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여난다면 6 런던은 아름다워요.

tome0325 | 2020.03.04 20:26:27 댓글: 1 조회: 2702 추천: 2
분류실화 https://life.moyiza.kr/mywriting/4070661

난 진짜 공부를 무지 하고싶엇다. 그래서 일본에서 대학 못간게 후회되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앗다. 난 그래도 공부를 해야 출세 한다고 생각햇다. 그래서 내가 울 동생 딸 가장회 갔을때 가정정황 말하면서 선생님 앞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랐다. 불쌍하니 좀 봐달라고. 동생 아들 가장회도 내가 갔다. 근데 이 애가 공부를 어찌나 못하는지 매번 꼴등이다. 국어를 8점을 맞은걸 난 80점인줄 알앗다. 수학도 엉망이고. 선생님이 날보고 가정교사 청하란다. 진짜 난 돈에 넘 지쳤다. 난 돈이 없다고 내가 가르친다고 했다. 선생님들도 경쟁인데 얼마나 싫어했으면 날보고 그렇게 싫은 소리를 했을가. 하여튼 기중시험에 80점 이상 맞았다. 선생님이 하시는 말이 누가 100점을 맞을것보다 80점 이상 맞은 내 조카가 더 고맙다 한다. 난 조카들한테 부은 정성이 내 자식보다 더 많다.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부모들이 상관도 안하니. 울 질녀 피아노배우는데 내가 돈 내고 , 미술 배우는데 돈 내고. 조카 바이올린 시키고. 먹고싶은거 다 사주고. 한번은 울 조카가 큰애한테 맞아 왔길래 다짜 고짜 그애 찾아가서 귀통을 올려막았다. 안그래도 불쌍해죽겠는데. 근데 울 아들이 하는 말이 엄마는 형 엄마야 하더라. 울 질녀는 언제나 학교에서 언제나 상 받고 키도 크고 이쁘고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피아노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하여튼 뛰는거 외에 못하는게 없다. 지 엄마 있을때는 꼴등이던 애가.

동북에 남았던 엄마가 울 집에 찾아왓다. 내가 나가라고 했다. 울 엄마는 내보다 더 큰소리 친다. 근데 문제는 아버지다. 엄마 들어오는 그날로 뒤심이 생겻다고 매일 같이 술주정한다. 돈은 당연히 엄마가 줬겟지.술만 마시면 동생네 아들을 못살게 군다. 돈없다고 깔보는지. 그러는 아버지를 보니 여생이 얼마 안남을것 같애서 일본에 놀러보내기로 했다.근데 홍콩으로 비행기 타러 가는날 술마시고 싸우고 어디로 가버렸다. 겨우 찾아내서 택시 태우니 란리를 피워서 택시운전수가 내리라고 하는걸 내가 울면서 빌었다. 겨우 홍콩가는 뻐스를 탔는가는 두시간 동안 계속 꽥꽥거린다. 거기 앉은 사람 우리 외에 몽땅 홍콩사람인데. 홍콩 배행장 가서도 꽥꽥거린다. 얼마나 많이 마셨으면 새벽다섯시에야 제정신이 돌아왓다. 일본에서도 술마시고 광증부리고. 내가 일본에 와 보니 내 통장에 돈이 엄청 줄어들었기에 물어보니 엄마 아버지가 쓴 돈이다나. 하여튼 한달 잇는동안 80만엔 들어갔으니. 내가 80만엔 저금할려면 적어도 반년은 걸려요. 하여튼 일본이 물가가 얼마나 비싼데 쓸데없는 물건 가득 사놓고. 왜 그런가 햇더니 물건사러 가는 핑게로 술 사러 갈려고. 말도 모르면서 어떻게 술을 샀는지.

출산 휴가가 끝나고 난 낳은 둘째를 두고 일본에 왓다. 돈벌어야 하니. 근데일본에서 흔히 볼수 잇는 애 잇는 엄마를 왕따치기하는데 걸렷다. 첫날 회사가니 사장이 인사도 안받는다. 계속 욕먹던 할아버지 외에 누구도 인사도 안받는다. 한달 잇으니 지하창고로 가란다. 거기는 화장실도 물도 없고 모기하고 쥐만 있다. 그래도 난 참아야 햇다. 조카 둘, 부모 자식때문에. 그래서 낮에 회사가고 새볔에 어는 회사 화장실 청소하고 저녘에 음식점 하나 토일에 음식점 하나 일했다. 잠이 와서 미칠 지경이였다. 한번은창고에서 물끓일려고 주전자를 열엇더니 50센치 되는 쥐가 죽어잇더라. 나보고 회사에서 나가라는 뜻이엿다. 별 방법을 다 써서 못살게 군다. 자기 발로 나가라고. 난 못나간다 했다. 그럼 조건 대라 하길래 배상금 내라 했다. 그래서 300만 받고 그날로 한시간내에 나가라고 해서 쫓겨났다. 내가 만 9년을 잇은 회사다. 첫애 낳고나서 왕따당한게 9년이나 버텻다. 난 누구의 엄마라기보다 난 누구의 딸이엿고 누구의 언니이며 누구의 이모엿기에 참아야 했고 참아냈다.
일주일후 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난 다시 공부해서 일자리를 찾아야 했으니. 영주권도 얻었으니 비자걱정없이 .나에게는 피눈물의 영주권이다. 난 어깨에 짊어진 가족이란 짐때문에 영주권에 내 자존도 버리고 모든걸 걸었댓다. \
그때 부모는 벌써 동북에 보냇다. 아버지를 보니 오래 못살것 같애서 그래도 친척이 잇는 동북에 가있는게 좋은거 같아서. 거기 가서도 어찌나 말썽을 일구는지.

런던에 도착하니 갈데가 없다. 밖에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얼마나 추운지. 새벽두시에 내려서 갈데도 없고. 문옆에 장의자에 트렁크의 옷을 다 꺼내 업을 정도로 껴입어도 추위를 못막겟더라. 날이 밝자 난 일본에서 안 어떤 방글라 남자의 친구의 주소대로 찾아갔다. 원래는 출국카드에만 쓰기로 햇는데 급하니 물어물어 거기로 찾아갔다. 다 자고있는데 내가 종을 누르니 그 애가 한심해하더라. 뭘 말해도 못알아듣지. 갈데는 없지. 거기에 잇는 사람 다 깻다. 어느 나라 앤지 쫄닥 비 맞은 내가 불쌍하다고 빵을 굽어주더라 .내가 전자 번역기로 내한테 인터넷만 빌려주면 내절로 집 찾겟다 해서 인터넷에서 중국사람 련계해서 그 친구 마누라가 날 데리고 그 중국집에 갔다.대련애엇는데 안된다는걸 하루만 자자 했다. 그래서 그 쓰레기같은 집안을 내가 깨끗이 청소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친구 마누라가 오후에 어떤 남자애를 시켜서 내만한 트렁크를 들어주도록 했다. 그 애가 전철에서 내리면서 꼭 안아주면서 힘들어도 힘내라고 하더라. 난 영원히 그 친구 마누라 하고 그 빵굽어준 애. 그리고 날 안아주던 남자애를 잊을수 없다.

이튿날 학교가는데 집에서 학교까지 두시간을 걸어서 학교갔다. 그때부터 나의 혹독한 영어공부가 시작됏다. 난 아침 9시부터 저녘 7시까지 학교에 붙어잇엇다. 쌀은 비싸니 못사고 1파운드로 빵을 한달 먹을 치를 사서 랭동시켜놓고 먹엇다. 넘 먹어 난 지금도 빵을 안먹는다. 야채를 먹고싶을땐 공원에 가서 민들레나 먹을만한 풀을 뜯엇다. 고기가 먹고싶을땐 닭 한마디 사다놓고 1주일이고 끓여서 먹엇다. 후에 청소하는일 , 애 보는 일 , 애 학교 보내는 일 을 햇는데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서 집에 오면 12시다. 근데 같이 사는 미친 애들이 밤새도록 떠든다. 아무리 말해도 안듣느다. 쓰레기장을 정리 해놓앗더니 사람도 잘도 들어온다.중국애들이 돈은 많아가지고 공부도 안하고 매일마다 술집가서 퍼먹고 논다.

난 다시 처음 일본올때처럼 화장도 안하고 책가방안에 빵만 집어넣고 학교만 다니고 짬이 나면 런던구경을 뻐스타고 다닌다. 그러던중에도 난 매일 집에 전화한다. 근데하루는 조카가 하는 말이 큰일낫는데 외할아버지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병원에 갔다고 한다. 난 아버지가 넘 애를 먹여서 죽었으면 좋겟다는 말도 맣이 햇었다.겨우 엄마하고 통화하니 안될것 같다고 한다. 난 그날 저녘에 왠지 아버지가 죽엇으면 하는 무서운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내 의지와는 달리. 난 매일 학교가서 집에 전화한다. 그 이튿날 전화하니 질녀가 받길래 핢매는 하니 태평실에 갔다 한다. 애 넷만 집에 있고. 난 그길로 하늘땅이 꺼꾸로 돌아갔다. 난 이제부터 아버지가 없다. 혼자서 도서실에 앉아서 꺼이꺼이 울었다. 수업종이 울렷는데도 도무지 그치질 않아 억지로 눈물 닦고 교실에 들어서니 한번도 지각안하는 내가 눈이 뻘개서 들어오니 선생님이 무슨 일 잇는가고 하길래 서툰 영어로 아버지가 죽엇다 고 하니 온 교실이 갑자기 조용해졋다.그래도울면서 수업햇다. 수업이 끝나자 선생님이 말좀 하겟느가고 묻길래 난 허리가 나가서 일어서질 못햇다. 그대 그 톰이 손을 내밀엇다. 난 그 내민 손을 붙잡앗고 놓질 못햇다.톰은 얼마나 아팟을가.난 지금까지도 마음속으로 톰의 손을 놓지 않고잇다. 난 매일 울면서 수업햇고 넘 울어서 눈이 안보였다. 그래도 일은 해야 햇고.

선생님이 어디 갓다 오라 하더라. 그럼 낳아질거라고.난 스코틀랜드를 택햇다. 수업이 끝나고 뻐스타고 갓다. 트렁크에 작은 담요를 가지고. 도착하니 새벽 두시 비가 내린다. 얼마나 추운지. 난 그 에덴버러 거리를 비오는데 걷기를 시작햇다. 거긴 밤에 상점도 없다. 마직막엔 어떤 중국집 앞에 장의자에 누웟다. 그래도 추워서 뻐스역으로 가니 거기도 문을 닫앗다. 참 돈이 없음 고생이다.

그래도 계속 마음이 아파서 못견뎌 하니 선생님이 주소를 주면서 절이니 찾아가보라 하더라. 거기 가니 일본식 불단이 있어서 꿇어엎드려 꺼이꺼이 울엇다. 넘 힘들어서 집에 가겟다 하니 교장 선생님이 돌아가서 상황을 개변할수 있다면 가라 하더라. 내가 어떻게 죽은 아버지를 살려. 난 죽을둥살둥 모르고 공부햇다. 난 아버지때문에 영국간거다. 아버지가 술마시고 일 생기면 돈은 내가 내야 하는데 영어라도 배워 일자리라도 찾아 아버지 병원비라도 대야 하니깐. 내가 안대면 누가 대는가. 그렇다고 중국엔 보험이 있는거도 아니고. 난 아버지라는 사람이 래생에는 내 부모로 되지 말앗으면 한다. 날 넘 힘들게 만들엇기에 .하지만 그런 아버지가 잇엇기에 내가 뼈빠지게 살앗는지도 모른다. 난 아버지를 보내고나서 죄책감에 너무너무 힘들엇다. 아버지 생일날 난 화장지로 머리에 흰꽃을 달앗다. 검은 옷을 입고. 난 톰이 날 보는 측은한 눈길도 잊지 못하겟다. 그리고 날 위해 마음쓰셧던 아버지같은 교장선생님. 날 올때까지 가르쳣던 폴. 오는 그날까지 난 시계를 봐가면서 공부를 햇다. 난 배행기안에서 계속 울엇다. 난 내 앞길이 어떤지 몰랏고 고아가 됏다고 생각햇다. 난 영원히 아버지가 없다. 아버지가 넘 못낫기에 난 소문나게 효녀 노릇을 햇을가. 밉다가도 불쌍하고 아버지가 좋아하면 별이라도 따주고싶고 죽어라고 욕하다가도 죽을가봐 매일 전화하고 걱정하고. 이젠 아버지가 없으니 고통도 끝이 났을건데 왜 이렇게 가슴이 미여지는지.
울 학교에서 력사상 처음으로 100%출석률을 기록하고 내가 있는 크라스면 애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기풍이 생겻다. 폴이 하는 말이 옛날엔 공부안하는 중국사람이 제일 싫엇는데 지금은 중국사람을 사랑한다고. 그들이 어떻게 알랴. 40넘어 혹독하게 영어공부하는 내가 짊어진 가족이라는 이 짐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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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아홉쪽 (♡.50.♡.157) - 2020/03/04 21:35:59

심은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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