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탐내도 될까? (31회)

죽으나사나 | 2024.03.09 05:46:06 댓글: 12 조회: 539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52675
너를 탐내도 될까? (31회) 떨어져 나가 주렴. 

다행히 새벽 시간이고 가게 앞 벤치가 자치하고 있는 그 공간은 울타리가 있어 바깥에서 안의 상황을 알 수가 없었고 또 가게 안은 금방 끝난 술자리를 치우느라 바깥 상황에 관심이 없었다. 

기혁이는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은 채, 그 위로는 하정이가 꼭 매달려 있었다. 
그의 목덜미에 두 팔을 끼워 넣은 채로 서로를 탐했다. 기혁이는 다리 옆에 떨구었던 두 손을 어느새 그녀의 가는 허리에 올렸고 제 쪽으로 확 당겼다. 

그러자 하정이 놀라 뒤로 움찔하다 다시 기혁이한테 찰싹 달라붙었다. 

들숨 날숨을 잊은 건지 호흡은 점점 가파로왔다. 

***

다음날,

“… 띠리리링~”

머리는 깨질 거 같은데  아까부터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하아…”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난 하정이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여보세요…”

“오 비서님?”

“저 오 비서 아닌데요. 잘못 걸었…. 음?”

감고 있던 눈이 떠졌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제 폰이 아니긴 했다. 발신자는 ‘이한 비서실장’ 이라고 떠있었다. 하정은 다시 폰을 귓가에 갖다 대었다. 

”저 윤하정이에요.”

방안은 캄캄했지만 암막 커튼 사이로 작은 빛줄기들이 새어 들어왔다. 눈을 부릅뜨고 여기가 어디나 둘러보았다. 어두운 환경에 시야는 점점 적응되었고 차츰 옆에서 쿨쿨 자고 있는 사람이 정연이란 걸 확인했다. 

“아, 안녕하세요. 속은 괜찮으세요? 어제 많이 마신 거 같았는데.”

주소를 보낸지 언젠데 저들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오 비서네 집으로 온 이유가 뭔지 이한은 묻고 싶었지만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궁금증을 꾹 삼켰다. 

“머리가 좀 아픈 거 빼고는 괜찮은 거 같아요. 근데 지금 시간이…”

휴대폰에 시간을 확인했다. 곧 출근 시간이 다가왔다. 

”야! 오정연!! 일어나. 너 출근 시간이야!!“

정연이 이불을 확 제치고 다시 이한에게 말했다. 

”실장님. 어떡하죠. 정연이 아직 못 일어나고 있는데요.“

꿈에서 뭘 먹는지 입을 쩝쩝 다시며 자는 정연을 기차게 내려다보며 하정이가 난감해 했다. 

”아, 괜찮아요. 대표님 지시가 있었어요. 오 비서님이랑 같이 인천 공장에 다녀오라고 하셔서. 출근 전부터 외근이 잡혔어요. 저 지금 오 비서님 집 아래니까 천천히 준비하라고 하세요.“

“네에… 근데 저희가 어제 어떻게 여기까지 왔던 거죠? 제 마지막 기억으로는 정연이가 먼저 취해서 자고 있었던지라…”

그리고 이 실장님은 정연이네 집을 어떻게 알고요.

“오 비서님 집은 뭐… 알고 있었습니다.”

이한이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어제 대표님이 오셔서 그리 어렵지 않게 여기까지 두 분을 모셔다드렸죠.”

얼른 칭찬해 주세요.

하정은 자신의 귀가 잘못되었나 싶었다. 

대표님이라니?

”그럼 천천히 준비하고 나오시라고 하세요.“

”잠시만요.“

끊으려는 이한의 손이 멈추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대표님이 어제 우리 술자리에 오셨었나요?“

”에에~? 기억 하나도 안 나세요? 저는 오 비서님을 먼저 데려다주고 대표님과 하정 씨는 한 시간이나 지난 뒤에 오셨잖아요.“

”네??“

거짓말,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사람이 왜 와. 

[… 대표님.]

[입술 훔쳐도 돼요?]

그러나 머릿속에 이상한 장면들이 떠올랐다. 

입이 떠억 벌어지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게 무슨 기억이지??

뭐지???

”… 하정 씨?“

전화 건너편이 너무 조용하니 이한이가 소리 없이 넋 나간 그녀를 불렀다. 

“어제 제가 대표님이랑 같이 여기에 왔었다고요?”

다 들었으면서 재차 확인을 했다. 

”네.“

간결한 이한의 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하정이. 

말도 안 돼.

기억이 나려면 다 나야지 내가 한 말만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고백 비스름하게 한 거 같은데? 

[저를 키워주신 부모님 빼고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처음이에요. 저는.]

“와아….”

얼어버린 자리에서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정연은 하정이가 몇 번이나 소리를 질러서야 깼다. 그녀 역시 머리가 으깨질 것 같았는지 산발인 머리를 부여잡고 뒹굴었다. 그러다 이 실장이 아래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벌떡 일어나 욕실로 뛰어갔다. 

“넌 천천히 나와. 내 동생은 제주도 한 달 살기 체험을 한다고 간지 좀 되었으니까 걱정 말고.“

정연은 집을 나서기 전에 하정이한테 더 있어도 된다는 말을 보태고 쾅 하고 급하게 문을 닫고 나갔다. 

이미 늦은 출근 준비를 정신없이 하는 정연이한테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을 수가 없었다. 

좀 있다가 문자나 보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이불을 곱게 갰다. 

마음을 비우자. 

별게 아니었을 거야. 

아니라면 연락이 오겠지. 

아닌가, 

이번에도 내가 먼저 들이댄 거 같은데 이를 어쩐담.

[입술 훔쳐도 돼요?]

하,

이불킥을 하고 싶지만 열심히 정리한 침대를 놔줄 것이다. 

윤하정. 정말 제정신이 아니구나.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 미치지 않고서야.

하, 하하 하하.

실성한 사람처럼 하정은 그 자리에서 한참이나 서서 입매에 경련을 일으키며 웃어댔다. 

***

“6번 방은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은서가 처음 보는 이름의 예약 손님을 확인하며 한 실장한테 물었다. 

“아, J 그룹 막내아들인데 오랫동안 해외서 지내다가 요번에 입국했대요. 대학 동창들이랑 회포를 푸나 봐요.”

”아…“

”재벌들은 확실히 다르지 않나요? 어릴 때부터 해외에 눈을 뜨고 돈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삶이란, 오늘도 최고급 옵션으로 준비하잖아요. 일반인은 꿈도 못 꿀. 이제 30대 초반이라던데 큰 거 한 장을 하룻밤에 태울 정도면. 하아…“

한 실장이 혀를 끌끌 차며 서민과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재벌 3세의 씀씀이에 한탄을 하면서 동시에 부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한 실장 말이 맞았다. 일반인과 재벌의 차이점… 

확연히 달랐다. 

적어도 자신한테 벌어진 일만 해도 그랬다. 

엄마는 아빠가 진 빚 2억을 갚으려고 아등바등하면서 살았다. 원해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나마 이런 곳에서 일을 했으니 절반이라도 갚았다. 

어느새 성인이 되면서 남은 빚은 오롯이 그들 자식인 저한테로 왔지만 그새 눈덩이처럼 불린 금액에 사실 모든 걸 포기했었다. 

누군가가 20억을 한꺼번에 다 갚았다는 사채업자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 돈을 그리 쉽게 꺼낼 수가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빚을 갚아준 게 그 군인 아저씨라는 걸 알았을 땐 얼마나 비참했었는지… 고마워해야 하는데 그리하지 못했던 건 이미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나한테는 그 군인 아저씨도 별반 다를 게 없는 나쁜 어른이었다. 좋은 사람이란 가면을 쓰고 약자들을 마구 짓밟는 그런 사람이라고밖에 생각을 안 했다. 

그것도 결혼까지 할 거면서 자기한테 왜 그렇게 큰돈을 쓰게 되었는지…. 

긴 세월 동안 변함없이 한 발짝 물러선 곳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그 모습들에 차차 마음이 열렸었다. 

진짜 아저씨는 나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근데… 

도연이가 그리 가게 되니 저한테만 있는 줄로 알았던 그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이미 죽은 사람한테 몹쓸 질투심까지 들었다. 

흐트러진 그의 모습… 

몇 년 동안을 같이 산 부부였는데  동요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해야 한 게 아닌가 싶으면서도…

내 마음이 고약한 거겠지. 왜 아저씨가 나만 바라볼 거라 생각을 했을까. 재벌 세상은 우리랑 확연히 다른 건데. 

감정 없는 정략결혼, 

처음엔 그랬을지 몰라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 오 이사의 말처럼. 

재벌은 다르다. 

좋아하는 감정이 생겨 연애를 시작하게 되고 자연스레 결혼까지 가는 그런 절차는 이들한테 몇이나 있을까. 

그래서 모든 걸  우리의 당연한 상식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걸 점점 깨닫게 되었다. 

“그나저나 요즘 권대표님 왜 이렇게 조용해요? 가게에 안 온 지 좀 되지 않았어요? 저번 스캔들 이후로 한 번도 못 본 거 같아요.”

한 실장이 한참이나 사색에 잠겨 있는 은서를 살폈다. 

“… 그러네요. 회사 일이 좀 바쁜가 봐요.“

은서가 옅게 미소를 지었다. 

”어, 6번 손님들 올 시간이네. 한 번 더 체크를 해보고 올게요.“

”네.“

한 실장은 시간을 보더니 후다닥 6번 룸으로 향해 갔다. 은서는 오늘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사를 버티려면 졸음을 쫓을 커피가 필요해 휴게실로 들어갔다. 

한참 후,

손님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복도가 북적이었다. 그러나 바로 룸으로 들어가 버리니  왁자지껄한 소음은 금세 확 줄어들었다. 방음이 잘 되는 구조 덕분이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복도로 나온 은서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주문한 안주와 술을 나르는 웨이터들을 살폈다. 

여기로 오고 나서 종교가 없는 은서는 가게에서의 하루가 시작될 때쯤에 항상 속으로 중얼거리는 말이 있었다. 

오늘은 잠잠한 하루가 되길. 

저한테도 아가씨들한테도. 

나쁜 액운 따위 탈탈 털어서 없애기라도 하는 듯 은서는 두 손을 털고는 뭔가가 생각났는지 갑자기 몸을 돌렸다. 

“어? 뒷모습을 보고 설마 했는데…”

그리 가깝지 않은 복도 끝에서 익숙한 목소리와 활짝 웃는 그 모습이 서서히 자신한테로 다가오고 있었다. 

“은서야. 여기서 만나네? 친구 만나러 왔어?”

그 자리에 얼어버린 건 은서였고 상대방은 싱긋 웃으며 이제 그녀의 앞에까지 도달했다. 

신준우….

은서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그 이름을 잇새로 불렀다. 

표정이 굳은 은서를 살피며 준우는 머리를 갸우뚱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난 대학 동기가 오랜만에 입국했다길래, 이런 곳은 처음이야. 좀 이상하긴 한데 꼭 보자고 해서 얼굴만 비추고 가려고.“

여기에 온 사람들이 지인을 우연히 만났을 때의 특징. 

’처음‘이라는 말. 

“근데 넌 여긴 누굴 만나러 왔어?“

여자들이 이런 곳은 잘 안 오지 않냐는 질문도 분명 있을 터. 

은서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실장님. 4번 룸에서 금방 연락 왔는데 1시간 정도 늦게 도착한대요.”

웨이터가 복도에 서 있는 은서를 발견하고 변경된 예약시간을 전달하고는 이상한 분위기의 둘을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바로 자리를 떴다. 

은서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말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며 은서는 한발짝을 떼더니 미소가 사라진 준우를 그대로 스쳐 지나 갔다. 

“잠깐. 은서야.”

준우가 그녀를 불렀지만 응대를 하지 않았다. 

이제 알게 되었으니 

떨어져 나가 주렴. 

준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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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단비 (♡.252.♡.103) - 2024/03/09 09:49:23

몰랐네요 준우가..

죽으나사나 (♡.234.♡.142) - 2024/03/09 23:35:03

네.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힘나요 (♡.208.♡.170) - 2024/03/16 06:20:15

잘 보고 갑니다ㅋㅋㅋ

힘나요 (♡.208.♡.170) - 2024/03/16 06:20:28

잘 보고 가요 ㅋㅋㅋ

힘나요 (♡.208.♡.170) - 2024/03/16 06:20:33

ㅎㅎㅎ

힘나요 (♡.208.♡.170) - 2024/03/16 06:20:38

ㅋㅋㅋ

힘나요 (♡.50.♡.250) - 2024/03/22 19:07:36

잘 보고 갑니다ㅎㅎㅎ

힘나요 (♡.50.♡.250) - 2024/03/22 19:07:49

잘 보고 갑니다ㅋㅋㅋ

힘나요 (♡.50.♡.250) - 2024/03/22 19:08:10

잘 보고 가요 ㅎㅎㅎ

힘나요 (♡.50.♡.250) - 2024/03/22 19:08:27

잘 보고 가요 ㅋㅋㅋ

힘나요 (♡.50.♡.250) - 2024/03/22 19:08:33

ㅎㅎㅎ

힘나요 (♡.50.♡.250) - 2024/03/22 19:08:37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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