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탐내도 될까? (5회)

죽으나사나 | 2024.02.14 09:12:20 댓글: 0 조회: 310 추천: 2
분류연재 https://life.moyiza.kr/mywriting/4547098
너를 탐내도 될까? (5회) 36.400원의 대가. 

<K>.

회사에 도움 될만한, 아니면 동급인 자제들과의 사교 모임은 예전부터 자주 있었다. 서로 못 보고 죽을 사이인 게 아니라 일종의 비즈니스였다. 

기혁은 자신의 제대를 축하하는 자리라고 해서 알려준 주소대로 문 앞까지 오긴 했지만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텐프로 룸살롱. 

’찍어준 주소만 보고 온 게 내 잘못이지.‘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몸을 돌렸다. 

“하아, 참 골 때리네.”

가게 옆 모퉁이에서 담배를 태우던 웨이터 옆으로 또 다른 웨이터가 한숨을 깊게 내쉬며 담배를 달라는 듯 턱 끝을 올려 담배를 가리킨다. 

”왜, 강은서 때문에?“

뚝, 
가려던 기혁이 발걸음이 멈췄다. 

”그래. 걔 진짜 그 고집 말도 마. 오늘도 난리가 아니야. 저러다 병원에 실려가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 그 손님 진짜 미친 새끼인데."
"그냥 받아들이지 참. 여기 들어온 지 벌써 반년도 지났는데."
둘의 궁시렁대는 소리를 들으며 기혁은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강은서... 흔한 이름이긴 하다. 아닐 거라 생각은 하지만 확인은 해야겠다.
제발 내가 알던 그 학생은 아니길...
터벅터벅,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멀리서부터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싸운다...
"너 이 년, 그렇게 고고하게 있어봤자 넌 그냥 몸 대주는 년이야. 어디서 내 앞에서 거절이야? 미친ㄴ. 일로 와. 오늘 그냥 반쯤 죽이게!"
"사장님. 제발 그만하시죠. 은서 여기서 더 맞으면 죽습니다!"
여러 사람이 엉켜서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복도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옷은 거의 찢어져서 너덜너덜해졌고 머리도 산발이었다. 머리를 숙이고 있어서 누군지 모르겠다.
기혁은 아주 천천히 한 발짝씩 다가갔다.
아닐 거야. 그렇지?
시선은 한 순간도 그 여자한테서 뗄 수가 없었다.
"어? 기혁아. 너 왔구나!"
지나가던 한 남자가 기혁을 알아보고 아는 척을 했다. 그러던 말던 기혁은 그 남자를 스쳐지나 웅크리고 있던 여자한테 그대로 천천히 걸어가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일로 와 봐!!"
미친 들개같은 손님이 우악스럽게 웅크리고 있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 큰 힘에 끌려 여자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하...!!!
깊은 한숨을 뿜으며 기혁이 그 자리서 굳어버렸다.

여기저기 맞은 얼굴은 피로 흥건했고 머리채를 잡혀 많이도 아플 텐데 이미 터져버린 그 작은 입에서는 신음 소리 한번 안 나오고 있었다.

진짜 은서다...
순간,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분명 작년에 만났을 땐 그저 당돌하고 생기발랄하기만  한 고등학생이었다. 공부도 잘하는 거 같았고 지금쯤은 꽤 괜찮은 캠퍼스에서 또래들이랑 웃고 떠들어야 할 때가 아닌가.
내가 아는 그 아이가 진짜 맞는 걸까. 눈앞에 이리 빤하게 있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눈을 찔끈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떴다. 천번만번 아니기를 바라면서.
눈을 다시 떴을 땐 그 미친놈한테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가고 있는 은서를 보았다. 

어느 누가 그렇게 궁금하던 여자가 무참히 끌려가고 있는데 그걸 방관하기만 할까.

번개처럼 다가가 그 미친놈을 개패듯이 패고 파출소로 와 있는 지금 기혁이한테  괜찮은 변명거리였다. 

한번도 싸움 같은 건 한적이 없는 자신이 왜 충동적으로 그랬는지.

“이 새파랗게 젊은 놈이 날 다짜고짜 때렸다고요. 여기 봐요. 아오~ 나 죽네!“

깨진 코를 만지며 미친놈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주둥이를 더 조질 걸 그랬다. 

“예예~. 알아들었고요. 좀 조용히 하세요.”

경찰은 이런 류는 많이 봐왔는지 그저 건성건성 대했다. 

“권기혁이라고 했죠? 먼저 폭행을 휘둘렀으니 합의가 안 되면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는 거 알고 있죠?“

”…“

”그 얘긴 이제 저랑 하시죠.“

경찰 앞에 명함을 슥 내밀며 누군가 기혁이 옆에 붙었다. 

”누구…?“

명함과 함께 불쑥 나타난 그 남자를 명함과 번갈아보며 경찰이 의아해했다. 

”아, 저는 권기혁 담당 변호사고요. 폭행에 의한 합의나 처벌에 관해서는 저를 통해서 진행할 겁니다.“

기혁을 아는 누군가가 그의 집에 연락을 한 거 같다. 

이 밤에 법무팀 변호사가 이렇게 빨리 뛰어올 줄은. 

아버지가 보낸  유능한 변호사가 나섰으니 일방폭행은 쌍방폭행으로 밀어붙였고 그놈은 결국 울며겨자 먹기로 합의서에 서명을 했다. 

은서의 모습은 경찰서에 나올 때까지 보지를 못했다. 

“타 기업 자제들이 너의 제대를 축하하는 자리라고 들어서 왜 그런 곳에 갔는지는 더 캐지 않겠다. 다만 왜 너랑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그렇게 팬 거냐?”

파출서에서 나오자마자 아버지 수행비서가 기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 경영에 관심이 없다고 선전포고를 한 뒤로 기혁이한테 거의 눈길도 제대로 안 주던 권승호가 그를 불렀다.

“그냥 눈에 거슬렸습니다.”

기혁이 평소 성격 답게 제대로 답을 안 할 거란 생각은 했지만 무감하던 승호의 표정이 미세하게 구겨졌다. 누가봐도 막 둘러댄 거짓말이라는 걸 느꼈을 테니. 웬만하면 얕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둘째 아들이 단지 눈에 거슬린다고 누군가를 그렇게 패지는 않을 꺼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다는 건 뭔가를 숨기는 게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승호의 매서웠던 눈이 점점 가늘어져갔다. 

“더 얘기하실 게 없으시면 전 이만…”

기혁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드리고 승호의 서재를 나서려고 한다. 

“강은서라고 했나?”

승호의 혼자 읊 듯이 내 뱉는 그 말에 멈칫 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눈치를 못 챌 거란 생각은 안 했다. 회사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고 말한 뒤로 자신한테 관심을 끊었으니 이번에도 그냥 그렇게 지나가기를 바랬다. 

“아는 여자냐?”

“아닙니다.”

몸을 홱 돌려서 부정했다. 

젠장,

승호와 눈이 마주 친 그 순간 무겁던 그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가는 걸 보았다. 

승호는 더 묻지 않았다. 하지만 기혁은 승호가 그렇게 쉽게 끝내지 않을 거란 걸 잘 알고있었다. 

그럼에도 그 가게로 다시 찾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머리는 가지 말아야 하지 하면서 본능이 어느새 무거운 그를 움직였다. 

“은서요? 그때 좀 많이 다쳐서 몇일 쉬다 가게로 나올 거예요.”

은서는 가게에 없다면서, 그때 미친놈과 은서 사이에서 말리던 웨이터가 기혁이한테 전했다. 기혁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걱정 되시면 연락처를 드릴까요?”

조심스레 물어왔다. 

“아니요. 출근하게 되면 이 번호에 문자를 주세요.”

부동산 명함을 넘겨주었다. 전부터 관심있던 분야였지만 입대를 하느라 개업이 늦어졌던 공인중개사사무소 명함이었다. 

“부동산… 아, 알겠습니다.”

명함을 그대로 읽던 웨이터가 머리를 끄덕이었다. 

“저 근데…”

웨이터의 시선은 어느새 저 멀리 가버린 기혁이 뒷모습에 한참이나 머물렀다. 

걸음 한 번 빠르네. 

부동산 사장이라고….

그날 은서를 폭행하던 그 손님은 성깔이 더럽기로 소문난 
IT업계 사장이었다. 일방적으로 맞았으니 분명 합의따위 없다고 끝까지 버틸 인간이었을 텐데 이리도 잠잠하다고?

고작 부동산 사장 때문에?

***

“20억?”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부르는 그 금액에 기혁은 너털 웃음을 지었다. 

은서 아빠가 진 빚은 사업 실패로 인한 사채 빚 2억. 그 후로 은서 엄마가 갚은 빚은 1억이었다. 남은 건 1억 뿐이었는데 10여년이 지났다고 20배나 불렸다. 

”한푼도 뺄 생각 없으니까 20억 갚아 줄 생각 없으면 그만 물러나시죠. 크게 다치기 전에.“

사채업자가 윽박 질렀다. 

20억…. 할아버지가 기혁이한테 남겨주신 그룹 주식과 부동산을 추려 보면 그리 어렵게 나올 금액은 아니었다.

다만 분명 자신 명의지만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건 …

권승호, 아버지 때문이었다. 

그것들을 현금화 하는 순간 승호의  귀에 들어갈 거고 그러면 그 돈의 쓰임새를 찾으려고 할 거고 자연히 은서한테로 관심을 둘 테니…

”20억을 빌려달라고?“

승호가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주식이나 부동산을 파는 것보다 솔직하게 말하는게 나을 거 같아서 하는 소립니다.“

최대한 정중하게 또 별 게 아닌 듯 아버지한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처음이었다. 기혁이가 아버지한테 부탁하는 건. 

”어디에 쓸 건데.“

”그 돈이 꼭 필요한 사람한테 쓸 겁니다.“

”음…“

고민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승호는 기혁이한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좋다. 빌려줄 수 있다.“

의외였다. 빌려달라고 하는 건 마지노선이었고 사실 거의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안된다고 했을 땐 물불을 안 가리고 갖고있는 주식이던 부동산이던 처분을 해서라도 그 돈을 마련하려고 했다. 그때 가서 왜 그랬냐고 하면 거절을 한 당신의 문제라고 맞닥뜨리려고 했다. 

“대신!”

역시는 역시였다. 

호락호락한 승호가 아니었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는 법. 회사로 들어오거라.”

“싫습니다.”

“그래? 그러면 오늘 얘기는 없던 걸로 하지.”

“제 명의로 된 걸 뭐라도 현금화 할 겁니다.”

“어디 한번 해봐. 무슨 일에 쓰는 건지 난 알 거 같으니까.”

부전자전일까, 팽팽한 분위기 속 누구도 먼저 굽힐 사람은 없었다. 

“이런 협박으로는 이제 안 통한다는 걸 아실 텐데요.”

“그래. 너 혼자 일때는 안 통하겠지. 근데 지금은 아니던데? 네가 그렇게 아끼던 그 애를 평생 못 보게 된다면 그것보다 괴로운 일이 더 있을까?”

은호는 은서에 대해 직접적으로 물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처음 그날 은서 이름을 입에 올린 걸 제외하고는. 

자기 아들이 룸살롱 여자 때문에 지금까지 여태 안 하던 부탁을 하고 자신한테 수그리는 모습을 발견하고 오히려 잘됐다고 여길 뿐이었다. 은서는 손아귀에서 자꾸 벗어나려는 둘째 아들을 다룰 대단한 미끼었다. 

“회사로 들어와. 그러면 생각을 해보지.”

달리 방법이 없었다. 마음 먹은 일에는 독하기로 유명한 아버지가 은서한테 나쁜 마음을 품는다면 그건 아버지의 말대로 기혁이한테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일이 될 게 뻔했다. 평생을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 지 찾을 수도 없게 만들 테니까. 

승호의 뜻대로 회사에 들어갔다. 

“또 오셨네요?”

매주 한 번씩 <k> 룸살롱으로 방문한지 한달 째,

오늘도 그리 내키지 않은 표정을 지은 은서가 기혁이가 잡은 룸으로 들어왔다. 

자신만 보면 미친 놈처럼 달려보는 손님들도 구역질 나는 건 사실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몇시간 동안 말없이 쳐다만 보는 이 사람도 정상은 아닌 거 같았기에 은서한테는 별반 다를 거 없는 손님일 뿐이었다. 

“한잔 할래요?”

흠칫 놀랐다. 저 남자가 입을 벌려서 먼저 말하는 건 처음이라고 해야 하나?

“제가… 따라드릴게요.”

술 따르는 게 일인지라 어색한 분위기 속에도 어느새 양주 병이 은서의 손에 들려 있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요.”

기혁은 그녀 손에 양주 병을 빼앗아 그녀 앞에 있던 잔에 따라주었다. 바로 자기 잔에도 채우고 그 잔을 들었다. 

“당분간 못 올 수가 있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자유로운 몸은 아니겠지만 꼭 다시 올게요.”

뭐지….

잘은 모르지만 어딘가 결의가 가득 찬 기혁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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