯 20이 영구적으로 사라집니다.

생명력과 마나가 20,000씩 소모됩니다.

모든 스탯이 사흘간 일시적으로 15% 감소합니다.

자연과의 친화력이 떨어집니다.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은 하루에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합니다.

위험한 재앙을 불러오게 되면, 그 피해에 따라서 명성이나 악명이 오

를 수 있습니다.

재앙을 겪는 와중에 죽을 수도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암벽 협곡에 몬스터를 끌어들여서 대재앙을 일으키다니.

이거야말로 완전히 날로 먹겠다는 속셈!

위드의 계획은 완벽한 편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대재앙이 시작될 때까지는 상황에 따라서 시간이 걸린다는 점!

재앙마다 발동되는 시간이 다르기에 이 부분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제대로 대재앙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수비를 위주로 버텨야 된다.

"커험, 오랜만에 무대가 마음에 드는군."

대규모 전투에 앞서서 위드는 목을 풀고 노래를 부르려고 하였다.

조각 생명체들까지 총집결해 있고 슬레이언 부족의 전사들이 무시무시했기에, 긴장감 넘치는 최고의 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음치, 박치의 라이브 무대!

그런데 화령이 먼저 새로 얻은 루비 귀걸이와 목걸이를 착용하고 나섰다.

"제가 시간을 벌어볼게요."

그녀는 화살이 쏘아지기 전에 앞으로 걸어 나가며 노래를 불렀다.

-눈을 뜨면 웃고 있을 것 같아.
가슴이 설레는데 이 기분을 들키진 않을까.
그 사람에게 안기고 싶어.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화령이 달콤하게 속삭이는 노래가 암벽 협곡으로 퍼져나갔다.

그녀는 댄서라서 발성 스킬의 레벨이 아주 높진 않았다.

중급 4레벨 정도!

자신의 직업이 아니라면 숙련도를 쌓기 어렵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투 중에도 몬스터와 가까이서 춤을 추며 싸우는 걸 워낙 좋아했다.

위험하더라도 신나게 몸을 움직이면서 화려한 춤을 추는 대담한 성격.

발성 스킬이 높아지면 멀리까지 퍼지는 풍부한 성량에 맑고 청아한 음색이나, 어려운 고음까지도 낼 수 있었다.

"케엑."

"저 여자가 노래를 한다."

"상관하지 말고 쏴라. 잡아먹자!"

시골 장터에서 노래를 부를 때만큼이나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연주를 해줄 악기들도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화령 그녀가 최고의 악기였다.

비싼 마이크가 없더라도, 감정을 표현해 내는 노래를 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감추고 싶은데 알고 있는 것 같아
우리가 같이 이렇게
아침에도 빗속을 달려서 안기고 싶어

그녀는 원래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노래를 했다.

발성 스킬은 암벽 협곡의 위에서도 들을 수 있게 소리를 키우는 데만 사용했다.

정확한 음정과, 흡입력.

가까운 곳에서 속삭이는 듯한 달콤함이 슬레이언의 전사들이 화살을 쏘는 것을 잠시 망설이게 했다.

게다가 암벽 협곡의 지형상 음향이 반사되어 울리면서 자연스럽게 부여되는 에코까지!

"저 여자 노래 잘 부른다."

"죽이기에는 아깝다."

"잡아서 노예로 만들면 안 될까?"

슬레이언 부족의 전사들은 감미로운 노래를 듣고 있었다.

-소녀가 되고 싶어서
이렇게 부끄러움만 타는데
그런데 당신은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죠.

달콤하던 노래 가사가 느닷없이 막장으로 치달았다.

화령도 위드의 막무가내에 엉뚱한 노래를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

그렇지만 가사만 제외한다면 멜로디와 소리는 일품이었다.

기교보다는 몸 전체를 울리면서 저음과 고음을 넘나들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맑은 목소리.

순전히 그녀 스스로의 능력으로 부르는 노래였다.

벨로트가 어느새 하프를 꺼내서 연주를 해줬다.

-당신의 딸은 정말 예뻐요.
그 아이에게 초콜릿을 사주었어요.
아이야. 이빨이 몽땅 썩어서 치과에나 가렴!

무대 위의 요정이란 별명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흡입력에서는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였다.

발랄하고 상큼한 매력도 있짐나, 그녀는 안 보이는 곳에서 외로움도 많이 탔다.

노래를 부르거나 자기만의 예술을 한다는 건 감정을 예민하게 느끼게 되는 것.

격정적이거나, 애절한 감정도 화령은 무대에서 소화를 하면서 거의 모든 장르를 넘나들면서 노래를 했다.

그녀만이 가진 노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무대를 즐길 줄 알았다.

댄서의 특성으로 인하여, 화령의 몸 주변에는 꽃가루에, 뿌연 연기, 조명까지 나타나고 있었다.

"꾸에엣!"

"명곡이다."

"정말 좋은 가사다."

슬레이언의 전사들은 창과 활을 흔들며 좋아했다.


★★★★★★★★★★★★★★★★★★★★★


"방송 시작됩니다. 4, 3, 2, 1."

KMC미디어의 스튜디오에서는 위드의 모험을 생방송하기로 예고를 해 놓았다.

장소는 알려 주지 않은 채 생방송으로 진행하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설혹 헤르메스 길드에서 방해를 하려고 해도 이미 늦어서 불가능하다.

"위드의 모험! 많은 분들이 기다려 온 시간입니다."

신혜민이 활짝 웃으면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베르사 대륙 이야기 특집 방송 2부!

다른 패널들과 같이 소소한 뉴스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가, 위드의 모험이 중요한 부분에 돌입하자 중계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럴 때에 시간을 끌면 시청자들의 원성이 쌓이기 마련.

오늘은 미리 시간을 정해 놓지 않고 위드의 생방송이 있을 거라고만 예고를 해 놓았는데도 평균 시청률이 다른 날보다 11% 가까이 오른 상태에서 고정되어 있었다.

위드가 바드레이에게 패배하고 나서 방송국 관계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큰일이군. 시청률을 높이는 데는 위드만 한 인물도 없었는데....."

"위드와 바드레이의 대결 구도가 있을 때에는 시청자들이 참 궁금해했잖아. 패하고 죽었으니 그에 대한 이야깃거리는 끝난 거지."

"아쉽게 되었군. 그보다 더한 흥행 카드는 웬만해서는 만들어지지 않을 건데."

방송국들은 그 이후 위드에 대해 소홀해지기도 했다. 뉴스에서도 자주 거론하지 않았고,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위드에 대한 이야기를 그다지 떠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과는 무관하게, 시청자들은 위드에 대해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 열광하고 있었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분위기!

그사이에도 위드는 아르펜 왕국의 국왕이 되고 조각품을 대성공으로 만들었다.

드래곤의 퀘스트도 하면서 차근차근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로열 로드의 상황이 악화될수록 사람들은 영웅을 바랄 수 밖에 없다. 그저 강한 것만이 아니라, 악의 무리를 물리치고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진정한 영웅을 기다리게 되었다.

"뉴스를 보면 만날 도시가 망하거나 마을이 파괴되었다는 소식밖에 없네."

"브랑드리 강가에서 사냥이나 낚시를 하던 유저들이 엠비뉴 순찰대를 만나서 몽땅 죽었대."

"사자성에서 추방자 명단을 발표했다더라고.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더 이상 사자성 길드의 사냥터와 도시를 이용하지 못한다더라."

"정말 나쁜 놈들이네."

위드가 크게 터트렸던 퀘스트의 대부분은 그 당시만 하더라도 상대하기도 버거운 악의 세력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었다.

그간 사람들로부터 무신이라고 불리며 인정을 받던 바드레이는, 최근에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부하들을 마구 다루는 모습으로 인해 진면목이 드러나고 말았다.

헤르메스 길드의 악행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혹독했다.

"그때 위드 님이 이겼어야 되는 거란 생각이 자꾸만 들어."

"이제 한 번 싸운 건데 뭘. 그리고 공정한 싸움도 아니었잖아."

"헤르메스 놈들, 진짜 싹 밟아 버렸으면 좋겠다."

대중은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확실한 건, 위드의 팬은 더욱 늘어났으며, 그에 비해 바드레이는 더욱 유명해졌지만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면 시청자 여러분이 기대하고 계시는 화면으로 바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KMC미디어에서는 영상이 넘어오는 대로 화면에 띄웠다.

이번에는 KMC미디어만의 독점 중계가 아니었다. 다른 방송국에서도 시청자들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동시 생중계를 개시했다.

바드레이의 직업 마스터 퀘스트가 진행될 때에도 이런 식이었지만, 현재 방송국들에 기록되고 있는 시청률은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


★★★★★★★★★★★★★★★★★★★★★


화령의 노래는 깊은 감동을 주었다.

좋은 음악은 가슴을 뛰게 하고 행복하게 해 주는 힘이 있다.

소리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깨닫게 해 주는 것이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슬레이언 부족의 전사 3,022인이 노래를 듣고 크게 환호합니다.

그들은 가사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였지만, 매우 멋진 곡을

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좋았던 점으로는 공연에서의 화려

한 효과와, 아리따운 여성을 본 것입니다.

슬레이언 부족의 남성 전사들은 단순하기 짝이 없어서 예쁜 여자만 보

면 그저 좋아합니다.

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여 명성을 131 획득합니다.

위드도 벅찬 감동을 받았다.

"역시... 확실히 치과 의사는 전문직이지."

가사의 내용만 놓고 보자면, 노래의 핵심은 이빨이 썩은 아이 때문에 만나게 된 치과 의사와 결혼을 하여 잘산다는 내용!

남편 카드를 긁으며, 신상 구두가 나올 날짜를 기다리고 있어서 기쁘다는 여자가 주인공이었다.

치과 치료, 특히 임플란트에 겁내지 말라는 교훈적인 메시지까지 담고 있었다.

위드는 이번에는 노래를 부르지 못했지만 허전함을 달랬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듀엣 곡이라도 해 보죠."

"좋아요!"

다음에는 위드와 화령이 즉흥 라이브 공연을 같이하기로 했다.

"캬하오오오오."

"괜찮은 노래를 들었다. 재주가 아깝기는 하지만 배가 고프니 이제 잡아먹자!"

슬레이언 전사들도 감동에서 서서히 벗어났다. 노래가 끝나고 나니 다시 공격 태세를 갖추는 것이었다.

화령의 발성 스킬이 조금 더 높았더라면 시간을 더 끌어 줄 수가 있었겠지만, 슬레이언 전사들은 그런 쪽에서는 무딘 편이었다.

전사들의 레벨은 최하 200대에서, 평균적으로 300대 중반에 이른다.

그리고 1,000마리 이상의 엘리트급 부족 전사들은 레벨이 420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들의 군대는 조각 생명체들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전력!

하지만 이제 대재앙의 조각술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다.

투두둑.

암벽 협곡의 가장 높은 곳에 있던 슬레이언 전사 머리 위로 돌 조각들이 떨어졌다.

"이게 뭐... 꾸에에에엑!"

암벽 협곡의 정상에 있던 바윗덩어리들이 무더기로 아래로 굴러 내렸다.

전사들은 허둥대며 바위들을 피하려고 하였지만 너무 많은 이들이 몰려 있어서 아래로 추락하는 녀석들이 속출했다.

"와... 위드 님의 스킬은 정말 대단해요. 지형 덕분에 100마리도 넘게 죽겠는데요!"

수르카가 감탄을 했다.

암벽 협곡의 여기저기에서 바윗덩어리가 굴러떨어지면서 그들이 서 있는 땅이 울릴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것은 진정한 대재앙의 전조에 불과했다.

위드의 표정은 이미 심각해져 있었다.

"가장 최근에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을 썼을 때가 아마 로자임 왕국에서였지."

엠비뉴 교단과 싸울 때 탈출하기 위하여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사용한 적이 있다.

대지 일대를 물바다로 만들어 버렸던, 강력하기 짝이 없는 대재앙!

"그때가 자연과의 친화력이 1,000이 약간 넘은 상태였으니까......"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의 위력은 자연과의 친화력에 따라 결정된다.

그 후로 셀리나의 꽃팔지를 얻어서 친화력이 7%나 올라가는 옵션이 부여되었다.

성장하는 아이템이라, 물도 잘 주고 신들의 정원을 조성하며 햇볓도 쬐게 해 주고 해서 지금은 친화력이 9%나 더 올라가게 해 준다.

"근데 지금은 아이템이 다가 아니지."

모험을 하면서, 일부러 예쁘게 피어난 꽃길도 걷고 야생초도 잘 돌봐 주었다. 그럴 때마다 자연과의 친화력은 조금씩이나마 착실히 올랐다.

전에는 시들어서 죽어 가는 나무들은 잘라서 조각 재료로 썼지만, 이제는 자라기 좋은 장소에 옮겨 주기도 했다.

친환경 재료인 흙을 사용해서 도자기도 빚었고, 신들의 정원을 조성하면서 사상 초유의 규모로 식물원까지 이루어 냈다.

자연 그대로 놔두면서도 식물의 생명력이 더 왕성해질 수 있는 식물원!

그처럼 자연보호에 앞장섰던 이유가 바로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 때문이었다.

"불의 정령왕의 대작 조각품도 만들었지. 지금 내 친화력이 1,291 정도로군. 그리고 꽃팔찌를 더하고 걸작 조각품을 부쉈다면 이건......"

수치상으로 보면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심각하게 강해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터질 사건에 비한다면 로자임 왕국에서의 일은 물장난 수준!

위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모두 가까이 모여요."

벨로트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모여 있는데요?"

다 같이 있으면서 이 무슨 엉뚱한 말인가!

"어느 정도의 위력일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계곡 중앙으로 바싹 붙지 않으면 자칫 우리까지 휩쓸릴지도 모릅니다."

위드는 사자후를 터트렸다.

"조각 생명체들은 전부 내게 가까이 붙어라!"

편하게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출퇴근 치하철처럼 빽빽하게 들어차야 했다.

암벽 협곡의 중앙 넓은 물이 흐르는 곳에서, 위드와 동료들, 조각 생명체들은 몸을 가까이 부대꼈다.

"음머어어어어어!"

이럴 때의 생존 본능은 유별한 누렁이는, 위드의 바로 옆에 찰싹 붙어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위드가 있는 곳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

불사조와 불의 거인, 빙룡처럼 다른 생명체와 가까이할 수 없는 경우에는 하늘로 급하게 날아올랐다.

그리고 대재앙이 발생하기 시작한 협곡!

가파르기 짝이 없는 협곡에 산사태가 일어나면서 2킬로가 넘는 암벽이 모조리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끄에에에에에에에엑!"

"갑자기 몽땅 무너진다!"

"용감한 슬레이언 전사들이여, 지금 어서 피하라!"

전사들은 그들이 들어왔던 동굴로 다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그곳은 차곡차곡 순서대로 들어오고 나와야 할 정도로 좁아 입구에 2마리씩만 엉켜도 빨리 들어갈 수가 없었다.

서로 엉켜 아등바등하는 사이 위에서는 80평 대형 아파트만 한 바윗덩어리들이 굴러떨어지고 있으니 전사들은 완벽한 공항 상태에 빠졌다.

"케아아아아!"

"츄츄츄츄츄릅."

협곡을 장악하고 있던 슬레이언 전사들이 바위에 맞아서 떼죽음!

수십, 수백 마리의 전사들이 거대한 바윗덩어리에 무참히 깔리고 있었다. 피하려다가 급한 마음에 협곡 아래로 떨어지는 전사들은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거친 바람에 낙엽이 떨어지듯이 땅으로 추락했다.

이것만 하더라도 대재앙의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양쪽 협곡에서 동시에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이런 난리가 없는 것이다.

죽어 나가는 적들을 감상할 틈도 없이, 위드와 동료들, 조각 생명체들도 위기를 맞이했다.

꼭대기에서부터 떨어지던 어마어마한 크기의 바윗덩어리들. 그것이 중간에 멈추지 않고 협곡의 밑부분까지 계속 굴러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위드가 말했다.

"이게 진짜 강한 스킬이긴 한데, 형식적이고 작은 부작용 한 가지가......"

그 부작용이 뭔지는 동료들도, 조각 생명체들도 알 것 같았다.

정답을 맞히고 싶지도 않았다. 벌써 바위들이 무자비하게 떨어지고 있으니까!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이란 말 그대로 재앙이라서 쓰는 사람도 죽을 수 있다는 것!

"이쪽으로 와요!"

"오른쪽으로 이동!'

"꺄아아! 엄청 큰 바윗덩어리가......"

"우왓, 신 난다!"

"정말 짜릿해요! 이렇게 해서 살아남으면 대박인데! 근데 우리 죽겠죠?"

"평소에 나쁜 짓 한번 안 하고 착하게만 살아왔는데,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거짓말하지 마요. 위드 님! 130골드 내면 누렁이 꼬리곰탕 해 주신다고 했잖아요."

"지난번에 사냥하다가 밤에 족발 먹고 싶은 적 없냐고도 물어보셨는데요."

"어머, 저한테는 소갈비가 일품이라고 하셨는데."

"음머어어어어!"

귀 옆에서 천둥 벼락이 치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바윗덩어리들이 계곡 아래 땅속 깊숙하게 박혔다.

물보라가 높게 치솟았으며, 주변은 떨어지는 바위들로 공포 그 자체!

"지금 우리 살았어요, 죽었어요?"

"배가 고픈 걸 보니 살아 있습니다."

위드는 암벽 협곡에서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을 사용할 것을 미리 결정하고 준비를 해 왔다.

스킬을 사용하기 전에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까운 곳에 추락하는 바위들이 매우 많았지만, 아직까지 그들을 정면으로 덮치지는 않았다.

"이제 슬슬 끝나도 될 텐데......"

바위와 자갈도 대량으로 쏟아져, 슬레이언 전사들은 회복이 어려울 정도의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최소한 600마리 이상이 바위에 맞거나 추락해서 죽었으리라.

"저거 거짓말이죠?"

수르카가 암벽 협곡의 꼭대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들이 있는 위치에서는 어렴풋이밖에는 보이지 않긴 했다.

쿠그그그그그그긍!

적당히 해도 될 텐데,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은 걷잡을 수 없이 더욱 큰 사고를 일으켰다.

암벽 협곡의 꼭대기가 흔들리더니 기울어지면서 통째로 무너지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슬레이언 전사들은 이동을 위해 협곡에 동굴을 무수하게 많이 뚤어 왔다.

이렇게 뚫린 동굴들에 의해 약회된 암벽 협곡에, 바위가 떨어져 나가고 산사태가 일어나 충격까지 가해졌으니 결과는 뻔하다.

결국은 정상 부분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려고 하는 것.

위드의 마지막 비명!

"역시 이놈의 팔자는.....!"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의심스러웠지만, 이리엔은 일단 죽기 살기로 보호 마법을 펼쳤다.

"신성 수호!"

보호의 빛이 그들 전부를 감쌌다.


★★★★★★★★★★★★★★★★★★★★★


땅이 뒤흔들리는 충격과 굉음!

잠시 후.

위드와 일행, 조각 생명체들이 있던 장소의 먼지가 걷혔다.

"으음, 우리는 살았군요."

"진짜 살았어요? 죽는 물만 알았어요."

"우리 아까 죽은 거 아니었나요?"

천만다행으로, 제피가 조금 파묻혔을 뿐 죽은 사람은 없었다.

암벽 협곡의 중간에 있어서 쏟아지는 바윗덩어리들로부터 거리가 조금 있었고, 자잘한 돌덩어리들은 킹 히드라가 몸으로 막아 주었기 때문이다.

"쿠워오오오오, 아프다!"

킹 히드라는 여간해서 죽지 않는 최고의 생명체!

지금 그 생명력이 간당간당하기는 했지만, 머리만 전부 잘리지 않았다면 회복이 가능하다.

물론 조각 생명체로서의 레벨이 아직 높지 않아서 그 회복력이란 게 상당히 느리다는 제약이 있었지만.

킹 히드라의 머리 2개는 완전히 멀쩡해서,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동시에 배가 고프니까 먹을 것을 달라고 외쳤다.

"킹 히드라를 전투에 다시 쓰려면 시간이 걸리겠군."

위드는 냉정하고 빠르게 상황을 분석해 보려고 했다.

조각 생명체들은 암벽 협곡의 붕괴로 크게 놀란 상태였지만 킹 히드라를 제외하면 전혀 다치지는 않아서 전투에 별 지장은 없었다.

"문제는 놈들이 얼마나 타격을 받았느냐인데."

암벽 협곡에서 일어난 붕괴. 대략 사분의 일이 무너져 내렸을 정도로 엄청난 재앙으로 그 순간 지형이 완전히 바뀌었다.

슬레이언 전사들은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그런 재앙에서도 상당히 많은 수가 살아남았다.

마찬가지로 지독한 생명력!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아서, 바윗덩어리들 틈에서 기어 나오거나 암벽 협곡에서 청색의 피부를 드러냈다.

"쿠오오, 저놈들을 죽여라!"

"슬레이언의 이름을 걸고 놈들을 하나도 살려 두지 마라!"

강하고 끈질긴 전사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대재앙으로 부족의 삼분의 일이 죽고 그만큼의 숫자가 전투 불능이 되었다. 암벽 협곡에 있다가 날벼락을 제대로 맞은 것이다.

하지만 위드의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이 항상 완벽하지는 않아서, 무너지지 않은 장소들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그런 곳들에서는 건재한 전사들이 활을 들고 일어났다.

"음, 그래도 피해를 많이 입혔군."

처음 암벽 협곡에서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적 무리의 규모를 보고 위드는 최소한 절반에 달하는 전사들이 살아남을 거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가 죽거나 생명력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슬레이언 전사들은 그만큼 더욱 분노했다.

"다행이군 오늘은 적당히 싸우고 물러난 이후에 몇 번 더 대재앙을 일으키려고 했는데 이번 전투로 끝낼 수 있겠어."

위드의 장기적이고 악랄한 계획 생각한다면 이 엄청난 피해 상황이 오히려 슬레이언 전사들에게는 행운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일.

협곡 아래로 뛰어내린 전사들 중에도 일시적인 충격으로 전투 불능이 된 자들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테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집채만 한 바윗덩어리에 갇힌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 종족 틍성을 이용하여 땅을 파고 나오게 될 테니 적들은 더욱 불어난 것이다.

"놈들이 더 깨어나서 공격하기 전에 싸워야 됩니다. 모두 공격하라!"

위드는 조각 생명체들을 지휘하여 전투를 개시했다.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로 적들을 뒤흔들어 놓는 데에는 멋지게 성공했다. 하르셀 산악 지역에 있는 슬레이언 전사들은 지형의 이점을 이용해 공격하려 했짐나 이를 역으로 이용하여 재앙을 일으켜 먼저 끔찍한 타격을 입힌 것이다.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

다친 킹 히드라와 괜히 놀라서 나오지 않는 지렁이를 제외하고 나머지 조각 생명체들은 적들을 향하여 용감하게 전진했다.

누렁이는 싸우고 싶지 않아 했지만 금인이가 타고 싸우러 나갔다.

"멀티플 샷!"

페일도 활에 화살을 걸자마자 적들을 향해서 쏘았다. 하나의 화살이 분산되어 여러 적을 공격하는 스킬로, 40개가 넘는 화살이 한꺼번에 발사됐다.

이제는 가릴 것도 없이, 적들을 죽이고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면 된다.

바윗덩어리를 타고 뛰어오는 슬레이언 전사들을 향하여 화살을 난사!

"위드 님을 따라다니면 전투를 하며 지루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어 좋군."

암벽 협곡 같은 거대한 전장에서 싸울 수 있는 것도 특권이라면 특권.

페일은 화살통에서 꺼낸 화살을 입에도 하나 물고, 궁수의 민첩함을 이용해 바윗덩어리들 틈을 뛰어다녔다.

슬레이언 전삳슬이 거리를 좁히면서 달려오고 있었고, 땅에 떨어진 이들이 버둥거리며 일어나려고 하고 있다.

페일은 다가오는 100여 마리의 적들에게 마구 화살을 쏘았다.

"딱 이런 곳이 내 취향이었어. 몽땅 쓸어버려야지."

로뮤나는 기뻐하면서 마법을 준비했다.

화염의 강!

마법사로서 던전에서 3~4마리씩 사냥을 할 때보다 이렇게 시원하게 싸울 때가 훨씬 기뻤다.

그렇지만 이미 협곡에 있는 슬레이언 전사들도 화살을 쏘고 있었기에 엄폐물이 되어 주는 바위 옆에 바싹 붙어서 마법을 준비해야 했다.

"오기만 해 봐라. 실컷 두들겨 패 줘야지!"

수르카는 킹 히드라를 치료하고 있는 이리엔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뛰쳐나가지는 않았지만 주먹을 쥐고 잔뜩 벼르고 있었다.

"에고, 여기서 살아날 수 있을지......"

제피도 백금 낚싯대를 꺼내서 길이를 길게 늘렸다.

낚싯대는 가벼운데다가 의외로 공격력이 높고, 낚싯줄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면 훌륭한 원거리 무기가 된다.

"크허허허허헝!"

조각 생명체 중에서는 백호가 날렵하게 바위들 위로 뛰어 다니며 전사들을 앞발로 때리고 입으로 깨물었다. 기사 세빌, 켈베로스, 시골뱀도 벌써 활약하고 있었다.

아무튼 슬레이언 전사들의 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회복되기 전에 빨리 해치워야 했다.

하늘에서는 암벽 협곡에 있는 전사들의 화살이 빗발치듯이 쏘아지고, 이에 대항해 와이번, 빙룡, 불사조, 이무기도 활약을 개시!

연속적인 협곡의 붕괴로 인해서 크게 놀랐지만 상황을 파악한 것이다.

"주인 안 죽었나 보다."

"웬만해선 진짜 안 죽어."

"끅끅, 명이 참 길기도 하지."

"쟤들 정신 차리고 있는 모양인데."

"빨리 싸우자. 안 그러면 끝나고 잔소리 들을 거야."

빙룡은 숨을 힘껏 들이마셨다.

그리고 주둥이에서부터 일직선으로 쏘아진 아이스 브레스가 암벽 협곡의 중턱에 적중하여 전사들을 꽁꽁 얼어붙게했다.

불사조는 반대편 협곡으로 가서 불을 내뿜었다.

와이번들은 정신없이 날아다니면서 전사들을 공략!

난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벨로트와 화령은 다시금 춤과 노래를 준비했다.

전투가 벌어지고 나면 몬스터들의 이목을 끄는 효과는 많이 감소하지만, 대신 동료들의 능력을 크게 올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위드만이 아직 싸우지 않았다.

"일단 마나가 얼마나 들어길지 모르겠군. 아무리 먼 곳에 떨어져 있더라도 불가사의한 예술의 힘으로 가져올 수 있으리라, 조각 소환술!"

미리 깎아 놓은 조각품을 불러올 수 있는 스킬!

슬레이언 전사들이 더 많이 깨어나고 있었다. 조각 생명체들과 전투를 벌이는 소리가 협곡을 크게 울릴 정도였고, 자잘한 돌 조각들도 계속 아래로 떨어졌다.

로뮤나의 화염의 강 마법도 무사히 시전되어서 전사들 한무리를 휩쓸었다.

황금새와 은새도 조인족으로 변하여 같이 싸운다.

이럴 때에 평상시의 모습으로 싸운다면 물론 익숙하기는 해도 최상의 전력이 아니다.

바드레이에게 패배하고 나서, 그리고 그 이후에 여러 준비를 통하여 화끈하게 싸울 수 있도록 대비를 해 놓았던 것.

위드의 조각품은 땅에서부터 천천히 형태를 갖추면서 올라왔다.

혼돈의 대전사 쿠비취.

전투 계열의 취 자 돌림!

지골라스에서 사냥했던 혼돈의 대전사 쿠비챠를 위드의 방식으로 조각한 작품이었다.

키는 조금 더 키우고, 근육은 더욱 두껍고 많이.

얼굴은 위드의 방식대로, 무조건 강해 보이는 인상! 눈이 좌우로 끝까지 찢어져 있었다.

소개팅을 받고 만났다면 무서워서 무릎부터 꿇을 정도였다.


2) 불의 전사


"정말 적당하군."

위드는 조각품을 보며 만족했다.

혼돈의 대전사 쿠비취는 벨소스 왕의 유적에서 정령왕의 조각품을 깎을 때 얻은 재료, 비루에시아 가루를 몰래 발라서 만든 작품이었다.

"비싼 건데 잘 써야지."

조각품 재료를 재활용하는 정신.

위드는 조각술의 비기를 발동했다.

"조각 변신술!"

-조각 변신술을 사용합니다.

조각술에 대한 무한한 애정은 그 조각품과 조각사를 서로 닮게 만든다!

키가 2미터 40센티로 커지고, 몸 전체에서는 불길이 일어났다.

-몸의 형태가 바뀌면서 현재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의 상당수가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불에 녹는 갑옷과 보호구를 착용하게 되면 내구력이 감소합니다.

종족이나 형태에 따라 필요한 장비를 새로 구하십시오.

-조각 변신술의 영향으로 불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종족 고유의 스킬, 단거리 텔레포트 마법을 쓸 수 있습니다.

예술 스탯이 사라지고 힘과 민첩, 지혜가 대폭 상승합니다.

조각 변신술이 풀릴 때까지 우효합니다.

위드가 아끼는 헬리움 갑옷은 혹시나 상할까 봐 아까워서 착용하지 못했고, 다른 액세서리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혼돈의 전사들은 원래 불에 잘 녹지 않는 지골라스의 광물로 제련한 도끼와 특수한 저항력을 가진 짐승의 가죽을 엮은 채찍을 다룬다.

하지만 위드에게는 굳이 그런 고유한 무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드래곤의 검, 레드 스타.

위드를 포함하여 모든 유저들이 현재 장비할 수 있는 최상의 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검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팔자가 더럽다고 해도 딱 한 번 사용하는 걸로 드래곤이 찾아오진 않겠지. 솔직히 재수가 없으면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싸워보자."

위드는 레드 스타를 꺼냈다. 그리고 서서히 검집에서 검을 빼냈다.

스르르르르릉!

음악 같은 소리를 내면서 뽑히는 검.

위드가 지폐 넘기는 소리 다음으로 좋아하는 소리였다.


『 드래곤이 만든 검 레드 스타를 착용했습니다.

제한 레벨과 불에 대한 저항력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대장장이의 무기에

대한 이해력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킬을 사용해도 지치지 않습니다.

더욱 빨리 움직이고, 적의 공격이 빗나갈 확률을 늘립니다.

공격이 상대의 방어구를 관통. 마법 보호를 무시하고 뚫어 냅니다.

전투 능력을 약화시키는 부상을 입힐 확률이 늘어납니다.

불의 힘의 위력이 2배로 증폭됩니다.

검에 담겨 있는 불의 힘으로 인해 발휘할 수 있는 공격력이 크게 높아집니다.

마법 저항력 +30%

검에 담겨 있는 마력이 중급 이하의 몬스터들을 강하게 위축시킵니다.

공격 스킬의 위력이 향상됩니다.

불을 다스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검에 담겨 있는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불화살, 불의 진노, 화염 폭발, 화염 소멸, 지옥의 검화, 파이어 히드라 소환.

특수 스킬 레드 스타는 지혜와 지력, 마나가 부족하여 쓸 수 없습니다.

대지 소멸은 힘과 검술, 마나가 부족하여 쓸 수 없습니다.

혼돈의 전사는 불의 힘을 다스릴 줄 아는 종족입니다. 레드 스타가

뿜어내는 화염을 생명력과 마나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생명력과 마나의 최대치가 120%가 증가하고, 그 회복 속도고 2배가 됩니다. 』


혼돈의 대전사가 되어 있는 위드의 몸에서 새하얀 불꽃이 타올랐다.

조각 변신술로 종족을 바꾸면서 예술 스탯이 사라지고 다른 스탯들은 크게 들어난다. 검의 추가적인 효과까지 부여되었다.

"이것이 바로 전지전능한 집주인의 기분일까?"

위드는 리치로 변신하여 바르칸의 아이템을 착용하고 언데드를 소환하는 것도 가능했다.

별로 좋지 않은 죽은 자의 힘이 무섭게 늘어나는 부작용은 감수해야 될 테지만, 그 강함은 이미 여러 번 증명되었다.

위드가 언데드를 지휘할 때가 멋지다면서, 지골라스에서의 모습을 재방송해 달라는 시청자들의 요구는 아직까지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무너진 암벽 협곡에 있는 지금도, 주변에는 전사들의 시체가 즐비하니 언데드 군단을 소환하여 한바탕할 수는 있으리라.

그러나 언데드의 힘은 강력하지만 지금 당장 조각 생명체와 동료들에게 퍼부어지는 적들의 공격은 어찌할 수가 없는 것.

위든 대신 죽음을 택했던 금인이나, 구박만 실컷 받은 누렁이나, 만날 타고 다니는 와삼이까지, 그동안 부려 먹으며 정이 많이 쌓였는데 죽게 할 수는 없다.

"앞으로 평생 부려 먹어야지. 여기서 이 녀석들이 죽으면 나만 손해야. 콜 데스 나이트 반 호크,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

"불렀는가, 주인."

"너희는 이곳을 지켜라. 킹 히드라를 부탁한다."

"알겠다."

토리도와 반 호크는 위드에게 종속되어 있기에 어떤 종족으로 변하더라도 부를 수가 있다.

위드는 암벽 협곡을 쳐다보며 스킬을 사용했다.

"블링크!"

찰나의 순간, 위드는 바로 화살을 쏘아 대는 슬레이언 전사 등 뒤에 나타났다.

"크엣?"

파충류의 일종인 슬레이언 부족에게 화염을 내뿜는 존재는 천적과도 같은 것. 위드가 검을 휘두르자 바로 불길에 휩싸여서 아래로 추락했다.

-불의 힘이 전사들에게 치명적으로 적용됩니다.

전투 능력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블링크!"

위드는 암벽 협곡에서 연속으로 이동하며 활을 쏘는 이들을 제압했다.

검이 한번 휘둘리면 무려 8미터에 달하는 넓고 커다란 불기둥이 일어난다.

피할 수도 없으며, 살짝 닿기만 해도 불에 휩싸여서 전투 능력을 빼앗기고 생명력도 상실.

높은 협곡에서 추락하면 추가적인 충돌 데미지로 인하여 사망!

현재의 위드는 슬레이언 전사들에게 천적 그 자체였다.

"불 인간부터 없애라."

"저놈이 가장 나쁜 놈이다."

위드에게로 화살 공격이 집중되었다.

주변뿐만이 아니라 맞은편 암벽에서도 화살이 쏘아졌다.

"블링크."

위드는 단거리 텔레포트를 사용하면서 공격을 하고 순간적으로 이동하였기에 붙잡히지 않았다.

혼돈의 대전사 쿠비챠를 사냥할 때 이것 때문에 위드도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가.

그나마 그는 대전사로서 당당하고 고지식하게 힘을 겨루는 면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위드는 얍삽하게 블링크를 시전하면서 검의 힘을 최대한 활용하여 싸웠다.

"화염 폭발!"

마나에 여유가 있어서 검으로 협곡의 한 부분을 가리키자, 불덩어리가 생성되어 일시에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폭발!

슬레이언 전사들이 파편에 휩쓸려서 큰 피해를 입거나 땅으로 추락했다.

일반적인 성벽을 두고 치르는 공성전이었다면 지키는 쪽인 슬레이언 부족들에게 매우 유리한 싸움이 되었으리라는건 당연했다.

그러나 여기처럼 지형적으로 까다로운 암벽 협곡에서는 타격을 얼마나 입었든 상관없이, 아래로 떨어지면 거의 끝장이었다.

대재장의 자연 조각술에, 조각 변신술이라는 비기를 사용하면서 맞춤형의 전투를 했기에 오히려 이 암벽 협곡은 적들의 무덤으로 가장 적합한 장소.

위드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식으로 블링크를 사용하며 협곡에서 활을 들고 있는 전사들부터 물리쳤다.

"슬레이언 부족의 활이라. 이거 레벨 제한이 낮고 종족 제한도 없다니 괜찮군. 속사 스킬을 올려 주는 옵션만 있었으면 바가지를 듬뿍 씌워도 팔릴 텐데. 약간 아쉽기는 해도 그런대로 비싸게 받을 수는 있겠어."

멀리 가지 않더라도, 이제는 모라타에서도 중앙 대륙의 이주민들에게 레벨 300대의 무기는 쉽게 팔아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템에 대한 확인을 마치고 나니 더욱 솟구치는 전투 의지.

"이쪽으로 온다. 살려 줘!"

"으웨에엑. 도망치고 싶다!"

"흐이익."

"키야아아아악!"

몬스터를 위축시키는 레드 스타의 권능으로 인하여 슬레이언 전사들은 위드에게 냉정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화살 공격이 서서히 약해져 가고, 비행 생명체들이 활개를 치며 협곡을 누비면서 날아다녔다.

암벽 협곡의 아래에서 조각 생명체들이 동료들과 힘을 모아 잘 싸우고 있었다.

암벽 붕괴와 추락으로 상처를 많이 입고 약화된 슬레이언 전사들이었기에 전투 중에 죽은 이들도 상당수.

"하르셀 산악 지역을 지배하는 전사들이여, 우리는 이곳에서 침입자를 몰아낼 수 있다. 아직도 우리가 가진 힘은 거대하다!"

"적들을 이곳에서 모두 없애쟈. 동족들의 복수를 우리의 손으로!"

부족의 장로들은 전사들을 다시 수습하려고 애썼다.

대규모 전투일수록 사기를 회복하고 조직적으로 싸우게 되면 큰일.

위드는 장로들 옆에 나타났다.

"놈이 여기에 왔다. 지원군을 불러라."

"침입자의 대장인 저놈을 죽여야 한다!"

장로의 호위 전사들이 창으 들고 경계했다. 그들의 레벨은 아무래도 420보다는 좀 더 높을 것이다.

위드는 스킬을 시전했다.

"불의 진노!"

정면에 불기둥이 일어나서 전사들을 태웠다.

레드 스타의 최고의 장점은, 공격에 성공하게 되면 적들의 전투력을 상당히 빼앗아 버린다는 점이다.

일단 화염에 휩싸이게 되면 불의 저항력이 극도로 높거나 사제들의 치료 마법을 받지 않고서는 진화할 수가 없다.

게다가 혼돈의 전사는 레드 스타에서 자연적으로 발산되는 불길로 생명력과 마나를 채울 수 있는 종족이었다.

생명의 원천이 되는 젊은 여자의 피를 무한정 공급받는 뱀파이어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럴 경우, 뱀파이어 자신보다 훨씬 강한 적과도 싸워 이길 수 있다.

마법과 공격 스킬ㄷ로 아낌없이 사용할 수 있어서, 전투력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드래곤의 검을 들고 혼돈의 전사의 스킬을 마구 활용하며 적들을 없애는 위드의 전율적인 카리스마!

그가 지나간 장소는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물론 슬레이언 전사들이 떨어뜨린 전리품의 습득은 완전히 끝난 상태.

슬레이언 부족들은 하르셀 산악 지역을 오래 다스렸던 부족이기에 다양하고 비싼 전리품을 가지고 있었다.

"전사들이여, 저 여전사가 약해 보인다. 저 여자부터 없애라."

일부의 부족 장로들은 조각 생명체 중에 게르니카를 노렸다.

그녀는 바바리안 여전사로, 양손에 하나씩의 무기를 가지고 물가에서 싸웠다.

어느새 적들 사이로 많이 들어와 있었기에 목표가 된 것.

그때 갑자기 장로들이 있는 장소의 땅이 갈라지더니 데스웜의 머리가 나타나서 그들을 삼켰다.

지렁이라는 이름을 가진 데스웜은 미식가였다.

지휘관급을 우선하여 먹어 치우는 까다로운 습성을 가졌다.

암벽 협곡이 붕괴되어서 소심해져 있던 녀석이 마침내 머리를 내밀고 전투를 시작한 것이다.

킹 히드라도 한쪽에서 쉬면서 이리엔의 도움을 받아 급속도로 생명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


암벽 협곡의 전투!

위드의 퀘스트가 생방송으로 중계되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암벽 협곡의 붕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적인 영상. 그리고 조각 생명체들의 가공할 활약!

-빙룡 진짜 세다.

-완전 위엄이야. 저 정도면 웬만큼 강한 몬스터는 무기도 못 내밀겠는데.

-불사조가 더 세 보여. 화염의 비, 저 광역 마법 정말 무섭다.

-위드가 데리고 다니는 부하들만 해도 정말 장난이 아니라니까.

깃털을 날려 암벽 협곡을 온통 불태워 버리는 불사조의 지고의 스킬!

조각 생명체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 스킬들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지골라스에서 생명을 부여한 이들까지 다 같이 날뛰면서, 암벽 협곡에서는 환상적이라고 할 만큼 화려한 장면들이 계속 나왔다.

현재 조각 생명체들의 인기를 반영하듯, 이미 그들의 팬클럽까지 결성되었다.

모라타에서 인기가 높은 누렁이를 비롯하여 전투에서 결정적 활약을 하는 빙룡, 오랫동안 살아온 와이번들까지, 시청자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로열 로드에서는 요리사들이 빙룡 아이스크림을 개발하고 와이번 통닭을 만들 정도!

시청자들이 더 주목한 것은 위드의 전투 능력에 있었다.

-지금까지 치밀하게 싸우던 것과는 다르잖아.

-완전 힘이 넘쳐 주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걸 보고 싶었어요. 이게 마법의 대륙의 위드입니다. 차원이 다른 무력을 발휘하면서 몬스터들을 학살하는 그 느낌!

-아우... 진짜 나도 저렇게 싸워 보고 싶다. 그런데 현실은 좀비 1마리만 나와도 도망 다니고 있으니, 에효.

-저렇게 강한데 바드레이한테 죽었단 말이야?

-혹시 무슨 뒷공작이 있었던 거 아닐까. 돈을 받고 져 줬다거나 하는 거 말이죠. 돈만 많이 준다면 그럴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위드 님은 그럴 분이 아닙니다. 위드 님에 대해서 잘 모르시면 함부로 말씀하지 마세요.

-위드 님처럼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분에 대해 조금도 공감할 수 없는 음모론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시네요.

-근데 정말 장난 아니게 세네요. 과연 위드라는 건가. 보면서 괜히 설레는데요!

혼돈의 전사로서 보여 주는 화끈함!

위드는 시청자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전투에 완전히 몰두해서, 활을 든 전사들을 처단하고 장로들이 있는 곳에 나타나서 싸우는 멋진 모습들.

물론 전사들의 활과 장로들이 들고 있는 아이템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지만, 시청자들은 그 빠르고 거친 전투에 대단히 매료되었다.

신중하게 접근하고, 생명력과 축복 마법을 확인하면서 장기전으로 안정되게 싸우는 전투에는 지쳐 있었던 것이다.

-역시 싸움이라면 몽땅 무너뜨리고, 다 때려 부수고, 불도 지르고 그러는 게 정답 아니겠습니까?

-위에 분, 뭘 좀 아시네요. 위드처럼 싸우는 사람이 있어야 우리도 구경할 맛이 나는 거죠!

거기에 개인적인 무력만이 아니라 지휘 능력도 발군이었다.

조각 생명체들의 특성에 맞춘 전술 운용에, 적들을 맞이하는 진형 변화도 거침없이 이루어졌다.

위드가 손가락으로 척척 지시할 때마다 조각 생명체들이 칼같이 따르면서 슬레이언 전사들을 격파하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매료되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바다에서 유령선들을 다스리고 대해전을 벌일 때처럼 지휘력이 일품이었다.

물론 전장의 소음으로 인해 위드가 귓속말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알아듣지는 못했다.

-게르니카, 나서지 말고 뒤로 빠져. 빈덱스, 뭐 하니, 지금까지 만날 놀았잖아. 이제 노는 거 지겹지도 않아? 지금 1마리를 데리고 칼질을 몇 번 하는 거야! 시골뱀, 혓바닥만 날름거리지 말고 빨리 독 풀고 뒤로 빠져. 지렁이! 너 지금 20초 넘게 땅속에서 자고 있지?

폭풍 잔소리!

위험에 빠진 녀석이 있다면 반드시 단거리 텔레포트를 이용하여 가서 구해 주었다.

다른 랭커나 유저 들이 자신들만의 성공을 위하여 부하를 막 다루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바드레이는 일부러 희생양으로 부하들을 소모시켜 버리잖아.

-원래 자기밖에 모르는 놈이라서 그렇지.

=비교가 돼? 이런 게 진정한 지휘관의 역량 차이라는 거지.

-캬하! 저런 전투를 나도 해 보고 싶은데.

가끔 심통을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싸워도 저만큼은 할 수 있겠다. 레벨 높고 좋은 아이템 끼고 있으면 누구나 다 저렇게 하지.

-위에 분, 정신 차려요. 위에 분이 저기에 있었으면 아마 바윗덩어리에 깔려 죽으셨을 듯.

-위드의 이동속도나 반응속도, 장소마다 스킬 활용하는 판단력을 보세요. 저런 난전에서 정말 저렇게 싸울 수 있다고요?

-놔두세요. 로열 로드 제대로 못 해 본 사람일 거예요. 토끼한테 죽어서 지금 접속도 못 하고 계시는 분일 듯.

시청자들이 단 한순간도 텔레비전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숨 가쁘게 흐르는 전투였다.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처럼 예측 불가능한 위드의 결정이야말로 재미를 북돋아 주는 요소.

누가 불리한 암벽 협곡으로 들어가서 적들을 무너뜨릴 계획을 세울 수 있겠는가.

대재앙을 일으킬 수 있더라도, 이리저리 조심하다 보면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고작해야 스킬을 활용하면서 하르셀 산악 지역의 외곽에서부터 적들과 계속 싸움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위드는 저지르고 보았다.

"최악의 경우에는 도망이라도 치면 되겠지. 이곳 산악 지역에서 수비에 유리한 절벽이나 산봉우리로 퇴각해서 3개월쯤 버티면 될 거야. 사냥을 해서 먹을 걸 구하고 빗물을 받아 마시면 사는 데에는 무리가 없겠군."

지금까지 익힌 스킬들을 활용하여 버틸 수 있는 생존 능력.

이 배쨍이야말로 대중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요소였다.

"어리석게도 슬레이언의 함정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매복에 완벽하게 당한 모습인데, 위드가 이 정도를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아, 실망인데요."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진행자들은 짙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말을 바꾸어서 칭찬하기 바빴다.

"오오오오! 위드의 부하들도 정말 대단한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 무기는 혼돈의 대전사 쿠비챠가 쓰던 게 맞는 거죠. 일설에 의하면 드래곤의 무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드래곤의 무기라는 건 아직 확인 되지 않은 정보인데요. 지금까지로 보아서 매우 엄청난 공격력을 가지고 있으며 화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 틀림없습니다."

"멋집니다! 방금 보셨습니까? 검을 휘둘러서 날아오는 화살들을 모조리 태워 버렸습니다. 그 대담함이나 스킬의 범위와 타이밍을 절묘하게 노리는 행동은 위드만이 가능한 거죠."

"과연 위드라는 말을 방송 중에 지금 몇 번 드리는 거죠?"

칭찬의 릴레이.

LK게임과 온 방송국은 최근에 헤르메스 길드를 비롯한 명문 길드와 우호적인 관계를 이룩했다.

방송 진행이나 전투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거대 세력과 잘 지낼 필요가 있었다.

방송 시간 배정이나 광고 수익금 배분에 있어서도 명문 길드에 상당한 프리미엄을 지불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위드의 방송에 기대하는 것과는 비교 할 수도 없는 노릇.

진행자들도 이제는 시청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기에 위드에 대한 찬양을 그치지 않았다.

"오오오, 위드가....."

"그를 향해서 화살 공격이 준비되고 있고, 전사들이 모여 드는군요. 가만히 있는 걸 보니, 아직 모르고 있는 걸까요?"

"마나가 부족해서 빠져나가지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위기죠!"

진행자들은 영상을 보면서 열을 올렸다.

축구 경기의 결승전을 능가하는 긴박감으로 이루어지는 방송 중계!

"위드가 적들의 공격에 의해 암벽 협곡에서 추락!"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위드도 심각할 정도의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앗... 그게 아닙니다! 공중에서 블링크를 연속 사용하면서 빠져나왔습니다!"

"마치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유연하게 대처하는군요. 기적과도 같은 스킬 운용입니다."

영상이 따라가기도 아주 바빴다.

"위드가 지상에 나타났습니다. 지금 전리품을 습득하고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습니다!"


★★★★★★★★★★★★★★★★★★★★★


위드는 레드 스타에 간직되어 있는 여러 마법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만날 버스만 타고 다니다가 총알택시를 탄 것처럼 후련한 기분.

"지금이 풍년이로군!"

암벽 협곡에 널려 있는 슬레이언 전사들 중에는 부상자들이 많았고 생명력도 많이 떨어져 있어서 위드에게는 사냥감이 널려 있는 셈이었다.

혼돈의 전사로 조각 변신술을 펼친 이후 아예 방어구를 착용하지 않았다. 기본적인 인내력과 맷집만으로 견뎌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레드 스타의 위압감과 종족의 카리스마로 인해 위축된 슬레이언 전사들이 정상적으로 싸우지를 못하니 아무 문제 되지 않았다.

검이 생명력을 회복시켜 주고 위험한 순간마다 단거리 텔레포트를 활용하다 보니, 생명력의 감소에 대하여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태!

"퇴각하라!"

이제 거의 남지 않은 부족의 장로들이 드디어 후퇴를 결정했다. 그러자 전사들이 암벽 협곡에서 철수를 했다.

암벽 협곡의 좁은 길을 빠져나가고, 붕괴되면서 막히지 않은 동굴들을 통하여 떠나갔다.

위드는 사자후를 터트렸다.

"추격하지 마라!"

대규모 전투를 하다 보면 보통 추격전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우게 되기 마련이다.

기병들의 경우에는 평원에서 몬스터 무리를 압도하는 공격력을 보이기도 한다.

기사의 매우 큰 장점으로, 장애물이 거의 없는 넓은 평원에 몬스터 대군이 몰려왔다면 그건 정말 좋은 먹잇감이 된다.

기사단의 돌격으로 적을 관통하고 나면 지능이 낮은 몬스터일수록 사기가 떨어져서 마구 도망치기 일쑤다.

그때의 추격전을 통하여 며칠을 꼬박 사냥한 정도의 전리품과 명성, 경험치를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기사란 직업은 전투만 놓고 보면 그야말로 혜택이 많은 편.

몇몇 조각 생명체들의 이동속도는 말만큼이나 빠르지만 여기는 지형이 험한 하르셀 산악 지역.

위드와 조각 생명체들도 전투로 인해서 지쳤으니 무턱대고 쫓아가다가는 숫자가 훨씬 많은 슬레이언 부족 전사들에게 뼈아픈 역습을 당할수도 있어 참아야 되었다.

지휘관으로서 이기고 있을 때 자제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지만, 때로는 참는 것도 필요했다.

-하르셀 산악 지역의 협곡 전투에서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전투 중에 적들은 당황하여 끊임없이 끌려다녔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지도력으로 거둔 승리.

우수한 부하들을 데리고 있었다고 해도, 아군의 손실 없이 얻어 낸 귀

중한 승리는 칭송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명성이 1,210 올랐습니다.

-카리스마가 6 상승하셨습니다.

-통솔력이 5 상승하셨습니다.

-슬레이언 부족과의 적대도가 100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전투 경험을 쌓았습니다.
전투와 관련된 스탯들이 1씩 증가합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으흐흑, 내 아이템들이 멀리 가는구나. 아... 저기 활 들고 있는 녀석을 일찍 잡지 못했다니."

큰 전투를 이기고 나서도 한없이 아쉬워하는 위드.

"이 근처에 있는 녀석들은 확실히 없애 놔야겠군."

위드는 일행과 조각 생명체들과 같이 무너진 암벽 협곡을 돌아다니며 부상이 심해 남겨진 슬레이언 전사들을 처리했다.

"살려 다오."

슬레이언 전사들이 애처로운 얼굴로 부탁을 했다.

위드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전리품 때문에 안 돼."

싹둑!

전투에서 대승리를 거두고 나서 항복하는 포로들을 살려주거나 하면 명예 스탯과 기품이 많이 오른다.

물론 직접 나서지 않고 기사들을 지휘하기만 하여 승리를 거두더라도 부하들을 통하여 명예 스탯은 심심치 않게 오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아르펜 왕국의 세금을 낮추더라도 명예 스탯은 올라간다.

"국밥 한 그릇 먹을 수도 없는 명예 따위야 의미가 없지. 명성은 말할 가치가 없고."

국왕으로서 명예가 높으면 자유 기사들이 제 발로 알아서 걸어 들어온다.

위드도 아르펜 왕국의 국왕으로서 현재 명예 스탯이 165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것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거기에 대륙 전체에 확실하게 퍼진 명성으로 인하여 상당히 많은 자유 기사들이 아르펜 왕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북쪽으로 가면 진정한 왕이 있다고 하던데."

"주민들이 말하고 있으니 틀림없겠지."

"먼 거리이지만... 평생 봉사할 수 있는 왕을 만나기 위해서는 가야겠지."

허름한 망토에 가죽옷을 차려입은 자유 기사들이 오늘도 말을 몰아 북부로 오고 있었다.

그들은 간신히 자유 기사가 된 인물들이 대부분으로, 오는 도중에 몬스터에 의해서 죽거나 다른 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눌러앉아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역사서에 나올 만큼 유명한 인물이나, 칼라모르 왕국의 붕괴 이후로 새로운 주군을 찾아서 이동하는 기사도 제법 되었다.

위드의 명예 스탯은 예술이나 힘, 민첩에 비하면 대단히 낮은 편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수치가 그럴 뿐이다.

다른 국가의 국왕들은 명예 따위는 아예 모르고 살기 땨문이다.


ㅡ 세금을 거두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폭군.

ㅡ 어리석고, 수치를 모르는 전쟁광.

ㅡ 기사도를 지키지 않는 파렴치한.

ㅡ 사치스러운 불량배.


지나가는 개들조차도 꼬리를 세우고 왈왈 짖는다는 최악의 평판!

특히 유저 출신의 대영주나 국왕은 워낙에 심한 불명예를 안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반사이익으로 베르사 대륙을 떠도는 자유 기사들이 대거 아르펜 왕국으로 향하는 것이다.

병사들은 징병과 훈련이 쉽게 된다지면 기사들을 채우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자유 기사들의 충성을 받으면 이 부분이 비교적 쉽게 해결되리라.

물론 그들에 대한 위드의 평가는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무슨 기사들이, 월급을 너무 많이 받아 가. 고용 비용이 장난이 아니라니까. 나 혼자 먹고 챙길 돈도 부족한데....."

절대 공짜가 아니었으므로, 기사들이 충성 서약을 하러 몰려와도 나가는 세금에 슬플 뿐.

현재 아르펜 왕국의 기사단은 240명이 약간 넘는 수준이었다.

국왕에 따라서 기사단의 성격도 달라지게 된다. 사치스럽고 방탕하고 세금을 많이 거두는 국왕이람련, 기사단은 그에 맞게 주민들을 무시하며 향락을 즐기는 식이다.

아르펜 왕국의 기사들은 검소하고 문화를 즐길 줄 알았다.

현재는 자진해서 도적 떼와 몬스터들과 싸우면서 치안을 지키는 일을 했다.

아직 다른 왕국과 같은 수준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레벨이 낮기도 해서, 위험한 곳에 투입할 정도는 아니었다.

"꺄아, 정말 승리를 거뒀어요!"

적들을 얼마나 팼는지 너덜너덜해진 장갑을 벗으면서 수르카가 기뻐했다.

"아까는 꼼짝없이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해서 정말 죽는줄 알았는데."

위드는 동료들에게조차 놈들을 유인한다고만 해 놓고 자세한 계획은 알려 주지 않았다.

철저한 보안 유지가 생명이었다기보다는 그냥 말하기 귀찮아서, 그리고 어차피 경험을 해 보면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 놀랐다가는 대재앙에 휩쓸려서 몰살하게 될지도 모를 일.

로뮤나가 핀잔을 주었다.

"그럴 리가 있니. 위드 님의 잔머리가 어떤 수준인데. 난 이 정도의 꼼수가 있을 줄 짐작하고 있었어."

제피도 눈치를 보면서 슬그머니 긍정했다.

"맛있는 요리를 해 주는 날이면 정말 그날 하루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됩니다."

화령도 위드와 던전 사냥을 다니며 비슷한 경우를 많이 겪어 본 편이었다.

"잘 숙성시킨 와인이라도 한 병 개봉해 주는 날에는 쉴 생각을 말아야 돼요.'

방송에서는 두 번 나오기 어려운 희대의 전략이라든가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과감하고 공격적인 전술이라고 평가했지만, 동료들은 다르게 생각했다.

'음흉하게 웃더니 역시 꼼수가 있었어.'

'얍삼함은 정말......'

'어릴 때부터 남다르게 야비했을 것 같다.'

원래 세상이 다 이런 것!

어쨌든 위드의 진짜 목표는 슬레이언 전사 퇴치가 아니라 요새에서 아르닌을 구출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놈들의 병력을 크게 물리쳤으니 남아 있는 적들은 훨씬 적겠군요. 바로 그곳으로 진격하겠습니다."


★★★★★★★★★★★★★★★★★★★★★


투브칼 봉우리에 있는 슬레이언의 요새.

경치 하나만큼은 끝내주는 장소로, 봉우리에 오르게 되면 발아래 하르셀 산악 지역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구름이 자욱하게 깔려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슬레이언 부족은 칼날을 거꾸로 세워 놓은 것 같은 산꼭대기에 돌을 쌓아서 요새를 지었다.

와이번을 타고 높은 하늘에서 보면 어떻게 접근할지가 걱정될 정도로 공격하기 어려운 지형이었다.

위드는 동료들과 조각 생명체들과 더불어 봉우리 근처까지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는 중에도 지형상 매복 공격을 당하기 쉬운 위험한 장소가 몇 군데 더 있었지만, 크게 기가 꺾인 슬레이언 부족은 더 이상 기습을 하지 않았다.

"이제 여기서만 이기면 되겠군."

위드는 유린의 그림을 통해서 요새 부근의 지형을 먼저 확인했다. 봉우리의 경사가 너무 심하고 바닥이 고르지 않아서, 대장장이 스킬로 공성 무기를 제작하더라도 끌고 접근하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침입자들이 이곳까지 왔다."

"성문을 닫아라."

"궁병들을 배치해. 그리고 창고에서 수비 무기들을 가져와서 배치하자."

위드 일행을 확인한 슬레이언 부족의 전사들이 요새의 문을 닫아걸고 농성을 시작!

이들은 약탈하거나 드워프들을 포로로 데리고 있으면서 획득한, 공성전에서의 전용 수비 무기까지 갖추고 있었다.

끓는 기름과 넉넉한 화살, 고정되어 계속 발사가 가능한 쇠뇌, 돌을 떨어뜨릴 수 있는 장치 등!

"여기는 정말 까다로운 난관이 되겠습니다. 함락시킬 만한 장소가 전혀 보이지를 않는데요."

페일이 높은 곳에 올라서 요새를 살펴보고 나서 혀를 내둘렀다.

슬레이언 부족의 요새는 성벽이 허술하지도 않고 잘 정비되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에는 5배는 되는 병력으로 소모전을 펼쳐야 된다.

"연기다!"

설상가상으로 요새에서는 시커먼 연기까지 피워 올렸다.

인간들의 성이 공격을 받으면 사용하는 봉화를 슬레이언 부족도 쓰는 것.

"할 건 다 하는구나."

요새를 공격하면서 시간을 쓰다 보면 하르셀 산악 지역에 흩어져 있는 슬레이언의 마을에서 전사들이 계속 충원된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미리 뚫어 놓은 작은 동굴들을 이용해 요새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혹은 밖으로 나와서 포위를 하고 역공을 펼치는 것도 가능했다.

하르셀 산악 지역이야말로 슬레이언 부족이 살기에 최적화된 장소.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 아르닌을 구출하는 의뢰는, 시간을 끈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페일이 물었다.

"여기서는 어떻게 싸우실 거죠?"

위드라면 어떤 꼼수든 낼 것으로 믿었다.

"먹고 싸우면 되겠죠. 놈들이 많이 줄었으니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위드는 아껴 온 고급 재료들을 꺼내서 요리를 했다.

갓 구운 빵에, 진한 고기 국물을 우려내서 만든 수프는 입맛을 돋우는 용도였다
.
평소에는 보리 빵에 딸기 잼이라도 발라 먹으면서 만족할 수준이었는데, 벌써부터 입안에서 느껴지는 호화로움!

"요리가 조금 시간이 걸릴 테니 천천히 즐겨 주세요."

위드는 요리 도구와 재료를 몽땅 꺼냈다.

고기와 야채, 대부분의 재료들은 아쉽게도 빙룡이 보관하도록 해서 얼린 것이었지만 중급 9레벨 89%가 넘는 숙련도는 맛을 거의 떨어뜨리지 않았다.

요리 스킬이 초급 6레벨만 넘어도 음식을 만드는 도중에 풍기는 냄새가 일품이었다.

직접 양념해 버무린 돼지갈비에, 양의 넓적다리 고기.

"간단히 먹어 주세요. 차릴 게 많으니 벌써부터 배가 부르면 안 됩니다."

농어, 가자미, 연어, 광어, 도미, 참치 회!

당연히 모라타 동쪽 바다에서 잡아 올린 자연산이었다.

비록 얼리기는 했지만.

위드의 칼질에 썰리는 횟감들!

"회가 입안에서 녹아요.'

"앗... 팔딱거리는 신선함이 있는 거 같은데요."

회가 나오자 그릇이 금세 비워졌다.

"너희도 고생 많았다."

조각 생명체들에게는 참치를 큼지막하게 잘라서 줬다.

킹 히드라의 머리 9개는 서로 먹으려고 자기들끼리 싸울 정도였다.

"계속 드세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위드가 다음에 내온 요리는 상어 알과 조개, 생선을 삶아서 특제 소스를 바른 것이었다.

큼지막한 감자와 야채들로 장식하여 그릇에 내온 요리는 침을 줄줄 흐르게 했다.

화령이 대표로 첫 숟가락질을 했다.

"어때요?"

수르카의 물음에 화령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눈을 감았다.

"혀에 닿는 순간 깊은 바다의 맛이 났어. 알에서 막 태어난 생선들이 끝없이 깊고 넓은 바다를 헤엄쳐 가면서 느끼는 그런 아늑한 신비로움...."

와구와구.

"앗, 같이 먹어요!"

위드는 요리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고급 요리라고 해서 사람들의 입맛에 전부 맞는 건 아니었다. 떡볶이나 오뎅이 가장 먹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다.

"맛있는 요리를 할 때가 행복하지!"

위드는 대륙의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온갖 재료들을 다 요리해 보며 맛에 대해 연구했다.

아직 중급 9레벨의 요리 스킬이지만, 혼자 다녔던 시간이 길고 사람들을 대접하는 경우도 적었다.

음식을 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쓰지 않았던 것도 이유였다.

사냥이나 모험을 나가서는 어쩔 수 없이 간단히 먹게 된다. 도시에서 식당을 차리고 다양한 재료를 공급받지 않는다면, 요리를 전문적으로 하긴 힘들다.

그래도 육지와 바다, 금역까지도 오가면서 쌓아 온 맛의 깊이는 상당한 편에 속했다.

"여기 곁들여서 마실 만한 와인과 브랜디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꺄아, 정말 기다렸던 술이에요. 조금만 마실게요."

회무침, 굴, 복어튀김에, 전통적인 야식으로 보쌈, 족발까지 나왔다.

너무나도 행복하게 먹던 와이번들의 얼굴이 어느 순간 어두워졌다.

누렁이는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고기 국물에 삶은 야채를 삼키고 있었다.

"음머어어어, 아무래도 이게 우리가 먹는 마지막 음식인 것 같다."

"누가 될지 몰라도... 배부르게 먹고 죽자."

최후의 만찬!

금인이는 구석으로 가서 조개를 까먹으며 서럽게 울었다.

"주인, 그래도 지금까지 같이 다녀서 행복했다."

위드에게는 그럴 의도가 조금도 없는데, 어디까지나 조각 생명체들의 과민 반응이었다.

위드가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그동안 너무 야단만 쳤지. 가끔은 애들한테 먹을 것도 해 주고 그래야 되겠군. 이렇게 감동하고 좋아할 줄은 몰랐어."

"크흐흐흐흑."

조각 생명체들이 흘리는 눈물은 갈수록 많아졌다.

그렇게 거창한 식사를 마치고 나서 위드와 일행, 조각 생명체들의 전투력은 충분히 높아져 있었다.

전투와 이동을 하면서 지쳐 있던 몸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체력이 회복되었다.

중급 요리 스킬 9레벨에서 꺼낼 수 있는 최대한의 효과도 부여되었다. 생명력이 18,284까지 늘어나고, 체력과 지구력이 일시적으로 50% 이상 더 강해진다. 나머지 스탯들도 35 이상 증가!

그렇다고 해도, 늘어난 스탯만 놓고 본다면 전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잘 먹고 싸우다 보면 더 좋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 것.

위드가 봍오 때에는 절대 볼 수 없을 산해진미를 차린 이유는 동료들과 부하들에 대한 고마움의 마음을 나누는 데 있었다.

아르펜 왕국의 건국식은 조촐하게 했지만, 실상 진짜 고마운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 있는 게 아닌가.

조각 생명체들도 지금까지 많은 수고를 했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 성장해 나가야 한다. 동료들에게도 그동안 여러모로 고마운 면이 많았다.

비싼 요리 재료를 가지고 와서 아끼지 않고 쓴 위드의 속 마음이었다.

물론 겉으로는 달랐지만.

"그냥 왠지 요리를 해 보고 싶어서... 재료가 좀 남기도 했고요."

"다음에 음식 재료 남으면 또 해 주실 거죠?"

"안 남을 겁니다."


★★★★★★★★★★★★★★★★★★★★★


베키닌의 3마리 미친 상어!

대양을 누비며 해적질을 하던 그들의 배에 일주일 전에 위드가 나타났다. 유린의 그림 이동술을 통하여 단숨에 온 것이다.

위드는 나타나자마자 널찍한 해적선을 마치 자기 집처럼 거침없이 둘러보았다. 그 과정에서 선실 창고에 정리해 놓은 해산물도 조금 발견했다.

"바다에 있으면 해산물은 쉽게 구해서 질리도록 드시겠네요."

"뭘요. 육지 음식이 그리워서 오히려 고기를 더 자주 먹죠."

"하핫, 회도 매일 먹으면 질리니까요."

위드는 그들의 의견은 듣지도 않았다.

"해산물이 많이 남을 것 같은데......"

"별로 없는데요?"

"내일 와서 가져가겠습니다. 마차 여덟 대 분량 정도 있으면 좋겠군요."

"허어, 여기가 아무리 바다라고 해도 그 많은 해산물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구합니까?"

"어종도 좀 다앙하게 하고, 굴이나 조개도 있었으면 하는데......"

"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참, 요즘엔 현상금 많이 오르셨다는데... 축하드립니다."

"엇, 고맙습니다. 이게 다 열심히 해적질한 덕분 아니겠습니까. 배 1척으로 이만큼 키우기 정말 힘들었습니다. 바다에서 무차별 약탈을 하고 다니는 보람으로 사는 거죠, 뭘."

"악명도 높고 살인자 상태니까, 여러분 만난 어떤 운 좋은 사람은 이득 많이 보겠네요. 왕국에 가서 현상금까지 탈 수 있을 테고요."

"......"

베키닌의 3마리 미친 상어들은 그때 위드가 입꼬기를 올리며 지은 명품 비열한 미소를 잊을 수가 없었다.

웬만한 협박은 다 하고 다닌 그들이었지만, 위드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진짜 존경스러운 나쁜 놈이다. 어떻게 우릴 잊지 않고 와서 등쳐 먹을 생각을 하냐."

"우린 아직도 멀었다니까. 배울 점이 많아."

"나쁜 짓의 세계에도 확실히 수준 차이가 느껴지느군!"

미친 상어의 함대는 낚시와 물질을 할 줄 아는 해적들을 부려서 해산물을 모았다.

간신히 할당량을 채우고 나니 위드와 빙룡이 와서 싹싹 긁어 갔다.

그렇다고 해서 위드가 완전히 공짜로 챙겨 간 건 아니었다.

"여러분과 많이 친하지만, 그냥 가져간다면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강도 짓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죠?"

사실 이건 강도 짓이 맞긴 했다.

"그래도 우리 사이에 돈을 주기도 좀 그렇죠."

"정 주신다면야, 뭐....."

"친한 사람들끼리, 그리고 모험도 같이한 사이에는 돈거래를 하는 게 아닙니다."

"......"

베키닌의 3마리 미친 상어는 주는 돈을 거절할 인간들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줄 마음이 있어야 받을 게 아닌가.

위드가 어떤 짠돌이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제가 가진 재주가 이것밖에 없으니 선수상이나 제작해 드리죠."

적당히 썩은 나무를 골라서 해골 해적의 선수상을 제작!

조각사가 만든 선수상은 바다에서 든든한 부적과도 같았다.

항해 스킬이나 배의 이동속도를 올려 주는 것은 물론이고, 폭풍에도 피해를 덜 받게 해 준다. 해적들의 스킬과 스탯에도 도움이 되었다.

육지에서 만든 조각품이야 가지고 다니기가 버거운 경우가 많지만, 뱃머리에 붙어 있는 조각품은 언제나 그 효과를 볼 수 있기에 항해에 매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헤인트는 다른 의미로 감동했다.

"캬하! 금방이라도 가진 돈 다 내놓으리고 말할 것 같은 조각품입니다."

표정 연구라도 하고 싶어질 정도로 악랄하게 만들어진 해적의 조각품!

사실 그냥 조각품만 하나 덩그러니 깎아 준다면 조금 서운한 감정을 가질 수도 있다. 위드의 인간관계란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만의 하나 나쁜 마음이라도 품게 되면 다음에 또 필요한 물품을 얻어야 할 때 곤란할 것이 아닌가.

"조각품을 더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위드는 다른 배에도 선수상을 더 제작해 주었다.

이른바 1+1 상품!

이번에는 바다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돌고래 선수상을 깎아서 만들어 주었다.

배 주변에 돌고래들이 자주 출몰하게 하여 행운을 높이고 항해 속도를 늘려 주는 선수상!

"저희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앞으로 더 열심히 해적질하겠습니다."

"만족하셨다니 다행이군요. 그럼....."

위드는 입가에 잔뜩 썩은 미소를 지은 채 떠났다.

그 미소가 남긴 잔잔한 여윤은 베키닌의 3마리 미친 상어의 해적선에 오래오래 머물렀다.


3) 투브칼 봉우리


위드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슬레이언의 마을은 하르셀 산악 지역 전체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 테고 번식률도 굉장히 빠를 것이기에 예전 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시간문제.

"오늘 내로 싸워야 될 것 같으니 아쉽게 되었군."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을 쓴다면 커다란 타격을 주고 시작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대재앙은 하루에 한 번밖에 일으키지 못한다는 제약이 있었다.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면 전사들이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설혹 대재앙을 일으키더라도 아르닌이 몰살하면 안 되니 그냥 지금 싸워야 되겠어."

구출 계획에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을 쓴다는 건 그냥 몽땅 파묻자는 이야기밖에 안 되는 것.

위드는 다시 혼돈의 대전사 쿠비취로 조각 변신술을 사용했다.

"여기서는 빠른 것이 가장 중요하겠군. 모두 전투준비!"

동료들과 조각 생명체들은 큰 기대를 했다.

"이번엔 어떤 전략으로 상대를 할까요?"

"슬레이언의 습성을 역이용한다거나, 혹은 지형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무언가를 쓸 것 같죠?"

"상상도 못 하던 그런 전술을 성공적으로 실행시킬 것 같아요."

이리엔, 페일, 벨로트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기대하며 잔뜩 긴장하여 지켜보았다.

조각 생명체들은 어떠한 명령이라도 따를 수 있는 준비를 하였다.

잘 먹여 놓아서 지휘의 효과가 더 발휘될 수 있는 상태였다.

"음머어어어어, 살아서 만나자."

"골골골, 모두 지금까지 같이 있어서 행복했다."

"너희가 죽기 전에 와삼이, 나부터 먼저 죽을 것이다."

와삼이의 다정한 말에, 와이번 중에서 첫째인 와일이가 쏘아붙였다.

"그래, 너부터 죽어라."

"주인 혼자 태우고 다니고... 등 평평하다고 만날 잘난 척만한다."

"끄우우, 그게 아니다.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

"배가 불렀다!"

"아까 타조 알 요리도 제일 많이 먹었다."

"딱 1개 더 먹었을 뿐이다!"

"내가 먹고 싶었다!"

이 와중에도 벌어지는 시기와 질투!

지골라스에서 생명을 부여받은 생명체들은 아직도 친밀도가 낮아서인지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이 순간도 방송국들을 통하여 생중계가 이루어졌다.

수천만 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으며, 로열 로드의 선술집 등에서도 맥주와 음식을 시켜 놓고 기다렸다.

시장과 광장에서도, 장사보다는 위드의 모험을 지켜보고 있을 정도였다.

"자, 시작해 볼까."

위드는 간당한 명령을 내렸다.

"얘들아, 공격이다. 가자!"

그가 선택한 방법은 정면공격.

칼날 같은 경사를 용케 기어 올라간다 해도 그 너머에는 성벽까지 있으니 정말 무모해 보이는 방법!

하지만 위드가 먼저 요새로 달려 나가자 조각 생명체들도 뒤질세라 따라왔다. 누렁이, 금인이, 불의 거인, 백호, 기사 세빌, 여전사 게르니카, 여검사 빈덱스, 하이 엘프 엘턴 등이 모두 같이 달렸다.

비행 생명체들은 하늘로 날아오르며 지상에 대한 공격 개시를 준비했다.

투브칼 봉우리의 요새에서는 사정거리에 들어오는 대로 화살을 쏘았다.

"블링크!"

위드는 순간적으로 성문 앞으로 텔레포트를 했다.

"지옥의 겁화!"

레드 스타에서 생성된 불길이 검 전체를 덮었다.

-공격력이 최대 329%까지 강화됩니다.

위드는 있는 힘껏 성문을 때렸다.

꽈아아아앙!

천둥이 치는 소리와 함께 성문 격파!

-투브칼 요새의 성문을 파괴하였습니다.

투지 스탯이 1 오릅니다.

성문이 깨지자 문 안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던 슬레이언 전사들이 보였다.

"불의 인간이다."

"적들의 대장을 없애야 한다."

화살을 쏘고 창을 앞세우고 달려 나왔지만, 위드는 상대해 주지 않고 스킬을 시전했다.

"블링크!"

그가 새로 나타난 장소는 요새 주택의 건물 위!

"이곳에는 없겠지."

위드는 레드 스타로 목조건물을 베었다. 그러자 건물 전체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게 되었다.

"저곳이다! 저기에서 불을 질렀다."

"블링크!"

슬레이언 전사들을 피하여 이번에는 요새의 중심부를 지나쳐서 뒤쪽까지 텔레포트를 시전!

"크와아아아아아!"

"놈들을 몽땅 없애라."

"죽기 위해서 들어온 놈들을 죽여 줘라!"

위드는 성문 쪽에서 전투의 소음을 들을 수 있었다.

조각 생명체들이나 동료들이 다가오는 것을 슬레이언 전사들이 막고 있으리라.

성벽이 뒤흔들리는 소리와 진동도 발생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데스웜이 성벽을 붕괴시키기 위하여 땅속에서 부딪쳤기 때문일 것이다.

부서진 성문과 두꺼운 성벽을 사이에 두고 양측 간에 공방전이 매우 치열하게 진행될 터.

몇몇 지나치게 덩치 큰 조각 생명체들이야 당연히 성문을 비집고 들어올 수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몇 겹의 방어선을 치고 지키고 있는 적들을 넘어오기란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적당히 하라고 했으니 잘 싸우겠지."

위드는 금인이에게 지휘를 맡겨 놓았다. 적당히 소심하고 눈치 빠른 금인이에게 시켜 놓았으니 알아서 잘 싸울 것이다.

효율적인 움직임은 아니더라도, 애초에 위드는 요새를 함락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저 위드 혼자 요새로 잠입하여 염탐하고 아르닌을 구출하는 동안 시간만 벌어 주면 된다.

"조각 생명체들은 보통 자신들의 목숨을 끔찍이 아끼기 때문에 잘 살 수 있을 거야. 겁까지 먹었으니 더 적당히 하겠지."

믿을 수 있는 사제 이리엔이 치료도 해 줄 테니 마음이 놓였다.

"꺼어어억!"

실제로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엉금엉금 네발로 기는 대형 악어 나일이 같은 경우에는 아직 성문 근처에 도착도 하지 못했다.

나일이의 전투력이 최대로 발휘되는 장소는 강가나 늪.

무거운 꼬리와 짧은 다리를 가지고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는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전투가 벌어지면 순간적으로 이동속도가 말을 능가할 정도로 빨라지기도 하지만 오래 유지되는 건 아니었다.

꼬리를 흔들며 네발로 엉기적거리며 걷는 모습이 귀엽다면서 화령과 벨로트는 정말 좋아했다.

"위드 님, 나일이도 꼭 싸워야 돼요? 제가 나일이 몫까지 해낼 테니까 얘는 좀 빼 주시면 안 돼요?"

"어머, 여기 배 쪽의 무늬 좀 봐요, 언니!"

오죽하면 나일이가 전투에 참가하는 것도 반대할 정도였다.

그 탐스럽고 부드러운 가죽에 흙먼지라도 달라붙거나 상처라도 생기면 어쩐단 말인가!

"시간이 돈이야. 빨리 해치우고 끝내야지!"

요새는 높은 봉우리 위에 지어진 만큼 그리 넓은 것은 아니었다.

건물들도 대부분 1, 2층이라서 수색할 범위가 좁았다.

지골라스에서 생명을 부여한 조각 생명체인 시골쥐도 성벽 밑의 구멍을 통해 들어와서 요새를 돌아다니며 아르닌을 찾고 있었다.

슬레이언 전사들이 삼엄하게 지킬 때는 무리였지만, 지금은 시골쥐가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 있는 환경이었다.

"저놈을 죽여라!"

문제는 눈에 잘 띄는 레드 스타를 들고 있는 위드를 보고 슬레이언 전사들이 마구 모여든다는 점.

공성전이 벌어지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대장에게 맹렬한 적개심을 가지고 죽이려고 든다.

위드가 요새 안으로 들어왔으니 전사들은 더욱 살려 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최소한 300~400명의 전사들이 위드를 쫓아왔다.

"이곳에는 없군. 블링크!"

위드는 눈에 보이는 대로 적의 전사들을 베고 아르닌을 찾기 위한 수색을 계속했다.

건물들을 일일이 다 들어가 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시골쥐도 건물마다 들어가 보며 찾고 있었지만 아직 소식이 없었다.

"이곳까지 오다니, 용서할 수 없다. 캬핫!"

높은 곳에서 위드를 향하여 뛰어내리는 슬레이언 전사.

위드는 검으로 적의 창을 받아 주었다. 레드 스타의 불길이 적에게 옮겨붙었따.

"치에에에엣!"

고통스러워하는 적을 연속으로 베어 버리고 전리품을 습득!

위드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혼돈의 전사로서 레드 스타의 힘을 활용하더라도, 적의 요새 한가운데에서 수백 마리에게 둘러싸여 싸울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블링크를 사용하는 것도 마나가 제법 소모되니 무한정 남발할 수도 없었다.

"놈이 이쪽으로 온다."

"막아라. 끼야아아아앗!"

위드는 창을 든 전사들을 향해 정면으로 달렸다.

슈익!

창이 머리카락을 스치며 지나가자 레드 스타를 올리치며 베었다.

그다음으로는 옆구리를 베면서 통과.

슬레이언 전사는 불길에 휩싸여서 사망하고, 다음의 적과 마주했다.

레드 스타는 다루어 본 경험이 없는 무기였지만, 어떤 부위를 공격했을 때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생명력의 감소 정도에 따라 적당한 부위를 연결하여 연속 공격을 하여 죽인다.

필요한 만큼 때린 이후에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마무리 공격을 퍼붓고, 다음 적을 찾는다.

위드가 집단 전투를 하거나 여러 마리를 이어서 사냥해야 하는 순간에 효율이 높은 이유였다.

노가다에서도 효율이 중요했는데, 나중에 달인의 경지에 오르면 그냥 모든 일이 맞추어진 것처럼 척척 이루어진다.

위드는 검을 다루는 데 있어서 몸이 알아서 반응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전리품을 챙기는 것만큼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신속함과 정확함이 있었다.

어느 전장을 가더라도 미처 놔두고 지나치는 아이템은 없었으니까.

"헤라임 검술!"

위드는 슬레이언 전사들 5마리를 그림 같은 연속 공격으로 제압하며 스쳐 지나갔다.

불덩어리에 휩쌍여서 사망한 그들의 전리품은 이미 확실하게 챙긴 상태!

빨리 해치우기 위해서 몸으로 두 대를 맞아 주었기에 위드의 생명력도 뚝 떨어져 있었다.

헬리움 갑옷이나 혹시나 몰라서 미리 만들어 둔 다른 갑옷도 여전히 착용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방어력이 꽤 낮아서 생명력의 피해를 많이 입은 것이다.

레드 스타의 힘으로 생명력이 채워지고 있기에 일부러 맞으면서 버틴 것.

"이곳에도 없군."

투브칼 봉우리에 있는 요새는 슬레이언 전사들의 천국이었다.

"그르륵, 이쪽에서 비명이 들렸다!"

"놈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일부는 성벽을 수비하러 가고, 나머지는 저놈을 없애자."

위드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보고되었다.

그나마 암벽 협곡이 붕괴한 전투에서 슬레이언 전사들이 몰살을 당해 그 여파로 이곳에서 수비를 하는 전사들도 평소 보다는 많이 줄었기에, 어렵지만 건물 수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투에 참여하지 않아서 멀쩡한 레벨 400대의 엘리트 전사들은 골칫덩이!

위드는 엘리트 전사들이 성벽으로 달려가는 것도 막아댜 되었기에 가끔은 놈들을 일부러 도발해서 끌고 다니기도 했다.

"못생긴 놈들. 외모라면 적어도 나 정도는 되어야지."

"저놈 죽여!"

"블링크!"

요새에서 적들이 없는 장소를 찾아서 이동하며, 수색도 하고, 그러면서 전력 질주를 하며 싸우기도 해야 되었기에 바쁘기 짝이 없었다.

"불 인간이 이 주변에 있을 것이다."

"여기다!"

마나는 한정되어 있는데 이 넓은 요새는 수색해야 되고 적들은 설쳐 대고 있다.

하지만 어서 빨리 아르닌을 찾아내서 보호하며 구출하지 못한다면 퇴각을 해야 될 터!

-시골쥐, 뭔가 찾아낸 건 없냐.

위드는 싸우는 도중에 귓속말을 보냈다.

-찍찍!

시골쥐도 건물들 사이를 마구 헤집고 다니고 있었음에도 발견하지를 못했다.

이곳에 있는 건물들은 상당히 허술한 편이라 문틈이나 구멍으로 들어가기가 쉬웠다.

하지만 어디에도 아르닌은 없었다.

"차례차례 요새 전체를 수색하기란 불가능한데......"

동료들과 조각 생명체들이 시간을 끌어 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와이번들은 요새에서 쏜살같이 아래로 내려와 슬레이언 전사들에게 공격을 퍼부으며 시선을 끌어가는 식으로 위드가 수색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해 주었지만, 그게 언제까지고 가능할 리도 없다.

"아무래도 여기는 아닌 것 같은데....."

위드는 미심쩍은 창고나 외딴 건물들 위주로 살펴보았지만 포로들을 감금해 놓은 장소는 찾을 수가 없었다.

"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돼. 무턱대고 급하게 찾으려고만 하면 서두르느라 될 일도 안 되지. 블링크!"

위드는 요새의 가장 높은 탑으로 올라갔다.

와이번들이 주변에서 맴돌며 지상으로 강하하여 전사들을 공격하고, 성벽 주변에서는 동료들과 조각 생명체, 슬레이언 부족 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페일과 로뮤나의 활약이 돋보였고, 한쪽에서는 대규모 전사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화령이 끊임없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가 춤을 멈추는 순간 전사들의 공격이 더욱 거세질 테니 나름 필사적이었다.

위드도 못지않게 그들도 바쁘고 정신없는 전투를 하는 중.

"놈이 저 위로 올라갔다."

"다시 내려올지도 모른다. 경계하라."

"쫓아가서 죽여!"

"창을 던져라."

위드에게로 창과 화살도 날아왔다.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모자란 이때.

"내가 아르닌을 부려 먹는다면 어떻게 할까. 어차피 죽거나 살거나 내가 알 바는 아니지. 평생 일만 시키면서 도망도 못 치게 가두어 두려면....."

완벽한 노동 착취 업자로서의 사고방식.

당했던 사람이 더한다고, 위드에게는 아르닌을 구출한 후에 철저히 노예로 부려 먹이 위해 쓸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했다.

"탈출은 꿈도 못 꿀 정도로 가두어 놓아야지. 일은 온종일 시키고, 먹을 것은 최소한으로만 주면 돼. 나처럼 누가 구해 주러 올 수 있으니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을 만들어 놔야지."

요새의 건물들은 감옥으로 하기에는 문이나 창문이 있어서 적합하지 않다.

한 2~3년 부려 먹기에는 대충 쓸 만하겠지만, 100년 이상 감금시켜 놓고 일을 시키려면 어딘가 안심 할 수 없는 것이다.

"밝은 햇빛이나 신선한 공기 같은 건 없어도 될 거야. 괜히 도망칠 수도 있으니 슬레이언 부족의 특성을 이용해서 땅속에 가두어 놓는다면...."

요새의 지하!

그곳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게 가두어 둘 수 있는 장소이리라.

지금까지는 인간의 사고방식으로만 생각하여 지상 건물만 뒤졌지만, 잘 생각해 보니 슬레이언 부족은 지하 생활도 많이 한다.

위드는 시골쥐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여기 땅속에 동굴 같은 거 있지?

-찍찍. 있다.

-입구의 위치는?

-두 군데다. 전사들의 숙소 앞과, 중앙의 큰 건물 옆이다.

그새 슬레이언 전사들이 위드가 있는 탑 위에 거의 도착했다.

위드의 생명력은 벌써 46% 정도나 줄었다. 레드 스타로 생명력과 마나가 빨리 보충된다고 하더라도 전투가 길어지게 되면 위험할 수 있는 일.

"블링크!"

위드는 중앙의 큰 건물 근처로 이동했다.


★★★★★★★★★★★★★★★★★★★★★


페일은 요새의 건물들이 불에 타고 때로는 화염이 치솟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정말 용기 하나만큼은......"

요새로 혼자 들어가는 그런 계획이었다니!

좋은 말로 용기지, 구출을 실패하고 죽는다면 이런 객기도 없다.

공성전을 통해서 험한 투브칼 봉우리의 꼭대기에 있는 요새를 함락시키기란 정말 어려운 것이 사실이긴 하다.

위드는 유린의 그림을 보고, 슬레이언 전사들과 싸워 보고 나서 이미 결정을 다 해 두었던 것이다.

"혼돈의 전사가 쓰는 블링크까지 계획에 들어 있었다면 역시 위드 님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

그렇지만 정말 잘 싸워야만 아르닌을 구해서 돌아올 수 있으리라.

페일은 그동안 위드가 불가사의한 성공을 이루어 내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만큼은 정말 어려울 것 같았다.

"어쨌든 우리가 할 일은, 최대한 많은 놈들이 성벽으로 모이게 하는 겁니다. 우리가 저들을 붙잡아 놔야 합니다. 공격을 계속하면서도 체력과 마나를 아끼세요."

페일은 성벽 위로 머리가 보이는 적 전사들에게 화살을 날렸다.

성벽을 두들기거나 위에 올라가서 싸우고 있는 조각 생명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

제피와 수르카도 성벽 위를 점령했다. 조각 생명체 중에서 게르니카, 빈덱스, 세빌과 같이 싸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페일의 눈에 공중에서 적을 노리고 있는 와이번이 보였다.

"와삼아, 잠깐 이쪽으로 와 줘!"

와삼이가 공중을 선회하더니 곧 그에게로 날아왔다.

"저도 같이 갈게요."

페일은 하이 엘프 엘틴과 같이 와삼이의 등에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궁수로서 높은 위치에 있으면 공격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지고 공격력도 강해진다.

와입언을 타고 공중에서 아래를 보니 더더욱 가관이었다.

킹 히드라는 9개의 머리를 움직이면서 전사들의 창과 화살에 맞서고 있었고, 데스웜은 땅을 뒤흔들어서 몰려 있는 적들을 밀쳐 내고 잡아먹었다.

백호는 켈베로스와 쌍으로 달리기 경쟁이라도 하듯이 성벽 위에서 거침없이 질주하며 적들을 물어뜯고 있다.

악어인 나일이도 느리게 기어가다가 적을 포착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날렵한 움직임으로 한입에 삼키곤 했다.

졸린 듯 눈을 게슴츠레 뜬 슬레이언 전사들을 잡아먹는 대형 악어!

혹시나 가죽에 상처 날까, 위드가 덧입혀 준 좋은 가죽을 몸에 두르고 있어서 창에 맞아도 피해조차 거의 없었다.

조각 생명체들 1마리 1마리의 레벨은 상당히 높다.

그렇기에 놀라운 활약을 하면서 슬레이언 전사들과 싸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정말 꼭 이런 곳에 와 보고 싶었는데. 위드 님을 따라다니면 애초에 시시한 장소에서 싸울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니까."

조각품을 만들 때 참여하면 최소한 피라미드, 그리고 전투에서는 불사의 군단 정도의 스케일!

페일은 요새를 내려다보며 실컷 화살을 날려 주었다. 숨쉴틈도 없이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서

적을 조준해서 쏘는 궁수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


키르는 모라타에서 시작한 초보자였다.

"훗, 남들이 다 추천해서 오기는 했지만, 이곳이라고 해서 별거 있겠어?"

학교에서나 로열 로드의 정보 게시판에서나 사람들은 전부 모라타가 초보자로 시작하는 도시로는 최고라고 했다.

심지어는 그의 부모님들도 모라타에 있었다.

"아들아, 로열 로드를 해 보는 것이 어떻겠니."

"왜 해야 되는데요?"

그의 아버지는 크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네가 친구가 없잖니."

"친구는 세상 사는 데 필요하지 않아요."

"모험을 하면서 여자 친구를 만나는 경우도 많단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면서요."

"...그래도 로열 로드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단다. 얼마나 삭막하고 무미건조한 도시 생활이더냐. 로열 로드라는 장소를 통해서 우리는 현대인으로서 느낄 수 없는 개척 정신이나 정신적인 휴식을 얻을 수 있지. 어른들을 위한 휴양지이며 놀이터이기도 하고. 회사에서도 로열 로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인맥을 쌓는 데 도움이 된단다."

"전 공무원 시험 합격해서 철 밥통 될 건데요."

"......"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아들.

하지만 키르도 로열 로드에 대해서 호기심을 느끼고는 있었기 때문에 결국 시작하게 되었다.

하루를 고민하여 모라타에서 시작하게 되었지만 게시판에서 본 내용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심쩍어했다.

"요즘 사람 말 함부로 믿으면 안 되니까."

키르는 일단 모라타의 도시 구경부터 하기로 했다.

중앙 광장에 서 있는 경비병들이 그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막 모험을 시작한 인간이여, 이곳은 넓고 복잡하니 멀리까지는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거네. 광장에서 간단한 심부름이라도 하고 도시 지도를 사고 나서 다니는 편이 나을 거야."

키르는 그 말을 무시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시장, 교역소나 상점마다 사람들이 미어터질 정도였다.

활당하게 웃으면서 거래하는 상인들의 모습.

몇몇 유저들은 뱃살이 두둑하게 나와 있었는데, 이것은 상인으로서 레벨이 높다는 증거였다.

"물품들을 정말 많이 사고파는 걸 보니 이곳이 번화가인가 보군. 꽤 큰 도시인데....."

영락없이 관광객으로 보이는 유저들이 모라타의 명소들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키르도 그들을 따라갔다.

"도시가 정말 아름답다지만, 그냥 다 허황된 거겠지!"

전부 과장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하고 관광객들을 따라서 언덕을 올라가 보았다.

"카아, 죽인다!"

언덕에서 도시를 보니 멋진 건축물들이 질서 정연하게 지어져 있었다.

예술 회관과 대성당, 대도서관, 여신상, 흑색 거성 그리고 유럽의 고풍스러운 건축양식을 따라서 다양하게 지어진 건물들.

건축가들이 많이 활약하고 있었기에 비슷하게 지어진 건물이 없다.

높은 곳에서 보면 도시의 골목길까지도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성문 너머의 헤스티아의 대장간, 탐구자의 탑을 비롯하여 그 너머의 풍경들도 아름다워 보였다.

어서 빨리 가 보고 싶은 정도로 매혹적인 도시의 풍경!

일찍이 키르가 본 것 중에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답답하게 막혀 있는 빌딩 숲과 매연의 냄새밖에 맡을 수 없는 현실과는 달리 이곳은 쾌활함과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조, 조금은 볼만하긴 하군. 그렇지만 아직 감탄한 건 아니야."

키르는 화가의 언덕을 내려왔다.

슬쩍 둘러보니 화가들이 그리고 있는 그림도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몬스터, 도시의 풍경, 오크와 엘프들을 거느리고 전투를 하는 어느 흉악한 오크의 모습.

그런 그림을 관광객들이나 유저들이 비싼 돈을 지불하며 구입하고 있었다.

"아무튼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쓸데없는 데 돈을 쓴다니까."

키르는 언덕을 내려와서 빌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요리사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하는 맛의 거리.

대륙의 진미들을 맛볼 수 있는 장소로, 건물들도 저마다 으리으리했다.

"여긴 나중에 꼭 와 봐야 되겠군. 맛있는 걸 먹는 건 좋으니까. 하지만 뭐, 맛이 얼마나 있기야 하겠어."

키르는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판잣집이 몰려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사실 그가 게시판에서 본 내용은 이런 것들만이 아니었다.

낮은 세금이나 조각상들의 혜택, 여러 시설물들, 다양한 퀘스트!

이것들은 나중에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모라타의 자랑거리는 이것들만은 아니었다.

-프레야의 여사제들이 있어서 예쁜 여자들이 많습니다.

-외모만 놓고 보면 모라타야말로... 후후후.

예쁜 여자는 보물처럼 그냥 처다보고만 있어도 좋다.

게시판에서 본 그 이야기가 바로 의심을 하면서도 모라타에서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지금까지 거리에서 본 바로는 그냥... 약간 예쁘긴 한 것 같군."

키르는 크게 속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판자촌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평범한 초보자용 복장을 한 여자가 밭에 씨감자를 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판잣집마다 땅이 조금씩 딸려 있어서 사람들은 허기를 때울 수 있는 감자나 고구마를 많이 심는 편이었다.

"뭐, 이런 곳에서 예쁜 여자를 만날 수 있을 리가....."

키르는 길을 잘 몰랐기에 더 위로 올라가더라도 별게 없는 막힌 곳으로 가고있었다.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곳이었ㅇ기 때문에 밭을 갈고 있던 그녀, 서윤도 땀을 흘려서 가면을 잠시 벗어 두고 있는 상태였다.

"커헉!"

키르는 서윤의 옆모습을 보고 심장이 멎는 줄만 알았다.

아름다움에 대한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여신급 외모!

"우워어어......"

키르는 말도 잇지 못했다.

서윤은 감자를 심고 나서 우리에 있는 송아지에게 여물을 먹였다.

그녀도 위드가 다스리는 왕국의 주민이 되어서 판잣집 생활을 해 보고 있는 것이었다.

"모, 모라타가 이런 곳이었구나."


★★★★★★★★★★★★★★★★★★★★★


『 던전, 투브칼 요새의 지하의 최초 발견자가 되셨습니다.

혜택 : 명성 2,610 증가.
일주일간 경험치, 아이템 드랍률 2배.

첫 번째 사냥에서 해당 몬스터에게 나올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물건 아이템이 떨어집니다. 』


지하로 뚫린 구멍은 위드가 예상한 대로 요새 내부의 중요한 시설들이 있는 곳이 맞았다.

그리고 슬레이언 부족의 엘리트 전사 10마리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이곳을 침범하다니, 잡아먹힐 자리를 제 발로 찾아왔구나!"

같은 엘리트 전사라도 요새에 있는 놈들보다 차고 있는 장비도 훨씬 좋은 걸로 보아 레벨도 그만큼 높을 것이다.

위드는 그들을 살펴보고 나서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10마리나 되다니 많기도 하군. 블링크!"

입구를 방어하는 엘리트 전사들을 단거리 텔레포트로 넘어가서 앞으로 달렸다.

"구에엑!"

"끼야아앗!"

뒤쪽에서 엘리트 전사들이 괴성을 지르면서 쫓아왔다.

그들이 던지는 창이 위드를 스쳐 지나가거나, 천장과 바닥에 꽂혔다.

이 긴박감과 스릴!

"잡히면 죽겠군!"

위드는 죽을힘을 다해서 달렸다.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바로 한 방향을 정해서 달려야 했지만 여기저기를 쳐다보며 가능한 많은 것을 살피려고 했다.

아르닌이 감금되어 있는 감옥을 찾아낼 수 있다면 더 바랄것이 없었다.

닫혀 있는 문이 발견되면 잽싸게 열어 보기도 했다.

"불의 인간이 쳐들어왔다."

"죽여라!"

방에서는 엉뚱한 슬레이언의 엘리트 전사들만 계속 발견되었다. 그들도 위드의 뒤를 줄지어서 쫓아왔다.

100마리가 넘었을 때에는 주변에서 온통 적들이 모여들고 있었기에 어떤 수를 쓰더라도 싸워서 이기기가 불가능한 상황!

"이렇게 된 이상 2단계 작전이다."

1단계는 적들에게서 도망치기.

2단계는 더 빨리 도망치기.

위드는 상체를 굽혀 네발로 뛰기 시작했다.

무려 60%나 빨라지는 이동 스킬.

모양새가 조금 빠지기는 해도, 살아남는 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는 없다.

"잡히면....."

"아이들의 먹이로 주자."

"구워 줘야 되나?"

"이미 구워진 거 같은데. 그냥 주자.'

슬레이언 전사들은 위드를 어떻게 요리해 먹을지 의논을 하면서 쫓아오고 있었다.

사실 이 던전은 그들의 집이나 다름없기에 그들에게는 아주 익숙하였고, 빠져나갈 곳만 막으면 위드는 꼼짝없이 갇힌 셈이 된다.

"침입자가 이쪽으로 온다!"

이제 앞에서도 전사들이 나타났다.

위드는 다른 방향으로 길을 바꾸었다. 전사들이 여기저기서 잡으려고 덤벼들고 있었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일단 무조건 깊은 곳으로... 그리고 뭐라도 있을 것 같은 장소를 택해야겠군."

위드는 앞을 보면서 갈림길마다 으슥한 장소를 선택하며 계속 뛰어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길의 중간에 빠져나갈 곳도 없는 장소에서 엘리트 전사 둘이 창을 들고 떡하니 막고 있었다.

"죽어랏!"

뒤에서 쫓아오는 적들이 많아서 멈출 수가 없었고, 블링크를 쓰려면 네발 뛰기 스킬을 먼저 취소하여야 했다.

"눈 질끈 감기!"

-창에 어깨를 찔리셨습니다.
생명력이 크게 감소합니다.

-창이 머리를 쳤습니다.
치명적인 일격!
혼돈 상태에 빠져듭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엘리트 전사들은 지나쳤지만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지고 흔들리고 있었다.

혼란 상황에서는 시야가 엉망이 되어서 길을 찾기가 어렵다.

위드는 벽에 부딪치면서도 뚫려 있는 길을 용케 찾아서 네발로 달려갔다.

여기서 멈춘다면 정말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해야만 했으니까!

'혼돈 상태가 풀리려면 최소 13초.....'

추격하는 엘리트 전사들은 그 틈을 주지 않았다.

"저놈이 저기에 가고 있다!"

전사들이 레벨이 높은 만큼, 혼란 상황에 빠져서 벽에 부딪치면서 나아가는 위드를 아주 빨리 쫓아왔다.

이곳은 그들의 서식지인 만큼 지름길로 먼저 와서 앞을 막기도 했다.

결국 네발 뛰기를 그만두고 블링크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어려울 때는 3단계 작전을 썼다.

도망쳐도 안 되고, 머리를 굴려도 안 된다면 몸으로 때우기!

"눈 질끈 감기!"

퍼퍼퍽!

"눈 질끈 감기!"

빠박!

"눈 질끈 감기! 에라 죽여라, 죽여!"

슬레이언 전사들을 밀치고 연속 돌파!

방어 스킬에도 불구하고 위드의 생명력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었다.

레드 스타의 힘을 활용하여 싸우고 싶은 충동도 들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다.

좁은 통로를 이용하여 오래 버티더라도 결국 엘리트 전사들은 계속 모여들게 될 테고, 지상에서 전투를 하는 조각 생명체와 동료들도 언제까지나 싸울 수는 없다.

위드에게 제일 부족한 것은 시간이었다.

"식당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 할 때는 그렇게도 안 가던 시간은 지금은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덜컹.

"엇... 침입자다. 죽여라!"

위드가 문을 열어 보는 곳마다 슬레이언 부족의 경비병들과 전사들만 나왔다.

"야단났군. 생명력도 간당간당하고 마나도 얼마 없는데....."

요새로 들어온 뒤에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고 강제로 전사들을 돌파하다 보니 생명력과 마나가 회복될 시간이 모자랐다.


4) 도시의 석상


"이곳에서 놈을 잡아먹자!"

위드가 도망치니 전사들의 사기는 더욱 올라갔다.

위드는 엘리트 전사들이 길을 막고 있으면 웬만하면 뚫고 지나치거나, 4명 이상이면 어쩔 수 없이 블링크를 시전했다.

"난 질기고 맛도 없을 거야! 탄 음식이 건강에도 얼마나 안 좋은데."

"맛있는 냄새가 난다."

"저쪽이다!"

몬스터에게 몰려서 도망 다니는 것은 위드에게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답답한 지하에서 감당할 수도 없는 처지.

-강철 화살이 옆구리에 적중되었습니다.

위드는 도망치면서도 화살 공격과 창에 의해서 부상을 계속 입었다.

혼돈의 전사로서 방어구도 착용하고 있지 않아서 생명력이 뚝뚝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붕대도 감지 못한다.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벽에 부딪치고 부상을 당하다 보니 생명력이 10% 이하까지 감소했다.

안정되게 사냥을 할 때는 맷집을 올리기 위해 그보다 훨씬 낮은 생명력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극심하게 위험한 상태였다.

"이제는 진짜 피해야 되겠군!"

위드는 뒤쫓아 오는 슬레이언 전사들과의 거리를 가늠했다. 그리고 스킬을 시전했다.

"블링크!"

이미 지나쳐 온 방 한 군데로 텔레포트!

곧바로 방구석에 웅ㅇ크리고 숨어서 슬레이언 전사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저쪽으로 갔을 거다."

"저곳은 우리의 부족장님께서 계신 장소. 무조건 막아!"

위드는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지고 나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다행이군. 어떻게든 저쪽으로 가지 말아야 되겠어."

체감상 땅속 깊은 곳까지 상당히 많이 내려온 것 같았다.

몸에 박혀 있는 강철 화살을 빼내고, 상처 부위에는 약초를 발랐다.

-약초가 불에 타 버리기 때문에 효능의 37%만 발휘됩니다.

"아까운 내 약초. 상점에 팔면 이게 얼마짜리인데....."

간단한 치료를 마치고 나니 레드 스타로 인하여 생명력과 마나가 다시 빠르게 회복되었다.

생명력이 23%, 마나가 31%쯤 되었을 때 위드는 방구석에서 일어났다.

"슬슬 나가 봐도 되겠군."

타다다다닥!

"놈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저쪽으로 가 보자!"

그 순간 슬레이언 전사들의 발소리와 고함이 들리자 자연스럽게 방구석으로 숨는 위드!

"생명력을 절반 정도는 회복해야 되겠어."

위드는 레드 스타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검이지만 제대로 구경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검신을 자세히 보니 붉은색의 마법진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새겨져 있다.

대단한 공격 마법이 봉인되어 있는 마법검 이었다.

"나중에 레벨이 올라서 이 검의 힘을 끝까지 끌어내서 쓸수 있다면 좋을 텐데...."

위드는 검에 대해 욕심이 났다.

레드 스타를 써 본 자라면 누구라도 욕심을 낼 것이다. 화염 계열의 공격 마법 사용, 부가 데미지로 인하여 전투력이 몇 배로 늘어난 것 같은 효과를 주었으니까.

단지 이 검 역시 소소한 부작용이 있다면, 드래곤에게 걸릴 수 있다는 부분.

"마음을 편하게 먹자. 계속 걸리지 않고 몰래 실컷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위드는 생명력을 46%까지 회복하고 통로로 나가기로 했다.

지금은 시간이 현금이었기 때문에 위험하더라도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다음 작전으로 넘어가야지."

위드는 품에서 조각품을 꺼냈다.

그것은 미리 깎아 놓은 슬레이언 엘리트 전사의 조각품!

턱이 길게 늘어진 그들의 외모를 거의 똑같이 표현해 놓았고, 목덜미의 비늘까지도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조각 변신술!"

위드는 혼돈의 전사에서 슬레이언의 엘리트 전사로 몸을 바꾸었다.

레드 스타를 무장해제하고 창과 활은 이미 입수한 전리품이 있기에 착용이 가능했다.

그리고 통로로 나와서 태연하게 걸어가다 곧 다른 전사와 마주쳤다.

그는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위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설마 들켰을까? 하긴... 생각해 보니 조각 변신술은 냄새까지 바꿔 주진 않는군.'

조각 변신술이라고 해도 만능은 아니었다. 수많은 이유로 정체가 발각될 수 있으며, 후각까지 예민한 종족을 속이기 위해서는 특유의 냄새까지 갖춰야 된다.

그런데 슬레이언들은 콧구멍이 없어서 냄새를 맡지 못하는 비운의 종족이었다.

엘리트 전사가 물었다.

"아파 보인다. 어디서 그렇게 다쳤냐."

위드는 말도 말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침입자와 싸웠다."

"어디 있었나? 지금 다들 놈을 잡아먹고 싶어서 난리다."

"내가 먹었다."

"조금 남았나?"

"없다. 맛도 없었다. 그런데....."

위드는 대화를 하면서 상대 엘리트 전사가 의심을 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기야 물갈퀴가 달린 두 발로 바닥을 끌면서 걸어가는 모습이나 비늘이 뒤덮인 손으로 창을 쥐는 방식까지도 완전히 똑같았다.

오크 카리취로 행세를 할 때부터, 조각 변신술을 할 때에는 상대 종족의 특기와 사소한 버릇까지도 따라 하는 것에 익숙했다.

원래 거짓말이나 사기도 한두 번 치는 수준을 넘어가면 양심의 가책이나 망설임도 희미해지기 마련 아니던가.

현재 위드라면 대학 강의를 나가더라도 충분한 수준.

"놈이 잡아먹히기 전에 아르닌이라는 노예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더 많은 침입자들이 올 거라고 했다."

"아, 그놈들이? 그러면 감옥을 지켜야 되겠군. 빨리 가 봐야 되겠다."

엘리트 전사는 통로에서 오른쪽 갈림길을 선택해서 걸어갔다.

위드도 창으로 땅을 찍으면서 따라갔다. 다친 슬레이언 전사들이 이런 식으로 걸어가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나도 가겠다."

"쉬어도 된다. 그곳에는 10명이나 있다."

"더 싸울 수 있다. 침입자를 더 잡아먹고 싶다."

"그럼 같이 가자."

위드는 엘리트 전사의 안내를 받으면서 아르닌이 갇혀 있는 감옥 앞에 도착했다.

그곳은 위드가 숨어 있던 방보다 오히려 위로, 3층 정도 올라가야 하는 장소였다.

아르닌들이 갇혀 있는 감옥 입구는 상당히 컸다. 10명의 엘리트 전사가 지키고 있었고, 위드와 같이 충원된 엘리트 전사가 1명 더 늘었다.

'여기서 또 걸리는군. 한두 놈이면 금방 해치웠을 텐데.'

위드는 판단을 내려야 되었다. 감옥의 위치는 알았으니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방법과, 아니면 이번 기회를 노리는 수가 있다.

어떻게든 밖에서의 소란이 끝나기 전에 처리해야 된다.

'조각 변신술을 쓴다면 이곳까지 침투하는 자체는 어렵지 않겠지만 아르닌들을 데리고 탈출하려면 어차피 모험을 하는 수박에 없다.'

위드는 강행 돌파를 택했다.

"콜 데스 나이트 반 호크, 콜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

짙은 안개와 함께 소환된 데스 나이트와 뱀파이어 로드!

"주인, 싸움인가?"

"파충류의 피는 마시고 싶지 않은데... 밤의 귀족의 입맛은 고급스럽다는 것을 잊은 것 아닌가? 어여쁜 아가씨나 소녀가 있었으먄 좋겠다."

반 호크는 충성스럽게 검을 뽑았고, 토리도는 주변을 둘러 보더니 인상을 썼다.

"어서 싸워라! 음식 가리면 못쓴다."

데스 나이트와 뱀파이어 로드는 엘리트 전사들을 공격했다.

"어엇, 배신이다!"

위드도 바로 창을 던지고 데몬 소드를 뽑아서 엘리트 전사 둘을 베었다. 하지만 큰 타격은 입히지 못했다.

레벨이 높은 엘리트 전사들은 상당한 수준의 싸움꾼이었따.

게다가 종족의 특성상 피부가 단단한 편이라서 일반 공격은 잘 먹히지 않는다.

팔다리가 얇고 가늘지만 상당히 긴 데다가 창까지 휘둘러서, 공격 범위가 넓고 의외로 힘도 셌다.

엘리트 전사 11마리라면 위드와 부하 둘로는 약간 버거운 상태.

"반 호크,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무리를 해서라도 싸워라. 토리도, 너는 뒤로 돌아가!"

반 호크는 창과 화살에 적중당하면서도 저돌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용맹하게 싸웠다.

데스 나이트는 전투 중에 어지간하면 물러서지 않는다. 위드가 만들어 준 흑암의 검에 의지하며 암흑 투기를 발산하며 싸웠다.

토리도는 그사이에 뒤로 돌아가서 저주 마법과 흡혈 스킬을 발휘!

"케엣, 밤의 귀족인 뱀파이어다!"

"저 붉은 눈과 마주치면 안 돼."

슬레이언 전사들은 본능적으로 토리도를 두려워했다. 정신력이 약해서 세뇌나 저주 마법에 잘 걸리는 특성 때문이었다.

고위 몬스터답게 유감없이 위력을 발휘하는 토리도.

위드는 측면을 선택했다. 몬스터들이 공격을 하거나 말거나 있는 대로 맞아 주면서 1마리만 노렸다.

"광휘의 검술!"

참새 5마리가 나타나서 데몬 소드에 베인 엘리트 전사를 난타!

하필이면 위드를 이곳까지 데려온 녀석이었다.

"크엑, 동료인 줄 알았는데....."

"인생은 원래 배반의 연속이야. 다 그렇게 어른이 되는거지."

"더러운 놈!"

"원래 물이 아까워서 일주일에 한 번만 씻어!"

위드를 데려온 전사는 사망!

"분검술!"

그 후부터는 검술의 비기인 분검술을 시전했다. 다른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분신들의 적의 시선을 끌어 주는 것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집중 공격!"

분신들이 싸우는 사이에 위드는 반 호크, 토리도와 같이 3마리를 사냥!

진형이 바뀌는 것이나 공격의 목표를 정하는 것이 한순간에 이루어졌다.

"놈들에게 시간을 주면 안 된다. 계속 몰아붙여!"

위드와 반 호크의 생명력이 많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7마리가 남은 이후부터는 이전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싸울 수 있었다.

이때부터는 토리도가 흡혈 스킬을 이용하여 빠르게 생명력을 회복해서 적들의 공격을 담당해 주었다.

위드와 반 호크는 그사이를 이용하여 2마리씩 처치에 성공했다.

마나를 아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3마리가 남았을 때에도, 어디서 지원군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혼신을 다했다.

마침내 전투가 끝난 후, 다들 잠시 숨을 몰아쉬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쉽지 않았군."

반 호크가 만신창이가 되었고, 토리도 역시 입맛에 맞지 않는 흡혈을 해서 더욱 창백해진 얼굴이었다.

위드의 생명력도 다시 7% 이하로 감소했다.

"역시 내가 만들어 준 흑암의 검과 흡혈 반지 덕분이었어."

"......"

잘되면 내 탓, 못되면 남 탓!

위드는 엘리트 전사들이 흘린 아이템을 주웠다. 전리품은 어디서도 빼놓을 수 없었고, 지금 꼭 필요한 아이템이 보였기 때문이다.

-지하 감옥의 열쇠를 습득하셨습니다.

열쇠는 잠겨 있는 문을 여는 데 바로 사용했다.

끼릭.

드디어 게이하르 폰 아르펜 황제의 조각 생명체 종족, 아르닌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 감동적인 환희의 순간!

"고생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평생 부려 먹어야지!"


★★★★★★★★★★★★★★★★★★★★★


신혜민은 깊이 탄식했다.

"아아, 암벽 협곡의 전투에 이어서 투브칼 봉우리의 요새 공격에서도 환상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네요."

오주완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정말 기가 막힌 전투입니다. 저토록 멋진 장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공성전이라니, 이런 싸움을 또 언제 볼 수 있겠습니까."

신혜민은 레인저 메이런으로 활동하며 저 자리에 있었으면 얼마나 즐거웠을까 생각하니 아쉽기만 했다.

격렬한 전투 와중에 조각 생명체들이 포효하고, 슬레이언 전사들도 그들의 본거지를 지키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저항을 한다.

조각 생명체들의 스킬, 전사들의 요새 지형을 이용한 적극적인 방어.

화려하거나 멋진 장면이 정말 많이 나왔던 것이다.

"위드가 충분한 휴식도 취하지 않고 이렇게 서둘러서 공성전에 돌입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신혜민 씨는 이렇게 되리라고 예상하셨나요?"

"언제나 예상을 깨는 것이 위드의 방식이니까요."

"그런데 전투가 원하는 대로 되진 않는 것 같습니다."

"네, 아무래도 그렇게 보이네요. 암벽 협곡에서 큰 희생이 있었다고 해도, 요새에도 슬레이언 전사들이 상당히 많은 숫자가 남아 있었습니다. 현재로써 요새 함락은 불가능한 것 같아요."

"오늘의 공격은 실패라고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내일이나 모레가 되면, 위드의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페일과 동료들, 조각 생명체들은 성벽을 포기하고 요새에서 물러나서 수비로 전환했다.

요새 내부에서, 그리고 투브칼 봉우리에 뚫려 있는 동굴들을 통하여 끝없이 보충되는 슬레이언 전사들에 의해 뒤로 밀려난 것이었다.

"위드 님이 다시 나올 때를 대비해서 힘을 아껴 놓아야 됩니다."

미리 정해진 각본에 따라서 물러난 것이었지만, 시간을 오래 끌면 정말 위험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레벨이 높은 불사조와 황금새, 빙룡이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었지만, 땅에서 달려오는 슬레이언 전사들의 숫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 올 정도.

작은 동굴들을 통해서, 그리고 늪에서 뛰어나온 전사들이 속속 싸움에 참여하고 있었다.


★★★★★★★★★★★★★★★★★★★★★


감옥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땅바닥에 큰대자로 누워서 잠들어 있는 아르닌들이 보였다.

노예로 살아가는 조각 생명체들.

"누구세요?"

아르닌들이 잠에서 깨어나서 위드를 보며 ㅁ루었다.

"나는....."

위드는 눈가에 힘을 주었다.

감격스러운 눈물 연기를 하려고 했지만,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보니 썩은 미소가 나오려고 입가가 실룩거리는 상태!

바깥의 사정은 이리엔의 귓속말을 통해 전해 듣고 있었기에 간단히 말했다.

"너희의 친구인 에르리얀의 부탁을 받고 왔다. 이곳에서 탈출시켜 주기 위해서 왔어."

"정말요?"

아르닌들이 땅에서 일어났다. 그래 봐야 드워프보다도 훨씬 작은 키였다.


『 퀘스트, 에르리얀의 친구

아르닌 종족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이끌고 투브칼 봉우리를 안전하게 빠져나가야 합니다.

아르닌은 자유를 구속받으면서 살아서 제대로 번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살아 있는 생명은 총 342인.

최대한 많은 인원을 살려서 에르리얀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10명 이상이 생존해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려운 부탁이었던 만큼

에르리얀들도 이해를 할 것입니다. 』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된다.

위드는 몸에 붕대를 감으면서 확인차 물어보았디ㅏ.

"혹시 너희, 싸움은 좀 할 줄 알겠지?"

아르닌들에게 빌려 줄 검과 창도 잔뜩 준비해 온 상황이었다.

"싸움은 할 줄 모르는데요."

"그러면, 검은 쥐어 본 적이 있을 거야. 그렇지? 잘 생각해 봐."

"없어요."

"마법이나 정령술도 참 좋은데."

"쓸 줄 모르는데요.'

전투를 모르는 어린아이들을 342명이나 데리고 전쟁터를 빠져나가야 한다.

"어쨌든 할 수밖에 없겠군."

위드는 혼돈의 대전사 쿠비취로 다시 몸을 바꾸었다.

조각술의 비기인 변신술로, 최적의 전투를 할 수 있도록 몸을 바꾸는 것이 필요했다.

레드 스타도 다시 무장했다.

"잘 따라와라. 뒤처지지 않도록 조심해."

막 떠나려고 하는 순간 아르닌이 말했다.

"저기요, 키우던 동물을 데려가고 싶은데요. 여기에 남겨두고 저만 떠날 수는 없어요."

"저도 키우던 동물들을 데려갈래요."

"매일 밥 주고 돌봐 주던 동물들에게 정이 많이 들어서, 저 혼자 살겠다고 나가진 않을 거예요."

띠링!


『 퀘스트, 에르리얀의 친구

아르닌은 지금까지 키우던 동물들을 데리고 탈출하고 싶어 합니다.

억지로 그들만 데려간다 해도, 중간에 말썽을 부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물들까지 구출한다면 그들은 진심 어린 감사를 할 것입니다. 』


위드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전생에 나라를 얼마나 팔아먹었기에....."

이렇게 인생이 꼬이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아르닌 종족을 평생 부려 먹기 위해서도 어떻게든 퀘스트는 성공시켜야 했다.

위드는 입술에 침을 듬뿍 발랐다.

"동물들은 다음에 내가 와서 꼭 구해 줄 테니까 너희부터 가자."

"진짜예요?"

"그럼, 당연하지."

다시 와서 구해 줄 생각 따윈, 위드에게는 당연히 없었다.

편하게 사냥할 수 있는 던전이나 사냥터도 많은데 까다롭기 그지없는 슬레이언 전사들을 뭐하러 잡겠는가.

"그럴수 없어요. 슬레이언 부족은 우리가 없으면 동물ㄷ를을 잡아먹어 버릴 거예요."

"함께가 아니라면 우리도 가지 않을 거예요."

아쉽게도 이 간단한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다.

"위험해서 그래. 내 능력으로는 너희만 데려가는 것도 벅차. 너희라도 살아야 되지 않겠니. 모라타에서 기다리고 있을 친구 에르리얀 종족을 생각해 봐."

"동물들도 살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렇게 해 주실 수 없으면 차라리 다음에 다시 구하러 와 주세요."

그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래도 퀘스트의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도 없고.....'

만약에 북ㄱ부 유저들의 수준이 높았다면 하르셀 산악 지역에서도 사냥하는 사람이 많았으리라.

하지만 아직은 이곳에서 사냥할 수준의 유저는 적은 숫자였고, 그들은 훨씬 안전하거나 효율이 좋은 던전과 사냥터에 있다.

다른 유저들보다 앞서 나갈 때의 괴로움!

실컷 번식한 슬레이언 부족과 싸워서 이들을 구출한다는건 정말 어려운 퀘스트였다.

'물러나서 조각 생명체들을 성장시켜서 다시 온다는 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군.'

유저들만이 아니라 지성이 있고 부족을 이룬 몬스터 무리의 경우 시간을 주면 더욱 성장한다.

동족의 숫자가 지금보다 더 늘어나고, 공격을 받았던 만큼 요새도 강화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결정을 내려야 된다.

'억지로 10마리만 잡아서 모라타까지만 데려간다면.....'

구출하러 와서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정 안 되면 그렇게라도 하는 수박에 없다.

하지만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아르닌 10마리를 붙잡아 가며 전투를 치러 밖으로 데리고 나갈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그래, 어디 너희가 키우는 동물들도 구출해 보자!"

이판사판!

최악의 경우에는 상황에 따라서 위드 혼자 빠져나가서 다음 기회를 노리거나, 아니면 최대한 많은 아르닌을 납치해가리로 했다.

강제로 끌고 가면 퀘스트의 깔끔한 성공은 아니라서, 의뢰를 완료하고 나서도 위드의 높은 평판이 조금은 떨어질 수 있다.

친밀도는커녕 불화가 생겨서 아르펜 왕국에서 부려 먹을 수도 없겠지만, 지금 미적거리면서 시간을 끌다가는 지상에서 싸우고 있는 조각 생명체들조차도 위험하다.

"정말 고맙습니다."

"너희가 키우는 동물들은 어디에 있지?"

"여기서 가까워요. 저희가 안내할게요."

위드는 반 호크, 토리도와 같이 길을 열었다.

슬레이언 전사들을 만나면 몽땅 죽여서, 다른 구원군을 불러올 수 없게 했다.

한 놈이라도 놓치면 동료들을 잔뜩 불러올 수 있기에 한순간도 안심할 수 없었다.

아르닌 중 1명이 말했다.

"평소와 달리 놈들이 별로 없네요."

지하에서 돌아다니던 전사들도 지금은 지상으로 몰려 나가 싸우느라 바쁠 것이다.

"이곳을 돌면 있어요."

사육장의 입구를 지키는 엘리트 전사는 4마리였다.

위드는 몸 상태를 확인하고 짧게 심호흡을 했다.

"반 호크, 네가 3마리를 맡아라. 토리도와 내가 1마리를 빨리 정리하고 돕겠다.

"알겠다, 주인."

반 호크와 토리도와는 사냥을 워낙에 많이 해서 손발이 척척 맞았다.

이번에는 겨우(?) 4마리에, 레드 스타까지 사용하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엘리트 전사들을 해치우고 사육장의 열쇠를 획득 그리고 문을 열었다.

위드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놈들은......"


★★★★★★★★★★★★★★★★★★★★★


전투가 벌어지던 투브칼 봉우리.

페일과 일행은 체력과 마나가 거의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조각 생명체들이 분전했지만, 그들도 계속 덤벼드는 전사들에 지쳤다.

공중 생명체들이 위협을 하고 킹 히드라, 데스웜이 날뛰는 탓에 슬레이언 전사들도 공격적으로 나서지는 못하고 있었다.

지친 상태에서도, 화령과 벨로트는 끊임없이 춤과 연주를 통해 적들의 시선을 끌었다.

페일은 화살통에서 얼마 남지 않은 화살을 꺼내며 외쳤다.

"위드 님한테서 아직 아무 소식 없어요?"

그가 쏜 화살이 덤벼드는 전사의 이마에 정확히 명중!

요새를 지키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피해가 너무 컸기 때문인지, 전사들도 신중하게 덤비고 있었다.

어쩌면 이게 더 무서운 것인지도 모른다.

슬레이언 전사들은 강한 먹이를 보면 차분히 포위를 하고 야금야금 힘을 빼놓은 다음에 습격을 가하기 때문이다.

이리엔은 생명력이 빠진 조각 생명체에게 치료의 손길을 걸어 주고 나서 대답했다.

"조금만 기다리래요."

"퇴각해야 됩니다. 지금이 물러서야 할 때라고 전해 주세요."

"잠깐만 기다리면 다 잘될 거라고 했어요."

"그게 무슨 뜻으로...."

그때였다.

투브칼 봉우리에 있던 슬레이언의 요새에서 수십 마리의 그리핀들이 날아올랐다.

거기에다 지상에서는 샤벨타이거들이 뚫려 있는 성문을 통하여 뛰쳐나왔다.

샤벨타이거의 머리에는 아르닌들이 앉아 있었다.

슬레이언 부족이 키우던 동물은 토끼, 양, 돼지, 닭 같은 온순한 가축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들을 먹이로 써서 샤벨타이거와 그리핀을 대량으로 키워 내고 있었다.

슬레이언 부족의 목표는 지상과 공중에서 탈 수 있는 몬스터들을 키우는 것.

만약 이들에게 시간이 주어졌더라면 지금보다 더 강력한 세력을 이루어서 하르셀 산악 지역을 내려와 다른 지역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으리라.

위드는 그리핀과 샤벨타이거를 확인하자마자 신이 나서 몽땅 풀어 주었다.

어차피 아르닌의 부탁을 들어주려면 데리고 나가야 하는 데다 남 잘되는 꼴 보기는 죽기보다 싫어하는 그였으니 일석이조였다.

그리고 풀려나게 된 그리핀, 샤벨타이거 들은 아르닌의 부탁에 따라서 슬레이언 전사들을 공격하였다.

"쿠엣, 이놈들이 다 밖으로 나왔다!"

"큰일이다. 큰일이야."

슬레이언 전사들은 요새를 지킬 수는 있었지만, 뛰쳐나가는 그리핀과 샤벨타이거를 막을 수는 없었다.

"활을 들고 있는 녀석들을 위주로 해치우고, 샤벨타이거들은 퇴로를 열어라!"

뒤따라 나온 위드가 전투를 지휘하며 일행은 투브칼 봉우리에서 무사히 퇴각!

암벽 협곡과 공성전에서 피해를 입은 슬레이언 부족은 쫓아오지 못했다.

띠링!


『 투브칼 봉우리에서 슬레이언 부족과의 전투가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하르셀 산악 지역의 지배자인 슬레이언 부족.

그들의 요새를 점령하였다면 산악 지역에 대한 지배권 역시 가져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죽지 않고 무사히 도주할 수 있

었던 것만도 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상당한 치해를 입은 슬레이언 부족은 이제 대족장을 선출하여

다시는 침략을 당하지 않도록 복구하며 통치 능력을 강화하게 될 것입니다. 』


-전투에 기여한 정보에 따라 명성을 획득합니다.

위드는 동료들과 조각 생명체들을 데리고 모라타로 돌아왔다.

그리핀과 샤벨타이거까지 손에 넣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원래 하르셀 산악 지역의 동쪽과 남쪽 서식지로 돌려보내 주어야 했다.

그들은 슬레이언 부족을 견제하며 살아갈 것이다.


★★★★★★★★★★★★★★★★★★★★★


"...그리하여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어."

ㅡ정말 고마워. 이렇게 다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띠링!


『 에르리얀의 친구 완료

슬레이언 부족에 의해 강제 노동을 하던 아르닌은 조각사 위드에 의

해 구출되었다.

이로써 조각 생명체 종족인 에르리얀과 아르닌은 아르펜 왕국에 정착

하게 되었다. 그들은 조각술이 융성했던 과거 아르펜 제국의 영광을

떠올리며 일을 하게 될 것이다.

하르셀 산악 지역에서 보여 준 용기와 영웅적인 지휘 능력 그리고 마

지막 순간에 생명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한 결정은 대륙의 많은 이

들에게 알려져서 놀라움을 주게 되리라. 』


-명성이 2,580 올랐습니다.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조각 생명체 종족 에르리얀과 아르닌이 왕국을 위해 일하게 됩니다.

-조각 생명체들과의 친밀도가 높아집니다.

그들은 큰 위험을 무릅쓰고 구출해 준 감격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카리스마가 15 상승하셨습니다.

-통솔력이 23 상승하셨습니다.

-위대한 전투 지휘 경험을 쌓았습니다.

전투와 관련된 스탯들이 3씩 증가합니다.

위드는 훈훈하게 웃었다.

최근 방송에서 보면, 잘생기진 않았어도 좋은 느낌을 주는 훈남들이 인기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입가를 비열하게 끌어 올리면서, 마음껏 웃어 주었다.

"나도 너희를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단다."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의 완수.

동물을 잘 기르는 아르닌을 얻은 건 장비나 아이템을 얻은 것과는 달랐다.

아르펜 왕국의 가축들이 잘 자라게 되면 가죽이나 고기, 식량 등 많은 측면에서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영원히 부려 먹을 수 있겠어.'

슬레이언 부족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위드에게로 왔다.

이제부터는 철저한 착취만이 남아 있을 뿐.

"아무튼 내 왕국이 더 잘되었으면 좋겠군."

위드의 아르펜 왕국은 북부의 유민과 초보자를 중심으로 하여 탄생한 신생국가다.

종합적인 전력이나 경제력, 군사력으로 보면 중앙 대륙의 전통적인 강국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그것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착취만이 있을 뿐 아니겠는가!

사실 위드를 둘러싼 상황들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바드레이의 헤르메스 길드는 대외적으로 하벤 왕국과 칼라모르 왕국을 통합하여 규모가 제국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였다.

흑사자 길드의 영역인 톨렌 왕국 또한 베덴 길드를 앞세워서 장악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지금도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최고의 군대를 양성하고 있다.

레벨이 높고 유명한 랭커들을 섭외하는 작업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중이었다.

랭커들이 헤르메스 길드의 제안을 거절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조건을 가지고 온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클라우드 길드, 로암 길드, 블랙소드 용병단 역시 경악스러울 정도의 세력을 갖추어 가는 중이다.

왕국을 지배하려는 길드들.

그들의 세력과 자금력, 군대에 아르펜 왕국은 감히 견줄수조차 없을 지경이다.

"그냥 나한테 섭외 제의를 하지. 선금만 좀 많이 주면 헤르메스 길드에 포섭되어 줄 수 있는데."

위드는 그 점이 정말 아쉬웠다. 지금은 헤르메스 길드원 중에서도 그에게 칼을 갈고 있을 사람이 많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였다.

그래도, 아르펜 왕국은 아직 약하지만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를 하면서 일을 잘하는 부하들이 많이 생긴다면 그게 나름대로 소득이 될 것이다.

이것으로 위드의 직업 마스터 퀘스트도 열네 번째가 완수되었다.

진정한 직업 마스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셈.

"최초로 성공하면 엄청난 돈이 들어오게 되겠지!"

방송국들은 상금까지 걸어 놓고 최초의 직업 마스터 순간의 중계를 원했다.

이럴 때 한몫 단단히 챙겨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위드의 배낭에서, 예전에 깎아 놓았던 사슴의 조각품이 생명을 부여하지도 않았는데 걸어 나왔다.

아기 사슴으로, 얼굴이 똘망똘망하기 그지없어서 제법 괜찮은 가격에 팔 수 있겠다고 생각한 조갈품.

특정 형태들은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것들이 가끔 나왔다.

그 아기 사슴이 말했다.

"예술에 생명과 혼을 담을 수 있는 조각사님."

위드는 예술가라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민망해졌다.

창조적인 면이나 끝없는 고뇌를 운명처럼 안고 있는 직업.

방송에서 인터뷰를 할 때에도 어떻게 조각사라는 직업을 택하게 된 것인지가 큰 화제였다.

그저 어쩌다 실수로 택한 직업이고, 그 이후로 먹고살려고 열심히 하였을 뿐인데.

그렇지만 위드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 말하렴, 새끼 사슴아."

"조각품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 대해서 고맙게 여기고 있어요."

"......"

아무리 위드라고 해도 조금은 낯간지러운 말.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 나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인데. 너처럼 귀여운 조각품을 보면 세상에 대해서 더 많이 알려 주고 싶었던 거란다."

아버지와 딸처럼 화목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설렁탕에 꽃등심이라고 수시로 구박을 당하던 누렁이가 옆에서 지금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억울해서 난동을 피웠을지도 모른다.

"우리 조각품의 마음을 이해해 주실 수 있는 건 조각사님밖에 없어요. 그래서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조각품이 되어서 우리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주시면 안 될까요?"

띠링!


『 조각사의 눈

조각사로서 새로운 도전

자기 자신이 조각품이 되어서 이해의 폭을 넓히자.

바람이 통하지 않는 갇힌 공간이 안이라 세상을 느낄 수 있는 넓게

트인 곳에서 스스로의 몸을 조각품으로 만들라. 그리하여 조각품의

눈으로 1달간 세상을 지켜본다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난이도 :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

퀘스트 제한 : 고급 8레벨 이상의 조각술.

조각품이 파괴되거나 동물들과 사람들이 지켜보지 못

한다면 실패.

조각화 스킬을 도중에 해제하면 실패. 』


-조각화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조각화 : 자신의 몸을 조각상으로 만든다.

스킬을 최초 시전하였을 때의 모습으로 몸이 석상화됨.

1달간 지속되며, 스킬이 지속되는 중간에는 움직일 수 없음.

접속을 종료하더라도 석상은 그대로 그곳에 남아 있으며, 보유하고 있

는 예술 스탯에 따라 내구도가 달라짐.

"크흠"

위드는 순식간에 이 열다섯 번째 퀘스트에 대한 계산을 마쳤다.

조각술 마스터가 얼마 남지 않은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 의뢰가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라는 점은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남들이 기고 뛰고 날고 있을 때 석상이 되어서 마음 편히 1달을 보내야 하다니.

로열 로드의 기준이었기에 실제로 현실을 기준으로 해서 보면 그리 긴 시간은 아니기는 했지만, 그렇더라도 아쉬운건 사실이었다.

위드는 입가에 썩소를 날리면서 말했다.

"너희의 마음에 대해서 예전부터 더 잘 알고 싶어 했지. 이번 기회에 잘 알아보마."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고마워요. 우리의 부탁을 들어주어서요."

아기 사슴은 다시 조각상으로 돌아갔다.

눈이 땡글땡글한 목각 인형!

보통 1골드 정도로 팔 수 있지만 커플들에게는 4골드 이상의 요금제가 적용되는 작품.

그리고 위드의 푸념이 시작되었다.

"이놈의 조각사란 직업은 매번 말썽이로군."

어쨌든 퀘스트는 해야 할 일.

기왕이면 서둘러서 시작하는 편이 빨리 끝낼 수 있으리라.

"어차피 크게 위험할 일도 없을 것 같군.'

이왕 하는 것, 와이번을 타고 절벽의 중간에 가서 스킬을 시전할 수도 있다.

"아니야. 무슨 험한 일이 벌어질지 몰라."

대재앙의 자연 조각술로 암벽 협곡을 무너뜨리고 나니 절벽도 그리 믿을 곳이 못 된다는 걸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평지는 몬스터들이 다녀서 안 되지. 바다 한복판도 위험하고....."

바다야말로 재앙의 근원과도 가다. 폭풍과 자주 불어올 뿐만 아니라, 상상할 수도 없는 온갖 위험이 산재해 있는 곳이 바로 바다다.

모라타의 대도서관에 보면 바다와 관련된 무시무시한 모험담도 많다.

요즘에는 모라타 주변의 바닷가에 항구 바르나가 만들어지고 있다.

해상 모험과 낚시, 수영을 즐기는 유저들도 많다보니 별별 일이 다 벌어지는 바다는 역시 그다지 믿을 수 없는 지역.

"정말 세상에 믿을 놈이 없는데... 어디서 1달간이나 보내야 하지?"

위드는 일단 모라타 내부로 결정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라타가 몬스터나 자연의 영향에서는 최대한 안전한 곳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1달 정도야 금방이지."

도시에 조각품도 많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만 지나가면 될 일.

거리에도 조각사들의 작품들이 있지만, 예술 회관이나 대성당에 유독 조각품들이 많았다.

"닫힌 장소는 안 된다고 하였으니까 그냥 거리에서 석상화를 사용해야 되겠군."

위드는 이 사실은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퀘스트 자체는 어렵지 않다고도 볼 수 있지만, 자신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헤르메스 길드, 마법의 대륙의 유저 그리고 이래저래 어떤 방식으로든 나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 적어도 10만에서 20만 정도는 되지 않을까?"

원한도 중소 도시급의 규모!

"이게 알려지게 되면 그들이 몰려올지도 몰라. 어떤 훼방을 벌일지도 모르니까 철저히 해야지."

위드는 모라타에서도 으슥한 곳을 찾아다녔다.

과거에 뱀파이어와 싸울 때부터 이곳에서는 사냥을 많이 했고 자신이 발전시킨 도시였지만.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올 때마다 매번 다르게 느껴지는 모라타.

"가능한 사람들이 없는 곳이 좋겠지. 방해를 받지 않아도 되는 조용한 곳."

모라타에 사람들이 아예 오지 않는 장소는 없었다.

대도시금 이상으로 성장하여 이제는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어디를 가나 마차와 소 들이 다니고 있으며 초보자들이 뛰어다녔다.

위드는 로브로 얼굴을 가리고 골목길 위주로만 다녔다.

모라타의 외곽까지 가서, 야산으로 올라가는 골목길 옆으로 장소를 결정.

"이곳이 좋겠군. 사람도 잘 안다니는 거 같고...."

1시간을 조각품을 깎으면서 기다려 봤는데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위드는 여신의 기사 갑옷과 데몬 소드, 바하란의 팔찌, 고귀한 기품이 어린 검은 헬맷 등을 착용하고 스킬을 사전했다.

"조각화!"

-조각화 스킬을 시전합니다.
스킬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발에서부터 올라오면서 석상화가 이루어졌다.

몸 전체가 돌덩어리가 되고 난 이후에는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서 답답한 기분.

석상의 눈으로 세상을 쳐다볼 수 있었지만,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라도 조각상의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겨야말로 아무도 모르는 완벽한 일이군.'

위드는 혼자만의 비밀을 가졌다고 기뻐했다. 그리고 시간이 10분 정도가 흘렀다.

휘이잉.

낙엽 몇 개가 떨어져서 골목길을 스치면서 지나갔다.

모라타에서도 정말 한적한 장소로 와서 따분하기 그지없는 일.

풍경의 변화라 봐야 야산에서 날아온 참새들이 하늘을 지나가는 정도가 전부였다.

'어쨌든 퀘스트만 성공한다면 다행이지. 비라도 내려 주면 좋겠군.'

위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지루하더라도 계속 접속을 유지했다.

그렇지만 밥도 해야 되고, 청소도 해야 한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집안일과 생리 현상!

'뭐, 별일은 없겠지. 모라타는 안전한 곳이니까. 청소나 하고 와야 되겠군.'

위드는 접속을 종료했다.


5) 흑기사의 길


베르사 대륙의 여러 유저들이 직업 퀘스트를 위하여 분주히 돌아다녔다.

소위 말하는 랭커들!

최상의 레벨을 가지고 있으며 직업 스킬 부분에서도 정점에 오른 이들의 모험이 진행되면서, 유저들은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들떴다.

"체이스 님 봤어?"

"캬하! 한밤의 공동묘지로, 진짜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들어가더라니까."

"거기서 녹슨 철 조각을 찾아서 나오는 게 더 대단하지 않냐."

직업 마스터를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의 모험이라서, 유저들도 대단히 큰 흥미를 가지고 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CTS미디어에서 특종을 터르렸다.

"직업 마스터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 나타났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유혜나 씨, 무척 궁금한데요. 그게 누구인가요?"

"네, 빨리 알려 드릴게요. 여러분도 많이 알고 계시는 사람, 아니 드워프입니다."

쿠르소의 대장ㅈ앙이 파비오!

그가 스킬 마스터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특종 보도였다.

그는 지금까지 여행도 다니지 않고 퀘스트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대장간에서 장비만 만들어 온 인물이었다.

누구나 최고로 손꼽는 대장장이, 가장 유명한 장인인 그가 마스터에 가깝다는 확실한 정보가 CTS미디어로 입수되었다.

"아... 대장장이 파비오라면 가능성이 높죠. 유혜나 씨, 하지만 그가 직업 마스터 퀘스트를 진행한다는 소식은 듣지 못한 것 같은데요."

"현재까지 알아본 바로는 직업 마스터 퀘스트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목적은 오직 스킬의 완전한 마스터로 보입니다."

방송이 나온 이후로 토르 왕국과 쿠르소에는 그의 무기를 받고 싶어 하는 유저들이 몰려들었다.

대장장이 마스터의 무기!

그 가치와 희소성으로 인하여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높은 가격이 책정되고 있을 정도였다.

파비오가 대장장이 스킬을 가장 먼저 마스터한다면 대단한 영예였다.

최초의 직업 스킬 마스터로서 퀘스트도 하게 되리라.

다른 유명한 유저들의 도전이 실시간으로 방송되면서 마스터 퀘스트는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


바드레이는 직업 마스터 퀘스트의 열여섯 번째 단계를 진행하고 있었다.

"테르메돈의 기사여, 명망이 높은 그대에게 이 성의 수비를 맡기겠다."

"이곳에서 지켜봐 주십시오. 반란군 수장의 목을 베어 오겠습니다."

기사단과 보병대를 끌고 전쟁터를 전전하던 바드레이는 승리를 거두면서 막대한 보상금을 얻었다.

사실 용병 활동을 하면서 대가로 받은 돈 외에도, 인적이 뜸한 도시 같은 곳은 잔인하게 약탈! 기사들은 중무장시키고 보병대를 훈련시키는 비용으로 활용했다.

그는 도시와 마을을 돌면서 재능 있는 소년들을 모집하고 기사들을 영입했다.

바드레이가 있는 장소는 역사서에 있는 과거의 베르사 대륙!

그곳에서 자신만의 기사단과 보병대를 날카롭게 버려진 검처럼 키워 냈다.

테르메돈의 기사단.

테르메돈의 보병대.

기사 65명과 보병대 4,000명의 정예병!

퐁텐블로 성의 전투에서는 성주 측에 고용되어, 반란군과 싸우는 임무를 맡았다.

바드레이는 서으이 모든 병력을 지휘할 수 있는 권한마저도 가졌다.

"이곳이 마음에 드는군."

바드레이는 퐁텐블로 성의 지형과 마을을 둘러보고 나서 마음을 굳혔다.

"성벽도 두껍고 높아서 방어하기에 좋고, 정말 부유한 곳이야."

반란군의 무리가 쳐들어왔을 때에는 기사단을 출동시켜서 그들을 격퇴하였다.

테르메돈의 기사단은 두려움을 모르고 잔인하게 키워져서, 항복하는 적들까지 모조리 죽였다.

그리고 승리를 축하하는 연회식이 벌어졌다.

"테르메돈의 기사여, 그대의 꿈은 어디에 있는가?"

성주가 물었을 때에 바드레이는 검을 뽑았다.

"강한 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 나의 꿈은 강해지는 데 있다."

테르메돈의 기사들과 병사들도 정해진 약속대로 무기를 뽑았다.

"크아악!"

"배반이다! 성주님을 보호해!"

"경비병!"

악사들의 음악이 연주되고 진귀한 음식들이 차려져 있던 연회식장은 피로 얼룩지게 되었다.

보병들은 복도에서 석궁을 들고 기다리다가 구원을 오는 수비군을 차례대로 제압.

바드레이는 퐁텐블로 성을 장악하고 귀족이 되었다.

띠링!


『 피의 기사 완료

테르메돈의 기사단은 퐁텐블로 성을 점령하였다.

전란에서 공을 세워서 이루어 낸 영광스러운 업적은 아니더라도, 전

쟁터에서 붉은 피를 흘리며 자란 기사단은 다른 이들이 무시할 수 없

는 두려운 존재이다. 』


-명성이 3,329 올랐습니다.

-명예롭지 못한 퀘스트의 달성입니다. 기품과 명예가 13씩 감소합니다.

-비겁한 전투로 기사단과 보병대의 충성도가 저하됩니다. 데일 왕국과

다른 왕국들에서의 평판이 감소합니다.

-힘이 11 상승하셨습니다.

-투지가 19 승승하셨습니다.

흑기사의 직업 퀘스트 열여섯 번째의 완료!

원래대로라면 전쟁터에서 공을 세워 고위 귀족이나 국왕의 눈에 들어서 영토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런 기회란 큰 규모 전쟁에서 대단한 공을 세워야 가능했고, 또 좋은 성을 얻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바드레이는 그냥 힘으로 빼앗아 버린 것이다.

일반적인 기사 퀘스트라면 충성심이나 명예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흑기사는 그런 것들은 상관하지 않는 편이었으며, 끝없는 힘과 권력을 추구했다.

"계속 훈련시켜야 되겠군."

퀘스트를 마쳤지만 바드레이는 기사단과 보병대에 대한 훈련을 중단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흑기사의 퀘스트들이 대부분 전투와 깊은 관련이 있었고, 기사단의 존재는 이 과정에서 필수적이라고 봐야 할 정도였다.

바드레이가 전쟁터에서 쓸 수 있도록, 테르메돈 기사단은 끝없이 단련되어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가야 할 길은....."

바드레이는 눈을 감았다.

흑기사의 퀘스트는, 눈을 감고 있으면 마치 자기 자신이 상상하는 것처럼 떠오른다.

마치 욕망의 충동질처럼.


저 넓은 평원이 불타오르고 있다.

성과 요새도 무너지고, 비명이 들렸다.

테르메돈의 기사단과 보병들이 잔혹한 살육전을 펼친다.

바드레이가 키운 군대가 왕성으로 쳐들어가서 모든 것을

파괴하였다. 그를 버린 왕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다.


띠링!


『 흑기사의 길

흑기사는 누구에게도 충성을 바치지 않는다.

국왕에 대한 보복도 그에게는 당연히 걸어가야 할 여정에 있을 뿐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끝없는 권력에 대한 탐욕.

모든 것을 이용하여 원하는 것을 얻으리라. 그리고 목표를 이루는 과

정에서 더욱 강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그것이 정의로운 자

에게 주어지는 선물은 아니겠지만.....

난이도 : 흑기사 마스터 퀘스트.

퀘스트 제한 : 고급 9레벨 이상의 검술.

기사단 필요. 』


-퀘스트 과정에서 검술의 비기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탄생시키는 것으로, 퀘스트 과정에서 보여

주는 행동에 따라 달라집니다.

직업 마스터 퀘스트의 과정에서 새로운 스킬의 비기가 탄생된다. 그것은 새로운 흑기사 마스터가 되는 바드레이만의 기술이었다.

-퀘스트에 필요한 검술 스킬의 레벨이 부족합니다. 아직 퀘스트를 수행하실 수 없습니다.

바드레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건 조금 아쉽군."

그의 검술 스킬은 고급 8레벨. 그것도 겨우 10%대의 숙련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은 퀘스트를 진행하며 검술의 비기를 창조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바드레이의 눈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테르메돈의 기사단과 퐁텐블로 성의 모습이 일그러졌다.

햇살에 밀려나는 안개처럼 그것들이 사라지더니 그는 다시 하벤 왕국의 수도 아렌 성으로 돌아왔다.

퀘스트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였기에, 이른바 쫓겨나게 된 셈.


★★★★★★★★★★★★★★★★★★★★★


재봉사 드라고어.

그는 카드모스와 함께 대륙 3대 재봉사 중의 1명으로 이름이 난 사람이었다.

본래 수리암이라는 도시에서 살고 있었지만, 북부 여행 열풍이 일어난 이후 방직 기술이 발달한 모라타로 왔다.

"이곳의 천 짜는 기술은 최고로군. 가죽 손질도, 과연 대륙에 정평이 나 있을 정도야."

니플하임 제국 시절부터 첫손가락에 꼽히던 모라타.

당시만 하더라도 중앙 대륙과 지역적으로 떨어져 있는 니플하임 제국은 문화와 기술, 경제에서 앞서 나가는 강국이었다.

몬스터와 추위로 인하여 몰락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륙 전체에서 세 손가락에 꼽혔을 정도다.

그런 모라타에서도 가죽과 천을 다루는 기술은 특히 더 뛰어난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막대한 생산력을 자랑하는 트워프의 토르 왕국, 엘프, 바바리안의 왕국까지도 포함했던 시기이니 얼마나 번성했는지 알 수 있으리라.

남부의 신비로운 마법 문명, 서부의 강렬한 부족국가.

그 시절은 무역을 통하여 대륙 전체가 부와 기술을 쌓아 나가던 시기다.

지금은 몬스터와 엠비뉴 교단, 그리고 그 외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들로 인하여 각 왕국들은 과거보다 많이 쇠퇴한 시대였다.

모라타는 주민들이 석상화의 저주를 받아서 번성했던 시대의 기술력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 재봉사들에게는 큰 축복이었다.


드라고어의 의상점
모라타로 갑니다. 옷을 주문하실 분은 모라타의 빙룡 광장으로 찾아와 주세요.


재봉사 드라고어는 여성복 전문이었다.

그는 모라타에 와서도 실력을 뽐내면서 고객들을 늘렸다.

북부의 레벨 높은 모험가들, 상인들, 전투 계역 직업들이 그 고객이다.

과거의 단골들도 중앙 대륙을 오가는 상단을 통하여 옷을 주문하기도 하였다.

그의 주특기는 은근한 노출과 최고의 원단을 사용한 디자인에 있었다.

드라고어와 카드모스, 모라타에 있는 재봉사들은 부지런히 옷을 만들어 판매했다.

띠링!

-최신의 유행을 선도하는 옷들이 모라타에서 재단되고 있습니다.

모라타의 특산품에 고급 의류가 등록되었습니다.

재봉사들의 노력과 실력으로 특산품 등록!

모라타에서 재봉사들은 존중받는 직업이었으며 가죽옷의 거리, 원단의 거리도 조성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지역 특산품이 되고 나서는 비싼 고급 의류들이 귀족이나 마법사 들에게 판매되고, 교역을 통해서도 불티나게 팔렸다.

"로브 전문점. 레벨과 주로사용하시는 마법에 따라서 디자인을 달리하고 무늬를 따로 수놓아 드립니다."

"바람에 잘 펄럭이는 망토. 민첩성 향상 전문 망토 주문 제작합니다."

"바지 있어요. 가볍고 탄력이 있어서 어떤 사냥터에서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방어력은 기본, 바람이 잘 통하고 빗물을 막아 주는 모라타의 최고급 원단을 사용합니다."

사람들의 옷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었다. 동네 뒷산을 놀러 가면서도 히말라야나 알프스에 가도 될 정도의 등산복을 입어 주는 것이 미덕이 아니던가.

베르사 대륙에서는 몬스터와 싸워야 되고 험지들도 오가야 하니 조금이라도 더 좋은 옷은 가격을 따지지 않고 팔려 나갔다.

사슴 사냥을 하더라도 마법 저항력 정도는 기본으로 부여된 옷을 입어야 한다는 원칙.

모라타의 세금 수입원 중에는 재봉사들의 비중이 상당히 컸다.

드라고어는 모라타에서도 커다란 입지를 가진 재봉사로서, 그의 사업도 계속 번창하고 있었다.

"이제야 재봉 스킬이 고급 8레벨이 되었군."

보석이 달린 드레스를 제작하고 나니 재봉 스킬이 1단계 올랐다.

모라타에는 바드와 댄서도 많았기에 관련 의류의 주문이 많이 들어왔다.

화령도 그의 단골 고객 중 1명이었다.

"고급 8레벨이 되어서 자격은 갖추었는데... 나도 이제 재봉사의 마스터 퀘스트에 도전을 해 볼까?"

드라고어는 그동안 관련 업계 외에는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생산직 직업을 가진 사람이 위드처럼 모험이나 전투로 이름을 떨치기는 어렵다.

아무래도 재봉사가 대장장이만큼 유명하지 못한 것도 현실.

대다수 전투 계열 직업들이 가죽옷보다는 갑옷을 선호하기 때문이었다.

"나도 멋지게 방송에 나오는 것도 괜찮을 텐데. 그러면 옷값도 더 비싸게 받을 수 있을 테고."

드라고어는 재봉사 직업 마스터 퀘스트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한밤중에 재봉사 길드로 가서 교관에게 말했다.

"옷을 입을 줄 아는 사람에게, 이제 내가 그들이 원하는 최고의 옷을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시작한 재봉사 마스터 퀘스트!

"재봉사여,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옷을 만들어 주셨군요."

드라고어는 전문적으로 원단을 떼어다가 옷을 만들고 돈을 벌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바쁘게 살던 시절에는 하루에 수십 벌의 옷을 만들었을 정도다.

개인 주문보다는 길드에서 주문을 받으면 동일한 디자인으로도 정말 많이 만들 수 있다.

풀죽신교의 단체복 같은 경우는 지정 옷 가게 서른 곳에서 매일 수백 벌씩 만들어 내는데도 늘 재고가 없을 정도였다.

"재봉사로서 기본기에 충실한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옷이란 한번 잘못 만들게 되면 입는 사람이 항상 불편하게 생각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재봉사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기본을 착실히 익혀야 합니다. 길드의 창고로 가셔서 인형의 눈 10만 개를 붙이고나면 기본기를 확실히 익히실 수 있을 겁니다."

띠링!


『 인형 눈 10만 개

재봉사로서의 꼼꼼함으로 인형의 눈을 붙이자.

완성된 인형들은 모라타의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면 매우 기뻐할 것이다.

난이도 : 재봉 마스터 퀘스트.

퀘스트 제한 : 고급 8레벨 이상의 재봉.

불량품이 20개 이하여야 함.

퀘스트를 실패하면 처음부터 다시 붙여야 됨. 』


"이, 시작부터 이런 거지 같은 퀘스트가....."

드라고어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


위드는 틈틈이 접속을 해 보았지만 별일 없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낙엽이 그의 머리 위에 쌓이고, 새들이 앉아서 놀기도 한다.

'역시 쉬운 퀘스트로군. 성공은 시간문제야.'

아침, 점심, 저녁.

해가 뜨고 지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으슥한 구석에 서 있는 그의 조각상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간단히 마무리 짓고 직업 마스터 퀘스트를 끝내야지.'

엿새가 지나도록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석상으로 있으면서 주변의 풍경을 구경하는 것이 유일하게 할 일이라서 위드는 너무나 지루했다.

바닷가의 경치 좋은 언덕이라고 할지라도 하루 이틀이지, 시간이 지나면 심심해지기 마련.

위드가 있는 장소는 모라타의 외곽에서도 구석이었으니 더욱 볼 것도 없었다.

'오늘도 별일은 없겠지.'

도장에 가서 평소보다 운동도 더 많이 하고, 밀린 집안일도 이것저것 찾아서 하나씩 끝냈다.

그렇기 때문에 일찍 접속을 종료.

그리고 불과 20분 정도가 지난 후에 사람들이 다가왔다.

"여우 사냥터로 나가려면 이쪽으로 나가는 거 맞아?"

"분명히 이 근처였는데....."

"막힌 곳이잖아."

"오늘 내로 여우 구경도 못 하겠다."

초보자들 4명이 밧줄과 덫을 가지고 걸어오고 있었다.

여우 가죽과 꼬리를 모아 오라는 퀘스트를 받고 판자촌을 들렀다 나오다가 지름길을 택하는 와중에 엉뚱한 곳으로 오게 된 것.

"여기 아닌 거 같으니 다른 곳으로 가자."

"어? 저기 조각품이 있어."

"모라타에 흔해 빠진 게 조각품인데 뭐."

"저거 자세히 봐 봐. 국왕 위드의 조각품 아니야?"

띠링!


『 조각사 위드를 감상하셨습니다.

모험가, 국왕, 조각사로서 위대한 명성을 쌓은 위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조각상으로 남겨 놓았다.

실제의 모습과 동일한 작품으로, 탁월한 지도력과 용기를 가진 위드

의 영웅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명력과 마나, 체력의 회복 속도가 하루 동안 37% 증가합니다.

조각술의 효과가 6% 오름.

던전에서 모험가들의 스킬의 레벨이 1단계 오릅니다.

통솔력 29 상승.

이동속도 12% 상승.

사냥과 퀘스트를 완수하였을 때 명성이 20% 더 늘어나게 됩니다.

아르펜 왕국 주민들은 특별한 의뢰를 완수했을 시에 국가 공적치가

50% 더 오릅니다.

모든 스탯이 9씩 오름.

강렬한 빛의 축복이 깃든 조각품으로, 인근에 어둠의 몬스터들의 활

약을 억제시킵니다.

문화적인 유물로, 지역 정치력의 확대가 이루어집니다.

위대한 영웅 조각물의 감상으로 인하여 전투와 모험, 예술과 관련된

스탯이 1씩 오릅니다. 』


"장난 아니다, 이거......"

"이런 곳에 숨어 있었다니! 완전 보물이네."

초보자들은 조각품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몸을 어루만졌다.

"인체 비율도 진짜 대박이다. 다리가 조금 짧은 거 같기는 하지만....."

"색깔이 짙은 청색만 아니었더라도 살아 있는 줄 알았겠어. 진짜 같아."

초보자들은 조각상을 세밀히 살피던 도중, 땅바닥과 붙어서 고정되어 있지 않은 작품이란 것을 알아냈다.

"이거 가져갈까?"

"여기에 있으면 아까우니 광장에 전시하자. 그러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을거야."

그러나 초보자 4명이 들기에는 조각상의 무게가 너무 많이 나갔다.

"내가 가서 사람 불러올게. 이곳에서 지키고 있어."

"응. 알았어. 빨리 다녀와!"

초보자 1명이 중앙 광장에 뛰어가서 외쳤다.

"위드 님의 조각상을 발견했습니다! 엄청난 작품인데요, 우리끼리 들 수가 없어요. 와서 좀 도와주실 분!"

광장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 물건을 구경하러 돌아다니던 사람, 파티를 찾던 사람,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 등.

수많은 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진짜인가요?"

"제가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왜 하겠습니까. 도시 내에 있어요!"

"갑시다."

"풀죽신교여, 어서 갑시다!"

중앙 광장에 있던, 적어도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대이동!

조각품을 보면 스탯이 오르는 효과도 있기에 막 사냥을 나가려던 사람도 따라왔다.

"뭔데? 무슨 일이야?"

"위드 님의 조각품이 발견되었대."

"정말?"

더더욱 늘어나는 사람들!

그리하여 으슥하던 야산과 인접한 골목길에 사람들이 가득 차게 되었다.

"진짜 위드 님의 조각품이다. 그것도 자기 지신의 조각품이야."

"거기 뒤에, 밀지 마요!"

"우선 이걸 운반해서 광장으로 가져갑시다. 구경은 나중에 하도록 하고, 힘 좋은 워리어들만 우선 나서 주세요."

"신들의 정원, 피라미드 등에서 석재 많이 나르신 관록 있으신 워리어분들! 20명만 앞으로 와 주세요."

안전하게 운방할 수 있도록, 재봉사들이 자진하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천으로 동상을 덮었다.

그리고 짐나르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워리어들이 나서서 조각상을 조심스럽게 운반!

"앞쪽에 길 터요!"

"모두 이곳에서 비켜 주세요."

웬만한 포장 이사 업체를 넘어서는 섬세한 서비스!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높은 제단까지 금세 설치가 끝나서, 위드의 조각상은 모라타의 중앙 광장 분수대 옆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6) 광장의 조각상


위드가 다시 접속을 했을 때에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중앙 광장은 빙룡 광장이나 빛의 광장보다는 협소하지만 사람이 가장 많이 붐비는 곳이다.

'커헉! 내가 왜 이곳에.....'

위드는 당황했지만 사람들은 그저 평소처럼 장사를 할 뿐이었다.

분수대에서 물통을 채우는 초보자들도 조각상을 구경하면서 지나갔다.

"이번에 발견된 조각품이지?"

"응. 꼭 진짜 같다."

"만져 보고 싶은데....."

여성 유저 2명이 가까운 곳에서 조각상을 구경하고 있었다.

"근데 키는 별로 안 크네."

"얼굴도 평범한 것 같아."

여성 유저들이 떠나고 나서는, 처음 시작하면 기본으로 지급되는 옷에 아직 때도 묻지 않은 초보자가 나타났다.

"위드 님, 저도 위드 님을 본받아서 열심히 살게요. 앞으로 쭉 지켜봐 주세요."

장사를 마치고 자리를 접던 상인들도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모라타를 이렇게 발전시켜 주어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재미있게 지내고 있습니다."

위드는 석상이었기에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상인은 조금 높은 제단에 서 있는 조각상이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만 보았으리라.

파티 사냥을 나가는 전사들이나 모험가들도 다가왔다.

모라타에서는 도시 밖으로 나가기 전에는 예술품을 감상하는 일이 기본처럼 되어 있었다.

만약 던전에 사냥하러 갔는데 조각상이나 그림을 감상하지도 않고 왔다면 개념 없다고 욕을 먹어도 마땅한 ㄴ일.

"정말 이렇게 신 나는 곳은 처음이에요. 멀리까지 사냥을 나가서 죽고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 즐겁네요."

눈앞에 있는 게 단순한 석상이 아니라 진짜 위드가 석상처럼 굳어 있는 거라는 사실을 상상도 하지 못하고 별생각 없이 마음에 담고 있던 혼잣말을 던지는 것이었다.

키 작은 드워프도 왔다.

"캬하! 대륙 곳곳, 정말 많은 곳을 다녀 봤지만 모라타만큼 맥주 맛이 좋은 곳은 처음이오. 이렇게 지내기 좋은 활기찬 곳을 만들어 줘서 고맙구려."

유저들 중에는 나이가 많은 아주머니, 아저씨가 손을 꼭 잡고 와서 조각상을 감상하고는 다른 곳으로 향하기도 하였다.

"풀죽신교 대추죽에서 다녀갑니다.'

"국왕 위드 만세."

유저들 중에서도 위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사냥을 나갔다가 밖에서 흔한 야생 꽃이나 풀이라도 뜯어 와 조각상 아래에 깔아 주었다.

접속을 종료했다가 다시 들어오더라도, 사람들이 조각상을 보면서 감탄하거나 아르펜 왕국의 발전을 원하면서 활기에 찬 대화하는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아르펜 왕국 주민 된 거 잘했다. 그치"

"그럼. 내가 바로 왕국에 들어오자고 했잖아. 대륙 어디를 뒤져 봐도 이런 곳은 없다니까."

중앙 광장에서는 로열 로드를 시작한 초보자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밝게 웃으며 움직이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장소.

중앙 광장에서는 파티 사냥을 할 사람을 모으거나 장사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바드들이 악기를 연주하면서 작은 공연도 했다.

거리의 악사들이 내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위드의 마음도 편안해졌다.

'주민들이 이렇게나 좋아하다니... 그리고 한밤중에도 장사가 정말 잘되는구나. 상인들이 떼돈을 벌어들이고 있군.'

국왕으로서 정말 행복했다.

'세금을 올리기만 하면 완벽하겠어.'


★★★★★★★★★★★★★★★★★★★★★


풀죽신교의 비밀 회동.

"에퀴녹 마을의 상업에 시설에 대한 정비가 필요합니다."

"건축가 몽베르트 님에게 부탁을 드려 봐야지요. 시장의 규모를 키우고 상업 건물들을 단기간에 확장하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유셀린 마을은, 지금은 별것 없지만 던전들로 인하여 발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개척 마을의 특성에 맞도록 모험가들을 파견하면 될까요?"

"로그 님이 최근에 퀘스트를 마치고 맡은 일이 없다던데, 소일거리 삼아서 부탁을 드려 보죠."

"이주민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판자촌이 부족해질 수 있습니다."

"이미 가파른 언덕에 판잣집 건설 부지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조만간 걱ㄴ설에 들어가면 별걱정 없을 겁니다."

풀죽신교는 어마어마한 성세를 자랑했다.

지금으로써는 정확한 규모조차도 추정이 불가능했는데, 아르펜 왕국의 유저라면 풀죽신교에 가입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한 일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위드가 현명한 통치를 할 때마다 풀죽신도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우리를 위하여 위대한 건축물이 완공되었습니다. 열심히 이용해 줍시다!"

"정말 위드 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다른 영주들과 너무나도 비교되었다.

"보론 마을의 영주가 원래 있던 성을 허물고 새로 짓는다네요."

"완전 어이없네. 위드 님은 흑색 거성에서 그대로 머무르고 계시는데. 쯧쯧."

"위드 님은 그런 데 쓸 돈이 있으면 우리를 위하여 건축물을 하나 더 지어 주셨을 겁니다."

"디안스 마을의 세율이 2% 더 올랐더는 소식 들으셨어요?"

"정말 뭘 믿고 자꾸 세금만 올리지?"

"그러니까 망해야죠!"

신도의 충성심 유지의 원천은 뒷담화!

풀죽신교에서는 위드를 진심으로 존경했다.

전쟁과 파괴, 과도한 세금으로 핍박받고 고통스러워하는 다른 왕국민들과는 달리, 베르사 대륙에서 주민들을 위한 통치를 베푸는 유일한 땅이 바로 모라타였다.

세상을 비추는 훌륭한 국왕 위드!

"이 땅에는 풀죽보다 맛있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소도 아니고, 언제까지 풀죽만 먹고 살겠습니까. 저는 이제 스테이크에 콩 수프도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레벨이 되었다고,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어리석었죠."

모라타에서 시작한 초보 순두부의 고백이었다.

"저는 잠시 잊었습니다. 왜 위드 님이 우리에게 풀죽을 베풀었는지, 그 이유를!"

"풀죽! 풀죽! 풀죽!"

"자유와 희망을 상징하는 풀죽의 정신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따뜻한 고깃국을 먹더라도, 떫고 쓴 풀죽의 맛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풀죽신교 만세!"

그래도 초보자들에게 밥은 먹이면서 일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 끓여 준 풀죽이, 이제는 자유라는 거창한 상징을 가진 의미로 끌어올려졌다.

"꺾이거나 밟힌 풀은 우리를 뜻합니다. 한 뿌리는 쉽게 뽑히지만 다 같이 모이면 우린 해낼 수 있습니다. 위드 님과 함께 갑시다!"

"풀죽, 풀죽, 풀죽!"

"그냥 풀이 아닙니다. 땀을 마시고 자라는 노력의 열매인 것입니다!"

"풀죽, 풀죽, 풀죽!"

풀죽신교는 모라타를 성도로 하여 북부 전체에 분포되어 있었다.


ㅡ위드 님, 일당 잡부가 많이 필요한데요.

ㅡ풀죽이라도 먹여 가며 일 시키면 될 겁니다.


과거 창설 작업에 관여한 바가 있던 마판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의 사태.

이제 북부에 아르펜 왕국이 건국되면서 팔죽신교에서는 그들이 할 일을 적극적으로 찾았다.

모라타는 한정된 땅에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몰리면서 커진 도시라고 할 수 있지만, 왕국이 되면서 영토가 비할 바 없이 넓어진 것이다.

"마을 개발 작업을 더 빨리 해야 됩니다. 늦어지거나 해서 위드 님이 그런 곳에까지 신경 쓰게 되는 사태가 일어나면 절대 안 돼요."

"가뜩이나 하실 일도 많은 분인데, 어떻게 마을 길 하나 내는 것까지 다 관리를 하실 수 있겠습니까. 워낙 신경 쓰실 일이 많다 보니 얼마 전에는 망할 놈의 바드레이에게 죽기까지 하셨잖습니까."

"그게 다 우리 잘못입니다. 진작 나서지 못한 제 탓입니다!"

풀죽신교에서는 아르펜 왕국의 영토가 확장된 곳에서의 개간과 채광, 건축, 사냥, 모험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었다.

"죽순죽 부대. 오늘은 루벤스 강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사냥을 합시다. 치안 회복을 위해서 앞장서야지요. 가실 분들, 동문으로 모이세요."

"죽순죽 유저 여기 갑니다!"

"독버섯 부대, 뭐 하고 있는 겁니까! 스탠 성 인근에 몬스터들이 쳐들어오고 있다는데! 당장 갑시다!"

"우우, 몽땅 잡아 옵시다!"

과거에는 완전 초보자들의 모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들의 전체적인 레벨이 많이 높아졌다.

평원에서 돌아다니는 웬만한 몬스터들은 그럭저럭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되다보니, 필요한 곳에 투자를 해서 건물을 세우거나 몬스터 사냥으로 치안 회복도 이루어졌다.

아르펜 왕국의 문화 확장으로 새로 얻은 마을과 땅을 발전 시키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 발전 과정이 유저들의 축적된 힘으로 단축되고 있는 것이다.

"영주, 아니 국왕 폐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아야지. 건축가로서 위드 님의 이름을 딴 광장을 세워야겠어."

"이곳의 예술품은 내가 먼저야."

"장사 하루 이틀 하나. 아르망 마을에 잡화점을 제일 처음 열어야지 손해? 일주일만 장사해도 투자비는 다 회수할 수 있을 거야."


★★★★★★★★★★★★★★★★★★★★★


중앙 대륙에서 아르펜 왕국으로 통째로 넘어오는 중소 길드들. 그들도 풀죽신교에 포함되기를 원했다.

"꼭 우리 길드의 정체성을 버리고 풀죽신교에 들어가야 될까?"

"길드장님, 아르펜 왕국에서는 필수입니다."

"혹시 사냥터 제한이나 그런 게 있는 건가? 하지만 풀죽신교에서 배타적으로 나온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중앙 대륙에서 건너온 유저들은 그런 핍박을 지긋지긋하게 겪어 왔다. 기껏 북부까지 왔는데 여기서도 이런저런 제한이 생긴다면 상당히 불행한 일이었다.

"그게 아닙니다. 풀죽신교 회원은 도시 내의 식당에서 5% 할인 혜택을 받는다는군요."

"영주의 식당에서?"

"아닙니다. 이곳에 장사하는 유저들이 대부분 풀죽신교의 회원이다 보니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혜택이 같습니다. 반찬도 몇 가지 더 나온다는군요. 그리고 사냥터에서 상인들로부터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때는 10%의 할인 혜택을 받습니다."

"그건 괜찮군."

"마차나 말을 빌릴 때도 값을 깎아 주고, 공연도 그날 가장 일찍 시작하는 회는 반값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까지나?"

"그림이나 조각품 구매 시 할인! 모험과 사냥에 대한 정보도 제공도 되고, 신용도를 쌓으면 장사 밑천도 대 준다고 하는데요. 어려운 스킬을 습닥하는 퀘스트에도 모여서 갈 수 있으니 정말 좋다고 합니다."

웬만한 카드 혜택을 능가하는 풀죽신교!


★★★★★★★★★★★★★★★★★★★★★


서윤은 빙룡 광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부드러운 털옷 팝니다. 갑옷 위에도 겹쳐 입을 수 있어요. 최저가 390골드에 모십니다."

"얼마든지 구경하세요. 사냥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취급합니다. 중고 물품 거래도 가능."

"육질이 살아 있는 쥐포! 씹는 맛이 달라요. 전투 중에도 씹으면서 포만감을 채울 수 있는 쥐포 사세요."

그녀는 장사하는 상인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혹시, 식기나 가구를 사렴련 어디로 가야 하나요?"

"판잣집 장만하셨어요?"

"네."

"이 부근에서는 흙집용품들을 많이 판매하거든요. 판잣집에 꾸밀 만한 용품은 황소 광장 쪽에서 많이 팔려요."

"감사합니다."

상인은 곱고 예쁜 목소리를 들어서 흐뭇했다.

왠지 목소리만으로도 쉽게 범접하지 못할 아름다움을 느낀 듯한 기분.

서윤은 황소 광장으로 가서 판잣집에 어울리는 식기와 가구를 구매했다.

가구공예는 조각사들이 많이 하는 부업이기도 했다.

쓸 만한 나무를 벌목하여 책상, 침대, 의자, 식탁, 소파 등을 만들곤 했는데, 디자인만이 아니라 내구성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오빠, 우리 이거 사자."

커플끼리도 많이 와서 판잣집을 꾸미기 위한 다양한 용품들을 구입했다.

거실, 침실, 부엌, 서재 등을 꾸미는 경우에는 구입해야 하는 물품도 상당히 맘ㄶ았다.

집을 꾸미고 나면 언제든 와서 편안히 쉴 수도 있었으며 친구들에게 자랑거리도 되어서, 그냥 넘겨 버릴 수 없는 유혹이었다.

서윤도 마음에 드는 물품을 골랐는데, 몇 가지 미처 없는 물품들이 있었다.

"찾으시는 물품들이... 제법 안목이 있으시군요. 그런 것들은 조금 비싼데. 중앙 광장에 가시면 상인 안데르스가 팔고 있을 겁니다."

서윤은 중앙 광장으로 가서 물품을 찾던 도중에 분수대 옆에서 위드의 조각상을 발견했다.

"......"

그녀가 알고 있는 위드와 완벽하게 똑같은 모습.

서윤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조각상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순서를 기다려서 앞으로 갔다.

가까이에서 봐도 영락없는 위드였다.

"......"

서윤은 밤이 될 때까지도 중앙 광장에서 물품을 구매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시간을 때우는 데 있어서 쇼핑만 한 것이 없다.

중앙 광장에서는 온갖 잡다한 물품들을 다 판매하고 있었기에 볼만한 구경거리도 많았다.

시간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저녁에는 선술집이 붐비고, 사냥은 아무래도 아침 무렵에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밤에는 어디나 다소 한적해지기 마련이지만, 중앙 광장은 새벽 시장도 크게 열려 손님들이 북적거리는 편이어서 24시간 한산한 때가 없ㅂ었다.

새벽 시장에서는 쉽게 맛보기 힘든 곰 바비큐를 포함하여 신기한 요리들을 맛볼 수 있기도 하여 더욱 인기였다.

"공연장에서 하이렌과 베너티의 공연이 있습니다."

"벌써 모라타로 돌아왔나?"

"얼른 가 보자!"

인기 있는 여성 바드들의 공연에, 유저들이 많이 빠져나갔다.

다소 한산해지면서, 위드의 조각상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줄어들었다.

위드의 조각상이 진열되고 나서 처음 사흘 동안은 구경꾼들로 중앙 광장이 미어터질 정도였다.

중앙 광장 상인들의 매출이 10배씩 뛰어오를 만큼, 파급효과가 대답하였다.

모라타는 다른 도시와는 달리 문화적인 혜택이 풍부하였지만, 그럼에도 위드의 조각상이고 스탯을 얻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초보자와 고레벨 유저가 가리지 않고 모여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중앙 광장에 진열이 되고 열흘이 지난 지금은 다소 주목도가 떨어진 상태.

그래도 한창 북적이는 때에는 줄을 서서 구경해야 한다는 것은 변함없었지만 말이다.

서윤은 슬그머니 조각상으로 다가가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마법 조명들이 밝혖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밤이라서 사방이 어스름했다.

'정말 해도 될까?'

그녀의 가슴은 아까부터 쿵쾅대면서 뛰고 있었다.

서윤이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을 살짝 올렸다.

달빛조차도 숨을 죽일 그녀의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서윤은 조각상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


이현은 오랜만에 아이템 경매 사이트에 접속했다. 요즘의 주 수입원은 아이템 매각보다는 아무래도 방송사에서 지급되는 출연료였다.

"흠, 아이템의 시세가 생각보다도 훨씬 떨어지지 않는군."

처음 로열 로드에 대해서 걱정했던 부분이다.

새로 시작하는 유저들이 없다면 아이템의 시세는 곤두박질치기 마련.

그러나 로열 로드는 유저들을 기하급수적으로 끌어들이고 이다.

아르펜 왕국의 최근 발전 속도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빠른 것도 레벨 50 이하 초보자들의 힘이었다.

무력이야 볼품없지만 모이면 대단한 힘을 발휘하는 초보자들!

매일 가져오는 짐승의 가죽으로 인하여 재봉 산업이 나날이 발달하고, 초보자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조달하느라 상업 활동도 활발했다.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조금 나중에 팔아도 괜찮겠어."

이현은 매각 시점을 잘 조절했다.

아이템의 시세는 매분 단위로 변동되는데, 어느 누가 쓴다는 소문만 나도 찾는 사람이 늘어서 가격이 뛴다.

특정 사냥터에서 유용한 무기도 있고, 새로운 전투 방식이 개발되기도 하였다.

전투에는 유행이 따르기도 하는데, 로열 로드 초창기에는 도둑이나 모험가 같은 직업에게도 방패는 필수였다.

몬스터의 공격력이 강력하다 보니 크고 두꺼운 방패에 숨어서 장기전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는 적의 생명력을 크게 깎아 놓을 수 있는 마법사, 궁수와의 파티 사냥법이 흔해졌다.

갑옷이나 다른 방어구, 사제의 보호 마법도 발달하다 보니 기사와 워리어가 아니라면 굳이 방패를 찾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방패의 가격이 많이 폭락했다.

그래도 공성전이나 던전을 처음 개척할 때를 위한 대비용으로 여전히 어느 정도 소비는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법 아이템들의 가격은 여전히 높고... 마법사는 하지 않기를 정말 잘했어."

마법사 전용 아이템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

높은 지적 능력으로 인해서 NPC들의 호감을 끌어내기 좋은 것이 마법사다.

파티 사냥을 한다 해도, 앞에서 직접 싸우지 않고 뒤에서 마법 공격만 날리면 되니 편하기도 했다.

주문을 외워서 발휘하는 마법의 한 방 공격력이나 화려한 효과는 일품이었으니, 마법사는 정말 인기 있는 직업이었다.

하늘을 날거나, 텔레포트, 물 위를 걷고, 유용한 소환수를 불러내는 등 다양한 보조 마법까지 쓸 수 있어서 재미있는 직업이었다.

다만 마법 아이템은 정말 만들기도 어렵고 귀해서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장비 마련으로 허덕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바르칸의 풀 세트는 아직 팔 때가 아니로군.'

네크로맨서들의 물품들은 아직 중저레벨을 위주로 거래되고 있으니 바르칸의 풀 세트 아이템은 한참이나 후에 팔아야 될 것 같았다.

이현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을 다 올리면 경매 사이트에 엄청난 난리가 나게 되리라.

느긋하게 경매 사이트를 돌아보고 있는데, 최근에 경매가 가장 크게 들썩이는 물품이 있었다.


탈로크의 믿음 갑옷.


"설마......"

경매 글을 클릭해서 들어가 보니 역시였다.

너무나도 익숙한 아이템의 모습!

매일 수리를 하고, 입김을 불어 조심스럽게 닦아 가며 사용했던 물품.

-이거 텔레비전에서 많이 본 그 갑옷 아니에요?

-전쟁의 신 위드가 사용했던 갑옷이 맞나요?

-맞습니다 이거 올린 사람의 아이디를 보세요.

-바드레이 맞네요.

-완전 대박이다.

탈로크의 믿음 갑옷 경매 시작 금액은 130만 원!

낮은 액수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입찰을 하며 가격을 띄우고 있었다.

다양한 옵션을 가지고 있고, 레벨 제한은 350으로 비교적 낮은 편이기도 하다.

더구나 위드가 착용했던 물품이라는 희소성까지 붙다 보니 가격은 벌써 370만 원을 넘어간 상태!

경매가 끝날 때까지는 아딕 닷새나 남아 있으니 더욱 비싼 값으로 낙찰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바드레이, 이 나쁜 놈....."

베르사 대륙에서는 강한 자로서, 그리고 뛰어난 유저로서 존중했다.

적대적인 관계가 되어서 싸움이야 있었지만 악감정까지는 없었다.

그렇지만 경매 글을 보고 생겨난 분누와 짜증, 소화불량!

"바드레이, 훗날 반드시 널 죽여 주겠다. 그리고......"

이현은 확실한 복수 방법을 떠올렸다.

"네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도 빼앗아서, 그걸 팔아 큰돈을 벌어 주지!"

무작점 감정에 몸을 맡기는 건 이현의 방식이 아니었다.

철저리 실리를 추구하는 분노!


★★★★★★★★★★★★★★★★★★★★★


한국 대학교로 가는 길.

이현은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다. 보통 걸어갈 때도 많았지만 때마침 버스가 와서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탄 것이었다.

그런데 버스에서부터 학과 후배를 만났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학교 가세요?"

"그래."

이현에게 인사를 한 건 최상준을 따라다니던 여자 후배였다. 로열 로드에서, 잠깐이지만 멜버른 광산에서 사냥도 같이한 사이.

"시간 되시면 밥이라도 같이 드실래요? 모험에 대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거든요."

"아침 먹었어."

"벌써 점심을 드실 시간인데요. 인문관 식당에서 돈가스 드셔 보셨어요? 맛있어요."

"나도 그러고 싶지만 위궤양 때문에 요즘 물만 마시고 살고 있어. 기름기 있는 건 안 돼."

"제가 살게요."

"배고프던 참이었지."

후배들 사이에서는 이미 이현의 성격에 대해 소문도 쫙 퍼진 후였다.

로열 로드에서의 위드라는 소식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에야 그를 소 닭 보듯이 했다.

MT나 학회 일에서도 전부 빠졌으니, 강의실에서 후배들에게 존재감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 학과에 그런 선배도 있었어?"

"왠지 우리를 자꾸 피해 다니는 거 같지 않니? 인사를 해도 받아 주지도 않고."

"수업도 제대로 안 듣는 것 같아. 노트에는 낙서하고 있더라. 리포트도 제대로 낸 적도 없다더라. 그런 선배랑 같은 조에 걸리면 정말 귀찮아지는데."

"아, 그 서윤 선배님이랑 같이 다니는 남자?"

넓게 펼쳐진 갯벌의 꼬막 같은 미미한 존재감!

그러다가 전쟁의 신 위드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난 이후에는 모든 것이 180도 바뀌었다.

후배들은 강의 시간마다 모여셔 수다를 떨었다.

"이현 선배 멋지지 않니? 말수도 적고, 강의 시간에도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겨 고뇌하는 것 같아 보이는 옆모습이 정말....."

"돋보이는 외유내강이라고 해야 할까? 말로만 떠드는 사람과는 다르게 자랑도 하지 않고 조용히 학교 다니고, 로열 로드에 접속을 하면 전쟁의 신 위드라니..... 꺄아! 그 이중성이 매력적이야."

"전투만 하면 그 박력이 있는 모습이 정말 남자다워. 오크 카리취의 품에 안겨 보고 싶다."

"어떻게 조각사란 직업을 가졌을까? 보통 감수성으로는 어려운 직업이잖니. 모험을 하지 않는 평소에는 잔잔한 호수를 보면서 정말 예쁜 조각품을 생각하고 있을 거 같아."

"모라타에 가 봤니? 완전 영웅이야. 이현 선배님이랑 꼭 밥 한 끼 같이 먹고 싶다."

"동생이 사인 받아 오라고 했는데 너무 떨려서..... 뭐라고 말을 걸지?"

순식간에 가상현실과의 멋진 선배로 떠오르게 된 이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작년에 학교에서 벌였던 확약들까지 알려지면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대학 졸업 때까지 후배들에게 절대 밥을 사지 않겠다는거창한 목표를 가진 이현에게는 그다지 발마직하지 않은 전개.

다행히 서윤의 높은 벽에, 대부분의 여자 후배들은 말도 붙여 보질 못했다.

"둘이 왜 만나는 거야?"

"무슨 약점이라도 잡혔을까?"

"만날 따라다니고 도시락도 싸 오는데? 서윤 선배가 정말 좋아하는 거 같잖아."

그러다가 요즘엔 이것도 바뀌었다.

"둘이 잘 어울리는 거 같아."

"서윤 선배의 선택에는 역시 당연한 이유가 있었던 거구나."

이현은 학교 식당에서 돈가스를 먹었다. 사실 집에서는 영양식을 요리해서 먹는 편이기는 했지만, 돈가스나 라면도 정말 좋아했다.

'어릴 때에는 동생이랑 같이 돈가스집을 가 보고 싶었는데.....'

레스토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분식집 돈가스라도 동생과 같이 나누어 먹으며 행복하던 시절이 있었다.

돈가스는 가끔 생각나는 추억의 음식이기는 했지만 집에서 만들어 먹으려면 손도 제법 가고, 무엇보다 식용유가 너무 많이 들어서 최근에는 먹지를 못했다.

요리로 인한 환경오염보다는, 전적으로 식용유값 때문에!

"제 이상형은요, 궁금하시죠? 모험을 같이할 수 있는 남자예요."

"아, 그래."

슥슥.

이현은 금방 나온 돈가스에 칼질을 했다.

정확하게 간격을 나누어서 잘리는 고기.

"저를 지켜 주지 않아도 좋아요. 막 미지의 땅으로 모험을 하면서, 그 두근거림을 같이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물오물.

"좋겠지."

"소연이 남자 친구 생긴 거 아세요? 로열 로드에서 만났다는데."

"생겼어?"

"네. 매일 캡슐방으로 데이트하러 간대요."

"그렇구나."

이현은 돈가스를 씹어 먹으면서 만족스러운 맛을 느꼈다.

'이 돈가스 괜찮군!'

소스도 느끼하지 않은 것이, 정확히 이현의 취향이었다.

물론 앞자리에 앉은 후배가 뭐라고 떠드는지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는 상태.

소연이라는 애가 누구인지, 얼굴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현은 과식도 하지 않고 잘 씹어 먹은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다. 그럼 다음에 보자."

"네, 선배님!"

후배의 얼굴은, 이제 인맥을 터놓았다면서 흐뭇해하는 표정이었다.

앞으로 학교에서 만나거나 한다면 친하게 말도 걸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다.

그리고 어쩌면 로열 로드에서 아이템을 지원해 주거나 퀘스트를 소개해 줄지도 모른다는 무궁무진 한 환상의 퍼레이드!

이현은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잔디밭을 걸었다.

큰 나무 그늘 아래는 서윤과 1년 넘게 같이 도식락을 까먹던 추억의 장소.

"앞으로 1년 정도는 도시락을 먹지 못하겠군."

서윤이 싸 오지 않아서가 아니다.

이현은 방학 기간 내내 여동생의 눈치를 보다가 개강 전날, 드디어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저녁에, 된장찌개에 삼겹살까지 해 놓고 여동생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전공 수업에, 도장도 다녀야 되고, 로열 로드도 해야 되잖아 요즘 내 몸이 예전 같지가 않아."

이현의 몸이 예전 같지 않기는 했다.

티셔츠를 벗으면 자잘하게 발달한 근육이 눈에 확 띄고, 아침에 10킬로 정도는 가볍게 조깅할 수 있는 체력.

"몸이 안 좋아지다 보니 요즘 감기도 자주 걸리는 거 같고...."

이날을 위하여 그동안 찬물로 목욕도 많이 했다.

감기에 걸려서 기침하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였는데, 그걸로는 끄떡도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불도 덮지 않고 자고, 아이스크림도 많이 먹고, 도장에서 혹사도 해 보았다.

그런데 무슨 몸이, 몸살이나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멀쩡한 건지!

사전 공작은 실패였지만 그래도 어젯밤 밤을 새워서인지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오빠, 많이 아픈 거야?"

이혜연이 이현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열을 재 보기 위해서였는데, 그녀가 깜짝 놀랄 만큼 뜨거웠다.

부엌에서 끓인 물을 빈 병에 담아서 이마에 대고 있다가 왔기 때문이다.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고 운동도 격하게 해서, 몸에서 땀도 줄줄 흘렀다.

이현이 힘없이 말했다.

"그냥 견딜 만해. 그래도 여러 가지를 다 하다 보니 조금 무리가 온 것 같네."

"병원 가 보자."

"병원은 무슨!"

꾀병에 병원비라니, 절대 안 될 노릇!

"조금만 쉬면 나아. 그런데 이제 내일이면 개강이지?"

"학교는 갈 수 있겠어?"

"가고는 싶은데, 내일까지 몸이 나을 거 같진 않아. 무리해서 학교에 다니다 보면 몸 상태가 계속 나빠질 것 같아서 걱정도 되고."

"원래 개강 첫 주에는 학교 안 나갔잖아. 그냥 집에서 쉬어."

"....."

이현은 개강 첫 주는 철저히 학교에 가지 않고 로열 로드를 했다.

그러한 과거 전력이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오는 것.

이현은 피곤한 듯이 과장된 몸동작으로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아무튼, 내가 생각해도 몸 생각을 해야 될 것 같아. 그나마 방학 때는 시간이 많았는데 개강을 하고 나면 학교도 다니면서 일을 해야 되니 더더욱 힘들겠지."

"잘할 수 있을 거야, 오빠. 나도 도울 일이 있으면 도울게."

"그냥 조금 푹 쉬고 싶다. 항상 바쁘게 달려오기만 해서 삶에 여유가 없는 것 같아."

"오빠....."

여동생에게 꾀병을 부려서 전격적인 1년의 휴학 결정!

"드디어 골치 아픈 일에서 해방이야."

이현은 1년 반의 추억이 담겨 있는 한국 대학교를 거닐었다.

"내가 낸 등록금으로 벤치를 바꾸었군. 화단에도 꽃도 심었고... 체육관도 새로 짓고, 직원들 회식도 한 모양이지."

여기저기 모두 눈에 익숙한 곳들이었다.

"그렇지만 1년간 휴학을 하면 그동안 등록금을 내지 않아도 되겠군."

대학 최대의 장점은 누가 뭐라 해도 역시 휴학 제도!

이현은 학과 사무실로 가서 휴학 신청을 했다.

원래 개강 전까지 해야 되지만, 대한민국에서 기간이 지났다고 안 되는 건 없는 법.

휴학 사유에는 '바드레이에게 복수' 라고 적어 놓았다.


★★★★★★★★★★★★★★★★★★★★★


집으로 돌아오는 이현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앞으로 1년간 등록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데서 기인한 편안한 기분.

"이 1년이 2년이 되고 3년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여동생이 유학을 간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휴학을 연장하고 말리라.

모처럼 기쁜 마음으로 마당으로 가서 키우는 개 몸보신에게 밥도 줬다.

"많이 먹어라."

왈왈!

요즘 무슨 낌새를 챈 것인지 몸보신이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다.

"통통하게 살이 쪄야지. 기름기도 좔좔 흘러 주면 좋고....."

로열 로드에 접속해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지만 집안일이란 잠시도 떼어 놓을 수가 없는 것.

이현은 덝과 오리, 토끼 들에게도 먹이를 주었다.

일감이 있어서 번거롭다는 생각도 가끔 들었지만, 동물을 키우는 것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 먹음직스럽게 커 가는 것을 바라보는 그 기쁨!

이현이 이처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얼마 전에 이사를 나간 옆집 자리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현이 살고 있는 동네는 주택단지였는데, 가장 넓고 집값이 많이 나갇건 옆집이 최근에 팔렸다.

그러더니 집을 허물고 넓은 마당에 텃밭까지 있는 대저택이 지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윤의 집!

그녀는 이현이 휴학을 고려 중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웃돈을 주어서 옆집을 매수했다. 물론 이현의 집과 붙어 있는 쪽의 담장은 미국식으로 형식적인 나무 울타리 정도만 만들어 둘 계획.

반직석이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노력을 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


최지훈은 한강 보이는 카페에 앉아 있었다.

"올 때가 되었는데....."

오늘은 이혜연과 데이트 약속이 있는 날.

그의 생각으로는 영화나 한 편 보고 근사한 곳에서 식사나 하면 좋을 테지만, 만나서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ㅡ1달 전부터 자전거 타고 다녀 보고 싶었는데. 싫으면 말고요.


이혜연의 무서운 말.

공부해야 한다며 매일 어찌나 바쁜지, 정말 어렵게 잡은 기화라 설령 막노동을 간다 해도 이 데이트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최지훈이 쿠키와 커피를 시켜 놓고 안장 있으니 카페 여자들의 시선이 자꾸 그에게로 향했다.

키 크고 잘생인 외모에 옷까지 센스 있게 입어서, 어디를 가더라도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최지훈은 그녀들에게 이제 신경도 쓰지 않았다. 감히 다른 여자들과 같이 둘 수 없는 이혜연의 매력에 푹 빠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정말 좋은 여자야."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고 올바르게 자라지 않았던가.

사실 과거에 껌을 조금 씹긴 했지만, 최지훈은 여기에 대해서는 까맣게 모르는 상태!

"똑똑하고 참하고 예쁘고, 모자란 구석이 없는 것 같아. 둘이 같이 살면 사소한 일로도 알콩달콩 정겹게 지낼 수 있을 것 같고."

이미 수면 안대 두께의 콩깍지가 완벽하게 씌워져 있었다.

최지훈은 그녀를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한밤중이 아니라 아침 일찍 데이트를 위해서 나오는 것도 기분 전환에 참 좋은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부르르르르!

진동하는 핸드폰 화면을 보니 이혜연의 이름이 떠 있었다.

"이제 왔나 보구나."

최지훈은 오랜만의 데이트에 설렘을 느끼면서 전화를 받았다.

"지금 어디야?"

약속 시간이 이미 조금 지났지만, 이혜연이 무안하지 않게 금방 먼저 도착했다고 말하려는 순간.

-미안해요. 갑자기 일이 많이 생겨서 못 갈 거 같아요.

"그렇구나. 괜찮아. 일이 있으면 어쩔 수 없지, 뭘."

최지훈은 다정하게 이해해 주는 남자였다.

"근데 무슨 일인데? 곤란하거나 어려운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지?"

-오빠가 대청소랑 밀린 빨래를 한다고 해서요. 보신이 털이 꼬질꼬질해서 목욕도 시켜야 되는데... 도와줘야 할 것 같아요.

"그건...."

천하의 최지훈이 개 목욕시키는 데 밀리다니!

-여기 일손이 부족한데, 지훈 오빠도 올래요?

"난, 저기, 청소 같은 건 잘 못 해서....."

-싫어요?

"갈게. 집으로 가면 되지?"

-고마워요. 빨리 와요.

최지훈은 자동차 키와 지갑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급 명품 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

아쉬워하는 여자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최지훈.

그러나 그의 현실은 잔소리를 듣기 전에 서둘러 청소를 도와 주러 가야 하는 처지였다.


7) 끝없는 욕심의 헤르메스 길드


위드는 다시 로열 로드에 접속했다.

'오늘도 광장에 사람들이 참 많군.'

광장에 있다 보면 모라타의 발전을 실감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도 듣고, 장사하는 상인들, 지나다니는 유저들을 구경하다 보면 금방 방이 찾아온다.

'이제 고작 엿새 남았군.'

1달을 버텨야 하는 퀘스트.

조각상으로 가만히 있으면서 지내느라 심심하기는 했지만 이대로라면 무사히 퀘스트를 완수.

광장에는 늦은 시간까지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시간도 지나면 새벽이 되어, 낮보다도 훨씬 사람들이 많아졌다.

해가 떠오르고 난 이후부터는 새들도 구경하고, 따뜻한 햇볕도 받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음, 오늘도 별일은 없겠어.'

광장 한복판에 있다 보면 위험한 사건이라고는 거의 벌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위드는 로자임 왕국의 세라보그 성의 광장에서부터 장사를 자주 했다.

조각사, 요리사, 대장장이로서 영업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손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바가지를 씌울까 궁리하면서 보내던 시절.

모라타에서는 큰 모험에 성공하거나 대단한 무역 이득을 거둔 상인들이 곧잘 나왔다.

"스펜슨 님이 금역 아골디아에서 루의 교단의 성소를 찾았다더라."

"아, 드디어 해냈네."

"성검을 복원하고 있는 중이래. 끝까지 남아서 퀘스트를 하던 사람들 완전 대박이야."

모험가들의 새로운 소식도 듣고, 최근 소문이나 잘 팔리는 상품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직업 마스터 퀘스트에 대한 정보들도 접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자격을 갖춘 다양한 사람들이 활약 중이었다.

전투 계열들은 스킬 요구 레벨이 조금 낮은 편이다. 유명한 랭커가 아니었더라도 철저히 기본 스킬 위주로 성장해 온 사람들은 직업 마스터 퀘스트 경쟁에 뛰어들었다.

스스로도 가장 먼저 성공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할 일.

그리고 이번 기회에 큰 유명세를 떨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마스터 퀘스트를 하는 사람은 알려진 것만 54인까지 늘어났다.

위드는 거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경쟁자들에 대해서는 신경이 쓰이지 않는 편이었다.

'바드레이가 요즘 뜸하던데...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분명히 어디선가 호박씨를 까고 있을 것 같은데.'

탈로크의 믿음 갑옷으로 발생한 악감정!


★★★★★★★★★★★★★★★★★★★★★


헤르메스 길드의 결단의 날.

"전쟁 개시는 오늘 새벽입니다."

라페이는 수뇌부 회의에서 선포했다.

모든 군대는 벌써 라살 왕국의 국경 부근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바드레이도 직업 마스터 퀘스트 진행을 잠시 멈추고 하벤 왕국의 대군을 지휘하고자 나섰다.

라페이가 확실히 하기 위해 말했다.

"우리가 라살 왕국을 치게 되면 패권 동맹에서 이탈하는 것입니다."

베르사 대륙 명문 길드들의 대연합. 패권 동맹.

힘을 합쳐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각기 정해진 영토에서 점령전을 펼치기로 한 약속이었다.

어쩔 수 없는 경우였다지만, 헤르메스 길드는 멜버른 광산에서 흑사자 길드의 영역을 침입한 전례가 있다.

그 때문에 이미 패권 동맹의 다른 명문 길드로부터 공식적인 경고를 받은 상태였는데 군대를 동원하여 라살 왕국까지 침략한다면, 이것은 전 대륙을 향한 선전포고나 다름이 없었다.

수뇌부 역시 이 점 때문에 다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동맹 이탈에 대한 대비책은 철저히 세워져 있습니까?"

"우리 헤르메스 길드가 다른 곳들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강대하다고는 하나, 그들이 한꺼번에 적대적으로 나오면 곤란한 부분도 많을 겁니다."

라살 왕국의 점령은 이미 정해진 계획이기는 했지만 중요한 부분이라 우려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라페이가 차분히 설명했다.

"현재까지 파악한 상황에 따르면 다른 길드들은 영토 확장을 끝마치지 못했습니다. 왕국 내에서 기존의 적들과 전투가 이어지고 있기에, 우리를 막기 위해 군사력을 투입하기는 어려운 시점입니다."

라페이는 길드의 대외적인 대포였다.

바드레이가 헤르메스 길드에서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지만, 라페이에게 주어진 권한도 막대하다.

길드 차원에서 중요한 목표가 결정되면 이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은 대부분 라페이와 참모부에서 추진한다.

왕국 개발과 인사 조치, 군대 양성, 다른 길드와의 외교 협상 등의 대부분이 길드장인 라페이에 의해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헤르메스 길드의 성장에 라페이의 공 역시 적지 않은 것이다.

라페이와 그를 뒷받침하는 참모부의 정보력과 결정력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특별히 신경을 써야 되는 몇몇 길드에 대해서는 선제적인 조치들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계획이 무엇입니까?"

헤르메스 길드의 수뇌부라고 하더라도 거느리고 있는 영토가 넓고 성들의 숫자만 100여 개에 달하는 만큼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면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까지 밝히기에 조금 이른 편이라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방법은, 그들과 싸우고 있는 적대 세력에 힘을 실어 주는 것입니다. 파괴 공작이나 요인 암살 등의 여러 지원책이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톨렌 왕국을 장악하고 있는 베덴 길드의 경우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흑사자 길드의 톨렌 왕국의 경우에는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계획이 잘 통한다면 저들을 당황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당장 라살 왕국과 치를 전쟁에 투입할 병력과 자금은 충분한 겁니까?"

"위드를 없애기 위하여 모라타까지 파견하려고 했던 공격대, 그들의 임무를 바꾸어서 이번 일에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다른 비밀 전투단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칼라모르 왕국에서 거둔 세금도 막대해서, 충분히 여유가 있습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입니다. 다른 길드에서 우리의 짓이라는 걸 눈치채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입장이 더욱 곤란해지지 않을까요?"

"우리에 대해서는 다들 이미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세력이 현재보다 커진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격을 해오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명분은 어차피 크게 의미가 없으니, 패권 동맹이 깨지고 헤르메스 길드를 목표로 한 엽합 동맹이 결성될 수도 있겠죠. 그럴 바에야 선제공격을 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 대륙을 제패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다른 명문 길드들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영원한 동반자가 아닌, 서로의 이익을 키우기 위한 일시적인 협력 상태였을 뿐!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숨겨 놨던 전력을 드러내며 하벤 왕국의 통일과 칼라모르 왕국의 점령을 재빨리 이루어 냈다.

상대 명문 길드들도 분명히 긴장하고 또 경계하고 있으리라.

시간을 끌어서 대비를 하게 해 줄 바에야 확실하게 앞서 나간다는 선제공격의 전략.

헤르메스 길드는 식민지 운영으로 군대 확장을 이끌어 내었고, 바드레이의 명성 덕분에 고레벨 유저들의 포섭도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현재, 다른 길드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압도적인 전력의 우위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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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 길드의 전격적인 라살 왕국 침공!

공성 병기를 운용하지 않고 마법사 부대를 대규모로 운영하여 요새와 성을 통째로 파괴해 버리며 전쟁을 개시했다.

최상의 수준으로 훈련된 기사단과 기병, 중장갑 보병으로 이루어진, 대륙 최고의 군대.

평원을 가득 메운 군대가 라살 왕국의 방향으로 진격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전율이 일게 만들 정도였다.


속보! 대륙의 최강대국 하벤 왕국이 라살 왕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언하다

라살 왕국,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수도까지 점령은 시간문제일 듯!

대륙에 충격을 안겨 주는 하벤 왕국군의 진격


방속국들은 전쟁의 개시를 신속하게 알렸다. 파급효과만 놓고 본다면 이보다 더 중요한 뉴스가 없을 정도였다.

중앙 대륙에서 전투는 자주 일어나지만, 왕국 단위의 전쟁이 쉽게 발생하지는 않았다.

영토의 면적이나 인구, 군사력, 경제력에서 가장 앞서 있는 하벤 왕국의 일방적인 침공이기에 방송국들은 중요하게 보고 있었다.

하벤 왕국에 비한다면 라살 왕국의 전력은 오분의 일도 안 되는 수준.

설상가상으로 군대에 속해 있는 유저들의 질과 숫자에서도 아예 비교가 안 되었다.

-헤르메스 길드가 쳐들어오는데 어떻게 하죠? 항복하는 사람은 살려 줄까요?

-상인입니다. 지금이라도 몽땅 처분하고 이주하려구 하는데요, 어느 쪽 길로 가야 안전할까요?

-바드레이가 어디서 전투를 벌이는지 아시는 분. 전쟁은 어차피 패배할 거, 구경이나 가게요.

기사 훈련을 통해 평원에서 할 수 있는 갖가지 돌격 전술에 탁월한 실력을 갖춰 온, 헤르메스 길드원을 주축으로 한 하벤 왕국 유저들은 초원에서 라살 왕국의 취약한 군대를 그야말로 남김없이 짓밟아 버렸다.

라살 왕국은 압도적인 하벤 왕국의 군대를 상대할 엄두도 내지 못할 처지라서, 완전 점령도 시간문제였다.

-또다시 전쟁을 일으키다니. 지겹다, 지겨워.

-헤르메스 길드는 진짜 해도 너무합니다.

-엠비뉴 교단으로 인해 중앙 대륙이 괴로운 지금,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 꼭 왕국 전쟁을 일으켜야만 했나요?

-힘이 있다고 그런 식으로 쓰는 거 아닙니다. 여러분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도 좀 생각해 봐야죠. 물론 그런 거 생각할 머리가 없으시겠지만.

시청자들은 게시판에 가서 헤르메스 길드의 야욕을 맹비난했다.

패권 동맹에 속해 있는 길드들도 긴급회의를 통하여 대응책을 마련하려고 하였다.

헤르메스 길드의 라살 왕국 침공은 명백히 동맹을 이탈했음을 밝히는 행위였다.

하지만 이미 자신들도 전쟁을 벌이고 있는 터라서 대규모의 군대를 빼내는 것은 무리였다.

소규모의 군대로는 아예 헤르메스 길드를 넘볼 수도 없었다.

"로암 길드에서 나서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여력이 되는 클라우드 길드가 먼저 힘을 써 주시면 저희도 동참하겠습니다."

"블랙소드 용병단은요?"

"저희는 최근에 어려운 의뢰를 수행하는 중이라서 빼낼 사람들이 없습니다.'

패권 동맹의 길드들은, 필요성은 공감하였지만 자신들의 피해는 최대한 줄이고 다른 사람들이 나서 주기만을 바라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다른 명문 길드 중 몇 곳은 비밀리에 해르메스 길드의 지원을 받고 있기도 했다.

지긋지긋한 회의가 이어졌지만, 연합군 결성이 정식으로 추진되지는 못했다.


★★★★★★★★★★★★★★★★★★★★★


샤먼을 위한 최고의 장비, 스킬 북, 사냥터, 전투 용병.

다인은 온갖 혜택을 받으면서 던전 사냥을 하였다.

헤르메스 길드의 일반 유저들과는 차원이 다른 특급 대우!

길드에서는 능력에 따라 우대하는 정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인은 평균도 되지 않는 수준에 불과했는데도 특급에 해당하는 대우를 받았다.

"대체 누구야?"

"몰라. 길드장님이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인ㄴ가 본데. 요구 하는 게 있으면 어떤 지원이라도 해 주라고 했다더라."

다인은 샤먼으로서 높은 스킬 숙련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레벨도 금방 따라서 올랐다.

길드의 지원 팀에서 주기적으로 연락이 왔다.

"필요한 물건이 더 없으십니까?"

"지금은 괜찮아요."

"소모품이 필요하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다스리고 싶은 도시나 성이 있다면 요청하셔도 됩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영주의 자리를 제공한다.

단, 전장에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남들보다 뒤처진다면 지위도 박탈. 다인은 그럴 능력이 되지 않음에도 영주의 자리를 준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원래 라페이, 바드레이를 포함한 헤르메스 길드의 핵심 유저 7명과 로열 로드의 초창기에 같이 성장하였다.

능력을 최대한 우선하는 헤르메스 길드라고 하여도 초창기 창립 공신에 대한 대우는 다를 수밖에 없는 법.

다인은 영주로서 권력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칼라모르 왕국에 대한 관심은 갖고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가 정복한 이후로 그곳의 주민들은 겨우 죽지 않을 정도의 식량만을 남기고 모조리 수탈을 당하였던 것이다.

"칼라모르 왕국에 속해 있는 성이라면 어디든 괜찮아요."

"칼라모르 왕국 지역은 길드장님의 허가가 필요한 사안이라서... 확인 후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길드에서는 불과 몇 시간 후에 대답을 주었다.

칼라모르 왕국에서 영주가 정해지지 않은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으며, 영주가 있는 장소더라도 원한다면 말하는 제안이었다.

"인구가 많고 치안이 낮은 곳으로 구해 주세요."

"치안이 낮은 곳요? 하긴... 그런 곳이 사냥에 유리하고, 명성 올리기도 좋죠. 알겠습니다."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다음 날, 에바루크 성을 다인의 영토로 결정해 줬다.

칼라모르 왕국에서도 일곱 번째로 인구가 많은 성이었는데, 현재 점령의 후유증과 과도한 세금으로 인하여 폭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몬스터의 출현도 잦아져서 치안이 정말 나쁜 장소였다.

"기사단과 보병대도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세금도 3개월간은 납부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특혜의 연속.

다인은 영주가 되고 나서 주민들에게 세금을 감면하고, 시설 투자와 성벽을 개보수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다.

성벽의 관리 상태가 좋을수록 몬스터의 침입이 줄어들고 주민들의 충성도가 감소하는 속도도 느려진다.

먼저 주민들의 믿음을 되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녀는 칼라모르 왕국의 영주로서는 유일하게 예술에 대한 투자도 했다.

조각사와 화가를 우대하면서 그들을 위한 전시 공간도 마련했다.

기사의 왕국 칼라모르.

점령당한 이후 오직 생존이 최우선 목표가 된 이곳에서도 예술의 꽃이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


위드는 중앙 광장에서 조각상이 되어 있는 상태로 전쟁 소식을 들었다.

상인들은 거리를 하거나 주변에 돌아다니는 소문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이제는 온통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들뿐이었다.

"라살 왕국에서 활동하는 유저가 알려 줬는데, 전투 몇 번 해 보지도 못하고 망하기 직전이라더라. 하루에 성을 7개나 점령했다던데."

"와, 진짜 무섭네. 진격 속도가 어떻게 그렇게 빨라?"

"군대를 세 갈래로 나누어서 파상 공세를 펼치고 있대. 각 군대마다 15만 이상의 병력이라는데... 상상도 안 간다."

광장의 상인들은 좌불안석이었다.

중앙 대륙이야 늘 싸움이 벌어지는 곳이었짐나 이렇게 큰 전쟁은 그들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당장 곡물과 철의 가격이 오르고, 전쟁을 피하기 위한 피난민들이 대거 발생하여 물가가 불안정해지리라.

위드는 헤르메스 길드의 승전 소식을 들으면서 끊임없이 기도를 했다.

'망해라. 쫄딱 망해라.'

헤르메스 길드가 커질수록 적대적인 관계를 감안하면 막막하였기 때문.

모험가가 달려와서 말했다.

"헤르메스 길드가 이번에, 공략이 어렵다던 수어쿤 요새도 점령했대!"

하지만 위드는 실망하지 않았다. 헤르메스 길드의 세력이 더 거대하더라도, 전쟁에는 변수가 무수히 많지 않던가.

'져라. 져라.'

이번에는 조각상 부근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이 떠들어 댔다.

"엘나비스 평원도 접수했다더라. 점령 속도가 정말 빨라."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조각품이라 귀도 틀어막지 못하고 무조건 들어야만 하는 소식이라곤 온통 헤르메스 길드의 승전보뿐!

가끔 다른 이야기들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로암 길드나 블랙소드 용병단, 사자성의 전쟁 소식들이었다.

그들도 자신들이 시작한 왕국을 벗어나서 다른 왕국에 대한 침략 전쟁을 개시했다.

헤르메스 길드의 전격적인 라살 왕국 침공으로 인하여 중앙 대륙에 전쟁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모습이었다.

패권 동맹이 영역을 정해 놓고 그들끼리 해 먹자는 약속이었다면, 사실상 동맹이 깨져 버린 지금은 무차별 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진짜 이젠 전쟁의 시대네."

"중앙 대륙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도 달라질 수밖에 없겠지."

"이렇게 싸우다 보면 대제국도 탄생될 것 같아. 그러면 앞으로는 그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야 하려나."

전쟁 소식에, 직업 마스터 퀘스트에 쏠려 있던 사람들의 관심도 줄어들었다.

광장에서 퀘스트에 대해 떠들던 사람이 현저히 줄어든 것뿐만 아니라, 방송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직업 마스터 퀘스트는 경쟁은 치열해졌지만 위드가 경험했던 바대로 모험가 체이스나 농부 미레타스, 전사 파이톤 역시 생각처럼 빠르게 퀘스트를 진행하지 못했다.

전투만이 아니라 먼 곳까지 탐헝을 해야 하고, 감춰진 사악한 진실, 전설적인 무언가를 발견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직업 마스터 퀘스트에 따라서 베르사 대륙의 역사가 새로 들춰지거나 지금까지 숨어 있던 존재들이 활약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저마다 심하게 고생을 하다 보니 퀘스트 진행 속도가 느렸고, 자신들이 찾아낸 지식을 방송에는 내보내지 않았다.

직업 마스터 퀘스트를 최초로 성공한다면 다시 얻지 못할 영예를 갖게 되고, 대륙에서 그 직업과 관련해 가장 뛰어나다는 증표가 된다.

하지만 베르사 대륙이 다시 격한 전쟁에 휩싸이고 엠비뉴 교단도 들불처럼 번져 나가고 있는 마당이니, 방송국과 시청자들의 관심은 전쟁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믿을 사람은 위드 님밖에 없어."

"응. 전잰의 신 위드 님이 우리를 지켜 주어야 되는데."

"에이, 바드레이를 위드 님이 죽였어야 되는데."

위드를 찾는 말도 많이 들려왔지만, 현실은 동상이 되어서 비바람 맞고 먼지나 쌓이고 있을 뿐.

마침 날씨도 우중충해지더니 그날 저녁에는 비도 많이 내렸다.

퀘스트 완료까지는 이제 이틀이 남았다.

고작해야 1달의 기간이었지만,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사냥도 하고 노가다도 해야 되는데 멈춰 있으려니 심심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런 날씨에는 누렁이를 괴롭혀야 되는데.....'

조각상으로 이틀을 더 보내고, 위드는 마침내 퀘스트를 마쳤다.

띠링!


『 조각의 눈 완료

조각품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성공적으로 가졌다. 』


-조각술 스킬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변화한 도시에서 조각품이 되어 봄으로써 명성을 2,002 획득합니다.

-조각품으로 지내면서 인내력이 39 상승했습니다.
지구력이 17 상승했습니다.

-행운이 21 상승합니다.

-예술에 대한 새로운 경험으로 스탯이 51 상승합니다.

-아르펜 왕국의 문화 수치가 오릅니다.

조각술 스킬 숙련도는 0.9%가 올랐다.

사실 퀘스트를 하면서 위드도 깨달은 바가 있었다. 퀘스트 자체의 목적이 이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조각품의 마음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심하겠군."

그저 이것이 전부!

사실 무슨 해안가나 절벽 위에 조각품을 깎아 놓는다면, 지나가면서 보는 사람 입장에서야 멋있겠지만 조각품의 입장에서는 정말 심심할 수밖에 없으리라.

"팔아먹기도 힘들고 말이야."

역시 대중적인 게 최고이자 최선.

그 이상의 철학적인 사색을 위드에게 바라는 것은 200원으로 간자장 곱빼기를 시켜 먹으려 드는 것 같은 욕심이었다.


『 조각의 눈 퀘스트를 마치셨습니다.

지금까지 조각사로서, '대륙 최초의 도시 라체부르그' 를 발견하셨습니다.

엘프들의 궁금증을 해결했습니다.

오크들에게 조각술을 가르쳤습니다.

드워프들에게 조각술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아르펜 황제의 조각술을 다시 세상에 펼치고 있습니다.

에르리얀 종족을 찾아냈습니다.

아르닌 종족을 구출하였습니다.

조각술 마스터의 길을 걸으면서, 예술을 널리 퍼트리며 새로운 역사

를 쓰고 있습니다.

대륙의 예술가들과 조각 생명체들은 당신을 우러러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다음 단계의 마스터 퀘스트를 진행하실 수 있습니다. 에르리얀

종족을 만나서 남은 이야기를 들으십시오. 』


-조각화 스킬의 효과가 끝났습니다.

굳어 있떤 몸도 다시 예전처럼 돌아왔다.

슬픈 영화를 보았을 때처럼 위드의 눈가가 미미하게 떨렸다. 그러면서도 절대 흐르지는 않는 눈물!

대장정이라고 할 수 있었던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

'이제 정말 끝이 얼마 남지 않았군.'

조각술을 처음 익히면서 느꼈던 막막하던 감정도 새록새록 기억이 났다.

'그땐 정말 이대로 인생 망친 줄로만 알았는데...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케 예술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지.'

조각품을 2실버에 팔아먹으면서 사람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일에 몰두하던 초보 시절. 조각품을 만들면서 사냥도 하고, 퀘스트도 해 왔다.

'그래도 유쾌한 일도 많이 있었지.'

북부의 추운 곳으로 와서 진혈의 뱀파이어족과 싸울 때는 빙룡도 조각했다.

'빙설의 폭풍을 겪으면서 예술에 대한 소중한 깨달음을 한 가지 얻었다고 할 수 있지. 자연과 예술이 다르지 않다는 것.'

자연에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하여 공짜로 만드는 조각품.

지금은 훼손된 피라미드, 엠비뉴 교단에 의해서 파괴된 스핑크스도 소중한 추억이었다.

불사의 군단과 싸우면서 불가능에 가깝던 전투를 이겨 냈던 것도 조각술의 힘.

그때 생명을 부여한 와이번들은 지금도 요긴하게 잘 써먹고 있다.

위드가 그 이후로 해낸 모험들도, 조각술과 떼려야 뗄 수가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모라타의 발전도 조각술에서 비롯된 면이 많다. 대장일, 재봉, 낚시, 채광, 항해 스킬을 배운 것도 조각술 덕분이지 않은가.

조각사로서는 숙명적인 노가다의 길.

그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소중하고 아련한 추억들이 밀려왔다.

'조각술을 마스터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대장장이 스킬이나 마스터해야 되겠군.'

검술 스킬이야 몬스터와 싸우면서 당연히 마스터하게 될 것이다.

위드의 목표는 모든 노가다 스킬의 마스터!

어쨌든 이제 중앙 광장을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조각상으로 1달간을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움직이는 것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노릇.

지금도 분수대 주변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위드는 눈치를 보면서 조각상으로서 취하고 있던 자세를 계속 유지했다.

양손에 데몬 소드와 조각칼을 하나씩 꺼내 들고 먼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

사람들이 볼까 봐, 눈을 깜박거리는 것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으음... 움직일 수 있는데 가만히 있으려니 더 고역이로군.'

모라타의 중앙 광장에는, 무슨 행사가 벌어진 것도 아닌데 항상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기회는 올 거야.'

저녁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 하나를 위안 삼아 위드는 끈질기게 자세를 유지하였다.

그리고 컴컴한 어둠이 내리고 난 이후, 근처로 다가오는 마차를 포착해 냈다.

위드는 마차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 움직였다. 번개처럼 로브를 착용하고, 네발 뛰기로 마차 옆에 숨어서 자리를 떠난 것이다.

"어? 위드 님의 조각품이 언제 사라졌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뭐야, 어디로 간 거야?"

"몰라. 갑자기 없어졌어."

"그럴 리가 있나. 조각품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


위드는 광산에서 일하고 있는 에르리얀을 만났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말해 다오."

기나긴 여정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급해졌다.

에르리얀들은 곡괭이를 내려놓고 위드가 주는 육포를 받아먹었다.

ㅡ그대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전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저 할게. 과거 아르펜 제국이 사분오열되고 난 이후에 인간들은 전쟁을 시작했어. 우리 같은 생명체들은 그 전쟁을 피하여 대륙으로 흩어졌고, 어딘가에 계속 살고 있을 거야.

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또 데려올 만한 녀석들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니?"

조각 생명체들은 몽땅 잡아 와서 일을 시켜 먹어야 하는 대상!

ㅡ아니, 몰라. 그런데 대륙에서 인간들이 살지 않는 곳으로 떠나면서 우리를 보호해 주던 친구가 있었어.

"그게 누구지?"

ㅡ아르펜 제국의 용사 바하모르그. 우리와 함께 태어난 존재야.

위드에게 이제 익숙해진 방식의 영상이 보였다.


★★★★★★★★★★★★★★★★★★★★★


아르펜 제국이 분열되고, 인간들끼리 전쟁이 벌어졌다.

전란의 시대를 불러오는 그 전쟁은 훗날 브리튼 연합 왕국이나 칼라모르, 톨렌, 마센, 그라디안, 노튼, 이제는 사라진 마폰, 브롬바 왕국 등이 생겨난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인간들의 힘이 약해지면서, 멀리 쫓겨났던 몬스터들도 다시 침공을 해 왔다.

아르펜 제국에서 지내던 조각 생명체들은 포로로 잡히거나 아니면 멀리 떠나서 새로운 정착지를 찾았다
.
바하모르그.

아르펜 제국이 대륙을 통일할 당시 조각 생명체 군단을 이끌던 용사였다.

"크레하아!"

그는 고함을 지르면서 적국의 군대나 몬스터들과 싸움을 했다.

마법이 난무하는 장소에서도 불굴의 활약을 하는 용사.

다루지 못하는 무기가 없었으며, 대형 몬스터와 고위 마법사들까지 물리쳤던 진정한 용사였다.


★★★★★★★★★★★★★★★★★★★★★


'음, 상당히 강하군.'

위드는 영상을 보면서 침을 줄줄 흘렸다.

싸우는 모습으로 판단하기에 황금새보다 훨씬 윗줄이었다.

거의 성검이 꽂혀 있는 바르칸급이라고 해도 될 정도!

제국의 수호신이었던 만큼, 대륙 최강의 몬스터급이었다.

'부려 먹기에 딱 좋겠어.'

아르닌, 에르리얀이 건실한 일꾼이라면 바하모르그는 싸움을 위해 태어난 용사였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지?"

ㅡ그는 다른 친구들을 위하여 정착지에서 싸웠어.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 제대로 살아남기 어려웠을 거야. 한 곳을 안전하게 한 이후로는 쉬지도 않고 다른 장소로 이동해서 친구들을 위해 싸웠지.

위드는 그 점도 마음에 들었다.

강한 몬스터는 많다. 하지만 성실하기까지 한다면 정말 잘 부려 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일을 시키기 전에 알아서 한다면 그야말로 착취하기 편한 대상이다.

ㅡ그런데 우리가 마지막에 봤을 때에는, 아무리 바하모르그라고 해도 상처투성이에 독까지 중독되어 있어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저런!"

위드는 안타까웠다. 훌륭하게 잘 부려 먹을 수 있는 조각 생명체가 죽었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ㅡ바하모르그에게 미안해. 그에 대해서도 알아봐 줄 수 있겠어? 그는 아마 아르펜 제국의 수도로 돌아갔을 거야.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이미 죽었겠지만,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이라도 알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 용사 바하모르그

끝없는 강함을 추구하던 바하모르그!

게이하르 폰 아르펜 황제가 바바리안족의 강인함을 부러워하며 만든

조각 생명체이다. 워리어로서 어떤 전투에서도 앞장섰으며,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아르펜 제국이 분열된 이후 바하모르그의 생사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았다.

그의 최후의 순간에 대해 알아보고 와서 에르리얀에게 알려 주자.

직업 마스터 퀘스트에서 마지막 모험입니다.

이번 임무를 완수하게 되면 직업 마스터의 최종 과정들로 이어지게 됨.

난이도 :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

퀘스트 제한 : 고급 8레벨 이상의 조각술.

조각품에 생명 부여 스킬이 필요. 』


"드디어 길었던 모험도 끝이 나는군."

위드는 이번 역시 쉽지 않은 의뢰라고 생각했다. 길거리 한복판에 만 원을 흘려 놓고 1년이 지나서 다시 찾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벌써 누가 삼겹살을 사서 구워 먹었더라도 그 삼겹살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시간.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궁지에 몰리거나 어려울수록 단숨에 돌파해 버리는 것이 위드의 방식!

"아르펜 제국의 수도라... 살아만 있다면 찾을 수는 있겠지."

대성도 안타로사!

아르펜 제국의 황궁이나 도시 건물들이 있던 매우 방대한 지역으로, 지금은 완전히 폐허밖에 남지 않았다.

밤이면 극도로 위험한 몬스터들이 들끓는 장소였는데, 부서진 건물 잔해들이 사방에 널려 있어서 더더욱 위험했다.

성벽의 보호도 없고 인근에는 군대도 주둔하고 있지 않다 보니 그야말로 몬스터들이 활개를 치는 곳!

로열 로드의 초창기에 그곳이 알려지고 나서, 모험가들의 일대 탐험 붐이 일어났다.

수많은 마법 아이템이나 잊힌 마법이 기록되어 있는 서적들, 역사서들이 실제로 발굴되기도 하였다.

베르사 대륙의 수많은 지식과 보물이 이곳 안타로사에서 나왔다.

과거 아르펜 제국의 수도이던 때에는 마탑을 비롯하여 온갖 건물들이 다 있었다고 한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예술품이나 엄청난 보물들이 지금까지도 가끔 발굴되기 때문에 모험가들이 대박을 노리고 여전히 많이 찾아가는 장소였다.

"최선을 다해서 알아보겠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ㅡ좋은 소식을 가져오길 기다릴게. 바하모르그는 우리를 지켜 준 용사였어.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찾아보겠다. 반드시 살아 있어야 되는데...."


8) 바하모르그를 위한 노래


위드는 유린의 도움을 받아서 아르펜 제국의 수도였던 안타로사에 도착했다.

"완전히 부서진 건물들의 잔해가 널려 있군."

1,000년이 지난 폐허!

천장이 무너지고 부서져서 벽만 듬성듬성 남아 있거나 형태를 파악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완전히 파괴된 건물들이 많았다.

온전히 남아 있는 건물들은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

이 대단히 넓은 지역에는 몬스터도 많이 살았다.

늑대와 싸울 정도로 약한 놈들도 있고, 레벨 520이 넘는 보스급도 섞여서 살아간다.

몬스터의 핵심 서식지로, 온갖 종류를 다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한때 대륙의 부와 권력이 집중되었을 황궁은 몬스터들의 파괴 행위와 보물을 탐색하는 모험가들에 의해서 예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과거의 훌륭했을 건물들은 아예 찾아볼 수도 없는 수준.

몬스터들은 주로 안타로사의 지하에 살았다. 복잡한 하수도로 연결되어 있는 땅속에 저마다 둥지를 틀고 있다가 밤이되면 지상으로 올라온다고 한다.

아르펜 왕국이 되기 전 모라타 전체보다도 넓은 안타로사 전역에서 밤마다 몬스터들의 영역권 다툼과 서열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소위 이름이 알려진 랭커라고 해도 몬스터 무리의 각축장과 같은 이런 장소에서는 위험해서 사냥을 하지 못했다.

명문 길드라고 하여도, 밤에 뭉쳐서 돌아다니는 이 몬스터들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

외부로 드러난 몬스터만 하더라도 족히 수십만 마리에 이르며, 지하에서 살아가는 몬스터들이 정말 얼마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호기심 많은 모험가들이 들어가 보았지만 탐험을 완료하지 못하고 몽땅 사망.

이렇게 위허함 아르펜 제국의 수도 안타로사였지만, 도굴꾼과 발굴가 들이 대박의 꿈을 찾아서 오게 만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귀족으 저택을 수색하거나 잔해를 파내다 보면 귀금속들이 나오기도 하고, 가끔 장비나 보석을 찾아내어 대단히 비싼 값에 팔기도 했다.

이런 것들은 어떤 왕국에서도 원하는 보물로, 국왕에게 가치가 있는 것을 진상하면 단번에 영주의 꿈을 이룰 수도 있었다.

아니면 남들이 갖기 못한 아이템을 찾아내어 자신이 쓸 수도 있기 때문에, 땅에 묻힌 대박의 꿈을 쫓아다니는 도굴꾼과 발굴가 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행운을 시험하곤 했다.

폐허 부근의 강가. 원래는 안타로사를 끼고 흐르던 넓은 강 주변에는 술집고 큰 규모로 운영되었다.

손님들은 주로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퀘스트를 받았거나, 자발적으로 보물을 찾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넓은 안타로사를 탐색하려면 아무래도 안정적인 숙박은 필수였다.


"으흐흐흑, 사흘간 땅을 팠는데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어요.'

"바이슬 님, 실망하지 마시고 술 드세요."

"카야, 시원하다! 히드람 백잡 저택을 찾아야 하는데 건물의 위치를 못 찾겠어요. 벌써 다섯 군데나 파 봤는데 헛수고예요. 이럴 바에야 던전 탐험이나 나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일레터 님, 그 부근에서 그래도 뭔가를 파냈다면서요?"

"금덩어리를 정말 조금 얻어 냈죠. 마법 책이라도 얻으면 좋을 것 같은데."

운이 좋다면 여러 가지를 얻을 수 있었기에 안타로사로 모여드는 사람은 늘 많았다.

적어도 수백 명이 여관과 술집에 머무르면서 폐허를 파헤치는 작업을 했다.

위드는 선술집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정보를 입수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얻어지는 정보가 상당했다.

이 넓은 곳에서 탐험을 하는 모험가들은 정보를 교환하는데 적극적이었다.

"물구덩이 남쪽으로는 탐색이 거의 끝난 것 같아. 거기를 판 사람들은 요 근래에 아무것도 못 얻어 냈다더라고."

"황궁이 있던 장소에서 발견된 던전만 일곱 곳이나 돼.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유저들을 모을 수만 있으면 좋을 텐데."

"들어가서 살아나온 사람이 없다는데, 위험하지 않겠어?"

"위험하니까 그 안에 뭐라도 더 많이 있겠지!"

폐허에서도 사람들이 찾아낸 것이 없는 장소는 수색 지역에서 일단 제외할 수 있었다.

위드는 우유를 마시면서 빵 조각을 설탕에 찍어 먹었다.

로열 로드 초장기에는 정말 황금과 꿀이 흐르는 지역이었다.

당시 유저들의 수준을 감안한다면, 몬스터로 인하여 정말 위험한 곳이었다.

들어가서 살아나온 사람이 100명 중에서 고작 1~2명 될까 말까 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 시절 유저들의 수준을 훨씬 웃도는 보물과 장비가 지속적으로 발견되었고, 그런 것들을 찾아낸 사람은 단번에 유명 인사가 되면서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모험가들은 무수히 죽어 가면서도 보물을 찾아내었고, 꾸준한 탐색으로 위험 역시 조금씩은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지하 탐험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몬스터들은 매우 위험하다.

아직도 잠들어 있는 보물이 있긴 하겠지만, 꺼내기 쉬운 보물들은 이제 대부분 찾아냈다고 봐야 한다.

유저들이 제대로 자리도 잡지 못하고 있던 초창기에는 베르사 대륙을 개척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던 안타로사.

지금은 정말 실력이 뛰어난 모험가들은 이곳을 떠나서 대륙을 떠돌며 모험을 하고 있었다.

"챠르망 백작 부인의 의뢰는 아무래도 포기해야 되겠어. 돌사자상을 구해 오라고 했는데... 무게도 있고 해서 웬만하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승낙한 거였거든."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없는 걸 보니 벌써 누가 가져간 모양이야."

위드의 귀로 술꾼들의 이야기가 계속 흘러 들어왔다. 하지만 화제는 오직 한 가지, 한타로사의 보물 탐색에 대한 정보뿐이었다.

'바하모르그라... 알고 있는 사람은 없겠지.'

조각 생명체라고 하여도 생명이 부여된 이후부터는 정해진 수명이 있다.

전투 중에 죽을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시간이 가면서 자연스럽게 성장을 하고 노화도 이루어진다.

바하모르그가 다른 조각 생명체들을 돌봐 주고 난 히우에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살아남았더라도, 이미 먼 옛날에 죽음을 맞이했으리라고 봐야 할 만큼 긴 시간이 흐른 것이다.

"이곳에 있다는 보장이 없기도 하고... 차라리 노가다가 편할 텐데."

무슨 조각사의 직업 마스터 퀘스트 내용이 이리도 다양하단 말인가!

위드는 음식을 먹으면서 밤을 기다렸다.

그리고 몬스터들이 활개를 치는 시간!

창문 밖으로 그들이 대규모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폐허에서 깨어난 몬스터들이 어슬렁거리면서 돌아다닌다.

전설이 잠든 땅!

역사에 따르면 아르펜 제국이 분열되어 몰락할 때 안타로사는 주인을 잃었다.

군대의 침략과 약탈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 이후로 몬스터가 밀려들어 오자, 사람들은 이곳을 그냥 방치했다.

그리고 결국 안타로사는 몬스터에 장악당한 도시가 되어 버린 것이다.

현재 브리튼 연합 왕국의 영토에 포함되어 있지만, 상인들도 근처로 오지 않고 멀리 다른 곳으로 돌아가곤 했다.

선술집과 여관, 유저들이 머무르고 있는 장소에는 은신의 마법이 펼쳐졌다.

그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지만, 위드의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숙박하실 거죠? 30골드입니다."

고작해야 하룻밤인데 너무나도 비싼 가격.

"어떻게, 좀 깎아 주실 수 없을까요?"

"안 돼요, 손님."

"이런 말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제가 대륙에서 상당히 유명한 사람인데요."

"그러면 돈을 더 내실 수도 있겠군요."

여관 주인은 깐깐한 성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도 통하지 않았다.


★★★★★★★★★★★★★★★★★★★★★


검치는 사범들, 수련생들과 같이 던전을 휩쓸었다.

"저곳이 던전 입구 같다."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스승님!"

검치들이 분검술, 광휘의 검술을 익히게 되면서 사냥의 효율은 기가 막힐 정도로 좋아졌다.

"이런 게 스킬의 효과로군요."

"그러게. 이렇게 간단히 사용할 수 있으니 세탁기를 쓰는 것 같다."

기본 스킬만 사용하다가 레벨 400대 근처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 공격 스킬들!

지식과 지혜에도 스탯을 투자하면서, 스킬의 레벨이 오를 때마다 공격력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위드가 해 준 결정적인 조언도 있었다.

"스승님과 사형들끼리만 전투를 하셔도 물론 충분하겠지만, 파티 사냥을 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우리야 그렇게 하고 싶긴 하다만... 이곳에는 마땅한 사람이 없구나."

검치와 사범들, 수련생들도 유로키나 산맥에서는 파티 사냥을 제법 많이 했다.

여성 전사와 같이 싸우는 것은 그들의 원대한 희망 사항이기도 했지만, 북부로 와서는 다 함께 몰려다니다 보니 좀처럼 파티원을 구할 수가 없었다.

"스승님이나 사형들의 공적치라면 교단의 사제들을 고용해서 사냥을 나가실 수도 있을 겁니다. 모라타에는 프레야 교단의 북부 대성당도 있어서 사제들을 구하기가 쉽죠."

"크흠!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가서 보기는 하마."

검치는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제자들과 같이 대성당이 있는 빛의 광장으로 갔다.

"어헛, 사제복이 참 예쁘구나."

"스승님! 방금 지나간 사제 보셨습니까? 청순한 얼굴이 딱 제 이상형이었습니다. 머릿결은 또 얼마나 고운지....."

"삼치 사형, 저쪽에서도 1명이 오고 있습니다!"

미의 여신인 프레야를 따르는 여사제들은 저마다 굉장한 미모를 자랑했다.

유저들 사이에서도 그래서 프레야 교단이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삼치야, 우리가 저 여사제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사냥을 할 수 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위드의 말대로라면 공적치라는 걸 써서 할수 있다고 했습니다, 스승님!"

검치는 사범들과 같이 프레야 교단의 북부 대성당으로 들어갔다.

"교단에 큰 은혜를 베푼 분들의 방문이군요.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더 좋은 무기를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몬스터를 퇴치하며 쌓아 놓기만 하고 쓰지 않은 공적치가 상당히 많았다.

무기를 얻거나 여사제들을 얼마든 고용할 수 있는 수준.

일반 유저들은 공적치를 활용하는 방법을 많이 알고 있어도, 그것을 얻기가 어려워서 쓰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스승과 사형들이 등을 떠밀어서 검사치가 나섰다.

"무기가 갖고 싶지만 지금은 필요 없습니다. 그보다는, 사냥에 나가려고 하는데 여사제들을 좀 데려갈 수 있겠습니까?"

"몬스터 퇴치를 하신다면 당연히 교단의 사제를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부디 다치거나 죽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위험한 일에 사제를 투입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도록 하겠습니다."

검치와 사범들은 각자 여사제들을 1명씩 고용했다. 지금까지 있는지도 몰라서 관심도 갖ㅈ기 않던 공적치가 새삼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냥에 나가니, 사제들 덕분에 효율이 예전보다 3배 이상은 높아졌다.

전투 중에 치료며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세상에 이렇게 좋은 것을 놔두고...."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히지 않습니까."

"들어 보십시오! 좀 전에 험하게 싸웠더니 많이 다쳤다고 손도 잡아 주었습니다!"

검치와 사범들은 깔끔하게 전투를 하는 편이었다. 위드처럼 일부러 맞아 가면서까지 하지는 않고, 공격과 수비도 간결하고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여사제들이 봐주니, 일부러 맞으면서 더 적극적으로 싸웠다.

여사제들을 몬스터로부터 철저히 지켜 주는 것은 기본이었다.

공적치를 써서 고용한 여사제들이었으니 따로 파티 사냥을 할 때처럼 경험치나 전리품을 나누어 줄 필요도 없었다.

"스승님, 저희도 다녀오겠습니다."

"어서 빨리 가서 데려와라."

수련생들도 모라타로 가서 여사제들을 모시고 왔다.

"허어, 죄송하지만 아직은 사냥을 나갈 수준의 여사제가 없습니다. 대신 남자 사제라도...."

"됐습니다!"

프레야 교단의 여사제가 동이 나자(?) 다른 교단의 여사제도 가리지 않고 몽땅 고용!

그 이후로는 바르고 성채 주변에서 몬스터가 씨가 말랐나 싶을 정도였다.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공적치가 아까워서 막무가내로 사냥을 했기 때문이다.

바르고 성채에서 여전히 가끔 일어나던 몬스터들의 침공도 사라지고, 치안의 안정이 이루어졌다.

"검술이란 참 아름답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스승님!"


★★★★★★★★★★★★★★★★★★★★★


위드는 다음 날 일찍 여관을 나왔다.

"우선 이곳에서 발굴된 조각품들을 찾아봐야 되겠군."

발굴가들은 발굴품들을 주로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브리튼 연합 왕국 귀족들의 성으로 가서 판매한다는 소문을 이미 입수했다.

조각품에 담긴 추억이 아마도 단서가 될 수도 있을 것.

"대륙에 명성이 자자한 조각사이시로군요. 발드몽 백작님께서는 예술을 사랑하십니다. 어서 들어오시지요."

"그대의 모험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평소에 꼭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

"북부에 위치한 작은 나라의 왕이라고 들었는데,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위드는 각국 국왕들의 의뢰도 받아 낼 수 있었기에 브리튼 연합 왕국의 귀족들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여러 발굴품들 중에서도 조각품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극히 적은 편이었다.

그나마도 성의 복도나 서재에 전시되어 있지 않고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조각품이 좋군요."

"오래된 조각품이지요. 역사적인 물건으로, 이걸 가지고 있는 건 저밖에 없을 겁니다."

"잠시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감정!"

깨지고 칠이 벗겨진 사자상.

발굴된 조각품에 담긴 추억을 살피니 아르펜의 황궁이 있는 수도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조각 생명체들이 번성하며 살아가던 대성도.

게이하르 폰 아르펜 황제가 직접 깎았다는 분수대의 조각상이며 대륙 최고의 보물들도 영상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수도의 과거 모습에 대해서 알아냈으니 보물을 찾아내기도 조금은 쉽겠군."

보물들에 대한 단서를 얻어 냈으니 발굴가처럼 이곳에 머무르면서 땅을 파며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르펜 왕국의 국왕의 신분으로 그러기에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바하모르그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았어."

발굴된 조각품들은 파손도 많이 된 데라 관리 상태도 좋지 않았다.

"제가 조금 고쳐 봐도 되겠습니까?"

"대륙에 명성이 자자한 조각사께서 고쳐 주신다면 오히려 영광입니다."

위드는 즉석에서 퀘스트를 받아서 조각 복원술을 펼친 후에 조각품에 담긴 추억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렇지만 주변의 풍경 정도를 조금 더 자세히 보여 줄 뿐, 바하모르그의 모습이나 그의 최후의 순간을 담고 있는 영상은 찾아낼 수 없었다.

"이것도 적지 않은 정보라고 할 수 있어.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평생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서는 독재도 하지 못하고 착취도 못 해. 적어도 아직까지 발굴된 조각품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잖아. 그렇다면 이다음은, 역시 발로 뛰는 수밖에 없을 거야."

위드는 폐허 지역의 지도를 펼쳤다.

바하모르그는 이곳으로 돌아온다고 하였다지만, 정말 돌아왔을지는 알 수 없다.

중독된 상태이기까지 했다니 도중에 사망했을 가능성도 매우 큰 것이다.

만약에 안타로사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면 찾아야 하는 범위는 더욱 넓어진다. 지금도 이미 충분히 쉽지 않은 퀘스트인데.....


★★★★★★★★★★★★★★★★★★★★★


대략 일주일이 지난 후.

"이런 방식은 안 되겠어."

위드는 삽과 곡괭이를 내려놓았다.

"이 폐허 더미에서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도 없고...."

그동안 다른 모험가들처럼 안타로사를 돌아다니면서 채광 스킬을 이용하여 땅을 엄청나게 파헤쳤다.

"혹시 저와 동업하시겠습니까?"

"곡괭이질이 예사롭지 않으시군요. 제가 점찍어 놓은 장소가 있는데, 같이 파시죠."

다른 유저들의 제안도 많이 받았다.

위드의 체력에 힘 그리고 채광 스킬은 가히 두더지를 연상 시킬 정도였던 것이다.

일단 파헤쳐 내려가기 시작하면 부서진 건물들의 잔해를 몽땅 헤집어 놓았다.

위드는 다른 사람들의 제안들을 모두 거절하며 자신만의 땅파기에 몰두했다.

"바하모르그... 오래된 바바리안의 용사... 장비가 엄청나게 좋겠지..... 그걸 내가 캐내면... 돈벼락이 치겠구나 보물... 마탑이 저쪽에 있었던가..... 황궁의 보물 창고....."

바하모르그의 수색 작업이, 어느새 다른 도굴꾼처럼 보물 탐색으로 변모!

그렇지만 안타로사의 보물 탐색도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주일의 소득으로, 사용은 무리지만 골동품의 가치가 있는 갑옷 두 점과 철퇴 하나를 얻었다.

역사적인 가치 등이 있어서 최소한 1,500골드에서 2,000골드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위드의 경우에는 직접 녹여서 재가공한다면 레벨 300대가 착용할 수 있는 갑옷을 만들 수도 있다.

다른 모험가들도 일주일에 이 정도라면 상당히 괜찮은 수확이라고 생각할 수준이었다.

하지만 바하모르그를 찾는 일에는 아무 성과 없이, 낮에는 땅을 파고 밤에는 여관에서 쉬면서 조각품만 깎는 반복적인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그동안 채광 스킬은 중급 2레벨에서 1단계 상승했다.

갈수록 늘어만 가는 땅파기 기술!

"여관비도 아깝고, 왠지 이런 방식은 아닐 것 같아."

위드가 제아무리 탁월한 땅파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넓은 잔해를 몽땅 뒤집어 놓는 건 불가능했다.

발굴가들도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위치를 점찍어서 파내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운이 없었으니 그래도 혹시나 이번에는 우연히라도 성공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놈의 팔자는 역시 변하지 않는군!"

행운은 늘 비껴가는, 초지일관 불운으로 점철된 운명!

"다른 방식으로 찾아봐야 한다는 건데....."

위드는 스스로의 추리 능력이 그렇게 뛰어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편이었다.

지금까지 98%의 노가다와 2%의 눈치로 살아온 삶!

"내가 알고 있는 건 바하모르그가 최후에 이 안타로사로 오려고 했다는 것이 전부인데."

위드는 이 폐허의 잔해 더미에 대한 미련을 과감하게 버리기로 했다.

채광 스킬이나 조각품에 담긴 추억 등,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기술들이 있지만 그것만 믿기에는 여기가 너무나도 광활하다.

그리고 익히고 있는 여러 스킬들이 실제로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설혹 여기에서 정말 운 좋게 그의 소지품이라도 발견해 낼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테지만, 그건 아무래도 안 될 거야."

위드가 일주일간 파헤쳐 내린 잔해는 만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갈수록 곡괭이질을 하는 장소가 원래의 목표보다는 보물 쪽으로 옮겨 간다.

이런 식이라면 대륙을 통일했던 아르펜 제국의 대단한 보물은 찾아낼지 몰라도 바하모르그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을것 같지는 않다.

"내가 수색에 쓸 수 있는 정보가 뭐가 있을까?"

위드는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바하모르그가 대단히 강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의 외모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모라타의 대도서관으로 가서 역사서를 읽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바하모르그와 같은 조각 생명체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은 편.

"어쩌면 혹시라도...."

위드는 폐허에서 조각칼을 꺼냈다.

원래 성벽에 쓰였을 큰 돌덩어리를 대상으로 바하모르그의 모습을 조각해 두었다.


★★★★★★★★★★★★★★★★★★★★★


그날 밤도 몬스터들은 안타로사를 돌아다녔다.

그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작은 동물들을 사냥하기도 했다.

몬스터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무언가 챙겨 갈만한 물건이 없는지 땅을 헤집어 놓기도 했다.

안타로사에 있는 몬스터들은 나름대로 지능을 갖추고 있었다.

보물이나 필요한 물건들은 챙겨서 착용하기도 한다.

유저들은 보물을 들고 다니는 몬스터를 사냥하고 싶었다.

하지만 몬스터들이 활개를 치며 평상시보다도 강해지는 밤에는 무리다.

낮에는 복잡한 지하도나 던전으로 들어가 버리기에 추적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몇 차례 성공한 적이 있긴 했지만, 위험부담이 상당했다.

약한 몬스터가 보물을 가졌더라도, 금세 강한 몬스터에게 빼앗긴다.

좋은 보물일수록 결국 보스급 몬스터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

몬스터들은 위드가 조각해 놓은 바하모르그의 작품도 발견했다.

"키익?"

"크으으으응."

몬스터들은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쳐 버릴 뿐이었다.

"배가 고프다."

"저쪽으로 가 보자."

금이나 은, 보석은 그들도 좋아하기 때문에 부숴서 일부만 가져가거나 통째로 서석지로 옮겨 갔다.

습성에 따라 보물을 산처럼 쌓아 두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몬스터는 역시나 몬스터, 예술품에 대하여는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다.

"케엣, 이건.....?"

해가 뜨기 직전, 조각품을 발견한 몬스터들이 관심을 갖는 기색을 보였다.

'그래, 성공이다.'

위드는 까마귀로 변신해서 잔해의 틈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알아본다면 이것은 훌륭한 단서가 될 터!

"왜 이따위로 생겼냐, 키키킷."

"이걸로 치면 부서질까."

콰지지직, 파사삭, 쩌억!

도끼로 내려치고 철퇴로 깨뜨리며, 조각품을 부숴 버리면서 노는 몬스터들!

위드는 공을 들여서 조각해 놓은 작품이 훼손되는 광경을 그대로 목격해야 했다.

'이놈들을.....!'

안타로사의 밤에 돌아다니고 있는 몬스터 떼로 인하여 피눈물을 흘리면서 참는 수밖에 없었다.

아침이 되고 몬스터들이 사라졌지만, 위드의 조각품을 본 것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런 식의 작업은 문제가 있겠어."

위드는 방법을 조금 더 개선하기로 했다.

돌을 조각하는 것 외에도 할 줄 아는 것은 많았으니까!


★★★★★★★★★★★★★★★★★★★★★


그날 저녁이 오기 전, 해 질 무렵.

위드는 조각을 시전했다.

"빛의 조각술!"

그의 손에서 뻗어 나와 하늘을 수놓는 찬란한 빛의 무리!

더없이 아름답고 화려한 빛의 조각품을 만드는 것이다.

빛의 조각술은 매우 쓸모가 많아서, 다른 조각품을 만들때에도 항상 조금씩 사용했다.

조각품은 광(光)발!

표면에 은은한 광택을 씌워 주면 그 빛깔로 인하여 조각품이 한층 멋지고 고급스러워졌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빛으로만 이루어진 조각품을 만들어서 하늘에 띄우는 것이다.

바하모르그의 조각품!

위드가 손을 휘젓는 대로, 바바리안 용사 바하모르그의 모습이 하늘에 빛으로 새겨졌다.

"어두울 때 눈에 띄려면 밝은 것이 좋을까? 너무 밝으면 조각품으로서 멋은 없겠지."

간판도 지나치게 밝게 하면 비호감이 된다.

"몬스터들도 반짝이는 걸 좋아하니까. 색감은 정해졌군!"

위드는 황금빛과 은빛율 섞은 색으로 안타로사의 하늘에 바하모르그의 모습을 조각했다.

노을이 지고 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 내는 작품이라 충분한 시간을 쓰지는 못했다.

급한 대로 만든 조각품이지만 그동안 수많은 연습들을 통해 빛을 다루는 데 익숙해져서인지 그럭저럭 볼만한 작품이 나왔다.

바하모르그의 형태에 맞춘 빛 덩이리가 안타로사의 하늘에 떠올랐다.

"이제는 충분히 알아보겠지."

위드는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적어도 이번에는 몬스터들이 때려 부수진 못할 테니 말이다.


★★★★★★★★★★★★★★★★★★★★★


"이건 위드의 조각품이다."

"전쟁의 신 위드가 이곳에 와 있었구나!"

안타로사의 모험가들은 빛의 조각품을 보며 들뜬 분위기였다.

그들의 공통된 우상이라고 할 만한 존재가 바로 위드였다.

모험을 하다 보면 고독할 때도 있고, 감당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어려움과 마주할 때도 있다.

좌절과 포기, 극복이라는 험난한 여정을 걸어야 하는 모험가로서, 위드는 존겨으이 대상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어디에 계실까?"

"무슨 퀘스트를 하러 오셨는지가 더 궁금해."

"요즘 안타로사에도 사람들이 조금 줄어들었는데, 위드 님이 오셨으니까 여기에도 예전처럼 사람이 많아지겠구나."

위드가 모험을 했던 장소는 사람으로 붐빈다. 텔레비전에서 연예인들이 갔던 장소에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과 같은 이치.

바다의 선장들은 지골라스를 향해 돛을 펼쳤고, 다른 찾아가기 쉬운 곳들은 위드의 모험 패키지라는 관광 상품이 출시될 정도.

"이 주변에 계시겠지?"

"벌써 떠났을지도 몰라. 워낙 신출귀몰하잖아. 모라타에서 스테이크를 드시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건 그래, 로열 로드의 모든 유저들이 궁금해하는데도 모험을 할 때에는 잘 알려지지 않잖아."

"평소에도 위장술을 하고 다닐 거야."

유저들은 선술집에 혼자 앉아 있는 위드를 보면서도 알아 차리지 못했다.

까마귀로 변했던 이후로 조각 변신술을 그냥 해제한 상태였는데도 몰랐다.

머리 가르마 위치를 조금 바꾼 것 정도로 완벽한 위장술!

사실 친한 동료들도 가끔 놀라기는 했다.

옷이 날개라는 말처럼, 멋진 갑옷을 입고 전투에 나설 때와, 내구도 하락해서 수리하기 귀찮다고 때가 덕지덕지 붙은 초보자용 복장을 입고 있을 때와는 풍기는 분위기가 너무도 달랐던 것이다.

"슬슬 올 때가 되었군."

위드는 간단히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 일어났다.

잔해가 많은 이 주변에서는 다른 곳보다 식량을 구하기가 조금 어려운 편이다.

다른 모험가들의 정보도 입수할 겸해서 선술집으로 왔는데, 별로 소득은 없었다.

오늘은 까마귀보다는 데루거라는, 이곳에서 상위 서열을 차지하고 있는 몬스터로 조각 변신술을 써 보기로 했다.


9) 안타로사의 몬스터


"저기 뭐가 있다."

"뭐냐. 먹을 거냐."

"아니다."

"그럼 관심 없다."

안타로사의 몬스터들은 빛의 조각품에도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

"없애 버리자."

"캬캬캿."

도낏자루나 돌멩이를 던지는 놈까지 있었다.

위드는 데루거가 되어 잔해 더미에 올라가서 앉아 있는데, 외모는 물론 삭막하기 짝이 없었다.

"저놈의 눈빛 좀 봐."

찢어진 눈가 사이로 번들거리는 눈알.

"툭 튀어나온 주둥이는 마치 동족이라도 잡아먹은 듯하군."

같은 데루거들조차도 위드를 기피했다.

투지와 카리스마가 상위 몬스터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정도이기는 했지만 외모 자체에서도 차별화된 면이 컸다.

위드는 몬스터들의 태도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다들 내 얼굴을 보며 부러워하는군. 성형외과 의사가 되었더라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돈도 잘 벌고, 나쁘지 않지."

자칫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파탄 낼 수 있는 위험한 꿈!

위드는 몬스터들이 하늘에 있는 조각품을 보면서 특별한 반응을 보이기를 꾸준히 기다렸다.

'어쩌면 실마리는 이곳이 아닐지도 모른다.'

모험에 대한 정보는 감춰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기야 너무나도 오래된 과거의 조각 생명체 용사를 추적하는 일이니 이 정도의 어려움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위드는 산골에 있는 새끼 강아지도 알고 짖는다는 명성을 묵혀 두지 않고 이용할 계획이었다.

게시판과 동영상을 통해서 로열 로드의 거의 모든 유저들이 바하모르그에 대해서 보게 될 테고, 그들이 이를 제보해 주는 정보원이 되어 주리라.

대륙 전체에서 살아가는 NPC들도 위드의 작품을 통해서 이를 보게 되고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이번 퀘스트는 조각사로서 그리고 모험가로서, 남보다 높은 명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돌파구를 찾아내는 방식이었다.


★★★★★★★★★★★★★★★★★★★★★


마을에 있는 주민들이 떠들었다.

"조각사 위드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그가 안타로사에 조각품을 만들었다더구만."

"빛의 조각품이라는데, 아주 멋지다고 하더라고. 안타로사의 밤을 밝히는 멋진 조각품이 떠올라 있다고 해."

"그것을 보고 온 모험가가 있다면 이야기를 듣고 싶어. 술값 정도는 당연히 내줘야지."

안타로사의 모험가들은 다른 마을에 가서 위드의 조각품을 본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주민들을 통하여 대륙 전체로 소문이 퍼져 나갔다.

예술을 좋아하는 귀족들은 더욱 큰 관심을 가졌다.

"바바리안 용사의 조각품이라니! 조각사 위드의 작품이라면 꼭 소장하고 싶었는데 이곳에 가져올 수 없다니 아쉽게 되었군."

"요즘 위드의 조각품은 귀족들의 품위를 지키기 위한 필수품이 되었어요. 위드가 최근 1년 안에 만든 작품을 가져와 준다면 보상은 섭섭하지 않게 해 주겠어요."

안타로사에서 가까운 조각사 길드에서는 퀘스트도 발생했다.

"위드는 진정한 예술가이며 모험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왕의 신분으로도 대륙을 떠돌고 있다니 대단하지요. 빛을 다룬 조각품이라면 거의 없는데, 그 작품을 보고 온다면 더 가치 있는 조각물 의뢰를 맡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송수철은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에휴, 오늘도 참 길었다.

그는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통닭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매일 닭을 튀기고 오븐에 굽다 보면 녹초가 되어서 자취집에 오곤 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으려나."

그는 컴퓨터를 켜고 게시판으로 들어갔다.

남들이 로열 로드가 재미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하지 않았던 사람.

뒤늦게 푹 빠져서 매일 접속하고 있었다. 캐릭터의 레벨은 156밖에 안 되었지만 관심은 누구보다도 많았다.

"내가 있는 지역에 특별한 퀘스트가 뜬 건 없고... 천년여우라는 사람이 희귀한 창을 입수했군."

로열 로드는 워낙 방대하다 보니 마을과 도시, 성마다 게시판이 별도로 있었다.


제목 : 위드의 조각품이 화제네요

제목 : 빛의 조각품의 위엄

제목 : 저는 역시 위드가 제일 좋네요

제목 : 위드한테 시집가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위드가 또 뭔 짓을 저질렀군."

송수철은 신이 났다.

하루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모험을 보면서 화끈하게 풀어 버릴 수 있다.

송수철도 위드를 좋아했는데, 그것은 단지 모험의 즐거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로열 로드를 하는 유저들이라면 누구나 베르사 대륙에 애착을 갖게 된다.

명문 길드들이 대륙에 끼치는 해악, 강한 유저들이 곳곳에서 살인자로 돌변하는 모습에 분노하기도 한다.

위드는 지금까지 대륙의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힘겨운 모험을 해 왔다.

베르사 대륙을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가는 그를 보고 있다 보면 마음속으로나마 조금의 응원이라도 해 주고 싶어진다.

"어라, 근데 여긴......"

안타로사!

그가 있는 브리튼 연합 왕국의 에드가 성에서 아주 먼 곳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렇게 생긴 조각품을 본 적도 있는 것 같아."

송수철은 빛의 조각품을 보면서 자꾸만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보는 게 아니라, 지나치면서 본 적이 분명히 있었다.


제목 : 안타로사에 떠오른 조각품

제목 : 위드의 표현력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제목 : 조각사의 솔직한 고백. 초급으로는 절대 흉내도 낼 수 없습니다


어떤 게시 글을 봐도, 이 조각품의 원래 모습을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거참 신기하네. 다들 이거 정체가 뭔지 모르나?"

송수철은 콜라를 따라 마시면서 생각했다.

위드가 조각술 마스터 퀘스트를 하러 안타로사에 갔을 거란 이야기는 정말 많이 나오고 있었다.

평소에 게시판 활동을 활발하게 하기는 했지만, 그걸 공개적으로 적어 버리면 어쩌면 위드에게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

"나도 빨리 접속해서 사냥이나 해야지. 요즘 늑대들이 번식을 많이 해서 사냥 파티 구하기가 쉬워져서 다행이야."

송수철은 캡슐로 들어가서 접속하려고 했다. 하지만 뭔가 아는 것을 보고도 그냥 넘어가기에는 왠지 허전했다.

"위드 님에게 팬레터라도 써야지."

경매 사이트에 적혀 있는 위드의 메일 주소는 이미 유명해진 상태.

수만 명이 매일 메일을 보낼 테니 읽지도 않으리라.

"그래도 내가 로열 로드에 빠지게 된 것도 다 위드 님 덕분이니까."

송수철은 정성껏 메일을 작성해서 전송했다.


제목 : 안녕하세요, 위드 님.

아마 읽어 보시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브리튼 연합 왁국의

에드가 성에서 살고 있는 초보 유저 제르라고 합니다.

직업은 워리어죠. 다른 사람들을 지켜 주고 싶고 여러 가지

무기를 골고루 쓸 수 있다는 점이 좋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안타로사의 하늘에 떠 있는 조각품

잘 보았습니다. 위드 님께서 언제 에드가 성 근처에 오신

적이 있으셨나 보네요.

바바리안 시체의 살아 있는 모습을 표현하신 게 맞죠?

제가 던전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곳의 몬스터에게 맞아서

금방 죽어 버렸죠.

무서워서 아이템 찾으러 다시 가지도 못했지만 위드 님의

조각품으로 다시 보니 새삼 반갑네요.

더 길게 쓰고 싶지만 저도 이제 로열 로드에 접속할 시간이

라서 이만 줄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대륙의 평화를 위해서 수고해 주세요.


★★★★★★★★★★★★★★★★★★★★★


에드가 성!

브리튼 연합 왕국에 속해 있는 만큼 상인들과 여행자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이곳을 선택해서 시작한 초보자들은 온갖 물품들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을 누릴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아무래도 상인들이 많지만, 호송 의뢰나 몬스터 퇴치에 따른 보상금도 후해서 전투 계열 직업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상당히 많은 유저들이 북부로 떠나고 말았다.

아르펜 왕국의 역동적인 모습들이 알려지면서 그곳을 선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붉은 늑대 파티 자리 구합니다. 워리어입니다. 레벨은 156으로, 갑옷은 내구력 53짜리 강철로 입고 있어요!"

제르는 광장에서 열심히 외쳤다.

보통 어느 정도 레벨에 이르면 자주 사냥하는 파티가 있기 마련이지만, 계속 같이 가기는 어려웠다.

제르의 경우에는 남들보다 열심히 사냥을 해서 레벨을 올렸기 때문이다.

"샤먼도 붉은 늑대 파티 자리 구합니다. 레벨 174인데요, 필수 스킬 다 익히고 있어요."

제르의 옆에는 슬리아라는 여성 샤먼 유저가 있었다.

최근 인기인 붉은 늑대의 파티 자리를 구하는 유저들은 찾아보기 쉬운 편이었다.

붉은 늑대의 레벨은 200이 넘지만 따로 1마리씩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고 가죽이 비싼 값에 팔리기 때문에, 사냥하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몇몇 직업들끼리 즉석에서 파티를 조합하여 사냥을 떠나기도 하는 편이었다.

제르는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보기만 했다.

워리어는 파티의 능력이 부족하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

몬스터에 의해서 파티가 무너지게 되면, 최후까지 사냥터에 남아서 싸우다가 죽어야 하는 의무도 갖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워리어가 보통 파티의 리더가 되기도 했지만, 제르는 평소 아는 유저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예전에 같이 사냥을 했던 유저들은 레벨 업 속도가 느리거나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거나 했던 것이다.

아마 그들 중에서 상당히 많은 사람이 북부로 떠나게 되었을 것이다.

보통 파티에는 워리어가 1명이나 2명이 속하게 되는데, 대다수 파티의 리더가 워리어이다 보니 제르에게는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사실 기사가 갑옷을 잘 갖춰 입으면 방어력이 상당히 높아지게 되어서, 익숙한 사냥터에서는 워리어를 빼놓는 경우도 있었다.

에드가 성에서 레벨 200대 이하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스캇이라는 유저가 다가왔다.

"뭐, 긴말은 할 필요 없고, 저희랑 사냥 가실래요? 사제랑 마법사, 도둑. 다 준비되어 있어요."

"예, 가겠습니다."

잘 오지 않는 기회라 제르는 서둘러 승낙했다.

스캇의 사냥 파티는 효율이 좋기로 유명했고, 앞으로도 그를 따라다니면서 레벨을 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쪽은 샤먼이라고 했죠?"

"네."

"같이 가시죠."

"고맙습니다."

그리고 붉은 늑대의 서식지인 론디스 산에서 사냥을 시작했다.

제르와 슬리아는 무진장 구박을 당했다.

"그것도 똑바로 못해요? 몬스터를 데려오라니까요. 아이참, 그렇게 느려서 뭘 하겠다고."

"아, 왜 벌써 아이템 집으려고 해요? 우리 파티에는 규칙이 있는데, 처음 사냥 온 사람들은 아무것도 못 가져요. 그것도 몰랐어요?"

"나중에 사냥 끝나면 장비 수리비 정도는 주니까 걱정 마요. 오늘 똑바로 못하면 다음부터는 파티에 끼워 주지 않을수도 있으니까 정신 차리시고요."

제르는 몬스터를 끌어오면서 방어까지 담당했다.

파티의 다른 유저들은 꼼짝도 않고 자리를 지키면서 공격만 했다.

사제의 치료도 가끔 늦어질 때가 있어서 불안했지만, 말을 꺼낼 수도 없는 분위기.

슬리아도 샤먼으로서 공격과 축복, 치료까지 다 해야 해서 아주 바빴다.

그렇게 구박을 당하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에드가 성으로 돌아가서 다시 파티를 구해 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다 스캇이 아는 사람이 많아서 안 좋은 소문이 나게 되면 그의 레벨대에서는 파티를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에드가 성에서부터 제르를 찾아다니다가 이곳까지 따라온 사람이 있었다.

때 묻은 초보자용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

그는 나무를 등지고 앉아 조각품을 깎으면서 사냥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가끔씩 중얼거리는 말.

"건강보험료가 올해도 적자라는군. 그렇게나 많이 거둬 가면서 얼마나 뒤로 빼먹었으면...."

한숨도 가끔씩 쉬었다.

"물가는 계속 오르기만 하다니... 경제가 좋다는데 왜 살기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거야. 이렇게 되면 돈벼락을 맞아도 평생 놀고먹기는 힘들겠어."

그러면서 행복한 단꿈을 꾸기도 했다.

"열심히 저축해서 나중에는 만날 늦잠이나 자고 빈둥거리면서 살아야지."

그렇게 조각품을 깎으면서 제르가 파티에서 구박당하면서 사냥하는 것을 한참 쳐다보았다.

제르는 3시간 정도를 꼬박 혹사당하다가 슬리아와 함께 버려졌다.

"베르메르 산 쪽에 검사 퀘스트가 떴다고?"

"응. 거기서 지금 난리래. 바위 베기 스킬은 퀘스트가 떴을 때만 익힐 수 있잖아."

"우리도 그쪽으로 가자. 제르 님이랑 슬리아 님은 아직 우리 정규 파티원이 아니니까 같이 갈 수 없겠네요. 그럼 다음에 봐요."

제르와 슬리아는 허탈하게 둘만 남게 되었다.

"성으로 다시 돌아갈까요?"

"그럼련 시간이 너무 걸리는데. 이 주변에서 파티를 알아 보는 편이 나을 거 같아요."

론디스 산의 다른 사냥 파티에 끼는 것도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워리어는 위험한 던전이 아닌 이상 2~3명까지는 필요하지 않고, 샤먼은 더욱 여러 명이 필요하지 않은 직업이다.

그들이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조각품을 깎고 있던 사람이 일어나서 다가왔다.

"워리어 제르 님 맞습니까?"

"네에, 맞는데요."

제르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을 쳐다봤다.

'어라. 어디선가 많이 봤는데.'

상대는 너무도 흔한 초보자용 옷을 입고 있었지만, 전체적인 체형이나 목소리가 너무 익숙했다. 분명 자신에게 중요한 어떤 사람이었다.

'같이 사냥을 한 적이 있나? 예전에 나한테 검을 싸게 넘겨주었던 그분?'

기억력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니지만 만나 본 경험을 떠올리려고 해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불청객이 말했다.

"잠시 시간이 되면 저랑 사냥하러 가시지 않겠습니까?"

"뭐, 파티도 없는 처지라서, 저야 좋습니다."

제르는 그 말에 선뜻 나서기로 했다. 아직 잘 기억은 나지 않았어도 어딘가 좋은 느낌이었던 것이다.

"아, 그런데 슬리아 님이....."

"전 괜찮아요. 신경 써 주지 않으셔도 돼요."

불청객은 슬리아를 보면서 잠시 상념에 빠진 얼굴이었다.

'딱 저런 장비였지.'

첫사랑이었던 샤먼 다인이 입던 장비보다 등급은 떨어지지만 같은 종류였다.

"같이 가셔도 됩니다."

"정말요? 고맙습니다! 열심히 마법 쓸게요."

그녀는 샤먼을 육체적인 전투보다는 마법 위주로 성장시킨 경우였다.

제르와 슬리아는 이제 이 불청객이 자신의 파티로 안내를 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제르가 물었다.

"다른 동료분들이 계신 장소는 여기에서 멀리 있나요?"

"파티는 우리뿐입니다."

"에? 그러면 다른 직업을 더 모집해야 될 것 같은데요."

제르는 파티에 속하게 되었으니 이 근처에서 놀고 있는 직업을 구해 볼 기색이었다.

워리어와 샤먼이 있으니 다른 직업 몇 명만 더 있으면 조심해서 어쨌든 사냥은 가능하지 않겠는가.

"우리끼리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넘치는 자신감!

슬리아가 밝게 웃으면서 물었다.

"붉은 늑대를 사냥해 본 경험이 많으신가 봐요?"

"해 본 적 없는데요. 비슷한 놈들을 사냥한 적은 있지만."

"에, 생각보다 이놈들 엄청 강한데요. 우리끼리는 조금 무리가...."

슬리아가 막 말리려고 할 때, 불청객의 뒤쪽으로 붉은 늑대가 어슬렁거리면서 다가왔다.

"조심하세요!"

붉은 늑대는 갑자기 뛰어올라서 덮치는 습성을 가졌기에 이 정도라면 무척이나 가까운 거리.

불청객이 뒤를 돌아보더니 인상을 썼다.

"쓰읍!"

깨갱! 깽깽!

꼬리를 말고 죽을힘을 다해 내빼는 붉은 늑대!

제르와 슬리아는 황당함에 빠지고 말았다.

레벨이 200을 넘으면 갑옷만 잘 갖춰 입어도 붉은 늑대를 사냥하는 것이 어려운 것 아니다.

그런데 투지만으로, 사나워서 무리에서도 쫓겨난 붉은 늑대를 눌러 버리다니!

"사냥할 곳은 여기가 아닙니다."

"그럼 어디로 가는데요?"

"던전 사냥을 가야죠."

던전 사냥!

워리어라면 당연히 꼭 해 보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어지간히 친하거나 손발을 자주 맞춰 본 사이가 아니라면 던전 사냥에는 잘 끼워 주지 않았다.

"우리끼리요? 거기가 어딘데요?"

"그곳의 위치는 제르 님이 알고 계실 겁니다."

"저요?"

제르는 당연히 무슨 수수께끼라도 들은 듯한 얼굴이 되었다.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놀리시는 겁니까?"

하지만 불청객의 얼굴을 천천히 뜯어보니 입을 쩌억 벌렸다.

"설마... 혹시....."

"알아채셨군요. 맞습니다."

"이거 꿈인가요?"

"......"


★★★★★★★★★★★★★★★★★★★★★


드라푸킨 던전!

몬스터의 평균 레벨이 자그마치 430대를 넘나드는 위험한 곳이었다.

브리튼 연합 왕국의 정말 유명한 사냥 파티들도 고개를 숙이고 돌아갔던 곳.

몇 번 이 던전에 사냥 파티가 오기는 했지만, 마지막까지 간 적은 없다.

위험한 정도가 보통 이상이기도 하였지만, 사냥의 효율만을 놓고 본다면 레벨을 올리기 더 편한 곳들도 많기 때문이다.

"여기입니다."

제르는 위드와 슬리아를 그곳으로 안내했다.

"예전에 클라우드 길드에서 이곳에서 사냥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앗, 저도 기억나요. 4개월 전쯤에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사냥을 했죠?"

"쭉 내려가며 사냥을 하다가 지하 3층에서 철수를 했죠. 저는 구경한다고 따라가다 중간에 함정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그 바바리안 조각품의 시체를 봤습니다."

위드는 검과 갑옷의 장비를 최고의 것들로 바꾸었다.

검 갈기와 방어구 닦기 스킬은 기본.

"그럼 갑시다."

"정말 이곳에서 사냥하려고요?"

슬리아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물론이죠. 콜 데스 나이트 반 호크, 콜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

데스 나이트와 뱀파이어 로드도 불러들여서 사냥 준비 완료.

"축복 마법이 있으면 저한테만 걸어 주세요."

"일단 써 드리기는 할게요. 무슨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산들바람이 불어오네요. 가벼운 마음으로 적을 상대하세요. 당신의 발걸음까지 가벼워질 테니까요. 스피릿 오브 울프."

샤먼은 이동속도와 공격력, 방어력, 투지를 올려 주는 다양한 축복 마법을 쓸 줄 알았다.

사제에 비해서는 약하더라도 종류가 다양해 상당히 유용한 편.

도시에서도 먼 곳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샤먼에게 돈을 주고 이동속도를 늘려 주는 마법을 받았다.

위드의 경우에는 지상에서는 누렁이, 하늘에서는 와삼이를 타면 되었으니 별로 필요는 없었지만.

이곳의 1층에서는 드라킨이라는 암흑 계열의 몬스터가 나왔다.

시커먼 도마뱀처럼 생겼지만 훨씬 크고, 흑마법도 사용할 줄 알았다.

제르와 슬리아는 흥미진진하게 전투를 구경하기로 했다.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이렇게 죽더라도 친구들에게 자랑거리는 될 것 같아요."

위드는 반 호크에게 명령했다.

"먼저 가서 싸워 봐."

"알겠다."

어려운 건 항상 부하 먼저!

드라킨의 흑마법도 데스 나이트의 저항력 앞에서는 별 소용이 없었다.

반 호크의 레벨이 드라킨보다도 더 높았기에 무난히 두들겨 팰 수 있었다.

하지만 피부의 방어력이 높아서 잘 죽지는 않았다. 두들겨 맞을 때마다 옆으로 찔끔 밀려나서 물어뜯으려고 하거나 흑마법을 사용했다.

"별문제는 없겠군. 가자, 토리도."

위드도 토리도와 같이 실컷 공격해서 사냥에 성공했다.

대부분의 알려진 몬스터에 대한 지식들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글을 읽거나 동영상을 미리 봤더라도, 직접 상대해 보면 또 조금 다른 법이다.

실제 사냥에 있어서는 미세한 행동 습관에 따라서도 가지고 있는 스킬들을 잘 이용해 생각보다 손쉽게 잡을 수도 있는 것.

"방어력이 상당히 강하기는 하군. 일점 공격술!"

그다음에 나오는 드라킨들에게는 일점 공격술을 사용하면서 사냥 시간을 줄였다.

헤라임 검술을 일점 공격술로 연달아 성공시키는 파괴력.

처음 사냥에는 4분 정도가 걸렸지만, 그다음에는 45초 정도 단축시켰다.

"지금은 괜찮지만 몇 놈 더 불러와야 편하긴 하겠군. 조각 소환술!"

황금새와 은새, 누렁이, 금인이, 켈베로스, 하이 엘프 엘틴, 여자 바바리안 전사 게르니카까지 불러들였다.

위드는 조각 생명체들이 있다면 언제든 파티 구성을 마칠 수가 있었다.

단지 아쉬운 부분이라면 신성력을 사용할 줄 아는 조각 생명체가 없다는 점.

위드의 공적치라면 어느 교단을 가더라도 사제를 불어올 수 있었기에 사실 그렇게 모자란 부분도 아니다.

조각 생명체가 사제라면 챙기느라 더 여러모로 신경을 써야 하는데, 공적치로 불러온 사제는 상황에 따라 미끼로 내던질 수도 있으니까!

"가자."

위드는 조각 생명체들과 같이 위풍당당하게 걸었다.

드라킨이 1~2마리씩 나올 때마다 집중 공격으로 금세 사냥!

반 호크, 토리도만 하더라도 강력한 전력인데 조각 생명체들까지 왔다면 끝난 상황이었다.

"이곳에 게이하르 폰 아르펜 황제의 용사였던 바하모르그가 잠들어 있다. 우린 그곳으로 가야 한다. 쉴 시간이 없다."

"째잭잭!"

황금새가 조인족으로 변하여 평소보다 훨씬 부지런하게 사냥을 하였다. 그 덕에 1층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빨리 마무리를 지었다.

슬리아는 치료라도 해 주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할 일이 없었다.

레벨이 낮은 샤먼으로서 치료 능력이 부족하진 않을지 굉장이 초조했는데 그저 구경만 하며 따라가도 되는 상황.

위드의 붕대 감기 스킬은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있었고, 약초학과 재봉 스킬을 활용하여 최고급 붕대를 만들어서 썼기 때문이다.

"도대체 갑옷의 방어력이 어떻게 되십니까?"

아무래도 이상해서 제르가 물어 왔다.

드라킨이 돌진해서 위드를 물었는데도 그리 많이 다친 것 같지가 않았다. 여신의 기사 갑옷의 놀라운 위력이었다.

"이 갑옷, 생각보다 좋은 겁니다. 그리고 제 인내력이 900대를 넘었고, 맷집은 곧 500이 됩니다."

"커헉."

위드는 사냥터에서 조각품을 깎으면서 인내력을 키웠다.

게다가 항상 맞을 만큼 맞아 주면서 사냥을 했는데, 그것이 쌓이다 보니 무서운 수준이었다.

몬스터가 조금 덜 때렸을 때는 일부러 더 맞아 주고 사냥을 하는 잔인함!

지하 2층에서는 한층 더 무서운 마법을 발휘하는 전투 드라킨이 여러 마리씩 나왔다.

"황금새, 은새가 적들을 교란해. 엘틴은 뒤에서 화살로 지원."

위드와 조각 생명체들은 익숙하게 사냥을 했다.

제르와 슬리아는 그저 지켜보는 정도밖에는 할 일이 없었다.

던전 사냥에 따라오기는 했지만 너무나도 수준이 높은 곳이라서 그들이 나선다는 자체가 폐가 될 수 있다.

당장 얻는 것은 없더라도, 위드의 전투를 옆에서 따라가며 보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었다.

물론 드라킨이 죽을 때마다 침을 꼴깍 삼켰다.

이곳에서 나오는 전리품을 조금 넘겨주기라도 한다면 그거야말로 진정한 대박!

물론 위드에게 그럴 낌새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전투 도중에 다른 드라킨이 난입하여 판이 복잡하게 벌어져도, 잡템 하나까지도 찾아 가면서 줍는 꼼꼼함.

제르와 슬리아는 들러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 참! 파티 초대를 안 했죠. 제가 혼자만 사냥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리고 보통은 다른 동료들에게 초대받는 일이 대부분이었거든요."

띠링!

-아르펜 왕국의 국왕 위드 님께서 파티에 초대하셨습니다.

둘은 파티 가입을 받아들였다.

"저희는 파티에 있더라도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요."

레벨 차이가 많이 나면 경험치를 거의 받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일단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그리고 다시 사냥이 계속 이루어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드라킨의 막대한 경험치!

역시나 낮은 레벨 때문에 제르와 슬리아는 붉은 늑대를 파티 사냥한 것을 조금 웃도는 정도밖에는 경험치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위드와 조각 생명체들이 사냥하는 속도가 너무 엄청나서, 레벨이 올라가는 속도가 무시무시했다.

마치 레벨이 50대였을 때만큼 경험치가 쑥쑥 쌓이는 것이었다.


10) 바하모르그의 기억력


위드는 그들에게 말했다.

"레벨은 나중이 되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스킬 숙련도를 꾸준히 잘 올려놓아야 언제라도 편해요. 지금 이렇게 레벨을 올리더라도, 스킬과 스탯에 언제나 투자를 해야 됩니다."

다른 공격 계열의 직업들은 눈치를 보면서 남들 하는 만큼 정도만 한다.

제르는 워리어로서 직접 몬스터와 싸우는 처지라서 스킬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되는 입장이었다.

매번 전투에서 앞장서기만 하다가 이렇게 뒤를 따라가려니 조금 좀이 쑤셨다.

이곳 던전의 난이도가 워낙 높아서 긴장은 되었지만 심심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

위드가 그에게 물었다.

"그리고 워리어라서 생명력 높죠?"

"네! 그렇지만 이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을 거 같은데요."

"토리도야, 손님이다."

레벨이 낮은 워리어도 일단 파티를 맺은 이상 어떻게든 써 먹는 알뜰함!

제르는 뱀파이어 로드에게 피를 빨리면서 맷집과 체력을 키울 기회를 얻었다.

별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슬리아도 옆에서 축복 마법이나 다른 필요한 마법들을 쓰면서 차곡차곡 스킬 숙련도를 늘려 나갔다.

그렇게 2층까지 순식간에 정리가 되고, 지하 3층!

이곳 역시 별다른 장애는 없었다.

위드의 장비는 이미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고, 조각 생명체들 역시 갖은 전투로 단련이 되어 있었다.

시간은 2층보다 조금 더 걸렸지만, 위드가 파티 사냥을 이끌면서 어렵게 느껴지진 않는 정도였다.

제르가 파티를 끌었더라면 분명 고민했을 부분에서도 재빨리 판단을 내렸고, 결과를 놓고 보자면 대부분 옳은 것이었다.

지하 3층 절반도 가지 않아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간신히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길.

옆으로는 어둡고 까바득한 낭떠러지였다.

"여깁니다. 이곳에서 아래로 떨어져서 발견했죠. 생각처럼 깊진 않으나, 밑에는 바바리안 시체만이 아니라 다른 몬스터들도 많이 있으니 주의하셔야 됩니다."

"알겠습니다. 위험한 곳이군요. 반 호크, 토리도."

"왜 부르는가."

"동시에 다 같이 내려가자."

"알겠다, 주인."

위드는 반 호크, 토리도와 같이 뛰어내렸다. 하지만 조금 떨어지다가 혼자서 펼치는 빛의 날개!

토리도도 곧바로 검은 망토를 펄럭이면서 공중에 멈췄다.

"크야아아아악!"

반 호크만 추락!

그가 땅에 떨어져서 몬스터들의 집중 공격을 당하는 사이에 위드와 토리도는 안전하게 아래로 내려왔다.

이곳에는 드라킨의 새끼들이 살고 있었다.

뒤따라온 황금새와 은새는 조인족으로 변하여 공격하고, 다른 조각 생명체들은 화살을 쏘면서 견제

제르는 아무것도 못 하고 금방 죽어 버렸었지만, 위드와 조각 생명체들은 이곳을 간단히 정리했다.

"여기였군."

위드는 벽에 기대어 죽어 있는 바바리안 시체를 발견했다.

아르펜 제국의 용사 바하모르그.

전쟁터를 누비던 그의 몸은 다시 돌로 돌아가 있었다.

몸에는 화살이나 부러진 검, 도끼 들이 박혀 있어 처참하기 짝이 없는 상태.

"정말 죽어 있었군."

퀘스트에서 그를 찾아내는 것이 어쩌면 정말 시간이 많이 걸릴 뻔했다.

안타로사를 모조리 수색하거나, 혹은 토르 왕국에서부터 흔적을 찾으면서 왔어야 발견할 수 있었으리라.

"어쨌든 찾았으니 정말 다행이야."

위드는 조각품에 담긴 추억 스킬을 시전했다.

"감정!"

-조각 생명체의 시체를 관찰합니다.

자세한 정보의 확인은 불가능합니다.


『 이름 : 바하모르그 성향 : 호전적

레벨 : 577 종족 : 바바리안

직업 : 철혈의 워리어 칭호 : 불멸의 용사

명성 : 8,932

게이하르 황제에 의해 탄생한 생명체.

아르펜 제국의 전투에서 늘 최전선에 나서서 승리를 가져왔다 그의

용맹은 대적할 자가 없었으며, 어떤 몬스터의 거친 공격이라도 받아

낼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과거에는 아르펜 제국 최고의 용사로 이름을 떨쳤지만 현재 그를 기

억하고 있는 자들은 거의 없는 상태.

게이하르 황제에 대한 충성심과 애정이 남달랐다.

아르펜 제국이 분열되고 난 이후로 대륙을 떠돌며 싸움을 하던 중 치료

하지 않은 상처가 악화되어 사망했다.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다.

+강철 같은 체력과 맷집.

+각종 외침을 통하여 동료들의 사기와 방어력 증가시킴.

+샘솟는 생명.

+보호 스킬 마스터.

+뛰어난 마법 저항.

+높은 정신력으로 상태 이상에 걸려들지 않음.

+확인되지 않음.

+확인되지 않음.

+특수 스킬 : 확인되지 않음.

확인되지 않음. 』


그리고 위드에게 바하모르그의 추억이 보였다.


★★★★★★★★★★★★★★★★★★★★★


"너의 이름은 바하모르그라고 하자."

"알겠다. 하지만 내 인생은 나 스스로 살아갈 것이다."

바하모르그는 아르펜 제국의 건국기에 태어났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시작부터 끝없는 싸움이었다.

평원, 사막, 절벽, 동굴, 늪지, 산을 가리지 않고 몬스터와 적을 만났다.

눈이 쌓인 산에서 야생동물들과 싸우고, 도시를 습격하는 몬스터를 물리쳤다.

"크하아아아!"

거친 야성의 울부짖음.

"적들이 있다면 내가 없앨 것이다. 나는 싸움이 좋다."

칼날과 화살도 그의 몸을 뚫지 못하였음여, 전장의 선두에 서서 엄청난 괴력으로 성문을 부쉈다.

기사단의 질주조차도 산악처럼 우뚝 서 있는 그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바하모르그는 아르펜 제국의 용사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게이하르 황제의 죽음 이후로 제국이 갈라져 나갈 때에는 누구의 편에 서지 않고 조각 생명체들을 위하여 싸웠다.

"나의 황제여... 이제 나는 누구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바하모르그의 투박한 마음에는 게이하르 황제에 대한 애틋한 정이 가득했다.

다른 조각 생명체들이 살아갈 장소들을 마련해 주고 나서 그는 안타로사로 돌아오기 위한 길을 걸었다.

약하된 의지는 단단하기 짝이 없던 그의 육체까지 무너뜨렸다.

이미 입고 있던 무수히 많은 상처들이 악화되어 갔고, 맹독은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를 노린 몬스터와 어쌔신의 습격도 계속되었따.

피의 길을 걸으면서 안타로사로 향하였지만 결국 치료를 위하여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곳 던전으로 들어온 이후에도 드라킨에 의하여 계속 공격을 당하다가, 아르펜 제국의 최고의 용사는 결국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


띠링!

-용사 바하모르그 퀘스트에 필요한 정보를 입수하셨습니다.

그가 맞이한 최후의 순간을 에르리얀에게 들려주면 의뢰가 완수됩니다.

위드는 바바리안 시체 앞에 서 있었다.

제르와 슬리아는 아무래도 퀘스트에 필요해서 저 바바리안 시체를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기다렸다.

위드는 눈을 지그시 감고 조금 전에 봤던 영상들을 음미했다.

워리어란 적들의 어떤 공격도 자신의 몸으로 이겨 내면서, 가장 앞에서 싸우는 존재.

바하모르그는 대단한 워리어라고 할 수 있었다.

"역시 용사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활약을 했군."

게이하르 황제를 그리워하면서 죽기 위하여 안타로사로 찾아갔다는 이야기는 가슴까지 울렸다.

그 어떤 고통도 극복하는 워리어라지만, 마음의 아픔을 견뎌 내지 못한 충직함까지 가진 것 아닌가.

"이 약초가 정말 좋은 거야?"

"피부를 맑게 가꾸어 준다더라고."

"골골골. 나도 많이 바르고 싶다."

난데없이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려 보니 피부에 좋다는 약초를 얼굴에 바르고 있는 엘틴과 게르니카, 금인이!

누렁이는 그 약초를 질겅질겅 먹고 있었다.

"에휴."

위드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바하모르그에 대한 감동도 금방 사라진 상태!

"그렇지만 이대로 돌아갈 필요는 없겠지."

위드는 바하모르그를 갖고 싶었다.

아르펜 제국을 위해 헌신했던 위대한 워리어가 이렇게 쓸쓸히 잠들어 있는 것은 넘누 아쉬웠다.

전사에 대한 존경심으로도 그냥은 뒤돌아설 수가 없었다.

당연히 되살려 내서 앞으로 영원히 부려 먹어야 될 것 아닌가.

"조각품에 생명 부여!"

-용사 바하모르그의 시체에 생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조각 생명체는 새로운 삶을 얻습니다.

다시 조각한 시점에서 늘어난 예술 스탯과 조각술의 효과는 적용되지

않으며, 예전에 살아 있을 때보다 레벨이 5% 줄어듭니다.

위드는 조각술 마스터한다면서 신들의 정원을 조성하느라 사냥을 많이 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 벨소스 왕의 유적에서 동료들과 전투를 하고 암벽 협곡에서 슬레이언 부족과 싸우는 등으로 레벨을 416을 만들었다.

그동안 어렵게 올린 레벨과 예술 스탯이 감소하지만, 바하모르그에게는 다시 생명을 갖게 해 줄 가치가 충분했다.

화석처럼 굳어 있던 바하모르그의 몸에서 심장이 쿵쿵거리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몸에 온갖 무기들이 박힌 채로 벽에 기대어 죽어 있던 그가 서서히 눈을 떴다.

아르펜 황제를 따르며 베르사 대륙을 질타하던 용사가, 긴 시간이 지나서 위드에 의하여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곳은...."

바하모르그는 되살아나더니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과거를 기억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위드는 전부 잊어버렸기를 바랐다.

'그래야 앞으로 내가 주입식 교육을 통해 확실히 부하로 써먹지.'

바하모르그가 머리를 흔들더니 무겁고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아, 게이하르 황제 폐하가 죽고 나서 나는 안타로사로 가는 길이었는데."

"....."

완벽한 기억력.

육체의 일부를 잃어버렸던 금인이와는 달리 바하모르그는 부상이 심각할 뿐 다른 것들은 멀쩡하다고 할 수 있었다.

위드가 가식적인 콧소리를 냈다.

"나는 게이하르 황제 폐하를 존경하며, 그분의 길을 다시 걷고 있는 조각사 위드라고 한다."

"바하모르그다. 나를 살린 것이 너인가?"

"앞으로 우리가 같이할 이야기가 많아질 것 같군. 일단 많이 다쳤으니, 가만히 있어 봐. 내가 치료를 해 줄게."

"제가......"

슬리아가 나서려고 했지만 귓속말을 보내서 만류!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하기에 친절히 붕대를 감아 주려는 것이다.

"이런, 많이 아프겠구나."

위드는 바하모르그의 몸에서 무기와 화살도 조심스럽게 뽑아냈다.

이것들은 재가공을 하여 팔아먹을 수 있는 아이템들!

'보관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군.'

아이템들에 대한 견적도 내리고 있었다.

바하모르그의 몸은 무기를 회수하자마자 트롤에 맞먹는 회복력을 보이면서 나아 갔다. 그는 황금새조차도 알아보았다.

"세노리아... 네가 어떻게 이곳에 있는 거지?"

"바하모르그, 정말 긴 시간이었다."

"아직 모든 것이 얼떨떨하다."

황금새와 바하모르그는 다시 만난 회포도 풀었다. 게이하르 황제에 대한 추억을 나누면서 과거의 순간들을 이야기 했다.

위드의 생각에,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과거는 어쨌든 흘려보내야 되는 것.

아르펜 제국의 수호신이었던 바하모르그지만, 앞으로는 어디까지나 그가 부려 먹을 대상일 뿐이었다.


★★★★★★★★★★★★★★★★★★★★★


모라타로 오는 길에 제르와 슬리아도 와이번의 등에 태워서 데리고 왔다.

그들은 기왕 위드를 만난 이상 북부에 정착해서 살기로 한 것이다.

"판잣집이 싸니까 내 집 마련부터 하시고, 앞으로 재밌게 지내세요."

"네. 고맙습니다."

"그럼 이만 가 볼게요."

모라타에 와서는 둘 다 가 볼 곳이 많아서 위드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줄어든 듯이 보였다.

최근 방송국에서 모라타는 초보자들의 올바른 선택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모라타에 대한 방송이 계속 나오면서, 화가의 언덕 같은 명소뿐만이 아니라 가 보고 싶은 여러 장소에 대한 정보가 쏟아져 나온 상태였다.

모라에 새로이 정착하여 살기 위해, 그들은 바쁘게 떠났다.

위드도 따뜻한 눈으로 그들이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세금 줄이 앞으로 2명 더 늘었군."


★★★★★★★★★★★★★★★★★★★★★


벤트 성의 상인 가몽!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귀한 올리브를 가져오셨군요! 요즘에 찾는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가격이야 당연히 잘 쳐 드려야지요."

-대규모의 무역 이익을 거두셨습니다. 명성 126 상승.

-교역소 주인과의 서로 이득이 되는 거래로, 회계 스킬의 레벨이 중급

2레벨로 상승했습니다. 냉정한 계산으로 인하여 물건을 사고팔 때에

더욱 가격을 후려칠 수 있습니다. 어수룩한 구매자들의 등을 칠 수 있
을 것입니다.

-교역 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에헤헤, 고맙습니다."

그녀는 모라타의 물건을 떼어다가 벤트 성에서 계속 팔아 치웠다.

레벨과 스킬 숙련도도 빠르게 올라가고, 운송 마차의 규모는 무려 열두 대 분량까지 늘어났다.

"요즘 가몽이라는 상인이 대단한 부를 쌓아 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

"상업에 뛰어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상인 가몽의 재능이 대단하다더군. 지금의 이득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상인으로서 훌륭한 마음가짐이야."

"무역에 대해서 배우고 싶은가? 그렇다면 상인 가몽에게 배우는 것이 좋을 거야. 모라타의 교역소에서 거래되는 물품들을 가장 비싸게 팔아 치우고 있거든."

상인 유저들은 소문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초보자들은 올리브의 가격이 4쿠퍼만 더 높더라도 귀찮음을 감수하고 더 멀리까지 운반한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재미!

마차 한 대 분량 이상이 되면 가격차이도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게다가 큰 이득을 남기면서 정기적으로 납품을 잘하면 평판이 오른다.

상인의 평판은 회계 스킬의 성공률이나 퀘스트의 성공에 대한 보상까지 올려 주었으므로 대단히 중요한 부분.

"가몽이 누구야?"

"교역소 주인이 모라타에서 최고의 식료품 상인이라던데, 어디서 물건을 파는 거야?"

상인 유저들은 가몽을 만나고 싶었다.

초보 상인들이 자본이 없을 때 가장 먼저 취급하는 것이 식료품!

모라타의 농산물들은 품질이 좋은 편이라서 초반에 성장하기에 좋았다.

대도시로서의 위용을 자랑하기라도 하듯이 모라타에는 교역소도 여러 곳이었다.

"아저씨, 저 왔어요."

"오늘도 새벽 일찍 왔구만."

"예. 그래야 신선하잖아요. 오늘도 마차 열두 대 분량 가득 주문할게요."

"상인 가몽을 위해서 내가 따로 신선한 것들만 추려 놓았지. 가격도 어제보다 조금 더 저렴하게 줄게. 그 외에 필요한 것은 없나?"

"철 조각이 필요한데, 있을까요?"

"물량이 많진 않은데... 상인 가몽의 부탁이라면 그 정도는 들어줘야지!"

가몽과 교역소 주인의 대화를 듣고 있던 초보 상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통 그들이 말을 걸었을 때 교역소 주인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ㅡ물건을 가져가서 제값을 받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군. 못 팔고 나중에 도로 가져오지나 말게.

ㅡ물건 값을 깎아 달라고? 팔 생각 없으니 다른 곳에 가서 알아봐.


그랬던 교역소 주인이 상인 가몽이라면서 치켜세워 주다니!

"저기요, 혹시 중앙 대륙에서 오신 상인분이세요?"

배낭에 잡템을 들고 다니며 판매하는 초보 상인들이 큰 용기를 내서 물었다.

"아뇨. 전 모라타에서 시작했어요. 풀죽신교 독버섯죽 신도예요."

"아...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유명해지고 빨리 성장하실 수 있어요?"

중앙 대륙에서는 상인들끼리의 규율이 있다.

절대 다른 사람의 교역로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것.

지식의 존중 차원에서였지만, 사실은 누구도 알려 주지 않는 부분이었다.

상인들은 스스로 발품을 팔면서 인맥을 쌓고 상품 거래를 개척하는 직업이었으니까.

가몽은 그런 점에 있어서는 남들과 달랐다.

"저는 주로 벤트 성에서 교역을 해요."

"벤트 성이라면...."

"아! 그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는 벤트 성! 게시판에서 본 적이 있어요. 그곳에 들어가서 거래를 하신다고요?"

"네!"

가몽은 초보 상인들에게 방법을 알려 주었다.

"제가 벤트 성에 소개시켜 드릴 수도 있어요. 그곳은 아직 까지도 식료품이 많이 부족한 편이거든요. 식료품을 사 오셔서 저랑 같이 벤트 성으로 가실래요?"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요."

잡템을 팔며 근근이 성장하고, 중앙 대륙과의 원거리 교역에만 집중하던 초보 상인들.

그들이 100명 넘게 벤트 성에 들어가게 되었다.

"가몽의 소개라면 들어가도 좋다."

"상인 가몽이 알선하는 사람이라면 믿고 교역을 해도 되겠지."

"정말 신선한 우유로군. 바로 이런 걸 찾고 있었어. 오늘 낮이 되기 전에 다 팔려 버릴 것 같은데, 더 없나? 더 있으면 가격은 한 병에 17쿠퍼씩 더 쳐주지!"

초보 상인들은 벤트 성에서 큰 무역 수익을 거뒀다. 개인이 가져온 물건의 양이라고 해 봐야 많지 않았어도, 지금까지 상인으로서 거둔 수입 중에서 가장 많았다.

그 이후 모라타와 벤트 성의 교역량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요즘 들어서 사람들이 맥주의 맛을 알게 된 것 같아. 팔 물건이 많이 부족하니 이틀 내로 열 통을 가져와 줄 수 있겠나? 수고료를 조금 더 쳐주지."

"내일까지 가져오겠습니다!"

상인들은 북부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운송 마차를 달리기 시작했다.

마침 아르펜 왕국이 확장되면서 다른 마을들도 발전을 하고 있는 터라 교역할 곳은 더욱 많아졌다.

"에퀴녹 마을 들렀어?"

"아니. 거기서 팔 물건을 조금 남겨 놨어야 되는데 아르망 마을에서 다 팔아 버렸어."

"나도 물건이 없어서... 모라타에 빨리 다녀와야지. 유셀린 마을 근처 던전에서 소비되는 물자들을 보급해 달라고 다들 난리야!"

초보 상인들이 북부를 활보하면서 필요한 물자들을 운반하자 각 지격에 활력이 돌았다.

전사와 기사만 왕국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니었다. 평상시에는 상인들의 활동이 더욱 왕국을 살찌우는 역할을 했다.

마을과 도시가 발전하고, 출생률이 높아지고, 기술과 문화, 경제, 식량 생산 등, 셀 수 없이 많은 부분에 상인들의 땀방울이 어려 있었다.

모라타가 북부 전체와 교역을 하는 데에도 상인들이 다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제 가몽은 독점에 따른 수익을 포기하는 수박에 없었다.

벤트 성에는 부족한 물품들이 많았는데 다른 상인들도 가져오게 되면서 가격이 혼자서 팔 때만큼 비싸게 받기는 어려워졌다.

"헤헤, 그래도 벤트 성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좋아."

가몽은 궁극적으로 북부 전체가 발전을 해야 상인들이 먹고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대상인이 되기 위해서는 아르펜 왕국이 더욱 커지고 발전을 하여야 한다.

가몽은 다른 상인들과 어울릴 때마다 독버섯 죽을 나누어 마시며 자신의 뜻을 이야기했다.

"가몽 님의 생각이 맞습니다. 저도 더 노력하겠습니다. 크으윽."

"톳쿵 님, 괜찮으세요?"

"생명력이 870 남았는데... 죽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면 한 숟가락 더 드셔도 되겠어요."

상인들이 북부에서 모라타의 질 좋은 물품을 판매하면서 지역 정치의 확대와 문화의 전달도 이루어졌다.

"이벨린 성은 절대 사람을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던데요. 가몽 님은 성공하셧어요?"

"아직요. 그렇지만 기필코 그곳에서도 물건을 팔 거예요. 모라타의 물품은 좋으니까, 승산이 있어요!"

상인들은 목숨과 재산을 걸고 북부를 누비며 도전을 계속 하고 있었다.

물론 그러면서 아르펜 왕국의 영향력과 경제력도 덩달아 확대되었다.


★★★★★★★★★★★★★★★★★★★★★


다크 게이머 연합 모라타 지부.

그들은 황소 광장 주변의 선술집에 자주 모였다.

모라타에는 관광객들도 많을 뿐만 아니라, 유저들이 모여들면서 적극적인 개척이 이루어지고 있다.

북부에는 사냥을 할 만한 장소도 많기 때문에 다크 게이머들은 알음알음 찾아 오게 되었다.

"이 도시는 물가가 저렴해서 정말 좋군."

"세금이 낮으니까요."

"돈을 많이 받는 퀘스트는 좀 적고, 호위를 해 달라는 의뢰도 마찬가지로 드문 것이 단점이기는 해."

"뭐든 다 좋은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더라도 이곳은 멋진 편이죠."

다크 게이머들의 수입원은 전쟁 참여나 위험한 던전에서의 호위 등 여러 가지였다.

모라타는 몬스터들 외에는 평화로운 편이라서 돈이 오가는 의뢰가 다른 곳보다 훨씬 적었다.

그런 이유로 스스로의 성장에 목표를 두거나 모험을 원하는 은둔자형 다크 게이머들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예술품과,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장과 광장, 대성당, 대도서관, 탐구자의 탑, 헤스티아의 대장간, 신들의 정원이라는 최고 수준의 기반 시설.

그럼에도 세금은 낮고 사냥터와 던전에 대한 텃세가 없다는 점은 다크 게이머뿐만 아니라 중견 유저들도 불러오고 있었다.

레벨이 높은 유저일수록 지금까지 쌓은 모든 것을 버리고 먼 북부까지 와서 새로 자리를 잡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움직임은 별로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위대한 건축물이 지어질 때마다, 그리고 신들의 정원까지 완공되면서, 중견 레벨의 유저들은 계속 이주를 해 왔다.

며칠 사이에 중앙 대륙에서의 이주자들로 작은 마을 하나가 꾸려질 정도.

상대적으로 레벨이 높은 유저들이 오며 경제 규모가 대폭 확장되어 세금 징수액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정체되거나 느리게 진행되던 기술의 발달도 빨라졌다.

다크 게이머 연합에서는 모라타 지부도 세우게 되었는데, 불과 일주일 사이에 확장을 고려해야 될 정도로 성업을 이루었다.


선술집의 2층.

이곳에서는 다크 게이머들이 중대 회의를 하고 있었다.

"중앙 대륙의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보고를 들으면 헤르메스 길드의 전력이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다고 합니다."

"용병과 다크 게이머도 대대적으로 모집을 하고 있는데,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는 조짐이 뚜렷합니다.'

베르사 대륙 전역에 퍼져 있는 다크 게이머들. 그들을 통하여 연합에서는 대륙의 정세를 읽고 있었다.

헤르메스 길드와 클라우드 길드, 사자성, 로암 길드, 블랙소드 용병단.

대륙의 노른자위 땅들을 분할하여 다스리고 있는 거대 명문 길드들이었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톨렌 왕국에도 비밀리에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력 확장이 너무 빠르고 위험하군요."

하벤 왕국, 칼라모르 왕국에 톨렌 왕국까지 먹어 치우고도 그 이상으로 커진다면 헤르메스 길드에 저항한다는 것은 어려워진다.

"헤르메스 길드에 비하면 다른 곳들의 전력은 얼마나 됩니까?"

"추측하기는 어렵지만 헤르메스 길드의 전력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최소한 2배, 어쩌면 3배 이상으로 강할지도 모릅니다. 다른 길드들도 문제지만 헤르메스 길드가 가장 큰 위협입니다."

다크 게이머들은 어느 한 세력이 베르사 대륙을 장악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바라는 건 끊임없는 혼란과 전쟁이 아니었다. 대륙이 자유와 모험 정신으로 인한 활력으로 넘치는 것이다.

"중앙 대륙에서의 승리자가 결정이 나면 그들은 다른 장소로도 세력을 뻗칠 겁니다. 이것 북부로 현재로써는 시간 문제라고밖에는 볼 수 없겠죠.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장소는 갈수록 줄어들게 됩니다."

다크 게이머들은 위기의식을 나누었다. 대륙을 위햐여, 그리고 그들의 밥벌이를 위하여 이대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크 게이머들은 각자 사정이 다 달랐지만 자기 자신의 이득이 우선이었다.

개개인의 능력이 강하더라도 길드를 결성하거나 군대를 창설해서 중앙 대륙의 길드들에 반대한다는 것은 특히나 하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되겠죠. 우리가 왜 모라타에 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건 이곳이 자유롭고 편하고, 모두에게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겠죠."

"중앙 대륙을 누가 장악하건 간에 나중에 이 아르펜 왕국과 싸우는 것은 정해진 일입니다."

"그야 당연하지만 아르펜 왕국으로서는 역부족입니다."

다크 게이머들이 평가하기에 아르펜 왕국은 발전 가능성이 높았다.

초보자들이 상당수 들어오고 있고, 중앙 대륙에서의 이주민도 많다.

발달 속도가 눈에 띌 정도로 멋진 곳이지만, 중앙 대륙의 명문 길드에 맞서서 군사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전력은 아니다.

"국왕의 군대는 빈약합니다. 사실 왕국으로 승격된 것 자체도 얼마 되지 않았을 정도이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토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였습니다."

"바르고 성채도 이제 치안이 잡혀서 광산 개발 등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긴 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군대에 들어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다크 게이머들이 아르펜 왕국군으로 편성된다면 그 전력 향상은 엄청날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개인의 이득을 따지는 그들이 왕국을 위해 남들의 명령을 듣거나 부하들을 데리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대도서관에서 다들 가 보셨을 겁니다."

"물론 가 봤죠. 퀘스트를 위한 정보 조사에 도움이 되는 장소니까요."

"아르펜 왕국으로 온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이유도 대도서관 때문이 아닙니까."

"그곳에는 우리가 할 만한 의뢰가 많이 쌓여 있습니다."

"그렇더군요. 가 보고 놀라기는 했습니다.'

초보자들과 다른 유저들이 주민들과의 이야기나 사냥을 통해 단서를 가져오면 그것은 대도서관에 등록된다.

그렇게 모인 미해결 퀘스트가 난이도가 낮은 것부터 높은 것까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초보자들이 많은 모라타에서는 난이도 낮은 의뢰들은 그나마 해결이 잘되는 편이었지만, 여러 제한이 있거나 난이도 높은 것들은 지지부진인 경우도 많다.

"우리가 정체되어 있는 퀘스트를 적극적으로 합시다. 그것으로 아르펜 왕국에도 도움을 줍시다."

"그건 좋은 생각 같습니다.'

다크 게이머들은 자신들의 이득도 챙기고 아르펜 왕국에도 밑거름이 되는 퀘스트들을 해결하기로 했다.

개척, 몬스터 토벌, 보물 탐색, 발견.

퀘스트가 진행되다 보면 아르펜 왕국에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나서는 것으로 아르펜 왕국에 충분한 힘이 되어 줄 수 있을까요?"

"그건 해 봐야 알겠지요."

"우리가 시작한다면 연합에 있는 다른 다크 게이머들도 움직일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해 온 것처럼 대도서관에서 얻은 퀘스트의 성과를 게시판에 올려놓는 정도로도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가세하도록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으로 아르펜 왕국이 부강해질 수 있다면 다크 게이머들의 역할도 다한 셈이다.

다크 게이머 연합 모라타 지부의 결정은, 연합 내무의 게시판을 통해서 알려졌다.

중앙 대륙과 동부, 남부, 서부에서 활약하는 많은 다크 게이머들의 공감도 이끌어 냈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직접 나서서 어느 한 길드나 국가를 위해 싸우지는 않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아르펜 왕국을 은밀하게 후원하는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하고, 자신들에게도 해가 되는 일은 아니다.

"아르펜 왕국이라... 재미있겠군."

"전쟁의 신 위드는 마법의 대륙 시절부터 알고 있었지. 혼자서도 다 해 먹는 모습을. 지금 모라타가 사냥이나 모험에 괜찮다고 하니 가 봐야 되겠어."

다크 게이머들이 아르펜 왕국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


라살 왕국의 수도 역시 헤르메스 길드에 의해 이틀 만에 함락되고 말았다.

모두가 헤르메스 길드의 전쟁 수행 능력을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ㅡ그들은 당분간 라살 왕국의 내정에 신경을 쓸 것이다.

ㅡ헤르메스 길드가 라살 왕국까지 확실하게 식민지로 확보하여 더욱 강해지기 전에 연합군을 결성하여야 한다.


사람들의 예상을 무색하게 하며, 헤르메스 길드에서는 다음 움직임을 보였다.

라살 왕국 점령 열흘 만에 브리튼 연합 왕국의 국경에 도착!

"대제국 하벤의 위엄을 보이자."

"헤르메스 길드는 무적이다."

도열해 있는 수천 기의 기사들. 그리고 55만이 넘는 병력으로 이루어진 하벤 왕국의 군대!

기사들이 한꺼번에 검을 뽑아 들고 말고삐를 쥐었다.

"진격을 알리는 북을 쳐라!"

거센 북소리와 함께 돌격!

브리튼 연합 왕국은 대륙 최대의 명문 길드 중의 하나인 클라우드가 장악해 가고 있는 곳으로 충돌은 피할 수 없다.

지금까지 대륙에서 벌어진 전쟁 중에서 가장 큰 것이 터지려고 하고 있었다.


TO BE CONTINU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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