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ㅡ 고집불통 메리 아가씨

단밤이 | 2023.12.23 15:12:14 댓글: 2 조회: 274 추천: 1
분류장편소설 https://life.moyiza.kr/fiction/4533224
The Secret Garden

(비밀의 화원)

고집불통 메리 아가씨
메리는 먼발치에서 엄마를 바라보는 걸 좋아했고, 엄마가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에 대해 거의 몰랐기 때문에, 메리가 엄마를 사랑하거나 엄마가 죽은 후 보고 싶어하리라 기대할 사람은 없었다. 실제로 메리는 엄마를 전혀 그리워하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밖에 모르는 아이였기에,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만 생각했다. 메리가 나이가 더 들었다면 천애 고아가 되었다는 사실에 몹시 충격을 받고 괴로워했겠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어렸다. 메리는 태어난 후로 줄곧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앞으로도 그러리라 여겼다. 메리가 궁금해한 것은, 자신이 좋은 사람들에게 가게 되어 그 사람들에 메리에게 공손하게 대해주고 아야와 다른 원주민 하인들이 했듯 마음대로 하게 해줄지 여부뿐이었다.
메리는 집을 떠나 처음 지내게 된 영국인 목사 집에서 계속 지내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곳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영국인 목사의 집은 가난했고, 메리 또래의 아이가 다섯이나 되었다. 그 아이들은 모두 허름한 옷을 입고, 언제나 아웅다웅 다투며 서로의 장난감을 빼앗았다. 메리는 지저분한 목사관이 지긋지긋했고, 목사의 가족에게도 어찌나 못되게 굴었는지 그 집에 온 지 하루 이틀 만에 아이들은 아무도 메리와 놀려고 하지 않았다. 둘째 날 아이들은 메리에게 별명을 지어줬는데, 메리은 별명에 불같이 화를 냈다.
그 별명을 제일 먼저 생각한 사람은 배질이었다. 배질은 고집스럽게 빛나는 푸른 눈에 코가 위로 들린 남자아이로, 메리는 그 아이가 싫었다. 메리는 콜레라가 시작된 그날처럼 나무 아래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정원을 만들려고 흙무더기를 여러 개 쌓았고 오솔길을 만드는 중이었다. 그때 배질이 다가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지켜보던 배질은 그 놀이가 꽤 재미있어 보여 갑자기 훈수를 두었다.
"저기에 돌들을 세워서 바위 정원처럼 만들면 어때?" 배질이 말했다. "저기 한가운데 말이야." 그러더니 몸을 숙이고 그곳을 가리켰다.
"저리 가!" 메리가 소리쳤다. "나는 남자애들이 싫어. 가란 말이야!"
그 말을 듣자마자 배질은 화가 난 것 같더니, 이내 메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늘 여자 형제들을 놀렸다. 배질은 메리 주위를 춤을 추며 돌면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웃으며 노래를 불렀다.
고집불통 메리 아가씨,
정원은 잘 자라나요?
하얀 방울꽃들과 조가비들과
금잔화들이 쪼르르 늘어서 있지.
배질은 다른 형제들이 듣고 웃음을 터트릴 때까지 노래를 불렀다. 메리가 화를 내면 낼수록 아이들은 더 열심히 '고집불통 메리 아가씨' 를 불렀다. 그 후로는, 메리가 그 집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들끼리 메리 이야기를 하거나 심지어 메리에게 말을 걸 때도 '고집불통 메리 아가씨'라고 불렀다.
"너를 집으로 보낼 거래." 배질이 메리에게 말했다. "이번 주말에. 그래서 우리는 속이 후련해."
"나도 마찬가지야." 미리가 대꾸했다. "집이 어딘데?"
"얘는 집이 어딘지도 모른대!" 배질이 일곱 살짜리가 지을 만한 경멸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디긴 어디야, 영국이지! 우리 할머니도 영국에 사셔. 작년에 메이벨 누나가 그곳으로 갔지. 너는 네 할머니 집으로 가지 않아. 너는 할머니가 없으니까. 네 고모부 집으로 가게 될 거야. 이름이 아치볼드 크레이븐이라더라."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메리가 딱 잘라말했다.
"네가 모른다는 거 알아." 배질이 대답했다. "네가 뭘 알겠니. 여자애들은 원래 아무것도 몰라. 아빠와 엄마가 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걸 들었어. 그 사람은 시골에 있는 무지무지 크고 오래된, 외딴집에서 살아. 그리고 아무도 그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지. 그 사람은 성질이 고약해서 아무도 곁에 오게 하지 않아. 곁에 오게 해줘도 아무도 그 사람에게 가지 않을 거야. 네 고모부는 곱사등이인 데다가 끔찍한 사람이니까."
"네 말 안 믿어." 메리가 말했다. 그러고는 홱 돌아서서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런 이야기는 더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 메리는 배질의 이야기를 한참 동안 생각했다. 그날 밤 프로포드 부인이 며칠 후 영국으로 가는 배를 타고 메리의 고모부 아치볼드 크레이븐 씨가 사는 미슬스웨이트 장원으로 가게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메리가 돌처럼 굳은 표정으로 고집스럽게 관심을 보이지 않자, 목사 부부는 메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메리를 따뜻하게 대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크로포드 부인이 입을 맞추려고 할 때마다 메리는 얼굴을 홱 돌렸고, 크로포드 씨가 어깨를 토닥여줄 때면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메리는 정말 못생긴 아이에요." 후에 크로포드 부인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그 애 어머니는 그렇게 예쁘장했는데. 행동거지도 그렇게 참할 수가 없었죠. 난 메리만큼 정이 안 가는 아이는 본 적이 없어요. 우리 애들이 '고집불통 메리 아가씨'라고 부르더라고요. 애들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누구라도 그럴 만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 애 어머니가 그 예쁘장한 얼굴과 예의 바른 태도로 아이 방을 더 자주 찾았다면, 메리도 착한 행동거지를 배웠을 거예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지요. 아름답던 그 사람은 죽고 없는데, 그 부인에게 딸이 있다는 걸 알았던 사람조차 거의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요."
"그 애 어머니는 딸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거예요." 크로포드 부인이 한숨을 쉬었다. "메리의 아야가 죽고 나서는 아무도 그 어린것을 떠올리지도 않았어요. 텅 빈 저택에 아이만 혼자 두고 하인들이 몽땅 도망쳤다는 걸 생각해보세요. 맥그루 대령이 방문을 열었다가 그 애가 방 한가운데 덩그리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기절초풍을 했다잖아요."
메리는 어느 장교 부인의 보살핌을 받으며 영국으로 머나먼 항해에 올랐다. 그 장교 부인은 기숙학교에 자기 아이들을 맡기러 가는 길어었다. 그 부인은 자기 어린 딸과 아딜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어서, 런던에 도착한 후 아치볼드 크레이븐 씨가 메리를 맞으러 보낸 여자에게 메리를 데려다주고 나자 기뻤다. 메리를 데리러 온 여자는 미슬스췌이트 장원의 가정부로, 메들록 부인이라고 했다. 다부진 체격에 볼이 발그레하고 까만 눈이 날카로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진한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가장자리에 흑요석 술이 달린 까만 비단 망토를 둘렀으며, 검은 보닛을 쓰고 있었다. 그 보닛에는 보라색 벨벳으로 만든 꽃 장식들이 튀어나올 듯 달렸는데,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흔들렸다. 메리는 메들록 부인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메리가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어차피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메들록 부인도 메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세상에! 저렇게 볼품없이 생긴 아이일 줄이야!" 메들록 부인이 말했다. "듣자 하니 애 어머니가 그렇게 미인이었다던데요. 어머니 미모를 별로 물려받지 못했나 봐요, 부인. 그렇죠?"
"자라면서 예뻐질지도 몰라요." 장교의 부인이 사람 좋게 대답했다. "지금은 얼굴빛이 누렇지만, 더 밝아지고 표정이 좋아지면, 이목구비는 꽤 예쁘장하잖아요. 아이들은 자라면서 얼굴이 많이 바뀌죠."
"저 애는 아주 많이 바뀌어야 할 거예요." 메들록 부인이 말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미슬스웨이트는 아이들이 잘 자랄 만한 환경이 전혀 아니에요!"
두 사람은 자신들의 대화를 메리가 듣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호텔에 도착한 후 메리는 그들과 조금 떨어져 창가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합승 마차와 이륜마차, 행인들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잘 들려서, 메리는 어느새 고모부와 고모부의 저택이 몹시 궁금해졌다. 어떤 곳일까? 고모부는 어떤 사람일까? 곱사등이는 뭐지? 인도에는 그런 사람이 없는지, 메리는 곱사등이를 본 적이 없었다.
아야도 없이 다른 사람들 집에 얹혀살게 된 이후, 메리는 처음으로 외로움을 타기 시작했고 전에는 하지 않던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메리는 왜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조차 자신은 누구의 가족도 아닌 것 같았는지 의아했다. 다른 아이들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이들처럼 보였지만, 메리는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어린 딸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리에게는 하인들이 있었고, 음식과 옷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메리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았다. 메리는 자기 성격이 고약하기 때문에 그럤다는 사실을 몰랐다. 메리는 자신이 그런 아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깨닫지 못했다. 종종 메리는 다른 사람들이 고약하다고 생각했지만, 고약한 쪽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메리는 불그레하고 평범한 얼굴에 얌전하지만 예쁜 보닛을 쓴 메들록 부인이 지금까지 본 가장 싫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이튿날 메들록 부인과 함꼐 요크셔로 출발할 때 메리는 기차역으로 들어가 열차로 가는 동안 고개를 곧게 들고 최대한 메들록 부인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걸었다. 부인의 아이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그 사람의 어린 딸로 여길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 메리는 화가 치밀었으리라.
하지만 메들록 부인은 메리와 메리의 속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부인은 '어린 사람들의 허튼짓은 절대 참지 않는' 부류의 여자였다. 적어도 남들이 물어보면,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메들록 부인은 언니인 마리아의 딸이 곧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 런던에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미슬스웨이트 장원의 가정부는 편하고 월급도 넉넉히 받는 자리였다. 이 일자리를 놓치지 않으려면 아치볼드 크레이븐 씨가 시키는 일을 냉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반문조차 하지 않았다.
"레녹스 대령 부부가 콜레라로 죽었다는군." 크레이븐씨가 냉담한 말투로 짧게 말했다. "레녹스 대령은 내 아내의 형제였고, 나는 그 부부 딸의 후견인이네. 그 아이들 이리로 데리고 와야 해. 런던으로 가서 아이를 데리고 오게."
그래서 메들록 부인은 작은 여행 가방에 짐을 싸서 런던으로 길을 떠났다.
객차의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메리는 뚱하고 짜증이 난 듯 보였다. 읽을 것도 볼 것도 없어서 검은 장갑을 낀 여윈 손은 다리 위에 포개놓은 채였다.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으니 누르께한 얼굴이 더 누레 보였다. 윤기 없는 연한 색 머리카락은 검은색 크레이프 천으로 만든 모자 아래로 힘없이 흘러내렸다.
'저렇게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는 내 평생 처음 봤네.' 메들록 부인이 생각했다. 꼼짝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아이도 처음 보았다. 마침내 메리를 지켜보는 것도 지겨워지자, 메들록 부인은 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가는 곳에 대해 뭐라도 아가씨에게 이야기를 해드리는 편이 좋겠군요." 메들록 부인이 말했다. "고모부에 대해서 아는 게 있나요?"
"없어." 메리가 대답했다,
"아버님과 어머님이 그분에 대해서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고요?"
"응." 메리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부모님이 특별히 어떤 일에 대해서든 메리에게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다는 사실이 기억났기 때문에, 메리는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그들은 특별한 일은 고사하고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다.
"흠." 메들록 부인은 메리의 아무 반응이 없는 기묘한 표정을 빤히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그래서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아가씨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미리 해드려야겠군요.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말이죠. 지금 아가씨가 가는 곳은 아주 묘한 곳이랍니다."
메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메들록 부인은 메리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자 당혹스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숨을 한 번 쉰 후 이야기를 계속했다.
"저택이 우울해 보일 정도로 웅장하기 때문은 아니에요. 그래도 크레이븐 씨는 나름대로 저택을 자랑스러워하시죠. 물론 꽤나 우울한 분위기지만요. 저택은 무려 600년이나 되었고, 황무지 가장자리에 서 있어요. 저택에는ㄴ 방에 백 개 가까이 된답니다. 물론 대부분 문을 꼭 닫고 자물쇠를 채워뒀지요. 저택에는 그림이며 훌륭한 고가구들이 있어요. 몇백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물건들도 있답니다. 저택 주위에는 넓은 영지가 펼쳐지죠. 그리고 몇 개나 되는 정원과 땅에 닿을 정도로 가지가 늘어진 나무들도 있어요. 어떤 나무들은 그래요." 메들록 부인은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숨을 돌렸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고는 불쑥 말을 끝냈다.
메리는 자기도 모르는 새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인도와 완전히 딴판이었고, 낯선 것이 아이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메리는 호기심이 생긴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그 점이 무례하고 기분 나쁜 메리의 태도 중 하나였다. 메리는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음." 메들록 부인이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생각해요?"
"아무 생각도 안 해." 메리가 대답했다. "나는 그런 곳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그 대답에 메들록 부인이 잠시 웃더니 말했다.
"어휴! 아가씨는 꼭 할머니 같아요. 관심이 생기지 않아요?"
"중요하지 않잖아." 메리가 말했다. " 내가 관심이 있든 말든."
"그렇다면 아가씨는 그곳에 잘 맞겠어요." 메들록 부인이 말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죠. 아가씨를 미슬스웨이트장원에서 데리고 있는 편이 가장 간단한 해결책이라고 여기신 게 아니라면, 주인님이 왜 그런 결정을 내리셨는지 나는 몰라요. 그 분은 아가씨에 대해서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으실거예요. 그건 불을 보듯 확실해요. 그분은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으시죠."
바로 그때 메들록 부인이 문득 뭔가가 기억난 듯 말을 멈췄다.
"그분은 등이 굽었답니다." 메들록 부인이 말했다. "그래서 성격이 비뚤어졌어요. 젊었을 때도 늘 뚱한 성격이었어요. 결혼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 많은 재신과 으리으리한 저택이 아무 쓸모도 없었지요."
관심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도, 메리의 시선이 메들록 부인게게 향했다. 머리는 등이 곱은 사람이 결혼을 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약간 놀랐다. 메들록 부인은 메리의 반응을 보았다. 그러고는 수다를 좋아했기 때문에 더 신이 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쨌든 이것도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마님은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분이셨어요. 마님이 어느 풀 한 포기를 갖고 싶다고 했다면, 주인님은 그걸 구하려고 전 세계를 돌아다녔을 거예요. 마님이 주인님과 결혼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하지만 결혼을 했죠. 그걸 보고 사람들은 주인님의 재산을 노렸다고 수군댔어요. 하지만 아니었어요. 그런 꿍꿍이가 아니었어요." 메들록 부인이 힘주어 말했다. "마님이 돌아가시자......."
메리는 자신도 모르게 펄쩍 뛰었다.
"뭐! 죽었다고?" 메리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문득 예전에 읽은 프랑스 동화 『고수머리 리케』(샤를 페로의 동화로, 못생겼지만 지혜로운 고수머리 리케가 지혜를 원하는 아름다운 공주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옮긴이)가 떠올랐다. 등이 굽은 불쌍한 사람과 아름다운 공주가 나오는 동화였다. 메리는 문득 고모부가 안됐다고 생각했다,
"네, 마님은 돌아가셨어요." 메들록 부인이 대답했다. "그러자 주인님은 전보다 더욱 괴팍한 사람이 되었죠. 이제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어요.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으시죠. 대개는 여행 중이시라 댁에는 계시지도 않아요. 미슬스웨이트에 계실 때는 항상 서쪽 건물에 틀어박혀 피처 씨 외에는 아무도 만나주지 않아요. 피처 씨는 나이 많은 하인인데, 주인님의 어린 시절부터 돌봐오셔서 주인님 성격을 잘 알죠."
마치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지만 메리의 기분을 북돋아주지는 않았다. 방이 백 개나 있는데 대부분 꼭 닫아 자물쇠를 채워놓았다니, 듣기만 해도 지겨웠다. 황무지 가장자리에 서 있다는데, 황무지는 무엇일까. 게다가 자신만의 세상에 틀어박힌 등 굽은 남자라니! 메리는 입을 꾹 다문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침 이 상황에 잘 어울리게 회색 비가 비스듬히 유리창을 때리며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부인이 살아 있다면, 메리의 엄마 같은 사람이 살아 있다면, 메리의 엄마 같은 사람이 되어 '레이스로 가득한' 드레스를 입고 온갖 파티에 드나들며 집안 분위기를 즐겁게 했을 텐데. 하지만 부인은 이제 그곳에 없었다.
"주인님을 만나 뵙는 건 꿈도 꾸지 말아요. 십중팔구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요." 메들록 부인이 말했다. "그리고 아가씨에게 말을 걸 사람이 있을 거라고도 기대하지 말아요. 저택 근처에서 놀아야 하고 스스로를 돌봐야 합니다. 어느 방엔 들어가도 되고 어느 방엔 들어가면 안 되는지 알려줄 거예요. 정원은 괜찮아요. 하지만 저택 안에서는 아무 데나 어슬렁거리며 들쑤시고 다녀서는 안 돼요. 크레이븐 씨가 용납하지 않으실 거예요."
"들쑤시고 다닐 생각도 들지 않을 거야." 어린 메리가 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메리에게 불쑥 고모부를 동정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처럼 불쑥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ㅡㄱ리고 고모부에게 일어날 만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이 들 만큼 고모부가 싫어졌다.
메리는 빗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유리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만 같은 회색빛 폭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회색 빗줄기를 오랫동안 빤히 보고 있자니 눈앞의 어둠이 점점 무거워졌고, 마침내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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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52.♡.103
뉘썬2뉘썬2 (♡.169.♡.51) - 2023/12/31 04:09:23

태여나자마자 친부모한테 버림받고 하인들손ㅇㅔ 자라다가 영국인 목사네집에서 살다가
또다시 고모부네 집으로 보내지는 메리.어린애가 자라는데 돈과 물질이 전부가 아니란
걸 느꼇어요.관심과사랑.교육 등 주위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대요.그리고 부모가 건재
하셔야만 자식을 지켜줄수 잇다는것두요.

단밤이 (♡.252.♡.103) - 2023/12/31 06:53:00

어릴때 부모가 자식과 애착관계를 잘 형성해야 아이가 바르게 크고 사랑을 받아본 아이여야 커서 감정의 결핍도 없고 사랑을 잘 베풀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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