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20

내고향제일 | 2021.06.19 10:09:50 댓글: 1 조회: 1132 추천: 3
분류수필·산문 https://life.moyiza.kr/mywriting/4269159

지나온 사십여년을 돌아켜보면 나한테 잊혀지지 않는 화면이 몇개 있다. 내가 값비싼 물건을 산것도 아니요 내가 맛있는 음식을 먹은 기억도 아니다. 나의 모든 세포에 침투되여 죽어도 잊지 못하게 아름답게 남아있는 기억에는 그자리에 모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이들이 없었다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을 보아도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진귀한 물건을 내눈앞에 가져온다해도 내 머리속에 이렇게 오래오래 남아있지 않을것이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후 난 고향에서 5일을 보냈다. 별로 한 일도 없이 그저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외할머니와 같이 빨래하던 개울에 가서 빨래도 하고 외할머니가 좋아하는 냉면집에가서 냉면도 한사발 먹고 외할머니가 심은 터전의 가지와 고추도 뜯어 볶아먹고, 외할머니가 매일 딱던 온돌도 딱고, 외할머니와 같이 타던 그네도 혼자서 쓸쓸히 타고…… 외할머니가 머물던 곳에 나의 발자국도 있었고 외할머니의 손길이 닿은곳에 나의 그림자도 있었고 외할머니의 눈길이 닿은곳을 나도 바라보고있다이런 방식으로 외할머니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였다.

오래전부터 나한테 꿈이 하나있었다. 동북의 긴긴 추운겨울을 지나 봄에 앵두나무가 소생할 무렵에 고향에가서 앵두나무에 꽃봉오리가 지고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고 무르익어가는 과정을 보고싶었다. 누구의 엄마로도 누구의 마누라도 아니고 어느회사의 직원도 아닌 다만 자신으로써 내가 태여나서 자란 고향에서 한번만 시기를 시간에 쫓기우지않고 한가하게 즐기고싶었다. 그러나 사회를 나온지 20여년이 지나도 전과정을 보기는커녕 앵두철에 한번도 고향에 간적이없다. 물론 몇달씩 고향에서 여유있게 놀아본적도 없다. 그래서 몇년전 외할머니와 다짐했다. 아들이 대학에가면 앵두꽃필무렵에 고향에가서 수박이 막물날때까지 고향에서 외할머니와 오손도손 들나물캐러도 다니고 터밭도 가꾸며 내꿈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이룰 꿈이 있으면 래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실현하라고 한다. 누구나 아는 도리이다. 할머니가 갑자기 세상에 가는 바람에 나의 꿈도 물거품이 되여버렸다. 쉽게 실현할수있는 꿈이라해도 타이밍이 지나면 이룰수없다. 지금 나한테 고향에서 반년 한가히 놀수있는 시간의 여유가 있다해도 나는 이미 동력과 의미를 잃은것같다. 이제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우리 부모님이나 외할머니나 외숙모 외삼촌들한테 미안해한것같다. 모두들 나를 그토록 아끼고 사랑했지만 내가 너무 멀리 시집가서 그이들이 필요할때 옆에 있어주지 못해줘서 마음한구석으로는 항상 유감을 느낀것같다. 그들이 그토록 나를 사랑해주었는데 나는 아무런 보답도 못해준것 알고있기에 항상 미안해한것같다. 그래서 어느땐가는 잠시나마 나의 모든것을 그들만을 위해 집중하고싶었고 그들과 같이 소소한 사랑을 즐기며 조금이라도 그 소중한 사랑에 보답하고 싶어한것같다. 그래야 좀 안심이 될것같았다. 앵두꽃보다도 그것을 이유로 고향에 가서 극친과 함께 한동안 있고싶은것이 나의 진심이였다. 고향을 떠난 이십여년 도데체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돌이켜보려해도 기억이나지 않는다. 나름대로 노력하며 열심히 산것같지만 많은 시간을 또 생각없이 산것같기도하다. 내나이 40대후반이 되여도 이런 작은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뭐 하며 살았을가. 이건 분명 내가 원한 삶이 아니였다.

외할머니의 생전에 자식들은 부모님을 옆에서 돌보지 못하는 자책감에 여름이면 여름옷 겨울이면 겨울옷 많이 보내왔다. 외할머니는 새것대로 옷장에 쌓아놓았다. 항상 집만 지키는 외할머니는 이런 좋은 옷을 입을 기회도 없었다. 외할머니한테는 편한 옷 두세견지로 충분했다. 비싼 옷도 새것대로 다 태웠다. 사람이 살때는 앞날이 길것같아 아껴쓰고 아껴입고 하지만 이렇게 한사람의 마지막날은 언제올지 모른다. 좋은 옷도 자기가 입어야 자기것이요 손에 쥔 돈도 자기가 써야 자기돈이다.

외할머니가 몇십년 지켜온 고향집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태울것은 태우고 버릴것은 버리고 남은것이란 외할머니의 은은한 냄새와 우리의 담담한 아픔뿐이다.

생이 있으면 사가 있는법이다. (生)의 기쁨이 있으면 사(死)의 슬픔도 있기 마련이다. 이론적으로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서로의 인생 전부를 동반하지 못한다. 외할머니도 그만큼 년세가 있으니 돌아가셔도 사실 놀랄것없다. 누구나 다 가야할 길이 아닌가. 그렇지 당연하지 놀랄것 없지, 할머니는 87세에 돌아가셨으니 그만하면 장수하셨지….. 나는 이렇게 자주 나를 설득시켰다. 당연한것 가지고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 너무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밥먹을 때는 밥도 제대로 먹고 잠을 잘때는 잠도 제대로 자고 고향사람들을 만나면 웃으며 이야기도 나누고 나의 일상이 정상으로 되게 노력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특이하다. 이 세상에 기껏해야 일이년에 한번정도 만나는 사람이 사라졌는데 지금 나의 전 세계가 색채를 잃은것같다. 입맛도 없고 온몸이 나른하고 아무것에도 흥취를 느낄수없다. 정신을 차리자고 내가 즐겨듣던 흥겨운 노래도 들어보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도 마셔보며 기분전환을 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소용이없다. 외할머니가 사라졌을뿐 모든것이 그대로인데 모든것이 다른것같다. 언제나 다정하던 고향의 일초일목에도 예전의 애착감을 느끼지 못하겠다. 줄기차게 흐르는 목단강물소리도 짜증이 날 정도로 귀찮다. 나의 예민한 신경을 건드리지 말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피가 흐른다. 어떤 사람은 자주 만나지 못해도 항상 우리의 마음에 자리잡고있고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는것만으로도 우리한테 커다란 힘이된다.

외할머니는 천당에 가면서 살며시 나의 가슴에 가시()를 심었다. 그 가시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간을 가리지 않고 불쑥불쑥 나타나서 나를 찌른다. 내가 찌르지 말라고 기도해도 부탁해도 소용이없다. 제발 그만하라고 애걸해도 쓸모가없다. 어딘가 기척없이 숨어있다가 깜쪽같이 나를 찔러 한참은 눈물을 흘려야 아픈마음을 진정시킬수있다. 지독하게 나한테 매달려 떼여버리려해도 떼여버릴수없다. ---계속

추천 (3) 선물 (0명)
IP: ♡.137.♡.168
Foxtail (♡.253.♡.38) - 2021/06/19 12:31:03

왜 우리는 늘 지난날을 후회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에야 뒤늦게 반성하고 뉘우치고 추억하면서 긴긴 세월 스스로를 원망하면서 사는 걸가요? 자신한테 너무 잔인한것 같습니다.'내고향제일님'의 글을 읽으면서 내 자신에게도 묻는 말이었습니다. 핑게처럼 들리겠지만 그건 우리가 착하고 정이 많아서가 아니겠습니까? 다들 그렇게 사는것 같네요. 너무 아파도 슬퍼도 말아요.이처럼 자신을 그리워하는 외손녀를 보니 외할머니 생전에 얼마나 많은 사랑과 따뜻함을 베풀었는지 가늠이 갑니다. 분명 더 좋은데로 가셨을겁니다. 우리의 부모님과 형제자매 친척들, 사랑하는 모든이들에게 최선을 다합시다, 나중에 조금이나마 덜 후회하고 덜 가슴 아플수 있도록. 힘내세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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