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탐내도 될까? (18회)

죽으나사나 | 2024.02.28 08:46:40 댓글: 0 조회: 239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50315
너를 탐내도 될까? (18회) 따뜻한 날씨엔 비키니.
​열리지 않는 작은 창으로 햇살이 스며들어 날이 밝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딱 기본 크기의 침대 하나로 끝인 이 객실 방. 

첫날 들어갔던 그 스위트룸과는 차원이 다르게 한눈에  다 들어오는 사이즈의 객실이었다. 

뭐, 바깥 날씨를 알 수 있는 창문이라도 있는 게 어디야. 

하정은 아침 시간이 훌쩍 지난 이 시간에도 객실 안에 머물렀다. 

크루즈 안에서의 2박은 하정이 심경에 여러 변화들을 주었다. 권기혁 대표와의 생각지 않은 끈적 거렸던 스킨십에 이틀을 애간장을 태웠다. 

결국 그의 ’실수‘라는 말 하나로 없었던 일로 만들어버렸지만 생각해 보면 그거 말고는 할 해명도 없는 건 맞았다. 

그렇다고 ‘하정 씨를 보는 순간 마음에 들었습니다.’ 라고 하는 건 더 웃기잖아. 

다만 내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랑 어느 정도로 닮았길래 내가 하정이란 생각을 안 한 거지. 

평소와 다른 화장을 해서 그런가, 

뭐, 물어볼 수도 없으니 잊어야 하는 게 맞겠지. 

침대에서 뒹굴던 하정이는 아직도 그 말캉한 느낌 가득한 자기 입술에 손을 갖다 대었다. 

처음이었는데….

키스란 이렇게 좋은 거였구나. 

한 번 더 느껴보고 싶어.

또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하정은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났다. 

“미쳤어. 윤하정!”

딩동, 객실 초인종 벨이 울렸다. 

누구지 하는 생각과 함께 문을 열었다. 

“윤 팀장님! 수영복 챙겨왔어요? 저녁에야 육지에 도착하는데 그전에 우리 좀 즐기죠?”

벌써 수영장으로 갈 준비를 끝낸 장 실장이 방긋 웃으며 하정이 앞에 서있었다. 

“윤 팀장이 톡을 안 읽길래.”

폰은 일부러 안 보고 있었던 건 맞았다. 

“아, 먼저 가 계세요. 준비하고 갈게요.”

그래. 막날인데 즐기자. 

다시 말하지만 일하러 크루즈 선에 올라온 건 맞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챙길 건 다 챙겼다. 이때 아니면 이 남은 생에 또 크루즈 선 여행을 할 리가 없었으니. 

혹시나 해서 수영복 두 개를 챙겨왔다. 하나는 몸 라인이 확 드러나는 섹시 비키니. 또 하나는 햇빛 차단에는 탁월하지만 노출 자체가 없는 래쉬가드. 

요 이틀 보니 다들 수영장에서 아예 헐거 벗고 즐기던데. 

비키니로 입어 봐?

아냐 아냐. 그러다 서울이와 마주치면 어떡해? 마주치는 게 아니라 이미 저 일행들과 같이 있을 수도 있어. 

[내가 좀 기억이 안 나서 그러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줄 수 있어요? 박서울 씨?]

어젯밤 선상 위에서 서울이와 했던 말들이 다시 떠올랐다. 

[죄송해요. 말할 타이밍을 찾고 있었는데…]

꽤 난처한 표정을 지은 서울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설마 했는데 진짜 그날 밤에 같이 있었던 게 박서울이란 말이야?

이건 뭐…. 권 대표와 키스를 하고 그 옆에서 잠든 것보다 더 쇼크인데?

하정이 긴 한숨과 함께 자기 머리카락을 웅켜잡았다. 

꿈이었으면 좋았을 것이었다. 

그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혼자 집으로 가는 길이었단다. 마포대교 위는 그냥 집 가는 방향이었던 거고. 

그때 마침 술병을 들고 난간에 붙어있는 나를 보고 설마 하는 마음에 좀 지켜보았더란다. 발을 올리는 순간, 바로 제지를 했고 그 덕분에 와인 샤워를 해서 어쩔 수없이 호텔로 가야 했었다지. 

[나까지 옷 갈아입을 필요는 없었잖아!]

빨개진 얼굴과 함께 꽥 소리를 질렀다. 

[제가 갈아입힌 게 아니에요. 팀장님이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옷에다 토하셨어요. 어쩔 수없이 옷은 갈아입어야 했고 다른 여자분한테 부탁을 했어요. 돈을 드리고요.]

꽤 깊었던 서울이 그 눈빛은 거짓말을 하는 거 같지는 않았다. 

그래. 윤하정 나는 누굴 뭐라 할 처지가 못 되었다. 술을 취해 상대방에게 민폐를 끼친 건 서울이가 아니라 나였다. 

죽으려다가 죽지도 못하고 여태 남자와는 손끝에 그리 닿은 적도 없었던 내가 이 짧은 시간 내에 한 사람도 아니고 두 명과 잠을 자다니…

아무리 우려했던 그런 일은 없다고 한들, 
천지개벽할 일이었다. 

정연이가 들었으면 얼마나 난리를 칠까. 절대 말하지 말아야지. 

굳게 다짐을 하면서 하정은 옅은 워터프루프 화장을 하고 온몸을 칭칭 감춘 검은색 래쉬가드를 입고 객실 방을 나섰다. 

“팀장님도 12층 가시는 거죠?”

역시나,

복도로 나가자마자 하얀 티와 수영복 바지 차림의 서울이와 마주쳤다. 깜짝 놀란 하정이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네.”

“근데…”

놀라는 하정이가 웃긴지 픽 하고 웃던 그의 시선이 어느새 그녀의 허리 쪽에 머물러 있다. 

“뭐, 뭐요!”

괜히 놀라서 서울을 피해 뒤로 슬금슬금 빠지는 하정이. 

“아, 그게… 팀장님 옆구리 뒤쪽에… 빵꾸가 났는데요.”

“에?”

하… 하하하.

서울이 말대로 래쉬가드 상의에 허리가 다 보일 정도로 큰 구멍이 나 있었다. 아까 입을 때는 왜 발견을 못 했지. 

얼굴을 붉히며 객실로 다시 뛰어 들어온 하정이는 그냥 물놀이는 포기할까 생각을 하다가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이 팀장의 문자를 보고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그 비키니에 시선이 멈췄다. 

***

“윤 팀장님!  왜 이제야 와요. 우리 저 슬라이드 타요!”

막날이라 그런가, 선상 위 놀이 기구까지 겸한 수영장에는 여느 때보다 많은 인파들이 모여 있어 놀이 기구를 타겠다고 줄 서있는 일행들을 겨우 찾았다. 

“윤 팀장님, 생각보다 훨씬 더 몸매가 좋으세요~“

하정을 보자마자 부러운 눈길을 장착한 장 실장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야할 정도는 아니지만 배와 등을 다 드러낸 검은색 비키니를 입은 모습은 상의 위로 가디건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몸매가 훤히 드러나있었다. 하의는 스커트로 엉덩이만 가린 짧은 기장이라 워낙에도 하얗고 긴 다리를 더 부각시켜줬다. 

“래쉬가드도 챙겨왔는데… 어디에 뜯겼는지 구멍이 나서요.”

갖고는 왔지만 이걸 꼭 입을 생각은 없었다를 굳이 설명해 줬다. 

뭐 이 팀장이나 장 실장도 래쉬가드를 입은 건 아니지만 괜히 혼자 민망했다. 

“저는 저쪽에 가 있을 게요.”

하정은 같이 타자는 그 둘과 떨어져 구석진 썬 베드를 찾아 누웠다. 

편안하게 누워서 올려다본 하늘은 너무나도 맑다. 햇빛은 적당하게 내리쬐고 있었고 물놀이를 하기 딱 좋게 더웠다. 

그날은 의사의 말을 들은 직후 바로 술을 마신 상태라 충동적으로 죽을 생각을 한 건 맞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죽었다면 후회가 많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날 자신을 구해준 서울이한테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 거 같았다. 

왜 죽으려고 했냐는 말에 술을 많이 마셔서 기억이 안 난다고만 했다. 그 말을 믿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은 더 묻지 않았다. 

근데… 

어느새 상의를 훌러덩 벗어던지고  다른 남자 직원들과 물속에서 즐기고 있는 서울을 보고 있으려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낯설지 않은 저 얼굴. 회사서 본 기억이 없는 거 같아도 무의식이라는 건 있나 보다. 자꾸 전부터 아는 사람인 거 같은 착각이 드는 건, 같은 회사라 그렇겠지. 

에라, 모르겠다. 

햇살은 따뜻하고 눈을 감으니 세상 이렇게 평화롭고 마음이 차분해질 줄이야.

“기혁 오빠!”

기혁? 들뜬 목소리의 여자가 하정이가 들리는 근처에서 그 이름을 불렀다. 

“오빠! 우리 아빠 좀 어떻게 해봐요! 종일 내 뒤를 따라다닌 단 말이에요!”

하정은 어느새 상체를 벌떡 일으켜 앙탈 부리는 듯한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숙부님이 너 걱정되어서 그러잖아.“

징징대는 비키니 차림의 여자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저 사람은 권기혁이 맞다. 물놀이를 하러 온 건 아닌지 기혁이는 검정 수트 차림이었다. 

멋있다…. 

온통 비키니 차림으로 가득한 이 알록달록한 공간에서 검은색 하나로  온몸을 감싼 넘사벽 슈트 빨의 그는 단연 돋보였다. 

저 회사는 복지가 참으로 좋구나. 대표를 마주칠 때마다 기분이 얼마나 좋겠어. 오늘의 햇살만큼 저 눈부신 미소는 황홀하기까지 하다. 

리더스 대표가 저 정도의 얼굴이었다면  하정은 절대 마케팅 부서로 안 갔을 거다. 대표실 비서를 지원하지. 어떻게든 합격하려고 노력을 할 테고. 

“아, 짜증 나~ 내가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저러시니. 괜히 여기로 온다고 했어.”

투덜대며 여자는 금세 자리를 떠버렸다. 가는 그녀를 보며 못 말린다는 듯 머리를 가로저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기혁이. 

“앗.”

그런 기혁이한테서 눈길을 못 돌리고 시선이 고정된 하정한테 차가운 물방울이 얼굴에 마구 튕겨졌다. 

얼굴을 슥 닦고 올려다보니 해맑게 웃고 있는 서울이었다. 

“예쁘게 차려입고 그냥 앉아 있기만 할 거예요? 물속에 들어가죠?“

”어? 아니, 난…“

무작정 팔을 잡고 끌어가는 서울이에 의해 자리에서 마지못해 일어나며  시선이 다시 기혁이한테로 향했다. 

아…

아까 하정의 외마디 소리 때문인지 고개를 돌린 기혁과 서울한테 끌려가는 하정은 눈이 서로 마주쳤다. 

무표정인 그가 자신을 쳐다보는 게 맞는 건지  확인하려는데 서울이 때문에 시야가 가려졌고 금세 그의 짓궂은 장난으로 같이 물속에 빠져버렸다. 

“아앗! 야!!”

살결에 금방 닿은 물은 살짝 차가웠다. 얼굴까지 물에 젖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 손으로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았고 바로 기혁이가 서 있던 그 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이미 가버렸는지 그의 모습은 안 보였다. 

김이 빠진 하정이가 가슴까지 오는 물을 첨벙청벙 손으로 내리치고 있는데 서울이가 옆으로 다가와 하정이 얼굴을 살폈다. 

“아까처럼 저한테 반말을 해줘요.”

“네?”

가깝게 다가온 서울의 얼굴을 마주 보다가 그대로 아래로 툭 떨어졌다가 이내 당황해하며 시선을 거둔 하정이가 모르쇠로 답했다. 

“금방 ‘야’ 라고 했잖아요.”

“아니, 그건 갑자기 물속으로 빠지는 바람에,”

해명을 하느라 다시 고개를 돌리자 뚫어져라 자신을 바라보는 서울이 때문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냥 말 놔주세요. 나이도 제가 어리고 같은 부서는 아니지만 팀장님이시잖아요.”

하정이 얼굴에 김이라도 붙은 듯 여전히 빤히 쳐다보는 서울이. 

“어, 어. 그래. 그러면.”

이내 살살 녹이는 미소로 만족감을 드러낸 서울이가 그녀한테 두 손을 내밀었다. 이유를 모르는 하정이 눈썹이 올라가자 서울이가 놀리듯이 웃으며 한마디 했다. 

“수영할 줄 모르는 거 같아서요. 여기보다 저쪽에 스파가 있는데 좋아 보여요.“

”아…“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뻗어 나온 서울이의 두 손을 외면하기 그래서 잡았을 뿐이었고 그의 말대로 수영을 못하는 자신을 도와 안전바까지 갈 줄 알았지만 서울은 생각 밖의 행동을 했다. 

입꼬리가 쓱 올라가더니 가깝게 다가온 그가 하정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잠깐 실례할게요.”

“응?”

그러더니 하정의 허리에 커다란 두 손이 슥 들어오더니 그녀를 번쩍 들어 올린다. 갑작스러운 서울의 행동에 갈피를 못 잡았던 하정은 힘이 잔뜩 들어간 그의 양 팔을 꽉 잡았고  어찌나 두껍고 딱딱한지 하정이 손아귀에 잡히지도 않았다. 서울이는 그녀를 수영장 위 바닥으로 살포시 내려놓고 자신도 바닥을 짚고 그 높은 위를 거뜬하게 뛰어 올라와 하정이 옆에 앉았다. 

어안이 벙벙해진 하정이를 보며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빙글 웃고 있는 서울이. 

“사다리까지 가기 귀찮아서요.”

얘를 봐라?

한쪽 눈을 찔 끈 감더니…

윙크까지 발사하며 멋있는 척을 하는 저 녀석,

박서울.

뭔지는 몰라도 여자를 다루는 수단이 장난이 아닌 남자였다. 이러면 이럴수록 하정은 더욱더 경계를 할 거란 걸 모른 채.
추천 (2) 선물 (0명)
IP: ♡.214.♡.18
22,943 개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보라
2006-08-09
33
63051
죽으나사나
2024-03-31
1
261
죽으나사나
2024-03-28
1
263
죽으나사나
2024-03-26
1
358
죽으나사나
2024-03-24
1
421
죽으나사나
2024-03-20
1
437
죽으나사나
2024-03-19
1
271
죽으나사나
2024-03-18
1
351
나단비
2024-03-17
3
343
죽으나사나
2024-03-17
1
236
죽으나사나
2024-03-16
1
273
죽으나사나
2024-03-15
1
259
죽으나사나
2024-03-14
1
272
나단비
2024-03-14
2
239
죽으나사나
2024-03-13
1
262
죽으나사나
2024-03-12
1
568
죽으나사나
2024-03-12
1
636
죽으나사나
2024-03-11
1
656
죽으나사나
2024-03-11
1
577
죽으나사나
2024-03-10
2
565
죽으나사나
2024-03-10
2
636
나단비
2024-03-09
2
552
죽으나사나
2024-03-09
2
539
죽으나사나
2024-03-08
2
558
죽으나사나
2024-03-07
2
514
죽으나사나
2024-03-06
2
536
죽으나사나
2024-03-05
1
258
나단비
2024-03-04
2
225
모이자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